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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8월 24일)-초빙
제목: "낮추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
말씀: 신명기 8:11-1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노추찬 부목사님(대학부, 토비새 TFT)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헌금송: 신예은(소프라노), 강천성(바리톤)-1부
설교자: 권성수 목사(대구 동신교회 원로,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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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명기 8:11-16,
11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 ▶현장과 온라인으로 동참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 인생은 어떻습니까? 고통 중에 고민하십니까? 좀 형통한 편이라고 생각이 드십니까 인생을 살아가시면서 좀 잘 풀리는 것 같은데, 지금쯤에는 더 이상 권한이 없겠지 싶은데 또 고통이 찾아오는 것을 느끼시지 않습니까?
고통과 형통이 이게 거의 번갈아서 기간은 좀 다르지만 일어나고 있는 인생을 살아가시면서 여러분, 어떻게 신앙의 반응을 보이십니까 고통 중에 혹시 불평하고, 원망하고, 신세타령 하시지 않습니까? 형통할 때 마음이 교만해져서 이만하면 됐다. 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말씀을 잊어버리시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인생 전체는 천국 가나안을 향해서 나아가는 여정(旅程)입니다. 이 천국 가나안을 향해서 나가는 여정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실까요?
오늘 여러분이 말씀을 보셨습니다 마는 모세가 40년 광야 생활이 끝나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지금으로 말하면 요르단, 요단 강 건너편 요르단 거기에서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말씀하시는 내용이 신명기인데, 그 신명기 내용 중에 8장에 오면 광야 생활 전체의 의미와 또 가나 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8장 16절에 보시면,
*신명기 8:16,
16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이 말씀이 나오는데 이것이 광야 생활의 핵심이에요.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놓고 보실 때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할 때, 낮추시는 걸 좋아하세요?. 시험하시는 것을 좋아하세요. 마침내 복을 좋아하세요? 질문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마침내 복을 좋아하시죠. 마침내 복 다 좋아하시거든요. 제가 그 말씀부터 시작할게요 마침내 복 복이라는 게 뭡니까? 복이라는 말이 나오면 조금 신학적으로 예민한 분들은 번역신학이 금방 떠오를 거예요. 번영신학, 프로스페라티 가스펠(prosperity Gospel) 건강하고, 부하고, 행복한 것, 예수 잘 믿으면 건강해진다. 이 사람이 되면 부해진다. 예수 잘 믿으면 세상적으로 봐도 행복해진다. 저게 번영신학이죠.
이 번영신학은 건강한 것을 보면 잘 믿었다는 거예요. 병들었으면 못 믿었다 부유한 것을 보면 잘 믿었다는 거예요. 가난하면 못 믿었다는 거예요. 세상적으로 볼 때, 행복하면 잘 믿었고 불행하면 못 믿었다는 게 정말 그렇습니까? 결과를 놓고 믿음의 여부와 그 믿음의 강도를 측정하는 잘못된 거죠. 또 번영신학, 번영 신앙에는 십자가가 없습니다. 크레딧 카드는 있어도 십자가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게 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했는데, 주님을 위한 삶의 여정에서 주님의 뜻대로 살면서 겪는 고통, 이게 십자가죠 의를 위해서 천국의 의를 위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것을 위해서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이 십자가죠. 번영신학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번영신학은 이런 문제가 있는데, 그러면 번영신학이 말하는 건강과 부와 행복은 전혀 없는 것인가? 예수님은 무조건 가난해지고, 병들고 세상 적으로 불행한가, 여러분 이걸 어떻게 생각하세?. 여러분이 성경을 전체를 펼치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또 구원의 역사, 세계 역사 전체를 놓고 펼쳐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지 않습니까?
