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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8월 17일)
설교제목: 광복을 위한 물맷돌"(A Slingstone for Liberation)
성경본문: 사무엘상 17:45~49, 사무엘하 8: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장명철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헌금찬송: 테너 김요한 집사님

설교자: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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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7:45~49,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사무엘하 8:6,
6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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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광복절인데 주님만의 높임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이 자리에 주님 사모해 나오셨는데 아무도 그냥 돌아가지 마시기를 바라고 삶의 모든 우수사려 또 큰 삶의 모든 짐들이 벗겨지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오늘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광복절을 위한 다윗의 물맷돌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우리는 광복 70주년을 지났습니다. 그리고 80주년이 됐는데, 10년 전에 저희들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에서 포로 몇 년 했죠? 70년 했죠. 70년 지나면 해방된 것처럼 대한민국도 남북이 분단됐는데, 70년이 지나면 하나님 무언가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하고 많이 기대를 했는데 낫띵 해픈,,, 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늘 80주년을 맞이하면서 제가 묵상하고 하는 가운데 마음의 소원이 생겼어요.

이 80이라는 숫자는 뭐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모세라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에게는 80이 모세가 사명 받은 시간이었어요. 80세, 40세 미디안에 쫓겨가서 위대한 광야에 40년 있다가 80세 때 하나님과 소명을 떠 호렙 산의 떨기나무 가운데서 받았어요. 그리고 80세 받고 난 다음에 그가 시편 90편을 쓰면서 시편 90편 10절에,

*시편 90:10,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모세가 인생의 유한함도 얘기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 80살이 되면 자기 마음대로 못 삽니다. 80살이 되면, 하나님 의뢰해야 합니다. 제가 지금 좋은 말로 얘기하는 겁니다. 젊을 때는 뭐 힘이 있다고 그러지만 80이 넘으면 하나님 의뢰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어요. 그가 뭐 어느 학벌이 좋든 뭐 그가 재산이 크든 뭐 세상 적으로 대단하든, 80 넘으면 인간은 다 똑같아요.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위탁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이 80주년을 하면서 제 마음의 소원이 하나님, 대한민국이 이제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탁하게 하여 주십시오. 대한민국의 이제 이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이 수많은 어려운 난제(難題)들과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위탁하오니 이 80주년이 의미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의미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80이라는 나이는 하나님이 도우심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나이인데 여러분, 이 가운데 연세 드신 분들 제 말이 맞아요?. 틀려요? 나이가 젊어 갖고 대답을 할 수 없나요?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지금 말씀 안 드려도 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적 환경을 들어보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대한민국은 하루도 견딜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 되었어요. 그래서 이 80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초월적 개입과 초자연적인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초월적(超越的) 개입과 초자연(超自然)적인 은혜의 어떤 대표가 오늘 다윗의 물멘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본문을 여러분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어릴 때부터 주일학교 많이 알지만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마음의 눈을 열어 가지고 국가적으로도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간절(懇切)함에서 젊은 분들뿐만 아니라, 오늘 70 80이 넘은 분들도 이 말씀 때문에 가슴이 뛰시기를 바랍니다. 70~80 넘은 분들, 젊은 분들, 언제 가슴이 뛰어 보셨어요? 목사님 저는 가슴 뛸 일이 헬스장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안되죠. 말씀을 들어야 가슴이 뜁니다. 오늘 본문의 사무엘하 8장 6절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다윗이 같이 보죠.

*사무엘하 8:6,
6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할렐루야, 14절에도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사무엘하 8:14,
14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현재도 이기게 하시고 과거도 이기게 하셨더라 우리는 지금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승리에 목이 마른 것입니다. 초월적 승리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초월적 승리가 저와 여러분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무슨 승리 지상주의가 되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거는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얻는 초월적 승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한 두 가지 정도를 생각할 텐데 여러분들 모두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초월적 승리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 승리는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승리(勝利)가 되는 것입니다. 이 승리는 다윗이 되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이 승리는 장소 적으로 국한된 것도 아니고 우주적인 것이고. 또 한 한 세대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 나이든 다 상관이 없어요. 이걸 신약의 창으로 해석을 하면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었던 야고보 사도가 다윗에 대해서 얘기할 때, 사도행전 15장 16, 17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야고바 사도가 얘기한 거예요.

*사도행전 15:16-17,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를 인용한 것인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는 16절 17절 다 함께,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이유가 뭔가, 이는 그 이유는 그 남은 사람들 특별히 모든 이방 인들로 줄을 찾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하여 그때 전체적으로 보면 그 이방인들은 우리가 다 범주에 다 포함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무너진 다윗의 장막 복음의 물맷돌을 따위처럼 준비해 가지고 여러분들의 마음에 무너진 장막들, 마음의 무너진 것들 내 입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것들 다 골리앗과 같은 것들을 처리할 능력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래도 나는 아닙니다.

나는 뭐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나도 할 수 없어요. 저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그런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사도행전에 나타난 무너진 다윗의 장막만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무너진 마음의 패배주의, 마음의 무너진 장막들도 세워지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다윗은 다윗이고 나는 나다. 이게 아니라는 거예요. 장소도 공간도 시간도 세대도 다 극복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먼저 제가 두 가지를 필요한데 첫째는 영적인 일원론이 필요하다 뭐가 필요하다고요.

I. 첫째는 영적인 일원론이 필요하다.
-이 일원론이란 말은 이원론 듀얼리즘에 반대되는 개념이 한결같다. 이 말이에요. 영적 이론이 뭐 뜻이냐면 다윗의 물맷돌이 다윗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다윗의 장막 그것을 회복해야 하는데 다윗이 시대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다윗이 시대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통한다.

이 골리앗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골리앗을 잘 알잖아요. 골리앗은 키가 3m가 넘고 60kg이 넘는 갑옷을 입고 창날 끝만 7km예요. 거대한 대적이에요. 엘라 골짜기라는 곳에서 그의 권력과 힘을 자랑하는 그 거인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사울 왕이 벌벌 떨고 있었어요. 그럼 오늘 우리 시대에 우리의 골리앗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모든 잘못된 가치관들, 우리가 두려워하는 가치관들 혼란스러운 정국들, 뭐 어려운 가족 관계 사회 환경들, 주식 광풍, 극단적인 마음을 우울하게 하는 수많은 정보들 여러분 유튜브 다 믿으면 안 돼요. 유튜브 요즘 가짜가 너무 많아요. ai가 나옵니다. 너무 정교한 ai가 나오고, 그래서 여러분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보지 말고, 다윗의 생애(生涯)를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우리 몸으로 감당한다는 수많은 난자들이 있어요. 골리앗들이 있어요. 이것을 우리 앞에는 골리앗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no-moccism, 문화 maxism, 하나님을 반대하는 사상이 제도화, 참 하나님 잘못된 하나님을 반대하는 잘못된 제도의 법제화, 문화 전쟁, 우리가 작년 127회 차별금지법 목숨 걸고 반대해 놓았더니, 지금 슬금슬금슬금 차별 금지법 다시 제정 할려고? 이 시대 골리앗이에요. 내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것들을 골리앗이에요. 특별히 우리 앞에 있는 골리앗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뭐냐면 신앙의 이원론(二元論)적인 골리앗이에요. 무슨 말이냐 다윗은 한결 같았어요. 다윗은 골리앗 앞에 있던지,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 앞에 있던지 동일했어요.

다윗은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든지, 아니면 엘라 골짜기에서 골리앗과 싸울 때였던지, 동일했어요. 똑같으세요. 하나님이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지키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셨다면 양을 지키는 나를 보호하셨다면 엘라 골짜기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보호해 주실 것이다. 이게 일원론(一元論)이에요. 한결같은 그리고 흔들리지 않았어요. 근데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사울랑은 곰의 발톱과 사자의 발톱을 이기게 한 거 그걸 믿는다 인정한다. 근데 골리앗 앞에서는 되겠나, 골리앗은 안 된다. 곰과 골리앗은 별개라고 생각하고, 꼭 이거 뭐 마치 뭐 우리 오늘 예배는 드린다. 광복절 예배는 드린다. 광복절 예배는 은혜가 있다. 통일은 안 된다. 이원론적인 거예요.

골리앗과 같은 북한 때문에, 21세기의 사울 왕 같은 이원론자들이 현실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거예요. 통일이 되겠나, 이게 바로 통일 골리앗 이원론이에요. 통일은 통일이고 예비는 예비는 드린다. 그러나 통일은 안 된다. 광복 예배는 좋지만 통일은 되겠나? 이걸 이겨내야 하는 거예요.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삶의 환경과 골리앗을 비교할 때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이 시대의 이원론자가 되는 건데 그런데 다윗은 항상 하나님과 골리앗을 비교한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환경이라는 골리앗을 볼 때는 골리앗이 너무 커갖고 올려다 봐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골리앗을 보실 때는 내려다보시는 것이 우리가 골리앗을 볼 때는 너무 커서 올려봐야지만 하나님께서 골리앗을 보실 때는 골리앗을 보실 때는 내려다 보시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보실 때는 골리앗이 난쟁이 중에 난쟁이가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 다윗은 어떻게 한결같은 신앙의 일원론을 유지할 수가 있었을까? 다윗의 몸에는 일원론적인 신앙 패턴이 새겨져 있는 거예요. 사무엘 17장 37절에 뭐라고 되어있냐면, 영적인 바디 메모리가 됐는데 같이 읽죠.

*사무엘상 17:37,
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 즉 그다음에 나를 이 브레시아 사람 골리앗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라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골리앗 앞에서도 나를 건져내시리다 이게 일원론이에요. 그때는 되는데 지금은 안 된다. 이거는 이원론이고, 그러니까 다윗에게는 이 영적 일원론의 신앙 패턴이 바디 메모리로 몸에 자리 잡고 있었어요. 제가 이렇게 썼어요. 시작

“첫 번째 다윗은 과거의 사건을 은혜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두 번째 그 사실을 믿음으로 현재 고백하며
세 번째 크게 실제로 행동하는 영적 이론적인 신앙의 패턴을 지니고 있었다.”

-할렐루야!~~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에게 영적 일원론의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 여러분 광복이 어떻게 된 겁니까? 광복이 하나님 특별한 은혜로 된 줄로 믿습니다. 누가 광복이 독립군을 통하게 됐다. 택도 없는 소리 하지도 말아요. 도움은 됐지만 독립군이 한 게 아니에요. 또 어떤 사람은 연합군이 도와줬다. 물론 연합군이 도와줬어요. 그니까 연합군이 한 게 아니에요. 광복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하나님이 하신 것이에요. 그렇다면 통일도 하나님이 하시면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제가 한 달 만에 와 고함을 지르니까 이해 양해를 해줘요. 이건 정말 너무나 중요한 거예요.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환경 적으로 골라앗들이 많고 이러니까 우리도 모르게 너무 이원론 화 되어 있어요.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고 다윗은 다윗이고 나는 나고 안 된다는 거예요. 저는 목회자이기 때문에 목회자의 삶에 관심이 많아요. ‘윌리엄 커싱’이라는 목사님이 계셨어요. 근데 이분이 하늘을 잘 사니까 갑자기 사부님이 돌아가시고 몸이 아프고 막 이래 갖고 이게 성대가 목소리가 안 나왔어요. 목소리를 잃어버리게 돼서 더 이상 설교를 할 수 없게 됐어요.

자 한때 목소리를 주셔 가지고, 은혜에 있을 때는 그때는 은혜이고 목소리를 잃어버렸을 때는 그럼 어떻게 되는가 아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그때 목사님이 육체적인 병과 아내를 잃은 고통을 지나면서 이렇게 기도했어요. 주님, 제가 다시 설교를 할 수 없다면 목소리 때문에 저에게 찬송 시를 쓰는 은사를 주시어 주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그 이후에 이 컬싱 목사님은 설교 대신에 뛰어난 영감으로 300편의 찬송 시를 썼고, 대표적으로 오늘 나중에 부를 ‘주 날개 및 내가 편안히 쉬네 주 날개 밑 즐겁도다 평안하다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 살면 어려울 때나 쉬울 때나 한결같은 주 날개 밑’이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예수께서 오실 때 그 귀하심을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우리가 우리나라 우리 한국 작성에도 여러 편이 나와 있어요.

다윗은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며 현재도 하나님께서 건져내실 일원론을 믿었어요. 우리는 과거에 받은 은혜를 망각한 채, 지금 눈앞에 있는 현실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예수님 믿는 이들도 너무 많은 것이에요. 그래서 지금 오늘 제가 용어 하나를 새롭게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릴 거예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오늘도 역사하심을 믿는 현재형 믿음이 필요한 줄 믿습니다. 현재형, 믿음 지금 살아내는 믿음, 지금 이겨냅니다. 다윗이 물맷돌을 가지고 승리했던 것처럼 주님이 주신 물맷돌이 있으면 지금도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현재형 믿음, 살아내는 믿음, 영적 일원론의 믿음이 저와 여러분의 있기를 바랍니다.

예 현재형 믿음의 핵심은 뭐냐 내가 병으로 고통할 때라도, 사업이 어려울 때라도, 가족관계가 힘들 때라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내 삶에 이루어진다는 걸 현재형으로 확신하는 믿음이 사랑의 교의 용어로 말하면 현재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기만 하면 반드시 권리학과 같은 환경과 상황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승리를 믿는 것이에요. 이것이 현재 적 믿음이요. 영적 일원 없는 믿음이요. 현재를 살아내는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일상의 영성과 그대로 연결되었습니다. 여러분 다윗의 일상의 영성은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그가 베들레헴에서 양들을 쳤어요. 양들 칠 때 어떻겠어요. 그냥 친 게 아니죠. 찬송하고 기도하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풀밭의 시간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좋은 주일학교 나와야 합니다. 그게 자연스러웠어요. 찬송과 기도와 말씀과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인 교제가 자연스러웠어요. 그 자연스러운 일상의 믿음이 현재의 믿음이 그것이 골리앗이 나타났을 때 골리앗을 이기는 믿음으로 연결된 줄로 믿는 것이에요. 일상의 믿음을 가지고 승리를 해야 되는데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이런 현장 일상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사명과 뜨거움이 한결같기 때문에 태만하지 않고 사명을 위해 기도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면서 물맷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 오늘 이 자리가 여러분 물맷돌 준비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물맷돌 어제 새벽에 우리 지성호 의원 저희 왜 집사님이세요.

이제 함경북도 도지사신데, 어제 간증을 하는데, 우리 교회 18년 동안 사랑의 교회 북한에서 탈출해 와 가지고 18년 동안 우리 교회에서 국회의원도 되시고, 그다음에 한국부터 도지사에 한국 국회의원 출신이에요. 그러니까 꽃제비로서 먹고 살 길이 없고 기차 석탄 어떻게 뭐 이렇게 막 이렇게 구해 가지고 살고 뭐 이런 거 있는데, 기차 어디 하다가 잘못 떨어져 가지고 있잖아요. 철길에서 기차가 몸을 지나가 버려 갖고 어떻게 되냐면 왼발 왼팔이 다 잘려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잘라내야 되는데 너덜너덜하게 잘라내는데, 3시간 동안 마취도 안 하고 뭐도 안 하고 마취도 안 하고, 세 시간 동안 생으로 그냥 손발을 잘라내는데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는 거예요.

뭐 다들 가만히 계시네,,, 어제 막 근데 하나님을 믿고 복음의 물맷돌을 이 지성호 의원이 이걸 다 해가지고 5월 17일 날 결혼식을 했어요. 제가 결혼식 주례를 했어요. 근데 그날 주례하는데 목사님 미국에서 뭐가 왔어요. 뭐가 왔는데 결혼을 축하한다고, 트럼프 대통령 친서가 온 거예요. 트럼프 사인 알죠. 부인 멜라니아 여사 사인도 비슷비슷해요. 이렇게 세상에 그 북한에서는 그걸 알아요. 그 한국도 지성호가 한국에서 국회의원 됐다. 이래 갖고 그 집을 갖다 쓰다듬는데 여기에 연기가 있다.

이래갖고 그 집을 북한이 그 집도 폐쇄시키고 그랬더니, 그러면서 어제 목사님 5월 달에 결혼했는데 허니문 베이비가 생겼다고 했잖아요. 그래 내가 참 애국도 여러 가지 종류로 한다. 내가 나는 참 있잖아요. 일상에 연결되는 그게 총을 적은 애와 기적을 가져와요. 북한에는 지금 노동당보다도 더 무서운 당이 생겼어요. 노동당보다 더 힘센 당이 하나 생겼는데, 그것이 뭐냐 마케트 장마당이라고 들어봤는지, 자유의 가치 자유시장경제의 가치가 북한에서 자리 잡고 있는 거예요.

김정은도 인민들을 두려워하고 젊은이들을 두려워하는데 우리 북한 젊은이들에게 자유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일깨우는 작은 물맷돌 운동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해외 광복 시절이니까. 말씀드리는 거죠. 첫 번째 일원론의 믿음, 두 번째로는 이제 드디어 이 시대를 위한 갑옷이 아니라 순전한 물맷돌을 준비해 갑옷 대신에,

II. 두 번째는 순전한 물맷돌을 준비하라라.
-다윗은 초월적 승리를 위하여 골리앗을 이기기 위해 뭘 준비했습니까? 현재형 믿음을 위해 뭘 준비했습니까? 사울 왕은 전쟁 이기게 하기 위하여 다윗에게 전투복을 이렇게 전투복을 주었어요. 갑옷을 주었어요. 다윗에게 맞지가 않는 거예요. 나중에 이제 우리는 보면 알지만 다윗은 그 목동으로서 몸이 자유로워 가지고, 물맷돌을 가지고 치고 나갈려면요 전투복 입으면 안 되는 거죠. 전투복 입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여기 저 중세 갑옷 기사들이 뭐 엄히 부자유하죠. 다윗은 그러니까 여러분 전쟁 전문가가 사울 왕인데 전쟁 전문가가 하는 조언이 어떨 때는 안 맞는 게 너무 많아요.

오늘 세상에 여러분들에게 조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조언보다도 오늘 보혈 복음의 능력으로 순전한 물맷돌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그런 통착을 여러분들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수많은 우리 주위의 전문가들이 갑옷을 입고 나가라고 하는데, 현재형 믿음에는 맞지가 않아요. 순전하게 목동의 옷을 입었고 나가야 할 때가 많습니다. 이게 오늘 여러분과 제가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일주일 동안 우리 세상의 복잡한 소리에 마음이 흔들리고, 지난 한 주간에도 수많은 복잡한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 예배가 여러분들이 순전하게 갑옷이 아니라 순전한 물맷돌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윗이 사울 왕의 조언을 듣고 전투복 갑옷을 입고 나갔으면 물맷돌을 던질 자유함이 사라지고 그랬다는 거예요. 대신 다윗은 뭘 준비했는가, 안 입고 40절에 보니까 40절에 보니까 40절에 시작,

*사무엘하 17:40,
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저게 뭐 좀 어려운 용어들이 있는데, 쉽게 말하면 목자의 목자가 옛날에 하는 거 있잖아요. 물멧돌 이렇게 해 가지고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건데,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고르는 거예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제는 죽음의 가장 인생의 위기죠. 그 앞에서 다윗은 엘라 골짜기에서 조용하게 하나님 의뢰하면서 전적 의뢰하면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고르는 거예요. 우리는 이 매끄러운 돌 다섯을 그냥 골랐다 해서 그게 아니에요. 다윗의 인생의 무게를 실은 거예요. 그 돌 다윗의 목숨을 거기에 실은 거예요. 다윗도 사람인데 어떻게 무섭지가 않겠어요. 그 모든 것들을 주님께 맡기면서 그 다섯 매끄러운 돌 순전한 돌을 잘 맞는 돌을 고르면서 주님이 여기에 내 목숨을 겁니다.

여기에 주님을 전적으로 위탁하는 제 순전한 믿음의 모든 총량을 여기에 다 몰입시킵니다. 그러면서 골라 가지고 그 다음에 그걸 들고 뛰어간거에요. 그 앨라 골짜기에, 그 고르는 순간,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하고 목숨을 건 무게를 가지고 고르는 그 시간, 야곱에게는 얍복 강가였고, 아브라함에게는 모리아 산에 이삭 바치는 시간이었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에게는 풀무불 앞에서의 시간이고, 엘리야에게는 갈멜 산 산상에서 영적 전투예요.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현 믿음의 현재성 일원론적인 믿음 한결같은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이런 테스트의 장이 항상 놓여 있는 거예요.

오늘 이 자리에 저와 여러분들이 인생의 무게와 목숨의 무게를 담보하는 매끄러운 돌 5개를 고르는 그 시간, 오늘 이 예배가 그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신앙의 분기점이에요. 현재형 믿음은 물맷돌을 고르는 그 순간의 믿음으로, 목숨만큼 큰 무게를 품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나아가서 다윗은 골리앗에게 물맷돌을 던진다고 그랬어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순종의 행위예요.

다윗은 골리앗에게 돌을 던질 때에 목숨을 걸고 자기의 목숨의 무게를 물맷돌에 담아 가지고 전적으로 위탁하면서 우리식으로 하면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주는 나의 큰 능력 주는 나의 큰 소망 전능하신다 하나님’ 찬양하면서 주여, 던졌는데 안 맞아 그게 아니고, 적으로 신뢰하면서 전적 위탁의 물 몇 돌을 가지고 48절을 보니까 뛰기 시작했어요.

*사무엘상 17:48,
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 맞아 골리앗에 막 나오는데 다윗은 블레셋 사람이 빨리 달려 가속도를 가지고 달리는 거예요. 근데 벌써 사람이 뭐냐 17장 5절에 보니까,

*사무엘상 17:5,
5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놋 투구를 썼다고 그랬어요. 골리앗이 놋 투구, 그 놋 투구를 썼는데, 다윗이 가속도를 가지고 뛰어가면서 물맷돌의 그 인생의 삶에 목숨에 무게를 갖고 여러분 놋투구가 뚫어져 버리고 이마 빡에 박혀 가지고 그 거대한 골리앗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거는 아주 우리에게 영적으로 중요한 것을 예시하는 겁니다. 순전한 복음의 순종의 오늘 이런 말씀 듣고,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여러분들 진짜 순종하고 찬송하면서 물맷돌을 던져보세요. 수많은 놋투구들이 뚫어지게 될 것입니다. 물맷돌이 힘의 역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 놋 투구를 뚫고 그대로 지켜버렸습니다. 다윗은 칼도 없어가지고 쓰러진 골리앗을 향하여 쫓아가서 골리앗의 큰 칼을 가지고 골리앗의 목을 베어버렸습니다. 54절에,

*사무엘상 17:54,
54 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오랫동안 다윗은 물맷돌의 역사를 기억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골리앗은 자기 칼로 자기가 망했습니다. 마치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장대를 세웠다가 자기가 극에 달려서 망한 것과 똑같습니다. 세상의 거짓과 불의는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반드시 거짓과 불의는 이 순전한 복음의 물맷돌 앞에서 뚫리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거짓과 불의는 절대로 진실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진리의 물맷돌은 거짓의 투구와 이마를 적중 오늘 이 중요한 여러분과 저는 엘라 골짜기에서 뭘 언제? 우리 엘라 골짜기, 우리는 어떻게 물맷돌을 준비해야 하나요? 오늘 오후 청계산에 올라갑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이기기 위하여 물맷돌을 준비해서 뛰어가는데 엘리야 선전자는 갈멜산에서의 기도가 기도의 물 맷돌이였어요.

3년 6개월 동안 나라가 비가 오지 아니하고 완전히 황량하고 완전히 망해갈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가운데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 가지고 바알 선지자들과 전투를 하면서, 양 무릎 사이에 머리를 넣고 정말로 거기에 목숨의 무게를 싣고 기도에다가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어요. 3년 6개월 동안 오지 않았던 그 하늘에 이 기도의 물맷돌을 통해 하늘이 열린 거예요. 열왕기상 18장 45절 46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느냐

*열왕기상 18:45-46,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아합이 뭘 타고 갔어요. 마차를 타고 갔어요. 그런데 능력 받은 엘리야는 물맷돌을 기도의 물멸도를 통하여 하늘의 문이 열린 그 은혜를 경험한 엘리야는 허리를 동이고 그러니까 최초의 마라토너가 엘리야예요. 마차 앞에서 뛴 거예요.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내 기도에 물맷돌을 들으신 주님을 찬양한다. ‘주는 나의 큰 능력 주는 나의 큰 소망’ 그는 앞을 뛰어 빗속을 달리는 그 유명한 빗속을 달리는 엘리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 한번 목숨 건 기도해 보셨어요? 오늘 제가 3부 예배 때 마치고 난 다음에 또 4부도 마찬가지겠지만, 마치고 난 다음에 합심기도를 제가 따로 안 할 거예요. 왜냐하면, 청계산 가서 합시다. 제가 청계 산에는 오늘 한 2시간 동안 기도인도 찬양하고 기도 인도 그렇게 할 거예요. 오늘 산에 올라가면 내가 오늘 그냥 목숨 걸 거예요. 진짜 대한민국 이게 바로 주요 이 나라가 바로 가게 해 달라고 알겠어요. 한국 교회의 영광과 권위와 위험이 회복되게 해 달라고 목숨 걸 거예요.

