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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9월 9일)-<믿음의 그릇 ②>이사야 시리즈 ㉑
설교제목 : “참 회개하는 그릇”(The Vessel of Genuine Repentance)
말씀: 이사야 44:9-11, 15-23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 찬양대
대표기도: 유선비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 오정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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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4:9-11, 15-23,
9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10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냐.
11 보라 그와 같은 무리들이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대장장이들은 사람일 뿐이라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15 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
16 그 중의 절반은 불에 사르고 그 절반으로는 고기를 구워 먹고 배불리며 또 몸을 덥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17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18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
19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것의 절반을 불 사르고 또한 그 숯불 위에서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 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
20 그는 재를 먹고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
2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23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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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광스러운 예배 참으로 줄일 만이 높임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 우리 이사야 강의의 스물한 번째이자, 오늘 믿음의 그릇 시리즈 두 번째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참 회개(悔改)하는 그릇에 대해서 말씀을 할 터인데, 지난 주일은 우리 교회 달항아리를 갖다 놓았는데 오늘은 순백색 달항아리를 갖다 놓았어요. 그리고 지난주를 우리가 다 간장 종지 같은 우리가 좀 더 이렇게 커지기를 원해서 오늘은 간장 종지 대신에 사발을 가져왔어요. 여러분, 이 사발(沙鉢)은 우리 선교 초기에 140여 년 전에 조선시대 말기의 사발이에요. 사발인데 국그릇으로 쓰기도 하고, 밥그릇으로 쓰기도 하는 사발인데 다음 주일에는 좀 더 커지시길 바랍니다. 주일 학교부터 청년대학 대청부까지, 지난주 정체성에 관한 말씀을 가지고 적용을 한 걸 어제 토요비전 새벽 예배 때 나누었는데 참 감동이 되었어요. 우리 젊은이들이 확실하게 적용하고 있고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단순한 정보를 주는 게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주신 말씀이에요. 영어로 말하면, Not information but transformation. 정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뭘 위한 거라고요? 변화를 위해 Transformation,,, 삶의 변화를 위해서 그래서 오늘 우리 온 성도들이 이 순백의 달항아리처럼, 오늘 말씀 듣고 난 다음에 모두가 다 하나님 원하시는 깨끗한 그릇, 참회하는 그릇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찬송 중에 하나가 구주를 생각만 해도 85장인데 이 찬송은 옛날에 어른들도 신앙의 선배들은 다 이렇게 마음이 정말 간절하고 애틋하게 좋아하는 찬송이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이 좋거든 주 얼굴 배울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따라하기 힘들죠. 3절이 중요해요.

3절이 우리 할아버지가 부르는 참 회개 하는 자에게 다음에 참 회개하는 자에게 뭐가 되시고요? 소망이 되신다. 오늘 참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소망이 어떤지를 우리 손으로 잡고 가야 돼. 오늘 44장 본문 3절에 보면 앞에 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같이 우리 합독 하겠습니다.

*이사야 44:3,
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이 말씀이 여러분의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참 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신다. 그랬을 때, 그 소망의 성격이 무엇일까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고,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되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자손들에게 연결되고, 하나님의 복을 우리 후손들에게 부어주신다 그 말이에요. 그 말은 당대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오늘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실천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인 줄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소망의 성격이에요. 그런데 이 소망을 누가 주겠어요? 어떤 개인이 이걸 할 수가 있겠냐고, 어떤 단체가 이걸 줄 수 있겠냐고,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마음을 모아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여러분들 사모하는데 이 말씀 앞에 여러분들이 정말 transformation, 변화되길 원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이 여러분의 것이 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특별히 이 소망은 용서의 복음을 깨달은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에요. 무슨 복음을 깨달았다고요? 용서(容恕)의 복음(福音). 그래서 오늘 첫 번째 생각할 것은 용서의 복음을 깨닫는 사람에게 소망이 되시고 참 회개하는 그릇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I. 용서의 복음을 깨달은 사람만이 참 회개하는 그릇이 될 수 있다.
-무슨 뜻이냐 하면 경기도 여주에 가면, 우리 기독교 전 세계에서 거의 유례가 없는 기독교 교도소가 있어요. 그 이름이 소망교도소에 그 소망교도소에 저희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교정사역, 감옥사역을 하는 우리 성도들이 계세요. 가서 이제 제자 훈련을 하고 복음을 전하고 그렇게 하는데, 그 프리즌 미니스티를 하는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세상 사람들은 감옥에 있는 사람들과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로 구별을 하지만, 이 감옥 사역을 오래 한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또 영적으로 보면 이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것이에요. 첫째는 용서받은 자가 있고, 또 하나는 용서받지 못한 자가 있다는 거예요.

오늘 우리는 용서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용서받은 자가 되려면 우리에게는 참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자, 용서받은 자가 되려면 뭐가 필요하다고요? 소망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 왜 이것이 중요한가 하면, 참 회개를 하여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가는 것이에요. 특별히 이 회개는 얼마나 중요한지 예수님께서 공생의 첫 일생이 회개하라 했잖아요.

이 회개는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에요. 이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삶의 전환을 말씀하고 있는 것인데, 오늘 이 회개에 대한 얘기를 할 때에 회개는 용서받은 자가 되는 첫걸음이요. 내 삶 속의 참 소망을 회복하는 황금열쇠가 된다는 것이죠. 쉽게 말해서 참 회개를 통하여 용서받는 사람이 되고, 용서를 받아야 소망이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좀 더 들어가면 겉으로 볼 때는 용서받고 용서받지 못한 자로 구별할 수 있지만, 좀 더 엄격하게 말하면 용서를 받아들인 자와 용서를 거절한 자로 나눌 수 있는 것이에요. 용서받고 용서받지 못한 자, 그게 아니라 용서를 받아들인 자와 용서를 거절(拒絶)하는 자.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용서(容恕)받을 수 있도록 용서의 문을 열어놓으셨고, 하나님은 누구나 용서의 강에 들어가서 몸을 잠글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는데 어떤 분들은 용서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용서받지 못하는 거예요. 이런 점에서 용서받지 못한 자라는 표현보다 용서를 거절한 자, 참 회개를 거절한 자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도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저희들 앞에서는 수많은 용서의 은혜가 펼쳐져 있어요. 지금,,,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박이 없다고~ 제가 이 회중찬송을 앞에 길게는 못해요. 시간 때문에. 그런데 오늘 이 5절까지 있는 것이 그걸 5절까지 하는 동안에 내가 가만히 제가 한번 봤어요.

여러분들 어떤 표정을 보는지 우리 앞에 한없는 보혈의 강이 놓여져 있는 것이 용사의 강이 놓여 져 있는 것이 그 용서의 강을 들어가지 아니하고 그걸 거절하면 안 되는가 왜? 이 보일의 강수에 몸을 담그지 못하는 사람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분들,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로잡혀 있고, 나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자신의 선함에 매몰되어 용서의 강에 용서의 강물에 몸을 담그지 못하고 거절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니까 용서받은 자, 용서받지 못한 자 사실은 용서를 거절한 자와 용서를 받아들인 자 그런데 좀 더 신학적으로 들어가면 통찰인데 그것이 뭐냐면 이것조차도 참된 회개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오늘 이 참 된 회개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여러분들이 섬광처럼 깨달아지는 순간 여러분과 저의 이 그릇이 얼마나 깨끗해지고, 커지는지 몰라요. 다시요. 참 된 회개가 하나님의 뭐라고요? 선물이다.

◎참 된 회개가 선물이다.
-이걸 깨달을 때 회개의 문으로 들어가고 용서에 강에 우리의 몸을 잠길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겸손하게 되는 것이고. 함부로 다른 사람들에게 너 회개했냐고, 회개하라고 인간이 함부로 함부로 말을 못 하는 거예요. 참된 회개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회개를 그저 인간의 의지적인 노력으로만 생각해서는 참된 회계 이 차원에 이를 수가 없어요. 물론 회개는 죄를 슬퍼하는 눈물이 있어야 되고, 행동의 변화가 따라야 되고 회개라는 세례라는 외침처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나 참된 회개를 그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참된 회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주어지는 우리에게 주어지신 가장 큰 선물임을 믿어야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받아야 할 그 저주(詛呪)의 자리 내가 치러야 할 그 피 값을 내가 치러야 할 그 엄청난 죄(罪)에 대한 값을 예수님이 내 대신 저주의 자리에 서 주시고, 예수님이 내 대신 그 피 값을 치뤄 주셨기 때문에, 피 묻은 보혈 복음으로 주어지는 가장 큰 선물임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참된 회개가 인간의 의지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큰 선물임을 각성하는 것은 회계의 새로운 경지로 들어가는 영적 통찰(通察)력(力)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참된 회개는 결코 이러면 공로가 아니라,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라는 걸 알 때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참된 용서도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우리 편에서는 참된 회개도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는 것은 이처럼 놀라운 진리임을 확신하셔야 되는 거예요.

제가 늘 힘들 때마다 도움이 되는 토마스 아캠피스, 그가 외친 대로 주님께서는 어찌하여 비참한 죄인이 슬피 울리며 자기 잘못을 회개할 기회를 주시나이까? 우리가 슬피 울고 우리가 자기 잘못을 회개한 이 기회조차 이 회개할 시간, 회개할 수 있는 무릎 회개로 나아가는 기회조차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선물임을 깨닫는 것 자체가 은혜인 줄로 확신합니다.

따라서 오늘 저는 참돤 회개를 위하여 참 된 회개의 그릇이 되기를 위하여 참 된 회개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고 온 성도들이 겸손이 갈보리 십자가 앞에 바싹 다가서는 은혜를 주시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제가 이 주일 낮 예배 때 모든 걸 다 할 수 없잖아요. 우리가 참 된 회개를 통하여 주님의 십자가 앞에 바짝 다가앉고 그것이 선물임을 깨닫고 그리고 용서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뭘 하나 해야 할 것인가? 오늘 하나만 딱 하겠어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뭘 회개해야 하는가? 참된 회개를 위하여 우상숭배라는 것을 처리할 때 참된 회계의 그릇이 되려면 우상 숭배의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II. 참 된 회개의 그릇이 되려면 우상숭배의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
-회개할 건 많이 있지만 오늘 특별히 우상숭배, 우상숭배를 처리하면 참된 회개 그릇이 된다는 겁니다. 잘못된 우상숭배가 무엇입니까?

오늘 이사야 본문에 보니까 그 당시 바벨론 종교의 우상 제작 과정을 면밀(綿密)하게 관찰하면서 우상 제작 과정의 모순(矛盾)성을 드러내고 아주 그냥 날카롭게 이사회가 이걸 지적하고 질타하고 있어요. 이 잘못된 우상숭배에 대해서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나타나 있어요. 먼저 오늘 여러분 12절을 보면 이런 내용입니다. 12절에,

*이사야 44:12,
12 철공은 철로 연장을 만들고 숯불로 일하며 망치를 가지고 그것을 만들며 그의 힘센 팔로 그 일을 하나 배가 고프면 기운이 없고 물을 마시지 아니하면 피로하니라.
-철공은 철로 연장을 만들고 숯불로 일하며 이제 거푸집에 넣어가지고 그러니까 철공이 뭐라 하냐? 철로 만드는 우상을 만든다는 거예요. 13절에 보니까,
*이사야 44:13,
13 목공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곡선자로 그어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집에 두게 하며.
-우상을 만든다는 거예요. 철공은 철로 만든 우상을 만들고, 목공은 나무로 만든 우상을 만드는데 여기에 진짜 또 아주 그냥 우스꽝스러운 것이 뭐냐면, 15절에 보니까 뭐라 하면,

*이사야 44:15,
15 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
-나무로 우상을 만드는데 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으로 삼는 것이거든요. 땔감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덮히기도 하고 불을 피워가지고 떡을 굽기도 하는데, 그걸 가지고 또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고 우상을 만들어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 거구나. 어떻게 이렇게 참, 이렇게 말이 안 되게 하느냐 무슨 뜻이냐면 우상(偶像)의 재질인 이 나무를 누가 자라게 하시는 겁니까?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는 그걸 가지고 우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다가 신적 요소를 넣고 숭배(崇拜)한다는 것이 우스꽝스럽다 입니다.

선지자 이사에는 아무리 값진 나무, 백향목, 상수리나무, 잣나무로 우상을 만들어도 결국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나무 씨앗에서 시작되어 가지고 나무로 만든 것 그걸 강조하는 거예요. 인간이 만든 우상의 결정적인 약점이 뭐냐 하면, 그 우상을 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제가 다시 우스꽝스러운 것이 뭐 우스운 것이 뭐냐 하면, 인간이 자기 손으로 만든 우상을 신이라고 그 앞에 엎드려서 자기를 구원해 달라고 비는 이 모습, 너무나 어리석은 짓을 한다는 거예요.

저 동남아나 인도 같은 힌두교 가보십시오. 돌로 만든 신상들, 도깨비 같은 모습들, 짐승들의 모양들, 그리고 그리스 로마,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신들, 이상한 뱀, 새, 용, 희한한 것들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 우상들이 자기를 구원해줄 신인 것처럼, 절하고 그냥 온몸을 다 바치고 그렇게 하는 거에요. 그걸 보면서 정신이 제대로 박혔나? 바울은 이걸 알고 로마서 1장에 보면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동물의 모습으로 우상을 만들어 가지고 저래가지고 다 인간이 참 기가 막힌 잘못을 범한 죄를 범한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오늘 9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 구절에 보니까,

*이사야 44:9,
9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그러므로, 우상을 만드는 사람은 수치를 당하리라. 이사야뿐만 아니라, 하박국 선자도 하박국 장이 보니까 같이 보겠습니다.

*하박국 2:18,
18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그러면 오늘날 이 시대에 나무로 만든 철로 만든 우상이 뭐예요? 제가 묵상하다가 오늘날 철로 만든 우상이 뭘까? 오늘날 철공들이 만든 우상이 뭘까? 그게 요새 자동차가 아닐까? 자동차 있잖아요. 철자동차,, 그래서 좀 더 좋은 자동차를 사고 싶어 갖고 자동차를 묵상하고 예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내 마음속에 자동차가 날마다 가득하다면 이 시대의 철공이 만드는 우상을 예배하는 자가 되는 것이에요. 이런 의미에서 21세기 오늘날 우상의 핵심과 우상의 철학이 뭐냐면, 17절에 나와 있어요. 보면 17절에,

*이사야 44:17,
17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21세기 우상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이사야 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요. 인간이 만든 인간이 만든 자력 선택의 우상, 너는 나의 신이니 너는 나를 구원하라. 신을 내가 선택하는 거야. 내가 주어가 되는 거예요. 우리의 주어는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는 것인데 그런데 여기 아멘,,,을 해야 되는데 뭐라고 돼 있어요?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이것이 21세기 우상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의 대상이지, 우리가 주어가 되면 우리가 주어가 돼... 가지고 하나님 외에 나를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신념, 나의 생각, 철학(哲學), 지성(知性), 권력(權力), 탐심(貪心), 물질(物質), 사고방식(思考方式), 세계관(世界觀), 중독(中毒), 이게 다 21세기 우상들이에요. 한국은 우상이 하나 있는데, 그게 뭐냐?

자녀가 우상이라, 특별히 엄마 동지 여러분, 자녀가 우상이라 하나님이 앉아야 할 그 자리에 자녀를 앉혀놓고 자녀를 위하여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과 피를 다 바치는 거예요. 물론 한국의 엄마의 파워가 참 엄마의 희생이 오늘 한국을 만든 건 사실이고 귀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시간이 되면 자녀를 하나님께 맡겨야 되는 거예요. 아니 처음부터 맡겨야 되는 것이에요. 그가 하나님 앞에 살아갈 수 있도록, 렛팀 고(Let Him go!!) 말이 좀 세네요.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는 거예요. 우리가 부모의 마음이 다 애틋해 가지고 자녀를 위하여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마음을 다 갖고 계시는데 혹이나 자녀가 우리의 우상이 되면 안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앉아야 할 보호자에 스스로 우리 자녀를 앉히는 그런 바보 같은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21세기 눈에 보인 우상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이 뭐냐 스마트폰이에요.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대부분 성경 보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아요. 물론 스마트폰 안에 성경도 보고 다 하긴 하지만 그러나 눈에 보이는 우상 같은 스마트폰 안에 뭐가 있느냐, 온갖 거짓 정보들이 온갖 우상 정보들이 온갖 가득 차 있는 거예요. 오늘 이런 잘못된 우상에서 우리가 자유함을 받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특별히 21세기는 중독이라는 우상 숭배가 있습니다. 젊은이들 게임 중독, 운동 중독, 심지어 젊은이들은 인성 중독 인정받고자 하는 거, 관종 인스타그램에 좋아요. 팔로워를 통하여 자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중독도 있습니다.

존 파이프 목사님은 섹스 성과 음식 이 두 가지는 1세기의 소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오늘 21세기 미국의 가장 큰 우상들이다. 미국뿐일까요?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토모니 에반스는 하나님 외에 우리의 필요를 채우고자 의지하는 모든 장소, 사람, 물건이 모두 21세기의 우상이다.

여러분 우상에 대한 얘기를 할 때 오늘 제가 우상 한 가지 얘기한다고 그랬는데, 아주 구약성경의 이 우상에 대해서 아주 절실하게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 중에 하나가 출애굽기 32장의 모세와 금송아지 사건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과 금송아지 사건들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 안 받고 만나를 먹고 홍해의 기적을 체험하고 반석에서 샘물을 경험한 영광스러운 은혜를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거 뭐가 필요한 거예요. 아니 눈에 보이는 지도자가 필요한 거예요. 눈에 보이는 뭐가 필요해 가지고 그렇게 늘 사는데 지금 그 은혜를 받고 있는 불구하고, 모세가 산에 올라가 가지고 하나님과 대면하고 십계명을 받아오는데, 모세가 산에 올라갔다가 약속하신 계획된 그 시간에 못 내려오니까 모세가 안 보이니까. 아이고야 우리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자. 그래 가지고 금송아지를 만드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가장 절실한 잘 보이는 금송아지를 만드는 거예요. 번쩍번쩍하는 거예요.

우리가 오늘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이런 찬송을 하고 은혜를 받지만 그러나 오늘 예배만 저 돌아와서 똑같다면 이것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현실 앞에서 두렵고 상처받고 마음이 타는 시험을 받으니까 모세가 돌아오는 것이 늦어지니까, 그 마음속에 불신이 싹트고 그들의 마음속에 그 불신은 잘못된 불씨가 되어 가지고 그들의 눈에 가장 화려하게 보이고, 손으로 만지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금송아지였어요. 그래서 이 금송아지 사건은 우상숭배 본질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뭡니까? 하나님을 대신하여 의지하는 것이 이 시대의 금송아지가 된다는 것이에요.

죄 성을 가진 사람들은 예외 없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금송아지 한 마리씩 다 갖고 있는 것이에요. 누구나 남모르게 혼자서 즐기고 만지고 의지하는 것이 다 있는 거예요. 그것 자체가 죄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것이 나중에 커져 가지고, 하나님보다 더 우선하는 순간 우상이 되는 것이에요. 우리 모두에게는 약점들이 다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강력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그 금송아지를 모세가 내려와 가지고 질타(叱咤)하고 그 금송아지를 뭐로 만들었습니까? 가루로 만들고, 재(災)로 만들어 버렸어요. 우리 인간이 붙잡고 의지하는 것은 결국 가루가 되고 재가 되는 헛것임을 상징적으로 쌩쌩하게 보여주는 것이에요. 모세가 시내 산에 내려와서 금송아지를 태워서 그 백성들에게 그 재를 마시게 한 거예요. 그때의 그 역사와 그 이미지를 지금 이 사회의 선지자가 20절에서 그대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에요. 20절을 우리 또박또박 크게 보겠습니다.

*이사야 44:20,
20 그는 재를 먹고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
-무슨 말이냐? 그 우상, 숭배한 그 우상, 철로 만든 것, 나무로 만든 것, 모든 것들이 결국은 그 재가 되는데 그 재를 먹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 21세기 우리가 겉으로는 똑똑한 것 같고, 우리가 의지하는 것, 하나님 대신 앉혀놓는 그거 하다가 우상 숭배하는 것, 마치 21세기 금송아지 한 마리씩 다 우리 마음속에 다 있는데, 그게 결국은 재가 되는 것이다. 그 죄는 여러분 영유권을 하나도 좋은 것이 아니에요. 그건 여러분들을 어렵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21세기의 우상 숭배는 재(災)를 먹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구원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상태를 알지도 못하는 것, 나는 우상 숭배자들은 사실은 재를 먹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임을 모르고 있다는 사람들이 하나님 아닌 것, 다른 우상숭배를 숭배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고 재를 먹는 어리석은 일이다.

중독의 우상, 신념과 지식의 우상, 권력의 우상, 자식의 우상 인정받는 우상 이것은 결국 다 재(災)를 먹고 있는 것이고. 내가 죄를 먹고 있구나. 내 인생을. 그래서 이걸 알고 내 죄를 먹는 내 인생을 재정비(整備)하고 재정렬(整列)하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렇게 할 때 참 회개하는 그릇이 되고 그릇이 넓어지는 것이에요.

이제 오늘 제일 중요한 걸 다루겠어요. 잘못된 우상숭배를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그릇으로 만들 것인가? 어떤 은혜를 주시는가? 21절 오늘 본문에,

*이사야 44:21,
2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오늘 말씀이 보통 말씀인 것 같지만 보통이 아니에요. 히브리의 독특한 어법 가운데 오늘 한국말은 좀 이렇게 평이하게 되지 사실은 기억하라. 이 일을 오늘 앞에 있는 21세기를 기억하라. 그 말씀을 우상숭배는 죄를 먹는 것이다. 기억하라. 그리 되면 너는 내 종이 되는 것이다. 너는 바벨론의 종이 아니다. 너는 신념의 종이 아니다. 너는 자녀의 자식, 우상의 종이 아니다. 너는 탐심의 종이 아니다. 너는 하나님의 종 이니라. 내 종 이니라. 이걸 잊지 말라. 아니 잊혀 지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면서 이어서 선포하는데 22절에 놀라운 은혜를 받는 거예요. 22절을 다 같이 합독 하겠습니다.