창조하실 때는 영적인 복만 주신 것이 아니라, 육 적인 복도 주셨어요. 영적인 복도 하나님과의 관계 이것도 완벽했고 타락하기 전에 육적인 복도 완벽했어요. 건강도 완벽, 부(富)도 완벽, 우주 만물이 다 재산이었으니까 분명히 타락하기 전 창조 상태에서는 영적인 육 적인 복이 둘 다 완벽했습니다. 완성을 생각해보세요. 완성된 천국 완성된 천국에서도 역시 영육의 복이 완벽(完璧)합니다. 여러분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고 여러분의 모든 고통을 제거하시고 질병을 치료하시고, 구조적인 죄, 개인적인 죄 다 없애시고 의 불의가 전혀 없는 의 완벽한 지복의 상태, 영광의 치복의 상태 그게 완성된 천국이에요.
그러니까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시작과 끝이 영육 간의 복이 완벽하다. 이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육의 복이 완벽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영적인 복만 복이고, 육 적인 복은 복이 아니다. 번영 신학이 말하는 복은 복이 아니다. 라고 말하면 안 된단 말이에요. 창조와 완성 이때는 영역의 복이 완벽한데 그 사이는 어떤가 우리가 살고 있는 타락한 인간 세계는 어떤가 이 세계에 고통이 있거든요. 어려움이 참 많거든요. 그러면 이때의 복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라고 할 때 구약을 보시면 구약 시대에는 주로 육적인 복 현세적인 복이 두드러져 있어요. 구약시대의 복을 복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씨와 땅과 임재입니다.
씨는 가족들, 가족들이 건강하게 잘 된다. 땅은 환경, 주변 환경 그리고 임전에 하나님께서 늘 함께 계신다 근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보여주실 때 주로 이 현세적으로 잘 되는 것이 두드러졌단 말이죠. 아브라함도 수양 그러니까 양과 염소와 가축이 막 넘쳤죠. 이 삭도가 농사를 지었을 때 100배나 복을 받았죠. 가축 목축할 때도 100배나 복을 받았죠. 구약시대는 그것이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두드러져 있어요. 왜 그때는 아직도 미숙(未熟)한 시대니까, 미숙한 시대의 그림자 시대에 육 적인 복을 통해서 영적인 복을 보여주시는 그런 방식을 하나님께서 택하셨습니다.
신약 시대에 들어오면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다. 는 복이 있다고 영적인 쪽에 포인트를 맞추셨어요. 왜냐하면, 육 적인 복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것이 핵심이니까. 그 핵심을 놓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복을 생각하실 때 영적인 복도 있고, 육 적인 복도 있다. 둘 다 인정하셔야 돼요. 그런데 핵심은 영적인 복이에요. 육 적으로 가난하고 병들고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아주 불행해 보인다 할지라도 특별히 박해받는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교제(交際)하고,하나님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삶이 최고의 행복이거든요. 시편 73편 보시면 25절,
*시편 73:25,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현세적으로 몸이 아프고, 풀리는 것이 없고, 고통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할 때 하늘에서는 주 외의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가 없나이다. 이 말씀을 외우면서 고백하면서 이겨내는 거예요. 그게 핵심 회복이에요. 핵심, 회복, 그 핵심의 복이 있으면 다른 모든 것을 못 받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을 체험하는 삶을 살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현세의 천국을 시식하고, 내세의 천국을 만끽할 하나님 백성으로 살기만 하면 그 자체가 주변의 현세에 물질적인 복이 없다 할지라도 최고의 복입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려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이 없나이다. 여러분이 교인들을 보실 때도 사람들을 보실 때도 이 각도에서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고 사는 사람이 최고의 복을 누리는 사람이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이 영적인 복만 주시면서 육 적으로는 고통을 당하게 하시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박해받는 경우가 그렇죠. 세상에서 또 바로 살면서도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는 말씀대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참 많지요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고 있으면 최고의 복을 누리고 있는 겁니다. 현세에는 고통도 있고 형통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고통 중에 형통하다고 했어요. 요셉을 보시면 보디발의 가정에 노예로 들어갔지만 그 가정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요셉과 함께하셔서 보디발 집의 모든 일들이 잘 되게 하셨어요. 분명히 노예의 고통이 있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임재 함께 하셔서 형통했어요.
