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 ♣주일예배(주후 2026년 1월 11일) “"(오정현 담임목사님)-사랑의 교회 ☆

향기야, 보아스와 야긴 2026. 1. 11.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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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1월 11일)-로마서 강해 서론
설교제목 : “정결함으로 로마서를 시작합니다”
(Beginning Romans with a Pure Heart and Repentance)
성경본문 : 로마서 1:1~2, 6~7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이윤기 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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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2, 6~7,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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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대가 고백한 대로 선한 목자 되신 주님께서 우리 한 분, 한 분에게 참된 복의 수혜자가 될 수 있도록 응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 로마서를 오늘은 서론 좀 하는데, 이 로마서 들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환경 주시고, 또 믿음 주시고, 은혜 주시고, 무엇보다도 건강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건강할 때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저도 그런 면에서 좀 이렇게 치밀 오른 은혜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 성도님들이 로마서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 같은데요. 로마서는 오래 신앙생활 하신 분들에게 익숙합니다. 그러나 익숙하다고 해서 여전히 쉽지는 않습니다. 초신자 성도들은 이게 좀 낯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신앙생활 하는 분들도 또 처음 초신자 성도들에게도 이 말씀이 잘 깨달아질 수 있도록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따뜻하고 친절한 메시지가 되길 원합니다. 그런데 따뜻하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가 되길 바랍니다. 또 깊이가 있지만 새로운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고, 무엇보다 제 마음에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따뜻하고 깊고 새롭지만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 여기에 능력을 실체를 경험하는 메시지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이 저는 주님 이 말씀을 우리 성도들에게 인생 말씀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또 인생 로마서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이런 마음이고 저는 본격적으로는 1월 25일부터 할 것이고,. 오늘 일단 오리엔테이션 격으로 로마서의 문을 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제목은 정결함으로 로마스의 시작합니다. 영어로 말하면 “Beginning romance with a pure heart and repentance”. 그러니까 ‘정결한 마음과 그 다음 회개하는 마음’으로 로마서가 시작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걸 위하여 먼저 우리를 새롭게 하고 우리를 정결케 하는 이 우리가 방향을 가지고 아 이 로마서가 어떻게 교회 역사를 새롭게 했는가 교회 역사를 새롭게 했는가? 몇 가지를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저 히포의 유명한 성 어거스틴 감독 성 어거스틴이 AD 4세기 후반기에 로마서 13장을 통하여 뒤집어져 버렸어요.

그가 구원의 길을 찾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안 됐는데 마니교에 그냥 그렇게 젖어 있고 이런 사람이 완전히 로마서 13장을 통하여, 그리고 잘 아시는 대로 마틴 루트가 마르틴 루트는 캐돌릭 사제였어요. 신부였어요. 그런데 보면 자기가 어떤 구원의 수준의, 구원의 세계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막 자기 자신을 고행하는데 스칼라 상타라고 로마의 그 고행 계단이 있어요. 그 계단에 가가지고 막 자기를 갖다 고통에 몰아넣고 상처를 내면서 그 계단을 이렇게 무릎으로 그 무릎으로 막 고생하면서 올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천둥 같은 섬광 같은 말씀이 자기에게 때리는데, 너 고행으로 구원 받냐? 아니야. 오직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느니라.

그 1장에는 이 내용을 가지고 완전히 마틴 루터가 새롭게 되고 그 마틴 루터가 새롭게 된 딱 그 말씀을 받고 고행하면서 계단으로 무릎으로 오르던 그걸 딱 멈추고, 로마에서 그냥 독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돌아가 가지고 초대교의 이후에 가장 강력한 종교계의 새로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어거스틴 마틴 루터’, 그 다음에 ‘요한 웨슬리’라고 있었는데, 요한 웨슬리는 교리적으로도 그렇고 지성적으로 똑똑한 분이었어요. 그런데 영국의 런던의 올더스 게이트라는 곳에서 교회에서 로마서 서문을 이렇게 자기가 듣다가 로마서 서문을 듣다가 그대로 깨어져 가지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고 그 이후에 ‘조지 위필드’와 함께 대각성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존 버년’이라는 분 아시겠는데 성경 이후로 제일 많이 팔린 책이 천로역정 Pilgrim’s Progress인데 존 번년이 그 감옥에 있으면서 이 로마서를 읽다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우리 천로역정을 썼습니다.

