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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8월 13일)
제목: "눈물로 꿈꾸는 추수"
말씀: 시편 123:1-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양은규 부목사님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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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3:1-6,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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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목사님께서 “눈물로 꿈꾸는 추수”라는 제목으로 78주년 광복절 특별 메시지를 전해주시겠습니다.
 
▶오정현 담임목사님
-거룩한 기대감을 갖고 나온 모든 성도들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보혜사의 능력으로 덮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는 주일 예배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 저희는 78주년 해방 주일, 광복 주일이라는 그런 오늘 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해방’이라는 말은, 어떤 구속되고 포로 된 곳으로부터 벗어났다. 이런 뜻이고 ‘광복’이라는 말은 빛을 회복 한다. 그런 뜻입니다. 우리 민족적으로도 감사한 일이지만 우리 영적으로도 우리 모두는 죄악의 포로로부터 벗어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빛의 자녀로서 온전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시대 앞에 빛의 역할을 사명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우리 한국 사회에 여러 이제 이슈를 앞에 놓고 정치적 성향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예수 믿는 저희들은 똑같은 우리 한 가지 목표가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돼야만 합니다.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가 되려면,,, 정부가 좋은 정부가 돼야 합니다. 그리고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좋은 정부, 좋은 지도자의 복, 좋은 나라의 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단독 목회하고 35년 동안 한 주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광복주의를 간절한 마음으로 지켰습니다. 광복절을 지키는 이 간절한 소원은 뭐냐 하면 이 광복절을 지키는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 다시 한 번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평양에서 특새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제사장 나라, 빛의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옵시며, 저 북한에도 북한 아이들을 성경으로 신앙으로 교육할 수 있는 북한에도 정말 아름다운 주일 학교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뭐 그런 우리가 간절한 소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여러분 시편 126편의 이 말씀 오늘 눈물로 꿈꾸는 추수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눈물의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은 어떤 결과를 주실까? 거기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 중심으로 그다음 시대 앞에서 우리가 참 이게 주님이 내게 주신 말씀이구나! 그렇게 확인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126편은 얼마나 이 시가 좋은 시였냐 하면 ‘성전으로 올라가는 시’라고 그랬어요. 너무나 좋아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 가운데서 해방 받아 나와 가지고 그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지, 성전에 올라갈 때마다 자주자주 부르는 시가 되었습니다. 어떤 뜻입니까? 1절에,
 
*시편 123:1,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포로를 돌리실 때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때는 우리 혀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의 입에는 찬양이 가득하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가 뭐 하도다. 기쁘도다. 너무너무 기쁘다. 너무너무 기쁘다. 대사,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여 주신 것이 여러분과 저의 가장 큰 능력이 돼야 되는 것이에요. 지금 여러분들이 어디 뭘 좋은 걸 찾으세요? 뭐 하고 싶으세요? 다른 거 없어요.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 교회와 우리 개인 교인, 우리 성도들, 우리 민족을 위여 하나님의 큰일을 행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이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의 힘이라고 그랬는데, 그 힘을 저희들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1절부터 6절까지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올라가면서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이렇게 다 나와 있는 과거는 하나님께서 포로를 돌리시고, 그 은혜가 너무 크니까 그 찬양과 감사가 감사에 대한 1, 2, 3절에는 감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4절에는 주여 우리를 다시 한 번 난방 신내들처럼 만들어 달라고 현재의 강구가 나오고 그다음에 5절, 6절에서는 하나님 아버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가져올 줄로 믿습니다.
 
*시편 123:1-6,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123절은 감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 4절은 주여! 우리를 다시 한 번 남방 시내들처럼 만들어 달라고 현재의 간구가 나오고,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5절 6절은 하나님 아버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가져올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울며 씨를 뿌리면 반드시, 반드시 적는 기쁨으로 추수하게 되실 줄로 믿습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이 확실한 그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2절 뒤에 보니까 이방 사람들, 못 이웃 사람들, 다른 나라 사람들도 야 야 야 야 야!!!!! 여호와께서 유대민족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고백을 하게 되는 겁니다.
 
오늘 이 시편 126편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과 우리 민족의 고백이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전제를 하나 해야 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I.. 눈물로 기도하는 남은 자를 통해 일하신다.
-첫 번째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서 눈물로 기도하는 남은 자를 통하여 주님이 일하시는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것이 다시요! 뭐로 기도하는 것이냐면요? 눈물로 기도하는 어떤 사람을 통하여 남은 자 남은 자에다가 점을 딱딱딱! 쳐보세요. 눈물로 기도하는 남은 자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갔습니다. 유대 민족이 망해가지고 갔는데 여러분 그 망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안타까운 목자의 심정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다가 망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세요? 유대민족 가운데 다 잘못했겠어요? 유대민족 가운데 경건한 자가 하나도 없었겠어요? 다니엘 같은 그런 사람들을 비롯해서 유대민족 가운데서도 상당수의 경건한 자들, 거룩한 자들,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순종하고 사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었어요. 그런데 그들의 경건과 그들의 헌신과 그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민족 전체가 망하니까 휩쓸려가는 것이 다 휩쓸려 가는 거예요. 따라서 저와 여러분이 나라를 위하여 진짜 간절히 기도하고 사모해야 할 것은 뭐냐 하면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해도 나라가 잘못되면 우리도 고난 겪는 것이에요. 북한 보세요. 지금 그러니까 나라 사랑과 나라 잘 되는 것과 우리 잘 되는 것이 같이 가야 되는 것이에요. 여기에, 여기에 에서서 하나님 사모하고, 하나님 영광 사모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전력투구하고, 순종과 헌신과 거룩을 가진 백성들 가운데서도 그냥 포로로 잡혀가는 그러니까 그 포로로 잡혀가 가지고 그런 사람들이 남은 자들인데 또 포로로 잡혀갔는데 그걸로 끝난 것이 아니에요. 그 바벨론 사람들이 조롱하는 거예요. 조롱(嘲弄)과 멸시(蔑視)와 그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 얼마나 나중에 여러분들 아시잖아요? 모르드개와 하만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했어요? 잡아매려고 그랬잖아요. 에스더 시대에,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경건한 소수의 사람들이 울부짖는데도 불구하고 나라가 무너지는 바람에 다 고생하고 이것 자체가 억울하고 슬픈 일이죠.
 
그런데 그 억울하고 슬픔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고 남은 자로서, 자신을 지켜내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에요. 바벨론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었겠어요. 노리개 감으로 삼고 희롱하고 무시를 했어요. 에스더서에 보면 유대민족 전체가 멸종을 당할 위기도 당한 것이야. 그러니까 오죽하면 밤낮 금식하고 티끌을 뒤집어쓰고, 통곡하고, 탄식하고, 그야말로 눈물로 씨를 뿌리는 거에요. 예레미야애가 표현처럼 마치 쑥과 담즙을 마시는 것처럼, 담즙은 뭡니까? 곰의 쓸개를 마시는 것 같은 쓴잔이었어요. 생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있었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당시 세계 최고의 발달된 제국 바벨론 제국, 문화에 그 문화와 현실에 타협하라는 미혹 앞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짜 남은 자로 눈물로 씨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로 생활 10년, 20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이게 50년, 60년을 가니까 동족들 가운데 신앙 팔아먹고 배신하는 그런 사람들, 부패한 사과 하나가 상자에 있으면 삽시간에 사과 박스 전체를 부패시키듯이, 이 패배주의자들의 논리가 남은 자들의 마음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이었어요. 그 가운데 신앙을 지키는 것은 그야말로 눈물로 씨를 뿌리고 남은 자, 남은 자에요. 여러분 제가 초대 교회사를 보니까 초대 교회사에는 ‘필립 샤프’라는 분이 초대 교회사, 교회사 책을 7권을 써서 집대성을 했는데 초대 교회사에 보면, 로마 황제를 주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말하는 사람은 딱 그 많은 사람은 두 가지 결과밖에 없다. 하나는 순교를 하든지, 또 하나는 남은 자로서 고백자가 되든지, 멀터가 되든지, 아니면 컨페서(Confessor)라는 말 알죠? 컨페서(Confessor)라는 말 우리가 고백한다. 컨페서 (Confessor) 마트가 되든지, 컨페서(Confessor)가 되든지, 둘 중에 하나라는 것이 우리는 지금 우리 사회를 보세요.
 
저는 기독교를 폄하하고 함부로, 함부로 교회를 정말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고 이런 어떤 그 반기독교 문화 사회 가운데서 마치 바벨론 포로 시대에 바벨론이 희롱하고 욕하고 그렇게 하는 것처럼 또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이 무신론자들 강력한 프레임을 갖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 탈락한 세속 문화 이 가운데 우리가 신앙을 올곧게 지켜내는 것 자체가 우리는 남은 자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몫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남은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일하시는 것이에요. 남은 자들을 통하여 일제 36년 시기 가운데서 눈물로 나라를 위하여 애국 구국기도를 하고 평양 부흥을 경험한 그 일들을 통하여 그래도 이 나라를 지켜낸 것이에요. 6.25 때도 마찬가지고, 다 안 된다고 다 끝났다고 그러는데 6.2의 참상을 견뎌내는 눈물로 기도로 씨앗을 부리는 사람들, 한국교회 부흥의 시기에 눈물로 간절히 기도할 때, 그 부흥의 결과로 나타나고, 지금도 교회가 이래 많은데 이렇게 나라가 뭐 이렇다 이런 사람들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교회가 있으니까 이만큼이라도 된 겁니다. 교회가 있으니까 이만큼이라도 된 겁니다. 교회가 있으니까 지금 이 동성애법 이것도 참 기가 막힌 거예요.
 
제가 지난주에 미국에서 한 분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지금 미국의 큰 병원의 책임자가 지금 고민을 한 게 지금 뭐가 있냐면요. 아이들 이제 외과 의사들이 어린아이들이 내가 남자다 그러면 여자 아이를 남자로 수술하고, 또 여자아이가 나는 남자 남자가 내가 여자다 그러면 남자를 여자아이로 수술하는 그 지금 훈련을 하고 있대요. 지금 여러분 이게 말이 되냐고?? 이 가운데서 우리가 한국교회가 지금 이만큼 하니까 동성애 차별 금지법을 우리가 막고 있는 것이에요. 지금 눈물로 신을 뿌리는 거죠.
 
지난 목요일 날 저녁에 우리 교회는 영국의 2천여 명과 10개국에 한 4천여 명이 와가지고 본당과 이렇게 보이스카웃 잼버리 청소년들이 함께했다. 새만금 난리 났는데, 참 우리가 독립운동 하는 마음으로 사랑의 교회가 독립운동 하는 마음으로 새만금의 관군들이 잘못한 걸, 우리 의병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에요. 눈물로 씨를 뿌리는 거에요. 너무나 놀라운 시편 126편의 말씀이 나오기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키겠다고 말트 아니면 컨페서(Confessor)로서, 고백자로서 눈물로 씨를 뿌리는 기도로 지키는 자들 여러분들 때문에 오늘 이 자리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도 또 그래 돼야 되고 그래서 오늘 두 가지를 적용하겠습니다. 둘째 우리가 눈물로 씨를 뿌릴 때, 기도의 씨를 부릴 때 하나님이 기뻐하는 씨는 씨를 뿌려야 되는 것이에요. 진리의 씨를 뿌리다 갈라디아서 6장 8절에 보니까 다 같이 보겠습니다.
 
II.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씨를 뿌리야.
*갈라디아서 6:8,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리의 씨는 성령의 역사를 통한 눈물의 씨가 뿌려져야 한다는 것이에요. 똑같은 대통령이지만 미국의 죤 에프(John F 케네디 대통령은 공립학교에서 성경 과목 성경 가르치는 거 주기도문을 폐지해버렸어요. 그것 때문에 그때부터 그 강력한 미국이 수많은 미국에 참 복음주의자들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저 어느 지역은 지금 전부 다 화장실을 남녀 화장실을 다, 다 개조를 하는 거죠. 멀쩡한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을 다 개조를 유니섹스로 해가지고 다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여러분 진짜 미치지 않았어요? 그거 그런데 우리가 볼 때는 그런데 그거 지금 거기에 당연하게 그리 되고 있는 것이 진리의 씨를 뿌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진리의 영, 진리의 씨가 뿌려진 곳에는 항상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줄로 맺는 것입니다. 진선미가 나타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진리의 씨를 뿌릴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씨를 뿌릴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뿌려야 하는 것이 무슨 뜻인가?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씨를 뿌린다 할 때 진리를 선포하는 거예요. 진리를 주장하는 거예요. 말하는 것 ,그것만 하면 안 되고 거기에다가 진리의 씨를 뿌릴 때 사랑이 포함되는 것이 여러분과 저는 사랑의 교회는 앞으로 시대 앞에 쓰임 받을 때 우리는 개혁하는 것이 목표가 아닌 거예요. 우리는 막 개혁하고 바꾸고 이게 목표가 아니라 우리는 세우는 것이 목표가 되는 거예요. 개혁 정도가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 돼야 할 줄을 확신하는 것이에요. 무슨 말이냐 하면 진리가 중요한데 진리와 함께 세우려면 교회를 세우고 가정을 세우고 나라를 세우려면 진리와 함께 뭐 같이 가야 되는 거예요? 사랑이 같이 가야 되는 거 선포만 하면 안 되죠. 그래서 에베소 4장에 보니까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뭐예요? 말해라. 진리와 사랑이 같이 가야 되는 거에요.
 
*에베소서 4:25,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이것은 때로는 고통이나 괴로움으로 눈물이 나는 상황 가운데서도 참된 것을 말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사랑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에요. 사랑이 없는 공의 혹은 사랑이 없는 정의는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한 번씩 말씀드렸어요. 우리가 정직 운동을 해야 되지만 정직과 감사가 같이 가야 되고, 정직과 사랑이 같이 가야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5절에 보니까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라는 것이 복수형이에요.
 
*시편 126:5,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Those who sow in tears)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눈물을 흘리고 함께 진리의 시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방식으로 뿌릴 때에 복수의 보수 형이에요. 그래서 우리와 함께 이 예배를 드리는 모두가 다 함께 진리의 씨를 뿌릴 수 있는 축복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무슨 일을 함께 뿌릴 때에, 함께 6절에는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간 자는 단수형으로 돼 있어요.
*시편 126:6,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그러니까 함께 또 개인적으로 함께 기도하되, 또 단독자로 주님 앞에 설 때에 4절에 남방 시내들 같이 된다. 남방 시내들이라는 말이 놀라운 말이에요.
*시편 126:4,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남방 네게브 사막은요 완전히 사막이에요. 그런데 거기에 남방의 1년 내내 메마른 곳에 하나님께서 꿈꾸는 추수를 위하여 비를 쏟아주시는데, 그 비가 은 하나님의 은혜로 쏟아지게 되면 그 남방이 완전히 메마른 곳이 진초록의 정원으로 바뀌는 거예요. 대단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 다시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를 진리와 사랑으로 같이 가가지고 뿌릴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신 줄로 믿습니다. 메마른 곳에 그래서 오늘 찬송에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메었던 종들이 돌아오네.~~ 할렐루야 3절에 뭐예요? 말랐던 시냇물이 흘러 광야에 화초가 피고... 말랐던 시냇물이 흘러오네. 말랐던 곳에 광야의 네게브 사막이 진초록의 정문으로 바뀌는 그런 축복을 받는 것이에요. 또 하나 또 하나 우리가 정리 첫째는 씨를 부릴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또 하나 우리가 정리할 것은 뭐냐 하면 반드시 은혜를 가진 소망을 가진 6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III. 반드시 은혜로 믿어야
*시편 126:6,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Shouts of joy)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뭐라고 돼 있습니까?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뭐라고 돼 있어요? 반드시 기쁨으로 확실하게 쇼리 그리고 열매 확실하게 그리고 어느 정도인가 하면 기쁨으로라는 영어 단어를 보니까 샤우트 오브 조이 그러니까 복수예요. 복수. 단순한 기쁨이야. 기쁨들이에요. 이게 3절 5절 6절에 세 번이 나오는데 한글 성경에는 기쁨으로 나오지만 조금 약해요. 사실은 기쁨의 외침들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 우리가 기쁨의 외침들이 될 정도로 반드시, 반드시 기쁨의 단을 가져오리라. 는 이 소망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요 씨 뿌리고, 수고하고, 김매고 인내하는 그건 우리의 몫이지만 열매를 맺게 하고 추수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에요. 너무 중요한 거예요. 과정은 어려워요. 수많은 간난, 신고가 있어요. 수많은 즐거움이 있어요. 그런데 저와 여러분이 오늘 말씀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정말 죽을 때까지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이 뭐냐 우리가 주님 앞에서 적어도 진리의 씨와 이 은혜를 받아가지고 울면서 주님 앞에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반드시, 반드시 기쁨의, 기쁨의 단들을 거두게 하여 주실 것이다. 곡식 단도 그냥, 그냥 뭡니까? 단수가 아니라 복수예요. 반드시 그러니까 이 단들 안에는 수많은 것들이 들어가요.
 
여러분들의 삶의 정서적인 고통, 수많은 어려움들, 그다음에 삶의 보람들, 동시에 여기에 경제적인 부요 이런 것도 다 들어가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어마어마한 인도예요. 반드시 반드시 주시리로다. 제가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포로가 되지 않았다면 해방의 기쁨도 몰랐을 거예요. 우리가 고생을 안 해봤으면 이 추수의 은혜도 잘 실감이 안 갈 거예요. 우리가 코로나의 강을 건너면서 죽을 똥 말똥 해봤기 때문에, 일상의 기쁨도 아는 거 아닙니까? 오늘도 좀 몸이 면역이 좀 떨어진 분들은 마스크 다 끼고 오셨잖아요. 옛날 같으면 마스크 안 해도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이거 하면서 야 이거 우리가 몇 년 우리가 이렇게 건강하게 예배드리고 사는 것도 진짜 주님의 축복 옛날에는 뭐 그거 당연한 줄 알았지. 포로 된 자였기 때문에 해방의 기쁨이 더 크게 되는 것이에요. 그 이런 걸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게, 이게 추수의 역설이고 눈물과 슬픔의 역설이 되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흐릴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비 오는 날씨를 버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반드시, 반드시 우리는 기쁨의 단들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 세상에 무슨 도덕이나 이 세상의 스타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도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얘기해요. 어려운 날 끝나면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막 그런 얘기하는데 제가 말하는 것은 여러분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그 정도의 그런 차원이 아니에요. 제가 말한 것은 두 가지가 근거된 것이에요. 이것이 뭐예요? 저희 얘기가 아니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에요. 말씀에 근거한 것이에요. 성경으로 올라갈 때마다 유대인들이 정말 체험하고 눈물로 확신하고, 감격하고, 증명되고 확정된 것들을 매주 마다 선포하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확인될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니까, 세상의 고진감래하고 다른 것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말씀을 하신 분이 누굽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야훼,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인격과 신실성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미쁘시니 하나님 자체에 신실하심에 근거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능하심과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근거해가지고 이것을 믿는 것이에요. 그래서 히브리 10장 23절에 보면,
 
*히브리서 10:23,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으라.
-오늘 그러면 이 21세기 오늘, 광복 78주년을 맞는 이 시기에, 이 말씀이 눈물로 씨를 뿌린다는 것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개인의 가정의 삶에는 이것이 어떤 뜻으로 다가와야 합니까? 반드시 소망은 어떤 뜻으로 다가와야 합니까? 이런 것입니다. 믿지 않는 남편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수십 년을 기도했는데도 아직까지 응답이 안 되었을 때 그 눈물로 애통하는 아내의 기도는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에요. 그걸 믿는 거예요. 저희 아버지가 개척할 때에 그 가난한 달동네에서 맨날 남편들이 구타하고 지금도 기억해요. 집에 다 닫아 붙어 있으니까 달동네는 1일 노동자들이잖아요. 그러니까 고생이 많아. 그러니까 1일 노동해가지고 저녁에 술 한 잔 마시고 들어와 가지고 아내 보고 막 때리는 거예요. 왜 때리냐 보니까, 반찬을 형편없이 해야 했는데 남편한테 이게 뭐냐 그러니까 아내가 또 얘기하잖아. ‘돈만 많이 벌어줘 봐라 내가 좋은 거 안 해주나?’ 그러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아내가 예수를 믿고 새벽 기도를 나오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남편은 변화되지 않고 그러니까 이게 실화에요. 남편의 신발을 가슴에 품고 새벽에 나와 가지고 울면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거 다 봤어요. 저는.근데 그런 남편이 변화돼 가지고 자신을 추스리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아이들을 교육하고 그래서 그 아이들 가운데 시대 앞에서 임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다시요 평생을 기도해도 응답받지 않는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눈물의 아내의 기도가 반드시 소망으로 결실하는 것이에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혼기를 놓친 자매들, 좋은 신랑만 예수 잘 믿는 신랑 만나겠다고 기다리다가 혼기를 놓친 자매들, 하나님이 반드시 보상하실 것이에요. 떼돈을 벌 수 있었는데 신앙 때문에 타협하지 아니하고 포기하는 분들 하나님께서 반드시 소망을 허락해 주시는 것이에요. 이거는 진리의 씨가 아니야 이거는 이게 진리 선포만 하는 게 사랑이 포함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생각해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는 그분들의 헌신을 하나님 앞에 반드시 샤우츠(Shouts)! 기쁨의 단들을 가져오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요. 그래서 우리가 암송하듯이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갈라디아서 6:9-10,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뭐 하지 말지니 낙심하지 말지니 그다음에 뭐예요 포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고요? 이 반드시, 저는 이 갈라디아서 6장 9절의 말씀이 시편 120편 6절이 신약의 재해석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세상의 법칙에는 예외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반드시 소망의 법칙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반드시 6절에 기쁨으로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반드시...
 
