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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9월 28일)
설교제목: "날마다 자라는 그릇"
(A Vessel Growing Daily)-믿음의 그릇 시리즈 ㉔
성경본문: 이사야 54:1-5
Growing Daily)"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이성준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헌금찬양: 영광남성중창단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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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이사야 54:1-5,
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2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3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4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5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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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주의 전을 사모하여 예배를 사모하여 나오신 여러분 삶의 모든 짐을 다. 벗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저는 지금 아 믿음의 그릇 시리즈 이사야 강해, 오늘 이제 강해로서는 오늘 24번째인데 믿음의 그 시리즈로는 오늘 다섯 번째가 되겠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지난주일 날 사명 계승의 은혜를 얘기하면서 육신의 목숨은 유통기한이 있지만 사명의 그릇은 유통기한이 없다. 그리고 이 사명의 그릇이 유통 기한이 없이 오래 보존되려면 성장이라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뭘 먹어야 한다고요? ‘성장’이라는 음식을, 그 성장이라는 음식을 중단하는 순간에
 
우리의 사명의 유통 기한이 생각보다. 짧을 수 있다. 성장을 해야다. 오늘 좀 성장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할 텐데 앞에 항아리 보이십니까? 제가 매주는 안 갖고 나옵니다. 근데 항아리 보는데 우리 요런 항아리가 요런 항아리가 그다음에요. 정도로 자라주고 그리고이요. 정도 항아리가 오늘 얘기 점점 더 커 가지고 이런 항아리로 점점 커져야 돼요. 제가 이런 말씀드렸죠. 그릇이 같으면 이해가 되고 그릇이 다르면 오해가 되고 그릇이 같으면 소통이 되고 그릇이 다르면 불통이 되는데 오늘 한 단계 더 올라가 가지고 그릇이 커지면 이해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더 잘 분별해서 사명을 더 잘 실천하는 은혜를 받을 줄로 믿습니다. 그 오늘 어느 정도 가면 오늘 1절에
 
이사야 54:1,
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보니까 출산하지 못한 여인, 잉태하지 못한 여인, 이거 뭐 보통 문제가 아니에요. 그 당시에 산고를 겪지 못한다는 말은이 출산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 말인데 그런 당시의 당시에 이 말도 못 하는 어려움이에요. 고대 근동사에 이이 낳지 못하는 거는 여기 오늘 우리는 이제 적용을 할 때, 뭐 물리적인 것도 있지만 영적인 우리가 적용을 하는데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한 정말 어떻게 보면 꼬리표가 달려 있는 거 같은 그런 분들이 이게 모든게 돌파가 돼 가지고 성장을 해 가지고 노래할지어다. 그랬어요. 또 뒤에 보면 물리적인 예루살렘 성곽이 성읍이 조그만 성읍인데 이 성업이 커져 가지고 성곽 없는 성읍이 돼 가지고 담이 없을 정도로 커지는 그런 은혜를 받게 된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런 은혜가 영적인 바로 이어서 장막터를 넓히는 까지 쭉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먼저 제가 질문할 있어요. 왜 사람들이 자라지 않을까? 그리스도인들이 왜 시간이 지나도 자라지 않을까? 교인 중에 많이 자라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죠? 어 요한계시록에 보면 사데교회에 향하여 사데교회 요한계시록 3장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요한계시록 3:1,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그래서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예수님의 생명이 있으면 생명의 능력을 체험하면 자연스럽게 자라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런데도 안 자라는 분들이 많이 있다요.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시자고요. 어린아이들이 우유병을 어릴 때 우유병 아들 아이들이 우유 먹고 있잖아요. 우유 병 물고 있는 그 모습은 약간 귀여운 모습이에요. 그죠?
 
그런데 나이가 60, 70이 돼 갖고도 우유병을 입에 입에 물고 그래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 정말 좀 기괴한 모습이에요. 그로테스크한 모습이에요. 어떻게 보면 좀 아까? 섬찍한 거예요. 오늘 한국 교회 성도들 특별히 사라 교회 성도들은 마땅히 자랄 때 자랄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오늘날 교회 안에서 자라지 못하고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 남이 크리스천들이 많고 교회 내에 성경 문맹자,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는 거예요. 성경에 대해서 무지한 자로 자라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침체와 혹은 영적인 장기 불안과 그다음에 영적인 겨울 잠을 자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오늘 정신이 번쩍 들어 가지고 한 단계 올라가는 스케일 업 하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이 성장하고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주시는 말씀이에요. 그리고 이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메시아로 모시는 모든 영적인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우리 모두에게 다. 통하는 얘기입니다. 앞에 힘든 일도 많았어요. 그런데 앞에 53장 오늘 54장인데 53장, 54장, 55장이 쭉 연결이 돼 있어요. 53장에 복음이 나와 있어요. 그는 실로 질고를 지고 고난을 받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받고 나음을 입었도다. 할렐루야. 그 복음이 그 복음의 역사를 깨닫고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는 오늘 54장에 잉태하지 못한 여인, 출산하지 못한 사람들이 장막터를 넓히고 확장되고 말뚝을 경고해하고 큰 은혜를 받고 그다음에 이거 계속 자랄 수 있도록 유지를 하기 위하여 55장에 보면 “너희는 나오라 물을 마시라 양식을 얻으라”
 
계속 자라려면 영적으로 성장하는 음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53장의 복음, 54장의 성장, 55장의 성장을 계속 유지하는 것들이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오늘 제가 첫 번째로 생각할 것은 잘한다는 것은 부림 여인이 뭐 하는 여인이 되는 것이다. 잉태하는 것이다.
 
I. 첫 번째, 자란다는 것은 불임 여인이 잉태하는 여인이 되는 것이다(1절).
 
-오늘 대선지자 이사야는 노래하라고 명령하고 있어요. 누구에게?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여인에게, 산고를 겪지 못한 여인에게 노래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때는 불임 여인과 같았다. 이사야 선지자가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뜻이 뭐였어요? 지난주 우리가 말씀을 배운 대로 ‘너는 이방의 빛이 되라’. 마광한 화살, 그리고 날카로운 칼이 되어 가지고 이방의 빛이 되라는 그런 사명과 그런 놀라움을 주셨는데 그걸 제대로 실천하지 못할 때에 마치 영적으로 자녀를 낳지 못하는 불이 많은 여인과 비슷하다. 이스라엘 민족의 현실은 당시 아기를 갖지 못한 여인처럼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나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고대 시대에 불임하는 여인들은 가장 비극적이고도 가슴 아픈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거예요. 자랑할 자식이 없기 때문에 노래할 이유도 없고 찬양할 이유도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 불임 여인이 노래한다는 것은 뭔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에요. 다시 뭐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요? 기적 같은 이게 무슨 뜻이냐? 오늘이 본문의 말씀을 신약의 창으로 해석한 분이 사도 바울이에요. 여러분 뭐 이렇게 성경을 깊이 하는 분들은 성경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아는 분들은 아는 분들이 계시겠습니다만, 신약 성경 갈라디아서 4장 27절에 오늘이 내용을 똑같이 반복하면서 바울이 해석하고 있어요. 갈라디아 4 27절 시작.
 
*갈라디아사 4:27,
27.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이게 어떤 뜻인가 하면 갈라디아서는 율법과 복음의 문제예요. 그리고 갈라디아서는 하늘의 일과 땅의 일들을 선명하게 대조를 하고 있어요. 저기에 잉태하지 못한 자는 누구냐면 그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얘기하는 거예요. 그 사라와 하갈을 비교하면서 그 사라는 본래 잉태하지 못한 사례였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 가지고 성장하고 이렇게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사라가 되어 이삭을 낳고, 열국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그거예요. 그 얘기를 얘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26절에 보면 또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갈라디아사 4:26,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이 말이 뭐 처음 무슨 말인지 잘 몰라요. 무슨 뜻인가 히면, 아래 있는 예루살렘 육적인 예루살렘 그것은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가 예를 들어서 이스마엘이다, 하갈이다. 그 얘기를 하고 그게 율법이에요. 그런데 위에 있는 예루살렘 이것은 성곽 없는 성읍이에요. 완전히 확장되고, 성장하고 살고 장막을 넓히고, 말뚝을 넓히는 이런 모든 얘기들이 다 나와 있어 갖고 율법과 복음의 문제이 땅에 있는 불이 많은 사람들과 또 사례에서 사라로 자라고 이해가 되세요? 자, 이런 내용들 나중에 이제 이 사도 바울이 이걸 깨닫고 너무나 큰 은혜를 받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성곽 없는 도시가 되어 가지고 모든 민족과 모든 족속을 받아들일 만큼 큰 그릇이 된 것이다. 이렇게 그리고 오늘 이런 배경을 가지고,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지금 현재 우리의 상황 자체가 비록 절망적인 상황 소위 불임처럼 열매도 없는 상황 노래할 기운조차 없을지라도, 오늘이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고 꾸준히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불임의 상태에서 잉태와 기적의 출산을 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이 자라게 되면, 하나님이 예배하신 이런 예언의 말씀 그리고 이런 예언의 말씀을 미래에 일어날 일도 현재로 끓여 들려와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찬양하고 기뻐할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어 주신다. 자, 어제도 제가 그런 말씀을 드렸어요. 여러분은 제가 영적으로 자라지 않을 때는 기도했을 때, 하나님 왜 내 기도 안 들어 주시나? 나는 왜 이렇게 어렵나? 이렇게 생각이 될 수도 있는데 우리가 영적으로 잘하고 성장하게 되면 하나님은 어떤 성도의 기도도 낭비하지 않으신다. 어떤 성도의 기도도 다. 응답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무 시간대의 개념에 계시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 여러분 나중에 이제 다. 오늘 말씀 마칠 때 기도도 하겠습니다만, 그때 여러분 마음속에요. 확신이 들어야 돼요. 우리 하나님은 정말로 내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내 인생의 지경을 넓혀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여러분 보세요. 뭐 우리 사회에 되어가는 일들 뭐 정치나 경제나 문화 늘 보면 너무 답답한 일이 많이 있을 수가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어려움도 있으면 생각이 이해가 안 되면 많이 있을 수 있어요. 여러분이 진짜 나를 위하여 무릎 꿇고 기도하고 애국 속하고 이런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내 자신만의 어떤 기도가 아니라, 주님의 나라와 전체를 위하여 나름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그 기도가 결코 낭비되거나 땅에 떨어지거나 응답이 안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시점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어제 아침에 우리가 그런 제가 말씀을 드렸잖아요. 우리가 다. 모르지만 하나님이 사람이 손 대지 아니한 다니엘서 2장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이 손대지 아니한 뜨인돌을 만드셔 갖고, 사람이 손대지 않은 돌을 만드셔 가지고, 모든 우상과 모든 상황을 다. 부서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베풀어 주실 것이다.
 
이게 성장하는 사람들이 갖는 영적으로 자라게 되면 깨닫는 은혜, 손대지 아니한 돌, 뜨인 돌을 통하여 세상에 강력한 권세, 힘과 능력과 우상을 처리하실 것이다. 여러분, 이걸 이제 믿는 것이 이제 성장하는 것인데 오늘 이건 우리 가운데 너무 지쳐서, 기도조차 잉태하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오늘부터 기도로 성장하시길 바라는 것이에요.
 
지금 만약 가족 구원에 있어 가지고 내 남편과 내 자녀를 위해 한 평생을 기도하는데도 전혀 움직임이 없고 응답이 안 보일 때에 영적 불임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일하심은 멈추신 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기대하시는 거예요. 그게 성장하는 거예요. 그래 첫째로 제가 말할씀드린 건 잘한다는 것은 불임하는 여인이 잉태하는 여성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성장하는 그릇은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한다는 거예요. 2절 3절에 보면,
 
II. 두 번째 성장하는 그릇은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한다(2-3).
 
*이사야 54:2-3,
2 네 장막 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3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이게 무슨 그렇게 되면 좋겠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이거는 청류형이 아니고 명령형이에요. 너 그릇 좀 넓히라. 너 장막터를 좀 높이라. 왜냐하면 당시의 족장 시대, 유목민 시대는 이 장막이 너무 중요한 거죠.
 
가족이 좀 적으면 장막이 좀 적고, 가족이 좀 많으면 장막이 점점 커지는 거죠. 오늘 우리의 삶에 영적인 성전과 그릇이 점점점 자라 가지고 여러분의 삶의 장막 안에 100명, 200명이 아니라, 천명, 만 명. 오늘 대한민국의 기도를 통한 기도의 장막 속에 천만 명, 5천만 명.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기도 속에 수억 수십억이 들어올 수 있는 영적인 장막를 넓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한 때는 자녀가 없던 여인이 셀 수 없이 많은 자녀를 낳는 거, 하나님의 백성이 잘하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표요. 그림 언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것이 아브라함 시대, 야곱의 족장 시대 때 다 장막 채고 살았는데 말씀 안 들어 자녀 수가 적으면 적은 장막 많으면 큰 장막, 거기 스가랴식으로 말하면, 얼마나 커지는지 성곽 없는 성읍, 스가랴 2장 4절에, 우리가 옛에 공부했잖아요.
 
*스가랴 2:4,
4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찾아오고 거기 품에 다 안기게 될 것이다. 이제 예루살렘 성읍은 더 이상 물리적인 성읍이 아니라, 하늘의 새 예루살렘의 성읍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이것이 나중에 커져 가지고 요한계시록 7장과 21장에 보니까? 수많은 백성과 족속과 방언이 다 예배하고 성곽 없는 성읍, 새 예루살렘에 다. 들어오니까? 장막 터를 넓힌다.
 
지금 전 세계 인구가 78억이 좀 넘습니다. 한 79억 된다 그러는데, 우리 그 세계 복음주의 계열에 있는 학자들이 연구를 하는데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될까? 한 20억쯤 된다. 그래요. 근데 여기 20억이라는 숫자에는 캐톨릭도 들어가고 또 너미널 크리스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도 들어가고 그냥 전통적으로 나는 그냥 그리스도인이다. 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뭐 이렇게 들 이제 나는 이슬람 사람이 아니다. 라는 것과 비교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사람도 들어가고 그러니까? 복음주의 학자들 가운데 아마 본연한 크리스천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아 주님으로 믿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지금 죽어도 천국 갈 수 있다고 확신한 사람들이 전 세계 얼마나 되겠나,, 보니까? 한 5억 많이 잡아서 8억 그러니까? 전 세계에 복음적인 변화된 된 그리스도인들이 다 쳐봐야 10분의 1이 안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10분의 1이 안 되는 이런 상황 가운데서, 장막 터를 넓혀 가지고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그 영적인 어머니 그 품에 다. 안길 정도로 영적으로 자라가라. 이 말이에요. 제가 이 말씀을 왜 드립니까? 여러분과 저의 믿음의 그릇이 자라 가지고 뭐 할 거예요?
 
믿음이 그 자라 갖고, 여러분들이 성장해 가지고 뭐 할 거예요? 우리가 영적으로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예외가 없어요. 영적으로 성장하고 그릇이 커진 사람은 누구든지 여외가 없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이 내 마음의 사명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에요. 예외가 없어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그 말씀이 남의 말이 아니라, 내 귀에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옛날엔 그냥 스쳐 지나갔어요. 왜 예수님이 그 말씀을 하실까? 다시요. 여러분 자라 갖고 뭐 할 거예요? 여러분 자라 가지고 여러분들 뭐 가정만 어떻게 하고 뭐 이할 여러분 그거는 그냥 그냥 지나 가고, 그건 보통 단계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명, 지상 명령이란 것은 땅의 명령이 아니라, 최고로 지극한 명령 The Great Commission 이에요.
 
이 The Great Commission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여 가지고, Last great commission 예수님의 마지막 최후의 유언이 My first concern, 내 첫 번째 관심사가 되겠다. 이것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삶의 태도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제가 이 말씀을 왜 드리는가? 어느 날 현대 선교의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고 말한 윌리엄 캐리가 영국에서 오늘이 말씀이 2절 3절 보다가 눈이 화등장 만하게 커졌어요. 이게 뭔가? 이 말씀이 뭔가? 이 이 말씀이 오늘 내게 주신 의미가 뭔가? 2절, 3절을 묵상하고, 묵상하고 묵상하다가 깜짝 놀랐어요. 내가 하나님을 섬기고 이 땅에서 주님을 닮아가고 아까? 말한 대로 이사야 53장에 지극한 복음의 은혜를 내가 깨달았다면,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이 이 54장에이 말씀, 이 명령행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야 되겠다.
 
그러고 난 다음에 오고 가는 모든 지난 2, 300년 동안에 수많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헌신자들, 청년들에게 벼락 같은 말씀으로 불멸의 설교가 나왔는데, 그 설교가 뭐냐? 너는 앞으로 하나님 앞에 자라 가지고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윌리엄 캐리-
 
-할렐루야. 여러분 제가 저걸 1976년도에 저걸 처음으로 제가 받고 거의 49년 동안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누구든지 영적으로 성장하면 내 한 몸 가기도 힘들다. 내 삶이 지금 어렵다. 내가 지금 불이 많은 상태다. 내 기도가 응답이 안 되었다. 하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그것을 돌파하고 이 말씀이 내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이 말씀이 내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하나님 나라 전체에 대한 꿈을 꾸고 성장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지금 현재 당면하고 있는 수많은 난재들이 해결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삶에 수많은 난제들이 그 문제만을 해결하겠다고 막 아등바등 달려들어야 해결 잘 안 돼요.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가지고 큰 하나님의 그릇이 되어서 오늘 윌리엄 캐리의 이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는 이것이 여러분의 것으로 고백 되고 기도의 제목이 될 때 삶에 수많은 난관과 삶의 어떤 수많은 짐들이 하나님 앞에서 해결되는 것이에요. 아멘.
 
그래서 여러분 성장이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위대한 일을 시도하는 것이에요. 쉽게 말하면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통한 선교적인 시각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께서 큰 일을 행하실 것을 믿고 넓고 확전된 사고 방식을 갖게 되는 것이에요. 장막들을 넓히고, 준비하고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행하실 것을 기대하는 것이에요. 돌이켜 보면 지난 코로나 시기에 다. 안 되고 다. 문 닫고 그럴 때, 아니야. 코로나 시기에도 우리는 하나님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해야 돼. 그래서 사랑 글로벌 아카데미이 나오고 지금 사랑 글로벌, 어제 보고도 했습니다만, 지금은 300 몇 십 명이 그레이저 스쿨에 있을 수가 없는 거에요.
 
그리고 한국 교회 섬김의 날, 7천 명이 8천 명의 전국에 있는 목사님들이 모여 가지고, 이게 장막터를 넓히는 은혜를 주신 거예요. 세계 복음주의 연맹 총회는 말할 것도 없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는 이것이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와닿을 때, 여러분들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명목상 그리스도인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에서 그것만으로 끝나말 성장하는 그리스도인,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복음주의 계열에 아까? 5억에서 8억이 되는 그 모든 분들을 이벤젤리칼 크리스천(Evangelical Christian)이다. 복음적 크리스천이다. 근데 이제는 한 단계 오래가 올라가야 되겠어요. 복음적 그리스천에서 예수님의 지상 명령 성취를 돕는 그리스도인, 예수님의 지상 명령 성취에 대해서 눈을 크리스천. 그래서 The great 그러니까? 이벤지컬 크리스천(Evangelical Christian)에서, The Great Commission 크리스천으로. 그리고 사랑이 교회는 한 단계 더 올라가 가지고 지상 명령 성취를 돕는 크리스천에서 예수님의 지상 명령 성취를 돕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앞으로 이제 세계 복음명 총회가 끝나고 나면 그 이후에 열매로 하나님께서 수많은 예수님의 지상 명령 성취를 돕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이거는 희한한 일입니다.이 일을 통하여 여러분들 수많은 다시요. 인생의 우수사려들이 처리가 될 것이에요. 잉태하지 못한 여인, 홀로된 여인이 수많은 자녀를 하는 어머니가 되고, 성곽 없는 예루살렘 성이 되듯이, 그래서 전는 앞으로 10월 달 총회 끝나고 나면, 우리 교회 성도들이 지방으로 가거나 아니면 해외로 이사갈 때 모든 성도들에게 제가 The Great Commission Disciples,
 
사랑이 좀 반응 좀 하세요. 예. ‘Sarang Great Commission Disciples’, S,G,C,D,,, ‘사랑 지상 명령 제자들’, 가는 분들에게 제가 이제 패를 하나 다. 만들어 드릴 거예요. 소위 뭐 일반적으로 말하 평신도 선교사로 이게 다. 하나 만들어 드릴 거예요. 하나. 그래서 SGCD 물론 만들어 패를 드릴 때, 언제 드리는가? 토비새에, 새벽에 때 드릴 거예요. 토비새에 나오는 분에게 드릴 거예요. 예. 그런데 사랑의 교회 그레이트 커미션 디사이플즈 라고 이 패를 드릴 때, 이 패에 어떤 분들은 100호, 어떤 분들은 200호, 어떤 분들은 뭐 500호, 어떤 분들은 1천호, 2천호 이래 될 거예요. 그런 번호가 될 거예요. 지상 명령 성취 제자들. 예. 크리스천 정도가 아니라 성장하여 사랑 지상 명령 제자들, 이것이 확장되어 가지고 우리 교회는 앞으로 성장하는 어린이들도 어린이 집사 제도 그다음에 영적 성인식, 또 우리 청년대학들의 캠퍼스 선교사들, 청소년 집사님들 대학 청년부 리더들 요즘은 우리 조부모들 있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들 우리 조부모들은 아이들 제자 훈련을 하는데 같이 시키기도 하고, 그 조부모님들이 세대 계승 세대, 계승의 선교사로 주일 학교 파송하고, 소위 레가시 선교사로 그것이 다 S.G.C.D에 다. 포함될 것입니다. 그래서 3절 보십시오. 3절이는 크게 보겠습니다.
 
*이사야 54:3,
3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할렐루야,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해 가지고 영적 전투를 잘 감당하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서 사탄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물리쳐 가지고 사탄의 이데올르기 거짓 신들 잘못된 가치 체계 잘못된 사거 방식 이걸 다. 무너뜨리는 사탄의 종노릇에서 다. 해방될 수 있도록 우리를 성숙의 자리에 이끌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세계복음 총회 이후에 우리 교회는 한 단계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는 새로운 성장판의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자, 제가 첫 번째로 참된 성장은 불리한 여인이 잉태한 여인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참된 성장은 하나님께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대한 일을 시도한다는 것이고, 세 번째 참된 성장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수치와 부끄러움이 물러가게 되는 겁니다.
 
III. 세 번째, 참된 성장이 있으면 수치와 부끄러움이 물러간다(4-5).
-4절에 수치의 때가 끝났다고 그랬어요. 4절 크게 우리 합독 합니다.
 
*이사야 54:4-5,
4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5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5절도 계속합시다. 5절. 5절 계속합시다. 4절 5절에서 뭐라고 말씀하는가? 참된 성장 있으면 수치가 물러가고 주님이 우리의 남편이 되어 주신다는 것이에요. 오늘이 말씀 여러분들 확신하고 순전하게 순수하게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고 기도 제목으로 삼고, 마음의 소원을 갖고 사명처럼 이렇게 여러분들 집중하면 여러분들의 생에 있는 수많은 수치와 부끄러움을 물러가게 주실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 확신합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 오늘 1, 2, 3, 4부에 참여하신 모든 성도들, 또 방송으로 들어오시는 모든 성도들이 말씀을 그대로 순절하게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 희한하게도 여러분의 삶에 수치와 부끄러움의 돌이 다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요, 이것이 신비한 것이요. 이것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덮어 주신 하나님의 열매가 되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그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가 당할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을 대신 다. 당해 주셨기 때문에, 앞에 53장 4절에 잘 아시는 대로 같이 보지요.
 
*이사야 53:4,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우리가 받는 모든 수치가 힘을 잃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는 나이가 너희 남편이라. 주님 우리 남편이라. 그 뭐 만군의 여와 되시고 다. 남편이라 남의 편이 아니라 남편이라. 어제 밤에 제가 우리 사람 뭐 물어봤어요. 남편은 뭐 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사람이 남편은 지켜주고, 보호해 주고, 공급해 주는게 남편이라고... 제가 잘 안 그러는가 봐요. 그러니까? 그 지켜주고 보호해 주고 공급해 준다는 것이에요. 이거는 남녀 관계 문제만 아니에요.이 영적으로 볼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신부예요. 남자들도 주님의 신부가 되는 것이에요.
주님이 우리를 신부로 여기신다는 우리의 남편이란 것은, 주님이 우리를 신부로 여기신다는 뜻이에요. 이것이 신약에서 놀랍게 묘사되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 우리의 신랑이고 신랑이 갖는 최고의 역할은 우리로 하여금 흠과 티가 없는 거룩함에 티가 없는 신부가 되는 거예요. 흠과 티가 없는 신부가 되는 거 신비한 것이고, 이런 성장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이 우리의 남편이 되어 주셔서 우리의 수치(羞恥)와 부끄러움을 물러가게 하시고 그 수치와 부끄러움을 주님이 대신 당하시고 오늘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이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제일 중요한 거 이제 얘기하겠습니다. 적용입니다. 어떻게 계속해서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늘 액션 플랜으로 두 가지를 하겠어요.
 
