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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12월 07일)-성찬식(聖餐式)
제목: "파수꾼의 중보기도"-이사야 시리즈㉛
설교제목: "파수꾼의 중보기도- The Watchmen’s Intercessory Prayer"
성경본문: 이사야 62:6~7, 64:1~2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호산나(2부)
대표기도: 이철민 장로님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

설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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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2:6~7, 64:1~2,
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이사야 64:1~2,
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2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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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만이 높임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 전능자의 그늘 아래서 보호받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눈동자로 여러분들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한 해의 마지막 12월에 종착역의 첫 주가 되었습니다. 지나간 한 해가 천천히 지나갔습니까? 아니면 빨리 지나갔습니까? 빨리 대답해 보세요. 정말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이 빨리 지나가는 인생을 향하여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 4장이 뭐라고 말씀하고 있느냐 같이 보겠습니다.

*야고보 4:14,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아멘, 오늘 아침에 안 끼었죠? 지금도 끼어 있습니까? 아마 내일 아침은 없어질 겁니다. 이처럼 인생은 빨리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 빨리 지나가는 인생들을 이와 같이, 주님 딱 이 예배당의 예배드리게 하셔서 모두로 하여금 영적으로 성공하게 하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지금 세상은 너무나 복잡한 세상이 되었어요. 이걸 전문적인 용어로 The Era of complexity. 그래서 복잡계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인공지능 이후에 얼마나 복잡한지, 나라와 시대가 이 복잡한 세상 가운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되었습니다. 격동의 시대가 되어 흔들리는 거예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후, 21세기의 테크놀로지 모두가 다 복잡성을 띠고 있어요. 나라 안팎의 사정도 쉽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있고,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에서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붙들어 메고, 거짓으로 이끄는 수많은 가짜 뉴스 꾼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미혹해서 멸망의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치 제 마음은 또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무너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셨듯이 우리 오늘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눈물로 중보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또 한 이 백성, 이 나라의 절실한 기도의 제목을 주셔 갖고, 우리의 기도 때문에 이 나라의 장래가 새로워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에게 오늘 ‘파수꾼의 중보 기도의 능력’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해석을 하면 62장 6절에 뭐라고 나와 있느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시대는 정말 파수꾼의 중부 기도가 절실한 시대가 되었는데 뭐라고 말씀하고 있느냐?

I. 첫째, 기도하는 파수꾼이 없으면 희망이 없다.

*이사야 62: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62장 6절에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뭘 세웠다고요? 무슨 말이냐? 파수꾼이 잠을 포기하고 성벽의 파수꾼이 뭘 합니까? 깨어 있었어. 밤을 지새우면서 어둠 속에 다가오는 위험이나 적의 침입이 없는지 살피며 지키는 사람들이 파수꾼입니다. 불침번(不寢番)입니다. 옛날 군대에서는 동초(動哨)라, 추운 겨울에 불침번, 파수꾼이 깨어 있는 것이 파수꾼의 사명인데, 그래서 일반적으로 민족이나 공동체나 가정에 위협을 느낄 때, 가장 먼저 감지하고 신호를 보내는 자가 파수꾼입니다. 물론 엉터리 파수꾼도 있습니다. 앞에 이사야 56장 10절에 뭐로 말씀하고 있느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56:10,
10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뭐예요? 맹인이요. 다 무지하여 벙어리 개들이라고 그랬어요. 직무유기하는 파수꾼들, 엉터리 파수꾼들이 있었어요. 참된 파수꾼은 잠을 포기하고 잠포깨사 아십니까? 잠을 포기하고 깨어서 사는 사람들, 반응도 안 하시고 그런데 6절에 보니까 뭐라고 하면 예루살렘이여,

*이사야 62:6,
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라고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에 파수권을 세울 거다. 예루살렘은 예루살렘도 말하지만, 구원의 계시사, 전체 계시의 해석으로 볼 때는 하나님의 공동체, 하나님의 백성들이여, 이렇게도 무리가 없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도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영적인 성벽 위로 우리를 시대의 파수꾼으로, 기도의 파수꾼으로 부르신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 성벽 위에 오늘 이 시대의 성벽 위에 이 복잡계의 시대 위에 우리는 파수꾼이요. 기도의 불침번이 되야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심지어 6절 뒷부분에 파수꾼을 가리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이사야 62:6,
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너희로 하여금 주야로 잠잠하게 하지 않게 하셨는데, 너희로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이 되라 그랬어요. 전능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어버리는 법이 없으시지만 파수꾼은 마치 하나님께 상기시키듯이 그분의 약속과 언약을 붙들고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과 어려움을 간절하게 이루며 간구하는 사명자다. 그 뜻이에요. 하나님의 아버지가 아시지만 자식이 아버지께 요청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갈 때가 많아요. 오늘도 누가 그래 자기가 자녀가 없는데, 조카를 너무 사랑하는데 이 조카가 이 삼촌에게 구하지를 않는 거야. 그러니까 삼촌도 알았다. 하고 아무것도 안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다 아시지만 정말 하나님께 파수꾼의 사명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것이에요. 심지어 이 파수꾼 불침번의 사명은 뭐냐? 6절 7절에,

*이사야 62:6~7
..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아주 이중적인 끈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는 파수꾼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시고, 세상이 그분을 찬송하게 되는 그날까지 무너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복되고, 열방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그날까지, 쉬지 말고 앞장서서 기도하는 끈기를 가지라.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 언약을 붙잡고 간구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도록, 말 그대로 쉬지 못하게 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어떻게 하라 이런 뜻이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서 저희들이 젊을 때, 청년일 때에 하나님을 바쁘시게 하자. 우리가 간절히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계속 응답하시는 그런 역사의 코어, 그 역사의 핵심 역할을 감당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여러분 모두가 다 파수꾼의 불침번의 기도를 통하여 이민족을 보호하시고 살리시는 그런 역할을 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사랑의 교회는 초창기 때부터 300기도 선봉대가 있었어요. ‘300기선대’라고 그랬고 조금 더 이제 새벽에 화요일 아침마다 모였었는데 조금 더 올라갔고 ‘700기도 선봉대’. 그리고 지금은 토요비전새벽예배 때마다 ‘7천 기도 선봉대’ ‘7천 기도 용사’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 주일날 수만 명이 모입니다만. 이제 우리가 또 우리 한국 교회를 위하여 7만 기도 선봉대, 7만 기도의 파수꾼이 되면 어떨까요? 그 정도 해가 되겠습니까? 7만 중보 기도의 불침번이 되면 어떨까요? 한번 더 7만 기도 중보 기도팀이 되면 어떨까요? 오늘 이 좋습니다....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놀라운 능력으로 여러분들의 생애를 새롭게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찬식을 앞에 놓고, 기도하는 파수꾼이 없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 모두 간절한 기도의 장소, 우리에게 주신 사명의 성벽에 올라가 가지고, 동터 오는 아침을 기다리는 기도의 파수꾼이 돼야 합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이 얼마나, 밤새워 추위에 떨면서 파수하던 그 사람이 아침에 햇볕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간절합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파수꾼의 기도를 해야 되는데, 오늘 이사야 63장 15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63:15,
15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이것은 땅에서 위를 향해 올려드리는 기도의 부르짖음인데, 하늘을 보좌해서 이 땅을 굽어보시고 응답해 주시기를 강 청하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64장 오늘 뒤에 7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느냐 하면,,,

*이사야 64:7,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기도하는 자가 없다. 이 말입니다. 앞 예배에 많은 분들이 아!!~~ 저한테 문자로 목사님 제가 기도한다고 하지만 정말 절박한 중보기도를 요즘 포기하고 살았는데 정신이 번쩍 듭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도 많이 없는 것이 사실이야. 주의 이름을 부른다. 주의 이름을 붙잡는다는 것은 절박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하는 사람이 약하다. 기도해야 할 우리가 기도를 멈춰버렸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종종 기도를 멈추고 기도하기를 원하지 않고 심지어 무엇을 위해 기도할지도 모르는 연약한 자들이에요. 그러나 파수꾼이 깨어서 나팔을 불어야 할 때, 침묵하면 파수꾼에 깨어서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않으면 그것은 직무유기(職務遺棄)요. 그것은 배신(背信)이요. 파수꾼이 파수꾼 역할을 못하면, 나라를 누란(累卵)의 위기에 빠뜨리는 것이오, 지금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기도의 파수꾼이 역할을 안 하면 이민족은 희망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계 곳곳에서 지금 박해(迫害)를 받고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 수감(收監)되어 있는 수많은 지하교의 성도들을 생각해 보세요. 매일 같이 고문당하고 매일 같이 박해당하고 있어요. 그런 형편을 보면 오늘 이 파수꾼의 중보 기도의 역할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어요. 지금도 중동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에게 박해 받는 사람들 생각해 보십시오. 직장 잃어버리고 공동체에 쫓겨나고 그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돼요. 국가적으로 대한민국을 겁박하는 여러 세력들, 북한이나 러시아나 중국 같은 세력들이 지금 중국도 중국의 가정교회, 지하교회, 많은 핍박을 받고 있어요. 그런 세력들이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주님 앞에 떨게 하여 주십시오. 산을 가르고 땅을 흔드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중보기도의 선봉장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여러분 성경에서 대표적인 중보 기도자가 누굽니까?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신이 기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중보기도자들은 파수꾼의 중보기도 역할하는 사람들은 성령님을 따라서 어두운 세상을 하여, 길 잃은 사람들을 위하여, 고통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온몸을 다 기도하는 그래서 이런 점에서 우리 파수꾼의 중복이기도 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탄식에 늘 호흡을 맞추는 사람들이에요. 여러분들과 저는 오늘 이 예배를 마무리하면서 특별히 성찬식에 참여하면서, 성령님의 탄식에 호흡을 맞추는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들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로 소돔이 멸망 중에 모세 가족이 살았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하여 이스라엘 전체 민족이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고 살게 되었습니다. 에스더의 금식중보기도를 통하여 유다 민족이 그 절박한 그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이런 기도를 통하여 이 나라를 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는 한 도시를 위하여 중보기도 할 것을 명령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어떤 구절입니까? 10편, 120편, 6절에 보니까 다 같이 보겠습니다.

*시편 122:6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예루 삶을 위하여 뭘 하라고요? 평안을 구하라, 중보기도하라 이 말이에요. 이 구절을 지금 오늘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서울을 위하여 내가 사는 도시, 대구, 부산, 광주, 대전을 위하여, 전주를 위하여 그 도시의 평안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라. 는 뜻이에요. 그리하면 그 중보기도를 통하여 오늘 이 서울이 샬롬의 평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통함으로 서울을 위하여, 이민족을 위하여, 내가 사는 도시를 위하여 중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우면동에 살거든요. 소가 누워있는 곳입니다. 우면동에 사는데 우면동에서 올 때, 제가 서리풀 터널을 지나옵니다. 터널 지나올 때마다 제가 뭘 기도하는지 압니까? 하나님 대한민국의 예술의 전당, 저 밑에서 저 국립국악원까지 이건 전 세계 없는 예술센터인데 이 예술센터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술을 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 마음으로 제가 지나온 거예요. 오늘도 아침에 오는데 ‘서초는 살기 좋은 곳입니다’. 뭐 그래 놨더라고요. 그런데 하나님이 서초를 지켜주십시오. 그게 바로 예루살렘을 위하여 기도하는 마음이에요. 지금 우리가 용인, 수지에 사신 분들은 거기서 이렇게 쭉 올라오시면서 나라를 위하여 기도해야 되는 것이 용인 수지쪽,,,.

우리가 의정부에 사시는 분들은 의정부에서 내려오시면서 교회 오시면서 강북 쪽부터 이쪽을 향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 서울이 평안하게 될 것입니다. 인천에서 오신 분들은 인천에서 들어오면서 저 서쪽에서 들어오시면서, 우리는 심지어 원주에서 오신 분들이 계세요. 원주에서 이렇게 쭉 들어오시면서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그 지역을 덕평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덕평 유원지는 국밥이 맛있는 곳입니다. 이게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지만 정말 우리가 사는 곳을 위하여, 중보기도가 될 여러분들 때문에 이 민족이 보호가 되는 것이에요. 성찬을 앞에 놓고 이 사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여러분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오시면서 그런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이 우리도 모르게 이민족을 보호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러면 오늘 구체적으로 성찬을 앞에 놓고, 중보 기도하는 사람이 없으면 이 민족의 희망이 없는데, 그럼 어떤 중보 기도를 해야 되나? 두 가지 기도 질문을 드리겠어요? 몇 가지예요? 두 가지, 첫째. 63장 16절 보니까 뭐라고 나와? 이렇게 나와 있어요. 같이 보겠습니다.

II. 우리가 기도해야 할 특별한 중보기도 제목 두 가지.

*이사야 63: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그러니까 첫 번째 도적은 뭐냐 하면요. 모든 상황에서 주님 우리 아버지가 되어 주십시오.

첫째, 주여, 모든 상황에서 우리 아버지가 되어 주십시오.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다시 말씀 보니까 아브라함도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도 우리를 인정하자 이 무슨 뜻이에요? 믿음의 조상이 아브라함이에요. 그리고 이스라엘은 지금 야곱을 얘기하는 것이에요. 언약 적으로 제일 많은 성경에 많은 창세기의 어떤 부분을 가지고 우리 믿음의 조상이 되는 이유를 다 설명하고 있는데, 심지어 아브라함도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 야곱도 우리를 인정하지 이방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호외여, 주님은 우리 아버지시라. 주님은 오늘 예배 오신 여러분들의 아버지시라. 놀라운 선포를 하고 있는 것이에요.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심지어 아버지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셨어요.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의 유명한 중보기도가 나와요. 그 유명한 중보기도 예수님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거룩하신 아버지, 의로우신 아버지 하면서 거기에 여러 번 최소한 6번 이상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우리도 중보기도할 때 어떨 때는 기도의 제목이 안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아버지 이름을 최소한 6번 이상 부르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찬 시작하면서 우리가 기도할 터인데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북한에서 오신 분들은 아바지, 이렇게 하면서 하여튼 우리가 아버지이심을 기억하며 그럴 때 우리에게 중보기도의 사명을 잘 감당할 힘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누구 아버지예요? 우리 아버지라 우리라는 말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만약 주기도문이 나의 아버지로만 시작됐다면 우리는 공동체를 위한 중보기도, 형제자매를 위한 중보기도, 이웃을 위한 중보기도, 아마 제한될 수가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뭐라고요? 우리 아버지라 우리 아버지, 이것이 우리가 형제, 이웃 공동체를 위한 중복이라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가지고 주님 앞에 기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에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뭘 주셨으니 권세를 주셨다고 그랬어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계속 기도하는 또 하나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사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것이에요. 그 권세를 가지고 기도할 때 강력한 중고 기도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에 우리가 영적 가족을 위하여 다른 지체를 위하여 이민족을 위하여 중부 기도할 때에, 다른 영혼을 품는 중부 기도자로서 시도를 위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하늘을 가르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하나님의 권위는 억압이 아니라 돌봄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통신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비로운 손길이 됨을 믿고 준보기도 하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아버지께 기도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다시요.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때,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 있으며 다른 지체를 위해서 중보기도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아버지의 자비와 긍휼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또 하나 성찬식 기도할 때 무슨 기도를 해야 할 것인가? 64장 1절,

*이사야 64:1,
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둘째, 주여,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옵소서.
-원하건 대추는 하늘을 가리고 강림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중요한 기도의 제목입니다. 주여 오늘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여 주십시오. 이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수많은 현실의 난제와 벽 앞에서 현실의 모든 난제와 벽을 돌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초월적 개입을 기도하는 것이에요. 현실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초월적 개입을 강 청하는 중보 기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황폐한 예루살렘을 주여, 굽어 살펴 보아 주십시오. 구체적으로 1절과 2절의,

