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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 ♣주일예배(주후 2025년 6월 22일) “벌레 같은 야곱아, 두려워 말라(Fear Not, You Worm Jacob)"(오정현 담임목사님)-사랑의 교회 ☆

by ☆ 향기야(hyacool) ☆ 2025.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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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6월 22일)
제목: “벌레 같은 야곱아, 두려워 말라(Fear Not, You Worm Jacob)"
-<새로운 길> 이사야 시리즈 ⑰
본문말씀: 이사야 41:8~1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2부
대표기도: 김희재 장로님(2부)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2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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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1:8~16,
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14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15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16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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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이사야 강해, 17번째이자 ‘벌레 같은 야곱아, 두려워 말라’라는 제목으로 오늘 복음적평화 통일 주일에 대한 메시지도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제목을 받을 때 여러분 어떠셨어요? 벌레 같은 야곱아, 오벌레, 박벌레, 김벌레 뭐 별로 좀 별로 좀 이렇게 썩 좋은 느낌은 아니죠. 에, 요즘 AI 인공지능 시대, 인간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거 같은 이런 시대에, 우리가 무슨 벌레인가, 이럴 수도 있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이게 참 그 익숙했어요. 왜냐면 찬송가 가운데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신 주’,. 그다음 뭐가 나와요?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다’. ‘이 벌레 같은 내가 얼마나 이게 진지하게 느껴지냐에 따라서 늘 의로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하나님에 대한 이 감사와 감격이 막 치밀어 오르는 거예요.
 
근데에 사실 이게 어디서는 14절에 오늘 본문의 14절에,
 
*이사야 41:14,
14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그랬어요. 그래 제가 이걸 좀 순화시켰어요. 버러지는 너무 좀 센 거 같고 벌레로 순화시켰는데, 지난 개역 판에서는 더 센 표현으로 나왔어요. 뭐냐면 지렁이 같은 너희 야곱아, 여기 지렁이가 덕실 덕실합니다. 지금. 참 말도 안 되는 거 같은데, 그런데 사실 첫 번째 생각할 것은 벌레 같은 우리 인생이에요.
 
I. 벌레 같은 인생
 
-우리가 얼마나 이거 우리 내면을 얘기하는 것이고, 우리의 나약함을 얘기하는 것이고, 우리 인생이 얼마나 약한지 뭐 말 안 해도 여러분들 다. 아십니다. 큰 소리 쳐도 30초 뒤의 일을 우리가 모르는 인생입니다. 그거 알면 누가 교통사고 일어나겠습니까? 뭐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감기 바이러스는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또 재발하면 어떻게 하나, 다 걱정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의지가 약해 가지고 여기 작심 3일 아닌 분 손 들어 보세요. 좀 의지가 좀 강한 분들은 작심 30일, 예 작심 1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물학적으로는 맹수보다. 더 약한 존재이고, 정서적으로는 늘 아침 저녁으로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고, 존재론적으로 마음 적이라면 좀 말이 어렵지만 죽음과 또 좌절과 우리의 여러 가지 허무, 이런 것들을 해결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이렇게 이 유한한 인생 앞에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려 있습니다.이 인생의 연약함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41장인데 42장에 보면,
 
*이사야 42:3,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우리 인생을 상한 갈 때다. 혹은 꺼져가는 등불이다. 그래 표현하고 있어요. 여러분 갈 때도 약하지만 상한 갈 때는 더 약하죠. 예. 등불, 등불도 등불 약한데 꺼져가는 등불 심지가 얼마나 약하겠어요? 인생이 어떠냐 그랬을 때, 예수님께서도 이사야 이 말씀을 그대로 받으셔 가지고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인생은 상한 갈 때요. 꺼져가는 등불이다. 그렇게 주님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런 인생으로 나타나는 증상 중에 대표적인 것이 뭐냐면 두려움이다. 다시요. 나약함 때문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이 뭐라고요? 두려움, 두려움이다. 그래서 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우리 이 피조물인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이죠. 특별히 불확실한 미래, 앞날에 대한 공포가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 적으로나, 질병이나, 죽음이나 혹은 사고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두려움에 압도당할 때에 슬픔의 바다. 속에 빠져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실망과 좌절의 홍수 속에 휩쓸려가고 우울증에 빠지는 것이에요. 이 두려움이이 두려움을 잘못 관리를 할 때에 이 두려움은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또 가정을 붕괴시키고 그리고 사회를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다윗왕은 그가 하나님을 진실히 섬겼지만 다윗도 이런 고백을 합니다. 시편 55편에 보면 뭐라고 말씀하느냐?
 
