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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5월 5일)
제목: "때가 차매"
말씀: 창세기 41:14-16
대표기도: 오규현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박신일 목사님-초빙(벤쿠버 그레이스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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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1:14-16,
14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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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입니다. 여러분 가정마다 고난이 없는 가정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주임이 말씀하신 것처럼 오른 발로 바라를 밟고, 왼발로는 땅을 밟고 있으니까 말씀하십니다. 모든 가정의 풍랑은 주 앞에서 잠잠할 지어다. 고난보다 큰 이가 말씀하십니다. 우리 옆에 사람한테 축복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한번 인사하면 좋겠습니다. ‘평안할 지어다.’ 한번 인사하겠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이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요셉이라는 이 사람의 성경의 족장이란 한 인물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랑과 가정해 주시는 말씀을 메시지로 좀 나누려고 합니다. 요셉 이야기를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한 가지 먼저 생각해야 될 우리가 주님과 늘 동행하면 우리 인생에 어떤 일이 벌어진가? 여러분 좋은 며느리, 좋은 사위, 아니면 좋은 배우자를 얻고 싶어서 기도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성경의 실상을 알려드리면, 기도 많이 하면 여러분 원하는 사람 못 만납니다. 20년 동안 저희 어머님은 저를 위해 20년 동안 며느리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를 만났는데, 제 아내는 제 이상형의 아닙니다. 결국 기도를 많이 하신 결과 제가 원하는 이상형은 못 만갑니다.. 근데 한 가지 확신한 건 뭐냐 하면 제가 원하는 이상형에 더 좋은 것을 더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상형을 저에게 붙여주신 줄로 믿습니다. 수습은 된 거죠.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이 여러분의 자녀들의 미래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길 원하십니까? 주님 원하시는 대로 되길 원하십니까? 거짓말 하지 말고, 이 요셉의 생애를 보면 첫 번째 우리가 생각해볼 건 뭐냐 하면 요셉의 생애는 일반 사람과 다른데, 특별히 옷과 직결도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요셉의 생애는 처음부터 끝까지 옷과 관련된 것이에요.
첫 번째 옷은 12명의 아들 중에 11번째 아를 냈던 요셉에게 아버지 야곱은 편애(偏愛)를 했는데 이 아들에게만 입혀주던 옷이 있었습니다. 무슨 옷입니까? ⓵채색 옷입니다. 여기까지는 다 알아요. 이 채색 옷은 아버지가 내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평생 입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아무리 좋은 옷, 아무리 미래 이런 사람 되길 원하는 아무리 끌어놓을 수 있겠다. 요셉은 채색 옷을 입고 평생 옷을 입습니다. 형님들이 들판에 가서 양을 칠 때도 아버지는 요셉을 입고, 형들 잘 있는지 세 개부터 가보라 그래서 양 치는 데 갔다가 형 채색 옷을 입고 있는 것을 요셉을 시기했어요. 이유는 뭐냐 하면 소수의 성서학자는 이런 의견을 조심스럽게 됩니다.
채색 옷은 당시에 장남을 상징하는 사람들 11번째 아들한테 결혼할 수 있느니 얼마나 시기를 받겠어요. 그래서 죽이려고 할 때 동생을 죽이려고 할 때, 들판에서 형 첫 번째 형이었던 루우벤이 피를 흘려 죽이는 죄를 범하지 말자, 그리고 넷째, 아들이었던 유다라는 형이, 그러면 요셉을 다른 사람들 상인한테 노예로 팔아버리자. 돈도 벌고 얘도 이제 더 이상 버리고 말자 그래서 결국 미디한 사람에게 팔아버리기도 합니다. 그때 요셉의 나이는 17살밖에 안 되었어요. 어마어마하게 큰 상처를 받고 요셉은 인생의 청소년기를 보내게 됩니다. 특이한 점은 요셉의 인생을 쫙 보면 그렇게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이 큰 상처를 받은 것 같은 티를 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치유가 임했기 때문에 그래요. 언제 임하느냐 어떤 사건과 기도 중에 있는 그런 치유도 있지만, 이 사람은 요셉은 특징이 하나 있어요. 늘 주니까 동행한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매일 회복이 일어납니다. 요셉은 그런 흔적(痕迹)이 없어요. 어떤 특별한 사건이 없이 회복(回復)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결국 형님들은 이 위대한 사람한테 노예로 팔 때 당시 노예는 사람대접을 못 받는 물건과 같은 대상이었습니다.
근데 그냥 보내지 않고 채색 옷으로 밖에 못 형님들한테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듣지 않고 베껴버리고 그리고 팔아먹고 이 옷을 찢어서 염소피를 묻혀서 아버지가 갖다 줘서 아버지 야곱은 아들이 죽은 줄로만 알고 그리고 요셉은 팔려갑니다. 성경은 두 번째 옷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채색 옷의 벗김을 당한 다음에 노예로 팔려간다. 저는 상상을 해 보았어요. 속옷은 ⓶노예의 옷이다. 이 속옷은 어떻게 말할 수 있냐면 노예 옷이다. 노예가 입었으니까 노예 옷을 입고 그다음이제 그런데 늘 주님과 동행했던 요셉은 노예로 팔려갔다가 누구 집에 팔려가냐 하면 에굽의 바로 왕의 시위 대장이었던 보디발의 집에, 그렇게 노예로 살다가 보디발의 집에 팔려갔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명확해요. 그건 뭐냐 하면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 모르는 사람인데 이렇게 얘기하죠. 성경에 하나님께서 유셉이 주님과 동행하시므로 보디발의 집에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역할은 가정에서 우리 때문에 우리 집이 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 때문에 여러분 때문에 근심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요셉을 보여주면서 어떤 생각이 드냐면 천국에서 나온 카메라 기자들이 요셉의 생애를 투석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노예로 팔려가도 그리고 보디발의 집에 팔려갔을 때도 요셉은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크게 카메라는 요셉만 잡습니까? 우리도 잡습니까? 우리도 이번 주간에 잡는 거예요. 천국카메라가 그래서 화를 내야 되는데 참고 기도하는 걸 보면 천국에서 너무나 옆 사람한테 인사하겠습니다. 눈을 부릅뜨지 말고요. ‘한 주간 잘 사시기 바랍니다.’ 천국의 카메라를 원래 촬영하고 있어요. 알고 살면 요셉이 주님과 동행하시므로 보디발의 집을 축복하시니까, 보디발이 이렇게 말하잖아요. 우리 모든 집을 특별한 직책을 주죠. 성경에는 관리를 맡았다. 하는 경우에는 매니저가 되는 겁니다. 자, 세 번째 옷이에요. 매니저가 돼서 무슨 옷이 보여요. ⓷매니저 옷이 문제가 돼요. 이 매니저 옷을 벗기는 놈이 있어요? 없어요? 여기선 놈은 아닙니다. 이 옷을 입고 온 집안을 관리하는데 어느 날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합니다. 이 장면도 천국이 찍고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요셉이 뭐라고 대답하냐면,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서 득죄하리요.’ 지금 여기 주님이 계시다는 걸 그리고 유혹의 현장을 떠날 때 옷을 붙들고 늘어지자 옷을 어떻게 해요. 벗어버리고 나옵니다. 죄 짓지 않게 해서 떠납니다. 요셉의 인생은 옷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애정을 받아주지 않는 요셉을 향해 증오심(憎惡心)을 탔던 이 미세스 보디발, 남편이 들어오자 모든 누명을 이 요셉에게 씌웁니다. 자기가 유혹했지만, 거짓말을 해서 당신이 그렇게 아끼던 총애(寵愛)하던 요셉이 나를 범하려 하고 했다. 그러면서 옷을 증거물로 제출해서 결국 어디로 가냐면 감옥에 집어넣어 버립니다. 감옥에 들어가서 요셉은 무슨 옷을 입었겠습니까? ⓸죄수 옷을 입습니다. 여기까지 네 개의 옷이 나옵니다.

물론 우리는 건망증이 심하기 때문에 기억하지는 못할지라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첫 번째-채색 옷, 두 번째 노예 옷, 세 번째 매니저 옷, 네 번째 죄수 옷, 이 네 개의 옷은 채색 옷과 매니저 옷은 요셉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입혀주고 싶었던 옷입니다. 근데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잘 들으셔야 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뜻대로 인생이 안 됩니다. 이 말은 여러분들이 자녀를 키울 때도 우리 자녀가 이런 옷을 입고, 이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라고 아무리 꿈을 꿔도 안 돼요. 누군가 벗깁니다. 불행하게 듣진 마세요. 여러분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자녀들이 내 뜻대로 돼요? 안 돼요? 안 돼야 정상입니다.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가장 사랑받은 요셉은 옷과 관련되어 있다.
⓵채색 옷
⓶노예의 옷
⓷매니저 옷
⓸죄수 옷
⓹총리 옷(세마포(細麻布) 옷)
 
여러분,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은 부모를 힘들게 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나기 때문에 안 되는 겁니다. 자녀들이 없으면 우리가 기도하겠습니까?. 성경이 보여주는 바는 요셉의 생애를 통해 보여주는 바는 아무리 요셉을 사랑하는 사람이 입혀주고 싶은 옷이 있어도, 그의 옷을 입어 잠깐 입었지만 누군가 벗기더란 겁니다. 제가 이제 한국 떠난 지 30년 캐나다에 살았는데, 유학생도 많이 오고 거기 이민자들도 많이 같이 사는데 우리 한국 부모님들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직업이 5개 밖에 몰라요. 백인들은 수백 가지, 수천 가지 직업을 구하는데, 우리 부모님들 요 5개 중에 하나여야 돼, 어쩌다 이렇게 된 거예요. 우리가 왜 그러는 거예요?
우리의 목표는 주님의 영광이 아니에요. 말로만 떠들지. 우리는 우리의 영광을 구하고 있어서 그래요.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좋은 옷을 입혀서 이런 애가 되길 원해도 안 돼요. 그렇게, 반대로, 두 개 옷은 죄수 옷과 노예 옷은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해서 평생 힘들게 살라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입혀주신 옷 입혀준 옷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는, 우리를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의 뜻대로도 안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요셉의 생애를 통해서 가르치는 교훈입니다. 여러분, 누가 우리를 정죄한다고 우리가 정죄 당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누가 우리를 끊으리요.” 하나님께서 붙드는데 누가 우리를 마음대로 하냐는 거예요.
정리하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내 뜻대로도 안 되고, 우리들을 사랑해 주시는 사람의 뜻대로도 안 돼요. 반대로 우리를 힘들게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의 뜻대로도 안 될 줄로 믿습니다.
 
요셉에 5번째 옷이 있습니다. 요셉은 나중에 총리가 되고 5번째 옷은 무슨 옷이에요. ⓹총리 옷을 입은 겁니다. 성경은 아주 특이하게 총리 옷이 무슨 옷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왜 상징성입니까? 총리가 입은 옷은 성경에 창세기에 이렇게 써있어요. 세마포 옷이다. 제 질문이 있습니다. 총리 옷을 요셉 입었습니다. 죽는 날까지 총리 옷을 벗긴 사람이 있어요? 없어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성경 상식으로 벗긴 놈이 있어요. 벗긴 여가 있어요. 없어요. 왜 안 벗기는 거예요?. 왜 못 벗기는 거예요? 이거 아세요. 네 가지 옷은 사람들이 입혀주려고 했는데, 5번째 옷은 팔려간 요셉에게 주님과 동행하는 요셉에게 하나님이 입혀주신 옷이기 때문에 벗길 수가 없는 거예요. 아멘!!! 그렇다면 예수 믿는 부모들이 해야 될 일은 뭐냐, 우리 자녀를 키울 때 얘들의 미래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가 원하는 옷을 입히려 하지 말고 하나님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옷을 입힐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열리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해야 한다. 그 옷은 벗길 자가 없습니다. 요셉의 생애를 통해서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첫 번째 교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뜻대로도 안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의 뜻대로도 안되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내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 옷을 입고 살아가는 교회가 되시길 바라고, 성도가 되시길 바라고,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교훈-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 일입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는데 여러분 감옥에 있는 사람들 다 알아요. 얘가 지금 죄 짓고 들어왔는지, 억울하게 들어왔는지, 아무리 봐도 요셉이 너무 순수한 거에요.. 근데 성경에 뭐라고 써있는지 아세요? 감옥에 들어가서도 요셉은 주님과 동행하는 거예요.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은요, 감옥에 있어도 갇힌 게 아니고요. 주님과 동의하는 사람은 어둠을 만나도 어둠이 떠날 줄로 믿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혀도 여러분 찬송과 기도하는 거예요. 옥문이 열려도 안 나가요 왜 간수(看守)를 구원하는 하나님이 계획이기 때문에, 갇혀도 자유 한 사람이 있고, 자유 한데 갇힌 사람도 있는 거예요. 요셉을 보니까 이 감옥의 책임자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예요. 그래서 요셉에게 모든 감옥의 관리를 다 맡깁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로 왕의 바로 높은 지위, 가지고 있었던 술 맡은 관원 떡 맡은 관원 장 두 사람이 무슨 이유인지 감옥에 들어오고 어느 날 요셉이 두 사람을 보니까 너무 얼굴에 근심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을 이 돌보고 있었던 요셉이 ‘너희는 왜 이렇게 얼굴에 근심이 많냐?’ 그랬더니, 꿈을 꿨는데 해석이 안 된다. 이야기 해보라. 꿈을 얘기합니다. 그때 요셉이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그 꿈을 풀어주는 이야기가 40장에 나옵니다. 이렇게 얘기하죠. 술 맡은 관원 장은 복직될 것이고, 떡 맡은 관원 장은 죽게 될 것이다. 라고, 한번 13절로 15절을 보겠습니다. 40장에 다 같이 세 절인데요. 함께 읽겠습니다.
 
*창세기 40:13-15,
13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1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된다는 것을 해석해 준 다음에, 셉이 사람의 이렇게 말을 합니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복직이 되거든. 나를 잊지 마십시오. 나를 생각해 주십시오.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이 감옥에서 나를 건져내 달라는 겁니다. 지금 요셉은 이 감옥에서 꺼내줄 사람을, 이 사람으로 선택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야기는 요셉이 해석한 대로, 떡 맡은 관원 장은 죽임을 당하고 술 맡은 관원 장을 복직이 됩니다. 여러분 인생 살아보시니까 내가 이렇게 잘해준 사람 뭐 풀어준 사람이 있는데, 사람들이 우리를 다 기억해요? 잊어버려요? 어떻게 됐는지 마지막 21절로 23절을 가보겠습니다. 제가 읽어드릴게요.
 
*창세기 40:21-23,
21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22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40장을 어떻게 끝내냐면, 술 맡은 관원장이 꿈대로 해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기억해 달라는 요셉을 잊어버리고 그가 살아갔다고 40장의 마지막 절입니다. 저는 참 궁금한 게 뭐냐면 요셉을 잊은 다음에 나오는 바로 그다음 말씀이 뭘까? 뭐가 도대체 나올까, 40장 마지막 자리 잊어버린 거거든요. 41장 1절이 뭐가 나올지 궁금해요? 궁금하지 않아요? 궁금하지 않으면 안 읽을라구요. 궁금해요? 뭐가 나을 것 같아요.
 
*창세기 41:1,
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우리가 아는 성경 상식이 딱 연결되게끔 딱 나오는데 바로 왕이 꿈을 꿔요. 그래서 나중에 이 꿈을 누가 해석해요? 그래서 어떻게 돼요? 총리가 되는 이야기로 연결되는 것이 41장 1절이에요. 그런데 저는 41장 1절에 제 눈을 사로잡는 표현이 하나 있었어요. 이게 뭐냐 하면 저를 따라해 보실까요? 만 이 년 후, 얼마 후에요? 만 2년은 언제부터 이 년입니까?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어버린 때부터 복직된 때부터 2년입니다. 왜, 제가 여기에 이 제 시선이 가냐 하면, 얼마 후 그랬잖아요. 구체적인 숫자를 적었을까요? 우리는 다 헤아리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만 이 년이라는 숫자를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바가 뭔가가 있다는 거예요. 이 만 이 년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시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제가 아브라함 모세 얘기를 좀 할려고 그래요. 사도행전 7장에 가면, 스테반 집사님이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아 순교하십니다. 그때 아브라함 때부터 이스라엘 역사를 회고해 갑니다. 그리고 모세가 호렙산에서 부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모세가 40년은 궁중에서 로얄패밀리로 살고 지도자 수업을 하고, 40년은 동족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죽여서 미디안 가서 양 치면서 도망에 살고, 마지막 40년을 사명자로 애굽에서 탈출하는 인생을 사는데, 고 4명을 받을 때, 이야기가 나옵니다. 29절 30절 400년 사도행전 7장입니다. 두 절만 다 같이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7:29-30,
29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31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네, 호렙산에서 주님이 모세를 만나는 장면이거든요. 소명을 받는 장면인데 여기서도 독특한 표현해 나옵니다. 그게 뭐냐 하면 한번 따라 하실까요? 40년이 지나가매, 40년이 지나가매 저를 고쳐주세요. 40년이 지나가매, 시간은 지나가는 거예요. 시간은 지나가는 거라고요. 근데 여기에만 우리 한국 성경의 독특하게 40년이 누군가 기다리는 것처럼, 찼다고 나옵니다. 동양적인 표현일까? 저는 이 본문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원어도 봤지만 우리 한국말 성경도 보고, 독특하게 한국말 성경에 40년이 ‘찼다’고 돼 있어요. 그리고 제가 알고 깨달은 거는 원어의 우리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썼구나! 제가 영어 번역을 스무 가지를 봤어요. 스무 가지 영어 성경 번역을 보니까 40년이 지나갔다고 표현된 것이 90%입니다. 18개가40 년이 지나갔다는 것이고, 두 개의 번역만 다르게 썼어요. ASB라고 하는 역 번역하고, 위클리프 파이브 두 개는 번역을 어떻게 나왔냐면, 제가 그걸 직역해 드릴게요. 이렇게 돼 있어요. 모세가 40년을 채웠을 때 이렇게 돼 있어요. 모세가 40년을 채웠을 때에, 마치 그가 그때를 채우기를 누군가 기다린 것처럼, 40년을 모세가 채웠을 때,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의 번역에는 40년이 충족되었을 때, 마치 누군가 이 40년을 마지막까지 기다렸던 것처럼,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한국말만의 표현이 아니라 모든 번역에도 똑같이 담겨있는 표현이라는 겁니다.
 
그럼 40년이 찼다는 말이 도대체 뭔가 무슨 뜻인가를 이해하려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야 우르에서 부르셨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믿음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창세기 15장에 자녀가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바다에 모래처럼, 자손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5장에 창세기 15장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3절을 보겠습니다. 이걸 다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창세기 15:3,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지금 아브라함과 모세는요 시대적으로 600년이 차이가 납니다. 모세가 태어나기도 전입니다. 근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정말 잘 생각할 것은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맞습니까? 주님이 다시 오리 오시리라 오실 것입니다. 반드시 이루어지세요. 근데 아브라함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약속의 땅에 거했는데 너희가 어느 시점에 가서 이방나라의 객이 되어 노예처럼 살다가 고생하다가, 몇 년 만에 이 땅으로 다시 돌아 오냐면 400년 만에 돌아왔다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12장 13장을 읽어보시면,
 
*출애굽기 12:13,
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마지막 유월절 재앙이 끝나고, 애굽 바로 왕이 보냅니다. 그때 애굽에서 나올 때, 출애굽기에 뭐라고 그랬냐면, 430년째였다고 합니다. 400년 만에 나오겠다고 하는 약속을 주님은 지키시기 위해 400년 동안 고생당하는 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약속 또 하나가 있어요. 16절을 보겠습니다. 다 같이
 
*창세기 15:16,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400년 만에 나오는 이것을 또 한 가지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애굽 땅에 정착해서 노예 생활한 지 몇 세대 만에 돌아온대요? 400년 만에 돌아오고 4세대 만에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이거를 누구한테 얘기했다고요. 아브라함한테 하십니다. 모세가 태어나게 전에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정체가 2세대가 누구냐? 요셉 때입니다. 요셉이 총리되었을 때, 모든 가족을 보센땅으로 거기서 봉양하면서 이스라엘 히브리스 사람들이 엄청난 숫자가 많아집니다. 그리고 요셉이 죽은 다음부터 바로가 핍박을 시작합니다. 이것이 최적 역사의 시작입니다. 그렇다면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은 한 가족인데 같은 자녀들인데 아로는 대제사장 출신입니다. 그다음에 요셉이 정착했을 때 1세대인데, 요셉의 형제들 중에 루우벤이 첫째고, 시므온이 둘째, 셋째가 레위, 넷째가 유다, 다섯째가 단, 이렇게 해서 쭉 내려가요 요셉이 11번째 베냐민 12번째인데 이 12명의 아들 중에 모세, 아론, 미리암은 12명 중에 루우벤, 시므온, 레위, 요까지만 할게요. 누구 후손이겠어요. 레위 집안이에요. 왜 레위죠? 제사장 집안이니까, 도표를 보겠습니다. 레위는 요셉과 같은 형제들입니다. 1세대입니다. 애굽에 정착하죠. 그 레위 아들 중에 이 세대 고핫을 통해 모세가 나옵니다. 고핫의 아들 중에 아무라미 모세 아버지가 되는데 아무라미 요게벳과과 결혼해서 아론을 낳고 미리암을 낳고, 모세를 낳습니다. 자, 그러면 모세가 출애굽의 하나님의 인도자로 사명을 받고 쓰임 받았는데 애굽에 정착한 지, 몇 세대 만에 일이 벌어져요? 4세대 만에 벌어진다고요. 근데 이 얘기를 우리 하나님은 누구한테 해 놓으셨다고요. 아브라함한테 해 놓으신 겁니다. 이걸 제가 정리해서 보여드릴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의 땅에 오게 하신 다음에 아브라함에게 모세가 오기 600년 후에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이 백성이 애굽에서 남의 나라에서 고생하다가 400년 만에 그 땅에 정착한 지 4세대 만에 돌아오게 될 거라는 것이에요. 이 땅으로 다시, 약속했다고 돌아오는데요. 이 얘기를 해 놓으신 거예요. 이렇게 얘기를 해 놓으신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 이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600년 동안 기다리고 계신 겁니다. 600년 동안 참고 기다리면서, 그때가 오기를 약속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그 600년 동안 기다리던 이 엄청난 기다림의 무게를 가지고 호렙산에서 모세를 불러 이 백성을 데리고 나가라고 하시던데, 모세는 어떻게 받아 들이냐? 오늘 나에게 말씀하신 줄로 받아들입니다. 거절을 너무 못해요. NO! 너무 쉽게 거절하는 겁니다.
주님은 얼마를 기다렸다고요?. 600년 동안 기다리는 이 무게로 주님 말씀하시는데, 오늘 말씀하시는 줄 알고 아닙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오늘 5월 첫 주일 예배 때 여러분들이 이 교회에 교인으로 여기 앉아있는 이 일은 하나님이 태초부터 계획하신 일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교회에서 교사로 섭니다. 성가대로 한번 섬겨달라고, 안내위원도, 봉사위원으로 섬겨달라고, 제자훈련 이제부터 한번 받아달라고, 이렇게 사람들을 부탁의 이말이, 사람들에게 부탁한 이 말이 하나님이 2000년 동안 준비하신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근데 우리는 그걸 오늘부터 한 줄 알고 NO를 너무 쉽게 한다는 것이죠. 주님은 왜? 600년을 기다리시는지 아세요? 주님이 하신 말씀이 이루실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이 600년 중에 마지막 40년을 뭐라고 표현해요. 40년이 지나가매, 차매, 라고 말합니다. 그 40년이 차는 순간, 우리 주님은 일을 시작하십니다. 그러면 막을 자가 없을 줄로 믿습니다. 이제 그러면 만 2년으로 들어오겠습니다. 이 만 이 년 어떤 일이냐,
 
