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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03월 22일)-<로마서 강해 ⑧>
제목: "칭의:너무 놀라워 자랑할 것이 없다"
말씀: 로마서 3:27-31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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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27-31,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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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란 우리를 의롭다고 불러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범죄 기록이 사라진 것이고 한 번 의롭게 되면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칭의’는 의의 새옷을 입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옷, 공의의 겉옷을 입혀 주시는 것이 바로 칭의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먼저 선을 행하고 받은 것이 아니라 의롭다 하심으로 받고, 믿은 사람의 결과가 바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공로, 자랑, 비교,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내 죄를 사하심으로 마이너스 인생을 0의 인생으로 회복시키시고, 아름다운 구원의 옷을 입혀 주셔서 100점 인생으로 만들어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열등감과 우월의식을 물리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칭의를 각성함으로써 내면에서 자랑이 사라진 사람이 갖게 되는 것은 첫째로 내가 받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참 감사”, 둘째로 이 은혜는 내가 감히 감당할 수 없다는 “거룩한 경외감”, 셋째는 나같은 사람을 살리셨다면 나도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다는 “긍휼의 마음”입니다. 이 놀라운 칭의의 은혜로 구원의 확신을 갖고, 십자가만 자랑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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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03월 01일)
제목: "상대주의와 형식주의를 타파하는 능력"
말씀: 로마서 2:12-29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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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12-29,
12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17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25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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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로마서 2:1)
이번 주 말씀은 분명한 대상이 정해져 있습니다. 바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내 죄에 대해서는 너그럽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정죄를 하는 자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회개의 시간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결코 정지된 시간이 아니라 회개를 향해 흐르는 시간입니다. 죄는 중립적이지 않고 자랍니다. 그리고 쌓이면 무뎌지고 굳어집니다. 회개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죄는 회개로 끝낼 수 있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죄가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죄가 결국은 나를 죽입니다.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내면을 살피시고 심판하시기에 그분의 심판은 아주 공평합니다. 그러하기에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 그리고 평강이 임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내로남불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왜곡된 자아를 십자가 앞에서 처리하는 ‘대각성’의 은혜를 깨달을 때입니다. 성육신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체와 이 나라 가운데 참된 회개와 대각성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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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02월 22일)
제목: "내로남불 인생을 향한 복음"
말씀: 로마서 2:1~11
찬양인도: 쉐키나, 할렐루야 찬양대
대표기도: 김건수 장로님
사회: 장단희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로마서 2:1~11,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ㅡㅡㅡㅡㅡ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로마서 2:1)
이번 주 말씀은 분명한 대상이 정해져 있습니다. 바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내 죄에 대해서는 너그럽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정죄를 하는 자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회개의 시간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결코 정지된 시간이 아니라 회개를 향해 흐르는 시간입니다. 죄는 중립적이지 않고 자랍니다. 그리고 쌓이면 무뎌지고 굳어집니다. 회개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죄는 회개로 끝낼 수 있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죄가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죄가 결국은 나를 죽입니다.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내면을 살피시고 심판하시기에 그분의 심판은 아주 공평합니다. 그러하기에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 그리고 평강이 임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내로남불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왜곡된 자아를 십자가 앞에서 처리하는 ‘대각성’의 은혜를 깨달을 때입니다. 성육신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체와 이 나라 가운데 참된 회개와 대각성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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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02월 15일)-(명절 특별메시지)
제목:최선을 기다리는 명품신앙(A Mature Faith That Waits for God's Best )"
말씀: 룻기 4:13-22절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김영석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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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4:13-22절
13이에 보아스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14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6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아버지이새아버지였더라.
18베레스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헤스론을 낳고.
19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20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21살몬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오벳을 낳았고.
22오벳이새를 낳고 이새다윗을 낳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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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많은 성도들이 지금 지방에도 가 계시고 보니까 단선들 많이갔어요. 일본, 유럽, 동남아 많이 나가 계시는데, 오늘 이게 이렇게 지금 영상으로 다 같이 예배를 드릴 텐데, 영상으로 드리는 모든 분들, 그런데 보니까 또 역귀성 하신 분들과 또 해외에서 오신 분들도 계세요. 오늘 아무도 그냥 돌아가지 마시고 오늘 꼭 오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 인생에 답을 갖고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 명절 될 때마다 신앙의 토대, 신앙의 핵심, 중요한 것들을 나누고 있는데, 로마서 메시지를 잠깐 멈추고, 제가 이렇게 오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오늘 제가 제목을 “최선을 기다리는 명품 신앙”이라고 그랬는데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겪고 다 고생하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살다 보면 이러다가 절벽(絶壁)에서 떨어져 죽겠구나!! 라고 인생의 절벽에서 떨어져 죽겠구나! 라고 그런 참 마음의 고난과 또 삶의 환경에 어려움을 겪는 그런 경우가 많이 있잖아요. 저도 그런 거 경험하고,,, 그럴 때 답이 뭐예요?

답이 뭐냐고? 그래서 오늘 그 답을 오늘 꼭 한 명씩 얻고 가기를 바랍니다. 답이 뭔지 이 답을 제가 우선 제가 말씀을 드리는데, 사건은 일어나요. 여러분, 사건이라 여러분 무슨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어려움도 겪고 국가적으로도 어려움 사건이 일어나요. 그런데 그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걸 가지고 어떻게 찬양하고 어떻게 기도의 제목으로 삼느냐에 따라서 그 사건을 반응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그 삶이 결정되는 것이에요.

사건이 일어나는 건 10% 20%고 그다음에 나머지 70~80%는 뭐냐 그 사건을 이러면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하고, 찬양하고, 기도 전문 삼고 눈을 뜨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결정된다. 이 말씀이에요. 그래서 제가 우선 쉽게 말하면 여러분의 삶에 아직까지 최선이 왔을까요? 안 왔을까요? 자 따라합시다.

“내 삶에 최선은 오지 않았다.”
-에이, 목사님 뭘 자주 강조하시는 그 말씀. 그래 얘기하지 말아요. The best is yet to come. 내 삶에 아직까지 최선 오지 않았다. 제가 왜 이걸 강조를 하냐면 우리 한국 사람들은요. 우리 의식에 내 삶에 아직까지 최악은 오지 않았다. The worst is yet to come. 그러니까 아직 최악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이 지난 2천 년 동안 정말 이 한반도에서 수많은 고생을 했잖아요. 침략당하고, 상처받고, 트라우마가 있고 우리끼리 싸우고 사람들이 늘 월스트를 늘 생각하는 거예요. 그게 뭐 삶의 지혜로서 나쁜 거는 아니지만, 그러나 그게 여러분들이 하나의 삶의 어떤 스타일이 되고 이럴 때, 그 신앙적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나라가 물리적으로 어려움이 있고 또 이 영적으로 보면 한국 사람들은 무속 신앙, 샤머니즘 이런 게 있어 갖고 전부 다 이게 영향을 받는 거예요. 길일선택,,, 그런 것들을 봤어요? 물에 가면 안 된다. 뭐 불을 조심하라. 그건 나도 얘기할 수 있어. 불에 조심하라. 산불 조심해야지. 그러니까. 이걸 다 흉. 흉악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어려움이 일어나지 않을까. 이런 것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그래서 다들 전전긍긍(戰戰兢兢)해요. 그런데 그거는 최악으로 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거는 인간적으로는 그걸 준비하는 거 지혜는 있을지 모르지만, 신앙적인 것은 아니에요.

신앙은 항상 주님이 예배하신 최선이 우리에게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하다못해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배하러 가노니', 기억이 됩니까? 우리의 미래는 결정되어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제가 차근차근 이 본문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는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여러분의 통찰력을 섬광(閃光)처럼 여러분의 것으로 탁 어두운 세상에 삶의 어두운 골목에서 탁 낚아채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잘 아시는 대로, 룻기의 본문이고, 4장의 본문이고, 이런 내용인데 저도 저의 삶에 이 어려움을 겪었을 때, 오늘 이 본문과 또 이런 내용들이 저에게는 큰 어떤 뭐라고 그럴까요? 등대(燈臺)와 같이 빛이 되었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오늘 이 본문의 얘기 누가 나오미라는 시어머니가 오늘 이 고백을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누가 얘기한다고요? 나오미가, 나오미가 처절한 고난을 받고 자 봐요. 그가 그녀가 가는 곳마다 뭐가 일어나느냐? 기근(饑饉)이 일어나는 거예요. 살 길이 없어요. 그리고 할 수 없이 나라를 옮겨 이민(移民)을 가요. 그런데 이민 가서 좀 잘 살아보려고 했더니,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남편은 죽어버리네?. 의지하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죽고, 그다음에 그의 삶의 유일한 희망이요. 근거인 첫째, 아들이 죽어버리고, 둘째, 아들이 죽어버리고, 너무너무 아닌 거예요. worst도, 고통도 이런 고통이 없어요. 그래서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이 기쁨이라는 뜻인데 나는 내 이름값도 못한다. 내 이름을 ‘마라’라 하라. 마라라는 쓴 물, 고통이다. 중국 음식 가운데 마라탕이 있다면서요? 그러니까 나는 진짜 또 하나 오늘 룻기에 같이 저기 나오는, 같이 나오는 며느리가 이름이 뭐죠? 금방 내가 답을 해줬잖아요. 누구의? 나오미와 룻이죠. 룻은 모압 여인이었고, 모압 여인은 신명기에 보면 뭐라고 나오냐면 ‘모합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그랬어요.

*신명기 23:3a,
3a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소위 이런 은혜 받는 자리를 낄 수가 없어요. 그리고 모압 여인인 데다가 또 남편 죽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핍절(乏絶)하고 먹고 살 길이 없을 정도로 룻도 만만하지 않게 고통을 당하고, 자 이거는 개인적으로 당하는 고난(苦難)이에요. 그런데 또 국가적으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오늘 룻기에 전체의 배경이 1장 1절인데 1장 1절이 뭐라고 이렇게 나와 있어요.

*룻기 1:1,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어떤 시간? 1장 1절 바로 앞에 사사기 21장 25절에,

*사사기 21:25,
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지 마음대로 사는 거예요. 엉망진창이야. 한마디로 야만의 시대야. 야만의 시대, 엉망진창, 야만의 시대 국가적으로도 힘들고, 이 룻기를 통하여 룻기는 사사기와 사무엘상 그리고 다윗 시대를 연결하는 브릿지(bridge) 역할을 하는데, 오늘 룻기의 마지막 4장 22절에는 뭐라고 나오느냐?

*룻기 4:22,
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성경을 좀 아는 분들이 이건 무슨 뜻인지 알아요? 놀라운 다윗 당국이 펼쳐질 다윗의 왕국의 문이 열리고 있는 것이에요. 최고로 처참하고, 최고로 야만의 시대에, 하나님은 룻기를 통하여 이 일을 준비하신 줄을 믿습니다. 이거예요. 남들은 다 안 된다, 안 된다. 가능성이 없다. 할 때, 우리는 우리의 삶에도 그런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석을 하고, 어떻게 찬양을 하고, 어떻게 기도 제목을 삼고,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들의 남의 남은 세계가 결정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죽하면 나오미는 '마라 하라. 나는 쓴물이야. 나는 저주받은 인생이야.' 하는가? 그런데 그 인생이 오늘 4장에 뭐라고 설명했는가? 오늘 찬송하리로다. 같이 읽겠습니다.

*룻기 4:13,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오늘 너에게 기업 물을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너에게 기업 물을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중부정은 강한 긍정인데, 여인들이 모든 이 나오미에게 일어나는 새로운 변화와 은혜를 보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찬송할지로다. The worst case가, the best case로 바뀌는 그런 내용들을 보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나오미도 찬송하고, 그의 주인의 삶 다 찬송하고, 그 이유는 오늘 너에게 기업 물을 자를 허락해 주셨기 때문이니라. 뭐 자식도 없고. 저주받고, 기근 당하고, 남편도 죽고, 아들들도 죽고, 다 죽고 나가는 그런 상황에서 기은 물을 자를 하나님이 허락해 주셨으니 The worst case가 최선의 최선을 기다리는 명품의 은혜를 주셨으니,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자 이런 배경을 여러분들 좀 더 이해해야 되는데 성경에 보면요. 수없는 그 아주 그냥 고통과 힘든 케이스가 많이 있어요. 오늘 4장 13절 14절, 여러분들과 우리가 읽었습니다마는 앞에 12절에 뭐라고 하냐? 이렇게 내용이 나와 있어요.

*룻기 4:12,
12 너에게 상속자를 주사 너희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게 뭐냐 하면 오늘 제가 이걸 보니까요. 다말이 유다를 통하여 베레스를 낳고, 그다음에 살몬을 낳고, 그다음에 보아스를 낳고, 그다음에 오벳을 낳고, 그다음에 이새를 낳고, 그다음에 다윗을 낳았더라.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베살을보오, 뱃살을 보오, 이다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외웠는데, 야 베레스가 어떻게 태어났냐 다말과 유다를 통해 태어난 거예요. 그리고 성경을 좀 아시는 분들은 다말과 유다와 다말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제가 제 필살로 설명하기가 너무 부끄러워요.

