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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3월 9일)
제목:1,2부: "불확실한 시대에 하나님 신뢰하기"(Tnusting God in Uncertain Times),
제목: 3,4부-"인생의 고통중에 주시는 말씀의 위로"(The Comfort of the Scriptures in the Heartaches of Life)
말씀: 고린도후서 4:8-9,16-18, 이사야 40:1-31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외)
대표기도: 오소협 부목사님(1부 외)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외)

설교자:베리 코리 목사님(Dr.Bary Corey):통역(김인기 부목사님), 피터 릴백 목사님(Dr. Peter A, Lilback):통역(정상익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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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4:8-9, 16-18,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이사야 40:1-31,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12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13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4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16 레바논은 땔감에도 부족하겠고 그 짐승들은 번제에도 부족할 것이라.
17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19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 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20 궁핍한 자는 거제를 드릴 때에 썩지 아니하는 나무를 택하고 지혜로운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세우느니라.
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 같이 치셨고.
23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24 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오리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 같도다.
25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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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부-베리 코리 목사님(Dr.Bary Corey):통역(김인기 부목사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다시 사랑의 교회에 오게 돼서 큰 영광입니다. 이 사랑의 교회가 가진 정말 아름다운 영성에 다시 한번 감격을 느낍니다. 특별히 오정현 담임 목사님 함께해서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탈보 신학대학교를 우리 담임 목사님께서 졸업하셨습니다. 사모님께서도 졸업하셨고요. 아드님께서도 졸업하셨고, 그리고 며느님께서도 우리 바이올라 대학을 졸업하셨습니다.

사랑의 교회에 올 때마다 그래서 우리 바이올라 신학대학교에 있는 모든 가족분들을 만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탈보를 졸업했습니다. 33년간 결혼한 우리 와이프 파울러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딸이 한국에 2번을 방문했었는데요. 고등학교 때와 대학교인데 여러분들에게도 문안 인사를 올려드립니다.

바이올라는 남가주에 있고요. biolla가 성경 공부하는 대학교라는 이름으로 지어진 이름입니다. 5,300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에 있으며 대학원, 학부, 석사, 박사까지 과정을 제공하고 있고 33개 학부와 8개의 석박 과정이 있습니다. 특별히 탈보 신학대학원 많은 목사님들께서 한국에서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많은 학생들이 저희 바이올라 학교로 유학을 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함께 되어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너무나 초대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인스타그램에도 저 팔로우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몇 주 전 한국에서 말씀을 준비하며 어떠한 말씀을 전할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불확실함 때문에 제 마음의 염려가 생겼습니다. 여러분 혹시 미국 정치를 알고 계시다면 미국 정치가 분열돼 있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엄청나게 많은 불안과 미국과 한국이 참 비슷한 양상을 지금 정치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 가운데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제자로서 살 수가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 주제를 가지고 몇 주 동안 계속 고민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말씀은 우리 사랑의 성도님뿐만 아니라 제 자신에게도 주님께서 주신 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미국에 있는 교회들에게도 주신 말씀입니다. 전 세계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이 바로 선교 하나님의 말씀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성경책이 우리가 믿고 확신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기반은 말씀 위에 서 있어야 되는 것을 믿습니다. 조금 전 우리가 읽은 말씀은 고린도서 4장 말씀입니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겪는 어려운 시간들입니다. 우리가 도대체 풀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그리고 8장과 9절을 제가 요약하자면, 우리가 우겨 싸움을 사방으로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쌓이지 아니하며 버림받은 죄 되지 아니하며 거꾸로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을 것이라 성경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혼란스러움을 당할 때에도 우리가 절망 가운데 서 있지는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답답함 바로 혼란스러움에 대해 포커스 하길 원합니다. 지금 이 시대의 많은 것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바로 바울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과 어려운 상황들입니다.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 지금 이 시대에도 사실 혼란스러운 일이 많지 않은가요? 정치적 분열과 불안정성입니다.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사람들을 억압당하고 있으며 지금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고 고용시장과 인플레이션이 있으며 정치적 분열과 경제적인 불안정성 때문에 우리는 더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교회 내에서도 혼란스러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교회들이 성경이 아닌 비본질적인 문제들로 인해 나뉘고 있습니다. 정치적 이슈로 그리고 교회 내부적인 정치적인 문제로 돈 문제로 그리고 작년 세대는 또 다음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불확실성도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기도 제목은 주님 저의 장년 세대 저를 비롯한 모든 장년 세대들이 주님께서 젊은 세대를 통하여 하시는 역사를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우리 바이올라 학교에는 많은 젊은 세대들이 있는데요.

그들은 정말로 신선한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옵니다. 한 학생이 저의 오피스에 왔었습니다. 그녀는 아주 엄청난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그건 되지 않을 거야. 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크레이지한 생각이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면은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어 도대체 이걸 언제 시작해야 되지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님들 우리 젊은 세대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역사의 현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기성세대들에게는 우리에게 참 혼란스러움을 가중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젊은 세대를 통해 역사하시는 새로운 방식들을 우리 장년세대들이 이해하는 날이 속해 오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사야 43장을 자주 방문하곤 합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태어날 것이라 그리고 말합니다. 너는 그것을 보지 못하느냐, 그렇기 때문에 저는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다음 세대를 통해 일하시는 그 역사를 보게 하옵소서. 그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4장에서 얘기했던 이야기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혼란스러움을 우리 삶 가운데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확신할 수 없는 상황들 정치적인 상황들일 수 있고 경제적인 상황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어떤 일을 하시려나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삶 속에서도 혼란스러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람이 갑자기 큰 건강상의 문제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의 자녀가 올바르지 않은 선택을 할 때 혼란스럽습니다. 가족 내 갈등으로 인해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게 될 때, 재정적인 어려움이 닥쳐 앞이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 안심하십시오.

고린도전서 4장은 우리가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일을 당하여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주권자 되시며,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지금 일어나는 모든 ai 상황들 ai 때문에 혼란스러우신 분들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런 트렌드의 우리 크리스찬들은 정말 어떤 것이 도덕적인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새로운 기술들에 우리가 도망가거나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나 이것들을 잘 활용해서 주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가야 됩니다.

지금 교회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나 새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행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베러스 윌러드 교수님은 바이올라대학교 이사회 멤버였고, 미국 남가주대학교 철학 교수셨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들에게 그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조언들을 우리에게 해 주셨는데요. 첫 번째는 절대 염려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 가운데도 걱정하지 말라고 교수님은 얘기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충만합니다. 또한 교수님 말했습니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방식만을 고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주권자 다 되시며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무엇을 하시는지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답답함과 혼란스러움을 느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허락하지 않는 것은 바로 절망(絶望)입니다. 포기(抛棄)하는 것을 허락치 않으셨습니다.

상황이 절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허락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새로운 일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전 세계 가운데 참 놀라운 역사들을 하고 계십니다. 바로 10월 사랑의 교회에서 WEA 총회가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 현장인 줄 믿습니다.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가장 큰 지하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 현장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정말 말로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부흥을 위해 기도할 때 다시 한번 부흥을 위해 기도할 때,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서 제자화를 이뤄가실 때, 사랑의 교회를 하나님께서 사랑의교회를 통해 세계선교의 마무리를 이룰 것을 확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늘 사랑의교회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교회를 통해 새 일을 새 역사를 행하겠노라!~~ 바로 이 자리에서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님들이 보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혼란스러움이 아니라, 주님 두려움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전적 믿음으로 위탁함으로 말미암아 나아가길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도 일하고 계시는 것을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바로 정치와 경제와 문화 모든 영역에서 교회와 가정과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주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제가 한국에 올 때마다 새로운 단어들을 배우게 되는데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라는 예전에 배웠습니다. 김치, 목사님, 목사님, 사모님 그리고 제가 한국에서 또 배운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단어들이 오늘 설교의 핵심 본문입니다. 확실과 확신의 차이점에 대해 배우게 됐습니다. 제가 이 두 단어들의 차이를 알게 되었는데요. 확실이라는 뜻은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확실히 알고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확신은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실은 확실히 일어날 일이라고 영어로 번역이 되고 확신은 주님 안에서 가지고 있는 믿음입니다. 확실은 눈에 보이는 것에 의지해서 사는 삶이고, 확신은 믿음 안에서 사는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혼란스러울 때 우리가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마주할 때,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의 믿음인 줄 믿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주권자 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질문들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주권자 되심을 확신합니다. 우리의 불안정성에서도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우리를 은혜 안에서 보듬어주십니다. 바로 은혜란 우리가 어떤 것을 해도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보다 더 크게 사랑을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우리가 더하거나 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최고로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만큼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께서 저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란스러워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절망은 하지 말라고 그리고 바로 사도 바울은 당시 교회 지금 우리와 같은 그 교회들에게 이 편지를 전했습니다. 두려움이 있었고, 교회 내 그들은 소수자였고 그리고 함께 하길 너무나 힘들어하는 상황 가운데 있었지만 바로 우리 모두가 교회의 공동체에 속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사랑의 교회 같이 성도의 교제라며 공동체에 속해 있는 아름다운 교회로 빚어 가라고 했습니다.

바로 사랑의 교회가 하나님의 몸 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나타내 주는 가장 좋은 예시입니다. 우리 콰이어 오케스트라 참 아름다운 찬양해주셨는데, 함께 찬양하게 돼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함께 배우고, 함께 사랑하고, 서로를 도우고 세워주며, 바로 이것이 우리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들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사도 바울이 기도에 전념하라고 합니다. 바로 기도의 힘을 무시하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바로 서로를 향해 기도하라.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고 얘기하고, 저는 특별히 전 세계 교회들이 한국 교회 성도님들의 기도의 영성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오정현 담임목사님께서 이 기회를 시작하셨을 때 바로 엄청 40일 특별 기도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있습니다. 새벽 기도이고 열정적인 기도이고 오정현 담임 목사님 전 세계 교인들이 어떻게 기도해야만 됐는지, 예시를 보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발언 얘기합니다.

공동체에 속하라. 기도를 전념하라. 그리고 성경의 권위에 우리가 정말 존중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그대로를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권위가 있고, 믿을 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다른 길로 새는 것을 방지합니다. 그리고 정말 좋지 않은 트렌드로부터 우리를 지켜줍니다. 우리 삶에서 정말 들어오는 모든 나쁜 것들을 제하여주는 유일한 소망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우리가 비주류고 소수여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전 세계 많은 교인들이 소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강력합니다.

우리는 어떤 어떨 때로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 바이올라 대학교에서는 결혼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는 것이라 가르칩니다. 그리고 저희 기숙사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해서 지금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관점으로 이 정의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우리가 분노로 대답하거나 아니면 두려움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분노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온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우리의 원수를 사랑하고, 그리고 세상 가운데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우리가 먼저 다가가고, 심지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 바로 성경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살아가셨듯이 사랑하는 교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혼란스러우시다면 건강한 교회에 속해 있으시길 바랍니다. 기도에 전념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서로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있게 사는 모든 사역들의 본질인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바이올라대학교에서 하는 일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세계가 전 세계가 필요한 사랑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8절에서 9절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싸움을 당하여도 우리는 쌓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우리가 정말 넘어져도 우리의 주님 안에서 절대로 제하지 아니하며 우리가 거꾸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을 것을 확신합니다. 몇 절 뒤에서 바울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에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오.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어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혼란스러운 시대 가운데 대응해야 되는 방법인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삶에 다가올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것들에 대해서도 바울은 서술합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할 것을 예측해야 합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망하지 않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박해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 안에서 절대 버림 받지 않을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넘어질 때도 있지만 그리고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권자 되심을 믿으시길 소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사도 바울이 빌립 보서 1장 6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우리는 확신하노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룰 수 있는 우리는 확신하노라.’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 가운데 갖고 가야 되는 약속인 것입니다.

두 달 전 큰 산불이 로스앤젤레스를 강타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참 말라있었을 있습니다. 나무들이 그리고 정말 큰 강풍이 불어왔는데 초속 160km의 강풍이 불어왔고, 퍼지는 불길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로 산불이 계속 퍼졌고, 29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만 8천 채 이상의 집과 건물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불이 난 그날 밤 바이올라대학교의 한 교수님이 소방서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불 때문에 빨리 대피하라는 연락이었습니다. 교수님은 레바논에서 오신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 뒤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시겠지 하고, 여권과 야근 챙겨서 차를 타고 집을 조금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그러나 다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녀가 다시 집에 돌아갔을 때, 집이 다른 모양으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교수님의 집이었는데요. 불이 나기 전날 사진입니다. 남가주에 있는 참 아름다운 전형적인 집입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다음 날,,, 우리 교수님의 집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하루 만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모든 사진들, 모든 일기장들, 모든 노트들, 모든 편지들, 그녀가 적었던 노트들,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교수님과 다음 날 얘기했습니다. 정말로 교수님 이겨내려고 했지만, 결국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나 충격을 받았고, 또 부모님도 케어해야 됐습니다.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거는 너무나 큰 상처로 남을 것이라고, 그러나 교수님께서 이 사연설을 인용하며 저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바로 재에서 화산을 만들겠다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이겼어요.

총장님 그게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하실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총장님 오래 걸리겠죠? 살아가는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우리를 오랫동안 괴롭힐 때가 있습니다. 삶을 살면서 영원히 해결 받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그리스도 영원한 우리의 왕이시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지금 그 교수님께서는 참 혼란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총장님, 저는 절망 가운데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내 삶에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그 교수님께서 다시 한번 일어날 것입니다. 이 불길을 뚫고 나올 것입니다. 어떻게 제가 확신하냐고요. 왜냐하면, 교수님이 섬기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굽은 길을 곧게 만드신 분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거친 파도를 잠잠케 하시는 분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의를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재에서 화관을 만드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이 화마로 모든 것이 집어삼켜졌을 때 이 말씀을 떠올리셨습니다. 이사야의 말씀입니다.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너를 지으신 이가 너를 말씀하시느니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타지 아니 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리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이니 내 하나님은 내 구원자이니라.’ 그러므로, 살아가는 여러분 우리의 모든 혼란들 교회 가운데서 그리고 개인적인 삶에서도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상한 마음을 고치시며, 고통과 혼란 속에서도 소망을 주는 분임을 믿습니다.

저를 위해서도 역사하셨고, 사랑하는 성도님들을 위해서도 주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확신하며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을 우리는 확신 하노라.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주님은 성난 파도를 잔잔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이 가운데 성남 파도 가운데 서 있는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주여,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부으시는 주님, 지금 성도님들 가운데 그 생수의 강물이 필요한 분들이 계십니다. 주요 우리를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상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예배 가운데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분들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만져주시고,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소망 가운데 거하게 하여주시고, 절망 가운데 기쁨을,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멘

요약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는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현실'을 직면할 때, 주권자이시며 지금도 통치하시는 왕이신 주님을 끝까지 신뢰하여야 한다. 우리가 절망하며 포기하고 싶을 때, 확실하게 새 일을 행하시는 주님을 확신하여,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모든 좌절에서 일어나야 한다. 우리 사랑의교회가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서울총회(10.27)를 위한 특별기도회(3.15 토요일 새벽 6시)로 엎드려, 강력한 눈물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과 세계 교회의 심장을 울리는 간절한 기도를 올려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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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부-피터 릴백 목사님(Dr. Peter A, Lilback):통역(정상익 부목사님)
사랑의교회에 다시 오게 돼서 참 기쁩니다. 여러분의 담임 목사님이신 오정현 목사님께서 다시 초대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미국에 있는 주안의 형제 된 우리 많은 사람들의 인사를 대신해서 전해드립니다. 특별히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인사 문안 인사를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오늘 특별히 성경 말씀에 나오는 위로에 대해서, 또 우리가 느끼는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드리고자 해요. 우리의 영혼 가운데 어려움이 고통이 찾아올 때를 경험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제가 여기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만약 여러분과 대화를 나눈다면 각자 각자의 마음 가운데 상처와 또 고통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타락한 그리고 무너져 내린 세상 속에서 살면서 고통을 경험하고 있죠. CS루이스가 자신이 썼던 저서인 고통의 문제라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런 어려운 세상 가운데 해서 이런 고통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하나님을 반대하는 논거는 이 우주가 너무나도 가혹하고 불공평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공평함과 불공평함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까?”

만약 어떤 사람이 선이 휘었다고 이야기를 하려면 선이 바르다는 개념을 알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다시 이야기하면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여 주신 공평함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어야만 우리가 공평함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거죠. CS루이스는 계속해서 이 저서 안에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 가운데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들려주시고 계신지에 대해서 계속해서 설명해나갑니다. 하나님께서 기쁨 가운데 속삭여 주신다고 이야기 해요. 그런데 우리의 양심 가운데서 직접적으로 말씀을 주신다고도 언급합니다.

그런데 CS루이스가 특별히 우리의 고통 가운데 하나님이 외치신다. 라고 이야기해요. CS루이스는 고통은 하나님께서 귀먹은 세상을 향해 쓰고 계시는 확성기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겪고 있는 개인적인 또는 관계적인 특별히 나라 적인 국가적인 문제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지도 몰라요. 우리는 믿는 자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의 말씀을 통해서 얼마나 명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특별히 말씀을 볼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셔서 오늘 우리가 살펴봤던 이 이사야 40장 말씀을 통해 위로를 받게 됩니다. 첫 번째 구절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니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위로하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위로하라. 두 번이나 위로해 주신 것 보고 계십니까? 왜 하나님께서 위로, 위로 두 번이나 말씀하셨을까요? 제가 한 장로님께서 주일 학교에서 아침에 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했던 이야기를 들은 게 있어요. 그 장로님께서 사도바울이 했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셨어요.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렇게 말씀을 전하고 나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우리 아이들에게 장로님이 물었습니다. 왜 바울이 두 번이나 기뻐하라고 얘기했을까? 그러자 어린 소녀가 손을 들고 대답했어요. 저희 엄마가 저한테 늘 두 번이나 반복해서 얘기하실 때는 제가 엄마 말을 안 들을 때예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안 듣는지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삶 가운데 어떤 고통을 겪고 있던지, 어떤 상황 가운데 있던지, 말씀하십니다. 위로한다. 너를 위로한다 라고요.

여러분이 어디에 속해 있으시든지 간에 여러분의 영혼을 위로하시고자 합니다. 창세기 37장 35절에 나오는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에 나오는 모습을 우리가 가지고 때도 있어요. 야곱이 요셉을 잃고 위로하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시편 69편 20절 말씀에 이와 같이 나와요. “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얻고 긍휼이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그런데 스가랴 10장 2절 말씀은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거짓된 위로가 존재한다는 걸 알려줘요. 명성 성이나 재물이나 또 내가 가지는 수많은 이 유혹들에 대한 마음들을 채울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가운데 성경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진정한 위로자가 계시다면, 하나님의 임재 자체가 진정한 위로자가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너무나 사랑하시는 10편 23편의 다윗이 이야기하는지 아시죠? “내가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성경 안에서 특별히 구약 안에서, ‘위로’라고 표현된 단어의 뜻을 좀 더 살펴보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구약성경에서 위로라고 쓰였던 히브리어 단어 자체가 구약성경에 있는 성경책 이름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어로 나흠이라고 되어 있는 그 단어를 따서 나흠서가 기록됐죠. 우리 자녀들 중에 나훔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이 위로해 주신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요. 이 구약성경의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번역된 70인경 안에서는 그 헬라어 단어가 새롭게 쓰였습니다. 제가 신학교 총장이다 보니 설교하면서 히브리어 헬라어 정도는 써야겠죠. 그렇죠.

일단 히브리어로 나흠, 하면 위로한다는 뜻이고요. 위로 예전에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히브리어와 또 헬라어에서 한 번의 헬라어로 번역했을 때, 사용되었던 ‘위로’란 뜻을 가진 헬라어 단어도 알려드릴게요. ‘파라클레이테’라는 헬러 단어입니다. 헬라어로 ‘위로’를 뜻해요. 바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성년 대해서 묘사하실 때 사용했던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다고 하셨을 때, 그 보혜사가 위로자이시잖아요. 그 위로라는 단어가 거기에서 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이 페라클레이트라는 단어 파라클레이토스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찾아보다 보면,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드러내는 단어임을 알 수 있게 돼요. 요한일서 2장 1절 말씀에 이와 같이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을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다’ 여기에 그 단어가 쓰입니다.

예수님이 의로우신 분이고, 대언자 이시며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분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는 본문입니다. 그리고 이 요한복음 14장 16절 말씀에, 다락방에 계셨던 예수님이 이 단어를 또 언급하시는 걸 볼 수 있어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 위로자를 말씀하시죠.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또 다른 이라고 표현하셨을 때 사용되었던 단어는 정확히 동일한데 다른 존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의 위로자라고 말씀하세요. 그리고 너희와 영원히 함께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겠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위로하시고 힘을 더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죠. 우리 함께하시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겁니다.

또 사도 바울이 작성한 고린도후서 1장 3절에서 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해주시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3절 4절 말씀 이와 같이 나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로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를 주신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읽었던 이사야 40장을 보시면, 위로, 위로로 시작이 되는데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위로하시는지 세 가지 큰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데 왜 위로를 주시냐,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절에서 4절까지 말씀을 읽겠습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워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으로 엄청나게 큰 고속도로를 주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있는 산과 바다를 다 물리치셨어요. 그리고 깊이 파여있던 계곡을 다 채우셨습니다. 막고 있던 모든 장애물을 치우고 바로 우리에게 달려와주셔서 너를 위로한다. 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로 인해 무너져 내리고 깨져 있는 것을 다 아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셔요.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게 하셨다” 라고 말씀하셨죠.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으로 침투해 들어와서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단순히 우리를 돌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정말 우리를 위로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하나님 되었기 때문에 우리를 위로하실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로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뒤에 이어지는 9절부터 11절 말씀을 보면, 목자의 심정으로 우리에게 오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의 위로를 주시는 거예요. 9절에서 11절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위에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그 능력을 본문을 통해서 보여줄 주시는 걸 봅니다. 이 모든 만물에 특별히 이 바다와 궁창과 모든 것을 손아귀로 쥐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모든 황제와 또 모든 대통령과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단순히 우리를 돌보실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 한 명, 한 명을 위로해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과 시작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시작 전부터 이미 알고 계십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다람쥐의 모습을 또 새의 모습을 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어요. 라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여러분을 위로하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 문제가 너무 커서 도저히 위로받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 라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그것을 뛰어넘는 여러분을 위로하는 위로자가 계십니다. 물론 여러분들에게 그 위로는 나를 위한 위로는 아닌 것 같아요. 라고 말하는 여러 가지 이유 들이 아마 있으실 것 같아요. 여러분 이렇게 얘기하실 수도 있어요. 하나님 보시기에 난 너무 미물이라서 위로 못 받을 것 같아요. 저는 너무 피곤해서 그 어떤 사람도 나를 도와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너무 힘들어서 다 내려놨기 때문에 아무도 저를 도울 수 없어요.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분이 단순히 돌보실 뿐만 아니라, 돌볼 능력이 있는 분이라는 것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더 나아가서 그분이 그렇게 상처받고 힘든 사람을 사랑하셔서 위로하는 이라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27절부터 31절 말씀에 이사야 40장 27절부터 31절 말씀에 이와 같이 나옵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내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내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시는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여러분이 나는 외로워요. 라고 말할 때 하나님이 나는 너와 영원히 함께한다. 라고 말씀하세요. 저는 연약해요. 라고 말하는 여러분에게도 하나님께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가운데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는 말씀을 주시면서 예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물가에서 베데스다 못 옆에서 마비된 채로 가만히 있었던 사람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여러분이 그와 같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의 말씀을 듣고 찾아오십니다.

그 ‘네가 들고 있는 그 침구를 들고 일어서라’ 라고 예수님 말씀하세요. 그런 것처럼 여러분의 그 연약한 가운데서 하나님이 힘을 더해 주십니다. 어 말씀을 보다 보면 젊은 사람들조차도 지쳐 하고 또 쓰러지는 걸 봅니다. 여러분, 30절에 나오는 장정과 같은 젊은이더라도 너무 연약하고 힘이 없어서 다 포기하고 싶다. 라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의 위로자 되신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도전해봐 일어날 수 있어 할 수 있어. 라고 말씀하십니다.

