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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1월 18일)-1부-2부
제목: "복음의 골수-The Marow ofthe Gospel"
말씀: 히브리서 4:12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호산나 찬양대,
대표기도: 홍성민 부목사님(1부), 김진원 장로님(2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이기호 부목사님(2부)
헌금찬양: 이정명(테너)
설교자: 김정우 목사님(한국신학정보연구원장)-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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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4:12,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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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1월 18일)-3부-4부
제목: "두려움의 시작은 망각이다-Fear Begins In Forgetfulness"
말씀: 신명기 1:29-33
찬양인도: 쉐키나, 할렐루야 찬양대, 시온찬양대
대표기도: 김상윤 장로님(3부), 문윤아 권사님(4부)
사회: 장단희 부목사님, 임상규 부목사님
헌금찬양:

설교자: 박성민 목사님(한국대학생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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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29-33,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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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부
할렐루야! 영광 찬양대의 찬양 감사드립니다. 저도 1부 교인입니다. 영광 찬양대가 우리 정월 첫 주 예배를 히브리스 4장 12절 말씀으로 시작했는데, 기억하십니까? 영광 찬양대, 찬양대원들에게는 이 말씀이 아마 다 찬양으로 살아 있을 것 같아요. 오늘 이 말씀이 우리 영혼에 평안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영혼의 골수에 참 충만한 은혜가 임하고, 우리 성도들의 영혼의 골수가 윤택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연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고 할 때 이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인데 하나님은 성경으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성경 말씀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만나 주시고, 말씀해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성경 밖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떠나서 우리가 어떻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영감이 있겠죠. 영감이 있으니까, 권위가 있겠죠. 오늘 이 말씀의 터전 위에 우리 각자의 신앙과 가정과 또 우리 사랑의 교회가 든든히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고 하죠.

첫 번째 특징이 뭐죠? 살아있대요.
말씀이 살아있대요. 어떻게 말씀이 살아있을까요? 살아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생생하다는 거죠. 생생하다. 살아있다. 숨을 쉰다. 그래서 숨을 불어 넣어준다. 속삭여준다. 격려해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호소하고 우리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또 우리를 새롭게 한다. 살아 있으니까 성경은 죽은 문자가 아니구나. 따라서 우리를 살게 하구나. 사도 베드로가 하신 말씀처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오.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우리가 새롭게 된 것은 썩을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인데 이 썩지 아니할 씨는 뭐냐 하면 바로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말씀이 씨라고 해요. 씨는 어디에 심어두든지 언젠가는 이렇게 살아나고, 꽃피고, 열매 맺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특징이 활력이 있다고 하네요.
원어는 에너지가 있다는 뜻이에요. 에너지라는 단어가 바로 이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성경이 마치 태양과 같다 해가 뜨면 모든 생물들이 다 살아나서 활력을 얻는 것처럼,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활력을 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9편 시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노래하면서, 하나님의 율법은 마치 태양과 같은데, 이 태양 같은 율법이 우리의 심령에 임하면 우리의 영혼 속에 생기를 북돋우어 준다. 우리의 생기가 다 가라앉아 있는데, 말씀의 씨앗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면 우리의 생기가 다시 지속적으로 살아나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말한다고 하면 활력이 있다는 이 말씀은 부정적으로 말한다고 하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효력이 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와 함께 하시니까 사무엘이 하는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니라’ 땅에 떨어진 그래서 떨어지지 않는다.

떨어지지 않는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서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도다. 꽃은 떨어져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떨어지지 않아요. 작년 내내 우리를 괴롭혔던 것이 바로 이 단어인데, infallible. 이 infallible한 무추인데, 이 무추를 무류라고 번역을 해가지고 왜 무오라고 하지 않고 무오는 안 믿고 무류만 믿느냐 했는데 Infallible 하나님의 말씀은 그 목적을 이루고야 만다.

이것이 무오 보다도 훨씬 더 큰 개념이고 더 중요한 개념이고 성경적인 개념이에요. 제가 신학을 하다 보니까 자꾸 이렇게 옆길로 가끔 가는데 죄송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활력이 있어요? 살아있어요. 효력이 있어요. 있으라 하면 있어 지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있어 지는 것입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있으리라 말씀하신 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하나님의 예수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의 심령 속에도 비추어 주신 것입니다. 효력 있는 말씀입니다. 이 살아있고 에너지가 충만한 이 말씀을 비유하자면 칼과 같아요. 칼과 이 말씀은 칼이래요.

성령의 금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는데 양날의 금이래요. 예리(銳利)하대요. 좌우에 날선 어떤 금보다도 더 예리하다. 광선보다 예리하다. 스팅보다 예리하다. 문학가들이 상상한 그 어떤 금보다 예리한데 최상급이에요. 우리말 성경 번역에서는 이 양날 선 이 검이 찔러 쪼갠다. 찔러 오 아파 말씀이 임하면 아파. 오 나를 찌르네. 좀 부정적인 단어 같아요. 찌른다로 번역을 했는데 Pierce 한다는 건데 이걸 달리 번역을 하면 penetrate 한다. 뚫고 들어온다. 이 말씀은 우리 속에 뚫고 들어온대요. 관통한대요.

마치 엑스레이처럼 침투한다.. 말씀이 우리 속에 영혼 속에 침투해요. 그리고 두 번째 단어가 뭐냐 하면 찔러 쪼갠다. 인데 이 쪼갠다는 이 단어가 신약성경에서 두 번 나오는데 같은 히브리서에 두 번 나오거든요. 그 첫 번째 나오는 것이 히브리서 아마 이번에서 2장 4절인데, 성령께서 나누어 주신다. 교회를 위해서 많은 언사를 나누어 주신다. 그러니까 구별을 해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 속에 관통하고, 침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 무질서한 많은 정신세계 생활 습관 이런 것들을 짜임새 있게 질서 있게 잘 구별해 준다, 나누어 준다, 분간해 준다. 어느 정도 짜임새 있게 해 주느냐 하면,

첫 번째로, 혼과 영을 갈라놓는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혼과 영을 동의어로 보고 영혼이라고 생각을 하고 인간의 심층적인 차원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 단어는 사실 너무 폭넓게 사용되고 있어요. 저는 혼은 혼에 대해서는 오히려 모든 생명체의 원초적 욕망, 생명은 욕망이 있어요.

우리도 다양한 욕망을 가지고 살고 있고 어떤 욕망은 선하고, 어떤 욕망은 부정적이기도 하죠. 먹고 싶고 쉬고 싶고, 편하게 살고 싶고, 잘 살고 싶고 하는 원초직 맛있는 거 먹고 싶고 잘 쉬고 싶고 하는 원초적 욕망 이 원초적 욕망으로부터 영혼을 원초적 욕망과 영혼을 이렇게 갈라놓는다. 구별해준다, 짜임새 있게 만들어준다. 영혼.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죠.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어요. 영혼이라는 단어는 굴원의 초사에 처음 나오는 단어인데 인간 정신의 최고로 고매한 차원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진선미를 알고 그래서 예술이 있고 철학이 있고 종교가 있고 하는 모든 영혼을 생각할 수 있고 무한을 생각할 수 있고 과학이 있고 예술이 있고 모든 인간의 최고 정상을 이루는 영혼, 원초적 욕망과 영혼을 이렇게 잘 구별해주고

두 번째로는 우리의 신체적이고 육체적인 차원에서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는다. 우리의 몸도 참 짜임새 있게 해준다. 우리에게 관절이 몇 개죠? 여러분들 관절 몇 개 갖고 있어요? 360개 정도 된대요. 360개가 이렇게 잘 오거나이즈 되어서 관절과 그런데 골수, 골수가 뭐예요? 뼈 안에 있는 생명 물질이겠죠? 생명 물질,. 피를 만드는 것. 골수(骨髓). 이 골수 안에는 뭐가 있죠? 적혈구도 있고 백혈구도 있고 혈소판도 있고 그래서 이 골수가 참 윤택할 때 건강한 몸을 가지는 것처럼 우리의 진액이 있어요. 진액. 우리의 정수가 있어요. 인간 신체의 어떤 핵심적인 물질을 잘 만들어주는

세 번째로,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해줘요. 드디어 마음, 영혼에서 몸과 마음. 우리 의식 세계가 이루어지는 곳이 되겠습니다. 마음. 우리의 마음에는 뭐가 있죠? 많은 생각이 있어요.

많은 생각들을 잘 정리해 준다. 생각. 그리고 우리에게는 뜻이 있어요. 뭔가 이루어야겠다. 해내어야겠다. 목적하는 바가 있어요. 그렇죠? 우리의 마음, 인격의 중심 그러니까 말씀은 우리의 영적이고 지적이고 도덕적이고 정서적인 중심을 아 우리의 전 존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파고 들어오는 거구나 침투하는 거구나 그래서 여기에 한번 물들기 시작 하면 사람의 표정도 바뀌고 행동도 바뀌고 습관도 바뀌고 말하는 것도 바뀌고 태도도 바뀌고 이 사람이 이 인간도 변하네... 이렇게 되죠.

이 말씀이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고 활력이 있어서 효력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effectual, effect가 강해요. 효력이 있어서 전인적인 침투를 하는구나. 전방위적으로 통전 적으로 우리에게 오는 이 무시무시한 말씀이구나. 그래서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오면 갑작스러운 회심(悔心)이 일어나요.

요한 칼빈 선생이 자신은 중세의 온갖 미신에 사로잡혀 가지고 완고하게 그 미신을 믿고 살았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에게 갑작스러운 회심을 주셔서 갑작스러운 회심을 주셔서 내 정신 프레임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이런 고백을 하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갑작스러운 변화를 우리에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죠?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침투하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문자가 어떻게 이리 힘이 셀까요? 왜냐하면, 예수님을 보십시오. 말씀이 육신이 되셨대요.

그래서 예수님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죠. 예수님께서 성경 말씀과 함께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효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느 날 어느 순간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살아있죠. 성경 말씀이 살아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같은 단어예요. 같은 단어, 예수님의 말씀이 운동력이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걸어라 하면 걸어지고 눈 뜨라 하면 눈 떠지고 깨끗해져라 하면 깨끗해지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내 양심을 씻으려고 해도 안 씻어지는데 깨끗해져라 하면 씻어지는 거예요.

내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 내가 지은 죄를 어떻게 사라 받을 수 있겠어요? 벌을 받아야 싸지.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면 그 말씀이 내 속에 들어오는 순간 내 죄가 내 죄짐이 다 벗겨져 버리는 거예요. 죽은 나사로가 사흘 되었지만 나사로야 나오라 하면, 나사로가 수의를 걸친 채 나오는 게 예수님 말씀의 권능이에요.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서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놀랐는데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처음이오 나중이다. 내가 알파와 오메가이다. 곧 살아있는 자다.” 나는 살아있는 자다.

그런데 내가 전에는 죽었다. 볼지어다. 내가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보 열쇠를 가졌느니라.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그냥 살아계신 것이 아니라 완전히 죽었다가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죽음과 저주와 고민과 고통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건져내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런데 칼이래요. 요한계시록 1장 16절에 그가 오른손에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예수님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은 교회의 지도자들이요.

주님의 오른손에 교회 지도자들이 붙잡혀 있는데, 예수님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같이 빛나더라. 그래서 예수님 말씀은 바로 영이고, 생명이에요.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죠. 살리는 것은 0이다. 아무리 여러분들이 화장을 멋지게 해도 0이 죽으면 다 죽은 거다. 살리는 것은 0이다. 6은 무익하다. 내가 너희에게 이런 말이 영이요 생명이다. 예수님 말씀이 영이고 생명이에요. 예수님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오면 우리의 영혼이 새로워지고 우리의 생명이 새로워지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교회의 많은 교부들과 많은 성도들은 이런 체험을 우리에게 말해주죠. 다산 정약용이 1783년-4년 경희시 시험에 합격을 한 이후에 저 다산의 두물머리에서 배를 타고 그의 형제들과 함께 배를 타고 한강으로 내려오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벽 선생과 함께 배를 타고 내려오는데 내려오는데 성경 말씀을 그때 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성경 말씀을 들었는데 다산의 고백이에요.

배 안에서 천지가 창조되는 시원이나 천지창조 이야기, 완전히 뭐 태극이니 음양이니 기발이니 이 조선 성리학의 그 번세한 세계 속에 살고 있다가 천지가 창조된 시점에 있었다. 인간에게 신체와 영혼이 있고 그리고 삶과 죽음의 이치에 관하여 들으니 놀랍고 기이하여 마치 은하수가 무한한 것 같았다.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몇 권의 책을 보고 비로소 기뻐하여 마음이 기울어졌다.

조선 최고의 경학자 다산은 이 세계관의 변화, 말씀 속에서 온 세계, 동양의 주역적 세계관에서 성경의 창조와 구원의 세계관으로 이동을 하니까 사서삼경과 그가 평생 공부했던 모든 글자가 다 살아 움직이고 전혀 다르게 해석이 되는 거예요. 말씀이 들어오면 우리의 세계관이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고, 인생관이 변하고, 인생이 새로워지는 말씀이 살아 있고 효력이 있는 거야. 그렇다면 이 예수님의 영을 우리가 어떻게 받을까요? 이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는 어떻게 받을까요? 어떻게 받죠?

예수님의 영을 어떻게 받고, 예수님의 생명을 어떻게 받을까요? 쉽조? 답은 믿음으로 받아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살아가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하려 함이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시마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랴 심플 그런데 질문이 있어요. 함정이 있어. 그럼 첫 번째 질문.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 되나요? 믿어야 구원받나요? 조건절이 있어야 결과절이 발생하나요? 내가 믿어 구원을 받았으면 믿음이 내 공로가 되지 않아요. 그렇지만 믿음은 결코 공로가 될 수가 없죠.

믿음이 공로가 될 수 없으면 결코 조건이 될 수 없을 거예요. 믿음이 조건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조건이 아니라면 수단이 되겠죠. 조건은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인데 수단은 이미 주어진 것을 받는 거죠. 수단은 통로예요. 그럼 구원은 뭐예요?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래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시기를 원하는데 우리가 그 구원의 선물을 받으면 돼요. 손을 내미는 거예요. 열두 해.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니까 혈루증(血漏症)이 즉시 그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선물, 영생의 선물, 은혜의 선물,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이 무궁무진한 보화의 선물, 이 모든 게 다 받겠다는 거예요. 받을 거예요?

안 받을 거예요? 받겠다는 게 믿음이야. 믿음은 이렇게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두 번째 질문 그럼 회개해야 믿을까요? 믿을 수 있나요? 성경에는 믿기 전에 널 회개하래요. 이때부터 예수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러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그렇다면 회개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나요? 여기에 오랫동안 교회 나오면서도 회개하기 싫어서 안 믿는 인간들이 많을 거예요. 회개해야 믿을 수 있으면 회개가 구원의 조건이 될 것 같아요. 믿음의 조건이 되는 어느 신학자가 열매로 알리라 이런 큰 두꺼운 책을 썼는데 회개의 열매가 있어야 믿음이 있는 거예요.

일반적으로 보면 믿기 전에 크게 회개를 해요. 그런데 회개가 그냥 되나요? 회개하고 싶어도 안 돼요. 왜 안 돼요?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인간이기 때문에요. 죽은 인간이 무슨 회개를 하겠어요? 그러니까 회개를 하려면 신학적으로 효과적인 부름이 있어야 돼요. Effectual calling이 있어야 하나님이 효과적으로 불러주셔야 회개가 되는 거예요. 회개를 하니까 효과적인 부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죠.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이 어디에 있죠? 에베소서인가요?

너희가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니. 이는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자가 없네. 여기 토비새의 교인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 정도는 지금 진짜 중요한 거예요. 복음이 뭐냐는 거예요. 믿음이 구원받는 조건이 아니에요. 회개가 믿음의 조건이 될 수가 없어요. 아 그러면은 그러면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을 주실 때는 근거가 있겠죠. 구원의선물 선물 선물인데 이 선물의 근거가 뭘까요?

하나님은 무엇에 근거해서 우리에게 영생하는 선물을 주시죠?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선물을 주실까요? 선물의 근거, 이것이 바로 질문이에요. 복음이 뭐냐는 거예요. 복음이 뭐냐? 복음의 골수가 뭐냐는 거예요. 복음의 진액이 뭐냐는 거야. 복음의 정수가 뭐냐는 거예요. 이 진액이 이 진액이 혼탁해지면 우리 영적 생활 전체가 혼탁해지는데 하나님은 무엇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놀라운 선물을 주시는가? 죄와 참 저주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새롭게 살 수 있는 새 생명, 구원, 거듭나는 이 은혜를 주신 근거가 뭐예요? 하나님?

근거가 이건 좀 고급 문법에 속해요. 고급문법, 심청 문법이에요. 그걸 우리의 신앙 고백에서는 은혜언약이라고 해요. 은혜언약. 은혜언약. 우리 한번 같이해볼까요? 은혜 언약, 여러분들 영어 잘하니까 카빈은 또 그레이스, 그레이스의 언약이에요. 언약에는 크게 두 개가 있는데, 행위 언약이 있고 은혜 언약이 있어요. 이 언약은 아담과 하나님이 내주신 언약이에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어요. 낙원을 주셨어요.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그런데 단 하나 금했어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는 거예요. 단하나,,,.

그것을 아담과 하와가 깨뜨리자. 그 언약이 깨어진 거예요. 행위 언약은 행위 언약이 깨어졌어요. 그래서 낙원에서 추방되었어요. 그럼 이 완전한 아담과 하와도 이렇게 범죄할 수 있으면 이 인간들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하나님의 대책은 뭐예요?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시간이 있기 전부터 시공이 있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성부 아버지와 성자 하나님 사이에 영원한 언약을 맺었는데 그게 바로 은혜 언약이고 구원 언약이에요.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 이 언약이 있었던 것.

그러니까 뭐냐 하면, 약은 계약이 아니에요. 계약은 조건이 있어요. 이 조건이 깨어지면 관계가 깨어지는 거예요. 은의 언약은 조건이 깨어져도 관계가 깨어지지 않아요. 은혜 언약은. 그러니까 뭐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죠? 은혜 언약은 무조건적이에요. Unconditional해요. 은혜 언약은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이에요. 모든 계약과 조약은 쌍방적인데 은혜 언약은 일방적이에요. 하나님이 하나님이 initiate한 거예요. 하나님이 시작한 거예요. 하나님이 모든 것들을 다 이끌어 가세요.