IV. 적용, 어떻게 계속해서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첫째, 주님 앞에서는 그날까지 성과가 없는 성읍으로, 잉태하는 여인으로 사래에서 사라로, 주님의 지상 명령을 내 꿈으로, 내 사명으로, 그래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 어떻게 끝까지 그렇게 하면 되나? 할 수 있나?
첫째는 주님 앞에서는 은혜 받는 데는 선수가 돼야 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계속 성장하려면 은혜가 뭔지를 더 깊이 알아야 돼요. 늘 은혜, 은혜, 얘기하지만 여러분 은혜는 종착력이 없어요. 은혜는 오늘 받은 은혜가 끝까지 가는 거야. 오늘 데이 바이데이 날마다.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이에요. 은혜에 관한 우리는 계속 받아야만 되는 것이에요. 은혜는 날마다. 솟는 날마다 솟는 샘물이 되어야 돼요. 그 은혜의 세계는 줌마를 타고 아무리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은혜의 평온이 펼쳐져 있는 것이에요.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가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을 하나님의 은혜는 깊은 바다처럼 무한 지평처럼 인피니트, 무한 지평처럼 우리 앞에 끝이 끝이 없고 한이 없는 거예요. 은혜에 관해서 우리는 세상적인 잣대를 가지고 평가면 안 돼요. 무슨 말이냐? 세상 사람들은 뭘 있으면 퍼내면 퍼낼수록 더 마르게 되는 거죠.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더 바닥이 드러나게 되는 거죠. 이게 세상의 물리적인 법칙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도 이런 세상의 법칙으로 판단하는 어리석은 우울을 범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희한한 거예요. 은혜는 받으면 받을수록 더 많아지는 거예요. 아니, 은혜 받은 거예요. 아는 사람들 은혜는 받으면 받을수록 더 사모하게 되는 것이에요. 왜? 은혜를 아니까, 은혜의 본질이 뭔지를 아니까? 저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요. 그래서 있는 자는 더 있어 지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다. 빼 것이 우리가 운동해 보면 알지만 힘은 쓰면 쓸수록 더 나와요. 이게 은혜의 법칙이에요. 우리 교회는 은상가은, 은혜 위에 은혜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이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희한합니다. 이런 것 때문에 베드로 사도가 우리에게 어떻게 강력하게 명령하는 것인데 베드로서 3장 18절에 마지막 마지막 베드로의 마지막 고백인데,
*베드로후서 3:18,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그리스도의 뭐예요? 은혜와 그러 하는 지식에서 뭐예요? 자라가라. 자라 가려면 이 은혜를 유지해야 되는 거예요. 명령하는 거예요.이 성장을 위하여 자라가기 위하여 매일매일 은혜의 물을 마셔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건강하게 잘하려면 공급 은혜의 음식을 공급받고 운동을 해야 되고, 그다음에 우리가 스트레스 받지 말아야 되고, 숙면을 취해야 되고, 여러분 밤에 잠자기 전에 스트레스 팍 팍 받고 수많은 짐들을 갖고 어떻게 잡니까? 그런데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그 순간 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에요.하나님께 다. 맡기면 하나님께 완전히 막 전적 의탁을 하면 사람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것이에요.
사람 때문에 막 살고 죽고 그렇게 하지 않아요. 하나님께 맡기는 거예요. 은혜의 물을 먹고 은혜의 양식을 날마다. 마시고 날마다. 말씀을 통하여 그 은혜의 거룩한 은혜의 물, 음식, 은혜, 운동, 은혜를 위한 거룩한 루틴을 하는 거예요. 감사하고 오죽하면 오죽하면 바울 사도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러분 잘 아시지만 그렇게 고백하겠어요. 패커 같은 목사님은 뭐라고 말씀하는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리스도인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결코 성장할 수 없다" - -J.I.패커-
 
-오늘 이런 은혜 받는데 선수가 되는 축복을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은혜 받으면 내가 뭘 치우고 뭘 버리고 뭘 처리해야 할지도 깨닫게 되고, 은혜 없는 사람들이 갖는 시기와 비방과 공격으로부터 다 처리될 수 있어요. 나라 되어 가는 것, 세상 되어 가는 것, 마음에 안 드는 것, 수많은 일들이 있어도 오늘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여러분들 풍덩 빠지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난 주일 주 중에 제가 저녁에 제가 혼자서 좀 건 좀 걸었어요. 우리 제 사는 아파트 근처를 좀 걸었어요. 걷는데 갑자기 제가 마음속에 찬송이 터져 나왔어요.
 
속죄하신 구세주를 내가 찬송하리라. 그 가사 고마우신 구세주를 내가 찬송하리라. 그 찬송을 하고 그신 사랑 찬양에 나의 죄 사하신 그분 앞에 속죄하신 고마우신 구세주를 내가 찬송하려 하는데 갑자기 그냥 눈물이 막 나오는 거예요. 목이 매이는 것이에요. 나는 뭔데? 내가 뭔데? 저는 그 찬송을 옛날 찬송은 35장이었고, 지금 298장인가, 그런데 옛날 제가 개척하고 한 10년 동안에 교회에 중요한 일이 있다든지, 어떤 예식을 하다든지, 중요한 순간에는 항상 찬송 속죄하신 구세주를 많이 했어요. 고마우신 구세주를 내가 찬송을 내가 뭔데 하나님이 이런 일을 주시라.
 
저에게도 수많은 난제와 난관들이 있지만 내가 뭔데 온 세상을 향 향한 비전을 가지고 주님을 향하여 쓰임 받도록 만들어 주시나 불이 임하는 거예요. 불임이 오늘 회중 찬송 마칠 때 찬송할 때 고마우신 구세주를 내가 찬송하려 할 때,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아니 은혜의 불이 임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은혜에 있는 것이에요. 은혜 받는 데는 선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계속 우리의 그릇이 자라게 되는 것이에요. 한 가지 더 액션 플랜.
 
사람이 성장하려면 다른 길이 없어요. 은혜 받고 좋은 음식 먹고 은혜의 음식 먹고 좋은 은혜의 물을 마시고 좋은 은혜 운동을 하고 이건 우리가 개인적으로 하는 거예요. 그런데 또 하나,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뭐냐? 말씀과 봉사로 다른 영혼을 섬겨야 되는 것이에요. 말씀과 봉사로 다른 영혼을 섬기지 않으면 우리가 은혜를 유지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계속 자랄 수가 없어요. 우리 교회는 처음 오신 분들의 새 가족 모임을 하고, 그다음 제자 훈련을 하고, 그다음 순장의 역할을 하고, 우리 교회 주일 교사 청년대학불 리더들 또 우리 아이들 선교사 파송 이런 식으로 다. 우리 아이들 캠퍼스 선교사 파송하고 다 이렇게 이제 하는데, 여러분 그걸 하던 걸 멈추면요. 내가 은혜 유지하기가 힘들어요. 그걸 하다가 멈추면 시험 들기가 십상이에요. 어떤 방식이든지 어제 우리 이웃 사랑 선교부에서 그릇 얘기하면서 어제 발표했습니다.
 
우리 교회 수많은 사역들에서 집중적인 많은 섬김과 봉사, 말씀과 봉사로 영혼을 섬기는 그런 일들이 많아요. 그걸 안 하면 그걸 안 하면 자랄 수가 없어요. 오늘 한국과 현대 교회 안에는 훈련을 하긴 하지만 제자 삼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아요. 중직 자들로 세워진 분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여러분들 이렇게 기도하셔야 돼요.
 
하나님 아버지 형편과 처지가 힘들어 가지고 말씀과 봉사로 이웃을 섬길 수 없다 하지라도 주님 불쌍해 주셔 갖고 잉태하는 여인이 되어 주님을 찬양하게 하여 주십시오. 내 장막 터를 넓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경을 넓히게 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압니까? 야베스도 이걸 알고 성장해. 주여 내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야베스의 기도에 나오지요? 내 지경을 넓. 지경을 넓힌다는 무슨 뜻이에요?
 
하나님이 지경을 넓혀 가지고 주님 나를 불쌍히 주셔 갖고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이런 뜻이에요. 영적으로 성장하면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는 것이에요. 소위 세컨 찬스를 주시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자라서 뭐 할 겁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기회, 새로운 찬스를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상 명령 성취를 위한 하나님의 신실한 도구가 될 때에 다시오. 여러분과 저에게 있는 수많은 삶의 난제들을 주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오늘 본당 별관 방송으로 들어오시는 모든 분들 여러분, 여러분들의 지경을 넓혀 주셔 갖고, 세컨 찬스를 주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은혜 받는 데는 선수가 되도록 은혜 위에 은혜를 덧입혀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요약
우리는 날마다 봉사하며 은혜 받는 데는 선수가 되어 믿음이 성장해야 하며, 잉태하지 못하던 자가 열국의 어머니가 되는 기적을 출산하는 인생이 되기를 소원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위해 ‘사랑 지상명령 제자들(SaRang Great Commission Disciples)’로 헌신할 때, 모든 수치는 물러가고, 장막 터는 성곽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넓어지게 하여서, 우리 사랑의교회가 강단기도회와 전교인 금식기도로 ‘10.27 세계/한국교회 섬김의 날’을 준비할 때, 경탄할 만한 세계교회 부흥의 성장판이 활짝 열리게 되기를 간절히 간구하자.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적은 그릇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큰 그릇으로 잘 자라고 성장하게 되어 개인의 장막 터가 넓어지고 말뚝을 경고하게 체험 받게 하여 주시고 온 성도들 성장을 통하여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을 물러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온 성도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는 하나님의 신실한 성장에 그릇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세계복음주의연맹 총회 WEA를 통하여 사랑의 교회가 사랑 그레이트 커미션 디사이플즈로, 시대를 활짝 열게 하시고 세계 교회의 부흥의 성장판에 열릴 수 있도록 우리 온 성도들이 신실한 믿음의 그릇으로 자라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간절히 기도 올리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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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9월 21일)
제목: "사명의 그릇을 계승합시다"
성경본문: 이사야 45:22, 49:5-7
찬양인도: 쉐키나( 오준석 부목사님), 호산나 찬양대
대표기도: 서학수 장로님 (2부)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 2부)
헌금송: 김순희(2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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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5:22, 49:5-7,
22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이사야 49:5-7,
5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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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아멘. 믿음의 그런 시리즈를 하고 있는데 제가 온 교회가 어린아이부터 시작해서 우리 청소년들 또 대학 청년부, 대청부 그리고 우리 모든 다락방들 또 포에버에 이르기까지 적용을 하는데요. 요즘 믿음의 그런 시리즈를 통하여 은혜가 많다. 적다. 어떻게 하세요? 참 다락방마다. 귀한 역사가 일어나는 사실을 제가 듣고 잠시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 드렸습니다. 이제 완연한 가을이 되었죠. 예. 가을은 우리 결실의 계절인데, 우리가 믿음으로 믿음의 그릇이 작은 그릇이 잘 주님이 원하신 그릇으로 잘 용량을 갖추 가지고 아름다운 결실이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일날 ‘비전의 그릇’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죠? 예, 오늘은 그 비전의 그릇에 뭘 담을 것인가? ‘사명’에 관한 말씀을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뭐에 관한 말씀이라고요? 사명. 미션에 관한. 네. 평생 붙잡을 수 있는 사명.

저는 오늘이 사명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가 어릴 때 청소년 시기를 좀 생각해 보았어요. 한때 저는 청소년 시기에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를 보내고 저는 청소년 시기가 늘 재빛 어두움이었어요. 우리 부처는 장로교 12신조를 주일 예배 시작하기 전에이 하시고 저는 그 어 그 율법이나 또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를 비춰 보니까? 나는 늘 부족하고 이래서 어떨 때는 참 떼굴떼굴 구르고 나는 하나님이 무서운 하나님이고 율법의 하나님이고 노하시는 하나님이고 그래서 늘 늘 힘들었어요.근데 어느 날, 오늘 45장 22절 여러분들이 읽었더니,

*이사야 45:22,
22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이 말씀을 제가 보는 순간 땅끝에 모든 백성아 나를 뭐하라고요? 악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시라 다른 이가 없음이라. 그리고 이게 중요한 저의 삶의 전환의 계기가 되었고 또 그 이후에 저는 사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오늘이 말씀이 저의 삶에 수많은 거친 인생길 가운데 크고 작은 광풍을 만나면서도 사명의 불이 꺼지지 않고 불꽃 같은 사명으로 그 과정들을 견디게 하시고 평생 붙잡을 수 있는 사명의 깃발, 평생 부를 수 있는 사명의 찬양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제가 가졌던 주제가 뭐였냐면 제 라이프 슬로건이 뭐였냐면 ‘사명이 목숨보다 중요하다’.

가만히 계실 거예요. 예. 제가 23년간을 외쳐 왔는데 ‘사명이 목숨보다 중요하다’. 아멘. 아멘. 그리고 그때 깨달은 은혜는 우리의 목숨은 유통 기한이 있지만 사명은 유통 기한이 없다. ‘No expiration date’ ‘유통 기한이 없다’. 그래서 사명이 목숨보다. 중요한이 말씀은 저에게 태상 같은 무게가 담겨 진 내용이었고 그리고 그 이후에 사명 생(生), 사명 사(死), 사명, 사명으로 죽고, 사명으로 산다. 사명으로 살고 죽는다. 자연스럽게 살아서는 충성, 죽어서는 영광. 이것이 저에게 이제 믿음의 그릇을 키웠고 그리고이 사명이 계속 확장되기 위하여 사명의 그릇은 계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제가 마음에 소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배경 중에 하나가 첫 번째 스펄 존 목사님을 통한 사명 계승이 저에게는 중요했습니다.

I. 첫 번째, 스펄전을 통한 사명 계승.

-제가 사명 자로 살고 사명을 계승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큰 도움이 된 분이 설교의 황태자 찰스 하던 스펄전 목사님입니다. 사람에게는 직접 멘토가 있고 간접 멘토가 있습니다. 저에게 직접 멘토는 우리 옥한흠 목사님이나 성준에 계시는 박희 목사님 같은 분이 저의 직접 멘토이기를 하고 멘토이신데 또 우리가 책을 통하여 또 우리가 신앙의 유산을 통하여 저의 간접 멘토인다. 멘토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이 스펼전 목사님인데 그 스펄전 목사님은 제가 제 사무실에도 스펄전 목사님의 사진이 있고 밑에도 있고, 위에도 있고, 그다음에 여기 벽에다가 여기 제가 들어오는 벽에 스펄전 목사님의 어떤 그 슬로건들이 있고 근데 그 이유가 뭐냐면 제가 10대 후반 질풍노도 시기 어려울 때, 스펄전 목사님의 생애라는 책을 읽는데, 아 참 제가 참 비슷한 감정을 느꼈어요. 그분의 아버님도 목사님이시고 할아버님도 목사님이시고 그리고 그분도 그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굉장한 어떤 그 영적인 아픔, 그다음에 재 빛 어둠, 그가 쓴 글에 의하면 그의 삶의 풍경이 자신의 죄성을 생각하니까? 한계에 부닥쳐서 극도의 좌절을 가졌는데 그의 영혼이 어두워졌고 그의 풍경은 은 검은색, 황량함 잎이 다. 떨어진 메마른 가지였다. 어디를 봐도 죽은 것 같은 환경이었다. 근데 어느 날이 유명한 일화인데 오늘 처음 하는데 한국 교회 많이 알려진 일화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는 날 아주 아주 폭설이 오는 날 그 아버지가 시무하던 교회를 가야 되는데, 너무 눈이 많이 내려 가지고 폭설이 너무 심해서 길가 그냥 옆에 있는 교회에 들어가게 됩니다. 조그만한 교회 들어갔어요. 가니까? 열몇 명의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 거예요. 마침 그날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이 안 계시고 무명의 할아버지 한 분이 강단에 올라가 가지고 설교를 하는데 자신은 지식이 많이 없어 갖고 전할 것은 성경 말씀밖에 없다. 그렇게 하면서 오늘 본문 22절 땅 끝에 모든 백성아 나를 악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이가 없음이니라. 짧게 말씀을 전했어요. 발음도 정확하지 않은 할아버지였는데 뭐라고 얘기하냐?

*이사야 45:22,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여러분 하나님을 악망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데 자격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데 무슨 큰 요구되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온몸을 다. 다. 쓰는 것 발을 높여 들고 온몸을 쓰는 것도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진실로 저스트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할아버지가 자 바라봅시다. 보라, 보라, 보라 그러면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10분 정도 10분 정도 가만히 있었어요. 그 할아버지가 가만히 있다가 스펄전, 청중 가운데 있는 스펄전을 지목하면서 “젊은이여! 그대는 어떤 근심거리가 있는가?”

여러분이 설교하면서 설교자가 청중을 지목하는 그거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지금 다 제가 지목해 볼까요? 이거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근데 스포츠는 낙심이 돼 가지고 스스로 좌절해 가지고 거기도 푹 숙이고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는데,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 문맹의 할아버지가 젊은이 그대여 오늘이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남은 인생은 참으로 불행한 인생이 될 거라고 그러면서 갑자기 대포알처럼 크게 외치는 거예요. “젊은이, 왜 예수를 바라보지 않으시느냐고 왜 악망 하지 않느냐”고 그 순간 그 스펄전은 너무 놀라 가지고, 깜짝 놀라 가지고 예수님을 진실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바라보는 그 순간, 스펄전에 비참하고 새까만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흠없고 순전한 보혈로 덮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덮어지는 순간 좌절의 먹구름이 사라지고, 영적인 시각이 회복되면서 기쁨이 솟았다는 거예요. 구름은 물러가고 태양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 스펄전은 사명자가 되어 가지고 주님 앞에 그날까지 한결같이 평생 달려갔는데, 주님을 바라보는 그 순간이 영적인 터닝 포인트, 분기점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여러분 여기에 어떤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악망하고 바라보는 데는 무슨 대학 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라보기 위해서 무슨 사법고시를 패스할 필요가 없습니다. 특권이나 지위나 정치적 권세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높은 우월성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수악하고 비참하고 힘든 죄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다른 거 뭘 못 해도 바라볼 수는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세상에서 우리가 아무리 모자라고 부족하다. 할지라도 바라볼 수는 있는 거예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니에요. 우리 아이들도 바라볼 수 있고 할아버지도 바라볼 수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바라보는 것을 위하여 무슨 큰 의식의 제사 신비적 제사 의식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무슨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단순히 바라보면 되는 거예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오늘이 시대는 이 바라보는 단순히 바라보는 이 거룩한 단순함의 시대가 사라졌어요. 거룩한 단순함이 사라진 시대가 됐어요. 제가 오늘이 그릇의 용량을 얘기할 때, 적은 그릇이 큰 그릇이 된다고 했을 때 여러분들은 아마 여러 가지 복잡하게 생각하는 건 많이 있을 거예요. 어떻게 하면 큰 그릇되나면 복잡하게 생각 있을지 몰라요. 그런데 여러분 바라보세요.

모세 율법을 바라보지 말고 모세 율법은 바라보면 율법주의자가 됩니다. 그럴 때 시내 산의 번개와 천둥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율법을 율법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내 마음에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위대한 인물들이나 예언자들 교회 겉 모습만 바라보지 마세요. 어떤 규정들 전통 의식 이런 것만 신경 쓰는 분들이 계세요. 어떤 사람은 뭘 바라보는가? 주위에 잘못된 것들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가 이런 사람 일컬어서 미스터 폴트 파인더, 남의 약점만 바라보는 분들, 주님은 오늘도 그저 바라보라. 거룩한 단순함을 가지고 바라보라. 주님은 우리에게 더 깊이 알아라. 뭐 더 헌신하라. 뭐 더 깊이 더 이게 아니에요. 단순히 바라보라. 악망하라. 오죽하면 광야에서 사람들이 다. 죽게 됐어요.

그런데 놋뱀을 들고 이 놋뱀만 바라보라. 사람들이 생각했어요. 놋뱀 바라본다고 낫겠냐? 치유 받으라. 더 어떻게 해봐라. 말하지 아니하고 놋뱀을 바라보기만 하라. 예수님이 요한복음 3장에 놀라운 구원의 신비를 얘기하고 우리의 인생의 새로운 영적인 세계를 말씀하실 때 모세의 시대에 놋뱀이 들려진 것처럼 인자가 들려져야 하리니 바라보라. 바라볼 때 그때 그 거친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뚝뚝 떨어지는 보혈을 볼 수가 있을 것이에요.

오늘이 자리에 참석하신 젊은이 젊은이들이요. 왜 주님을 바라보지 않습니까? 연세 드신 어른들이여, 왜 주님을 바라보지 않습니까? 돈 없이 값없이 오고 교육을 덜 받아도 오고, 도덕적으로 우수하지 않아도 깨어지고 부서지는 존재라도 바라볼 수가 있는 것이에요.

우리는 어떤 다 타종교의 윤회를 믿는 것이 아니에요. 윤회를 믿는 사람들 이사서 열심히 잘 살고 그러면 나중에 동물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값을 값을 받는 우리는 그럴 자극도 없어요. 청소년 시기에 제가 그 그 어려움 가운데 내 마음이 마치 마치 완전히 무너진 건데 주님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의 자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이는 능력이 우리를 덮어 주시는 것이에요. 제가 왜 이렇게까지 이걸 강조하느냐면 주님을 진실로 제대로 바라보게 되면, 하나님이 자연스럽게 바라보는 거로 끝나지 아니하고 그걸 바라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여러분들에게 사명을 주시는 것이에요. 평생 우리가 한결같이 지속할 수 있는 사명을 주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희한하게도 주님을 제대로 바라보는 그 순간 시골에 무학 한 할머니도, 저 시골에 공부하지 않은 할머니도 이상하게도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그 설레임을 가지고 뭔가를 주시는 거예요. 그것이 뭐냐? 너로 이방의 빛이 되라. 아니 내 집안의 빛도 안 되고 있는데 내 한 몸 가기도 힘든데 주님은 너로 이방의 빛이 되라.

달동네, 가난한 달동네 청년들에게도 내일에 아무런 계획이 없고 내일에 아무런 미래가 없는 보장이 안 되는 그런 젊은이들에게도 주님을 제대로 바라보면, 이방의 빛이 되는 비전을 주시는 것이에요. 아멘. 골방에서 열방을 향하여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에요. 아멘. 희한한 거예요.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사명자의 삶을 사는 신비한 것을 체험하는 것이에요. 이런 걸 제가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아까? 거룩한 단순함이라 말씀을 드렸지만 거룩한 단순함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육신의 본능대로 살지 아니하고 사명 본능으로 살게 되는 것이에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이 아니라, 사명자의 사명 본능을 갖게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 본능을 일깨워 주셔 가지고 사명에 우리의 인생의 채널이 맞춰지게 하시고 우리의 사명이 우리의 안테나가 맞춰져 가지고 거기에 걸맞게 우리의 그릇이 확장되도록 은혜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제가 그 주님을 바라 45장이 은혜를 받게 되니까?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들어 감찰하사 자기를 향하여 전심을 향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신다. 역대하 16장에,

*역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말씀이 청년 시절부터 지난 50여년 동안 전심으로 자기를 행하는 자에게 뭘 한다고요? 능력을 베푸신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여기에서 제가 ‘사람에게는 진심, 하나님께는 전심’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오지 않았나?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어 감찰하사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가지고 집중하는 자에게는 뭘 베푸시나니 능력을 주십니다. The power of God. 하나님의 능력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아멘.

오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자기를 악망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사명 본능이 된 자에게 이 은혜가 있게 하시고 이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계승해야만 할 것입니다. 제가 첫 번째로 지금 스펄전을 통한 사명 계승을 말씀을 드리고, 두 번째는 이제 본문을 가지고 두 번째 본문을 가지고 이방의 빛이 되는 사명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II. 두 번째, 이방의 빛이 되는 사명자.

-오늘 49장 5절부터 7절까지 여러분들이 읽었습니다. 저는 아까? 45장 22절에 악망하라. 바라보라. 그 이후에 이사야서에 읽었는데, 갑자기? 49장 오늘이 본문에 와 가지고 1절 7절 특별히 6절에 와 가지고 눈이 눈이 부릅떠졌어요. 옛날 말로 눈이 화등잔(華燈盞) 했어요. 눈이 커졌어요. 아마 저뿐만 누구나 비슷할 거예요. 49장 6절 뒷부분에,

*이사야 49:6,
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이걸 깨닫고 저뿐만 아니에요. 사도행전 13장 4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말이에요. 놀라운 말씀하는 거예요. 시작.

*사도행전 13:47,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1세기에 지금처럼 무슨 비행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1세기에 지금처럼 무슨 뭐 자동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하루 종일 걸어가 봐야 40km, 그거 한 30 그게 하루 할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그러니까? 1세기의 고대 근동 사회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커요. 사도 바울은 마음이 좁은 사람이었어.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다메섹에 가지고 사람을 때려 죽이려고 하는 막 하는 그런 사람이었어. 근데 사도 바울이 사명을 받게 되니까?

오늘 이사야가 고백한 이 내용이 고대로 그대로 저도 그거 받고 그대로 그대로 49장 6절 아까? 45장 22절에 땅 끝에 모든 백성들아, 예. 땅끝에 모든 백성들아. 그리고 49장 오늘 6절 뒤에 보니까? 뭐라고 했어요?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군을 베어 뭐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시골에 무학한 할머니도, 가난한 달동네 젊은이도, 상관이 없이 이 사명을 갖게 되면 모두가 다. 희한하게도 내 한 몸 가기도 힘들지만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으라. 이 사명 앞에 가슴이 막 뛰는 거예요. 아멘. 예.이이 이이 비준 앞에 그리고 이사야 49장은 이사야 뒷부분에 뭐냐면 종의 노래라 그래 가지고 내 종의 노래 그중에이 내용은 이사야 49장은 놀라운 선교의 장이고, 선교 사명의 장이에요. 여기에 대해서 땅끝까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는 말 족하지 않으시고 땅 끝까지 우리가 사명자가 되는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 오늘 믿음의 그 책자 오늘 70페이지부터 쭉 나오는데 자세하게 적어 놓았어요. 5절에, 여기 5절에 오늘 본문 5절에 뭐라고 하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태중에서부터 사명자로 부르시고(5절),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의 사명자로 세우시며(6절),
어떤 상황에서도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명자로 삼으셨다(7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언제부터 태중에서부터, 뭐로 부르시고요? 사명자로 부르시고, 6절에 보니까? 오늘 6절 해석하면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의 사명자로 부르시고, 할렐루야 여러분들 빛의 사명자로 불러주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왜냐면 예수님 자체가 빛이세요. 주님 뭐라 말씀? I am the light of the world. 나는 세상의 빛이다. 그의 세상에 빛인 주님을 우리가 주님을 깨닫는 그 순간 우리가 빛의 사명자로 세워지는 것이에요. 그리고 7절에 어떤 상황에서도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명자로 삼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이사야 49:6
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내가 너를 이방을 그리고 더 놀라운 거는 49장 6절 앞부분에 뭐라고,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킨다. 그랬어요. 당시 이스라엘 나라는 남북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북쪽은 열 지파, 남쪽은 두 지파 완전히 완전히 이렇게 완전히 이렇게 찢어져 있었어요. 그런데 이방의 빛을 삼고 이 사명자가 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야곱의 12 지파가 온전히 회복된다. 그 말이에요. 우리 사명자가 되는 순간, 여러분들의 가정 가정에 수많은 찢어진 부분들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남북 문제가 우리 사우스 코리아, 노스 코리아, 우리 남북이 이렇게 찢어지고 이렇게 나눠져 있는데 오늘이 말씀이 되이 말씀이 여러분의 것으로 사명을 받고 여러분이 되어 가지고 집중하고 기도하면 오늘이 자리에 계시는 여러분들 때문에 남북이 복음적으로 복음적 평화 통일를 이루리라고 믿는 것이에요. 이게 사명이에요. 사명, 오늘이 시대는 즉시적이고, 즉흥적이고, 직물적인 시대예요.