말을 못 해요. 그러니까 이거는 여러분들이 알아서 하시고, 모르면 챗GPT에 물어보세요. 아시겠어요? 다 말해 줄 거야. 너무나 처참하게 너무나 비참한 상황에, 월스트(Worst)도 그런 월스트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러니까 오죽하면 베레스라 베레스라는 말이 뭐냐? 파멸되다. 파멸되다. 그리고 위배되었다. 위배되었다. 베레스는 위반하여 낳은 자식이라는 최악의 경우에요. 최악의 경우, 그런데 거기에 최악의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반전을 하시는데, 그래서 오늘 우리가 첫 번째 우리 평생 기억할 것은 뭐냐 하면,,,

I. 첫 번째, 신앙이란 것은 절망의 인생이 최선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신앙이란 것은 최악의 상황을 최선의 상황으로 만드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만드시는 데 전문가이세요. 그 이유는 뭐냐?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은 다시요. 최악의 상황을 최선으로 만드시는데, 최 전문가이시다. Thumbs up(엄지척), 최고이시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심지어 다만과 유다의 관계에서 베레스가 태어났어도, 위반의 애가 태어난 자식이라 할지라도, 그걸 통하여 반전을 일으킨 거예요. 그리고 더더구나. 그게 끝이 아니라 뭐라 하냐? 하면 살몬이 있잖아요. 누구를 낳았냐? 보아스를 낳았다고 그랬어요. 살몬은 누구를 통하여, 살몬은 라합을 통해서, 보아스를 낳았다. 여러분 라합은요, 창기(娼妓)였어요.

창기란 말은 좀 그래도 표현이 좀,,, 이렇게 품격 있는 용어지만, 사실은 제가 더 표현을 하기 못합니다. 진짜 말이 기생이지, 절망 중의 절망이에요. 그런데 그 기생 라합을 통하여 살몬을, 살몬을 통해 보아스가 누구냐, 룻의 남편이 새로운 남편이 된 것입니다. 이걸 보면서 제가 많은 걸 생각하는 거예요. 부끄러운 이력서를 가졌던 다말과 라합과 룻, 이런 사람이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거에요. 구약에 있는 대부분의 족보는 죽음의 족보인데, 마태복음 1장에 생명의 족보가 나오는데, 1장 5절에 뭐라고 나오느냐, 이렇게 나와 있죠. 살몬은 라합에게서 뭐에요? 보아스를 낳고, 놀라운 생명의 족보가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그러니까 부끄러운 가문이, 부끄러운 가문이 최악의 부끄러운 가문이, 우리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전문가이시니까 최악의 부끄러운 가문이 최선의 부러운 가문이 된 것이에요. 명품 가문이 된 것이에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복음 안에서는 월스트(Worst)로 끝나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은 최악으로만 인생을 끝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이에요. 피 흘려 값 주고 사신 주의 백성들을 최 절망으로 끝나는 것은 목자의 심정을 지으신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신 거예요. 복음 자체가 그렇지 않은 거예요. 부끄러운 것의 대표가 뭡니까? 십자가 아닙니까? 십자가는 최 절망이요. 수치(羞恥)의 대명사였어요. 그 십자가(十字架)가 주님의 3일의 십자가와 사흘의 고통을 통하여, 영광스러운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고, 십자가가 구원(救援)의 상징이 된 줄로 믿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 십자가이고, 그 십자가에서 의로우신 분이 죽임을 당하시고, 사람을 죽이는 최악의 도구, 십자가를 통하여 최선의 구원의 문을 여신 줄로 믿습니다. 자, 이런 과정들을 제가 여러분들에게 설명을 하면서 저 나름대로 제 가슴에 녹아나는 생각 중의 하나가 하나님이 이 최악을 최선으로 만드시는데, 하나님의 독특한 방법이 하나 있어요. 그것이 뭐냐면,

*하나님은 최악을 그걸 삭제(削除)하거나, 제거(除去)하심으로 최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을 빚으셔서, 올바른 반응을 하게 하심으로 최선을 만드신다.

여러분, 제가 이런 내용을 이 정도까지 하기까지는 저도 수많은 다듬이 믿고 나이 70 될 때까지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겠어요? 우리 한 번 더 제가 좋은 말씀드릴 때, 한번 열심히 한번 읽읍시다. 어떠세요? 시작. '하나님은 최악을 제거 삭제하심으로 최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을 빚으셔서 올바른 반응을 하게 하심으로 최선을 만드신다.' 아멘. 자 이걸 외국에서 오신 분들, 한국말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뭔가 아직까지 집중이 안 될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저거 잘 찍어놓고 나중에 그것도 CHAT GPT에다 한국말로, 영어로, 번역해줘 이렇게 해가지고 해보세요. 아주 대표적으로 요셉이었어요.

*창세기 50:20,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형들의 모함 그다음에 뭐 요셉이 감옥 가고 요셉이 노비되고 하는 모든 일들을 그런 것들을 하나님이 삭제해 주지 않으시고, 그걸 놔두셨습니다마는 하나님은 그것을 뭐로 바꾸신 뭐로 선으로 어떻게 했어요? 바꿔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삶의 수많은 애환, 난관 이 명절 주일날 제가 인생의 핵심 답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거 그대로 놔두시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걸 하나님께서 최악을 최선으로 만드시는 최고의 전문가이신 줄로 믿습니다. 잊지 말아요.

그러면 한 가지 하나님의 전문이신데, 그러면 하나님의 최선은 뭔가? 뭘 뭐가 베스트인가 뭐가 최선인가 우리가 흔히 세상적으로 뭐 입신양명(立身揚名)하고, 뭐 사람들에게 뭐 떵떵거리고 이러면 그거는 하나의 뭐 모르겠어요. 그건 하나의 그냥 보너스로 주시는 들어가는 그 옆에 있는 그 하나의 보너스고 진짜가 뭐냐면 여러분 기업 물을 자가 되는 것이 최선이에요. 제 얘기가 아니고, 오늘 14절에 다시오.

II. 인생의 최선은 '기업 무를 자'를 기대하는 것이다.

*룻기 4:14,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 너에게 뭐하여 주신다고요? 기업 무를 자,,, 인생의 최선은 기업 물을 자를 기대하고, 기업 무를 자의 은혜를 받는 것이고, 기업 무를 자의 은혜를 받는 것이고, 기업 무를 자를 또 믿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기업 무를 자의 진정한 기업 무를 자의 대표가 예수 그리스도예요. 이 기업 무를 자라는 말은 상속자(相續者)다. 바로 상속자다. 얼마나 귀한지,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의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는 것, 그것 자체가 기업 무를 자의 은혜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최선을 예배하고 계시는가. 기업 물을 자를 준비하시고 최선을 예배하고 계시는데 나오미의 입장에서는 룻이 보아스와 결혼해 가지고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게 하셨는데, 기업 무를 자를 만드셨는데 17절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이렇게 나왔어요.

*룻기 4:17,
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다윗에게는 누구입니까? 할아버지지, 할아버지면 친한 겁니까? 안 친한 겁니까? 할아버지하고 손자하고 더 친하죠? 아마 다윗의 생애에서도 우리는 잘 모르지만 아마 이 오벳이 영향을 끼쳤을 거예요. 자, 보십시다.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여러분 나오미가 아들 낳았습니까? 성경이 잘못 기록된 겁니까? 무슨 뜻입니까? 룻이 아들을 낳았지만 나오미에게 아들이 낳은 것처럼 축복이 되었다. 그 말이에요. 그리고 나오미에게는 이 오벳이 기업 무를 자가 된 것이에요.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이런 기업 무를 자의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기업 무를 자에 대해서 15절에서 뭐라고 설명하고 있는가 15절에 다 같이 우리 크게 읽습니다.

*룻기 4:15,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자 기업 물을 자에 대해서 기업 물을 자가 뭐냐? 생명의 회복자가 기업 물을 자이고, 내 노년의 봉양 자다. 그리고 누가 나왔는가? 룻이 낳았는데 룻에 대한 평가가 일곱 아들보다 귀하다. 오늘 우리에게는 자매님들 다 일곱 아들보다 귀한 룻처럼 귀한 자매님 되기를 바랍니다. 일곱 아들이라고 하는데 일곱 이거보다도 일곱의 만수니까 정말 정말 멋진 하나님의 딸이다. 그 뜻이에요. 오늘 이 예배 오늘 명절 많은 분들이 지금 지방에 내려가고, 자 그렇습니다마는 여러분들 오늘 이 자리에 왔으니까, 여러분 자매들은 일곱 아들보다 더 나은 딸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기업 무를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에요.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내 생명의 회복자요. 내 노년의 봉양자라' 기업 무를 자에 은혜를 주시면 오늘 이 자리에 연세 드신 분들은 노후를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별로 마음에 안 와닿는 것 같은데,

※제가 지난 주일날 경험한 특별한 예가 하나 있는데, 우리 교회 특새, 동네가 있어요. 특새(특별새벽기도히) 할 때, 태어난 아이인데, 어릴 때부터 우리 교회 주일학교 교육을 받고 캔송키즈에 들어가고, 주일학 제자훈련을 받고, 부모가 자식을 믿음으로 키웠어요.

그리고 그 할머니는 토비새의 은혜를 늘 사모하고, 토비새를 빠지지 않는 분이에요. 그런데 얘가 대학을 이렇게 미국을 갔는데 무슨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 만한 무슨 명문대학 이런 게 아니라 그냥 그냥 미국의 적은 주에 소도시에 적은 규모의 대학을 갔어요. 부모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과는 좀 다를 수도 있었는데, 그런 상황이 됐어요. 그런데 이제 대학교 4학년인데 22살인데 여러분 미국의 알 만한 대학 이름 되면 알 만한 대학에서 다 PHD(Doctor of Philosophy), 바로 석사 박사를 5년 그 박사 과정에 다 합격이 됐어요. 대표적으로 스탠포드 대학의 컴퓨터 사이언스 박사 과정에 입학이 됐어요. 22살이,,, 그러니까 별로 실감이 안 가죠?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그 5년 하는데 대학 학비 공짜, 그다음에 생활비 보조, 학비 생활비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모의 노후에 뺏어갈 돈을 걔가 다 한 거예요. 내가 뭐 가까이 두고 내가 기도해 주고, 얘는 대학 대학 다닐 이제 대학교 1,2,3,4 방학 때, 나오면 대학부 수양회에 다 참석하고, 그리고 코로나 시기에는 말이에요. 은혜를 받아야 되는데, 자기 그 뭡니까? 코로나 시기에 자기 고등부에도 은혜를 받지만 어른 예배에 나와 가지고, 담임목사 설교를 들어야 한다고,,,. 아 이래가지고 얘가 은혜를 받고 말이지 그리고 스탠포드뿐만 아니라 좋은 4개가 코넬부터 해서 더 있는데, 자 이걸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 그 엄마의 반응이에요. '목사님 얘는 교회가 다 키워줬습니다.' 예는 이번에 이거 '모두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좋은 의미에서 두렵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다 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매님은 노후가 다 보장됐네.... 학비도 안 내도 되고, 제 마음에 이제는 특새를 나오라고 제가 할 마음이 안 생겨요.

이제는 아니 토비새를 나오라고 할 마음이 안 생겨요. 왜냐하면, 토비새 나오면 하나님이 이런 애를 다 주시기 때문에 나올라면 나오고 말라면 말고,,, 하나님이 정말 역사가 정말 신묘막측한 거예요. 제가 무슨 이걸 이걸 무슨 제가 typical하게 어떻게 할 그런 마음이 아니고, 다시요. '하나님이 다하셨습니다. 교회가 키워줬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인도가 좋은 의미에서 두렵습니다. ‘내 노년의 봉양자요. 내 생명의 회복자라.’ 자 이제 중요한 것이 마무리인데 우리 하나님은 최악을 최선으로 만드시는 전문가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최악을 최선으로 만드시는 전문가이시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최악의 상황 자체를 제거하거나 면제 시켜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걸 새롭게 빚으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걸 우리가 깨닫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우리가 현재의 상황에 좁은 시각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큰 그림을 보게 되는 것이 할렐루야!!!. 그러니까 현재의 상황을 가지고 내 인생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큰 그림을 가지고 내 삶을 판단하게 돼 있는 것이에요. 전체 상황의 큰 그림 뭡니까? 나오미를 회복시키신 하나님, 룻을 회복시키신 하나님, 다말을 새롭게 하신 하나님, 이걸 우리가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요셉도 빚어주신 하나님,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이게 우리의 삶에는 조금 조각조각 우리의 삶은 조각조각이에요. 오늘 여러분들 교회 나오신 것도 조각조각이고, 조각 큰 그림을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한번 보세요. 지금 룻이나 나오미가 3천 년쯤 뒤에, AD 2026년 오늘 이 명절날, 제가 자기 얘기하고 있는 줄 상상이나 하겠어요. 이게 너무나 신비해 신묘막측한 얘기예요. 여러분들이 오늘 남들이 볼 때, 토비새 나오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남들이 볼 때 이 예배 오는 거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남들이 볼 때, 우리 주일학교 교육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런 조각 조각 조각들이 묶여져 가지고, 신비한 하나님의 최선이 우리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에요. 너무나 놀라운 일이에요. 룻의 조각이 뭡니까?