모든 계약과 조약은 영원하지 않아요. 국제적인 조약도 5년 이상 가는 게 거의 없대요. 이 언약은 영원해요.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이고 영원한 언약이에요. 그래서 이 언약은 희사(喜捨)라고 할 수 있어요. 선물이에요. 오늘 우리가 왜 이 성경에도 없는 은혜 언약 이야기를 할까요? 복음의 골수가 뭐냐는 거예요. 복음의 골수. 왜? 우리가 이 은혜 언약을 믿고 살아야죠? 우리 장로교 신앙 고백은 Westminster 신앙 고백에 근거하는데 Westminster 신앙 고백의 제7장이 바로 이 은혜 언약을 길게 다루어 줘요. 새 언약이에요.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 새 언약의 핵심 내용이 바로 은혜 언약인데 왜 우리가 이 언약을 늘 믿고 살아야 할까요? 이 언약을 지켜야 할까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이 은혜 언약을 물타기해요. 이 은혜 언약을 왜곡해요. 우리가 누가 내가 우리가 어떻게 해요? 쉽게 우리가 율법주의에 빠지면 돼요. 율법주의. 율법주의라는 율법주의가 사전적으로는 쉬워요. 선행과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 거라는 건데 율법주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예수님이 평생 온갖 다양한 사람들하고 싸운 게 율법주의예요. 그러니까 교회의 가장 무서운 질병은 율법주의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율법주의는 힘이 너무너무 세요. 심층적이에요. 마치 헤라클레스가 두 번째 싸움을 한 게 레로네아의 히드라인데, 율법주의는 히드락 같아요. 열 개의 머리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한 머리 자르면 한 머리에서 막 두 개가 만들어져요. 그리고 열 개 중에 한 머리는 불사의 머리예요. 안 죽어요. 자를수록 더 많이 생겨요. 이런 율법주의 그리고 독이 치명적이죠. 그리고 독사처럼 이렇게 딴 데 보는 것 같은데, 나를 물어요.

율법주의 우리 모두 쉽게 빠져요. 그러니까 율법주의자들은 좀 지독한 율법주의자들이 우리 주위에 많아. 한국 교회 너무 많아졌어. 소위 진리와 진실과 정의와 교리를 독점하는 이 무서운 인간들. 우리 충분히 율법주의자들에게 시달렸어. 이제는 바닥에서 뒹굴다가 우리 일어나서 힘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율법주의는 한마디로 정의를 주장하지만 정죄하죠. 그렇죠? 정죄하는데 율법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정서예요.

정의도 아니고 정죄도 아니고 정서예요. 그러니까 율법주의에 감염되면 하나님이 갑자기 좀 싫어져요 그리고 하나님이 너무 인색한 것 같아요. 하나님이 너무 가혹한 것 같아요. 하나님. 하나님은 선하시잖아요. 탕자의 아버지처럼 선한 아버지신데, 하나님의 선하심이 믿어지지 않아요. 그러니까 내 마음이 너무나 싸늘해져요. 냉정해져요. 그러니까 율법주의는 마치 뭐와 같으냐 하면 산성비 같아요. 산성비 내리면 다 죽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마음속에 산성비 내리는 거 좋아요? 싫어요? 우리 교회 산성비 내리면 될까요? 안 될까요? 우리에게는 단비가 내려야죠.

말씀은 단비고, 율법주의는 산성비예요. 초토화시켜요. 모든 생명체를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도 처음에 율법주의에 빠진 거예요. 사탄이 하나님께서 정말 동산에 있는 모든 열매 못 먹게 했냐? 충격을 받은 거야. 하나님은 다 먹게 하셨어요. 그러니까 하와가 뭐라고 대답을 해요? 다 먹게 하셨지만, 하나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그러니까 말씀해서 말씀을 이렇게 믹스해버리죠. 언제 하는지 이런 짓이 말랬어요. 그러니까 갑자기 하나님도 교회도 신앙도 다 좀 싸늘해지는 거야. 그러니까 마음이 차가워지는 거예요. 냉혹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은혜 언약 가운데 살아요.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이고 영원하신 은혜 언약 가운데 살기 때문에 우리가 그 통치 가운데 늘 사려고 해야 돼요. 이 은혜 언약 속에 살아야 우리가 율법주의를 이기고 또한 반율법주의를 극복할 수 있어요. 이상하게 율법과 율법이요. 하는 인간들 보면 지긋지긋하죠. 자기에게는 안 갖다 대요. 그러니까 이 율법주의자의 대표적인 인간이 레미저라블의 자베르 같은 인간이에요. 19년 전에 빵 하나 먹은 이 장발장이 아무리 변해도 끝까지 추적해서 추락시키려고 하는 율법주의가 이 나라에서 물러갈지어다.

은혜 언약이 임해야 이 율법주의를 임해요. 그런데 자제르가 마지막에 어떻게 해요? 자살해요. 그러니까 율법주의에 빠지면 이상하게 반율법주의자가 돼요. 그래서 율법주의하고 반율법주의는 이란성 쌍둥이래요. 여러분들의 심령이 참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면 딴짓해요. 율법 다 깨뜨려요. 그런데 은혜 받고 새 언약 받으면 뭐예요? 우리는 율법이 이제는 우리의 생활의 규범이 되는 거죠. 이렇게 되는 거예요. 오늘 주제가 뭐죠? 복음의 골수, 이게 복음의 골수예요. 믿음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에요. 회개해야 믿음 있는 거 아니에요.

회개하며 믿고. 그렇죠? 회개와 믿음의 관계는 회개하면서 믿고 믿으면서 회개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야. 음. 우리에게 복음의 골수가 있어요. 이 골수를 안 지키면 이 골수를 잊어버리면 구원파에 빠져버려요. 엉뚱한 신앙생활을 하는 거예요. 이 골수가 윤택하기를 바랍니다. 잠언 말씀이죠. 이것이 이 지혜가 잠언의 지혜가 내 몸의 양약이 되며 내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복음의 골수가 믿음의 골수가 윤택해지는 우리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우리 다 함께 오늘 주신 말씀 하나라도 우리의 심령 속에 침투하여 우리의 골수가 백혈구가 막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자라지 않고 우리 믿음의 골수가 복음의 골수가 윤택해질 수 있도록 같이 기도합시다.

♣요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서, 이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 있고 효력 있고 힘이 있어서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몸에 침투하기를 간구하며, 이 나라와 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와 세속주의와 타락하는 이 모든 정신세계를 우리가 넘어서 이제는 예수의 영을 받아야 한다.예수의 생명을 받아서 이 복음의 골수가 우리 속에 무궁무진하게 솟아나서 영육이 건강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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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부
♣주일예배(주후 2026년 1월 18일)-3부-4부
제목: "두려움의 시작은 망각이다-Fear Begins In Forgetfulness"
말씀: 신명기 1:29-33
찬양인도: 쉐키나, 할렐루야 찬양대, 시온찬양대
대표기도: 김상윤 장로님(3부), 문윤아 권사님(4부)
사회: 장단희 부목사님, 임상규 부목사님
헌금찬양: 이정명(테너)
 
설교자: 박성민 목사님(한국대학생 선교회 대표)-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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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29-33,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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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부-박성민 목사님(한국대학생 선교회 대표)-초빙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음과 생각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거 같습니다. 이 세상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연구하면서 네 가지 단어로 축약을 해 봅니다. BANI, 영어 단의 앞자리입니다. 바로 세상은
첫 번째로
B는, 브리틀(Brittle)하다. 잘못 건들면은 깨져 버릴 수밖에 없는 그런 세상, 이미 경험하고 계실 것입니다. 국제 정세가 그렇고 어떤 년에서든지 굉장히 브리틀한 그런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A는, Anxious, 모든 사람들이 불안해합니다. 앵크셔스(Anxious)의 앞자리입니다. 모든 사람이 불안해하고 그 불안 속에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리고 모든 상황을 보면서 사건 사건들이
N은, 비선형(Nonlinear)입니다. 그래서 nonlinear, 이거 하나가 저걸로 유도하지 않습니다.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히고 설켜 있는 세상, 그렇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I는 Incomprehensible,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세상이다. 그래서 B A N I하고 있는 것이고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과연 그런 속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이냐라고 하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특별히 새해를 맞은 후 지금 한 20일 정도가 지났습니다. 새로운 과연 어떤 각오로 여러분들은 살고 계시나요? 우리가 세를 맞았지만 세상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점점 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그런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거 같습니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저는 이 질문을 던지면서 오늘 말씀을 보기를 원합니다. 왜 그러냐면 우리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 큰 답은 맞습니다. 역사는 누구 손에 있습니까? 하나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했던 그러한 어리석은 죄에 빠지지 말아야 됩니다.
 
지금 신명기 1장은이 같은 사건을 갖다가 민수기 13장 14장에 나온 사건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대상이 다릅니다. 민수기 13장 14장 같은 경우에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망설였기 때문에 못 들어갔던 전 세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장은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면서 이제 들어갈 세대를 향해서 회고해 보면서 거기서 얻어질 교훈을 갖다가 주고 있는게 바로 신명기 1장입니다. 새로운 해. 또 사랑의 교회는 이제 새로운 단계로 또 새로운 목사님을 모시고 담임 목사님으로 연결이 돼서 이제 꿈을 꾸시는 걸로 들었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98..88. 엄청난 숫자였습니다. 본입되었다고 하는 것 굉장히 저는 동일합니다. 그걸 보면서 여러분이 교회뿐만 아니고 나의 삶도 올 한해 어떻게 살 것이냐? 지금
 
새로운 세대들이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면서 보시면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시면은 특이한 것이 나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밑에 보면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다라고 돼 있습니다. 참 특이합니다. 두려움이 믿지 않음과 연결이 돼 있습니다. 결국 그 두려움은 무엇인가라고 하면 쫓아가 보면 먼저 답을 드리겠습니다. 두려움은 오늘 제목에 나와 있듯이 망각이라고 하 잊어버린다라고 하는 거 자체가 두려움의 모든 시작이 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세를 시작하면서 올 한해 여러분들이 세 가지를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해서 기억하면서 승리하시는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세 가지,.
 
첫 번째는 바로 뭐냐면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관점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그것을 기억함으로써 우리의 관점을 새롭게 해야 된다. 무슨 말씀일까요?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12명의 정탐꾼이 뽑혀 가지고 너무나 잘하시는 말씀 같이 동일한 곳에 동일한 기간 동안 동일한 것을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열명과 두 명의 본 것이 다릅니다. 열 명은 도저히 이길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날 수밖에 없게 그들의 성은 하늘을 찌를 듯하고 거기에는 거인 족속 의 아낙 자손이 지금 그곳을 갖다가 차지하고 있는 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들의 보고를 보면은 누구든지 들었을 때 도저히 이길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근데 두 사람은 특이하게 얘기합니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현실 이상을 봅니다. 아니다.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리라..라고 얘기를 합니다. 과연 무엇이 차일까요?
 
저는 이것이 늘 궁금했었습니다. 왜 이렇게 같은 곳을 같은 기간 동안에 같은 것을 봤는데 평가는 이렇게 다를 수 있느냐? 바로 뭐냐면요. 우리의 심리적으로 우리 인간이 그렇다고 하는 겁니다. 유명한 심리학자죠. 전나탄 하이트라고 하는 사람이 the rightous 마 mind라고 하는 우리나라에 바른 마음이라고 번역이 돼 있습니다. 바른 마음이라고 번역된 곳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해 가지고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직관적으로 판단한 후에 이성을 가지고 자기 판단을 정당화 한다라고 하는 얘기를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은 바로 우리가 무슨 사건이 됐을 때 거기에 상황을 보면서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갖고 있는 이성으로 내가 내린 결론이 맞다. 결국 이성의 역할은 우리 가운데 무슨 역할 하냐면 변호사 역할밖에 못 한다고 하는 겁니다.
 
저도 고민을 걸 많이 했습니다. 과연 이게 무슨 말일까? 그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은 열명을 이하가 되기 시작을 합니다. 열 명은 자기네들은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것마다. 이길 수 없는 이유 들이 눈밖에 보이기 시작을 합니다. 두 명은 바로 이길 수 있다라고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길 수 없다라고 하는 걸 보기보다는 이길 수 있는 이유를 찾은 게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이라고 하는 거기서 이유를 찾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경험하시는 것은 나는 어떻게 보고 있느냐라고 하는 질문입니다. 자, 그렇다면은 바로 나의 직관, 직관이 무엇일까? 직관이라는 것을 내가 판단한다면 어떻게 이 직관을 바꿀 수 있겠느냐? 그게 바로 가장 핵심일 것입니다. 그 직관을 바꾸는데 가장 핵심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말씀의 근거에서 내 생각을 바꿔 가는 때만이 바로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생각의 법칙입니다. 죤 맥수엘 이라는 사람이 연구를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생이 바뀌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인생이 바뀌어질 것을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근데 그렇게 해 가지고 인생이 바뀌지 않습니다.이 사람 말합니다. 뭐부터 바뀌어야 되냐면 바로 가장 힘든 작업인데 그게 뭐냐면 생각이 바뀌어야 된다라고 하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바뀌는 건 뭡니까? 지금 제가 여기서 생각이 바뀌는 건 단순한 생각이 바뀌는게 아닙니다. 성경 속에 나와 있듯이 골로새서 3장 16절에 나와 있듯이 뭐라고 돼 있냐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 풍성하게 거하사” 라고 하는 겁니다. 뭐냐면 말씀 속에 들어가야 되고 그 말씀이 우리를 압도할 수 있게 우리가 허용을 해야 된다는 것이죠. 다시 한번 이성으로 돌아갑니다. 이성 여러분들은 나 여기에 계시는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배움을 많이 가지신 분들 중심으로 사는 지역에 여러분들이 모이셨습니다. 이성을 저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도 이성을 갖다. 엄청나게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성은 우리를 바뀌지 못합니다. 이성은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바꿀 수 있는 환경으로 인도할 뿐입니다.
 
말씀에 첩할 수 있게 하고 그다음에 이렇게 예배에 나올 수 있게 하고 수많은 선택 중에서 뭐를 선택할 수 있는 것에서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제안을 할 수 있는게 바로 이성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뭐가 이루어집니까? 점점 점점 바뀌기 시작합니다. 뭐가 바뀝니까? 나의 관점, 나의 직관이 바뀌기 시작한다.는게 바로 성경에서. 그러다. 보니까? 로마서 12장 2절에도 뭐라고 돼 있습니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바로 많은 사람들이요. 자연스럽게 직관은 어디에 지배를 받습니까? 세대에 이 세대를 세대에 지나가는 패턴, 이 세태 자가 우리를 갖다가 지금 주관하고 있습니다. 근데 그다음에 뭐라고 돼 있냐면은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라고 돼 있습니다. 마음이 바로 뭡니까? 직관의 변화를 위해서 우리가 뭘 해야 되냐? 말씀 속에 우리를 드리고 말씀을 외울 뿐만 아니라 말씀 속에 우리의 생각이 삼기는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도 강조를 많이 하고 계시죠. 큐티라고 하는 거. 아침에 일어나서 말씀의 묵상을 통해서 그 말씀을 붙잡고 하루 동안 살아가는 것, 그러한 거기에 매몰되는 훈련을 통해서만이 직관이 바뀔 수가 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맥선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렇게 해서 생각이 바뀔 때만이 뭐가 바뀝니까? 바로 드디어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돕기에 나를 향한 믿음이 바뀌기 시작을 합니다. 나를 향한 믿음이 바뀔 때문에 바뀔 때만이 뭐가 가능합니까? 나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생기기 시작을 합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생길 때 내 태도가 바뀌기 시작하고, 내 태도가 바뀔 때만이 행동이 바뀔 수 있고 행동이 바뀔 때만이 실력이 바뀔 수 있고 실력이 바뀔 때만이 드디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다 어디서 시작을 합니까? 생각의 변화에서 시작합니다. 과연 무엇으로 여러분의 생각의 그릇 속에 채우시겠습니까?
 
저는 올 한해가 여러분의 다른 무엇보다도 말씀으로 여러분의 생각의 그릇을 가득 채우시는 우리 사랑교회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 그게 바로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 안에 우리가 우리를 갖다가 드리기 시작했을 때 그 말씀은 들어와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갖다가 감찰하며 옳은 것으로 인도하실 역사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여러분들이 마음을 들으시고 여러분의 직관의 변화를 통하여서 이제 느끼시는 모든 거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바로 열 명이 아니라 열 명의 실패한 자들이 아니라, 두 명의 여호수아 갈릴과 같이 제대로 볼 수 있는 그런 삶을 사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를 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억하며 역사를 기대하며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억해야 한다는 겁니다. 특이한 건 바로 열 명은 보고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열 명 속에는 열 명의 보고 속에는 바로 애굽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은가에 대한 얘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출애굽하면서 그들이 경험한 애굽에서의 그 열 개의 재앙 얘기도 없습니다. 어떻게 홍해를 건너냐는 얘기도 없습니다. 만나 매출하기 얘기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은 계속적으로 뭡니까? 현재 눈앞에 보이는 것이 그들의 전부였습니다. 그게 인간의 약점입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레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인간은 바로 뭐에 비유할 수 있냐면은 위에서 맹금류가 노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눈앞에 있는 곡식 몇회의 한 눈이 팔려 버린 그런 참새 같은 존재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기억해야 되는게 뭐 내가 그런 존재기 때문에 내가 그런 존재일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을 갖다가 늘 생각하며 살아야 되는게 바로 우리가 달라질 수 있는 방법입니다.
 
여호수아 갈렙은 부정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갈렙 얘기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들은 말할 때 우리는 그들 앞에 메뚜기 같은 존재다.라고 얘기하지만 여호수아 갈렙은 뭐라고 얘기했냐면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저는 이게 바로 하나님이 지금까지 어떻게 인도해 오셨는가를 염두해 두고 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 그들의 사고 속에 있는 것 이상을 볼 수가 있었던 것이죠. 전 그래서 늘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뭘 이성일까요? 비이성일까요? 아닙니다. 믿음은 초이성입니다. 이성을 뛰어넘는 것이죠. 그럴 때만이 바로 온전히 거기에 계시는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눈에 보이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그 하나님의 역사와 함께 하심이 있다라는 그 속에서 보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질 수가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이 이 시대를 보면 저는 한국 교회는 지금 사랑의 교회와 같이 건강한 교회가 있습니다만은 대부분의 교회들을 제가 전국적으로 다니면서 지저스 페스티벌이라고 하는 그것을 통해서 교회 훈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거기에 지금 32개 도시에 있는 각자의 중요한 조그만 소규모 도시들 중심으로 해 가지고 도와주고 있는데, 제가 가서 발견한 것은 교회 전체가 아주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미 통계적으로도 나타나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신뢰도, 영향 모든 것이 지금 계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작년, 제작년 통계죠. 그 재작년에 통계 그 전에 5년 동안에 개신교회 20대 30대 특별히 20대 중심으로 50%가 줄었다 라고 하는 그러한 통계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건 뭘 말합니까? 이대로 가면 한국교회 미래가 굉장히 어두울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많이 걱정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한국 교회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 걱정하지 않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어떻게 여기까지 인도해 오셨는가?
 
그걸 돌아보면서 우린 거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 주셨으며 그 복음이 전해 왔기에 우리한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전 세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일들이 우리 가운데 많이 일어나고 일어났었고 경험했었고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고 계시다고 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들어 가는 상황 속에서도 지금 이곳저곳에서 하나님께서 새 일을 시작하시는 역사가 굉장히 많습니다. 오늘 잠깐 제가 이때 한국 CCC에서 여름 수련회의 장면을 잠깐 보고 여러분께 말씀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영상을 부탁드립니다.
 
