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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4월 26일)
제목: "당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십시오(Remember who you are!)”
말씀: 요한복음 8:29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박성규 목사님 초빙(총신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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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29,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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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슬라이드를 준비했는데 보십시오. 당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십시오. 라이온 킹이라는 영화를 아실 겁니다. 프라이드랜드에 ‘무파사’라는 훌륭한 왕이 있었는데, 그의 동생이 형을 죽이게 되죠. 그리고 왕이 됩니다. 심바라는 무파사의 어린 왕자는 삼촌을 피해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칸왕 스카의 통치하에 프라이드랜드는 점점 황폐한 땅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심바가 어엿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이때 현자인 라피키가 심바를 찾아가 왕자의 신분을 잃고 방황하는 심바에게 연못에 비친 청년이 된 자기 모습을 보게 하며 아버지는 내 안에 살아계신다고 가르쳐 줍니다.

심바가 연못을 바라보며 자기의 모습을 보다가 거기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는 거죠. 그만큼 ‘심바’가 이제 성숙한 사자가 되었다는 거죠. 이때 무파사가 나타나 아들을 부릅니다. “심바”, “아빠, 너는 나를 잊고 있었구나.” 제가 언제요? 아빠 저는 아빠를 잊은 적이 없어요. 네가 누구인지를 잊은 것이 바로 나를 잊은 것이란다. 네, 내면을 보라. 넌 네. 생각보다 훨씬 더 나은 존재다. 내가 반드시 찾아야 할 왕의 자리를 회복하라. 제가 어떻게요? 이때 무파사가 중요한 말을 합니다.

“Remember who you are?” “You are my son and the one true king. Remember, remember, remember” 그러면서 무파사는 사라집니다. 소리를 너무 과하게 썼던 것 같습니다. 이때 심바는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돌아가 황폐한 프라이드랜드를 평화의 나라로 회복시켰습니다. 이제 영화 한 편 다 보셨습니다. 우리도 심바처럼 우리가 누구인지 잊고 살지는 않았을까요? ‘Remember who you are.’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싶은 말씀이 아닐까요? 그럼 어떻게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의 예수님을 통해 배우기를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우리 대학의 기숙사 건축에 서울시청 심의가 5월 6일 앞두고 있어서 오전 금식을 하다 보니까 오늘 설교가 있는데, 아침을 먹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다가 순전하게 금식하자. 그래서 안 했더니, 목이 좀 약간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5월 6일 서울시 심의 잘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를 보내시니가 나와 함께하시도다. 예수님을 보내신 성보 하나님을 말하고 있어요.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내 기쁨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기쁨을 추구하고 있다 라고 말해주고 있죠. 요한복음 8장 19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떤 상황에서 하셨을까? 이것을 알면 이 말씀의 의미가 더 심화될 수 있죠. 먼저 요한복음 8장의 전문맥인 7장 1절부터 보시겠습니다. 1절 한번 읽어주십시오. 그 후에 예수께서 요한복음 7장에 와서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매우 살벌한 분위기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5절에 보면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않고 오해하는 형이 메시아일 리 없다. 그러면서 심지어 형에게까지 비난까지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는 것이죠. 7장 25절에 보면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느낄 정도로 유대인 가운데 특별히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그 의도를 읽어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45절에 오면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이들은 사내들인 의원들이었을 겁니다.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않았느냐 라고 책임을 추궁하고 있죠. 아랫사람들의 대답을 들어보십시오.

그 사람이 예수님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잡으러 갔다가 은혜를 받은 것이죠.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을 때 이런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평양 대부분 운동 때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회개한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이 집회 장수에 왔다가 그 경찰이 회심하는 일들이 있었죠. 마치 그와 같은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죠. 오늘 찬양대가 성령이오, 임하소서. 이것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추구해야 될 가장 중요한 기도의 제목이죠. 이제 뒤에 문맥으로 갈까요? 요한봉음 8장 29절이 오늘 본문인데 59절로 가면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님을 현장에서 돌을 던져 죽이려고 하는 시도죠.