자, 여기서 이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처럼 자기 의지로 구원의 길을 찾는 분들 마틴 루러처럼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으로만 생각하는 분들, 요한 웨슬레처럼 교리적인 신앙을 갖고 있지만 구원에 확신이 없는 분들, 존 버년처럼 죄의 무거운 짐을 해결하지 못해 고통 하는 분들이 우리 가운데 분명히 있을 거예요. 이런 분들, 오늘 로마서를 통하여 길을 찾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사랑의 교회, 우리 교회는 지금부터 한 35년 전쯤 우리 선대 옥한흠 목사님께서 로마서 강해를 통하여 사랑의 교회에 말씀을 통한 강력한 부흥이 일어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에요. 아무도 흔들릴 수 없는 나의 구원, 그런 거 할 거예요. 저는 요즘은 20년이 한 세대가 지나가는데, 35년이 지나갔기 때문에 35년 뒤에 이 말씀을 하는데 하여튼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랑의 교회의 성도들과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방송을 듣는 모든 성도들께 저와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35년이 지난 이후에 이제 우리들 차례가 되었어요. 이 말씀이 남 얘기가 아니라 저와 여러분을 바꾼 말씀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에요. 다시요.

어거스틴, 마틴 루터, 그 다음에 요한 웨슬레, 존 버년, 우리 선대, 우리 성도들을 변화시켰던 그 말씀이 저와 여러분을 변화시키고 한국 교회의 재부흥의 촉매제가 될 수 있도록, 이 말씀이 나의 사랑하는 책이 되기를 바라고, 이 말씀이 나를 변화시킨 책이 되기를 바라고, 이 말씀이 우리 가정과 교회를 변화시키고 바꾼 말씀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서울 선언’ 이후에 ‘WEA의 서울 선언 총회’ 이후에 이 말씀이 글로벌 복음주의 교회의 재부흥의 촉매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걸 위하여 오늘 이제 말씀을 이제 1절부터 오늘 서론 격입니다. 1장 1절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뭐라고 시작하는가? 먼저 우리가 기초로 쌓아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1장 1절에 다 함께 보겠습니다.

*로마서 1:1,
1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먼저 이 말씀을 기록한 바울인데 자세한 것은 다음번에 제가 다룰 터인데, 오늘 일단 바울에 대해서 두 가지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또 하나 뭐라고 그랬어요? 사도이다. 이 내용은 뭘 먼저 설명하느냐 하면 이 말씀을 전하는 바울의 메신저로서의 신뢰 말씀을 전하는 바울의 인격에 대해서, 아 바울은 신뢰할 만하다 이것이 그러니까 항상 말씀은 두 가지가 있는데, 메신저가 있고 그 메신저가 전하는 메시지가 있는 것이에요. 오늘 이 말씀을 전하는 바울은 신뢰할 만한 분인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바울은 얼마나 신뢰할 만한가?

그는 위선자가 아니고, 정말 2천 년 교회 역사의 바울처럼 신뢰할 만한 인격자를 또 만날 수가 있겠는가? 당시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지만 말씀 앞에서는 깨어져 가지고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할 만한 그런 인격자인데, 바울처럼 이 신뢰남의 인격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이 바울을 저 타 종교는 싫어하고 그리고 이 얼마나 바울의 인격이 대단했느냐 하면 우리 기독교 안에서도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바울을 싫어할 정도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로서 그야말로 올바른 메신저가 된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는 메신저뿐만 아니라 메시지가 중요한데 그 메시지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하는가? 2절에 이와 같이 나와서 2절을 같이 봅니다.

*로마서 1:2,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오늘 복음의 정석, 로마서 정석, 바울의 메신저로서의 말씀을 전하는 메시지가 뭐냐? 오늘 이 메시지 자체에 대한 신뢰를 표현한 구절인데 이 복음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것인 줄로 믿습니다.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들이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말씀을 했는데, 특별히 누가 봄 24장에는 예수님께서도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누가복음 24:27,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이 내용이 뭐냐 메시지가 신뢰할 만하다. 구약에 예언한 그 모든 복음의 정석을 오늘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메신저와 메시지를 잘 살펴보고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하여. 이걸 여러분들이 잘 들을 때에 여러분과 저도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저도 이 시대에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신뢰받을 수 있을 만한 품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 저는 기도합니다. 오늘 이번 로마서 강해를 하는 동안에 사랑일교의 모든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도 신뢰할 만한 품격을 갖추게 하여 주십시오.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신뢰받을 만한 인격, 그런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오늘 제가 지금 메신저 얘기하고 메시지를 얘기했는데 존경받을 만한 메신저가 되기 위하여 또 신뢰받을 만한 품격을 갖출 만한 메신저가 되기 위하여 오늘 두 가지를 제가 서론 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뭘 말씀하는가? 첫째는 우리에게 부르심의 신비를 내 고백으로 해야 이 메신저가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자, 무슨 말인가?