오늘 여러분 언제 엘라 골짜기에서 매끈한 돌을 고르면서 기도로 전력투구하고, 거기에다가 목숨 무게를 건 물맷돌을 기도의 물맷돌을, 순종의 물맷돌을 언제 준비해 보셨냐고,,,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오늘 광복절 80주년에 오늘 이 말씀을 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왜, 80년이 되었는데도 통일이 안 되나? 선대의 옥하는 목사님은 저에게 한 번씩 그런 얘기 하세요. 왜 오 목사 왜요 목사님,,, 저 악한 김일성을 하나님은 그냥 가만히 두시냐? 김정일을 왜 가만히 두시냐? 늘 한탄해 하셨어요.

저는 하나님의 시간표와 사람의 시간표, 우리가 생각하면서 하나님은 무 시간대의 개념에 계시기 때문에 참 이거 안타까운 일인데, 오늘 여러분 17장 앞에 45절 46절을 보면요. 다윗이 골리앗을 향하여 그 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사무엘상 17:45-46,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아직 골리앗의 목도 베어지지 않았어요. 골리앗이 죽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영적인 세계에서는 다윗이 이 선포를 할 때 이미 골리앗은 죽게 된 것이에요.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도하고, 선포하는 순간 하나님의 시간에 골리앗이 죽어버리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시간표와 사람의 시간 사람의 시간표 그러니까 골리앗은 그때 살아있지만 살아있으나 죽은 목숨이 된 것이에요. 오늘 이런 영적 안목을 저어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소위 역사의 믿음의 역사의 하선과 역사의 상선 얘기 드렸잖아요. 역사의 상선을 보는 눈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또 하나, 골리앗 앞에서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는 21세기의 다윗을 키워야 돼요.

III. 세 번째, 골리앗 앞에서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는 21세기의 다윗을 키워야 된다.

-우리 속에 21세기의 다윗의 마음을 키워야 돼요. 우리 자녀들을 21세기 다윗으로 키워야 돼요. 마음도 키우고, 실제적으로 다음 세대도 키워야 돼요. 그러면 사람이 키워질 때 어떻게 사람이 성숙하는가? 언제 사람이 잘 성장하는가? 사람이 제일 성장할 때는 언제인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참된 성장은 성숙은 골리앗과 같은 강력한 대적을 통하여, 골리앗과 같은 강력한 마귀심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에요. 우리가 매일 마주하면 마주하는 감당하기 힘든 유혹과 시험을 통하여 우리가 성숙하게 되는 것이에요. 오늘 여기 젊은이들이여. 어른들이여. 성숙한 모든 주의 백성들이여. 우리가 언제 성장합니까?

어른이 되는 것은 전쟁터와 같은 삶의 현장에서 그 극복하면서 성장하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이나 제가 인생의 골리앗과 싸울 때 성장하는 것이에요. 영적 전쟁터에서 나와 골리앗이 아니라 하나님과 골리앗이 싸우는 걸 우리가 기도하면서 여러분과 제 영적 성장 성숙이 일어나는 줄로 믿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고난과 고통의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에요. 제가 지난주에 저기 뭐 이렇게 자료를 정리한 거 보니까 제가 그 옛날에 군종으로 있었는데, 군종 전투복 사진이 있더라고. 온태원이라고 그 당시에 군단, 군종 참모 제가 그때 무슨 뭐 특별 무슨 뭐 훈련 기관 미군들하고 훈련 기관이었는데요.

대한민국 사람들 우리 나이대 우리 전 또 어른들 이래서 다 군대 갔다 오면서 죽을 고생하는 거예요. 그래서 서울은요, 푸틴하고 트럼프하고 뭐 다 뭐 시진핑 다 있지만 트럼프 아 뭐야? 푸틴 시진핑이 우리 대한민국 점령 못 합니다. 왜 못 하는지 아시죠. 서울에 순간적으로는 300만 명이 무장될 수 있어요. 우리가 아직 못 알아들었죠. 한국 남자들은 군대를 갔다 왔기 때문에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전투력이 막강하다 이 말이에요. 성숙하는 거예요. 1994년도에 이민 미국 이민 사회는 제일 비극적인 일이 있어요. la 폭동이 있었어요. 수많은 가게가 불타고 수많은 한국 분들이 피해를 보고, 저희 제가 섬겼던 제가 개척했던 그 교회가 그 흑인들의 폭도들이 제일 관심 있게 보는 좋은 지역의 입구에 교회가 있었어요.

정부가 뭐냐 하면 교회를 불태우러 온다고 폭도들이 떼거리로 만들어 그럼 어떻겠어요. 우리가 어떡하겠어 폭도들이 오니까 우린 도망가야 되겠다고 도망갔겠어요? 노 교회에 교구 들어갔는데 월남전 출신 다 나와라. 장교 출신 다 나와라. 아 그러니까 도망 안 가고 월남자 출신 장교들 뭐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이 한 100명이 모였어요. 그래갖고 버스를 한 4대 때 바리케이드를 딱 치고 그다음에 권총들 다 들고 와 가지고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 유명한 권총 있죠. 이스라엘 기관총, 그것만 가짜 했어요. 총 다 들고 있잖아요. 그 다 사수에 서 가지고 저도 딱 서고 있잖아요. 근데 놀라운 게 이 정보가 있잖아요. 저 폭도들이 다 들어간 거야. 아이고 이건 안 되겠다고 도망가 그 사람들 피해가 다른 데로 가버렸어요. 교회 지켰어요. 불 탈 교회가 지켜졌어요 이거는요 시험이야, 그걸 통해 교회가 그때가 교회 개척한 지 한 94년이니까. 한 6년밖에 안 됐어요. 근데 그 이후로 교회가 똘똘 뭉치는 거예요. 남자 성도들이 얼마나 오기 시작하는지, 남가주 사랑의 교회 폭도들로부터 권총으로 지켰다 하더라. 이런 용감한 교회를 나는 가고 싶다. 이래 갖고 있잖아요. 여자들보다도 남자들 숫자가 더 많아져 나는 어디를 갔는지 남자들이 숫자가 많어요. 여자들은 인기가 없고 남자들은 인기가 있나 봐,,, 그냥 이 3~4부터 이런 얘기 할 수 있잖아요. 방송을 안 나가니까 여러분 내가 이 얘기를 왜 합니까?

전투와 시련과 아픔과 폭압과 이런 걸 통해서 우리는 성장하는 것이에요. 골리앗 앞에서 우리는 물맷돌을 준비하는 것이에요. 오늘 은혜가 여러분 오늘 청계산에 가가지고 물맷돌로 기도의 물멧돌로 준비하십시다. 80이 넘은 장로님들이 가시는데 여러분 80이 넘은 분도 가시는데 20~30대가 안 간다 다리몽둥이를 하나님께서 우리는 결사적으로 뭐 해야 할 때가 나를 위하여 지금 진짜 중요한 시간이에요.

아마 올라가면 여러분들이 서로 격려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장계산에서 뻐글뻐글하고 기도할 때, 그리고 미리 좀 가가지고 여러분 개인적으로 기도하시고 가족 문제, 자녀 문제, 여러분 경제 문제 여러분들 인생의 보람 문제 결판을 내셔야 돼요. 결판을 내셔야 합니다. 적당히 하지 말고 그러지 말고 주는 나의 큰 능력 주는 나의 큰 소망 찬양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요약
이제 통일은 안 된다. 라는 이원론적인 생각, 부흥은 안 된다는 이원론적인 생각,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떠는 이런 생각들 다 주님이 처리하여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무너진 다윗의 장막과 같은 패배와 냉소와 이런 모든 낙심을 다윗의 물맷돌 믿음으로 다 물리쳐야 한다. 주의 권속들 하나님의 초월적인 개입과 초월적인 능력을 다 받아 누리기를 원한다. 사자와 곰의 발톱 앞에서나 골리앗 앞에서나 한결같은 다윗의 믿음처럼 한결같은 복음적 승리 마인드로 골리앗을 물리치는 신실한 주의 종이 되어야 한다. 우리 앞에 있는 모든 난제들, 이 엉터리 비젤리들 이런 것들을 거짓이 횡행하는 이 시기에 그 잘못된 놋투구를 뚫어버리는 강력한 물맷돌로 물리쳐야 한다.
-과거에 사자 발톱 앞에서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시대 골리앗도 이기게 하시는 하나이심을 확신하며, 시공을 뛰어넘는 확고한 영적 일원론(一元論)으로,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심을 믿고, 인생 엘라 골짜기에서 가슴 뛰는 현재형 전적 믿음으로 목숨 걸고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할 때, 모든 난제들의 놋투구를 뚫게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자. '2025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서울총회의 마중물'로 올려드릴 때, '대한민국과 사랑의 교회가 오늘 결사적으로 기도의 물맷돌을 준비하는 청계산 구국기도회를 세계교회 위에 강력한 복음의 새 길'이 반드시 열리기를 산상기도로 올려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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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8월 10일)
설교제목: "신앙고백, 예배, 그리고 예물의 삼각형"
(ATriangular Pattern ofFaith: Confession, Worship,and Offenrig)
성경본문 : 창세기 28:16-22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정상익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김지찬 목사(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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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8:16-22,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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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현대 교회가 해결해야 될 가장 시급한 과제는 신앙의 세대 계승입니다. 신앙은 멸절로부터 언제나 단 한 세대밖에 떨어져 있지 않음을 교회 역사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해서 좀 어렵죠. 교회가 멸절된 데는 한 세대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렇게 의역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세대가 다음 세대에 신앙을 제대로 전수하지 못하면 한 세대만에 교회가 소멸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쇠퇴 된 다음에 기도하는 부모, 교육을 헌신 헌신적으로 잘하는 교회 교사 그리고 말씀을 잘 전하는 목사님들이 있으며 또 한 세대만에 교회가 회복과 부흥을 경험하는 것이 교회사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한반도의 조국 교회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신앙의 세대 계승에 빨간 불이 켜졌습니다. 왜냐하면 젊은 세대의 신앙과 물질적 헌신이 심각하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성도들은 물질적 헌신을 얼마나 할까요? 미국 시민들이 자손으로 쓰는 돈은 수입 대비 2%인데 미국 복음주의 성도들의 헌금은 3%이며 11조는 성도의 3에서 5%만 한다고 합니다. 통계가 굉장히 많은 걸 보여주죠. 그죠? 자선이 2%인데, 성도님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 3%다. 한국 교회는 조금 더 나아서 수입의 5%의 헌금을 성도님들이 하고, 30에서 40%가 십일조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근래 들어서서
 
30대 40대 젊은 세대가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태훈 근처에 대단위 이렇게 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그 근처에서 목회하는 분에게 제가 직접들은 것입니다. 그 단지에 30대 가장 평균 직장은 명문대 출신의 대기업 대리인데 예배당에 출석은 하지만 헌금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벌써 10여 년 전에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19세기 말에 위대한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은 사람은 돈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돈이 전부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런데 요새 젊은 세대는 어른 세대보다. 돈이 전부라는 것을 더 뼈저리게 느끼는 거 같아요.
 
2020년도에 들어서서 소위 말하는 영끌 세대의 선주 주자가 30대이고 빚을 내서 투자 투자하는 빚투도 20대, 30대가 가장 많이 한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사회 전체가 돈의 민감해졌는데 특별히 30대 40대가 돈에 민감해졌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유는 십일조 표지론자들이 교회가 십일조와 헌금을 강조하는 것은 교회의 탐욕 때문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성경에 근거가 없는 주장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11조는 구약의 율법 규정이므로 은혜 시대인 신약에서 폐지되었다. 구약의 십일조는 레인에게 드린 세금이다. 신약에는 레위인이 없으므로 십일조를 교회할 필요가 없고 자선 단체해도 된다. 뭐 이런 주장으로 성도들의 마음이 촉박해지고 있음에도 단임 목사님들은 헌금 설교를 잘하지 않습니다.
 
20223년에 한 조사에 의하면 성도님들이 단임 목사님이 헌금을 강조하면 불편하다가 64%나 나왔고, 그래서 헌금을 강조하는 목사님은 35%, 그렇지 않은 분들이 65%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헌금 설교하면 돈을 좋아하는 목사라고 하는 낙인이 찍힐 수 있을 있기 때문이죠. 그러면 당신은 초청 강사라 단타치고 나가려고 그러는 거냐? 그러지 마시고 초청 강사도 힘들어요. 아니 와 가지고 뭐 굳이 뭐 십일조 헌금 얘기 하면 뭐 좋아하시겠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강단에서 말씀을 통해서 십일조에 대한 논쟁이 이어 지는게 아니고 목사님들이 설교를 안 하시니까? 저 같아도 담임이면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단타치니까? 좀 나은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힘든데 저도 그런데 1년에 한 번 정도 볼게 안 되는데,, 여러분은 그렇지만 이게 십일조 논쟁이 유튜브라고 하는 SNS 같은 이런 공간에서 소위 말한 프레임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제가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십일조는 세금이 아니고 십일조는 폐지되지 않았다. 이렇게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프레임 전장에서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그러면 오히려 코끼리를 생각하죠. 왜요?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면 먼저 코끼리를 생각해야 생각하지 않는 거기 때문에. 그래서 프레임 전쟁에 가장 중요한 모터거든요. 이게 그니까? 십일조는 세금이 아니다. 이렇게 하면 아니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십일조는 세금이라는 프레임이 활성화되는 거예요. 왜냐면 프레임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단어거든요. 그래서 프레임 전쟁에서는 상대방이 사용하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피폐한다고 말해요.
 
이런 프레임 전쟁을 버리면서 성도들의 마음의 밭이 황폐화 되고 있습니다. 왜냐면 십일조 폐지론자들이 11조만이 아니고 삶 전체를 들어야 된다. 라고 아무리 선한 의도로 주장을 해도 듣는 사람들은 10분의 1보다. 적은 헌금을 하게 됩니다. 게다가 십일조 폐지론자들은 자기들이 주장처럼 십일조보다. 더 많이 하는지에 대해서는 저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면 십일조 폐지론이 점차 대세가 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헌금이 늘어나야 되는 거 아니에요. 11조만이 아니라 더 해야 된다는 거니까? 왜 줄고 있죠? 십일조 표지론자들도 안 하고 듣는 사람도 안 하고 이러니까? 줄어들고 있는 거죠. 반대로 십일조 유지론자들 역시 프레임 전쟁을 하면 십일조를 내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그 이상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십일조 표지론자든 유지론자든 둘 다. 하나님께 우리의 존재와 우리의 소유와 우리의 모든 것을 드려야 된다는 성경의 정신에 미치지 못하는 거죠.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프레임 전쟁을 멈추고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듣고 복종하는 순종의 전쟁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야곱의 이야기를 성도님들과 함께 들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십일조 폐지론자들은 구약은 율법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야곱의 십일조는 율법 시대의 산물로 신약 시대에 유효하지 않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이거 가지고 부족하니까? 야곱이 아직도 이렇게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얻어내려고 주파를 튕기면서 불순한 의도로 십일조 서원을 했기 때문에 야곱의 십일조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본이 안 된다. 모범이 아니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과연 그런지 한번 성경 말씀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여호와께서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하필 여호와는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왜 아버 할아버지의 하나님, 아버지의 하나님, 손자의 하나님으로 자기를 소개하실까요? 하나님은 개인 개인보다. 가문과 세대를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각 세대가 부모 세대로부터 신앙을 계승하지만 동시에 각 세대마다. 자신의 체험을 통해 자신만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인간의 이름으로 불리 우기를 원하시는 분이세요. 저의 연약함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김지찬의 하나님으로 불리 우시기를 하나님 원하십니다.
 
그리고 김지찬의 하나님으로 제 자녀들과 제 손주들에게 다가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큰 감동을 느끼게 돼요. 지난 주일 저녁에 38개월 된 손녀가 보고 싶어 가지고 화상 통화를 했습니다. 오늘 유합부 갔다. 왔어. 목사님 설교하셨어? 이러니까? 목사님이 아니고 전도사님이 하셨어. 그래. 전도사님이 뭐라고 설교하셨어? 그러니까? 얘가 쳐다보지도 않고 인형 가지고 놀면서 뭐 바벨 어쩌고 그러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딸내미한테 야 걔가 뭐라고 말하냐? 그러니까? 나도 정확히 모르겠는데 바벨론에 가서 뭐 사자 굴 어쩌고 저쩌고 그러는데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자 굴에 누가 들어갔는데 그러니까? 손녀가 다니엘이 들어갔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사자에게 잡혀 먹혔어? 이러니까? 아니야. 예수님이 지켜 주셔서 안 잡혀 먹었어. 손자녀가 약간 신경질적으로 대답을 하는 거예요.
 
아니 그것도 모르냐 이런 식인 거죠. 그래서 제가 이제 그럼 네 엄마가 사자 굴에 들어가면 어떻게 해? 이러니까? 내가 구해 줄 거야. 아 단호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또다시 그럼 할아버지가 사자 굴에 들어가면 어떻게 공손하게 어쭈어 보았습니다. 저에 대한 소녀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아니에요. 근데 바로 할아버지도 내가 지켜 줄 거야! 저는 이제 사자 굴 걱정을 덜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사자 굴에 돌아가면 예수님이 지켜 주시는데 데다가 손녀까지 저를 지켜 준다니 저는 하늘의 영원한 보호는 물론 지상에서 3대까지 안전을 확보한 거죠. 게다가 이제 저는 천국에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을 얻은 거예요. 무슨 뜻이냐고요? 루터가 1519년에 결혼에 관한 설교를 하면서 실제로 자녀를 경건하게 키우는 일보다. 더 쉽게 천국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라고 가르쳤습니다.
 
성지순례 가톨릭 성들 하는 미사, 교회 건물 짓는 것보다. 자녀를 경건하게 양육하는 것이 천국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루터 진짜 대가입니다. 손녀 얘기가 나왔으니까? 계속 자랑하겠습니다. 며칠 전에 화상 통화를 하는데 가자기가 뜬금없이 제게 휴대폰을 사 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예 비행기 사줘. 그랬더니 내가 사 줄게, 라고 했습니다. 다. 큰 성인 자녀가 셋이나 있는데이 애들도 아직까지 안 사 주는 휴대폰을 손녀가 게다가 비행기까지 사 준다니까? 엄청 행복한 거예요. 이제 저는 손녀가 다. 클 때까지 밥 잘 먹고, 운동 잘하고, 아내랑 안 싸우고 건강하게 사는 것밖에 안 남았어. 이제 큰 그런 것만 이제 기다리면 돼요. 애들한테 휴대폰 받는 거 포기하고 이제 손녀에게 지금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랑한 성도 여러분,
게다가 창세기를 보면은 아브라함의 십일조가 야곱의 십일조로 이어지고 있거든요. 그 이유가 뭘까요? 두 걸출한 족장이 십일조를 드리게 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무엇인가 동일한 체험을 한 거 아닐까요? 한 10여년 전 한 교회에서 목사님이 안 계셔 가지고 제가 거의 1년간 설교를 한 적이 있는데 한 주 십일조 설교를 했습니다. 다음 주에 교회를 가니까? 뭐 장로님들이 특별히 그전과는 달리 저게 고맙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유가 뭐예요? 그랬더니 목사님 지난주 설교를 듣고 우리 자녀들이 십일조 하기로 했습니다. 왜 자녀들이 십일조를 하면 집안에서 재물이 빠져나가는데 왜 행복하죠? 하나님을 만나 십일조를 하게 된 부모의 경험이 자녀에게로 이어지면서 동일한 체험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의 가정을 열망하기 때문 아니에요. 저 역시 저희 자녀들과 후손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제가 한 십일조를 자녀들이 하 하면서 살기를 지금도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매달 물어볼 수는 없고, 눈치 보면서 가끔 올라간 대로 제대로 하나 뭐 이런 의문의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가정과 교회의 집단 체험과 기억은 주로 3세대 안에서 유지되고 특별히 한 세대 거리에서 직접 전달되고 이게 단절이 되면은 빠르게 쇠퇴한다고 해요. 뭐 신앙만 그런게 아닙니다. 가치, 은혜, 뭐 자유 뭐 이런 개념도 마찬가지 3대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러거든요. 그래서 성경은 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계속 3대를 이야기하는 거죠. 그럼 도대체 하나님을 만난 어떤 경험이 야곱으로 하여금 아브라함처럼 십일조를 하게 했을까? 라는 질문을 가지고 성경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야곱은 형의 장자 권을 팥죽 한 그릇에서 사고 눈먼 아버지를 속여 축복권을 빼앗은 다음에, 형의 미움을 받아 고향인 브엘세바를 떠나 밧담아람으로 도피하게 되었습니다. 한 3일을 가다가 갑자기 어두워지는 바람에 그곳에 이제 돌을 가져다가 배고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아마 야곱의 머리를 들판에서 보호할 수 있는 건 아마 돌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야곱은 돌을 베고 자다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에서 처음 본 것은 사다리가 땅을 향해 놓여 있는데 머리가 하늘에 다.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까?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어 가지고 설명 좀 그런데 왜 오르락이 먼저냐? 굉장히 설명이 많은데 야곱이 이렇게 누워 있으니까? 누워 있는 상태에서는 이렇게 쳐다보니까? 오르락이 이제 빨리 보인 거다. 시각적 관점에서 또 그렇게 해석한 사람도 있고요.
 
어떤 사람들은 천사들이 이미 내려와서 사역을 하고 있다가 보고하기 위해서 올라가는 거다. 계속하는 분도 계시고 지금 이제 야곱이 이렇게 여행하는 도중에 그 전에 지역을 담당하던 사자가 임무를 마치고 올라가고 다시 이제 새로운 여호와 사자가 내려오는 거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어요.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 거는 물론 재미는 있지만 뭐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중요한 건 뭐냐면 이 꿈 속에 나타나는 이 모습을 보고 야곱이 어떤 반응을 보였냐, 아니에요? 그러니까? 오르락 내락 하고 있었는데 자세하게 보니까? 여호와께서 서서 계셨습니다. 우리 한글 개혁 개정에는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래 가지고 사닥다리 위로 되어 있는데 뭐 NIV성경 같은 경우 보면 각 주에 야곱 곁에 섰다고 돼 있어요. 또 일부 성경은 야곱의 곁에 섰다고 영어 번역 보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뭐냐면 그를 야곱으로 보고 그다음에 위에라는 전치사를 옆에 라고 해석을 할 수 있는데 그러면 야곱의 옆에 서서 계신 거죠. 사닥다리가 땅을 향해 놓여 있다고 했기 때문에 저는 위에 계셨다고도 할 수 있지만 땅에 내려오셔서 야곱의 곁에 서서 계셨다. 라고 해석하는게 더 좋아요. 여러분 알아서 하세요. 위에 계시는게 좋겠습니까? 내 옆에 서서 계시는게 좋겠어요? 내 옆에 서서 계시는게 좋은 거죠. 그걸 굳이 왜 위에 계셨다고 해요. 뭐 때문에 옆에 서서 계시는 게 훨씬 더 은혜 스럽지 않습니까?
 
물론 위에 계셔도 우리를 보호하시죠. 말씀으로 때로는 사자들에게 명령해 가지고 얼마든지 당신의 뜻을 이행할 수 있지만 직접 내려오셔서 야곱의 곁에 서서 놀라운 약속으로 말씀하셨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게 어딨어요?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이렇게 말해요.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내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네 자손에게 주리니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동서남북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내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우리 이 장면 이해가 안 되죠. 왜 속임 당한 에서편에 서야지, 왜 속임수 꾼 야곱의 편에 서실까요? 이게 그러나 복음입니다. 사닥다리가 땅을 향해 놓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을 떠나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셨다는 뜻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도피하는 도망자, 야곱에게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인간의 죄가 만들어 놓은 슬프고 고통스러운 삶의 자리 한복판으로 하나님께서 먼저 들어오신 거죠. 이게 복음입니다. 그 왜 야곱 속임수꾼 야곱의 편에 서실까?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야곱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그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 이미 여호와께서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했다고 선언해요. 하나님은 이렇게 한번 선택한 자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근거로 변화될 것을 요구하세요.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죠. 그 정말 놀라운 건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변화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잠을 깨고 난 야곱의 행동을 보면, 무조건적인 사랑에 반응하여 온전한 사람으로 야곱이 바뀌고 있는 모습을 보거든요. 우리가 다 읽은 대로 17절에 보면,
 
*창세기 28:17,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이렇게 선언해요. 그 야곱이 돌 배개를 베고 자다가 꿈을 꾸고 하나님의 약속을 들은 후에 그것이 하나님의 집이고 하늘의 문임을 지각해요. 이렇게 인간들이 지상에서 하늘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을 영국의 켈트 지방의 전통에 의하면 기독교 전통에 의하면 ‘thin 플레이스’라고 말해요. ‘얇은 장소’라고 부릅니다.이 이 하늘과 땅 사이에 이렇게 베일 장막 같은 게 이렇게 불러져 있는데 그 베일이 얇아지는 곳이 있다는 거예요. 하늘과 땅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얇아지는 이곳이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경험하는 곳인데 따라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세어 나오는 틈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죠. 아파서 아무것도 못 하고 누워 있는 병원의 병상, 요단강을 먼저 건너간 친구나 선배의 영정 사진 앞, 실직이나 파산을 당하고 혼자 앉아 있는 텅 빈 집, 대학 입시와 취업 전쟁에서 실패하고 고개 숙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런 곳이 Thin 플레이스죠. 하늘의 문인 거죠. 이런 thin 플레이스를 경험하면, 신앙의 선배들은 그곳을 하늘의 문으로 인지하고 예배한 거예요. 그러나 젊은 세대는 이러한 thin 플레이스를 경험하면서도 하늘의 문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물질적 풍요를 경험하면서 영적인 민감성이 약해졌기 때문이에요.
 