4박 5일 동안 진행된 여름 수련에 만여의 학생들이 모여 가지고 뜨겁게 찬양하고 그 속에서 세계의 복음화를 꿈꿨던 그것이 지금 제 눈앞에도 생생합니다. 저들 가운데 작년 같은 경우에만 해도 3,400명 넘는 사람들이 해외 단기 선교를 떠났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이런 시대 젊은이들이 어떻게 뜨겁게 하나님의 복음을 들고 이 땅에서 우리의 역할을 감당 위해서 살고 있는가? 그것을 여러분들이 한번 보시라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저는 소망이 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면 저들한테 제가 발견한 것은 바로 뭐냐면은 저한테도 부탁하는게 목사님 우리한테 기도할 시간을 더 주세요. 저는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바로 거기서 전 소망을 봅니다. 우리 다음 세대를 향한 하나님께서 역사를 시작하고 계신다라고 하는 것을 봅니다. 작년 말에도 금식 수련회를 하는데 금식 수련회 재작년에 비교해서 600여명이 더 와서 전국적으로 7,200명 정도가 3박 4일 동안 금식을 하면서 자신을 위해서 캠퍼스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살아 있습니다. 전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한국 교회에 소망이 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여기까지 인도해 오셨고 우리 한국 교회를 축복해 주셨고 어딜 가나 제가 발견한 것은 전 세계 어딜 가나 한국 사람이 가는 곳은 교회가 세워진다라고 하는 겁니다. 우연일까요? 전혀 우연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사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원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더라도 말씀을 가지고 한번 점검해 보시면서 관점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지금 앞으로 어떻게 인도하실 것인 것을 기대하며 사시는 우리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세 번째는 바로 뭐냐면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면서 미래를 꿈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셔야 됩니다. 저는 언어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이 언어로 실패를 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12명이 돌아와서 보고를 할 때 백성들이
 
열 명의 얘기를 쫓아가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수기 14장 28절에 성경에 나오는 가장 무시무시한 얘기가 나옵니다. 14장 28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하는 말씀을 합니다. 이기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결코 그 땅에 돌아갈 수가 없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들은 한 사람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호수아 갈렙이라고 하는 그 두 사람과 새로 태어난 세대를 이끌고 들어가게 됩니다. 특이한게 바로 사람의 심리입니다.
 
저는 에밀 쿠에라는 자기 암시법을 개발한 사람의 얘기를 들었었습니다. 에밀 쿠에라는 사람이 자기 암시법을 개발합니다. 자기 암시법은 바로 뭐냐면 너무나 간단한 것입니다. 돌아보면은 실험을 하기 위해서 말성꾸러기 아이들을 모아놓고 훈련을 시킵니다. 그리고 그들마다. 아침이 말을 갖다가 수십 번을 반복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바로 day by day. In every way I'm getting better and better, 매일매일 모든 면에서 나는 점점점 좋아지고 있다. 매일매일 모든 면에서 나는 점점점 좋아지고 있다. 굉장히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갖다. 수십번씩 함께 복창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데 아이들이 며칠 지나면서 바뀌기 시작을 합니다. 자기 암시법입니다. 사람은 신기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요즘에 자기 개발법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게 뜨고 있습니까? 퓨처 셀프라고 하는 그런 제목의 책들이 뜨고 있습니다. 퓨처 셀프는 사실 한 2년 전에 보면 벤자민 하디라고 하는 사람이 바로 원제로 “be your future self now. 바로 지금 너의 미래에 네 자신이 지금 되는 것” 그것을 갖다가 얘기하면서 책을 냈는데 그게 상당히 반향을 여러는데 한국에서
 
특별히 히트를 했습니다. 한국의 유사한 책들이 굉장히 많이 나와 있습니다. LG의 다섯 개 부분에 전체 HR 모든 휴먼 리서스의 책임자였던 김홍식이라고 하는 전 부사장도 책을 썼는데 책 제목에 여러분들이 이미 느끼실 겁니다. 책목이 이겁니다. “5년 후에 나를 생각했을 뿐인데” 생각하는 생각했을 뿐인데 달라지는 겁니다. 5년 후에 나의 모습을 생각만 해도 달라진다는 겁니다. 인간이 그렇습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건 뭐냐면은 지금 미래에 대한 생각을 갖다. 긍정적이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산다면 어떤 일어날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죠. 그냥 단순히 아무거 없이 말만 해도 긍정적으로 말을 했을 때 바뀌는 존재가 인간이고 아무 근거 없이 그냥 나의 미래만 꿈꿔도 지금 현재 삶이 바뀌는 것이 인간인데,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 보시면은 말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잖아요. 이걸 가지고 이것에 근거해서 나의 미래를 갖다가 꿈꾼다면 어떤 일을 하겠습니까? 여러분 일어날까요? 안 일어날까요? 일어납니다. 여러분, 그게 바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서 도전해 주고 계시는 바로 영역이죠. 너희가 꿈을 꾸라. 바로 꿈을 꾸고 비전을 가지면은 뭐가 일어납니까? 내가 하나님 이런 일을 원합니다. 이번에 금식 기도에서도 우리 학생들이 전국에서 7천여 명이 먹는 학생들이 꿈꿨던 게 바로 뭐냐면 주님 나의 앞으로의 내 미래 10년 후에 나의 모습이 이렇게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써가는데 그걸 가지고 올 한해를 보면서 순간순간 거기에 근거해서 디시전 필터 역할을 할 겁니다. 어떤 결정을 해야 될 것이냐? 바로 미래에 나의 모습이 제대로 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다음에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것이 나의 현재 모습이 나를 갖다가 주관하는 앵커가 되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 미래의 모습이 나를 주관하는 결국 아이덴티티 정체성 앵커가 될 것이고, 어떤 일을 당해도 그것을 갖다. 해석하는 미닝 프레임이 달라질 것입니다. 의미를 갖다가 보는게 달라집니다. 바로 그러한 나의 모습이 되기 위해서 이러한 어려움은 결국 그런 모습을 갖기 위한 지나가야 되는 과정이다. 라고 느낄 때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걸 위해서 가장 중요한게 뭡니까? 먼저 하나님 앞에 꿈을 꾸고 그 꿈을 갖다가 우리가 정리를 한 다음에 그것을 가지고 지금 나의 모습에 권위를 가지고 죽 주관할 수 있도록 내가 지속적으로 허용을 할 때 우리의 모습은 달라질 수가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꿈을 꿉니다. 어떤 꿈을 끄냐면 바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끌어 오셨습니다. 어떤 꿈이냐면 지금 한국 교회가 어렵다라고 하지만 저는 거기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역사를 이미 시작하시는 증거들을 저는 보고 있고 가장 어려울 때, 그때가 바로 뭐냐면은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때입니다. 인간의 절망의 바닥점이 하나님 역사의 시작점이 됩니다. 어렵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오히려 꿈을 가져야 될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계속적인 꿈은 바로 2028년에 제주에서 꿈을 꾸고 있습니다. 어떤 꿈을 꾸냐면은 바로 한국에서 지금 하나님이 어떤 일을 만들고 계십니까? 한국 민족에 대해서 이렇게 한국 민족이 지난 5천 년 동안 이렇게 떠본 적이 있습니까? 어딜 돌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여권 파워가 2위다라고 얘기를 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1이나 2위나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어디나 들이밀어도 우리는 쉽게 갈 수 있는 그러한 특이한 나라가 됐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이 명동을 한번가 보시기 바랍니다. 과거에는 동남아 중국계 분들이 계속적으로 명동에 왔었습니다. 지금은 명동에가 보시면 달라진게 있습니다. 어디가 오신지 아십니까? 웨스턴에서 커케이션들이 굉장히 많이 오고 있습니다. 전 이거는 하나의 굉장한 변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미국에가 보면은 제가 작년에도 미국에 갔을 때, 그때 즈음이 바로 뭐였냐면은 헐로윈이었습니다. 할로윈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뭐에 가장 인기가 있나 그랬을 때 바로 캐데헌이라고 하는 거기서 나오는 것 그것은 금방 나오자마자 동인하는 특이한 것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올해 골든 글로브도 두 개나 차지를 했습니다. 대현이 우연일까요? 저는 의원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한국을 하나님께 띄워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저희가 제주도에서 꿈을 꿨던 거는 한국 전체 내에서 어느 나라나 아무리 어려운 나라도 비자 없이 올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바로 제주도입니다. 누구나 올 수가 있습니다. 근데 그곳에서 꿈을 꿨던 거는 하나님 이곳이 전 세계 선교 운동을 일으킬 수 있는 허브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시작했었습니다. 그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어떤 일이 일어났냐면 바로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받아 주셨는지 바로 폭삭 속았수다가 뜨기 시작을 했습니다. 폭삭 속았수다가 뜨기 시작하니까? 제가 그 꿈을 갖다가
 
전 세계 다니면서 리더들하고 나눴더니 이분들이 얘기를 합니다. 아 그 섬이 그 섬이냐? 그 영화를 보고 그 드라마를 보고 넷플릭스에서스 보고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기 때문에 가족들하고 꼭 가고 싶은 버ர்த்த리스 중에 하나였다라고 얘기를 하는 걸 들었습니다. 전 이런 모든 것들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한국 교회를 보고 한국 교회 통계를 보면은 어둡지만 저는 늘 말씀드렸다시피 확신하는 건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셨는가 보자. 하나님이 어떻게 약속을 해 주셨는가? 우리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서 우리 민족이 선교 민족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바로 1980년에 세계복음화 대성회 때 10만 명의 청년이 일어나서 기회를 주신다면 1년이라도 세계 선교를 위해서 섬기겠습니다 라고 일어섰던 10만 명이 지금 그 사람들이 선교사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지금 다시 한번 또 하나의 기회가 오고 있다라고 생각을 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 한번 새로운 힘만이 아니라 우리 젊은이 모두가 어떤 모습인지 풀타임 선교사가 아닐지라도 자기가 비즈니스라고 뭐라든간에 하나님의 선교의 그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헌신하는 그런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것을 놓고 저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갖고 있는 꿈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갖고 계시는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꿈이고 지금까지 제가 살아왔던 그런 꿈이었고 앞으로도 그것을 위해서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근데 저는 여기서 또 하나 여러분하고 도전을 드리길 원합니다. 이건 단순한 우리 전체 교회 하나님의 꿈뿐만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실뿐만 아니라, 더 풍성히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하나님은 어딜 같은지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불 가운데 지날 것이라도 보호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어디를 가시나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 여러분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여러분들이 그 약속을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삶을 갖다가 살아가면서도 하나님 그렇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꼭 붙잡고 살겠습니다. 상황의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겠습니다. 부정적으로 보인다면은 이제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말씀을 기억하면서 다시 한번 나의 관점을 점검하시면서 그 말씀을 통해서 새롭게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오신 그것을 기억하시면서 하나님이 이제 역사하실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며 사시는 한 분 한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꼭 붙잡고 미래의 꿈을 꾸는 우리 귀한 한 분 한 분 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요약
21세기에 바로 이러한 주님의 비전과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역사를 우리가 생각하며 살 수 있는 특권 주신 것 감사해야 한다. 세상은 어지럽듯이, 세상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그런 두려움에 가득 찬 그런 세상을 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모든 두려움의 시작은 망각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주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기억함으로써 우리의 관점이 바뀔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으로 단련되고, 준비된 그러한 관점으로 메사를 보면서 우리가 그 안에서 파괴하고 또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인도해 오셨기에 바로 그것을 잊지 않아야 하며, 인도하셨기에 어떤 상황 속에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야 한다. 절망치 않고, 포기하지 않고,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가 되어 많은 성경에 수많은 약속들, 우리가 약속을 다시 한번 붙잡아야 한다. 미래를 향해서 주님 기대하면서 준비하는 꿈을 꾸는 자들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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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1월 11일)-로마서 강해 서론
설교제목 : “정결함으로 로마서를 시작합니다”
(Beginning Romans with a Pure Heart and Repentance)
성경본문 : 로마서 1:1~2, 6~7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이윤기 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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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2, 6~7,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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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대가 고백한 대로 선한 목자 되신 주님께서 우리 한 분, 한 분에게 참된 복의 수혜자가 될 수 있도록 응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 로마서를 오늘은 서론 좀 하는데, 이 로마서 들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환경 주시고, 또 믿음 주시고, 은혜 주시고, 무엇보다도 건강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건강할 때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저도 그런 면에서 좀 이렇게 치밀 오른 은혜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 성도님들이 로마서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 같은데요. 로마서는 오래 신앙생활 하신 분들에게 익숙합니다. 그러나 익숙하다고 해서 여전히 쉽지는 않습니다. 초신자 성도들은 이게 좀 낯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신앙생활 하는 분들도 또 처음 초신자 성도들에게도 이 말씀이 잘 깨달아질 수 있도록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따뜻하고 친절한 메시지가 되길 원합니다. 그런데 따뜻하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가 되길 바랍니다. 또 깊이가 있지만 새로운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고, 무엇보다 제 마음에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따뜻하고 깊고 새롭지만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 여기에 능력을 실체를 경험하는 메시지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이 저는 주님 이 말씀을 우리 성도들에게 인생 말씀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또 인생 로마서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이런 마음이고 저는 본격적으로는 1월 25일부터 할 것이고,. 오늘 일단 오리엔테이션 격으로 로마서의 문을 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제목은 정결함으로 로마스의 시작합니다. 영어로 말하면 “Beginning romance with a pure heart and repentance”. 그러니까 ‘정결한 마음과 그 다음 회개하는 마음’으로 로마서가 시작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걸 위하여 먼저 우리를 새롭게 하고 우리를 정결케 하는 이 우리가 방향을 가지고 아 이 로마서가 어떻게 교회 역사를 새롭게 했는가 교회 역사를 새롭게 했는가? 몇 가지를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저 히포의 유명한 성 어거스틴 감독 성 어거스틴이 AD 4세기 후반기에 로마서 13장을 통하여 뒤집어져 버렸어요.

그가 구원의 길을 찾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안 됐는데 마니교에 그냥 그렇게 젖어 있고 이런 사람이 완전히 로마서 13장을 통하여, 그리고 잘 아시는 대로 마틴 루트가 마르틴 루트는 캐돌릭 사제였어요. 신부였어요. 그런데 보면 자기가 어떤 구원의 수준의, 구원의 세계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막 자기 자신을 고행하는데 스칼라 상타라고 로마의 그 고행 계단이 있어요. 그 계단에 가가지고 막 자기를 갖다 고통에 몰아넣고 상처를 내면서 그 계단을 이렇게 무릎으로 그 무릎으로 막 고생하면서 올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천둥 같은 섬광 같은 말씀이 자기에게 때리는데, 너 고행으로 구원 받냐? 아니야. 오직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느니라.

그 1장에는 이 내용을 가지고 완전히 마틴 루터가 새롭게 되고 그 마틴 루터가 새롭게 된 딱 그 말씀을 받고 고행하면서 계단으로 무릎으로 오르던 그걸 딱 멈추고, 로마에서 그냥 독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돌아가 가지고 초대교의 이후에 가장 강력한 종교계의 새로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어거스틴 마틴 루터’, 그 다음에 ‘요한 웨슬리’라고 있었는데, 요한 웨슬리는 교리적으로도 그렇고 지성적으로 똑똑한 분이었어요. 그런데 영국의 런던의 올더스 게이트라는 곳에서 교회에서 로마서 서문을 이렇게 자기가 듣다가 로마서 서문을 듣다가 그대로 깨어져 가지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고 그 이후에 ‘조지 위필드’와 함께 대각성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존 버년’이라는 분 아시겠는데 성경 이후로 제일 많이 팔린 책이 천로역정 Pilgrim’s Progress인데 존 번년이 그 감옥에 있으면서 이 로마서를 읽다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우리 천로역정을 썼습니다.

자, 여기서 이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처럼 자기 의지로 구원의 길을 찾는 분들 마틴 루러처럼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으로만 생각하는 분들, 요한 웨슬레처럼 교리적인 신앙을 갖고 있지만 구원에 확신이 없는 분들, 존 버년처럼 죄의 무거운 짐을 해결하지 못해 고통 하는 분들이 우리 가운데 분명히 있을 거예요. 이런 분들, 오늘 로마서를 통하여 길을 찾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사랑의 교회, 우리 교회는 지금부터 한 35년 전쯤 우리 선대 옥한흠 목사님께서 로마서 강해를 통하여 사랑의 교회에 말씀을 통한 강력한 부흥이 일어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에요. 아무도 흔들릴 수 없는 나의 구원, 그런 거 할 거예요. 저는 요즘은 20년이 한 세대가 지나가는데, 35년이 지나갔기 때문에 35년 뒤에 이 말씀을 하는데 하여튼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랑의 교회의 성도들과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방송을 듣는 모든 성도들께 저와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35년이 지난 이후에 이제 우리들 차례가 되었어요. 이 말씀이 남 얘기가 아니라 저와 여러분을 바꾼 말씀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에요. 다시요.

어거스틴, 마틴 루터, 그 다음에 요한 웨슬레, 존 버년, 우리 선대, 우리 성도들을 변화시켰던 그 말씀이 저와 여러분을 변화시키고 한국 교회의 재부흥의 촉매제가 될 수 있도록, 이 말씀이 나의 사랑하는 책이 되기를 바라고, 이 말씀이 나를 변화시킨 책이 되기를 바라고, 이 말씀이 우리 가정과 교회를 변화시키고 바꾼 말씀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서울 선언’ 이후에 ‘WEA의 서울 선언 총회’ 이후에 이 말씀이 글로벌 복음주의 교회의 재부흥의 촉매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걸 위하여 오늘 이제 말씀을 이제 1절부터 오늘 서론 격입니다. 1장 1절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뭐라고 시작하는가? 먼저 우리가 기초로 쌓아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1장 1절에 다 함께 보겠습니다.

*로마서 1:1,
1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먼저 이 말씀을 기록한 바울인데 자세한 것은 다음번에 제가 다룰 터인데, 오늘 일단 바울에 대해서 두 가지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또 하나 뭐라고 그랬어요? 사도이다. 이 내용은 뭘 먼저 설명하느냐 하면 이 말씀을 전하는 바울의 메신저로서의 신뢰 말씀을 전하는 바울의 인격에 대해서, 아 바울은 신뢰할 만하다 이것이 그러니까 항상 말씀은 두 가지가 있는데, 메신저가 있고 그 메신저가 전하는 메시지가 있는 것이에요. 오늘 이 말씀을 전하는 바울은 신뢰할 만한 분인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바울은 얼마나 신뢰할 만한가?

그는 위선자가 아니고, 정말 2천 년 교회 역사의 바울처럼 신뢰할 만한 인격자를 또 만날 수가 있겠는가? 당시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지만 말씀 앞에서는 깨어져 가지고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할 만한 그런 인격자인데, 바울처럼 이 신뢰남의 인격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이 바울을 저 타 종교는 싫어하고 그리고 이 얼마나 바울의 인격이 대단했느냐 하면 우리 기독교 안에서도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바울을 싫어할 정도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로서 그야말로 올바른 메신저가 된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는 메신저뿐만 아니라 메시지가 중요한데 그 메시지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하는가? 2절에 이와 같이 나와서 2절을 같이 봅니다.

