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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람-매일 책 읽는 습관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 번역 안정효 책)
-이 책은 전자책으로 읽은 책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고전 명작인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를 읽어보니,,,
이 책은 출간된 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예견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라는 것이어서 읽게 되었는데,,,

[멋진 신세계]
내용은,
첫째는, 과학 기술이 통제하는 완벽한 질서의 세계.
이야기의 배경은 서기 2540년, '포드(Ford)'가 신처럼 숭배되는 '런던 중앙 부화 및 조건 반사 교육 센터'에서 시작된다. 이 사회는 인간을 자연적으로 출산하지 않고, 유리병 속에서 과학적인 공정에 따라 대량 생산하며, 태어날 때부터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이라는 다섯 단계의 계층으로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상층 계층은 지능적인 업무를, 하층 계층은 단순 노동을 하도록 유전자가 조절되며, 유아기에는 수면 교육을 통해 자신의 계층에 만족하도록 세뇌당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고통 없는 행복과 소마(Soma).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노화도, 질병도, 고통도 겪지 않고, 혹시라도 우울하거나 불안한 감정이 생기면 '소마'라는 부작용 없는 알약을 먹어 즉각적인 쾌락과 행복을 얻는다'는 것이다. ' 모두는 모두의 것'이라는 슬로건 아래 가족이나 결혼, 독점적인 연애는 금기시되며, 오직 감각적인 유희와 소비만이 권장되는 철저히 계산된 유토피아이다.

셋째는, 이방인 버나드와 야만인 존의 만남.
지능이 높은 알파 계층임에도 불구하고 신체적 결함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던 버나드 마르크스는 레니나와 함께 보존 구역인 '야만인 수용소'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과거 문명의 흔적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존(야만인)과 그의 어머니 린다를 만난다. 린다는 원래 신세계 사람이었으나 사고로 수용소에 남겨져 존을 낳았던 것이다. 버나드는 이들을 런던으로 데려오기로 결심한다.

넷째는, 문명과 야만의 충돌.
런던에 온 존은 처음에는 신세계의 화려함에 감탄하지만, 곧 그 이면의 공허함에 경악한다.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의 시나 예술 대신 천박한 오락에 열중하고, 죽음을 마주해도 아무런 슬픔을 느끼지 못하도록 훈련받았다. 어머니 린다가 소마 중독으로 죽었을 때 조차, 무관심한 사람들의 반응에 존은 분노하며 소마를 창밖으로 던져버리는 소동을 일으킨다.

다섯째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다.
존은 신세계를 통치하는 총통 무스타파 몬드와 대면하여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몬드는 질서와 안정을 위해 예술, 과학, 종교를 희생시켰다고 주장한다. 반면 존은 고통과 고독이 있더라도 인간다운 감정과 자유를 누리고 싶다고 반박하며, 유명한 대사인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한다"라고 외친다. 결국 존은 문명을 떠나 홀로 고립된 삶을 택하지만,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구경거리 삼는 문명인들의 압박에 시달리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그러니까,,,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고통이 거세된 완벽한 안락함은 인간을 노예로 만든다는 것이며, 헉슬리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 가지로 더 요약하여 말하자면,,,

1. 행복과 사육의 경계
신세계의 통치자들은 전쟁, 굶주림, 갈등을 없앴다. 대신 인간을 유리병에서 제조하고 세뇌하며, '소마'라는 약물을 통해 늘 즐거운 상태를 유지하게 한다. 여기서 핵심은 '통제된 행복은 결국 사육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행복, 고통을 모르는 즐거움은 인간을 생각하지 않는 부속품으로 전락시킨다.

2. 불행해질 권리 (인간 존엄성의 회복)
주인공 존이 외친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한다"라는 문장이 이 책의 심장인 것 같다.
인간은 때로 외롭고, 슬프고, 병들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온전히 겪어낼 때 비로소 예술이 태어나고, 깊은 사랑이 가능하며, 종교와 철학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고통을 피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고통을 포함한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스스로 짊어지는 것이 인간다움이라는 뜻이다.

3. 현대 사회에 대한 예언적 경고
헉슬리는 미래 사회가 공포(조지 오웰의 1984)가 아닌 '즐거움'에 의해 지배당할 것을 예견했다. 사람들이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고, 오직 자극적인 오락과 소비에만 몰두하게 만들어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마비시키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하고 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진정한 자유란 안락한 사육장에서 주는 공짜 사료를 거부하고, 설령 배고프고 춥더라도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는 주체적인 고통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의 느낌은,,,
현대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경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소름 돋는 지점은 헉슬리가 묘사한 가상의 미래가 오늘날 우리와 내가 살아가는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사실이다. 신세계 사람들은 강요된 행복 속에서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현대인들 역시 SNS의 화려함이나 즉각적인 콘텐츠 소비, 자극적인 쾌락에 탐닉하며 복잡하고 괴로운 현실에서 도피하곤 한다. 고통이 없는 상태가 과연 진정한 행복인지에 대해 깊은 의문을 던지게 되며, 하나님은 고통이 바로 십자가라고 하셨기에 좀 더 깊이 나를 돌아보게 되는 글이었다.

자유와 안락함 사이의 선택의 기로라고나 해야 할 것 같다.
이 책 속 총통 무스타파 몬드의 논리는 지극히 합리적이라 더욱 위협적이고, 전쟁과 굶주림을 없애기 위해 인간의 개성을 지웠다는 그의 말은 '안전한 사육'과 '위험한 자유' 중 무엇을 택할 것인지 묻고 있다. 야만인 존이 요구한 '불행해질 권리'는 단순히 고통을 받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인간다운 주체성을 회복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나는 어떤 세계를 꿈꾸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고 인간은 왜 고통을 겪어야만 인간다워지는 것인지도 하나님께 질문하고 싶어졌다.

늘 예배에 권성수 목사님 초빙으로 예배를 드렸는데, 내용과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천국행 티켓이 있는가? 중생.... 예수님 대속해 주셨기에 나를 위해 갖은 고생을 하셨고 죽기까지 하셨다. 그리고 제 삼일만에 다시 부활하셔서 지금도 나를 인도하시고 계신다. 나는 그래서 확신한다. 그래서 더욱 인간의 존엄을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

'멋진 신세계'라는 반어적인 제목처럼,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배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책이라는 것이고, 모두가 똑같은 것을 보고 즐기며 갈등 없는 세상을 유지하는 것이 평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영혼'이 빠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편리함과 효율성만을 쫓는 현대 사회에서 내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성찰하게 만드는 명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책이었다. 올더스 헉슬리가 예수님의 길을 더 가미했다면 더더욱 믿음의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길을 더 깊이 깨닫고 감격했을 것이다. 그래도 전자책으로 읽으니 빠르게 읽게 되었고, 존과 총통의 대화 부분을 특히 유심히 성찰하고 읽어보니,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더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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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5월 3일)
제목: "천국행 티켓 있는가? 중생
(A Ticket to Heaven? RegenerationA Ticket to Heaven? Regeneration)”
말씀: 요한복음 3:1-8
찬양인도: 쉐키나( 이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안승훈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이기석(2부), 장단희(3부), 임상규(4부)부목사님

설교자: 권성수 목사님-초빙(대구 동신교회 원로, 웨스트민스터신학교 특훈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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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1-8,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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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출애굽기 20장 6절 말씀,
*출애굽기 20:6,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는 이 말씀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 여러분의 손주들에게까지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20여 년 전에 케냐 선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마사이족 마을에 가서 마사이족 추장을 만났습니다. 그 추장이 자기 집을 구경시키는데 보니까, 나뭇가지로 대충 이렇게 만들어 놓고 소똥이라고 하나요? 그분들은 소똥을 너무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저한테 보여주는데 탁 찍어 가지고 바르는 그런 식으로 해서 소똥을 발라놓은 그런 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짐승들과 같이 사는 모습, 제가 그분에게 인사를 드리고 나서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예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단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니까 제가 복음을 전하는데 이분이 어느 정도는 열려 있겠다. 싶어서 마음이 좀 놓였습니다. 그다음에 질문 던졌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러더니, 그분이 고개를 흔들면서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가 이 세상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우리와 함께 고생하셨고 또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 제 삼일에 부활하셔서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자로 영접하기만 하면 모든 죄에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 이렇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고나서 그분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지금 영접하시겠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던질 때는요. 질문 던진 사람이 조마조마해요. 혹시 안 받아들이면 어떻게 할까? 또 옆에 통역자까지 따라가서 선교사까지 따라붙었는데, 권목사가 영발이 떨어졌나? 왜 저렇게 반응이 없나? 조마조마한데 그렇게 질문을 던지니까 그분이 예, 예!. 바로 예! 예 너무 감사해서 그럼 제가 기도할 테니까. 제 기도를 또박또박 따라 해 주시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기도를 했고 통역을 통해서 영접 기도 또박또박 했고 또박또박 따라 했습니다.

다 끝나고 나서 제가 그분을 이렇게 쳐다봤어요. 쳐다 보니까 얼굴이 아주 진지한데 미소를 띠고 있고 눈물방울이 눈에 맺혀 있었습니다. 양쪽 눈에다 눈물방울이,,,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 자의 감격 단순한 것 같지만 그렇게 보였습니다. 마사이족 추장 생각하시면서 일론 머스크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일론 머스크 여러분 잘 아시잖아요? 일론 머스크 세계 최고의 갑부고, AI 쪽에 그 이상의 기업을 하는 분이 안 계시다 싶을 정도로 대단한 첨단기술 과학 쪽의 인물이죠. 일론 머스크가 자기 스스로 자기는 cultural Christian, 문화적 Christian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문화적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미국의 기독교 문화 속에 자기도 들어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는 읽는다. 읽어보니까 교훈이 참 좋더라. 이대로 살면 인간관계도 좋아지겠고, 가정의 행복도 있겠다. 특별히 오른손 뺨을 때리면 왼편도 돌려대라. 이런 말씀 같은 경우는 진짜 힘든 말씀인데 아주 좋은 말씀이다.

자기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방해하지 않겠다. 거기까지 그렇게까지 믿는 거예요. 인터뷰어가 그에게 질문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당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을 믿습니까? 그리고 제 삼일에 당신을으로부터 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까? 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때는 그분이 답변을 안 해요. 씨익 웃어요. 씨익 웃으면서 머리를 긁어요.

이렇게 창조주 하나님은 믿는데 구원자 되신 예수님은 안 믿는 거예요. 자 아까 보세요. 마사이족 추장이 분명히 창조자 하나님을 믿는데 제가 복음을 전해서 구원자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일론 머스크는 아직은 거기까지 들어가지 못한 것 같아요. 안타깝죠? 일론 머스크가 중생했는가? 이렇게 질문을 던져놓고 여러분 답변해 보십시오.