*이사야 44:22,
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아멘! 우상숭배의 죄를 먹는 우상숭배의 모든 나를 위하여 만든 신에서부터 해방 받을 때 하나님이 어떤 결과를 주시는가 두 가지를 주는데 하나는 잊혀 지지 않는 축복들, 또 하나는 뭐냐면 너의 허물 빽빽한 구름 같은 꽉 막힌 너의 앞날을 하나님께서 마치 아침 안개를 없이 하듯이 없이 해 주시겠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 속에 던져버리고, 낚시 금지 하겠다. 일 아침 안개같이 싹 다 제거해 주시겠다. 할렐루야!!~~ 빽빽한 구름이나 꽉 찬 어두움과 그런 꽉 막힌 것 같은 걸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은혜로 해결해 주셔야 되는데,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타난 영광의 햇볕과 불꽃 같은 은혜로 우리 죄를 태워버리시고 빽빽한 구름 꽉 막힌 앞날의 상태를 바꾸어 주실 줄로 확신합니다.

그래서 우상숭배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 우리에게 나타난 것이 23절이에요. 23절이라는 말씀 우리 크게 한번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이사야 44:23,
23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
-아멘 짧은 한 구절이지만 이 사회를 통으로 깨달은 산들과 숲과 그 가운데 모든 나무들 하나하나 부르시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소위 우주적(宇宙的) 찬양과 기쁨이 있는 것이고, 이걸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친히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상 숭배하는 것, 우리가 좋은 것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재를 먹는 것임을 기억 하십시다. 대신 우리가 이 문제를 처리할 때에 23절에 있는 것처럼, 전 우주적 기쁨과 찬양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런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가 눈이 열리고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할수록 우리의 믿음의 용량, 믿음의 그릇이 커지게 될 것입니다.

이제 오늘 가장 중요한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회개하는 자가 되어 가지고 우리 속에 우상을 처리할 때, 우주적 주님을 찬양할 때 우리의 믿음의 용량과 믿음의 그릇이 커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내면의 속사람, 내면의 공간의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에요. 오늘 가장 중요한 겁니다. 우리 속에 우상 제거되면 그곳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공간이 되는 것이에요.

◎우리 마음에서 우상이 제거되어 참 회개하는 깨끗한 그릇이 되면, 그곳은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거처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공간이 된다.
-하나님께서 마음껏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준비가 되는 이 space가 준비돼요. 하나님께서 마음껏 역사하실 거처가 준비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은 새 마음과 새 영과 그 다음에 새로워지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에스겔 36장에 제가 참 귀하게 생각하는 구절인데 25절, 26, 27절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공간이 된 그런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한번 보겠습니다.

*에스겔 36:25-27,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하나님 말씀 순종할 수 있는 놀라운 그릇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런 하나님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깨끗한 그릇으로 특별히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공간을 오늘 다 확보하고 여러분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속에서 우상이 제거될 때마다, 하나님의 성령이 일하실 공간이 늘어나고, 성령이 일하실 공간이 늘어나면, 우리의 믿음의 용량이 커지는 것입니다. 믿음의 그릇이 커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믿음의 그릇이 되도록 다 함께 믿음의 갑판 위에 올라오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믿음 반대로 우리의 마음속에 우상이 가득하면 꽉 막혀 가지고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이 없어지고 따라서 우상이 처리될 때에 믿음의 공간이 넓어져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귀한 축복들을 받아 담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믿음의 그릇을 커지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이런 말씀을 받을 때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선과 마찬가지거든요. 그러면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에서 나를 돌아보게 되고 내가 깨끗한 그릇 되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구약의 욥을 보면요. 욥은 어떻게 보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에요. 그런 회개할 것이 없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욥을 의롭게 생각하시고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하나님이 자랑하셨어요. 그런데 그 욥기 42장 5절 6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냐,

*욥기 42:5-6,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그는 완벽한 믿음의 사람이에요. 회개할 것이 없는 사람이에요. 회개할 것이 없는 욥도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 앞에 자기를 돌아보니까, 티끌과 재 가운데서 내가 참 회개를 합니다. 그랬어요.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욥을 너무나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을 만들어 가지고, 나중에 하나님께서 이전보다도 그냥 더 강력한 겉으로 볼 때, 숫자로도 두 배 이상의 큰 축복을 주시는 것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자, 지난주에 이어서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데 지난주 이래 우리는 물과 불을 통과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다. 가까이 나갈수록 우리는 불을 통과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 물과 불을 통과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때,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우상을 제거해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마음껏 역사를 가실 공간을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제가 달 항아리를 이렇게 했는데 이 달 항아리를 보니까,,, 보입니까? 아니 좀 더 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사람에게는 진심, 하나님께는 전심” 이 달항아리를 제가 2년 전에 문경에 계시는 어떤 달항아리 도예 전문가가 이걸 저한테 선물을 했어요. 했는데 우리 순백의 달항아리로 이 순백의 참회개 하는 그릇이 되면 하나님께서 마음껏 역사하실 공간을 내어드렸는데 지난주에 ‘All hands on deck’인데 오늘은 우리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공간을 가지고 여기에다가 ‘사람에게는 진심, 하나님께는 전심’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생일을 평생 복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받고 이제 여러분 한 가지 할 일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내 인생의 복잡한 것들, 그 다음에 정리할 것들, 제가 이런 좋은 말씀 드릴 때 정리하시기 바래요. 영적으로도 그러고 아내 이외의 다른 관계들을 정리하시기 바래요.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여러분들 수많은 오염된 것들을 정리하시길 바래요.

거기에 대한 증거를 여러분들이 보여주셔야 되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1년 동안 쓰지 않는 물건들은 다 처리,,, 우리가 선교부가 앞으로 3주 동안 받을 건데요. 여러분들 집에서 입지 않는 옷들 이런 것들을 다 정리하자. 이거 이것도 정리할 것들을 싸그리 정리하는 애를 주시길 바래요. 그리고 복잡한 것들 좀 다 처리하고 집안에 1년 동안, 사실은 6개월 동안 쓰지 않은 거 다 처리하고, 어디 여행 가가지고 여러분들 어느 숙소에 가면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래도 다 살잖아요.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복잡하고 이런 것들을 다 좀 처리하고, 정리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하나님이 쓰시는 깨끗한 그런 그것으로 상징적으로도 그렇게 하셔 갖고 정리하고 그다음 우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겠다는 좀 어떻게 상징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그렇게 해서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쓰임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가슴에 손을 얹겠습니다.

요약,
우리에게 있는 모든 우상들을 정리하여야 하고, 주님이 마음껏 일하실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시고, 넘어진 자를 일으켜 주시고, 실패한 자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 밖에 없는 줄로 믿어야 한다. 참된 회개 그릇이 되면 넘치는 은혜를 받을 것을 확신하며, 특별히 우상숭배의 모든 죄가 용서받아야 하며, 인간이 만든 모든 우상들은 결국 허망한 재가 되는 것이니, 우상 숭배의 죄에서 돌아와야 한다. 우리 모두가 다 점점 더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공간 거처가 되어야 한다.
-날마다 '피 묻은 용서의 복음'을 깨닫고, 보혈의 강에 적셔진 참된 회개'에 들어갈 때, 정결한 그릇에 참 소망을 선물로 받는 평생이 되어, 내 안의 금송아지 우상들이 허망한 재(災)임을 깨닫고 다 끊어낼 때, 내 마음과 가정과 일터는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일하시는 거룩한 공간과 거처가 되어야 한다. 사량의 교회가 '전심과 진심'(All Hands on Deck)으로 '10.27 세계/한국교회 섬김의 날' 에 헌신할 때, 민족이 살아나고, 통일이 앞당겨지며, '세계 선교의 무한 지평'이 활짝 열리기를 간절하게 간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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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8월 31일)

설교제목: : "물과 불을 통과한 그릇"-첫 번째 메시지
(A Vessel That Passes Through Water and Fire)-이사야 시리즈 ⑳

성경본문 : 이사야 43:1-7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대표기도: 고영민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오정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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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3:1-7,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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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 예배당 들어오실 때 뭔가 좀 새롭다. 이런 걸 못 느끼셨어요. 뭐 안 느껴져서 할 수 없고 새로움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우리 가을 사이가 시작되기 때문에 교회는 그렇게 준비를 하고 오늘 찬양돼도 참 귀한 찬양 하나님께 영광 받으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이 가을 사역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믿음의 그릇’ 시리즈를 이사야서 강연을 계속하는 가운데 믿음의 그릇 시리즈를 시작. 여러분들 이걸 다 나눠드렸는데 잘 받으셨어요? 그리고 오늘 일과 읽어오셨어요? 읽어오신 분들은 더 큰 축복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날 우리 글로벌 광장에서 그걸 다 내드렸는데 교구별로 또 다락방 별로 내드렸는데 그렇게 된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우리 개인도 이렇게 믿음의 그릇이 커질 뿐만 아니라, 주님 우리 교구나 다락방이나 우리 모든 한국 교회도 이렇게 그릇이 커지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그 분위기가 아주 따뜻했습니다. 따뜻하고 감사드리고 저는 이번 시리즈를 제가 시작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우리 교우들 좀 좁은 그릇이라면 믿음의 성장판을 좀 이렇게 딱 열게 해주셔 갖고 큰 그릇 되게 해달라고” 했잖아요. 큰 그릇 얘기하면 무슨 사역에 관한 그런 것이냐.

그 정도가 아니고 인격의 그릇도 커지게 해주셔갖고 여러분 이혼 직전에 있는 어려운 가정들도 이 믿음의 그릇 시리즈 끝나면 다 하나가 되는 그런 애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오늘 주님 간장 종지 같은 그릇이 큰 믿음의 달 항아리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런 마음으로 이 간장 종지는 이게 간장 종지입니다. 이 간장 종지 조그만 하죠. 그렇죠? 아주 그런데 믿음의 큰 그릇은 달 항아리인데 옆에 달항아리를 제가 갖다 놓았어요. 갖다 놓았는데 잘 안 보이는데 여기에 저희가 입당할 때 12년 전에 이 달 항아리를 한국 사회 유명한 달항아리 작가이신데, 장로님이신데, 우리 교회를 위하여 특별 다라리를 아마 항아리를 아는 분은 이게 고수가 보면 이 대단한 작품이다. 아실 거예요. ‘사랑’이라고 써놨어요.

다 ‘사랑의 교회’라고 전체 다 해놓았는데 여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막 등장하는데 한 사람도 똑같은 사람이 없고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이렇게 달 항아리, 다 일어나 그래서 제가 마음의 소원이 주님 모든 성도들이 예외 없이 사랑아리는 좀 이렇게 시작도 끝도 없고, 우리 좀 이렇게 하나님 닮은 것 같아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큰 그릇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제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갖다 놓을까? 말까. 그런데 그래도 하여튼 뭔가 여러분 나오면 안 되고 말씀이 남기를 바랍니다. 자 오늘 1절에 43강의 1절에,

*이사야 43:1,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
우리를 뭐 하셨다고요?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의 하나님이 누구를 창조하시느라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것은 우주의 기원이에요.

그런데 오늘 이사야 43절 1절은 성도의 기원이에요. 우리를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우리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소원하시는 거 뭐냐 뒤에 6절 7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오늘 본문 뒤에,

*이사야 43:6-7,
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놀라운 말씀이에요. 물론 6절, 7절은 본문으로 보면 고토(古土) 수복(修復),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복되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만, 더 크게 보면 선교적 해석으로 보면 동서남북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 우리들은 온 세계를 품고 하나님 나라에 놀라운 그릇으로 쓰임 받길 원한다. 그런 뜻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사야서에는 자주자주 뭐라고 얘기를 하면 이사야 64장 8절에 이와 같이 나와 있습니다. 다 같이 보겠습니다.

*아사야 64:8,
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우리가 뭐라고 했습니까? 진흙이다. 주님은 뭐해? 토기장이시다. 이사야서는 자주자주 주님은 토기(土器)장이시고 우리는 진흙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영어를 써서 죄송한데 토기장이라 파털(potter), 그리고 진흙은 클레이(Clay), 진흙은 아무 일을 할 수 없어요. 그런데 토기장이가 그 진흙을 가지고 어떤 작품을 만드냐에 따라서 그 그릇의 장래가 결정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 마음속에 여러분 나름대로 세상에 지금까지 살아왔던 수많은 관념 또 선입관 또 여러분들 나름 대로의 어떤 뭐 하여튼 편견이라 할까, 나름대로 생각들이 다 있겠지만, 이번 앞으로 7주일 동안을 포함해서 여러분들의 모든 생각과 편견을 주변 앞에 다 내려놓고, 추님께서 말씀으로 여러분들 빚어주시고 깨닫게 하시는 대로 여러분들 새로워지시면 좋겠어요. 여러분도 기대하시고 저도 기대하고, 그런데 어떤 분들은 말씀 이 믿음의 성장판(成長板)이 닫혀있는 분이 있어요. 딱 굳어져 가지고 율법주의로 굳어져 가지고 나는 내가 있다. 그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하셨는가 놀랍게 하셨는데, 오늘 1절에,

*이사야 43:1,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 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다시 한번 이렇게 나와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1절에 1절에 너를 창의로 말씀하세요. 삼중의 칭호를 하는데, 첫째, 뭐에? 하나님께서 너를 창조하시고, 그다음에 지으시고, 그다음 너를 구속하셨고 이 삼중 칭호에 그리고 너를 지명하게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그랬어요. 복음 생각해도 가끔 하긴 하는데 이걸 완전히 우리가 익숙하게 내 것으로 삼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지으시고, 구속하셨다. 이건 어마어마한 말씀이죠. 세 번이나 반복해서 우리에게 강조하시고 그렇게 하시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상품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믿음의 작품으로 만드신 줄 우리는 깨닫는 거예요. 하나님 무리를 지으실 때 우리를 아주 독특하게,,,

그래서 오늘 18절에 독특하게 지으셨는데 뭐냐 우리로 하여금 아주 그냥 한정판 작품으로 만드셨어요. Limited edition으로 만드셨어요. 그리 만드시고 그 다음에 우리로 하여금 적당한 삶을 살지 않게 하시고 어떻게 하십니까? 오늘 1과의 18페이지에 나와 있는데, 뭐라고 나와 있냐, 이렇게 했어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는 보냄 받은 존재로서 우리는 던져진 존재인가? 보냄 받은 존재인가? 여러분들은 이 땅에 우연히 던져진 존재입니까? 아니면 사명으로 보냄 받은 존재입니까? 확실하게 하셔야 됩니다. 다시요. 이 땅에 우연히 던져진 존재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작품으로 만드셔 갖고, 우리로 하여금 특별하게 한정판으로(Limited edition), 이렇게 사명 받은 우리 보냄받은 존재입니까? 어떤 겁니까? 보냄 받은 존재이죠.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적당한 삶, survival life, 겨우겨우 연명하는 삶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적당히 성공한 이 정도가 아니라 significant(특별한), 아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한번 창조하시고 지으시고 구속하시고 우리를 향한 소유권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 정도 되면 우리 마음속에, 야 너무 감사하다. 기쁘다. 정말 하나님께 정말 참 우리 마음속에 치밀한 은혜가 있는데,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시고, 지으시고 우리를 소유하시고 심지어 지명하게 부르시고 우리로 하여금 명품으로 만드시고 다 하셨는데, 이제 문제는 이를테면, 다 왠만한 어려움이나 문제들은 다 우리에게 면제될 것 같은데, 2절이 뭐라고 이렇게 나와 있어요? 2절에 너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이사야 43:2,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자 저와 여러분들은 이번 가을에 하나님 원하시는 믿음의 귀한 작품 믿음의 귀한 그릇이 되길 원하는데, 믿음의 그릇이 되려면 첫 번째 할 것은 뭐냐면요. 물 가운데로 지나가야 되고 불가운데로 지나가야 믿음의 그릇이 되는 것이에요. 물 가운데로 지나가고 불 가운데로 지나가야 된다.

이게 참 이게 하나님은 물과 불을 통과 믿음의 그릇을 만드시는 거예요. 목사님 저는 싫어요.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자 사실 1절에 볼 때에, 하나님 우리를 너무 작품으로 만드셔 갖고 웬만한 어려움과 문제는 면제될 것 같은 때에, 하나님 뭐라고 말씀? 2절에 다시 한번 불 가운데로 지나가면 어떻게 하겠다? 강을 지나가면 어떻게 하겠다? 불 가운데로 지나가면 어떻게 하겠다? if,,, 이런 어떤 만약이라는 말씀을 쓰시지 않으면 아예 그냥 딱 선을 하신 거예요.

‘너는 물 가운데로 지나갔다. 너는 불 가운데로 지나갔다. 너는 강을 지나간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물, 불, 강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 생활하면서 감당하는 우리의 생애를 다 한결같이 살아가면서 우리가 우리의 생애를 우리가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고난과 시련과 환란과 어려움을 통칭하는 것이다. 물, 강, 불 만약이 아니라, 물 불, 강. 그리스도인들은 시련과 혼란과 고난과 어려움을 통과한다. 별로 반응도 안 하는 거 보세요.

물 가운데로 지날 때, 강을 건널 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준비가 되어야 되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준비되려면 물 가운데로 들어가야 하고, 불 가운데로 가야 한다는 것이에요. 면제되면 좋겠는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점점 불에 가까이 가는 것이 이제 더 거의 반응 안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에요. 아이고 그러면 우리 포기해야 됩니까? 힘드니까, 신앙생활은 여러분 초등학생 수준으로 끝나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의 삶 전체는 성화(聖化)의 과정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계속 우리는 성장을 해야 되는데 그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믿음의 작품은 뭐냐? 물과 불을 통과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은 자주자주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내가 받을 고난을 너희도 받을 수 있냐? 너희가 나를 믿으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한다. 세상에서는 요한복음에 세상에서 내가 환난을 당한다.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그릇 만드는 그릇 법칙이에요. 하나님 나라의 그릇 제조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에요. 사도바울은 어느 날 두아디라 성 같은 데 가서 막 복음 전하고 그러다가 막 사람들이 그냥 고난 돌멩이 던져 가지고, 거의 다 죽은 것처럼 됐어요. 죽은 줄 알고 둘둘 말아 갖고 성 밖에 내어 쳤어요. 제자들이 같이 서서 엉엉 울고 있는데, 그냥 죽은 거 다시 살아났어요. 그 참 눈물 나는 광경이에요. 그럴 때 딱 바울 사도가 살아나 가지고 뭐라고 얘기하느냐, 너희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요암 사도행전 14장에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

여러분이 싫든 좋든 우리가 이 물과 불과 강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우리가 거쳐야 할 필수과목이에요. 싫어해도 할 수 없어요. 천로역정의 크리스천이 나오는데 기독도가 나오는데 그 기독도가 마지막에 발 때 물과 물의 강을 통과해 가지고 마지막 천성이 도달하는 거예요. 이게 필수 과목이에요. 따라서 스폴젼 목사님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려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상속자가 되려면 고난의 상속자도 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면류관을 쓸 정도의 믿음의 그릇이 되려면 십자가의 물과 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목사님 나는 상속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어쩔 수 없어. 그래야 빚어지는 거예요. 로마서 8장 17절에,

*로마서 8:17,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뭐도 받아야 한다고요? 물과 불을 통과해야 합니다. 좀 더 주목할 것은, 오늘 본분에 보니까 물과 불 가운데란 말을 썼어요. 그래서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너가 불 가운데로 지나갈 때,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정은 물 가운데로, 노도 치는 바닥 가운데로, 범람하는 물 가운데로, 심지어는 타는 불 용광로 가운데로, 집어 던짐을 당하는 것이에요. 그걸로 끝인가?

그러니까 지나면이 아니라 지날 때에, 그리고 그냥 적당한 것이나 가운데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범람하는 물 가운데, 활활 타는 불 가운데서도 드디어 3절,

*이사야 43:3,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그야말로 사망이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때 함께해 주시고, 그 다음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이 다니엘의 세 친구가 불 용광로 속에 있을 때 네 번째 하나님의 아들 같은 네 번째 주님이 그와 함께 동행하셔서 불 가운데로 통과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 범람하는 강물과 훨훨 타는 불꽃도 결국은 주님의 임자심을 통하여 우리를 파괴하거나 이기질 못한다는 거예요. 따라서 그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말씀 로마서 8장 39절,

*로마서 8:38-39,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냥 적당한 것이 아니라 물과 불을 통과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이 참으로 체화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어떠한 비극이나 어떠한 시련 때문에, 내가 병들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약해지지도 않고, 하나님과 멀어지지도 않는 거예요.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희 교회 청년부에 김소민 자매라고 있어요.

※28세 때 CRPS,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이에요. 아주 희귀한 난치병이에요. 그걸 진단받았어요. 이 병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심한 통증을 겪는 병이에요. 하루 24시간 출산의 고통을 뛰어넘는 고통을 당하는 것. 사람의 통증 치수를 1부터 10까지 놓을 때 대개 출산의 고통을 7쯤이라고 한다면, 이 병은 10이에요. 10, 제일 아픈 거예요. 그래서 약말 하나를 신기 위하여 통증 때문에 수십 분을 몸부림 차였고 하루에 100알 이상의 약을 넘는 약을 복용을 하고 Morphine, Morphine, 케타민을 막고 반복되는 주사 치료로 혈관이 모두 사라져 척수 작업기를 얻는 수술까지 받아야 했어요.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실제로 이 병에 걸린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견디지 못해 갖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는 거예요. 그러나 김소민 자매는 이 고난의 시간, 물과 불도 이런 불이 없죠. 그 시간에서 포기하지 않고 불속에서 함께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바라보기로 결심하고, 어떤 예배도 주일 예배에 참석을 결심하고 그래서 예배에 와 가지고 예배 도중에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도 예배 자리를 사모했고, 가정예배와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고백했어요. 그리고 이 안아주심의 본당에서, 특별히 웨이 메이커를 부르면서,,, 기적을 만드시는 주 부르면서 믿음으로 선포할 때 큰 힘을 얻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던 가운데 기적적으로 호전이 되어 가지고 2022년도 청년부에서 제자훈련을 시작했고, 2023년에 여름에 몸에 삽입된 모든 기계를 제거하는 영광스러운 은혜를 받게 된 것이었어요. 제가 우리 교회는 박수를 자주 안치는데, 안 하는 교회지만 오늘은 왜 말도 안 했는데 박수하라면 말도 안 했는데 박수 치시는지 모르겠어요.... 제가요. 그래서 이 자매가 이 자매가 그 가을학기부터 그의 가을학기부터 이제 청년부 이제 리더로서 지금까지 열심히 섬기고 있어요. 담당 교수님도 자매의 회복을 의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것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 김자매는 자신과 같은 희귀 난치병 환자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도움을 주고자 그간의 투명 기록을 또 간증을 모은 책을 썼어요. ’하나님 여기 저 살아있어요‘. 여기 저 살아있어요. 그걸 출간해 가지고 수많은 화론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는데, 제가 추천사를 썼어요.