죄수로 들어가서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했지만, 죄수로 억울한 감옥살이 하는 동안에도, 감옥의 모든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감옥의 총무가 되었죠. 형통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의 신하들을 만나게 하시는 이 형통한 길을 여셨어요. 여러분이 현세에는 고통이 있지만 고통만 보시면 안 돼요. 고통 중에 형통(亨通)케 하시는 하나님을 보셔야 합니다. 시련을 통해서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을 보셔야 됩니다.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실 때 이 낮추시고 시험하시는 과정 중에 어떨 때는 광야를 만나요? 어떨 때는 사막을 만나요? 그러나 광야에서도 길을 내시고, 사막에서도 강을 내십니다.
다 막혀있는 것 같고,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 것 광야에서도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의 강을 내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이 일을 행하리니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의 길을, 사막의 강을 내리라.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의 강을 내시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이것이 복입니다. 복, 근데 여러분 말씀을 주위에서 보세요. 그냥 복이라고 하시지 아니하시고, ‘마침내’ 라고 할 수 있어요. 마침내 복,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침내 복 받기를 원하세요?. 당장 복 받기를 원하세요. 기도를 해도 여기서 기도하면 나가면서 바로 응답 받기를 원하세요? 아니면 5년 후에, 10년 후에, 20년 후에 받기를 원하세요? 당장 받기 원하시죠.
여기에 갈등이 있는 거예요. 우리는 당장 복을 주시옵소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당장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네게 주겠다. 요 사이의 갈등이죠. 왜 마침내 라는 게 필요할까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놓고 왜 마침내 라는 것이 필요할까요? 마침내, 마침내 제가 예전에 기도할 때, 아무리 기도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서 하나님 왜 하나님께서 해결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신데, 오케이 하고 한마디 하시면 당장 되지 않습니까? 저의 문제를 당장 해결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오케이라고 하십시오. 오케이라고 하십시오. 하나님 입을 꼬매셨습니까? 오케이 그럼 끝이 아닙니까 근데 왜 오케이를 안 하십니까?
제가 다 얘기했지만, 그 갈등이 아주 심했어요. 왜 당장 오케이 하지 아니하시고 한참 후에, 마침내 오케이 하시느냐 이거죠. 마침내 복을 주시느냐, 본문을 보시라고요. 시험하고 낮추시고 시험하세요. 마침내 복 그러면 굉장히 성도들이 좋아하시는데 시험하시고, 낮추시고 시험하자 그러면 푹 꺼지는 것 같아요. 왜 낮추시느냐 한번 생각해보세요. 왜 낮추시느냐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세요. 겸손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에 접속이 안됩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의 간섭을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겸손해야 되거든요.
마이클 에그너라고 하는 유명한 신경외과 교수가 있습니다. 무신론자입니다. 이 뇌 수술을 수백 번을 했어요. 어떤 경우에는 뇌를 거의 3분의 1을 잘라내는데 이 정도 잘라내면 뭐 운동신경이 마비되고 무슨 생각하는 신경이 마비되고 정상적으로 살지 못할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게 수술했는데도 정상적으로 사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분이 나중에 숨이고 난 후에 영혼 두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 마음 속사람이 있다는 것을 간증하고 설파하는 그런 유명한 교수입니다. 그런데 무신론자였습니다. 처음에는 근데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이 조금 지나면 엄마 아빠와 눈을 마주치면서 반응을 보여야 돼요. 반응 아들이 반응을 보여야 정상이잖아요. 반응을 안 보여요. 아무런 표정이 없어요. 자폐입니다.