그러나 십자가의 때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숨어서 성전에서 나가셨습니다. 전후 문맥을 통해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8장 29절을 어떤 상황에서 말씀하셨는지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오해하고 죽이려는 상황 속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이 오해를 받고 나를 누군가 죽이려고 하는 상황이 되면 얼마나 사람이 위축되고 내가 본질로 붙들었던 걸 흔들릴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이 끝까지 추구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 본문이죠. 전후 문맥 사이에 있는 오늘 본문이죠. 나를 보내시니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나를 보내신 분의 내게 맡겨 주신 사명을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칭찬할 때도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십자가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 다음에 베드로를 칭찬한 다음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말하니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막습니다. 주요 그 일이 주님께는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를 지지 말라는 말을 수제자 베드라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내 뒤로 물러가라.

철저하게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 십자가의 그 길을 한순간도 잊지 않고 걸으셨던 분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을까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0장 21절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아십니까? 우리 모두는 하늘 아버지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교로부터 보냄 받아서 이 땅에 태어난 줄 믿습니다.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실수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사명을 주어 이 땅에 우리를 보내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제자훈련과 사육훈련을 통해 지상교회의 정의를 배웠습니다. 지상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동시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온전한 교회론이 못 되지요. 온전한 교회론은 세상으로 보냄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 그 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이는 지난 40여 년 동안 한결같이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사랑의 교회만의 부흥을 위해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부흥을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사랑의 수많은 평신도 지도자들은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에서, 지구촌의 구석구석에서 보냄 받은 사명을 완수하며 그 인생길을 걸어온 훌륭한 공동체입니다.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 우리는 사명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거죠.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같이 그분께서도 우리를 세상 속으로 보내고 계십니다. 가서 세상을 한 손엔 보금 들고 한 손엔 사랑을 들고 이 땅 구석구석을 누비며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는 사람이 되도록 우려를 보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책은 리처드 니브 라는 신학자의 책입니다.

리차드 니브는 우리 교단의 개혁신학과는 다른 신전통주의를 따르는 신학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분의 모든 가르침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문화에 나오는 교회의 다섯 가지 유형은 도구로써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이신 신국원 박사님도 그의 명저에서 이 다섯 가지 유형을 보여 주고 있죠. 제목의 그리스도와 문화 이 그리스도는 교회를 가리키고 문화는 사회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문화는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저렇게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서 소개해주고 있죠. 지난 2천 년 동안 교회는 다음 다섯 가지 유형의 교회가 있어 왔습니다.