제가 뭐라고 썼느냐 “절망의 낭떠러지에서도 유일한 소망 되시는 주님께 올려드리는 은혜와 믿음 보고의 결정체이다. 끝을 알 수 없는 고난의 터널을 지나는 중에도 날마다 우리 짐을 지어주시고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든 분들과 함께 고백할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김자매가 그 안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나는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근거 있는 낙관주의자이다. 내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어 주셔 가지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이 단 1가지 사실 그리고 두 달 전에 믿음 좋은 형제와 결혼까지 했어요. 어이구,,,, 자 사랑하는 여러분 이 자매는 물과 불 가운데로 지나간 사람이에요. 믿음의 그릇을 크게 만들어요.

그리고 이 자매는 고난의 시간을 고난의 물과 불을 낭비하지 않았어요. 오늘 이 자매나 혹은 베드로나 바울이나 이런 모든 성경의 인물들은 우리에게 뭐라 뭘 말해주느냐, 고난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믿음의 그릇으로 빚어가는 시간이라는 것이에요. 다시요. 고난은 뭐가 아니라고요? 끝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무슨 그릇으로? 믿음의 그릇으로 빚어가는 시간이에요. 다시요. 우리를 창조하시고 걸작품을 만드셨을 때 우리는 면죄받을까?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물과 불과 강을 지나간다고 그랬어요. 그리고 그 가운데 들어간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에요. 그것이 뭐냐? 우리를 믿음의 작품으로 믿음의 그릇으로 빚어가는 시간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내용이 우리 개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내가 시련을 겪을 때에, 내가 암 진단에 불 가운데로 들어갔을 때에, 배우자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는 죽음의 물 가운데로 들어갔을 때, 수많은 다양한 시련과 고난 가운데로 들어갔을 때,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받을 수가 있겠어요? 다시 한번 물과 불 가운데로 주님이 우리를 들어가게 하시는데, 저는 오늘 두 가지 때문에 물과 불을 지나게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하시는가, 우리를 신앙적으로 참 자유인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물과 불을 통해서 우리를 뭐하게 하신다고요? 자유케 하시는 것이 이 왜 무슨 뜻이냐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습니다. 우리는 개돼지나 우리는 동물이 아닙니다.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육신을 지니고 있고 대신 우리는 하나님의 창작품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영혼을 지니고 있는 존재예요. 영혼이 육신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니라, 육신이 영혼을 지니고 있는 거예요. 육신이 영혼을 담고 있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 하면 물과 불은 영혼을 담고 있는 우리의 육신이 이 땅에서 한계가 있는 우리 육신이 물과 불을 통과하여 영혼을 담고 있는 이 소중한 우리가 영적으로 자유케 되는 축복을 허락해 주시는 것이에요. 놀라운 그릇으로 빚어주는 최고의 도구가 되는 거예요.

물과 불은 우리를 하여금 최후의 승리를 갖도록 우리를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이 되는 것이에요. 따라서 오늘 1절에서,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볼 너는 내 것이라고 그랬는데 너는 내 것이라고 하실 때 속박되는 느낌 그게 아니라 처음에는 속박된 느낌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 정반대의 하나님이 우리가 영혼을 지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내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정체성이 확고하게 될 때 그 가운데 물과 불을 지난다는 이런 걸 깨닫게 할 때 우리는 영적으로 진짜 자유인이 되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토기장이로, 우리는 진흙으로, 진흙은 우리의 육신을 말하고 있는 것이에요. 육신이 이 귀한 그릇으로 그리고 육신이 자유함을 가질 수 있도록 계속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과 불을 사용하시는 거예요. 물로 진흙을 반죽하고 불로 도가니를 초벌구이를 하고, 재벌구이를 하고 불을 통과 적당한 불을 통과하면 작품이 안 나오는 것이에요. 시골에 있는 우리 간장 독 그다음에 무슨 된장으로 고추장 독은요. 그건 도기에요. 제가 이제 도자기를 조금 공부를 해보았는데 자기가 되려면 작품이 되려면 1300대를 통과해야 돼요. 1300 통과 안 하면 적당한 것은 그냥 도기로 끝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명품 달항아리, 도자기가 되려면 이게 물과 불을 특별히 불의 강도가 세져야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강도가 세질 때 그걸로 끝이 아니라, 작품이 되면서 특별히 뭐가 되느냐? 영혼의 자유 함을 갖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자유함을 갖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웬만한 고난이 와도 끄떡도 안 하는 것이 그리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여러분 저는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로서 여러분을 섬기고 있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귀한 일이지만 어떨 때는 여러분 여기 서기만 해도 부담이야... 저는 매주 매주 마다 작품을 만들어내야 되잖아요. 매주 매주마다 새로워져야 되는 거 아니에요. 제가 무슨 재주로, 제가 무슨 능력으로, 그 짐이 많아요. 짐이 많지만 수많은 과정들을 통과해야 하나님 물과 불을 통과한 과정을 통하여 제게 자유함을 주시는 것이에요. 웬만한 시련과 어려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함을 주시는 것이에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릴 때, 어떤 분들은 주님 나는 싫습니다. 싫어도 할 수 없어요. 물과 불을 통과하면 영혼의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진짜 간절하게 드리는 말씀은 전쟁에 나가보지도 아니하고 고난을 당하지도 않으면서도 승리를 경험했다는 말은 없어요. 제가 그럴 수도 없어요. 우리가 이 땅에서 영적 전쟁을 승리하고 승리에 면류관, 왕관을 쓰려면 먼저 이 땅에서 물과 불을 통과하는 십자가의 영적 전쟁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에요. 이 영적 전투 앞에서 물과 불을 통과하게 되면 비굴하게 벌벌 떨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영적인 자유함을 가진 사명자가 되도록 물과 불을 통과하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죽 한번 써놨어요.

●"우리가 이 땅에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승리의 면류관을 쓰려면 먼저 이 땅에서 물과 불을 통과하는 십자가를 반드시 져야 한다. 이 영적 전투에서 물과 불을 통과하면 비굴하게 벌벌 떨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영적인 자유함을 가진 사명자가 되도록 만들어 주신다".

-이게 오늘 첫 번째 우리가 믿음의 글을 대할 때 너는 내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정체성을 주셨지만 우리는 이런 물과 불을 통과한 그릇으로 먼저 준비되게 만들어 주시는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 다시요. 전쟁하지 않고 어떻게 승리합니까? 고난을 겪지 않고 어떻게 극복을 하는 것입니까? 물과 불의 고난을 통하여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오염된 것들, 거짓된 찌꺼기들이 다 처리되는 것이에요. 어떨 때는 우리가 경제적으로 힘들게 하셔 가지고 우리랑 그 불을 통과하게 하시고, 어떨 때는 우리를 쥐어짜 가지고 오염된 것을 짜내 가지고 깨끗한 그릇으로 만드실 거예요. 대장 장의 칼이 벌겋게 그 죄를 달구어 가지고 방망치로 치고 달구고 물속에 잡아놓고 또다시 내가지고 또 달구고 또 치고 적당히 몇 번 달군 것은 그냥 칼입니다마는 명검과 복음이 되기 위해서는 수없이 물과 불을 통과해 가지고 또 치고 달구고 또 치고 달구고,,, 자 이런 말씀드리면, 목사님 나는 보검(寶劍)되기 싫어요. 나는 명검(名劍)되기 싫어요. 그건 아직 하나님 심정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예요. 이 깊은 세계에 들어가면요.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여기에서 영적으로 자유케 된 베드로의 고백을 한번 들어보십시다. 베드로전서 1장 6절, 7절에 뭐로 말씀하는가.

*베드로전서 1:6-7,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왜 그러는가? 이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물과 불을 통과한 영적인 명검들이 하는 얘기야.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소께서 나타나실 때의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할 것이라.할렐루야!~~ 세상 사람들은 결코 할 수 없는 믿음의 그릇으로 잘 준비되어 가지고 금보다도 더 귀하게 돼 가지고 주님이 예배하신 칭찬과 영광과 존귀의 작품이 되는 것이에요.

오늘 이 예배에 오신 모든 분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 방송으로 들어오는 모든 분들, 주님 앞에서 영광과 칭찬과 존귀함의 은혜를 여러분들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불과 불을 통과한 사람들이 받는 축복이에요. 하나는 영적 자유함이고 또 하나는 영광과 칭찬과 존경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성도는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른 성도를 하나님은 고생시키시고 그 부른 사람을 또 불 통과하게 하시고 물 통과하시고 그런데 지명하여 부르지 않는 하나님, 식구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들은 그냥 그냥 놔두는 거예요. 내팽개치는 거예요. 고생도 안 시켜요. 물불도 안 주세요. 그래서 저는 이런 물, 불을 통과하고 난 다음에 제가 원래 사역의 46년생인데 79년도 4월 달에 젊은이들 사역의 사역자로 부름 받고 46년째인데, 수많은 과정들을 거치면서 제가 그때 깨닫는 것이 뭐냐 신앙은 이런 독특함이 있기 때문에 바위로 계란을 치는 것이 아니라, 계란으로 바위를 칠 것이다. 바위로 계란 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고, 다 할 수 있는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 치는 건 아무나 못하는 거예요.

물, 불을 통과한 사람이 갖는 자유함 가지고, 한 1년 반 정도 전에 이렇게 부탁을 하고 작년 1년 전에 공식적으로 WA 세계복음주의연맹 총회를 우리의 교회 본당에서 세계복음주의 연맹총회를 하면 좋겠다. 제가 이제 알거든요. 그런 거 우리가 뭘 할 때에 얼마만한 고난의 강을 건너고 불을 건너야 할지 제가 좀 알거든요. 그래서 내가 이거 내가 감당해도 되겠나 그런 고민도 많이 하면서 우리 교회 중직자들 또 당회 순장 반하고 몇 달 동안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가 한국 교회가 한 번은 이 산을 넘어야 되겠구나. 한국 교회가 한 번은 이 강을 지나가야 되겠구나. 왜냐하면,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 가운데 뭐라고 그럴까요? 고착화돼 가지고 아주 그냥 뭐라고 그럴까요? 진리를 독점하고 이런 분들이 계세요.

그래서 수많은 공격의 이 강을 어떻게 거느냐, 그래서 지난 한 1년 동안 고생 엄청 많이 했어요. 유튜브에 제가요. 프리메이슨이래. 제가 무슨 종교다원주의래,,, 말이나 되는 얘기입니까? 이 엄청난 불과 강을 건너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제가 열을 좀 많이 받았어요. 그래 가지고 이렇게 하다가 믿음의 작품이 시리즈를 다 준비하면서 제가 물과 불을 통과하면서 제가 달라졌어요. 어떻게 달라지는가? 공격을 하시라. 우리는 그 불로 더 우리는 더 주님이 원하시는 작품이 될 것이다. 공격을 하시라, 그러면 우리는 더 순전한 복음을 더 강화할 것이다. 공격을 하시라. 그러면 성경의 무오성을 우리가 더 주장할 것이다. 제가 이런 기도를 하는 순간부터 공격을 좀 덜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니까 이게 강을 통과하면서, 오히려 한국 교회는 또 세계복음제연맹총회를 우리가 하고 난 다음에는 더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하고 성경의 절대 권위를 주장하고 동성애 이런 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는 거예요? 안 하는 거예요. 뭐 그런 분은 별로 없겠죠? 혹시나 피켓 들고 뭐라고 그러면요. 그분들에게 물을 갖다 드리세요. 그분들도 물을 좀 지나가야 돼요. 불은 갖다 드리지 말고, 물만 갖다 드리세요. 이런 얘기를 제가 왜 합니까?

우리가 무슨 어려운 일들이 생겼을 때에, 제가 이 가을 사이를 앞에 놓고 기도하면서 그 어려움은 어려움이 아니야. 그 어려움은 우리를 영적으로 자유하게 하는 거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나님의 강력한 믿음의 군사를 만드시는 거야. 그리고 그 결과로 영광과 칭찬과 존귀를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신비한 계획이 있는 거야. 이걸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물과 불을 지나갈 때에 절대로 무너지지 마시길 바랍니다. 물과 불을 통과할 때 결코 도망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빚어지고 있구나. 빚어지고 있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절 그릇으로 빚어지고 있구나. 놀라운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그릇으로 커지고 있구나. 그래서 오늘 3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 3절에,

*이사야 43:3,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이 물과 불을 통과할 때 하나님 뭐라? 내가 애굽을 너의 뭐에 속량 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너무나 놀라운 말씀 믿음의 작품이 되고 그릇이 되면 그 거대한 제국 애굽을 우리의 속량 물로 주실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홍해 앞에서 고통당하고 그럴 때, 하나님 앞에 그냥 그 빚어질 때 믿음으로 고백하고 그럴 때 애굽을 완전히 수장 시켜가지고, 속량물로 주신 줄로 믿습니다. 구스와 스바라는 큰 나라, 조그마한 나라, 이스라엘 향하여 구스와 스바를 하나님께서 너를 대신시켜버리겠다. 그리고 4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

*이사야 43:4,
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그 큰 제국이나 그 사람들을 그냥 다 내어 주며 믿지 않는 사람들, 잘못된 사람들, 하나님 배반하고 이런 사람들 다 내어주며 백성들이 내 생명을 대신하는 그런 사람들이 너의 생명을 대신하게 해 주시겠다. 큰 나라가 너 대신 속량물로 삼아 주시겠다. 우리가 이런 고백으로 믿음의 그릇으로 준비되면 하나님은 중국을 우리의 속량물로 허락하실 것이에요. 서 러시아도 우리의 속량물로 허락해 주실 것이에요. 이 말씀으로 똘똘 뭉쳐 있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일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이게 영적 자유함이에요. 오늘 말씀을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 이 말씀을 통하여 오늘 많은 분들이 울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울더라고. 너무나 많은 분들이 불과 물에 간 가운데 그 신원의 한과 통과한 분들이 너무 많으십니다. 그걸 통과해야 여러분 믿음의 그릇 되는 것이고. 그걸 통과해야 여러분 영적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이고. 그걸 통과해야 여러분 영광과 칭찬과 존귀를 받게 되는 겁니다. 그 영광과 칭찬 존귀 때문이 아니라, 이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자연스러운 그리고 많은 분들은 이 가운데 평탄한 길을 걸어오신 분들도 많이 계세요. 많이 계신데, 환경 적으로 물과 불과 어려움을 통과 안 하더라도 여러분들의 마음은 다 마음 지키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닐 거예요. 자발적 고난의 행군을 가지고 말씀을 가지고 이걸 미리미리 깨닫겠다.

그래서 7주일 동안 주님 말씀을 통하여 제게 연단아시고 주시면 이 말씀을 내가 순종하겠습니다. 자발적 말씀의 고난의 행군을 다짐하면 환경적인 어려움이 없더라도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작품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혹시 오늘 이 가운데서 물과불 여러분들에게 있는 물과불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 떠난 분이 계시다면 그동안 물과 불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는데,,, 주님 앞에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사명감이 흐트러져 있는 분이 계시다면, 내가 뭘 위해 이 땅에 있는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이런 분들 치열하게 고민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마음속에 아주 그냥 새기기를 바랍니다. 주님 물과 불을 통과해야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그릇 될 줄로 믿습니다. 그 자유 함을 얻는 그 내용을 새기기를 바랍니다.

어제 우리 교회는 3천여 명의 순장님들이 연합순장 수양회를 했고, 지난 수요일 목요일은 우리 교육자 수양회를 했는데 이번 교육자 수양회를 하면서 우리가 슬로건이 하나 있어요. 영어로 했는데 하나님 주신 건데 “All hands on deck” 이라고 항해를 할 때에 아주 그냥 그냥 폭풍과 바람이 불 때는 모든 선원들과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갑판 위로 올라가 가지고 모두가 다 한 마음으로 그 난관을 헤쳐나가는 거예요. All hands on deck.

이것은 대영제국에서 트라파크 해전 영국, 1805년에 프랑스와의 싸움할 때 넬슨 제독의 All Hands on Deck! 평양 부흥의 진원제가 되었던 웰즈의 부흥을 할 때 웰즈에 있는 모든 광부들이여, 모든 주부들 모든 사람, 남녀노소 전부 다 모두가 다 나와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리자 All hands on deck! 이번 가을 사이를 통일 모두가 다 우리는 축복을 받고 모두가 다 갑판 밑에 가서 요나처럼 자기 생각에 찌들어 가지고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던 그걸 다 하나님 그거 아니라고 요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 다 갑판 위로 올라가 있는 믿음의 작품을 가지고, 우리가 주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한 분 한 분 응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7주 동안 주제 찬송들이 한두 곡 있는데, 7주 동안 여러분들이 함께 부를 주제 찬양을 준비를 했습니다. 사실은 주보 안에 이렇게 써드리려고 했는데 이건 그렇게 어려운 찬송이 아니기 때문에 한때 아주 많이 불려졌던 찬송이에요.


“항상 진실케. 내 맘 바꾸사 하나님답게 하여 주옵소서 주는 토기장이 나는 진흙 날 빚으소서 기도하오니 항상 진실께 내가 주는 토기장이 You are the potter. I am the clay. mold me and make me. 나를 녹여주시고 나를 만들어주고 빚어 주셔갖고 이게 This is what I pray. 이것이 내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항상 진실께 changed my heart of God. Change my heart of God. 내 마음을 바꿔주십시오. Make it ever true.
--♬ You are the potter. I am the clay. mold me and make me. This is what I pray.changed my heart of God. Change my heart of God. Make it ever true.
이 바꿔주신 이것이 그냥 항상 언젠지 진실되게 해달라고. Change my heart of God. May I be like? 내가 주님을 닮기를 원합니다. 이런 찬송인데 이 찬송을 7주일 동안 우리가 부르면서 하나님 우리가 주님이 원하시는 주님의 그릇으로 빚어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잘 몰라도 가사가 간단하니까 우리 찬양대 하고 저하고 같이 할 테니까. 이 찬송 진지하게 오늘 말씀 앞에 반응하는 마음으로 찬송하고 예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요약
'고난의 물과 활활 타는 시련의 불 속'에서도 주님이 나의 목자와 구원자가 되시니, 토기장이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정결한 마음의 그릇으로 빚어주심을 확신하며, 절망의 낭떠러지에서도 '너는 것이라 선포하시는 천동 같은 음성을 듣게 하시니, 죽음도 두렵지 않은 자유함'으로 모든 가을 사역에 승리하는 강력한 영적 기백을 갖어야 한다. 사람의 교회와 사랑을 벌아카데미(SaCA)가 2025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서울종회의 갑판 위로 올라와 총력을 다해, 압도 하시는 주권적 역사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대부흥의 경험을 주시길 간구하자.


‘믿음의 그릇’ 시리즈를 선포하는 자리에서 목사님은 우리 각자가 좁은 그릇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큰 그릇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사역의 크기만이 아니라 인격의 그릇이 넓어져 깨어진 가정도 회복되고, 공동체 전체가 성숙한 사랑의 달항아리와 같은 그릇이 되기를 바란다고 소망하셨다. 본문 이사야 43장은 성도의 기원이며,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지으시고, 구속하시며, 지명하여 부르신 분이다. 우리는 상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한정판 걸작품(Limited Edition) 으로 창조되었고, 단순히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사명으로 보냄 받은 존재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단순히 버티는 생존이 아니라, 특별하고 의미 있는 삶으로 빚어져야 한다. 그러나 믿음의 그릇은 편안한 길에서 완성되지 않고, 하나님은 우리를 물과 불을 통과하게 하심으로 성화의 길로 이끌어 가시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필연적인 과정이며, 사도바울과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고난과 환난을 거쳐야만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세워질 수 있다. 물과 불은 단순한 시련이 아니라, 우리를 믿음의 작품으로 빚는 도구이다. 이 과정에서 주님은 우리와 동행하시고, 다니엘의 세 친구가 불 속에서도 주님을 만났듯,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를 지키신다. 그 어떤 시련과 비극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강조하시면서, 목사님은 실제 사례로, 극심한 고통의 질병(CRPS)을 겪던 자매가 포기하지 않고 예배와 찬양으로 하나님을 붙들다가 기적적인 회복을 경험한 간증과 그녀의 삶은 고난을 낭비하지 않고 믿음의 그릇으로 빚어진 증거였다. 결국 고난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고 더 큰 그릇으로 세워가는 시간이라고 하셨다. 물과 불을 통해 진흙이 명품 도자기가 되듯, 우리의 삶도 시련을 통해 영적으로 자유하고 강건한 믿음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이 과정을 통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로 자라나며,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참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오늘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목적은 우리를 믿음의 걸작품으로 세우는 데 있으며, 그 과정은 반드시 물과 불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며, 고난은 낭비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의해 우리가 성숙하고 자유한 믿음의 그릇으로 빚어지는 시간임을 확신하며 감사로 받아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예배 메시지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

1. 서론: 가을 사역의 시작과 ‘믿음의 그릇’ 시리즈

*새로운 계절, 새로운 마음
가을 사역의 문을 열며, 예배당에 들어오는 성도들에게 “새로움을 느끼지 못했나요?” 하고 오프닝으로 시작한 메시지는,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 숨겨진 은혜의 기대감을 깨우는 역할을 했다.

*‘믿음의 그릇’ 시리즈 소개
이 가을 사역은 ‘믿음의 그릇’이라는 주제로 시작됩니다. 개인의 신앙이 넓어지고, 교회와 공동체의 정체성도 키워지기를 바라며, 인격적 성장과 회복을 포함한 깊은 소원을 품고 설교를 시작했다.

*달항아리의 비유
작은 간장 종지와 비교되며, ‘달항아리’처럼 크고 아름다운 그릇으로 빚어지길 바라는 소망을 전했고, 이는 우리 각자의 존재가 관계를 넘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독특하게 빚어진 예술품임을 나타낸다.

2. 본문: 이사야 43장 중심 메시지

(1) 우리는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고 부르신 존재.
-이사야 43:1의 메시지는 단순한 창조를 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지으시며, 구속하시고, 지명하여 부르신 분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가 사역이나 목표를 위한 상품이 아닌, 하나님의 특별한 걸작품—Limited Edition이라는 신앙적 정체성을 세우는 말씀입니다.

(2) 삶은 사명 받은 보냄 받은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보냄 받은 존재이다. 이 정체성은 우리의 삶이 단순한 생존을 넘어 의미 있고 풍성한 삶, 곧 “significant”한 삶이 되어야 함을 깨우친다.

(3) 신앙의 그릇은 물과 불, 환난의 길을 거쳐야 한다.
-이사야 43:2는 “물이 가운데로 지나갈 때, 강을 건널 때, 불 가운데로 지나갈 때…”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이다. 물과 불은 우리의 삶에 피할 수 없는 시련과 고난을 상징하며, 이를 통해 믿음의 그릇이 단단해지고 성화 되며, 이는 고난이 단순한 어려움이 아닌, 믿음의 명검으로 단련되는 성화의 통로임을 상기시켜 준다.