I.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기 위하여
첫째, 부르심의 신비를 내 고백으로.

-제 얘기가 아니고 6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오늘 6절을 읽었습니다. 제가 앞부분의 일부러 다음에 하겠습니다. 6절의 시작,

*로마서 1:6,7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네라 7절에도 뭐라고 말씀하고 있냐면,
*로마서 1:7,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저와 여러분은 이 시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이 자리에 온 줄로 믿습니다. 저는 사도 바울이 오늘 이와 같이 이 말씀을 이제 전개를 하고 있는데, 저는 바울이 이제 앞으로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경책도 하고, 꾸중도 하고, 도전도 합니다마는 성도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 것이 이게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에요.

로마 교회 교인들이라고 완벽한 거 아니죠? 완벽하지 않는 로마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먼저 너희들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잘 아시는 대로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능력으로 성도가 된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고 성도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어요. 저는 여러분 오늘 이 예배에 와서 앉아 계시는 귀한 성도는 한 분 한 분 여러분들의 배경을 제가 다 모르죠.

어떤 분들은 오래된 성도들, 또 초신자 성도들이 있고 또 세상 적으로 배경, 여러 가지 차원이 다 다를 것이고. 또 지역적인 배경이나 다 달라요. 그래 여러분들 많이 다르지만 제가 한 가지 아는 거 있어요. 그것이 뭐냐? 오늘 이 예배에 오신 여러분들은 주님이 부르셔서 오신 것이에요. 주님이 부르지 않으시면 우리가 주님 믿을 사람도 없고, 주님이 부르지 않으시면 이 자리에 올 자가 없다는 사실이에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능력으로 부르심 받은 게 아니라는 것이에요.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바울이 어느 정도 말을 하느냐 일자리에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소위 Apostle쉽으로, 사도로 그리고 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바울만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5절에 보면 누가 부르심을? 5절에 보면,

*로마서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 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그랬어요. 사도바울이야 종이요. 사도로 살았지만 오늘 우리가 할 때 여기는 팀들을 얘기해요. 거기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들어가고, 그 다음 디모데도 들어가고 여러 팀들이 들어가고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나 디모데 같은 사람은 사도는 아니에요. 그러나 함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사도 성을 가진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니까 앞으로 로마서를 진행할 때에 우리가 다 부족하지만 오늘 이 시대를 향하여 여러분과 저는 사도 성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에요. 우리가 무슨 사도입니까? 우리는 사도직 자체는 계승되지 않지만 사도 성 자체는 우리가 오늘 깨달아야 되는데, 이게 신학적인 바탕으로 혹은 목회학적인 안목으로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Prophetic Apostolic, 이라고 앞으로 예언자적 사도 성을 가지고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장래를 결정할 것이에요. 아시겠어요?

Prophetic Apostolic Ship이라고 그래가지고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우리가 바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사도성을 가진 하나님의 신실한 사명자로 부르신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하겠습니다. 이 부르심의 특징은 현재 저와 여러분의 행실의 평가로 부르신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근거한 신분 선언과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의 근거가 우리의 행실이나 공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는 불러주셨기 때문에 세워진 성도가 된 것이다. 이 말이에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이제 거룩하게 살고 거룩해졌으니 내가 성도라고 불러주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지 못한 상태를 끌어안은 채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라고 선포가 되었다는 것이에요. 이 세상의 상식은 거룩해지면 성도이다. 자격이 되면 성도라고 부른다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거룩해지는 것이고. 성도의 부르심은 자격이 아니라 부르심의 은혜가 먼저가 된 것이에요. 따라서 이 부르심의 특징은 사도바울의 독특한 언어 습관인데 그것이 뭐냐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로마서를 고린도 지역 고린도에서 쓰고 있었는데, 그 고린도 교회에도 동일한 바울의 언어 습관에 나오는데 어떻게 부르셨는가? 고린도전서 1장 2절에 뭐라고 나오느냐 하면 이렇게 나왔어요.