영국의 개혁주의 부흥사 겸 목회자로 의사 출신 유명한 분이 계시죠? 마틴 로즈 존스 목사님. 그분이 교인들 중에 교회 잘 나오고 봉사 열심히 하고 사회적으로 보면 아주 젠틀한 크리스찬들 중에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교회에 나가지만, 대학 들어가면서 교회를 떠나는 학생들이 4명 중에 3명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중생하셨습니까? 속으로 답답해하세요. 중생하셨다면 중생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여기 니고데모가 나오는데, 니고데모는 산해드린 공회의 한 회원이에요. 이스라엘의 종교, 정치 최고회의 산해드린 72명 중에 한 명이니까. 대단하죠. 그런데 그가 예수님에 대해서 당신은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이 보내셔서 오신 스승이십니다. 랍비이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시지 않으셨으면 당신이 행하는 그런 기적들을 행하실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을 스승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또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인정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들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들으시고 대단하네. 산해드린 공회 의원 중에 이런 사람이 있는가 하고 감탄하시면서 칭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중생에 대해서 말씀하셨어요. 니고데모가 중생하지 못했다는 거거든요. 중생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제가 쉽게 표현해서 ‘천국행 티켓’이라고 표현을 했어요. 선생님을 믿는데 예수 이름으로 천국 가시지만 실제로 예수 이름으로 예수 믿는다고 하는 확실한 증거는 중생이니까,,,

l. 중생은 천국행 티켓이다.
-중생의 티켓이 있어야 천국 간다는 거거든요. 여러분 3절에 보시면,

*요한복음 3:3,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유심히 살펴보세요. 볼 수 없다는 표현을 예수님이 하셨어요.
관(觀)의 변화-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한다" (3:3)
-육적인 눈으로, 신체적인 눈으로, 물리적인 눈으로 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적인 눈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영안 영적인 눈이 중생하지 않으면 감겨 져 있다는 거예요. 영적으로 눈이 멀었다는 거예요. 중생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관 볼 관 자, 관이 바로잡히지 않는다.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것이 안 보이는 거예요. 예수님이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이 그 진리가 안 보이는 거예요. 천국과 지옥의 진리가 안 받아들여지는 거예요. 심판과 구원의 진리도 안 받아들여지는 거예요.

그냥 세상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고 가정 살이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는 한도 내에서만 설교를 듣고 말씀을 듣고 그 이상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 안 받아들여지니까 증생하지 않으면 영적인 눈이 멀었어요. 안 보이는 거예요. 여러분 혹시 들어서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집트의 곱틱 교회의 지도자 대단한 인물이에요. ‘파더 자카리아’라고 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학생 시절부터 무슬림 권에서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도 공격을 많이 받았어. 무슬림이 기독교에 대해서 공격할 때 삼위일체부터 공격하거든요. 어떻게 하나님이 셋이냐 이렇게부터 나가기 시작하니까 굉장히 힘든 거예요. 이런 공격을 받았을 때 그 어떻게 반격을 가할 것인가?

고등학생 때부터 늘 준비해서 이제는 어른이 되셔 가지고, 무슬림의 어떤 질문도 다 받아내고 그 무슬림의 코란이 잘못됐다는 것도 정확하게 지적해내고, 그렇게 방송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듣고 무슬림 중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은데 물론 무슬림이 나 개종했습니다. 하면 집안에서 쫓겨나고 사회에서 추방되고,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 못하니까 하는 사람 더러 있지만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대체적으로 아프리카에서만 ‘파더 자카리아’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믿는 사람이 1년에 600만 명, 이 복음을 듣는데 무슬림하고 코란하고 다른 점을 딱딱 찍어내니까요.

여러분 무슬림이요.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자기도 예수 믿는데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도 믿는데요. 대단한 것 같지 않아요?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도 다 믿는데요. 심지어는 예수님 메시아라는 것도 믿는다고 그래요. 그러면 무슬림을 보고 저 사람 그리스도인이구나,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거든요. 예수님은 믿는데 잘 들어보세요.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는 거예요. 죽지 않았어요. 그리고 바로 올라갔대요. 그래서 알라 옆에 앉아 있다가 나중에 내려와서 내려와서 뭘 하느냐 하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우리를 의롭다고 시위해서 부활하셨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뜯어고치기 위해서 내려온다는 거예요. 이게 무슬림입니다. 무슬림 얼른 보면 똑같죠.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를 안 믿어요. 죽음 대속의 죽음을 안 믿어요. 육체적인 부활을 안 믿어요. 그런데 파더 자카리아스가 그 복음을 분명하게 전달하니까 그러니까 무슬림들이 복음을 들으면서 성령에 의해서 눈이 열려지는 거예요.

어두운 우주 속의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니까 빛이 있었던 것처럼, 사탄으로 인해 가지고 어두워진 마음에 하나님께서 예수의 복음의 빛이 있어라, 이렇게 명령하시면 그 마음에 문이 활짝 열리면서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진리가 보이는 거예요. 영안이 열리는 거예요. 그 사람이 중생한 사람이에요. 중생한 사람, 여러분 그 밑에 보시면 3장 5절에 보시면,

*요한복음 3:5,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되어 있어요. 들어갈 수 없다. 본다는 것과 들어간다는 말을 유심히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삶의 변화: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 3:5)
-넓게는 똑같지만 시각이 다릅니다. 본다는 것은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천국복음의 진리를 깨닫는다. 영적인 눈으로 본다. 이것이 들어간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서 천국 백성, 국민의 삶을 산다는 거예요. 생활의 생활, 본다는 것은 한자를 써서 죄송하지만 관이에요.
-본다----관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 시각의 변화.
-들어간다는 것은---삶의 변화, 생의 변화, 삶의 변화, 천국에 들어가서 천국 시민으로 산다.

여러분,
지금 말씀을 들으시는데 이 말씀을 들으실 때, 이 말씀이 도덕적인 문화적인 세상살이의 처세술 적인 메시지로만 들린다면 여러분 중생 못 했을 가능성이 많아요. 그게 아니고 예수님의 대속(代贖)의 죽음과 의롭다 하시기 위한 부활과 성령과 천국과 지옥, 심판 이런 것이 양식인 것처럼 여러분의 마음에 들어온다면, 여러분 말씀을 받고 사시는 거예요. 말씀을 받아 먹고 사시는 거기 때문에 일단 천국 삶을 사시는 거죠.

천국이라 할 때는 현세의 천국이 있고 내세의 천국이 있어요. 현세의 천국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시는 건데 말씀을 들으시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신 상태에서 예수의 제자로 천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 하나님의 다스림을 현세에 바꿔 살아가는 것. 그게 현세 천국을 맛보는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 세상 떠나시면 천국 우주선을 타고 영원히 쭉 올라가셔서 천국에서 영원히 지복을 누리시고 예수님이 앞으로 재림하시면 영혼과 육체가 합쳐진 영적인 영광스러운 하늘에 속한 몸으로 전인으로 바뀌어서, 영원히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사시는 이게 천국을 만끽하는 거예요.

중생하지 않으면 천국을 보지도 못하고, 관의 변화가 없고, 천국에서 살지도 못해요. 삶의 변화가 없어요. 중생해야 천국을 깨닫고 천국에서 사는 거예요. 그래서 중생이 천국행 티켓이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해 놓고 나서 어제 저녁에도 자기 전에 계속해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있는데, 거의 밤새도록 끊임없이 찬송이 막 머릿속에서 뺑뱅 도는 거예요. 뺑뱅 도는데 거의 밤새도록 잠을 자기는 자는데 찬송이 막 머릿속에서 맴돌면서 잤는데, 그 찬성이 뭔고 하니까 여러분이 제가 미리 알려드린 적이 없거든요. 설교 후에 289장을 부르세요. 알려진 적이 없어요. 그런데 289장이에요. 부르네요. 아까 1부 예배 끝나고 나니까 289장을 부르더라고요. 제가 그때 자면서 뭐라 그러냐? 하나님, 내일 제가 설교 끝나고 나서 289장을 부른다면,,, 성령께서 이 마지막 순간까지 제 설교를 인도하신다는 것 제가 믿겠습니다. 라고 했는데 289장을 부르는 거예요. 280장,,,,. 너무너무 놀라 가지고 하나님께서 사랑의 교회를 사랑하시는구나 깜짝 놀랐어요. 깜짝 놀랐어요. 여기 보면 ‘주 예수 내 마음에 들어와 계심’ 주 예수 내 마음에 들어와 계시는 예수님이 들어오셔야 들어오셔야 이 예수님이 구원 잘하는 봄 밑이 환해지거든요. 변하여 새 사람 되고 ~~~ 내가 늘 바라던 참 빛을 찾음도 주예수 내 마음에 오시고 참비참비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것을 환하게 비추어주는 참빛, 관의 변화예요. 관의 변화. 변하여 세 사람 되는 것이 삶의 변화입니다. 망령된 행실을 끊고,,, 삶의 변화거든요.

여기 뒤에 보면 주 예수 내 마음의 오심 주 예수 내 마음의 오심. 물 밀던 내 마음의 기쁨이 넘치면 주 예수 내 마음의 오심 관의 변화와 삶의 변화 이것이 중생을 통해서 일어난다. 저는 여러분이 중생하셔서 관의 변화와 생의 변화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중생이 어떻게 일어나느냐 할 때 성령으로 일어난다고 했죠.

II. 중생은 성령의 사역이다.
-성령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이 거듭이라는 단어 있죠. 거듭.
'거듭(avw0ev)': again + from above.
거듭이 헬락어를 보면 아노센으로 되어 있어요. 아노센. 이 헬라흐는 again 다시라는 뜻이에요.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그리고 from above we로부터라는 뜻이에요. 성령께서 출생시키신다. 위로부터, 그런데 문맥에 따라서 아노센이 다시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위로부터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이 문맥에서는 둘 다가 중의성, 같이 들어가 있어요. 음미가 같이 들어가 있어요. 다시 태어나는 건데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났는데 성령으로 된다. 그래서 6절에 보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요한복음 3:6,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여러분이 예수를 믿는데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시면 그냥 육신 적 생명만 있는 거예요. 영적인 생명은 없는 거예요. 성령으로 태어나야. 다시 위로부터 태어나야 영적인 생명이 비로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성령께서 어떻게 정생을 시키시냐? 라고 할 때 아까 여러분 보셨죠? 주 예수 내 마음에 들어와 계신다. 성령께서 예수의 생명이 여러분 마음속에 들어오도록 들어오도록 주입을 시키시는 거죠. 여러분 속에 예수님, 생명의 예수,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죽으시고 여러분을 위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영적으로 여러분 속에 계시도록 주입을 시키시는 거죠. 그게 중생입니다. 중생. 물이라고 하는 것은 그 순간에 그 순간에 과거 현재 미래에 지옥 갈 모든 죄가 깨끗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아까 289장, 주 예수 내 마음에 들어와 계신 후’ 여기서부터 시작하죠. 주님이 들어오시는 주님 이렇게 들어오시는데 그 작업을 하실 때 성령께서 제일 먼저 죄를 깨닫게 하시는 거예요. 죄를 깨닫게 예수님을 믿는다. 구원자를 제대로 받아들이려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자신의 죄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말씀 앞에서 비추어서 정확하게 봐야 돼요. 그러면 와!~ 이거 망하게 되었구나, 죽게 되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서 구원자를 갈구하는 겁니다. 그때 성령께서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띄워주시는 거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을 살게 만드시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은 ①질책을 하시고, ②예수를 믿게 하시고, ③따르면서 순종하게 하시는 거예요.

