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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2월 10일)
제목: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의 초대"
말씀: 마태복음 11:25~30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강도사님), 영광찬양대-'사랑이 예 오셨네'
대표기도: 윤주은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김지찬 목사님(총신대학 신학대학원 교수)
ㅡㅡㅡㅡㅡ

*마태복음 11:25~30,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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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낭독한 본문은 주일 예배를 드릴 때 예배를 추천의 본문으로 자주 사용되는 구절입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듣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 해석자들은 이 구절이 공관복음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려고 하면 해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첫째,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라고 했는데 그러면 무엇을 수고하고 어떤 무거움 을 진자들은 이야기하는가?
둘째, 주님께서는 내가 쉬게 해주리라. 라고 하시고 내 멍에를 메라고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셋째, 주님께서는 나의 먹매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시면서 나는 마음이 우유하고 겸손함이라. 라고 했는데, 그런 온유와 겸손은 예수님의 마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이렇게 이 본문은 쉬워 보이지만 막상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하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세상의 슬기로운 학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은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빈 그릇이고, 그 안에 무엇이든지 채워 넣으면 되는 그런 말씀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구체적인 내용이 없이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앞에 25절에서,
‘천지의 주제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1:25,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에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의 태도를 버리고, 어린 아이들처럼 단순하게 주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들으면 영혼의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 복된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첫 번째 질문,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여기에 수고하다. 라고 하는 동의어는 헬라어로 ‘코피아오’입니다. 우리 한글로 코피나오!, 굉장히 비슷하기 때문에 코피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이 ‘코피아오’ 라는 동사는 신약 성경에서는 ‘일상적인 삶의 노동’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특별히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하는 자들의 일상적인 육체적 ‘노동’을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6장 28절에 보면,

*마태복음 6:28,
28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둘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라고 한 걸 보면, 농부가 씨앗을 뿌리고 거두는 노동의 수고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5장 5장 5절을 보면,

*누가복음 5:5,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이라고 했는데, 여기에 수고하였으되. 라고 하는 동사는 어부들의 고기를 낚는 육체노동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수고하다. 수고하고. 라고 할 때 이 동사가 현재 분사형으로 쓰였기 때문에 현재 분사는 지속적인 일상적인 행동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수고하는 자들이란 매일같이 일상적인 삶의 요구를 요구로 애쓰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 후에는 이마에 땀을 흘리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며 수고하는 존재고, 이것이 일상적인 인간의 삶의 방식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고기를 낚기 위해 밤새 수고하는 어부들과 같습니다.

특별히 요즘 젊은 세대는 밤새 컴퓨터와 핸드폰을 켜놓고, 비트코인이나 암호 화폐를 사고파느라 밤을 새며 수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매일같이 지속적으로 수고한 결과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무거운 짐을 진 자, 라는 것은 짐을 싣다. 는 동사의 완료 수동 분사 형태인데, 이미 완료된 행동에 결과로 현재 존재하게 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매일같이 반복되는 수고로운 행동으로 인해 현재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의 상태가 되었다. 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그러면 그렇게 만든 것인가요? 어떤 학자들은 말로 쓰던 OO형으로 이해하여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운 자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짐을 지운 것도 사실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가 지고 있는 대부분의 짐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짐입니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이든 구한 사람이든 차이가 없습니다. 흔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 그러면 외적으로 도로한 환경에 있던 나는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가난한 이들이 내일의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 힘들게 수고하며 무거운 짐 진 자들이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유한 자들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를 부유층에서 찾으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어떤 부자 관리가 예수님께 나아와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이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신이 근심했다고 하였습니다. 이 관리는 자신이 원하는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내면은 기쁨과 안식을 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물질적 부로 인해 생긴 내면의 고통과 불안함이 무거운 짐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왜 빈부를 물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수고하고 끝내는 무거운 짐진자들이 되는 것일까요? 수고하여 재물을 많이 얻으면, 영혼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6절 이하에서 주님은 이 점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16-19,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여기에 평안히 쉬다, 내 영혼을 평안히 쉬자. 라고 했을 때 이 평안히 쉬다. 라는 단어가 예수님께서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내 영혼이 힘을 얻으니 우리 한글 성경에는 내 마음이라고 되어 있는데, 기억하면 영혼이 똑같은 언어입니다. 이 부자가 소출이 많아지자 국가를 더 크게 짓고 급식과 물건을 쌓아놓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기 위해서입니다. 옛날만 그런 게 아니라 현재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해 돈을 많이 벌려는 것이 대부분의 현대인들의 삶의 목표가 아닙니까? 그러나 이 큰 재물을 얻는다 하여도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없다고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영혼의 양식은커녕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날에는 자신의 영혼마저 잃어버리게 된다고 주님이 경고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비유의 끝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는 이유가 영혼을 영혼의 안식을 얻기 위한 것인데,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영혼의 안식은커녕 영혼을 잃어버린다면 도대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수고하고 애를 쓰는 것입니까? 따라서 주님은 마태복음 16장 25절 이하에서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 26,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주님이 이렇게 경경하신 거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자들이 영혼의 안식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뭐냐면, 영혼의 안식은커녕 영혼을 잃어버리게 되면 천하를 얻은 데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경고하시면서 지금 우리를 향해 이렇게 초청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 앉아 있는 우리 가운데 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아마 한 분도 계시지 않을 겁니다. 겉으로는 남부럽지 않고 행복해 보여도 깊은 내면에 외로움과 두려움, 불안과 공포에 무거운 짐을 안고 사는 분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신 것은 저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를 향한 초청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주님에게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우성 우리는 세상에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서 떠나야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전문가들이 나와서 이런저런 조언과 폭로로 우리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들고, 결국은 무거운 짐을 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주식을 사라. 아니다. 펀드를 해야 된다. 아니다. 안전자산의 금을 살 때다. 지금이 암호 화폐에 투자하여 적기이다. 아니다. 환율을 보면 1번 화폐 n에 투자해야 된다. 지금은 부동산 투자하고 아파트를 살 마지막 기회다. 8일만 바르면 얼굴이 하얘진다. 샴푸만 해도 머리가 까맣게 바뀐 거죠. 몇 년 전에 8일만 바르면 하해진다는 비타민 앰플을 지혜로운 전문가에게 듣고 샀습니다. 제가 웬만해가지고는 광고에 안 넘어갔는데 테니스를 치면서 이제 얼굴이 검게 박힌 데다가 아내가 툭툭 그냥 얼굴이 왜 그래 뭐 이렇게 잔소리를 하는 바람에 스트레스가 생겼습니다. 이러다 보니까 사람 이렇게 사람들처럼 큰 대형 화면 가지고 외울 때마다 제 얼굴이 나오니까 신경이 쓰여서 얼굴이 하얘진다는 말에 그만 귀가 솔깃해졌어요. 지금은 잘 안 보이는 이유는 BB크림을 발라서 그렇습니다. 특히 그 기대를 가지고 이제 한국 사람들이 비타민 앰플을 샀어요. 8일 동안 발랐는데 별 차이가 없는 거죠. 몇 달 바르면 낫겠지만 몇 달리를 바랐는데 하나도 효과가 없어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왜 이래 비타민 에플을 사야 되나 엄청 비싸서 때려 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제가 왜 그 광고에 넘어가서 비타민 앰플을 샀겠습니까? 얼굴이 하얘지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니까 마음이 귀가 얄팍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런 세상에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의 말에 너무 많이 귀를 기울이면 안 됩니다. 이들은 종종 옛날 바리새인처럼 자신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자들입니다. 누가복음 11장 45절에 보면,

*누가복음 11:46,
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 도다.
-여기에 어려우심을 사람에게 지우고 라고 할지 지우사, 자나가 오늘 무거운 짐을 쥔 자들하고 똑같은 단어에요. 우리는. 그런데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의 조언, 특별히 돈을 쉽게 벌게 해주겠다는 전문가들의 말에 넘어가선 안 됩니다. 이들의 마을에 넘어가서 숙식을 하고, 비트코인을 하고 영 끌, 아파트를 샀다가 재산을 탕진하고 빚더미 짐에 달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간의 욕망을 호소하면서 결국은 자신의 명예와 도를 추구하는 소위 세상에 슬기롭고 지혜로운 자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왜 인간들이 지혜롭고 슬기로운 세상의 사람들의 말에 넘어가는 걸까요? 인간은 다 풍요와 만물을 생성하기 때문에 풍요롭게 해주겠다.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쉽게 속아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망원의 우상이 우리를 풍요롭게 하기는커녕 우리에게 큰 짐이 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끝내는 많은 현대인들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제가 이제 지난 11월 28일에 은퇴 예배를 드리고 이제 내년 2월에는 은퇴를 하게 되는데, 어떻게 제 생년월일을 알아가지고 유튜브나 아니면 이렇게 광고가 계속 와요. 은퇴 현금을 어떻게 관리해야 되는지 그거를 알아보려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퇴직금을 한꺼번에 받아라. 아니다. 나누어서 어디다가 뭐라 제가 몇 개를 봤는데요. 전문가들이랑 말이 다 달라요. 다 달라, 더 이상 안 듣기로 했어요. 이때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뭐냐 하면, 세상에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이 볼 때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 주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승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한 그 말씀을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순진하고 순박하게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주님은 어떤 방법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을 쉬게 하실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에게 그를 돕는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의 어깨에서 짐을 내려주고 목에서 멍에를 풀어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지고 가는 짐을 계속 질 수 있도록 짐을 조금 가볍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방법과는 전혀 다른 우리가 전혀 예상치 않은 말씀을 하십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왜냐하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기 때문이라 그리하면 너의 영혼이 쉼을 얻으리라.”
-힘을 얻는 방법이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에게 배우는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의 멍에를 매라. 라는 것은 이미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에게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 말씀이에요. 따라서 어떤 유대교 교사나 선지자들도 제자들이나 백성에게 내 멍에를 매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내 멍에를 매라는 예수님의 요청은 그야말로 독특하기 그지없는 특이한 초청이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따라서 ‘내 멍에를 매라’는 속성은 그 누구도 알거나 가르치지 않았던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들어오라는 주님의 초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초청하는 전혀 새로운 삶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멍에를 매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데,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 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6:14,
14 너희는 잊지 않는 자의 명에를 함께 내지 말라. 의와 율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섞이며,
-그러니까 함께 멍에를 맨다는 것은 함께 살고, 함께 사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과의 교제 안으로 초청을 하신 거죠. 우리가 주님의 멍에를 메면 멍에는 서로 묶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과 함께 사귀는 것을 의미해요. 따라서 주님의 멍에를 매면 주님과 함께하고 주님 곁에 머무르고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으로부터 배우게 된다는 것이에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 영원히 안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주님과의 교제 안으로 들어가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 문에서
“오 하나님, 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을 때까지 나의 인생에는 진정한 휴식이 없었습니다.”라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신 것은 창이 하나님의 형상 안으로 우리를 부르시며 신성한 삶의 방식으로 살라고 우리를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 밖에 모르는 인간들에게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초청이야말로 전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의 초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무엇을 배우라는 것일까?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왜냐하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기 때문이다. 그리하면 너의 영혼이 힘을 얻으리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한글 성경에 순서를 보니까 알죠? 내게 배우라 하는 것은 예수님의 성품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내게 배우라고 하시면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기 때문이다. 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성품은 온유와 겸손인데,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에게서 오이와 겸손을 배우면 비로소 우리의 영혼이 쉼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성품인 온유와 겸손을 배우면 왜 우리의 영의 힘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제부터 그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유라고 하면 우리 한글 표현으로 보면은 성격과 태도 따위가 온화하고 부드럽다. 라고 정의되어 있기 때문에 온유하고 그러면 온유라고 그러면 더 따뜻하고 부드러움으로 이해하는데 성경에 온유는 그렇지 않습니다. 온유의 인문서라고 불리우는 시편 37편을 보면 성경에서의 온유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전적인 의존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시편 37편을 읽어보면 온유한 자란 오직 이것만을 의지하고 여호와만을 바라보고 여호와만을 소망하면서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선을 행하는 의미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게 예수님의 모습 아닙니까? 물론 온유한 자가 살아남는 세상은 불평하고 희귀할 수밖에 없음을 시편 기자로 인정해요. 그래서 37편 12, 14, 21절에 보면,

*시편 37:12-15,
12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그를 향하여 그의 이를 가는도다
14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21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려뜨리고, 악인은 꾸고 갚지 않지만 그 길이 형통하고 큰 세력을 유지하고 무성하게 된다. 인정해요. 그러나 시편 기자는 37편 1절부터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편해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을 쉬게 하지 말라. 라고 권면해요. 왜냐하면 이 악인들의 길이 형통한 것 때문에 분노하고 화를 내고 불평하고 시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악인들의 형통과 부우는 잠시 있다가 개입을 당하는 풀과 같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온유한 자들은 오직 여호와만 바라보고 의지하기 때문에 땅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온유한 자들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악인들이 잠시 형통하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시기하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온유한 자는 하나님만을 신뢰하기에 불평하거나, 시기하지 않으니까 영혼의 안식을 누릴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고 하시면서 나는 온유하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죠. 그리고는 그렇게 되면, ‘내 영혼이 쉼을 얻게 될 거다.’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영혼의 안식을 누리려면?
-예수님의 마약을 매고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겸손은 우리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말해요. 그런데 현대인들은 이렇게 성경적인 겸손을 이해하지 못하고 겸손이라고 그러면 그냥 인식의 문제로만 봅니다. 우리나라 표준 국어 대사전을 보면 겸손이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는 내세우지 않는 태도, 이것을 온유라고 말해요. 룩맨이라고 하는 이제 영영 사전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자신에 대해 너무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성격, 이게 겸손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속 철학이나 세속 문화에서는 겸손을 자기를 낮게 생각하는 인식의 방식을 가리켜요. 자기를 높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이렇게 대할 때 자기를 존중하기보다는 남을 존중하며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자기를 낮추는 것을 겸손이라고 생각하는데, 심지어는 그리스도인들도 겸손을 이 정도의 인식의 어떤 문제로만 보면 평안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비교해 보면 자신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알고, 하나님 앞에서 악하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알고,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면 충분히 겸손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문제는 이런 인식만으로는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오랜 동안 자신은 하나님 앞에 별것 아닌 존재며 자신은 죄인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한순간도 설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안식을 이루지 못했다고 고백록에서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어거스틴 자신은 죄인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지고 있던 악한 성적인 나쁜 습관을 오랜 동안 버릴 수가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자기를 낮게 생각하는 인식의 변화만으로는 성경이 말하는 겸손, 예수님의 겸손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예수님의 겸손일까요? 라고스는 빌립보서 2장 6절과 8절에서 예수님의 겸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빌립보서 2장 6-8,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 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과 본체가 같으신데 하나님과 동동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신 거 이거는 인식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시 자신을 하나님과 원래 본체로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는 면에서 인식의 문제에서 겸손한 것도 사실이지만, 실제로 예수님은 거기에 머무신 게 아니라,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들과 같이 계셨다는 거죠. 이것이 예수님의 첫 번째 겸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님은 자기의 의지를 꺾고 성도의 뜻에 복종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겸손하셨는데, 이것이 예수님의 두 번째 겸손이라는 거죠. 그러기에 예수님의 겸손은 어거스틴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성도에게 복종하는 의지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영혼의 안식을 얻기 위해서는 이렇게 죽기까지 복종하는 전문성이 있어야 되는 건데, 죽기까지 복종하는 이 겸손은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는 것이죠. 어거스틴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죽음에 이르는 심정으로 자신을 겸손하게 하신 예수님에게서 겸손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의 본이 아니었다면 이런 불순종이 기쁨에 이르는 길임을 배울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결국 겸손은 의지의 문제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임을 깨닫고 비로소 어거스틴은 그의 악한 성적 습관을 버릴 수만 있었고, 비로소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 겸손은 이 세상에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이 알지 못하는 기독교만의 신비로운 하늘의 비밀인 거예요.

사실은 우리 목사님이 임직예배 때에 축사를 동영상을 하시면서 리타이어먼트는 이게 바퀴를 다시 갈아 끼우는 정도가 아니라, 리파이어다, 이러면서 저한테 설교를 맡기는 바람에 제가 은퇴 후에 쉬지 못하고 설교 준비하다가 입술이 터졌어요. 그러면서 사실은 몸의 안식을 누리지 못했지만, 진정한 안식이 무엇인지를 어거스틴을 통해서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거 아닙니까? 이게 그냥 들으면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 여기 앉아 있는 분들이 왜 안식을 못 누리냐 하면, 하나님은 우리보다 크시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고,, 사실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다고 그냥 인식할 뿐이지, 실제로 나의 의지를 꺾고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며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런 걸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 기껏해야 겸손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사람 앞에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또 어떤 학자들은 겸손이 미덕이냐 그런 건 미덕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속으로는 안 그런데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면서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 같은데 그것이 과연 진정한 미덕일 수 있느냐? 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런데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겸손을 이야기한다면 이 예수님의 겸손은 미덕중에 미덕이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경륜을 본받지 않고는 진정한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어거스틴은 자신의 삶에서 절감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내게 기독교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아무리 자주 묻는다 해도 나의 대답은 항상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 목이 곧아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목이 곧은 우리가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우리의 의지를 꺾고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하여 죽기까지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기준에서는 충분히 겸손한 것 같은데, 진정으로 안식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의 의지를 꺾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예수님의 경선을 아직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어거스틴은 가르칩니다. 자신의 의지를 꺾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세상의 겸손이 오히려 교만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한 반에 한 반에서 가장 이제 운동 실력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사람이 나는 우리 반에서 가장 운동 신경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기 평가를 하고 있다고 해서 이 사람을 겸손하다고 할 수 없다는 거죠. 아무리 운동 신경이 모자라도 운동 실력을 높이려면 열심히 노력을 해야 되는데, 운동 연습을 게을리 하면서 나는 원래 운동력이 없다. 나는 원래 무능하다. 운동 신경에 있어서는, 라고 인정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오히려 교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신뢰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자기의 의지를 꺾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행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겸손인 거죠.