이사야 64:1~2,
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2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하늘을 가리고 강림하셔서 산들을 진동하게 하시고 소위 열방들이 벌벌 떨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인이 멸망하고 원수가 도망가는 모습을 보게 하시고 탄원한 통렬한 간구가 오늘 이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날마다 쪼달리고 우리가 날마다 압박당하고 힘든 거 있지만, 이런 기도를 할 때 어떻게 한 번씩 하나님 우리에게 속이 시원하게 해 주실 거예요. 감정적으로 제가 격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라를 생각하고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민족을 향한 애통의 눈물이 있는 사람이 이런 탄원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우리가 보이지 않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어려움, 수많은 보이지 않는 세력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초월적 개입을 해 주실 것입니다. 서울적 개입의 예가 무엇입니까? 지난 한 달 전에 제가 말씀을 드렸죠. 빌리그래엄 목사님이 6.25일이 일어난 다음에 하루 만에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은 그리스도인들이 많기 때문에 반드시 형제들이 있는 그 나라를 도와야 됩니다. 그게 바로 강력한 중보기도예요. 역사상에 없는 며칠 만에 미군들이 유엔군과 함께 들어오게 된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게 너무나 놀라운 중보기도에요. 사도행전 12장 5절에 보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심한 핍박을 받고, 사도 야고보는 칼에 맞아 죽고, 베드로는 옥에 갇혔어요. 현실이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에요. 그럴 때 사동이자 12장 5절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사도행전 12:5,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같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잘 아시는 대로 이와 같이 나와 있어요.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야고보는 칼에 순교를 당하고 그러나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옥문이 열리고, 베드로의 옥문이 열리고, 기가 막힌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졌어요. 여러분, 우리를 답답하게 얽어 먹이는 옥문과 같은 옥과 같은 감옥과 같은 지금 답답함과 어려움과 힘든 거 있을 때, 초월적 하나님의 개입을 통하여, 그 옥문이 열리기를 바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의 수많은 고집과 수많아 이런 것들이 다 하나님이 초월적 개입이 하늘을 가르치고 이만한 은혜를 통하여 그 감옥의 역사가 풀리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에 참여하면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의 긍휼과 함께 초월적 개입을 구하는 주무들을 통하여 산들이 진동하고, 기도에 불이 활활 솟아올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드리면, 그게 되겠나?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 있을지 몰라요. 그런 분들 기억하세요. 우리가 세상이 너무 압도되어 가지고 자신감도 없고 짓눌려 있을 때,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런 기도를 통하여 하늘을 가리시고 내려오셔서 위험과 능력과 권세를 보여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원수들이 벌벌 떨며 도망가게 하시는 주님이 될 것입니다. 강력한 중보기도는 사탄의 꼬리를 사탄이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벌벌 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수들이 벌벌 떨도록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기도하는 대로 반포대로의 이 하늘 문을 여시고 하늘을 가르시고 주님 임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하늘을 가르고 임하는 이 기도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에요. 오늘 1절과 2절에 있는 그 내용은 그냥 이사야에 갑자기 것이 아니라, 출애굽기 19장 18절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출애굽기 19:18,
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그리고 오늘 64장 1절, 2절이 동일한 것이에요. 재현되는 것이에요. 시내 산 위에 우레와 번개와 구름과 연기가 빽빽하고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서 강림하셨을 때, 온 땅이 진동해서 백성들이 거룩한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 이미지가 오늘 불처럼 지진처럼 하늘을 가르시고 이사야가 다시 간구하는 것이고, 그 은혜를 오늘 우리도 같이 간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12월 오늘 한 해 종착 능력의 이 달에 우리가 기도하오니, 주님 하늘을 가르시고 하늘을 찢고 내려오셔서 주의 능력으로 개입하시고, 이 세상 역사 속으로 들어오셔 가지고 주의 이름을 선포하여 주옵소서. 인간의 힘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이 어둠의 시대에 이사야 시대도 똑같이 어두웠습니다. 낮과 눈을 펼칠 수 없는 시대에 주여, 하늘을 가르시고 임하셔서 초월적 개입을 통하여 오늘 이민족의 수많은 난제들이 해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우리는 하늘을 가르고 임할 때의 두려움에 떨었어요. 사람들이 64장 1절에 하늘을 가르시고 강림하시는 그 기도 두려움에 떨었어요. 64장 2절에 뭐라고 했냐?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신약적 성취는 언제 일어납니까? 예수님 부활하실 때에 로마 군인들이 그 무덤 앞에서 벌벌 떨어 죽은 자같이 되었어요. 마태복음 28장 4절을 보니까 뭐라고 하느냐?

*마태복음 28:4,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할렐루야,, 원수들이 죽은 자같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기도가 강력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대한민국의 역사를 새롭게 펼쳐 주시옵시고, 주위의 하늘을 가리고 강림하여 주옵소서 원수들을 멸하시고 주의 공의를 가지고 이 땅을 고쳐 주시고, 특별히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기도하는 자녀의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요. 아버지요. 그리고 하늘을 가르고 임하여 주옵소서. 그럴 때 여러분 초랑교회에서 기도할 때, 잘 아시는 대로 육이오 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인천상륙작전의 기적을 주셨습니다. 이 민족의 특별히 지금 이 시대에,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은해의 인천상륙작전을 성찬을 통하여 경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찬송하십시다. ♬~ 우리 함께 기도해,, 주 앞에 나와 무릎 꿇고 금요일 베푸시는 주 하늘을 향하여 두 손 들고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빛줄기 이딴 그릇 내려주십시오. 찬양하면서 성찬을 준비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해,,, 성찬 위원들은 정의 취해 주세요. ♬~ 주 앞에 나와 무릎 꿇고 하늘을 향하여 두 손 들고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빛줄기 이 땅 가득 내리도록 마침내 내주 오셔서 의의 빛줄기, 우리 교회 부으시도록~~~

♣요약
오늘 성찬을 통하여 중보기도의 파수꾼으로 우리가 무장될 수 있도록 우리가 겸손하게 납작 엎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초월적 개입을 통하여 이민족과 우리 가정과 이 교회에 임하실 줄로 믿어야 한다. 하늘의 불을 경험하는 성찬식이 되기를 바란다.
-주님께서 우리를 진리가 무너지는 시대의 파수꾼-불침번으로 부르셨사오니 성령님의 탄식에 '같은 호흡으로' 절박하고 충성스럽게 깨어 기도하고, 성찬 앞에서 우리 아버지께 내가 사는 도시와 민족을 위해 강력한 중보기도의 불씨가 될 때, 하늘을 가르시고 초월적 개입으로 임재하사 가정과 일터와 나라의 모든 감옥 문을 열어 주실 것을 확신하며, 사랑의교회와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가` WEA서울선언'(The SeoulDeclaration)을 기도 제목으로 더욱 붙들고 눈물로 기도할 때, '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보호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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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11월 30일)
설교제목: 새롭게 된 신비( Renewed Mystery)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5:14-19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오규현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고린도후서 5:14-19,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ㅡㅡㅡㅡㅡ
 
▶한 해도 거르지 아니하고 계속 세례식을 거행하고 많은 분들에게 세례를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께 주신 큰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사랑의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가 계속 세례 받는 숫자가 많아지므로 말미암아 이 시대의 유일한 소망이 교회임이 확인될 수 있도록 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세례는 무슨 교회 전통이나 어떤 뭐 이런 누구의 주장이 아닙니다. 세례는 제가 세례할 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명령을 순종하여 이렇게 그러니까 여러분 지난 주일날 우리가 뭐뭐 라고 쓰고 뭐뭐 라고 읽는다. 기억나시죠? 가족이라고 쓰고, 축복이라고 읽고, 아내라고 쓰고 은혜라고 읽는다.
 
뭐 좀 아는 분도 있지만 하여튼 그런데 오늘 우리는 세례라고 쓰고, 주님의 명령이라고 읽는다. 세례라고 쓰고 순종의 첫 단계라고 읽는다. 그래서 세례에 대해서 우리가 순종하는 거예요. 주님의 뭐에 대해서요? 명령에 대해서 순종하는 것이에요. 다시요. 세례는 어떤 교회 역사적인 전통뿐만이 아니에요. 또 세례는 어떤 누가 주장하는 것 정도가 아니에요. 주장해서 예수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에 지키는 거예요. 한 번 더 세례라고 쓰고, 뭐라고 읽는다고요? 순종이라고 읽는다. 했는데 순종. 그래서 여러분 세례받을 때가 되었는데도 세례를 안 받고 고의적으로 계속 받지 않으면 주님의 명령을 불순종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세례 받는 것이 주님의 명령 순종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일반 우리 교우들도 오늘 다시 한번 확인하고, 오늘 특별히 세례 학습 받는 분들은 말로도 할 수 없고 더더구나. 오늘 이 세례 받으면서 우리가 고린도후서 5장 17절 잘 아는 말씀이에요.
 
*고린도후서 5:17,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뭐라고 그랬어요? 피조물이 되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새 사람이 되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새로움에 대한 신비가 있는데, 그 미스터리가 뭔가? 그걸 제가 두 가지만 오늘 세례식 때문에 제가 짧게 말씀을 전할 텐데, 첫 번째는 오늘 14절에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어떤 신비인가? 함께 보죠.
 
*고린도후서 5:14a,
14a 그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음. 즉 그 다음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해 대신해 죽었다는 말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 피 흘려 십자가 죽으셨다 그 말이에요.
 
그런데 그 결과로 우리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이 모든 사람은 뭐냐 하면 이미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을 통칭하는 거예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아니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뭐 한 것이라. 죽은 것이라. 첫 번째 신비는 뭐냐 하면 예자가 죽은 신비다.
 
I. 첫 번째, 옛 자아가 죽은 것이다.
-저와 여러분들은 옛 자아가 뭐예요? 죽었다. 옛 사람이 죽어. 장사 지낸 바가 되었다. 다시 여기에 모든 사람은 구원받은 성도를 지칭하는 건데, 그러니까 옛 자아가 죽었다. 이 무슨 뜻인가 하면 다시 살아날 수가 없다. 오죽하면 갈라디아서 5장을 보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죽었다. 옛 자아 가지고 다시 다시 살아날 수 없다. 그러니까 이 포인트는 뭐냐 하면 마귀가 아무리 나 옛 자아를 충동질하고 자극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거기에 반응할 필요가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의 자아가 죽었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세례식을 할 때마다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옛 자 옛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장례식을 합니다. 장례식. 장례식을 치러야 되고, 아니 치룬 거예요. 그래서 오늘 세례받는 분들뿐만 아니라 이미 예수님들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예 자아가 뭐예요? 죽었다. 예 자아가 펄펄 살아있으면 안 된다. 옛날에는 열 받으면 밥상을 엎어버렸는데,,, 해요. 해도 돼요? 안 해 안 해도 돼요. 그런데 일설에 의하면 누가 밥상을 엎었다는 말도 들려요. 그래서 옛 자아가 아직 덜 죽은 거죠. 그건 뭔가 something wrong이에요. 뭔가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옛 자아가 죽었다는 말은 내 중심에 세상이 무너졌다는 뜻이에요.
 
이거 어떡하냐? 여러분 다시요. 오목사도, 오목사의 중심의 세상이 무너지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세례받고 주님 앞에 새롭게 된 큰 신비 중에 하나가 우리의 자아가 죽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 은혜 주셔가지고, 옛 자아가 죽는 거룩한 장례식의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세례식, 이꼴 옛자아의 장례식, 옛자아의 장례식, 자 그런데 질문이 있어요.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자아의 죽음이 우리에게 일어난 실제적인 사건인데 왜 많은 성도들이 그 죽음을 실제적으로 경험하지 못하고 자아가 펄펄 살까?
 
그 이유는 옛 사람, 옛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죄의 습관, 죄의 그림자, 죄의 잔상이 여전히 내 속에 남아 있어요. 그러니까 옛 자아가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다니는 거예요. 시내 산의 율법을 받았지만 애굽의 노예 습관이 남아있는 거예요. 그래서 옛 자아는 실제로 죽은 줄 믿습니다. 반응이 좀 봐요. 옛 자아는 실제로 죽은 줄 믿습니다. 사건 자체는 끝났어요. 죽음의 사건은 끝났어요. 그런데 이 잔상과 그림자가 옛 습관에 남아 있어 가지고 우리 옛 자가 죽었지만 바울 사도는 로마서 8장 13절에 뭐라고 했냐,
 
*로마서 8:13,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로마 교회는 이미 복음을 들은 교회예요. 이미 옛 자아가 죽은 교회예요. 그런데도 몸의 행실을 죽이라. 무슨 말입니까? 죽었는데 또 죽이라는 거예요. 옛 자아가 죽었는데 또 죽으라는 거예요. 특별히 고린도 교회는 심각했어요. 육체의 본성이 심각했고, 파당이 심하고 아주 그냥 자아가 살아있는 교인들이 많았어요. 옛 자아의 사고 패턴, 옛 자아의 습관 이런 것이 우리 몸에 남아있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좀 어렵게 말을 하면 옛 자아의 존재론적으로는 죽었지만, 기능적으로는 살아 가지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옛 자아의 잔상과 그림자가 우리를 따라다니는데 이 그림자를 처리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 사도는 어떻게 처리를 해야 되나, 그게 늘 고민이었고 바울 사도는 오죽하면 날마다 죽는다고 그랬어요. 날마다,,, 부담되시죠. 그래서 예수님은 누가 먹고자 하면 뭐라고 그러냐?
 
나를 따라 그러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다. 이야, 우리가 지금 아멘 하는데 이 아멘 이 보통 아멘, 이 아니 오늘 이 세례 받는 분들이 이게 보통 일이 아니 그러니까 죽었는데 또 죽어야 되는 거예요.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day by day, 심지어 제가 그 옛날에 사역하면서 제 사역 서재에다가 우리 교회 신문이 우리 지가 있는데, 우리 지에다 글을 쓰면요. 그 뭘 패를 하나 주는데 패가 뭐냐면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거야. 패를 딱 걸어놨는데 어떤 원로 목사님이 저한테 오시더니, 오목사 오목사는 날마다 죽나? 나는 매 시간 죽는다. Day by day가 아니라 Our by our, 날마다 죽는다. 날마다 죽었는데 또 죽어야 된다.
 
우리 속에 있는 죄의 잔재, 죄의 습관, 죄의 그림자를 날마다 죽여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이게 매일 매일이 전쟁이고 매일 매일이 선택이고 매일 매일이 결단이고 이거 억지로 되겠습니까? 자 봐요. 이게 내 힘으로 되겠냐고 그러니까 이게요. 날마다 죽는 이게 우리 그림자라고 그랬어요. 이 그림자는 어두울 때 빛이 어두울 때 어두운 그림자가 생기잖아요. 그러니까 빛이 환해지면 그림자가 남아있다. 사라진다. 사라지는 거예요. 빛이 오면 사라지는 거예요. 옛 자아의 습성과 잔상과 그림자를 죽이려 하는데 이게 매일 전쟁이지만 빛이 오면 빛을 비추면 빛을 비추면, 빛을 비추는 게 뭐냐? 예수 그리스도에 빛을 비추면 그 그림자가 사라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빛 되신 주 어둠을 해칠 수 있도록.
 
그리고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고 나의 생명이 되신 줄 찬양하면서 내 구주 예술을 더욱 사랑 찬양하면서 아침에 일어나고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고 저는 주님 오늘도 이 날을 인도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이날 영광스러운 주일 예배, 아니 매일 매일이 주님 앞에 감사하는 날이 되게 하시고, 저의 약점은 주님 가리워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주기도문에 있는 기도처럼 그런 기도를 하면서 매일매일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고 매일매일 주님의 인도를 구하고 자기 전에 오늘도 인도해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면 주님이 빛을 비춰주시면 죄의 잔상이 물러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우리의 옛 자아가 죽는다. 하는 이 말이 부담만 되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부담만 되는 말이 아니라 감사가 되는데 이게 뭐냐면 내 자아가 죽으면 우리가 참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에요.
 
우리가 자아가 죽으면 참 자유를 누리게 되는 이유가 뭐냐 하면 자아가 살아 있을 때는 늘 그 자아를 통해서 죄의 본성, 자기 욕망, 자기 체면, 자기 영광, 자기 계획, 자기 불안이 끊임없이 우리를 묶고 얽매이게 한대요. 늘 긴장이 있는 것이죠. 자유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자아를 죽이면 참 자유가 생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어디 가가지고 누가 날 안 알아주고 그러면 속에 열불이 나고 왜 나를 안 알아주나? 이렇게 생각하고 시험 들고 답답한데 물론 그런 데를 가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 데 가서 시험 들게 그 지혜가 있으면 안 가지만, 그러나 사람이 살다 보면 우리가 어떻게 보면 대우를 제대로 못 받고 힘들 때가 있지 않겠어요? 그때 내 자아가 막 살아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자아가 죽으면 그런 게 상관이 없는 거예요. 상관이 없고 내 그 그림자가 사라지기 시작하면 자유를 얻게 되는 거예요.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는 그분이 나에게 빛이 되시기 때문에 이게 해결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 얼굴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다시요. 자아가 죽으면 자유가 우리에게 허락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삶의 징크스, 미신, 뭐 이런 것들이 우리를 얽매이는 것들부터 완전히 자유함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서, 요한복음 8장 36절에 뭐라고 이런 말씀을 시작.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아등바등하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자유함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수영하지 못하는 사람. 물에 빠뜨려 놓으면 막 살아보려고 난리 치잖아요. 막 힘을 쓰고 그러면 더 가라앉아서. 그런데 수영 좀 하는 분들은 자유로워요. 왜? 물에다가 몸을 딱 맡기고 있잖아요. 뜨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으로 자유함을 얻으면, 미신 징크스 있잖아요. 축구 선수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면도를 하지 않아야 골이 들어간다나 그런 면도도 안 하고 나가고 머리도 터부룩 하고, 어떤 사람은 입었던 옷을 입어야 되고 어떤 사람은 이런 온갖 징크스가 있잖아요. 그런것을 It's no problem. 완전히 free from all of my burden. 모든 짐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이에요.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군사들 가운데서 점집에 많이 간다는 사람들 정신 차려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모든 점집으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모든 미신으로 자유하게 되고, 모든 징크스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어디를 다녀도 두렵지 아니하고 소위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 만나도 끄떡도 하지 아니하고 성령이 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주는 자유함인 것이에요.
 
죽었지만 또 죽여야 되는데 그런데 또 죽이면 하나님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게 놀라운 신비예요. 오늘 이 신비가 세례받는 분들, 학습 받는 분들 그리고 오늘 이 신비가 오늘 모든 성도들에게 체험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신비는 뭐냐? 15절에 15절에 뭐라 나오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시작.
 
*고린도후서 5:15,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아멘 너무나무 놀라 죽었는데 또 죽으라고 그러셨는데 이제는 또 살아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어떻게? 나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나를 위하여 죽으신 그분을 위하여 살아라가 말이에요. 인생의 목표가 달라지는 거예요. 신비한 게 뭐냐 하면 오늘 두 번째 신비는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갖는 신비가 있는 거예요. 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갖게 하는 것이에요.
 