*로마서 1:2,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오늘 복음의 정석, 로마서 정석, 바울의 메신저로서의 말씀을 전하는 메시지가 뭐냐? 오늘 이 메시지 자체에 대한 신뢰를 표현한 구절인데 이 복음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것인 줄로 믿습니다.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들이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말씀을 했는데, 특별히 누가 봄 24장에는 예수님께서도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누가복음 24:27,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이 내용이 뭐냐 메시지가 신뢰할 만하다. 구약에 예언한 그 모든 복음의 정석을 오늘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메신저와 메시지를 잘 살펴보고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하여. 이걸 여러분들이 잘 들을 때에 여러분과 저도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저도 이 시대에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신뢰받을 수 있을 만한 품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 저는 기도합니다. 오늘 이번 로마서 강해를 하는 동안에 사랑일교의 모든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도 신뢰할 만한 품격을 갖추게 하여 주십시오.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신뢰받을 만한 인격, 그런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오늘 제가 지금 메신저 얘기하고 메시지를 얘기했는데 존경받을 만한 메신저가 되기 위하여 또 신뢰받을 만한 품격을 갖출 만한 메신저가 되기 위하여 오늘 두 가지를 제가 서론 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뭘 말씀하는가? 첫째는 우리에게 부르심의 신비를 내 고백으로 해야 이 메신저가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자, 무슨 말인가?

I.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기 위하여
첫째, 부르심의 신비를 내 고백으로.

-제 얘기가 아니고 6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오늘 6절을 읽었습니다. 제가 앞부분의 일부러 다음에 하겠습니다. 6절의 시작,

*로마서 1:6,7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네라 7절에도 뭐라고 말씀하고 있냐면,
*로마서 1:7,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저와 여러분은 이 시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이 자리에 온 줄로 믿습니다. 저는 사도 바울이 오늘 이와 같이 이 말씀을 이제 전개를 하고 있는데, 저는 바울이 이제 앞으로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경책도 하고, 꾸중도 하고, 도전도 합니다마는 성도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 것이 이게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에요.

로마 교회 교인들이라고 완벽한 거 아니죠? 완벽하지 않는 로마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먼저 너희들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잘 아시는 대로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능력으로 성도가 된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고 성도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어요. 저는 여러분 오늘 이 예배에 와서 앉아 계시는 귀한 성도는 한 분 한 분 여러분들의 배경을 제가 다 모르죠.

어떤 분들은 오래된 성도들, 또 초신자 성도들이 있고 또 세상 적으로 배경, 여러 가지 차원이 다 다를 것이고. 또 지역적인 배경이나 다 달라요. 그래 여러분들 많이 다르지만 제가 한 가지 아는 거 있어요. 그것이 뭐냐? 오늘 이 예배에 오신 여러분들은 주님이 부르셔서 오신 것이에요. 주님이 부르지 않으시면 우리가 주님 믿을 사람도 없고, 주님이 부르지 않으시면 이 자리에 올 자가 없다는 사실이에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능력으로 부르심 받은 게 아니라는 것이에요.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바울이 어느 정도 말을 하느냐 일자리에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소위 Apostle쉽으로, 사도로 그리고 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바울만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5절에 보면 누가 부르심을? 5절에 보면,

*로마서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 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그랬어요. 사도바울이야 종이요. 사도로 살았지만 오늘 우리가 할 때 여기는 팀들을 얘기해요. 거기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들어가고, 그 다음 디모데도 들어가고 여러 팀들이 들어가고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나 디모데 같은 사람은 사도는 아니에요. 그러나 함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사도 성을 가진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니까 앞으로 로마서를 진행할 때에 우리가 다 부족하지만 오늘 이 시대를 향하여 여러분과 저는 사도 성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에요. 우리가 무슨 사도입니까? 우리는 사도직 자체는 계승되지 않지만 사도 성 자체는 우리가 오늘 깨달아야 되는데, 이게 신학적인 바탕으로 혹은 목회학적인 안목으로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Prophetic Apostolic, 이라고 앞으로 예언자적 사도 성을 가지고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장래를 결정할 것이에요. 아시겠어요?

Prophetic Apostolic Ship이라고 그래가지고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우리가 바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사도성을 가진 하나님의 신실한 사명자로 부르신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하겠습니다. 이 부르심의 특징은 현재 저와 여러분의 행실의 평가로 부르신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근거한 신분 선언과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의 근거가 우리의 행실이나 공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는 불러주셨기 때문에 세워진 성도가 된 것이다. 이 말이에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이제 거룩하게 살고 거룩해졌으니 내가 성도라고 불러주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지 못한 상태를 끌어안은 채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라고 선포가 되었다는 것이에요. 이 세상의 상식은 거룩해지면 성도이다. 자격이 되면 성도라고 부른다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거룩해지는 것이고. 성도의 부르심은 자격이 아니라 부르심의 은혜가 먼저가 된 것이에요. 따라서 이 부르심의 특징은 사도바울의 독특한 언어 습관인데 그것이 뭐냐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로마서를 고린도 지역 고린도에서 쓰고 있었는데, 그 고린도 교회에도 동일한 바울의 언어 습관에 나오는데 어떻게 부르셨는가? 고린도전서 1장 2절에 뭐라고 나오느냐 하면 이렇게 나왔어요.

*고린도전서 1: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그들에게 오늘 로마서 1장이 난 것처럼 은혜와 평강 그들에게 고린도전서의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신비는 내 안에 있는 경건함, 거룩함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 부름 오죽하면 로마서 8장에 보니까,

*로마서 8:1,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우리가 거룩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거룩한 성도라고 부르심 받는 거예요. 오늘도 여러분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 자의 정함과 높은 자의 우리가 아까 찬송 불렀을 때 마음에 와 닿지 않았어요? 아무런 뭐가 없었어요?

저는 오늘 이거 찬송을 하는데 제가 설교할 힘을 얻었어요.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예수님은 누구신가? 너무나 놀라운 복음이 그 안에 다 들어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제가 설교할 은혜를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내용이 앞으로 큰 의미가 있는데, 이게 로마 캐톨릭과 우리를 구별하는 것이에요. 로마 캐톨릭은 고행과 거룩한 삶을 가지고 어떻게 이 성도 성인의 계급을 구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인 반열이 있는 것이에요. 거룩함의 카스트 제도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가 거룩하게 살기 때문에 부른 거예요. 하나님이 불러주기 때문에 우리가 성도가 된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이 차이가 많은 거예요. 등급이 아니에요.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어렵다 하시고 거룩하게 불러주신 신분 때문에, 그래서 캐톨릭에는 등급 이런 반열이 있습니다마는 우리는 그냥 신분이에요. 이게 왜 이래 중요한가?

지난 주일날 인구 센서스를 나온 통계가 나왔는데 종교 센서스가 나왔어요. 10년에 한 번씩 하는데 2015년도에 기독교 퍼센티지가 얼마냐 그리고 2025년도에 기독교가 종교가 어떻게 되느냐 이렇게 나와 있는데, 여러분 2015년만 하더라도 그때도 기독교가 많은 공격을 받고, 미디어나 온갖 영화, 텔레비전 이런 거에 대해서 많이 이렇게 기독교를 하고 또 캐톨릭을 높여주고 그랬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2015년에 나름 선방을 했어요. 교회가 자라서 왜 로마서 같은 이런 부르심에 대한 복음의 정석 때문에.

그런데 지난 10년동안 그 이전과는 말로 다룰 수 없는 공격, 어려움, 그다음에 폄하, 모든 미디어에 보세요. 교회 제대로 나오는 거 있느냐고 캐톨릭은 올려가고 있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 사랑의 교회 강단이라는 또 대한민국 교회의 프로테스탄트 성도인 여러분들의 입장에서 깊이 생각할 것이 있는 것이에요. 우리가 이 복음의 정석과 로마서 마르틴 루터의 후예가 돼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을 두근두근하면서 살펴보았어요. 작년 연말에 우리 기독교가 어떻게 됐는가? 2015년에 19.7%였는데 작년 연말에 10년 뒤에 다들 기독교가 내리막이고 내려간다고 그러고 막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 작년 연말에 통계가 20%가 된 줄로 믿습니다. 0.3%가 그래도 자랐어요.

온갖 종류의 폄하와 온갖 종류. 여러분 드라마에 교회를 제대로 한 데 있습니까? 나는 지금도 기억하는 게 30몇 년 전에 왠만 하면 교회 갑니다. 옛날에 사랑이 뭐길래 거기 보면 교회 갑니다. 전부 다 지금은 다 캐톨릭 교회 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되는 캐톨릭 하고 우리의 차이를 알아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가 고행하고 잘해서 성좌 반열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가 성도가 된 것입니다. 놀라운 신비입니다. 놀라운 신비입니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를 우리가 구세주로 영접하는 그 순간, 우리가 이미 성도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이런 거룩에 대한 카스트 제도는 없는 것이에요. 누구누구는 더 거룩하고 누구누구는 덜 거룩하고 이게 아니에요.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거룩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이런 뜻이에요.

어린아이가 있는데, 어린아이가 있는데, 애가 아버지 코트를 입었어요. 애가 아버지 코트를 입었는데 너무 적어가지고 코트만 보이고 애가 안 보여요. 그래 가지고 애가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코트가 걸어가요. 이게 무슨 말이냐? 우리에게 주님께서 의의 옷을 입혀주신 것이에요. 우리는 다 부족하고 그 안에 있는 어린아이는 뭘 몰라요? 어린아이는 너무너무 자기만 알고 바보 같아요. 그렇지만 그 어린아이가 그 코트 안에 있기 때문에 성도가 된 것이에요. 이럴 때 우리는 우리가 이렇게 부르심에 대한 신비를 깨달 때, 우리는 교만할 수가 없어요. 뭐 할 수가 없다고요? 교만할 수 없어요. 교만에서부터 우리가 자유함을 갖는 거예요. 내가 성도가 된 것은 내 성품, 내 지성, 내 훈련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사랑할 것이 없어요.

-성도는 '자기 완성자' 가 아니라 부르심의 은혜를 입은 '수혜자'이다.
-우리의 능력과 실력과 지성으로 우리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입은 수혜를 받은 사람이에요. 아멘. 그러니까 교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두 번째로는 모든 이 땅에서의 절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절망으로부터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에요. 나는 아직 엉망이니까. 성도라고 부를 만한 자격도 없지만, 그러나 그 부족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 절망 가운데 자유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성도라는 이름은 내 완성도를 근거로 붙인 이름이 아니라 부르심을 근거로 붙이는 이름이기 때문에, 내 완성도를 통하여 얻어진 이름이 아니라 부르심을 통하여 얻어지는 은혜이기 때문에, 오죽하면 바울의 믿음 아들 디모데에게 디모데후서 1장이 뭐라고 설명하는 거야?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다 같이 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1:9,
9 하나님이 ..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우리의 뭐예요? 우리의 할렐루야 이처럼 부르심을 받은 성도라는 것은 어느 엄청난 무게와 신비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걸 깨닫고 나면 우리가 방종하거나 마음대로 삽니까? 아닙니다. 제대로 깨닫고 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 우리 전투력 가지고,
-부름 받아 나선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여러분 여기에 동의가 있기를 바랍니다. 자 메신저와 메시지가 확실하면 첫째는 오늘 부르심에 대한 깊은 신앙의 신비와 고백이 있고, 두 번째로, 이제 하나 있는데, 그것이 뭐냐? 그것은 정결함을 통하여 참된 말씀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II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기 위하여
둘째, 정결함을 통하여 참된 말씀의 복을 담아야.

-그리고 참된 말씀의 복을 우리 속에 담고 평생 걸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적용입니다. 바울은 이런 성도의 부르심에 대한 깊이 있는 선포를 통하여 이게 자기 고백이 될 때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어요? 사실 여러분 바울은 사도로 부름 받기까지 바울이 한 일이 없어요. 오히려 바울은 부르심 받은 성도들을 박해하고 스테반을 갖다가 돌로 쳐 죽이고 그런데 놀라운 복음의 신비는 바울의 생애 속에서 그의 부르심 과정에서 나타났는데 다마스커스, 다메섹 도상에서 깨어져 있었어요. 그리고 그의 부르심에 이 신비의 보이지 않는 바울이 가진 과정이 뭐냐 하면, 사도행전 9장 9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사도행전 9:9,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그 정결함과 회개와 돌이킴의 기간이 있었다는 소위 부르심의 합당한 회개가 시작이 된 것이에요. 그리고 갈라디아 1장에 보면,

*갈라디아서 1:17,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바울이 이 부르심을 받고 바로 예루살렘 교회로 가지 아니하고 3년 동안 아라비아에 가가지고 거기서 철저한 자기 정결과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부르심에 합당한 회개를 감당하게 된 것이었어요. 그 아라비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니고, 그 아라비아는 지금 페트라, 요르단, 다마스커스 접경 지역인데 거기에 가가지고 3년 동안, 그 3년 동안 철저한 회개와 정결함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이게 역설의 회개와 정결함입니다. 지난주에는 제가 역설의 기쁨이라고 그랬는데 십자가와 그다음 기쁨을 안 어울리는 단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십자가는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가져온다. 그것이 이제 와닿는 것처럼 오늘 마찬가지입니다. 부르심의 은혜가 너무 큰데 그걸로 우리가 부르심의 은혜 받았다.

이게 아니라 거기에 걸맞는 정결함이 따라가는 것이에요. 아멘 정결함에 따라가는 것이 부르심에 걸맞는 정결함과 회개가 있어야 되는 것이 제가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우리 성도들 가만히 우리 교회 성도들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이 말씀의 복을 가지고 소위 영육 간의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의지적으로 삶에 있어서 심지로 경제적으로 또 가족적으로 여러 상황 가운데서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복을 받고 어떤 성도들은 그 복을 쏟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왜 그럴까?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끝까지 쓰임받고 가고 어떤 성도들은 뭔가 하나님 주시는 그 은혜가 있는데, 그걸 누리지를 못하고 중간에 다 새어나가는 거예요.

마치 독이 있는데, 그 독의 밑바닥이 튼튼하고 잘 되어 있으면 물을 채우면 그 물이 다 차 가지고 흘러넘치는데, 어떤 독은 아무리 아무리 물을 이렇게 쏟아 넣어도 계속 물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흩어지고 다 새버릴 이유가 뭔가? 제가 볼 때 이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가 없기 때문에, 참된 정결함이 없기 때문에, 이 참된 정결함과 참된 회개가 우리 신앙의 밑 빠진 독을 해결해 주시는 것이에요. 따라서 로마설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주님 앞에서 처리할 것은 처리하고, 반복적으로 짓는 죄, 습관적으로 짓는 죄, 수많은 것들이 있어요. 주님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것이 있어요.

오염된 것, 소위 정결함 없는 평안이 여러분들에게 있다면,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아버지 부르신 것 너무 사실이고 성도로 너무 귀한 일이지만 주님과 나와의 사이에 소위 벽이 가리워 져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복을 부어 주실려고 그러는데 그 벽이 가리워져 있는 거예요. 그러니 주님이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다 있을 줄로 믿습니다. 아시겠어요? 그걸 하나님 앞에 정리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거죠. 것이에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고린도에서 쓰고 있었는데, 그 고린도 교회는 바울은 나중에 보면 알지만 로마서를 쓸 때, 로마 교회에 가본 적이 없어요. 있을 때는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너무 주위에 고른도 교회 일어난 일들 잘 알아요. 고린도 교회는 너무 엉터리였어요. 성도들이. 그래서 이 고른도 교회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근심을 가지고 정결함과 회개를 해야 한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

*고린도후서 7:10,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참된 근심, 참된 회개 이런 정결함에 대한 어떤 방향을 잡아주는데 보세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뭘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뭐예요? 사망을 이룬다. 자 오늘 사탄이 우리를 근심하게 우리를 좌절하게 하고 우리를 짓누르고 우리에게 상처 주고 우리를 넘어뜨리게 하는 이건 사탄이 하는 것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제대로 된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정결함을 사모하는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요, 참된 해결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배해 놓으신 수많은 은혜들을 누리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1장 7절 뒤에 보면,

*로마서 1:7,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받을 복 중에 최고의 복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최고의 복은 은혜와 평강인 줄 믿으셔야 되는 거예요. 은혜와 평강의 이 물줄기가 생수가 터져야 되고 이것이 우리에게 막 뿜어져 들어가야 되는데 우리에게 들어오는 이 파이프가 막혀있는 것이에요. 파이프의 배관이 다 찌꺼기가 너무너무 막혀 있어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폭포처럼 부어주시려고 해도 우리가 받을 수가 없는 것이에요.

주님과 여러분만이 아는, 여러분의 은혜의 파이프를 더럽게 하고, 막히게 하고, 그걸 그냥 완전히 오염시키는 그 모든 것들을 로마서 시작하면서 정리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거죠. 그래서 제가 마음속에 소원을 했어요. 여러분 1월은 우리가 변화되기에 정말 좋은 시간이에요. 가장 좋은 시간이에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 복이 있는데, 하나는 주어진 복이 있고, 또 하나는 누려 지는 복이 있어요. 어떤 성도들은 주어진 복은 받았는데 누려 진 복을 받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어요. 성도에게 첫째, 무슨 복이 있으면서 부르심을 통하여 주어지는 복이 있습니다. 동시에 뭐예요? 누려 지는 복은 뭘 통해서 받아야 할까요?

정결함을 통하여 참된 회개를 통하여 여러분이 참된 회계는 근심을 통하여 이것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아까 7장 10절에 그래서 이 참된 회개가 있을 때, 회개의 정의가 나오는데 고린도후서 7장 11절에 이와 같이 나와요. 제가 한번 여러분 물 뽑겠습니다.

*고린도후서 7:11,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
얼마나 분하게 하며 / 얼마나 두렵게 하며 /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이 회개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열망을 주실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뭐하게 하며 이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에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소리가 왜 자꾸 작아져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이건 거룩한 분노예요. 죄에 대해서 내가 거룩한 분노를 하는 거예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두렵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얼마나 뭐하게 하며 이걸 오늘 여러분들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길 바라는 거예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열심히 이렇게 하며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아 그렇구나.

내가 제천기도동산에도 한번 가봐야 되겠구나. 이번 주일날 기도 금식 기도하려고 했는데 금식하는데 거기라도 한번 가봐야 되겠구나. 열심히 얼마나 뭐해요? 벌하게 하였는가 악을 용납지 않는 단호함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에요. 오늘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너희 자신의 뭘 나타냈느니라. 부르심에 대한 분명한 고백이 있어야 되고 두 번째, 이 부르심에 대한 은혜와 함께 우리가 정결함을 가지고 로마스를 시작하는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는 것인데 그것이 뭐냐?

회개를 나를 고치는 작업으로만 여기는 것은 그것은 아주 초기 단계에 회개는 자신을 고치는 것뿐만 아니라, 은혜가 나를 살리는 자리까지 나가는 것이에요. 매주일 마다 은혜가 저와 여러분을 살릴 것입니다.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여러분 가정을 살릴 것입니다. 결론이 뭐냐 우리에게 정한 마음이 있을 때, 새 마음이 창조되는 거예요. 10편 51편의 다윗이 고백한대로

*시편 51:10,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의 정직한 영을 뭐예요? 새롭게 하셨어요. 정결함이 되면 새 창조와 새로운 마음, 새로운 스타트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주어진 복뿐만 아니라 누려진 복을 위하여 거리끼는 것, 이걸 다 깨어서 흘러가게 하는 것들을 처리하고, New Start, New Creation, 새로운 창조와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한 분, 한 분 예외 없이 주님 앞에 쓰임 받는 축복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성 버나드가 은혜를 받고 참 회개하는 자에게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이 좋거든. 그 다음에 참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신다고 그랬어요. 우리 참 회개하는 자에게 찬양합시다.