오늘이 시대는 한 사람이 사명을 가지고 한 생애를 관통하기가 쉽지 않아요. 스마트폰 보면 거기를 보면요. 그 전부 다. 전부 다. 중독이 됐어요. 한 시간 두 시간씩 그걸 보는데, 그거 보고 난 다음에 여러분 다. 까먹어. 뭘 봤는지 몰라. 그런데 다까. 그러니까? 오늘이 시대가 뭐예요? 즉시적이고, 즉흥적이고, 직물적인 시대예요. 그런데 우리가 이 사명자로 우리가 무장이 되면 내가 너로 이방의 빛을 삼다는 것으로 사명자로 무장이 되면 어떤 비바람이 오더라도 어떤 어둠이 있더라도 한 생애를 집중하고 관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제가 다락방 교재 76페이지에다가 등대를 갖다. 그려 놨어요. 여기다가 여러분 등대, 그려나 여기에 있어요. 안 믿는 거 같다고 다시 등대가 뭡니까? 어둠을 밝히는 거예요. 인생의 어둠움을 관통하는 거예요. 등대가 뭡니까? 비바람 폭풍이 올 때에 길을 제시하시는 거예요. 삶의 비바람과 폭우가 왔을 때 우리의 삶을 제대로 관통하게 만드는 거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이 가능하다는 것이야. 아시겠어? 아멘. 사명이. 그래서 여러분 이걸 좀 더 정리하면 5절에 보니까? 언제부터 우리를 사명자로 부르셨는가? 다시 한번 태중에서부터 선택하셨다. 누가 전능하신 하나님? 근원이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6절에 보니까? 무엇을 위하여 열방의 구원을 위하여 7절에 보니까? 어떻게 모든 방해물들 어떤 상황에서도, 할렐루야~ 아멘,

첫 번째, 스펄전 통한 사명 계승,
두 번째, 오늘 우리는 이방의 빛이 되는 사명
세 번째 이 사명은 계승되어야 한다.

III. 세 번째, 사명이 계승되어야 한다.

-사명은 계승되어야 합니다. 사명은 우리 세대에 끝나면 안 됩니다. 선대의 사명이 반드시 다음 세대로 이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대가 사명으로 살지 않으면 다음 세대도 사명으로 살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선대가 사명으로 살지 않으면 다음 세대 끝나는 것입니다. 사명이 사망하는 것이에요. 못 알아들었죠? 예. 사명이 죽는 거예요. 선대가 사명으로 살면, 다음 세대가 사명의 바통을 이해받는 것입니다. 사명이 지속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23년 동안 한결같이 수선대우를 얘기했습니다. 선대의 사명을 개성하고 후대가 키워져야 한다. 우리 교회로 말하면 선대만 옥목사님, 저 또 다음 3대도 잘 계승될 수 있도록 은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시겠죠? 이 교회도 마찬가지. 개인도 마찬가지예요. 바울이 디모데를 디모데가 충성된 사람을 충성된 사람의 또 다른 사람에게 계승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해 주신 그 사명을 베드로에게 베드로가 마가에게 계속 전하는 것이에요.

저는 제 삶에 이 사명 계승에 있어서 저를 퓨리파이하고, 저희 사명을 다시 한번 점검할 때마다. 도움이 되는 분이 데이빗 브레이너드예요.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인디안 선교의 아버지라고 해요. 아메리카 대륙에 인디안 사람들 선교 아버지인데 데이빗 브레이너들은 29살 때, 폐결에 각혈로 죽었어요. 저는 제가 이 설교로 나올 때 벽이 있는데 첫 번째 벽에다가 누가 있느냐? 스벌존 목사님의 글이 나와 있어요. 두 번째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글이 있어요. 그는 저는 그걸 계승하기를 원했어요.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예일대학교 다닐 때에 그가 대각성 그레이 어웨이컨 대각성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한다고 그래갖고 그 학교에서 제적 처분을 했어요. 당신은 목사가 되려면 그 당시에 목사가 되려면 하버드를 나오든지 예일대를 나오든지,,, 아니면 유럽에 있는 대학을 나와야 목사가 되는 거예요. 목사가 될 길이 없네. 그런데 대각성에 대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다시 그 예일대학은 커네티컷이 있는데 옆에 유절 지주에다가 뭘 했느냐? 대학을 하는 사람 그 대학의 프린스톤 대학이에요. 그 프린스톤 대학에 학생으로 들어가 갖고 그 총장이 자기 장인 어른 조나단 에드워즈라고 여러분들 잘 아시잖아요. 그레이 어웨워이크닝 미국의 대각성의 아주 최고의 어떤 아주 앞장 선분이었는데, 막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데빗 브레인드가 주님을 위하여 하다가 29살 때 병으로 병약해서 죽었어요. 그런데 그가 하나님 앞에 사명 받은 자로서 제 옆에 써 놓은 글이 있어요. 그것이 뭐 할까요. 말까요? 해요. 아멘.

"나의 간절한 갈망은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며, 끝까지 타오르는 불꽃이 되는 것이었다. 내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I longed to be as a flame of fire, continually glowing in the divine service preaching and building up Christ's kingdom, to my latest, my dying moment. -데이빗 브레이너드(1746년5월 2일 일기)-

-저의 간절한 갈망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며 끝까지 타오르는 저는 뿔꽃처럼 살다가 죽고 싶어요. 사랑의 교회 오목사는 불꽃처럼 살다가 죽고 싶어요. 내 마지막 죽는 순간 그날까지. 근데 이런 건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사명이 있으니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아니 저뿐이겠어요. 오늘 예배 참석하신 여러분들 오늘 젊은이 연세 할 것 없이 여러분 끝까지 타오른 불꽃으로 사명으로 살다가 주님 앞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사명이 사명이 개성돼야 돼. 그럼 오늘 우리는 어떻게 이방의 빛이 되는 이 사명을 우리가 계승할 것인가? 적용을 하겠습니다.

첫째, 날카로운 칼과 마광한 화살이 되어 복음의 수혜자'에서 '복음의 선포자'가 되어야 사명이 계승된다.

2절을 보겠습니다.
*이사야 49:2,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날카로운 칼과 마한 화살이 되어 복음의 수혜자에서 복음의 선포자가 되어야 사명이 계승된다. 자, 여러분, 이건 제가 그냥 드리는 말씀이 아니에요. 우리는 복음의 수혜자에서 복음의 선포자가 돼야 이 사명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오늘 2절에 보니까? 49장 본문 2절에 보니까? 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그랬어요. 아주 놀라운 말씀이에요. 저는 저 말씀에 49장 6절에 제가 눈이 번쩍이다가 저 말씀 앞에 어이구야 그냥 이방의 빛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나를 마광한 살을 만드셔 가지고 화살통에 넣으셔 갖고 하나님의 사명을 위하여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구나. 아멘. 날카로운 칼이란 말은 뭐냐? 말씀에 금 살아 있는 거예요.

날카로운 칼을 날카로운 칼이 되기 위하여 수많은 과정을 거치는 거예요. 명금을 만들 때 물과 불을 거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마광한 살이란 말은 갈고 닦은 화살이에요. 에로 갈고 닦이에요.이 갈 갈고 닦을 가지고 저의 심장에다가 맞추는 거예요. 이방의 빛이 되기 위하여 이것은 어떤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 교회도 똑같습니다. 대한민국은 140년의 선교 역사를 가졌습니다. 우리는 일제 시대 때 지나면서 우리나라를 하나님께서 고생했지만 날카로운 칼로 만드셨어요. 대한민국에는 말씀 자본이 있어요. 대한민국 교회를 마광한 살 갈고 닦은 화살을 만드셨어요. 그렇게 해 가지고 우리나라가 지금부터 43년 전만도 세계 선교에 우리가 58위 선교사도 별로 파송하지 못한

44년 전하더라도 야 그런 적은 나라 지금은 절대적인 숫자는 작을지 모르지만 선교 성도 수당 성도 수당 선교사 파송률 세 개 일이에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제가 볼 때는 대한민국 교회의 그릇의 믿음의 그릇의 용량, 사명의 용량을 크게 하셔 가지고 사명을 계승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이거예요. 전 세계 어느 교회를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100명 모이면 안정된 교회고 200명 모이면 큰 교회고 300명 모이면 좋은 큰 교회입니다. 일본은 100명 모이면 대형 교회입니다. 근데 대한민국 교회는 왜 이렇게 용량이 커졌을까? 선교학자들, 교회 사가들하고 연구를 하는 가운데 제가 깨달을 은혜가 있어요. 대한민국 교회가 가장 강력한 이 그릇이 되었을 때 사명의 그릇이 언젠가 1973년도 빌리그램 전도대회, 1974년도 엑스플로 전도대회, 엑스플로. 무슨 말이냐, 여러분? 그때 우리나라는 한 7, 8%밖에 안 돼서 우리나라에 크리스천 비율이,,, 그런데 그때 100명, 200명 미리 모이는 교회들이 전국의 대부분이었어요. 근데 갑자기 말이죠. 73년도 빌리그램 전도대회, 74년도 엑스플로대회를 하고 난 다음에, 그때 몇 명이 모였죠? 100명이 모였습니까? 100만 명이 모였습니까? 100만 명이 모인 거예요. 100명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진 거에요. 어마어마한,, 여러분 100명 200명 3명 모이던 일반적인 교회에서 100만 명이 모인다고 그랬을 때 100만 명이 모이려면 100만 명이 모이는 기도를 해야 되고, 100만 명이 모 수 있는 어떤 영성이 있어야 되고 100만 명이 모이는 찬양이 있어야 되고 100만 명이 모이는 예배가 있어야 되고 100만 명이 모이는 집회의 어떤 올간의 조직이 있어야 되고 그다음 거기에 따라가는 네트워킹이 있어야 되고 거기에 따라가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물미 작업이 필요한데 여러분 그것을 통하여대 대한민국 교회가 100만 명이 몰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어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아멘.

놀라운 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다음부터 한국 교회 수많은 큰 교회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뭐 크고 작은 것을 제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한 그릇을 만들어 주신 주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런 그릇으로 세계 교회 앞에 쓰임 받는 한국 교회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아멘. 우리나라는 세계의 많은 나라가 식민지국이 많이 되었어요. 뭐 아프리카, 아시아, 뭐 인도 뭐이 다. 할 것 없이. 그런데 대부분의 식민지 나라는 기독교 국가로부터 식민지가 되었어요. 영국의 식민지 영국의 기독교 국가 아닙니까?

독일 독일의 식민지, 뭐 프랑스의 식민지, 네덜란드의 식민지 이런 식으로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인도 뭐 이런 식으로. 근데 대한민국만 비기독교 국가로부터 식민지가 된 거예요. 하나님 우리에게 독특한 은혜를 주신 거예요. 열방의 빛이 되라고, 그래서 복음을 전할 때 기독교 국가로부터 식민지가 된 나라들은 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려고 할 때 약간 저항 의식이 있어요. 근데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 저항이 없었어요. 왜? 일본이 비기독교국 가기 때문에 더더구나 우리는 유교적인 잔재가 남아 있어요. 어떤 이 토속이 토속적이고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 우리 한국은 이런 아시아적인 어떤 페이건 소사이어티에 이런 많은 약점들이 있지만, 희한하게도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선교 선교 대국이 되어 갖고 이번에 세계 총회를 할 때도 지금 이제 126개국에서 벌써 2천여명이 다 등록이 다. 끝났어요.

여러분들 앞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 뭘까? 우리가 선교적 가교가 되는 것이에요. 브릿지가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기독교에 대해서 이렇게 우호적이지 않는 그런 나라들도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교회가 어떻게 이 유교적인 전통을 이겨내고, 그다음에 어떤 비기독교적인 어떤 문화를 이겨내고, 기독교의 신앙을 가질 수가 있었는가? 어떻게 주님을 바라 바라봤는가? 이걸 잘 전복을 하면 대한민국 교회는 이방의 빛이 될 수 있는 축복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는 것이에요. 아멘. 특별히 대한민국 교회의 이런 선교적인 영성, 북한의 순위 북는 지금도 지하 교회는 목숨 걸고 예수님 믿는 거예요.

저는 통일이 되면 어느 날 북한의 지하 교회가 우리 대한민국 남한 교회를 영적으로 정화시켜 주리라고 저 믿는 것이에요. 아멘. 이게 순교적인 영성이에요. 전 세계에 지금 디아스포로 나가 있는 대한민국의 이민자들, 자녀들, 이민 그 가족들이 전 세계 지금 780만 그게 800만이 되는 겁니다. 디아스포라가 갖고 있는 글로벌 영성, 이거 우리가 전 세계 우리가 갖고 있는 특별한 거예요. 선교적 영성, 순교적 영성, 글로벌 국적 영성이 잘 조화돼 가지고 대한민국 교회가 이방 선교의 빛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아멘.

둘패, 사명 때문에 살고 사명 때문에 죽는, 거룩한 담력을 가진 그릇이 되어야 사명이 계승된다.
-이거 사람들은 다. 자기 건강을 걱정합니다. 나는 어떻게 사나 나는 어떻게 죽나 병들어 죽나 사나 다. 걱정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요. 우리는 사명으로 살고 사명으로 죽어야면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사명이 끝나면 죽는 것이고 사명이 남아 있으면 아직 살아 있는 것이에요. 사람이 저는 오늘도 오늘 오후에 우리 교회 장로 한번 돌아가셔가 제가 장례식 인도를 할 거예요. 그

장로님은 사명으로 살살다가 돌아가셨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40에 죽을 수도 있고 80에 죽을 수도 있고 100살에 죽을 수도 있을 거예요. 우리가 병들어 죽을 수도 있고 교통 사고나 줄 수도 있고 온갖 것이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사명으로 살다가 사명으로 죽는 것이에요. 아멘. 병들어 죽는 것이 아니에요. 남들이 볼 때, 노안으로 죽지만 우리가 노안으로 죽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이 마음을 가져야 벌벌 떨지 않는 인생을 살 수가 있어요.이 마음을 가져야 조금도 두렵지 않는 것이에요. 아멘. 사명사, 사명생. 사명으로 살고 사명으로 죽는 것이에요. 아멘. 리빙스톤 근대 선교의 아버지 같은 리빙스톤은 아프리카에 선교하다. 어느 날 아 사자에게 물렸어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가고 다. 죽는다. 그랬어요. 근데 희한하게도 살아났어요. 어떻게 살아났냐? 그러니까? 리빙스톤이 유명한 얘기를 했어요.

"선교사는그의 사명이 완수될 때까지 죽지 않는다"
Missionary does not die until his mission is accomplished –리빙스톤-
-선교사는 그의 사명이 완수될 때까지 뭐 하지 않는다. 죽지 않는다. 여러분 오늘이 마음으로 나는 사명 완수할 때까지 난 죽지 않는다. 그리고 사명자의 담대함은 자신의 결단이나 용기 때문이 아니에요. 십자가에서 죽음을 이기신 어린 양의 승리 때문에 우리가 담대하게 되는 것이에요. 아멘. 그래서 사명자에게 죽음은 만왕의 왕이 친히 우리를 연회장으로 인도하는 열린 문이라고 그랬어요. 죽음이 우리를 최고의 만찬으로 인도하는 문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어요? 사명자의 죽음은 오매불망 사모하는 주님을 다시 뵙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지난 2주 동안 우리는 재고 정리를 했습니다. 다음 주까지도 우리가 쓰지

않은 물건들 다. 가져와 갖고 곧 윌 같은데 이런데 해 가지고 다. 처리하고 앞으로 2, 3주 동안 우리 선교부하고 WEA 우리 조직위원회하고 가지고 여러분 이번에 2,여명이 오는 그런 아프리카에서 뭐 아시아에서 남미에서 뭐 유럽에서 오시는 그분들 다. 우리 다락방 그다음에 대청부 또 청년부 대학부 주일학교 우리 모든 우리 소그룹 그리고 각 분반 각 각 우리 각 그룹들마다 이 사 이분들 다. 서로 매칭해 가지고 우리가 같이 기도하고 같이 할 때에 여러분이 이방의 빛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각 나라 교회 지도자들과 다락방 교구, 대학 청년부 주일학교 다. 매칭해 가지고 서로 기도할 때 여러분 나름대로 버킷리스트를 만드시라고 어떤 사람 죽기 전에 나 뭐뭐 하고 싶다. 그랬는데 그런 나라가 가지고 전도

하고 그런 나라가 가지고 여러분 그 나라를 위하여 기도도 하고 그럴 때에 여러분의 생애가 정말 사명의 생애가 되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명자는 사명자는 그가 사명을 감당하도록 기도할 때 여러분 자신이 기적이 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하나님은 결코 낭비하지 않으시고 생애를 붙잡아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사명으로 살 때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요약
살아서는 충성, 죽어서는 영광, 의 생애가 되기를 원해야 한다. 사명이 나의 인생을 관통하는 '사명사 (使命死) 사명(使命生)‘의 그릇을 대대로 계승하기를 간구하고, '복음의 수혜자' 된 우리에게 '이방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사명 본능'을 주셨으니, 마광한 화살 같은 복음의 선포자가 되어 땅끝까지 달려가 잔해야 한다. 사랑의 교회가 21세기 사명자(missionary) 되어 '10.27 세계/한국교회 섬김의 날을 섬길 때, 한국교회가 담대한 글로벌 사명 계승의 그릇으로 독수리 같이 비상해야 한다.

기도:
이 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유통 기한이 있는 육신의 목숨을 들여서라도 유통 기한이 없는 고귀한 사명을 위해 우리 모두가 다. 사명으로 살고, 사명으로 죽는, 아니 사명 계승의 그릇으로 쓰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살아계신 주님 우리에게 거룩한 단순함을 가지고 보혈의 주님만 바라볼 때, 사명 본능이 사명 채널에 맞춰지게 하여 주셔서 모두가 다. 복음의 수혜자에서 복음의 선포자로 비상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이방의 빛으로 삼으시는 가슴 뜨는 사명으로 한 생애를 집중하고 관통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앞에 수많은 어두움들이 물러가게 하여 주시옵시고, 대한민국이 이방의 빛이 되는 사명의 나라로 이 나라가 주님 앞에 계속해서 쓰임 받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날마다. 사명의 그릇을 키워 주시고 사명을 계승하게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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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9월 14일)“-이사야 시리즈 ㉒
설교제목: “새 일을 꿈꾸는 가슴 뛰는 그릇”(믿음의 그릇 시리즈③)
-(A Vessel Thrilled with Dreams of New Things)
성경본문 : 이사야 43:19, 48:6-11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인도), 영광 찬양대
대표기도: 오유열 장로님
사회: 임병영(1부), 문진호(2부), 이기호(3부), 임상규(4부)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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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3:19,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사야 48:6-11,
6 네가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보라 너희가 선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
7 이 일들은 지금 창조된 것이요 옛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8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나니 이는 네가 정녕 배신하여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한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9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11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오늘 찬양대가 하나님과 찬양했는데 세의를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찬양한 대로 주의 영광이 오늘 예배당에 가득하게 하시고 주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요즘 이 믿음의 글의 시리즈를 하고 있는데, 은혜 게시판에 보니까 그 현장 적용, 삶에서 어떻게 ‘그릇 시리즈’의 말씀이 실천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반응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아무쪼록 이번 그릇 시리즈를 통하여 저나 여러분이나 또 사랑의 교회나 한국 교회에 새로운 어떤 영적 분기점을 주시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스물두 번째㉒, 이사야 강의이자 ‘믿음의 그릇’ 시리즈 세 번째인데, 오늘 제목을 새 일을 꿈꾸는 가슴 뛰는 그릇이라고 그랬는데,

첫 번째 주일날 제가 뭘 했냐면 이 믿음의 그릇의 정체성을 말씀을 드렸고 뭘 말씀드렸다고요?
두 번째 주일은 그 깨끗한 그릇에 대해서 지난 주일날, ‘정결한 그릇’에서 말씀을 드렸는데 오늘
세 번째 이 깨끗한 정결한 그릇에 무엇을 담아야 할까? 어떤 비전을 담아야 할까? 그 내용들을 오늘 차근차근 좀 정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가 나오고 비전을 담으면 비전이 나온다. 그래서 그냥 영어를 하나 만들어 보았습니다. 쓰레기가 영어로 갈배지거든요. 갈배지.

-‘Garbage in garbage ou!t. GIGO GIGO’ 기고, 기고, 기고,
garbage in garbage 그렇게 영어로 기고 기고 그다음에
-‘Vision in vision out there VIVO VIVO’ 비보, 비보, 비보,
이렇게 돼 여러분들은 GIGO가 되지 마시고 VIVO가 되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오늘은 제가 달 항아리를 안 들고 왔는데요. 대신 제가 어떤 영적 슬로건를 말씀을 하고 싶어요. 뭐냐 하면 여러분,
비전이 같으면 이해가 되고, 비전이 다르면 오해가 된다.
비전이 같으면 소통이 되고 비전이 따르면 불통이 된다.
이거는 교회도 그러고 가정도 그러고 우리 개인의 삶에도 비슷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같은 비전의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한번 따라 하겠습니다.


비전이 같으면 이해가 되고 비전이 같으면 소통이 된다. 오늘 이 소통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목회 사역을 하면서 참 안타까운 것 하나가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신앙이 자라지 않는 분들이에요. 믿음의 그릇이 커질 때 커져야 되는데 그것이 커지지 않고 한 단계 더 올라가야 되는데 이제는 disciple maker가 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좀 말씀으로도 섬기고, 또 봉사로도 섬기고 이래야 되는데 그게 안 되고, 신앙이 자신에게만 머물러 있는 분들이 계세요. 참 안타까워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그분의 가치관과 시각이 자기 자신에게만 머물러 있는 거예요. 자라지 않고 용량이 커지지 않는 거예요. 신앙이 신앙생활을 오래 한 분 가운데도 그런 분들이 계세요.

그러나 신앙생활을 오래 하지 않아도 제대로 된 비전과 믿음을 가지게 될 때 용량이 될 때에 그게 참 하느님 앞에서 잘 성숙한 걸 보았어요. 오늘 여러분들과 저는 같은 믿음의 용량 하나님이신 비전의 그릇이 크기가 커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비전에 관해서 가장 강력한 요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사야. 43장 구절. 여기 제가 자세하게 다 써놓았는데 오늘 요절처럼 외워야 되는 것인데 자 보라. 그다음 뭐라 해야 되겠어요?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아주 아주 강력하게 다시 뭐라고요. 보라 영어로 말하면 behold 이랬어요. 그리고 ‘내가 새 일을 행하겠다’. 이렇게 했어요. 하나님이 오늘 이와 같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예배하신 하나님의 비전과 소명과 꿈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런데 주님이 오늘 예배 시간을 통해 보라 라고 그랬어요.

성경음은 behold란 말이 나올 때마다 한 110번 이상 나오는데 반드시 behold. 그 다음에 I will behold. 내가 새 일을 행한다고 그랬어요. 제가 아니고 여러분이 아니고 누가 새 일을 행한다고요? 하나님께서 새 일을 를 가시나요? 제가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인간의 생각이나 어떤 인간의 몽상이 아니라, 사람이 생각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을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보라라는 말씀이 나올 때마다 I will, 하나님이 하시는 거 나올 때마다 이게 여러분을 향한 거룩한 초대장이에요. 그러니까 보라 라는 말씀이 나올 때마다 이게 성경에 아주 중요한 하이라이트요. 어떤 자, 신호등이라고 생각하시고 좋은 의미에서 거룩한 긴장감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뭘 가지시라고요? 거룩한 긴장감. 그리고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뭘 주시는가요?

비전에 관해서 오늘 주님이 초대하시는 것이 거룩한 초대장을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겠다’. 오늘 마음에 딱 처음에 먼저 주님이 새 일을 행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인간의 몽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생각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이게 있으면 여기 하나님이 주시는 그릇의 크기로 무장이 되면 웬만한 어려움, 웬만한 사막, 웬만한 인생의 마른 땅에서 주저하지 않고 모두가 다 다시 칠전팔기(七顚八起)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저와 초대장에 대한 말씀을 듣고 여러분의 지금 마음이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설레고 그리고 가슴 뛰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겁니다. 가슴이 뛰지 않는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가슴이 뛰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죽음이에요. 뛰지 않는 가슴은 죽은 상태예요. 여러분 언제 가슴에 뛰어보셨어요? 나는 평생 가슴에 한 번도 뛰어본 적이 없다. 그런 분은 없을 거예요. 첫 데이트를 나간 형제가 자매를 만났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어. 너무 좋아. 그래서 가슴이 콩당콩당 뛰기 시작했어요. 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콩당콩당 두근두근 뛰는 심장. 그래서 제가 물어보겠어요. 여러분 가슴이 콩당콩당 뛰는데 두근두근 뛰는데 그 심장의 무게가 얼마나 될까요? 뛰는 심장의 무게가 두근두근이니까. 4근, 그래서 2.4kg, 이게 옛날 아재개그야 이런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우리의 가슴은 2.4kg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주신 비전으로 무장하면 이게 100kg가 되고, 1t이 되고 감당할 수 없는 아주 무게를 가지고, 시대를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이에요. 오늘 가슴이 콩당콩당 뛰기를 바랍니다. 자, 가슴이 뛰기 위해서 첫 번째 할 것. 이것이 뭐냐?