요셉은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어요. 감옥에서도 늘 기도로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신앙에 문제가 생깁니다.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나고부터는 주님이 바뀌었죠. 주님을 의지하던 요셉이 술마툼 관원쟁이 낳은 날부터 기도가 안 됩니다.
누구를 기다려요 그의 주님은 술 맡은 관원장을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해야 될 사람이 님이 오시나 보다. 요셉을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을 기다립니다. 1주일이 지나도 안 와요. 휴가 갔나 보다, 한 달 지나도 안 와요. 두 달, 세 달 기다려도 안 옵니다. 어느 날 포기하는 시점입니다. 저도 서울에서 살았지만 서울 사람은 3개월 이상 못 기다립니다. 3개월이면 충분해요. 충청도 돼야 한 6개월 기다립니다. 아무리 길어야 6개월이에요. 그렇게 늘 아침마다 기도하던 요셉은 주님 의지하던 손을 내려놓고 술 맡은 관원장을 붙들고, 나를 기억해 달라고, 나를 여기서 꺼내 달라고, 인사 청탁을 합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게 뭔지 아세요? 우리가 뒤에 손을 내려놓고 다른 것을 의지하는 순간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침묵을 시작하십니다. 역사하지 않습니다. 한 3개월, 4개월 지나다가 요셉은 정신을 차립니다. 차렸을 겁니다. 그리고 앉아서 다시 기도를 시작합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을 의지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다시 회복했을 때, 주님은 바로 역사하지 않습니다. 이 요셉이 기도를 회복한 다음에 주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분량이 찰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 제목마다, 분량이 차는 시간은 다릅니다.
주님은 때가 찰 때를 기다리십니다. 그 기도가 찼을 때 주님 바로 꿈을 꾸게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의 문이 문을 주께서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두 번째로, 나누려는 것은 이것이에요.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지나가는 겁니다. 성경은 두 종류의 시간이 있다고 말합니다. 지나가는 시간도 맞는 것이지만 성도,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시간이 있는데, 어떤 시간인지 아세요? 내가 무엇인가를 기도하기 기도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지나가는 시간은 사라지고 지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응답의 때가 우리에게 오는 시간을 살게 될 줄을 믿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 지나가는 시간만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이 오고 있는 시간을 사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자녀들 위해서 기도할 때 요즘 사람들은 절 결혼을 잘 안 하잖아요. 천천히 하고, 여러분 기도가 시작되면 누군가가 오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자리를 위해서 기도할 때, 어떤 제목을 위해서 기도하는지 기도할 때, 기도를 시작하고 기도가 쌓이는 순간부터 우리에겐 어떤 시간이 존재하느냐 지나가고 없어지는 시간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의 시간이 차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것을 체험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지나가는 시간만 사는 분들이 있었다면, “주여 내 인생에도 응답의 때가 오는 시간을 누리고 맛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아멘, 기도 제목이 간절한 분 있군요. 주여, 옆 사람하고 인사하겠습니다. 오고 있습니다. 한번 인사하겠습니다. ‘주님의 때가 오고 있습니다.’
기도를 소홀히 여기지 말라는 얘기예요.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얘기예요. 내가 기도를 시작하는 순간 주님은 듣기 시작하십니다. 기도하는 제목을 향해 하나님이 일어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입니다. 마지막 정리 하나 하겠습니다. 만인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세요? 주님이 바로 왕의 꿈을 꾸게 하신 건 주님이 하시는 것이에요. 바로왕이 꿈을 꿨는데 아무도 해석을 못해요. 왜? 틀리면 죽으니까, 이 수많은 정말 점쟁이들인데 왜 해석을 못하냐? 얼마나 화를 냈겠어요. 술 맡은 관원장이 손을 듭니다. 내가 옛일을 추억합니다. 내가 옛일을 추억합니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이런 청년이 꿈을 해석했는데 그대로 됐습니다. 그 이름이 뭐냐 요셉입니다.’
빨리 데려와! 그때 내용을 기록한 것이 오늘 처음 읽었던 창세기 41장 14절로 16절인데 한 절 14절만 읽겠습니다. 우리 다 같이 함께 봉독합니다. 시작
 
* 창세기 41:14,
14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바로가 사람을 보냅니다. 빨리 요셉되라고 요셉을 부릅니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놓은지라. 하나님과 한국 사람이 코드가 맞을 때가 있어요. 언제냐 때가 찼을 때, 주님이 그렇게 슬로우 템포로 가시다가 때가 딱 찼을 때, 주님이 일을 시작하시면 아무도 못 막는데 그때, 우리의 급히 데려오라고 한다. 우리나라 말로 빨리빨리, 언제요? 때가 찼을 때, 주님이 딱 결심이 서시는 순간, 막을 자가 없는 거에요. 이날도 요셉은 만 이 년 중에 괴롭게 술 맡은 관원장을 의지하던 시간을 지나고, 주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계속 기도하고, 있어요. 기도하던 어느 날 요셉을 찾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왕이 부른다. 수염을 깎고 나갑니다.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요셉이 감옥을 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발버둥을 친 것입니까? 문이 열린 것입니까? 정답...
성도는 문 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맡겨진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신실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1년이 걸려도, 이 년이 걸려도, 주님이 문을 열어주실 때, 열린 문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 감옥에서 나가려고 발버둥을 치지 않았습니다. 왜 우리는 그렇게 발버둥을 칠까요? 이거 뭔지 아세요? 내가 원하는 것을 기르고 싶어서, 내가 원하는 성공을 듣고 싶으세요?
사람에게 진짜 평화는 주게 영광을 올려드릴 때 옵니다. 부탁합니다. 발버둥치지 마시라고요.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나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勘當)하면, 사람이 몰라줘도 괜찮습니다. 주님이 열어주십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발버둥 쳐서 내가 쇠를 톱을 갖다 자르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나가는 것이 아니고, 내 맡겨진 자리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기도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때, 어느 날 때가 차면, 주께서 문을 열어주실 믿습니다.
구약으로 표현하면 “주님이 닫으시면 열자가 없고, 주님이 여시면 닫을 자가 없느니라.” 요셉은요, 감옥 문이 열리는 날이 어떤 날인지 아세요? 저는 창세기 40장 14절 한절을 저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해요.
 
왜? ‘하나님, 저, 안간힘을 쓰면서 내가 내 문을 열고 가고 싶지 않습니다. 주님만 의지하며 신실하게 주님 걸어가는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때 내 문을 열어주시면 걸어가고, 안 열어주시면 머물러요.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혔을 때 찬송하며 기도하잖아요. 기적(奇蹟)적으로 옥문 다 열었는데 안 나가요. 열려도 안 나가. 왜 이미 열려 있었기 때문에 갇혔지만 갇힌 게 아니라 주님과 함께 있으니까,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갇힌 게 아니에요. 왜 안 나가요? 하나님은 간수(看守)를 구원하실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교인들이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천국에 들어갈 준비 됐냐고 물어봅니다. 저는 주님 부르시면 버티지 마라. 뛰어 들어가자. 붙들고 안 들어가라고 발버둥치고 그러지 말고, 이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임종이 돼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가족 중에 주님을 떠나 있는 분이 혹시 있습니까? 오늘 기도합니다. 하늘 문 열어달라고, 여러분 주님께 돌아오는 것밖에 없습니다. 주님께 돌아온 사람은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요셉의 마지막 생애를 통해서 성도는 안간힘을 쓰고 감옥 문을 쇠톱으로 잘라버리는 게 아니고 기도하며 자리에 머물러서 신실하게 살아갈 때, 하나님이 열어주신 문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신앙인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삶이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펼쳐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약
주님은 기도하는 사람, 주님을 붙들고 있는 사람에게 응답의 때가 오고 있는 것임을 믿고, 주님 앞에 그런 시간을 살아가고 체험해야 한다. 우리의 기도가 주님 의지하는 삶을 살아서, 우리 가족 중에 하늘 문이 닫힌 사람이 있음을 아뢰고, 우리가 교회를 나오지만 주님 손을 내려놓고 사람의 손을 의지하던 그런 삶, 하나님이 침묵하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주님 앞에 데려와야 한다. 주님 의지하는 자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때가 차면, 하나님이 여시면 닫을 자가 없으니,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문을 목격하고 체험하는 은혜가 차고 넘쳐야 한다. 우리 인생에, 우리 가정의 하늘 문을 활짝 열어 주기를 간구하며, 요셉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의 귀를 기울여 사라지는 시간, 지나가는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응답의 때가 오고 때가 차는 다른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응답이 오고 있는 시간을 살아야 한다. 기도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시간이 체험되는 것이니 때가 차는 일이 시작되는 것을 깨닫고 간절한 기도를 시작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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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4월 28일)
제목: "나를 향한 하나님의 꿈"
말씀: 이사야 60:1-3, 21-22,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강대인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
ㅡㅡㅡㅡㅡ
 
*이사야 60:1-3,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이사야 60:21-22,
21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22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할렐루야!! 기도해 주셔서 우리 제자훈련 122기 CAL Semina(Called AwakenSemina)가 성황 중에 잘 성료가 되었습니다. 참관 실습을 위하여 수천 명의 성도들이 함께 참여해 주시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순장 반, 그리고 사회 여러 중직 자들이 함께 자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국내에서는 300명 또 외국 분열한 110여 명이 오셨는데요. 전쟁 중에도 우크라이나에서 그의 일이 필요한데 이 그라이나에서 47명이 오셨어요. 베트로 마르티세코라는 라이네의 목사님은 전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마음이 열려서 지금 교회를 찾아오고 있다. 이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전쟁과는 상관없이 제자훈련을 바로 시작할 것이다. 전쟁도 우리의 사역과 사명을 방해할 수가 없다. 라고 하면서 전쟁도 우리의 사역과 사명을 방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런 은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식이 영적으로 비대칭 전략이죠. 여리고 성을 앞에 놓고 공격을 해야 되는데 그렇게 아니하고 하나님을 묵상하고 마지막에 주님의 명령을 순종한 여리고성과 똑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국내에도 교단별로 7개 교단 정도 오시고 아주 적은 규모의 교회 목사님도 오셨지만, 1000명에서 4000명 정도의 목사님들이 오셨어요. 제가 8명 정도 대화를 했고, 몸은 피곤하지만 온전한 제자를 만드는 꿈을 꾸니까,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이 말을 듣는 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리고 성도들 한 분, 한 분이 목양의 대상이 아니라, 목양 파트너가 된다고 생각하니까, 함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시리즈를 잠시 멈추고, 우리 교회 CAL세미나와 하나님 나라를 다시 한 번 정리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평신도를 깨운다.’(Called to Awaken the Laity Discipleship Seminar)는 그런 뜻이 있습니다. 그렇게 아시고 오늘 말씀의 제목은 제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꿈” 부제는 꿈이 없으면 싸운다. 입니다.
 
-요즘 부모님들의 고민은 자녀들이 꿈도 없고, 목표도 없다는 것이고,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꿈을 확실하게 개인도, 우리 자녀들도, 교회도, 가정도 영광스러운 시간되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교회 46년 동안 오래 신앙 생활하신 분들은 오늘 본문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익숙(益熟)한 부분(部分)에서 진짜 오늘 이 시간 주님이 주시는 보화(寶貨)를 캘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자, 첫 번째,
 
I. 전에는, 이제는.

-오늘 첫 번째는 전에는 이제는,
*이사야 60:1-2,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이사야 60:15b,
15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정말 이사 60장의 서두와 마무리는 영광스러운 말씀이에요. 어떻게 보면 독보적인 계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당시에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향한 명령이자 또 오늘 한국 교회 또 하나의 백성들 또 사랑의 교회 선두들 한 분, 한 분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믿으셔야 합니다.
 
여러분, 본래 이사야 원래 왕족 출신이고 글 쓰는 솜씨가 뛰어난 시인이였기 때문에 영적인 세계의 높은 수준을 아주 영광스럽고도 우리 식으로 말하는 최고의 글로벌 스탠다드 라고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이사야가 이 예언의 말씀을 전하고 기록할 때는 이런 최고의 문제를 가지고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이 영광스러운 꿈을 꿀 만한 그런 어떤 낙관론을 펼칠만한 그런 상황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이 말씀이 적용된 이 시기는 과거 솔로몬의 황금빛 나는 예루살렘 성전은 다 파괴되었고, 마지막 왕 시드기야 왕의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에 끌려갔고, 예루살렘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날마다 바벨론에서 포로로 날마다 눈물로 지새우면서 고통 가운데에 있을 때 이 말씀을 선포합니다. 오죽하면 본 15절 중요한 구절인데 15절을 읽지 않았습니다마는,
 
*이사야 60:15a,
15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전에는, 이제는,,,그러니까 이 상황 자체는 버림을 당한 것 같고, 미움을 당하고 사람들이 가까이 오질 않은 거예요. 미움받아가지고, 가까이 온 적 없는 거예요. 친구들이 배신하고 다 떠나는 것처럼 사람들이 다 떠나고 배신하고, 멸시하고 아는 체를 하지 않는 비극적인 그 상황 가운데서 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전에는 다 배신하고 정말 비참하고 비극적인 상황이었는데,. 이제는 감히 언감생심(焉敢生心) 꿈꿀 수 그런 척박한 환경이었는데. 고아와 같이 버림받고, 멸시받고 다 그랬는데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겠다. 할렐루야!! 바빌론의 짓밟혀 가지고 폐허가 된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꿈같은 말씀이에요. 꿈같은 말씀,,, 쉽게 말하면 ‘전에는 내가 주어가 돼 가지고 폭싹 망했는데, 이제는 하나님 주어가 되어가지고 내 생애가 아주 상황이 바뀐 것이에요. 그렇게 하시는 분이 누구냐? 15절에,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오늘 여러분 이런 말씀이 여러분에게 지금 내게 주신 말씀으로 확인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이것만 여러분들의 것으로 고백하고 집중해도 여러분 생애가 정말 3년은 보장합니다. 아니 여러분 생애를 붙잡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는 게 어떤 뜻인지, 전에는 비참하고 멸시 받고, 우와 같이 그렇지 이제는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기쁨이 됩니다. 이제는,,, 이름 알 수 있는지도 몰랐죠? 이런 말도 안 되는 대조를 누가 하시는가? 혹시 15절 다시 한 번
 
*이사야 60:15a,
15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키는 여러분이나 제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이제는 아름다움과 영광을 선포하신 그분께 내가 얼마나 정말로 거룩한 밀착이 되어 있는가, 밀착이 되어 있는가, 그분이 나를 다스리시는가?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은 지금 내 상황이 어떻다, 내 형편이 어떻다,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느냐, 없느냐, 거기에 우리 문이 열려야 되는 것이에요. 희망을 말할 수 없던 어려운 상황 가운데 과거에 거기에다가 더 이상 발목 잡히지 아니하고, 과거의 상처가 더 이상 우리를 어렵게 하지 않도록, 과거에 쓴 뿌리가 우리를 고통을 주지 않도록, 이제는 하나님과 함께 하신다고 선포를 하시는 것이에요. 누가 하신다고요? 하나님이... 왜 사람들이 왜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시느냐? 에 대해서 민감합니까? 베드로는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요. 늙은이는 꿈을 꾼다고 선포를 한 것이에요.”
 
II. 꿈이 없으면 싸운다.

지금 현실의 상처와 쓴 뿌리들이 함몰(陷沒)이 되어 가지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꿈이 왜 사라집니까? 그래서 지금 내 현실의 어려움에 함몰 되어 가지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꿈이 사라질 때, 여러분 인생의 마음이 전쟁터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마귀(魔鬼)의 가장 큰 작전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꿈을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집에서 부부가 싸우는 이유는 뭐냐? 여러 가지로 가정에 대한 부부가 꿈을 잃으면 싸우는 거예요. 제가 전에 처음에 이 얘기를 하니까요? 와!! 그렇더라고요? 아예 꿈조차 시작이 안 되는 사람도 많아요.. 지금은 이것도 여러분들이 다 만성이 됐어요. 부부가 꿈을 잃으면 싸운다니까요? 가정과 공동체도, 형제도 이웃도 민족도, 나라도, 이 사회가 꿈이 없을 때, 싸우는 것이에요. 우리 한국상회에 국민들이 마음을 모아가지고 집중가자고 하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이 읽어보면 나이가 들어도 꿈이 있으면 베드로가 사도행전 2장에서 고백한 것처럼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요. 늙은이는 꿈을 꾼다고 선포를 한 것이에요.’ 요셉은 꿈을 꾸니까 잘 된 것이고, 형들은 꿈이 없으니까 요셉을 질투하고 못 살게 굴고 모략을 부리고, 그래서 요셉을 팔아먹고 못 된 짓을 하고 음모를 꾸리고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형들이 꿈이 없는 모략과 그 질투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오랜 시간 야곱의 가습에 못이 박혀가지고 시퍼렇게 멍이 든 것입니다. 요셉은 꿈이 있으니까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다투지도 않고 싸움에 휘말리지도 않고 복수도 안 하고, 신약시대 제자들은 어떠했는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체험된 이런 꿈이 없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누가 더 크냐?’ 제자들이 누가 더 크냐고 소위 경쟁구도가 된 거에요. 오늘 이 사회의 지극한 경쟁구도가 하나님 나라에 꿈 때문에 미션구도로 바꾸기를 바랍니다. 서로가 잘 되기 위해 박수쳐주고 그런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서 꿈에 대해서 자주 하는 이야기 하나가, 잠언 29장에 나와 있다.
 
*잠언 29:18,
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유명한 얘기죠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묵시가 없으면 에 묵시라는 원래 꿈과 비전과 환상이 없어서 백성이 방자에 행한다. 저는 오늘 묵시도 묵시지만 방자에 행한다는 말에다가 좀 집중을 하고 싶어요.
이 구절을 깊이 파고들어 보니까, 출애굽기 32장에,
 
*출애굽기 32:25,
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금송아지 사건이 나오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가 사내 산에 올라갔고, 안 보이니까. 다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 출애굽기 32장 25절에 모세가 본즉 백성이 뭐예요? 방자하니,,, 아론이 그들을 방지하게 만들어 가지고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된 것이에요. 하나님을 향한 꿈이 사라지니까, 공동체가 추한 몰골을 하고 방자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시대에 얼마나 방차했는지, 백성의 꿈이 없으니까 사사시대 때 막 성적으로 물란 하고 그래 가지고 막 난리가 나고, 시체를 토막 내 가지고 12개를 잘라 가지고 지팡이에 다 보내고, 이거는 꿈이 없으니까,,, 한없이 사명이 다 잃어버리니까 백성이 방자한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의 꿈은 흐트러진 우리 인생을 하나님 주시는 꿈은, 집중하고 모으게 하는 볼록 렌즈의 역할을 하는 것이에요. 그냥 빛이 흐트러져 있으면 아무것도 역할을 못 해요. 그러나 볼록 렌즈가 있으면요 빛이 집중이 돼 가지고 훨훨 타는 것이에요. 흐려지지 않는 거예요. 명확하게 되는 거예요. 오늘 이 말씀을 듣고 흐트러진 우리의 마음이 명확하고 집중력 있게 돼 가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꿈에 대해서 여러분들 불이 붙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저는 설교자인데요. 이 설교 시간에 누가 있다가 좀 예배 중에 자거나 나가고 이러면요. 제가 상처를 받아요. 지금 제가 5번 상처받았어요. 왜 왔다가 설교 중에 나가냐구요.. 나 지금 오늘 안내위원들은 나한테 큰 얘기를 좀 들을 거예요. 그런데 그것도 내가 극복한 이유는 뭐냐,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게 뭐냐 하면 제가 상처받았거든요. 제 마음에 어 그런데 나는 상처보다 더 큰 꿈이 내게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런 얘기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진짜 상처받으면 이런 얘기를 못 해요. 극복되는 가능 얘기지 꿈이 없으면 싸우고, 꿈이 없으면 상처받고, 꿈이 없으면 극복이 안 되고, 그런데 꿈은 볼록 렌즈 역할을 합니다.
 
또 하나는 꿈은 네비게이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으면 우리는 우리의 개인과 우리 주위를 흐트러뜨리는 모든 오염된 것들 잘못된 길로 가는 것들을 물리칠 수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명쾌한 시선으로 우리의 삶을 볼 수가 있는 것이에요. 기만적인 계략도, 음모도, 그다음에 모든 아픔도, 예배 시간에 중간에 나가는 사람에게 대해서도, 그러나 꿈이 있으면, 극복하고, 꿈이 없으면 삶이 흐릿해 보이고 주위에 흐트러뜨리는데, 시험을 당하고, 꿈이 있으면 집중력 있게 이걸 이길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제가 지금 하나님들에 대한 꿈이 있느냐? 없느냐? 를 뭘로 여러분들 측정할 수 있죠? 시금석이 무엇이며 리트머스 시험지가 무얼까요?
 
다림줄 측정 줄이 뭘까요?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 나라 꿈이 제대로 작동하느냐? 없냐? 가 측정할 수 있는 시금석은 뭐냐 하면, 지금 내가 당하는 환경에 지금 내가 당하는 문제가 더 커 보이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내 계신 꿈이 더 커 보이느냐? 그게 시금석이에요.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세상 나라가 더 커 보이느냐? 아니면 하나님 나라가 더 커 보이느냐? 제가 좀 얘기했잖아요. 지금 내가 당 아는 것, 예배 시간에 나가는 사람들 그게 더 커 보이느냐, 아니면 하나님 나라의 꿈이 더 커 보이느냐,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게 하나님 나라 꿈이 내겐 더 크다고요. 이 말이에요. 예배 시간에 나가는 사람들의 상처가 내가 극복이 되는 거예요.
 
이건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나라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어른을 어른들하고 다 서로 상처받고 있는 거예요. 다 서로 상처를 받고 있는 그런데 하나님 나라 꿈이 있으면 상처를 극복하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나는 상처받았어요. 축구가 져 가지고 축구가 졌어요. 이번에 올림픽은 꽝이에요. 파리올림픽은 희망이 없어요. 하나 마나에요. 대한체육회 정신 차려라 하고, 축구협회 정신 차려라, 내 나름대로 상처를 받았지만, 그걸 극복할 더 큰 힘이 있는 거예요. 파리 올림픽이 제대로 돼도 안 되는 그거는 뭐 잘되면 더 좋겠지만, 그보다 더 큰 꿈과 사명이 있으니까, 그걸 극복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왜? 손흥민이 있기 때문에... ㅋㅋㅋ 오늘 밤에 두 골 넣을 걸 내가 기도하고, 있어요.. 주여, 손흥민이 두 골 넣게 하세요. 그런데 나는 손흥민 대한 꿈이 있으니까, 유23 올림픽 팀이 저도 덜 상처를 받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또 손흥민이 두 골을 못 넣더라도 또 이제 OK, 잠깐은 내가 시험 들겠지만, 만약에요. 어젯 밤에 손흥민이가 두 골을 넣어줬으면 오늘 제가 설교 펄펄 납니다.
 
