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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8월 25일)
제목: "제3일이 중요합니다."-예수님은 누귀신가?-1
말씀: 요한복음 2:1~5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외
대표기도: 최종민 부목사님 외
사회: 임병영,(1부) 문진호(2부), 이기호(3부), 임상규(4부)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요한복음 2:1~5,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ㅡㅡㅡㅡㅡ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찬양대 정성을 다한 귀한 찬양을 주님이 받으신 줄 믿습니다. 역대 급 무더위를 통과하신 거 축하합니다. 아 정말 대단한 지난여름이었습니다. 이 무더위를 통과하고 이 본격적인 이 가을 사역을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환경 주시고, 또 믿음 주시고 또 건강 주시고 은혜 주시고 또 기대감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사랑의 교회는 항상 이 8월 마지막 주일이 가을 사역의 시작 주일입니다.

여러분, 오늘 어떻게 오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오늘
‘하나님 아버지, 이 가을 사역에 주실 은혜들을 오늘 정말 기대감을 갖고 온 모든 성도들을 한 명도 그냥 돌려보내지 마시고 유아 부부터 시작해서 포에버까지 우리 교회를 이 성령 충만한 가사 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고 준비했습니다.

자, 오늘 제가 ‘제 3일이 필요합니다.’ 라는 제목으로, 여러분 잘 아시는 가나 혼인 잔치인, 가나혼인 잔치 이 말씀을 전할 텐데, 어 교회 생활을 오래 하시는 분들은 이 내용을 많이들 다 잘 알고 계시죠? 잘 알고 계시는데 안다고 아는 건 아니고, 내 것이 되어야 아는 것이에요. 뒤에 보면 나오지만 연회장(宴會長)은 이 사건의 핵심을 몰랐지만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그랬어요. 지식을 보나 지위를 보나 연회장, 그 잔치의 제일 책임자는 몰랐지만, 물 떠 온 하인들은 알더라.

2008년도에 베이징 올림픽이 있었는데요. 그때 m모 지상 방송에서 아프리카 가나가 나오니까요. 저 아프리카 가나가 예수님이 가나 혼인 잔치를 한 곳입니다. 라고 하더라구요. 지상 방송에서?? 제가 하나도 틀림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식의 엉터리가 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우리가 다 아는 것 같지만 그래서 오늘은 제가 특별히 “제 3일이 필요합니다.” 라는 제목으로 오늘 일절에 보면 사흘째 되던 날 이렇게 나오죠? 일절에, 그런데 그 앞에 요한복음 2장 1절 앞은 어디에 되게 어렵습니까?

*요한복음 2:1,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1장 51절에, 1장 51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 요한복음 1장 바로 앞 절입니다.
*요한복음 1:51,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바로 시작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는 누굽니까? 예수님, 당신 스스로를 말씀하시는 거죠? 바로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Man), 그 바로 그 하나님의 아들,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데 하늘이 열리고, 인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되었다. 오르락 내리락 깨닫게 되었다.

오늘 안아주심의 본당에 이 하늘 문이 열리고, 인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는 그런 영광스러운 시간 되면 좋겠어요. 변화의 능력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 우선 첫 번째 질문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서 첫 표적을 행하셨을까요?
-이제 이게 너무 중요한데 오늘 주일 다음 주일 두 주일에 걸쳐서 말씀을 드릴 텐데, 다음 주에는 교회사 쪽으로 좀 말씀을 드릴 거고, 오늘은 이제 본문을 통해 말씀드리는데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의 첫 표적을 시장에서 시장 거리에서 행할 수도 있고, 예수님의 첫 표적을 어떤 그 병원에서 행할 수도 있고, 예수님이 첫 표적을 뭐 일반적인 어떤 다른 장소에도 행할 수도 있지만 왜 이제 표정을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서 하셨을까요? 여기 이 질문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오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뭐냐 하면 첫 표적을 혼인 잔치 하신 이유가 뭐냐 하면, 우리 정통적인 신약의 해석은 종말론적인 기쁨의 잔치를 예표 하는 것이다.

소위 우리가 나중에 주님 나팔 볼 때, 나의 이름, 우리가 정말 주님의 품에 안겨 가지고 우리가 천국 갈 때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한다. 그런 말 들어보셨죠? 그러니까 이 첫 표적을 그러니까 제자들이 말이죠. 제자들이 11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2:11,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예수님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 행심에 비로소 제자들이 예수님을 뭐예요? 믿으니라. 그 전에는 안 믿었어요. 그전에는 예수님을 그냥 선지자다. 그냥 예수님을 좋은 선생님이다. 좋은 귀한 분이다. 정말 우리의 정말 메스터다. 이 정도 생각했는데 이 시간부터 아 메사이야다. from 메스 to 메사아, 좋은 선생님 선지자 정도가 아니라 메시아다. 메시아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 수많은 일들이 많아요. 많은데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메시아가 되시면 많은 문제들은 지금 해결되는 것이에요. 메시아가 되시면 그리고 메시아가 되었다는 이걸 우리에 깨닫게 하시는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서 해주신 거예요. 이것은 다시 종말론적인 잔치 우리가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예표 하는 것이다. 예표(豫表)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린 양의 혼인 잔치의 특징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마태복음 26장 29절에 보니까,

*마태복음 26:29,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그날까지, 우리가 성 만찬을 할 포도즙을 먹잖아요? 먹잖아요. 이것이 뭐 가 뭐냐 하면 종말론적인 어린 양의 혼인 잔치의 기쁨과 그 잔치의 은혜를 예표 하는 것이에요. 예표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영광스러운 그러니까 이 종말론적인 혼인 잔치에 필요한 것이 세 포도주인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신 날까지 아버지의 나라에 마시는 그 영광스러운 새 포도주, 그 영광스러운 새 포주에 어떤 조금이나마 그 이 땅에서 예고편으로 맛볼 수 있도록 맹물 같은, 맹물을 이렇게 영광스러운 향기 나는 포도주(葡萄酒)로 만든 거예요. 그래서 어떤 시인은 이걸 이 이 사건을 보고 난 다음에 뭐라고 얘기하느냐


“맹물이 메시아를 만나니 얼굴이 붉어졌네.”-바이런-
-사실은 이 바이런이 얘기한 건데요. 예 맹물이 메시아를 만나니 얼굴이 붉어졌네. 맛있어요. 이런 게 이런 걸 말해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깨닫는 분들은 M모 지상 방송과 방송국하고 똑같아요. 아프리카 가나 세트 연회장하고 똑같아요. 연회장=아프리카=가나=M모 방송, 오늘 말씀을 듣기로 가슴이 뜨거워져야 해요.

메시아 만나면, 그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깨달으면, 혼인 잔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포도주인 것을 깨달으면 그리고 그 포도주는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이라든지 숙취를 만든 숙취를 갖고 오는 것이라든지 우리에게 무슨 뭐 알코올을 준다는 취하지도 않고, 해를 끼치지도 않고, 뇌세포를 죽이는 알코올도 없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과 기쁨과 거룩과 축복된 임재와 행복이 가득한 그런 포도주가 되는 것이에요. 저는 오늘 이 예배를 드리고 오늘 가을 사역을 시작하면서 주님 오늘 이 세 포도조의 능력, 어린양 혼인잔치에 예비한 그 영광스러운 새 포도주, 새 포도주를 죽이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게 하고, 숙취도 같지 않게 하는 그 영광스러운 새 포도주의 능력을 기대감을 갖고 온 우리 온 성도들 한 번도 예 없이 오늘 맛보고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할렐루야!! 이거 맛보더라. 이게 더 맛보더라. 그래서 누가 복음 22장 3절에 보니까,

*누가복음 22:30,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이게 오늘 이 본문은요 그래서 이걸 깨닫게 하는 여러분들이 이 초대장이요. 어떻게 하면 종말론적인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내용이에요. 다 같이 시작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서 내 상에서 먹고 에 먹고 마시게 하려 하기 위해 하노라. 실제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이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실제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그 간증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여러분 저에게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 그리고 위해서 먼저 첫째 깨달아야 할 게 카이로스의 시간이에요.

첫 번째 표적.
1. 카이로스 시간.=제3일이 된다(We All Need the Third Day).

-여러분 크로노스(연대기)라는 말과 제가 카이로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크로노스는 연대기예요. 그냥 세상에 우리 사마천의 사기처럼 그냥 히스토리예요. 근데 그 크로노스의 시간에, 맹물을 변화시켜서 성령의 폭발력 있는 포도주로 만들어 주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크로노스의 시간이 됩니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여러분과 저에게 특별한 시간이 된다. 그 특별한 시간이 뭐냐 하면 카이로서의 시간이 된다.

오늘 여기서 말하면 제 3일이 된다. 그래서 제가 오늘 제목을 영어로는 We All Need the Third Day 우리는 모두가 다 이 제 3일의 특별한 카이로스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해석상 오늘 여기에 빌립과 나다나일이 제자 된 지 사흘 됐다는 그런 해석도 물론 있지만, 오늘 이 삼일은 요한이 너무나 선명하게 깨닫고 너무나 분명하고 AD 90년경에 이걸 썼거든요. 그러니까 요한이 이걸 깨닫고 난 다음에 6-70년이 지나고, 그 시간 뒤에도 이게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에 요한복음 이 신비한 복음을 기록하면서 요한복음에 7가지 표적이 나오는데, 그중에 첫 번째 표적으로, 오늘 이 말씀을 기록하고 이 말씀을 깊이 깨닫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더 깊이 체험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다시요 ‘사흘째 되던 날’이라고 했는데 요한이 자기 생애에서 이걸 특별한 날이어서 선명하고 분명하게 표현했습니다. 사흘째 는 이 날에는 단순한 날짜를 표현하기도 하겠지만, 여기에는 다시 흘러가는 시간을 하나님의 신적 개입의 시간, 카이로스의 날로 기억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게 이 날은 이 3일째 이 날은 요한의 입장에서는 표적(表迹)과 회복(回復)과 변화(變化)와 부활(復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에서는 구약에서 사흘은 구약뿐만 아니라, 신약에서 사흘은 우리를 살리시고 아주 새롭게 등장하는 놀라운 언어 방식인데요. 잘 아시는 대로 호세야 6장 2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호세아 6:2,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하면 이 사흘은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일으키시는 그래서 저와 여러분에게 새로운 날이 되는 것이에요.

저는 이걸 깨닫고 난 다음에 저는 목사의 아들이었고, 저는 어떤 전통적인 아주 보수적인 목사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저는 저 나름대로 신앙의 도그마, 신앙의 문화 컬처, 그다음에 프레임, 그리고 좀 이렇게 저는 좀 억눌려 있었다. 할까, 늘 거룩하고 이래야 되니까 늘 이렇게 했는데, 제가 이 말씀을 20살 때 이걸 제대로 깨닫고 난 다음부터 저에게는 어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데 사모하는 것 보면 내가 같은 사람이 무슨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까? 다 부족하지. 그런데 이 말씀을 깨닫고 요한이 깨달은 이 은혜를 내가 조금이나마 확인하고 난 다음부터는 신앙의 칼라, 능력, 변화 열매가 새로워진 줄로 믿으셔야 되시는 것이 저에게는 그랬어요.

그래서 이틀 후에는 뭐 한다고요? 살리시고 사흘째는 어떻게 한다고요? 새로운 날 만드시고 그래서 요나는 물고기 배 속에서 며칠 있었죠? 3일을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셋째 날은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해 주신 것이에요. 그것도 다 연계가 되어 있는 것이에요. 첫 표적과 예수님의 부활과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제대로 깨달으면 오늘 카이로스의 제3일을 체험할 뿐만 아니라, 이 사흘에 대한 안목이 새로워지는 거예요.

자 다시요. 사흘째 되던 날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었는데, 단순히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건 정도가 아니라, 죽음에서 생명으로, 죽음에서 부활로 적당한 유기체에서 성령의 폭발적인 향기로운 유기체로 적당한 물리적인 변화가 아니라 근본적인 화학적인 변화로, 적당한 맛 정도가 아니라 참으로 극상품의 맛으로 빛깔이 바뀌고 향기가 바뀌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답답하고 억 죄이고 상처받고 희망이 없고 자유가 없던 그런 인생들이 성령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생명의 역사를 실감하므로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회색빛의 인생이 향기로운 인생, 영광스러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물이 포도주가 되는 사건을 통하여 변화의 능력되었다. 하시는 예수님이 주시는 제 3일의 기적(奇蹟)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잘 아신 대로, 요한은 맹물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성질 급하고 그장 그리고 또 요한은 자기 프라이드가 강한 사람이었어요. 좌정성, 우정성 시켜달라고 그러고, 저 사마리아 사람들 벼락을 내려서 다 죽이자고 그러고, 그런 요한이 오늘 이 이후부터 그의 인생의 빛깔도 향기도 바뀌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제 3일의 이 카이로스에서 연회가 개인에게도, 사랑의 교회에도, 우리 민족에게도, 이런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다시요 이것이 너무나 놀라워서, 이 갈릴리 가나에서 첫 표적을 행하시니 제자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되었더라. 평생 잊지 못할 그런 사건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제 이 사건 배경을 대체적으로 알고 계시는데, 에 2절 3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2:2-3,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혼례의 청함을 받았는데 당시의 고대 근동 사회의 잔치는요. 이거는 보통이 아니에요. 한 동네 잔치이고 공동체 전체의 축제였어요. 그런데 그 공동체 전체의 3절에 보니까 축제인데 포도제가 떨어졌다.

모든 가족들이 어떤 결혼식을 하고 이 이제 할 때에 사람들을 청할 때에, 그 당시에 고대 근동 사회는 결혼식을 일주일 정도 하는 거예요. 하루 정도가 아니고 우리처럼 몇 시간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공동체가 축제를 하는데 왜냐하면 그때는 이 제대로 먹고 제대로 이렇게 포도주를 마실 만한 기회가 거의 많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 잔치가 거의 유일한 기회 같은 그런 찬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너무너무 기대를 하고 모든 말을 공동체 사람들이 이번에 포도주는 어떻게 먹지 물도 좀 타서 먹어야 되나? 뭐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모두가 기대려고 왔는데,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은 첫째 그 집안이 준비가 안 됐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공동체 전체의 축제를 다 망가뜨리는 것이에요. 그 만약에 이것이 이대로만 돼가지고 떨어져 가지고 그 자체가 엉망이 되면 그 집안과 가문과 신랑과 신부와 양가 가족들은 평생 수치(羞恥)와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야 되는 상황이에요. 우리가 생각하는 적당한 그런 어려운 환경이 아니에요.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그 집안의 수치냐 아니냐가 결정되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이고, 긴박한 시간이고, 혼돈의 시간이고, 수치의 시간일 수가 있었어요. 당황스러운 시간일 수 있어요.

이것이 오늘 우리의 삶에는 어떻게 연결되느냐, 누구나 인생의 포도주가 떨어지는 당황스럽고도 긴박하고도 혼돈(混沌)의 시간이 인생살이 하다 보면 꼭 있어요. 인생의 돌 뿌리에 부딪혀 넘어지는 때도 있고 순탄하던 삶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시간이 있을 수 있어요. 예상치 못한 삶의 불청객이 들어올 수도 있고, 또 삶에 여러분 뭐 물질이라든지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가 있고, 뭔가 잔치처럼 좋게 시작했는데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가 있어요.

제가 3주일 전에 좀 해변 가를 좀 거느렸는데 해변 가에 파래가 보이더라고요. 저는 제 앞에 뭐가 걸리적거리는 걸 제가 싫어하기 때문에 뭐 이런 게 있나하고, 파레를 탁 찼는데 그 파레 안에 돌 뿌리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찾는데 어마어마하게 아픈 거야. 제가 그냥 설명하는 게 아니라 진짜 어마마 온몸에 그냥 전기 오는 것처럼 뜨겁게 아픈 거예요. 이게 무슨 일인가? 그 이제 물속에 있었기 때문에 이제 몰라 너무 왜 이렇게 아픈가? 하고 이제 조금 이제 지나가는데 물속에 지나가는데 알고 보니까 팔에 속에 뿌리가 돌 뿌리에다가 내가 발로 그걸 차 놓으니까 엄지에 있는 살점이 떨어져 나간 거예요.

엄지발가락에 피가 켜서 철철철 나는 거야. 이야 진짜 아프네. ‘연탄재 발로 차지 마라.’ 그랬는데 그리고 한 십일 전쯤 좀 그린 것 좀 나았어요. 나아갖고 약간 이제 그 해변에 모래를 좀 띄웠는데 참 갑자기 그냥 그 뭡니까 뒤 발 뒤꿈치가 큰 통증이 오는 거예요. 그 모래 속에 또 돌 맹이가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돌 그 이제 지금은 좀 나았어요. 지금은 나았어요. 여러분 엄지발가락이 살점이 떨어져 나가 봐요. 감사하고 좋은지,,, 자 그걸 생각하면서 야 살다 보면 이렇게 발로 차가지고 엄지발가락에 살점도 떨어져 나갈 수 있고, 살다 보면 그냥 머릿속에 돌맹이 이 그냥 밟다가 그냥 멍이 들 수도 있고, 살다 보면 기쁨을 기대했는데 당황함과 탄식일 수도 있는데, 그럴 때 물이 포도주가 떨어진 사건이 이 정도로 황당한 사건인데, 이럴 때 오늘 주님이 예비하신 향기로운 포도주를 경험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 가운데 나는 기쁨의 포도주가 필요 없다. 예수님이 예비하신 포도주가 필요 없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정상적인 것은 아니겠죠. 그래서 오늘 저는 다 우리는 부족한데 평범한 삶과 특별한 삶의 차이가 뭐냐? 예수님이 예비하신 사흘째 되는 날에 카이로스를 경험하느냐 안 하느냐 제자들이 그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그 특별한 날, 소위 일반적인 사흘이 아니라, 카이로스의 사을 특별한 사흘이 있느냐 없느냐, 그래서 평범한 우리의 삶과 특별한 삶의 차이는 주님이 예배하신 카이로스의 시간이 있느냐 없느냐 비록 삶의 생채기가 있고 발에서 피가 나고, 트라우마가 있고, 멍이 들어도 카이로스의 시간을 잡느냐, 안 잡느냐 이게 결정타가 되는 것이에요. 아멘. 에베소서 5장 16절에 보면 세월을 아끼라 그랬어요.

에베소서 5:16,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구원하다.
-이 세월을 아끼라는 이 말이 이 세월이 뭐냐, 헬라어 원문은 카이로스의 시간이에요. 크로노스가 아니라, 그러니까 예수님 안에서 아끼고 기대한 이 시간만이 우리에게 올바른 세월이 되는 것이에요. 수많은 날들이 있는데 평생 우리 뭐 한 3만 날 산다고 합시다. 3만 날(30 thousand days), 3만날, 3만 날을 3만 날 3만 한 3천정도 산다고 합시다. 그 3만 한 3천 3만 날을 사는데 그중에 정말 소중한 날은 제 3의 날이 되는 날, 특별한 날이 되는 날, 그래서 그 시간을 여러분들이 붙잡으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붙잡으라는 말을 세월을 아끼라는 말을 원어에서는 구원하라 에요. 그래서 여러분과 저에게는 이 예수님께서 변화의 능력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 되신 예수 그리스도, 명물을 포도주로 만들고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제3일이 있느냐, 없느냐가 우리의 삶에 시간을 아끼고, 카이로스를 구원하는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모든 사람은 인생 길 가운데서 크로노스의 시간 연대기의 시간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때를 붙잡고 구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이 가을 사역을 시작하는 동안 가을 사역 기간 동안 우리의 고난과 어려움의 시간이 있다 하더라도 고난의 시간 속에서 피가 나는 시간 속에서도 휩쓸리며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붙잡고 카이로스의 시간 세월로 구원할 것인가 구원할 것인가? 그리스도의 삶은 시작
“그리스도의 삶은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꾸어 구원하는 삶이다.” 아멘.

이 세상 사람들은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그랬는데, 우리는 세 번, 네 번, 언제 온다. 그건 우리는 다 잘 모르겠지만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과 저에게 진짜 주신 말씀이 돼 가지고 여러분의 삶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구원하면 여러분에게 주님이 항상 기회를 주시는 것이에요. 항상 기회를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잠들기 전에 어떻게 하면 평범한 우리의 삶의 연대기를, 원망과 불평의 시간이 아니라, 기대와 감사의 삶으로 바꿀 수 있는 이 카이로의 시간이 될 것인가,

그래서 저는 지난 60여 평생 동안 주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주중에 목요일까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주여, 금토일, 사흘째가 되게 하여 주소서. 주일 날 만은 항상 새로운 날, 주일 날만은 기쁨이 회복되는 주일날, 많은 새 마음과, 새 영과, 새 능력이 부어지는 날이 주여,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베드로가 설교할 때 사도행전 3장에서 19절에 뭐라고 말씀하느냐?

*사도행전 3:19,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매주일이 목요일까지는 고통스러웠다 할지라도, 금 토일 사흘 3일째 되는 주일 날, 매 주일마다 새롭게 되는 은혜, 새 능력의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주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창조의 아버지 할 때마다, 예수는 그리스도 할 때마다, 여러분 주님을 고백할 때마다, 이것이 신앙이요.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삶인 거예요. 이게 종말론적인 잔치에 대한 기대를 갖고 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카이로스의 제3일을 경험하려면 제가 오늘 두 가지만 적용하겠어요.

첫째, 모자람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야.
-이 부족으로 끝나는 것인가, 아니면 부족이 카이로스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될 것인가? 3절에 보니까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그랬어요. 모자랐다. 그랬어요. 모자라고 부족했을 때, 뭐 모자란다고 서로 흉보고 모자란다고 수다 떨고 모자란다고 난리치고 이렇게 하지 말고, 이 모자람에 대한 통찰력 이 모자람이 주님께 들고 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모자람도 마리아는, 마리아는 뭐 이 상황 자체를 설명도 안 했어요. 그냥 주님께 들고 가라. 여러분, 모든 모든 카이로스의 능력은 모자랄 때 나타났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모자람으로 굶었을 때 나타났고, 풍랑 이는 바다 위에서 다들 죽는다고 난리쳤을 바람과 바다도 잔잔하게 되었을 때, 더 놀라운 것은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가지고 몸에 진물이나고 희망이 없는 그런 상황에서 주님께서 기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 나타난 7 가지 표적 오늘부터 시작되는 표적은 위기 가운데서 부족할 때, 나타난 표적들이었어요. 따라 하겠습니다. 모자랄 때 하나님은 일하신다. 그렇습니다. 모자랄 때가 카이로스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 강남 8학군에 사는 모든 것을 부모가 다 구비해 주는 그런 학생들의 그런 학생과, 지방에서 저 궁벽(窮僻)한 시골에 있는 학생과, 만약에 오늘 이 제 말씀을 시골 출신의 궁벽하고 아무 것도 없는 학생이 듣고 영안이 열리면 그 사람에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에요. 강남 8학군이 좋은 부모 모시고 좋은 거 다 갖추어진 그 사람은 그냥 자기 실력으로 자기 인생사는 거예요. 그런데 시골의 궁벽하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부요와 포도주의 향기가 그 인생에 임하게 되면, 그 인생은 놀라운 일을 경험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모자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7장 7절 8절에,

*열왕기상 17:7,8,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아가 그릿 시내가에서 까마귀가 가져다주는 떡과 고기를 먹고 신의 물을 마시면서 생명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가뭄이 들어가지고 시내가 말라버렸어요. 7절에 보니까 이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뭐예요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다 말랐어요. 이제 먹을 게 마실 물이 없는 거예요. 생명의 젖줄이 시내가 마르고 물을 마실 수가 없게 되었어요. 생명을 유지하게 했던 것들이 다 끊어지고 사라진 것입니다. 모자라고 부족한 그 순간에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8절이 중요합니다. 다 같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아에게 임하여 할렐루야! 모자라는 시간은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모자라는 크로노스의 시간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의 삶에 젖줄이 마르고 있습니까? 그동안 의지했던 삶의 창고 곳간이 비어가고 있습니까? 은행 창고가 다 말라버렸습니까? 그때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이런 말씀 많이 들었겠지만 내 것으로 삼는 거 하고 그냥 듣는 거 하고 다른 것입니다. 모자람의 시간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부 교육자들을 보고도 한 번씩 얘기합니다. 사역자의 길에서 돈 문제, 경제 문제 어려울 때, 진짜 어려울 때 돈 없을 때 하나님 만나야 한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뭐 제가 모자라면 시간에 카이로스가 된 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명할 수 있지만 한 가지 첫 번째 교회를 건축할 때에 마지막에 그 그 마지막에 그 한 두 석 달 동안 참 힘들었어요. 아주 돈이 없고 이래 갖고 이제 건축 담당하시는 분들은 필요할 때 나오시면 되지만 나는 매일 사무실에 나가니까 업자들이 맨날 나한테 와서 돈 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내가 그때 첫 번째 건축할 때가 제가 한 서른 한 셋 넷 될 땐데, 33세 34세가 뭘 많이 알겠어요? 근데 뭐 나름 규모가 있는 교회를 건축하는데 그래갖고 뭐 매일 이렇게 압박을 당하니까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진짜 모자라는 시간이죠. 어느 날 제가 새벽 기도를 하는데, 참 말도 안 돼 가지고 너무 힘들어 갖고 그 33세 34세니까, 하나님 나 돈 없습니다. 하나님도 돈 좀 없어 보세요. 말도 안 되는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기도예요. 말도 안 되는 얘기. 아 그래갖고 새벽 기도하면서 막 하고 막 그냥 좀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하는데 어느 날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데 나도 몰랐는데 이렇게 누가 머리맡에다가 뭐 봉투를 하나 두고 갔어요. 그게 1990년도였는데요. 지금부터 34년 전 우와!!! 근데 그 봉투에 뭐가 있냐면요. 캐시, 캐시 수표가요 5만 불이 딱 들었어요. 그 당시에 5만 불은 지금 아마 한 6-7억 될 거예요. 아마 이게 어찌 된 건가? 하고 그 놓고 간 사람은 이름도 없어 그 사람 찾는 데 제가 1년을 걸렸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뉴욕에서 어떤 분이 LA 쪽으로 이사를 왔는데, 새벽에도 날아갈 만한 교회가 없냐고 빙빙 찾아보는데 마침 제 가 제가 건축한 그 교회에 이제 새벽에 나오는데 어 젊은 사역자가 앞에서 기도를 하는데 희한한 기도를 한다는 거예요. 주여, 주님도 돈 좀 없어보라고 했잖아요. 기가 막힌 거지. 아 내가 3 34 살에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내가 건축하자고 말 안 했어요. 교인들이 하도 많이 모이니까 교회 목양 지원, 목양위원회에서 교회 건축하다고 작정하고, 본인들은 책임도 안지고 나한테 안 맡기고 말았어요. 근데 이분이 뉴욕에서 왔는데 어 주님이 그 이분한테 그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15만 불을 받았대. 그 받았는데 자기가 막 가슴이 뛰어가지고, 그중에 5만 불을 떼어가지고 나한테 준 거에요. 그 교회 교회 헌금을 이게 이제 그 위에 갖다 놓은 거예요. 아 그래서 제가 내가 좀 더 세게 기도할 걸,, 그런 소리는 안해요. 그건 유치한 거고,,, 하여튼 그거는 그게 저에게서는 제3일이었어요. 뭐 그 제가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어려운 말도 못 하고, 그런데 그거에 있어서 그다음에 두 번째 또 있잖아요. 그 이제 그 그 교회가 어마어마하게 부흥을 하는 거에요. 어른 삼백 명 애들이 오백 명이 이제 건축에 들어간 교회가 한 삼 사 년 만에 이천오백 명이 된 거예요.