II. 두 번째, 새로운 인생 목표를 갖는 신비이다.
 
-공부를 해도 이전에 하던 공부하고 달라요. 사업을 해도 이전에 하던 사업과 달라요. 사업의 목표가 달라진 것이에요. 나를 위한 사람, 자기중심의 사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위한 사업을 하게 하여 주십시오. 새로운 인생 목표가 선명하게 새로운 삶의 목표를 갖게 되는 놀라운 신비가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에서 그래서 죽음과 부활이라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영광이라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자아를 죽고 이렇게 할 때 그 신비가 있지만 부활의 영광을 통하여 내 인생의 새로운 삶의 목표가 새롭게 부활이 되는 것이에요. 모든 사람은 허무에 치를 떨게 되어 있어요. 나이 60, 70, 80 가면 심지어 예수 믿는 분들도 허무하다고 그래요. 그렇지 않아요.
 
예수 믿는 분들은 주님 오매불망 사모하는 그 주님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우리의 삶의 순간순간 남자는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나 혼자 있든 상관이 없이, 예수님을 위하여 살겠다는 삶의 새로운 목표가 생기면 나이가 들어 아파도 새로운 목표가 있는 것이에요. 삶의 허무에 피를 떨 때도 새로운 목표가 있는 것이에요. 대한민국에서 제일 돈 많았던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님 회장도 그가 말년에 너무너무 삶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거야. 그래서 삶에 대한 의문 24가지를 가지고 이거 어떻게 하면 좋으냐, 어떤 도움을 구하고 그러는데 여러분 이거 확실하면요.
 
새로운 삶의 목표가 확실하기 때문에, 삶의 허무에 대해서 우리가 치를 떨지 아니하고, 삶의 허무에 대해서 우리가 정리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사람은 누구나 이기주의의 삶을 살게 되어 있지만, 이 은혜를 받으면 주님을 중심으로 한 이 주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주님을 위해 이렇게 사는 사람의 특징이 있어요. 순종과 헌신이 부담이 아니고 기쁘고 감사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이런 말이 있어요. 능력이 있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순종하다 보면 능력을 주시는 것이에요. 이게 새로운 삶의 목표를 가진 삶의 신비한 것이에요.
 
한 번 더 능력이 있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자에게 뭘 주신다고요? 우리가 오늘 자격이 있어서 세례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 말씀에 의해서 세례받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에요. 삶의 목표가 달라지고 스타일이 달라지는 거예요.
 
지난 주간에 제가 11월 달이 되면 우리 교회 이제 순장반 임원단들하고 제가 교제하는 시간이 있어요. 점심을 같이 하는데 새롭게 될 임원단들 또 전에 임원 한 20여 명 같이 교제를 하는데, 아 이 순장 임원단들이 어떻게 은혜를 받고 또 삶의 목표가 어떻게 달라지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고 쭉 얘기를 하는데 지난 우리 10월 인생 10월 참 고생 많이 했잖아요. 순장만 임원도 안 되는 앞장서서 수고하고 아침 6시, 7시부터 나왔고 고생을 해도 특별히 세계복음연맹 총회할 때 전략 투구를 했어요. 놀랍게 그래서 그 투골하면서 고생을 하는데 목사님이 영적 전우회가 생겼습니다.
 
영천우회 지체들끼리 더 사랑하고 기뻐하는 공동체가 된 것 같다고 육신은 힘들지만 영적으로는 살려주셨다고 그리고 선비다 보니까 믿음의 그릇이 커지고 스케일이 커졌다고 그래서 어떤 순서냐면 내가 스케일이 커졌는데 증거가 뭐요? 그러니까 목사님, 우리 집 현관문 비밀번호가 2033-50이 되었습니다. 이야!!~~ 여러분 기가 막힌 거 아니에요? 저는 그 말을 듣고 현관문 번호가 2033-50을 해놨으니 하루에 두 번, 세 번, 네 번 들락날락하면서 2033-50, 2033-50, 여러분 그 사람 하나는 축복하시겠어요? 안 하시겠어요? 부족한 나라도 하나님께서 필요하는 날 물부터 부어주시겠는데 물론 걱정하지 말아요. 주소는 내가 안 가르쳐 드릴 테니까.
 
여러분, 봐요. 우리 지금 스마트폰이라든지, 우리 비밀 코드 할 거 얼마나 많아요. 무조건 2033-50이야.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새로운 삶의 목표와 신분이 확실해지는 것이에요. 이렇게 할 때 신앙의 스케일이 달라져요. 어떻게 달라지는가? 우선 16절에 보면,
 
*고린도후서 5:16,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사람을 겉으로 보면 이제부터 어떤 사람들이 육신을 따라할 겉모습만 보고 껍데기만 보고 이런 인생 안 살겠다. 그리고 18절 19절에 보면 뭐라고 나와 있느냐 이렇게 나와 있어요. 함께 보겠습니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모든 것이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그 다음 뭐예요? 19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니 그 다음 중요합니다.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아멘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전파하라’. 오늘 마칠 때 그 찬성할 거예요.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너무나 놀라운 것은 신비한 것인데, 자아가 죽는 것, 또 죽고 또 죽는데 그런데 우리를 살려주셔 갖고 삶의 새로운 목표를 주셨는데 공부를 해도, 사업을 해도, 이제는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고. 자식을 키워도 완전히 달라지는 것인데 이 모든 것들을 종합에서 신비한 것을 화목히 하는 직책을 주신 거예요. 여러분들이 가는 곳마다 가정이 화목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여러분 공동체가 화목하게 되는 것이에요. 지금 하나님과 우리 국가가 화목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우리 국가가 화목하게 못하는 것이 있다면 여러분이 화목해 하는 직책을 감당하면 하나님과 국가가 화목하게 되는 것이에요. 우리는 화목해야 하는 이게 어마어마한 거예요. 적당히 화목해야 하는 적당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십자가는 인간과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을 화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피의 십자가는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주림이 다시 화목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엉금퀴와 찔레를 가지고 우리가 범죄 했을 때 완전히 세상이 엉망된 거예요. 환경이 자연환경이 엉망이 된 거예요.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가는 곳마다 자연환경과 하나님이 화목하게 돼 가지고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은 그 지역은요. 그 지역의 환경이 아름다운 환경으로 변화되는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유럽의 아름다운 것은 유럽의 과거에 신앙의 선배들이 그렇게 가꾸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에요. 우리 한국도 앞으로 그렇게 될 거예요. 남한과 북한을 비교해 보세요. 북한은 민둥산이에요. 하나님께서 소위 우리로 화목해하는 의사를 주셔 가지고, 적당한 스케일이 아니라 이게 우주적 스케일의 화목을 하도록 만들어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지.
 
*골로새서 1:20,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할렐루야 땅에 있는 것들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주님으로만 화목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우주적 스케일이 마치 이 화목에 대한 은혜를 받으면 새롭게 된 신비, 화목해야 하는 직책의 신비를 깨달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성경적 화목은 모든 장벽과 분열을 녹이고 하나 되게 하는 우주적 용광로와 같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되는 것이죠. 바울이 이걸 이렇게 선포한 이유가 있어요. 오늘 고린도 교회는 분열의 상태가 심한 아볼로파다, 개바파다, 바울파다, 심지어 예수님파다. 분열이 심각한 상황이었고 아니 바울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일려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초대교회 교인들을 핍박했던 전과자였기 때문에 이 화목해하는 직책을 언급할 때마다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던 그때의 놀라운 체험이 뜨겁게 뜨겁게 각성 되었을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신비합니까? 세례받고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이에요.
 
세상과 하나님을 화목 시키고 만물과 하나님을 화목시키게 하고, 가정 가정마다 화목이었어요. 그래서 이 화목해하는 직책은 이 땅의 분열과 계급, 갈등, 폭력으로 가득한 죄의 질서 속에서 관계가 회복되는 것, 그걸 뛰어넘어 가지고 새로운 창조 질서 속에서 하나님과 사람 피조 세계로까지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우주적 용광로의 무게를 지닌 축복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 사람들은 화목에 의지는 있어요. 탕평하고 싶다. 하나 되고 있다. 하나 되고 싶다. 갈등을 극복하고 싶다. 그러나 화목에 의지는 있지만 화목할 능력이 없어요. 아무리 화해의 의지가 있어도 참된 화해를 할 근원적인 방법이 없는 것이에요.
 
이 세상은 끊임없이 화해와 탕평을 얘기하지만 화해를 깊이 열망하지만 화해를 가능하게 할 역동적인 것과 효과적인 방법이 없는 것이에요. 지금 우리나라를 보세요. 결혼의 파괴, 계층적인 갈등, 심지어 젠더 갈등, 사회적 불화,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화목을 얘기하지만 화목을 그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가 뭐냐 하면 십자가와 그리스도가 없는 화목은 해결 방법이 안 나오는 것이에요. 그래서 골로새서 1장에 보니까 만물이 그리스도에 의해 붙들려 있을 때, 만물이 그리스도의 피로 화목된다고 말씀한 것이에요. 모든 불화와 갈등은 만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거룩한 개입으로만 해결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진정한 화해는 만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거룩한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에요. 부부 간의 갈등이 있어요. 그 갈등은 어떻게 해결합니까? 남편이 참아야 됩니까? 아내가 참아야 됩니까? 서로 좋은 말 하면 되는 겁니까? 잠깐 용서하면 됩니까? 천만의 말씀, 천만의 말씀은 서울 시민들이 한마디 하면 다 천만의 말씀이 다 해봐야 소용이 없어. 타협할 소용이 없어요. 십자가가 없이는 화목이 안 되는 것이에요. 십자가의 신비를 깨달아야 부부간에도 갈등을 해결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삼각형 아시잖아요.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는데, 그래서 십자가의 화목의 중간에 있어야만 부부간의 갈등이 해결되는 거예요. 국가 간의 갈등도 마찬가지예요.
 
십자가가 없이는, 사회의 구조적인 갈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거룩한 개입이 없이는 결코 화해가 불가능한 것이다. 세상에 상담 어느 정도 도움은 돼요. 그러나 그 껍데기 잠깐 그냥 잠깐 단 것 사탕 주는 정도의 근본적인 해결이 안 돼요. 그래서 십자가가 모든 화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고, 그래서 여러분들과 오늘 우리가 세례받고 오늘 예배에 참석하면서 여러분들의 젊은이들 말로 하면 찐 화목의 대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화목 하는 대사가 돼야 되는 거예요. The ambassador of Reconciliation. 화목해하는 영적인 찐 대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화목해 하려면 여러분 뭐가 필요하냐? 뭐가 필요하냐? 에너지가 있어야 돼요.
 
*고린도후서 5:14a
14a 그리스도의 사랑우리강권하시는도다.
-한 번쯤 하면 되는데 계속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 에너지가 영적인 힘과 에너지가 영적인 힘의 원천이 뭔가 그것이 오늘 14절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을 다 해석했는데 이게 너무 중요해요. 오늘 이 예배를 주님 사랑하는 때만 나온 줄 믿습니다. 알겠죠? 세례도 주님 사랑하는 때를 받는 것이에요.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이 화목하게 하는 대사의 직책을 끝까지 감당하게 하고 자아가 죽게 하고 새로운 삶의 목표를 힘 있게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사업도 공부도 우리의 모든 인생살이도 가능하게 하는 것인데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건하게 하셔야 됩니다. Bank of Heaven 하나님 천국 은행에서 이 사랑이라는 구좌에서 날마다 이걸 우리가 꺼내 써야 되는 것이에요. 24시간 오픈되어 있는 이 구좌를 우리가 써야 되는 것이에요.
 
오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세례받는 분들뿐만 아니라 오늘 모든 성도들, 오늘 방송으로 들어오는 모든 분들, 별관에 세례되는 모든 분들 마음의 소원을 아시는 거예요. 우리는 천국 은행에서 사랑구좌 24시간 빼낼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인 힘과 능력을 날마다 받을 것이다. 주님 사랑해요. 또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공급받아야 되는데 충전을 해야 돼. 사랑의 충전을 해야 돼.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한 시대로 충전해야 돼. 어떻게 충전? 대충전이 뭐냐? 주일 예배가 대충전이에요. 그래 주일 예배 안 나오는 사람들은 사랑의 충전을 못 받으니까. 그러니까 제가 볼 때 주일 예배를 등한시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주름을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본 적이 없어요. Amen. 대충전이에요. 대충전. 중충전이 뭐냐? 다락방과 훈련이 소충전이 뭐냐?
 
날마다 아침에 주님과 큐티하고 아침에 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에요. 한 번씩은 급속 충전도 필요해요. 급속 충전이 뭘까요? 특새예요. 특별새벽부흥회에요. 제가 말하는 요지는 대충전이든, 중충전이든, 소충전이든. 그래서 저의 사랑의 우리를 끝까지 강권하셔야 돼요. 오늘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셔서 세례받는 축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 쓰시는가? 이 새롭게 된 신비를 깨달은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에요.
 
자아가 죽고, 삶의 목표를 갖고 찐 화목해하는 대사의 은혜를 가지고 날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충전받는 우리 오늘 세례받는 분들, 우리 온 성도들 얘기를 한 분 한 분 맞춤의 은혜를 선한목자께서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요약
우리는 '옛 자아의 노예 습성'에 대해 죽음을 선언하고,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또 죽을 때, 거룩한 참자유를 얻고 누리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우리를 전 영역에서 화해의 우주적 용광로로 부르셨으니, 가는 곳마다 화목하게 하는 영적 삶을 살아가야 하며, 우리 사랑의교회와 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가 주일예배, 다락방, 큐티, 특새'를 통해 강권하시는 사랑의 무한 충전을 받아서, 하나님과 민족을 화해시키며 '2033-50 비전'을 완수하길 간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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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11월 23일)-이사야 시리즈 ㉚
설교제목: "사모하는 주님을 향한 감사 보고“
-(A Thanksgiving Report to the Lord We Long For)
성경본문: 이사야 12:1-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2부), 온찬양대)
대표기도: 김동현 장로님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2부)

설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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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6,
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6.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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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은 뜻깊은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한 해 동안 여러분들 헌신과 섬김을 목회자로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오늘 30번째 이사야서 강연이자, 그다음에 추수 감사 주일의 메시지인데 제가 지금 이 이사야 후반부를 하고 있잖아요. 근데 오늘 12장을 일부러 감추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앞 예배 설교를 마치고 나니까, 우리 교회 부 교역자들이 목사님 제가 담임 목사로 나가면 목사님이 이거 그대로 베끼고 싶은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OK!, 목회자가 그런 마음이라면 이 말씀이 너무 소중한 것입니다. 소중한 것이고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신앙 고백이 될 수 있도록 말씀 한 절, 한 절에 여러분이 깨달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오랜만에, 오래간만에 오늘 추수 감사 주일이니까, 1년에 한두 번 딱 하는데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추수 감사 주일날, 예수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여러분 어떻습니까 하면 한번 해보시겠어요? 여러분 이건 세금 안 드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살아계신 예수님 때문에, 생명의 복음 때문에, 오늘 이 시간 여러분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아니 천장이 울리도록 하시겠어요? 천장이 울리더라고요. 오늘 본당, 별관, 또 대부도, 여러 군데서 다 함께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살아계신 예수님 때문에 생명의 복음 때문에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모든 짐들이 벗겨나가기를 바라고 1년 동안에 꼭 벗겨 나기를 바라고 우리가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오늘 제가 감사 보고에 대한 사모는 추에 대한 감사 보고인데 지난 주간 우리 교회는 주일 학교 각각 모든 자치 기관들을 감사 보고를 주님께 올려드렸고, 어제 같은 경우는 토요일 비전 새벽 예배에 여순장반, 남순장반, 직장인 순장반, 그다음에 장애인 사역부, 모두가 다 순전한 감사를 주님께 올려드리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난 주일 저녁 우리 당회를 하면서 하나님 우리 3기 사역에 정말 좋은 후임 오게 하여 주십시오 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만장일치로 주님 3대 후임 목사를 결정하게 된 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에요. 오늘 영광을 드리는 것이고 아니 오늘 새벽에도 나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목사님 후임 잘 결정한 거 축하합니다. 그래요. 하나님 영광 거두시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대한민국도 WEA, 우리 총회 서울 선언을 통하여 앞으로, 100년 만에 나온 가장 강력한 복음주의 선언문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거 지키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그 나라의 백성은 복이 있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자, 성경의 절대권위,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에 대해서 강력하게 선포한 서울 선언을 통하여 이 나라가 보호될 줄로 확신하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할렐루야!!~ 그래서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여러분 모두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물을 길어 올리고, 감사의 샘이 터지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감사는 두 종류가 있는데 뿜어져 나오는 감사가 있고 하나는 들기름 감사가 있어요. 이게 뭐냐 뿜어져 나오는 감사는 그냥 우리가 살아오면서 하나님 은혜에 살다가 보니까 너무 모든 게 감사한 거예요.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감사인데 들기는 감사는 뭐냐 하면요. 쥐어 짜여 나오는 감사예요. 여러분 지금 내가 물어보겠어요. 감사 설교 몇 번 들어보셨어요? 많이들 들었을 거예요. 아까 어떤 분이 70분 들었습니다. 감사가 터져 나와요. 요새는 매너리즘에 빠져가지고 감사가 메말랐습니다. 그러면 쥐어짜는 감사하지 말고 오늘 말씀을 통하여 터져 나오는 감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오늘 들기름 쥐어 짜오는 감사가 아니라, 터져 나오는 감사를 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어떻게 하면 감사 보고 할 수 있겠는가? 첫 번째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구원의 진리를 더 깊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예수 믿는 것이에요. 얼마나 귀한지 깊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감사가 터져 나오는 거예요.