자 그것보다도 제가 이래 드릴 말 그러니까 현재 내가 당하는 어려움이 더 커 보이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꿈이 더 커 보이느냐, 우리나라에 일어나는 수많은 아픈 일들이 내가 더 커 보여 그것 때문에 상처받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나라에서 내게 주시는 사명과 꿈이 더 커 보이느냐, 저는 철저하게 사랑의 교회 이 예배에 들어오신 오늘 1부 2부 예배 3부 예배 4부 예배 모든 분들, 정말 이 자리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이 더 커 보이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아멘!!~~
 
그러면 이거 극복을 이겨내는 것이에요. 그럴 때 우리 앞에 있는 수많은 적군들, 우리 앞에 있는 담들을 뛰어넘을 수가 있는 것이에요. 시편 18편 28절 29절에,
 
*시편 18:29,
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이게 무슨 뜻이에요. 저는 이게 청년 세대부터 얘기한 저에게는 약속의 말씀 중의 하나였어요. 앞에 여호와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리다. 28절 이렇게 돼 있어요.
28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 시리이다.
-흑암의 문제가 아니라 흑암을 밝히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밝히냐, 내가 주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뭐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를 의지한다는 구체적으로 뭐예요?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더 커지고 하나님이신 꿈이 더 커지고, 그러면 적군을 돌파할 수가 있는 것이고. 브렉트로 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 앞에 있는 수많은 담을 뛰어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해석하고 문제를 리서치하고 박사학위 받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더 주신 더 큰 꿈과 사명에 사로잡혀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에게 골 때리는 사람들이 있고, 여러분들 상처 주는 사람이 있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이 주신 더 큰 꿈에 사로잡히면 어떻게 되느, 괴롭힌 사람들이 옛날에는 손 좀 봐야지, 요걸 말이야. 내가 가만히 둘 수가 있나? 내가 반드시 보복한다. 이런 마음이 있을 수 있지만 이게 더 큰 꿈에 사로잡히면요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이요. 귀엽게 보이는 거에요... ㅋㅋㅋ!!~~ 여러분 참 상처 준 사람을 복수하고 용서하지 않고, 그냥 쫙 날린다고 해서 인생 끝이 아니에요. 더 큰 원수가 또 오는 거예요. 더 큰 어려움을 또 오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더 큰 꿈으로 장착해 가지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귀엽게 보이는 수순으로 올라가기를 바랍니다.
 
아 이게 너무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알 사람만 알도다!!! 알 사람은 알도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이 내게 주신 구체적인 꿈이 뭘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꿈은 무얼까? 오늘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이 귀한 말씀을 이로 딱 사로잡아 가지고, 그동안 이사육장을 뭐 주로 앞부분하고 뒷부분을 해석했지만, 그중에 내가 구체적으로 해석하는 부분이 있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계신 꿈이 뭔가? 21절을 통하여 세 가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꿈을 여러분들이 오늘 장착하고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III.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꿈.
 
*이사야 60:21,
21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①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①뉴 아이덴터티(New identity)
-첫째, 21절에, 내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어떻게? 영어로 하면 ①뉴 아이덴터티(new identity) 새로운 정체서,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인생이지만 여러분과 저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졌어요. 하나님의 새 백성 된 거예요.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 된 거예요.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 된 거예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된 거에요. 놀라운 것이에요. 우리의 실력과 능력과 우리의 자격으로 새 백성 쟁취한 게 아니라, 예수 그로스의 피를 통하여 우리가 의롭게 되어 가지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의롭게 된 새로운 정체성이 된 거예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너무 귀한 일이고, 너무 영광스럽고 신묘막측(神妙莫測) 한 거예요. 우리가 잘나 가지고 우리가 무슨 일을 많이 해 가지고 하나님 상 받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주신 새 백성 된 것이 너무 커 가지고 거기에 걸맞게, 그에 반응하고 그 은혜에 대한 결과로 우리가 축복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거예요.
 
*이사야 60:21,
21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⓶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⓶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⓶New land)
-두 번째로는 하나님 우리에게 어떻게 하느냐, 내 백석이다. 두 번째로는 영원히 땅을 차지한다고 그랬어요. 새로운 뉴 아이덴티, 여기는 뉴 랜드, 새로운 땅 새로운 지경, 새로운 땅을 차지한다. 땅을 차지한다고 그랬는데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이 받았던 땅,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토를 회복하는 것, 여러 가지 있죠.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창세기 15장에서, 동서남북을 다 바라보라. 이거 너에게 준다고 그랬어요. 그러고 난 다음에 다시오. 그러고 난 다음에 15장 5절에, 하늘에 있는 별과 같이 땅에 있는 모래와 같이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영원히 땅을 차지하는 거에요. 어마어마한 거에요. 여러분, 희한한 게, 꿈으로 보장되면 젊은이가 나는 부모도 제대로 못 만났고, 나 너무 앞뒤가 없고, 나 너무 이제 너무 힘들고, 나 이제 나 이제 죽을 거야. 나 정말 힘들어 나 이제 내 살 별 에너지가 없네. 이러고 방 한 속 구석에 쭈그려 앉아갖고 입을 뒤척이며 막 이생망(이번 생애는 망했다.)라고 이 이번 생에는 망했다. 자신이 흙 수저라고 자신을 한탄하던 사람들이, 영적인 지경이 넓어지고, 완전히
 
아무것도 없던 친구들이 하나님 나라의 꿈과 비전을 사로잡혀 갖고 인생을 볼록 렌즈로 집중하고 인생의 네비게이션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방향으로 나아갔을 때, 시대를 향하여 놀라운 일을 하는 거예요. 너무나 놀라운 일을 한 거예요. 저는 그런 바뀌고, 변화되고 하나님의 쓰임 바 되고, 영광스럽게 했던 사람들을 데리고 오라면 지금도요. 당장 그냥 막 수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 수 있어요. 한없이 꿈이 있으니까, 3절에,
 
*이사야 60:3,
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나라들이 빛으로, 왕들이 내 비추는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아무것도 아닌 젊은이가 은혜를 받고 난 다음에 이게 무슨 말이냐? 세계의 열방과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세계 민족들이 이 꿈을 꾸는 사람에게 나온다는 것이에요. 이 은혜를 받아가지고, 사람들이 이 은혜를 받은 사람이 나와 가지고 세계를 품을 수 있는 개인이 되고, 세계를 품을 수 있는 공동체가 된다. 라는 그러니까 영장의 토지가 넓어지는 거예요. 영적인 토지가 넓어지는 것이에요. 누가 그래요. 꿈꾸고 은혜 받으면요 여러분 죽을 때까지도 영장인 토목공사 하다가 죽을 수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하다가 이래 엎어져 있는 게 아니라, 주님 앞에서 가는 그날까지, 저는 죽을 때까지도 영적인 토목공사를 할 거예요. 은혜의 준마를 타고 끝없이 달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가 우리에게 앞에 놓여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꾸는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심어 주시는 꿈이에요.
 
전에는 형편없었지만 이제는 여호와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있다고 그랬을 때 누가 하는 거예요.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다고 그랬다. 내가가 아니라고, 내가 주인이 아니라고, 주님이 주인이 될 때, 첫째, ①의롭게 되고, 하나님 주님 때문에 두 번째 뭐예요? ⓶영혼이 땅을 차지한다. 땅을 차지한다. 할머니들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할머니가 집 앞에 있는 학교에 초등학교, 중등학교를 지나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불을 받은 거야. 내가 이 길로 지나가면 안 되겠나? 지나가면서 ‘주여, 이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인재가 나오게 해 주십시오.’ 인물이 나오게 해달라고 막 기도를 했는데 나중에 거기서 나와라 하는 날 인재들이 나왔어요. 뭐 제가 케이스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 교회도 앞으로 서초고등학교 지나갈 때, 그냥 기도하시고 그냥 지나가지 말고, ‘주여, 서초고등학교에 인재가 나오게 하옵소서!’ 그래 그보다 더 뜨겁게 기도할 것은 남쪽이 우리 드림타워거든요. 남쪽에,,, 우리 지금 우리가 자녀들이 한 만 명 등록되어 있잖아요. 우리 아이들 수천 명의 주일에 모이는데 “주님 우리 아이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인물이 나오게 해 주십시오.” 나이 드신 분들, 젊은이 모두가 다, 그렇게 기도할 때 여러분 기도를 통하여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나라들이, 왕들이, 세계가 여러분들의 품에 들어오게 되는 겁니다.
 
국가에 대해서 마찬가지에요. 우리는 토지가 러시아보다 작아요. 우리가 지금 대한민국 사우스 코리아는 107위에 있어요. 전 세계 토지의 그룹을 나라들어 한 107위, 200개 나라들 가운데 107위, 우리 러시아보다 땅도 작고, 중국보다 인구도 적고, 일본보다 경제가 약하지만, 우리가 영적인 토지가 더 큽니다. 전 세계 178개국에, 750만의 디아스포라가 나와 가지고 꿈을 꾸는 거예요. 일본 사람들은 가가지고 상사 세우고, 중국 사람들 와갖고 짜장면 맛있어 해! 하고 그리고 이제 중국집을 세우지만, 탕수육 맛있어 해, 그러면서 했잖아요. 한국 사람들은 외국이나 제일 먼저 세운 게 이민 교회를 먼저 세운 거예요. 영적 투자가 넓어져요 LA는 한국 땅입니다. LA 다운타운에 가보세요. 오렌지 타운에 내려가 보세요. 엔 아임, 거기 가면 엔아임, 남가주 사랑의 교회, 이제 내일부터 칼 세미나인데 그 근처는 다 한국 땅이에요. 교회가 들어가니까, 죽은 지경이 죽은 지역 있잖아요. 완전히 살아나가지고 나는 정말 거기에 땅 산 사람들한테 또 뭐 팁이라도 받아야 돼요. 세상에 교회가 들어가니까, 주위에 땅값이 몇 배로 막 오르는 거야. 놀아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에요. 이것은 하나님이 준 꿈은 하나님이 어롭게 하시고, 하나님 영적인 토지를 넓혀주시고,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인데,
 
①뉴 아이덴터티(New identity)
⓶뉴 랜드(New land)
⓷뉴 클로리(New Groly)
 
*이사야 60:21,
21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⓷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⓷영광을 나타낼 것인즉(=⓷New Groly)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을 우려해 주신 꿈이 뭡니까?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예요. 뉴 아이덴터티, 뉴 랜드, 뉴 글로리에요.
-뉴 글로리, 하나님 영광, 이 상황에도 참으로 주님이 주시는 의롭게 되는 것과 영적인 땅을 차지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것이에요.
 
※청교도 신학자 존 오엔은
“성도의 가장 큰 복락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존 오엔-
 
-이야 말로 하나님의 꿈과 계획을 통하여,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꿈을 가지면요 하나님이신 꿈과 사명을 가지면 예외가 없어요. 요즘 내가 우리 집 사람보고 물어봐요. “여보 당신은 요즘 어떤 꿈이 있어요?” 하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다음 말이 너무 걸작이에요. 죽을 때도 영광스럽게 죽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꿈을 갖게 되면 죽을 때도 영광스럽게 죽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 연세 드신 분들, 돌아가실 때도 영광스럽게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저는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관심을 갖게 되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꿈을 갖고 집중하면, 그 언젠가 하나님이 우리를 참으로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연세 드신 분들, 돌아가실 때, 영광스럽게 돌아가도록 만들어주신 거예요. 그런데 마귀(魔鬼)는 이거 못하게 하려고, 이거 못하게 하려고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보니까 뭐라고 돼 있냐면,
 
*고린도후서 4:4,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에게 이 하나님의 영광을 앗아가고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지 못하게 하려고, 마귀는 별 짓을 다하는 것이에요. 제자훈련 세미나를 통해서도 하나님 영광을 선포하게 하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여러분 자신도 다 마찬가지에요. 세 가지 첫 번째 뉴 아이덴티티, 그다음 뉴 랜드, 뉴 글로리 이 세 가지 영어 잘하시네요. 제가요, 우리 교회 처음 와 가지고 막 좀 제가 영어도 잘 못하고 그렇지만 영어 찬송은 좋아 하잖아요. 왜냐하면, 영어 찬송이 오리지날 이거든요.. 그래 이건 찬성을 같이 부르자고 그러면 저한테 막 빗발치듯 있잖아요. 나하고 한 판 붙자고, 어떤 성도들과 어떤 사람 목사님은 교회 영어로 옵니까? 그러고 막 나한테 한방 붙자고 막 결투를 OK 목장의 결투, 그래 나도 마음이 아팠죠 아픈데 나중에 내가 하나를 고민했으니까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 있지 근데 요즘은요, 우리 성도들이 성숙해지니까 영어를 쓰든 말든 알아서 하시라,,, 여러분 지금 우리 교회 주일날 찬양할 때 마칠 찬양할 때 영어 써도 여러분 불편합니까? 불편하면 안 돼요.
왜 불편하면 요것밖에 안 돼요. 대한민국만 여러분의 것이 될 거라고, 그게 불편하지 않으면 미국도 여러분 것들 그게 불편하지 않으면 세계가 여러분들의 가슴으로 들어오게 될 거라고요. 영어를 잘하라 그런 뜻이 아니에요. 영어 못하는데 어떡할 거예요. 할머니들 옛날에 영어 못 배웠는데 어떡할 거예요. 그런데 영어를 못하더라도 나는 영어하는 게 좋다. 다 못 알아들어도 야 뭔가 좀 프레쉬 하다. 프레쉬할 정도가 아니라 리 프레쉬 하다. 여러분 이렇게 쓰면 이게 꿈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태도라고요. 여러분, 교회 뭐 하는 거 보면 못마땅한 거 있잖아요. 그거 신경 쓰지 말아요. 여러분 더 그런 애가 있는 거예요. 교회는 우리 교회 순장들이 있고, 교육자들이 있고, 그다음에 수많은 사람 와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 고민 안 해도 여러분 그분들이 고민 다 해주니까 여러분들 꿈꾸고 살라고요. 시험 들지 말고요. 결론은 우리 모두는 주님이 주시는 꿈의 대사들이에요.
 
Ⅳ. 우리 모두는 주님이 주시는 꿈의 대사들이다.

-하나님 나라의 대사들이에요(We are all ambassadors of dreams from the Lord).
주님과 그의 나라를 위한 스페셜 언로인티드 레코그나이즈드, 글로리오스 엠베서더(Special Anointed Recognize, Glorious Ambassador).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대사들인 것이다. 저는 주일날 교회 들어올 때에 교회 들어올 때, 여러분 북쪽 타워에 우리나라 국회가 있고, 그다음에 우리 교회 국기가 있어요. 남쪽 타워도 있어요. 세계 어느 나라도 가보면요 주미 한국대사관, 주 러시아 한국대사관, 주중 한국대사관은 어마어마하게 커요. 아랍에미레이트 가면요. 주에 아랍에미레이트UA)의 주 한국 대사관이요. 미국 대사관만큼 커요 전 세계에 가면 미국 대사관 어마어마하게 크거든요. 왜냐하면, 공격을 하고 그러니까, 철벽처럼 해 놓았고요. 근데 우리가 아랍에메리트에 무슨 원자력을 하고, 뭐 하다 보니까 아바라메리트에 있는 왕이 한국 대사관은 커야 된다고 그래갖고 진짜 좋은 데를 줬어요. 거기서 하룻밤 자 봤았어요. 그때 우리 대사님이 우리 교회 안수 집사님이시거든요. 물론 공짜는 아니에요. 알 사람은 알도다. ㅋㅋㅋ~~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목사님, 기도의 값을 치르시고 여기서 주무십시다.’ 했어요. 참 그 대사관의 깃발이 그 지역에 그 나라를 위한 특명 정권대사에요. 여러분들은 하나님 나라의 특명 정권대사들이에요. 이 꿈을 갖고 하나님 나라의 특명(特命) 전권대사(全權大使)로 살아가야 합니다.
 
꿈을 가져요 이 꿈을 갖고, 하나님 나라의 특명 전권대사, 오늘 여기 학생들은요, 하나님 나라 대사 학생들이에요. 주부들은 하나님 나라 대사 주부들이에요. 비즈니스들은 하나님 나라 대사 비즈니스들이고, 공직을 가진 분도 그냥 공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대사가 먼저고, 그다음 우리나라 공직을 갖는 것이에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을 때, 영광스럽게 죽을 수가 있어요. 할렐루야!!
 
-한 주 전에 제자 목사님이 하남에 큰 교회를 지었어요. 그래서 저보고 와서 목사님 우리가 입당식을 하는데, 입당이 아니라, 입당 헌당식입니다. 나도 그것도 처음 봤네요. 입당하고 바로 헌당해 그리고 설계해 달라고 해서 갔어요. 입구에 들어가는데 큰 바위에다가 영어로 ‘하버 오브 비전(.Harbor of Vision​).’ ‘하버 오브 비전’ 뭐예요? ‘비전의 한국’(Harbor of Vision​), 꿈의 한국, 사명의 한국, 어디서 많이 보던 거예요. 제가 미국에서 교회 지을 때 큰 바위에다가 거기에다가 ‘하버 오브 비전(Harbor of Vision​)’, 써놓고, 그다음 대한민국에서 5만 톤짜리 배에서 쓰는 앵클(다트) 있잖아요. 앵커 앵커를 가져와 갖고 거기다가 황금 질을 해가지고 ‘비전의 한국’ 여기 앵커가 되고 여기에 들어온 사람마다 하나님 나라 비전을 발견하게 해 주십시오. 거기다가 대한민국 국기를 달고, 교회 깃발을 달고 여러분들과 저는 특명전권대사로서,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비전의 앵커를 내리고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비전과 소명과 사명의 항구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이런 마음가짐이 얼마나 큰일을 하는지 압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런 마음가짐이 젊은이들 정말로 뉴 아이덴티티, 뉴 랜드, 뉴 글로리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이 해주신 비전을 집중하시라고요. 놀라운 일어날 거예요. 천국 적, 하나님 적, 사명적 인생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인간적, 계산적, 세상 적이 되는 것이죠.
 
자 인간적, 세상적, 계산적이 되면 예를 들어서 남대문 시장에서 콩나물 장사하는 사람들 옛날 얘기예요. 자 한 30년, 40년 전 남대문 시장에서 콩나물 장사하는 사람들은요, 자기 실력으로는 절대 대학 못 보내요. 안 돼, 실력이 안 돼 돈이 없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남대문 시장에서 콩나물 장사를 하더라도 오늘 제가 뉴 랜드,스피릿쳐 랜드(Spiriture land), 마음이 커지고 은혜를 받아 가지고, 하나님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 나라 전체를 위하여 쓰임 받게 하시고, 세계관 내게 오게 하시고 열망이 내 마음속에 품어져서 기도하게 하시고, 이렇게 될 때에, 그 마음에 하나님이 내 자식이 부족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한 내 자식 대학교를 보내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 가지고, 남대문시장 콩나물 장수는 절대로 대학을 못 보냈는데, 내 자식 대학 보내봐야지 하는 마음가짐 하나 가지고 대학을 보낸다니까요.
 
※저는 어릴 때 부산에서 컸는데, 부산의 자갈치 시장에 고등어 자판 장수들은요, 고등어 좀 떼 와가지고 자판 머리에 이고 말이죠. 뭐 부산의 여러 동해 골목들을 다니면서 고등어 사이소!! 고등어 사이소!! 고등어 사이소, 해서 이거는 인간적으로는 죽어도 자신을 대학 못 보내, 그런데 그런 내 자식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내 자식을 대학 보내 봐야지 하는 그 마음가짐 기도로, 아이들을 대학 보내는 거예요. 내가 대학을 보내는 것 같고, 그 뜻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아버지 교회 가난한 개척교회, 거기에 일용노동자들 바로 하루 노동자들, 꿈이 없는 사람들인데 꿈을 가지고 하나님의 꿈을 가지니까 기도하고, 그러니까 자신을 대학 보내더라고요. 여러분 세상도 그럴 진데, 우리가 진실로 오늘 여기에 젊은이들과 마음 젊은이들과 어른들 이 말씀을 여러분의 것으로 받으시라고요. 아시겠죠? 반드시 여러분들의 Spiriture land가 커질 것이에요. 무슨 큰일 난다. 이게 아니라 여러분들의 삶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선보게 될 것이라고, 이런 꿈을 내가 간직할 뿐만 아니라, 이런 꿈을 확실하게 선포를 해야 되는 것이에요.
 
이런 의미에서 오늘 마지막으로, 사랑의 교회가 제자 훈련을 할 때마다 우리가 제자의 헌장을 해요. 헌장을 선포하고 확인하고 그러는데 오늘 처음 하신 분도 있을 텐데, 오늘 이걸 여러분들이 다 같이 하시고, 여러분들 하나님 나라의 특명 전권대사 되기를 바랍니다. 또 제게 상처 주지 말고 또 나가지 말고 알겠어요. 이 시간 다 길이 다 기립합니다. 다 기립할 때 나가지 마세요. 나 상처 받어요. 그렇지만 이거 할 때는 이거 할 때는 또 상처가 극복이 돼요. 나가라면 나가요... ㅋㅋㅋ너무 중요한 겁니다.
오늘 마음을 같이 해 가지고요. 같이 해 가지고 우리 찬양자도 마찬가지고 우리는 찬양만 하는 사람이야기 아니라, 우리는 찬양하는 특명 전권 대사인 것이에요. 오케스트라 우리 반주만 한 것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전권대사가 되는 것이에요. 같이 우리 사랑의 교회 여기에 우리의 꿈이 담겨있는 것이에요. -온전한 제자헌장은 여기에 우리 사랑의 꿈이 담겨있는 거예요.

◆온전한 제자의 헌장

“우리는 땅 끝까지 이 세상 끝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들이다”
(사회자)-1)온전한 제자는,
(다 함께) -“예수님의 온전한 희생에 감사하여.
예수님처럼 되고, 예수님처럼 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특성’을 지닌 성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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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2) 오전한 제자의 태도는,
다 함께) -“육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령님의 권능을 의존하여,
①가치관을 바꾸고,
⓶자아를 깨뜨려 감정을 치유하며,
⓷사랑의 관계를 통해 복음적 삶의 열매를 맺고,
⓸특히, 세계 선교를 마무리하는 사명을 위해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것이다.“
-----
(사회자)-3) 온전한 제자의 삶에는
다 함께) -‘회색지대’가 없다.
삶의 전 영역에서 온전한 제자로 살든지 아니든지
선택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영가족이다. 영적 가족,
영원한 가족, 영광과 고난을 함께할 가족이다. 아멘..