첫 번째로는 사회와 대립하는 교회 유형입니다.
이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오염되지 않게 하여 담벼락을 높이 쌓아 올리고 아무런 영향도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기 때문에 침투에 들어가 어두움을 밝혀야 되고 소금이라고 했기 때문에 침투에 들어가 부패를 방지해야 되는 거죠. 첫 번째 유형은 성경 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는 사회에 속한 교회의 유형입니다.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혁명에 앞장섰던 해방, 신학 그리고 사회 복지에만 빠졌던 교회들 십자가의 복음을 도외시하고 여기에 우선권을 주었던 교회들은 수십 년이 지난 오늘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죠. 제가 대학 80학번인데, 그때 남미의 해방 신학이 엄청나게 들끓고 일어나고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다 지리멸렬될 수밖에 없었죠. 왜냐하면, 교회의 본질은 복음이기 때문에 복음을 빼놓은 그 어떤 운동도 오래갈 수 없죠. 칼 세미나가 40년을 넘도록 계속해서 줄기차게 전 세계 교회 지도자를 살리는 이유는 복음이 살아 있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로는 유형은 사회 위에 군림하는 교회입니다.
여러분께서 ‘카놋사 굴욕’이라는 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AD 1077년 1월 28일 하인리히 4세라고 하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교황을 백기해 길을 떠납니다. 왜냐하면, 교황의 정책에 반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파문을 당해버렸습니다. 그 당시에 황제가 파문된다는 얘기는 황제의 지위까지 잃어버릴 수 있는 중대 사안이었기 때문에 파문이 철회되도록 교황의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그는 황후와 함께 먼 길을 떠나 이탈리아 북부의 카노사라는 성에 도달합니다. 황제가 왔다고. 만나고 싶다고 해도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AD 1077년 1월 28일에 북 이탈리아는 눈이 대단히 많이 내렸고 매우 추운 날씨였습니다. 황제는 맨발로 수도사들이 입는 그 낡은 옷을 입고 눈밭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요청합니다. 3일 만에 문이 열렸고 교황은 그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는 다시 황제로서 역할을 할 수 있었죠. 이것이 그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입니다. 중세가 이런 시대였습니다. 교황의 권력이 황제의 권력을 넘어서는 above culture의 시대였던 것이죠. 그런데 아십니까? 그런 중세 사회에 군림하는 교회,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교회는 타락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 말은 정치, 세속 정치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교황이 세상에 권력을 능가하던 시대에 교황의 권력에 대한 말이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방법은 그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5절로 6절에 보면 그는 유다 지파의 사자, 다른 말로 하면 왕이라는 것입니다. 6절에 보면 일찍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으로 나옵니다. 초림의 주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죽임을 당한 어린 양, 십자가를 지신 어린 양이 되시므로 우리를 구원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재림의 주님은 만왕의 왕으로 온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지상의 교회는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의 교회는 초림의 주님의 방식대로 낮아지고 희생하고 십자가를 짐으로써만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세 번째 유헌도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네 번째로는 어떻게 보면 한국교회 성도가 가장 많이 취하고 있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순된 교회와 사회 Paradox를 역설 적인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모순되니 더 정확한 번역으로 느낍니다. 교회에서는 정말 좋은 성도요. 예배도 잘 드리고 봉사도 잘하지만 사회 속으로 가면 안 믿는 사람보다 더 탐욕적이고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사람, 완전히 모순이 되는 거죠. 완전히 상반된 삶의 모습이죠. 영적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와 같은 사람이죠. 낮에는 의학박사요. 왕립협회 회원인 존경받는 의사이지만 밤이면 야수처럼 돌변하는 하이드처럼 오늘의 성도들의 삶에도 이런 모습이 나타날 수 있죠. 교회에서는 존경 받는 분인데 사회 속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에 그 영광에 먹칠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네 번째 유형도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는 유형이 성경적입니다.Christ the Transformer of Culture.
사회의 변혁 자인 교회, 세상에 깊이 침투해 들어가 어두운 문화를 바꾸고 관습을 바꾸고 법을 바꾸고 사랑들의 생각을 바꾸는 사람 부패해지는 그 사회의 체계 속에 들어가 그 체계를 부패를 막는 사람들 그리고 살맛 나지 않는 세상 속에 이분이 녹아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소금을 친 음식처럼 제맛을 내는 맛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이여 산상 수온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여 이 성도가 바로 보냄 받은 제자로서의 삶을 사는 성도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이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잘못된 유교적인 관점, 잘못된 세속적인 관점 그것 때문에 고통스러운 가족들 또는 나 자신이 우리 가정의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가 임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나를 낮추고 십자가를 지는 삶 이것이 바로 제자의 삶인 것이죠. 여러분이 사업하시는 사업의 현장에서 거래처와의 관계에서 직원과의 관계에서 또 직장에서 상사와 동료와 부하 직원과의 관계에서 회사의 문화가 성경적이지 않을 때 기도하며 하나씩 하나씩 바꾸어 가는 삶 이것이 제자의 삶이요. 이것이 Transformer의 삶인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일을 하라고 보내신 줄로 믿습니다.

이런 토양이 완성될 때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힘 있게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앞으로 나오게 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추구하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본문 8장 29절의 앞 절에 나옵니다. 함께 읽어주십시오. 예수께서. 주석을 참고해 보면 인자를 둔 후에 내가 그인 줄 알고 죽음과 부활 후에 예수님이 그 여기서 그는 메시아를 가리키죠. 메시아이심을 알 것이다. 스스로 아무것도 안 하고 아버지 가르치신 대로 말한다.