이 세 가지 요소가 들어있는데,
이렇게 성령께서 역사를 하시는데요. 그것이 나타날 때,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절대로 여러분이 조금 더 착하게 산다는 거 아니에요. 조금 더 착하게 사는 건 예수 안 믿어도 할 수 있어요. 조금 더 가정생활을 행복하게 한다. 그것도 예수 안 믿어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건 완전히 새 생명입니다. 새 생명.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예수님의 새 생명이 주입되는 거거든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만드시고 나서 거기에다가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생기, 생기 이 생기가 들어갔는데 이게 히브리어로는 루 아흐고, 헬라어로는 푸뉴마인데, 생기, 생명의 숨길, 이 창조의 숨길이 들어가니까 인간이 생명체가 되었어요. 에스겔 37장에 보면, 그 골짜기에 마른 뼈다귀들이 가득한데, 거기에 말씀이 들어갔어요. 형체가 생겼어요. 그 다음에는 생기가 들어갔어요. 생기가 들어가니까 그 형체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움직여요. 지극히 강한 군대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 생기가 성령입니다.

성령. 성령의 생기가 들어가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고,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살아서 움직이는 거예요. 여러분이 성령을 통해서 이미 체험하신 분들도 계시고 아직 체험하시지 못한 분도 계시지만 여러분의 관이 바뀌고, 여러분의 삶이 바뀌도록 예수님의 생명의 기운이 성경을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의 주입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게 들어가는 거예요. 들어가는 거예요. 그 때에 변화가 일어나는 거거든요. 조엘 오스틴이라는 분은 아시죠?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라고 미국에서 4만 5천 명, 5만 명 모인다고 하는데 그분이 설교 잘해요. 교인들이 예배만 갔다 오면 신난대요.

집에 갈 때 필굿!! 그 너무 기분이 좋대요. 싱글벙글하고 집에 들어오는데 그래서 많이 와요. 많이 제가 거기 몇 번 한번 가봤는데 가보니까 주차장에 주차를 할 때는 꼭 기도를 드려야 돼요. 하나님 제가 여기 주차하지만, 앞으로 찾아올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안 그럼 찾아갈 수가 없어요. 사진도 찍어야 되고 그렇게 큰 거예요. 그런데 그분이 희망에 대한 설교만 해요. 희망,,, 잘 된다는 얘기만 해. 대한 설교 한 번도 안 해. 그러니까 어떤 분이 질문했어요. 왜 목사님은 지옥 설교를 안 하십니까? 예수님은 지옥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왜 말씀 안 하십니까? 라고 하니까 그분이 뭐라고 했냐면 아니 사람들이 듣기에 불편하고, 듣기 싫어하는 거를 제가 왜 설교해야 합니까? 이게 문제입니다. 죄 때문에 지옥에 간다는 죄를 그대로 놔두면, 지옥에 간다는 걸 분명히 설교해야 돼요.

그래야 구원자를 통해서 천국 백성으로 돌아온다 이 말이에요. 그걸 조엘 오스틴은 안 한 거예요.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지 않습니까? 중생이 이렇게 일어날 때, 아까도 말씀드린 대로 약간 뭐 착하게 산다고 안 하고 새 생명이 들어온다고요. 새 마음이 생긴다고 했어요. 새 삶이 출발된다. 주도적인 성향. 주도적인 방향이 바뀐 거예요. 완벽하지는 않아요. 여러분 완벽한 인생은 아무도 못 살아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direction, 방향이 바뀌었어요. 방향이. 하나님을 싫어하다가 하나님을 좋아하는 쪽으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안 보다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이렇게 방향이 바뀌는, 그래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마음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 되는 거예요. 이게 중생이에요. 중생. 이 중생이 얼마나 중요하는 것을 여러분이 제가 예를 들면 조금 더 이해하실 거예요.

앤드류 휴버만이라고 하는. 여러분 인터넷에 쳐보시면 앤드류 휴버만이라고 하는 스탠포드대학의 유명한 교수님이 계세요. 제가 그분을 어떻게 아느냐 유튜브를 통해서 강의를 들으니까 알죠? Brain 뇌 전문가입니다. 뇌. 뇌를 연구하는데 뇌를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너무너무 신기, 신묘막측, 그래서 놀란다는 거예요. 와우!!! 와우 할 수밖에 없대요. 너무너무 내가 정말로 신기하고 신묘막측하구나. 저기 보니까 휴버만이 보니까, 뇌가 제가 지금 무슨 말씀을 전할 때도 새로운 것이 들리면 새로운 지식이나 새로운 기술 같은 게 접촉해 들어오면, 뇌가 그게 좋은 것일 때는 받아들이는 학습, 학습하는 능력이 있대요. 학습하는 능력, 그런데 그걸 가소성 가는 가능하다는 거고, 성은 성격 할 때, 성품 할 때 그건 성이고 소라는 건 본받을 소예요. 본받을 소. 본받을 수 있는 잠재성이 뇌 속에 있다는 거예요. 새로운 지식, 새로운 기술, 깜짝 놀랐는데 자기가 그걸 보면서 뇌를 보니까 새로운 게 딱 접촉해 들어오니까 그 반응이 나온 날 그때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냐면 너 이거 배워라. 너 이거 익혀라. 그럼 너한테 굉장히 좋을 거야. 라고 하면서 상급을 준대. 상급. 내가 보상을 해준대. 보상. 그게 Dopamine이래요. Dopamine. Dopamine이 나옵니다. Dopamine이 나와 가지고, 배워라 배워 익혀라 익혀라 그런다는 거예요. 그걸 보니까 막 너무너무 놀라죠. 우와!~ 창조주 하나님이 안 계시면 이런 일이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어요. 그래서 제가 열심히 듣는 거예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데 기도도 하는데 너무 마음이 편안한데 마음이 편안해. 자기는 연구하면서 계속 기도한대요.

너무 마음이 편안했어. 그런데 그분의 글과 말에 한 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안 나와요. 너무너무 안타까워. 여러분 지역도 등급이 있고 천국도 등급이 있어요. 등급. 심판의 등급인데 그분은 심판에서 가장 견디기 쉬운 심판 그것을 받을 것 같아요. 예수님께서 견디기 쉬우리라. 견디기 쉬우리라는데. 그런데 천국에는 아직 못 들어와 있거든. 천국 보지도 못하고 들어와서 살지도 못하고 안타까운 거예요.

그런데 존 레녹스라고 옥스퍼드의 수학 교수 페리타스 포럼이라는 거기에 강의를 많이 하시는데 제가 볼 때는 그런 변증가가 없어요. 수학자인데 철학자고 신학자고 세계 최고의 무신론자하고 공개 토론해가지고 리차드 도킨스라는 무신론자가 그 앞에서 꼼짝을 못하고 말이 막히도록 만드는 거에요. 그리고 무신론자 학자들 몇백 명, 옥소드 몇백 명 앞에서 15분 동안 보험을 전하는데 자기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 라고 하면서 부활의 증거를 갖다 대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 속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살아계신다고 그리고 자기가 80대 초에서 이제 후반으로 넘어가는데 중반으로 넘어가는데 자기는 앞으로 전국에서 예수님 만날 걸 고대하고 있다고, 학자가,,, 그런 학자 참 놀랍지 않습니까? 이런 놀라운 변화가 구분했는데요.

이것은 성령이 아니면 안 돼요.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절대로 예수님의 대속(代贖)의 죽음을 믿지 못합니다. 성령으로나 거듭나지 않으면 절대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해요.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예수의 생명이 절대로 유입되지 않습니다. 마음에 유입되지 않으니까 눈도 멀고 생활도 깨끗하게 사는 것 같지만 천국의 생활은 아니에요.

저는 여러분들이 성경으로 거듭나셔서 여러분의 가치관도 바뀌셨겠지만, 바뀌시고, 또 여러분의 생활도 예수님 닮는 생활로 완벽하진 않지만 회개도 있고, 반성도 있고, 각성도 있고, 순종도 있고, 심판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하나님 경외도 있고 그리고 바로 살리고 몸부림 치는 것도 있고 성숙도 있는 그러한 중생을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I. 중생했는지 어떻게 아나?
이제 확인 들어가야 되겠죠. 여러분의 제가 중생했는지 확인을 해야 된다. 어떻게 점검할 수 있느냐 확인할 수 있느냐 특별히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여러분 자녀들 자녀들이 중생했는지를 확인하셔야 되거든요. 교회에 따라 나올 수 있어요. 교회의 모든 행위에 친숙할 수 있습니다. 친숙성과 근접성이 중생은 아닙니다. 친숙성도 있고 근접성도 있지만 하나님과 연결이 안 될 수 있어요. 자녀들에게 반드시 어느 순간 되면,
①예수님께서 너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을 맏느냐 하고 물어야 돼요. 또 어느 순간에
②예수님께서 너를 하나님의 자녀 만드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을 믿느냐고 물으셔야 됩니다.
-‘중생’ 이거는 머리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가슴도 움직이고 생활도 움직이는 거기 때문에 이걸 반드시 확인을 하셔야 되는데 저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들 전체가 중생을 체험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 8절을 보시면 바람이 나오죠. 바람. 바람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고 그랬어요.

*요한복음 3:8,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그런데 바람 소리를 보고 듣고 바람을 알아요. 소리가 있다고 해요. 바람이 부는 증거가 있단 말이에요. 증거. 이 바람이 부는 증거를 보고 안다는 거예요. 안다는 거. 그러니까 여러분이 중생했다는 것은 반드시 증거가 있다. 증거. 그 증거가 무엇이냐. 그럴 때 제가 이 성경을 요한복음 3장을 쭉 보는데, 1절부터 21절까지가 한 단위예요. 한 단위,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 대화하신 그 내용이 21절까지,,, 21절 한 단위이기 때문에 이 문맥 속에서 중생이 뭔지를 찾아내셔야 되거든요. 문맥 속에서 어떻게 찾느냐 라고 할 때 3장 14절에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죠.

*요한복음 3:14-16,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나와 있죠. 그리고 16절에 나온다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되이급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사하라 광야를 통과하는데 너무 길이 험하고 불편하고 답답한 거예요.

여러분 광야에 거기 이집트 시나이반도 광야에 가보시면 아시지만 정말 숨이 막힙니다. 데리고 간다 그러면 죽을 맛이죠. 그런데 그렇게 지나가고 있는데,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지만 매일 있었지만 정말 힘들거든요. 그런데 너무 힘드니까, 막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한 거예요. 그 하나님께서 독사들을 보내셔서 거기 광야에 뱀들이 많거든요. 독사들이 막 쫙 몰려온 거예요. 몰려 가지고 200만 명을 막 물러대는 거예요. 독사들이 물고 물고 물고 지나가는데 그게 물고 물고 지나가니까 독사의 독이 몸에 퍼지는 거에요. 이게 온몸에 퍼지면 다 죽는 거잖아요. 애도 죽고 청년도 죽고 어른도 죽고 막 몸에 퍼져 가지고 죽는다고 난리를 치고 있는 거예요.