자폐 아빠가 막 가슴이 찢어지는 거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인생이 끝난 것 같아요. 아무리 유명해도 소용없다. 내 아들이 이러니까 정말 죽을 지경이에요. 무신론자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을 믿지 않습니다. 당신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정말 살아계신다면 내 아들 좀 회복시켜 주십시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무신론자인 이 외과의사에게 당장 말씀하셨어요.
네가 니 아들의 반응을 내 한테 보이고 있어 네가 니 아들과 똑같어, 나에 대해서는 니 아들과 똑같어. 니 아들이 너를 알아보지 못하지? 너에 대해서 반응이 없지. 니가 지금 나에 대해서 반응이 없어 날 알아보지 못해. 그때 신경외과 교수인 이 에그너 박사가 깜짝 놀라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바로 항복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몰라봤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보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기도가 그 정도입니다. 고 정돈데 아이가 태어나서 6개월 되던 해에 자폐증이 완전히 사라지고, 엄마 아빠를 보고 웃고, 울고 정상적인 아이로 변해버렸습니다. 에그너 박사가 자기가 최고의 외과 의사로서 대단한 사람이다. 난 하나님 필요 없다. 하나님이 없다. 라고 할 때는 하나님과의 접속이 안 된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걸 낮추시니까 납작 엎드려서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낮추시는 거예요. 예수를 믿어도 어느 순간에 다시 올라오거든요. 낮추시는 작업이 꼭 필요합니다.
제가 웨스민스터에서 공부할 때,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그러니까 그분은 명문대 나왔고 또 미국의 주요한 아주 대단한 직장에서 취업해서 잘 살다가 하나님께서 목사가 되도록 부르셔서 학교에 왔는데, 학교에서 평소에는 너무너무 자기가 대단한 줄 알고 하 이러고 다니는데 시험 볼 때만 되면 막 그 학교가 학생들을 정신적으로 고문하는 학교니까 시험 문제가 너무 힘드니까, 시험 문제 시험 때가 되면 내려간대요 내려간대요 자기가 죽겠다는 거예요. 죽겠다는 거예요.
근데 시험만 끝나고 나면 다시 올라온대요. 자꾸 내려갔다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가 올라왔다가 그러면서 자기는 자라목이라고, 자라목 자라처럼 움츠렸다가 피었다가 움츠렸대요. 이게 그 사람만이 아니거든요. 인간입니다. 인간이 다 그렇습니다. 유발 로아 하라리라고 하는 히브리 대학의 역사학 교수인데 역사학 교수가 미래의 약사학, 미래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호모데우스라는 책을 썼어요. 인간이 하나님이다. 처음에는 ‘호모 사피엔스’ 생각하는 인간 자 인간이 진화되어서 생각하는 인간까지 왔다 그 다음 단계는 뭐냐 호모데우스다 인간이 신이 된다.
어째서 그러냐 과학과 기술이 발전되고 있으니까 생명공학이 발전하고 있으니까 ai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으니까 모든 데이터를 다 합쳐 가지고 기술을 다 합쳐 가지고 사용하고 활용하면 결국은 인간의 모든 질병을 다 치료한다. 그리고 영생을 확보한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된다. 그게 호모데우스예요. 호모데우스 이게 그 학자만의 주장이 아니고, 안민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 상태 자동 교만입니다. 자동 교만 인간은 자동 디폴트로 교만합니다.
장세기 3장에 뱀이 하나님처럼 된다고 유혹할 때,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기도 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를 제쳐놓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는 요런 죄를 범한 이후로 끊임 없이 자동적으로 인간은 교만해요. 하나님 없이 살려고 하는, 이런 본성 죄악의 본성이 있습니다. 자동 교만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고 환경교만 있어요. 환경에 의한 교만 고통이 오면 고통 중에 하나님 왜 나 이렇게 하십니까? 날 버리셨습니까?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근데 왜 나한테 복을 안 주십니까 이러면서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많은 기적을 체험해도 문제에 부딪치면 또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이게 광야 시대의 하나님 백성만이 아니고 우리의 모습이에요.