예수님의 말과 행동은 철저하게 오로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뜻을 이루는 것이었다는 거죠. 그게 바로 십자가였던 것입니다. 보배로운 영 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서 부닥치는 적지 않은 권한 가운데 여러분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십니까? 왜? 하필이면 내가 이 남자를 만나서 내가 그때 커다란 실수를 했지 왜 이 여자를 좋다고 쫓아다녔을까? 그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되지 않는다면 그 남자 만나고 그 여자 만난 거 주의 인도인 줄 믿습니다. 그분이 나의 십자가임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주기철 목사님에게 주신 감동의 말씀이 이것이죠. 처음에는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가지만 나중엔 십자가가 우리를 지고 간다. 여러분의 배우자라는 십자가 잘 지고 가면 나중엔 그분이 여러분을 지고 갈 줄 믿습니다. 아멘,,, 어떤 분에게는 부모님이 십자가일 수 있고, 자녀가 십자가일 수 있죠. 그것이라고 그 만남, 그 관계를 허락하신 겁니다. 여러분이 일터에서 당하는 숱한 문제를 이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나를 이끄셨다면 이 세속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제자의 삶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 일터를 변혁시키는가를 하나님이 보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명감을 잊지 않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도는 무엇을 추구해야 합니까? 예수님처럼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 즉 사명을 추구해야 할 줄 믿습니다. 아브람 카이퍼는 담임 목사님을 통해 많이 들으신 유명한 네덜란드의 수상이요. 신학자요, 목사요, 언론인이요. 대학 총장이었던 분입니다. 얼마나 탁월했냐면 10개의 머리를 가지고 100개의 손을 가지고 일했던 분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분은 정말 방대한 저술과 그리고 언론사도 만들었던 대단한 분이죠. 1880년 화란 자유대학을 설립하며 총장 취임 연설에서 그는 영역 주권 사상을 선포했습니다. 이것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문장이 한 번쯤 들어보셨을 이 문장입니다.

우리 인간 존재의 모든 영역 가운데 단 일평방일치라도 만물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것이다. 내 것이야, 라고 외치지 않는 것은 없다. 단, 일평방일치도 그리스도의 소유가 아닌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가정과 일터도 그리스도의 소유 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분의 통치를 받기 위하여 순종하는 삶을 가정과 일터에서도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영역 주권사상을 조금 더 요약해 드린다면 절대 주권자 하나님은 인간이 사는 모든 영역의 주인이시다. 믿으시면 아멘,,,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의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국가, 교회, 가정,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교육, 과학 등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서 왕이 되시고 주가 되셔야 한다.

우리가 주인이 되면 망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다 부패한 죄성을 가지고 있어요. 목사인 척, 신학대학 총장인 척에도 죄성이 있어요. 올해로 제가 목사 안수 받은 지 39년입니다. 전도사로부터 오정현 목사님 다음에 오종호 목사님이 바톤을 이었고, 오정호 목사님 다음에 제가 바톤을 이어받았던 때가 83년도입니다. 목회를 43년 했는데도 여전히 제 안에는 죄성이 있어요. 제 맘대로 살면 망하는 길이에요. 총신대학을 이끌면서 저의 최고의 지도 제목은 하나님께서 왕이십니다. 제가 종이 되게 해. 주옵소서. 사실은 좀 더 세게 기도합니다. 종놈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야 총신대학교가 하나님 기뻐하시는 대학, 수많은 대학생들을 살리는 대학이 될 수 있는 거죠.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각 영역은 다른 영역의 권리나 자유를 간섭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라는 영역에 담임 목사님을 세우셨고, 그분에게 영역주권 그만큼의 주권을 위임하신 거죠. 학교에는 선생님들에게 교사로서의 그 주권을 허락하신 겁니다. 저는 가슴 아픈 것이 학생들이 선생님에 대하여 함부로 하는 뉴스를 볼 때, 이건 아닌데 학부형들이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학교로 달려가 선생님들을 어렵게 하는 거 이건 아닙니다. 영역 주권을 지켜야 됩니다. 그 유명한 처어칠이 차를 타고 가다가 런던 시내에서 경찰한테 걸렸습니다. 대영제국 수상이 타고 있습니다. 운전기사가 말하니까 경찰이 그렇게 말합니다. 대영제국의 수상은 교통법을 어길 리가 없습니다. 끊으셔야 됩니다.

처어칠은 교통순경의 영역주권을 인정하고 티켓을 받고, 벌금을 내죠. 이것이 여러분 영역주권이에요. 모든 영역의 하나님이 주인이신 것과 각 영역은 하나님이 부여한 권위와 주권을 가지고 있고 이것을 침해하지 않고 존중할 때 사회는 질서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역주권을 믿고 살 때 인간은 가장 인간다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패성을 이길 수 있고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는 거죠. 그러므로, 가장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고 가장 나와 우리 주변의 삶,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이죠. 남편의 영역주권이 있고, 아내의 영역주권이 있는 것이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죠. 부모님의 영역주권이 있고 자녀의 영역주권이 있죠. 존중하는 게 필요한 거죠.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주권 앞에 순종하는 종의 삶을 살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행복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앞에 순종했던 한 인물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거창고등학교를 기독교 명문학교로 일으킨 고 전영창 교장 선생님 1917년 전북 무주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가정이 매우 가난해서 중학교에 갈 수 없었으나 아버님께서 성경 교육을 아주 강력하게 시키는 믿음의 사람이셨습니다. 그 지역을 돌보시던 보이호 선교사님이 전해준 성구 암송책을 받고 전영창은 전부를 암송해버립니다. 소요리 문답까지 참고로 소유리는 중화요리와 다른 용어입니다.