사실은 얼마 전에 몇 달 전에 저보다. 15살 먹은 장로님이 저랑 같이 신학교를 다녔는데 목회는 안 하고 그냥 장로로 이제 사시다가 15살 더 먹은 형님인데 돌아가신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 영안실에 가서 영정 사진 앞에서 조문하고 이렇게 앉아서 이제 밥을 먹고 있는데 14살 더 먹은 이제 형님 목사님이 선교사인데, 오셔 가지고 이제 영정 사진 앞에서 이제 조문하고 제 앞에 앉았어요. 근데 갑자기 눈이 붉어지셨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김목사, 내가 영정 사진을 딱 보는 순간에 눈물이 났어. 왜요? 요단 강가에 섰는데 내 친구 건너가네. 그 저는 살고 선배잖아요. 요단 강가에 섰는데 내 선배 건너가네. 15년 남았네. 물론 뭐 15년 더 남을 수도 있겠지만 혹시 15년밖에 안 남은 거 아니야? 뭐 이렇게 생각을 해요. 제 아내가 뭐 당신은 뭐 꼭 그럴 필요가 뭐가 있냐 이러는데 저는 좀 시간이 더 남아야 그동안 하나님 더 사랑하고 주님 더 사랑하고, 교회 더 헌신하고 또 하나님께 이쁜 일도 하고 가야 되는데 아쉬움이 있는 거예요. 제가 성격이 ISTJ거든요. 근데 아 안에는 ENFP라 뭐라 그러냐면 자기는 하나님이 언제든지 자기 잘했다고 칭찬해 줄 거라는 거예요. 그 근거가 뭔데 이랬더니 당신 같이 까칠한 사람이랑 살아줬으니까? 하나님이 그거 하나만으로도 자기를 잘했다고 할 거라는데 저는 성경 아무리 뒤져봐도 어디에 까칠한 남편이랑 살아서 잘했다고 하는 대목이 없어요. ENFP니까?
 
데이터 없이 그냥 막 ISTJ는 데이터 없으면 말을 못 하거든요. 근데 ENFP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해요. 근데 뭐 인간적으로 이해는 가능해요. 아, 저 같이 까칠한 친구랑 살았으니까? 뭐 그럴 만하죠. 그렇지 뭐 어쨌든 영정 사진 앞에 딱 서 있으면은 하나님의 공간과 인간의 공간이 이렇게 거의 맞다은 듯한 그런 느낌 들지 않아요. 거기가 Thin 플레이스죠. 하늘의 문이고 하나님의 집이죠. 야곱이 이제 그 꿈을 꾸고 하나님의 약속을 들은 다음에 백에 삼았던 돌에다가 기름을 붓고 구별했다는 뜻 아닙니까? 하나님의 집 베델이라 불렀습니다. 이제 야곱이 뭐 해요?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하면서 서원합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그러면 여호와께서 내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10분의 1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흥미로운 건 하나님의 약속하고요. 야곱의 조건을 비교해 보면 거의 동일해요. 하나님의 약속에서 내가 이 일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 부분은 뺐고요.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면‘ 이건 없었어. 이걸 집어넣는 거죠. 그러니까? 아마 야곱이 하나님 너와 함께 내가 있어서 내가 너를 지킬 거고, 그다음에 아버지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해 주겠다. 요게 약속이잖아요. 거기서 이제 하나는 빼고 이제 하나를 집어넣는 거죠. 아마 먹을 떡과 입을 옷이 굉장히 필요했던 거 같아요. 왜냐면 지팡이 하나를 가지고 요단을 건너 밧단아람으로 갔으니까. 그러니까? 야곱의 서원의 조건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나오는 겁니다. 폐지론자들의 주장처럼 야곱이 먼저 계산기를 두들기면서 조건을 걸고 하나님과 협상해서 십일조 서원을 했다. 이렇게 주장하는데 그 사람들은 문해력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야곱이 잠에 깨어서 두려워했다고 그랬거든요. 무엇을 해요? 하나님이 죄송해요. 표현이 약간 강한 거 같아서요. 그냥 자빠져 있는데 야곱이 뭐 잘한게 아니에요. 도망자가 돼 가지고 그냥 자빠져 있는데 오셔 가지고 야, 네 누군 땅 내가 너한테 자손에게 주겠다. 네 후손이 땅이 티끌까지 될 거다. 그 약속하신 다음에 야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너를 지킬 거고, 무사히 이곳으로 돌아오게 해 주겠다. 먼저 그러셨잖아요. 뭘 뒤를 하냐고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두려운 마음에서 하나님께 만약에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신다면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될 것이고, 그리고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고, 세 번째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서 내가 십일조를 반드시 드리겠습니다. 한 거죠.
 
그러니까? 문해력이 없는 거예요. 문해력이 없어 가지고 기본적인 해석에 이 사라교회처럼 순장 교육을 받으면 충분히 이거 할 텐데, 그것도 안 돼 가지고 앞에 문장이랑 하나님의 약속이랑 야곱의 조건을 비교만 해도 금방 알아요. 두려웠기 때문에 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아 뭐를 딜 합니까? 여러분 야곱이 자빠져 가지고 있는데 딜할 수 있습니까? 이게 뭐를 딜을 하냐고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의 반응을 하면서 하나님하고 지금 자기의 미래를 온몸을 던진 거죠. 하나님께, 그 야곱의 스토리를 살펴보면 야곱의 십일조 서원이 야곱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서 십일조를 하겠다. 라고 하는 서원은 움켜 지는 자가 아니라 이제는 이렇게 드리는 자로 바뀌어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지 않아요. 지금은 서원이지만 지금 당장 주는 건 아니죠. 없으니까? 지금은 야곱은 태중에서 이제 형과 9개월 동안 계속 경쟁을 했을 뿐 아니라 출산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으려고 발뒤꿈치를 잡았어요. 그래서 형이 발뒤꿈치 잡고 나오니까? 이제 이게 잡다는 동사에서 야곱이라고 하는 이름을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까?
 
현대인들과 똑같아요. 현대인들 전체성이 역시 움겨 잡는 자 아니에요. 현대인들은 출생 순간부터 경쟁 사업에 투입되죠. 때로 따라서 일부들은 세 살 때부터 영어 유치원에 보내고 7세 의대를 목표로 학원에 보내요. 현대 부모들은 수담과 방법을 가르지 않고 그 아이들을 선행 학습과 습 경쟁에 밀어 넣죠.
 
야곱은 인간 관계, 가족 관계까지 자기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삼잖아요. 현대인들 역시 인맥 쌓고 효율적 인간 관리를 통해서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얻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보면 야곱은 특별히 타락한 인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축소판이고 하나님 없이 자기 힘으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하는 인간의 전형입니다. 게다가 특별히 현대 사회는 움켜 쥐는 삶의 방식을 장려하고 제도화하죠. 수많은 광고가 인간의 결핍을 자극하고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라고 끊임없이 유혹해요. 그러니까? 현대인들은 주기보다는 움켜잡기를 원하죠. 그러다. 보니까? 성도들조차도 거져 받았으니까? 거져 주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기가 힘든 거죠. 그러다 보니까? 심지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하나님께 예물을 기꺼이 드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적 제도로 폐지되었기 때문에 이젠 자발적으로 그 이상의 헌금을 해야 한다고 고상하게 주장을 하는데 실제로 십일조도 드리지 않는 이유가 뭐죠? 그럼 고상하게 주장하지 말든지, 여기서 우리는 야곱의 십일조 서원만 기억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서원의 종류가 내용이 세 가지잖아요.
①첫 번째 하나님을 야곱이 베들에서 만난 다음에 하나님의 약속을 먼저 받은 다음에 만약에 약속대로 그렇게 해 주신다고 한다면 첫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고, 그 뭐예요? 신앙 고백이죠. 그니까? 이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었는데 이제는 야곱의 하나님이 되는 거고 그 나중에 보면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를 가르쳐 소개할 때 엘 베델이라 그러세요. 엘은 하나님이고 베델은 베델이잖아요. 나는 베델의 하나님이라 이렇게 말씀하세요. 그리고 이제 출애굽기 가야만 비로써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정확한 그 고정 억구가 생기는 거예요. 야곱의 하나님은 창세기는 안 나옵니다. 베델의 하나님이죠.
 
그다음에
②두 번째 그러면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신앙 고백을 했다면 그다음에 예배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야곱이 내가 돌 배개를 배고 자는이 돌을 기름 부어 가지고 구별했는데 그러면 이 집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겠습니다. 라고 두 번째 서운을 한 거고요. 그러면 신앙 고백과 예배가 있으면 다니 아니죠. 예배하려면 예물이 있어야죠. 결혼식 하려도 결혼해도 예물 있어야죠. 생일 생일 날도 예물을 바치잖아요. 아내한테. 예물 없이 생일을 어떻게 해요? 결혼 기념일 날 예물이 없다고요? 예물 없이 하십니까? 우리 남자 성도님들?. 나는 하는데 예물 없이 기념일을 지키지 못해요. 인간 관계에서도 이렇게 예물을 가지고 물론 큰 예물은 아니지만 조그만한 뭐 이렇게 기념품 이런 거라도 이렇게 줘야 아 그래야 이게 인간관계가 제대로 불러가는 건데 하나님께 나와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예배를 드리는데, 예물이 없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러니까? 이제 야곱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서 10분의 1을 드리겠다고 한 거예요.
 
그러게 신앙 고백하고 예배와 예물이 세 가지가 있어야, 그래 하나님의 진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하나님 그니까? 자 여러분 보세요. 성경 어디를 보아도 축복받기 위해서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하는 구절은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시간 가면 안 되는데 성경의 핵심이 뭐냐면 성경의 그 십일조 핵심이 뭐냐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그의 감사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에서 10분의 1을 드리는 것 이게 정확해요. 그런데 이제 몇 군데에서 이렇게 십일조를 내면서 복 달라고 기도하는 대목이 있고 십일조를 매 3년 십일조를 드리면서 드리면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이라고 하는 본문과 말라기 3장이 있어 가지고 세 군데에는 그런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큰 틀은 뭐냐면 하나님께 나아가서 십일조를 드리면 복을 받는다.
 
이렇게 얘기하면 성경의 십일조 정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십일조 정신을 왜곡할 수 있어요. 그 조심하셔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먼저 다가오셔서 축복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주시면은 그 주신 것에서 드리는 거지, 주시지 않은 것을 드리는게 아니에요. 그러기 때문에 고린도후서 8장에서 없는 것을 받지 않으신다. 있는 것을 드리면 당연하죠. 구약의 십일조 똑같아요. 주신 것에서 드리는 거지. 주지 않은 것에 드린다고요. 누가 그래요? 주시지 않는 것에 드릴 수 없는 겁니다. 주신 것에서만 드리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십일조 정신은 굉장히 분명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받은 다음에 야곱이 신앙을 고백하는 신앙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겠다고 하는 예배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사람으로 바뀐 거예요. 그러니까?
 
신앙과 예배와 예물이라는 삼각 관계 안에서 예물을 이해해야 되죠. 그 십일조만 따로 딱 떼내 가지고 이해하면 안 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을 했으니까? 그럼 나의 하나님을 향한 신앙 고백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으며 우리는 진정 무엇을 믿고 무엇을 소망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물인 거죠. 특별히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인들은 쇼핑하고, 맛있는 음식 먹고, 여행하는 일에 마음껏 돈을 씁니다. 이런 학자들이 세속적 예배라 부르거든요. 이에 맞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와 자신의 존재와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말미암아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렇게 신앙고백과 예배와 예물로 드리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면에서 십일조는 고백적 저항인 거죠.
 
저는 중학교 때 등록금을 못내 1년 휴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집안 상황이 너무 안 좋아 가지고 이남2녀의 장남인 저는 중3 때 휴학하고 집에서 쉬었는데 주변에서 왜 복학하려고만 하고 왜 어머니를 안 돕냐 하도 난리를 치는 바람에 마대 공장을 다녔습니다. 두 달 만에 공장이 망했습니다.
 
저 쳐다보지 마시고 저 때문에 망한게 아니고 그냥 그냥 망했습니다. 그 두 달 제가 그 월급 받아 뭐 했겠습 얼마 받았니 기억이 안 납니다. 성경 한 권 사고 어머니께 고무장갑 하나 사 드리고한 십일조 했습니다. 십일조 하면 복받는다고 했을까요? 몇 만 원 받았겠죠? 뭐 2, 3만 원 받았을려나? 모르겠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11조 내지 않아도 하나님 뭐라 그러지 않으실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가 저는 정확히 뭔지 모릅니다. 생각이 안 납니다. 아마 당시에 목사님들이 십일조를 내라고 강조하셨기 때문에 그냥 순종하는 마음으로 드린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가스 라이팅이라 그러는데 몰라요. 뭐 그분들이 가스라이팅 했는지 모르겠는데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고요. 설마 가스라이팅이라고 해도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며 아깝다는 생각하지 않았고요. 하나님께 대한 저의 신뢰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옛날 목사님들께서는 어떤 동기에서인지 모르지만 1970년대, 80년대, 90년대까지만 해도 십일조를 하라고 강하게 권면하셨죠. 그이 권면에 순정하다. 보니까? 십일조를 통해 탐욕과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조금은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에 따라 채우신다는 걸 믿을 수 있게 된 거죠. 가난할 때 십일조를 낸다고 더 비참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부할 때 십일조를 낸다고 덜 행복한 삶을 사는 게 아니잖아요. 이전 목사님들의 십일조 강조가 성경의 진리가 실전적으로 옳다. 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셨기 때문에 저는 한국 교회 전통에 대해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해보면 아니까, 우리는 그러기 때문에 십일조를 단순히 의무로 액수의 문제로 생각해서 안 되죠. 십일조를 생각할 때 야곱이
 
가졌던 꿈과 비전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준 꿈과 비전이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됩니다. 나다나엘이에게 주님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너를 뭐하고 나무 아래에서 보았다고 함으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단순히 사닥다리만이 아니고요. 인자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예요. 하늘과 땅이 붙은 거죠. 이제는 하늘과 땅이 이렇게 얇아진 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과 하늘이 열리고 하늘과 땅이 이렇게 붙어 있는 오버랩 돼 있는 거죠. 이렇게. 그리고 그리스도 위로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하늘의 무한한 사원과 풍요가 우리에게 열렸다는 말 아닌가요?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열려 져 있는 하늘의 무한한 능력과 자원이 있다고 한다면 그 큰 일을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세례받을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에게 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에 성전의 휘장이 찢겼습니다. 하늘과 땅의 구이 구별이 사라진 거죠. 그리고는 4일 만에 3일 만에 부활하신 다음에 하늘에 올라가셔서 하늘로부터 성령을 보내 주셨고, 마가 다락방의 성도들은 성령을 받고 각 언어대로 각 성령을 받고 방언을 했는데 듣는 사람들이 자기 지역의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향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하늘의 능력과 힘을 공급하시는 그 예수님의 더 큰 일을 경험하고 있다면 예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하고 나와서 주일마다. 또 예배 공 예배마다 나와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러기에 십일조는 신앙 고백과 예배와 함께 하나님이 베푸신 축복에 감사하여 드는 예물이기 때문에 이게 관계의 문제고 은혜의 문제인 거죠. 그래서 십일조는 율법적 최소가 아니라 은혜의 최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10분의 1을 모든 성도들에게 강제적으로 이렇게 교회에서 이렇게 의무로 규정하지 않잖아요? 신약 시대에는 더더욱 하나님의 은혜며 하나님께 감사해 드리는 자발적 최소, 은혜적 최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정통 교회는 그 어디라도 예배 참석할 때 헌금을 해야 된다. 그러지 않잖아요. 예배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멤버가 되고, 교회의 직분자가 되면 그때는 헌법적 규정으로 십일조는 누구나 해야 된다가 아니라 권면 사항으로 율법적 최소가 아닌 은혜의 최소로 자발적 최소로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릴 것을 교회가 권면하고 있는 거예요.
 
이단들은 오히려 헌금 많이 안 하면 중앙 본당에 못 들어갑니다. 신천지가 거기 중앙 본다고 돈 내야 들어갑니다. 희한한 애들이 쟤네들. 정통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분량이나 혹시 형편으로 인해 십일조를 하기 어려운 마음이 든다면 억지로 해서는 안 되죠. 굳이 십일조를 단어를 쓰기 원치 않으시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서 일정한 부분을 드리는 훈련을 하시면 돼요.
 
그럼 미국에서는 어떤 목사님이 미국 성도들이 평균 3% 헌금을 하니까? 1%씩 올려 가지고 10%까지 올리는게 어떻겠냐, 이렇게 제안을 하고 저는 한국 교회는 5%니까? 1년에 1%씩 올려서 10%까지 가보는 훈련을 하는게 어떤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출석하는 교회에서 예배의 은혜를 받고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시키고, 성도 간의 교재 유익을 경험하고 있다면 먼저 출석 교회의 십일조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출석하는 지역 교회가 재정적으로 건강해져야 그 지역에서 복음 사역과 다음 세대 교육을 잘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정말 돕고 싶은 어려운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로 이적해서 거기서 봉사하고 헌금을 하는게 더 적절할 것입니다.
 
출석 교회에 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지 않으면서 다른 곳에 헌금하는 것을 자랑한다면 자칫 위선일 수 있죠. 그러나 10분의 1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존 신자들은 10분의 1이 목표가 아니라 더 많이 드릴 수 있는 지혜로운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십일조 이상 할 수 있는 여력과 마음이 있다면 뭐 다른 교회나 뭐 선교 단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10분의 1은 자발적 최소고 은혜의 최소가 돼야 되는 거고, 그런 점에서 제가 십일조라고 하는 것은 구약에 규정된 의무적인 헌금처럼 보이는 건 맞다. 대신 신약에 대해서는 자발적으로 은혜로 하나님께 하는 거라면 십일조는 자발적 최소지 이게 최대는 아니잖아요. 그러면 자발적 최소로 은혜적 은혜의 최소로 이렇게 드리면 더 많아져야 되는 건데, 더 줄어드는 건 도대체 무슨 이유일지, 전 도대체 이해가 안 가요.
 
미국의 저명한 존파이퍼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33년 동안 베들레헴 교회에서 십일조 설교를 두 세 번 정도 한 것 같습니다. 물론 헌금과 희생에 대해서 늘 이야기했지만 십일조에 관해서 그렇게 밖에 안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했던 십일조 설교 요지가 무엇입니까? 형제 자매님들이여, 왜 우리가 더 적게 하려 합니까? 였습니다. 그러니까? 십일조를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우리에겐 더 좋은 언약, 더 좋은 약속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좋은 희생, 더 좋은 헌금이 있으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요?
 
우리는 바울이 마게도니아 교회를 칭찬한 걸 잊어서 안 됩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환난의 많은 시련과 풍성한 연보, 이거 상반되지 않아요? 아니 마게도니아 교인들로 하여금 많은 시련 가운데 풍성한 염보를 하게 한 이유가 뭘까요?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동기였대요. 아 이보다. 더 큰 역설이 어디 있어요? 근데 이게 진리예요. 성경 기독교는 무엇이든지 많이 넘치는 종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환난도 넘치고, 시련도 많고, 가난도 극심하게 경험해요. 그런데 이 많은 환난 가운데 넘치는 기쁨으로 풍성한 연보를 하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거죠. 이게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아멘.
 
많은 환난 가운데서 극심한 가난이 넘치는 기쁨으로 풍성한 연보를 하게 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해. 그래서 바울이 뭐라고 말해요? 이 이 일이 하나님께서 마게도니아 교회 들에게 주신 은혜 때문이라고 말해요. 그래서 가난한 자들의 헌금을 교회가 재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보면 무시해서 안 되는 거예요. 퍼센티지를 보면 작을지 모르지만 작은 자들의 헌신을 가지고 가난한 자들의 헌신을 가지고 왜 교회가 가난한 자들의 헌신까지 그렇게 알겨 먹으려고 그러냐 그러면 안 되는 겁니다. 물론 저는 목회자로, 대부분의 많은 목회자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가난한 성도들이 헌금할 때 마음이 아파요. 하지 말라고 그래요. 어떤 때에는 그렇게 어려운데 왜 하냐?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가난한 자의 헌금은 박수치거나 감사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서 배워야 되는 정신이라는 거죠. 교회 정체성이고, 왜요?
 
여력에서 내는게 아니라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드렸던 과부가 드린 거 아니야. 어떻게 저들은 무엇 가진게 없는데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까? 우리는 거기에서 도전을 받고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 하신지를 듣는 거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가난한 자의 헌신을 그냥 박수 치고 감사하고 이 정도나 아니면 숫자가 x가 얼마 안 되니까? 무시해서는 안 되고 교회가 배워야 할 정신이다. 이렇게 선배들은 가르쳤어요. 이런 거를 알지도 못하는 일부 진보적인 특별히 유튜브 잘잘법 이런데 나오는 사람들이 신약에는 헌금이라는 돈이라는 단어가 안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에는 헌금이 없고 돈이 없고 뭐가 있냐? 가난한 자들이 주는 연보밖에 없다. 이렇게 주장해요. 고린도후서 8장 9장에 보면 돈이란 단어 안 나옵니다. 맞습니다. 화폐라는 경제적 영어 없습니다. 대신 은혜가 8장에만 일곱 번. 디아코니아 성도를 섬기는 일로 두 번, 8장 9장에 함께 참여하고 교재한다는 코인이니어가 두 번, 하나 가난한 자에게 주는 헌금을 사랑이라고 아가페로 세 번, 후하다는 단어가 한 번 풍 넉넉함 넉넉함이라는 단어가 두 번, 거에게 연보라고 두 세 번, 연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율로 한데 축복이란 단어거든요. 한 번, 착한 일이라고 한 번, 봉사라는 단어로 한 번 쓰였습니다.
 
이제 바울이 하려고 하는 일은 신약교회 성도들이 하려고 하는 일은 이 예물은 그냥 돈 화폐가 아닌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은혜, 사랑, 풍성함이라고 하는 단어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런 단어를 썼는데 개뿔도 모르면서, 헌금 돈이란 단어 안 나오니까? 신약에는 헌금이 없다. 그 제 정신이 아닌 거 같아요. 제가 최근에 이렇게 우연히 유튜브를 이렇게 보니까? 리아킴이라고 하는 자매가 한 10년 전에 위대한 약속, 뭐 이런 노래를 불렀는데 갑자기 듣다가 우연히 들었어요. ’하나도 모르면서 둘을 알려고 하다가 사랑도 믿음도 떠나가네.‘ 구약도 모르면서 신약을 알려고 하다가 구약도 신약도 다. 떠나가는 거야. 이 알지도 못하면서. 그니까? 구약은 십일조라고 하는 율법적 최소를 정해 놓고 그것을 가지고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운영했는데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그 무한한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은 돈 화폐라고 하는 재정적 경제적 용어로는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은혜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니까 보지 마세요. 유튜브, 교회도 모르고 죄송해요. 너무 심하긴 한데 그냥 제가 그 강의를 듣고 있으면 아 교회를 모르는구나 은혜를 모르는구나 구약도 모르는데 어떻게 신약을 알려고 할까? 그런 생각이 확 들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 시대 운운하면서 십일조 페이지 어쩌고 저쩌고 이러는 사람들은 아직 율법의 수준에 율법의 사람이 지나지 않는 거죠. 극심한 환난 가운데 극심한 가난 가운데 넘치는 기쁨으로 풍성한 예물을 드렸던 마게도니아 교회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가 뭔지를 1도 모르는 거죠.
 