어른들 천500 명, 애들 천 명 이 500명 그러니까 한 서너배가 모이니까 맨날 교통 티켓 뛰고 맨날 막 문제가 생기고 막 이 불편 난리가 나요. 또 이제 뭐 또 이제 어떻게 교회를 건축하기로 해가지고 이제 또 이제 하여튼 교회를 큰 아 세상에 마지막에 진짜, 진짜 돈이 없는 거야. 나는 왜 그런지 몰라. 그래 갖고 자는데 교회 안수집 사람들이 한 한 20명 정도 모여가지고, 우리 저기 뭐야 마지막 우리가 또 이 교회 건축을 위해 헌신을 좀 합시다. 그래 갖고 그 안 사람 누가 어떤 분이 있냐면 그 미국에는 보면요 에퀴티 론이라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어 제가 집을 다 렌트를 하 집을 갖다가 이제 30년으로 이래 갖고 이렇게 돈을 내는데 돈 낸 거하고 집값이 오른 거 하고 사이에 좀 이렇게 중간에 그걸 에퀴티라고 그래 에퀴티.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5만 불 정도의 여유가 있을 수 있고, 어떤 사람들은 10만 불 여가 있는데 이런 게 있어요. 그래 갖고 있는데, 그 전 에퀴티 전문 안수 집사님이 어 비자카드 그 기계를 갖고 왔어요. 꼼짝도 못하도록 그래 갖고 한 20여 명 안수 사람들이 모였는데 얼마를 얼마를 저기 뭐야 그 했느냐 하면 한 28만 불인가, 그렇게 했어요. 그 당시에는 큰 돈 이었어요. 그게 천구백구십팔년 99년 정도 됐으니까, 그 지금 이 한 26년 전이네요. 아이고야!!! 이제 근데 그 다음 날 어떤 사반의 형제가 나보다 2살 어린 분이었는데 여러분 저한테요. 백만 불을 캐시로 갖고 왔어요. 지금부터 24-5년 전의 백만 불은요 지금 한 삼 사백만 불하고 똑같아요. 한 거의 뭐 4-50억을 갖고 온 거야. 캐시로. 거 이게 뭐냐고 그러니까 제 사업 자금이라고,,, 내가 절대로 못 받는다고 우리 교회 뭐 이거는 우리 뭐 이거 말이 안 돼. 안 된다고 하는데 내가 너 안 됩니다.자 사업 잘 하시고 그 주 이 사업 잘 해달라고 그래 하는데, 이 이 집사님이 절대로 안 된다고 그러면서 그걸 캐시를 100만 불, 이미 건축헌금을 17만 불이 했는데, 118만 불 헌금을 한 거에요. 기가 찬 거에야. 내가 미치겠네. 만약에 이 이 사람이 사업자 망하면 어떻게 하냐 그런데요. 그 헌금하고 이 년 만에 전 세계 컴퓨터 가방을 다 석권해 버렸어요.

여러분 그게요. 이게 나는 이걸 여러분들에게 무슨 이 이건 내가 경험한 거야. 내가 카이로스를 경험한 걸 말씀드리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거 다 이제 차체하고 여러분 돈 갖고도 하나님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 가정의 수많은 카이로스, 수많은 크로노스의 어려운 환경들 보조조가 떨어진 그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 만나야 합니다. 신앙인은 뭔가 달라야 되는 것이에요. 경제의 그러니까 그 집사님은 경제의 제 3일을 만난 거예요.

제 3일에 대한 통찰력은 경제, 물질, 건강, 환경 가운데서도 만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이 카로스의 시간에 제대로 크로노스 카로스가 되려면, 이 크로노스의 시간 기간이 올바른 축적의 기간이 돼야 하는 것이에요.

둘째, 크로노스의 시간 기간이 올바르게 축적되어야.

-보통 우리는 크로노스의 평소의 시간을 가볍게 보고 카이로스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카이로스의 시간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이 잘 축적되지 않으면 카이로스의 시간을 제대로 경험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경제의 제3일, 결혼의 제 3일, 건강의 제 3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결혼의 제 3일을 맞이하려면 평소에 잘 준비를 해야 돼요.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그냥 실망하거나 아니면 포도주가 떨어진 사람을 향하여 삿대질을 향하여 하거나 무슨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평소에 크로노스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되는데, 사무엘상 17장 34절, 35절에,

*사무엘상 17:34-35,
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대적하기 전에 사울 왕에게 자신이 골리앗을 쳐서 이길 것을 말하면서 이런 고백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윗이 골리앗을 물맷돌로 치는 그 시간은 카이로스의 제 3일이에요. 근데 다윗이 평소에 크로노스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 사무엘이 집에 와 가지고 다음 왕 될 사람을 이렇게 기름 부으려고 할 때, 아예 다윗은 후보조차 되지도 못했어요. 아예 그 아버지가 오라고 말도 안 했어요. 만약에 다윗이 평소에 형들은 저 다 부르는데 나는 안 불러? 그리고 길을 쫓고 세워가지고 그래갖고 열받아갖고 아버지 데모 합니다. 그러고 피켓 들고 그래 하지 않았어요. 자기는 홀로 형들은 다 부르는데 나는 안 부른다고 삐딱선 타고 원망하지 아니하고, 자기는 홀로 베들레헴의 광야에서 양들을 지키고, 사자와 곰과 싸우면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 시간에 불평과 원망 대신에 물맷돌을 던지며 훈련하는 그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윗에게 골리앗을 이기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감옥에서 잘 견디니까 어느 날,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카이로스의 시간을 경험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라.’ ‘싸울 날을 위하여 너의 시간을 세이브 하라’. ‘세월을 아끼라.’ 세상 사람들의 세월은 크로노스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의 세월은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그 시간을 아끼라.

오늘 이 가을 사익을 위하여 우리가 무슨 마병을 예비할까요? 우리 민족을 위하여 우리는 어떤 마병을 예비할까요? 오늘 우리가 어떤 크로노스의 시간을 보내 가지고 우리 민족을 향하여, 카이로의 시간을 보낼까요? 우리가 지난번 광복 해방 광복절을 지난 시간에 우리 민족이 카이로스였어요. 그가 싸울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뭐 건국 절이다. 아니다 싸울 이유가 없어요. 1919년 임시정부에서 건국을 선포하고 그때도 이승만 대통령이었습니다. 임시정부 대통령이었어요. 45년 8월 15일에 해방을 갖게 하시고, 48년에 대한민국 건국하게 하신 완성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크로노스의 시간을 잘 보내야 돼요. 예수님이 제 3일이 되기까지 여러분 무덤의 세력에서 싸워 이기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제3일 부활되기까지 그 지옥의 권세와 싸워 이기신 것처럼, 우리 민족도 1919년부터 1945년 48년 아니, 1953년까지,,, 일본 제국과 싸우고 공산주의자와 싸워가지고 오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에요. 36년 동안 일본과 싸워서 45년에 해방되고, 48년에 건국을 한 거예요. 50년대에는 공산주의자 침략을 받아가지고 낙동강만 남고 다 끝이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받아 가지고 카이로스를 경험하게 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번 가을 모든 시간 동안 모든 제자 훈련생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 매일의 삶의 현장이 보람 있고 가치 있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잘 준비하여, 모두가 강력한 카이로스를 경험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번 가을 9월, 10월 특새가 그렇게 될 수 있게 하시고, 새 생명 축제가 그렇게 될 수 있게 하시고, 한국 교회 섬김의 날이 그렇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5절에,

*요한복음 2:5,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이 내용은 다음 주요일 날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요약
맹물 같은 인생이 예수님을 만나 내게 맡겨주신 마병을 예비하며 살 때, 날마다 우리를 새 마음과 새 은혜와 새 능력으로 살려주시고 일으켜 주시길 간구하며, 원망과 불평이 튀어 나오는 상처와 고난의 시간을 주님의 제3일로 붙잡을 때, 모자랄 때 일하시는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경험해야 한다. 우리 교회의 가을 사역에 은혜를 더하시고 우리교회 사랑글로벌 아카데미(SaGA)가 복음을 수호하며 결단할 때,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와 이 민족 위에 성령님의 폭발력 있는 제3일의 기적을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며 헌신해야 한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천국의 기쁨 혼인 잔치의 예고편을 이 땅에서도 깨달아서, 특별히 예수님께서 제 3일에 부활하신 것을 기억하며, 3일에 부활하기 전까지 그 사흘 동안 그 악한 마귀의 세력과의 전쟁이 있었을지라도 그 부활을 기억하며 은혜를 선포하며 이 가을 사역의 포문을 열게 됨에 감사해야 한다.. 모자라고 부족한 것 투성 이인 인생의 여정에서 마리아처럼 모든 문제를 예수님께 들고 나가야 하며, 나의 문제 위에도 나의 가정과 일터의 문제 위에도 이 민족의 문제 위에도 압도적이고도 초월적인 제 3일의 은혜, 카이로스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해야 한다. 우리의 경제와 건강과 가정과 결혼 생활과 이 민족의 제3일을 허락해 주시기를 간구하며, 어두운 밤마다 모든 고통과 불평을 감사와 기대로 바꾸며 잠자리에 들고, 목요일까지 힘들어도 사랑의 교회의 주일은 어떤 주일도 제3일의 카이로스의 기적을 체험하는 주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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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8월 18일)
제목: "시대정신이 아니라 신앙정신입니다"
말씀: 다니엘 3:13-18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외, 영광찬양대 외.
대표기도: 전승현 부목사님 외.
사회: 임병영(1부), 문진호(2부), 이기호(3부) 임상규(4부)부목사님.
설교자: 류응렬 목사님-초빙(와싱톤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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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3:13-18,
13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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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일 말 중에 Zeitgeist라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시대정신’이라는 단어입니다 시대정신 어느 시대이든지 그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 철학, 생각을 지배하는 주도하고 있는 것을 두고 시대정신이라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시대정신에 휩쓸려서 그들의 삶을 보내기 마련입니다. 되는 것이 우리의 이성과 맞지 아니하고 우리의 판단에 옳지 않다 하더라도 대항하기보다는 시대정신을 따라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시대정신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신앙정신, 하나님 말씀에 뿌리내리는 신앙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스님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는 일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과감하게 시대 물결을 거슬러서 신앙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오스기니스가 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잘 보여주는 책으로 ‘선지자적 반시대성’(prophetic untimeliness) 타임리니스, 시대에 맞도록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untimeliness-언타임리니스, 반시대적으로 살아가는 순지자적 사고를 가지고 시대를 거슬러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가 강조하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청중이 아니라 일반 대중을 향해서 살아가는 기독교가 아니라, 메시지가 주권을 쥐고 있는 교회다. -오스기니스-
-이 시대에 우리가 귀 기울여야 되는 것은 사람들의 목소리, 시대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진리를 가지고 있는 교회의 진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에드비 토저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강력한 책으로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충돌하라. 부제목이 이러합니다. 세상과 동행하는가? 성령과 동행하는가? 적당히 타협하며 편하게 살기를 원하는가? 하나님의 그 편안한 길을 철저히 반대하신다. 세상과 분노하라. 겁먹지 말고 당당히 맞서라. 그리스도인들이여 무릎을 꿇고 세상을 흉내 내지 말라 세상과 충돌하라.
-에드비 토저-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내용은 보시겠습니까? 사람들은 가능하면 세상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야 되지 않은가? 세상도 하나님이 주신 세상인데 가능하다면 기독교인이라고 등을 지면서 살 것이 아니라, 세상과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세상을 흉내 내지 말라. 때로는 세상과 분노하고 충돌할 각오로 싸워가라.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시대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진리, 주의 뜻을 따르는 성경정신으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파리올림픽을 보면서 너무 가슴 아픈 일이 하나 있었죠? 드레킨 사건,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여장을 한 남자가 배우로 나오고 트랜스젠더들이 나와서 함께 공연하고 있는 모습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하고 조롱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만일 불교였다면, 이슬람교였다면 절대로 하지 못할 이런 일을 기독교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이렇게 기독교가 조롱을 당하고 있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인가? 그냥 예술의 한 행위니까 문화의 한 행사이니까 그냥 보고 넘겨야 될 것인가? 아니면 기독교인은 세상 이미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은 그러하니까 세상은 멀리하고 우리는 따로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렇게 잘못된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신앙에 근거해서 과감하게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서 그리스도의 진리가 무엇인지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가야 할 것인가? 최근에 이 상황을 보면서 참 감사한 것은 미국의 CS 파이어라는 한 커뮤니케이션 회사에서 올림픽에 광고하기로 한 것을 취소를 한 일입니다. 엄청나게 그 광고비를 들여야 되고, 올림픽과 월드컵은 가장 광고하기에 좋은 시기인데 기업이 이윤을 감소하고서라도 이윤을 포기하고서라도 광고를 내린 이유를 CS 파이어가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올림픽에 참가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들 우리는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However, 그럼에도 불구하고, We will not be part of the, 우리는 절대로 이 사람들의 offensive, 너무나 공격적이고 unacceptable, 우리가 허용할 수 없는 mockery of the Last Supper, 예수 그리스의 최후의 만찬을 조롱하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광고를 내립니다.”
-미국의 CS 파이어라는 한 커뮤니케이션 회사-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것인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기업의 정신인데 저렇게 기업의 이미지를 먹칠을 하고 이윤을 포기하면서 저렇게까지 해야 할 것인가? 이 본사가 미시시피에 있는데, 미시시피의 가문을 주지사 테이트 리브스라는 사람이 이렇게 논평을 내었습니다.
 
“I’m proud of, 나 너무나 이 사람들이 자랑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조롱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God will not be mocked.” -미시시피의 가문을 주지사 테이트 리브스-
-하나님은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죠. 그 때문에 우리는 광고를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런 시대에 이윤을 무시하고 때로는 자신 얼굴에 먹칠을 당하면서까지 이렇게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지금 이 시대는 너무나 거센 세속의 물결이 우리를 잠식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동성애자들 그리고 인테 기독교 세력들 너무나 교회를 공격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침잠하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이런 시대, 이런 잘못된 시대정신이 우리 자녀들 가슴 속에 마치 DNA처럼 먹물처럼 파고 들어오는 이 시대 아닙니까? 안방에까지 침투하고 있는 잘못된 이런 사상들, 이런 시대정신이 우리를 끌고 가고 있는 이런 상황에 우리 과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설 것이며 우리는 어떻게 시대를 이해할 것이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인지 한 번 인생을 어떻게 살아내어서 이 시대의 물길을 거스르고 하나님 앞에 살아갈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 말씀을 통해서 그 옛날 시대정신을 거부하고 오직 신앙으로 살아낸 하나님의 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과 아벳느고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금부터 약 2천 600년 전에 바벨론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바벨론이 인도의 북부, 에티오피아 그리고 중동 전체 지방 또 동양의 인도까지 점령했던 대제국이었습니다. 이 대제국을 완성한 왕이 느브갓네살 왕입니다. 하나님 나라 유다까지 침공을 해서 세 번에 걸쳐서 포로로 잡아갑니다. bc 605년에 먼저 친국에서 무너뜨리고 그때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갈 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도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포로로 잡혀온 신세였지만 그들의 삶은 평탄했어요. 왕이 그들에게 궁중 교육을 다 시켰고 관리로 삼아서 평탄한 삶을 살게 했습니다. 평탄하게 살았던 이들의 삶의 어느 날 고난의 바람이 불기를 시작을 합니다. 3장 말씀에 보면 느브갓네살 왕이 어느 날 거대한 신상 우상을 세웁니다. 높이가 30m나 되고 높이가 3M나 되는 거대한 우상 왜 왕이 갑자기 이렇게 우상을 세웠을까요? 2장 말씀을 보면 잘 이해가 됩니다.
 
느브갓네살 왕이 어느 날 귀한 꿈을 꿉니다.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해 주지 못했을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이 나아가서 꿈 풀이를 해줍니다. ‘왕이여, 지금 왕의 왕권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져 가고 있지만 그러나 언젠가 세상의 왕권은 다 사라질 날이 오고 영원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왕은 듣고 너무나 귀하게 여겼습니다. 다니엘과 새 친구들에게 높은 관직을 주었습니다.왕이 그 꿈을 꾼 지는 왕 직에 있은 지 2년째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이후로 16년 지난 이후에 왕 직에서 인제 18년째 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왕권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왕권이 더 강성해져 갔습니다. 왕의 마음도 점점 더 교만해져 간 겁니다. 왕은 자신의 왕권을 상징하는 거대한 신상 우상을 세우고 바벨론의 도를 다스리는 수천 명의 관리들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수천 명의 관리들이 줄을 서 있고, 궁중에 음악을 켜는 수백 명의 악사들을 다 불러 모읍니다. 왕의 명령이 떨어집니다. ‘모든 사람들은 누구든지 엎드려서 금 신상 앞에 절하라. 절하지 아니하면 저기 맹렬(猛烈)이 타는 풀무 불에 집어던져 죽이리라.’ 사람들 앞에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사람을 집어삼킬 듯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천지를 울리는 음악 소리, 수천 명의 관리들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금 신상 앞에 우상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8절에 보면, 그 때에 라고 말을 해요.
 
*다니엘 3:8,
8 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니라.
-그때에 천하 모든 사람들이 다 무릎을 꿇고 우상 앞에 절하는 그 때에 우상 앞에 절하지 아니했던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있었어요.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절하지 않겠노라고 오직 유일한 죽은 대신은 하나님께만 무릎을 꿇겠다. 라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의 절개를 지키려고 하면 찾아오는 것이 핍박이죠. 사람들이 사람들을 참사하기 시작합니다. 12절에 뭐라고 말합니까?
 
*다니엘 3:12,
12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왕은 분노했습니다. 포로 잡혀온 주제에 높은 관직을 주어서 평탄한 삶을 살게 했는데, 왕의 신상 앞에 절하지 않은 것은 마치 왕권에게 도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왕은 평소 때 이 세 사람의 충정을 잘 아는 왕이었습니다. 왕이 그들을 불러 모읍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야 너희가 정말 절하지 아니했느냐?’ 기회를 줘요 이제라도 준비했다가 음악이 울리거든 절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들이 내 손에서 너희들 구해줄 신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 놓인 세 사람, 왕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대답은 짧고도 즉각적이었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절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시대정신을 따라서 거대한 물결을 따라 휩쓸려 걸어갈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신앙 정신에 비추어서 아니오! 하고 꿋꿋하게 무릎을 펴고 서 있는 세 사람,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기꺼이 죽음을 택했던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이렇게 시대 물결이 우리를 휩쓸려오고, 우리 자녀들 가슴 속에 세속화의 바람을 DNA처럼 심어놓고 이런 시대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이런 시대를 거스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며, 인생 그리고 세상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길일까요? 우리 부모님들이 어떻게 살아내는 것이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하는 것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그리고 한 번 사는 세상에 하나님께 가장 영광을 올릴 수 있는 길일까요?
 
오늘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삶을 통해서 두 가지의 승리의 비결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입니다. 시대정신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Q. 시대정신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I. 첫째, 하나님 앞에 타협 없는 자세로 서라.
 
-타협 없는 자세로 서라. 시대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담대하고도 당당하게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써라. 오늘 세 친구들은 왕의 명령을 들어야 될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포로 잡혀온 사람들입니다. 왕이 높은 관직을 주어서 평등한 삶을 약속한 왕 아닙니까? 이 정도 되면 왕에게 한 번 정도 절해야 될 사람 아니겠어요? 왕의 명령은 고칠 수 없는 명령입니다. 왕이 세 사람에게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준비했다가 어찌하든지 살려주려고 애를 쓰고 있는 왕 아닙니까? 이 정도 되면 한 번 정도 우상 앞에 저라는 것이 왕에 대한 예의요. 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길이요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납득할 만한 이런 타협 앞에 그들은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왕이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절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질문합니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살아야 됩니까? 이 세상도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인데 한 번 정도 절한다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몰라주실 것도 아니고 굳이 그렇게 해서 그 젊은 날 청년 시의 삶을 들여야 한단 말입니까? 이 타입이라는 컴프로마이즈("컴프로마이즈(compromise) 타입"은 한국어 보안 용어로, 시스템이나 네트워크가 보안 위협에 의해 손상되거나 침해된 상태를 의미함))라는 이 타입이라는 이름이 너무나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아름답게 안전한 기독교를 만들어내어요.
 
여러분, 기독교가 비난을 당하는 조롱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누구신가? 라고 후 이즈 지어스, 라고 했는데 The only way to salvation,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거, 온리(Only) 라는 단어를 빼버리면 문제될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이웃을 사랑하라. 사람을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나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고, 타인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고, 얼마나 좋은 종교입니까? 모든 사람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기독교가 될 수 있는데 왜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거리요.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죠
 
Who is JESUS? 누가 예수인가? The only way to GOD! 유일한 하나님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주님이라는 것 Only 라는 이 단어 하나 때문에 모든 문제가 일어나는 것 아니겠어요? 기억을 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 천국에 이르는 길은 Only JESUS! 분일 줄 믿습니다. 불교도 이슬람교도 착하게 살아도 다 구원의 길이 있다면 싸울 이유 하나도 없죠. 기독교는 최고의 종교가 될 것이에요. 그러나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피 묻은 십자가 부활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를 살려내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인 줄 믿습니다. 최근에 엘버트 몰로 총장님이 쓰던 베스트 총장님이 쓴 책이 한 권이 있습니다.


“세속화의 폭풍우가 몰려온다.”(The Gathering Storm), -엘버트 몰로 총장-
-폭풍우가 몰려서 우리를 잠식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거대한 시대정신으로 광풍처럼 몰려오는 세속화가 어떤 것인지, 우리를 잠식해 들어가고 젊은이들 가슴 속에 잘못된 사고를 심어주고 있는 이런 사상들,
 
여러분 세속화라는 것이 결국에 어떤 것입니까? 다 나를 위한 것입니다. 나의 기쁨, 나의 행복, 나의 만족 ,자기 성취 모든 자기 행복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런 세속화의 물결, 이 물결 속에서 몰로 총장은 강력하게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 물결에 대항하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담대하게 당당하게 세속화에 맞서야 합니다. 지금 세속화가 중에서 가장 우리를 잠식해 들어오는 것 중의 하나가 동성애 문제 아니겠어요?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비판하면 차갑게 여기고 그렇게 동성애 이 시대 동성애를 가지고 사람들이 소리를 높이고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변개치 말아야 될 것이 두 가지가 있어요.
⓵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성경의 진리의 말씀 오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줄 믿습니다.
⓶다른 하나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고결한 사람이에요. 남성과 여성으로 만들어진 그걸 무너뜨리면 하나님이 마지막 무너뜨리는 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도 소리를 내고 있는 이런 시대가 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젠더 플루이드(Gender Fluid)라는 단어 유동하는 오늘 내일 따라서 달라지는 성이라고 오늘은 내가 남자가 되었다가, 내일은 원하면 여자가 되기도 하고 모래는 원한다면 고양이가 되기도 하고 자기가 원하는 성을 자기가 선택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뉴욕에서는 공식적으로 31가지 성을 인정을 하고 있어요. 지금 캘리포니아 같은 경우에는 우리 어린 자녀들이 성 정체성을 겪으면서 내가 성 전환 수술을 해야 되는가, 바꿔야 되는가를 고민할 때 부모님들이 간섭하지 못하도록 부모님들이 조언하고 권면하는 것을 불법으로 만드는 법을 통과를 시켰어요.
 
이게 지금 상상이 안 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게 캘리포니아 그리고 미국뿐이겠습니까? 한국에도 들어와서 언제 우리 앞에 펼쳐질지 모를, 눈앞에 펼쳐질 미래를 내일이 그날이 올 수 있는 겁니다. 왜 우리는 이것이 아니라고 이렇게 소리를 쳐야 될까요?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아닌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하나님 우리를 소중하게 만드시고 고결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만드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인간에게도 가장 행복한 길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 삶 속에 이런 타입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것이 없습니까? 우리 사랑의 교회 모토가 무엇입니까? 제자 훈련 잘 해서 이 시대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것,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부름 받은 제자들일 뿐만 아니라 세상으로 보내 받은 제자라고, 우리는 그렇게 외치고 있지만 여러분 세상에 보내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을 변화시키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너무나 멋진 훈련의 모터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쁠 말이에요. 우리는 멀쩡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데 당신들이 누구 길래 나를 변화시키냐고, 왜 그들이 변화가 필요하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진정한 삶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를 향해서 나아가는데 세상의 목소리에 잠식되어서 우리의 사명을 잃어버린다면 그보다 더 큰 컴프로마이즈는 타입은 없게 될 것입니다.
 
