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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3년 4월 23일)
제목: "신앙의 깊이 측정"
부제: 지성소 신앙의 은혜
말씀: 에스겔47:1~5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남동우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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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47:1~5,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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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일 예배에 은혜의 지성소가 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이 자리가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가 기도한 대로 오늘이 작은 부활절이다. 영광의 대관식이다. 영광의 잔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주일 가운데 이 시간이 가장 피크가 되어야 나머지 삶도 은혜의 지성소의 물이 흘러서 은혜의 축복이 되는 것이다. 오늘은 구한 찬송이다. 강단에 모란 작약이 피었다. 오늘은 장애인 주일인데 1년에 함께 축하의 자리이다. 축하의 꽃인 것 같다. 예배에 함께 하고 또한 수고하시는 교사들과 교역자님과 모두께 감사의 박수를 전하자. 예수 믿는다는 것은 감사하고 좋은 것이다. 지난주일 CAL세미나 너무 잘 마쳤다. 제가 특새 하고 CAL세미나 하고 목소리가 갔다. 그러니까 목이 갔지만 거룩한 목소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양해하기 바란다. 120기 제자훈련 37년 동안 CAL세미나를 했다. 얼마나 감사한가! 전 세계가 한결 같은 역동성을 가지고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그리고 CAL세미나 중에 하나가 우리가 교회 성장 방법론을 전달하는 노하우가 아니고, CAL세미나의 목회의 본질과 사역의 뿌리가 무엇이냐? 그리고 어떻게든 흔들릴 수 없는 토대, 근거와 신념과 뿌리가 무엇인지 우리가 다루고 싶다. 뿌리가 깊으니까 흔들림이 없다. 그래서 CAL세미나를 통해 목회자로, 중직 자가 살고, 지역교회가 살면 교회가 사는 줄로 확신한다. 교회가 살면 이 민족이 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은 신앙의 깊이 뿌리로 지성소의 신앙으로 부제로 붙여보았다. 19번째 부흥헌신 ‘신앙의 깊이를 측정’하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다.


흔히들 신앙의 나이가 있고 신앙의 경력, 신앙의 연수, 신앙의 역사를 묻는다. 엄격히 말하면 신앙은 나이나 길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닌, 신앙은 깊이에 의해서 결정된다. 묻겠다. 적당히 교회 10년 왔다가 가는 것과, 1년 제자훈련 제대로 하는 신앙과의 누가 더 깊이가 있겠는가? 누가 더 신앙의 깊이가 있는가? 1년 제자훈련이다.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제대로 제자훈련이 신앙이 깊은 것이다.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포도원 일꾼의 비유가 있다.


*마태복음 20:16,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신앙도 길이도 중요하지만 깊이가 중요하다. 우리 교회도 신앙의 깊이와 뿌리가 내려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법칙과도 이와 같다. 나무의 뿌리도, 건물의 높이는 기초공사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 얼마나 튼실하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식으로는 다 안다. 다 알지만 그것이 깊이나 뿌리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겉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겉만 멀쩡하면 속을 수가 있다. 그래서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시편 1:3,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그 핍박과 유혹에 뜨거운 이글거리면서 사람을 막 뜨겁고 힘들게 하더라고 변함이 없이 꾸준하게 열매를 맺는 이유는 그 뿌리의 근원이 샘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평생, 우리의 현장이 은혜의 깊은 강수를 마칠 수 있고 그것을 체험할 수 있는 우리의 뿌리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잎사귀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내가 신앙의 깊이가 있는가, 없는가의 측정은 내가 열매가 있는가, 없는가이다. 여러분 3년 내로 여러분 때문에 예수 믿는 분이 있는가? 한다. 여러분 때문에 정말 신앙의 어떤 열매의 변화가 되어서 그런 분들이 주위에 있는가? 우리가 그런 면에서 감사한 면이 있겠지만 많은 분들이 내가 왜 이러는가? 나 때문에 귀한 영향을 받아서 예수를 믿는다든지 나 때문에 주님 길에 들어서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지, 내 신앙의 수준과 내 측정이 어느 정도인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을 오늘 본문을 가지고 보면, 에스겔서의 47장을 보면, 에스겔의 환상을 보면,


*시편 1:3,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에스겔이 본 환상 가운데 에스겔서 전체가운데 노른자위 말씀이고,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과 함께 오늘 성소에서 물이 흘러 나와서 온 천지가 사막과 적시고 척박한 땅이 적셔져서 죽어가는 것이 다 살아나는 이런 영광스런 일이 보는데, 이 환상을 갖게 된 배경은 에스겔이 25세에 포로로 바벨론에 잡혀간 이후에 이때가 에스겔이 50세가 된 것이다. 25년이 흐른 뒤이다. 45장에 보면 내가 포로로 잡혀가서 한 25년 쯤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오늘 이 환상을 보고 성전물이 흘러나와가지고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와서 은혜가 이 영광스런 이런 것을 볼만한 그런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 포로로 잡혀 와서 바벨론 척박한 환경이었다. 낙관론을 펼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늘의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수많은 인생 가운데 ‘큰 짐을 지고 나는 아니냐?, 나는 끝났다’는 그런 마음이 우리 가운데 자리 잡을 수가 있는데 여러분, 가장 척박한 시기가 가장 영광스런 환상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걸 믿음으로 우리가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닫게 해 주시고 음성이 있는 것이다. 아멘. 세밀한 음성이 들리게 되는 것이다. 오늘 성전으로부터 물이 나와서 큰 강을 이루어가지고 죽은 바다를 살리고 강물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완전한 회복과 우리 식으로 말하면 회복을 넘어 부흥이 되는 축복을 받는 것이다. 지성소 신앙의 회복이다. 1절에 보면,


*에스겔 47:1-3,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성전 문지방으로부터 물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여러분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오늘부터 우리 교회 계단 쪽에 물이 흐르게 건축되어 있다. 나중에 멋있게 보여드리겠다. 영상으로 보여 주겠다. 에스겔 47장2절에 보면 성전에서 나온 물이 어디로 가는가?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물이 나와서 3절부터 보면,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줄자를 가지고 이제 측량을 한다. 한 척이 50센티 정도이다. 그러니까 1천척, 500미터 정도이다. 500미터 측량하는 것이니 그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는 것이다. 어떤 상태를 진단하는 것이고 우리의 신앙을 진다하는 것이다. 500미터를 물을 건너 오라가 하셨다. 에스겔 강물을 건너니까 물이 어디까지 찼는가?


*에스겔 47:4~5,
4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500미터 가니까 발목, 그 다음에는 1000미터 가니까 무릎, 그 다음에 1500미터 가니까 허리쯤 차고, 2천미터 가니까, 온 몸이 건널 수 없을 만큼 큰 강이 된 것이다. 가면 갈수록 퍼져 가면 갈수록 더 깊어지는 것이다 여기는 물론 성경적으로 구원사적으로 보면 강 전체가 영향을 받을 정도로 복음의 온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줄로 믿는다. 그런 복음의 확장설로 되어 있지만 신앙을 우리가 볼 때에 옛날 어른들은 조금은 우리식으로 표현하지만 신앙은 발목신앙이 있고, 발목으로 왔다 갔다 한다. 또 무릎 신앙은 좀 은혜 받아가지고 무릎으로 기도하는 신앙이 있고, 허리 신앙은 봉사를 좀 열심히 섬기고 잘하고 있고, 그다음은 온몸에 은혜를 받아가지고 지성소 신앙이 있다. 그냥 깊은 신상의 깊은 경지에 닿았다는 것이며 옛날 어른들에 의하면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의 신앙의 생수의 강이 어느 정도 흐르고 있는지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우리 신앙의 측정 도는 어디인가? 측량할 때 어느 정도인가? 발목신앙은 아닌가? 그 다음에 기도는 하는가? 봉사는 하는가? 온몸으로 지성소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이것을 성전 뜰 신앙, 성소신앙, 지성소 신앙, 이렇게 말씀하는 어른들도 있었다. 오늘 이 말씀을 앞에 놓고 선대의 어른들이 성전 뜰을 이야기 할 때, 성전 뜰은 모든 사람들이 성전에 볼 수 있는 외곽 지대이다. 여기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고, 외적 종교 예배의식이 여기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성전 뜰 신앙이라는 것은 종교인들, 무늬만 그리스도인들이며, 찬송처럼 찰싹거리는 그 얕은 물가에서 이렇게 보는 것이며 껍데기만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중심, 유아기적인 신앙으로 볼 수 있고, 성소신앙은 제사장들만 들어가서 밖에서 피와 향과 기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다. 성소신앙은 번제물과 물두멍을 지나서 성전 뜰에나 믿음으로 전진해서 성소에 들어가는 신앙이다. 예수님을 위해 봉사도 하고 남을 위해 기도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소 신앙이 있다할지라도 성소에 들어가 제사장들도 절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 누구도 대제사장외에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는데 하나님이 정해주시는 그 시간외에는 제사장도 감히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단 대세사장만 1년에 한 번씩 일시적으로 몇 시간동안 거의 소복수준으로 입고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것이다. 잘못하면 그냥 죽어나왔다. 그래서 지성소는 두려움의 자리였고, 자기 죽음의 자리였다. 그런데 이 구약의 대제사장이 거의 죽음을 통과한 자리가 지성소인데 여기의 신양은 뭐냐면 지성소는 대 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 순간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 막는 휘장이 밑에서 부터가 아니라, 위에서부터 찢어지는 것이다. 새로운 은혜의 자리, 강력한 임재의 자리, 두려움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의 장소가 된 줄로 믿는다. 다시 말하면, 성전 뜰은 그냥 들어가면서 밟으면 되는 것이고, 성소에는 그냥 마음이 낮아지고 무릎을 꿇고 기어서 들어가는 것이고, 지성소에는 대제장이 완전히 죽어서 들어가는 것이다. 완전히 납작 엎드려서 죽은 것처럼 되는 것이다.


이것을 바울 사도는 신앙의 단계를 이야기 하면서 우리가 성전 뜰, 발목신앙을 성소, 지성소를 이야기 하는 것처럼 발목신앙을 이야기 한 것처럼. 바울 사도는 예수를 믿어도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The carnal Christian, 예수를 믿어도 세상의 사고방식과 영향을 너무 받아가지고 믿기는 믿는데, 안 믿으려고 하니까 지금까지 믿은 게 너무 억울해서 그냥 포기할 수는 없고 그냥 그 단계만 지나면 젖을 먹는 시기가 있다고 했다. 육적인 그리스도는 젖을 먹는 시기가 있다고 했다. 이유식, 단단한 것을 못 먹는 것이다. “주님 사랑해요,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 되기 원합니다.” 라고 이런 찬송도 한다. 그런데 누가 옆에 와서 그냥 프라이들 건드리고 누가 뭐라고 하면 자존심이 상하면 팩한다.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해도 자기의 죽음의 선이 없다. 그런데 히브리서 5장에 보니까,


*히브리서 5:14,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이제는 젖뗄 때가 되었다. 이유식은 부드러운 음식을 먹지만 그런데 만약에 20세 정도의 청년이 대학교 1-2학년이 맨날 집에 가서 젖이나 먹고 집에서 이유식이나 달라고 하면 걸 맞는 자가 아니다. 맞지가 않다. 이제는 좀 장성한 사람의 분량이 되어가지고 좀 자기 죽음도 깨닫고 좀 성숙도 하여야 하는데,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크게 보면 한국교회 대부분 다 비슷하다. 일반 성도들이 발목신앙을 이야기 한다면 은혜의 깊은 수준의 측량을 생각해본다면 교회만 왔다 갔다 예배를 빠지지 않고 착실히 나오는 사람을 ‘다’ 군이라고 한다. 나군은 우리 교회 같으면 영적 성숙을 위해 나름대로 이렇게 훈련에 참여하는 분들이 ‘나’군이다. 가군은 말씀으로 다른 이들을 섬기는 분들이다. 우리 교회를 말하자면 순장(구역장)들 같은 경우 제자반이나 사역반도 말씀으로 섬기고, 이것을 우리가 가군이라고 한다. 가나다라 군으로 나누어 보았다. 저는 소원이 6개월이면 6개월, 1년이면 1년, 그 시기가 지나면 라 군에 있는 자들이 제발 다 군으로 올라가기를 바란다. 주일에 잘 참석하는 성도는 다 군은 훈련을 받아서 영적 재생산에 참여하여 이런 신앙의 단계를 마치고 나서 종합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우리가 발목 신앙에서 온 몸에 은혜를 체험하는 그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제가 청년 때 선교 단체에서 훈련을 받는데 그 선교단체는 그 수준을 어떻게 이야기 하냐면 그 수준을 믿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컴벌젼 하다고 한다. Commvolt라고도 한다. 예수님 믿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 그다음은 예수님을 믿고 훈련된 사람을 Disciple이라고 한다. 그다음에 또 다른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로 훈련 받고 나서 그 양육의 일을 담당하는 자에게 Disciple maker라고 한다. 그래서 Disciple maker로 오랫동안 살면서 영향을 미치고 더 큰 사명을 가지고 더 크게 쓰이는 사람을 Leader of the Disciple maker라고 한다. 그래서 컴벌트, 디사이플, 디사이플 메이커, 디러 오브 디사이플이다. 이것을 내 수준으로 만들고 어떻하든지 이 컴볼트가 디사이플 메이커가 되고 리더 애브 디사이플 메이커가 될 수 있도록 다시 마음을 모으고 집중을 했었다. 자 다시 말하자면 여러분과 제가 발목신앙이나, 성전 뜰 신앙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성도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교부시대에 기록으로 보면 세례와 성찬을 2-3년을 안 준적이 있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하더라도 이제 모든 이단으로부터 어떤 유혹으로부터 나름 자신을 추스릴 수 있게 되면 은혜를 주고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그러니까 그 이단들이 설칠 수가 없었다. 사랑의 교회는 처음 오시면 새신 자 교육을 받으면 첫 번째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두 번째는 ‘성경이 무엇인가?’ 세 번째는 ‘교회가 무엇인가?’ 네 번째는 ‘어떻게 믿음 생활 잘 할 수 있는가?’ 이 정도를 거치고 난 다음에 우리 교회 성경 대학이나 여러 프로그램 교육을 하면서 다락방에 들어가고 제자 훈련을 1년을 하고 나면 우리교회에서 이단을 판단하는 기준이 생긴다. 어느 정도 파악을 한다. 비교적 훈련을 제대로 마치고 나면 2단이나 3단이라든지 이런 이단을 차단하게 될 능력이 된다. 이것이 영적 성숙도가 측정이 된다. 그러면 이런 말씀을 놓고 우리는 무엇을 측정해야 되는가? 무얼 적용해야 할까?