아무리 많은 기적을 체험해도, 하나님의 기도응답을 체험해도 어려우면 또다시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까 하는 하나님이 시험하는 것이 나오고 왜 하나님이 나한테 이러시는가 라고 하는 불평과 원망이 나오고 자기에게로 가면 신세타령이 나오고 남들에게로 가면 대인기피증이 나오고 이게 인간이거든요. 고통을 당할 때 그렇게 되는 거예요. 왜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가? 예수 믿으면 문제 해결 받고 행복해지고, 잘 산다 듣고 왔는데 예술을 잘 믿고, 기도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했는데 여전히 문제는 계속된다. 구하라 주실 것이오 라고 하셨는데 내가 생각하는 아주 멋지게 생기고 좋은 직장도 아니고 대단한 사람인데 주여, 저 남성을 나한테 배우자로 주시옵소서.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 그래서 떠나는 거예요.
고통 중에 떠나는 것 자체가 교만입니다. 불평 원망 신세타령이 교만입니다. 풍요로울 때는 어떻게 되냐 형통 중에는 본문에 나온 대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이라는 좋은 땅을 주시고 젖과 굴이 흐르는 땅이라는 거는 풍요로운 땅이라는 뜻이에요. 옥토가 있습니다. 곡물이 잘 자랍니다. 가축이 잘 됩니다. 동이 나고 철이 납니다. 샘이 있습니다. 중동에서는 물이 생명인데, 샘이 있습니다. 분천이 있고 시내가 있습니다. 너무 좋은 환경이에요.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하나님 백성들 앞에 놓고 이제 이런 땅에 들어간다. 이런 땅에 들어갔을 때에, 너희들이 풍요로운 땅에서 하나님 주신 복을 마음껏 누리면서 잘 살게 될 때에 마음이 교만해서 여기에 핵심이 있어요. 마음이 교만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주의하라 사람이 잘 살면 내 능력 내 지혜로 내가 잘 산다는 생각을 하게 돼 있습니다. 내가 명문대 나왔으니까, 내가 대기업에 취업했으니까, 내가 사업을 잘했으니까, 내가 인간관계를 남들보다 뛰어나게 맺었으니까, 내가 남보다 아이디어가 뛰어나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된 거야. 내가 벌어서 내가 마음대로 쓰는데 무슨 잔소리냐 이런 태도가 되는 거거든요.
하나님께서 배부르게 하시고 배부르게 하시면 인간이 마음이 교만해지고, 마음이 교만하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볼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이것이 환경으로 인한 교만이에요. 자동 교만의 환경고문 교만이 있어요. 그래야 하나님이 작업을 하셔야 됩니다. 낮추시는 거예요. 낮추시는 작업 이 낮추시는 작업을 하실 때 여러분 생각하기를, 아이고 하나님 제가 뭐 교만하지 않은데요. 절대 교만한 것이 아니에요. 교만하지 않아요.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테스트를 해보시면 돼요. 자존심을 건드릴 때, 여러분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존심을 짓밟을 때 거의 막 폭발하듯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거의 못 봤어요. 자존심이 짓밟히면 아무도 못 살아요. 교회를 할 때도 당에서도 자존심을 짓밟는 일을 하면 다 깨집니다. 너무너무 잘 알죠. 그런데 여러분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자동 그 자존심이 짓밟히는 일을 당할 때 어떻습니까? 시편 66편 12절에 보면,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지나가게 하셨다고,
*시편 66:12,
12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여러분, 내 머리 위에 발을 대고 막 나를 밟는다. 그러죠 짓밟는다. 근데 짓밟는 정도가 아니라 막 타고 지나가게 하시는 거예요. 내 머리 위를 타고 지나가게 하세요. 저는 내 머리 위를 짓밟는 정도가 아니라 머리 위에 짓밟고 막 뒤돌리는 체험을 했어요. 여러분 이런 체험을 하실 때 어떤 반응입니까?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했다. 그런데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마침내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요? 주께서 끌어내서 풍부한 곳에 들이시기 전에, 사람들이 머리를 타고 가게 하시는 일을 하신 거예요. 이런 일을 겪을 때 여러분 반응이 어떻습니까?