중화요리는 재료 요 자를 쓰고, 소요리의 요 자는 중요할 요, 자 중요한 교리를 소라는 얘기는 작다는 게 아니라 분량이 적다는 것입니다. 대요문답은 196문항이고, 소요리 문답은 107문항이에요. 107문항으로 만든 문답식 신앙교육 교재를 소요리문답 또는 소교리문답, 쇼터케이티키즘 이렇게 부르는 것이죠. 절대로 작지 않아요. 그런데 이것을 다 외웠어요. 선교사님이 방문할 때, 선고 암송 책을 암송하고 서요리문답을 다 외우는 전용창을 보며 감동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장학금을 주어 무주에서 그 당시에 큰 도시인 전주로 신흥학교로 미션스쿨로 유학을 보내줍니다. 전주신흥학교의 교장선생님이 윌리엄 린튼 선교사님 인요한 박사의 아버님이십니다.

린턴 선교사님이 교장 선생님이 그 영창의 신앙과 성씨를 보고 일본 고베 신학교로 유학을 보냅니다. 그는 일본에서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가 후쿠오카 감옥에 들어가 1년간 수감이 되어 있던 중 로마서 전체를 영어로 암송합니다. 마태복음의 3분의 1을 암송하고, 시편의 일부를 암송하고, 영어 공부와 헬라어 공부를 다른 사람 같으면 감옥에 있는 1년을 낭비하고 허비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고 거기를 intensive한 공부하는 시간으로 만들어 버리죠. 그러다가 우리나라가 해방이 됩니다. 고국으로 돌아와 고향 무주로 갔다가 미국 유학을 꿈꾸며 서울에 올라왔는데 어떡하면 미국 유학을 갈까? 고심하던 중에 지나가던 전봇대 지나가던 길에 있는 전봇대를 보니까 광고문이 붙어있어요. 미군 군목의 통역관을 구한다.

성경을 영어로 암송했던 그분은 어느 정도 통역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인터뷰를 보니까 합격이 되었어요. 그래서 미 24군단 이하의 브라운 소령의 군목의 통역관이 되었습니다. 브라운 소령과 가까워지자 목사님 저 웨스트민스도 신학교 유학 가고 싶어요. 그랬더니, 상급 부대의 군정 참모인 패트홀드 대령 군목님을 소개해 주셔요. 백절도 대령이 영창의 얘기를 듣고 추천서를 써서 풀 스칼라십으로 피나델피에 있는 웨스트미스터 신학교에 유학을 가게 됩니다. 거기서 인연 공부를 마친 후 그는 웨스턴 신학교, 미시간주에 있는 신학교로 옮겨 공부하는데 공부가 마쳐 갈 무렵에 한국전쟁이 발발합니다. 전쟁의 난 내 조국을 위하여 그는 귀국을 서두르게 됩니다. 귀국하려는 그를 학장인 존 율더 박사가 말립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 있기 때문에 어쩌면 부산까지 밀리면 대한민국은 완전히 공산화가 될 것이다. 너는 미국 유학을 한 신학생이기 때문에 반드시 반드시 죽일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지 마라. 이때 전영창이 한 말은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미국에서 목사가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 조국 대한을 위해서 목사로서 일하기를 바라십니다. 만약 대한민국이 공산화가 된다면 나는 지하운동이라도 해서 우리나라를 되찾아야 합니다. 율도 박사는 그의 의지를 보고 허락합니다. 하나의 조건은 2주 후에 졸업식이 있으니까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가라는 것이었어요. 전영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학장님 지금 조국이 위기에 처해 있는데, 학위를 받는 것이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멸도 박사는 더 이상 말릴 수 없기에 사실 총장인 저도 어떤 개인에게 먼저 학위를 준다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인데 멸도 박사는 이사장과 의논하여 전영창에게 학위를 수여합니다. 귀국한 그는 부산 영도에서 장기려 박사, 전종희 박사 등과 함께 무료 진료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받아온 5천 달러, 여러분 1950년대 5천 달러 얼마나 큰 돈입니까? 이 돈을 가지고 의료 시설을 마련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고신대병원이 된 것입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제 전쟁이 끝나니 전영창은 다시 미국 유학을 꿈꾸고 콘콜디아 신대원 공부를 마치고 이제는 귀국길에 오르는 때였습니다. 길에 그분이 들른 곳 이곳에서 그는 그의 운명을 바꾸는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콘콜리아 신대원이 있는 데서 저 멀리 서부로 이동하게 되죠. 1956년 1월 9일 오전 10시 전영창은 오레곤주 포틀랜드시 그레이하운드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귀국 전에 이곳 그레이스 앤드루스 교회에서 설교하기로 사전에 약속되어 있었기에 그곳으로 간 것입니다. 터미널에는 크게 담임, 목사님, 사모님이 차를 몰고 마중 나왔습니다. 인사를 나누면서 보니 사모님의 표정이 무겁고 침울했습니다.