*고린도전서 1: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그들에게 오늘 로마서 1장이 난 것처럼 은혜와 평강 그들에게 고린도전서의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신비는 내 안에 있는 경건함, 거룩함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 부름 오죽하면 로마서 8장에 보니까,

*로마서 8:1,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우리가 거룩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거룩한 성도라고 부르심 받는 거예요. 오늘도 여러분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 자의 정함과 높은 자의 우리가 아까 찬송 불렀을 때 마음에 와 닿지 않았어요? 아무런 뭐가 없었어요?

저는 오늘 이거 찬송을 하는데 제가 설교할 힘을 얻었어요.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예수님은 누구신가? 너무나 놀라운 복음이 그 안에 다 들어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제가 설교할 은혜를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내용이 앞으로 큰 의미가 있는데, 이게 로마 캐톨릭과 우리를 구별하는 것이에요. 로마 캐톨릭은 고행과 거룩한 삶을 가지고 어떻게 이 성도 성인의 계급을 구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인 반열이 있는 것이에요. 거룩함의 카스트 제도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가 거룩하게 살기 때문에 부른 거예요. 하나님이 불러주기 때문에 우리가 성도가 된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이 차이가 많은 거예요. 등급이 아니에요.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어렵다 하시고 거룩하게 불러주신 신분 때문에, 그래서 캐톨릭에는 등급 이런 반열이 있습니다마는 우리는 그냥 신분이에요. 이게 왜 이래 중요한가?

지난 주일날 인구 센서스를 나온 통계가 나왔는데 종교 센서스가 나왔어요. 10년에 한 번씩 하는데 2015년도에 기독교 퍼센티지가 얼마냐 그리고 2025년도에 기독교가 종교가 어떻게 되느냐 이렇게 나와 있는데, 여러분 2015년만 하더라도 그때도 기독교가 많은 공격을 받고, 미디어나 온갖 영화, 텔레비전 이런 거에 대해서 많이 이렇게 기독교를 하고 또 캐톨릭을 높여주고 그랬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2015년에 나름 선방을 했어요. 교회가 자라서 왜 로마서 같은 이런 부르심에 대한 복음의 정석 때문에.

그런데 지난 10년동안 그 이전과는 말로 다룰 수 없는 공격, 어려움, 그다음에 폄하, 모든 미디어에 보세요. 교회 제대로 나오는 거 있느냐고 캐톨릭은 올려가고 있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 사랑의 교회 강단이라는 또 대한민국 교회의 프로테스탄트 성도인 여러분들의 입장에서 깊이 생각할 것이 있는 것이에요. 우리가 이 복음의 정석과 로마서 마르틴 루터의 후예가 돼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을 두근두근하면서 살펴보았어요. 작년 연말에 우리 기독교가 어떻게 됐는가? 2015년에 19.7%였는데 작년 연말에 10년 뒤에 다들 기독교가 내리막이고 내려간다고 그러고 막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 작년 연말에 통계가 20%가 된 줄로 믿습니다. 0.3%가 그래도 자랐어요.

온갖 종류의 폄하와 온갖 종류. 여러분 드라마에 교회를 제대로 한 데 있습니까? 나는 지금도 기억하는 게 30몇 년 전에 왠만 하면 교회 갑니다. 옛날에 사랑이 뭐길래 거기 보면 교회 갑니다. 전부 다 지금은 다 캐톨릭 교회 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되는 캐톨릭 하고 우리의 차이를 알아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가 고행하고 잘해서 성좌 반열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가 성도가 된 것입니다. 놀라운 신비입니다. 놀라운 신비입니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를 우리가 구세주로 영접하는 그 순간, 우리가 이미 성도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이런 거룩에 대한 카스트 제도는 없는 것이에요. 누구누구는 더 거룩하고 누구누구는 덜 거룩하고 이게 아니에요.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거룩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이런 뜻이에요.