 

♣요약
우리가 주인이 버림과 미움을 당하며 꿈을 잃얼버렸을지라도 이제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서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으 기쁨을 꿈꾸며 일어나 빛을 발하는 자로 살아가며, 나의 영적 볼록렌즈로 집중하여 영적 강국으로 쓰임 받을 때, 전쟁도 못 막는 꿈의 대사가 되어 모든 사명의 담을 뛰어 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부흥을 꿈꾸는 7천 기도용사가 되어 123기 미주 칼 세미나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를 섬길 때, 이민교회와 함께 세계 선교를 위한 ‘2033-50 비전’으로 비상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하늘나라의 꿈에 대한 눈이 열려서, 뉴 아이젠티티, 새로운 정체성과 새로운 영적 토지가 우리에게 새 지경을 넓히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찬란한 주님의 영광 뉴 글로리를 경험하면서 모든 문제를 돌파하고, 수많은 인생의 담을 뛰어넘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꿈, 목표와 사명을 내 것으로 명확하게 붙잡아서, 우리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어른 세대는 꿈을 꾸는 삶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나라의 가정과 학교와 직장에서 하나님 나라 꿈의 특명 전권대사로서 빛을 발하는 자로, 지상명령인 복음으로 앞장서서 주님의 기쁜 자녀로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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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4월 14일)-
(예수님은 누구신가?-Who is JESUS?)-9번째
제목: "용광로(鎔鑛爐) 속에서도 함께하시는 예수님"
말씀: 다니엘 3:19~27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이현규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다니엘 3:19~27,
19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20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라.
21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23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
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26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27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ㅡㅡㅡㅡㅡ
 
▶찬양대 찬송 감사합니다. 명실공이 우리가 지금 봄의 한가운데 꽃 대궐 속에 충만한 봄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우리 성도들도 예외 없이 영원의 봄 동산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근데 오늘 여러분 찬송가를 부르는데 이 찬송가가 보니까 좀 맥아리가 없어요.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찬양대도 잘 모르시는 것 같고, 근데 이 찬송은 제가 한27년 전쯤 브라질의 상파울로에서 한인 교민들 집회를 하는데, 마지막 시간에 청소년들 한 십여 명이 나오더니, 특 송을 하는 거예요. 이걸 가지고 우리 교우들은 잘 모르고 있는데, 27년 전에 브라질 상파울로의 한인 교회 청소년들이 이 찬송을 하는 거예요. 특 송으로, 저는 어릴 때부터 이 찬송을 잘 알았어요. 근데 너무 마음에 와 닿는 거예요.
 
♬“이 말씀 전할 때, 내 마음이 기쁘고, 말씀을 할수록 새 기쁨 넘치네, 우리에게는 새 기쁨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다음에 이 말씀을 들을 때, 이 말씀 들은 사람 또 듣기 원하고, 목말라 사모하니 말씀 진리라. 가사가 안 나오죠? 나라 영광중에 나부를 새 노래 옛 부터 좋아하더니, 이 말씀 다시 3절에, 이 말씀 들은 사람 또 듣기 원하고 목말라 사모하니 말씀 진리라.” ♪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목마른 말씀이 되기를 바라고,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진리의 말씀으로 여러분들 탁 정리되기를 바랍니다. 옛 부터 좋아하더니, 말씀 뭐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요. 못합니다마는 이 찬송을 집에 가서도 함 불러보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지금 주신 음성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브라질에 있는 청소년들을 이상으로 찬송이 돼서 영의 눈이 떠지기를 바랍니다. 사람들 다 그래도 주님 잘 섬겨요. 아무것도 없어도 해외 디아스포로로 흩어져 가지고 뭐 보장되는 거 없어도 이런 찬송을 통하여 주님의 임재를 깨달으면 이겨낼 수가 있는 것이에요.
 
오늘 저는 예수님 누구신가?(Who is Jesus?-더블유제이 시리즈) 번째 “용광로 풀무불 속에서도 함께하시는 여수님”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이 본문의 스토리는 여러분들이 익숙하게 하는 내용이고, 처음 오신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사드락과 매삭과 아벳느고라는 다니엘의 구약에 다니엘의 세 친구인데, 구약에 출중한 인물인 다니엘의 세 친구인 이들이 풀무불 속에, 용광도 속에서 구원받는 내용입니다. 이 저는 여기서 어떻게 예수님을 발견하고 여기서 어떤 은혜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 로마서 15장 4절에 이런 말씀해 주세요.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로마서 15:4,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구약의 말씀을 기록한 이유가 뭐냐, 특별 오늘 이런 말씀을 기록한 이유가 뭐냐면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여러분 교과서 알죠“ 교과서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교과서가 될 것이다. 오늘 3장에는 이 본문의 말씀이 여러분들의 생애와 여러분들의 생애와 여러분들의 인생에 교과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란 1차 포로 때에 잡혀갔어요. 이 차 3차 포로 뒤에 잡혀가는 사람들에게도 얼마나 이 말씀이 위로가 됐을지 몰라요. 그리고 후대에 있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매달리고 수많은 고통 속에서도 이 말씀이 시대에 한 민족의 민족이 면함을 당할 어려움 가운데서도 교과서가 된 것이에요. 오늘 우리의 상황 우리의 주위의 상황이 녹록치 않고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여러분과 저의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삶에 교과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생각할 것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겨도 풀무 불에 던짐을 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I.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겨도 풀무 불에 던짐 당할 수 있다.
-오늘 18절에 보니까 단연히 세 친구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우상 신상에 절하지 않겠다. 제가 배경을 다 뭐 자세히 말씀 다 못 드립니다마는 느부갓네살 왕이 당대 최고의 황제였고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고 무소불이(無所不爲)를 행사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신상을 세웠어요. 그것도 평지에다가 높이 세워갖고 더 두드러지게 보이라고 세워 가지고 이제 절하라고 그랬어요. 근데 절 못한다고 다 이들 질투하던 사람들이 이들이 관리로서 잘 하니까 옆에는 항상 그래요. 누가 잘하면 대한민국 사람하고 똑 같에요. 누가 잘하면 봐주지를 못하는 거야. 질투하고 같이 박수치고 같이 해가지고 같이 잘하면 같이 성공하는데 물어뜯고 집어 뜯고, 잡아 뜯고, 지난주에 제가 원,불,비라고 그랬죠? 물어뜯고 집어 뜯고 잡아 뜯고 물,집,잡이에요. 그래갖고 이 세 친구를 갖다가 얼거 매 가지고, 이제 신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당시에 느부갓네살 왕이라는 이 황제가 왕이 무소불이 왕이 모욕을 당했다고 느끼고 그래서 이제 풀무 불에 집어 던져지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우리가 어떨 때는 결단하고, 순종하고, 충성하면 늘 사람들이 격려하고 인정해 준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을 때가 많이 있어요. 오히려 미워하고 박해할 수 있는 것이에요. 요한복음 15장 20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15:20,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니 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다. 전에 우리 개혁 판에는 사람들이 나를 핍박했으니까, 너희도 핍박(逼迫)할 것이다. 주님을 핍박 하니까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핍박한다. 오죽하면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디모데후서 3:12,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핍박을 받으리라. 여기서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경건하게 개인적인 경건도 있습니다마는 복음을 위해서 전도를 하고, 기독교 신앙 가치관을 가지고 한번 나라를 한번 제대로 세워보고자 애를 쓰고, 전도와 선교를 위하여 어제도 여기 우리가 복음 통일을 위하여 어제도 여기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오후 한 시에 주님 이 나라가 피 흘림 없이 복음적으로 통일되게 해 달라고 막 그렇게 할 때에, 사람들이 박해를 하는 겁니다. 숨어서 경건하게 살면 누가 박해를 하겠어요? 그런데 기독교 정신을 선포하고, 이 나라가 사회주의가 되면 안 되고 이 나라가 공산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라고 외칠 때 박해가 있다는 것이에요. 이 세상은 세속의 우상들을 섬기지 않는 자들에게 그리고 복음을 선포하는 삶들에 대해서 저들 나름대로 뜨거운 용광로(鎔鑛爐)를 준비해 놓고 있는 것이에요. 용광로는 빈정거림과 무시와 따돌림의 화덕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대로 섬기고 기독교 신앙 가치관을 가지고 우리가 지금 차별금지법 ,동성애, 이런 거 반대하면 얼마나 무시라 미국 같은 데 가면요 완전히 왕따 시키고 있잖아요. 동부의 아이비리그 잘난 데는 전부 다 교술 다 동성애자들이 많고 얼마나 풀무 불을 많이 준비했는지 몰라요.
 
다시 본문으로 들어가 가지고, 느부갓네살 왕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가지고 풀무 불을 7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 그랬어요. 그리고 세 사람을 끌어다가 풀무 불에 던져 넣기 위하여 아주 더 힘이 센 사람들이 세 사람을 묶어 가지고 풀무불 속으로 왔어요. 저 이게 풀무 불이 제 제철 용광로인데, 내가 자세히 위에 있을 때, 뭐 자세 설마 큰 거 있어요. 그리고 밑에는 사람들이 막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있잖아요. 위에서만 갖다 놓고 이제 네 그런 게 있어요. 제가 설명을 다 못하고 21절과 22절을 보니까,
 
*다니엘 3:121-22,
21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힘센 사람들이 단열의 세 친구를 뭐예요? 결박해서 풀무 불에 던졌는데 그들을 풀무 불에 던진 사람들이 먼저 불에 타서 죽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정도의 화력이니까. 이 세 친구는 이제 끝난 것 같았어요. 느부갓네살 왕도 좀 정신이 없는 게 진짜 고통스럽게 벌을 주려면 불을 7배나 강하게 하면 고통이 오겠습니까? 예 보통 풀무 불이 1000도가 넘는데, 7배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불도 적당히 뜨거워요 고통스러운데 너무나 뜨거우면 뭐 고통 느낄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나 이 감정이 복받치고, 생각이 잘못되면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도 판단 능력이 마비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우리 주위에도 예상외로 말도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기독교를 비판하고, 비하하고, 조롱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노마 저것들이 느부갓네살이구나 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에요.
 
우리가 말씀을 순종하고 결단했는데도 실상은 풀무 불에 던짐을 당하고 고통당하는 삶의 현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어떻게 됩니까? 거기에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현장을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데, 다니엘이 세 친구가 옷을 입은 채로 던져줬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풀무 불에 던져져서 끝인 줄 알았는데, 24절에 보니까,
 
*다니엘 3:24,
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그런데 이제 그다음에 더 놀라운 기적을 본 게 25절에 25절이요.
 
II.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현장
 
*다니엘 3:25,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네 번째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 그러니까 풀무불이 하늘이 뭐야? 여기 두 가지 기적이 일어났는데, 하나는 기적이 한꺼번에 일어났는데, ➀‘하나는 불에 타지 않고 건재한 기적’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앞에 보니까 뭐라고 돼 있어요? 그들을 포박한 줄만 탔어요. 포승줄만 탄 거예요. 두 번째 기적은 뭐냐 하면 ➁‘네 번째 사람, 신들의 아들과 같은 네 번째 사람 그들이 함께 한 것’ 이 두 가지 기적이에요. 여러분 풀무불이에요. 닭갈비집에 가면 어떻게 돼요. 그리고 저기 뭡니까? 뭐 이런 구이 집에 가면 온몸에 냄새가 나는데, 뒤에 나옵니다. 냄새 하러 나지 아니하고 포승(捕繩)줄만 결박이 없어지고 네 번째 사람이 함께한 기적이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이 네 번째 사람에 대해서 우리가 뭐 다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신들의 아들, 신의 아들 그러니까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이 신의 아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신약의 육신을 입으시기 전에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소위 크리스토파니, 구역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지난번에 우리 여호수아 5장의 군대 장관으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하다. 여러분, 그렇게 그냥 그렇게 해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큰 무리가 없어요.
 
그리고 그들은 거의 뜨거운 용광로 풀무불 속이 아니라 네 사람이 마치 한가한 정원을 거닐 듯이 마치 왕궁을 거니는 것처럼 풀무 불은 그들에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이걸 보면서 제가 이사야 43장 2절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구나.
 
*이사야 43:2,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그할렐루야 이 약속의 말씀이 문자적으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어요. 문자적으로,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인데 그것이 뭐냐 하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이 풀무불의 핍박이 왔을 때에, 그것을 피했습니까? 안 피했습니까? 피하지 않았습니다. 풀무 불을 정면으로 맞닥뜨렸습니다. 그리고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풀무 불 한가운데서 뜨거운 용광로 한가운데서 건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맞닥뜨리는 것 하나님을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겠다고 목숨을 건 선언을 한 것입니다. 저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요? 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단 풀무 불에 여기서 보면, 풀무 불에서 건잠 받는 기적은, 풀무불 속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하고 아니 실제로 풀무불 속에 들어가야 건짐을 받는 것이에요. 아무것도 안 하는데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그래서 제가 썼어요. 풀무 불에 안 들어가니까 풀무불 속에서 건짐 받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에요. 안 일어나는 것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풀무 불에 속에 들어가지 않으니, 풀무 불에 건짐 받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쨌든 간에 그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왜 무언가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왜 내 신앙생활이 지루합니까? 왜 내 신앙생활에 물을 물 탄 듯 매가리가 없고, 물에 물 탄 듯 뭐가 없습니까? 왜 그럴까 왜 강직함이 없을까? 오늘 여기 본문을 보면서 우리가 해석하는 것은 풀무 불에 들어가는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킨 결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27절에 보니까,
 
*다니엘 3:27,
27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그다음에 제일 감동받는 것이 뭐예요? 불탄 냄새도 없었더라. 삼겹살만 구워 먹어도 난린데 냄새가 온통 다 난린데, 세 친구는 불타는 냄새조차 없었습니다. 그들을 결박했던 포승줄 불만 포승줄만 풀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야말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오늘 리빙 미라클!, 산 기적이 되었어요. 살아있는 기적이 어디였어요. 할렐루야!!!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 저도 저의 남은 생애 가운데 저와 여러분들은 산 기적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살아있는 기적이 돼요. 리빙 미라클!, 우리가 먼저 풀무 불에 들어가야 할 경험이 필요하고, ‘2033-50 비전’을 왜 합니까?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잖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잖아요. 핍박도 없어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영적으로 성공하고, 축복의 근원이 되고, 정말로 세계 복음주의 쇠퇴를 막고, 남북의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 통일을 우리가 뭔가를 하면, 핍박이 일어나는 것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역사에 은혜를 베푸셔갖고 모든 포승줄을 풀어주시고, 우리가 결단을 할 때, 우리가 리빙 미라클이 될 수 있도록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목숨을 건 선언이 필요하고, 풀무불의 형벌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풀무 불의 기적이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오늘날 내 삶에 왜 기적이 없는가? 내 삶의 신선한 감격과 주름을 섬기는 열정은 왜 없는가? 왜 내 신앙생활에 이렇게 생활이 지루하고 물에 물 타듯하고 뭔가가 없는가? 중요할 때에 주님을 향한 우리의 분명한 헌신의 자세, 중요할 때에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값을 치르는 대가,
 
-저는 어릴 때 태어나서 가만히 제가 보니까 어릴 때, 60명 가운데 나 혼자 예수 믿었어요. 학교만 가면 이제 예수쟁이라고 있잖아요. 뭐 예수를 믿냐? 내 주먹이나 믿어라. 이러면서 모욕당하고 교회 간다고 모욕당하고, 또 교회가 뭐 너무 초라하니까 모욕당하고, 주일 성수한다고 모욕당하고, 제가 한 번 얘기했죠? 우리 아버지 교 밑에 공병기지창 이라고 있는데, 거기에 내가 어릴 때 여름 성경학과 찬송하고 내려가면요 군인들이 이리 와 이리 와라 자식들 말이야. 어디 감히 이 앞에 노래를 부르고 다녀, 이리 와! 저놈 여기 누나 있나? 누나 없습니다. 내가 장남이니까. 어디 이러면서 노래하나 불러, ♪환난과 핍박 중에도~~이 신앙 생각할 때 기쁨이 충만하도다.~~♬ 말이 그렇지요. 수많은 핍박과 난제에요. 학교에 들어가서도 가난하고 그러니까, 예수 믿으니까, 있잖아요. 얼마나 근데 지금도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요. 예수쟁이기 때문에 찬송한다고, 전도한다고, 교회 간다고, 주일 성수한다고, 모욕당한 모든 것들이 저희 생애를 돌아보면 그것이 기적의 시작점이었어요. 수많은 기적들, 수많은 기적의 만남들이 수많은 인생의 수많은 과정과 열매들, 때론 예수님들을 모욕당하고 여기 예수님의 아내들 집안에 혼자 예수 믿는 분들을 주님들을 모욕당하고, 그래도 꿋꿋이 주님 사랑하고 그럴 때, 지나놓고 여러분 그러면, 자식이 기적을 일으킬 것이에요!!. 살아있는 미라클, 리빙 미라클(living Miracle), 여러분께 여러분들 회사 내에서 한 10년, 20년, 30년을 꿋꿋하게 신앙 지킨다고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리빙 미라클로 삼아주시는 것이에요.
 
III. 풀무불(鎔鑛爐)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한 번 더 제가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크리스토파니를 정리하겠습니다.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1세기에 초림으로 성육신하시기 전에 구약에 예표로 나타나신 것이다.
 
*다니엘 3:25,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The Son of God! 이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인 줄로 믿습니다. 풀무 불 가운데 신앙을 지키는 사람에게 그 신앙이 지키는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는 구원자가 되시고, 그들을 보호하는 호위자 보호자가 되어 주시고, 그들의 수호천사가 되어 주시고, 그래서 가장 강력한 호위와 가장 강력한 구원은 뜨거운 용광로 불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세요.
 
여러분들의 생애 가장 강력한 호위는 돈도 아니고, 가장 강력한 호위는 권력도 아니고, 가장 강력한 호위는 정치적으로 여러분들을 같이 하는 그런 흐름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호위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세요. 불 속에서도 그분이 나와 함께하면 여유롭게 걸릴 수가 있고,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나를 돌보시고 있다고 고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풀무불 속에서도 어려움의 시간들을 말씀과 기쁨과 찬양으로 기도로 통과할 수 있도록 나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떨 때는 말씀으로,
어떨 때는 특새의 은혜로,
어떨 때는 성도의 교제로,
어떨 때는 찬양의 능력으로,
여러분들의 호위자로,
구원자로 보호자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셔야 됩니다.
 
그래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의 순간 혼자라고 느껴지는 순간에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승리하게 하신 것이 기적이라 이 말이죠. 신앙 때문에 직장에서 왕따 당할 때도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에요.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사역과 삶의 현장에서 우리를 살리는 가장 큰 은혜의 원천이 뭡니까? 가장 큰 구원의 원천이 뭡니까? 한마디로 임마누엘인데, 지금 나와 함께 다시는 예수님이 나의 삶에 가장 큰 보호와 가장 큰 구원의 원천이 되는 것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이걸 여러분들이 그냥 적당히 생각하시면 안 돼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는 인생의 풀무 불을 당한 고통을 당하는 분들, 지금 내가 암이 하나 두 개 한두 개 있어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암 때문에 고통도 하는 그런 분들, 어떻게 보면 인생의 풀무불인데 가운데서 고생하는 분들 그분들에게 제일 큰 능력과 제일 큰 치유가 뭐냐, 지금 그분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세요. 지금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뜨거운 용광로 가운데 고생하는 분들의 고백 속에 지금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셔, 나는 그분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여러분 참 희한한 게요 어려울수록 이게 더 실감이 가는 것이에요.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이 은혜는 세상에 잘 나가고 모든 것이 평탄할 때 더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진짜 고통도 어렵고 눈물 날 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 더 잘 느껴진다니까요?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제 하나의 용어를 말씀드리는데 플러스 원(+1)이라는 거예요. 나 플러스 원(+1) 예수 그리스도, 나와 함께 계시는 플러스 원(+1)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오늘 용광로 속에서 함께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오늘 사실 설교 제목을 제가 ‘플러스 원(+1)되시는 예수님’ 이라고 하고 싶었어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은 뭔가 달라야 한다. 그래서 다른 하나의 우리의 삶의 형태가 사실 팩트 리포트(fact report) 하는 사람이 있고 또 한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시각을 가지고 페이스 리포트(Faith Report), 보고만 하는 사람이 있고, 팩트리 볼트 바른 사람이 있고 믿음 보고만 하는 사람이 있다. 믿음보고를 하는 사람이 있다. 페이스트 리포트라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보고 정도가 아니라 우리는 우리도 눈이 있으니까 사실보고를 하지만 우리는 신앙 때문에 믿음보고의 보고자가 돼야 할 줄로 있습니다. 이거예요. 그러면 오늘 이 여기 말씀과 견주어 볼 때 우리는 이 땅에서의 우리 매일매일 삶의 현장을 사랑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진짜 어려울 때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주님을 깨닫는 그것이 뭐냐면 여러분 플러스 원(+1)이 되는 것이에요. 나 혼자가 아니라 플러스 원(+1)에 보고를 해야 돼 세 명 플러스 원(+1)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플러스 원(+1) 사실보고가 아니라, 사실보고는 나 혼자 감당하는 것이라 그것이라면, 믿음보고는 내 인생의 플러스 원(+1)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풀무불의 임재 공식은 플러스 원(+1)이에요. 다시요. 사실보고가 나 혼자 감당하는 것이라면, 믿음보고는 내 인생의 플러스 원(+1) 되어 주시는 예수님과 함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주일 앞에 서는 그날까지, 플러스 원(+1)의 인생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생을 살아보면 마이너스 인생도 있어요. 마이너스 역할도 하는 사람도 있고 뺄셈만 하는 그런 환경도 있어요. 그런 사람 그런 환경을 만나면 우리가 에너지가 뺏겨요. 우리 주위 환경을 보면 에너지를 뺏는 환경들과 사건들이 너무 많아요. 제가 자세히 말씀을 안 드려도 여러분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수많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요!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마이너스 인생이 되면 안 돼요.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풀무불 속에서도 플러스 원(+1)으로 함께하시는 주님이신 줄로 믿는 것이에요. 오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무불 속에 들어갈 때는 그냥 세 사람 플러스 제로(3사람+0)였지만 오늘 풀무불 속에 함께 계신 예수님 때문에 뚜리 플러스 원(+1)이 된 것이에요. 부모들에게는 이 플러스 원(+1)이 돼야 할 것이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는 원 플러스 원(1+1)이 돼야 할 것이에요. 사람의 교회 이런 정신을 가지고 7천기도 용사를 하는데, 7천기도 용사를 하는데 7천기도 용사 7천 플러스 원(7000+1)이 돼야 할 것이에요. 요셉은 구덩이라는 풀무불 속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요셉 혼자서 울었던 게 아니라, 거기에 요셉 플러스 원(요셉+1)이 되었어요. 요셉 플러스 원(요셉+1)이 되니까, 창세기 39장에 보면,
 
*창세기 39:2~3,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여러분 풀무 불 상황 속에서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거예요? 아니 풀무 불 전에도 다니는 세 친구와 주님은 동행하셨어요. 다니엘서 1장에 보면 3년 동안 훈련받을 때도 주님 함께 하셨고, 다니엘서 2장에 보면 세 친구가 각도에 흩어져 가지고 공직을 수행할 때도 함께 계셨어요. 평소에 함께하셨던 주님께서 결정적인 카이로스의 시간에, 예수님이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로 나타나셔 가지고 결정적인 순간에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결정적 기적의 시간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에요. 세 친구와 이미 동행하고 계셨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강력함으로 나타난 것이에요. 그래서 용어를 제가 하나 만들었는데,
 
▷평상시 크로노스의 플러스 One(Plus One)의 임재가 결정적인 시기에 믿음으로 풀무 불에 들어가는 순간 카이로스의 플러스 원(Plus One)의 임재가 되어 주신다.
예수님은 평상시에 크로노스의 플러스 원(+1)을 임마누엘로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그런데 결정적으로 우리가 결정적인 시간에 이걸 깨닫고 헌신하고 풀무 에 들어갈 때에 카이로스 플러스 원(+1)을 만들어주시는 거예요. 평상시 크로노스의 플러스 원 크로노스란 말은 그냥 연대기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그런 삶의 주님이 우리의 임재가 결정적인 시기에 믿음으로 풀무불에 들어가는 순간 카이로스 플러스 원(+1)이 되어 가지고 기적이 일어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기적 공식이에요. 오늘 이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 가정 지키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도 지키시길 바라고, 교회도 지키고, 이민족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뭐 뻑 하면 힘들면 이민 간다고 그러는데, 그런 이야기 하지 마시고, 여러분 그런 거 말씀하지 마시고, 하나님 어려울 때도 하나님 이 가운데 플러스 원 되어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런 플러스 원(+1)의 인생이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플러스 원(+1)이 되는 인생이 되고, 역사와 민족 앞에 플러스 원(+1)이 되는 인생이 될 줄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북 스토어를 사랑 플러스로 지어놨어요. 그래서 앞으로 북스토어 간판을 사랑 플러스 원(+1)으로 바꿀 거예요. 사랑 플러스 원(+1), 전 세계 성도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를 대라 그러면, 많은 분들이 “여호와는 나의 목 자신에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우리 23편 1절도 좋지만 4절이 더 좋아요.
 