 
*시편 55:4-5,
4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5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그래서 다윗은 오하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닌다. 하는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이에요. 그럴 때에 이 두려움이 있을 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거기에 대해서 오늘 그 우리가 잘하는 10절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늘 직격탄을 쏘시는 것이에요. 그냥 복잡한 것 다. 두고 두려워 말라.
 
*이사야 41:10,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런 말씀하시는 거예요. 네가 내 내면에 어떻든, 네가 생물학적으로 정서적으로 존재론적으로 네가 어떻든 상관이 없이 주님이 오늘 두려워 말라.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두려워 말라. 그리고 사람들이 왜 두려워하는가? 두려움에 대한 이유 중에 하나가 뭐냐면 미래가 어떻게 될까? 그런데 그 미래에 대해서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말씀해 주시면서 미래를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거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은 버러지 같은, 벌레 같은, 지렁이 같은 야곱을 위하여 하나님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시는가? 오늘 1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사야 41:1-2,
1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오라.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세상을 소환하는 것이에요. 열국에 대한 소환장을 내시고 가까이 있는 역사를 보라. 그러면서 2절에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중요합니다.
 
2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깨워서 공의로 그를 불러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냐 누가 열국을 그의 앞에 넘겨주며 그가 왕들을 다스리게 하되 그들의 칼에 그의 칼에 티끌 같게 하겠고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
-무슨 말이냐면 성경은 항상 앞뒤를 가지고 해석을 해야 되고 구원사 전체를 가지고 해석해야 되는데이 동방에서 사람을 읽게 온다는 말이 어디 나오냐? 바로 이어서 이사야 44장 보니까? 뭐라고 나오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44:28,
28 고레스에 대하여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이렇게 나왔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 동방에서 사람을 일깨우신다고 그랬는데, 그 동방에서 사람 일는 그 사람이 누구냐? 오늘 본문에서 볼 때는 이 사람이 고레스 왕이다. 이거 누구라고요? 이게 신학적으로 문제가 없는 해석이에요. 이 고레스 왕은 어떤 왕인가 하면 뒤에도 또 나옵니다. 고레스에 대해서 하나님 직접 말씀하시는데
 
오늘이 이사야는 이 예언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바벨론의 포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서 그거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70년 뒤에 바벨론 포로로부터 해방 받게 해 주실 것이다. 이제 그걸 이제 예언을 하시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오늘 이사야가 예언한 이 시점에서 앞으로 160년쯤 뒤에 일어날 일을 지금 예언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고레스가 뭘 하느냐, 여러분 고레스는 바벨론 제국을 다. 무너뜨린 왕 이에요. 바벨론 제국은 느브갓네살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간 그런 포악한 왕이었죠. 그 바벨론 제국을 페르시아가 이렇게 다. 이렇게 무너뜨리는데 그 페르시아의 대표가 고레스왕이었어요. 근데 그 고레스왕이 어떻게 이 일을 이루는가? 어느 날 여러분 그 이제 해석상 쭉 보면 그때 다니엘과 새
 
친구가 있었을 것이고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옛 예언서 있는데 160년 전에 이사야라는 왕족이 예언을 하는데, 동방에서 한 사람 뒤에 이제 고레스라고 아예 많이 나와요. 고레스라고, 그 고레스가 이스라엘 백성 고레스에 대한 예언을 하니까? 고레스가 깜짝 놀란 거예요. 그래서 이 말씀을 고레스가 그대로 듣고, 이 말씀을 깨닫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면서 너희들은 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재건하라 명령도 하시고 심지어 건축비의 재정까지도 지원해 주었다. 오늘이 말씀을 앞에 놓고 이 말씀이 우리 대한민국에도, 여러분들에게도, 우리 교회에도 이것이 적용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아멘. 대한민국의 미래도 남북의 문제도 앞으로 세계복음평화통일총회도 오늘 하나님께서 오늘이 말씀을 통하여 그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간의 내면의 두려움을 가지고 그 연약함 때문에 두려움을 고민하는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너희들이 이 미래를 인도하시고 역사의 미래를 주관하시고 뭐 역사에 대해서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역사학자도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미래를 계획하시고 설계하시고 미래를 그대로 이루어 가시는 분이 있어요. 그걸 우리가 어떻게 믿느냐? 그걸 전적으로 의탁하게 하는 것이 역사에 대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시각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 먼저 우리가 연약한 존재이고 연약한 존재와 갖는 두려움이 있고 그 두려움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라면 그 미래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끌어 가실 것이다. 그런 우리 배경을 가지고 두려움에 짓눌려 있는 미래를 열어가는 그 비결이 뭐냐? 아직 직격탄을 쏘시는데, 그것이 10절이다. 이 말이야. 오늘 보면 10절이 요절인데 주보 앞에도 다. 써 놓았죠? 이 10절이 아주 아주 중요한 뜻이 내포되었습니다. 이 10절은 사랑의 교회 교우들은 우리가 이걸 암송을 통하여 거의 대부분 다. 암송하고 있는 내용들이에요. 그런데 이 암송을 하지만 이것이 내 것으로 삼아지고 내 것으로 체화되고 내 것으로 고백 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인것이에요. 두려워 말라 그랬어요.
 