모세가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놋으로 뱀을 만들어서 놋뱀을 저 장대 위에 달아라고 했어요. 놋뱀을 달아라. 놋뱀을 달면 달아놓고 난 후에 이렇게 말해라. 누구든지 독사에 물려서 독이 온몸에 퍼지고 있으면 이 놋뱀을 쳐다보시오. 이 놋뱀을 쳐다보시오. 그러면 살 것이오 라고 말을 해라. 그래 모세가 큰소리로 놋뱀을 쳐다보세요. 살 겁니다. 이랬단 말이에요. 그때 어떤 사람들은 웃긴다. 웃겨. 독사의 독이 말이죠. 내가 애굽에서도 경험을 했지만, 독이 들어왔을 때 독을 빼야 살지. 놋뱀을 쳐다본다고 산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웃기는 소리야. 그런 사람들 안 쳐다봤어요. 안 쳐다보니까 독이 그대로 퍼져서 죽은 거예요. 내 멋의 말을 듣고 그대로 쳐다본 사람들 이렇게 그냥 쳐다본 사람들이 민수기 21장 구절에 보면 쳐다본 즉 말씀이 아주 묘하게 나왔죠. 쳐다보았더니, “쳐다본 즉 다 살더라”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쳐다본 즉 살더라 이렇게 나와 있어요. 분명히 성령께서 그 독사의 독을 죄의 독을 빠져나가게 하시면서 살려주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만 사람이 할 일은 복음을 받고 순종하는 거거든요. 쳐다보는 거예요.

그래서 그 문맥 속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나와 있단 말이에요. 놋뱀이 들린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높이 달려서 피를 흘리셨는데 우리를 위해서 그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쳐다본 즉 살더라 바라본 즉’ 모든 죄에 용서받고 천국 백성으로 영생을 누릴 줄 믿습니다. 중생의 증거가 뭐냐?

3장 16절, 예수를 믿는다. 예수를 믿는다. 제가 질문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제 삼일에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까? 아멘!!~~ 이거는요. 성령께서 안 하시면 여러분이 이런 고백을 못해요. 절대 못해요. 성령께서 여러분 속에 예수님을 마음에 주입시켜 주셔야 이런 고백이 나오는 거예요. 참 놀라운 일이에요. 분명히 여러분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신다고 고백하셨어요?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고 그분을 믿고 따른다고 고백하셨어요? 불완전하지만 믿고 따른다고 고백하셨어요. 이 성령이 하시는 일이라 증거가 뭐냐? 라고 할 때는 믿는다. 당신 중생했습니까? 라고 하면 답변을 하시면 돼요. 예 했습니다. 뭘 보고 합니까?

그러면 저는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대로 예수를 믿습니다. 하면 돼요. 이게 증거예요. 증거,,, 예수를 믿으면 중생한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이제 생각해야 돼요. 이지빌리비즘(Easy bilivism)에 빠지면 안 돼요. 값싼 믿음이에요. 빠지면 안 돼요. 값싼 믿음은 예수님을 믿을 때 회개를 한 적이 없어요. 예수님을 절대 의존하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요하거든요.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서 순종을 해야 돼요. 완벽하게 순종을 못 하고 다시 회개하고 또 아파하고 청산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거쳐 가지만 Perfection 완벽이 아니라 Direction,,, 방향은 바뀌어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가는데 여기에 회개도 없어 순종도 없어 심판도 몰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도 없어, 여러분 시편 2편 11절에 보면 10편 2편 11절에 보면 하나님을 섬길 때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겨라. 그래서 경외함, 두려움으로 섬겨라. 죄 앞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되거든요. 무서워해야 되거든. 독사에게 물린 사람처럼 독을 무서워해야 되거든. 두려움으로 섬겨라. Serve the Lord with fear. 두려움으로 섬겨라. And rejoice. 즐거워하라. with trembling. 떨면서 즐거워라. 여러분 아까 289장에 나오는 대로 ‘물밀듯 내 마음에’ 찾아오는 그 기쁨 말할 수 없는 그 기쁨을 누리지만 동시에 죄의 앞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기에 같이 가야 돼요.

이게 없이 그냥 믿는다고만 하면 값싼 믿음이에요. 분명히 예수를 믿으면 생활 속에 딱 들어가면 말씀대로 살 때 고난이 오거든요. 그 고난을 선택해서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선택해서 가면 거기 십자가거든요. 십자가.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때문에 오는 게 십자가예요. 십자가,,, 고통이 그 십자가가 힘들지만 지고 가는 거죠. 이게 진짜 믿음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아무리 힘들어도 노예 상태와 죄수 상태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셔서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심을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포기하셨던 요셉의 경우처럼 여러분이 밖에서 주님의 뜻대로 십자가를 치고 바로 사실 때 어떤 고통이 온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고통도 감당하게 하시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복에, 확실하게 복에 형통케 하실 줄 믿습니다.

이 믿음이 진짜 믿음이라고요. 값싼 믿음에 떨어지면 안됩니다. 값싼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 어디 나오느냐? 7장 21절에 나와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그렇죠.

*요한복음 3:21,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진리를 따르는 자. 복음의 진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 이 말이에요. 빛으로 오나니 그는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하심이라 이렇게 나와 있죠. 분명히 이렇게 나와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값싼 믿음이 아니라 분명히 말씀대로 사는 거예요. 진짜 믿음이라면 삶이 따라갑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삶의 변화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 어쨌든 변화가 있는지를 살펴보셔야 돼요. 삶의 변화. 그 열매입니다. 열매,,, 예수를 믿는데도 끊임없이 가족들 가정의 달이여 가족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폭력 행사하고 술 마시고 와 가지고 뚫려 패고 애들이 지옥에서 사는 것처럼 만들어버리고 예수 믿는 건지 확인하셔야 돼요. 진짜 예수 믿는다면 그렇게 못해요. 만약에 거기에 있다면 반드시 돌아섭니다. 반드시 정신을 바짝 차리면서 돌아섭니다.

그런데 그대로 계속하면서 나는 말이야. 예수님을 영접해서 천국의 티켓을 따냈어. 천국 턱걸이에서. 그래서 절대로 이거는 취소가 안 된대. 나 천국 백성이야. 이렇게 하는 건 착각이란 말이에요. 착각. 믿음으로 구원받지 행위로 구원받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진짜 믿으면 행위가 따라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따라옵니다. 계속 말씀드려요. 완벽하진 않아요. 완벽하지는 않아요. 회개할 것이 있어요. 마음의 아픔도 있어요. 돌아서요. 괴로워해요. 또 주님을 바라봐요. 그러면서 주님을 닮아가는 성장이 있어요.

십자가를 지려고 애를 쓰고 힘들어도 주님을 따르려고 애를 쓰고, 이것이 있단 말이에요. 이것이 21절이라는 21절. 그러니까 분명히 이것이 있는지를 체킹을 하시라는 거에요. 여러분에게 아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까? 아멘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의를 주시기 위해서 제3일에 부활하셨습니까? 아멘 하셨거든요. 그건 분명히 관. 관의 변화가 분명히 왔다. 관. 예수님을 구한 자로 보고 받아들였으니까 간의 변화가 왔다는 것이 분명한데 그것이 진짠지를 확인하셔야 돼요. 그럴려면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 삶의 변화는 여러분의 제일 가까운 가족에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의 가정이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한 가족답게 예수님을 닮아 가는 온유, 겸손,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사랑, 예수님을 닮아 가는 배려, 예수님을 닮아서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가족들을 볼 때에 민망히 여기는 아픔, 이런 것들로 통해서 여러분의 가정이 천국으로 조금씩 조금씩 변하기를 주의 여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진짜 믿음, 진짜 믿음,,, 바울이나 또 아주 나쁜 짓 하다가 예수님께 돌아온 사람들은 극적인 변화를 해요. 예수님 사람들 박해하다가 다메섹으로 가다가 하늘에서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내리 쬐이니까. 쓰러졌어요. 잠시 눈이 멀었어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하는 말씀까지 하셨어요. 확실히 변했죠. 확실히. 극적인 체험으로 중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은 모태신자 이거나 오래 믿었는데 그냥 극적인 변화가 아니고 어느 과정, 지나가는 삶의 과정에서 인식이 변화되는 과정 중에 있다가 어느 순간에 바뀌어버린 거예요. 인식이 변화되는 과정 중에 다 어느 순간에 바뀌어버리는 이런 변화가 와요. 저는 언제 변했는지 몰라요. 여러분이 바람이 언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어디서 시작해서 그건 모르지만, 분명히 예술을 믿는 것이 있는가. 그리고 예수를 믿는 삶의 증거가 분명하게 있는가, 열매. 열매를 얘기할 때도 사람들이 그러죠. 많이 맺는 것만 열매다.

그러면 저를 포함해서 교회 안에 지옥 갈 사람이 너무 많아요. 많이 맺는 것만 열매 아니에요. 적게 맺는 것도 열매예요. 적게 맺는. 그리고 무르익은 것만 열매가 아니에요. 열매도 종류가 많잖아요. 입에 넣으면 너무너무 좋아 가지고, 맛있게 막 참 그런 열매도 있지만, 약간 좀 넓은 것 같기도 하고 좀 맛이 좀 그런 열매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열매를 많이 맺는 사람도 있고, 적게 맺는 사람도 있고, 무르익은 열매를 맺는 사람도 있고 설익은 열매를 맺는 사람도 있어요. 그럼 분명히 열매는 열매야. 예수를 믿고 조금이라도 변한 것이 분명히 있으면 그 열매는 열매야. 그런데 그것이 전혀 없다???. 그럼 열매가 없는 거지,,,. 분명히 예수를 믿었는데 중생을 했는데 열매가 전혀 없다 라고 할 때는 중생을 안 했거나 아니면 중생했는데 병이 든 겁니다. 잠이 든 겁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것은 우린 다 중생했는데 왜 그런 말씀을 주세요? 라고 할 때 여러분이 정말 중생한 자답게 예수의 생명이 약동하고 예수의 생명이 흘러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중생한 사람답게 여러분이 예수 믿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영향을 미쳐야 되거든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야 되거든. 흘러가는 이런 생명의 흐름 이러면서 각성이 필요하다 하는 것이에요.

프란시스 콜린스라고 제놈 프로젝트, 휴먼 제놈 프로젝트의 세계 최고의 권위자, 유전자 연구 그분이 이런 말을 했어요. 자기가 우주를 연구해 보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 세포를 연구해보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영어로 이렇게 말했어요. There's something, something rather than nothing.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뭔가 있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뭔가 있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뭔가 있다는 거예요. 뭔가 있다는 것은 그 있는 것을 만드신 분이 계신다는 만드신 분. 그걸 왜 인정하지 않느냐? 학자들한테 막 도전하는 거예요. 왜 이걸 인정하냐? 분명히 있잖아. 없던 있잖아. 뭐가 있잖아. 그럼 그게 어디서 왔어? 어디서 왔어?