I.구원의 진리를 깊이 깨닫는 데서 오는 감사 보고.

-감사 보고 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무슨 말이냐? 오늘 여섯 구절인데 가능하면 여섯 구절을 다 암송을 하면 너무 좋고, 그다음에 이 여섯 구절을 나중에 암송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제가 찬송을 준비했기 때문에 그냥 알아서 외울 수 있도록 되도록 만들어주시는 거예요. 자, 여섯 구절 가운데 오늘 ‘구원’이라는 말이 세 번 나오고, 구원에 대한 찬송과 노래가 세 번 나오고, ‘감사’라는 말이 두 번 나와 있어요, 구절 가운데서 그리고 이렇게 구원에 대한 감사가 터져 나오는 배경이 있는데, 그것이 1절이에요. 1절에 뭐라고 했냐 그날에 너가 말하기를 그랬어요.

*이사야 12:1,
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그날이 중요한 거예요. 그날이 언젠가 이 그날에 대해서는 바로 앞에 12장 앞은 11장이죠. 11장 10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뭐라고 시작,

*이사야 11:10,
10.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아멘 무슨 말입니까? 이 그날은 저와 여러분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주님의 구원 계획이 실현되는 날이에요.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을 향한 구원의 날이에요. 그니까 구원의 날이라 그게 그래서 그 그날이 무슨 은혜가 있는가, 1절 뒤에 보니까, 그날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그날의 여호와의 구원의 날이 임함으로 말미암아 주의 진노의 날에 돌아선 것이에요.

*이사야 12:1,
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개인적으로 말하면 어떤 은혜가 있는 것입니까? 그날은 구원의 깃발이 휘날리는 날이고, 모든 그 당시의 폭압이 사라지는 날이고, 고토로 돌아오는 날이며,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어지는 날이고 그다음 뒤에 보니까 안위가 있는 날 위로가 임하는 날 새 시대가 열리는 날이라는 거예요. 그러니 이 그날이 우리 입장에서는 모든 두려움과 자기 정죄, 과거의 실패와 상처 등에서 자유 하는 날이에요. 소위 출애굽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위로와 새로운 시작을 경험하는 날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북한 성도들 같은 경우는, 북한에 있다가 이렇게 탈북해 가지고 ‘출 북한’ 탈북하는 분들은 아마 그날이 아마 이런 면에 있어서 더 이해가 잘 갈 것이야. 이게 얼마나 감사한지 구원의 진리가 깊이 들어갈 때에 시편 기자는 그날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다. 꿈꾸는 것 같았다. 우리의 여인은 찬양이 가득하고 웃음이 가득하고 주님께서 우리의 큰 대사를 행하셨도다.

그리고 이 그날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이사야 시대의 성도들보다도 오늘 우리는 더 큰 감사 보고를 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이사야 시대의 성도들은 아직까지 성취가 된 것이 아니 예언이기 때문에, 회복되고 다시 돌아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고, 하는 모든 것들이 구약 이사야 시대의 성도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에요. 그런데 그 일어날 일을 보고 완성되지 않았는데 일어날 청사진 건물로 말하면 아직 완공된 청사진이 아니에요. 완공된 헌당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완공되지 않았지만 일어날 일을 보고 감사를 보고를 하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신약 시대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구원의 역사, 십자가 부활, 성령 강림, 교회의 역사를 이미 체험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이사야 백성들 시대는 청사진으로 보는 감사지만, 우리는 이미 완공된 건물에서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드리는 것 같은 완공된 감사가 되는 것이 그러니까 우리는 신약시대의 성령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이 갖는 더 귀하고 독특한 감사가 이사야 시대 때보다 더 깊이 있어져야 한다. 그런 뜻이에요. 할렐루야!~ 그러니까 이런 완공된 감사를 하기 위해서 구약에 오늘 이사야가 말한 놀라운 고백이 있는데 그것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2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사야 12:2b,
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시작,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보십시오.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능력과 은혜를 우리는 이 그 당시 사람들은 청사진으로 보지만 우리는 완공된 은혜를 깨닫고 보고 있는데 이걸 우리가 신뢰하고 이걸 구원에 대한 깊은 진리를 깨닫는 것인데 여기의 핵심이 뭐냐 하면 뒷부분에 이렇게 시작 주 여호와는 그다음에 그다음에 이게 너무 중요한 거예요. 지금 주 여호와는 나의 뭐예요? 힘이시며, 그다음 나의 뭐예요 노래시며, 나의 뭐예요? 구원 이십니다. 이게 오늘 아주 그냥 완공된 건물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청사진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최고의 신앙 고백이라고 말한 거예요.

주 여호와는 다시 한 번 나의 힘이시고 나의 뭐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며, 오늘 이것만 여러분들이 정확하게 기억하면 여러분들이 지나간 수십 년의 추수감사절 주일 메시지 가운데 어떤 면에서 아주 클라이맥스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이에요.

어제 우리는 이걸 알고 ‘주 여호와는 나의 인이시며 나의 노래 신 나의 구원이시라’ 이런 고백의 찬송을 드렸는데, 오늘 이 고백이 이 고백이 이사야 시대 때 고백의 정도가 아니고 사실은 이 고백이 출애굽기 15장 2절에 모세가 홍해를 건너고, 난 다음에 간절한 마음으로 고백한 내용에 같이 읽겠습니다.

*출애굽기 15:2,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이시며 나의 구원이시라.
-이게 뭐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그 어려운 홍해 절벽 앞에서 그 힘든 것 가운데서, 완전히 절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그것이 너무 감사해 가지고 그대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통된 선포요. 고백과 찬양이 되었는데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오.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라. 모세가 고백한 것을 오늘 이사야가 고백을 했습니다. 이사야가 고백한 것은 청사진이라고 그랬습니다. 그걸 오늘 실제로 체험된 우리가 이걸 진실로 고백하게 되면, 저와 여러분 앞에 있는 이 민족 앞에 있는 수많은 홍해가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것을 진실로 여호와는 나의 노래시고, 나의 힘이시고, 나의 구원이시라. 순서대로 말하면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고,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라. 그러면 여호와가 나의 힘이라는 것은 어떤 뜻이에요? 물어보겠습니다. 하나님 나의 힘이 드신 여호와여 그런 찬송 우리가 하잖아요. 하는데 우리가 나의 힘이 드신 여호와여 득세할 때 막 찬양할 때 진짜 어떨 때 눈물이 나는 거예요.

너무 잘 나가고 모든 게 다 평탄하고 모든 것이 순종할 때,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그때가 은혜가 됩니까? 아니면 진짜 힘들고 어렵고 의지할 것은 ‘주님밖에 없어’... 눈물 콧물 흘리면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할 때 전자니까 후자입니까? 물어보는 거 보면 몰라요. 그러니까 여호와가 나의 힘이라고 할 때 그건 어떤 뜻인가 하면요. 내 힘이 암살되었을 때 여러분이 우리의 힘이라고는 완전히 다 그대로 상태가 완전히 어떻게 보면 완전히 폭망했을 때, 그때 여호와는 나의 힘이 다할 때 그게 진짜가 되는 것이에요.

아멘, 여호와의 나의 노래라고 했을 때, 여호와의 나의 노래 노래할 수 없는 상황이 찬양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그럴 때 오늘 이 찬송을 이걸 제대로 하게 되면, 그게 여러분과 저의 인생 노래가 되는 것이에요. 그럴 때 하나님이 여러분들 앞에 있는 홍해를 갈라지게 하는 것이 이게 믿음이에요.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그다음 가사함을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라 내 인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이게 여호와는 나의 노래이시다. 그런 뜻이에요. 할렐루야!, 그다음에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시라고 그랬을 때, 여러분과 저는 구원에 대해서는 우리가 일조할, 우리는 구원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의 대상도 아니고 우리는 구원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영원한 형벌이 우리에게 영원한 운명인 것처럼 그리 된 상황에, 우리의 삶은,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란 구원받을 수 없는 깊은 절망 가운데서 우리가 구원받고 난 다음에 터지는 감사의 고백이에요. 그냥 막연히 교리적으로 내가 구원받았다. 이 정도가 아니에요.

여호와가 나의 구원이라는 이 말은 요한캘빈의 말처럼 이런 뜻이에요.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자기만이 유일한 근거이다. 나에게서는 없는 거야. 이걸 제대로 깨달을 때에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시라. 거기에 깊은 신앙의 비밀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다. 여호와는 나의 노래이시다.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시다.’ 삼중 적인 고백이에요. 이 고백을 할 때 다시 한 번 오늘 개인적으로 우리 한국교회 앞에 우리 민족 앞에 있는 수많은 홍해가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 삼중 적인 고백을 통하여 여러분의 생애가 새로워질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를 축원하는 것이에요. 이 구원의 깊은 진리를 깨달을 때는 감사 보고를 터져오는 감사 보고 할 수 있고, 두 번째로는 자연스럽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다시 우리가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나의 노래요.

II.
-나의 구원이라고 고백할 때에 여러분들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그냥 우리의 심장을 힘 있게 두드리는 거룩한 북소리가 되는데, 그 은혜를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독특하게 3절에 뭐가 나오느냐,

*이사야 12:3,
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놀랍습니다. 여기에 구원의 우물들 우물이 아니고 우물들, 강조 복수형들이에요. 강조 복수 물들인데 이것은 메마른 땅에서 충분한 물을 공급하시는 뜻도 있겠지만, 우리 공동체가 경험하는 은혜의 큰 저수지 같은 것도 의미하고 있는 것이에요. 특별히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기르리로다’. 이것이 그냥 그때 어떤 이사야가 그 사건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 내용은 모세가 민수기 21장에서 경험한 내용을 그대로 선포하고 있어요. 모세가 민수기 21장 17절 18절에 광야 길 가운데서,

*민수기 21:17-18,
17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이르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18 이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하였더라 그들은 광야에서 맛다나에 이르렀고.
-광야에는 물이 없는 곳 아닙니까? 메마르게 가는데 우리에겐 물이 필요하다. 오아시스가 필요하다. 자, 우물물들을 길러 버린다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그것은 이사야 시대의 것으로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모세 시대 때부터, 광야 길 가는 사람들이 물이 없어 힘들어 할 때에, 하나님의 오아시스를 주시는데, 그냥 모세의 생각이 아니라 앞에 16절에 보니까, 뭐라고 돼 있냐 하면,

*민수기 21:16,
16 거기서 브엘에 이르니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브렐이란 말은 우물이라는 뜻인데, 거기에서 그들에게 뭘 주리라. 물을 주리라 이 말씀을 모세가 그대로 붙잡고 우물을 판 거예요. 그래서 다시 21장 17절 18절에,

*민수기 21:17-18,
17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이르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18 이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하였더라 그들은 광야에서 맛다나에 이르렀고.
-오늘 이 자리에 계시는 모든 성도들 여러분들의 생애에 감사의 우물물이 터져 나오기를 바랍니다. 알겠죠. 터져 나오려면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는데, 뭐냐 하면 지휘관들 다시오. 지휘관들 그다음에 백성의 귀인들 그들이 귀와 지팡이로 우물물을 봤다고 했어요. 가정으로 말하면 가장들부터, 교회로 말하면 중직자들로부터, 신앙생활로 말하면 신앙생활 60년, 70년, 80년, 한 부분 부터 오늘 이 감사의 우물물을 다시 한 번 팔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놀라운 우물이 터져 있는 것이에요. 중직 자들부터 감사의 우물물을 파고 두레박을 내리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미래의 축복을 현재로 끌어올 수가 있는 것이요. 집안으로 말하면 가장부터 부모부터 감사의 물을 파고, 감사의 두레박을 내리면, 그 가정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미래의 축복을 현재로 당겨오게 돼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 감사를 통하여 우리는 미래가 어떻게 일어날지 다 몰라요. 미래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다 알겠어요 그런데 집집 마다 집안의 가장부터 감사의 우물물을 퍼 올리면 미래의 은혜가 오늘 우리가 오늘 이 시대에 이 상황에서 경험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이런 말이 있죠. 세상 사람들은 과거 이력서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이 감사의 우물물을 제대로 퍼 올리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미래에 일어날 일을 현재로 당겨오는 것이에요. 그걸 발생한 미래로, 감사를 통한 미래의 은혜가 우리에게 당겨올 수 있도록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감사의 우물을 파면 미래의 축복을 현재로 가져온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감사를 문제가 해결된 뒤에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 할지라도 선제적으로 감사를 할 때, 미래의 은혜가 다가오기 때문에 지금 내가 살아갈 능력을 현재적으로 얻게 되는 것이에요.

사람은 소망과 미래가 없이는 하루도 살 수가 없어요. 방법은 뭐냐? 현재의 선제적으로 감사하는 것이에요. 요셉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선제적으로 미리 예비를 했어요. 그걸 소위 프로액티브 리더라고 그래요. 미리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지도자다 그 말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미리 이 감사를 나의 힘이 드신 여호와의 나의 노래이신 주님이시오, 나의 구원자이시오. 이렇게 이것을 고백하고 마음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여 진정한 고백을 하는 그 순간 미래가 우리에게 당겨오게 돼 있는 것이에요. 홍해가 갈라질 뿐만 아니라 미래가 당겨오게 돼 있는 것이에요.

교회 중직 자들이나 순장들이나 모든 분들, 그리고 부모부터 미리 감사 보고를 하는 그 순간, 우리의 미래는 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쁨의 꿈을 물들여 솟아나는 영역이 될 것입니다. 맨날 감사를 들기름 하듯이 짜내지 말고, 미리미리 이렇게 할 때에 우리의 신앙은 박물관 신앙으로 되지 아니하고, 그냥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는 박물관 신앙이라는 게 뭐냐 하면요. 많이 오래된 성도들이 박물관 신앙으로 살아가요.

과거에 받은 은혜, 경험한 간증, 내가 과거에 어땠다 신앙생활의 추억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박물관 신앙이 아니라, 오늘부터 특별히 예수님을 오래 믿은 분들부터 추수 감사절을 50번 60번 보낸 분들부터 또 추수 감사절 설교 이게 아니라 마음의 깊은 감사를 길어 올리면, 여러분 오늘 미래를 당겨오는 축복을 받게 되시는 것이에요. 박물관에 갇힌 나의 감사를 오늘 살아가는 감사 복으로 꺼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미래의 약속의 능력과 은혜가 오늘 이어질 수 있도록 오늘 이 예배가 파이프 역할을 할까요? 그리고 우리의 세포가 우리 영혼의 세포가 감사의 세포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오늘 우리는 불평, 불만의 세포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감사 세포로 만들 것인가 오늘 우리의 영혼의 세포가 감사 세포로 춤을 추는 연말 연시가 될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니까 무슨 일이 결과적으로 4절 5절에 보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4절 5절 같이 보겠습니다.

*이사야 12:4-5,
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아멘, 이 감사 보고를 혼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온 공동체가 감사 보고를 한 개인의 우물이 아니라, 온 세계를 향한 저수지가 돼야 한다는 것이 세 번째 시작.

III. 우리 모두가 감사 보고를 통하여 한 개인의 우물이 아니라 온 세계를 향한 감사의 저수지가 되어야.

-할렐루야. 이 감사 보고를 혼자서만 하지 아니하고 온 세계에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울림 받도록, 감사의 저수지가 되어서, 온 세계에 선포라는 21세기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임을 온 세계에 선포하라는 것이 그리고 5절 뒤에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저는 청년 시절에 한 6~7년 정도 어떤 선교회 우리 페라츄츠 선교회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그 선교회가 갖는 슬로건이 뭐냐 하면요.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알게 하라’.-To Know Christ and To make Him known.

그를 알게하라. 온 땅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그 선교에 그리스도를 알게 하라는 그 슬로건이 오늘 이사야 12장 여기서 나왔어요. 그러니까 나는 오늘 이 말씀을 전하면서 너무 마음에 은혜가 될 거예요.

수십 년 동안 받은 은혜들을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알게 하라. 를 그의 50년을 해왔는데, 오늘 이것이 우리의 삶의 노래가 되고, 힘이 되고, 구원의 진리로 깊이 들어가면 다시 우리의 미래가 우리에게 은혜의 미래가 당겨져 오는 줄 믿으시길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가 WEA 오늘 마치고 여러분 감사하고 우리 간증도 좀 많은 분들이 계실 텐데, 그게 보면 세계 복음주의연맹 총회를 섬기면서 우리가 많은 헌신을 했지만,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은혜의 저수지가 되게 하신 것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그게 무슨 일인가 그게 5절에 보니까 그게 무슨 일인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습니다.