오늘 이 자리에 많은 성도들, 중직자들 한번 믿음으로 한번 주님을 섬겨보겠다는 그 헌신의 눈물, 부모님들 가운데 한 번 믿음의 일대로 아브라함처럼 살아봐야 되겠다는 마음의 각오의 눈물, 주일학교 교사로서 다음 세대를 제대로 키워봐야 되겠다는 눈물에 참 기도의 헌신 순장으로서 청년대학부 리더로서, 헌신한 분들의 눈물의 기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차 안내 교육 봉사하시는 분들 사랑 부에서 형제자매들, 아이들을 한 결 같이 섬기는 분들의 수고를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주실 것입니다.
 
제가 이거 반드시 갚아주는 것 때문에 헌신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을 우리는 그대로 믿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격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보통 인생은 시간과 재능에 의하여 시간 곱하기 재능 그 재능과 시간이 합쳐져 가지고 그 삶의 어떤 축복과 열매로 나타난다고 결정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저는 시간과 재능에다가 눈물로 흘리는 기도의 씨앗에 의하여 100배의 차이가 날 줄로 확신하는 것이에요. 한국교회의 선대의 귀한 우리 목회자들, 선대의 귀한 참 영적 지도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제가 네 분의 목사님이 참 귀한 역할을 했다. 한경직 목사님 한국 민족 사회의 기독교가 무엇인지, 신앙이 무엇인지, 조용기 목사님은 성령으로 부흥의 역사가 무엇인지, 우리 옥한흠 목사님은 목회의 본질이 제자 훈련을 통하여 한 사람을 세우라는 것이 무엇인지, 교회는 어떻게 제대로 양육하고 세워져야 되는 것인지, 근데 또 한 분이 있어요. 김준곤 목사님이 계세요. 캠퍼스 크루세이드 크라이스 한국 대학생 선교에 창설하신 김준곤 목사님은 우리 민족을 향하여 애국 애족의 눈물의 씨를 부르셨어요. 제가 김수범 목사님 제가 최근에 이게 설교하신 것 가운데 에스더 기도 운동을 위하여 말씀하셨던 부분이 있었어요. 제가 너무 감동이 됐어요. 제가 다는 못하겠고 제가 웬만하면 영상은 잘 안 해요. 왜냐하면 영상을 하면 설교는 안 남고 영상만 남는 거예요. 제가 거의 영상을 안 하는데 오늘 이 영상을 한, 2분 50초 정도 영사하는 이유가 있어요. 우리가 민족을 향하여 눈물로, 눈물로 기도의 씨를 부린다는 게 어떤 뜻인지, 보시겠습니다.
※한국교회는 원래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입니다마는 안으로 밖으로 마귀들이 교회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세력이 많습니다. 참 보면 너무도 통곡할 지경입니다. 이것은 힘으로 내 눈물로도 안 되고 오직 성령으로만 될 수 있는데, 성령이 우리 앞에서 막아주고 쌓아줘야 되겠는데 그 혁명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교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주기철 목사가 감옥에 들어가서 선교를 기다리고 있을 때 일본 경찰에게 부탁해서 최선 교회 설교하기 에서 나와서 설교를 했습니다. !!~~ 기도용사가 되어야 한다.
 
-Prayer, more prayer, much prayer-빌리 그래함 목사- 프레이어, 모어 프레이어 마치 프레이어!!!
오늘 오후에 저희들은 청계산에 갈 것입니다. 반드시 소망을 가지고 올라가기를 바라는 것이 그럴 때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실지 한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얍복 강가의 기도의 씨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통절하게 가슴 아파하는 과부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셔서 여러분 개인도 살리고 우리 교회도 살고 민족도 살리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 될 수 있도록 은혜 주실 주님을 믿고 순종하고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손을 펼치고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밑줄기 기도에 불이 떨어지게 하여 주십시오. 능력이 나타나게 하여 주십시오. 평생 소원하는 기도가 응답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천계산 예고편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런 마음을 우리가 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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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8월 6일)
제목: "절망을 미래의 소망으로 바꾸다"
말씀: 예레미야 29:10-14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유형민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김학진 목사님-초빙(미국뉴욕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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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9:10-14,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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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제게 있어서 서울 사랑의 교회는 마음의 갈릴리와 같은 곳입니다. 제 마음에 늘 돌아가고 싶은 그런 영적 고향이 바로 서울 사랑의 교회입니다. 제 인생 가운데 가장 허리가 되는 30대 후반에서부터 40대 후반까지 거의 10년을 이곳에서 사역할 수 있는 영광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저는 다른 기억이 없구요. 그냥 교회에서 너무나 저를 사랑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것밖에 기억이 남지 않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받은 사랑이 너무나 충분해서 열악한 이민 디아스포라 교회 목회지에서 목회를 하면서요. 저들을 축복하고 또 사랑할 수 있는 부족하지만, 그 은혜가 남아 있음을 충분함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만큼 여러분께서 신앙으로 지금까지 잘 버텨와 주시고 그리고 은혜의 진원지가 되고 메마르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우리 서울 ‘사랑의 교회’를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그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런 축복을 누리는 거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그런 은혜를 주신 것 감사를 드리고, 또 여러분의 그러한 신앙 때문에 해외에 있는 많은 참 교회들이 또 세워진다고 하는 것을 꼭 잊지 않고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다시 한 번 오정현 목사님과 우리 모든 영적 리더들 그리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 중심으로 우리의 현실이죠. 어떻게 하면은 우리에게 지금 당하고 있는 이 절망, 어려운 이 시간들을 먼 훗날 좋아질 거야가 아니라, 지금 미래의 희망으로 우리가 살 수 있는지 그 믿음의 실체에 대해서 같이 함께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어느 날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같이 신나게 놀았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메뚜기가 하루살이야 한테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루살이야 오늘 너 때문에 너무 행복했고 참 잘 놀았다. 우리 내일 다시 만나서 또 놀자. 얘기를 한 것이죠. 하루살이는 그 말을 듣고 내일이 뭔데 도대체가 내 일이 무슨 말인지 알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이해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렇게 이제 시간들이 좀 지났어요. 늦가을이 되었습니다. 그 메뚜기가 이번에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개구리입니다. 그래서 개구리와 너무나 친하게 지내면서 서로가 죽이 맞아서 여러 날들을 그렇게 친하게 놀면서 지냈습니다. 추운 겨울이 바로 앞에 왔습니다. 개구리가 이번에는 메뚜기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메뚜기야 너 만나서 나는 이 가을 너무나 행복했고 참 좋았다.’ 우리 내년에 봄이 되면 다시 만나서 또 놀자. 이렇게 말을 한 것이고 메뚜기는 한 철이잖아요. 그래서 메뚜기는 도대체가 이 개구리가 말하는 내년이 무엇인지 봄이 무엇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비슷한 일이 2천 년 전에 우리 역사 가운데 일어났죠.
 
하나님이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주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우리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 문화의 뒤 배경을 이용해서 여러 각도에서 말씀을 했지만 사람들이 도대체가 이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이제 첫 설교라고 하는 산상수훈, 마태복음 5장에 나와 있죠. 7장까지 나와 있는데 그 산상수훈을 통해서 영혼 전부터 준비하신 메시지죠.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모셔서 당신의 입을 열어 그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첫 설교를 어떻게 해야 될까? 아마 준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입을 열어서, 첫 말씀이 뭐였습니까?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며” 첫 말씀 참 우리가 기대하죠.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선택하셔서 첫 말씀을 인간에게 설교를 했을까? 이 첫 마디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는데 천국이 저들의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왜냐하면 가난이라고 하는 이 단어를 선택해서 첫 포문을 여셨거든요. 왜냐하면 ‘가난’이라고 하는 이 단어는 당시 갈릴리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단어 중에 하나였습니다. 워낙 가난했기 때문에 정말 무엇을 먹어야 될지, 무엇을 마셔야 될지, 그리고 무엇을 입어야 될지, 내일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고서는 하루를 연명할 수 없을 정도의 참 가난한 자들이 모인 것이 갈릴리 바닷가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었거든요. 근데 그들에게 가난이란 단어를 택해서 말씀해 ‘푸터코스’라고 하는 이 헬라어의 가난이라고 하는 단어는 가난이라고 하는 단어 중에서 가장 로우스 가장 가난의, 가장 가난한 표현이 ‘푸토쿠스’ 라고 하는 단어예요. 가난도 여러 가지 가난이 있잖아요. 참 가난해 죄송합니다. 찢어지게 가난해요.
 
여러 가난의 표현이 있는데 이 ‘푸터코스’ 라고 하는 이 가난이라고 하는 단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완전히 파산 상태예요. 그러니까는 빌로우 제로입니다. 도저히 소망이 없어 보이는 그 가난의 표현의 단어가 푸토쿠스라고 하는 단어죠. 그래서 우리가 육신적인 삶의 가난이든 여기서 말씀하시는 어떤 심령의 이 가난한 상태이든 이 푸토코스라고 하는 단어는 정말 듣기 싫은 단어였어요. 그런 상태에 있는 자들이 천국이 저일 것이다. 이해가 됩니까? 그 천국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현재 임한 하나님의 나라이든 그건 더 힘들죠. 이 아기가 죽어서 가는 하나님의 나라이든 상관없이 너무나 어려운 말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팔복을 말씀할 때 마지막 단어는 더 케이오 펀치였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핍박이란 단어를 선택했어요. 천국이 그들의 것입니다. 라고 말씀해서 도대체 누가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핍박, 로마 제국 밑에서 가장 싫어하는 거 받기 싫어하는 것이 ‘핍박’이었었거든요. 그래서 그들을 피해서 적당한 갈릴리 바닷가에 살고 있는 저들에게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대요. 그리고 ‘천국이 그들의 것이니라.’ 도저히 이해하기가 너무나 힘든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죠. 특별히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에 바로 승천하시지 않고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40일 동안 사십일 동안 이 땅에 부활의 영광의 몸으로 계시면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사도행전 1장 3절에 보게 되면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쳤다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사도행전 1:3,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가 중요한지, 신앙의 본질인지 그리고 저들이 아직 잘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또 이것을 알아야 되기 때문에, 예수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온 심려를 다해서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주제를 가지고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말씀을 그렇다면 제자들이 좀 알아들어야 될 것 같은데 이해를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예수님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행전 1장에 보게 되면 그들의 마지막 질문이 너무나 주님 보신 한심한 질문이었어요. ‘이스라엘을 회복할 때가 바로 이때이이니까?’ 그 말의 의지는 뭐예요? 더 이상 고생하기 싫다. 라는 것이죠. 주님이 이 땅에 왕이 되어 주셔서 로마 제국을 뒤집어엎으시고 나에게 한 자리, 자기한테 한 자리 먹고 사는 것 더 이상 내일을 염려하지 않도록 해주시고, 그리고 핍박이 더 이상 없는 그러한 유토피아와 같은 그 날을 지금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고통 끝나고, 고난 끝나고, 지금 서부터 행복한 시간이 시작되는 겁니까? 아 ‘그건 너희가 알바가 아니다.’ 이해를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현 주소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절망이라고 하는 이 ‘고난’이라고 하는 이 단어를 환영하지가 않습니다. 제자들과 같이 때로는 현재의 고난과 미래의 영광을 우리는 따로 따로 생각하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현재의 고난이라면 빨리 내일부터는 이 고난의 모든 기도 제목들이 없어지고 어려움이 없는, 절망이 아닌 희망의 삶을 빨리 살기를 우리는 원하는 것이죠. 그 제자들도 현재의 고난 따로, 미래의 소원과 희망 따로, 저희들이 보았기 때문에 그렇다면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죠. 현재의 고난을 복으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메시지가 그런 것일까요? 절대로 그렇지가 않죠.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그 복음의 완성이라고 하는 그것은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십자가의 고난 따로, 부활의 영광 따로, 그렇게 볼 수가 없습니다.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십자가의 고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같이 함께 보는 것이 부활의 영광인 것입니다. 이것은 함께 함께 우리가 봐야 되는 중요한 실체인 것이죠.
 
그래서 바울도 우리가 루스드라에서 사도행전을 보게 되면 돌에 맞아 거의 죽어 죽을 뻔한 상황 가운데에 다시 일어나게 되죠. 둘러싼 제자들 앞에서 다시 옷을 털고, 그 피투성이 된 몸을 가지고 바울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어라. 너희들이 지금 보는 이 고난 자체가 고난이 아니야. 무슨 믿음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야. 너무나 자연스럽고 너무나 당연한 일이야. 고난을 피하라는 말을 절대로 사도 바울은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왜? 나와 같이 고난을 받으라. 라고 얘기를 했어요. 왜냐하면 고난과 영광은 함께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사도바울은 항상 우리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주 안에서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옥중에 있어도 모든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절망으로 보지 않고 주님 안에서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그 영광의 실체를 날마다의 삶 가운데에 그는 적용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이 있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여러분, 너무 어려운 말이죠? 저도 끊임없이 적용해야 되는 너무나 어려운 말씀이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고 나온 거예요. 저를 위한 설교예요. 그렇지 않으면 범이 힘드니까.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오늘 본문 말씀은 처음에 우리가 들으면 참 좋은 말씀 같지만 너무나 이해하기가 힘든 그런 어려운 말씀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11절 이 말씀은 유명한 말씀이고 정말 구약에서의 요절 같은 말씀이라고 말씀할 수는 없지만 그렇지만 요절과 같은 이 말씀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29장 11절 이 말씀 우리 한 번 다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예레미야 29:11,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 아 재앙이 아니라 너희에게 희망과 미래를 주는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참 믿기가 힘든 말씀입니다. 왜냐면은 구약 전체 가운데 가장 어두웠던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거든요. 예레미야 선지자가 사역하던 이 시기는요 북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남 유다 총체적으로 가장 어둡고 절망스러운 시간이 모든 색깔이 다 다 틀렸어요. 다 어둠 흑암의 색깔이었어요. 소망이라고 하는 빛은 단 한 줄기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가 바로 이런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말을 합니다. 52장에 걸친 이 긴 예언서 52장을 눈물로서 쓴 것도 모자라 ‘예레미야 애가’라고 하는 ‘돌레멘트’ 눈물이거든요. 오 하나님이여, 주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 모든 현실들을 보면서요. 눈물로 다섯 장을 더 써야 되는 여러분 그 에레미야 선지자의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였었어요. 이분의 성정 자체가 갱년기기 때문에 눈물이 막 나오는 이게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당시 모든 이스라엘 상황 자체가 그에게도 하나님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절망이다. 그런 시기였어요. 북 이스라엘은 이미 100여 년 전에 앗수르에 의해가지고 멸망했어요.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예언을 해도 안 된다. 그들은 뭐 설 자리도 없어요. 사마리아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올 수도 없고 열 지파들은 완전히 방황한 비참한 생활을 합니다. 저 봐라 예리미아는 끊임없이, 끊임없이 그것을 거울로 삼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야 된다. 라고 이야기를 아무리 얘기를 해도, 남 유다 백성 가운데 그 말을 듣고 돌아오는 사람이 없었어요. 예레미야서를 쭉 보게 되면은 정말 예레미야 얼마나 힘들었을까 조롱당하죠. 오히려 핍박받죠. 진리를 말하는 것 때문에 때는 땅에 구덩이를 파가지고 몸에 들어가서 얼굴만 내놓고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우상을 섬기고 죄를 짓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전하고 하나님을 전하기 싫어요. 그래도 전해야 되고, 그러한, 그러한 상황 가운데에 그의 눈에서 눈물이 매말되기 전에 그의 눈으로 직접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가지고 완전히 망하게 되는 그것까지도 보게 됩니다.
 
무너져 내린 예루살렘 도성 완전히 파괴된 예루살렘 성벽, 모두 타버린 하나님의 영광이 마치 떠난 것과 같은 예루살렘 성전, 그다음 세대의 유일한 소망이었던 다니엘을 비롯해서 많은, 많은 젊은이들이 다 포로로 잡혀갔어요. 먹을 것도 없어요. 기근이 왔어요. 예레미야서를 보게 되면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비참한 그 부녀들이 자식들을 삶아 잡아먹을 정도로, 도대체 이것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삶의 모습인가 할 정도로, 그 바닥이라고 하는 것은 부터 푸터코스, 완전히 파산된 상황이에요. 아니 이런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 지금 뭐라고 말씀하세요?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 어떻게 하면을 할 수 있냐고요 재앙인데 절망인데 이렇게 지금 당하고 있는데 이런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데 재앙이 아니라고요? 미래의 희망이라고요? 너무 힘들죠. 말씀 어려운 말씀이에요. 사랑의 교회는 듣는 귀가 굉장히 높다고 제가 알고 있거든요. 그럼 어떻게 하면은 절망을 나중에 이루어지는 희망을 바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절망 자체에서 우리가 어떻게 지금 내가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저는 크게 두 가지로,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서 잘 적용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첫 번째는 내가 누구의 말 누구의 말에 절대적으로 귀를 기울여 듣느냐? 가 우리의 미래 이미 결정이 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미래가 이미 결정이 된다. 라고 하는 것이고 오늘 본문 말씀을 한번 자세히 보십시오. 오늘 본문 말씀을 보게 되면 감춰져 있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강조하는 말씀이 이 가운데에 나타납니다. 보실까요? 우리 10절을 보게 되면 이렇게 시작하죠.
 
*예레미야 29:10,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할렐루야!11절에 보게 되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할렐루야 14절에 보게 되니까 보니까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4절 마지막 부분에도 보니까는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말씀이라고요? 누구의 말씀이라고요? 여호와의 말씀, 여호와의 말씀이다. 너희들 믿지 않지? 재앙으로 생각하지 소망이 없다. 라고 생각하지 ‘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주권적인 하나님께서 지금 이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극적인 절망의 시간을 만나게 되면 하루살이와 메뚜기와 같이 내 일에 대해서 희망을 걸 수가 없죠. 내년에 대해서도 미래가 보이지 않아 쉽게 좌절하고 두 손을 우리 떨어뜨립니다.
 