*이사야 41:10,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내가)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내가)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런데 우리가 두려워하잖아요. 미래에 대한 계획, 이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을 많이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주님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두려워 말라. 그다음 뭐예요?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뭐예요? 나는 내 하나님이 됨이라. 그다음 뭐예요?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그다음에 참으로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그다음에 참으로 내가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랬어요. 여기 보니까? ‘내가’ 라는 말이 성경에 히브리어는 강조 반복해서 반복하는 단어를 통하여 강조하는데 ‘내가’ 라는 이 주어가 다섯 번이나 들어 있어요. 우리 성경에는 세 번 나와 있지만, 사실은 내가, 내가 두 번이 빠졌어요. 다섯 번이나 강조하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두려워하지 말게 말라는 근거를 말씀하시는데, 여러분 너희들 내가 너희들과 함께 함이라 내가 너희들과 함께 하나님이 됨이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이 자리에 우리가 이 말씀을 다. 함께 공동체로 듣지만 사실은이 말씀 하나하나가 복수가 아니라 실귤러, 단수로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맞춤형 메시지인 것을 믿으셔야 되시는 것이에요. 두려워하지 말라. 오늘 박벌레들아, 오벌레야, 이런 우리 벌리 같은 버러지 같은 우리 인생 내면에 연약하고 앞날를 알지 못해 가지고 고민하고, 우울증에 빠져 있고, 생태적으로 우리 환경적으로, 정서적으로, 적으로 존재론적으로 힘들다. 하더라도 오늘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여 주님께서 다섯 번이나 강조하셔서 두려워하지 말라. 아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강력하게 육박 접근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밀착하시고 근접해 주시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어가 되셔 가지고 개인적으로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 그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이걸 사도 바울이 이 은혜를 깨닫고 로마서 11장에 보니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로마서 11:1,
1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연약한 백성들 그리고 시험드는 백성들 속물 같은 백성들을 하나님이 버리시느냐? 너 그럴 수 없느니라. 그랬어요. 왜 그럴 수 없는가?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구원해 주 친 백성들을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그랜드 디자인이 있는데, 왜 하나님은 버러지 같은 야곱을 끝까지 붙으셨을까요? 바로 43장 1절에 바로 다음에 같이 읽겠습니다.
 