*이사야 12:5,
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극히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는 겁니다. 감사 보고할 때 다시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요? 극히 안과 최상급의 별, 저는 사랑의 교회의 모든 일들이 선하고 아름다운 일들이 되도록 지난 23년 동안 기도해 왔어요. 근데 오늘은 하나 더 덧붙이고 싶어요. 선하고 아름다운 일 정도가 아니라 선하고 극히 아름다운 일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여러분, 개인의 사업도 여러분 가정도 여러분의 생애도 선하고 아름다운 성도가 아니라 선하고 극히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걸 믿음의 눈을 가지고 간절함을 가지고 소원하는 것 이런 차원에서 예수님 믿는 일은 어마어마한 일이고, 인생 최대의 사건이고 기가 막힌 일이에요. 여러분들에게 급히 아름다운 일을 허락하실 주님을 찬양 하십시다.

제가 지난 화요일 날, 화요일 날 저 여주에 있는 소망교도소에 갔어요. 가가지고 세례식을 제가 46명의 수용자들 세례를 베풀었어요. 다 보통 때보다 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주셨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명령을 순종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와 주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아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사람은 도구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를 주시리라. 그걸 제가 선포하면 세례를 주는데요. 내 마음이 그냥 울컥하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어떤 형제가 나와서 간증을 해요.

오늘 내가 왜 세례를 받게 되는가, 수용장인데, 이런 얘기를 해 본인들이 세례를 받는 이유 중에 하나가 우리가 지은 죄가 크지만, 하나님의 긍휼은 더 큽니다. 우리가 지은 죄가 크지만 하나님의 긍휼은 더 큽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고백을 할 때 제가 그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의 삶에 수많은 환란과 애환이 있지만 우리는 그 수많은 환란과 삶의 곡절을 다 뛰어넘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이 더 크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한 치밀어 오르는 감사 보고가 있는 줄 믿습니다.

*이사야 12:6,
6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그 결과 6절 6절의 놀라운 은혜가 나타나는 것이에요. 극히 아름다운 일이 무엇입니까? 그 당시로 보면 앞에서 히스기야 왕, 얘기가 나오는데 사내들이 18만 5천 명의 군사를 하루아침에 처리할 거예요. 기도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예수님 메시아 올 것이, 극히 아름다우니 오늘 우리로 말하자면 초자연적인 은혜 우리로 말하면 오늘 작년에 우리 10월 27일 날, 110만 명 200만 명이 모여가지고 예배드리고, 그다음에 오늘까지 온갖 수많은 일들 이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극히 아름다운 일인 줄 믿습니다. 이거예요. 이 극히 아름다운 일이 있을 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6절 결과 시작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사야 12:6,
6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시니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아멘 극히 아름다운 일이 크시다. 아름다운 우리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시다. 그걸 소리높여 외치라. 의지를 가지고 외쳐라. 너희가 받은 최고의 복이 뭐냐, 우리가 이런 고백을 하고 이렇게 할 때 주님이 은혜 주신 거 다 있지만 결론적으로 최고의 복이 뭐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그렇게 무슨 말이냐 우리 중에서 너무 우리 중에 계시는 것 그것 자체가 기예요.

주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어 계시는 그것이, 너무 이런 말씀이에요. 소위 우리가 아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한 것이다. 그것이 최고의 축복이라는 것이에요. 이 세상에 수많은 복이 있어요.

형통의 복, 평강의 복, 무슨 보호의 복, 또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수많은 어떤 물질의 복 다 있지만 여러분 그거는 시간적인 것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다 없어지는 것이고 다 제한된 것이에요. 이 땅에 있는 모든 복들은 제한될 것이고, 그런데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임마누엘의 복은 시간도 제한되지 않는 영원한 복이 되는 줄로 확신하는 것이에요. 따라서 여러분 예수 믿고 최고의 복은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 세상의 수많은 복들, 평강의 복, 보호의 복, 물질의 복, 건강의 복 이런 복은 여러분들의 삶을 여러분들의 어떤 삶이나 환경을 변화시키기도 해요. 그런데 그런 복이 있어도 여러분 자신의 소위 인생 자체 여러분의 인격 자체는 변화를 못 시켜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 복은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소유의 복 정도가 아니라 존재를 변화시키는 것이에요.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은 소위 존재의 복의 변화를 받게 하시는 것이에요.

이게 얼마나 큰 세 최고의 복을, 이걸 갖게 될 때 우리가 이 추수감사절날 다시 한 번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다니,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다니, 주님이 나와 함께 동행하시다니. 요한복음 14장에 보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어느 정도의 복인가 같이 보겠습니다.

함께요.

*요한복음 14:19,
19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할렐루야 주님이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는 거예요. 아시겠죠? 그럴 때 우리도 살아있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가 예수 믿고도 죽은 것 같은 힘든 거 어려운 거, 납작 엎드리고 고생하는 거 여러분 주님이 살려주시는 것이에요. 이 임재를 하나님의 임재를 강력하게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어몽 유(Among You), 임마누엘의 복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이 복이 내 복 중에서 최고의 복인 줄 믿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그 순간 여러분 살게도 하시는 거예요. 다시 소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여러분 능력을 어디서 썼습니까? 어떤 사람 마약에 의지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 의지를 의지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 지식을 의지하고 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가 우리의 삶에 기가 있지만 나와 함께 살아계신 그분이 나에게 최고의 힘이 되는 줄 믿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감사 보고를 하게 될 때,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새로운 힘과 용기와 원기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와 함께 거하시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신뢰한다는 말 1절 내가 주께 감사하겠다는 말, 2절에 신뢰한다는 말 6절에 소리 높여 부른다. -어떤 감정에 끌려다니는 삶이 아니라, 감사 보고를 통하여 이걸 우리가 신뢰하고 우리가 선포하는 것이 정리를 하겠습니다.

이런 말이 있어요. 우리 흔히들 뭐 뭐라고 쓰고, 뭐 뭐라고 읽는다. 예를 들어서 기도라고 쓰고 호흡이라고 읽는다. 혹은 믿음이라고 쓰고 순종이라고 읽는다. 혹은 아내라고 쓰고 축복이라고 읽는다. 은혜라고 읽는다. 약간 오글거리긴 하지만 하여튼 아내라고 쓰고 미인이라고 읽는다. 남편이라고 쓰고 은혜라고 읽는다. 그런데 오늘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는 감사 보고’라고 쓰고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 임마누엘의 축복이라고 읽는다.

-'감사. 보고'라고 쓰고, '나의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 임마누엘 축복'이라 읽는다.-

아멘, 다시 감사 보고라고 쓰고 나의 노래 나의 구원 임마누엘 축복이라고 읽는다. 그러면 진짜 힘 노래 구원 이마누의 능력을 주실 거예요. 그래서 감사 보고는 나의 미래가 되는 것이에요. 이럴 때 우리는 초월적 감사를 할 수 있고, 평생 감사할 수 있고, 불멸의 감사를 할 수가 있고 역설적인 감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여 나의 노래요. 나의 구원이시라 찬송하였습니다.
그 감사 보고를 통하여 여러분 앞으로 홍해가 달라질 것입니다. 미래의 은혜를 당겨오게 될 것입니다. 최고의 축복인 임마누엘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걸 믿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말세의 믿음을 보겠느냐?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있지 않고 능력 있는 것이니까 이 능력을 여러분 개인적으로, 맞춤형으로 체험하시고 오늘 이 예배의 영광을 하나님 앞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요약
이 귀한 감사 주일날 구원의 진리를 깊이 깨닫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자.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감사하며 믿음 보고를 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의 수많은 어려움이 삶의 현장에서, 우리의 감사의 심장이 쿵쿵 뜀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반전이 일어나길 간구하며, 사랑의 교회와 우리 성도들이 감사의 저수지가 되어서, 세계 교회를 향한 감사가 뿜어져 나가야 한다. 감사 보고를 통하여 극히 아름다운 임마누엘의 영원한 참된 복을 누리는 평생이 되기를 소원한다.
-우리는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주님만이 '나의 힘! 노래! 구원!'이라고 찬양할 때, '나의 삶과 대한민국의 모든 홍해'가 갈라지게 하심을 확신해야 한다. 영 가족 공동체가 감사의 저수지에서 '평생 감사! 절대 감사! 불멸의 감사! 초월적 감사'를 길어 올릴 때, 미래의 축복을 끌어오는 '감사의 연대기'를 집필하여햐 하며, 우리 사랑의교회와 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가 '치밀어오르는 선제적 감사'를 올려 드릴 때, '압도하시는 임마누엘의 위로'에 힘입어 '극히 아름다운 2033-50 비전'을 이루기를 간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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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11월 16일)-새로운 길(이사야 시리즈 ㉙)
제목; "복음의 진수“-The core of the Gospel
말씀: 이사야 55:6-13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전승현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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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5:6-13,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12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13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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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대가 고백한 대로 한 분, 한 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하여 하늘의 영광을 체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복음의 진수’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릴 텐데, 오늘 복음의 능력, 또 복음의 은혜, 복음의 기쁨 감사가 넘치는 그 체험되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한 주간 동안 새생명축제를 했습니다. 인생 10월을 보내고 그 수고 가운데서도 복음 선포에 대한 그 열정에 집중해 가지고 작년도 보다도 더 많은 분들이 결신을 했습니다. 놀랍고도 감사한 일입니다. 은혜 게시판에 보니까? 이번 2025년 새생명축제 프로그램을 대해서 너무 귀하고 특별하고 훌륭했다. 그러면서 ‘설교 말씀이나 간증이 어찌 그리 금은보화 같은지요. 구원의 핵심이 녹아 있습니다. 저도 여러번 대풀리에서 듣고 친구들에게도 소개할 예정입니다.’

근데 이 그 집사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에요. 그리고 오늘 이사야 55장이 본문은 ‘복음의 진수’에 대해서 아주 깊이와 풍성함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복음의 진수에 대해서 한 명도 예 없이 다. 체험하고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먼저 그럼 ‘복음의 진수’의 출발이 어디일까? 이 진수(Core)란 말은 코어라는 말 핵심인데, 복음의 핵심의 출발이 뭐냐? 주님의 간절한 초청이 출발이다.

I. 첫째, 복음의 진수의 출발은 주님의 간절한 초청이다.

오늘 1절에 보니까? 제가 본문을 이렇게 너무 길어 가지고 6절부터 13절까지 여러분들 봉독했습니다만은 1절부터인데 1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55:1,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오라라는 단어가 세 번 나와 있어요. 오라, 영어로는 come 이라는 단어인데, 이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사용했어요. 오라. 오라 오라 2절에 보니까?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듣고 들을지어다. 옛날에는 개혁판에서는 청종하라.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다음에 3절에 보니까,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그리고 6절에 보니까,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그러니까? 주님의 어떤 간절한 심정이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느껴질 것입니다. 간절한 심 그런데다가 올라를 초청할 뿐만 아니라 2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55:2,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그러니까 왜 가장 중요한 인생의 생명을 쓸데없는 것과 무가치한 것과 공허한 것과 바꾸려고 하느냐? 그게 진정한 충만함도 없고 그게 가짜 행복인데 그게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주님은 질타하시는 것이에요. 그게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쥠은 질타하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안타까운 심령을 가지고 계속 초대를 하시는데, 어떻게 초대를 하시는가? 초청 대상자들을 잘 봐야 돼요. 1절에 보니까,

*이사야 55:1,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그 다음에 3절에 보니까,
*이사야 55:3,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7절에 보니까,

*이사야 55:7,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그 주님의 초청은 영적으로 목마른 자, 재정 창구가 바닥에 났든지, 또 죄책감의 웅덩이에 깊이 빠져 있든지, 인생의 짐이 너무 무거워 가지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 속에서 헤매든지, 하여튼 어떤 상황에 있든지, 어떤 경우에든지 관계없이 오라는 것이에요. 간절한 심정으로 우리를 초청하시는 것, 이것이 복음의 진수의 출발이라는 것이에요. 요즘이 늦가을에다가 이제 겨울이 곧 다가오는데, 우리 환절기로 밤낮 온도가 10도 이상 차이가 나잖아요. 그러니까?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쌀씰한 이 시기에 많은 분들이 뭐 뭐 어떤 분들이 당뇨 치수가 올라가고 그다음에 마음도 아프고 쓸쓸한 분들이 많이 계세요. 근데 그런 분도 오라. 오라. 오라. 오라. 그 간격 때문에 고생하면 더 오라. AI 시대에 변화 무상한 시대에도 흔들림 없는 인생 좀 살아보고 싶다.

그러면 더 오라. 그러면 오라. 배우자나 부모나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보내서 마음이 텅텅 빈 분들 그분도 다. 오라. 초청하시고,,, 복음은 인종이나 사회적 지위나 생활 수준이나 재산의 정도나 교육이나 겉모습이나 나이나 성별 어떤 차별도 두지 않고 주님은 부르시는 것이에요. 요한복음 4장에 보면, 그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그야말로 세상에서 왕따 당하는 여인이었어요. 사람들 만나는 것조차 낯을 가려 가지고 땡볕이 아무도 없을 때 나가서 물을 기르는 그런 여인, 그런 여인도 오라. 목마르니까? 오라. 내가 생수를 줄이라. 날마다 솟는 샘물을 주리라. 그다음에 요한복음 4장 앞에,,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라는 사회적 아주 고품격 아주 아주 사회 아주 지도자이고 학식이 많은 사람이고 뭐 대단한 재산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도 오라 뭐 병든 자도 그다음에 왕따당한 여인도 세상에 지위 있는 사람도 존경받는 사람도 다 오라. 주님은 다 품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근데 어떤 사람은 아유 내가 뭐 이래 가지고 나갈 수 있겠나? 내가 뭐 이래 가지고 내 나 자신을 돌아보니까? 나는 자기가 자기를 용서하지 못한 사람 많이 있잖아요. 그러면 내가 물어봅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자격이 있으면 나갈 수 있나요? 우리의 의가 어느 정도 되면 나갈 수 있을까요? 우리가 자격을 가지고 나가려고 할진데, 우리가 어느 정도 정의롭고 우리가 어느 정도 선하면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을 얻을 수가 있겠어요?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수많은 약점이 있지만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그래서 오늘 복음의 진수의 출발은 복음 초청의 무차별성이에요.

무차별성, 무차별성. 누구든지 오라고 하는 이것이 복음의 진수의 출발이니, 이것을 오늘 저와 여러분이 깊이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무차별성에 의한 초청을 했을 때에,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냐, 목마른 자도 오라. 내가 물을 주리라. 그 그다음에 온 사람들에게 포도주와 젖을 주겠다. 그랬어요. 젖은 목마른 자가 이제 생명을 얻고 난 다음에,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영적 양육과 공급의 상징이 저지예요. 복음의 초청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삶에 필요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양분을 주시는 주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준다는 말은 포도주는 기쁨의 대명사, 기쁨을 상징하는 것이에요. 우리의 겉 사람이 나이가 들고 부패하더라도 내 속 사람이 난 모르는 영혼의 잔치와 기쁨을 가질 수 있다. 이거예요. 그 기쁨으로 젖과 포도주와 생수의 은혜로 주님은 우리를 초청해 주시는 것이에요.

오늘 이 예배에 오신 모든 성도들이 예배 자체가 주님이 초청을 하고 오셨으니, 그리고 지난 주일 날 오늘 특별히 새생명축체를 통하여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분들에게 주님께서 우리 모두가 살아갈 힘과 용기 우리의 삶의 모든 필요한 젖과 포도주와 생수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초청하시는데, 창조주 하나님이 초청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뭐가 모자라 가지고 우리를 초청하신 것이 아니에요. 왜 우리를 초청하시는가?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초청하신 이유는 모르지만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초청하시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으세요. 근데 그분의 그 이유를 모르는 그 사랑때문에 우리를 초청하는 것이에요.

오늘 제가 이제 새롭게 예수님을 영접한 그런 분들에게 오늘 좀 쉽게 말씀을 좀 드리겠어요. 이제 과거 로마 시대 때, 바울이 이걸 깨닫고 난 다음에 아, 이유를 모르지만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초청하셨다. 이걸 소위 그 당시에 입양 제도를 가지고 설명을 했어요. 로마 당시에는 귀족들이 어 어떤 자식들을 입양하는 귀족들 가운데 자식이 없었을 때, 입양하는 그런 제도가 있어 가지고 바울은 그걸 보고 아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어떤 뜻인가, 아주 초라하고 형편없는 인생이 하나님의 놀라운 그 대단한 어떤 가문에 입양되는 것, 그거와 비교가 안 되는 그런 축복이 있는 것이다. 라고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말씀을 하면서 입양에 대해서 얘기를 했어요. 이런 뜻이에요.

6.25(1950년) 이후에 대한민국은 전쟁 고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 서울역 앞에 그 굴다리 밑에서 풍찬 노숙하고 먹고 자고 하면서 아주 가난한 아이들이 남자 아이들이 고아들이 거기서 신문팔이하고 또 뭐 먹는 것은 구걸하면서 그렇게 먹었어요. 근데 서울역 앞에 그쪽 있다. 옆으로 좀 더 신문팔이 하면서 이제 좀 지나가 보면 옆에 서소문 같은데 가 보니까? 서소문에 어떤 집이 큰 고대 같은 큰 좋은 집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고아 하나가 나는 부모도 없고 나는 이렇게 신문팔이 하면서 매일 구걸해 가지고 나는 먹는데, 이 집은 너무 멋있네. 그리 지나다가 어느 날 여가 용기를 내 가지고 그 집에 문을 두드렸어요. 두드려 가지고 그러니까? 그 집 주인이 나와서 왜 그러니? 그러니까?