그래서 사도바울은 내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라고 한 것이야말로 진정한 겸손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였기 때문에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흥부와 공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에요. 만약에 나를 어려운 상황 고통 가운데 주님께서 이렇게 밀어 넣으시면 내 뜻을 꺾고, 주님의 뜻에 불복하면서 살아내니까 비천해 할 수도 있는 거고, 때로는 풍부한 가운데 우리를 하나님께서 밀어 넣으시면 그 풍부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내 의지를 꺾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되면 풍부에 처할 줄도 알게 된다는 거죠.

보통 이렇게 이제 의지가 저는 의지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요. 내가 이제 아내한테 스트레스를 주면은 당신은 의지가 강하니까 오래 잘하지만 나는 의지가 원래 약하기 때문에 못한다. 이러거든요. 수술이나 약한 경이 자랑하지 않는 이상이라고 이야기 지금 나도 그냥 안 해 가지 집도 쉽게 닦고 그럴 텐데 이해를 할 게 별로 없어요. 다른 사람 예 들면 또 이제 실망하니까 서로 꾸준히 그게 있습니다. 당신은 원래 의지가 제가 원래 의지가 조금 더 강한 건 사실일지 모르지만 의지가 약하다고 뒤로 물러서면 안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은 뭐예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 라고 이렇게 말을 하시면 말씀하시면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꺾고 그래 우리 주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내가 한번 해보겠다. 라고 자기 의지를 꺾고 주님의 의지에 굴복하여 순종하게 되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는 거고, 그래서 바울이 내가 약한 데서 강한 욕심이라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핵심은 뭐냐 하면 의지인 거예요. 왜 못합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한 것은 그냥 바울이 그냥 어쩌다가 하늘에 던 번개 같은 계시를 받고 한 말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의지를 굴복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죽기까지 복종했을 때, 그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 안에서 내가 모든 걸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 라고 고백을 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우리 사랑 교회 성도 여러분,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멍에를 메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독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이 길은 우리의 의지를 꺾고, 주님의 뜻을 행해야 하는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십자가의 길을 가려고 하면 시련과 환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의 짐이 가볍다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17절 이하에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4:17-18,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여기 환란에 경한 것이라고 할 때 그 경함이 핼라어라는 ‘내 짐은 가벼움이라.’의 가벼움과 같은 답이 우리가 주님을 따르다가 받아야 하는 환난의 짐은 우리가 받을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에요. 환난은 잠시지만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지극히 큰 영광에 임하면 환난은 가벼운 것입니다. 잠시 동안의 환난이 끝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영원한 영광 민족이 한다면, 그 환난은 가벼울 수밖에 없는 거고, 이에 주님께서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 성도 여러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십니까? 그럴 때마다 우리를 안식으로 초대하는 예수님에게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겸손은, 자기 의지를 꺾고 성도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겸손이었음을 기억하고 나를 현재 이런 상황에 두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우리의 의지를 꺾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과 안식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남은 생에 여러분과 제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멍에를 멘 자로서 그리스도의 평안을 함께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의 삶의 방식 외에는 알지 못했던 우리를 불러 전혀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우리를 초대하심에 감사를 올려드려야 한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에게 온유와 겸손을 배우며, 그 말씀에 우리의 뜻을 굴복시켜 죽기까지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안식을 주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을 기대하며, 믿고 신뢰하며 우리 남은 생애가 주님과 멍에를 메는 삶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겸손은, 자기 의지를 꺾고 성도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겸손이었음을 기억하고 나를 현재 이런 상황에 두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우리의 의지를 꺾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과 안식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여기서 어린아이들에게 복음의 비밀들을 나타내신 그의 은혜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그 말씀이 대답이라고 불리운 것은, 그 말씀이 앞에 나타난 우울한 생각들에 대해 아주 위로를 주는 회답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생각을 함으로써 원기를 되찾으신다. 그리고 그 생각을 더욱 새롭게 하기 위해 그는 그 사실에 대해 감사를 드리신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 보아도 우리를 낙담케 하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우러러 보는 가운데서 커다란 격려를 얻을 수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감사하나이다. 감사는 어둡고 불안한 생각들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며, 그 생각들을 잠재우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찬양의 노래는 의기소침해지는 영혼에 잘 듣는 최상의 강심제이다. 우리가 슬픔과 두려움의 생각들에 대처할 수 있는 다른 어떤 해답을 갖고 있지 못할 때, 우리는 `아버지여! 감사하나이다`라는 이 말씀에 호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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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2월 03일)
제목: "이보다 큰일도 하리니"
말씀: 요한복음 14:12~18,
대표기도: 이민건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요한복음 14:12~18,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

▶어느덧 12월이 되었습니다. 오늘 같은 주일은 우리 부족함을 좀 돌아보고 또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깊은 심정을 깨닫는 소중한 오늘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회복을 넘어 부흥 시리즈를 이제 오늘 30번째로, 이제 대장정의 마무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저의 소해가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저의 마음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코로나 이후에 한국교회에 뭔가 비집고 들어온 게 있어요. 그게 좀 회의주의 제대로 되겠나 영적인 패배주의 또 비관주의 또 냉소주의 이게 참으로 안타까워요.

물론 이것이 코로나시기에 우리 현장 예배가 좀 많이 어려워져 가지고 그것 때문에 많은 교회들이 실제적으로 이전 상태로 회복되지 못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교회 내에 교회의 미래를 좀 이렇게 어렵게 보는 시각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마귀가 던져놓은 이 회의주의와 패배주의(敗北主義)의 이 올무와 덫을 부서뜨리는 철장권세의 능력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다시 한 번 한국교회 미래를 향하여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어떤 소망의 역사를 저와 여러분이 선포하고 집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오늘 제목이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렇게 돼 있는데 우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으려면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할 것이 여러분과 저는 어디서부터 힘을 얻는가? 어떤 사람들은 정보가 힘이라, 그래 남보다 많이 이렇게 인포메이션 많이 하는 거? 어떤 사람은 관계가 힘이고, 위치가 힘일 수도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부터 힘을 얻는가? 오늘 이 12월 첫 주일날 저와 여러분이 또 우리 교회가 어디서부터 힘을 얻어야 할 것인가? 아니 지금까지 어디서부터 힘을 얻고 있는가? 오늘 16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요한복음 14:16,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겠다...쉽게 말하면 또 다른 보혜사는 본래 오리지널 보혜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맞습니까? 주님이 이 땅에 공생애 계시는 동안에 우리와 함께 계시고 제자들을 섬기시고 훈련하시고, 또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데 그 오리지널 보혜사죠. 보혜사란 말은 우리를 돕는 분, 우리를 돕는 분, 우리와 함께하셔서 돕는 분. 그런데 또 다른 보혜사, 어느 아들 헬플(helple) 오리지널 보혜사는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예수님께서 내가 이제 승천하겠다. 승천하고 난 다음에 너희들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주겠다. 그리고 또 다른 보혜사를 주면 그다음에 뭐가 나오냐면 영원토록 너희와 어떻게 하겠다고요? 함께 있게 하겠다.

오늘 이것이 요한복음은 정말 신비한 말씀인데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것으로 확인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보혜사, 보혜사가 너희와 함께 함께, 라는 말이 헬라어로 “파라” 이래 되는데, 이게 위드(with) 우리와 함께하시는 보혜사 성령님, 그리고 함께만 있는 것이 아니라 17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14:17,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너희와 함께 거하시고 그다음에 너희 뭐에 소원을 거시겠다. 헬라어로 엔이(ne)라고 돼 있는데 영어로는 인(IN)이에요.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속에 거하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속에 계시면서 뭐 하시냐 바울이 이걸 깨닫고 난 다음에, 고린도후서 3장에 보면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뭐 하시는가 먼저 고린도후서 3장 6절에 보니까,

*고린도후서 3:6,
6 주의 영은 우리를 뭐 한다고요? 살리는 영이다.
-참 이거 소중한 거예요. 절망 중이라도, 비참한 상황이라도, 인생길에서 넘어져 죽게 되었을 때, 성령님과 접촉하고 교통하는 사람들마다 성령님의 빛을 받아 새롭게 되고 힘이 생겨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에요. 소위 살리는 일이 또 성령님은 아까 고린도 3장 살리고 그다음에 뒤에 17절에 뭐라고 나오냐 하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17,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뭐가 있느니라? 자유가 있느니라. 억눌리고 침체되어 있는 일들이 우울하고 피곤하게 되는 일들이 그런 일들이에요.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실 때, 심지어 중독된 상황에서도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은혜를 찬양합니다. 이걸 이제 결정적으로 살리는 영, 자유케 하는 영. 이걸 결정적으로 아주 강력하게 아주 심도 있게 바울 사도는 로마서 8장 11절 우리가 암송하는 것인데 다 함께 우리 보겠습니다.

*로마서 8:11,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할렐루야 오늘 이 예배드리면서 정말 힘든 분들 그냥 이 말씀을 주께서 주시는 신비한 말씀으로 받아들이세요. 그러면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적인 차원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의 영이 성령의 영으로만 어느 아들 보혜사에서 또 다른 보혜사를 통하여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오늘 우리 가운데 말도 안 되는 상황 가운데서 다 엎어진 분들을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이걸 위하여 오늘 요한복음 14장 오늘 요절이요.

*요한복음 14:12,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여기서 요절이 14장 12절인데 이게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될 때가 있어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예수님은 독특한 언어 방식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정말 중요한 걸 말씀할 때는, 트루리, 트루리 아이 세이 투 유(Truly truly I say to you)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이른다. 영어 헬라어로 말하면 아멘, 아멘, 진실로, 아멘 아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주님이 하는 일도 그도 할 것이오.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전에 개혁 판에서는 이보다 큰일도 한다. 그런 게 있고, 옛날 관주에는 뭐냐 하면 나보다 큰일도 하는 이건 놀라운 말씀이에요. 어떻게 보면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에요. 다시 한 번 이 본문은 무슨 복음이라고요? 요한복음이에요. 요한복음은 언어 하나하나가 단순한 말이 아니고 단순한 글도 아니에요. 요한복음 말씀 자체가 신비한 말씀이고 영의 말씀이에요. 어떤 말씀이라고요? 육의 말이에요. 영의 말씀이에요. 오늘날 이 깊은 영의 세계를 모르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요한복음의 언어는 어떻게 보면 낯설 수가 있어요. 심지어 요한복음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라 할지라도 헬라어 원전을 깊이 연구한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언어와 이 영의 깊은 세계에 이 측정할 수 없는 깊이를 다 이해할 수 없어요.

이 영어의 언어, 어떻게 보면 낯선 이 언어가 성령께서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우리 속에 계시면서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능력을 주실 때, 우리의 영안이 밝아져서 이 말씀이 뜻하는 바를 우리가 깨우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말씀은 영적 세계의 어떻게 보면 소중한 반지에 박힌 다이아몬드와 같이 중요한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말씀을 들으면 우리 입장에서 야 내가 뭐 이거 할 수 있냐? 내가 주님보다 더 큰일 할 수 있냐? 이런 질문을 많이 하는데 그게 핵심이 아니에요. 이 질문의 핵심은 뭐냐 내가 큰일을 할 수 있느냐 안 할 수 있느냐, 이게 핵심이 아니고 주의 영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주님보다 큰일 할 수 있느냐 없냐, 그게 key라 이렇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못 알아들어갖고 아직까지 무슨 말인지, 사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어떻게 주님보다 큰일을 할 수 있습니까? 황망하고도 황송한 말씀이죠. 기가 막힌 말씀이죠. 그런데 이 말씀이 영의 말씀으로 신비한 세계 언어의 세계의 말씀으로 오늘 다 상황을 우리가 다 설명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여러분들 각자에게 필요한 꼭 필요한 말씀으로 다가오게 될 때에, 이 말씀이 현실 가운데서 우리 가운데 있는 회의주의와, 패배주의와, 비관주의와, 냉소주의에 젖어 있는 어떤 우리 상황과 한국교회 앞에 이 말씀이 폭탄이 되는 말씀이 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강력한 선포가 될 수 있는 것이 그러니까 내가 일을 한다, 못한다, 하는 그것이 아니라, 이 말씀이 성령께서 여러분들을 깨닫게 하여 주셔서 주의 영이 우리 속에 우리와 함께 위로부터 부어주실 때 성령이 하시는 세 가지거든요.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속에 계시고, 위로부터 부어주시고, 이렇게 될 때에 우리가 상상도 못할 삶의 차원이 펼쳐지게 되는 겁니다. 그럼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주님보다 더 큰일 난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세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로는 사역의 규모와 기간 기간을 가지고 볼 때,
두 번째로는 사역의 대상을 볼 때,
세 번째로는 사역의 방식을 볼 때,
-예를 들어서 사역의 규모와 기간을 얘기한다면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지상 사역은 유대나라와 그 근처에서 사역하셨죠. 그런데 우리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전 세계적으로 사역하는 시기가 되잖아요. 5대양 6대주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에서 얘기한 것처럼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33년간 공생애 3년, 반공생애 하셨지만 우리는 더 많은 시간들 70년 80년 100살까지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일할 수 있는 것이 사역의 규모와 범위 가운데서, 둘째로 사역의 대상은 예수님은 제자들을 키우시는데 또 그 당시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그 팔레스타인 지역의 사람들은 거기에 국한되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이에요. 나중에 사도 베드로는 수천 명을 한꺼번에 회심하는 역사를 감당하게 하여 주시고, 빌리그레암 목사님 같은 경우는 50만 명 100만 명에게 복음을 전하게 했을 때 수만 명이 한꺼번에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역의 대상이 달라지는 거 그리고 한 부류만이 아니라 노예부터 시작해가지고 왕과 총독까지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에요.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사역의 범위와 사역의 대상 가운데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수천 년 내려오는 민족 종교를 100년 만에 바꿀 수 있는 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게 된 거예요. 전 세계에 이런 케이스가 별로 없잖아요. 그리고 사역의 방식에 있어 갖고 예수님 시대의 사역의 방식은 그저 이렇게 전달을 해야 되고 또 그 당시에는 도로와 파발마 정도였는데, 지금은 뭡니까? 인터넷이 있고, SNS가 있고, 우리가 스마트폰을 다 갖고 다니니까, 사역의 방식이 완전히 시대가 달라진 것이에요. 그러니까 주님이 하신 구원 사역과 질적인 사역과 그 놀라운 주님의 구속 사역 이걸 말하는 게 아니라, 다시 사역의 규모, 사역의 대상, 사역의 방식에 있어가지고 양적으로 더 커지는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누가 이 일을 할 것인가? 다시 12절에 보니까 누가 일을 할 것인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노니 나를 뭐 하는 자는 믿는 자라” 구약에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 성령의 역사가 특정한 사람들, 다윗이라든지 삼손이라든지 어떤 주의 영이 많은 특정한 사람들에게 있다가 잘못하면 떠나가기도 했지만 신약에서는 보혜사 성령께서 소위 보편적인 성령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을 믿고 이 말씀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순전한 그 순종의 마음을 갖고 있는 자에게는 누구든지 믿는 자는 이 역사가 일어나게 되리라 이것이에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그래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고백하고, 우리 식으로 말하면 회복과 부흥을 지난 30주 동안 믿고, 갈망하는 자는 누구든지, 가 되는 줄로 확신합니다. 이 말이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오늘 이 말씀이 다 이해가 안 되어도 성령께서 여러분들을 깨닫게 해주신 은혜 가운데서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말씀으로, 여러분의 언어로 영의 언어로, 신비한 언어로 여러분들이 고백하고 선포하게 될 때, 여러분 우리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저는 청년 시절부터 이 말씀을 제가 받고 나는 뭐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어떻게 이 말이 기가 막힌 이 말씀이 저에게는 신비한 언어로 다가왔어요. 그리고 이 말씀을 제가 그대로 받고 이 말씀을 주장하고 이 말씀을 붙잡고 이 말씀 앞에 무릎 꿇을 때에 삶의 수많은 파도들을 극복할 수가 있었어요. 이 말씀이 제게 고백되어질 때, 수많은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극복할 수가 있었으니 제가 이 시간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여러분이나 저나, 오늘날 제일 큰 문제가 뭡니까? 세상의 수많은 파도 속에서 침몰되지 않을 생애의 선포, 확신, 말씀, 어떤 삶의 지진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만세반사 같은 확신, 말씀. 그래서 저에게는 이 말씀이,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을 하리니,”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의 말씀으로 받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말씀을 제가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야 되는 것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가 예수님보다 어떻게 더 큰일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황숙한 질문이 아니에요.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잘못된 질문을 하지 말고 나는 부족하지만, 이 말씀을 하신 그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성령님을 통하여 이 말씀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우리가 어떻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습니까? 그 앞에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지 아니하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그러니까 힘의 근원이 뭐냐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 하나님이시라 주님이시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 12절의 구절 속에는 구절 속에는 ‘너희가 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준비하신 모든 신령한 자원을 삶으로 경험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 다시 너희가 나보다 큰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성령님을 통해 준비하신 모든 신령한 자원을 삶으로 지금 체험하라 그 말이에요. 다른 말로 하면 여러분 지금까지 생애를 살아오면서 내가 목숨을 걸만한 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신령한 자원인 보혜사 성령과 기도의 능력을 우리가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적당하게 평생 사는 가운데 적당하게 물에 물탄 듯, 무례 감을 가지고 살았다면 그거는 너무나 안타깝다 안타깝다는 뜻이에요. 제가 말씀드렸죠? 지난번에 우리의 삶에 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가? 성경에 나타난 모든 기적은 생명과 복음의 역사에 연결될 때 기적이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그거예요. 그는 오늘날 우리 오늘 주님보다 더 큰일 한다는 이 영광스러운 놀라운 말씀을 우리가 받았을 때 이걸 우리가 왜 체험하지 못하는가?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이 신령한 자원을 다 주셨는데,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신뢰가 눈이 열리지 못하고 아니 이 말씀을 가지고 죽자 사자 어떤 삶의 파도와 고난 앞에서도 한 결 같이 이걸 지켜나가는 힘이 없으니까, 예수님보다 큰일을 하겠다는 마음의 소망을 가지고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주님이 주신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성령님을 통하여 이걸 내가 한번 해봐야 되겠다는 이런 마음의 자세가 약하니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에요. 이걸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제 이 귀한 시간에 12월 첫 주일인데 연말연시, 마음에 다시 소원을 하면서 여러분과 저는 누구나 거룩한 가능성을 가진 줄로 믿습니다. 제가 무슨 뭐 적극적으로 누구 힘내라 이 뜻이 아니에요.