다윗이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맨발로 울면서 피신할 때, 시므이라는 사람이 돌을 던졌죠 돌 하나만이 아니고 여러 개 돌을 던졌죠. 그리고 먼지를 막 날렸죠. 그러면서 저주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말 번역에 보면 가거라 가거라 돼 있지만 그렇게 점잖게 저주하지 않습니다. 꺼져락 꺼져 이 나쁜 놈아 왕을 향했어요. 다윗과 같은 왕을 향해서 그러니까 옆에 있던 장군들이 저 죽은 개 같은 인간 목을 쳐버릴까요? 보통 사람 같으면 목을 치는 거예요. 다윗이 안에 내버려 둬, 내버려 둬,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나를 저주하게 하셨다면 내가 받아들이겠다. 받아들이겠다. 이게 다윗의 겸손입니다. 겸손 이 겸손하도록 하나님께서 광야 훈련을 시키시는 거예요.
광야 훈련 광야 훈련은 질병의 훈련이 있습니다. 가난의 훈련이 있습니다. 실패의 훈련이 있습니다. 모든 게 잘 되는데도 아이들이 막 엉망인 그런 훈련도 있습니다. 특별히 관계 훈련이 아마 제일 힘드실 거예요. 가족들과의 관계, 직장에서의 관계, 개인들과의 관계 이게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감당을 못 하실 거예요. 여러분의 어떤 사람을 만나면 정상적인 사람인데 분명히 정상적인 사람인데 여러분 마음속에 생각이 어떻게 나냐 하면 저 사람이 사람인가, 짐승인가, 마귀인가, 들어가면 마귀 새끼까지 간다고 막 시작했죠.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저래 이런 관계의 고통도 훈련 속에 들어있습니다. 이런 훈련 속에서 낮추시는데 낮추시면 여러분들이 그 낮추심을 통해서 겸손해지는 거예요.
낮추시면 되겠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점점 더 겸손해지는데 여러분 보십시오. 바울 사도가 얼마나 겸손한 분입니까? 얼마나 대단한 경험을 했습니까? 얼마나 되는 천국까지 갔다 온 그런 경험 계시까지 받은 분인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탄의 가시 몸에 가시를 주셨죠. 낮추시는 거예요. 그렇게 겸손한데도 낮추시는 거예요. 바울에게 이 정도였다면 우리에겐 끊임없이 하시는 거예요. 바울이 겸손할 수밖에 없는 육체 가시를 주셨어요. 그것이 교만 제어 장치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저한테도 있습니다. 평생토록 교만을 제어하는 장치가 들어있어요. 교만해야 교만하면 하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니까 겸손하게 만드셔서 은혜를 체험하게 하시니 은혜 증폭 장치에요.
은혜 증폭, 장치 교만 제어 장치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낮추시고 낮추시고 낮아지게 하시면서 내가 약할 때에 강한 것을 체험하겠어요. 나의 대단한 것을 드러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약함을 통해서 하나의 영광을 드러내는 여기까지 가게 하시는 겁니다. 이게 낮추시는 작업이에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낮추심을 받으실 필요 없는데 스스로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셨어요. 제일 낮은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자리까지 내려가셨어요. 이게 낮추시는 겁니다.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십니다. 시험하사라고 그랬죠 시험 어떤 시험을 하십니까? 8장 2절과 3절에 보시면
*신명기 8:2-3,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시험하시는 거예요. 마음을 세상에 두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께 두고 있는가, 천국에 두고 있는가, 하나님의 일에 두고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가 아니면 말씀 들을 때 뿐이고 나가면 세상하고 똑같이 사는가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상대적으로 예전에 비해서 잘 살고 있는데, 교만해져서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데 있습니다. 내가 언제 버렸냐 이렇게 질문하시겠지만, 현장에 나가서 생활하실 때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똑같이 생활하시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그게 버린 거예요.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그 말씀 한마디를 붙들고 사는 거 이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거든요.