저는 신문팔이인데 제가 이 집을 왔다 갔다. 보면서 저는 이제 먹을 것도 없는 사람이긴 한데 혹시 이 집에 혹시 저를 양자로 맞이해 줄 수 있습니까? 이 이 얘기를 하니까? 주인이 아이 뭐이 참 희한한 일이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아내 보고 여보 좀 나와 보라고 이 아이 하나가 이 자기를이 집에 우리 집에 양아들로 하게 해 달라고 말하는데, 어쩌면 좋지? 그러니까? 그 부인이 있다. 여보 잘됐네. 우리 집에 아이도 없으니까? 걔를 우리 집 아이로 이렇게 하자고. 이제 그렇게 하니까? 얘가 갑자기 뭐 감동이 됐겠죠. 그래 갖고 얘가 제가 가진 것이 있는데, 저는 지금 신문 팔다가 몇 분 남았고 그동안 동냥해 가지고 900원 동전 900원 갖고 있는데, 제가 이걸 입방해 주시니 너무 감사해서 내가 이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랬어요. 그래 얘기했어요. 그 부모가 그 예야, 잠은 어디서 자니 골다리 밑에서 산다. 그러고 뭘 먹니? 구걸해서 먹는다고 그러고 그러니까? 자기가 갖고 있는 신문하고 그동안 본동 900원을 주니까 애야, 그건 안 줘도 돼.


여러분, 그 아이가 그 부잣집에 입양되는 순간, 그 아이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이에요. 이런 예가 드라마틱한 얘기예요.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그 순간, 서울역에서 굴다리 밑에서 그야말로 구걸하던 그 아이가 아주 나름 그 한국의 부호 집에 입양되어 갔을 때, 그 아이의 입양되는 그 수준과는 비교가 안 되는, 뭐 천배, 만 배, 아니 비교가 안 되는 저 무비의 비교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있는 줄로 확신하는 것이에요. 이게 이걸 깨닫는 순간 야 생명의 복음을 깨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이건 기가 막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늙은 어리건 상관이 없이 여러분, 그 생명의 역사에 주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영적인 아우라가 있는 것이에요.

또 가만히 계시는 거 말이야. 영적인 아우라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거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은 누가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하늘부터 내려오는 초청이요. 청량할 수 없는 선물이에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값없이 입양된 은혜로 6.25 굴다리 밑에 고아보다도 천배, 만 배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걸 깨닫고 난 다음에 우리도 모르게 나오는 찬양이 뭐예요?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며 나를 친구 자녀로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은혜는 알 사람이 없도다.

그래서 자다가도 새벽 2시 3시에 눈이 깨이면 눈물로 침상을 적시면 나 같은 것이 어떻게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까, 라는 이런 간절하고도 정말로 그 내 마음에 우러난 진실된 고백이 있을 수밖에 없는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이 복음의 진수의 출발을 이렇게 오라 하시고, 입양한 것부터 출발을 하시고, 이것이 그대로 연결이 되어 가지고, 신약의 창에서 해석을 할 때 요한계시록 22장 17절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 중에 22장은 마지막 장이고, 그중에 거의 마지막 부분인데 그 마지막 부분에 뭐라고 나와 있는 이렇게 나와 17절에 다. 같이요.

*요한계시록 22:17,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이게 이사야 55장 앞에 1절에 오라는 성경 전체 구원 계시사로 볼 때, 마지막 부분에서 그래서 저는 장례식 집례를 할 때 마지막 축도하기 전에 꼭 이 말씀을 제가 같이 나누고 마지막 축도를 합니다.

복음의 복음적인 주님의 초청이 있었을 때 우리가 우리 생애를 살다가 마지막 우리 생애가 끝난 날 주님은 컴, 그랬을 때 오늘 아 컴인, 주님 주님의 궁전에 우리가 입성합니다. 이게 참 신비한 거예요. 음. 신비한 거예요. 이 복음의 진술을 더 선명하게 깨닫기 위하여 첫 번째는 출발이 초청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두 번째 그런 복음의 진수가 아닌게 뭔가? 아닌 것을 먼저 확인해 보면 진짜가 우리가 확 우리 것으로 더 깨달아질 것이에요.

II. 둘째, 복음의 진수가 아닌 것이 무엇인가?

-8절에 이렇게 나왔어요.
*이사야 55:8,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늘 본문에 이렇게 나와 있는데 복음의 진수가 아닌 것은 뭐냐? 사람의 생각은 복음이 아닌 것이에요. 사람의 길은 복음이 아닌 것이에요.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길이 복음이 아니다. 좀 깜짝 놀랄 정도예요. 사람의 생각이 대표적인 것이 뭐냐? 신학적으로 자유주의 인본주의고 또 사회주의, 유물적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런 것들이 대표적으로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길이에요. 칼막스 자본론에 심취한 우리 옛날에 우리 젊은이들 대학생들 많았는데, 그거 아주 전형적인 복음이 아닌 것이에요.

사람의 생각의 핵심이 뭐냐? 사람은 죄의 경중에 대해서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 주관적으로 자기 주관적인 생각에 어떤 죄는 더 치명적이고 어떤 죄는 사소하고 어떤 죄는 용서받을 죄가 있고, 어떤 죄는 용서받으면 못 어떤 죄는 경악스러운 죄가 죄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라요. 그건 사람의 생각이지. 어떻게 죄를 정의하고 죄의 경중을 사람이 판단하든가 상관이 없이 죄는 다. 죄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생각이 어떻게 다릅니까? 이사야 53장 앞장에서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사야 53:6,
6 우리는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 다 양 같아서, 뒤에 이사야 64장 6절에는,

*이사야 64:6,
6 무릇 우리는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정도의 차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 사람의 생각은 경중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다 죄인이다. 그래서 신약의 창으로는 바울이 뭐라고 얘기하느냐?

*로마서 3:23,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했다. 그리고 다 죄를 범한 우리는 스스로 그 죄를 극복할 힘이 없다. 죄를 지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겉으로 볼 때는 별로 문제가 없는 거 같으니까? 문제가 없는 거 같지만 그거 다 영적 치매 현상이고, 죄를 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사야 3장 11절에 보니까?

*이사야 3:11,
11 악인에게는 내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라.
-하나님의 공의가 있다는 것이에요. 무슨 말이냐면, 우리는 이미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예요. 아담의 자손들은 다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예요. 지난주일 저녁에 제가 이렇게 복음 설교를 하면서, 그때 제가 생화를 꺾어 가지고 들고 나갔죠? 생화를 꺾어 들고 나갔는데 이게 좀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물으니, 대체적으로 죽었다. 그러죠. 왜요? 뿌리에서 꺾여져 나왔으니까. 어 어떤 사람은 또 살았다. 며칠 살아 있는 것 보고 사는 거 같다고 이렇게 얘기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죽은 존재죠. 우리는 죽은 존재였어요. 태어날 때부터 영적으로 죽은 존재였어요. 제가 이제 이런 내용은 우리 기성 신자들은 좀 잘 알고 계세요. 근데 제가 한 가지 더 이제 더하겠어요. 야, 죽음. 죽은 존재는 시체예요. 여러분, 장의사가 그 시체에 죽은 사람의 머리를 곱게 빗기고 얼굴에 화장을 시키고 아름다운 옷을 입힙니다. 그런데 죽은 시체에 아무리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화장을 하고 그다음에 머리를 곱게 비겨도 시체는 죽은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범죄로 우리가 다 죽은 자인데, 죽은 자들이 우리 죽은 자들이 지금 뭐 폼을 잡고 죽은 자들이 철학을 나누고 죽은 자들이 고상한 얘기를 하고, 죽은 자들이 대단한 즐거움을 얘기를 하더라도 그것은 다 죽은 시체에 화장을 하고 옷을 입히고 빗질을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한 번씩 말씀드리잖아요. 아무리 부자라도 예수 믿지 않는 부자는 부자 시체 죄인이에요. 여러분 예수 믿지 않는 부자는요. 다 부자 시체 죄인이에요. 아무리 세상적인 석학이라 할지라도 예수 믿지 않는 석학은 영적으로 석학 시체 죄인이에요. 석학 시체이고 부자 시체일 뿐이에요. 기분 나빠도 어쩔 수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생명의 역사에 붙여지지 않는 사람은 다 걸어 다니는 시체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강남에 나가 보면 수많은 시체들이 걸어 다니는 거예요. 지금,,, 단지 어느 기간 동안만, 생명의 역사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아무리 시체에다가 머리를 빗기고, 아무리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화장을 하더라도 이건 시체는 시체인 거예요. 여기에다. 통찰력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시체인 사람의 아우라와 생명의 역사가 붙여진 저와 여러분의 아우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에요. 여러분이 강단 위에 어떤 강사들이 올라오는데 정말 복음의 역사가 강한 사람이 올라오면 그 영적인 아우라가 있는 거예요. 맞습니까? 우리 개인도 마찬가지예요.

자, 첫 번째 저는 복음의 출발은 초청으로부터 시작한다. 두 번째 복음은 복음이 아닌 것은 사람의 생각은 복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시체들이 하는 생각은 복음이 아니다. 그럼 세 번째 복음의 진수가 무엇인가?

III. 복음의 진수, 핵심이 무엇인가?

복음의 진수 핵심이 무엇인가? 오늘 보니까? 7절에 여러 번 나와 있어요.

*이사야 55:7,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그다음에 그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 긍휼이라는 거, 두 번째로 7절 뒤 뒷부분에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뭐하시리라 용서하시리라 그러니까? 긍휼의 하나님, 용서하시는 하나님, 용서하신 하나님 이게 복음의 진수예요. 시편 103편 10절에 보면 뭐라고 나와 있느냐 함께 크게 보죠.

*시편 103:10,
10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 아니하셨으니,
-할렐루야! 돌아온 탕자에요. 마음대로 살고 엉망 진창으로 살았지만, 아버지 집을 그리워 돌아갔는데 아버지가 품게되는 게, 복음의 진수예요. 이 모든 것들을 정리해서 우리는 이미 시체이고, 다 죽어 있었지만 그런데 죄로 시체 된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어떻게 되는가? 긍휼의 하나님, 그다음에 용서하시는 하나님이 이사야 53장 6절에,

*이사야 53:6,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도다.
-우리의 모든 불의를 대신 지시고 나무 십자가에 주님께서 처절하게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어요. 그것도 성육신 하셔 가지고이 땅에 오셔 가지고 피를 흘리신 거예요. 그것이 복음의 진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땅에 부모도 자식을 위하여 목숨 받치고 헌신하는 부모도 많이 있습니다. 자식을 위하여 모든 걸 다 감당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어떤 부모는 자식에게 간도 콩팥도 내어 주는 그런 부모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는 어떤 부모가 그의 간도 콩팥도 다 내 줘도 자식의 죄는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죽어 있는 시체는 죄 문제는 해결할 수가 없고 죽어 있는 시체는 일으킬 수 없어요.

여러분 자기 죄는 자기가 감당할 수밖에 없어요. 많은 우리 남편 되시는 분들이 아내 신앙이 좋다고 내가 안에 치마폭 내가 붙잡고 내가 우리 아내 때문에 내가 들어갈 거야. 그건 안 돼요. 부모 신앙이 좋 신앙이니까? 그거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세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가 본래 시체였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성육신하신 예수님. 이사야 53장 5절 잘 알죠?

*이사야 53:5,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가 뭘 받았도다? 나음을 받았도다. 이게 복음의 진수에요. 긍휼과 용서와 주님의 피흘리심, 그래서 9절에 오늘 9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뭐라냐? 함께 보죠.

*이사야 55:9,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할렐루야,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진수에요. 너무 중요하니까. 제가 오늘 사실 회중 찬송을 부르면서 ‘공중나는 새를 보라.’ 추수 감사 줄 기간이니까 이 찬송을 제가 불 부르고 그것도 참 너무 감사한 찬송이지만 사실 오늘 제가 이 설교를 하면서 회중 찬송을 뭘 하고 싶었냐?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그 가사이 보면 기가 막힌 가사에요. 탑레디 목사님이 너무나 복음의 진수를 깨닫고 이 고백을 한 거에요. 이 찬송을 정말로 제가 하고 싶었어요. 집에 가면 하세요. 알겠죠?

자, 이제 중요한 것 초청받았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아닌 복음의 진수를 깨닫습니다. 그러면이 복음의 진수 핵심을 우리가 깨닫고 난 다음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반응 6절에 이렇게 나와요.

*이사야 55:6,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무슨 말입니까? 미루지 말라는 것이에요. 미룰 수도 없어요. 만날 만한 때란 말은 주님을 만날 가장 적절한 시간, 타이밍이에요. 가까이 계실 때에 그 말은 현재 여러분들의 모든 상황 자체 그 현재 모든 상황에서 기회를 놓치지 말라. 자, 말씀드린 대로 기회는 인생에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이에요.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 24장에 당시 총독 펠릭스 총독 앞에가 가지고, 그 펠릭스가 그때 막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자다. 그다음에 뭐 바울이 대단한 사람이다. 뭐 이런 얘기를 듣고 바울을 초청해 가지고 그 이제 그 도대체 네가 하는게 뭐냐? 그래 얘기하니까? 바울이 생명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복음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은 어렵고 힘들고 고통당하는 걸 분도 섬기고 구제해야 되지만 그리스도인은 필요하면 왕과 총독 앞에서도 서야 돼요. 여러분들이 생각, 여러분들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그 앞에 서서 복음을 선포할 수가 있어야 되는 것이에요. 그렇게 이제 선포하니까? 바울이 선포하니까? 펠릭스가 뭐라 그러냐? 야 그 참 놀랍다야. 나도 그 진리를 좀 더 알고 싶다. 이렇게 해 얘기를 해야 되는데 뭐라고 반응했냐면 사도행전 24장 25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요.

*사도행전 24:25,
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미루는 거예요. 미루는 거예요. 여러분 미루면 안 됩니다. 미루면 안 되는 것이에요. 오늘이 내용은 두 가지가 포함돼요. 처음 오늘 교회 오신 분에게도 이 마음이 이 말씀이 포함되고, 이미 우리 예수 믿는 기성 성도들에게도 이것이 그대로 포함되는 거예요. 대표적으로 제자 훈련 미루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제자 훈련을 받기에 적합한 때는 없어요. 지금이에요. 지금, 아 내가 환경 좋으면? 아니에요. 오늘도 사탄은 속삭이는 거예요. 당신의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나중에 하자고 미루게 하는 거예요. 이게 다. 사람의 생각이에요.

제가 대학 시절에 우리 그 예수 믿는 대학생들끼리 북쉐어링 북북 쉐어링 클럽이라 해 가지고 같이 뭐 존스트도 CS 루이스도 그다음에 프란스 셰퍼 뭐 제패크 이런 분들의 책을 읽고 우리가 그걸 읽고 이제 북쉐어라는데 그때 책 중에 하나가 CS 루이스가 썼던 스크루 테이블의 편지라고, 옛날에는 그 번역하는 악마의 편지라는 그런 책이 있어요. 거기 보니까 이 최근 악마 스크루 테이프가 그 조카 웜우드에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예수 믿지 못하게 할까, 라는 편지 형식으로 조언하는 그야말로 악마의 얘기예요. 그중에 아직 이런 내용이 있어요. 미룸, 미룸이 지속되는 그는 거짓된 입장에 체악이 될 것이다. 미룸이 지속되는 그는 크리스천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래 계속 미루게 해라. 계속 미루해라. 새로 신앙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 말해 주는 내용이에요.

새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신앙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말고, 지금은 신앙을 숨기도록 설득하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가 계속 크리스천으로 드러내지 않고 미루는 한 그는 거짓된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고, 헤멜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CS루이스는 이 책을 통하여 신자가 신앙을 솔직히 드러내야 할 때, 그 일을 미루면 결국 이중적인 삶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다. 위선적인 삶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의도적으로 말하는 것이에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나의 신앙을 지금 말하지 말자. 나중에 얘기하자. 이렇게 미루게 되면 결국은 사탄이 의도하는 이중적인 존재, 위선적인 존재가 되어 가지고 사탄이 원하는 것처럼 거짓된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숨기면 믿음이 약화되고 세상과 믿음 사이에 양다리 걸치면 결국은 거짓된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 믿는 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예수 믿는다는 이 사실을 명확하게 여러분들 드러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가 감당할 몫이에요. 그럴 때,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축복을 하시는가? 오늘 복음의 진수를 깨닫게 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열매를 허락하신다. 그 열매를 위하여 10절과 11절에 이렇게 나와요.

IV, 넷째, 복음의 진수를 깨닫게 되면, 기쁨과 감사의 열매를 맺게 된다.

-10절과 11절을 보겠습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그대로 우리가 크게 합독하고 그대로 우리가 선포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보겠습니다.
*이사야 55:10-11,
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자, 뭐가 내린다고요? 하늘에서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린다. 그랬어요. 여러분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리면 땅에 적셔져 가지고 파종이 되고, 열매를 뿌리에서 열매를 자하게 하는데 비와 눈이 내려가고 다시 올라가는 법은 없어요. 내려가는 거예요. 내려가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복음 역사도 마찬가지예요. 복음의 비가 은혜의 비가 내려오면 결코 헛되히 돌아가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온전한 열매가 맺어진다는 것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비와 눈이 하늘부터 내려 가지고 긍휼과 생명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구체적으로 12절에 이 내용 12절에 다 같이요.