저는 청년 시절의 정결함을 위하여 A day in Prayer, 기도로 하루를 이라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봤고 또 시간이 하루가 안 날 때는 Half day in prayer, 반나절이라도 주님과 함께 1월은 변화되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요약
이 말씀 가지고 주님 나 사이에 거리끼는 것, 내 삶에 누려 지는 축복들을 다 밑빠진 독으로 다 깨어서 흘러가게 하는 것들을 새 버리게 하는 것들을 막을 수 있도록 주님께 우리를 청결함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해야 하며, 우리 모든 성도들이 로마서의 복음의 정석을 통하여 우리가 정결함으로 나가는 은혜가 있어서, 우리 성도들 모두가 품격 있는 인생으로 만들어 주실 것을 확신한다. 말씀 가지고 우리가 더 이상 교만하지도 않고, 더 이상 절망하지도 않는 거룩한 자유함으로 신년을 맞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부르심에 합당한 회개와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복이 새어 나가던 모든 틈들을 눈물의 회개로 메꾸어서, 참된 말씀의 복과 은혜와 평강의 복이 나를 흘러넘쳐서 다시 시작하고 다시 재창조하는 New Start, New Creation의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에게 주님께서 놀라운 부르심의 은혜로 나를 그리스도의 것 삼아 주셨으니, 역사를 바꾼 로마서 말씀을 통하여 나의 가정과 일터를 바꿔가야 한다. 날마다 사망을 이루는 세상 근심'을 물리치고 회개를 이루는 거룩한 근심으로 정결해질 때, 새지 않는 은혜와 평강의 강수가 항상 넘실대고, 우리 사랑의 교회가 참 회개로 주어진 복'을 넘어 누려지는 복'을 경험할 때, ,우리 모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강력한 뉴스타트, 뉴크리에이션의 기적'을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간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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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01월 04일)-(26년 신년메시지)
설교제목 : “차안대(遮眼帶)를 쓰고 예수님만 바라보라
(Put on the Blinders and Fix Your Eyes on Jesus)”
성경본문 : 히브리서 12:1~3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박주성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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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2:1~3,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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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애 이와 같이 새로운 신년 감사 예배 드리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새해에도 이 강단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말씀의 깊이를 가지고 우리 성도들 한 분 한 분의 영혼을 살리는 메시지가 이 강단에서 선포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저는 신령 감사한 메시지로 “차안대(遮眼帶)를 쓰고 예수님만 바라보라” 이 차 안대는 차 한 대가 아니고, 이 차 안대는 눈옆 가리개입니다. 이거 나중에 또 다시 설명을 드릴 거예요. 하여튼 우리 눈 가르개를 쓰고 2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믿음과 시작의 완성 이신 믿음의 주여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이 한해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다. 그렇잖아요? 새해가 되면 좀 더 이제 신앙생활 제대로 해 보자. 또 새로운 믿음의 진보를 가져보자. 이런 마음에 다. 소원이 들지요. 그렇죠. 그렇게 되는데 그 목표가 뭐냐? 주님을 더 사랑하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가고 주님께 더 친밀하고, 주님의 사명을 더 깨닫고, 주님께 더 쓰임 받는 이런 것이 자연스럽게 새 우리의 마음에 소원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주님을 얼마나 더 사랑하십니까? 진짜 주님 사랑하십니까?

제가요. 지금 드리는 이 내용은 너무 좀 조심스러워서 굉장히 좀 제가 조심조심하게 얘기하고 싶은데요. 뭐냐면 45-6년 전에 제가 저희 집 사람하고 그때 교제를 했습니다. 교제를 하는데, 저희 집 사람이에 저보다. 미국을 더 먼저 가게 됐어요. 그게 돼 가지고 제가 그때 광화문 쪽에 살았는데 광화문에서 김포공항 가는 버스가 542번입니다. 예, 그걸 이제 김포공항에서 타고 이제 보내 주고 이제 저는 이제 혼자 들어와 갖고 그날이 금요일이었는데 금요일 밤에 기도회가 있었어요. 기도회 갖고 이제 기도회를 참석하는데 갑자기 막 가슴이 아프고, 막 갑자기 숨을 모시겠는 거예요. 호흡이 안 되는 거야. 그 왜 호흡이 안 될까? 그 보니까? 우리 집 사람을 우리 그때 우리 집 사람이 아니죠. 난영 자매를 너무 사랑해 가지고 숨을 모시겠는 거예요. 그 제가 이제 조심스럽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지금은 좀 좀 하여튼 그래요. 그래서 그래서 이 왜 이러나 내가 이게이 자매를 보내고 난 다음에 숨을 모시겠구나, 그 내 옆에 믿음 좋은 내 믿음 좋은 형제가 있었어요. 믿음 좋은 내 친구가 있었는데 갑자기 나를 보고 탁 정현 형제 정신 차려요!!!~. 그러는 거예요. 왜 그러니까? 아니 그대는 예수님 사랑하는 것 때문에 예수님을 너무 사랑해 가지고 숨을 모셔 본 적 있어? 오!!!, 그때 제가 진짜 벼락 같은 걸 느껴서 이렇게 음 그래서 그날 밤 금요. 기도했는데, 주님 앞에 회개하고, 내 평생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그다음에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이런 찬송을 하면서 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는 내 인생이 되게 도와주십시오. 그런 기억이 제가 이렇게 조심스러운 얘긴데,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 너무 사랑해 가지고 숨을 모셔 본 적이 있으시나니까? 정말 우리가 주님만 바라보고 달려간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우리의 삶의 목표가 재정렬된다는이 뜻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내 삶의 목표가 재정렬되면, 내 삶이 재정렬되면 내 가치관 내 삶의 렌즈로 이렇게 잘 렌즈를 바라보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냐? 우리의 시각이 달라지는 것이에요. 무슨 시각? 성공에 대한 시각, 실패에 대한 시각, 또 삶의 풍성함과 부족함에 대한 시각,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이 생각하는 거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대표적으로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사랑하는 이것이 우선순위가 되면 여러분 죽고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그렇게 너무 염려할 것도 없고 죽는 것이 무슨 뭐 인생의 끝도 아니고 무슨 절망도 아니에요.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이 삶의 목적이 되어서 삶이 재정렬되면 바울이 고백한 대로 빌립보서 1장 21절에 유명한 말씀 있죠? 같이 보죠.

*빌립보서 1장 21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아멘입니까? 사는 것도 귀한 것이지만 죽는 것도 유익하다. 왜냐하면 우리 죽는 것도 육신이 육신의 몸이 죽고 새 몸을 입는 거 아닙니까? 이게 달라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 바라볼 때 가치관과 생각이 재정렬되는데 한때 미국 같은 데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랬을 때 WWJD라고 있었어요. WW가 뭐냐? What would Jesus do? What would Jesus do?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니까? 주님 바라보는 사람들의 삶의 형태로 WWJD 그래서 그걸 이렇게에 손에도 이렇게 그걸 매고 이렇게 다니면서 일마다, 때마다. 삶에 대한 시각과 가치관이 달라져 가지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차원에서 이 한해 동안 여러분의 시각이 주님께 고정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첫 번째로 생각할 것은 우리의 시각이 주님께 초점이 맞춰 줘야 한다. 주님께 고정이 돼야 한다. 영어로 말하면 픽스가 돼야 한다.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I. 차안대(遮眼帶)를 쓰고 예수님만 바라보는 초점에 분명해야.

*히브리서 12:1,
1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이렇게 여러분 1절 하반절에 보니까?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이렇게 나와 있어요. 당한이란 말인데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는데 우리의 삶에 우리의 삶의 코스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은사대로 각자 주신 은사와 재능대로 여러분들에게 주신 삶의 코스가 있어요. 경조해야 할 코스가 있어요. 길이 있어요. 길이 있는데 이 길을 향하여 어떻게 할 것인가? 영어로 말을 Let us fix라고 나와 있어요.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이렇게 나와 있어요. 주님께로 집중하자. 우리의 신앙생활을 운동장을 가볍게 산책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집중해 가지고 달려가는 경기와 같다. 이 경기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9장에 유명한 말씀 있죠.

*고린도전서 9:14,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렇게 다. 상급을 향해 달려가라 이렇게 했어요. 달려가라 이렇게 했어. 그러니까? 여러분 생각을 해 보세요. 100m 육상 단거리 주자가 달려갈 때, 옆에 있는 것들 히끗히끗 보고 있잖아요. 이렇게 산만해 갖고 집중하고 달려갈 수가 없는 거에요. 딱 집중해서 달려가는 거예요. 그 제가 이제 오늘 차안고 한 것이 뭐냐?

경주마가 있는데 여러분 경주마들이 막 달려갈 때에 그 경주마에게 눈 가리게 눈옆 가리개, 덮개를 씌워요. 이렇게. 왜냐하면 이 말들이 보는이 시각의 이 시각이 뭐냐면 350도예요. 파노라마처럼 전체를 다. 볼 수 있는 거예요. 사람은 한 100한 6-70도를 보는 거죠.이 보게 돼 있는데 말들의 이 시각이 전체를 바라보 350도. 그러니까? 말에 겁이 많아 가지고 같이 경조할 옆에서 뛰는 말들을 보면 겁이 많아 가지고 주눅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눈옆 가리개, 눈옆 가리기를 씌워 가지고 그래 가리개를 씌울 때, 그 시각의 어떤 전체에 보는 눈이 350도에서 3분의 1로 줄어지는 거예요. 120도 정도로 줄어지는 거에요. 그러니까? 복잡한 거 안 보고 한 눈만 딱 집중해 가지고 경주말로서 달려갈 수 있도록. 그래서 그것이 차 안대이다. 그것이 눈옆 가리개이다. 이해가 됩니까?

신년 예배 오셔 가지고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말씀을 통하여 예배를 통하여 여러분들의 기도를 통하여 주님 한 분, 한 분에게 차 안대, 이 세상에 대해서 너무 신경 쓰지 않도록 눈 가리개를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게 우리에게 주신이 사명의 경로에요. 그리고 세상의 경주는 혼자만 뭐 챔피언하고 혼자 하지만 이 사명의 경주는 미션 구도가 돼 가지고 경쟁 구도가 아니라, 이 은혜를 받아 모두가 다. 승리할 수 있는 모두가 다. 양편 다. 승리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와 같이 차 안대를 쓰고 어떤 뭐 어떤 세상의 어떤 타 종교처럼 막 자기를 고행하고 그다음에 또 뭐 자기를 어떻게 애써가 이런 개념이 아니에요.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피안의 세계를 위하여 달려가는 사람이 아니고,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예수님의 의로 그것을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구원을 얻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수님의 온전함을 이루기 위하여 달려가는 것이에요. 예수님의 온전함. 오늘 여기 나와 있죠. 뭐라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의 그 은혜를 믿고 온전케 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것이에요. 따라서 우리의 달 경주는 이 세상의 어떤 구원을 위한 그런 경주 정도가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으로 그 은혜에 감사하여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우리가 예수님의 온전함을 닮아갈 수 있도록 다른 박질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의이 경주는 온달이에요. 온달. 온전함을 위하여 달려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은 오늘 남자들은 박온달, 김온달, 최온달 되시고, 여자분들은 이 남 자분들이 신앙 잘 할 수 있도록 평강공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알 사람은 알도다.
…-----
요약
제목: 차안대를 쓰고 예수님을 바라보라 (히브리서 12:1–3)
-이 설교는 새해를 맞아 성도들이 믿음의 경주를 어떻게 달려가야 하는가를 히브리서 12장을 중심으로 선포한다. 핵심은 눈을 가리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온전함을 향해 끝까지 달려가는 신앙이다.

1. 신앙의 출발점: 예수님을 향한 시선 고정
새해마다 성도들은 더 깊은 신앙을 소망하지만, 그 출발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달려 있다. 설교자는 개인적인 간증을 통해, 사람을 사랑하는 감정과 비교될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회개한 경험을 나눈다. 진정한 신앙은 예수님을 삶의 최우선에 두는 것이며, 그럴 때 삶의 목표와 가치관이 재정렬된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은 성공과 실패, 풍성함과 부족함, 심지어 죽음에 대한 관점까지 바꾸어 놓는다. 바울의 고백처럼 “사는 것이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유익”이 된다.

2. 차안대의 의미: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하라
‘차안대’는 경주마에게 씌우는 눈가리개를 뜻한다. 말은 시야가 넓어 옆을 보면 겁을 먹기 때문에, 오직 앞만 보고 달리게 하기 위해 눈가리개를 씌운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은 산책이 아니라 경주이며, 성도는 Let us fix our eyes on Jesus처럼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은사와 사명에 따른 각자의 경주 코스를 주셨다. 신앙은 경쟁이 아니라, 은혜 안에서 모두가 승리하도록 부르심 받은 사명의 경주다.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자로서 예수님의 온전함을 닮아가기 위해 달리는 사람들이다.

3. 경주를 방해하는 두 가지 장애물
믿음의 경주를 방해하는 요소는 두 가지다. 모든 무거운 것 죄는 아니지만, 우리를 무겁게 만드는 것들이다.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 패배주의,·냉소주의, 회의주의. 형식주의, 본질보다 수단에 집착하는 신앙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 심지어 가족이나 소중한 대상도 예수님보다 앞설 때는 ‘무거운 것’이 된다.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는 대상이 있을 때, 그것은 신앙의 발목을 잡는다. 얽매이기 쉬운 죄 하나님과 자신만 아는 반복적·습관적인 죄다. 이는 그물처럼 발목을 붙잡아 경주를 못 하게 한다. 특히 쓴 뿌리(미움, 상처, 분노)는 개인과 공동체 전체를 오염시킨다. 쓴 뿌리가 처리되지 않으면 온전한 경주는 불가능하다. 신앙은 마라톤과 같아서, 무거운 외투를 입고는 끝까지 달릴 수 없다. 반드시 내려놓고 벗어버려야 한다.

4. 적극적으로 필요한 힘: 역설의 기쁨
경주를 위해 제거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반드시 붙들어야 할 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역설의 기쁨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극도의 고통과 수치를 그 앞에 있는 기쁨 때문에 참으셨다. 이 기쁨은 세상적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기쁨, 구원 사역을 완성하는 기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쁨, 십자가와 기쁨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신앙의 세계에서는 고난을 통과한 기쁨이 참된 기쁨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둔다.” 고난 없이는 영광이 없고,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이 없다.

5. 경주의 결론: 피곤해도 낙심하지 말라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람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물질이나 상황에 매이지 않으며, 피곤하고 낙심될 때마다 예수님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히브리서 12장 3절처럼,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생각할 때 우리는 다시 일어나 달릴 힘을 얻는다.

6. 결단과 초청
신앙생활을 미적지근하게 해왔던 사람들에게 이번 한 해는 정말로 달려보자고 도전한다. 모라비안 교도들처럼 말씀과 기도 중심으로 끝까지 달려가는 믿음을 본받아,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하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내려놓고, 역설의 기쁨으로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달려가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하며 설교를 마무리한다.

♣요약
우리는 영적 차안대(遮眼帶)'를 쓰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온전함의 달음박질'을 할 때, 우리 모두의 인생이 '뜨거운 주님 사랑'으로 재정렬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사명 순종을 완성하는 수치의 십자가를 지셨사오니, 영광스러운 역설의 기쁨'으로 모든 쓴 뿌리와 얽매이기 쉬운 죄'를 다 처리해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우리 사랑의교회와 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가 '21세기 모라비안 불침번'으로 '24시간 릴레이 기도'에 자신을 내어 드릴 때, 주님의 압도적인 능력으로 '2033-50 비전'을 이루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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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12월 28일)-이사야 시리즈 ㉝
설교제목: ”마지막 계시와 환상(The Final Revelation and Vision)“
성경본문: 이사야 64:4, 65:24~25, 66:22~23
찬양인되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대표기도: 백두산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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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4:4,
4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이사야 65:24~25,
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이사야 66:22~23,
22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3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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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이지 않는 환상

1-1.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믿음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계시이며, 이는 바울의 고백에서 나타남
-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세계를 믿고,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함
- 계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열어야 보이게 함
- 이사야는 계시를 본 선지자로, 1장부터 66장까지 하나님의 환상을 그렸음
- 이사야는 본문에서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대해 눈으로 봄을 주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심으로 믿게 함

1-2. 이사야의 환상
-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솔로몬의 전성기 이후의 데스로트 시기를 위로해 주시기 위해 환상을 주심
- 웃시아 왕의 죽음 이후, 사람들이 낙심하고 희망이 없어짐
- 이사야는 이 순간을 비관주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환상을 주심으로 비관을 깨뜨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함
- 이사야는 본문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믿음을 주심
- (중요) 보이지 않는 원인에 의해 보이지 않는 세계가 나타난다는 것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임

1-3.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믿음
-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의지해야 함
-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영적인 세계를 보고 깨달아야 함
-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원인에 의해 나타난 결과임을 기억해야 함
-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제일의 권력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임
- 이사야의 본문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믿음을 위한 계시임

2. 보이지 않는 세계의 힘

2-1.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함
- 인생은 무엇으로 행복해지는지 연구했지만, 행복은 물질이 아닌 인간 관계에 있음
-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인생의 행복을 결정함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함
- 하버드대 연구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최고의 접점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밝힘
- (중요) 72절을 암송하면 장례가 결정되고, 인생이 결정될 수 있음

2-2. 암송의 힘
- 보이지 않는 세계에 주목하면 영적인 세계에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섭리적인 손이 의식됨
- 지금 우리가 겪는 일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의 뜻을 의지함
- 우리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눈이 열리면, 영광스러운 즐거움과 기쁨이 찾아옴
-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함
- 어려움이 아니라, 마음이 거룩한 성숙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의심하는 것이 중요함

2-3. 보이지 않는 세계의 섭리
- 보이지 않는 세계에 눈을 뜨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적인 손이 의식됨
-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문제는 우리가 그 말씀을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음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 선을 이루게 됨
- 보이지 않는 세계에 눈이 열리면, 하나님의 환상과 계시를 경험하게 됨
-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 땅에서 꿈이 되고, 천국에서 주인처럼 살게 됨

3. 하나님의 비전

3-1. 새 하늘과 새 땅
- 본문에서 보이지 않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언급됨
- 그곳에는 해함도, 상함도 없으며, 모두 해와 상함이 없는 곳임
- 우리가 살아가는 땅에는 해와 상함이 있음
- 해와 상함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으로, 가해자로 인한 죄악과 피해자의 상처로 인한 억울함이 있음
- 새 하늘과 새 땅은 해와 상함이 없는 곳임

3-2.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
- 요한계시록의 제자인 사도 요한은 비전을 받아들이고 이를 발전적으로 해석함
- 요한계시록 27장 4절과 21장 4절을 인용하여 설명함
-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고, 사망과 애통, 상함이 없는 세상을 경험하게 하겠다고 약속함
- 저주가 없으며, 눈이 열린 사람에게 초대교회 성도들은 비전을 맛보기를 기대함
- 해와 상함이 없는 세상과 영의 눈이 열린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음

3-3. 비전의 결과
- 우리는 세상의 상처에 굴복하지 않고, 소망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살아감
- 해와 상함이 없는 세상을 기다리며, 상처를 주지 않고 받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을 강조함
- 한국 교회는 더 이상 상처를 주지 말고, 상처를 받지도 말기를 바란다고 함
- 하나님의 은혜와 계시를 통해 우리의 부름과 응답이 이루어짐을 깨달아야 함
- (중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무한하나, 시간은 상대적이고 결국은 하나님의 주권임을 알아야 함

4. 계시와 예배

4-1. 하나님의 눈으로 본 계시
- 보이지 않는 세계에 눈을 열어 하나님과 함께 영적 교제를 통해 은혜를 얻을 수 있음
- 엘리야를 예로 들어, 하나님의 미리 하심과 함께 7천 명의 기도 용사를 허락하심을 언급함
-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아는 것을 통해 응답하심
-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모라비안 기도를 드리면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기도하게 됨
- (중요) 예배는 하나님을 모시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한 환상을 듣고 계시를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함

4-2. 새 하늘과 새 땅
- 새 하늘과 새 땅은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곳으로, 천국의 애굽편을 맛보게 될 것임
- 이사야 66장 23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매월 초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심
- 이사야는 마태복음 5장에서 하나님의 안식처와 신성한 장소에 대해 언급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 영원히 보장될 것이라 결론함
- 이사야의 마무리는, 하나님은 공간에 제한받지 않는 하나님이시기에, 예배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심

4-3. 예배와 헌신
- 예배는 하나님의 신비한 환상을 듣고, 계시를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함
-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게 됨
-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통해 기적이 일어나게 함
-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의 인도하심을 통해 쓰임 받는 거룩한 종이 되기를 원함
- 예배를 하며, 헌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더 중요함

♣요약
-해함도 없고 상함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은혜를 지금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예고편으로 누리며, 앞으로 매 주일 예배를 통하여 환상과 계시를 모든 성도들이 경험하고, 영안이 활짝 열리는 참된 예배자로 모두가 다. 비상하길 소망한다.