우리의 나약함이죠. 그러한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그러면 안 된다 그러지 말라고 왜냐하면 내가 너의 향한 나의 생각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동의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음성이 지금 이 시간 저의 영혼 가운데에, 여러분의 영혼 가운데에 믿음으로 들리게 되면 여러분의 미래는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미래의 영광은 이미 여러분들의 것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지금 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 어떤 분이실까요? 스스로 존재하신 하나님, 창세전부터 계시고, 영혼 끝까지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 년 같고, 또한 천 년이 없는 거와 같은 하루와 같은, 그런 분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검은 머리 흰 머리 다 아세요? 몇 개인지, 매년마다 늘어가는 주름살이 얼마인지, 다 수도 없이 잠 못 이루시는 밤 가운데. 수만 가지 생각 속에서 염려하시고, 근심하시는 그 모든 것 작은 신음으로 탄식하며 기도하지 않아도, 기도하기 전에 우리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그냥 위로의 말씀만 하시는 분이 아니세요. 절대로, 두려워 말라 걱정 말라 그렇게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인지 아세요? 약속으로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분이시고, 그 한 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희망의 메시지를 절망 가운데에 지금 선포하시고 계시는 것이거든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여우가 말씀하시는 여호와께서 어떤 말씀을 약속 가운데에 성취를 위하여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오늘 10절 말씀이 이 보석과 같은 말씀인 것입니다.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참여하 약속이에요.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널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신 약속 성진이 이루어졌습니까? 안 이루어졌습니까? 다 이루어졌죠. 지금 이 상황 속에서는 이루어질까“ 라고 의심할 수 있지만은 우리가 시간을 지나가 보면 모든 성경의 역사들은 다 약속하셨고 성취하셨고 약속하셨고 성취하셨고 약속하셨고 성취하셨고, 요한 계시록까지 그 패턴으로 가는 것이죠. 이 말씀을 예레미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기록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 같아요. 다른 차원의 눈물인 것이죠. 하나님 하나님이 이미 칠십년이라고 하는 딱 시간을 두고 계셨었군요. 이 가운데 하나님의 깊은 뜻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저와 우리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있으셨군요. 아 70년까지군요. 이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그 어렵고 힘든 가운데 이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소망이 되고, 희망이 된 것이죠.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걸로 믿고 살아가는 그 믿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죠. 어떻게 보면 다니엘도 어떻게 그 상황에서 이겨낼 수 있었을까 뜻을 정하고 신앙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그 바벨론 강가에 수도 없이 눈물을 흘렸던 그 에스겔 선지자도 어떻게, 어떻게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었을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절망을, 절망으로 본 것이 아니라 70년이 참여한 반드시 성취하실 그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이미 성취된 것으로 믿고 저희들은 살아간 것이죠. 이렇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그대로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소망이 없어, 아무리 기도해도 안 돼 이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들에게 당신 희망 없어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들에게 그런 말씀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끊임없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약속하시고 성취하시기를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제가 청소년 시절 미국에서 1.5세로 14살 때 미국으로 들어가서 이민으로 들어가 살면서 참 어렵게 살았어요. 너무너무 가난하게 힘들게 살았어요. 믿지 않으시겠지만 정말 그랬어요. 밤 8시부터 형 따라 2시까지 방청소 항상 다녔고 저는 이제 중학교 2학년 되면서 3월에 학교 가지 마 왜냐하면 6월에도 미국 가니까 그래서 안 갔어요. 안 갔다가 이렇게 애들이랑 놀다가 미국에서 9월 달이면 2학년으로 들어갔는데 부모님이 교육에 관심이 없으셔가지고 제가 3학년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그러니까는 영어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중학교 3학년 책을 받았더니 이거 완전 외계인 글씨예요. 도저히 이해를 못하게 제가 그때 한국에서 배운 영어는 몇 마디밖에 없었는데 ‘아임 어 보이’ 라 근데 이거는 미친 소년도 그렇게 영어를 안 하거든요. 어떤 미친 소년의 아임 어 보이’로 그런 영어가 없어요. 그런 영어 배우고 왔거든요. 써 먹을 수도 없고, 아무튼 그런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에서 저희 아버님이 참 훌륭하신 목사님이셨어요. 50세에 일찍 돌아가셨어요. 너무나 훌륭하신 목사님이시기 때문에 몸을 안 돌보시고, 저희 아버님은 실은 이북 분 출신이신데,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교역자님이 있었어요. 당시는 항상 주기철 목사님과 같이 순교하기를 굉장히 로망 하셨어요. 주기철 목사님 같이 있고, 주기철 목사님 같이 성령을 항상 가슴에 다 다니시고 그래서 이게 잡혀 들어가면 너무나 행복하셨대요. 나도 순교하나 보다. 그래서 온갖 고문을 참으려고 노력하는데, 고문을 하긴 하는데, 급이 다르니까 금세 내보내더래요. 금세 내보내고, 그래가지고 저희 아버님이 상처를 받았어요. 다른 것이 아니라, 순교의, 순교의 그릇은 따로 있구나. 그래가지고 그것을 인정하셨고, 대신에 하나님, 저는 설교하다가 그러면 강단에서 데리고 가서 그래서 그대로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어요.,저는 설교 강단을 그래서 나름 순교로 생각한 아버님이 어저께 우리 고 오상진 목사님의 그 영정을 보면서, 참 우리 옛날 어르신 목사님들은 이렇게 참 훌륭하다.
 
그런 마음 저희 아버지는 너무나 훌륭하셔서 청빈하셔서 돌아가시면서 남겨놓은 거 숟가락 하나 젓가락 두 개, 어머님 그다음부터 공장 나가시고 살 집이 없어져가지고요. 저 형들이 알아서 살았어야 되고 그다음에 저와 누님들과 어머님은 어디서 살았냐면 3년 동안 청소년 시기에 잘 사는 친구 집 뒤에 그라지 자동차 주차하는 그라지에서 3년 동안 살았어요. 안 믿어지시죠? 그라쥐은 자동차가 사는 곳이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에요. 3년 동안 거기서 살았다니까요. 저만큼 고생한 사람 없어요. 정말로 예 생긴 게 고생 안 한 것처럼 생겨서 그렇지 고생 많이 했어요. 여러분 정말로 고생 안 한 것도 생긴 것은 다른 이 우리 어머님 쪽을 닮아서 그래요. 어머님 쪽이 다 귀티 나게 생겼어요. 좀 이렇게 외삼촌들 보면 다 의사들이에요. 황해도 다 의사들이고 보면 홍콩 무비스다 같다. 뭔가 있어 보이고 그쪽을 제가 조금 닮았어요. 그러다가 하나님이 저를 만나주셨어요.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어요. 못된 모태 신앙에서 거듭나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2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보는 은혜를 주셨어요. 저는 성경에 나오는 모태 신앙이라서 지식도 많이 나름대로 성경 기준에 1등 놓지 않기 위해서 알았지만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들 다 믿었어요. 홍해 가르는 것 정말 믿었고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거 다 믿었고 부활하신 것 다 믿었어요. 한 가지만 안 믿었어요. 말씀이 꿀 송이보다 달다는 거 그건 제가 안 믿었어요. 말이 안 돼요. 그래서 그거는 안 믿었거든요. 근데 정말로 거듭나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꿀 속에 같이 단 거예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2년 동안 그 말씀을 아침, 저녁 보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내가 이런 죄를 졌군요. 빨간 줄을 긋고 회개를 했어요. 그다음에 이 말은 너무나 좋습니다. 이렇게 살게 해주세요. 약속의 말씀 파란 줄을 긋고, 그렇게 제가 기도하면서 내 삶을 축복하면서 이렇게 변화가 일어난 거예요. 그러다가 어느 아침에 어느 날 아침에 하나님 말씀을 또 묵상하는데 갑자기 어느 한 구절이 이렇게 올라오는 것과 같아요.
 
뚜리디, 알아들으시죠? 오정현 목사님 3d라고 말씀하시는데 뚜리디, 뚜리디, 올라오는 말씀인데 이게 저는 장로교 목사 아들이기 때문에 저 신비한 거 많이 안 믿었는데, 정말 그래요. 아무리 눈을 뒤져도 똑같이 올라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의 감동이 주신 말씀이 이 말 먹어라. 내가 니 삶을 향한 내 약속의 말이다. 가진 것 아무것도 없는 일 1,5세, 가난뱅이 몸도 없는 저에게 하나님께서 이 말씀 먹으라는 거예요. 근데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이었냐면 창세기 12장 3절 말씀이었어요.
 
*창세기 12:3,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저한테 잘하세요. 그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에요 예 그러면 저는 저주받은 목사죠. 그 다음에 나오는 이 약속의 말씀이 너무나 기가 막혔고 도저 제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어요. 땅의 모든 족속이 땅의 모든 족속의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저는 그 당시 때 이 말씀이 내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먹으라고 하시니까 마음에 담고 안 먹어도 혼자 볼 거 없잖아요. 먹었어요. 정말로 누가 보면 미친 사람인 줄 알았을까 그리고 그 약속을 믿고 선포했어요. 그다음부터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가시는데, 계단과 같이 여러 가시는데 ‘케이스 m’이라고 하는 학원 단체를 만들게 하시고 그 단체를 통해가지고 12개국의 나라들을 단기 선교로 갈 수 있는 은혜를 80년도 중반부터 허락해 주셔서 사람에게 와서 사역하면서 얼마나 열방을 나중에 축복하기 위해서 복을 받고 복 받고 복을 받고 복을 받고 복을 받고 복을 받았어요. 너무나 귀한 글로벌 리더들 다 만나게 해주시고 통역도 하게 하고 어머니 큰 은혜를 주셨어요. 그래가지고 인도네시아까지 저를 보냈잖아요. 아시나요? 인도네시아 제가 한 6년 7년 사역하면서 거의 선교적 교회에서 선교 많이 하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어요. 이용규 선교사님 그 기적과 같은 제 아이유 작가는 인터넷 유니버스는 저랑 같이 함께 시작하도록 은혜를 주셨고, 삼진 교회 세우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일들을 너무나 많이 행하셨어요. 이 무슬림 중에서 가장 강성 부족 중에 하나, 국제 선교에서 얘기하는 미전도 종족 중에 하나가 ‘순다족’이에요. 인도의 순다족 정말 자존심 강한 분들인데 가사를 돕는 식모 자매가 순다족 무슬림이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불쌍하죠. 교회도 가서 잘해야 되고 집에 와서 더 잘해야 되고 기독교를 믿는 목사는 어떻게 사나 정말 힘들었어요. 근데 하나님이 참 피곤하게 역사하시잖아요. 그래도 난 끝까지 모든 족속에 노래는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 이래서 이런 거구나 그래가지고 그냥 잘해야 되잖아요. 나중에 너무나 좋은 열매를 주셨고 지금은 뉴욕에 가서 저 고생 엄청 합니다. 아무튼 뉴욕 가서
거기 수많은 여러 다민족들이 다 모여 있는 세계에서 ‘뉴욕’이라는 곳이 1년에 거의 5,700만에 1년 동안에 지난 23년 동안 왔다고 그러더라고요. 150개국 이상의 나라 제가 있는 지 쿠윈스라고 하는 지역은 그래서 다민족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에요. 우리 교회도 그래서 다민족을 위해서 열어놓고 많은 사역들을 합니다. 모든 난민 분들을 위해서도 사역하고 몽골, 그다음에 뭐 여러 여러 나라들 얼마 전에는 땅 끝이라고 하는 이 북한 탈 북민 목회자들, 처음으로 뉴욕에 오셔가지고 우리가 열심히 섬기고 간증 또 집회하면서 큰 은혜 받고 또 그것이 좋다고 그래가지고 또 뉴욕장로교회로 또 오세요. 그래가지고 이번에 탈 북민 신학생들, 와서 간증하고 은혜를 같이 함께 나누고 섬길 수 있고 이 모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는 과정 가운데에 제가 있는 것이죠. 근데 너무 힘들어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시각은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하나거든요. 복음이 죽음과 부활의 하나이듯이 무슨 말일까요? 저는 이 말씀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움직여주세요. 죽을 때까지 움직일 거예요. 무엇을 이루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은 고맙다.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래에 바다의 모래와 같이 하늘의 별들과 같이 살 수 있나 봐라. 저는 그 영광의 자리에 이미 간사람 같이 살아요. 현실은 너무 힘들어요. 저 미치지 않았거든요.
 
여러분 하나님은 그런 분이세요. 작은 일서부터 큰일까지 저는 말씀을 이제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왜 고난의 칠십년이라는 시간을 허락했을까? 잘 들어보세요. 하나님이 저들을 만나고 싶어서 허락하신 거예요. 저들의 인생 가운데에 다른 것이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 인생을 창세전부터 아신 하나님, 손바닥에 새긴 하나님의 선택된 자녀들, 저와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나를 네가 만나야, 네 인생이 내가 원하는 길로 갈 수가 있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겪게 된 아픔의 모든 것은 하나님을 계속해서 피하고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저희들이 예배 가운데도 하나님이 없어요. 만날 수가 없어 기도에도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었어요. 하나님 이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던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 백성들이 다시 나를 깊이 만날 수 있을까? 그래서 70년이라고 하는 이 시간을 하나님이 특별하게 디자인하신 것이죠. 70, 완벽한 하나님, 온전하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그 시간을 통해서 만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죠. 저는 말씀을 이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12절, 13절, 14절에 그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12-14,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할렐루야 기도하도록 하기 위해서, 부르짖어 나의 얼굴을 구하도록 하기 위해서, 절망의 시간을 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내가 너를 만날 것이다. 내가 너를 만날 것이고 나를 만나게 되면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게 뭐냐면 평안의 축복이, 평안, 재앙이 아니다. 평안이다. 나의 평안 나의 평안이다. 제자들이 여러분 십자가에 죽으신 다음에 예수님 다 절망으로 생각했어요. 문을 꼭꼭 닫고 우리도 예루살렘에 가면 잡혀주고 맞아주고 다 숨어 있었어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영광의 몸으로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서 처음 하신 말씀이 뭔지 아세요? 샬롬, 평안하뇨? 내 평안을 내게 주노라 성령을 받으라. 평강해졌어요. 평안은 땅 끝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하나님은 한 번도 이스라엘 백성을 떠난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저희들은 떠났죠. 그러니까 마음에 평안이 없는 곳이죠. 하나님은 ‘너희들은 나를 만나야 돼. 나를 만나야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고,’ 내가 너와 함께해야 너희들은 세상에 줄 수 없는 평안으로, 절망을 고난을, 고통을, 고통을 생각하지 않고 나와 함께 그 평안을 가지고 말씀을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므로 이 땅에서 우리의 날마다의 삶이 죽어서 천국 가는 그 신앙을 뛰어넘어서, 이미 내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의 신앙으로 십자가의 죽음의 고난과 부활의 그 영광이 내 삶 가운데 복음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그러한 평안이 절대적으로 다스리고 하나님의 주권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전적으로 나를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지금의 절망이 미래의 희망이 되는 삶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날마다 이 은혜를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절망의 상황 속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는 주님의 음성으로 듣고 절대 소망을 가진 믿음의 길로 걸어가며 인생의 모든 길을 주님께 전적으로 위탁하여서 간절한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하여야 한다. 우리의 삶 가운데에 기가 막힌 절망, 모든 삶,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지금의 미래의 희망과 믿음과 평안을 다스리는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간구해야 한다. 사랑하는 아버님을 먼저 천국에 보내고 슬픔에 잠겨 있는 우리 오정현 담임 목사님과 모든 유가족 가운데, 모든 장례 절차 가운데 절대적인 하늘의 평안으로 하나님 붙들어 주시길 기도하자.
--유다의 바벨론 포로 기간은 70년으로, 이는 바벨론의 지배력이 3대 동안 계속되리라는 말씀의 성취였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의 멸망(주전 612년)에서 바벨론 멸망까지는 73년이며 느부갓네살이 즉위하던 해(주전 605년)부터 바벨론 멸망까지는 66년이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구원이 다가오고 있을 때,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그 구원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는 그 말씀을 의뢰할 수 있다. '찾으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 우리가 좌우명으로 삼을 말씀이 여기에 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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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7월 30일)
제목: "사랑의 우선순위(優先順位)
말씀: 마태복음 22:37-40, 고린도전서 13:13
대표기도: 신성식 부목사님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영광찬양대(1부)  
설교자: 김상복 목사님-초빙

(할렐루야 교회, 전 세계복음주의연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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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37-40,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고린도전서 13:13,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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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교회의 오 목사님께서 다시 이렇게 청해 주셔서 감사하다. 사랑의 교회에 와서 무슨 사랑에 대한 설교를 하냐고 하겠지만 사랑의 교회에 왔기 때문에 제가 교회에 사랑의 설교를 하려고 한다. 사랑의 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제자훈련으로 앞장 선 교회로 잘 알려져 있고, 대표적인 건물만 하더라도 한국의 기독교 건축의 대표적이고 소중한 건물이다. 또 사랑의 교회는 아주 바쁜 교회이고 일을 많이 한다. 또한 이 교회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사역하는 교회이다. 열심히 사역하고 열심히 섬기다보면 사랑이 빠지지 않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랑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라고 교회의 구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서 사랑 얘기를 좀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 그 말씀을 우리가 보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나 이것은 항상 있는 것이고 있어야 되는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믿음이 시작이더라고요. 믿음이 믿음이라는 게 뭐냐? 믿음이라는 것은 영적인 지식,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지식은 객관적인 인포메이션이에요. 지식이라는 것은 정보다. 인포메이션이 객관적이다. 객관적인 하나님의 그 말씀 진리를 그냥 알고 있으면 그건 믿음이 아니다. 나님에 대한 지식을 알고 이해하고 그리고 그 지식을 객관적인 지식을 주관적으로 내 것으로 받아들일 때 그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내 것이 되기 전까지는 지식이다. 그냥 하나의 정보다. 그래서 이 신앙의 모든 것이 그렇다.
 
여러분이 이제 제가 조금 전에 말하니까 아멘 그랬어요. 그 왜 아멘! 이라고 하냐? 그거를 믿는 사람이고 그 말씀이 옳고 그게 내가 바로 믿는 것이다. 그래서 아멘 하는 거예요. 그래요. 그래서 하면 하는 거예요. 그냥 아무리 뭐 뭐 말로 해도 괜찮고 속으로 해도 괜찮고 괜찮아요. 말로 하나 뭘 하나 나는 지금 하시는 그 말씀을 하나님 말씀을 ‘나 자신의 것으로 믿습니다.’ 모든 믿음이 다 그래요. 성경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될 때까지는 그저 지식이에요.
 
지식이 믿음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것이 되시길 바래요.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얘기가 여기 보면 하나님 사랑하라, 이웃 사랑하라, 그리고 너 자신을 사랑하라. 그리고 이제 사랑의 세 가지를 얘기를 했는데 왜 이렇게 사랑하라는 말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가장 위대한 계명이고 모든 계명 가운데 최고의 첫 번째 계명이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또 둘째도 있고 근데 너 자신과 이웃과 내 자신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이 갖고 계시는 성경은 제가 보니까 1750 몇 페이지 대가 되더라고요. 제가 한번 찾아봤어요. 이 1700 메시 개의 페이지에 있는 이 책을 쉽게 이해하는 방법이 딱 하나가 있다는 거예요. 이 안에 복잡하고 별 얘기가 다 있죠. 다 있는데 이 전체를 성경 전체를 요약해서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이다.
 
아 저도 젊었을 때는 이 성경 읽고 공부하느라고 참 머리 아팠어요. 교회 생활은 참 복잡했습니다. 왜 이렇게 교회 생활이 복잡하고 힘든가?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셨어요. 그거 다 걱정하지 마. 성경의 초점과 요약은 사람이니라. 이 하나만 철저히 알고 이해하고 내 것으로 믿고 믿는 대로 살면 그것으로서 기독교의 신앙은 끝났다. 교회 생활을 복잡했는데 이것을 깨닫는 순간에 아이 신앙생활이 쉬워지더라고요. 교회 생활은 어려워요. 근데 신앙생활은 갑자기 쉬워졌어요. 초점이 맞추니까 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해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초점과 요약을 알아서 시험에 합격하면 성경이 말하는 게 뭐냐? ‘사랑’ 그럼 합격했다는 거야. 모든 율법을 다 지킨 것이다. 그 한 가지로 율법을 전부 다 지킨 것이다. 제가 얼마나 편해졌는지 이제부터 나는 걱정할 게 없구나. 나는 그 교회 생활하면서 젊었을 때도 교회 다니면서 참 너무 너무 너무너무 복잡해서 어떨 때는 어떡하다가 어떡하다가 내가 예수 믿는 집에 태어나가지고 이 교상하는 거 별 생각 다 했어요. 고등학생 때는 너무 골치가 아파서 성경을 이제 을 내 동댕이치고는 나 다시 교회 안 가! 했다. 제가 고등부 회장이었거든요. 아 그런데 주일날 돼서는 또 성경 집어가지고 다시 갔어요. 아 힘들더라고요. 정말 성경 보니까 너무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 내 마음으로 잘못한 것은 내가 미워하는 것은 살인한 것이다.
 
