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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월 29일)
제목: "영적 기백(氣魄)"
말씀: 열왕기상 18:20~29

찬양인도: 쉐키나(이다니엘 부목사님),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유이삭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옥사님
ㅡㅡㅡㅡㅡㅡㅡ
*열왕기상 18:20~29,
20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23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붙이지 말라. 
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추운 날씨에 이렇게 나올 수 있는 환경과 믿음 주시고 건강 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축복이다.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시리즈 11번째이다. 지난주에 고향 교회를 가니까 제목이 거기도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였다.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랑의 교회를 따라 하는 것은 아니냐고 하고, 좀 창의력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그 담임 목사님이 기가 막힌 대답을 하셨다. “이것보다 더 좋은 표어가 어디 있습니까?” 하시며 그리고 “한국교회 모든 교회들이 가장 절실하게 기도해야 할 제목입니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시니 그 반을 듣고 제가 너무 감사했다. 오늘 이 회복을 넘어 이 시리즈는 우리 개인의 어떤 공동체 사고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 개인도 이 제목을 통해 많은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 오늘 제목은 영적기백(氣魄)이다. 찬송할 때, ‘믿는 사람들은 주의 권세이니’ 할 때 어떤 분들은 기운 있게 ‘앞서 가신 주를 따라갑시다.’ 라고 하는데 어떤 분들은 이게 무슨 찬송인지도 몰라 하신 분들도 있다. 하여튼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완전한 기백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회복으로 넘어 부흥’으로 가는 이 과정에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영적 기백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신앙의 엔진이라 말할 수 있다. 여러분, 20-30년 된 차라 할지라도, 오래된 차라 할지라도 엔진이 좋으면 그냥 끄떡 없이 잘 나간다 맞는가? 우리가 개인적으로 나이가 들어가고 또 환경도 바뀌고 시절도 변하지만 영적기백이라는 이 신앙의 과업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영적기백을 소유하면 나이가 들어가도 환경이나 지역이나 시대나 상관이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기백이 왜 이 단어가 필요한가? 우리 입장에서 당장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엔진이기도 하지만 왜 필요하냐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신앙인이 되는 그 순간부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영적기백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예수를 믿는 그 순간부터 그리스도인은 예외 없이 영적 전쟁터에 발을 들여놓기 때문인 것이다. 다 영적 전쟁터이다.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을 잘하면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전투함을 타고 전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귀는 우리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날마다 우는 사자와 같이 달려드는데, 우리는 만약에 패잔병(敗殘兵)처럼, 정말 당나라 군사들처럼 가만히 있다면 안 된다. 오합지졸(烏合之卒)처럼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적 전쟁을 우리가 해야 되는데 우리가 막무가내로 아무런 준비가 없이 뛰어들면 안 되고, 그래서 영적기백을 가져야 한다. 이번 주와 다음 주에 걸쳐서 위해 너무 중요하다. 영적기백과 담력을 회복하고 우리 것으로 무장(武將)되는 영광스런 신앙이 되기를 바란다.
 
저는 오늘 구약의 열왕기상 18장, 여러분이 잘 아는 말씀이지만, 여러분 저는 신구약, 특별히 구약 말씀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실히 믿는다. 이 21세기의 한국과 서울에 사는 우리들에게 인생의 나침반으로서 이 말씀을 주셨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의 현장과 직결(直決)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본문을 보겠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 다스린 지 100년 정도 지난 구약 스토리이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듯이 솔로몬 이후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졌는데 북이스라엘이 아합 왕이었고, 이런 하나님을 버리 바알 신을 섬겼다. 그리고 아합 왕은 악명 높은 이세벨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선지자는 엘리야 선지자였다. 아합 왕이 잘못된 것에 3년간의 기근(饑饉)이 들었다. 온 나라가 고통 했다. 고토이후에 갈멜 산의 영적 전투가 벌어진다. 만약에 이 갈멜 산의 전투를 누가 영상으로 촬영을 했다면 참으로 드라마틱한 장면이 나올 것이다. 소위 이 신들의 전투, 우리가 이렇게 설명하지만 이 신들의 전투를 보게 된다. 여호와냐? 바알이냐?를 보게 된다. 이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떼를 지어 갈멜 산으로 다 올라갔다. 한쪽 편에는 바알 선지자들이 화려한 예복을 입고 서 있다. 바알과 이스라엘 선지자 850명이 서 있다. 그리고 그들은 태양신을 그들은 숭배했기 때문에 태양의 빛을 발하는 금송아지를 목에 걸고 있었다. 그 빛에 눈이 부셔서 눈을 뜨기 힘들었을 것이다. 폭군이 왕이 화려한 옷을 입고 왕실 침대에 서 있다. 그런데 맞은편에는 광야출신 엘리야가 초라한 옷을 입고 수염을 길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서 있다. 지팡이... 우리는 무얼 하든지 제대로 한다. 객관적으로 볼 때, 한 쪽은 너무나 위세가 등등해 보이고, 한 쪽은 너무나 초라해 보인다. 한 쪽은 찬란해 보였고 한 쪽은 불쌍해 보였다. 오늘 본문 앞에를 보면 아합이 뭐라고 하냐면,
 
*열왕기상 17~18,
17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아합 왕이 그 권위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가 너냐고 묻는다. 그러니까 엘리야가 기가 죽지 아니하고 18절에 보면,
18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 너라고 한다. 내가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 집이 우리를 괴롭힌다고 눈동자도 하나 흔들리지 않고 자기가 기가 죽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소위 영적 기백이 있는 것이다. 그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바알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갈멜 산으로 나오게 한 것이다.
 
I 영적 기백이 있는 교회.
 
*열왕기상 18:19,
19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여러분 제가 이렇게 왕 앞에서 담대한 기백을 가지고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가? 엘리야는 광야의 고난을 경험했다. 그리 시냇가에서 배고픔도 체험했다. 엘리야의 기백은 왕실의 산해진미와 안락함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목마름도 경험하고 환경적 고통과 가난한 백성들과 가뭄과 기근을 경험하면서 소위 고난의 과정을 거친 영적 기백인 것이다. 광야를 거친 광야에서 체득된 기백인 것이다. 이런 영적 기백이 우리 교회와 개인도 있을 수 있지만 한국교회가 이런 광야의 경험을 거치고 한국교회가 영적기백이 있는 주님 주시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한다. 구약의 말씀과 오늘 신앙생활의 우리가 연결이 되어야 한다. 영적 기백의 한국교회가 되어야 한다. 과거에 고난의 길을 경험했다. 저는 지금도 고난의 길에서 은혜 받았던 장소나 길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시골에 기도원이나 교회 마룻바닥에서 새벽에 아무도 오지 않은 시간에 혼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시간들과 한 두 명의 성도들이 모여 통회하며 주님께 매어 달리고 기도하는 그 시간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안아주심의 본당도 겉으로는 귀하고 아름다운 그런 본당이지만 이런 고난의 정신이 차곡차곡 쌓여서 우리가 오늘 이와 같이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 믿는다. 본당에 들어올 때마다 한국교회의 기도원의 야성과 고난을 이겨낸 야성이 여기에 축적된 줄로 믿는다고 기도하며 오죽하면 토비새(토요비전새벽예배)마다 이곳이 하나님 아버지 갈멜 산의 전산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곳이 모리아 산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며, 감람산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며, 시내 산이 되게 하여 주시라고 기도한다. 이 자리가 한국교회의 영적기백의 토대가 되게 하여 주시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도록 공동체와 개인에게 허락하실 것이라 믿는다.
 
저는 한국교회사를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한국교회의 혈관에는 고난의 영적기백의 DNA가 흐르고 있다. 한국에 전해지는 복음은 영적전투를 통해 처음 강하게 들어왔고, 강력한 유교에 대치해서 한국교회 선교사를 보니 이런 내용이 나와 있다. ‘보름을 기하여 한국교회의 외국인 가옥을 불태워 훼파하라.’ 외국인 가옥과 교회당을 다 불태우고 파괴하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 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할 것 없이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훼파하라고 탈취하라고 하만이 유대인을 죽이도록 전국에 내린 조서였다. 지금으로부터 123년 전에 1900년에 이용익이나 김영준 같은 수구파들이 전국에 선교사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일시에 박멸하는 계획을 비슷하게 세워가지고 선교사의 집과 교회당을 불태우고 파괴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마치 이 내용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에스더서를 보면,
 
*에스더 3:13
13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보내니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지금부터 125년 전 1898년에 유교의 이름으로 부상들을 부추겨서 우리가 국사 공부할 때 배웠을 것이다. 황국협회라는 것을 내 세워서 반기독교 적 운동을 조직했다. 보부상들은 1898년에 10월에 기독교 학교와 교회당에 경고장을 보내면서 교회를 박멸하려고 협박했다.
1898년에 10월9일자 황성신문에는 보부상들이 교회당들을 훼파하고 교회 신도들을 도륙했다.
-이후 한국교회는 3.1운동에서 첫 3개월 동안 오만 명 이상이 처형되거나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재암리교회 학살 사건을 알 것이다. 교인들이 예배드리고 있는데 다 불태워 죽였다. 절대다수가 기독교인들이 3.1운동에 고생한 것이다. 6.25전쟁, 전쟁초기 6개월 동안 508명의 목사님들이 순교를 당했다. 2천 여개 교회들이 파괴가 되었다. 우리교회 가끔 오셔서 말씀하시는 박영규 목사님, 한국교회사 전문가이신 박영규 교수님은 한국교회 박해 사를 이렇게 정리했다.
*복음은 신분과 민족과 성을 초월하고 그 안에 있는 자들은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 그것 때문에 교회는 박해를 통해 더욱 성장해 왔던 것이다. -김용규 교수-
고난이 한국교회 영적기백을 가져온 것이다. 오늘 이러한 한국교회의 역사와 또 엘리야의 역사와 이것이 우리에게 연결되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럼 어떻게 영적기백을 회복할 것인가? 아니 영적기백을 놓친 우리가 어떤 식으로 이 영적기백을 회복할 것인가이다. 21절부터 두 세가지 정리를 해보겠다.
 
II. 어떻게 영적 기백을 회복할 것인가?
 
*열왕기상18:21,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진정한 영적 기백은 머뭇머뭇 하지 않는 것이다.
 