우리는 오감을 넘어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는 말씀으로 나의 영안을 열어 주사, 성령으로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는 평생이 되어서, 서러움을 주는 세상이지만 해함도 상함도 없는 천국의 예고편을 살아가야 한다. 이 일을 통해 무엇을 이루실까? 항상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대감으로 살며, 사랑의교회가 새 하늘과 새 땅의 능력을 힘입어 참된 예배자요 21세기 모라비안 기도자로 헌신하고 계승할 때, 상처는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으로 비상하게 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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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12월 21일)-이사야 시리즈 ㉜
설교제목: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보라
(Lean on the Wonderful Counselor’s Shoulder)"
성경본문: 이사야 9:6~7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부목사님), 시온찬양대(2)

대표기도: 황정호 장로님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2)
헌금찬송: 캔송키즈(주일학교)

 

설교: 오정현 담임목사

ㅡㅡㅡ

*이사야 9:6~7,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

▶할렐루야 오늘 성탄 주일인데 정말 오늘 이 예배와 성탄 주일 말씀을 통하여 지난 한 해 동안 여러분들의 삶의 모든 무거운 짐들이 다 벗겨지기를 바랍니다.


제가 오늘 보니까 다른 때는 여기가 이 시기 12월 달 되면 청중들의 옷이 시커멓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보니까 좀 앞 예배 때 보니까 여러 색깔들이 있는데, 아마 지하철 타고 알록달록하게 오신 분들은 다 우리 교인들일 거예요. 오늘 좀 이렇게 마음 다 여시고, 연말연시 그동안 1년 동안 고생 많이 하셨는데 오늘 같은 경우는 복음의 깊은 신비를 깨닫는 주일이에요. 그래서 삶에 지친 모든 분들이 다시 회복이 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어야만 하는 주일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번 성탄은 니케아 종교회의 1700주년이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올해가 니케아 종교회의는 예수님께서 참 하나님 전능자이신데, 그 전능자께서 참사람으로 오셨다. 그래서 성육신하신 신비와 참 하나님의 전능자 되심을 아주 명확하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본문의 말씀을 통해 이사회 강의자 성탄절 메시지로 오늘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깨닫는 영안을 열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봄은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6절에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누구게 주셨어요?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고 그 어깨는 뭘 메웠어요? 정사를 메었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다. 그래서 제가 오늘 설교 제목을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어 보라.” 그 기묘자는 어떤 분인가 어떤 분인가? 먼저 오늘 서론 격으로 9장 1절 2절에 이런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사야 9:1~2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어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이 내용이 마태복음 4장에서도 그대로 반복해서 똑같이 이사야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인데, 스블론 땅과 납달리 땅, 해변 길과 이반 갈릴리가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 뭘 보았다고요? 큰 빛을 어떻게 큰 빛을 보았나? 그 의미는 이런 뜻이에요.

본래 이스라엘 백선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스블론, 납달리,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스블론과 납달리 지파가 약속의 땅을 받았어요. 지금 북쪽에 약속의 땅을 받았는데, 그 스볼론과 납달리 지파 사람들이 약속의 땅을 받고 난 다음에 하나님은 순종하고 잘하면 좋은데 불순종하고 악하게 행하고 못되게 굴어 가지고 그 스볼론과 납달리가 앗수르 제국에게 제일 먼저 망해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흑암이 돼버린 거예요. 스블론의 약속의 땅이 멸망의 땅이 되고, 약속의 땅이 흑암의 땅이 돼버린 거예요. 그런데 그 흑암과 멸망의 땅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므로 말미암아, 그 땅이 큰 빛을 보고, 영화롭게 되었느니라. 심지어 그 북쪽의 해변길 그쪽까지도 다 많은 상황이었는데. 큰 빛을 보고 영화롭게 되었느니라. 그러니까 스블론과 납달리 이스라엘의 북부 갈릴리, 갈릴리 지역이라고 하는데, 그 갈릴리 지역이 영화롭게 되었느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 어디서 오셨냐?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지만 사역을 어디서 갈릴리의 사역을 하시고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 12명 가운데, 11명을 이 북부 갈릴리 지역, 그 남쪽에 있는 안정된 유다 지역이 아니라 갈릴리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11명을 뽑아 가지고, 주님의 제자로 만드시고 흑암과 슬픔과 짐을 지고 힘들던 사람들의 인생을 확 바꿔버렸다 이 말이야. 조시는 분들 확 바꿔버렸대 확 바꿔버렸어요. 어떻게 바꾸나? 어떻게 바꾸나? 방법이 뭐냐? 오늘 첫 번째 생각할 것이 것입니다.

I. 첫 번째, 그의 어깨에 정사를 메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어깨에 정사를 메심으로 말미암아’ 6절 앞에,,,

*이사야 9:6,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전능자의 어깨가 정사를 메었다. 이 어깨에 놓여 있다는 이 말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뭐로 나타나느냐, 그 아들의 어깨에 놓여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 어깨에 놓여 어깨에 놓여 있다는 말을 주목을 해야 되는데 이사야 전체를 통하여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면 이사야 22장에 보니까 히스기아 왕 시대에, 국고를 맡은 오늘날로 말하면 국무총리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셋나 라는 사람이었어요.

셋나 라는 국무총리 격에 이 사람이 교만(驕慢)하고 불의(不義)해 가지고 하나님이 그를 쫓아내시고, 대신 힐기아의 아들 엘리아김을 불렀는데, 그는 경건한 자였고, 하나님이 신임받는 자였는데 주님께서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가지고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겠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냐. 이사야 22장 22절에 같이 보겠습니다.

*이사야 22:22,
22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얻게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할렐루야!~ 이 다윗의 집의 열쇠는 그냥 1인 열쇠가 큰 열쇠인데 이 열쇠를 누구에게 둔다고요? 그의 어깨에 둔다. 그러면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다.

이 말씀이 신약에도 반복이 되고 있는 내용인데 하여튼 인사권과 통치권을 통치의 권세와 책임을 상징하는 그 은혜를 주시겠다. 어깨에 둔다. 라는 말은 실제적으로 권세와 권위를 공식적으로 위임한다. 이 셋나 대신에 엘리야김에게 자위 당국의 권위와 통치와 책임을 위임한다.

그래서 오늘 그 아기에게 어깨에 정사를 메었다고 하는 이 얘기는 연약한 아기, 연약한 아기인데 거기에 정사를 멘 우주적 통치가 한 문장 안에 들어있는 것이에요. 세상의 문법으로, 보면 세상의 그랜머로 보면, 이게 맞지 않는 것 같이 어떻게 아기가 통치와 권세를 갖는가,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문법으로는 아주 적절한 선포라고 말할 수 있어요.

세상은 나이가 들고 왕자가 커 가지고 통치 권세를 받잖아요. 나라를 책임지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아기 때부터 우주의 통치자의 힘을 그 어깨에 정사를 메웠다는 걸 가지고 표현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 어깨에 정사를 메었다는 것은 모든 통치권과 권세가 위임되었다. 이렇게. 그리고 그 통치권의 무게를 어린 아기이신 주님께서 친히 감당해 주신다. 이사야가 볼 때, 예수님의 어깨 위에 우주 전체의 통치 집행권을 주신 거예요. 이 세상에 모든 세상의 권세를 빼앗아 가지고 예수님의 어깨 위에 올려주신 거예요. 마치 셋나에게 빼앗아 가지고 엘리야김에게 올리는 것처럼,,, 이게 우리 식으로 적용이 되면 이 세상의 모든 사탄의 권세를 빼앗아 가지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넘겨주신 것입니다.

이건 참 신비로운 거예요. 그리고 좀 더 놀라운 것은 그 어깨에 정, 통치권을 주셨다는데 그럼 우리가 보통 생각할 때 힘과 능력과 막 그냥 막 통치하는 이런 걸 생각하기 쉬운데, 더 놀라운 복음의 신비는 그의 어깨에 정사가 메었다는 것에 대한 신비가 뭐냐면 요한복음 19장 17절에,

*요한복음 19:17,
1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예수께서 자기의 뭘 지시고요? 어깨, 예수님은 어깨에 십자가를 지셨어요. 어깨란 말이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당시 십자가 처형 관습에 따르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가로목을 어깨에 지고 가셨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에요. 어깨에. 정사와 통치권이 있는데, 그게 뭐냐?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주를 통치하는 방식은 세상 왕들이 사용하는 힘이 아니라, 그 어깨에 십자가를 지시는 것으로서 통치하게 되어 계시는 거예요. 그러고 볼 때 우리는 십자가가 옛날에는 예수 십자 지시기 전까지 수치와 부끄러움의 하나의 상징이었지만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보혈의 능력으로 구원받고, 그 믿음의 은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십자가가 여러분들에게 능력이 되는 것이에요.

나의 믿음 죽게 있네. 그다음 뭐예요? 십자가 능력이 내 영광되었네. 이걸 깨닫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은 이 십자가를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십자가를 당신의 어깨에 지고 가신 것입니다. 아기의 어깨에 정사가 놓여 있다는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것을 이루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아셔야 되고, 그리고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세상 제국의 왕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을 보여줬는데 세상의 왕은 힘과 교만과 호전성과 억압과 폭압성과 잔인함과 음모를 꾸미지만 거짓말하고 그러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오신 것이 아니라, 순전한 천진한 어린 아기로 오셔 가지고, 정사와 권세로 그 어깨에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통하여 능력을 보여주시고, 십자가를 통한 통치와 권세를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살다가 이런 일 있고 서른 일 있고 답답한 일이 있고 안타까운 일 많이 있을 때마다 예수님의 어깨로 지신 그 십자가 앞으로 가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넘어져도 어깨 위로, 힘들 때마다 확 넘어져도 어깨 위로, 그리고 자빠져도 십자가 앞으로, 그리고 한 단계 더 들어가면 이 세상의 왕은 백성의 어깨에 짐을 지우지만 평강의 왕이신 아기 예수 그루서는 백성을 살리기 위하여 세상의 짐을 자기 어깨 위에 메신 것이에요. 이 세상 왕국에서는 하위층 사람들이 상관이나 주인을 그의 어깨 위로 짊어지는 것이 이게 뭐 보통 그런 형편이죠. 아무리 좋은 지배자 심지어 성군 세종대왕이라 할지라도, 행차할 때는 가마를 하인들이 그 어깨 가마 어깨 위에 어왕을 모시는 거죠. 그러나 우리를 위해 태어나신 순전한 아기 예수님의 지배는 세상 왕국의 방식과는 정반대라는 사실이에요.

사람들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의 어깨 위로 그분의 당신의 어깨 위로 짊어져 주시는 것이에요. 그 결과 오늘 정말 가슴, 가슴이 찡한 것은 뭐냐 하면 그 결과 저와 여러분은 오늘 이 성탄 신비를 깨달으면요. 예수님의 어깨 위에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이 놓여 있는 것이에요. 제가 제일 그냥 하는 얘기예요. 요한복은 10장에 보니까, ‘나는 선한 목자’라고 그랬어요. 선한 목자는 어떻게 합니까? 99마리의 양이 있고, 100마리가 다 아흔아 평안하지만 한 마리의 양이 잘못돼 가지고 그냥 길을 잃으면 그 양을 찾을 때까지 찾도록 찾는다고 그랬어요. 그리고 누가복음 15장 5절 6절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누가복음 15:5~6,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어깨에 메고, 어린양을 찾았으니 기뻐하자. 이 주님의 마음에 이게 오늘 복음의 신비예요. 여러분들을 찾으셔서 어깨에 메신 그 주님을 찬양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마치 그런 어린아이에게 어린아이가 어릴 때 어떻게 합니까? 아빠가 무등을 태우잖아요. 아빠 목 위에다가 태우는 걸 뭐라고 그럽니까? 목마 태운다고 그러지. 그 태우듯이 주님은 우리를 어깨 위에 주님께서 태우죠. 무등 태우면 아빠 키 1m 80, 어린아이 한 4, 50cm, 2m가 되는 제일 큰 거예요. 그냥 그렇게 해주시는 거예요. 오늘 우리 선글라스에 나와 있잖아요. 주님께서 뭐라고 되어 있느냐. 아기 어깨 위에 무등을 태우시죠.

지금 보이십니까? 어린 양을 무등 태우시는 거 보이십니까? 어깨 위에 세우신 거 보이십니까? 저게 잘 안 보인다 그러면요. 좀 이렇게 그 예수님 얼굴도 보이세요? 저기 은은하게 해놓았어요. 저거 다 고민하면서요. 세계적인 스테인글라스 전문가가 자기 기도하면서 제가 좀 부탁해 가지고 저렇게 한 거예요. 너무나 놀라운 것이에요. 주님의 어깨 위에, 연약한 양인 우리가 주님의 어깨 위에 올려지는 그 순간 무등 타는 그 순간, 그 양은 주님의 힘과 통치와 은혜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주님의 어깨 위에 실린다는 것이 어떤 뜻인가? 주님의 생명과 능력과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트랜스퍼 되는 것이에요. 미련하기 짝이 없는 양인 우리에게, 자, 한 마리 기리는 양이 헤매고 있어요. 주는 그거 찾았어요? 이 미련하고 방퉁이 같은 놈아, 이렇게 하면서 왜 이렇게 헤맸냐고 뭐라 그러지 않으시고, 어깨 위에 얹어주시는 거예요.

이 복음의 신비한 것이에요. 미련한 양인 우리에게 예수님이 가지신 온갖 귀한 것들이 우리에게 위임되는 것이 여러분 이것이 복음이요. 참된 은혜인 줄 믿으시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이 통치 방식은 세상의 통치 방식을 뛰어넘는 것이에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왕국이 어디에 있느냐, 기독교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얘기했을 때 어떤 사람은 로마냐,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어디냐, 물었을 때 로마냐, 바티칸이냐, 아니면 저 비텐베르크 성이냐 프로테스탄티냐, 여러분 그런 것보다도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어디에 있냐, 묻는다면 우리는 답을 뭘 해라? 예수님의 어깨 위에 있는 것이다. 어린 양 되신 그분께서 미련한 양인 우리를 그의 얻기 위해 얹어 놓은 것이 그리스도의 나라의 현장인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이 성탄 주일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어깨 위에 놓인 양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오늘 이 성탄 시즌에 여러분의 위로, 여러분의 능력, 여러분의 기쁨을 어디서 찾아야 됩니까? 그리스도의 어깨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삶의 주민등록을 주님의 어깨 위로 옮기시라고요. 옮기시라. 그분의 어깨 위에 있지 않는 자는 그리스인이 아닌 거예요. 그분의 어깨 위에 자신의 죄와 허물과 그리고 연약함을 다 내려놓는 자, 그런 분들이 주님의 통치를 받는 자이고, 그리스인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 보니까,

*요한계시록 1:17
내가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앞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없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는 거에요.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다. 그가 오른손을 내 어깨 얹는 거야. 내 어깨 얹혀. 로마의 권세와 능력 앞에 요한의 두려움과 좌절과 실망에 빠졌을 때 요한에게 요한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시고, 그럴 때 예수님의 어깨 위에 그 두려워하던 요한이 올라가 버렸어요. 무등 타버렸어요. 제가 사랑의 교회에 23년 전에 처음 부임할 때, 그때 40대 중후반이었는데. 젊은이들 세대는 내가 부족하지만, 담임목사님을 어깨 위로 뚜벅뚜벅 걸어오라 그랬어요. 내가 브릿지가 되겠다고,,,

여러분, 저는 한계가 있는 사람이고, 저는 부족함이 참 많은 사람이지만 우리 주님은 완벽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어깨 위로 여러분들 걸어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자 그러면 그 어깨에 대해서 우리가 깨달았고 전능자의 어깨에 깨달았고, 두 번째로, 해야를 그러면 그 어깨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어 보라는 것이에요.

II. 두 번째, 기묘자(Wonderful Counselor)의 어깨에 기대어 보라.

-오늘 주름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 ‘기묘자라 모사’라 그렇게 했어요? 모사라 모사라가 아니고 모사라 기묘자라 모사라 이 말이 영어로 원더풀 카운슬러(Wonderful Counselor), 모든 것을 다 통찰하시는 분, 모든 절대적인 지략가, 그래서 이분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답을 주시는 분 그래서 기묘자라 모사라, 기묘자이고 모사인 그분의 어깨에 우리의 삶을 기대어 보라는 것이에요.

어떤 경우에도 답을 주시는 거에요. 이걸 믿는 게 믿음이에요. 여러분, 이 내용, 이 기묘자라는 이 단어의 표현이 너무 한국말로는 좀 이렇게 좀 깊이가 특별한 거예요. 그래서 처음 성경 번역, 성경 번역하고 지금 140년이 넘었는데 이 기묘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거예요.

대개 이제 옛날 성경, 그다음에 개혁판, 그다음 개혁, 개정판 이렇게 넘어오면서 옛날 오래된 단어들은 좀 고치고 그렇게 하는데 이 기묘자는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이에요. 너무 신비해가지고 이 신비한 김효자에게 옛날 선대의 어른들이 기대었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이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뭐가 기묘한가? 어떤 기묘가 있길래 우리가 어깨에 기대야 하나? 예를 들어서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 홍해를 건널 때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라고 생각해 보십시다.