윗 세대와 아랫세대가 갈등으로 인해 나눠진 그런 가정에 있는 여러분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그런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위로자께서 찾아오셔서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너 안에서 일할 거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죄악 때문에 너무나 패역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완전히 가라앉아 있을 때 여러분을 위해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여러분도 함께 부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여러분, 정말 어려운 시국 가운데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계시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어려운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일어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리우게 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 31절 말씀을 다시 보셨으면 좋겠어요. 있습니다.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은 것이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 들 것이오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않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 말씀이야말로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교회와 또 여러분이 속한 모든 공간을 위한 말씀이에요.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제가 한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데요. 독수리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드리고 싶어요. 독수리가 어렸을 때는 굉장히 멀리 높이 납니다.

그런데 독수리도 나이가 들어서 또 연약해질 때가 있겠죠. 날개가 빠지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점점 힘을 잃어버리는 걸 봅니다. 그래서 자기가 날던 그 하늘에서 점점 자리를 비켜줘야 될 때가 오는 거예요. 예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그 독수리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겠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독수리에 이미지를 사용하셔서 새롭게 부활시켜 주시는 새로운 힘을 주시는 그 사역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는 겁니다.

이 고통의 순간이 지나가면, 새로운 날개가 돋고, 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높은 곳으로 날게 될 것이라고 말씀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이 구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의 새로운 날, 깃털이 자라나는 시간을 가지고 계신지도 몰라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새롭게 해주실 것입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달음질하여도 곤비하지 않을 것이고. 걸어가 피곤하지 않을 줄 믿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약속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이야말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에게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패배하지 않았다. 그리고 힘을 얻어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려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가운데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땅과 하늘은 지나갈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한국에 주신 그리고 교회와 온 세계의 만물에게 주신 약속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위로야말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위로예요. 위로하라.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여러분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확장돼 나가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왜요? 예수님께서 그 나라의 왕이시고, 예수님은 절대 패배하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옵소서. 오늘 너무나 연약하고 또 힘들어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을 들어주옵소서. 고통 가운데 있는 영혼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단순히 돌볼 뿐만 아니라 돌볼 능력이 있음을 알려주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독수리가 날개 쳐 올라감 같이 힘을 더해주셔서 보내주신 사명을 달성할 수 있게 해주심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특별히 시랑의 교회에 함께 해주 주시길 기도합니다. 오정현 목사님과 함께해 주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살려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힘이 필요한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성도 한 명 한 명을 위로하시고 힘 더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를 위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요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된 위로를 주시기에, 우리는 고통과 어려움을 경험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위로하신다고 말씀하신다. CS 루이스는 고통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했듯이, 성경도 하나님이 진정한 위로자이심을 믿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며, 죄에서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고, 전능하시기에 참된 위로를 주실 수 있으니, 또한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힘을 주시고 함께하시기에 두려워할 필요 없다. 그 약속을 통해 우리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니 다시 일어나, 우리 인생의 고통 중에 주시는 말씀의 위로를 늘 주심을 믿고, 우리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니, 굳게 일어나서 주님 앞에 나아가 헌신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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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32)
제목: "역사를 보는 눈, 분별력(Perspective on History, Discernmen)"
-이사야 시리즈
말씀 : 이사야 14:12~15
대표기도: 홍진기 부목사님(1)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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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4:12~15,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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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대가 너무 귀한 찬송을 해주셨어요. 오늘 찬양대가 고백한 저 찬송 가사 그대로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민족에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혹시 마음이 오염된 분이 계시면 오늘 새 마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고, 오늘 예배를 통하여 우리 모두가 다 주님의 깊은 심정을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역사를 보는 눈, 역사를 보는 분별력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에는 이 시대에는 분기점이 있죠? 오늘 우리는 3.1절을 맞이했는데 3.1절 주일 예배인데 106주년인데요. 우리가 3.131, 또 혹은 4 19, 혹은 5 16, 5 18, 6 29, 이런 걸 쭉 하지 않습니까? 하는데 이게 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러면 좀 그렇죠. 근데 저는 작년 1027일도 역사의 분기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참 한국 기독교인들이 광화문과 시청, 서울역까지 완전히 골목까지 다 모였고 또 여의도에도 우리 여의도 모든 도로와 그다음에 공원 안에도 사람들이 다 차 가지고 아마 대한민국 역사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날 정도로 그런 시간이 있었는데, 하나의 역사의 분기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데 오늘 여러분 오늘 이 3.1, 오늘 이 기념 예배를 통하여 3.1절이 말씀의 부흥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제 우리 기도한 대로 오늘 이 예배를 통해 나만의 기도가 나라를 위한 기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또 나만의 예배가 그야말로 나라를 살리는 예배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제가 대표 본문은 14장 오늘 여러분 읽은 것이 대표 본문이고 전체적으로는 13장부터 23장 전체까지가 배경이 될 수가 있겠습니다. 첫 번째 우리가 생각할 것 우리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I.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역사의 주관자는 누구시라고요? 하나님이시다. 131절을 보겠습니다. 131절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사야 13:1,
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라.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바벨론의 어디에 대한 경고라고요?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라 이사야는 전반부가 39장까지 있는데 39장까지의 대표적인 세 단어가 있어요. 이게 뭐냐 심판과 경고와 위로가 있는데, 오늘은 특별히 13장부터 23장까지는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에 대해 특별히 경고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쭉쭉쭉 보면요. 제가 이게 시간이 없으니까 13장부터 23장까지 먼저 바벨론에 대한 경고가 나오고, 그다음에 모압에 대한 경고가 나오고, 다메의 경고, 구스 경고, 애굽에 대한 경고, 또 바벨론 두마 아라비아에 대한 경고를 하고,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를 하고 마지막 드로에 대한 경고를 하는 것입니다.

바벨론 경고(13~14), 모압 경고(15~16), 다메섹 경고(17), 구스 경고(18), 애굽 경고(19~20), 바벨론, 두마, 아라비아 경고(21), 예루살렘 경고(22), 두로 경고(23).

-이것이 어떤 뜻이 있는가? 이것은 그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그때 일어난 이런 일을 통하여 오늘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한 본보기가 되고 우리에게 대한 각성을 위한 하나님의 어떤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서 바벨론 경고다 그랬을 때 그 바벨론 경고는 거짓 종교로 사람들을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속임수에 대한 분별력(分別力)을 주시는 것입니다. 신약의 창으로 해석을 하면 요한계시록 182절을 보면,

*요한계시록 18:2,
2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이 바벨론을 통한 경고를 뭘 받는가 하면 바벨론은요. 아주 그 당시에 아주 혼란스러운 세상을 말하는 거예요. 그냥 아주 그냥 뭐라고 그럴까요? 뒤죽박죽이 되었어요. 뒤죽박죽이 된 세상, 혼란스러운 세상에 대해서 주님이 경고하시는 것이고, 애굽에 대한 경고는 세상의 부패에 대한 것을 경고하시고, 두로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 물질주의 세상에 너무 그 물질에 탐닉하는 것을 경고하시고, 모압과 암몬과 아라비아와 같은 나라들에 대한 경우 특별히 모압과 암몬은 여러분 모압과 암몬은 근친상간(近親相姦)으로 태어난 그 족속이죠.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오늘날의 우리가 깨닫는 것은 성적인 문란(紊亂)함에 대한 경고를 주신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말할 수가 있고 그래서 이런 내용들을 보면서 여러분 역사가 무언가 역사를 보는 눈에 있어서 우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철저한 주권 속에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이에요. 아주 이거는 이거는 이거 흩뜨려 버리면 안 되는 거예요. 다시 한 번 이 세상의 모든 일 우리가 우리 세상 사람들, 세상의 세속 왕들과 정권과 파워가 막 움직이는 것 같지만, 결국은 이 세상의 모든 역사의 흐름은 하나님의 철저한 주권 속에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열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열국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이 인간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철저(徹底)한 주권 속에 있다는 말은 어떤 뜻인가 하면, 모든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救援) 역사와 밀접(密接)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 참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뜻입니다. 대한민국이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큰 땅 덩어리를 가진 저 러시아하고 붙어 있습니다. 6.25 때도 우리 러시아로부터 큰 핍박(逼迫)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수천 년 동안 저 중국 대국 중국은 철저히 자기 중심 자국 중심 중화사상 아닙니까? 중국의 별이 5개인데, 동서남북의 별이 중국의 별을 향하여 다 들어온다 이겁니다. 그게 별 5개예요. 그런 건 아십니까? 중국 국기에 그런 게 있어요. 그리고 일본이 일본에 옛날에 외국부터 시작해 얼마나 우리가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까? 그 큰 나라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살아남았다. 우리나라가 살아남았다 하는 이것은 하나님의 철저한 주권과 구원 역사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가 있다. 없다 없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이거는 이제 이거는 나가면 안 되고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돈이고 뭐고 우리가 싸울 때는요. 우리는 물불을 안 가리고 그냥 같이 죽자, 동기(動機) 어진(御眞)이에요. 우리나라 같이 죽자 살자 싸우는 나라가 아직까지 공산화가 안 되고 이게 기적이에요.

이게, 이 세속 역사가 이렇게 나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철저한 주권 속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여기에 담겨 있는 것이에요. 늘 얘기하지만 새벽마다, 전국에 100만 명 이상의 성도들이 천만 가운데 10분의 1, 100만 명 이상의 성도들이 새벽마다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의 구원 역사를 펼쳐주신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제가 제 생각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하나님 없는 문명 역사는 착시 현상에 불과하고 인류 역사의 실제적인 중앙선은 역사의 절대 주권을 갖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이다-
-아멘 이거 여러분 동의가 되십니까?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이 정치적인 격변(激變)과 사회적인 사건들에 대해서도 여기에 해석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배제한 채 이념이다. 혹은 우리 인본주의 관점에서 정치적인 관점에서만 일희일비(一喜一悲)한다면 그것은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 나라의 역사의 상선을 보지 못하고, 역사의 새 속의 하선에 매몰되어 가지고 역사의 상선이 아니라 하선에 매몰되어 가지고 역사의 상선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 어려운 과정이 있지만 하나님의 통치를 믿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사모하면서, 이 과정을 잘 지나면 현재는 메마르고 현재는 사막(砂漠) 같은 것이지만 어제 아침에 우리가 순장님들 3천여 명이 모여 가지고 순장교육 수행을 하면서,,, 주여, 이 기간이 하나님의 거룩한 과정이 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끼리 서로 고통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이 기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가 살아 있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나타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철저한 주권이 통치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 기간에 신성한 과정이 되게 해 주시면, 사막의 강이 있어 지게 되는 것이요, 광야의 길이 열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될 것임을 믿습니다.

이런 거예요. 이런 여러분 역사 그래서 광야에는 길이 없고, 사막에는 물이 없지만, 이 과정들을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바라볼 때 우리가 집중할 때에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우리가 믿고 찬양할 때 이 과정에 신성한 과정이 되게 하여 주셔서 하나님이 우리 역사 가운데 일하시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거예요. 우리가 이걸 이미 경험했어요. 6.25 때도 경험하고 815 때도 경험하고 우리 지난 근대 역사에 많이 경험을 하게 된 것이에요.

월남전에 있어서 월남이 패망하고 우리가 망할 거다 이렇게 생각했지만 그때 우리 74년도에 그 어려움 가운데 74년도 73년도에 엑스폴로 대회를 통하여 나는 찾았네. 그다음에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해서 전력 투구하고 80년도 위험했지만, 80년도 세계 복음화 대해 여의도에서 100만 명이 모여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이 민족의 역사를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구원 역사로 바꾸어 주신 것이에요.

여러분, 제가 이 역사를 얘기할 때에 성 어거스틴이 있어요. 아구스트노스 성 어거스틴이 있는데 섬 어거스틴의 놀라운 책 중에 하나가 신국이라는 책이 있어요.( 성 어거스틴-신국-City of God)

시티오브 거드,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을 왜 썼느냐 하면 13년에 걸쳐서 신국을 썼는데 그 쓴 이유가 뭐냐면 당시에 역사를 사로잡고 있는 역사관은 뭐냐 하면, 희랍의 역사관이었어요. 소위 순환(巡還) 주의 역사관이었어요. 돌고, 돌고, 돌고 그런 어떤 순환주의 역사관이, 윤회(輪迴), 이런 비슷한 것이죠. 이런 역사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역사관 이건 아니다. 이건 하나님의 주권(主權)과 하나님의 통치(統治) 이건 아니다.

하나님이 그러면 이 시티오브가드-City of God, 하나님의 도성의 역사는 뭔가 역사는 출발이 분명하고, 역사는 종말이 분명하고, 역사는 알파 포인트가 있고, 역사는 오메가 포인트가 있고, 그래서 하나님의 도성의 역사는 역사의 종말을 향하여 우리가 태어난 것이 마지막 인생의 종말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역사도 시작과 끝이 분명한 역사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도성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종말적 역사관을 가지고, 역사의 마지막을 향하여 우리의 생애를 이렇게 잘 무장(武裝)하고 마지막을 향하여 준비하고 나가야 될 것이다. 여러분 우리나라는 지금 잘못된 무신론적 이념에 기초한 수많은 역사적 시각의 시각이 도배(塗排)처럼 되고 있어요. 잘못된 무신론적인 이념이, 예를 들어서 여러분 우리나라는 이 역사관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의 중심으로 한 철저한 하나님의 통치 역사관과 아니면 인간이 중심이 된 예를 들어서 극단적인 환경주의 이것도 인간이 주인 되는 범신론적인 것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환경론자들의 거기 가보면요. 어떤 데로 그 공산주의 혁명가(革命歌)를 막 부르고 있는 거예요.

아주 또 어떤 경우는 아주 아주 약자를 배려한다 그러면서 하나님 없는 사회주의 전체주의 이런 것들은 약자를 배려하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사실은 하나님 없는 이런 역사관은 어거스틴처럼 세상은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통치되고 있고 결국 종말의 심판대에 설 것임을 믿는 이런 것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런 역사 흐름 속에서 하나님 없는 무신론적 역사관 가운데서 우리는 어거스틴처럼 매일매일 21세기에 신국론을 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매주, 매주, 주일 예배를 참석하면서, 저와 여러분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민족 가운데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말씀을 드리면 지금 이 탄핵(彈劾) 정국 속에서 주여 이 가운데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나타나게 하여 주십시오. 그럼 우리가 기도하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고 어제도 구국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했어요. 그럴 때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이런 역사관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기도의 제물로 기도의 향으로 반드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기도를 통하여 어마어마한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 우리가 기도한 대로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간절히 기도했잖아요. 하나님 아버지 주여, 이 탄핵 정국 가운데 대반전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하만의 악한 계궤를 이기게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대적하는 인간의 모든 악한 꿰는 산산이 부서지게 하여 주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하나님의 통치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역사 책이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부터 시작해 가지고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부터 시작해서, 최근에는 역사의 연구, 아놀 토인비까지 수많은 역사의 책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런 두꺼운 역사 책이 많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역사 책이나 역사관은 세상적으로 볼 때는 대단한 PHD이고, 세상적으로 볼 때는 대단히 똑똑하다 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빈 껍데기라는 것이에요.

다른 말로 하면 역사를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 바라보는 어릴 때부터 그것으로 훈련받은 어린아이 청소년의 역사관이 세상에 어떤 무신론적인 역사관으로 똘똘 뭉쳐서 무장된 PHD이나 박사들이나 아주 그냥 박식한 철학자들보다도 엄격하게 얘기하면 어린아이들, 청소년들의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그 역사관을 가진 그 아이가 하나님 없는 무신론자 PHD보다도 더 낫다 안 났다? 다시요 낫다 안 났다 더 나은 줄로 확신합니다. 누가 더 올바른 영적인 깊이를 가지고 있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우리가 무슨 대학의 역사 철학 PHD를 안 받았다 할지라도 우리는 오늘 확신하는 말씀을 통하여 주님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는 하나님이 절대 주권을 가지고 통치하시고, 결국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통하여 역사의 종말을 향하여 가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를 경고하시고, 주관하시고, 결국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기뻐하시는 뜻대로 절대 주권을 가지고 방향을 잡을 것입니다.

이건 세상에 박식한 사람도 잘 모르는 일들입니다. 여러분 죽어보면 압니다. 나이가 들어보면 다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역사의 맷돌을 천천히 돌리시는 것 같아도 결국은 하나님의 맷돌에 의하여 세상 역사는 산산이 부스러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이런 일들을 놓고 제가 좀 구약의 어떤 쌩쌩한 예가 좀 없을까 저 구약을 보다가 아 그렇구나! 아마 공감대를 가진 내용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엘리야가 바울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영적 전투를 갈멜 산에서 하고 난 다음에, 그 참 대단했지만 그 여자가 한을 품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이세벨이 말이에요. 참 독기(毒氣)를 품고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니까, 엘리야가 어마 뜨거라 깜짝 놀라 가지고 도망을 가버렸어요.

그래 갖고 호렙산의 어느 굴 속에 들어가 버렸어요. 혼자 숨어버렸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는 어떻게 나갈 길이 없는 것 같아요. 자기가 살 길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찾아 오셔갖고 엘리야야 너 어디 있냐?’ ‘엘리야 너 있냐? 네가 어찌하여 홀로 여기 있느냐?’ 열왕기상 19장에 보니까 엘리야가 뭐라고 대답하느냐,

*열왕기상 19:14b,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오직 나만 남았다고 여러분 개인의 역사도 그러고, 우리 민족의 역사도 그러고, 어떨 때는 순간순간 오직 나만 남았다고, 기독교가 수치를 당하고 그리스도인의 수치를 당하는 것 같고, 기독교 정신을 가진 아이들이 공격을 당하는 것 같고 오직 나만 남은 것 같다고, 가정에도 여러분들 가정의 역사가 순탄해야 되는데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마음에 나만 남았다고 저기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는 줄 아세요?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신묘막측한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II.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신묘막측한 말씀을 하신다.

*열왕기상 19:15
15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열왕기상 19:16,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아니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그다음 구절에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그다음에 또 뭐 하냐면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할 것이다. 역사의 흐름 속에 나만 남았다고, 나만 외롭다고, 지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그런 상황 가운데 이방의 통치자를 세워서 하나님의 심판의 막대기 역할을 하게 하고, 하사엘에게,,, 그다음에 북쪽 이스라엘 왕국이 엉망이니까 그 북쪽 이스라엘 왕에는 혁명가 예후를 세워 가지고 악한 아방의 모든 집안을 도륙(屠戮)하게 만들고 싸그리, 싸그리 도륙(屠戮)하게 하고, 그다음에 역사를 이어가도록 엘리사를 세워가지고 하나님의 사람을 계속 세워가게 하고, 엘리야는 이런 이런 일을 생각도 못하고 있는데, 자기 홀로 남았다고 자기 죽는다고 하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하나님은 아니야, 아람 왕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의 심판자 막대기가 되게 하고, 예후를 시켜서 그 강력한 혁명을 일으키게 하고, 엘리사를 통하여 다음 세대를 세워갈 것이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열왕기상 1917, 18절에 특별히 18절에 뭐라고 말씀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같이 보겠습니다.

* 열왕기상 19:17~18,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끓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할렐루야 하나님 나라 역사의 흐름에는 너무 신묘막측한 것이 있는데, 하사엘도 있고 예후도 있고 엘리사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자리에, 하나님께서 7천 명을 남기셔 가지고 우리 교회로 말하면 7천 기도 용사를 남기셔 하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게 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인격이 없는 힘과 사건, 어떤 세상의 권력과 이런 것들이 세상을 통치하고 이 세상을 이끌어간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이런 역사의 뒤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요. 하사엘, 시대의 하사엘 시대의 예후, 그걸 그 역할을 누가 할지 모르겠어요.

시대의 엘리사의 역할, 시대에 7천 기도의 용사 역할, 우리는 적어도 우리는 예후도 못 되고, 우리는 엘리사가 못 될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우리는 7천 기도 용사의 역할은 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이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절대 통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해서 눈이 열린 사람들이 분별할 수 있는 역사의 흐름이에요. 오늘은 3.1절 기념주일 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의 3.1절은 3.1운동의 핵심 인물이 누굽니까?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유관순 누나입니다. 유관순 열사입니다. 근데 우리는 그거는 겉으로 드러나는 역사예요.

우선 3.1 운동의 33인이 3.1운동의 독립운동가, 우리 선언문에 우리가 사인한 34명의 민족 대표가 있는데 그중에 얼마가 기독교인이죠? 거의 절반이 절반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에요. 근데 사실은 3.1 운동의 큰 어떤 준비와 어떤 조직과 이런 것들은 사실 기독교인이 대부분 다 했어요. 70% 이상 했을 거예요. 불교나 천도교나 이런 내용은 우리끼리만 하면 그거 하니까, 좀 이렇게 같이 하자고 이렇게 한 건데 사실은 우리가 앞장서 서게 된 것이고, 33인의 아주 그냥 그중에서도 키맨 중에 하나가 누군지 아십니까? 길선주 목사님이세요? 그런 거는 알고나 지납시다. 길선주 목사님이에요. 평양 부흥운동의 그 참 주축 인물이 됐죠.

그 평양 부흥 운동은 1907년도에 그 힘을 가진 것이 겉으로는 19193.1운동이라고 그러지만 하나님 나라 역사의 비밀의 역사의 밑바닥에는요. 평양 부흥 운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곳곳마다 교회가 거점이 된 것이에요. 그리고 유관순 열사가 유관순 누나가 3.1 운동에 정말 아우네의 장터에서 그렇게 만세를 부르다가, 순국을 했지만 사실은 그 뒤에 보면요. 엘리스 샤프라는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님이 32세에 와 가지고 그 남편이 3년 만에 남편 선교사님이 장티푸스로 죽어버렸어요. 그럼 그걸로 자기가 끝내야 될 텐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 엘리스 선교사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어떤 뜻인지를 자기가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이 조선 땅에 펼쳐지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20여 년 동안 1905년부터 20여 년 동안 어떻게 했냐면, 충청도 지역에 특별히 공주의 영명학교를 세워가지고 거기서 초등 교육을 했어요. 그 초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유관순이에요. 그리고 거기서 영명학교에서 초등 교육을 받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바로 이화학당의 고등과로 올라갔어요. 지금 하면 중고등학교로 올라간 거죠. 그러니까 3.1운동의 유관순 열사의 뒷배경은 엘리스 샤프라는 선교사의 헌신과 그 선교사를 통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어떤 훈련, 그리고 신학문과 그리고 애국사상이 그 유관순에게 그대로 심겨지게 돼 가지고 그것이 동일이 되어서 오늘 3.1절 예배를 우리까지 드리면서 말씀을 드리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이거 전혀 가르치질 않아요. 세상 역사가들은 전혀 가르치지 않고 그냥 이런 거는 그냥 언급도 안 해요. 변질된 역사관으로 왜곡시키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너무 많아요. 그리고 역사 역사의 역사관의 역사의 눈과 시선에 대한 이 싸움의 전쟁터인데 여기 전쟁터 현장에 대한 교육 현장이에요. 인본주의의 급급한 대학에서 이걸 계속 가르치게 될 때에, 이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는 대학이 아주 그냥 잘못된 오염된 역사관을 배출하는 공장이 되고 있고, 잘못된 역사관을 계속 퍼뜨리는 이 메디아(Media)들이 아주 아주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그런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따라서 우리는 오늘 우리는 확실히 하나님 나라의 중심이 되는 역사관으로 똘똘 뭉쳐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 아이들을 잘못된 세속 역사관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구원해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 대학부 청년부 우리 아이들 제대로 훈련받아야 되는 것이고 예를 들어서 어제만 하더라도 광화문이다 여의도다 전국에 많이들 모였어요. 아마 광화문 여의도 100만 이상 모였을 거예요. 그런데 100만 명 이상 모였다고 하는 레가시 주요 메디어들이 한 군데 없어요. 이게 지금 그러니까 여러분들께서는 똑바른 역사관의 눈이 열려 있어야 되는 것이에요.

그럼 예를 들어서 100만 명이 모였는데도 메디아들이 다루지도 않는다. 왜 그럴까? 그 배경에는 속이는 영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 배경에는 좀 거창하게 말하면 사탄 루시퍼가 작동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먼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생각했고, 그다음에 우리가 본격적으로 생각할 것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잘못된 역사관을 조장하게 하는 사탄 루시퍼의 전략을 조심해야 되는 것이에요.

오늘 본문에 보니까, 오늘 본문 우리 오늘 14장에 여러분들 12절부터 15절까지 읽었습니다마는 12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오늘 12절 같이 한번 보겠습니다.