그건 인간이 하는 거고 무슨 긍정적인 그건 인간이 하는 거고 우리는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사명과 신비한 영적인 언어를 우리가 깨달아서 거기에 마음을 모으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런 뜻이에요. 자유 말씀을 준비하다가 왜 사람들이 주님보다 더 큰일 한다. 이보다 더 큰일 한다. 그보다 더 큰일 한다. 여기에 마음이 탁, 접목이 되어가지고 가슴이 뛰지 않을까? 신앙생활도 왜 물에 물 탄듯 무력할까? 왜 한국교회는 근대 미문의 코로나 이후의 가운데서 회의주의와 비관주의와 패배주의와 냉소주의가 이렇게 만연할까? 신앙생활을 적당히, 적당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놀랍고 영광스러운 큰일을 허락해 주셨는데 이걸 왜 내 것으로 삼지 못할까? 그러면서 제가 열왕기하 13장을 읽다가 그런 이게 안 됐구나!!!~ 여기 13장 18절 이런 말씀이 있어요. 무슨 말씀이 있냐면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열왕기하 13:18,
18 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이게 뭐냐 하면 엘리사가 구약의 북쪽 이스라엘 그 나라의 왕국에, 진짜 선지자였어요. 그때 왕이 요하스라는 왕이었는데 남쪽에도 요하스가 있었고 북쪽에 요아스라는 왕이 있었는데, 이 요아스가 엘리사를 진짜 의존했어요. 근데 엘리사가 지금 죽을병에 걸렸어요. 거의 이제 힘들었어요. 그래가지고 요아스 왕이 엘리사에게 찾아와 가지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스라엘의 병가와 마병이여, 기억나시죠? 이스라엘의 병가와 마병이여 막 막 애통해 하는 거예요. 그리고 북쪽 이스라엘은 남쪽도 그렇지만 아람왕이라는 아람국이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태국의 폭력과 그다음 공격과 침입을 받아서 늘 나라가 풍선 등화 같은 거야. 그나마 엘리사가 있어가지고 막아줬는데 엘리사가 만약에 죽으면 자기가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까 요아스왕이 기가 막혀가지고 이스라엘의 병과 마병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그러니까 엘리사가 뭐라고 했냐면 화살을 가지고 활의 이 화살은 구원의 화살이다. 이 구원의 화살을 가지고 땅을 치라고 그러니까 요아스 왕이 땅을 몇 번 쳤어요? 세 번을 쳤어요. 엘리사가 너무 너무 안타까워가지고 왕이여 하나님의 사람이 노예 같고 엘리사가 노예 같고 왕이 대여섯 번을 쳐야 되는데 그러하였다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습니다.

세 번만 치니까 적당하게 아람을 적당하게 맞고 겨우겨우 맞고 대 여섯 번을 치면 아람 왕을 다 이렇게 패퇴시켰을 것인데, 그것이 너무 마음이 아파가지고 그러면 이것이 오늘 요한복음의 신비한 말씀과 어떻게 연관이 될 것인가 이 말씀을 듣고 여러분 그렇게 되겠나, 또 나는 뭐 적당히 그래도 은혜로 사네. 한 번 두 번 세 번 치는 거예요. 근데 이 말씀이 내 말씀이 돼가지고 힘들고 어려워도 이 말씀이 내 말씀이 돼가지고 이 말씀을 가지고 내 생에 어렵고 부족한 게 많아도 다섯 번 치고 여섯 번 치고 됐으면 7번도 치고 연말연시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음성이 있을 것이에요. 포기하지 말고 내 힘이 아니라, 내 속에서, 위로부터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힘을 가지고, 펴 보라는 것이에요. 저는 이 말씀이 저는 늘 부족했지만 이 말씀이 저에게는 큰 약속의 말씀 중에 하나가 되었어요. 내가 뭔데 난 아무것도 아니지만, 뒤에 이제 내 이름으로 구할 때, 주님 앞에 기도하고 성령의 힘을 의지하여 주님 앞에 기도할 때, 그보다 큰일을 하리니,

제가 좀 조심스럽지만 제가 이제 청년 대학생 사역을 하는데, 진짜 나는 그 당시에 신학교를 다니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학부를 맡아가지고 그 당시에 우리 교단에서 제일 큰 대학부를 맡았어요. 나는 너무 아닌 거야. 나는 너무 부족한 거야. 그리고 나도 청년의 약점도 있고, 다 부정함이 있는데, 그러나 그 모든 것들 가운데서도 어떻게 하면 적당히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대학부에 주보가 있었는데, 주보 이름이 ‘정인들’이라는 주보가 있었어요. 그 당시에 이제 한국교회 유명한 주보였는데 주보를 2천부를 발행했어요. 그 당시에 2천부를 발행하는데, 그 2천부가 1년 반 동안 하나님을 향한 열망과 그 응답들이라는 연재를 제가 했어요. 매 주일마다, 82년 3월 1일 결혼식이었는데 결혼하는 날 앞에 놓고, 그 주부 담당자가 연재 계속 안 하면 잠깐 못 간다. 그러는 거예요. 결혼식 하는 날 당일 날, 그래가 지금도 선연하기는 결혼식 하는 날 당일 날 3월 1일 아침 새벽 2시까지 그 원고를 쓰고 있었어요. 결혼식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결혼은 잠깐 갔다 오는 거예요. 그냥 난 지금도 그래서 이제 신부 측에서 저한테, 이제 셔츠를 이렇게 마련해 줬는데 한 번도 안 입어봤어요. 내게 안 맞아가지고 그날 결혼생활 계속 안 맞아가지고 있잖아요. 한 번도 안 입어봤으니까 지금 제가 그 글을 한번 읽어보니까요. 지금도 보니까 뜨거워요. 지금도 보니까 야 이거 어떻게 그때가 만 26이었는데 26살 때, 어떻게 그걸 쓸 수 있었나 그러면서 제가 그게 82년 3월 1일이었는데 82년 3월 1일부터 한 10년간 한국교회가 어마어마하게 부흥을 한 거예요.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하면 이게 내가 될까 안 될까? 이걸 고민한다니까, 그게 아니고 오늘 나와 함께 계시고 내 속에 계시고 내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그분이 역사하시면, 그걸 믿는 자는 신비한 언어의 영 안에 눈이 열리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에요.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할 것이요. 그보다 큰 것도 하리니” 사역의 대상, 사역의 범위, 사역의 기간,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여러분, 이런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한국교회에 임한 잘못된 이 회의주의와 패배주의가 극복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80년도 이후에 10년 동안 80년대 중반에 누가 나한테 말했어요? 한국교회가 워낙 당시에 강남은요. 80년대 중반 후반 강남에 유행어가 있어요. 그게 뭔지 알아요? 아직까지 교회에 안 나가나? 이게 유행어였어요. 어느 순간 좀 부족함이 생겼는데 어제 다시 마음 다 해가지고 다시 새롭게 해가지고, 6번 7번을 내리칠 수 있는 우리에게 주신 사명의 화살을 내리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이걸 적용하겠습니다.

여러분 다시 내 힘으로 내리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말씀에 의지하여 내리치는 것이고,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화살 사명의 화살을 내려치는데 이 말씀이 우리의 중앙선이에요. 그걸 가지고 내려치는데 어떻게 하느냐,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이 강남에 사시는 분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여기 상위 1%도 계실 거예요. 사회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여러 가지 면에서의 상위 1%가 계실 거예요. 그러나 우리 대부분 99%는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근데 평범한 우리가 남들이 보기에 아무것 아닌 것 같아도, 오늘 이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고, 여러분들의 생애에 말씀의 화살을 6번 7번 내리치는 순간 뭔가 달라지게 될 것이에요. 그럴 때 평범한 부부가 인생을 낭비하지 않게 되고, 그리고 평범한 부부가 사명을 가지고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우게 되고, 자녀들을 토요일 이전 새벽 예배에 데리고 나가지고 한 번 두 번 6번 내려칠 때에, 그 아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에요. 내 인생에 내 인생을 위하여 여섯 번의 화살을 내리칠 때에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에요. 그러면서 제가 지난 주간에 더 생각해 봤냐면 저희 아파트 문에다가 뭐가 딱 되냐면, ‘사랑의 교회’라는 교패가 있어요. 이게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아이덴티티(identity)가 된 거예요. 제가 그 교회 붙이고 위에 층간 소음 있을 때 밑에서 쿵쿵 할 수 있겠어요? 저 조심조심하지요... 그래서 저는 하나의 어떻게 보면 상징이에요. 우리가 너희가 나를 믿는 자는 성령님이 함께 계시고, 우리 속에 계시고, 위로부터 부어주실 때, 이걸 믿을 때에 그리고 청년 시절에 질풍노독하던 시대에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이 말씀 붙잡고 그 모든 과정들을 겪었다 할 때에, 한국교회 처음에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10년, 20년 동안 역사하는 그런 현장에 있었다고 말할 텐데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내가 볼 때 우리 교회 교우들 가운데 대부분은 사랑의 교회 교패 붙이고 있는 걸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만, 또 상황이 안 돼가지고 못 붙인 분도 있고 이사 가 못 붙인 분도 이제 많이 있을 거예요. 오늘부터 교표 붙이세요. 제가요. 제가 밖에다가 많이 준비해 놓았어요.

나가실 때 하실 다 갖고 나가시라고 이게요. 이게 그럼 교회를 어떻게 붙이는지 모르는 분들이 떼 가지고 붙이면 돼, 이렇게 이게 여러분들에게 굉장한 아이덴티티(identity)를 갖게 할 거예요. 단순한 사랑의 교의 문제가 아니에요. 한국교회 성도로서의 자긍심과 여러분들이 갖는 정체성이 문제예요. 나보다 큰일을 하리니 어떤 경우에도 이 사명을 놓치지 않겠다는 그런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아마 여러분 제 말씀 듣고 순전하게 여러분들 그걸 적용하면서 교회 없는 분들 들고 나와 가지고 집에다가 붙일 때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여러분들을 변화시킬 거예요.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좀 이렇게 야성이 약해졌어요. 이런 일들을 통하여 다시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갈 때 두세 개는 갖고 가지 말고 하나만 갖고 가세요.

이런 은혜를 받으면 우겨 쌈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아니하고, 웬만한 사람들은 쓰러지지만, 예수님보다 더 큰일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을 붙잡고 부흥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으면 쓰러지지 않는 것이에요. 남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묵묵하게 주님 앞에 헌신하고 섬기고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고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책임져 주시는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지난 1년간 우리는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줄기차게 우리가 소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그 결과로 작년에 처음으로, 9월 23일,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 5,500여 명의 목사님들을 우리가 모시고 1박 2일 동안 집회를 하고, 이번 10월 23일은 우리가 7천여 명의 목사님들을 모시고 그래서 두 집회를 보니까 7,500교회 거의 7천 교회가 되는 교회들을 저희들이 섬기게 된 거예요.

우리가 잘해서 많아서 그게 아니라 주님보다 주님이 하는 일을 우리도 감당하게 해 주십시오. 이런 소원을 가지고 그래서 앞으로 7천여 교회가 플랫폼으로 내년쯤 하면 만교회가 되겠죠. 만 교회 플랫폼으로 올라오면 우리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하나님 우리에게 주신 귀한 것들이 많이 있잖아요. 특새를 하면 특세를 같이 하고, 그다음에 부활절에 품은 생명, 대각성에 추수하자! 그래가지고 부활절에 우리가 태신자를 작정하면 같이 태신자를 작정하고 그리고 제가 마음속에 소원했어요. 내년도 부활절에는 계란을 몇 개를 준비할까요? 100만 개, 그래갖고 같이 마음먹은 교회에 같이 내려다 보내는 것이 같이 태신자를 같이 작정하고 6개월 동안 같이 기도하고, 그래서 만 교회가 7천 교회가 같이 마음을 먹고 우리는 올해 4만 명 태신자를 작정했지만, 내년에는 우리가 마음먹어 가지고 적어도 10만 명을 작정하고 그다음에는 20만 명을 작정하고 40만 명을 작정하고 100만 명을 작정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은혜 주시리라고 믿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그냥, 그냥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에요. 한국교회 아무리 어려워도 80년도 초반 중반 70년대 후반에 비하면 지금 환경이 더 나아요? 못해요? 훨씬 더 나아요.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에는요. 사랑의 교회는 짜장면 집 2층에 있었어요. 예배드릴 때마다 짜장면 냄새가 나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유혹을 받고, ㅋㅋㅋ 뭘 먹어야 할 것인가? 말씀을 먹어야지, 말씀을, ‘나보다 큰일을 하는 걸 먹어야’ 돼요. 그걸 생각해 지금이 안아주심의 본당, 전 세계에 다 찾아오잖아요. 환경이 말도 못하게 좋아진 거예요.

그런데 토비새를 안 나와요? 제가 토요일 이전 새벽 예배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에요. 화살을 내리치는 시간이에요. 그 시간이 우리가 지금 기도하는 가운데 ‘7천기도 용사’를 가지고 우리가 7천 명 우리가 하잖아요. 근데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야 7천 명 어른들만 하면 되겠나 다음 세대에도 7천기도 용사가 나오게 하여 주십시오. 이 교회를 위한 기도의 제목이에요. 그리고 하다 보니까 더 은혜가 생기는 거예요. 하나님, 우리가 믿음의 4세대가 우리가 이런 기도를 해야 되는데 하나님 아버지 믿음의 4세대 가운데 포에버 이상 60대 이상은 60대 이상도 7천 기도의 용사, 지금 제일 좀 이렇게 막 이념적인 갈등을 가지고 고통 하는 40~50대 40~50대도 7천기도 용사, 대학 청년부 20~30대도 7천기도 용사, 10대하고 어린아이들도 7천기도 용사, 합계 몇 명이에요? 계산이 안 돼요. 7천, 7천, 7천, 7천, 2만 8천 명, 사랑의 교회 2만 8천 명의 기도의 용사들이 생기기 시작하면, 우리나라 부흥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그리고 내년까지 만 교회가 같이 합류해가지고 우리도 부족하지만 섬기는 마음으로 그 교회들 교회들마다 기도 용사들이 생기면 한국교회 부흥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여러분 대답을 이렇게밖에 못합니까? 일만 교회가 같이 마음을 먹고 나보다 큰일을 하리니, 아니 주님이 할 일을 할 것이오. 이걸 믿고 마음을 같이 하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이게 우리가 믿음이 되는 것이에요. 다시요. 내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가 키가 아니라니까요. 82년도에 그 아무것도 없을 때, 아까 정말 결혼식이 주가 아니고, 결혼식은 잠깐 갔다 오는 거라니까요. 갔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전력투구를 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실까? 전 세계 교회에 미국 교회의 힘이 있지만 여러분 전 세교에 정치 경제 사회 경제 문화 모든 영역에서 자리가 잡힌 교회 그래도 대한민국 교회가 넘버2가 되는 거예요. 한국 사회가 그래서 우리 한국이 한국 교회가 바로 가면 이 민족도 바로 가는 것이에요. 우리 민족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도, 교회도, 우리 민족도 저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여 2030년에는 통일되게 하여 주십시오. 기도도 못합니까? 7년 내에 평양에서 특별새벽기도회 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필요하면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다시요. 7천기도 용사 정도가 아니라 7천, 7천, 7천, 7천기도 용사, 이 일을 위하여 우리가 뭘 할 수 있습니까? 오늘 13절 14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 14:13~14,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너무나 신비한 말씀이에요. 이 말씀을 여러분 파서빌리티 딩킹크 그런 개념이 아니에요. 보혜사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너희가 내 이름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신임하리니.” 구약에는 아까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받는 성령의 역사였지만, 신약은 보편적 성령의 역사에 있어가지고 우리가 이게 마음을 열고,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우리가 신뢰하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에요.