▷첫째 진정한 영적 기백은 머뭇머뭇 하지 않는 것이다.
-머뭇머뭇 하지 않는 것이다. 엘리야가 백성들을 질타했다. 기회주의 어정쩡한 자세를 취해가지고 양다리를 취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느냐고 묻고 있다. 여기서 히브리어로 머뭇머뭇거리다는 본래 원어에서는 절뚝거리는 것이다. 그리고 26절에 보면 단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하고 한 말씀처럼 춤을 추며 뛰놀다의 동사와 똑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과 같은 단어이다. 백성들이 머뭇거리는 것과 우상에서 뛰 노는 것과 같은 단어로 사용된다. 왜 같은 단어라고 성경기자는 사용하고 있냐면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히 바알을 섬기지는 않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는 소위 회색(灰色)지대(地代)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러하니까 영적 담력과 기백이 안서는 것이고, 소위 종교다원주의 가운데서 담력이 안 생기는 것이다. 혼합주의 밑에서 신음하고 맥아리가 없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 영적기백의 DNA가 흐르게 하려면 머뭇거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 머뭇거리는 것이 무엇인가?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에 우리가 민감해져야 하는데, 다른 신들을 따르지 않고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과 우상 사이를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오늘 결단할 것이 무엇인가? 회색지대는 없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르게 선택하라.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하라고 한다. 지난 수천 역사에서 하나님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바알을 선택할 것인가? 이다. 태양신, 지금도 미국에도 ‘조르아스터교=배화교’를 섬기는 자들이 있다. 중동에도 있다. 태양이나 불을 섬기는 자들이다. 일본의 식민지 시대는 천조대 신이다. 그때도 태양신과 같다. 그 태양신을 섬기지 않는다고 해서 일제 강점기 우리도 순교를 당했다. 주기철 목사님이 감옥가기 전에 장로교 목사님들과 함께 금강산 수양 관에서 총회 수양회를 했는데 그 때 설교가 지금 남아있다. 그 제목이 뭐냐면, ‘예언자의 권위’였다. 한국교회가 엘리야처럼 영적권위를 회복할 것을 주 목사님이 설교하신 것이다. 주 목사님은
“여러분들도 엘리야의 신앙, 엘리야의 기도가 있으면 엘리야의 권능과 선지자의 권위와 담대함을 회복할 수 있다. 생사여탈의 대권을 잡은 임금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그 죄를 책망하는 엘리야는 일사각오의 기백을 가졌다.” -주기철 목사-
-오늘 이 예배를 드리면서 이런 설교가 쉽지는 않은데 여러분과 제가 이 시대를 향하여 영적기백을 가지고 일사각오를 가진다면 수많은 강들이 돌파가 될 것이다. 어정쩡한 상태에 있는 자들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신다면,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겠는가? 여호와이냐? 바알이냐?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부흥이고 영적 기백이고 일사각오가 되는 것이다. 엘리야의 기백이 있으니까 여유가 있는 것이다. 여유가 있으니까 유머가 있고 담력이 있는 여유가 있다. 바알의 응답이 없으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열왕기상 18:27,
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그런 식으로 조롱한다. 이런 것이 다 여유가 있는 것이다. 오늘 엘리야가 조롱이라는 말을 쓰지만 사실 신앙적으로 볼 때 우리가 하는 단어가 아니다. 그러나 영적기백이 있을 때는 장소에 따라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거짓 신을 섬기고 자신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러한 거룩한 조롱도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30절에 보면,
 
*열왕기상 18:30,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증인이 되라고 요청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영적기백으로 확신했기 때문에 하늘의 불이 떨어지도록 해서 엘리야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돌과 흙까지 태운 줄로 확신한다. 어느 시대에 돌과 흙까지 태우지는 시기가 어디 있는가? 자, 이런 내용을 가지고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않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한 가지는 세상의 숫자보다도 하나님의 숫자에 더 민감하면 된다.
 
▷둘째 세상의 숫자보다 하나님의 숫자에 더 민감한 사람이 되어야.
-이제 중요하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엘리야가 850대 숫자만 생각했으면, 아마 어떻게 담대함과 영적기백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사람들은 850:1을 가지고 엘리야 850:1(엘리야) 하나 밖에 없는 엘리야를 불쌍하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엘리야는 오히려 반대로 하나님 없는 850명을 불쌍히 여긴 것이다. 850×하나님 없음(zero)=0, 이 원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세상은 100명이 천 명을 당하고 작은 자가 강국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의 천을 이루는 것을 잘 모른다. 신명기에 보면
 
*신명기 32:30,
30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주지 아니하셨더라면 어찌 하나가 천을 쫓으며 둘이 만을 도망하게 하였으리요.
-영적기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은 모른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는 하나가 열이 둘이 만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적기백의 공식이다.

※850×하나님 없음(zero)=0, -바알신을 섬기는 자,
▷1명의 엘리야X성삼위 하나님(3)=3(만군의 하나님)-이스라엘 백성들. 영적 기백이 된다.
-그래서 저는 3을 좋아한다. 마음 맞는 세 명만 있으면 나라도 세운다고 했다. 이런 3위 은혜가 열두 명이 되고, 이 열두 명 문도가 70명이 되고, 120명이 되는 것이다. 300명의 기도의 용사가 되고, 500명이 예수님 승천의 형제가 되고, 그 다음에 3천 명의 변화가 된 사람이 되고, 7천명이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게 영적 기백을 향한 독특한 공식이다. 변화 산상에서 예수님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 3명을 데리고 변화 산상에 올라갔다. 세 명씩 열 두 제사를 나누게 하신 것이다. 850×하나님 없음(zero)=0가 된다. 꽝이다.
우리 자신X성삼위하나님(3)=3이 되면 세상의 어떤 숫자보다도 압도적인 능력을 가지고 영적 기백의 현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저 그런 사람의 다수의 사람을 쓰신 것이 아니라 영적기백으로 무장된 몇 명의 사람들을 쓰신다. 자신X성삼위하나님(3)=3이 된다.
 
*사도행전 17:6,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그 바울의 초대 교회 그 강력한 복음 앞에 대로마제국이 항복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일으켜서 히브리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 11:38,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여러분, 영적기백을 가지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영적인 핵심 중에 하나이다. 이 한 해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도 그런데 우리는 영적기백으로 또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야 한다. 다시 한 번 우리는 한 알의 사과 씨를 가지고 수백 개의 열매를 볼 줄 아는 하나님의 사람의 눈, 영적기백이 필요한 것이다. 수천 구루의 나무로 울창해진 숲도 한 톨의 도토리로 시작된다. 도토리 가운데서 수천 구루의 나무를 보고 한 통의 도토리에서 울창해진 숲을 보는 기백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한 알의 사과 씨를 가지고 수백 개를 볼 수 있는 기백을 가진 사람들을 주님은 지금도 찾고 계신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오늘 우리 가운데 남모르는 큰 고통을 가지고 계시면, 오늘 이 영적기백의 회복을 주시길 소원한다. 기백을 회복해야 한다. 영적기백의 독특한 공식,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크라이막스가 있다.
 
엘리야가 만약에 “나만 홀로 남았네!” 바알에게 무릎 꿇는 자가 7천 명이 있다하더라도 이 시대는 지금 다 동굴에 숨어있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고 ‘나만 홀로 남았네.’ 라고 했으면, 그리고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그냥 그대로 쓰러져버렸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 엘리야는 이 순간에 문제 지향이 아니라 가능성 지향의 사람이 되었다.
 
▷셋째 문제 지향이 아니라 가능성 지향의 사람이 되어야.
-그래야 영적기백을 가진 것이다. 나 혼자만이 아닌 엘리야는 문제보다도 가능성의 지팡이를 들었다.
환경이 물론 어렵다. 나 혼자만 갈멜 산에 왔다고 탄식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보다도 더 큰 은혜를 사모했다. 문제보다도 가능성에 눈을 뜬 것이다. 요즘 2023년에 들어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모든 환경들에 대해서 모두가 다 어렵다. 물론 상황이 어렵다. 진짜 문제는 우리들의 신앙이 어떤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문제만을 계속 집중하면 우리는 엎어진다. 우리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problem finder, ●problem magnifier, ●problem maker. 이 세 가지 중에 -기도제목을 빙자한 수(기빙수), 계속 문제를 확산시키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문제 증후군에 걸리고 문제 지향의 사람이다.
 
▷우리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1) 문제 발견하는 자=problem finder,
2) 문제 확대하는 자=problem magnifier,
3)문제를 해결하는 자=problem maker.
문제를 가지고 해결하는 자는 가능성을 바라보는 자이다. 이 자리에 모두는 문제를 해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 세상의 문제없는 교회, 문제없는 성도,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살아가고 이 땅을 영위하는 동안에는 모둔 사람들은 문제를 갖고 있다. 아무 일도 안하면 아무런 문제가 안 생긴다. 지난 3천 년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도 있다. 누구인가? 이집트 미이라는 아무 문제가 없다. 다 아는 것 아닌가? 미이라는 누워있으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자식을 키워야 하고 매일 우리는 삶의 현장에 부딪혀야 하는데 왜 거기에 문제가 없겠는가? 교회도 이 귀한 공동체가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앞으로 수많은 우리에게 주신 어떤 사명을 가지고 감당을 하려고 하면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문제 앞에서 문제의 지향성이 될 것인가? 아니면 가능성 지향이 될 것인가?를 우리에게 달려 있고 거기에 영적기백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잘 아시듯이 faith report, 믿음 보고를 한 여호수아, 갈렙은 무엇을 보았는가? 문제를 바라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 한다.
 
*민수기 13:30,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 이것은 문제의 지향이 아니라 가능성 지향이다. 방향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열 정탐꾼은 환경과 아낙 자손을 바라본 것이다. 믿음 보고를 못하고 환경보고를 한 것이다. 우리는 다 메뚜기 같다고 한다. 우리가 다 그들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여호수아 갈렙도 환경도 보고, 거인들도 다 보았지만 문제가 아니라 가능성을 보았고, 먹구름 위에 은빛 광채를 본 것이다. 오늘 예배에 와서 예배와 찬송을 하면서 주님을 집중하면서 여러분 모두가 다 하나님이 열어놓으신 영적 가능성에 확 열리기를 바란다. 아멘!!~~ 지금 한국의 상황이나 인터넷 댓글들을 보라. 너무나 고통스럽고 문제 지향적이다. 이 문제 지향적인 것들이 사람들을 공격하고 화살을 쏘아 대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다짐하고 가야 될 것이 있다.
 
우리 교회는 신학적 바탕인가? 정통보수주의인가? 정통보수주의이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신앙의 흐름이 있다. 이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지식, 지혜, 인간의 판단, 인간의 능력을 더 인정하고 인간의 이성의 틀 안에서 이것을 판단하는 것이다. 성경이 그래서 안 믿어진다. 예수님의 부활도 안 믿어진다. 성경에 능력도 안 믿는다.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인간의 긍정적인 마인드와 적극적인 사고를 다른 차원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긍정적인 것은 내가 중심이 되어서, 내가 힘을 내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행운을 얻는 이 아니다. 우리는 그 가능성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가?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영적기백을 갖는 것을 박탈한 것이다. 사랑의 교회 신앙적 바탕은 우리는 정통보수주이 신학의 바탕에 서 있다. 우리는 성경의 기적을 믿는다. 구약의 기적을 믿는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는 오늘도 이 자리에 임한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너무나도 과학의 발달로 있지만 우리의 프레임은 안 된다는 것은 많지만 똑똑한 사람일수록 문제의 대해서 예민하다. 그러니까 똑똑한 사람에게는 기적이 안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문제의 지향이아니라 가능성을 열어 놓고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이 아니라, 정통 보수 주의인 하나님의 가능성에 대한 귀의 문을 열고 영적기백을 회복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가능성 지향은 세상의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긍정의 마인드가 아니라, 우리는 가능성 지향은 예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마태복음을 보면 대표적인 인물은 예수님이시다.
 