과부가 된 것,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것, 밭에서 이삭 줍는 것, 보아스와 결혼하는 것, 아이를 갖는 것, 이런 것들이 처음에는 작은 조각이지만, 모여서 명품, 작품이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말씀한 대로 야만의 시대를 끝낼 수 있는 다윗을 예비(豫備)하는 준비가 되고 있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거 각각 큰 그림을 그리고 난 다음에, 제가 썼어요. 여러분은

*"하나님 우리에게 주시는 가능성을 가지고 각자에게 주시는 은사를 따라 '필사의 전략과 계획' 을 세우고, 끝까지 낙심하지 말고, 전투적인 투혼을 가지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최선의 팔에 돌입하기를 바랍니다.

저거 제가 쓰느라고 제가 전투적인 투혼으로 썼어요. 저걸 다시요. 여러분 각자 주시는 가능성이 있어요. 여러분 주시는 은사가 있어요. 그걸 가지고 전략과 계획을 세우고, 믿고, 낙심하지 말고,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고, 어떤 상황에도 절망하지 말고, 전투적인 전투력을 가지고 하나님이 예배하신 최선의 판, 베스트의 판에 여러분들이 그 플랫폼에 올라가기를 소망합니다.

이 명절 기간에 여러분들 이런 마음 가지고 우리 수많은 사람들 이제 가족들을 만날 텐데 열받게 하는 분들이 있어도 마음속으로 최악을 최선으로 바꾸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물론 입으로 표현하지는 마세요. 명절 기간 동안 여러분들, 여러분의 마음이 가볍기를 바라고 설령 발걸음이 무겁다 할지라도 The best is it to come...이것이야말로 큰 그림을 그는 것이야말로 명품 신앙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지금 지금 여러분 어려운 상황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시는지 마음의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에요. 오늘 최선의 상태가 아니라, 최악의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떤 큰 그림을 그리시고 준비를 하고 계시는지, 하나님 나라의 독특한 패턴을 여러분들이 다시 한번 확인해야 돼요. 그러니까 감옥에 있을 때,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준비하고 계신 거예요. 그러니까 요셉에서 그 감옥은 총리직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총리직 준비 학교가 된 거예요. 소위 웹스쿨, 프리페레이션 스쿨, 총리직 준비학교, 모세가 도망자, 실패자, 살인자로서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계획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모세에게 그 광야는 광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명자 학교가 된 거예요. 총리직 준비학교 감옥은 총리 준비학교 사명자학교, 감옥에서 준비할 때 준비학교에 있을 요셉의 인격과 통찰을 하나님 비춰주셨고 광야 삼영학교에서는 모세는 이스라엘백성에서 인도하는 큰 리더십을 배우게 되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없애는 마술사가 아니라, 고통을 녹이고 빚어서 명품으로 성숙시키는 거룩한 연금술사, 창조자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거예요. 그에 따라서 제가 하나 글을 써보았어요. 스펄전이 쓴 글을 제가 조금 더 이렇게 다듬었는데, 여러분이 저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최악의 상황은 나를 영원한 반석으로 밀어붙이는 파도와 입 맞추는 시간이다.

여러분들 못 깨달았어요. 다시 잘 봐요. 그리스도에게서 최악의 상황은 나를 영원한 반석으로 밀어붙이는 파도와 입 맞추는 시간이다. 그 파도는 나를 반석 위로 올려놓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이런 명품 신앙으로 잘 빚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내 인생을 마라라고 하라 하는 나오미가 찬성할지로다. 어려울 때 하나님께서 베스트로 준비하고 계신 것을 믿으십시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인생에 일어난 모든 사건은 20%, 나머지 80%는 그 사건에 대해서 반응하고, 해석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교회 지을 때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요.

그런데 지난 주일날 저 청담동에 있는 어떤 중학교에서 저한테 연락이 왔어요. 목사님, 사랑의 교회 본당에서 우리 중학교 졸업식 하도록 허락해 주세요. 뭐 잘못 들은 줄 알았어? 아니 청담동에 있는 당신학교에서 하지. 뭐라 하냐? 사랑의 교회 안아주심의 본당에서 중학교 졸업한 애들이 다 잘된다고 합디다. 우리 교회 지금 중학교 졸업식 많이 하거든요. 이 근처 서초, 서일, 서일중학교 다 소문이 났어요. 소문이 났어. 이 예배당에서 졸업식 하면 잘 된다. 어떻게 또 그런 건 또 알고 말이야... 이거 지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어요. 최 월스트(Worst)를 베스트로 받을 것이라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장로님기도하셨습니다마는 우리 WEA 미칠 듯이 고생했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공격을 해놓고, 제가 피를 철철 흘렸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월스트를 베스트로,,, 이번 3월에 아부다비에 가서 제자훈련 패키지 우리 집 칼 세미나를 아부다비에 가서 하게 됐어요. 그다음에 6월에는 이게 박수할 일이에요. 박수해도 돼요. 6월 달에는 제자훈련 이 패키지를 가지고 카타르에서 하고, 그다음에 또 6월달 말에는 또 저기 독일에서 하고,,,, 본에서 하고, 이게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이거는 한국 교회사에 없는 일이에요.

우리는 다 부족하게 짜고 우리는 월스트예요. 월스트.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베스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오늘 이 마음 갖고 여러분 평생 하나님의 사랑으로 빚어지고, 어떤 괴로움과 어떤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여러분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사건을 올바로 해석하고, 반응하고, 찬양하므로, From the worst에서, To the best로, And the best of my life is yet to come.(내 삶에 최선 아직 오지 않았다). 여러분 아직까지 여러분의 생에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예배는 아직 오지 않았어요. 올 겁니다. 알겠죠?

여러분? 교회생활도 최선의 교회생활은 아직 오지 않았어요. 올 겁니다. 여러분 인생에 최선도 아직 오지 않았어요. 올 겁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이 최선이 될 것입니다.

-♬주 사랑 한 없고 주 은혜 끝 없네!~~~~~풍성함으로 넘치게 주시며 늘 더 주시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내 주님 서신 발 앞에 나 꿇어 엎드렸으니 그 크신 역사 이루게 날 받아주소서.

요약
-우리가 룻이 베들레헴으로 갔다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인가? 그런데 그것이 세상 역사를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매주 토비새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이 하찮아 보일 수 있지만, 지구의 한 모퉁에서 모라비안 기도 불침번을 우리가 24시간 지키는 것이 작아 보일 수 있지만, 그런데 그걸 통해서 인류의 역사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오늘 이게 복음이고, 우리의 생애가 영적으로 성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그대로 잘 받아서, 우리 인생 앞에 있는 두 가지 길, The best is yet to come(최선은 아직 오지 않았다), The worst is yet to come(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 가운데 우리 모두는 복음적 신앙을 가지고, 십자가 신앙을 가지고, 최선이 오지 않은 것을 믿고, 부끄러운 이력서를 가진 우리의 삶이라 할지라도, 절망과 수치의 밑바닥에서 우리를 일으켜 주시고, 최악의 부끄러운 인생에서, 최선의 부러운 인생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실 줄을 확신하면, 말씀과 같이 3천년을 관통하는 생명의 회복자요, 노년의 봉양자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리라 믿는다. 요셉에게 감옥이 총리직 준비 학교가 되고, 모세에게는 광야가 사명 학교가 되었듯이, 우리에게도 최선의 상황은 하나님의 최선의 준비 학교가 되어야 한다.

명절과 일상의 작은 섬김 속에서 감사하며 찬양할 때, 올바로 해석하고 반응할 때, 순간순간이 우리의 최선이 될 줄로 확신하고, 우리의 생명과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최선을 기다리는 명품신앙인이 되자.

*이번주 교회 기도제목
-우리는 자기 옳은 대로 행하는 야만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인생 반전의 여명'을 열어 주실 것이니, 날마다 주 사랑 한없고, 주 은혜 끝없는 ‘찬송할지로다’의 생애'가 되어야 한다. 굶주림, 죽음, 상실을 경험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내게 예비하신 기업 무를 자를 간절히 사모하고, 나의 눈물과 고통을 녹여 최선의 명품 신앙으로 빚어주실 것을 확신하고, 우리 사랑의교회가 오고오는 수많은 최악사의 실 보고인 (20%)를, 최선의 믿음 보고가 (80%)로 압도할 때, 모든 영 가족 공동체가 거룩한 생명 족보를 계승하는 신앙의 명문가를 이루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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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2월 8일)-(로마서 강해 ③)
제목: "인생의 진면목"
말씀: 로마서 1:18-32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3부)
대표기도: 임영태 장로님
사회: 장단희 부목사님(3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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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8-32,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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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저는 오늘 로마서 강해, 세 번째, “인생의 진면목” 그리고 인생의 민낯, 인생의 생얼을 말씀하겠는데, 여러분들이 1장 오늘 18절부터 32절, 15절인데요. 앞부분하고 뒷부분에 읽었습니다 만은 이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중간은 안 읽었는데 일부러 자우 같이 읽으려고 안 읽었어요. 24절부터 27절까지를 저와 같이 한번 더 함께 교독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보니까, 여러분 로마이 로마 시대인데, 로마 시대의 황제 초기의 황제 15명 가운데 14명이 동성애자들이었어요. 그러니까? 로마의 그 찬란한 문화가 사실은 밑으로는 굶고 썩고 있었던 것이에요. 오늘 이런 말씀들을 통하여 우리 개인적으로도 우리 모두에 오늘 회중 찬송했잖아요. 그 우리 ‘마음속에 더러운 죄를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오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오늘이 말씀을 듣는 본당 별관 또 여러 방송 듣는 여러분들에게 마음속에 수많은 더러운 저들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정결하게 되는 능력을 오늘 체험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이 말씀을 근거로 여러분들이 좀 생각할 기회를 드리겠는데 먼저 17절 앞에 본문에 보니까?

*로마서 1:17a,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

*로마서 1:18,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뭐가 나타났죠? 의가 나타났다. 오늘 18절을 읽었는데 그런데 18절에는 뭐라고 냐? 하나님의 뭐예? 진노가 나타났다. 이 나타났다는 이 단어가 굉장히 강력한 단어예요.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고 복음으로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이 두 가지는 서로 연결가 돼 있고 또 구별도 돼 큰 구별이 있어요. 나타난다는 이 말이 현재 시대 지금 그렇다. 했지만 과거가 아니라 지금 하나님의 의는 피의 복음을 믿을 때마다.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 줄로 믿습니다. 이 말이에요. 지금, 지금 그런데 동시에 하나님의 진노는 창세 때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계속 나타나는 것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는 제일 key와 핵심 중에 하나가 오늘 18절에 뭐라하냐면,

*로마서 1:18,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우리는 진리로 불의를 막을지언정, 불의로 진리를 막는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런데 사실 오늘 현재 가운데 오늘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는 많은 일들이 있는 것이에요. 역사의 진리를 왜곡하는 사람들, 그리고 진리를 거스리고 거짓을 진짜처럼 믿는 사람들, 이 눈물난 일이고 가슴이 너무 아픈 일이고 어떨 때면요. 제가 밤잠을 거칠할 정도로 분통 터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뭐 우리나라는 의미 예민하니까? 우선 미국 얘기 좀 합시다. 미국은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 무신론자들을 대법원 스프림 코트에 대법관을 넣어 가지고, 동성 결혼을 합법화시켰어요. 5대 4로, 2년도 대지되기 전에 바이든 2024년에 바이든은 소위 트랜스젠더를 인정해 버렸어요. 그래서 어린아이들도 성전환 수술이 가능하다. 애들이 뭐 합니까? 애들을 성전한 수술에 가야 돼 가지고 어어 어, 어, 하다가 이 정상적인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현상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에요.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로마서 계속적인 신학적인 제가 얘기했죠. 우리는 선지적인 사도성을 가지고 이런 어려움들에 대해서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진리의 수호자로 은혜받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몇 가지 좀 점검을 해야 되는 거에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점검을 해야 되는데 첫 번째 점검은 18절부터 20절까지 피조물은 핑계할 수 없는 것을 점검해야 되는 것이에요.

I. 피조물은 핑계할 수 없다(18~20절)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없다는 사람들, 하나님이 과연 있겠다는 사람들 이런 무교, 무실론자들에게 하나님은 강력하게 하나님은 도전하시는 거예요. 뭐라고 선포하는가? 쭉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어요. 19절에 보니까,

*로마서 1:19
이는 ①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②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③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이 단어도 강한 단어입니다. 어리 버리한 단어가 아닙니다. 딱 정신 차리면 깨달을 수 있는 단어인데 하나님이 우리 속에 하나님을 알 만한 계시를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뭐 옛날 뭐 신학처럼 보편 계시 뭐 특별 계시는 얘기 말씀하는데 사랑하는 교회는 훈련받은 분들 많이 계시기 때문에 웬만큼 얘기합니다. 알아들으니까? 여기서 제가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고 그래요. 핵심은 이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도록, 하나님을 믿도록 핑계하지 못하도록 외부 계시와 내부 계시를 주셨어요. 외부 계시는 뭐냐?