우리 사랑하는 사랑교회 성도 여러분,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선자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각자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믿음의 세대 기승이 일어나는 가정을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우리의 주로 고백하고 그분에게 예배드린 일에 목숨을 걸며 십일조와 감사 헌금으로 예물을 드리는 일을 중요시 여기지 않으면 교회는 한 세대만에 쇠퇴하고 소멸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베푸신 축복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은혜의 최소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삶 삶을 다음 세대에 강력하게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할아버지의 십일조가 아버지의 십일조를 거쳐서 손자의 십일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이를 넘어서서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고 한다면 결국은 십일조 이상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되는 거 아닐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저 하나님의 바다에 얕은 물가에서 발로 이렇게 물장구치는 수준으로는 이런 방식의 삶을 살아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설교 후에 함께 부를 찬양 찬송가 302장은 이렇게 찬양합니다. ♬ 많은 사람이 얕은 물가에서 저 큰 바다 가려다가 찰싹거리는 작은 파도 보고 마음이 조려서 못 가네.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띠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내 맘껏 저가라. ♪~~ 언덕을 떠나 창파에 배를 띄우고 하나님께서 다. 우리의 필요를 따라 채우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며 산다고 한다면 은혜의 바다에 깊은 속까지 우리가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받는 여러분과 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우리에게 주신이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3대가 하나 되어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예배하며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한다. 신앙의 세대 계승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배하신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받는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간구하자. 야곱이 신앙을 고백하는 신앙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겠다고 하는 예배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사람으로 바뀐 거처럼, 우리도 항상 신앙고백과 예배와 예물을 주님 앞에 감사함으로 드리는 자가 되고, 자녀를 경건하게 양육하는 것이 천국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임을 깊이 깨달아 세대 계승의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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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7월 27일)
설교제목: "단 한 번의 인생 이대로 끝낼 수 없다(Only One Life, I Refuge to Waste it)"
성경본문 : 디모데후서 4:1-8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구성찬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 류응렬 목사(미국 와싱턴중앙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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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4:1-8,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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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024년도 3월에 이집트의 교회 초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집트는 여러분 잘 아시는 것처럼 세계 최강 중의 하나인 무슬림 이슬람 국가입니다. 그 가운데 개신교가 1% 정도 되고 장로 교회가 500개 정도 됩니다. 그중에 200개 교회에서 저를 초청하고는 부탁을 해 왔습니다. 목사님 한국 교회가 짧은 140년의 역사 중에 어떻게 그렇게 놀라운 기독교 성장을 이루었는지 그 성장의 비결을 좀 알려주십시오. 매일 새벽부터 기도하면서 주님 앞에 산기도, 철야 기도로 다져온 한국 교회인데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개혁 신학과 영성에 대해서 알려주십시오. 저는 영어로 강의를 하고 이집트 말로 통역을 했지만, 언어가 달랐지만 정말 하나님을 사모하는 하나님의 복음을 열망하는 사람들의 그 눈빛을 보면서 너무나 감격스럽게 함께 나아갔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집트 뿐이겠습니까? 지금 온 세계는 한국 교회를 배우려고 한국 교회를 모델로 삼으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을 연구하고 한국 교회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교회의 모습은 안팎으로 우리는 모두가 다 문제 그리고 위기(危機)라는 말을 많이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팬데믹이 지나가면서 한국 교회가 6만 교회 정도 있었는데, 만 교회 정도가 문을 닫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20% 30% 정도가 성도들이 감소된 것이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제가 미국에 있는 이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약 한 3500개 교회가 있었는데, 팬데믹이 지나가면서 700개 정도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안으로뿐만 아니라 밖으로도 비슷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에 퓨 리서치(Pew Research)라고 미국의 가장 저명한 연구 기독교 연구기관이 있습니다.

이 기관에서 앞으로 교회가 25년 동안 어떤 나라의 교회가 성장할 것인가? 여러분, 아마 세상 누구에게 물어보더라도 앞으로 25년 동안 기독교 성장 예상 국가를 이야기하면 당연히 1순위로 사우스 코리아, 한국이라고 말을 할 겁니다. 그런데 실제 나타난 결과 한번 보시겠습니까? 1위에서 10위 나라를 보면 콩고가 나오고, 나이지리아, 탄자니아, 우간다, 아프리카의 나라입니다. 필리핀, 아시아 나라가 하나 들어가 있고 케냐, 잠비아, 말라위, 에티오피아, 마다카스카르 모두가 다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들입니다. 한국이란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11위부터 한번 보도록 할까요? 앙골라. 모잠비크. 다 마찬가지입니다. 아프리카 나라들이고 멕시코. 과테말라. 르완다. 가나 이제 남미가 몇 개 나오고 참 놀라운 것은 유나이트 스테이츠, 미국이 들어가 있죠.

카메른, 콜롬비아, 남미들 그리고 브라질, 지금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가 성장하고 있는 나라 중에 하나가 브라질입니다. 베네수엘라, 페어리 인도네시아, 아르젠티나, 아이브리코스 대부분의 나라가 아프리카와 남미에 속해 있습니다. 미국이 교회 성장 중의 하나라는 것은 정말 믿기가 어려운 일인데 연구 결과를 쭉 읽어보면 미국 교회 백인 교회는 대부분 쇠퇴하게 되는데, 미국에 있는 이민 교회 남미 교회 그리고 아프리카 교회 아시아 교회가 성장을 해서 미국 전체 교회가 성장을 한다. 라는 이야기였습니다. 25위 안에도 들어가지 않는 2050년까지 기독교 성장 가능성 나라에 더 이상 한국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한국을 보고 안으로도 밖으로도 아마 위기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기독교의 내일을 교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꼭 기억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기독교가 문제와 역경 위기 앞에서 무너진 적은 없는 줄 믿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위기와 문제가 다가오면 더 주님 앞에 치열하게 기도하고, 하느님 앞에 엎드려서 그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서 놀랍게 성장해 온 것이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의 역사를 잘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자폐가 매질을 당하고 감옥에 들어가고 심지어 순교의 피를 흘렸던 시기였지만 그러나 그 모든 역경 위기를 뚫고 일어난 게 사도 행전의 역사였습니다. 중세 천년의 가톨릭의 어둠을 뚫고 개신교가 나올 때,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려야 되었고, 심지어 화형을 당하고, 사지가 절단당하고 그 위기를 뚫고 순교의 피로 말미암아 나온 것이 개신교였고 우리는 그 개신교의 자랑스러운 후예(後裔)들입니다. 한국에는 어떠합니까?

일제강점기에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폐와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고 6.25전쟁에 아무것도 있는 젖더미 속에서 일어난 것이 우리 한국 교회입니다. 한국 교회야말로 위기라는 말 고난이란 말 역경이란 말 앞에서 오히려 교회가 놀라운 성장을 이룬 역사를 가진 것이 우리 한국 교회 역사입니다. 우리는 지금 잠시 어둠의 시기를 지난다 할지라도, 반드시 위대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십자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어둠을 뚫고 다시 한번 일어나서 한국 교회도 새로워지고 세계 열방의 선교적 나라로 세워질 줄 믿습니다.

오늘 은혜의 말씀을 통해서 가장 어려운 시기 가장 위기의 시기 때,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아서 한 인생 정말 불꽃같이 살아낸 한 하나님의 전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이 인생이 어땠습니까? 주님을 만났어요.

주님을 만난 30년의 인생을 오직 복음을 위해서 인생을 던진 사람 복음을 전하다가 40에 감한 매 39대를 5번이나 맞아가면서 율법에는 40대를 못 때리게 해요. 사람이 죽는다고 그러니 39대를 그렇게 죽도록 맞아가면서 한 번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버렸습니다. 다시금 바울이 정신 차리고 다시 돌아가서 전한 것이 예수의 복음이었어요. 배고픔, 추위, 가난의 고통, 파산의 위험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복음 때문에 모든 고난 역경을 다 겪었던 바울, 이제는 마지막 송환의 예수 복음 때문에 감옥에 잡혀 들어와서 우리가 오늘 읽은 디모데후서 말씀은 바울이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우리를 위해서 남긴 마지막 유언(遺言)의 말씀입니다. 일생을 복무해서 달려온 한 사람 마지막으로, 남기는 그 유언의 한마디 여러분 그 말이 무슨 말씀일까요? 우리 1절, 2절 한번 말씀해 보시겠습니까?

*디모데후서 4:1-2,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유 스프리드 더 워드(You spread the word),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씀치고는 너무 지극히 평범한 말씀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말씀 전하세요. 복음 전하세요. 전도하세요. 늘 우리가 듣는 이야기 아닙니까?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이라면, 뭔가 좀 더 가슴 깊이 심한 말을 남길 것 같은데, 그러나 지금 바울이 이 말은 편안하게 책상에서 쓰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숨이 넘어가는 한 사람이 내일이면 어쩌면 사형선고를 당해야 할 사람이, 마지막 모든 마음과 힘을 다 쏟아서 뱉어내는 건 마지막 한마디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우리말에는 말씀을 전파하라. 나와 있지만 원문을 좀 살펴보면 좀 더 강조가 돼 있습니다. 너는 그 말씀을 전파하라. 여러분 그 말씀이라는 게 무슨 말씀일까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늘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복음 하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대신 십자가의 피를 흘려주신 십자가의 복음, 찬란한 부활에 숭고한 부활로 나타나셔서 우리의 영원한 산 소망이 되신 부활의 복음 그 심장 뛰게 만드는 그 복음을 전파하라는 거죠. 이 복음만이 사람을 바꿀 수 있기에 이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도 있다는 말입니까? 3~4절의 바울은 다른 복음을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3-4,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때가 이르리니, 어떤 때입니까?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전해야 될 십자가의 복음, 찬란한 부활의 복음이 아니라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내 종족 내 행복을 위해서 많은 스승을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진리에서 예수 십자가의 복음 부활에 우리 인생을 변화시키는 복음에서 벗어나서허탄 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옛날이나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문제가 뭘까요? 정말 들어야 될 십자가 복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이런 시대, 우리 성도님들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너무나 감격스럽게 예배하면서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복음은 어떤 복음입니까?

피곤한 인생살이 직장살이에서 좀 더 격려가 될 만한 그런 복음입니까? 귀한 일입니다. 우리 자녀들 좀 더 지혜롭게 할 만큼 우리 지혜 주는 인생 특강 같은 복음입니까? 복음이 다 가지고 있는 능력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정말 가슴에 새겨야 될 복음은 죽은 자를 살려내는 십자가의 복음, 나를 위해서 33살의 젊은이가 비통하게 십자가에 피 흘리시고, 그 피를 먹는 사람마다 생명이 살아나는 죽은 심장이 살아나는, 이 복음을 사모하고 드려야 될 줄 믿습니다. 점점 이 복음이 사라지는 이런 시대를 맞이하고 있어요. 최근에 ‘5무(無) 교회가 온다.’라는 책이 하나 나왔습니다. 다섯 가지 없는 교회가 온다. 라는 거예요.

두 번째 없는 것이 ②새벽 기도, 세 번째가 ③성경공부 없어지고, 네 번째가 ④구역모임이 없어지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로를 세우지 않는 교회, 첫 번째 없는 것은 ①로고의 십자가를 새기지 않는 교회라고 나와 있어요. 여러분, 로고의 십자가 새기지 않는 것이 정말 문제가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이 없는 게 문제예요. 십자가를 건다고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이 있어야 교회가 되는 줄 믿습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신앙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가 내 심장에 뛰어야 그가 진짜 신앙인인 줄 믿습니다. 오늘 바울이 그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너는 복음을 전파하라 이 복음을 십자가의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라 바울이 이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바울이 완벽한 종교인 아니었습니까? 구약성령 잘 알았어요.

하나님 너무나 사랑해서 잘 알았죠. 완벽하게 종교인으로 살아갔지만 바울에게 유일하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무슨 문제죠? 예수를 몰랐던 거예요. 예수를 모르는 것은 문제 중에 하나가 아니라, 인생 문제예요. 모든 걸 다 누린다 하더라도 예수를 모른다면 가장 비참한 인생이 되는 거예요. 이런 바울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만날 수 있었어요.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겁니다. 오늘날 너무나 그 단어의 의미를 너무나 가볍게 만들어버린 한 단어가 있다면 예수를 만난다 라는 의미예요. 여러분 예술을 만난다는 게 어떤 의미죠 이게 불가능한 일이에요. 어떻게 우리 같은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난단 말입니까? 예수를 만난다는 게 무슨 말이죠? 죽었던 내 영혼, 내 죽었던 심장이 뛰기 시작한 거예요.

두 눈을 잃은 사람이 눈 한 쪽을 이식을 받아서 새롭게 보게 된 거예요. 그게 예수를 만난다. 라는 거예요.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거지만 예수를 내가 만난다. 라는 것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 지신 그 주님을 생생하게 바라보고 내가 다시는 내 인생을 내 뜻대로 살지 않겠노라고 내 행복이 아니라 주님의 욕망을 위해서 살겠노라고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 그 한마디가 예수를 만난다. 라는 한마디예요. 바울이 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겁니다. 내가 예수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을 했노라 내게 사는 예수 그리스도니 죽음도 유익함이라 내가 십자가와 주 예수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세상 모든 것 다 배설물로 여기노라. 여러분 왜 그래요.

예수만이 복음만이 바울을 변화시킨 그 복음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복음의 능력뿐인 줄 믿습니다. 2023년도에 미국의 한 연구 결과가 나온 게 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에 미국의 denamination 이 교단에 디크리스 되는 것 쇠퇴되는 것, 또 인크리스 되는 것, 증가 되는 걸 연구한 결과예요. 여러분 그 결과 한번 보시겠습니까? 보시면 대부분의 교단이 저렇게 다운되고 있습니다. ABCUSA 아메리칸 벱티스트 처치(American Baptist Church)를 말합니다. 23% 떨어지고 UCC(유나이티 처치 오브 크라이스트), 너무나 좋은 교회인데 52%는 떨어지고 ELCA(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America) 이벤젤리컬 루트랜 처치 인 어메리카입니다.

그 루터의 신학을 이어받은 교회가 저렇게 루터의 신학을 버리니까, 복음을 버리니까 저렇게 떨어지는 거예요. UMC(United Methodist Church), 잘 아는 교단이죠. 유나이티드 메소디스트 처치입니다. 미국 감리교, PCUSA(Presbyterian Church (U.S.A.)), 미국 제일 큰 장로교입니다. 58%, 10개 중에 6개 교회가 문을 닫는다는 의미예요. TEC(The Episcopal Church), 더 에피스코펄 처치, 성공회 36% 떨어지고, SBC(Southern Baptist Convention-남침례교회, SBC)는 미국에서 가장 큰 경건한 교단입니다. 서든 맵티스트, 남침례교회 4% 정도, 조금 떨어지고 놀랍게 성장하는 교회가 있어요. AoG(Assemblies of God), 어셈블리 오브 갓, 우리나라로 보면 순복음 계통의 교회입니다. 우리와 신학은 조금 다르다 하지만 성경을 믿고 정말 뜨겁게 기도하는 교단이에요. 52% 성장하고, PCA(The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미국의 장로교회, 우리 담임 목사님께서 미국에 계실 때 남가주 사랑교회가 PCA 교회이고, 또 제가 있는 와싱턴 중앙장로교회가 PCA 소속의 교회입니다.

여러분, 저에게 떨어지는 교단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성경을 들고 있지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 무오한 말씀으로 믿지를 않아요. 예수 그리스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주님이라는 것을 믿지를 않는 거예요. 성장하는 교회 지금 많은 기회가 떨어지고 있지만 어떤 교회가 성장합니까? 예수를 믿고 성경을 믿는 교회는 100% 성장을 하는 겁니다. 나와 있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미국에서 성장하고 있는 또 교단이 하나 있는데, 무 교단이에요. 교단에 들어가게 되면 신학을 따라가야 되니까. 교단 없이, 말씀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 여러분 저 가운데 가장 많이 떨어진 58% 떨어진 교단 보입니까? PCSA 떨어질만 해요. 이 교단이 222회 총회를 했을 때였습니다.

그때 개원 기도를 할 때 오리곤이 있는 지역의 이슬람 목사 이맘을 불러서 그로 하여금 기도를 하게 한 거예요. 여러분, 장로교총회에 이슬람 목사를 모시고 기도를 알라신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는 교단, 총회장 후보가 4명이 나왔습니다. 질문이 하나였어요.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주님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두유 빌리브 지저스 크라이스트 이즈 디 온리 웨이 투 셀베이션(Do you believe that Jesus Christ is the only way to salvation?) 구원을 향한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목사에게 이런 질문은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한 사람만 예스! 라고 대답을 했어요. 종교 다원주의라고 부르죠 예스 이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있다고 올해 2월에는 이 PCSA의 교단에서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결정을 하나 내렸습니다. 점점 선교사 수가 떨어지게 되고 60명이 나왔어요.

결국에는 선교 문을 공식적으로 닫아버린 겁니다. 60명 중에 54명 파이어를 시키고, 해직시키고 6명은 그냥 행정 일로 만들어버리고 200년 동안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역을 해온 선교의 문을 공식적으로 닫아버린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대 사명이 무엇입니까?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그 사명을 잃어버린 당연한 일이죠. 예수가 유일한 주님이 아니면 복음을 전할 이유가 다 사라져 버리는 거예요. 여러분. 이 교단이 어떤 교단입니까? 우리나라는 PCA 교단이 많은 빚을 진 교단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 이름이 누구죠? 언더우드입니다. 1884년 140년 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당신의 삶을 던졌던 그를 파송했던 교단이 PCUSA(Presbyterian Church (U.S.A.))입니다.

우리가 속해있는 합동교단 총신대학교를 세운 분이 누구죠 마포 삼열, 마포삼열 선교사님(Moffett, S.A)입니다. 1890년에 한국 땅에 들어와서 46년 동안 한국 땅을 섬기다가 떠나신 분, PCUSA 소속의 선교사였습니다. 그들로 말미암아 한 시대 한국 땅의 그 기라성 같은 수많은 선교사들이 그들의 눈물과 땀과 피로 말미암아 한국계가 오늘까지 왔는데, 예수를 버리니까 복음을 버리니까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는 저런 상황을 맞이하고 있어요. 우리 성도님들 오늘 바울이 우리에게 이것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그 말씀을 전파하라 제가 묻고 싶어요.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주님이라는 것을 여러분, 정말 믿으십니까 십자가의 복음만이 부활의 숭고한 복음만이 우리를 살려내는 유일한 분이라는 걸 정말 믿으십니까 우리가 아멘이라고 대답한다면, 바울이 우리에게 계속해서 부탁하십니다.

너는 이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어떤지 못 얻던지 항상 힘써라. 바울이 삶이 어땠습니까? 예수님을 만난 즉시로 복음이 일꾼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고, 회당에서 복음 전한다. 라는 것은 유대유 회당 아닙니까 맞아 죽을 일입니다. 그러나 생명 걸고 복음을 전도하는 거요 내가 죄수가 되어서라도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되리라. 세계 수도 로마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뀔 것을 믿고 로마를 보아야 하리라. 정말 죄수가 되어서 로마로 압송이 되었어요. 베스도 각하 앞에서 그가 전한 복음을 여러분 기억합니까? 왕이여, 내가 지금 쇠사슬에 묶여 있는 것 이외에는 당신 또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왕이 기가 막힐 일 아니겠어요. 이 죄수로 잡혀 온 사람이 당신이 나처럼 되기를 원한다고 말을 하니, 바울아, 너의 그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했구나, 바로 미친 게 아니에요.

예수를 만난 거예요. 예수님을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내 인생이 미친 것처럼 바뀌지 않는다면 한번 물어봐야 돼요. 제가 정말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 맞습니까? 예수 그리스를 만난다. 라는 것 죽은 자가 살아난다면 죽은 자가 살아난 사람다움의 삶이라는 게 있는 거예요. 이전에 세상을 향해서 달려가다가 세상의 상대적인 우위 상대적인 행복을 향해서 찾아다니다가 예수를 만나고 나니까 그 하늘의 지극한 기쁨, 지극한 감격으로 내 심장이 뛰는 예수를 만나고 나면 그들에게서 나오는 그리스도인 다운 품격 있는 삶이라는 게 나와요. 우리 사랑스러운 노인들 우리 가슴에 예수를 품고 있다면 그리스도인의 품격 가지고 때를 어떤지 못 어떤지 이 복음 전파하는 이런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우리 교회에 오셨던 고주민 장로님, 새생명 축제 초청을 받아오셨죠? 복음의 전함의 이사장 분이십니다. 정말 한국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르겠어요. ‘복음의 전함’ 가는 곳곳마다 여러분 차에 보면 스티커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It’s Okay with Jesus!!! 교회마다 현수막을 걸기도 하고 이번에 한국의 굴지의 광고주였습니다. 어느 날 모든 광고를 다 하는데, 내가 예수 광고를 해야 되겠구나. 그리고 예수님을 광고하기로 시작했어요. 한국을 넘어서 이제 지난해 미국 서버, 올해는 미국 동부에서 4개월 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복음의 전함, 웰리를 했습니다.

첫 교회가 우리 교회였어요. 올해 3월 23일부터 지난주 7월 20일까지 4개월 동안 워싱턴, 뉴욕, 필라델피아, 아틀란타 그리고 텍사스까지 매주 마다 다니면서 교회를 깨우고 있습니다. 장로님께서 복음 전하면서 하는 내리 여러분 보셨나요? 신문지 전면에 예수 그리스도로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미국에서 저 멕시코 건너가는 국경에 It’s Okay with Jesus!!! 라는 저 간판을 걸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It’s Okay with Jesus!!! 예수와 함께 하면 괜찮아!!! 그리고 뉴욕의 타임 스퀘어의 오른쪽에 있는 거는 타임스퀘어리의 한복판에 It’s Okay with Jesus!!! 예수라면 괜찮아, 수많은 돈을 투자하면서 저렇게 오고 가는 사람들 볼 수 있도록 하루에 50만 명이 지나가는 것이 타임 스퀘어입니다. 그리고 올해 6월 7일에는 더 타임스퀘어에서 2500명이나 되는 한인들이 모여서 함께 전도 집회를 했어요.

여러분 맨 아래 얼굴 환하게 보이는 저 목사님 기억나십니까 예전에 우리 사랑의 교회를 섬기셨던 오영수 목사님으로 계시는데, 저희 교회에서도 5시간 차를 몰고 막 많은 선배님들 벤을 타고 가서 It’s Okay with Jesus!!! 전도지를 나누어주면서 2500명이 미국 저 한복판에 복음 들고 티셔츠를 입고 It’s Okay with Jesus!!!의 복음을 외쳤어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겁니다. 저 멕시코로 건너가는 오가는 사람들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저 뉴욕의 타임스퀘어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상관없을 수 있죠.

그러나 예수님께는 하나님께는 그러지가 않아요. 바로 저분들 때문에 하나님이 세상에 오셨고 저 형제 자매 때문에 예수께서 피를 흘리셨고 지금 하나님이 찾고 계신 분이 바로 저 한 사람 한 사람이에요. 주님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사람이 바로 저 한 영혼 영혼입니다.

주님이 오늘 바울을 통해 우리가 그것부터 하는 거예요. 너는 저 형제 자매들에게 아직 예수를 모르고 있다면 때를 어떤지 못 어떤지 이 복음을 전파하라. 우리 성도님들 마음속에 이 복음을 들어야 될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들 가정 가운데 여러분들 부모님 사랑하는 아내 남편 자녀들 가운데 친지들 가운데 이 복음을 아직까지 모르는 분이 계십니까? 한 분은 만나야 될 주님이에요. 이 땅에서 만나는 주님은 영원한 생명의 주님이지만 이 땅을 떠나서 만나는 주님은 기회가 없어요. 심판의 주님입니다. 여름이 지나가기 전에, 새 생명 축제 때만 전도 아닌 게 아니죠. 이 여름이 지나가기 전에 정중하게 한번 한번 초대해 보세요. 교회 가서 복음 앞에 한번 노출되게 되면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그를 만나줄지 아무도 몰라요. 영혼 탄생의 감격을 함께 누리게 되는 겁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 여러분이 계십니까? 하 목사님 주위에는 다 미는 사람들이에요. 워낙 은혜롭게 생활하는 다 믿는 사람들밖에 없어요. 인생 그렇게 살면 안 돼요. 좀 인간관계 넓히셔야 돼요. 안 믿는 사람들 좀 만나고, 옆집이 누구인지 알고, 미용실 가는 사람 식당에 식사 대접해 주는 사람, 차를 타면 버스 또 택시 운전사들, 우리의 모든 관심은 영혼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다들 상대적으로 사람그가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예수를 믿어야 될 사람인가? 을 바라보지만 주님이 우리를 바라보실 때는 딱 두 종류밖에 없어요. 우리 사랑의 교회에 매주 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도되어 와서 영혼 탄생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이런 복된 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전파하라. 때를 얻던지 못 어떤지, 너무나 감격스러운 사명이지만 이게 쉽지가 않은 일이죠. 오늘 바울이 5절 6절에 복음 선포자의 삶을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디모데후서 4:5-6,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내 죽음이 다가온 바울도 복음을 위해서 고난 끝에 순교의 제물로 떠나기 직전에 쓴 글이었습니다. 너는 고난을 받으라 이해가 되십니까 어느 사랑하는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너는 고난 인생이 되라고 어느 사랑하는 스승이 사랑하는 제자에게 너는 고난 인생이 되라고 말할 이런 스승의 세상에 누가 있겠어요.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 믿는다. 라는 것 고난이 선택이 아니라, 삶 자체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뭐라고 말하죠.