*자유주의 신학 (인간의 이성의 틀 안에서..내가 좋으면 하는 것)=Liberal theology
*정통주의 신학 (나보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믿는 것)=Orthodox theology
-
*마태복음 13:58,
58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나병환자, 어떻게 나았는가? 주님이 하시면 가능하다. 가능성을 주님께 두는 것이다. 마가복음을 보면,
 
*마가복음 5:28,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 혈루병인 여인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 그 자체가 어려웠지만 그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고 뭐라고 이야기 하는가?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라고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제자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어도 경호하는 사람들이 못 오게 해도, 그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라고 하듯이 그녀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이다. 오늘 주님의 옷자락에게만 손을 대어도 낫는다는 것이 여러분에게도 주어지기를 바란다.
 
*마가복음 7:26~28,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귀신 들린 딸의 귀신을 쫓아내기를 간구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모욕(侮辱) 중에 모욕이다. 그러나 가능성 지향의 극치이다. 오늘 우리 가운데 나병환자나 혈루증인 여인이나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자기 딸이 귀신 들었다. 이것 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 영적기백을 가지고 놀라운 가능성 회복하자. 저희들은 원래 6월 3일에 한국교회가 상암 경기장에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의 표어로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하나님께는 전심으로, 그렇게 해서 그날 참여해서 기도의 지팡이를 다 들고 10만 명이 모여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적 가능성을 가지고 믿음의 눈으로,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고 외치는 이 민족의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은 무너지리라 믿는다. 오늘은 영적 기백이 필요하니까 마음의 지팡이를 들고 기도용사 된 나에게 주의 일을 맡기는 찬양을 하자. 지금 2023년을 앞에 놓고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과학, 우리 모든 분야에서 예측이 있지만 그러나 오늘 영적기백을 가지고 그들의 전망이 어떻든 환경이 어떠하든 우리 모두는 믿음의 기백을 가지고 담대함으로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이 한 해 전문가가 무어라고 이야기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정통신학을 따라서 가능성 지향을 가지고 이 시대를 주의 삶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요약
영적 전쟁터에서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머뭇거리지 말고 영적 기백을 회복하여 강력한 부흥으로 나아가며 850:1의 심각한 위기 앞에서도 문제의 지향의 사람이 되지 말고 하늘의 불이 임하는 가능 지향의 사람이 다 되어야 한다. 6월 3일 상암 경기장 집회에 모두가 영적기백으로 충만하여 10만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우리 민족의 홍해가 갈라지는 시대의 여리고 성을 무너지는 기도를 올려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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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월 22일)-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시리즈 10번 째.
제목: "제사장 나라, 크리스천 팍스(peace) 코리아나"
말씀: 출애굽기 19:3-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이의수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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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9:3-6,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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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주일 날 우리는 이 예배당에 불러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오늘 오른쪽에 보면 새해, 새 은혜, 새 역사, 이렇게 해 놓았는데 여러분은 어느 단어가 제일 마음에 닿는가? 올 한 해 새 은혜와 새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자 오늘 온라인과 지방과 가족과 내려간 모든 성도님들 마음을 따뜻하게 해가지고 함께 하자. 오늘 본당에 들어오니 무언가 있지 않은가? 천장에 방패가 있다. 방패도 있고 우리 앞 뒤 ‘새 역사를 경험하기를 서로 바란다.
 
저는 명절 주일 마다 평소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목회적인 풀이랄까? 튼실하게 좀 세워야 할 것을 제가 강조를 하고 있는데 여러분, 교회 사역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사랑의 교회가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교회가 다 있는데, 교회 사역에 제일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뭐냐면 생명사역인 줄 믿는다. 생명의 역사, 생명의 변화, 라이프 체인지이다.
 
오늘 본문에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6개월 정도 경험을 하고, 출애굽을 이제 해서 홍해를 지나고 17장에 보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이기고 이렇게 해서 아마 9개월 정도, 그러니까 모세 입장에서는 1년이지만 지팡이를 들고 난 다음에 일어났던 사건, 지팡이를 들고 한 일 년쯤 지나서 9개월-1년 쯤 된 경험이 나와 있다. 그게 4절에 보면,
 
*출애굽기 19:4,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주님께서 독수리 날개로 업은 것처럼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그 홍해를 건넌 역사는 기적의 역사이고 죽을 사람이 사는 것이다. 생명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홍해를 건너는 생명의 역사가 지속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 사역의 제일 핵심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속에서 확대되는 것이다. 생명의 은혜가 계속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다.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한 은혜가 확대가 되어야 한다. 헬라어로 이 생명이란 풍성한 생명, 영원한 생명, 그 놀라운 어떤 영적 신비의 생명, 이것을 ‘조에’라고 이야기 한다. 물리적인 생명, 육신의 유한한 생명, 이런 생명은 ‘비오스’이다. 제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는 일단 여러분이나 사랑의 교회나, 오늘 지방에 가서 오늘 온라인으로 들어온 성도님들, 느낌에 하여튼 가신 곳에서도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조에’의 생명의 역사를 이야기 하려고 한다. 영원한 생명, 신비한 생명, 풍성한 생명, 이 생명이 교회는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다들 하지만 우리가 사회적인 이미지가 더 좋아지기도 다 있지만 결국은 그런 것들은 하나의 방법론이고 핵심은 교회 사역을 통하여 계속되는 생명의 역사가 재생산 되고 확장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교회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창세기 1장에 보면,
 
조에(풍성한 생명, 영원한 생명, 그 놀라운 어떤 영적 신비의 생명)
*비오스(물리적인 생명, 육신의 유한한 생명,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의 생명)
 
I. 교회는 생명 사역이다.
*창세기 1:28,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
-단순이 육신의 생명의 정도가 아닌 충만한 생명, 영적인 생명의 어떤 번성(蕃盛),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한 생명-‘조에’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만나고 난 다음에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신다. 영원한 생명의 역사의 주인공으로 참여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이거는 너무 신비한 것이다. 육신의 눈 갖고는 이해를 못한다. 이것은 천사라도 이해하지 못하는 신비한 것이다. 그래서 경건과 생명의 관한 놀라운 것은
 
*에베소서 3:10,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이거는 천사들도 알지 못하는 신비한 것이다. 이제 뭐로 말미암아,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너무 신비하다. 흔히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다.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몸의 관계는 무슨 관계인가? 생명의 관계이다. 생명의 역사가 교회 사역을 통하여 계속 확산 되어가는 것이다. 이게 믿음의 뿌리이고 사역의 뿌리이다. 사랑의 교회가 회복을 넘어 부흥의 뜻이 다른 뜻이 아니라, 이 생명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확산되게 하여 주시고 더 확장 되어서 단순한 ‘비오스’의 어떤 생명이 아니라, 육신의 유한한 생명 정도가 아니라, 영적인 신비한 생명, 영원한 생명, 풍성한 생명의 역사가 사랑의 교회를 통해 계속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어떻게 보면 2차적인 것이다. 제가 과격하게 말하면 나머지는 다 데코레이션이다. 우리가 교회 사역을 해야 된다. 문화 사역도, 여러 가지 다 해야 되지만, 교회의 핵심 사역은 생명사역이며 이것보다 우선 되는 것은 없다. 맞지 않은가? 우리 교회는 이 뿌리를 튼실하게 견지하여 세워 나가야 한다.
 
II.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명을 깨닫는 것이다. 주님께서 가장 섭섭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내 뜻을 하나님의 생각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내 뜻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제 하나님께서 풍성한 생명을 주신. 영원한 생명을 주신. 신비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청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오늘 5절에 나와 있다.
 
*출애굽기 19:5,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우리는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나?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내 평생에 내 삶을 통하여 계속 펼쳐질 것인가를 뭐라고 말씀 하냐면,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언약, 우리에게는 생명의 역사가 확산 되어야 한다. 이 신비한 세계를 사람들은 모르고 적당히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차원이 아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풍성한 생명, 영원한 생명, 신비한 생명에 대해서 눈이 열린 하나님의 백성인 줄 믿는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며, 어린 양의 피로 되는 것이다. 이제 그렇게 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내 삶 속에 펼쳐져야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내 삶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언약으로 나타날 때, 언약은 두 종류가 있다. 무조건적인 언약, 조건적인 언약이 있다.
 
무조건적인 언약- 대표적인 것은 창세기 핵심 요절인 창세기 12:1-3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냥 아브라함이 무슨 자격이 있고, 아브라함이 무얼 잘하고 이게 아니고 그냥 불렀다. “너는 조상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라 내가 너를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
 
창세기 12:1-3,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언약이다. 너는 축복의 근원이 되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를 하신다는 것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통해 복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며 다 아는데 저는 그 말씀을 읽으면서 큰 감동도 있지만 한편으로 두려워하는 마음이었다. 왜냐하면 너를 축복(祝福)하는 자에게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咀呪)를 한다는 무조건적인 언약을 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들을 함부로 폄하가 되는가? 무서운 것이다. 어마하다. 이게 축복 권과 저주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 하나님의 놀라움은. 그래서 땅의 모든 족속은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한다. 축복의 모든 족속이 우리 식으로 하면 이웃이 축복의 대상이고 우리는 축복의 근원이다. 우리는 축복의 대상이 아니고 우리는 축복의 근원이고 축복의 대상은 땅의 모든 족속이다. 평소에 늘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잘 못 알아듣는다.
 
그래서 오늘 다시 한 번 시내 산 언약을 통하여 이제 출애굽하고 난 다음에 한 9개월 쯤 지나서 시내 산 언약을 통해서 도장을 찍는 것이다. 6절에 보면,
 
*출애굽기 19:6.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특별히 창세기에서는 무조건적인 언약이었지만 출애굽기 여기서는 언약을 지키면,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약간의 조건적인 느낌이 있지만 그러나 크게 보면 그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너희는 내 제사장이 되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미션스테이트먼트(mission statement)이다. 오늘 사랑의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기를 원하는 우리 한국교회 모든 주의 권속들이여, 우리 마음속에 주님의 주시는 아주 확성기 같은 음성을 듣기를 바란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라. 기가 막힌 말씀이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이 나라가 되라. 아니 이럴 수가 있는가? 이 사람들은 지금 겨우 노예생활을 면한 사람이다. 겨우 노예생활을 면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무슨 제사장 나라, 축복의 근원, 이런 것 아직은 어울리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앞에 놓고 “너희는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라”고 하신다.
 