*이사야 55:12,
12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이 기쁨은 어떤 새로운 기쁨인데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이고 이거 우리 안에 가득하게 들어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런 기쁨이 우리 속에 막 들어오게 되면요. 여러분의 몸도 평안하게 될 것이에요. 그다음에 산들도 노래하고, 나무가 손뼉 친다는 것은 이사야의이 독특한 언어 표현인데 우주적 찬양을 한다. 그런 뜻 생명의 복음이 가져올 우주적 기쁨과 새 창조의 회복을 그야말로 놀라운 장엄한 언어와 단어로 선포하고 찬양하고 있는 것이에요. 왜? 다 죽어 있는데, 죽은 시체가 생명의 능력으로 벌떡 일어나고 살아가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노래를 바라고 그다음 나무가 손을 치고 소위 우주적 찬양의 존재가 된다는 것이에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하는 얘기 있죠. 하늘도 새 하늘이요. 땅도 새 땅이고, 나무도 새 나무고. 그래서 기독교 신앙에 깊이 은혜가 있는 그런 나라들은 자연히 자연, 자연들이 다 회복이 되고 그 그 자연이 아름답게 되고 잘 관리를 하게 되고, 여러분 지금 그런 은혜가 오늘 이번에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들에게 허락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아니 우리들 모두에게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 지난 주일이 그랬습니다. 절정에 단풍으로 인하여 한국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 중에 하나입니다. 이번에 결신하신 분들은 원래 단풍이 더 아름답게 보일 겁니다. 본래 이 녹색이든 나뭇잎이 변하여 노란색과 빨간색의 옷을 입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것이 바로 뭐냐면 나무가 손뼉을 치는 것이에요. 예. 여기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13절이에요. 13절. 오늘 본문 13절 마지막 절수인데 함께 보죠.

*이사야 55:13,
13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
-죽은 시체가 긍휼과 용서를 통하여 생명의 역사와 생명의 능력을 회복을 한 다음에 난 다음에 우리 속에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게 되는데 더 깊이 들어가면 잣나무는 최고의 건축 자료요. 그 최고의 아름다운 나무 중에 하나죠. 화석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맛있는 나무예요. 자 여러분 우리가 창세기 3장에서 범죄하고 우리가 불순종했을 때, 가시와 엉겅퀴가 나오는 거예요. 찔리는 자 독초예요. 가시와 엉겅퀴가 뭐가 되었다. 화석류가 되었다. 아름답고 축복이 되는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거예요. 새 시대 영원한 언약의 상징이에요. 죽음의 저주가 끝나고 생명의 복이 임하고 고통의 자리가 아름다운 자리 기쁨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말씀 안대로 버림받은 인생이 햅시바가 되고 황폐한 곳이 쁄라가 되는 줄 믿습니다. 복음의 진수의 향기는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고통을 찬송으로 바꾸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은 “복음은 하늘의 음악이 죄인의 심령에 울리는 사건”이라고 표현한 것이에요. 이런 말을 듣고 우리의 마음속에 슬픔에 녹아지고 찬송이 흘러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면 생명의 복음의 역사가 여러분의 혈관에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51장 앞에 3절에 다. 같이 크게 크게 합독 하겠습니다.

*이사야 51:3,
3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생명의 복음, 복음의 진수에 대한 결론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사막 같은 인생을 에덴 동산 같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시다. 광야 같은 인생을 생명의 생수가 펑펑 터지는 샘물 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우리 삶에 기쁨과 즐거워함과 감사 소리가 약해져 있다면, 다시 회복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지난 한해 동안 우리는 힘든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또 우리 주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또 좌절도 하고 탄식도 했지만, 그 모든 과정들이 결코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에요. 실패도 나쁜 것만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식은 실패가 실패가 아니고 이런 생명의 역사를 제대로 깨닫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이렇게 할 때에 결국은 하나님께서 이런 복음의 에덴동산의 역사를 여러분들에게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저는 사랑의 교회 목회자로서, 제 마음의 간절한 소원은 우리 교회 교우들은 그 누구도 이런 생명의 역사의 진수를 모르고 복음의 핵심과 복음의 진수를 모르고 죽는 그런 성도들이 우리 가운데 아무도 없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번에 결신한 성도들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한 분 한번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요약
우리를 오라고 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우리에게 또한 풍성한 물과 젖과 포도주를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을 찬양하자. 오늘 모두가 다. 복음의 진수를 깨닫고 기쁨과 감사의 열매를 맺기를 소원하며, 이 능력을 가지고 우리 복음의 능력으로 불타는 성도가 되어 복음의 생명의 역사로 사명으로 헌신하는 가슴 뛰는 비즈니스맨이 되어야 한다. 또한 사명으로 헌신하는 주부들이 되자. 우리를 고통의 자리에서 일으켜 생명의 복된 자리로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하자.

-주님께서 오라! 찾으라! 돌아오라! 간절히 초청하실 때, 목마른자, 죄책감의 웅덩이에 빠진 자, 마음이 텅빈자도 와서 '주님 주시는 복음의 생명수'를 마시는 자로 살기를 소망한다. 주님께서 비교 불가의 너그러운 긍휼과 용서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으니, 미루지 않고 설레는 우주적 기쁨과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자. 우리 사랑의교회가 생명의 문을 열어주신 2,045명'을 주님께 올려 드릴 때, 한 분 한 분이 매 주일 예배드리고 다락방에 연결되어 '복음의 진수'를 배우며 성장하기를 도우며 잘 섬겨서 정착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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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11월 09일)
제목: "너의 이름을 헵시바, 쁄라라 하라"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사랑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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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11월 02일)
제목: "은혜의 해, 보복의 날“
말씀: 이사야 60:1-3, 61:1-3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
헌금송: 이주영(메조소프라노, 호산나 오케스트라)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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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찬양대가 고백한 대로 오늘 예배를 통하여 주님만의 높임을 받으시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강력한 뜻이 우리 성도들에게 삶의 여정에 그대로 펼쳐지기를 소망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우리 2주간 또 3주간의 특새(특별새벽기도회)의 기쁨과 그리고 ‘우리 한국 교회 섬김의 날’ 특별히 ‘WEA 세계 총회’를 섬긴 은혜와 영광의 여진이 우리에게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계속해서 이 존귀하고도 숭고한 이사야의 말씀을 받들어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저는 은혜의 해 보복의 날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은혜의 해’라고 그러니까? 여기 가운데 최소한 반 이상은 은혜의 태양인 줄 알고 있어요. 그게 아니고 “The year of grace” 은혜의 한 해, 그다음 보복의 날, “The day of Revenge” 이렇게. 그러니까? 제가 고마운 게, 이 제가 고마운게 말이죠. 은혜는 한해 계속 가는 거예요. 365일 보복은 하루에요. 그래서 여러분 심판과 보복보다. 은혜가 365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알겠어요? 아니 이 은혜가 은혜가 여러분 생애를 은혜의 희년이란 말도 있는데 한 생애를 관통하는 최고의 단어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은혜의 해가 돼야 되고, 은혜의 평생이 되어야 되는데 문제는 오늘 2절에,
 
*이사야 60:2
2...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
-그러니까 도저히 은혜를 선포할 수 없는 또 은혜를 이렇게 주장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평강이 없는 세상이에요. 제가 오늘 첫 번째 주제는 평강 없는 세상이에요.
 
I. 평강 없는 세상
 
-정의도 없는 거 같고, 불의가 득세하는 거 같고, 억울할 때가 너무 많고 제가 요즘 제일 답답하게 생각이 뭐냐면 유튜브에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사람들의 마음이 가짜 뉴스들 때문에 수많은 마음에 복잡함이 양산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가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어요.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신데 세상이 왜 이래 어려울까? 근데 거기에 대한 답은 일단 앞에 60장 앞에 59장 우리 1절 2절에 뭐라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사야 59:1-2,
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함도 아니고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함도 아니라 2절에 오직 뭐예요?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다. 우리의 죄의 본성, 우리의 부패함 때문에, 그래서 이것이 정의가 없는 거 같은 또 이런 우리 삶의 어떤 평강이 없는 같은 이런 현상을 가져오는데 그 제 얘기가 아니고 59장 뒤에 8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 8절 다. 같이 보겠습니다.
 
*이사야 59:8,
8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뭐가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어둠의 땅을 덮는 거 같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려는 거 같고 평강이 없는 이유가 뭐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가 우리를 가려워서 그렇다. 뭐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떤 분들은 좀 마음이 불편하고 어떤 분들은 또 뭐 이러냐 하고 발칵하는 분이 있을지 몰라요. 근데 하나님 없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해결이 안 되진 그런 상황은 평강이 없는 거예요. 또 일종의 쾌락이 좀 있다. 하더라도 그 쾌락이 오래 가는 것도 아니고, 그 쾌락이 우리를 역습(逆襲)하는 거예요. 2주일 전에 중앙 일간지에 스탠포드 대학의 정신의학과 교수가 쓴 그 대답한 내용이 나오는데, 참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어요. 사람들이 오늘 옛날보다. 훨씬 우리가 살기가 좋다는 거예요. 옛날에 비해서 훨씬 우리가 어 편리한 세상이 되었죠. 자매님 여러분 제일 고마운게 세탁이죠? 우리 사람들 그래 세탁기가 너무 고맙다. 만약에 여러분 자매님들은 세탁기가 없으면 여러분 지금 평생 지금 빨리 한다고 있잖아요. 계속 그래 할 거예요. 편리한 세상이 됐어요. 심지어 택배를 통하여, 영상을 통하여, 수많은 편리한 것들이 많이 있잖아요. 우리에게 뭐 뭐 SNS나 뭐 쇼핑이나, 심지어 알코올, 음식, 뭐 먹방 이런게 마약, 도박 이런 것들이 이게 갖고 오는게 뭐냐면 즉각적인 쾌락이에요. 즉각적인 쾌락이 가져오는 현상이 뭐냐면, 소위 도파민 폭발이에요. 도파민이 뭐 뭐 좋은 것도 있겠죠. 비정상적인 정상적이지 못한 도파민이 막 더 압도하는 거예요. 놀라운 것은 이 도파민 폭발로 쾌락으로 기울면 쾌락적으로 도파민이 비정상으로 가게 되면, 반드시 고통의 역습이 따라온다는 것이에요. 평강하지가 못하다는 것이에요. 도파민 중독은 우리의 뇌를 망가뜨리는 거예요. 그 최악의 얘가 뭐냐? 쇼츠예요. 유튜브 쇼츠, 포르노, 이런 것들이 우리를 멍한 바보를 만드는 거예요. 여러분, 밤에 12시 1시에 그냥 유튜브 쇼츠 본다고 막 한 두시 해 갖고 막 열심히 했는데 돈이 나옵니까? 밥이 나옵니까? 은혜가 됩니까? 맞추고 나면 Nothing Heaven,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허망하기 짝이 없는 거예요.
 
이게 뭐냐면 쾌락으로 기울 잘못된 도파민이 고통의 역습을 가져온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말하면 도파민의 길들여 진 우리의 뇌를 되돌리고 리셋을 해야 되는데 그래야 뇌의 쾌락점이 재조정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잘못된 도파민을 누린 것에 대한 처절한 역습을 당한다는 거예요. 엉터리 페이크 뉴스 때문에 생긴 허무와 딜레마가 있다는 것이에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 오늘 본문에 보니까? 뭐 우리는 이런 식으로 우리가 해석을 하지만 우리 현상이 있지만, 여러분 어두움이 땅을 가리고 그다음 캄캄한 만민을 가리웠다. 그랬을 때, 이사야가 이런 말씀을 쓸 때에, 너무나 이 영광스러운 단어들을 많이 썼지만 이사야가 경험한 이 상황은 그가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말씀의 해, 은혜 해, 은혜의 평생을 설명할 만큼 그렇게 만만한 환경이 아니었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시드기야가 포로로 잡혀가는데, 어떻게 눈알이 막 빼지고 완전히 잿더미가 되고, 솔로몬의 찬란한 영광이 시드기야 왕의 비굴함과 고통으로 추락해 버렸어요. 그야말로 그 시대에 강력한 도파민의 역습이 보복의 날이 시작된 거예요. 솔로몬 성전에 난한 아름다움이 파멸되고, 죄와 폐허로 벌어진 도시가 된 것이에요. 이게 끝인가?
 
우리 입장에서는 아 이렇게 해가지고 우리 힘들어 할 수 있지만 오늘 60장 59장 60장 특별히 61장의 놀라운 말씀, 그래서 제가 이사야의 모든 말씀은 반드시 신약의 창과 교부들로 해석을 해야 한다고,,,. 그래서 61장 오늘 1절부터 3절까지 본문 가운데 중요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임할 때에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그다음에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쭉 나오죠. 그리고 거기 나오는 거 보니까? 포로된 자에게 그리고 갇힌 자는 외적인 고통이고, 마음 상한 자와 슬픈 자는 내면의 고통이에요. 외적인 고통이든 내적인 고통이든 하나님께서 이렇게 치유를 하신다고 말씀하시는데, 이걸 신약의 창으로 해석한 것이 오늘 61장의 내용을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4장에서 강력하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에 보니까?
 
*누가복음 4:18~19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야 근데 아까? 이사야 61장 2절에 보니까?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이 있다.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이 두 가지가 있는데 놀라운 것은 누가복음 4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보복의 날을 삭제해 버리셨어요. 별로 감사도 안 하시고, 이게 너무나 놀라운 아 주님의 심정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이 보복의 날이 삭제되고 하나님의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가 너희가 일어나라 빛을 바라라 그랬을 때, 우리가 무슨 능력으로 빛을 바랍니까? 빛을 바랄 수 있는 비결이 뭐냐면, 여호와의 영광이 우리 위에 임할 때, 우리가 빛을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는 우리 힘과 실력으로는 빛을 바랄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압도할 때, 우리는 빛을 비출 수가 있는 것이에요. 아까? 처음에 정의는 일어나 정의는 실현되고 있는가?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라고 그래서 왜 가만히 계시는가? 그렇게 우리가 보면서 하나님은 반드시 반드시 죄는 심판하시고, 하나님은 반드시 정의는 실현하시는 것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정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데 은혜의 해가 되게 하여 주셔서 정의를 이루어 주시는 것이에요. 그러고 그것이 그냥 그걸로 끝이 아니라 누가복음 4장 18절 19절 말씀하고 그다음 바로이어서 21절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시작.
 
*누가복음 4:21,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할렐루야 심판의 날 보의 날이 심판의 날이 반드시 오지만 그 보복의 날을 삭제하시는데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주시는가? 강력한 목자의 심정을 주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보복의 나를 잠깐 연기하시는 것이에요. 여기에 주님이 우리가 볼 때는 세상 보복의 날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진노를 쏟아 붙는 것이 회복의 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좀 이렇게 우리 기다려 주시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지금 다음 주부터 우리 ‘대각성 전도 집회’가 있는데 대각성 전도 집회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아무도 멸망치 않고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에요. 답은 뭐냐면,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회복의 날을 준비하고 계시고,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이 불공정해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면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은혜의 평생을 경험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기다려 주시는 것은 회개의 기회이고, 은혜의 연장이며, 사랑의 박동인 줄로 믿습니다.
 
이 이유로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이 혼란과 불리와 고통이 가득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 것처럼 사람들이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고 그 당시 1세기에 베드로가 경험한 그 상황은 말로 당할 수 없는 불이었고, 평강이 없는 것이었고, 수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당장 주님이 보복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베드로 3장 9절에 핵심이 뭐냐?
 
*베드로후서 3:9,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할렐루야.! 이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침묵을 하나님의 부제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 하나님의 고유하심은 하나님, 하나님의 자비하심, 하나님의 은혜의 저 깊고 깊은 호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이 주일도 우리가 오늘이 아침에가 떠오르면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것은, 오늘이 주일이 일주일의 첫날로 새로운 첫날이 시작되는 이유는 또 다른 하루, 또 다른 첫날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 있는 수많은 상처받는 사람들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초대의 하루가 되는 것이에요.우리가 오늘 숨을 쉴 수 있는 것은 그저 삶의 연장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에요.
 
오늘 당장 보복의 날 심판이 행해지지 않은 것은 은혜의 연장으로서,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심판을 지금 멈추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에요. 따라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박동이며, 우리에게 아직 구원의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이에요. 사람들이 볼 때, 왜 이래 세상이 불공정하냐? 왜 이렇게 세상에 평강이 없느냐? 그게 아니라 오늘이 시간은 하나님의 거룩한 침묵의 시간이요. 하나님이 기다리는 시간인 것이에요. 그래서 이 하나님의 은혜에 눈을 열고 마음을 소원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전날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려운 거 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새 마음과 새 용기를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해가 돋을 때 그다음 뭐예요? 만물 신선하여라. 나도 세상 지날 때 은혜를 경험하는 은혜의 햇빛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61장 3, 3절에 보니까?
*이사야 61:3,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슬픔의 죄 대신에 슬픔 대신에 화관을 주시고 그 죄를 대신하여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고, 찬송의 옷으로 찬송의 옷으로 근심을 대신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이걸 지금 주님께서 이 주님의 기다리시는 거 안에 다. 넣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우리 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일들 하고 애를 많이 쓰시면 일주일 동안 고생 많이 하면 주일 아침 피곤하죠. 그렇지만 피곤한 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 갖고 오늘이 찬송 제 대신 화관을 슬픔 대신에 찬송을,,, 탁 제가 하면서 아침에 샤워하면서 뜨거움을 하다. 갑자기 찬물로 바바바 하면서 있잖아요.
 