I. 첫 번째, 가슴 뛰기 위해서는 제2의 출애굽을 해야 한다.

-뭘 해야 한다고요? 제2의 출애굽을 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 보라. 내가 광야의 길을 사막에 강을 낸다고 그랬을 때 그거 어떻게 체험하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식민지로 있다가 출애굽을 하고 난 다음에 광야로 가서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과 비전을 받게 되는데, 여러분 모두가 다 오늘 제 1의 출애굽이 아니라 제 2의 출애굽을, 출 바벨론을 하는데, 오늘 출 바벨론을 놓고 하는 거에요. 무슨 얘기인가 하면, 오늘 본문의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로 있으면서 자신들의 운명은 바벨론 포르로 살다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대로 살다가 죽겠구나!!. 고국으로 돌아갈 소망을 상실하니까, 한 번씩 말씀드리지만, 사과 상자 안에 사과 하나가 썩으면 삽시간에 전체 상자가 썩는 것처럼, 바벨론의 문화와 바벨론의 우상에 오염이 되고 썩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거기에 무슨 새 일이 있고, 거기에 무슨 가슴 뛰는 일이 있고, 무슨 설렘이 있겠어요? 오늘도 똑같아. 여러분 오늘 예배 데리러 올 때 아무런 가슴이 뜨지 않고 기대감이 없이 왔다면 그런 건 없겠지만, 혹시 그런 분이 계시다면 그건 죽은 거예요.

그게 21세기 바벨론에 있는 거와 똑같아요. 제가 오늘 드린 이 말씀은 인간이 만든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라’라고 하시면서 주시는 음성인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자생 비전이 아니에요. 인본 비전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비전을 받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비전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출 바벨론, 출 애굽을 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 하나님의 전매특허는 언제나 불모지 같은 현실 속에서 생명의 역사를 여시는 분이시지만 하나님은 이 바다의 항해길 가운데 새 길을 만드시는 분이시지만 그 어느 정도의 수준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어느 정도 주님은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시고 하나님이 어떻게 오늘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그랬는데 반드시 광야의 길을 반드시 사막의 강을 낸다고 그러셨는데 그게 무슨 뜻인가? 그것이 오늘 보면 그러면 48장에 보니까 48장 6절로 보내니까 이렇게 나와요.

*이사야 48:6,
6 네가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보라 너희가 선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
-6절로 뭐라고 하냐면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무슨 일을 은비한 일을 은밀하고 감추어졌던 신비한 새로운 일이라는 것이에요. 은비한 일, 제주인 목사님은 저거 보고 딸 이름을 은비라고 지었어요. 은밀하고 신비하고 감추어졌던 아주 새로운 일, 아까 우리 43장 19절인 오늘 요절은 새로운 일, 은비한 일 그리고 저는 제 사무실에다가 제가 들락날락한데 볼 수 있는데, 거기에다가 예레미야 33장 있는 말씀 뭐냐 하면, “일을 이루시는 여호와 성취하신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너는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내게 보이리라”.

그랬어요. 이것만 저는 매일 거의 저는 보는 거예요. 하나님은 뭐가 전문인가 하면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하고 비밀한 일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 전문이세요. 새 일이고 은비한 일이고 크고 비밀한 일이에요. 이게 어떻게 되나? 이게 어떻게 될까?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다가 이제 죽는다는 것을 운명으로 여겼던 유다 백성들에게 이사야서를 통하여 보라 하고 I will behold 하면서 벼락같은 말씀을 하시면서 뭐라고 얘기하느냐? 바벨론 포로가 네 인생 끝이 아니야. 너희들은 포로로 끝나지 않을 거야. 너희는 옛 조상들이 출애굽 한 것처럼 반드시 바벨론에서 제2의 출 바벨론을 할 것이다. 제2의 출입을 할 것이다.

이것은 세상이 알 수도 없는 일인데 내가 반드시 이룰 것이야. 그래서 오늘 본문에 이 새 일은 1차 적으로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있던 이스라엘 민족에 임하시는 새로운 출애굽과 출바벨론 그래서 오늘 출애굽과 출바벨론을 여러분들이 좀 알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새 일에 대한 눈을 열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이런 도표를 잘 안 드리는데 오늘은 한번 제가 드리겠어요. 뭐냐면 옛 출애굽과 새 출애굽, 출 바벨론, 제1 출애굽과 제2 출애굽, 여러분과 제가 우리 자생적 비전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비전을 발견하기 위하여 제 첫 번째 출애굽 할 때 지도자가 누구였어요? 모세였죠. 그러면 새로운 출 바벨론을 할 때 새로운 지도자는 누구예요? 스룹바벨, 제가 우리 스가랴 할 때 했잖아요.

스룹바벨이고 상황은 옛 출애굽 할 때는 애굽에 종살이 할 때고 새 출입할 때는 바벨론 포로 상황이고 오늘 바벨론 포로 상황을 그때의 포로로만 생각하면 안 되고 오늘 우리 현실 상황 가운데서 답답하고 짓눌려 있고, 힘든 메마른 것 같은 이 상황 자체가 여러분에게 지금 포로 상황이라고 말해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해석을 할 때, 그다음 구출 수단이 옛 출애굽은 뭘 가지고 구출하셨어요? 10가지 재앙을 가지고. 그런데 새 출애굽은 고래스 왕의 칙령으로 예를 들어서 남북통일 절대 안 된다. 이제는 끝났다. 이렇게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고래스 왕의 칙령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에요. 이게 신비한 일이에요. 출발 방식은 옛 출애굽은 급히 탈출하듯 도망치듯 나왔지만 새 출애굽은 합법적으로 당당한 귀환을 하는 것이에요.

계속해서 옛 출애굽은 인도 방금은 홍해의 기적을 통하여, 홍해의 기적을 내셔 가지고, 홍해를 마른 바닥같이 건너게 하셔 갖고 그런데 새로운 출애굽 출 바벨론은 광야의 길을 내시고, 오늘 말씀한 것처럼 사막의 강을 내시고 회복의 언약 적 약속을 하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옛 출애굽의 목적지는 가나안 땅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건데 새 출애굽은 예루살렘 성을 회복하고, 성전을 재건하고 회복하는 그리고 목표는 뭐냐?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 만드는 것이고 새 출애굽 출 바벨론은 회복된 언약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런 도표를 볼 때에 오늘 이것을 여러분들 1출애굽, 제2출애굽 출바벨론 정도로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 개인도 그러고 오늘 대한민국, 우리 한국 민족도 정말 주요 새로운 출바벨론 제2의 출애굽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위를 지금 보세요. 지금 상황 자체를 보세요. 너무나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수없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하나님 여기에 주님이 예배하신 출바벨론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우리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behold I will이라고 하신 그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새 출애굽 출바벨론은 과거의 출애굽의 단순 반복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 크고 놀라운 방식으로 큰 구원을 이루게 해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복 그리고 또 대한민국 회복 정도가 아니라, 이것은 나중에 메시아적 구속을 예표하고 있고 메시아를 통한 열방의 회복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완성을 예표 하는 새로운 출 바벨론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10월 27일 날 다음 달 10월 27일 날 우리가 세계복음주의연명총회를 통하여 기도하는 자가 뭐냐 기도하는 것이 뭐냐면 하나님 우리 한국도 그러고 내 개인도 그러고 세계 교회 새로운 제2의 출애굽, 출 바벨론이 일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2의 출 바벨론을 생각하면서 믿음의 비전을 믿음의 그릇을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형식적 신앙 생활하는 분들에게도 던지는 경고이고 도전의 말씀이에요.

입술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의지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심정을 모르고, 하나님의 비전을 모르는 그분들에게 오늘 도전하는 것이에요. 오늘 이 말씀은 그 당시에 유다 백성을 향한 벼락 같은 영적 각성의 외침이자,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길 없는 광야와 메마른 사막을 지난 것 같은 그런 분들에게 많은 분들이 그래요. 이거 불가능해 되겠나? 어떻게 남북이 통일이 되겠나? 심지어 우리 교단 내에도 우리 목사님들 가운데서 이젠 통일이 끝났으니까 우리가 함께 잘 사는 길을 한번 해보자. 여러분 함께 잘 사는 길을 해야 할 게 아니고, 함께 잘 살 수가 없게 돼 있어요. 우리나라는,,,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칙령에 의하여 하나님의 방법으로 통일이 돼야 되는 것이에요. 다 안 된다는 것이야. 다 안 된다는. 그럴 때 우리의 마음속 원인님 말씀 듣고 아니야. 아니야.

광야의 길을 내고 메마른 사막의 강을 하나님은 반드시 만들어 주실 거야. 그러니까 그 하나님 믿고 우리가 따라가면 되는 것이야. 대포일 같이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가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오늘 형편과 처지가 어떠하든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가실 약속을 우리가 믿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여기에 메마른 땅과 광야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것이에요. 오늘 여러분 이거 되겠나 되겠나? 이렇게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생명의 복음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이라면 영적인 통찰력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냐?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의 인생의 가장 험악한 인생의 광야와 인생의 가장 메마른 사막 가운데서 주님은 우리의 인생의 길과 강을 내어주셔 갖고 생명의 역사를 일으켜 주신 것이에요. 그걸 기억해야 되는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험악한 볼모지 같은 인생의 광야에 길을 내시고 죄악으로 메마른 사막에 강을 만들어주신 결정적인 사건이 뭡니까? 우리의 삶의 수많은 메마름 가운데서 생수의 강을 만들어주신 결정적인 사건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에 참된 길을 만들어주신 생명의 십자가요. 성령의 강수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험악한 광야에 있는 광야 생활하는 우리들에게 나는 생명의 길이라고 말씀하셨고 메마른 사막에서 목이 말라 탈수로 죽어가는 우리에게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른다고 약속을 해 주신 것이에요. 그게 오늘 새 일과 새 길에 대한 신약의 창으로 말한 재해석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겁니다.

저는 회중 찬송을 할 때 대체적으로 주일 설교 메시지와 연관이 된 제가 회중 찬송을 준비하는데 오늘 같은 경우는 비전과 사명에 대한 걸 해야 되겠습니다마는 제가 오늘 성령 찬송, a

♪ ‘가물어 메 마른 땅에 성령에 단비를 내리시듯’ 그 찬송을 준비한 이유가 뭔가요? 오늘의 흡족한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메마른 광야 같은 길을 가는 우리들에게 성령의 생수의 강을 통하여 오늘의 흡족한 길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게 바로 광야의 새 길이요. 사막의 강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우리 모두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단절이 되어 험악한 광야와 메마른 사막 같은 인생으로 헤매고 있었으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보혈의 강수가 흘러 광야에서 하나님께 나가는 길을 만들어 주시고, 성령님을 통하여 인생의 사망에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강수를 허락해주신 것이에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살인자를 묶는 그 저주받은 그 형틀인 죽음의 십자가가 생명과 부활의 십자가로 바뀔 것을 상상이나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세상에 어느 누가 메마르고도 거칠고도 공포스러운 험악한 환경에서 구원의 길을 낸 그것이야말로 구원의 십자가야말로 하나님께서 광야의 길을 사막에 강을 낸 최고의 예가 되는 줄로 믿는 것이 그래서 오죽하면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은 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라고 그랬어요. 이것이야말로 광야의 길을 내시고 사막의 강을 내신 이 복음적 능력의 역사 가운데 눈을 떠야 하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새 길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어느 누가 저주받은 메마름을 주님께서 저주를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으셔 가지고 메마른 인생 거친 광야 우리를 속량을 해 주신 것이에요.

그러니까 복음적 능력을 그래서 오늘 포인트가 뭐냐 하면 광야의 광야의 길, 사막의 강 이것은 단순히 그 비전 정도가 아니라 우리 생명의 복음과 직결되어 있는 줄 되셔야 되는 것이에요. 이런 차원에서 오늘 이 생명의 길, 사막의 강, 그다음에 광야의 길에 이 기적 같은 하나님의 비전을 담는 그릇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고, 이건 누구나 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모시고 성령의 생수를 믿고 감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허락하신 주님의 약속이고 축복인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성령의 단비를 통하여 오늘에 흡족한 은혜를 주실 것을 믿고 이 귀한 지리를 깨닫는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인 것이에요.

자 이렇게 광야의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시는 이 은혜를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영의 눈이 열려 가지고 자연스럽게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나? 내 인생의 꿈과 비전은 무엇인가? 난 무엇이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인가? 여러분, 무엇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 땅이 우리 인생에 모두를 다 투자해야 할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는 이 땅에서는 순례자처럼 살고 나그네처럼 살고 천국에서는 우리가 주인처럼 사는 영의 눈을 열게 되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이 땅에 있다가 사라질 일시적인 것 외하여 우리 인생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가장 영원한 것에 우리의 인생을 투자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영원하고 하나님 말씀이 영원하고 사람의 영혼 하나하나가 영원한 걸 알고 주님을 더 사랑하고 말씀을 더 깊이 있게 파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더 귀하게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헌신하게 되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영적 세상의 성공 이상으로 영적 성공에 눈이 열리게 되고,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영광스럽다는 깨닫고 교회와 함께 비전을 꿈꾸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교회가 갖고 있는 꿈꾸는 게 뭐예요? 피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 통일. 세계 선교를 마무리한다. 제자훈련의 국제화를 갖는다. 글로벌 찬양 운동을 한다. 2033-50 비전을 얘기하면 이게 되겠나가 아니고 이게 되겠나?가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이라고 생각하듯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답을 이렇게 밖에 못하면 저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내용이 뭐예요? 자연스러워졌잖아요. 자연스러워. 그리고 이런 내용들이 오늘 이제 이런 내용들이 참 설레고 가슴 뛰는 내용은 이걸 기초로 해 가지고 모든 이런 것들이 creative하고, 혁신적이고 아주 새로운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48장 7절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사야 46:7,
7 이 일들은 지금 창조된 것이요 옛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뭐라고 나오냐면 이 모든 일들이 이 일들은 지금 뭐예요? 창조된 것이다. 뭐가 아니라 옛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무슨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 아니다. 이거는 단순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이거는 창조된 일이다. 우리가 왜 가슴이 뛰고 왜 가슴이 설레느냐. 우리 하나님은 ‘God of Creation’ 창조의 하나님이세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느라 히브리어로 ‘바라’라고 그래요. 하나님은 바라의 하나님이에요. 또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에 땅의 짐승들과 그 종류들을 그 짐승들을 그 종류들을 만드셨다. ‘아싸’라는 단어가 있는데, 만드시고, 또 하나님은 지난주에 얘기했지만, 흙으로 토기를 빚으시는 그래서 땅에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는 것. 야차르라고 그러는데 하나님은 창조하시고 만드시고 빚으시는 전문이에요.

따라서 하나님을 믿고 새 일과 새 길의 눈이 열리면요. 신선해지는 것이에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 아시죠? fresh가 아니라 fresh해지는 것이 신선해지는 것이 제의 출 바벨론을 통하여 하나님이 내 인생을 날마다 새롭게 지어가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인생을 날마다 재건축하게 하시고 새 창조하게 하시고 새롭게 지어가시고 새롭게 여러분들을 이렇게 다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으셔야 되시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새 창조의 하나님이세요. 저는 제가 안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있는 일을 나눠 먹는 걸 저는 좋지 않게 생각해요.

우리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이기 때문에 있는 파이를 파이 따먹기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일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새로운 일을 주시는 그 하나님이 주시는 그 은혜 앞에 우리는 얼마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그 하나님 목적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새 일을 향하신 하나님의 일대로 써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태생적으로 창조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창조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늘 새롭게 되고 그리고 인생을 재건축하게 되고 저하게 되고 저는 지난 거 보니까 제가 82년도에 미국 가 가지고 보니까 그 잡지가 하나 있었어요. 그 잡지가 두꺼운 잡지인데 그 잡지를 보니까 너무 크리에이티브한 거예요. 너무 신선한 거예요. 그 제목이 잡지는 뭐냐면 AD라는 잡지였는데 Architecture Digest라는 잡지였어요. ARCHITECTURAL DIGEST,

건축에 관한 건축잡지였는데 그걸 볼 때 아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창조적이냐, 어떻게 이렇게 사람들이 이렇게 새로우냐, 어떻게 이렇게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구상할 수가 있냐, 그래서 82년도 5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빠지지 않고 지금도 제가 그 잡지를 구독하고 있어요. 또 가만히 계시죠? 40여 년 동안 제가 유일하게... 유일하게 보는 잡지 아키텍처 다이제스트 하나님은 창조 전문이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에 좋은 의미에서의 거룩한 토목공사 전문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설레이게 하는 거예요. 가슴 뛰게 하는 거예요. 지금 뒤에 우리 여기 좀 새롭게 하기 위해 이렇게 지금 공사를 좀 하고 있어요. 3주 뒤에는 좀 좋은 게 나올 거예요.

나올 걸 3주 뒤에는 좋은 게 나올 것 같거든요. 설레이는 거죠. 예를 들어 제가 설명했습니다마는 수많은 우리의 인생의 삶의 현장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광야 같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빚으시고 만드시는 데 전문이신 것을 여러분들 주님 앞에서 기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하나님의 눈을 여셔야 돼요. 하나님은 새 창조 전문이시다. 여기에는 나이에 차별이 없어요. 나이가 많건 적건 차별이 없어요. 아브라함이나 모세 다 나이 많았어요. 여기에는 다윗은 또 청소년 시절에 부름 받았어요. 나이 차별이 없고, 여기에는 직업의 차별도 없어요. 목동, 어부, 세리, 의사 다 성별의 차별도 없어요. 출신의 차별도 없어요.

왕족 출신, 이방 출신, 모압 출신, 디모데는 다문화 가정 출신이었어요. 나이, 직업, 성별 출신에 차별이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다 포함되는 거예요.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救主)로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든지 우리 앞에 세일이 기다리고 있고 사막에 새로운 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골다메이아라는 이스라엘의 유명한 수상은 이 말씀 하나 가지고 사막에 광을 내시네. 왜 안 되겠나? 기도하다가 그 이스라엘 광야 사막에다가 갈릴리 물을 끌어들여 가지고 이스라엘이 오렌지가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오렌지 생산국이 됐어요. 사막에 아무것도 없는데,,, 오늘 제가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몽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Behold I will. 하나님이 내가 새 일을 행하겠다.

그 하나님의 이 시간, 그 하나님의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에 우리의 안테나가 접목이 돼야 되는 것이에요. 세 가지를 적용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가슴 뛰는 비전의 그릇이 되려면 간략하게 세 가지를 적용하면,

II. 두 번째, 구체적으로 가슴 뛰는 비전의 그릇이 되려면 


▷첫 번째, 하나님의 영광에 다시 눈이 열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11절, 본문 11절을 보니까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8:11,
11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내 영광을 이사야 42장 8절를 보니까

*이사야 48:8,
8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의 어떤 수사적 표현 정도가 아닙니다. 외토릭이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는 어떤 대가를 치르시더라도, 어떤 대가 소위 하나님 자신의 전부를 내어놓을 정도로 열심이신 것이에요. 그것이 뭐냐 하나님 자신의 영, 그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영광을 위하여 저 여러분들을 새로운 길로, 새 일로, 인도해 주시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여시고 새로운 일을 하게 하시고 하나님 안에 주시는 창조와 지으시고 빚으시고 만드시는 이 일을 왜 그렇게 하는 거예요?

우리가 잘 먹고 잘 살고 우리가 잘 되게? 그게 아니에요. 여러분과 저를 통하여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의 빛이 비춰줄 수 있도록, 우리가 가슴 뛰는 비전의 그릇이 되기 위하여,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올 인을 해야만 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하나님 영광에 올 인하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 때문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그랬어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전력투구하는 주의 신실한 권속들이 되시기를 축복하고 싶습니다.

제가 손녀딸이 있습니다. 저는 가정 얘기를 잘 하지 않는 입장이고, 그런데 손녀딸 얘기를 하려면 돈을 내고 해야 한다고 그래 갖고 너무 많은 돈을 내야 되기 때문에, 숫자가 많으니까 제가 함부로 하지 않는데 이 얘기는 제가 좀 그냥 하겠습니다. 우리 첫째, 손녀딸이 제 말을 잘 안 듣습니다. 그러나 어떨 때는 뭐 잘하기도 하는데 얘가 이제 다음 달이면 만 6살이 되는데, 아직 6살이 안 됐어요. 그런데 한 3주 전쯤 저한테 와서 할아버지, 그러면서 주기도문을 다 외우는 거예요. 그다음에 뭘 하는가? 하면 위스민스터 대소유론 문답 1조 첫 번째 사람이 뭘 위해 살아야 하나? 사람의 제일 되는 본분이 무엇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그걸 한국말하고 영어를 같이 외워 갖고 저한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 그동안 잘못한 것이 다 용서가 됐어요. 여러분, 저는 하나님이 아니고 저는 할아버지에요. 할아버지가 손녀딸을 볼 때 다 좋은 것도 있고 안 좋은 것도 있고 눈에도 아깝지 않고 그런 게 있지만 잘못할 때는 마음이 아픈 게 있죠. 그러나 그런 거 있어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뻐한다. 그 한 말에 내가 죽는 거야. 여러분, 하나님은 나하고 비교, 우리는 우리하고 우리 사람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진짜 하나님의 영광에 올 인하면,,, 하나님 다른 거 다 용서야. 그리고 더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웬만한 것들은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사랑의 교회와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올 인하십시다. 올 인하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오는 것에 대해서는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도록 하십시다. 한국 교회 내에 내부 분열을 하고, 함부로 하나님의 영광을 함부로 가리운 분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데, 주여!! 하나님의 영광에 올인 하는 한국 교회로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럴 때 이 하나님의 영광에 눈이 뜰 때,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비전을 정확하게 하시고, 그릇이 커지게 하시고 그래서 이를 위하여 우리가 영의 눈을 부릅뜰 수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가슴 뛰는 일을 방해하는 따개비들을 정리해야 됩니다.
또 한가지 가슴 뛰는 일을 방해하는 따개비들을 정리해야 돼요. 여러분 따개비 아시죠? 거머리보다 더한 따개비. 이 따개비는 배에 달라붙으면 정말 지독하고 거머리보다 더하고 이 지독한 따개비들을 정리해야 돼요.

지난주를 설교한 거 좀 연결되는 것도 있을 수 있지만 여러분 지금 우리는 인생의 항해를 하기 위하여 모두가 다 All hands on deck 모두가 다 함께 믿음의 갑판 위로 올라가자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 배 바닥에 따개비가 붙으면요. 제거하는 것이 얼마나 따개비가 뭔지 알죠? 갑각류 따개비 얼마나 여러분 유튜브에 알고리즘에 나오는데 거북이 등이에요. 따개비가 가득 다닥닥,,, 어이구야 너무 징그럽고 너무 그냥 망치를 가지고 큰 따개비를 다 두드려 보시고 싶은데 그럼 거북이도 죽잖아. 여름에 해변 가를 걷는데, 제가 따개비 때문에 발이 얼마나 아픈지 따개비는 쓸모가 없어요. 오늘 하나님의 비전을 방해하는 따개비들이 있어요.

우리의 마음에 꼭 기생충처럼 붙어가지고, 내 인생의 모든 항로에서 따개비들이 빨판처럼 달라붙어. 가지고 우리의 진액을 빨아들이고 소진시켜 갖고 내 인생의 항로를 탈선하게 하는 인생의 비전의 방해하는 그냥 따개비들이 있는 거예요. 믿음의 용량을 크게 자라게 하는 걸 방해하는 따개비들이 있는 거예요. 개인의 형편마다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공통 적으로 제거할 따개비들이 뭡니까? 인생의 쓴 뿌리들, 뼈를 썩게 하는, 회개하지 않는 죄악들, 지난주를 말씀드린 것처럼 중독된 마음, 형식적인 신앙, 이런 따개비들을 처리해야 돼요. 이 따개비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스스로 떨어지는 법이 없어요. 거 머리보다 더하기 때문에 반드시 강력하고도 센 강력하고도 센 고압 세척기를 가지고 하고 다녀야 돼요.

날카로운 칼날로 긁어내야 돼요. 말씀의 빛으로 결단을 통하여 믿음으로 우리 붙어있는 기생충 같은 따개비들을 그럴 때 여러분 거북이 등에 있는 따개비들을 다 처리할 때 속이 시원한 거예요. 그리고 넓어지는 것이에요. 오늘 이 시간 우리 속에 있는 잘못된 따개비들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자 첫 번째 하나님 영광 두 번째 따개비 정리 세 번째가 제일 중요해요. 이거 오늘 클라이맥스예요.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미래에 여러분과 저의 미래에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이 주시는 설레는 꿈을 꿔야 되는 것이에요.

▷세 번째, 미래에 여러분과 저의 미래에 세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이 주시는 설레는 꿈을 꿔야 되는 것입니다.
-미래의 세일을 행하실 그 설레는 꿈을 반드시 꿔야 되신 거예요. 제가 말씀드렸죠. 이 일은 하나님의 새 일이에요. 내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남들이 볼 때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새 창조의 일이에요. 이것은 사람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뜻이에요. 이 새 일은 너무나 고귀한 것이고. 그러니까 이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일이니까, 여러분과 저의 실력으로는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과 저의 실력으로 하면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 일이 돼야 되는 거예요. 따라서 여러분 제발 하나님의 일을 제한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제한하면 안 되는 것이에요. 제한된 우리 능력 안에 하나님의 능력을 가둬놓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면 안 되는 것이에요. 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인간 정도로 생각합니까? 그건 안 되는 거예요. 지성인들 똑똑한 사람들이 하나님 하나님이 자기 지성과 맞지 않다고, 하나님이 자기답지 않다고 자기와 통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지성인들 똑똑한 사람들과 기적이 안 일어나요.

여러분 오늘 제가 들은 이 말씀에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발 여러분의 실력과 능력에 근거한 꿈을 꾸지 마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인간의 제한된 믿음으로 할 수 있는 꿈을 갖지 마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안 되는 그 꿈을 꾸시기를 바라는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꾸는 꿈이고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시면 안 되는 그런 꿈을 꾸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다시 한번 제발 하나님을 제한하는 꿈을 꾸면 안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 교회에 대한 꿈, 민족에 대한 꿈, 여러분 자신에 대한 꿈, 이 일을 위하여 지금까지 있었던 여러분들의 생각과 여러분들의 홍해와 여러분들을 그 다 출애굽 하시고, 출 바벨론 하시고, 여러분의 생각의 틀을 뛰어넘는 그런 엑소더스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광야의 길,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은 한마디로 기적의 전문가이십니다.
하나님은 기적 같은 일을 행하신 데 전문가이십니다. 그 기적을 꿈꾸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특히, 여러분, 혼자서 꿈꾸지 마시고 하나님의 공동체와 같이 꿈꾸시길 바라는 겁니다.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과 꿈을 꾸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기적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이 기적을 이루시는 그 꿈을 저는 믿습니다. 50년대, 60년대 대한민국 교회는 형편없었습니다. 초라했습니다. 저 가난한 개척 교회 같은 데는 남들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과 함께 꿈을 꿀 때 하나님의 교회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이에요.