제가 오늘 말씀을 설교제목을 쓰면서 제사장 나라?, 크리스천 팍스 코리아나? 벌써 어제 누가 목사님, 팍스는 너무 ‘제국주의적’입니다. 라고 했다. 그러면 샬롬으로 할까? 크리스천 샬롬 코리아나? 팍스라는 말은 라틴어로 피스(peace)라는 말이다. 이것이 남용(濫用)이 되어서 그렇지 사실은 좋은 뜻이다. 아니 어떻게 이런 제목을 붙일 수가 있는가? 아니 하루살이 밥벌이도 힘들고 사람들과의 갈등도 일으키고 마음에 짐이 있고 고통이 있고 수많은 기도의 제목이 있고 내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 우리들에게 어떻게 이런 제목, 제사장 나라? 크리스천 팍스 코리아나? 샬롬 코리아나? 여러분, 오늘 이 말슴을 여러분들과 같이 나누는데 여러분들과 저의 환경은 그래도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나은 줄로 믿는다. 시내 산 언약을 받을 때에 이 말씀의 대상인 이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우리는 열 배, 백 배도 더 낫다.
 
우리가 정신 바짝 차리고 오늘 이 말씀을 우리의 사명 선언문으로 받아들이면 여러분의 길이 열리게 되어 있다. 오합지졸 같은 인생인데.. 이 명절 주일에 이 말씀을 하냐면 여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지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종살이 한 지, 노예생활에 익숙한 자, 이제 겨우 풀려난 자들이다. 마치 오합지졸 같은 사람들을 놓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게 대하여 제사장의 나라가 되라.”고 하신다. 창세기 12장에 축복의 근원이 무엇인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시고 계신다. 왜냐면 제사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제사장은 자기 배를 두드리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을 위해 사는 것이 제사장 몫이다. 종살이 익숙한 자, 오합지졸 같은 사람, 겨우 이제 어린 양의 피로 생명의 역사를 경험한 자, 기적과 같은 사람들이 홍해를 건넌 자에게 주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창세기에서 제 1언약을 주신 것을 출애굽기에 제2언약을 통하여 다시 한 번 확증시켜 주시는 것이다.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기 위한 우리의 마음의 소원이 있다면 여러분에게 기도의 제목이 되기를 바란다.
 
이 제사장 나라는 세상의 제국이 아니다. 오늘날 세상은 제국을 세우기를 원한다. 자기민족만 잘 되기 위해서 사는 나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땅에 제사장 나라를 세우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제국을 세우시기를 원하신다면 이스라엘은 이미 끝났고 멸절되었을 것이다. 제사장 나라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것을 근거한 거룩한 나라이다. 어떤 거룩한 나라인가 세상의 풍요로운 나라가 아니다. 이 세상 나라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시작된 나라인줄로 확신해야 한다. 어린양의 생명의 피가 이 장자들의 생명을 지켜 주었고 여기에서 제사장 나라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오늘 우리 주위를 살펴보라. 우리의 가족과 이웃을 보면 우리는 제사장 역할을 해야 하는데 가족과 이웃과 사회는 평화와 샬롬과 구원에 복을 하나님이 주시길 원하시는데 그런데 현실은 남북도 둘로 쪼개져 있고, 또 남쪽도 갈등 가운데서 정치적 이념에서 여러 가지 갈등 때문에 어떻게 해결점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와 여러분이 오늘 날 제사장 역할을 잘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
제가 ‘제사장 나라, 크리스천 팍스 코리아나’라고 했듯이. 라틴어로 피스라는 뜻이다.
*Christian Pax Koreana=(pax=peace, salom) 제가 바라는 팍스 코리아나는 샬롬의 평가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깃발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가는 곳마다 거기에 진정한 샬롬이 임하기를 은혜와 평강을 주시길 소원한다.
 
찢어진 나라가, 갈라진 진영이 서로 하나 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원한다.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아 주셨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나서 잘 해서 그들이 제사장 자격을 갖고 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다. 쟁취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보면,
 
*요한계시록 1: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신구약 전체를 통틀어서 마지막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보고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면 그 사도요한이 영적인 영안이 열려서 깨달은 것은 우리가 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제사장 자격이 있어 가지고 된 것이 아니고 쟁취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제사장이 되고자 어떤 능력이 있어서 된 것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아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 용기를 가지고 마치 노예생활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제 금방 나온 것처럼, 마치 오합지졸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의 부족함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이 내게 주신 레마의 말씀인 줄 확신한다. 오늘 이것을 마음에 다짐해서 하나님이 나를 제사장 나라로 삼아 주셨음에 너무나 감동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
 
*요한계시록 1:5,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나를 하나님이 나를 제사장으로 삼아 주신 그 은혜가 내게 너무 확신하게 되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이 은혜와 평강의 열매를 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은혜와 평강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이것을 날마다 감격하고 감사하기를 바란다. 무슨 뜻인가? 나는 자격이 없고 오합지졸이지만 나는 노예 같지만 하나님께서 생명의 피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면 여러분과 저의 삶에 무엇이 있겠는가? 바로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것이다. 아멘!!!~~ 여기에 눈물이 나와야 한다. 부친은 “눈물은 아꼈다가 뭐하게?”하셨다. 영웅을 보러 가셔서 울었다고 하셨다. 진짜 마음속에 아무것도 아닌 나를 제사장 삼아 주신 것에 감격해야 한다. 눈물을 두었다가 뭐하게??? 우리에게 날마다 있기를 바란다.
 
III. 우리나라는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인 줄로 확신한다. 데이바이데이, 이어바이 이어가 있으면 역사가 일어날 줄 믿는다.
Christian Pax Koreana, Christian salom Koreana,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샬롬의 평강을 이웃들에게 나누시며 축복하게 되기를 바라신다. 오늘 여러분들이 들어오면서 앞으로 45주년을 사랑의 교회를 놓고 한국교회와 함께 우리는 부흥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한 달 전에 미국 워싱턴 D.C와 뉴욕을 다녀오면서 제가 워싱톤 D.C는 자주 가봤고, 뉴욕은 열다섯 번 정도 가보았다. 제가 오랜만에 워싱턴 D.C를 가니까 워싱톤이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정치 1번지 수도이고 뉴욕은 경제 1번지 수도이다. 그런데 뉴욕에 가니까 좀 불편하고 올드 했다. 여전히 정치 1번지이고, 뉴욕은 경제 1번지이다. 여전히 두 도시 영향력은 같다. 변한 게 없다. 그런데 내가 변했다. 여러분 인천공항을 가보면, 세계 여러 나라에 비하면 최고에요. 일본이나 미국이나 창이 가보아도 올드 한데 인천공한은 미래 지향적인 공항이다. 세상이 뭔가 달라졌다.
 
그러니까 서울이란 도시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이며 산이 있고 강이 있다. 그것도 큰 강이 있고 큰 산이 있다. 세계 어느 나라가 토요일 날 느즈막에 일어나서 브렌치 먹고 오늘 산에 가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30분 만에 산에 갈 수 있는 곳은 서울 밖에 없다. 서울뿐만이 아니라,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런 배산임수도 있을 뿐 아니라 서울은 역사까지도 있다. 독특한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래서 지금 폴란드나 UA라든지 이런 곳에서 몇 조씩 한국에 투자하고 방산, 원전, IT에 투자하지 않은가? 왜 이렇게 해외에서 한국에 투자하는가? 나름대로의 한강의 기적이라는 나름대로의 기적으로 서울로 모여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지만 그런데 동시에 안타까운 것은 겨우 저 출산율이다. 전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낮고 아직도 고아수출국이다. 정치적 입장은 말도 못하고 얼굴도 서로 안 보려고 하고 견해가 다르면 부모 자식 간에도 식사를 함께 하지 않으려고 한다. 심지어 결혼은 앞둔 커플이 견해가 다르다고 파혼이 되는 경우도 있고 지역, 세대, 이런 갈등보다도 정치이념이 더 심각하다. 한쪽은 한류가 있고 한쪽은 글로벌 스탠다드로 올라가고 있는데 또 하나는 너무나 그렇다. 이 두 가지가 너무 큰 벽이다. 여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을까? 그냥 이대로 놔두어야 할 것인가? 제가 볼 때는 새로운 차원의 특별한 비전과 놀라운 새 길과 새로운 방향이 잡혀지지 않으면 나라는 길이 없다. 한쪽은 너무 자랑스러운데, 한쪽은 너무도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래서 여기에 무언가가 새로운 길, 새로운 방향을 하나님이 주셔야만 한다. 아니 우리가 말씀 속에서 우리가 그 말씀을 삼아서 집중을 해서 나아가야 한다. 영적인 새로운 길이 열리려면 우리 민족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우리 민족은 조선시대 말기에 비참했다. 관료주의의 득세가 말도 못했다. 그리고 한일의약조약으로 관료들의 보신조약으로 관료들이 자기를 보호하려고 일반 백성들은 안중에 없고 또 일본은 우리를 식민지로 삼고, 그 사이에 우리는 무슨 길이 있겠는가? 국가의 지도자는 엉망진창이고 일본은 식민지 정책을 쓰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생명의 복음으로 주심으로 말미암아 학교를 짓고, 중고등학교를 짓고, 기독교 민족 사업을 짓고, 병원을 짓고, 이렇게 해서 이민족에게 복음으로 유일한 길을 열어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려고 그야말로 역사적인 오합지졸들을 노예 살이 하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들처럼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좋은 면에 있어서 서울과 한국의 어떤 약진을 말씀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적은 의미의 팍스 코리아나가 된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팍스 코리아나를 진보지식인들이나 거부감이 있는 분들은 샬롬 코리아나로 여기면 되고 두 가지 다 평화와 질서, 새 시대를 여는 것이다. 과한 것이 아니다. 아시아나를 살펴보자. 중국은 지금 저대로 가면 희망이 없다. 공산주의이며 희망이 없다. 일본도 겉으로는 선진국이지만 아직까지 신민주의이고, 인도는 계급제도이다. 카스트 제도이다. 그러니까 동아시아의 유일한 희망은 대한민국이다. 본래 성경이 들어와서 번역될 때에 한자, 일본말, 한국말에 ‘자유’라는 개념을 가지고 이 자유라는 말을 번역할 말이 없었다. 수천 년 봉건사회에서 중국도, 일본도, 한국도, 자유라는 성경적 개념의 이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이 들어와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해서 그 자유가 들어와서 우리나라가 자유민주공화국이다. ​이것이 오늘 이만큼 안아주시는 본당에서 예배드리는 축복이 있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우리만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동아시아, 아시아, 샬롬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축복을 주시길 바란다.
 