※두 주 전에 저희 교회를 설립하셨던 우리 1대 목사님께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셨어요. 95년 동안 참 멋진 생에 너무너무 아름다운 인생을 마치고 주님 품 안에 안 계셨는데, 제가 하루 전날 뉴저지로 찾아뵙고 인사를 나누는데 하루 전날 돌아가시기 전에도 얼마나 왕성한 목소리로 또록또록하게 말씀을 나누시는지 그렇게 한 시간을 목사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목사님께서 그렇게 유언을 하세요. ‘내가 주님께 가더라도 슬퍼하지 마십시오. 내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군천사와 함께 두 손을 들고 맞이해 주실 것입니다. 박수로 찬송으로 나를 보내 주십시오.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야 이 멋진 유언을 남기고 가시는 목사님 그리고 목사님께서 예배를 제가 말씀을 인도하고 마지막 축도를 할 때, 목사님께서 계속 손에 들고 계셨던 십자가가 하나 있어요. 평생을 간직하셨던 저 십자가 저 십자가를 헤어질 때 저의 손에 맡기시면서 하셨던 부탁입니다. “류 목사, 내가 평생 간직한 십자가 안에 이제 자네에게 맡긴다네.” 정말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저 조그만 나무 십자가가 거대한 바위 덩어리처럼 제 어깨에 부담으로 책임으로 내려왔습니다. ‘세상이 변한다 하더라도 자네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게나. 그 목소리 아니겠습니까? 온 세상이 바뀐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외에 수많은 길이 있다고 동 종교 다원주의자들이 그렇게 외칠 때, 자네는 강단에 설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주님이라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그것 외치게나.’
 
그 음성 아니겠습니까? 목사님께서 저희 교회를 개척하시게 된 그 스토리를 듣고 너무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50년 전에 교회를 세우셨는데 한 교회를 같이 몇 목사님이 섬기셨던 때입니다. 주일에 당시 한인 사회 한인 회장 투표하는 날인데, 그 교회 집사님이 회장 후보가 되신 거예요. 그러니 목사님께서 우리 모두 빨리 예배를 마치고 투표하러 같이 갑시다. 우리 집사님 되시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주일날 하나님 앞에 거룩한 예배자로 나아가야 될 그 날에, 이렇게 관광하는 목사님을 보고는 도저히 같이 참게 할 수 없다고 나오셔서 세운 교회가 저희 교회였습니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되겠냐고 묻겠죠. 그러나 주일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날이기에 거룩하게 주님 앞에 영광을 위해서 드린 날이기에 우리 선조들이 그렇게 살아내신 겁니다. 그 믿음의 선조들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가 이렇게 주님 앞에 서 있는 거예요.
 
우리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휴가철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성도님이 이렇게 주님 앞에 나와서 참 감격적으로 예배하는 것 주님이 바라보시고 너무나 기뻐하신 일인 줄 믿습니다. 오늘 한 분이라도 영상으로 예배하고 있는 우리 성도님 계십니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렇게라도 한다면 주님이 기뻐하실 일입니다. 병약해서 일어나지 못하시거나 연로하셔서 마음이 원하지만 차마 일어날 수 없는 상황, 이슬람 국가에서 때로 예배할 수 없는 상황, 아마 다양한 상황이 있겠죠. 주님도 이해하실 수 있는 상황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러 우리 성도님들 온라인으로 하시는 분들 중에 지금 일어나 걸으실 수 있다면 정말 온라인 예배가 누구를 위한 예배인지 한번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내 편의를 위해서 내 자신을 위해서 지금 그렇게 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가장 하나님께 욕망이 되는 일이라고 그렇게 예배를 하고 계십니까? 많은 사람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계세요. 목사님 요즘은 하이브리드 시대입니다. 집에서 재택근무도 얼마나 많이 합니까? 예배를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사람의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배 신약이라는 것은,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개인적으로 주님을 믿음으로 얻는 것이 구원이에요. 신앙은 목사의 부모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예배는 달라요. 예배라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영적인 모든 가족이 한 몸이 되어서 주님 앞에 드리는 게 이게 예배예요. 우리가 언젠가 천국에 이르게 되면 그날은 예수님을 머리로 하고 주님의 모든 몸 된 지체된, 오고 가는 모든 세대 그리스도인들이 온전한 영적인 가족을 이루어서 주님을 예배할 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 날을 미리 맛보는 것이 지상의 예배예요. 예배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만이 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특권이 예배인 줄 믿습니다.
 
오늘 예배 예배를 댁에서 예배하시는 분들 중에 일어나실 수 있는 분들이 계신다면 여러분 나오셔야 될 예배는 3부 예배예요.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꼭 미리 준비하셔서 현장 예배 오셔서 함께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예배 자리에 함께 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은 이런 부모님의 예배를 통해서 어려운 시기에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예배하는 부모님을 통해서 정말 하나님을 격려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시대정신이 아니라, 성경 정신으로 일어나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일어설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가 무엇일까요? 타협하지 아니하고 일어날 수 있는 두 번째 비결이 무엇일까요?
 
Q. 시대정신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II. 둘째, 하나님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서라.
 
-하나님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을 믿대 확실하게 믿는 믿음, 사랑의 여러분, 제가 한번 묻고 싶어요. 우리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시장을 믿으십니까?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말 피를 쏟으시고 나를 구원하신 구원자라는 것을 정말 믿으십니까? 정말 그것을 믿고 있다면 이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 머릿속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손과 발을 움직이고 내 삶을 움직이는 거 그것도 우리 믿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오늘 풀무뿌리에 집어던지겠다고 말하는 왕에게 이들이 하는 말씀이 뭐죠? 우리 17절 말씀 한번 보시겠습니까?
 
*다니엘 3:17,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 시리이다.
-아멘. 우리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를 능이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 건져 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이라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십니다. 왕은 천하를 재패 도망입니다. 풀무불은 당장이라도 사람을 집어삼킬 듯이 피어오르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지만 그들의 믿음은 관념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삶을 움직이는 그들의 생각을 움직이고, 가치관을 움직이고, 죽음 앞에서 기꺼이 죽음을 결단하게 만든 것이 그들의 믿음이었어요.
 
사랑의 여러분한테 한번 다시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믿고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정말 그분이 나의 죽은 유일하신 내 하나님이시라면 그 하나님께 집중하고, 몰입하고 내 모든 삶을 살아내고 있나요? 이 믿음을 가지게 되면 직장의 문을 열 때 자세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 터가 되는 겁니다. 자녀들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져요. 내 꿈을 성취해 줄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청지기로서 자녀들을 말씀으로 훈련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게 달라지게 되는 거예요. 물질간이 달라지고 인생의 행복관이 달라지는 겁니다. 남들보다 비교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그런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소 지을 때 그것이 최고의 행복인 줄 믿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섬길 때 주로 섬겼던 지역이 두만강 상류부터 하류까지 많은 곳에 다니면서 지하교회를 숨겼던 청년 시절이었습니다. 주로 섬겼던 지역이 남평 그리고 왕청, 도문 이런 지역이었어요. 제가 한 도문에서 우리 지하교회 청년들을 섬기러 갔을 때였습니다. 연길에 며칠간 머물다가 가는데 그 집 주인이 저에게 그렇게 말씀을 해요. ‘목사님, 그 도문에 가면 그 지하교회 리더가 여성입니다. 우리 교회에 사흘 동안 머물다가 갔는데 우리 집에서 사흘 동안 머물다가 갔는데 21살짜리 그 앳된 처녀가 시골로 간다고 하니까 걱정이 돼서 물었어요. 너 정말 가려고 하느냐? 갑니다. 겁나지 않냐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두렵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사실 신앙에서 그렇게 깊은 성도님들이 아니셨어요.그런데 이 말이 너무나 그들 가슴 속에 새겨진 겁니다. 4시간, 5시간 가까이 걸려서 그 도문으로 갔어요. 두만강 하류입니다. 바로 저 넘어 북한 초소가 여기저기 보이는 곳이에요. 제가 갔을 때는 그 자매가 온 지 1년 지났을 때고, 이미 7명의 청년들이 모여서 예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침 5시부터 8시까지 예배하고 말씀 나누고, 식사 후에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경제 활동을 위해서 술을 놓고 그리고 다시 예배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몇 명 아이들은 강 건너에 넘어온 북한 청년들이었고, 함께 이렇게 교회를 이루고 있었어요. 그 자매가 들려준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이런 역사도 행하시나 싶었어요. 처음에 그 마을에 왔을 때 젊은 처녀가 시골 마을로 들어오니까, 모든 마을 사람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경계하면서 말 한마디 걸지 않더래요. 여러분 중국에도 요즘 젊은이들 시골이 없죠? 다 도회지(都會地)로 떠나갑니다. 그 멀쩡한 처녀가 시골에 왔으니 혹시 북한에서 보낸 스파이는 아닌가, 통무다는 아닌가, 그렇게 했다가 1년 동안 이 자매가 아무 말 하지 아니하고 그 어르신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지극한 정성으로 숨겼어요. 1년 정도 지나고 나니까 마을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감동해서 우리 마음에 우리에게 저 천사를 보내줬다고, 그때부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하 교회가 아름답게 세워줬어요. 제가 얼마 후에 그 자매를 그 시골에 보낸 선교사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선교사님 지금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 마을에 가서 교회를 세우라는 마음을 주셔서 누가 가겠냐고 했더니 자매가 자원을 했어요. 제가 한 달 생활비와 종이 한 장을 쥐어서 보내었습니다. 주소가 나와 있는 종이 한 장, 아무것 없이 그 시골 마을이 쓰여 져 있는 주소 한 장 들고 들어가는 한 자매, 두렵지 않는가?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사랑의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 우리가 믿는 하나님 절대적으로 믿는 그 하나님 그 믿음이 우리를 움직이는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3명의 친구들, 그 죽음의 위협 앞에서 그들을 움직였던 유일한 한 가지는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절대적인 믿음이었어요. 그러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줄 믿었지만 세 친구는 하나님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지를 않았습니다. 뭐라고 말하죠?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설령 하나님이 우리를 저 풀무 불에 집어던져 그냥 쉽게 내버려 둔다 할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않겠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왕이여.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줄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 아니하신다 할지라도 왕이요 우리는 우상 앞에 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딘가에 소중한 것을 들이기 마련이에요. 그리 아니 하신다 하더라도,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들이려는 사람들 우리가 어떻게 타협하지 아니하고 시대의 정신을 거슬러 성경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기꺼이 내 생명이라도 드릴 수 있는, 정말 주님을 위해서 내 시간 물질 내 모든 것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 라는 이 마음 하나 있으면 그때 가능한 겁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여러분들이 주님 앞에 헌신하기 위해서 주님 앞에 내 자신을 드리기 위해서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결국에는 다 내 자신 아니겠어요? 내 생명, 내 미래, 내 계획, 내 가정, 내 자녀들 우리가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그 33살의 그 젊은이가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 당신의 피를 쏟으시고 당신의 온몸에 물을 다 쏟으시고 하신 그 일이 뭐죠? 주님은 조롱 받으시고 채찍질 맞으실 때,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보라고 조롱을 당하면서 우리 예수님 묵묵하게 하신 기도를 기억합니까?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주님 때문에 우리가 생명을 얻었어. 이렇게 주님 앞에 나와 있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 그 33살의 젊은이 앞에 우리가 아낄 수 있는 것이 한 가지라도 있단 말입니까?
 
제 생에 너무나 부끄러운 고백이 하나 있어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들어가서 저는 예수님을 믿고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말 주님을 위해서 심장이 뛰었던 그 대학교 1학년 때, 저희 대학교에 여러분 통일교 교주가 누구죠? 문선명죠. 문선명의 오른팔이 누군지 아시나요? 박보희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분이 학교를 찾아오는데 대통령 만나는 사진 또 수상 만나는 사진 온 학교가 도배를 했어요. 아 제가 그때 예수님을 위해서 심장이 뛰었던 그 20대 어떻게 사탄의 종교, 거짓 종교 사이비 종교의 괴수가 우리 학교를 오는지 제가 맨 앞자리에 가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주님 제가 오늘 강의를 듣는 중에 영의 문을 열어 주십시오. 내가 오늘 통일교회의 허를 찌르리라.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데 아 그 박보희 씨 제가 그 강연을 듣고 너무 은혜를 받아버린 거예요. 뛰어나가서 사인을 받았어요. 그분의 한 마디가 정말 제 심장을 찔렀습니다. 내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문선명 선생은 이 진리를 위해서 일곱 번이나 감옥을 다녀왔습니다. 나는 내 스승을 위해서 아직까지 한 번도 감옥을 다녀오지 못한 부끄러운 제자입니다.
 
여러분, 그 거짓 종교의 우두머리도 거짓 진리를 위해서 감옥 한 번 다녀오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여겼는데,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정말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자 하나님이 맞으십니까? 정말 그분이 유일하신 우리의 주님이 맞으십니까? 정말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시라면, 그 청년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를 쏟으시고, 당신이 하나밖에 없는 심장을 죽어 있는 내 심장을 위해서 대신 주시고, 내 심장의 피가 그분을 통해서 뛰고 있다면, 33살보다 더 살아가는 날에 주님 앞에 죄송함을 여러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나를 위해서 피를 다 쏟으신 그 주님 앞에 내가 주를 위해서 피 한 방울 흘려보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여겨본 적이 있으십니까?
 
사랑의 여러분, 이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우리의 주님이시라면 그 주님을 믿는 믿음이 내 삶을 움직이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시대정신을 압도하는 신앙 정신으로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써서 시대 앞에 서는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세 사람의 고백 앞에 느브갓네살 왕은 분노했습니다. 풀무 불을 당장 일곱 배나 뜨겁게 달구었어요. 당장 세 사람을 풀무 불에 집어 던졌습니다. 얼마나 풀무불이 뜨거웠던지 이 세 사람을 던지는 그 군인들을 불태워 죽였어요.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위해서 오직 한 분 죽은 대신 한 분을 위해서 그들의 삶을 불꽃처럼 던진 세 사람의 마지막 최후 순간을 보고 있습니다. 연기처럼 바람처럼 한 줌의 죄로 사라져야 될 세 사람, 느브갓네살이 풀무 불을 지켜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세 사람과 함께 또 한 사람이 그 안에서 걸어가고 있어요. 그 모습이 신의 아들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믿음으로 살아낸 세 사람을 예수님을 보내셔서 구원해 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놀라운 일들, 느브갓네살이 세 사람을 불러냅니다. 불탄 냄새 하나 없이 머리틀 거슬린 것 하나 없이 살아서 걸어 나왔어요. 느브갓네살이 내 사랑이 뭐라고 고백합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하라 천지를 호령했던 왕, 우상을 세우고 무릎 꿇고 절하라고 했던 그 왕의 입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라 천사를 보내어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와 이방 왕에서 나오는 높임을 받으신 우리 하나님, 우리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서서 믿음으로 써서 나갈 세상 왕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할 줄 믿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마지막 30절에,
 
*다니엘 3:30,
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왕이 그들을 바벨론 도에서 높이 들어 사용을 했어요. 하나님께 영광을 받으시고 세상 앞에서도 존귀 받았던 사람, 그리아니 하실지라도 감사하지만 우리 하나님 그들을 통해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신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올해가 2024년 파리 올림픽 있는 날이죠 있었죠. 100년 전에 1924년에도 역시 파리 올림픽이 있었어요. 그때 우리 가슴을 뛰게 하는 한 사람의 이름 기억납니까? 에릭 리들, 100미터에 세계 최고 금메달 유망주였습니다. 체레토 파이어, ‘불의 전차’라는 그 이름으로 잘 알려진 한 사람입니다. 영국을 대표해서 100미터를 뛰는데 100미터 하는 날이 주일이었어요. 기도하고 고민하다가 ‘나는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 거절했습니다. 본래 월요일이 뛰는 날이었는데 프랑스 혁명 기념일 때문에 주일로 바뀐 겁니다. 모든 사람이 아니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뛰어야 되지 않냐고, 옹졸한 기독교 내라고 조롱할 때, 나는 주일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입니다. 뛰지 않았습니다. 다니 그의 친구 에이브람이 뛰어서 영국에 금메달을 선사했어요. 200m에 에릭 리들이 나갔습니다. 주 종목이 아니었습니다. 동메달을 땄습니다. 400m는 전혀 주 종목이 아니었어요. 그의 친구 앤드로 린지가 그를 위해서 양보를 했습니다. 뛰었고 예선전에서 꼴찌로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제일 안 좋은 맨 가장 자리에 배정을 받았어요. 그리고 결승전 총성과 함께 뛰었고 47 06초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어요. 하나님을 위해서 불의 전차로 달려간 사람, 기자가 물었습니다. 주 종목이 아닌데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뛸 수 있었습니까? ‘200m터는 최선을 다해 뛰었습니다. 나머지 200m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뛰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명예, 모든 부위를 다 내려놓고 다음 해 중국의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순교사로 20년 동안 있다가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고, 외시앙 수용소에 잡혀 있다가 결국에는 그곳에서 순교를 당했어요. 그의 나이 44살에 젊은이었습니다. 400m를 뛸 때 믿으면 좋았던 그의 코치가 그의 손에 종이 한 장을 지어 주었습니다. 사무엘 말씀이었어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리라.”
 
*사무엘상 2:30b,
30b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 사람 인생입니다. 바람처럼 지나가는 인생, 여러분 무엇을 위해서 살다가 누구를 위해서 살다가 주님 앞에 서시겠습니까? 다 지나갈 일들입니다. 세속화가 우리를 엄습해 오고, 시대 물결이 우리를 엄습해 오는 이런 순간에 그냥 그대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신앙 양심에 근거해서, 아니요. 라고 말하면서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주님 앞에, 우선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없습니다. 당당하게 살아갈 때 우리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시고 세상도 주님을 알 줄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 그렇게 살아갔어요. 이제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므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하나님의 사람들 시대를 거슬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하나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요약
시대정신을 거부하고 신앙정신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살아야 한다. 우리들의 말, 행동 모든 것을 통해서 우리 살아계신 하나님 영광을 받으셔야 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셔야 하며, 우리 모두 시대정신이 아니라 신앙정신으로 살기를 소망하고, 시대정신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를 기억하여 하나님 앞에 타협 없는 자세로 서며, 하나님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서야 한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우상에게 절을 하면 이제라도 살려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풀무 불에 던지겠다고 위협했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말로 시작한 느부갓네살은 그들이 계속적으로 우상 숭배를 거절하자 태도를 바꾸어 생명을 담보로 협박했다. 그렇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는 끝까지 자신들의 신앙을 지켰다. 그들은 육체만을 없앨 수 있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도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분께만 순종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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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8월 11일)
제목: “정말, 네가 낫고자 하느냐?(Do You Realy to Be Healed?)
말씀: 요한복음 5:9, 14-15
대표기도: 백승준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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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5:9, 14-15,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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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광복 79주년인데 오늘 예배를 통하여 여러분 한 분도 예외 없이 신앙의 경이로움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생수의 강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광복 79년 주년인데 어제 우리 토요 새벽예배 때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79가 뭐냐? 칠천 기도 용사가 구국기도 하는 거다. 이게 꼭 좀 감이 와 닿는지 모르겠어요. 예 칠천기도용사뿐만 아니라, 오늘 이 앱에 참석하신 여러분들 모두의 마음속에 오늘 정말 주님의 음성을 듣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찬송할 때 우리가 이런 광복절을 할 때, 자주 부르는 찬송 중의 하나가 ‘시온의 영광에 빛나는 아침’ 찬송하셨죠잉? 하는데 그게 뭔가 마음이 확 와 닿는 게 뭐냐면 매였던 종들이 돌아오네~~ 시온의 영광에 빛나는 아침 매였던 종들이 돌아오네. 묶이고, 매이고 억업 당하고 상처받은 수많은 종들이 자유 함을 얻는다는 것이에요. 저 북한의 포로 된 상황을 저 묶인 자유 함을 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오늘 교독문 할 때도 했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 우리가 마치 꿈꾸는 것 같아 포로들이 돌아올 때에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같았도다. 마치 꿈꾸는 것 같이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오늘 저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시리즈 열여섯 번째를 하면서, “정말, 네낳고자 하느냐?” 오늘 본당, 별관 또 방송으로 들어오는 분들, 또 모든 분들 정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정말 간절함이 있는가 오늘 본문을 보면 38년 된 병자가 이제는 해도 안 된다. 그야말로 패배주의 이제는 비관주의 완전히 낙심하고 이제는 끝났다. 그 마음속에 주님이 불을 지르시는 거예요. ‘정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오늘 시작할 때부터 마음속에 “정말 내가 낫고자 하느냐?” 오늘 그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오늘 15절을 보니까, 아 예수님은 나를 고치시는 분이시다.
 
*요한복음 5:15,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38년대 병자는 아주 고침 받고 난 다음에 추림이 나를 고쳐 주셨구나! 주님은 마이 힐러, 주님은 나를 고쳐주셨구나! 주님은 우리 민족을 고치시고, 또 오늘 이 사회를 고치시고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을 고치시는 분이세요. 이걸 위하여 본문을 좀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1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5:1-2,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명절에서 올라가시는데 왜 올라가시는가, 2절에 보니까,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쉽게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타, 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행각이 다섯이 있는 거 보니까, 좀 큰 못이었어요. 그 이름이 뭐라고요? 베데스다, 뜻은 왜냐 벧이란 말은 ‘집’이라는 뜻이고, ‘에스다’ 이렇게 이게 본래 해세드, 이렇게 여러분 헤세드가 뭔지 아시죠? 자비롭다, 은혜다. 이래 하셨던데 그러니까 ‘자비의 집이다.’ 그런 뜻이에요. 거기에 이제 다섯이 있는데, 거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3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있냐면,
 
*요한복음 5:9, 14-15,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왜 기다렸는가? 4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5:9, 14-15,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물이 동할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이 동하고 먼저 들어가는 자가 어떤 병에 걸리지 낫는다. 이런 것 때문에 3절을 다시 한 번 보면,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어떤 사람이 많은 병자 그다음에 맹인, 앞을 못 보는 자, 다리 저런 사람, 혈기 많은 사람, 중풍 쇼크 받아가지고 온몸의 정상 가동이 안 돼, 이런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 누워 있는 거예요.
 
오늘 저는 이 본문을 통하여 병에 대한 ⓵증상을 말씀할 거고, 그다음에 ⓶그 병을 진단하는 거 말씀할 거고, ⓷세 번째 치유와 그다음 ⓸처방 이 4가지가 오늘 본문 속에 일어나는데, 어쨌든 간에 오늘 여러분들이 상황을 잘 파악하고 민족적으로 우리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있는 수많은 38년 된 수많은 난제의 병들이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그걸 믿는 것이 믿음이에요. 자, 그런데 이 병자들이 인제 누워 있는데, 이게 마치 뭐냐 하면요. 겉으로 볼 때는 멀리 행각이 다섯이 있고, 베데스다의 아름다운 물이 태양빛의 물결이 반짝이고, 겉으로 볼 때는 멋있어 보이지만 속, 그 안에 들어가면 수많은 아픈 사람들이 질병에서 누워있는 거예요. 누가 그런 이야기 했죠. 인생은 겉으로 보면 희극 같지만 그 속에 들어간 비극이다. 아 증상들이에요. 그래서 그 아파 있고, 누워 있고, 눈 못보고, 다리 절고, 혈기 마른 자들을 주님이 오늘 심방 오신 것이에요. 앞에 4장에 보면, 수가 성 우물가의 여인을 주님이 심방(尋訪) 가셨잖아요? 거기서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남편 데리고 오라‘’, 아주 정곡을 찔렀는데 오늘 5장에서는 주님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 심방(尋訪) 오신 주님께서 우리 교회는 좀 이렇게 교회가 큰 규모가 돼 가지고 제가 여러분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신방을 못한다. 할지라도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을 신방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의 마음을 주님께서 만져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자, 우리가 겉으로 볼 때 육신족의 이런 아픈 병도 많이 있지만 사실 오늘 이 사회를 보세요. 수많은 마음의 병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서로 경쟁(競爭), 시기(猜忌), 질투(嫉妬), 고통(苦痛), 수많은 증상(症狀)들, 여러분 지금 많은 분들이 지금은 이 스마트폰 AI 알고리즘에 빠져가지고, 계속 여러분들 얘기하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SNS에 여러분들 필요한 거 올리고, 그랬는데 사실 따져보면요. SNS에 집착하는 분일수록 연구 자료에 의하면 불안과 소외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고, 소셜 미디어의 사용 빈도가 많을수록 사회적 불안과 외로움의 증상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괴로움과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수많은 증상들이 있어요. 다 나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이 베드스타에도 모든 것이 다 나쁘진 않아요. 나름 거기에도 나름 인도주의가 있고 서로 좀 도우려는 마음도 있고 그다음 또 뭐 쫌 이렇게 배려도 좀 하고 어 이렇게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낫느냐, 안 났느냐, 하는 그 치열한 어떤 그 어떤 순간이 오면, 모멘트 순간이 오면요. 사람들이 인도주의 서로 배려하고 서로 관심 좀 있는 것 같고, 이런 것들이 다 사라지고, 치열한 아귀다툼의 현장이 되는 것이에요. 치열하게, 소위 물이 동하는 그 순간만은 투쟁의 역사가 시작되는 거예요. 먼저 뛰어 들어 갈려고, 먼저 나으려고, 서로 밀고 당기면서 싸우는 것이에요. 우리 인간이 가만히 있을 때는 나름대로 배려하고 인도주의적인 면이 있기도 하지만,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에는 사람의 본성이 드러나 가지고, 민낯이 드러나 가지고, 서로 살려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이 극심한 갈등들 마찬가지로 베데스타 비극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오시고, 심방(尋訪)하시고 그리고 이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시고 난 다음에 명실상부하게 이름 그대로 베데스타 은혜의 집이 된 줄로 믿습니다.
 
I. 인생 비극의 축소판 베데스다(3-4):증상(症狀).
 
-제가 오늘 우리 가운데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사실은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있는 사람처럼 이런저런 상처를 가지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만 살겠다고 하는 그런 성향이 있다면,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주의 음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 첫 번째 제가 이제 증상(症狀) 문제를 말씀드렸고, 이제 주님께서 진단하시는 것입니다. 6절에 뭐라고 지금 말씀을 하냐면, 6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 5:6,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러시되 네가 뭐예요? 낫고자 하느냐? 제가 오늘 “정말 내가 낫고자 하느냐? 제목을 붙인 이유가 여기에서 나와 있습니다.
 
II.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6절):진단(診斷).
 