첫째, 자기 십자가와 자기 죽음을 측정해야.
-이것은 지성소에 들어가려면 오늘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축복이 있는데, 대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가려면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 구약에서는 지성소가 열리기 위해서는 대제사장이 납작 엎드려야 한다. 그리고 수소와 염소와 양이라는 제물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그 십자가의 어린 양 되시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하여 그 휘장이 찢어지는 것이고 오늘 21세기 AI 쳇 GPT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뭐냐면 구약의 수소와 양이 필요한 것처럼 오늘 내가 제물이 되어가지고 내가 십자가가 되어서 내가 죽음을 선언하고 내가 대속 주님 앞에 제물이 되어야 되는 것이다. 저는 오를 설교를 하려고 하면서 그런데 컨디션이 아니었다. 하나님 앞에 내가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오늘 말씀이 내 제물이 되는 말씀이 되게 해달라고, 주님 내가 제물되는 말씀이 되게 해달라고, 그러면서 구약의 이 지성소에 대제사장이 들어갈 때,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에 은혜를 받았다. 지성소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희생 제물이 있어야 한다. 희생제물의 죽음은 마치 한 세트럼 되어야 한다. 죽음과 지성소는 한 세트처럼 연결되어 있다. 희생제물이 없이는 제물을 드리는 죽음이 제사가 없이는 지성소가 열리지가 않는 것이다. 지성소는 1년에 대제사장이 대속죄인 날 한 번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날에 백성의 죄와 민족의 죄를 속하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가는데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삼중의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성전에 문지방에 흐르는 물의 그 양광을 체험하기 위하여 지성소의 깊은 은혜가 있어야 하는데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대 속죄로 들어갈 때 3중의 절차를 거쳐야 했다. 첫 번째는


첫 번째는 어린 수송아지를 취하여서 자신의 죄와 가족과 속죄 죄를 먼저 드려야 했다. 그 피의 일부분을 지성소로 가져가서 지성소 앞에 뿌렸다. 이런 과정 가운데 어떤 실수나,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즉각적으로 죽는다. 그만큼 엄중했다. 희생제물의 피를 가지고 자기의 죄와 가족의 죄를 위해 속죄 죄를 드리고 그 피의 일부를 하나님 앞에 뿌렸다. 지성소에 뿌린 것이다.


두 번째는 염소 두 마리를 가지고 한 염소는 제비를 뽑아서, 한 마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이고, 잡아서 그 피의 일부분을 지성소 안으로 가져가서 거룩한 제단 위에 염소의 피를 뿌렸다.
세 번째는 대제사장이 안수를 하고 머리에다가 모든 백성들의 죄를 전부다 실어서 광야로 쫓아버렸다. 레위기 16절을 보면,


*레위기 16:10,
10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제가 40여 년 전에 신학을 하면서 머리에 모든 민족의 죄를 얹어놓고 음미하고 쫓겨나는데 내가 막 눈물이 났다. 그리고 주로 절벽에다 쫓아 내놓고 떨어져 죽도록 만든다. 지성소를 들어가기 위한 자기 희생과 죽음과 그것이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신앙의 깊이에 의하여 내 신앙 깊이가 있냐면 자기 죽음과 십자가를 위하여 순종이 내게 어느 정도 수준인가를 봐야 한다. 내가 이제 십자가를 져야 한다. 내가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리라.’ 라고 했을 때에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보면,


*갈라디아서 5:24,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의 지성소 신앙의 수준은 수많은 유혹과 수많은 온갖 것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억지로 못 박을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내가 얼마나 이것이 될 런지, 그래서 모든 지성소 신앙의 깊이는 자기희생과 수준에 의하여 영적 깊이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것은 여유가 없다. 고린도후서 12장 1저에 보면,


*고린도후서 12:1,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더이상 인생으로 태어나서 영적인 깊이와 수준으로 말하자면 더 이상 논할 수가 없는 최고의 3층전에 올라간 것이다. 그런데 알 수 있는 과정에서 보면, 바울사도가 어떤 자가 3층 전에 올라갔다고 말한다. 더 이상 인생으로 태어나서 최고의 삼층 천에 올라갔다고 말한다. 자기희생과 자기 욕심을 못 박는 것이 나오는데 바울은 인정을 하지 않았다. 바울이 굶고 태장 맞고 판선 당하고 너무 바울은 힘들고 했어도 그 이후에 인생이 경험할 수 있는 3층천을 경험한 것이다. 우리도 그리 경험해야 한다. 저와 여러분에게 맡기신 십자가를 얼마나 능동 적을 지고 가느냐에 여기에 달려 있다. 자지 죽음으로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우리의 심령에 지성소가 열리기를 확신한다. 대부분의 경우 경험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십자가에 못 박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 앞에 지성소의 깊은 신앙의 수준을 위하여 제물 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고린도후서 12장
둘째. 주님을 향한 신뢰와 사랑을 측정.
-자기 죽음만 통과하면 되는가?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은 무엇인가? 주님을 향한 사랑이 더 깊어지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신뢰와 사랑을 측정해야 한다. 이 예배를 드리고 나면 이전보다 더 주님을 사랑을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더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이다. 자기를 사랑한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느냐? 우리에게 큰 병이 걸리고 큰 우황이 있을 때, 그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고통과 고난이 있을 때 그것은 고통과 고난을 낭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쉽지 않지만 그것을 통하여 오히려 주님을 더 사랑하는 계기가 되면 그 고통과 사랑이 낭비되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제물 되어서 주니 앞에 내가 능동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지만 이것을 통해 주님을 더 신뢰하고 사랑을 하여야 한다. 병 때문에 슬퍼하는 자도 있고 병 때문에 천국을 더 사모하는 사람이 있다. 큰 병이 있으면 평안과 불안을 반복하는 사람이 있고, 아니 내 생명을 하나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신앙의 깊이를 깨달으면 “네가 나를 이전보다 더 사랑하느냐?” 라고 하신다. 베드로 보고도 그러하셨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네가 진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하셨다. 네가 정말 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아들ㅇ르 보고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신다. 그게 지성소 신앙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낭비되지 말고 주님을 더 신뢰하고 주님을 더 사랑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말씀을 정리하겠다. 오늘 날 지성소가 어디인가? 성전이다. 교회이다. 주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 지성소이다. 우리가 사모하는 이유는 주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여기에 은혜가 있는 것이다. 내 혼자 특새에 와서 어린양의 피로 내가 들어갑니다. 라고 주님을 사모합니다. 예배합니다. I enter the Holly!! 그런 찬송을 할 때에 함께 찬양을 할 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지성소는 더 이상 물리적인 장소를 말하지 않는다. 직장, 가정에서도 하나님이 임재 하셨다면 그곳이 바로 지성소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적 예배와 다락방과 우리의 삶의 현장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가 되기를 바란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 침상이 거룩한 지성서이며 직장에서 전력투구하면서 하나님의 임재 있으면 못 산다고 영적으로 그냥 허리를 동이고 온 몸으로 주님 앞에 반응하면서 주님 나를 살려달라고 십자가에 못 박으면 그 순간 그 자리가 거룩한 지성소가 되는 것이다. 오늘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바란다. 우리 신앙이 성전 뜰인지, 성소인지, 지성소인지,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인지, 아니면 젖이나 먹는 신앙인지, 이제는 단단한 것을 먹는 신앙인지, 라군에 있는 자는 다 군으로, 다 군은 나군으로, 나군은 가군으로 들어 가야한다. 다 손을 펴고 ”그 어린양의 피로“ 찬양을 하자.


♧요약
어린 양의 피로 그 거룩한 지성소로 들어가는 은혜를 주심을 찬양한다. 주님의 보혈의 피로 지성소로가게 하신 주님을 경오하며 영광돌리며, 내가 성전 뜰 신앙이라면 성소에 올라가야 하며, 내가 지성소의 깊은 은혜를 깨달아서 나무의 높이가 뿌리에 의해서 결정되듯이 신앙의 성숙은 길이가 아니가 깊이에 있음을 믿고 얕은 물가에 있지 말고 깊이 있는 강수를 경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나라는 망학 미래는 암울했던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소망의 계시로 임재하신 것처럼 사방이 막혀서 낙심하는 나에게 주 보좌로부터, 성전으로부터, 임재의 물이 흘러나와서 참 회복과 치유가 경험되고 해결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나의 육신적은 신앙과 고통으로 낭비되지 말고 깊은 지성소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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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4월 16일)
제목: "특새의 부흥, 매일의 부흥"
말씀: 역대하 14:9~13
대표기도: 안승훈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옥사님
ㅡㅡㅡㅡㅡ
 
*역대하 14:9~13,
9 구스 사람 세라가 그들을 치려 하여 군사 백만 명과 병거 삼백 대를 거느리고 마레사에 이르매.
10 아사가 마주 나가서 마레사의 스바다 골짜기에 전열을 갖추고.
11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12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구스 사람들이 도망하는지라.
13 아사와 그와 함께 한 백성이 구스 사람들을 추격하여 그랄까지 이르매 이에 구스 사람들이 엎드러지고 살아남은 자가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 앞에서와 그의 군대 앞에서 패망하였음이라 노략한 물건이 매우 많았더라.
---------
▶한 주간 동안 주님께서 우리 특새를 통해 매일매일 폭포수와 같은 은혜를 주심에 너무도 감사하다. 이번 특새는 좀 정말 전에도 그랬지만 자연스러운 은혜를 주셨다. 물 흐르듯 한 축복을 주셨다. 어제는 만 오천 명 이상 새벽에 모였다. 이렇게 모이니까 외국인들이 오셨다가 joldo!!! ㅋㅋㅋ!!~ 거의 다 너무나 은혜였다. 이런 집회가 되려면 무슨 좀 광고도 많이 하고, 강조도 많이 하고 그러는데, 우리는 특히 강조나 광고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꼭 은혜 받을 분들은 하나님께서 다 보내주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제 소원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마치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던 7천여 명이 딱 숨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막 뛰어 나온 것처럼 이번 특새에 기도의 용사들을 그렇게 보내 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자연스런 역사였다.
 
저는 목회자로서 이런 집회를 하면서 제 마음의 소원은 특새의 은혜도 많이 받고 또 신적개입도 있으시고 또 어떤 치유와 기적도 일어나는 일도 있지만 제 마음의 소원은 이런 특새부흥의 은혜가 일상에 생활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그대로 면면히 이어가는 것이 소원이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그대로 펼쳐지기를 바란다. 여러분, 부흥도 중요하지만 부흥이후에 부흥이 진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부흥이 실제로 우리 일상의 삶 가운데 연결이 되어야 한다. 좀 어렵게 말씀을 드리자면 특새가 카이로스 중요한 순간에 카이로스 부흥정도가 아니라, 매일매일 삶의 현장에서 크로노스, 일상의 삶 가운데 크로노스 부흥을 맞아야 한다. 그러니까 카이로스의 부흥이 부흥으로 이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신대기적 은혜가 우리의 삶의 연대기적 삶의 현장에서 유지 되어야 된다. 매일의 우리의 연대기적 삶의 갈피갈피에 신대기적 부흥의 은혜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 부흥에 소낙비를 부어주시니까 이것이 일상에서 부흥의 강으로 꾸준히 흘러가야 할 줄로 믿는다. 우리가 은(恩)상(上)가은(加恩), 은혜 위에 은혜, 오늘 아침에 제가 부상가부, 부흥위에 부흥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다. 우리 교회 처음 오시는 분들은 이 사자성어가 무언가 하실 것이다. 여러분, 은상가은처럼 은혜위에 은혜처럼 그런 뜻이다. 어떻든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 특새의 부흥의 소낙비가 일상의 삶에서 은혜의 강으로 면면히 연결되기를 바란다.
 
*역대하14:11,
11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기도의 엑기스이다. 기가 막히다. 기도는 강한 자와 약한 자의 사이에서 역사하시는 것이 기도가 되는 것이다. 이 내용은 바울이 고백한 대로 구약의 이 내용은 오늘 신약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거울이 되고 우리에게 깨우치시는 것이다. 저는 저의 삶의 여정 가운데 굴곡도 있었지만 그리고 ‘어쩔 때는 내가 벼랑에서 떨어져 죽겠구나!’ 이런 위기를 느낄 때도 있다. 그때마다 저는 이 말씀이 마치 북극성과 같은 좋은 기도가 되게 하셔서 삶의 방향을 잡을 있도록 어려울 때마다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님 밖에 도와주실 분이 없사오니 주여,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납작 엎드리는 것이다.
그렇게 어려울 때마다 마치 내 머리를 잡아 올려서 쭈욱 끌어올리는 것 같은 그런 은혜를 받은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그래서 이 말씀이 일상의 삶의 현장에서 또박또박 핵심이 고백 되므로 말미암아 면면히 부흥의 은혜를 주시기를 소망한다. 오늘 본문이 배경은 남유다 왕국의 3대 왕이었던 그야말로 통일왕국의 왕으로 솔로몬 왕의 증손자였던 아사 왕이 주님 앞에 간절히 올려드리는 기도이다. 아사 왕은 오늘 본문 9절 앞에 1-8절까지를 보면 그가 왕으로 등극하기 전에 이스라엘의 우상과 산당을 요즘 우리 식으로 말하면 점집, 그다음에 이단, 불법 웹사이트, 그다음에 무슨 타락(墮落)한 것들이 난무(亂舞)한 것이다. 이런 것들을 사당을 없애고 우상을 제거하고 나니까 오늘 2-5절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아사의 그 나라에게 평안을 허락해주셨다.
 
*역대하 2~5,
2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3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4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5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그러니 우리 식으로 말하면 아사가 이단 척결, 불건전한 웹사이트 정리, 퇴폐업소, 점쟁이, 마약상들을 국가적으로 처단한 것이다. 여러분이 잘 알듯이 오천만 명이 넘는 인구 가운데 국민소득 3만불이 넘는 그야말로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런 나라들 가운데, 다시 오천만 명 인구가운데 국민소득 3만 불이 넘는 이런 나라 가운데 동성애법이 통과되지 않는 나라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이것을 지켜야 한다. 우리가 아사의 심정으로 지켜야 한다. 우상과 산당을 없애는 마음으로, 그래서 휴전선이 뚫리지 않은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지나간 70년 간 한각의 기적을 경험한 것이 다른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주시는 흔적이다. 그러니 어느 나라도 다 그렇다. 우상과 산당을 없이 하고 이단 척결하고 심지어 마약까지 정리하면 하나님이 그 나라에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주시는 것이다. 어느 집안이든지 그 집안이 잘되고 샬롬의 평강을 누리고 은혜가 되는 집안을 우리가 가만히 삶의 커튼을 열고 들여다보면 그 집안에 누군가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자녀들 가운데 누군가가 하나님 앞에 이런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그 집안에 평강과 샬롬의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 아멘!!. 아사는 나라가 평강을 누렸다. 그런데 그 시간을 아사는 낭비(浪費)하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이럴 때에도 유(有)비(備)무한(無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유다 지파들과 베냐민 지파에서 아주 군사들, 강병들을 미리미리 준비하고 훈련을 했다. 국방력을 갖춘다. 성경에 역대하 14장 8절에 보면,
 
*역대하 14:8,
8 아사의 군대는 유다 중에서 큰 방패와 창을 잡는 자가 삼십만 명이요 베냐민 중에서 작은 방패를 잡으며 활을 당기는 자가 이십팔만 명이라 그들은 다 큰 용사였더라.
-제대로 싸우는 사람이다. 당나라 군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제대로 싸운다. 용사들이었다. 그리고 여기 보니까 작은 방패, 활 당기는 부대, 창 부대, 이런 식으로 나름 현대 전략을 구사하는 그런 준비의 귀한 일을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축복하시는데 많은 분들이 하나님 앞에 평안을 유지하면서 그러다가 죽는 분들이 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 조금 더 구하게 쓰시고 하나님 나라에 역사에 소위 연대기적 삶에 이런 삶의 크로노스 같은 현장 가운데 신대기적 카이로스의 축복을 주시고 그렇게 쓰시기를 원하는 어떤 특정한 사람은 하나님은 한 번 만드시는 것이다. 신앙세계의 새로운 장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58만의 부대가 방패부대, 창 부대, 이런 것들이 다 있는 태평성대를 누리는 상황 가운데서도 그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특정한 사람들을 쓰시려고 할 때, 한 번 흔들어 놓으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많은 성도들이 “목사님, 저는 흔들리면 안 됩니다. 싫어요!!” 할 수 있다. “저는 인생 1막으로 좋습니다.” 그럴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일은 그렇게 만만하지 아니하고 또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위해서 필요할 때마다 우리를 쓰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를 한 번 테스트 하신다. 어떻게 테스트 하시는가?
 