니가 나를 정말 따라오기를 원하느냐 니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을 걸어가라. 우리 모두가 그렇게 찬양하잖아요. 아골 골자 빈들에도, 내가 복을 들고 가겠노라 하고 십자가를 지우고 내가 줄을 따라 가겠노라. 고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오늘날 이 시대는 예수를 따라가지만 고난이 없는 것을 축복이라고 여기는 시대가 점점 되어 가고 있어요. 어떻게,,, 예수를 따라가는 사람이 예수의 십자가를 따라가는 사람이, 어떻게 권한이 없는 것이 축복이 되어 버렸나요? 사람들은 고난을 불행으로 연결을 시켜요. 여러분 고난은 불행이 아니에요. 그냥 불편할 뿐이에요. 바로 같은 지금 고난이 있습니까?

감옥 안에서 하는 말 기억납니까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하나님이 나를 감옥까지 보내시고 여기에서도 복음의 진보를 이루시고 불편할지라도 감격과 희열 속에 살아가는 게 전도자의 삶인 겁니다. 주님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받아본 마지막 고난이 언제인지, 한번 물어보세요. 우리 한국 교회는 이 고난의 순교의 피로 말미암 오늘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몇 년 전에 저희 교회 군산에서 한 목사님이 찾아오셨어요. 우리나라에 윌리엄 전킨이라는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전라도 지역에 가면 용명학교 또 개복교에 많은 학교 병원 또 학교를 교회를 세우신 분이세요. 그분이 한국 땅에 들어오셔서 이분이 언더드에 설교를 듣고 조선을 향한 마음을 품게 되었어요.

1892년도에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첫 아들 죽고 둘째, 아들 태어나자 죽고 셋째, 아이 태어나자 죽고 세 아들 다 한국에 묻었어요. 결국에 당신 또 한국에 들어온 지 15년 만에 43살의 젊은 나이로 한국 땅에 묻혔습니다. 그 아내가 네 아이, 세 아이와 함께 당신 때 한 아이는 뱃속에 유복자가 있었어요. 그 아이 중에 한 손자가 제가 있는 미국 수도 버지니아에 살고 있다는 거예요. 수소문을 해서 결국엔 만나게 되었습니다. 펠스턴 정킨 선교사님, 그 후에 부부예요. 여러분들을 보면서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들의 할아버지 때문에, 우리 한국 땅이 특히 전라도 지역의 땅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까지 한국 땅에서도 가장 보급률이 높은 땅이 되었습니다. 너무너무 감격스럽게 이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분뿐이겠습니까?

루비 캔즈르게라는 이름 기억나나요? 24살에 한국 땅에 들어와서 채 1년이 되지 못해서 요즘은 병도 아닌 맹장염에 걸려서 과로로 이 땅을 떠났다는 한 여인, 내게 천 개 심장을 생명을 주신다면 모두 한국에 바치겠다고 외쳤던 사람들 수많은 푸른 눈을 가진 병아닌, 젊은이들이 한국 땅에 들어와서 그들의 피를 흘렸고 생명을 바쳐서 이룬 복음이 오늘 한국교회 우리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런 고난이 사라진 시대를 맞이하고 있어요. 사랑 여러분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 언젠가 우리가 친구 얘기가 될 때, 피를 흘리고 계시는 거 주님 온몸에 피를 쏟으신 주님을 만나게 될 텐데, 우리가 땅 위에서 예수님의 좀 흉내라도 좀 내야 되지 않겠어요. 제가 충신대학원에서 10년 동안 교수 생활을 하고 이제 미국에서 수도에서 목회한 지가 13년이 되었습니다.

해마다 여름 흐르고 겨울이 되면 선교에서 다 번역을 했어요. 2010년도에는 중국의 선교지에 있다가 바로 미얀마로 갔다가 그리고 바로 아이티 지진 나는 곳을 갔어요. 미얀마가 요즘 한국 이렇게 더운데 얼마나 더운지 한 사흘 동안 땀을 비 오듯이 흘렸더니, 사람이 탈진하게 되면 기절을 해요. 다시 일어나서 봄을 지나고 미국에 들어가서 하룻밤 자고 그리고 아내와 함께 아이티로 들어갔습니다.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깔려 죽은 그 나라, 그 나라에서 다시 사역을 하다가 2번이나 쓰러지고, 또 링거를 2번이나 맞아가면서 그렇게 사역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어요. 초췌해진 제 모습을 보고 제자들이 그렇게 묻곤 합니다. 교수님, 그렇게 몸을 혹사하면서까지 복음을 전해야 됩니까? 자네는 그렇게 살다가 가길 원치 않는다면 어떻게 살다가 죽기를 원하는가? 우리가 무작정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 예수님 이 정도의 사랑을 받을 만한 분 아니십니까? 그분이 누구세요. 하늘의 하나님이 33살의 젊은이가 나를 위해서 내 죽어있는 심장을 살려내기 위해서, 당신의 심장을 떼어주시고 우리 심장은 그 분의 심장으로 뛰고 있는 거예요. 내 혈맥의 마지막 세포까지 주님의 피로 뛰고 있다면, 내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서 바친다 하더라도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특권인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예수님을 만났기에 바울 마지막까지 복음을 향해서 달려갔던 바울이에요. 그렇게 살아가게 만든 비결이 무엇일까요? 오늘 바울이 마지막 78절에 한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 4:7-8,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언젠가 나타나실 예수 그리스도, 언젠가 우리를 만나서 의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리고 바울 뿐만 아니라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예비하신 면류관, 우리 사는 성도님들 제가 여러분들은 눈을 보면서 한번 물어보고 싶어요. 정말 심장에 손을 놓고 한번 대답해 보세요.

우리 예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신 것처럼, 이 땅에 다시 오실 재림을 여러분 믿으십니까? 우리가 살아있는 날 동안에 주님이 오시지 않는다면 이 땅을 떠나는 순간 막연한 죽음이 아니라, 우리가 찬란한 주님 앞에 설 것을 여러분 정말 믿으십니까? 정말 그 예수를 믿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면 한 번 인생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요.

지난해 11월에 우리 목사님들과 함께 아까 SBC의 가장 큰 교단의 Imb 미국 선교 본부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100명이 넘는 많은 후보생들이 훈련받는 거 보고 너무너무 감격스러웠어요. 제 눈을 제 발을 도저히 옮기지 못하게 만든 한 벽의 이름들을 보았습니다. 클라우즈 어브 위트니스(Clouds of witnesses.), 구름 같은 증인들,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복음을 전하다가 현장에서 순교한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부르면서 읽어보았어요. 한국 목사님들도 두 분이 계세요. 러시아 벌목공에게 그때 당시 때 러시아 사람들을 숨기다가 북한 사람들에게 피살되었던 선교사님 부부였어요. 그리고 이름 하나가 눈에 꽂혀 왔습니다. 카렌 왓슨이라는 여인입니다. 미국에서 교사 생활하다가 38살에 이라크로 들어갔어요. 밑에 보면 네임이라고 나오는데 나라 이름을 이라크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행여나 사람들이 두려워서 들어오지 않을까? 봐 이분이 그곳에 가서 1년 채 되지 못해서 복음을 전하다가 피살되어 순교 당했어요. 선생님이 떠나기 전에 남긴 편지글이 있습니다. 손으로 쓴 편지글, 저 편지글의 몇 구절을 제가 읽어 드릴려고 합니다. 이 편지는 제가 죽은 이후에만 열어보십시오.


웬 갓 콜즈~(When God calls, there are no regrets).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 후에란 없습니다.
I wasn t called to a place; I was called to Him,

To obey was my objective, to suffer was expected, His glory my reward.
-저는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께 부름 받았습니다.
순종이 제 목표였고, 고난은 예상된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제 보상입니다

In regards to any service, keep it small and simple. Yes, simple - just preach the gospel.
장례 예배와 관련해서는 작고 간소하게 해주세요. 네 간소하게요, 오직 복음을 전해 주세요.
I was called not to comfort or success but to obedience,
저는 안락함이나 성공이 아니라 순종을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There is no Joy outside of knowing Jesus and serving Him.
I love you two, and my church family.
예수님을 아는 것과 그분을 섬기는 것 외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저는 목사님 두 분과 우리 교회 가족을 사랑합니다.
-In His Care, Salam, Karen Watson-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될까요? 우리 예수님 이 정도의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닙니까? 33살의 청년이 나를 위해서 피를 쏟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면, 단 한 번의 인생을 이대로 살다가 끝낼 수는 없어요. 바울이 예수님을 만났기에 찬란하게 인생을 불태웠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주님 앞에 쓰러질 날이 올 거예요. 우리 주님이 쓰러진 우리의 오른손을 붙들고 일으켜 세울 겁니다. 잘했다. 충성된 종아, 내가 전하고자 할 복음을 니가 대신 전해주었고 내가 받아야 될 권한을 니가 대신 받아주었구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화려한 것을 뒤로하고 끝까지 나를 향해 사명을 향해 달려와 주었구나 고맙다. 충성된 종아,



우리 주인의 눈에 감동의 눈물을 볼 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까지 위기를 뚫고 어둠을 뚫고 다시 한번 살아도 복음을 위해 다시 한번 죽어도 예수를 위해서 고결한 인생 들여다가 주님 앞에 쓰러지시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요약
단 한 번의 인생을 이대로 끝낼 순 없다. 33살의 젊은이의 피 앞에 한 날을 살아도 예수의 생명을 가진 사람답게,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품격을 가지고 복음을 위해, 예수를 위해 살아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역사의 어둠을 뚫고 우리 가슴속에 영혼을 향한 심장을 던져주시니, 잠들은 한국 교회를 깨우는 교회가 되기를 간구하며, 세계 열방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교회가 되기를 간절하게 소원하자.
-사도 바울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디모데에게 유언처럼 말씀을 전하며,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며,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엄숙히 명한다. 디모데에게 맡겨진 사명은 분명하게. “말씀을 전파하라.” 시대와 상황에 흔들리지 말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선포하며 교훈과 책망과 권면을 힘쓰라고 한다. 이는 단지 디모데에게만 주어진 명령이 아니라, 모든 신실한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시대는 점점 진리를 거부하며, 사람들이 자기 욕망을 따라 귀에 즐거운 말만을 찾아 다니는 때가 오고있다. 그러나 복음의 일꾼은 흔들리지 않고 진리 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변함없이 증거 해야 한다. 사람들의 반응보다 하나님의 명령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니, 바울은 고백하듯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싸움은 고된 것이지만, 믿음 안에서 싸울 때, 영광스러운 싸움이 된다. 그는 단지 생존한 것이 아니라, 사명에 충실했고 믿음을 끝까지 붙들었다. 그것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며, 다른 길은 없다. 이제 바울 앞에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듯이, 그것은 공의로우신 재판장이 주시는 상이다. 이 면류관은 단지 바울만의 것이 아니다.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며,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주어질 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어진 사명을 따라 묵묵히 걷는 길 위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 오늘 말씀은 믿음의 길은 다른 선택지가 없음을 선포하셨다. 진리의 길, 복음의 길, 그 길밖에는 없다고,,, 세상의 길은 넓고 편해 보이지만 끝은 멸망이며, 오직 십자가의 길만이 생명에 이르는 길이다. 단 한 번의 인생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각오로 바울처럼 끝까지 달려가는 신실함이야말로 우리 신앙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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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6월 29일)
설교제목: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을 살리시는 예수님”
(Jesus Who Revives the Crushed and Fading)-이사야 시리즈⑱
성경본문: 이사야 42:1-8
대표기도: 오정호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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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2:1-8,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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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리 모두를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는 천상의 예배에 불러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젊은 이들은이 예배를 통하여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쫓아 과일을 맺는 것처럼, 에버그린,,,이 상록수 신앙을 주시기를 바라고, 연세 드신 분들은 오늘이 말씀을 통하여 이 예배를 통하여 내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 그 청청한 신앙, 푸른 감람나무의 신앙의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 오늘 사회자가 말씀한 대로 제가 오늘은 18번째 이사야 강해, 어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몇 주일 동안 이사야 40장 그다음 41장 그리고 42장 계속이어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오늘이 말씀이 제가 어떻게 전하는 말씀보다는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살아 있는 음성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오늘 본문의 배경은 남유다 왕국의 국가의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고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말씀한 대로 상한 갈대 갖고 꺼져가는 심지 같은 그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도 중국도 또 미국도, 유럽도 국제 질서의 새로운 개편, 신세계 질서가 재편 중입니다. 어 중동은 지금 화역고가 되어 가지고 이스라엘의 유학 우리 한국 사람들이 철수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우리 순장님 한 분이 은혜게시판에 이런 거를 써 놓았어요. ‘마치 전 세계 지구가 산고(産苦)를 아이 낳는 산고를 겪는 것처럼, 세계 곳곳에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 같다’. 여러분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 정치가 해결할 수 있습니까? 정치가 해결하겠느냐고요? 어떤 특별한 정책이 해결하겠느냐고, 군사력이 해결하겠느냐고.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습니까? 오늘 본문에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내가 선택한 사람을 보라. 그랬습니다. 오늘이 말씀을 통하여 오늘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붙드시는 종이 뭔가? 오늘 1절에 다시 한번
 
*이사야 42:1,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여기 하나님의 종이라는 분을 만나게 되는 여호와의 종을 만나게 되는데 이 종은 첫째는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I.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가 기뻐하는 자를 보라.
-그게 그렇게 무리한 해석이 아니고, 바른 해석이고 또 예수 그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는 과거의 이스라엘이나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고, 좀 더 들어가면 신약 시대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구원받은 모든 주의 권속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해도 무리한 해석이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가운데서도 아주 귀중한 본문이고, 여호와의 종으로 묘사되는 예수님에 대한 예언인데 오늘 본문뿐만 아니라 앞으로 49장, 50장 그리고 그 유명한 52장, 53장에서 고난받는 메시아 고난받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오늘이 고난받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 수많은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이런 복잡한 모든 것들이 들 수많은 난제들이 풀어지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1절에 보면 먼저 뭐라냐 나오느냐? 우리 한글 성경에는
 
*이사야 42:1,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이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산을 보라. 우리 한글 성경은 이게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렇게 순서로 되어 있는데 ‘보라’라는 말이 영어 성경에는 ‘behold’, 보라, 이게 원문에도 그러고 먼저 나오고 있어요. 이 ‘보라’! 는 이 말은 그냥 적당한 것이 아니라 적당한 것이 아니라 어떤 중요한 정점이 되고 무게감을 갖고 말씀할 때 ‘보라’라는 말씀이 나오죠. 예를 들어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조는 분들 정신을 바짝 차리세요.
 
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보라는 무게감이 담겨 있다. 그랬어요. 오늘 저녁이 준비되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하고 ‘보라’ 저녁이 준비되었느니라. 다시요. ‘보라’ 저녁이 준비되었느니라. 큰 저녁에 대해서 그래 ‘보라’ 저녁이 준비됐다고 말하고 라면 나오겠습니까? 좋은 음식이 나오지 않겠어요?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을 통하여 ‘보라’ 말씀을 보라. 우선 1절에서 요절 같은 말씀인 1절에서 우리를 택하시되 우리를 하나님의 종으로 삼으시때 어떻게 하느냐? 1절에 다섯 가지가 나오는데 보세요. 1절에
 
*이사야 42:1,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여러분과 저희가 애를 써서 주님을 붙잡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신 줄로 확신합니다.그 붙잡힘 받아 가지고 오늘이 이 천상 예배 여러분 달려 나온 거 아닙니까? 두 번째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이 말이에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 보면 공생애를 시작할 때, 하늘의 문이 열리고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거예요. 이 기쁨이 하나님이 붙으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것이 예수님의 정체성이 된 것이에요. 아이덴티티,.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마음을 가지시고 평생 고난과 십자가의 길, 그 다.걸으셨지만,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다. 아니 내가 주님의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하나님의 종이다. 이 마음 때문에 웬만한 고난은 어 그걸 다. 이겨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이에요. 오늘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인도하시고 선택 하셔서 이 자리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부어 주셨다. 그랬어요. 아멘. 오늘 여러분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 받는 것입니다.
 
엘리야도 탈진했어요. 그리고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도 나중에 탈진하고 그랬어요. 근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탈진하지 않으셨어요. 왜 그랬는가? 하나님의 영으로 부음 받았기 때문에, 성령으로 부음 받았기 때문에, 성령의 기름 부음으로 부음 받을 때에 여호와의 종은 탈진하지 않는 것이에요. 그리고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았다. 기름 부음 받았다. 그랬을 때 그 내용을 아주 간략하게 표시한 내용이 뭐냐면
 
구약에서는 메시아라 그러고 메시아라 그러고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이시다. 왜 메시아와 그리스도란 말의 뜻은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았다. 구약에 보면 왕 직, 제사장 직, 선지자 직을 수행하려면 기름 부분 맞는 의식이 있어요. 그 기름 부음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이 임했다는 표시가 되는 것이에요.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은 그리스도 시요. 메시아기 때문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자에게는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는 줄 믿습니다. 하는 짓나요? 이게 오늘 택한 자요. 붙들은 거요. 그다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라는 말과 함께 우리에게 확 임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 가운데 사도 베드로가 이 말씀을 깨닫고 고넬료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사도행전 10장에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크게 보죠.
 
*사도행전 10:38,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할렐루야, 육신의 문제와 영적인 문제까지도 한꺼번에 그리스도로서, 메시아로서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이 말씀을 듣고 우리가 뭘 마음속에 확인하는 겁니까? 여러분과 저는 우리는 부속에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요.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름 붙게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메시아로 믿는 그 상황 가운데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그리스도로 고백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수많은 연약함과 꺼져가는 것들을 처리해 주신다는 것이에요.
 
그걸 여러분 믿을 때 무슨 마음에 확정이 들냐면 내가 누구인가? Who am I?, 나는 누구인가? 내 정체성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여러분이 가졌던 경력, 여러분의 학식, 여러분들의 지식, 여러분들의 어떤 이력, 여러분들의 배경 이것이 여러분들의 존재 자체가 아니고, 세상에선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여러분들이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이 여러분의 정체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뭐라고 하시는가?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는가? ‘Who am I’가 아니라 ‘Who does God say that I am’. 내가 하나님이 나를 뭐라고 하시는가? 성경적인 접근 방식은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누구라 하시는가? 이 정체성을 확실히 할 때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이에요. 여러분의 학력, 여러분의 경력, 여러분의 육신, 여러분의 정치 성향 이런 데서 정치 정체성을 찾지 말고이 새 질서의 국제 질서의 개편의 시대에 겉으로 드러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부르시는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영을 부어 주시는가? 그것으로 여러분의 정체성이 확인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6절에 놀라운 선포를 하시는 거예요. 여호와의 종에게 6절에,
 
*이사야 42:6,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놀라운 말씀이에요. 그리고 너는 앞으로 너는 눈먼 자들의 7절에,
 
*이사야 42:7,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여러분 이게 참 지금 다. 설명을 제가 시간 다. 못 합니다만은, 이 내용들이 뭘 포함하고 있냐면 1절 뒤에 보면 이제 영어로 하다. 가지고 여러분 보세요. 눈먼 자들이 밝아지고 감옥에서 갇힌 자들이 해방되는 이 모든 것들이 뭐라고 표현되는 가면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의 뭐예요? 정의를 베풀리라. 6절, 7절 얘기한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늘이 시간 여러분들과 제가 생각할 부분이 뭐냐면 정의를 베풀리라. 이 정의란 말이 1절에서도 정의를 베풀리라. 3절에서도 정의로 시행할 것이다. 40, 42장 4절에도 계속해서 세상의 정의를 세우시겠다.
 
그러면 정의가 무엇인가? 이 이 정의는이 정의는 세상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윤리적 정의 혹 정의, 이 정도가 아니에요. 이 정의는 ‘미시파트’ 라는 이 히브리어는 뭐냐면 우주적 정의, 참된 진리를 통한 정의.. 여러분과 제가 생각하는 수준의 공정함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전체의 정의, 이 이 정의는 기름 부음 받은 종, 예수님을 통해 온 인류가 새롭게 되는 것이에요. 정의라는 것이에요. 여기서 정의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어그러졌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에요. 소위 창조 질서를 통하여 올바른 정의가 회복되는 것이에요. 우리의 죄를 위하여 고난받으신 예수님이 정의이고 복음이 정의이고, 복음이 정의란 말이 최고의 정의는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이 만난 십자가가 가장 강력한 정의라는 것이에요. 십자가=정의
 
오늘이 십자가의 은혜가 여러분과 저의 마음 속에 갇혀 져 있기 우리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것이 성령의 영으로 말미암아 깨달아졌기 때문에, 여러분 최고의 정의는 다시요.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만났는데 그 십자가에서 만난 그것이 바로 복음이다. 그 말이야. 이 복음이 최고의 정의인 줄 믿으셔야 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법이 뭐냐?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마태복음 24:12-14,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불법이 뭐냐 여러분? 불법이 성 불법이 불의예요. 정의의 반대말이에요.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다음 보세요. 참된 정의는 뭐냐? 참된 정의는 불법이 하나님의 잘못 십자가의 은혜가 없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천국 복음이 제가 말씀대로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이 만난이 십자가의 복음의 은혜가 펼쳐진 그 장소가 정의가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정의의 실천 방법은 참 독특해요. 2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느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사야 42:2,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않는다. 아주 독특한 온유한 방법이에요. 3절에 뭐라고 하냐면 이렇게 나와 있어. 3절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같이 3절을 시작.
 
*이사야 42:3,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진짜 정의가 뭐냐? 그는 온유하시고 이절에 있는 것처럼 다시 한번 외치지 아니하고 목소리를 높이 나니고 소리를 거리에 들리잖아. 막 뭐 데모하고 막 이게 아니라, 하나님은 상한 갈 때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간 심지를 끄지 아니 하시는,데 그게 진실로 정의를 시행하시는 것인데 온유한 방법을 하시는 거예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온유한 방식으로,,, 그렇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죠. 이것은 세상 제국의 어떤 왕들과는 다른 방식이에요. 그 온유한 모습 속에 강력한 사자의 포효(咆哮)가 들어 있어요. 그 예수님을 통하여 뭐라? 온유(溫柔)하신 분이지만 그 속에 유다의 사자이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부드럽게 말씀하시지만 그
 
말씀은 강력한 포효요,. 날카로운 화살 같아서 사람들의 마음에 팍팍 꽂히는 것이에요. 부드럽고 조용하게 말씀하시지만, 그 말씀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변화와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오죽하면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가지고, 처음 제가 시작할 때 말씀을 드린 것처럼 이 말씀이 제가 어떻게 전하는 말씀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지기를 바랍니다. 그랬어요. 아멘.이 말씀이 우리의 모든 환부를 처리하고 또 모든 약한 부분들을 찔러 쪼개고 그리고이 말씀에 팍팍 여러분들에게 와닿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랑한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이 정의의 방식은 세상 사람들의 정의의 방식이 아니라,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 이런 얘기했어요. 뭐 공정한 선택을 해야 되고 뭐 자유 뭐이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제가 그 책을 다. 읽었는데, 제가 문해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다. 읽어 보니까?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어. 아 말을 좀 제대로 해야 되는데. 왜냐하면 진짜 정의가 없기 때문에 복음적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니까? 오늘 여러분들은 진짜 정의 특별히 젊은이들은 진짜 정의를 확보하고 가시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죽을 때까지 여러분들은 복음적 삶의 현장을 경험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러면 아까? 말씀하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그다음에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이것이 정의의 실행인데 주님은 주님의 종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 등불을 끄지 않으시며 살리시는 분이신데, 이게 정의의 현장인데, 이게 무슨 뜻인가?
 