-네가 정말 낳고자 하느냐? 예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분이라고 그러셨는데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 여러분, 이 질문은 신성을 지니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질문입니다. 어떤 인간이 네가 낫고자 하는데, 내가 고쳐주는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예수님은 자연계를 장악(掌握)하시고, 예수님은 질병 계를 장악하시고 예수님은 영계를 참가하셨어요. 예수님은 질병 계. 수많은 기적같이 수많은 아픈 사람들, 수많은 나병 환자들, 수많은 어려운 사람들을 주님이 고쳐 질병계를 장악하시고, 이 누구이길래 이런 기적 같은 병을 치유(治癒)하시는가? 폭풍 이는 바다를 주님이 잠잠케 하실 때, 이 누구에게 이 폭풍이라는 바닷가를 잠잠케 하시는가, 소위 자연계를 주님께서는 통제하시고, 그다음에 악한사탄 마귀 귀신들을 쫓아내는 주님의 영계(靈界)를 장각하시고, 그러니까 이 소위 신성을 지니신 질병계를 장악하신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질문이라는 것이에요.
 
오늘 여러분들 이 말씀을 들을 때에 그냥 주일 강단에서 설교 얘기하는 정도 들리는 말씀을 듣지 말고, 오늘 주님께서 한 분, 한 분, 심방 오셔가지고, “정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정말 이 민족의 갈등이 치유되기를 원하느냐?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음성으로 들려가지고, 참으로 마음속에 간절함을 갖고 “주님 제가 낫기를 원합니다.” 적당히 원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일사각오로 주님 제가 낫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오후에 청계산에 올라가서 기도를 합니다. 거기에 올라가 가지고 뭐 바위에서도 기도할 것이고, 간절하게 시간 되면 미리 올라와서 기도를 하시는데, 여러분, 거기서 한번 결사적인 각오로 주님께서 주신 음성인 네가 오늘 정말 낫기를 원하느냐? 거기에 대해서 여러분들 마음이 주님 앞에 마음이 열려 가지고 그렇습니다. “주님 제가 낫기를 원합니다.” 원함 정도가 아니라, 아주 그냥 결단하는 축복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치유 자 되시는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질문인 줄로 믿습니다. 치유 자 되시는 주님께서 이 질문하실 때, 거기에는 내가 너를 고쳐주기를 원한다는 간절한 목자의 심정이 있는 것을 기억하셔야 되는 거예요.
 
오늘 이 자리에는 교회라고는 처음 오신 분도 있을지 몰라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없습니다. 육신적으로 아프고 이런 것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상처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에서 살다 보면 수많은 문제가 치유되지 않아 가지고 큰 짐을 주고 있을 때에, 오늘 처음교회 오신 분들 가운데 주님을 잘 몰라도 오늘 마음의 소원을 하세요. ‘주여 내가 낫기를 원하나이다.’ 낫길 원하나이다. 그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도록 들을 길을 주시고 마음이 열리기를 바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왜? 이 병자에게 이 말씀을 하셨느냐면 이 병자의 반응을 좀 들어보니까 이 병자의 마음속에 상처가 있고, 병자가 아 이제는 나도 끝났다. 하는 비관주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래요. 심방 오신 이유가 7절을 보세요. 뭐라고 나왔냐면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6절에 물으니까 같이 보죠.
 
*요한복음 5:7,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간다. 무슨 말입니까? 이 대답에는 그의 자기 연민(憐愍)과 불만(不滿)이 담겨 있어요. 나는 누워있기 때문에 움직임이 빠르지 못하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군가 나를 들어서 물에 넣어줘야 하는데 아무도 나를 넣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나는 그냥 널브러져서 누워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니까 그의 마음에 이 답답함과 안타까움으로 부정적인 생각과 상처받은 마음이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요. 뭐라고 해요. 다시요.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이 말에는 자기 불만과 연민이 들어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고 불평하면 자기연민에 빠지면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그럴 때마다 우리 속에 주님이 허락하셨던 기쁨 자원이 고갈이 되고, 소망자본 희망자본이 다 없어지고, 나중에는 냉소주의, 부정적 의심만이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께서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 는 이 질문 안에는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입장에서는 단지 육체적인 치유에 관한 질문 정도가 아니라, 이 말씀 이 질문에는 그 병자(病者)를 전인적인 치유로 초대하시는 질문이 될 수가 있는 것이 그리고 이 질문에는 종합적으로 은혜의 자리로 부르시는 초대장(招待狀)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제대로 은혜를 받고 치유가 되면 몸도 따라오고 몸도 치유가 될 수가 있는 겁니다.
 
자,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38년도 병자를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그가 처음 병들어서 5년 10년 될 때까지는 사람들이 와서 너 낳을 수도 있어, 그래 나도 나을 수가 있을 거야. 그리고 너 낫기를 원한다고 이런 마음의 소원이 계속 나름대로 자리 잡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 병이 만성이 돼 가지고 5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20년이 되고, 30년이 되고, 35년이 지나니까 자기도 모르게 오랜 병에 익숙해져 가지고 병에서 나을 것 같다고 생각이 안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병자는 38년이니까. 예를 들어서 20살의 병자가 되었으면 58세가 된 겁니다. 거의 회갑 수준입니다. 당시 고대 근동사회의 평균 나이 평균 수명을 다 초과(超過)해버렸습니다. 그래갖고 뭐 이제 내 인생 끝났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 주님께서는 그 베데스타 전각에 수많은 병자들, 맹인들 다리 저는 사람들, 혈기 마른 사람들, 이 사람들을 다 이래 지나셔 가지고 다, 다리 저는 사람도 지나고, 혈기 마른 사람도 지나시고, 맹인도 지나가지고, 이 38년 된 병자에게 다가와 가지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정말 낫고자 하느냐?” 부드럽고 따뜻하게 질문하실 때, 갑자기 그 병자의 가슴이 뜨거워지고 감동이 되고 떨린 거예요.
 
오늘 우리 가운데 오랜 시간 병으로, 오랜 시간 큰 상처로, 마음이 굳어버린 채 자기 자신도 포기(抛棄)해 버린 어떤 고통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주님은 지금 맹인들, 다리 저는 자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서 이 38년 된 병자에게 다가오신 것처럼, 오늘 이 시간 주님은 여러분들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이 예배시간을 통하여 다가오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주님이 여러분들을 다가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오셔서 질문하십니다.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은밀한 죄들 좋지 못한 고질적인 습관 등이 있다고 해 보십시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끊기를 원하겠지요? 은밀한 죄나 고질적인 습관들 근데 실상은 38년 된 병자처럼, 만성적으로 반응해 가지고 그 죄에서 벗어나기를 진심으로 원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원하기는 원하는데 만성적인 죄의 습성이 주는 즐거움에서 진심으로 벗어날 의지가 없는 거예요. 그저 그랬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잠시 죄악의 낙이 있기 때문에 잠시 죄의 즐거움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 는 이 질문에 대해서 이 질문이 내게 능력으로 다가오지를 않는 것이에요. 여러분, 그냥 원하는 거 하고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은 다른 거예요. 내가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이 희망과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내가 일사각오의 결단을 하는 것은 다른 것이에요. ‘정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시편 145편 18절 제가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편 145:18,
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아멘 진실로 원하는 축복을 이 시간 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혼자 있을 때보다도 공동체가 같이 기도하고, 같이 찬양하고, 같이 준 앞에 목 놓아 우리가 마음을 같이 할 때, 하나님이 이 자리에 기름 부음이 있게 되는 것이 소위 은혜의 불이 떨어지게 돼있는 것이에요. 우리 민족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남북문제 지난 79년 동안, 옛날에 어릴 때 저희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그렇게 하면 뭔 가슴이 좀 찡한 게 있어요. 근데 지금 2030 시대 세대 또 4050 40대 50대도 보면 실질적으로 저희들 세대만큼 통일을 그만큼 원하는가?

 
작년에 서울대학교 통일연구소에서 평화통일 연구소에서 통계가 나왔는데 지금 20대 30대에 있는 젊은이들은 별로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 통일을 별로 원하지 않는다. 이런 분들이 76프로예요. 40대 50대도 뭐 57프로 이상, 그러니까 원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이게 지금 일반적인 생각이에요. 이제 만성이 돼버린 거예요. 정말 원하지를 않는 정말 그런 이게 그만큼 어떤 긴박성이 약해진 거예요. 절박성이 약해진 거예요. 그러니까 물어보십시다. 통일을 정말로 원하느냐의 차원을 뛰어넘어 가지고 여러분 북한이 무너졌다고 생각했을 때 중국이 장악해야 되겠습니까? 다시요. 중국이 장악해야 되겠습니까? 누가 해야 합니까? 우리가 해야죠. 북한이 무너질 때 러시아가 장악해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그거는 90프로 이상 우리가 다 공감할 것이에요. 오늘의 이 마음속에 하나님 남북문제에서도 우리가 38년 된 병자와 같이 그냥 만성이 돼 가지고 적당히 원하는 거였다면 스님 정말로 원하는 것으로 내 마음을 바꾸어 주시옵소서. 북한의 문제는 예배의 문제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북한이 김일성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사상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여 북한이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여 주십시오.
 
여기에 대해서 아 그렇지, 하고 적당히 겨우겨우 요나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에스겔처럼 다 희망이 없고, 다 마른 뼈가 되고, 다 희망이 없는데 마른 뼈가 살겠느냐? 그랬을 때의 에스겔의 마음속에 뿔이 붙어 가지고 수여 영이 마시면 마른 뼈가 살아날 줄로 믿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그 대언이에요. 대언! 그리고 이 MZ 세대 젊은 세대는 이제는 해도 안 된다. 우리 선배 시대는 뭐 열심히 하면 집도 사고 다 아는데 이제는 우리 희망이 없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MZ세대는 그래도 세계로 나갈 수가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음성을 듣고, 네가 정말 제대로 살기를 원하느냐? 물었을 때 우리 젊은 세대도 그렇습니다. 하고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로 임하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자, 이제 저는 증상 파악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진단을 했습니다. 이제 주님의 치유가 있습니다. 세 번째 이제 팔절을 보니까 뭐라고 나와있는가,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다 같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5:8,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III.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치유(治癒).
 
-치유입니다. 38년 된 병자와 같이 불평할 가능성이 많은 우리 속성을 보시고 치유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일어나 너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담대한 믿음의 강철 신발을 신고 일어나라. 이것이 바로 권세 있는 능력의 말씀인 줄로 확신합니다. 능력의 말씀이 사람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이 병자의 입장에서는 몸 가누기도 힘들고, 앉기도 힘들고, 서는 것은 더 불가능한데 주님께서 갑자기 일어나 너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 거예요.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살아있고 능력 있는 주님의 음성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이 능력으로 역사하시고 성령을 새바람이 불어야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명령하시니까, 기적(奇蹟)이 일어난 게 된 거예요. 마치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까 그 무에서 빛이 유가 창조되고 나사로야 일어나라, 그러니까 주님께서 명령하시니까 시체가 벌떡 일어나 걸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레마의 말씀이 돼 가지고 일어나 걸어가라. 그랬을 때 ‘주님 그렇습니다.’ 하고 내 삶에 불평의, 어떤 내 삶의 불신에 모든 돗자리를 번쩍 들고 걸으라. 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은 38년 된 병자가 뭉그적거리고 누워 있던 그런 것들을 그걸 들고 일어나는 거, 그것은 영적 자립심을 키워주시고 거룩한 홀로서기를 하라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오늘의 말씀이 우리 민족과 통일에 관해서도, 패배주의와 부정적 운명주의의 돗자리에 누워 있는 우리 민족을 일깨우는 주님의 천둥소리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권세 있는 능력의 말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이겁니다. 이 말씀이 오늘 여러분들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진짜 원하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이제 지난 몇 주간에 이렇게 말씀 옥상도 하고 이렇게 있는 동안에 우리가 흔히 아는 말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의 모여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알려고 얼마나 애를 씁니까? 점쟁이 앞에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 관심 그거 비교가 안 되게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알기를 얼마나 애를 씁니까? 근데 그 하나님이 뜻 멀리 찾을 것이 아니에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자 이 말씀 여러분들에게 능력의 말씀이 돼야 되는데 여러분은 물어보십시다. 항상 기뻐하는 게 힘들어요.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게 힘들어요. 범사에 감사하는 게 힘들어요. 모든 사람들은 다 힘듭니다. 그래도 그 셋 중에 항상 기뻐하고, 고거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거, 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거, 어느 게 제일 힘들어요. 뻔합니다. 게으르고 저기 뭡니까? 좀 부지런함이 약한 사람은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게 약하고 그 다음에 또 완벽주의자들 우울증에 있는 사람들은 뭡니까? 항상 기뻐하는 게 힘들고, 너무 똑똑한 사람들은 또 범사에 감사하는 게 힘들고, 그런데 이게 권세 있는 주님의 능력의 말씀이거든요. 이게 오늘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했을 때,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항상 기뻐하고 시집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되는데,,, 저는 제가 뭐가 제일 약할까요? 말씀 안 드려요 예 다 우리 약점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한다는 이게 사실 어떻게 불가능인데 이거 어떻게 가능하게 될까? 제가 늘 암송하고 제가 좋아하는 구절,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 구원의 하나님을 찬성할지로다.’ 주님이 날마다 우리 짐을 져준다고 생각하면, 그게 치유 음성 되게 하셔서 그래도 감사할 수 있고, 그래도 기도 할 수 있고, 그래도 기뻐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니까 오늘 네가 정말 낫길 원하느냐 주여 정말 그 말씀 가운데 기쁨과 감사와 기도가 우리의 것으로 자리잡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마지막 이제 처방전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자 제가 ⓵증상(症狀)을 말씀드렸고, 그다음에 ⓶진단(診斷)을 말씀을 드렸고, 제가 이제 ⓷치유(治癒)를 말씀드리는데, 권세는 주님의 말씀인데, 자 이것이 우리에게 나타났을 때 나타난 2가지 현상이 있는데, 그게 처방(處方)이에요. 하나는 뭐냐 하면 이런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에 권세가 말씀의 능력이 실제적으로 내게 와 닿으면요. 뭘 느끼는가 하면, 1)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 주님의 인재가 그렇게 리얼해져요. 그러니까 주님이 나와 함께 동행 하는 것이 그렇게 실체화가 된다는 것이네요.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내 삶의 환경 내 삶의 모든 처지를 2)주님이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신다. 그걸 느끼게 되는 것이죠.
 
오늘 여러분의 여러분과 저에게 다른 어떤 것보다도 변개할 수 없는 최고의 확신이 뭐냐 하면 주님이 저와 여러분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에요. 그거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정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질문하시는 거예요. 물어보겠습니다. 내일 아침 해 뜹니까? 안 뜹니까? 자 다시요. 자리를 들고 일어나기 위해 걸어가기 위해 필요한 건 처방전인데 다시오.
 
IV. 자리를 들고 걸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14-15):처방(處方)전.
 
-내일 아침 해 뜹니까? 안 뜹니까? 이거는 변경할 수 없는 자연의 놀라운 법칙이에요. 내일 아침 해가 나 뜰지 모르겠다.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이에요. 생명이 없으니까 모르는 거죠.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 있었어요. 내일 아침에 해가 뜨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이 나를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시는 거예요. 예 놀라운 진리에요.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 노후대책(老後對策)이란 걸 합니다. 노후대책 1순위 건강이다. 2순위 돈이다. 3순위 또 뭐 있나요? 친구다. 이런 거 있지만 여러분, 노후대책의 최고의 노후대책이 뭐냐면요. 주님인 나와 함께하시는 이 놀라운 사실을 여러분 날마다 일마다 때마다 실체 있게 경험하는 것이에요.
 
오늘날 우리나라에 고독사(孤獨死)가 너무 많아요. 홀로 있다 보니까 너무 외로운 거예요. 근데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요. 고독사가 있을 수가 없어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너가 정말 낳고자 하느냐’ 질문하시는 그 주님 때문에, 나를 신망 오시는 그분 때문에, 내 삶을 처방하시고, 진단하시고, 보여주시는 그분 때문에 우리엔 고독사가 없는 것이에요. 맞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노후대책 0순위가 주님이 나와 함께 임재하시는 것을 깨닫는 것이에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고독사가 없다는 것을 믿으십시다. 따라 하겠습니다. 신앙인에게는 고독사가 없다.
 
주님이 함께 계시는 한 우리에게는 고독사가 없는 줄로 믿는 것입니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에요. 손 내밀어 줄을 만져라. 주 지나가신다. 이런 마음의 손을 들면 주님이 남께 인지하시고 동행하는 것을 느끼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최고의 그리스도인의 확실한 노후 대책이 뭐냐, 정말 너가 낫고자 하느냐고 질문하시고, 심방하시는 예수님의 임재인 줄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니까 그러니까 우리 우리 교회는요. 고독사가 없는 공동체예요. 그러니까 교회가 유일한 이 시대의 사회적 대안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걸 깨닫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어제 새벽에 제가 많이 강조했는데 인생은요, 2종류의 남에게 에너지를 빼앗는 사람이 있고, 남에게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 주님이 너가 정말 낫고 자느냐, 이런 치유를 경험한 사람은요, 반드시 그 사람 만나면 용기가 얻어지는 거예요. 그 사람 만나면 영감을 받는 것이에요. 그 사람을 만나면 다시 한 번 기백(氣魄)을 갖게 되는 것이에요.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주신 이 은혜를 갖고 있는 사람은 영감과 용기와 기백을 주는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거죠.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노후 대책이 되는지 몰라요. 그리고 또 하나 처방전 14절을 다시 한 번 크게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5:14,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아멘 다시는 뭐예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사람이 왜 38년 된 병자가 되어 가지고 38년 동안 그 병 때문에 신음(呻吟)하고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을까? 여러 해석이 있지만 그중의 하나, 아마 이 사람들 약점이 있고, 죄(罪)도 범(犯)하고 그래갖고 어려움이 있었을지 몰라요. 근데 주님께서는 이제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 다시는 그러지 말라. 예수님이 좋은 의미에서 거룩한 경고를 하시는 거에요. 이제 팔다리가 건강해져서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게 됐으니 그거 갖고 옛날처럼 또 잘못된 버릇 가지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 팔다리 가지고 건강을 가지고 주님의 임재를 느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라. 우리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사회에 하나님 많은 치유를 주시고, 축복을 하시고, 선진국에 진입하게 하시고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대한민국이 세상에 수많은 나라에 영감을 주고, 용기를 주고, 길을를 보여주고, 세계 선교를 마무리하고 그래서 오늘 79년 된 광복절을 맞이하여 모든 묶인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신실한 남녀 종들, 성도들 주님의 심방을 받아 그렇습니다. 간절히 원해갖고 주님과 여러분만이 아는 놀라운 치유의 현장을 일마다 때마다 경험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송가 가운데 우리 시대 때 페스트 가스펠 송에 있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손 내밀어 줄을 만져라.’
 
♬나의 등 뒤에서~~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 길 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때때로 뒤돌아보면 여전히 계신 주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 하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오늘 우리가 이와 같은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이민족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지난 79년 동안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 고통의 상황이긴 하지만 만약에 피 흘림 없이 복음적으로 평화 통일만 이루어진다면 앞으로 이 고통의 과정도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정신 차리고 이것도 내 마음대로 살지 아니하고, 이것 때문에 주님 앞에 더 긴장해서 더 하나님을 집중하고, 하나님을 사모하게 된다면 이 과정도 나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저 북한은 주님 불쌍히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약
주님은 질병계, 자연계, 영계의 주권자이시니,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와 같은 나를 심방 오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실 때, “네 주님, 낫기를 원합니다.” 일사각오로 대답하여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권세 있는 능력의 말씀을 들려주실 때, 오래 묶여 있던 나의 자기연민과 불평과 패배주의에서 일어나 믿음의 강철 신발을 신고 걸어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교회 사랑의 교회의 7천 기도용사가 청계산 산상 기도회에서 ‘2033-50 비전’을 위해 구국 기도를 드릴 때, 대한민국이 79년 된 분단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 ‘평양에서 특새 하는 그날’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 교회와 나라가 승리하는 체험을 기대하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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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8월 4일)
제목: "다니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말씀: 다니엘 6:22-28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안승훈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권성수 목사님-초빙(대구동신교회 원로,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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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6:22-28,
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3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24 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
25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되 원하건대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26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27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28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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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가운데 여러분이 예배당에 오셔서 이렇게 시원하게 예배를 드립니다마는 더위도 이기시고 세상도 이기시되 세상의 복음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요즘 세상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어떻게 잃을 수 있는가 질문이 나지 않습니까? 교회를 볼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교회가 어떻게 이렇게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될까? 탄식(歎息)스럽지 않습니까? 여러분 자신의 삶을 볼 때 어떻습니까? 예수, 예수 믿어서 받은 증거가 많다기보다 예수는 믿어도 증거도 별로 없고, 변화도 별로 없어서 갈등과 고민하시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상황(狀況)을 놓고 보시면 다니엘의 상황이 여러분의 상황보다 어쩌면 더 나빴다 할 수 있습니다. BC 605년에 15살의 나이로 포로로 사로잡혀 가서, 80대가 될 때까지 포로(捕虜)기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니엘이 포로기의 생활을 하면서도 굉장히 열악한 치열한 환경 속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체험했고, 그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강력하게 나타난 것을 체험하고 세상에 놀라운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의 하나님, 역사 속의 하나님만이 아니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문제는 동일하신 하나님인데 왜 나는 다니엘처럼 체험하지 못하는가? 여기 있는 거죠. 다니엘이 사자의 입을 막는 믿음, 히브리서 11장 33절에,

*히브리서 11장 33절,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사자 입을 막는 믿음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는데, 나는 그런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사자의 입은 막지 않는다할지라도 나의 삶 속에 나타나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실감하고 체험할 수 있는가? 여러분 다니엘서 6장을 전체로 보시면 다니엘 당시에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으로 계셨는가?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다니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다리오 왕이 인정(認定)했습니다. 6장 20절에 보면,

*다니엘 6장 20절,
20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내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 왕이 다니엘의 하나님이라고 인정했어요. 단일의 정적들 페르시아에 120개도의 120 고관들, 또 그 위에 3명의 총리들, 그 정작들도 다니엘을 그의 하나님이라고 다니엘의 하나님을 그의 하나님이라고 싫지만 인정했습니다. 다니엘 자신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말을 했어요. 히브리스 11장 16절에 보면,

*히브리스 11장 16절,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의 하나님으로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셨다는 말씀인데 다니엘의 하나님, 다니엘의 하나님으로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실 정도였습니다. 다니엘의 삶 속에 그 당시 세계 속에서 놀랍게 일하셨기 때문이죠. 다니엘이 치아만 하나님은 비록 다니엘이 포로로 사로잡혀 가서 보이는 이스라엘은 망했다고 할 수 있지만 바벨론과 페르시아, 세계적인 제국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여러분, 얼른 보시면 지금 세계에 이런저런 놀라운 나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하고 러시아의 전쟁이 있고, 이스라엘과 이란 내 부추김을 받은 세력과 전쟁 또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면전에 들어갈 수도 있고, 중동전이 일어날 수도 있고,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도 있고, 그러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느냐, 이 상황 속에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는가? 이런 안타까운 질문이 있겠습니다마는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고 들리지 아니하시고, 만질 수 없지만,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어떤 존재보다도 더 확실하게 살아계셔서 끝난 것 같은 인생과 끝난 것 같은 나라에도 일하시고 계심을 믿습니다.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 보이는 것만 보면 마치 하나님은 안 계시는 거 같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로 놓고 봤을 때, 하나님께서 단일을 통해서 바빌론과 페르시아를 통치하셨으니 전 세계를 통치하셨어요. 하나님은 세계를 통치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통치 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탄식도 많고 근심도 많고 아픔도 많고 오랫동안 몇 십 년 동안 기도해도 남편이 돌아오지 아니하고, 자식들의 엉망진창이고 마음의 아픔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얼른 보면 하나님이 아무 일도 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분명히 일하시고 계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할 때 하늘에 있는 별들이 얼마나 많으냐, 지구도 하나의 별이라고 할 때 여러분 다 아시는 대로 무수한 별들이 있어요. 광대한 우주를 하나님이 창조하시는데 이 광대한 우주에 그 별들과 별들의 사이의 거리까지 미세 조정까지 하시면서 다스리고 계실 뿐만 아니라 인간 세계를 다스리시고 여러분의 마음속에 신음소리까지 들으시면서 14만 개 머리털까지 새시면서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다스리고 계시는데 이런 하나님 이런 하나님이 안 보인다는 게 문제예요. 만약에 하나님이 보인다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시하지 못하겠지만, 안보이니까. 무시하는 거예요.

지금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학자가 히브리 대학의 유반하라리 라고 하는 역사학자입니다. 그는 호모데우스, 간이 신이다. 인간의 신처럼 된다. 호모데우스,‘ ’미래 약사‘ 미래를 간단하게 기술했다. 미래약사라고 하는 책에서 인간이 점점 발전해서 신처럼 된다. 하나님처럼 된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기술과 과학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20세기만 해도 수명이 40세에서 평균 수명이 40세에서 70세까지 뛰었다. 21세기로 들어가면 수명이 150세로 뛸 것이다. 과학과 기술이 점점 발전해서 나중에는 사람이 죽지 않는 단계까지 불멸의 단계까지,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인간이 신처럼 되어서 사람이 죽 기술로 죽지 않으면서 최고의 행복을 누린다. 그렇게 주장을 했어요. 정말로 인간이 신처럼 될 수 있습니까?

그의 반대편에서 존 레녹스라고 하는 옥스퍼드의 수학 교수고 철학 교수고 세계적인 무신론자 ‘리차드 도킨스’를 만나서 불신자들이 봐도 무신론자들이 봐도, 존 레녹스가 이겼다 할 정도의 토론을 벌이는 대단한 학자가 있는데, 그가 ‘2084 AI와 인류의 미래’라는 책에서 ‘호모데우스’ 진짜 하나님이시면서 진짜 사람이신 분은 1분밖에 안 계시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에게 불멸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죽어도 살도록 만드는 영생의 복을 주시고, 인간이 감상적으로, 화끈하게 다가오는 그런 행복이 아니라, 영원히 고통도 없고, 사망도 없고, 죽음도 없고, 죄도 없고, 개인의 죄도 없고, 구조에 죄도 없는 그런 완벽한 지복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인간 세계를 다스리시는데 호모데우스, 참 인간이시면서 참 하나님, 참 하나님에서 참인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부활로 승리를 하셨고, 그 승려의 여세를 몰고 가시면서 재림하시면 심판할 자리들을 심판하시고, 우리의 고원을 완성하셔서 완성된 천국에서 우리가 영생하면서 지복을 누리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구요. 이런 하나님을 얼마나 체험하시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걸 얼마나 실감하시고 체험하시고, 그것을 주변에 있는 사람, 왕이 볼 정도로 주변의 회사의 동료들과 상사들이 볼 정도로, 이상하다 너의 경우는, 누군가가 너를 돕는 것 같아. 라고 할 정도로 그렇게 체험하시고 계십니까?

