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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1월 26일)
설교제목: "증오는 기쁨을 못 이긴다"
(Hatred Can Never Overcome Joy)
성경본문 : 빌립보서 3:1~3 4:1
대표기도: 양은규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다니엘 부목사님외), 영광찬양대(1부)
사회: 임병영 목사님 외(1부)

설교자 :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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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3:1~3,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4:1,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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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 말씀을 통한 그 은혜를 통하여 여러분 사각지대가 아무도 없기를 바랍니다. 명절 주일인데 제가 이사야서를 잠깐 멈추고 이 명절 주일에는 이 신앙의 가장 핵심 기본 파운데이션 오페이스, 신앙의 어떤 토대를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나라도 주님 보호해 주시고, 또 여러분 개인적으로 눈동자 같이 주임 지켜주시고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불병거, 불말 그다음에 불 성곽으로 지켜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증오는 기쁨을 못 이긴다 라는 제목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미움이 사랑을 못 이기고 증오가 기쁨을 이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아주 중요한 기본입니다.

제가 이걸 오늘 이렇게 택한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가 극심한 분열이 있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잠을 못 이루고 있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이러다가 나라가 어떻게 되나, 그래서 사람들이 날카로워져 있고 사회의 흐름이 거칠고 사나워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번씩 말씀드립니다마는 이 분노가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도 영향을 받아가지고, 교회도 거칠어졌고, 교회는 품격과 교회는 정교함을 유지해야 되는데 그런 것들이 좀 약해져 가는 안타까움이 있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극단적인 갈등으로 인해서 국가의 미래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고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것이죠. 국가의 도약에는 골든타임이 있습니다. 만약 지금 이 시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면 되돌릴 수 없는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랑의 교회 1, 2, 3, 4부 예배가 있는데, 1부 예배는 어른들이 많이 참여를 합니다만 여러분 성인세대는 우리 자라는 다음 자녀 세대에게 영광된 국가를 물려줘야 할 책임이 무한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줄로 믿습니다. 반드시 좋은 나라를 우리가 물려줘야 합니다.

그 누구도 자녀 세대의 미래를 망치거나 어렵게 할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는 저 자신이나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다 동일하다고 저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정치적 스탠스는 있습니다마는 또 평가하는 것이 있겠습니다마는 여러분과 저희들은 이제 하루 이틀 이 땅에 살고 말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 한반도에 살아야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여러분과 제가 기도하는 거 있잖아요. 우리가 건강할 때에 통일이 돼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통일에 대한 남북문제까지도 해결돼야 하는 그런 차원이라면 우리가 좀 더 전체를 바라봐야 하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끝까지 이 민족의 장래를 끌고 가야 할 사람들이 돼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의 무너진 교회는 반드시 회복이 돼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려면 남남갈등이 처리가 되어야 하고 남북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하고 방향을 잘 잡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한반도에서 어디 갈 데도 없어요. 어디 다른 나라 갈 생각도 하지 말고 이 나라가 잘못되면 우리가 죽는다고 생각하고 이 나라에 우리가 서로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여기서 결판을 해야 되는 것이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제가 늘 말씀드린 문제는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고 박사학위 받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 문제보다도 더 큰 은혜가 들어와야 되는 것이 배가 좌초되었어요. 뻘에 좌초되었어요. 그 좌초된 뻘에 있는 배를 이렇게 드러내려면 뻘 내려가 가지고 막 어떻게 해보려고 애써도 조금밖에 해결이 안 돼요. 뻘을 묻히고 그래요.

그런데 은혜에 만조가 몰려오면 그 밀물이 들어오면 배가 둥실 뜨는 것이에요. 그런 차원에서 한국 사회나 한국 교회는 좀 다른 방법이 없어요. 강력한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이 사회에 아픈 병들을 치료를 해야 되는 것이 그야말로 이 사회의 미움과 증오의 바이러스를 오늘 복음의 능력과 기쁨의 백신을 가지고 처리를 해야 되는 것이에요. 어디 갈 데도 없어요. 지금 우리는 통일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우리는 반드시 이 우리에게 주신 이 큰 사명을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해야 되는데 제가 볼 때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 우리는 수많은 아픔과 과정과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런데 그 겪은 것이 또 다 나쁜 것이 아니에요. 이 독특하게 어려움을 겪고 짐을 겪고 지금 우리도 갑자기 12월부터 어려움이 더 많아졌지만 이것도 앞으로 더 큰 은혜와 능력 은혜의 만조가 몰려오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오늘 말씀을 가지고 좀 처리를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시요. 여러분 개인이나 저나 우리 다 정치적 스탠스가 있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력한 복음의 백신을 통하여 강력한 말씀의 백신을 통하여 이 바이러스를 처리해야 되는 것이에요. 다시요. 강력한 백신을 통하여 바이러스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 이런 이야기하면 어떤 분들은 지금 불났는데 지금 비상사태인데 복음의 고담준론이나 논하는데나 never, 여러분 오늘 이 말씀 지금 바울이 오늘 빌립보서 3장 하는 이 말씀은요, 바울이 처참한 환경이에요. 로마의 폭정 아래 꼼짝도 못하고 있었고, 바울은 지금 빌립보서는 옥중 서신이에요.

발에 차고를 차고 그 어려운 말도 못하는 그 어려움, 그 가운데서 바울이 말은 너희가 진짜 복음의 백신을 갖기를 원하느냐, 너희가 진짜 증오의 바이러스와 이 고통의 바이러스 환경을 이기기를 원하느냐? 방법이 하나밖에 없다. 방법 하나밖에 없다. 1절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시작

*빌립보서 3:1,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이런 열악하고 어렵고 힘든 시대적인 어려움과 개인적인 고통 가운데서도 내가 너희들에게 하는 말이 이 원한을 갚아 달라. 이 문제를 이 문제 이거 어떻게 전쟁을 처리하자. 이게 아니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 아니 말이 되느냐고 그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어떻게 주안에서 기뻐하느냐고, 그런데 내가 너희에게 이 같은 말을 쓰는 것은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이 말을 계속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그랬어요. 자, 이런 우리 한국의 이런 여러 가지 구조 가운데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것이 계속 반복하는 말이라 할지라도 이거는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이건 수구가 아니다. 이거는 계속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을 듣는 적용하는 우리 모두에게 이것이 가장 우리의 삶에 안전하니라. 2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냐면,

*빌립보서 3:2,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몸을 상해하는 일은 옛날에 개혁판에서는 손할래당이라고 그랬어요. 개들을 삼가하고 이 개는 애완견이 아닙니다. 물어뜯는 못된 야생 개들이 그리고 행악하는 악을 행하는 자들 말도 안 되는 거짓을 말하고 엉망진창이고 있잖아요. 삶과 진리 가운데서 거짓을 말하는 속이 터져 죽을 것 같은 그런 상황 그리고 또 손할례당이라는 게 뭐냐 하면,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 소위 율법주의, 공로주의 이런 걸 갖고 들어와 가지고 계속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에요. 이 가운데서, 어떻게 보면 우리가 지금 당하는 이 어려움보다도 10배, 20배는 훨씬 더 어려운 그 바울의 상황 가운데서 뭐라고 얘기하느냐, 3절,

*빌립보서 3:3,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참된 한례파라. 영적인 할례당이라. 이것이 바울에게는 얼마나 간절한지, 3장 18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3장 18절에,

*빌립보서 3:18,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 같은 그 안타깝고 비진리, 악을 행하고, 거짓이 횡행하고, 엉터리 프레임이 있고, 온갖 것 난무하는 가운데서 바울의 마음속에 정말 간절한 마음이 뭐냐 하면, 내가 눈물을 흘리며 얘기한다. 이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며 얘기한다. 제발 좀 들어라. 그리고 4장 1절에,

*빌립보서 4:1,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그리고 4장 4절, 오늘 요절로 여러분 주보에 써놨어요.

*빌립보서 4:4,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아멘 그러니까 수많은 난제 가운데 감옥에 갇히고 폭증 가운데 말도 안 되는 어려움이 있고 불난 것 같은 상황이고 위기의 상황 가운데서 최고의 백신이 뭐냐?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예요. 그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지금 무슨 기쁨이 있습니까? 전투를 해야지, 그런데 진정한 영적 전투는 여러분 영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주님 안에서 기쁨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 마음속에 짐 갖고 온 분들 많이 계실 거예요. 오늘 이 기쁨의 복음을 통하여 환희의 복음 빌립보서를 통하여 여러분들이 진 모든 삶의 무거운 짐들이 벗겨지기를 원하는 겁니다. 이제 내일부터 여러분 뭐 하십니까? 명절 시작하죠? 그럼 저는 안 봐도 비데오예요.

명절 여러분들 가족들 모였을 때 반드시 사고칩니다. 이제,,, 거기에 반드시 어떤 갈등도 일어나고, 젊은이들은 너 언제 결혼할래? 그러면 또 열 받고 하여튼 수많은 이제 여러분들 가족들 모임에서 얘기들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 마음의 아픈 일도 있을지 모르고 서로 조금 마음의 짐들이 왔다 갔다 할지 몰라요. 그때 오늘 이 말씀을 반드시 기억하시라고요. 내가 다시 주안에서 기뻐하라 다른 해결책이 그래서 오늘 몇 가지 제가 정리를 해드리겠어요. 우리가 적용을 하는데, 첫 번째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뭘까? 이 기쁨이라는 것이 감정의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가 기쁨이 감성의 문제라고만 한다면, 기쁨이 어벤다운이 될 수 있고 없다가도 사라질 수도 있다가도 사라질 수도 있고, 희석될 수도 있겠지만, 이 기쁨의 문제는 성령의 열매예요. 그러니까 감성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기쁨이 감성이라면 저도 자신할 수 없어요. 우리가 우리의 감성을 어떻게 다 자신할 수가 있을까요? 스티브 간의 상황이 다 어려운데 근데 기쁨은 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들에게는 성령의 열매가 있는데, 첫째는 사랑이고, 두 번째는 기쁨과 희락이에요.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열매가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에 기쁨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을 초월하는 실체인 줄로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실체를 붙잡기 위하여 첫 번째 해야 할 것은 뭐냐 하면,

I.어떻게 기쁨을 유지할 수 있는가?

*빌립보서 3:3,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한다고 했을 때 손할례당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으로 봉사하고 우리가 공로주 이런 게 아니라, 정말 봉음의 은혜에 충만해 가지고 나 같은 사람이 구원받고 내가 돌아온 탕자고, 내가 은혜의 빚진 자이고, 이런 마음의 은혜를 깨닫고 성령 은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뭐 한다고요. 사랑하고 그러니까 우리가 기쁨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예수님으로 자랑하는 것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들은 이 기쁨에 관해서는 좀 우리하고 좀 달라요. 기독교에만 이 기쁨의 복음이라는 게 있어가지고 여기에는 기쁨의 찬양과 기쁨의 시편과 기쁨의 고백이 있는 것이 그러니까 예수님으로 자랑한다. 예수님으로 묵상하고, 예수님으로 할 때 그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 찬송가 우리가 할 때 이런 찬송, ‘주예수 내 마음에 들어와 계심은 변하여 새 사람 되고,’ 새 사람 되었을 때 그 후렴에 뭐가 나와 있습니까? 후렴에 오니까 주예수 내 마음의 오심 주예수 내 마음에 오심 그 다음 가사가 물밀 듯 내 마음의 뭐에 기쁨이 넘침은 주예수 내 맘에 오심,,, 이 예수님을 묵상하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을 찬양하고,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면서 고백할 때에,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기쁨이 유지될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다시요. 물밀듯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이유는 주위에서 내 마음이 뭐예요? 오심이에요.

오늘 귀감은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주님을 자랑한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자랑할 때 세상에 그 어떤 종교나 어떤 것도 주지 못하는 기쁨의 파도가 우리에게 넘실댄다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지금도 이걸 모르고 지금도 유대교는 통곡의 벽 앞에서 기쁨 대신 눈물을 흘리면서 애통하고 있는 것이에요. 다시요. 기독교에만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자랑할 때 생기는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자랑하고 주님을 신뢰하여 내 육체와 환경 대신에 주님을 자랑하고, 주님을 신뢰할 때에 기쁨이 온다는 것입니다. 지독한 내전 상태의 환경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자랑하고 주님을 고백하고 주님을 찬양할 때 기쁨이 온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cs 루이스라는 작가가 ‘천국과 지옥의 대화’라는 작품에서 천국에 있는 문지기를 이렇게 소개했어요. 천국에 있는 문지기는 천국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 가지 질문만 한다. 그 질문이 뭔가 시작 당신은 예수님을 알게 되어 참을 수 없는 기쁨 욕을 질문한다는 거예요. 천국에 있는 문지가 여러분들에게 당신 예수님 때문에 진짜 참을 수 없는 기쁨을 소유하고 살았나?

“당신은 예수님을 알게 되어 참을 수 없는 기쁨이 있는가?”
-CS 루이스-

오늘 명절 주일날 이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 역귀성한 분도 있을 거예요. 많은 성도들이 지금 지방으로 내려가 있어요. 지방으로 내려가 있던, 역귀성 해 가지고 함께 예배를 드린 분은 상관이 없이 오늘 예수님 때문에 참을 수 없는 기쁨이 여러분들에게 있습니까?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기 때문에 그분을 찬양하기 때문에 참을 수 없는 기쁨에 참여하고 있느냐? 이 말이에요. 이것이 어떤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실체로 열매로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으로 실존론적인 경험을 하고 있는 겁니다. 환경 때문에 이 주위에 일어난 상태 정치적인 것 때문에 참을 수 없는 기쁨을 놓쳐버린다면 그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는 거예요. 이 기쁨을 알면서도 전혀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도 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 우리는 마음속에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묵상이 되면 우리의 마음속에서 이걸 실존론적으로 우리에게 깨닫고 우리의 마음속을 확인하면, 거기에서 이 기쁨이 유지되고 기쁨의 열매를 실체로 경험할 수 있는 거예요. 요한복음 15장 11절, 요한사도도 마찬가지로 얘기하고 있어요. 또박또박 같이 고백해가지고

*요한복음 15장 11절,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예수님이 기쁨 그 자체예요. 그래서 여러분 열을 품고 있으면 열이 나고, 빛을 품고 있으면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기쁨이신 예수님을 품고 있으면 기쁨이 뿜어져 나오는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죠. 다시요. 우리 속에 기쁨이신 예수님을 품고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오늘 4장 1절을 보니까,

*빌립보서 4:1,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정확한 뜻은 주안에서 굳게 서라. 그랬어요. 어떻게 서라고요? 굳게 서라. 예수님이 주신 기쁨을 간직하기 위해서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서느냐, 주님 안에서 굳게 서라는 거예요. 굳게 서라는 것은 군사적인 용어예요.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서라는 거예요. 군인은 원수가 공격해 와도 도망가면 안 돼요. 자기 자리를 지켜야 돼요. 굳게 서지 않으면 전쟁에서 지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은 권유가 아니라 명령형, 굳게 서되 조건이면 주님 안에서 굳게 서라. 내가 가진 신념과 인생관 때문에 굳게 선 내가 가진 경험과 능력 때문에 굳게 서는 것이 아니라, 기쁨의 원천이신 주님 때문에 굳게 서라는 것이에요. 이거는 바울사도의 독특한 언어 습관이고, 표현이에요. 고전 16장 13절에,

II. 주안에 굳게서라.

*고린도전서 16:13,
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깨어 있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그랬어요. 갈라디아서 5장에 보니까,

*갈라디아서 5:1,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 다음에 뭐라고 돼 있어요.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뭡니까?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 굳게 서라는 것은 바울의 굳게 서는 신학이에요. 바울의 기쁨의 신학이 유지되기 위하여 굳게 서는 것이 여러분과 저는 사회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다 한다. 할 적 실제 삶은 우리가 루틴한 삶의 반복이에요. 우리는 자야 되고,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야 되고, 매일 자고 일어나고, 물론 나이가 들면 자고 일어나는 것도 쉬운 건 아니지만, 인생은 단조로운 삶의 반복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이 지나갈 때도 많습니다. 일상의 나날이에요. 일상의 루틴의 삶을 하루하루 기쁘게 살기를 원하신다면 예수님과 함께 굳게 서야 되는 것이에요. 조금 이게 추상적이기 때문에 제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미국 뉴욕의 최고급 호텔 가운데서 플라자호텔이라고 있습니다. 그 호텔에서 도어맨, 문 열어주는 도어맨 앞에서 안내하는 도어맨으로 53년간 일했던 요셉 조렌틴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53년간 플라자 호텔의 호텔 도어맨으로 있으면서, 53년 가운데서 보니까, 딱 3일만 결근을 했어요. 별로 반응을 안 하시는데 여러분, 그러니까 17년 18년에 한 번 결론 냈다는 것이 거의 결근을 안 한 거예요. 53년간, 사람들이 물었어요. 도어맨이라는 그 문 열어주는 도어맨이라는 그 자리가 썩 편한 자리는 아닌데, 뉴욕은 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비가 오는 날이 있고, 추운 날도 있고 다 있는데, 어떻게 53년을 한결같이 서 있을 수 있었을까? 그럴 때 이분의 대답이 참 놀라웠어요.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호텔에 새로운 사람들이 늘 들어올 때마다 예수님을 맞이하고 환영하고 모시듯이 맞이합니다. 그러니까 희한하게도 제가 있는 그 자리가 기쁨의 자리가 되도록 주님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러니까 53년간 딱 3일만 결근을 하게 된 것이에요. 3일간,

그래서 제가 오늘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번 한 주 명절 주간이 되고, 사회에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고 이런 갈등이 있어도 제가 여러분한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아니 이 한 해 동안 우려온 성도들 기쁨으로 주안에서 그 자리에 굳게 서시기를 바랍니다.

남편들이여, 아내를 남편의 위치에서 아내를 사랑하는 자리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아내들이여, 기쁨을 가지고 아내의 자리, 순종의 자리에 서시기 바랍니다. 부모들이여, 자녀들이여 모든 성도들이여 기쁨으로 자기 자리에 굳게 서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산에 오르면 산수가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산수가 아름다운 이유가 뭡니까? 돌은 돌의 위치에, 그 다음에 나무는 나무 위치에, 특별히 지금처럼 북풍한설이 불고 그다음에 춥고 이런 매서운 추위가 이럴 때 산에 청청하게 산을 지키는 거, 지키는 게 뭐예요? 소나무가 자기 위치를 지킬 때 자기 자리를 산마루에 청청하게 지키는 소나무가 있을 때 그게 아름다운 것입니다. 어떤 가정이 훌륭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아마 그 가정에 아버지 어머니가 산기슭에 청성한 소나무처럼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기쁨으로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설명한 이유가 뭡니까? 대한민국의 어떤 경우에서도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에요. 배의 키 잡이가 자기 자리를 떠난다면 바다 한가운데 있는 배를 누가 인도할 수가 있겠습니까? 목자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사자들에게서 양들을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파수대를 지키는 파수꾼이 자기를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도적과 강도에게 대항하며 그 파수를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자기 자리를 지킵시다. 지키되 기쁨으로 주안에서 굳게 서서 지키십시다.

하덕규 목사님 내가 아끼는 아우 같은 분인데, 그분이 쓴 노래 가운데 ‘풍경’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풍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제일 아름다운 풍경이 뭔가,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고 그랬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뭡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자랑하면서 예수님 안에서 굳게 서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에요. 제자료들 이 영적 차렷 자세에요.

그래서 일단 사회 갈등이 있고, 이런 여러 가지 상황 가운데서 다른 얘기 하지 말고, 여러분과 제가 대한민국의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기쁨의 선봉장이 되어야 돼요.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기쁨의 대사가 되어야 되는 것이에요. 이거 하면 이 갈등들이 해결될 수 있는 단초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제자리를 지킨다는 게 뭔가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건 뭔가 대한민국이 가진 그동안 어려움 가운데서 받은 애들이 있어요. 제가 며칠 전에 큰 기업을 이름을 대면 알만한 큰 기업을 운영하는 장로님을 만나고 이런저런 대화를 했어요. 제가 물었어요. 지금 나라가 쉽지 않은데 경제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경제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걱정이 돼 가지고 그러니까 목사님, 경제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근거가 뭡니까? 그러니까 경제는 두 가지에 의해서 운영이 됩니다. 첫째는 ⓵환율입니다. 지금은 우리 표피죠 표피부조 그러니까 두 번째로는 ⓶금리입니다. 근데 환율이 지난 12월에 어려움이 있고 난 다음에 처음에는 약간 출렁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이 외환보유가 세계 우리나라가 세계 우리 200개 나라 가운데서 달러 외환보유고가 많은 편입니까? 적은 편입니까? 잘 모르십니까 우리나라가 외환보유가 많은 편이에요. 외환보유가 많기 때문에 옛날 imf 때와 다를 겁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환율이 거의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금리도 안정적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은 제조업의 제자리, 제조업을 딱 지키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경제가 왜냐하면, 미국 경제나 세계경제가 나아질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에 이렇게 좀 자리가 지켜지더라고요.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여기에요. 우리가 바로 옆에 있는 한예종 한국예술종합학교, 메이드 인 코리아 피아노 교육이 세계 최고입니다. 지금 그리고 옆에 예종에 가면, 발레학교가 있어요. 발레학교가 이 발레학교가 세계에서 지금 거의 최고입니다. 그런 거 잘 모르시죠. 이번에 누가 그런 거 써놨더라고요. 세계 최고의 발레단은 볼쇼이입니다. 러시아에, 볼쇼이에 누가 갔는데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볼쇼에 있는 발레하는 아이들이 이제 대한민국 발레가 최고야, 우리가 이제 볼쇼이가 한국 가서 발레를 배워야 하나? 이런 얘기를 한다는 거예요.