어떻게 안 미워하고 삽니까? 맨날 살인하고 맨날 간음하고 맨날 도둑질하고 이게 도대체 어떡하다가 내가 이렇게 예수 믿는 집에 태어나서 교회를 다니게 됐나 참 힘들었어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어느 날이 믿음이 생긴 거야. 그거 다 다 걱정하지 마. 다 내려놓고 그저 이제부터는 사랑만 해. 사랑만 하면 돼. 날 사랑하고 옆에 사람 사랑하고, 사람같이 생겼으면 사랑해라. 골라서 사랑 하려면 골치 아프다. 저 사람 좋아할까 말까 어떡할까 아이고 이쁘니까, 사랑해야 되겠네. 그런 거 고르면 힘들어요. 그래서 그저 사람하고 비슷하게 생겼으면 그냥 딴 거 걱정할 필요 없으니까. 잘생겼나 못생겼냐 아니면 날 좋아하냐 나빠하냐? 날 미워하냐? 그런 거 아무 상관이 없는 거 그렇죠?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그러다 고맙게도 너도 사랑해. 너 자신도 너 자신도 사랑해. 내가 너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그래야 남을 사랑하지.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잘 되는 것도 아니야.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들만 사랑할 수 있어요.
 
뭐라 해도 어떤 때는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들 때문에 또 우리는 사랑을 못 받은 사람도 있어요.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몸에 맞고 자라면서 고등학교 2학년 학생 제가 청소년 수련에 갔다가 한아이가 자살하려고 그런대요. 그렇다고 강사님 나를 보고 빨리 목사님 제가 좀 구해 주세요. 그래서 내가 갔어요. 어디 있냐 갔더니 화장실 안에 잠궈 놓고 들어가 있더라고. 자살하는데 왜 화장실 들어가요. 이렇게 문 열으니까 안 열어요. 그래서 계속 설득해가지고 내가 내놨더니 너 왜 그렇게 죽을려고 그랬냐? 우리 아버지가요 제가 공부를 비교적 잘 했습니다. 그래서 거의 a를 받았는데 b가 하나만 나오면 집에 가서 벽들로 매를 맞았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그렇게 때렸어요. b 하나 맞았다고 그러고 자라났다는 거야. 살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아 b하나 맞고도 매 맞아야 되는 그 딸이 자살하고 싶은 심정을 이해를 할 수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아이는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어요. 자기를 사랑할 수 없어요. 자기를 미워해요. 왜? b를 받았기 때문에 맨날 a 받는 아이가 b를 받아놓으니까 내가 왜 a를 못 받고 왜 이번엔 b를 받았나! 싫은 거예요.
 
사랑은 사랑을 경험해보고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할 수 있어요. 아 근데 이게 힘든 거죠. 저는 부모님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랐어요. 내가 잘못해서 못 받은 건 아니고, 우리 이건 형제가 아홉이었거든요. 우리 부모가 누굴 사랑합니까? 그런 내에서 학교 보내기도 바쁜데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걸 모르고 그냥 밥 먹고 학교 다니고 그러다가 6.25가 나서 제가 평양에서 태어났는데, 6.25 때 11살에 부모를 떠나서 부모의 사랑을 받아볼 기회가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살아남은 것은 부모의 사랑 때문에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살아났어요.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부모의 사랑 때문에 애타했지만은 부모의 사랑은 부족했어도 없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니까, 갚아버리는 거야 상실해버립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사랑이 주식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이 나의 것이요,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때부터 내 가슴속은 풍성한 은혜가 있었습니다.
 
사랑은 받아본 사람이 해요.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아이고 하나님을 사랑해야지, 사람을 사랑해 이웃사랑 해야 돼, 나를 사랑해야 돼, 그걸 명령으로 알면 부담이 돼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이 그저 하나의 객관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여러분 제가 알고 이해하고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여러분의 가슴 속에 이 생기길 바랍니다. 그러면 이 율법 하나 율법 전체를 지키기 위해서 한 가지만 사랑을 개발하면 되는데 이 사랑이 그 저주 되는 게 아니거든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알고, 듣고, 이해하고 믿기 시작할 때 그때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에 하나님의 사랑이 최우선인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최우선인데 하나님을 사랑하면은 그 복이 천대까지 간다.
 
출애굽기 20장 6절에 보니까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킨 자에게는 천대까지 간다. 수천 대까지 대대손손이 내가 은혜를 베풀 것이다. 여러분이 한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과 가족 대대손손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를 갚으신다. 나 한 사람의 사랑이, 한 사람의 부모가 돼서, 조상이 돼서, 내가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나 때문에 내 가족과 내 후손이 수천 대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얼마나 중요합니까? 얼마나 소중합니까? 예!! 미국에 조나산 에드워드라는 목사님이 계셨어요. 200년 전에 미국 대각성 시대의 전화로 이분은 예일 대학교 총장이었습니다. 이분은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에요. 그런 분인데 그분의 후손들을 이제 조사를 해봤어요. 사백 명을 조사했더니 그 400명 속에 어떤 사람들이 태어났나? 그 후손들이 200년 동안에, 아버지하고 외할아버지가 목사님이었어요. 이분은 대학교 총장이었고 그런데 이분 후손들 가운데 대학교 총장이 14명이 나왔답니다.
 
대학교 교수가 100명이 나오고 변호사, 판사가 100명, 의사가 60명 나머지는 유명한 작가들 신문사 편집인들 경제계 지도자들, 곳곳에서 많은 영향을 끼친 그런 분들이 이 후손에서 나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똑같은 시대에 뉴욕에 즉수라고 하는 죄수가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후손들 1200명을 조사해 보니까, 사백 명이 자살했대요. 삼백여명이 거지가 됐답니다. 거짓 생활을 평생 했대요. 130명이 죄수가 됐고, 60명이 도둑이 됐고, 소매치기가 일곱 명이에요. 살인자가 2명이 20% 정도의 사람들이 절반이 감옥에 갔다 왔답니다. 어떻게? 똑같은 시대에 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악한 사람이 되었었는데 그 결과가 그 한 사람 때문에 후손들이 이렇게 영향이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이 사랑의 교회 교회들이지만 여러분이 사람의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합니다. 나 한 사람 때문에, 나와 내 가정과 내 후손들이 수천 대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그 기회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의 것이기를 바랍니다. 그럼 왜 우리가 하나님 사랑하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더라고요.
 
너무 이유가 많아요. 이 사랑에 대한 걸 제가 창세기부터 요한이 사랑이 교회에 온다고 그래서 좀 잘 공부하려고 사랑에 대해서 성경을 창세기 부서 요한계시록 쫙 봤더니 6백8십 한 절이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681절을 다 하지 않겠습니다. 그중에 몇 가지만 요약해서 말씀드린
 
첫째는 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나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작품입니다.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작품인 데도요. 경쟁을 뚫고 들어왔어요. 우리 아버지에 정자가 10억 개가 있었어요. 십억 개의 정자가 있었는데 그 10억 개의 정자 가운데 다 죽고, 나만 살았다. 십억 대 일 여러분의 존재는 십억 대 일의 경제를 뚫고 나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해서 특별히 하나님 담도록 만들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하나님의 작품인 것을 감사하고 그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됐다는 것은 하나님의 dna를 받았다는 거, 여러분 대부분 부모 같이 보이는데 앞으로 뭐 부모 될 사람도 있겠지만, 부모는요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재주가 없어요. 어쩔 수 없습니다. 본능적으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때때로 자식들은 부모가 나를 사랑하나 의심할 때도 있어요.
 
그러나 부모에게는 그런 의심이 없어요. 아무리 내 자식이 못 돼도, 그 자식을 부모는 사랑합니다. 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자식은 부모의 dna를 받았기 때문에, 부모의 형상대로 부모의 dna를 받았기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과 또 특별히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가 않아요. 본능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사실 저도 보니까요 자식 사랑은 훨씬 더 쉽더라고요. 본능이에요. 근데 부모와 부모 두 분 사이에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dna가 섞여 있지 않아요. 완전히 다른 예네요. 그래서 결혼한다면 의지적인 사랑이 의지적인 삶 이런 악물로 사랑하는 거예요. 아 그렇습니다. 많이들 체험한 것 같으네요. ㅋㅋㅋ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에 어떤 모습이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가 잘못을, 잘못을 했더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이 고백하기 전에 하나님 벌써 알고 있었어요.
 
우리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우리에게 죄 성이 있다는 것도 알고 죄 성 때문에 죄를 범하는 것도 알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감격하는 거죠. 감사합니다. 죄를 이렇게 사랑해 주셔서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걸작품으로 만들었다고 에베소서 이야기 합니다. 이 걸 작품으로 만들었다면 이것은 제일 잘한 분인데 사도 바울과 다윗에요.
 
다윗은 시편 139편 4절에 이렇게 말했어요.
*시편 139편 4,
4 내가 주께 감사 하옴은 나를 지기지우심이 심히 기묘함이라.
-옛날 성경에는 신묘막측(神妙莫測) 함이라고 처음에 무슨 말인지 잘 몰랐어요. 알고 봤더니 신기하고 기가 막히게 우리를 창조했다. 네 영혼히 이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다윗이 그랬어요. 여러분도 묘막측(神妙莫測)하게, 신기하고 놀랍게 창조한 여러분 자신을 볼 때, 자신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이렇게도 신기하게 만들어주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렇게 하신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격해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요. 그런가 하면은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그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그분이 전지전능하신 그분이 내가 하나님이라. 이겁니다. 나의 하나님 레위기에 보니까요. 23번이나 말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안 믿을까 봐 너의 하나님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야. 안 믿을까 봐 안 믿으니까, 23번이나 신명기 한 권에 23번이나 그게 반복했더라고요.
 
여러분 그것이 지식이 아니고 여러분 자신의 하나님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군요. 나의 하늘 나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나를 걸 작품으로 만드신 하나님이시군요. 여러분 가슴속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알면 알수록 깊은 감동과 감화와 열정이 나타나길 바랍니다. 그런데 또 우리의 가치에 대해서도 말했어요. 어떤 때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잘 모릅니다. 어떤 때는 우린 또 우리 자신을 싫어할 때도 있어요. 어느 한 해 제가 신문에 보니까 서울대학교 입학생 신입생 가운데 95퍼센트가 열등감이 있다는 거예요. 서울 대학생이면 열등함이 없을 것 같은데 95%가 있다니까요. 왜입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 거죠 자신이 없어요. 없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 한 사람은 온 세상을 다다 한 것보다 더 소중하다. 더 귀하다 더 비싸다. 예수님의 말씀이에요.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일이 있냐? 그만큼 여러분 한 사람이 소중하고 귀하고 아주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몰랐을 때는 내가 나 자신의 가치를 생각해도 늘 부끄럽고 부족하고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야. 너는 전 세계 우주 만물보다 너 한 사람이 더 중요하고 더 소중하고 더 가치가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자존심 자존감이 솟아오르길 바랍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이제는요 이제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하신 일을 볼 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다음에 보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어.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깨달을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우리 마음이 감격하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의무감이 아니에요. 또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면 뭐라고 그럽니까? 너는 보배롭고 존귀한 자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우리의 존재감이 얼마나 좋아지는지 너는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내가 너를 사랑하느니라. 또 보니까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알면 알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설레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여러분은 아직도 감격 안 했어요? 또 뭐라고 그럽니까? 너는 내 눈동자 같다. 너를 건드리는 사람은 내 눈동자를 건드리는 거야. 가만 안 있어. 가만 안 너 건드리는 사람은 내 절대로 가만 안 둘 거야. 우리는 너무너무 정교해서 예수님 하나님의 눈동자 같다는 거예요.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겠다고 널 건드린 자는 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다 참 놀랍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이 됐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하겠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하리라. 와 나한테 함부로 말하면 큰일 나겠네. 사람이 나를 미워하고 뭐라고 욕 한 마디 하면 아이고 저 사람 큰일 났네 나한테 저렇게 말하더니 저 사람 큰일 났네 미워하는 게 아니라 불쌍한 거예요. 나를 저주하는 사람, 나한테 욕하는 사람, 나한테 나쁜 말 하는 사람은 불쌍한 거예요. 아이고, 저 큰일 났네. 저 사람 어떡하려고 저렇게 나한테 좋지 않게 말하지.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하겠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직접 저주하리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에요.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우리 속에서 그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막 솟구쳐 오르죠. 사랑하라는 것이 명령이 아니에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일으켜서 사랑을 감동시키고, 사랑을 경험하게 해서 사랑을 깨달아서 그걸 믿게 해서 드디어 내 가슴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나타나는 거죠. 그런 우리를 우리가 본래 죄인인데 죄인을 구원하셔서 의로운 자를 만들어주시고 영광스러운 자로 만들어졌다 그럽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보니까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가 됐다.
 
*로마서 3:24,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죄가 있는데 없다고 인정받은 영원히 죄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덮어서 우리를 덮어서 의롭다. 영광스러운 자로 만들었다. 아 참 지식이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내 것입니다. 예레미아 31장 3절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제가 이 제일 좋아하는 생명 구절 가운데 하나인데 내가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느니라.
 
*예레미야 31:3,
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하나님의 사랑은 방해받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나를 사는데 내가 어떡합니까? 사랑에 굴복하고 감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길밖에는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 여러분과 저의 것을 오늘도 분명히 여러분의 것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어야 됩니다. 믿지 않으면 객관적인 지식에 불과해요. 믿을 때 그 속에서 감격이 일어납니다. 사랑이 있어서 그럽니다. 그런데 그 사랑도 요한복음에 보니까 요한일서에 보니까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느니라.” 문제는 우리가 몰랐던 거죠. 몰랐어요. 지식이 없었어요. 정보가 없었어요. 근데 어느 날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정보를 알게 되는데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쪽에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나를 찾기 위해서 찾을 때까지 찾아다녔다. 쫓아가서, 쫓아가서 행복할 때까지 쫓아다녔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려고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됐고, 하나님의 우리보다도 하나님이 먼저 사랑한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알게 된 것이 우리의 믿음이 되었습니다. 근데 그 사랑의 증거가 있어야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증거마저도 보여주셨어요. 그 증거가 어디 있냐? 로마서 5장 10절에 보니까
 
*로마서 5:10,
10 아직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죄 성이 있고 범죄 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였느니라.
 
-증거를 보였어요. 얼마나, 얼마나 사랑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어떻게 이렇게까지 살아갈 수 있나? 게다가 하나님 우리를 세상 끝날까지 사랑하겠다고 그래요. 이사야 46장에 보니까 내가 너를 품을 것이라.
 
*이사야 46:4,
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내가 너희를 창조하였으니 어떻게 안 사랑합니까? 내 자식인데 어떻게 안 사랑합니까? 내가 너희를 품고 다니겠고 안고 다니겠고 또 구원하여 주겠다. 근데 오늘 이 성경부들 가운데 제가 좋아하는 게 너희가 늙어도 그렇게 하겠다고 아 얼마나 고마운지 얼마나 여러분 여러분들 조금만 기다려 봐요. 너희를 나와 누구를 견주겠느냐 누가 나와 같겠느냐? 하나님과 같이 사랑하는 분은 세상에 없고, 유일한 분인데 여러분은 여러분을 이렇게까지 끝까지, 끝 날까지, 세상 끝 날까지, 여러분이 천국에 도착할 때까지, 천국에서 영원히, 영원히 여러분을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를 거룩한 제사장, 왕과 같은 제사장, 복음의 일꾼을 삼아주셨다고, 하 이런 사랑을 입혀서 우리를 하나님을 섬기고 복음의 일꾼을 만들어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올립니다. 그러고 나서 너 자신 사랑해라. 훨씬 쉬워진 거예요.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내가 얼마나 종기하고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가치 있고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존재인지를 알게 되니까 사랑이 쉬워진 것입니다. 아이고 내가 그런 존재가 나는 늘 나에게 불만스럽고, 내가 어쩌고, 아 내가 저거 한 3센치만 더 컸으면 멋질 텐데 맨날 불평불만 했는데 아 이제는 이 모습 이대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내가 너를 사랑하기에 어렵지가 않아요. 야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는 난데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다니, 나 사랑하는 그 사랑이 그 사랑에 감격해서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을 사랑할 수 있는 그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면서 여러분을 인 조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이웃을 사랑하라. 아 전에는 이웃 사랑이 제일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걸 다 알고 나의 존재를 알고 나니까 옆에 사람 보니까 아이고 저 사람도 나하고 똑같네 저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고 저 사람도 신기하고 그 다리 사람들이 그냥 가치가 올라가는 거예요. 사람을 볼 때마다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나 같은 존재를 이렇게 위대한 존재를 만들어줬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처음에 사람같이 생겼으면 사랑하자 사람을 사랑하면 행복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행복합니다. 어디나 가도 있거든요. 내가 사랑할 대상이 어디가든지 있어요. 사람을 안 좋아하고 미워하면 불행이요. 어디 가든지 있거든요. 피할 길이 없어요. 좀 조용하게, 조용하게 있으려고 그랬는데 너무 복잡해서 너무 설악산 속에 들어 거기도 있어요. 글쎄, 여러분들이 사랑하며 살 것인지, 불평하며 미워하며 살 것인지 뻔하지 않아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래서 제가 처음부터 사랑 꽃이 생겼으면 사랑하면 어디나 있으니까 오늘 여러분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그런데 이웃사랑의 첫 번째 우선순위가 가족입니다. 이웃의 나를 빼놓은 첫 번째 대상이 내 가족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누구든지 자기 가족, 자기 친족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하니라.”
 
다 알면서 다 알면서 자기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믿는다고 그래도 믿음을 부인한 사람과 똑같다. 그리고 안 믿는 사람보다 더 악하다. 어, 제가 옛날에 미국에 살다가 이 성경 구절을 보고는 놀라가지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그런데 그다음에 보니까 원수도 사랑하라. 자식 사랑은 쉬워요. 저도 보니까 뭐 그냥 우리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아이 러브 유, 아이 러브 유, 마지막 해질 때도 아이 러브 유, 그러고 해지는데, 부부 간에는 안 그래요? 쉽지가 않아요. 그런데 원수가 돼도 사랑하라.
 
아 우리가 피할 데가 없어요. 도망갈 데가 없어요. 그래 아예 사랑해버려야지. 원수까지 사랑하라는데 그래서 이제 우리가 전체적으로 이제 말할 때 신앙생활이 뭔가 신앙생활은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내가 나를 사랑하고,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하면서 사람으로 꽉 찬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사랑의 교회 여러분들, 여러분이 그 사랑의 사람이 돼서 여러분이 복을 받고 여러분의 후손이 수천 대까지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여러분과 우리가 다 되기를 바랍니다.
 
♣요약
우리가 사랑할 자격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원해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것이라고 진귀한 존재라고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심에 감사하며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온전하게 의지하여 우리가 더 하나님 볼 때마다, 하나님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며 나를 사랑하고,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진실한 사랑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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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7월 9일)
제목: "참된 쉼"
말씀: 마태복음 11:28-30,
찬양인도: 쉐키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권진우 부목사님
사회: 손문수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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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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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기도하는 것은 혹시 우리 가운데 마음이 어두운 분 또 이렇게 어려운 분, 계시다면 진리의 빛이 비춰질 때 환하게 밝아지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제가 ‘참된 쉼’에 관해서 말씀을 드릴 텐데 3년 6개월 동안 고생한 모든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오늘 이 말씀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자, 질문하겠습니다. 나는 참된 힘이 필요 없다. 한번 손 한번 들어보세요. 손들어보세요.
 