II. 주님의 종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고 살리시는 분이다.
 
-말해도 무리가 아닙니다. 여기서 여러분 상한 갈대를 먼저 꺾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갈대를 묵상해 보세요. 갈대는 길게 자라지만 연약하고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입니다. 갈대의 순정, 이렇게 해가지. 그리고 말과 소에 짓밟히고, 수레바퀴에 짓이겨지는 거예요. 강한 참나무 같은 나무가 아니에요. 연약한 풀이에요. 갈대 자체도 약 연약하지만, 오늘 보니까? 상한 갈대다. 무슨 뜻입니까? 상처 입은 갈대이다. 병든 갈대이다. 손상된 갈대에요..이 상처받은 갈대는 분명히 오늘날에는 상처받고 영혼의 고통을 겪고 시험과 고난을 겪고 있는 분들이 다. 포함된다고 해도 제대로 된 해석이에요. 연약하고 부서진 사람들, 죽음 직전의 사람들, 포기 직전의 사람들이 다. 포함됩니다. 혹은 극렬한 시험을 통과하는 사람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상한가 갈대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종 기름 부음 받은 종 메시아는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신다. 할렐루야. 아멘. 그분은 상처 입고 마음이 무너진 연약한 죄인을 다시 싸매시고 회복시키는 능력을 가지셨어요. 그것도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또 하나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 이거 무슨 뜻입니까? 이 은유는 거의 타버린 앙상하게 재만 남아 있는 아주 값싼 진흙 등잔에서 마지막 남은 가느다란 불빛을 내고 있는 심지를 얘기하고 있어요. 그러면 등불 자체가 진흙 등장 그게 그 뜻이 아니에요. 거기가 마지막 가느다란 심지죠. 사람은요. 꺼져가는 등불처럼 어려운 상태 상처받은 갈대처럼 참 힘든 상태라 할지라도 아무리 어려워도 마지막 남은 심지의 불이라도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마지막 남은 연기 채점이 되기 전에 마지막 남은 그 불빛에 그 조금이 남아 있는 그것이라도 있어야 인생은 사는 것이에요. 여러분, 죽을 만한 환경처럼 어려워도 그 마지막 남은 심지의 등대가 꺼지지 않아야 인생은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근데 우리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인생은 마지막 남은 믿음과 사명의 비전에 불씨라도 남겨야 되는데, 예수님은 단지 불씨와 희미한 불빛이 남았을 때조차도 다시 한번 하나님을 향한 그 불길로 회복시키는 주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어떻게 그 불길을 살리시는지 잘 아시는 분이다. 꺼져가는 심지를 돋우시려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빛을 발하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상황 갈대라는 말은 다시요. 상처가 많다. 등불이 꺼져간다는 말은 실망과 절망 속에 살아간다는 이런 사람들에게, 주님은 처방하시는데 꺾지 않으시고, 끄지 않으시는 것으로 처방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있는 겁니다.
 
제가 이걸 이제 묵상하면서 성경 이런 얘가 어떨 것인가, 뭐 많이 있지만 12회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있었어요. 이 여인은 너무나 몸에 힘든 거 있어 갖고 부정 탄다고 가족들로부터도 외면당하고 거기 보면 성경에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인생의 소망이 다. 끊어지는 상황이었어요. 근데 가느다란 마지막 그 희망의 불빛 하나가 조금 남아 있었어요. 메시아에 옷자락이라도 만질 수 있다면, 그래서 주님의 그 주님 앞에 나오는데 주님이 그 꺼져가는 등불이 여인을 향하여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딸아, 주님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사랑하는 딸아, 사랑하는 아들들아, 그게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주님의 음성인 줄로 확신합니다. 나인성의 과부가 있었는데 이 나인성의 과부는 자기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이 있었는데 아들이 죽어 버렸어요. 처참하게 어떤 희망도 딱 끊어 버리고 있는데 주님이 주님 오셔서 그 과부를 향하여 울지 말라. 나 울지 말라. 그 상처받을 주님은 울지 말라. 오늘 주님께서는 21세기 오늘이 혼란스러운 현장 가운데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딸들아, 아들들아, 이 예배에 참석한 상처받은 분들아 울지 말라. 어떤 상황에서도 울지 말라. 그 음성을 듣고 여러분들의 삶에이 생명의 복음을 적용하면 이것이 여러분의 삶의 정의가 실천되는 것이에요.
 
우리를 딸아, 아들아 울지 말라면서 붙잡고 계시는 거예요. 우리 가운데 마음속에 소망의 불 사명의 심지가 죽어가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꺼지기 직전에 깜빡 깜빡거리는 등불과 같은 분이 많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붙드시는 하나님의 종 메시아는 연약하고 상처받은 죄인들을 놀랍고도 초자연 적이고 지혜롭고 탐복할 정도의 온유한 능력으로 우리를 다루시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내 나이 이렇게 많이 돼 갖고 이제 내가 뭐 하나? 연세든 사람들아, 주님 말씀하시면서 여러분들의 생에 남은 인생에 수많은 기도의 제목들 앞에 놓고, 하나님 나라 전체를 위한 기도의 제목을 앞에 놓고 복음의 편만함과 세계 선교의 마무리와 하나님의 능력이 천국 가 곳곳이 하나님의 생명의 복음이 세계 곳곳마다 편만하게 펼쳐져야 되리라 그 제목들을 수많이 앞에 놓고 여러분 나이가 들고 몸이 아파도 그 기도 제목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할 때에, 꺼져가는 등불과 상한 갈 대가 그 지역마다. 살아날 때 여러분들은 정의를 실천하게 되는 것이에요.
 
10월 27일 WEA의 세계 총회가 이런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받아 누리기를 바라는 현장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럴 때 4절에,
 
*이사야 42:4,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이 말씀을 주목하셔야 돼요. 이거는 참된 정의에 큰 경험이 된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큰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에요. 오늘 영적으로 신실한 주의 종들, 또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지만 그러나 우리 앞에 큰 철벽을 만나는 것처럼 그런 일이 있을 때, 온갖 악함과 온갖 문제가 가득한 이 상황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
 
우리 예수님은 겉으로 보기에는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모습으로 나타나셨지만, 결국 주님께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주님의 정의를 주님의 구원 역사를 반드시 이루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신약의 마태는 이 영광스러운 참된 정의 실천을 깨닫고, 마태복음 12장에서 마태는 성령의 감동이야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랬을 때, 복음서에 마태복음 12장 20절에 마태가 뭐라고 얘기하는가? 다함께
 
*마태복음 12:20,
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여러분 죽는 그날까지 오늘이 진리의 말씀이 마태가 깨달은 이 진리가 여러분들에게도 그대로 깨달아지기를 바라는 겁니다. 이사야의 말씀을 그대로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한 그대로 이 내용을 그대로 마태는 다시 한번 확인하고 고백하고 자기 것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자,이 말씀 이루어질까?이 말씀 될까? 여러분 의문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오늘 마음속에 이 천상의 예배,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예배, 우리가 사모하며 달려놓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으로 무슨 마음을 주셔야 되냐면이 말씀은 내 생에서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 말씀은 내 생에서 반드시 확정될 것이다. 이건 저의 말씀이 아니라 앞에 이사야 14장 20절에 뭐라고 말씀하는가? 크게 우리 합독하겠습니다.
 
*이사야 14:20,
20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할렐루야.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격려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과거의 역사를 증언하실뿐만 아니라 오늘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미래의 개인의 역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이것을 우리가 체험을 해야 되는데이 지리를 체험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어떤 시금석(試金石)이 있어요. 어떤 테스트 용지가 있어요. 어떤 체킹 포인트가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는가? 우리 다. 믿는다고 대답하겠죠. 근데 이걸 어떻게 체험한다는 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이 진리를 체험하고 있는지를 체크하는 포인트가 뭐냐? 여러분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가족과 여러분들의 자녀들도 이 말씀이 그대로 믿어지는가?
 
자녀들을 향하여 너희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 내용이 이루어질 것이다. 말씀을 통하여 반드시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다.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고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데 하나님의 정의가 있는데 너희들이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확인하는 순간 하나님은이 말씀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너희들 믿어야 된다. 그게 아빠의 아버지의 어떤 강력한 공고 정도가 아니라, 자녀들의 마음속에 이것이 그대로 믿고 심어져야 되는데 어떻게 되나? 제가 성경에 나오는 구절들 가운데 정말 제가 마음에 와닿고 또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요. 이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이루어지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느니라. 창세기 21장에 보면 안 이루어질 일이에요. 그런데 보세요. 21장 1절에 같이 보죠.
 
*창세기 21징 1,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아브라함의 백세요. 사라가 90세인데 어떻게 되겠냐? 다. 내 인생 끝이다.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실 것이다. 아멘. 말씀하신 대로, 이 말씀하신 대로가 너무 소중하다는 것이에요. 민수기 14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해 가지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처리하려고 그랬어요.
 
*민수기 14:17,
17 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하나님도 말씀하신 대로, 하는 그게 약하신 거예요. 말씀하신 대로. 저는 지금 대한민국의 이런 상황 혼란 것 혼란한 것도 있지만 우리가 받은 축복도 많이 있어요. 우리 K방산, 전 세계 지금 큰 역할 하고 있고 더더구나 K 조선 지금 조선 세계 1등 아닙니까? 지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한편은 혼란스러운 거 있지만 어떻게 이런 대한민국을 이 컬처, 이 대단한게 어떻게 될 수가 있었을 것인가? 그럼 그냥 된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이에요. 아멘. 1980년도에 대한민국 때 막 대한민국 전체가 국란으로 아주 몸 몸살을 했습니다. 1980년도 8월 달에 민족 복음화 대성회를 여는데 여의도에 100만 명이 모였습니다. 밤에 비가 오는데도 사람들이 수십만 명이 가지 아니하고 밤에 철야 기도를 했어요. 놀랍니다. 그럴 때 안이숙 사모님이, 죽으면 죽으리라 안이숙 사모님 강단에 올라오셔 가지고 설교를 하시는데 신명기 26장 말씀 저는 그거 잊을 수 없어요. 18절 19절에 있는 말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18절 19절 하나님 말씀 기억하며 크게 우리 합독 하겠습니다.
 
*신명기 26:18-19,
18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셨느니라.
19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너를 너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BTS, K컬쳐, 방산, 조선, IT, 이런 모든 것들이 지금 경정한 것이 어떻게 되? 우리가 잘해서 한 것이 아니라 45년 전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가 말씀하신 대로, 내 백성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겠다. 이 이 말씀은 그대로 믿고 저는 그때 20대 중반이었는데 저는 내가 뭐 내가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어떤 가족으로 이룰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나, 아무것도 제 계획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명을 받고 나는 사명받아 자가 돼야지 나는 축복의 인원이 돼야지, 나는 내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인 십자가와 공의와 사랑이 만난이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돼야지, 그거 하나 붙잡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런데 하나 말씀하신 대로 말씀하신 대로이 민족을 세계 모든 민족에 뛰어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10월 27일 날 세계복음주의연맹 총회가 여기에 열릴 것입니다. 그 자리가 세계 모든 민족에 뛰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세계 모든 민족을 위하여 축복의 근원이 되고 세계 선교를 마무리하는 하나님의 비전과 사명을 이루는 축복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살다. 보면 수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제가 아끼는 우리 장로님 한 분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며칠 내가 가슴이 아팠고 또 우리 전도사님 남편은 60세에 또 돌아가셨어요.. 그러나 주님 상한 갈대를 끄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고, 꺾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습니다. 그래서 천국 안성 절차가 은혜가 되었고, 오늘도 우리가 감사하면서 주님 앞에 예배를 드렸어요.
 
여러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집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부부 사이가 어려울 수도 있고, 부부자 자녀와 사이에도 힘든 거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부모가 믿읍시다. 우리 집안에 상한 갈대를 주님이 꺾지 않으실 것이다. 아멘. 우리 집안에 꺼져가는 등불의 상황을 주님이 해결해 주실 것이다. 이걸 믿는 게 믿음이에요.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리라. 그걸 믿으면서 수많은 남자들을 극복하는 신실한 남녀 종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축복합니다. 가슴에 손을 얹겠습니다. 오늘 보라 그랬습니다. 다시 한번 5절에,
 
*이사야 42:5,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리고 오늘 8절에
 
*이사야 42:8,
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오늘이 말씀을 우리가 그대로 믿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자요. 하나님을 찬양하며 남은 생에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요약
하나님께서 상한 갈대와 같이 연약한 우리를 오늘 말씀대로 사자 같은 복음의 포효로 살려 주시니 감사하며, 최고의 정의는 심판과 사랑이 십자가에서 만난 복음인 줄로 믿어야 한다. 시험과 고난 앞에서 부서진 갈대가 되어 인생의 응급실에서 그냥 넘어져 있지만 말고, 딸아! 아들아! 울지 말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깊게 들어서, 다시 한번 우리 속에 사명의 불씨가 활활 회복되어, 주변에 꺼져가는 등불 같은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심정과 사명이 불 붙을 때 마른 뼈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날 줄 확신한다.
-불의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온유하면서도 사자 같은 포효로 우주적 복음을 선포할 때, 모든 사회 영역마다 진정한 정의'가 실현되고, 주님께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딸아 아들아, 울지 말라!" 위로해 주시니, 우리는 낙담 속에 꺼져가던 사명의 빛과 소망의 심지'가 다시 활활 타오르기를 간절하게 간구하며, 사랑의 교회가 '말씀하신 대로'의 강력한 믿음에 붙들림 받을 때, 세계복음주의연맹 서울총회를 통해 '세계교회 부흥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쓰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종, 즉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깊이 있는 예언이다. 하나님은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이라 부르시며, 이 종이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과 기쁨의 대상임을 밝히신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성령을 받아, 이방 나라들에까지 공의와 정의를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되고, 그는 세상의 권력자처럼 요란하게 외치거나 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거리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사역은 조용하고 겸손하지만, 놀랍도록 깊고 강력하다. 그는 상처 입은 영혼을 꺾지 않고, 희망이 거의 사라진 이들을 끝까지 품고 살려내신다. 꺼져가는 등불과 같은 인생도 포기하지 않고 돌보며, 진실하고 온전하게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어가신다. 결코 지치지 않고, 낙심하지 않으며, 온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세우기까지 흔들림 없이 나아가며, 그를 기다리는 섬들, 즉 세상의 모든 민족이 그의 교훈을 소망하게 될 것이다.
 
이 종을 부르신 분이 누구인지 분명히 밝히며,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다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이 종을 의로 부르셨고, 그의 손을 붙잡아 보호하시며, 그를 통해 백성과 언약을 맺고 이방의 빛이 되게 하시며, 이 종은 단순한 인간 지도자가 아니라, 영적 눈먼 자들의 눈을 뜨게 하고, 억눌린 자들을 감옥과 흑암에서 자유롭게 하는 구원의 사명을 가진 분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이 ‘여호와’임을 밝히며, 자신의 영광과 찬송을 우상에게는 절대 넘기지 않겠다고 엄중히 말씀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구원의 역사와 영광의 중심에 오직 그분의 뜻과 계획이 있음을 선언하시는 것이다.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 하는 말씀으로, 그분의 온유함, 공의로움, 구속 사역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를 미리 보여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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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6월 22일)
제목: “벌레 같은 야곱아, 두려워 말라(Fear Not, You Worm Jacob)"
-<새로운 길> 이사야 시리즈 ⑰
본문말씀: 이사야 41:8~1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2부
대표기도: 김희재 장로님(2부)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2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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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1:8~16,
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14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15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16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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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이사야 강해, 17번째이자 ‘벌레 같은 야곱아, 두려워 말라’라는 제목으로 오늘 복음적평화 통일 주일에 대한 메시지도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제목을 받을 때 여러분 어떠셨어요? 벌레 같은 야곱아, 오벌레, 박벌레, 김벌레 뭐 별로 좀 별로 좀 이렇게 썩 좋은 느낌은 아니죠. 에, 요즘 AI 인공지능 시대, 인간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거 같은 이런 시대에, 우리가 무슨 벌레인가, 이럴 수도 있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이게 참 그 익숙했어요. 왜냐면 찬송가 가운데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신 주’,. 그다음 뭐가 나와요?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다’. ‘이 벌레 같은 내가 얼마나 이게 진지하게 느껴지냐에 따라서 늘 의로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하나님에 대한 이 감사와 감격이 막 치밀어 오르는 거예요.
 
근데에 사실 이게 어디서는 14절에 오늘 본문의 14절에,
 
*이사야 41:14,
14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그랬어요. 그래 제가 이걸 좀 순화시켰어요. 버러지는 너무 좀 센 거 같고 벌레로 순화시켰는데, 지난 개역 판에서는 더 센 표현으로 나왔어요. 뭐냐면 지렁이 같은 너희 야곱아, 여기 지렁이가 덕실 덕실합니다. 지금. 참 말도 안 되는 거 같은데, 그런데 사실 첫 번째 생각할 것은 벌레 같은 우리 인생이에요.
 
I. 벌레 같은 인생
 
-우리가 얼마나 이거 우리 내면을 얘기하는 것이고, 우리의 나약함을 얘기하는 것이고, 우리 인생이 얼마나 약한지 뭐 말 안 해도 여러분들 다. 아십니다. 큰 소리 쳐도 30초 뒤의 일을 우리가 모르는 인생입니다. 그거 알면 누가 교통사고 일어나겠습니까? 뭐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감기 바이러스는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또 재발하면 어떻게 하나, 다 걱정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의지가 약해 가지고 여기 작심 3일 아닌 분 손 들어 보세요. 좀 의지가 좀 강한 분들은 작심 30일, 예 작심 1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물학적으로는 맹수보다. 더 약한 존재이고, 정서적으로는 늘 아침 저녁으로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고, 존재론적으로 마음 적이라면 좀 말이 어렵지만 죽음과 또 좌절과 우리의 여러 가지 허무, 이런 것들을 해결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이렇게 이 유한한 인생 앞에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려 있습니다.이 인생의 연약함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41장인데 42장에 보면,
 
*이사야 42:3,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우리 인생을 상한 갈 때다. 혹은 꺼져가는 등불이다. 그래 표현하고 있어요. 여러분 갈 때도 약하지만 상한 갈 때는 더 약하죠. 예. 등불, 등불도 등불 약한데 꺼져가는 등불 심지가 얼마나 약하겠어요? 인생이 어떠냐 그랬을 때, 예수님께서도 이사야 이 말씀을 그대로 받으셔 가지고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인생은 상한 갈 때요. 꺼져가는 등불이다. 그렇게 주님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런 인생으로 나타나는 증상 중에 대표적인 것이 뭐냐면 두려움이다. 다시요. 나약함 때문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이 뭐라고요? 두려움, 두려움이다. 그래서 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우리 이 피조물인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이죠. 특별히 불확실한 미래, 앞날에 대한 공포가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 적으로나, 질병이나, 죽음이나 혹은 사고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두려움에 압도당할 때에 슬픔의 바다. 속에 빠져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실망과 좌절의 홍수 속에 휩쓸려가고 우울증에 빠지는 것이에요. 이 두려움이이 두려움을 잘못 관리를 할 때에 이 두려움은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또 가정을 붕괴시키고 그리고 사회를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다윗왕은 그가 하나님을 진실히 섬겼지만 다윗도 이런 고백을 합니다. 시편 55편에 보면 뭐라고 말씀하느냐?
 
 
*시편 55:4-5,
4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5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그래서 다윗은 오하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닌다. 하는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이에요. 그럴 때에 이 두려움이 있을 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거기에 대해서 오늘 그 우리가 잘하는 10절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늘 직격탄을 쏘시는 것이에요. 그냥 복잡한 것 다. 두고 두려워 말라.
 
*이사야 41:10,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런 말씀하시는 거예요. 네가 내 내면에 어떻든, 네가 생물학적으로 정서적으로 존재론적으로 네가 어떻든 상관이 없이 주님이 오늘 두려워 말라.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두려워 말라. 그리고 사람들이 왜 두려워하는가? 두려움에 대한 이유 중에 하나가 뭐냐면 미래가 어떻게 될까? 그런데 그 미래에 대해서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말씀해 주시면서 미래를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거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은 버러지 같은, 벌레 같은, 지렁이 같은 야곱을 위하여 하나님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시는가? 오늘 1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사야 41:1-2,
1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오라.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세상을 소환하는 것이에요. 열국에 대한 소환장을 내시고 가까이 있는 역사를 보라. 그러면서 2절에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중요합니다.
 
2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깨워서 공의로 그를 불러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냐 누가 열국을 그의 앞에 넘겨주며 그가 왕들을 다스리게 하되 그들의 칼에 그의 칼에 티끌 같게 하겠고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
-무슨 말이냐면 성경은 항상 앞뒤를 가지고 해석을 해야 되고 구원사 전체를 가지고 해석해야 되는데이 동방에서 사람을 읽게 온다는 말이 어디 나오냐? 바로 이어서 이사야 44장 보니까? 뭐라고 나오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44:28,
28 고레스에 대하여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이렇게 나왔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 동방에서 사람을 일깨우신다고 그랬는데, 그 동방에서 사람 일는 그 사람이 누구냐? 오늘 본문에서 볼 때는 이 사람이 고레스 왕이다. 이거 누구라고요? 이게 신학적으로 문제가 없는 해석이에요. 이 고레스 왕은 어떤 왕인가 하면 뒤에도 또 나옵니다. 고레스에 대해서 하나님 직접 말씀하시는데
 
오늘이 이사야는 이 예언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바벨론의 포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서 그거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70년 뒤에 바벨론 포로로부터 해방 받게 해 주실 것이다. 이제 그걸 이제 예언을 하시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오늘 이사야가 예언한 이 시점에서 앞으로 160년쯤 뒤에 일어날 일을 지금 예언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고레스가 뭘 하느냐, 여러분 고레스는 바벨론 제국을 다. 무너뜨린 왕 이에요. 바벨론 제국은 느브갓네살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간 그런 포악한 왕이었죠. 그 바벨론 제국을 페르시아가 이렇게 다. 이렇게 무너뜨리는데 그 페르시아의 대표가 고레스왕이었어요. 근데 그 고레스왕이 어떻게 이 일을 이루는가? 어느 날 여러분 그 이제 해석상 쭉 보면 그때 다니엘과 새
 
친구가 있었을 것이고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옛 예언서 있는데 160년 전에 이사야라는 왕족이 예언을 하는데, 동방에서 한 사람 뒤에 이제 고레스라고 아예 많이 나와요. 고레스라고, 그 고레스가 이스라엘 백성 고레스에 대한 예언을 하니까? 고레스가 깜짝 놀란 거예요. 그래서 이 말씀을 고레스가 그대로 듣고, 이 말씀을 깨닫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면서 너희들은 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재건하라 명령도 하시고 심지어 건축비의 재정까지도 지원해 주었다. 오늘이 말씀을 앞에 놓고 이 말씀이 우리 대한민국에도, 여러분들에게도, 우리 교회에도 이것이 적용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아멘. 대한민국의 미래도 남북의 문제도 앞으로 세계복음평화통일총회도 오늘 하나님께서 오늘이 말씀을 통하여 그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간의 내면의 두려움을 가지고 그 연약함 때문에 두려움을 고민하는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너희들이 이 미래를 인도하시고 역사의 미래를 주관하시고 뭐 역사에 대해서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역사학자도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미래를 계획하시고 설계하시고 미래를 그대로 이루어 가시는 분이 있어요. 그걸 우리가 어떻게 믿느냐? 그걸 전적으로 의탁하게 하는 것이 역사에 대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시각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 먼저 우리가 연약한 존재이고 연약한 존재와 갖는 두려움이 있고 그 두려움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라면 그 미래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끌어 가실 것이다. 그런 우리 배경을 가지고 두려움에 짓눌려 있는 미래를 열어가는 그 비결이 뭐냐? 아직 직격탄을 쏘시는데, 그것이 10절이다. 이 말이야. 오늘 보면 10절이 요절인데 주보 앞에도 다. 써 놓았죠? 이 10절이 아주 아주 중요한 뜻이 내포되었습니다. 이 10절은 사랑의 교회 교우들은 우리가 이걸 암송을 통하여 거의 대부분 다. 암송하고 있는 내용들이에요. 그런데 이 암송을 하지만 이것이 내 것으로 삼아지고 내 것으로 체화되고 내 것으로 고백 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인것이에요. 두려워 말라 그랬어요.
 
*이사야 41:10,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내가)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내가)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런데 우리가 두려워하잖아요. 미래에 대한 계획, 이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을 많이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주님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두려워 말라. 그다음 뭐예요?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뭐예요? 나는 내 하나님이 됨이라. 그다음 뭐예요?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그다음에 참으로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그다음에 참으로 내가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랬어요. 여기 보니까? ‘내가’ 라는 말이 성경에 히브리어는 강조 반복해서 반복하는 단어를 통하여 강조하는데 ‘내가’ 라는 이 주어가 다섯 번이나 들어 있어요. 우리 성경에는 세 번 나와 있지만, 사실은 내가, 내가 두 번이 빠졌어요. 다섯 번이나 강조하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두려워하지 말게 말라는 근거를 말씀하시는데, 여러분 너희들 내가 너희들과 함께 함이라 내가 너희들과 함께 하나님이 됨이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이 자리에 우리가 이 말씀을 다. 함께 공동체로 듣지만 사실은이 말씀 하나하나가 복수가 아니라 실귤러, 단수로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맞춤형 메시지인 것을 믿으셔야 되시는 것이에요. 두려워하지 말라. 오늘 박벌레들아, 오벌레야, 이런 우리 벌리 같은 버러지 같은 우리 인생 내면에 연약하고 앞날를 알지 못해 가지고 고민하고, 우울증에 빠져 있고, 생태적으로 우리 환경적으로, 정서적으로, 적으로 존재론적으로 힘들다. 하더라도 오늘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여 주님께서 다섯 번이나 강조하셔서 두려워하지 말라. 아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강력하게 육박 접근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밀착하시고 근접해 주시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어가 되셔 가지고 개인적으로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 그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이걸 사도 바울이 이 은혜를 깨닫고 로마서 11장에 보니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로마서 11:1,
1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연약한 백성들 그리고 시험드는 백성들 속물 같은 백성들을 하나님이 버리시느냐? 너 그럴 수 없느니라. 그랬어요. 왜 그럴 수 없는가?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구원해 주 친 백성들을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그랜드 디자인이 있는데, 왜 하나님은 버러지 같은 야곱을 끝까지 붙으셨을까요? 바로 43장 1절에 바로 다음에 같이 읽겠습니다.
 