물론 우리가 발레를 우리가 어떻게 뽑냐고 물어보니까 반드시 부모를 오라고 한 대요. 부모의 체형을 봐야!! 내가 이리 말씀드린 제자리를 찾는 거예요. 한국이 제자리를 찾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제자리를 찾는데, 우리가 여러분 개인적인 어떤 정치적 스탠스는 제가 뭐라고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의 능력과 기쁨의 은혜를 가지고 제자리를 우리가 서 있어야 되는 것이에요. 이제 제가 제일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그래요. 오늘 4장 4절 요절이에요. 4장 4절을 읽었지만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빌립보서 4:4,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오늘 제일 중요한 거 이제 기쁨의 제자리를 찾아야 되는데, 오늘 이 말씀은 권유를 한다든지, 요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형이에요. 강력한 명령형이에요. 너희들이 이 말은 뭐냐면 아무리 어려워도 기쁨을 선택하라는 것이에요. 아무리 어려워도 기쁨을 결정하라는 것이에요. 지금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대한민국이 어렵고 힘들고 어떤 정말 그 분열상이 극심한 이런 상황이라 할지라도, 힘들고 어려워도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기쁨을 결정하라는 것이에요. 기쁨을 선택하라는 것이 여러분 매일매일 다 여러분 삶을 선택하잖아요.

오늘도 아침을 뭘 먹나, 오늘 아침을 뭘 먹나, 오늘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오늘 운동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내가 오늘 누구를 만나야 되나 말아야 되나, 여러분 그 결정하는 것이 마찬가지로 기쁨도 선택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기쁨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증오의 바이러스가 퍼지지 못하도록 기쁨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쁨은 그냥 그래서 기쁨은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바울처럼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기를 결정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기쁨은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바울처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기를 결정하고 선택해야 한다.
-그럴 때 상처와 쓴 뿌리들이 우리가 처리되는데 상처를 선택할 것인가? 분노를 선택할 것인가?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달려있다는 것이에요. 그럴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환경이 어렵고 상황이 힘들어도 기쁨을 선택하면 그 어려움의 환경이 상황이 삭제되는 것이에요. 참 이건 놀라운 진리예요. 이 결정이 여러분의 삶을 한 단계 올려줄 거예요. 기쁨을 선택할 때 혼란스러운 환경이 삭제되는 거예요.

*환경이 어렵고 상황이 힘들어도 기쁨을 선택할 때, 그 어려운 환경과 상황이 삭제된다.
고통의 환경이 삭제되는 것이 저는 제가 사역을 하면서 여러분 구원은 하나님의 섭리와 믿음을 통하여 우리가 구원받는 거 아닙니까? 이걸 우리가 회심이라고 해요. 회심 오늘 이 자리는 성령님의 은혜를 통하여 정말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고 믿음으로 회심한 사람들이에요. 이것이 우리가 제1의 회심이에요. 그런데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되고, 저 같은 경우는 사익을 해야 되고 여러분 매일매일 삶을 꾸려가야 하는데 제2의 회심이 필요한 거예요.

그 제2의 회심이 뭐냐? 여러분 삶의 형편 가운데서 내가 슬픔을 선택할 것인가? 쓴 뿌리를 선택할 것인가? 분노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보고만 해서 기쁨을 선택할 것인가? 저는 기쁨을 선택하기로 결심을 한 것이에요. 다시요. 뭘 선택하기로요? 기쁨을 선택하기로 결심을 하는 것이에요. 이것이 제2의 회심이에요. 그래서 제가 서로 와서 시작,

*우리가 믿음으로 회심하는 것처럼, 사역과 삶의 현장에서 기쁨을 선택함으로 제2의 회심을 해야 한다 그럴 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것이 신앙의 아름다운 풍경이 될 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여러분 잘 아시는 하박국 선지자가 3장 17절 18절에서 뭐라고 선포하는가? 하면,

*하박국 3:17-18,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농업이 완전히 망한 거예요. 농사가 완전히 망했어요. 그다음에 양이 우리의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다. 그 유목민들 목축사비 완전히 말아먹었어요. 농업 말아먹고 목축 말아먹고 우리 식으로 말하면 지금 국가가 어려워지고, 수많은 문제가 있고 난제가 있고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고 가정적으로 다시 얘기합니다. 이번 명절 가서 조심해야 돼요. 집집마다 다 안 봐도 비디오, 다시 얘기합니다. 어려움 생길 수 있어요.

할렐루야! 선택하는 것이 성령님을 통하여 구원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는 이것이 제1의 회심이라면, 여러분과 저의 삶의 수많은 환경 가운데서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바울이 눈물로 우리에게 요청한 것, 주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주안에서 굳게 서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라. 그리고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 여러분과 저가 삶의 신앙의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여, 한국교회 성도들이여, 교회의 영광과 품격과 존교함을 놓치지 않도록, 복음의 능력과 내 가운데 제자리에 서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만조가 밀려오는 것이고, 이것이 모든 사회의 상처 어려움들을 다 덮어버리게 될 것이고. 이렇게 해서 우리가 주님을 승리할 수 있도록 교회는 세상 나물이 어려워도 교회는 제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 기쁨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마음에 오신 후에 주 날 인도하시네 더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인데 더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 더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 내 맘에 매일 여러분 기쁨은 감정이 아닙니다. 기쁨은 열매에 있는 실체입니다. 기쁨은 선택하는 것입니다. 선택할 때 매일 내 맘에 기쁨이 넘치도록, 다 함께 다시 한번 내일 고백대로 됩니다. 선택합니다.

♣요약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복음이 되어서, 우리가 아무리 애쓰고 수고해도 기쁨의 복음의 능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감당을 못함으로, 이 갈등의 구조 가운데는 이 사회에 기쁨의 복음의 대사들이 되고, 기쁨의 선봉장들로 서야 한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수많은 난제들이 기쁨의 복음으로 치유되기를 간구해야 한다.

-증오와 갈등으로 분열된 세상에서 흔들림 없이 '내 마음에 예수님'을 모실 때, '주 안에서 기뻐하는 기쁨'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은혜를 받는자가 되어서, 냉소적 비판을 내려놓고 '성령으로 봉사하며 예수님을 자랑하는 제자리'를 지킬 때, '참을 수 없는 기쁨이 뿜어져 나오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랑의교회가 순간순간 '기쁨을 선택하며 굳게 서서' 모든 힘든 환경을 돌파할 때, 설 명절에 '가정과 나라를 치유하는 기쁨의 대사'가 되어 더욱 섬기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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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1월 19일)
제목: "인생의 밤, 시대의 밤에 드린 기도와 찬송"
말씀: 사도행전 16:25~26
대표기도: 이성준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 영광찬양대(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박성규 목사님(총신대학 총장)
ㅡㅡㅡㅡ

*사도행전 16:25~26,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ㅡㅡㅡㅡㅡ

 
▶1965년도에 프랑스에서 고급 아파트의 거래가 있었습니다. 거래대상자들은 젊은 변호사와 나이 든 할머니가 거래를 했고 할머니의 아파트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매월 500달러를 내다가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소유권을 완전히 이전받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때 집을 사는 변호사의 나이는 47세였고요. 할머니는 나이 90살이었습니다. 변호사도 그렇게 생각했고 많은 사람도 생각하기를 몇 년 안 있으면 할머니 돌아가시고 아주 싼 값에 아파트를 살 수 있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이게 웬일입니까? 30년 후에 변호사는 77세로 죽었고 할머니는 120세로 여전히 살아계셨습니다. 이 할머니가 2년을 더 사셔서 122세의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변호사의 자녀들이 2년 더 돈 내고 따져보니까 제값 다 주고 아파트를 사게 됐다고 합니다. 수학은 공식대로 풀리지만 인생은 하나님이 풀어주셔야 풀립니다. 우리 개인의 문제나 국가의 문제도 하나님께서 풀어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인생의 밤, 시대의 밤에 드린 기도와 찬송’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예기치 않은 시련의 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건강의 밤 가족관계가 어려운 가족관계의 밤, 직장 또는 사업의 위기를 만난 직장과 사업의 밤, 국가적인 심각한 위기라고 하는 밤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런 인생의 밤과 시대의 밤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오늘 성경에 그 답이 나옵니다. 오늘 성경은 바울과 실라가 2차 선교여행 때 경험한 일입니다.
 
사도행전 15장 36절에 보면, 2차 선교여행을 떠나면서 바울이 제안한 내용이 1차 선교여행 때 갔던 서아시아 마이노 에이지역 지금 우리로 말하면 터키 지역에 다시 돌아가서 1차 때 복음을 들었던 형제들의 믿음을 단단히 하자라고 제안을 하고 물론 바울과 바나보는 헤어져서 가게 되었지만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이 소아시아 지역에 다시 방문을 하게 되는 것이 2차 선교여행입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방향을 전환하십니다.
 
사령전 16장 6절에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7절에도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래서 서아시아 지역에 동쪽으로 가려 했더니, 거기서도 성령께서 막으셨어요. 아닌가 싶어서 북쪽으로 갔더니, 거기서도 막으세요. 그래서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거기서도 막으세요. 그럼 남아있는 방향은 어느 쪽인가요? 여러분 지금 설교 듣고 계십니까? 동쪽 북쪽 남쪽을 막으시니까 서쪽이죠. 이제 잘 따라오고 계십니다. 그래서 서쪽 끝에 항구도시가 드로와인데 이 드로와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을 보게 되죠. 지금은 환상이 계시의 수단이 아니지만, 66권의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계시의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유럽 사람, 마케도니아 사람이 환상 중에 나타나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 그 보스포로 세협을 건너서 유럽 땅으로 오라는 거죠.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인 줄 알고 유럽으로 그 지역의 마케도니아라고 할 수 있죠. 유럽의 첫 지방이 마케도니아 지방 거기에 첫 관문 도시인 빌립보로 들어가게 된 것 이것이 오늘 본문의 배경인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빌립보의 사역은 처음 출발이 아주 순조로웠습니다. 루디아라는 여성이 바울이자라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고, 그의 온 집안의 식구들이 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받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빌립보 교회가 개척되는 놀라운 열매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쁨도 잠시였고, 위기가 다가오게 됩니다. 그들이 만난 위기는 기도하러 가다가 만난 귀신 들린 젊은 여성의 여종이라고 되어 있죠. 이 여종을 치료해 준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여종은 점치는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능력은 귀신들이 준 능력이었죠. 인생을 귀신에 매어 허비하고 있는 젊은 여성을 긍휼히 여겨 치료해주게 된 것이죠. 귀신을 쫓아주게 되었고, 귀신이 나가자 점치는 능력도 사라져버리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이 여종을 통해 수입을 올리고 있던 주인은 화가 나게 되어서 귀신을 쫓아낸 바울과 실라를 고소하게 되었습니다.
 
이역만리 낯선 타향에 선교사들을 도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고소할 때 함께했던 시민들이 다 함성을 지르면서 바울과 실라가 죄를 지었다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은 억울하게 재판의 결과 매를 맞게 된 것이죠. 성경에 보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를 치라’ 그리고 매를 매우 많이 쳤다 라고 설명이 되어 있죠. 그리고 깊은 지하 감옥에 가두었다 라는 것이 오늘 본문 앞부분의 내용이 되겠습니다. 이때 바울과 신라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들이 빌리보에 오고 싶어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소아시아 사약을 맞고 환상을 보여주셔서 온 것이었는데. 하나님의 인도로 온 것이었는데, 이런 억울하고 마음 아픈 일을 그리고 몸까지 아픈 일을 당한 거죠.
 
성령님의 인도로 온 것이었고, 귀신들려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여성을 극률히 여겨 치료해 준 것 때문에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이 좋은 일을 해놓고도 억울하게 매 맞고 투옥된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기에 딱 좋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아니 하나님 이게 뭡니까? 라고 원망하기에 딱 좋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 보면 놀라운 것은 그들의 입에서 원망 대신 기도가, 단식 대신 찬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이 시련 중에서도 기도하며 감사 찬송을 부를 수가 있었을까요?
 
이 물음이 본문을 관찰하는 중요한 관찰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이 비밀이 오늘 본문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첫 번째로, 배우는 교훈은 인생의 밤을 만나면 누구나 갈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I. 인생의 밤을 만나면 누구나 갈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한 인생입니다. 시련 즉 인생의 밤을 만나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도 하고 마음의 평안이 깨지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 연약(軟弱)한 인생의 모습이죠. 본문의 바울과 신라도 그랬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매 맞고 투옥(投獄)된 시간과 기도가 한밤중에 시작된 시간에 인터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인터벌이 있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있죠.
 
뒤돌아간 시간, 가다가 귀신 들려 점을 치는 여종을 고쳐준 시간, 그리고 그 주인 때문에 고소를 당한 시간 고소를 당해서 재판을 받은 시간, 그리고 매 맞고 투옥된 시간, 그리고 기도가 시작한 시간까지를 우리가 계산해야 인터벌에 대한 답이 나오게 됩니다. 함께 이제 계산해 보시겠습니다. 유대인의 기도 시간은 유명한 신화학자인 ff 브루스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세 번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⓵이른 아침, ⓶오후 3시, ⓷해지는 시간, 이 세 번의 기도시간이 유대인들에게는 있었습니다. 그럼 바울과 신라는 언제 기도하러 갔을까요? ⓵,⓶,⓷번 중에 몇 번일까요? 참고로 저는 정답을 ⓶번에 많이 배치합니다.
 
이것도 ⓶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⓵번이 아닌 이유는 인터벌이 너무 깁니다. 이른 아침 기도하러 가다가 이 많은 일을 경험한 다음에 이제 투옥이 되었단 말이죠. 투옥된 다음에 밤 12시에 기도가 시작되는 건 인터벌이 굉장히 긴 거죠. ⓷번은 더더군다나 아닙니다. 재판을 받아야 되는데 해 떨어지면 재판관이 퇴근했기 때문에 재판을 받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아닙니다. ⓶번의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럼 한번 살펴볼까요? 오후 3시에 기도하러 가다가 귀신 들린 점치는 여정을 치유해주고 고소를 당하고 재판받고 매 맞고 투옥되는 시간, 한 2시간 정도가 더 걸려서 5시경 뭐 3시간 잡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보통 퇴근 시간이 나인 투 파이브니까 5시에 퇴근했다고 보면 이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기도는 언제 시작했습니까? 본문에 이것은 명시되어 있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신라가 기도하고, 한밤중은 nsb 영어성에 보면 어바웃 미드나이트(About midnight), 밤 12시경입니다. 그러니까 5시경에 투옥되고, 밤 12시에 기도가 시작되었으므로 인터벌은 약 7시간으로 추정이 됩니다. 짧은 시간은 아니죠. 왜 이런 인터벌이 생겼을까요? 갑자기 당한 봉변이었고, 억울한 마음이었고, 온몸이 깨지고 터져서 아픔이 있는 상황, 즉각적인 감사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갑작스러운 고난 앞에 즉각적인 감사는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손양원 목사님도 그랬습니다. 손 목사님은 두 아드님이 여순 사건으로 공산학생에 의해 총살 순교당했을 때 장례식장에서 아홉 가지의 감사 제목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성도들과 나누었는데 처음부터 아홉 가지 감사라는 것이 아님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따님 손동희 권사님이 쓰신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라는 책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그 위대한 손양원 목사님께서도 두 아들의 순교 앞에 즉각적으로 아홉 가지 감사를 드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손동희 권사님의 글을 읽어드립니다.
 
‘신사참배 거부로 당한 지난 5년여 동안 혹독한 감옥생활도 강철 같은 신앙심으로 꿋꿋하게 버텨온 아버지였지만 한꺼번에 두 아들을 잃고 나자 그 충격을 이겨낼 수 없는 듯 비통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갈등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손목사님에게도 찾아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마침 손목사님이 목회하던 여수 애양원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던 손목사님의 평양신학교 총신의 전신입니다.
 
평양신학교 동기동창인 이인제 목사님, 이분은 손목사님과 함께 신사참배 반대로 일제의 치하에 감옥생활을 하고, 얼마나 추상같은 신앙심을 가졌는지 이분의 전기 책 제목이 ‘신앙의 투사 이인제 목사’입니다. 신사참배 반대로 꼴을 치렀던 우리 선배 목사님 장로님들은요, 그 신앙이 아주 강철 같았고 추상 같았습니다. 인제 목사님이 어쩔 줄 몰라 하며 힘들어하는 손목사님을 이렇게 깨우칩니다. 손동희 권사님의 글입니다.
 
‘손 목사 정신 차리시오. 우리는 과거의 감옥에서 순교하기를 원했으나, 하나님은 우리의 순교를 허락하지 않았소. 오늘 젊고 아름다운 두 아들을 순교의 재물로 바친 것이 그리도 아깝소! 이것은 슬퍼할 일이 아니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오히려 기뻐할 일이오.’
-참 대단하시죠. 지금은 이런 말 할 수 있는 목사님이 몇 명이나 될까요? 하나님 절대주권과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졌기에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거죠. 선동희 권사는 이 순간을 이렇게 이 책에서 증언합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아버지의 세계는 바뀌었다. 마음속에 한 줄기 빛이 비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영감처럼 떠오른 감사의 마음이 어둡기만 하던 아버지의 가슴 속을 환하게 밝힌 것이다. 아버지는 더 이상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정신이 나간 평범한 아버지가 아니었다. 두 아들을 순교의 재물로 기쁘게 바친 당당하고 강건한 아버지였다. 이때 아버지는 정의와 펜을 들어 9가지 감사를 적어 내려갔다’ 아시는 내용이지만 한 번 더 장례식에 손목사님이 읽은 아홉 가지 감사를 소개해 드립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아홉가지 감사제목.
1.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녀들이 나오게 했으니 감사,
2. 허다한 성도 중 내게 이 보배들을 맡겨 주셨으니 감사,
3. 삼남 삼녀 중 장남과 차남을 바치게 된 복을 복을 감사,
4.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거늘 두 아들 두 아들이 순교에서 감사,
5.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복이지만 전도하다가 총살 순교를 당해서 감사,
6. 미국 유학 가려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감사,
7.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아들 삼게 하시니 감사,
8. 두 아들의 순교로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감사,
9. 이 역경 중에 여덟 가지 감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믿음을 주시니 감사.
-이 얼마나 위대한 감사의 고백입니까? 우리가 배워야 될 감사의 고백이죠. 그러나 이 위대한 감사의 고백도 즉각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갈등의 단계를 딛고 일어서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바울사도도 그랬을 것으로 묵상이 됩니다. 오후 5시경 투옥되어 밤 12시경까지 갈등을 딛고 일어서는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 안의 사랑하는 보배로운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도 인생의 밤 갑작스런 고난과 시련을 만나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도 하고 갈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갈등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는 질그릇같이 연약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갈등을 이기고 승리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그럼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요? 두 번째 포인트의 교훈을 봅시다.
 
II. 인생의 밤에 갈등을 넘어 기도하면 갈등에 침잠해 있지 않고 갈등을 딛고 일어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면 승리가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에 한밤중에 바울과 신라가 기도하고, 이게 승리의 시작입니다. 기도하는 중에 그들은 하나님께여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 위해 이 생명 아낌없이 일하는데 왜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기도가 더 깊어지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기도하면 이런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떠오르죠.
“참새 두 마리가 하나 싸리 오래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새신밭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참새가 땅에 떨어져 죽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되지 않는다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그 값진 그 놀라운 그 대가를 치르고 구원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붙잡고 인도하시지 않겠습니까?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두려워하지 말라. 고난과 시련을 당한다고 두려워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 내가 너희를 머리털가락까지 머리털까지 다 세고 있다.
 
관찰하며 돌보신다는 말씀이죠. 보배로우신 성도님들, 시련의 한복판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 하나님의 돌보심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진짜 그렇게 돌보아 주십니다. 시편 105편에, 요셉의 인생을 이렇게 말하고 있죠. ‘그가 이 그간은 하나님을 말하여 하나님이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으며 이집트로 보냈다’는 거예요. 왜 보내셨냐면 야곱의 가족이 70여 명에 불과한데, 호전적인 유목민에 있어서 몰살당할 수도 있는 적은 인원입니다. 이들을 언약백성을 삼기 위하여 그 당시에 가장 강한 이집트로 보내는데 그래서 출애굽 당시는 200만 명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집트에서의 야곱의 가족의 세월은 하나님께서 한 부족을 민족으로 만드는 인큐베이팅의 시간이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일을 준비차 요셉을 보내는 거예요. 형들은 미워서 팔아버렸지만 하나님은 계획이 있어서 그것을 허락하신 거죠. 가서 열심히 일하면서 종에서 이제 가장 높은 총리의 자리에 올라갔는데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죠. 외국에 나온 청년이면 그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건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자기에게 사랑을 베푼 보디발 경호실장을 기억하며 정절을 지키죠. 근데 그 아줌마 때문에 감옥에 들어갑니다. 참 나중에 요셉이 총리 됐을 때 이 아줌마가 어떻게 바라봤을지 모르겠어요. 형들 용서한 거 보니까 아줌마도 용서했을 것 같아요. ‘그의 발은 차고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어떻게 보면 인생이 자꾸 꼬이잖아요.
 
팔리고 노예되고 살만했더니, 감옥 들어가고 꿈을 해석해 주더니, 살아나간 비서관이 다 잊어버리고 내 젊음이 여기서 끝나는 것 같잖아요. 그런데 십현은 이렇게 말하죠.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하나님의 계획에 시간표가 찰 때까지라는 거죠. 여러분의 고난 영원한 고난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계획이 이루어질 때까지 한시적으로 고난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 시간을 요셉은 어떻게 견뎠냐면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강하게 만들었도다. 주안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련의 때를 이기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단련할 때입니다.
 