*이사야 14:12,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너 아침의 아들 뭐라고 그랬어요? 계명성이다. 계명성이란 말은 새벽 별빛이. 그 말이죠. 그런데 본래 이 계명성 오리지널 계명성이 누구냐?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니까,

*요한계시록 22:16,
16 예수는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나 예수는 광명한 새벽별이라 그랬어요. 그런데 이 광명한 새벽 별인 예수님에 대해서 이 하나님에 대해서 이 사탄의 기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루시퍼가 어떻게 되느냐, 오늘 14절에 보니까, 루시퍼에 대해서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14:14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여기에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루시퍼가 모방자라는 거예요. 모방(模倣)자라는 거예요. 그리고 조금 더 들어가면 모방자일 정도만 아니라, 광명(光明)한 새벽별 이신 예수님의 영광(榮光)을 찬탈(簒奪)하려고 그랬어요. 도둑이요 모방자요 찬탈자였어요. 그런데 도둑이요, 모방자요, 제가 이 내용을 천사장 미가엘이나 루시퍼 얘기를 다 못합니다. 다 못하는데 한 가지 핵심만 하나님이 얘기하세요. 어떻게 루시퍼가 됐나 어떻게 모방자와 찬탈자와 도둑질을 하고 있느냐 왜 그럴까? 그 힘이 그 근원이 뭘까 오늘 루시퍼에 대해서 본문에서 루시퍼에 대해서 루시퍼를 뭐냐 하면, 자기 힘을 의지하는 내가 무엇을 하겠다 내가 뭘 하겠다 자기가 내가 뭘 하겠다. 영어로 아 윌(I will), 아 윌 내가 뭘 하겠다. 그래서 13절에 보니까,

*이사야 14:13,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You said in your heart, "I will ascend to the heavens; I will raise my throne above the stars of God; I will sit enthroned on the mount of assembly, on the utmost heights of Mount Zaphon)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뭐 하리라 높이리라 합니다. 그다음에 내가 북극 지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그다음 14절에 보니까,
*이사야 14:14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가장 높은 구름 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이와 같아지리라. 내가 아윌 아윌, 이 짧은 구절에 아 윌, 내가 뭘 하겠다는 것이 다섯 번 나와요. 다섯 번, 그러니까 우리가 속는 것, 역사에 대해서 속는 것, 하나님의 철저한 주권과 통치에 대해서 속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내가 무엇을 하겠다 아 윌 윌이, 역사 우리 하나님 나라 역사를 속이는 찬탈하고 그다음에 도둑질하는 것이에요. 소위 내가 뭘 그래서 모든 죄와 악과 교만의 뿌리는 내가 무엇을 하겠다는 소위 미이즘(Meism), 우리는 아 윌이 아니라, 히 윌(He Will)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통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가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영 가족 여러분,
우리가 성도이든 성도 간이든 상관이 없이, 내가 내 운명을 다스린다. 내 삶은 내가 알아서 한다는 것, 여기서 모든 부정적인 것들 어려움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이것이야말로 내가 내 운명을 다스린다는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흐름에 대한 눈을 닫게 하고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 까만 눈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역사에 대한 분별력이 내가 내 자리에서 왕 노릇할 때 생기는 것이에요.

여러분, 개인적으로 내 운명을 내가 스스로 결정한다고 하고, 내 삶을 내가 운영한다고 그러고 내가 알아서 꾸려간다고 하면 겉으로 보면 못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에요. 여러분, 우리는 다시요 아윌이 아니라 히 윌(He Will)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 될 때는 내 인생의 역사는 끝장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용어를 만들어 봤어요.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 될 때 내 역사는 끝이다.-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 히 윌(He Will)이 되어야 할 것이에요. 하나님이 내 운명의 주인이 돼야만 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어린아이가 조금만 중2까지, 갑시다. 2, 겁나는 중2, 엄마가 뭐라 말 그러면 엄마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엄마 내일은 내가 알아서 해. 엄마 돈 받으면 나한테 잔소리하지 말라고. 엄마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어린아이가 혹은 중2, 내가 다 알아서 한다고 그러면 엄마가 저하고 싸울 수도 없고 그냥 니가 알아서 하라. 그걸로 그 인생 끝이에요. 걔는 걔가 뭘 알겠어요?

그 세계 가문으로만 끝나니까 그 인생 끝이에요. 세상에 엄마와 어린아이와의 관계하고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거는 상대가 안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아이윌이 아니라 히 윌(He Will)이 되기를 바랍니다. I will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결과가 너무 비참해 1419절에,

*이사야 14:19,
19 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무 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 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정말 밟힌 시절이 그냥 시체도 아니에요. 너무 비참한 거야. 그러니까 아윌이야, 결과가 그런데 히 윌(He Will)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1424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1424절 이렇게 나와 있어요. 24절에 보니까,

*이사야 14:24,
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는 것 자체가 교만이고, 이것은 어둠의 영에 속하는 루시퍼에게 속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런 인간의 실수와 잘못된 행동 뒤에는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역사의 눈, 역사의 분별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걸 사도 바울이 오죽하면 에베소서 612절 잘 하는 말씀인데 신약의 창으로 해석합니다. 같이 보겠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을 상대함이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우리가 역사를 보는 눈에 있어서 이런 시각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수많은 오류, 어둠, 인본주의, 악함, 수많은 어떤 이 세상 우리가 볼 때 말도 안 되는 저런 일들의 뒷배에는요. 악한 영들의 궤계(詭計)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이에요. 이건 제 얘기가 아니에요.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파는 장면 그 어마어마한 참 안타까운 장면 아닙니까? 거기 보니까 누가복음 223절에 보니까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고 그랬어요.
*누가복음 223,
3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가롯 유다의 범죄 뒤에 악한 형이 있다는 것이에요.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부부가 위선과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사도행전 53절에 뭐라고 얘기하느냐,

*사도행전 5:3,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이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우리가 조심을 하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우리가 믿고 I Will이 아니라 He Will이 되도록 우리의 마음을 기도의 마음으로 모아 갖고 He Will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받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I Will의 핵심은 내가 뭘 한다, 내가 뭘 한다. 그런데 히일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오늘 13장부터 23장 사이에 제가 여러 중요한 내용들은 그중에 또 중요한 내용 하나가 20장에 나타나는 것인데, 거기 보면 하나님께서 He Will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이 이사야에게,,, 뭐라고 보여주시는가 이사야 2023절에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이사야 202-3,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
-이렇게 나와 있어요. 병원 시술 이것저것 다 해도 안 됐던 나잇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몇 년 동안?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徵兆)와 예표(豫表)가 되었느니라.

옛날에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하는 분들은 최춘선 할아버지라고 들어보셨어요. 옛날에 지하철에 맨발로 다니면서 전도하신 분 그분이 왜 맨발로 다니십니까? 할 때에 그때 내용이 이거예요. 3년 동안 이사야가 누굽니까? 왕족입니다. 이사야는 귀족(貴族)입니다. 이사야는 품격(品格) 있는 언어(言語)를 사용한 사람이고, 이 이사야에게서는 범접(犯接)할 수 없는 기품(氣稟)이 흐르는 사람입니다. 이 이사야에게 하나님께서 너 빨가벗고 3년 동안 다니면서,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선포(宣布)하라. 물론 그 당시에 벌거벗었다는 말은 그냥 우리 식으로 팬티 하나만 입고 다녔다 그 말이에요. 이사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어려운 명령이었어요. 사람들이 수근 거리고 사람들이 조롱하고 사람들이 얼마나 얼마나 희덕거리고 조롱(嘲弄)하고 그렇게 해서 했겠어요.

역사 앞에서 하나님의 주권 I Will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음대로 하고 그러면 내 근사하게 내 식으로 막 지금 한국 사회에 있는 일어나 수많은 일들 가운데 정말 무신론적 입장에서 폼나게 또 폴리티컬 PC 정치적 올바른 주의를 해 가지고 난리 치고 있잖아요. 멋있게 보이는 거지. 근데 하나님이 뭐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통치에 의하여 너는 벌거 벗고 3년 동안 다녀라. 어떻게 보면 한국 기독교가 모욕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고, 개인적으로 여러분 주님 제대로 섬길 때에 수많은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 이거 다 이사야가 3년 동안 벌거벗고 하나님이 He Will, 하나님이 통치하시는데 너는 벌거벗은 몸으로 순종(順從)하라. 벌거 벗고 다닐 때 무신론자들의 하나님 조롱하는 것들, 이 시대의 애굽과 모압과 바벨론의 모략과 공격들, 이사야처럼 모욕(侮辱)과 수치(羞恥)를 당하는 그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 그래 있는데 이제 여기에 끝이 아니라 진짜 중요한 것이 있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아윌(I will)이 아니라 희율(He Will)이 되고, 하나님 앞에서 이걸 순종할 때에 다시 3절 뭐라고 말씀하는가? 시작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다음에 뭐예요?

*이사야 20:3,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
-나의 종,,, 이사야가 3년 동안 됐습니다. 누구의 종이라고요? 나의 종, 이거는 어마어마한 칭호입니다 어마어마한 침입입니다. 구약에요. 하나님께서 아주 노골적으로 니가 나의 종이다. 나의 종이라고 일컫는 사람은 5명밖에 없어요. 아브라함 모세가 나의 종이다. 여호수아가 나의 종이다. 그리고 다윗 왕이 나의 종이다. 그리고 이사야가 나의 종이다. 이거는 그 하나님 나라 전체 역사에서 너무나 특별한 하나님께서 부여하시고 쓰시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고 아윌(I will)이 아니라 희율He Will)이 되어서, 하나님의 종이 되면 역사를 분별하는 역사의 종이 될 것입니다.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이여,
여러분의 가정마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가정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우리 가정에 희율이 되게 하시고 주님 어떨 때는 이거 지키는 것 때문에 내가 부끄럽고 힘든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거 잘 감당하게 될 때에 여러분들의 섬김을 통하여 여러분들의 가정에서는 여러분들이 역사의 종이 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이 수많은 일들 앞에, 지금 일어나는 수많은 이 대한민국의 격변 속에서도 주여,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믿습니다. 이 일을 통하여 신성한 과정을 가지고 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이걸 생각하고 우리가 헤일 하나님의 종이 될 때에, 우리는 역사의 종이 될 것이고 역사의 종이 역사의 종이 되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를 역사의 주인처럼 일하도록 역할을 만들어 주실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역사의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종 역사의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가정도 이 민족도 하나님께서 놀랍게 기적(奇蹟) 같은 방향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설교에 잘 안 하지만 오늘은 중요한 거니까 하나님의 종 역사의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 번 서로 격려함 합시다. 모두가 다 한 번 더 하나님의 종 역사의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의 종, 역사의 종,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서 마음을 드리면 역사의 주인처럼 일하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에요. 그리고 아까 말한 대로 시티 오브 가드(City of God), 하나님의 도성, 어거스틴의 역사의 역사의 시티 오브 가드, 하나님의 도성을 우리가 매일매일 써내도록 만들 겁니다. 저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가지고 EHK라는 역사란 무엇인가 에드워드 카라는 유명한 역사를 책을 쓰고 그분은 이렇게

*‘현재의 눈을 가지고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애드워드 카라-
-역사가 무엇인가? 역사는 현재 현재의 눈을 가지고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그랬어요.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 오늘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하나님이 통치한다는 건 이걸 가지고, 우리가 이 과거를 해석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 하십시다.

저는 제 인생의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저는 인생의 역사에 저도 엎어질 만한 일들, 수많은 부끄러운 일들, 힘든 일들 많이 있을 수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저에게 큰 약속의 말씀이 되었던 것이 뭐냐 하면 시편 427절이었어요.

*시편 42:7,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인생의 역사의 바다에 우리 인생의 조각배 같은 배를 띄우는 겁니다. 띄워서 항해를 하다 보면 수많은 파고를 가지고 엎어질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고, 그다음에 그냥 완전히 그냥 파산할 수도 있고 이런 수많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요.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십시오. 저는 마음속에 하나님 아버지 삶이 메마르고 힘든 과정이 많이 있지만, 주의 은혜의 파도와 주의 물결이 저의 생애를 휩쓸고 절대 주권자로서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앞으로 인생의 혼란스럽고 절망스러운 모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완전히 압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 성도들 우리의 믿음과 인생의 조각배가 이렇게 왔다 갔다. 하지만, 전복되지 않도록 하나님이 하나님의 압도하는 그런 하나님의 파도와 물결이 여러분들을 덮어주시기를 바라고, 대한민국의 배가 대한민국이라는 이 배가 파도 속에서 전복되지 아니하고, 대한민국에게 주신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의 사명과 대한민국이 은혜의 항구(港口)로 도달(到達)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대한민국이라는 이 배를 이 파도 속에서도 하나님이 압도하는 물결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제가 좀 찬송도 하고 싶지만 제가 오늘 찬송은 좀 나중에 할 것이고 일단 오늘 기도할 터인데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정말 기도할 때 성도들이 마음을 다해 기도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역사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우리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고, 하나님이 이 민족의 주인이 되어 주시옵소서 주여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 가운데는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고, 그다음에 우리 가정의 주인 되심을 선포하고 I will이 아니라 He Will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마음으로 주여,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오늘 3.1절인데 두 번 크게 외치고 합심해서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요약
이 민족의 혼란 위에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나타나게 하셔서, 모든 악한 꾀가 산산이 깨어지고 부서지는 역사의 대반전'이 일어나기를 간구한다. I willHe will의 영적 전투 현장'에서, 우리는 He Will의 온전히 하나님의 역사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파도와 물결이 나의 인생과 우리 민족'을 압도하는 기적을 맛보아야 한다. 주가 하심을 믿고, 우리는 사랑의교회와 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가 물 떠온 하인의 그림자의 헌신으로 세계복음주의연맹 서울 총회(10.27)를 섬길 때,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부흥의 새 차원'으로 비상하는 주님의 귀한 인생이 되어야 한다.

1.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성경 이사야 13~23장을 통해 바벨론, 애굽, 두로 등 여러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을 설명한다. 이는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세상의 혼란과 죄악에 대한 경고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이 러시아, 중국, 일본의 영향 속에서도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의 주권 덕분이며, 한국교회의 새벽기도가 나라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역사.
역사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성 어거스틴의 신국론(City of God)을 통해 알 수 있다. 세상의 역사는 표면적으로는 인간의 이념과 정치로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정치적 격변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진행되는 과정이며, 믿음의 사람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3. 사탄의 전략과 역사적 분별력.
이사야 14장에서 **루시퍼(사탄)가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려 했다는 점을 들어, 잘못된 역사관이 사탄의 전략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역사를 인간 중심으로 보는 무신론적, 인본주의적 사고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왜곡하며, 우리는 이러한 잘못된 역사 해석을 분별해야 한다.

4. 하나님의 종이 되어 역사의 도구가 되라.
이사야 선지자가 3년 동안 벗은 몸으로 다니며 순종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희생할 때 진정한 주님의 종이 될 수 있다. 과거 3.1운동의 배경에도 기독교인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으며,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아야 한다.

5. 결론: I Will이 아닌 He Will!!!~~
루시퍼는 "내가 하겠다"(I will) 라고 외쳤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다"(He will) 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가정과 민족이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대한민국을 은혜의 항구로 인도하실 것이기에,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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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2월 23일)
제목: "독사 굴에 여호와의 영이 임하시면“
(When the Spirit of the Lord Comes Upon a Hole of the Cobra)-
<새로운 길>이사야 시리즈 ➄
말씀: 이사야 11:1-12:1-6
찬양인도: 쉐키나(이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김기완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헌금찬양: 신혜은(소프라노), 신종현(바리톤)(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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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1-12장:6,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11 그 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12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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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장 -6,
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6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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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들, 다 무너지게 하여 주시옵시고, 견고한 진들, 그리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는 여러분들을 얽어매고 있는 거, 올가 매고 있는 것, 또 모든 참 묶인 것들이 묶여 진 것들이 풀려지기를 그런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오늘 이사야 오늘 사실은 10장, 11장, 12장, 3장을 제가 강의를 하는 것인데, 오늘 제가 기도하는 것은 이사야가 깨달았던 그 하나님을 그대로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이사야가 만났던 그 하나님을 그대로 만나게 하여 주십시오.

한국 교회에, 처음으로 대한민국 교회 우리 140년 역사 가운데 신구약 성경 전체를 주석 하신 박윤선 박사님이라고 계세요. 박윤선 박사님이 젊은 시절에 제가 들은 얘기인데 제가 그분 말년의 사랑도 많이 받고 그랬는데요. 박윤선 목사님이 젊을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내가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는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내가 알 수가 있나? 그랬을 때 그 마음에 하나님 주신 음성이 이렇게 들렸대요.

”너의 손에 있는 성경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네 손에 들려 있는 오늘 읽은 이 말씀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걸 깨닫게 해주셔갖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제대로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사야의 아주 드라마틱 하고도 아름답고도 놀라운 본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1장 1절 본문에 여러분들이 읽으셨는데 먼저 이렇게 나옵니다.

*이사야 11:1,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I. 이새의 줄기에 임한 여호와의 영.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났다. 그래서 오늘 첫 번째로 생각할 것은 이새의 줄기에 임한 하나님의 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 이새의 줄기라고 했을까? 이새의 줄기를 그리고 그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을 하겠다. 이 내용은 사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인 것인데 예수님에 대해서는 흔히들 얘기할 때 우리가 다윗의 자손이었어요.

이런 얘기를 많이 하죠. 그런데 오늘은 다윗의 줄기나 다윗의 뿌리라고 하지 않고 왜 이새의 줄기라고 했을까? 여러 해석이 있지만 이런 해석입니다. 당시에 이새는 그렇게 알려진 사람도 않았고 유명한 사람도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이새의 줄기라는 말은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과 대조가 되어 가지고 초라한 가문이요. 초라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다윗을 폄하할 때 사울 왕이 다윗에 대해서 폄할 때 그 다윗을 조롱하고 그럴 때 이새의 아들이라고 이새의 아들이다. 별거 아니라는 뜻이죠.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을 가리켜 다윗의 자손이라고 왕족의 영광을 뜻했지만, 이새의 줄기는 예수님의 시작이 초라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 줄기는 나무가 베어서 밑동만 남은 것 그러니까 아주 그냥 생명의 기운이 없는 비참한 상태, 소망이 없는 상태, 예수님이 처음에 꽃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흠모(欽慕)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고, 말구유에 탄생하셨고, 나중에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달려 죽으시는 모습 어떻게 보면 나약(懦弱)한 줄기와 같은 존재이셨다.

왜 이새의 줄기에서 오셨나? 왜 만약에 여러분들 예수님의 초라한 모습으로 오지 않으시고 왕의 아들로 오셨으면 누가 가까이 갈 수가 있겠습니까? 부족한 우리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여러분과 저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초라함 때문에 주님은 이새의 줄기에서 오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오신 등장하신 예수님이셨지만, 지금 이제 본문에서 또 놀라운 대반전이 일어난 것이고, 그것이 2절 앞부분에 뭐라고 되어 있냐, 그 초라한 모습인 예수님 이새의 줄기에 오신 분에게 다 같이 오늘 요절 중에 하나인데 2절 시작,

*이사야 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謀略)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오늘 이 말씀 마칠 때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이 6가지를 다 외우시는 거예요. ①지혜(智慧)와 ②총명(寵命), 지혜와 뭐예요? 초명이에요. 그다음 모재, 영재가 아니고 모재, ➂모략(謀略)과 ➃재능(才能)의 영이요. 그다음에 지경, ➄지식과 ➅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한번 해 볼까, 처음에 뭐에요?

-첫 번째 지혜와 총명,
-두 번째 모략과 재능,
-세 번째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이제 조금만 더 하면 확실히 하실 거예요. 이 6가지 영이 강림하시리니, 여기에 여호와의 영은 성령이세요. 성령께서 강하게 하시니까 다시 여러분과 저는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 주님으로 고백한 줄 믿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통하여 천지 창조가 여호와의 영이 임하셔 갖고 모든 모든 어두운 것, 모든 것, 기품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천지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시니까 성령님의 놀라운 6개의 속성, 성령님의 특성이 이 여섯 가지가 ‘지혜와 총명, 모략과 재능,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으로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한테 가끔 어떤 분들은 자녀를 위해서 어떻게 기도할까요?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기가 막힌 다시요. 기가 막힌 기도의 제목을 드립니다. 주님, 우리 자녀들마다 주의 영이 임하셔서, 성령이 임하셔서 이 6가지가 그대로 우리 아이들에게 접목(接木)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주 기가 막힌 기도이죠. 뭐 6개의 특성이 지금도 이스라엘 나라에 가면 ‘메노’라라는 촛대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촛대 아시죠? 하나 이거 이렇게 제가 오늘 사실 들고 오려고 그러다가 또 제가 그것만 기억날 것 같아서 제가 안 들고 왔는데 마음으로 하면서 이스라엘의 메노라는 촛대가 있는데 중간에 있는 그거는 뭐냐 하면 성령의 기름 부음을 상징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기에는 원래 주전자 같은 것이 이렇게 기름 부은 게 상이 달려 있어요. 그리고 양쪽 6개가 있는 3개 3개가 있어요. 그 3개, 3개가 뭐냐 하면, 오늘 이사야 오늘 11장에 나오는 이 6가지의 영에 대한 것이에요. 지혜와 총명의 신, 그다음에 모략과 재능의 신, 그다음에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이 여섯 가지, 아주 신앙의 유니크하고 독특한 면이에요.

이새의 아들이라는 그 초라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이 제대로 임하시면, 여섯 가지 속성이 우리 가운데 체험된다 이 말이에요. 지금 누가 오늘 주님 이 국가적인 상황, 그다음에 지금 여러분들 개인적으로 목사님 내가 어떻게 살면 좋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영적으로 인생 승리할 수 있습니까? 물어보신다면 자녀들을 이렇게 축복하듯이 오늘 이 순간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새의 아들에게 임했던 6가지의 성령님의 속성이 오늘 여러분들의 삶에 그대로 임하시면 이걸 그대로 그대로 믿으면 이사야가 깨닫고 만난 그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패자 부활전 그리고 삶의 역전의 은혜가 임할 줄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도 오늘 이 상황에서 6가지 영이 우리나라 가운데 임하게 하여 주십시오. 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대한민국이 뉴코리아, 새로운 사명을 가진 새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걸 위해서 제가 더 자신 우리가 지금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는 이 요요 고비만 잘 넘기면 이 혼란만 잘 넘기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속만 하면 미국이 250년, 300년 걸렸던 것을 우리는 지금 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 지금 왜 일본 일본은 지금 우리 지금 이 탄핵 상태에 대해서 일본은 말을 안 하고 있습니다.별로 자민당 80년의 역사가 우리처럼 이렇게 역동적이 아니거든요. 중국은 지금 이 이 혼란을 계속 말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안 합니다. 우리처럼 이렇게 들고 일어나면 중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이거 지금 현 대통령만 요구하고 있지만, 북한은 지금 지금 우리 지금 우리 세이브 코리아라든지 이런 막 하는 이런 이런 혼란 상황을 얘기합니까? 안 합니까? 안 합니다. 오늘 이 모든 것들이 잘 처리가 되면 우리나라는 뉴코리아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가 만난 하나님을 그대로 접목하게 해 주십시오.

여기 여섯 가지가 그대로 나타나 지혜와 총명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여기에 특히 총명이라는 말은 이런 말씀드려도 이런 이런 분별하는 능력, 이런 분별력이 내게 생기겠나, 할 수가 있겠지만 여러분 낙심하지 마세요.

➀지혜와 총명.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준비는 안 된 사람들이었어요. 베드로는 다혈질이었고, 빌립은 계산적이었고, 시몬은 열심 당원이었고 마태는 세리였어요. 매국노였어요. 다 달랐어도, 예수님의 영, 지혜와 총명의 영으로 무장될 때 모든 것들을 올바르게, 그래서 주님 우리에게 오늘은 지혜와 특별히 총명은 분별력의 은혜를 주십시오.
➁모략과 재능.
♤모략은 올바른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능력이고, 재능은 그 모략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이다. 여기서 참된 권위가 나온다 즉, 삶의 방향을 잡아주고 힘을 부어주는 영이다.
-여기서 참된 모략이라면 뭐가 나와요? 삶의 방향을 잡아주고 삶의 시작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1부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에게 모략과 재능의 영을 충만하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3절에 보니까, 3절 보니 본문 11장 3절 뒤에 보니까,

*이사야 11:3b,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예수님은 사람을 보실 때에 겉으로만 보시지 아니하고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으셨어요. 니고데모를 보실 때 니고데모가 겉으로는 대단하고 뭐 대단한 지식인이요. 그다음에 권력자요. 다 그랬지만 니고데모의 속 사람이 영적으로 완전히 무지하고 속 사람이 연약(軟弱)하다는 것을 아시고, 차근차근 모략(謀略)과 재능(才能)으로 올바른 조언을 니고데모에게 주셨어요. 이게 얼마나 대단했는지 예수님의 반대파들조차도 신약의 창으로 요한복음 7장 46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7:46,
46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오늘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 우리 사랑하는 교회 영 가족 여러분들에게 모략과 재능의 영을 주심을 사람들이 볼 때, 이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나, 할 정도로 평온한 은혜를 여러분들에게 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한 쌍이에요.