(4) 하나님의 인도는 동행과 보호이다.
-물과 불이라는 환난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침몰하거나 태우지 않으시는 보호자이자 동행자이시다. 과거 다니엘의 세 친구와 같은 상황처럼,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에서도 우리 곁에 계시며 믿음을 지켜주시는 분이시다.

3. 간증: 신앙의 그릇으로 빚어진 실례.

*간증 어느 자매:CRPS라는 극심한 난치병을 앓던 청년 자매의 이야기:
-출산보다 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예배를 포기하지 않고, 예배 중 응급실까지 가면서도 주님을 찾았다. 결국 기적적인 회복을 경험했고, 고난의 시간을 간증과 책으로 승화했다.

“나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가 아니다. 내 속의 소망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시라는 그 단 한 가지 사실이다.”라는 고백은 물과 불을 통과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축복을 보여 줍니다.
라고 간증했다고 함. 이 간증은 사랑의 교회 안에서 현실로 일어난 믿음의 여정, 그리고 “고난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믿음의 그릇으로 빚어가는 시간”이라는 메시지를 생생히 드러냈다.

4. 신학적 메시지: 고난의 의미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1) 고난은 끝이 아니다—성화의 도구
-물과 불을 통과하며 그릇이 단련되듯, 우리의 신앙도 환난을 통해 진정한 믿음의 그릇—자유한 선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된다.

(2) 자유함을 얻다
-“너는 내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선언은 속박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확고한 정체성, 그리고 이에 따른 영적 자유를 의미한다.
-물과 불의 통과를 통해 우리는 비굴하지 않고 흔들림 없는 믿음의 군사—영적 자유인이 된다.

(3) 영광과 칭찬의 상속자
-베드로전서 1:7 말씀처럼 “불로 연단하여 없어질 금보다 귀한 믿음”은
결국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 칭찬과 영광, 존귀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5. 결론: 실천과 다짐.
*자발적 고난의 여정
마음으로 고난을 미리 감당하며 “말씀의 고난 행군”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때, 환경적 고난이 없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믿음의 그릇으로 세워질 수 있다. 다 같이 동참하는 공동체적 확장 — “All Hands on Deck” 어려운 시기일수록 모두가 힘을 합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갑판 위의 올라서라’. 전 성도적 동참’을 강조했다. 이는 한 사람의 신앙이 아니라 공동체의 성장과 연대를 향한 초대이다.

*7주간의 찬양과 자리매김
-서로 부를 찬송 (“You are the potter, I am the clay…”
-You are the potter. I am the clay. mold me and make me. This is what I pray.changed my heart of God. Change my heart of God. Make it ever true.)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변화를 향한 진심 어린 응답으로 준비되기를 소망하며 예배를 마무리했다.

-정리하자면, 오늘 예배의 메시지 핵심이다.
1. 가을 사역과 믿음의 그릇 시리즈 선포
2. 우리의 정체성—창조, 구속, 지명받은 걸작품
3. 신앙의 길—물과 불을 통과하는 여정
4. 간증—고난을 믿음의 증거로 바꾸는 삶
5. 은혜의 결과—영적 자유, 성화, 영광의 그릇
6. 실천 다짐—자발적 고난, 공동체적 연합, 찬양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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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8월 24일)-초빙
제목: "낮추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
말씀: 신명기 8:11-1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노추찬 부목사님(대학부, 토비새 TFT)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헌금송: 신예은(소프라노), 강천성(바리톤)-1부
설교자: 권성수 목사(대구 동신교회 원로,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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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명기 8:11-16,
11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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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과 온라인으로 동참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 인생은 어떻습니까? 고통 중에 고민하십니까? 좀 형통한 편이라고 생각이 드십니까 인생을 살아가시면서 좀 잘 풀리는 것 같은데, 지금쯤에는 더 이상 권한이 없겠지 싶은데 또 고통이 찾아오는 것을 느끼시지 않습니까?
 
고통과 형통이 이게 거의 번갈아서 기간은 좀 다르지만 일어나고 있는 인생을 살아가시면서 여러분, 어떻게 신앙의 반응을 보이십니까 고통 중에 혹시 불평하고, 원망하고, 신세타령 하시지 않습니까? 형통할 때 마음이 교만해져서 이만하면 됐다. 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말씀을 잊어버리시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인생 전체는 천국 가나안을 향해서 나아가는 여정(旅程)입니다. 이 천국 가나안을 향해서 나가는 여정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실까요?
 
오늘 여러분이 말씀을 보셨습니다 마는 모세가 40년 광야 생활이 끝나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지금으로 말하면 요르단, 요단 강 건너편 요르단 거기에서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말씀하시는 내용이 신명기인데, 그 신명기 내용 중에 8장에 오면 광야 생활 전체의 의미와 또 가나 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8장 16절에 보시면,
*신명기 8:16,
16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이 말씀이 나오는데 이것이 광야 생활의 핵심이에요.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놓고 보실 때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할 때, 낮추시는 걸 좋아하세요?. 시험하시는 것을 좋아하세요. 마침내 복을 좋아하세요? 질문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마침내 복을 좋아하시죠. 마침내 복 다 좋아하시거든요. 제가 그 말씀부터 시작할게요 마침내 복 복이라는 게 뭡니까? 복이라는 말이 나오면 조금 신학적으로 예민한 분들은 번역신학이 금방 떠오를 거예요. 번영신학, 프로스페라티 가스펠(prosperity Gospel) 건강하고, 부하고, 행복한 것, 예수 잘 믿으면 건강해진다. 이 사람이 되면 부해진다. 예수 잘 믿으면 세상적으로 봐도 행복해진다. 저게 번영신학이죠.
 
이 번영신학은 건강한 것을 보면 잘 믿었다는 거예요. 병들었으면 못 믿었다 부유한 것을 보면 잘 믿었다는 거예요. 가난하면 못 믿었다는 거예요. 세상적으로 볼 때, 행복하면 잘 믿었고 불행하면 못 믿었다는 게 정말 그렇습니까? 결과를 놓고 믿음의 여부와 그 믿음의 강도를 측정하는 잘못된 거죠. 또 번영신학, 번영 신앙에는 십자가가 없습니다. 크레딧 카드는 있어도 십자가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게 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했는데, 주님을 위한 삶의 여정에서 주님의 뜻대로 살면서 겪는 고통, 이게 십자가죠 의를 위해서 천국의 의를 위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것을 위해서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이 십자가죠. 번영신학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번영신학은 이런 문제가 있는데, 그러면 번영신학이 말하는 건강과 부와 행복은 전혀 없는 것인가? 예수님은 무조건 가난해지고, 병들고 세상 적으로 불행한가, 여러분 이걸 어떻게 생각하세?. 여러분이 성경을 전체를 펼치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또 구원의 역사, 세계 역사 전체를 놓고 펼쳐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지 않습니까?
 
창조하실 때는 영적인 복만 주신 것이 아니라, 육 적인 복도 주셨어요. 영적인 복도 하나님과의 관계 이것도 완벽했고 타락하기 전에 육적인 복도 완벽했어요. 건강도 완벽, 부(富)도 완벽, 우주 만물이 다 재산이었으니까 분명히 타락하기 전 창조 상태에서는 영적인 육 적인 복이 둘 다 완벽했습니다. 완성을 생각해보세요. 완성된 천국 완성된 천국에서도 역시 영육의 복이 완벽(完璧)합니다. 여러분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고 여러분의 모든 고통을 제거하시고 질병을 치료하시고, 구조적인 죄, 개인적인 죄 다 없애시고 의 불의가 전혀 없는 의 완벽한 지복의 상태, 영광의 치복의 상태 그게 완성된 천국이에요.
 
그러니까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시작과 끝이 영육 간의 복이 완벽하다. 이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육의 복이 완벽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영적인 복만 복이고, 육 적인 복은 복이 아니다. 번영 신학이 말하는 복은 복이 아니다. 라고 말하면 안 된단 말이에요. 창조와 완성 이때는 영역의 복이 완벽한데 그 사이는 어떤가 우리가 살고 있는 타락한 인간 세계는 어떤가 이 세계에 고통이 있거든요. 어려움이 참 많거든요. 그러면 이때의 복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라고 할 때 구약을 보시면 구약 시대에는 주로 육적인 복 현세적인 복이 두드러져 있어요. 구약시대의 복을 복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씨와 땅과 임재입니다.
 
씨는 가족들, 가족들이 건강하게 잘 된다. 땅은 환경, 주변 환경 그리고 임전에 하나님께서 늘 함께 계신다 근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보여주실 때 주로 이 현세적으로 잘 되는 것이 두드러졌단 말이죠. 아브라함도 수양 그러니까 양과 염소와 가축이 막 넘쳤죠. 이 삭도가 농사를 지었을 때 100배나 복을 받았죠. 가축 목축할 때도 100배나 복을 받았죠. 구약시대는 그것이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두드러져 있어요. 왜 그때는 아직도 미숙(未熟)한 시대니까, 미숙한 시대의 그림자 시대에 육 적인 복을 통해서 영적인 복을 보여주시는 그런 방식을 하나님께서 택하셨습니다.
 
신약 시대에 들어오면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다. 는 복이 있다고 영적인 쪽에 포인트를 맞추셨어요. 왜냐하면, 육 적인 복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것이 핵심이니까. 그 핵심을 놓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복을 생각하실 때 영적인 복도 있고, 육 적인 복도 있다. 둘 다 인정하셔야 돼요. 그런데 핵심은 영적인 복이에요. 육 적으로 가난하고 병들고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아주 불행해 보인다 할지라도 특별히 박해받는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교제(交際)하고,하나님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삶이 최고의 행복이거든요. 시편 73편 보시면 25절,
 
*시편 73:25,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현세적으로 몸이 아프고, 풀리는 것이 없고, 고통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할 때 하늘에서는 주 외의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가 없나이다. 이 말씀을 외우면서 고백하면서 이겨내는 거예요. 그게 핵심 회복이에요. 핵심, 회복, 그 핵심의 복이 있으면 다른 모든 것을 못 받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을 체험하는 삶을 살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현세의 천국을 시식하고, 내세의 천국을 만끽할 하나님 백성으로 살기만 하면 그 자체가 주변의 현세에 물질적인 복이 없다 할지라도 최고의 복입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려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이 없나이다. 여러분이 교인들을 보실 때도 사람들을 보실 때도 이 각도에서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고 사는 사람이 최고의 복을 누리는 사람이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이 영적인 복만 주시면서 육 적으로는 고통을 당하게 하시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박해받는 경우가 그렇죠. 세상에서 또 바로 살면서도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는 말씀대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참 많지요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고 있으면 최고의 복을 누리고 있는 겁니다. 현세에는 고통도 있고 형통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고통 중에 형통하다고 했어요. 요셉을 보시면 보디발의 가정에 노예로 들어갔지만 그 가정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요셉과 함께하셔서 보디발 집의 모든 일들이 잘 되게 하셨어요. 분명히 노예의 고통이 있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임재 함께 하셔서 형통했어요.
 
죄수로 들어가서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했지만, 죄수로 억울한 감옥살이 하는 동안에도, 감옥의 모든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감옥의 총무가 되었죠. 형통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의 신하들을 만나게 하시는 이 형통한 길을 여셨어요. 여러분이 현세에는 고통이 있지만 고통만 보시면 안 돼요. 고통 중에 형통(亨通)케 하시는 하나님을 보셔야 합니다. 시련을 통해서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을 보셔야 됩니다.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실 때 이 낮추시고 시험하시는 과정 중에 어떨 때는 광야를 만나요? 어떨 때는 사막을 만나요? 그러나 광야에서도 길을 내시고, 사막에서도 강을 내십니다.
 
다 막혀있는 것 같고,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 것 광야에서도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의 강을 내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이 일을 행하리니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의 길을, 사막의 강을 내리라.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의 강을 내시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이것이 복입니다. 복, 근데 여러분 말씀을 주위에서 보세요. 그냥 복이라고 하시지 아니하시고, ‘마침내’ 라고 할 수 있어요. 마침내 복,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침내 복 받기를 원하세요?. 당장 복 받기를 원하세요. 기도를 해도 여기서 기도하면 나가면서 바로 응답 받기를 원하세요? 아니면 5년 후에, 10년 후에, 20년 후에 받기를 원하세요? 당장 받기 원하시죠.
 
여기에 갈등이 있는 거예요. 우리는 당장 복을 주시옵소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당장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네게 주겠다. 요 사이의 갈등이죠. 왜 마침내 라는 게 필요할까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놓고 왜 마침내 라는 것이 필요할까요? 마침내, 마침내 제가 예전에 기도할 때, 아무리 기도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서 하나님 왜 하나님께서 해결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신데, 오케이 하고 한마디 하시면 당장 되지 않습니까? 저의 문제를 당장 해결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오케이라고 하십시오. 오케이라고 하십시오. 하나님 입을 꼬매셨습니까? 오케이 그럼 끝이 아닙니까 근데 왜 오케이를 안 하십니까?
 
제가 다 얘기했지만, 그 갈등이 아주 심했어요. 왜 당장 오케이 하지 아니하시고 한참 후에, 마침내 오케이 하시느냐 이거죠. 마침내 복을 주시느냐, 본문을 보시라고요. 시험하고 낮추시고 시험하세요. 마침내 복 그러면 굉장히 성도들이 좋아하시는데 시험하시고, 낮추시고 시험하자 그러면 푹 꺼지는 것 같아요. 왜 낮추시느냐 한번 생각해보세요. 왜 낮추시느냐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세요. 겸손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에 접속이 안됩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의 간섭을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겸손해야 되거든요.
 
마이클 에그너라고 하는 유명한 신경외과 교수가 있습니다. 무신론자입니다. 이 뇌 수술을 수백 번을 했어요. 어떤 경우에는 뇌를 거의 3분의 1을 잘라내는데 이 정도 잘라내면 뭐 운동신경이 마비되고 무슨 생각하는 신경이 마비되고 정상적으로 살지 못할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게 수술했는데도 정상적으로 사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분이 나중에 숨이고 난 후에 영혼 두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 마음 속사람이 있다는 것을 간증하고 설파하는 그런 유명한 교수입니다. 그런데 무신론자였습니다. 처음에는 근데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이 조금 지나면 엄마 아빠와 눈을 마주치면서 반응을 보여야 돼요. 반응 아들이 반응을 보여야 정상이잖아요. 반응을 안 보여요. 아무런 표정이 없어요. 자폐입니다.
 
자폐 아빠가 막 가슴이 찢어지는 거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인생이 끝난 것 같아요. 아무리 유명해도 소용없다. 내 아들이 이러니까 정말 죽을 지경이에요. 무신론자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을 믿지 않습니다. 당신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정말 살아계신다면 내 아들 좀 회복시켜 주십시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무신론자인 이 외과의사에게 당장 말씀하셨어요.
 
네가 니 아들의 반응을 내 한테 보이고 있어 네가 니 아들과 똑같어, 나에 대해서는 니 아들과 똑같어. 니 아들이 너를 알아보지 못하지? 너에 대해서 반응이 없지. 니가 지금 나에 대해서 반응이 없어 날 알아보지 못해. 그때 신경외과 교수인 이 에그너 박사가 깜짝 놀라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바로 항복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몰라봤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보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기도가 그 정도입니다. 고 정돈데 아이가 태어나서 6개월 되던 해에 자폐증이 완전히 사라지고, 엄마 아빠를 보고 웃고, 울고 정상적인 아이로 변해버렸습니다. 에그너 박사가 자기가 최고의 외과 의사로서 대단한 사람이다. 난 하나님 필요 없다. 하나님이 없다. 라고 할 때는 하나님과의 접속이 안 된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걸 낮추시니까 납작 엎드려서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낮추시는 거예요. 예수를 믿어도 어느 순간에 다시 올라오거든요. 낮추시는 작업이 꼭 필요합니다.
 
제가 웨스민스터에서 공부할 때,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그러니까 그분은 명문대 나왔고 또 미국의 주요한 아주 대단한 직장에서 취업해서 잘 살다가 하나님께서 목사가 되도록 부르셔서 학교에 왔는데, 학교에서 평소에는 너무너무 자기가 대단한 줄 알고 하 이러고 다니는데 시험 볼 때만 되면 막 그 학교가 학생들을 정신적으로 고문하는 학교니까 시험 문제가 너무 힘드니까, 시험 문제 시험 때가 되면 내려간대요 내려간대요 자기가 죽겠다는 거예요. 죽겠다는 거예요.
 
근데 시험만 끝나고 나면 다시 올라온대요. 자꾸 내려갔다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가 올라왔다가 그러면서 자기는 자라목이라고, 자라목 자라처럼 움츠렸다가 피었다가 움츠렸대요. 이게 그 사람만이 아니거든요. 인간입니다. 인간이 다 그렇습니다. 유발 로아 하라리라고 하는 히브리 대학의 역사학 교수인데 역사학 교수가 미래의 약사학, 미래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호모데우스라는 책을 썼어요. 인간이 하나님이다. 처음에는 ‘호모 사피엔스’ 생각하는 인간 자 인간이 진화되어서 생각하는 인간까지 왔다 그 다음 단계는 뭐냐 호모데우스다 인간이 신이 된다.
 
어째서 그러냐 과학과 기술이 발전되고 있으니까 생명공학이 발전하고 있으니까 ai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으니까 모든 데이터를 다 합쳐 가지고 기술을 다 합쳐 가지고 사용하고 활용하면 결국은 인간의 모든 질병을 다 치료한다. 그리고 영생을 확보한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된다. 그게 호모데우스예요. 호모데우스 이게 그 학자만의 주장이 아니고, 안민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 상태 자동 교만입니다. 자동 교만 인간은 자동 디폴트로 교만합니다.
 
장세기 3장에 뱀이 하나님처럼 된다고 유혹할 때,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기도 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를 제쳐놓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는 요런 죄를 범한 이후로 끊임 없이 자동적으로 인간은 교만해요. 하나님 없이 살려고 하는, 이런 본성 죄악의 본성이 있습니다. 자동 교만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고 환경교만 있어요. 환경에 의한 교만 고통이 오면 고통 중에 하나님 왜 나 이렇게 하십니까? 날 버리셨습니까?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근데 왜 나한테 복을 안 주십니까 이러면서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많은 기적을 체험해도 문제에 부딪치면 또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이게 광야 시대의 하나님 백성만이 아니고 우리의 모습이에요.
 
아무리 많은 기적을 체험해도, 하나님의 기도응답을 체험해도 어려우면 또다시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까 하는 하나님이 시험하는 것이 나오고 왜 하나님이 나한테 이러시는가 라고 하는 불평과 원망이 나오고 자기에게로 가면 신세타령이 나오고 남들에게로 가면 대인기피증이 나오고 이게 인간이거든요. 고통을 당할 때 그렇게 되는 거예요. 왜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가? 예수 믿으면 문제 해결 받고 행복해지고, 잘 산다 듣고 왔는데 예술을 잘 믿고, 기도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했는데 여전히 문제는 계속된다. 구하라 주실 것이오 라고 하셨는데 내가 생각하는 아주 멋지게 생기고 좋은 직장도 아니고 대단한 사람인데 주여, 저 남성을 나한테 배우자로 주시옵소서.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 그래서 떠나는 거예요.
 
고통 중에 떠나는 것 자체가 교만입니다. 불평 원망 신세타령이 교만입니다. 풍요로울 때는 어떻게 되냐 형통 중에는 본문에 나온 대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이라는 좋은 땅을 주시고 젖과 굴이 흐르는 땅이라는 거는 풍요로운 땅이라는 뜻이에요. 옥토가 있습니다. 곡물이 잘 자랍니다. 가축이 잘 됩니다. 동이 나고 철이 납니다. 샘이 있습니다. 중동에서는 물이 생명인데, 샘이 있습니다. 분천이 있고 시내가 있습니다. 너무 좋은 환경이에요.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하나님 백성들 앞에 놓고 이제 이런 땅에 들어간다. 이런 땅에 들어갔을 때에, 너희들이 풍요로운 땅에서 하나님 주신 복을 마음껏 누리면서 잘 살게 될 때에 마음이 교만해서 여기에 핵심이 있어요. 마음이 교만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주의하라 사람이 잘 살면 내 능력 내 지혜로 내가 잘 산다는 생각을 하게 돼 있습니다. 내가 명문대 나왔으니까, 내가 대기업에 취업했으니까, 내가 사업을 잘했으니까, 내가 인간관계를 남들보다 뛰어나게 맺었으니까, 내가 남보다 아이디어가 뛰어나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된 거야. 내가 벌어서 내가 마음대로 쓰는데 무슨 잔소리냐 이런 태도가 되는 거거든요.
 
하나님께서 배부르게 하시고 배부르게 하시면 인간이 마음이 교만해지고, 마음이 교만하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볼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이것이 환경으로 인한 교만이에요. 자동 교만의 환경고문 교만이 있어요. 그래야 하나님이 작업을 하셔야 됩니다. 낮추시는 거예요. 낮추시는 작업 이 낮추시는 작업을 하실 때 여러분 생각하기를, 아이고 하나님 제가 뭐 교만하지 않은데요. 절대 교만한 것이 아니에요. 교만하지 않아요.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테스트를 해보시면 돼요. 자존심을 건드릴 때, 여러분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존심을 짓밟을 때 거의 막 폭발하듯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거의 못 봤어요. 자존심이 짓밟히면 아무도 못 살아요. 교회를 할 때도 당에서도 자존심을 짓밟는 일을 하면 다 깨집니다. 너무너무 잘 알죠. 그런데 여러분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자동 그 자존심이 짓밟히는 일을 당할 때 어떻습니까? 시편 66편 12절에 보면,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지나가게 하셨다고,
 
*시편 66:12,
12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여러분, 내 머리 위에 발을 대고 막 나를 밟는다. 그러죠 짓밟는다. 근데 짓밟는 정도가 아니라 막 타고 지나가게 하시는 거예요. 내 머리 위를 타고 지나가게 하세요. 저는 내 머리 위를 짓밟는 정도가 아니라 머리 위에 짓밟고 막 뒤돌리는 체험을 했어요. 여러분 이런 체험을 하실 때 어떤 반응입니까?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했다. 그런데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마침내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요? 주께서 끌어내서 풍부한 곳에 들이시기 전에, 사람들이 머리를 타고 가게 하시는 일을 하신 거예요. 이런 일을 겪을 때 여러분 반응이 어떻습니까?
 