*역대하 14:9,
9 구스 사람 세라가 그들을 치려하여 군사 백만 명과 병거 삼백 대를 거느리고 마레사에 이르매.
-58만의 큰 용사와 활 부대 방패부대 창 부대, 이런 나름 현대적인 전략을 구사하는 아사 왕 앞에 구스사람 왕 세라가 백만 명의 군사를 데리고 치러온다. 그 당시 최고의 신식 무기 철 병거를 가지고 와서 겨우겨우 대포나 좀 쏘아야 되는데 아브라함 탱크로 밀어버리는 것이다. 최신식 탱크로 밀어버리는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도 폴란드, 노르웨이도 수출한다. 그런데 이것을 그냥 팍!!, 비행기 프로펠라가 날아가는데 F35가 최신식이 그냥 두드리는 것 같다. 그럴 때, 우리의 삶에, 일상에도 내가 감당 못할 갑작스런 그런 큰 위기를 경험될 수가 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일상의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이 오늘의 키이다. 11절에 담고 있는 기도가 특별하게 세 부분으로 중요하게 나누어 있는데 이것을 여러분들의 삶의 현장에 삶에 낭떠러지에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머리를 확 잡아서 끌어올려 주시는 축복을 주실 것이다.
 
*역대하 14:11,
11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첫 번째
I. 주밖에 도와줄 분이 없다.
-이것은 신앙의 고백이다. 아사의 어떤 삶의 고백적 선포이다. 주여, 주님 밖에 나를 도와줄 이가 없습니다. 이걸 우리가 평범하게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여기에 중요한 뜻이 담겨있다. 왜냐하면 어떻게 보면 58만이 큰 군사였다. 아무리 병거 3백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나름 창 부대 방패부대 활 부대를 가지고 싸울 수도 있다. 아사 나름대로 어떤 전략적인 지혜를 가지고 싸울 수도 있고, 외교 연대를 해서 주위 나라들과 서로 구스를 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충분했고 그의 실력과 능력도 있지만 그는 다 두고 “주님 밖에 나를 도와주실 분이 없습니다.”라고 한다. 백만 명의 군사 앞에서 자기 꾀가 아니라, 소위 이 전쟁의 총지휘권, 총 작전권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이웃나라와 외교로 풀 수도 있다. 결정적인 부분에서 하나님만이 나를 도와주신다고 그렇게 고백하는 것이다. 자, 이럴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아사 왕이 자기 실력으로 감당할 수 있었지만 주님 밖에 나를 도와 줄 이가 없다고 하는 그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이 전쟁의 양상이 달라진다. 어떤 식이냐면 아사와 세라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구스 왕 세라와의 싸움으로 만들어 주신다. 유다 왕국과 구스 사람과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과 구스 사람과의 싸움이 되는 것으로 만들어 주신다. 12절에 보면,
 
*역대하 14:12,
12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구스 사람들이 도망하는지라.
-놀라운 것이다. 여러분들, 일상의 삶의 현장에서 부흥의 소낙비가 부흥의 강으로 일상 가운데 면면히 흐를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에 중요한 것은 “주님 밖에 나를 도와주실 이가 없습니다.” 그럴 때에 나와의 관계가 아닌 하나님과 그 환경과의 싸움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 우리 마음에 우리가 살다 보면 피눈물 나는 일도 있다. 진짜 답답하기 짝이 없는 가운데 그 상황에서 나의 현재의 아픔과 마딱 뜨려지면 내 삶의 피눈물이 더 많다. 그 상황이 되면 하나님은 다 아셔. 하고 하나님이 앞서서 치시는 것에 대한 내 마음에 간절함이 깨달아지기 시작한다. 여러분, 지금 감당할 수 없는 환경, 아무리 마주해서 애를 쓴다고 하더라도 백만 대군 때문에 망연자실 하는 그런 상황이 있을 수가 있다. 그럴 때, 여러분의 그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대 그 상황으로 만드는 ‘주 밖에 나를 도와 줄 이가 없다.’고 고백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상황을 바꾸어 주신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너무 중요하다.
 
※저희 2009년도에 특새에 오셔서 큰 은혜를 주신 닥터 이희동 박사는 소천 하셨지만 그분이 깨닫게 하는 것이 있다. 세계무역협회 부총재로서 넘버 2로서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짐이 많은데 어떻게 이것을 해결 하냐고 하니까, 나한테 명언을 했다. 자기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고민만 막 하다가 5분 만에 해결이 안 되면 무조건 하나님께 다 맡겨버린다고 했다. 5분 안에 해결이 안 되면 그 때부터는 무조건 하나님께 다 맡긴다고 했다. 이분은 5억 달러를 기부했다. 그렇다. 이분이 주 밖에 도와 줄 이가 없다고 하는 것이 ‘하나의 현장이구나!’ 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3분, 5분 해보면 우리 힘으로 해결 안 될 때가 많다. 그냥 드려버려야 한다. 그 때 맡겨서 주님께 드려버려야 한다. 처음부터 해야 한다. 인간이 그렇게 5분은 생각해야 한다. 여러분, 우리나라도 같다. 6.25때에 북한이 우리를 침략했다. 그 북한은 아예, 탱크도 없고 해서 그냥 준비해서 쳐들어 왔다. 우리는 아무 준비도 안 되어 있었다. 북한과 남한과의 싸움이 우리는 게임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낙동강까지 조금만 남았었다. 그 순간 부산 초량교회에서 4백여명의 목사님들이 울며불며 기도하셨다.“하나님 밖에 도와 줄 이가 없다.”고 기도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유엔군이 개입하심으로 말미암아 북한과 우리와의 싸움이 북한과 유엔군과의 싸움이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인천상륙작전을 허락해 주셨다. 제가 말씀드리는 요지는 “주 밖에 도와 줄 이가 없다.” 주님 밖에 나를 도와 줄 자가 없다. 이것을 우리가 다 알지만 특새 이후에 실체로 고백하고 경험해야 할 줄로 확신한다. 그럴 때, 내 전쟁이 되면 내 억울함이 거꾸로 솟구쳐가지고 내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되지만 이게 하나님의 전쟁이면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솟구쳐서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이다. 아멘! 내 전쟁이 되어서 맨날 피눈물 흘리지 말고 하나님의 전쟁이 되게 하여서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 역사하시길 바란다. 마귀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하자. 제가 준비하면서 “주여, 마귀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게 하옵소서.” 이 내용을 알 사람은 알도다. 피눈물 흘려본 사람이 하는 이야기이니까 정말 마귀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도록 해야 한다. “마귀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자.”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 여러분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오게 하지 말고, 작전 지휘권을 5분 만에 다 주님께 맡겨야 한다. 매일 매일 삶의 현장에서... 두 번째는

 
두 번째,
II. 주님의 이름을 의탁하여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소위 믿음의 정면 돌파이다. 도망가거나 회피하지 아니하고 특새에 나오면 끝. 계속해서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기도하는 것이다. 믿음의 동지가 있는 곳에서 같이 기도하는 것이다.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다고 한다. 백만,,, 마치 이 내용은 다윗이 물맷돌을 들고 골리앗 앞에 달려가는 것과 똑 같았다는 것이다. 오늘도 어느 선교사님이 “목사님, 저 우크라이나 들어갑니다.” 그 전쟁이 있는 곳에 주님을 의지하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하면서 정면 돌파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다윗이 고백한 대로 시편 18편 29절을 보면,

시편18:29
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이번 특새부흥회를 하면서 오늘 처음 오시는 분은 특새가 ‘특별새벽부흥회’의 약자이다. 특새에 나오면서 너무나 기도제목이 많았다. 좀 제가 크게 이야기 하자면 수많은 우수사려들, 기도의 제목들, 얼마나 가정마다 개인마다 마딱 뜨린 문제들이 많은지, 사실 가정마다 기도제목이 없는 집안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용기와 지혜를 허락하셔서 정면 돌파하는 은혜를 주시길 원한다. 일상의 새벽에 일상의 매일의 삶이 성공하려면 우리가 매주 토비새에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주님 앞에 나아가 그 많은 마귀들을 치러 왔나이다. 라고 고백하는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역대하 14:11b
11-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이제 세 번째가 중요하다.
 
세 번째는
III. 셋째,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오니,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명확한 자기 선포와 자기 정체성이 있는 것이다. 자, 하나님은 누구의 하나님이신가?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주님이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 내 아이덴티티는 무언가? Identity가 무언가?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나는 주의 백성이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이다. 주는 나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의 자녀이다. 이 정체성이 있을 때, 하나님이 누구이냐가 될 때에 로마서 8장 31절을 보면,

*로마서 8:31,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대적해 주신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편이 아니면 못 산다. 우리의 삶의 폭풍은 수많은 환경이 아니다. 사실은 그 가운데 하나님이 내편이고 하나님의 백성인가이다. 거기에 정체성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다. 우리가 하나님 편이다. 내가 하나님 편이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유치하면 고상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은 내가 하나님 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대체로 전쟁을 안 해본 사람들이다. 죽느냐 사느냐, 그 어려움에 처해보고 그야말로 간구할 바가 없고 다른 길이 없는 진퇴양난이 되고 보면 내게 당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내 편이 아니면 나는 못 산다. 우리가 하나님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맞는 말씀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 편이 되셔야 한다. 성경에 다윗만큼 전쟁을 많이 한 사람도 없다. 다윗이 날마다 뭐라고 고백하는가? 다 같이 읽어보자.
 
*시편 118:6,
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너무 중요하다. 여호와는 누구편이라고 하는가? 그러니까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나와 하나님이 동일시가 되면 좀 내가 지면 하나님이 지는 것이다. 가만히 계시네요!!.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편이니까 여러분이 일상에서 매일 매일 영적으로 승리해야 한다. 그러니까 고백을 해야 한다. 이것은 사실 조심스럽고, 고상하게 신앙생활 하는 입장에서는 좀 그렇지만 날마다 피튀기는 현장 속에서 고통당하는 분들은 이 정도라도 안 되면 못 산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어떨 때는 신앙이 유치할 때가 있다. 하나님이 내 편이시다. 내가 지면 하나님이 지신다. 이것은 유치하다. 유치와 극치는 일치하다. 정말 특별한 은혜 그래서 연약할수록 고통당할수록 하나님이 내편이 되시고 전적으로 의탁하고 매어 달리므로 말미암아 매일이 기적 같은 하나님의 신대기 같은 하나님의 신적개입의 은혜를 펼쳐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만큼 절박하다.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기도를 하는데 우리가 절박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지 않으면 길이 없으니까, 오늘 세 번째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시다. ♪나의 하나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기적과 생명으로 나를 채워 주워주옵소서. ~~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안 되니까, 그래서 여러분 이런 은혜가 있을 때, 나와 하나님이 동일시되는 역사,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어떤 정체성, 성경의 독특한 문법을 해결하는 것이다. 언어를 구사하려면 문법을 알아야 하듯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면 독특한 문법이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당신 자신과 동일시하신다. 창세기 12장 초두 부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되라고 하신 다음에 놀라운 말씀을 하신다.
 
창세기 12:3,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이것은 기가 막힌 말씀이고 엄청난 말씀이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한 분 한 분을 가리켜서 “너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겠다.” 라고 하는 말씀은 어마어마한 말씀이고 이런 차원에서 예수 믿는다는 것은 경천동지할 사건이다. 기가 막힐 사건이다. 영적으로 마음이 와 닿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은 동일시하시고 우리 하나님이시고 원컨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해달라고 한다. 너무 중요하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예배가 기적인줄 믿는다. 다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다.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주님은 대한민국의 하나님이시고 우리 사랑의 교회 하나님이시다.
 
*나훔 2:13,
13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원수의 대적이 되겠다.
-앗수르 제국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할 때 뭐라고 하느냐면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원수의 대적이 되겠다.” 앗스르의 대적이 되겠다고 하신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동일시되고 우리 주위에는 강력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 새벽에 적어도 백만 명의 성도들이 날마다 주님 앞에 기도하는 자가 되면 오만 여 교회에서 매일 새벽에 모여서 ‘나를 도와주실 이는 주님 밖에 없다.’고 고백하면 이렇게 매달리고 있으니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다. 저 강대국들로 하여금 주님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그래야 우리가 사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일상이 평안하게 되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뜻이다. 일 주일 동안 먹고 마시고 칼 세미나를 하게 된다. 지난 37년 동안 지켜 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주님의 세미나가 되기를 우리가 마음을 모아야 한다. 오늘 정리를 하겠다. 주밖에 도와줄 이 없다. 하나님과 함께 하고 백만 명이 쳐들어올지라도 기백 있는 기도를 하게 하시고 나와 하나님이 동일시되게 하셔서 주님께서 역사하신다.
 
*역대하 14:13,
13 아사와 그와 함께 한 백성이 구스 사람들을 추격하여 그랄까지 이르매 이에 구스 사람들이 엎드러지고 살아남은 자가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 앞에서와 그의 군대(His army) 앞에서 패망하였음이라 노략한 물건이 매우 많았더라.
-하나님의 하나님이 만 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여기에 여호와 앞에서 그의 군대 앞에서 아사의 군대, 유대의 군대이다. 유대 왕의 군대이다. 이 순간 하나님과 자기들을 동일시하게 되니까 내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 정체성이 있게 되니까 하나님의 군대가 된다.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의 군대가 되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가 되어 이 역사가 우리 가운데 충만히 이루어지게 하시고 이런 은혜가 이 구스(에디오피아)가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주의 권속들이여, 특새의 은혜뿐만이 아니라, 매일의 삶이 현장에서 주님이 여러분들을 붙잡아 주실 것을 축원한다.
 