➂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은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말한다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의 의미는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에 하나님을 경외하니까 그 친밀한 관계를 말하는 거예요. 예수님은 오죽하면 요한복음 8장에 보니까,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안다 그랬어요. 하나님은 지심이 오늘 저와 여러분 말할 수 있어요. 세상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때, 너희는 하나님 잘 모르지만 나는 하나님을 안다. 이렇게 말할 정도로 평온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놀라지 않으시고 절제력과 안정감으로 고요함으로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은 이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하겠다고 그 관계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안정감과 절절함과 고요함을 허락해 주시고, 이걸 통하여 삶이 요동하지 않는 축복을 한 분 한 분에게 맞춤형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에 오늘 3절 뒤에, 어떤 일이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그들 앞에 즐거움을 삼을 것이고,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걸 통하여 즐거움으로 삼을 것이오, 위급하고 비겁하고 상처받고 슬픈 상황이 영광스럽고 기쁨과 샬롬의 상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자, 오늘 이 6가지, 이 세상 여섯 가지 모든 예수님의 생애가 있어요. 여섯 가지, 특성들을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로서 한 번도 예외 없이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6가지 다시 한 번 더, 지혜와 그다음에 모략과 그다음에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여러분이 이것을 남편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여러분들 어리 버리한 남편을 위해서 아내가 죽자 사자 이걸 위해서 기도하시면, 남편은 어느 날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가게 될 거예요. 좀 어리 버리한 자식들도 얘를 왜 이렇게 엄마 닮아서 공부를 못하나 그런 일이 있으면 자녀들 위하여 하나님은 진실로 여호와의 영이 임할 때, 초라한 이새의 주에서도 주의 영이 임할 때,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처럼 하나님 그대로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또 하나의 놀라운 반전의 예수님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11장 4절 뒤에 이렇게 나옵니다. 뭐라고 그러냐 하면

*이사야 11:4b,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그의 입에 막대기로 그의 입술의 숨으로 심판 주가 묘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여호와의 영, 주의 영이 임하니까 이새의 줄기, 겸손하시고 초라하신 그 이미지와 다르게 압도적인 대반전이 일어나게 되는데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그의 입에 막대기로 세상을 치고, 숨 쉬는 걸 통하여,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너무나 온유하고 부드럽고 자비로운 주님 겸손하신 주님이시지만 또 하나는 이 놀라운 그의 입술의 기운과 입에 막대기를 통하여 악한 자들을 거꾸러뜨리는 강력함이 나온다는 것이에요.

이 강력함은 타협(妥協)할 수 없는 진리가 될 것이에요. 여러분 어떻게 보면 어떻게 보면 참 놀라운 건요. 진짜 진리는요. 거룩한 무자비함이 있어요. 진짜 진리는 타협하지 않아요. 그리고 진짜 진리는 오류를 참지 못해요. 진짜 진리는요. 타협이 안 돼요. 우리 주님도 그의 이 막대기와 예수의 기운으로 세상을 심판하심을 지을 때에 모든 모든 진리 아고 거짓 모든 것들이 철장 권세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막대기의 심판으로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5절에 보니까,

*이사야 11: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이사야의 너무나 탁월한 지금도 여러분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는다. 성실로 그의 몸에 띠를 삼는다. 지금도 이런 시인이 어떤 시인이 이런 표현을 제대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고대 근동 사회에서 허리띠를 누르는 것은 신속한 행동을 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허리띠를 띠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공의와 성실로 허리띠를 삼으셨다는 것. 악한 사람들의 불의함과 불성실을 밝히신다는 것이다. 이걸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깨닫고, 요한계시록 19장에서 뭐냐,

*요한계시록 19:11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래서 오늘 이사야가 깨달은 그 하나님, 진리 양에 임할 때 깨달은 말씀의 진리, 사도 요한이 깨달았던 충신과 진실, 철장 권세, 이런 모든 것들은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를 거스르는 자에 대한 타협할 수 없는 거룩한 무자비함이 있는 것이다.

오늘 저는 이번에 우리 일어나는 모든 대한민국의 이 상황을 우리가 잘 견딜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은 세계 1등 국가가 될 것입니다. 여섯 가지 말한 대로 지혜와 총명, 모략과 재능,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고 이걸 우리가 사모할 때에, 그래서 이걸 그 이사야 42장 1절에 보니까,

*이사야 42:1,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한번 저와 같이 하십시다. 하나님 이 민족에게 지혜와 총명의 대한민국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모략과 재능의 대한민국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충만한 대한민국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타협 없는 진리가 선포되는 대한민국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공의와 성실히 통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시 한 번 소망합니다. 오늘 이것이 그대로 접목될 때 다시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를 놀랍게 반전(反轉)시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피난처에 있으니 환란을 당한 자들이오라. 2절에 보니까, 이방이 떠들고 나라들 모여서 진동하지만 우리 주 목소리 한 번만 말하시면 천하의 모든 것 망하겠네. 천하의 모든 것이 다 평정이 될 것입니다.

첫 번째는 오늘 중요한 거 다뤘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이새의 줄기에 여호와의 영이 임하시는데 어떤 일이 보이십니까? 드디어 오늘 설교 제목처럼 오늘 독사의 굴에 주님이 영접하실 때, 어떤 일을 할까 두 번째로 이 오늘 여호와라는 지식이 6가지가 충만하게 될 때 그 결과가 오늘 6절부터 9절까지 참 놀라운 말씀이에요. 저는 어릴 때부터 이 말씀을 들으면서 야 이게 에덴 동산인가, 이 상황이 상황이 반전이 되어 나타나는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6절부터 9절까지 여러분들 우리 평생의 소원한 제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 6절, 9절까지 또박또박 우리 같이 한번

II. 독사의 굴에 주님이 영접하실 때.

*이사야 11:6~9,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어릴 때부터 야, 이거 참 좋다, 다 좋다, 이리 되면 좋겠다. 이런 거 우리가 생각을 어릴 때부터 많이 했지만 이 배경은 잘 몰랐어요. 배경은 오늘 제 앞에 이새의 줄기와 6가지 여섯까지 여호와의 에게 말했던 그 은혜가 뒷받침되어 있을 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인데, 이런 것들이 어릴 때부터 또 기도의 제목으로 나타나면요. 인생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 6절부터 9절까지의 그런 은혜를 우리에게 예배하고 준비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고, 송아지와 사자 새끼가 함께 있고, 어린 아이들이 어린아이들이 사자와 표범을 끌고 다니고, 암소와 곰이 함께 먹고, 그 새끼들이 함께 누울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고, 초식 동물이 되는 거예요. 그다음 8절에 젖먹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고 놀고 있고, 심지어 젖뗀 어린 아이가 그 어린 아이가 한두 살, 어린 아이가 독사의 물에 손을 넣어도 해를 입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나 놀라운 세상, 황홀한 평강의 동산, 은혜의 동산, 마치 에덴 동산에 다시 들어간 기분이에요. 그렇게도 바라던 새롬의 평화가 이루어진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게 가능할까? 여기에 어린 자녀가 독사와 함께한다고 했는데, 만약에 그 어린 자녀가 독사의 물에 손을 넣었을 때 엄마가 어떤 느낌이 들까요? 그런데 우리 아이 죽겠구나 그런 상황에서 어린 아이와 독사가 같이 있잖아요. 동물들이 포악한 육식 동물들이 포악함을 버리고 독사의 독이 해를 끼치지 못하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어 먹고,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그런 얘기도 있지만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오늘 말씀을 볼 때 주의 영이 임하실 때,,, 여호와의 영이 6가지 속성으로 채워질 때, 저는 말씀대로 목회하고 싶은데, 여러분들과 제가 이 말씀 들어서 믿고 싶은데, 완벽한 것은 우리가 주님 만날 때 되겠지만 이 땅에서도 이것을 부분적으로나마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과 이 말씀을 받는 모든 성도들은 부분적으로나마 예고편으로 지점으로도, 지점으로라도 branch라도,,, 우리에게 깨달아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걸 우리가 좀 더 체험할 수 있도록 오늘 여기에 나타난 최고의 핵심 가치가 뭡니까? 핵심 핵심이 핵심이 뭡니까? 사자가 풀을 뜯는다. 핵심은 뭐냐 하면, 영어로 말하면 트랜스포메이션, Transformation, 변했다는 것이에요. 뭐가 변했냐? 이리가 변하고, 표범이 변하고, 사자가 변하고, 곰이 변하고, 독사가 변했다는 것이에요.

어떻게 폭력을 행사하고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사냥하는 더러운 야수 그리고 독사가 변해서 어린 양과 송아지와 함께 동거동락(同居同樂)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우리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영적인 세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변했다는 것이 뭐가 변했느냐? 본성의 변화인 줄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이 포악한 짐승 그리고 이런 모든 것들은 우리의 과거에 우리의 본성과도 연계가 되어 있는 것이에요. 우리가 과거에 예수님 모르고, 하나님 없이 내 마음대로 살던 우리의 본성, 육신의 본성, 우리가 보혈 복음과 피해 복음을 믿기 전에, 우리는 일이 같고 표본 같고 곰 같고 독사 같은 사람들이 우리의 본성이 과거에 믿지 않을 때 짐승이었어요.

겉으로 말은 안 하지만 독사도 여러분 우리가 화가 나가지고 남에게 저주하고, 댓글 칠 때 이 댓글 끝에는 독사의 독이 가득합니다. 댓글은 어디에도 하지 마세요. 절대로... 믿는 사람들은 그러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도 오해하고 여러분들을 모욕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도 막 나갈 때 그때 독사의 독과 같은 독이 나가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가장 길들이기 어려운 험악한 짐승이 누군지 압니까? 사자와 표범과 곰과 코브라가 포악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길들이기 힘든 것이 우리의 본성, 우리 속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우리 속에 어 그러니까 소설에 보세요. 인간이 가진 그 포악한 것을 보세요.

그런 본성이 있는 우리들에게 목사 같은 본성, 사자 같은 본성, 곰이나 표문 같은 일이 같은 본성이 있는 우리에게, 주의 영이 임할 때에, 주의 영이 임할 때에, 불평(不平), 불만(不滿)과 복수심(復讐心)으로 들끓는 마음들이 변해서 오늘은 하늘의 동산을 보게 될 것입니다. 변화되기 전에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사도바울을 돌로 스데반을 때려 죽이고 독사입니다. 살인 면허증을 받아 가지고 다마스커스로 말 타고 갈 때, 표범이에요. 그 사도 바울이 나의 죄인의 괴수라 날마다 죽노라. 본성을 요한과 안드레는 말 안 들으니까 벼락을 내려서 사람들을 다 죽여버리자고는, 모세만 하더라도 사람 때려 죽이는 폭력의 살인자였는데, 모세의 오만이,,,

독사와 아이가 함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영이 임하면, 천하의 원수라도 사랑하고 봉사하는 존재로 변할 수가 있다는 것을 다 기가 막히는 말씀이에요. 이 말씀을 들을 때 와닿는 것도 있고, 어떤 분은 거기서 그는 그냥 기록된 말씀으로 여러분 그게 아니에요. 이것이 오늘 보혈 복음을 통하여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라는 것이다. 폭력적인 아버지가 변화되어야 되는 것이고, 못되게 구는 독사 같은 자식들도 다 변화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 들어오기 전에 로마는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검투사들의 나라가 찢기고, 노예들을 찢어버리고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고, 그걸 보면서 웃으면서 술잔을 기울이고, 사람이 죽는 걸 보면서 노래 부르고 박수 치던 그런 독사 같은 나라였어요. 그 잔인한 인생들이 밑바닥에서부터 변화되어 가지고 짐승 같은 사람들이 변화되어 갖고 어린 양과 같이 바뀌게 된 줄로 믿습니다.

심지어 교회 내에도 무슨 중직자들의 모임이다. 그래서 거기도 온갖 오만 일들이 다 있을 수 있는 이런 한국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사자 같아서 으르렁거리는 성도들이 곰 같아 가지고, 사람들이 그 사람만 나타나면 다 도망가는 그런 사람들이, 주의 영에 임하셔 가지고 수는 착한 양처럼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교회 교회마다 이런 새로운 은혜와 새로운 능력으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겁니다. 오죽하면 바울이 그걸 깨닫고, 로마서 8장 21절에,

*로마서 8:21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주님의 영이 임하는 그 순간, 로마서 8장에 주의 영이 임하는 그 순간, 그 영광의 자유함, 그 자유함을 통하여 냉소주의, 거짓, 근심, 비판, 원한과 폭력, 적대감에 의한 이 거친 세상이 순결하고 소박하고 진실된 믿음의 구원이 작동되어 가지고 이 영이 작동되어 가지고, 이사야 11장 6절부터 절까지 이 놀라운 성도들, 결론은 무엇입니까?

*이사야 11:10,
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물을 긷자. 오늘 10절에 보니까, 오늘 이것은 그냥 적당히가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알 만한 깃발이 되는 것이다. 마치 이것은 깃발이라는 것은 이 원형은 놋뱀이 들리는 것처럼, 오늘 이 말씀을 제대로 깨달을 때, 다 병으로 다 죽어 나가는데, 이스라엘 진지에서 형벌을 받아서 다 죽어 나가는데 놋뱀을 들고 놋뱀을 보기만 하면, 그 죽음의 현실에서 살아나는 역사가 있게 되는 겁니다.

오늘 이 말씀을 그대로 깨닫고 여러분 이것이 만민의 기치처럼 이것이 여러분들의 삶의 깃발처럼 딱 설 때, 우리가 이렇게 잘하는 10절에 보니까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 로리라. 모든 민족이 찾는 만민의 깃발이 될 것입니다. 이새의 초라한 뿌리에서 만민의 기치로 선다고 하셨습니다. 11장 11절, 12절에 보면,

*이사야 11:11,
11 그 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이게 뭐냐면 이사야 그날에라는 말씀이 네 번이나 나오는데 1차적으로는 그날의 백성들 앗수르가 애굽과 모든 이런 이런 제국으로부터 노인 받는 거 너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11절에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우선 그런 문자적으로는 그 당시에 이스라엘 회복이 있습니다만 오늘 우리들에게는 이것이 어떻게 적용될 되겠습니까? 이스라엘 정도가 아니라 14절에,

*이사야 11:14
14 그들이 서쪽으로 블레셋 사람들의 어깨에 날아 앉고 함께 동방 백성을 노략하며 에돔과 모압에 손을 대며 암몬 자손을 자기에게 복종시키리라.
-에돔과 모압과 원수 같은 이방인들도 지혜와 총명 영, 모략과 뭐예요? 재능의 영, 그다음 뭐예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동시에 철저한 권세와 공의와 성실로 판단하시는 그때, 그날에는 12장에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모습들이 나오는데, 12장 1절에,

*이사야 12: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이사야 12:2,
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이사야 시대나 지금 우리 시대나 주님은 우리의 동일한 구원의 은혜가 되시며, 동일하게 우리의 찬송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너무 놀라웠고, 12장 3절에,
*이사야 12:3,
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III.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물을 긷자.

-앞에는 이제는 나의 고원이 되셨는데, 그 단수해요. 이것이 확산될 때에 너희들 복수에 너희들에게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을 긷게 해 주실 것이다. 나의 구원이 너희들로 바뀌고 있는 것이에요. 이건 너무나 탁월한 거야. 그리고 나는 저는 이 구원의 우물이라는 말이 너무 너무 기가 막힙니다.

여러분, 구원의 우물이라고 그러는데 물은 풍성함과 생명을 의미합니다. 물이 없으면 다 메마른 것입니다. 구원을 통해 얻게 되는 생명의 역동성과 풍성함으로 인해 누리는 기쁨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수가성 우물가에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물들이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계속 진행된 것이다. 지난주 금요일에 우리 교회 교역자 수양회를 했습니다. 제가 우리 교역자(敎役者)들과 얘기했어요. 이유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일은 끝까지 활력이 넘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역동적인 것이고, 살아난 것이고 생명이 있는 것이고 활력이 넘치는 것이다. 여러분 힘들어도 구원의 우물물을 먹으면 오늘 얘기한 이 모든 내용들이 여러분의 것으로 접목(接木)이 될 때에 예외 없이 여러분들의 삶에는 활력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걸 꼭 어떤 행동 스타일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이런 이런 그 속에 이런 불이 있는 것이에요. 그 속에 이 풍성한 생명의 우물의 역사가 있는 것이에요. 솟아나는 샘물이 되는 것이에요. 우리 모두가 다 21세기 우물과 여인이 돼가지고 우리 민족도 우울과 여인의 상황이 되어 가지고, 우리가 형편없는 어려움도 많지만 이 여인도 힘들었잖아요.

그런데 이 구원의 물 물이 솟아나는 생물을 먹을 때에 요한복음 4장에 신약의 창으로 해석할 때 주의 영이 임하실 때에, 예배의 영광이 임할 때에 그 혼란과 두려움에 대한 그 여인이 솟아난 샘물의 구원의 우물을 먹을 줄로 믿습니다.

제가 처음 시작할 때 오늘 여러분들 묶고 있는 얼음에 걷는 모든 것들, 올무들, 그리고 여리고성 다 무너지기를 원했습니다. 방법은 뭡니까? 3절에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물을 퍼 마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극치가 뭐냐 구원의 우물물을 퍼 마시는 최고의 극치가 뭐냐? 11장 9절에,

*이사야 11:9,
9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얼마나 파워풀합니까? 얼마나 물이 있으면 바다를 다 덮어버립니까? 물이 이 세계의 바다를 다 덮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입니까? 오늘 우리나라의 이 상황 가운데서 압도적인 구원의 우물물들이 이 상황을 덮어버릴 수 있도록 은혜의 은혜를 덧입혀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무리 바다를 덮는다는 이 말씀에 이 믿음의 표현은 뭐와 직결되어 있냐 하면요.

노아의 홍수를 통하여 노아의 홍수로 전 세계 앞에 보고 그 내용의 사실의 깊이가 여기 담겨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온 세계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물이 바다를 덮어버린 이후에 노아의 홍수로 덮어버린 이후에 다시 시작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주의 영이 이 민족을 압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노아와 홍수를 통하여 온 세계가 새로워진 것처럼, 압도하는 주의 영이 임하셔 가지고, 이 나라 이 민족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완전한 새로운 자원으로, 대한민국이 새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적의 나라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요약
주님께서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을 부어주시길 사모하며, 가정과 직장과 나라에 대반전과 승리의 은혜가 되어야 한다. 여호와의 영이 진리의 철장 권세로 압도적인 공의와 성실을 행하실 때, 물어 뜯던 포악한 본성이 샬롬의 동산으로 극적인 변화를 경험해야 한다. 사랑의교회를 통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강력한 구원의 기쁨’이 전 세계로 뿜어져 나갈 때, 만민이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뉴코리아로 비상하기를 소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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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2월 16일)
제목: "마인드 새판짜기"
말씀: 로마서 12:2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이현규 부목사님(1부) 외
사회: 임병영부목사님(1부) 외
설교자: 권성수 목사님-초빙
(대구동신교회 원로, 미국 웨스터민스터 신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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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2,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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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보실 때 사람이 잘 변하는 것 같습니까? 안 변하는 것 같습니까? 예수 믿으면 분명히 예수님을 닮아서 현세의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를 받고, 내세에는 완벽한 영광의 상태로 들어가서 더 이상 변화가 필요치 않는 그런 완전한 인간으로서는 완전한 상태로 들어가게 돼 있는데, 왜 예수를 믿는 데도 변화가 잘 안 되는 것일까요? 어떤 목사님이 수십 년 동안 목회를 하시고 나서 제가 직접 인용해서 좀 좋지 않은 말이 들려도 양해하십시오. 50년 전에 ‘그 놈이, 지금도 그놈이다.’
 
50년 동안 말씀을 전했고 또 50년 동안 그분은 말씀을 받았고 교회 중직으로 있었는데, 어떻게 변화가 안 될까? 외부로부터 강압적으로 억눌러서 변화시키는 변화는 그건 참된 변화가 아니죠. 내면으로부터 진정으로 변화가 일어나야 되는데, 어떻게 하면 이런 변화를 일으킬 수 있고, 또 체험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오늘 12장 2절 말씀 보시면,
 
*로마서 12:2,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너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그랬잖아요.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자 여기 이 말씀을 문맥 속에서 한번 보십시오.
 
I. 본문의 문맥.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12장부터 16장까지는 그 앞에 나오는 말씀의 생활 속에서 적용이거든요. 앞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이루어 놓으신 것이 이렇게 많이 있으니, 이제는 이대로 살아가라. 라고 할 때 살아가라가 12장 1절부터 쭉 나가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12장 1절과 2절은 기독교 윤리의 대헌장, 마그나카르타라고 할 수 있는데, 문맥을 보시면 말씀드린 대로 1장부터 11장까지는 구원의 교리, 9장에서 11장까지는 그 구원의 교리가 이스라엘에 적용된 경우를 말하고, 그 앞에 1장부터 8장까지는 전체적인 것인데 그 전체적인 것을 보시면 결국은 모든 사람들은 죄인(罪人)이다. 스스로는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완벽(完璧)한 의를 이루시고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얻었다 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셔서 영세기를 여셨다 믿으면 예수님과 신비적 연합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또 하나님에 대해서 산 자로 살아가게 된다. 이게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은 성령에 따라갈 때, 그것이 나타나는 것이다. 성령을 따라갈 때 예수의 새 생명이 약동하고 올라간다. 그게 1장에서 8장까지 내용이에요. 여러분이 얼른 생각하시면 실감이 안 나실 수 있지만 무슬림 사제가 최근에 기독교로 개종한 얘기를 잠깐 들어보시면 그런 분들은 실감이 날 거예요.
 
우리는 그런 정도의 실감은 아니라 할지라도 변화가 조금씩 조금씩 되는 것을 실감해 갈 텐데, 제가 이 무슬림이 간증을 할 때 유심히 유튜브에서 듣습니다. 그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간증한다고 그럴 때 목숨을 내놓고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짜가 아니라 진짜입니다. 제가 보니까 103만 명이 들었던데 그 내용을 보니까 무슬림 이맘 사제가 병원에 입원해서 이젠 가족들이 다 죽었다고 했는데 고 순간에 죽었다는 순간에 영혼이 떠난 거예요.
 
떠나서 어디론가 가는데 평소에 자기가 무슬림으로써, 무슬림 철저한 무슬림 집안에서 독실한 신자로 살아왔는데 그 무슬림의 교리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선하게 살면 구원받지만 악하게 살면 구원을 못 받는다니까, 선행이 악행을 능가할 때 구원받는다. 이거거든요. 그 늘 마음이 불안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철저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이 영혼이 떠나서 어디론가 가는데 밝은 빛이 앞에 비추어져서 그 빛을 향해서 가는데 마음의 큰 평안이 찾아오더라. 그래 가다 보니까 앞에 어떤 존재가 나타나더라. 그래서 자기가 궁금하니까 당신 누구요? 그랬더니, 나는 예수다 무슬림은 예수는 인간이다.
 
그리고 한 선지자(先知者)다 이렇게 보거든요. 난 예수다. 나를 통해서만 아버지 하나님께로 간다. 라고 하시는 거예요. 근데 그 순간에 마음이 더 편안해지더라는 거예요. 네가 지금까지는 선한 일을 해서 그 공로로 구원받는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야. 내가 다 했어. 내가 다 해서 이루어놨으니까 그것을 선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구원받는 거야. 그래서 그가 그것을 선물로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 남아있는데, 예수님께서 너 받아들일래? 라고 하시는데 자기가 받아들이겠다.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기독교의 진리를 순간적으로 받아들였는데 마음의 평안을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너 돌아가라. 너 다시 삶으로 돌아가 다시 돌아가서 너주변 사람들한테 이 진리를 전달해라. 그래서 나오는 거예요. 다시 살아나는 거예요. 깜짝 놀랐지, 가족들이 다 놀랐죠. 돌아와서 이거를 아주 고심을 하는 중에 왜냐하면, 잘못 정하면 자기 죽으니까 고심을 하는 중에 전화하는데 예수님 약속하신 대로 내가 항상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전할 때 아무리 두려워도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의식이 자기를 떠나지 않더라. 그 얘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에 큰 평안이 찾아오고,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셨으니까 그것으로 자기가 그 선물을 받아들여서 구원을 받는다. 이렇게 되니까. 너무 감사하고 감교한 거죠. 여기 1장에서 로마서 1장에서 8장까지 보시면 하나님이 다 이루어 놓으셨거든요.
 