구약에서는 성막에 등불을 끄지 말라고 그랬어요. 사무엘이 성막에 등불을 끄지 않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어요.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사무엘의 등불을 끄지 않을 때, 그가 할 역할을 했을 때,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역사하시고 다윗 왕국을 세우는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어요. 오늘 우리의 삶에 우리 인생에 등불을 끄지 않는 것이 뭡니까? 그게 기도예요. 7천, 7천, 7천, 7천기도의 용사가 될 때, 우리의 삶의 등불이 꺼지지 않는 것이에요. 이런 비전이 약화되지 않는 것이 모라비안 교도들은 이거 깨닫고, 100년 동안 기도의 불을 꺼지지 않게 해가지고, 세계 선교의 문을 여는 영광스러운 역할을 진전도로 백작과 함께 했고, 디엘 무디와 함께 일했던 아레이토레이 박사는 시카고 무디 신학교와 그다음에 LA에 있는 바이올라대학교 같이 해서, 3년 동안 토요일마다 기도의 재단을 쌓았더니, 그 은혜가 영국의 케직 사교가 케직 사경의 5천여 명의 1902년도 7월달에 5천여 명의 사역자들을 모여 기도할 때, 그 기도의 능력이 인도로 갔다가 그다음에 평양으로 갔다가 한국교회의 부흥으로 이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의 불을 꺼지지 말라.’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인도가 있는 이 기도의 불을 꺼뜨리지 말라.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래서 오늘 이 시간 때문에 저와 여러분 한국교회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은혜의 초석을 든든히 내리는 놀라운 축복을 한 분 한 분 맞춤의 은혜로 허락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두 손을 펼치시고 주의 용서된 나에게 주의 일을 맡겨주십시오.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이 아니라, 안타깝게도 세 번이 아니라, 다섯 번, 여섯 번, 7번을, 기도의 말씀의 화살을 가지고 내려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요약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보혜사 성령이 우리의 참된 힘이 되어서, 우리의 마음속에 비집고 들어온 모든 회의주의, 패배주의, 비관주의를 완전히 무너뜨려 주심을 믿고, 말씀 가지고 다시 한 번 한국교회 회복을 넘어 부흥을 위한 말씀의 화살을 6번, 7번을 치는 능력을 체험하게 하여야 한다. 생명을 걸만한 믿음과 충성과 열정을 회복하여서 겉으로 드러난 한국교회의 6만 교회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형 교회인 우리 자신도 바로 서서 이 민족의 방향이 참으로 새롭게 집필될 수 있도록 은혜 위에 은혜를 간구하며, 오늘 엎어지고 답답한 그런 힘든 환경에 처했어도, 말씀으로 완전히 회복하게 하여야 한다. 힘의 원천이신 성령님께서 ‘예수님보다 더 큰일’을 행하게 하실 때, 교회를 어둡게 하는 모든 회의주의, 패배주의, 냉소주의, 비관주의를 ‘주님의 철장권세’(鐵仗權勢)로 다 깨뜨려 주시니, 고난의 파도 앞에서 무력감에 빠질 때, ‘불처럼 뜨거운 사명의 화살’을 들어 여섯 번, 일곱 번을 내려치며 7천 교회와 함께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완전히 비상하게 하기를 소원하자.
-제자들은 주님과의 이별의 슬픔과 주님이 떠나가시면 그들을 누가 돌보아 줄 것인가 하는 염려로 가득 찼다. 주님이 그들을 떠나가시면 제자들은 목자 잃은 양같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어려운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옷을 입게 될 것이라고 확신 시켜 주시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서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성령은 위로 자이시며, 이 모든 일들을 제자들에게 온전히 이루어 주실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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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1월 26일)
제목: "선택받은 신비로움"
말씀: 말라기 1:2-3,
에배소서 1:3-6
찬양인도: 쉐키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김기완 부목사님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말라기 1:2-3,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에배소서 1:3-6,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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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배와 말씀을 통하여 어두운 인생은 등불을 발견하게 하시고 그다음 메마른 분들은 생수의 강을 경험하게 하시고 그리고 허기진 분들에게는 생명의 양식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이 회복을 넘어 부흥 시리즈 하면서 꼭 한 번 하고 싶었던 것이 ‘선택의 교리’였습니다. 저희 교회가 지난 한 주간 동안 새 생명 축제를 하는데 2,325명의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받았는데 오늘 이 선택과 예정의 교리 이 내용을 하면 이제 다음 주가 이제 대장정을 마무리를 하는데 이건 꼭 제가 하고 싶어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처음 교회에 오신 분들은 본문을 말라기 하면 이 말라기가 뭔가 말라기는 마지막 말라기인가? 말라기는 ‘나의 사자’라는 영어로 멜라카이, 그래가지고 선지자의 이름이고 또 오늘 이 본문의 에베소서는 바울이 너무나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썼던 것이에요. 그러니까 바울이 1차전도 여행도 3년도 안 하고, 2차도 3년도 안 했는데, 바울이 이 에베소 교회는 3년 이상을 죽어라고 전력(全力) 투구(鬪狗)의 눈물과 정말 최선으로, 목양한 그런 교회니까 여기에 막 진수 중에 진수가 담겨 있고 구원과 은혜와 관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정말 선택받고, 하나님의 예정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된 것에 대한 무한하고도 영광스러운 진리가 이 안에 포함돼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처음 보는 분들은 에베소서가 뭔가 이 임산부들이 읽는 건가? 그 분도 계시는데 그건 아니고 너무나 하나님의 이 간절한 심정이 담겨 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선택과 예정 교류는 다시 말합니다. 우리 인간의 제한된 것으로 다 제가 칼같이 설명할 수도 없고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에 기록된 말씀으로, 우리가 깨달을 거는 다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여러분들이 이 말씀에 대한 깊이를 깨닫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구약 본문과 신약 본문을 정했는데 구약의 말라기 1장 2절 3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뭐예요? 에서는 미워했다.
 
*말라기 1:2~3,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첫째 I.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
 
-이것은 사랑하고 미워한다는 이런 내용이 나와 있는데 이거는 인간이 이해하기 쉽도록 말씀한 것이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이런 어떤 감정적인 어떤 그런 하나님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사랑의 깊이 그러니까, 야곱을 더 깊이 사랑하고 사랑했다. 그런 뜻이고 또 미워한다는 말도 우리가 미워 이 정도가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저 미운 놈 그럴 때 잘못되라고 그런 것이 아니라, 미울 정도로 사랑하니 다시 돌아와라 하는 그런 뜻이 포함돼 있는 거예요. 사실은요. 사실 포함돼 있는데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한다.
 
난 어릴 때 이거 보면요. 늘 스트레스가 쌓였어요. 왜냐하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에서는 뭐라고 그랬어요?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저는 장자거든요. 그러니까 이 에서는 겉으로 볼 때는 괜찮았다고요. 사나이답고 남성성이 있고 리더십도 있고 야곱은 조금 그랬었어요. 그런데 이유를 몰라요. 당신은 장사가 중요했는데 장사가 아니라, 사자인 야곱을 선택하심으로 불문율처럼 내려오던 그런 관습을 뛰어넘는 특별한 선택을 하셨어요. 참, 그래서 제가 저는 장자로서, 스트레스 받네!!. 근데 말씀을 깊이 깨달으니까 이게 스트레스 받는 것이 아니에요. 스트레스 받는 것이 아니고 깊이 이걸 깊이 있게 이해한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43장에 놀라운 말씀을 나오고 있어요.
 
*이사야 43:1,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그러니까 선택의 교리는 야곱이 주님의 것이라고 선포된 것처럼 다 같이 읽겠습니다. 선택의 요리는 우리가 주님의 것임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선포하는 것이다. 이 선택의 교리가 너무 신비롭고 신묘막측하기 때문에 마귀는 이걸 못 깨닫게 하려고 별수를 다 쓰는 거예요. 별수를 다 쓰는 거예요. 마귀는, 마귀는 별수를 다 써가지고 야 누구는 선택 안 하고 누구는 선택하고 그거 너무 너무 저기 뭐야 엄격한 거 아니야,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야? 이런 식으로 하면서 하여튼 별 중요하지 않는 것, 가장 핵심적이지 않는 것, 주변머리의 것에 관심을 갖게 하시고 진짜 중요한 것 “너는 내 것이다.” 선택의 교리는 우리가 누구의 것이라고요? 주님의 것이라 그러니까 이 선택의 교리를 우리가 제대로 깨닫기만 하면 우리가 여기서 눈물 나는 감사가 있는 것이 이걸 이제 바울이 나중에 바울 사도가 더 깊이 깨닫고 난 다음에 오늘 에베소를 썼습니다마는 로마서 9장 15절에도 뭐라고 말씀하느냐,
 
*로마서 9:15,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긍휼히 여길 자를 뭐 하게 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그다음에 불상의 글자를 뭐 한다고요? 불쌍히 여기리라. 선택의 결의 키는 뭐냐 긍유의 글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의 은혜이시다. 저는 기도할 때마다 제가 영화로우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도 우리 아버지 기도하지만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겨주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택의 교리로 이렇게 나타난 결론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야곱을 선택하심과 같이 긍휼의 의심과 불쌍히 여심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걸 깨닫는 순간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예수님 갈보리 가야 했나,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선택하나, 왜 날 선택하셨나, 왜 주님 갈보리 가셔야 하였나 왜 날 선택하시나. 찬양...
 
※저희 교회에 초등학교 1학년, 초등학교 1학년에 어떤 아빠가 딸아이에게 어린이 그림 성경으로 방주 이야기를 읽어줬어요. 이 노아의 방주. 그래서 근데 1학년 밖에 안 되는 딸아이가 아버지가 물어서 아파 그 “방주 문은 누가 닫았어?” 여러 방주문은 누가 닫았죠? 하나님이...하나님이 창세기 7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문을 닫으시니라 그렇게 나와 있어요. 그러니까 방주문은 그 아빠가 하나님이 문을 닫아주셔서 그리고 말하고 난 다음에 그 아빠가 뭐라고 얘기했냐면 ‘하나님은 120년 동안 120년 동안 사람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리셔서 120년 동안 한 명 한 명 구원하려고 기다리셨는데 사람들이 거절하고 안 탔단다.’ 그러니까 그 딸아이가 뭐라고 그러냐면 1학년밖에 안 딸아이가 “아빠 그럼 방수 밖에 내린 빗물은 하나님의 눈물이야?”
 
알 사람은 알도다. 밖에 방주 밖에 내린 빗물은 하나님의 눈물이야. 참 칭찬하고 싶어요. 이 선택의 교류에 대해서 누구는 구원받고 누구는 구원받지 못하느냐, 그 관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타까운 하나님의 긍휼하심, 하나님의 자비로우심 때문에 8명이라도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선택의 교리를 이제 바울은 깊이 깨닫고 난 다음에 선택의 교리를 오늘 본문을 통하였다. 딱 한 센텐스로 딱 요약을 했어요. 뭐라고 요약을 했느냐 오늘 이렇게 나와 있어요.
 
1장에서 먼저 3절에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아버지께서 창조주 하나님 창조주 아버지께서 그다음 4절에 뭐라고 되어 있냐 우리를 선택하사 그다음 5절에 뭐라고 돼 있느냐 자기 뭐가 되게 해주셨다고요 아들들이 되게 해주셨다.
 
*에베소서 1:3-5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거 선택 교리에 ONE-센테스로 요약한 것이에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선택하심으로 우리를 그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다. 하나로 요약하면, 이걸 여러분들 영적으로 깨달아야 되는 거 크게 읽읍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선택하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내게 오셨다. 그래서 이 선택 교리는 섭리의 최고봉이요. 선택 교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최고봉이요. 하나님의 신비한 주권적인 결정이에요. 누구는 택하고 누구는 버렸다는 두려운 결정론에 대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나를 선택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신앙고백과 영광송이 여기 들어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마귀는 이 선택 교류에 대해서 하나님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고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안 구하는데 여기에 대해서 막 관심 기울이게 하고 진짜 중요한 영적인 깊은 은혜의 바다에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계속 우리를 갖다가 의심을 들게 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선택은 하나님의 섭리의 최고봉이고 그의 긍휼하심과 그의 불쌍히 여기심 때문에 나를 하나님의 아들과 자녀들이 되게 해 주셨느니라. 이걸 깨닫는 순간, 이걸 깨닫는 순간 거기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신앙고백과 감사의 신앙고백과 그다음에 뭐예요? 영광송 이 닥살라즈라고 이 히랍어로 독사 하면 뱀 이름이 아니고 영광이라는 뜻이에요. 독사 그러니까 하나 이 선택받는 거에 대해서 하나님께 큰 영광과 감사의 찬송을 드는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수태고지(受胎告知)를 통하여, 천사를 통하여 마리아에게 너 처녀가 아들을 낳겠다. 그러니까 이거는 처녀 입장에서는 날벼락들은, 날벼락이 없는 거 아닙니까? 이거 내 인생 끝났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그 선택받은 거에 대해서 마리아가 일제 다른 얘기 아니고 ‘내 영혼 주 찬양하며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면 능하신 이가 내게 큰일 행하셨으니 내가 주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그 선택에 대한 반응은 오히려 감사의 고백과 영광송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영광 송은 이 ‘덕살라지’ 라고 영광송은 최고의 하나의 어떤 찬양이 만복의 근원 하나님 원 백성 찬송 드리고 선택받은 ‘만복의 근원 하나님, 만복이라는 거는 텐 아웃은 만개의 복이다.
 
제가 아는 제 친구 비슷한 분 한 분 계시는데 이분이 손자를 낳았어요. 그래서 이름을 뭐라고 짓느냐 만복이라 하라라 만복이라 하라. 그래서 동사무소에 이름을 만복이라 하는데 동사무소 직원이 아니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민서 이러면 이름 해야지 요즘은 세상 만보기가 뭐냐고 이런 촌스러운 이름이 어디 있느냐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으니 만복의 근원 하나님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만복의 근원 하나님 이름이 서만복이야, 박만복, 김만복, 오만복, 최만복, 정만복 그러니까 선택에 대해서 우리의 반응은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선택 안 했다. 언페어하다는 게 아니라 나를 이유는 모르지만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셔갖고, 야곱처럼 ‘너는 내 것이라’ 이런 선택한 거, 이 선택의 은혜를 제대로 깨닫게 되면 압도적인 은혜가 되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극한 찬양과 예배가 올려 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확신과 평안과 기쁨과 찬양이 넘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장자 컴플렉스 크던 데가 다 없어지고, 제가 나중에 야곱을 깊이 연구해 보았더니, 히브리서에 보면 나중에 야곱이 그가 이 선택을, 하나님이 야곱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너는 내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야곱이 나중에 더 깊이 깨달았을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의 자손들을 축복하고 감사하고 심지어 애굽의 대 황제 파라오도 축복하고, 나중에 그가 지팡이의 기대에 서서 그의 마지막에 지팡이를 기대오소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배하고 찬양하고 돌아가느라. 그리 돼 있어요.
 
하나님께 섰느니라. 그게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의 큰 축복 확신과 평안과 기쁨과 찬양의 현장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이 마귀는 이 선택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선택에 대해서 거듭나지 못한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게 가장 혐오스러운 교리라고 생각하고, 또 마귀는 이게, 이게 피조물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 것으로 알고 창조주만을 가장 중요한 존재로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그냥 나름대로 자부심이 강하고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그다음에 나름대로 공로 의식에 젖은 공로주의자들은 이 복된 진리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거예요. 하지만 인간의 마귀의 시험들을 가지고 혐오하든 반발하든 상관이 없이 선택 교류는 최종적이고, 불변적이며 영원한 진리로 디사이티브(Decisive)하고 결정적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선택 교리가 저와 여러분의 삶에 대해서 선택 교리가 여러분들의 삶에 대해서 앞으로 신앙생활의 정말 귀한 방패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보호할 것입니다. 이 선택 교리가 물고기가 물속에서 안정을 누리듯이, 흙이 흙 뿌리에 뿌리를 내리면서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창조 질서 가운데 자유를 누리듯이, 선택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강력한 질서를 통하여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이 선택의 진리를 제대로 깨달은 바울이 하나님이 에베소서를 말씀하시면서, 로마서 8장 30절에 우리가 암송하는 것인데 얼마나 우리에게 방패가 되는가 선택 교리의 총 정리한 것이 뭐냐 같이 보시죠.
 
*로마서 8:30,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또 미리 정하신 그들, 또 미리 정하셨다는 것은 예정하시고 선택하셨다는 것이에요. 예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그랜드 디자인이에요. 하나님의 매스터 플랜(Grand Design/Master Plan)이에요. 그 가운데서 선택이라는 것은 그 하나님의 그랜드 디자인 하나님의 매스터 플랜(Grand Design/Master Plan) 이 예정을 우리의 것으로 체화될 수 있도록 우리의 것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선택이에요. 그 선택하신 그 주의 백성들을 주님이 첫째 뭐 하시고요 부르시고, 콜링하시고, 소명이 부르신 그들을 또한 뭐예요?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 뭐예요?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생각할수록 여러분과 저의 삶은 구원받고 난 다음에 어마어마한 삶의 여정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에요. 이런 은혜가 부르시고 정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은혜를 찬양합니다. 그럴수록 나에게는 눈물 나는 감사가 있다고는 이런 뜻이에요.
 
전 세계 인구가 한 80억 정도 돼요. 얼마 합치면 78억 80억이 되는데 80억 가운데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았다라고 보어게인하고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생명의 구주로 모신 사람들이 몇 프로나 될까요? 전 세계 80억 가운데 지금 현재 한 10억 될까요? 좀 더 쉽게 말하면 대한민국이 지금 5천만 인구인데, 5천만 인구 가운데서 우리 크리스천이 천만 된다고 그러고 천만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이 나라를 선택 했다는 사실 앞에 눈물 콧물 나며 감사하며 감격하는 이분들이 한 500만 될까요?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그 선택의 대상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500만 될까요? 그러니까 우리 민족의 퍼센테이지(%)로 따져봐도 10분의 1밖에 안 되는 거예요. 10분의 1밖에 안 되는 그 구원과 이 영적인 생명의 신비와 능력을 우리들에게 깨닫게 하신 그 은혜가 그게 너무 감사해가지고, 우리가 자주 옛날 어른들이 기도하는 제목들을 천의 하나, 만에 하나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셔서 오늘 이 자리에서 주님 앞에 감사의 눈물과 고백과 찬양과 예배를 영광송으로 드리게 되는 것이에요. 이 선택하신 교리가 너무 값진 교리가 되고 너무 영광스러운 교리이자 방패가 되기 때문에 마귀는 전력(全力)투구(鬪狗)해서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흐트러놓고 질박으려고 그러는 것이 선택의 교리는 다시 누구를 선택하지 않았다. 어려운 말로 유기(遺棄) 혹은 버리심 이게 아니고 나를 야곱처럼 선택한 것이 너무나 큰 은혜구나 너무 너무 축복이구나. 그래서 제가 자목을 해놨어요. 선택 교리는 뭐예요?
 