♧요약
우리 모두가 다 기도를 드리므로 인생을 승리하게 하시고, 인생의 낭떠러지 앞에서 주 밖에 도와 줄 이가 없으니, 우리는 주님께 의탁하고 내가 상대방과 싸우려 하다가 내 눈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고, 주님과 그 대적이 싸움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해결해 주시는, 마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그런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고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고, 우리 교회의 하나님이시니 주님의 손을 꼭 잡고 일상에서 부흥으로 인도하시며 동행하시는 주님 앞에 나아가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구스가 쳐들어왔을 때 아사는 맞서 싸우기 위해 진을 치고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인간적인 생각으로 포기하거나 낙심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을 하나님은 도우셔서 승리하게 하신다. 구스와의 싸움 결과 구스 사람이 전멸하고 유다가 대승을 거두었듯이 인간적인 관점에서 유다와 구스의 싸움은 유다에게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지만 하나님께 의지함으로써 유다가 대승을 거두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하나님께 의지하면 해결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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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4월 9일)
제목: "기품(氣品) 있는 인생"
말씀: 요한계시록 1:9~18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박삼열 부목사님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ㅡ
 
*요한계시록 1:9~18,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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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많이 한 사람들 중에 하나가 일 년 중에 가장 은혜 가장 많이 받는 날이 부활절이다. 매주일이 작은 부활절이 아닌 큰 부활절이 되는 영적인 피크인 이 날에 주님을 찬양한다. 오늘 생각만 해도 존귀함과 품위가 생기는 말이다. 모두가 품위 있는 인생, 거품이 있는 인생이 아니라, 기품(氣品)이 있는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 보니 강단에 ‘카라’라는 꽃을 보니 좋다. 영적인 영광의 대관식이다. 오늘 그야말로 큰 부활절이다. 기품이란,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기품을 유지하고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고, 하나님나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자, 남에게 영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며 어두움을 밝히는 인생이고 믿음 보고 하는 인생이며,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에 기품이 있으면 영적인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자이다. 여성으로 말하면, 에스더 같이 현숙한 여인이며, 룻과 같은 여성이 기품 있는 자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기품이 있는가?
 
*에베소서 4:24,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우리가 주님의 형상을 따라가고 우리는 완벽하지 않지만, 주님은 완벽하시니 완벽한 진리, 완벽한 거룩이 있을 때, 이것을 사모하고 우리도 되기를 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분적이라도 기품을 주실 줄 믿는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듣고 부활주일 날, 오늘 이 자리에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여러분의 삶의 기준이 달라지기를 바란다. 첫 번째 –어떻게 기품이 있는 인생이 될 수 있을 것인가?
 
I. 영광에 압도되어.. 죽은 자 같이 되매.
 
*요한계시록 1:17b,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하나님의 영광, 그의 영광이 너무 압도되어서 바짝 엎드렸다. 오늘 이게 무슨 말씀인지, 일 년의 영적인 피크 이 시간에 내가 하나님 앞에 죽은 자 같이 되는 것은 어떤 뜻인가? 본문을 다시 읽어보자.
 
*요한계시록 1:9~18,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너무나 강렬한 표현이다. 특별히 말씀 중에 내가 죽은 자 같이 되었다. 것은 호스네크로스(Horsenecros)이다. 와 같이 죽음 같이 라는 뜻이다. 생명이 없는 것 같이 죽음과 같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 앞에 죽은 자, 세상의 왕 앞에 죽은 자가 아니고 영광스런 주님 앞에서 죽은 자 같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못 구하고 그 앞에 죽은 자 같이 되면 기품이 있는 인생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요한은 주님의 영광의 광채가 너무 찬란해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이 멀어버린 것처럼 되었다. 너무나 큰 소리 맑은 물소리 같은 우렁찬 소리를 듣고 귀가 멀어져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의식을 잃고 죽을 때처럼 되었다. 주님의 임재와 영광의 무게에 눌려서 숨이 끊어지는 것 같이 되었다. 죽은 자 같이 된 것이다. 저도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어떤 거룩한 충격을 받았다. 요한의 입장이 되면, 우리 모두가 다 이 시간 좀 더 마음이 와 닿는 것이다. 잘 아시는 대로 사도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듯이 사도요한 주님의 심장에 몸을 기대어서 주님의 심정을 깨닫고 주님의 따뜻한 심장소리를 듣고, 주님의 뜻을 제일 잘 아는 자이며, 너무 가까운 사람이고 오죽하면 주님이 사랑하는 자라고 했고, 오죽하면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마지막 남은 인생을 요한에게 부탁할 정도로 예수님과 가까웠다. 아주 가까웠다. 그리고 부활하신 빈 무덤에 제일 먼저 베드로와 함께 달려간 사람이 요한이었다. 아주 한 식구 같이 친밀한 관계였다. 오늘은 이렇게 요한이 고백한다. 그 친밀함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면 요한계시록 1장 17절을 다시 보면,
 
요한계시록 1:17a,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호스네크로스, 부활하신 주님을 요한이 처음 볼 때, 너무나 기뻐하고 황홀해가지고 초자연적인 느낌을 받았다.
 
*누가복음 24:41,
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런 기쁨이 있다. 요한이 주님을 만났을 때, 이런 기쁨과 놀라움과 황홀함이 있었는데, 오늘 이 상황에서는 너무나 거룩함이 커서 완전히 죽은 자처럼 엎어진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의 그 신성과 영광이 놀라웠다. 예수님의 모습에 얼마나 놀라웠는지 그의 얼굴이 해가 비추는 것처럼 찬란하게 빛이 났다. 그의 얼굴은 불꽃으로 이글이글거렸다. 풀무 불에 단련한 주석 같고, 목소리는 맑은 물소리처럼 강력하고 우렁차셨다. 예수님의 드러난 신성, 너무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고 다시, 요한이 그의 앞에서 엎드려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한다. 요한은 본래 웬만한 것 가지고 끄떡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요한은 그 새 예루살렘의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볼 때도 그거 봤다고 죽은 자처럼 엎드리지 않았다. 일곱 영과 일곱 군대를 보고도 보좌의 타는 불을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요한은 두려워 떨었다는 말이 없다. 세일 산에 무지개를 바라보고, 수정 같은 파도와 타는 불을 보아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요한계시록에서 수많은 특별한 계시와 다와 엎드렸다는 말은 없다. 그 정도로 엎드리지 않았다. 요한계시록에 수많은 계시와 지옥으로 가는 문을 보았어도 겁먹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밤모섬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고 부활하신 주님 앞에 죽은 자 같이 된 것이다. 여러분 죽은 자 같이 된 것은 거룩한 엎드림인 줄로 확신한다. 거룩한 엎드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할 때, 기품 있는 인생이 된 것이다.
 
제가 말하는 이 기품이라는 것은 세상 적으로 무슨 자기 혼자 열심히 노력해서 혼자 지키고자 하는 어떤 체면이나 윤리나 도덕 정도가 아니라, 영광스런 주님을 대면함으로 죽을듯한 거룩한 긴장감에서 형성된 영적인 기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目睹)하고, 반사하고, 체험한 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흔적(痕迹)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거룩한 흔적, 여러분, 죽은 자 같이 된 것이, 어떤 게 죽은 자 같이 된 것인가?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에 우리는 죄로 가득한 인간이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하는 것이 온통 죄 밖에 없는데 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이 완전히 순전하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때, 의식을 잃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오죽하면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앞에 무슨 말을 하는가?
 
*이사야 6:5,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여러분,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고 납작 엎드릴 때, 죽은 듯이 되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기품이 되고 체화되고 우리의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본당에 들어오기 전에 세상의 거품을 뒤집어쓰고 지친 얼굴로 들어오면 이 영광스런 부활주일 날, 말씀과 찬양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고 그 앞에 마음을 납작 엎드려서 마치 죽은 자처럼 되어서, 호스네크로스, 그럴 때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기품이 인생이 될 줄 믿는다.
 
주일 날 아침에 7시에 교역자들과 모여서 기도한다. 이 예배를 위해서 ‘만군의 여호와’를 찬양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시도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 그 고귀함이 그 말씀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시도다. ♬~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우리가 살아갈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자. 아멘, 구할 때마다, 예배들 드릴 때마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 우리의 부족함, 연약함 우리의 뻣뻣함 모든 것들이 마치 죽은 자 같이 이런 고백을 드릴 때,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II. 오른손을 내밀며 두려워하지 말라​.
 
*요한계시록 1:17b,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이 영광스런 주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이 부활하신 신성이 있지만 이 땅에 신성을 감추시고 주님의 겸손하시고도 말씀처럼 오른 손을 내밀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우리를 이렇게 대우하셨다. 마음이 상처 받고 병든 자들에게 손을 내밀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만나서 말씀의 손을 내밀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우리 예수님은 너무나 찬란한 영광의 주님이신 동시에 오늘 오른손을 내밀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심을 믿는다. 아멘.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오른 손을 내 미셨는가? 그 오른 손을 내 미실 때마다 눈먼 자가 눈을 뜨고, 손을 내미니까 어린 아이들이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 저는 주님께서 아주 드라마틱하게 오른 손을 내 미신 그런 내용을 잘 알고 있다.
 
*마태복음 8:3,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당시에는 나병환자가 주님 앞에 나올 수가 없었다. 율법에 의하면, 나병환자는 얼굴을 감싸고 덮어야 했고, 길을 갈 때도 나는 부정하다고 소리쳐야 했다. 그래서 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피할 수 있도록 나병환자를 경계할 수 있도록 율법은 그렇게 정했다. 스스로 자신이 부정한 자라고 외치며 일생을 저주 받은 자로 살아야 했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너무나 놀랍다. 이 나병환자가 처음으로 따스함을 느껴보는 것이다. 그 동정의 눈빛과 눈물 콧물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오늘 이 요한에게도 내가 영원히 사모할 그 주님의 이 따뜻한 손길, 오른 손의 손길을 내밀어 주셔서 납작 엎드려 죽은 자 같이 된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오늘 이 자리에 나병환자처럼 그냥 얼굴을 가리운 자, 기가 막힌 환경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지금 손을 내밀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그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소망한다. 이럴 때에 여러분 얼마나 강력한 양면성인가? 일곱별을 잡으신 예수님의 능력의 거룩한 그 영광의, 영광의 영광의 손이 있고, 또 주님이 갈보리에서 못 박히신 사랑의 손이 불꽃러럼 타오르는 예수님의 손이 있고, 동시에 나사로의 무덤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신 눈이 있으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철저한 권세를 가지고 다스리시는 강력한 그 음성이 있고 동시에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시는 주님의 따뜻한 음성이다. 이 양면성을 주님은 가지고 계신다. 이것만 우리가 깨달아도 기품이 있는 인생이 될 수가 있다.
 
*마태복음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의 한 없이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신 그 주님을 생각만 해도 얼마나 좋은가? 강력한 기품이 있고 강력한 영광이 있는 주님께서 오늘도 오른 손을 내밀어 주셨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마다 매 순간, 평생 우리 가운데,,, 우리는 인생이 무장될 수가 있다. 주님은 뭐라고 또 말씀하시는가?
 
 
III. 주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이고 세세토록 살아있는 분​.
 
*요한계시록 1:17-18,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오늘 본문에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내가 전에 죽었지만 살아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셨다고 하신다. 그래서 마치 죽은 자 같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목도하고 또 주님의 그 오른손을 통하여 따뜻함을 느낀 것이다. 세세토록 살아계신 것으로 믿는다. 요한복음 1: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셔서 처음과 마지막이신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평생 거하심을 찬양한다.
 
*요한복음 1:14,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이 처음이요 마지막이 무슨 뜻인가? 세상의 왕들이 사라지고 세상의 권력자들이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가 쇠하여 없어진다 하더라도 예수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시라는 것이다. 땅이 없어지고 지구 전체가 사라진다 해도 모두가 사라진다 해도 온갖 전염병과 지진과 쓰나미가 덮친다 하더라도 주님은 영원히 계시고 처음과 마지막이요, 세세토록 살아계신 줄로 믿는다. 히브리서 1장에 보면,
*히브리서 1:10,
10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땅에 기초가 무너지고 이 세상이 없어진다고 잊혀진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은 영원히 살아계신다. 이것을 생각만 해도 거룩한 기품이 생기는 것이다.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이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살아계신다고 했는가? 모든 시대를 통 털어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항상(恒常)에서 항상까지 살아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셨다고 하신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세세토록 살아계셔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그분이 지금 이 시간 살아계심을 깨달으면 우리의 삶에 온전하게 영적 기품이 되는 것이다. 세세토록 살아계신 주님이 우리의 삶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우리 가운데 계심을 믿는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영원히 주님이 동행하시고 영원히 산다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다. 무슨 뜻인가? 2천 년 전 유대 땅을 걸으셨던 주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신다. 아멘. 이천 년 전 이 마을에서 저 마을에 다니시면서 가난한 사람, 병자, 거지 애통하는 자를 만나주신 그 주님이 지금도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낮과 밤에도 함께 계시며 그분과 함께 걷는 자에게 세심하게 귀 기울여 주시고 친구가 되어주시는 것이다. 때로는 벅찬 영혼을 가지시지만 우리에게 참으로 관대하신 주님이시다. 이천 년 전에 가난한 사람, 병자, 거지 애통하는 자를 만나주신 그분이 오늘도 우리를 만나주신다.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고 세세토록 함께 하시는 증거가 무엇인가? 오늘 이 예배가 증거이다. 지난 이천 년 동안 한 결 같이 한 주일도 빠지지 아니하고 전 세계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다면 이것은 헛것이다. 이런 이천 년 동안 하시는 예배가 가짜인가? 엉터리인가? 모조인가? 주님은 세세토록 살아계신다. 우리가 이 예배에 참석하고 감사하고 감격하고 한 결 같이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지난주일 날 어떤 분이 LA에서 왔는데 자기 생애에서 이런 큰 예배당에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하는 곳은 처음이라고 했다. 크든 작든 상관없이 2천 년을 한 결 같이 예배하는 것이 이것은 주님이 살아계시지 않으시면 불가능한 것이다. 살아계신 주님을 예배할 때 이 예배를 통하여 살아계신 주님의 은혜가 임할 때, 지금도 아픈 자를 고치시고 마음 상한 자를 만져주시고 오늘도 고통 가운데 있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눈물을 닦아 주시고 불순종하는 자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 주님이 살아 계시는 것이다. 나만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 주일은 우리가 태신자 작정 카드를 쓰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일 년의 한 번이라도 살아계신 주님을 여러분들이 체험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치유하신다.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지난 2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신 것처럼 지금도 구원하신다. 수많은 사람들을, 저 그 때에 마상에서 떨어뜨린 그 주님께서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을 구원하시고, 어거스틴을 그 더러운 삶을 깨끗하게 하시고, 요한켈빈과 요한에슬리, 무디와 스펄전 손양원 목사님 등등,,, 모두를 살려주시고 회복시켜 주신 것이다.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는 것이다. 한 결 같이 오늘도 역사하시고 통치하고 계신다.
 