고난 중에도 인내하시면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붙잡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붙잡는 그러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근데 예배 드릴 때 뿐이고 나가면 금방 똑같아지는 이 문제 때문에 낮추시고 시험하시는 일이 계속되는 겁니다. 개인만이 아니고 국가도 똑같습니다. 낮추시고 시험하시는데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지금 낮추시는 거예요. 시험하시는 거예요. 저는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에 반드시 마침내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건 전 세계 지금 한류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십니다. 이 한류는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류의 핸들을 움직이고 계시는데 이 한류는 한류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복음의 한류를 전 세계에 퍼트리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한류를 통해서 한국 사람 무시하지 못하게 하시고 한국 생명사 무시하지 못하게 하시고 한국에 관심을 갖게 하시고 한국 제품이 최고라고 한국 사람을 좋아하게 이래서 한국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게 만드시는 한국 사람들이 부족하지만 한국 신자들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순수한 거예요. 열정적인 거예요. 그래도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어요. 기도회 때 그렇게 많이 득세 때 그렇게 많이 산삼 기도회 때 뭐 사천 명이나 이렇게 모여서 그런 외국의 교회를 찾기 힘들어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대한민국도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런 작업을 하실 때 왜 시험하시느냐? 나를 알도록 하나님은 다 아시는데 시험이 필요 없어요. 근데 내가 내 자신을 알아야 되겠다.
잘 믿는 줄 알았는데 믿음이 큰 줄 알았는데 질병 앞에 딱 도착하니까 오 이거 봐라! 어려움 앞에 딱 도착하니 어 이것 봐라 하고 자신을 아는 거예요. 시험을 치므로 자기를 보게 하신 거예요. 자신의 수준을 알게 하시는 겁니다. 이 수준을 알아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거거든요. 업그레이드 시키시는데 방법이 시험이에요. 알게 하시고 다음으로, 뛰게 하시고 알게 하시고 뛰게 하시고 낮추시고 시험하셔서 올라가게 하십니다. 잘 믿는 것 같은데, 아무리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기도 응답을 체험해도 어려우면 또 튀어나오는 거예요. 어려우면 또 불평이 튀어나오는 거예요. 저희 같은 경우에는 짜증이 자꾸 나오더라구요. 제가 유학생 시절부터 짜증을 부는데 지금은 좀 덜해졌지만 아직도 집사람이 저보고 있대요 제가 아주 속이 많이 상해요. 짜증이 있다.
그러면 왜 말을 할 때 짜증 섞인 말을 하냐고 이러는 아휴 목사가 돼 가지고 제가 그랬거든요. 하나님 짜증은 불평이 아닙니다. 하나님 원망이 아닙니다. 짜증은 그냥 그냥 그냥 하나님 봐주실 수 있잖아요. 아니잖아요. 하나님은 아니래요. 짜증이 불평이고 짜증이 원망 얼마나 짜증 내지 않도록 불평하지 않도록 훈련을 시키시는지 입에서 짜증 표정에서 짜증이 사라지게 하시고 그다음에 마음에서 수술해 내시는 작업을 하시더라고요. 그거 많이 겪었어요. 낮추게를 하도 많이 겪어 가지고 알아요. 하나님 이번에는 봐주시죠. 요 정도 봐주시죠. 근데 또 또 나와요. 또 하나님 또 마치 옆에 계시는 것처럼 바로 또 그래서 제가 어떤 일을 당해도 지금은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해도 제일 먼저 하는 건 주요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검사에 감사하라 감사하는 거예요. 달아나와요. 감사가 그래서 주여, 감시합니다. 그거 안 하면 큰일 나요? 저 경우는 바로 와요. 또 손길이 또 와요. 이거 낮추시고, 시험하시는 거거든요. 다윗을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까? 사울 당시에도 그런데 골리앗 앞에서 전부 다 전부 다 벌벌 떨고 쩔쩔매고 막 굴러 숨고 난리가 났죠. 그런데 다윗은 17세의 소년이지만 권례 앞에 맞섰잖아요.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으니까 과거, 과거의 은혜 과거의 은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자가 부활의 은혜 하나님 백성의 은혜 기도 응답의 은혜 사랑에게 나오는 은혜 말로도 할 수 없는 은혜를 주셨잖아요. 이 많은 은혜를 주셨는데 과거에 주신 은혜를 받았는데 골리앗과 같은 어려운 앞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그때 이제 문제거든요.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으 즉 과거에 일하셨은 즉 과거에 이렇게 이렇게 하셨은 즉 현재 내 앞에 있는 이 골리앗의 손에서 더 건져내실 것을 믿습니다. 이 도라는 게 중요합니다. 