운전을 하고 가면서도 사모님은 침울한 채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전영창은 혹시 자신이 결례해서인가 싶어? 마음이 몹시 몹시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가 사모님이 입을 열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천 선생님 오늘은 매우 슬픈 날입니다. 전영창은 자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조금은 안도하며 사모님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사모님이 대답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파송한 짐 엘리엇 선교사가 에콰도르에 밀린 지대 식인종인 아오쿠아 인디어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들어가다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바로 오늘 아침에 조금 전에 전해 들었습니다. 그와 네 명의 젊은 선교사들이 그 자리에서 다 순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지멜리엇의 스토리입니다.

1956년 1월 3일 그들은 쿠라라이강 근처의 모래톱에 팜비츠라고 명명한 캠프를 설치하고 접촉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날이 처음은 아니었어요. 그들은 경비행기를 통하여 선물을 투하하며 사진을 투하하고 우리가 이렇게 여러분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여러분의 친구라는 표현으로 선물과 사진을 투하하며 방송으로 목소리까지 들려주었건만 아오카족의 전사들은 그들을 향해 오는 1월 8일에 다섯 명의 선교사들을 외부의 침입자로 간주하고 상을 들어 그들을 향해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향해 창이 날아올 때 선교사들의 허리에는 권총이 있었지만 단 한 명도 권총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권총의 사용 목적은 들짐승들로부터 선교사들의 목숨을 보호하는 것이었지.

선교지에 저 사람들에게 쏠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권총을 사용하면 어쩌면 아욱 가족은 외부의 침입자들, 외부의 방문자들을 완전히 완전히 차단하고 복음을 받아들일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그들은 권총을 쓰는 대신 창을 가슴으로 맞기를 결정한 것이죠. 그들의 젊음과 지성을 쿠라라이 강 밤빛이 해변에 강변에 묻었던 것입니다. 바로 다섯 분의 선교사가 이분들입니다. 설교를 마친 그날 밤 전용창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낯설고 물 설은 오지에 가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식인종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귀국하여 무엇을 해야 할까? 내게 하나님이 부여하신 사명은 무엇일까? 침대 곁에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서류 가방에는 대전신학대학, 지금의 한남대학의 학장인 윌리엄 린튼, 신의학계의 교장이셨던 은사 린튼 박사의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를 부학장으로 요즘의 말로 하면 부총장으로 초빙한다는 편지였습니다. 귀국하면 대학의 부학장이라는 확실한 지위와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 밤 내내 기도한 것은 짐 엘리엇과 동료 선교사들의 순교의 의미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밤 기도 중에 전영창은 결심했습니다.

모든 것이 보장된 대학보다 벽지에 가서 교육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리라. 1956년 1월 15일 오레건주 올림피아 항을 출발하여 2월 중순 부산항에 도착하여 마산에 갔다가 거창고등학교 주경중 이사장을 만납니다. 이사장은 교장 자리가 비어 있고 빚만 가득한 시골 학교이며 건물도 낡아 빗물이 새는 학교이고 전교생이 여덟 명뿐인 학교이지만 선생님을 교장 선생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1956년도에 이만한 실력과 학력을 갖춘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런데 지금 스러져 가는 학교의 교장이 되어 달라고 요청한 것이죠.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었겠죠.