우리가 완전한 영적인 진정한 참된 기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여러분 세대에 이 부활절이 최고의 행복한 부활절이 되어야 한다. 참 된 부활절이 되려면 영적인 기품이 있어야 한다. 이 기품이 있을 때, 알파와 오메가로 세세토록 살아계신 그 주님과 동행한다고 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생각해보라. 아브라함이 평안할 때에 그의 생의 기품이 있었다. 아브라함이 고귀함이 남 달랐다. 든든한 성벽에 있는 것처럼 평온했다. 적절한 삶을 유지했다.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을 예배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서툴거나 서두르거나 게으르거나 그러한 적이 없었다. 항상 기품을 유지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살아계신 안에서 거룩한 기품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오늘 본문에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계신다고 했다. 무슨 말씀인가?
 
*요한계시록 1:12,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지금도 일곱 금 촛대인 교회를 보고 계시며 하나님의 교회와 공동체에 임재 하셔서 살펴주신다. 오늘도 예배하는 이 자리에 계신다. 우리가 찬양할 때 하나님은 받아주신다. 성령의 갑절을 느끼게 하신다. 그러기 때문에 기품을 회복할 수가 있다. 이 교회에 교역자와 중직 자와 모든 회중들에게 하나님의 존귀한 기품이 닮아서 넘치는 기품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란다. 이번 주 찬양은 어린양의 피로이다. 주보에 있다. 늘 찬양하는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I entered holy of holies​.
I enter through the blood of the Lamb
!!~~~
우리가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과 주님의 오른손으로 만져주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놀라운 주님의 임재를 느끼기를 바란다. 활절에 어린 양의 피로를 원수들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우리의 기품이 있어야 한다. 예수 믿는 자들이 기품이 있어야 한다. 한 결 같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 다윗도 한 결 같이 아임 리턴 했다.
 
​♧요약
찬란한 주님의 영광 앞에 죽은 자와 같이 납작 엎드릴 때, 성령에 감동되어 거룩한 영적 기품을 가진 자로 변화되어야 하며, 예수님이 따뜻한 손을 내밀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심을 깊이 깨달아서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주님과 동행하여 흔들림 없는 삶 가운데, 세상 가운데 영적 기품을 유지해야 한다. 주위에 믿지 않는 자를 태신 자로 작정하여서 주님의 나라를 진정으로 함께 들어가는 자가 되어 주님의 자녀로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 환상을 허락받은 요한의 현재 형편과 상태는 그가 그리스도를 믿고 따랐기 때문에 핍박당하고 추방되어 아마도 수감되었을 것이다. 그는 사도였지만 이들의 '형제'였다. 그는 환란에 이들과 동참하는 자였다. 핍박을 받는 하나님의 종들은 혼자 당하지 않았다. 그가 이들과 인내에 동참했다. 여러 상황에서 뿐만 아니라 은혜를 입는 데서도 이들과 함께한 것이다. 이런 말로써 그는 이들과 공감하고 이들에게 조언과 위로를 주도록 애쓰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가 이 환상을 허락받을 때 있던 곳: 그는 밧모섬에 있었다. 이러한 감금 상태 하에서도 이 사도에게 위안이 된 것은, 자기가 악행자로서가 아니라 예수를 증거 한 때문에 고난을 당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고통을 감수할 만한 명분이었다. 그리고 영광의 영, 하나님의 영이 이 핍박받는 사도에게 임해 있었다. 그가 이 환상을 받은 날과 시간: 그때는 주의 날이었다. 그는 성령에 감동되어 있었다. 그는 환상을 받을 때 뿐 아니라 받기 전에도 그러한 성령의 감동으로 충만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성령의 조생력으로써, 흔치 않은 자기 현현을 위해 그 백성들의 영혼을 평소에 준비시키신다. 그가 들은 것은 마치 나팔 소리가 나듯이 경종을 들었다. 그것은 이제 그에게 계시될 것들을 써서 즉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사도에게 명령하시는, 처음이요 나중 되신 그리스도의 음성이었다. 그가 본 것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가 몸을 돌이켜 그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자, 놀라운 환상의 한 장면이 그에게 전개되었다. 그는 교회가 일곱 금 촛대라는 상징으로 표현된 것을 보았다. 교회가 촛대에 비유되는 것은 그것이 복음의 빛을 훌륭히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는 금 촛대 사이에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적인 모습을 보았다. 그는 전에 그처럼 그리스도와 친숙했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찬란한 영광 가운데 나타나시자 그 위대함에 압도되어 버렸다. 주님은 그를 일으켜 세우셨으며 그에게 힘을 불어 넣으시고 친절한 말씀을 해 주셨다. 곧 위로와 격려의 말씀으로 두려워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특히 이렇게 그에게 나타난 자가 누구인가를 말씀해 주셨다.
 
첫째, 주님은 그에게 자신의 거룩한 본성을 알려 주신다. 처음이요 나중이니.
둘째, 전에 받은 고난을 알려 주신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셋째, 자신의 부활과 살아있음을 알려 주신다. 나는 산 자라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을 이겼고 끝없는 삶을 누리는 자다.
넷째, 자신의 직무와 권위를 알려 주신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즉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스리는 주권을 가졌노니.
다섯째, 자신의 뜻과 바라는 바를 알려 주신다.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여섯째, 일곱별과 일곱 촛대의 의미를 알려 주신다.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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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4월 2일)
제목: "희생제물의 결심"
말씀: 마태복음 27:33~46
찬양인도: 쉐키나( 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강경식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ㅡ
*마태복음 27:33~46,
33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 거기 앉아 지키더라. 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45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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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성찬식 참여가 현장으로는 3년 만에 처음의 성찬식이다. 그래서 오늘 성찬식 참여가 이전과 에프터를 비교해서 은혜로운 에프터 성찬식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오늘 종려주일, 고난주일이 이번 주 시작된다. 그래서 다음 주일은 부활 주일을 맞이할 때까지, 오늘 말씀이 이 한 주간의 여러분들에게 영적인 길라잡이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 본문 앞에 32절에 지난 주일에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짊어지면’ 구레네 시몬은 잠깐 동안 십자가를 지고 가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구원을 주셨다고 했다.
 
*마태복음 27:32,
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구레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자기 개인의 사건이 아니라 구레네 지역과 초대 근동 고대 사회에 선교 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 십자가를 진 것 때문에 나중에는 이 구레네 시몬이 영광스러운 선교 적 삶을 살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늘 제가 ‘희생제물의 결심’으로 전하게 되는데 오늘 이 말씀은 대상은 특별한 대상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까지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다 대상으로 기억하게 하시는 말씀이다. 어떤 배경을 가졌더라도 십자가를 져야 한다
 
*마태복음1:21,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태복음 1장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무엇인가? 자기 백성을 모든 죄에서 구원하시는 사역을 위하여 그 내용을 오늘 27장에서 오늘 본문에서 완벽하게 완성하셨다. 주님의 사역의 핵심이 있다. 예수님의 구속사역, 대속의 진리로 대신 속죄하신 것이다. 옛날에 대속의 은혜가 너무 크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요즘에는 익숙하지 않다. 대신 속죄하신 그 희생이 놀라운 많은 죄들을 대속하고 십자가의 은혜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자, 오늘 34절을 보면,
 
*마태복음 27:34,
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드렸을 때,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안 마셨다. 왜 그런가? 쓸개 탄 포도주는 마취제의 역할이다. 그러니까 그 고통을 덜 느끼게 하기 위해서이다. 주님께서 그것을 거절한 이유는 우리 죄가 가져온 수많은 고통과 말로 다할 수 없는 그 참혹함을 주님은 다 짊어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고통의 마지막 한 조각이라도 완전히 주님이 짊어지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어떤 그 고통의 무게, 마취의 무게, 이런 것들을 주님은 다 거절하시고 온전히 다 당하신다. 인류의 모든 죄악을 담당하시는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 고통의 마취, 고통의 무게를 회피하기 않으시고 다 받으셨다. 여기에 대해서 주님이 이런 고통을 당하시는데 그 고통을 무게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받으시는 이 대속의 대해서 35절과 54절에 나온다.
 
*마태복음 27:35,
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그들은 로마 병정들이다. 그 당시에는 속옷이 재산 가치였다. 옷이 지금처럼 대량 생산되는 체제가 아니어서 이 옷이 소중한 재산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로마 병정들이 제비뽑아서 가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지금 십자가에서 피를 철철 흘리시고 계시는데 처절한 상황인데, 십자가 아래에서는 옷을 가지고 제비뽑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속옷을 가질지를 이 로마 병정들은 서로 네 것, 내 것 하면서 싸우는 것이다. 누구 때문에 죽으시는데, 영적으로 무디어 있으니까 그렇다. 54절을 보면,
 
*마태복음 27:54b,
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한 종류는 똑 같은 로마 병정들인데, 한 종류는 히히덕 거리면서 제베 뽑기를 하고 완전히 무디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앞에 놓고 우리가 무디어지면 안 되는 줄 믿는다.
첫째는 십자가에 대해서 무디어지면 안 되는 줄 믿는다. 우리의 마음을 순전함으로 회복해야 한다. 이 제비 뽑기하는 이 로마 군정들을 보면서 네 것 내것 하면서 싸우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로마병정들처럼 되지 말고, 로마 병정들은 복음과 십자가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복음과 십자가를 안다고 그면서도 무디어져 있어가지고 세상의 많은 것들, 21세기 인공지능 시대에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마귀는 우리가 십자가의 은혜가 무디어지도록, 민감하지 못하도록, 세상의 고통으로 우리에게 만들고, 세상이 쾌락으로 우리를 무디게 만들고, 육적인 것에 너무 빼앗겨가지고 영적인 것이 눈이 둔해 있으면, 영원한 것에 대해서 너무 둔해 있으면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많이 있게 된다. 우리가 십자가를 앞에 놓고 성찬식, 고난주간을 시작하면서 우리 마음속에 십자가에 대해서 우리 마음속에 무디어진 것을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정리하여 주시기를 소원한다. 피가 솟구치고 있는 주님의 상처 난 어깨, 쇠못이 박혀있는 손과 발인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무디어진 마음이 새롭게 되기를 원한다. 3년 만에 대면 성찬식을 앞에 놓고, 우리의 무디어진 심령들이 있다면 연한 순같이 새롭게 되기를 바란다. 은혜가 없으면 다 무디어진다. 십자가의 은혜에 민감한 사람은 이 은혜에 대해서 민감해지면, 환경이나 사람에게 너무 신경 쓰지 않고, 오늘 여기에 민감해지고 은혜를 받는다. 그래서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가는 자는 은혜의 감격으로 십자가로 무한영광이 된다. 십자가의 은혜에 무뎌지지 말고 은혜에 민감하게 하소서!!. 예수님을 오래 믿고 교회 생활 오래 하면서도 사람들이 왜 무디어지는가?
 
I. 첫 번째 왜 사람들이 무디어지는가?
-내가 희생제물이 되어 지지 아니하고 다른 것을 가지고 희생제물을 대신하면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다. 자신을 드려야 되는데 오늘날 내가 희생제물이 아니고 다른 것을 가지고 희생제물이 될 때에 점점 무디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희생제물을 형식적으로 대신 드리고 그러면 일상으로 도망치니 무디어 지는 것이다. 오늘 성찬식을 앞에 두고 희생제물을 말씀하는 이유는 다른 것을 가지고 나를 대신 하는 것이 아닌 내 자신이 하나님께 희생제물이 되어야 할 줄로 믿는다. 그래서 내 자신이 희생제물이 될 때, 십자가에 대해서 무디어지지 않고 날마다 감사하며 살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희생제물을 사서 바치는 사람도 아니고 희생제물을 다른 것으로 대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 지신이 희생제물이 될 수 있는가?
 
II.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희생제물이 될 것인가?
-21년을 이 교회를 섬기면서 고난 주간의 은혜를 받으면서 어떻게 하면 무디어지지 않고 어떻게 하면 성도님들과 함께 사역을 가지고 십자가 앞에 무디어지지 않는가를 고민해 왔다. 쉽게 말하면 여러분과 저는 은혜에서 대해서 둔감한 것이다. 십자가에 대해서 무디어 지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둔감하니까, 환경과 사람에 대해서 민감해진다.
 
사랑의 교회의 성도들이여, 오늘 이 가운데 십자가의 깊은 은혜에 민감해져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나타나야 한다. 어떻게 하면 희생제물이 될 것인가를, 어떻게 하면 은혜에 민감한 사람이 되고, 사람들이나 환경에 대해서 민감하지 말고 일관성 있게 은혜를 받아야 한다. 내가 희생제물이 되어야 한다. 이 내용을 나에게 적용해야 한다. 1인칭으로 적용하라. 진정한 복음 앞으로 돌아와야 한다. 주님 앞에서는 내가 은혜 받아야 한다. 대신은 아니다.
 
1] 복음의 대한 깊은 각성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이 희생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고린도후서 5:21,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그 순전힌 신분이 죄로 삼으셨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으로 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이 죄로,.죄 덩어리로 삼으셨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죄 덩어리로 삼으시고 우리의 죄 때문에 주님 앞에 다 뒤집어 씌우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수님을 온통 죄 덩어리로 만드셨다. 그래서 인류 역사상 예수님을 가장 흉악한 인간의 혐오스러운 죄를 모은 것을 그 모든 것들을 다 죄 덩어리로 삼으셨다. 이것을 우리가 생각하면 무디어 질 수가 없다. 가슴이 아린다.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은 죄 덩어리가 되셨다. 내가서야 할 그 자리에 주님이 대신 서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차마 보시지를 못했다. 너무나 엄청나고 너무나 참혹하기 때문에 못 보신 것이다. 45절에 보면,
 
*마태복음 27:45,
45 제육 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되더니.
-우리 시간으로 말하면 낮에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이다. 완전한 암흑이다. 지독한 흑암으로 어두워졌다. 해가 빛을 잃었다고 했다. 온 땅이 어두워져서 흑암이 된 것이다. 예수님이 죄 덩어리가 된 참혹한 현장이 완전히 암흑이라는 것이다. 처절한 암흑이 된 것이다.
 
*누가복음 23:44,
44 해가 빛을 잃고~
-여러분, 울진 석류굴이나 .제주도 만장굴을 깊이 들어가 보면 갑자기 불이 꺼져서 나갈 길이 없으면 정말 생각해보라. 깊이 들어가서 한 5분만이라도 완벽한 암흑이 되면 막 공포가 올 것이며 한 시간 동안 완전히 미치기 시작할 것이다. 그 고독과 공포를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정신이 정상이 되기 쉽지가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주님은 참된 진리의 빛의 자체이셨다. 완벽한 진리, 완벽한 광명이셨다. 그분이 죄 덩어리가 되셨기 때문에 완벽한 고통이 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실을 깊이 깨닫고 오늘 복음의 깊은 각성과 함께 주님과 함께 떡과 잔을 받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다 아시기 때문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것이다. 완전히 저주 받는 자, 우리 때문에 죄 덩어리가 되셨다. 그래서 눈물과 통곡이 아니고는 안 되었다. 내 자아는 죽고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하소서
 
*마태복음 27:46,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이 복음의 빛을 깊이 받아야 하나님의 십자가에 더 민감해 지고 주님만 바라볼 수 있다. 이 과정이 지나면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성찬식 앞에서 순수하게 회복되기를 바란다.
 