다니엘이 포로기에 있었지만 그런 하나님 안보이시되 나타나신 하나님, 사자 입도 막으실 정도로 나타나신 하나님, 그런 하나님을 체험하다 보니까 얼마나 영향이 컸는지 그 당시에 페르시아를 놓고 봤을 때, 굉장히 인더스 강부터 시작해서 이집트로 그리스까지인데 거기에 영향을 미쳐서 왕이 선교사가 되게 만들었어요. 왕의 입으로 다니엘의 내 나라 관할 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 지어다. 그는 살아계시는 분이요.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분으로서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다. 왕의 입에서 이런 복음을 지나도록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주를 다스리고 인간 세계를 다스린다는 것을 조선을 통해서 전 세계에 알릴 정도로 한 사람 다니엘이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 거예요. 이 다니엘의 하나님, 지금도 우리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으로 살아 계신 줄 믿습니다. 문제는 또다시 던집니다. 이 하나님을 얼마나 체험하십니까? 어떻게 체험할 것입니까? 다니엘의 하나님을 살피고, 이제 다니엘의 믿음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이 다니엘의 믿음을 놓고 봤을 때, 사자들이 다니엘을 삼키지 못하게 할 정도의 믿음 하나님이 역사 하셨지만,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시거든요. 다니엘의 믿음을 통해서 어떤 믿음이었냐? 라고 할 때, 6장 10절을 보면, 부멍에 나와 있죠.

*다니엘 6장 10절,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 시대의 다니엘의 정적들, 120개 지사들 또 그 위에 3명의 총리가 있는데, 왕이 다니엘이 출중하니까 3명 중에서 최고로 올리려고 하는 그 상황에서 그 당시에 정적들이 고관들이 전체가 총리들, 고관들, 법관들, 관리들, 지사들 전체가 다 동의해 가지고 앞으로 30일 동안, 왕 외에 어떤 신이나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그는 사자 굴에 던져야 합니다. 라고 하는 조서(調書)를 금령(禁令)을 내리게 만들었죠. 다니는 그걸 알았어요. 이 조세의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았어요.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3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저는 이 구절을 보면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 조서에 그런 금령에 도장이 찍힌 걸 알면 왜 이 위층으로 올라갔냐? 아래층에 머물지 왜 창문을 여냐 이불 덮어쓰지. 왜 하루 세 번 하냐? 한 번만 하지, 왜 감사하냐? 갈등을 고하지.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었는가? 율법주의자 아닌가? 형식주의자 아닌가? 꽉 막힌 사람 아닌가? 삐딱한 사람 아닌가? 그렇게 질문을 던질 수 있지만 단일이 왜 굳이 그렇게 했을까요? 왜 굳이 그랬을까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여기 걸려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걸려있는 거기에 자기 인생을 던지는 거예요. 기도하면서 다니엘의 기도는 목숨을 건 기도였을 거예요.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전력투구 하는 기도였어요. 그런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능력 주님의 새 힘을 얻은 겁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도 사자의 입을 막는 믿음이 있었던 것은 주님의 능력이 그 속에 있었기 때문이야. 여러분이 기도하시는 것, 이제 앞으로 전심 기도 하시고, 구국기도 하시는데 기도하실 때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셔서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해서 능력을 베푸시는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을 다니엘을 만난 거예요. 전심으로 오게 됐다. 하나님의 영광이 걸려 있을 때는 목숨을 걸고 기도했다. 그렇게 하는데 그게 기도로만 끝난 것이 아니고, 다니엘의 믿음은 생활에서 나타난 거예요. 다니엘 6장 4절에 보면, 다니엘이 충성했어요. 아무 근거도 없고 아무 허물도 먼지를 떨고 싶어도 떨 것이 없었어요.

*다니엘 6장 4절,
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그릇됨도 없고 허물도 없었어요. NIV 번역에 보면, 부패(腐敗)도 없었다. 태만(怠慢)도 없었다. 정직(正直)하면서 진실(眞實)하면서 충성(忠誠)을 하는데 부정부패 없어요. 금은 태만이 없어요. 이게 믿음이라는 겁니다. 믿음은 교회 안에서만 지키는 것이 아니고, 교회 밖 세상에서 삶의 현장에서 지키는 것이요. 믿음은 생활인 줄 믿습니다. 삶 속에 들어가는 믿음이에요. 삶 속에 들어갑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친구들과 교제하면서, 이 삶 속에 믿음이라는 거예요.

다니엘이 이렇게 기도하면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인생을 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을 할 때, 하나님의 엄청난 역사가 나타난 거거든요. 여러분 중에 혹시 아실지 모르지만 ‘조던 비 패터슨’이라고 하는 조든 비패터슨이라고 하는 토론토 대학의 유명한 심리학 교수 세계적인 교수죠. 얼마나 영향력이 큰지 캐나다 수상이 동성애를 들고 나오니까 이 교수님이 수상하고 맞섰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동성애 반대하면서 수상과 맞서서 주장을 하는, 그래서 대학에서 나와서 포드캐스트로 유튜브로 지금 영향을 미치는데 제가 찾아봤어요.

영국에서 인터뷰했던 건가, 그거는 조회수가 6590만회,,, 아무도 안 놀라셔요. 제가 설교했을 때 조회수가 얼마냐 가끔씩 보거든요. 얼마 없거든, 근데 6590만, 그래서 제가 위로를 받은 게 CTS에서 우리 형제 독수리 5형제 너 목사 5형제 이게 나왔었는데, 그때 조회 수를 보니까 50 몇 만이 갔더라고, 근데 패터슨은 6590만 거기다가 유튜브에 구독자가 812만 명, 그분에게 당신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하나를 믿는다 하나님 존재를 믿는다. 예수를 믿느냐, 믿느냐 그런데 믿는다는 단어가 뭐냐?라고 자기가 반문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머리로 인식하고 가슴으로 수용하지만 동시에 생활로 의지로 자신을 던지는 거다 영어로 말하면 커미트먼트다(Commitment), 커뮤트먼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신이 없다. 내가 믿는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분명히 믿고 있는데도 겸손한 말을 했어요. 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냐? 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냐? 동일한 하나님인데, 다니엘은 체험했는데 왜 나는 체험하지 못하냐? 자신을 던지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걸려 있을 때, 거기에 인생을 걸지 않으니까, 자신을 던져서 커미트먼트 했다. 이게 진짜인 모습이 나타나는 건 고통 중입니다. 고통, 고통 중에 나타나는 거예요. 다니엘 6장에 자기가 지금 그렇게 하면 사자 굴에 들어갈 정도 보통이 아니거든.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것, 근데 그 결정적인 순간에 왔어요. 고통의 순간이었어요. 그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 편에 서버리는 거예요. 고통의 순간에 자신의 이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 편에 서버리는 거예요. 통 속에서 증명되는 그러니까 기도를 통해서 새 힘을 얻어요. 주님의 새 힘 생활의 현장에서 그것이 그대로 나타나요? 그리고 고통 중에 사실이라는 것이 증명이 돼요. 증명 이게 다 내립니다. 입니다. 여러분의 말씀을 들으시면서 스스로 한번 질문을 던져보시라고요. 왜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단일은 체험했는데 나는 체험 못하느냐, 던져놓고 이 말씀을 한번 생각해 보시라고, 고통 중에 얼마나 영향이 컸는지, 아까 제가 페르시아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는데, 한번 당시의 지도를 한번 보시죠. 얼마나 넓은 지역인지 한 사람, 다니엘이 한 사람, 다니엘 한 사람, 다니엘이 인도부터 시작해서 그리스까지 이집트까지, 한사람 다니엘이야. 한 사람 다니엘 한 사람,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으니까, 하나님을 바로 믿으니까, 저렇게 넓은 지역에 영향을 미친 겁니다. 다니엘의 하나님, 지금도 살아 계신 줄 믿습니다. 이 하나님을 만나시면 되는 거거든요. 삶의 현장에서 만나시면 돼요.

여러분 삶에 어떤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자녀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가정에 어떤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경제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시면, 고통 중에도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실 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으로 한번 적용시켜 보시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다니엘 같은 믿음을 갖겠는가? 라고 하는 것인데, 다니엘의 믿음, 그러면 아유, 목사님 그건 너무 엄청난 아니에요. 안 해왔네요. 네, 그렇게 던지지 마시고, 조금씩 쪼금씩 쪼금씩 조금씩 올라가면 되거든요. 다니엘이 경험했던 것처럼 그쪽으로 가는 방향을 잡고 조금씩 쪼금씩 쪼금씩, 점점 성장하시면 되거든요. 어떻게 성장하면 되겠는가, 라고 할 때 활공(滑空) 훈련을 하셔야 돼요.

⓵활공훈련.
-활공, 활공훈련이 뭔지 잘 모르실 수 있어요. 참새도 있고 독수리도 있습니다. 참새는 자기 날개의 힘으로 날아갑니다. 자기날개 힘, 자기 날개의 힘으로 파드득 파다득 날아가기 때문에 얼마 못 가요. 그 힘이 빠져요 독수리는 공기의 힘을 이용해요. 공기의 힘을 이용해서 날아가기 때문에 멀리 날아가고, 오래 날아가고, 여러분, 제자 훈련 하실 때 참새 훈련 식으로 하시면 안 돼요. 정보, 지식, 기교만 익히시면 참새 훈련이 되는 거예요. 자기 힘으로 이렇게 파트닥 하고 날아가다 보니까 별로 날아가지도 못하고, 덕도 못 끼치고 다른 교회 목회자까지 비판하는 교만한 사람이 돼요. 그러나 여러분이 독수리처럼 활공, 활공이라는 말은 미끄럽게 부드럽게 날아간다는 거예요. 주님의 힘을 활용해서, 주님의 능력을 활용해서, 날아갈 때 엄청난 능력이 나타나는 거예요.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고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한 자는 새 힘을 얻으려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 하는 자,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 어떤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셔서 그 힘의 날개로 창공을 날아갈 수 있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이게 활공 훈련입니다. 주님의 생명과 주님의 능력이 내 속에 약동하는 거예요. 이 능력이 바깥으로 분출하는 거예요. 나타나는 겁니다. 삶의 현장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이 활공 훈련을 할 때, 초점이 주님에게 있습니다. 주님, 주님에게 초점을 맞추셔야 되죠. 요한복음 10장 7절에 보면,

*요한복음 10장 7-8절,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⓶주님밀착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 거예요. 주의 말씀이 내 안에 거주하는 것, 여러분 말씀 듣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고, 말씀이 여러분은 딴에 거주하면서 거주하는 말씀 살아있는 말씀을 통해서 주님과 교제하는 거예요. 그럴 때 그 주님의 새 힘이 바깥으로 나간단 말이에요. 분출(分出)한단 말이에요. 주변과 가족 주변의 가족들과 동료들과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거예요. 이 주님 중심입니다. 조기중심 오늘의 한국 교회 성도들이 왜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가? 왜 한국 교회가 세상에 지탄의 대상이 되는가? 자 여기 이유가 있는 거예요. 일단 주님께 기도해서 새 힘을 얻어야 되잖아요. 근데 전심기도 거든요. 전심기도 주님 오늘도 무사히 해주세요. 다 잘 풀리게 해주세요. 알아서 해주세요. 그게 아니고요. 전심전력(全心全力)에서 기도하는 거예요.

‘주님의 역사가 아니면 저는 감당할 수 없사오니 주님이 나타나셔서 내 삶의 현장에서 일하여 주시옵소서. 자녀들의 엉망진창이고 말을 듣지 않지만 주님이 역사하셔서 자녀들의 마음을 돌이켜 주시옵소서 다 막혀있는 이 부분이 주님의 은혜로 뚫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심기도, 기도의 전심전력 하십니까? 그리고 말씀에 대해서는 말씀이 들어가야 되거든요. 들어가서 내 것이 돼야 되거든요. 그런 묵상이 있어야 돼요. 묵상, 다윗이 말했던 것처럼 주야로 묵상하는 게, 말씀을 듣고, 이 시간에 지금 듣고 계세요. 듣고 저기 나갈 때, 기자가 조금 전에 권 목사였던 설교 뭐예요? 그러면 머리를 끓는 거예요. 머리를 긁는 자, 이거는 나비입니다. 나비 설교 듣는 동안에 말씀이 여기 앉았다가, 나가면 날아가 버리는 거야. 알고 왜 변화가 없고, 왜 능력이 없고 왜 영향이 없는가? 나비요 나비 앉았다가 날아가는 거예요. 앉았다. 날아가는 거예요. 말씀이 우리 안에 거주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거주 살아있어야 된다고,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주하는 말씀대로 붙들고 나가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붙잡는 거예요.

삶의 현장에서, 도무지 그렇게 될 것 같지 않고, 말씀대로 될 것 같지 않고, 말씀대로 살면 시련을 당할 거 같고, 말씀대로 살면 걱정이 오는 것 같고, 말씀대로 살면 돈도 못 버는 거 같고, 말씀대로 살면 쾌락도 못 누린 것 같아도, 말씀대로 살기로 작정하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붙잡고, 고통 중에도 하나님에게 인생을 걸고 달려갈 때, 하나님께서 만나주신 줄 믿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을 보면,

*요한복음 14장 21절,
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라고 말씀하셨어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주님과 교제하면서 말씀이 내 속에 거주했습니다. 말씀 붙잡고, 아무리 고통이 와도 말씀대로 다 사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십자가 버리는 겁니다. 말씀대로 살면서 십자가 고통을 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그대로 지고 나가면 죽으면 산다고, 여러분 그 자리에 예수의 생명, 하나님의 능력이 성령을 통해서 강하게 나타날 줄 믿습니다. 이게 쌓이고 쌓여야 되는 거예요. 쌓이고 쌓여야 된다. 다니엘은 15살 때, 그전에도 그랬겠지만, 15살 때 포로로 사로잡혀가서 우상 숭배하지 않는 음식을 먹어서 목숨을 걸고 순종함으로 10배나 더 지혜롭게 만드신 하나님을 체험한 거예요. 친구들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서 느부갓네살이 꿈꾸고도 말하지 않는 말도 하지 않는 꿈의 내용을 알아내고, 그것을 해석하게 된 겁니다. 벨사살 왕 때에, 벨사살 왕이 벨사 살이 열 사람 성전에서 가져온 기명들을 갖다 놓고, 막 술을 마시고 하나님을 모독할 때, 갑자기 왕이 있는 적 건너편 석회석 벽에 사람의 손가락만 나타나서 글을 쓰고 있었죠.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아무도 해석 못해요. 내 하나님께서 다니엘로 하여금 해석하게 하셨습니다. 회사의 문제, 국가의 문제, 가정의 문제, 누구도 해결을 못해 그러나 하나님께서 해결하게 하신 줄 믿습니다. 그 손가락 글씨를 해석하게 하신 거예요.

말씀대로 순종에서 음식까지도 바로 하나님 말씀대로 먹고살 때에,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보다 10배나 지혜롭게 하시는 그 능력을 체험했어요.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꿈도 알려주시고 해석도 알려주시는 체험을 했어요. 이상한 손가락이 나타나서 손가락만 나타나서 글을 쓰고 있는데, 그걸 아무도 해석하지 못하는데, 하느님께서 해석하게 만드셨어요. 10배나 지혜롭게 하신 하나님, 꿈을 해석하고 방향을 제시하게 하신 하나님, 석회 벽에 손가락의 글씨를 해석하게 하신 하나님, 사자 굴에서도 건져내실 줄 믿습니다. 이 내공이 쌓인 것입니다. 내공 말씀대로 사는 데 10대부터 80대가 될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고통을 당하면서도 순종했더니, 이런 역사가 나타나더라. 그 체험을 한 거예요. 여러분이 다윗을 잘 알죠. 다윗이 골리앗을 쳐부술 때, 어느 날 갑자기 다윗이 골리앗을 쳐부순 거 아닙니다.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저 거장 골리앗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줄 믿습니다. 과거의 역사하셨던 하나님, 지금 이 난관에도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과거의 나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 이번 이 기회에도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이런 체험이었죠.

사자의 입을 막는 믿음,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거 아니에요. 내 공이 쌓인 겁니다. 내공이 쌓여요. 말씀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이 내 속에 들어오고, 이 말씀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고난 속에서도 말씀대로 움직이는 거예요.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어떤 인격체보다도 훨씬 더 분명하게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신 것입니다. 그 사자 굴의 사자들이 본래 입을 다문 사자들이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다니엘을 참수했던 그 정적들, 가족들 자 보세요. 도만 따져도 120개 도였으니까, 120명 고관들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다 동의해서 했다고 그랬습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저 부인들과 자녀들까지 다 한꺼번에 사자고 던지는데 사자굴에 막 내려 그것 때문에 내려오는데 그냥 바로 뼈까지 뿌셔뜨리면 삼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자예요.

⓷결과주님.
-그런 사자 그런 사잔데, 다니엘이 고백한 대로 ‘나의 하나님이 그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내공이 쌓여서 그렇게 나타납니다. 전 여러분의 믿음이 점점 더 성장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순종하는 거예요. 고통 중에도 순종하는 거예요. 말씀을 자꾸 순종하는 거예요. 마음의 말씀을 새기고 순종하는 거예요.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 거죠. 결과는 주님께 맡기면 돼요. 어떤 경우에도 결과는 주님께 맡겨야 됩니다. 활공훈련, 주님밀착, 결과주님... 방송실 뜰 때까지 제가 기다리겠습니다. 결과주님, 결과주님, 결과는 주님께 맡기는 거에요.. 아이고 목사님, 다니엘의 경우는 사자의 입이 막혀졌지만 초대 교회 교인들의 경우는 사자가 입을 벌리고 교인들 삼켰잖습니까? 어떻게 해석할 겁니까? 초대교회 교인들은 개죽음을 당한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 개죽음을 당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이 주의 말씀을 붙잡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리지 않고 나갔을 때 사자의 밥이 되었지만 사자 입을 막지 못하고 사자의 밥이 됐지만 하나님께서 그들로 천국에 직행하게 하신 거죠. 천국의 직행 그리고 그걸 통해서 천국이 확장되게 하셨어요. 직행과 확장 팍스 로마나라고 그러죠 팍스로마나, 로마의 평화 로마가 무력 권력으로 세계를 지배해서 조용하게 만들었다 로마의 평화, 그런 평화가 팍스 그리스도 시대 하나, 그리스도의 평화로 바뀐 거예요. 그리스도 평화 사자의 밥이 된 사람들을 통해서 로마의 평화가 그리스도의 평화로 바뀐 거예요. 힘의 평화가 주의 평화로 바뀐 거예요. 요즘 같으면 팍스 마모나이, 돈의 평화 돈의 평화가 주의 평화로 바뀌는 거예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26절과 27절에 보시면,

*다니엘 6:26-27절,
26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27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리지 않습니까?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어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시오.”

“나의 하나님” 체험/영향: 하나님의 영광 현시+고통 중 형통(6:26-28)
-영원히 거주하시는 분으로서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오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가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시기도 하시는데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기적과 이사를 행하시는 이 소리로써 다니엘을 사자의 입에서 건져 내셨도다. 하나님께서 인도부터 시작해서 이집트까지 그리스까지, 그 넓은 지역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나타내셨단 말입니다. 세상이 다 지금 엉망인 것 같지만, 여러분의 바로 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고통 중에도, 순종하고 주님과 교제하면서 사실 때, 주님께서 주변을 변화시킬 줄로 믿습니다. 오늘 현실 보고 탄식(歎息)만 하십니까? 탄식만 하시는 거 아니에요.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탄식(歎息)만?-활공훈련하세요. 전심기도, 말씀묵상, 고난 중에도 순종, 그러면 다니엘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체험, 내가 변하면 가족/주변도 변합니다. 고난 중에 형통—세상에 하나님의 영광

*다니엘 6:28,
28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다니엘이 바벨론과 페르시아에서 다 형통했어요. 고난 중에서 형통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이 다니엘의 하나님을 여러분의 나의 하나님으로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약
이 시간에 목사님 주신 말씀이 공중에 뜨지 않고,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야 한다. 다니엘의 하나님을 역사 속의 하나님으로만 보지 않고, 오늘 나의 하나님으로 체험하고, 실감해서 내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은 것 같고, 모든 것이 답답하고 막혀 있는 거 같지만,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지금도 일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우리 모든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서 직장으로, 사회로 세상에서 체험함으로 세상의 하나님 영광을 크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하며, 말씀을 붙잡고 깨달아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로 살아내야 한다.
-다니엘의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다. 다리오 왕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분이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의 나라와 권세는 무궁한 것이라고 했고, 이적과 기사로 구원하시는 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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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7월 28일)
제목: "괴롭든, 외롭든 존재는 귀하다"
말씀: 창세기 1:1-3
찬양인도: 쉐키나(),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신성식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전광식 목사님()
ㅡㅡㅡㅡㅡ
 
*창세기 1:1-3,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ㅡㅡㅡㅡㅡ
 
​▶연일 지속된 폭우와 폭염을 뚫고 우리를 위해 은혜스럽고 거룩한 예배의 자리에 불러주신 우리 하나님께 존귀(尊貴)와 영광(榮光)과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고 있는 대부분의 학문은 그 기원이 서양에 있고, 구체적으로는 고대 희랍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연유(緣由)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철학자에 의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4가지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지금 앉아 계신 의자를 경우로 생각하면 그 의자를 만든 재료가 되는 나무는 ⓵진료 인, 그리고 니은 자로 되어 있어서 그렇게 앉도록 되어있는 형태는 ⓶형상 인, 그리고 진료에서 형상으로 가는 목수의 손길은 ⓷동력 인, 그리고 여러분이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든 것은 그것의 ⓸목적 인 이라는 것입니다.
 
*재료인
*형상인
*동력인
*목적인
 
결국 재료에서 형상으로 힘이 가는 이유는 그 형상(刑象)의 목적(目的)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주장(主張)입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存在)는 목적을 이뤄야 그 존재의 의미가 있고 목적의 구현(具現)이야말로 최고선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이것이 소위 목적론적 세계관(世界觀)인데, 이후로 서양 사회는 세상이나 존재를 목적적인 측면에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러한 목적적인 측면에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첫 번째로는, 먼저 부정적인 모습인데 목적이 없는 목적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세상의 모습입니다. 사실 목적 없이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인생관(人生觀)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창조주(創造主)가 없는 거고, 창조주가 없다면 세상의 모든 것은 창조되지 않는 것이고. 창조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은 우연(偶然)의 산물이기 때문에 결국 아무런 목적이나 의미가 없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인간도 결국 이 논리에 의하면 운명의 장난에 의해서 세상이라는 들판에 내팽개치신 존재기 때문에 아무런 목적과 의미가 없게 됩니다. 자, 그러면 인간이 어떻게 살게 될까요? 목적과 의미가 없으니까 사람들의 삶은 대개 2가지 극단적(極端的)인 경향으로 흘러갑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이들은 심판(審判)도 없고 지옥(地獄)도 없는 것입니다. 심판과 지옥이 없으니까 내세(來世)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오로지 지상에서는 죄 승의 조종(操縱)을 받는 욕망에 따라가지고 욕망대로 살게 되겠죠. 결국에는 자기 안에는 욕망(慾望)이 있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런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다양한 놀거리, 볼거리, 재미거리들이 질펀하게 펼쳐져 있으니까, 결국 하나님 없는 사람들은 향락주의, 쾌락주의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살면서 많은 경우에 소비 중독, 문화 중독, 마약 중독 그리고 퇴폐(頹廢)적인 삶으로 귀결(歸結)될 것입니다. 쾌락주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삶의 의미와 목적이 없다고 하는 거니까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은 맹목(盲目)성과 삶의 허허로움과 무의미성에 허무주의(虛無主義)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인생을 조금이라도 고민해 보는 사람은 죽고 나면, 내세도 없고 영원한 세계도 없는 것이니까, 산다는 것이 서글프게 생각이 되고 허무하게 생각되어서 염세적으로 염세주의(厭世主義)적으로 살게가 살 수가 있게 되고 그것의 극단적인 결과는 자살(自殺)입니다.
 
여러분, 실제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은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으니까 한 날개는 허무주의, 다른 날개는 쾌락주의의 날갯짓으로 산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이들과 반대로 의식이 있는 일반인들이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목적 중심의 삶을 주창을 하고 또 영위를 하고 있습니다.
 
20세기 들어서 ‘미국의 새들백교회의 닉 워렌이라는 목회자’가 있습니다. 이분은 쾌락주의와 허무주의의 거센 물결 속에서 삶의 길과 방향을 찾는 구도자들의 필요에 맞춰서 맞춤형 저서인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을 펴내었는데 성경 다음으로, 이것이 전 세계의 최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대 흥행을 하자 이어서 ‘목적이 이끄는 교회’라는 책을 내어서 오늘날도 세상의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이것을 도입하여 스터디까지 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복음 중심보다 구도자(求道者)들의 필요중심에 맞춤형으로 다가가기에 아쉬운 점은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그가 인생의 목적을 신앙이나 하나님과 연관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이분이 목적을 정하기 전에 우리 장로교회가 흔히 신앙 고백으로 따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도 제1문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이냐?’ 아마 저보고 하라면은 이걸 제 1문으로 하지 않고, 사람이 주체가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이 무엇이냐?’ 저보고 하라면 그거 1문을 낼 겁니다. 하여튼, 이 질문에 대한 웨스터민스터 소요리 문답의 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렇게 멋있는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신약 성경에도 이런 목적 지향적인 언급이 곧장 등장을 합니다. 이를테면, 사도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고, 달음질하고 달음박질한다. 이런 표현이 엄연히 나와 있습니다. 자 이렇다 보니까 우리 그로스도인들은 일반인들보다 훨씬 과도하게 목적 중심의 삶을 영위합니다. 이렇게 목적 중심의 삶을 영위하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들이 물론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어진 생을 무의미하게 살지 않으려면 몸부림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재능과 달란트를 최대한 발휘하려고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그 옛날 롯의 아내처럼 자본주의가 만들어 내는 이런 질펀한 허영의 시장에 한눈을 팔지 않고 오로지 목표를 향해서 외골수로 달리는 인생길을 제시하기 때문에 그것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측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번은 이런 목적 절대주의, 목적 중심주의를 반성을 해 봐야 됩니다. 먼저 우리의 이성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살펴보면 여러 문제들이 보입니다.
 