내일에 대한 미래가 없는 하루 살인 노동자 품팔이 인생들 가운데, 모두가 다 힘이 미래가 없으니까 날마다 아내들, 가족들 서로 꿈이 없으니까 서로 그냥 상처 주고, 서로 싸우고 날마다 싸우는 소리가 다른 집에도 들리고,,, 그런 집안에서 예수님을 믿고 아내가 먼저 예수님을 믿고, 주여, 우리 남편도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일이 돼서 눈이 열리게 해달라고 했잖아요. 하는데 남편은 예수 안 믿고 술 고르고 폭력 행사하고 그런 남편인데, 나중에는 안 되니까. 새벽에 나와서 눈물로 기도하고, 나중엔 또 안 되니까.

그 남편 신발을 가지고 와 가지고 주위가 가슴에 안고 기도하고, 여러분 그런 기도를 통하여 그 기도를 통하여 교회 생활을 통하여 기적이 일어나고 가정 가정마다 새로워지고, 남편과 자식들을 눈물로 기도할 때 아무런 희망을 노래할 수 없었던 잿빛 어둠 속에서 수많은 가정들이 치유 받고 기적을 경험하며 하나님을 사람으로 쓰임 받는 그런 자녀들, 그런 가정을 수없이 본 것이에요. 무슨 말입니까? 교회와 함께 개인의 기적이 함께 갔다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통하여 기적을 일으키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제가 이렇게 기적을 얘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설레여야 한다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가 기적을 일으키지 못하면 여러분은 축복을 못 받습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사랑의 교회가 축복받지 못하고 기적을 일으키지 못하면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 개인이 어떻게 은혜를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가 하나님의 기적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대한민국의 모든 교회가 적든 크든 그 교회를 통한 기적이 그 교회 성도들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이게 하나님의 새 일과 이게 하나님의 사막의 강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들이여 교회를 통하여 기적을 체험하십시오. 교회가 꾸는 꿈을 통하여 기적을 체험하십시오. 교회의 기적이 여러분의 기적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다시 한번 이 일을 통하여 여러분 하나님께 영광 돌려주시기를 바라고 교회의 기적이 내 기적이 되는 이런 은혜가 있을 때 여러분 끝까지 설레이며 인생의 사막에 강을 만날 수 있도록, 광야의 길이 나올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 오늘 이 일로 가슴이 뛰기를 바라고 대한민국 모든 교회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여 모든 성도들이 기적의 대상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주의 영광 이곳에 가득해 주의 기적 이곳에 가득해 찬양하는 동안에 여러분 마음을 실으십시오. 주님 제가 바벨론 포로 생활 같은 사막과 광야 같은 데서 제가 제2의 출 바벨론을 하겠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영광에 올인하겠습니다. 따개비들을 정리하겠습니다.

주님 교회와 함께 하나님의 기적을 꿈꾸겠습니다. 교회의 기적이 내 기적이 되는 것이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비전이 내 비전이 될 때 여러분들은 부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직장에서도 성공할 수가 있고 학업에서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불모지 같은 곳에서도 십자가의 보일이 강물처럼 흘렀을 때에 생명과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오늘 우리의 바벨론 포로 생활같이 닫혀 있던 우리의 삶에도 보라 내가 광야의 험악한 광야의 길을 내겠다는 그 음성을 우리가 듣고 사막의 강을 내시는 약속의 말씀이 체험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요약
두근두근 가슴 뛰는 새로운 출 애굽, 새로운 출 바벨론을 내 인생과 이 민족 위에 이루어 가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만방에 비춰 지기 위하여 예수님의 피의 능력으로, 인생 광야에는 기적의 길을 활짝 열어주실 것을 확신하며, 인생 사막에는 은비한 생수의 강을 흡족히 부어 주시길 간구하자. 우리 사랑의교회가 복음으로 세계를 섬기는 꿈'을 꾸며 '10.27 세계/한국교회 섬김의 날'을 섬길 때, '한국교회 제자훈련과 글로벌 찬양 운동'이 전 세계로 확산되길 소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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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9월 9일)-<믿음의 그릇 ②>이사야 시리즈 ㉑
설교제목 : “참 회개하는 그릇”(The Vessel of Genuine Repentance)
말씀: 이사야 44:9-11, 15-23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 찬양대
대표기도: 유선비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 오정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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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4:9-11, 15-23,
9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10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냐.
11 보라 그와 같은 무리들이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대장장이들은 사람일 뿐이라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15 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
16 그 중의 절반은 불에 사르고 그 절반으로는 고기를 구워 먹고 배불리며 또 몸을 덥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17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18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
19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것의 절반을 불 사르고 또한 그 숯불 위에서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 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
20 그는 재를 먹고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
2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23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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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광스러운 예배 참으로 줄일 만이 높임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 우리 이사야 강의의 스물한 번째이자, 오늘 믿음의 그릇 시리즈 두 번째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참 회개(悔改)하는 그릇에 대해서 말씀을 할 터인데, 지난 주일은 우리 교회 달항아리를 갖다 놓았는데 오늘은 순백색 달항아리를 갖다 놓았어요. 그리고 지난주를 우리가 다 간장 종지 같은 우리가 좀 더 이렇게 커지기를 원해서 오늘은 간장 종지 대신에 사발을 가져왔어요. 여러분, 이 사발(沙鉢)은 우리 선교 초기에 140여 년 전에 조선시대 말기의 사발이에요. 사발인데 국그릇으로 쓰기도 하고, 밥그릇으로 쓰기도 하는 사발인데 다음 주일에는 좀 더 커지시길 바랍니다. 주일 학교부터 청년대학 대청부까지, 지난주 정체성에 관한 말씀을 가지고 적용을 한 걸 어제 토요비전 새벽 예배 때 나누었는데 참 감동이 되었어요. 우리 젊은이들이 확실하게 적용하고 있고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단순한 정보를 주는 게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주신 말씀이에요. 영어로 말하면, Not information but transformation. 정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뭘 위한 거라고요? 변화를 위해 Transformation,,, 삶의 변화를 위해서 그래서 오늘 우리 온 성도들이 이 순백의 달항아리처럼, 오늘 말씀 듣고 난 다음에 모두가 다 하나님 원하시는 깨끗한 그릇, 참회하는 그릇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찬송 중에 하나가 구주를 생각만 해도 85장인데 이 찬송은 옛날에 어른들도 신앙의 선배들은 다 이렇게 마음이 정말 간절하고 애틋하게 좋아하는 찬송이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이 좋거든 주 얼굴 배울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따라하기 힘들죠. 3절이 중요해요.

3절이 우리 할아버지가 부르는 참 회개 하는 자에게 다음에 참 회개하는 자에게 뭐가 되시고요? 소망이 되신다. 오늘 참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소망이 어떤지를 우리 손으로 잡고 가야 돼. 오늘 44장 본문 3절에 보면 앞에 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같이 우리 합독 하겠습니다.

*이사야 44:3,
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이 말씀이 여러분의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참 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신다. 그랬을 때, 그 소망의 성격이 무엇일까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고,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되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자손들에게 연결되고, 하나님의 복을 우리 후손들에게 부어주신다 그 말이에요. 그 말은 당대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오늘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실천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인 줄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소망의 성격이에요. 그런데 이 소망을 누가 주겠어요? 어떤 개인이 이걸 할 수가 있겠냐고, 어떤 단체가 이걸 줄 수 있겠냐고,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마음을 모아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여러분들 사모하는데 이 말씀 앞에 여러분들이 정말 transformation, 변화되길 원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이 여러분의 것이 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특별히 이 소망은 용서의 복음을 깨달은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에요. 무슨 복음을 깨달았다고요? 용서(容恕)의 복음(福音). 그래서 오늘 첫 번째 생각할 것은 용서의 복음을 깨닫는 사람에게 소망이 되시고 참 회개하는 그릇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I. 용서의 복음을 깨달은 사람만이 참 회개하는 그릇이 될 수 있다.
-무슨 뜻이냐 하면 경기도 여주에 가면, 우리 기독교 전 세계에서 거의 유례가 없는 기독교 교도소가 있어요. 그 이름이 소망교도소에 그 소망교도소에 저희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교정사역, 감옥사역을 하는 우리 성도들이 계세요. 가서 이제 제자 훈련을 하고 복음을 전하고 그렇게 하는데, 그 프리즌 미니스티를 하는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세상 사람들은 감옥에 있는 사람들과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로 구별을 하지만, 이 감옥 사역을 오래 한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또 영적으로 보면 이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것이에요. 첫째는 용서받은 자가 있고, 또 하나는 용서받지 못한 자가 있다는 거예요.

오늘 우리는 용서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용서받은 자가 되려면 우리에게는 참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자, 용서받은 자가 되려면 뭐가 필요하다고요? 소망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 왜 이것이 중요한가 하면, 참 회개를 하여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가는 것이에요. 특별히 이 회개는 얼마나 중요한지 예수님께서 공생의 첫 일생이 회개하라 했잖아요.

이 회개는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에요. 이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삶의 전환을 말씀하고 있는 것인데, 오늘 이 회개에 대한 얘기를 할 때에 회개는 용서받은 자가 되는 첫걸음이요. 내 삶 속의 참 소망을 회복하는 황금열쇠가 된다는 것이죠. 쉽게 말해서 참 회개를 통하여 용서받는 사람이 되고, 용서를 받아야 소망이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좀 더 들어가면 겉으로 볼 때는 용서받고 용서받지 못한 자로 구별할 수 있지만, 좀 더 엄격하게 말하면 용서를 받아들인 자와 용서를 거절한 자로 나눌 수 있는 것이에요. 용서받고 용서받지 못한 자, 그게 아니라 용서를 받아들인 자와 용서를 거절(拒絶)하는 자.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용서(容恕)받을 수 있도록 용서의 문을 열어놓으셨고, 하나님은 누구나 용서의 강에 들어가서 몸을 잠글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는데 어떤 분들은 용서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용서받지 못하는 거예요. 이런 점에서 용서받지 못한 자라는 표현보다 용서를 거절한 자, 참 회개를 거절한 자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도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저희들 앞에서는 수많은 용서의 은혜가 펼쳐져 있어요. 지금,,,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박이 없다고~ 제가 이 회중찬송을 앞에 길게는 못해요. 시간 때문에. 그런데 오늘 이 5절까지 있는 것이 그걸 5절까지 하는 동안에 내가 가만히 제가 한번 봤어요.

여러분들 어떤 표정을 보는지 우리 앞에 한없는 보혈의 강이 놓여져 있는 것이 용사의 강이 놓여 져 있는 것이 그 용서의 강을 들어가지 아니하고 그걸 거절하면 안 되는가 왜? 이 보일의 강수에 몸을 담그지 못하는 사람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분들,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로잡혀 있고, 나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자신의 선함에 매몰되어 용서의 강에 용서의 강물에 몸을 담그지 못하고 거절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니까 용서받은 자, 용서받지 못한 자 사실은 용서를 거절한 자와 용서를 받아들인 자 그런데 좀 더 신학적으로 들어가면 통찰인데 그것이 뭐냐면 이것조차도 참된 회개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오늘 이 참 된 회개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여러분들이 섬광처럼 깨달아지는 순간 여러분과 저의 이 그릇이 얼마나 깨끗해지고, 커지는지 몰라요. 다시요. 참 된 회개가 하나님의 뭐라고요? 선물이다.

◎참 된 회개가 선물이다.
-이걸 깨달을 때 회개의 문으로 들어가고 용서에 강에 우리의 몸을 잠길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겸손하게 되는 것이고. 함부로 다른 사람들에게 너 회개했냐고, 회개하라고 인간이 함부로 함부로 말을 못 하는 거예요. 참된 회개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회개를 그저 인간의 의지적인 노력으로만 생각해서는 참된 회계 이 차원에 이를 수가 없어요. 물론 회개는 죄를 슬퍼하는 눈물이 있어야 되고, 행동의 변화가 따라야 되고 회개라는 세례라는 외침처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나 참된 회개를 그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참된 회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주어지는 우리에게 주어지신 가장 큰 선물임을 믿어야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받아야 할 그 저주(詛呪)의 자리 내가 치러야 할 그 피 값을 내가 치러야 할 그 엄청난 죄(罪)에 대한 값을 예수님이 내 대신 저주의 자리에 서 주시고, 예수님이 내 대신 그 피 값을 치뤄 주셨기 때문에, 피 묻은 보혈 복음으로 주어지는 가장 큰 선물임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참된 회개가 인간의 의지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큰 선물임을 각성하는 것은 회계의 새로운 경지로 들어가는 영적 통찰(通察)력(力)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참된 회개는 결코 이러면 공로가 아니라,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라는 걸 알 때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참된 용서도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우리 편에서는 참된 회개도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는 것은 이처럼 놀라운 진리임을 확신하셔야 되는 거예요.

제가 늘 힘들 때마다 도움이 되는 토마스 아캠피스, 그가 외친 대로 주님께서는 어찌하여 비참한 죄인이 슬피 울리며 자기 잘못을 회개할 기회를 주시나이까? 우리가 슬피 울고 우리가 자기 잘못을 회개한 이 기회조차 이 회개할 시간, 회개할 수 있는 무릎 회개로 나아가는 기회조차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선물임을 깨닫는 것 자체가 은혜인 줄로 확신합니다.

따라서 오늘 저는 참돤 회개를 위하여 참 된 회개의 그릇이 되기를 위하여 참 된 회개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고 온 성도들이 겸손이 갈보리 십자가 앞에 바싹 다가서는 은혜를 주시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제가 이 주일 낮 예배 때 모든 걸 다 할 수 없잖아요. 우리가 참 된 회개를 통하여 주님의 십자가 앞에 바짝 다가앉고 그것이 선물임을 깨닫고 그리고 용서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뭘 하나 해야 할 것인가? 오늘 하나만 딱 하겠어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뭘 회개해야 하는가? 참된 회개를 위하여 우상숭배라는 것을 처리할 때 참된 회계의 그릇이 되려면 우상 숭배의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II. 참 된 회개의 그릇이 되려면 우상숭배의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
-회개할 건 많이 있지만 오늘 특별히 우상숭배, 우상숭배를 처리하면 참된 회개 그릇이 된다는 겁니다. 잘못된 우상숭배가 무엇입니까?

오늘 이사야 본문에 보니까 그 당시 바벨론 종교의 우상 제작 과정을 면밀(綿密)하게 관찰하면서 우상 제작 과정의 모순(矛盾)성을 드러내고 아주 그냥 날카롭게 이사회가 이걸 지적하고 질타하고 있어요. 이 잘못된 우상숭배에 대해서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나타나 있어요. 먼저 오늘 여러분 12절을 보면 이런 내용입니다. 12절에,

*이사야 44:12,
12 철공은 철로 연장을 만들고 숯불로 일하며 망치를 가지고 그것을 만들며 그의 힘센 팔로 그 일을 하나 배가 고프면 기운이 없고 물을 마시지 아니하면 피로하니라.
-철공은 철로 연장을 만들고 숯불로 일하며 이제 거푸집에 넣어가지고 그러니까 철공이 뭐라 하냐? 철로 만드는 우상을 만든다는 거예요. 13절에 보니까,
*이사야 44:13,
13 목공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곡선자로 그어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집에 두게 하며.
-우상을 만든다는 거예요. 철공은 철로 만든 우상을 만들고, 목공은 나무로 만든 우상을 만드는데 여기에 진짜 또 아주 그냥 우스꽝스러운 것이 뭐냐면, 15절에 보니까 뭐라 하면,

*이사야 44:15,
15 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
-나무로 우상을 만드는데 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으로 삼는 것이거든요. 땔감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덮히기도 하고 불을 피워가지고 떡을 굽기도 하는데, 그걸 가지고 또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고 우상을 만들어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 거구나. 어떻게 이렇게 참, 이렇게 말이 안 되게 하느냐 무슨 뜻이냐면 우상(偶像)의 재질인 이 나무를 누가 자라게 하시는 겁니까?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는 그걸 가지고 우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다가 신적 요소를 넣고 숭배(崇拜)한다는 것이 우스꽝스럽다 입니다.

선지자 이사에는 아무리 값진 나무, 백향목, 상수리나무, 잣나무로 우상을 만들어도 결국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나무 씨앗에서 시작되어 가지고 나무로 만든 것 그걸 강조하는 거예요. 인간이 만든 우상의 결정적인 약점이 뭐냐 하면, 그 우상을 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제가 다시 우스꽝스러운 것이 뭐 우스운 것이 뭐냐 하면, 인간이 자기 손으로 만든 우상을 신이라고 그 앞에 엎드려서 자기를 구원해 달라고 비는 이 모습, 너무나 어리석은 짓을 한다는 거예요.

저 동남아나 인도 같은 힌두교 가보십시오. 돌로 만든 신상들, 도깨비 같은 모습들, 짐승들의 모양들, 그리고 그리스 로마,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신들, 이상한 뱀, 새, 용, 희한한 것들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 우상들이 자기를 구원해줄 신인 것처럼, 절하고 그냥 온몸을 다 바치고 그렇게 하는 거에요. 그걸 보면서 정신이 제대로 박혔나? 바울은 이걸 알고 로마서 1장에 보면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동물의 모습으로 우상을 만들어 가지고 저래가지고 다 인간이 참 기가 막힌 잘못을 범한 죄를 범한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오늘 9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 구절에 보니까,

*이사야 44:9,
9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그러므로, 우상을 만드는 사람은 수치를 당하리라. 이사야뿐만 아니라, 하박국 선자도 하박국 장이 보니까 같이 보겠습니다.

*하박국 2:18,
18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그러면 오늘날 이 시대에 나무로 만든 철로 만든 우상이 뭐예요? 제가 묵상하다가 오늘날 철로 만든 우상이 뭘까? 오늘날 철공들이 만든 우상이 뭘까? 그게 요새 자동차가 아닐까? 자동차 있잖아요. 철자동차,, 그래서 좀 더 좋은 자동차를 사고 싶어 갖고 자동차를 묵상하고 예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내 마음속에 자동차가 날마다 가득하다면 이 시대의 철공이 만드는 우상을 예배하는 자가 되는 것이에요. 이런 의미에서 21세기 오늘날 우상의 핵심과 우상의 철학이 뭐냐면, 17절에 나와 있어요. 보면 17절에,

*이사야 44:17,
17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21세기 우상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이사야 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요. 인간이 만든 인간이 만든 자력 선택의 우상, 너는 나의 신이니 너는 나를 구원하라. 신을 내가 선택하는 거야. 내가 주어가 되는 거예요. 우리의 주어는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는 것인데 그런데 여기 아멘,,,을 해야 되는데 뭐라고 돼 있어요?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이것이 21세기 우상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의 대상이지, 우리가 주어가 되면 우리가 주어가 돼... 가지고 하나님 외에 나를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신념, 나의 생각, 철학(哲學), 지성(知性), 권력(權力), 탐심(貪心), 물질(物質), 사고방식(思考方式), 세계관(世界觀), 중독(中毒), 이게 다 21세기 우상들이에요. 한국은 우상이 하나 있는데, 그게 뭐냐?

자녀가 우상이라, 특별히 엄마 동지 여러분, 자녀가 우상이라 하나님이 앉아야 할 그 자리에 자녀를 앉혀놓고 자녀를 위하여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과 피를 다 바치는 거예요. 물론 한국의 엄마의 파워가 참 엄마의 희생이 오늘 한국을 만든 건 사실이고 귀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시간이 되면 자녀를 하나님께 맡겨야 되는 거예요. 아니 처음부터 맡겨야 되는 것이에요. 그가 하나님 앞에 살아갈 수 있도록, 렛팀 고(Let Him go!!) 말이 좀 세네요.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는 거예요. 우리가 부모의 마음이 다 애틋해 가지고 자녀를 위하여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마음을 다 갖고 계시는데 혹이나 자녀가 우리의 우상이 되면 안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앉아야 할 보호자에 스스로 우리 자녀를 앉히는 그런 바보 같은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21세기 눈에 보인 우상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이 뭐냐 스마트폰이에요.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대부분 성경 보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아요. 물론 스마트폰 안에 성경도 보고 다 하긴 하지만 그러나 눈에 보이는 우상 같은 스마트폰 안에 뭐가 있느냐, 온갖 거짓 정보들이 온갖 우상 정보들이 온갖 가득 차 있는 거예요. 오늘 이런 잘못된 우상에서 우리가 자유함을 받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특별히 21세기는 중독이라는 우상 숭배가 있습니다. 젊은이들 게임 중독, 운동 중독, 심지어 젊은이들은 인성 중독 인정받고자 하는 거, 관종 인스타그램에 좋아요. 팔로워를 통하여 자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중독도 있습니다.

존 파이프 목사님은 섹스 성과 음식 이 두 가지는 1세기의 소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오늘 21세기 미국의 가장 큰 우상들이다. 미국뿐일까요?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토모니 에반스는 하나님 외에 우리의 필요를 채우고자 의지하는 모든 장소, 사람, 물건이 모두 21세기의 우상이다.

여러분 우상에 대한 얘기를 할 때 오늘 제가 우상 한 가지 얘기한다고 그랬는데, 아주 구약성경의 이 우상에 대해서 아주 절실하게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 중에 하나가 출애굽기 32장의 모세와 금송아지 사건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과 금송아지 사건들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 안 받고 만나를 먹고 홍해의 기적을 체험하고 반석에서 샘물을 경험한 영광스러운 은혜를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거 뭐가 필요한 거예요. 아니 눈에 보이는 지도자가 필요한 거예요. 눈에 보이는 뭐가 필요해 가지고 그렇게 늘 사는데 지금 그 은혜를 받고 있는 불구하고, 모세가 산에 올라가 가지고 하나님과 대면하고 십계명을 받아오는데, 모세가 산에 올라갔다가 약속하신 계획된 그 시간에 못 내려오니까 모세가 안 보이니까. 아이고야 우리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자. 그래 가지고 금송아지를 만드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가장 절실한 잘 보이는 금송아지를 만드는 거예요. 번쩍번쩍하는 거예요.

우리가 오늘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이런 찬송을 하고 은혜를 받지만 그러나 오늘 예배만 저 돌아와서 똑같다면 이것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현실 앞에서 두렵고 상처받고 마음이 타는 시험을 받으니까 모세가 돌아오는 것이 늦어지니까, 그 마음속에 불신이 싹트고 그들의 마음속에 그 불신은 잘못된 불씨가 되어 가지고 그들의 눈에 가장 화려하게 보이고, 손으로 만지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금송아지였어요. 그래서 이 금송아지 사건은 우상숭배 본질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뭡니까? 하나님을 대신하여 의지하는 것이 이 시대의 금송아지가 된다는 것이에요.

죄 성을 가진 사람들은 예외 없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금송아지 한 마리씩 다 갖고 있는 것이에요. 누구나 남모르게 혼자서 즐기고 만지고 의지하는 것이 다 있는 거예요. 그것 자체가 죄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것이 나중에 커져 가지고, 하나님보다 더 우선하는 순간 우상이 되는 것이에요. 우리 모두에게는 약점들이 다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강력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그 금송아지를 모세가 내려와 가지고 질타(叱咤)하고 그 금송아지를 뭐로 만들었습니까? 가루로 만들고, 재(災)로 만들어 버렸어요. 우리 인간이 붙잡고 의지하는 것은 결국 가루가 되고 재가 되는 헛것임을 상징적으로 쌩쌩하게 보여주는 것이에요. 모세가 시내 산에 내려와서 금송아지를 태워서 그 백성들에게 그 재를 마시게 한 거예요. 그때의 그 역사와 그 이미지를 지금 이 사회의 선지자가 20절에서 그대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에요. 20절을 우리 또박또박 크게 보겠습니다.

*이사야 44:20,
20 그는 재를 먹고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
-무슨 말이냐? 그 우상, 숭배한 그 우상, 철로 만든 것, 나무로 만든 것, 모든 것들이 결국은 그 재가 되는데 그 재를 먹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 21세기 우리가 겉으로는 똑똑한 것 같고, 우리가 의지하는 것, 하나님 대신 앉혀놓는 그거 하다가 우상 숭배하는 것, 마치 21세기 금송아지 한 마리씩 다 우리 마음속에 다 있는데, 그게 결국은 재가 되는 것이다. 그 죄는 여러분 영유권을 하나도 좋은 것이 아니에요. 그건 여러분들을 어렵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21세기의 우상 숭배는 재(災)를 먹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구원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상태를 알지도 못하는 것, 나는 우상 숭배자들은 사실은 재를 먹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임을 모르고 있다는 사람들이 하나님 아닌 것, 다른 우상숭배를 숭배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고 재를 먹는 어리석은 일이다.

중독의 우상, 신념과 지식의 우상, 권력의 우상, 자식의 우상 인정받는 우상 이것은 결국 다 재(災)를 먹고 있는 것이고. 내가 죄를 먹고 있구나. 내 인생을. 그래서 이걸 알고 내 죄를 먹는 내 인생을 재정비(整備)하고 재정렬(整列)하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렇게 할 때 참 회개하는 그릇이 되고 그릇이 넓어지는 것이에요.

이제 오늘 제일 중요한 걸 다루겠어요. 잘못된 우상숭배를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그릇으로 만들 것인가? 어떤 은혜를 주시는가? 21절 오늘 본문에,

*이사야 44:21,
2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오늘 말씀이 보통 말씀인 것 같지만 보통이 아니에요. 히브리의 독특한 어법 가운데 오늘 한국말은 좀 이렇게 평이하게 되지 사실은 기억하라. 이 일을 오늘 앞에 있는 21세기를 기억하라. 그 말씀을 우상숭배는 죄를 먹는 것이다. 기억하라. 그리 되면 너는 내 종이 되는 것이다. 너는 바벨론의 종이 아니다. 너는 신념의 종이 아니다. 너는 자녀의 자식, 우상의 종이 아니다. 너는 탐심의 종이 아니다. 너는 하나님의 종 이니라. 내 종 이니라. 이걸 잊지 말라. 아니 잊혀 지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면서 이어서 선포하는데 22절에 놀라운 은혜를 받는 거예요. 22절을 다 같이 합독 하겠습니다.