※ “우리가 진정 그의 십자가 죽음에 참여한다면, 그의 죽음의 능력으로 우리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우리 안에 있는 죄 덩어리가 죽게 되어 타락한 우리의 처음 본성이 더 이상 활기를 가지 못하게 된다. -요한캘빈 [기독교 강요]-
 
-이 내용을 들었을 때, 우리 안에 있는 죄 덩어리가 죽게 되고, 주님이 대신 죄 덩어리가 되어 주셔서 우리 안에 죄가 활기를 갖지 못하도록 오늘 이 떡과 잔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을 인간의 전적타락과 절대주권이다. 인간의 전적타락이라는 것은 이 성찬에 참여하면서 우리가 죄 덩어리인 것과 이 죄 덩어리를 우리의 하나님이 절대주권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실 때, 그기에 대해 은혜에 민감하여 하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우리가 왜 싸우고 힘들어 하는가? 자기 의로 사니까 그렇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아닌 내 주권으로 사니까 늘 고통스럽다. 너무 중요하다. 십자가 앞에서 내 의와 내 주권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살기를 원하며 여기에 진정한 치유가 일어날 것이다. 여기에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희생제물이 되면 내가 이것을 깨달으면 된다. 또 하나의 기도제목은 하나님 아버지, 주님 우리를 사랑해 주십시오. 실제적으로 깨닫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자연스럽게 깨달아야 한다. 복음이 깨달아질 때마다 우리가 청년시절 그 당시에 자주 듣던 찬양이 있다. 찬양 511, 512장 찬양이다.
 
2] 주님을 더욱 사랑할 결심을 해야​.
-결혼할 신랑신부에게 늘 하는 말씀이 있다. 결혼하기 전보다 후가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있어서 더욱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 귀한 성찬식에 이전보다 더욱 이후가 주님을 더욱 사랑해야 한다. 나의 죄를 대신 져 주신 것을 깨달아서 나는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기를 원한다.
 
3]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죄를 미워할 결심을 해야.​
-예수님을 저주의 상태, 흑암의 상태, 완벽한 죄인으로 만들었으니 우리가 죄를 미워해야 한다.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더 이상 죄에 머물지 않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7:14,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우리의 옷이 깨끗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은 모습이다. 이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죄에 머문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이 있을 것이다. 안 된다고 하는 음성이 들릴 것이다. 그리고 알면서도 죄에 머물면 경고를 받게 되는 것이다.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되어야 한다.
 
*베드로후서 2:22,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기가 막히는 말씀이다. 여러분, 개가 토하여서 먹는 것과 돼지가 더러운 구덩이 도로 눕는 것이 되지 않게 죄와의 피나는 투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불이 떨어지게 하여 주시라고 해야 하며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기를 원한다. 여러분 요즘 100세 시대를 어떻게 하는지 걱정을 하는데 은혜에 대해서 깨닫게 되면 하나님이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히브리서 13:5,
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알면 이 고백하면 복음의 은혜에 더 깊이 들어가서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아야 한다. 주님 앞에 서면 우리에게 주님은 회복하게 하실 것이며 역사하실 것이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주 십자가 못 박힐때 그 해도 빛 잃고 그 밝은 빛 가리워서 캄캄케 되었네
나 십자가 대할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들고 눈물 흘리도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갚을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아멘 ! ♪
 
♣요약
주님 안에서 고통과 쾌락으로 어느 샌가 감각이 무디어졌으니 붉은 피가 솟구치는 성찬의 은혜로 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고 거룩한 결심을 하여서 주님의 죄 덩어리로 피 흘려 나의 죄를 대신 져 주셨음을 깊이 깨달아서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나를 의를 죽이고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의 복음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구레네 시몬은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으며, 총독의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쓸개 탄 포도주를 주며, 옷을 나누고 십자가 아래에서 지켰다. 또한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주님을 모욕했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주님을 희롱하였으며, 이때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도 주님을 욕했다. 이 시간은 주님 공생애의 완성을 알리는 시간이요, 인류의 죄를 완성하시는 시간이다. 또한 죄에 대하여는 멀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구약의 모든 제사 제도를 폐지시키셨고, 죽음을 정복하셨으며, 부활의 길을 열어 놓으셨고,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거하셨다. 이 죽으심은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을 주었고, 다시 사신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죽음에서 해방되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에게는 가장 치욕스럽고 저주스러운 사건이지만 그의 대속을 믿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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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3월 26일)

제목: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면"
말씀: 마태복음 27:27~32
찬양인도: 쉐키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오우진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마태복음 27:27~32,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ㅡㅡㅡㅡㅡㅡ
 
▶찬양대가 '험한 십자가 능력 있네.'를 불렀다. 이 십자가의 은혜 찬양으로 십자가의 능력과 기름부음의 체험이 있기를 바란다. 지금 찬양대 뒤에다 ‘새로운 호흡, 믿음 보고 2.0’의 배경이 바뀌었다. 벚꽃이 만개 한 것으로 바뀌었다. 이번 주부터 제주도 벚꽃 봉오리가 활짝 피어가지고 이번 주 시작으로 대한민국이 꽃 대궐을 이룰 것이다. 오늘 우리도 신앙과 믿음과 영적으로 만개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십자가의 은혜로 다 영혼의 봄 동산을 만끽하기를 바란다. 오늘 395명이 입교와 학습과 세례식을 앞에 놓고 모두가 생명의 봄 동산을 경험하기를 바라며, 이 예배에 한 명도 그냥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십자가에 관해서 우리가 나름대로 생각이 있지만 좀 독특하게 제목을 정했다.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면”인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여러분, 익숙하지 않는 성경의 인물을 앞에 놓고 세례식을 거행하도록 하겠다. 오늘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약칭으로 구레네 사람이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가는 사람이었다. 갑자기 로마 병정의 그 강제적인 명령에 의해서 억지로 십자가를 짓다가 억수로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오늘 이 자리에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 왔다가 계신 분은 놀라운 은혜를 받고 돌아가시기 바란다. 32절을 집중해서 보겠다.
 
*마태복음 27:32,
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여기에 눈에 띄는 것이 구레네 사람 시몬이다. 구레네 라는 곳은 지금 리비아, 아프리카 북부이다. 당시 고대 근동사회의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그 시대의 전체 세계였다. 아프리카 북부는 한니발을 비롯하여 굉장히 문화가 발달하고 번영하는 지역이었다. 요즘 말하면 디아스포라 교민 출신 유대인인데 당시 유대인들이 핍박을 받기도 하고 전 세계 118개국에 750만의 디아스포라가 흩어져 있는 것처럼 유대인으로서 디아스포라, 거기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교표 디아스포라로 살지만 꿈이 있었다. 시간도 갖고 돈도 잘 저축했다가 예루살렘에 가서 하나님께서 절기를 지키라고 하라는데 유월절이라든지, 장막절, 오순절, 이런 절기를 한 번 드려보는 것이 이 사람들의 꿈이었다. 그래서 이슬람 사람들이 메카에 가서 예배하는 것처럼, 그래서 이 사람들이 준비를 하고 이렇게 마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꿈이었다. 구레네 사람 시몬도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하는 것이었다. 캘리포니아 가면 우리 교포들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사랑의 교회 다음 달 특새 오는 게 소원이다. 서초 여기 근처에 살면서도 특새 안 나오는 사람들은 그것은 아니다. 이해 불가이다. 여하튼 구레네 시몬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왔다. 갑자기 지나가다가 보니까 사람들이 막 소음을 내고 때창이 들리고 와글 하고 소리가 들려서 보니까 시몬이 궁금해가지고 가보니 어떤 한 분이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온 몸이 채찍질을 맞아 엉망이 되신 것을 본 것이다. 본문 26절을 보면,
 
*마태복음 27:26,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그러면 어느 정도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을 보면 27-28절을 보면 더 알 수 있다. 저는 이 내용을 어릴 때부터 많이 읽었지만 이번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마음에 찡한 것이다.
 
*마태복음 27-30,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조롱하기 위해서 당시 왕에게는 자주색 옷을 입힌다고 했다. 홍포를 입히고 금관을 씌워야 하는데 그 머리에 가시관을 씌워서 머리에 엮었다. 기가 막히다. 그리고 갈대를 오른 손에 들렸다. 자세하게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과거에 왕은 금 홀을 드는 것과 같이 대신에 갈대를 오른손에 들리고 그리고 그 밑에서 병정들이 희롱하고 조롱하는 것이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 하라.’ 하면서 예수님께 침을 뱉고 오른손에 들었던 갈대를 빼앗아서 그 갈대를 가지고 예수님의 머리를 치는 것이다. 너무 아프셨을 것이다. 31절을 보면,
 
*마태복음 27:31,
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마치 짐승처럼 끌려가셨다. 속죄양으로 예수님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 모습을 디아스포라 교민으로 있던 예루살렘으로 제사를 드리러 왔던 구레네 시몬이 이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이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형벌을 받고 있나?’ 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로마 병정이 창을 들이대면서 큰 소리로 “너 이리와, 네가 대신 십자가를 져야 한다.” 당시 식민지 사람은 로마병정이 명령을 내리면 꼼짝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법적으로 옹호할 권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시몬이 강제적으로 끌려간 것이다. 시몬의 입장에서는 완전한 날벼락이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를 분통이 터지는 일이였다 일생동안 준비해서 오고 싶었던 예루살렘을 방문했는데 도대체 알 수도 없는 죄수의 십자가의 틀을 대신 짊어지고 형장까지 가야한다고 자신의 신세를 생각할 때, 너무 화가 났을 것이다. 왜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지도록 하셨는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주님은 구레네 시몬을 구원하시려고 하는 줄 확신한다. 구레네 시몬 같은 영혼을 한 명이라도 더 구원하시길 원하셨다. 겉으로 보기에는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진 것 같지만 시몬의 입장에서는 그런 것 같지만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이었다. 거기에 이 시몬을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로 만들겠다는 주님의 놀라운 계획이 담겨있었다는 것이다. 주님은 골고다로 향하시는 그 어려움조차도 쓸모없는 시간으로 낭비하지 않으시고 한 영혼이라도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도록 하시는 놀라운 계획을 가신 것이다. 주님을 찬양한다. 그 대상이 구레네 시몬이었다. 오늘 이 예배에 아내가 가자고 하니까 억지로 이 자리에 오신 분도 계실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 내가 내키 않는데 계신다면 깊이 생각하는 예배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와 관련해서 십자가와 연관이 되어 있으면 그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은 늘 축복을 주셨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면 그 인생을 하나님은 내버리지 않으시고 놀라운 대 반전을 일으켜 주신다. 이 구레네 시몬 입장에서는 화가 날 일이고, 분통터지는 일인데 갑자기 자기 계획도 다 포기해야 되고 십자가를 지고가야 할 그런 상황인데, 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 때문에 구레네 시몬의 집안이 놀라운 믿음의 가문으로 바뀌게 되었고 이 십자가를 진 것 때문에 나중에는 이 구레네 시몬이 영광스러운 선교 적 삶을 살게 되었다. 제 이야기가 아니고 로마서 16장에 보면 알 수 있다. 바울이 뭐라고 하냐면,
 
*로마서 16:13,
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여기에 바울 사도가 믿음의 영적 지도자들 가운데 루포와 루포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는데 루포의 어머니는 내 어머리라고 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가? 마가복음 15장에 보면 알 수 있다.
 
*마가복음 15:21,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여기 보면 십자가를 구레네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하고 나중에 누가복음에도 꼼짝 못하게 십자가를 지게 한 것을 볼 수 있다. 강제성이 담겨있다. 억지로 붙잡아서 십자가를 지게 한 것이었는데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이다. 그러니까 바울이 알렉산더와 루포에게 문안하라고 이야기 했을 때 그 내용이 뭐냐면, 로마의 알렉산더와 루포가 로마의 영적 지도자였고 어머니가 바울의 어머니와 같은 그런 대우를 받을 정도의 놀라운 가문이 되었다는 것이다. 믿음의 명문가문이 되었다는 것이다. 초대 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된 것이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졌는데 시몬의 아내와 알렉산더와 온 가족을 믿음의 놀라운 가족으로 만드신 주님을 찬양한다. 억지로의 부담을, 억수로의 축복을 만드신 주님을 찬양한다. 오늘 이 자리에 아내로 특별 요청으로 오신 분도 계실 것이다. 오늘 세례 받는 이들도 내게 주신 메시지가 되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영적 가족 여러분,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가면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실 것이다. 젊은이들은 십자가를 지고 가라고 하면 목걸이 십자가도 뒤로 넘겨 걸고 있다. ㅋㅋㅋ 여러분, 그런 게 아니고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힘이 들 때도 있고 힘이 빠질 때도 있다. 오죽하면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의 짐 같은 고생’이라고 하겠는가?
 
저의 부친도 어려울 때, 두 분이 손잡고 찬송을 하시는데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라.’고 찬송하신다. 신앙생활이 어릴 때부터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었다. 쉬운 것은 아니다. 그 고생이 오늘 루포처럼 이유를 모를 때가 있다. 다시 한 번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 가면 억수로 축복을 주심을 찬양한다. 구레네 시몬이 그랬다. 예를 들어서 토비새때에 기도의 지팡이 이것 들고 오라고 했는데 번호를 부를까 싶어서 억지로라도 참석을 하는 것이다. 억지로라도 나오면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이 기도의 지팡이가 그냥 지팡이가 아니다. 나중에 길갈에 열두 돌을 기억할 것이다. 나중에 자녀들이 요단강을 어떻게 건너냐고 물을 때에 하나님의 기적 같은 요단강을 건너게 되었다는 것이 거기에 기념비가 열두 돌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나중에 여러분들이 코로나의 강을 어떻게 건넜으며 우리가 힘들지만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이 코로나의 강을 건넌 줄 믿는다. 이것은 나중에 굉장한 신앙 역사에 남게 될 것이다. 코로나의 강을 건널 때, 마치 모세가 그 뱀 꼬리를 잡고, 그 뱀 꼬리를 잡으면 죽는다. 그러나 뱀 꼬리를 순종하여 잡을 때, 그 지팡이가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샘을 터트리고,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는 지팡이가 된 것처럼 이 지팡이를 억지로라도 감당할 때, 하나님은 베풀어 주실 것임을 확신한다. 제자훈련을 순장님들이 좀 받으라고 하면 일이, 삼년이나 튕기다가 하면 안 된다. 어떤 분은 “목사님, 저는 15년을 튕겼습니다.” 라고 한다. 제자훈련을 억지로라도 받으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다고 한다. 도망 다니다가 억지로라도 한 것이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했다. 새 생명축제에서 억지로 친구초대로 왔다가 예수님 영접하고 영적으로 수지맞은 분들도 계신다. 많은 분들이 내가 억지로 무슨 일이 있겠는가? 한다. 우리 순장님들이 5-10년씩 하다가 만만치 않은 분들은 내가 이렇게 힘든데 ‘내가 어떻게 이 어려운 가운데 영혼을 섬기냐’고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왜 없겠는가? 억지로라도 섬기는 자가 되면 하나님은 주실만한 은혜를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하나님은 어떤 축복을 주셨는가? 이다.
 