▷유기(遺棄)와 버리심이 핵심이 아니라 나를 선택하심에 대한 긍휼(矜恤)과 은혜(恩惠)가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나를 선택하신 것이라고 이게 고마워 가지고 자다가도 일어나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로 쓸데없는 자 왜 나를 구원해준 왜 나를 선택했는지 다 알 수가 없도다.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오늘 아침에도 제가 새벽에 일어나가지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영광스러운 이 선택의 교리 이걸 우리 성도들과 함께 나눌 때 하나님 이것이 어떤 마귀의 공격도 다 이겨내게 하시고 성도들이 이걸 다 다 진리 가운데서 은혜의 바다에 들어가 가지고 물론 우리가 다 연약하고 제 안에 있지만 이걸 깊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 선택 교리는 하나님이 일일이 다 설명을 다 안 하세요. 지금 말씀하시는 말씀 정도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냥 선포하세요. 마치 이것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러분 창조를 어떻게 했는지 물론 말씀으로 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블랙홀은 어떻게 되고 빅뱅은 어떻게 되고 어떤 이게 우주는 어떻게 생성되고 일일이 다 말씀 안 하세요. 말씀 안 하시는 대신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그 창조주 하나님 앞에 지금 우리 가을에 이 겨울이 되기 직전에 뭐예요? 아름다운 낙엽들을 보게 하시고 저는 저 이제 아파트에서 보면 우면 산이 보여요. 우면 산의 그 만산홍엽(滿山紅葉)을 보고 야 또, 또, 또 한겨울이 또 한 계절이 지나가구나! 이 시대 앞에서 그 자연을 보면 내 마음이 쭉 이렇게 치우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구체적으로 다 우리가 다 깨달을 수가 없어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의 삼남 상 이 질서 앞에 그 하나님의 이 자연의 이 은혜 앞에 자연의 혜택 앞에 우리는 감사하고 우리는 치유가 되고 힐링이 되고 그렇게 하는 것이에요. 똑같아요. 선택의 요리도 똑같아요. 내가 선택받은 것에 대해서 우리가 감사하고, 이 말씀이 제대로 깨달아지면 이상하게도 선택받은 것 때문에 내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것이 기쁨이 생기고 선택에 확신이 생길 때 나도 모르게 평안이 넘치고 다시 확신 가운데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선택에 대한 결과가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찬송하리로다! 찬송하리로다.
 
오늘 에베소서 1장 곳곳마다 오늘 3절 상반 절에 찬송하리로다. 한마디로 찬송하리로다. 6절에도 보니까 나를 사랑하듯이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12절에도 보니까 그의 영광이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또 14절에도 하나님 그의 영광을 성령 하나님께서 그걸 깨닫도록 우리에게 익히게 하실 때는 우리가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찬송하리라. 그래서 이게 찬송하라도 찬송을 하기 때문에 다윗을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찬송에 대해서 익숙하고 기독교에만 선택에 대한 찬양과 감사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영광송,,, 목사님 이걸 이제 제가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를 해드리면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그러면 선택의 핵심이 뭐냐 선택의 키가 뭐냐 첫째 우리를 창세전에 선택했다는 것이 제 얘기가 아니라 오늘 본문에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4절에 곧 뭐예요?
 
*에베소서 1:4,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사, 이 창세전에 라는 말씀이 우리가 이해하도록 창세전이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하나님은 거기에 대한 무식한 적인 개념이 있어요. 하나님은 늘 현재이세요. 하나님은 과거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에 더 민감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항상 현재가 되는 것이에요. 새 생명 축제 때 2365명의 분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가 하나님 믿겠습니다. 라고 하신 분들이 오늘 여기 오시면 여러분들 입장에서는 지난 몇십 년 동안 그 있다가 오늘 여기 온 것 같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이것이 전체 과거 현재 미래가 다 현재가 되어 가지고 이 자리에 와서 하나님 제대로 믿고 찬양하고 이 선택의 교리를 감사하고 그러면 여러분들의 여러분들은 그것이 과거와 현재가 다 상관이 없이 하나님의 찬송과 감사가 현재가 돼버리는 것이에요.지금 감사와 지금 찬양과 지금 은혜가 넘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그랜드 디자인이 이걸 다윗이 깨닫고 너무나 놀라운 고백을 하는 것이 이것이 오늘 창세전에 하나님 우리를 택했다는 것에 대해서 저와 여러분이 깊이 다윗처럼 고백해야 할 것인데, 시편 139편은, 다윗이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서 말로도 할 수 없는 감사와 고백을 하는 것인데 139편 보겠습니다. 시편 139편 16절에 보니까 같이 보겠습니다.
 
*시편 139:16,
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이게 너무 중요한 거예요. 선택에 있어서 하나님은 무시간대의 개념이 창세전이라는 말이 우리가 지금 다 이해할 수 없는 깊이가 있는데 조금 더 그나마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면 이런 뜻이에요.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주님이 나를 보고 계셨다. 여러분 이해가 됩니까? 하나님이 창세전에 무시간대의 이 깊이 있는 이 세상의 어떤 철학도 이해할 수 없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셨다. 아멘... 내가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셨다. 그다음에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나이다. 이게 무슨 말씀이에요? 역사가 이게 저게 히스토리 역사예요. 주의 책에 우리가 살아온 날들이 기록이 되는데, 우리 여러분 역사를 기록하려면 내가 살아온 것이 있어야 역사를 기록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내가 살아온 것이 하나도 없는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내가 하루도 우리 이 시대에 우리 3차원의 세계에서 이해하는 말로 우리가 매일매일 살아가는 역사를 우리가 역사를 우리가 살아가기도 전에 하나님이 내 역사를 다 기록해 놓으셨다는 것이에요. 알 사람만 알도다. 이게 창세전의 뜻이에요.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사울 왕이 엉망으로 살아가지고 하나님이 사무엘을 보내가지고 예언을 해요. 내가 다윗의 다윗을 보니까, 내 마음에 합한 자라. 이 다윗을 앞으로 다윗 왕국의 왕으로 세워가지고 다윗 왕국의 위를 영원케 하리라 그랬어요. 여러분 그게 언제인지 알아요? 성경을 이렇게 깊이 모르면 잘 모르시죠? 다윗이 태어나기 8년 전이에요. 창세전에, 이유를 모르지만 하나님 무시간대의 개념에 계시기 때문에 오늘 이와 같이 여러분들이 나와서 추위를 무릅쓰고 나와 가지고 이렇게 사모해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거 아닙니까? 오늘은 그래도 영하 조금밖에 안 내려갔지만 앞으로 영하 20도 30도 되면 나올 거예요? 안 나올 거예요? 선택받은 은혜가 너무 감사하면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와 감격의 영광성을 올려드리면 그것이 창세전에 나를 택하신 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아닌데도 하나님의 기념 책에 내 생애를 기록하시는 그런 영광스러운 축복이 있는 것이에요. 그럼 육신적으로나 여러 가지 환경적 어려움이 있어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지필 하는 인생이 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창세전에,,,신묘막측,, ‘내가 아직 형질이 지어지기도 전에 태어나기도 전에 주님이 나를 보셨으면 내가 아직 내 인생의 기록을 쓰기도 전에 하나님이 내 인생의 기록을 쓰셨도다.
 
다윗이 태어나기 8년 전에, 하나님이 다윗을 통하여 다윗 왕국의 영원한 다윗의 왕국의 위를 펼칠 것을 약속하고 계시고, 육신적인 다윗의 씨는 다, 다 이렇게 다윗의 지니얼하죠. 다윗의 블라드라인 다윗의 계보는 다 없어졌지만, 우리는 영적인 다윗의 계보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돼가지고 그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심으로 말미암아 창조주 하나님이 선택하신 우리가 다윗 아들들이 다윗의 후회가 되게 하셨느니라. 어마어마한 일이에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조금 불편하고 여러분들이 좀 이해가 안 되고 여러분들이 좀 은폐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도 여기에 다 정리되게 돼 있는 것이에요.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오늘 4절 5절, 6절에 계속 나오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5절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절에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은혜로 우리를 선택해 주신 것이에요.
 
*에베소서 1:3-5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첫 번째는 뭐라고요? 창세전에 두 번째는 뭐라고요? 두 번째는 뭐라고요? 그리스도 안에서 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이 에베소서에 34번 나와요.
 
▷첫 번째는 창세전에
▷두 번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바울이 주목하고 살아가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눈물과 피로 정성으로 했던 그 목욕을 하면서 깨달은 그 깊은 진리를 가지고 말씀하신 거예요. 너의 선택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에 대한 이 힘이 막직한 하나님의 놀라운 이 깊이를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나마 그래도 딱 한 가지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선택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니까 여러분과 제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좀 부족할 수 있어요. 실수할 수 있어요. 범죄 할 수 있어요. 상처받을 수 있고 힘들 수 있어요.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그럴 때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 저를 보시고 제가 보증하오니 쟤 괜찮을 겁니다. 그래도 끝까지 잘 갈 겁니다. 야곱을 보세요. 야곱의 생애를 보세요. 엉터리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야곱을 보증하신 것이에요. 다윗의 생에 엉터리 많았어요. 문제가 많았어요. 그런데 하나님 다윗 저거 다 끝내버리자 아니에요. 하나님 내가 보증합니다. 내가 보증합니다. 사랑의 교회 김이 최박과 온갖 성실을 가진 주의 성도들 실수도 많이 하고 오늘도 엉터리 되고 오늘도 부족하기 짝이 없는 사이고 왔지만 그래도 너 부끄럽고 많은데 주님으로 야 내가 보증이야. 주님께서 내가 보증금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보증합니다. 문제 생기면 제가 책임집니다. 주님 제가 책임질 테니까 주님의 선택이 계속 유효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거예요. 주님이 언제 보증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언제 보증하신 거예요?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너 창세전에,,, 우리가 깨달은 것이 우리의 유효 화된 것이 십자가에 못 박아질 때지만 정말로 너무 이 선택의 깊은 진리에 들어가면요. 이유는 모르는데, 창세전에 이미 우리를 보증하신 것이 눈물 안 납니까? 거기에 영광 송이 없겠습니까? 우리의 힘으로는 구원의 문 근처도 갈 수 없었지만 예수님의 보증만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그의 자녀로 선택하신 것이에요. 이게 신묘막측한 것이에요.
 
그래서 절망 중에 인간이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는 원천이 되는 것이에요. 살아있는 보증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걸로만 선택의 이 교리가 끝난다면 조금 조금 그냥 이 정도 될 건데 이제 진짜 클라이맥스가 남아 있는 것이 그 클라이맥스가 뭐냐? 오늘 4절에 뭐라 그랬냐면요.
 
*에베소서 1:4,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선택하신 것이에요. 대체적으로 시험 들고 신앙의 깊이가 없고 삐딱선한 사람들은 그래 예정론 선택론 그게 맞다면, 그러면 선택하셨다면 마지막에 꼴까닥 죽기 전에 딱딱 주님 믿고 이렇게 한다면 지 마음대로 살아도 되겠네. 선택한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뭐 할 짓 다 하고 살아도 되겠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천만의 말씀 이 선택의 은혜가 우리에게 진짜 와 있을 때 이게 내 것으로 깨닫게 될 때는 우리가 정말 주님 앞에 거룩하고 흥미 없게 살도록 노력하게 되는 것이에요. 이게 바로 KEY예요. 선택의 교리는 우리가 방송하고 죄를 부추기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도록 격려하는 것이에요. 왕 같은 제사장의 삶을 품위 있게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 선택받았다고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정반대예요. 4절에 다시 한 번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리고 거룩하고 흠이 없어가지고 거룩하고 흠 없는 자체가 목표는 아니죠. 거룩하고 흠이 없어가지고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선택의 교리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온전한 제자가 되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그럼 저와 여러분이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흥미 없는 온전한 제자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될 수가 있는가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를 의지하던 사람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가족만을 의지하던 사람이, 시간을 가면 갈수록 남편만 의지하던 사람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 명성과 내 물질과 내 위치와 내 환경만을 의지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 선택 은혜에 감격 감사해 가지고 거룩하고 흠이 없게 살려고 내 마음에 기도와 삶을 집중할 때 나도 모르게 주님만을 의탁하고 주님을 닮아가고 온전한 제자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선택의 교리에 들어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를 하나님의 온전한 제자로 만들어야 되니까,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 돼야 되니까, 자기만을 누려야 하고, 자기만을 신뢰하던 사람, 가족만을 의뢰하고 가족만을 신뢰하던 사람, 자식만을 의뢰하고 자식만을 신뢰하던 사람 그런 수준을 뛰어넘도록 만들어주신 것이에요. 그러니 이런 뜻이에요. 어떤 자매가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이 인생 최고입니다. 남편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 희한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그 자매에게 남편만이 전부인 것처럼 살도록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울게 만들어요. 의지하는 것이 의지가 안 되도록 만들어요. 하나님만을 의뢰하도록 만드시는 거예요. 선택받은 자로서 있잖아요. 거룩하고 흥미 없고, 선택받은 자로서 주님을 은혜 하도록 만드시는 것이에요. 내 것이라.
 
자녀가 내 인생의 꿈이었어. 자녀가 정말 속 썩이고, 내 인생의 모든 꿈을 다 앗아가고 나를 미치게 만드는 걸 그는 그 과정을 거침으로 말미암아 자녀만을 의뢰하는 것이 자녀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주신 것이에요. 그리고 그 자녀도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녀인 줄 믿고 하나님 의탁하고 좀 자유로워지는 것이에요. 그리고 가장 문제가 뭐냐 여러분 자아예요. 자아 저와 여러분의 자아예요. 이 자아를 나도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아가 있는 거예요. 이 자아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 자아가 와서 살짝 깨지도록, 수많은 과정을 거쳐서 눈물 나는 파노라마식의 과정을 거쳐가지고, 수많은 연단과 고난을 거쳐가지고, 여러분 자아를 의뢰하지 아니하고, 내 자신을 의뢰하지 아니하고, 나를 선택하신 그분만을 의뢰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거룩하고 흥미 없게 하시고 주님을 더 닮아가게 붙드시는 것이에요. 이걸 저와 여러분이 제대로 깨닫고 나면, 세상 사람들부터 좀 초라해도 오케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보잘 것 없다 하더라도, 창세전에 우주만물이 생기기 전에 하나님께서 자기 기쁘신 뜻대로 나를 선택해 놓으셨다면 여러분과 저는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보통 존재가 아니야 변질될 수 없는 결정적이고도 단호한 이 불가사의한 진리 앞에 우리가 나도 모르게 매일매일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나를 선택하셨으니 나는 보통 존재가 아니게 된 것이에요. 따라서 나를 선택하셨으니 나는 보통 존재가 아니다. 아멘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쓴 에베소서를 쓰는 이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이걸 썼어요. 옥중 서신에 그가 몸은 비록 갇혀 있었으나 하나님의 이 놀라운 선택의 은혜를 깨닫고 난 다음에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윗을 깨닫고 다 깨닫고 나니까 자유인이 되게 된 것입니다. 몸은 부자유였으나 그의 영과 그의 인생은 참 자유를 누리게 된 겁니다.히브리서 11장에 야에 대해서 다 같이 크게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1:21,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할렐루야! 지팡이를 의지하고 경배하였습니다. 무수히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선택하신 여러분들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말도 안 되는 어려운 말도 안 되는 짐을 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걸 통하여 주님만을 전천 의탁하고 거룩하고 흥미 없게 하시려고 주님을 찬양하게 하시려고 하는 과정인 줄 깨닫고 야곱처럼 결국은 내가 야 너는 나의 것이라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광송 돌리는 그런 주의 자녀들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걸 깨닫고요. 저 삼각산에서 밤에, 밤에 비가 오는데도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찬송하세, 찬송하세요. 주가 구원하셨네. 이런 찬송이 막 몇 번 수 번 부르는 거예요. 오늘 이 자리가 기도원 자리라고 생각하고 여러분 은혜의 산상에 올랐다고 생각하시고 마음을 다하여 찬송하시면서 모든 짐진 것들은 정리하고 선택의 은혜, 이 영광스러운 신비로움에 여러분 인생이 새로워지고 새 차원으로 올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약
창세전에 우리의 형질이 조성도 되기 전에, 우리를 선택하신 너무나도 신비롭고 놀라운 은혜를 찬양 올려드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심으로 어떤 경우에도 어떤 상황에도 주님이 보증되어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한다. 지금 내가 좀 초라하고 보잘 것 없다하더라도 주님의 선택 때문에 내가 너무나 귀한 존재가 되었음을 굳건히 믿고, 야곱처럼 주님 앞에 설 때까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인생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인생이 되어, 가족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 자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이 세상의 수많은 사회적 성취나 명예나 정치나 삶의 모든 환경 가운데서 다 자유로워지는 모든 것 다 주님께 맡겨서 주님 앞에 갈수록 더욱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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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1월 19일)
제목: "새로운 창조물"
말씀: 고린도후서 5:17~20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장단희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ㅡ


*고린도후서 5:17~20,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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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단위에 이런 과일들이 다 있는 것이 이번 주나 다음 주까지, 전 세계는 추수 감사 주일로 지나고 있어 물론 좀 빨리 지났습니다마는 지난번에 말씀한 대로 지금 현재 우리의 감사의 수준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배드리면서 남들이 모르는 초월적 감사, 절대 감사, 평생의 감사가 우리 성도들의 미래가 결정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정말 고마운 거 하나는 지난 목요일 날 저녁에 우리 아이들 수능 대면으로 6,400명의 아이들이 와가지고 여기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자기들의 생애를 주요성을 의탁하는 것을 보면서 제가 담임 목회자로서 너무 많은 감동이 있었어요. 한국교회에 소망이 있다!!. 다 패배주의 비관주의 그리고 냉소주의를 극복하고 한국사회에 소망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는, ‘새로운 창조물’에 대해서 제목으로 말씀을 드릴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우리 암송하는 우리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뭐라고요? 피조물이다. 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이 새 한글 성경에는 ‘새로운 창조물’이다. 이렇게 번역이 돼 있습니다. 오늘 회중 찬조한 것처럼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을 얻은 몸,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 얻어 할렐루야!~~. 제가요. 여러분들 회중 찬송에서 나를 많이 봤어요. 제가 이 찬송을 선택하는 데는요. 제가 모험이 필요해요. 왜냐하면 이 찬송 길이가 보통 찬송의 1.5배, 그러면 그냥, 제가 설교 시간이 줄어지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택했는데, 그냥 매가리 없이 찬송을 하고 있다. 여러분 담임 목사가 가끔은 이런 얘기를 해야 합니다. 누가 좋은 말 하는데 그랬어요. 찬송 하나를 가지고도 진짜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창조물로 된 찬송을 하는데 그냥 달싹달싹하면 안 되는 거예요. 전력투구의 해서 해야 하는 거에요. 전력투구해서요.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새 영 새 몸 새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입술에 찬양의 새 노래가 흘러나오는 거예요.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을 되고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 before, after, 이전과 이후가 확실하게 다른 것이 새로운 창조물이라는 뜻입니다.