4절 내가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망의 골짜기에서 주님이 나에게 사망이 음침한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주님이 나에게 플러스 원(+1)이 되어 주시는 것이에요. 혼자, 이 세상 사람들은 잘나고 뭐 있고, 권력하고 모든 것, 지혜 이런 거 지식에 대해서 관심이 많지만 오늘 저와 여러분의 최고의 관심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것은 어려울 때일수록 더 실감을 한다니까요? 어려울 때일수록 여러분 어려울 때 저는 보면요 어려울 때, 주님의 이거 더 실감하면서 간절히 기도하고, 막 그냥 창자가 꼬이도록 어려운 기도 제목들이 많잖아요. 창자가 꼬이도록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 순간 자체는 나에게 해답이 없었어요. 당장은 해답이 없었어요. 지나고 나니까 하나님이 다 해답해 주셨어요.
 
시간은 좀 걸렸지만 그런데 지나고 나니까 가장 큰 가장 큰 해답은 뭐냐, 정말 어려울 때 창자가 꼴 정도로 기도의 제목이 심각했을 때, 주님의 임재를 끼면서 강하게 기도하고, 매달렸을 때 그리고 저는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모든 해답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방향을 잡는 것이에요.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그리고 모든 해답은 뭐냐면 어려울 때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여호사밧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어려울수록 플러스 원(+1)을 느끼고, 기도할 때 지나놓고 보니까 당장 답은 없었지만 어려울수록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간절하게 매어 달리는 기도한 자체가 최고의 응답이 된 것이에요. 아멘! 자 어려울수록 주님의 임자를 느끼면서 간절히 기도할 때, 자체가 기도에 응답이 되는 것이에요.
 
따라서 예수 믿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도 하나님의 플러스 원(+1)의 임재의 은혜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그냥 맹숭맹숭 적당히 산다면 그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것이고. 심지어 좀 세게 말해 저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에요. 예수 믿고 모든 것이 잘 되어가지고, 내 힘으로 모든 것이 잘 되고, 모든 것이 평탄해 가지고 하나님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과 하나 선생님이 함께하심을 정말로 사모하고, 매어달리지 아니하고 적당히 해서 다 잘 된다면 여러분 좋은 거 아니에요.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남북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는 우리의 삶 자체가 막 그냥 뭐 압박을 당한다든지 막 칼로 찌를 정도로 그렇게 하지는 않잖아요? 나라를 위해 있기도 하고 통일을 위해 있기도 하고 경회를 위해 있기도 하다 보면 가스 마려할 일들이 많이 생긴다고요.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느껴가지고 더 영광을 사모하고, 더 찬양하면, 그것 자체가 기적이 된다는 거예요. 자체가,,, 그것 자체가, 결론은 풀무 불에서 구원받으면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이에요.
 
IV 풀무 불에서 구원받으면 세상이 뒤집어진다.
 
풀무 불 가운데서 네 번째 사람이 거리는 걸 보고 느부갓네살 왕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26절에 풀무 불 아기 그게 밑에 통이 컸어요. 밑에서 사람이 그리는 걸 보면 밑에서 본 거예요.
 
*다니엘 3:26,
26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저는 진짜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결단하는 자리에는 이런 결과가 나타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저는 믿는 사람이 풀물 불을 결단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좀 더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에요. 좀더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준으로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날이 우리 교회와 개인과 이민족에게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영광을 바라보고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 임재 자체가 응답이라고 믿고, 진짜 하나님을 기대하고 찬양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대면하게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 앞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에요. 거꾸로,
함께하셔서 결단하는 자리에 하나님께서 이런 대반전의 역사를 이루신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우리가 제대로 풀무 불을 결단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대면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29절에,
 
*다니엘 3:29,
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그 당시에 황제의 조서는 지금 우리 시대로 보면 SNS가 퍼지는 것이에요. 앞으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질투하는 모든 인간들, 한 번 더 해봐라 ‘그 몸을 쪼개고 집을 거름 터로 삼을지니.’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법적 조치가 필요 없어요. 인간에게 이런 법적 조치 받을 필요도 없어요. 그 당시 최고의 무소불이에요. 황제가 권력자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예요. 누가 찬양하라고 해달라고 했나? 찬양하라고 여기에 보니까 시대의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라고 했어요. 아벨론의 신 정도가 아니라 천하 만고의 신들을 KO시키는 결과가 나왔어요. 세 친구들이 풀무 불에 들어가겠다고 순교조인 결단하고 난 다음에 당시 정치 세계에도 글로벌하게 영향을 끼치게 된 거예요. 왕의 조서가 최고의 SNS가 되어 가지고 각 언어로 각 나라에 퍼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전 세계를 다녀보면 뭐 여러 나라가 다 주님 잘 섬기지만 한국 교회가 희망이에요. 사랑의 교회 사역이 한국 교회 사역이 올해는 ‘10.23’, 한국 교회 섬김의 날 사역이, 오늘 왕의 조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전 세계 드디어 30절에,
 
*다니엘3:30,
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초라한 아주 연약한 유대 민족이었고 초라한 포로였지만 그가 섬기는 하나님 때문에 제국의 모든 신들과 모든 권위들이 하루아침에 KO당했어요. 우리 식으로 말하면 강원도 홍천의 무명축구팀이 지금 프리미어 리그의 멘시티와 아스날을 10대 빵(10:0)으로 이긴 거예요. 저 강원도에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하기 짝이 없다. 원통 골엔 인제에 있는 축구팀이 파리의 샹제르망을 15:0으로 이긴 거예요. 별로 반응도 안 하시고,,, 사무엘상 30절 다 같이 우리 크게 보겠습니다.
 
*사무엘상 2:30,
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이게 오늘 우리 시대가 오늘 우리가 감당해야 할 주님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물론 주님을 열심히 섬겨도 세상 왕국에서는 높임 받지 못할 때도 있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계산은 정확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높여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반드시 높여 주실 것입니다. 알다 보면 풀부 불을 경험합니다.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 목사님이라고 계시는데 그분 목사님 사모님이 계은덕 사모님이세요. 사별함을 이렇게 했어요. 이번에 최근에 책을 하나 썼는데,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사모님은 자녀가 없으시고 미국의 USC라는 좋은 대학의 의과대학 교수셨어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암이 두 암이 왔어요. 두 암이 와가지고 지금 뼈만 남았어요. 근데 책을 쓰시고 저한테 추천사를 부탁했어요. 추천사를 써드렸어요. ‘수많은 사람들을 키운 좋은 사모님 교수님이기 전에 목사님 사모님, 몸에 두 암이 두 가지 암이 와가지고 완전히 뼈가 남아았어요. 그 다니시는 교회에서 막 특송을 하시는데, 특송한 내용을 써놓았어요.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마지막 특송이에요.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뼈만 남은 풀무불이에요. 여러분 저의 삶에 최고의 플러스 원은(+1)요, 주님이 날 붙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요약
오늘 우리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통하여 교과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플러스 원은(+1)으로 임재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동행 하시니, 우리의 삶에 풀무 불을 두려워하지 말고, 삶의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도 주눅 들지도 말고, 기독교 정신을 우리가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의 횃불을 들고 영적 기백을 가지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이 시대를 승리해야 한다. 질병의 용광로 속에서, 경제적인 용광로 속에서, 어려움 가운데서도 플러스 원 되시는 예수님이 가장 귀한 자본임을 확신해야 한다. 우리가 풀무 불에 던져질지라도, 정면 돌파하게 해서 풀무 불을 회피하지 말고 승리하는 온전한 제자로 살아내어 주님께서 결코 너희를 버려두지 아니하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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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4월 07일)
제목: "예수 그리스도, 이 시대의 도피성"

♣주일예배(주후 2024년 04월 07일)
제목: "예수 그리스도, 이 시대의 도피성"
(Who is JESUS") ⓼번째
말씀: 여호수아 20:1~9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최민규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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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0:1~9,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4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5 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6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7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8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9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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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22차 봄 특새에 은혜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22차가 되다 보니까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그렇게 힘들지 아니하고, 물론 힘든 사람 몇 명은 있었지만 힘들지 아니하고 자연스럽게 새벽에 일어나는 것 훈련이 되어 있어 가지고 물 흐르듯이 해서 자연스러웠습니다. 주의 영이 많은 곳에 주시는 자유를 능력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번에 22차 특세니까 22차 총선도 지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것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첫 번째 오늘 생각할 것은 오늘 제목이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 그리스도, 이 시대의 도피성” 이라고 그랬는데 성찬을 앞에 놓고 우리가 아 좀 말씀 앞에서 우리가 좀 생각을 해야 하는데 먼저 생각할 것은 정글 같은 이 세상입니다. 여러분 3절에 보니까 도피성이 왜 생겼는가 보니까, 어떻게 실수했다고요?
 
I. 첫째, 정글 같은 세상.
 
*여호수아 20:3,
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 자를 피할 곳이니라.
-이게 뭐 이렇게 소위 과실치사죠 그 이유는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 자를 피할 수 있도록, 그리고 9절에서도 오늘 보니까,
 
*여호수아 20:9,
9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오늘 여러분들 그 구절 그쪽에 좀 뭔가 좀 어리버리 하게 합독을 하시는데 마지막에 뭔가 9절에 제 보니까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리고 마지막 구절 뒤에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마지막에, 이 땅의 삶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부지중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당시에 예를 들어서 나무 하다가 어떻게 도끼날이 날아가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이웃과 서로 다투다가 어떻게 상대편을 밀쳤는데 벽에 머리를 부딪쳐서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의도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살인이 되어서 과실치사(過失致死)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앞에는 가나안 전쟁을 7년 동안 수행을 했습니다. 외부적 전쟁이죠. 지금 우리나라에도 이 근처에도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나 팔레스타인 전쟁 또 이 북한에 있는 탈북자들, 또 북한에 지금 그 전쟁 같은 삶을 사는 분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갑작스러운 지진이 난 대만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그래서 이 세상은 뭐 이것도 어렵지만 아주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이 세상은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탈락하고 이긴 자만 살아남는다는 승자 독식의 논리가 타락한 세상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어떤 철학자는 삶이 너무 무한한 치열한 경쟁과 끊임없는 갈등이 있으니까, 남을 짓밟지 않으면 짓밟히는 인간의 모습에 대해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무슨 말입니까?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처럼 언제 뒤처져 낙오될지 모른다는 그 논리에 코뚜레를 꿰어서 끌려가는 그런 삶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참 짐이 있잖아요. 그거는 외부적인 전쟁도 그렇지만, 내면의 전쟁도 만만하지 않죠. 가장 극복하기 힘든 대상이 나 자신이에요.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나 젊은이들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나, 내 자신이 정글이고 내 자신이 가장 큰 적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소위 중독,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성 중독, 게임 중독, 소위 어딕션(Addiction), 유튜브도 들었는데, 들었다 하면 그냥 1시간 2시간 3시간 쭉 가는 거지. 이것이 일상을 정글같이 옭아매어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도록 그리고 우리의 내면 가운데 나도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상처 난 부분들 그리고 부지중에 나는 모르지만 상대방을 말로써 죽이는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죠. 자, 외적으로, 내적으로 다시 본문으로 들어가서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외부적으로 살인을 했을 때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특별한 사법 조직이나 경찰 조직이 없었어요. 그래서 피해자 가족들이 살인자를 조사하고 보복하는 시스템이었어요. 소위 피해 보복의 관계였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피해를 입으면 대체적으로 감정적이 되고 판단력이 흐려져 가지고 같이 망하거나 무고한 사람들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그런 비극이 있었어요. 이런 경우 이 정글 같은 사회 내 외부적으로 이런 경우 그 당시에 이스라엘 사회 무슨 해결 방법이 있었을까? 3절에 보니까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가게 해라.” 그리로 도망가게 해라. 그러니까 그리로 라는 말이 이 도피성에, 도피성을 만드시고 그리로 도망가게 하라. 부지중에서 있던 사람들 무슨 우리 찬송은 피난처에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오라
 
주 여호와 피난처요. 세상의 날 리을 다시 그치게 하시는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의 피난 도피성 피난처가 이 도피성이라는 말이에요. 도피성 피난처라는 말인데 refuge(도피), shelter(대피소), 그래서 오늘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 가운데 이런 삶의 도피성이 필요 없을 만큼 완벽한 사람도 없고 또 도피성에 가지 못할 만큼 저주 받은 사람도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정글 같은 세상을 다 피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 정글 속에서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우리가 정체성을 잃지 않고 힘 있게 살아갈 비결 중의 하나가 오늘 도피성이라는 사실이에요. 정글의 늪에 빠지지 않고 저와 여러분이 꿋꿋하게 우리의 삶을 걸어갈 수 있는 그 장소가 도피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나중에 깊이 들어가면 이 성찬이 우리의 삶의 도피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가 도피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배와 성찬이 도피성이 되기 위하여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II. 도피성이라는 해답.
-도피성이라는 해답을 주님이 허락해 주셨는데 구약의 도피성은 아까 말씀한 대로 피해 보복자가 따라와서 죽이려고 하는 순간 그 그걸 이렇게 피할 수 있도록 레퓨지로서 쉘터로서 피난처로서 만들어 놓은 것인데 요단 서편의 3개 요단 동편의 3개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디에 있든지 하루길이면 뛰어갖고 하루 만 4-50km, 한50km 정도만 48km에서 50km 정도만 뛰어가면 대체적으로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제가 한번 도표를 한번 만들어 드려서요. 한번 보시겠습니다. 이스라엘 지도를 한번 보시겠습니다. 보이십니까? 이스라엘 왼쪽은 지중해고 밑에는 사해고 위에는 요단강이죠? 저기 뭐야 위에 갈릴리 바다죠 사인의 요단강이 있고 요단 서편에, 서편에 보세요. 오늘 성경 보니까 7절 8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납달리 산지에 갈릴리에 아니 보여줘요 예 갈릴리에 뭐예요? 게데스 갈릴리에 어디에 어 저 위에 저 위에 게데스 보입니까? 그 다음에 에브라임 산지에 3개보입니까?
그 다음에 유다 산지에 헤브론 보입니까? 저 근처에 예루살렘이 있죠? 요단 딱 잘라고 오른쪽에 이제 동쪽 동편에 뭐야 요단강 베셀 보입니까? 밑에 그다음에 길르앗 라못 보입니까? 중간에 저희 므낫세 지파 바산 골란이 보입니까? 제가 이걸 이런 걸 제가 잘 안 보여드리는데 이 보여드리는 거는 어디에 있어도 하룻길이면 갈 수 있도록 그리고 저 도피성은 언덕 위에 산지에 있었어요. 접근이 늘 보일 수 있도록, 사람들의 도피성을 향하여 잘 찾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문은 항상 열려 있었고, 계곡마다 다리를 놓고 또 안전판이 있었고, 그래서 결과 죽을 목숨이 구원받는 것이 도피성이다. 그리고 6절 그리고 이제 중요한 도피성으로 도망간 사람은 오늘 6절 시작.
 
*여호수아 20:6,
6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오늘 6절을 여러분, 2절 3절과 함께 잘 기억해야 되고,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도피성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고 그다음 그 살인자가 도피성에 들어갔을 때에,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그 당시의 대제사장이 뭐예요?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살인자는 그 성읍 고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을 자기 집으로 돌아갈 지이라 하시니라. 그 성 자기 집으로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도피성에 들어가면 이제 먹을 양식을 주고 거기에 살도록 되어 있는데 그래도 큰 감옥이죠. 감옥 같이 있는데 그 그가 자유의 몸을 받을 수 있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당시에 대제사장이 죽으면 자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제사장의 죽음과 도피성에서 편안했던 그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자유와 바꾸어지는 것이에요. 그러면 제가 이 말씀을 드리면 어떤 사람은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대제사장이 1년 만에 죽을 수 있으면 1년 만에 나오는 거고, 수십 년 동안 제 세상에 죽지 않으면 수십 년 동안, 거기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제사장 오래 살면 도피성 있는 사람이 ‘주여! 대제사장을 빨리 데려가 주옵소서.’ 그건 여러분 쓸데없는 상상이고 복음의 핵심을 깨닫지 못하는 거예요.
 
자, 지난주에 지난 아론의 싹 난 지파이가 예수님이 뭘 예표 했다고요? 부활을 예표 했다. 그러면 오늘 여기에서 구약의 대제사장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것이에요. 히브리서를 보면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라고 그랬고 그래서 여러분 제가 자막을 해 놓으면요 같이 보겠습니다.
 
*구약의 대 제사장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구약의 대 제사장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
-훌륭합니다. 자막 팀 훌륭합니다. 정말 내가 감사드려요. 이번에 우리 그 특사 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하고 저하고 19년 20년 영상 팀은 나하고 12년 발맞추어 왔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정말 오늘 이 말씀은 말씀도 안 봐도 여러분들 다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에요. 다시요. 아까처럼 잘못된 상상하지 말고요. 대제사장이 죽어야 뭡니까? 도피성에 피한 사람이 자유롭게 된다. 이거 어떤 뜻입니까? 사실 도폐성에 들어간 사람은 과실치사로 죽어야 되는 거예요. 실수여도 고귀한 생명을 죽인 범죄자예요. 그런데 그가 대제사장이 죽었을 때, 나왔다는 말은 그와 대제사장의 목숨과 바꿨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이것은 마치 영적인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목숨을 버리시고 우리의 죽을 목숨과 바꾼 거예요. 복음적으로 생각을 해 보면 살인자가 도피에 들어갔다고 해서 살인자의 죄가 다 없어진 것이 아니에요. 모든 죄는 마땅한 형벌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죗값을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대속한 거예요. 대신 바꾼 거예요. 썹스티투션(substitution-치환, 대체) 된 거예요. 여기에 십자가의 깊은 사랑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범죄(犯罪)는 값을 치러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진노(震怒)가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진노가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도피성(逃避 城))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다 퍼부어 쏟아 부어진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과 저의 죄를 지우개로 지운다고 다 지워지는 게 아니고, 우리의 죄를 지우개로 지운다고 다 지워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죄를 내가 지어야 할 죄를 예수님께 다 쏟아 부으셨다. 그 말이에요. 그것이 도피성에 나타난 복음의 진리예요. 사도바울은 이걸 깨닫고 하나님께서 진노를 나타내신 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했고 로마서 3장 26절에
 
*로마서 3장 26절
26 곧 이때에 자기 의로우심을 나타내 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의가 사라지지 않으려면 뭐냐 하면 누군가가 형벌을 받아야 되는 거예요. 누군가가 죗값을 치러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도피성 되신 대제사장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인 줄 믿으셔야 되는 거예요. 이건 참 값비싼 은혜예요. 값비싼 은혜, 한 단계 더 올라가 가지고 구약의 도피성은 우발적으로 살인한 사람들을 정글 같은 세상에서 보호해 주시지만, 오늘 성령 시대에 사는 우리가 믿는 이 참된 복음은 우발적인 살인자뿐만 아니라, 고의 적으로, 고의적으로 죽인 악질(惡質) 죄인까지도 구원(救援)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구약에서는 대 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성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지만 신약 시대에 지금은 우리가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리고 부활하신 그 은혜의 복음을 우리가 믿고 그분이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에 지금 당장 우리의 삶을 의탁하면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의 몸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걸 너무 놀라워 가지고 히브리서 기자가 히브리서 6장 18절부터 20절까지 또박또박 기록하고 있는데 뭐라고 그랬냐면 18절에,
 
*히브리서 6:18-20,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도피성을 찾은 우리에게 뭘 주신다고요? 아니라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았는데, 이것이 도피성이라는 거예요. 도피성을 찾은 우리에게 뭘 주신다고요? 아니라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았는데 이것이 도피성이라는 거예요. 도피성을 찾는 우리에게 큰 용기를 주시는데 그리고 이 도피성 안전한 곳에 누구 때문에 들어갈 수 있는가? 그다음에 20절 보겠어요. 20절 시작.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아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대사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 보좌,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셨다 그 말이에요. 예수님께서 이런 길을 열어주시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은혜의 보자 앞에 지금도 나아갈 담력을 얻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 무슨 은혜가 있는가, 오늘 히브리서 6장 19절에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무슨 말인가? 이 시대의 정글 같은 세상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시대의 파도에 흔들림이 없이 도피성 되시는 안전한 영혼의 닻을 경험하신 주님께 이 시간 영광과 감사를 올려드리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가 주중에는 어떻게 보면 정글과 같은 세상 고통스럽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주일마다 예배에 이 예배가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와서 우리가 내 삶을 올려드리고 이럴 때, 진짜 이 시간이 여러분들 파도 많은 이 세상 가운데 영혼의 닻을 내린 안식(安息)을 누리게 되는 것이에요. 이게 얼마나 이걸 모르고 말이에요. 정글 같은 세상에 날마다 살다가 뭐 겉으로 평안하다. 하지만 뭐가 평안 하겠어요? 정글,,, 그러니 여러분 주중에 정글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이와 같이 주일 나와서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이 도피성 되신 예수님 앞에서 우리가 영혼의 닻을 경험하는 겁니다.
 
안전한 영혼의 닻을 경험하는 거예요. 안식의 항구에 들어가는 거예요. 피난처(避難處)에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와서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 그리스도가 도피성인 신약 적 의미를 제가 도표를 만들었어요. 오늘 성찬식이니까 제가 길게 못 하니, 신약의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오른쪽에 어떻게 돼 있죠?
 
첫 번째, 남의 피가 아니라, 예수님 당신의 피를 흘리시고 도피성이 뭐예요? 되어 주신 거예요.
두 번째, 구약의 도피성은 신약의 도피성 예수 그리스도는 찾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일방적으로 주어진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 구약의 도표성은 범죄자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오른쪽에는 뭐예요 여러분 이 복음의 차이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오히려 예수님이 오래 기다려 주신다.
네 번째, 구약의 도피성은요. 일회성, 신약의 도피성은요. 영구적
다섯 번째, 구약은 도피성에서 해방 받았다. 하더라도 평생 짓눌림 있는 거예요.
그런데 신약은 도피성에서 완전히 새 생명의 소유자가 되고, 영적인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고아도 과부도 기댈 것 없는 인생도 과부도 도피성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룻기 2장 12절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룻기 2:12,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이번에 보아스 우리가 배웠는데 보아스가 룻에게 그 과부에게, 그 정글 속에서 사는 과부의 룻에게 그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너에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하노라. 놀라운 피난처입니다. 시편 61편 1절로 3절에 보니까,
 
*시편 61:3-4,
3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4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셀라).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주 날개 이 즐겁도다. 이 세상에 수많은 파도가 있어도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피난처와 견고한 망대와 장막과 과부들과 고아들에게 날개가 되는 줄 이 시대에 도피성 되는 줄 믿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찬을 앞에 놓고 도피성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냥 거기서 먹고 마시고 그냥 산만 지탱해야 합니까? 소울 바이브 라이프로 살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도피성에 있는 사람들이 잘 되기 위해서 두 가지를 해요.
 