그러니까 무신론자가 유신론자가 하나님이 만들었다고 그러니까 그럼 하나님은 어디서 왔어? 이렇게 질문하는 거예요. 그거 만든 하나님은 어디 갔어? 그런데 개념이 잘못됐죠. 하나님이 어디 갔어? 그러면 그걸 만든 하나님은 어디서 왔어? 그럼 또 그걸 하나님 만들었다면 그걸 만든 하나님이 하나님은 어디서 왔어? 이렇게 거든요. 거기까지 가도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영원 자존자입니다. 영원 자존자. 그분이 만드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데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분이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인정하는 거예요. 프란시스 콜린스. 제 삼일의 부활을 인정하는 거예요. 그리고 강의할 때마다 뭘 할 때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예수 믿어야 된다고 전하고 있어요. 여기에 중생한 사람 모습입니다. 이제 띄우세요.

결론
관의 변화. 예수계로 방향이 전환이 됐는가 완벽하지는 않아서 방향 전환이 분명한가 그다음에 삶의 변화, 예수 생명이 약동하고 분출하는가?
A 관(觀) 현의 변화: 예수께로 방향 /시각 변화
완전(perfection)x, 방향(direction) 전환!

B 삶(生)의 변화: 예수 생명의 약동/분출 시작
→탄식과 회개(죄), 예수 닮는 삶(열매)
C 진지한 점검: 중생 안 했다면→정직한 갈망(기도)
중생 했다면 →예수 생명의 약동/분출 점검
-아픔도 있고 회개도 있고 성장도 있는가 이렇게 된 것을 진지하게 점검하죠. 중생 안 했다면, 주님 제게 구원자를 깨닫게 해주세요. 믿게 해주세요. 중생했다면, 중생한 자답게 약동하고 분출하는 이런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약
1. 중생은 영적인 눈이 열리는 사건이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으며. 여기서 본다는 것은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을 의미한다. 중생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성경 말씀이 그저 도덕적 교훈이나 처세술로만 들리지만, 중생한 사람은 예수님이 나의 죄 때문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원자라는 사실이 실제적인 진리로 믿어지게 된다.

2. 문화적 그리스도인과 참된 그리스도인의 차이.
일론 머스크와 마사이족 추장의 사례를 통해 중생의 본질을 설명하며, 일론 머스크처럼 기독교 문화를 존중하고 예수님의 교훈을 좋게 여기더라도, 예수님의 대속 적 죽음과 부활을 나의 사건으로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화적 그리스도인에 불과하다. 반면 복음을 듣고 눈물로 예수님을 영접한 마사이족 추장처럼, 지식의 유무와 상관없이 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이 참된 중생이다.

3. 위로부터 태어나는 성령의 역사.
중생은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가 아니라 위로부터 임하는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며, 뇌 과학이 증명하는 인간의 학습 능력보다 훨씬 신비로운 것이 성령의 주입 사역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예수의 새 생명을 불어넣으실 때, 비로소 우리는 영적으로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이는 마른 뼈들에 생기가 들어가 군대가 된 거처럼 우리 삶에 일어나는 창조적 변화이다.

4. 중생을 확인하는 두 가지 변화.
첫째 가치관의 변화이다. 광야에서 놋 뱀을 바라본 사람들이 살았던 것처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는 고백이 터져 나온다면 그것이 중생의 증거이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나를 위해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믿어지는 것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고백이다.
둘째 삶의 변화이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삶의 열매로 나타난다. 완벽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해 돌아선다. 죄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순종이 시작된다. 가족과 이웃을 대할 때, 온유와 겸손, 배려의 모습이 조금씩 나타난다면 그것이 바로 중생한 자의 증거이다.

5. 결론 가정의 달에 전하는 당부.
가정의 달을 맞아 나 자신뿐만 아니라 자녀와 손주들의 중생을 점검해야 한다.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익숙함에 머물지 말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중생한 사람답게 예수의 생명이 우리 삶 속에 역동하고 흘러가야 한다. 모든 가정이 중생의 확신 속에서 가치관과 삶이 변화되는 천국을 경험하기를 축원한다.

-기도: 특별히 우리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나의 중생도 확인하지만 가족들의 중생도 점검할 수 있도록 인도하셔서 모든 가족들이 중생한 상태에서 옛 생명이 약동하고 흘러가는 귀한 체험을 하는 가정 천국을 이루어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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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4월 26일)
제목: "당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십시오(Remember who you are!)”
말씀: 요한복음 8:29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남동우 부목사님(장애인선교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이기호(2부), 장단희(3부), 임상규(4부)부목사님


설교자: 박성규 목사님 초빙(총신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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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29,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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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슬라이드를 준비했는데 보십시오. 당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십시오. 라이온 킹이라는 영화를 아실 겁니다. 프라이드랜드에 ‘무파사’라는 훌륭한 왕이 있었는데, 그의 동생이 형을 죽이게 되죠. 그리고 왕이 됩니다. 심바라는 무파사의 어린 왕자는 삼촌을 피해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칸왕 스카의 통치하에 프라이드랜드는 점점 황폐한 땅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심바가 어엿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이때 현자인 라피키가 심바를 찾아가 왕자의 신분을 잃고 방황하는 심바에게 연못에 비친 청년이 된 자기 모습을 보게 하며 아버지는 내 안에 살아계신다고 가르쳐 줍니다.

심바가 연못을 바라보며 자기의 모습을 보다가 거기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는 거죠. 그만큼 ‘심바’가 이제 성숙한 사자가 되었다는 거죠. 이때 무파사가 나타나 아들을 부릅니다. “심바”, “아빠, 너는 나를 잊고 있었구나.” 제가 언제요? 아빠 저는 아빠를 잊은 적이 없어요. 네가 누구인지를 잊은 것이 바로 나를 잊은 것이란다. 네, 내면을 보라. 넌 네. 생각보다 훨씬 더 나은 존재다. 내가 반드시 찾아야 할 왕의 자리를 회복하라. 제가 어떻게요? 이때 무파사가 중요한 말을 합니다.

“Remember who you are?” “You are my son and the one true king. Remember, remember, remember” 그러면서 무파사는 사라집니다. 소리를 너무 과하게 썼던 것 같습니다. 이때 심바는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돌아가 황폐한 프라이드랜드를 평화의 나라로 회복시켰습니다. 이제 영화 한 편 다 보셨습니다. 우리도 심바처럼 우리가 누구인지 잊고 살지는 않았을까요? ‘Remember who you are.’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싶은 말씀이 아닐까요? 그럼 어떻게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의 예수님을 통해 배우기를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우리 대학의 기숙사 건축에 서울시청 심의가 5월 6일 앞두고 있어서 오전 금식을 하다 보니까 오늘 설교가 있는데, 아침을 먹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다가 순전하게 금식하자. 그래서 안 했더니, 목이 좀 약간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5월 6일 서울시 심의 잘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를 보내시니가 나와 함께하시도다. 예수님을 보내신 성보 하나님을 말하고 있어요.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내 기쁨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기쁨을 추구하고 있다 라고 말해주고 있죠. 요한복음 8장 19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떤 상황에서 하셨을까? 이것을 알면 이 말씀의 의미가 더 심화될 수 있죠. 먼저 요한복음 8장의 전문맥인 7장 1절부터 보시겠습니다. 1절 한번 읽어주십시오. 그 후에 예수께서 요한복음 7장에 와서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매우 살벌한 분위기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5절에 보면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않고 오해하는 형이 메시아일 리 없다. 그러면서 심지어 형에게까지 비난까지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는 것이죠. 7장 25절에 보면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느낄 정도로 유대인 가운데 특별히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그 의도를 읽어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45절에 오면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이들은 사내들인 의원들이었을 겁니다.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않았느냐 라고 책임을 추궁하고 있죠. 아랫사람들의 대답을 들어보십시오.

그 사람이 예수님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잡으러 갔다가 은혜를 받은 것이죠.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을 때 이런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평양 대부분 운동 때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회개한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이 집회 장수에 왔다가 그 경찰이 회심하는 일들이 있었죠. 마치 그와 같은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죠. 오늘 찬양대가 성령이오, 임하소서. 이것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추구해야 될 가장 중요한 기도의 제목이죠. 이제 뒤에 문맥으로 갈까요? 요한봉음 8장 29절이 오늘 본문인데 59절로 가면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님을 현장에서 돌을 던져 죽이려고 하는 시도죠.

그러나 십자가의 때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숨어서 성전에서 나가셨습니다. 전후 문맥을 통해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8장 29절을 어떤 상황에서 말씀하셨는지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오해하고 죽이려는 상황 속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이 오해를 받고 나를 누군가 죽이려고 하는 상황이 되면 얼마나 사람이 위축되고 내가 본질로 붙들었던 걸 흔들릴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이 끝까지 추구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 본문이죠. 전후 문맥 사이에 있는 오늘 본문이죠. 나를 보내시니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나를 보내신 분의 내게 맡겨 주신 사명을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칭찬할 때도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십자가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 다음에 베드로를 칭찬한 다음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말하니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막습니다. 주요 그 일이 주님께는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를 지지 말라는 말을 수제자 베드라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내 뒤로 물러가라.

철저하게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 십자가의 그 길을 한순간도 잊지 않고 걸으셨던 분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을까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0장 21절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아십니까? 우리 모두는 하늘 아버지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교로부터 보냄 받아서 이 땅에 태어난 줄 믿습니다.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실수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사명을 주어 이 땅에 우리를 보내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제자훈련과 사육훈련을 통해 지상교회의 정의를 배웠습니다. 지상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동시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온전한 교회론이 못 되지요. 온전한 교회론은 세상으로 보냄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 그 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이는 지난 40여 년 동안 한결같이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사랑의 교회만의 부흥을 위해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부흥을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사랑의 수많은 평신도 지도자들은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에서, 지구촌의 구석구석에서 보냄 받은 사명을 완수하며 그 인생길을 걸어온 훌륭한 공동체입니다.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 우리는 사명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거죠.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같이 그분께서도 우리를 세상 속으로 보내고 계십니다. 가서 세상을 한 손엔 보금 들고 한 손엔 사랑을 들고 이 땅 구석구석을 누비며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는 사람이 되도록 우려를 보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책은 리처드 니브 라는 신학자의 책입니다.

리차드 니브는 우리 교단의 개혁신학과는 다른 신전통주의를 따르는 신학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분의 모든 가르침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문화에 나오는 교회의 다섯 가지 유형은 도구로써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이신 신국원 박사님도 그의 명저에서 이 다섯 가지 유형을 보여 주고 있죠. 제목의 그리스도와 문화 이 그리스도는 교회를 가리키고 문화는 사회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문화는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저렇게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서 소개해주고 있죠. 지난 2천 년 동안 교회는 다음 다섯 가지 유형의 교회가 있어 왔습니다.