자연 삼라만상(參羅萬像)을 보세요. 저 은하의 신비를 보세요. 저 야생과 들꽃의 아름다움을 보세요. 흘러가는 깨끗한 물들을 보시고 폭우가 쏟아지는 걸 보시고 천둥번개를 보시고 이 세상의 모든 중력의 법칙을 보십시오. 중력의 법칙을 하나님이 지으셨는데, 그걸 거부하고 20층쯤 되는 건물에 올라갔고 나는 중력의 법칙을 믿지 않는다고 20층에서 딱 걸어나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제가 그냥 장문 열고 나가는 걸 다. 생략했습니다. 그러나 떨어져 죽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주 과학자들, 미국의 나사 본부의 우주 과학자들 가운데 그 본부장들 그 책임자들이 거의 대부분이 크리스천들이에요. 삼라만상 우주의 광대 무변한 우주를 보면 그 외부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도록 핑계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이에요. 내부 계시는 뭡니까? 인간이 전 세계 어디서 태어나더라도 거짓말하면 되는 거 됩니까? 안 됩니까? 거짓말하고 즐거워. 나는 I very해 happy. Happy with 거짓말하는 거. 그렇게 됩니까? 인간은 거짓말하면 가슴이 아프게 돼 있는 거예요. 인간은 사람을 죽이면 그 죽이는 것 자체가 잘못인 것을 알게 되 있는 것이에요. 맞습니까? 양심적으로 돼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외부의 시와 내부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 믿지 않는 거 핑계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어요.

그래서 여러분 우상숭배도 너무 나쁜 거지만 진짜 악한 것은 무실론자들이에요. 우상 숭배자들은 그래도 나쁜 거지만 자기보다. 더 높은 권위 부복하는 거예요. 근데 무실론은 지국에서 가장 극단적이고도 부자연스러운 철학이에요. 무실론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창조 질서와 인간 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분명한 치리를 확실하게 부정해야 하니까? 자신의 양심에 있는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의도적이고도 반복적으로 불의를 지리로 가로막는 역할을 하니까?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불리로 치리를 막는 사람들의 죄목들이 쫙 나오고 있어요. 21절부터 23절까지 이렇게 나와 있어요. 역동적으로 바울이 이걸 고발하고 있는데,

II.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세 가지 죄목 (21~23절)

-21절에 첫째
*로마서 1:21,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첫째, 감사하지 아니한다.
-이 제목 앞부분에 뭐냐면 먼저 감사하지 않는 제목이 있어요. 감사하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이 감사가 죄가 되구나, 감사가 문제가 되구나, 많은 죄들이 감사하지 않는 출발했구나. 이거 웬만큼 알지만 -여러분이 절감하셔야 돼요. 예를 들어 이런 거예요. 오늘이 본당에서 누가 휴대폰을 잃어버렸어요. 잃어버렸는데 그 그걸 가지고 이제 휴대폰을 찾아서 그 휴대폰 당장 전달해 줬다고 하십시다. 우리가 인격을 가진 그런 분들이라면 아이고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제가이 참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거 바꿔도 흥! 이러면 되겠어요? 그게 그거는 그거는 그거는 무례하고 교양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들은 삶의 귀하고 좋은 것들에 대해서 출차를 표시하는 거예요.이 모든 귀한 것들은 Made in God(M.I.G)예요. 예. made in church, made in God, 표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는 교만한 사람들은 출처 표기를 안 합니다. 출처 하기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출처를 하나님께 돌리고 감사하는 순간, 자기 어떤 주장, 자기 주권이 줄어든다고 생각, 자기 통제가 줄어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러분 인간은 감사할 이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감사하면 내가 작아지니까? 감사하지 않는 헛똑똑 많아. 감사하면 내가 작아지니까.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22절 두 번째,
*로마서 1:22,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둘째, 스스로 지혜있다 주장한다.
0스스로 지혜 있다. 스스로 지혜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참 재밌는 것 중에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가장 흥미로운 사실 중에 하나는 거의 예외 없이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에요. 소위 고등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전 세계 수많은 명문대학에 똑똑한 교수들 가운데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무실론 자들이 많아요. 왜? 감사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 예수 믿는 이런 신앙인들을 저 뭐 명문대학 있는 교수들이 모욕하고 공격하고, 너는 뭐 주체성이 없다. 너는 가치관에 틀렸다. 그런 식으로 얼마나 그렇게 해 소위 헛 똑똑이들이 너무 많아. 왜?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세 번째 바울의 고발은 첫 번째는 감사하지 아니하고요. 크게 보면 두 번째로는 뭐예요? 스스로 지혜 있다고. 세 번째는 뭐라고 하느냐?

23절, 세 번째,
*로마서 1:23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거부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의 우상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느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동물의 모양으로 바꾼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우리는 하나님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게 돼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게 되지 않으면 다른 것을 믿는 것이에요. 사람은 그렇게 돼 있는 거예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다른 것을 예배하게 되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예배하지 않으면 예배할 다른 대상을 계속해서 찾아내 가지고 엉터리로 예배하고 거짓 신을 만들어서라도 예배하게 되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 대신에 어떻게 새와 짐승과 파충류와 동물들의 형상대로 우상을 만드는 거예. 대표적으로 이집트에 과거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 옆에 보면 파라오들이 관을 썼는데 그건 뱀이 나오고 말이죠. 그 무슨 새가 나오고 있잖아요. 로마도 마찬가지고 형편 없는 것을 가지고 우상숭배 하는 거예요. 동남아시에가 보면 기가 찬 거예요. 여러분 캄보디아에 제일 자랑하는 것이 그 레벨 앙코르와트 가보면 쫙 보면 그 앞에 있는 둥근 쫙 있는 것이 그 전부 다. 뱀들이에요. 뱀을 숭상하는 거예요. 어떻게 인간이 파충류를 숭상할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날 가장 큰 숭배가 뭐냐? 지적인 자기 자신이 자기가 똑똑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요한 캘빈은 기독교 강료에서 좀 쉽게 표현하면

●인간의 본성은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과 같다. -요한 칼빈-
-인간은 본성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쉬지 않고 우상을 만들어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우상 공장이나 거짓과 불의의 공장이 되면 안 되고 진리 공장이 돼야 할 줄 믿습니다. 예. 핑계 공장 되면 안 되고 감사 공장이 돼야만 하는 것입니다. 진리 공장 공장은 예수님이시고, 간장 공장 공장은 김공장이고, 불의의 공장 공장은 사막이에요. 사탄 마귀 귀신. 우리는 진리 공장 공장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지. 불의공장 공공장이 사탄마귀를 따라가는 것이에요. 아니 사탄 마귀 귀신을 따라가는 것이에요. 지금 국회에서 법을 만드는데 국회에서 만드는 법을 불의 공장의 제품이 되면 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회가 진리 제품을 만드는 진리 공장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런데 똑똑하다는 사람들 자기들이 만든 우상을 우상이라고 부르잖아요. 자기들은 우상 누가 우상이라 그러겠어요? 이거는 뭐라고? 똑똑한 사람들이 이거는 우상이 아니라, 이거는 가치관이야. 이거는 우상이 아니라 지적인 합리적인 선택이야, 이것은 자기 숭배가 아니라 내 자아실현이야. 이렇게 말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자신의 지적 체계 넣으려고 하고 제안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결과 21절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로마서 1:21,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 버렸어요. 마음이 어두워져 버렸어요. 마음이 어두워져 가지고 선악을 구분하는 분별력이 없어져 버렸어요. 왜? 진리로부터 멀어지니까, 스스로 도덕적 암흑 속으로 떨어져 가지고 지성이 혼탁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은 자신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마약, 낙태, 부패한 정치, 조직 범죄, 아수라, 하나님의 진리의 빛이 꺼져 가지고 선악을 불변하는 것이 없어지니까, 어둠 속에서 헤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제가 보니까? 작년 한해 동안 작년에 동안 마약, 낙태 이런 것 때문에 자녀가 한해 동안 전 세계 낙태된 아이가 몇 명쯤 되는지 아세요? 전 세계에 지난 한해 동안 낙태된 아이들이 7,300만명이에요. 조금밖에 안 놀라시네?. 7,300명, 마음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24절부터 32절까지 이제 이런 일들이 일어나니까? 우리에게 1단계 악몽, 2단계 악몽, 3단계 악몽이 와 버렸어요. 더 이상 우리가 악몽을 경험하면 안 되는데 그래서 우리가이 악몽을 경고로 받아들여 갖고이 복음적 진리에 대해서 눈을 떠야 할 줄 믿습니다. 이런 결과 때문에 인간이 경험한 악몽들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가? 24절부터 25절,

*로마서 1:24,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내어버려 주셨다. 그리고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고 24절에 내어버려두사,

*로마서 1:24 내버려 두사
*로마서 1:26 내버려 두셨으니
*로마서 1:28 내버려 두사
-이게 악몽이에요. 최악의 악몽은 하나님의 인간 육기 내어버려 두신 거예요. 영어로 give up, 포기하신 거예요. 하나님을 거부할 때 하나님의 심판의 핵심이 뭐냐면 그들이 그들의 계획대로 지 맘대로 살도록 내어버려 두신 거예요.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내어버려 두신 거예요? 우리 하나님은 완벽한 인격자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로보트로 삼은 것이 아니에요. 인간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셨어요. 누군가가 하나님 없이 살기를 결정하면 하나님 그래 그러면 너 나 없이 살아보라. 이렇게 하신 거예요. 결국은 악몽에 빠지고 시궁창에 빠지겠지만 이것이 결국 너의 결정이니까? 존중하겠다. 그런 하나님의 음성이에요. 오늘 우리에게 이와 같이 악몽에 대한 도전을 하시는 이유는 목자의 심정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고등을 켜시기 위하여, 경고등을 작동시키는 거예요. 심각한 경고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표현의 다른 표현이에요. 그러니까? 오늘이 경고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안타까운 하나님의 심정인 줄 믿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불조심 경고 사인, 절벽에 떨어지면 죽은다는 경고 사인, 저는 어때 목사의 아들이니까? 너는 담배 피우면 안 돼 너는 뭐 술 먹으면 안 돼, 뭐 이런 거 누가 말 안 해도 저는 그걸 제 개인의 경고로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저는 술 담배 이런 거 뭐 갖고 구원에 대한 얘기는 아니지만 나는 내 목회자의 아들로서의 내 삶의 어떤 경고등으로 받아들인 거예요. 여러분 제가 부족하고 연약한 건 많이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제 삶에 하나님의 수많은 경고들이 있었어요. 경고들이 있었어요. 그 경고를 제가 경고로 받아들인 거예요. 그래서 지금 제가 여러분 앞에 이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나누고 있는 것이에요. 1단계 범죄도 나쁘고, 2단계 범죄도 나쁘고, 3단계 더 최악인데 오늘 1단계 2단계 3단계를 잠깐 얘기해 볼게요.

1단계는 첫째는 성적인 부도덕이에요.
*로마서 1:24,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4절부터 시작했는데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의 마음의 뭐대로? 정욕대로 더러움에 어떻게 했어요? 내어버렸더라. 그들을 서로 욕되게 하셨다. 정욕대로 살도록 내어버려 주셨어요. 로마에 가면 로마 신전이 있어요. 신전에 마지막은 어떻게 되느냐? 남창과 여창들, 거기서 난교가 벌어지는 거예요. 그럴수록 그 내면이 더 황량해지는 거예요. 부적절한 성관계는 우리 내면의 황량함을 더 부추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적인 관계가 깊어지고 깊어질수록 여러분 더 만족이 없는 거예요. 항상 그게 성적인 문제는요. 대게 성적인 문제는 뭐냐면 거짓과 사기와 연결이 돼 있어요. 그 속이는 것이에요. 자신을 속이고, 서로를 속이고 배우자를 속이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에요. 그래서 25절에 그 결과를 설명한 거예요.

*로마서 1:25,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자기 자신을 더 경배하는 거예요. 하나님 없이도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속는 거예요. 거짓의 삶, 하나님 없는 삶, 지상에서 드디어 지옥을 경험하기 시작해요. 이걸 하나님이 일단 놔두시는 거예요. 우리의 인격을 믿고 놔두시는 거에요..

2단계는 공개적인 동성애에요.