오늘 이 시대가 이 삶의 환경 자체가 우리에게 쉼을 주지 못하는 환경이다. 생태계가 그러니까 24시간 동안 sns라든지, 모든 24시간 동안 다 올 킹 하는 거예요. 다 하니까 쉼이 없어요. 데이터 연구 기관에서 뭐라고 얘기하는가 하면 앞으로 향후 3년 동안의 데이터가 지난 30년 동안의 데이터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랬어요. 기가 막힌 거죠. 아니 지난 30년 동안의 빅 데이터는 말로 다 소이 많고 우리 스트레스 받게 하고 막 그러는데 앞으로 3년 동안에 나타날 수많은 데이터들이 지난 30년 보다 더 많다. 이거 얼마나 우리에게 그 침이겠어요 생태계 자체가 우리에게 힘을 주지 못하는 그런 환경이 왔다는 것이죠. 그래서 솔로몬이 얘기한 그 고백이 진짜 고백이에요. 전도서 말씀 전도서 2장 23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전도서 2:23,
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4시간 계속 움직이니까 밤에도 쉬지를 못한다. 더더구나 해외에 있는 사람들 너 한국 처음이지? 그거 온 사람들이 다 깜짝 놀라는 건 대한민국은 밤이 불야성이에요. 밤이 환한 거예요. 그러니까 밤에도 쉬지를 못하는 이 민족이, 저는 그 신학교 3학년 때 목회학이라는 패스트롤 미니스트리라고 목회학을 하는데 이 많은 성도들이 수많은 스트레스와 짐이 많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짐의 강도를 스트레스의 강도를 매기는데 최고로 스트레스가 많을 때가 언젠가? 부모가 돌아가시거나 자식이 먼저 이렇게 주님을 부름 받거나 또 배우자가 이렇게 어려워지거나 먼저 이럴 때가 최고의 스트레스라는 거 5점, 5점 그런데 동일하게 결혼도 스트레스 5점이에요. 좋은 일도 똑같은 취미에요. 자식이 태어나도 스트레스가 4점인가 하고요. 그러니까 그 총량제가 예를 들어서 30점이 넘으면 사람이 나 뒤집어지는 거에요.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 가운데서 이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우리가 참된 쉼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오늘 이 참된 심의 은혜가 말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여러분들에게 다가오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 창조의 질서가 뭐냐 하면 우리 모든 피조물들에게 힘이라는 dna를 넣어놓았어요.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니까 하나님은 사실 심히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그런데도 불구하고, 창세기에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 쉬셨어요. 맞습니까? 쉼이 필요 없는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에게 쉼에 대한 하나의 롤 모델 역할을 해주셨어요. 범죄 하기 전에,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힘이 필요했는데 타락하고, 불순종하고 타락하고 난 다음에 더 큰 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희에게 주시는 특별한 쉼을 이 말씀을 통하여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한 다음에 하나님이 두 가지를 주셨는데 하나님 뭘 주셨는가 할례를 행하라고 그랬어요. 두 제도를, 할례를 행해가지고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다 너희의 정체성이 뭔지를 확고하게 인식시켜줬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줄로 믿습니다. 영적인 할례를 받은 거예요.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안식일 제도를 둬가지고 쉴 수 있도록 만드셨어요. 그런데 이 심이라는 거는 이 심이라는 것은 우리가 예를 들어서 멍 때리기를 하는 것이다. 잠을 충분히 자는 육신이 회복하는 그것만 정도가 포함되는 것이 아니에요. 이 힘에 대한 개념은 어거스틴이 그런 고백을 했죠 뭐라고 고백했냐? 참회록에다가 앞에 서두에
 
*“우리의 마음은 주님 안에서 쉼을 얻을 때까지는 진짜 쉴 수 없습니다.” -어거스틴-
-동의하십니까? 주님 안에서의 쉼이 아니고서는 참된 힘이 없다. 칼이 참 기가 막힌 거죠. 왕궁에서도, 몰디브에 모이또, 모이또에 있는지, 몰디브에 있는지 모르지만 몰디브에 있어도 마음이 쉬지 못하면 영이 쉬지 못하면 주님이 주시는 힘이 아니면 힘이 없는 거에요. 왕궁, 왕궁에 그 최고로 멋있고 이렇게 편안하고 안락한 왕궁에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 왕궁의 암투와 모략과 중상과 오만 거 다 있고 왕비열전, 여인들끼리 힘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 힘은 하나님 안에서만 잠시 쉼을 주신다고 그랬을 때 바울 같은 경우는 바울 같은 경우는 빌립보 감옥에서 태장을 받고 그렇게 고통스러운데도 마음의 쉼이 있으니까 거기서 신라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이라. 나 사는 동안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왕국에서 모시는데 몰디브에서도 모시는데 감옥에서도 심이 있다 이거지.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심을 주셔야 우리가 참 심이 있다는 거 우리가 생각하면서 오늘 이 심에 대한 영안을 열기를 바랍니다. 오늘 마태복음 11장 28절-30절
 
*마태복음 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내 짐은 쉽고 가볍다고 그랬어요. 왜 다른 복음서에는 마가복음이나 누가 복음이나 요한복음에는 이 내용이 없는데 성경에 보면 정말 중요한 거나 복음서도 반복이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마태복음에만 이 내용이 나와 있을까? 마태복음에만 이 쉼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으니까 제가 가만히 분석을 해보니까 누가는 의사 누가, 그다음에 요한, 우리 예수님 제자 요한 그리고 마가 이 마가나 누가나 요한에 비해서 이 마태의 삶의 환경이 참 쉼이 필요한 환경이었어요. 여러분 아시는 대로 마테는 뭐 출신이죠? 세리 출신이죠. 당시 유대인의 세리는 다른 거는 몰라도 돈 버는 거는 보장이 됐었어요. 돈은 좀 벌었는데 나중에 그의 삶에 어떤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있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매국노야. 마태는 왜 매국노야, 거기부터 시작해가지고 그 아픔과 스트레스가 말도 못하는데 마태복음 9장에서 오늘 앞에 9장에서 예수님 만나고 난 다음에 쉽게 말하면 정체성 회복하고 난 다음에 삶이 편하고 난 다음에 마태가 갖고 있던 그 수많은 점들이 벗겨지고 완전히 새로운 참된 안식의 은혜를 받고 나니까 이런 말씀을 예수님의 말씀을 또박또박 기억해가지고 이렇게 오늘 마태가 기록하고 있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마태가 경험한 쉼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마태는 이렇게 되었는데 바로 6시 11장 30절 뒤에 그다음 뭐에? 12장이에요. 30절이 제일 마지막이고 그다음 12장 1절인데 12장에는 말하면 바리새인과 이런 친구들이 나와요. 바리새인과 유대의 지도자들인데 이 친구들은 겉으로 볼 때는 대단히 쉬고 대단한 사람들 같지만요 그 마음에 힘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사람이 마음에 쉼이 없는 사람의 특징은 뭐냐면 남을 비난하는 거예요. 남을 비판하는 거예요. 그렇게 쌓이지 않는 거예요. 제가 최근에 한경직 목사님하고 그다음에 조영규 목사님 설교를 내가 가끔 이렇게 한번 들어보는데요. 참 놀라운 건 뭐냐 하면요 한경직 목사님이나 조용기 목사님은 강단 위에서요. 한 번도 남을 치는 설교를 하지 비판하는 설교를 내가 들어본 적이 없어요.그게 그분의 영적으로 마음의 풍요로움과 뭐가 있어서 그런지 비를 여러분 강단 위에서 막 뭐라 그러고 그런 분들은 저분은 좀 쉼이 없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비난은 안 하더라도 아 나 섭섭해. 며느리 볼 때마다 너무 섭섭해. 그럼 그 시어머니가 쉼이 없는 거예요. 마음에 사회 볼 때 서서면 장모도 마음에 쉼이 없는 거에요. 마음에 쉼이 없으니까. 그런데 마태는 주님이 주시는 힘을 얻어가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내로야.
 
우리가 너무나 잘 하는 말씀, 그래서 오늘 제가 이 본문을 통하여 두 가지 힘을 말씀할 거예요. 두 가지 힘을 몇 가지 힘이 두 가지심을 첫 번째는 뭐냐 어떤 힘이냐 주어진 힘이에요.
 
I. 첫 번째는 주어진 쉼.
 
*마태복음 11:28,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니까 주님이 주시는 힘이에요. 주님으로부터 얻어지는 힘이에요. 조금 더 나아가면 조금 더 하면 내게로 오라. 나아가기만 하면 얻는 쉼이에요. 나아가기만 하면 순전하게 마음을 순전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특별히 어떤 사람은, 무거운 짐을 진 자로서 나아가기만 하면 주님이 주시는 이 오늘 이 주님이 주시는 쉼이 여러분들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오기만 하면 주시는 쉼이에요. 이 안아주신 본당에 오늘 앞에 예배들 1부 드리면서 수많은 분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오는데, 우리가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배를 드리지만 그러나 또 우리에게 주시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깜짝 놀랄 만한 보이지 않는 숨겨진 비밀이 뭐냐? 여러분들 이 예배 나오기만 해도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쉼을 주시는 것이에요. 이거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특별한 힘인 줄로 확신합니다. 이 희한한 힘을 줄을 주시는 거예요. 나오기만 하면, 그런데 나오기 만해도 시모지 그게 될까? 여러분 앞에 11장 25절에 보면요,
 
*마태복음 11:25,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배를 드리지만 이렇게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의 마음속에 쉼을 주실 것이다. 이걸 우리가 정말 순전하게 믿고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쉼을 주시는 것이에요. 다시 어떤 사람에게 쉼을 주신다고요? 수고하고 짐진자들이 이 수고란 말은 헬라어로 ‘코피온테스’ 라고 그러는데 이 수고하다는 말에는 노동으로 쇠약해지고 지쳐있다. 지쳐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도 마찬가지예요. 특별히 이 당시의 율법의 전통적인 굴레에서 큰 짐을 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 나오기만 하면 쉼을 주실 것이다. 본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창조되었을 때에, 아담이 일을 할 때 그 일을 아담이 부담으로 하거나 억지로 하거나 고통스럽게 하거나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아담의 기쁨으로 일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즐거워했어요. 그래서 동물들의 이름을 짓고 할 때 아담이 기뻤어요.
 
근데 불순종하고 범죄가 들어오고 난 다음에는 그 기쁨과 감사와 은혜가 고통과 가시와 짐과 그다음에 쉼이 없는 그런 힘든 상태가 된 거죠. 그러니 오늘 우리 여러분 마음속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했을 때 이 말씀 그대로 믿고 주님 앞에 나올 때에 불순종을 통하여 파괴된 하나님과 나와의 질서가 회복돼가지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우리가 가정의 주부로서 또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또 비즈니스 직장 모든 우리의 삶의 모든 현장에서 고통과 가시와 짐과 슬픔의 내용들이 어떻게 바뀌느냐, 기쁨과 감사와 사명과 축복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똑같이 일을 해도 옛날에 일하던 거고 짐 일하던 거 하고는 달라요. 옛날에 일할 때는 억지로 다시 와 고통과 짐과 무거운 것인데 이게 우리가 참된 힘을 주로 받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면 감사와 기쁨과 이걸 하니까 이게 일을 해도 마음이 쉬는 것이에요. 오늘 이 참된 쉼을 여러분들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다시 불순종 때문에 생긴 고통과 가시와 짐을 다 벗겨주시고, 이 시간 사명과 기쁨과 지혜와 아이디어로 참된 심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쉼, 어떤 쉼이라고요? 주어진 쉼, 또 어떻게 해요? 나오기만 해도 주시는 쉼, 그래서 나중에 요한이 너무 큰 은혜를 받아가지고 요한 계시록 이전 성경 제일 마지막 22장 17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냐 하면 다 같이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2:17,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오 목마른 자도 올 것 이오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아멘. 우리가 정말 주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주님이 주시는 참된 힘을 허락하여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혈류 증 여인을 생각해 보았어요. 여러분 혈루 증을 앓은 여인은 참 비참했어요. 열두 해를 앓으면서 수많은 가산을 탕진하고 거기 보면 수많은 의사들에게 고난을 당하고 의사들 계시면 용서하시고, 탕진하고 너무 살 길이 없어요. 근데 오늘 예수님이 지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야 내가 이 뭔가 좀 그 여인이 한 일이라고는 무슨 예수님 앞에 가서 무슨 큰 소리를 했다든지 아니면 뭐 예수님께 무슨 자신의 삶을 헌신을 희생해 드렸다든지 그런 건 전혀 없어요. 그냥 군중을 뚫고 나와 가지고 그냥 예수님께 나가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에 기적과 같은 치유와 변화와 쉼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것이에요. 그게 망해가는 상황이에요. 오늘 우리 마음속에 그래요 하나님 아버지 여기에 나오기만 해도 주시는 은혜가 있는 줄로 확신합니다. 순산하게 이걸 다시 앞에 25절에 이걸 슬기롭고 지혜롭다는 것을 똑똑한 사람들에게 숨기시고, 혈루 증처럼 수고와 짐을 무거운 짐을 지고 주님께 나오기만 해도 주님이시면 축복 그래서 그 당시에 헬로 증인뿐만 아니라 나병환자들, 귀신 들린 자들, 자식을 잃고 고통 하는 자들, 수많은 힘든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오기만 해도 주시는 쉼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나오길 원했다. 주님께 주님께서 나에게로 다 오라 하시는 것은 어떤 뜻인가 하면 이 짐을 나에게 다 맡기라. 그 뜻이에요. 니 혼자서 짐 지고 간다고 헤매지 말고 나한테 이 짐을 다 맡겨라. 지금 이제 여름에 여행하는 분들 많이 계실 텐데, 그 공항에 가가지고 여러분들이 도착했을 때 짐을 찾잖아요. 베이스 클레어밍 가가지고 짐을 찾는데 수화물을 찾는데 가족들과 어린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같이 서서 짐을 찾는데 다섯 살쯤 되는 어린아이가 아버지가 한 20~30kg 되는 큰 짐 백이 있는데 그걸 보니까 우리 거네. 그러면서 그 집을 다섯 살짜리 아이가 그걸 지가 다 찾아가고 하겠다고 했잖아요. 컨베어 벨트가 올라가가지고 난리 치면 걔는 죽는 거예요. 다섯 살짜리 10kg 밖에 안 되는 애는 그걸 감당할 능력이 없는 거예요.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의 삶의 컨베어 벨트에 큰 짐들이 놓여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내 힘으로 근데 내 우리 같이 연약한 어린아이 같은 우리가 그걸 감당하려고 그러면 우리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대신 짐을 컨트롤해 주시면 해결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내게로 오라 하는 것은 짐을 나에게 맡기라 그 뜻인 줄 믿습니다. 알겠죠? 이제 또 하나 29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 하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마태복음 11:29,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주님이 우리에게 선명하게 선포하시는 거예요. 첫 번째 쉼은 주어진 쉼, 두 번째 쉼은 뭐냐 하면요 획득된 힘, 배우는 힘 멍에를 메고 얻는 힘 많은 분들이 첫 번째 내게로 와 주님께로 가가지고 주님이 주시는 주어진 신만으로 끝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걸로 끝나니까 그 주어진 쉼이 오래가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이 주어진 쉼을 가진 사람이 은혜를 받아가지고 멍에를 메고
 
II. 두 번째는 배우는 쉼.
배우는 쉼, 배우는 쉼, 획득된 쉼, 주님 안에서 우리가 성숙해가지고 얻어지는 쉼, 그걸 얻게 되면 주님이 주시는 그 쉼을 더 오래 가게하고 더 성숙하게 하고 더 깊이 있게 하고 그 쉼을 통한 생수의 강이 체험되게 하시고 그다음 맑은 샘의 물이 터뜨려지게 하시고 그걸 통하여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주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멍에를 메워주시고 멍에를 통하여 배우는 쉼이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대답 소리가 좀 작아요 네 멍에를 주님의 멍에를 갖고 배우는 쉼이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이 멍에는 코뚜레가 아니에요. 당시에 이스라엘의 밭을 좀 큰 바트를 가려면 소 두 마리가 힘 있게 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 소 두 마리 어깨나 목에다가 이 나무 멍에를 연결시켜놨어요. 그래가지고 이렇게 갈 수 있도록 그리고 이 멍에는 뭐냐 하면 주인이 좌할 때는 좌하게 하시고 주인이 우할 때는 우하게 하시고 주인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가기 위하여 멍에를 소에게 씌워놓은 거예요. 멍에가 제가 그림을 그려가지고 이해를 시켜드리면 좋겠지만 설명을 해도 대체적으로 여러분들 이게 감각이 있으시죠? 소 두 마리 어깨나 목에다가 이 나무를 연결시켜가지고 소 두 마리가 제대로 밭으로 갈 수 있도록 아니 주인의 뜻에 좌우하라는 대로 주인이 가자고 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그렇게 멍에를 매게 하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망해를 통하여 배운다는 것이에요.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에게 멍에를 주세요.
 
이 멍에는 좋은 의미에서 사명이 될 수도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어떤 비전이 될 수도 있고 그다음에 또 이걸 이 멍에는 내가 주님의 멍에를 더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배우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예를 들어서 작년에 9월 26일 날 9.26 한국 교회 섬기는 날을 했습니다. 사랑의 교회 한 교회가 그 당시에 5,596명의 우리 사역자들을 섬기는 거 그거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거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사명이요 어떻게 보면 좋은 의미에서 멍에에요.
 
그런데 그걸 우리가 먹여야지만 잘 감당하게 되니까 우리가 스테이도 하고 또 지방에서 오신 분들 다 집에 가정에 모시기도 하시고 우리가 정말 최선을 다해 섬기기도 하고 이렇게 다 했더니 나중에 사랑의 교회 지난 9월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은혜의 여진이 남아 있는 줄로 믿습니다. 진짜 깊은 어떤 수준의 쉼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이에요. 원래는 9.26이 12월 23일로 될 터인데 그 9월 그 근처는 추석이 있어가지고 12월 23일로 해가지고 한국 교회 한 7천여 명의 우리 목회자들을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미션과 거룩한 멍에를 주셨어요. 그래서 그때 주님이 이리 가라 이리 가고 저리 감 쳐라 이렇게 잘 할 때에 하나님이 한국 교회를 축복해 주시리라고 믿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멍에의 특징이 뭐냐 하면 멍에의 특징이 뭐냐 30절에 보니까,
 
*마태복음 11:30,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오늘 주님이 주신 이 명예와 짐이 여러분들에게는 주님의 은혜를 통하여 가벼워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겉으로 볼 때는 무거워 보이지만 사실은 이게 있어야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 함이 생기는 것이에요. 독수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데 처음에 날개를 퍼덕거리는데 그 어린 독수리가 날개가 어마어마하게 큰 멍에에요. 큰 짐이에요. 그런데 만약에 독수리가 그 날개가 없다면 어떻게 하늘을 찬국을 나눌 수가 있겠어요? 큰 생선 고기, 바다에 들어가는데 고기에 지느러미가 있는데 지느러미가 무겁다고 그래가 지느러미를 잘라버리면 그 고기는 죽는 것이에요. 독수리가 날개가 무겁다고 그래가지고 잘라버리면 하늘을 날지 못하는 것이에요. 멍에는 마치 독수리의 날개와 같고 고기의 지느러미와 똑같은 것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를 우선 쉽게 말하면 결혼이라는 것은 동성끼리 하는 겁니까? 남녀 간에 결혼하는 것입니까? 결혼은 동성이 아니라 남녀 간에 이것이 하나님의 멍이에요. 하나님의 법이에요. 지난주에 결혼 50주년을 맞이하는 목사님, 사모님 내외분을 내가 뵙고 대화를 할 때 참 축복이 됐어요. 50년 동안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그게 제 전달이 되어가고 저도 참 기쁨이 되었었어요. 근데 동성의 50주년 축하한다. 이게 있을 수 있습니까? 먹이를 넘긴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명예의 이 어떤 영역에 그게 물질이든 그게 이성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걸 테두리를 벗어나면 그때부터 재앙이 시작되는 것이야. 그때부터 잠시 사라져버리는 것이 모든 힘은커녕 인생의 재앙과 짐과 고통과 가시가 우리를 억누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시는 명예의 그 영역 안에서 우리가 배울 때에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그래서 우리가 첫 번째 힘은 주어지는 쉼, 주님을 통해 나아가기만 해도 얻는 쉼, 두 번째 쉼은 획득된 심, 멍에를 통하여 배우는 쉼, 그랬을 때 우리에게 주시는 결과가 뭐냐 주님의 온유와 주님의 겸손을 배우게 되는 나는 온유하고 겸손을 배우라는 것이에요. 나와 있죠? 나는 마음에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여러분 삶이 온유하고 겸손하게 되면요. 마음에 쉼이 있어요. 열 안 받아요. 마음이 온유하다는 말이 뭔가?
 