기도하다가도 이 말씀이 나를 강화시켜요. 성경을 읽다가도 이 말씀이 나를 담대하게 만들어줘요. 사자같이 담대하게 만들어줘요. 그래서 이 고난을 이기는 거죠. 오늘도 이 말씀의 시간이 여러분을 이 고난의 한복판에서 사자처럼 담대하게 세워주시는 은총의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르고,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르면 하나님의 섭리를 믿게 됩니다. ‘섭리(攝理)’란 한자로, 잡을 섭, 다스릴 리, 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꽉 잡고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서 이 고난을 당하는 것 같고,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것 같은데, 아니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잡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대학 1학년 때, 대전에 올라와 내수동 대학부 갔을 때, 오정현 목사님이 대학부를 지도하실 때, 제 마음속에 가장 큰 힘이 되었던 메시지는 45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설교하시면서 하나님 우리를 ‘굿 웨이 정도로 인도하는 분이 아니다.’ 저는 깜짝 놀랐어요. 하나님 좋은 분인데 그 다음에 알았어요. ‘베터웨이도 아니다. 하나님 우리를 더 베스트웨이로 인도하신다’ 저는 가난한 아버지 돌아가신 열 살 때, 아버지 돌아가신 가난한 집, 아무것도 아닌 한 학생에 불과했어요. 근데 그 말씀이 저에게 박히니까요? 가슴 속에 꽂히니까요? 용기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힘들 때마다 맞아!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정도가 아니라 최선의 길로 인도할 거야. 이게 바로 섭리적인 신앙인 것이죠.
 
보배로운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 모두를 붙잡고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섭리적 신앙으로 무장하여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섭리는 영어로 프로비던스(Providence)라고 하죠. 영어의 단어의 60%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헬라어라고도 하죠. 그리스어는 거기서 왔습니다. 프로(Pro)는 앞, 비데레(videre)에는 동사로 원형인데 ‘보다’ 라는 거예요. 프로비데레((Providere)의 ‘앞을 본다’는 거죠. 인생의 밤을 만나면 우린 앞이 보이지 않아요. 칠흑같이 깜깜한 밤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내가 걸어갈 길이 보이지 않아요. 근데 하나님 손 붙잡고 가면 걸어갈 수 있어요.
 
우린 앞을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2년 후, 3년 후, 5년 후,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에 우리의 미래를 계획하시고 그 길로 인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군선교 평생 하려고 성령받고 총신대학교 갔는데요. 군에서 진급이 잘 안 되더라고요. 캄캄했어요. 그때 진급됐으면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가 마지막 기회인데 안 되니까. 오정현 목사님 전화하셨어요. 박목사 진급 떨어졌다며,,, 제가 전화도 안 했는데, 2주 만에 태평양을 넘어가더라고요. 내가 개척한 교회가 엄청나게 성장하는데 와서 도우라. 그래서 제가 오 목사님 동역하게 된 거죠. 여러분 저는 진급 두 번 떨어졌을 때 정전 당한 줄 알았습니다. 완전 블랙아웃 된 거예요. 하나님, 저 18년 동안 고2 때부터 이 길만 바라보고 왔는데, 근데 거기에 하나님의 프라비던스가 있더라고요. 여기까지 보고 인도하신 거죠.
주안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힘 받은 인생임을 잊지 맙시다 우리 성도 인생은 그런 인생이에요. 오늘도 해석할 수 없는 인생의 권한 앞에 왜 와인이 왜 내게 이런 일이 이 질문이 있을 거예요. 절대로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인도를 기대하시고 기도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다가 이런 말씀들이 떠오르면 우리는 섭리적 믿음으로 일어설 수 있는 것이죠. 마지막 세 번째 교훈은 인생의 밤에 기도하며 얻은 믿음 섭리적 믿음으로 찬성하면 분명 승리하게 됩니다.
 
II. 인생의 밤에 기도하며 얻은 믿음 섭리적 믿음으로 찬성하면 분명 승리합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기도하다가 섭리적 믿음을 가지니까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죄수들이 들을 정도로 힘 있는 찬송이었죠. 사랑하는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세계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 중에 부르는 찬송이요. 시련의 비바람을 맞으며 부르는 찬송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시련(試鍊)과 고난(苦難) 앞에 견딜 줄은 몰라도 우리처럼 기쁨의 노래 찬송을 부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의 상황이 바뀐 것은 단 하나도 없지만, 찬송합니다. 여전히 몸은 감옥에 있고 발은 차고에 차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찬송합니다. 찬성에는 두 가지 찬송이 있습니다.
 
1) 평안할 때 하는 찬송,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찬송.
2) 고난 중에 부르는 찬송, 기도의 사람, 섭리적 신앙을 가진 사람만 부를 수 있는 찬송.
-우리 모두가 고난 중에도 찬송할 수 있는 성도 되기를 축복합니다.
 
한편, 찬송하는 바울과 신라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어떠하셨을까요?
-바울과 신라가 억울한 마음 피로 얼룩진 몸을 가졌지만 섭리적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할 때 하나님 마음이 어떠셨을까요? 사실 신앙의 최고의 고지는 고난 중에 부르는 찬송이거든요. 이야!!~ 저들이 저 높은 신앙의 고지까지 올라섰구나!! 하나님께서 크게 감동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 기적을 이 빌립보 감옥에 베풀어 주십니다.
 
⓵첫번째로는, 초자연적인 기적입니다.
*사도행전 16:26,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토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지진이 나면 옥토가 움직이면 경첩이 깨져 문이 열릴 수 있어요. 이것도 기적이죠. 더 놀라운 것은 발에 메었던 그것도 단단히 메었다고 돼 있는데, 이 단단히 메었던 차고가 벗어졌다. 이건 지진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개입이 죄수들의 차고에 일어난 것이죠. 섭리적 믿음으로 찬양할 때 이런 기적이 나타나요? 더 놀라운 기적은
 
⓶두번째로는, 영적인 기적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울과 실라를 감시 감독하던 간수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기적이죠. 잠을 자다가 지진을 느끼고 눈을 떠보니 옥문이 열려있고 죄수들이 도망간 것 같았어요. 로마의 법에 따르면 죄수들이 탈옥을 하면 간수가 처형을 당하니까, 자결하려고 할 때, 바울이 큰 소리로 말합니다. ‘가만히 있어라 우리 다 여기 있다. 죽지 마라’ 간수는 감동을 받죠. 저 사람들이 억울하게 들어온 거 아는데 도망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간수를 생각하고 남아있는 이 바울 일행을 통해 감동을 받고 이렇게 질문합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까? 당신들이 전하는 구원을 내가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이때 바울이 지난 2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을 구원한 이 메시지를 전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리고 간수가 이 복음을 듣고 가족들이 듣고 그리고 바울에 상처 입은 곳을 씻기고 음식을 먹게 한 다음에 온 가족의 세례를 받는 놀라운 영적인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보배로우신 성도 여러분, 시련과 고난의 한복판에서도 기도하고, 찬양하게 될 때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은 이런 기적을 보내실 줄로 믿습니다. 나라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의 가장 큰 책임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책임입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의 강력한 침공으로 영국과 독일 공군의 공중전이 영국 상공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한 것입니다. -책 ‘리스하월즈’-
 
“1940년 9월 8일부터 영국 전역에 구국 기도의 날이 선포되었습니다. 국민들이 기도하기 시작했고, 1940년 9월 15일 영국 상공에서 공중전 절정의 날 윈스턴 처칠의 말입니다. 여기서 이겨야 이길 수 있냐 최후의 절정의 날이 공중전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영국 공군은 예비부대가 전혀 없었습니다. 처칠은 작전 상황실에 들어가 공군 사령관에게 묻습니다. 치열한 전투 중인데 만약에 우리 전투기가 부족하면 출격할 수 있는 예비 전투기가 있는가 각하 죄송합니다. 전부 출격했습니다. 처칠은 이런 말 하죠.
 
그러면 내가 나가야 되겠군 그런데 밀어붙이면 독일군이 승리할 수 있는 이 일촉즉발의 상황 그리고 국가의 누란의 위기의 상황 속에 이상한 건 독일 공군이 승리를 목전에 둔 상황에 철수했다고 저 책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영국 공군의 사령관이었던 다우딩 대장은 이런 간증을 합니다. ‘전쟁 중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외적인 지원이 들어오고 있는 것을 날마다 느꼈다. 즉 특별한 하나님의 개입이 있어서 디바인 인터베이션이 있어서 의당 일어났어야 할 사건의 흐름을 돌려놓으셨다’ 할릴루야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박희천 목사님께서는 저희 교역자들에게 가끔 간증을 해주셨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나던 때 목사님은 이북에 계셨어요. 14후퇴 때 이남으로 월남하셨습니다. 초량교회 교역자로서 해가면서 들은 얘기입니다. 장로님들한테 한국전쟁 초기에 수십 일 만에 낙동강까지 밀렸죠. 김일성은 수안보까지 내려와서 수안보에 전투 지휘사령부가 있었으니까 8월 15일까지 인공기를 광복동에 꽂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인민군들은 총력을 기울여서 이 낙동강 방어선을 무너뜨리려고 했어요. 장마철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우세한 것은 공군력이었는데. 폭격기가 뜰 수 없었어요.
 
이승만 대통령께서 구국기도를 하고 있는 목사님 장로님들이 눈 초량교회와 부산중앙교회에 오셔서 하늘의 비를 멈추게 해달라고,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해 그때 참석했던 장로님들이 박희천목사님께 전해준 얘기는 전국에서 몰려온 목사님 장로님이 눈물 쏟고 콧물 쏟으면서 회개 기도 하시는데, 그 마룻바닥이 눈물과 콧물로 끈적끈적할 정도로 진짜 회개를 했답니다. 신사참배하고 회개하고 분열하고 싸운 거 회개할 때 어떤 환상을 보게 되었냐면 인민군이 쫓겨가는 것을 보게 되었대요. 그리고 하늘을 맑게 해주셔서 비의식구가 폭격을 함으로써 인민군의 남하 의지를 꺾었던 일화를 교역자한테 전해주신 것이 기억납니다.
 
우리 다시 한번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이 나라의 하나님의 거룩한 개입, 디바인 인터베이션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짚어갑니다. 개인적인 인생의 밤에도 기도하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1975년 미국LA 지역의 파사디나에서 헤럴드 보켈 일생을 한국을 위해 살았던 헤럴드 보켈 선교사님의 장례식에서 들려온 얘기입니다. 1929년부터 한국에서 선교한 헤럴드 보켈 선교사님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분이셨습니다. 6.25전쟁이 나자 그분은 한국을 돕기 위해 미군 군목에 지원하는데 경력을 인정받아 대령으로 임관하시고,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군목이 되셨습니다. 열심히 전도했어요. 포로들을 사랑했기에 그분의 별명은 포로들의 아버지였습니다. 바로 이분이 하럴드 포켈 목사님입니다.
 
여러분, 저 사진을 보시면 그냥 딴전 피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모두가 열정적으로 찬양해요. 누구처럼요 사랑의 교회처럼, 이분을 통해 세례받은 인원이 4만 5천 명 그 중에 137명의 포로가 목회자가 됩니다. 신학대학 총장이 나왔는데 저는 포로 출신은 아닙니다. 나이가 어립니다. 7천 명의 성도를 목회하는 목사님도 나왔어요. 저도 군목으로 있을 때는 밤에는 커피를 끓여서 포트에 넣어서 외곽 경계를 하고 있는 병사들을 돌면서 기도해주고 하는데 목사님이 어느 날 이렇게 순찰을 도는데 초소와 초소를 사이에 있는 초소 초소 사이에 있는 화장실 속에서 기도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주 애절한 기도예요. 하나님 아버지 이놈이 죽일 놈입니다.
 
이놈을 용서해 주시고, 북에 있는 내 아내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너무나 애절해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오는 포로의 손을 잡고 말합니다. 형제, 나는 이 포로수용소의 군목인데 도와줄 일 없습니까? 목사님 제가 목사님 알죠 예배 때마다 은혜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습니다. 이북에 있을 때 저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제 아내는 철저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예배를 다녀오면 저는 어김없이 아내를 때렸습니다. 어느 수요일 날 집에 들어가 보니 밥상은 차려져 있는데, 아내가 보이지 않아 예배당으로 달려갔습니다. 목사님이 설교 중인데 흙 묻은 신발을 그대로 신고 마룻바닥 예배당에 들어가 앞에 앉아 예배드리고 있는 아내의 머리채를 휘감아서 집으로 데려와 때렸습니다. 그러고 나면 아내는 매를 다 맞고 나면 부엌으로 가서 기도하고, 찬송하는데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부엌으로 달려가 부지깽이로 때리곤 했습니다. 근데 제 아내는 다른 말은 다 들어도 예수 믿지 말라는 말만큼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전쟁이 나서 저는 인민군에 징집이 되었고, 전선에 투입되었는데 전투를 하다 보니 미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심문하는 미군 장교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인민군에게 가슴에 열 십자를 그리게 하고 노래를 부르라고 하는데 아 저 사람들 예수 믿는 사람들일까? 열십자는 예수님의 십자가고 노래는 찬송이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찬송하는 사람을 옆으로 빼주었습니다. 저는 한 번도 예배드리러 예배당에 간 적이 없어 찬송을 아는 게 없어서 나는 이제 끝이구나! 생각했는데 제 순서가 될 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제 아내가 부엌에서 매맞으면서 불렀던 찬송가가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가슴에 십자가를 그리고 찬송가를 불렀지요. 내주를 가까이 하게 하므니 근데 거기까지 불렀는데 가사가 생각이 안 났습니다. 이제는 끝이구나, 생각을 했는데 하나님이 또 한 번 지혜를 주셨습니다. 니가 영어를 못하는 거나 미군이 한국말을 못하는 게 똑같다 가사를 지어서 부르면 되지 않겠니 그래서 이렇게 불렀습니다. 아버지 도우소서 하나님 아버지 도우소서. 목사님 제 아내가 매 맞으면서도 저를 위해 기도하고, 찬송을 부른 그것 때문에 제가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자유를 찾을 수 있는데, 제 아내는 저 북녁 땅에 남아 있는데, 이놈이 죽일 놈이 아닙니까 이 형제를 끌어안고 기도해 주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밤 개인의 시련의 밤에 기도했던 우리가 그 이름은 알 수 없으나 그 인민군 포로의 아내의 기도는 남편의 육신의 생명과 영혼 더 나아가 영원한 삶을 살린 줄로 믿습니다. 우리도 시련의 밤에 누구를 탓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입니다.
1. 인생의 밤 시대의 밤에 드린 기도와 찬송 인생의 밤을 만나면 누구나 갈등할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 그러나 갈등을 넘어 기도하면 승리가 시작됩니다.
3. 세 번째 기도하면서 얻은 섭리적 믿음 신앙으로 찬성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개인의 인생의 밤과 국가적 시대의 밤을 물리치도록 기도하며 섭리적 신앙으로 찬성하다가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모두 경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깨닫게 되고, 말씀을 통해 힘을 얻게 된다. 바울과 실라가 한밤중에 기도하며 찬송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우리도 인생의 밤을 맞닥뜨릴 때, 기도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황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분께 우리의 고통과 갈등을 맡겨야 한다. 시련이 찾아 올 때, 우리는 바울과 실라처럼 기도와 찬송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고 계시며, 그분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단련하고 강하게 만든다. 인생의 밤을 맞이하더라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믿고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며, '인생의 밤, 시대의 밤에 드린 기도와 찬송'이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삶의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신뢰하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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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1월 5일)
제목: "새해, 특별한 초청"
(A New Year of Special Invitation).
-<새로운 길>-이사야 시리즈 ⓵
성경본문 : 이사야 1:1-20
찬양인도: 쉐키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금동훈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
ㅡㅡㅡㅡㅡ

 
*이사야 1:1-20,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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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도 새해 첫 우리 신년예배를 맞이했습니다. 작년에는 우리가 새해 맞이하면서 덕담으로 이천 스물 네 번의)2,024)번의 감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랬어요. 기억하십니까? 올해는 어떻게 할까? 기도하다가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올해인데 주여, 2025번의 지혜와 명찰을 주십시오.작년에는 감사했던 올해는 2025번의 지혜와 명철을 주셔가지고, 이 안에 여러분들께 가정 가정마다 하나님께서 지혜의 주머니 명철의 주머니를 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다사다난이 아니라, 다사다 지혜 ,다사다 명철, 그래서 다사다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부터 저는 이사야서를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이사야서를 강의하면서 전체 주제를 어떻게 할까 기도하다가 악망하라 새로운 길이 열리리라 그런데 한 11일 전부터 마음에 아니 새로운 길만이 아니라, 반드시 새 길이 열리게 하여 주십시오. 이 사회에 반드시란 말이 좀 여러 번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마음으로 여러분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이 반드시,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열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이나 우리가 이사야서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을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죠. 이사야의 말씀이 우리를 이끌어주시면 좋겠어요. 저는 저 생애에서 가만히 돌이켜보면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고 참 쉽지 않은 터널들 지날 때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사는 것인데, 수많은 말씀들이 또 위로가 되었지만 최고의 말씀이 뭐냐면 이사야와 시편이었어요. 최고의 말씀이 시편과 이사야였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좀 삶에 짐을 질 때마다 시편과 이사야가 여러분을 살릴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사적으로 볼 때 이사야서를 해석하는 두 가지 두 개의 창이 있는데, 하나는 신약의 창이 있고, 신약의 창이 있다는 말은 신약 성경에 제일 많이 인용된 구약 성경이 이사야와 시편이에요. 알 사람만 알도다 또 하나는 church farter, 교부들은 이 이사야를 어떻게 해석했던가, 어그스틴을 비롯해서 수많은 교부들 있잖아요. 잉나티우스 여러 교부들이 있는데, 이 이사야를 신약으로는 어떻게 해석했는가, 그리고 교부들은 어떻게 해석하는가? 이 두 가지 창을 제가 늘 마음을 갖고 그 두 창 사이에 이사야의 진리의 빛이 환하게 비쳐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 그래서 먼저 첫 번째 제가 여러분들에게 오늘 새해 특별한 초청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이사야 문을 여는데 첫 번째 먼저 이사야서를 통한 초청을 하겠습니다. 이사야 자체를 통한 초청을 하겠습니다.
 
I. 첫 번째, 이사야서에 대한 초청.
 
-무슨 말인가 하면 이 신, 구약 성경 전체를 쭉 놓고 볼 때 이사야서가 좀 독특합니다. 여러분 신구약 성경이 몇 권이에요. 어떤 분들은 한 권을이에요. 왜 한 권인가요? 한 권 들고 다니니까 한 권을에 또 어떤 분들은 두 권이래요. 왜냐하면, 신약 한 권, 구약 한 권,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신,구약 성경은 66권이에요. 구약 39, 신약 27, 근데 너무 놀랍게 우리 신약의 창으로도 볼 때에 이사야서가 66까지 있어요. 전편 부분이 39장이고, 후편 부분이 27장이에요. 놀라운 게 뭐냐면 이사야 40장부터 후반에 시작이 되는데, 그 마치 구약이 끝나고 신약이 시작되는 것처럼 여러분 신약이 시작될 때에 신약에 보면 누가 신약의 문을 열었습니까?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세례요한이 신약의 문을 열었거든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 이래가지고 나오는데 똑같아요. 이사야 403절에 보면 뭐라고 나오느냐 하면 같이요.
 
*이사야 403,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구약은 아시는 대로 심판(審判)과 경고(警告)가 있는 것처럼 이사야에 39장 심판과 경고가 있고, 2740장부터 66장까지는 복음(福音)과 구원(救援)과 회복(回復)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신약의 신구의 마지막이 요한계시록의 찬란한 어떤 예언으로 끝나는 것처럼 이사야에도 이사회 66장 마지막이 요한계시록처럼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인류 구원사에 대해서, 66장에 새하늘과 새 땅이 있는 것처럼, 이사야 66장도 새하늘과 새 땅을 얘기하고 있어요. 참 신비하죠? 그러니까 무엇보다도 이사야서를 통하여 예수 그리소가 인류의 구원자이심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사야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님이 구원자이시다. 그리고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뭐가요? 벌써 잊어버리시면 안 돼 이사야의 뭐예요? 이름 자체가,,, 그래서 이사야를 초청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이사야 개인을 좀 살피겠습니다. 오늘 1절에도 나옵니다마는 개인적으로 이사야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를 관통한 선지자예요. 주전 740년부터 680년까지 오랫동안 관통한 선지자인데 1절에 보니까, 이사의 아버지를 뭐라고 돼 있습니까?
 
*이사야 401,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아모스의 아들 이사였다. 그러니까 이사의 아버지가 누구예요? 아모스에요. 아모스인데 이 아모스는 누구냐 아모스는 아마샤라는 왕의 형제였어요. 그러니까 왕의 조카였어요. 이사야는 어릴 때부터 이 사회는 소위 로얄 아카데미 왕립학교에서 제대로 공부를 한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어요. 그러니 왕립학교 출신이니까. 이사야가 쓰던 언어, 행실 그다음에 문체 이런 것들이 너무너무 기품이 넘치고 세련되고 그리고 그 이사야서 한 절 한 절이 아주 문장이 수려(秀麗)합니다.
 