다윗이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맨발로 울면서 피신할 때, 시므이라는 사람이 돌을 던졌죠 돌 하나만이 아니고 여러 개 돌을 던졌죠. 그리고 먼지를 막 날렸죠. 그러면서 저주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말 번역에 보면 가거라 가거라 돼 있지만 그렇게 점잖게 저주하지 않습니다. 꺼져락 꺼져 이 나쁜 놈아 왕을 향했어요. 다윗과 같은 왕을 향해서 그러니까 옆에 있던 장군들이 저 죽은 개 같은 인간 목을 쳐버릴까요? 보통 사람 같으면 목을 치는 거예요. 다윗이 안에 내버려 둬, 내버려 둬,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나를 저주하게 하셨다면 내가 받아들이겠다. 받아들이겠다. 이게 다윗의 겸손입니다. 겸손 이 겸손하도록 하나님께서 광야 훈련을 시키시는 거예요.
 
광야 훈련 광야 훈련은 질병의 훈련이 있습니다. 가난의 훈련이 있습니다. 실패의 훈련이 있습니다. 모든 게 잘 되는데도 아이들이 막 엉망인 그런 훈련도 있습니다. 특별히 관계 훈련이 아마 제일 힘드실 거예요. 가족들과의 관계, 직장에서의 관계, 개인들과의 관계 이게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감당을 못 하실 거예요. 여러분의 어떤 사람을 만나면 정상적인 사람인데 분명히 정상적인 사람인데 여러분 마음속에 생각이 어떻게 나냐 하면 저 사람이 사람인가, 짐승인가, 마귀인가, 들어가면 마귀 새끼까지 간다고 막 시작했죠.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저래 이런 관계의 고통도 훈련 속에 들어있습니다. 이런 훈련 속에서 낮추시는데 낮추시면 여러분들이 그 낮추심을 통해서 겸손해지는 거예요.
 
낮추시면 되겠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점점 더 겸손해지는데 여러분 보십시오. 바울 사도가 얼마나 겸손한 분입니까? 얼마나 대단한 경험을 했습니까? 얼마나 되는 천국까지 갔다 온 그런 경험 계시까지 받은 분인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탄의 가시 몸에 가시를 주셨죠. 낮추시는 거예요. 그렇게 겸손한데도 낮추시는 거예요. 바울에게 이 정도였다면 우리에겐 끊임없이 하시는 거예요. 바울이 겸손할 수밖에 없는 육체 가시를 주셨어요. 그것이 교만 제어 장치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저한테도 있습니다. 평생토록 교만을 제어하는 장치가 들어있어요. 교만해야 교만하면 하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니까 겸손하게 만드셔서 은혜를 체험하게 하시니 은혜 증폭 장치에요.
 
은혜 증폭, 장치 교만 제어 장치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낮추시고 낮추시고 낮아지게 하시면서 내가 약할 때에 강한 것을 체험하겠어요. 나의 대단한 것을 드러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약함을 통해서 하나의 영광을 드러내는 여기까지 가게 하시는 겁니다. 이게 낮추시는 작업이에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낮추심을 받으실 필요 없는데 스스로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셨어요. 제일 낮은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자리까지 내려가셨어요. 이게 낮추시는 겁니다.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십니다. 시험하사라고 그랬죠 시험 어떤 시험을 하십니까? 8장 2절과 3절에 보시면
 
*신명기 8:2-3,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시험하시는 거예요. 마음을 세상에 두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께 두고 있는가, 천국에 두고 있는가, 하나님의 일에 두고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가 아니면 말씀 들을 때 뿐이고 나가면 세상하고 똑같이 사는가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상대적으로 예전에 비해서 잘 살고 있는데, 교만해져서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데 있습니다. 내가 언제 버렸냐 이렇게 질문하시겠지만, 현장에 나가서 생활하실 때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똑같이 생활하시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그게 버린 거예요.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그 말씀 한마디를 붙들고 사는 거 이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거든요.
 
고난 중에도 인내하시면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붙잡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붙잡는 그러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근데 예배 드릴 때 뿐이고 나가면 금방 똑같아지는 이 문제 때문에 낮추시고 시험하시는 일이 계속되는 겁니다. 개인만이 아니고 국가도 똑같습니다. 낮추시고 시험하시는데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지금 낮추시는 거예요. 시험하시는 거예요. 저는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에 반드시 마침내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건 전 세계 지금 한류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십니다. 이 한류는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류의 핸들을 움직이고 계시는데 이 한류는 한류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복음의 한류를 전 세계에 퍼트리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한류를 통해서 한국 사람 무시하지 못하게 하시고 한국 생명사 무시하지 못하게 하시고 한국에 관심을 갖게 하시고 한국 제품이 최고라고 한국 사람을 좋아하게 이래서 한국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게 만드시는 한국 사람들이 부족하지만 한국 신자들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순수한 거예요. 열정적인 거예요. 그래도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어요. 기도회 때 그렇게 많이 득세 때 그렇게 많이 산삼 기도회 때 뭐 사천 명이나 이렇게 모여서 그런 외국의 교회를 찾기 힘들어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대한민국도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런 작업을 하실 때 왜 시험하시느냐? 나를 알도록 하나님은 다 아시는데 시험이 필요 없어요. 근데 내가 내 자신을 알아야 되겠다.
잘 믿는 줄 알았는데 믿음이 큰 줄 알았는데 질병 앞에 딱 도착하니까 오 이거 봐라! 어려움 앞에 딱 도착하니 어 이것 봐라 하고 자신을 아는 거예요. 시험을 치므로 자기를 보게 하신 거예요. 자신의 수준을 알게 하시는 겁니다. 이 수준을 알아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거거든요. 업그레이드 시키시는데 방법이 시험이에요. 알게 하시고 다음으로, 뛰게 하시고 알게 하시고 뛰게 하시고 낮추시고 시험하셔서 올라가게 하십니다. 잘 믿는 것 같은데, 아무리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기도 응답을 체험해도 어려우면 또 튀어나오는 거예요. 어려우면 또 불평이 튀어나오는 거예요. 저희 같은 경우에는 짜증이 자꾸 나오더라구요. 제가 유학생 시절부터 짜증을 부는데 지금은 좀 덜해졌지만 아직도 집사람이 저보고 있대요 제가 아주 속이 많이 상해요. 짜증이 있다.
 
그러면 왜 말을 할 때 짜증 섞인 말을 하냐고 이러는 아휴 목사가 돼 가지고 제가 그랬거든요. 하나님 짜증은 불평이 아닙니다. 하나님 원망이 아닙니다. 짜증은 그냥 그냥 그냥 하나님 봐주실 수 있잖아요. 아니잖아요. 하나님은 아니래요. 짜증이 불평이고 짜증이 원망 얼마나 짜증 내지 않도록 불평하지 않도록 훈련을 시키시는지 입에서 짜증 표정에서 짜증이 사라지게 하시고 그다음에 마음에서 수술해 내시는 작업을 하시더라고요. 그거 많이 겪었어요. 낮추게를 하도 많이 겪어 가지고 알아요. 하나님 이번에는 봐주시죠. 요 정도 봐주시죠. 근데 또 또 나와요. 또 하나님 또 마치 옆에 계시는 것처럼 바로 또 그래서 제가 어떤 일을 당해도 지금은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해도 제일 먼저 하는 건 주요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검사에 감사하라 감사하는 거예요. 달아나와요. 감사가 그래서 주여, 감시합니다. 그거 안 하면 큰일 나요? 저 경우는 바로 와요. 또 손길이 또 와요. 이거 낮추시고, 시험하시는 거거든요. 다윗을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까? 사울 당시에도 그런데 골리앗 앞에서 전부 다 전부 다 벌벌 떨고 쩔쩔매고 막 굴러 숨고 난리가 났죠. 그런데 다윗은 17세의 소년이지만 권례 앞에 맞섰잖아요.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으니까 과거, 과거의 은혜 과거의 은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자가 부활의 은혜 하나님 백성의 은혜 기도 응답의 은혜 사랑에게 나오는 은혜 말로도 할 수 없는 은혜를 주셨잖아요. 이 많은 은혜를 주셨는데 과거에 주신 은혜를 받았는데 골리앗과 같은 어려운 앞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그때 이제 문제거든요.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으 즉 과거에 일하셨은 즉 과거에 이렇게 이렇게 하셨은 즉 현재 내 앞에 있는 이 골리앗의 손에서 더 건져내실 것을 믿습니다. 이 도라는 게 중요합니다. 또 지금까지 연애 베푸신 하나님 이 고통의 현장에서 도 일하실 줄 믿습니다. 이게 이루어져야 되거든요. 이게 이게 도 역사실 줄 믿습니다. 이 어려움 속에서 도 역사하실 줄을 믿습니다.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골리앗의 손에서 또 건져내시리라. 요게 신앙의 성숙입니다. 신앙의 성숙 그러면 항상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는 거예요. 하나님이 역사시켜서 믿고 나가는 게 이게 성숙이에요. 이것이 크면 클수록 믿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 믿음의 그릇 커지면 커질수록 담기는 게 많아져요 하나님의 복에 영유권의 복에 담기는 게 많아져요 역량의 폭이 넓어져요.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미쳐요 하나님이 그런 인물들을 붙잡고 영향을 미치게 사용하시는 겁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 앞에서 내 주인이 모든 걸 내게 맡겼지만 당신만은 내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주인의 아내입니다.
 
내가 어떻게 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께 득죄하리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감옥에 갈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도 딱 서서 어떻게 득죄하니까 하고 거절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나중에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 자기 형들이 잘못한 것을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서 회개하게 만들고 바로 서게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용서하고 그들을 본지 않았습니까? 나를 이리로 보내신 분들은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들과 우리 모두를 살리시려고 나를 여기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셨습니다. 노예로 왔고 죄수가 되었지만 하나님이 그 과정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고통의 때에도 하나님 말씀 붙들고 있었고, 형통의 때에도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나님을 높이면서 하나님이 그 당시 전 세계를 살리는 구원의 통로로 요셉을 사용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게 성숙입니다. 나를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신는 주님의 모델을 한번 보십시오. 추님은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셨어요. 완전히 비우시고 낮추셨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어요. 우리도 자신을 비우고 낮추는 겁니다. 비우고 낮추는 일을 평소에도 하지만 늘 고난 속에서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점점 더 성숙해져서 이 방면에서 주님을 닮아가면서 성숙해지면 광야의 길을 내시고 사막의 계획을 내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새일을 체험하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도록 하시는 한 역사를 체험하실 겁니다.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시는 주님의 복을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요약
우리의 마음속에 오늘 말씀이 깊이 새겨져서,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함으로 나만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친척들과 친구들과 이웃들과 동료들과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의 복, 예수 생명이 체험되어 흘러가는 복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복을 받은 후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두려워했듯이 우리 들도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다가 편하고 모든 일이 잘 풀릴 때는 하나님을 잊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니 깨어 있어야 한다. 이는 이스라엘을 낮추고 시험하여 복을 주기 위함이기에, 시련과 환난을 당할 때 우리는 낙심하고 괴로워하기보다는 감사함과 기쁨으로 견디어내야 하고, 이렇게 시험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낮은 위치를 바로 아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는 첩경이니 달게 받아서 주님만을 따라가며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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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서재』이 책은 단순히 돈을 버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었다. 정인호 작가님이 지은 책이다.

 
또 다른 예로, '부자의 서재'에는 반드시 인문학 책이 놓여 있다' 라는 책도 있는데, 이 책은 신문기자로 IT 산업을 취재한 경험을 바탕으로, CEO들과 슈퍼리치들의 독서 습관을 분석한 도서이다.

 

이 책의 핵심은 책장이 곧 그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부자의 집에 들어가면 흔히 예상하듯 값비싼 술이나 화려한 장식품이 아니라, 오래된 책들로 가득한 서재가 먼저 눈에 들어 오게 되었다. 저자는 바로 그 장면에서 인생의 방향을 바꿀 메시지를 발견한다. 와인이 아닌 책으로 채워진 서재야말로 진짜 부의 상징이며, 그 부는 지식과 지혜를 통해 축적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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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돈을 쫓는 삶이 아니라, 가치를 쌓아가는 삶이다. 그는 자신이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책을 가까이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성공을 꿈꾸며 책을 읽었으나, 점차 독서가 자신을 바꾸고 삶의 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한다. 철학과 역사, 경제와 자기계발서를 넘나드는 독서를 통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자신이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은 그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새롭게 빚어내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부자의 서재'란 단지 많은 책이 꽂혀 있는 공간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꾸준히 배우고 성장하려는 자세가 만들어내는 삶의 태도이며, 그 태도가 곧 부로 이어진다는 것이며,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더해지는 자산이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독서는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을 바꾸는 투자이며, 그러나 그는 또한 책만 읽고 행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읽은 것을 삶 속에서 하나 하나 실천해 나갈 때, 그것이 부가 되고 자유가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방향을 잡아주고, 실천은 그 길을 걸어가게 한다는 말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 할 수 있겠다.

 

책을 읽다 보면 독자는 부에 대한 정의가 흔들리고 새롭게 재정립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돈을 많이 가지는 것만이 부자가 아니라,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나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고, 누구나 이 책을 통해 사고를 넓히고 자신을 바꿀 수 있으며, 그렇게 변한 사고방식이 결국 부의 길을 열어 준다는 것에 감동이 왔다.

 

책장을 덮고 나니 마음속에 묘한 울림이 남았다. 나는 지금 어떤 책으로 내 삶을 채우고 있는가, 내 집의 책장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를 되묻게 되었다. 단순히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넘어서서, 지금까지 내 삶이 어떤 내용으로 채워져 왔는지, 성찰하게 되었다. 동시에 책을 통해 누구든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이 피어나고, 저자가 보여주는 서재는 과시의 공간이 아니라, 가능성의 공간이며, 그것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부자의 서재"는 결국 책을 사랑하고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태도가 사람을 바꾸고, 그 사람이 세상을 바꾸며, 마침내 '부'라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일깨주고 있으니, 돈이 많은 사람만을 부자로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진짜 부는 지식과 지혜, 그리고 자기완성의 과정 속에 있다는 정의를 새롭게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단순한 동기부여를 넘어 삶 전체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더 깊이 배우고 싶고, 더 넓게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이제서야 일어났으며, 책장을 정리하고 새로운 책을 집어들고 싶다는 열망이 더욱 생기게 되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부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손에 들린 책 한 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이 책이 남기는 가장 큰 선물이자, '부자의 서재'에서 느낀 것은, 부자가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책들을 통해 얻는 지헤와 지식이라는 것을 깊이 새기게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지속적으로 책을 꾸준히 읽어서 지헤와 지식을 쌓아가는 자로 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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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8월 17일)
설교제목: 광복을 위한 물맷돌"(A Slingstone for Liberation)
성경본문: 사무엘상 17:45~49, 사무엘하 8: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장명철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헌금찬송: 테너 김요한 집사님

설교자: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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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7:45~49,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사무엘하 8:6,
6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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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광복절인데 주님만의 높임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이 자리에 주님 사모해 나오셨는데 아무도 그냥 돌아가지 마시기를 바라고 삶의 모든 우수사려 또 큰 삶의 모든 짐들이 벗겨지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오늘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광복절을 위한 다윗의 물맷돌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우리는 광복 70주년을 지났습니다. 그리고 80주년이 됐는데, 10년 전에 저희들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에서 포로 몇 년 했죠? 70년 했죠. 70년 지나면 해방된 것처럼 대한민국도 남북이 분단됐는데, 70년이 지나면 하나님 무언가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하고 많이 기대를 했는데 낫띵 해픈,,, 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늘 80주년을 맞이하면서 제가 묵상하고 하는 가운데 마음의 소원이 생겼어요.

이 80이라는 숫자는 뭐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모세라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에게는 80이 모세가 사명 받은 시간이었어요. 80세, 40세 미디안에 쫓겨가서 위대한 광야에 40년 있다가 80세 때 하나님과 소명을 떠 호렙 산의 떨기나무 가운데서 받았어요. 그리고 80세 받고 난 다음에 그가 시편 90편을 쓰면서 시편 90편 10절에,

*시편 90:10,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모세가 인생의 유한함도 얘기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 80살이 되면 자기 마음대로 못 삽니다. 80살이 되면, 하나님 의뢰해야 합니다. 제가 지금 좋은 말로 얘기하는 겁니다. 젊을 때는 뭐 힘이 있다고 그러지만 80이 넘으면 하나님 의뢰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어요. 그가 뭐 어느 학벌이 좋든 뭐 그가 재산이 크든 뭐 세상 적으로 대단하든, 80 넘으면 인간은 다 똑같아요.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위탁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이 80주년을 하면서 제 마음의 소원이 하나님, 대한민국이 이제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탁하게 하여 주십시오. 대한민국의 이제 이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이 수많은 어려운 난제(難題)들과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위탁하오니 이 80주년이 의미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의미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80이라는 나이는 하나님이 도우심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나이인데 여러분, 이 가운데 연세 드신 분들 제 말이 맞아요?. 틀려요? 나이가 젊어 갖고 대답을 할 수 없나요?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지금 말씀 안 드려도 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적 환경을 들어보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대한민국은 하루도 견딜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 되었어요. 그래서 이 80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초월적 개입과 초자연적인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초월적(超越的) 개입과 초자연(超自然)적인 은혜의 어떤 대표가 오늘 다윗의 물멘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본문을 여러분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어릴 때부터 주일학교 많이 알지만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마음의 눈을 열어 가지고 국가적으로도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간절(懇切)함에서 젊은 분들뿐만 아니라, 오늘 70 80이 넘은 분들도 이 말씀 때문에 가슴이 뛰시기를 바랍니다. 70~80 넘은 분들, 젊은 분들, 언제 가슴이 뛰어 보셨어요? 목사님 저는 가슴 뛸 일이 헬스장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안되죠. 말씀을 들어야 가슴이 뜁니다. 오늘 본문의 사무엘하 8장 6절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다윗이 같이 보죠.

*사무엘하 8:6,
6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할렐루야, 14절에도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사무엘하 8:14,
14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현재도 이기게 하시고 과거도 이기게 하셨더라 우리는 지금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승리에 목이 마른 것입니다. 초월적 승리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초월적 승리가 저와 여러분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무슨 승리 지상주의가 되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거는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얻는 초월적 승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한 두 가지 정도를 생각할 텐데 여러분들 모두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초월적 승리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 승리는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승리(勝利)가 되는 것입니다. 이 승리는 다윗이 되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이 승리는 장소 적으로 국한된 것도 아니고 우주적인 것이고. 또 한 한 세대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 나이든 다 상관이 없어요. 이걸 신약의 창으로 해석을 하면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었던 야고보 사도가 다윗에 대해서 얘기할 때, 사도행전 15장 16, 17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야고바 사도가 얘기한 거예요.

*사도행전 15:16-17,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를 인용한 것인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는 16절 17절 다 함께,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이유가 뭔가, 이는 그 이유는 그 남은 사람들 특별히 모든 이방 인들로 줄을 찾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하여 그때 전체적으로 보면 그 이방인들은 우리가 다 범주에 다 포함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무너진 다윗의 장막 복음의 물맷돌을 따위처럼 준비해 가지고 여러분들의 마음에 무너진 장막들, 마음의 무너진 것들 내 입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것들 다 골리앗과 같은 것들을 처리할 능력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래도 나는 아닙니다.

나는 뭐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나도 할 수 없어요. 저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그런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사도행전에 나타난 무너진 다윗의 장막만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무너진 마음의 패배주의, 마음의 무너진 장막들도 세워지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다윗은 다윗이고 나는 나다. 이게 아니라는 거예요. 장소도 공간도 시간도 세대도 다 극복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먼저 제가 두 가지를 필요한데 첫째는 영적인 일원론이 필요하다 뭐가 필요하다고요.

I. 첫째는 영적인 일원론이 필요하다.
-이 일원론이란 말은 이원론 듀얼리즘에 반대되는 개념이 한결같다. 이 말이에요. 영적 이론이 뭐 뜻이냐면 다윗의 물맷돌이 다윗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다윗의 장막 그것을 회복해야 하는데 다윗이 시대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다윗이 시대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통한다.

이 골리앗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골리앗을 잘 알잖아요. 골리앗은 키가 3m가 넘고 60kg이 넘는 갑옷을 입고 창날 끝만 7km예요. 거대한 대적이에요. 엘라 골짜기라는 곳에서 그의 권력과 힘을 자랑하는 그 거인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사울 왕이 벌벌 떨고 있었어요. 그럼 오늘 우리 시대에 우리의 골리앗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모든 잘못된 가치관들, 우리가 두려워하는 가치관들 혼란스러운 정국들, 뭐 어려운 가족 관계 사회 환경들, 주식 광풍, 극단적인 마음을 우울하게 하는 수많은 정보들 여러분 유튜브 다 믿으면 안 돼요. 유튜브 요즘 가짜가 너무 많아요. ai가 나옵니다. 너무 정교한 ai가 나오고, 그래서 여러분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보지 말고, 다윗의 생애(生涯)를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우리 몸으로 감당한다는 수많은 난자들이 있어요. 골리앗들이 있어요. 이것을 우리 앞에는 골리앗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no-moccism, 문화 maxism, 하나님을 반대하는 사상이 제도화, 참 하나님 잘못된 하나님을 반대하는 잘못된 제도의 법제화, 문화 전쟁, 우리가 작년 127회 차별금지법 목숨 걸고 반대해 놓았더니, 지금 슬금슬금슬금 차별 금지법 다시 제정 할려고? 이 시대 골리앗이에요. 내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것들을 골리앗이에요. 특별히 우리 앞에 있는 골리앗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뭐냐면 신앙의 이원론(二元論)적인 골리앗이에요. 무슨 말이냐 다윗은 한결 같았어요. 다윗은 골리앗 앞에 있던지,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 앞에 있던지 동일했어요.

다윗은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든지, 아니면 엘라 골짜기에서 골리앗과 싸울 때였던지, 동일했어요. 똑같으세요. 하나님이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지키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셨다면 양을 지키는 나를 보호하셨다면 엘라 골짜기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보호해 주실 것이다. 이게 일원론(一元論)이에요. 한결같은 그리고 흔들리지 않았어요. 근데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사울랑은 곰의 발톱과 사자의 발톱을 이기게 한 거 그걸 믿는다 인정한다. 근데 골리앗 앞에서는 되겠나, 골리앗은 안 된다. 곰과 골리앗은 별개라고 생각하고, 꼭 이거 뭐 마치 뭐 우리 오늘 예배는 드린다. 광복절 예배는 드린다. 광복절 예배는 은혜가 있다. 통일은 안 된다. 이원론적인 거예요.