본문을 기록한 바울은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죠? 살인 주동자로 예수 믿는 사람 다 죽이려고 그러다가 그 마사에서 거꾸로 져가지고 3일 동안 눈이 멀어가지고, 이랬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새로운 창조물로 만드시고 그 눈꺼풀의 비닐이 떨어져 나가게 하시고, 그 살인 폭행자요, 주동자가 무슨 죄인의 교수가 무슨 일이 벌어졌어요? 오늘 복음 선포자로 쓰잖아요. 영광스러운 새로운 창조물이 된 거예요. 어두운 가운데 있었던 그가 눈에서 비닐 같은 것이 벗어지면서 참 빛의 자녀가 된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요한 켈린 선생님 같은 분은,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부패한 의지가 선한 의지로 변화되는 것이며 예수 믿기 전에는 선명하지 않았던 대립이 명확해진다 그랬어요. 나중에 내가 자막으로 한번 보여드리고 싶은데 부패한 의지가 선한 의지로 대화되는 것이며, 예수 믿기 전에는 선명하지 않았던 대립이 명확해서 무슨 뜻인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그 경계가 모호했어요. 희미했습니다. 오리무중이었지만 예수를 믿었던 난 다음에 하나님의 영역과 사탄의 영역이 다 구별되는 것이에요. 그리스도와 저 그리스도가 구별되는 것이 교회와 세상의 일들이 구별되는 거예요. 물론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영역 하나님의 영역에 미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과 그렇지 않은 일들이 구별이 대표적인 예로 동성애 확대법 됩니까? 안 됩니까? 이거는요 안 됩니다. 새로 이거는 창조의 영역,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영역에서 벗어나려고 하니까, 이건 우리가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에요. 그리고 여러분과 제가 지금 1부 예배 같은 경우는 다 우리가 새로운 창조물로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참여하고 있잖아요.

여러분과 제가 새로운 창조물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요? 어떻게 판별할 수 있나요? 판별의 기준은 뭐냐? 위기의 순간에, 인생 위기의 순간에, 그 위기의 순간에 성경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위기를 타개하는 결정체가 되는지 아닌지가 그것이 바로, 이 사람이 다른 말로하면 성경 말씀이 당시 위기의 순간 여러분의 삶을 결정하는지 아닌지 그걸 확인하는 것이에요. 또 하나 그러니까 우리가 위기의 순간에, 우리가 주의 말씀을 의지하여 접근을 달리고 주의 말씀을 의지하여 극감을 밝히리이다. 아멘. 그다음 위기의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엎드리면 여러분들은 새로운 창조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새로운 창조물은 어떤 경우에도십자가가 인생 도로길의 중앙선을 삼는 사람들 그러니까 중앙선이 인생의 도로 기능이 있잖아요. 중앙선이 딱 표준이잖아요 표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을 결정하게 하고, 십자가를 삶의 중앙선으로 삼고 있다면 여러분은 예수님 믿고 새로운 창조물로 살아가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창조물로서의 세 가지 삶의 형태가 있어요. 지난주는 제가 세례식을 하면서 장례식 치러야 한다고 그랬죠? 내 자아에 대한 장례의식이에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공로가 아니고 주님의 은혜 아래 나 자신을 맡기면서 염수 같은 태도가 아니라 착한 자의 태도를 갖는다.

제가 장례식 얘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세 번째로 할 거예요.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은 장례식을 치르는 이거 굉장히 소극적인 얘기예요. 좀 이게 이게 장례식이 아니라 소극적이라면 진짜 중요한 거는 뭐냐 더 우리가 장례식을 내 힘으로 치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더 중요한 것은 주님과 연합되어 가지고 주님과 연합이 있어야 장례식을 치를 수 있죠. 여러분과 제가 우리 실력으로 장례식을 못 치릅니다. 내 자아의 당 장례식 내 자아를 깨뜨리고 내 본능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그 모든 인간의 자유 의지를 정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안에서 제대로 하려면, 주님과 연합 때문에 경지가 올라가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뭐에? 아래에 있으라. 17절에 아래에 있다는 말이 주님과 연합되었다는 말 그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주님과 연합되어 있다는 말이에요.

*고후 5:17,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고 주님과 연합되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고하시고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휘몰아치고 이렇게 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내 자아는 장례식을 하지만 주님과는 연합되고 결혼식을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장례식과 결혼식이에요. 무슨 영화 제목이나 그런 거 있죠 장례식과 결혼식이에요. 장례식과 결혼식 15절에 보니까 15절 보니까,

*고린도후서 5:15,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그들 그들 그들 여러분 여러분들 보시라. 저 같은 오장의 자신을 위해 살지 아니하고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던 그분을 위해 산다. 이 결혼식에 주님과 함께 장례식 이후에 결혼식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를 위하여 산다. 그랬을 때 우리의 삶의 목표가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은 주님의 신부가 된다는 것이에요. 은사의 말씀이 아니고 바로 뒤에 오늘 고린도후서 11장 오늘 본문 뒤에 11장 2절에 바울이 뭐라고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1:2b,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바울 사도의 역할 함께 하는 역할 우리 모두를 우리 죄인이었던 우리를 예수님과 연합하게 하고 예수님과 결혼하게 하고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뭐가 됐다고요? 교회가 신부이고, 이게 그리스도의 신부인 거 다 알지만 저와 여러분은 무형 교회로서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것이에요.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놀라운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연합하자고 우리를 받아주신 것이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제일 정결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신부인가, 그래서 성경은요 창세기 2장에 아담과 하와의 결혼식부터 시작해가지고 성경 마지막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 거의 마지막 19장에 보니까 어린 양이 혼인 찬치, 결혼으로 시작해서 그렇지 않는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결혼 여인들이 있어요.

구약의 선지사들 구약의 예언자들이 예언자들의 그들의 중요한 역할이 뭡니까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경험하기로 말씀하시고, 그러니 창세기 2장에서 결혼으로 시작해가지고, 요한계시록 19장의 어린양 혼인 자체를 끝내라는 이 영광스러운 수준, 이 영광과 위엄과 존귀와 가치와 품위와 거룩함 이 영광스러운 이 결혼의 관계를 사탄은 죽어라고 덤벼들어요. 미치게 힘들게 해요... 사탄은요 사탄의 최고의 전략은 결혼을 파괴하고 결혼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우리 가정이 결론적으로 우리 일상생활, 우리 성도들이 주님의 신부로서 살아가는 이 결혼의 영광스러운 존귀함과 깊이와 거룩함과 능력을 이걸 나타게 하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주일마다 주님과 연합된 이 결혼의 은혜와 축복을 늘 감사하고, 주님에 대한 사랑 보고와 믿음 보고를 결혼의 신부로서 올려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매주일이 이러면서 주님과의 결혼식이에요. 결혼식을 확인하고 매 주일 예배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의 주님과 나와 연합의 수준을 돌아보고 매 주일마다 우리는 신랑 되신 예수님께 교회 공동체 또 우리 개인이 얼마나 제대로 정리되어 있는지 아니면 내가 매주 일마다 얼마나 이탈되어 있는지 그걸 점검하고 재 조율하는 것이에요. 주님과의 사랑의 점검 시간이에요. 이게 없다면 이게 없다면 조금씩 이탈하다가 여러분 두 달 석 달만 교회 나와 보세요. 이건 하나의 공적인 하나의 중요한 현상이에요. 여기 두 달 사다가 안 나오면 여러분들의 주님과의 결혼 생활이 완전 파탈이 보세요. 아무도 안 변하셨어. 여기 두 자리 설자. 여러분 결혼식은 완전히 다 다르다니까요. 이것도 모르고 교회에서 이렇게 엉뚱한 소리 하는 사람도 있고 교회 지도자라는 사람들도 엉뚱한 소리 하는 사람도 많고 참 안타까운 일이에요. 다시 매주 매주일이 주님과 사랑의 점검 시간인 줄로 믿습니다. 매주, 그래서 오늘 우리 남성 성도들은 좀 모르지만 우리 남자라도 영적으로 우리가 주님이 뭐라고요? 신부에요. 다시 장례식을 거친 사람은 반드시 주님과의 결혼식을 해야 합니다. 남자들도 주님과의 결혼식 주님과의 연합을 위하여 내 삶의 목표를 재정리하고,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15절처럼, for him, for his kingdom...

*고린도후서 5:15,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신랑과 신부, 산성를 가하여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사랑하겠느냐? 우리는 주님과 결혼식을 하고 매 주일마다 주님과 세례 하는 걸 다시 확인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신부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낭비하지 아니하고 어떤 세상의 유혹과 도전에도 맞서서 예수님께 내 충절과 충성을 신부로서 올려드리는 것이에요. 예수님의 신부로서 산다는 것은 오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건해가지고 우리 주님의 사랑에 우리가 간곡하며 사는 것이에요. 오죽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고 증량도 못하고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주님을 향한 사랑의 충절로서 찬양을 올려드리세”...

서구사회는 결혼하는 여자 분들이 남편의 성을 따릅니다. 우리 이름 앞에다가 예수님의 성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의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패밀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로 말하면 영적, 가족 영 가족이 되는 것이다. 그럴 때 나만을 위하여 이기주의의 삶을 살던 이 삶이 청산되고 결혼하고 연합됐으니까 주님을 중심으로 이주주의의 삶을 산다. 이런 말, 제가 한 번씩 하고 있어요. 이기주의가 아니라 뭐라고요? 이주주주의, 새로운 삶을 주님과 연합 때, 그럴 때 오늘 15절 뒤에 그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가 달라지는 거예요. 연합의 수준이 달라지는 거에요. 여러분 왜 삽니까? 왜 삽니까? 신랑 되신 예수님을 위하여, 왜 예배드립니까? 신랑 되신 주님의 은혜를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왜 자녀를 키웁니까? 주님을 위하여, 공부를 왜 합니까? 모든 것을 죽을 위해 그야말로 For him and Theis Kingdom. 주님 나와 관계에요. 80여 개 인구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한국 땅에 태어났어.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이나 북한에 태어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미 한국에서 그로 태어났어요. 대한민국에 태어났어요. 나는 왜 태어났고 왜 살아야 됩니까? 이 근본적인 질문을 주님 앞에 진지하게요. 진지하게, 그래서 매 주일마다 이 예배가 은혜의 결혼식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매 주일마다 내 삶을 점검하고, 내 삶을 점검하고, 내 삶을 점검하고, 결혼식의 삶을 잘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 우리에게 놀라운 말씀을 또 하나 주신 거예요. 그것이 뭐냐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게 할까? 오늘 16절 17절 18절, 18절 19절 20절에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화목함 가지고, 예수 20절에 보니까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실이 되고 엠베서더(Ambassador), 대사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특명전권 대사를 가지고 그래갖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게 바로 그냥 결혼식 이후에는 우리가 제가 그냥 용어를 만들어 사명식이에요. 사명식. 사명을 선포하는 인생을 사명자로 살아가라는 사명의식이 그러니까 우리 구약의 절기가 3대 절기가 있거든요.

오순절 또 뭐가 있나요?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홍해를 건너기 전에 우리의 삶이 구원받는 건 유월절이다. 그다음에 오순절은 영적 추수를 말하는 것이에요. 장막절은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것, 주님이 나를 인도하시지 않나, 이것처럼 신약에 새로운 3대 절기를 우리식을 얘기한다면 저와 여러분 첫째 장례식, 신앙이 되는 그다음 두 번째로 이름과 연합하는 이 결혼식을 해야 돼요. 그다음에 세 번째로 오늘 중요한 거 여러분과 저는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특명전권대사인 줄로 믿습니다. 이게 사명의식이에요. 사명의식,... 주님은 이 사명의식을 위하여 18절 뒷부분에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지체를 주셨어요. 우리가 예수처럼 화복 재물이 될 수는 없지만, 화복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선포하며 화목해 하는 우리가 중매한, 아까 중매한 게 아니라 바울이 우리를 격려해가지고, 예수님의 신부를 만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주님의 복음의 역사에 함께 참여하도록 우리가 예수님을 증거하고 특명전권대사로서 말씀하고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화목향의 제물로서 우리가 사명자로서 주님의 대사로서 살아갈 수 있는 주권을 주신 줄로 찬양합니다. 이거 화목이라는 말이 영어로 리컨슬리레이션(reconciliation) 그렇게 하죠? 헬라어는 카탈라이라고 그러는데 카탈라이의 뜻은 로마의 정치계에서 쓰는 용어가 있는데 서로 반대하는 두 당들 사이에 적대감을 제거할 때 이 단어를 썼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프라블럼 메이크가 아니라 피스 메이커에요. 늘 말씀하지만 여러분과 제가 남에게 영적 에너지를 주고 어둠을 타다는 거의 어둠을 밝히는 인생 되고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화목이 일어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화목한 인사를 가지고 역할을 할 때에, 뭘 말씀하실 것인가 19절에 화목하게 하나의 말씀을 우리에게 다 화목하게 하는 뭘 부탁했다고요? 말씀 여러분과 저는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부탁받은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사명대로 산다는 게 무엇인가 화목하게 말씀을 부탁받은 것이에요.

저희 교회는 오늘 45번째, 그리스도인만 40 한 두 번 정도, 우리 대각성을 선택을 했습니다. 그 입장에서는 대각성 전도 수준이고, 또 대각성이라는 게, 일반 사람들에게 익숙하니까, 영어로 그레이트 레이크 대각성에 대한 시리즈를, 과거에 옥목사님이 말씀을 시리즈를 하시고, 대각성 전도 집회라는 말씀을 만들고 그것이 한국교회에 전해지고, 그리고 나중에는 일반 성도들 입장에서는 대각성 입장이 좀 그러니까 새 생명 축제가 되는 것이에요.

제가 우리교회 역사상 대각선 새 생명 축제의 최고의 날이 언제였는가? 제일 많은 사람들이 갱신한 날이 언제였는가? 지금 다 그 기록은 떨어지지 않는데, 이어령 박사님의 따님이었던 이민아 자매, 그녀는 그녀는 변호사이기도 하고 검사이기도 하고 저하고 제자훈련을 같이 하고, 나중에 이제 목사도 되고 이렇게 했습니다. 몸도 많이 아팠고 힘들었어요. 근데 2011년에 저희 교회 그때 새 생명 축제에 와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얼마나 있어서 하나님이 불러가셨어요. 거의 우리 숫자로 세다가 나중에는 그냥 안 돼갖고 그냥 어쨌든 하여튼 그날 결실한 사람이 거의 900명이었어요. 여러분 말이 그렇지 900명이면요 데리고 온 사람 합치면 1800명이에요. 1800명이 다 일어납니다. 옛날에 강남 예배당가 절대 없어요. 거기 왔던 사람들이 거의 다 일어났어요. 예수 믿기로 결단했어요. 예수님 믿겠다고 말했을 때 그런데 그게 전부 다가 아니고, 그게 전부 다가 아니고, 전주에는 부산대학교에서 복음 전도 집회를 했어요.

그날 물어보니까 주인아 어떻게 됐냐? 부산대학 어떻게 됐냐? 물어보니까 500여 명 정도가 예수님을 믿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두 주일 동안에 거의 1,400~500명이 불꽃같이 그렇게 하다가, 그러니까 작년 재작년이 저기 뭡니까 10주기였는데, 그날, 저기 12년 전 제가 장례식 때에 제가 설교를 했어요. 하나님이 하나님 왜 이렇게 일찍 불러 가시나? 거기에 대한 말씀을 하나씩 나누고 난 다음에 제가 이제 깨닫는 것이, 아니 지난주 다락방에 우리가 다룬 핵심이 그겁니다. 여러분과 저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는가? 어떤 삶은 기적이 일어나고 어떤 삶은 기적이 안 일어나는가? 이민아는 암에 걸려가지고 미나 사는 암에 걸려가지고, 벌써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몇 년을 몇 년을 늘려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충분히 할 만큼 하고 하나님 데려가셨어요. 그럼 어떻게 하나님 기적이라고 그리고 기적 같은 일, 눈도 멀었는데 하나님 눈도 뜨게 하고 그리고 그걸 아버님 이어령 박사가 보고 내가 예수 믿어야 되겠다. 결정하고 그 과정을 내가 다 설명할 필요가 없고, 하여튼 핵심은 어떤 사람에는 기적이 일어나고, 어떤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나? 기적의 어떤 미트머지는 뭔가? 하나를 딱 하나 이거예요.

여러분과 제가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특명정권대사로서의 역할과 사명과 집중력을 갖고 있으면 여러분들의 삶의 기적이라는 특명전권대사,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많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마는 거의 예수님의 기적은 생명에 관한 것이고, 복음에 관한 것이고, 사람을 그러니까 사람을 살리고 그가 주님 앞에 돌아오는 영혼 구원과 부흥과 관계가 있을 때만 주님이 기적을 내려주세요. 그리고 나머지는 관계가 없어. 예를 들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똑똑했어요. 근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한테 뭐야?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표적이 뭐냐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에게 그냥 요나의 표적을 내가 보여줄 게 없다. 너희들이 부활을 안 믿는데, 뭘 내가 너희들에게 어떤 기적을 일으킬 이유가 어디 있냐? 우리도 똑같습니다. 오늘날 그러니까 수많은 선교지인데 보면요. 또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로 복음과 부흥에 관해서 죽을 똥 살 똥 하는 그런 교회요. 그런 성도 그런 지역이 기적이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똑똑하고 잘나고 대단하고 이런 사람들이 있는 데는요. 복음과 보면 피하거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데, 여러분 우리가 우리 교회는요 이 대각성 전도 집회가 우리 교회 무슨 행사가 아니에요. 이거는 우리 교회 라이프스타일이에요. 왜냐하면 이런 일들을 행해야 저와 여러분의 삶의 기적이 된다는 것이에요. 우리 좀 주님을 섬기면서 기적 같은 일을 좀 체험하고 살아야 안 되겠습니까? 우리가 너무 똑똑해가지고 복음 전하는 데 등한시하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별로 흥!! 이렇게 하고 이런 사람들에게는요 기적을 안 일어나요.