*‘온유’라는 말은 예수님의 주권 앞에 전적으로 의탁하는 자세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게 온유한 거예요. 아까 말한 대로 하나님께 컨베어벨트에 있는 짐을 다 부모에게 맡기듯이 전적으로 다 시원하게 하나도 주님께 다 맡기고 힘들 때마다 주님이 다 하시어 그게 온유한 것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는 겸손인데 겸손은 뭐냐?
*겸손은 자기 자아를 주장하지 않는 자세에요. 자아를 주장하는 자세 그러니까 자기 자아에 대한 자의식이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남이 나를 어떻게 대우하든 나는 이 겸손이 있는 사람은 남이 나를 어떻게 대우하든 열을 받지 않는 것이에요. 근데 자기의 자아가 펄펄 살아 움직이는 사람은 자기의 자아를 주장하는 사람은 수많은 주의 환경 때문에 막 그 힘이 없어요. 고통이에요. 세상에 쉼이 없는 이유가 누군가가 여러분 대우 안 해주면 마음이 열 받잖아요. 여러분 인정 안 해주고 여러분 무시하고 함부로 하면 스트레스 받는 거 아니에요? 누가 나를 인정 안 해준다. 그래갖고 열 받을 때, 그거는 여러분들이 진짜 겸손의 의미가 좀 확보가 안 된 것입니다. 내가 아는 어떤 분들이 후배들의 모임에 갔어요. 후배들을 갔는데 후배들이 이분을 좀 대우를 안 한 것 같아요. 그래 열 받아가지고 씩씩거리시면서 이놈의 자식들 말이야 선배들 대접도 안 하고 막들이 열 받으셨어요. 제가 듣고 난 다음에 그런 데를 왜 갑니까? 스트레스 받을 일을 하면 안 되는데, 그런 데를 왜 가느냐고, 며느리가 나를 무시한다. 사위가 나를 무시한다.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한다. 여러분 그거 다 마음에 쉼이 없어서 그래요. 겸손은, 겸손은 뭡니까? 자기 자아를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이게 쉼이 있어야 가능한 거죠. 그래 수고와 무거운 짐들이 온유와 겸손으로 바뀌게 되는 축복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게 은혜의 선순환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에요. 은혜에 살 사람이에요. 아마 지상에서 마음의 쉼이 제일 없었던 사람 중에 하나가 모세일 거예요. 그러니까 모세가 얼마나 괴로운지, 날마다 그냥 백성들이 대모하고 막, 그러니까 모세가 열 받아서 날려났는데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33장 보면요. 그날도 출애굽기 33장 14절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같이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3:14,
1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이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처가 뭐냐 좀 쉬어라. 아니 내가 너에게 진정한 쉼을 주겠다. 그러니까 모세는 한때 사람도 때려죽이고, 열도 받고 하는 그런 성격이었는데, 모세가 참된 쉼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쉼을 갖게 되니까 그다음에 정말 멋진 말씀 민수기 12장 3절에 다 같이 읽어요.
 
*민수기 12:3,
3 이 사람 오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할렐루야 그래가고 이겨낸 거예요. 이 사람 모세가 아니라, 오늘 이 예배 참석하신 여러분들 한 분 한 분은 여러분의 온유함이 지면에 모든 사람보다 더 성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이게 참된 쉼이 있으면 이게 가능한 것이에요. 올리심을 통하여 여러분 워라벨이라는 말 들어봤죠? 워라벨, 워라벨이 뭐예요?
 
*Work –and-Life Balance. 워라벨이 아니라, Worship-and-Life Balance.워라벨이 되어야,
일하는 것과 쉬는 게 이게 이게 서로 균형이죠 그런데 우리는 워라벨이 아니라는 워십 앤드 라이프 밸런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진정한 쉼을 얻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해석이 좀 있지만 하여튼 하나님께서 21세기에 오늘 마태, 21세기에 모세처럼, 하나님께서 겸손과 온유로 무장된 참 쉼이 있는 이번 여름 기간되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전에 우리가 청년 시절에 성경 구절을 가지고 그대로 찬송과 가사로 만든 소위 그걸 보고 가스폴 송, 혹은 스크립쳐 송 이런 말을 많이 했어요. 성경 구절을 그대로 찬송했는데 아주 쉬워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 로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런 가사가 있는데 같이 우리 잘 몰라도 악보 읽고 가사가 있으니까 같이 한번 하시겠어요. 하시는 동안에 야 내가 좀 쉬어야지 너 나 좀 쉬어야 합니다. 이것만 생각하면 안 되고 내 자식도 좀 쉬어야지. 내 부모님도 좀 쉬셔야지, 우리 공동체도 좀 쉬어야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 고생만 쉬어야지, 우리나라 우리 한국 사람들은 쉬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전부 다 화가 나가 있어요. 다 열 받아 있고 그냥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있고 근데 이걸 여러분 참된 쉼을 통하여 온유와 겸손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 때문에 우리 주위가 하나님 주시는 참된 쉼으로 풍성해지기를 축원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이 가사 그대로 한번 해보세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습니다.
 
요약,
만성의 피로에 사는 우리에게 참 된 쉼을 주님이 주실 줄을 믿고, 복음의 능력을 통한 진정한 쉼을 얻어서 주님께만 나가면 주어진 참 쉼을 얻음을 깨달아서 멍에를 메고 배우는 쉼의 대상자가 되어 우리의 짐인 무거운 짐들이 온유와 겸손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친 자들이 그 쉼으로 다 치유 받아서 영혼의 회복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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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7월 2일)
제목: "역사적 신앙관"
말씀: 에베소서 1:3~6
대표기도: 유종성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설교자: 박영선 목사님-초빙(노포교회 원로)
ㅡㅡㅡㅡㅡ
 
*에베소서 1:3~6,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
 
▶이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6절은 하나님의 계획, 의지, 목적 같은 것을 어 증언하고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 목적이라는 것의 중요성은 우리들이 다 같이 경험한 것 같이 예수를 믿으면 중생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복을 받고, 천국에 가는 것으로 가장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본문은 그런 우리가 아는 확인보다 더 큰 의미를 그 문장이 갖고 있다. 이 문장은 이 목적이 하나님의 의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보상을 받느냐? 어떻게 해야 되느냐? 라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 우리가 기독교인이라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에서 자부심과 확신을 갖고 있지만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시면 모든 종교란 신이 있어야 되고, 그 신의 정체성이 설명되어야 한다. 그래야 신자들이 그 의도와 방법을 이해하고 쫓아갈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서 종교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되느냐 하면 내가 진심을 가지고 간절히 빌면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식으로 보통 종교가 성립된다. 그래서 무속 신앙이라는 것은 신에 대한 설명이 없고, 신 자체가 없고, 그 갈급한 인간과 인생에서의 비는, 그 고함지르는 것들이 중요한 내용이 된다.
 
그러나 기록 기독교는 하나님의 창조주요, 부활의 주인이시며 심판자라고 얘기하는 것이 순서를 가지며 시간과 과정을 가진다. 그러니까 우리가 쉽게 기독교 신앙을 확인할 때 당신은 구원의 확신이 있어? 그럼 난 구원의 확신이 있어.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주를 만났어. 그리고 여기에 다음 질문은 모든 걸 건너뛰어서 오늘 죽어도 천국 갈 걸 믿어. 이렇게 끝장으로 가서 그 간격이 없어졌다. 예수를 믿는 게 본인에게 확실하고 죽으면 천국 가는 게 확실한데. 오늘은 그 지갑 되는 거다. 믿고 감격했으면 데려가야 되는데 현실에 다 내버려둬서 믿지 않는 자들과 비교할 때. 아무런 혜택이 없고 미 싸운 일을 아무리 외워도 곤란하고 지랄 같은 현실을 아무도 면할 수 없다. 그러니까 하나님 도대체 어떻게 하시자는 건가? 라고 다시 돌아와서 왜 성경이 구약이 있는지, 신약이 있는지 우리가 왜 예수를 믿고 나서도 현실에 갇혀 있어야 되는지, 예수를 믿으면 우리 보통 승리주의라고 표현하는 것 같이 우리가 자리를 지위와 권세를 가지고 세상에 의를 베풀고 복을 베풀고 하는 자리에 있을 것 같은 기대를 한 번도 경험할 수 없이, 하나님 스스로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권력으로, 폭력으로 증언하시지 않고 우리를 통해서 일하신다고 해놓고 우리에게 특권을 주시지 않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말하자면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실존적 신앙관에 역사적 신앙관을 보태야 된다. 실존적 신앙이라는 것은 이것은 규칙도 아니고, 주문도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신 것이고, 내가 하나님을 만난 것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나를 아는 것 이것이 실천적 신앙이다. 난 예수가 누군지 알아. 나는 예수를 믿어. 예수님도 나를 알아 내 이름이 생명책에 있어. 이건 다 실존적 신앙입니다. 교훈이 아니며 어떤 구호가 아니며, 내가 알고, 내가 붙잡힌 어떤, 어떤 운명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여러분 꼭 기억하셔야 될 것이 구원론적인 신앙 고백이다. 구원론 적이라는 것은 예수를 모르다가 예수를 알게 되어 구원받은 소위 말하는 중생 그리고 천국이라는 소망 속에 있는 것이 다 구원론이고 하나님은 구원론을 벗어나 있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해서 잘 외우시는 요한복음 3장 16장 같이,
 
*요한복음 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조를 우리는 언제나 자신에게 적용한다. 그러면 안 믿는 것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이 예의를 다해서 안 믿는 님 들은 어떻게 되나요? 놈이 되나? 남이 되나? 우리의 신앙을 확인할 때마다 여러분이 쓰시는 방법은 나는 믿었고, 너는 안 믿었어. 라는 이분법이란 말이다. 근데 성경은 훨씬 크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범위를 창조 세계 전체를 끌어안고 계시단 말이다. 믿었느냐 안 믿었냐는 중요한 구별이지만, 하나님은 여기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쪽에도 하나님이시더라 말이다. 우리가 아직 믿었는데도 천국을 못 갔듯이 이들도 안 믿었는데 아직 지옥에 안 가고 살아남아 있고 둘이 합작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되는 인생을, 역사를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나는 믿어 난 천국 갈 거야’ 라고 얘기하는 것으로는 일상을 살 수가 없다. 안 믿는 사람들하고 살아야 되고, 믿음으로 분명치 않은 형편을 현실을 살아야 되고, 가서 직장생활을 해야 되고, 동료가 있고, 상관과 부하가 있고,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고 그리고 그 나라의 형편이 있고 사회의 정신이 있고, 하나님 속에서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고백에 단순한 분명함같이 인도하시지 않고 이렇게 알 수 없는 자리에 우리를 두시는가? 하는 것이 우리에게 현실적인 질문이 돼야 된다. 이 모든 질문들을 이 이분법으로 나누어서 나는 믿었어. 착하게 살면 돼. 착하다는 거는 답이 없어서 만든 말이다. 착하다는 말에 반대는 뭔가요? 악하게 사는 거 아니요, 우린 악하게 살지 않는데, 착하게 살아도 아무 보상이 없다. 착하게 산다는 걸로는 예수님이 오셔야 될 필요는 없다. 착하게 사는 것은 맹자와 공자면 된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일을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방법을 썼는가? 이건 훨씬 큰 문제다. 하는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착하다는 건 우리가 아는 도덕법이다. 윤리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 정도가 아니라는 거죠. 잘 아시는 욥기는 구약 성경에서 바로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욥기 1장에서 그는 의인이다. 라고 소개된다. 그래서 나중에 그가 고난을 받고 어려움에 처하자 친구들이 와서 너 회개해라. 하는 것은 말이 안 맞는 거래이다. 왜냐하면 설정이 욥은 의인이다. 그런데 고난을 당한다. 재산도 뺏기고 자식도 다 죽고 자기까지 병에 붙잡혀 있는데 그는 의인이라 한다. 친구들은 와서 그들이 아는 신앙은 잘하면 복 받고 잘못하면 벌 받는다. 라는 잣대밖에 없으니까 빨리 회개해라 그러니까 여기, 난 회개할 거 없다. 여러분한테 뭐라 그러겠어요? 우리도 다 하는 거야 너 교만해 니가 잘못한 적이 한 번도 없단 말이야? 라는 식의 판정밖에 내릴 수 없듯이, 친구들도 그랬다. 야, 너 말 그따구로 하는 것만 봐도 니가 잘못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잘못했단 말이냐? 이렇게 됐죠? 그러니까 욕이 그게 내가 환장하겠는 거다. 내가 잘못하지 않는데 왜 이 꼴이냐 니들하곤 얘기가 안 되는데 하나님께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는 거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뭘 하냐 하면 창조 세계를 보이신다. 또 악어를 봐라 또 우박 창고를 봤냐 이거 누가 만들었느냐 왜 만들었느냐 이게 무슨 뜻이야? 이 있는 것들이 자기에게 조건이 있고 원인이 있어서 그 결과물이냐 아무 조건도 없는데 내가 만들었다 창조주시잖아요? 하나님이 욥에게 하는 대답은 이건가요? 욥의 질문은 “하나님 난 억울합니다.” “넌 뭐가 억울하냐?” 하나님, 왜 일을 이 땅으로 하세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너는 잘못한 것이 없으니까 당당하다 이거지 그렇죠? 난 잘못한 게 없잖아요? 야 그럼 애들은 잘해서 생겨났냐? 이건 하나님의 기쁘신 뜻, 하나님의 권능의 결과물들이다. 너희는 이런 세상의 창조물들과 훨씬 다른 내 상속자야. 내 후손이야. 내가 너를 잘잘못에 따라서 보상하는 정도에 불과하단 말이야?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데 너 잘못만 안 하면 돼. 매일 집 안에서 나오지 마, 그러는 부모 봤어 너 해봐, 해봐 자식이 뭐라 그래요. 저 공부 안 하고 나가서 장사할게요. 공부는 해서 뭐해요. 나 공부하기 싫어요.
 
그러면 부모가 뭐라 그래요? 내가 언제 너보고 돈 벌어 오라 그랬어. 이 새끼야! 이 니가 커야지 뭐 훌륭해줘야 될 거 아니야! 자식이 부모만 못하다. 라고 얘기하면 평생 원수가 되는 거다. 누구가 미우면 그러세요. 왜 본인은 훌륭하신데, 자식은 그 말 못하세요 그러면 그날로 이제 안 보는 것이다. 자식을 칭찬하면 아이 부모님도 훌륭하지만, 어우! 그 아드님은 바르세요. 그러면 그날부터 만날 때마다 뭐 먹고 싶으냐고 물어보고 한다. 성경이 그러는 거예요. 야곱이 그 하나님과 씨름을 했을 때, 하나님이 야곱이 고집을 꺾지 않자, 환도 뼈를 꺾는다. 집어 간다. 못 간다. 축복해 주셔야 됩니다. 왜 축복을 해달라 했느냐 하면 하나님이 이렇게 물어본 거예요. “그 축복하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습니다.” 그러니까 네 이름이 뭐냐? 그렇지 너는 야곱이지. ‘야곱입니다.“ 야곱은 발뒤꿈치를 잡은 자고, 약탈자라는 뜻이다.
 
히브리의 표현으로는 날강도다. 날강도, 날강도란 강도짓이 도덕적으로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라 저는 제 필요를 누구에게서 뺏어 와야 되는 자다. 제 필요를 채워줄 자가 없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너 다시는 그 이름을 쓰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는 이스라엘이다.” “너는 하나님과 싸워서 이긴 자이다.” 인간이 무슨 하나님과 싸워서 얻을 게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이거예요. 너는 남의 것을 뺏어 와야 되는 보호자가 없는 넌 고아가 아니야. 넌 강도짓을 할 필요 없어. 내가 네 부모야. 자식이기는 부모봤어? 이게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희가 나를 위해 존재하라 그러지 않고, 너희를 위해서 내가 존재한다는 걸 알아라. 라고 얘기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 고백인데 예수가 오신 이후고 결과물인데 그걸 역사로 보인다. 야곱에게서도 그 유명한 창세기 28장 벧엘 사건이 그렇지 않은가? 돌베개하고 자고 있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에게 축복하신다. “너 누운 땅 동서남북을 다 너와 내 자손에게 줄 것이다.” 그래서 그 약속을 주시면서 그때 “니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함께하고 너를 이리로 데려올 때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그게 20년이 걸린다. 근데 가서 개고생하고 말이 자꾸 험해지는 이유가 뭐야 분위기에 자신이 생겼나 보죠. 다 우리 편 내 자식이라는 느낌이 들어와서 그렇다. 20십 년을 왜 놔두는가? 거기서 악착 같이 번 것을 여기 와서 다 잃어버리잖아요? 형한테 다 내주고 혈혈단신으로 남았다고요. 그런데 하나님이 거의 다 되고 너는 이스라엘이다. 그럼 그 나라 이름이 돼요. 이 역사들이 왜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 가신대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은 경우예요. 경황, 도전, 시험, 경력 이라는 속에서 우리를 만들어 간대요. 왜 왜 결론을 꼭 짚지 않고 이런 과정을 나보고 그래요. 나보고 그래요. 철이 들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에 걸 맞는 자가 되래요.
 
오늘 본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바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래서 찬송을 하게 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영배하고 무릎 꿇는 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그가 사랑하시는 이 자녀들의 광으로 같이 화음을 이루겠다. 그런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는 목숨도 건다. 그게 십자가이다. 그걸 만들려면 뭘 해야 되냐면 시간과 경호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사랑과 믿음을 나눈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두 단어이다. 사랑과 믿음, 이 두 단어는 상대가 없으면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사랑도 상대화해야 되고, 믿음도 상대화해야 되는데 우리는 계속 하나님 앞에 죽으라면 죽겠어요. 뒹굴라면 뒹굴겠어요. 지 까짓 게요 뭐. 이렇게 자신의 신앙을 윤리 도덕적으로 금욕적이고 자기 비하로서 증명할 줄만 알았지. 커바 커바 아버지가 너한테 뭘 원하는지 따라와 봐라. 는 데는 못 가고 있어요. 겁을 내요. 겁을 낸다고요. 사랑이란 믿음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걸 몰라요. 그러니까 그런 사랑과 믿음이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건 무슨 말이냐 하면 한쪽이 다른 쪽에 조작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각각 자발성을 가져야 된다. 각각이 그래야 사랑이 믿음이 성립이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저 아담에서부터 이제까지 전 역사에 걸쳐서 이 자발성을 기른다. 철이 들게 하며, 하나님이 누군가를 뼛속 깊이 그리고 자신의 이해와 인생이라는 경험 속에서 이 자리에 오게 만든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 제일 많이 하시는 게, 한국교회에서 제일 많이 하는 게 회개(悔改)이다. 회개의 약점은 뭐냐 하면 잘못한 것을 지우고 있지 더 나아가는 데가 없다. 윤리와 도덕과 양심은 결코 훌륭한 대로 가는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잘못한 것을 꾸짖을 뿐이다. 기독교가 착하게 살면이 아니라, 커야 되는 문제라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교회에 올 때는 보통 뇌를 안 갖고 오더라고요. 그래서 뭐 얘기가 되는 얘기를 하면 어쩔 줄을 몰라요. 그러시면 안 돼요. 다음엔 꼭 갖고 오세요. 냉장고에 넣어놓고 온대요. 이제 상할까 봐 그러니까 생각해 보세요. 자식을 길러보면 다섯 살 때까지가 제일 예뻐요. 그다음부터는 완전히 원수예요. 그런데 자식에게 이 병이 생기면 큰일이에요. 이게 뭐냐면 안 크는 거 애가 안 크면 큰일이에요. 그죠? 애가 다섯 살로 영원무궁이 산다. 그렇게 끔찍한 것도 없어요. 밤낮 도리도리 작곡만 하고 그럼 큰일이라고요 이가 커야 돼요. 크는 증거가 뭐죠? 키가 크죠. 체중이 늘죠. 그리고 말을 안 듣는다. 이건 잘못이 아니에요. 이건 크는 거다. 싫어가 나온다. 싫어, 난 이러고 싶어. 반발이 나온다. 우리는 이게 절정에 이 절정에 다 달았을 때를 사춘기라고 한다. 사춘기는 자기 주권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납득을 해야 하겠어 난 이해가 안돼. 난 이렇게 해보고 싶어. 이걸 다 허락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게 없으면 안 된다. 왜? 부모님이 그렇게 이렇게 하라. 그랬는가? 왜 부모님이 공부는 꼭 해야 된다. 그랬는가? 여러분 다락방 방장(순장) 정할 때도 학력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공부는 맞선 볼 때도 나오고, 성가대 대원들도 아마 학력은 봤을 걸로 생각이 든다. 학력은 학력에 등급이 있는 게 아니라 훌륭해지는 인류가 발명한 최후의 방법이다. 공부는 지름길이 없다 노력해야 된다. 하고 또 해야 된다. 포기하면 안 된다. 이런 것들을 공부해서 배우는 것이고, 인생 자체에서 배우면 여러분들이 이런 것들로 인해서 이제 가치 있는 것과 가치 없는 것을 분별할 수 있게 되고,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고, 선택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런 일들이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가는 그 아들을 보내서 출발시켜서 만들어가고 싶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 에베소서 4장 30절식으로 얘기하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의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라라.” 라는 성경이 말하는 성숙과 신앙의 어떤 지점인 것이다. 왜 그러면 이걸 좋은 말로 하시고, 좋은 분위기에서 하시지 않고, 이렇게 못살게 구시는가? 거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는데 성육신에서 그게 나타난다. 성육신이란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이 우리를 구하러 인간이 되신 것이다. 그 예수님께서 마지막 밤에 요한복음 17장을 유언같이 기도문으로 남기는데 거기 이런 약속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어.” 여기서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이다. “우리 안에 있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알게 하시리라.” 아버지가 그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그의 가족으로 부르신다. 이게 기독교이다. 로마서 8장에서도 “우리는 다시 두려워하는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느니라.”
 