*이사야 43:1,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너는 내 것이라.
-우리 찬송도 이런 찬송이죠.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구소 너는 내 것이라 그랬는데 하나님이 왜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랬을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데, 특별히 야곱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것인데 야곱을 구속하셨고, 구속이라는 말은 뭐 이렇게 감옥에 넣는다. 그 뜻이 아니라, 아니고 값을 주고 사(赦)해 주신다. 그 말이에요. 영어로 말하면, 리뎀션(Redemption-구원), 그 전에 우리 조선 시대 같은 경우는 노비들이 있잖아요. 노비들을 면천(免賤), 노비 노비를 면천시켜 준다. 하나님이 야곱을 구속하신 것처럼, 면천시킨 것처럼, 오늘이 자리에 계시는 저와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보혈 복음을 통하여 면천시켜 주신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리고 이 하나님은 면천시켜 주실뿐만 아니라, 야곱의 그 그렇게 막 악착 같이 하고 싶었던 장자 권을 회복시켜 주시고, 특별히 야곱을 야곱을 만나 주시는데 야곱의 벧에의 사건, 뭐 얍복 강의 사건, 나중에 야곱이 저 수레를 타고 애굽에 가는 모든 과정들을 통하여, 야곱이 엉터리로 사는 것도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야곱을 추적하시고, 야곱을 붙잡아 주시고, 특별히 얍복강 가에서 에서 야곱의 이름을 뭐를 바꿔 주셨어요? ‘이스라엘’(야곱→이스라엘)의 이름을 바꿔 주셨어요. 그러니까? 인격이나 도덕성이나 헌신도나 이런 걸 보면, 그 이삭을 이스라엘을 바꿔 줘야 되고, 아브라함을 이삭 이스라엘로 바꿔 줘야 되고, 또 무슨 뭐 모세를 이스라엘로 바꿔 줘야 되는데, 이 속물 같은 이 야곱을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바꿔 주시고,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한 줄로 압니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쉽게 말하면 야곱, 버릇 같은 야곱, 벌레 같은 야곱을 이스라엘로 삼아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다는 것이에요. 아멘.
 
자, 오늘 그러니까? 비하고 연약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끝까지 붙잡아 주시고, 창세기가 50장까지 있는데, 창세기에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가, 성령의 감동으로 창세기 반 이상을 남들이 볼 때는 이삭보다도 못하고 아브라함보다도 못하고, 모세보다도 못하고, 수많은 하나님의 신실함 못한 이 야곱을 버러지 같은 야곱을 벌레 같은 야곱을 지렁이 같은 야곱을 창세기의 장수 가운데 반 이상을 야곱을 향하여 할례를 해 준 거예요. 그 이유를 다. 몰라요. 버러지 같은 우리 인생이라 할지라도, 야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야곱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아멘.
 
저는 이걸 쭉 해석을 하면서 이렇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못 났어요. 자식이 부족해요. 그리고 자식이 아빠에게 땡강부려요. 그럴 때 여러분 여러분이 자식을 이깁니까? 아니면 자식이 여러분을 이깁니까? 집집마다. 다. 사연은 있겠지만, 여러분 자식이 막 땡깡 부르고 그 부족하고 못 나고 이런데 결국 부모가 윽박지려고 자신을 무찌르고 호적에서 잘못하면 이름을 파고 말이지. 그렇게 하는 부모는 없어요. 대부분 부모는 자식에게 져 주는 거예요. 이 깊은 신비를 알 사람만 알도다. 부모이기 때문에,,, 자식이 부족해도 그 자식을 위하여 눈물 어린 목자 심정을 아버지의 심정, 어머니의 심정을 가지고 자식에게 져 주는 거예요.
 
하나님은 버러지 같은 야곱이고 벌레 같은 야곱이고,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도 하나님이 저주셔 가지고 나중에 그 야곱이 나중에 얼마나 존귀한 자가 되는지 당대 최대 제국 애굽의 황제를 축복하고 블레싱하는 자리까지 이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부족한 야곱을 하나님이 져 주시는 것이에요. 그게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져 주시는 표현으로 더 놀라운 표현을 하셨는데 그것이 뭐냐? 8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사야 41:8,
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이 종은 어떤 노예, 뭐 비천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언약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종이 되는 거. 이거는 아주 그냥 좀 영광스러운 표현으로 말할 수 있고, 그다음에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그러니까? 하나님이 택하시고 야곱을 택하시고 하나님에게 져 주시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종을 만드시는데 특별히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그러니까? 야곱을 택한 정도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이 돼 가지고 하나님의 벗으로 만들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너무나 이거는 신묘막측한 거에요. 벌레를 버러지로, 지렁이를 택한 야곱으로, 이거는 말도 안 되는 얘긴 같아요. 그리고 벗으로 만드시고, 창세기 18장 17절에 보니까?
 