아름답게 말하고 싶은데,,, 이 사이에 문장 하나하나가 뭐하다고요. 수려하다고요. 빼어나고 아름답습니다. 지금 예를 들어서 구약의 대선지서를 얘기할 때 에스겔서도 대단한 성경인데 에스겔서도 길잖아요. 그런데 에스겔서에 나오는 아주 새로운 단어가 1500개 정도를 새로운 단어를 가지고 쓰고 있고, 시편 같은 경우는 150편까지가 있는데, 150편 긴 시편에 2,170의 새로운 단어를 쓰고 있고 그런데 이사회는요 2,186개 성경에서 가장 많은 새롭고도 기품(氣稟)이 있는 세련된 단어를 사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사회는 그의 언어, 비유적 표현 시적 천재성은 실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불꽃 같은 영감(靈感)을 가진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는 한마디로 구약 시대의 사도바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누구라고요.
 
사도바울 그의 메시지는 바울처럼 강력한 복음적 언어로 선포되었어요. 그래서 이사야서를 읽다 보면 마치 갈릴리오와 유대와 배레와 마지막 갈보리를 걸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걸음과 예수님의 그림자를 보는 것 같은, 신약에도 자주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다. 이런 내용들이 많이 나와요. 제가 지금 전체 성경 특별히 신약의 창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이사야 전체에 대한 초청을 하는데 이사야에서의 소중한 특징 중의 하나는 뭐냐면 결코 낙관론을 펼칠 수 없는 참으로 우울하고도 비참한 상황에서도 그는 거룩한 낙관을 놓치지 않는 놀라운 선지자였어요. 낙관론(樂觀論)을 펼칠 수 없는 어두운 상황 가운데서도 강력한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묘사한 줄로 믿습니다.
 
앞부분에 오면 이사야 곳곳마다 어두운 멸망(滅亡), 수치(羞恥), 고난(苦難), 끔찍함 죽음, 질병(疾病), 상실(喪失), 노예(奴隸), 복역(僕役)의 때 이런 가능성 없는 절망의 단어들이 수없이 나오지만 동시에 최상급의 수려한 언어로 영원한 약속의 말씀을 선포하는데 그게 막 우리의 마음을 파고드는 거예요. 이제 이사야서를 할 때마다 제가 그 주제에 맞는 찬송도 많이 나오는데요.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게 찬송과 가사가 아니라 이사야사에 나오는 성경 구절을 그대로 인용해 가지고 찬송을 하는 거에요. 이사야 119절을 보니까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어떻게 한다고요?
 
*이사야 119,
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러니까 낙관론을 펼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복음의 능력으로, 말씀의 은혜로,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고 혼()과 관절(關節)과 골수(骨髓)를 쪼개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낙관하고 있는 거예요. 그럼 제 얘기가 아니라 이사야스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낙관론을 담고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갈리 지역에서 처음으로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음 시작하시면서 누가 보면 4장에 보면, 소위 나사렛 선언이라고 하시는 내용이 나와요. 어마어마한 말씀이에요.
 
누가복음 41819절에 귀한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 말씀이 어디서 비롯되는 예수님의 첫 나사렛 선언이 이사야 6112절을 인용하시면서 주님께서 나사렛에 강력한 복음 선포를 하신 것이었어요.
 
*누가복음 418-19,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사야 611-2,
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거기 보니까 포로된 상황, 어두움의 상황, 가난한 상황, 눈먼 상황 이 모든 상황에서 주님이 어떤 선언을 선포하고 계시는가 그것이 이사야서를 통한 해석을 해주신 것이고. 그것을 인용하셨어요. 내용은 똑같은데, 표현이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인용하실 때는 세프티오 진이라고 그래갖고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된 그 70인역을 가지고 주님이 쓰셨기 때문에 조금의 표현의 차이는 있는데, 내용은 똑같은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가지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이 나사렛 선언이 역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 이사야의 말씀을 제대로 초청하고 듣고 깨달으면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가 치유되어 수치 대신 복음적 환호성을 지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고, 우리의 삶의 영적인 장막터을 넓히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일단 제가 하나님을 앙망(仰望)하면 새로운 길이 열리리라그래서 제가 밖에 사람들도 막 이런 거 많은데 우리는 영적으로 한번 하겠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앙망하면 여러분 새로 반드시 새로운 길인데 일단 오늘은 하나님을 앙망하면, 새로운 길이 열리리라. 한번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면, 다음에 이것은 이것은 단순히 그냥 새로운 길이 아니에요. 낙관론을 한다고 그랬을 때 거룩한 낙관을 갖는다는 개념을 바꿔야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 회복되고 다시 구원의 복음이 온다 그랬을 때 그 사람들의 생각은 아 예루살렘 성이 회복되고, 우리의 땅이 복을 받고 우리가 좀 잘 될 것 같다. 이 정도로 생각했어요. 근데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어요.
 
옛날에 예루살렘의 영광 회복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예루살렘에 대한 비전과 환상을 주신 것이 다시요. 단순한 과거의 회귀가 아니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경탄할 만한 사회를 경험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나라 지금 어렵지만 잘하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통일도 주실지 모를 거예요. 그래서 오늘 올해 여러분과 제가 이사야서를 공부하면서 다시 한 번 여러분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민족적으로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예루살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비전과 환상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걸 오늘 제가 이사서를 통하여 이사야에서 전체를 통한 초청을 하는 것입니다. 어려워도 말씀을 통해 우리가 거룩한 낙관을 갖게 되는데, 나사렛 선언을 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단순한 과거의 회귀가 아니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사명과 은혜를 물 붓듯 부어 주시옵소서.
 
이를 위해 우리가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뭔가 하면 우리가 어떤지 오늘 3절부터 8절까지 쭉 내용을 통하여 우리가 뭘 해야 되느냐 하면, 아 탄식하노라 범죄한 국가의 참상이여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깨닫게 돼야 되는 거예요. 두 번째 초청을 제가 할 텐데 두 번째 초청을 하기 전에 우리가 어떤 범죄를 했는지 우리의 상황이 어떤지 우리의 현실이 어떤지 이사야는 내왕을 거쳤다고 그랬습니다. 웃시야 요담 아흐스 히스기야 4왕의 통치 시기에, 사역을 했는데 이사야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데 나중에는 처음에는 멋있게 잘 되었는데, 나중에 그가 순교를 당하는데 유대의 전승사 미슈나에 의하면 히브리스 11장에 나타나는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톱으로 캐임을 당하고 그런데 그 톱으로 캐임을 당해가지고 순교한 사람이 이사야 선지자다. 이렇게 많은 해석을 하고 있어요. 하고 있는데, 히브리서 11장에 톱에 켜서 순교한 사람이 이사야라고 하고 있는데, 그 이사야가 활동하던 그 시기는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암울한 시기였어요. 얼마나 어려운 시기였냐면 4절에 보니까,
 
*이사야 40:4,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자 봐요. 국가적으로는 허물진 백성이여 범죄한 나라다. 본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나라다. 거룩한 나라와 제사장의 사명을 주신 나라였는데 무슨 나라가 됐냐 범죄한 나라가 되고, 허물진 백성이 됐어요. 하나님이 주신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잃어버리고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 되었다. 기가 막힌 거예요. 너무 마음 아픈 얘기에요. 국가적으로는 죄악을 짊어진 나라가 되었고, 개인적으로는 행악의 종자요 부패한 자식이라고 죄악의 씨앗이 뿌리를 내려 가지고 죄가 계속해서 대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저버리고 하나님 이름을 만휼이 여기는 소위 기독교를 저주하고, 오늘 기독교를 멸시하고 모욕하고 기독교를 함부로 욕하는 거 어떻게 보면 행악의 종자들이에요. 그래서 그 결과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너무나도 생생한 범죄의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이 56절 하면, 같이 앞에는 안 읽었는데 같이 봉독하겠습니다.
 
*이사야 1:5-6,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기가 막힌 말씀이에요. 머리끝도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고, 온몸이 병들었고 마치 오늘날 에이즈를 묘사한 것과 비슷해요. 인체의 면역 체계를 망가뜨리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영적인 면역 체계를 망가뜨린 것과 비슷한 것이에요. 너무나 리얼하죠. 너무나 너무 실제적이고, 그리고 78절을 보니까, 우선 7절을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냐면요.
 
*이사야 1:7-8,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하나님을 등지면 일어나는 끔찍한 일을 묘사하는 것인데 한마디로 방어막이 없어지고 방어 기저가 사라지고 보호막이 없어진 거예요.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을 뭉뚱그려가지고 3절에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이사야 1:3,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무슨 말이냐 너희들은 소나 당나귀보다도 못하다. 질책 하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이 국가를 돌아보면서 하나님 잃은 면이 있다면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이런 마무리 탄시가노라 범죄한 국가의 참상이여, 이런 기가 막힌 어려움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주님이 두 번째로, 초청을 하시는데 8절까지 이런 기가 막힌 어려움이 있는데,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암울한 상황 가운데서도 빛을 보여주십니다. 구절에 다 같이 구절 크게 합독하겠습니다.
 
*이사야 1:9,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아멘, 이런 앞부분에 어려움과 참 범주한 나라의 참상이 있지만 해결 방법은 생존자를 남겨두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한 씨를 남겨주셨어요. 이 생존자는 다른 말로 하면 남은 자다. 이렇게 했어요. 그래서 이사야서의 곳곳마다 생존자, 남은 자, 거룩한 그루터기의 신학이 뒷받침하고 있어요. 이 사이에서의 곳곳마다 수없이 많이 10장에도 11장에도 37장에도 46장에도, 제가 대표적인 걸 말씀드렸지 더 많은 곳곳마다 남은 자다. 그의 남은 백성이다. 남아있는 자다. 남은 모든 자다. 거룩한 그루터기다. 생존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시고, 생존자로 초청하시고, 남은 자로 초청하실 때 그 남은 자가 거룩한 씨앗이 되어 가지고 남은 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기가 막힌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II. 두 번째, 남은자에 대한 초청.
 
-남은 자를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걸 깨닫고, 남은 자가 없으면 해결이 안 되겠구나! 주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 남은 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이사야는 오죽하면 자기가 첫 아들을 낳고, 그 첫 아들의 이름을 스알야숲 이렇게 스알야숲이라고 해 가지고 7장에 나오는데, 그 스알야숲이라는 첫째, 아들의 이름의 뜻이 뭐냐면,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 오죽하면 아들의 이름을 남은 자, 생존자, 남은 백성이 돌아오리라. 그러니 이 남은 자는 먹구름 위에 은빛 광채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존자를 조금 남겨두지 아니하셨다면 소돔과 고모라 갖고 다 망했을 것이라고,,, 여러분 하나 예를 들어 알 수가 있는데, 소돔과 고모라 성이 누가 있을 때까지는 안 망했습니까? 롯이 있을 때까지, 롯이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롯을 남은 죄로 남겨놓았고, 롯이라도 있으니까 소돔과 고모가라가 안 망했지, 롯이 나오자마자 소돔과 고모라는 불벼락을 맞는 것이에요. 그러니 범죄한 나라, 면역체계가 사라지고 방어기제가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오늘 남은 자 신학 남은 자의 사명 남은 자의 환상을 우리의 것으로 알고 기도하고, 집중할 때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방향을 구원의 역사로 새롭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은 자가 누굽니까? 대표적으로 노아의 홍수 때 노아가 남은 자입니다. 뭐 남은 자에 대한 신고야기 스토리가 많습니다마는 대표적으로 사도바울은 로마서 114절에, 이 남은 자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하는가? 114절을 또박또박 같이 보겠습니다.
 
*로마서 114,
4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몇 명이에요. 7천 명의 거룩한 씨앗 남은 자를 남겨놓았다고 그랬습니다. 이사의 613절에서는,
 
*이사의 613,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저는 이걸 보면서 그렇구나.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어려워도 남은 자를 통해 하나님은 일하시는구나. 한국 한국 사회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교회가 남은 자가 되면 하나님은 이 민족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경탄할 만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흔히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7교회 얘기할 때에,책망받고 잘못된 교회 중의 하나가 사데교회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좀, , 이렇게 좀 뭐라고 그럴까요? 막 좀 거룩하게 산다고 하는 분들이 사데교회를 가지고 얘기를 하면서 막 한국교회 막 뭐라 그러고 질타하고 그럽니다. 우리가 그런 어떤 내용을 들을 만합니다. 사데교회가 잘못하면 잘못을 인정할 만합니다. 그런데 그 사데교회의 부족함이 있지만, 그 사데교회를 하나님은 어떻게 해결하셨는가? 요한계시록 3장에 한번 보겠습니다. 사데교회 대해서 설명할 때에, 요한계시록 31절에,

*요한계시록 31,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그럴 때 사데교회 너는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너는 죽은 자로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아요. 그런데 요한계시록 34절에,
 
*요한계시록 34,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너에게 있다. 할렐루야!!! 망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거기에 사대에도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명이 남은 자가 있다는 것이에요. 이 남은 자가 시대를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존 스타트 목사님은 이 남은 자를 일컬어서 뭐라고 얘기하느냐 교회 안에 교회이다.’
 
사랑의 교회 성도들이여!
교회 안에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교회 안에,,, 오늘 우리가 이사야 이 강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모두가 다 교회 안에 교회가 되게 해 주셔서 이 민족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 줄로 확신합니다. 교회 안에 교회인 우리의 남은 사명이 무엇입니까? 남은 자로서 예수님은 사대 교회에 아직 살아 있는 남은 자들을 너가 굳건히 하라. 굳건히 하라. 사도바울은 그야말로 남은 자가 되어 가지고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했다. 자주자주 사정전에 나와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은혜로 남은 자가 된 줄로 믿을지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남은 자가 되어서 교회 안의 교회로서 교회 안에 수많은 사람들을 굳건히 하는 남은 자로서 이 시대의 새로운 길을 열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사랑의 교회와 한국 교회는 이 시대에 남은 자로서, 세계 복음주의 교회 쇠퇴를 맞게 하여 주시옵시고, 이 시대에 대한민국 교회 성도들은 이사야의 맏아들처럼 스알야숲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 첫 번째 이사야 전체에 대한 초청, 낙관론을 펼칠 수 없는 상황은 나사렛 선언을 하게 하신 하나님, 그다음에 남은 자에 대한 초청을 통해서 우리가 이야기하신 하나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제 또 하나의 초청 하나 더 하겠습니다. 오늘 요절로 나와 있는 것인데 오늘 여러분들 주보에 보니까 이사야 118절이라는 말씀 가지고 했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18절을 다시 한번 또박또박하게 우리 합독하겠습니다.
 
*이사야 118,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아멘 놀라운 초청이 있는데, 이 사회에 초청 남은 자의 초청인데 오늘 보혈복음으로의 초청이 보혈(寶血)복음(福音)에 대한 초청을 하는 것입니다. 오라, 이 오라는 말씀은 이사야에도 요한계시록 계속 나오는데 이 오라 이 말씀은 와서 내가 나하고 싸우겠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소나 당나귀 같이 어리석은 우리를 그냥 내어치지 않으시고 우리를 초청하시는 주님의 음성인 줄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제가 말씀을 분석하면서 깨닫는 것 중의 하나가 변론하자. 하는 이 말씀이 있는데, 이 변론(辯論)하자는 말씀은 법정 용어예요. 변론하자는 말씀이 법정 용어인데, 이 용어를 변론하자 그래가지고 이걸 가지고 기소를 한다든지, 고소를 하기 위한 변론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이해하시고 우리를 변호하기 위한 변론에 대한 초청인 줄 믿으셔야 되는 거예요.
 
이것은 변론하자는 이 말씀은 이치를 따져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목자의 심정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탕자를 용서한 것은 언제부터 용서한 것이죠? 탕자가 돌아온 이후에 용서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미 집을 나설 때부터 아버지는 용서하는 이미 집을 나설 때부터 아버지는 동구 밖에서 돌아온 탕자가 되도록 기다리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라 우리를 오라 변론하자는 이 말씀 가운데는 뭐가 담겨있는가 용서를 전제하고 우리를 초청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오늘 한번 정리를 했는데, 여러분 가장 위대한 진리가 뭐냐 가장 위대한 진리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걸 깨닫는 것이에요. 우리가 망하게 된 존재라는 걸 깨닫는 것이 오늘 3절부터 8절까지 참담한 이런 현상을 우리가 깨닫는 것이에요. 그런데 더 위대한 진리가 있어요. 그 더 위대한 진리는 무언가? 가장 위대한 진리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이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진리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수많은 부족함도 있고, 인생살이 살아오면서 얼룩진 것들 많고 누더기 같은 이런 부족함도 많이 있어요.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오라, 변론하자. 오라, 변론하자. 여기 하나님의 자비(慈悲)가 포한돼 있어요. 소나와 당나귀처럼 이해력이 부족한 우리를 하나님 지금도 기다리시면서 설득하시면서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일 미련 방통이 같은 사람 중에 하나가 요나였어요. 하나님이 니느웨 백성을 불쌍히 계시고 살리시길 원하는데, 요나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니까 갑자기 다 변화되니까. 요나가 너무 열받아 가지고 막 화가 났어요. 그럴 때 소나 당나귀 같은 요나에게 너 하나님의 심정을 못 깨닫구나!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하나님께 저항했는데, 그를 인내하시고 그를 설득하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셨어요.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변론하자는 것은 용서를 전제한 주님의 초청이었어요. 주님의 첫째, 핵심이 뭡니까?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너의 죄가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여러분, 주홍과 진홍색깔은 죄의 깊이를 말해주고, 주홍과 진홍의 피색은 피와 폭력을 상기시키는 색이에요. 끔찍한 죄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끔찍하고 죄의 깊이를 말해주고 이 기가 막힌 이 더러움과 오염(汚染)됨과 이 처절한 이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뭘 통하여 피의 복음을 통하여 또 다른 보혈 피해 복음을 통하여, 그래서 제가 보혈 복음이라고 그러는데, 어거스틴은 무어라고 말하느냐, 교부 어그스틴의 해석 가운데 예수님 자신이 먼저 이 피해 복음을 통해 해처럼 찬란하게 빛나가지고 그 주님과 부딪치는 수많은 영혼들은 치유받고, 그래서 나 자신부터 어그스틴 나 자신부터 치유받고 바울이 완전히 치유받고, 진홍, 주홍이 눈 양털같이 되어졌다. 그래서 이렇게 초청받아 변화받은 사람들이 결국은 또 남은 자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보혈의 능력은 진홍 같은 죄, 주홍 같은 죄를 해결하는 그런 능력이 있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보혈, 복음의 능력에는 사각지대가 없는 줄로 믿습니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것처럼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느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보혈복음이 우리를 죄에서 우리를 자유케 한 줄 알고, ‘우리도 모르게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면 보혈의 능력,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은 보혈의 능력, 그 다음 우리의 죄를 눈보다 희게할 것은 보혈의 능력, 그리고 주요의 보혈 능력 있도다.’ 이 보혈 복음의 능력은 사각지대가 없다고 그랬어요. 만약에 우리가 파란 눈에 안경을 끼면 다 파랗게 보이고, 붉은 안경을 끼면 다 붉게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우리 진홍 같고, 주홍 같은 게 붉은 거겠지만, 예수 그리스의 보혈의 색깔로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덮어가지고 예수님의 보혈 렌즈로 우리를 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우리 모두를 보시기 때문에 깨끗하고 순수하고 용서받은 모습이 되는 것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구절 중에 하나가 요한계시록 714, 크게 다 같이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714,
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우리의 그 옷이란 누더기 같이 더러운 옷들인데 다 어디에 씻었다고요? 어린 양의 피에 씻은 거예요. 보혈복음에 씻은 거예요. 오라. 너희 죄가 진홍 같을지라도, 주홍 같을지라도, 흰 눈같이 양털처럼 희게 하는 그 은혜를 우리가 받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새해 첫 시간 이 말씀을 통하여 이사야 말씀을 통하여 이사야 자체에 대한 초청도 받지만 남은 자에 대한 초청을 복음의 능력을 보혈복음으로 씻음받아 이걸 우리가 응답하고 이미 보일 복음에는 이미 초청받은 우리들이지만 이걸 오늘 깨달을 때, 더 깊이 깨달을 때 새로운 길이 열리는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열리는 그런 은혜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결단이 있다면, 이 보혈복음에 의지해 가지고 우리가 남은 자 거룩한 씨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그럴 때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국가의 미래가 열리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 초청에 응할 때 단순한 해결 정도가 아니라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거예요. 뒤에 이사야 제일 뒤에 이사야 6618절을 보니까,
 
*이사야 66:18,
18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아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적당한 과거의 회귀가 아니라 과거의 부흥 정도가 아니라, 때가 되면 뭇 나라의 언어가 다른 모든 민족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다. 작년 10.27의 우리가 기도한 제목들이 올해 10.27의 세계복음주의연맹총회를 통하여 이런 영광이 그대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겁니다. 소위 WEA라는데 어떤 사람은 잘 모르고 WEA가 어떻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WEA는 순수한 복음 우리 장로님이 기도한 것처럼 정통보수, 열린 보수, 그 다음에 모두가 다 순전한 복음 이 보혈복음을 선포하는 올해 10월 마지막이 될 겁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겁니다. 그래서 제가 WEA를 자꾸 구상하다가 WEA, 뭔가?We Are, We Ace, We Amazing이 될 것이다.
 
이건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이사야 6618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뭇 나라의 사람들이 와 가지고 세계 교회 지도자들이 서울에 모여 갖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이 민족의 문제를 적어도 올해 10월 이전에는 싹 다 해결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코로나의 강, 100년 만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코로나의 강을 스가랴서를 통하여 우리가 이겨 내었듯이,,, 국가적인 위기의 강을 이사야서를 통하여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옛날에 좀 말이 안 되는 얘기지만, 믿음 좋은 어른이 고속버스를 탁 타고 옛날에 뒤를 탁 돌아보면서 오늘 너희들은 나 때문에 사는 줄 알아라그랬대요. 말이 안 되는 거지만 그렇지만 우리들 때문에 이 민족이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초청에 응하시므로 우리 모두가 한 분 한 분이 보혈복음의 기초한 하나님 나라의 남은 자가 되어 이 시대를 살리는 거룩한 주의 종들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 기도 제목 자체가 벌써 여러분을 살려주실 것입니다.
 