*이사야 19:24~25
24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여러분 애굽은 이스라엘을 종살이 시킨 나라이며 못 된 나라이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원수이다. 잔인한 나라이다. 어떻게 애굽과 앗수르가 함께 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 나라의 삶을 제대로 살게 되면 주위에 있는 애굽과 앗수르도 함께 샬롬의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중국은 수많은 나라들 가운데서 우리를 괴롭힌 나라이고, 일본도 괴롭혔지만 우리가 잘 하면 중국도 복을 받고, 일본도 복을 받는 것이다. 세계 선교 마무리는 중국 사람들이 떼거리로 선교를 나가야 세계 선교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중국 교회가 새로워지려면 우리가 잘하면 된다. 중국교회가 뷰흥을 가져올 수 있도록 우리가 축복의 근원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앗수르 같은 일본, 중국 이스라엘 같은 한국이 같이 축복을 받아서 다 같이 평강을 누리기를
Christian Pax Koreana 길이 열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제가 말하는 Christian Pax Koreana는 어린 양의 피로 세워진 나라이다. 이 제사장 나라는 어린양의 피로 세워진 거룩한 나라이다. 올해 45주년에 6월 3일에 빌리그라함의 50주년 기념으로 다시 한 번 이 나라가 부흥으로 임하시길 원한다. 9월 25일 한국교회 섬김의 날에는 교회마다 이 사명을 확증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기를 원한다. 오늘 명절에 개인적으로 적용하자. 이 말씀이 나와 어떤 연관이 있고 나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첫째 적용은- 과거 현재형을 누려야 한다.
-과거의 은혜가 현재화로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다 제사장나라를 감당하기 위하여 첫째 우리는 과거에 은혜가 우리의 것으로 접목되어야 한다. 과거의 은혜가 현재화 되는 것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길이다. 과거에 이스라엘의 백성이 받은 축복을 우리가 받는 것이다. 인생의 진퇴양난,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광야 생활에서 받은 축복을 오늘도 받게 하시고 그 이유는 5절이다.
 
*출애굽기 19:5,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하나님께 속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속한 것이다. 과거의 은혜가 현재화가 된다. 여기에 우리가 집중하면 하나님은 베풀만한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두 번째 적용은- 사명선언문 개인적으로 쓰는 것이다.
-제가 출애굽기 19장은 사명 선언이라고 했다. 오늘날은 많은 젊은이들이 보는 것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사명선언을 쓴다. 비전을 쓴다. 이런 것들을 안 한다. 저희들 시대 때는 아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이 무엇인가를 그걸 써보고 비전선언으로 전략도 만들고 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 것으로 접목이 되어서 여러분의 것으로 사명선언으로 쓰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과거의 은혜가 오늘 우리의 것으로 되길 확신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은혜가 우리에게 과거가 현재형으로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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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적용은- 거룩한 공진이 일어나는 것이다.
-파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장이 일어나는 것처럼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하나를 던지면 파장이 일어나고 두 개들 던지면 더 크게 파장이 되고 여러 개를 던지면 큰 파장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 한 사람의 제사장적 사명이 과거의 현재형 사명을 만들어서 하나님 앞에 집중하면 그것을 같이 할 때, 거룩한 파장과 공감대가 일어난다. 전체가 영향을 끼치고 작은 파문이 점점 커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온 성도님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런 마음으로 집중할 때, 이 파장이 우리 주위에 그대로 영향을 끼치리라고 확신한다. 얼마나 파장이 커지냐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기도했듯이 전국 교회가 파장이 일어나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교회가 되고 있다. 여러 교회들이 사람에게는 진짐으로 하나님께는 전심으로가 파장이다. 여러분이 제사장 나라가 되면 된다. 내 인생이 오합지졸 같고 아직까지 노예근성이라 할지라도 파동을 일으킬 때,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하시며 움추림을 하나님은 펼치게 하시고 갈 바를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불태울 수 있는 방향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거룩한 진동이 있기를 축복한다.
 
♣요약
초라하고 노예 살이 한 우리를 어린양을 통해 생명주심에 감사하며 거룩한 백성 삼아주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이새 해에는 새 은혜, 새 역사, 새 언약을 사모하며 엎드려서 풍성한 생명, 영원한 생명의 역사가 확산되는 생명사역의 부흥이 되기를 소원하며 우리 공동체가 모두 한 마음으로 제사장 나라가 되어 사명 선언문을 올려 드릴 때,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고 거룩한 보혈의 제국을 이루어가기를 소원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성도가 제사장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신약의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직접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즉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할 때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과 불신자 사이를 중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제사장이 되려면 먼저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맹세해야 한다. 이 계약의 제정자, 즉 최초의 제안자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었다.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선하신 축복들은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며 또한 우리가 받는 모든 위로도 우리가 하나님께 알려진 바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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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월 8일)
제목: "45년을 한결같이"(부제: 믿음보고 2.0)
말씀: 민수기 14:22~26,여호수아 14:8~12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오규현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ㅡ
 
*민수기 14:22~26,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25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주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호수아 14:8~12,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
 
▶찬양대 귀한 찬양, 하나님께 영광 돌린 줄로 믿는다. 올해도 찬양대 한 주일도 빠지지 말고 기름부음 충만한 찬양되기를 바란다. 사랑의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새초부터 새말까지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보혈의 능력으로 여러분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어주셔서 모든 마음의 소원하는 계획이 응답되기를 바란다. 저는 오늘 45주년을 한 결 같이, 부제 믿음 보고 2.0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다. 창세기 29장 20절에 보면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는 까닭에 7년을 며칠 같이 여겼다고 말하고 있다. 
 
*창세기29:20,
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사람이 7년이란 세월이 길지 않은가? 사랑하니까 7년이 마치 하루 같이, 45년의 사랑의 교회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 결 같이, 우리는 어떻게 45년을 한결 같을 수 있는가? 이 갈렙은 아시는대로 오늘 민수기 14장 여호수아 14장에도 그렇다. 45년 전에 그 나이 40세 때에 그 가나안 땅에 정탐꾼으로 갔다. 거기서 열 정탐꾼은 다 안 된다고 했다. 아낙자손들 때문에 우리는 안 된다고 우리는 그들의 밥이라고, 우리가 그들 보기에는 메뚜기처럼 보인다고 했다. 다 그 펙트 리포트를 했지만 있는 그대로 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니라고 한다. 그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메뚜기 같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의 밥이라고 한다. 왜? 그 열 정탐꾼은 자기들과 환경을 비교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과 환경을 비교했다. 여러분 BAB,,, 그러니까 믿음보고 펙트 리포트를 Faith report를 했다. 우리 교회가 수년 전부터 믿음 보고를 하지 않은가!! 그래서 얘기 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일이 생겨도 우리는 그렇게 어려운 것 보다는 믿음 보고를 하자. 그 사람들은 다 우리 교회 교인들이다. 이렇게 할 정도로 우리가 믿음 보고를 한 것이다. 올해 45주년을 맞이하면서 믿음보고 2.0을 하겠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믿음 보고를 할 수 있는가? 오늘 본문에 8절을 보면, 
 
*여호수아 14:8,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니까, 충성, 9절에도 나온다. 충성하였은즉, 충성한다는 말은 나중에 민수기 14장 24절에 보면 
 
*민수기 14:24,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갈렙에 대해서 나는 온전히 따랐다. 내 종이고 충성스런 종이다. 우리가 충성한다는 것은 21세기 어떤 뜻인가? “우리 중에 아무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죽는 자도 없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맞는가? 사람들은 다 자기를 위해 산다. 바울은 자기를 위해 살아도 안 된다고 바울은 고백하지만 대게 세 종류이다. 자기를 위해 살고, 아니면 조금 더 고상해서 남을 위해 살고, 아니면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그래서 주를 위해서 살 때에 충성이라고 한다. 이것은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것인데 온전히 주님을 따를 때, 사실 45년을 한 결 같이 하게 되는데 여러분 사람을 위해,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 정도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살게 되면 환경과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환경과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으니까 한 결 같은 것이다. 여러분에게도 한 결 같은 축복을 주시길 원한다. 
 
저는 늘 기도한다. ‘하룻밤도 꿈 없이 잠들지 말고, 하룻밤도 꿈 없이 깨지 않게 하옵소서.’ 한다. 살아서는 충성, 죽어서는 영광, 목숨보다 중요하다. 한 결 같이, 그런데 오늘은 갈렙이 역할 모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여러분의 인생은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중요하지 않나? 그런데 과거보다는 사실 현재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중요하다. 왜냐면 미래가 없는 현재는 그것은 현재가 아니다. 미래를 우리가 기약할 수 없는 현재는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현재에 산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스도인은 진짜 이런 45년을 한 결 같이 이러한 은혜가 있고, 주를 위해 산다는 것 때문에 우리가 환경과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의 이력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의 이력서를 쓰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은 과거의 이력서를 왔다 갔다 한다. 과거가 어떻다 한다. 그러나 미래의 이력서를 써야 한다. 이미 결정되어서 한 결 같이, 오늘 말씀의 배경을 보면, 오늘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해서 광야의 길을 갔다. 가는 동안에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 중에 두 가지 어려움의 적이 있었다.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이 있었다. 외부의 적은 아말렉 같은 전쟁이며, 또 광야의 환경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내부의 적은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적이었다. 
*내부의 적은 최측근이 반기를 일으킬 때이다. 그럴 때 정말 힘든 것이다.
 
여러분,
미리암과 아론을 알 것이다. 미리암은 모세의 누나였고, 아론은 모세의 형이었다. 그런데 모세가 잘 나가는 것을 보니까 누나와 형이라도 이것은 안 되나보다. 누나와 형이라도 지도력과 리더쉽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누나와 형이 모세를 향하여 하나님이 모세하고만 말씀했냐? 우리 하고도 말씀했다고 반역을 했다. 사실은 모세를 향하여 반기를 든 것이 아니라, 모세를 세우신 하나님께 반기를 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죽이려고 했다. 그러니까 모세가 아니라고 한다. 모세의 특기는 뭐냐면, 죽이려고 하는 것을 못 죽이게 하는 은사가 있다. 우리누나 살려 달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리암을 일주일 동안 나병(癩病)이 걸리게 하시고 격리(隔離)를 시키신다. 그 격리 때문에 모든 회중들이 일주일 동안 광야에 행진을 못하고 모든 회중들이 멈추었다. 그러니까 생각해보면 거의 200만이나 1400만 날이 날아가 버렸다. 회중들이 일주일 동안 멈추니까 미리암과 아론의 반기로 일주일 동안 멈추니까 난리가 난 것이다. 그러니까 모세가 허탈했고, 너무나 절망했다. 힘들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그 때에 모세에게 터닝 포인트를 주셨다. 그것은 민수기 12장과 13장에 나오고 있다. 13장에 낙심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냐면,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내라고 하신다. 정탐꾼을 12명을 보내게 하신다. 열 정탐꾼은 환경과 자기를 비교해서 메뚜기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면서 믿음 보고를 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 이런 배경을 앞에 놓고 어떻게 갈렙은 끝까지 믿음보고를 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믿음보고의 요체는 무엇이며 믿음보고를 우리가 이런 45년을 한 결 같이 할 수 있도록 적용할 것이 무엇인가? 믿음 보고를 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인가? 
 