골리앗과 같은 북한 때문에, 21세기의 사울 왕 같은 이원론자들이 현실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거예요. 통일이 되겠나, 이게 바로 통일 골리앗 이원론이에요. 통일은 통일이고 예비는 예비는 드린다. 그러나 통일은 안 된다. 광복 예배는 좋지만 통일은 되겠나? 이걸 이겨내야 하는 거예요.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삶의 환경과 골리앗을 비교할 때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이 시대의 이원론자가 되는 건데 그런데 다윗은 항상 하나님과 골리앗을 비교한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환경이라는 골리앗을 볼 때는 골리앗이 너무 커갖고 올려다 봐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골리앗을 보실 때는 내려다보시는 것이 우리가 골리앗을 볼 때는 너무 커서 올려봐야지만 하나님께서 골리앗을 보실 때는 골리앗을 보실 때는 내려다 보시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보실 때는 골리앗이 난쟁이 중에 난쟁이가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 다윗은 어떻게 한결같은 신앙의 일원론을 유지할 수가 있었을까? 다윗의 몸에는 일원론적인 신앙 패턴이 새겨져 있는 거예요. 사무엘 17장 37절에 뭐라고 되어있냐면, 영적인 바디 메모리가 됐는데 같이 읽죠.

*사무엘상 17:37,
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 즉 그다음에 나를 이 브레시아 사람 골리앗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라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골리앗 앞에서도 나를 건져내시리다 이게 일원론이에요. 그때는 되는데 지금은 안 된다. 이거는 이원론이고, 그러니까 다윗에게는 이 영적 일원론의 신앙 패턴이 바디 메모리로 몸에 자리 잡고 있었어요. 제가 이렇게 썼어요. 시작

“첫 번째 다윗은 과거의 사건을 은혜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두 번째 그 사실을 믿음으로 현재 고백하며
세 번째 크게 실제로 행동하는 영적 이론적인 신앙의 패턴을 지니고 있었다.”

-할렐루야!~~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에게 영적 일원론의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 여러분 광복이 어떻게 된 겁니까? 광복이 하나님 특별한 은혜로 된 줄로 믿습니다. 누가 광복이 독립군을 통하게 됐다. 택도 없는 소리 하지도 말아요. 도움은 됐지만 독립군이 한 게 아니에요. 또 어떤 사람은 연합군이 도와줬다. 물론 연합군이 도와줬어요. 그니까 연합군이 한 게 아니에요. 광복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하나님이 하신 것이에요. 그렇다면 통일도 하나님이 하시면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제가 한 달 만에 와 고함을 지르니까 이해 양해를 해줘요. 이건 정말 너무나 중요한 거예요.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환경 적으로 골라앗들이 많고 이러니까 우리도 모르게 너무 이원론 화 되어 있어요.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고 다윗은 다윗이고 나는 나고 안 된다는 거예요. 저는 목회자이기 때문에 목회자의 삶에 관심이 많아요. ‘윌리엄 커싱’이라는 목사님이 계셨어요. 근데 이분이 하늘을 잘 사니까 갑자기 사부님이 돌아가시고 몸이 아프고 막 이래 갖고 이게 성대가 목소리가 안 나왔어요. 목소리를 잃어버리게 돼서 더 이상 설교를 할 수 없게 됐어요.

자 한때 목소리를 주셔 가지고, 은혜에 있을 때는 그때는 은혜이고 목소리를 잃어버렸을 때는 그럼 어떻게 되는가 아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그때 목사님이 육체적인 병과 아내를 잃은 고통을 지나면서 이렇게 기도했어요. 주님, 제가 다시 설교를 할 수 없다면 목소리 때문에 저에게 찬송 시를 쓰는 은사를 주시어 주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그 이후에 이 컬싱 목사님은 설교 대신에 뛰어난 영감으로 300편의 찬송 시를 썼고, 대표적으로 오늘 나중에 부를 ‘주 날개 및 내가 편안히 쉬네 주 날개 밑 즐겁도다 평안하다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 살면 어려울 때나 쉬울 때나 한결같은 주 날개 밑’이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예수께서 오실 때 그 귀하심을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우리가 우리나라 우리 한국 작성에도 여러 편이 나와 있어요.

다윗은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며 현재도 하나님께서 건져내실 일원론을 믿었어요. 우리는 과거에 받은 은혜를 망각한 채, 지금 눈앞에 있는 현실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예수님 믿는 이들도 너무 많은 것이에요. 그래서 지금 오늘 제가 용어 하나를 새롭게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릴 거예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오늘도 역사하심을 믿는 현재형 믿음이 필요한 줄 믿습니다. 현재형, 믿음 지금 살아내는 믿음, 지금 이겨냅니다. 다윗이 물맷돌을 가지고 승리했던 것처럼 주님이 주신 물맷돌이 있으면 지금도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현재형 믿음, 살아내는 믿음, 영적 일원론의 믿음이 저와 여러분의 있기를 바랍니다.

예 현재형 믿음의 핵심은 뭐냐 내가 병으로 고통할 때라도, 사업이 어려울 때라도, 가족관계가 힘들 때라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내 삶에 이루어진다는 걸 현재형으로 확신하는 믿음이 사랑의 교의 용어로 말하면 현재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기만 하면 반드시 권리학과 같은 환경과 상황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승리를 믿는 것이에요. 이것이 현재 적 믿음이요. 영적 일원 없는 믿음이요. 현재를 살아내는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일상의 영성과 그대로 연결되었습니다. 여러분 다윗의 일상의 영성은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그가 베들레헴에서 양들을 쳤어요. 양들 칠 때 어떻겠어요. 그냥 친 게 아니죠. 찬송하고 기도하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풀밭의 시간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좋은 주일학교 나와야 합니다. 그게 자연스러웠어요. 찬송과 기도와 말씀과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인 교제가 자연스러웠어요. 그 자연스러운 일상의 믿음이 현재의 믿음이 그것이 골리앗이 나타났을 때 골리앗을 이기는 믿음으로 연결된 줄로 믿는 것이에요. 일상의 믿음을 가지고 승리를 해야 되는데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이런 현장 일상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사명과 뜨거움이 한결같기 때문에 태만하지 않고 사명을 위해 기도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면서 물맷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 오늘 이 자리가 여러분 물맷돌 준비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물맷돌 어제 새벽에 우리 지성호 의원 저희 왜 집사님이세요.

이제 함경북도 도지사신데, 어제 간증을 하는데, 우리 교회 18년 동안 사랑의 교회 북한에서 탈출해 와 가지고 18년 동안 우리 교회에서 국회의원도 되시고, 그다음에 한국부터 도지사에 한국 국회의원 출신이에요. 그러니까 꽃제비로서 먹고 살 길이 없고 기차 석탄 어떻게 뭐 이렇게 막 이렇게 구해 가지고 살고 뭐 이런 거 있는데, 기차 어디 하다가 잘못 떨어져 가지고 있잖아요. 철길에서 기차가 몸을 지나가 버려 갖고 어떻게 되냐면 왼발 왼팔이 다 잘려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잘라내야 되는데 너덜너덜하게 잘라내는데, 3시간 동안 마취도 안 하고 뭐도 안 하고 마취도 안 하고, 세 시간 동안 생으로 그냥 손발을 잘라내는데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는 거예요.

뭐 다들 가만히 계시네,,, 어제 막 근데 하나님을 믿고 복음의 물맷돌을 이 지성호 의원이 이걸 다 해가지고 5월 17일 날 결혼식을 했어요. 제가 결혼식 주례를 했어요. 근데 그날 주례하는데 목사님 미국에서 뭐가 왔어요. 뭐가 왔는데 결혼을 축하한다고, 트럼프 대통령 친서가 온 거예요. 트럼프 사인 알죠. 부인 멜라니아 여사 사인도 비슷비슷해요. 이렇게 세상에 그 북한에서는 그걸 알아요. 그 한국도 지성호가 한국에서 국회의원 됐다. 이래 갖고 그 집을 갖다 쓰다듬는데 여기에 연기가 있다.

이래갖고 그 집을 북한이 그 집도 폐쇄시키고 그랬더니, 그러면서 어제 목사님 5월 달에 결혼했는데 허니문 베이비가 생겼다고 했잖아요. 그래 내가 참 애국도 여러 가지 종류로 한다. 내가 나는 참 있잖아요. 일상에 연결되는 그게 총을 적은 애와 기적을 가져와요. 북한에는 지금 노동당보다도 더 무서운 당이 생겼어요. 노동당보다 더 힘센 당이 하나 생겼는데, 그것이 뭐냐 마케트 장마당이라고 들어봤는지, 자유의 가치 자유시장경제의 가치가 북한에서 자리 잡고 있는 거예요.

김정은도 인민들을 두려워하고 젊은이들을 두려워하는데 우리 북한 젊은이들에게 자유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일깨우는 작은 물맷돌 운동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해외 광복 시절이니까. 말씀드리는 거죠. 첫 번째 일원론의 믿음, 두 번째로는 이제 드디어 이 시대를 위한 갑옷이 아니라 순전한 물맷돌을 준비해 갑옷 대신에,

II. 두 번째는 순전한 물맷돌을 준비하라라.
-다윗은 초월적 승리를 위하여 골리앗을 이기기 위해 뭘 준비했습니까? 현재형 믿음을 위해 뭘 준비했습니까? 사울 왕은 전쟁 이기게 하기 위하여 다윗에게 전투복을 이렇게 전투복을 주었어요. 갑옷을 주었어요. 다윗에게 맞지가 않는 거예요. 나중에 이제 우리는 보면 알지만 다윗은 그 목동으로서 몸이 자유로워 가지고, 물맷돌을 가지고 치고 나갈려면요 전투복 입으면 안 되는 거죠. 전투복 입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여기 저 중세 갑옷 기사들이 뭐 엄히 부자유하죠. 다윗은 그러니까 여러분 전쟁 전문가가 사울 왕인데 전쟁 전문가가 하는 조언이 어떨 때는 안 맞는 게 너무 많아요.

오늘 세상에 여러분들에게 조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조언보다도 오늘 보혈 복음의 능력으로 순전한 물맷돌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그런 통착을 여러분들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수많은 우리 주위의 전문가들이 갑옷을 입고 나가라고 하는데, 현재형 믿음에는 맞지가 않아요. 순전하게 목동의 옷을 입었고 나가야 할 때가 많습니다. 이게 오늘 여러분과 제가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일주일 동안 우리 세상의 복잡한 소리에 마음이 흔들리고, 지난 한 주간에도 수많은 복잡한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 예배가 여러분들이 순전하게 갑옷이 아니라 순전한 물맷돌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윗이 사울 왕의 조언을 듣고 전투복 갑옷을 입고 나갔으면 물맷돌을 던질 자유함이 사라지고 그랬다는 거예요. 대신 다윗은 뭘 준비했는가, 안 입고 40절에 보니까 40절에 보니까 40절에 시작,

*사무엘하 17:40,
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저게 뭐 좀 어려운 용어들이 있는데, 쉽게 말하면 목자의 목자가 옛날에 하는 거 있잖아요. 물멧돌 이렇게 해 가지고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건데,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고르는 거예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제는 죽음의 가장 인생의 위기죠. 그 앞에서 다윗은 엘라 골짜기에서 조용하게 하나님 의뢰하면서 전적 의뢰하면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고르는 거예요. 우리는 이 매끄러운 돌 다섯을 그냥 골랐다 해서 그게 아니에요. 다윗의 인생의 무게를 실은 거예요. 그 돌 다윗의 목숨을 거기에 실은 거예요. 다윗도 사람인데 어떻게 무섭지가 않겠어요. 그 모든 것들을 주님께 맡기면서 그 다섯 매끄러운 돌 순전한 돌을 잘 맞는 돌을 고르면서 주님이 여기에 내 목숨을 겁니다.

여기에 주님을 전적으로 위탁하는 제 순전한 믿음의 모든 총량을 여기에 다 몰입시킵니다. 그러면서 골라 가지고 그 다음에 그걸 들고 뛰어간거에요. 그 앨라 골짜기에, 그 고르는 순간,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하고 목숨을 건 무게를 가지고 고르는 그 시간, 야곱에게는 얍복 강가였고, 아브라함에게는 모리아 산에 이삭 바치는 시간이었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에게는 풀무불 앞에서의 시간이고, 엘리야에게는 갈멜 산 산상에서 영적 전투예요.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현 믿음의 현재성 일원론적인 믿음 한결같은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이런 테스트의 장이 항상 놓여 있는 거예요.

오늘 이 자리에 저와 여러분들이 인생의 무게와 목숨의 무게를 담보하는 매끄러운 돌 5개를 고르는 그 시간, 오늘 이 예배가 그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신앙의 분기점이에요. 현재형 믿음은 물맷돌을 고르는 그 순간의 믿음으로, 목숨만큼 큰 무게를 품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나아가서 다윗은 골리앗에게 물맷돌을 던진다고 그랬어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순종의 행위예요.

다윗은 골리앗에게 돌을 던질 때에 목숨을 걸고 자기의 목숨의 무게를 물맷돌에 담아 가지고 전적으로 위탁하면서 우리식으로 하면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주는 나의 큰 능력 주는 나의 큰 소망 전능하신다 하나님’ 찬양하면서 주여, 던졌는데 안 맞아 그게 아니고, 적으로 신뢰하면서 전적 위탁의 물 몇 돌을 가지고 48절을 보니까 뛰기 시작했어요.

*사무엘상 17:48,
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 맞아 골리앗에 막 나오는데 다윗은 블레셋 사람이 빨리 달려 가속도를 가지고 달리는 거예요. 근데 벌써 사람이 뭐냐 17장 5절에 보니까,

*사무엘상 17:5,
5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놋 투구를 썼다고 그랬어요. 골리앗이 놋 투구, 그 놋 투구를 썼는데, 다윗이 가속도를 가지고 뛰어가면서 물맷돌의 그 인생의 삶에 목숨에 무게를 갖고 여러분 놋투구가 뚫어져 버리고 이마 빡에 박혀 가지고 그 거대한 골리앗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거는 아주 우리에게 영적으로 중요한 것을 예시하는 겁니다. 순전한 복음의 순종의 오늘 이런 말씀 듣고,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여러분들 진짜 순종하고 찬송하면서 물맷돌을 던져보세요. 수많은 놋투구들이 뚫어지게 될 것입니다. 물맷돌이 힘의 역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 놋 투구를 뚫고 그대로 지켜버렸습니다. 다윗은 칼도 없어가지고 쓰러진 골리앗을 향하여 쫓아가서 골리앗의 큰 칼을 가지고 골리앗의 목을 베어버렸습니다. 54절에,

*사무엘상 17:54,
54 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오랫동안 다윗은 물맷돌의 역사를 기억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골리앗은 자기 칼로 자기가 망했습니다. 마치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장대를 세웠다가 자기가 극에 달려서 망한 것과 똑같습니다. 세상의 거짓과 불의는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반드시 거짓과 불의는 이 순전한 복음의 물맷돌 앞에서 뚫리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거짓과 불의는 절대로 진실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진리의 물맷돌은 거짓의 투구와 이마를 적중 오늘 이 중요한 여러분과 저는 엘라 골짜기에서 뭘 언제? 우리 엘라 골짜기, 우리는 어떻게 물맷돌을 준비해야 하나요? 오늘 오후 청계산에 올라갑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이기기 위하여 물맷돌을 준비해서 뛰어가는데 엘리야 선전자는 갈멜산에서의 기도가 기도의 물 맷돌이였어요.

3년 6개월 동안 나라가 비가 오지 아니하고 완전히 황량하고 완전히 망해갈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가운데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 가지고 바알 선지자들과 전투를 하면서, 양 무릎 사이에 머리를 넣고 정말로 거기에 목숨의 무게를 싣고 기도에다가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어요. 3년 6개월 동안 오지 않았던 그 하늘에 이 기도의 물맷돌을 통해 하늘이 열린 거예요. 열왕기상 18장 45절 46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느냐

*열왕기상 18:45-46,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아합이 뭘 타고 갔어요. 마차를 타고 갔어요. 그런데 능력 받은 엘리야는 물맷돌을 기도의 물멸도를 통하여 하늘의 문이 열린 그 은혜를 경험한 엘리야는 허리를 동이고 그러니까 최초의 마라토너가 엘리야예요. 마차 앞에서 뛴 거예요.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내 기도에 물맷돌을 들으신 주님을 찬양한다. ‘주는 나의 큰 능력 주는 나의 큰 소망’ 그는 앞을 뛰어 빗속을 달리는 그 유명한 빗속을 달리는 엘리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 한번 목숨 건 기도해 보셨어요? 오늘 제가 3부 예배 때 마치고 난 다음에 또 4부도 마찬가지겠지만, 마치고 난 다음에 합심기도를 제가 따로 안 할 거예요. 왜냐하면, 청계산 가서 합시다. 제가 청계 산에는 오늘 한 2시간 동안 기도인도 찬양하고 기도 인도 그렇게 할 거예요. 오늘 산에 올라가면 내가 오늘 그냥 목숨 걸 거예요. 진짜 대한민국 이게 바로 주요 이 나라가 바로 가게 해 달라고 알겠어요. 한국 교회의 영광과 권위와 위험이 회복되게 해 달라고 목숨 걸 거예요.

오늘 여러분 언제 엘라 골짜기에서 매끈한 돌을 고르면서 기도로 전력투구하고, 거기에다가 목숨 무게를 건 물맷돌을 기도의 물맷돌을, 순종의 물맷돌을 언제 준비해 보셨냐고,,,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오늘 광복절 80주년에 오늘 이 말씀을 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왜, 80년이 되었는데도 통일이 안 되나? 선대의 옥하는 목사님은 저에게 한 번씩 그런 얘기 하세요. 왜 오 목사 왜요 목사님,,, 저 악한 김일성을 하나님은 그냥 가만히 두시냐? 김정일을 왜 가만히 두시냐? 늘 한탄해 하셨어요.

저는 하나님의 시간표와 사람의 시간표, 우리가 생각하면서 하나님은 무 시간대의 개념에 계시기 때문에 참 이거 안타까운 일인데, 오늘 여러분 17장 앞에 45절 46절을 보면요. 다윗이 골리앗을 향하여 그 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사무엘상 17:45-46,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아직 골리앗의 목도 베어지지 않았어요. 골리앗이 죽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영적인 세계에서는 다윗이 이 선포를 할 때 이미 골리앗은 죽게 된 것이에요.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도하고, 선포하는 순간 하나님의 시간에 골리앗이 죽어버리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시간표와 사람의 시간 사람의 시간표 그러니까 골리앗은 그때 살아있지만 살아있으나 죽은 목숨이 된 것이에요. 오늘 이런 영적 안목을 저어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소위 역사의 믿음의 역사의 하선과 역사의 상선 얘기 드렸잖아요. 역사의 상선을 보는 눈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또 하나, 골리앗 앞에서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는 21세기의 다윗을 키워야 돼요.

III. 세 번째, 골리앗 앞에서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는 21세기의 다윗을 키워야 된다.

-우리 속에 21세기의 다윗의 마음을 키워야 돼요. 우리 자녀들을 21세기 다윗으로 키워야 돼요. 마음도 키우고, 실제적으로 다음 세대도 키워야 돼요. 그러면 사람이 키워질 때 어떻게 사람이 성숙하는가? 언제 사람이 잘 성장하는가? 사람이 제일 성장할 때는 언제인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참된 성장은 성숙은 골리앗과 같은 강력한 대적을 통하여, 골리앗과 같은 강력한 마귀심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에요. 우리가 매일 마주하면 마주하는 감당하기 힘든 유혹과 시험을 통하여 우리가 성숙하게 되는 것이에요. 오늘 여기 젊은이들이여. 어른들이여. 성숙한 모든 주의 백성들이여. 우리가 언제 성장합니까?

어른이 되는 것은 전쟁터와 같은 삶의 현장에서 그 극복하면서 성장하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이나 제가 인생의 골리앗과 싸울 때 성장하는 것이에요. 영적 전쟁터에서 나와 골리앗이 아니라 하나님과 골리앗이 싸우는 걸 우리가 기도하면서 여러분과 제 영적 성장 성숙이 일어나는 줄로 믿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고난과 고통의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에요. 제가 지난주에 저기 뭐 이렇게 자료를 정리한 거 보니까 제가 그 옛날에 군종으로 있었는데, 군종 전투복 사진이 있더라고. 온태원이라고 그 당시에 군단, 군종 참모 제가 그때 무슨 뭐 특별 무슨 뭐 훈련 기관 미군들하고 훈련 기관이었는데요.

대한민국 사람들 우리 나이대 우리 전 또 어른들 이래서 다 군대 갔다 오면서 죽을 고생하는 거예요. 그래서 서울은요, 푸틴하고 트럼프하고 뭐 다 뭐 시진핑 다 있지만 트럼프 아 뭐야? 푸틴 시진핑이 우리 대한민국 점령 못 합니다. 왜 못 하는지 아시죠. 서울에 순간적으로는 300만 명이 무장될 수 있어요. 우리가 아직 못 알아들었죠. 한국 남자들은 군대를 갔다 왔기 때문에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전투력이 막강하다 이 말이에요. 성숙하는 거예요. 1994년도에 이민 미국 이민 사회는 제일 비극적인 일이 있어요. la 폭동이 있었어요. 수많은 가게가 불타고 수많은 한국 분들이 피해를 보고, 저희 제가 섬겼던 제가 개척했던 그 교회가 그 흑인들의 폭도들이 제일 관심 있게 보는 좋은 지역의 입구에 교회가 있었어요.

정부가 뭐냐 하면 교회를 불태우러 온다고 폭도들이 떼거리로 만들어 그럼 어떻겠어요. 우리가 어떡하겠어 폭도들이 오니까 우린 도망가야 되겠다고 도망갔겠어요? 노 교회에 교구 들어갔는데 월남전 출신 다 나와라. 장교 출신 다 나와라. 아 그러니까 도망 안 가고 월남자 출신 장교들 뭐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이 한 100명이 모였어요. 그래갖고 버스를 한 4대 때 바리케이드를 딱 치고 그다음에 권총들 다 들고 와 가지고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 유명한 권총 있죠. 이스라엘 기관총, 그것만 가짜 했어요. 총 다 들고 있잖아요. 그 다 사수에 서 가지고 저도 딱 서고 있잖아요. 근데 놀라운 게 이 정보가 있잖아요. 저 폭도들이 다 들어간 거야. 아이고 이건 안 되겠다고 도망가 그 사람들 피해가 다른 데로 가버렸어요. 교회 지켰어요. 불 탈 교회가 지켜졌어요 이거는요 시험이야, 그걸 통해 교회가 그때가 교회 개척한 지 한 94년이니까. 한 6년밖에 안 됐어요. 근데 그 이후로 교회가 똘똘 뭉치는 거예요. 남자 성도들이 얼마나 오기 시작하는지, 남가주 사랑의 교회 폭도들로부터 권총으로 지켰다 하더라. 이런 용감한 교회를 나는 가고 싶다. 이래 갖고 있잖아요. 여자들보다도 남자들 숫자가 더 많아져 나는 어디를 갔는지 남자들이 숫자가 많어요. 여자들은 인기가 없고 남자들은 인기가 있나 봐,,, 그냥 이 3~4부터 이런 얘기 할 수 있잖아요. 방송을 안 나가니까 여러분 내가 이 얘기를 왜 합니까?