어린아이가 있는데, 어린아이가 있는데, 애가 아버지 코트를 입었어요. 애가 아버지 코트를 입었는데 너무 적어가지고 코트만 보이고 애가 안 보여요. 그래 가지고 애가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코트가 걸어가요. 이게 무슨 말이냐? 우리에게 주님께서 의의 옷을 입혀주신 것이에요. 우리는 다 부족하고 그 안에 있는 어린아이는 뭘 몰라요? 어린아이는 너무너무 자기만 알고 바보 같아요. 그렇지만 그 어린아이가 그 코트 안에 있기 때문에 성도가 된 것이에요. 이럴 때 우리는 우리가 이렇게 부르심에 대한 신비를 깨달 때, 우리는 교만할 수가 없어요. 뭐 할 수가 없다고요? 교만할 수 없어요. 교만에서부터 우리가 자유함을 갖는 거예요. 내가 성도가 된 것은 내 성품, 내 지성, 내 훈련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사랑할 것이 없어요.

-성도는 '자기 완성자' 가 아니라 부르심의 은혜를 입은 '수혜자'이다.
-우리의 능력과 실력과 지성으로 우리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입은 수혜를 받은 사람이에요. 아멘. 그러니까 교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두 번째로는 모든 이 땅에서의 절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절망으로부터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에요. 나는 아직 엉망이니까. 성도라고 부를 만한 자격도 없지만, 그러나 그 부족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 절망 가운데 자유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성도라는 이름은 내 완성도를 근거로 붙인 이름이 아니라 부르심을 근거로 붙이는 이름이기 때문에, 내 완성도를 통하여 얻어진 이름이 아니라 부르심을 통하여 얻어지는 은혜이기 때문에, 오죽하면 바울의 믿음 아들 디모데에게 디모데후서 1장이 뭐라고 설명하는 거야?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다 같이 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1:9,
9 하나님이 ..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우리의 뭐예요? 우리의 할렐루야 이처럼 부르심을 받은 성도라는 것은 어느 엄청난 무게와 신비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걸 깨닫고 나면 우리가 방종하거나 마음대로 삽니까? 아닙니다. 제대로 깨닫고 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 우리 전투력 가지고,
-부름 받아 나선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여러분 여기에 동의가 있기를 바랍니다. 자 메신저와 메시지가 확실하면 첫째는 오늘 부르심에 대한 깊은 신앙의 신비와 고백이 있고, 두 번째로, 이제 하나 있는데, 그것이 뭐냐? 그것은 정결함을 통하여 참된 말씀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II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기 위하여
둘째, 정결함을 통하여 참된 말씀의 복을 담아야.

-그리고 참된 말씀의 복을 우리 속에 담고 평생 걸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적용입니다. 바울은 이런 성도의 부르심에 대한 깊이 있는 선포를 통하여 이게 자기 고백이 될 때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어요? 사실 여러분 바울은 사도로 부름 받기까지 바울이 한 일이 없어요. 오히려 바울은 부르심 받은 성도들을 박해하고 스테반을 갖다가 돌로 쳐 죽이고 그런데 놀라운 복음의 신비는 바울의 생애 속에서 그의 부르심 과정에서 나타났는데 다마스커스, 다메섹 도상에서 깨어져 있었어요. 그리고 그의 부르심에 이 신비의 보이지 않는 바울이 가진 과정이 뭐냐 하면, 사도행전 9장 9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사도행전 9:9,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그 정결함과 회개와 돌이킴의 기간이 있었다는 소위 부르심의 합당한 회개가 시작이 된 것이에요. 그리고 갈라디아 1장에 보면,

*갈라디아서 1:17,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바울이 이 부르심을 받고 바로 예루살렘 교회로 가지 아니하고 3년 동안 아라비아에 가가지고 거기서 철저한 자기 정결과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부르심에 합당한 회개를 감당하게 된 것이었어요. 그 아라비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니고, 그 아라비아는 지금 페트라, 요르단, 다마스커스 접경 지역인데 거기에 가가지고 3년 동안, 그 3년 동안 철저한 회개와 정결함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이게 역설의 회개와 정결함입니다. 지난주에는 제가 역설의 기쁨이라고 그랬는데 십자가와 그다음 기쁨을 안 어울리는 단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십자가는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가져온다. 그것이 이제 와닿는 것처럼 오늘 마찬가지입니다. 부르심의 은혜가 너무 큰데 그걸로 우리가 부르심의 은혜 받았다.