이런 성경의 얘기들이 이렇게 복종하는 신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만드는 싸움이고 자녀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를 분별과 판단에 절정에 올라와 하나님과 사랑과 믿음의 연합을 할 수 있게 우리를 만드시는 일을 역사 내내, 모든 인생 내내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보내신 것, “아버지께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내가 너희에게 교훈한 것을 가르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모든 것을 배워 지키게 하라.” 라는 명령을 준다. 땅 끝까지, 땅 끝까지는 선교적 표현에서는 이방 나라들을 의미하지만 우리가 땅 끝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스라엘에서 우리만큼 온 나라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땅 끝이고 여러분이 거기 태어나셔서 기독교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한 과거 유교와 불교의 유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자 우리로 하여금 내가 있는 거기가 내가 너를 보낸 자리다. 라고 얘기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가지셨던 별명,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예수가 우리에게 오신 것은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세상을 구원하러 오시는데 그 메시아가 인류 속에 들어오시므로 인류는 구원의 대상이 되었고, 그 복이 되었다. 를 나에게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나를 보낸 것 같이 내가 너희를 보내고 너희가 땅 끝까지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 제자가 되게 하라 볼 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니라.” 에 있는 것이다. 거기가 여러분들이 매일 일을 가는 그지 같은 현실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도 예수님이 볼 때 우리가 거지같은 현실이었을 것이다. 안 그런가? 죄인들 속에 오는데. 하고 아 모욕하고 드디어 죽인다. 거기에 예수님이 오시는 방식으로 우리가 보냄을 받고 있고, 우리는 그 부활을 본 자이고, 요한복음 14장식으로 얘기해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든지 내가 이루리라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일도 하리라.” 에 들어 있다.
 
예수님은 자기의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기적을 도입하여 책임을 면하지 않는다. 죽는 길을 가신다. 죽는다는 걸, 여러분 최악의 진심, 최악이라 그러면 안 되고, 극단의 진심이라고 보시지 말고, 그 영광과 진리를 이해받지 못하는 데까지 가야 된다. 그들이 다 믿어야만 여러분의 사명이 완성되는 게 아니라 모르는 자리에도 가라. 끝까지 몰라도 된다. 그러나 너는 내 책임을 해라. 이렇게 보냄을 받는 것이다. 로마서 12장식으로 얘기를 하면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저주하지 마라. 저주하지 말고 도리어 축복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라.” 이게 세상을 살아야 되는 신자들에게 준 명령이다. 악에게 지지 말고 손으로 악을 이기라는 우리가 윤리 도덕적 정성에 묻혀 있던 신앙의 수준에서는 악을 감동시키는 선, 상상하곤 했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다. 악당이 악당 노릇하는 것 같이 너는 네 자리 지켜라. 지지 말아라. 그를 이겨야 된다. 가 아니라, 니가 흔들리지 마라. 이런 얘기이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형통하게 살기는 글러 먹은 것이다. 하나님이 아직도 구원의 문을 열고 있다 누구에게나 손을 내밀고 있다. 라는 걸 알고 살아야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복음적이고 선교 적이라는 것은 말투나 어떤 표현하는 단어들이 있는 게 아니라, 인간성에 있어야 된다. 세상이 만든 인간과 하나님이 만든 인간은 뭐가 다른가? 하나님이 만든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용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기다려 줄 수 있다. 정죄하지 않는다. 보복하지 않는다. 여러분을 아주 완연하게 다르게 만든다. 그러나 얼른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 누가 이렇게 물을 것이다. 너는 좀 이상해 뭐가 아니? 하여튼 이상해. 왜 너는 화낼 때서 화를 안 내 그리고 화 안 낼 때서 화를 내 판단 기준이 다르고 방향이 다르고 길이 다른 것이다.
 
이 길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요구하신다는 것은 여러분을 그 아들을 보내셔서 만드신 구원 메시아에게도 이렇게 선언한 것 같이 히브리서 5장 8절같이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권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 왜 순종과 온전함이 등장한가? 신인데 뭐가 부족하단 말이죠? 죄로 말미암은 사망의 자리를 경험하시는 것이다. 그가 육신으로 오신 것은 히브리서 식으로 사망을 맞보러 오신다. 사망으로 사망을 물리치러 오신다. 사망에도 들어오신다. 그러니 여러분, 어느 누구도 내가 살아있는 한, 그가 살아있는 한, 그의 운명이 끝났다고 저주하지 말란 말이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맡겨진 현실에서 여러분이 제일 어려운 것은 나는 잘하고 싶은데, 내 옆에 동료들이 자라지 않더라. 말이죠. 악착하고 거짓말을 떡 먹듯 하고, 떡을 1년에 한 번 먹나? 이 속에서 몸부림을 치면서 왜 여기다 넣으셨어요? 그걸 모르면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구라이다.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는 순교시대도 지났고 부흥시대도 경험했다. 이것은 하나의 한국 기독교의 성장 과정이다. 목숨을 걸 수 있다. 그리고 너무나 풍성하다 감동적이다 이상 만족할 수 없다. 그래서 다음에 어디로 가야 돼요? 철이 들어야 되는 거야. 철이 들면 가장 중요하게 뭐가 있냐? 세상 짐을 같이 쳐야 된다. 이웃의 짐을 져야 된다. 저들은 모른다.
 
아버지와 저들을 사하소서! 는 멋있는 대사가 아니라, 실제로 죽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특별하다는 걸 안다. 하나님이 이런 방법으로 일하신다는 사실, 예수님 세대에 태어나지 못한 것, 제일 억울해. 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예수가 걸으신 길과 그 존재를 잊고 있다. 예수님을 아무도 못 알아봤듯이 세상은 우리를 못 알아본다. 예수는 왜 믿어? 그딴 소리나 하죠. 그러면 이렇게 대답하세요. 넌 몰라도 돼. 그 말할 때가 제일 좋다. 그러면 여러분이 신앙생활이 현실에 이어진다. 현실에 왜 이 지지고 볶는 걸 반복해야 되나? 왜 하나님은 내게 이런 환경과 조건을 요구하시는가? 해서 여러분이 거기에서 변한다. 어떻게 변하는가? 알고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모르는 데서 아는 것이 한 걸음이라면 그 아는 것을 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된다. 실력은 어떻게 생기는가? 훈련을 해야 된다. 하고 싶은데 안 된다. 물어본 적 있는가? 왜? 나는 안 돼요? 내 정성이 부족한 게 아니라 실력이 모자라니 내일 다시 하자 다시 하자!! 다시 하자 언제쯤 처리되나요? 제 경험엔 환갑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수많은 좌절과 수많은 자책감에 사로잡히는 날들을 지나가야 처리된다. 안목이 생기며 분별이 생기며 선택할 수 있으며 책임질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기서 더 가자 그러신다. 그 영광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종말, 천국은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모든 인류를 예수를 보내서 구원한 것 같이 우리를 보내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기르시며, 우리를 통하여 영혼들을 부르시며, 천국에 백성들을 만들어내신다는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이다. 역사와 인생의 주인의 동반자가 된다. 이를 기억하여 여러분의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현실을 살아내는 그 아무것도 아닌 습관 같은, 개념 같은 그 나날들이 여러분을 만든다는 것 여러분의 그 분노와 원망과 그 절망들이 그게 우리에게는 한 단계씩 높아지는 과정이라고 이해하시는 하나님의 뜻깊은 그 아들을 보내신 사람이 여러분들의 생애에서 다시 꽃피는 귀한 증거들을 기적들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란다.
 
♣요약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지금 일하고 계시듯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녀들은 저희임을 알아서 복되고 명예롭고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기적과 은혜의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고통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실패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영광의 찬송이 되고 세상이 상상하지 못하는 자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인류의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증거가 되는 인생으로 성실하고 신실하고 충성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역사적 신앙관을 가져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찬양하고 있다. 성부는 태초에 인간에 대한 구원 계획을 세우시고 성도들을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끝없는 사랑의 아버지로서 우리들을 향한 변함없는 도우심과 인치 심을 인하여 찬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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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6월 25일)
제목: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 주리라"-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시리즈 22번째 설교.
말씀: 요엘 2:28~30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이기원 부목사님
사회: 손문수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요엘 2:28~30,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ㅡㅡㅡㅡㅡ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 주리라“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시리즈 22번째 강에 성령을 한량 없이 부어주시리라라는 제목으로 복음적 평화 통일 주일 말씀을 전해 주신 후에 성찬식을 집례해 주시겠습니다.
 
▶ 오늘 우리 복음서 평화 통일 주일이고, 또 성찬식도 있고, 이런 가운데서 오늘 이 말씀을 주님이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남과 북의 이 견고함은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주의 영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다른 길이 없다. 그 오늘 성찬식도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데 그냥 되겠는가? 오늘 주의 영이 우리 가운데 구원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동시에 오늘 아마 이 자리는 개인적으로 참 너무 힘들다.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삶을 인생의 이 파도를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고통 하는 분들도 오늘 성령께서 여러분들 만져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오늘 제목을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 주리라" 요한복음 3장에 있는 내용을 가지고 구절인데 성령을 어떻게 부어주신다고요? 한량없이 오늘 조금만 받고 가시겠어요? 아니면 한량없이 받고 가시겠어요? 오늘 한량없이 성령 체험하고 돌아가기를 바란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들에게 유익하다 그랬다. 승천하실 때, 고아와 같이 고아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그들에게 내가 떠나는 것이 유익하다. 아니 주님이 떠나는 것이 어떻게 유익합니까? 이유가 있다. 이유는 뭐냐? 내가 떠나야 보혜사 성령을 너희들에게 줄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나와 있어요. 내가 떠날 때 너희들에게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주실 것이다. 그러니까 Another 또 다른 Another! ‘보혜사’란 말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상담하시고,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를 comform, 우리에게 안전을 주시는 분이시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예수님이 오르신 날 예수님이 하시는 그 모든 일들을 성령께서 또 하실 것이다. 그것도 예수님이 땅에 계실 때는 이스라엘 그 공간의 제안을 받았지만, 이 성령님은 공간의 제한 없이 모두에게 허락해 주실 것이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뭐 하다고요? 유익이다. 이게 참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너희들의 유익이다. 그래서 이걸 오늘 여러분들이 왜 우리에게 유익인지를 또박또박 좀 말씀을 살펴보고 성찬에 참여할 때, 개인적인 삶의 파도, 국가적인 통일의 과업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오늘 이 성찬식을 통하여 여러분의 것으로 확보하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한다. 오늘 본문은 28절에 요엘서 2장의 본문에 보면,
 
*요엘 2:28,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너무 유명하죠. 그 후에 그래서 그 후에, 이 요일에서 이 내용은 주전 800여 년 경에 활동한 선지자죠. 요엘은,,, 이걸 우리가 깨달아야 되는데 이 말씀의 요지는 그 후에,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준다. 그렇게 돼 있고 이 요엘서 2장을 그대로 오순절 성령 강림의 날, 베드로 사도가 설교를 할 때 이걸 그대로 인용을 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사도행전 2장에 뭐라고 하느냐 하면 “말세의 내가 내 형을 모든 육체에게 보여주겠다.” 똑같은 내용인데 그 후예가 뭐로 바뀌었는가? 눈 감고 기도하시는 분들 저 좀 쳐다보세요. 아침에 얼마나 피곤하세요. 다들 주무시는 것도 교회 와서 주무시면 좋아요. 저는 아이 오픈 주무시다. 그러나 갑자기 불을 받기를 바라는 거에요.
 
첫째 요엘서는 뭐라고 되어 있다고요? 그 후에,,, 그런데 베드로는 뭐라고 얘기한다고요? 말세에,,,,
여러분 지금은 그러니까 단순히 그 후에가 아니라, 말세에, 지금 이 순간에, 오늘 나에게, 지금 이 순간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이걸 여러분들의 것으로 완전히 확보해야 돼요. 다시 한 번 그 후에 내가 내 형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그래서 이 내용을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간략하게 이 요절이 28절인데 말세에, 오늘 이 시간, 내 영을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겠다. 네 가지가 여기 포함되어 있는데,
 
*요엘 2:28,
28 그 후에 ㅁ⓵내가내 영을 만민에게 ⓷부어 주리니 =성령님의 인격.
 
첫 번째 누가? 1 누가? 내가, 내가 누가 하시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두
두 번째로는 뭐라고요? 내 영을 내 영을 이 성령님의 인격이에요.
세 번째로는 누구에게 주리니 부어 주리니. 부어주겠다. 부어주겠다. 충만하게 그리고
네 번째는 뭐에 준다? 이거는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 목자의 심정, 선한 목자의 심정을 말씀하고 있고 하나님의 결심과 하나님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해요. 내가 하나님이 뭐해요? 주권 여러분의 실력과 능력이 결려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면 되는 것에요. 그러니까 이 시간 우리가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의 해가 이 빛나네. 주님을 우리가 목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는 거예요. 내가는 하나님이에요. 두 번째로는 뭐? 내 영을 성령님을 이거는 어떤 물리적인 이 정도가 아니라, 말씀을 통한 깨달음, 임재, 이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그다음에 부어주시겠다. 한 방울 두 방울이 아니라 부어주시겠다. 한량없이 부어주시겠다. 그리고 주시겠다. 사람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분명한지 그냥 적당히 하느라 30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냐 하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요엘 2:28~30,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 피와 불과 연기 기둥, 오늘 이 내용이 적당한 것이 아니라,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러분 어떤 느낌이 드세요? 어떤 분들은 목사님, “쫄립니다.” 어떤 분들은 “장엄합니다.” 어떤 분들은 “너무나, 너무나 깊이와 영광스러움이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피는 구원을 의미하고, 피는 여러분들을 살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다음 불과 연기는 심판도 있지만 불과 연기는 구약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때, 불과 연기 기둥이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구원과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거예요. 이만큼 장엄한 것이 이건 선포예요. 마치 마그나카르타와 대헌장과 같이 그러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이 통일의 문제가 있고, 그다음에 오늘 성천식의 은혜를 받고, 또 우리의 삶의 파도를 헤쳐 나갈 때에, 그냥 적당한 것이 아니라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그만큼 실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구원과 하나님의 인재가 있는 것이다. 사실적인 현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걸 다 한껏 묶어가지고 뭐라고 말씀하시고, 요한복음 3장 34절에 다 같이 시작.
 
*요한복음 3:34,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할렐루야!! 오늘 저는 1부부터 4부까지 한량없이 부어주셔야 되는데, 여러분들 일부에 있는 분 여러분들이 한 명 없이 성령의 부으심을 받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한량없는 성령을 부어주심 이게 왜? 이렇게 요한복음 3장에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신다. 굉장한 여기가 포함돼 있는데 나중에 베드로도 깨닫고, 요한이 깨닫고, 다 깨달았는데, 여러분, 복음서에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라는 말이 계속 이렇게 반복이 되는데 천국이 우리의 것이며 천국이 너희에게 있다. 천국이 너희 다른 데 찾아봐. 너희 속에 천국이 있다. 천국을 실재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하실 때 요한복음에는 천국이란 말 대신에 영생이라는 말로 바뀌어졌어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영생으로 치환이 됐어요. 그러니까 이 영생이라는 말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누리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성령을 한없이 부어주신다. 피와 연기와 그다음에 불의 역사, 이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저와 여러분들이 미래의 현장을 지금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인 줄 믿는다. 지금 여러분들이 기대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도 지금 맛볼 수 있다는 거, 지금 맛볼 수 있는 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이 너무, 너무, 너무 엄청난 것이다. 지금 영생을 맛보고 지금 성령을 한량없이 맛보고, 지금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성찬식을 한다는 것이 보통이 아니에요.
 
이것은 늘 얘기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는 부족하고, 우리가 모자랄 수도 있고 우리가 연약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오늘 이 성령의 역사를 지금 체험하는 하나님의 백성과 대상이 되었다고 말할 진데, 영생을 지금 이 자리에서 현재로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진데 “하나님, 오늘 이 성찬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한량없이 체험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오늘 말씀대로 성령을 한량없이 체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폭포수같이 그러면 성령을 한량없이 체험 받는다는 것은 오늘 두 가지 기도 제목을 드리겠다.
 
이 두 가지, 기도의 제목을 드리겠다.
여러분의 기도의 제목으로 내 것으로 되고, 확인될 때에, 오늘 성령을 한량없이 부음 받고 체험 받는 현장, 성도, 개인 기도가 될 것이다. 첫 번째 기도제목은 뭐냐? 성령의 부어 주심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또 이루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I. 성령의 부어짐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지고, 또 이루어진다.
-이거야.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이 하나님의 뜻 성령의 역사는 오늘 요엘서에서, 선포하고 예언한 이것이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 그대로 이루어졌습니까? 안 이루어졌습니까? 대답이 이렇게 희미하죠? 요엘서 2장에 있는 이 말씀이 사도행전 2장에서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에요.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성령이 역사하시니까 난 곳 방언으로 들었어요. 대인 방언으로 들었어요. 우리 지금 무슨 내 영의 망언이 아니라, 막 말이 말 9개국으로, 10개국으로 막 들리는 거예요. 그 현지 사람들의 말로 막 베드로는 그냥 설교하는데 그냥 그 현지 그러니까 제가 한국말로 설교하는데, 브라질 사람 브라질 말로 들리고 미국 사람 미국 말로 들리고, 그 다음에 저 저 저 필리핀 사람 필리핀 말로 들리고, 일본 사람 일본 말로, 중국사람 중국말로 들리는 것이에요.
 