전투와 시련과 아픔과 폭압과 이런 걸 통해서 우리는 성장하는 것이에요. 골리앗 앞에서 우리는 물맷돌을 준비하는 것이에요. 오늘 은혜가 여러분 오늘 청계산에 가가지고 물맷돌로 기도의 물멧돌로 준비하십시다. 80이 넘은 장로님들이 가시는데 여러분 80이 넘은 분도 가시는데 20~30대가 안 간다 다리몽둥이를 하나님께서 우리는 결사적으로 뭐 해야 할 때가 나를 위하여 지금 진짜 중요한 시간이에요.

아마 올라가면 여러분들이 서로 격려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장계산에서 뻐글뻐글하고 기도할 때, 그리고 미리 좀 가가지고 여러분 개인적으로 기도하시고 가족 문제, 자녀 문제, 여러분 경제 문제 여러분들 인생의 보람 문제 결판을 내셔야 돼요. 결판을 내셔야 합니다. 적당히 하지 말고 그러지 말고 주는 나의 큰 능력 주는 나의 큰 소망 찬양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요약
이제 통일은 안 된다. 라는 이원론적인 생각, 부흥은 안 된다는 이원론적인 생각,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떠는 이런 생각들 다 주님이 처리하여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무너진 다윗의 장막과 같은 패배와 냉소와 이런 모든 낙심을 다윗의 물맷돌 믿음으로 다 물리쳐야 한다. 주의 권속들 하나님의 초월적인 개입과 초월적인 능력을 다 받아 누리기를 원한다. 사자와 곰의 발톱 앞에서나 골리앗 앞에서나 한결같은 다윗의 믿음처럼 한결같은 복음적 승리 마인드로 골리앗을 물리치는 신실한 주의 종이 되어야 한다. 우리 앞에 있는 모든 난제들, 이 엉터리 비젤리들 이런 것들을 거짓이 횡행하는 이 시기에 그 잘못된 놋투구를 뚫어버리는 강력한 물맷돌로 물리쳐야 한다.
-과거에 사자 발톱 앞에서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시대 골리앗도 이기게 하시는 하나이심을 확신하며, 시공을 뛰어넘는 확고한 영적 일원론(一元論)으로,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심을 믿고, 인생 엘라 골짜기에서 가슴 뛰는 현재형 전적 믿음으로 목숨 걸고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할 때, 모든 난제들의 놋투구를 뚫게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자. '2025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서울총회의 마중물'로 올려드릴 때, '대한민국과 사랑의 교회가 오늘 결사적으로 기도의 물맷돌을 준비하는 청계산 구국기도회를 세계교회 위에 강력한 복음의 새 길'이 반드시 열리기를 산상기도로 올려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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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8월 10일)
설교제목: "신앙고백, 예배, 그리고 예물의 삼각형"
(ATriangular Pattern ofFaith: Confession, Worship,and Offenrig)
성경본문 : 창세기 28:16-22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정상익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김지찬 목사(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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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8:16-22,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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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현대 교회가 해결해야 될 가장 시급한 과제는 신앙의 세대 계승입니다. 신앙은 멸절로부터 언제나 단 한 세대밖에 떨어져 있지 않음을 교회 역사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해서 좀 어렵죠. 교회가 멸절된 데는 한 세대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렇게 의역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세대가 다음 세대에 신앙을 제대로 전수하지 못하면 한 세대만에 교회가 소멸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쇠퇴 된 다음에 기도하는 부모, 교육을 헌신 헌신적으로 잘하는 교회 교사 그리고 말씀을 잘 전하는 목사님들이 있으며 또 한 세대만에 교회가 회복과 부흥을 경험하는 것이 교회사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한반도의 조국 교회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신앙의 세대 계승에 빨간 불이 켜졌습니다. 왜냐하면 젊은 세대의 신앙과 물질적 헌신이 심각하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성도들은 물질적 헌신을 얼마나 할까요? 미국 시민들이 자손으로 쓰는 돈은 수입 대비 2%인데 미국 복음주의 성도들의 헌금은 3%이며 11조는 성도의 3에서 5%만 한다고 합니다. 통계가 굉장히 많은 걸 보여주죠. 그죠? 자선이 2%인데, 성도님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 3%다. 한국 교회는 조금 더 나아서 수입의 5%의 헌금을 성도님들이 하고, 30에서 40%가 십일조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근래 들어서서
 
30대 40대 젊은 세대가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태훈 근처에 대단위 이렇게 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그 근처에서 목회하는 분에게 제가 직접들은 것입니다. 그 단지에 30대 가장 평균 직장은 명문대 출신의 대기업 대리인데 예배당에 출석은 하지만 헌금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벌써 10여 년 전에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19세기 말에 위대한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은 사람은 돈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돈이 전부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런데 요새 젊은 세대는 어른 세대보다. 돈이 전부라는 것을 더 뼈저리게 느끼는 거 같아요.
 
2020년도에 들어서서 소위 말하는 영끌 세대의 선주 주자가 30대이고 빚을 내서 투자 투자하는 빚투도 20대, 30대가 가장 많이 한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사회 전체가 돈의 민감해졌는데 특별히 30대 40대가 돈에 민감해졌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유는 십일조 표지론자들이 교회가 십일조와 헌금을 강조하는 것은 교회의 탐욕 때문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성경에 근거가 없는 주장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11조는 구약의 율법 규정이므로 은혜 시대인 신약에서 폐지되었다. 구약의 십일조는 레인에게 드린 세금이다. 신약에는 레위인이 없으므로 십일조를 교회할 필요가 없고 자선 단체해도 된다. 뭐 이런 주장으로 성도들의 마음이 촉박해지고 있음에도 단임 목사님들은 헌금 설교를 잘하지 않습니다.
 
20223년에 한 조사에 의하면 성도님들이 단임 목사님이 헌금을 강조하면 불편하다가 64%나 나왔고, 그래서 헌금을 강조하는 목사님은 35%, 그렇지 않은 분들이 65%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헌금 설교하면 돈을 좋아하는 목사라고 하는 낙인이 찍힐 수 있을 있기 때문이죠. 그러면 당신은 초청 강사라 단타치고 나가려고 그러는 거냐? 그러지 마시고 초청 강사도 힘들어요. 아니 와 가지고 뭐 굳이 뭐 십일조 헌금 얘기 하면 뭐 좋아하시겠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강단에서 말씀을 통해서 십일조에 대한 논쟁이 이어 지는게 아니고 목사님들이 설교를 안 하시니까? 저 같아도 담임이면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단타치니까? 좀 나은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힘든데 저도 그런데 1년에 한 번 정도 볼게 안 되는데,, 여러분은 그렇지만 이게 십일조 논쟁이 유튜브라고 하는 SNS 같은 이런 공간에서 소위 말한 프레임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제가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십일조는 세금이 아니고 십일조는 폐지되지 않았다. 이렇게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프레임 전장에서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그러면 오히려 코끼리를 생각하죠. 왜요?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면 먼저 코끼리를 생각해야 생각하지 않는 거기 때문에. 그래서 프레임 전쟁에 가장 중요한 모터거든요. 이게 그니까? 십일조는 세금이 아니다. 이렇게 하면 아니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십일조는 세금이라는 프레임이 활성화되는 거예요. 왜냐면 프레임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단어거든요. 그래서 프레임 전쟁에서는 상대방이 사용하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피폐한다고 말해요.
 
이런 프레임 전쟁을 버리면서 성도들의 마음의 밭이 황폐화 되고 있습니다. 왜냐면 십일조 폐지론자들이 11조만이 아니고 삶 전체를 들어야 된다. 라고 아무리 선한 의도로 주장을 해도 듣는 사람들은 10분의 1보다. 적은 헌금을 하게 됩니다. 게다가 십일조 폐지론자들은 자기들이 주장처럼 십일조보다. 더 많이 하는지에 대해서는 저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면 십일조 폐지론이 점차 대세가 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헌금이 늘어나야 되는 거 아니에요. 11조만이 아니라 더 해야 된다는 거니까? 왜 줄고 있죠? 십일조 표지론자들도 안 하고 듣는 사람도 안 하고 이러니까? 줄어들고 있는 거죠. 반대로 십일조 유지론자들 역시 프레임 전쟁을 하면 십일조를 내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그 이상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십일조 표지론자든 유지론자든 둘 다. 하나님께 우리의 존재와 우리의 소유와 우리의 모든 것을 드려야 된다는 성경의 정신에 미치지 못하는 거죠.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프레임 전쟁을 멈추고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듣고 복종하는 순종의 전쟁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야곱의 이야기를 성도님들과 함께 들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십일조 폐지론자들은 구약은 율법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야곱의 십일조는 율법 시대의 산물로 신약 시대에 유효하지 않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이거 가지고 부족하니까? 야곱이 아직도 이렇게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얻어내려고 주파를 튕기면서 불순한 의도로 십일조 서원을 했기 때문에 야곱의 십일조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본이 안 된다. 모범이 아니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과연 그런지 한번 성경 말씀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여호와께서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하필 여호와는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왜 아버 할아버지의 하나님, 아버지의 하나님, 손자의 하나님으로 자기를 소개하실까요? 하나님은 개인 개인보다. 가문과 세대를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각 세대가 부모 세대로부터 신앙을 계승하지만 동시에 각 세대마다. 자신의 체험을 통해 자신만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인간의 이름으로 불리 우기를 원하시는 분이세요. 저의 연약함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김지찬의 하나님으로 불리 우시기를 하나님 원하십니다.
 
그리고 김지찬의 하나님으로 제 자녀들과 제 손주들에게 다가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큰 감동을 느끼게 돼요. 지난 주일 저녁에 38개월 된 손녀가 보고 싶어 가지고 화상 통화를 했습니다. 오늘 유합부 갔다. 왔어. 목사님 설교하셨어? 이러니까? 목사님이 아니고 전도사님이 하셨어. 그래. 전도사님이 뭐라고 설교하셨어? 그러니까? 얘가 쳐다보지도 않고 인형 가지고 놀면서 뭐 바벨 어쩌고 그러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딸내미한테 야 걔가 뭐라고 말하냐? 그러니까? 나도 정확히 모르겠는데 바벨론에 가서 뭐 사자 굴 어쩌고 저쩌고 그러는데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자 굴에 누가 들어갔는데 그러니까? 손녀가 다니엘이 들어갔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사자에게 잡혀 먹혔어? 이러니까? 아니야. 예수님이 지켜 주셔서 안 잡혀 먹었어. 손자녀가 약간 신경질적으로 대답을 하는 거예요.
 
아니 그것도 모르냐 이런 식인 거죠. 그래서 제가 이제 그럼 네 엄마가 사자 굴에 들어가면 어떻게 해? 이러니까? 내가 구해 줄 거야. 아 단호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또다시 그럼 할아버지가 사자 굴에 들어가면 어떻게 공손하게 어쭈어 보았습니다. 저에 대한 소녀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아니에요. 근데 바로 할아버지도 내가 지켜 줄 거야! 저는 이제 사자 굴 걱정을 덜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사자 굴에 돌아가면 예수님이 지켜 주시는데 데다가 손녀까지 저를 지켜 준다니 저는 하늘의 영원한 보호는 물론 지상에서 3대까지 안전을 확보한 거죠. 게다가 이제 저는 천국에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을 얻은 거예요. 무슨 뜻이냐고요? 루터가 1519년에 결혼에 관한 설교를 하면서 실제로 자녀를 경건하게 키우는 일보다. 더 쉽게 천국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라고 가르쳤습니다.
 
성지순례 가톨릭 성들 하는 미사, 교회 건물 짓는 것보다. 자녀를 경건하게 양육하는 것이 천국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루터 진짜 대가입니다. 손녀 얘기가 나왔으니까? 계속 자랑하겠습니다. 며칠 전에 화상 통화를 하는데 가자기가 뜬금없이 제게 휴대폰을 사 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예 비행기 사줘. 그랬더니 내가 사 줄게, 라고 했습니다. 다. 큰 성인 자녀가 셋이나 있는데이 애들도 아직까지 안 사 주는 휴대폰을 손녀가 게다가 비행기까지 사 준다니까? 엄청 행복한 거예요. 이제 저는 손녀가 다. 클 때까지 밥 잘 먹고, 운동 잘하고, 아내랑 안 싸우고 건강하게 사는 것밖에 안 남았어. 이제 큰 그런 것만 이제 기다리면 돼요. 애들한테 휴대폰 받는 거 포기하고 이제 손녀에게 지금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랑한 성도 여러분,
게다가 창세기를 보면은 아브라함의 십일조가 야곱의 십일조로 이어지고 있거든요. 그 이유가 뭘까요? 두 걸출한 족장이 십일조를 드리게 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무엇인가 동일한 체험을 한 거 아닐까요? 한 10여년 전 한 교회에서 목사님이 안 계셔 가지고 제가 거의 1년간 설교를 한 적이 있는데 한 주 십일조 설교를 했습니다. 다음 주에 교회를 가니까? 뭐 장로님들이 특별히 그전과는 달리 저게 고맙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유가 뭐예요? 그랬더니 목사님 지난주 설교를 듣고 우리 자녀들이 십일조 하기로 했습니다. 왜 자녀들이 십일조를 하면 집안에서 재물이 빠져나가는데 왜 행복하죠? 하나님을 만나 십일조를 하게 된 부모의 경험이 자녀에게로 이어지면서 동일한 체험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의 가정을 열망하기 때문 아니에요. 저 역시 저희 자녀들과 후손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제가 한 십일조를 자녀들이 하 하면서 살기를 지금도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매달 물어볼 수는 없고, 눈치 보면서 가끔 올라간 대로 제대로 하나 뭐 이런 의문의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가정과 교회의 집단 체험과 기억은 주로 3세대 안에서 유지되고 특별히 한 세대 거리에서 직접 전달되고 이게 단절이 되면은 빠르게 쇠퇴한다고 해요. 뭐 신앙만 그런게 아닙니다. 가치, 은혜, 뭐 자유 뭐 이런 개념도 마찬가지 3대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러거든요. 그래서 성경은 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계속 3대를 이야기하는 거죠. 그럼 도대체 하나님을 만난 어떤 경험이 야곱으로 하여금 아브라함처럼 십일조를 하게 했을까? 라는 질문을 가지고 성경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야곱은 형의 장자 권을 팥죽 한 그릇에서 사고 눈먼 아버지를 속여 축복권을 빼앗은 다음에, 형의 미움을 받아 고향인 브엘세바를 떠나 밧담아람으로 도피하게 되었습니다. 한 3일을 가다가 갑자기 어두워지는 바람에 그곳에 이제 돌을 가져다가 배고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아마 야곱의 머리를 들판에서 보호할 수 있는 건 아마 돌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야곱은 돌을 베고 자다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에서 처음 본 것은 사다리가 땅을 향해 놓여 있는데 머리가 하늘에 다.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까?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어 가지고 설명 좀 그런데 왜 오르락이 먼저냐? 굉장히 설명이 많은데 야곱이 이렇게 누워 있으니까? 누워 있는 상태에서는 이렇게 쳐다보니까? 오르락이 이제 빨리 보인 거다. 시각적 관점에서 또 그렇게 해석한 사람도 있고요.
 
어떤 사람들은 천사들이 이미 내려와서 사역을 하고 있다가 보고하기 위해서 올라가는 거다. 계속하는 분도 계시고 지금 이제 야곱이 이렇게 여행하는 도중에 그 전에 지역을 담당하던 사자가 임무를 마치고 올라가고 다시 이제 새로운 여호와 사자가 내려오는 거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어요.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 거는 물론 재미는 있지만 뭐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중요한 건 뭐냐면 이 꿈 속에 나타나는 이 모습을 보고 야곱이 어떤 반응을 보였냐, 아니에요? 그러니까? 오르락 내락 하고 있었는데 자세하게 보니까? 여호와께서 서서 계셨습니다. 우리 한글 개혁 개정에는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래 가지고 사닥다리 위로 되어 있는데 뭐 NIV성경 같은 경우 보면 각 주에 야곱 곁에 섰다고 돼 있어요. 또 일부 성경은 야곱의 곁에 섰다고 영어 번역 보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뭐냐면 그를 야곱으로 보고 그다음에 위에라는 전치사를 옆에 라고 해석을 할 수 있는데 그러면 야곱의 옆에 서서 계신 거죠. 사닥다리가 땅을 향해 놓여 있다고 했기 때문에 저는 위에 계셨다고도 할 수 있지만 땅에 내려오셔서 야곱의 곁에 서서 계셨다. 라고 해석하는게 더 좋아요. 여러분 알아서 하세요. 위에 계시는게 좋겠습니까? 내 옆에 서서 계시는게 좋겠어요? 내 옆에 서서 계시는게 좋은 거죠. 그걸 굳이 왜 위에 계셨다고 해요. 뭐 때문에 옆에 서서 계시는 게 훨씬 더 은혜 스럽지 않습니까?
 
물론 위에 계셔도 우리를 보호하시죠. 말씀으로 때로는 사자들에게 명령해 가지고 얼마든지 당신의 뜻을 이행할 수 있지만 직접 내려오셔서 야곱의 곁에 서서 놀라운 약속으로 말씀하셨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게 어딨어요?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이렇게 말해요.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내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네 자손에게 주리니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동서남북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내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우리 이 장면 이해가 안 되죠. 왜 속임 당한 에서편에 서야지, 왜 속임수 꾼 야곱의 편에 서실까요? 이게 그러나 복음입니다. 사닥다리가 땅을 향해 놓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을 떠나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셨다는 뜻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도피하는 도망자, 야곱에게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인간의 죄가 만들어 놓은 슬프고 고통스러운 삶의 자리 한복판으로 하나님께서 먼저 들어오신 거죠. 이게 복음입니다. 그 왜 야곱 속임수꾼 야곱의 편에 서실까?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야곱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그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 이미 여호와께서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했다고 선언해요. 하나님은 이렇게 한번 선택한 자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근거로 변화될 것을 요구하세요.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죠. 그 정말 놀라운 건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변화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잠을 깨고 난 야곱의 행동을 보면, 무조건적인 사랑에 반응하여 온전한 사람으로 야곱이 바뀌고 있는 모습을 보거든요. 우리가 다 읽은 대로 17절에 보면,
 
*창세기 28:17,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이렇게 선언해요. 그 야곱이 돌 배개를 베고 자다가 꿈을 꾸고 하나님의 약속을 들은 후에 그것이 하나님의 집이고 하늘의 문임을 지각해요. 이렇게 인간들이 지상에서 하늘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을 영국의 켈트 지방의 전통에 의하면 기독교 전통에 의하면 ‘thin 플레이스’라고 말해요. ‘얇은 장소’라고 부릅니다.이 이 하늘과 땅 사이에 이렇게 베일 장막 같은 게 이렇게 불러져 있는데 그 베일이 얇아지는 곳이 있다는 거예요. 하늘과 땅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얇아지는 이곳이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경험하는 곳인데 따라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세어 나오는 틈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죠. 아파서 아무것도 못 하고 누워 있는 병원의 병상, 요단강을 먼저 건너간 친구나 선배의 영정 사진 앞, 실직이나 파산을 당하고 혼자 앉아 있는 텅 빈 집, 대학 입시와 취업 전쟁에서 실패하고 고개 숙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런 곳이 Thin 플레이스죠. 하늘의 문인 거죠. 이런 thin 플레이스를 경험하면, 신앙의 선배들은 그곳을 하늘의 문으로 인지하고 예배한 거예요. 그러나 젊은 세대는 이러한 thin 플레이스를 경험하면서도 하늘의 문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물질적 풍요를 경험하면서 영적인 민감성이 약해졌기 때문이에요.
 
사실은 얼마 전에 몇 달 전에 저보다. 15살 먹은 장로님이 저랑 같이 신학교를 다녔는데 목회는 안 하고 그냥 장로로 이제 사시다가 15살 더 먹은 형님인데 돌아가신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 영안실에 가서 영정 사진 앞에서 조문하고 이렇게 앉아서 이제 밥을 먹고 있는데 14살 더 먹은 이제 형님 목사님이 선교사인데, 오셔 가지고 이제 영정 사진 앞에서 이제 조문하고 제 앞에 앉았어요. 근데 갑자기 눈이 붉어지셨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김목사, 내가 영정 사진을 딱 보는 순간에 눈물이 났어. 왜요? 요단 강가에 섰는데 내 친구 건너가네. 그 저는 살고 선배잖아요. 요단 강가에 섰는데 내 선배 건너가네. 15년 남았네. 물론 뭐 15년 더 남을 수도 있겠지만 혹시 15년밖에 안 남은 거 아니야? 뭐 이렇게 생각을 해요. 제 아내가 뭐 당신은 뭐 꼭 그럴 필요가 뭐가 있냐 이러는데 저는 좀 시간이 더 남아야 그동안 하나님 더 사랑하고 주님 더 사랑하고, 교회 더 헌신하고 또 하나님께 이쁜 일도 하고 가야 되는데 아쉬움이 있는 거예요. 제가 성격이 ISTJ거든요. 근데 아 안에는 ENFP라 뭐라 그러냐면 자기는 하나님이 언제든지 자기 잘했다고 칭찬해 줄 거라는 거예요. 그 근거가 뭔데 이랬더니 당신 같이 까칠한 사람이랑 살아줬으니까? 하나님이 그거 하나만으로도 자기를 잘했다고 할 거라는데 저는 성경 아무리 뒤져봐도 어디에 까칠한 남편이랑 살아서 잘했다고 하는 대목이 없어요. ENFP니까?
 