 
여라분, 갈렙은 오늘 본문 여호수아 14:6절을 보면
 
*여호수아 14:6,
6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그니스 사람은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데, 가나안 족속이다. 이 가나안 족속에 대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굉장히 비방하고 멸시하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열주의자이고, 차별주의자들이다. 이방인을 진짜 우습게 여긴다. 그러니까 여호수아에 나오는 기생 라합도 이방인이다. 나중에 이스라엘 족보에도 올릴 정도로 그런 축복을 받았는데, 갈렙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다. 자기 선조와 자기 그니스 족속 여분네 아들 갈렙이다. 그 어떻게 보면 자기는 이방 출신이다. 그런데 순열주의자들 앞에서 그가 견디기가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꿋꿋하고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참 놀랍다. 우리식으로 하면 소위 수저주의자들이다. 흙 수저, 나는 금 수저다. 등등, 정말 저는 수저주의자를 정말 싫어한다. 우리는 금수저도 아니고 흙 수저도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수저이다. 정말 오늘 갈렙이 한결 같은 것은 출신, 배경, 스펙, 출신 배경을 극복했다.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하여 라고 한다. 자기 정체성이 분명했다. 자기는 이방 출신이지만 하나님의 종(從)이라고 한다. 
 
*민수기 14:24,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구약의 종이니까 뭐 서번트 라고 생각되지만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네가 내 종이라고 이렇게 호칭한 것 별로 없다. 모세에게 종이라고 했고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종이라고 했다. 다윗에게 다니엘에게 엘리야에게 종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것을 알고 나중에 사도바울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종의섬김을 가져야 하지만 주님이 나를 종이라고 부를 때는 이것은 사도 적 특권이다.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다. 우리가 한 결 같기 위하여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서 어벤다운이 없게 진지하게 한 결 같게 하기 위해서 마음의 소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그니스 족속 여분네의 아들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입니다.” 출생, 성별, 배경, 수저 다 극복하는 축복을 주시기를 이 한 해 동안 주시기를 소망한다. 너무 중요하다. 그래서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한다. 중맘꺾- 중요한 것은 마음이 꺾이지 않는 것, 중요한 것은 마음이 꺾이지 않아야 한다. 내 수저가 어떻다. 마음이 꺾이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마음이 꺾이면 안 된다. 출신성분, 두 번째로는 비교의식 가지고 질투하지 않았다. 갈렙은 대단했다. 민수기 14장에서 여호수아 보다 더 갈렙이 더 우선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쓰셔서 여호수아를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삼았다. 그래서 40세 이 믿음 보고를 한다. 45년 동안 그 역사에서 사라져버렸다. 웬만하면 ‘하나님은 여호수아만 쓰시고 나는 안 쓰시나?’ 이렇게 생각을 할 수 있을 텐데, 갈렙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남과 비교하지 않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 같았다. 그런데 배경 때문에 약해지지 않고, 동료하고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께 섭섭해 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다. 불평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열 번이나 하나님을 배반하고 원망 불평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낀 적도 없고 모세를 비난하는 무리들에게 낀 적도 없다. 애굽의 고기와 부추를 사모하는 그것 때문에 그들이 불평하는 그것들에 가담한 적도 없고, 금송아지 섬기는 무리들에게 속하지도 않고, 한 결 같이 주님께서 주시는 약속을 붙잡고 갔다. 
 
지난 45년을 하나님께서 사랑의 교회를 인도하셨다. 강남 예배당, 서초 예배당 주의 종들을 통하여 사랑의 교회를 오늘까지 붙잡아 주셨다. 45주년을 고 선대 옥한흠 목사님,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키워야 한다는 목적으로 25년 동안 사역을 하시게 하시고 부족한 종이 이어받아서 그 한 사람 한 사람 그리스도의 제자로 온전한 사람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지난 20년을 붙잡고 왔다. 저는 놀랍다. 그리고 우리 교회 초창기부터 성도님들이 45년 동안 한 결 같이 주님을 섬겼다. 이제 45주년을 맞이하는 이 한 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갈렙의 자세로 보면, 
 
*여호수아 14:10-11,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I am still strong. still the same.~~
-85세가 되었어도 가슴이 뛰었다는 것이다. 비교의식 안 하고 불평의식 안 하고 배경 보지 않으니까 그 마음에 한 결 같이, 그때나 지금이나 강건하다는 것이며 육신은 좀 쇠할 수 있지만 마음은 늘 이러하니까 여러분 마음이 기쁘고 감사하고 설레고 마음이 한 결 같으면 몸도 따라온다. 몸이 지배를 받는 것이다. 갑자기 괴로운 소리 듣고 고통당하면 마음이 캄캄해서 소화가 되는가? 마음이 괴롭고 어려울 때 소화가 잘 되면 인간이 아닐 것이다. 사람은 마음의 지배를 받는다. 마음이 기쁘고 감사하고 늘 설레이니까 몸도 마음도 같이 건강해 지는 것이다. 삼국지에 황충 장군처럼 한 결 같이, 벨런스와 균형 잡힌 건강, 그의 지성, 그의 의지, 그의 감성, 그의 행실, 그의 관계가 온전하게 균형 잡혀서 온전한 인격이 되었다. 그렇게 하면서 갈렙의 입장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혜를 가지고 이제 45주년을 우리가 믿음 보고 2.0을 보고하는 것이다. 뭐라고 고백하느냐면 
 
*여호수아 14:12,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이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 이것이 믿음 보고의 2.0이다. 그들이 우리의 밥이다. 믿음보고의 2.0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 산지를 내게 주십시오. 한다. 이 말씀은 우리가 시리즈 주제처럼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게 하여 주십시오.’와 동일하다. ‘이 산지를 내게 주십시오.’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할 때 이것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기가 막히다. 참 어려운 어떤 상황이었다. 지금 보면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과 7년 전쟁을 하는데, 이제 막바지에 도달했는데 마지막 무얼 못했냐면, 지금 갈렙이 요구하는 이 산지를 아직까지 점령을 못했다. 그 산지는 바로 헤브론 산지였다. 이 헤브론은 아주 구원역사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선 직접적으로 말씀한 것은 창세기 13장 14-15절이다. 
 
*창세기 13:14-15,
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저기에서 크게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땅을 주시고 하는 마음은 있지만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헤브론 산지이다. 이 헤브론 산지는 예루살렘, 베들레헴, 그 다음은 갈보리 , 감란 산, 베다니가 포함되어 있다. 소위 구원역사를 이루는 핵심 지역이다. 예수님께서 태어난 곳이고 아마 갈렙에게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주셔서 구원 역사에 무언가 아낙 자손들 때문에 이 땅을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갈렙은 여호수아를 끝까지 돕는다. 한결 같으니까. 45년을 한 결 같으니 그래서 하나님께서 갈렙을 통하여 산지를 주시게 된 것이다. 믿음보고 2.0이 되는 것이다. 
 
우리도 85세가 되어가지고 우리가 이런 믿음 보고를 할 수 있다면 우리 생애가 2.0 생애가 될 줄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 신앙은 나이가 들수록 더 좋아야 한다. 믿음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야 할 줄로 믿는다. 
 
신앙은 나이가 들수록 더 좋아야 한다.
믿음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야 한다.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넘치기를 바란다. 갈렙처럼 영적으로 더 강해져야 하고 더 나이가 들수록 집중력이 더 생겨야 한다. 더 신앙이 깊어져야 한다. 육신적으로 어쩔 수 없지만 영적으로는 더 강해져야 한다. 어느 단체든지 그렇다. 처음에는 믿음의 모험을 한다. 30-40년이 지나면 대부분이 약해진다. 서서히 관료화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굳어지면 화석화가 되어서 어느 날 다 깨지고 장례식이 된다. 그러나 갈렙은 그러지 않았다. 지난 45년 전에 가졌던 믿음 보고 1.0을 지금 믿음보고 2.0을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것이다. 주님 이 어려운 ‘이 헤브론 산지를 내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한다. 어떤 갈렙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개인 가정에도 이 말씀이 접목되기를 바란다. 이 말씀이 그대로 녹아지기를 바란다. 
 
적용
공동회 때문에 좀 일찍 마치겠다. 갈렙은 45년 동안 한 결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충성된 종이라고 두 번이나 불리고 갈렙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배경을 비관하지 않고 또 여호수아와 비교하지 아니하고 한 결 같이 그리고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어떤 식으로 적용하면 되는가? 갈렙은 남들이 불평 불만할 때, 아까 수많은 과정에서 불평 불만할 때 그런 환경들, 그런 사건이 많았지만 불평불만이 없이 믿음으로 충성되게 일관되게 사니까 믿음보고 2.0을 주님 앞에 올려드린 줄 믿는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우리도 불평불만하지 않겠다. 누가 이렇게 말했다. 말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2년이 걸렸지만 말하지 않는 것을 걸리는 것은 60년이 걸렸다고 남들의 말을 경청하고 침묵하는 데 60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평불만을 하지 않으려면 몇 년이 걸려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통하여 여러분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어주셔서 불평불만은 지금부터 안 할 수도 있게 된다. 연말에 글을 받았는데 이런 내용이 있다. 
 
“목사님, 제 남은 인생은 절대로 반드시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살겠습니다.”라고 해서 그 글을 읽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젊을 때부터 이런 마음을 가지면 평생 얼마나 복될까? 믿음보고 2.0. 3.0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하나님, 제 남은 인생을 절대로 반드시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살겠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젊을 때부터 이런 마음으로 살면 여러분 믿음 보고 2.0, 3.0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인제 선택을 해야 한다. 불평하는 할매, 할배가 되지 말고 죽지 말고 피니쉬 웰(finishing well)이 아닌 피니쉬 페일이다. 다시 말하면 폭망이 된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여호수아 14:12,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나와 함께 하셔서 불평불만 보고 대신에 우리는 하나님께 믿음의 보고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요약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우리 세대가 평생 믿음보고 2.0이 되어서 배경도 뛰어 넘고 비교도 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극복하고 에너지를 주는 인생이 되어서 어둠을 밝히고 아무리 힘들어도 귀한 21세기의 갈렙이 되어 이 산지를 달라고 믿음의 보고를 하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45년을 맞이하면서 갈렙처럼 믿음보고를 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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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월 1일)-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일곱 번째 강해.
제목: "신앙의 차렷 자세"-신년 감사 주일
말씀: 잠언 3:1~6
대표기도: 장명철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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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1~6,
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3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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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초부터 새 마음까지 사랑하는 성도들, 영 가족 여러분들의 마음의 소원과 계획을 사랑하는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꼭 응답하시고 풍성한 결실로 나타내 주시길 바란다. 오늘은 ‘신앙의 차렷 자세’에 대해서 주님의 메시지를 나누도록 하겠다.
 