홍해를 참 그 기적같이 홍해를 말도 안 되게 홍해를 건넜다 그러고 난 다음에 야 이건 진짜 기묘한 것이구나! 3년 반 동안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온 나라가 메말라 가지고 다 죽을 판인데 갈멜산에서의 영적 전투를 통하여 하늘에 불이 내리고 하늘에 비리 내리고 난 다음에 그 닫혔던 하늘이 열리고 그 풍성한 은혜의 폭우가 쏟아졌을 때 이거라고 진짜 놀라운 일인데 이게 바로 기묘한 일이구나. 그게 기묘한 나사로야. 나오라. 그럴 때 사람이 지금 무슨 얘기냐 이러고 있는데, 동굴에서 나사로가 온몸을 이렇게 수의를 감싼 채 나오는 그 모습을 이거야말로 기묘한 것이구나. 죽은 것 같은 인생을 동굴에 우리가 힘들어했는데, 하나님이 사실 이게 정말 기묘한 일이구나.

무엇보다도 가장 기묘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아기 나오신 그 모습을 목자들이 보고 동방박사들이 보고, 사람들이 보고 이거는 하늘에 황금빛이 다 내리고 이거야말로 진짜 기묘한 것이구나. 주님이 이 땅에 사실 때, 그 구세주 되신 그분이, 섬기로 오시고, 제자들을 훈련시키시고, 폭우를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병자를 일으키시고 죽은 자를 그야말로 정말 기묘한 것이구나. 그런데 가장 기묘한 것은 히브리서 7장 25절에 어떤 것인가? 같이 읽겠습니다.

*히브리서 7:25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할렐루야, 오늘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위해 중복이도 하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에 보좌 앞에 나가도록 하시는 것, 이것 자체가 지금 주님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는 그 자체가 기묘한 것이구나.

그리고 이 기묘자의 통치 방식은 세상 통치 방식이 아니라 십자가구나,,. 십자가를 지치는 거구나. 이게 기묘함의 절정이구나. 만왕의 왕이 왕의 왕자가 아니라,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승리와 정복의 길이 아니라,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승리로 이기시고, 이게 하나는 나라에 기묘한 것이구나. 그리고 이 최고의 기묘함이 십자가를 지치는 것인데 그 십자를 통하여 오늘 다시요. 오늘 성탄절을 뭘 깨달아야 한다고요? 처음 제가 시작할 때 말씀드렸는데 그걸 다 까먹으면 제가 소망이 없잖아요. 오늘 같은 날은 복음의 깊은 뭘 깨달아야 한다고요? 신비를 깨달아야 한다?-(복음의 신비), 그래서 7절에 그 신비함 이렇게 나와 있어요. 다 같이 크게 크게 합독 합시다.

*이사야 9:7
7 그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본당 또 방송 또 별관 또 대부도까지, 뭐 전부 다 크게 합시다. 아멘 오늘 평강이 더 무궁하고 다윗의 왕자 나라 세우고, 공의로 보존하실, 이런 모든 신비하고 이런 모든 것들인데 그 정사의 어깨에 주님의 어깨에, 우리가 우리가 무등 탐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모든 일들을 체험하고 확인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복음의 신비를 깨닫도록,,, 오늘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여러분들에게 통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어릴 때 제가 교회 부흥회를 가는데 어떤 붕사가 나타나 갖고 오정현 제 깜짝 놀라 갖고 있는데, 만군의 여호와의 여호와의 열심히 너를 삼키리라. 그러더라고, 내 깜짝 놀란 거야. 만군의 여호와 열심히 뭔가, 다른 뜻이 아니라 오늘 이런 복음에 신비가 여러분들의 생애를 압도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깊이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제가 오늘 전능자의 어깨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전능자의 어깨,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어보라. 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진짜 적용할 겁니다. 그게 뭘까?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우리를 삼켜야 되고 복음의 깊은 신비가 우리를 압도해야 되는데, 그건 어떤 뜻일까요? 신앙생활을 처음 할 때는 우리가 열심을 내 가지고 우리가 애를 씁니다. 그런데 신앙생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하나님의 열심히 우리를 얼마나 압도하는가? 이걸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적용은요. 너의 모든 책임을 니가 다 지려고 하지 마라.

III. 적용, 내가 다 책임지려 하지 말라.

-너 인생 네가 다 책임지려고 하지 마라, 인생 우리가 책임져야 돼요. 그건 우리가 초등 학문이에요. 그런데 깊이 들어갈수록 우리 인생은 우리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 열심히 우리를 책임지시는 것이에요. 이게 무슨 뜻인가? 여러분, 저는 사역을 하더라도 여러분, 저는 사역을 좀 그냥 두만강 푸른 물에,, 이르면서 노새노새 젊어서,,, 이렇게 합니다. 아니면 좀 열심히 합니까? 그냥 여러분의 반응에 맡기겠어요.

저는 제가 대학 시절부터 제자훈련 하면서 원칙 중에 하나가 The Great Commission, 예수의 지상사명에 대해서, The Standard of Excellence라 그래 가지고 최선의 수준으로, 최선의 수준으로, 성장 좀 더 잘해볼 수 없을까? 하나라도 잘해볼 수 없을까?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없을까? 좀 더 애써볼 수 없을까? 저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요즘은요. 최선을 다하지만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야 하고, 내가 모든 것을 다 책임져야 하는 것에 대해서 기묘자 신 주님께 위탁하고, 특별히 인간적인 모든 책임감으로부터 이게 좀 포기(抛棄)각서(覺書)를 써야 되겠구나.

이 포기각서를 통하여, 주님께 주권 이양을 해야 되겠구나, 여기는 젊은 분도 계시고, 연세 드신 분도 계세요. 여러분 저희 세대는 60, 70, 80 우리 저희 세대는요. 어른들은 열심히 모셔요. 그런데 제가 이번 쇼크를 받았는데 어떤 한 50대 초반의 목사님이 전화를 전화를 했더니, 나보고 ‘어르신 목사님’! 그러더라고. 나 충격 받았어요. 내가 뭐 무슨 어르신, 나는 한 번도 내가 어르신 목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여기 지금 50대 분들 어디 가다가 아버님 이렇게 하면 쇼크 받죠. 우리는 열심히 산 거야. 열심히 다 어느 세대 비슷하겠지만, 그러니까 우리 책임을 다하려고 최선을 다한 거야.

최선을 다해요. 연말연시에 지금 오늘 이 예배도 우리나라의 사회적으로도 책임을 지고 어떤 기업이나 책임 있는 자리에서 공적인 자리에서 너무 고생을 많이 하고 리더들 많이 계세요. 가정과 국가의 수많은 책임 앞에서 수많은 짐과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남 모르는 두려움도 많고,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정도로 힘들 때도 있어요. 짐도 많아지고 그럴 때 오늘 답이 뭐냐.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해 보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누가 내 인생의 책임자입니까? 우리가 지난 생활 초기에는 나름으로 내 의지의 활동들이 필요하죠. 나를 따라오라. 그럼 따라야 되고, 이웃을 사랑하라. 사랑해야 되고 빛과 소금으로 살아라. 그러면 남대로 실천하는 우리 의지가 나름대로 필요해요. 그런데 다시오.

여러분, 의지로 살지만. 그런데 막판에 여러분들의 인생, 여러분들의 삶은 누가 책임자입니까? 이 세상은 운칠기삼(운칠기삼은 ‘운이 7할, 기술이 3할’이라는 뜻으로, 세상일은 정의만으로 풀리지 않지만 이치도 함께 작용함을 이르는 말), 그래. 누구에게 태어나느냐 어디서 태어나느냐 이런 게 운명. 그리고 내가 이렇게 얘기하고 어떤 사람은 아니야. 운구기일(運(九技一(운7, 재주3))이야, 운이 90%. 그다음 제주가 10%다. 이런 말도 가리치만 우리는 그런 거 다 떠나서

우리는 오늘 기묘자의 어깨에 기댄다는 차원에서 여러분들의 삶의 포기각서를을 여러분들의 의지의 포기각서를 주님께로 맡겨야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의 인생을 여러분 책임질 수 있습니까?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진다는 그 말처럼 무서운 말이 없어요.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진다는 그 말은 닭장 관리를 굶주린 늑대에게 맡기는 것과 똑같아요.

이 세상은 내가 내 인생을 자기 의지를 가지고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에요. 제가 말했어요. 우리 신앙생활 초창기는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런데 신앙생활에 깊이 들어가면 정말 미묘하고 깊은 부분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내가 내 의지를 활용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 나는 내 인생의 닭장 관리를 늑대에게 맡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내 속에는 늑대 같은 본성이 남아 있는 것이에요. 무슨 뜻이냐?

나의 의지(意志)가 하나님을 의지(依支)할 때, 기묘자의 (어깨에 기댈 때) 나의 의지는 책임 있는 순종의 도구가 되지만, 나의 의지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의지가 될 때에는 늑대가 닭장 속의 닭을 해치는 것처럼 나를 해치는 흉기가 된다.
-이게 신앙의 비밀이에요. 무슨 뜻입니까? 내 의지가 복음으로 덧입지 않고서는 내 인생의 본성은 굶주린 늑대와 같다는 것이에요.

내 자아가 너무 강하고, 자기애기가 너무 두드러지면 예수 믿으면서도 헤매고, 상처받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오늘 이 복음의 신비를 깨닫는 소중한 주일날, 우리가 전적 위탁을 못 하고 포기각서를 못 쓰는 우리의 마음의 성향을 내 속에 있는 늑대가 나의 죄 성, 나의 자아, 자기의 교활한 합리화를 하려고 할 그때에 포기각서를 쓰고, 기묘자의 어깨에 나를 기대는 것이 내가 나를 책임진다는 책임감에 대하여 포기각서를 써야 한다는 것은 나의 의지를 폐기하라는 그런 말이 아니라, 나의 의지를 하나님께 항복(降服)하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도 강조하는 것이 기독교의 깊은 실리에 들어가면 기독교는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기 부인이다. 자기 의의와 자기 공로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공로의식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식, 복음의 신비를 깨닫는 데서 살아야 할 것이고,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기부인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 하나님이 좀 깊이 쓰시려고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특별하게 여러분들의 자아를 무지막지하게 하나님께서 꺾으신 거예요. 모세를 보세요, 애굽의 왕자. 그 펄펄 산 자, 사람 때려 죽이는 자, 그하고 안 된다는 거예요. 40년 동안 광야에서 완전히 굴리는 거예요. 그래도 리드를 삼았지만 그래도 안 되니까. 나중에 40년 이스라엘 리드로 살 때도 하나님께서 모세를 묵사발을 만드는 거에요.

구름기둥, 불기둥, 모르고 그다음에 옆에 있는 측근들이 배신하게 되고, 자아가 아니라 내 자아가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자아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포기각서를 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어깨에 기대어서 진짜 평강과 하나님의 열심을 확인하라는 것이에요.

오늘 기억하세요. 우리 인생의 처음 시작한 알파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고 빚으셨기 때문에, 여러분의 생애 오메가 시점, 시작 부분에 주님이 우리를 대해서부터 다 아셨기 때문에 주님이 여러분들의 마지막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것이에요. 끝까지 책임지실 것이에요.

지난 주간에 한 주일 전에 평생을 목회자로 살아오신 80세 이신 목사님이 저녁 식사 마치고 청소하시고 샤워하고 그다음에 가정 예배 드리고 그러고 돌아가셔 버리셨어요. 제가 그 얘기를 듣고 야 내 인생을 하나님께 다 맡기고 살아야겠구나, 순식간에 주님 앞에 맡겨진 인생으로 본향으로 가신 그 목사님을 생각합니다. 여러분, 진짜 내 인생의 책임자가 누구이십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 다 오라 그러시고,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보라고 하신 그분이 내 인생의 책임자이신 것이에요.

왜 우리가 그분께 의탁하고, 내 인생에 자아에 대한 포기각서를 왜 써야 됩니까? 거기에 대한 답이 오늘 성탄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 구유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기묘자 그분께서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지만, 만 가지 일을 우리를 위하여 하고 계시는 것이에요. 오늘 막후에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일하시는 그분을 깨닫고, 우리 자아의 포기각서를 쓰고, 신앙생활 총연의 내 위주로 하지만 특별히 우리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 중직자들, 앞서서 일하는 분들, 무언가 책임을 맡은 분들, 그럴수록 주님께 포기각서 쓰고 전능자의 어깨에 기대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걸 깨닫고 의탁하는 것이야말로 섭리 적인 믿음이다. 섭리 적인 믿음이다.

이 신비한 걸 깨달아야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다 아시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이에요. 여러분 부모가 자녀에 대한 계획이 있는 것처럼,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에 대한 계획이 있는 것처럼, 손자 손녀는 몰라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다 계획 있는 거예요. 제가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어요? 다. 다 계획이 있는 거에요. 그런데 손도 잘 몰라요. 어디 인간 할아버지가 감히 창조주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로 어깨에 지신 그분 앞에, 명함이라도 내겠습니까? 주님이 다 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마시고 오늘 이 성탄 주일날 주님이 오셨을 때, 목자들도, 동방박사들도 그리고 나이 많은 분도, 젊은 아이도, 남녀노소 빈부귀천 차별이 없이 주님의 어깨에 기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면 어떤 분들은 ‘아이고 예수님 짐도 많으신데, 내 짐 또 어떻게 맡기나?’ 걱정도 팔자예요. 주님의 어깨는 온 우주를 짊어지고 계시는 것이에요. 온 우주의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재침도 다 짊어지고 계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있는 일은 어마어마한 일이고, 너무나 신묘막측한 일이에요. 오늘 이 주님의 어깨에 기대어 인간의 의지에 닭 날갯짓을 멈추고, 독수리처럼 비상하시길 바랍니다. 올라가면 독수리가 보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섭리적 믿음이 돼서 눈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성탄 시절 참으로 복대기를 축원합니다.

소망 없고 빛도 없고 어두운 세상에 이 찬양하시면서 그 삼위일체 하나님께 나를 완전히 맡기고, 포기각서를 쓰고, 여러분 여기에 열심히 다 사시는데 그 열심히 살지만 우리는 더 깊은 경지에 들어가서 주님의 어깨 위에 내 인생을 얹어 놓는, 그리고 독수리처럼 비상하는 축복을 받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소망 없고 빚도 없고 어두운 이 세상,,,

오늘의 성탄절 날 기묘자의 어깨 위에 우리의 모든 자와 우리의 모든 인생을 다 의탁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한 분 한 분 은혜위에 은혜를 덧입혀 주시기를 바랍니다.

♣요약
-우리는 이 성탄 주일, 우리의 모든 고난과 아픔과 눈물을 가지고, 주님의 기묘자의 어깨에 달려가서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능력과 승리와 회복을 얻어야 한다. 내 인생의 책임자가 나라는 말이 바로 닭장 관리를 늑대에게 맡기는 것처럼 무섭고 무책임한 말이니, 오늘 이런 합리화를 다 버리고, 자기 의와 자아실현에 대해서 날마다 포기각서를 써야 한다. 나의 의지를 주님께 전적 위탁하므로, 나의 의지가 책임있는 순종의 도구로 쓰임 받아야 한다.

-연약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의 어깨 위에 전능하신 우주적 통치 능력이 있는 줄 확신하여, 상한 모든 인생 짐을 주님의 어깨에 온전히 맡기는 평생이 되고, 영원한 책임자이신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나를 압도하심이니, 날마다 내 의지에 포기각서를 쓰며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어 전적위탁(全的委託)을 하여야 한다. 우리 사랑의교회가 성탄의 계절에 항복하고, 순종하며 한계 없는 주님의 어깨에서 참된 위로와 능력을 받을 때, 대한민국과 전 세계 위에 정의와 공의와 평강의 은혜가 더하여 질 줄 믿고, 우리는 주님 앞에 모두를 맡기고 의탁하며 간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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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12월 07일)-성찬식(聖餐式)
제목: "파수꾼의 중보기도"-이사야 시리즈㉛
설교제목: "파수꾼의 중보기도- The Watchmen’s Intercessory Prayer"
성경본문: 이사야 62:6~7, 64:1~2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호산나(2부)
대표기도: 이철민 장로님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

설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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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2:6~7, 64:1~2,
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이사야 64:1~2,
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2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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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만이 높임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 전능자의 그늘 아래서 보호받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눈동자로 여러분들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한 해의 마지막 12월에 종착역의 첫 주가 되었습니다. 지나간 한 해가 천천히 지나갔습니까? 아니면 빨리 지나갔습니까? 빨리 대답해 보세요. 정말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이 빨리 지나가는 인생을 향하여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 4장이 뭐라고 말씀하고 있느냐 같이 보겠습니다.

*야고보 4:14,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아멘, 오늘 아침에 안 끼었죠? 지금도 끼어 있습니까? 아마 내일 아침은 없어질 겁니다. 이처럼 인생은 빨리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 빨리 지나가는 인생들을 이와 같이, 주님 딱 이 예배당의 예배드리게 하셔서 모두로 하여금 영적으로 성공하게 하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지금 세상은 너무나 복잡한 세상이 되었어요. 이걸 전문적인 용어로 The Era of complexity. 그래서 복잡계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인공지능 이후에 얼마나 복잡한지, 나라와 시대가 이 복잡한 세상 가운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되었습니다. 격동의 시대가 되어 흔들리는 거예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후, 21세기의 테크놀로지 모두가 다 복잡성을 띠고 있어요. 나라 안팎의 사정도 쉽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있고,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에서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붙들어 메고, 거짓으로 이끄는 수많은 가짜 뉴스 꾼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미혹해서 멸망의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치 제 마음은 또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무너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셨듯이 우리 오늘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눈물로 중보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또 한 이 백성, 이 나라의 절실한 기도의 제목을 주셔 갖고, 우리의 기도 때문에 이 나라의 장래가 새로워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에게 오늘 ‘파수꾼의 중보 기도의 능력’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해석을 하면 62장 6절에 뭐라고 나와 있느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시대는 정말 파수꾼의 중부 기도가 절실한 시대가 되었는데 뭐라고 말씀하고 있느냐?