여러분 제가 한번씩 얘기합니다만 자유는 너무 좋은 것이지만 자유주의 신학은 안 좋은 거예요. 자유주의자는 자유주의 신학을 하는 사람들은 성경적 진리보다는 세상 적 가치관 가장 대표적으로 폴리티컬 크래머스, 정치적, 소위 약간 지식인들 약간 강남 좌파들 본다는 식으로 이 사람들 말을 잘 하죠. 동성애 누군지 다 해야 다 사람은 다 우리가 살아야 되는데, 그런 것에 대해서 상당히 쉽게 있는 것처럼 잘못된 또래랑세이런 거 하면서 있잖아요. 정치적으로 말을 많이 하잖아요. 서로 크게 성경적 진리보다 세상적 이런 어떤 가치관으로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형성한 사람들이 자유주의 신학자 이런 점에서 기적에 대해서 이런 사람들은 기적에 대해서 불편하고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이 너무 세상적인 이렇게 함몰돼 있어 가지고 유럽 교회가 이렇게 내려간 이유가 뭐냐 하면 기독교를 너무 지식화해가지고 대학교를 세웠는데 복음을 전하는 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자유주의 신학은 속죄는 물론 성경의 권위, 기적, 원죄를 부정하는 것이에요. 19세기부터 시작된 이 사조는 지금도 기독교인 해서 강력한 능력을 이어가고 있어요. 이 자유적 신앙의 특징은 예수님의 죽음, 속제의 죽음이 아닌 윤리적 희생과 헌신의 도덕적인 죽음 그러니까 예수님의 죽음이 속죄의 죽음이 아니라 이 복음적 죽음이 아니라 윤리적 희생과 헌신의 도덕적인 죽음으로 여겨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자와 이에 속하는 목회자들에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기적의 뿌리인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로 믿지 않고 복음의 능력을 믿지 않기 때문이에요. 자유주의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적으로 받아들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속죄의 도구가 아닌, 도덕적 모범을 보여주는 영웅적인 행위로 생각하는 거예요. 부활의 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탄은 우리가 부활 신앙, 복음적 신앙을 가지지 않도록 복음과 부활의 기적을 믿지 않도록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사탄의 기를 쓰고 우리가 성경의 기적을 냉소적으로 대하도록 그렇게 애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기적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죠. 그래서 여러분과 저는 복음과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다시 세상 축제와 사랑의 교회 이 대각성 전도 집회는 행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뭐라고요?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걸 위해 우리는 사명식을 해야죠. 사명식,,,

바울은 얼마나 큰 기적을 체험했습니까? 복음 선포를 통하여 제가 준비를 다해 깜짝 놀란 것 중 하나가 사도행전 14장에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유대인들이 찾아와가지고 군중들을 선동해서 바울을 돌로 쳐버렸어요. 사람들이 바울이 죽을 줄 알았어요. 시신을 버덩에 말아가지고 성 밖에 내버렸어요. 수많은 제자들이 너무 애통하고 바울의 시신이 꺼적더미에서 둘러싸가지고 울고 있었어요. 걱정하는 성도들과 제자들이 바울을 불렀을 때 여러 바울의 일어났습니다. 제가 그 헬라어 그 원을 보니까 일어났다는 말이 바울이 둘러서서 일어났다는 말이 그 헬라어가 누워 있다가 일어난다. 이 정도가 아니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뜻이었어요. 죽었는데 다시 살아난 거예요.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삶을 현장에서 이 기적을 체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부터 저녁부터 다섯 번에 걸쳐서 말씀을 잠깐 그 우리 모든 사역자를 준비해야 순간 이 여기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전심을 다할 때 나오는 사람 특별히 우리 교회 오래되신 분들 할 때 여러분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아멘. 마지막 결론은 이런 말씀을 드려도 용기를 못 갖고, 내가 화목해 역할 제대로 잘 할 수 있나? 하면서 이런 마음 부담 있는 분들이 있어요. 여러분 파랗게 과시할 때 특명전군대사는 여러분들이 실력과 능력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에요. 사실 특명전권대사는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에요. 보낸 사람의 감정이나 의견을 전달하면 되는 것이에요. 특명전권대사는 자신의 뜻과 소원이 아닌, 보낸 무의 뜻과 소원을 충실하게 대변하면 특명전권 대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그냥 주님 우리에게 주신 걸 내가 전하면 된다. 라는 이 정도의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될까 합니다. 환경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의 소원을 가질 때 특명 전권 대사의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교회나 저는 모든 걸 보는 시각이 환경을 통해 보는 시각이 있고, 아니면 환경을 뛰어넘어서 복음을 통해 보는 시각인 거예요. 우리는 복음을 통해 보는 시각으로 새롭게 무장돼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아팠던 멜리데 섬에 갔을 때에 유럽으로부터 분명히 유라굴로을 폭풍을 받고 얼마나 어려운지 그 대 폭풍 가운데 바울이 두려워했어요. 그냥 하나님 멜ㄹ데 섬에다가 276명, 바울을 한 명도 목숨 다치지 않고 다 섬에 기차 가게 했어요. 남들이 볼 때는 유라글로 광풍이 막 일어나가지고 난리 나고, 그리고 막 그냥 억지로 피했다. 이 정도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복음을 통한 시각은 뭡니까? 그 멜리데 섬에서 바울이 섬기는 마음을 가지고 불을 때는데 나무를 독사가 있어 독사가 바울은 물었어요. 사람들은 뭐라고 그랬지요? 바울에게 갑자기 신이 나타났다고 하는 것이에요. 바울의 신이 아니고, 가장 정교하고 그 병고치고, 많은 사람들 병을 고치고 나면 거기서 완전히 복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남들이 볼 때는 그냥 풍랑 일어나가지고 끝났다. 풍랑으로 어떻게 도피했다.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복음 렌즈 가지고 오면, 하나님이 거기에 어마어마한 계획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은 제가 이 대학생소도 지회가 정도가 아니고 ‘새 생명 축제’의 이건 하나의 중요한 마음이 중요해요. 우리가 마음을 모으는 하나님이 주신 예식이에요. 이렇게 할 때에 내 삶 전체가 복음적으로 조명이 돼가지고 결국은 어려운 것이 없고, 다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를 보면서 놀랍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회가 장례식, 결혼식, 사명식을 통하여,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복음을 통한 사명을 가지고 시대 앞에서 기적을 기대하는 이런 귀한 형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요약
내 자아는 장례식을 치르고, 주님께 연합된 신부로서 주일마다 은혜의 결혼식을 올려드리며, 십자가를 인생길의 중앙선으로 삼아서 가는 곳마다 우리에게 어둠을 밝히는 화목의 직책을 주셨다는 것을 믿고 생명으 복음을 모두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특명전권대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복음의 사명식으로 세워져서 주님이 선포하신 지상명령을 온전히 실천해 가야한다.
-새 사람이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더불어 옛 사람, 곧 옛 자아는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변화된 자아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때문에 성도들에게는, 이 땅에 살 동안에는 죄에 물든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성화된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요구된다.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새로운 피조물이며 화목케 하는 직책이라 한다. 그리스도를 대신한 사신이며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 하나님의 일꾼, 의의 병기라고 말하며 자신의 참 모습을 보여준다. 바울이 이렇게 자신의 참 모습을 스스로 말함은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거짓 교사들의 그릇된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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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1월 05일)
제목: "하나님이 거하시는 주소"
말씀: 시편 116:12-17
대표기도: 김승진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 영광찬양대(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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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6:12-17,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15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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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기대감을 갖고 나온 모든 성도님들 우리를 살리시는 영,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영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변함없이 세월 내 출석한 사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데 사랑의 교회가 45년 동안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기 위한 이 제자 훈련 우리의 사역이 꺾어지지 아니하고 한 결 같이 집중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올해는 지난 봄 특새부터 시작해서 또 지난주 우리 한국교회 섬김의 날 5천여 교회 7천여 명의 목회자들을 섬길 수 있도록 은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리고 또 저는 담임 목회자로서 우리 성도들을 정말 주님을 묵묵하게 신실하게 충성되게 한 결 같이 섬겨주심에 감사하고 또 우리 손자님들 다 목자의 심정으로 성도들을 섬기는 것을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감사절이 될 때마다 오늘 설교 제목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주소”라, 그렇게 했는데 기억나는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주소가 두 군데가 있는데 한 군데는 어디일까요? 일반적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러니까 헤브니 파더(Heaveny Father), 하늘나라가 하나님의 주소이고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또 하나 주소가 어디일까?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어디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말씀이 골로새 교원들에게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하게 거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러니까 감사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같이 가는 건데, 특별히 시편에 있는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이걸 통해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헤브니 파더(Heaveny Father), 하늘에 거하실 뿐만 아니라, 감사와 찬양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주소가 또 다른 한 군데가 감사하는 사람에게 임한다.

그래서 여러분 마귀 마귀는 말이에요. 마귀는 제가 지금 너무 진지하게 하니까 다들 탁 이렇게 돼 있는데 마귀의 주소가 어딘가 마귀의 주소는 반대로 지옥이고 원불비가 마귀의 주소 원불비가 뭐예요? 원망하고, 불평하고 또 뭐 하는 거예요? 비난하고, 이걸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죽음에 이르는 병인이 되도록 만든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주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그 하시는 주소 이사야가 이사야 38장에 수월히 주께 감사하지 못하며 그다음에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한다.

*이사야 38:18,
18 스올이 주께 감사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서울과 사망을 죽은 자 문어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 감사하지 못하고 찬양하지 못한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영적으로 잠자는 자 영적으로 죽은 자들은 하나님을 감사하지 못한다. 로마서의 바울이 고백한 대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가장 공통된 중요한 현상 중에 하나가 감사하지 아니함이 그랬어요. 그것이 독특한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무을 보자 하신 하나님이다. 다 아세요 하나님은 어디에 다 계신다고요? 다 계시는데 여러분의 것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이 갖고 계시는 권능과 능력과 은혜와 자비를 여러분에게 주시길 원하시는데 그 권능과 자비와 능력을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택배로 보내시길 원하시는데, 여러분 주소가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그 주소가 뭐냐 감사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서울시에 삽니다. 그러나 엄격하게 우리는 감사시에 살아야 되고 서초구에 우리 교회 있습니다. 서초구가 감사구가 돼야 되고 그다음에 이 방배동이 뭐예요? 이 방배동이 뭐냐 하면 뭐가 돼야 되는 거예요? 감사동이 돼야 되고 121번지가 감사 121번지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감사시 감사구, 감사동, 감사번지가 되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광스러운 귀한 것들을 택배로 보내주시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이렇게 되기 위하여 오늘 본문을 가지고 몇 가지 좀 정리를 좀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는가? 저자 이름이 나와 있지 않는데 성경학자들은 아마 이걸 다윗이 썼을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 그의 생애를 살면서 기가 막힌 웅덩이와 어려움과 문제와 난관에 봉착한 인생이었다. 심지어 몸이 아프고 병들었다. 근데 몸이 아프고 병들을 정도가 아니라, 그 정도면 그 정도면 또 그렇지만 막 사람들이 비방하고, 그다음에 공격의 화살을 쏘아대고, 그다음에 다윗을 아주 그냥 비방하는 데, 아주 비방에 창을 던지고 막 그렇게 하는 거예요. 제 얘기가 아니고 앞에서 3절 보겠습니다.

*시편 116:3,
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수수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란과 슬픔을 만났다. 죽을병에 걸렸다고 악담하고 비방하고 하루빨리 다윗이 나가 죽을 나이도 아닌데도 빨리 죽기를 원하는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생긴 거예요.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얼마나 힘든지 그래서 4절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그다음 뭡니까?

*시편 116:4,
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여호와의 주께 구하면 내 영혼을 뭐 해 달라고요? 건져주십시오. 주님 간절히 내 영혼을 건져달라고 내가 감당 못할 어려움이 있습니다. 건져달라고 그럴 때 정말 제가 좋아하는 구절이 6절인데요. 함께 우리 크게 보겠습니다.

*시편 116:6,
6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아멘. 여러분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주신 말씀은 그대로 믿어집니까? 믿어지면 순진한 거고 안 믿어주면 조금 오염된 거예요. 저는요. 이 말씀이 너무 좋아요.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순진한 마음의 상태가 유지되게 하여 주십시오. 다른 말로 하면 앞뒤가 똑같아야 되는 것이에요.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은 앞뒤가 똑같은 말씀으로 받으시기를 바라는 거예요. 저는 우리 부교육자들 성격을 할 때 제일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뭐냐 다는 모르지만 앞과 뒤가 똑같아야 되는 거예요. 크레물린 궁전은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 들을 때 죄송합니다. 제가 사투리를 써가지고 꾸무레 하면 안 되는 것이 이게 똑같아야 돼요.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야 되는 거예요. 다시 한 번 시작.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라 아멘. 이 말씀을 앞뒤가 똑같이 받으시길 바래요. 앞뒤가 똑같이 그럴 때 8절에 무슨 말씀이 일어나 8절에 함께해요.

*시편 116:8,
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여러분들의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가지 않습니까? 지나가는 가운데 하나님 내 영혼을 사망에서 건져주시고, 내 눈을 눈물 골짜기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발을 넘어지면서 건져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것이 너무 그리고 사망에서 건져주시고. 눈물을 닦아주시고. 구원받은 사실이 너무 감사해가지고 드디어 이걸 총 집약해 갖고 오늘 주보 제 앞에 요절로 써놓은 것이 뭡니까? 12절 함께요.

*시편 116:12,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할렐루야.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무엇으로 보답할까? 옛날 개혁 판에는 내게 주신 이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꼬!!! 여러분 까가 좋아요 꼬가 좋아요? 저는 꼬가 좋아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조금 더 마음에 와 닿아요. 그러니까 무엇으로 보답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자연스럽게 13절부터 내가 해야 할 내가 하고 내가 감당해야 할 내가 정말 주님이 주셔가지고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 뭐냐 하면 첫째 구원의 자를 넓이 든다.

*시편 116:13a,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다른 어떤 것보다도 내게 주신 은혜가 눈물 골짜기에 나를 건지시고 그 모든 병과 어려움에서 지켜주신 하나님 은혜가 너무 감사해가지고 구원의 잔을 높이 들겠습니다. 여호와 이름을 부른다. 송축한다. 또 그다음에 또 뭐가 나와요? 또 14절에 뭐가 나와요?

*시편 116:14,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시편 116:17,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그 다음에 그 다음에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겠다.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했는데 시작은 구원의 자를 높이 들고 우리가 성찬식 할 때 찬양하리~ 찬양하리~ 주님이 죽임당한 어린 양 주께 영광 돌리라.~우리 죄를 씻어주셨네. ~~
-그냥 구원의 잔을 들고 마지막에는 주께 감사 전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이거예요.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우리가 그렇게 한다. 다 함께 공동체 한다. 이것도 좋지만 이거는 철저하게 내가 구원의 자리를 주게 높이 들고 내가 서원을 갚으며 내가 하나님께 감사자를 올려드리기를 소망합니다. 이거예요. 남 얘기가 아니고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과 저의 개인과 나 자신에게 적용된 것으로 고백이 돼야만 하는 것이에요. 내가 권한 자 그래서 오늘 이 내용을 그리고 이것이 나중에 내 결박을 풀어주시고 17절에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

오늘 이 본문을 쭉 말씀하고 있는데 이걸 통하여 제가 오늘 두 가지를 오늘 이 귀한 추수 감사 주일날 여러분과 저가 적용할 때 여러분의 생애와 또 앞으로 여러분의 삶의 미래가 달라지 게 되는 것이에요. 첫 번째는 뭐냐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제가 가만히 묵사람 느낀 게 뭐냐 하면요 여러분과 제가 받은 구원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가지고 그 구원받은 구원의 감격과 구원의 감사의 수준이 내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이에요.


I. 구원에 대한 감사 수준이 내 가치를 결정한다.
-어떻게 이 은혜를 보다 밝고 그랬는데 나온 답이 뭐냐 하면 여러분과 제가 구원에 대한 감사의 수준 여러분 구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수준이 내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이에요. 이게 무슨 말이냐, 유명한 축구 선수들 대단한 몸값이 그런데 그분들만 몸값이 귀한가요? 여러분들이 받은 구원의 값 사치는 얼마예요? 여러분들이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는 얼마나 대단한 거예요. 저는 이건 비교의 대상은 아니지만 여러분들이 받은 구원은요 1조가 아니에요. 10조가 아니에요. 프라이스리스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저와 여러분이 받은 구원은 대단한 것이에요. 여러분 이것이 너무나도 분명하고 너무나도 확실하게 되면 깨닫는 진리가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이 놀라운 이 놀라운 구원의 영광을 이 구원의 값을, 구원의 가치를, 세계 최고의 석학에도 깨닫지 못하게 하시고 로마 황제에게도 주지 않은 이 구원을, 아니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사람들, 유명한 귀족 집안의 자녀들, 삐까번쩍하게 잘생긴 사람들에게도 이걸 주지 아니하고 위대한 석학들이라고 다 구원받은 거 아니고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구원받은 것 아니고 최근에 노벨상 수상자라도 구원받은 거 아닌데 이유는 모르지만 부족한 저와 여러분에게 이 구원을 주신 것이에요. 이게 확실하면 이 구원에 대한 감사의 수준이 구원에 대한 감격에 여러분들의 감사의 수준이 현재 여러분들의 가치를 결정한다니까요.