데이터 없이 그냥 막 ISTJ는 데이터 없으면 말을 못 하거든요. 근데 ENFP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해요. 근데 뭐 인간적으로 이해는 가능해요. 아, 저 같이 까칠한 친구랑 살았으니까? 뭐 그럴 만하죠. 그렇지 뭐 어쨌든 영정 사진 앞에 딱 서 있으면은 하나님의 공간과 인간의 공간이 이렇게 거의 맞다은 듯한 그런 느낌 들지 않아요. 거기가 Thin 플레이스죠. 하늘의 문이고 하나님의 집이죠. 야곱이 이제 그 꿈을 꾸고 하나님의 약속을 들은 다음에 백에 삼았던 돌에다가 기름을 붓고 구별했다는 뜻 아닙니까? 하나님의 집 베델이라 불렀습니다. 이제 야곱이 뭐 해요?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하면서 서원합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그러면 여호와께서 내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10분의 1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흥미로운 건 하나님의 약속하고요. 야곱의 조건을 비교해 보면 거의 동일해요. 하나님의 약속에서 내가 이 일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 부분은 뺐고요.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면‘ 이건 없었어. 이걸 집어넣는 거죠. 그러니까? 아마 야곱이 하나님 너와 함께 내가 있어서 내가 너를 지킬 거고, 그다음에 아버지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해 주겠다. 요게 약속이잖아요. 거기서 이제 하나는 빼고 이제 하나를 집어넣는 거죠. 아마 먹을 떡과 입을 옷이 굉장히 필요했던 거 같아요. 왜냐면 지팡이 하나를 가지고 요단을 건너 밧단아람으로 갔으니까. 그러니까? 야곱의 서원의 조건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나오는 겁니다. 폐지론자들의 주장처럼 야곱이 먼저 계산기를 두들기면서 조건을 걸고 하나님과 협상해서 십일조 서원을 했다. 이렇게 주장하는데 그 사람들은 문해력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야곱이 잠에 깨어서 두려워했다고 그랬거든요. 무엇을 해요? 하나님이 죄송해요. 표현이 약간 강한 거 같아서요. 그냥 자빠져 있는데 야곱이 뭐 잘한게 아니에요. 도망자가 돼 가지고 그냥 자빠져 있는데 오셔 가지고 야, 네 누군 땅 내가 너한테 자손에게 주겠다. 네 후손이 땅이 티끌까지 될 거다. 그 약속하신 다음에 야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너를 지킬 거고, 무사히 이곳으로 돌아오게 해 주겠다. 먼저 그러셨잖아요. 뭘 뒤를 하냐고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두려운 마음에서 하나님께 만약에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신다면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될 것이고, 그리고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고, 세 번째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서 내가 십일조를 반드시 드리겠습니다. 한 거죠.
 
그러니까? 문해력이 없는 거예요. 문해력이 없어 가지고 기본적인 해석에 이 사라교회처럼 순장 교육을 받으면 충분히 이거 할 텐데, 그것도 안 돼 가지고 앞에 문장이랑 하나님의 약속이랑 야곱의 조건을 비교만 해도 금방 알아요. 두려웠기 때문에 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아 뭐를 딜 합니까? 여러분 야곱이 자빠져 가지고 있는데 딜할 수 있습니까? 이게 뭐를 딜을 하냐고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의 반응을 하면서 하나님하고 지금 자기의 미래를 온몸을 던진 거죠. 하나님께, 그 야곱의 스토리를 살펴보면 야곱의 십일조 서원이 야곱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서 십일조를 하겠다. 라고 하는 서원은 움켜 지는 자가 아니라 이제는 이렇게 드리는 자로 바뀌어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지 않아요. 지금은 서원이지만 지금 당장 주는 건 아니죠. 없으니까? 지금은 야곱은 태중에서 이제 형과 9개월 동안 계속 경쟁을 했을 뿐 아니라 출산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으려고 발뒤꿈치를 잡았어요. 그래서 형이 발뒤꿈치 잡고 나오니까? 이제 이게 잡다는 동사에서 야곱이라고 하는 이름을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까?
 
현대인들과 똑같아요. 현대인들 전체성이 역시 움겨 잡는 자 아니에요. 현대인들은 출생 순간부터 경쟁 사업에 투입되죠. 때로 따라서 일부들은 세 살 때부터 영어 유치원에 보내고 7세 의대를 목표로 학원에 보내요. 현대 부모들은 수담과 방법을 가르지 않고 그 아이들을 선행 학습과 습 경쟁에 밀어 넣죠.
 
야곱은 인간 관계, 가족 관계까지 자기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삼잖아요. 현대인들 역시 인맥 쌓고 효율적 인간 관리를 통해서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얻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보면 야곱은 특별히 타락한 인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축소판이고 하나님 없이 자기 힘으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하는 인간의 전형입니다. 게다가 특별히 현대 사회는 움켜 쥐는 삶의 방식을 장려하고 제도화하죠. 수많은 광고가 인간의 결핍을 자극하고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라고 끊임없이 유혹해요. 그러니까? 현대인들은 주기보다는 움켜잡기를 원하죠. 그러다. 보니까? 성도들조차도 거져 받았으니까? 거져 주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기가 힘든 거죠. 그러다 보니까? 심지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하나님께 예물을 기꺼이 드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적 제도로 폐지되었기 때문에 이젠 자발적으로 그 이상의 헌금을 해야 한다고 고상하게 주장을 하는데 실제로 십일조도 드리지 않는 이유가 뭐죠? 그럼 고상하게 주장하지 말든지, 여기서 우리는 야곱의 십일조 서원만 기억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서원의 종류가 내용이 세 가지잖아요.
①첫 번째 하나님을 야곱이 베들에서 만난 다음에 하나님의 약속을 먼저 받은 다음에 만약에 약속대로 그렇게 해 주신다고 한다면 첫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고, 그 뭐예요? 신앙 고백이죠. 그니까? 이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었는데 이제는 야곱의 하나님이 되는 거고 그 나중에 보면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를 가르쳐 소개할 때 엘 베델이라 그러세요. 엘은 하나님이고 베델은 베델이잖아요. 나는 베델의 하나님이라 이렇게 말씀하세요. 그리고 이제 출애굽기 가야만 비로써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정확한 그 고정 억구가 생기는 거예요. 야곱의 하나님은 창세기는 안 나옵니다. 베델의 하나님이죠.
 
그다음에
②두 번째 그러면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신앙 고백을 했다면 그다음에 예배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야곱이 내가 돌 배개를 배고 자는이 돌을 기름 부어 가지고 구별했는데 그러면 이 집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겠습니다. 라고 두 번째 서운을 한 거고요. 그러면 신앙 고백과 예배가 있으면 다니 아니죠. 예배하려면 예물이 있어야죠. 결혼식 하려도 결혼해도 예물 있어야죠. 생일 생일 날도 예물을 바치잖아요. 아내한테. 예물 없이 생일을 어떻게 해요? 결혼 기념일 날 예물이 없다고요? 예물 없이 하십니까? 우리 남자 성도님들?. 나는 하는데 예물 없이 기념일을 지키지 못해요. 인간 관계에서도 이렇게 예물을 가지고 물론 큰 예물은 아니지만 조그만한 뭐 이렇게 기념품 이런 거라도 이렇게 줘야 아 그래야 이게 인간관계가 제대로 불러가는 건데 하나님께 나와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예배를 드리는데, 예물이 없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러니까? 이제 야곱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서 10분의 1을 드리겠다고 한 거예요.
 
그러게 신앙 고백하고 예배와 예물이 세 가지가 있어야, 그래 하나님의 진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하나님 그니까? 자 여러분 보세요. 성경 어디를 보아도 축복받기 위해서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하는 구절은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시간 가면 안 되는데 성경의 핵심이 뭐냐면 성경의 그 십일조 핵심이 뭐냐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그의 감사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에서 10분의 1을 드리는 것 이게 정확해요. 그런데 이제 몇 군데에서 이렇게 십일조를 내면서 복 달라고 기도하는 대목이 있고 십일조를 매 3년 십일조를 드리면서 드리면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이라고 하는 본문과 말라기 3장이 있어 가지고 세 군데에는 그런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큰 틀은 뭐냐면 하나님께 나아가서 십일조를 드리면 복을 받는다.
 
이렇게 얘기하면 성경의 십일조 정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십일조 정신을 왜곡할 수 있어요. 그 조심하셔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먼저 다가오셔서 축복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주시면은 그 주신 것에서 드리는 거지, 주시지 않은 것을 드리는게 아니에요. 그러기 때문에 고린도후서 8장에서 없는 것을 받지 않으신다. 있는 것을 드리면 당연하죠. 구약의 십일조 똑같아요. 주신 것에서 드리는 거지. 주지 않은 것에 드린다고요. 누가 그래요? 주시지 않는 것에 드릴 수 없는 겁니다. 주신 것에서만 드리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십일조 정신은 굉장히 분명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받은 다음에 야곱이 신앙을 고백하는 신앙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겠다고 하는 예배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사람으로 바뀐 거예요. 그러니까?
 
신앙과 예배와 예물이라는 삼각 관계 안에서 예물을 이해해야 되죠. 그 십일조만 따로 딱 떼내 가지고 이해하면 안 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을 했으니까? 그럼 나의 하나님을 향한 신앙 고백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으며 우리는 진정 무엇을 믿고 무엇을 소망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물인 거죠. 특별히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인들은 쇼핑하고, 맛있는 음식 먹고, 여행하는 일에 마음껏 돈을 씁니다. 이런 학자들이 세속적 예배라 부르거든요. 이에 맞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와 자신의 존재와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말미암아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렇게 신앙고백과 예배와 예물로 드리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면에서 십일조는 고백적 저항인 거죠.
 
저는 중학교 때 등록금을 못내 1년 휴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집안 상황이 너무 안 좋아 가지고 이남2녀의 장남인 저는 중3 때 휴학하고 집에서 쉬었는데 주변에서 왜 복학하려고만 하고 왜 어머니를 안 돕냐 하도 난리를 치는 바람에 마대 공장을 다녔습니다. 두 달 만에 공장이 망했습니다.
 
저 쳐다보지 마시고 저 때문에 망한게 아니고 그냥 그냥 망했습니다. 그 두 달 제가 그 월급 받아 뭐 했겠습 얼마 받았니 기억이 안 납니다. 성경 한 권 사고 어머니께 고무장갑 하나 사 드리고한 십일조 했습니다. 십일조 하면 복받는다고 했을까요? 몇 만 원 받았겠죠? 뭐 2, 3만 원 받았을려나? 모르겠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11조 내지 않아도 하나님 뭐라 그러지 않으실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가 저는 정확히 뭔지 모릅니다. 생각이 안 납니다. 아마 당시에 목사님들이 십일조를 내라고 강조하셨기 때문에 그냥 순종하는 마음으로 드린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가스 라이팅이라 그러는데 몰라요. 뭐 그분들이 가스라이팅 했는지 모르겠는데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고요. 설마 가스라이팅이라고 해도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며 아깝다는 생각하지 않았고요. 하나님께 대한 저의 신뢰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옛날 목사님들께서는 어떤 동기에서인지 모르지만 1970년대, 80년대, 90년대까지만 해도 십일조를 하라고 강하게 권면하셨죠. 그이 권면에 순정하다. 보니까? 십일조를 통해 탐욕과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조금은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에 따라 채우신다는 걸 믿을 수 있게 된 거죠. 가난할 때 십일조를 낸다고 더 비참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부할 때 십일조를 낸다고 덜 행복한 삶을 사는 게 아니잖아요. 이전 목사님들의 십일조 강조가 성경의 진리가 실전적으로 옳다. 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셨기 때문에 저는 한국 교회 전통에 대해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해보면 아니까, 우리는 그러기 때문에 십일조를 단순히 의무로 액수의 문제로 생각해서 안 되죠. 십일조를 생각할 때 야곱이
 
가졌던 꿈과 비전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준 꿈과 비전이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됩니다. 나다나엘이에게 주님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너를 뭐하고 나무 아래에서 보았다고 함으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단순히 사닥다리만이 아니고요. 인자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예요. 하늘과 땅이 붙은 거죠. 이제는 하늘과 땅이 이렇게 얇아진 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과 하늘이 열리고 하늘과 땅이 이렇게 붙어 있는 오버랩 돼 있는 거죠. 이렇게. 그리고 그리스도 위로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하늘의 무한한 사원과 풍요가 우리에게 열렸다는 말 아닌가요?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열려 져 있는 하늘의 무한한 능력과 자원이 있다고 한다면 그 큰 일을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세례받을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에게 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에 성전의 휘장이 찢겼습니다. 하늘과 땅의 구이 구별이 사라진 거죠. 그리고는 4일 만에 3일 만에 부활하신 다음에 하늘에 올라가셔서 하늘로부터 성령을 보내 주셨고, 마가 다락방의 성도들은 성령을 받고 각 언어대로 각 성령을 받고 방언을 했는데 듣는 사람들이 자기 지역의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향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하늘의 능력과 힘을 공급하시는 그 예수님의 더 큰 일을 경험하고 있다면 예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하고 나와서 주일마다. 또 예배 공 예배마다 나와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러기에 십일조는 신앙 고백과 예배와 함께 하나님이 베푸신 축복에 감사하여 드는 예물이기 때문에 이게 관계의 문제고 은혜의 문제인 거죠. 그래서 십일조는 율법적 최소가 아니라 은혜의 최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10분의 1을 모든 성도들에게 강제적으로 이렇게 교회에서 이렇게 의무로 규정하지 않잖아요? 신약 시대에는 더더욱 하나님의 은혜며 하나님께 감사해 드리는 자발적 최소, 은혜적 최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정통 교회는 그 어디라도 예배 참석할 때 헌금을 해야 된다. 그러지 않잖아요. 예배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멤버가 되고, 교회의 직분자가 되면 그때는 헌법적 규정으로 십일조는 누구나 해야 된다가 아니라 권면 사항으로 율법적 최소가 아닌 은혜의 최소로 자발적 최소로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릴 것을 교회가 권면하고 있는 거예요.
 
이단들은 오히려 헌금 많이 안 하면 중앙 본당에 못 들어갑니다. 신천지가 거기 중앙 본다고 돈 내야 들어갑니다. 희한한 애들이 쟤네들. 정통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분량이나 혹시 형편으로 인해 십일조를 하기 어려운 마음이 든다면 억지로 해서는 안 되죠. 굳이 십일조를 단어를 쓰기 원치 않으시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서 일정한 부분을 드리는 훈련을 하시면 돼요.
 
그럼 미국에서는 어떤 목사님이 미국 성도들이 평균 3% 헌금을 하니까? 1%씩 올려 가지고 10%까지 올리는게 어떻겠냐, 이렇게 제안을 하고 저는 한국 교회는 5%니까? 1년에 1%씩 올려서 10%까지 가보는 훈련을 하는게 어떤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출석하는 교회에서 예배의 은혜를 받고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시키고, 성도 간의 교재 유익을 경험하고 있다면 먼저 출석 교회의 십일조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출석하는 지역 교회가 재정적으로 건강해져야 그 지역에서 복음 사역과 다음 세대 교육을 잘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정말 돕고 싶은 어려운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로 이적해서 거기서 봉사하고 헌금을 하는게 더 적절할 것입니다.
 
출석 교회에 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지 않으면서 다른 곳에 헌금하는 것을 자랑한다면 자칫 위선일 수 있죠. 그러나 10분의 1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존 신자들은 10분의 1이 목표가 아니라 더 많이 드릴 수 있는 지혜로운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십일조 이상 할 수 있는 여력과 마음이 있다면 뭐 다른 교회나 뭐 선교 단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10분의 1은 자발적 최소고 은혜의 최소가 돼야 되는 거고, 그런 점에서 제가 십일조라고 하는 것은 구약에 규정된 의무적인 헌금처럼 보이는 건 맞다. 대신 신약에 대해서는 자발적으로 은혜로 하나님께 하는 거라면 십일조는 자발적 최소지 이게 최대는 아니잖아요. 그러면 자발적 최소로 은혜적 은혜의 최소로 이렇게 드리면 더 많아져야 되는 건데, 더 줄어드는 건 도대체 무슨 이유일지, 전 도대체 이해가 안 가요.
 
미국의 저명한 존파이퍼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33년 동안 베들레헴 교회에서 십일조 설교를 두 세 번 정도 한 것 같습니다. 물론 헌금과 희생에 대해서 늘 이야기했지만 십일조에 관해서 그렇게 밖에 안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했던 십일조 설교 요지가 무엇입니까? 형제 자매님들이여, 왜 우리가 더 적게 하려 합니까? 였습니다. 그러니까? 십일조를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우리에겐 더 좋은 언약, 더 좋은 약속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좋은 희생, 더 좋은 헌금이 있으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요?
 
우리는 바울이 마게도니아 교회를 칭찬한 걸 잊어서 안 됩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환난의 많은 시련과 풍성한 연보, 이거 상반되지 않아요? 아니 마게도니아 교인들로 하여금 많은 시련 가운데 풍성한 염보를 하게 한 이유가 뭘까요?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동기였대요. 아 이보다. 더 큰 역설이 어디 있어요? 근데 이게 진리예요. 성경 기독교는 무엇이든지 많이 넘치는 종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환난도 넘치고, 시련도 많고, 가난도 극심하게 경험해요. 그런데 이 많은 환난 가운데 넘치는 기쁨으로 풍성한 연보를 하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거죠. 이게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아멘.
 
많은 환난 가운데서 극심한 가난이 넘치는 기쁨으로 풍성한 연보를 하게 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해. 그래서 바울이 뭐라고 말해요? 이 이 일이 하나님께서 마게도니아 교회 들에게 주신 은혜 때문이라고 말해요. 그래서 가난한 자들의 헌금을 교회가 재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보면 무시해서 안 되는 거예요. 퍼센티지를 보면 작을지 모르지만 작은 자들의 헌신을 가지고 가난한 자들의 헌신을 가지고 왜 교회가 가난한 자들의 헌신까지 그렇게 알겨 먹으려고 그러냐 그러면 안 되는 겁니다. 물론 저는 목회자로, 대부분의 많은 목회자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가난한 성도들이 헌금할 때 마음이 아파요. 하지 말라고 그래요. 어떤 때에는 그렇게 어려운데 왜 하냐?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가난한 자의 헌금은 박수치거나 감사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서 배워야 되는 정신이라는 거죠. 교회 정체성이고, 왜요?
 
여력에서 내는게 아니라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드렸던 과부가 드린 거 아니야. 어떻게 저들은 무엇 가진게 없는데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까? 우리는 거기에서 도전을 받고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 하신지를 듣는 거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가난한 자의 헌신을 그냥 박수 치고 감사하고 이 정도나 아니면 숫자가 x가 얼마 안 되니까? 무시해서는 안 되고 교회가 배워야 할 정신이다. 이렇게 선배들은 가르쳤어요. 이런 거를 알지도 못하는 일부 진보적인 특별히 유튜브 잘잘법 이런데 나오는 사람들이 신약에는 헌금이라는 돈이라는 단어가 안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에는 헌금이 없고 돈이 없고 뭐가 있냐? 가난한 자들이 주는 연보밖에 없다. 이렇게 주장해요. 고린도후서 8장 9장에 보면 돈이란 단어 안 나옵니다. 맞습니다. 화폐라는 경제적 영어 없습니다. 대신 은혜가 8장에만 일곱 번. 디아코니아 성도를 섬기는 일로 두 번, 8장 9장에 함께 참여하고 교재한다는 코인이니어가 두 번, 하나 가난한 자에게 주는 헌금을 사랑이라고 아가페로 세 번, 후하다는 단어가 한 번 풍 넉넉함 넉넉함이라는 단어가 두 번, 거에게 연보라고 두 세 번, 연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율로 한데 축복이란 단어거든요. 한 번, 착한 일이라고 한 번, 봉사라는 단어로 한 번 쓰였습니다.
 
이제 바울이 하려고 하는 일은 신약교회 성도들이 하려고 하는 일은 이 예물은 그냥 돈 화폐가 아닌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은혜, 사랑, 풍성함이라고 하는 단어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런 단어를 썼는데 개뿔도 모르면서, 헌금 돈이란 단어 안 나오니까? 신약에는 헌금이 없다. 그 제 정신이 아닌 거 같아요. 제가 최근에 이렇게 우연히 유튜브를 이렇게 보니까? 리아킴이라고 하는 자매가 한 10년 전에 위대한 약속, 뭐 이런 노래를 불렀는데 갑자기 듣다가 우연히 들었어요. ’하나도 모르면서 둘을 알려고 하다가 사랑도 믿음도 떠나가네.‘ 구약도 모르면서 신약을 알려고 하다가 구약도 신약도 다. 떠나가는 거야. 이 알지도 못하면서. 그니까? 구약은 십일조라고 하는 율법적 최소를 정해 놓고 그것을 가지고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운영했는데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그 무한한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은 돈 화폐라고 하는 재정적 경제적 용어로는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은혜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니까 보지 마세요. 유튜브, 교회도 모르고 죄송해요. 너무 심하긴 한데 그냥 제가 그 강의를 듣고 있으면 아 교회를 모르는구나 은혜를 모르는구나 구약도 모르는데 어떻게 신약을 알려고 할까? 그런 생각이 확 들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 시대 운운하면서 십일조 페이지 어쩌고 저쩌고 이러는 사람들은 아직 율법의 수준에 율법의 사람이 지나지 않는 거죠. 극심한 환난 가운데 극심한 가난 가운데 넘치는 기쁨으로 풍성한 예물을 드렸던 마게도니아 교회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가 뭔지를 1도 모르는 거죠.
 
우리 사랑하는 사랑교회 성도 여러분,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선자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각자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믿음의 세대 기승이 일어나는 가정을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우리의 주로 고백하고 그분에게 예배드린 일에 목숨을 걸며 십일조와 감사 헌금으로 예물을 드리는 일을 중요시 여기지 않으면 교회는 한 세대만에 쇠퇴하고 소멸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베푸신 축복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은혜의 최소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삶 삶을 다음 세대에 강력하게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할아버지의 십일조가 아버지의 십일조를 거쳐서 손자의 십일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이를 넘어서서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고 한다면 결국은 십일조 이상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되는 거 아닐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저 하나님의 바다에 얕은 물가에서 발로 이렇게 물장구치는 수준으로는 이런 방식의 삶을 살아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설교 후에 함께 부를 찬양 찬송가 302장은 이렇게 찬양합니다. ♬ 많은 사람이 얕은 물가에서 저 큰 바다 가려다가 찰싹거리는 작은 파도 보고 마음이 조려서 못 가네.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띠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내 맘껏 저가라. ♪~~ 언덕을 떠나 창파에 배를 띄우고 하나님께서 다. 우리의 필요를 따라 채우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며 산다고 한다면 은혜의 바다에 깊은 속까지 우리가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받는 여러분과 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우리에게 주신이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3대가 하나 되어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예배하며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한다. 신앙의 세대 계승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배하신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받는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간구하자. 야곱이 신앙을 고백하는 신앙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겠다고 하는 예배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사람으로 바뀐 거처럼, 우리도 항상 신앙고백과 예배와 예물을 주님 앞에 감사함으로 드리는 자가 되고, 자녀를 경건하게 양육하는 것이 천국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임을 깊이 깨달아 세대 계승의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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