오늘 본문은 제가 젊을 때부터 평소에 소중하게 생각하는 말씀이고, 늘 저로 하여금 신앙생활에 기본으로 하게 하는 말씀이다.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가? 마치 이것은 신앙의 차렷 자세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군대에서 훈련할 때에, 항상 기본이 차렷 자세부터 시작한다. 뒤로 돌아 한 다음에 우양 우 좌 양좌 하지 않고, 그것을 하기 이전에 반드시 차렷을 먼저 하고 우양 우, 좌 양좌 한다. 격려할 때도 차렷 자세를 먼저 한다. 우리 학교 다닐 때, 반장을 해 본 사람은 잘 할 것이다. 수업할 때 선생님들이 ‘차렷’ 하고 주목을 시킨다.
 
그래서 오늘은 새해 첫 주, 신앙의 차렷 자세를 나누려고 한다. 저는 성도님들을 섬기고 목회를 하면서 나름대로 갖는 평생의 법칙이 있다. 그게 뭐냐면 오늘 본문의 ‘신앙의 차렷 자세’가 딱 자리가 잡히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은혜가 받는다. 이 신앙의 차렷 자세가 자리가 딱 잡히면, 어떤 상황에서도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 인생의 난제 앞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하더라도 저는 그때마다 “하나님, 우리 성도들을 난제들이 있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은혜를 받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기도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 모두가 실패의 상징물을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을 실망 시킨 순간의 일을 떠올리는 그런 사건들이 하나씩 있을 것이다. 우리의 어리석은 행동이나 부주의한 말 때문에 일어나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베드로 같은 경우는 추운 몸을 녹이려고 쬐였던 모닥불에 있다. 그는 모닥불 숯불만 보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예수님을 실망시킨 순간이 생각났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 실패의 모닥불을 다시 회복의 모닥불로 만들어 주신 줄로 확신한다. 요한복음 21장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모닥불을 지피시고 생선을 구우시고 베드로에게 조반을 들라고 하신다. 그 순간 베드로의 모닥불의 실패의 트라우마가 사라지는 순간이 되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실패의 모닥불이 회복의 모닥불이 되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린 대로 우리가 어떤 생애에 문제와 난관이 닥치더라도 모두가 주님의 십자가 앞에 엎어지면, 주님의 발 앞에 엎드리기만 하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심을 확신한다. 여러분의 실패의 모닥불의 회복의 모닥불로 만들어 주시는 주님을 신뢰하라. 이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신앙의 차렷 자세이고, 영적 전쟁의 배수의 진이고, 굳게 붙잡아야 할 부흥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신앙의 첫 자세가 무엇일까? 1절에 보면,
 
*잠언 3:1,
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법칙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하신다. 우리가 세상살이 하는 데에 나름대로 법칙과 원리가 있다. 건강을 위하면 건강의 법칙이 있다. 균형 있는 시간에 식사를 맞추어 하고, 적절한 수명을 취하고, 또 나름 운동을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듯이 그런 법칙을 다 깨고 퍼져버리면 힘들다. 약간의 긴장을 가지고 몸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건강의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고기는 물속에 살아야 하는 법칙이 있고, 공중에 새는 대기권 하늘에 사는 법칙이 있다. 나무는 땅 아래에 뿌리를 흙속에 내리는 법칙이 있다. 물고기가 물이 싫다고 뛰어나오면 안 된다. 공중의 새가 하늘이 싫다고 갑자기 물속에 들어오면 안 된다. 죽는다. 나무뿌리가 땅 속에서 위로 나오면 죽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이고, 창조의 질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법칙과 이런 기본 차렷 자세가 지켜져야 한다.
 
*잠언 3:2
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오늘 이 신년에 첫 주일이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의 말씀으로 와 닿기를 원한다. 지금 우리는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법칙도 마찬가지이다. 특별히 오늘 한 가지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법칙을 말씀 드리겠다. 이것이 확실해야 신앙의 기본이 흔들리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올 한 해, 회복을 넘어 부흥을 체험하도록 우리에게 지혜의 말씀을 주실 것을 원한다. 지혜의 말씀이 6절이다.
 
*잠언 3:6,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 말씀은 우리들의 삶이 좀 흔들릴 때, 삶에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을 때, 딱 동서남북을 우리가 파악할 수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북극성과 같은 말씀이다. 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면 누구나 삶의 궤도(軌度)를 탈선(脫線)하지 아니하고 삶의 시행착오(試行錯誤)를 줄일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법칙대로 하면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수많은 난관을 우주선이 대기권을 돌파하는 것처럼 문제를 돌파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여러분, 인공위성을 한 번 생각해 보라. 인공위성을 쏘는 것을 보면, 인공위성이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대기권을 지나 우주를 향해 날아가는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물리학자들이, 우주 과학자들이 우주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다. 인공위성의 발견은 뉴튼의 제3의 운동법칙으로 날아간다고 말하는데, 사실 이 법칙을 뉴튼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그 법칙은 영원 전부터 존재한 것인데, 우주과학자들이나 뉴튼이 그것을 다시 발견한 것이다. 이 법칙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미 것이고, 많은 경우 신앙 좋은 과학자들이 발견하고, 세밀하고, 정밀하고, 착실하게, 정확하니까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신앙법칙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신앙의 첫 차원으로 살면, 우주선이 날아가듯이 총알처럼 다시 날아가기를 원한다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위하여 미리 예비해 두신 것을 발견하고, 깨닫고, 적용하고, 실천하기만 하면 우리가 새로운 차원으로 총알처럼 삶의 어려운 대기권들을 환경을 뚫고 비상할 수가 있다. 이게 영적 법칙이다.
 
*잠언 3:6,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저는 대학부 시절부터 이 말씀을 늘 외웠다. - in all your ways acknowledge him,~~
제 주위의 형제자매들이 이 말씀으로 자기의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모토로 삼아가지고 인생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경우가 너무 너무 많다. 이 말씀이 본래적으로 갖는 능력이 너무나 어마어마한데 그걸 그냥 사장(事障)시키지 말고 그 어마한 능력과 우주의 법칙을 발견한 것 같이 여러분들의 인생 가운데 발견하기를 소망한다. 그럴 때,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의 수많은 난관들과 정치, 문화, 사회 경제, 교육, 가정, 여러분들의 모든 여러 가지 많은 이런 어떤 영역들이 있듯이 그런 문제가 된다면 다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 인공위성처럼 돌파할 것인가? 오늘 새해 첫 주일 날 아니 우리가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범사에 인정한다는 것은 올 한 해 온 성도들이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이 어떤 뜻일까? 이런 뜻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일마다 때마다 무슨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여쭈어보고 물어보는 것이 인정하는 것임을 확신한다. 물어보라는 것이다.
 
첫 번째 신앙의 차렷 자세.

I.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것이다.
-올 한 해 우리에게는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새로운 환경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계속 물어보라는 것이다. 하나님 이것을 물어야 한다.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 것이다. 전문가에게 묻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 먼저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선순위로,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다가 사울과 다윗의 생애를 대조하면서 너무나 깜짝 놀랐다. 왜 사울 왕이 인생이 실패하고 왜 다윗왕은 성공했는가? 보니까 사울왕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 묻지를 않았다. 그가 하나님께 묻지 않아 생긴 비극은 말로 다할 수 없다.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것은 때로는 후회를 갖게 하는 것이다. 역대상을 보면,
 
*역대상 10:13~13,
13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 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사울이 여호와께 묻지 않아서 죽었다. 사울왕은 인생의 순간이다. 사울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에 인생이 실패했다. 우리가 구약시대에서 살지 않고 신약에 살기에 은혜 받아서 그렇지, 만약에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고 물어보지 않고 다 죽이신다면 오늘 본당에 죽을 사람은 많을 것이다. ㅋ ㅋ ㅋ 아마 반 이상은 다 돌아가실 것이다. 반면에 다윗은 그의 인생에 영적으로 성공한 것은 하나님께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보면 사울이나 다윗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다윗이 사울보다 그렇게 도덕적으로 탁월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사울 왕을 어떻게 죽이시고, 다윗은 살리시는가? 다윗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 물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윗의 신앙의 차렷 자세이다.
 
*사무엘상 23:1~2,
1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 하더이다 하니.
2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다윗은 이렇게 이 말씀을 듣고 여러분, 이 때 다윗의 상황은 사울 왕에게 도망 다니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의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고통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응답해 주신다. 그 하나님께서 주신 내용을 가지고 자기 참모들과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니까 참모들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환경이 내가 죽을 판이라면서 반대한다. “그래 그럼 안 되겠네.”, 하면서 끝내지 아니하고 다윗이 참 아름다운 태도의 마음을 가진다.
 
*사무엘상 23:4,
4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저는 이 다시가 확 눈에 들어왔다. 여러분들 다시가 눈에 들어와서 이 한해 동안 계속 하나님께 물어보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안 되면 다시 물어야 한다. 안 되면 다시,,,, 물으라. 하나님이 온 성도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우리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 성도님들끼리 서로 인사할 때, “성도님, 하나님께 물어 보았어요? 하나님께 다시 물어보았어요? 하나님께 기도해 보셨어요?” 라고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올 한해 인사가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여쭈어 보았냐?”고 하라. 어떡하면 좋으냐고 할 때, 하나님께 여쭈어보라고 인도하고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네 길을 지도하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 다시 여쭈어 보셨어요?” 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내 길을 지도하신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와 하나님의 마음의 합하지 않은 자의 차이가 무엇인가? 뭐 다윗처럼 용맹하게 할 정도는 못해도,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와 하나님의 마음의 합하지 않은 자의 차이가 뭐냐면, 하나님께 자주 묻는 인생,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인생이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께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인생은 오늘 자기를 의지 하는 사람이다. 5절에 보면 나온다.
 
*잠언3:5,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자기 명철을 의지하는 사람은 사울과 같은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 사람들은 예의와 겸양이 지나쳐 가지고 이런 것까지 물어볼 수 있는가? 하는 말이 될 수 있는데 여러분, 하나님께 다 물어봐야 한다. 솔직히 웬만한 것은 우리가 다 처리하지 않은가? 웬만하면 우리가 다 알아서 처리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바쁘실 텐데 하면서 알아서 처리하지 않는가? 여러분 조그마한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도 하나님께 물어보는가? 저는 몇 대째 내려오는 신앙의 가문에 사람이다. 아내에게 때로는 배우는 게 많다. 조그만 물건을 잃어버려도 아내는 기도를 한다. 나는 하나님이 귀찮으실 테니까 내가 해야지 한다. 우리는 일이 안 풀릴 때에 순수하게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하나님께 계속 묻는 것이 하나님과 나와의 가장 중요한 법칙이다. 그동안 재정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물어야 한다. 어떤 일이 생기면, 어떤 사람에게 묻지 말고 이제는 하나님께 물어보기를 바란다. 옛 신앙의 선배들은 하나님께 자주 물어보고 사람들에게 손을 비비지 않았다. 우리도 하나님께 손을 비벼야 한다. 하나님께 손을 비비면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통찰력 있는 말씀을 하시는데,,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데살로니가전서 5:17,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여러분 사람이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할 수가 있는가? 맨날 기도만 하는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다른 버전이 뭐냐면, “쉬지 말고 하나님께 물어봤어? 다시 물어보았어? 또 다시 물어보았어?” 이 한 해 동안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이 하나님께 물어본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 물어야 한다. 그럴 때, 인공위성처럼 총알처럼 문제들이 해결 될 것이다.
 