근데 이 1장에서 8장부터 11장까지를 전체를 요약하는 것이 12장 1절에 하나님의 모든 자비(慈悲)하심,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怨讐)고 죄인(罪人)이고, 하나님에게서 삿대질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외아들을 원수들인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우리에게 구원(救援)의 선물 영생의 선물 천국(天國)의 선물을 주셨으니 이게 하나님의 모든 자비(慈悲)하십니다. 이게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신 것이니까. 은혜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독교 윤리(倫理)는 은혜 윤리 은혜 윤리,,, 여러분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이 스스로 사는 것 같지만 여러분 안에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시면서 나타나시는 모습이 여러분 삶이란 말이에요. 자격 없는 여러분이 해주신 거니까 은혜예요. 은혜 그러니까 이 은혜를 깨달으면 깨달음 만큼 변화되는 거예요. 왜 안 변하느냐, 은혜를 덜 깨달았으니까, 은혜에 덜 부딪쳤으니까, 은혜에 녹으면 변합니다. 은혜에 녹는 만큼 변합니다. 여러분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구원(救援)의 복음, 이것을 깨달으셔서 그 은혜에 부딪치심으로 감격(感激)스럽게 주님을 섬기시기를 제 이름으로 축원(祝願)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원수들에게 아들) - 은혜의 빛 감격의 반응"
그래서 12장 1절이 나오는 거라고요.
 
*로마서 12장 1절,2절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오니 너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몸을 들이라는 것은 1절은 몸을 들이고 2절은 마음을 드리는 게 아니고 2절에 나오는 마음을 포함한 몸이에요. 왜 몸이라고 했냐 하는 것은 우리의 지체를 통해서 이걸 드리는 거니까, 눈도 들이고 귀도 들이고 입도 들이고 다 머리도 들이고 하는 거니까, 열린 무덤 같은 목구멍을 열린 천국 같은 목구멍으로 들이는 거고, 독사의 독이 가득한 입술을 감사의 꿀이 가득한 입술로 주님께 드리는 겁니다. 피 흘리기에 빠르던 발을 복음 전하기의 바른 발로 주님께 들이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지체를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지체의 연합인 유기체인 몸을 말한 거예요. 그러나 그 속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인입니다. 전인을 드리는데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려면 12장 1절이 2절이 있어야 된단 말이에요. 분명히 알아야 되니까, 분명히 알아야 드리는 거거든요. 분명히 봐야 드리는 거 시각이 바로 되어 있어야 드릴 수 있는 거예요.
 
시각이 바로 되어 있다는 걸 지금 현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또 내 삶의 고통이나 현재 상황을 보고 하나님의 뜻으로 주님의 눈으로 그것을 봐야만 자신을 드릴 수 있어요. 그래야 주님의 올바른 뜻을 제대로 분별하는데 주님의 뜻이라는 건 목적이거든요. 고통 속에도 목적이 있거든요. 이 대한민국의 지금 대혼란 속에도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 줄 믿습니다. 이걸 제대로 봐야 이걸 제대로 봐야 이 목적을 제대로 봐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릴 수 있단 말입니다. 얼른 보시면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다 망했다. 끝났다. 끝났다. 막 이러는데 여러분이 이 세상에 사람들이 다 말하는 대로 그런 식으로 따라가면 이 대혼란과 위기를 위기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지 못해요.
 
그러니까 다 망하고 다 끝난 것 같아도,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작업을 하고 계시거든요. 작업을 여러분이 다 느끼시는 대로, 진짜가 누구고 가짜가 누군지가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잖아요. 밑에 숨어있는 침전(沈銓)물(物)까지 드러날 정도로 아주 그 본인이 생각할 때는 막 창피할 정도로 그게 침전물까지 드러날 정도로 지금 드러나잖아요. 자 이거 새판을 짜시는데 하나님께서 대한민국 새판 짜기를 하시는 거예요. 새 판 짜기 이 새판 짜기는 옛날 헌 판을 흔들어야 됩니다. 헌 판을 헌판을 뒤흔들어야 되기 때문에, 이 뒤흔들어서 바로 짜는 것이기 때문에 뒤흔드는 과정에 혼란이 있단 말이에요. 하나님께서 뒤흔드셔서 새 판을 짜 가실 때 지금 우리 교인들이 해야 될 것이 뭐냐 우리가 해야 되는 거죠. 헌 판 속에서 잘못된 것을 고쳐야 되거든요. 회개(悔改)하고 개혁을 해야 돼요.
 
회계하고 우리의 죄를 철저하게 구체적으로 개인과 구조의 죄를 철저하게 구체적으로 회개하면서 우리를 개혁하는 거예요. 이럴 때 주의했듯이 보이는 거예요. 이 주의 목적이 뭐냐면 주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지금 한류를 보십시오. 전 세계 한류가 일어나는데 이 세계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핸들 속에 세계가 돌아간다고 봤을 때 한류가 저절로 일어나는 거 아니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한국에 주목하게 하신 것은 한국 사람들이 깨달은 복음을 전달할 때 이 복음의 한류가 흘러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준비 작업을 하신 줄로 믿습니다. 이 복음의 한류를 흘러내려면 우리가 주변을 변화시키고, 민족을 변화시키고 북한을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키려면 새판을 짜야 된단 말이야. 새판 뒤집어지는 역사 뒤흔드는 역사 속에 우리가 자신을 고쳐야 된단 말이에요.
 
그래야 하나님의 뜻, 우리 한국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보고 여기에 따라서 움직이고 자신을 들이게 된단 말이죠. 그 중요한 것은 이걸 보려면 이 마음을 바꿔야 되는데, 마음 여기 마음이 나오잖아요. 12장 1절에 이제 마음이 나오는데, 12장 3절부터는 자신을 들을 때 혼자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공동체가 있다는 걸 기억해라. 공동체가 있으니 상대방을 인정해라. 다른 교인을 인정해라 지체를 인정해라. 그러면서 협력해라 이렇게 드린단 말이에요. 드리려면 12장 2절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내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도록 마음을 새롭게 해라. 이 마음이라 할 때 이 마음은 영어로 보면 하트가 아닙니다.
 
II. 마인드 갱신(更新).
 
-하트, 하트는 헬라어로 그리스말로 ‘카르디아’라고 하는데 카르디아 카르디아는 ‘영혼과 육체 전인’의 통제본부에요. 통제본부 여러분 하트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지만, 하트가 여러분 전체 온 전인을 통제합니다. 하트가 통제합니다. 하트가 통제하는데 이 속에 있는 하트 전혀 표현할 수 없으니까 도표를 보시면 제가 바깥에 있는 표현을 했는데 저게 이제 생각의 덩어리가 있는 부분이 여기 본문에 나오는 마인드예요. 마인드 하트가 아니고 마인드예요. 왜 마인드를 썼냐 하는 것은 마인드를 왜 썼냐, 이게 분별해야 되니까. 분별(分別)하려면 생각을 해야 되는 생각 생각을 해야 되기 때문에 생각하는 기관으로서의 마인드를 지적한 겁니다. 마인드 생각을 해야 되니까.
 
가치관이 바로 돼야 분별하니까 그래서 여기에 마인드가 나왔다고 이 보이지 않는 마음, 하트 성경을 보면 마음, 영혼, 속사람, 그게 전인을 통제하는 통제본부인데 이게 마인드가 어디로 명령(命令)을 내리느냐 두뇌로 명령을 내려요. 하트가 이 하트 전인의 통제본부인 하트가 두뇌(頭腦)로 명령을 내린다고요. 두뇌 두뇌로 명령을 내리면 두뇌에서 몸의 각 분야에 명령을 내리는 거예요. 그런데 두뇌에 뭐가 들어있는지 보세요. 저게 마인드 마인드 생각 덩어리잖아요. 생각의 덩어리가 있어요. 생각의 덩어리 제가 목회를 해보니까 14년 교회 생활을 하다가 목회 현장 가니까, 교회가 이 부분이 약하더라고요.
 
순간적인 감동(感動), 울리고 웃기는 거, 기분 좋은 거, 축복받는 거, 이런 건 잘하는데 뭐가 안 되고 있냐 생각의 덩어리를 막 바꾸지 못했어요. 가치관을 바꾸지 못했어요. 세계관을 바꾸지 못해서 이게 뿌리거든요. 뿌리예요. 여러분이 지금 말씀을 들을 때도 여러분, 나름 대로의 생각의 덩어리 속에서 제가 전하는 말씀을 걸러내고 있는 겁니다. 제가 말은 안 하지만 제가 좌파(左派), 우파(右派) 얘기하다가 만약에 제 정치인 입장이 막 나오면 저와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은 이를 빡빡 갈 거예요. 이를 이를 막 박박 갈면서 들을 거라고 자기 생각의 덩어리 속에 안 맞으니까, 안 맞으니까 제가 그 말을 그래서 안 하죠.
 
여기서 정치를 얘기하면 그런 쪽에까지 들어가 버리면 여러분이 보건 반대 지장이 있기 때문에 말 안 하죠. 개인적으로 제가 얼마든지 제 개인의 생각이 있죠. 이를 빡빡 갈 정도로 그리고 누가 대통령이 되면 이민 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막 서로 죽이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눈이 막 살기고 막 등등하고 싸우는 것 같아요. 왜 그러냐 생각의 덩어리 속에 든 게 너무 달라 너무 달라요. 너무 제가 교수를 해보고 목회를 해봐도 이 생각의 덩어리 속에 들어있는 게 정말 잘 안 바뀌더라고요. 이게 전제고 신념이고 통념이고 자기소개 들어있는 거는 질문하지 않아. 옳은 거야. 기준이야 절대 기준이야 누구도 침범하지 못해 전제야 이거예요. 이거 근데 여기서 생각이 나와요. 생각이 나와요. 이 생각의 덩어리 속에서 생각이 나와요. 그리고 이 생각이 느낌으로 가요. 느낌, 느낌, 이 느낌이 행동으로 가요. 행동 이게 반복(反復)되면 습관이 돼 버려요. 습관 그리고 이게 또 계속 가면 인격이 되고 인생이 바뀌는 거예요.
 
*잠언 4장 23절,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내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이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인생의 원천이 마음이다. 마음,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 새판 짜기를 하고 싶으면 마음 바꾸면 돼요. 여러분 인생이 다 끝난 것 같고, 여러분 가족들이 참 힘들어서 사업도 안 되고, 뭐도 안 되고, 뭐도 안 되고, 뭐도 안 되는 것 같아도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거는 여러분의 마음이 변하면 될 줄로 믿습니다. 마음이 변하면 영원히 잘 되면 같이 범사(凡事)가 잘 되고 강건(康健)해져요. 그러니까 원천(原泉) 뿌리가 뭔지를 아셔야 돼요. 근데 마음을 변화시키려면, 여기 생각을 잘해야 된단 말이에요. 자 보십시오.
 
여러분,
제가 말씀을 전하면 이 말씀이 여러분의 생각 생각 기관 지금 듣는데 걸러서 듣는데 그 듣는 그 기관을 통해서 이게 옳으면, 옳으면 옳아, 맞아 맞아 저 말은 맞아 맞아 싶으면 마음으로 들어가 버려요 마음으로 들어가 버려요. 그리고 나올 때는 다시 마음에 있는 것이 생각으로 이렇게 나와요. 생각을 그래서 여기 누스 마인드를 변화시키라고 합니다. 마인드 새판을 목회자들이 짜는 게 잘 안 됐기 때문에 이 50년 전에 그놈이 지금의 그놈이라고,,, 마인드를 바꾸어 놓으면 근본적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그런데 이 마인드 여기 jb 필립스라고 번역을 한 부분을 한번 보십시오.
 
◇“주변 세상으로 세상의 틀에 너희를 맞추게 하지 말고, 하나님으로 너희 마음의 틀을 속으로부터 다시 짜시게 하라" -jb 필립스-
 
이게 어떻게 번역인지 주변 세상으로 세상의 틀에 너희를 맞추지 못하게 맞추지 않게 하고 하나님으로 너희 마음의 틀을 마음의 틀을 속으로부터 다시 짜게 하시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의 틀을 세 판짜기 새판짜기 하게 하시라. 여러분이 여기 본문을 보십시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죠? 이 세대라고 하는 세속이 세속, 이념(理念) 세속(世俗) 이념이다. 이렇게 꽉 들이차 있거든요. 여러분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밖에 나가면서 주차장에서 아니면 지하철에서 벌써 세상 생각으로 확 바뀌어버려요. 여기 와서 듣는 거는 들을 때 뿐이고, 나가면서 조금 전에 권 목사 무슨 말 했어요. 그러면 나가면서 긁어버려요. 다 사라져 버렸어요.
 
지하철까지 가버리면 얼마나 살았는지, 깡그리 사라져 버려요. 깡그리 사라져요. 이 세상이 꽉 들이차 버렸어요. 이 세상이 이겁니다. 이거 세속이 뭡니까? 이 세상 이 세대가 하나님을 떠난 세대예요. 하나님을 떠난 세대의 가치관이에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저 밖에 나가 보세요. 직장에 가보세요. 전부 그거 아니에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전부 이거잖아요. 전부 이 부분을 뒤집어 엎어야 되는데 뒤집어 엎어지질 않는 거라. 교회 와서는 잠깐 뒤집어 엎어지는 것 같은데, 삽이 들어가서 뒤집어 엎어지려고 그러는데 삽이 들어가다 말아버려 어떻게든 들어가다 삽이 부러져 버려. 속에까지 들어가야 돼요. 속에까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침전물까지, 침전물까지 내려가야 된다.
 
여러분 마음의 마인드의 침전물이 뭐냐 하면 생각입니다. 의심(疑心)이고 불안(不安)이고 공포(恐怖)고 욕심(慾心)이고 앙심(怏心)이고 앙심 같은 거 그냥 내버려두시면요. 앙심을 가지면 자꾸 용서(容恕)를 못해, 남을 용서하지 못해 앙심으로 용서(容恕)를 하지 못하면 여러분 생각에는 용서를 안 하고 그냥 복수하는 것이 상대방의 독을 먹이는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앙심을 품은 것은요, 독은 자기가 먹고 나서 상대방이 죽도록 기대하는 거예요. 독(毒)은 자기가 먹었어요. 자기가 앙심 자체가 독을 자기가 자기에게 독을 먹이는 것은 자기가 먹여놓고 나서는 상대가 죽기를 기대하는 거예요. 그게 우리의 마인드 속에 꽉 차 있단 말이에요. 이거를 변화(變化)시켜야 되거든요. 새판 짜기를 해야 되거든요.
 
이 세대라는 게 들어오고 또 한편으로는 주님의 말씀이 복음이 들어가고, 이 두 사이 싸움이 있는 거예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씀이 왜 나오냐 하면 끊임없이 여기에 충돌(衝突)이 있기 때문에요. 끊임없이 충돌이 시작된다니까요? 이 충돌 속에서 이 복음(福音)이 승리(勝利)하도록 만들어야 되는데, 자 세속이 들어온다고 생각하세요. 세속(世俗)이 들어왔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대 가치관이 들어왔을 때 이 세대 가치관이 들어오면 결국 잘 먹고 잘 사는 거잖아요. 성공해서 쾌락 누리는 거죠. 돈 많이 벌고 떵떵거리며 살면서 인정 받고 쾌락(快樂)이에요.
 
쾌락, 근데 그대로 안 되면 또 염려(念慮)가 사로잡아 쾌락에 사로잡히든지 염려(念慮)에 사로잡혀 근데 쾌락도 오래 안 가 일시야, 일시 조금 가다가는 거기에 지쳐버려 지쳐버리면서 이거 공허감에 빠져요. 허무주의에 빠져 허무주의 별거 아니네. 해보려고 다 해봤는데 지쳐 만족이 없어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절망으로 갔다가 포기(抛棄)로 간다 그래요. 포기로 가니까, 연애, 결혼, 가정, 3포하다가 그 다음 5포 하다가 7포 하다가 N포 하다가 인생까지 포기하는 인생까지 헬 조선이라고 한번 생각해봐요. 헬조선, 헬조선이라는 건 이 헬조선 속에서도 이 밑에서 흙수저인데도 올라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흙수저라는 그 거기에 자기를 딱 가두어 놓고 자기를 딱딱 가둬놓고 거기서 꼼짝 못하잖아요. 헬조선이라고 말을 하는데요, 밖에서 오는 사람 유럽에서 오는 사람들, 미국에서 오는 사람들 한국 들어와 봐서 깜짝 놀라는 거예요. 인천공항에서부터 로보트가 돌아다니고, 그 막 입국 절차가 막 딴 데는 막 2시간 걸리는데 여기는 뭐 그냥 휙 지나가 버리고, 공항이 깨끗하고, 이거 뭐 공항만 이렇게 해놨나 보다 싶은데 서울 시내에 갔더니, 또 전철 타고 가는데 막 너무너무 그냥 깨끗하고 전철 안에서도 인터넷 마음대로 되고, 병원에 가도 너무 싸고, 화장품도 최고고, 이러다 보니까,,, 와!!~~ 21세기 천국을 옮겨놓은 도시 같다 똑같은 한국을 놓고 헬 조선이 아니라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헬 조선이라고 할 때 왜 헬조선이라고 하느냐, 이 세대의 생각에 사로잡혔다는 것 이미 사로잡혔다는 그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거죠. 거기에 자기를 가두었다는 것이죠. 거기다가 그렇게 생각하는 자기의 마인드가 헬이다. 헬,,, 자기가 지옥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자기를 가두고 있단 말이에요. 이게 이 세대를 따라갈 때 생기는 파괴 현상이에요. 마음 그러니까 마인드 오염 파괴, 근데 그게 아니고 주의에 말씀이 들어가고 복음이 들어가면 성령으로 말씀이 들어가고 복음이 들어가면 그러면 이게 새판 짜기가 일어나요. 새판짜기 어떻게 일어나느냐, 한번 생각해보세요. 마음의 새판짜기 일어나는데 여러분 지금 말씀을 들으시잖아요.
 
어떤 경우에는 말씀 한마디 듣고 가서 절망적인 인생이 완전히 뒤집어져 버려요. 아까 무슬림이 예수님의 환상주의 전하신 말씀 듣고 나서 완전히 뒤집어진 것처럼, 새판짜기 일어나는 거지 환경을 극복할 만한 그런 힘이 생기는 거예요. 빅톨 프랭클, 이분이 호주의 유명한 정신(情神)과 의사죠. 이분이 나치 죽음의 수용소(收容所)에서 살아남은 사람이거든요.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했냐, 당신들이 고문하는 사람들이 나를 아무리 고문해도 아무리 고문해도 내게서 뺏어가지 못하는 거 하나 있어. 나한테 절대 못 뺏어가, 그건 당신이 고문하는 그 상황에 대해서 보이는 나의 반응이야. 나의 반응이야. 나의 태도야. 그건 당신이 못 뺏어가,
 
◇상황을 못 바꾸면 자신(마인드 반응 /태도)을 바꾸라" -빅톨 프랭클-
-상황이 아무리 나쁘고 죽음의 상황이라도 내 태도는 내가 정한다. 내 반응은 내가 정한다. 이 속에도 희망이 있어. 내가 살아남을 거야. 하는 이거 그래서 상황을 못 바꿀 때는 자기 마인드만 바꾸면 된다. 마인드를 바꿔라 마인드 생각 바꿔라 생각 생각 바꿔라. 생각을 바꾸면 태도를 바꾸면 반응을 바꾸면 된다. 세상에 무슨 일이라도 다 끝난 것 같은데, 복음이 들어가면 어떻게 되냐,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다 끝나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믿습니다.” 라고 하기 때문에 확 뒤집어 져버려요. 나는 끝났지만 하나님이 시작하신다. 대한민국 끝난 것 같지만 하나님은 시작하신다.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다. 하고 일어서는 거예요. 이게 마인드가 새로워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란 말이에요.
 
인디언 마을에 장교인 자기 남편과 함께 따라갔던 아내가 여인이 말도 안 통하죠. 문화도 다르지요. 생활 습관 다르지요. 막 먼지 날아오죠. 벌레들을 괴롭히죠. 남편이 몇 주 몇 달 훈련 나가면 혼자 있느라고 죽을 지경이야. 그래서 어머니한테 어머니 나 못 살겠어요. 지옥 같아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편지를 보내는데 그 핵심이 뭐냐 하면, 같은 감옥에 똑같은 감옥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흙만 보고 다른 사람은 별을 보았다.
 
◇"같은 감옥 안에서 한 사람은 흙만 보고 한 사람은 별을 보았다"
이 말 한마디에 이 여성이 바뀌어버렸어요. 내가 지금 흙만 보고 있구나, 별을 봐야 되겠죠. 그래서 태도를 바꾸면서 반응을 바꾸면서 그때부터 연구를 시작했어요. 인디언들의 생활 습관, 문화, 전체를 연구하고 바느질도 배우고 다 배웠어요.
 
그래서 그것을 전부 그냥 써 가지고 어머니한테 넘겼다가 나중에 책이 나오는데 베스트셀러가 됐어요. 태도를 바꾸는 게 다 바뀌었잖아요. 우리는 흑만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들어 주를 보는 거예요. 주를, 눈을 들어 주를 보는 거예요. 주를, 이게 새판짜기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일어날 때, 한꺼번에 되는 게 아니에요. 한꺼번에 왜 안 변하냐? 왜 안 변하냐? 그랬는데 한꺼번에 되는 거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수련회 갔을 때, 중고등학교 때 그러잖아요. 수련(修練)회 가는데 정상적으로 수련회 가면 몇 번을 가잖아요. 몇 번 1년에 두 번씩 가는데, 몇 번을 갔는데 가서 은혜 받을 때, 눈물 콧물 흘리고 딱 은혜를 너무 많이 받아서 이제는 정말 새 사람이 됐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다 변했구나, 하는데 집에 와서 또 뭐 무슨 일 당하면 또 그냥 확 뒤집어져 버려요. 집회(集會) 와 가지고 여기서 은혜를 막 너무너무 많이 받았는데 주차장(駐車場)에 가서 다 깨져버린 거예요.
 
아 그렇게 되면 은혜받으면 쏟아버리고, 쏟아버리면 마음이 아프고, 그러면 실망(失望)이 되고, 그럼 은혜 받고 나면 실망이 커지니까 실망이 안 커지게 하기 위해서 은혜 받지 말자. 그게 아니에요. 받았다가 쏟는 거예요. 쏟고 또 받는 거예요. 받고 쏟고 또 받는 거예요. 그러면서 커가는 거예요. 그렇게,,, 꾸준히 커가는데 생각의 틀이 바꿔져야 돼요. 생각의 틀, 이 바꾸는 작업을 하실 때 하나님이 어떻게 작업하시는지를 보라고요. 생각의 틀을 생각을 새 판 짜기 새 판 짜기 마인드 세 판 짜기를 하시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흔드셔야 돼요. 뒤흔드셔야 돼요.
 
뒤흔드셔야,,, 지금은 옛날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 꼼짝을 못해, 자기가 만든 지옥에 자기가 빠져 가지고 허우적대고 있어 그러니까 흔드셔야 돼. 흔드셔야 정신을 차리는 거예요. 흔드셔야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단 말이에요.
 
영국의 아주 가장 유명한 저널리스트 말컴 머그리지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을 했어요. 자기가 정말 인생 말년에 예수님을 영접했거든요. 자기가 75년 동안 세상 살이 하는 것을 되돌아보니, 굉장히 중요한 교훈이 있었다. 그거는 내가 각성하고, 내가 정신 바짝 차리고, 발전한 것은 행복 때문이 아니었다. 행복 행복해서 내가 정신 차리고 행복(幸福)해서 내가 발전한 게 아니었다. 내가 정신 바짝 차리고 발전한 것은 고통 때문이었다. 고통은 겉으로는 싫지만 고통을 통해서 흔드시는 거예요. 흔드시는 거 흔드시는 작업을 지금 하시고 계세요. 여러분 삶 속에 이만하면 고통이 안 오겠다. 싶은데 또 찾아와요. 찾아올 때, 여러분 생각하기를 왜 또 오는가? 언제 끝나려는가, 차라리 천당(天堂) 가버릴까? 천당 가고 싶어서 주여, 이제 눈 감을 때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그래도 눈 감고 일어나 보면 또 현실이 있거든. 이제 고통을 보는 시각(視覺)이 달라야 돼요.
 