그러나 그는 미국에서 기도하던 대로 벽지에 가서 교육을 통해 복음을 전하리라는 소명과 일치하는 곳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가기로 순종했습니다. 그의 순종의 결과 전교생 팔 명뿐인 무너져 가던 거창고등학교는 명문 기독고등학교로 세워졌습니다. 한국일보에 언젠가 나왔던 기사가 이 책에 실려 있습니다. 시골 학교가 대학 합격률 전국 최고의 명문고로 등장했다.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 이상이다. 이 학교는 스승과 제자가 한마음이 되어 전인교육을 위주로 공부하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일 뿐이다.

지난 금요일 저희 대학의 명예교수인 심창섭 교수님과 함께 대전 새로남교에 임직식에 방문하며 대화할 때 지금도 거창고등학교는 선생님의 60%가 거창고등학교 졸업생들이기 때문에 그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화제의 학교는 경남 거창군 거창읍 거창고등학교 거창고 강당의 뒷벽에는 거창고의 정신을 볼 수 있는 직업 선택의 십계명이 있습니다.

-업선택의십계
제1계명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제2계명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제3계명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제4계명 모든 조건이 갖추어 준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제5계명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말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제6계명.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가라.
제7계명.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제8계명.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제9계명.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 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제10계명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전영창 선생님의 정신이 살아 있죠. 아니 십자가의 정신이 살아 있죠. 우리 모두가 이 열 개의 계명을 그대로 우리가 실천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직업 시계의 정신, 개척정신, 봉사정신, 희생정신은 가질 수 있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십시오. Remember who you are!!!.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신 뜻을 오늘 이 시간 다시 한번 헤아려 보십시오. 곧 사명자로 사명을 추구하는 삶을 다시 다시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나의 이익과 탐욕을 추구하기보다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추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의교회 본당에서도 촬영되었던 ‘신의 악단’의 마지막 부분을 저는 잊을 수 없어요. 처음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던 북한 보위부 감찰국 소속의 박교순 소좌 한국군의 계급으로는 소령이죠. 그는 외화벌이를 위해서 조작된 부흥회를 보여주기 위하여 찬양단을 구성했는데 찬양을 부르다가 하나님을 만납니다.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믿던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되죠. 그는 마음이 바뀌어 나와 함께 찬양을 했던 악단을 탈출시키게 하여 압록강 쪽으로 보내고 본인만 공연장으로 가죠. 발각되어 그는 순교하게 되었는데, 마지막 장면에 박교순 소장, 박교순 소령은 하늘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저 잘했디요?” 감동이 되더군요. 우리도 죽는 날 하나님 저 잘했지요. 이 말을 남길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승리한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영 가족들이 될 때 우리를 통하여 황폐한 이 땅에 진정한 부흥이 일어나고 모두가 이 부흥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우리 이 길을 걸어가기를 주의 스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요약
우리는 일생 일로 한 번밖에 걸어갈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상 조류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 인생의 마지막에 너무도 잘못 살았다고 후회하는 인생길 걸어가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따랐던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가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우리 인생의 최고의 목표를 두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박교순 소령처럼 “하나님 저 잘했지요?” 주님께 이 말씀을 드리고 천국 가는 모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당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해야 한다.

♧기도제목
-1. 주여! 원수 된 나를 위해 친히 ‘화목제물이 되어 주신 신비한 사랑’을 부어주셨사오니, 날마다 ‘구원의 능력이 더욱 살아나는 평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2. 주여! ‘무한하신 기쁨의 빛’이 피의 복음의 세례를 받은 나의 가슴에서 터져 나오게 하사, 가면 갈수록 말로 다할 수 없는 ‘주님과의 첫사랑의 즐거움이 압도하는 수확체증의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3.사랑의교회가 그림자 헌신으로 ‘제자훈련 지도자(CAL)세미나(4.20-24)와 40주년 기쁨감사예배(4.25)’를 섬길 때, 미주, 브라질, 유럽 교회들이 ‘강력한 제자훈련 부흥의 새 차원‘으로 비상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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