첫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육체와 정신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이런 삶의 태도를 견제하는 이들은 늘 과도하게 일을 하고 성사 여부를 두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둘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주변을 돌아보지 않기 십상이고 그 결과로 가족들의 희생이 수반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예는 많은 훌륭한 분들의 인생 고백에서 이미 우리는 많은 경우를 찾고 있습니다.
셋째, 목적에 너무 골문하다 보니까 삶의 여유가 없어져 가지고 늘 바쁘고 정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따라서 인간미도 없어지고 감성의 문이 닫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분들이 들꽃이나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넷째, 목적을 이루면 자기 충족감에 잘난 체할 뿐 아니라 또 자기의 성사된 것을 자기 인생의 자랑으로 여기고 만일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좌절감과 패배의식 속에서 심지어 삶을 포기하고 싶어 하는 일까지 생기는 것입니다.
다섯째, 죽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런 목적을 이루려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도 병들고 몸도 병들고 혹 그러다가 일찍 떠나게 되면 남겨진 자들의 슬픔과 비참함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목적 중심주의가 갖고 있는 훨씬 권원적인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웨스민스터 소요리 문답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목적 설정은 필요할 겁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많은 경우에 이런 목적은 겉으로는 고상하고 선해 보여도 그것을 해체하여 그 심층으로 흐르고 있는 흐름을 꿰뚫어 보면, 그 안에는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의 도도한 흐름이 있음을 살필 수가 있습니다. 닉 워렌이라는 목회자가 멋있게 포장(包裝)하는 언어는 신앙적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심지어 하나님을 위하여, 그러나 많은 실질적인 경우에는 그리스도인이 목적을 세울 때도 그것은 그냥 음표적인 문제고, 그 목적의 민낯은 자기 영광, 자기 출세, 자기 영광, 따지고 보면 인본주의적인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것을 좀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내 욕망이라는 주체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좀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렇게 목적지향적인 삶이나 일을 하게 되면, 목적달성에 혈안(血眼)이 되어서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때로는 신학 양식에 맞지 않는 일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자녀로 갈 수 없는 자리에도 가고 할 수 없는 일도 하고 볼 수 없는 것도 본부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까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이 스스럼없이 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더 나아가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물(萬物)의 영장으로서 살도록 이성을 주셨을 때는 촐랑대고 까불대는 우리의 감정을 좀 통제하도록 하고, 그리고 끊임없이 제어(制御)함이 없이, 지 맘대로 달아나는 우리의 욕망을 반성(反省)하고 성찰하기 위한 것으로 주신 것인데 욕망의 도구가 돼서 목적 지향적인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이 이성은 욕망을 성취하는 수단이나 도구로만 활용될 뿐입니다. 이성뿐만 아닙니다. 이런 목적 지향적인 사람들은 주변의 사람들도 자기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자기 목적을 이루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하면 그 사람은 이용할려고 하고, 별 도움이 안 되고 존재감이 없는 그저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때로는 냉담하고 무시하기까지 합니다. 신 불신을 막론하고 출세나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약은 인간들은 대개 이 모양이라 해도 틀림없습니다. 이성이나 사람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기도나 신앙도 자신의 따지고 보면 욕망에 기초한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전락하고, 하나님도 말은 하나님의 영광이지만 그 하나님의 영광을 사실은 실제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과 도구로 다시금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은 이러한 목적 중심주의 목적 절대주의의 관점에서는 목적이 없는 것을 어떻게 볼까요? 그럼 우리가 여러분 질문을 드릴 수 있는 것은 이런 목적 지향적인 이들에게 그러면 별 목적이 없이 보이는 존재들은 무가치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드릴 수 있습니다. 길가에 강가의 돌들, 들녘의 이름 없는 들풀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먹이를 찾아서 배회하는 유기견들, 들고양이들, 아니 목적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생, 목적을 찾으려고 해도 평생 찾지 못한 인생들은 무가치한 것입니까?
 
사실 우리 주변에는 목적 없이 사는 분도 많이 있고, 목적을 찾으려 해도 인생을 거의 말년까지 다가가도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죽지 못해서 하루하루 연명(連名)하면서 살다시피 하는 힘든 분들도 있는데, 그러면 그들의 존재는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존재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고. 어떤 면에서 목적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입니다. 사실 이런 깨달음은 고대 헬라의 사상가들도 하고 있습니다. 후기 고대에 헬라의 사상가들은 순서를 이렇게 매깁니다.
 
온 조에이 누스, 제가 그리스로 말씀드렸는데 누스, 정신이 아무리 중요해도 그거 이전에 조에이, 생명이 있어야 되고 또 생명이라는 것은 반드시 온 존재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존재가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것이다. 라는 것이 고대 지혜 자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뭐라고 말할까요? 오늘 우리 읽은 본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이 본문은 장엄(莊嚴)한 계시의 역사, 하나님 말씀의 민 성경을 여는 첫 문장입니다. 시인들에게도 시의 첫 줄은 신이 준다고들 말하는데, 이 문장은 정말 신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서두입니다.
 
자,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이게 무슨 뜻입니까? 무의 세계에서 유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고. 비존재의 세계에서 존재의 세계가 지금 전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고도의 기술의 바벨탑을 쌓아 올린 인류는 대단한 기술을 자랑하지만 다 유(有)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이지. 무(無)에서 하는 작업은 없습니다. 제가 아는 대단한 도예(陶藝)가들 그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태토와 나무와 무를 가지고 그 대단한 작품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지만, 우리의 하나님 창조주(創造主)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우리 하나님은 있게 하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이 있음보다 더 대단한 것이 어디 있으며, 존재보다 더 앞선 가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 보십시오. 지금 우주여행(宇宙旅行)을 꿈꾸기도 합니다. 달나라, 별나라 신기해 보이지만 그곳은 모든 것이 죽어 있습니다. 아니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를 보십시오. 사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대자연, 바다 속의 놀라운 고기들의 세계 하늘에 구름과 새들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들 이 모든 존재들이 얼마나 조화롭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사실 이 존재들을 우리는 매일 겪지만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이 존재가 지닌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깨달으면 하루하루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감사하고 때로는 신비한지 모를 것 우리만 그런 거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더 기뻐하셨습니다. 창세기의 창조기사는 있으라는 명령을 하신 그 명령에 따라서 있는 결과가 전개가 되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있음에 대해서 우리 하나님은 기뻐하셨다는 겁니다. 아직 무슨 일들을 한 것도 아니고 무슨 목적이 펼쳐지는 일이 전혀 아닌데도 그저 있음 자체만으로 창조주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신 것입니다. 자연계만 그런 거 아닙니다. 인간도 만들어 놓으시고, 우리 하나님은 가장 크게 기뻐하셨다고 성경은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하나님의 기쁨은 신약의 탕자(蕩子) 비유에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식이 집 나가서 돌아오지 않자 아버지는 램브란트의 그림처럼 눈이 짓 이겨질 정도로 눈물로 한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집 나간 자식은 소식이 끊어져 가지고 죽은 줄 알았습니다. 여러분 아버지의 소원이 뭐가 있습니까? 그가 돌아와 가지고 가업을 잇고 효도하는 게, 아버지의 소원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아버지의 마음에는 자식이 객사하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이요. 설령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딘가 지상에서 살아있는 소식만 하나 들어도 그에게는 감격(感激)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24절,
 
*누가복음 15장 24절,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신약만 아닙니다. 여러분 구약에 잘 아시는 요셉의 경우 한번 보십시오. 아버지 야곱은 22년 동안 그가 죽은 줄 알았습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처럼, 22년 남모르는 눈물과 고통 속에 야곱이 살았는데 어느 날 요셉이 살아 있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기절초풍할 만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아버지가 뭘 생각했습니까?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게 그렇게 감동스러운 거 아닙니다. 이제 애굽으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자식 때문에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는 것도 그의 큰 소원 아닙니다. 죽었다고 생각한 그 자식 평생 칼에 묻었던 평생 가슴에 한으로 남아 있던 그 자식이, 요셉이 살아있다니 살아있는 소식 하나만으로도, 이제 야곱은 창세기 45장 28절,
 
*창세기 45장 28절,
28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
-이스라엘의 가로되 족하도다. 그거는 족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무슨 예수 믿어서 출세하고, 성공하고, 잘되고, 번영하고 그게 복음이 아니라, 죽었던 인생, 없던 인생, 생겨나고 죽었던 인생 되살아나고 무 존재에서 존재로 다시 드러나는 게, 그게 부활의 복음이고 복음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존재가 가장 큰 축복입니다.
 
탕자의 아버지나 야곱에게 가장 큰 기쁨이듯이, 우리가 이 땅에 생명을 유지하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무슨 일을 대단하게 안 하시더라도 우리 하나님께는 큰 기쁨이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여러분 웨스민스터 소요리 제1 문답을 보십시다. 우리가 이 문답을 이렇게 착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대학에 합격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런 대학에 못 들어가면 영광이 가려워지고, 우리가 성공하고 출세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실패하면 영광이 되지 않고 그거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든지, 우리의 노력의 결과를 통해서 그 하나님께 하나님의 영광에 보탬이 된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錯覺)입니다. 사도행전 17장 24절,
 
*사도행전 17장 24절,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아레오바고 설교에서 바울은 이렇게 외칩니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미 영광중에 계신 하나님이요. 영광의 충만 속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유무가 우리 행위에 달린 것도 아니고, 우리 삶의 결과에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럼 무엇에 기뻐하실까 탕자의 비유해서 그 아버지의 마음이 드러나듯, 잃어버린 한 어린 양을 찾는 것이 목자의 큰 기쁨이라고 말씀하시듯,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 있고, 돌아오고, 말하자면, 우리의 존재 구원받아서 회복된 우리의 존재, 우리의 있음, 그 자체를 우리 하나님은 가장 크게 기뻐하십니다. 존재의 목적은 존재가 있고, 난 이후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설령 존재가 없더라도 모든 존재는 귀한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되겠습니까? 물론 이 땅에 살면서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내 삶의 이유와 목적을 찾도록 노력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고 또 세상에는 의미 없이 목적 없이 사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우리 청년들, 가운데도 이런 분들이 있을 건데, 그럼 이들은 가치 없는 존재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정말 청년 자살률이 세계 제1위인데, 젊은이들이 살 이유나 목적을 찾지 못해서 생을 마감한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살아있는 것만 해도 좋은 것입니다. 교회가 젊은이들을 향해서 목적을 품어라. 꿈을 지녀라 의미 있는 삶을 살아라.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그것에 앞서서 청년들이여,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 여러분이 비틀대고, 쓰러지고, 외롭고, 괴롭다 하더라도, 존재만으로 귀하다. 이걸 가르쳐야 됩니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파우스트에서 존재는 의무다 비록 일과성이라 할지라도 비록 순간이라 할지라도,’ 아니 괴테만 그렇습니까? 우리 예수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여러분 여기에 우리 예수님의 가치 판단이 나타나는데 천하를 얻는다는 거는 대통령쯤 되는 걸 말하는 것 아닙니다. 온 천하를 손에 쥐는 겁니다. 인생의 성공의 출세에서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나은 성공과 출세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니가 설령 천하를 얻더라도 니 목숨을 잃으면 니 존재를 상실하면, 그게 뭔 가치냐? 여러분 우리 예수님의 이 가치 판단에서 우리가 뭘 깨달을 수 있습니까? 목적이 대단한 것 같지만은 존재는 귀한 것이고, 삶에 대한 이유나 목적을 찾지 못해도 있음만으로 그거는 아름다운 겁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첫째는 인생의 좌표를 설정해야 되겠지만, 과도하게 목적 중심 성취 중심으로 세우지 말고 존재 중심으로 설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생 어떠한 세상입니까? 이 도시의 거대한 조직과 질식하듯이 압도하는 분위기는 어린 시절부터 청년시절까지 우리를 출세, 경쟁 무한경쟁으로 몰아가고, 우리가 받는 모든 교육은 출세를 위한 조건을 구비하는 데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이 혹한에도 울지 않는 이 냉혹한 세대에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시기(猜忌)하고, 경쟁(競爭)하면서 성공하기 위해서 치열(熾烈)하게 살아가는데 벌써 사람들과의 만남에도 순수함과 착함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겉으로는 교양과 화려함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은 산다는 것의 재주들로 잘 무장되어 있고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마저도 그 속에서 호흡하고 그 시대정신에 젖어서 의식 없이 살고 있습니다. 밀란 군대라 소설의 제목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욕망적 목적의 무거움입니다. 여러분 따라서 이제 우리는 참을 수 없는 목적의 무거움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치와 무거움을 인식해야 할 것임
 
둘째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야곱과 탕자의 아버지의 경우에 보이듯이, 무슨 목적을 이루는 것도 기뻐하시겠지만, 사실은 존재와 생명을 훨씬 더 귀하게 여깁니다. 우리 예수님도 아침 일찍 나와서 성취를 많이 하는 사람이나 오후 늦게 와 가지고 조금 일하는 사람을 똑같이 대우했습니다. 그 예수님이 하시는 달란트 비유도 잘 나가지고 5달란트 남긴 사람이나, 겨우 한 달란트 남긴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면서 말씀해 보시면 글자 하나 안 틀리게 똑같은 대우를 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셋째는, 더 나아가서 이제 우리는 좀더 존재 중심과 생명 중심으로 해야 됩니다. -목적이 이끄는 공동체보다 존재가 귀한 공동체가 더 아름다운 집단입니다. 목적 지향적인 사람보다 존재와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더 귀한 분들이라고요. 그러면 이제 목적을 세우지 말까? 아닙니다. 존재가 중함을 알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이제 말씀의 마무리로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논의를 하다 보니까 우리가 깨닫는 깨달음은 무엇이겠습니까?
첫 번째는, 한 영혼의 소중함, 귀함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너무 큰 꿈을 지니고 그렇게 나가면, 가시적인 성취 중심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가시적인 결과 중심으로 흐르다 보면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이 사라집니다. 개인적으로 사람을 대할 때, 내 인생에 별로 목적에 도움이 안 되면 우리가 소홀히 할 수 있는데, 내 인생의 목적에 도움이 되든지 안 되든지 똑같이 소중히 여기고 존기 여겨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앞장서 가지고 직분 받아서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 많이 하시고, 헌신하는 분들 당연히 매우 귀한 분들입니다. 그 헌신과 헌금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들 직분을 받은 건 아니니까, 혹 직분이 없고 혹 별로 기여하는 것이 별로 없어 보여서 별 존재감이 없어 보이는 분들도 똑같이 하나님 나라의 존귀한 자들입니다.
 
여러분 따라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들녘에 피어 있는 들꽃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시인이십니다. 우리 예수님 뭘 노래했습니까? 들꽃이 너무 아름다워서 들꽃이 하나님께 영광을 대단하게 돌려서 어쩌면 그거 아닙니다. 그 들꽃이 사람들은 몰라주고, 거기에 비바람 다 맞고 거기에 온갖 풍랑과 풍상을 다 막다 하더라도 쓰러지지 않고, 그 자리에 꾸준히 서가지고 서 있는 들꽃의 존재 자체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혹시 우리 교회 가운데 들꽃 같은 분들 계신다면 힘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병(丙)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뭐 세상 논리처럼 갑(甲)과 을(乙)만 있는 거 아닙니다. 이거는 조직사회서 대표나 책임자가 갑질 한다고 을의 아픔이 물론 있습니다. 그 을의 아픔 때문에 데모도 하고 광화문에 가서 깃발도 드는 분이 있는데, 을의 아픔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그런 시위도 정당성이 많은 경우에 있을 겁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갑과 을만 있는 거 아닙니다. 을이라도 될려면, 직장이라도 있고 조직이라도 있어야 되는데 세상에는 아무런 을도 되지 못한 소위 병(丙)이 있습니다. 노숙자들, 외톨이들, 실직자들, 독거노인들, 환자들, 장애우들, 고립된 자들, 이건 병(丙)입니다. 교회는 뭐하는 단체냐? 병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그들을 돌보는 것이 예수님을 닮은 사이고 그것이 손양원 목사님, 서서평 선교사가 한 일입니다.
 
여러분, 따라서 우리 사랑의 교회가 약한 교회를 돕고, 힘든 목회자들을 격려하는 한국교회 섬김의 날 매년 하시는데 힘들지만은 정말 잘하시는 겁니다. 교회는 아웃사이드,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소외된 민초들을 위한 어쩔 수 없이 승진의 삶과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제 표대를 향해서 달리는 것만 아니라, 옆으로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마음을 지녀야 됩니다. 다시 닉 워렌 목회자의 생명으로 돌아가 봅시다. 영어로 보니까 포포즈 드라이븐(purpose of driven), 목적이 이끄는 데 드라이버, 라고 돼 있다고 저는 드라이버가 고속도로에서 질주하는 것만 생각이 나 가지고 아찔하고 무서운 용어입니다. 이것이 능동태든 수동태든지 간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하게 되면 사고 날 가능성이 늘 있습니다. 인생이란 늘 그렇게 앞만 드라이브하고 달리는 거 아닙니다.
 
여러분, 성경을 잘 보시면 창세기도 족장 중심으로 이 게시 역사가 전개되지마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안 하셨습니다. 갑자기 카메라의 앵글이 광야로 확 돌려져 가지고 광야에서 야곱에게 버림받아가지고, 슬피 울면서 목말라서 배고파서 굶어 죽어가는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그 계시의 카메라 앵글이 비추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신없이 달리면 옆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항시 개인이나 공동체가 연약한 우리의 이웃들, 연약한 동료들을 돌보는 안목이 있어야 됩니다.
 
※이거는 조선 시대 선비들 했던 겁니다.
⓵경주의 유명한 최 부자, 그분의 소신이 뭡니까? 앞으로 돈을 더 벌어가지고 더 아파트 사놓고 더 땅 투기하고, 더 빌딩 사 놓고, 강남에 그 꿈 안 꿨습니다. ‘100리 안에는 굶는 백성이 없게 하라.’ 나는 충분히 지금 배불리 먹고 사니까 그런 투자를 한 게 아니라 100리 안에 굶는 사람 없게 하자.
 
⓶전라도의 구례의 운조루 그 집에 쌀독에는,,, 큰 쌀독에는 한문으로 ‘타인능해(他人능能解)’ 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퍼가라. 이겁니다. 그러면서 그 쌀독을 나무 독을 밖에 입구를 두고 가난한 마을 사람들이 끼니가 없으면, 그 집에서 무한정으로 퍼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것이 이 운조루가 오랜 세월 동안 그 지역에 있었던 민란, 동학, 여순 사건, 한국동란, 한국전쟁 겪으면서도 건재할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아무리 악한 이들이라도 집안이 행한 선행을 알기 때문에 그거는 감히 누가 손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로 이렇게 살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목적을 향해서 미친 듯이 드라이브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드라이브 덜 하고 좀 느리게 가더라도 우리 주변에 어려운 문제를 돌볼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이웃 사랑의 시각을 지니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존재하는 것이 출세보다 더 큰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 밖으로 햇빛이 비치고, 새소리만 듣는 것도 감사입니다. 아니 아침에 일어났는데 눈이 떠지고, 숨을 쉴 수만 있다면 그것도 은혜요. 행복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뭐가 감동입니까? 목적 성취가 아니라 존재가 지속하는 겁니다.
 
여러분, 따라서 진학하시고 취업하시고, 승진하시고, 당선되시고, 결혼하시고, 자녀 놓으시고, 그런 일에 대해서도 특별감사헌금을 당연히 하셔야 되고, 거기에 더해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을 깜빡 잊으시고 계시는 우리 하나님의 은혜로운 망각 증에 따른 생존 감사헌금을 매주 매일 모아가지고, 드리셔야 그게 수준 높은 신앙이라고요.
 
여러분, 앞으로 사랑의 교회 헌금을 지켜보겠습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인생은 목적이 이끄는 삶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끄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의 인물들 한번 보십시오. 누가 목적이 그렇습니까? 아브라함이 언제 믿음의 조상이 되려는 목적을 언제 품었습니까? 모세가 한사코 발뺌을 했지, 언제 출애굽의 영도자가 될 계획을 언제 꾸었습니까? 다윗이 양이나 치고 노래나 좋아해서 불렀지, 언제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고, 그것도 성군이 될 목적을 언제 세웠습니까? 신약에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요한이 갈릴리 바다에서 그냥 고기나 잡고 살 인생이라 생각했지, 언제 비교가 안 되는 세상의 넓은 바다에서 어부가 살아남은 어부가 될 목적을 언제 꿈꾸었으며, 언제 성경 기자가 되고, 사도가 되고 오는 세대의 믿음의 사표가 될 꿈을 언제 꾸었습니까? 성게의 어떤 인물이 목적을 설정했습니까? 없습니다.
 
여러분, 모든 믿음의 인물들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대로 인생의 어떤 삶의 한 순간 하나님의 음성 예수님의 부르신 한 번 듣고, 자기 목적을 성취하는 삶이 아니라 그 부르심에 존재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이제 말씀에 결론을 내립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천국을 갑니다. 그 천국이 어떤 세상인지 요한계시록 22장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 성의 성곽의 기초 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오, 둘째는 남보석이오.”, 등등,,, 여러분 천국은 우주 최고의 주얼리(Jewelry) 상점입니다. 혹시 보석을 연구하시는 분들은 게시로 22장을 좀 잘 연구하시고, 보석상을 하시는 분들은 천국보석상, 아마 이러면 많이 모여들 겁니다. 저는 여러분 천국이 보석천국인 거 관심 없습니다. 천국에 어디에 관심 있느냐, 이 보석의 세계라 좋은 게 아니라, 시간의 위협에 굴하지 않는 영원한 세상이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고요. 제가 그래서 하는 이 낙은 인생은 늘 무 존재 위협, 늘 비존재의 불안 속에 노출되어 있고 우리 모두는 그것에 노심초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천국 시민들인데 우리가 가는 그 세계는 시들고, 병들고, 늙어가는, 죽어가는 세월의 무자비한 법칙이 통용되지 않는 영원한 존재의 세상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유나 목적을 찾으면 좋을 거지요. 그러나 혹시 삶의 이유를 모른다고 해서 무가치한 인생이 아닙니다. 인생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고 의미 없는 삶이 아닙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이 주신 귀한 생명을 지키는 것이니까, 그것도 대단한 순종입니다. 그리고 내게 많은 복을 주시지 않아도, 숨쉬게 하는 것만도 은혜요. 형언하기 어려운 축복인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의 나그네 길이 괴롭든, 외롭든, 성공하든, 실패하든 흔들리지 마시고 나그네 길을 아름답게 걸어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삶을 반성해야 한다. 우리들이 숨 쉬고 있는 거, 살아가는 거, 다 하나님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하며, 세상의 욕망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불평 불만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 의지하고 담담하게 살며, 특별히 부르심이 있을 때 그 부르심 순종하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길이 되어야 한다. 있음으로 가치 있는 존재​, 있음만으로도 아름다운 것, 한 영혼의 소중함을 깨달아서, 들꽃도 그자체가 아름다운 것처럼,​ 갑(甲)을(乙)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병(丙)에도 신경 써야한다. 노숙자, 실직자, 독거노인., 아웃사이더들을 돌보는 사역이 소중하며, 옆을 보는 여유와 삶이 주님 앞에 가장 아름다운 삶이어야 한다. 질주하는 삶은 아님을 기억하여 항상 그 존재만으로 하나님이 주신 귀한 생명임을 알아 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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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7월 21일)
제목: “임재, 항상 그곳에 계신 하나님”(1,2부), “은혜 속으로”(3,4부)
말씀: 에스겔 48:35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이선복 부목사님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설교자:
-김학진 목사님(1,2부-“임재, 항상 그곳에 계신 하나님”),
-윤대혁 목사님(3,4부-“은혜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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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48:35,
35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베드로후서 1:2-4,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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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진 목사님(1,2부-“임재, 항상 그곳에 계신 하나님”),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저에게 사랑의 교회는 마음의 영적 고향 갈릴리와 같은 곳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돌아오면 마음의 위로가 있고, 포근한 사랑과 격려가 있는 친정집과도 같습니다. 제가 200년부터 2009년까지 이곳 사랑의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었던 시간은 저게 가장 큰 영광의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오늘 여러분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나눌 수 있다. 라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나 이는 너무나 큰 영광이고 기쁨입니다.
 
이 귀한 강단을 허락해 주신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오정현 담임 목사님과 당회, 그리고 교회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저는 제가 섬기고 있는 뉴욕 장르교회에서 벌써 7년차가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배려를 해주셔서 2개월 좀 넘는 시간을 안식월로 이렇게 허락해 주셔서 잠시 한국에 나오게 됐습니다.
 