이게 아니라 거기에 걸맞는 정결함이 따라가는 것이에요. 아멘 정결함에 따라가는 것이 부르심에 걸맞는 정결함과 회개가 있어야 되는 것이 제가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우리 성도들 가만히 우리 교회 성도들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이 말씀의 복을 가지고 소위 영육 간의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의지적으로 삶에 있어서 심지로 경제적으로 또 가족적으로 여러 상황 가운데서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복을 받고 어떤 성도들은 그 복을 쏟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왜 그럴까?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끝까지 쓰임받고 가고 어떤 성도들은 뭔가 하나님 주시는 그 은혜가 있는데, 그걸 누리지를 못하고 중간에 다 새어나가는 거예요.

마치 독이 있는데, 그 독의 밑바닥이 튼튼하고 잘 되어 있으면 물을 채우면 그 물이 다 차 가지고 흘러넘치는데, 어떤 독은 아무리 아무리 물을 이렇게 쏟아 넣어도 계속 물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흩어지고 다 새버릴 이유가 뭔가? 제가 볼 때 이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가 없기 때문에, 참된 정결함이 없기 때문에, 이 참된 정결함과 참된 회개가 우리 신앙의 밑 빠진 독을 해결해 주시는 것이에요. 따라서 로마설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주님 앞에서 처리할 것은 처리하고, 반복적으로 짓는 죄, 습관적으로 짓는 죄, 수많은 것들이 있어요. 주님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것이 있어요.

오염된 것, 소위 정결함 없는 평안이 여러분들에게 있다면,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아버지 부르신 것 너무 사실이고 성도로 너무 귀한 일이지만 주님과 나와의 사이에 소위 벽이 가리워 져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복을 부어 주실려고 그러는데 그 벽이 가리워져 있는 거예요. 그러니 주님이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다 있을 줄로 믿습니다. 아시겠어요? 그걸 하나님 앞에 정리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거죠. 것이에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고린도에서 쓰고 있었는데, 그 고린도 교회는 바울은 나중에 보면 알지만 로마서를 쓸 때, 로마 교회에 가본 적이 없어요. 있을 때는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너무 주위에 고른도 교회 일어난 일들 잘 알아요. 고린도 교회는 너무 엉터리였어요. 성도들이. 그래서 이 고른도 교회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근심을 가지고 정결함과 회개를 해야 한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

*고린도후서 7:10,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참된 근심, 참된 회개 이런 정결함에 대한 어떤 방향을 잡아주는데 보세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뭘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뭐예요? 사망을 이룬다. 자 오늘 사탄이 우리를 근심하게 우리를 좌절하게 하고 우리를 짓누르고 우리에게 상처 주고 우리를 넘어뜨리게 하는 이건 사탄이 하는 것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제대로 된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정결함을 사모하는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요, 참된 해결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배해 놓으신 수많은 은혜들을 누리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1장 7절 뒤에 보면,

*로마서 1:7,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받을 복 중에 최고의 복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최고의 복은 은혜와 평강인 줄 믿으셔야 되는 거예요. 은혜와 평강의 이 물줄기가 생수가 터져야 되고 이것이 우리에게 막 뿜어져 들어가야 되는데 우리에게 들어오는 이 파이프가 막혀있는 것이에요. 파이프의 배관이 다 찌꺼기가 너무너무 막혀 있어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폭포처럼 부어주시려고 해도 우리가 받을 수가 없는 것이에요.

주님과 여러분만이 아는, 여러분의 은혜의 파이프를 더럽게 하고, 막히게 하고, 그걸 그냥 완전히 오염시키는 그 모든 것들을 로마서 시작하면서 정리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거죠. 그래서 제가 마음속에 소원을 했어요. 여러분 1월은 우리가 변화되기에 정말 좋은 시간이에요. 가장 좋은 시간이에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 복이 있는데, 하나는 주어진 복이 있고, 또 하나는 누려 지는 복이 있어요. 어떤 성도들은 주어진 복은 받았는데 누려 진 복을 받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어요. 성도에게 첫째, 무슨 복이 있으면서 부르심을 통하여 주어지는 복이 있습니다. 동시에 뭐예요? 누려 지는 복은 뭘 통해서 받아야 할까요?