*로마서 1:26~27
26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부도덕이 동성애로 이어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에요. 인간은 더 큰 자극을 요구하 제가 늘 말씀드리잖아요. 20 27절 다시 보여줘. 여자들 순리 역리, 남자 순리 역리, 여러분 동성애는 순리입니까? 역리입니까? 역리예요. 이성에는 역리입니까? 순리니까? 순리죠. 이상해. 남자와 여자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나님의 하나님의 순리예요. 늘 말씀드리지만 우리 육체는 이 성적인 문제 이런 건 대우하면 대우할수록 더욱 버릇이 없어져요. 대우하면 자극이 올수록 더 큰 자극을 요구하는 것이에요. 인간의 정력을 채우기에 충분한 성적인 것은 없어요. 더 항상 더 큰 작을 한계가 어디까지, 끝까지가 버리는 거예요. 정의 문제는 수학 체감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에요. 더 큰 갈등을 갖는 것이 더 큰 자극을 원하는데 결국 그 끝은 항상 동성애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로마가 동성애의 온상이었다고 말씀드렸죠? 로마의 수많은 우리가 존경했던 수많은 철학자와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 자들이었어요. 그리고 로마 이제 다음 주에 제가 말씀드렸죠. 로마가 로마의 6-70%가 노예들이었어요. 그리고 귀족들이나 잘 사는 사람들이 이제 여유가 생겼어요. 옛날에 전쟁도 하고 이러다가 여유가 생겼어요. 그러니까? 사람은 항상요. 여유 생기면 사고 치는 거예요. 고3, 중3, 고3이 항상 방학 때 사고 치는 거예요. 인생이 방학일 때 사고 치는 거에요. 그래 갖고 그 노예들이 다. 해 주니까? 나중에 여러분 로마의 귀족과 로마의 왕족들이 전부 다. 많은 분들이 동성애자가 되고 그리고 동성애의 끝은 소아 성애자가 되는 거예요. 오늘날 우 우리 우리 이 시대에도요. 여유 있고 돈 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이이 단계로 올라가 버린 거에요. 이 단계로 유아 성애자들을 말씀한 대로 초기 로마 황제 15명과 14명이 동성애자였고, 그들 중에 일부는 아주 노골적이었고 변태적이었어요. 아, 왜 그런가? 기준이 사라져 있기 때문에, 선을 넘어 버린 것이에요.기준이 사라졌기 때문에 가면 안 되는 것을 가는 거예요.

오늘 우리는 선지적 사도성을 가지고 우리를 미래를 예측해야 돼. 대한민국은 한국 교회 때문에 선을 넘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아까? 말씀드렸지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가고 발을 뒤면 떨어져 죽는 거예요. 박살이 나고 피범벅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이런 면에서 제가 말씀 도파민이 역습한다고, 여기서 우리는 오늘 사랑의 교회는 한국 교회는 차별 금지법과 동성애들을 놓고 명확하게 우리가 선포해야 할 일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우리가 왜 차별 금지법을 반대합니까? 차별 금지법이 동성애 확대법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차별 금지법이 동성애를 용인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동성애를 확대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데 여러분,

●동성애는 생물학적 필현이 아니라 의지적인 선택이에요.

-결국 그게 자기 결정이에요. 태어날 때부터 뭐 그런 거 뭐 예외가 있을 수 있다. 그건 제가 평가하지 않겠어요? 오늘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뭐라 그러냐? 여자들은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고 역리로 쓰고,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로마서 1:26~27
26 그들의 여자들도 순니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그래서 동성애는 순리를 영리로 순리의 관계를 거꾸로 부자연스럽게 의도적으로 바꾸는 것이에요. 옳은 것을 버리고 그랬던 것을 택하는 의지적인 선택이에요. 창조 질서를 뒤 없는 행위에 철저히 역리적이고 자연에 반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결국은 거기에 대한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광범위한 동성애와 차별 금지법 재정은 하나님 없는 것의 전형적인 징조가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울의 핵심 논리이고 바울의 고발입니다. 시대를 향한,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무너질 때 하나님의 심판으로 광범위하게 치닫고 있는 것의 대표적인 것이 동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PC, 정치적 올바름, 폴리티컬 크니스, 우리가 정치적 올바름을 얘기하는데 그렇게 그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데, 정치적 올바름, 동성애 반대자들, 동성애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인간이 혐오자라고 막 공격하고, 여러분 우리가 동성애 하는 사람을 하는 거 욕하는게 아니에요. 그분들 너무 안타깝고 그분들을 너무 영적으로 보면 참 결국 그 말로가 어떻게 되지 뻔히 아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우리가 반대하는 건 뭐냐면 동성애가 성경 자체 동성애자는 우리가 정말 한한 사람 한 사람 귀하지만 동성애 자체는 바울이 고발한 대로 그것은 뭐라고 얘기합니까? 생물학적 필요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의지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이것은 죄라는 것이에요. 알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지금 미국의 연합 장로교다. 그다음에 미국의 감리교다. 성공회다.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다. 난리에 교단에서 교단 내에서도 동성애를 반대하면 근본주의자로 찍히고, 미국 감리교 같은 데서는 한국 한국 목사님들 동성에 반대하는 한국 목사님들 쫓겨나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요. 심지어 지금 세계 복음주의 교회의 보수적인 어떤 그 마지막 프론트라인이라 미국의 남침례교 안에까지도 사던 백티스트 안에도 이런 일들이 영향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이 자리에서 사랑의 교회와 한국 교회는 한국 교회에 받은 은혜를 우리가 기억하면서, 우리는 선지적인 사도성을 가지고 명확하게 선포를 해야 돼요. 동성애 차별 금지법은 잘못되었다고. 교회가 침묵하면 안 되는 것이에요.

이제 이 시대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인 거예요. 우리 선대의 어른들은 선대의 옥목사님 시대는 이런 거 이렇게 심각하게 얘기 안 해도 됐어요. 근데 우리 시대는 지금 이걸 우리가 이걸 책임을 지야 되는 거예요. 이게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이게 이게 이게 잘못됐다는 걸 말해야 되는 거에요. 우리 시대에 해야 할 일인데, 근데 이걸 우리가 포개하고 우리가 침묵하고 공범이 되면 안 될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근데 이걸 우리가 잘못하면 나중에 청구서를 지불를 해야 돼요. 27절 끝부분에 제 얘기가 아니고 다. 같이 보겠습니다.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청구서 지불해야 돼요. 우선은 그 개인적으로 자기 혐오, 자기 혼란, 자기 불확성, 동생애 하고 난 다음에 얼마나 허무할까요? 정서적인 보응을 받고, 성병을 갖고, 에이즈를 갖고, 수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그들 자신이 받는 거예요. 오늘이 진리에 대해서 물에 물타듯한 태도는 성적인 혼란을 낳고, 결국 창조 질서를 통한 순수한 힘이 온갖 혼동과 파멸을 가져오는 것을 기억하고, 1세기 로마인들이 잘못된 그 우를 대한민국 교회와 대한민국은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1단계, 2단계, 성적인 부도덕, 공개적인 동성애, 3단계 이제이 3단계가 사회 전체가 붕괴하기 직전에 마지막 단계가 되는 것이에요.

3단계는 붕괴 직전의 사회.

-28절부터 32절이에요. 32절에 그들이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뭐예요?
*로마서 1:32,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두 번째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 어떻게해요? 옳다. 하느니라. 옳다. 하느니라. 기가 막게 말씀이 기가 막혀요. 무슨 일이 벌어진 겁? 다시요. 다시 어떻게 한다고요? 옳단다. 옳단다. 모든 도덕과 모든 기준이 상실되는 아주 처참한 상태가 되는 것이에요. 21가지,,, 29절부터 31절까지 인간들이 짓는 가지 쫙 나오는 가지 악 이게 악덕 목록이에요. 이게 범죄 죄악 리스트예요. 악덕 목록, 알고도 반영하는 거예요
*로마서 1:29~31,
곧 모든 ①불의, ②추악, ③탐욕, ④악의가 가득한 자요 ⑤시기, ⑥살인, ⑦분쟁, ⑧사기, ⑨악독이 가득한 자요 ⑩수군수군하는 자요 ⑪비방하는 자요 ⑫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 ⑬능욕하는 자요 ⑭교만한 자요 ⑮자랑하는 자요 ⑯악을 도모하는 자요 ⑰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⑱우매한 자요 ⑲배약하는 자요 ⑳무정한 자요 ㉑무자비한 자라
-악동 목록은 불의로 치리를 가로막는 사람들의 민낯잉ㅅ. 생얼인 것입니다. 드디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사야 선지자가 예고한 대로 이사야 5장 20절을 다 같이 보겠습니다.

*이사야 5:20,
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무슨 말입니까? 선을 선이라 부르지 못하고 악을 악으라 부르지 못하고 홍길동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호부호형), 가장 큰 문제는, 가장 큰 문제는 언어가 무너진 것입니다. 언어가 무너지는 것, 이게 왜 문제가 되는가? 언어가 무너지면 회개(悔改)문이 다치게 됩니다. 왜냐면 회개는 내가 악을 행했다는 자복에서 시작되는데, 언어가 뒤집혀 지면 더 이상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에요. 이게 지금 현 대한민국과 전 세계 문제가 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모든 전반적으로 언어가 무너지는 거예요. 이럴 때 죄는 더 이상 죄가 아니라 그저 선택의 문제가 되어 버려요. 책임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회개라는 단은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언어로 변질되어 약함과 자기 부정의 패배를 의미하는 수치스러운 것이 돼 버리기 때문에, 그냥이 언어가 무너지는 거예요. 정의라는 거죠. 진짜 정의와 진리가 있는데 이게 무너져 버리니까? 우리 편에 아는 사람은 다. 정의가 아니에요. 극단적인 분열과 진영의 싸움이 시작되고, 분열과 평가력의 문제로 정의 정의라는 단어가 그냥 하락돼 버렸어요. 패거리로. 그래 진리와 성경적인 언어가 공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악을 악이라 하지 못하고 선을 선이라 하지 못할 때, 언어가 무너진다.
악이 선이 되고 선이 악이 되는 사회에서 죄, 회개, 정의는 오히려 선택, 혐오, 분열로 치부되고, 개인과 공동체가 치유와 회복의 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저는 한 번씩 그래가죠. 언어가 시대를 만든다고, 용어가 시대를 만들고 언어가 사람을 바꾼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 언어 사용을 굉장히 절제하고 조심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리고 이 언어가 제대로된 언어로 이 정착할 수 있도록, 첫 우리가 23년 전에 특새할 때 그때 주여 내 믿음의 전성기를 주옵소서. 진짜 전성기는 내가 돈 많이 벌고, 애쓰고 수기 전성기가 아니라, 은혜를 받는 것이 전성기다. 그 말이에요. 주여, 내 생명에 기적을 주옵소서. 진짜 기적은 세상의 미라클의 기적이 아니라, 내 생명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기적이다. 이 말이에요. 교회여 생명의 문을 활짝 열라. 새로운 미래를 향한 복음을 통한

새로운 토대가 준비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런 것이 언어 언어의 정상적인 언어의 회개입니다. 바울은 인간이 완전히 하나님을 떠나면 처음에는 자신들이 잘못된 것임을 압니다. 그럼에도 죄를 짓는 거,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가해자들, 죄악 된 사람들을 칭송하는 거. 이게 가장 극악이라는 거예요. 오늘 지금이 상황이 잘못된 것을 칭송하는 이 세 번째 이 상황에 도달했어요.이 바닥은 악이 선이 되고 선이 악이 되는 지점이 되었어요. 가해자들 소위 악을 행하는 자들 비진리가 공개적으로 칭송받는 반면에 하나님의 질서와 참된 도덕을 수호하는 자들이 비난을 받는 바닥이 된 것이에요. 제가 오늘 용어를 하나 만들었어요.