첫 번째로는 사회와 대립하는 교회 유형입니다.
이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오염되지 않게 하여 담벼락을 높이 쌓아 올리고 아무런 영향도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기 때문에 침투에 들어가 어두움을 밝혀야 되고 소금이라고 했기 때문에 침투에 들어가 부패를 방지해야 되는 거죠. 첫 번째 유형은 성경 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는 사회에 속한 교회의 유형입니다.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혁명에 앞장섰던 해방, 신학 그리고 사회 복지에만 빠졌던 교회들 십자가의 복음을 도외시하고 여기에 우선권을 주었던 교회들은 수십 년이 지난 오늘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죠. 제가 대학 80학번인데, 그때 남미의 해방 신학이 엄청나게 들끓고 일어나고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다 지리멸렬될 수밖에 없었죠. 왜냐하면, 교회의 본질은 복음이기 때문에 복음을 빼놓은 그 어떤 운동도 오래갈 수 없죠. 칼 세미나가 40년을 넘도록 계속해서 줄기차게 전 세계 교회 지도자를 살리는 이유는 복음이 살아 있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로는 유형은 사회 위에 군림하는 교회입니다.
여러분께서 ‘카놋사 굴욕’이라는 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AD 1077년 1월 28일 하인리히 4세라고 하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교황을 백기해 길을 떠납니다. 왜냐하면, 교황의 정책에 반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파문을 당해버렸습니다. 그 당시에 황제가 파문된다는 얘기는 황제의 지위까지 잃어버릴 수 있는 중대 사안이었기 때문에 파문이 철회되도록 교황의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그는 황후와 함께 먼 길을 떠나 이탈리아 북부의 카노사라는 성에 도달합니다. 황제가 왔다고. 만나고 싶다고 해도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AD 1077년 1월 28일에 북 이탈리아는 눈이 대단히 많이 내렸고 매우 추운 날씨였습니다. 황제는 맨발로 수도사들이 입는 그 낡은 옷을 입고 눈밭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요청합니다. 3일 만에 문이 열렸고 교황은 그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는 다시 황제로서 역할을 할 수 있었죠. 이것이 그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입니다. 중세가 이런 시대였습니다. 교황의 권력이 황제의 권력을 넘어서는 above culture의 시대였던 것이죠. 그런데 아십니까? 그런 중세 사회에 군림하는 교회,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교회는 타락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 말은 정치, 세속 정치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교황이 세상에 권력을 능가하던 시대에 교황의 권력에 대한 말이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방법은 그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5절로 6절에 보면 그는 유다 지파의 사자, 다른 말로 하면 왕이라는 것입니다. 6절에 보면 일찍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으로 나옵니다. 초림의 주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죽임을 당한 어린 양, 십자가를 지신 어린 양이 되시므로 우리를 구원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재림의 주님은 만왕의 왕으로 온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지상의 교회는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의 교회는 초림의 주님의 방식대로 낮아지고 희생하고 십자가를 짐으로써만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세 번째 유헌도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네 번째로는 어떻게 보면 한국교회 성도가 가장 많이 취하고 있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순된 교회와 사회 Paradox를 역설 적인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모순되니 더 정확한 번역으로 느낍니다. 교회에서는 정말 좋은 성도요. 예배도 잘 드리고 봉사도 잘하지만 사회 속으로 가면 안 믿는 사람보다 더 탐욕적이고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사람, 완전히 모순이 되는 거죠. 완전히 상반된 삶의 모습이죠. 영적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와 같은 사람이죠. 낮에는 의학박사요. 왕립협회 회원인 존경받는 의사이지만 밤이면 야수처럼 돌변하는 하이드처럼 오늘의 성도들의 삶에도 이런 모습이 나타날 수 있죠. 교회에서는 존경 받는 분인데 사회 속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에 그 영광에 먹칠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네 번째 유형도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는 유형이 성경적입니다.Christ the Transformer of Culture.
사회의 변혁 자인 교회, 세상에 깊이 침투해 들어가 어두운 문화를 바꾸고 관습을 바꾸고 법을 바꾸고 사랑들의 생각을 바꾸는 사람 부패해지는 그 사회의 체계 속에 들어가 그 체계를 부패를 막는 사람들 그리고 살맛 나지 않는 세상 속에 이분이 녹아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소금을 친 음식처럼 제맛을 내는 맛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이여 산상 수온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여 이 성도가 바로 보냄 받은 제자로서의 삶을 사는 성도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이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잘못된 유교적인 관점, 잘못된 세속적인 관점 그것 때문에 고통스러운 가족들 또는 나 자신이 우리 가정의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가 임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나를 낮추고 십자가를 지는 삶 이것이 바로 제자의 삶인 것이죠. 여러분이 사업하시는 사업의 현장에서 거래처와의 관계에서 직원과의 관계에서 또 직장에서 상사와 동료와 부하 직원과의 관계에서 회사의 문화가 성경적이지 않을 때 기도하며 하나씩 하나씩 바꾸어 가는 삶 이것이 제자의 삶이요. 이것이 Transformer의 삶인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일을 하라고 보내신 줄로 믿습니다.

이런 토양이 완성될 때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힘 있게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앞으로 나오게 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추구하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본문 8장 29절의 앞 절에 나옵니다. 함께 읽어주십시오. 예수께서. 주석을 참고해 보면 인자를 둔 후에 내가 그인 줄 알고 죽음과 부활 후에 예수님이 그 여기서 그는 메시아를 가리키죠. 메시아이심을 알 것이다. 스스로 아무것도 안 하고 아버지 가르치신 대로 말한다.

예수님의 말과 행동은 철저하게 오로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뜻을 이루는 것이었다는 거죠. 그게 바로 십자가였던 것입니다. 보배로운 영 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서 부닥치는 적지 않은 권한 가운데 여러분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십니까? 왜? 하필이면 내가 이 남자를 만나서 내가 그때 커다란 실수를 했지 왜 이 여자를 좋다고 쫓아다녔을까? 그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되지 않는다면 그 남자 만나고 그 여자 만난 거 주의 인도인 줄 믿습니다. 그분이 나의 십자가임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주기철 목사님에게 주신 감동의 말씀이 이것이죠. 처음에는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가지만 나중엔 십자가가 우리를 지고 간다. 여러분의 배우자라는 십자가 잘 지고 가면 나중엔 그분이 여러분을 지고 갈 줄 믿습니다. 아멘,,, 어떤 분에게는 부모님이 십자가일 수 있고, 자녀가 십자가일 수 있죠. 그것이라고 그 만남, 그 관계를 허락하신 겁니다. 여러분이 일터에서 당하는 숱한 문제를 이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나를 이끄셨다면 이 세속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제자의 삶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 일터를 변혁시키는가를 하나님이 보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명감을 잊지 않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도는 무엇을 추구해야 합니까? 예수님처럼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 즉 사명을 추구해야 할 줄 믿습니다. 아브람 카이퍼는 담임 목사님을 통해 많이 들으신 유명한 네덜란드의 수상이요. 신학자요, 목사요, 언론인이요. 대학 총장이었던 분입니다. 얼마나 탁월했냐면 10개의 머리를 가지고 100개의 손을 가지고 일했던 분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분은 정말 방대한 저술과 그리고 언론사도 만들었던 대단한 분이죠. 1880년 화란 자유대학을 설립하며 총장 취임 연설에서 그는 영역 주권 사상을 선포했습니다. 이것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문장이 한 번쯤 들어보셨을 이 문장입니다.

우리 인간 존재의 모든 영역 가운데 단 일평방일치라도 만물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것이다. 내 것이야, 라고 외치지 않는 것은 없다. 단, 일평방일치도 그리스도의 소유가 아닌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가정과 일터도 그리스도의 소유 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분의 통치를 받기 위하여 순종하는 삶을 가정과 일터에서도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영역 주권사상을 조금 더 요약해 드린다면 절대 주권자 하나님은 인간이 사는 모든 영역의 주인이시다. 믿으시면 아멘,,,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의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국가, 교회, 가정,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교육, 과학 등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서 왕이 되시고 주가 되셔야 한다.

우리가 주인이 되면 망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다 부패한 죄성을 가지고 있어요. 목사인 척, 신학대학 총장인 척에도 죄성이 있어요. 올해로 제가 목사 안수 받은 지 39년입니다. 전도사로부터 오정현 목사님 다음에 오종호 목사님이 바톤을 이었고, 오정호 목사님 다음에 제가 바톤을 이어받았던 때가 83년도입니다. 목회를 43년 했는데도 여전히 제 안에는 죄성이 있어요. 제 맘대로 살면 망하는 길이에요. 총신대학을 이끌면서 저의 최고의 지도 제목은 하나님께서 왕이십니다. 제가 종이 되게 해. 주옵소서. 사실은 좀 더 세게 기도합니다. 종놈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야 총신대학교가 하나님 기뻐하시는 대학, 수많은 대학생들을 살리는 대학이 될 수 있는 거죠.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각 영역은 다른 영역의 권리나 자유를 간섭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라는 영역에 담임 목사님을 세우셨고, 그분에게 영역주권 그만큼의 주권을 위임하신 거죠. 학교에는 선생님들에게 교사로서의 그 주권을 허락하신 겁니다. 저는 가슴 아픈 것이 학생들이 선생님에 대하여 함부로 하는 뉴스를 볼 때, 이건 아닌데 학부형들이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학교로 달려가 선생님들을 어렵게 하는 거 이건 아닙니다. 영역 주권을 지켜야 됩니다. 그 유명한 처어칠이 차를 타고 가다가 런던 시내에서 경찰한테 걸렸습니다. 대영제국 수상이 타고 있습니다. 운전기사가 말하니까 경찰이 그렇게 말합니다. 대영제국의 수상은 교통법을 어길 리가 없습니다. 끊으셔야 됩니다.

처어칠은 교통순경의 영역주권을 인정하고 티켓을 받고, 벌금을 내죠. 이것이 여러분 영역주권이에요. 모든 영역의 하나님이 주인이신 것과 각 영역은 하나님이 부여한 권위와 주권을 가지고 있고 이것을 침해하지 않고 존중할 때 사회는 질서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역주권을 믿고 살 때 인간은 가장 인간다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패성을 이길 수 있고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는 거죠. 그러므로, 가장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고 가장 나와 우리 주변의 삶,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이죠. 남편의 영역주권이 있고, 아내의 영역주권이 있는 것이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죠. 부모님의 영역주권이 있고 자녀의 영역주권이 있죠. 존중하는 게 필요한 거죠.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주권 앞에 순종하는 종의 삶을 살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행복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앞에 순종했던 한 인물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거창고등학교를 기독교 명문학교로 일으킨 고 전영창 교장 선생님 1917년 전북 무주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가정이 매우 가난해서 중학교에 갈 수 없었으나 아버님께서 성경 교육을 아주 강력하게 시키는 믿음의 사람이셨습니다. 그 지역을 돌보시던 보이호 선교사님이 전해준 성구 암송책을 받고 전영창은 전부를 암송해버립니다. 소요리 문답까지 참고로 소유리는 중화요리와 다른 용어입니다.

중화요리는 재료 요 자를 쓰고, 소요리의 요 자는 중요할 요, 자 중요한 교리를 소라는 얘기는 작다는 게 아니라 분량이 적다는 것입니다. 대요문답은 196문항이고, 소요리 문답은 107문항이에요. 107문항으로 만든 문답식 신앙교육 교재를 소요리문답 또는 소교리문답, 쇼터케이티키즘 이렇게 부르는 것이죠. 절대로 작지 않아요. 그런데 이것을 다 외웠어요. 선교사님이 방문할 때, 선고 암송 책을 암송하고 서요리문답을 다 외우는 전용창을 보며 감동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장학금을 주어 무주에서 그 당시에 큰 도시인 전주로 신흥학교로 미션스쿨로 유학을 보내줍니다. 전주신흥학교의 교장선생님이 윌리엄 린튼 선교사님 인요한 박사의 아버님이십니다.