정결함을 통하여 참된 회개를 통하여 여러분이 참된 회계는 근심을 통하여 이것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아까 7장 10절에 그래서 이 참된 회개가 있을 때, 회개의 정의가 나오는데 고린도후서 7장 11절에 이와 같이 나와요. 제가 한번 여러분 물 뽑겠습니다.

*고린도후서 7:11,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
얼마나 분하게 하며 / 얼마나 두렵게 하며 /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이 회개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열망을 주실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뭐하게 하며 이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에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소리가 왜 자꾸 작아져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이건 거룩한 분노예요. 죄에 대해서 내가 거룩한 분노를 하는 거예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두렵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얼마나 뭐하게 하며 이걸 오늘 여러분들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길 바라는 거예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열심히 이렇게 하며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아 그렇구나.

내가 제천기도동산에도 한번 가봐야 되겠구나. 이번 주일날 기도 금식 기도하려고 했는데 금식하는데 거기라도 한번 가봐야 되겠구나. 열심히 얼마나 뭐해요? 벌하게 하였는가 악을 용납지 않는 단호함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에요. 오늘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너희 자신의 뭘 나타냈느니라. 부르심에 대한 분명한 고백이 있어야 되고 두 번째, 이 부르심에 대한 은혜와 함께 우리가 정결함을 가지고 로마스를 시작하는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는 것인데 그것이 뭐냐?

회개를 나를 고치는 작업으로만 여기는 것은 그것은 아주 초기 단계에 회개는 자신을 고치는 것뿐만 아니라, 은혜가 나를 살리는 자리까지 나가는 것이에요. 매주일 마다 은혜가 저와 여러분을 살릴 것입니다.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여러분 가정을 살릴 것입니다. 결론이 뭐냐 우리에게 정한 마음이 있을 때, 새 마음이 창조되는 거예요. 10편 51편의 다윗이 고백한대로

*시편 51:10,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의 정직한 영을 뭐예요? 새롭게 하셨어요. 정결함이 되면 새 창조와 새로운 마음, 새로운 스타트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주어진 복뿐만 아니라 누려진 복을 위하여 거리끼는 것, 이걸 다 깨어서 흘러가게 하는 것들을 처리하고, New Start, New Creation, 새로운 창조와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한 분, 한 분 예외 없이 주님 앞에 쓰임 받는 축복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성 버나드가 은혜를 받고 참 회개하는 자에게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이 좋거든. 그 다음에 참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신다고 그랬어요. 우리 참 회개하는 자에게 찬양합시다.

저는 청년 시절의 정결함을 위하여 A day in Prayer, 기도로 하루를 이라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봤고 또 시간이 하루가 안 날 때는 Half day in prayer, 반나절이라도 주님과 함께 1월은 변화되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요약
이 말씀 가지고 주님 나 사이에 거리끼는 것, 내 삶에 누려 지는 축복들을 다 밑빠진 독으로 다 깨어서 흘러가게 하는 것들을 새 버리게 하는 것들을 막을 수 있도록 주님께 우리를 청결함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해야 하며, 우리 모든 성도들이 로마서의 복음의 정석을 통하여 우리가 정결함으로 나가는 은혜가 있어서, 우리 성도들 모두가 품격 있는 인생으로 만들어 주실 것을 확신한다. 말씀 가지고 우리가 더 이상 교만하지도 않고, 더 이상 절망하지도 않는 거룩한 자유함으로 신년을 맞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부르심에 합당한 회개와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복이 새어 나가던 모든 틈들을 눈물의 회개로 메꾸어서, 참된 말씀의 복과 은혜와 평강의 복이 나를 흘러넘쳐서 다시 시작하고 다시 재창조하는 New Start, New Creation의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에게 주님께서 놀라운 부르심의 은혜로 나를 그리스도의 것 삼아 주셨으니, 역사를 바꾼 로마서 말씀을 통하여 나의 가정과 일터를 바꿔가야 한다. 날마다 사망을 이루는 세상 근심'을 물리치고 회개를 이루는 거룩한 근심으로 정결해질 때, 새지 않는 은혜와 평강의 강수가 항상 넘실대고, 우리 사랑의 교회가 참 회개로 주어진 복'을 넘어 누려지는 복'을 경험할 때, ,우리 모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강력한 뉴스타트, 뉴크리에이션의 기적'을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간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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