시각이, 환난(患難)은 인내를, 인내(忍耐)는 연단(鍊鍛)을 나눈다고 했잖아요. 환난(患難)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 연단은 이에요. 인격 연단(鍊丹)된 인격 환난은 인내 고통 속에서 인내하는 거예요. 말씀대로 인내하는 거예요. 말씀대로 인내하면 인내를 통해서 인격이 생겨요. 인격, 그 인내를 통과(通過)해야 돼 인내를 통과해야 고통 중에 주의 뜻대로 인내하는 인내를 통과해야 연단이 돼, 인격이 생겨요. 인격 어떤 경우에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인격이 생겨 어떤 경우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인격이 생기면 그 다음에 모든 상황 속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환경(環境)을 감당(勘當)할 수 있느니라” 하고 일어서기 때문에 희망이 생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鍊鍛)을, 인격을 인격은 희망(希望)을 낳는 거예요. 희망을 자, 그게 고난을 통한 작업(作業)이에요. 고통을 통한 작업 신명기 8장 16절에 보면,
 
*신명기 8:16,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낮추시고 너희를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신다고, 낮추시고 고통을 통해서 낮추시는 거예요. 40년 광야의 고통을 통해서 낮추시는 거예요. 자 보세요. 하나님께서 지금 한국을 얼마나 낮추십니까? 대한민국 우리를 얼마나 낮추십니까? 낮추시고, 낮추시고, 아슬아슬 조마조마, 끝난 것 같은 막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엎드리고 또 엎드리고 또 회개하고 또 바로 잡고 끊임없이 주님을 의지하게 만들고, 교만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만드시고 이 뒤흔드시는 작업, 이렇게 하셔서 낮추시고, 시험(試驗)하셔서 말씀대로 사는지를 시험하셔서 말씀대로 살게 만드시고, 그리고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십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산 제물 바꾸시기 위해서, 그래서 고통은 힘들지만 하나님께서 고통의 광산에서 천국의 다이아몬드를 만드시고 있어요.
 
◇고통 광산에서 천국의 다이아몬드(신 8:16,롬5:3-5)
-제가 저걸 책으로 썼는데 고통의 광산에서 천국의 다이아몬드 천국의 다이아몬드라는 책을 썼어요. 너무나 놀라운 작업을 하시는구나. 개인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고, 세계도 그렇고, 고통을 통해서 뒤흔드셔서 바로잡으시는 일을 하시는구나! 그리고 마침내 붙잡고 강하게 일하시는 영향 미치게 하시는 작업을 하시는구나! 고통 속에서 뒤흔드실 때 믿음이 있어야 돼요. 믿음, 믿음, 끝났다. 끝나서 절망이야. 절망 다 끝났어, 다 끝났어, 아무리 자기 속에서 그렇게 말을 해도 아니야, 아니야,
 
하나님, 살아계셔 하나님이 일하시고 계셔 모든 것을 간섭하시오. 그래서 마침내 잘 되게 하실 거야. 믿음이에요. 믿음, 믿음, 믿음, 믿음, 믿음, 고통 중에 믿음이 없으면 깨집니다. 고통 중에 믿음 없으면 포기(抛棄)합니다. 고통(苦痛) 중에 믿음 없으면 절망(絶望)합니다. 고통 중에 믿음 없으면 3포, 5포, 7포, N포, 인생 포기까지 갑니다. 믿음이에요. 믿음, 믿음이어야 합니다. 다 끝나도 하나님은 끝나시지 않은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작업을 기대(企待)하셔야 돼요. 지금 대한민국을 뒤흔드셔서 새판짜기 하실 때, 회개(悔改)하고, 개혁(改革)하고 바로 서면 하나님께서 복음 해야 할 일을 전 세계에 퍼뜨리게 하실 거예요. 근데 이 작업에 실패(失敗)하면 징계(懲戒)가 떨어지는 거예요. 징계(懲戒)가요... 믿음입니다.
 
믿음, 작은 불은, 작은 불은 폭풍에 꺼져요. 큰 불은 폭풍에 퍼져요. 작은 믿음은 고통의 폭풍에 약화돼요. 큰 믿음은 고통의 폭풍에 더 강해져요. 더 강해져요.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거룩한 산 제물(祭物)로 쓰시기를 원하실 때, 여러분을 큰 그릇으로 만드시는 거예요. 그래서 쓰시는 겁니다. 고통 중에 주님이 일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끊임없이, 끊임없이, 복음(福音)으로 자신을 채워야 돼, 성경과 말씀으로 자신을 채워야 돼. 최소한 성경을 듣기만 해도 그 듣는 것이 여러분의 마인드 속에서 사탄의 탁(濁)한 공기를 없애고, 성경(聖經)에 맑은 공기(空氣)가 들어오게 해요.
 
말씀을 들으시고, 훈련(訓鍊) 받으시고, 끊임없이 말씀을 묵상(默想)하시고, 이렇게 하는 동안에 여러분이 새로워지는 거예요. 조금씩 조금씩 변하는 거예요. 소년으로 넘어지고, 소년이라도 넘어지면 자빠지고 장정이라도 쓰러지면 넘어지되, 오직 여왕을 앙망(仰望)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갔을 것이요, 걸어가도 달려가도 고단치 아니하며 걸어가도 피곤(疲困)치 않는다. 고통 중에 주님의 뜻을 바라보는 마인드를 가지고 깨닫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주님께서 마침내 놀라운 변화(變化)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새판짜기를 통해서, 우리를 크게 귀하게 영향력(影響力) 있는 인물로 쓰실 줄로 믿습니다.
 
♣요약
말씀이 공중에 뜨지 않고,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고,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나 자신을 가두고 거기에서 허우적대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마인드 새판 짜기를 끊임없이 반복하여져서 성경에 따라 복음을 입력시켜서 거기서부터 바른 생각, 바른 느낌, 바른 행동, 바른 습관, 바른 인격, 바른 인생이 되어야 한다. 거룩한 산 제물(祭物)로 하나님께 다 올려드리며, 우리 개인과 교회와 대한민국을 그렇게 새판짜기가 되어 귀하게 사용 받는 자가 되기를 간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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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2월 9일)
제목: "굳게 믿어야 굳게 선다"(Firmly Believe to Firmly Stand)
-<새로운 길>이사야 시리즈 ④
말씀: 이사야 7:1~9:7
대표기도: 노주찬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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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7: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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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매서운 강추위 가운데서도 예배드릴 수 있는 환경 ,건강 주시고, 믿음 주시고, 은혜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어릴 때 저희 부친께서, 추운 겨울날 예배드릴 때 ‘현이 네가 가서 난로 네가 책임져라’ 예배 시간에 그래서 연탄난로, 연탄을 안 갈아도 이와 같이 해드릴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알 사람만 알도다...그래서 오늘 우리가 회중 찬송 불렀는데요
 
♬ 구주 예수 의지하니 심히 기쁜일이라.~~ 그 다음에 2절에 여기 나와 있죠? 주를 믿는 나의 마음 그의 피에 적시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적셔 주셔 가시고, 오늘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강력한 은혜의 사람으로 무장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제목은 ‘굳게 믿어야 굳게 선다’ 강해로 오늘 이사야 7:1~9:7절입니다. 7장 9절이 오늘의 요절입니다.
 
*이사야 7:9b,
9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굳게 믿어야 굳게 선다. 그러니까 너희가 제대로 설려면 믿음으로 굳게 서지 않으면 어떤 인생도 제대로 설 수가 없다. 오늘 기도도 하셨지만, 이 나라의 여러 가지 되어가는 상황이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 난국을 어떻게 우리가 타개할 수가 있을 것인가? 흔히들 난세의 영웅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는 이 어려운 시기 가운데서 우리는 믿음의 영웅으로 보장돼야 합니다. 영웅(英雄)까지 안 가더라도 최소한 강력한 믿음으로 보장되길 바랍니다. 그럼 무슨 믿음을 가져갈 것인가?
 
오늘 이사야 제가 7장, 8장, 9장 이 세 장을 동시에 강연을 하는데, 이 짧은 시간이 쉽지 않은데요. 핵심은 이겁니다. 믿음 중에 가장 강력한 믿음이 뭐냐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에요. 중요한 우리 믿음의 대상도 있어야 되고 여러 가지 있어야 되지만 믿음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우리 그걸 우리가 흔히 뭐라고 얘기하죠. ‘임마누엘’ 신앙이 근데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이 임마누엘의 신앙의 핵심이 뭔가? 제가 오늘 이 전체, 석 장을 정리를 하면 이것입니다. 뒤에 오늘 여기 주보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 나와 있는데, 주고의 요절로 나와 있는데, 이사야 9장 6절 뒤에, 뭘 믿는가? 하나님이 우리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거죠. 어떻게 함께 하시는가? 그의 이름은 첫째, 뭐예요?
 
*이사야 9:6b,
6 그의 이름은 ①기묘자라, 모사라(Wonderful counselor)②전능하신 하나님이라(Almighty God) 영존하시는 아버지라(Everesting Father) ④평강의 왕(King of Peace)이라 할 것임이라
-근데 이걸 따로가 아니라
첫 번째는 원더풀 카운슬러 기묘자인 모사라(Wonderful counselor), 가장 지혜로운 창작가이시다
두 번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뭘 믿는가 임마들 하나님 뭘 믿는가 전능하신다.
하나님이시다 올마이티 가드다.
세 번째는 영존하신 아버지시다. 에버레스팅 파들이다.
네 번째는 평강의 왕이다. 킹 오브 피스,
-이 네 가지를 믿는 것이 임마누엘 신앙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오늘은 석 장 긴 장이니까. 핵심을 먼저 말씀을 드리고요. 자, 우리 시대 가운데 우리가 지금 지켜나갈 것이 믿음의 핵심은 견고하게 서야 되는데, 그것이 바로 뭐라고요? 임마누엘 신앙인데 임마누엘 시대의 핵심은 뭐냐? 이 네 가지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걸 이제 제가 한번 자세히 설명을 하겠습니다. 7장 1절에,
 
*이사야 7:1,
1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이스라엘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끝내고, 남북이 분열되어 가지고 북쪽은 이스라엘 왕국이고, 남쪽은 유다 왕국인데,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의 왕 이름이 뭐냐면 배가 왕이었어요. 그리고 그 북쪽 더 위에 아람 나라가 있어요. 시리아쪽으로, 아람나라의 왕 이름이 르신, 시리아 쪽으로 아람 나라가 강력했는데 아람나라의 왕 이름이 뭐라고요. 르신입니다. 그래서 르신과 베가 왕이 어떤 배경가운데 일이 일어났느냐 하면, 그 당시에 최고의 제국이 뭐냐 하면, 앗수르 제국이었어요. 앗수르 제국이 이렇게 세를 펼쳐 날아가니까 북쪽에 이스라엘의 베가왕과 그 위에 있는 아람 왕 르신이 연합군을 형성해 가지고 그 앗수르를 막으려고, 그러고 그걸 위해서 이제 남쪽에 있는 유다 왕국에게 압력을 가하는 거예요. 그때 유다 왕의 이름이 뭐냐면 이름이 뭐라고요. 아하스,,, 그러니까 이 아하스 왕을 압력을 가하면서 우리 연합해 가지고 아수도를 막자 그러니까, 그 순간 이 아하스의 마음속에 아 이 순간 어떡하면 좋겠는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께 매어 날려야 되는데, 딱 보니까 아 제일 큰 나라에 붙으면 좋겠다. 앗수르에게 붙으면 좋겠다. 해 가지고 앗수르에게 이제 붙었어요.
 
*북쪽왕-베가왕
*아람왕-르신왕
*남쪽왕-아하스왕
 
붙어 갖고 이제 그것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북쪽에서 막 모약을 뿌리고 북쪽에서 지금 패터클릭이 있었는데, 앗수르에게 붙으려고 그러니까 그냥 붙으면 안 되고 뇌물과 이런 걸 같이 갖고 갔어요. 그걸 갖고 이스라엘 남쪽 유다 왕국의 왕궁에 있는 이런 것들이 많은데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수많은 기명 좋은 것들을 가지고 같이 가는 거에요. 아주 비참하게 그렇게 이렇게 했어요. 자, 그런 순간 그렇게 될 때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오늘 보니까 2절의 그 상황 가운데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뭡니까? 숯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이 갑니다. 이사야가 아주 시인이라고 그랬죠? 아주 굉장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7:2b ,
2b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이런 뜻이에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자 북쪽에 노스 코리아가 있고, 북한이 있고 거기에 김정은이 있고, 자 남쪽에 우리 사우스 코리아 대한민국이 있는데, 그 위에 저 아람왕 르신이 러시아예요. 러시아하고 북한이 쳐들어 와가지고 남한을 쳐들어온다고요. 그러면 우리 한국교회는 이 순간 마음과 뜻은 정성을 같이 해 가지고, 하나님, 주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임마누엘 되어주십시오. 이렇게 해야 되는데, 남쪽에서 중국에게,,, 이런 얘기를 했는데 그래갖고 북쪽에 쳐들어 내려오니까 이 남쪽 아하스 왕의 마음은 숲이 바람이 흔들림 같이 왕의 마음과 2절의
 
*이사야 7:2a ,
2a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그 일상의 평원이 사라져 버렸어요.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사야를 보내 가지고 양쪽 왕국은 망하면 안 되니까. 하나님께서 안타깝게 생각하셔서, 4절에 이사야를 통해 뭐라고 말씀하셨냐,
 
*이사야 7:4,
4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거기에 뭐가 생략돼 있죠?. 베가왕이 르신이 노할지라도 연합군이 쳐들어왔고 이런 압박을 한다 하더라도 이들은 영이 있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그래서 첫 번째 생각할 것은 연기는 두 부지깽이, 한 부지깽이는 아람 부지깽이이고, 또 한 부지깽이는 북쪽의 부지깽이인데 그러면 끝이 연기만 좀 날 뿐이지, 그건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우리 식으로 하면 뭐 위에서 막 그냥 저 강대국들이 막 힘을 합쳐가지고 핵무기를 우리를 위협한다 하더라도, 잔꾀를 쓰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여러분, 아무리 대단해도 여러분 느부갓네살이라고 그 뒤에 바벨론 제국이라고 있었는데, 하나님 치시니까 그 부지깽이가 아니라 느부갓네살이 쫓겨나 가지고 소처럼 풀 뜯어 먹는 존재가 되었고, 사도행전 12장에 그 뭡니까? 킹 헤롯이 자기 막 힘 자랑하고 그러는데 하나는 탁! 치시니까, 부지깽이로 쳐버리니까 벌레가 먹어 죽은 거에요.
 
그래서 연결하는 두 부지깽이와 비교되는 것이 지난주에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핀 숯불 그러니까 연결하는 두 부지깽이와 제단의 핀 숯불 그 제단에 핀 숯불은 지난 주일날 오염된 것을 태우고 상처를 치유하고, 새롭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손에 버려진 타다남은 부지깽이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내어 팽개쳐진 존재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벌벌 떠는 이 이사야에게는 강력한 말씀을 주시는데, 오늘 구절 뒷부분입니다. 다시 한번 돌이 시작,
 
I.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vs. 제단의 핀 숯불.
 
*이사야 7:9b,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그러니까 믿음으로 굳게 서지 아니하면 절대로 제대로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벌벌 떠는 왕의 믿음을 키워주려고 11절, 그 말씀이 이게 참 놀라워요 11절을 읽겠습니다.
 
*이사야 7: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나님께 길을 주시는데,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네가 믿고 확인할 수 있도록 징조를 구하라 뭘 구하라고요?. 징조를 구하라. 여호와께 함께 징조를 구하라. 성경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요청하는 징조를 구하는 그런 내용들이 여러 군데 나와 있죠.
 
예를 들어서 기도온의 미디안의 대군들이 막 쳐들어왔을 때, 기드온이 하나님께 부름받아 가지고 너 나가서 해보라고 했을 때, 기드온이 하나님 나는 힘도 없으니까, 하나님 내가 좀 나 하나님 살아계심에 대한 징조를 보여달라고 하잖아요. 그리고 흰 양털과 이슬 내리고 하는 그런 게 아시죠. 양털이 있어야 되고, 또 어떤 때는 또 있으려면 밖에만 있고 안에만 있고 이건 뭐 말하는데 웬만큼 다 아실 거예요. 기드온이 그런 징조를 보였어요. 히스기야가 좀 더 살도록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징조들로 만나서 해의 각도를 이렇게 1일 각각 옮겨주시고 이런 징조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 믿음 없는 바보 아하스는요 뭐라고 얘기하느냐 12절에 뭐라고 얘기했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아하스가 이는 징조를 구하라 그랬으면 구했어야지,,,
 
*이사야 7:12,
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고, 어떤 이러이러한 징조를 보여달라고 간절히 소원해야 되는데, 자기는 구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겠다고,,, 마치 신앙이 좋은척 코스프레 하면서, 겸손을 가장해서 아무것도 구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사실은 믿음 없는 것을 속으로는 어때도 안 된다 저. 르신과 배가가 쳐들어왔는데, 내가 무슨 힘으로 이걸 해결할 수 있겠냐, 차라리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느니 앗수르에게 의탁하는 것이 더 낫겠다. 하나님의 하늘에 불 병거를 주시더라고요. 땅에 있는 티끌들의 생기를 불어넣고 예루살렘이 있는 모든 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가지고 군대를 만들어도 이 공격은 이겨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지레짐작 포기를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하나님께서 징조를 구하라 우리 하나님이 시험하고 그게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십시오. 여러분 그런 믿음으로 징조를 구하는 그런 마음의 소원도 여러분들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징조를 구하라. 그러면서 이제 아하스가 징조를 구하지 아니하고 그럴 때, 이사야가 좀 화가 났어요. 그러면서 경고하면서 그러고 난 다음에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말씀을 하셨어요. 그 놀라운 말씀으로는 14절, 여러분 어릴 때부터 잘 아는 말씀인데 같이 보지요.
 
*이사야 7:14
14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자, 아하스에게 징조를 구하라고 그랬는데, 아하스가 징조를 구하지를 않으니까, 그것이 이제 아하스 한 사람에게는 끝났고, 하나님께서 그러면 전 세계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 지금 우리 식으로 이해하면 전 세계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징조를 구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다. 그다음에 주께서 징조를 너희에게 승리한 아하스 한 사람으로부터 이제는 너희에게로 일반화가 된 거예요. 단수에서 복수로, 모든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오늘 이런 예배를 드리면서 이 정말 강추위 가운데서 주님 앞에 나와 가지고, 사모하고 매달리면서 주님 나에게 믿음을 주십시오. 내 믿음이 견고하게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징조를 여기에 보여주옵소서...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베풀 만한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 징조를 구할 때 최고의 징조가 무엇일까? 최고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핵심이 무엇일까? 그것이 14절 뒷부분에 나와 있습니다.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이사야 7: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이런 내용은 우리가 성탄절 때 자주 들어볼 내용인데, 이 성탄절에만 들어볼 내용이 아니고 우리의 삶의 현장에 수많은 정말 숲이 바람에 흔들려 가지고 나무가 이렇게 어려울 정도로 우리의 마음이 안정이 되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할 그런 분들에게 오늘 출력해 주시는 가장 강력한 믿음의 곧게 서게 하시는 말씀 좀 믿으셔야 되시는 것이고.
 
임마누엘이라, 이 징조는 단순히 어떤 적당한 징조가 아니라, 바로 그 징조 가장 강력한 징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미치는 놀라운 징조 여기에 신비함과 지혜의 표현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그래서 이 내용은 뒤에 정확하게 말하면 730여년 정도 뒤에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신 것이고, 여기에는 믿음에 굳게 서서 큰 믿음이 필요한 것이지만 처녀가 어떻게 아들을 낳았나?
 
나중에 에버레스팅 파더, 어린 그의 예수님이 어떻게 영존하신 아버지가 되겠나? 말도 안 되는 얘기다. 하는 인간적인 어떤 생각과 판단에서는 그렇지만 우리가 성령께서 언어를 주셔가지고,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말씀을 통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고 믿음을 주실 때는, 하나님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줄로 믿습니다. 늘 믿으시는 거예요. 초월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법칙을 만든 분은 법칙을 초월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사람들이 기가 막히고 있잖아요. 눈이 막혀가지고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그리고 이제 오늘 이런 내용을 말씀하고 나머지 7장의 나머지 부분과 8장은 앗수르가 아람과 북 이스라엘을 침묵하는 내용들을 보여주고 있는 조금 내용들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8장 3절에 보니까,
 
*이사야 8:3,
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유다 왕국의 또 다른 징조가 될 이것이 하나 나오는 뭐가 나오느냐는 거죠. 이런 내용이 나와요. 같이 읽겠습니다. 이게 무슨 내용인가 하면, 임마누엘이 가장 큰 징조가 되는데 자 저기 르신과 베가가 쳐들어온다 할지라도, 그 쳐들어온 그 무리들을 하나님이 친히 공략해 주시리라.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이 속히 망하리라 그래서 그걸 징조로 보여주세요.
 
이사야를 통해 주신 징조가 뭐냐면, 이사야가 이제 둘째, 아들을 낳게 되는데 둘째, 아들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 제가 여러 번 읽었는데 한번 해봅시다. 이게 어떤 뜻인가 곧 망하리라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곧 망하게 됩니다. 마헬살랄하스바스, 곧 망한다. 이 뜻은 남 루나를 괴롭히던 두 나라가 신속히 패망할 것을 말씀하시고, 실제로 약 2년 뒤에 아람 나라가 르신이 망해버렸고, 약 12년 뒤에 북이스라엘 나라가 패망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늘 우리가 이 마헬살랄하스바스를 믿어야만 할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여러분과 제가 굳게 서면, 우리를 노력하고 힘들게 하는 수많은 어려운 환경이 마헬살랄하스바스, 마헬살랄하스바스가 뭐예요? 우리가 임마누엘 신앙을 믿고 굳게 서면, 우리 주위의 수많은 어려운 상황들, 수많은 우리를 공격하던 상황들이 망할 것이다.
 
이것을 국가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북쪽이고 공격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을 위해 제가 개인적으로 겪는 수많은 두려움의 대상들을 생각하시고 이 말씀을 접목해 가지고 마헬살랄하스바스, 곧 대적들은 망하리라. 저는 영적 제곱근의 원리를 함수로 얘기하는데, 오늘 수만 명의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는데, 우리 가운데 우리 7천 명만 정신을 똑바로 차려가지고 칠천의 기도 용사한테 막 이어 다니면 7천 곱하기 7천 하면 어떻게든 4,900만이 하나 살려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수많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마헬살랄하스바스, 망하게 될 것이다. 오늘 그것을 믿는 것이 곧게 서는 것입니다.
 
이제 좀 더 들어가 가지고 드디어 9장에 오니까, 9장에 오니까 수 세기 이후에 성취되어야 할 믿음의 진리들을 이사야를 통하여 펼쳐주시는데, 9장 1절과 2절에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 9:1~2,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그 슬블론 땅과 납달리 땅은 갈릴리 지역이에요. 그 갈릴리 땅은 옛날에는 다 멸시 받던 곳이었어요. 그런데 그곳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추었도다. 그 어렵고 멸시받던 땅이 땅에 큰 빛이 왔을 때, 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어떤 뜻으로 해석이 되느냐 하면요. 이 말씀이 나중에 신약의 창으로 해석을 하는데, 제가 구약의 이사야, 신약의 창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는데, 구약의 이사야사를 제일 잘 해석한 사람 중에 하나가 신약의 마태였어요. 그리고 이사야라는 사람은 유대적 전통을, 마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대 백성들에게 잘 이렇게 해석을 해줬는데, 마태복음 4장 14절에서 16절 말씀이, 오늘 이사야 9장이라는 말씀을 그대로 재해석을 했어요.
 