*이사야 44:22,
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아멘! 우상숭배의 죄를 먹는 우상숭배의 모든 나를 위하여 만든 신에서부터 해방 받을 때 하나님이 어떤 결과를 주시는가 두 가지를 주는데 하나는 잊혀 지지 않는 축복들, 또 하나는 뭐냐면 너의 허물 빽빽한 구름 같은 꽉 막힌 너의 앞날을 하나님께서 마치 아침 안개를 없이 하듯이 없이 해 주시겠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 속에 던져버리고, 낚시 금지 하겠다. 일 아침 안개같이 싹 다 제거해 주시겠다. 할렐루야!!~~ 빽빽한 구름이나 꽉 찬 어두움과 그런 꽉 막힌 것 같은 걸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은혜로 해결해 주셔야 되는데,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타난 영광의 햇볕과 불꽃 같은 은혜로 우리 죄를 태워버리시고 빽빽한 구름 꽉 막힌 앞날의 상태를 바꾸어 주실 줄로 확신합니다.

그래서 우상숭배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 우리에게 나타난 것이 23절이에요. 23절이라는 말씀 우리 크게 한번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이사야 44:23,
23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
-아멘 짧은 한 구절이지만 이 사회를 통으로 깨달은 산들과 숲과 그 가운데 모든 나무들 하나하나 부르시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소위 우주적(宇宙的) 찬양과 기쁨이 있는 것이고, 이걸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친히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상 숭배하는 것, 우리가 좋은 것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재를 먹는 것임을 기억 하십시다. 대신 우리가 이 문제를 처리할 때에 23절에 있는 것처럼, 전 우주적 기쁨과 찬양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런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가 눈이 열리고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할수록 우리의 믿음의 용량, 믿음의 그릇이 커지게 될 것입니다.

이제 오늘 가장 중요한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회개하는 자가 되어 가지고 우리 속에 우상을 처리할 때, 우주적 주님을 찬양할 때 우리의 믿음의 용량과 믿음의 그릇이 커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내면의 속사람, 내면의 공간의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에요. 오늘 가장 중요한 겁니다. 우리 속에 우상 제거되면 그곳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공간이 되는 것이에요.

◎우리 마음에서 우상이 제거되어 참 회개하는 깨끗한 그릇이 되면, 그곳은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거처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공간이 된다.
-하나님께서 마음껏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준비가 되는 이 space가 준비돼요. 하나님께서 마음껏 역사하실 거처가 준비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은 새 마음과 새 영과 그 다음에 새로워지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에스겔 36장에 제가 참 귀하게 생각하는 구절인데 25절, 26, 27절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공간이 된 그런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한번 보겠습니다.

*에스겔 36:25-27,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하나님 말씀 순종할 수 있는 놀라운 그릇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런 하나님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깨끗한 그릇으로 특별히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공간을 오늘 다 확보하고 여러분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속에서 우상이 제거될 때마다, 하나님의 성령이 일하실 공간이 늘어나고, 성령이 일하실 공간이 늘어나면, 우리의 믿음의 용량이 커지는 것입니다. 믿음의 그릇이 커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믿음의 그릇이 되도록 다 함께 믿음의 갑판 위에 올라오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믿음 반대로 우리의 마음속에 우상이 가득하면 꽉 막혀 가지고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이 없어지고 따라서 우상이 처리될 때에 믿음의 공간이 넓어져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귀한 축복들을 받아 담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믿음의 그릇을 커지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이런 말씀을 받을 때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선과 마찬가지거든요. 그러면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에서 나를 돌아보게 되고 내가 깨끗한 그릇 되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구약의 욥을 보면요. 욥은 어떻게 보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에요. 그런 회개할 것이 없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욥을 의롭게 생각하시고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하나님이 자랑하셨어요. 그런데 그 욥기 42장 5절 6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냐,

*욥기 42:5-6,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그는 완벽한 믿음의 사람이에요. 회개할 것이 없는 사람이에요. 회개할 것이 없는 욥도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 앞에 자기를 돌아보니까, 티끌과 재 가운데서 내가 참 회개를 합니다. 그랬어요.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욥을 너무나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을 만들어 가지고, 나중에 하나님께서 이전보다도 그냥 더 강력한 겉으로 볼 때, 숫자로도 두 배 이상의 큰 축복을 주시는 것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자, 지난주에 이어서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데 지난주 이래 우리는 물과 불을 통과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다. 가까이 나갈수록 우리는 불을 통과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 물과 불을 통과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때,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우상을 제거해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마음껏 역사를 가실 공간을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제가 달 항아리를 이렇게 했는데 이 달 항아리를 보니까,,, 보입니까? 아니 좀 더 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사람에게는 진심, 하나님께는 전심” 이 달항아리를 제가 2년 전에 문경에 계시는 어떤 달항아리 도예 전문가가 이걸 저한테 선물을 했어요. 했는데 우리 순백의 달항아리로 이 순백의 참회개 하는 그릇이 되면 하나님께서 마음껏 역사하실 공간을 내어드렸는데 지난주에 ‘All hands on deck’인데 오늘은 우리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공간을 가지고 여기에다가 ‘사람에게는 진심, 하나님께는 전심’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생일을 평생 복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받고 이제 여러분 한 가지 할 일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내 인생의 복잡한 것들, 그 다음에 정리할 것들, 제가 이런 좋은 말씀 드릴 때 정리하시기 바래요. 영적으로도 그러고 아내 이외의 다른 관계들을 정리하시기 바래요.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여러분들 수많은 오염된 것들을 정리하시길 바래요.

거기에 대한 증거를 여러분들이 보여주셔야 되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1년 동안 쓰지 않는 물건들은 다 처리,,, 우리가 선교부가 앞으로 3주 동안 받을 건데요. 여러분들 집에서 입지 않는 옷들 이런 것들을 다 정리하자. 이거 이것도 정리할 것들을 싸그리 정리하는 애를 주시길 바래요. 그리고 복잡한 것들 좀 다 처리하고 집안에 1년 동안, 사실은 6개월 동안 쓰지 않은 거 다 처리하고, 어디 여행 가가지고 여러분들 어느 숙소에 가면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래도 다 살잖아요.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복잡하고 이런 것들을 다 좀 처리하고, 정리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하나님이 쓰시는 깨끗한 그런 그것으로 상징적으로도 그렇게 하셔 갖고 정리하고 그다음 우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겠다는 좀 어떻게 상징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그렇게 해서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쓰임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가슴에 손을 얹겠습니다.

요약,
우리에게 있는 모든 우상들을 정리하여야 하고, 주님이 마음껏 일하실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시고, 넘어진 자를 일으켜 주시고, 실패한 자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 밖에 없는 줄로 믿어야 한다. 참된 회개 그릇이 되면 넘치는 은혜를 받을 것을 확신하며, 특별히 우상숭배의 모든 죄가 용서받아야 하며, 인간이 만든 모든 우상들은 결국 허망한 재가 되는 것이니, 우상 숭배의 죄에서 돌아와야 한다. 우리 모두가 다 점점 더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공간 거처가 되어야 한다.
-날마다 '피 묻은 용서의 복음'을 깨닫고, 보혈의 강에 적셔진 참된 회개'에 들어갈 때, 정결한 그릇에 참 소망을 선물로 받는 평생이 되어, 내 안의 금송아지 우상들이 허망한 재(災)임을 깨닫고 다 끊어낼 때, 내 마음과 가정과 일터는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일하시는 거룩한 공간과 거처가 되어야 한다. 사량의 교회가 '전심과 진심'(All Hands on Deck)으로 '10.27 세계/한국교회 섬김의 날' 에 헌신할 때, 민족이 살아나고, 통일이 앞당겨지며, '세계 선교의 무한 지평'이 활짝 열리기를 간절하게 간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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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8월 31일)

설교제목: : "물과 불을 통과한 그릇"-첫 번째 메시지
(A Vessel That Passes Through Water and Fire)-이사야 시리즈 ⑳

성경본문 : 이사야 43:1-7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대표기도: 고영민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오정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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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3:1-7,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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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 예배당 들어오실 때 뭔가 좀 새롭다. 이런 걸 못 느끼셨어요. 뭐 안 느껴져서 할 수 없고 새로움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우리 가을 사이가 시작되기 때문에 교회는 그렇게 준비를 하고 오늘 찬양돼도 참 귀한 찬양 하나님께 영광 받으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이 가을 사역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믿음의 그릇’ 시리즈를 이사야서 강연을 계속하는 가운데 믿음의 그릇 시리즈를 시작. 여러분들 이걸 다 나눠드렸는데 잘 받으셨어요? 그리고 오늘 일과 읽어오셨어요? 읽어오신 분들은 더 큰 축복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날 우리 글로벌 광장에서 그걸 다 내드렸는데 교구별로 또 다락방 별로 내드렸는데 그렇게 된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우리 개인도 이렇게 믿음의 그릇이 커질 뿐만 아니라, 주님 우리 교구나 다락방이나 우리 모든 한국 교회도 이렇게 그릇이 커지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그 분위기가 아주 따뜻했습니다. 따뜻하고 감사드리고 저는 이번 시리즈를 제가 시작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우리 교우들 좀 좁은 그릇이라면 믿음의 성장판을 좀 이렇게 딱 열게 해주셔 갖고 큰 그릇 되게 해달라고” 했잖아요. 큰 그릇 얘기하면 무슨 사역에 관한 그런 것이냐.

그 정도가 아니고 인격의 그릇도 커지게 해주셔갖고 여러분 이혼 직전에 있는 어려운 가정들도 이 믿음의 그릇 시리즈 끝나면 다 하나가 되는 그런 애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오늘 주님 간장 종지 같은 그릇이 큰 믿음의 달 항아리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런 마음으로 이 간장 종지는 이게 간장 종지입니다. 이 간장 종지 조그만 하죠. 그렇죠? 아주 그런데 믿음의 큰 그릇은 달 항아리인데 옆에 달항아리를 제가 갖다 놓았어요. 갖다 놓았는데 잘 안 보이는데 여기에 저희가 입당할 때 12년 전에 이 달 항아리를 한국 사회 유명한 달항아리 작가이신데, 장로님이신데, 우리 교회를 위하여 특별 다라리를 아마 항아리를 아는 분은 이게 고수가 보면 이 대단한 작품이다. 아실 거예요. ‘사랑’이라고 써놨어요.

다 ‘사랑의 교회’라고 전체 다 해놓았는데 여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막 등장하는데 한 사람도 똑같은 사람이 없고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이렇게 달 항아리, 다 일어나 그래서 제가 마음의 소원이 주님 모든 성도들이 예외 없이 사랑아리는 좀 이렇게 시작도 끝도 없고, 우리 좀 이렇게 하나님 닮은 것 같아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큰 그릇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제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갖다 놓을까? 말까. 그런데 그래도 하여튼 뭔가 여러분 나오면 안 되고 말씀이 남기를 바랍니다. 자 오늘 1절에 43강의 1절에,

*이사야 43:1,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
우리를 뭐 하셨다고요?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의 하나님이 누구를 창조하시느라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것은 우주의 기원이에요.

그런데 오늘 이사야 43절 1절은 성도의 기원이에요. 우리를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우리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소원하시는 거 뭐냐 뒤에 6절 7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오늘 본문 뒤에,

*이사야 43:6-7,
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놀라운 말씀이에요. 물론 6절, 7절은 본문으로 보면 고토(古土) 수복(修復),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복되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만, 더 크게 보면 선교적 해석으로 보면 동서남북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 우리들은 온 세계를 품고 하나님 나라에 놀라운 그릇으로 쓰임 받길 원한다. 그런 뜻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사야서에는 자주자주 뭐라고 얘기를 하면 이사야 64장 8절에 이와 같이 나와 있습니다. 다 같이 보겠습니다.

*아사야 64:8,
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우리가 뭐라고 했습니까? 진흙이다. 주님은 뭐해? 토기장이시다. 이사야서는 자주자주 주님은 토기(土器)장이시고 우리는 진흙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영어를 써서 죄송한데 토기장이라 파털(potter), 그리고 진흙은 클레이(Clay), 진흙은 아무 일을 할 수 없어요. 그런데 토기장이가 그 진흙을 가지고 어떤 작품을 만드냐에 따라서 그 그릇의 장래가 결정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 마음속에 여러분 나름대로 세상에 지금까지 살아왔던 수많은 관념 또 선입관 또 여러분들 나름 대로의 어떤 뭐 하여튼 편견이라 할까, 나름대로 생각들이 다 있겠지만, 이번 앞으로 7주일 동안을 포함해서 여러분들의 모든 생각과 편견을 주변 앞에 다 내려놓고, 추님께서 말씀으로 여러분들 빚어주시고 깨닫게 하시는 대로 여러분들 새로워지시면 좋겠어요. 여러분도 기대하시고 저도 기대하고, 그런데 어떤 분들은 말씀 이 믿음의 성장판(成長板)이 닫혀있는 분이 있어요. 딱 굳어져 가지고 율법주의로 굳어져 가지고 나는 내가 있다. 그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하셨는가 놀랍게 하셨는데, 오늘 1절에,

*이사야 43:1,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 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다시 한번 이렇게 나와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1절에 1절에 너를 창의로 말씀하세요. 삼중의 칭호를 하는데, 첫째, 뭐에? 하나님께서 너를 창조하시고, 그다음에 지으시고, 그다음 너를 구속하셨고 이 삼중 칭호에 그리고 너를 지명하게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그랬어요. 복음 생각해도 가끔 하긴 하는데 이걸 완전히 우리가 익숙하게 내 것으로 삼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지으시고, 구속하셨다. 이건 어마어마한 말씀이죠. 세 번이나 반복해서 우리에게 강조하시고 그렇게 하시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상품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믿음의 작품으로 만드신 줄 우리는 깨닫는 거예요. 하나님 무리를 지으실 때 우리를 아주 독특하게,,,

그래서 오늘 18절에 독특하게 지으셨는데 뭐냐 우리로 하여금 아주 그냥 한정판 작품으로 만드셨어요. Limited edition으로 만드셨어요. 그리 만드시고 그 다음에 우리로 하여금 적당한 삶을 살지 않게 하시고 어떻게 하십니까? 오늘 1과의 18페이지에 나와 있는데, 뭐라고 나와 있냐, 이렇게 했어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는 보냄 받은 존재로서 우리는 던져진 존재인가? 보냄 받은 존재인가? 여러분들은 이 땅에 우연히 던져진 존재입니까? 아니면 사명으로 보냄 받은 존재입니까? 확실하게 하셔야 됩니다. 다시요. 이 땅에 우연히 던져진 존재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작품으로 만드셔 갖고, 우리로 하여금 특별하게 한정판으로(Limited edition), 이렇게 사명 받은 우리 보냄받은 존재입니까? 어떤 겁니까? 보냄 받은 존재이죠.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적당한 삶, survival life, 겨우겨우 연명하는 삶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적당히 성공한 이 정도가 아니라 significant(특별한), 아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한번 창조하시고 지으시고 구속하시고 우리를 향한 소유권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 정도 되면 우리 마음속에, 야 너무 감사하다. 기쁘다. 정말 하나님께 정말 참 우리 마음속에 치밀한 은혜가 있는데,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시고, 지으시고 우리를 소유하시고 심지어 지명하게 부르시고 우리로 하여금 명품으로 만드시고 다 하셨는데, 이제 문제는 이를테면, 다 왠만한 어려움이나 문제들은 다 우리에게 면제될 것 같은데, 2절이 뭐라고 이렇게 나와 있어요? 2절에 너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이사야 43:2,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자 저와 여러분들은 이번 가을에 하나님 원하시는 믿음의 귀한 작품 믿음의 귀한 그릇이 되길 원하는데, 믿음의 그릇이 되려면 첫 번째 할 것은 뭐냐면요. 물 가운데로 지나가야 되고 불가운데로 지나가야 믿음의 그릇이 되는 것이에요. 물 가운데로 지나가고 불 가운데로 지나가야 된다.

이게 참 이게 하나님은 물과 불을 통과 믿음의 그릇을 만드시는 거예요. 목사님 저는 싫어요.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자 사실 1절에 볼 때에, 하나님 우리를 너무 작품으로 만드셔 갖고 웬만한 어려움과 문제는 면제될 것 같은 때에, 하나님 뭐라고 말씀? 2절에 다시 한번 불 가운데로 지나가면 어떻게 하겠다? 강을 지나가면 어떻게 하겠다? 불 가운데로 지나가면 어떻게 하겠다? if,,, 이런 어떤 만약이라는 말씀을 쓰시지 않으면 아예 그냥 딱 선을 하신 거예요.

‘너는 물 가운데로 지나갔다. 너는 불 가운데로 지나갔다. 너는 강을 지나간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물, 불, 강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 생활하면서 감당하는 우리의 생애를 다 한결같이 살아가면서 우리가 우리의 생애를 우리가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고난과 시련과 환란과 어려움을 통칭하는 것이다. 물, 강, 불 만약이 아니라, 물 불, 강. 그리스도인들은 시련과 혼란과 고난과 어려움을 통과한다. 별로 반응도 안 하는 거 보세요.

물 가운데로 지날 때, 강을 건널 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준비가 되어야 되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준비되려면 물 가운데로 들어가야 하고, 불 가운데로 가야 한다는 것이에요. 면제되면 좋겠는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점점 불에 가까이 가는 것이 이제 더 거의 반응 안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에요. 아이고 그러면 우리 포기해야 됩니까? 힘드니까, 신앙생활은 여러분 초등학생 수준으로 끝나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의 삶 전체는 성화(聖化)의 과정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계속 우리는 성장을 해야 되는데 그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믿음의 작품은 뭐냐? 물과 불을 통과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은 자주자주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내가 받을 고난을 너희도 받을 수 있냐? 너희가 나를 믿으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한다. 세상에서는 요한복음에 세상에서 내가 환난을 당한다.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그릇 만드는 그릇 법칙이에요. 하나님 나라의 그릇 제조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에요. 사도바울은 어느 날 두아디라 성 같은 데 가서 막 복음 전하고 그러다가 막 사람들이 그냥 고난 돌멩이 던져 가지고, 거의 다 죽은 것처럼 됐어요. 죽은 줄 알고 둘둘 말아 갖고 성 밖에 내어 쳤어요. 제자들이 같이 서서 엉엉 울고 있는데, 그냥 죽은 거 다시 살아났어요. 그 참 눈물 나는 광경이에요. 그럴 때 딱 바울 사도가 살아나 가지고 뭐라고 얘기하느냐, 너희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요암 사도행전 14장에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

여러분이 싫든 좋든 우리가 이 물과 불과 강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우리가 거쳐야 할 필수과목이에요. 싫어해도 할 수 없어요. 천로역정의 크리스천이 나오는데 기독도가 나오는데 그 기독도가 마지막에 발 때 물과 물의 강을 통과해 가지고 마지막 천성이 도달하는 거예요. 이게 필수 과목이에요. 따라서 스폴젼 목사님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려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상속자가 되려면 고난의 상속자도 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면류관을 쓸 정도의 믿음의 그릇이 되려면 십자가의 물과 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목사님 나는 상속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어쩔 수 없어. 그래야 빚어지는 거예요. 로마서 8장 17절에,

*로마서 8:17,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뭐도 받아야 한다고요? 물과 불을 통과해야 합니다. 좀 더 주목할 것은, 오늘 본분에 보니까 물과 불 가운데란 말을 썼어요. 그래서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너가 불 가운데로 지나갈 때,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정은 물 가운데로, 노도 치는 바닥 가운데로, 범람하는 물 가운데로, 심지어는 타는 불 용광로 가운데로, 집어 던짐을 당하는 것이에요. 그걸로 끝인가?

그러니까 지나면이 아니라 지날 때에, 그리고 그냥 적당한 것이나 가운데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범람하는 물 가운데, 활활 타는 불 가운데서도 드디어 3절,

*이사야 43:3,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그야말로 사망이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때 함께해 주시고, 그 다음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이 다니엘의 세 친구가 불 용광로 속에 있을 때 네 번째 하나님의 아들 같은 네 번째 주님이 그와 함께 동행하셔서 불 가운데로 통과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 범람하는 강물과 훨훨 타는 불꽃도 결국은 주님의 임자심을 통하여 우리를 파괴하거나 이기질 못한다는 거예요. 따라서 그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말씀 로마서 8장 39절,

*로마서 8:38-39,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냥 적당한 것이 아니라 물과 불을 통과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이 참으로 체화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어떠한 비극이나 어떠한 시련 때문에, 내가 병들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약해지지도 않고, 하나님과 멀어지지도 않는 거예요.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희 교회 청년부에 김소민 자매라고 있어요.

※28세 때 CRPS,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이에요. 아주 희귀한 난치병이에요. 그걸 진단받았어요. 이 병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심한 통증을 겪는 병이에요. 하루 24시간 출산의 고통을 뛰어넘는 고통을 당하는 것. 사람의 통증 치수를 1부터 10까지 놓을 때 대개 출산의 고통을 7쯤이라고 한다면, 이 병은 10이에요. 10, 제일 아픈 거예요. 그래서 약말 하나를 신기 위하여 통증 때문에 수십 분을 몸부림 차였고 하루에 100알 이상의 약을 넘는 약을 복용을 하고 Morphine, Morphine, 케타민을 막고 반복되는 주사 치료로 혈관이 모두 사라져 척수 작업기를 얻는 수술까지 받아야 했어요.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실제로 이 병에 걸린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견디지 못해 갖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는 거예요. 그러나 김소민 자매는 이 고난의 시간, 물과 불도 이런 불이 없죠. 그 시간에서 포기하지 않고 불속에서 함께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바라보기로 결심하고, 어떤 예배도 주일 예배에 참석을 결심하고 그래서 예배에 와 가지고 예배 도중에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도 예배 자리를 사모했고, 가정예배와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고백했어요. 그리고 이 안아주심의 본당에서, 특별히 웨이 메이커를 부르면서,,, 기적을 만드시는 주 부르면서 믿음으로 선포할 때 큰 힘을 얻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던 가운데 기적적으로 호전이 되어 가지고 2022년도 청년부에서 제자훈련을 시작했고, 2023년에 여름에 몸에 삽입된 모든 기계를 제거하는 영광스러운 은혜를 받게 된 것이었어요. 제가 우리 교회는 박수를 자주 안치는데, 안 하는 교회지만 오늘은 왜 말도 안 했는데 박수하라면 말도 안 했는데 박수 치시는지 모르겠어요.... 제가요. 그래서 이 자매가 이 자매가 그 가을학기부터 그의 가을학기부터 이제 청년부 이제 리더로서 지금까지 열심히 섬기고 있어요. 담당 교수님도 자매의 회복을 의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것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 김자매는 자신과 같은 희귀 난치병 환자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도움을 주고자 그간의 투명 기록을 또 간증을 모은 책을 썼어요. ’하나님 여기 저 살아있어요‘. 여기 저 살아있어요. 그걸 출간해 가지고 수많은 화론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는데, 제가 추천사를 썼어요.

제가 뭐라고 썼느냐 “절망의 낭떠러지에서도 유일한 소망 되시는 주님께 올려드리는 은혜와 믿음 보고의 결정체이다. 끝을 알 수 없는 고난의 터널을 지나는 중에도 날마다 우리 짐을 지어주시고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든 분들과 함께 고백할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김자매가 그 안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나는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근거 있는 낙관주의자이다. 내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어 주셔 가지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이 단 1가지 사실 그리고 두 달 전에 믿음 좋은 형제와 결혼까지 했어요. 어이구,,,, 자 사랑하는 여러분 이 자매는 물과 불 가운데로 지나간 사람이에요. 믿음의 그릇을 크게 만들어요.

그리고 이 자매는 고난의 시간을 고난의 물과 불을 낭비하지 않았어요. 오늘 이 자매나 혹은 베드로나 바울이나 이런 모든 성경의 인물들은 우리에게 뭐라 뭘 말해주느냐, 고난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믿음의 그릇으로 빚어가는 시간이라는 것이에요. 다시요. 고난은 뭐가 아니라고요? 끝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무슨 그릇으로? 믿음의 그릇으로 빚어가는 시간이에요. 다시요. 우리를 창조하시고 걸작품을 만드셨을 때 우리는 면죄받을까?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물과 불과 강을 지나간다고 그랬어요. 그리고 그 가운데 들어간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에요. 그것이 뭐냐? 우리를 믿음의 작품으로 믿음의 그릇으로 빚어가는 시간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내용이 우리 개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내가 시련을 겪을 때에, 내가 암 진단에 불 가운데로 들어갔을 때에, 배우자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는 죽음의 물 가운데로 들어갔을 때, 수많은 다양한 시련과 고난 가운데로 들어갔을 때,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받을 수가 있겠어요? 다시 한번 물과 불 가운데로 주님이 우리를 들어가게 하시는데, 저는 오늘 두 가지 때문에 물과 불을 지나게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하시는가, 우리를 신앙적으로 참 자유인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물과 불을 통해서 우리를 뭐하게 하신다고요? 자유케 하시는 것이 이 왜 무슨 뜻이냐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습니다. 우리는 개돼지나 우리는 동물이 아닙니다.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육신을 지니고 있고 대신 우리는 하나님의 창작품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영혼을 지니고 있는 존재예요. 영혼이 육신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니라, 육신이 영혼을 지니고 있는 거예요. 육신이 영혼을 담고 있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 하면 물과 불은 영혼을 담고 있는 우리의 육신이 이 땅에서 한계가 있는 우리 육신이 물과 불을 통과하여 영혼을 담고 있는 이 소중한 우리가 영적으로 자유케 되는 축복을 허락해 주시는 것이에요. 놀라운 그릇으로 빚어주는 최고의 도구가 되는 거예요.