요약
예수님께서 초청하시는 이사야 시리즈를 통해 말씀하실 때, 우리의 인생과 이 땅의 모든 난제들과 혼돈의 시대가 온 땅에 해결되며, 하나님을 앙망함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될 줄로 믿고, 범죄한 나라, 절망적인 참상 앞에서 눈물로 탄식하며 주님을 앙망할 때, 한번도 경험치 못한 경탄할 만한 새로운 길이 반드시 열리게 하여 주시길 간구하며, 오늘 남은 자의 초청을 받아 보혈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우리 모두가 교회 안에 교회가 되어야 한다. 정말 은혜 받은 남은 자가 되어서, 오라 변론하자. 주님의 용서에 초청을 통하여 주홍 같이 붉은 끔찍한 죄를 씻어주시는 우리가 이미 믿고 확신하면서 보혈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의 몸과 모든 상황과 국가가 새로워지는 능력을 받기를 간구해야 한다.
 

▶요약
1. 이사야를 통한 초청

1-1. 이사야, 선지자
 -  이사야, 아모스의 아들로 왕립학교에서 공부함
 -  아름다운 언어와 문체로 글을 쓰고 문장이 수려함
 -  그의 언어 비유적 표현과 시적 천재성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불꽃 같은 영감 덕분이었음
 -  사도바울과 같은 복음의 능력자로 불림
 - (중요) 갈릴리, 유대, 베레, 갈보리 같은 예수님의 그림자를 보며 복음을 전함

1-2. 이사야의 특징
 -  낙관론을 펼칠 수 없는 어두운 상황에서도 복음을 선포함
 -  우울하고 비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묘사함
 -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복음을 전함
 -  구약 시대의 사도바울과 연관 지어 설명함
 -  신약의 창에서 이사야의 해석과 교부들의 시각을 소개함

1-3. 이사야서의 중요성
 -  신구약 성경 전체를 놓고 볼 때, 이사야서가 독특함
 -  신구약 성경은 66권이고, 이사야서는 66장으로 구성됨
 -  신구약의 시작과 연결되는 세례요한의 역할을 소개함
 -  이사야서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비추고, 인류 구원의 길을 열 것임을 암시함
 -  하나님의 구원자이자 인류의 구원자인 예수님을 깨닫게 함

2. 이사야서와 낙관론.

2-1. 이사야서의 이해
 -  이사야서를 통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찬송과 가사를 이룸
 -  이사야 11장에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인용함
 -  낙관론을 펼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복음의 능력으로 영혼을 새롭게 함
 -  예수님의 공생애와 나사렛 선언을 통해 이사야서의 해석을 제시함
 - (중요) 나사렛 선언은 이사야서를 통해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복음의 능력을 보여줌

2-2. 이사야서의 해석과 적용
 -  이사야서는 이사야의 통찰을 통해 완성된 것으로, 그 해석은 예수님의 말씀과 연결됨
 -  이사야서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인용하여 낙관론을 제시함
 -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시작한 공생애를 통해 이사야서의 해석을 제시함
 -  이사야서의 표현은 같지만, 주님의 선언의 강력한 차이점은 표현의 차이임
 -  예수님은 표현의 차이를 통해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의 능력을 입증함

2-3. 회개와 변화
 -  하나님을 악망하면 새로운 길이 열리고, 그 길은 거룩한 낙관론임
 -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의 영광 회복에만 집중하여 새로운 비전을 간과함
 -  하나님은 새로운 예루살렘에 대한 비전과 환상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심
 -  우리는 개인적으로, 민족적으로, 사회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비전과 환상을 확인해야 함
 -  우리의 죄악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새롭게 변화하고 낙관하도록 은혜를 구해야 함

3. 남은 자

3-1. 남은 자를 향한 초청
 -  남은 자, 거룩한 그룹기의 신학을 뒷받침해야 함
 -  이사야에서 곳곳마다 남은 자, 남은 백성이라는 언급이 많음
 -  남은 자는 먹구름 위의 은빛광채라 불림
 -  로시가 소돔과 고모라에게 망하기 전에 남겨둔 것 같이, 우리도 남겨야 함
 -  남은 자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로운 길을 열어주심

3-2. 남은 자의 사명
 -  노아의 홍수 때, 노아가 남은 자였음
 -  사도바울은 로마서 11장 4절에서 남은 자에 대해 언급함
 -  이사야 6장 13절에서 남은 자는 배임 당하더라도 남을 것이라 함
 - (중요) 요한계시록 3장 1-4절에서 사데 교회를 살아있는 자들로 표현함
 -  사데 교회의 부족함은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해결하심

3-3. 사데 교회와 남은 자
 -  사데 교회는 요한계시록 3장 1-4절에 나오는 모습과 같음
 -  한국 교회는 남은 자로서, 세계 복음주의 쇠퇴를 맞아야 함
 -  한국 교회 성도들은 이사야의 맏아들처럼 스알야숲이 되어야 함
 -  이사야 1장 18절의 "오라"는 보혈복음에 대한 초청을 의미함
 -  변론하자는 말씀은 법정 용어이지만, 용서와 초청을 전제하고 있음

4. 변화의 복음

4-1. 변론하자의 시작
 -  요나는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자 함
 -  소나와 당나귀 같은 요나에게 하나님의 심정을 전달하지 못하자, 요나는 분노함
 -  하나님은 요나를 인내시고, 설득하시고, 자비를 베푸심
 -  우리는 용서를 전제한 주님의 초청을 받음
 - (중요) 죄의 깊이와 종류에 관계없이, 우리는 용서받고 변화될 수 있음

4-2. 변화의 과정
 -  변화의 과정에서 보혈복음 의 중요성을 강조함
 -  어거스틴은 보혈복음 을 통해 예수님의 능력이 치유와 변화를 가져옴을 주장함
 -  보혈복음은 주홍과 같은 죄와 눈과 같이 흔한 죄를 용서해줌
 -  주님의 보혈복음은 우리를 깨끗하고 순수하게 변화시킴
 -  보혈복음 은 사각지대가 없는 능력임

4-3. 변화의 결과
 -  보혈복음 은 죄를 용서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임
 -  우리는 보혈복음을 통해 변화받고, 남은 자의 역할을 하게 됨
 -  변화의 결과는 주홍과 같은 죄를 해결하는 능력임
 -  보혈복음  우리의 죄를 희게 하는 은혜임
 -  새로운 길은 보혈복음 에 의지하여 헌신하는 것에서 시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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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12월 22일)
제목: "함께 예수님의 마음을 품읍시다"-예수님은 누구신가?25번째
말씀: 빌립보서 2:5:11
대표기도: 장명철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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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립보서 2:5:11,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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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성탄 주일을 허락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어제 새벽에 저희 교회는 성탄 주일 바로 직전 토요 새벽 예배는 토요 새벽송 예배라고 해서 했는데 어제 새벽에 유치부 아이들이 230명이 나가지고 이렇게 합창을 하는데요. 예뻐 죽겠어요. 너무너무 예뻤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성탄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이 있고 성탄 예배의 따뜻함을 경험한 사람은 은혜의 주류에서 벗어나지 아니하고 우리 아이들도 평생 그 기억을 하면서 살아가는 가운데 이상한 판단 이상한 행동 신앙에 헛발질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함께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십시다” 라는 제목으로 이제 예수님 시리즈 딱 하나 남았습니다. 다음 줄 마지막 남았는데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모두가 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었으면 좋겠어요. 예수님의 어릴 때 배웠어요. 예수님의 마음은 고요한 연못~~ 알 사람만 알도다.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내 마음의 평강이 찾아옴은~~

정말 주님의 마음, 오늘 이 메시지가 수많은 갈등과 고통을 멈추게 하는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의 본문은 빌립소서 2장 5절부터 11절 이 본문을 여러분들 봉독하셨는데 이 말씀은 성경 말씀 가운데 정말 원터풀한 말씀이에요. 예수님의 성육신에 대해서 여러 군데가 나오지만 말씀의 봉우리들이 있잖아요. 좀 이렇게 다 말씀이 귀하지만 말씀의 봉우리도 예를 들어서 우면산 정도의 높이가 있다. 혹은 뭐 설악산 정도의 높이가 있다. 그런다면 오늘 이 본문은요, 예수님의 성욕심과 예수님의 겸손과 낮아지심에 대해서 알프스의 연봉이요. 에베레스트의 최고의 고봉중에 하나라고 말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말씀 그래서 장엄한 말씀입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영원하신 하나님 스스로 계신 하나님, 창조주로서 영존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가지고, 시간을 초월하셔서 역사 속으로 들어오셨는지 하나님의 놀라운 마스터플랜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산하이에 조그만 도시 빌립보 성도들에게 보낸 이 짧고도 소박한 이 서신서 속에 빌립보 속에서 우리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아주 그냥 깊고도 영광스러운 진리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조직신학적으로도 놀랍고 또 우리 기동론이라고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크리스톨라지, 기동론에 관한 최고의 봉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늘 이 땅에 있는 우리들에게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그걸 살펴볼 때에 그 당대의 현실은 그때 1차 수신자였던 빌립보 교회 오늘 특별히 유오디아와 순도교라는 요즘 우리 식으로 말하면 그 당시에 권사님들이 그 교회 중직 권사님들이 서로 다투고 충돌하고 파당을 짓고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어요. 그래서 권사님들 스토리예요. 그냥 거기에 대한 답을 주시고자 이 말씀을 오늘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생활의 중요한 원칙 중에 하나가 하나됨인데, 성령 안에서 하나됨인데 하나됨을 위한 최고의 비밀이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겸손한 것임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빌립보 교회도 다양한 어떤 배경을 갖고 있었죠. 빌립보 교회 성도들 가운데 빌리포 간수가 있었고, 예심이 있고 간수로부터 열심히 있고 또 자주장사 루디아라는 여성 사업가도 있었고, 귀신 들린 여종이었다가 귀신 들렸다가 회심해서 이렇게 변화된 그런 성도들도 있었고, 여러 종류의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 예배도 수많은 분들이 예배를 드리시는데 여러분 모두가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잖아요. 근데 우리가 하나 된다. 이거 쉬운 일이 아닌데 오늘 그 일을 어떻게 해결할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오늘 이제 본문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 갈등과 다툼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갈등 다툼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가정적으로도 그렇고 모두가 다 자기의 프라이드, 자기 의, 자기 주장이 있다는 것이 조금 세게 나오면 교만이 있다는 것이에요.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됨을 파괴하는 교만과 자기 의의를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자기주장을 처리하고 해결할 능력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어떻게 하느냐, 세상 사람들은 갈등과 다툼과 문제가 있었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가느냐 타협을 하는 거예요. 타협 어느 정도 서로 동의하는 수준까지 서로 타협을 하는데 대신 자기주장이나 자기 의의나 자기 프라이드나 자기 교만은 나름대로 유지하면서 타협하는 것입니다. 소위 서로 체면치레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근데 세상적인 이 타협이라는 것은 거룩함이라든지, 영적인 깊은 차원 영적인 능력 예수님의 주님 대심 성령의 내조하심과 충만함 이런 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나름 해결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냥 겉으로 봉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야 할 줄로 확신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분쟁과 어려움이 생길 수 있지만 그 분쟁과 어려움이 생겼을 때 오늘 이 말씀이 잘 적용될 수만 있다면 그 어려움과 분쟁은 오히려 하나 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가 있어요. 이게 신앙의 비밀이고 오히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갈등과 충돌도 오늘 이 내용이 잘 접목이 되면 거룩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역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한 번씩 말씀드립니다만, 어려움을 당해 가지고 누군가의 조언을 들어야 할 상황이 되었다면 누구의 조언을 들어야 할 것인가? 자기의나 자기주장이나 자기 명예나 이런 어떤 자기 프라이드 자기 똑똑함을 가지고 적당히 타협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안 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깨어지고 은혜받고 죽음을 통과한 사람들의 조언을 들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부인해 본 사람, 자아가 깨어져 본 사람, 자아를 부인한 사람들의 조언을 들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오늘 죽음을 통과한 분의 조언을 들으라 무슨 말인가 하면,

I. 첫 번째는, 죽음을 통과한 분의 조언을 들어야 한다.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똑똑한 분들의 조언이 전혀 도움이 안 된 케이스가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욥의 세 친구들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이 나름 똑똑하게 대단한 어떤 조언을 했지만, 그분들은 죽음을 통과한 경험이 아니었기 때문에 욥의 큰 도움이 안 되고 논쟁만 벌였습니다. 영적으로 깊은 차원의 성령 충만한 조언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을 통과한 분의 조언을 듣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군가 멀리 갈 필요가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통과한 분이 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과한 그런 은혜를 깨달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로 마음의 결단하고 이렇게 하면 그것이 큰 축복이 되는 겁니다.

제가 90년대 중반에 사우스 아프리카에 있었던 사우스 아프리카의 체제 전환이 그때 상황에 제가 있었는데, 제가 참 많은 걸 그때 은혜를 받았었어요. 90년대 중반에 사우스 아프리카는 인구가 4천만 조금 넘는데 3300만 정도가 흑인이었고, 500만 정도가 백인이었고, 2300만 정도가 칼라라고 해 가지고 유색 인종들 아시안 인도인 이런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니까 절대 다수가 80% 이상 3300만 400만 500만이 흑인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정부가 백인들 500만 정도 되는 백인들이 모든 정부의 모든 권세를 다 잡고 있었으니 그 레지엄 체제 변화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러니까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백인으로서 당시에 대통령이었던 데끌락이라는 분이 개혁파 교회의 장로님이셨어요. 이분이 은혜를 받은 분이에요. 이분이 그 어려운 상황에서 주님의 음성을 순종했어요. 네가 낮은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네가 예수님의 심정을 가지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해 보라. 그래서 그 마음을 듣고 제가 공부했던 그 학교의 그분이 찬슬러였기 때문에 제가 그 얘기를 잘 알고 있어요. 흑인 정보가 들어섰을 때에 전임 대통령인 이 데글라크 현직 대통령인 댓글라크가 만델라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 부통령으로 들어갔어요.

이건 있을 수가 없는 그래가지고 피 흘릴 수밖에 없는 혁명적 상황에서 낮아져 가지고 문제의 방향을 틀었고, 동시에 만델라 대통령은 27년 동안 감옥에 있었어요. 감옥에 있어 가지고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 복수하려는 그런 많은 분위기가 있었는데, 만델라는 억울하게 27년 동안 열악한 감옥에서 고통스럽게 지냈지만 감옥에서 나와서 말한 일성이 뭐냐면 내가 기도를 하는데 주님께서 용서하라고 그러셨다. 진짜 용서는 강한 자만이 용서할 수 있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약한 자의 특징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과거의 사슬에 메인 죄수가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사우스 아프리카는 거의 피비린내 나지 않고 정권 교체가 일어났던 유일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심정을 전임 대통령 후임 대통령이 깨달아가지고, 서로 주님의 마음을 가졌을 때, 역사적인 평화의 체인지가 된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죽음을 통과한 분의 조언을 듣기 위하여 본문을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자, 오늘 본문에는 주님의 낮아지심을 말씀하고 있는데, 주님의 낮아지심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가? 6절에서는 이와 같이 나와 있습니다. 그는 뭐라고 말하고

*빌립보서 2:6,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이 본체라는 말이 중요한데 본체라는 말은 하나님과 동등하다. 그 뜻이에요. 하나님처럼 영존하시고, 하나님처럼 완벽하시고, 하나님처럼 스스로 계시고, 그 하나님과 동등하시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동등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한 특성이다. 그런데 6절 뒤에 보니까 뭐라고 나왔냐면,

*빌립보서 2:6,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본체신데, 하나님과 뭐에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그 다음에 어떻게 해요. 여기지 아니하시고 이렇게 나와요. 동등한 분인데 동등됨을 취할 것을 당연히 동등함을 취해야 되는데 동등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안 취하시고 그 말이에요. 이 말씀이 왜 이렇게 중요한가 하면 인간의 대부분의 문제는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데서부터 사람의 대부분의 문제가 출발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는 것인데, 사탄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한 것이에요. 이사의 14장에 뭐라고 나와 있느냐 하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같아지리라’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길 원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도 하나님 같이 되고 싶어서 하나님 같이 되리라. 인간의 바벨탑을 쌓은 것도 하나님처럼 되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한 것도 하나님처럼 되려고 지금도 21세기에 우리는 바벨탑을 쌓으면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가지고 하나님과 같은 키높이를 맞추고 싶어 하는 것이에요.

근데 주님은 하나님과 키 재기를 하기를 원치 않으시고, 하나님과의 동등한 특권 그거 원치 않으시고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는 주님의 심정을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지위와 권세와 특권 모든 것들을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지 아니하시고 포기하셨다. 오늘 21세기에 오늘 이 시대에도 극단적인 ai 인공지능 시대, 그 다음에 어떤 유전자 조작, 이런 거 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등하려고 하는 데서 파생된 어려움들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어떻게 하나님과 동등됨을 여기지 하시고 동등됨을 포기하셨는가, 오늘 말씀 본문을 보니까 성육신하셨어요. 하늘의 황태자가 이 땅에 내려오셨어요. 내려오시되 모든 고난과 동등됨을 포기하는 가장 취약한 곳으로 오셨어요. 바로 여인의 태에 여인의 태가 얼마나 연약합니까? 그 여인의 태에 자궁 속으로 오셨어요.

또한 태어나신 곳이 남들이 생각할 때 메시아가 올 때, 왕궁에 오실 것이 아니냐 그래서 동방박사들이 처음에는 헤로도 왕궁을 찾아갔어요. 그런데 거기를 거기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초라한 마굿간에서, 가축이 사는 여관 정도가 아니라,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어요. 악한 폭군 해롯왕 치하의 땅에서 태어나셨어요.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특권과 권세를 쓰지 않으셔요. 오히려 작위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 그야말로 종, 숨 쉬는 짐승, 노예, 둘로 쓰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에 보니까,

*빌립보서 2:7,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동등됨을 취한 걸 여기지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오셔가지고, 사람같이 되셨다고 7절이 이와 같이 성육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같이 되셨다는 것은 인간처럼 보인다는 말이 아니라, 진짜 인간 진짜 사람이 되셨다는 거예요. 같이 되셨다는 말씀은 인간의 감정 수치 고통 절망 인간의 분노 인간의 부끄러움 이 모든 것을 다 당하신 줄로 믿습니다. 어떤 지위와 특권도 없이 주님께서는 완전히 종이 되셨습니다. 이 종대심의 극체가 뭐냐 8절에 뭐라고 나왔냐면,

*빌립보서 2:8,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자기를 낮추시고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죽기까지 뭡니까? 복종하셨다 완전히 낮추시고 그래서 이 스토리는 낮아진 스토리요. 어떻게 보면 망한 스토리 믿지 않는 분들이 볼 때는 뭔가, 우리 오늘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잘 되고 성한 스토리를 좋아하죠.

한국 사람이 미국 이민 가가지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다 또 저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한국 와가지고 코리안 드림을 이루었다. 아니면 최소한 개용남 아십니까? 개천에서 용이 났다. 이런 스토리를 우리가 다 좋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반대에요. 유명에서 무명으로, 부자에서 가난한 자로, 하늘의 황태자 존귀한 자가 종이 되신 것입니다. 이런 스토리가 이 세상에서는 별로 가치 있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독립적이고 자수성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요즘 아이들에게 부모님들이 겸손을 가르치고 낮아지는 것을 가르치는 부모는 거의 없습니다. 더더구나 예수님처럼 그 겸손이 고통과 치욕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어진다면 누가 원하겠습니까? 그런데 그걸 목표로 해서 한 건 아니었는데 그 결과가 뭐냐 오늘 뒤에 보니까 구절에 보니까,

*빌립보서 2:9,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신 줄로 확신합니다. 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주 그냥 극적으로 낮아지셨는데 극적으로 높아지신 것이에요. 신학적으로는 자기비하, 자기 비움과 자기 비하를 하셨는데 하나님은 극적으로 승귀 예수님을 승(昇)귀(貴)시키셨다. 성귀라는 말이 어려운 말인데 높이시고 높을 승자에다가 귀자는 귀할 귀자 성귀시키셨다 고통스러운 죽음과 굴욕적인 자기비하를 하셨는데 예수님을 높이시고, 하나님 오른편에 우편에 앉게 해주신 줄로 믿습니다. 자 여러분 한번 물어보십시다.

이 땅에서도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진짜 순종하고 진짜 낮아지고 이런 걸 하면요. 처음에는 몰라줘도 나중에는 이 마음이 진지하게 통하면 진짜 순종하고 진짜 낮아지는 사람의 눈치를 살피게 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은 알 사람만 알도다. 예 무슨 말인가 어떤 집안에 며느리가 들어왔는데 자기 할 말하고 똑부러진 며느리가 들어왔어요. 그 자기 할 말하고 똑부러진 며느리가 영향이 더 있겠습니까? 아니면 처음에는 좀 억울한데도 불구하고, 조용히 참고 순종하고 겸손한 그 며느리가 더 영향이 있을까요?