*창세기 18:17,
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는가.
-이 벗이라는 이 아브라함에서 숨기겠는가 는 이런 내용들을 아브라함이나 야곱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들인 우리들까지 에게도 동일하게 우리를 벗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 벗이라는 말을 신약의 신비한 복음을 깨달았던 요한 사도는 요한복음 15장에서 아주 놀라운 표현을 하고 있어요. 뭐라 그러냐? 크게 우리 합독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5:15,
15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아멘. 정말 내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벗게 내가 이를 숨기겠느냐? 그렇게 말하는데 너희를 친구라고 하시고 그 하나님의 그 신비한 내용들을 너희에게 다. 숨기겠네. 다. 알게 하겠다 이 말이에요. 오늘 이 예배 시간에, 우리가 하나님을 묵상할 때 우리 벌레 같은 내가 하나님의 벗이 되었다. 이 비하하는 은유적 표현이고, 비하하는 언어지만 오늘이 벗으로 비상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십시다. 아멘. 비하의 언어가 아니라, 비상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기뻐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다시 한번 벌레가 아니라 뭐예요? 벗이고, 그다음에 지렁이가 아니라 친구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한 걸음도 나와 가지고 요한복음 20장 17절에,
 
*요한복음 20:17,
17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그러니까? 형제라고, 너무너무 놀라운 황송한 표현을 하고 있는 거예요. 영 가족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거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지, 자 가족이다. 형제가 됐을 때는 다. 그 사람 편이에요. 여러분, 가족들끼리 뭐 있을 때, 막 논리 따지고 이론 따지고 막 네가 옳고 그러 따지고 막 삿대질하고,. 여러분 그건 형제가 아니야. 그건 가짜야. 좀 어렵고 힘들고 피 흘리고 있으면 무조 무조건 친구가 돼. 그래서 우리 교회는 영 가족이라 그러는 것이에요. 어려울 때 옆에 와 가지고 너 너 너 어려운 이유가 이거지, 라고. 조목은 이것 때문에 내가 어려웠게 됐지,. 넘버투, 너 이거 너 이 고쳐, 이렇게 한 건 그거는 그거는 가족이 아니야, 가족은 그렇게 하는 거가 아니고,. 가족은 무조건 그 사람 편인 거예요. 어려움 있을 때, 무조건 그 사람 편이는 거예요. 별로 반응도 안 하시고,,,
 
여러분, 가족들은 가족들은 그냥 아플 때 같이 가 있는 거예요. 그 우리가 영 가족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 편이네. 이거 너무나 놀라운 일이에요.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마음대로 범죄 한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그 고기하고 순고하고 영광스러운 그 수준으로 같이 맞춰져 가니까? 우리가 자연스럽게 우리가 정말 죄송하고, 나쁘고, 모자라고, 더럽고 추한 것을 처리하게 되 있는 거예요. 할렐루야!!!, 우리가 하나님의 벗이요,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의 친구예요.
 
제가 한 8년 동안 대학생 시절에, 저희 목회 목사님이었던 박희천 목사님 여러분 잘 아시잖아요. 지금 97세 이신데요. 이분은 하나님의 벗이 너무 하나님의 신고가 너무 좋으셔 갖고, 평생을 새벽 기도 인도할 때에 찬송이 딱 하나밖에 없어요. 나오자 말자 그냥 이제 새벽기도 시작하겠습니다. 그것도 아니에요. 그냥 딱 나오자 말자. 박 목사님은 딱,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모든 것을 우리 주께 구하세’. 평생에 새벽기도 찬송은 딱 한 장이에요. 뭐 복잡하게 살지 맙시다. 그러고 다. 딱 하나, 평생의 새벽기도 찬양이 죄짓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구인지, 걱정 근심 모든 것을 우리 주께 다. 구한다.
 
이거는 아브라함을 아니 야곱을 하나님의 벗으로, 친구로, 형제로 삼았다는 것은 이거는 뭐 말로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인간들이 갖는 내면에 수많은 두려움과 공포와 연약함을 극복하는 클라이맥스가 뭐냐?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고, 하나님은 우리를 친구 형제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이걸 아둔한 우리의 머리로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이걸 우리가 다. 깨달을 수도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부족하다. 할지라도 이것은 대전환이고 거룩한 수직 신분 상승이고 오늘 본문으로 말하면 버러지를 변화시켜 주시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 같은 경우 다시요. 자기가 잘하고 자기가 대단한 인생을 살아서 이런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크신 은혜로 하나님은 야곱을 그만큼 이끌어 오시고, 하나님이 져 주신 것이에요.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여기까지 이끌어 오셨고 하나님이 우리를 져 주셔서 우리가 오늘이 자리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한 번씩 기도하잖아요. 아버지 하나님 연약한 인생을, 부족한 인생을 누추한 인생을, 하나님 앞에 어떨 때는 부끄러운 인생을,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내어 치시거나 꺾지 않으시고, 이것까지 우리를 이끌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거 아닙니까? 실제로 우리가 후회 후회되고 뼈저리게 고통스러운 아픔으로 어떨 때는 입을 킥하고 싶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벗이라고 부르시고 일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생의 흑역사, 벌레의 역사, 지렁이의 역사 가운데서도 일하시는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버려진 돌을 모퉁이 돌로 만드는데, 전문이신 줄로 믿습니다. 버려졌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 그때가 바로 하나님이 나를 변화시켜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그릇으로 빚어지는 시간임을 기대해야만 할 것입니다.
 