또 지금까지 연애 베푸신 하나님 이 고통의 현장에서 도 일하실 줄 믿습니다. 이게 이루어져야 되거든요. 이게 이게 도 역사실 줄 믿습니다. 이 어려움 속에서 도 역사하실 줄을 믿습니다.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골리앗의 손에서 또 건져내시리라. 요게 신앙의 성숙입니다. 신앙의 성숙 그러면 항상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는 거예요. 하나님이 역사시켜서 믿고 나가는 게 이게 성숙이에요. 이것이 크면 클수록 믿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 믿음의 그릇 커지면 커질수록 담기는 게 많아져요 하나님의 복에 영유권의 복에 담기는 게 많아져요 역량의 폭이 넓어져요.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미쳐요 하나님이 그런 인물들을 붙잡고 영향을 미치게 사용하시는 겁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 앞에서 내 주인이 모든 걸 내게 맡겼지만 당신만은 내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주인의 아내입니다.
내가 어떻게 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께 득죄하리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감옥에 갈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도 딱 서서 어떻게 득죄하니까 하고 거절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나중에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 자기 형들이 잘못한 것을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서 회개하게 만들고 바로 서게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용서하고 그들을 본지 않았습니까? 나를 이리로 보내신 분들은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들과 우리 모두를 살리시려고 나를 여기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셨습니다. 노예로 왔고 죄수가 되었지만 하나님이 그 과정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고통의 때에도 하나님 말씀 붙들고 있었고, 형통의 때에도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나님을 높이면서 하나님이 그 당시 전 세계를 살리는 구원의 통로로 요셉을 사용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게 성숙입니다. 나를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신는 주님의 모델을 한번 보십시오. 추님은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셨어요. 완전히 비우시고 낮추셨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어요. 우리도 자신을 비우고 낮추는 겁니다. 비우고 낮추는 일을 평소에도 하지만 늘 고난 속에서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점점 더 성숙해져서 이 방면에서 주님을 닮아가면서 성숙해지면 광야의 길을 내시고 사막의 계획을 내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새일을 체험하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도록 하시는 한 역사를 체험하실 겁니다.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시는 주님의 복을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요약
우리의 마음속에 오늘 말씀이 깊이 새겨져서,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함으로 나만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친척들과 친구들과 이웃들과 동료들과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의 복, 예수 생명이 체험되어 흘러가는 복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복을 받은 후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두려워했듯이 우리 들도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다가 편하고 모든 일이 잘 풀릴 때는 하나님을 잊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니 깨어 있어야 한다. 이는 이스라엘을 낮추고 시험하여 복을 주기 위함이기에, 시련과 환난을 당할 때 우리는 낙심하고 괴로워하기보다는 감사함과 기쁨으로 견디어내야 하고, 이렇게 시험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낮은 위치를 바로 아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는 첩경이니 달게 받아서 주님만을 따라가며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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