겸손한 며느리로 쭉 가면요 결국은 시어머니도 시아버지도 뭐 시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그 순종자라는 겸손한 그 며느리의 눈치만 슬슬 살피게 돼가지고 진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에요. 아멘도 조금만 하시잖아요. 이런 말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취급한다. 이런 말이 있어요. 이건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우리가 오늘 이 주님의 깊은 진리와 신비를 깨달아가지고, 주님의 겸손과 주님의 거룩한 자기비하를 통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승기시켜 주시는가 이걸 제대로 깨닫게 되면 우리가 이걸 목표로 한 건 아니지만, 이걸 잘하면서 순종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시는 것이에요. 이것은 제 얘기가 아니고 야고보 사도나 베드로 사도가 야고보 사도가, 4장 10절에 유명한 말씀이 있어요. 크게 우리 합독하겠습니다.

*야고보 4:10,
10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아멘 주 앞에서 낮추는 거예요. 우리가 세상 이런 게 아니에요. 주님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 때문에 우리를 낮추면 남들이 가만히 취급하든 말든 상관이 없이 주님이 우리를 높여 주시리라. 성경적으로 겸손한 자가 강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를 높여주시기 때문에 그렇다 이 말이에요. 창조주 하나님이 높여 주신다면 누가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한 번씩 우리 다 알자는 사자성어로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는 말이 있는데, 주님 앞에서 겸손하면 우리는 겸자무적이 되는 것입니다. 겸자무적이라는 말이 어디 있나, 지금 만든 겁니다. 겸자무적이에요. 그래서 우리 첫 번째는 우리가 죽음을 통과한 분의 조언을 들어보라. 두 번째로는 진짜 겸손한 자에게는 적이 없고 참 평안히 오는 것이다.

II. 두 번째는 진짜 겸손한 자에게는 적이 없고 참 평안히 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 시대의 시류는 이 시대의 흐름은 겸손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오늘 말씀한 대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의 권리를 포기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걸 오해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됨을 포기했다는 말은 아니에요. 예수님은 신성을 갖고 계셨어요. 물 위를 걸으시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바람과 바다와 자연도 잔잔케 하시고 그 신성을 갖고 계셨어요. 신성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 마치 우리가 우리 인간이 몸을 잃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 연약한 존재 아닙니까? 우리가 인성을 포기할 수 없듯이 주님은 주님의 신성을 포기할 수 없어요. 그런데 뭘 포기했는가, 신성을 갖고 있는 분이 가질 수 있는 권리를 포기했다 그 말이에요. 하나님 되심을 포기한 건 아니지만, 하나님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셨다 이 말이에요. 스스로 신성의 위엄과 영광을 포기하신 것이 자기부인 하신 거예요. 자기부인 예수님은 모욕과 수치를 받으실 필요가 없고 죽으실 필요가 없는 분이셨는데, 불평불만 없이 죽임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수치를 당하시고, 오죽하면 8절 뒤에 보니까

*빌립보서 2:8,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뭐에 됐다고요?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주님은 신성을 가지셨지만 신성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셨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에게 배척받으시고, 오해받으시고, 친구들에게는 버림받으시고, 제자들에게는 배신당하시고, 침 뱉음과 조롱과 끔찍한 로마군사의 채찍을 받으시고 나중에는 처참하게 벌거벗기심 당하시고, 죄인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뿌림받으신 것처럼 돼가지고 권리를 포기하셨어요. 자 이 말씀을 왜? 오늘 여기에 쓰셨을까? 갈등하고 권사님들끼리 힘들어하고 서로 어려워하고 서로 싸우는 것 때문에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 싸우는 것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여러분들 가운데 우리 모두에게 가족들 간의 서로 주장이 서로 강해서 가족들 간에 서로 싸우는 상황 때문에, 화가 난 나머지 어떤 사람들은 에이 집 나갈 거야. 그리고 어떤 아이들은 에이 교회 안 나가 왜 갑자기 교회까지 들어오는지 모르겠어요. 심지어는 난 다락방 안 나가, 그런 유혹에 빠졌다면 오늘 이 말씀을 잘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가족들한테 힘든 분들, 근데 문제는 뭐냐 하면요. 이 말씀을 들어야 할 분은 이 자리에 없어요. 그게 참 시험이에요. 그런데 이 말씀을 안 들어도 될 뿐더러, 또 듣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은 늘 말씀하시잖아요. 있는 자는 더 부화하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긴다고 했어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꺼이 상처를 받고, 모욕을 참고, 자기주장 자기 일을 버릴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신데, 동등한 권리를 포기하셨다는 데서 시작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깜짝 놀랄 만한 각성을 가진 진리를 깨달아야 되는데 그것이 뭐냐? 예수님이 취하신 그 자리 동등한 권리를 행사해야 할 그 자리를 하지 않으시고 죽기까지 낮아주시고, 수욕을 당하시고, 모욕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당하신 그 자리가 저와 여러분의 삶에 수많은 갈등과 어려움과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자리에서 출발해요. 이건 너무나 중요한 것이에요.

저는 지난 40여 년이 넘는 목회 가운데서 수많은 아픔과 수많은 좌절들이 있을 수가 있었어요. 마지막 결론은 뭐냐 하면 모든 것의 해결 방법은 내 주장과 내 의의가 아니라, 예수님이 당하신 그 모욕의 자리, 십자가의 자리, 예수님이 당하신 그 어려움의 자리 그 자리가 문제가 타협이 아니라, 진짜 문제가 해결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 말이에요. 신앙생활의 모든 갈등과 충돌의 최선의 출발점은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의 수채의 자리가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시요 어렵고 힘들 때마다 주님이 당하신 그 수채의 자리가 우리가 출발해야 할 출발점이라니까요?

여러분, 이것만 생각하면 이 세상의 타협 정도가 아니라 영적인 깊은 은혜의 충만한 기적 같은 해결 방법을 취해 신앙이여 이것이 주님을 섬기는 믿음의 신비한 비밀의 영역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주님이 어떻게 하시는가? 우리가 그걸 목표로 한 건 아닌데 극적으로 우리가 낮아질 때에 주님이 극적으로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9절부터 11절까지 시작,

*빌립보서 2:9-11,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썰번트 둘로스가 되니까. 썰번트 킹이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설번트 로드가 로드쉽, 부님이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처절한 자리에서 영광스러운 부활을 경험하게 해주시고, 하늘의 승천을 승귀하게 하시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이름 중에 가장 뛰어난 이름을 가지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철저한 자기 비하가 놀라운 거룩한 승귀가 되게 하시고 그야말로 로드가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예수 그리스는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 그 말을 구약의 제호바 여호와 하나님이 되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로드라는 뜻은 권리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권리를 포기하고 설번트가 되니까. 로드가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로드(Rord)가 되었다는 말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성 캐슬 성을 소유하고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다. 하는 뜻이 있고 또 하나는 어떤 것이든 열 수 있는 키를 가졌다 성을 다스리는 권세(權勢)와 부요(富饒)의 창고(倉庫)를 여는 키를 주셨다. 그래서 이것이 있는 사람에게는 웬만한 인생의 어려움을 맞닥뜨려도 여유가 생기고 평안을 허락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속에 있는 수많은 자기 의의와 자기주장의 불순물을 처리하면, 하늘나라에 성의 부요를 주시고 하늘나라의 부요의 창고에 문을 열 수 있는 영혼의 놀라운 극적인 부요함을 허락하시는 주님의 이심을 믿어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다시 웬만한 어려움에 처해도 우리의 프라이드가 상처받고 우리 자기주장에 상처받고 그런 고통 가운데서도 이 예수님 때문에 참으면 하나님께서 희한하게도 여러분과 저에게 삶의 여유를 주시는 겁니다. 삶의 여유가 있는 사람의 얼굴과 삶의 여유가 없는 사람의 얼굴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평안을 주는데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이 그림을 그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 그림은 이 평안과 이 여유와 이 하늘의 부요는 이 세상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깨달을 수 없는 타협하는 사람들이 깨달을 수 없는 영광스러운 신앙의 부요와 비밀이 되는 겁니다. 오늘 이 내용을 여러분 교리적으로 와 닿으면 안 되는 것이고, 삶의 현장에서 여러분들이 체험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드디어 우리에게 적용하게 하시는 겁니다. 제가 5절의 말씀을 더 강조합니다. 적용이 뭐냐,

III.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서 2:5,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다. 오늘 설교 제목대로 적용 너의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앞으로 여러분들 저와 여러분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어떤 마음으로 일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실력으로 일할 것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의 마음과 그리스도의 태도로 일할 것입니까?

5절에 다시 한번 너의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이것이 2인칭 명령형 현재형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예배를 드릴 모든 성도들 예외 없이 너희 안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도 되고 안 돼도 되고 하는 곤면한 정도가 아니에요. 이 마음을 안 품으면 안 된다. 이 마음을 꼭 품어야 한다. 그리고 한 번만 품으면 되는 것이 현재형으로 계속해서 품어야 하느니라. 그럴 때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사고와 감정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 온전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온전론 할 때 사고의 온전함이라고 했는데, 주님의 이 사고방식 가치관이 우리의 삶에 감정을 이끌고 가는 강력한 열차가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이것이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에요. 어려움이 생기고 갈등이 있고 다 있을 때마다 오늘 주님께 주신 이 마음 이 사고를 품게 될 때, 그 자리가 주님의 수치 그 자리가 문제 해결을 나가는 출발점이 될 때에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평안을 물 붓듯 그래서 앞으로 하나 방법이 있습니다. 막 갈등이 있고 어려울 때 주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 부부 간의 갈등이 치받을 때 예수님 마음 예수님 마음 겉으로 또 예수님 마음, 예수님 마음,,, 그러지 말고 속으로 예수님 마음 예수님, 마음 예수님, 마음 사랑의 교회 모든 상황 사역 가운데 조금 마음이 힘들 때마다 속으로 예수님 마음 예수님 마음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예수님 마음 예수님 마음 주님의 마음은 신성의 권리가 있었지만 신성은 그대로셨지만 그 권리를 포기하신 그 나자심과 그 십자가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 자리가 우리 모든 사람들의 모든 우리 성도들의 갈등을 치유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다시 한번 축원합니다. 속으로 예수님 마음, 예수님 마음, 예수님 마음... 우리 함 해보시겠어요? 예수님 마음 예수님 마음 예수님 세 분만 해보세요. 예수님 마음 예수님 마음 예수님 마음 되겠습니까?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생애를 목표로 한 건 아니지만, 놀랍게 높여주시고 여유를 갖게 하시고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연말연시에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가슴에 손을 얹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요약
갈등과 충돌의 시대에 '겸손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 되게 하사, 분열의 아픔을 '거룩한 전화위복(해류품)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낮고 낮은 십자가의 모욕과 수치의 자리'가 '모든 고통에서 일어나는 강력한 출발점'이 되어, 주님이 '지극히 높여주시는 겸자무적의 미래'를 확신하며, 우리 사랑의교회가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으로 세계복음주의 교회들을 섬길 때, '이 민족의 상처 난 마음'이 치유되고, 전세계에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온전히 회복되기를 간구해야 한다. 
-갈등과 충돌의 시대에 교만과 자기주장 자기의 일을 처리하는 하나님의 최고의 비밀인 주님의 겸손한 마음으로 이 시대의 아픔과 갈등과 충돌을 해결하기를 간구해야 한다. 우리가 모욕과 수치로 고통당할 때에 예수님께서 고통당하신 십자가의 바로 그 자리에서 내 자기비하와 권리의 포기로 모든 고통을 이기는 극적인 대반전을 감당하는 그 모습 예수님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민족의 상처난 감정을 품어 치유하는 한국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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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12월 15일)
제목: "정신 줄 놓치지 않는 사명(The Mission that Keeps You Mentally Grounded)
-"예수님은 누구신가? 24번째
말씀: 마태복음 28:18-20
대표기도: 김영석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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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18-20,
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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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성으로 준비한 찬양대의 찬양을 주님이 기뻐받으신 줄로 확신합니다. 제가 지금 우리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 하고 있는데, 이제 2번 정도 남았습니다. 지난주는 ‘교회를 붙잡고 계시는 예수님’ 기억이 나십니까? 자 뭘 붙잡고 계신다고요? ‘교회를 붙잡고 계신다.’

오늘은 우리에게 ‘대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 그래서 부제로 제가 제목을 주제는 대사명을 주시는 예수님인데 오늘 설교 제목을 ‘정신 줄을 놓치지 않는 사명’에 대해서 근데 제가 제목을 붙여놓고도 이거 좀 과한 게 아닌가? 과한 게 아닌가, 그런데 앞 예배 마치고 어떤 분들이 목사님 딱 맞는 제목이라고 그래서 위로를 제가 받았습니다. 받았는데 지금 참 마음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라의 모든 상황도 그러고 우리의 삶의 여정도 그러고, 우리가 깨어 있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또 우리의 어떤 사역에 인생에 또 사명에 심을 오늘 좀 이렇게 내 것으로 꽉 붙잡을 수 있도록 은혜주시길 바랍니다.

마음 지키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삶은 수고입니다. 인생은 수고입니다. 어떤 분들은 인생은 삶은 계란이라고 그럽니다. 옛날 좀 그런 거 있잖아요. 옛날 유머인데,,, 물이 영어로 뭐냐? 물은 셀프다. 그럽니다. 그러면 또 군만두는 영어로 뭐냐? 서비스다. 그런 얘기합니다. 제가 오늘 하도 답답하니까 제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저희는 평소에 잘 안 하잖아요. 안 하는데, 하여튼 우리가 정신 바짝 차리고 오늘 주님께 주신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삶이 왜 수고냐? 무엇에도 그런 얘기 했잖아요? 인생은 참 수고와 슬픔 뿐이다.

개인적으로도 제가 지난 며칠 전에 우리 우리가 살아가는 참 우리 교회 목사님 같은 하영록 목사님, 우리 여기 말씀 전하고 10월 달에 특새하시고 난 다음에 미국 가서 지금 갑자기 심장이 정지가 와가지고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어떻게 코마 상태 산소 호흡기로만 연명하셔서, 이제는 이 고통을 이제 정리해야 되겠다고, 우리 손 사모님이 이 산소 호흡기 떼기 전에 내가 목사님한테 먼저 전화해야 되겠다고 제가 그 얘기를 그저께 듣는데, 내가 아!!! 정말 인생이 정말 먹먹하구나!!! 그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도 하고 그렇습니다. 삶이란 게요 이게 정말 이게 수고입니다. 민족적으로도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나라가 되어 가는 사태에 대해서 성도들끼리도 심지어 집안에서도 생각이 다른 분들이 많습니다. 근데 오늘 이 사태를 여러분, 우리나라의 사태를 겉으로만 드러나는 현상으로 보면 안 됩니다. 이게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정신 바짝 차리고 주여, 이 나라를 생명 싸개로 보호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이 나라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아래에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말씀 듣고 여러분 잘 적용하면, 하나님이 이 나라의 수많은 난제들을 한꺼번에 홍해를 건너듯이 주님이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예, 믿음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인생은 인생도 어렵고 나라도 어렵지만 사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인생 우리 영적으로 볼 때에 우리들의 본래 우리 영적인 주소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주소는 땅입니까? 하늘입니까? 우리의 영적 본석이 어디예요. 하늘나라에요. 헤븐, 더 헤븐(The Christian's address is heaven). 홈 애드레스Home address), 그리스도인들의 본래의 주소는 천국입니다. 우리의 본적이 천국입니다. 그래서 천국시민의 라이프스타일이 있어요.

저는 어릴 때 지방에 있다. 서울로 올라와 가지고 18살에 올라와서 저는 뭐 이 신앙적인 어떤 그런 흐름에 쭉 살다가 와 가지고 와 서울 사람 깍쟁이들이에요. 여기는 보니까 앞뒤를 다 살피고 그러더라고요. 아 그러면서 야 인생이 이거 만만하지 않구나! 그리고 자취할 때 혼자 집에 들어가면요 야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그리고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고 혼자 들어가는데 밝은 달만 쳐다보니 눈물만 흐른다고 눈물 뚝 떨어뜨리고... 이게 뭐냐 하면 지방에서 서울 올라오는데도 이게 맞지가 않는 거에요. 이게 이게 이 라이프 스타일이...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주소는 우리의 주소가 천국 주소예요.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요. 그런데 세상적인 가치관하고 잘 맞지가 않아요.

우리는 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현장에서 수많은 부딪힘과 가치관과 기독교 가치로 살아갈 때 갖는 수많은 갈등들이 있다는 것이에요. 그 가운데서도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또 영적으로 이런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어떻게 우리가 마음을 지킬 수 있겠는가? 어떻게 우리가 정신줄을 놓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어떻게 깨어있을 수가 있겠는가? 저는 지금 제가 60대 후반으로 제가 지난 삶을 돌이켜 볼 때, 그래도 내가 정신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일까? 제가 20살 때 선교단체에서 배운 게 하나 있었어요.

그것이 뭐냐면 연말연시에 꼭 해야 하는 것인데, OAT 카드라는 것을 기록하라. oat는 뭐냐면, o는 오브젝트(Object), a는 엑티비티(Activity), t는 타임 테이블(Timetable), 그러니까 매년 연말연시에 니 인생의 목표가 뭐냐, 니 인생의 사명이 뭐냐, 니 인생의 라이프 골 미션이 뭐냐, 인생 사명이 뭐냐, 그걸 다시 확인하고 그다음에 액티비티는 거기에 준하는 거기에 인생의 라이프타임 미션을 위한 평생의 사명을 위하여 1년 단위로 5년 단위로 10년 단위로 액션 플랜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 타임 테이블은 뭐냐 하면, 그걸 위하여 매년 매달 매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늘 그렇게 체크한 건 아니지만, 매년 연말연시에는 늘 제가 매달, 매달마다 한 건 아니지만, 연말연시에는 늘 아 내 인생의 목표가 뭔가? 내 인생의 사명이 뭔가? 그래서 흐트림없이 살아야지 집중하고 살아야지, 그 사명에 의하여 액션 플랜을 짜고 그 액션 플랜에 의하여 타임 테이블, 시간표를 지켜나가야 되겠구나. 그러니까 매년 점검하다 보니까 정신줄을 놓치지 않고 한결 같이 그래도 집중하고 지금까지 신앙생활 해온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지난 주일날 성경을 읽다가 갑자기 아!!! 이거야. 사사기계 5장이라는 말씀인데요. 사사기 5장 12절에 다 같이 우리 크게 합독하겠습니다.

*사사기 5:12,
12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가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음성으로 사랑의 교회 이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분들, 방송으로 들어오는 모든 분들, 이 시간 마음을 지키고 사명을 지키기 위하여 깰지어다. 성도들 한 분 한 분들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그걸 위하여 오늘 본문 마태복음의 18장 18절, 또 20절에 있는 말씀, 이 본문은 많이들 들었고 잘 아시는 말씀이고 또 사랑의 교회는 제자훈련하는 교회가 우리 교회에 중요한 사역의 목표이기 때문에 한결같이 46년 동안 이 사역을 해왔기 때문에 제가 맡으면 18장 이 내용은 칼 세미나 세미나 때도 제가 강의를 하기도 하고, 또 제자훈련 할 때, 한 번씩 얘기를 합니다마는 사실 주일 예배 때는 제가 이걸 한 번도 못 했어요. 근데 오늘은 너무 중요한 날이고 이런 날이기 때문에 이 말씀 그동안 좀 준비하고 있다가 오늘 이 말씀을 같이 나누는 거니까,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 또 하나 듣는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지금 얘기해주신 레마일리스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 마태복음 28장 18절부터 20절까지,

*마태복음의 28:18-20,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특별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는 이 말씀을 우리가 신학자들도 그러고 모든 성경학자들이 이건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이다. 그래요. 무슨 명령이라고요? 근데 가만히 보니까 한자가 땅 지 자가 아니고, 극할 지 자 더 할 수 없는 지극하다 지(至), 할 때 지 자예요. 그러니까 이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이라는 말은 예수님에 더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가장 시리어러스한 가장 소중한 명령인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지상명령이다. 지상명령이다. 그래서 이 말씀이 저에게는 목사 이기기 전에 저에게는 이 말씀이 주님과 나 사이에 이 말씀 붙잡고 평생을 살아오면서 정신 줄 놓치지 아니하고 마음 지키도록 한 중요한 저에게 사명의 말씀이 최고의 말씀이 되었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명은 이 사명(使命)의 말씀은 지난 2천년 교회 역사 동안에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이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 또 정신줄 놓고 싶을 때 삶이 흐트러졌을 때,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어떤 경우에도 이 말씀이 그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 말씀인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무슨 말인가 하면 이 말씀은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특정한 부류나 특정한 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초월해가지고 모든 답답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구적이고, 지속적이고, 보편타당한 예외가 없는 강력한 효력을 지녔다고 말할 수가 있어요. 그 이유를 설명할게요. 18절에도,

*마태복음의 28:18,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모든이라는 말이 예수께 나와르 시대의 하늘과 땅에 뭐예요? 모든 권세를 주었다 나 19절에도 보니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다. 그 다음 20절에도 보니까 모든 것을 가르쳐 지켜야 한다. 그래서 여기 18 19 20절에 보니까 이 모든이라는 말이 히랍어로 파스라고 그러는데 이 파스라는 말이 한국의 말에는 세 번 나온 것 같지만 사실은 네 번 나와 있어요. 그 20절 뒤에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는 저 말이 항상이란 말이 모든 이란 말이에요. 모든 경우에 함께 있으리라 그 뜻이에요.