린턴 선교사님이 교장 선생님이 그 영창의 신앙과 성씨를 보고 일본 고베 신학교로 유학을 보냅니다. 그는 일본에서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가 후쿠오카 감옥에 들어가 1년간 수감이 되어 있던 중 로마서 전체를 영어로 암송합니다. 마태복음의 3분의 1을 암송하고, 시편의 일부를 암송하고, 영어 공부와 헬라어 공부를 다른 사람 같으면 감옥에 있는 1년을 낭비하고 허비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고 거기를 intensive한 공부하는 시간으로 만들어 버리죠. 그러다가 우리나라가 해방이 됩니다. 고국으로 돌아와 고향 무주로 갔다가 미국 유학을 꿈꾸며 서울에 올라왔는데 어떡하면 미국 유학을 갈까? 고심하던 중에 지나가던 전봇대 지나가던 길에 있는 전봇대를 보니까 광고문이 붙어있어요. 미군 군목의 통역관을 구한다.

성경을 영어로 암송했던 그분은 어느 정도 통역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인터뷰를 보니까 합격이 되었어요. 그래서 미 24군단 이하의 브라운 소령의 군목의 통역관이 되었습니다. 브라운 소령과 가까워지자 목사님 저 웨스트민스도 신학교 유학 가고 싶어요. 그랬더니, 상급 부대의 군정 참모인 패트홀드 대령 군목님을 소개해 주셔요. 백절도 대령이 영창의 얘기를 듣고 추천서를 써서 풀 스칼라십으로 피나델피에 있는 웨스트미스터 신학교에 유학을 가게 됩니다. 거기서 인연 공부를 마친 후 그는 웨스턴 신학교, 미시간주에 있는 신학교로 옮겨 공부하는데 공부가 마쳐 갈 무렵에 한국전쟁이 발발합니다. 전쟁의 난 내 조국을 위하여 그는 귀국을 서두르게 됩니다. 귀국하려는 그를 학장인 존 율더 박사가 말립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 있기 때문에 어쩌면 부산까지 밀리면 대한민국은 완전히 공산화가 될 것이다. 너는 미국 유학을 한 신학생이기 때문에 반드시 반드시 죽일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지 마라. 이때 전영창이 한 말은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미국에서 목사가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 조국 대한을 위해서 목사로서 일하기를 바라십니다. 만약 대한민국이 공산화가 된다면 나는 지하운동이라도 해서 우리나라를 되찾아야 합니다. 율도 박사는 그의 의지를 보고 허락합니다. 하나의 조건은 2주 후에 졸업식이 있으니까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가라는 것이었어요. 전영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학장님 지금 조국이 위기에 처해 있는데, 학위를 받는 것이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멸도 박사는 더 이상 말릴 수 없기에 사실 총장인 저도 어떤 개인에게 먼저 학위를 준다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인데 멸도 박사는 이사장과 의논하여 전영창에게 학위를 수여합니다. 귀국한 그는 부산 영도에서 장기려 박사, 전종희 박사 등과 함께 무료 진료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받아온 5천 달러, 여러분 1950년대 5천 달러 얼마나 큰 돈입니까? 이 돈을 가지고 의료 시설을 마련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고신대병원이 된 것입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제 전쟁이 끝나니 전영창은 다시 미국 유학을 꿈꾸고 콘콜디아 신대원 공부를 마치고 이제는 귀국길에 오르는 때였습니다. 길에 그분이 들른 곳 이곳에서 그는 그의 운명을 바꾸는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콘콜리아 신대원이 있는 데서 저 멀리 서부로 이동하게 되죠. 1956년 1월 9일 오전 10시 전영창은 오레곤주 포틀랜드시 그레이하운드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귀국 전에 이곳 그레이스 앤드루스 교회에서 설교하기로 사전에 약속되어 있었기에 그곳으로 간 것입니다. 터미널에는 크게 담임, 목사님, 사모님이 차를 몰고 마중 나왔습니다. 인사를 나누면서 보니 사모님의 표정이 무겁고 침울했습니다.

운전을 하고 가면서도 사모님은 침울한 채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전영창은 혹시 자신이 결례해서인가 싶어? 마음이 몹시 몹시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가 사모님이 입을 열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천 선생님 오늘은 매우 슬픈 날입니다. 전영창은 자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조금은 안도하며 사모님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사모님이 대답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파송한 짐 엘리엇 선교사가 에콰도르에 밀린 지대 식인종인 아오쿠아 인디어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들어가다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바로 오늘 아침에 조금 전에 전해 들었습니다. 그와 네 명의 젊은 선교사들이 그 자리에서 다 순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지멜리엇의 스토리입니다.

1956년 1월 3일 그들은 쿠라라이강 근처의 모래톱에 팜비츠라고 명명한 캠프를 설치하고 접촉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날이 처음은 아니었어요. 그들은 경비행기를 통하여 선물을 투하하며 사진을 투하하고 우리가 이렇게 여러분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여러분의 친구라는 표현으로 선물과 사진을 투하하며 방송으로 목소리까지 들려주었건만 아오카족의 전사들은 그들을 향해 오는 1월 8일에 다섯 명의 선교사들을 외부의 침입자로 간주하고 상을 들어 그들을 향해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향해 창이 날아올 때 선교사들의 허리에는 권총이 있었지만 단 한 명도 권총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권총의 사용 목적은 들짐승들로부터 선교사들의 목숨을 보호하는 것이었지.

선교지에 저 사람들에게 쏠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권총을 사용하면 어쩌면 아욱 가족은 외부의 침입자들, 외부의 방문자들을 완전히 완전히 차단하고 복음을 받아들일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그들은 권총을 쓰는 대신 창을 가슴으로 맞기를 결정한 것이죠. 그들의 젊음과 지성을 쿠라라이 강 밤빛이 해변에 강변에 묻었던 것입니다. 바로 다섯 분의 선교사가 이분들입니다. 설교를 마친 그날 밤 전용창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낯설고 물 설은 오지에 가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식인종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귀국하여 무엇을 해야 할까? 내게 하나님이 부여하신 사명은 무엇일까? 침대 곁에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서류 가방에는 대전신학대학, 지금의 한남대학의 학장인 윌리엄 린튼, 신의학계의 교장이셨던 은사 린튼 박사의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를 부학장으로 요즘의 말로 하면 부총장으로 초빙한다는 편지였습니다. 귀국하면 대학의 부학장이라는 확실한 지위와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 밤 내내 기도한 것은 짐 엘리엇과 동료 선교사들의 순교의 의미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밤 기도 중에 전영창은 결심했습니다.

모든 것이 보장된 대학보다 벽지에 가서 교육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리라. 1956년 1월 15일 오레건주 올림피아 항을 출발하여 2월 중순 부산항에 도착하여 마산에 갔다가 거창고등학교 주경중 이사장을 만납니다. 이사장은 교장 자리가 비어 있고 빚만 가득한 시골 학교이며 건물도 낡아 빗물이 새는 학교이고 전교생이 여덟 명뿐인 학교이지만 선생님을 교장 선생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1956년도에 이만한 실력과 학력을 갖춘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런데 지금 스러져 가는 학교의 교장이 되어 달라고 요청한 것이죠.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었겠죠.

그러나 그는 미국에서 기도하던 대로 벽지에 가서 교육을 통해 복음을 전하리라는 소명과 일치하는 곳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가기로 순종했습니다. 그의 순종의 결과 전교생 팔 명뿐인 무너져 가던 거창고등학교는 명문 기독고등학교로 세워졌습니다. 한국일보에 언젠가 나왔던 기사가 이 책에 실려 있습니다. 시골 학교가 대학 합격률 전국 최고의 명문고로 등장했다.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 이상이다. 이 학교는 스승과 제자가 한마음이 되어 전인교육을 위주로 공부하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일 뿐이다.

지난 금요일 저희 대학의 명예교수인 심창섭 교수님과 함께 대전 새로남교에 임직식에 방문하며 대화할 때 지금도 거창고등학교는 선생님의 60%가 거창고등학교 졸업생들이기 때문에 그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화제의 학교는 경남 거창군 거창읍 거창고등학교 거창고 강당의 뒷벽에는 거창고의 정신을 볼 수 있는 직업 선택의 십계명이 있습니다.

-업선택의십계
제1계명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제2계명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제3계명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제4계명 모든 조건이 갖추어 준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제5계명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말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제6계명.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가라.
제7계명.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제8계명.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제9계명.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 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제10계명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전영창 선생님의 정신이 살아 있죠. 아니 십자가의 정신이 살아 있죠. 우리 모두가 이 열 개의 계명을 그대로 우리가 실천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직업 시계의 정신, 개척정신, 봉사정신, 희생정신은 가질 수 있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십시오. Remember who you are!!!.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신 뜻을 오늘 이 시간 다시 한번 헤아려 보십시오. 곧 사명자로 사명을 추구하는 삶을 다시 다시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나의 이익과 탐욕을 추구하기보다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추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의교회 본당에서도 촬영되었던 ‘신의 악단’의 마지막 부분을 저는 잊을 수 없어요. 처음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던 북한 보위부 감찰국 소속의 박교순 소좌 한국군의 계급으로는 소령이죠. 그는 외화벌이를 위해서 조작된 부흥회를 보여주기 위하여 찬양단을 구성했는데 찬양을 부르다가 하나님을 만납니다.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믿던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되죠. 그는 마음이 바뀌어 나와 함께 찬양을 했던 악단을 탈출시키게 하여 압록강 쪽으로 보내고 본인만 공연장으로 가죠. 발각되어 그는 순교하게 되었는데, 마지막 장면에 박교순 소장, 박교순 소령은 하늘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저 잘했디요?” 감동이 되더군요. 우리도 죽는 날 하나님 저 잘했지요. 이 말을 남길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승리한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영 가족들이 될 때 우리를 통하여 황폐한 이 땅에 진정한 부흥이 일어나고 모두가 이 부흥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우리 이 길을 걸어가기를 주의 스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요약
우리는 일생 일로 한 번밖에 걸어갈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상 조류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 인생의 마지막에 너무도 잘못 살았다고 후회하는 인생길 걸어가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따랐던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가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우리 인생의 최고의 목표를 두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박교순 소령처럼 “하나님 저 잘했지요?” 주님께 이 말씀을 드리고 천국 가는 모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당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해야 한다.