하나님 이 기간 동안에 혹 하나님께서 말씀을 증거 할 수 있는 영광의 시간을 주신다면 무슨 말씀을 전할까요? 그런 마음으로 기도를 했는데요.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에 주신 감동의 말씀이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함께 읽었던 이 에스겔서가 가장 마지막 절 말씀이었습니다. 특별히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지난 2~3개월 동안 저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그 약속의 말씀이었거든요. 바라기는 오늘 전하는 저나, 듣는 우리 서울 사랑에게 모든 성도님들, 제가 받았던 하늘의 위로와 그 평안보다 더 큰 은혜를 받는 이 시간 그리고 돌아가신 시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이 땅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언제가 가장 힘드세요? 언제가 가장 힘든 시간이십니까? 저는 하나님의 임재성에 대해서 의심이 생기는 그런 시간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 분명히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는데 그런데 이런 질문이 생기는 것이죠. 과연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 계시는가? 라고 하는 에 그 정도로 참 아린 가슴, 아픈 가슴, 긴 터널을 지나가는 듯한 그런 시간이 가장 힘든 시간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힘들어하는 것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 별로 나와 힘든 것과 연결시키지 않죠. 그렇지만은 하나님을 정말로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이 부분이 정말 힘든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말로 선하신 하나님이라는 것, 믿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라는 것을 우리가 믿죠. 그런데 왜? 그런데 내게 왜? 또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시간들이 주어지는 것일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떻게 저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 등등, 이런 시간들이 실질적으로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참으로 힘든 시간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참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오늘 이 본문 말씀은 실은 에스겔서의 결론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 이러한 아린 질문들에 대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통찰(通察)력이 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귀한 믿음의 에스겔의 신앙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결론이 될 때에, 우리의 모든 질문들이 주안에서 평안함으로 해결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자, 오늘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면은 이런 말씀 아닙니까?
 
*에스겔 48:35,
35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이 말씀을 조금 더 이해하기가 쉬운 우리 현대인 성경 버전으로 보게 되면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의 전체 둘레는 약9.5킬로미터이다. 사람들은 그 성을 여호와께서 계시는, 여호와께서 계시는 성이라 부를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에스겔서는 전체 48장이나 되는 예언서(豫言書)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말씀 아까 말씀드린 거와 같이 가장 마지막 절 말씀이고 결론의 말씀입니다. 에스겔 선지자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이 마지막 말씀은 긴 그의 눈물에 신앙의 여정(旅程)을 결론짓는 그리고 결론으로 신앙 고백, 귀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 삼마’라고 하는 이 하나님의 귀하신 그 이름을 기록하면서 에스겔서를 마무리합니다. ‘여호와 삼마’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의 이름이죠. 여러분 ‘삼마’라고 하는 이 뜻은 영어로 말하면 데얼(There), ‘그곳’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삼마는 그곳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직역한다면,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이 임재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것이죠.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 이렇게 어 제목을 다룬 곳입니다. 여러분 이 에스겔 선지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에스겔서를 기록하고 특별히 마지막 부분에 있어서 그의 신앙의 고백 결론으로 이 말씀을 하는 것에 대한 무게라고 할까요?
 
그 무게를 우리가 좀 더 알려면은 이 에스겔 선지자라고 하는 개인에 대한 뒷배경, 그거 어떠한 역사 어떤 배경 가운데에 있었는가, 또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좀 알 때에 에 좀 더 우리가 아 이 말씀의 은혜의 무게를 알 수 있는 것인데, 자 성경은 실은 이 에스겔이라고 하는 개인에 대해서 많이 기록돼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에스겔서, 여러분 처음 등장하는 1장 첫 구절인 1절부터 3절까지를 보게 되면은, 어느 정도 아 이런 시기에 에스겔 선지자가 존재했고, 아 이런 일을 그가 당했고, 아 그는 이러한 개인적인 뒤 배경에서 자라났구나, 아 그래서 이러이러한 사명과 소명이 있었던 자였구나, 라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자 우리 그러면은 에스겔서 우리 1장으로 한번 돌아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읽어드릴게요. 1절에 보니깐,
 
*에스겔 1:1,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서른째 해, 넷째, 딸 초닷새해라고 시작을 합니다. 자 여기서 30째 해라고 하는 것은 에스겔 선지자의 나이를 말하는 것이에요. 나이, 에이즈 오브 더 리브(Age of the live) 그러니까는 그가 30세 되던 해에, 이렇게 여러분께서 이해하시면 쉽겠습니다. 그가 머물었던 곳입니다. 내가 ‘그 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발 강가는 바벨론 어느 한 외지에 있는 강의 이름입니다.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그러니까 너무나 쉽죠. 에스겔이 바벨론 포로가 되었어 그발 강가라고 하는 그곳에 이렇게 거하게 된 노예(奴隸)로 거하게 된 그때를 말하는 그의 나이가 그때 30세였다. 이렇게 우리는 볼 수가 있는 것이죠. 조금 더 역사적인 배경을 2절에 말씀합니다.
 
*에스겔 1:2,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유다 왕의 이름이죠. 여호와 긴 왕이 사로잡힌 지 5년 그달 처닷새라. 여호와긴 왕이 정확하게 BC 597년에 에스겔과 많은 유다 백성들이 바빌론에 의해 가지고 포로로 잡혀가서 그 발 강가로 끌려가는 것이죠. 그래서 여호와긴 왕이 잡혀서 함께 당신도 이 그발 강가로 노예로 끌려온 지 5년이 지난 해였다. 5년의 지난해였다. 그러니까 그가 25살 정도에 포로로 잡혀 와서, 5년 정도 그곳에 지내면서 30세가 되던 해에 어떤 일이 벌어졌다고 그러는 것이죠.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하나님의 놀라운 살아있는 말씀이 하늘이 열리면서, 그에게 소명과 사명과 비전과 예언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자 3절을 보게 되면,
 
*에스겔 1:3,
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그의 뒤 배경에 대해서 어떻게 자라난 패밀리 백 그라운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대아 땅 그 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그러니까 제사장 가정 레위 지파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제사장 부시라고 하는 분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라고 말씀하고 이 당시 비슷한 연대였죠. 이 남유다 이스라엘 가운데 미래가 촉망이 되는 두 청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청년이었어요. 다니엘은 에스겔과 받은 소명과 사명의 결이 좀 다릅니다. 둘 다 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말 귀한 믿음의 청년들이었지만 다니엘은 제사상 쪽이 아니죠. 다니엘은 신앙이 정말 좋았지마는 다니엘은 정치가 쪽입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아주 탁월한 평신도로서 이 정치 계열의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지혜로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애하는 그러한 능력 있고 탁월한 자였었어요. 에 그래서 그는 느브갓네살 왕이 있는 왕궁 쪽으로 아 그가 인제 잡혀가게 되고 이 에스겔은 이제 제사장 결이에요. 그러니까는 미래의 촉망이 되는 청년이었는데, 이 사람은 우리말로 말하면, 미래의 좋은 목사 감이에요. 저 목사감, 그러니까 이 교회와 세상 얼마나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나라 차원에서 볼 때에 이렇게 참 촉망(囑望)이 되는 기대가 되는 그러한 청년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이 에스겔이에요.
 
우리는 다니엘 하면은 워낙 다니엘 12장을 통해서 주일학교 잘 다니신 분들이라면 얼마나 스펙티컬하고 자꾸 용어가 나옵니다. 죄송합니다. 스펙테컬하고, 이 표현이 이것밖에 안 돼요. 제가 예 얼마나 우리 에피컬한 그런 스토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다니엘 하면은 아 이런, 이런 사건들을 통해서 다니엘이 어떤 인물인 것을 알지만은 에스겔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적어도 우리가 이 정도만 보더라도 에스겔이 참 귀한 청년이었구나, 미래의 이스라엘의 영적인 모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얼마나 중요해요. 이런 모든 영적 일에 참 준비된 자였구나,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죠.
 
민수기 4장에 보게 되면, 레위지파에서 자라난 제사장 가정에 자라난 자녀들, 특별히 아들들은 어렸을 때부터 이제 어깨 너머로 아버지가 하는 이 성전에서 봉사한 모든 일들을 보고 배웁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어떻게 섬겼는지에 대해서, 그런 어떤 영적인 그런 가문 가운데에 레기스가 있어요. 그 에스겔도 어렸을 때부터 솔로몬의 영광스러운 그 성전 가운데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아버지와 같이, 할아버지와 같이, 거룩한 의복을 입고 하나님을 섬기겠구나, 이것이 내가 받은 소명이고 사명이구나, 그런 떨리는 가슴, 두근거리는 가슴, 어떻게 보면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 어렸을 때부터 잘 자랐을 거예요.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격려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보면서 아 이런, 이런 부분들은 하나님 앞에 내가 더 정결하게 나아가야 되겠구나. 그리고 이 민수기 4장에 또 보게 되면은 25살이 될 때부터 우리말로 말하면 전도사가 될 수가 있어요. 거룩한 의복을 입고, 정으로서는 아니지만, 부로소 성전을 섬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30세가 되면은 이제는 정식으로 정이 되어서 제사장 모든 역할들을 감당할 수 있는 준비된 자로 사역을 하기 시작한 것이죠. 목사가 되는 것이죠. 당연히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이제 25살,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전을 위해서 내가 사역을 할 수 있겠구나. 라고 하는 그 기대감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립니다. 그의 순수하고 맑은 거룩한 그의 눈빛 눈에서 보여주는 사건들은 그렇게 영광스러웠던 솔로몬의 전이 불에 타고, 거룩한 괴물들이 짐승과 같은 저 바빌론의 고악스러운 손길에 의해서 다 빼앗기고, 허리 큰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어 나가고, 이런 비참한 일들을 에스겔 순수한 그 25살에 목도(目睹)하게 된 거예요. 현실은 여호와긴 왕과 함께 잡혀서 그 발 강가로 던져지게 됩니다.
 
그렇게 1년, 2년, 3년, 4년, 5년 서러운 시간들을 보내는 것이죠. 그 당시 여러분 이 시편 137편 1절과 몇 구절을 보게 되면은 참 우리가 아 좀 이렇겠구나, 서럽겠구나. 라고 하는 그 마음을 느낄 수가 있죠.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때 그 당시에 상황의 모습이며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노래를 청하며, 우릴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라. 여러분 상상이 됩니까? 야 너희들 히브리 찬송가 있잖아. 18번 불러봐 당신들의 기쁨을 위해서 술에 만취가 되어, 농락하는 그 어조로 자신들의 기쁨을 위하여 찬성을 부르래요.
 
저와 여러분이 그 상황 속에 누워 있었다면은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래서 4절에 보니깐 우리가 이방 땅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좀 아르덴티파이(Identityify)가 되죠.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열어주시고 에스겔에게 귀한 말씀으로 함께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이 임하기 전까지는 에스겔의 마음 깊은 곳에 아린 마음속에 한 가지 질문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와 삼마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시는가? 5년 전 트라우마와 같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모든 눈을 감을 때마다 나임 미호와 같이 계속 나타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 일들 가운데에, 여호와 삼마, 하나님은 과연 그곳에 계셨는가? 내가 믿는 하나님, 내가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 분명히 나를 사랑하사 집합 가운데 태어나게 해주시고 비전을 주시고 소명을 주시고 사명을 주셔서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나에게, 단 한 번도 성전을 제대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다 앗아 가버린 그 사건을 놓고 과연 하나님은 그때 그곳에 계셨는가? 질문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 하나님은 지금 나와 함께 계시는가? 도대체 나에게는 어떠한 영적 존재 가치가 한 가닥이라도 남아있는가? 나는 뭐 하면서 사는 것이지, 뭘 위해서 살아야 되는 것이지. 여러분 좀 느껴지나요? 저는 이 말씀 북상하면서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바로 그때에,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열어주시고 권능의 말씀으로 ‘나 살아있다.’ 약속에 미래에 영광스러운 회복의 비전에 계시의 말씀을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가 보았던 여러 환상들 예언의 말씀들이 있지만 때로는 왜 심판을 받아야 되는지, 다 사랑의 음성이죠.
 
특별히 그가 보았던 이 환상 중에 분명한 귀한 환상은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복되는 것이죠. 그리고 성전 이 무너진 성전이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전으로 회복이 되는 그 놀라운 비전을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주신 것입니다. 마른 뼈와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 두 손을 다 늘어뜨리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누워 있고 자빠져 있고 아무 힘도 발휘 못하는 과연 저들이 살겠는가, 인자야 저들이 살아날 수 있겠는가, 하늘의 생기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심령 속에 불어 들어가죠. 힘을 얻고 강력한 하나님의 군대로, 일어서는 환상을 보았어요.
 
그리고 그 성전 가운데에 성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와 같은 그 물들이 범람(汎濫)하고 범람해서 47장에 나오죠. 발목에 찼다가 무릎에 찼다가 허리에 찼다가 도저히 헤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성전에만 머무는 것이 이것이 성전 밖으로 흘러가서 가는 흘러가는 곳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아나고 흘러가는 곳곳마다 열매를 맺고 흘러가는 곳곳마다, 가는 곳곳마다 물이 바다 덮음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살아나는 놀라운 이 회복의 영광을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 일이 이루어졌을까요? 안 이루어졌을까요? 이루어졌죠. 누가 오시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므로 이루어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가 갈 천국을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라, 물론 구원을 통해서 죽음은 천국까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구약에서 말쿠트라고 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이 바슐레라고 하는 신약에서의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으로, 예수님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서 오신 것입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삶에 왕이 되어 주시고 주인이 되시므로 말미암아 내 삶 자체가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상관없이 이미 천국이 되는 놀라운 은혜를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성취로 예수님이 오신 것이죠.
 
그래서 이 구약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놓고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름을 뭐라구요?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왜 임마누엘이라고 할까요? 여호와 삼마, 하나님의 약속에 성취,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실체고, 보고 만지고 듣고 우리의 모든 아픔, 고난, 배고픔, 육신의 질병, 이 땅에서 겪는 모든 억울함, 거절감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이 홀로 다 담당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죠. 파라클라이토스 파라 곁에 내재하셨어요.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로, 절대로 떠나지 아니하시는 그 성령님이 위로자가 되어 주시고, 그 성령님이 우리에게 상담가가 되어 주시고, 흔들릴 때마다 능력이 되어 주셔서, 내가 너와 함께한다. 함께한다. 함께함을 증거 해주고 함께함이 실체가 되도록 성령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내 교회를 세워오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가 없는 물론 우리의 육신의 생명은 순교를 통해서도 죽을 수가 있고, 암에 걸려서 우리가 일찍 세상을 떠날 수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절대로, 절대로 뺏어갈 수가 없는 그러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신앙이 저와 여러분의 어떤 상황 가운데서 결론이 되는 믿음의 고백 신앙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때, 그때도 계셨습니다. 지금도 계시고 영원토록 함께 계십니다. 믿으시면 안면해주십시오. 현실은 어때요? 절대로 쉽지가 않죠. 예 우리 다 믿지만 현실은 쉽지가 않습니다. 제가 1984년도에 전도사가 됐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캠퍼스 사역하고 열심히 달려와서 달려와서 달려와서 올해가 몇 년도죠 2024년인가 몇 년 됐습니까? 40년이 됐어요.
 
저도 나름 주의 종으로 헌신해서 40년 됐어요. 살기 점점 갈수록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어떻게 이렇게 잘하세요. 왜냐하면,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기 때문에 감당하라고, 감당하라고 감당을 주시는 십자가 더 무겁구나, 무겁구나 하는 것을 많이 깨닫습니다. 아무튼 40년 동안 달려오면서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을 만났거든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죠. 더군다나 서울 사랑의 교회의 10년 정도 사역하면서 얼마나 많은 분들을 만났고, 저의 전도사 사역부터 우리 학생들 지금은 다 어른들이 되고, 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야 뒷문으로 들어가면 기가 막힌 기도 제목이 없는 가정에 단 한 가정도 없구나!!! 라고 하는 것이에요. 뭐 저를 포함해서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저도 오늘 예배 바로 오기 전에 너무나 들으면 안 되는 소식을 또 가정 가운데 들어서 걱정하더라고. 설교하는 데 지장이 될까 봐, 바로 오늘 아침까지도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현실이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현실은 쉽지 않겠지만, 이 신앙이 절대로 저와 여러분의 결론이 되는 여호와 삼마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하는 것입니다.
 
1956년이요. 미국 전역, 특별히 시카고가 가장 핫 이슈가 되었죠. 미국 전역에 큰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짐 엘리엇이라고 하는 아주 신실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준비된 청년이었죠. 그와 그의 베스트 프렌즈, 하나님의 나라에 100프로 헌신을 하고 이 4명이 전체 5명이 에콰도르라고 하는 여러분 잘 아시죠? 이 내용 아오카 족속에게 미전도 족속에게 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너무나 많은 시간 동안 준비를 하고, 기도로 그리고 그들에게 나아갔던 자들이었어요. 이미 잘 하시는 대로 그들의 경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그들에 의해 가지고 비참하게 창에 찔려 단 한 마디도, 단 한 번도, 한순간도, 복음을 전하지 못한 채, 비참하게 창에 찔려 여기저기 5명의 전체 다 죽게 된, 이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언네세서리 웨이스트다. 얼마나 불필요한 낭비인가? 비아냥 하고, 시카고 이 뉴스 페이퍼 헤드라인에는 그렇게 저희들의 무모한 선교를 비판하는 기사의 내용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에 하나님 의심하게 된 것이죠.
 
그럴 만한 것이 다른 친구들도 너무나 탁월한 친구들이었지만, 특별히 짐 엘리엇이라고 하는 이 친구는 재능도 많고, 은사도 많고, 탁월한 친구들이었어요. 아 짐 앨리엇 친구는 위튼 명문대학에서 수석으로 공부를 했었고, 또 수석으로 졸업한 친구였어요. 탁월한 연설가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고 경외하는 그런 청년이었어요. 그가 연설을 하면은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그가 살아 있었더라면 빌리그레함을 능가하는 최고의 전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그러니까 정신적으로도 육신적으로 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레슬링 스포츠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레슬링, 강인한 사람이어야지만 감당하는데 이 디비전 챔피언까지 갔던 친구였어요. 레슬링으로서, 얼마나 참 감동 있게 글을 잘 썼는지, 지금도 그가 쓴 글들이 이 파블릿 시대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야 도대체 젊은 이 친구가 어떻게 이렇게 깊은 영성을 가지고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쓸 수 있을까? 그의 저널을 보고 다들 놀래요. 이랬던 짐 엘리엇, 미래가 촉망이 되는 짐 앨리엇, 그리고 그의 4명의 친구들 단 한 번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저희들이 비참하게 죽어난 것이고. 그러니깐 언 내세서리 웨이스트다 그 5명의 얼굴을 한번 보시겠어요. 제가 사진 카톡을 준비했는데 나오죠? 예 라지얼 유 더 리온 페이트 플레이미 가운데 짐 엘리엇, 네이트 세인트 또 네이트 세인트 간증했어요. 나중에 애드 맥컬리 다 훌륭한 친구들 인상들 좋죠? 예 저 5명이었습니다. 내려주시죠. 그들은 총들이 있었어요. 죽는 순간에까지도 단 한 명도 총을 잡고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반항하지도 않고 죽어나간 것이에요. 근데 가장 좀 힘들었던 부분은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이 사건을 해석하느냐에 있었어요.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의문을 품었으며, 어떤 의문이요. 네, ‘여호와 삼마,’ 하나님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그 자리에 계셨는가? 계셨더라면 또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선하신 하나님이라면, 분명히 저희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저렇게 비참하게 단 한순간도 복음을 전하지 못한 채 죽어가도록 무능하게 내버려 둘 수가 있는가? 이 여호와 삼마, 하나님에 대한 의문이었어요. 그리고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믿어봤자 소용없어. 저런 무능한 하나님이라면 믿어 봤자 소용없어. 나가 내가 힘들어하는 거와 상관없는 하나님이야. 이러한 회의적인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정황을 놓고 남편이 창에 찔려서 고통 가운데에 죽어갔던 그 아픔보다 더 가슴을 도려내듯 아파하는 한 여인이 있었는데, 그분이 바로 이 짐 엘리엇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엘리엇이라고 하는 신앙이 좋은 아내였어요. 그에게는 한 살 난 딸이 있었어요. 원어 웨이스트, 네세서리 웨이스트, 여호와 삼마 하나님, 이 부분에 대해서 이 여인이 이렇게 그대로 기사화합니다. 통역 번역한다면은 얼마나 불필요한 낭비라며 말씀을 삼가십시오. 낭비라니요. 내 남편의 죽음은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전 생애를 이것을 위해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바로 이 시간을 위해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그 다음엔 너무나 귀한 신학적이고도 성경적인 하나님 나라 차원에서 이 말을 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사명 그 책임을 수행하고 생애 목표를 달성하고 죽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너무나 귀한 말씀이에요.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느냐,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사명을 가지고 썩어 없어지는 긴 인생이 아니라, 짧더라도 닳아 없어지는 그 인생을 담아요. 행복한 사람이라고,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죠. 성령의 감동으로 이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간호사 훈련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아오카 부족에게 가기 위한 것이었어요. 네이트 세인트, 아내와 친척들 누이 뭐 이렇게 다 갈 수 있는 사람들 모아서 그 아오카 부족으로 이 여인들이 들어갑니다. 2년 후에 들어갑니다. 다행히 아오카 부족은 남자를 죽이지, 여자는 건드리지 않는 부족이었습니다. 정성껏, 정성껏, 남편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주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런 사랑 복음 십자가의 희생과 정신을 가지고 저희들을 정성껏 돌보고 섬깁니다. 그렇게 5년을 섬기죠. 그리고 이제 일단 미국으로 나오게 되는 그 순간 추장이 묻습니다.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당신들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와서 지난 5년 동안 이렇게 희생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서 그때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말을 합니다. ‘저희는 5년 전에 이 강가에서 비참하게 죽은 5명의 미국 사람들의 아내, 남편이 전하기 원했던 바로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섬김으로 한 것뿐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추장의 마음에 감동이 옵니다. 저도 그 미전도 종족에서 추장 이런 비슷한 복음을 전하고 그랬었는데요. 성령의 감동 준비된 추장은 하나님의 때,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세례를 받습니다. 추장이 예수님 영접 세례 받으면 모든 부족 사람들이 받아야 돼요. 오인가 뭔가 안 받으면 죽어 그러면 죽어요. 예, 그러면 다들 겁나서 다 예수 믿고 세례를 받아 할렐루야!!~ 그다음에 역사들이 일어났는데 비슷한 케이스가 일어난 것이죠.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께서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그때부터 하기 시작하는데, 잘 알죠?짐 엘리엇과 친구들을 죽였던 5명의 아오카 부족 사람들, 4명이 목사가 되고, 한 명의 전도자가 되죠. 그래서 교회를 세우고, 특별히 네이트 세인트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샘이죠. 샘 세인트 한번 사진을 보여주시죠. 지금 저기에 나오는 이 민카이라고 하는 아오카 목사예요. 저분은 누구냐 바로 이 네이트 세인트의 아들이거든요. 저분이 샘 사무엘 세인트인데 그 스티브죠 스티브 세인트의 아버지인 네이트 세인트를 죽인 사람이에요. 죽인 사람이 저렇게 목사가 돼서 나중에 아들도 그곳에 자랄 때의 세례를 베풀고, 그리고 동생인 이 캣디도 강가에서 세례를 베푸는 너무나 훌륭한 목사가 된 것입니다. 내려주시죠.
 
엘리자벳 엘리엇도 책을 잘 썼죠 ‘고통은 헛되지 않아요.’라고 하는 이 책자가 있습니다. 식스 체프트로 돼있는 책잔데, 제 아내가 지난 4개월 전부터 이 책을 붙들고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어요. 저도 함께 읽었어요. 그리고 저희들은 인제 북클럽 그래 가지고 신앙 서적 읽기, 나이 드신 권사님도 상관없이 인생이 힘드신 분들 같이 함께 이 책부터 매주 읽으면서 울음바다가 되고, 큰 은혜가 임했어요. 이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고통에 대해서 너무나 잘 썼고, 이 여인의 삶은 계속해서 어려운 일이 있었거든요. 거기에 보게 되면은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이렇게 기록을 했어요. 라틴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은 라틴어에서 CRUX, 라고 하는 이 단어가 핵심이라는 단어이고, 이것이 곧 플러스 CROSS, 십자가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 모든 고통에 대한 질문의 십자가 위에서만 우리는 고통과 사랑의 모순을 녹여낼 수 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절대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계속 파도와 같이 밀려올 때에 이 여인은 또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 삶이 영원하신 팔에 안겨 있다고 믿든가, 우연에 달려 있다고 믿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중간 지점은 없다.’ 이것은 팀 켈론 목사님의 고통에 대해서 얘기할 때 말씀하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거죠. 그분도 고통은 하나님과 가까워지거나, 고통은 또 멀어지게 하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라고 하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스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강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힌 이 에스겔의 삶 가운데 무엇이 그로 하여금 강하게 하고, 결국 끝에 모든 트라우마, 모든 아픈 고통을 위해서 결국은 의심치 않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결론을 낼 수가 있을까요?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믿음이 되고, 미래의 영광이 이미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를 가지고 오신 예수 안에서 그분이 나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시고, 통치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여호와 삼마 하나님, 나와 항상 함께하신 하나님을 의심치 않고, 힘을 얻고 미래의 영광이 지금의 나에게 힘과 평안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말씀을 이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실은 한 3~4개월 동안 많이 힘들었어요. 개인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어요. 목회 적으로 힘든 것은 얘기를 안 하고 정말 힘들었어요. 근데 제가 개인적으로 힘든 이야기를 뉴욕 장로교에서 여러분 나 너무 이렇게 말하는 목사는 미성숙한 목사죠. 절대로 제 자존심이 목사라고는 자존심 허락 주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래요. 힘든 성도들 이런저런 어려움 있는 성도를 위해서 기도해 줘야죠. 목사는 힘든 척 해서도 안 되고, 힘들어서도 안 되지만 힘들면 어떡해, 참 힘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친정집이잖아요. 여기가 예 친정이니까. 에 말을 좀 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치만 뭐 개인적인 왜 힘들었고, 정말 힘들었어요. 구체적인 말씀을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네 정말 힘들었어요. 쉽게 말씀드린다면 프라우드 그 스캠 당해 가지고 보이스피싱을 좀 아니 은행에 다 털렸어요. 예 놀라지 마세요. 얼마 없어요. 예 그렇지만 다 털렸어요. 얼마 없는 사람이 털린 거 되게 아픕니다.
 