따라서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받을 때에 모든 경우 모든 사람의 입장에서 모든 환경 환경 가운데서 모든 지역을 막론하고 모든 모든 특정한 시대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2천년 교회 역사 가운데 모든 상황에서 이 말씀은 소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씀 다시 한번 지속적이고도 보편타당하고도 영구적인 효력을 가진 말씀이다. 좀 깊이 들어가면 여러분들이나 제가 어떤 환경에도 어떤 상황이 있다. 할지라도, 이 말씀만 제재로 실천하면 그의 인생은 결코 후회가 없고 사명의 사람이 될 수가 있고 정신줄을 놓치지 않을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혼돈 속에서 이 모든이라는 말씀 속에 혼돈속에서 우리에게 최고의 처방이 될 수가 있다. 첫 번째 적용할 것은 모든 상황에서 사명 이것이 우리의 최고의 처방전이 될 수가 있다. 이 말이에요.

I. 모든 상황에서 사명이 최고의 처방이다.

-자, 무슨 말인가,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마음을 지키게 해주신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물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그 시대에는 그 시대가 지금 우리 상황보다도 예수님 시대가 더 쉬웠겠어요? 더 어려웠겠어요? 어 이건 뭐 답할 수 있죠? 예수님 시대가 지금 우리 때보다도 훨씬 더 어려웠어요. 훨씬 나라도 잃어버려 가지고 로마 제국의 압박이 있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의 형편에서는 율법주의적이고도 완고하고도 종교적인 고집불통의 사회였어요.

그러니까 정치적으로도 너무 힘들었고, 신앙생활 그런 환경 생태계 자체가 너무 어려웠어요. 또 경제적으로는 매일매일 끼니를 걱정할 정도였어요. 무엇보다도 갈릴리 지역이다. 유다지역이다. 갈라진 사회구조는 그야말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었어요. 지금보다도 훨씬 열악한 환경구조였다는 것입니다는 것이에요.

근데 예수님께서 그런 열악한 환경 구조 가운데 정치적인 구호를 가지고 이렇게 하라. 또 어떤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 이런 훈수를 두라. 이렇게 하라. 또 경제적인 돌파구는 이렇게 마련하면 좋다라고 정치적인 훈수나 경제적인 돌파구나,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여론 몰이를 하지 않으셨고, 그걸 할 수도 있으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정치 경제 사회에 휘둘리지 않으시고, 천년을 내려갈 영원한 해결 방식을 주신 주님이신 줄로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그게 뭔가 그게 뭔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평생을 집중해야 할 사명에 우선순위를 둬라. 그리고 그 사명이 주님이 주시는 최고의 처방이다. 그래서 오늘 저는 이걸 깨닫고 난 다음에 사명이 목숨보다 중요하다. 청년 시절부터 사명이 뭐보다 중요해요. 목숨보다 중요하다 살아서는 충성 죽어서는 영광 사명이 목숨보다 중요하다. 그러면 주님께서 주신 이 사명이 왜 최고의 처방이 될 수가 있을까? 조금 이따 제가 사명의 핵심 말씀드릴 텐데, 왜 이 사명이 최고의 처방이 되는가 이유가 뭔가 오늘 18절에 보니까, 그 혼란한 상황 가운데 지금보다도 훨씬 열악한 당시 고대 근동사회 가운데서 그 어려움 가운데서 왜 혼란한 상황 가운데서 이게 최고의 처방전이 될 수가 있었을까? 그 이유가 18절에 같이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28:18,
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이게 왜 이렇게 최고의 처방전이 되는가 먼저는 창조주 하나님께 성보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위임하셨어요.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사명의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믿고 오늘 마태복음, 이 놀라운 이 사명에 대한 마그라카르타, 대헌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대헌장을 우리의 것으로 알고,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알고, 이걸 여러분들의 사명으로 받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위임하신 그 위임을 오늘 우리들에게도 위임해 주시는 것이에요. 무슨 의미냐 권세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이에요.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에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 마음 예배 또 앞으로 예배 다음 다음 예배 다 예배 순서마다 수많은 분들이 오실 터인데 여러분들과 제가 사명받은 자가 되면 창조주 하나님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 위임하신 그 권세를 오늘 각자에게 허락해 주시는 줄로 확신합니다. 이거예요. 그걸 갖는 순간 여러분과 제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 너무나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세상에 대단한 사람, 권력자의 자녀가 되는 것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건 비교가 안 되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마태복음에, 마태가 앞에 10장에서 10장 1절에서 뭐라고 얘기하는 이런 말씀을 합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마태복음에 10:1,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뭘 주셨다고요. 권능을 주시니라. 소위 권세를 위임하셨느니라.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병과 땅에는 권세를 가지시고 약한 것과 땅의 모든 병들과 어려움들을 해결할 수 있는 권능, 하나의 예입니다. 하나의 권세를 주시느라.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어떤 권세를 받았습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이랬어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다 아니까 그냥 흘려버리기가 십상이에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대단한지,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하면 땅에서도 매면 하늘에서 메이고, 땅에서도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기도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장로들아 너희 장로들과 함께 기도할 때에 그 수많은 병들이 치유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믿음의 그 수준에 따라서 그 병의 치료에 대한 권세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권세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을 받는 권세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제자를 삼는 권세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권세는 어느 것 하나라도 세상이 줄 수 없는 특별한 권세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이 권세를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근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이 권세에 대해서 실감을 못하고 있고 잘 몰라요. 이 권세를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어요. 만약에 어떤 사람이 요즘은 크루즈 타는 분들이 가끔 있는데, 어떤 사람이 꿈에 그리던 크루즈를 타게 됐어요. 크루즈선을 탔는데 가서 보니까 선상에 가보니까, 그 식사가 너무 음식이 너무 비싸고 좋아 보이는 거예요. 그래 갖고 감히 사 먹지는 못하고, 한쪽 구석에서 집에서 싸온 멸치볶음, 통조림, 빵 인스턴트 이런 식으로 끼니를 떼우세요. 마침내 크루즈 여행이 끝나서 배에서 내렸는데 이분이 궁금한 마음에서 이 크루즈선의 저 비싸 보이는 저 식사는 얼마나 되느냐? 이래 물어보니까 크루즈 탑승권에 식사 가격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뒤집어져 버렸어요.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권세는 크루즈 티켓하고 비교가 안 되는 것이에요. 비교가 안 되는데 우리는 조그마한 바람에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면서 들썩들썩하고, 여러분, 정말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에 대해서 믿기는 믿고 있습니까? 믿고는 있느냐구요. 믿기는 하느냐고요.

진짜 이거는 세상 폭풍이 불어도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는요 놀라운 것이고, 이걸 여러분들의 것으로 확인하고 체험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자 이런 얘기를 하면 많은 분들이 그건 열두 제자들이나 받은 것이지. 우리가 어떻게 받습니까? 그럴 때 예수님께서 아니야. 70인도 똑같애. 70인 전도대를 파송하면서 이 권세 위임에 대해 70인 전도대, 누가 보면 십장 구절을 보니까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 나라가 너에게 가까이 왔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누가복음 10장 17절에 뭐라고 얘기하는가?

*누가복음 10:17,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아멘, 그 70인들이 우리가 뭐 하겠나 그러니까 아니야. 그러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권세를 가지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항복하는 그런 권세를 70인도 받은 줄로 믿습니다. 이거 다 보통 사람들이었어요. 그 70인은 예수님의 권세를 위임받은 보통 사람들이었어요. 따라서 주님이 주시는 그 사명이 내게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 필부필부(匹夫匹婦) 보통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이 권세를 주신 줄로 믿으셔야 되실 것이에요. 이 권세를 갖고 말을 하고 이 권세를 가지고 글을 쓰고, 이 권세를 가지고 여러분들이 주신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발휘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 제가 사명은 이 사명은 모든 사람에게 주신 처방전이 된다고 그랬고 두 번째로는 우리에게 적용할 것이 뭐냐면 이 사명의 핵심이 뭔가? 사명의 핵심은 ‘사명의 핵심은 생명을 살리는 제자 삼는 사역’인 줄 믿고 이게 뭐냐 하면,

II. 사명의 핵심은 ‘생명을 살리는 제자 삼는 사역’이다.

-마태복음 18장 18절부터 20절까지 특별히 19절 20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면 세례를 베풀고,,, 이건 내가 다 외우니까 안 해줘도 돼요. 뭐 이건 뭐 수십 년 동안,,, 옛날에 모든 모든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모든 백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고 세례를 주고, 내가 너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게 뭡니까? 제자훈련의 대헌장인데 예수님의 대사명인데 핵심이 뭐예요? 히랍어의 그 히랍어의 구절은 2, 3절 4,5절이라 있더라도 핵심 동사가 있어요. 여러 내용들이 18절 19절 쭉 나오다 거기에 핵심 주 동사가 있어요.

그것이 뭐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모든 민족으로, 모든 열방으로 제자를 삼아라는 제자 삼는다는 이 말이 2인칭 복수 명령형이에요. ‘마떼 튜사티’라고 그래 가지고 이거는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우리 모든 주의 권속들에게 주님께서 이 내용은 예수님 이제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한 7일에서 11일쯤 지나고 난 다음에 주신 예수님 승천하시기 전에 대사명이셨어요. 그러니까 이 사명은 ‘마세투사테’라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제자를 삼으라 라는 이 내용 소위 생명의 역사를 가지고 생명을 살리는 제자를 삼으라는 이것이 주동사예요.

그리고 거기에 너희는 가서 ⓵가라는 말과 그다음에 ⓶세례를 주라는 말과 그다음에 ⓷가르치라는 말과 고잉, 벱타이징, 티칭(Going, Baptising, Teaching), 이라는 이 말은 파티스플 분사형이에요. 분사는 주동사가 아니에요. 분사는 동사처럼 보이지만 동사가 아니고, 분사는 주동사를 꾸미는 것이에요. 무슨 뜻인가, 우리가 왜 가느냐? 왜 선교하고 왜 전도하느냐?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제자를 삼기 위하여,,, 우리가 왜 세례 주느냐? 제자 삼기 위하여,,, 왜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가르치는가? 제자 삼기 위하여,,, 이것이 핵심이라는 것이에요.

그 당시에 환경 자체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그 다음에 사회 구조 자체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엉망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주님께서는 무슨 정치적인 혼수 두지 않으시고 천년을 갈 2천 년을 갈, 생명을 살리는 제자를 삼는 이 일을 감당하라. 이거지요. 별로 반응도 안 하고 대답도 안 하고 있어요. 제자를 삼으라는 생명을 살리는 제자를 삼는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가장 우선 순위로 주신 대사명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 듣고 아 바울이 디모데가 충성된 사람을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친 것처럼, 주님, 저의 디모데는 어디 있습니까? 제가 제자를 삼고, 양육하고, 키운 그런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저의 충성된 사람 어디 있습니까? 아니 내가 또 섬겨야 할 바울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식으로 늘 질문을 하면서, 나의 디모데는, 그리고 당시에 초대교회에 안디옥교회 라는 모범생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가 세워지고 난 다음에 사회구제, 봉사 이거 하기 전에 예루살렘교회는 사회구제 봉사하다가 교회가 어려워지고, 시험에 들었는데 헬라파 유대파가 시험 들었는데, 안디옥 교회는 아니야. 제사 삼는 것이 우선이야,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제사 삼는 것을 통하여 우선적으로 양육하고 가르친 줄로 믿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대형교회입니다. 대형교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소형 교회도 많은 일들이 있지만, 대형 교회는 예를 들어서 우리 교회 암 환자들이 소형 교회보다 훨씬 수십 배로 많습니다. 수많은 어려운 난제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큰 교회를 이 시스템화 해가지고 어떻게 잘 끌고 나갈 것인가?

어떻게 리더십을 갖고 잘 할 것인가? 그것도 필요는 하지만, 그것이 저의 목표가 아니에요. 저의 한결같은 관심은 교회가 커지더라도 어떻게 하면 생명을 살리는 이 제자 삼는 가장 중요한 대사명을,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이 이것을 자기에게 주신 주님의 음성으로 알고,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으로 알고, 끝까지 이것을 지켜 나갈 수가 있을 것인가?

이 센스를 어떻게 약화시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 교회는 수많은 직분들이 있습니다마는 이 제자를 삼는 직분이야말로, 예를 들어 순정의 역할을 하며 다른 사람 말씀으로 섬기고, 고등부 교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청년대학부 리더들을 하면서 제자 양육을 하는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교회가 끝까지 감당해야 할 가장 우선순위의 사역 1순위다. 이 말이에요. 여기에 대한 담임 목사로서 이 센서를 놓치지 않으려고 어떻게 하면 끝까지 지속해 나갈 수가 있을 것인가? 오늘 수많은 우리 주위에 일어난 일들이 있다할지라도,

지난 천년 2천 년을 내려간 예수님의 우리에게 하락하신 지상사명을 생명을 살리는 제자 삼는 이 일을, 우리 교회나 한국교회가 끝까지 가야할 줄 믿습니다. 이걸 하지 못하도록 이 사회는 수많은 언론 플레이가 있고, 여론전이 있습니다. 당시 1세기 때도 종교 지도자들이 여론전을 펼쳤습니다. 돈을 주고 사람을 시켜가지고,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전략을 짰습니다. 가짜 뉴스를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부활과 복음을 완전히 왜곡하는 엉터리 정보를 만들어냈습니다. 소위 거짓 정보 공장을 민든 것입니다. 거짓 여론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필요했는데 예수님 시대 때는 앞에 28장 앞부분에 다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로마 군인들을 거짓, 거짓을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로마군인들을 돈을 주고 사가지고, 엉터리 여론을 만들었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진짜가 아니라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거짓 정보를 전했습니다. 이것이 입에서 입으로, 짧은 시간 내에 예루살렘 전체에 거짓 정보가 퍼져나갔습니다. 골목마다, 시장마다, 심지어 성전 안에도 거짓 정보가 판을 쳤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이 흉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는가? 또 다른 여론전을 펼치셨는가?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오히려 사명과 비전으로 대사명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주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도 주님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론도 지나가는 겁니다. 정치도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명은 영원한 것입니다. 오늘도 이 세상에서 거짓 여론을 만드는 거짓 정보 공장들이 많습니다. 인터넷 앞에 앉아서 거짓 여론을 뻔뻔하게 만드는 양심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시대적 상황에 흔들리지 말고, 예수님 시대에도 거짓 정보 공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대사명을 주셨는지를 이해하고, 우리 모두는 끝까지 생명을 살리고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이루는 데, 전력 투구를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한국교회는 역사 앞에서 시대 앞에서 대사명으로 견뎌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첫 번째는 이 사명이 처방전이 되고, 이 사명의 핵심을 제가 말씀을 드렸고 이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명을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놀라운 약속이 있습니다. 놀라운 대사명을 지키려면 놀라운 약속 이게 주님의 방법인데 20절 뒷부분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마태복음 28:20,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히브리어 임마누엘, 마태복음은 이 마태가 성령의 감동에 의하여 이 말씀을 기록할 때에 마태복음 마태복음의 1장에서 예수님이 오시는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그가 죄인들을 구원하십니다.

임마누엘을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1장에서 임마누엘을 말씀하신 그 마태가 오늘 28장 마지막 부분에 대사명을 지키는 자에게 우리가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고백하는 죄인이 구원받는 이래 하나님의 임마누엘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이 땅에 수많은 혼란한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가 제대로 살아가기 위하여 주님께서 우리가 주신 약속의 말씀이 뭐냐? 대사명을 지키는 자 항상 파스 언제나 함께 하리라. 우리에게는 이 두 가지를 기억해야 되는 것이죠.

사명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 이 하나님의 소위 임재,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 임마누라의 은혜 대사명을 실천하기 위한 하나님의 임재, 우리가 마음 지키고 정신 줄 놓치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의 인재가 필요한 것입니다. 처음 제가 말씀을 드린 것처럼 인생의 수많은 환경의 문제, 가치관의 문제, 국가적인 문제 이런 거 앞에서 우리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아니 여러분들의 결혼 생활 직장 경제 정치 질병 내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뜨는 모든 분들이 있을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 모든 어려움들을 치유할 수 있는 최고의 치유제가 뭔가?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한다.” 하나님의 임재에요. 특별히 누구에게 주시는가? 다시요.

제자 삼는 사람들에게 제자 삼는 큰 사명을 갖는 자들에게 오늘 이 하나님의 임재를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어릴 때 쓰던 영어가 있어요. He is last commission, Is our first concern.
‘주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은 우리의 첫 번째 관심사입니다.’ last commission, 나의 first concern 이 되면, 주시는 축복이 우리와 함께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순종하다 보면 수많은 문제들을 만나게 되지만 그 모든 문제들이 주님의 임재를 통하여 처리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제가 제자훈련을 하다 보면 별별 사람들이 다 있어요. 별별 환란이 다 있어요. 별별 박해들이 다 있고 오만 일이 일어납니다. 제자훈련생들 가운데 베드로처럼 물에 뛰어들겠다는 사람, 또 야고보 요한처럼 높은 자리에 앉아서 인정받겠다는 사람, 말은 안 해도 속으로 그러니까 겉으로는 뭐 겸손한 것처럼 속으로는 사실 그런 사람들 에 빌립처럼 꼬치꼬치 질문하는 사람들, 열심당 시몬처럼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속으로 했다가 언젠가는 나라를 뒤집어야지, 사람들 그 마음에 걸린 사람이 도마예요. 도마처럼 꼭 필요한 자리에는 빠지는 사람, 그리고 자기가 빠져놓고 꼭 두 번 반복하게 하는 사람들, 별별 사람들이 다 있어요. 그런데 이 사명을 통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요. 성려님께 의존하고 임재를 느끼면 거기에서 온유하고 인내하게 되는 것이에요. 이 사명을 통하여 하나님 임제를 통하여 이 사명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수많은 문제들을 그 임재가 덮어주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임재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우리가 확신하고, 은혜를 받으면 일반적으로 담력을 주시고, 담대함도 주시는데 너무나 놀라운 것 하나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통하여 사명을 통한 임재를 갖게 되는 것은 끝까지 영적인 신선도를 유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창의력을 가지고 계속 신선도 있게, 계속 프레쉬하게, 그래서 저는 20대 초반에 이 사명을 갖고 지금까지 45년 동안 제가 사역 자 길을 들어서고 난 다음에, 이 사명이 늘 저에게는 우선순위가 되다 보니까 그 사명을 통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좀 민감해지다 보니까, 어떤 사역도 구닥다리가 아니고, 매너리즘에 빠지자니하고, 훈련도 예배도 특새도 모든 것들이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주님을 찬양합니다. 프레쉬... 그래서 제가 영어 단어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단어를 아시는 분은 알 거예요. 어떤 영어 단어를 좋아하느냐 그대로 프레쉬입니다. 그렇죠. 프레쉬 정도가 아니라 신선도 유지,,,, 지금부터 한 7~8년 전에 사우스아프리카를 제가 그 안에서 운전을 하게 되는데 밤에 한 12시쯤 돼 가지고 운전을 딱 멈추고 깜깜한 밤하늘에 하늘을 보니까 수많은 별들이 막 쏟아져서 내려오는데요. 별이 내려오는 게 아니라 이렇게 보였어요. 보이는데 갑자기 머리를 섬광처럼 팍 치는 게 뭐냐 하면, nf NF,,, 뉴 파운데이션 퍼 뉴 퓨처-New foundation for a New future.) 새로운 미래를 향한 새로운 토대. 수년 전에 우리 교회 목표였잖아요? 새로운 미래를 향한 새로운 토대 그때 한때가 아니라, 늘 주님의 임재를 실감하고 대사명을 가지고 주님의 임재를 느끼는 자에게는 끝까지 창조적인 에너지와 창조력과 영적 신선도를 끝까지 유지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는 줄 믿으셔야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주님이 항상 너와 함께 있음을 확실히 믿는 믿음에는 아주 신선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생명을 살리는 제사 삼는 일을 유지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나이교의 모든 성도들이 생명을 살리는 제자 삼는 사역을 하는 동안에 늘 창의적이고도 늘 신선한 은혜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제가 한 예화를 들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대항해 시대에 14세기, 15세기 대항해 시대에 그때 수백 년 전의 선원들은 그 큰 바다가 대항들이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바다 지도 해상지도 그 지도를 해도를 지르는 지도를 제작하면서 늘 두려움이 많아가지고 아직 가보지 않은 그런 광활한 바다를 그리고 거기에 두려움이 많았고 또 들리는 소문도 있고 그러니까 여기는 악마의 터널이야 여기는 귀신의 소굴이야, 여기는 사탄의 터널이야, 여기는 악마의 목구멍이야, 이런 식으로 필리핀 해도 같은 데 이런 데는 지명을 적어놓았어요. 마치 우리가 인생을 항해할 때, 인생 지도 곳곳에 두려움의 집 염려의 장소, 괴로움의 동굴 절망의 골짜기 같은 지명을 나도 모르게 뭐 직접 쓰진 않지만 그렇게 표시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에요. 근데 14세기 15세기 시대에 영국의 헨리 5세 때 유명한 항해가였던 설 존 프랭클린이라고 있었어요. 존 프랭클린 경이라 믿음 좋은 분이 있었어요.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해도, 바다 지도를 손에 넣으면 거기에 쓰여있는 악마의 집 귀신의 속을 사탄의 터널 악마의 목구멍 그런 내용들은 다 치워버리고, 거기다 그 대신 뭐를 썼는가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이 임자하신 곳, 오늘 이 땅에 수많은 삶의 여정, 미지의 삶의 바다, 인생의 사명지도 곳곳에, 정치의 불확실성에 두려움의 집과 괴로움의 동굴과 절망의 골짜기란 지명을 온갖 거짓말로 거짓 정보로 새겨놓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지명을 보면서 불안해하고 때때로 주저앉아 버릴 것인가? 아니면 그 위에다가 대사명을 지키는 사람이 주시는 주님의 권세와 주님의 임재를 믿고,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그 앞으로의 모든 땅들이 임마누엘의 땅이 될 것이라는 이름을 새겨놓을 것인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 라는 약속의 말씀을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인생의 항해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52장 1절 다 같이 읽고 마무리할 것입니다. 시작,

*이사야 52:1,
1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요약
-혼란의 시대일수록 올바른 주님이 주시는 사명이 최고의 처방인 줄 믿고, 주님 주신 사명에 최고의 우선순위를 두고, 우리의 마음을 지켜가야 한다. 사명받은 자에게 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믿으며, 우리에게 병 고치는 권세, 용서하는 권세, 제자 삼는 권세, 생명을 살리고 역사를 살리는 권세를 허락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어떤 상황에도 정신 줄 놓치지 말고 생명을 얻는 제자 삼는 사역에게 집중할 때에 이 땅이 어둠이 빛으로 변하는 놀라운 역사의 전환이 일어날 줄로 믿으며, 홍해를 가르는 기적의 은혜를 주실 것을 기대하며, 큰 사명을 큰 임재의 능력으로 완수하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여 지상명령을 이루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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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11월 24일)1부-4부 세례식.
제목: "예수님과 연합됨"(In Union with Crist Jesus!)
말씀: 로마서 6:1-4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영광찬양대 외
대표기도: 이순종 부목사님 외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외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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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1~4,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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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열린 마음 또 열린 귀를 주셔 가지고 오늘 모두에게 다 우리 성도들 모두가 다 눈열고 귀 열어서 살아계신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저는 도구이지만 또 우리가 함께 이 학습과 세례식을 거행하면서 너무나 영광스러웠습니다. 2천년 교회 역사는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세상 정부는 왔다갔다 해도, 하나님의 교회는 영원한 것입니다.