물과 불은 우리를 하여금 최후의 승리를 갖도록 우리를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이 되는 것이에요. 따라서 오늘 1절에서,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볼 너는 내 것이라고 그랬는데 너는 내 것이라고 하실 때 속박되는 느낌 그게 아니라 처음에는 속박된 느낌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 정반대의 하나님이 우리가 영혼을 지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내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정체성이 확고하게 될 때 그 가운데 물과 불을 지난다는 이런 걸 깨닫게 할 때 우리는 영적으로 진짜 자유인이 되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토기장이로, 우리는 진흙으로, 진흙은 우리의 육신을 말하고 있는 것이에요. 육신이 이 귀한 그릇으로 그리고 육신이 자유함을 가질 수 있도록 계속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과 불을 사용하시는 거예요. 물로 진흙을 반죽하고 불로 도가니를 초벌구이를 하고, 재벌구이를 하고 불을 통과 적당한 불을 통과하면 작품이 안 나오는 것이에요. 시골에 있는 우리 간장 독 그다음에 무슨 된장으로 고추장 독은요. 그건 도기에요. 제가 이제 도자기를 조금 공부를 해보았는데 자기가 되려면 작품이 되려면 1300대를 통과해야 돼요. 1300 통과 안 하면 적당한 것은 그냥 도기로 끝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명품 달항아리, 도자기가 되려면 이게 물과 불을 특별히 불의 강도가 세져야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강도가 세질 때 그걸로 끝이 아니라, 작품이 되면서 특별히 뭐가 되느냐? 영혼의 자유 함을 갖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자유함을 갖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웬만한 고난이 와도 끄떡도 안 하는 것이 그리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여러분 저는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로서 여러분을 섬기고 있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귀한 일이지만 어떨 때는 여러분 여기 서기만 해도 부담이야... 저는 매주 매주 마다 작품을 만들어내야 되잖아요. 매주 매주마다 새로워져야 되는 거 아니에요. 제가 무슨 재주로, 제가 무슨 능력으로, 그 짐이 많아요. 짐이 많지만 수많은 과정들을 통과해야 하나님 물과 불을 통과한 과정을 통하여 제게 자유함을 주시는 것이에요. 웬만한 시련과 어려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함을 주시는 것이에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릴 때, 어떤 분들은 주님 나는 싫습니다. 싫어도 할 수 없어요. 물과 불을 통과하면 영혼의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진짜 간절하게 드리는 말씀은 전쟁에 나가보지도 아니하고 고난을 당하지도 않으면서도 승리를 경험했다는 말은 없어요. 제가 그럴 수도 없어요. 우리가 이 땅에서 영적 전쟁을 승리하고 승리에 면류관, 왕관을 쓰려면 먼저 이 땅에서 물과 불을 통과하는 십자가의 영적 전쟁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에요. 이 영적 전투 앞에서 물과 불을 통과하게 되면 비굴하게 벌벌 떨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영적인 자유함을 가진 사명자가 되도록 물과 불을 통과하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죽 한번 써놨어요.

●"우리가 이 땅에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승리의 면류관을 쓰려면 먼저 이 땅에서 물과 불을 통과하는 십자가를 반드시 져야 한다. 이 영적 전투에서 물과 불을 통과하면 비굴하게 벌벌 떨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영적인 자유함을 가진 사명자가 되도록 만들어 주신다".

-이게 오늘 첫 번째 우리가 믿음의 글을 대할 때 너는 내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정체성을 주셨지만 우리는 이런 물과 불을 통과한 그릇으로 먼저 준비되게 만들어 주시는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 다시요. 전쟁하지 않고 어떻게 승리합니까? 고난을 겪지 않고 어떻게 극복을 하는 것입니까? 물과 불의 고난을 통하여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오염된 것들, 거짓된 찌꺼기들이 다 처리되는 것이에요. 어떨 때는 우리가 경제적으로 힘들게 하셔 가지고 우리랑 그 불을 통과하게 하시고, 어떨 때는 우리를 쥐어짜 가지고 오염된 것을 짜내 가지고 깨끗한 그릇으로 만드실 거예요. 대장 장의 칼이 벌겋게 그 죄를 달구어 가지고 방망치로 치고 달구고 물속에 잡아놓고 또다시 내가지고 또 달구고 또 치고 적당히 몇 번 달군 것은 그냥 칼입니다마는 명검과 복음이 되기 위해서는 수없이 물과 불을 통과해 가지고 또 치고 달구고 또 치고 달구고,,, 자 이런 말씀드리면, 목사님 나는 보검(寶劍)되기 싫어요. 나는 명검(名劍)되기 싫어요. 그건 아직 하나님 심정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예요. 이 깊은 세계에 들어가면요.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여기에서 영적으로 자유케 된 베드로의 고백을 한번 들어보십시다. 베드로전서 1장 6절, 7절에 뭐로 말씀하는가.

*베드로전서 1:6-7,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왜 그러는가? 이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물과 불을 통과한 영적인 명검들이 하는 얘기야.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소께서 나타나실 때의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할 것이라.할렐루야!~~ 세상 사람들은 결코 할 수 없는 믿음의 그릇으로 잘 준비되어 가지고 금보다도 더 귀하게 돼 가지고 주님이 예배하신 칭찬과 영광과 존귀의 작품이 되는 것이에요.

오늘 이 예배에 오신 모든 분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 방송으로 들어오는 모든 분들, 주님 앞에서 영광과 칭찬과 존귀함의 은혜를 여러분들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불과 불을 통과한 사람들이 받는 축복이에요. 하나는 영적 자유함이고 또 하나는 영광과 칭찬과 존경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성도는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른 성도를 하나님은 고생시키시고 그 부른 사람을 또 불 통과하게 하시고 물 통과하시고 그런데 지명하여 부르지 않는 하나님, 식구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들은 그냥 그냥 놔두는 거예요. 내팽개치는 거예요. 고생도 안 시켜요. 물불도 안 주세요. 그래서 저는 이런 물, 불을 통과하고 난 다음에 제가 원래 사역의 46년생인데 79년도 4월 달에 젊은이들 사역의 사역자로 부름 받고 46년째인데, 수많은 과정들을 거치면서 제가 그때 깨닫는 것이 뭐냐 신앙은 이런 독특함이 있기 때문에 바위로 계란을 치는 것이 아니라, 계란으로 바위를 칠 것이다. 바위로 계란 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고, 다 할 수 있는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 치는 건 아무나 못하는 거예요.

물, 불을 통과한 사람이 갖는 자유함 가지고, 한 1년 반 정도 전에 이렇게 부탁을 하고 작년 1년 전에 공식적으로 WA 세계복음주의연맹 총회를 우리의 교회 본당에서 세계복음주의 연맹총회를 하면 좋겠다. 제가 이제 알거든요. 그런 거 우리가 뭘 할 때에 얼마만한 고난의 강을 건너고 불을 건너야 할지 제가 좀 알거든요. 그래서 내가 이거 내가 감당해도 되겠나 그런 고민도 많이 하면서 우리 교회 중직자들 또 당회 순장 반하고 몇 달 동안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가 한국 교회가 한 번은 이 산을 넘어야 되겠구나. 한국 교회가 한 번은 이 강을 지나가야 되겠구나. 왜냐하면,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 가운데 뭐라고 그럴까요? 고착화돼 가지고 아주 그냥 뭐라고 그럴까요? 진리를 독점하고 이런 분들이 계세요.

그래서 수많은 공격의 이 강을 어떻게 거느냐, 그래서 지난 한 1년 동안 고생 엄청 많이 했어요. 유튜브에 제가요. 프리메이슨이래. 제가 무슨 종교다원주의래,,, 말이나 되는 얘기입니까? 이 엄청난 불과 강을 건너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제가 열을 좀 많이 받았어요. 그래 가지고 이렇게 하다가 믿음의 작품이 시리즈를 다 준비하면서 제가 물과 불을 통과하면서 제가 달라졌어요. 어떻게 달라지는가? 공격을 하시라. 우리는 그 불로 더 우리는 더 주님이 원하시는 작품이 될 것이다. 공격을 하시라, 그러면 우리는 더 순전한 복음을 더 강화할 것이다. 공격을 하시라. 그러면 성경의 무오성을 우리가 더 주장할 것이다. 제가 이런 기도를 하는 순간부터 공격을 좀 덜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니까 이게 강을 통과하면서, 오히려 한국 교회는 또 세계복음제연맹총회를 우리가 하고 난 다음에는 더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하고 성경의 절대 권위를 주장하고 동성애 이런 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는 거예요? 안 하는 거예요. 뭐 그런 분은 별로 없겠죠? 혹시나 피켓 들고 뭐라고 그러면요. 그분들에게 물을 갖다 드리세요. 그분들도 물을 좀 지나가야 돼요. 불은 갖다 드리지 말고, 물만 갖다 드리세요. 이런 얘기를 제가 왜 합니까?

우리가 무슨 어려운 일들이 생겼을 때에, 제가 이 가을 사이를 앞에 놓고 기도하면서 그 어려움은 어려움이 아니야. 그 어려움은 우리를 영적으로 자유하게 하는 거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나님의 강력한 믿음의 군사를 만드시는 거야. 그리고 그 결과로 영광과 칭찬과 존귀를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신비한 계획이 있는 거야. 이걸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물과 불을 지나갈 때에 절대로 무너지지 마시길 바랍니다. 물과 불을 통과할 때 결코 도망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빚어지고 있구나. 빚어지고 있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절 그릇으로 빚어지고 있구나. 놀라운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그릇으로 커지고 있구나. 그래서 오늘 3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 3절에,

*이사야 43:3,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이 물과 불을 통과할 때 하나님 뭐라? 내가 애굽을 너의 뭐에 속량 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너무나 놀라운 말씀 믿음의 작품이 되고 그릇이 되면 그 거대한 제국 애굽을 우리의 속량 물로 주실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홍해 앞에서 고통당하고 그럴 때, 하나님 앞에 그냥 그 빚어질 때 믿음으로 고백하고 그럴 때 애굽을 완전히 수장 시켜가지고, 속량물로 주신 줄로 믿습니다. 구스와 스바라는 큰 나라, 조그마한 나라, 이스라엘 향하여 구스와 스바를 하나님께서 너를 대신시켜버리겠다. 그리고 4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

*이사야 43:4,
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그 큰 제국이나 그 사람들을 그냥 다 내어 주며 믿지 않는 사람들, 잘못된 사람들, 하나님 배반하고 이런 사람들 다 내어주며 백성들이 내 생명을 대신하는 그런 사람들이 너의 생명을 대신하게 해 주시겠다. 큰 나라가 너 대신 속량물로 삼아 주시겠다. 우리가 이런 고백으로 믿음의 그릇으로 준비되면 하나님은 중국을 우리의 속량물로 허락하실 것이에요. 서 러시아도 우리의 속량물로 허락해 주실 것이에요. 이 말씀으로 똘똘 뭉쳐 있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일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이게 영적 자유함이에요. 오늘 말씀을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 이 말씀을 통하여 오늘 많은 분들이 울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울더라고. 너무나 많은 분들이 불과 물에 간 가운데 그 신원의 한과 통과한 분들이 너무 많으십니다. 그걸 통과해야 여러분 믿음의 그릇 되는 것이고. 그걸 통과해야 여러분 영적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이고. 그걸 통과해야 여러분 영광과 칭찬과 존귀를 받게 되는 겁니다. 그 영광과 칭찬 존귀 때문이 아니라, 이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자연스러운 그리고 많은 분들은 이 가운데 평탄한 길을 걸어오신 분들도 많이 계세요. 많이 계신데, 환경 적으로 물과 불과 어려움을 통과 안 하더라도 여러분들의 마음은 다 마음 지키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닐 거예요. 자발적 고난의 행군을 가지고 말씀을 가지고 이걸 미리미리 깨닫겠다.

그래서 7주일 동안 주님 말씀을 통하여 제게 연단아시고 주시면 이 말씀을 내가 순종하겠습니다. 자발적 말씀의 고난의 행군을 다짐하면 환경적인 어려움이 없더라도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작품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혹시 오늘 이 가운데서 물과불 여러분들에게 있는 물과불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 떠난 분이 계시다면 그동안 물과 불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는데,,, 주님 앞에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사명감이 흐트러져 있는 분이 계시다면, 내가 뭘 위해 이 땅에 있는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이런 분들 치열하게 고민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마음속에 아주 그냥 새기기를 바랍니다. 주님 물과 불을 통과해야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그릇 될 줄로 믿습니다. 그 자유 함을 얻는 그 내용을 새기기를 바랍니다.

어제 우리 교회는 3천여 명의 순장님들이 연합순장 수양회를 했고, 지난 수요일 목요일은 우리 교육자 수양회를 했는데 이번 교육자 수양회를 하면서 우리가 슬로건이 하나 있어요. 영어로 했는데 하나님 주신 건데 “All hands on deck” 이라고 항해를 할 때에 아주 그냥 그냥 폭풍과 바람이 불 때는 모든 선원들과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갑판 위로 올라가 가지고 모두가 다 한 마음으로 그 난관을 헤쳐나가는 거예요. All hands on deck.

이것은 대영제국에서 트라파크 해전 영국, 1805년에 프랑스와의 싸움할 때 넬슨 제독의 All Hands on Deck! 평양 부흥의 진원제가 되었던 웰즈의 부흥을 할 때 웰즈에 있는 모든 광부들이여, 모든 주부들 모든 사람, 남녀노소 전부 다 모두가 다 나와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리자 All hands on deck! 이번 가을 사이를 통일 모두가 다 우리는 축복을 받고 모두가 다 갑판 밑에 가서 요나처럼 자기 생각에 찌들어 가지고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던 그걸 다 하나님 그거 아니라고 요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 다 갑판 위로 올라가 있는 믿음의 작품을 가지고, 우리가 주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한 분 한 분 응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7주 동안 주제 찬송들이 한두 곡 있는데, 7주 동안 여러분들이 함께 부를 주제 찬양을 준비를 했습니다. 사실은 주보 안에 이렇게 써드리려고 했는데 이건 그렇게 어려운 찬송이 아니기 때문에 한때 아주 많이 불려졌던 찬송이에요.


“항상 진실케. 내 맘 바꾸사 하나님답게 하여 주옵소서 주는 토기장이 나는 진흙 날 빚으소서 기도하오니 항상 진실께 내가 주는 토기장이 You are the potter. I am the clay. mold me and make me. 나를 녹여주시고 나를 만들어주고 빚어 주셔갖고 이게 This is what I pray. 이것이 내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항상 진실께 changed my heart of God. Change my heart of God. 내 마음을 바꿔주십시오. Make it ever true.
--♬ You are the potter. I am the clay. mold me and make me. This is what I pray.changed my heart of God. Change my heart of God. Make it ever true.
이 바꿔주신 이것이 그냥 항상 언젠지 진실되게 해달라고. Change my heart of God. May I be like? 내가 주님을 닮기를 원합니다. 이런 찬송인데 이 찬송을 7주일 동안 우리가 부르면서 하나님 우리가 주님이 원하시는 주님의 그릇으로 빚어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잘 몰라도 가사가 간단하니까 우리 찬양대 하고 저하고 같이 할 테니까. 이 찬송 진지하게 오늘 말씀 앞에 반응하는 마음으로 찬송하고 예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요약
'고난의 물과 활활 타는 시련의 불 속'에서도 주님이 나의 목자와 구원자가 되시니, 토기장이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정결한 마음의 그릇으로 빚어주심을 확신하며, 절망의 낭떠러지에서도 '너는 것이라 선포하시는 천동 같은 음성을 듣게 하시니, 죽음도 두렵지 않은 자유함'으로 모든 가을 사역에 승리하는 강력한 영적 기백을 갖어야 한다. 사람의 교회와 사랑을 벌아카데미(SaCA)가 2025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서울종회의 갑판 위로 올라와 총력을 다해, 압도 하시는 주권적 역사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대부흥의 경험을 주시길 간구하자.


‘믿음의 그릇’ 시리즈를 선포하는 자리에서 목사님은 우리 각자가 좁은 그릇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큰 그릇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사역의 크기만이 아니라 인격의 그릇이 넓어져 깨어진 가정도 회복되고, 공동체 전체가 성숙한 사랑의 달항아리와 같은 그릇이 되기를 바란다고 소망하셨다. 본문 이사야 43장은 성도의 기원이며,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지으시고, 구속하시며, 지명하여 부르신 분이다. 우리는 상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한정판 걸작품(Limited Edition) 으로 창조되었고, 단순히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사명으로 보냄 받은 존재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단순히 버티는 생존이 아니라, 특별하고 의미 있는 삶으로 빚어져야 한다. 그러나 믿음의 그릇은 편안한 길에서 완성되지 않고, 하나님은 우리를 물과 불을 통과하게 하심으로 성화의 길로 이끌어 가시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필연적인 과정이며, 사도바울과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고난과 환난을 거쳐야만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세워질 수 있다. 물과 불은 단순한 시련이 아니라, 우리를 믿음의 작품으로 빚는 도구이다. 이 과정에서 주님은 우리와 동행하시고, 다니엘의 세 친구가 불 속에서도 주님을 만났듯,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를 지키신다. 그 어떤 시련과 비극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강조하시면서, 목사님은 실제 사례로, 극심한 고통의 질병(CRPS)을 겪던 자매가 포기하지 않고 예배와 찬양으로 하나님을 붙들다가 기적적인 회복을 경험한 간증과 그녀의 삶은 고난을 낭비하지 않고 믿음의 그릇으로 빚어진 증거였다. 결국 고난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고 더 큰 그릇으로 세워가는 시간이라고 하셨다. 물과 불을 통해 진흙이 명품 도자기가 되듯, 우리의 삶도 시련을 통해 영적으로 자유하고 강건한 믿음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이 과정을 통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로 자라나며,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참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오늘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목적은 우리를 믿음의 걸작품으로 세우는 데 있으며, 그 과정은 반드시 물과 불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며, 고난은 낭비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의해 우리가 성숙하고 자유한 믿음의 그릇으로 빚어지는 시간임을 확신하며 감사로 받아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예배 메시지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

1. 서론: 가을 사역의 시작과 ‘믿음의 그릇’ 시리즈

*새로운 계절, 새로운 마음
가을 사역의 문을 열며, 예배당에 들어오는 성도들에게 “새로움을 느끼지 못했나요?” 하고 오프닝으로 시작한 메시지는,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 숨겨진 은혜의 기대감을 깨우는 역할을 했다.

*‘믿음의 그릇’ 시리즈 소개
이 가을 사역은 ‘믿음의 그릇’이라는 주제로 시작됩니다. 개인의 신앙이 넓어지고, 교회와 공동체의 정체성도 키워지기를 바라며, 인격적 성장과 회복을 포함한 깊은 소원을 품고 설교를 시작했다.

*달항아리의 비유
작은 간장 종지와 비교되며, ‘달항아리’처럼 크고 아름다운 그릇으로 빚어지길 바라는 소망을 전했고, 이는 우리 각자의 존재가 관계를 넘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독특하게 빚어진 예술품임을 나타낸다.

2. 본문: 이사야 43장 중심 메시지

(1) 우리는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고 부르신 존재.
-이사야 43:1의 메시지는 단순한 창조를 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지으시며, 구속하시고, 지명하여 부르신 분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가 사역이나 목표를 위한 상품이 아닌, 하나님의 특별한 걸작품—Limited Edition이라는 신앙적 정체성을 세우는 말씀입니다.

(2) 삶은 사명 받은 보냄 받은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보냄 받은 존재이다. 이 정체성은 우리의 삶이 단순한 생존을 넘어 의미 있고 풍성한 삶, 곧 “significant”한 삶이 되어야 함을 깨우친다.

(3) 신앙의 그릇은 물과 불, 환난의 길을 거쳐야 한다.
-이사야 43:2는 “물이 가운데로 지나갈 때, 강을 건널 때, 불 가운데로 지나갈 때…”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이다. 물과 불은 우리의 삶에 피할 수 없는 시련과 고난을 상징하며, 이를 통해 믿음의 그릇이 단단해지고 성화 되며, 이는 고난이 단순한 어려움이 아닌, 믿음의 명검으로 단련되는 성화의 통로임을 상기시켜 준다.

(4) 하나님의 인도는 동행과 보호이다.
-물과 불이라는 환난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침몰하거나 태우지 않으시는 보호자이자 동행자이시다. 과거 다니엘의 세 친구와 같은 상황처럼,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에서도 우리 곁에 계시며 믿음을 지켜주시는 분이시다.

3. 간증: 신앙의 그릇으로 빚어진 실례.

*간증 어느 자매:CRPS라는 극심한 난치병을 앓던 청년 자매의 이야기:
-출산보다 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예배를 포기하지 않고, 예배 중 응급실까지 가면서도 주님을 찾았다. 결국 기적적인 회복을 경험했고, 고난의 시간을 간증과 책으로 승화했다.

“나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가 아니다. 내 속의 소망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시라는 그 단 한 가지 사실이다.”라는 고백은 물과 불을 통과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축복을 보여 줍니다.
라고 간증했다고 함. 이 간증은 사랑의 교회 안에서 현실로 일어난 믿음의 여정, 그리고 “고난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믿음의 그릇으로 빚어가는 시간”이라는 메시지를 생생히 드러냈다.

4. 신학적 메시지: 고난의 의미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1) 고난은 끝이 아니다—성화의 도구
-물과 불을 통과하며 그릇이 단련되듯, 우리의 신앙도 환난을 통해 진정한 믿음의 그릇—자유한 선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된다.

(2) 자유함을 얻다
-“너는 내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선언은 속박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확고한 정체성, 그리고 이에 따른 영적 자유를 의미한다.
-물과 불의 통과를 통해 우리는 비굴하지 않고 흔들림 없는 믿음의 군사—영적 자유인이 된다.

(3) 영광과 칭찬의 상속자
-베드로전서 1:7 말씀처럼 “불로 연단하여 없어질 금보다 귀한 믿음”은
결국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 칭찬과 영광, 존귀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5. 결론: 실천과 다짐.
*자발적 고난의 여정
마음으로 고난을 미리 감당하며 “말씀의 고난 행군”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때, 환경적 고난이 없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믿음의 그릇으로 세워질 수 있다. 다 같이 동참하는 공동체적 확장 — “All Hands on Deck” 어려운 시기일수록 모두가 힘을 합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갑판 위의 올라서라’. 전 성도적 동참’을 강조했다. 이는 한 사람의 신앙이 아니라 공동체의 성장과 연대를 향한 초대이다.

*7주간의 찬양과 자리매김
-서로 부를 찬송 (“You are the potter, I am the clay…”
-You are the potter. I am the clay. mold me and make me. This is what I pray.changed my heart of God. Change my heart of God. Make it ever true.)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변화를 향한 진심 어린 응답으로 준비되기를 소망하며 예배를 마무리했다.

-정리하자면, 오늘 예배의 메시지 핵심이다.
1. 가을 사역과 믿음의 그릇 시리즈 선포
2. 우리의 정체성—창조, 구속, 지명받은 걸작품
3. 신앙의 길—물과 불을 통과하는 여정
4. 간증—고난을 믿음의 증거로 바꾸는 삶
5. 은혜의 결과—영적 자유, 성화, 영광의 그릇
6. 실천 다짐—자발적 고난, 공동체적 연합, 찬양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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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8월 24일)-초빙
제목: "낮추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
말씀: 신명기 8:11-1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노추찬 부목사님(대학부, 토비새 TFT)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헌금송: 신예은(소프라노), 강천성(바리톤)-1부
설교자: 권성수 목사(대구 동신교회 원로,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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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명기 8:11-16,
11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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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과 온라인으로 동참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 인생은 어떻습니까? 고통 중에 고민하십니까? 좀 형통한 편이라고 생각이 드십니까 인생을 살아가시면서 좀 잘 풀리는 것 같은데, 지금쯤에는 더 이상 권한이 없겠지 싶은데 또 고통이 찾아오는 것을 느끼시지 않습니까?
 
고통과 형통이 이게 거의 번갈아서 기간은 좀 다르지만 일어나고 있는 인생을 살아가시면서 여러분, 어떻게 신앙의 반응을 보이십니까 고통 중에 혹시 불평하고, 원망하고, 신세타령 하시지 않습니까? 형통할 때 마음이 교만해져서 이만하면 됐다. 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말씀을 잊어버리시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인생 전체는 천국 가나안을 향해서 나아가는 여정(旅程)입니다. 이 천국 가나안을 향해서 나가는 여정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실까요?
 
오늘 여러분이 말씀을 보셨습니다 마는 모세가 40년 광야 생활이 끝나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지금으로 말하면 요르단, 요단 강 건너편 요르단 거기에서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말씀하시는 내용이 신명기인데, 그 신명기 내용 중에 8장에 오면 광야 생활 전체의 의미와 또 가나 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8장 16절에 보시면,
*신명기 8:16,
16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이 말씀이 나오는데 이것이 광야 생활의 핵심이에요.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놓고 보실 때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할 때, 낮추시는 걸 좋아하세요?. 시험하시는 것을 좋아하세요. 마침내 복을 좋아하세요? 질문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마침내 복을 좋아하시죠. 마침내 복 다 좋아하시거든요. 제가 그 말씀부터 시작할게요 마침내 복 복이라는 게 뭡니까? 복이라는 말이 나오면 조금 신학적으로 예민한 분들은 번역신학이 금방 떠오를 거예요. 번영신학, 프로스페라티 가스펠(prosperity Gospel) 건강하고, 부하고, 행복한 것, 예수 잘 믿으면 건강해진다. 이 사람이 되면 부해진다. 예수 잘 믿으면 세상적으로 봐도 행복해진다. 저게 번영신학이죠.
 
이 번영신학은 건강한 것을 보면 잘 믿었다는 거예요. 병들었으면 못 믿었다 부유한 것을 보면 잘 믿었다는 거예요. 가난하면 못 믿었다는 거예요. 세상적으로 볼 때, 행복하면 잘 믿었고 불행하면 못 믿었다는 게 정말 그렇습니까? 결과를 놓고 믿음의 여부와 그 믿음의 강도를 측정하는 잘못된 거죠. 또 번영신학, 번영 신앙에는 십자가가 없습니다. 크레딧 카드는 있어도 십자가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게 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했는데, 주님을 위한 삶의 여정에서 주님의 뜻대로 살면서 겪는 고통, 이게 십자가죠 의를 위해서 천국의 의를 위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것을 위해서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이 십자가죠. 번영신학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번영신학은 이런 문제가 있는데, 그러면 번영신학이 말하는 건강과 부와 행복은 전혀 없는 것인가? 예수님은 무조건 가난해지고, 병들고 세상 적으로 불행한가, 여러분 이걸 어떻게 생각하세?. 여러분이 성경을 전체를 펼치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또 구원의 역사, 세계 역사 전체를 놓고 펼쳐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지 않습니까?
 