-거기서 무장을 하고 변화를 받아야 돼. 변화만 받으면 안 되고 거기서 세상 앞에서 살아갈 힘을 얻고 사명을 갖고 나와야만 하는 것이에요. 삶의 변화를 거기서 자기의 삶에 대한 재조명과 재정비를 하고, 삶을 점검(點檢)하고, 회개(悔改)하고, 평가(評價)하고, 오늘 우리 교회로 말하면 이 도피성 대신 주일마다 나와 가지고 여러분의 삶을 재정비하고 여러분이 타고 다니는 인생의 자동차를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오늘 찬송하면서 말씀 듣고 성찬에 참여하면서 우리의 삶을 재정비하고 재점검하고 우리의 삶의 변화를 가는 그리고 동시에 재정비할 뿐만 아니라, 소명자로 준비되고 사명자로 나와야만 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 역사가 나를 부를 때 시대가 나를 부를 때 내가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 도폐성 안에서 회계와 변화를 갖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 사명자로 나아가야 하는 거예요. 사명자로, 우리가 마틴 루터처럼 종교 개혁은 못한다 할지라도, 손양원 목사님처럼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우리가 7천기도 용사를 은혜를 가지고 세상을 바꾸는 하나님의 기도 군대가 돼야 하는 것이에요.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구원하겠느냐?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가르치겠느냐? 주의 마음을 알아서 사명 자가 되겠는가? 이 시간 우리가 주의 마음을 알아 들이는 하나님의 신신한 남녀종들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누가복음 15장에 돌아온 탕자는 탕자로서 살 때, 그가 저 멀리 가가지고 향락, 사치 방탕하고 허랑 방탕 하고 그럴 때 그것은 정글이었어요. 수많은 중독과 아픔과 결국은 돼지 쥐엄 열매를 먹는 엉망진창의 삶이었어요. 이리 살다가는 내가 죽겠구나! 이리 비참하다가는 인생도 아니구나! 개돼지처럼 살구나! 우리 아버지 집에 가면 우리 아버지 집에 가면 지금보다 낫지. 그 아버지의 품이 돌아온 탕자에게는 도피성이 된 것이 그럼 그걸로 끝인가? 아니에요.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 품에 들어가 가지고 자기를 돌아봤어요. 내가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면 귀하게 살 수가 있는가? 어떻게 하면 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이제는 내가 마음대로 살았는데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고, 아버님을 더 사랑하고 아버님께 더 영광을 돌려야지, 그 마음을 품는 순간 제대로 도피성에서의 준비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그리고 신명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피성을 매년 한 차례씩 보수를 했습니다. 가는 길도 새로 닦았고 뒤에서 피의 보복 자가 따라와도 빨리 뛸 수 있도록 다리도 새로 놓고 잡초도 제거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매년 닦고 수리하고 보수하고 점검했습니다.
 
오늘 성찬식을 통하여 이 성찬식 자체도 도피성이 되게 하여 주셔서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다시 사명을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군대로 준비될 수 있는 그런 축복이 저와 여러분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도피성 근처 가까이 가가지고 그 성 밖에서 천막을 친다고 해서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도피성 안에 완전히 들어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혹 우리 가운데 예수 믿는 아내를 만났다고 해서, 예수 잘 믿는 친구를 뒀다고 해서, 예수 믿는 아내의 치맛자락을 붙든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는 남편들이 식구들을 교회에다 데려다 주고 본인은 안 들어오고 데려다 주고, 본인은 옆에 골프 연습장 가 골프 연습하고 소위 제가 이름을 붙여 성도라고 맴맴 성도, 맴 맴 맴 가운데서 그러다가 어느 날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들어와 가지고 이 안에 들어와 가지고 도피성 대신 이 안에 들어와 가지고 말씀을 깨닫고 피해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줄로 믿습니다. 그런 분들 가운데 순장되는 분들 많이 계세요. 다시요 도피성을 향해 힘차게 달린다고 하더라도, 그 성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달리기 자체가 당신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은 겉으로 도는 신앙 제가 표현한 말로 맴돌기만 하는 신앙,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신앙 이런 신앙, 은혜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신앙을 달팽이 신앙, 이라고 했어요. 수년 동안 심지어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을 출발했는데 여전히 같은 지점에서 뱅 뱅 뱅 뱅 맴도는 신앙이 무슨 신앙이라고요? 달팽이 신해 오늘 성찬을 우리가 참여하면서 은혜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헌신의 수준이 뭔지를 모르는 그런 수준이 되지 말고 오늘 모두가 다 우리가 이 시간 맴 맴 성도 달팽이의 신앙을 처리할 수 있도록 은혜의 문턱을 넘어가는 귀한 성찬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오늘 성찬에 참여해야 되는데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예수님 예수님의 몸과 보혈의 우리의 몸을 피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우리의 삶에 뭐가 된다고요? 도피성이 되는 것입니다. 도피성이 되는 그래서 오늘 이 성찬이 최고의 도피성이 되는 것입니다. 도피성 대신 떡과 보혈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것이 그리고 도피성에 참여할 때에 오늘 마음의 소원을 하세요. 아까 제가 그 지도를 보여드렸는데 7절 8절에 요단강 서편의 3개, 그다음에 요단 동편의 3개, 그 6개가 그냥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각 이름 하나하나가 지닌 뜻이 있어요. 그래서 그 이름 하나하나 지닌 그 뜻의 도피성을 향하여 온 그 뜻이 여러분들에게 그대로 이번 성찬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게데스는 어떤 뜻이에요? 거룩한 곳이다. 성소다. 거룩한 곳이다. 여러분의 삶이 오염되었다고 생각한 분들 주여, 내 성찬을 통해 내 삶을 정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두 번째 뭐가 있어요? 어깨 견고함입니다.
세 번째는 뭐예요? 헤브론 헤브론에 있는 그 뜻이 뭐라고요? 교제라는 뜻이에요. 주님과의 교제가 뭐든지 오늘 성찬을 통해 주님과 더 나은 교재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외롭고 친구가 필요한 분들에게도 교제의 은혜를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 다음에 오른쪽에 뭐예요?
베셀은 요새다 포트리스다. 안전하다.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오늘 그대로 여러분들이 이걸 그대로 되게 그다음에 골란은 어떤 뜻이에요? 기쁨이라는 그 앞에 라못 이라는 뜻은 높은 곳 보호자라는 뜻이에요. 은혜의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골란은 기쁨을 오늘 성찬식에서의 시간을 통해서 여러분 참된 기쁨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기에 대한 어떤 글들에 대한 문턱만 문턱 앞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문턱을 넘어가세요.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
 
♣요약
우리는 보복이 두렵고 중독으로 가득 찬 정글 같은 세상에서 도피성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피하기를 소원하며, 매주일 성전에서 온전한 치유와 안식을 경험해야 한다. 가장 강력한 도피성인 성찬을 통해서 맴맴 신앙, 달팽이 신앙을 재정비하고, 세상을 바꾸는 하나님의 기도 군대가 되어서 뚜벅뚜벅 걸어가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2033-50 비전’을 이루어 가야 한다. 제22차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우리나라에 좋은 지도자의 복을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자.
-도피성은 극단적인 피의 복수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부지중에 살인한 사람들이 도피할 수 있는 은신처였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 죄를 용서해 주신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신 사랑 속에서도 발견된다. 모세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행해야 할 많은 일들을 지시해 주었다. 그 중 하나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하게 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성역을 지정하는 일이었다. 마음에 계획한 바 없이 단지 손으로만 죄를 범한 사람의 피가 그 피의 복수자에 의해서일지라도 흘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그 땅을 위해서였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 율법이 그들에게 크게 유익이 되는 것임을 상기시켜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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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3월 31일)
제목: "나의 지팡이에 생명의 싹이 날 수 있는가
(Can My Sprout with Life)?"-(부활절 특별 메시지)
말씀: 민수기 17:1~8, 히브리서 9:4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조이키즈(joy kids),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장명철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민수기 17:1~8,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 중에서 각 조상의 가문을 따라 지팡이 하나씩을 취하되 곧 그들의 조상의 가문대로 그 모든 지휘관에게서 지팡이 열둘을 취하고 그 사람들의 이름을 각각 그 지팡이에 쓰되.
3 레위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쓰라 이는 그들의 조상의 가문의 각 수령이 지팡이 하나씩 있어야 할 것임이니라.
4 그 지팡이를 회 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 궤 앞에 두라.
5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
6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매 그들의 지휘관들이 각 지파대로 지팡이 하나씩을 그에게 주었으니 그 지팡이가 모두 열둘이라 그 중에 아론의 지팡이가 있었더라.
7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히브리서 9:4,
4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 들이 있고.
ㅡㅡㅡㅡㅡ
 
▶찬양대가 오랫동안 준비한 귀한 찬송을, ‘그는’ 찬양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 줄로 확신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참 잘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봄에는 부활절을 주시고, 여름의 문턱에는 성령 강림절을 주시고, 가을에는 뭘 주시죠? 추수감사절을 주시고, 겨울에는 뭘 주시죠? 성탄절 주셔갖고 은혜의 신선도, 신앙의 신선도를 유지하게 하시고, 그리고 영적인 힘을 잃지 않도록 은혜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전 세계가 지금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고 있고, 한국교회 6만여 한국교회가 또 이와 같이 부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모든 한국교회가 다 이렇게 복음을 믿고 삼위일체 하나님 믿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모든 한국교회는 다 지난해 2천년 동안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세계 교회가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가만히 계실 겁니까?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수없이 증가하는 거야. 수없이 성경과 수없이 수많은 파치먼트, 양피지와 파파일러스, 파피루스를 통한 수많은 증거를 가지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그냥 조금 몇 개 있어요. 근데 부활에 대한 증거는 수 천, 수만 개가 있어요. 아멘 역사적 사실을 믿으면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충만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아까 아이들 찬송하는 거 보셨죠? 물론 몇 명은 이라고 불렀지만 내가 좀 걱정되더라고요. 이분은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빅토리, 빅토리! 애들이 기쁨이 충만하고 이 기쁨이 있으면 자동적으로 부활의 은혜와 부활의 진리와 능력을 자연스럽게 이웃에게 전하는 사명 자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 또 기쁨 그리고 사명 자가 되는 것이에요. 전 세계 교회가 부활주의를 맞이할 때마다 다시 한 번 확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라는 것은 너무 우리가 다 부족한 인생이지만 이 부활의 능력을 통하여 영적인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에요.
 
오늘 제가 말씀의 제목을 “나의 지팡이에 생명의 싹이 날 수 있겠는가? 라고 이렇게 붙이고, 오늘 여러분들이 본문을 읽었습니다마는 오늘 이 지팡이는 증거 궤(證據 櫃) 안에 있는 구약의 언약교회 안에 있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말씀하고 있는데, 오늘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성경 전체로 또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전체 시각을 갖고 볼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 하는 것이에요. 뭘 예표 한다고요?
 
예수님의 신뢰할 만한 우리 성경학자들, 신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뭔가 읽어보겠습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생명으로 꼽힌 예수님의 부활의 모형(Typology)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모시는 모든 사람들도 앞으로 부활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또 인생에 있어서도 메마른 막대기, 바싹, 마른 막대기 같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부활의 은총을 입을 것이다. 장래도 그러고 현재도 메마른 인생, 그래서 이 부활에 대한 중요한 하나의 구약의 에스겔 37장에 보면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거 기억나시죠? 마른 뼈도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 중에 하나가 오늘 마른 막대기 같은, 마른 막대기도 살아날 수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리고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지성서 법계 안에 그 언약궤, 증거 궤, 언약궤 그러는데 이 언약궤 안에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두 개 하셨어요. 여기에 대해서는 신약에서 가장 잘 신학적으로 해석한 히브리서에서 오늘 여러분들이 히브리서 본문도 읽었잖아요. 히브리서 9장 14절, 9장 4절에 다시 한 번 또박또박 같이 읽습니다.
 
*히브리서 9:4,
4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 들이 있고.
-잠깐 지성소 안에, 지성소 안에 뭐가 있다고요? 언약계가 있고, 그다음에 그 언약 궤, 아니 그 안에 시작,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 판들이 있다. 그리고 세 가지가 있는 거 언약교회 안에 그 언약궤 안에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뭐냐? 두 돌비가 있다. 두 돌비는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매일매일 삶의 현장에서 말씀으로 영적으로 인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돌비를 가지고 그다음에 거기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가 있다. 이것은 매일매일 우리의 삶은 육신의 현장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먹여주시는 것이다. 특별히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생명의 떡이 되시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뭐가 있는가?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통하여 믿는 사람의 구원이다. 크게 보면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게 이 정통 신학이에요. 세 가지,
 
⓵성부 하나님 두 돌비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언약과 공의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 만나 항아리로 생명의 떡으로 우리를 먹여주시고,
⓷성령 하나님께서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의 삶을 부활시키는 은혜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오늘 말씀 가운데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오늘 이 부활을 믿고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이 부활을 믿고 확신할 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오늘 요절이에요. 요절 오늘 앞에 요절 8절, 오늘 민수기 17장 8절에 다 같이 보겠습니다.
 
*민수기 17:8,
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첫째 뭐가 뒀고요. 오늘 8절은 거의 말씀 마칠 때는 거의 다 외우고 갈 것입니다.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왜 주셨는가 8절에 이 말씀을 주신 이유가 뭐냐 하면 오늘 17장인데 민숙이 16장에 보면 참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어요.
 
무슨 사건이 있었냐면 고라, 다단 아비납이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대적을 하여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으로만 말씀하셨는가? 그러니까 소위 원망을 하고 또 그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에 대해서 항의를 하고, 그러니까 모세와 아론에 대해서 고라, 라든지 그런 그 고라도 같이 같은 레위 지파예요. 같은 레위 지파, 그런데 우리 같은 다 레위 지파인데 모세도 레위 지파고 아론도 다 레위 지파인데 자기들만 하냐, 우리는 안 되냐 하나님이 나 한 사람만 뽑았냐,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똑같이 아니 그러면 그 사람들만 일하느냐? 모세 모세와 아론만 일하느냐? 막 이런 식으로 똑같이 했는데 겉으로 볼 때는 별로 이게 리더십이 한 사람만 있나? 다 같이 나누면 괜찮지,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어느 정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본 거예요.
 
그 중심의 바탕에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게 뭐예요? 모릅니까? 병 이름이 원,불,비라는 병이 있는 거예요. 원불비가 뭐예요? 성이 원씨고, 이름이 불비야? 원망과 불평과 비난(원불비)이 그 속에 이게 잠재되어 있는 걸 보시고, 그 속에 고라, 그다음에 다단, 아비납 그래가지고 그걸 보시고,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어요? 겉으로 볼 때는 이들이 뭐 별로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속에 보니까, 하나님이 주신 권위에 도전을 하고 원,불,비에 근성에 있어가지고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하세요. 바로 앞에 17장 1절 바로 앞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이 반적을 한 주동자들이 고라이제 고라를 중시한 주동자들을 그냥 땅이 갈라져 가지고 삼켜버리시고, 불을 보내셔 가지고 250명을 태워버리셨어요. 어마어마하게 긴장되는 장면이에요. 이거는 우리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지만, 우리의 삶의 형편을 볼 때에 많은 걸 도전받을 수 있는 것이고, 또 상황이 이렇게 되면 일반 백성들은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더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의 온 회중인 모세와 아론을 또 원망하는 거예요. 민수기 16장 바로 앞에, 그래가지고 무슨 일을 있냐면, 하나님께서 이 화중의 회중들의 이 반역, 그러니까 광야 시대부터 나타났던 이 참 잘못된 DNA 이 원,불,비 여기에 대해서 전염병을 주셔가지고, 심판을 내리셨는데 하루아침에 염병(染病)으로 1만 4,700명이 죽어버렸어요. 바로 앞이에요. 그러면, 그러면 이게 끝인가? 하나님께서는 고라 다단 아비납, 이런 사람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인가? 1만 4,700명을 염병(染病)으로 하루아침에 죽이는 것이 하나님 뜻인가? 그게 아닌 거예요. 근본적으로 그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잘못되어 있는 어떤 원망과 불평과 비난이란 뭡니까? 이 병을 좀 고쳐야 되겠는데, 이 병을 어떻게 고치면 좋겠나, 여기에 안타까운 심정이 담겨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 병을 고쳐야 비상을 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 11장 1절 8절 읽었습니다마는 10절이 중요한데 17장 10절을 다 같이 또박또박 같이
 
*민수기 17:10,
10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 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하나님의 관심은 그들을 죽이고 그들을 무덤에 장사 지내는 것이 하나님의 관심이 아니고, 그들이 더 이상 원,불,비(원망 불평 비난)에 이 잘못된 이 병에 걸려 있는 이 불치의 병에 걸린 이들을 고쳐야 되겠는데, 어떻게 하면 고치겠는가? 오늘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통하여 그걸 고쳐야 되겠다. 그래서 그 아론의 싹 난 지팡이의 기적을 가지고 그들이 나에 대한 내게 대한 뭘 그치고요. 원망을 거치고, 아론과 모세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그 사람들의 그 중심을 아시니까, 그래서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도록 오늘 이 사건을 가지고 은혜를 주신 것이에요. 아무쪼록 우리 속에 있는 많은 부족한 것들이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 마음속에 사람들이 되게 다 어렵잖아요. 다 힘든 부분들이 있어요. 오늘날 우리 이 사회에 만연한 이 사회의 가장 만연한 병이 원,불,비 라면 우리 속에도 그 부부 사이에도. 부모와 자녀 간에도. 교회 내에서도, 수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데 하나님은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으로 이 부활절 날 각자에게 주신 음성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원망을 그치게 한 증거가 뭔가, 그러면 어떻게 원망을 거치게 한 증거를 주시는가? 첫 번째, 레위 지파만 지팡이 이름에다가 아론이라고 이름을 쓰게 했다. 두 번째 뭐라고요? 움이 트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맺혔다.
 
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⓵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⓶움이 돋고 순이 나고 ⓷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하나님께서 각 지파에게 지팡이를 하나씩 가져오게 해가지고 거기다 이름을 다 쓰라고 그랬어요. 유다는 유다 지파 다 쓰게 하고, 레위 지파만 지팡이 이름에다가 아론이라고 이름을 쓰게 했어요. 그 12개 지팡이를, 지팡이를 가져오라고 그러고 그리고 지성서 언약궤 앞에 들어와 밤새도록 언약궤 기 위해서 밤새도록 언약 궤 앞에 있게 했고, 그 지팡이가 보니까 이튿날 보니까 이튿날, 8절에 아까 이튿날 보니까, 첫 번째 뭐가 되고요? 움이 트고 두 번째 뭐라고요? 순이 나고 세 번째 뭐라고요? 꽃이 피어서 그다음 뭐가 됐다고요? 살구 열매가 맺혔다. 이 놀라운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난 거예요. 부활절 용어로 말하면 오늘 부활의 기적과 능력이 임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너무 참 기가 막힌 게 왜? 나머지 11지파의 막대기에는 메마른 거 그냥 그대로 두었는데,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났는가? 왜 그랬을까? 오늘 5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5절에 답이 있습니다. 함께요.
 
*민수기 17:5,
5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
-자, 이해가 됩니까? 우리 속에 기본적으로 어떤 병이 있다고요? 원불비의 병이 있다. 그 원불비의 병을 거치게 하는 것이 뭐라고요? 택한 자의 지팡이에 싹 난 지팡이를 통하여, 오늘 우리가 메마르다고 하는 거, 희망이 없다고 하는 거, 이제 끝이라고 하는 거, 거기에 하나님께서 싹이 나게 하셔가지고 근본적인 저와 여러분의 우리의 근본적인 잘못된 속성을 고쳐주시는 것이에요. 이유를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아론을 선택하시고, 아론을 통해서 일하신 걸 보여준 거예요. 그래서 옛날에 요즘에 있습니다. 옛날에는 우리 한국교회 부모님들이 자녀들 이름 붙일 때 박아론, 김아론 그다음에 정아론 이름이 있죠. 이런 이름들이 있죠? 그리고 또 이게 하필이면 왜 살구나무인가? 살구나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살구 정도가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몬드 나무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에요. 그러니까 희망과 약속을 상징하는 나무에요. 봄의 전령사예요. 지난주에 갑자기 개나리와 진달래가 핀 거 여러분 보셨죠? 우리나라에도 개나리와 진달래가 봄을 알려주는 것처럼, 이스라엘에서는 아몬드 꽃이 봄이 왔음을 말씀하는 거예요. 죽은 것 같은 겨울에 모든 상황이 봄에 꽃피움으로 부활을 나타내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살구나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단어 ‘샤케드’라는 단어는 ‘깨어 있다.’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약속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 한다. 희망이 도래 한다. 그런 뜻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희망 없고 힘들고 어렵고 모든 것이 다 어둠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가끔 강력한 희망의 상징으로 보여주는 것이 뭐냐 하면 이 살구나무였어요.
 
예레미야 시대 때는 눈물의 통곡하는 시대이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눈물로 하나님 앞에서 정말 그 상황 자체가 어려운 시대인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뭐라고 하면, 다 안 된다고 그래 예레미야 1장 11절 12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예레미야 1:11-12,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예레미야야, 슬프냐, 힘드냐, 희망이 없냐? 내가 너에게 증거를 하나 보여주겠다. 그것이 살구나무니라. 그리고 살고 나무를 볼 때마다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는 것, 이스라엘 백성들이 1만 4,700명이 하루아침에 염병으로 죽고 250명이 불타 나가 죽지만, 더 이상 죽지 않도록, 더 이상 원불비에 전염이 돼가지고,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하지 않도록, 살구나무의 씨를 가지고 살구, 살구나무의 싹을 가지고, 살구나무의 꽃을 가지고 살구나무 열매를 맺게 해 주시리라.
 
그리고 출애굽기 25장에 보면 성소에 있는 등대, 항상 불이 어두워 있어요. 항상 어둡죠. 밤에는 깜깜 어둡죠. 어둠을 밝히는 등대, 그 유일한 등대, 어둠을 밝히는 등대를 무슨 꽃 모양으로 만들라 살구꽃 모양으로 만들라. 살구나무는 어려운 시대에 희망이 없던 시대 가운데서 살구나무 그리고 살구나무 열매와 꽃을 가지고 부활의 소망을 주시려고 하는 주님의 목자의 심장이 담겨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살구나무 지팡이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받습니까? 올바른 생명의 씨는 살고 열매를 맺히게 하는 줄로 확신합니다.
 