II.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면.
 
-자, 이제 그러면 두려워 말라 그러시고 주어인 하나님이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함께 하실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내가 너를 돕는다고 말 13절에 보니까,
 
*이사야 41:13,15,16,
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그다음에 뭐예요. 마음이 줄을 끝에 내가 너를 뭐 한다고요. 도우리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어떻게 도울까? 오늘 본문 15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15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놀라운 말씀입니다. 여러분, 벌레는 산들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지렁이는 기어서 앞에 있는 큰 어떤 방에 큰 어떤 언덕들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지렁이나 벌레가 산들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은 뭡니까? 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새 타작기로 변화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당면한 산과 그 언덕들을 우리가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잖아요? 그런데 주님은 그 장애물들을 우리 앞에서 없애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저와 여러분들을 개인적으로 타기로 변화시켜 가지고 해결해 주시는 은혜가 있다는 것이에요. 벌레가 타작기로 된다는 사실이에요. 이렇게 될 때에 16절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거예요.
 
16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오늘이 말씀을 여러분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수준이 되면 하나님이 기적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버러지 같은 우리를 날카로운 타작기로 맞으시는 하나님을 이 예배 시간에 깊이 묵상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구원받고 여러분이 타작기로 변화되는 것은 여러분이 능력이 있어요. 심지어 여러분을 타작기로 만드시는 예수님을 여러분들이 붙잡고 계시는 그 정도가 아니에요. 예수님이 여러분들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붙잡는 여러분들의 손의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여러분을 붙잡고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라는 거예요. 심지어 우리의 믿음 때문 정도가 아니라,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이에요. 왜냐면 우리의 믿음은 늘 연약해요. 쓰러질 때가 많아요. 그래서 여러분이 시간 세상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계략을 꾸밀 때, 음모를 꾸밀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붙으시기 위하여 거룩한 모략을 준비하고 계신 것을 기억하셔야 돼요. 다시요. 우리를 좀 뭐 큰 힘 주시고. 이 정도가 아니라 우리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거룩한 모약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아멘. 한번 읽어 봅시다. 함께요.
 
◆세상이 우리를 넘어뜨리는 음모를 꾸밀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붙으시기 위하여 ‘거룩한 모략’을 붙드시기 위하여 거룩한 모략을 준비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

-아멘. 여기에 아주 중요한 뜻이 많이 담겨 있어요. 대한민국 앞으로 어떻게 될까? 여러분 이걸 믿는 우리들 때문이라도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에요. 우리 다음 세대가 통일에 대해 관심이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모략이 있을 때, 하나님의 때에 통일도 허락해 주시는 것이에요. 아멘. 다시요. 버러지에 대해서 하나님은 비하의 은유 속에 하나님의 수직적인 비상의 계획을 숨기고 계심을 믿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제이 내용들 제가 정리를 하면서 제가이 두려움의 극복과 오늘이 41장 전체를 해석하면서 하나님이 저에게 아 네가 그래,,, 끝까지 끝까지 하나님의 모략을 믿고 거룩한 모략을 믿고 하나님이 너를 도우시는 것을 기억해야 되는데, 이거 한번 생각해 봐라. 그러면서 제가 깨닫게 하신 것 말씀 중에 하나가, 에스겔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 가지고 그발 강가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애통 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납작 엎드려 있잖아요. 근데 그 하나님께서 그 발 강가에 하늘 문을 여시고 가장 어려울 때 가장 힘들다고 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과 쉐키나 영광을 400년 동안 사라졌던 그 성전의 강력한 쉐키나의 영광을 하나님이 동서남북 회복을 시켜 주시는데, 그 에스겔서의 마지막 마지막 절, 마지막 부분이 뭐냐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뭐라고 나와 있냐면요.
 