*이사야 43:1,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너는 내 것이라.
-우리 찬송도 이런 찬송이죠.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구소 너는 내 것이라 그랬는데 하나님이 왜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랬을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데, 특별히 야곱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것인데 야곱을 구속하셨고, 구속이라는 말은 뭐 이렇게 감옥에 넣는다. 그 뜻이 아니라, 아니고 값을 주고 사(赦)해 주신다. 그 말이에요. 영어로 말하면, 리뎀션(Redemption-구원), 그 전에 우리 조선 시대 같은 경우는 노비들이 있잖아요. 노비들을 면천(免賤), 노비 노비를 면천시켜 준다. 하나님이 야곱을 구속하신 것처럼, 면천시킨 것처럼, 오늘이 자리에 계시는 저와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보혈 복음을 통하여 면천시켜 주신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리고 이 하나님은 면천시켜 주실뿐만 아니라, 야곱의 그 그렇게 막 악착 같이 하고 싶었던 장자 권을 회복시켜 주시고, 특별히 야곱을 야곱을 만나 주시는데 야곱의 벧에의 사건, 뭐 얍복 강의 사건, 나중에 야곱이 저 수레를 타고 애굽에 가는 모든 과정들을 통하여, 야곱이 엉터리로 사는 것도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야곱을 추적하시고, 야곱을 붙잡아 주시고, 특별히 얍복강 가에서 에서 야곱의 이름을 뭐를 바꿔 주셨어요? ‘이스라엘’(야곱→이스라엘)의 이름을 바꿔 주셨어요. 그러니까? 인격이나 도덕성이나 헌신도나 이런 걸 보면, 그 이삭을 이스라엘을 바꿔 줘야 되고, 아브라함을 이삭 이스라엘로 바꿔 줘야 되고, 또 무슨 뭐 모세를 이스라엘로 바꿔 줘야 되는데, 이 속물 같은 이 야곱을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바꿔 주시고,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한 줄로 압니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쉽게 말하면 야곱, 버릇 같은 야곱, 벌레 같은 야곱을 이스라엘로 삼아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다는 것이에요. 아멘.
 
자, 오늘 그러니까? 비하고 연약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끝까지 붙잡아 주시고, 창세기가 50장까지 있는데, 창세기에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가, 성령의 감동으로 창세기 반 이상을 남들이 볼 때는 이삭보다도 못하고 아브라함보다도 못하고, 모세보다도 못하고, 수많은 하나님의 신실함 못한 이 야곱을 버러지 같은 야곱을 벌레 같은 야곱을 지렁이 같은 야곱을 창세기의 장수 가운데 반 이상을 야곱을 향하여 할례를 해 준 거예요. 그 이유를 다. 몰라요. 버러지 같은 우리 인생이라 할지라도, 야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야곱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아멘.
 
저는 이걸 쭉 해석을 하면서 이렇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못 났어요. 자식이 부족해요. 그리고 자식이 아빠에게 땡강부려요. 그럴 때 여러분 여러분이 자식을 이깁니까? 아니면 자식이 여러분을 이깁니까? 집집마다. 다. 사연은 있겠지만, 여러분 자식이 막 땡깡 부르고 그 부족하고 못 나고 이런데 결국 부모가 윽박지려고 자신을 무찌르고 호적에서 잘못하면 이름을 파고 말이지. 그렇게 하는 부모는 없어요. 대부분 부모는 자식에게 져 주는 거예요. 이 깊은 신비를 알 사람만 알도다. 부모이기 때문에,,, 자식이 부족해도 그 자식을 위하여 눈물 어린 목자 심정을 아버지의 심정, 어머니의 심정을 가지고 자식에게 져 주는 거예요.
 
하나님은 버러지 같은 야곱이고 벌레 같은 야곱이고,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도 하나님이 저주셔 가지고 나중에 그 야곱이 나중에 얼마나 존귀한 자가 되는지 당대 최대 제국 애굽의 황제를 축복하고 블레싱하는 자리까지 이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부족한 야곱을 하나님이 져 주시는 것이에요. 그게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져 주시는 표현으로 더 놀라운 표현을 하셨는데 그것이 뭐냐? 8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사야 41:8,
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이 종은 어떤 노예, 뭐 비천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언약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종이 되는 거. 이거는 아주 그냥 좀 영광스러운 표현으로 말할 수 있고, 그다음에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그러니까? 하나님이 택하시고 야곱을 택하시고 하나님에게 져 주시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종을 만드시는데 특별히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그러니까? 야곱을 택한 정도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이 돼 가지고 하나님의 벗으로 만들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너무나 이거는 신묘막측한 거에요. 벌레를 버러지로, 지렁이를 택한 야곱으로, 이거는 말도 안 되는 얘긴 같아요. 그리고 벗으로 만드시고, 창세기 18장 17절에 보니까?
 
*창세기 18:17,
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는가.
-이 벗이라는 이 아브라함에서 숨기겠는가 는 이런 내용들을 아브라함이나 야곱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들인 우리들까지 에게도 동일하게 우리를 벗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 벗이라는 말을 신약의 신비한 복음을 깨달았던 요한 사도는 요한복음 15장에서 아주 놀라운 표현을 하고 있어요. 뭐라 그러냐? 크게 우리 합독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5:15,
15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아멘. 정말 내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벗게 내가 이를 숨기겠느냐? 그렇게 말하는데 너희를 친구라고 하시고 그 하나님의 그 신비한 내용들을 너희에게 다. 숨기겠네. 다. 알게 하겠다 이 말이에요. 오늘 이 예배 시간에, 우리가 하나님을 묵상할 때 우리 벌레 같은 내가 하나님의 벗이 되었다. 이 비하하는 은유적 표현이고, 비하하는 언어지만 오늘이 벗으로 비상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십시다. 아멘. 비하의 언어가 아니라, 비상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기뻐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다시 한번 벌레가 아니라 뭐예요? 벗이고, 그다음에 지렁이가 아니라 친구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한 걸음도 나와 가지고 요한복음 20장 17절에,
 
*요한복음 20:17,
17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그러니까? 형제라고, 너무너무 놀라운 황송한 표현을 하고 있는 거예요. 영 가족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거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지, 자 가족이다. 형제가 됐을 때는 다. 그 사람 편이에요. 여러분, 가족들끼리 뭐 있을 때, 막 논리 따지고 이론 따지고 막 네가 옳고 그러 따지고 막 삿대질하고,. 여러분 그건 형제가 아니야. 그건 가짜야. 좀 어렵고 힘들고 피 흘리고 있으면 무조 무조건 친구가 돼. 그래서 우리 교회는 영 가족이라 그러는 것이에요. 어려울 때 옆에 와 가지고 너 너 너 어려운 이유가 이거지, 라고. 조목은 이것 때문에 내가 어려웠게 됐지,. 넘버투, 너 이거 너 이 고쳐, 이렇게 한 건 그거는 그거는 가족이 아니야, 가족은 그렇게 하는 거가 아니고,. 가족은 무조건 그 사람 편인 거예요. 어려움 있을 때, 무조건 그 사람 편이는 거예요. 별로 반응도 안 하시고,,,
 
여러분, 가족들은 가족들은 그냥 아플 때 같이 가 있는 거예요. 그 우리가 영 가족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 편이네. 이거 너무나 놀라운 일이에요.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마음대로 범죄 한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그 고기하고 순고하고 영광스러운 그 수준으로 같이 맞춰져 가니까? 우리가 자연스럽게 우리가 정말 죄송하고, 나쁘고, 모자라고, 더럽고 추한 것을 처리하게 되 있는 거예요. 할렐루야!!!, 우리가 하나님의 벗이요,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의 친구예요.
 
제가 한 8년 동안 대학생 시절에, 저희 목회 목사님이었던 박희천 목사님 여러분 잘 아시잖아요. 지금 97세 이신데요. 이분은 하나님의 벗이 너무 하나님의 신고가 너무 좋으셔 갖고, 평생을 새벽 기도 인도할 때에 찬송이 딱 하나밖에 없어요. 나오자 말자 그냥 이제 새벽기도 시작하겠습니다. 그것도 아니에요. 그냥 딱 나오자 말자. 박 목사님은 딱,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모든 것을 우리 주께 구하세’. 평생에 새벽기도 찬송은 딱 한 장이에요. 뭐 복잡하게 살지 맙시다. 그러고 다. 딱 하나, 평생의 새벽기도 찬양이 죄짓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구인지, 걱정 근심 모든 것을 우리 주께 다. 구한다.
 
이거는 아브라함을 아니 야곱을 하나님의 벗으로, 친구로, 형제로 삼았다는 것은 이거는 뭐 말로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인간들이 갖는 내면에 수많은 두려움과 공포와 연약함을 극복하는 클라이맥스가 뭐냐?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고, 하나님은 우리를 친구 형제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이걸 아둔한 우리의 머리로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이걸 우리가 다. 깨달을 수도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부족하다. 할지라도 이것은 대전환이고 거룩한 수직 신분 상승이고 오늘 본문으로 말하면 버러지를 변화시켜 주시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 같은 경우 다시요. 자기가 잘하고 자기가 대단한 인생을 살아서 이런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크신 은혜로 하나님은 야곱을 그만큼 이끌어 오시고, 하나님이 져 주신 것이에요.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여기까지 이끌어 오셨고 하나님이 우리를 져 주셔서 우리가 오늘이 자리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한 번씩 기도하잖아요. 아버지 하나님 연약한 인생을, 부족한 인생을 누추한 인생을, 하나님 앞에 어떨 때는 부끄러운 인생을,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내어 치시거나 꺾지 않으시고, 이것까지 우리를 이끌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거 아닙니까? 실제로 우리가 후회 후회되고 뼈저리게 고통스러운 아픔으로 어떨 때는 입을 킥하고 싶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벗이라고 부르시고 일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생의 흑역사, 벌레의 역사, 지렁이의 역사 가운데서도 일하시는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버려진 돌을 모퉁이 돌로 만드는데, 전문이신 줄로 믿습니다. 버려졌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 그때가 바로 하나님이 나를 변화시켜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그릇으로 빚어지는 시간임을 기대해야만 할 것입니다.
 
II.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면.
 
-자, 이제 그러면 두려워 말라 그러시고 주어인 하나님이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함께 하실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내가 너를 돕는다고 말 13절에 보니까,
 
*이사야 41:13,15,16,
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그다음에 뭐예요. 마음이 줄을 끝에 내가 너를 뭐 한다고요. 도우리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어떻게 도울까? 오늘 본문 15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15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놀라운 말씀입니다. 여러분, 벌레는 산들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지렁이는 기어서 앞에 있는 큰 어떤 방에 큰 어떤 언덕들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지렁이나 벌레가 산들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은 뭡니까? 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새 타작기로 변화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당면한 산과 그 언덕들을 우리가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잖아요? 그런데 주님은 그 장애물들을 우리 앞에서 없애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저와 여러분들을 개인적으로 타기로 변화시켜 가지고 해결해 주시는 은혜가 있다는 것이에요. 벌레가 타작기로 된다는 사실이에요. 이렇게 될 때에 16절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거예요.
 
16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오늘이 말씀을 여러분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수준이 되면 하나님이 기적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버러지 같은 우리를 날카로운 타작기로 맞으시는 하나님을 이 예배 시간에 깊이 묵상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구원받고 여러분이 타작기로 변화되는 것은 여러분이 능력이 있어요. 심지어 여러분을 타작기로 만드시는 예수님을 여러분들이 붙잡고 계시는 그 정도가 아니에요. 예수님이 여러분들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붙잡는 여러분들의 손의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여러분을 붙잡고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라는 거예요. 심지어 우리의 믿음 때문 정도가 아니라,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이에요. 왜냐면 우리의 믿음은 늘 연약해요. 쓰러질 때가 많아요. 그래서 여러분이 시간 세상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계략을 꾸밀 때, 음모를 꾸밀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붙으시기 위하여 거룩한 모략을 준비하고 계신 것을 기억하셔야 돼요. 다시요. 우리를 좀 뭐 큰 힘 주시고. 이 정도가 아니라 우리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거룩한 모약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아멘. 한번 읽어 봅시다. 함께요.
 
◆세상이 우리를 넘어뜨리는 음모를 꾸밀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붙으시기 위하여 ‘거룩한 모략’을 붙드시기 위하여 거룩한 모략을 준비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

-아멘. 여기에 아주 중요한 뜻이 많이 담겨 있어요. 대한민국 앞으로 어떻게 될까? 여러분 이걸 믿는 우리들 때문이라도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에요. 우리 다음 세대가 통일에 대해 관심이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모략이 있을 때, 하나님의 때에 통일도 허락해 주시는 것이에요. 아멘. 다시요. 버러지에 대해서 하나님은 비하의 은유 속에 하나님의 수직적인 비상의 계획을 숨기고 계심을 믿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제이 내용들 제가 정리를 하면서 제가이 두려움의 극복과 오늘이 41장 전체를 해석하면서 하나님이 저에게 아 네가 그래,,, 끝까지 끝까지 하나님의 모략을 믿고 거룩한 모략을 믿고 하나님이 너를 도우시는 것을 기억해야 되는데, 이거 한번 생각해 봐라. 그러면서 제가 깨닫게 하신 것 말씀 중에 하나가, 에스겔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 가지고 그발 강가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애통 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납작 엎드려 있잖아요. 근데 그 하나님께서 그 발 강가에 하늘 문을 여시고 가장 어려울 때 가장 힘들다고 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과 쉐키나 영광을 400년 동안 사라졌던 그 성전의 강력한 쉐키나의 영광을 하나님이 동서남북 회복을 시켜 주시는데, 그 에스겔서의 마지막 마지막 절, 마지막 부분이 뭐냐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뭐라고 나와 있냐면요.
 
*에스겔 48:35,
35 그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그랬어요. 우리를 붙잡으시고 버러지를 하나님의 벗과 하나님의 친구로 만드셨는데, 하나님이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걸 깨닫도록 하나님께서 그 어려움 가운데 있는 에스겔에게도 그 포로 된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여호와 삼마이다. 아멘. 여러분 여호와 라파란 말 들어보셨죠? 여호와 닛시란 말도 들어보셨죠? 그런데 ‘여호와 삼마’라는 이 말은 성경 딱 한번, 이 구절만 딱 나와요. 이게 뭐냐?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다(Tthe God who is there).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다(God is there.). 아멘.
 
여러분, 우리는 벌레 같은 인생이에요. 우리 앞에는 태산과 산들이 놓여 있어요. 버러지 같은 우리가 어떻게 넘어가겠어요? 근데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에 계신다.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민족의 장례도 하나님이 이끌어 가실 것이다. 그것이 여호와 삼마예요. 원어로면 ‘제호바 샴마’로 나와 있어요. 제호바 삼마, 하나님이 거기에 언제나 동일하게 계신다. 이것이 그대로 이어져가 신약의 창으로 해석할 때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할렐루야!!~~. 뭐라고 한다고요?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느니라.
 
저는 지금 계속이어서 이사야서를 강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호와를 앙망하라. 세계를 그 앙망이란 말은 카바 라고, ’카바‘라는 그 현대 히브리어는 카바이고, 옛날은 ’카와‘라고 하는데, 하나님께 나를 묶는 것, 이라고 그랬어요. 지난 주일에는 뭐라고 그랬어요? 성령을 부어 주셔야만 된다. 그랬어요. 오늘은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며 거기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벌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벗으로 만드시는 그 하나님의 임재를 기억하고 거기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 연습을 해야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임마누엘,,, 여호와 삼마, 오늘 우리를 벗으로 만드시는 그 하나님, 그 벗으로 우리와 함께 임재에 계시겠다고 그 하나님을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 연습, 묵상 임재 생각, 연습 그 연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여러분들에게 체험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하루 24시간 가운데이 하나님을 얼마나 묵상하고 계시는지, 오늘이 말씀 듣고 오늘 집에 갈 때 여러분 차를 갖고 오신 분들은 집에 갈 때 운전대 옆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생각하시고 여호와 삼마!! 거기 계시는 하나님, 운전대에 계시는 하나님, 여호와 샴마, 제호바 샴마,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 아멘 여러분이 민족의 역사가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 여러분들의 정치 방향 이런 거 마음에 안 맞문 많이 있을지 몰라요. 다음 세대 생각하면 걱정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거기 계시는 하나님께서 이 민족의 역사를 장악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내면이 약하고 벌레 같고 우울증에 빠져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 계신 모든 그 상황들을 하나님은 특별히이 예배를 통하여 임마누엘 되시고, 여호와 삼마 되시고, 우리를 이 예배 가운데서 임재하시는 그 하나님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는 묵상하고 승리해야만 할 것이에요.
 
여러분, 찬양 우리 찬양대 찬양들 힘이 나는 것이에요. 말씀을 들으면 여호와 산말을 기억하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아멘. 그러니까이 예배가 우울증 치유의 최고의 아멘. 최고의 치유제예요. 아멘. 집에서 우울해 하지 말고 본당에 나와 가지고 별관에 나와 가지고이 시간 현장에 참여하면서 여러분들의 내면의 약함을 자 제거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창조의 아버지 제가 30년 전부터 부르고 부르고 부르거든요. 그러니까? 매주일, 여러분 시작할 때 창조 아버지 교회 부르시죠? 그냥 이만 달삭 하시는 거예요? 근데 제가 창조의 아버지를 몇 년 몇 번이나 불렀는가 가만히 계산하니까요. 한 7천 번, 8천 번을 불렀어요. 별로 안 믿네요? 안 믿는 눈이라고요... 여러분 보세요.
 
제가 30년을 이 개회송을 ’창조의 아버지‘를 부르는데, 제가 미국에서도 매주네 번 예배드릴 때, 이거 불렀고, 한국에서는 제가 한 때 여섯 번 예배드렸어요.. 매주 여섯 번. 여섯 번, 1년이면 300번 이거 10년이면 3천 번, 20년이면 6천 번, 30년이면 9천 번 아니에요? 내가 계산해보니 아마 7천 번은 부른 거예요. 여러분 ’창조의 아버지‘를 7천 번을 ’창조의 아버지 그 섭리 보이사 택하신 세대 버러지 같은 세대를 일으키어 이 땅을 고치소서 주의 크신 능력 만물이 사모하니 그 성령의 기름부어 주사 주 영광 지금 임해 임하게 하소서.‘
 
이걸 여러분 7천 번 정도 불러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버러지라도 인간 됩니다. 알겠어요? 지렁이라도 창조적인 역신을 일으키는 거예요. 그런데 맨날 늦게 와 가지고 그거는 안 부르고 뒤에서부터 시작해요. 그러면 되겠냐고? 제가 정말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데, 오늘이 41편 10절을 그대로 암송을 하시고, 창조의 아버지를 1천 번 2천 번, 최소한 여러분 1년에 50번은 부르게 돼 있어요. 최소한 10년이 500번이에요. 천국 가 갖고 너 뭐 하다고 왔냐? 창조의 아버지 부르고 왔습니다.
 
여러분 이때 여러분의 모든 우수사려, 염려, 이런 것들이 정리가 되고 벌레 같은 상황이 새 타작기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근데 주님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오늘 25절에 본문 25절에,
 
*이사야 41:25,
25 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그가 이르러 고관들을 석회 같이,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음 같이 하리니.
-겉으로는 이 사람이 고레스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을 일으키는데 누가 일으키느냐? 오늘이 말씀 듣고 깨닫고 벌레 같은 인생이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벗이 되겠습니다. 그걸 믿습니다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반드시 일을 하실 것입니다.
 
저는 22년 전부터 여러분들에게 3,5,7 비전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3비전 3년 내로 대한민국 교회가 글로벌하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미 그것은 이루어진 줄로 믿습니다. 아멘. 5 비전은 뭐냐? 한국 교회와 미국 교회나 세 교회와 함께 힘을 합쳐 가지고 우리가 중국 교회 잘 섬겨서 중국 교회가 선교사를 10만 20만 세계의 이슬람 선교사가 100만 명인데 기독교 선교사는 28만 명밖에 안 돼요. 그 게임이 안 되는 거예요. 앞으로 세계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중국입니다. 중국이 10만 명, 20만 명. 중국에 지금 교인들이 한 1억 정도 된다고 그러는데 파송을 하면, 북한도 변화되는 역사를 하나님이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할까가 아니에요. ’창조의 아버지 오늘 우리를 벌레에서 벗으로 만드시고 지렁이를 지렁이는 이빨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는 연약한 것이 새 타작기로 만드시는 그 하나님의 역사를 믿을 때 하나님 반드시 일하실 줄로 확신하십니다.
 
♣요약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다. 알 수 없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다. 예비하고 계신 줄 우리는 믿고, ‘너의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라’ 과정에는 고통도 눈물도 있겠지만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그대로 믿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해 주실 줄을 확신한다. 우리가 부족한 것 너무 많이 있지만 우리를 주님의 벗으로 삼아 주신 주님을 찬양하며,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가는 버러지 같은 인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여호와 삼마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시대의 언덕과 산과 잘못된 것들을 다 부숴 트리고 문제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 앞에 강력한 타작기가 되기를 간구하여, 우리 가정과 개인의 문제도 해결해 주실 것을 확신해야 한다.
 
-‘벌레 같은 너 야곱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버러지 같은’ 혹은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 부르신 표현에 담긴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조명하고 계신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무력해 보이는 존재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버려진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사야는 유다 백성이 포로의 위협과 절망 속에서 자신을 하찮게 여길 때, 하나님께서 그 연약함을 아시고 오히려 위로와 회복의 약속을 주셨다. “나는 너를 도울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인간의 가능성이나 자격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약속이었다. 우리 역시 인생의 바닥에서, 자신을 무가치하게 느낄 때가 있지만, 바로 그때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고 말씀하신다고 선포하신다.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셨고, 그의 실수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않으셨다. 이사야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은 거룩과 심판뿐 아니라, 끝없는 인자와 긍휼임을 강조하며, 우리는 연약할수록 더 깊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고 극복할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는 다는 것과 믿음의 도전을 우리에게 목사님은 설교해 주신다..
 









https://youtu.be/GOZnxCpOcQ4?si=19BfIr_2g6LJ6v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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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5월 4일)
제목: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말씀: 마태복음 6:9-10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김은석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헌금특송: 유년부 찬양팀(조이키즈)
설교자: 박신일 목사님(그레이스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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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9-10,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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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스트왈드 챔버스라고 하는 분은 기도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기도의 의미는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의 응답 자체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가정의 모든 달을 맞아서 모든 가정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주기도문 중에 한 부분을 나누는데요. 신약 학자들에 의하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루에 세 번 주기도문을 암송했다고 합니다. 그 말은 주기도문은 그만큼 중요한 기도였다는 말입니다. 이 뜻을 알고 기도한다면, 너무너무 소중한 기도라는 것입니다. 오늘 주기도문의 한 부분을 우리가 나누려는데 이 기도를 나누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대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데, 기독교를 우리 인간중심의 신앙으로 자꾸 변질(變質)시켜왔다는 겁니다. 이거를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돌이키고 싶기 때문에 오늘 이 기도를 좀 나누려고 합니다. 인간중심의 신앙이라는 건 뭐냐면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갖고 싶어서 주님을 이용하는 겁니다. 네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되면,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내가 살아가려고 한다는 겁니다. 인간 중심의 신앙이 되면 여러분 갖고 싶은 거 다 가져요. 못 갖잖아요. 섭섭함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의 가슴 속에 사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섭함이 있습니다.
 
왜냐면, 자꾸 만족을 구하기 때문에 갖고 싶은 걸 다 얻으려고 하니까 근데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되면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는 감사가 넘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실제가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사실 옆에 사람 물어보세요. 별로 가진 거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모셨잖아요. 아멘 이것이 실제가 되길 바래요. 이것이 이론이 아니라 실체 아멘. 그러니까 어떤 고백이 생기냐면 내 잔이 넘치나이다. 감사하면서 할 수 있는 거죠. 생각해보세요. 인간은 이 satifaction 이라는 만족을, 자꾸 구한다고요.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가르치냐면 자족하라고 하십니다.
 