왜? 다른 지팡이 열한 지팡이 지팡이에는 싹이 전혀 나지 아니하고, 생명도 없고 열매도 맺지 못하는데 왜 아론의 지팡이에는 하룻밤 사이에, 밤새 하룻밤 사이에, 다시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가? 거기에는 하나님이 위로부터 선택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차이가 뭐냐 면요. 생명이 있고, 없고 차이인 줄로 확신하셔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론의 지팡이에는 아론이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셔가지고 위로부터 온 생명의 역사가 그 지팡이에 임하게 된 것이에요.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에게는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 생명의 씨에 대해서 눈이 열리도록 만들어주신 하나님이신 것을 이 부활 주일날 찬양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의 현장은 메마른 막대기예요. 우리의 삶의 현장은 원망과 불평도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삶의 지팡이에 생명의 씨가 있으면, 반드시 우미 돋고 순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자라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생명이 있으면 자라게 돼 있는 것이에요. 어떤 경우에도 이 사실을 여러분들이 약화시키지 말아야만 하는 것이에요. 다시요. 따라가서 생명이 있으면 생명의 씨가 있으면 꽃이 핀다. 열매가 맺힌다. 아멘 생명의 씨가 있으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움이 돋고 그다음에 자라게 되어 있는 거예요. 생명이 있으면 자라게 되어 있는 것이 너무너무 중요한 것은 그러니까 포인트는 이겁니다.
 
삶의 현장에 메마름이 있고, 수많은 원망이 있고, 수많은 아픔이 있고,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염병이 있고 다 있다 할지라도 오늘 신약시대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통한 말씀의 씨와 생명의 씨가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이에요. 우리 주위에 지금 당장은 메마르고, 당장은 어렵고, 당장은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고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 속에 강력한 생명의 씨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에요.
 
오늘 이 말씀을 듣고 그렇습니다. 주님!! 하고 소망도 없고 빛도 없는 어두운 세상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하고 믿고 구하고 하나님께 손을 들면 그 잠재력이 확대되어 가지고 움이 돋고,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이게 너무 중요한 겁니다. 그리고 이 은혜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나 혼자만이 아니라, 이사야 27장 6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는가 너무나 중요한 다 같이 함께요.
 
*이사야 27:6,
6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우리로다.
-오늘 이사야에서 말하는 자 27장에 말하는 이스라엘은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말씀을 믿고 따르고 확신하고 이 말씀을 이 말씀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지면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동일하게 움이 돋고 꽃이 피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이 말씀을 어떻게 우리가 적용하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삶의 지팡이가 생명의 지팡이가 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지팡이가 내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의 시작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어디서 왔냐? 이게요. 모세의 지팡이였다는 거예요. 모세의 지팡이를 아론이 가져가고 거기에다 갖다 놓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 되었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무리한 해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모세의 지팡이가 어떻게 생명의 지팡이가 되고, 어떻게 아론에서 싹 난 지팡이로 변할 수가 있었습니까? 본래 모세는 자기 생업에 지팡이가 있었어요. 자기가 양치는 지팡이가 있는 거예요. 그 양치는 지팡이가 나중에 하나님께서 이 지팡이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라. 여러분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랬을 때 모세의 지팡이가 단순히 모세의 지팡이, 본래 모세는 그 지팡이 양치고 생업을 유지하고 그런 지팡이였어요. 그 지팡이가 출애굽기 4장 20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는가 이렇게 나와 있어요. 같이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4:20,
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할렐루야! 자기가 모세가 양치는 지팡이였어요. 그 지팡이가 무슨 지팡이로 변화되었다고요 하나님의 지팡이로요. Key는 이거예요. 살구나무의 싹이 나고, 원불비를 그치게 하는 생명의 싹이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을 믿고, 부활의 이 귀한 축복을 가지고 고백하고 확신하고 찬양하면, 여러분의 손에 들려 있는 일상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는 것이에요. 내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해 주시는 거예요. 내 삶이 아니라 주님이 내 삶을 이끌어가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이에요. 우리는 우리의 삶의 지팡이, 공부의 지팡이도 있고, 직업의 지팡이도 있고, 가정의 지팡이도 있고, 내 삶에 수많은 지팡이들이 있어요. 그것을 내 것으로만 끝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할 것인가? 모세의 손에 들렸던 그 단순한 지팡이가 아론의 손을 거쳐서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됐는데, 기적의 지팡이가 됐는데, 일상의 지팡이가 기적의 지팡이가 되고, 일상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고, 일상의 지팡이가 생명의 지팡이가 되고,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진 거에요.
 
내 공부가 내 몸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내 사업이 내 사업으로만 끝나지 아니하고, 내 가정에 내 가정으로만 끝나지 아니하고, 이 가정이 하나님의 가정의 지팡이가 되게 하시고, 내 사업이 하나님의 사업의 지팡이가 되게 하시고, 내 공부가 내 공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에, 하나님의 공부에 지팡이가 되게 하시고, 그럴 때 가슴이 뛰는 것이에요. 남들보다 더 큰 지혜를 주시는 것이고, 여러분의 손에 든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손에 든 지팡이가 무엇입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주 “네 손에 든 게 뭐냐?” 너의 일, 너의 공부, 너의 사역, 너의 가정,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야. 너는 사명의 지팡이를 가진 거야. 너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신약 적 해석은 요한복음 6장에 오병이어(五甁)二魚)의 사건을 통하여,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초라한 어린아이 도시락 하나,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지만, 이게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하면 그것이 오병이어(五甁)二魚)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에요ㅣ 축복의 근원이 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에요.
 
제가 우리 교우들 작년부터 ‘2033-50 비전’을 얘기하면 어떤 분들은 아이고야! 아이고야! 이래 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이나 저나 우리가 다 부족하지만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생명의 씨앗이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통하여 기적이 일어날 때, ‘2033-50 비전’을 통하여, 여러분도 살고 우리 교회도 살고 한국교회도 사는 것이에요. 세상에 10년 내로 대한민국의 50%가 예수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강력한 하나님의 지팡이에 대한 하나님의 사역과 꿈에 대한 우리의 간절한 소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주보 안에 여러분들 태신자 카드가 들어있어요. 나는요, 깜짝 놀랐어요. 어저께 저한테 우리 교회 권사님들이 이제 부활 주일을 위하여 준비하는 권사님 팀이 있는데요. 뭐 했어요? 그러니까 목사님 부활절 계란 만들었어요. 그럼 몇 개를 만들었어요? 5천 개? 아니에요. 목사님, 몇 개 만 개 아니에요 몇 개? 아니에요 몇 개를 만들었는데요? 3만 개요. 내 속으로 ‘간도 크다.’ 그렇지만 산더미처럼 있잖아요. 저 밖에서 스쳐 지나려면 지나가세요. 그러나 주님 저 태신자를 향한 저 달걀을 가지고, 뭡니까? 달걀을 가지고(전도용으로 판매함) 우리의 메마른 지팡이가 생명의 지팡이가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시대를 가르는 지팡이가 되게 도와주옵소서. 그래서 여러분의 삶의 지팡이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러분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될 때 여러분의 직업도, 주님이 주인 되어 주시고 가정에도, 주님이 되어 주님 되어 주시고, 우리의 수많은 삶의 어려운 환경들도,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한국에 좀 큰 사업을 하시는 어떤 장로님을 만났어요. 이분이 저한테 이제 간증을 하셨는데, 20몇 년 전에, 20여 년 전에 하루는 그 장로님 그 공장에 불이 났어요. 불이 나가지고요. 완전히 다 타버렸대요. 공장이 근데 이분은 본래 치밀하고 눈빛도 강하시고 철저한 분이었어요.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 좋은 장로님이셨지만 불나기 전까지는요. 눈에 불이 번쩍번쩍 나고 말이 좀 이상하네요. 불나기 전까지는 눈에 불이 번쩍번쩍 나고 그래갖고 직원들이 벌벌벌 떨고 그랬대요. 그리고 눈물을 거의 흘려본 적이 없대요. 그런데 불이 나가지고 완전히 공장이 다 무너지고 완전히 망해놓으니까 이분이 이제 경비실 밖, 경비실 옆에 망한 공장 앞에 있는 경비실 옆에서 어떤 그 옆에 그 벽에서요. 이 장로님이 사장인데 오는데 눈물을, 눈물을 처음으로 처음 울었다는 거야. 그래서 경비원이 ‘아이고 우리 사장님 울 때가 다 있으시네요.’ 그러면서 사장님 하면서 위로했다는 거에요. 경비원이. 근데 이제 이 장로님이 그런 생각이 들었대요. 나는 예수님 잘 믿고, 열심히 하려고 그러는데,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가? 그런데 왜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가? 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갑자기 하나님께서 딱 깨닫게 하시는 건 뭐냐 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나쁜 일이 있겠는가?’ 왜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 그런 원불비죠? 그렇죠.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이 하신 일에 나쁜 일이 있겠는가? 그건 지금 그분의 속에 잠재된 생명의 씨앗이 움트는 것이 맞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나쁜 일 있게 다 하니까 갑자기 막 얼굴이 굳어지고 막 눈물이 나고 그런 상황이 갑자기 얼굴이 평안해지더래요. 얼굴이 막 밝아지더래. 얼굴이 바뀌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은행에 외국인 행장이 그 얼굴을 보면서 장로님이 바뀐 얼굴을 보고 돈을 빌려줬대요. 그래갖고요. 딱 8개월 만에 딱 8개월 만에 완전히 망한 공장을, 8개월 만에 완전히 새롭게 지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지울 수 있냐 그러니까, 불이 나도 터는 그대로 있다는 거예요. 불이나 터는 그대로 있으니까, 기초는 바로 돼 있으니까 그냥 세우기만 하면 된다는 거에요. 매섭고 철저한 성격이 바뀌어 가지고, 밝은 얼굴 가지고 이 풍랑~~ 더 빨리 갑니다. 라고 찬송하고 그리고 본인만 바뀐 게 아니라, 회사 직원들도 바뀌었대요. 그러고 난 다음 8개월 만에 불난 곳을 다시 완전히 다 지어가지고, 그다음부터 사업이 불처럼 일어났대요. 불처럼요. 큰 사업을 해 다시 그분이 그래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에는 절대로 나쁜 것이 없다’. 그럴 때 얼굴이 바뀌고 삶의 환경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불이 나서 완전히 망했지만, 하나님께 전적 위탁하니까 그 생명의 씨앗이 불처럼 일어난 거예요. 그래서 이분이 바뀐 게 뭐냐 하면, 이전에는요 다 똑똑하시니까 설교를 들을 때마다 항상 비판을 했대요. 뭔가 항상 비판했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사건 이후에 20년이 넘도록 설교 시간에 졸은 적이 없대요. 설교 시간 모든 설교가 은혜가 된 거에요. 그리고 이분의 목표가 인생이 바뀌었대요. 목표가 단순함을 주고, 심플, 그래서 그 회사의 모토가 심플 이에요. 심플, 어떤 회사들은 정직, 근면, 성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 사업하자, 이런 거 다 있는데 이번은 단순하게 ‘우리 회사는 단순함을 추구한다.’ 단순한 뭐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창조 질서의 은사가 있으면, 그 창조 질서의 은사대로 나는 봉사하면 된다. 누군지 궁금하시죠? 나중에 주님께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완전히 망한 지팡이가 부활의 지팡이가 된 줄로 믿습니다.
 
제가 하나의 사업을 설명을 드렸는데요. 내일부터 특새가 시작됩니다. 이번 특새의 주제가 뭐죠? 어디 안 써놨습니까? 엘리베이터고, 뭐고 가는 곳마다 써놨는데, “사는 날 동안에 능력이 있으리로다.” 사는 날 동안 어떻게 능력 같습니까? 여러분과 저는 우리 근본적으로 원불비의 인생이에요. 자녀는 자녀들대로, 부모 원망하고 부모는 부모대로 요놈의 자식들을 죽도록 키워놨더니, 요따위로 행하고, 성도는 성도대로 한국교회의 이 가나안 성도들, 왜 가나안 성도라는 말이 되냐고? 가나안 성도들, 나는 교회가 이러이러니까 나는 안 나가 안 나가, 거꾸로가 가나안 아닙니까? 여러분 그거 어떻게 이 병을 어떻게 고칩니까? 오늘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셔가지고, 더 이상 안 죽도록, 더 이상 전염병 안 들도록, 더 이상 땅이 갈라져 죽지 않도록, 아론에서 싹 난 지팡이를 통하여 우리의 지팡이가 생명의 지팡이, 부활의 지팡이, 역사의 지팡이 되도록 만들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오늘 찬송가 각사 가운데 삼위 일체 하나님 찬양할 때, 소망 없고 빛도 없는 어두운 세상을 하나님이 사랑하사 우리에게 오셨고, 예언하신 약속대로 말씀이 오신데, 그리고 2절이 중요해 부활하신 그 아침 밭의 문이 열리고, 죽임 당한 어린 양이 죽음을 이기셨네. 생명의 길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께 오는 자 모두 회복되리. 모두 부활되리.
 
-내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로 바뀌니, 오늘 이 부활의 능력을 저와 여러분이 다 체험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굉장히 신비하게 들려질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이것이 모세의 지팡이가 그렇게 변화되었다고 생각할 때, 우리에게는 무리함이 없는 깨달음과 은혜를 받게 되는 겁니다. 그 지팡이는 홍해를 가르게 되었습니다. 반석에서 샘을 터뜨리게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지팡이가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메마른 여러분들과 저의 삶의 지팡이에 생명의 씨앗이 잠재된 것을 믿으시고, 오늘 이 말씀 그대로 기억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의 모든 원불비가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이런 마음에 아멘만 하면 안 되고, 오늘 3만 개 우리가 달걀을 우리가 앞에 놓고 또 태신자 작정을 하고, 아까 말씀한 대로, 움이 트고,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히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이것이 나 혼자만 있으면 안 되고, 같이 역사를 해야 되는 것이에요. 같이 역사를 해달라고 그래서 주보 안에 태신자 작정 카드가 있죠? 보시고, 하나님 아버지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에 꼭 이분도 인생에 메마른 막대기가 싹이 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생에 메마른 그 삶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태진 작정 카드 기도하시고 쓰고, 그다음에 우리 헌금할 때, 같이 내고 오늘 부활절 헌금도 소중합니다마는 그 이상으로 새 생명 축제 태신자 작정까지도 오늘 부활절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 되게 될 것입니다.
 
♣요약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원망과 불평과 비난의 병을 치료받는 자들이 다 되어, 나의 지팡이의 생명의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나의 삶의 지팡이에 이제 메마른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을 믿고, 지금은 바싹 마른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 안에 생명의 씨의 거룩한 잠재력이 사명의 지팡이로 꽃이 피어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구하고, 특별히 나의 인생, 나의 직업, 나의 공부의 지팡이, 나의 모든 삶의 지팡이가 살아있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특새에서 간구해야 한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글로벌 봄 특별 부흥회를 통하여 ‘사는 날 동안 이 능력을 체험’하는 자가 되어서, 다시 한 번 나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수 있도록 충만한 은혜를 소망하며, 복음의 씨앗을 심는 특새가 되고, 우리의 사명인 지상명령을 순명하는 자가 되어 주님의 기뻐하시는 자녀로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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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3월 17일)
제목: "하나님의 자비로-(My Mercy)"
말씀: 로마서 12:1-2
대표기도: 고영민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1-3부
설교자: 브라이언 채플 목사님(미국 커버넌트신학교 총장, 현 미국PCA교단 총무):1-3부
-통역: 정상익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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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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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예배 :
제목: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Overflowing with hope)
말씀: 로마서 15:8-13
대표기도: 김정현 권사님
사회: 임상규 부목사님(4부)

설교자: 덕 버셀 목사님(전 로잔국제 총재)-통역: 김인기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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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5:8-13,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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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버셀 목사님(전 로잔국제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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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채플 목사님-통역: 정상익 부목사님.
-안녕하세요!.
여러분과 다시 한 번 함께할 수 있어서 참 기쁩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사랑의 교회를 방문했을 때는 굉장히 지하 밑에 깊은 구멍이 계셨던 걸로 기억을 해요. 그런데 이제는 교회 건물조차도 하늘 위로 솟아오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전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계시는 사랑하는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아주 깊은 사랑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세요. 여러분의 담임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는 것을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담임 목사님이 그러신 것처럼 저도 여러분을 오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많은 분들께서 이 로마서 말씀을 잘 알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게 됐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한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는데요. 여러분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을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어요. 생각한다면 어떤 지역이 떠오르시겠습니까? 아마 중동 지역일 거예요. 굉장한 어두움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리고 많은 고통이 있는 지역이죠. 그리고 많은 아픔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전 세계가 중동에서 전쟁이 시작돼서 전 세계로 퍼져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제가 소속돼 있는 우리 국가에 있는 많은 분들이 뉴스를 통해서 굉장히 내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중동에서 과연 선한 것이 나올 수 있을까? 다들 이렇게 생각을 하죠. 그런데 이 기독교 뉴스 저널리스트가 이런 대답을 합니다. 이렇게 글을 적었어요.

최근 몇 년 동안에 많은 무슬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어서, 정말 많은 사역 단체들이 이 이집트 신문에 이런 광고를 적고 있습니다. 광고 문구를 통해 이런 질문을 던지는데요. 꿈에서 흰 옷을 입은 그 사람을 보셨습니까? 라는 질문을 이 광고를 통해 하고 있습니다. 질문은 이 중동 국가에 있는 수많은 정말 많은 무슬림들이 동일하게 경험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질문입니다. 수 천 수만의 달하는 이 무슬림들이 동일한 꿈을 꾸고 있어요. 그들의 꿈 안에서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는 현상이 일어난 겁니다. 그 흰 옷 입은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라고 꿈 안에서 이야기하는 걸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거예요. 그리고 그 수많은 무슬림들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께 한 가지를 고백하고 싶어요. 저는 이 현상에 대해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전문 영역이 아니라서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근데 이 사실 하나는 명확히 알고 있어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놀라운 자이를 드러낸 것이라고요. 이 어둠 가운데서 그리고 고통, 그리고 그 부끄러움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늘 복음이 해왔던 바입니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계속 계속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교회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란에 있습니다. 굉장히 놀라운 사실이죠. 그렇죠? 사실 불가능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거기에 있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결국 지하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가 계속해서 성장하는 걸 보면, 고통과 부끄러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고 계신 겁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가 임함. 여러분이 이 이야기를 잘 아실 거예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이 선교사 토마스께서 이 한국 땅에 성경책을 들고 오신 분이죠. 토마스 선교사가 성경책을 들고 왔을 때 그 성경책을 들고 그곳에서 순교하게 됐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 땅에 어둠과 고통과 그리고 부끄러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기서 일을 멈추시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이 이곳에서 흥왕(興旺)하게 돼서 그리고 여러분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그 자비의 증거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이 늘 일하시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 앞에 바로 서게 된다면 이거 정말 잘못됐어요! 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정말 수많은 어둠 가운데서, 그리고 정말 큰 고통 가운데서, 그 어둠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며 그 자이를 보여주고 계신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전하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읽은 이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 11장에 걸쳐서 바울은 이 세상 가운데 임한 어두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아담이 처음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타락(墮落)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어두움과 고통과 부끄러움이 이 땅 가운데 임했다고 이야기를 하죠. 우리 주님께서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에 복음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바울이야말로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어둠을 통해서 그 경험을 통해서 복음이 어떻게 전해졌는지를 이야기를 하죠. 이 바울이 자기 자신의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을 가지고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저는 하지 않았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에 대한 답을 여러분들은 알고 계시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야말로 이 말씀에 설득이 되었다. 라고,,, 이 죽음이든 생명이든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또 사망이나 생명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그리스도의 그 사랑 안에 있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끊을 수 없다.” 고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보여주신 놀라운 자비(慈悲)입니다. 우리 삶의 어둠으로부터 이 자이가 흘러들어오는 것을 봅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고통이 있고 부끄러움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자비가 임하는 것입니다. 근데 우리가 받은 이 자비를 가지고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이 장식장에다 그저 올려놓고 ‘아, 멋있다!’ 하고 바라보면 되는 걸까요? 사도바울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자비를 우리의 동기로 바꿔야 된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12장을 이렇게 사도바울이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이 12장 1절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한다.

*로마서 12:1,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을 권합니다. 여러분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여러분, 이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바의 이 힘과 능력을 이 미가가 이야기한 거를 통해서만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사도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했다면 ‘여러분이 느끼는 죄책감으로 여러분을 권합니다.’ 라고,,, 아니면 이렇게 ‘너희가 실패하는 그 경험을 통해서 너희를 권하노니.’ 라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을 권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야말로 우리 삶의 동기가 되어야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여러분이 머릿속으로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고 계 여러분 가슴으로 느끼기에는 어려움을 겪으실 수 있어요. 특히, 여러분이 저처럼 이 교회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된 그렇게 자라나게 된 사람이라면 더 그러실 것 같아요.

제가 이 주일 학교에서 자라나면서 한 가지 클럽을 들었었는데요. 제가 함께하게 된 그 클럽이 소속되어 있는 단체가 ‘성경암송 협회’라 불리는 미국에 있는 협회입니다. 그 협회에 소속되어 있었어요. 성경 말씀을 어느 정도 암송하게 되면 선물을 받게 됐습니다. 제가 성경 말씀을 많이 외워서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그 십자가 모형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근데 그것이 제 마음 가운데 어떤 영향을 끼치는 걸 깨닫게 됐어요. 하나님을 섬기면서 선물을 받게 되면요. 하나님께서 내가 했던 일에 대 일을 통해서 나에게 무언가를 주신다는 그런 동기를 가지게 됩니다. 제가 열심히 성경 말씀을 암송했지만 그 암송한 말씀조차도 제 마음 가운데 심어진 건 아니었어요. 제가 이 로마서12장 1-2절에서 말씀을 통해서,

*로마서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제 가슴으로 깨닫게 되는 바를 한번 말씀드려볼게요. 여러분을 권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을 권합니다. 여러분의 이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드려야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좋게 여기시는 그런 존재가 될 겁니다. 라고요. 성경 말씀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보통 우리가 가슴으로 ‘너 정말 거룩한 좋은 선한 제물이 돼야 돼!. 그래야 네가 거룩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존재가 될 수 있어,’ 성경 말씀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거룩히 여기신다는 것이 여러분이 미래에 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거룩하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지금 바로 지금의 모습을 하나님이 이미 선포하신 겁니다. 여러분은 이미 거룩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에 굉장히 어려워합니다. 나는 거룩하지 않아. 나는 내가 지은 죄를 아는데 그리고 내 약점도 난 너무 잘 알아, 어떻게 나 같은 존재가 거룩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 될 수 있을까? 여러분 이 말씀이 시작하는 포인트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여러분을 권합니다. 무엇으로요?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요. 이 사도바울은 이미 지난 11장에 걸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명확히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존재로 만드신 겁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이 예수님의 자비가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오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우리가 거룩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존재라고 선포하시는 거죠. 이것이야말로 이 하나님의 자비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했던 어떤 일들을 통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일이 일어나게 된 거예요.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를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쁨을 드리고 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끔 만드는 그런 자비이죠.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를 축복하사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끔 만듭니다.