●진리가 교수도대에 서고, 불의가 왕자에 앉는다.
-비참한 상황이 된 것이에요. 이런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사형 선고를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보란 뜻이 이런 일들을 계속하고 있는 거예요. 다시요. 진리 진리가 교수도에 서고 불리가 왕자에 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영가족 여러분 이게 최악의 밑바닥이에요. 소위 악이 공개적으로 칭송받는 것이에요. 이 지점에서 사회의 도덕은 무너지고 거꾸러지고 뒤집혀 지는 것이에요. 저는 대한민국이 이 자리까지 가지 않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 막장까지 가지 않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뭐냐? 하나님 없는 무실론자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 하나님 없는 가해자들. 하나님 없는 프레임 전문가들이 오늘이 사회 핵심 영역인 교육과 미디어의 미디어를 거의 장악해 버렸어요. 하나님 없는 프레임 전문가들이 오늘이 시대에 미디어와 교육을 거의 장악해 버렸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질서와 도덕적 통제를 거부해 버렸고 스스로 정의가 된 것이에요. 예를 들어서 국회가 동성애를 정상이라고 통과하려고 하는 거 그거 자체가 뭐예요? 진리가 교수대에 선 것이에요. 그런데 그걸 반대한다고 그래서 징계를 주고, 교회를 핍박을 하고, 이것은 사회적인 가치가 뒤집어져 버렸어요. 지금 옳고 그럼의 차이가 뭔지 분명히 나타나지 않는 하나님 없는 저 밑바닥에 우리가 도달할까? 봐 저는 그것이 제일 걱정인 것이에요. 오늘 우리는 선지적 사도성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악이 선이 되고 선이 악이 되고 비진리가 공개적으로 칭송받고 불리가 왕자의 자리에 앉는이 최악의 현실이 우리 앞에 오지 않도록 우리가 진리로 무장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우리가 WEA 세계 복음주의총회를 작년에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게 잘 모르는 사람들이 공격하고 이상한 소리를 많이 해도 우리가 꿋꿋하게 지켜나는 이유가 뭡니까? WEA 세계복음주의총회에 확실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 이시다. 성경은 절대 권리를 갖고 있다. 차별 금지법, 동성애법은 통과하면 안 된다. 전 세계 유일하게, 앞으로 50년 100년 뒤에도 할 수 없을 유일하게 그렇게 선포한 것인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이 말씀을 하면서 저도이 말씀을 얼마나 제가 마음이 무겁겠어요. 저도 이렇게 설교를 하면서, 저도 값을 치러야 하니 얼마나 많이 무거운지, 대한민국이 로마서 1장에이 경고를 저버리고 악을 따른다면 우리나라는 쇠퇴하고 낭떨어지에 떨어질 것입니다. 한 국가가 선 대신 악을 선택하고 비진리를 왕자에 모시면 그 나라는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도록 할 것입니다. 스스로 붕괴할 것입니다. 나치가 그렇게 했고 레닌의 공산주의 혁명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한때 중국이 미국을 조롱했어요. 미국의 홈리스트를 조롱하고, 어 막 그 조롱해. 그 중국은 뭐 뭐 잘한다. 잘하고 있다. 공산주의 잘하고 있다고. 그런데 사실은요. 중국은 문화 혁명을 통하여 수천 명의 사람을 죽인 나라입니다. 수천만 명을 하나님 없는 유물 사상을 가지고 살인한 나라입니다. 우리는 결코 그런 사회주의 나라가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경고 앞에 그래도 우리가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요. 그것이 뭐냐? 오늘 우리가 이런 복음을 듣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놀라운 바울의 지혜로운 복음 선포를 통하여 우리는 제3, 막장까지 내려가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는 경고등이 뭡니까? 정말 아 우리는 망하게 되었도다. 사람이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찾는 가장 중요한 시점이 언제?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우리 희망이 없도다. 우리는 하나님밖에 없도다. 라고 눈을 뜨고 앞뒤 자우가 다. 막힌 곳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열린 눈을 가지고 하나님 손을 들고 주님을 바라볼 때, 그때 복음의 능력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이 하나님의 경고 사회를 받고 주님 우리 나라가 이런 나라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이 말씀을 진리를 우리가 순종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어제도 새벽에 7천 기도 용사가 이 새벽에 토요일 새벽에, 전세 전 세계에 토요일 새벽에 다 자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진리의 횃불을 들고 진리의 수호자가 돼 가지고 전투적 투혼을 가지고, 대신 전투적 비폭력 폭력은 우리가 안 쓰지만 전투적 투혼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지켜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다음 세대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제가 이 사도적 선지성을 가지고이 마음의 확신을 가지고,,, 주여 오늘 이 자리에이 말씀들 여러분들 때문에 이 나라가 지켜지게 하여 주옵소서. 복음의 전사가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말씀의 선봉장이 될 수 있도록 한 분 한 분 말씀의 기름 부으심으로 무장하고 이 시대 앞에 진리의 수호자로 담대하게 나갈 수 있도록 사랑 교회와 대한민국 교회 성도들을 기름 부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요약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준엄한 경고 가운데 우리가 사실 피고석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지만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이 목록에 적힌 21개의 악형을 저지르지 않았다. 할지라도, 우리의 부패한 본성은 그럴 가능성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소원하자. 불의로 진리를 막는 이 잘못된 사회를, 우리가 진리의 선봉장으로, 진리의 수호자로 서야 한다.
-기도제목
불의로 진리를 가로막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시대에 가정과 학교와 일터에서 ‘M.I.G.(Made in God) 인생’이 되어서 ‘모든 출처를 하나님께로 돌리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허망한 자기숭배와 우상숭배’를 가치관으로 위장하는 시대에 우리를 ‘강력한 보혈의 능력’으로 새롭게 해주시길 간구하며, ‘거룩한 진리 공장, 핑계 없는 감사 공장’으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 사랑의교회가 ‘침묵하지 않는 선지적 사도성’으로 거짓된 시대 언어를 치유하며 엎드릴 때, 한국교회가 대한민국을 살리는 ‘보혈 복음의 전사’로 우뚝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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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1월 25일)-로마서 강해(1)
제목: “로마서의 산에 들어가십시다”
말씀: 로마서 1:1-15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1부)
대표기도: 이지형 부목사님 (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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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15,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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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부터 로마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로마서는 기독교의 영광스럽고도 놀라운 진리를 압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로마서를 성경의 다이아몬드다. 그 이유는 복음의 핵심 진리를 가장 논리적으로 체계적으로 집대성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이아몬드처럼 정교하게 세공된 말씀입니다. 오죽하면 신약을 압축하면 로마서가 된다 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따라서 로마서를 소화하여 저와 여러분의 것으로 삼으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구원의 역사에 거대한 흐름을 거시적 관점에서 매크로 하게 또 미시적 관점에서 마이크로 하게 소화하고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4복음서는 예수님의 복음을 보여주었다면 로마서는 예수님의 복음을 시대에 맞게 해석하고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 강력한 해석이 얼마나 큰 설득력이 있었는지 당대 그 당시는 그레코 로만, 특별히 그리스 로마, 그리스 헬라적 사고방식 철학과 모든 사상이 헬라적인 것이었는데. 헬라적 사고에 물들어 있던 사람들에게도 이 복음서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로마서를 통하여 논리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도 이 생각의 혁명과 삶의 혁명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갑자기 앞에 너무 거창하지요 예 그래서 오늘 제가 이 로마스 강의를 지난번에 서론 격으로 함하고 난 다음에 우리 교회 다라방 다라방마다 목사님 이번에 우리 다락방에서 로마서를 10번 읽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에 그렇지 한 달에 한 번씩 읽으면 12번 읽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 로마서를 여러분 앞으로 쳐도 뒤로 쳐도 다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여러분 영안을 열어주시고, 또 로마서를 여러분의 생애 말씀의 양식으로 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설교의 제목을 "로마서의 산에 들어가십시다." 그렇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설악산에 간다 그랬을 때에 설악산에 갈 때 어떻게 갑니까? 그냥 갑니까? AI를 또 혹은 이렇게 인포메이션 보면서 설악산에 대한 SNS 통화의 지식을 듣고 그렇게 설악산에 가죠. 저는 39살 때까지 설악산 한 번도 못 가봤어요. 나중에 39살 때 설악산을 갔는데 제가 생각하던 설악산하고 다르더라고요.
 
가보니까 가니까 설악산에 여름에는 비선대 물에 발을 담글 수 있고 가을은 단풍이 너무 아름답고 겨울에 지금은 눈이 참 특별하잖아요. 실제로 본 설악산은 제가 알고 있는 설악산과 달랐다는 것이에요. 마찬가지예요. 실제로 본 로마서의 산에 들어가면 여러분들이 옛날에 생각하던 로마서의 어떤 나름 알던 로마서의 나무, 로마서의 폭포가 아니구나 라는 깨닫게 될 겁니다. 지금 말한 대로 설악산의 여름, 겨울 혹은 가을을 이렇게 다른 것처럼 제가 보면 얘기하는 게 봄은 한 번도 안 가봐서 그래요. 이번에 제가 여러분 부탁드린 것은 로마서 시리즈를 하는 동안에 여러분의 삶에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신고 직접 로마서라는 산에 등장하셔야 돼요.
 
들어가면 첫 번째 먼저 깊고 높은 신학의 봉우리를 만나게 될 겁니다. 뭐에 봉우리를 만난다고요? 신학의 봉우리, Thealage, 또 인생의 감동과 변화를 주는 아름다운 꽃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가슴 뛰는 선교의 폭포도 만나고 또 우리에게 수많은 신뢰를 주는 동력자 들을, 동력자 들이라는 튼튼한 바위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시원하게 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눈도 만져보시기를 바랍니다. 한마디로 이전의 선입관을 버리고 로마서의 산에 제대로 들어가면 혁명적 삶이 혁명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I. 로마서의 산에 제대로 들어가면, 혁명적으로 삶이 변화된다.
-우리가 로마서의 산에 들어가서 혁명적으로 변화되는 이유가 뭐냐? 그 이유는 로마서의 산에 들어가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한 인격과 마주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뭐와 마주친다고요? 인격을 마주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서 특별하게 인격성에 대해서 예수님의 인성이라는 인격 예수님의 신성이라는 인격에 대해서 아주 신비한 건데 이걸 만나게 되는데 먼저 여기에 대해서는 예수 그로서의 인격성에 대해서 이렇게 명료하게 말씀하는 2절에 다 같이 보겠습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예수님은 구약에서 미리 약속하신 분으로 구약에 뿌리를 둔 분이에요. 갑자기 나타난 분이 아니세요. 제가 감히 단언하건대 세상에 어떤 종교 지도자도 이런 주장을 못 하는 것임 할 수도 없습니다.
 
인격을 가지신 예수님만이 이런 예언을 하시고, 성취하신 분이기 때문에 독보적인 인격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여기에 대한 증명을 하겠습니다. 먼저는 3절에 보니까,
 
*로마서 1:3,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예수님은 그의 아들에 관해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 그러니까 인성을 지니신 인격자이시다. 그다음에 4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느냐,
 
*로마서 1:4,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신성을 가지신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해서 구약에 선포된 미리 선포된 것 독보적이시고 그 다음에 인성과 신성을 가진 인성과 신성을 가진 인격적인 분이시다. 다윗의 자손으로 인성을 가지시고 그다음에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여 능력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로 신성을 가지신 분이다. 그러니까 인성과 신성이 결합된 독특한 인격성을 갖고 있다. 바울의 입장에서는 이걸 언제 깨달았는가, 바울이 다마스커스로 가는 말을 타고 가다가 거기서 거꾸러져 가지고 하늘에서 빛이 나오는데 하늘에서 빛이 나오는 놀라운 하나님의 신성을 경험하면서 누구십니까? 그러니까 나는 너가 핍박하는 예수 그리스도다. 인성을 지신 음성을 가지고 소리를 들었어요.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도 바울은 만나게 된 거예요.
 
인격적인 주님을 만나면 바울처럼 혁명적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는 것을 믿으시기 바라는 것이에요. 기독교의 독특성은 뭐냐면 인격성인데 만일 예수님을 추상적인 신성이나 도덕적인 이상 정도로만 축소하면 복음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라, 개념에 불과하게 되는 거예요. 늘 말씀드리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은 추상적인 사상이나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예수님의 인격을 신뢰하는 것이에요.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에요. 오죽하면 인격성의 이 친밀한 관계를 뒤에 로마서 8장 15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느냐,
 
*로마서 8장 15절,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인격의 관계가 양자영 자녀가 되어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을 뭐라고 부른다고요?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실 정도로 여러분 자녀와 자식과 아버지의 관계란 이건 뭐 뭘 말할 수 없는 인격적인 관계 아닙니까?
 
아빠 아버지라고 자녀가 부모 부모와 맺는 가장 친밀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자녀의 관계인데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단지 교류적인 세계나 도덕 원리로만 이해한다면, 신앙은 이념과 사상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경 곳곳에서 예수님의 인격성을 드러내고 있는데,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치유하시는 고통을 공감하시는 인격 이신 주님을 믿습니다.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식히시는 겸손과 온유의 인격임을 우리는 확인하게 됩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는 이 순종하는 인격,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주시는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시는 인격, 따라서 우리는 이 인격적인 예수님을 교제하면 이 믿으면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에요.
 
오늘 바울 사도도 이 주림을 신성과 인성으로 만나게 되니까. 그의 야비하고도 사람을 때려 죽이고 스바를 때려 죽이는 그런 인격이 얼마나 놀라운 인격으로 변하느냐, 5절 뒤어 보니까, 예수님을 순종한 인격이 되게 하시고, 또 9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냐면요.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은 인격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할 정도의 인격자로 이렇게 성숙하게 된 것을 믿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제가 이렇게 좀 거창하게 처음에 예수님의 인격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어요. 우리가 예수님의 인격을 강조한 이유는 뭐냐 하면 만약 우리가 자유주의 신학자들처럼 인본주의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되면 예수님의 사역을 심지어 부활조차도 상징적인 사건으로만 개념화시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속에 인간적인 사상이 확장되는 거예요. 인간적인 지식만이 확장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인격성을 약화 시키고 와해시킬수록 인간의 사상과 생각이 더 많이 개입하게 되는 거예요. 이게 사탄의 기가 막힌 전략인 줄 믿으시기 바라는 것이에요. 이 좀 어렵지만 이제 제가 더 설명을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과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예수님의 인격성, 인격 이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인격이신 예수님과 만나게 되면 인격자이신 예수님 앞에 자신들의 삶이 지배당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들의 어떤 자유주의 신학, 자기들에 대한 신학, 자기들의 사상, 자기들의 최악을 더 강조해야 되는데 예수님의 인격과 만남은 그분이 주인이 되시면 그분 앞에 우리가 왕자를 내어드려야 되는 것이에요. 왜 다들 가만히 계세요? 예수님을 참된 인격으로 만나면, 그분 앞에 우리의 왕좌(王座)를 내어드려야 되는 거예요.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자유주의자들이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념과 이념이 자기들의 어떤 관념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걸 강조. 강조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인격성보다 예수님의 사상 이걸 더 강조하는 것이에요. 오늘 수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심지어 극단적 보수도 마찬가지예요. 자기들의 생각 변할 마음이 없어요. 예수님의 인격과 만나면 극단적이 될 수가 없어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이 인격으로 오시면 나는 더 이상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을 추상화하고 어떤 주의, 어떤 이즘, 어떤 주의로만 두게 되면 나는 여전히 내 삶의 왕자를 지킬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 특히 교회 안에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예수님의 인격성을 거부하는 겁니다. 여기서 인본주의 신학이 나온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극단적인 보수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보수주의자예요. 저는 아주 사상적 신앙도 아주 보수입니다만.
 