주여, 오늘도 새로운 날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제 나이가 거의 70이에요. 지금 누가 저한테 70이란 말 자꾸 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여러분이 가운데는 대부분 많은 분들이 저보다. 나이가 좀 어리세요. 요즘은요. 제가 예배에 참석하면 우리 교인들이 왜 저렇게 젊나? 따져보면 제가 나이가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지만 매일매일 나이가 들어가도 오늘이 새로운 한 날, 새로운 은혜의 날, 보복의 날을 멈추시고 은혜의 평생이 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지난 우리 한국 대한민국 사회 60년대, 70년대, 80년대는 암울한 어려움들 수없이 말았어요. 지금보다도 훨씬 복잡하고 힘든 일들이 많았어요.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 침작이 가지 않을 만큼 힘든 것도 많았어요. 그런데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이사야 60장 1절 3 일어나 빛을 발하라. 그렇지, .엎 엎드려 가지고 막 이렇게 힘든 그런 오죽하면 엎드려 있겠어요? 오죽하면 주님이 일어나라고 그러시겠냐고, 오죽 힘들면 엎드려 있겠냐고, 그런데도 이 말씀 붙잡고 은혜 보복의 날이 아니라, 은혜의 해를 허락하신 주님을 믿고, 다시 한번 벌떡벌떡 일어나게 해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자, 저는 평강 없는 시대에 그리고 이것이 내가 주어가 아니라, 오늘 다. 보면 주님이 주어가 되는 것이에요. 주님께서 해 주시 여호와의 은혜의 해가 비춰 주시는 것이에요. 우리가 스스로 무슨 우리가 스스로 어 자가 생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그래서 오늘 그 하나님 때문에 이렇게 사모해서 여러분 이렇게 나오신 거 아닙니까?
 
제가 오늘 이런 말씀의 은혜를 제가 갖고, 자 내가 최근에 받은 은혜가 뭘까? 내 생에 지난 은혜 1년, 은혜 2년이 무엇일까? 그래 생각하면서 우리는 ‘6.3 상암집회’부터 시작해 가지고 작년에 ‘10월 27일 차별 금지법 동성애 법’ 통과 온 교우들이 상암집회 15,000명이 거의 갔고, ‘12.27일 우리 다시 일어나 기적의 나라를 만들자’ 했을 때는 우리 거의 3만 여명 우리 교인들이 거의 다 참여했고 이번에 “WEA 세계 복음주의총회”, “한국 교회 섬김 날”에는 수많은 성도들이 함께 참여한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은혜를 어떻게 주셨나? 수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제가 이거 우리가 진행하면서 잘 모르는 분들이 오해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자 어떤 은혜를 주신다고 제가 생각하니까? 은혜의 해, 은혜의 평생, 그 은혜가 오늘 여러분들 정리된 것이 오늘 “WEA 세계 복음주의총회의 서울선언” 이거 받으셨어요?
 
이거 뭐 관심 분들 계시지만 저는 이게 너무 감사하고 더 서울 declation 이게 어떤 은혜가 있는가? 그냥 적당한 것이 아니라, 오늘 8페이지에 보면요. 이렇게 나와 있어요. 니케아 신경 재정 1700주년을 맞이하여, 올해가 니케아 신경 니키아 크릿 니케안 신경의 1700주년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면 니케아 종교회의 니케아 신경을 제정한 그때는 몇 년이죠? 산수가 안 되십니까? 자, 1700주년이니까? 니케아 회의가 언제였죠? 주전 아 주후 325년이에요. 이번에 ‘WEA 세계 총회’는 단순히 무슨 국제복음주의총회하는 정도가 아니라 니케아 종교회의 1700주년을 기념하여 은혜를 받은 것이에요.
 
그러면 니케아 종교회의일 때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때에 그 니케아 종교의 이전에는 혼돈하고 어려운 신앙적으로 교리적으로 분명한 토대가 없어 가지고 수많은 이단들이 발호를 했어요. 그 대표적으로 니케아 종교 회의에 제대로 교리를 토대를 세운 분이 ‘아타나 시우스’라는 분이었어요. 교회 아타나 시우스, 아는 분들은 아타나 시우스가 어떤 일을 했나 압니다. 그리고 또 그때 니케아 종교회 일 때 아타나 시우스하고 붙었던 나중에는 이단으로 판명이 되었지만 아리우스파라고 했어요. 근데 아타나 시우스가 뭐라 니키아 종교의 때 사실 한 페지도 안에 짧은 글이에요. 짧은 글 재정이 됐는데 핵심이 뭐냐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시다. 동일 본질을 가지신 분이시다. 육체로 오셨지만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이것은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가 우리에게 있으니까? 쉽게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신은 이게 어마어마한 선포였어요. 그래서 호모우시오스라고 그랬어요. 호모우시오스라고 그래. 동일본질이다. 그런데 이 아타라시우스가 그렇게 했고, 아리우스는 호모이우시우스다. 그러니까? 유사본질이다. 비슷하다. 거의 비슷하다. 근데 그게 그러니까? 나타나 그게 아니다. 동일본질이다.
 
◆동일본질(호모우시오스 homoousios) Vs. 유사본질(호모이우시오스 nomoiousios)
-아주 정통을 얘기한 거. 그러니까? 유사 호모이우시오스는 아이 하나가 들어가 가지고, 이게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해. 그 이거 그러면 안 된다. 정통을 해야 된다. 그래서 니케아 종교 회의 이후에 가장 중요한 신앙, 그때 ,삼위일체 신학의 토대가 마련되고,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셨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정통성과 본질이라는 거예요. 이해가 됩니까? 그걸 기념해 가지고 1700년 이후에 2025년에 지나간 전 세계 복음주의 교회의 전통과 회의 가운데서도 가장 역사가 깊고 가장 영향이 큰 WEA(월드 이벤주컬 얼라언스- World Evangelical Alliance)라는 이런 단체에서 1700년 주년을 기념해 가지고 이번에 모인데, 그 단체에 그 단체는 말씀드렸죠. 공산주의가 잘못 되었다. 잘못된 진화론이 잘못 과학주의가 잘못되었다. 그다음에 뭐예요? 자유주의신학이 잘못됐다. 이것 때문에 생긴 거예요. 그래요. 이것도 못도 보는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 하고 있는데 정통 신학을 개성하는 WEA 세계 총회가 이번에 뭘 다시 천명했는가? 오늘 여기에 나오죠. 여러분 또박또박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우리는 복음주의 신앙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계속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성경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성령은 오늘도 활발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복음의 선포를 통한 영혼 구원과 교회를 위한 제자 양성이 우리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사명임을 강조합니다.”
 
-너무나 너무나 놀라운 선언을 하고 있는 이게 21세기의 언어를 가지고, 오늘이 디지털 시대에 이 SNS 시대에, 이 복잡의 시대에 너무나 강력한 선포를 하고 있는 것이 그게 제가 홀리 싱귤레이티라고, 이 복잡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뉴 챕터를 쓰게 하시고, 특이점을 쓰게 하시고 그러나 1700년 동안 이케아 종교회 이후에 정통성을 가지고 그래서 이 WA의 첫 번째 언어가 뭐냐? 세계 첫 첫 번째 너무나 소중한 것이고 이것이 오늘 21세기 아마 한국 교회 우리에게 특별한 계기가 되게 하여 주셔서 이거 지키면 대한민국 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이거 지키면 대한민국 교회는 부흥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회 앞으로 뭐 장례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하고 있는데, 여러분 이거 확실히 지키면 대한민국 교회는 부흥할 것입니다. 그 저는 이게 너무 감사해서 어제 말씀드렸죠. 이거 제가 이거 너무 좋아 가지고 기뻐 갖고 이러 너무 혼자서 너무너무 감사해서,,, 이게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우리에게 실체적으로 주신 것이라고 믿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진리가 선포가 된 것입니다.
 
이번 WEA 세계 총회의 에피소드는 말할 수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제가 말씀드리지만 2천년 교회 역사는 반드시 뭐가 있다? 답이 있다. 이 정통 신학을 지키면 반드시 하나님이 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오신 대표단들은 와 가지고 큰 위로를 받고, 다시 힘을 얻었다고 감사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그분들이 이렇게 써 놨어요. 잠시 천국에 다녀온 것 같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여러분 나는 너무 감동 받았는데 여러분들은 보통인 거 같아요. 다시 얘기할게요. 잠시 천국에 다녀온 것 같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멘. 아멘. 아멘. >> 독일에서 오신 목사님은 저녁 산상 기도의 때 너무나 강력한 영적 기름부음이 있도록 은혜 주신 것 감사하다. 유럽 교회가 많이 약해져 있는데 힘이 빠져 있는데 다시 힘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유럽 돌아가는데요. 비행기 시간이 막 안 맞아 가지고 막 늦게 도착하고 좀 어려운 일이 많았대요. 그래 옛날 같으면 그런데 이번에는 잠시 천국 갔다. 왔기 때문에 오케이, 그러면서 다. 품었다는 것이에요. 이번에 여러 제3 세계에서 오신 목사님들이 계셨는데 그분들은 이방 종교가 너무 폭력적으로 핍박해 가지고 주눅들고 상처가 많았는데, 이번 총회에 참석하면서 위로받고 용기 얻고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토론하고, 사회의 방법을 공유하고 넷트웍 하는 가운데서 다시 소망을 갖고 시작할 힘을 얻었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우리 교회 성도들은 지난 한 주간 우리 1년 웃을 걸 다. 웃었어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 웃고, 옛날에 엘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숫자만 쳐다보고 있던 직원들 우리 직원들도 외국 목사님들이 영어로 얘기하니까? 다. 미스코리아 미소로 대했어요. 뭐 못 알아들어서 웃어야 되고, 이래 되니까요.
 
노란 조끼를 입고 섬기던 봉사자분들이 얼마나 친절했는지 외국에서 오신 분들이 뭐라고 얘기하느냐? 노란 조끼를 입은 천사들을 만났다. 저희들이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지구촌 어느 한 지역 교회가 이번 총회를 통하여 살아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강한 도전 받았습니다. 스테판 통 박사께서 뭐라고 얘기했습니까? 한국 교회만 잘되면 되냐? 대한민국 교회만 잘되면 안 되냐? 쩌렁쩌렁하게. 세계의 교회가 은혜를 받아야 된다고, 세계 교회가 은혜를 받으려면 1700년도 니케아 종교의 기념으로 된 이번 총회를 통하여 여기에 나타난 모든 서울은 하나하나 읽어 보면 진짜 은혜 위에 은혜를 선포한 것이에요(책참조).
 
그러니까? 잘 모르는 분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함께 한국 교회 부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제 제가 좀 정리를 하겠습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이번 총회 이후에 우리 특별히 우리 사랑하는 교회 성도들은 은혜에 대해서 눈을 다시 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은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우리가 다. 알지만 은혜에 관한 우리가 영원한 채무자로서 다시 한번 눈을 열어야 되는 거예요. 오죽하면 15절에 보니까? 나와 있어요.
 
*이사야 60:15,
15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할렐루야입니다. 감히 희망을 논할 수 없는 척박한 환경 가운데서, 멸시받고 다. 떠나고 고아와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데 대대의 기쁨을 대대의 은혜를 주시겠다는 꿈 같은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저는 이런 꿈 같은 은혜가 북한에도 이런 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전에는 그랬지만 이제는 인데 그냥 이제는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 보세요. 누가 그렇게 하시느냐? 15절에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이 내가는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인 줄로 믿습니다. 이걸 여기에 대한 은혜를 여기에 센스를 회복하니까? 아 주님께서 보복의 나를 삭제하신 이유가 무엇인지이 신비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들의 과거가 어떤지, 여러분의 상황을 다. 모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안정된 상태인지, 답답한 상태인지, 아니면 지금 시험 들고 있는지, 오늘도 예배 들으면서 얼마나 어떤 복잡한 마음을 갖고 오셨는지 순간순간 여러분 마음의 파도를 제가 다. 알 수가 없어요. 여러분들이 제대로 뭐 준비를 다. 몰라요. 여러분의 삶에 과거를 제가 다. 몰라요. 그러나 제가 아는 단 한 가지는 뭐냐면 우리 모두는 이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것입니다. 아멘. 은혜와 진리 가운데 우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10절에 보니까?
 
*이사야 60:10,
10 내가 너를 노하여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불쌍히 여겼은즉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오늘이 자리가 천국의 애굽편이 될 수가 있는 것이고 그 은혜 때문에 오늘이 자리에 나와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은혜에 대한 센스가 회복되면, 은혜가 회복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제가 몇 가지 말씀을 드리면 우리의 삶의 인생은 모든 죄와 저주와 죽음과 상처와 절망과 슬픔이 다. 있습니다마는 그 상처와 슬픔이 다른 식으로 십자가의 은혜와 보혈 복음을 통하여 은혜를 받으면 처리가 되는 것이에요. 무슨 뜻인가? 죄가 은혜가 되는 것이에요. 저주는 축복이 되는 것이에요. 죽음은 생명이 되는 것이에요. 상처는 치유되는 것이에요. 절망은 소망이 되는 것이에요. 슬픔은 기쁨이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제가 물을 때 한번 다시 답을 해주세요. 죄는 뭐가 된다고요? 저주는 뭐가 된다고요? 죽음은 뭐가 된다고요? 죽으면? 상처는 뭐가 돼요? 절망은 뭐가 돼요? 슬픔은 뭐가 됩니까?
 
오늘이 은혜가 여러분들 한 분 한 분에게 맞춤형으로 임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의 삶의 척박 환경과 문제가 크다. 하더라라도 이 압도적인 은혜가 덮어 버리면 해결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 예외 없이 은혜의 파도가 여러분들을 은혜의 폭포가 여러분들을 ---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결론은 은혜를 받으면 이 세상의 어떤 풍파도 두렵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걱정합니다. 오목사, 은혜 은혜 얘기 많이 하는데, 은혜 받은 사람들 가운데 은혜의 업이죠. 은혜를 남용하고 말이죠. 뭐 뭐 뭐 뭐 값싼 은혜란 말하고 이런 사람들 말 천만의 말씀 진짜 은혜가 은혜가 되면 방종하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살지 아니하고, 정말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 앞에 함께 마음을 열며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제 얘기가 아니에요. 창세기 6장 8절에 뭐라 오느냐?
 
노아는 여호와께 뭘 입었어요? 잘 보세요.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어 가지고 은혜를 방종하는 사람이 은혜를 남용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9절 중요합니다. 그게요.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의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어. 자, 우리 오늘 노아 대신에 여러분의 이름을 붙여 보세요. 시작. 진짜예요? 아멘. 진짜예요? 정말이냐고? 그러면 구절이 따라와야 되는 거예요. 어떻게 따라옵니까?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다.
 
*창세기 6:8,
8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세기 6:9,
9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우리는 우리의 의는 내 능력으로 생긴 의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의예요. 대신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문제보다. 더 큰 은혜가 있으면, 은혜의 방종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희한하게도 은혜를 받으면 내 마음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에요. 어떨 때는 거룩한 두려움이 휩싸이게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만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만 두려워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이 은혜를 받으면 세상이 두렵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세상에 이런저런 말이 있어도 두렵지 않는 것이에요. 저는 지난 2년 또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WCC하고 WEA를 구별도 못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저도 사람이니까? 마음이 좀 아플 때가 있었어요. 그러나 제 마음의 근본에는이 밑바닥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의 은혜의 강수가 흘렀기 때문에 웬만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로 직진!!~~요. 하나님의 은혜로 직진 직진 직진 직진 우리가 사람이니 어떻게 환경이 두렵지 않겠어요? 그러나 은혜가 여러분들을 덮어 버리면 당당한 삶을 세상 사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당당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여러분들만 누리지 말고 요엘서 1장 3절에 놀라운 말씀이 있는데 시작.
 
*요엘 1:3,
3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여러분들만 누리지 말고, 믿음의 은혜 계승을 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회 미래에 대해서 이렇쿵저쿵 해석하고 한국 한국 한국 한국 한국 한국 교회가 앞으로는 디클라인 될 것이다. 약화될 것이다. 많은 얘기를 합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믿는다면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대한민국 교회는 이 정통을 지킬 때 대한민국 교회는 부흥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교회는 소망을 가질 것입니다. 먼 훗날 2025년도 10월 30일 서울은 이 대한민국 교회 은혜의 싱귤라리티, 새로운 특이점, 새로운 뉴 챕터를 펼쳤다고 말하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광산에서 보석을 캐고 캐고 캐고 여러분 파고 파고 파고 그래서 은혜의 무한지평생 은혜의 신년을 누리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가슴에 손을 얹고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요약
우리 온 성도들 온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의 가판 위에 올라와 가지고 지난 몇 달 동안, 아니 지난 2년을 하나님의 나라에 귀한 일들을 섬기게 하심을 감사하며, 핍박으로 고단했던 제3 세계 교회 지도자들이 세계복음주의회를 통하여 위로와 용기를 갖게 하심을 감사한다. 또한 이 가을의 이 은총의 계절, 결실의 계절에 하나님이 지금 침묵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줄로 믿는다. 이번 새 생명 축제에도 은혜 구원의 날이 선포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마음이 상한 자와 포로 된 자들이 다. 치유 받고, 우리가 은혜의 방종자가 아니라, 은혜의 탄광을 파고 파고 또 파서 은혜의 평생 무한 지평이 열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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