제가 젊을 때 내 이 구원이 얼마나 대단한가? 이거 우리가 일반적으로 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 분들은 좀 맹맹하고 그렇잖아요? .그런 나는 말씀을 묵상하다가 너무나 충격을 받은 거예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심에 빛이 있었고, 그러니까 천지 창조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에요. 말씀 한마디로 빛이 있게 되고 식물들과 동물들이 다 이렇게 형성이 되게 된 거예요. 그런데 그 말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내 죄를 없애하기 위해서는 내 구원을, 내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아끼는 독생자의 핏 값을 치렀다. 말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내 죄가 사해지기 위해서는 가장 아끼는 아들의 핏 값을 치러야 된다. 이게 어마어마한 감격과 충격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에요. 내가 뭔데 주는 내가 뭐길래 내가 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피 값을 치러가지고 그 피로 나를 덮어 주셔가지고 나는 아무런 의로움이 없는데 하나님이 나를 핏 값만큼 귀한 자로 삼아주셨다. 이걸 깨닫는 순간 저 삼각산 꼭대기에 올라가 울면서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감사하세! 감사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미칠 듯이, 오늘, 오늘, 오늘 이 귀한 이 시간에 우리를 살리는 영이 여러분들을 새롭게 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받은 구원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걸 여러분들이 진짜 실체감 있게 느끼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말씀 한마디로 안 되고 피를 흘리셨다는 것을 믿을 진데 기가 막힌 대우를 해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최고의 대우가 뭐냐 구원이시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가 뭐냐 구원이시다 이 말이에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들이여, 내가 받은 구원이 진짜라면 여러분과 저의 죄가 참으로 용서받았다면 지금 죽어도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다면 내가 지금 어떤 형편인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내가 좀 힘들든지, 아프든지, 어렵든지 큰 문제가 되잖아요. 내가 지금 어떤 지위에 있는 어떤 신분을 가진 것도 큰 문제가 되잖아요.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가, 인정 못 받는가, 내가 지금 열 받는가 안 받는가 이것도 큰 문제가 되잖아요. 내가 참으로 구원받은 것이 진짜라면 이것 자체만 갖고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제가 구원의 자를 높이든 내가 우리가 정도가 아니라 내가 구원의 자를 높여줬던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여러분들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찾지 말라는 것이에요. 누가 여러분들을 이렇게 평가하고 누가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하는 거예요. 거기 신경 쓰지 말고 여러분들의 가치를 여러분들 스스로 내가 받은 구원에 대한 감격을 가지고 확인하라는 것이에요.

여러분의 가치는 다시 한 번 구원에 대한 감격의 수준이 내 가치를 결정하는 줄로 믿으셔야만 되는 것이에요. 다시 여러분의 가치는 세계 최고의 운동선수의 가치보다도 100배, 천 배 큰 것입니다. 구원의 감격의 등불이 켜져 있는 사람은 감사의 빛이 흘러나와가지고 해와 같이 빛난 얼굴이 되는 것이에요. 구원의 감격의 등불이 꺼져 있는 사람은 감사의 빛이 다 갇혀 있기 때문에 정말 날마다 감옥에서 출장 나온 얼굴이 되는 것이에요. 다시오. 내가 누구냐가 문제가 아니에요. 내 지위와 신분도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어느 정도 유명한 사람인가 그것도 상관이 없어요. 구원받은 거 하나만으로도 내가 감사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줄로 확신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이후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하늘의 유혹을 우리가 이어받게 된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이것 때문에 글을 좀 썼어요. 우리는 본래 우리는 영적인 노숙자들이에요. 홈리스예요. 우리는 받을 기업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영적인 노숙자를 하나님 나라의 왕자로 바꿔주신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되는 것이에요. 어떤 사람은 세상의 최고의 지위와 최고의 소유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실상은 영적으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세상 적으로 아무리 대단한 셀럽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이 없으면 그들은 죄의 거리를 떠도는 영적인 노숙자에 불과한 것이에요.

하나님의 이 놀라운 최고의 구원은 영적인 노숙자인 신분이 우리를 하나님의 왕자로 바꾸어 주신 줄로 믿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은혜를 가지니까 우리 같은 부족한 인생이 하나님의 거룩한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몸인 더 바디 오브 크라이스트(The Body of Christ.)가 교회인 교회의 기태로 만들어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다가 로마서 11장 24절을 읽으면서 이걸 박수를 쳤어요. 그것이 뭐냐 다 같이 로마서 11장에서 같이 보겠습니다.

*로마서11:24,
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무슨 말이에요? 우리 저와 여러분 본래 돌감나무에 영적인 노숙자들이었어요. 우리의 본성은 엉터리였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최고의 대우인 구원을 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 만들게 만들어 가지고 우리가 남은 생애가 멋있는 감나무의 열매를 맺고 살도록 그렇게 만들어주신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다른 건 몰라도 여러분 이거 하나만으로도 여러분 인생 성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죽어도 최소한 천국인 것이에요.

그래서 앞으로 우리는 술자리 이런 건 안 하지만, 우리 물이라도 한 잔 갖고 우리가 건배사를 하면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은 건배사를 감사로 다 바꿔야 돼요. 아시겠어요? 구원받은 거 감사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이제 딱 손을 딱 들고 제가 구원받은 가면 감사 이렇게 한번 해보세요. 구원받은 것 오직-감사, 초월적-감사, 역설적-감사, 평생-감사, 즉각-감사, 불멸의-감사, 무한-감사, 전천후-감사, 절대-감사, 다 하신 분은 축복이고, 한 번도 안 한 분들은 내가 순진한 사람인가 생각하세요. 우리는 지금 지금 죽어도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운동선수의 몸값과는 비교가 안 되는 천 배 만 배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구원에 대한 감격이 여러분들의 현재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 얼굴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거 물론 비슷한 흐름이긴 하지만

여러분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수많은 사람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젊은이는 젊은이들로 앞으로 내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나이 드신 분들은 노후 대서 걱정이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제가 오늘 분명히 말씀드렸는데 여러분들의 미래가 어떻게 결정되는가? 여러분들의 미래는요. 현재 감사를 통하여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에요. 현재의 감사의 수준이 미래에 결정되는 거야. 내일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둘째 II. 내 인생의 미래는 현재의 감사의 수준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내가 주님 평생 감사를 드리고 감사와 제사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에 대해서 어떻게 하든지 감사 제사를 드릴 때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에요. 내게 주신 은혜를 감사할 때 미래가 결정되는 거예요. 참 미안한 게요 현재의 감사가 이렇게 들어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져요. 샘이 있는데 샘솟는 샘이 있는데, 샘에서 물이 솟아 흘러와가지고 자연스럽게 이렇게 흘러가는 것은 그게 억지로 되는 겁니까? 자연스럽게 되는 것입니까? 이건 자연스러운 거, 용을 안 써도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야 내가 내 몸에 피를 한번 굴려보겠다. 막 피를 한번 굴려보겠다. 하고 피를 한번 요 모세혈관을 통해 끝에 이래 해 봐야지 그런 사람은 없어요. 그냥 심장이 제대로 박동되면 자연스럽게 피는 온몸의 혈류로 흘러가게 돼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감사의 심장이 박동되면, 감사의 피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것이 그 온몸이 건강해지는 것이에요.

우리의 피가 몸 구석구석까지 가려고 노력하지 않아요. 내 심장이 건강하면 자동적으로 피가 온몸으로 흘러가게 돼 있는 거 감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감사의 박동을 하면, 우리가 우리 심장을 구원의 감격으로 박동을 하면, 자연스럽게 건강한 피가 흘러 감사의 피가 흘러가게 돼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현재의 수준이 현재의 수준이 자연스럽게 모든 걸 자연스럽게, 그래서 이 감사가 되면 하나님께서 통찰력을 주시는데 어떤 통찰력을 주시는가? 남은 인생 미래 여러분들의 삶의 모든 것들이 조각 조각조각들이 이제 모이는 것인데, 이게요. 감사로 자연스러워지면 미래가 결정되는데 감사하고, 감사 감사하면 여러분들의 앞으로 삶의 수많은 편린들과 조각들이 어떻게 되는가 하면 그것이 버릴 것이 없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이에요. 디모데전서 4장 4절 보겠습니다. 같이요. 디전 사장이 함께해요.

*디모데전서 4:4,
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감사함으로 받으면 이게요 어떻게 되냐면 통찰력이 생기는 것이 현재의 감사가 미래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주권을 인정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우리가 인정하게 될 때 우리가 그야말로 잘하는 모든 것이 서로 합력해가지고 서로서로 같이 올 투게더(All together)가 돼가지고, 서로 나누어지지 않고 모두 합력해가지고 선을 이루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다 좋아하는 말씀 모든 것이 합력하면 다 아는 말씀이에요. 그러나 그게 어떻게 되는 거냐 이 말이에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집은 자가 하나님께 감사해 가지고 감사를 통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찰력을 인정할 때 그다음에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은 조각조각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디모데전서 4장이 얘기한 것처럼 감사함으로 받으면 모든 것이 버릴 것이 없도록 만들어주는 것이에요. 전체가 다 그러니까 통찰력을 갖게 되는데 무슨 통찰력을 갖게 되느냐 인생이 자연스러워지는데 악인의 궁궐에서 살기보다도 하나님의 집, 문지기 있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것이에요. 뭐 잘 나가는 것보다도 오늘도 보니까 제가 지금 일부 예배 들어오기 전에 한 7시 한 15분쯤에 들어왔는데요.

우리 안내하신 집사님들이요. 얼굴이 보름달 같아요. 환영은 안 돼 얼굴이 크다 그 말이 아니고 얼굴이 정말 막 제가 들어오는데요. 제가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오늘 이 집사님 때문에 내가 오늘 설교하는 데 더 힘이 생길 것 같구나. 그게요. 세상 잘 나가는 것보다도 주의 전에서 안내 주차 교육 봉사할 때 진정으로 하면 주시는 하나님 은혜가 있는 예를 들어 제가 설명하는 것이 솔로몬의 영광보다도 들어 핀 꽃이 더 아름답다. 이게, 모든 걸 감사함으로 받을 때 생기는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 거룩한 통찰력이에요. 그리고 이 사회도 미래가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하는 것이 다시오. 우리의 심장이 박동이 되면 구원의 심장이 박동이 되면 감사의 피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되어 있다. 할렐루야 정말 주님 앞에 감사하면 현재의 감사가 뭐를 결정한다고요? 미래를 결정하는 겁니다. 미래를 결정하는 거에요. 우리 앞에 수많은 일들이 지나갑니다. 수많은 어려움들 막심한 일들 고통이 다 지나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오늘 현재 초월적 감사, 절대적 감사, 역설적 감사, 평생 감사, 그다음에 뭐예요? 즉시 감사, 온전한 감사, 한 결 같은 감사, 이렇게 올려드리면 그것이 여러분들의 미래를 결정한다니까요.

저는 제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게 있어요. 95년도에 제가 미국에서 사역을 열심히 그때 교인들이 12명 교인들이 한 2천 명이 됐어요. 교인들이 막 불처럼 교회가 부흥하는데, 제가 박사 과정을 제가 했던 이 모든 과정들이 있었는데, 그걸 포츠스롱 대학교에서 그 모든 과정을 다 받아주겠대요. 그리고 와서 조금 하고 논문만 쓰면 된다는 거예요. 3년 동안 너무 있었는데 우선에 와서 거기 가서 이제 한 1년을 있으라는 거예요. 95년도 제가 이제 가가지고 있는데 아이고 세상에 가보니까 미국은 그렇게 조금 약간 문화 선진 문화인데 포첩스러운 도시였는데, 한 6~7만 되는 도시였는데 누가 나에게 이제 거처를 마련해 줬는데 좀 죄송합니다. 너무 서글픈 장소로 그 카펫이 너덜너덜 하도 오래돼 가지고, 75년도에 사우스 아프리카 잘 살다가 20년 동안 계속 나라가 이렇게 디클라인 하니까 카펫이 다 다르더라고 그다음에 창문에 커튼도 없고, 물도 제대로 안 나오고 그래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는데 조금 마음이 좀 서글프더라고요. 근데 뜰에 나가니까 야생화 국화가 피어 있는 거예요. 금국이 피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금국을 제가 다 갖고 그 생수병을 잘라가지고 거기다 넣고 그다음에 그 벼록시장에서 샀던 촛대가 있었는데 촛대에다가 초를 딱 꽂고 초를 불을 켜고 저녁에 그다음에 방을 좀 사우스 아프카는 파이가 유명하니까 파이 파이를 좀 사가지고 놓고 그다음에 뭐했나면 녹음기가 있어요. 녹음기에다가 내가 좋아하는 찬송 중에 하나 마르나타송, 첫 번째 나오는 데 헤브니프, 아들 옆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세!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세!~ 그 찬송을 들었어요. 아무 것도 없는 좀 이렇게 썰렁한 좀 이렇게 을씬절한 그런 상황이 찬송을 듣고, 야생화가 비어 있고 촛불이 노을대고, 카니발에 있으니까 주님께서 예배하신 광야 식탁이 된 거예요. 제가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 자리가요 축복의 자리가 되고 아이들과 함께 감사가 되고, 저는 지금 생각에 그때 그 현장의 감사가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와 같이 설교할 수 있는 은혜의 기초가 된 줄로 믿습니다.

예를 들어서, 95년 이후에 2003년도에 제가 부임할지 내가 어떻게 알았으며, 2023년도에 5천여 교회 7천여 명의 목사님들을 우리가 섬길 수 있을지 어떻게 알았냐고요... 우리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데 우리는 다 연약하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 부족하기 짝이 없어요. 우리도 실수하고 우리 삶 짐 많이 진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여러분들이 진짜로 지금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세 지금 내게 주신 최고의 대우가 구원인 줄 깨닫고 지금 하나님 앞에 치미는 감사를 드리면 이것이 여러분들의 미래를 결정한다니까요. 모든 것이 버리는 것이 없도록 모든 것이 합력하여 삶을 얻도록 그래서 이 자리가 여러분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자리가 되게 하시고 현재 여러분들의 감사가, 여러분들의 삶의 장래가 어떻게 되는지, 여러분의 삶의 감사의 주소에 주소를 명확하게 기록하는 것이에요.

옛날에 저는 청년 시절에 책을 읽었는데 ‘감옥에서 찬송 생활로 From Prison To Praise. 감옥 같은 삶이 감사를 통하여 감사하다. 찬송 성을 한 가지 덧붙이면 ‘From Prison To Praise.’ 감옥 같은 삶이 현재의 감사를 통하여 궁전 같은 축복을 하나님 허락해 주시는 것이에요. 영광의 궁정 같은 것입니다. 그 손을 다 펼치시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세요.

오늘도 2023년도 수많은 일들이 지나갔습니다. 수많은 여러분들의 삶에 역사가 있습니다. 수많은 기도의 제목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만이라도 시편 기자의 말씀대로 내가 순진하게 주님 말씀 받을 때 감사전을 드릴 때 이것이 여러분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세요. 모르는 분들도 가사가 너무 이것이 심플해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세요. 헤브니들 아프리 아이 러뷰 어도 아이 바우 다운 디포유(Heaven Father I Appreciate. I Love You. Adore You, I bow down before You)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일 때,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미래를 책임져 주시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잘나면 얼마나 잘났겠어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의롭게 행하면 얼마나 행하겠어요. 다. 그래서 하나님은 정말 첫머리의 황소를 드림보다도 지금 진실로 감사하면 주님은 여러분 인생을 바꿔주시는 것이에요.

♬주님의 크신 사랑 놀라워라 주님의 크신 사랑 놀라워라 내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셨네. 주님의 크신 사랑은 놀라워라.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세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세. 하나님 주님의 크신 사랑 놀라워라.♪~~

오늘 본문 16절에 보니까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고 주의 종이라. 그다음에 중요합니다. 주께서 나의 결박을 부셨나이다.

*시편 116:16,
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이 감사를 통하여 여러분들의 생애에 수많은 결박을 주님이 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좀 조심스럽지만 제 말씀 하나를 더 드리겠습니다. 1980년도에 저희 부친이 교회를 개척한 지 20년 만에 헌당예배를 드렸습니다. 본인이 교회를 60년도에 개척하시고, 20년 만에 교회 헌당식을 내고 목사 위임 식을 했습니다.

여러 목사 위임식이라는 것은 본인이 개척한 교회인데 위임 식은 금방 할 수 있는데 우리 교회 부목사님 계시면 지금 가셔갖고 한 달 만에 벌써 위임 식 아닌 거예요. 얼마나 교회가 어려운지 위임식이라는 것은 조직 교회가 되어야 위임 식을 하는 거예요. 너무나 가난한 달동네이기 때문에 장로님이 없으니까 조직 교회가 안 되는 게 우리 장로교회 20년 동안 정말 피나는 고통을 통하여 교회 건축도 너무너무 힘들고 그리고 어째서 제가 20년 만에 교회를 건축하고 위임 식을 하게 되는데, 제가 서울에서 내수동교회에서 대학부를 섬기고 있었는데 그 위임 국장 목사님이 저보고 ‘현이 내려와서 아버지 저기 위임 식에 특송 좀 하라’ 라고 그래서 제가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저하고 제 동생 셋과 부산에 동생 4명이 아들만 사형제니까 특송 하기는 좋았어요. 아들만 4형제니까 소프라노 엘토, 테너, 베이스 해서서 합시다. 하고 근데 이제 위 씨 우리가 참 특송을 하는데 첫 찬송을 이걸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해서 이걸 했어요. 이걸 하는데요. 내가 내가 찬송을 못하겠는 거에요. 20년 동안 우리 아버지가 받은 고난과 그 어려움들이 막 우리 어머님은 그냥 정말 3교대 하면서 고생하시고 우리 머니 다 얘기를 못하는데 그게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데요. 내 동생도 울고 있는 거예요. 찬송을 못하고 그냥 계속 울었어요. 그래서 그때 위임식이 아니라 부흥에처럼 그 모든 권사님들 같이 다 울었어요.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면 미래는 결정되는 거예요. 내가 뭘 대단하다 이런 뜻이 아니에요 여러분 여러분에게 가장 맞는 미래를 하나님이 결정해 주시는 것이에요. 정말 주님의 크신 사랑이 여러분에게 놀랍게 선포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요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로마의 황제에게도 주지 않던 구원을 세계 최고의 석학에게도 주지 않던 구원을 오늘 우리에게 최고의 대우로서 구원의 확신을 주신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내가 어떤 신분인가 내가 뭘 얼마나 가졌는가, 이제 문제 되지 말고, 현재 주님께 다 없는 감사를 올려드림으로 말미암아 전천후 감사, 초월적 감사, 불멸의 감사, 무한 감사, 역사의 감사, 오직 감사, 즉각 감사를 올려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남은 인생 결정되게 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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