극단적인 보수는 누구 말을 들으려고도 하잖아요. 다시 한번 인격의 기원은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삼위 하나님이란 삼위격, 삼위의 격이란 삼위의 인격을 갖고 계시다. 그 말이에요. 하나님의 인격, 성자, 예수, 그로서의 인격, 성령의 인격, 성령도 인격이에요. 삼위 인격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말 자체가 우리를 인격적인 존재로 지으신 거예요. 그래서 오늘 신성과 인성을 통한 신비한 인격을 우리가 깨닫게 되면, 신성과 인성의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스며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 로마서를 통하여 우리는 많은 우리 인격이 손상되고 훼손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 놀라운 신비한 인격을 접하게 되면 훼손된, 오염된, 우리의 잘못된 우리의 많이 찢어진, 많이 상처받는 쓴 뿌리가 된 이런 인격들이 회복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의 인격을 만나면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죽음도 극복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신성을 통하여 죽음도 극복하게 하시고 그다음에 인성을 통하여 우리가 지금 당하는 고난이나 고통의 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눈을 열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도 인간으로 나와 같은 고난이나 고통을 당하신 줄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의 고난과 고통이 나를 옭아매는 것이 나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주님의 인격과 부딪치게 될 때 그것이 오히려 회복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태생적 혹은 후천적인 약점과 어려움에 얽매이지 않을 수가 있어요.
 
인격을 만나면, 소위 이미 결정된 거 가지고 내 인생을 낭비하지 아니하고, 예수님께서도 완전한 인간으로서 우리의 약점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계시기 때문에 나의 약점을 공감하시기 때문에, 나의 문제의 짐을 지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걸 믿기 때문에 다시 시작하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청년 시절부터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수많은 과정들이 있었고,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떻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제가 10분의 1, 100분의 1도 감히 순종하기 힘들었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주님의 신비한 신성을 지닌 인격 그리고 주님의 인성을 지닌 그 인격과 접하면서 주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면서,,주가 나와 동행을 하며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은혜는 말로 다 할 수가 없도다. 그걸 하게 되니까. ,♪~~
 
수많은 약점과 부족함이 있었지만 인격자이신 주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주님의 불쌍히 여기심과 그래도 아무것도 아니지만, 주님이 예뻐해 주시고 가만히 계시죠? 주님이 예뻐해 주시고,,, 여러분 다 그렇게 될 수가 있는 줄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다시요. 주님의 신성과 인성의 인격을 접하게 되면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수많은 약점과 단점으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죽음의 공포로부터 극복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네, 연세드신 분들은 내가 어떻게 죽나? 내가 어떻게 되나?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전진하지 못하는 그런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그런 분들을 그런 분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의 인격과 부딪치게 될 때에 자유하게 되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이것 때문에 하늘의 신성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이에요. 저는 저희 할아버지나 저희 부친이 저희 가훈을 세우실 때에,
 
로마서 14장 7절 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걸 우리 선대부터 주님은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니까 이거 집에 가훈으로 가훈 딱 해 가지고 1, 2, 3, 4, 하는데 주제 말씀 로마서 13:7절-8절, 거기에 거기서 파생되어 가지고 빌립보서 4장 13절 바울이 깨달았던 “내게 능력 주신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가 어떻게 모든 걸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초라한 존재고, 오염된 존재고 훼손된 존재고 쓴 뿌리가 있는 존재인데 그런데 주님의 신성과 인성을 이렇게 만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내게 능력 주신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가 있느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들어야만 할 줄로 믿는 것이에요. 이렇게 될 때 그의 인격성을 믿을 때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하나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만나면 선지 적 사도 성을 지닌 자가 되는 겁니다.
 
II.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만나면 ’은혜의 비대칭성‘을 깨달아 ’빚진 자의 심정‘을 갖게 된다.
 
제가 말씀 하나를 다 풀어 가지고 이걸 결론적으로 설명을 해야 되는데 제가 그럴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까 예수 그로서의 인격과 만나면 뭐가 된다고요? 선지적 사도성을 가진 자, 이게 영어로 말하면 Prophetic Opposal Ship인데 이게 이제 여러분들 이제 지금부터 이해를 하셔야 돼요. 앞으로 로마서를 할 때 이것이 여러분들이 처음으로 신학적 사도의 로마서의 첫 번째 신학적 고봉에 여러분들이 올라가기를 신학적 고봉과 만나는 것이 여기서 자, 그리스의 인격과 부딪혔을 때 우리가 받은 열매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도성이라는 것이에요.
 
주님의 신비한 신성과 인성의 인격을 만나면 모든 성도들은 사도성을 가지게 된다는 거예요. 사도 성을가질때 그 예언자적 사도 성, 어떤 예언적 또 선지 적인 미리 분별할 수 있는 앞날을 볼 수 있는 안목과 그 다음에 사도성이 갖는 어떤 철저한 실행력, 어떤 추진력 이런 걸 갖게 되는 것이에요. 무슨 뜻인가? 하면 자 1절에 보니까 바울이 이렇게 나와 있어. 뭐라고 나와 있냐면,
 
*로마서 1:1,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복음을 위하여 특정함을 입었으니.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바울처럼 사도로 부르심을 받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주로 믿습니다. 예 자 이걸 좀 더 쉽게 설명을 하면 5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 뭐라고 나오냐,
 
*로마서 1:5,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성도들, 방송으로 듣는 모든 분들, 별관에서 듣는 모든 분들, 모든 SNS로 들어오시는 유튜브로 들어오는 모든 분들, 한마디로 말하면 여러분들과 저는 우리가 안에 포함되는 줄 믿으셔야 되는 거예요. 그로 말미암아 바울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는 거기에 바울과 바울과 함께하는 팀들이에요. 복음의 팀들이 그 팀들이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 사도의 직분이라는 말은 사도의 기능을 받았다. 정확한 번역은 사도의 역할을 받았다. 우리의 식으로 말하면 사도성을 계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가 다 오늘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을 깨달은 모든 성도들은 여러분들과 저는 우리 모두는 사도 성을 가지고 사도의 직분을 받은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사도직 자체는 계승이 안 되지만, 사도성 자체는 계승이 되는 것인데 따라서 예수 그리스의 인격을 믿는 우리에게 사도성을 주신 목적이 뭘까요? 그것은 바로 8절에 이래와 같이 나오세요. 8절에,
 
*로마서 1:8,
8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뭐에 전파됨이로다.
생명력 넘치는 사도성을 지닌 그리스인들을 통하여 이 그리스인들을 통하여 복음이 선포되는데 거기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선포되는 줄로 믿습니다. 많은 한계가 극복된다는 것이에요. 이걸 이제 전체적으로 제가 크게 말씀을 드렸고, 이걸 이해하도록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 로마서는 사도바울이 늦게 쓴 성경이에요.
 
로마서 일찍 사도바울이 쓴 성경이 뭐냐 하면, 갈라디아서라든지 고린도서라든지 데살로니카라든지 좀 일찍 썼어요. 그런데 예를 들어서 갈라디아서다, 데살로리니가서다, 그 다음에 고린도서다 이런 성경은 바울이 거기 가서 전도를 하고 그 다음에 양육을 하고 그러면 다시 이제 갈라디아다, 이런 에베소다 이런 지역들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그거는 소아시아 지역인데 나중에 바울이 마게도냐 환상을 보고 지금으로 말하면 그리스로 넘어갔어요. 그리스로 넘어가 거기서 막 사역을 하고 있는데, 누가 왔느냐 하면 로마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 두 사람이 그리스의 헬라 지역에서 사역을 하던 바울에게 왔어요. 그 사람 이름이 뭐냐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들어보셨죠?
 
프리스틸라 앤 아쿠일라스라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와 가지고 로마에서 있었던 소식들을 전하는 것이에요. 소식을 듣고 바울은 갈라디아서나, 데살로니가, 고린도 교회는 이미 사역했던 그 교회를 향하여 컨펌하고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양육 편지를 하고 이런 식으로 많이 하는데, 이 로마인서 이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에 한 번도 가보지도 않고 다시요. 가봤어요? 못 가봤어요. 로마에 한 번도 가보지도 않고, 브리스겔라와 아굴라의 얘기를 듣고, 바울이 예지, 예언의 은혜를 받아 가지고, 이 로마서를 쓴 것이에요.
 
따라서 이 로마서를 제대로 깨달으면, 여러분 우리가 가보지 않는 길 살아보지 않는 그 삶의 어떤 그런 상황에 대해서 우리가 사도적, 선지성을 가지고 돌파할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것이에요.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모두가 다 두려워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기대감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 두려움이 있는 이런 우리의 인생의 현장 가운데서 오늘 이 사도적 선지성이라는 신학적 통찰을 저와 여러분이 내 것으로 아주 그냥 내 것으로 그대로 접목을 하기 시작하면, 바울이 가진 사도적 선지성을 가지고 그 모든 상황을 돌파했던 그 은혜가 여러분과 저에게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확인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여기서 깨닫는 것이 있어요.
 
바울은 소아시아나, 마게도냐 지역까지 사역하는 것, 마게도냐 환상을 보고 그리스 사역까지도 그것만으로 끝날 수가 있었어요. 그거라도 충분해요. 충분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바울은 거기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사도성을 가지고 복음이 없는 땅끝. 심지어 서바나 내가 서바나 스페인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야리라 그렇게 말할 수가 있었어요. 이것이 굉장한 돌파력이에요. 종교 개혁을 한 종교 개혁자들조차도 당시에 기독교의 순수성 이런 것들을 회복하려고 그랬지, 자기들이 있는 어떤 교구, 자기가 속한 믿는 어떤 지역 거기를 벗어나는 것은 상상을 별로 못 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는 모라비안 교도들은 그걸 뛰어넘는 사도적 선지성을 가지고 뛰어넘는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에요.
 
바울은 가본 길을 재방문해서 경고하게 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가보지 않는 미래를 향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프론티어의 눈이고 가보지 않는 길에 대한 두려움과 그다음에 기대가 교차하는 상황인데 이 가보지 않는 길에 대해서 기대와 떨림에 대한 미래의 여정에 대해서 바울은 소위 선지적 사도성을 가지고 선지자의 예언력과 예지와 사도의 추진력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이 사명을 감당하게 된 그 은혜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것이에요. 따라서 이 시간 우리 모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하는 능력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현재 상황에 주저앉고 싶거나 그냥 내 가운 내 삶 가운데 가슴 뛰는 환상이 없다는 분들은 오늘 이 선지적 사도성을 가지고 예언적 사도성을 가지고 돌파하는 은혜가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하는 것이 인생 후반에 한 번 내가 한 번 그래도 다음 세대에 뭔가 레가스를 남기고 싶다. 뭔가 내 인생에 ’온 땅이 물이 바다를 덮는 것 같은 여호와의 영광을 한번 체험하기를 원한다.‘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이 로마서 산에 사도적 선지성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어제 새벽에 제가 온 교우들에게 찬송란을 가르쳐 드렸어요.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야 주 찬양해, 주찬양해 할렐루야.
 
이 찬송은 70년대는 갓이즈굳, 80년대는 이 찬송이 한국교회 큰 부흥의 시기에 참 특별한 찬송이었어요. 제 마음에 가슴에 불이 붙는 거예요. 하나님 대한민국 교회가 80년대 90년대 놀라운 봉을 체험한 줄 믿습니다. 지금부터 30~40년 전에 우리에게 다시 회복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 마음이 생기는데 할렐루 할렐루 할 때 할렐루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지금 갈등과 분열의 상황이에요. 그렇지만 오늘 로마서를 가지고 개인도 가정도 그러고 선지적 사도성을 가지고 예언적 사도성을 가지고 한 번도 가보지 않는 길이지만, 바울은 로마에 가보지도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영적인 계시와 능력을 가지고 이런 놀라운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셨다면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정말 삶의 나침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에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강조하고 싶어요. 여러분 사도바울이 경험했던 그 시대보다 지금 우리가 훨씬 나아요. 아멘, 무슨 말이냐. 사도바울은 성경 정경도 없었어요. 66권 정경 없었어요. 시대적 어떤 상황과 그 어려움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이 말씀 제대로 깨달으면 우리는 사도 바울이 가졌던 그 은혜와 능력을 우리는 그 이상 가질 수가 있는 것이에요. 사도 바울보다도 저와 여러분들은 말씀과 성령과 은혜의 환경이 더 좋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사도 바울이 가졌던 그 Prophetic Opposal ship, 사도 바울이 가졌던 선지적 예언성을 가지고 가보지도 않았지만, 해보지도 않은 길이지만, 심지어 개혁자들, 종교개혁자들 조차도 자기 그 테두리만 있겠다는 어떤 마게도니아 환상으로만 끝날 수 있지만, 로마까지 가겠다는 그 마음을 가지고 시대를 새롭게 한 은혜가 오늘 살아계의 모든 성도들 한 분 한 분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어제 우리가 할렐루 할렐루 하면서 할렐루 할렐루는 찬양한다. 그 말이에요. 야는 야위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예요. 구약을 몽땅당 한편으로 딱 한마디로 말하면 할렐루야예요. 여러분 어려워도 할렐루 할렐루와 주찬양 이 찬송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삶에 선제적 사도성을 가지고 돌파하도록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될거에요. 그러면 이 선제적 사도성을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선제적 사도성을 가진 사람들이 적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III.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만나면, ‘은혜의 비대칭성을 깨달아 빚진 자의 심정’을 갖게 된다.
 