♧기도제목
-1. 주여! 원수 된 나를 위해 친히 ‘화목제물이 되어 주신 신비한 사랑’을 부어주셨사오니, 날마다 ‘구원의 능력이 더욱 살아나는 평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2. 주여! ‘무한하신 기쁨의 빛’이 피의 복음의 세례를 받은 나의 가슴에서 터져 나오게 하사, 가면 갈수록 말로 다할 수 없는 ‘주님과의 첫사랑의 즐거움이 압도하는 수확체증의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3.사랑의교회가 그림자 헌신으로 ‘제자훈련 지도자(CAL)세미나(4.20-24)와 40주년 기쁨감사예배(4.25)’를 섬길 때, 미주, 브라질, 유럽 교회들이 ‘강력한 제자훈련 부흥의 새 차원‘으로 비상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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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4월 19일)-로마서 강해 ⑫
제목:"참사랑의 신비에 반응하는 효자효녀들“
-(Devoted Children Responding to the Mystery of True Love)
말씀: 로마서 5:5~11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고영민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찬양특송: 양귀비(소프라도),이혜진(피아노)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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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5:5-11,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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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령으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로마서 5:5)
오늘 말씀의 핵심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부었다'는 것은 밖에서 통째로, 남김없이 쏟아부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지성으로만 깨닫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확신하고 반응해야 하는 신비입니다. 검은 젖소가 녹색 풀을 먹고 하얀 우유를 만들어내고, 메마른 가지에서 꽃이 피는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누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 또한 우리 이해를 뛰어넘는 놀라운 신비입니다.
 
2. 참 사랑의 신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신비로운 이유는 우리가 자격이 없을 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조건부 사랑이 아니라, 우리의 상태에도 불구하고 베풀어 주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아들의 죽으심으로 우리와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화목 사상(힐라스테리온)'입니다. 율법으로는 정죄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 위에 하나님의 속죄의 피가 뿌려짐으로써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차원 높은 즐거움
인생의 여러 즐거움 중 가장 높은 고봉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알 수 없는 신비: 보지 못하나 사랑하고, 얻지 않았으나 누리며, 고난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기쁨입니다.
*수학 체증의 법칙: 세상의 즐거움은 누릴수록 줄어들지만(수학 체감), 주님 안에서의 기쁨은 갈망할수록 더 풍성해지고 증가합니다.
*기쁨의 태양: 어두운 방에 작은 창문으로 태양 빛이 들어오면 온 방이 밝아지듯, 기쁨의 태양이신 예수님을 품으면 우리 마음은 대낮같이 밝아집니다.
 
4. 첫사랑을 회복하는 영적 효자 효녀
부모가 자식을 극진히 사랑하는데 자식이 그 사랑을 의심하면 부모의 가슴은 미어집니다. 우리를 향해 퍼부어 주시는 영원한 사랑을 의심하거나 불안해하는 것은 영적인 불효입니다. 신앙생활이 오래되어 화석화되거나 딱딱해지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에베소교회가 진리를 수호했음에도 '처음 사랑'을 버렸을 때 책망받았던 것을 기억하며, 우리는 다시금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세상의 첫사랑은 시간이 갈수록 식어버리지만, 하나님과의 첫사랑은 갈수록 깊어지는 '수학 체증'의 은혜가 있습니다.
 
결론 및 적용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나 아직 영광의 완성에 이르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길을 걸어갈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으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그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인과응보의 두려운 신앙에서 벗어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처절하고도 극진한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주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여 여러분의 가정이 기쁨의 잔칫집이 되고, 삶의 모든 짐이 벗겨지는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요약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처절하고 극진하게 사랑을 부어주신 주님을 의지하여, 의심과 불안의 골짜기에서 벗어나 영안이 열려야 한다.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는 영적인 효자 효녀가 되어, 어떤 환경에서도 잔칫집 같은 기쁨을 누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원수 된 나를 위해 친히 ‘화목제물이 되어 주신 신비한 사랑’을 부어주셨으니, 날마다 ‘구원의 능력이 더욱 살아나는 평생’이 되어야 하며, ‘무한하신 기쁨의 빛’이 피의 복음의 세례를 받은 나의 가슴에서 터져 나오게 하사, 가면 갈수록 말로 다할 수 없는 ‘주님과의 첫사랑의 즐거움이 압도하는 수확체증의 인생’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랑의교회가 그림자 헌신으로 ‘제자훈련 지도자(CAL)세미나(4.20-24)와 40주년 기쁨감사예배(4.25)’를 섬길 때, 미주, 브라질, 유럽 교회들이 ‘강력한 제자훈련 부흥의 새 차원‘으로 비상하기를 소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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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4월 12일)-로마서 강해-
제목: "복음의 깊이를 깨달으면 기쁨이 따라온다"
말씀: 로마서 5:1-4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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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5:1-4,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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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이번 특새는 천국 잔치 같은 은혜가 온 교회에 가득합니다. 새벽 기도에 마음을 다한 1만 5천명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확신합니다. 4월 8일 특새 후집회에서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어 주시고 성령 충만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기도하는 그날의 은혜로 “나라도 세울 수 있겠다”는 참 은혜를 받았습니다. 본당 7천석도 작게 느껴졌고, 3시간 기도가 30분처럼 느껴질 만큼 영적 용량이 커졌다는 은혜를 나눕니다. 이런 기도의 기세로 대한민국을 더욱 보호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설교는 로마서 5장 1절부터 11절까지로, ‘복음을 깊이 깨달으면 기쁨이 따른다’는 제목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예수님을 영접했고, 대학 때 구원의 확신에 고민하며 이 본문에서 확신을 얻었습니다. 모든 분에게도 이 말씀이 살아있는 본문이 되길 바랍니다.
본문의 “그러므로”는 믿음을 통한 의롭다 함을 뜻합니다. 이는 우리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이루어진 은혜입니다.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 사건이 완전한 구원 사역의 핵심이며, 주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내어 주시고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았지만, 삶에서 맞닥뜨리는 고난과 어려움, 억울함과 고통의 과정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 가운데 어떻게 기쁨을 유지할지,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지를 비롯해 본문은 그것이 기쁨임을 여러 번 강조합니다.
복음의 기쁨은 단계별로 자라납니다.
첫째, 믿음으로 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단계,
둘째,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단계,
셋째,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높은 수준입니다.
오늘은 첫째와 둘째 단계에 대해 말씀드렸고, 셋째 단계는 다음 주에 다루겠습니다. 주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혼인 잔치에서 기쁨을 주셨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기쁨이 없었지만, 복음의 깊은 은혜는 결국 기쁨을 줍니다. 믿음으로 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이 기쁨은 출애굽기 양의 피 사건과 같습니다. 피의 문설주 안에 있으면 죽음의 천사가 지나가듯, 우리도 그리스도의 피 아래서 하나님의 은혜에 접근하는 권한을 가진 자입니다.
은혜에 들어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순간, 삶의 힘든 순간들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기쁨이 시작됩니다. 저 역시 대학부 사역 당시 고난 가운데 이를 깨닫고 주님과 함께하는 복음의 희락성을 경험했습니다.
이 첫 번째 단계 기쁨은 하나님과의 화평을 현재 누리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삶은 영적 전쟁이지만, 이미 평화를 선포받았기에 평화를 누리며 하나님의 복음 전사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환난 중에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데, 이 과정은 단순히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기는 용기와 인격적 성숙입니다.
고난을 통해 인격이 신뢰할 만한 이로 변하여 주위에 소망과 기쁨, 영적 에너지를 전하는 이가 됩니다. 십자가의 신비인 이 고난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더 깊이 깨닫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자아 부인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현재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비교할 수 없으며, 고난은 과정이자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과정임을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도 우리는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세 번째는 오늘 성찬식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념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를 더욱 깊이 누리길 바랍니다. 또한 합심 기도를 통해 대한민국과 가정, 교회가 은혜로 보호받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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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로마서 5:2~3)
우리는 어떤 말씀에 근거하여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서도 즐거워해야 합니다.
5장 전체의 주제가 되는 말은 ‘즐거워하다’입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한 신앙의 세 단계가 있는데
1단계는 믿음으로 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수준으로, 애굽의 모든 장자들이 죽는 상황에서도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면 죽음이 넘어간 것처럼 예수를 믿는 자들은 피의 문설주에 믿음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피의 공로로 은혜에 들어간 것을 말합니다. 접근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 접근권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이런 자들에게 화평을 주셨고 우리는 이미 화평을 누리고 있는 자들입니다.
2단계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수준으로, 고난 가운데에 즐거워합니다. 그 고난이 무언가를, 즉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환난을 통해서 살아갈 용기를, 인내는 신뢰할 만한 인격을, 연단은 십자가에서 솟아난 소망을 얻게 합니다. 이것이 고난의 신비입니다. 로마서의 산 중에서 기쁨의 산을 만나게 되었으니 더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3단계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높은 고봉의 차원입니다. 복음을 깊이 깨달으면 기쁨이 따라옵니다!!

♣요약
우리는 하나님께서 '완벽한 대속과 칭의'로 은혜와 영광에 들어가는 접근권을 주셨으니 그러므로 의심할 여지 없이 명백한 확신 위에 믿음으로 서서 즐거워하게 하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환난이 살아갈 용기를 이루고, 인내는 신뢰할 만한 인격을 이루고, 연단이 십자가에서 솟아난 소망을 이루어주심을 믿고, 고난 중에도 기쁨의 산에 올라가기 위해 주님 앞에 굳건히 충성되히 나아가야 한다. 우리 사랑의교회가'제자훈련 지도자(CAL)세미나(4.20-24)와 40주년 기쁨감사예배'(4.25)를 전심으로섬길 때, '제자훈련의 국제화'가 미주, 브라질, 유럽에도 강력하게 펼쳐지게 간절히 간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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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차 봄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주후 2026년 4월 11일)-여섯째 날
제목: "갑절의 역사"
말씀: 열왕기하 2:1-12

설교자: 크리스찬 소니아 목사님(루마니아호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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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왕기하 2:1-12,
1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4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7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8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0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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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믿음이 어떻게 시작되고, 시험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며, 결국 삶 속에서 어떤 열매로 나타나는지를 단계적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이 신앙생활 가운데 힘들고 지루함을 느낄 때가 오히려 믿음이 더 깊어질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한다. 신앙이 편안할 때보다 오히려 흔들리고 답답한 순간에, 사람은 더 깊은 믿음을 갈망하게 되고 그 끝에서 새로운 차원의 믿음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 속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되고 자라난다.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이 과정을 전달하며, 믿음의 시작은 언제나 현실 고민과 갈등 속에서 태어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믿음이 시험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다룬다. 믿음이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실제 상황 속에서 검증되고 단련되는 과정이라고 한다. 사람은 여러 가지 시험과 도전을 겪으면서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믿음은 더 견고해진다. 이러한 성장은 단순히 참고 견디는 차원을 넘어, 상황에 적응하고 하나님을 더 깊이 의지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즉, 믿음은 고난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드는 통로가 된다.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더 긴밀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성공과 그 결과에 대해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은 세상적인 성취가 아니라, 믿음이 실제 삶 속에 뿌리내리고 열매 맺는 상태를 의미한다. 믿음이 성장하면 그것은 단순한 생각이나 감정에 머물지 않고, 개인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신앙은 삶과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통합되는 것이다. 믿음의 힘이 우리의 선택과 태도, 삶의 방향까지 변화시킨다고 하며, 이러한 변화가 진정한 믿음의 결과라고 말한다.

결국 강력한 믿음이란 처음부터 완전한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갈등과 시험, 그리고 지속적인 성장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고, 우리의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실제적인 능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제 24차 봄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주후 2026년 4월 11일)-여섯째 날
제목: 
말씀: 요한복음 14:12-18, 26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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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12-18, 26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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