오늘 409명, 우리 학습, 세례를 받게 되었는데, 우리를 세례받은 분들이 대부분이시고, 또 많은 분들이 학습세례를 받으시는데 성 어거스틴은 이 세례를 뭐라고 말씀하는가? 하면,

◇세례는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 어거스틴-
-세례는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뭐예요? 말씀이다. 오늘 이 예배에 참여하시면서 눈으로 보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오늘 평소보다 제가 시간을 짧게 집중해서 말씀을 드릴 테니까, 정말 눈 열고 귀어로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 제목은 세례는 눈으로 보는 하나님 말씀이라고 그랬는데, 주님과 연합된 거에 대해서 주님과 내가 어떻게 연합되었는가 여기에 대해서 좀 말씀을 집중하겠습니다. 오늘 3절에 보니까, 본문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

*로마서 6:3,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무릇 크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뭘 받은 우리는, 세례를 받은 우리란 세례를 우리 이미 받았던지 오늘 받으실 텐데 예술인과 세례를 만든다. 무슨 뜻인가 하면, 예수님과 합하여 세례를 받는다. 그 뜻이에요. 그러니까 세례는 주님과 연합된 것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또 오늘 다 세례받은 여러분들은 우리가 주님과 연합된 것입니다. 연합되었다. 이 세례라는 말이 이 그릭으로, 헬라어로 무슨 뜻인가 하면 밥티죠, 라고 그래요. 밥티조란 말은 여기서 영어로 ‘뱁타이즈(Baptais)’가 나오는데, 이게 정체성이 바뀌었다. 정체성이 바뀌었다. 예를 들어서 흰 옷감이 있는데, 그 흰 옷감에다가 물을 드리는 자주색 물을 들이게 되면 흰 칼라가 자주색 컬러로 바뀌게 되는 겁니다. 그니까 흰 칼라가 자주색으로 정체성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연합되었다. 그랬을 때 예수님의 색깔을 내게 염색하는 것이에요. 다시요. 예수님의 색깔이 내 색깔이 되는 것이에요. 그걸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명을 했냐면, 4절에서 이와 같이 나와요. 4절에 뭐라고 나왔냐면,

*로마서 6:4,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으므로, 그와 함께 뭐가 됐습니까? 장사되었다. 우리 육신이 죽는다 육신의 생명이 끝나면 죽는다. 그러지만 예수 믿는 분들은 영적으로 새롭게 거듭났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세례를 받는 그 순간 이미 세례받은 그 순간, 예수님의 주구심과 연합이 되는 것이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내 죽으심이 동일한 겁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내 죽으심이 되고 예수님의 생명이 내 생명이 되고, 예수님의 의로우심이 내 의가 되는 것이에요. 이게 너무 황송하고, 이해가 안 가는 그런 측면들이 있지만 우리같이 죄성을 지니고 부족한 인생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생명이 내 생명이 되고, 예수님의 죽으심이 내 죽음이, 특별히 예수님의 의가 어떻게 내 의가 되는가, 이건 기가 막힌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다시요. 이 세례는 눈으로 보는 하나님의 뭐라고요? 말씀인데 예수님과 연합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 내 죽음, 예수님의 생명 내 생명, 예수님의 거룩이 내 의로, 바뀌게 된다는 겁니다. 밥티죠, 이 색깔이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저는 청년 시절에 이 복음을 깨닫고 난 다음에 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그 죽으심 내 죽으심이 됐겠구나!!!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나도 그 순간 죽는 거구나!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죠. ♬오주여!!~~~ 내 주여 내 아버지여 이 몸을 사랑하사 생명 주셨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기 싫대 이 몸도 그 순간에 죽어 버렸소... 이런 노래는 없어요. 저희들이 만든 거예요. 그냥 예수님이 십자가 돌아가실 때, 이 몸도 그 순간에 죽어버렸소. 이것이 놀라운 ‘주님과의 연합됨’을 말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의 이 연합이란 건 이 연합을 통하여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예수님의 의가 내 의가 돼 가지고 우리의 연약함과 수치와 부끄러움들이 다 있지만, 뭐라고 돼 있냐면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좀 오늘 말씀으로 하면 연합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거는요 정말 하늘도 놀고 놀라고 땅도 흔들리는 사건이에요.

우리가 연약한 자에게 주님과 연합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의가 우리 것이 돼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 권세가 얼마나 은혜가 있는지 우리 모두가 다 주님과 연합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에 무한 자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잃어주신 것이에요. 예수님의 권위 예수님께서 우려해 주신 놀라운 특권들을 우리가 받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주님을 찬영하는 것이에요. 새로운 새로운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 새로운 것이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되는 거예요. 야~~ 세상에 어떤 종교와 비교가 안 되는 것인데 이 땅에는 모든 종교 가운데 그 종교의 창시자와 인격적으로 연합할 것을 제시하는 종교는 기독교 외에는 없어요.

기독교 예수 그로서는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우리 속에서 주님과 인격적으로 연합하고 주님과 교제하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과 합하여 세례를 받는 그 순간 우리의 과거는 죽고, 예수님과 합하여 새롭게 소생되는 것입니다. 미래의 이력서를 쓰게 되고, 그리고 심지어 에베소서에 보면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여정하셔 가지고 우리를 택하시고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 주셨다는 거예요. 어마어마한 사건이야. 본래 우리는 죄 때문에 우리가 병이 들어 가지고 영적으로 병이 들어 가지고 누더기 차림이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 나올 때 예수님은 우리를 새로운 신분 만들어 주시고, 새로운 의회의 옷을 입혀주시고, 우리를 외롭게 하시고 새로운 신분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주님과 함께 우리가 무한하신 의존과 순종을 무한하신 자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오죽하면 오죽하면 어떤 분이 그래서 예수 맺게 되는 것은 프럼 프리즌 투 프레이즈(From prison to praises!),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 찬송 생활을 하는 자유인이 되게 된 것이다. -(from prison and becoming a free person who lives a life of praise). 감옥 생활 같은 그런 지독한 삶의 여정 가운데서, 이제는 찬송 생활할 수 있는 새로운 신분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게 주님과 연합 때문에 의미, 특별히 주님의 의가 내 의가 되어 계신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예 주님과 주님과 연합되모로 말미암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오늘 6절에 보니까 오늘 본문 6절에 보니까,

*로마서 6:6,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아멘, 예수님과 연합됨으로 나타나는 제일 큰 현상 중의 하나가, 더 이상 죄의 종 노릇을 하지 않는 줄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죄의 종노릇 더 이상 죄 종 노릇 하지 않는다. 이 말은 뭐, 뭐 죄의 종살이 뜻보다도 오늘 우리 식으로 이해할 때는요. 우리가 죄에 대해서 민감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죄의 종 노릇을 하지 않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면 옛날에는 세례받기 전에는 그냥 뭐 웬만한 죄는 다 그대로 넘어갔어요. 약간 마음의 어떤 어떤 기준이 달라져 가지고, 옛날에는 그냥 다 넘어갔는데 이제는요 남에게 조금 뭐라 그럴까, 남에게 쪼끔 좋지 않은 말을 한다든지 어려운 막 큰 남의 칼 것 같은 얘기를 하면요. 마음이 하루종일 찜찜해요. 안 찜찜해? 안 찜찜한 분들이 이상한 사람들이에요. 예수 믿고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 남을 함부로 비난하고 남에게 어려운 말을 하고 이렇게 돼 가지고 마음이 평안하다면 그건 정상 아니에요. 마음이 찜찜한 거예요. 그리고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어 뭐 어떻게 하다가 어떻게 거짓말을 했다. 합시다. 거짓말하고 난 다음에 이런 평강에 임합니까? 예수 안 믿는 세계도 힘들지만, 예수 믿는 세계는 그게 하루 종일 자신을 괴롭히는 거야.

그러니까 좋은 의미에서 죄에 대해서 민감해진 것이에요. 그 이유가 뭔지 압니까 예수님과 연합되므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영이 우리 속에 들어오신 것이에요. 예수님의 새 마음을 우리가 얻게 된 것이에요. 예수님의 새 마음을 품게 된 것이죠. 예수님의 새 마음을 품고 예수님과 연합되니까. 이전에는 죄에 대한 어떤 가치 기준 평가 아닌가 이런 것들이 훨씬 더 민감해지고, 훨씬 더 예민해진 것이에요. 그야말로 점점 더 청정실이 돼가는 것입니다. 점점 청정실이 돼 가니까 더 깨끗해지니까 이러면 깨끗한 방에는 오염된 것이 들어오면 표가 납니까? 안 납니까? 평온하죠. 근데 돼지 우리에는, 막 그 더러운 것이 더 들어오면 표가 납니까? 안 들어옵니까? 있는지 없는지 표도 안 나요? 돼지 우리의 돼지 1마리가 더 들어와갖고 막 난리가 나는 거예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런데 깨끗한 데는요 바퀴벌레 하나만 들어와도 힘들어해요.

별 반응도 안 하시고,,,이 죄에 대해서 우리가 예민하면 예민할수록 죄의 종 노릇 하지 아니하고 주님과 더 연합하게 되는 겁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오늘 세례받는 분들에게 이 죄에 대한 예민함을 통하여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거룩한 청정실이 회복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서 사랑의 교회나 한국 교회가 지난 12월 27일 날, 우리 차별금지법이다. 동성애다. 이런 거 우리가 반대한다고 그랬을 때, 그냥 우리 무슨 억하심정에서 반대하는 게 아니고, 성경에서 우리 동성애 하는 분들의 한 분 하면 인격은 소중하고, 그분들을 우리가 정말 복음의 능력으로 사랑하고 그러지만, 성경에서 동성애에 대해선 예수님은 이거는 잘못된 것이다. 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으니까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다른 사람보다 더 민감하니까 우리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이에요.

성소수 인권이라는 그 주장 아래,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제대로 창조 질서대로 자라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질서에 이게 가정을 이룬다든지, 그다음에 하나님의 창조질서 속에 결혼의 축복이라든지. 이런 거 관심이 없게 되면요.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대한민국 가정이 다 허물어지게 되는 것이에요. 대한민국 가정이 다 허물어지면 가정에 제대로 서지 않으면 이 나라 장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 가지고 한국 교회 우리 차별금지법에 대한 우리 한국 교회 110만 명이 모이고 유튜버 다 해가 150만 명, 260만 명이 모였는데, 그리고 방송에 이게 체크 안 되는 사람들 다 해외 들어오고 하는 거의 300만 명이 동시에 예배를 드리는 케이스는 없는 거예요. 이 300만 명이 다 어떻게 되냐면, 하나님께서 죄의 종노릇 하지 아니하고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알려주십시오. 다시 말하면 로마가 왜 망했습니까?

로마, 로마는 그 남색하는 것 때문에,,, 그것 때문에 로마가 막 이런 거 우리가 알게 되니까. 하나님 아버지 여러분들이요. 저는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지만 동시에 세상을 향하여 보냄 받은 소명자가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지면 세상을 향해 보냄 받은 소명자의 삶을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영권을 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올해 10.27의 은혜가 내년 10.27에는 전 세계가 새로워지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마음을 묻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특권과 권세와 능력을 삶을 통하여 확증시켜 주시는 거예요.

할렐루야!!! 예 자 그렇다면 첫째, 우리가 주님과 연합되어 가지고 그 다음에 죄에 대해서 민감해지고, 내 마음을 청정실이 된다면 어떻게 그리 할 수 있을까? 오늘 세례받는 분들은 이미 세례받는 여러분들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주님과 더 연합시키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더 청정실로 만들 수 있을까요? 오늘 보니까 뒤에 보니까,

죄와 싸워 우리를 의의 병기로 드리라. 라고 그랬어요. 그러면 죄와 싸우는데 죄와 싸우는 방법이 막 부정적으로 막 그냥 막 맨날 죄가 뭐냐고 막 찾고 막 죄 분석하고 연구하고 막 죄하고 막 고통하고 여러분 그렇게 해갖고는 우리 인간은 다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윤리나 이런 거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해결이 잘 안 돼요.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뜻이에요. 위조 지폐 방지를 하기 위하여 위조 지폐만 계속 묵상한다고 위조 지폐가 감별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지폐가 뭔지를 우리가 계속 손에 달라붙을 정도로 계속 진짜 지폐를 손에 만져봐 가지고 본능적으로 아 진짜가 무엇인지를 터치감으로 알게 되면, 가짜가 구별되는 것처럼,,, 여러분 우리가 가짜 작품은 가짜를 우리가 어떻게 분별합니까?

이게 가짜다 가짜다 가짜다 계속 보면 구별이 안 돼요. 명품이 뭔지, 진품이 뭔지, 명작이 뭔지, 걸작이 뭔지, 계속 보게 되면 우리가 가짜가 뭔지 수준 낮은 것이 무엇인지, 확정하게 되는 것이에요. 무슨 말인가 주님과 연합을 통하여 우리가 죄에 대해서 예민한 이 은혜를 가지고 우리가 살아야 되는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나님, 하나님 나라의 명작 하나님 나라의 걸작 하나님 나라의 명품이 돼서 눈이 열리게 하여 주십시오. 그게 뭡니까?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에게 오늘 세례받는 분들이나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걸작과 명작과 하나님의 명품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죽하면 여러분 야곱 같은 사람이 있는데, 야곱은 본래 다 뭐 깨끗하고 도덕적으로 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야곱은 다 여러분이나 저나 똑같은 우리와 비슷한 본성을 가진 사람이에요. 근데 야곱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가 야곱은 2가지 변곡점이 있었어요. 2가지 극점이 있었어요. 하나는 뭐냐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했을 때, 큰 씨름하는데 어떻게 씨름하는가? 창세기 32장 26절, 시작,,,

*창세기32:26,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의 관심이 뭐였냐면요 야곱이 자기 부족함을 막 떨어내고 막 고통을 회귀하고 그건 있지만, 야곱에 더 큰 관심은 하나님의 축복인에게 임하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에 귀한 것들을 보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이 내게 예비하신 것들이 내게 접목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오늘 이 시간 마음에 서원한 것은 뭐냐면 하나님이 내게 축복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세어보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민감하고, 하나님의 명품 하나님의 걸작 하나님의 명작에 대해서 계속 관심을 갖게 되면, 여러분과 제가 죄에 대해서 영적 청정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무엇이 여러분들의 축복이 됩니까? 신앙생활 하면서 무엇이 여러분들에게 주림과 더 연합하도록 만듭니까 많은 분들이 오늘 그래요. ⓵주일 예배가 축복이 된다고 맞습니까? 그럼 이 주일 예배에 대해서 더 마음을 쓰는 거예요. 또 ⓶말씀을 읽을 때, 성경을 읽을 때 축복이 된다면 성경 읽는 데 마음을 더 집중하는 거예요. 그리고 ⓷찬성하는 가운데,,, ‘주사랑 하나 없고 주은의 끝없네 주 본능을 사람이 어찌 알까’,,,, 이 찬성하는 가운데 내 마음이 축복이 되고 은혜가 되고, 참말 하나님의 귀한 은혜들이 하나님의 그 본능과 능력들이 막 내게 와닿는 것이에요. 더 느껴진다면 그 찬송을 더 귀하게 찬양하고 더 내 입술에 고백으로 파수꾼을 세워가지고 찬양으로 엎조리면 되는 것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우울증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을 말씀으로 섬기고 다른 사람을 자 봉사하고 섬기면 우울증이 사라진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섬기고 봉사하는 그 일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면 그것이 내 축복이 되는 것이에요.

한마디로, 능동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축복에 우리가 더 집중할 때 예수님과 더 연합하게 되고 그 안에 완전히 잠겨서 우리 속에는 오염된 것들을 정리할 수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오늘 2024년 이 가을에 세례받는 여러분들에게 제가 오늘 선물을 드립니다. 이미 세례 받은 분들에게도 선물 하나 드리고 싶어요. 그것이 뭐냐? 우리에게 진짜 축복이 되는 게 뭘까? 우리에게 진짜 하나님과 연합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 뭘까? 저는 그건 축복된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판에 새기고 늘 확인하고 암송할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여러분에게 놀라운 축복의 채널로 만들어주시는 것이에요. 그것 때문에 우리가 죄를 이기도록 해 주시고 추님과 연합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특권을 더 누리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달라스 윌라드라는 유명한 신앙 사상가가 있습니다. 한 15년 전쯤 우리 교회 와서 설교도 한번 하시고 그렇게 하셨어요.
이 달라스 윌라드가 뭐라고 얘기하느냐 하면요

"우리가 받은 축복에 대해서도 더 예민해지는 최고의 방법이 성령의 영감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는 것이다."
- 달라스 윌라드-

그랬어요. 그래서 그거 아주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었는데 재밌는 표현인데 여러분 나침반 아시죠. 컴패스(compass), 나침반 아시죠? 나침반의 바늘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잘 모르십니까? 나침반의 바늘은 항상 정 북을, north, 북쪽을 향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나침반은요, 막 막 우리가 떨어뜨리고 뭐 그다음에 이리저리 놀고 흔들어도, 항상 딱 놓으면 나침반 바늘은 어디를 향한다구요? 북쪽을 향하게 돼요. 북쪽을 뭐 서쪽으로 던지고 동쪽으로 막 이래 돌려놓아도 바늘을 놓는 순간 즉각적으로 나침반은 바늘은 정북 향항으로 돌아가는 것이 성경 암송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성경 암송을 하게 되면, 우리의 생각을 성경에 축복과 의례된 생각으로 늘 정 북으로 향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에 수레를 타고 임하시는데, 말씀 암송의 강력한 불병거를 타고 임하시는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그 마음속 여러분들 암송된 거 저는 저는 힘들 때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 구원의 하나님을 찬성할지로다 그럴 때마다 짐이 있을 때마다, 아 하나님의 날마다 내 짐을 져주시는 것이야 그리고 그 구원의 하나님을 찬성하고, 주사랑 하나 없고 주 은혜 끝없네!!~~ 주권능을 사람이 어찌할까 크고 놀라운 평화가 내게 있네!~~~ 이런 이런 것들이 말씀을 통하여 내게 확정될 때에, 이것이 언젠지 정 북쪽, 그러니까, 나침반의 북쪽으로 하듯이 하나님 축복에 대해서 나침반이 딱 행하도록 만들어주신 그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요새는요. 뭐 하면 좀 부족하다고 그럴 때 야 민수기 11장 23절에 뭐라고 나와있느냐 하면,

*민수기11:23,
23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내가 이제 내게 내 말이 내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여호와의 손이 짧지 않다 오늘 이 시간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잘 새겨진 암송된 말씀처럼, 여러분의 암송으로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어떤 힘들 때라도, 하나님께서 열왕기하 6장 17절을 보니까,

*열왕기하 6:17,
17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불말과 불병가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그랬어요. 사랑의 교회의 모든 성도는 삶의 여정 속에 불말과 불병거가, 불병거의 은혜가 이 세상에 철병거가 여러분들을 괴롭혔다 할지라도, 하늘의 불병거가 여러분들을 보호해 주실 것이다. 이걸 믿고, 이 말씀에 연합되고, 그렇게 하는 순간, 우리 마음 속의 죄에 대해서도 민감해지고, 주님과 더 연합되게 되는 줄로 믿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은혜가 오늘 세례받는 모든 분들에게 크고 충만하게 넘치기를 바라고 이리 세례받은 모든 분들에게도 여러분들의 삶에 나침반을 다시 한번 확정시켜 가지고, 이 나침반 붙들고 어떤 경우에도 명품 인생, 걸작 인생, 명작 인생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고,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어 예수님의 생명과 연합할 때,  죄를 등지고 축복과 은혜의 삶에 집중하며, 날마다 죄를 막아서는 말씀 암송이 나의 거룩한 방패가 될 때, 삶의 전 영역에서 불말과 불병거로 지켜 주시는 영적 청절실의 은혜를 누려야 한다. 우리 사랑의 교회가 강력한 기도로 미래 이력서를 집필할 때, 2024-10.27 한국교회 연합과 부흥의 공진이 2025-10.27, 세계교회 연합과 부흥의 공진으로 확산되게 간절히 기도하고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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