스펄전 목사님은 아주 탁월한 통찰력을 말씀한다.
-구레네 시몬이 짧은 시간 동안 십자가를 졌지만, 그것은 그에게 영원한 명예를 가져다주었다. 그로인해서 그의 이름은 영원히 성경에 기록되었다. -스펄전 목사님-
 
그리고 오늘 2023년도 이 귀한 시간,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 설교를 하게 된 것이다. 아마 시몬이 이 알았다면 그 때 더 잘 졌을 것이다. 서울에 안아주심의 본당에서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기가 막힌 것이다. 시몬이 십자가를 억지로 질 때 성경에 그의 이름을 남긴 것처럼, 우리가 십자가를 기쁘게 지면, 하나님 나라의 상급 책에 우리를 남게 할 것이다. 나를 위한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님을 위한 십자가를 지면 예수님 때문에 고난당하고, 핍박당하고 예수님 때문에 손해보고, 예수님 때문에 침 뱉음 당하고, 예수님 때문에 형제를 위해서 오리를 갈 것을 십리를 가게 되고, 예수님 때문에 남편과 아내에게 을이 되고, 이해가 되는가? 예수 잘 믿는 남편은 항상 을이다. 왜? 예수 믿으면서 그것 밖에 못해? 라고 그 순간 팍 죽는다. 예수님 때문에 자녀에게 부모가 을이 되고, 본을 보여야 하기에, 쉽지가 않으니까, 한 마디 쏘아주고 싶은데, 예수님 때문에 을이 되고 그렇게 되면 억지로 십자가를 지면 하나님이 주시는 분복이 있을 것이다. 오늘 본문 구레네 시몬처럼, 아내나 남편이나 친구나 부모의 강권으로 참석한 분도 있을 것이다. 억지로라도 시몬처럼 십자가를 지면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과 명에를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여러분, 열두 제자들이 다 어디에 갔는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훈련했던 열두 제자는 어디에 갔으며, 주님이 특공대처럼 키운 70인 전도 대는 다 어디 갔고, 동지들이 많았는데 예수님께 자원해서 십자가를 지겠다는 자가 한 명도 없었다. 똑 같은 베드로도 시몬이다. 시몬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도 다 있었는데 멀리서 구레네 시몬, 아프리카에서 온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진 것이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의 어떤 깊은 뜻이 포함되어 있는가? 여기에 하나님의 독특한 선교적인 섭리가 들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 지역에 있는 베드로 같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에도 구레네 복음이 필요한 것이었다. 선교 적 측면에서 하나님께서 구원의 섭리가 필요한 것처럼 오늘 구레네 시몬의 십자가를 진 것 때문에 나중에 오순절 성령 강림 주일에 사람들이 막 성령의 역사가 있으니까 각 지역에서 대인 언어로 여러 출신들의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것이다. 그 구레네 출신에 대한 아마 축복이 구레네 시몬이 가진 신앙적 은혜 때문에 영향을 끼쳐서 그랬을 것이다. 안디옥 교회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첫 교회가 된 것처럼 안디옥 교회의 무명의 전도자들 가운데 구레네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고, 또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살로 파송시킨 그 Keyman들 가운데 루기오가 구레네 교포 출신이었다. 아마 이런 내용들을 볼 때, 구레네 시몬의 이런 십자가를 진 것 때문에 그 선교 적 삶을 통하여 구레네에 영향을 끼치므로 이들이 하나님 나라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된 것이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억지로라도 좋고, 떠밀려도 좋고, 어떤 형편에서든지 오늘 시몬처럼 예수님의 형장까지 따라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세례식을 위해 우리를 위하여 피 흘리시고 우리를 위해 죄를 짊어지시고 저주 받은 죽임을 당하고 계신 그 주님의 발자취를 오늘 한 번 따라가 보시기를 바란다. 이 순간이 사순절의 기간이니까, 여러 가지 의미가 여기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고 다음 주에 있을 성찬, 오늘 세례식은 눈으로 보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직접 체험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마무리 하려고 한다.

 
※아랍추장이 있었다. 이 아랍 추장은 큰 말 때를 거느리고 사막을 횡단하던 중에 갑자기 저 멀리 물이 보이자 그냥 사막을 달리던 말 떼들이 그 물을 향하여 질주를 향하기 시작했다. 그 추장 파라스가 말들을 시험하려고 전투 신호를 알리는 나팔을 불었다. 막 갈증에 시달리는 말들 가운데 가다가 멈추고 다섯 말만 전투 신호를 추장에게 돌아왔다. 이게 1635년의 있었던 이야기인데, 지금 이 아랍의 최고의 종마가 이 다섯 마리를 통해서 나온다는 것이다. 갈증에 시달리던 말들이 그 생수를 앞에 두고도 주인에게 순종한 이유가 무엇인가? 일순간에 물로 갈증을 채우는 것도 좋지만, 억지로라도 주인의 나팔소리를 따르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 최고의 복이 된다는 것을 이 말들이 경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이 말들이 순종을 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이유로 갈증에 시달인 말들처럼 세상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주일 날 아침에 지난 한 주간 분주했으니까 오늘은 쉬고 싶을 때, 혹은 다락방이 있는 날은 마음에 안 드는 순원이 보기가 안 좋아서 빠지고 싶을 때가 있고, 친구가 벚꽃 구경 가자고 토요일 저녁에 기차표를 끊어 놓았다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그쪽으로 달려가려고 한다. 세상을 향해서, 이럴 때일수록 토비새에 나와야 한다. 주일예배와 다락방에 가라고 제가 상징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이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오늘 주님의 나팔 소리를 좇아 억지로라도 주님께 참여하면 하나님은 구레네 시몬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아멘.

 
*누가복음 9:23,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는 것이 신앙이다. 오늘 구레네 시몬을 통해 대 반전을 이룬 것처럼,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통해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부르신 것처럼, 우리도 21세기의 구레네 시몬이 되어서 부활주일 날 하나님 앞에서 은혜로 믿지 않는 자들을 초청하는 그런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기를 바라고 소망한다.
 
♧요약
오늘 주님을 순종하여 한 분 한 분 세례를 받아서 인생의 before와 after가 달라지는 새 차원이 되고 그 은혜가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 21세기의 시몬이 되어서 모두가 다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한다. 억지로라도 기도의 지팡이를 들면 억수로의 축복이 될 것이다. 억지로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갈 때, 믿음의 명문가문을 이루게 하시며 영원한 명예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그래서 부흥이 만개하는 영혼의 봄 동산을 경험하여야 한다.
-그리스도는 사형 선고를 받고 나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하여 약간의 시간적 여유를 가졌어야 했다. 그리고 로마 원로원에 의해 제정된 법에도 죄수는 사형 선고를 받은 뒤 적어도 10일이 지나서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께는 잠깐의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폭풍이 그치지 않고 계속 몰아쳤던 것이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진 것으로도 그가 받아야 할 처벌로서는 충분했다. 몸을 죽이려는 자들은 몸만 죽이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원수들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하고자 했다. 즉 그리스도를 지키는 자들이 그를 능욕했던 것은 아마도 그에게 원한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유희를 즐기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면류관을 탐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에게 면류관을 탐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에게 면류관을 씌워 조롱함으로써 즐기려했다.
 

 























-세례 간증- -서용구 성도, 우경의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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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3월 19일)
제목: "메마른 땅이 샘물되고"
말씀: 역대상 2:1~27
대표기도: 안바울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 찬양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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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21:1~27,
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2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 내게 보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 하니. 
3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4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요압이 떠나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5 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백십만 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 명이라 .
6 요압이 왕의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7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8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9 여호와께서 다윗의 선견자 갓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0 가서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내어 놓으리니 그 중에서 하나를 네가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11 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그에게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마음대로 택하라. 
12 혹 삼년 기근이든지 혹 네가 석 달을 적군에게 패하여 적군의 칼에 쫓길 일이든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전염병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천사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이든지라고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지를 결정하소서 하니. 
13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빠졌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4 이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병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죽은 자가 칠만 명이었더라. 

15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러 천사를 보내셨더니 천사가 멸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그 때에 여호와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 곁에 선지라.
16 다윗이 눈을 들어 보매 여호와의 천사가 천지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하늘을 향하여 편지라 다윗이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17 하나님께 아뢰되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하니라. 
18 여호와의 천사가 갓에게 명령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다윗은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19 이에 갓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른 말씀대로 다윗이 올라가니라. 
20 그 때에 오르난이 밀을 타작하다가 돌이켜 천사를 보고 오르난이 네 명의 아들과 함께 숨었더니. 
21 다윗이 오르난에게 나아가매 오르난이 내다보다가 다윗을 보고 타작 마당에서 나와 얼굴을 땅에 대고 다윗에게 절하매. 
22 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하는 곳을 내게 넘기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내게 넘기라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여기 한 제단을 쌓으리니 그리하면 전염병이 백성 중에서 그치리라 하니. 
23 오르난이 다윗에게 말하되 왕은 취하소서 내 주 왕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소서 보소서 내가 이것들을 드리나이다 소들은 번제물로, 곡식 떠는 기계는 화목으로, 밀은 소제물로 삼으시기 위하여 다 드리나이다 하는지라. 
24 다윗 왕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반드시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빼앗지 아니하겠고 값 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하니라. 
25 그리하여 다윗은 그 터 값으로 금 육백 세겔을 달아 오르난에게 주고. 
26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27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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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배와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가다가 만나와 생수를 경험했듯이, 오늘 말씀이 여러분들에게도 영혼의 만나가 되기를 바란다. 생수가 터지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원한다. 지금 제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시리즈 17번째를 한다. 여러분, 부흥이 무슨 뜻인가? 부흥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의 의미가 있는데 오늘은 제 말씀이 아닌 시편기자의 말씀이다. 
 
*시편 107:35,
35 또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시고.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고,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된다고 했다. 좀 깊이 들어가면 우리 인생이 살다보면 메마른 땅이 될 때는 인생이 광야 같고 또 설령, 내 인생이 광야, 사막, 메마른 땅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다윗이 고백한 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임하시면 기적의 현장, 대반전의 역사 때문에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고, 메마른 땅이 샘물이 되게 하신다. 여러분 광야가 무엇인가? 광야는 사람이 살지 못되는 곳이다. 그야말로 메마른 곳이다. 내 인생의 광야라고 했을 때는 그 광야는 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했던 불 뱀이 있는 사람이 살지 못하지만 내 인생의 광야는 나를 낙심시키고, 나를 고갈시키고 나를 탈진시키고 나를 지치게 하고 나를 엎어지게 하는 것이 광야이다. 그렇다면 여러분과 나는 내 인생이 광야 같은가? 나를 탈진시키고, 나를 낙심시키고 나를 고갈시키는 것의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는,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역대 상21:1,
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우리 죄악 때문에 우리가 유혹의 영에 넘어가는 것이다. 또 크세 보면 하나님의 크신 섭리가 있다. 우리 하나님의 크신 섭리,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더 큰 역사를 드러내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인생길을 광야를 걷게 하시는 것이다. 또 우리의 실수나 잘못 때문에 인간적인 선택과 이기적인 선택 때문에 삶이 광야와 고통과 메마름이 오는 것이다. 특별히 여러분과 제가 인생에 광야가 오는 것 중에 하나가 우리에게 사탄의 충동질 하고 사탄은 우리에게 그냥 광야에서 엎어지게 하는 것이 전문이다. 여러분, 보라. 하와를 보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갔지 않은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 직도 하고 하나님 같이 되리라. 라고 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시험 받으실 때, 똑 같이 보리떡덩이가 되고, 천하만국을 보여주면서 뛰어내리라 한다. 광야의 시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일하게 광야에서 시험당하는 것도 다 똑 같다. 그러니까 광야는 우리의 죄악 때문에, 충동질 때문에,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가지고 아니면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룰 수 있도록 광야 길을 걷게 하시고 아니면 우리의 실수와 부족함 때문에 우리가 광야를 걷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결국은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달은 것이다. 새로운 생명의 복음을 깨달으면 되면 이 세 가지는 해결되게 되는 것이다. 참 희한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주께서 “야, 저 사람은 쓰러질 것이다. 저 사람은 이제 끝났다.” 라고 그럴 때, 오늘 하나님 말씀 가운데 
*이사야 32:2b,
2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예수 그리스도는 마른 땅에 샘물 같다는 것이다. 생명의 복음이 우리의 죄 때문이든, 아니면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든, 아니면 우리의 실수 때문이든 상관없이 광야길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유일한 길이 있다면, 생명의 복음을 통한 대 반이전다. 그러니까 생수를 통한 대 반전이다. 
 