*에스겔 48:35,
35 그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그랬어요. 우리를 붙잡으시고 버러지를 하나님의 벗과 하나님의 친구로 만드셨는데, 하나님이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걸 깨닫도록 하나님께서 그 어려움 가운데 있는 에스겔에게도 그 포로 된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여호와 삼마이다. 아멘. 여러분 여호와 라파란 말 들어보셨죠? 여호와 닛시란 말도 들어보셨죠? 그런데 ‘여호와 삼마’라는 이 말은 성경 딱 한번, 이 구절만 딱 나와요. 이게 뭐냐?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다(Tthe God who is there).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다(God is there.). 아멘.
 
여러분, 우리는 벌레 같은 인생이에요. 우리 앞에는 태산과 산들이 놓여 있어요. 버러지 같은 우리가 어떻게 넘어가겠어요? 근데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에 계신다.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민족의 장례도 하나님이 이끌어 가실 것이다. 그것이 여호와 삼마예요. 원어로면 ‘제호바 샴마’로 나와 있어요. 제호바 삼마, 하나님이 거기에 언제나 동일하게 계신다. 이것이 그대로 이어져가 신약의 창으로 해석할 때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할렐루야!!~~. 뭐라고 한다고요?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느니라.
 
저는 지금 계속이어서 이사야서를 강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호와를 앙망하라. 세계를 그 앙망이란 말은 카바 라고, ’카바‘라는 그 현대 히브리어는 카바이고, 옛날은 ’카와‘라고 하는데, 하나님께 나를 묶는 것, 이라고 그랬어요. 지난 주일에는 뭐라고 그랬어요? 성령을 부어 주셔야만 된다. 그랬어요. 오늘은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며 거기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벌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벗으로 만드시는 그 하나님의 임재를 기억하고 거기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 연습을 해야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임마누엘,,, 여호와 삼마, 오늘 우리를 벗으로 만드시는 그 하나님, 그 벗으로 우리와 함께 임재에 계시겠다고 그 하나님을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 연습, 묵상 임재 생각, 연습 그 연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여러분들에게 체험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하루 24시간 가운데이 하나님을 얼마나 묵상하고 계시는지, 오늘이 말씀 듣고 오늘 집에 갈 때 여러분 차를 갖고 오신 분들은 집에 갈 때 운전대 옆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생각하시고 여호와 삼마!! 거기 계시는 하나님, 운전대에 계시는 하나님, 여호와 샴마, 제호바 샴마,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 아멘 여러분이 민족의 역사가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 여러분들의 정치 방향 이런 거 마음에 안 맞문 많이 있을지 몰라요. 다음 세대 생각하면 걱정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거기 계시는 하나님께서 이 민족의 역사를 장악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내면이 약하고 벌레 같고 우울증에 빠져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 계신 모든 그 상황들을 하나님은 특별히이 예배를 통하여 임마누엘 되시고, 여호와 삼마 되시고, 우리를 이 예배 가운데서 임재하시는 그 하나님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는 묵상하고 승리해야만 할 것이에요.
 
여러분, 찬양 우리 찬양대 찬양들 힘이 나는 것이에요. 말씀을 들으면 여호와 산말을 기억하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아멘. 그러니까이 예배가 우울증 치유의 최고의 아멘. 최고의 치유제예요. 아멘. 집에서 우울해 하지 말고 본당에 나와 가지고 별관에 나와 가지고이 시간 현장에 참여하면서 여러분들의 내면의 약함을 자 제거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창조의 아버지 제가 30년 전부터 부르고 부르고 부르거든요. 그러니까? 매주일, 여러분 시작할 때 창조 아버지 교회 부르시죠? 그냥 이만 달삭 하시는 거예요? 근데 제가 창조의 아버지를 몇 년 몇 번이나 불렀는가 가만히 계산하니까요. 한 7천 번, 8천 번을 불렀어요. 별로 안 믿네요? 안 믿는 눈이라고요... 여러분 보세요.
 