창조하실 때는 영적인 복만 주신 것이 아니라, 육 적인 복도 주셨어요. 영적인 복도 하나님과의 관계 이것도 완벽했고 타락하기 전에 육적인 복도 완벽했어요. 건강도 완벽, 부(富)도 완벽, 우주 만물이 다 재산이었으니까 분명히 타락하기 전 창조 상태에서는 영적인 육 적인 복이 둘 다 완벽했습니다. 완성을 생각해보세요. 완성된 천국 완성된 천국에서도 역시 영육의 복이 완벽(完璧)합니다. 여러분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고 여러분의 모든 고통을 제거하시고 질병을 치료하시고, 구조적인 죄, 개인적인 죄 다 없애시고 의 불의가 전혀 없는 의 완벽한 지복의 상태, 영광의 치복의 상태 그게 완성된 천국이에요.
 
그러니까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시작과 끝이 영육 간의 복이 완벽하다. 이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육의 복이 완벽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영적인 복만 복이고, 육 적인 복은 복이 아니다. 번영 신학이 말하는 복은 복이 아니다. 라고 말하면 안 된단 말이에요. 창조와 완성 이때는 영역의 복이 완벽한데 그 사이는 어떤가 우리가 살고 있는 타락한 인간 세계는 어떤가 이 세계에 고통이 있거든요. 어려움이 참 많거든요. 그러면 이때의 복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라고 할 때 구약을 보시면 구약 시대에는 주로 육적인 복 현세적인 복이 두드러져 있어요. 구약시대의 복을 복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씨와 땅과 임재입니다.
 
씨는 가족들, 가족들이 건강하게 잘 된다. 땅은 환경, 주변 환경 그리고 임전에 하나님께서 늘 함께 계신다 근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보여주실 때 주로 이 현세적으로 잘 되는 것이 두드러졌단 말이죠. 아브라함도 수양 그러니까 양과 염소와 가축이 막 넘쳤죠. 이 삭도가 농사를 지었을 때 100배나 복을 받았죠. 가축 목축할 때도 100배나 복을 받았죠. 구약시대는 그것이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두드러져 있어요. 왜 그때는 아직도 미숙(未熟)한 시대니까, 미숙한 시대의 그림자 시대에 육 적인 복을 통해서 영적인 복을 보여주시는 그런 방식을 하나님께서 택하셨습니다.
 
신약 시대에 들어오면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다. 는 복이 있다고 영적인 쪽에 포인트를 맞추셨어요. 왜냐하면, 육 적인 복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것이 핵심이니까. 그 핵심을 놓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복을 생각하실 때 영적인 복도 있고, 육 적인 복도 있다. 둘 다 인정하셔야 돼요. 그런데 핵심은 영적인 복이에요. 육 적으로 가난하고 병들고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아주 불행해 보인다 할지라도 특별히 박해받는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교제(交際)하고,하나님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삶이 최고의 행복이거든요. 시편 73편 보시면 25절,
 
*시편 73:25,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현세적으로 몸이 아프고, 풀리는 것이 없고, 고통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할 때 하늘에서는 주 외의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가 없나이다. 이 말씀을 외우면서 고백하면서 이겨내는 거예요. 그게 핵심 회복이에요. 핵심, 회복, 그 핵심의 복이 있으면 다른 모든 것을 못 받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을 체험하는 삶을 살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현세의 천국을 시식하고, 내세의 천국을 만끽할 하나님 백성으로 살기만 하면 그 자체가 주변의 현세에 물질적인 복이 없다 할지라도 최고의 복입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려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이 없나이다. 여러분이 교인들을 보실 때도 사람들을 보실 때도 이 각도에서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고 사는 사람이 최고의 복을 누리는 사람이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이 영적인 복만 주시면서 육 적으로는 고통을 당하게 하시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박해받는 경우가 그렇죠. 세상에서 또 바로 살면서도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는 말씀대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참 많지요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고 있으면 최고의 복을 누리고 있는 겁니다. 현세에는 고통도 있고 형통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고통 중에 형통하다고 했어요. 요셉을 보시면 보디발의 가정에 노예로 들어갔지만 그 가정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요셉과 함께하셔서 보디발 집의 모든 일들이 잘 되게 하셨어요. 분명히 노예의 고통이 있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임재 함께 하셔서 형통했어요.
 
죄수로 들어가서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했지만, 죄수로 억울한 감옥살이 하는 동안에도, 감옥의 모든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감옥의 총무가 되었죠. 형통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의 신하들을 만나게 하시는 이 형통한 길을 여셨어요. 여러분이 현세에는 고통이 있지만 고통만 보시면 안 돼요. 고통 중에 형통(亨通)케 하시는 하나님을 보셔야 합니다. 시련을 통해서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을 보셔야 됩니다.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실 때 이 낮추시고 시험하시는 과정 중에 어떨 때는 광야를 만나요? 어떨 때는 사막을 만나요? 그러나 광야에서도 길을 내시고, 사막에서도 강을 내십니다.
 
다 막혀있는 것 같고,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 것 광야에서도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의 강을 내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이 일을 행하리니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의 길을, 사막의 강을 내리라.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의 강을 내시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이것이 복입니다. 복, 근데 여러분 말씀을 주위에서 보세요. 그냥 복이라고 하시지 아니하시고, ‘마침내’ 라고 할 수 있어요. 마침내 복,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침내 복 받기를 원하세요?. 당장 복 받기를 원하세요. 기도를 해도 여기서 기도하면 나가면서 바로 응답 받기를 원하세요? 아니면 5년 후에, 10년 후에, 20년 후에 받기를 원하세요? 당장 받기 원하시죠.
 
여기에 갈등이 있는 거예요. 우리는 당장 복을 주시옵소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당장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네게 주겠다. 요 사이의 갈등이죠. 왜 마침내 라는 게 필요할까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놓고 왜 마침내 라는 것이 필요할까요? 마침내, 마침내 제가 예전에 기도할 때, 아무리 기도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서 하나님 왜 하나님께서 해결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신데, 오케이 하고 한마디 하시면 당장 되지 않습니까? 저의 문제를 당장 해결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오케이라고 하십시오. 오케이라고 하십시오. 하나님 입을 꼬매셨습니까? 오케이 그럼 끝이 아닙니까 근데 왜 오케이를 안 하십니까?
 
제가 다 얘기했지만, 그 갈등이 아주 심했어요. 왜 당장 오케이 하지 아니하시고 한참 후에, 마침내 오케이 하시느냐 이거죠. 마침내 복을 주시느냐, 본문을 보시라고요. 시험하고 낮추시고 시험하세요. 마침내 복 그러면 굉장히 성도들이 좋아하시는데 시험하시고, 낮추시고 시험하자 그러면 푹 꺼지는 것 같아요. 왜 낮추시느냐 한번 생각해보세요. 왜 낮추시느냐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세요. 겸손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에 접속이 안됩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의 간섭을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겸손해야 되거든요.
 
마이클 에그너라고 하는 유명한 신경외과 교수가 있습니다. 무신론자입니다. 이 뇌 수술을 수백 번을 했어요. 어떤 경우에는 뇌를 거의 3분의 1을 잘라내는데 이 정도 잘라내면 뭐 운동신경이 마비되고 무슨 생각하는 신경이 마비되고 정상적으로 살지 못할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게 수술했는데도 정상적으로 사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분이 나중에 숨이고 난 후에 영혼 두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 마음 속사람이 있다는 것을 간증하고 설파하는 그런 유명한 교수입니다. 그런데 무신론자였습니다. 처음에는 근데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이 조금 지나면 엄마 아빠와 눈을 마주치면서 반응을 보여야 돼요. 반응 아들이 반응을 보여야 정상이잖아요. 반응을 안 보여요. 아무런 표정이 없어요. 자폐입니다.
 
자폐 아빠가 막 가슴이 찢어지는 거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인생이 끝난 것 같아요. 아무리 유명해도 소용없다. 내 아들이 이러니까 정말 죽을 지경이에요. 무신론자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을 믿지 않습니다. 당신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정말 살아계신다면 내 아들 좀 회복시켜 주십시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무신론자인 이 외과의사에게 당장 말씀하셨어요.
 
네가 니 아들의 반응을 내 한테 보이고 있어 네가 니 아들과 똑같어, 나에 대해서는 니 아들과 똑같어. 니 아들이 너를 알아보지 못하지? 너에 대해서 반응이 없지. 니가 지금 나에 대해서 반응이 없어 날 알아보지 못해. 그때 신경외과 교수인 이 에그너 박사가 깜짝 놀라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바로 항복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몰라봤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보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기도가 그 정도입니다. 고 정돈데 아이가 태어나서 6개월 되던 해에 자폐증이 완전히 사라지고, 엄마 아빠를 보고 웃고, 울고 정상적인 아이로 변해버렸습니다. 에그너 박사가 자기가 최고의 외과 의사로서 대단한 사람이다. 난 하나님 필요 없다. 하나님이 없다. 라고 할 때는 하나님과의 접속이 안 된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걸 낮추시니까 납작 엎드려서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낮추시는 거예요. 예수를 믿어도 어느 순간에 다시 올라오거든요. 낮추시는 작업이 꼭 필요합니다.
 
제가 웨스민스터에서 공부할 때,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그러니까 그분은 명문대 나왔고 또 미국의 주요한 아주 대단한 직장에서 취업해서 잘 살다가 하나님께서 목사가 되도록 부르셔서 학교에 왔는데, 학교에서 평소에는 너무너무 자기가 대단한 줄 알고 하 이러고 다니는데 시험 볼 때만 되면 막 그 학교가 학생들을 정신적으로 고문하는 학교니까 시험 문제가 너무 힘드니까, 시험 문제 시험 때가 되면 내려간대요 내려간대요 자기가 죽겠다는 거예요. 죽겠다는 거예요.
 
근데 시험만 끝나고 나면 다시 올라온대요. 자꾸 내려갔다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가 올라왔다가 그러면서 자기는 자라목이라고, 자라목 자라처럼 움츠렸다가 피었다가 움츠렸대요. 이게 그 사람만이 아니거든요. 인간입니다. 인간이 다 그렇습니다. 유발 로아 하라리라고 하는 히브리 대학의 역사학 교수인데 역사학 교수가 미래의 약사학, 미래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호모데우스라는 책을 썼어요. 인간이 하나님이다. 처음에는 ‘호모 사피엔스’ 생각하는 인간 자 인간이 진화되어서 생각하는 인간까지 왔다 그 다음 단계는 뭐냐 호모데우스다 인간이 신이 된다.
 
어째서 그러냐 과학과 기술이 발전되고 있으니까 생명공학이 발전하고 있으니까 ai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으니까 모든 데이터를 다 합쳐 가지고 기술을 다 합쳐 가지고 사용하고 활용하면 결국은 인간의 모든 질병을 다 치료한다. 그리고 영생을 확보한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된다. 그게 호모데우스예요. 호모데우스 이게 그 학자만의 주장이 아니고, 안민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 상태 자동 교만입니다. 자동 교만 인간은 자동 디폴트로 교만합니다.
 
장세기 3장에 뱀이 하나님처럼 된다고 유혹할 때,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기도 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를 제쳐놓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는 요런 죄를 범한 이후로 끊임 없이 자동적으로 인간은 교만해요. 하나님 없이 살려고 하는, 이런 본성 죄악의 본성이 있습니다. 자동 교만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고 환경교만 있어요. 환경에 의한 교만 고통이 오면 고통 중에 하나님 왜 나 이렇게 하십니까? 날 버리셨습니까?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근데 왜 나한테 복을 안 주십니까 이러면서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많은 기적을 체험해도 문제에 부딪치면 또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이게 광야 시대의 하나님 백성만이 아니고 우리의 모습이에요.
 
아무리 많은 기적을 체험해도, 하나님의 기도응답을 체험해도 어려우면 또다시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까 하는 하나님이 시험하는 것이 나오고 왜 하나님이 나한테 이러시는가 라고 하는 불평과 원망이 나오고 자기에게로 가면 신세타령이 나오고 남들에게로 가면 대인기피증이 나오고 이게 인간이거든요. 고통을 당할 때 그렇게 되는 거예요. 왜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가? 예수 믿으면 문제 해결 받고 행복해지고, 잘 산다 듣고 왔는데 예술을 잘 믿고, 기도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했는데 여전히 문제는 계속된다. 구하라 주실 것이오 라고 하셨는데 내가 생각하는 아주 멋지게 생기고 좋은 직장도 아니고 대단한 사람인데 주여, 저 남성을 나한테 배우자로 주시옵소서.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 그래서 떠나는 거예요.
 
고통 중에 떠나는 것 자체가 교만입니다. 불평 원망 신세타령이 교만입니다. 풍요로울 때는 어떻게 되냐 형통 중에는 본문에 나온 대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이라는 좋은 땅을 주시고 젖과 굴이 흐르는 땅이라는 거는 풍요로운 땅이라는 뜻이에요. 옥토가 있습니다. 곡물이 잘 자랍니다. 가축이 잘 됩니다. 동이 나고 철이 납니다. 샘이 있습니다. 중동에서는 물이 생명인데, 샘이 있습니다. 분천이 있고 시내가 있습니다. 너무 좋은 환경이에요.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하나님 백성들 앞에 놓고 이제 이런 땅에 들어간다. 이런 땅에 들어갔을 때에, 너희들이 풍요로운 땅에서 하나님 주신 복을 마음껏 누리면서 잘 살게 될 때에 마음이 교만해서 여기에 핵심이 있어요. 마음이 교만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주의하라 사람이 잘 살면 내 능력 내 지혜로 내가 잘 산다는 생각을 하게 돼 있습니다. 내가 명문대 나왔으니까, 내가 대기업에 취업했으니까, 내가 사업을 잘했으니까, 내가 인간관계를 남들보다 뛰어나게 맺었으니까, 내가 남보다 아이디어가 뛰어나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된 거야. 내가 벌어서 내가 마음대로 쓰는데 무슨 잔소리냐 이런 태도가 되는 거거든요.
 
하나님께서 배부르게 하시고 배부르게 하시면 인간이 마음이 교만해지고, 마음이 교만하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볼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이것이 환경으로 인한 교만이에요. 자동 교만의 환경고문 교만이 있어요. 그래야 하나님이 작업을 하셔야 됩니다. 낮추시는 거예요. 낮추시는 작업 이 낮추시는 작업을 하실 때 여러분 생각하기를, 아이고 하나님 제가 뭐 교만하지 않은데요. 절대 교만한 것이 아니에요. 교만하지 않아요.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테스트를 해보시면 돼요. 자존심을 건드릴 때, 여러분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존심을 짓밟을 때 거의 막 폭발하듯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거의 못 봤어요. 자존심이 짓밟히면 아무도 못 살아요. 교회를 할 때도 당에서도 자존심을 짓밟는 일을 하면 다 깨집니다. 너무너무 잘 알죠. 그런데 여러분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자동 그 자존심이 짓밟히는 일을 당할 때 어떻습니까? 시편 66편 12절에 보면,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지나가게 하셨다고,
 
*시편 66:12,
12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여러분, 내 머리 위에 발을 대고 막 나를 밟는다. 그러죠 짓밟는다. 근데 짓밟는 정도가 아니라 막 타고 지나가게 하시는 거예요. 내 머리 위를 타고 지나가게 하세요. 저는 내 머리 위를 짓밟는 정도가 아니라 머리 위에 짓밟고 막 뒤돌리는 체험을 했어요. 여러분 이런 체험을 하실 때 어떤 반응입니까?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했다. 그런데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마침내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요? 주께서 끌어내서 풍부한 곳에 들이시기 전에, 사람들이 머리를 타고 가게 하시는 일을 하신 거예요. 이런 일을 겪을 때 여러분 반응이 어떻습니까?
 
다윗이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맨발로 울면서 피신할 때, 시므이라는 사람이 돌을 던졌죠 돌 하나만이 아니고 여러 개 돌을 던졌죠. 그리고 먼지를 막 날렸죠. 그러면서 저주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말 번역에 보면 가거라 가거라 돼 있지만 그렇게 점잖게 저주하지 않습니다. 꺼져락 꺼져 이 나쁜 놈아 왕을 향했어요. 다윗과 같은 왕을 향해서 그러니까 옆에 있던 장군들이 저 죽은 개 같은 인간 목을 쳐버릴까요? 보통 사람 같으면 목을 치는 거예요. 다윗이 안에 내버려 둬, 내버려 둬,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나를 저주하게 하셨다면 내가 받아들이겠다. 받아들이겠다. 이게 다윗의 겸손입니다. 겸손 이 겸손하도록 하나님께서 광야 훈련을 시키시는 거예요.
 
광야 훈련 광야 훈련은 질병의 훈련이 있습니다. 가난의 훈련이 있습니다. 실패의 훈련이 있습니다. 모든 게 잘 되는데도 아이들이 막 엉망인 그런 훈련도 있습니다. 특별히 관계 훈련이 아마 제일 힘드실 거예요. 가족들과의 관계, 직장에서의 관계, 개인들과의 관계 이게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감당을 못 하실 거예요. 여러분의 어떤 사람을 만나면 정상적인 사람인데 분명히 정상적인 사람인데 여러분 마음속에 생각이 어떻게 나냐 하면 저 사람이 사람인가, 짐승인가, 마귀인가, 들어가면 마귀 새끼까지 간다고 막 시작했죠.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저래 이런 관계의 고통도 훈련 속에 들어있습니다. 이런 훈련 속에서 낮추시는데 낮추시면 여러분들이 그 낮추심을 통해서 겸손해지는 거예요.
 
낮추시면 되겠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점점 더 겸손해지는데 여러분 보십시오. 바울 사도가 얼마나 겸손한 분입니까? 얼마나 대단한 경험을 했습니까? 얼마나 되는 천국까지 갔다 온 그런 경험 계시까지 받은 분인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탄의 가시 몸에 가시를 주셨죠. 낮추시는 거예요. 그렇게 겸손한데도 낮추시는 거예요. 바울에게 이 정도였다면 우리에겐 끊임없이 하시는 거예요. 바울이 겸손할 수밖에 없는 육체 가시를 주셨어요. 그것이 교만 제어 장치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저한테도 있습니다. 평생토록 교만을 제어하는 장치가 들어있어요. 교만해야 교만하면 하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니까 겸손하게 만드셔서 은혜를 체험하게 하시니 은혜 증폭 장치에요.
 
은혜 증폭, 장치 교만 제어 장치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낮추시고 낮추시고 낮아지게 하시면서 내가 약할 때에 강한 것을 체험하겠어요. 나의 대단한 것을 드러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약함을 통해서 하나의 영광을 드러내는 여기까지 가게 하시는 겁니다. 이게 낮추시는 작업이에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낮추심을 받으실 필요 없는데 스스로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셨어요. 제일 낮은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자리까지 내려가셨어요. 이게 낮추시는 겁니다.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십니다. 시험하사라고 그랬죠 시험 어떤 시험을 하십니까? 8장 2절과 3절에 보시면
 
*신명기 8:2-3,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시험하시는 거예요. 마음을 세상에 두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께 두고 있는가, 천국에 두고 있는가, 하나님의 일에 두고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가 아니면 말씀 들을 때 뿐이고 나가면 세상하고 똑같이 사는가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상대적으로 예전에 비해서 잘 살고 있는데, 교만해져서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데 있습니다. 내가 언제 버렸냐 이렇게 질문하시겠지만, 현장에 나가서 생활하실 때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똑같이 생활하시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그게 버린 거예요.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그 말씀 한마디를 붙들고 사는 거 이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거든요.
 
고난 중에도 인내하시면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붙잡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붙잡는 그러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근데 예배 드릴 때 뿐이고 나가면 금방 똑같아지는 이 문제 때문에 낮추시고 시험하시는 일이 계속되는 겁니다. 개인만이 아니고 국가도 똑같습니다. 낮추시고 시험하시는데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지금 낮추시는 거예요. 시험하시는 거예요. 저는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에 반드시 마침내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건 전 세계 지금 한류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십니다. 이 한류는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류의 핸들을 움직이고 계시는데 이 한류는 한류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복음의 한류를 전 세계에 퍼트리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한류를 통해서 한국 사람 무시하지 못하게 하시고 한국 생명사 무시하지 못하게 하시고 한국에 관심을 갖게 하시고 한국 제품이 최고라고 한국 사람을 좋아하게 이래서 한국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게 만드시는 한국 사람들이 부족하지만 한국 신자들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순수한 거예요. 열정적인 거예요. 그래도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어요. 기도회 때 그렇게 많이 득세 때 그렇게 많이 산삼 기도회 때 뭐 사천 명이나 이렇게 모여서 그런 외국의 교회를 찾기 힘들어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대한민국도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런 작업을 하실 때 왜 시험하시느냐? 나를 알도록 하나님은 다 아시는데 시험이 필요 없어요. 근데 내가 내 자신을 알아야 되겠다.
잘 믿는 줄 알았는데 믿음이 큰 줄 알았는데 질병 앞에 딱 도착하니까 오 이거 봐라! 어려움 앞에 딱 도착하니 어 이것 봐라 하고 자신을 아는 거예요. 시험을 치므로 자기를 보게 하신 거예요. 자신의 수준을 알게 하시는 겁니다. 이 수준을 알아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거거든요. 업그레이드 시키시는데 방법이 시험이에요. 알게 하시고 다음으로, 뛰게 하시고 알게 하시고 뛰게 하시고 낮추시고 시험하셔서 올라가게 하십니다. 잘 믿는 것 같은데, 아무리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기도 응답을 체험해도 어려우면 또 튀어나오는 거예요. 어려우면 또 불평이 튀어나오는 거예요. 저희 같은 경우에는 짜증이 자꾸 나오더라구요. 제가 유학생 시절부터 짜증을 부는데 지금은 좀 덜해졌지만 아직도 집사람이 저보고 있대요 제가 아주 속이 많이 상해요. 짜증이 있다.
 
그러면 왜 말을 할 때 짜증 섞인 말을 하냐고 이러는 아휴 목사가 돼 가지고 제가 그랬거든요. 하나님 짜증은 불평이 아닙니다. 하나님 원망이 아닙니다. 짜증은 그냥 그냥 그냥 하나님 봐주실 수 있잖아요. 아니잖아요. 하나님은 아니래요. 짜증이 불평이고 짜증이 원망 얼마나 짜증 내지 않도록 불평하지 않도록 훈련을 시키시는지 입에서 짜증 표정에서 짜증이 사라지게 하시고 그다음에 마음에서 수술해 내시는 작업을 하시더라고요. 그거 많이 겪었어요. 낮추게를 하도 많이 겪어 가지고 알아요. 하나님 이번에는 봐주시죠. 요 정도 봐주시죠. 근데 또 또 나와요. 또 하나님 또 마치 옆에 계시는 것처럼 바로 또 그래서 제가 어떤 일을 당해도 지금은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해도 제일 먼저 하는 건 주요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검사에 감사하라 감사하는 거예요. 달아나와요. 감사가 그래서 주여, 감시합니다. 그거 안 하면 큰일 나요? 저 경우는 바로 와요. 또 손길이 또 와요. 이거 낮추시고, 시험하시는 거거든요. 다윗을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까? 사울 당시에도 그런데 골리앗 앞에서 전부 다 전부 다 벌벌 떨고 쩔쩔매고 막 굴러 숨고 난리가 났죠. 그런데 다윗은 17세의 소년이지만 권례 앞에 맞섰잖아요.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으니까 과거, 과거의 은혜 과거의 은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자가 부활의 은혜 하나님 백성의 은혜 기도 응답의 은혜 사랑에게 나오는 은혜 말로도 할 수 없는 은혜를 주셨잖아요. 이 많은 은혜를 주셨는데 과거에 주신 은혜를 받았는데 골리앗과 같은 어려운 앞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그때 이제 문제거든요.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으 즉 과거에 일하셨은 즉 과거에 이렇게 이렇게 하셨은 즉 현재 내 앞에 있는 이 골리앗의 손에서 더 건져내실 것을 믿습니다. 이 도라는 게 중요합니다. 또 지금까지 연애 베푸신 하나님 이 고통의 현장에서 도 일하실 줄 믿습니다. 이게 이루어져야 되거든요. 이게 이게 도 역사실 줄 믿습니다. 이 어려움 속에서 도 역사하실 줄을 믿습니다.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골리앗의 손에서 또 건져내시리라. 요게 신앙의 성숙입니다. 신앙의 성숙 그러면 항상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는 거예요. 하나님이 역사시켜서 믿고 나가는 게 이게 성숙이에요. 이것이 크면 클수록 믿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 믿음의 그릇 커지면 커질수록 담기는 게 많아져요 하나님의 복에 영유권의 복에 담기는 게 많아져요 역량의 폭이 넓어져요.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미쳐요 하나님이 그런 인물들을 붙잡고 영향을 미치게 사용하시는 겁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 앞에서 내 주인이 모든 걸 내게 맡겼지만 당신만은 내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주인의 아내입니다.
 
내가 어떻게 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께 득죄하리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감옥에 갈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도 딱 서서 어떻게 득죄하니까 하고 거절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나중에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 자기 형들이 잘못한 것을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서 회개하게 만들고 바로 서게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용서하고 그들을 본지 않았습니까? 나를 이리로 보내신 분들은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들과 우리 모두를 살리시려고 나를 여기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셨습니다. 노예로 왔고 죄수가 되었지만 하나님이 그 과정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고통의 때에도 하나님 말씀 붙들고 있었고, 형통의 때에도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나님을 높이면서 하나님이 그 당시 전 세계를 살리는 구원의 통로로 요셉을 사용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게 성숙입니다. 나를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신는 주님의 모델을 한번 보십시오. 추님은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셨어요. 완전히 비우시고 낮추셨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어요. 우리도 자신을 비우고 낮추는 겁니다. 비우고 낮추는 일을 평소에도 하지만 늘 고난 속에서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점점 더 성숙해져서 이 방면에서 주님을 닮아가면서 성숙해지면 광야의 길을 내시고 사막의 계획을 내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새일을 체험하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도록 하시는 한 역사를 체험하실 겁니다.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시는 주님의 복을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요약
우리의 마음속에 오늘 말씀이 깊이 새겨져서,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함으로 나만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친척들과 친구들과 이웃들과 동료들과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의 복, 예수 생명이 체험되어 흘러가는 복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복을 받은 후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두려워했듯이 우리 들도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다가 편하고 모든 일이 잘 풀릴 때는 하나님을 잊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니 깨어 있어야 한다. 이는 이스라엘을 낮추고 시험하여 복을 주기 위함이기에, 시련과 환난을 당할 때 우리는 낙심하고 괴로워하기보다는 감사함과 기쁨으로 견디어내야 하고, 이렇게 시험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낮은 위치를 바로 아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는 첩경이니 달게 받아서 주님만을 따라가며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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