*마태복음 4:14~16,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않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
-그러니까 갈릴리 지역인데, 이걸 정말 이사야가 한 것을 마태가 깨닫고, 다시 한번 신약의 창으로 재해석을 하셨던 거예요. 무슨 뜻인가 하면 어둠 속에 걷던 사람들이 큰 빛을 발견하게 되면, 또 황폐하고 멸시받던 땅들이 큰 빛을 받게 되면, 영광스러운 곳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저는 신학교 다닐 때 신학교 이제 2학년 3학년 이럴 때, 그 신학교를 다니면서 하나님은 혹시 제가 교회를 개척하게 되면 무슨 이름을 주시려나인가, 그렇게 이제 개척교회에다가 이름을 좀 짓고 싶어갖고 그때 그 시대에 남가주 사의 교회, 이름 하기 전에 이 말씀을 보다가 제가 너무 감동을 받아 가지고, 야 ‘큰빛교회’가 좋겠다. 이게 큰 빛으로 얘기할 때 큰 거예요. Great Light Church, 그 이 얘기를 선배 목사님 듣더니, 오 전사, 그거 내가 사자. 그거 내가 사자,,, 그래서 제가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지 아니하고, 제가 이제 뭐 했냐면 한가지 나를 위하여 2~3년 동안 기도해 달라고, 내가 말씀을 드리고 그 이름을 제가 드렸어요. 그리고 그 이름 그거 쓰셔 가지고, 교회가 잘 발전을 했어요.
 
여러분, 교회뿐이 아니에요. 오늘 이 말씀이 그대로 믿어져서 굳게 믿어져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큰 빛이 나면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어떤 구원의 역사입니까? 주님께서 갈릴리 지역에 사시던 그 구원의 역사가 그대로 펼쳐지게 되는 거예요. 갈릴리에서 눈먼 자를 눈 뜨게 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다리 저는 자를 고쳐주시고, 예수님 큰 빛이 되셔가지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산상수훈을 주시고, 5천 명을 먹이시고, 생명의 떡을 역사를 감당해 주신 것이 갈릴리 지역에서 큰 빛의 사역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큰 빛으로 어두움이 환하게 되고 난 다음, 이사야 9장 3절, 4절에, 이런 말 있어요. 같이 보겠습니다.
 
*이사야 9:3~4,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압제자의 수많은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어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 꺾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마치 그 당시 사사시대에 미디한 족속이 이스라엘을 압제했지만, 기드온을 들어 쓰셔서 하나님께서 큰 구원을 주신 것처럼 주님께서 큰 빛의 역사를 베풀어주시고,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고, 즐거움도 회복하게 하시고, 이런 내용들을 보시면서 그냥 스쳐 지나가지 말고 아, 하나님 저 말씀이 오늘 현실 가운데 내 삶 속에서는 제 말씀이 어떻게 적용되면 좋겠습니까? 이 말씀이 내 삶 속에 어떻게 확인되면 좋겠습니까? 그런 마음으로 집중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말씀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앞절부터 회복과 축복이 가능한 겁니까?
 
큰빛으로 우리에게 큰 믿음을 주시는 핵심이 뭐냐 하면, 오늘날 아까 여러분들이 우리가 요절처럼 했던 것이 이스라엘 9조왕 6절에,
 
*이사야 9:6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①기묘자라, 모사라 ②전능하신 하나님이라 ③영존하시는 아버지라 ④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근데 이게요 우리가 실력이 있어서 능력이 있어 갖고 이걸 쟁취한 것이 아니라, 너무 감사한 것은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됐어요? 주신 바 되었는데, 이유를 모르지만 말씀을 통하니 깨닫게 하시고, 이유를 모르지만 성령께서 문을 열어주시고, 이유를 모르지만 오늘 이 말씀을 이 순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여러분과 제가 큰 믿음에 서기 위하여 오늘 이 시대에 꼭 필요한 4가지가 여러분과 저에게 그대로 접목되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수많은 사람들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은 두려움을 갖지만 그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 위의 은혜를 덧입혀 주실 것입니다.
 
뭐라고 말씀하는가? 네 가지
첫째, 기묘자라, 모사라[지혜 영역]
-이것은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 삶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난제들에 부닥칩니다.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새 한글 성경에는 이 기묘자라, 모사라, 원더풀 카운슬러를 뭐라고 말씀하냐면, 놀라운 놀라우신 책략가이시다 예수님은 오늘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특별히 관련된 내용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놀라운 책략가가 될 줄로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지혜를 주셔야 됩니다. 삼국지 할 때 유비에게 제갈공명과 광통이라는 무슨 책략가가 있었다는데 그거는 비극적, 놀라운 하나님께 책략가라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을 줄 믿습니다..
 
둘째, 전능하신 하나님[전쟁 영역]
-아까 삶의 지혜 영역에서는 원더풀 카운슬러였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은 올마이티 가드, 엘 샤다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영적 전투의 영역에서, 삶의 전투 영역에서, 직접적인 전쟁의 영역에서, 이것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이다. 하나 우리 하나님은 어떤 전쟁에도 승리(勝利)를 쟁취(爭取)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이사야 42장 13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같이 보겠습니다.
 
*이사야 42:13,
13 여호와께서 용사 같이 나가시며 전사 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
-하나님이 용사가 되어 주신다는 것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신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이 최고의 승리,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최고의 승리를 십자가를 통한 최고의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그래서 최고의 승리의 현장이 십자가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완패를 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최고의 승리가 십자가가 될 것입니다. 아하스는 오늘 이사야 선지자에게. 이 말씀을 들었어도, 믿음에 곧게 서지 못해 가지고 실패했습니다마는 또 참 신기한 것입니다.
 
웃시야, 요담, 아하스 아하스의 아들 이름 뭐예요? 히스기야 왕이에요. 히스기야 왕은 오늘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하나님께 믿음으로 굳게 섬으로 말미암아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이 쳐들어왔지만 그들을 하루아침에 송장같이 벌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주셨어요. 이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삶의 전투적 영역에서 용사같이 나가셔서 승리한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세 번째로는 뭐라고 했습니까?
 
셋째, 영존하시는 아버지[관계 영역]
영존하신 하나님은, 아까는 삶의 지혜의 영역, 영적 전쟁의 영역, 여기는 뭐냐 관계의 영역에서, 왕따 당하는 사람에게, 외롭다는 사람에게, 심지어 우리 사랑하는 가족들이 떠났을 때도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되어주시는 것이에요. 따뜻하게 품에 안아주시는 아버지가 되어 주시는 것이에요. 영존하신 우리가 영적 부하가 되지 않도록 목자같이 먹이시고, 품에 안으시고 인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영존하신 하나님, 통해서 은혜를 받고 삶의 영역에서, 우리가 매일 우리 교회 이 다락방 이제 곧 방학 끝나고 이제 다락방 시작할 거 아닙니까, 여러분 이런저런 얘기들을 우리가 잘 우리가 수많은 과정들이 있지만 여러분이 우리 다락방이나 우리 훈련의 영역에 같이 들어오실 때, 하나님께서 영존하신 아버지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것이 평강의 왕이라고 그랬어요.
 
넷째, 평강의 왕[정치 영역]
-이것은 뭐냐, 정치적 영역에서 분열의 시대 갈등과 혼동의 상황에서 주님이 평강의 왕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사야 9장 7절에,
 
*이사야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예수님의 정치가 영원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런 내용을 제가 여러분들에게 제가 좀 더 설명할 수 있는 시각 때문에 정리를 하는데 여러분 이 대개 중에 어느 게 제일 마음이 와 닿아요? 어느새 마음 따뜻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나에게는 지혜로운 책임감이 필요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 영적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올 마이티 가드가 필요하고, 어떤 사람은 주로 내 마음이 너무 외롭고 왕따 당하고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있을 거예요. 주인 나에게는 영존하신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수많은 이 혼란한 정국 속에서도 주님이 평강의 왕이 되어주시옵소서. 어느 것이 더 많아 여러분들 나름대로 와닿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참 기가 막힌 것입니다.
 
어떻게 한 여인을 어머니로 불렀던 한 아기가 영존하신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요? 강보에 쌓인 어린 아기가 어떻게 기묘한 자, 모사가 될 수가 있겠느냐, 이거는 세상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풀 수 없는 신비인데, 그 풀 수 없는 신비를 믿음에 굳게 써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것이에요.
 
저에게는 이 네 가지 말씀이 어떻게 접목이 되었는가, 이 말씀을 저는 어릴 때 저희 부친이 교회를 개척하고 좀 개척교회였기 때문에 저는 어릴 때 설빔이다. 그다음에 추석 명절이다. 이런 것이 저기는 거의 없었어요. 그런 건 없었는데 대신 한 가지는 좋았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성탄절 즈음이 되면 늘 따뜻하고, 그 시간만은 좋았어요. 그리고 성탄절 즈음에 있었던 그 수많은 설교나 그런 내용들 가운데 저도 모르게 오랜 시간 동안 저에게 접목되고 저에게 소위 이멀즘 되고, 저에게 녹여진 것입니다. 네 가지가 지혜의 영역에 있어서, 역적 전쟁의 영역에 있어서, 삶의 관계 영역에 있어서, 그리고 혼란한 이런 정치 이런 사회적 영역에 있어서, 이것이 자연스럽게 이 네 가지가 제게 접목이 됐었어요.
 
그리고 그걸 통해서 저는 해마다 기도의 제목을 할 때마다 지금 말하는 지혜의 영역이라면 기도의 제목, 그다음에 영적 전투에 대한 기도의 제목, 그다음에 관계에 대한 기도의 제목, 사회적인 삶의 영역에서의 기도의 제목, 이 네 가지가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어 왔었어요.
 
그래서 그게 나에게는 무슨 변화를 일으켰나, 예를 들어서 이런 것입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에 우리 교회가 수년 전에 싸웠다. 사람들 그래서 처음엔 이제 사랑글로벌 아카데미를 한다고 할 때에, 많은 말들이 있었어요. 많은 분들이 목사님 그러는데 이 코로나가 힘듭니다. 이걸 안 됩니다. 그런 분들이 있었고, 또 실제로 그게 쉽지가 않았어요. 그런데 이 네 가지가 접목이 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제게는 믿음이 뭔가, 하는 이런 차원에서 제게 문을 열어주셔 갖고 집중을 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여러분 올해 사랑글로벌아카데미 입학생이 300명이 넘습니다. 이거는 대한민국에 지금 신학대학원 케이스로, 이 대학원 대학교 수준에 300명이 넘는 입학생이 우리가 유일합니다. 이 너무 감사와 놀랄 일입니다. 다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굳게 믿어야 굳게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대표적으로 코로나 말기에 우리 교회는 그래도 어느 정도 코로나 시간에 기관에 선방을 했는데, 우리만 잘하면 돼요. 한국에 있는 많은 특별히 어려운 교회 약한 교회 100명 이하의 교회 모임 숫자 100명 이하의 교회 좀 이렇게 갇히고 있다. 나눠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이제 소위 첫 번째 한국교회 섬김의 날, 이걸 하려고 하는데 많은 분들이 목사님, 코로나 500명도 안 옵니다. 그래서 저는 나는 5천 명 그러니까 목사님 택도 없는 소리 하시지 마세요. 하더군요.
 
그러면서 목사님 빌립과 같이 말해서 미안한데요. 그래 사실이에요. 사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그 말을 듣고 그래 안 되겠구나. 그게 아니고 강단기도 한 달 하면 하나님께서 감당을 잡아주시겠지. 저는 그런 믿음에 굳게 설 어떤 그런 어떤 기를 주셔가지고, 한 달 동안 강단기도 매일 아침마다 강당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는 진심, 하나님 되는 전심, 그것이 지나가고 보니까 지금 말씀한 대로 영존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이것이 접목이 되는 그 은혜로 하나님께서 주신 참 수많은 믿음의 결과들이 있지 않았나,,, 좀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가 5천 명이 아니고, 작년에는 8천 명이었어요. 8천 명이요. 이 4가지 은혜가 온 성도들 한 분, 한 분 그대로 여러분들에게 원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과 다시 하나님께서 쓰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제가 이 말씀을 드리면, 어떤 분들은 아 그렇구나. 뭐 오목사 이상으로 나도 좀 그런 뭐가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분들은 아 나는 그래도 마음에 잘 안 와닿는데 이런 분이 계시면 지금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을 그대로 명심을 하고 이걸 여러분들이 딱 마음에 와 닿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믿음으로 굳게 서게 하셔서 바람 앞에 흔들리는 마음들을 정리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여러분들이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어떤 내용이든 나오느냐 하면 여러분 엘리야 특별히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었는데, 엘리사의 제자 가운데 남편은 죽고, 남편이 죽어버렸더니, 아들만 둘만 낳은 부인이 있었어요. 그래서 아들만 둘 데리고 부인은 남편이 없으니까 너무 가난해 가지고 집에 아무것도 없었고, 나중에 이 아들 둘을 종(從)으로 팔아야 할 상황이 되었어요. 너무나 척박한 상황에서 그 당시에 신학교 했던 엘리사를 찾아 가지고, 울면서 우리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우리 다 굶어 죽게 되었어요. 우리 이제 우리는 끝났습니다. 그럴 때에 엘리사가 그 부인의 아들 둘 있는 부인인데, 넌 뭐 있냐 갖고 있는 게 뭐냐? 그러니까 내가 갖고 딱 하나밖에 기름병 하나가 있다는 거죠.
 
기름병 하나밖에 또 그러니까, 열왕기하 4장 3절 4절에, 참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데요. 여러분 같이 한번 보겠습니다. 3절 같이 보겠습니다.
 
*열왕기하 4:3~4,
3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4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잠깐만요 이거 지금 엘리사 그 제자의 아내에게 하는 말이지만 여러분 여러분과 저에게 주실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너는 할 때 여러분 이름 넣고 생각해 갖고 한번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다 굶어 죽게 됐어요. 지금 그걸로 끝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앨리사에게 가니까 엘리사를 통하여 믿음의 문을 열도록 만들어주시는데, 너 기름병 하나밖에 없지, 그걸로 끝내지 말고 너 도와드리고 함께 가가지고 이웃들에게 가 가지고 그릇을 빌려라. 간장 종지 한 개만 빌리지 말고, 조그마한 그릇만 빌리지 말고, 수많은 그릇들을 빌려 가지고 방에 그 병들을 더 그릇들을 다 놓고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다가 기름을 사는 대로 차게 되리라 그랬어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간장 종지 정도를 빌렸으면 간장 종지 만한 인생이 될 것이고, 큰 항아리와 큰 대접을 빌렸으면 그렇게 결정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4가지를 여러분의 것으로 받아들여 가지고 누가복음 7장 50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7:50,
50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믿음에 굳게 서서 믿음을 통하여 여러분들도 살고, 교회도 살고, 이 민족도 살면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제가 말씀한 대로 세상의 사람들은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지만, 오늘 이 시대에 여러분과 저의 믿음을 통해 다시 한번 믿음의 장군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요약
우리가 끝 망할 '연기 나는 부지깽이 같은 세력'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강력한 임마누엘 신앙'으로 무장하여서, 날마다 삶의 전 영역에서 "최고의 지혜자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신 주님"을 '굳게 믿고 굳게 서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사랑의교회와 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가 영적 제곱근의 큰 그릇으로 만드시는 주님'을 굳게 믿을 때, 전세계에 큰 빛을 비추는 '민족의 새날'을 주실 것을 확신한다. 믿음으로 굳게 서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임마누엘 신앙을 붙들 때, 두려움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에 믿음의 영웅, 믿음의 용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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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2월 2일)
제목: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Who Will Go for Us?"-새로운 길-이사야 시리즈 ⓷
말씀: 이사야 6:1-13
대표기도: 신동호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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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 6:1-13,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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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배를 통하여 여러분 각자 있는 삶의 모든 무거운 점들이 벗겨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능력을 체험하고 특별히 하나님 오늘 필요하시면 치유도 경험되기를 원합니다. 그 뒤에 보면 오늘 이사야 6장의 말씀은 너무나 고귀한 말씀이고, 여기에 사상과 또 이사야의 수려한 문장이 있지만 그걸 뛰어넘는 영광스러운 계시(啓示)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계시를 통하여 이사회를 부지깽이로 인두로 지져주실 때 이 사회가 치유(治癒)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으로 여러분들 마음 하나하나를 상처(傷處)나고 트라우마 된 것을 치유해 주시길 바랍니다. 본문의 제목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오늘 세 번째⓷, 이사야서 강연인데 이 말씀이 오늘 이 시대에 지금 현재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으로 선포되기를 원합니다.

이사야의 6장에 오늘 이 말씀이 나오기 전에 바로 5장에 뭐가 나오느냐 하면, 제가 이제 66장을 다 강요를 할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66장 전체가 다 이제 길기 때문에 1년 내로 마쳐야 되니까, 제가 이제 어떤 분들은 언급만 하고 넘어가는데 5장에 보면, 5장 앞으로 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상품 포도를 맺기를 원했는데 너희가 들포도를 맺었도다. 4절 뒤에 보니까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그렇게 기다렸거늘 너희들은 들포도를 맺으면 어찜인고?, 앞에 2절에는 극상품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사야 5:4,
4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이사야 5:2,
2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저는 이 본문의 말씀을 잊을 수가 없는 게 저는 4형제인데요. 제가 맏아들이에요. 제가 맏아들인데요. 할릴루아입니까? 제가 이 맏아들인데 제가 이제 뭐 동생들하고 약간 티격태격한다든지, 아니면 저희 부모님 보시기에 내가 조금 부족하다 그럴 때 우리 아버지는 오라고 캄 그러면서 성경구절 몇 구절을 가지고 이제 저를 이제 교훈하시는 거예요. ‘피차 물고 물으면 서로 망할까 조심하라’ 갈라디아서 5장 말씀하고, 그 다음에 오늘 이 말씀이 두 번째로, 제게 주시는 말씀이었어요. ‘너는 어찌하여 하나님은 너에게 극상품 포도를 맺기를 원하셨는데 너는 어이하여 들포도를 맺는가?’ 너무나 신비해가지고 잘 못 알아들었어요.

그렇지만 오늘 이 말씀을 제가 준비를 하면서 그때 생각이 나며, 내 인생도 그러고 또 우리 민족도 그러고,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이 극상품 포도를 맺기를 원하시는데, 들포도를 맺는 상황이었어요. 거기에 대해서 오늘 이제 1절에, 웃시야가 죽던 해에 그렇게 했습니다.

*이사야 6:1,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근데 이 1절에 웃시야가 죽던 해에 바로 이전의 5장 마지막 30절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하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같이 보죠.

*이사야 5:30,
30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 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려서 어두우리라.
-그러니까 상황 자체가 울세야가 죽던 상황이고, 그 다음에 흑암과 빛이 흑암과 고난과 그래서 어두움 가운데 있었다. 그러니 마치 극상품 포도를 맺어야만 하는데, 들 포도를 맺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조금 더 설명을 드리면, 웃시아가 죽던 해라는 것은, 웃시아는 아주 12살 때 왕에 등극해 가지고 그 다음에 52년 동안 웃시아가 이렇게 이스라엘을 통치를 했어요. 그리고 통치하는 가운데 이사야 6장의 상황이, 역대하 26장과 그대로 연결되어 있는데, 역대하 26장 15절을 보니까,

*역대하 26장 15절,
15 또 예루살렘에서 재주 있는 사람들에게 무기를 고안하게 하여 망대와 성곽 위에 두어 화살과 큰 돌을 쏘고 던지게 하였으니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었더라.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느냐면, 웃시아 50년 통치 기간 가운데 굉장했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아주 경제 군사 강국이 되었고, 디지털 강국이 되었고, 방산 초일류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 되었는데 너무 잘 되니까, 나중에 그 16절에 보니까, 무슨 말이 나오느냐 하면,


*역대하 26장 16절,
16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뭐 무슨 악을 했냐 하면 웃시아가 잘했어요. 잘하다 막판에 야 제사장에 드리는 그 제사를 나는 좀 할 수 없나? 그렇게 해가지고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를 드리다가 하나님이 치셔서 이마에 나병이 나가지고 쫓겨나 가지고 유폐되다가 그래 죽었어요. 그러니 그다음에 요담왕이 이제 맞아요. 요담왕이 나라를 받았는데, 이제 이런 상황들이 그렇게 만만한 상황이 아닌 거예요. 마치 오늘 우리 국제 정세나 대한민국의 정세하고 좀 비슷한 그런 성향이 많이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오늘 본문에서 한 서너 가지 동사가 나오는데,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접목(接木)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이 말씀을 통한 치유를 여러분들이 경험하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첫 번째 동사가 뭐냐면 내가 본즉 일절로 보니까

I. 본즉.

-1절 웃시아가 죽던 해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내가 본즉, 뭘 보았는가,
*이사야 6:1,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절 3절 4절에,
*이사야 6:2-4,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할렐루야 그렇게 하니까 이런 찬양하니까 사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이와 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만 이런 찬성을 할 때에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의 연기가 충만하여졌다. 구약에 보면 성막이나 성전에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이 빽빽하게 임할 때, 소위 하나님의 쉐키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 연기가 조그만해진다. 이 말이에요.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에 빽빽하게 입었어요. 빽빽하게 입었어요. 그러니까 그 이후에 오늘 이제 오늘 이후에, 드디어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의 주님이 부르신 사명에 대해서 그 소명으로, 반응하는 내용들이 쭉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내가 본즉, 이라는 이 동사를 통한 우리가 깨닫는 것은 뭐냐 하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보아야 사명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에요. 이걸 여러분들 믿으셔야 되시는 것이 제가 이사야설을 해석할 때에 제 개인의 실력과 능력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신약에 창과 교부들의 창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오늘 이사 6장에는 이 말씀을 사람들이 이 말씀을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해야 내게 주신 사명을 확인하고 주님 앞에서 임받을 수 있다. 이렇게 나오는데 이걸 사람들이 믿지를 않아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뭐라고 나와 있느냐면, 요한복음 12장에 먼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다 같이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2:39,
39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예수님의 해석의 신약의 창인데 요한이 깨달은 거예요. 보겠습니다. 곧 그 이사야의 내용을 가지고 믿음 없는 것을 말씀하시고, 41절에 뭐라고 말씀하는가? 바로 이어서 뭐라고 하면

*요한복음 12:41,
41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아멘, 여러분 이사의 6장에 있는 내용 성경을 좀 안다 하시는 분들도 6장의 내용이 요한을 통하여 신비한 복음서인 요한을 통하여 이사야의 이 말씀이 신약의 창으로 재해석된 걸 잘 모를 거예요. 여하한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하나님이 주신 음성을 듣고, 사명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 이 안아주심의 본당에서 드리는 오늘 이 주일 예배가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目睹)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러면 왜 어떤 사람들은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고, 어떤 사람은 목도하지 못할 것인가?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요한이 깨달은 진리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깨닫지 못할 것인가? 요한복음 12장 43절, 39절 41 43절에 같이 보겠습니다.

* 요한복음 12장 43절,
43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아멘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 영광보다 더 사모하면 찬란한 하나님의 쉐키나의 영광을 체험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내 것으로 확정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오늘 여러분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보다 앞선다는 건 어떤 뜻이에요. 소위 사람이 먼저다 인본주의가 먼저다. 이런 소리 많이 하고 그러는데 여러분 그렇게 계속하는 동안은 찬란한 하나님 영광을 볼 수가 없는 것이에요. 소위 자기중심, 자기 프라이드, 자아실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 자아를 죽이고, 자아를 죽인다는 것은 뭐냐면 자기 욕심이 커질 때, 하나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하고, 또 반대로 또 자기 연민에 빠질 때도 자기 연민에 빠질 때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로마스 6장의 바울이 깨달은 진리가 뭐냐 하면 로마서 6장은,

*로마서 6:4,
4 아버지의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주셨다고 그랬어요. 여러분 예수 그리스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 가운데 살려주셨다면, 오늘 여러분들의 죽음과 같은 상황도, 하나님의 영광을 특히나 영광을 체험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죽음과 같은 상황도 살려주실 것입니다.

제가 한 번씩 말씀드립니다만,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에게 필요한 거 많이 주세요. 우리에게 필요한 의식주 살아갈 것 주시기도 하시고 다 주시고 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만은 아무나 응답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의 영광만은 오늘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고, 쉐키나의 영광을 깨닫고, 그 셰키나의 영광을 통하여 자기 중심이나 어떤 자아가 아니라, 정말 자기를 부인하면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아니하고 자기 욕심에 눈이 가려워지지 아니하고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의 우선순위가 되어서 주님 내가 진짜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합니다. 어려움과 고난과 문제 가운데서도 한결같이 내 영적인 시선과 안테나가 주님께 고정이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할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응답해 주시는 것이에요.