제가 30년을 이 개회송을 ’창조의 아버지‘를 부르는데, 제가 미국에서도 매주네 번 예배드릴 때, 이거 불렀고, 한국에서는 제가 한 때 여섯 번 예배드렸어요.. 매주 여섯 번. 여섯 번, 1년이면 300번 이거 10년이면 3천 번, 20년이면 6천 번, 30년이면 9천 번 아니에요? 내가 계산해보니 아마 7천 번은 부른 거예요. 여러분 ’창조의 아버지‘를 7천 번을 ’창조의 아버지 그 섭리 보이사 택하신 세대 버러지 같은 세대를 일으키어 이 땅을 고치소서 주의 크신 능력 만물이 사모하니 그 성령의 기름부어 주사 주 영광 지금 임해 임하게 하소서.‘
 
이걸 여러분 7천 번 정도 불러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버러지라도 인간 됩니다. 알겠어요? 지렁이라도 창조적인 역신을 일으키는 거예요. 그런데 맨날 늦게 와 가지고 그거는 안 부르고 뒤에서부터 시작해요. 그러면 되겠냐고? 제가 정말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데, 오늘이 41편 10절을 그대로 암송을 하시고, 창조의 아버지를 1천 번 2천 번, 최소한 여러분 1년에 50번은 부르게 돼 있어요. 최소한 10년이 500번이에요. 천국 가 갖고 너 뭐 하다고 왔냐? 창조의 아버지 부르고 왔습니다.
 
여러분 이때 여러분의 모든 우수사려, 염려, 이런 것들이 정리가 되고 벌레 같은 상황이 새 타작기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근데 주님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오늘 25절에 본문 25절에,
 
*이사야 41:25,
25 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그가 이르러 고관들을 석회 같이,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음 같이 하리니.
-겉으로는 이 사람이 고레스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을 일으키는데 누가 일으키느냐? 오늘이 말씀 듣고 깨닫고 벌레 같은 인생이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벗이 되겠습니다. 그걸 믿습니다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반드시 일을 하실 것입니다.
 
저는 22년 전부터 여러분들에게 3,5,7 비전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3비전 3년 내로 대한민국 교회가 글로벌하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미 그것은 이루어진 줄로 믿습니다. 아멘. 5 비전은 뭐냐? 한국 교회와 미국 교회나 세 교회와 함께 힘을 합쳐 가지고 우리가 중국 교회 잘 섬겨서 중국 교회가 선교사를 10만 20만 세계의 이슬람 선교사가 100만 명인데 기독교 선교사는 28만 명밖에 안 돼요. 그 게임이 안 되는 거예요. 앞으로 세계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중국입니다. 중국이 10만 명, 20만 명. 중국에 지금 교인들이 한 1억 정도 된다고 그러는데 파송을 하면, 북한도 변화되는 역사를 하나님이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할까가 아니에요. ’창조의 아버지 오늘 우리를 벌레에서 벗으로 만드시고 지렁이를 지렁이는 이빨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는 연약한 것이 새 타작기로 만드시는 그 하나님의 역사를 믿을 때 하나님 반드시 일하실 줄로 확신하십니다.
 
♣요약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다. 알 수 없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다. 예비하고 계신 줄 우리는 믿고, ‘너의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라’ 과정에는 고통도 눈물도 있겠지만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그대로 믿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해 주실 줄을 확신한다. 우리가 부족한 것 너무 많이 있지만 우리를 주님의 벗으로 삼아 주신 주님을 찬양하며,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가는 버러지 같은 인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여호와 삼마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시대의 언덕과 산과 잘못된 것들을 다 부숴 트리고 문제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 앞에 강력한 타작기가 되기를 간구하여, 우리 가정과 개인의 문제도 해결해 주실 것을 확신해야 한다.
 
-‘벌레 같은 너 야곱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버러지 같은’ 혹은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 부르신 표현에 담긴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조명하고 계신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무력해 보이는 존재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버려진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사야는 유다 백성이 포로의 위협과 절망 속에서 자신을 하찮게 여길 때, 하나님께서 그 연약함을 아시고 오히려 위로와 회복의 약속을 주셨다. “나는 너를 도울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인간의 가능성이나 자격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약속이었다. 우리 역시 인생의 바닥에서, 자신을 무가치하게 느낄 때가 있지만, 바로 그때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고 말씀하신다고 선포하신다.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셨고, 그의 실수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않으셨다. 이사야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은 거룩과 심판뿐 아니라, 끝없는 인자와 긍휼임을 강조하며, 우리는 연약할수록 더 깊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고 극복할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는 다는 것과 믿음의 도전을 우리에게 목사님은 설교해 주신다..
 









https://youtu.be/GOZnxCpOcQ4?si=19BfIr_2g6LJ6v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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