여러분, 그 하나님의 자비가 여러분을 얼마나 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한번 잠시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랑하는 오정현 담임 목사님 사모님의 친구인 제 아내를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제 아내를 정말 존경합니다. 굉장히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저의 자녀들이나 또는 저의 손자들을 대할 때 손녀, 손자들을 대할 때, 정말 끝없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자비가 자꾸 자꾸 떨어질 때 제 아내는 여전히 자비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걸 보죠. 그런데 제 아내가 가지고 있는 그 따뜻한 마음이 때로는 제 아내를 어렵게 만드는 걸 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제 손자들 중에 한 명이 잘못 행동하는 걸 볼 때, 제 아내가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내가 조금 더 나은 엄마였다면, 내 자녀들이 좀 더 나은 부모가 됐을 텐데,,, 내가 내 자녀들을 조금만 더 잘 양육했다면 내 손주들이 이렇게 되지 않을 텐데,,, 그리고 이 한 수십 년 전에 했던 실수를 다시 떠올리는 겁니다. 그럴 때 갑자기 그 고통과 부끄러움이 제 아내를 덮는 거를 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그 슬픔에 골짜기로 들어가는 걸 보죠. 어떻게 제 아내의 마음을 좀 더 낫게 만들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할 때,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제 아내가 젊은 어떤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나는 이 굉장히 기억하기 싫은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가득 찬 캐비넷에 가지 않아요. 정말 내가 이 캐비넷을 열 수 있는 한 가지 열쇠를 들고 있지 않다면 그 캐비넷을 절대 열지 않습니다. 이 열쇠는 하나님의 자비라고 불리는 열쇠예요. 하나님이 얼마나 나에게 자비로우셨는지 몰라요. 어둠으로부터 또 고통으로부터 부끄러움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비를 보여주셨습니다. 이 메시지는 단순히 제 아내가 젊은 엄마에게 전해주는 그런 메시지는 아닙니다. 이 메시지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교회 지도자들도 동일한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하죠. 우리 오정현 담임 목사님과 제가 함께 하는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알렉산더 화이트라는 이 알렉산더 화이트라는 목사님은 스코틀랜드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역자였습니다. 굉장히 비극적인 일이 이 화이트 목사님이 계시던 동네에 일어났어요. 그래서 화이트 목사님의 이 집에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비극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요. 계획을 세우고 나서 모두가 이 집을 떠나게 됐는데요. 한 분의 나이가 더 많은 사역자가 그 자리에 남게 됐습니다. 그 연로한 사역자가 그 집을 떠나지 않고 계속 기다리고 있는 걸 봤어요. 사역자께서 화이트 목사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그냥 마치 지나가는 농담처럼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데요.

“화이트 목사님, 저 같은 오래된 죄인을 향한 말씀이 혹시 있으세요?” 화이트 목사님은 이후에 이 일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한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고요... 굉장히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셨던 성인과 같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연로한 사역자가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시선을 완전히 잃어버린거에요. 화이트 목사님이 이렇게 기억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나는 이분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랐어요. 그때 화이트 목사님이 이 질문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방을 건너서 그 연로한 사역자가 있는 곳을 직접 걸어가서 그분의 손을 잡았습니다. 제가 당신을 위로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말밖에 해드릴 게 없을 것 같아요. 우리는 자비를 기뻐하시는 그분을 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이 화이트 목사님이 하셨던 말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구약의 미가 선지자가 했었던 말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자비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이상으로 더 이야기한 건 없어 그 이후에 이 화이트 목사님과 대화를 나눴던 연로한 사역자가 그런데 그다음 날 전보가 전해졌어요. 이렇게 그 연로한 사역자가 화이트 목사님께 편지를 보낸 겁니다.

*화이트 목사님, 어제 저에게 전해주신 말씀이 제 영혼의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희망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당신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다음에 혹시 사탄이 저에게 ‘너 이런 죄를 지었잖아!’ 하고 죄를 제 얼굴에 던진다면 제가 사탄에게 이렇게 반박하겠어요. ‘그래 맞아 내가 지은 죄 맞아, 너 사실 모르는 거야, 더 중요한 사실을 네가 하나 알 게 있어. 나에게 자비를 보여주시는 그분을 나는 따른다.’,,, 고 저도 그렇고요.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우리야말로 우리에게 자비를 보여주시고 기뻐하시는 그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능력이죠.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는 방법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우리에게 능력이 되는 바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비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자비로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해 주십니다. 그 자비로 우리에게 힘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비로, 하나님의 자비로, 하나님의 자비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더 아름답게 만들도록,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더 튼튼해지게 만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왜 섬기십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가 하나님의 자비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야말로 그 자비로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자비에 감사를 올려드립시다. 아멘

♣요약.
예수님의 자비의 물결로 전쟁의 어둠과 고통과 부끄러움을 덮어주실 때, 억압과 고난의 땅에서 수천수만의 영혼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올 줄 믿고, 하나님의 자비로 우리의 죄와 실패와 결점을 용서받고 오직 자비의 복음으로 우리의 마음과 주님의 교회를 강력하게 세워가야 한다. 우리의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제22차 글로벌 특새로 달려 나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우리나라를 덮어주시고 구원주시는 주님의 기쁜 지도자로 인도해 주시길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놀라운 자비를 본받아서 우리가 달성했던 바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님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그 자비로 덮어진 우리가 주님 앞에 서야 하며,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늘 기억하여, 우리의 거룩은 우리가 잘하고 애써서 생긴 거룩보다도, 주님의 거룩 때문에 주어진 은혜이고 축복이라는 것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도 고통과 어려움 중에 있는 자들이 최고의 열쇠를 가졌음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열쇠를 주신 주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오정현 담임목사님.
이제 교단 총무님이세요. 그래서 세계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치시고 또 1 2 3부 설교하시고, 4부는 또 덕 버셀, 전 로젠 총재께서 설교하시고 하여튼 오늘 우리 교회가 축복이 많은 줄로 믿습니다. 저는 너무 고마운 게 탓이요. 내가 설교 안 하고 오늘 설교 듣는 사실이 좋습니다. 우리 교회가 한국교회가 여러분들이 바로 가면 이 민족이 바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중요한 메시지 기억나시죠? ‘우리의 거룩은 우리가 막 잘하고 애써서 생긴 거룩 보다도 주님의 거룩 때문에 주어진 은혜이기 때문에 축복이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오늘도 고통과 어려움 중에 계신 여러분들이 최고의 열쇠를 가졌는데 그 열쇠가 뭡니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열쇠를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17일이에요. 이제 봄이 시작되는데, 다시 한 번 ’은혜의 봄 동산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이번 봄에 모두가 다 은혜의 봄 동산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계속해서 우리 토요일 일요일 새벽 예배 토요일 날, 은혜가운데 지금 잘 감당하고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사명과 기적과 간절함의 지팡이를 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응답으로 채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번 토요일 날 기대하고 나오시고 그다음 다음 주일에는 학습과 세례식, 입교 한 300여 명의 우리 학습 세례를 받게 되는데, 큰 우리 교회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감사드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4월 1일부터 4월 6일 한 일주일 동안 우리 봄 글로벌 특별히 새벽 봉인데 본래 우리 3월 한 중순 하순 이렇게 하는데, 올해는 한 2~3주 늦춘 이유가 4월 10일, 우리 선거를 앞에 놓고 우리 교회의 기도가 이 민족의 방향을 바꾸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교회 성도들 매일 새벽마다 수만 명이 모여서 기도할 때, 또 전 세계적으로 들어와서 많은 분들이 기도할 때 한국에 또 한 천여 교회 지방 교회들 같이 참여하고 그럴 때 우리의 기도가 이 민족의 장래를 결정하는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본 글로벌 특별 세계 부흥회에 이번 국내 강사님들 나를 애국 애족을 하는 박명수 목사님, 또 이용기 교수님, 그다음에 미국에서 우리 강주민 목사님, 여러분 잘 아시죠? 강주민 목사님도 이틀 동안 하시고, 또 최병 목사님, 이렇게 해서 이분하고 또 브라이언 체플 목사님, 또 제이미 듀 또 크리찬 소니아, 필리블라이큰 오스니 지니스 미첼리 여러분들이 또 글로벌로 들어오셔 가지고 같이 이렇게 메시지를 전하게 되는데, 너무 감사하고 하여튼 제가 우리 브라인 채플 목사님 십 이년 만에 뵙는데요. 목사님들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서 드셨어요. 하여튼 우리가 다 나이가 들어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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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예배 :
제목: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Overflowing with hope)
말씀: 로마서 15:8-13
대표기도: 김정현 권사님
사회: 임상규 부목사님(4부)

설교자: 덕 버셀 목사님(전 로잔국제 총재)-통역: 김인기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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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5:8-13,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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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버셀 목사님(전 로잔국제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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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의 주제는 로마서 15장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바로 소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모인 이 자리에서 저의 기도 제목은 우리 모든 사랑의 교회 위해 성도님의 삶 가운데 소망이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오늘 이 날이야말로 주일이 바로 이 한 주의 첫 시작인데요. 그리고 이 날이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 이 자리에 모든 성도님들께 가장 큰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그리고 이 자리에 제가 다시 오게 돼서 너무나 기쁩니다. 제가 이 사랑의 교회를 너무나 사랑하는데요. 저는 사실 사랑의 교회에 올 때마다 참 명예직을 받은 사람이구나! 라는 마음을 많이 느낍니다. 제가 사실 사랑을 성도님들 아무도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그리고 저랑 개인적으로 만남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됨을 그러고 이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심을 저는 느낍니다. 그리고 여러분 옆에도 앉아 계시고요. 그리고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이름을 한 분 한 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모든 우리의 일생을 아시는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이야말로 어마어마한 선물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지금 이 시각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기를 사망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과 그냥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다는 것 이상인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아시듯이 저는 사실 여러분들의 친척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한국의 가장 유명한 섬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데요. 혹시 여기에 이 씨 성을 가진 분들 계십니까? 이 씨 성을 가진 분들 계십니까? 이 씨 성을 가진 모든 분들은 저와 한 가족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3명의 저희 자녀들이 있는데요. 첫 번째 딸이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정말 너무나 멋진 청년이고요. 프리스턴에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버드 로스쿨을 나왔습니다. 아주 똑똑한 우리 사위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정말로 우리 사위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따르는 자입니다. 저의 딸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제 딸을 너무나 사랑하고, 제 아내도 장모님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딸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기 아내와 그리고 저의 장모인 저의 아내를 사랑합니다. 제 딸을 사랑하고요. 그리고 이제는 자식을 낳아서 자녀들도 사랑하는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과 한 가족이 됨을 너무나 큰 축복으로 여깁니다.

특별히 사랑의 교회는 많은 게스트 우리 목사님들께서 오시는데요. 여기에 초청받은 목사로서, 이 자리에서 설교한다는 것이 얼마나 저에게 영광스러운 일인지 말로 형언할 수 없습니다. 먼저 이 사랑의 교회의 어마어마한 장엄함과 영광스러움에 큰 감동을 느낍니다. 우리 성가대의 아름다운 또 찬양에도 너무나 큰 감동을 받고 정말 천사들이 찬양하는 것 같은 그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말 천국을 더 사모하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매 예배 시간마다 이 모든 자리에 정말로 성도님들이 함께하심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특별히 성도님들이 이 자리에 꽉 차 있는 모습은 저에게 미국인으로서 너무나 큰 격려를 줄 뿐 아니라, 선교사로서, 특별히 제가 일본에서 20년을 선교사로 지냈는데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앉아주실 분들이 꽉 차 있는 모습이 저에게 너무나 큰 감동과 격려를 줍니다. 제 아버지는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도 목사님이셨습니다. 아버지도 목사님이 그 아버지도 목사님이셨습니다. 저는 자라면서 정말 교회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저희 교회에 많은 귀한 설교자 분들께서 오셨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갈 때 저의 꿈이 있었습니다. 제가 정말로 신학교를 다니면서 가졌던 꿈은 내가 나중에 나이가 들면, 천 명을 목회하는 교회를 섬기는 담임 목사가 되고 싶다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전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저의 그냥 단순한 자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24살에 그 꿈을 가진 어린이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카고 제가 자란 곳에서 저는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하나님께서 일본에서 저는 교회를 개척하는 사역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저는 30살이 되었습니다. 제가 30살이 된 그날 주일, 제가 설교를 하고 있었을 때, 제가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고 제가 어떠한 오버를 하는 것이 아니고요. 허풍을 떨거나 제가 어떠한 저의 자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면서 숫자를 세는 것을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하면서도 사실 수학 공식을 머릿속에 풀 수 있습니다. 천 명을 목회하는 이 교회를 꿈꾸고 있었을 때, 제가 30살이었을 때, 제가 설교를 하면서 사람 숫자를 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988명이 천 명에서 부족한 것을 제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12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12명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저의 리더십 아래 그 교회는 15명으로 시작했는데, 12명으로 끝나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교회의 성장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거를 교회의 성장이 아닌, 그러나 저는 주님 안의 소망이 있습니다.

저는 하박국 선지자를 참 좋아합니다. 외양간은 송아지가 없고, 정말 양떼가 없고, 아무 정말 가축도 없고 아무 과실도 없을지라도, 그러나 나는 예수 그리스도 주 하나로 말미암아 나는 기뻐하리로다. 정말 그 하박국의 기쁨은 이곳이 아닌 정말 더욱 높은 고차원적인 레벨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40년 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제가 30살이었었습니다. 이제는 저는 74를 맞이했습니다. 정말로 여러 가지 광야를 저는 거쳤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야말로 약속의 땅에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자리에 이 약속의 땅에 우리 사랑하는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정말 주님의 임재 안에서, 주님의 천국을 맛보며, 우리의 상황이 어떻든 상관없이, 정말 교회가 크던 작던 우리 삶에서 성공을 직감한 실패를 체험했던, 우리가 기쁨을 체험했던, 환란을 체험했던,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인 줄 믿습니다. 정말로 소망을 채워주시는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님들에게 소망을 부어주시는 분을 믿습니다. 저에게 할 말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 지금 사실 아무것도 없이 다시 저에게 주신 그게 얻는 내용이었어요. 이제부터 메시지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인트로를 소개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으로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을 충만케 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소망이 삶 가운데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정말로 소망이 우리 삶 가운데 차고 넘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자리에 정말 소망이라는 이 작은 인공눈물방울을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소망이라는 사이즈에 이 물 컵에 담긴 정말 이 정도의 소망만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 소방차를 끌고 오셨습니다. 소방차 소방 호스로 정말 우리에게 소망을 부어주시는 분입니다. 정말로 생명의 강으로, 우리 모인 모든 분들은 우리 장로교 교인들인데요. 정말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교단이 어떠하듯이 내일의 삶에서 소망이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오늘 사랑 계신 성도님께 한 가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의 마음에 기쁨과 평안과 소망이 충만하십니까? 정말로 마음 가운데 기쁨과 평강으로 충만하십니까? 만일 그러시다면 그거는 초자연 그거는 기적입니다. 그거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오늘 이 시간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소망이 없다면 이로 해야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거를 우리도 놓치고 있는지 모릅니다. 만일 오늘 이 자리에 오셨는데 정말 삶 가운데서 마음 가는 소망으로 충만하지 않으시다면, 어떠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체험하고 계시다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성도님들은 혼자가 아니고, 성도님들은 우리와 함께하는 영 가족임을 믿습니다. 이 시간 요한복음 16장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듣는 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정말 끝까지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6:33,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염려 가운데 살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로마서 5장 1절에서 5절에 사도 바울이 하는 말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5:1-5,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의 마음이 메마르시다면 감정적으로 메말라 버리셨다면, 영적 저수지가 비어 있으시다면, 오늘 이 시간, 그리고 매일 아침,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마음과 삶을 넘칠 정도로 차고 넘치는 소망으로 채우시길 원하시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정말로 소망으로 채우시길 바랍니다. 정말로 소망으로 우리 삶을 충만케 하시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 가운데 스스로에게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때, 우리의 상황을 되돌아볼 때,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그러나 하나님 말씀과 내 마음의 소리를 같이 듣고 있는 분이 계신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우리는 시편 42편에, 다윗이 스스로에게 했던 말을 우리가 다시 한 번 보길 원합니다. 다윗이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시편 42:11,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다른 말로 하면 나의 문제가 무엇이며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내 문제가 무엇인지? 다윗이 물었습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고 있는가!’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고 있는가! 다음 장면으로 가져오기 전에 잠깐 한마디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 감사드린 것은 사랑의 교회가 소망의 근간(根幹)이 됨을 감사드립니다. 그냥 이 사랑의 교회뿐만 아니라, 특별히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교회들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유럽에 있는 교회들의 감사 그리고 전 세계 교회들을 감사드립니다. 조금 전, 오정현 담임 목사님과 식사를 하면서 곧 올해에 7천여 명의 목사님들을 초대하는 컨퍼런스 한교섬(한국교회섬김)이 있을 거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한국교회 섬김의 날’이야말로 정말 사랑이가 받은 축복을 더블 링하고 더 많은 축복을 누리게 됨을 믿습니다.

-지난주에 제가 로잔 대회 관련하여서 제가 일본에서 많은 젊은 리더 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마지막 끝나고 Q&A 세션을 가졌었습니다. 그리고 Q&A 세션을 가지는 와중에 어떠한 자매가 저에게 왔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저 스스로가 제 아버지가 목사님이라고 얘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와서 그 자매가 말하길 자기 아버지도 목사님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기 아버지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로 교회를 사랑하고 있지만, 아무 부교역자도 없고, 작은 교회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섬기시는데, 성장도 안하고 있답니다. 정말로 힘겨운 가운데 아버지가 계심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딸이 말합니다. 아버지가 너무나 큰 욕을 많이 먹고 있다고요.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은 일이 없다고 딸이 이야기 했습니다. 그 자매는 정말 교인으로부터 단 한 번도 우리 아버지가 감사의 인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자매님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친구 분이 같이 있었는데요. 친구 분도 같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왔던 친구 분의 아버지도 목사님이신데, 정말 작은 교회의 목사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 자매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두 자매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여러분들의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위로해 달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하나님께서 자매님들과 그리고 아버지를 사랑하신 걸 꼭 알라고 일러주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위해 섬기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천국에 예비 된 상급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제가 전해주었습니다. 정말로 큰 상급입니다. 정말로 이 사랑의 교회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교회입니다.

다시 한 번 시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이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내 영혼을 어찌 낙심하며’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이시라.’ 이것이야말로 마르지 않는 생수의 원천임을 믿습니다. 정말로 강력한 물살이며, 아주 깨끗한 물의 호수이며, 고요한 물결의 평화와 희망이 소리를 내는 샘물임을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소망이란 무엇일까요? 소망이라는 단어를 얘기할 때마다, 아마 불확실성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러나 성경은 소망이란, 불확실성이 아닌 확실성이라 말하죠.

저는 보스톤 셀틱스의 농구팀의 팬인데요. 셀틱스가 챔피언십에서 이기기를 전합니다. 정말로요. 그러나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망합니다. 제 손자들이 좋은 대학에 붙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제 딸이 참 똑똑한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저희 전략이었습니다. 특별히 미국, 제 조국이 주님 안에서 자유 한 나라로 있기를 소망합니다. 정말로 소망합니다. 그러나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성경에서 말하는 소망이란, 불확실성이 아 정말로 확실한 믿음입니다. 정말로 확실한 미래입니다. 나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노라. 나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분명히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도님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계획이 있습니다. 정말 우리 모두에게 밝은 미래를 가지고 계십니다. 정말로 놀랍게도 제 친구, 우리 브라이언 박사님께서 1부부터 3부 예배 때까지 로마서 12장을 가지고 강의를 했습니다. 정말 12장을 가지고 강의 하셨는데요. 정말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는 신학적으로 굉장히 묵직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정말로 최고의 신학의 책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 모두는 로마서의 신학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로마서 12장부터 15장까지는 묵직한 어떠한 신학적인 용어들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우리에게 적용이 가능한 이야기를 12장부터 15장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브라이언 박사님이 첫 번째 나오셨고, 저는 마지막 부분에 다룹니다. 근데 사실 우리 서로는 이 자리에 있을지 몰랐습니다. 정말 성령님께서 우리 두 사람을 이 자리에 불러주신 것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아직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조금만 더 우리가 이야기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로마서에서는 우리 모두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가 있습니다. 정말로 사도바울은 확신을 가지고 시작을 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정말로 사도 바울은 이 복음에 대해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정말로 이 복음이 오히려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면 부끄러웠을 겁니다. 사도바울은 이 복음이 정말 진실인 것을 알았습니다. 정말로 이 복음은 진실입니다. 정말로 이 복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서 정죄와 칭의와 성화에 대해 나열을 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마지막 우리 9장으로 오게 됩니다. 바로 로마서 15장입니다. 그리고 13절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모든 신학을 다 가르친 후에 모든 기독교적인 조언들 이후에, 그리고 15장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가려고 이제 18살 때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부르시고 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이제 나이가 들어서 아버지 했던 걸 생각해 보니까, 아버지가 정말 이 말을 오랫동안 생각하셨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일 날 오후였는데요. 전 18살이었습니다. 대학을 갈 일만 남았습니다. 제 친구가 저녁 먹을 시간에 저희 집 앞에 주차를 하고, 그리고 우리가 같이 이제 시카고로 가서, 저는 이제 위튼 칼리지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가 그때 제 방에 들어오셔서, 아버지의 얼굴에 슬픔과 기쁨을 같이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장남입니다. 저에게 두 명의 어린 동생이 있고 그리고 누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래야 첫 번째로 제 아버지가 저를 안아주시고,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정말로 기독교적인 크리스천 신사가 되거라.” 그 말은 정말 5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 마음과 제 머릿속에 있습니다. 정말로 그러나 아버지는 제가 태어난 그날부터 이 말씀을 마음에 두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하나님 아버지, 이 아이가 주님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정말로 이 아이가 주님을 위해 일한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아이가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신사가 되길 원합니다.

사도 바울의 마지막 말은,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저는 이 생각을 몇 가지 정리하고 싶습니다.

보스턴에서 기독교 컨벤션이 있었습니다. 500명의 크리스천 학생들이 그 자리에 모여 있었었는데요. 그는 그 자리에서 많은 이 강사 분들께서 불안과 염려에 대해서 강의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제가 저희 자녀들에게 말했습니다. 제 자녀 세 명이 다 교수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학생들과 매일 만납니다. 그래서 제가 자녀들에게 묻습니다. 정말로 너희들 학생들도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나? 그리고 그들이 핸드폰을 꺼내고 그리고 학생들에게 받은 메시지들을 저에게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오후에 강의를 올 수 없고, 오늘 SE도 낼 수 없습니다. 제가 저의 두려움을 인하여 굳어버렸습니다. 제가 염려로 인하여 일을 못 하게 됐습니다. 이런 메시지들이었는데, 저는 생각하기는 정말 이 문제들이 젊은 층에만 일어나는 것인가? 그리고 얼마 후에 저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이러한 글을 읽었습니다. 가장 위대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들이었는데요. 다보스 세계 경제포럼에서는 불안과 우울증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1순위 원인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것을 바로 불안과 우울증의 그들을 위협하는 건강의 순위라고 그들은 얘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는 너희가 소망으로 충만하기를 원하노라.’

뉴욕에서 제 손자와 최근에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손자들이 잠에 들 때, 제 딸이 우리 손자들에게 가서 교리 문답을 읽어주었습니다. 11살부터 우리 3명의 우리 손자들이 한 아파트 안에서 같이 살고 있었는데요. 그리고 그들의 엄마의 제 딸인 그들의 엄마가 이 바로 질문들을 읽어줬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질문을 읽어주었습니다. 삶과 죽음에서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무엇이니? 그리고 3명의 제 손주들이 이 대답을 하였습니다. ‘어머니,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어머니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셨고 이 마음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그 우리를 위한 피난처를 확보하셨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내게 힘을 주시고,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시고, 나의 소망은 주님께 있습니다. 어머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있기에 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삶을 소망으로 충만케 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사용하시길 원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아멘.

♣요약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계시하신 소망의 하나님께 두어야 하는 것은 소망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고난 가운데에서도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면 진정한 기쁨과 평강을 얻을 수 있으며 내적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소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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