I. 첫째, 기도하는 파수꾼이 없으면 희망이 없다.

*이사야 62: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62장 6절에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뭘 세웠다고요? 무슨 말이냐? 파수꾼이 잠을 포기하고 성벽의 파수꾼이 뭘 합니까? 깨어 있었어. 밤을 지새우면서 어둠 속에 다가오는 위험이나 적의 침입이 없는지 살피며 지키는 사람들이 파수꾼입니다. 불침번(不寢番)입니다. 옛날 군대에서는 동초(動哨)라, 추운 겨울에 불침번, 파수꾼이 깨어 있는 것이 파수꾼의 사명인데, 그래서 일반적으로 민족이나 공동체나 가정에 위협을 느낄 때, 가장 먼저 감지하고 신호를 보내는 자가 파수꾼입니다. 물론 엉터리 파수꾼도 있습니다. 앞에 이사야 56장 10절에 뭐로 말씀하고 있느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56:10,
10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뭐예요? 맹인이요. 다 무지하여 벙어리 개들이라고 그랬어요. 직무유기하는 파수꾼들, 엉터리 파수꾼들이 있었어요. 참된 파수꾼은 잠을 포기하고 잠포깨사 아십니까? 잠을 포기하고 깨어서 사는 사람들, 반응도 안 하시고 그런데 6절에 보니까 뭐라고 하면 예루살렘이여,

*이사야 62:6,
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라고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에 파수권을 세울 거다. 예루살렘은 예루살렘도 말하지만, 구원의 계시사, 전체 계시의 해석으로 볼 때는 하나님의 공동체, 하나님의 백성들이여, 이렇게도 무리가 없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도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영적인 성벽 위로 우리를 시대의 파수꾼으로, 기도의 파수꾼으로 부르신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 성벽 위에 오늘 이 시대의 성벽 위에 이 복잡계의 시대 위에 우리는 파수꾼이요. 기도의 불침번이 되야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심지어 6절 뒷부분에 파수꾼을 가리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이사야 62:6,
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너희로 하여금 주야로 잠잠하게 하지 않게 하셨는데, 너희로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이 되라 그랬어요. 전능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어버리는 법이 없으시지만 파수꾼은 마치 하나님께 상기시키듯이 그분의 약속과 언약을 붙들고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과 어려움을 간절하게 이루며 간구하는 사명자다. 그 뜻이에요. 하나님의 아버지가 아시지만 자식이 아버지께 요청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갈 때가 많아요. 오늘도 누가 그래 자기가 자녀가 없는데, 조카를 너무 사랑하는데 이 조카가 이 삼촌에게 구하지를 않는 거야. 그러니까 삼촌도 알았다. 하고 아무것도 안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다 아시지만 정말 하나님께 파수꾼의 사명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것이에요. 심지어 이 파수꾼 불침번의 사명은 뭐냐? 6절 7절에,

*이사야 62:6~7
..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아주 이중적인 끈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는 파수꾼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시고, 세상이 그분을 찬송하게 되는 그날까지 무너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복되고, 열방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그날까지, 쉬지 말고 앞장서서 기도하는 끈기를 가지라.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 언약을 붙잡고 간구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도록, 말 그대로 쉬지 못하게 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어떻게 하라 이런 뜻이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서 저희들이 젊을 때, 청년일 때에 하나님을 바쁘시게 하자. 우리가 간절히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계속 응답하시는 그런 역사의 코어, 그 역사의 핵심 역할을 감당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여러분 모두가 다 파수꾼의 불침번의 기도를 통하여 이민족을 보호하시고 살리시는 그런 역할을 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사랑의 교회는 초창기 때부터 300기도 선봉대가 있었어요. ‘300기선대’라고 그랬고 조금 더 이제 새벽에 화요일 아침마다 모였었는데 조금 더 올라갔고 ‘700기도 선봉대’. 그리고 지금은 토요비전새벽예배 때마다 ‘7천 기도 선봉대’ ‘7천 기도 용사’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 주일날 수만 명이 모입니다만. 이제 우리가 또 우리 한국 교회를 위하여 7만 기도 선봉대, 7만 기도의 파수꾼이 되면 어떨까요? 그 정도 해가 되겠습니까? 7만 중보 기도의 불침번이 되면 어떨까요? 한번 더 7만 기도 중보 기도팀이 되면 어떨까요? 오늘 이 좋습니다....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놀라운 능력으로 여러분들의 생애를 새롭게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찬식을 앞에 놓고, 기도하는 파수꾼이 없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 모두 간절한 기도의 장소, 우리에게 주신 사명의 성벽에 올라가 가지고, 동터 오는 아침을 기다리는 기도의 파수꾼이 돼야 합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이 얼마나, 밤새워 추위에 떨면서 파수하던 그 사람이 아침에 햇볕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간절합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파수꾼의 기도를 해야 되는데, 오늘 이사야 63장 15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63:15,
15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이것은 땅에서 위를 향해 올려드리는 기도의 부르짖음인데, 하늘을 보좌해서 이 땅을 굽어보시고 응답해 주시기를 강 청하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64장 오늘 뒤에 7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느냐 하면,,,

*이사야 64:7,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기도하는 자가 없다. 이 말입니다. 앞 예배에 많은 분들이 아!!~~ 저한테 문자로 목사님 제가 기도한다고 하지만 정말 절박한 중보기도를 요즘 포기하고 살았는데 정신이 번쩍 듭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도 많이 없는 것이 사실이야. 주의 이름을 부른다. 주의 이름을 붙잡는다는 것은 절박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하는 사람이 약하다. 기도해야 할 우리가 기도를 멈춰버렸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종종 기도를 멈추고 기도하기를 원하지 않고 심지어 무엇을 위해 기도할지도 모르는 연약한 자들이에요. 그러나 파수꾼이 깨어서 나팔을 불어야 할 때, 침묵하면 파수꾼에 깨어서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않으면 그것은 직무유기(職務遺棄)요. 그것은 배신(背信)이요. 파수꾼이 파수꾼 역할을 못하면, 나라를 누란(累卵)의 위기에 빠뜨리는 것이오, 지금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기도의 파수꾼이 역할을 안 하면 이민족은 희망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계 곳곳에서 지금 박해(迫害)를 받고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 수감(收監)되어 있는 수많은 지하교의 성도들을 생각해 보세요. 매일 같이 고문당하고 매일 같이 박해당하고 있어요. 그런 형편을 보면 오늘 이 파수꾼의 중보 기도의 역할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어요. 지금도 중동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에게 박해 받는 사람들 생각해 보십시오. 직장 잃어버리고 공동체에 쫓겨나고 그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돼요. 국가적으로 대한민국을 겁박하는 여러 세력들, 북한이나 러시아나 중국 같은 세력들이 지금 중국도 중국의 가정교회, 지하교회, 많은 핍박을 받고 있어요. 그런 세력들이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주님 앞에 떨게 하여 주십시오. 산을 가르고 땅을 흔드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중보기도의 선봉장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여러분 성경에서 대표적인 중보 기도자가 누굽니까?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신이 기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중보기도자들은 파수꾼의 중보기도 역할하는 사람들은 성령님을 따라서 어두운 세상을 하여, 길 잃은 사람들을 위하여, 고통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온몸을 다 기도하는 그래서 이런 점에서 우리 파수꾼의 중복이기도 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탄식에 늘 호흡을 맞추는 사람들이에요. 여러분들과 저는 오늘 이 예배를 마무리하면서 특별히 성찬식에 참여하면서, 성령님의 탄식에 호흡을 맞추는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들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로 소돔이 멸망 중에 모세 가족이 살았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하여 이스라엘 전체 민족이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고 살게 되었습니다. 에스더의 금식중보기도를 통하여 유다 민족이 그 절박한 그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이런 기도를 통하여 이 나라를 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는 한 도시를 위하여 중보기도 할 것을 명령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어떤 구절입니까? 10편, 120편, 6절에 보니까 다 같이 보겠습니다.

*시편 122:6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예루 삶을 위하여 뭘 하라고요? 평안을 구하라, 중보기도하라 이 말이에요. 이 구절을 지금 오늘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서울을 위하여 내가 사는 도시, 대구, 부산, 광주, 대전을 위하여, 전주를 위하여 그 도시의 평안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라. 는 뜻이에요. 그리하면 그 중보기도를 통하여 오늘 이 서울이 샬롬의 평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통함으로 서울을 위하여, 이민족을 위하여, 내가 사는 도시를 위하여 중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우면동에 살거든요. 소가 누워있는 곳입니다. 우면동에 사는데 우면동에서 올 때, 제가 서리풀 터널을 지나옵니다. 터널 지나올 때마다 제가 뭘 기도하는지 압니까? 하나님 대한민국의 예술의 전당, 저 밑에서 저 국립국악원까지 이건 전 세계 없는 예술센터인데 이 예술센터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술을 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 마음으로 제가 지나온 거예요. 오늘도 아침에 오는데 ‘서초는 살기 좋은 곳입니다’. 뭐 그래 놨더라고요. 그런데 하나님이 서초를 지켜주십시오. 그게 바로 예루살렘을 위하여 기도하는 마음이에요. 지금 우리가 용인, 수지에 사신 분들은 거기서 이렇게 쭉 올라오시면서 나라를 위하여 기도해야 되는 것이 용인 수지쪽,,,.

우리가 의정부에 사시는 분들은 의정부에서 내려오시면서 교회 오시면서 강북 쪽부터 이쪽을 향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 서울이 평안하게 될 것입니다. 인천에서 오신 분들은 인천에서 들어오면서 저 서쪽에서 들어오시면서, 우리는 심지어 원주에서 오신 분들이 계세요. 원주에서 이렇게 쭉 들어오시면서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그 지역을 덕평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덕평 유원지는 국밥이 맛있는 곳입니다. 이게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지만 정말 우리가 사는 곳을 위하여, 중보기도가 될 여러분들 때문에 이 민족이 보호가 되는 것이에요. 성찬을 앞에 놓고 이 사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여러분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오시면서 그런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이 우리도 모르게 이민족을 보호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러면 오늘 구체적으로 성찬을 앞에 놓고, 중보 기도하는 사람이 없으면 이 민족의 희망이 없는데, 그럼 어떤 중보 기도를 해야 되나? 두 가지 기도 질문을 드리겠어요? 몇 가지예요? 두 가지, 첫째. 63장 16절 보니까 뭐라고 나와? 이렇게 나와 있어요. 같이 보겠습니다.

II. 우리가 기도해야 할 특별한 중보기도 제목 두 가지.

*이사야 63: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그러니까 첫 번째 도적은 뭐냐 하면요. 모든 상황에서 주님 우리 아버지가 되어 주십시오.

첫째, 주여, 모든 상황에서 우리 아버지가 되어 주십시오.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다시 말씀 보니까 아브라함도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도 우리를 인정하자 이 무슨 뜻이에요? 믿음의 조상이 아브라함이에요. 그리고 이스라엘은 지금 야곱을 얘기하는 것이에요. 언약 적으로 제일 많은 성경에 많은 창세기의 어떤 부분을 가지고 우리 믿음의 조상이 되는 이유를 다 설명하고 있는데, 심지어 아브라함도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 야곱도 우리를 인정하지 이방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호외여, 주님은 우리 아버지시라. 주님은 오늘 예배 오신 여러분들의 아버지시라. 놀라운 선포를 하고 있는 것이에요.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심지어 아버지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셨어요.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의 유명한 중보기도가 나와요. 그 유명한 중보기도 예수님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거룩하신 아버지, 의로우신 아버지 하면서 거기에 여러 번 최소한 6번 이상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우리도 중보기도할 때 어떨 때는 기도의 제목이 안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아버지 이름을 최소한 6번 이상 부르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찬 시작하면서 우리가 기도할 터인데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북한에서 오신 분들은 아바지, 이렇게 하면서 하여튼 우리가 아버지이심을 기억하며 그럴 때 우리에게 중보기도의 사명을 잘 감당할 힘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누구 아버지예요? 우리 아버지라 우리라는 말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만약 주기도문이 나의 아버지로만 시작됐다면 우리는 공동체를 위한 중보기도, 형제자매를 위한 중보기도, 이웃을 위한 중보기도, 아마 제한될 수가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뭐라고요? 우리 아버지라 우리 아버지, 이것이 우리가 형제, 이웃 공동체를 위한 중복이라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가지고 주님 앞에 기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에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뭘 주셨으니 권세를 주셨다고 그랬어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계속 기도하는 또 하나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사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것이에요. 그 권세를 가지고 기도할 때 강력한 중고 기도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에 우리가 영적 가족을 위하여 다른 지체를 위하여 이민족을 위하여 중부 기도할 때에, 다른 영혼을 품는 중부 기도자로서 시도를 위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하늘을 가르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하나님의 권위는 억압이 아니라 돌봄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통신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비로운 손길이 됨을 믿고 준보기도 하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아버지께 기도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다시요.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때,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 있으며 다른 지체를 위해서 중보기도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아버지의 자비와 긍휼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또 하나 성찬식 기도할 때 무슨 기도를 해야 할 것인가? 64장 1절,

*이사야 64:1,
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둘째, 주여,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옵소서.
-원하건 대추는 하늘을 가리고 강림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중요한 기도의 제목입니다. 주여 오늘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여 주십시오. 이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수많은 현실의 난제와 벽 앞에서 현실의 모든 난제와 벽을 돌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초월적 개입을 기도하는 것이에요. 현실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초월적 개입을 강 청하는 중보 기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황폐한 예루살렘을 주여, 굽어 살펴 보아 주십시오. 구체적으로 1절과 2절의,

이사야 64:1~2,
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2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하늘을 가리고 강림하셔서 산들을 진동하게 하시고 소위 열방들이 벌벌 떨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인이 멸망하고 원수가 도망가는 모습을 보게 하시고 탄원한 통렬한 간구가 오늘 이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날마다 쪼달리고 우리가 날마다 압박당하고 힘든 거 있지만, 이런 기도를 할 때 어떻게 한 번씩 하나님 우리에게 속이 시원하게 해 주실 거예요. 감정적으로 제가 격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라를 생각하고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민족을 향한 애통의 눈물이 있는 사람이 이런 탄원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우리가 보이지 않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어려움, 수많은 보이지 않는 세력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초월적 개입을 해 주실 것입니다. 서울적 개입의 예가 무엇입니까? 지난 한 달 전에 제가 말씀을 드렸죠. 빌리그래엄 목사님이 6.25일이 일어난 다음에 하루 만에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은 그리스도인들이 많기 때문에 반드시 형제들이 있는 그 나라를 도와야 됩니다. 그게 바로 강력한 중보기도예요. 역사상에 없는 며칠 만에 미군들이 유엔군과 함께 들어오게 된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게 너무나 놀라운 중보기도에요. 사도행전 12장 5절에 보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심한 핍박을 받고, 사도 야고보는 칼에 맞아 죽고, 베드로는 옥에 갇혔어요. 현실이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에요. 그럴 때 사동이자 12장 5절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사도행전 12:5,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같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잘 아시는 대로 이와 같이 나와 있어요.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야고보는 칼에 순교를 당하고 그러나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옥문이 열리고, 베드로의 옥문이 열리고, 기가 막힌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졌어요. 여러분, 우리를 답답하게 얽어 먹이는 옥문과 같은 옥과 같은 감옥과 같은 지금 답답함과 어려움과 힘든 거 있을 때, 초월적 하나님의 개입을 통하여, 그 옥문이 열리기를 바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의 수많은 고집과 수많아 이런 것들이 다 하나님이 초월적 개입이 하늘을 가르치고 이만한 은혜를 통하여 그 감옥의 역사가 풀리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에 참여하면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의 긍휼과 함께 초월적 개입을 구하는 주무들을 통하여 산들이 진동하고, 기도에 불이 활활 솟아올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드리면, 그게 되겠나?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 있을지 몰라요. 그런 분들 기억하세요. 우리가 세상이 너무 압도되어 가지고 자신감도 없고 짓눌려 있을 때,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런 기도를 통하여 하늘을 가리시고 내려오셔서 위험과 능력과 권세를 보여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원수들이 벌벌 떨며 도망가게 하시는 주님이 될 것입니다. 강력한 중보기도는 사탄의 꼬리를 사탄이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벌벌 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수들이 벌벌 떨도록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기도하는 대로 반포대로의 이 하늘 문을 여시고 하늘을 가르시고 주님 임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하늘을 가르고 임하는 이 기도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에요. 오늘 1절과 2절에 있는 그 내용은 그냥 이사야에 갑자기 것이 아니라, 출애굽기 19장 18절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출애굽기 19:18,
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그리고 오늘 64장 1절, 2절이 동일한 것이에요. 재현되는 것이에요. 시내 산 위에 우레와 번개와 구름과 연기가 빽빽하고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서 강림하셨을 때, 온 땅이 진동해서 백성들이 거룩한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 이미지가 오늘 불처럼 지진처럼 하늘을 가르시고 이사야가 다시 간구하는 것이고, 그 은혜를 오늘 우리도 같이 간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12월 오늘 한 해 종착 능력의 이 달에 우리가 기도하오니, 주님 하늘을 가르시고 하늘을 찢고 내려오셔서 주의 능력으로 개입하시고, 이 세상 역사 속으로 들어오셔 가지고 주의 이름을 선포하여 주옵소서. 인간의 힘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이 어둠의 시대에 이사야 시대도 똑같이 어두웠습니다. 낮과 눈을 펼칠 수 없는 시대에 주여, 하늘을 가르시고 임하셔서 초월적 개입을 통하여 오늘 이민족의 수많은 난제들이 해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우리는 하늘을 가르고 임할 때의 두려움에 떨었어요. 사람들이 64장 1절에 하늘을 가르시고 강림하시는 그 기도 두려움에 떨었어요. 64장 2절에 뭐라고 했냐?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신약적 성취는 언제 일어납니까? 예수님 부활하실 때에 로마 군인들이 그 무덤 앞에서 벌벌 떨어 죽은 자같이 되었어요. 마태복음 28장 4절을 보니까 뭐라고 하느냐?

*마태복음 28:4,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할렐루야,, 원수들이 죽은 자같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기도가 강력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대한민국의 역사를 새롭게 펼쳐 주시옵시고, 주위의 하늘을 가리고 강림하여 주옵소서 원수들을 멸하시고 주의 공의를 가지고 이 땅을 고쳐 주시고, 특별히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기도하는 자녀의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요. 아버지요. 그리고 하늘을 가르고 임하여 주옵소서. 그럴 때 여러분 초랑교회에서 기도할 때, 잘 아시는 대로 육이오 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인천상륙작전의 기적을 주셨습니다. 이 민족의 특별히 지금 이 시대에,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은해의 인천상륙작전을 성찬을 통하여 경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찬송하십시다. ♬~ 우리 함께 기도해,, 주 앞에 나와 무릎 꿇고 금요일 베푸시는 주 하늘을 향하여 두 손 들고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빛줄기 이딴 그릇 내려주십시오. 찬양하면서 성찬을 준비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해,,, 성찬 위원들은 정의 취해 주세요. ♬~ 주 앞에 나와 무릎 꿇고 하늘을 향하여 두 손 들고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빛줄기 이 땅 가득 내리도록 마침내 내주 오셔서 의의 빛줄기, 우리 교회 부으시도록~~~

♣요약
오늘 성찬을 통하여 중보기도의 파수꾼으로 우리가 무장될 수 있도록 우리가 겸손하게 납작 엎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초월적 개입을 통하여 이민족과 우리 가정과 이 교회에 임하실 줄로 믿어야 한다. 하늘의 불을 경험하는 성찬식이 되기를 바란다.
-주님께서 우리를 진리가 무너지는 시대의 파수꾼-불침번으로 부르셨사오니 성령님의 탄식에 '같은 호흡으로' 절박하고 충성스럽게 깨어 기도하고, 성찬 앞에서 우리 아버지께 내가 사는 도시와 민족을 위해 강력한 중보기도의 불씨가 될 때, 하늘을 가르시고 초월적 개입으로 임재하사 가정과 일터와 나라의 모든 감옥 문을 열어 주실 것을 확신하며, 사랑의교회와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가` WEA서울선언'(The SeoulDeclaration)을 기도 제목으로 더욱 붙들고 눈물로 기도할 때, '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보호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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