♣요약

그것은 그것과 같이 평화의 터라는 의미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 우지 않고 원래의 의미인 `여호와삼마` 즉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라는 의미로 불리 우고 있다. 이것은 다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포로들은 돌아온 후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하시고, 자기들 중에 거하신다는 확실한 증표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복음 교회도 이와 같이 그 안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데, 이전에 임재 하시던 것처럼 쉐키나로서가 아니라, 그의 성령으로 임하신다는 것이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 때까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어떤 영혼이라도 그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은혜의 원칙을 갖고 있기만 하면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고 하시니,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는 하늘의 영광과 축복이 거기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며, 이는 곧 과거 범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신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돌아 오셔서 함께 교제하시며 거룩한 친교를 나누심에 감사하며,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이런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지도록 우리는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주일예배(주후 2024년 7월 21일)
제목: “은혜 속으로”(3,4부)
말씀:*베드로후서 1:2-4,
사회: 유선비 부목사님

설교자: 윤대혁 목사님(3,4부-“은혜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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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1:2-4,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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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함이 우리에게 넘치게 되시길 믿습니다. 우리가 쓰는 물건들 가운데 우리가 100%를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이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한다면, 아마 우리는 한 결 같이 없다. 라고 이야기를 하게 될 겁니다. 99년도에 처음 노트북을 구입을 했는데 그때 노트북의 하드 용량이 4GB였습니다. 지금은 2테라바이트(Tera byte), 그때 얘기하면 200배가 더 넘는 2테라바이트(Tera byte)의 용량을 갖고 있는데, 특별히 영상이나 이런 걸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순수한 작업이라면 그 노트북의 역량을 채울 사람도 없는 게 일반적인 거죠. 그래서 노트북 처음 샀을 때 4기가를 채우지 못하고 새로운 노트북을 샀던 경험이 있는데요. 우리가 갖고 다니는 태블릿이나 또 전화기 역시도 우리가 만든 사람 역시도 그 기능을 다 알지 못해서 나오는 소프트웨어에 의해 내가 만든 이 기계가 이런 능력과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만든 일마저도 역량과 한계를 측정하지 못한 애들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이런 질문을 한번 해봅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이와 같이 잘 활용하고 누리고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 앞에 여러분 어떻게 답을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만약에 그 은혜를 누려야 되는 것이 당연한데 그 은혜가 마치 우리의 삶의 과거가 되어서 그래 옛날에 예전에 좋았었지, 그때는 참 운해가 넘쳤었어. 라는 과거를 추억하고 회상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여러분 그 신앙은 언제 위험에 빠질지 모르는 위기의 신앙에 빠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은혜는 날마다 순만하게 날마다 풍성하게 누려야 되는 은혜가 돼야 될 줄 믿습니다. 왜 그러하냐면 그것은 그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에베소서 2전 8절에는 이런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2:8,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뭐라고 말하고 있죠. 우리가 받은 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라고 말합니다. 아니 선물을 주고 나서 그 선물을 뭐 잘 썼니, 안 썼니. 이렇게 따져 묻는 건 너무나 속이 좁은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겠지만, 만약에 그 선물이 어떤 사람이 나에게 선물을 줄 때 가장 소중한 것을 바꿔서 준 거라면 그의 생명과 바꾸어서 나에게 준 선물이라면 그 선물을 쓰지도 않고 저 구석에 처박아 놓는다 반면, 그 준 사람의 마음은 결코 기쁘지 않을 겁니다. 아마 많이 속상할 거예요.

제가 중학교 중등부 사학을 처음 시작을 할 때, 그때 중등부 선생님들이 제가 생일이라고 넥타이 선물을 하나 해 주었습니다. 그 선물을 담당했던 총무 집사님은 패션이 남다른 분이셨습니다. 옷을 입어도 대체 저 옷은 어디서 구입해서 입으신 거야. 나눌 정도로 화려한 옷이었고, 화장과 헤어스타일 역시도 80년대 미스코리아를 연상하는 그런 화장법과 그런 헤어스타일을 가진 정말 패션의 선두주자 같은 분이었는데요. 그분이 고른 넥타이다. 보니 24살 된 청각 또 학생 전도사에게는 그 넥타이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칼라였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단벌의 양복 가지고는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넥타이였고, 그 넥타이에 맞춘다고 해서 양복을 새로 살 수도 없고, 제가 그때 용기를 내서도 했었어야 되는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 못해서 그 넥타이를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선생님들과 그 총무지사님이 저를 보는 눈빛이 좀 이상한 겁니다. 저를 볼 때마다 계속 이렇게 말씀하는 것 같았어요. 넥타이, 넥타이, 이런 느낌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용기를 내서 했었어야 되는데 차마 하지 못해서 그때 아마 했었다면 아마 새로운 패션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했는데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선물은 이와 같은 거죠. 우리가 선물을 받을 때 여러분 감사합니다. 라는 말도 좋지만 그와 함께 그 선물을 잘 쓰고 잘 활용한다면, 준 사람이 기쁘고 즐거울 수밖에 없어요. 근데 그 선물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쓰지도 않고 저 구석에 처박아 놓고 받았는지 안 맞는지 모르고 산다면 그 준 사람의 마음이 약간 속상할 수밖에 없는 거죠. 하나님께서 우리 계신 선물도 이와 같은 겁니다. 이와 같은 거 그 은혜를 받아서 그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거고, 그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가 과거의 기억이 되어서 언제 그네가 있었어. 라고 말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죠. 요즘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위에 계신 은혜의 선물은 어떤 은혜이고 어떤 선물일까요?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은 우리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씀 함께 읽어볼까요?

*고린도전서 15:10,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그 은혜를 2가지를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내가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가뒀던 사람이고 그를 죽였던 사람입니다. 그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제면시키기 위해서 나의 모든 젊음을 내 모든 면적을 다 쏟아 부었던 사람인데,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하나님의 백성 삼아주시고, 구원해 주신 것은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말하고 있는 은혜는 그런데 내가 사도를 부름 받아 삶을 할 때 많은 죽음의 위기가 있었고, 어려움이 있었고, 많은 유대인들이 ‘너는 예수님을 핍박한 사람이잖아!’ 누가 무슨 하나의 말씀을 가르쳐! 온갖 모함과 온갖 많은 어려움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이 자리에 와서 사도로써 교회를 세우고,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내 노력과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이거 역시도 하나님의 은혜가 된 것이다. 라는 그 2가지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은혜는 사돈마을만의 은혜일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 누리고 있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그것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죠. 내 힘과 내 노력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오게 된 그 모든 가정도, 내가 지금 두 발로 서 있고, 오늘 이 시간까지 온 것도 내 힘과 내 노력으로 도저히 오지 않았고. 설명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어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의 능력이 되었었기 때문에, 하나님 나의 모든 것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들의 고백일 줄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는 단번에 1번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죠. 여러분께서 베드로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절의 말씀에,

*베드로전서 1:2,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라고 말하고 있고, 우리에게 더욱 많을 것이다. 라고 하며,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서 4장6절에서,

*야보고서 4:6,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더 큰 은혜를 주시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더 많은 은혜, 더 큰 은혜를 이야기하니까 마치 내가 받은 은혜가 부족하고 완전하지 않고 뭔가 더 필요한 것처럼 우리가 표현되기도 하는데요. 여러분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는 단번에,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내게 주신 그 은혜는 하나님 날마다 부어주신 은혜고 그 은혜가 끝이 없으며 완전하고 날마다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임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 된 저와 여러분은 그 은혜를 누리며 그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가야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려야 되는 더 많은 은혜 더 풍성한 은혜는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지금보다 나은 경제적인 삶, 지금보다 더 나은 삶, 보다 풍성한 삶을 말하는 것만은 여러분 아닐 겁니다. 왜냐면, 우리가 과거보다 더 좋은 삶을 누리고 있었더니, 그때 신앙을 잃어버렸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게 되고, 지금보다 더 어려운 현실에 건강의 위험에 빠졌을 때, 그제서야 더 하나님의 애들을 붙들고 사는 분들이 있는 걸 본다면 환경적인 거나 상황적인 거에 의해서 더 좋아졌다고 해서 그것을 꼭 더 많은 은혜가 더 풍성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제 목회를 하면서 이제 심방을 잡는다. 비즈니스라고 있는 우리 권사님의 댁에 심방을 가게 되죠. 심방을 다 하고 나서 권사님께 묻죠 권사님 무슨 기도를 하면 좋겠습니까? 기도 제목을 알려주십시오. 말하면 어떨 땐 좀 충격적인 기도 제목을 나누시는 권사님들이 계십니다. 목사님, 우리 남편 이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 사업 망해야 됩니다. 망하기 위해서 제대를 달라는 거예요. 그 남자 짓을 한 남편은 옆에 둘이 많습니다. 망하게 가라고? 아니 무슨 기둥을 세우고 그러겠습니까? 이상해 우리 남편이요. 사업이 힘들고 어렸을 때는요 예배 한 번 빠진 적 없습니다. 얼마나 하나님 매달리고 얼마나 하나님 찬양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제 사업이 좀 될 만하고 조금 나올 만한 하니깐 교회도 안 가구요. 놀기 바쁘구요. 우리 사업 남편 망해야 되는데 안 가고 그래요. 기도해 달라는 겁니다. 제가 너무나 난감했습니다. 어떻게 기도를 해야죠 그분의 심정은 아니에요. 어렵고 힘들었을 때는 하나님 은행 가운데 있었는데, 뭔가 조금 나아졌더니, 하나님과 벌어진 그 남편의 신앙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서 나는 그런 기도 제목이었는데, 이건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구해야 되는 정말 더 많은 은행 더 넘치는 은혜는 어떤 은혜일까요?

오늘 베드로후서에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설명하고 이별을 말씀해 보면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삶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에게 더욱 많은지, 3절 4절이면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1:3-4,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지금 우리가 예수를 믿은 이후에 우리가 누려야 되는 더 많은 더 넘치는 은혜는 무엇이냐면 예수를 아는 은혜요. 조님을 닮아 가는 은혜임을 믿습니다. 그래도 우리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를 계속해서 변화시키시죠. 주님을 알아가게 하시고, 주님을 닮아가게 하시고, 그때마다 더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서 우리에게 넘쳐난 은혜의 삶을 살게 되고, 또 그 은혜로 말미암아 예술을 알게 되고 예술을 닮아간 은혜를 얻게 되고, 그러면 더 많은 은혜가 넘치고 계속 피해서 은혜의 선순환들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를 닮아감으로 얻게 되는 큰 은혜는 대체 우리 삶에 어떤 은혜의 역사로 나타나게 된 것일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크게 2가지를 우리가 함께 나누길 원하는데요. 우리가 은혜 속으로 들어감으로 얻게 되는 영적인 역사와 은혜는 첫 번째는 우리 모두가 죄를 이기며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닮아감으로 누리게 되는 은혜는?
I. 첫 번째는, 우리 모두가 죄를 이긴다.
-사단 마귀는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합니다. 우리의 삶에 은혜가 멈추도록 하기 위하여 죄를 유혹해 만들고, 유혹이 빠져 넘어가 하나님과 상관없는 인생을 살게 할려고 하죠.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죄가 우리 가운데 역사하지 못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로마서5장 21절의 말씀을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5:21,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이는 제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하는 것 같이 계속해서 죄는 우리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은혜에는 그 죄의 길을 다 끊어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시에스 루이스 기독교 작가인 시스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라는 편지에서 이제 각 사단의 일을 시작하는 조카 워무두에게 사단의 전략을 그 편지로써 쓰게 되는데요. 그 삼촌인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워무두에게 이런 말을 하나 했습니다. 믿는 성도를 환자라고 표현했는데요. “니가 지금 맡고 있는 환자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참으로 내 마음이 착잡하다. 그렇다고 실망하거나 낙심할 필요는 없다. 그 환자의 정신적인 신체적인 습관은 항상 우리 편에 있으니 말이다.” 이게 말 무슨 말이에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육체의 본능과 유혹을 받으면 쉽게 넘어지고 쉽게 쓰러지는 그 습관들을 우리가 갖고 있다. 라는 것이죠. 우리의 본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그 가는 길을 끊어버리기 시작하죠. 또 로마서 5장 21절의 말씀에, 우리 한번 다시 한 번 이 말씀 듣겠습니다.

*로마서 5:21,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아무리 제가 힘이 있다. 할지라도 아무리 제가 우리 가운데 왕 노릇하려고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들어가면 그 의외의 진리가 우리를 다스리기 시작하는 줄 믿습니다.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는 거예요. 죄 영향력이 저와 여러분의 삶을 절대로 다스리지 못하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그마다 큰 겁니다. 그 죄의 뿌리와 죄 영향력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이지요. 로마서 6장 15절에 말씀에,

*로마서 6:15.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은혜 안에 있는 자들은 절대로 죄를 지을 수 없고, 은혜 안에 있는 자들은 절대로 죄 사막 가운데 있을 수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요 은혜 속으로 들어가면 되는 거예요. 많은 경우 이렇게 생각합니다. 죄와 싸워야 됩니다. 여러분이 죄와 싸우는 존재가 아닙니까? 우리가 은혜 가운데 들어가면 죄를 떠나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빛과 어둠은 싸우지 않아요. 빛이 임하면 어두움은 떠나가게 되는 겁니다. 빛과 어둠은 절대로 싸움의 대상이 되지 않아요. 최근에 인터넷에 보면 하나님과 사단의 그림을 그려놓고, 그 중간에 VS 하나님과 사단이 마치 견주어 싸우는 것처럼 표현된 그림이 있는데, 정말 비성경적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은 사단과 싸우지 않습니다. 사단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린 죄와 싸우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임하면 우리 세상에 재와 역사가 떠나가게 되는지 믿습니다. 빛이 임하면 어둠은 떠나가기 시작합니다. 1700년 전에 여러분 다니엘 게이 루이라는 사람이 발견한 자연의 법칙이 있는데요.

이 법칙을 게이루이 법칙으로 얘기하는 건데, 한국말로 얘기하면 양력입니다. 양력은 뭐냐면 비행기가 뜰 때 기상을 쓰이는 힘이죠. 세상의 모든 자연 만물들은 여러분 지구의 중력의 지배를 받죠. 그래서 땅에 2발로 서 있게 됩니다. 근데 비행기를 날 때, 그 양력에 의해서 중력을 이고 하늘을 날죠. 여러분 비행기가 하늘을 날 때 사람들은 중력이 없어졌다라고 말하지 않아요. 중력은 있으니까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하지만 그 중력을 이기는 힘이 있는 거예요. 양력이 있으니깐 비상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들의 삶에 죄 유혹과 죄 지배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거 앞에 우리가 지배를 당하지 않고, 우리가 그거 앞에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 안에 뭐가 있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 은혜 힘으로 우린 날마다 승리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심 있는 사람들을 믿었다고 해서 문제와 어려움이 없어지나요?

여전히 동일한 문제와 어려움과 고민과 환란을 겪게 되죠. 하지만 그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뭔데 뭐 문제없는 교회 없고, 문제없는 가정 없고, 문제없는 인생 있죠. 하지만 그 문제를 만날 때 문제를 넘어서는 인생이 있고 문제 앞에 넘어지는 인생이 있는데, 그 문제를 넘어서게 하는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다. 라는 것이죠. 그 은혜 속으로 날마다 들어갈려면,,, 자 어머님께서 지금 목사 이렇게 목회자 사모님이신데, 목회하는 아들에게 항상 목회 하면서 저한테 누누히 말씀하시는 몇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항상 이렇게 말씀하세요.
“대혁아, 사람은 말이다. 은혜를 받으면 순한 양이 되지만, 은혜가 마르면 사나운 늑대가 된다. ”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목회자인 저는 항상 교회 안에 성도들에게 은혜가 넘치도록 교회의 은혜가 가득하도록 항상 말씀을 준비해야 되고, 항상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은혜가 넘치면 순한 양이 되지만 은혜가 메마르면 사나운 늑대가 되는 길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면 문제가 문제로 보이잖아요. 하지만 하나님 은혜가 메마르면 모든 것이 다 거친 광야처럼 느껴지는 게 우리들의 인생이라는 거죠.

남가주 사랑의 교회 20년 전에, 이제 선교부 사역자로 사역을 시작했을 때, 그때 오정현의 사랑의 교회 담임 목사님이 담임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때 한 8개월 정도 목사님을 모시고, 배우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이민자의 삶을 옆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저 역시도 유학생으로 이민자의 삶을 살면서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고, 왜 이렇게 막막하고 왜 이렇게 힘든지 하루하루 사는 것이 참 벅차고 힘겨웠던 때가 있었어요. 근데 그때 이 주일 예배 때마다 그리고 토요예배 때마다, 그때 담임 목사님이셨던 오정현 목사님께서 기도할 때, 이런 기도를 늘 외치게 하셨어요. 늘 이렇게 외치셨어요.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저는 그 외침의 지도가 저한테 그때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나의 산에 확 불어오는 겁니다. 그 은혜의 힘을 입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죠. 그래서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정말 그거 외치고 싶어서 그거 부르짖고 싶어서, 왜요 그러며 살거든요.

지금도 목회를 하면서 저희 교육을 하고 준비한 레벨 레이트 드릴 때 항상 선생님들에게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능력해 당부하면서 말씀드리는 게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하는 사람인데 주님 앞에 기도하고, 예배할 때, 주님, 주님 내게 오늘 은혜주지 아니하시면 내가 이 자리 떠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주의 이름을 불어주십시오. 오늘 주님 내게 은혜주지 아니하시면 내가 주님 붙잡은 손 절대로 놓지 않겠습니다. 라는 마음으로 주님, 은혜를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야 힘든 삶 가운데 우리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게 답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요? 사람의 지혜요? 사람의 능력이요? 많은 것을 가진 거?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은혜 가운데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 문제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우리 모두가 보게 되죠. 사랑의 교회가 내일 주일 그리고 토요 비전 새벽 예배 때, 또 서요 성경 집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군대 7천 용사들이 모여서 주여, 은혜를 주시라고 외칠 때, 교회 안에 하나님의 풍성이 넘쳐서 한국교회를 섬기는 역사가 넘치게 임하게 될 줄 믿고 그곳에 부르짖는 성도들마다 가정들마다, 자녀들마다 사업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빛이 임하면 어둠이 떠나듯이, 하나님 은혜 가운데 돌아가면 모든 문제와 모든 어려움은 떠나가게 됩니다.

그 은혜 가운데 들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예수를 알아감으로 또 지금을 닮아감으로 누리게 된 은혜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죄를 이기는 것이라면, 문제를 뛰어넘게 하시는 승리라면 두 번째는 저와 여러분을 낙심치 않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닮아감으로 누리게 되는 은혜는?
II. 두 번째는, 낙심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만나든, 어떤 일을 겪든, 우리가 낙심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의 말씀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4:16,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왜, 내 눈에 보이는 내 주변의 환경은 사람들이 볼 때 이전보다 안 좋은 것 같은 거예요. 막막하고 힘들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참 두렵고 걱정이 되는 건 많겠지만, 겉 사랑은 그렇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날로 새로워집니다. 어떻게 돼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사가 시작된다. 라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저와 여러분의 삶을 반드시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선한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걸어가셨던 그 길이 십자가의 고난의 길이었지만, 그 길 끝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부활시켜 살리시고, 모든 이름이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여러분 광야로 쫓겨나 살인자로서 이제 숨어 지낼 때, 다시 하나님께서 그 마지막에는 그 모세를 다시 세워서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하나님이 지도자로 세웠던 일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고자 했지만, 풍랑을 만났습니다. 큰 물고기에 삼킴을 당하여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 지옥으로 말했던 이 요나 인생이었지만 그를 다시 회복시키고 그를 다시 하나님의 사명자로 쓰였던 손길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고 나서 장인인 사울의 손에 죽음의 위엄을 받아 광야로 쫓김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저 정신병자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 광약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재건할 수 있는 많은 믿음의 동력 자를 만나게 하시고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 영광을 보게 하셨던 하나님의 마지막 결과가 있었습니다. 사도바울 역시도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실종자로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의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사울 봤어? 사울 봤어? 어디 있는지 몰라, 죽은 거 아냐? 실종된 거 아냐? 무명으로 끝날 수 있는 그 인생을, 한 해 3년의 걷는 시간 그를 다시 살리셔서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 말씀을 가지고 신학을 집대성할 수 있는 하나님이 귀한 믿음의 종으로 쓰였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우리의 삶에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이를 만나도, 어떤 어려움을 겪어도, 낙심하지 말 것은 하나님 우리 안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삶에 새 일을 행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낙심하지 않아야 됩니다.

※저희 교회에 참 믿음이 귀한 한 형제가 있습니다. 너무나 귀한 형제인데요. 형제의 아버지는 선교사로서 또 인도에서, 중국에서 평생 선교사의 삶을 사셨습니다. 이 형제 역시 또 아버지를 따라서 한국에서 살지 못했고, 또 인도에서, 이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버지가 이제 안 10년째 미국에 와서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이제 시작할 계획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이제 교회 조명 파트타임 간사를 뽑는다고 하니까, 이 형제가 지원을 했어요. 그 이유로 경제적으로 도와야 될 형편이었기 때문에 낮에는 학교에 가서 이제 2년제 대학교에 가서, 이제 4년제 대학 갈 수 있는 편입을 준비하고 있었고, 또 평일에는 일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일하고 있었고, 또 주말에는 교회 와서 우리 조명 간사로 이 사약을 열면 귀환 환자였는데요.

조명 간사할 때, 이제 예배 때 키고 끄고 이런 정도의 아주 단순한 작업이었지만 이 형제가 유튜브를 통해서 그 기계법을 알고 교회 안에 예배를 정말 조명으로 편성하기 위해서 많이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들을 감당해 줬던 대한 형제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부모님을 통해서 진행되던 영주권이 거절이 됐어요. 신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미국에 있지만 유학생으로 공부하기에는 1억에 가까운 학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문제는 한국에 가자 이 고등학교까지 나온 기록이 없는 거예요. 제가 다녔던 인도와 중국에 다녔던 현지 학교에서 학적 끈을 띄울 수 없다 보니까, 불가피하게 검정고시를 가야 되는데 한국에서 공부를 안 했으면 이 검정고시 볼 수 있겠어요.

그리고 유일하게 검정고시를 보고 이제 직업군인을 하는 게 이 형제가 갈 수 있는 부모님께 이제 경제적 도움이 돼야 되니까. 그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런 가운데서 한국에 가기로 결정하고 이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교육, 조명, 간사를 열심히 열심히 수고하고 있습니다. 20살 이 젊은 청년이 감당하기에는 인생의 너무나 큰 위기 있고, 막막함이었습니다. 아버지 선교사를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마치 자신의 인생이 안개처럼 사라져 버린 듯한 그 현실 가운데서 그래서 참 나름대로 열심히 수고하고 성실한 형제로 그러다가 형제가 이제 이곳저곳에 트랜스포 할려고 이제 어 이력서를 학교에서 입학 모집서를 넣는데, 이제 영주권이 안 되니깐 지원했던 뭐 리셑을 당한 겁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이 학생에게 한 학교가 너를 학생으로 받아주겠다고, 입학허가서를 준 거예요. 그 대학교가 유시버클리 대학입니다. 굉장히 좋은 대학입니다. 근데 대학생이 아니라 영주권자처럼 학비를 내걸어 다닐 수 있도록 그런 기회를 주는 거예요. 사실은 그럴 수 없거든요. 근데 저는 여기서 이런 어려움을 겪고 나서 그 대학에 갔다. 라는 것으로 간증이 마무리되는 게 아닙니다. 더 놀라운 사건이 뭐냐면, 그 형제가 UC 버클리에 무슨 과를 들어보느냐가 중요해요. UC 버클리 엔지니어링은 미국에서 전미 2등 상위 정도 하는 일을 하는데, 그 형제가 전공했던 지원했던 합격했던 과가 뭐냐면 음향, 조명 엔지니어 꿈이 없었어요. 그냥 아버지 따라왔던 인생 가운데 뭘 해야 되게 막막했어요.

근데 인생의 마지막과 같은 정말 막다른 그 현장에서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해서 했던 조명을 하면서 이 여기서 꿈을 꿉니다. 하나님,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라고, 엔지니어인데 미국에서 전위 2등 3등 하는 그 학교에서 이렇게 학생으로 오라는 겁니다. 남의 교회 이야기를 그렇게 놀리지 않나요? 엄청난 사건이에요. 아하, 진짜 뭘 깨달았냐 그렇다 인생의 마지막 같지만 마지막 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냥 기다려야 되는, 막다른 길 같지만 포기해야 될 것 같지만, 그곳에서 내가 낙심하지 말고 실망하지 말 것은 하나님 반드시 일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8월에 이제 샌프란시스코로 올라와요. 그럼 이런 일들이 이 형제만 있는 일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 우리의 삶을 마치 벼랑 끝으로 막다른 길로 인정하시죠. 그 길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깨우는 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주님, 그래서 뭐가 필요해요. 나는 주님 은혜밖에 없습니다. 주님 내게 은혜주지 아니하시면 나는 길이 안 걸고 주님 내게 은혜 주지 않으시면 나는 하나도 살지 못해요. 이때 하나님의 그 은혜가 시작되는 거죠. 새 일을 향하시는 일, 길을 여시는 게 가장 좋은 길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선한 길로 임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그리고 여러분, 우리가 날마다 넘치는 은혜 가운데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그 은혜가 먼 기억의 외계인가요? 가끔 권사님 장모님들 만나 이럴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이래 봬도요 젊을 때는요. 30년 전에는요. 20년 전에는요. 힘이 있었을 땐요. 그대로 달랐습니다.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지금이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도 나에게 있습니다. 마치 갈렙이 얘기했던 것처럼 그때나,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라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먼합니다. 그 은혜를 바라보며 사모하며 나아갈 때, 주님께서 죄를 이기게 하시고, 우리의 삶에 있는 모든 문제를 넘어서게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신실한 길로, 은혜의 길로 생명의 길로 열어주시는 그 은혜가 더욱은 삶 가운데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때마다 은혜 가운데 나아가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약
우리에게 주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아, 주님의 은혜 외에는 아무것도 아님을 날마다 고백하면서, 그 은혜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우리들의 연약함을 주님 앞에 엎드려서 내려놓고, 날마다 주의 은혜 가운데 돌아가기를 원해야 한다. 더 많은 은혜, 더 넘치는 은혜로 주님을 알아가고 주님을 닮아가 그 은혜를 통해서 죄를 이기고, 문제를 뛰어넘는 환경과 상황을 압도하는 승리하는 길을 걷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삶에 막다른 길과 같은 어려움과 벼랑 끝에 서는 시간이 있다할지라도 그때 내가 부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밖에 없음을 확신하여 주님의 그 은혜를 붙들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선한 뜻을 날마다 기대하고 소망하며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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