오늘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어요. 그래서 이 영광의 찬란한 하나님 영광을 목도할 때 본즉, 그랬고 두 번째 단어는 뭐냐 하면, 5절을 보니까 말하되 말하되,

II. 말하되.

*이사야 6:5a,
5a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제가 교부들의 창으로 보면서 전 세계 수많은 교부들, 파덜들, 어구스틴이다. 혹은 잉나티우스다 이레니우스다 이런 여러 폴리갑이다. 여러 우리 교부들이 4세기, 5세기, 6세기 또 church fathers들을 교부들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 분들에게 나타나는 두 가지 공통적인 현상이 있었어요. 하나는
⓵뼈를 깎는 뭐라 그럴까요? 정말 뼈 때리는 자기 자기의 부족함에 대한 각성을 하고 자기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죄성에 대한 각성을 하고
⓶또 하나는 그 각성 이외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발견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한 사람들은 지난 2천년 교회 역사에 예외 없이 각성을 하고, 그다음에 사명을 발견하는 것이 할렐루야!~~ 그것이 오늘 두 번째 나타나는 말하되에요. 뭐라고 말하냐면 죄에 대한 각성을 하는 것이에요.

오늘 죄에 대한 각성을 어제로 보낼 때, 그때 내가 뭐예요?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기 자신의 부정함 때문에 나는 망하겠다. 망하겠다. 나는 망하게 된 사람이다. 처절하게 죄에 대한 각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2천년 교회 역사에 누구나 예외가 없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면, 첫째는 죄에 대한 각성으로 자기는 망하게 되었다고 또 하나는 그 이후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여러분이 죄에 대한 각성을 한다. 그래갖고 이사야가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다. 그 뜻이 아니에요.

너무나 강력한 하나님의 영광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비춰볼 때에, 이게 거룩한 절망이에요. 영적 절망이에요. 여기서 정말 소위 긍정적인 절망이에요. 하나님 앞에서 찬란한 하나님 영광을 비춰보니까 자기가 얼마나 죄성이 많은지, 예를 들어서 이런 것입니다. 빨래가 깨끗한데 빨래가 놓여있는데, 흰 눈이 내리는 거예요. 흰 눈이 내리면 그 자기가 깨끗하고 빨래가 흰 눈에 비교해 보면 이것은 칙칙하고 더럽기 짝이 없는 것이에요. 우리가 찬란한 하나님 영광을 목도하고, 그 빛 앞에 나를 비추어 볼 때, 나는 정말 죄인 중에 괴수요, 바울이 고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 영광을 목도할 때 나타난 공통적인 현상이에요. 누가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만나 주셨어요.

베드로를 만나주시고 난 다음 베드로가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내리라. 그럴 때 낮에는 깊은 데 가면 고기가 없는데 가봐야 소용이 있겠나, 그렇겠지만, 마음의 예수님의 영광이 압도가 돼 가지고 깊은 데 구워내는 그물을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어요. 깜짝 놀라가지고 그 예수님의 영광 위엄 앞에 베드로가 깨닫고 난다음, 누가복음 보면 5장에 뭐라고 얘기하느냐, 아주 그냥 강력하게 얘기하는 거야. 뭐라고 얘기하느냐,

*누가복음 5:8b,
8b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것은 긍정적 절망이에요. 이거는 거룩한 절망이에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아니야. 너는 앞으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아윌 메이크 유 피셜즈 오브 맨, -I will make you fishers of men. ‘내가 너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모두가 다 공통적인 현상이에요. 그 모세도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의 40년 동안 벌벌 떨면서 그냥 고난을 겪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그에게 사명(使命)을 주시잖아요. 거의 여유가 없어요. 이것은 이사회가 남보다 더 죄를 많이 짓고 더 부족하다 그게 아니에요. 이사야가 찬란한 영광 앞에서 나는 망하게 된 존재다 그 찬란한 빛 앞에 나는 죄인일 수밖에 없다.

긍정적이고도 거룩한 절망을 하고, 그 아우라 앞에 꼼짝도 못하는 것이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그걸 통하여 거룩한 두려움으로 거룩한 절망감 때문에 탄식할 때, 이것은 굉장히 긍정적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좀 제대로 해볼 수 없을 것인가? 그야말로 현타 진실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에요. 스페인의 투우에 가보면 모먼트 투루스라고 ‘진실의 순간’이라고 있어요. 마지막 투투 소아 그다음에 투우사가 마지막 죽기 직전에 있잖아요. 창을 가지고 내려가야 돼요. 내려찍기 직전이 그 순간이 진실의 순간인데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고, 그 진실의 순간을 현타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제가 지금도 기억하는 것이 2007년도에 지금부터 한 18년 전에 놀스 캐롤라이나 있는 블랙마운틴이라고 있는데, 거기에 빌리그램 목사님께서 마지막 거기서 이제 노년을 보내고 계셨는데, 그때 좀 오라고 해서 제가 가서 빌리그램 목사님하고 시간을 좀 보내고 기도를 하고 그랬어요. 아마 1시간 반 이상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근데 그 1시간 반 동안 세계적인 리더요. 그 다음에 하나님이 쓰시는 종인데, 그 아우라가 있는 거예요. 노년이고 몸이 좀 아프셔도 휠체어를 타고 계셔도 아우라가 있는 거예요. 내가 그 앞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여러분들은 반응도 없는데요. 나는 나는 반응을 했어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러니까 인간도 하물며 그럴진데, 찬란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 영광을 목도할 때 오늘 얘기했던 것처럼 말하되 ‘나는 죄인으로서이다.’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 베드로에게 사명 주신 것처럼 그렇게 사명을 주실 줄로 믿는 것입니다. 언제인가? 6절 다시 한번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6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사야 6:6,
6 그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때에,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은 신앙의 북극성과 같은 것이에요. 하나님 영광의 눈이 열리게 될 때, 그리고 내 자아를 부인하고, 어떤 거룩한 절망을 하고, 이것이 삶의 나침반(羅針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희 부친은 늘 극상품 포도에서 말씀하시고 자주 말씀하시고 그다음에 저희 집의 가훈은 넘버원이 뭐였냐면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이걸 뭐 무슨을 체크하고 점검할 때, 이걸 제일 우선순위(優先順位)에 두라는 것이 여러분들은 저의 영적 가족인 줄로 믿습니다. 저희 부친이 저에게 그렇게 얘기한 대로 나도 똑같이 여러분들과 함께 이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극상품 포도를 맺어야만 하는데, 그걸 위하여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고, 거룩한 절망을 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귀 기울이면서 그리할 때 무슨 일을 할 때의 표준이 뭐냐, 모든 일의 기준이 이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이것이 정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가?

이것을 늘 물어보므로 알미암아 그때에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때 어떤 축복을 주시는가? 오늘 다 읽지 않았는데 교도 갈 때 이제 6절 그때에 드디어 7절 8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크게 우리가 합독하겠습니다.

*이사야 6:6~8,
6그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할렐루야, 오늘 처음 제가 서론에 말씀했습니다만 천사가 인두를 가지고 스랍이 인두를 가지고 그냥 이사야 입술을 짖어버렸어요. 그 입술을 짖어버릴 때에, 그의 악이 제하여 졌고, 죄가 제하여졌고, 이 사야가 치유가 된 것입니다.

오늘 이것이 이사야 때 말씀으로 끝나면 되나, 2700년 전의 사건으로 끝나면 되나, No! 노 이것이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의 삶에 이 순간 접목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주간에 한국의 유명한 교육 기업가를 만나갖고 대화를 하는데, 제가 참 은혜로운 간증을 들었어요. 그는 신앙의 4대째고 그의 할아버지가 외할아버지가 계시는데 외할아버지가 경남 창원에서 신사 참배를 반대했어요. 평신도로 반대를 하니까 일본 사람이 와 잡아갔어요. 감옥에 갔는데, 네가 그냥 어쩔 수 없이 신사 참배 반대에 참여했다고 사인만 하고 난 앞으로 안 그럴 거다. 그렇게만 하면 풀어주겠다. 그러니까 그러냐고 생각하고 그냥 사인을 해 가지고 나왔대요 나왔는데 기도를 하는데 이건 아니지, 그리고 다시 나는 사인 못하겠다고 다시 감옥갔대요. 그때부터 주워 패고, 고문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완전히 거기서 완전히 그냥 거의 생명의 숨만 좀 남아가지고, 이제는 시체처럼 돼 가지고 밖에 던져버림 당한 거예요. 그래서 이분이 내가 내가 죽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그 40대 후반이었는데.

기도라도 하고 죽자. 그리고 사내가 산기도를 눈이 와 있는 기도원에서 기도해서 산기도를 하는데,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이 말씀을 읽고 할 때 갑자기 불처럼에 임해가지고 천사가 스랍이 와서 기도하는 가운데서 그야말로 자기의 몸에 막 그냥 인두를 가지고 지지는 것 같은 아픈 부분을 막 지지는 것 같은 그런 은혜를 받았대요. 그래 가지고 사형성과 내려진 사람이 회복이 돼 갖고 95세까지 살았대요. 그 유명한 교육기업가도 나오고 말이지요. 한번 제가 자세한 얘기를 다 말씀 못 드렸는데 이 말씀을 들으면 그게 무슨 전설 따라 삼천리 아닌가, 그런 분도 계실 거고, 어떤 분은 그렇지 하나님 오늘도 내 삶의 아픈 부위라든지 아픈 상황에 주님이 스랍들을 보내 가지고 지져주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사모합니다. 그리고 내가 사명자가 되겠습니다.

이런 결심을 할 때, 하나님이 필요하면 저도 이 말씀을 듣고 나도 그 간성을 듣고 나도 마음이 뜨거워졌어요. 그래갖고 나 좀 아픈 부위가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까 좀 나은 것 같더라고요. 뭐 이거는 여러분들 여러분들 알아서 하세요. 아시겠어요. 제가 무슨 평소에 내가 치유를 많이 얘기하는 목사도 아닌데, 근데 하나님만 있으면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거 아닙니까? ‘주여 우리는 죄인입니다. 내가 거룩한 절망을 하고 하나님의 내 자신을 돌아보오니 하나님 우리가 고백하는 이 고백 가운데 주님이 스랍들을 보내 가지고 인두로 내 입술과 내 아픈 부분과 내 트라우마와 내 상처와 주여 심지어 이 민족의 상처까지도 지져주십시오.’ 오늘 이 마음이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살았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지금 체험해야 되는 것이에요.

첫 번째 본즉, 두 번째는 뭐예요? 말하되, 내가 고백하는 거예요. 나는 죄인입니다. 이사야가 다른 사람보다 죄가 많은 거 아니에요. 찬란한 하나님의 쉐키나 영광 앞에 자기가 죄인 것을 고백하게 된 것이 그 거룩한 고백의 거룩한 절망이에요. 세번째로는 일렀어요. 8절에 이르되,

III. 이르되.

*이사야 6:8a,
8a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이사야 6:8b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바로 8절 뒤에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시작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아멘, 오늘 이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를 하고, 두 가지 죄에 대한 각성과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에, 반드시 주님 앞에서 고백하는 내용이 있다면 그것이 뭐냐,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내가 이르되, 공통적인 현상이에요. 그리고 이거는 피상적인 얘기가 아니고 이건 여러분의 것으로 고백이 돼야 되는 것이에요.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어 주십시오. 오늘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내 동생을 보내어 주시옵소서.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 목사님만 보내주십시오. 주여 내가 여기 있나 우리 순장님만 보내주십시오. 이게 아니고,,, 실제로 여러분들의 것으로 와 닿아 가지고 그것이 환경적으로 어떤지는 제가 다 구체적으로 다 모르지만 여러분들의 상황 가운데서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사명받은 자로서 나를 보내어 주시옵소서. 여러분 이 마음이 없는데 대한민국 교회 성도들과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저와 여러분이 주연회가 여긴 나를 보내어주소라 이런 사명이 없는데 어떻게 세상이 바뀔 수가 있겠어요. .나를 보내소서.라는 이 사명 이 마음에 자세가 없고 이 반응이 없는데 어떻게 새로운 길이 열릴 수가 있겠어요? 우리는 신앙생활을 그냥 표피적으로 종교 생활하고 그다음에 신앙생활을 그냥 피상적으로만 한다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데, 피상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인격적인 하나님을 제대로 만났다면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경험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사야가 나를 보내소서 했을 때 자기가 무슨 왕족 출신이고 자기가 왕궁 교육을 받고 자기가 굉장한 문장을 쓸 수 있는 이런 자기 실력으로 그것 때문에 나를 보내 달라고 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죄인임을 각성하고, 사명받은 자로서 그의 깨달음을 갖게 될 때에 그야말로 사명받은 자로서 하나님이 자기를 변화시켜 주셨기 때문에, 자기가 보내 달라고 말씀하는 것이에요.

그럼 오늘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실력과 여러분 재능과 여러분 능력과 여러분 환경을 보면 갈 입장이 된 분이 거의 없어요. 별로 없어요. 그런데 내 실력과, 능력과, 내 지식과,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룩한 수풀을 가지고 거룩한 인도를 가지고 내 인생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수많은 더러움을 지져주시고 치유하시고 새롭게 해주신 그 변화의 능력 때문에 나를 보내 달라고 얘기하시는 거예요. 오늘 이것이 그래서 주님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요한복음 15장에 보니까,

*요한복음 15:16,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했어요.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가지고 이건 놀라운 그러니까 여러분 이걸 제대로 깨달으면 주님 앞에서 이 말씀을 반응하고, 오늘 이 시간 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대한민국 지난 12월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주여 나를 보내소서라고 우리 모두가 다 진심으로 고백하고 매워 다닐 때 세상이 변화될 것이오, 여러분 진심으로 나를 보내소서 할 때에 우리의 부족한 인생의 주녀 앞에 놀랍게 쓰임받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고백할 때에 그를 고백할 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9절의,

*이사야 6:9,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여호와께서 이러시되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것처럼, 주님이 하늘과 땅에 있는 권세를 가진 그분이 가라 오늘 이 말씀을 깨닫고 이 말씀이 여러분의 것으로 확인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여러분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진짜 여러분들이 이걸 깨닫고 여러분들 고백을 하게 되면 이 어려운 시기에 여러분들이 하나님 나라의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하나님 나라의 정규군이 될 것입니다. 적당한 당나라 군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정규군이 될 것입니다.

저는 청년사역을 많이 했잖아요. 그리고 청년시절 수양회를 하면 마지막 시간에 콜링을 해요. 마지막 시간에 항상 우리가 헌신하는 시간이 있어요. 헌신의 시간을 가져요. 그런데 이런 사명과 은혜를 깨달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적당한 곳에 가는 것 적당한 좀 평안한 곳에 가는 거 이런 것보다도 오히려 오지, 험지, 어려운 거 그쪽에 부르마 콜링을 할 때 오히려 그런 곳에 더 많이 가서 더 많이 주의 선교사면 선교사 더 많이 가겠다고 그렇게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걸 이 차원을 여러분들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하나님이 가라고 하실 때는 오히려 어려운 일일수록 더 가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이것은 어마어마한 특권이에요. 산꼭대기든, 바다 밑이든, 적당한 곳이 아니라 주께서 원하시는 곳에 어디든지, 나를 보내어 주시옵소서. 어디든지 그래서 오늘 오늘 회중 찬송 할 때에 아무든지 예수 나라를 이끌면 어디든지 예수 함께 가는 외국 같은 경우는 어릴 때부터 이 찬송, 애니웨어 위드 지저스 아이 캔 세브릭 고, 이렇게 나와 있는데,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이 찬송을 많이 부르는데, 한국 교회는 이걸 아주 모르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나중에 집에 가가지고 오늘 회중 찬송 불렀던 거 아무든지 예수 함께, 그러니까 한 20번 이상 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디를 가든지 겁낼 곳 없네. 어디든지 예수 함께 가려네 이것이 뭐냐 하면 주님이 가라고 하시는 것이고, 오히려 내 실력과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가라고 하시니까 그 특권으로 알고 산꼭대기 된 바다든 사무엘은 그 어릴 때 어린 사무엘이 사무엘상 3장에 보니까, 사무엘이 ‘말씀하시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어디든지 가겠다.’ 이런 사람들이 무엇이 되는가 오늘 요 절 중 하나인데 13절에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이사야 6:13b,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이 땅에 거룩한 씨가 되는 것이에요. 그 앞에 보면 13절에, 밤나무 그 다음에 상수리 나무 황폐하게 돼야 돼 배임을 당하고 그중에 10분의 일이 남아 있을지라도 황폐하게 될 것이다.

*이사야 6:13a,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밤나무가 있고 상수리 나무도 다 배임을 당하여도, 그 거룩한 그루터기 랩넌트, 그 남아있는 씨, 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나님의 사람으로 무장시켜 주신다는 것이 그 11절부터 13절까지 보면요 황폐하다는 말이 네 번이나 나와요. 배임을 당한다. 소망이 없다. 아까 들포도를 맺는다. 이스라엘 자체가 앞에 있는 것처럼, 고난과 어둠이 가장 밀려와 있다. 그 황폐하다 그런데도 유일한 희망은 뭐냐,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고, 죄에 대한 각성을 통하여 사명을 발견한 자로서, 하나님 앞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필요하면 우리가 사명으로 간다면 직장에도 나를 보내주십시오. 학교에서도 나를 보내주십시오.

어디든지 내가 사명자로서 가정주부로서 내가 주부 정도가 아니라, 사명자 가정주부, 사명자 직장인, 사명자 공부하는 학생들, 사명자 비즈니스맨, 사명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때에 그루터기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거룩한 씨가 되는 것이 우리 옛날에 후진국일 때 우리 어려울 때 보릿고개라고 있었습니다. 보릿고개를 넘길 때 이제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남아있는 먹을 게 없어요. 그런데 아무리 어려워도 춘궁기가 있다 하더라도 농부들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듬해 농사를 위하여 종자를 꼭 남겨두었어요.

왜냐하면, 내일의 희망적인 추수를 기대할 때, 오늘 지키고 보존하는 이 씨앗이 있어야 남아있는 씨앗 보존한 씨앗이 있어야 내일의 미래를 기대할 수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춘궁기 보릿고기라도 그 씨앗은 남겨두었어요. 황폐할 수 있습니다. 어려울 수 있습니다.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교회 신신한 죄의 종들을 여러분 거룩한 그루터기로 남겨두신 줄로 믿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여러분들이 거룩한 그루터기 씨라고 얘기할 때 이건 남들이 하는 거다 나하고는 상관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과 저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이 사명을 위하여 모두가 다 거룩한 그루터기의 주님이 주시는 사명과 비전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그리고 이런 거룩한 그루터기는 아까 말했던 황폐함 가운데,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고난을 겪는 가운데 웃시아가 죽던 해에,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그 황폐함을 극복하고 고난을 극복하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거룩한 그루터기의 사명을 감당하라 이거예요. 그래서 신약의 창으로 또 해석을 하면 오늘 이 사이 모든 상황은 야고보서 1장 3절 4절을 보니까, 무슨 이야기가 나오냐면,

*야고보서 1:3~4,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자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발견하고 할 때, 이것이 수월한 환경은 아니에요. 어려운 환경이에요. 그리고 그 어려운 환경 시련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극복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하고 구비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거는 전 세계 이건 동일한 법칙이에요. 동양고전은 뭐 성경은 아니지만, 그러나 맹자 같은 경우 하늘이 장차 큰 사명을 그 사람에게 맡기려 하면 ‘반드시 그 사명자가 되려면 누구도 예의가 없다. 반드시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근육과 뼈를 수고롭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의 생활을 빈궁하게 하고 그가 하는 일을 어지럽게 하느니라.’ 잘 알아요. 우리가 하물면 나무 제대로 된 나무를 가지고 그 집안에 훌륭한 어떤 기둥으로 쓰려고 하더라도 톱질을 해야 되고 그 기둥을 위하여 대패질을 해야 되고 거친 바람을 극복해야 좋은 사공을 만들 수 있듯이, 제가 이 얘기를 왜 그러냐 대한민국의 상황이 전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 우리처럼 이런 고난이 많은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송나라의 시인 황산곡은 ‘뼛속까지 사무치는 추위를 겪지 않고서야 어찌 매화 향기가 코를 찌를 수 있다는 말인가?’ 민족적인 고난에 이 뼛속까지 사무치는 추위, 황폐와 어두움 가운데서 자기각성과 죽음 선언을 통하여 우리가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더 삼으로 말미암아 이 시대에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매화의 향기를 피울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 민족에 무슨 죄가 많아 가지고 이 엄동설한에 전국 각지에서 광장에 나가고, 왜 12월 이렇게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이거는 단순히 누구를 찬성하고 누구를 반대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저는 큰 그림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연단하시고, 우리 민족의 뼈를 깎게 하시고, 톱질하시고 대패질하셔갖고 우리 민족의 뼈를 녹이는 고통을 통하여 이제 하나님이 제발 좀 그릇 키워가지고 반도에서 그만 싸우고, 반도에서 그만 싸우고,,, 이제 통일을 위하여 큰 그릇 좀 제발 준비해 주라... 큰 그릇 좀 준비해 주라 그리고 단순히 너희 나라만 살지 말고, 이스라엘은 숫자가 많지 않지만 세계 전 민족에게 큰 나름대로의 그 역할 모델을 한 것처럼, 대한민국도 앞으로 역할 모델 하라. 세계 어떤 민족보다도 수많은 고난과 배를 깎는 아픔을 믿는 민족이니까.

그걸 그냥 아픔으로만 끝나지 말고, 오늘 말씀의 사명의 인두질을 가지고 아픔을 다 치유받으므로 말미암아, A New International Spiritual Order and a New Civilization!, 뉴 인터내셔널 스페셜 오더,,,, 새로운 국제 영적 질서와 새로운 문명사에 도움이 되는, 이민족이 되기를 바란다.아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12월 1월 2월 앞으로 1~2달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 가운데 사랑의 교회 교구들과 대한민국 교회 성도들은 수립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어 주시옵소서. 나라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고, 뼈를 깎는 기도를 할 때에 간절함으로 기도할 때에 다시요. 뉴 인터내셔널 스피릿츄얼 오더,(New International Spiritual Order), 새로운 영적 국제 질서가 형성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문명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이민족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양에서도 그야말로 우리가 집회할 수 있는 그날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작년 10월 27일 이런 마음을 가지고 주님 사무엘상 11장에 있는 것처럼, ‘일어나 길갈로 가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 대한민국을 새로운 나라로 세우자. 자유의 나라, 생명의 나라, 창조의 나라, 거룩의 나라, 영광의 나라, 기적의 나라, 세계의 나라를 세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게 바로 사명인 것이요. 비록 내가 부족하고 내가 나를 볼 때 내가 망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이것은 거룩한 절망을 하고 주님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이 새로운 질서, 여러분 여기에 대한 이런 내용들을 가지고 마음의 용량을 키워가지고, 아무리 이런 거 있어도 마음의 용량을 키우지 않으면 100만 100만와트의 전력발전소가 있는데, 그거 전기가 공급이 되면, 여러분들 10와트만 갖고 있다면 그냥 조그마한 불만 켜고 있다면 그걸로 끝나는 거예요. 백만 와트의 전기발전소에 그 전력이 공급될 때 여러분들이 10만 와트 50만 와트 이렇게 준비가 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더 귀하게 써주실 수 있는 것이에요. 100만 킬로와트, 100만 킬로와트 하나님은 우리는 이미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초청에 응한 바가 되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쉼에 대한 초청도 우리가 받았습니다. 은혜 받으라는 초청도 받았습니다.

오늘은 주님이 우리에게 사명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갈꼬, 내가 말하되 주여 나를 보내어 주시옵소서. 여러분이 있는 자리에서 나라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베풀 만한 자비를 베풀어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만 이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거룩하다 만군의 여우와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한 시도다 거룩거룩하다 오늘 스랍들이 주님을 찬양한 것처럼, 21세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사명자(使命者)가 되어 이 찬송하시면서 기도하시겠습니다.

♣요약
흑암과 고난 속에서 '들포도를 맺던 어두운 인생'에서 우리를 불러주셨으니, '극상품 포도를 맺는 빛나는 평생'으로 인도하여 주시길 간구하며, 뼈를 녹이는 고통 속에서도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본즉, 깊은 죄와 상처는 치유받고, '죽어도 가야 할 북극성 같은 사명'은 불타올라서, .사랑의교회가 거룩한 그루터기 되어 세계복음주의 연맹 서울 총회(2025.10.27.)에 ’나를 보내소서!‘ 하며 헌신할 때, 세계문명사에 '새로운 영적 국제 질서'를 구축하게 됨을 확신하며 헌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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