영어로 표현해서 죄송하지만 새디스펙션이란 만족을 구하는 게 아니라, im 컨텐트 위드 웨어 아이엠(I am content with where I am), 내가 어디 있든지. 왓 아이 두, 내가 뭘 하든지(What I do), 내가 자족하는 걸 배우는 거죠. 우리는 성실하게 살고 거기에 주어진 결과를 기뻐하며 사는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우린 너무 많이 가지면 위험한 인간들이에요. 옆 사람한테 인사할까요? 그래서 안 주시는구나, 제가 가져봐요. 얼마나 교만했겠나 키가 컸어 봐요. 전 목회 안 해요. 왜 목회해 내가 키 컨대 키 큰 분 중에 목회하는 분도 있어요. 다 다른 게 부족한 게 있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주기등으로 돌아오면 10절에 한 구절만 좀 나누려고 합니다. 10절만 다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아멘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도래할 것입니다. 우리가 환영해도 올 거고, 거부해도 옵니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준비하며 사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려는 구절은 이 뒷부분입니다. 한번 저를 따라 하실까요?
 
*마태복음 6:9-10,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이 한 구절을 좀 나누려고 합니다. 여기 뜻은 누구 뜻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이 땅은 보편적으로 어떻게 해석해 왔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기를 우리는 소원합니다. 맞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드렸던 기도입니다. 문제는 뭐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라는 이 기도를 드릴 때 약간 미래 지향적이다. 보니까 추상적 기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이 기도를 하루에 3번씩 했는데, 어떻게 이 기도가 구체적인 내기도가 될 수 있을까? 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중의 하나님이 저에게 한 가지 풀어주신 답이 있었습니다. 이 땅을 니 마음이라고 생각하란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이루어지길 원하는 기도예요. 마음속에,,, 생각해보니까 이것은 주관적인 해석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씨 뿌리는 비율을 말씀하실 때 똑같은 씨가 네 종류의 밭에 떨어지는데 길가 새들이 쪼아 먹어요. 가시덤불 돌작 자라질 못해요. 그런데 어디에 떨어지면 옥토 좋은 땅에 떨어지면 30배 60배 100배 열매를 맺는데요. 거기에 좋은 땅이 여기에 말하는 주기도문의 땅과 똑같은 단어란 말입니다. 맞다. 아버지의 뜻이 내 마음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은 너무 구체적인 기도다 여러분 이 기도를 원하십니까? 대답 잘 하셔야 됩니다. 고통이 일어날 거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이 내 마음에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이걸 찬송가로 표현하면 나의 품은 뜻 주의 뜻 같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 찬송가라는 겁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이 주님과 똑같아질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 이 기도인데 사실 우리들은 어떻게 기도하냐면 주님의 품은 뜻이 내 뜻하고 똑같아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아직 안 되신 분들이 있는데, 우리 사업 잘 되길 원합니다. 이걸 주님이 주님 뜻과 똑같이 해 달라는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인간 중심의 신앙관을 가지고 살 때가 너무 많다는 겁니다. 이 의미를 조금 더 우리가 헤아려 보기 위해서는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다음에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가, 그 뒷부분을 가봉합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 뒷부분에는 이런 얘기를 하십니다. 한번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 26절로 가보겠습니다. 다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6:26,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6절에 하나님은 뭐라고 예수님은 뭐라고 그랬냐면 우리에게는 하늘 아버지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공중의 새를 보라고, 수고도 안 하는데 하나님이 다 기르시느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주기도문의 시작이 뭐예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것을 가르치신 다음에 주기도문의 뒷자락 뒷부분에 이제 6장 부분에 와서는 뭐를 가르쳐 주냐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걸 잊지 말라는 겁니다. 제가 자꾸 인간 중심의 신앙이라고 말하는 건 뭐냐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이 관계 위에서 기도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자꾸 하나님께 요구하는 하나님을 우상화 시켜 버리는 이런 신앙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인간 중심의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시한 채 하나님이 내 것을 들어줘야 되는 어떤 우상처럼 기도하는 것을 그만둬라. 즉 종교적 주문을 그만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아멘, 그 관계 위에서 기도하길 바랍니다. 우리 아버지세요. 그러니까 우리가 아버지를 주님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새도 돌보는데 너희를 돌보지 않겠니 그것보다 귀하지 않느냐? 이걸 먼저 말씀해주시는 장면입니다. 그러고 나서 주님은 이제 2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 같이 읽어볼까요?
 
*마태복음 6:27,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키가 작으신 분들 기도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거는 니가 염려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저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기도했어요. 10cm를 크게 해달라고, 고1 때 이 말씀 만나고 기도를 멈췄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사이즈를 누가 정하시는 거예요. 주님이 정하신 거예요. 우리는 완벽한 사이즈를 가지고 살고 있는 겁니다. 아멘, 아멘을 못하는 거는 그래도 아니에요. 여러분 저는 키까지 컸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그렇게 생각하시라고 부족한 게 있어서 죽게 더 가까이 가는 거예요. 사람은 부족한 게 있어야 돼요. 근데 이 번역이 여러분, 이 번역이 두 가지로 번역돼요. 사실은 오늘 집에 가셔서 이 구절을 영어 성적을 읽어보세요. 그럼 뭐라고 돼 있냐면 전혀 다른 내용의 번역이에요.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하므로 수명을 1시간 연장할 수 있겠느냐? 이렇게 번역돼 있어요. 누가 너희 중에 염려함으로 바이 워링 니가 염려하는 것 니가 염려해서 수명을 1시간 연장할 수 있겠느냐는 거예요. 인간의 수명 죽게 달려 있어요.
 
저는 한국 교회가 이런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살 것인지만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돼요. 어떻게 살다가 죽을 것인가? 이걸 고민하면 신앙은 달라지는 겁니다.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28절부터 30절까지 천천히 다 같이 한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6:28-30,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염려하지 말라는 얘기를 계속하세요. 특히 물질에 대해서, 그러면서 하물며 너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니까 염려와 믿음이 충돌하고 있던 걸 보이죠. 근데 우리 염려 해요. 아니에요. 이렇게 얘기하셔도 해요. 안 해요. 이걸 우리는 은사라 그래요. 보더니, 염려의 은사가 충만해요.
 
그렇게 좀 염려하지 마 내가 다 돌봐 그렇게 말씀하셔도 그냥 염려가 터져 나와요. 왜 그런지 아세요.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주님이 이걸 치워주시는 거예요. 뭘 치워주는지 아세요. 이걸 치우고 내가 너희 아버지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이 돌봐주시는 관계 속에 그 믿음 위에 서 있으라고 권면하신 거예요. 이 땅의 최고의 가정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가정입니다. 아멘입니까? 옆 사람한테 물어보세요. 형제님, 자매님 아버지가 누구시냐고 한번 대답을 똑바로 해 보세요. 아버지가 누구시냐고 밑에 배삼종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되지 누구세요.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주님 이걸 먼저 정리해 주시는 거예요. 이걸 먼저 정리해 주시는 거죠.
 
그러면서 31절 32절 두 절만 먼저 읽겠습니다. 시작
*마태복음 6:31-32,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주님이 이기도를 반복해서 지금 말씀해 주시는 건 뭐냐 하면, 우리의 중심에 뭐가 있느냐는 거예요. 이걸 자꾸 염려하고 구한다는 말은 내 중심에 물질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아니라, 물질이 중심에 들어와 있다는 거예요. 이 이야기를 하시기 전에 말씀이 뭐였는지 아세요. 물질이 있는 곳에 니 마음이 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신앙인들이지만 하나님 없이 우리가 원하는 걸 구하면 다 종교적 주문인 거예요. 이거는 주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그 관계에 다시 올려놓는 겁니다. 이거를 들으면 우리 이런 생각해요. 내 중심에 뭐가 있는지가 금방 드러나 버리는 거예요. 주님은 기도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자녀니까 구해야죠 구해야죠 왜 병도 낫고 어려움도 만나고 아버지께 구해야죠. 당연히 근데 그 문제가 중심이 아니라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 믿음으로 아버지께 구해라. 아멘 그래서 주님이 진짜 가르쳐주고 싶은 게 있어요. 33절입니다. 우리 다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마태복음 6:33,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 우리에게 거꾸로 기도해 보라는 거야. 니네가 구할 것 먼저 구하는 것 좀 놔두고 아버지가 뭘 원하는지 먼저 구해 봐라. 하나님의 나라 먼저 의를 구해 봐라. 그러면 너희 필요한 것 안 구해도 더 하신다. 우리는 안 구할 수는 없죠. 안달이 나니까 그런데 이 말은 기도를 뒤집어 보라는 거예요. 아이들을 기르다 보면 사달라는 게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아이들이 10대가 되고 20대가 되면 우리 부모 입장에서는 애들이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는데 라고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뭔지 아세요. 엄마 아빠가 원하는 걸 한 번도 안 물어봐요. 여러분 기도에 순서를 바꾸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는 게 뭐예요? 가끔 물어보자구요.
 
염려하지 말고 약간 불편하시죠. 이게 아닌데 그냥 내가 구해야 되는데 약간 불편하죠. 괜찮으세요. 한번 따라 하시면 하나님 저의 기도를 바꿔주십시오. 아멘 안 하네요. 진짜입니까? 우리 주님이 뭘 원하시는지 한번 물어보자고요. 이 기도가 오늘 열리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원하는 거 기도해도 괜찮다니까요? 아버지께 그런데 주님이 뭘 원하시는지는 좀 구해보자는 거예요. 조금 더 불편해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아요. 더 들어가요 3분의 1밖에 대답을 안 해, 조금 더 마음 아파도 괜찮겠어요. 좋아요. 좀 고통스러운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 우리 마음속에 이루어지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이 땅이 내 마음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내 마음에 들어와서 아버지의 뜻이 역사학 해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그럼 우리가 솔직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 걸까, 자 우리 마음속에 뭐가 들어있는지를 알고 아버지의 뜻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살다가 이렇게 살다가 재미있는 경험을 뭐냐면 가끔요. 제가 너무 착한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어 내가 어떻게 이렇게 거룩하고 착한 생각을 하지 이렇게 할 때가 있어요. 여러분, 이쪽 가끔 늘은 아니잖아. 우리 가끔 있어요. 없어요. 아 있다니까요? 남편으로서 아내를 보고 정말 세상에 너무 귀한 아내다 이렇게 가끔 느껴질 때가 있다니까요? 그리고 3일 지나면 정신이 돌아오지. 이 여자는 왜 맨날 이 모양이냐 이렇게 맨정신 그리고 가끔 뜻밖에 착한 일 할 때가 있어요. 시골길을 차 타고 저희가 가는데 할머니 한 분이 쌀을 끌고 이렇게 가는 거예요. 가시는 거예요. 차를 세워서 어디까지 가시냐 저기 2km 아니 2km 정도 걸어가셔서 제가 모시면 안 되겠냐고 그래서 제 아내랑 제가 할머니를 모시고 집까지 모셔다 드렸어요. 얼마나 뿌듯한지 우리 가끔 이럴 때 있잖아. 늘은 아니에요.
 
그러면 우리 안에 마음 안에 뭐가 들어있어요. 여러분, 악이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악한 것이 없어요?. 아니 아주머니 없어요. 없는 분은 여기 우리랑 사실 분이야 그냥 승천하시라고요. 그냥 욕망은 풍선처럼 터질 듯 하죠. 죄는 있는 정도예요. 가득하죠. 이게 우리 마음 아니에요. 솔직하게 제가 공감을 나누고 싶어요. 동의를 구하는 거예요. 가득해요. 죄가 욕망은 늘 터지기 직전이지 그러면 알아차려야 돼요.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고 거룩한 뜻이 이 더럽고 악으로 가득 차고 죄로 충만한 내 마음속에 이것이 이루어지려면 충돌을 피할 수가 없는 거예요. 엄청난 충돌이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말씀이 내 악한 생각들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사건들이 일어나야 돼요. 이 충돌 사건 없이는 하나님의 뜻이 내 마음에 들어오지가 않아요. 우리는 내가 착한 일을 자랑할 때도 자기 의를 얼마나 드러낼 때가 많은지 몰라요. 이렇게 교만해요. 그런데 주님은 아버지의 뜻이 우리 마음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시는 겁니다. 이 안에는 그 하나님의 뜻을 저항하려는 죄가 이 세력에 가득하단 말이죠. 예수 믿는 사람은 매일의 삶이 영적 전쟁 중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됩니다. 몰라도 사탄은 내버려두지 않아요. 우릴 넘어뜨리게 만들고 말죠
 
제가 구약 얘기 하나만 보여드릴게요.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을 때 나아만 이라는 나병 환자가 고침 받으러 옵니다. 얘기는 다 생략하고 요단 강물에 들어가 나요? 다 고침 받고 예물을 준비해서 엘리사에게 줍니다. 안 받아요.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으로 낳았어요. 안 받는다고 돌려보냅니다. 그때 그 은혜 장면을 목격했던 종 계하시가 어떻게 말하는지 성경을 잠깐 보겠습니다. 혼자 독백입니다. 열와기하 5장 20절,
 
*열왕기하 5:20,
20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저 예물을 안 받는 게 너무 아까우니까 은혜를 목격한 게하시가 저걸 받겠다고 쫓아가겠다고 그리고 쫓아가요 그리고 인사를 합니다. 평안하냐? 평안합니다. 22절에 뭐라고 대답해 보겠습니다.
 
22 그가 이르되 평안하나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로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그가 이르되 잘 제가 읽어드릴게요. 평안하나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보냈어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한 은혜를 이용해서 챙기려는 겁니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람 산지에서부터 내걸어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한 달란트 옷 2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23절,
23 나아만이 이르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그를 강권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그들이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완전히 이제 복 터진 거죠. 대박 오뚜보를 아울러, 두 사나이 즈음에 그들이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언덕에서 24절입니다. 다같이,
 
24 언덕에 이르러서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받아 집에 감추고 그들을 보내 가게 한 후.
-어디다 감췄다고요. 왜 감춘 거예요? 엘리사에게 안 들킬려고 그리고 엘리사 앞에 갔는데 갔는데 엘리사가 알아요. 몰라요. 바로 압니다. 그리고 나만의 이 나병이 그에게 옮겨져 왔다는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어디서부터가 죄입니까? 게하시가 언제부터가 죄입니까? 그렇게 하겠다는 생각과 의도를 마음속에 가진 것부터 모든 게 죄입니다. 의도부터가 죄인 겁니다. 심지어 종교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은혜를 목격한 현장에서 이득을 취합니다. 은혜 입은 사람을 하나님의 은혜 입은 사람을 이용해서 자기 몫을 챙긴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질문 더 하겠습니다. 게하시의 마음에는 뭐가 들어있는 겁니까? 욕망이 터지기 직전이죠. 우리 마음의 실체입니다. 게하시의 마음이 우리 마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내 마음속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게하시의 그 의도와 생각들이 산산조각나는 일이 우리 가슴 속에 일어나야 합니다. 말씀의 폭탄임에서 여러분들의 잿덩어리가 깨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야 그 뜻이 내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렇게 살길 원하십니까? 아멘 안 할 줄 알았어요. 저는 옆 사람은 그렇게 하고 나는 좀 놔두시라고 저는 진짜 물어보는 거예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마음의 이 땅 이 밭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땅이 되길 원하시는 겁니까? 그럼 우리가 어떤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까? 오늘 이거 하나를 기억하면 좋겠어요. 우리가 하나님 제 심령의 죗 덩어리를 깨뜨려 주십시오. 아주 산산조각 내주십시오. 이번 주 월요일부터 또 살아가는 동안 세상 속에서 게하시처럼 악한 의도가 시작될 때 초전박살을 내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사는 성도가 될 수 없을까?
 
오늘 이 예배를 드리면서 이 한 가지 기도를 드리면, 좋겠어요. 죗 덩어리를 깨뜨려 달라고 말씀으로 너의 죄들을 산산조각 내달라고 이번 한 주간 동안 혹시라도 악한 의도가 생각날 때 4글자만 기억하세요. 초전박살 의도부터 깨뜨려 달라고, 아멘 옆 사람을 두 눈 똑바로 무릅뜨고 딱 4글자만 한번 외우겠습니다. 한번 얘기 하십시다. 할렐루야!! 이번 주간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아멘 사단이 우리의 머리를 치려고 범죄케 만들라고 덤벼들 겁니다.
 
우리가 사단의 머리를 초전 박살 내버리고 아멘~! 내 속에 악한 의도가 들어올 때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끝장날지어다. 이렇게 기도하고, 살 수 없을까? 저와 여러분 오늘의 예배 기도는 이거여야 합니다. 주님 죗덩어리를 깨뜨려 주십시오. 아카네도가 시작되려고 할 때 산산조각 내주십시오. 주님의 뜻이 내 마음을 깨뜨리는 역사가 이번 주간에 일어나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는요 자기 죄에 대해서 너무 관대해요. 남의 죄에 대해선 기가 막히게 예리한데, 자기 죄에 대해선 너무 관대해요.
 
여러분 저도 목계 38년이었는데. 매일 싸웁니다. 매일 싸워요 매주 주님 잿덩어리를 깨뜨려 주십시오. 이런 생각이 찾아올 때 네 글자 네 글자 아멘!!! 초전박살!!! 이번에 죄를 짓도록 사단이 건드릴 때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는 우리가 이번 주간에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이런 주님의 뜻이 내 마음이 이루어지는 것이 계속되기를 원하세요? 아멘 저절로 되겠습니까? 뭐가 필요한지 아세요?.
 
달라스 윌러드라는 분은 현대 기독교인들이 잃어버린 게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구원으로 받은 구원이라는 은혜라는 단어 때문에 현대 기독교인들이 잃어버린 것이 훈련이라는 것입니다. 훈련해야만 되는 겁니다. 어떤 훈련이 필요하냐면 여러분 주님을 만나는 내일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제일 주님 만나는 시간을 꼭 지키셔야 합니다. 식사하시죠? 한 끼도 안 빼먹고 우린 점심 먹으면서 뭘 생각해요. 저녁 뭐 먹지? 그렇게 성실할 수가 없어요.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어느 식당을 갈지 너무 성실해 예수 믿는 사람은 신앙인의 영적인 리듬을 회복해야 돼요. 세상의 리듬에 자기를 빼앗기지 마시라고요.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인 박자가 있어야 돼요. 박자가 다 바빠요 아니요. 멈추셔야 돼요. 반드시 저는 한국에 머물면 새벽 기도를 안 가잖아요. 새벽에 일어나서 늘 아무리 피곤해도 일어나서 성경 책 읽고, 기도하는 걸 계속 하려고 매일매일 스트로크를 합니다. 훈련해야 돼요. 여러분 아니면 이상한 몸뚱아리가 돼요.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거 있어요. 저는 우리 교인들하고도 늘 나눕니다.
 
제발 잠자러 올라갈 때 스마트폰 아이패드 다 내려놓고 가라. 이것들 여러분들한테 하는 게 아니고 우리 교인들한테 대낮에 그렇게 오고 또 보냐 여러분에게 부탁할게요 침대 올라가실 때 잠자리일 때 제발 스마트폰 놔두고 하세요. 책 좀 들고 가시라고요. 책 좀 5페이지 보다가 졸리면 차 주무세요. 내일 또 읽으면 되잖아요.
 
책은 50세 넘은 여성들은 시집 같은 거 좀 갖고 올라가요 좀 부드러워지게 제 아내가 올해 회갑인데 제가 50대 책을 시집을 딱 사서 제 아내 침대 옆에 놔줬어요. 아직도 아니고 아직도 10년 만에 왜 안 읽냐 그랬더니, 부드러질까 봐 안 읽는데, 저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기독교인이 좀 되자는 거예요. 남자분들 나이가 들면 자꾸 눈 꺼벅꺼벅 거리지고 있지 말고 역사책도 읽어햐 해요. 우리가 배워야 젊어지는 거예요.
 
이 시대에 길이 되어야 될 기독교가 배워야죠 실력을 길러야죠. 여러분 현대 기독교가 이 세상에 길이 되어 주고 있습니까? 우리 현대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의 답이 되어 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이 기독교를 버렸습니까? 버렸다면 왜 버렸어요. 진짜 믿는 사람 같은 사람 별로 없는 거예요. 책 갖고 올라 가시자구요. 책 좀 갖고 하나님 만나는 시간 그래서 예수님은 이 주기도문 가지시길래 이 말씀을 하셨죠. 오장에 너희는 문을 닫고 어디로 들어가래요? 골방으로 가라는 은밀한 기도하래요.
 
여러분 이 말씀이 현대 얼마나 잘 맞는 말씀인지 아세요. 전부 다 지방으로 다 들어가 다 혼자 있어 이것과 골방으로 들어가는 말은 아주 결정적 차이가 있어요. 여러분 골방은 여러분 우리가 다 지금 전부 다 연습 혼자 들어가서 다 이 아이패드 보고 다 인터넷 하던데 여러분 이거는 고립이에요. 아이솔레이션, 모든 사람과 떨어져 혼자 있는 거예요. 주님 말씀하시는 혼자 혼자 있는 이 시간은 솔리튜드 고독이에요. 주님으로 충분해지는 시간이에요. 이 골방을 영어로 클로짓, 이 옷장이라고 번역하는데 어떤 사람은 옷장에다가 그래서 다 치우고 기도 방송을 놓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골방은 어려운 게 아니에요. 여러분 골방이 뭔지 아세요. 영어 성경에 두 가지 번역이 나와요. 그 중에 하나가 클로짓이라고 옷장이라고 하는 것도 있지만 정말 재미있는 영화가 하나 있어요. 인 유어 룸(In your room)! 자기 방에서 엎드리면, 골방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아 왜 여러분 방을 골방으로 만드시길 바래요.
 
어떻게 쥐했듯이 내 마음속에 계속 이루어질 수 있는가 일이 가능한가 훈련해야 된다니까요? 밥을 계속 먹듯이 일 하루에 5분 10분 괜찮아요. 짧아도 괜찮아요. 처음부터 2시간 하면 절대 못 지켜요 내가 10분, 15분 매일 주인님 만나리라. 반드시 지키라구요.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나요? 말씀이 역사하는 거에 대하네 내 잿덩어리를 깨뜨리시는 산산조각 내는 은혜가 그 시간에 임하는 거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솔레이션 고립이 아니라 솔리티오드 주님과 함께 있는 고독이 필요한 거예요. 그때 우리 마음은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굳은 땅들이 은혜가 임하니까 좋은 땅으로 바뀌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이 좋은 땅 옥토가 되면 열매를 맺히는데 왜 좋은 땅이라고 했을지를 제가 설명드리고 마치려고 해요. 여러분 마음 밭이 옥토가 되길 바랍니다. 다음엔 주의 뜻이 이루어져서 옥토(沃土)가 되길 바래요. 여러분 가시덤불 돌짝 밭 그다음에 옥토가 있는데, 이걸 기가 막히게 해석한 분이 있어요.
 
힐무트 틸리케라는 신학자입니다. 왜 좋은 땅이라고 하셨을까? 성경의 길은 대부분 긍정적인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길가는 딱딱한 마음 밭 씨가 안 들어가는 밭을 얘기해요. 부정적으로 쓰여요. 그런데 옥토는 좋은 땅이에요. 왜 길이 아니라 땅이라고 하셨을까? 이거를 풀어낸 사람입니다.
 
질문해볼게요 제가 80년대 여기서 80년도에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는 제일 유명한 길이 종로였어요. 요즘에 서울에서 제일 유명한 길은 어디입니까? 없어요. 테헤란로에요. 전 세계에서 지금 제일 유명한 길 주목받는 길이 어디예요. 월스트리트 세계의 돈이 움직이는 월가입니다. 이거 아세요. 모든 길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길은 이름이 붙어요. 땅은 번호밖에 없습니다.
힐무트 틸리케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좋은 땅은 자기 이름을 내지 않는 것이다.”
 
-자기 이름을 내려고 하지 않을 때 그 마음은 좋은 땅이 된다. 내 이름을 드러낼려고 하는 사람은 길가가 되는 거다 좋은 땅은 어떤 땅인지 아세요. 쥐의 뜻이 다스릴 때 내 이름은 드러내지 마시고 주의 이름만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이 마음을 가진 것을 좋은 땅이라고 성경은 기록한다. 여러분, 번지수만 가지고 사시길 바랍니다. 내 이름 낼려고 동네 돌아다니지 말고 주님이 아시면 됩니다.
 
아멘 우리 마음이 좋은 땅이 될 때 언제냐 주의 뜻에 임하면 저는 제 이름은 이 땅에서 몰라도 됩니다. 저를 통해서 주님이 드러나길 원합니다. 뜻이 한해서 이루어진 것까지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원하나이다. 아멘. 이 기도가 우리의 개인의 기도가 돼서 이번 1주간 악한 생각들과 충만한 데 의도들이 시작될 때, 말씀으로 이기며 네 글자 잘 모르시네요. 초전박살, 아직 네 글자 아멘!~~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는 승리하는 한 주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약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우리의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어 갸야 한다. 죄 덩어리를 깨뜨려 주시길 원해야 하며, 혹시라도 악한 의도가 시작되려고 할 때부터 산산조각 내주시길 간구해야 한다. 한 주간 동안 세상 속에서 죄에서 넘어지는 자가 아니라, 우리를 삼키려 하는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고, 주님 손 붙들고 경건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갈등하고 넘어질 때가 많은 연약한 자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길 소원하며, 오늘 예배를 통해 내 죄 덩어리가 깨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하게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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