이게 무슨뜻인가, 오늘 14절에 다 같이 한번 다시 한번 합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보겠습니다.
*로마서 1:14,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뭐예요? 다 내가 비친 자라. 사실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내가 회개한 양보다도 주님이 용서하신 깊이가 더 큰 줄로 믿습니다. 내가 헌신한 시간보다 주님이 나를 위해 내어주신 생명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깨닫는 순간 내가 받은 은혜는 너무 커서 도무지 갚을 수가 없구나. 이때 생기는 마음이 빚진 자의 심정이에요. 오죽하면 로마서 3장 24절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함께 보죠.
 
*로마서 3:23,
2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느니라 아멘
-값 없이 받은 은혜가 너무 커 가지고 내가 빚진 자의 심정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내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나는 무엇으로도 갚을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받은 은혜는 너무 크고 내가 갚을 수 있는 건 너무 적고 이걸 은혜의 비대칭성이라고 제가 설명을 해보았어요. 이것은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은혜예요. 내가 하는 어떤 공로도 하나님이 내게 하신 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은혜의 비대칭성이에요. 소위 마태복음에 나오는 1만 달란트 빚진 자의 심정이에요. 그리고 누가 보면 15장에 여러분 돌아온 탕자, 엉망으로 살다가 야 아버지 집에 가면 뭐 그래도 먹을 수가 있겠구나 싶어 가지고 돌아가는데 아버지 만나 뭐라고 얘기합니까?
 
허랑방탕해서 살다가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컴을 받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그래도 양심은 있어 가지고,,, 예 그런데 아버지가 어떻겠어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고 우리가 잔치하자. 그 아버지의 사랑과는 비교불가, 족탈불급(足脫不及)이에요. 그때 탕자가 아버지가 내게 주신 은혜는 내가 도무지 갚을 수가 없구나. 내가 도무지 갚을 수가 없구나. 이게 은혜의 비대칭성이에요. 그러면 남은 인생을 내가 어떻게 하면 주님 아버지를 더 기쁘시고 아버지를 어떻게 더 사랑할까? 그걸 생각하게 되는 빚진 자의 심정이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오늘 바울이 빚진 자의 심정의 대표적이었어요. 디모데전서 1장에 보니까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뭐요?
 
*디모데전서 1:13,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폭행자였으나 우리 주위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비교가 안되는 거에요,
 
*고전15:9-10,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잘 알잖아요. 은혜의 비대칭성이에요. 그래서 로마서의 계속되는 주제는 내 공로는 nothing, 나는 아무것도 치러주신 값은 내 능력으로는 계산 불가능, 박혜자였던 내가 사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소위 선제적 사도성에 눈을 뜨고 사명자가 된 것이에요. 그래서 가보지 않는 로마를 향하여 가겠다는 그 돌파하는 능력을 추진력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최근에 우리 기독교 영화 가운데서 요즘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가 ‘신의악단’이라고 있어요. 그 신의 악단에 마지막이 우리 교회에서 촬영된 거 아시죠? 이게 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북한에서 NGO에게, 기독교 NGO에게 돈을 받고 싶어 하니까, 기독교 NGO에서는 그러면 기독교적인 것이 있는 걸 증명하라. 그러니 찬양단을 만드는 거예요. 그 찬양을 만드는데 박교순이라는 정치보위부 장교가 있는데, 이 장교가 책임을 졌어요. 그리고 이제 가짜로 해야 됩니까? 진짜로 해야 됩니까? 찬양을 어떻게 하면 됩니까? 찬양도 혁명적으로 하라우! 딱 이러는 거예요. 혁명적으로 찬양하다가 뒤집어진 거예요. 혁명적으로 찬양하다가 변화됐어요.
 
그래서 박교순이라는 이름인데 박교순인데 사실은 거기에 메타포가 들어가 있는데, 거꾸려면 박순교야. 그리고 또 자동차 나오는데 천사예요. 천사,,, 마지막 천국에서의 예배 장면이 우리 교회 예배 장면이 나오는데 그 박교순이라는 사람이 진짜 예수님만 나가고 있잖아요. 그리고 자신은 순교하고 다른 사람을 살려주는 거예요. 아마 바울이 아마 비슷한 심정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다시 한번 14절에,, 오늘 요절인데,
 
*로마서 1:14,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이 빛진 자가 되었으니까 사도적, 선진적 사도성을 가지고 13절 뒤에 보면 뭐라고 나오느냐 하면 이렇게 나와 있죠. 13절 뒤에 보니까,
*로마서 1:13b,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길이 막혔지만 그 막힌 길을 뚫어버리는 선지적 사도성을 확보한 은혜를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예 그러니까 빚진 자의 심정을 갖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은혜의 비대치성을 깨닫고, 빚진 자의 심정을 갖게 되면 거룩한 책임감을 갖게 되는 거예요. 강박관념을 갖게 되는 거예요. 빚진 자의 심정을 갖는 거예요. 야 내가 빚진 자구나. 어떤 책임감이냐,
 
여러분 암에 걸린 사람이 있는데, 이 약만 먹으면 암이 낫는다. 그래서 그 약을 먹었는데 암이 나아버렸어요. 그런데 똑같은 병이 걸린 다른 암 환자가 힘들어 있는데, 그 암 환자에게는 자기가 자기만 낫고 그 암 환자에게 자기가 나은 약을 소개 안 해준다면 그게 인간성이 제대로 된 거예요? 안 된 거예요?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에요. 안 나눠주면 그 비인격자예요.
 
어떤 사람이 큰 눈 폭풍을 만났어요. 만나 가지고 둘이서 같이 가다가 쓰러졌어요. 어떻게 살 길이 없어요. 완전히 그 눈 쓰러졌어요. 그런데 한 사람이 어쩌다가 좀 더 가보니까 한 50m, 70m 더 가보니까 거기에 피난처가 있어요. 피난 산에 들어가 보니까 따뜻한 불을 피울 것도 있고, 임시 먹을 것도 있고 다 있는 거예요. 그러면 자기가 혼자 안에 들어가 가지고 자기만 불을 쬐고, 자기만 냠냠하면 그게 인간적으로 괜찮은 인간입니까? 70m 좀 떨어져 있는 그 사람한테 빨리 가 가지고 그 사람을 끌고 와 가지고 같이 살아야죠. 사막에서 물이 떨어져 가지고 완전히 그냥 메말라 갖고 죽기 직전인 사람이 다 쓰러져 있는데, 어떤 한 사람이 다 보폭을 해가지고 좀 더 가보니까 오아시스가 있는 거예요.
 
시원한 물을 마셨는데 자기만 살고 목이 말라가고 죽어있는 사람을 위해 안 간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오늘 내가 빚진 자라는 것이 이런 심정이 거룩한 부채 의식이에요. 인간이 생명의 처소, 생명수를 발견했다면, 알려야 되는 것이에여.
 
우리가 ‘세계복음주의총회 WEA’를 한 이유가 뭐예요? 나중에 하도 뭘 모르는 사람이 하도 공격을 하고 그러니까, 제가 저 자신을 돌아보았어요. 주님이 이 일을 통하여 한 영혼이라도 구원(救援)받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우리가 서울 선언을 하기까지 그런 은혜를 하나님이 돌파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격과 부딪쳐서 선지적 사도성을 갖고 은혜의 비대칭성을 깨달으면 빚진 자의 심정이 되고, 거룩한 부채의식, 거룩한 책임의식을 갖는 줄로 믿습니다.
 
이게 로마서가 주는 선물이고 앞부분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감동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오늘 여러분 로마서의 산에 들어와 있습니다. 어떤 어떤 분들은 산에 들어와 있지만, 너무 피곤해 갖고 지금 졸고 계시는 분도 계세요. 누워서 잠들어 있는 분들 계세요. 또는 자포자기해 가지고 넋 놓고 있는 분도 있어요. 이런 분들에게 지금 빚진 자의 심정으로 우리가 뭘 나눠줘야 돼요? 뭘 나눠줘야 합니까? 11절에,
 
*로마서 1:11,
11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여기에 신령하는 인사는 방언, 예언, 치유, 그런 인사가 아니라, 복음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 사도적 권면, 선지적 사도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거룩한 책임만 가지고 거룩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나는 빚진 자라.
 
그래서 이 복음을 선포하기를 원하고, 견고하게 하기를 원하고, 이걸 통하여 바울은 그 인격이 성숙하고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 첫 번째 신학적 고봉, 선지적 사도성, 주님의 인격과 만나 가지고 우리 모두가 다 성숙한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성숙한 자는 무슨 심정을 갖는다고요? 빚진 자의 심정을 갖는다. 다 여러분 성숙하기를 바라는 겁니다. 예수 처음 믿으면 모두가 다 어린아이입니다. 어린아이 성도들이 많아요. 어린아이는 인격적으로 성숙할 수가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무지막지한 어린아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아이가 태어나면 자기만 알아달라고, 아무것도 안 합니다. 기저귀도 안 갑니다. 스스로. 생각도 없습니다. 밤새도록 울고불고 난리야 난리입니다. 어린아이는 무례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버지 오셨습니까? 절대 안 합니다. 할아버지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도 못 알아보고, 할아버지도 못 알아보고, 배려심도 없고, 어린아이들 교회 안에도 수도록 합니다. 예의가 있다면 누가 손님이 오면 그래도 문 밖에까지 그리고 좀 더 높여야 할 분들 주차장까지 내려가서 인사하고 좀 높으면 차 가는 거 앞에, 차 떠나도 뒤에서, 여러분 이게 성소의 증거예요. 애들은 지만 압니다. 지만압니다. 무리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자라게 되면, 초등학교 5학년만 되더라도, 거룩한 빚진 자의 심정을 갖고 자기만 알던 어른 아이가 자기 반에 있는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겁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예수님 믿고, 인격적으로 믿고 줄 말고, 내 친구들에게 복음 전하기 시작했어요. 간절함이 생기는 거죠. 믿지 않는 남편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온 가족의 복음을 전하겠다는, 이 성숙함이 생기는 것이에요. 여러분 모두가 다 로마사의 산에 올라가 가지고 누워 있거나 자포자기하지 말고 성숙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성숙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변화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우리 온 교회 또 한국 교회 이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 가지고 한국 교회 다시 80년대의 부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제가 한 40년 전부터 35년, 40년 전부터 늘 얘기한 것이 있어요. 서구 교회 100년 빚진 것을 한국 교회가 100년 동안 앞으로 서구 교회 갚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교회가 세계 복음주의총회, 교회 연명 총회를 하고 이런 거 다 서구 교회 빚 갚는 것이에요.
 
이번 로마서의 주제를 우리가 복음에 빚진 자로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의 능력과 위험 앞에 우리가 겸손히 무릎을 꿇기만 하면 모든 것이 새로워지고 선제적 가능성을 가지고 다시 돌파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한 분 한 분에게 맞춤형으로 허락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요약
우리 모두가 다 로마서의 산에 함께 등장하는 동안에 이 말씀 한 절, 한 절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혁명적인 말씀이 되어야 한다. 새 창조 역사가 우리 가운데 나타나서, 이번 한 주간 이 로마서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는 가운데,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시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동행하고, 교제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주님이 주신 안목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고 현재의 삶이 어떤 형편에 있든지 간에,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야!~~~ 이 찬송 10번, 20번, 30번 하면서, 수많은 난관들을 극복하는 선지적 사도성을 지닌 압도적인 복음의 일꾼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의 남은 인생에 은혜의 비대칭성을 감사하며,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수 있도록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돠어야 한다. 우리가 로마서의 산에 제대로 들어가면, 혁명적으로 삶이 변화되는 것을 확신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만나 ’은혜의 비대칭성‘을 깨달아야 하며, ’빚진 자의 심정‘을 갖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만나, ‘은혜의 비대칭성을 깨달아야 하며, 빚진 자의 심정’을 갖고 주님이 주신 지상 명령인 전하는 일에 전심을 다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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