*요한복음10:10,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사탄은 우리를 어렵게 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주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의 풍성함을 허락해 주시는 것이다. 자, 이런 내용 배경을 가지고 오늘 드디어 여러분이 아는 것도 있지만 역대 상을 보면 오늘 
 
*역대상 21:8,
8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다윗이 사탄의 충동질을 받았다. 여러분 다윗은 어떤 사람인가? 비대칭전략의 전문으로 골리앗이 죽이려고 할 때, 물맷돌 하나를 들고 나가서 그 골리앗을 이긴 사람이다. 그런데 다윗도 사람이라, 다윗도 사탄이 충동질을 하니까 그렇다. 우리는 잘 한다고 그러지만 어떨 때는 마귀가 유혹할 때가 있다. 그래서 ※리차드 폭스 같은 사람들은 돈, 섹스, 권력(Money, sex and power).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물질에 대한 유혹과 성적인 유혹과 그 다음에 자기 자부심, 그리고 큰 교만에 떨고는 아니지만 우리가 은근한 자부심, 내 나름대로 죽어도 놓지 않는 내 인생이 프레임이 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다. 이걸 가지고 다윗을 충동질 하는 것이다. 뭘 의미하느냐면, 어느 날 다윗오늘 보면 알겠지만 ‘도대체 나에게 전쟁할 수 있는 군인이 몇 명이 되는지 한 번 세어보고 싶다.’고 한다. 여러분, 군인들의 수를 세어보는 것이 뭐 그리 죄악이겠는가? 당시 고대 국가는 전쟁국가여서 군인의 수가 중요했다. 그러니까 왕의 입장에서는 군인의 숫자를 세어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거기에 대해서 그러하시는가? 요압의 잘못도 있다. 6절에 보면,
 
*역대 상 21:6,
6 요압이 왕의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세어보고 싶다고 그래가지고 시키니까, 유다지파가 사람들이 얼마이고, 전체를 보니 이스라엘 사람 중에 칼을 들 만한 사람들이 110만 명, 유다지파가 47만 명, 총 157만이라는 대단한 대군이었다. 참고로 사무엘하 24장에 보면, 130만 명, 17만명의 차이가 있다. 거기는 정규군의 숫자만 센 것이고, 역대 상에서는 정규군과 예비군을 다 합친 것이다. 157만이라는 대군, 옛날에는 지팡이 밖에 없던 다윗의 손에는 군인이 어마한 것이다. 이게 왜 잘못인가? 다윗의 마음이 어떻게 보면 내 손에 들인 157만으로 나는 살 수 있다고 자만하는 것이다. 그것을 사탄이 태클을 걸고 충동질 하고 대적을 하는 것이다. 순수한 목동의 막대기가 아니라, 157만의 대군이 있으니 마음이 높아진 것이다. 자, 하나님 앞에 서니까, 하나님은 강력하게 너 잘못이야,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아시고
 
*역대상 21:8,
8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다 알아듣고 있는가?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적인 지식을 잘 아시리라 본다. 전에는 다윗은 1년 간 모른 척했다. 그러나 여기 본문에서는 다윗이 성숙해가지고 바로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다윗의 잘못에 대해서 자기 157만으로 높아진 다윗에 대해서 사랑의 채찍을 하신다. 그 이유는 다윗을 괴롭히고 상처를 주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더 이상 마귀로부터 참소 당하는 일이 없게 하시려고 하신다. 더 이상 낙심하거나 탈진하거나 더 이상 광야 같은 인생을 살지 않게 하시려고 다윗이 참소당하지 않게 하시고, 더 이상 종노릇 하지 않게 하시려고 하신다. 여러분, 강남 사람들 가운데 잘 나가는 사람들 많다. 그런데 하나님 없이 돈 많은 사람은 대부분은 세파트가 있다. ㅋㅋㅋ 세컨드!~~그런데 처음에는 좋은 것 같지만 You are my sunshine. 하며 그 사람이 죽을 것 같이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 사람은 죽을 굴을 파는 것이다. 여러분, 인생은 다 조강지처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 알 사람이 없도다. 여러분, 돈이 많아도 잘나가도 그 인생은 광야이다. 이것은 예외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으면 죽었을 것이다. 광야는 불 뱀, 물이 나오지 않는 곳이다. 물이 나오지 않는 곳이다. 죽음의 위험이 상주하는 곳이다. 자기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지팡이가 아니라, 157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으면 다윗은 죽을 지경일 것이다. 다윗이 불 뱀이 날아다니는 인생, 죽음의 위험 앞에 시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하니까 안 되는 것이 없게 하신다. 사랑의 매와 채찍을 들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심하다. 다윗은 우리의 인생의 롤 모델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떻게 보면 좀 강하게 다루신 것이다. 그래서 세 가지 옵션을 주셨다. 3년 기근과 3개월 적의 침략과 그리고 3일 전염병을 옵션하신다. 
 
첫 번째, 기근(饑饉)으로 3년 할래?
두 번째, 원수(怨讐)의 공격(攻擊) 앞에 3개월 동안 공격 받을래?
세 번째, 3동안 전염병(傳染病) 맞을래? 
-3일 전염병으로 7만 명 죽음을 주신다. 
*역대상 21:13,
13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빠졌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역대상 21:14,
14 이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병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죽은 자가 칠만 명이었더라. 
-장정들만 7만 명이다. 6개 전투 사단이 하루아침에 다 죽은 것이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인 것이다. 
 
*역대상 21:15,
15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러 천사를 보내셨더니 천사가 멸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그 때에 여호와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 곁에 선지라.
-복선이 깔려 있다. 
*역대상 21;17,
17 하나님께 아뢰되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하니라. 
-왜 그러한가? 시편에 다윗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백성이 잘못이 없다고 아뢴다. 내가 범죄하고 나를 치라고 하신다. 주의 백성을 살려주시라고 한다. 하나님은 그것을 아시고 백성들도 잘못이 있기는 하지만 모세와 같다. 광야는 범죄 때문에 아니면 하나님의 섭리 때문에, 우리 실수 때문에, 거기서 메마름과 위기와 탈진과 낙심과 고뇌가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면 안 되니까 하나님께서 복선을 깔아주신다. 여부스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다. 
 
*역대상 21:26~27,
26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27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
-다윗의 메마름, 다윗의 광야가 다시 한 번, 읽어보면, 예배가 회복되고 끝난 것처럼 보이는 인생이 완전히 낙심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 예배가 회복되고 번제와 화목제가 회복되어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것이다. 여러분과 제가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우리가 주님 앞에 참된 제자, 참된 예배 자, 다윗은 전쟁의 선봉장이었다. 그런데 다시 회복되어 예배의 선봉장이 되었다. 예배를 회복하게 되니까, 그래서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 것이다. 
 
언제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가? 모세가 아론이 첫 번째 제사장 위임식을 드릴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번제 단에 불을 내려주신다. 두 번째는 다윗이 500년이 지난 뒤에 오르난 타작마당에서 번제를 드리니 불이 내렸다. 그다음은 솔로몬이 성전에서 예배할 때 불이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갈멜산에서 영적 전투를 할 때 불이 떨어진다. 우리는 예배할 때, 여러분 불이 떨어지기를 바란다. 하늘의 만나를 경험하기를 원한다. 우리 답답한 인생에 영적생수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주일예배와 생활예배를 주님께 드림으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불이 떨어지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고 그렇게 해서 회복을 넘어 부흥이란 것은 절망적 상황에서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것인데, 절망적 상횡에서 우리가 예배를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기를 원한다. 이게 부흥이다. 
 
*부흥이란 절망적 상황에서 반전이 일어나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것이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기를 바란다. 평생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이 불이 오순절 성령 강림이 일어날 때, 불이 떨어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하기를 바란다. 성령의 불의 연대기가 되는 것이다. 오늘 이 시간 하늘의 불이 떨어져서 우리의 아픔과 실수와 상처의 우리의 죄악과 우리의 유혹들이 다 치유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다. 
 
첫째, 어떤 경우에도 반전을 기대하고 반전 이후를 믿음으로 설계하라.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복선이라고 했다. 이것은 번제 단, 예루살렘의 성전이다. 대단한 것이다. 역대하 3장 1절을 보면, 
*역대하 3:1,
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그 다윗의 어려움, 전투사단이 다 나가떨어지는 그런 비참을 그 복선으로 다윗의 마음을 아시니까 다윗을 죽이고 다윗을 밟으려고 하는 심정이 아니니까 다윗이 프레쉬 하고 다윗이 거룩함을 갖추고 다윗이 새로운 인생으로 고도의 샬롬으로 누리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소원이니까 그것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중에 솔로몬에 의하여 예루살렘의 성전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메마른 땅이 샘물이 되는 것이다. 다윗은 범죄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가운데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구했는데 오르 타작마당이 나중에 솔로몬의 건축마당이 되게 하신 것이다. 나중에 성전이 된다. 하나님의 은총이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의 큰 섭리가 있는 것이다. 오늘 이 안아주시는 본당에서 하나님의 큰 섭리가 타나나는 줄 믿는다. 얼마 전에 이스라엘 대사가 와서 예배를 드렸다. 그때 여호수아 대한 예배를 드리니까 이스라엘 대사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역사라고 말한다. 사랑의 교회와 한국교회가 부흥하는 이유를 연구를 하겠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면 희한할 것이다. 하나님은 징계 가운데서도 대 반전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를 준비한 것이다. 설계한 것이다. 광야 가운데서도 생명이 복음을 믿고 생명의 샘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마귀는 요한복음에 도적은 들어와서 우리를 멸망시키고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를 망하게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의 부끄러움과 우리를 대 반전시켜가지고 우리의 타작마당이 예루살렘의 성전 되게 하시는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그걸 깨닫는 것이다. 여부스족 오르난의 입장에서도 땅을 사겠다고 하니 아이고 아닙니다. 그것을 다 드린다고 하니, 그러면 안 된다고 다윗이 금 600세겔을 주고 산다. 평범한 농부로 살다가 가정에 천사가 오고, 다윗이 또 찾아온다. 그리고 오르난 입장에서는 영적부흥과 금 600세겔이 어마하게 큰 것이다. 영적 부흥과 경제 부흥이 동시에 온 것이다. 우리는 주류가 아니고 돈이 없다고 할지라고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면 여부스 사람 오르난처럼 영적부흥과 경제부흥이 동시에 일어나게 하시는 것이 부흥이다. 메마른 인생 가운데서 말씀을 공부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 복음을 전하게 되면 오르난처럼 영적 부흥과 경제 부흥을 주실 것이다. 어려움 가운데서 말씀을 보고 사명에 집중할 때 하나님이 마음을 보시고 오르난의 성전 터가 되는 것처럼 기가 막히는 대 반전을 주시는 것이다. 믿음의 용량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하늘의 만나를, 하늘의 생수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말씀 공부와 주님을 사모함으로 영적부흥과 경제부흥으로 인도하신다. 
 
둘째, 어떤 경위에도 결코 좌절하지 말라. 
-다윗의 입장에서는 형벌을 받은 것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했다. 인생의 광야이고 죽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 다윗은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는 것이다. 다윗의 고백을 보면, 
 
*시편 40:5,
5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다윗은 풍랑의 바다, 험산준령, 그의 인생을 통해 수많은 아픔과 고통과 정말 다윗은 뼈가 상한다고 한다. 그 가운데서도 풍성한 은혜가 너무 많아서 다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돛단배 깃발을 달았는데 풍성한 하나님 은혜로 좌절하지 않는다고 한다.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신 기적이 넘 많다고 한다. 여러분들은 어떠한가? “주께서 내게 행하신 기적이 너무 많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이 장소에서 그대로 될 것이다. 다른 말로는 나는 좌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윗은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만드시는 그 대 반전의 하나님을 믿으면서 좌절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제단을 쌓았다
 
*역대상 21:28-29,
28~29절
28 이 때에 다윗이 여호와께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응답하심을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으니.
29 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성막과 번제 단이 그 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었으나.
*역대상 22:1,
1 다윗이 이르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 단이라 하였더라.
-전쟁의 선봉장이 예배의 선봉장이 되었다. *전쟁의 선봉장이 예배의 선봉장으로.
이게 좌절하지 않는 키이다. 예배자로 섬길 때, 그것이 좌절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이 극도의 불안한 시대에서 이 메마른 시대가 생명의 복음을 갈망하고 체험하는 멎진 기회가 될 수가 있다. 무한이 기본이다. 인피니티, 문명의 대 전환시대가 왔다. 우리가 잘 만하면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제 웬만한 건 교회도 한국교회도 뭐가 어떻다 하지만 여러 가지 논쟁이 이런 무한한 시대에 문명의 대 전환시대가 와버려서 우리가 좌절하지 않고 주님 앞에 나아가면 홍수가 쓰나미 같이 다 쓸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을 잘 알 것이다. 대단한 기회가 될 것이다. 좌절하지 않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이 시대를 승리할 수 있다. 게임이 안 된다. 21세기의 사람들은 광야의 치열한 시대를 걸어가고 있다 제로섬 시스템을 걷고 있다. 그래서 맨날 지치고 쓰러지고 메마를 수밖에 없다. 회사는 경쟁시스템 때문에 그렇고, 학교 가니까 경쟁시스템 때문에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그러나 교회는 이 메마름을 해결하는 유일한 곳임을 믿는다. 교회가 예배를 통하여 생수를 공급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절대로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내 능력과 내 실력으로 살면 좌절한다. 우리가 예배한다는 것은 우리가 위로부터의 능력, 체험을 하늘의 만나를 먹고 매주 마다 공급 받는 자들이니 매 주일마다 새로워지는 것이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었다. 광야의 메마른 곳에 봄기운으로 충만하고 녹슨 심장이 녹아서 여러분의 반전인 영혼의 봄 동산을 경험하기를 원한다. 
 
시인 피천득은 봄이 40이 넘은 사람에게 온다고 했다. 녹슨 심장도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예전에는 40인데 지금은 60세가 40세인 것이다. 이 시인의 말처럼 60이 넘고 봄은 기쁨이고 봄은 창조인 것이다. 여러분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녹슨 심장에 뜨거운 피가 솟구치기를 바란다. 
 
CS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를 보면, 땅에 저주가 일어나서 온 땅이 얼어붙었다. 겨울이 끝없이 계속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느 날 아슬란이 돌아온 것이다. 아슬란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 순간 땅의 저주가 풀리고 눈이 녹고 얼음이 풀리고, 나무의 풀이 녹았다. 봄과 함께 희망이 샘솟았다. 
 
*이사야 35:1~2,
1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2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 이스라엘 대사가 그러는데 시대가 바뀐 것이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는 자는 새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요약
다윗이 교만한 큰 죄를 회개하니 하나님이 사랑의 매로 위로하신 것처럼 우리의 메마른 인생길에서 생명의 복음을 만나 녹슨 심장도 피가 용솟음치는 평생이 되기를 소망하고, 위로부터 주시는 성령의 불이 떨어져서 오르난의 축복처럼 기적의 대 반전이 우리 인생에게도 일어나기를 소원하자. 절망가운데서도 무한한 샘물의 은혜를 사모하여 영적부흥과 경제적 부흥을 경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하게 된 동기는 사탄이 다윗을 격동시켰기 때문이다. 신실한 사람도 자칫 사탄의 꾀임에 넘어갈 수 있으므로 항상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죄는 인구 조사를 죄라고 여기는 까닭은 인구 조사 자체가 죄 된 행동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대의 수효에 집착하는 다윗의 생각이 죄 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죄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믿고 의지하는 행위는 죄악이다. 징벌의 선택권을 주신 하나님은 인구 조사로 인해 다윗은 삼 년 기근과 다윗이 대적에게 패하여 쫓겨 다니는 신세와 온역이 사흘 동안 번지는 징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의로 다윗을 벌하지 않고 그로 하여금 형벌을 선택케 하셨다. 삼 일간의 온역 징벌은 다윗이 선택한 형벌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손에 형벌을 받는 삼일 간의 온역이었다. 다윗은 기왕에 받아야 할 형벌이라면 인간의 손에 벌을 받기보다는 하나님께 징벌을 당하는 편이 더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윗의 간청에 따른 하나님의 지시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잘못은 자기에게 있으니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시지 말 것을 간청했다.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자기가 지려는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고 지시하신다. 즉 입으로의 간청이나 고백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보이라는 것이다. 실천 없는 입만의 고백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오르난에게 요청하는 다윗은 오르난에게 타작마당을 자신에게 팔아 온역이 중단되게 하는 제사를 드리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오르난이 신하이긴 하지만 다윗은 그에게 겸손하게 요청했다. 나보다 못한 사람 앞에 겸손해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비천한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내려오시기까지 낮아지셨으며 죄인의 형틀인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여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복음 전파 사역에 정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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