이거 기가 막힌 거 아니에요 주요 그런 날도 좀 오게 해달라고요. 하다못해 막 다 이해는 안 가더라도 그 영감을 느끼게 해달라고 말이죠. 이게 난 곳 방언으로, 대인 방언으로, 또 한꺼번에 3천 명이 주님 앞에 들어오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이에요. 뭘 말합니까? ‘하나님의 뜻은 오늘 하나님의 뜻은 성령에 부어주심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은 퇴보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확장하고 진보하고 발전하고 성숙되는 것이다.’ 이게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것이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퇴보하는 거 아니다. 과거에 한때 잘하는 것으로 끝나는 거 아니다. 오늘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신 받으면 예외가 없다. 누가 그래요... “목사님 6.3 집회 후에 목사님 더 달라진 것 같아요!!.” 한다. 달라지기는 뭐가 달라집니까? 다 똑같은데요.. 그러나 뭐가 달라지냐면, 성령의 역사를 더 사모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일을 더 사모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일은 퇴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발전하고 확장하고 성숙한다.
더 전진한다. 그러니까 성령에 부어주심이 있으면 예외가 없이 퇴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전진하게 하고 성숙하게 하고 발전하게 하는 줄로 믿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도 그렇고, 우리 개인적으로도 성령의 부어주심을 통하여 주님을 더 닮아가게 되고, 주님의 영광에 영광, 주님의 찬란한 영광을 더 많이 체험하게 되고, 믿음은 더 전진하게 되고 더 성숙하게 되는 줄로 믿는다. 이게 왜 이렇게 중요한가 하면 지금 우리 우크라이나 사건도 있고, 개인적으로 보면, 수많은 낙심들, 일들, 좌절할 일들 많고 ,사회적 환경도 어렵고, 막 극단적인 우리 진영 대결들도 있고, 아버지를 아버지라(호부(呼父)호형(呼兄)) 말도 못하고, 그래요. 막 수많은 우리가 볼 때 너무나 이상한 일도 많고, 그런데 우리가 진실로 성령의 역사에 눈이 열리고, 진실로 집중하면 결국은 성숙하고, 진보하고, 하나님의 뜻은 더 많이 이루어지고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는 다 일이 안 돼도, 우리는 성령님 때문에 거룩한 낙관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회를 보십시오. 도저히 낙관론을 펼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성전은 다 허물어지고 솔로몬과 다윗의 그 영광스러운 시기에, 다윗 왕국의 모든 영광은 다 사라지고, 폐허가 되고, 잿더미가 되고,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적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고,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고, 퇴보되지 않고 확장될 것을 믿는다. 우리의 생각을 뛰어날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부으심을 통하여 하시는 이 일은 우리의 생각을 항상 뛰어넘는 것이에요. 1세기에 초라한 어부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겠다고 하시고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로 하는 이 세계 비전을 갖게 하셨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성령의 부어주심이 역사 때문에 가능하게 된 줄로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이 성찬에 참여하면서 여러분들 마음에 소원하세요. 그대로 될 거예요. 주님 내 생에 아직 최고는 오지 않은 줄로 믿는다. 사실이죠. 우리 영화의 몸을 입고 더 성화되는 것,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늘 말한, The best is yet to come. 더 베스트 이즈 엣 투컴. ‘최고는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 개인적으로도 주님을 더 닮아갈 수 있게 하시고 저도 그렇고 여러분 모두가 다 오늘 성찬식에 모두가 다 내 생에 아직 세워 오지 않은 줄로 믿는다. 우리가 주님을 더 닮아갈 걸 생각하며 영광의 몸을 걸 생각하면서 더 좋은 날, 더 귀한 날, 더 승리의 날이 앞으로 임할 줄로 확신한다.
 
이게 바로 오늘 내가 내 형을 만민에게 부어주시겠다는 그 안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에요. 영적인 전진과 성숙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한 번씩 제가 얘기하잖아요. 토비새에 넣으면 그냥 헤맨다. 토비새에 나오면 적당하다. 이게 아니고, 토비새에 나오면 평범한 인생이 뭐가 된다고요? 비범한 인생이 되고, 토비새에 나오면, 버려진 돌이 뭐가 되고요? 모퉁이 돌이 되고, 토비새에 나오면 영적인 균형 감각을 갖춘 거룩한 역량이 생기고, 이런 일들은 모두가 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전전하게 하시고 확장하게 하시는 그런 결과로 나타나는 줄로 확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은 요엘서가 사도행전을 통하여 확장되고, 확인되고, 펼쳐진 것처럼 성령의 역사 성령이 부어주시면 여러분의 여러분과 저의 삶의 확장성과 전진성이 있는 줄로 믿는다. 늘 내가 이야기 하지만, 아브라함, 이삭 그다음에 야곱, 요셉, 점점점 확장되는 것이다.
 
모세의 출애굽은 여호수와의 가나안의 정복으로 이어지게 하여 주시옵시고, 여호수와의 가나의 정복은 다윗 왕국으로 이어지게 하여 주시며, 다윗 당국은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로, 그리고 12 제자와 70인 전도 대와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을 통하여 확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 꼭 기억하세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우리 육신의 몸을 죽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이 죽어도 하나님의 일은 결코 죽지 않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뜻도 죽지 않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사람이 땅에 묻힐 때에도 하나님의 일은 땅에 묻히지 않은 줄로 믿는다. 왜냐하면 지금도 하나님은 성령을 부어주시고, 지금도 일하시고, 지금도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 중국에, 참 중국 선교사로서 나중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죠. 그러나 중국 내지 선교회와 OMF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거예요. omf의 창시자 죠지보그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본향으로 갔다. 그런데 로고스와 둘로스의 그 사역은 지금도 세계를 누비고 있는 것이다. 왜?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성령을 부어 주셔갖고 확장시켜주시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 주님 성령은 진리이다. 그리고 진리는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이다. 확장성이다. 전진하는 것이다. 발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 연세가 많다고 이 생각하지 말고 또 내 삶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성령에 부어주심의 역사를 통하여, 성찬식을 통하여, 내 삶에 하나님의 뜻이 확장되고 전진하고 성숙되게 하여 주실 줄로 믿는다.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에요 성찬식을 통해, 그래서
 
※마이클 호튼이라는 복음주의 신학자는 “하나님의 나라는 세례와 성만찬이라는 두 성례를 시행함으로써 계속 전진하고 확장된다.” 라고 했다. -마이클 호튼-
 
오늘 성찬식을 통하여, 우리 모두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더욱 견고하게 세워지고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이 전진되고 성숙되고 확장되기를 소망한다. 또 기도 제목 하나 두 번째 기도 제목은 오늘 약속은 누구를 위한 것이? 먼 데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약속은 만민을 위한 모든 육체를 위한 약속이자, 그다음에 중요 나를 위한 약속인 줄로 믿으셔야 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성령은 모든 사람에게 보여줄 것이다.
 
II. 오늘 부어주심의 약속은 만민을 위한 약속이지, 나를 위한 약속이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성령은 모든 사람에게 부어줄 거다. 모든 사람에게 성령의 부어 주심의 사건은 어떤 지도자 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32절에 32절에 뒤에 보니까,
 
*요엘 2:32,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주듯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듯이, 오늘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특정 계층이 아니라, 남녀노소 빈부귀천 없이 다 차별하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은 차별한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고,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끼리 모이고, 닮은 사람끼리 교제하고, 우리는 차별한다. 우리가 차별하니까 성령님도 차별하는 줄 안다. 여러분 성령은 차별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오늘 28절과 29절에서 성령이 어떻게 차별이 없으신지 보면,
*요엘 2:28~30,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첫째는 하나님은 나이를 차별하지 않으신다.
-성령의 부어주심은 나의 차별하지 아니하고, 세대 차이가 없는 것이다. 늙은이는 뭐예요? 꿈을 꾸고, 젊은이는 어떻게? 이상을 보고, 자녀들은 장례를 말하는 것이다. 늙은 애는 뭐 하고요? 제가 늙어내라고 하니까, 여러분들 저기 뭐야 섭섭해 하지 말라. 본문이 그랬죠? 본문이, 늙은이는 꿈을 꾸고, 그다음 너희 자녀들은 뭐야 장래를 말하고, 젊은이는 뭐예요? 이상을 말한다. 이상을 말한다! 늙은이가 꿈을 꾼다는 말은 지난주에 말씀했는데, 우리가 살다 보면 늙으니까 이 육신의 장막이 약해진다. 누가 그러대 80이 넘으면 종합병원이라고, 종합병원 이지만 종합병원이지만, 제대로 꿈을 꾸는 성령 받은 어른들은, 나이는 80이지만 외모는 60살, 언어는 40살, 꿈은 20살, 오늘 80대 분들 다 확인하세요.
 
자 다시 한 번 나이는 몇 살? 외모는? 왜냐하면 예수는 사람은 술도 한 별로 안 하니까 이십 년 젊어지는 거야. 어른들 안 믿으시네요. 언어는 최소 40살 그다음에 꿈은? 왜 하나님은 저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는지 모르겠어요. 한 번 더 우리 교회 80대 가까운 분들 나이는? 60, 또 이 젊은 분들 다 한 번 더 나이는? 외모는? 왜? 술 담배를 안 하니까 그다음에 언어는? 40, 꿈은 20!! 이게 말이 되는 거예요. 이게 성령이 부어주신 역사가 있으면, 20대나, 70대나, 80대나 차별이 없다. 이 말이에요. 젊은이는 뭘 주시는 거예요? 젊은이 이상을 본다. 우리 사도들은 환상을 본다. 그랬어요. 환상을 본다는 것은 성령의 부어주심을 통하여 젊은이들은 인생의 가장 영광스러운 날을 기대하고 고대하는 것이다. 저는 젊은이가 이런 꿈과 이상을 갖고 환상을 가지고 인생에 최고의 날을 기대하고 고대하는 거 이 자체가 나는 너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젊은이 여러분, 우리가 이상과 환상을 성령님을 통해서 갖는다는 것은 아까 앞에 얘기한 것처럼, 우리 인생에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최고의 꿈도 아주 이루어지지 은 것이다. 최고의 노래는 아직 불러지지 않은 것이다. 최고의 시도 아직 쓰여 지지 않은 것이다. 최고의 설교도 아직 선포되지 않았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다. 최고의 믿음의 작품도 아직까지 완성되지 않았다. 또 우리 교회적으로 보면 아직까지 우리가 꿈을 꾼다는 것은 우리 교회 최고로 멋진 주일학교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아무도 대답 안 해요? 최고로 기백이 있는 대학부도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슨 사랑의 교회가 옛날에 금잔디나 부르면서 과거에 좋았던 것만 생각합니까? 천만의 말씀!!! 오늘 성령 이 체험을 위하여 이 성찬에 참여하면서 사랑의 교회 최고의 주일학교까지 오지 않았다. 사랑의 교회 최고의 대학부 아직까지 오지 않았다. 가장 영광스러운 퍼에버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가장 훌륭한 교회도 아직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넘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이를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성별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내 영을 남종과 여종의 남녀를 차별하잖아요.
셋째는 사회적 계층도 차별하지 않으신다.
-종은 히브리어로 노예이다. 하나님은 남녀 차별 없이, 사회 계층 노예 차별 없이, 성령을 부어주신 줄 믿으시기 바라는 것이다. 이게 성령에 부어주심의 보편성의 보편성, 대단한 사람이나 특별한 사람만 무슨 오늘 신령하게 저 누구처럼 어떤 특별한 은사 받은 사람처럼 그런 분들만 하는 게 아니다.
 
제가 한번은 조용기 목사를 모시고 집회를 했다. 집회를 하는데 저녁을 안 드시더라고, 집회를 했는데 저는 그래서 “목사님은 저녁을 안 드시고 집회를 하십니까?” 안 드신다고 한다. 왜 안 드시냐 그니까 그 시간에 기도한다고 그럼 저는 어디 가서 집회하면 저녁 먹고 집회하는데,,,약간 떫어요. 제가 그래서 제가 조 목사님 보고 그랬어요. “그러면 저녁을 안 드시고 집회를 하시면 어떻게 됩니까?” “한 두세 시간 어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니까 “성령 받고 성령 체험하고 말씀을 전하면 어떻게 이런 뜻이죠?” 그러니까 목사님 뭐라고 하면 “온몸이 찌릿찌릿 해지지.” 그러더라고요. 아 그렇습니까? 그럼 “이 얘기를 누구한테 해준 적 있습니까?” 빌리그레함 목사님이 해 드렸는데, 빌리그레함 목사님은 그리고 기도하고 하니까, 어떻게 빌리그레함 목사님은 설교할 때, One or two feet.붕 떠서 설교하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이걸 제가 뭐라고 설명을 못하겠는데,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줄 믿어야 되시는 것이다. 그런데 제가 이 말씀을 드려요. 조 목사님도 나중에 아프시고 이렇게 다 하시잖아요. 그런데 성령에 부어주신 역사가 있을 때는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그 말이다. 성령의 역사는 세대 차이가 없다. 성령의 역사는 남녀 차이가 없다. 성령의 역사는 뭐 차이가 없다? 계층의 차이가 없다. 부유한 자나, 종이나,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술집 여자나, 상류층 여자나, 세상에서 저 사람은 아니다. 라고 하는 사람이나, 병든 자나, 연약한 자나, 몸이 불편한 자나, 낙담한 사람이나, 소망이 없는 사람이나,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 있는 사람도 성령의 부어주심을 통한 치유와 구원의 능력은 예외가 없는 것이다.
 
저는 오늘 이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들이 이 성찬식을 통하여, 성령에 부어주심을 체험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떤 일? 보 아니 이 공동체는 시대 앞에 어떻게 쓰임 받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너무 놀라운 거다. 오늘이 성령의 체험을 부어주신 역사를 체험하는 사람들이 이 자리에 있을 때에 이 자리에 어떤 위기에 빠진 결혼 생활을 갖는 분도 해결될 수 있을 수 있고, 꿈 없이 사는 젊은이들도 꿈이 회복될 수가 있는 것이고, 연세 드신 어른들도 다시 한 번 내 청춘을 독수로 가서 새롭게 하는 특별한 은혜를 하나님 허락해 주시는 것이다. 제가 이 성찬을 앞에 놓고 예외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한 가지 말씀을 드리고 성찬식 거행하겠다.
 
※제가 아는 뉴욕의 브루클린 타버나클의 짐 심발라 목사님이 계신다. 그분의 딸이 하나 있었다. 첫째 딸이 16세쯤 방황을 시작했다. 미국에 만으로 16살은 이게 게임, 이거 참 이거 진짜 복잡하다. 고등학교 2학년, 3학년 여자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약이나 성 중독 이런 거 심각하다. 그래서 그 딸이 아버지는 유명한 목사인데 하나님을 떠나버렸다 신앙을 버렸다. 그래서 심발라 목사님은 나는 딸을 위하여 별별 시도를 다 해보았다. 딸에게 빌어도 보고, 딸에게 사정도 해보고, 야단도 쳐보고, 울어도 보고, 싸워도 보고, 돈으로 어떻게 좀 마음을 돌려볼 것도 해보고, 오만 걸 다 해봤지만, 뒤돌아보니까 모두 부질없는 행동들이었다. 아무 소용도 없고, 아이는 더욱 완악해져 갔다. 그 아이에게는 16살밖에 없는 그 딸아이에게는 그냥 날라리 같은 남자친구 하나가 꺼벙한 남자친구가 전부였다는 것이다. 그때 내가 어떻게 이렇게 목사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주일이면 정장을 입고 차를 몰아 교회를 가고 설교를 하지만, 그 순간 울었다는 것이다. “하나님 오늘 어떻게 제가 세 번 예배를 인도합니까? 내 영혼이 바람 앞에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주님 부디 저의 딸을 구해 주십시오.” 그러나 내가 애를 쓸수록 목사님 애를 쓸수록 상황은 더 나빠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2월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교인들과 함께 교인들과 함께 교인들과 함께 그 아이를 위해서 기도했다는 것이다. 그때 그 심발라 목사님이 그때 자기 기도를, 기도가 마치 어땠냐 해산하는 여인의 부르짖음으로 풍국하며 기도했다고 한다.
 
어떤 분은 기도는 요청하는 거, 구하는 거 아니라, 다른 거 기도를 하는 분과 교제하는 거다. 교제도 맞지만, 이렇게 미칠 듯이 힘들면요 통곡하는 기도가 나올 수밖에 없는 줄 믿는다. 다시 해산하는 여인에 부르짖음으로 기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도로 끝나고 난 다음에 아내에게 사모님이 말씀했다는 것이다. ‘여보, 이제 이 고통은 다 끝났다고 무엇이 끝났다고 무엇이 끝나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제 악몽은 이제 끝났다.’ 고.... 그리고 서른두 시간이 지난 후 목요일 아침 딸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갑자기 딸이 정색을 하고 목사를 물었다는 것이다. “아빠 누가 나를 위해 기도한 것 같아요? 누가 기도해 줬어요?” “한밤중에 하나님이 나를 깨워가지고 내가 끝없는 잘못된 구덩이로 향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셨어요.” “그리고 하나님 같은 분이 나를 꼭 끌어안으면서 말해주셨어요. 아이 러브 유, 내가 너를 사랑한다.” “아빠, 그날 밤 누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나요?” 그래서 이 사건을 통하여,
 
포기하지 않는 기도는 사탄의 가장 강력한 요새도 부순다. 포기하지 않는 기도는 사탄의 가장 강력한 요새도 부순다?” -심발라 목사님 부부-
 
여러분 이거 외에 이 세상을 그리스도인들이 이거 외에 해결할 길이 있는가? 저는 성령을 부어 주셔가지고 여러분들과 제가 갖고 있는 수많은 난관과 난제들을 이거 외에는 다른 길이 있느냐이다? 다른 문제들 앞에서 나는 더 소망이 없다. 포기하고 싶을 수 있지만 여러분 그것은 우리의 능력과 우리의 실력으로만 하는 것이다. 여러분 이 땅을 살아오면 우리의 능력과 우리의 실력만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29절에 보면 우리 하나님은 소매라는 부르시다.
 
*히브리서 12:29,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할렐루야! 이 땅에 살면서 삶의 경주를 해야 되는데, 인간의 애씀이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너무 많다. 하나님의 불이 있어야 우리가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 정말 여러분 위태하고 절망 속에 있을 수 있다. 어때요? 이거 어떡하면 좋아요? 위로부터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불을 다시 경험하기를 바라는 것이 기진맥진한 일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불이 있으면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은 오늘도 이 시간 그의 절대 주권을 가지고,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차별 없이 기도 제목 두 가지,
 
첫 번째는 성령이 부어주신 하나님의 뜻이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점점 확장되고 성숙한다.
두 번째는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다.
-여러분 종말이 되면 말세에 되면 말세의 고난의 때가 온다고 그랬다. 고난이 있고,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말세가 되면 고난 닥치는 거 있다. 이거 사실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뭔지 압니까? “말세의 내가 내 영을 부어 주리니.” 고난이 있다. 이해 못할 일도 있다. 그때 더 중요한 것은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부어 주리니.” 그래서 항상 그리스도 안에 살면 고난과 축복이 섞여 있는 것이다. 결국은 주님의 복을 주심을 통하여 이겨내게 될 것이다. 오늘 이 마음으로 모두가 다 성찬에 참여하는 축복을 한 분 한 분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소망한다. 다 손을 펼치시고 우리가 같이 성찬에 참여하면서 우리가 같이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하겠다.
 
♬~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의 빗줄기 이 땅 가득 내리도록~
 
우리 같이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짐 심발라 목사님처럼 포기하지 않는 기도가 사단의 강력한 요새를 부술 수 있다. 는 사실을 기억하고 여러분 평생의 한이 되는 거, 평생의 고통이 되는 거, 오늘 처리해 버리시기 바란다. 자 우리 고난이 있다. 그런데 말씀이 뭐예요 “내가 내 영을 뭐에 부어 주리니.” 오늘 이 사실을 우리가 믿고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념하면서 말세의 고난이 있지만 주님의 영을 부어주시는 것을 믿는다.
 
짐 신발라 목사님의 딸을 주님이 해결해 주신 것처럼, 주여 내 삶의 고난의 모든 상황을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성찬의 은혜를 주옵소서. 그리고 오늘 우리 한국 사회에, 이 어려운 갈등 문제가 해결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 통일 하나님의 역사에, 갑작스럽게 놀랍게 하나님의 때 이루어지게 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요약
성령의 부어짐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고, 오늘 부어주심의 약속은 나를 위한 약속이니, 고귀한 성찬을 통하여, 주님의 은혜와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시기를 사모해야 한다. 가장 영광스러운 날을 예비하도록 믿음으로 전진하고 성숙과 확장을 이끄시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우리와 온 한국교회와 이민교회와 세계교회 위에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하반기를 위해 충만한 은혜를 맛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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