두 번째 신앙의 차렷 자세.

II.하나님과 친밀 하라.
너는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하셨을 때, 인정하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을 조금 더 깊이 알아라. 하나님과 더 친밀해져라. 하나님과 가까워지라. 부부가 3-40년을 같이 살든 50년을 같이 살면 얼굴도 식성도 생각도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생각하니까 다 닮아간다. 심지어 찬송을 할 때도 닮아간다. 왜냐하면 지휘자님이 오늘 찬양을 찬양대가 Way maker, 라는 찬양을 할 줄 알았다. 친밀해지니 다 안다. 닮아가는 것이다. 저는 주일예배를 위해서 토비새에서 강단에 올라오셔서 기도한다. 오랫동안 중직자로 일하셔서인지 마음을 다 안다. 특별히 중직자 등 관계를 통하여 이제는 말씀을 통하여 웬만큼 똑 같다 신앙생활 오래하면 우리가 주님과 가까워지고 친밀해진다. 하나님과 친해지기기를 모두에게 바란다. 우리는 그렇게 기도한다. 우리가 어떤 삶의 직분이 목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과 친밀해 지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이 땅의 삶의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의 복음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의 신앙은 우리의 목표는 주님과의 친밀함이다. 주님과 The better life이다. The better relation ship.!!! 주님과 가깝고 친밀한 더 나은 관계가 잘 되면 마치 친구와 같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을 믿은 후에 여러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더 전진이 되었는가? 누가 “목사님, 성도님들을 볼 때 무엇이 가장 마음이 아프냐?”고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제가 생각을 해본 것인데 가장 안타까운 문제가 무엇이냐면, 아마 저 뿐이 아닐 것이다. 마치 목자의 심정과 부모의 심정을 깨달은 어떤 목회자라면 다 동일할 것이다. 목회자가 목회하면서 제일 힘든 것은 우리 성도들이 성장해야 하는데 맨날 밑바닥에 있는 것이다. 영적으로 자라지 않는 것이다. 목회자로서 안타까운 것은 성장하지 않는 성도를 보는 것이다. 그냥 어린아이 상태로 있는 것이다.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로 있는 것, 그래서 사탄에게 맨날 속고, 맨날 두려워하고 맨날 힘들어 한다. 영적으로 고봉으로 가야 하는데 밑바닥에서 있기에 가슴이 아프다. 이제 이정도가 되면 예수님과 관계가 깊어야 하는데, 든든함과 어떤 성숙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그렇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님의 심정을 깨닫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빌립보서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 새해 첫 주일 날 주님과 나 사이에 친밀함을 가로 막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정리할 수 있는 결단과 정리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 주님을 아는 것, 그것 외에는 다른 것이 배설물이라고 한다. 아는 것 주님과 친밀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생의 신비로움을 베풀어 주신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우물물을 팠다. 그 당시 우물은 생명의 근원이었다. 물이 없으면 살수가 없고 생명의 근원이기에 중요하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삭이 파놓은 우물을 다 빼앗아 갔다. 그럴 때 이삭은 어떻게 했는가? 인간적으로 싸우겠지만 싸우지 않고 그냥 줘버렸다. 대신 이삭의 마음속에 나는 하나님을 의지 하는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과 친하니까, 다 빼앗아 가도 하나님은 내 길을 다시 열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주실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가져가도 “He will make a way!” ‘그분이 나의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의 아버지도 그랬고, 야곱도 자기 아버지 이삭을 보고 살았기 때문에 그리했고 나중에 라반과도 싸우지 않고 하나님이 길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양보해 버렸다. 그랬더니 이삭을 괴롭혔던 사람들이 찾아와서 창세기에 나온다.
 
*창세기 26:28,
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그 심장을 듣고 주님의 심정을 깨닫게 되면 결국은 인생의 삶을 인도하신다.
 
▷두 가지 하나님께 물어보고, 하나님과 친밀해지라.
 
*잠언 3:6,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오늘 이 예배에 오신 한 분 한 분의 길을 인도하실 것이다. 법칙이다. 이것은 세상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이것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법칙이다. 물어보고 가까워지면 여러분들의 길을 인도하신다. 여기서 길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다. 우리의 삶의 길들 가운데 어떤 길은 막히기도 하고 어떤 길은 패이기도 하고 어떤 길은 골짜기이기도 하고, 어떤 길은 낮아지기도 하면서 수많은 일들이 나타날 텐데 그 수많은 길들 가운데서 물어보고, 수지 않고 계속 기도하고 물어보고, 하나님과 친밀해지면 반드시 길을 지도하신다. 그리고 길을 지도하신다는 말을 보니까 원어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장애물(障碍物)들을 치워주신다는 것이다. 막힌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 앞에 여러 장애물들이 있어도 하나님이 치워주시면 되는 것이다. 신비로운 일들이 인공위성이 일어나듯이 총알처럼 여러분의 벽들을 무너지게 하실 것이다. 수많은 복수의 길들, 수많은 길들을 새롭게 열어주실 것이다. 닫힌 문도 열어주시고, 거친 길은 부드럽게 하실 것이며 위험한 길은 안전하게 하실 것이며, 외로운 길은 친밀하게 동해하여 주실 것이다. 기적을 행하시는 주님을 믿고 어린아이처럼 성장하지 않는 자가 되지 말고 성숙해지기를 소원한다. 하나님을 우리가 인정할 때, 하나님도 우리를 인정하신다. 우리가 인정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시는 것이다.
 
*고린도후서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 원수를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이 칭찬하신다. 우리 앞에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크고 작은 일들이 있겠지만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 이다. 주님을 범사에 인정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주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마다 때마다 주님께 물어보는 사람이다. 주님과 친해지는 것이다. 주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면 무슨 결정을 하든지 주님은 현명한 답 주실 것이며 인도하실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차렷 자세이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이야기 한 영역주권의 주님이 내 삶에 모든 왕이 되게 하신다는 말과 연결될 것이다. 이러한 신앙의 자세가 몸에 배어 있으면 내가 어디에 살든 내가 누구와 살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주님이 길을 내 주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주님과 편하게 물어보고, 친밀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물어라. 주님과 더 친해라. 어떤 나라들보다도 우리 민족이 주님과 친하면 우리 한국교회는 매일 새벽마다 기도하듯이 우리나라를 인도하실 것이다. 기독교가 있으니 이만큼 우리나라가 되는 것이다.
 
♣요약
우리의 삶의 실패를 회복의 모닥불로 바꾸시는 주님을 신뢰하여 인생의 난제를 하나님께 항상 여쭈어 보고, 주님과 더욱 친밀하여서 어떤 장애물도, 어떤 문제도 치워주실 확신하여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께 기대하며 기도해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신앙의 기본을 차렷 자세로 올 한 해를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을 받는 비결은 하나님의 법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이다. 목에 매고 마음 판에 새긴다는 말은,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할 계명으로 여기고 모든 판단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법은 이처럼 지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개인의 삶의 결단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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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0. 6. 21)
제목: ''소망의 포로들''
말씀: (스가랴 1:3, 4:10, 9:12)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ㅡ

*돌아오면 회복 된다II. 오늘 311명 학습 입교 세례식을 하게 됨이 기적이다. 세례식을 통하여 ‘나는 주님께로 돌아가는 제자이다’, ‘나는 주님께로 돌아가는 공교회의 충성된 성도이다’, ‘나는 다른 사람까지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전파자이다’, 그런 마음을 갖고 이 세레식을 거행할 때 하나님은 이 자리를 복주시고 새롭게 하실 것을 믿는다. 3절이 중요하다. 돌아오라는 이 말은 히브리어로 ‘슈브’이다. 주님이 율법으로 돌아온다든지 아니면 과거의 전통으로 돌아 온다든 지가 아니고 ‘내게로 돌아오라’라고 하셨다. 주님이 아닌 어떤 것도 돌아가는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돌아오라는 말씀은 스가랴 전체의 첫 예수님께 돌아오라는 것이며 만군의 여호와 첫 예수님께 돌아오라는 것이며 만군의 여호와는 온 우주의 주권자이시며, 권세자이시다. 만군의 여호와는 자명하고 존귀한 것이다. 왜 중요하냐면 이 내용이 뒤에 나오는 모든 구절의 기본이 된다. 우리의 삶의 목표나 우리의 삶의 모든 것들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주기도문에 보면 모든 하늘의 주관자이시다. 장엄과 존귀하시다. 그러니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우리같이 부족한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날마다 확인하고 꿈꾸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到來이다. 오늘은 이 예배에 온 성도는 잘 이해하리라 본다. 우리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到來가 임하는 것이다. 개인, 가정, 공동체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임하는 것이다. 아브라함 메이커의 말처럼 영역 주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모든 삶과 인생의 부족한 자들의 하나님 나라의 到來이다. 우리 모든 성도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到來이며 영역 주권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영표에 맡기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원한다면 그분에게 돌아가야 한다. 핵심이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하여 마가복음 1:15절에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세례요한의 구약과의 매칭이다 신약의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위하여 내가 너희를 사용하겠다는 것과 같다. 우리가 소중하기에 이 말씀을 받아 표준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은 강력하고도 예리한 요청인 동시에 인간의 책임과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이다. 우리가 돌아감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래서 돌아감은 하나님의 도래는 같은 것이다. 돌아간다는 것은 무슨 역사인가? 스가랴가 돌아가야 한다는 이 말씀을 한 것은 유대나라가 예후들(유다)은 작은 지방이다. 그래서 보잘 것 없는 일 그곳에 일어나니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연결되겠는가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제대로 선다면 인생의 대 반전이다. 스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스가랴와 학개. 말라기가 비슷한 말로 기록했다. 마태와 마가가 공관복음인 것처럼, 스가랴와 학개가 공시적인 예언서이다. 이런 내용들이 다 서로 연결된다. 학개 2:22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驚天動地)이다. 이렇게 한 번 뒤집어지고 반전되기를 바란다. 그럴려면 무슨 뜻인가?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침투해 들어온 사건인 것이다. 그러니 예후드라는 작은 지역에서 일어난 하나님나라의 작은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가 되고 새 창조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경탄할만한 사건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공동체와 세상에 침투해 들어온 드라마틱한 사건이다. 여기에 우리에게 말씀의 권세가 있기를 원한다. 우리가 제대로 깨닫고 뒤집어지면 네이버나 구굴보다 영적으로 더 영적으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약한 자들을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주님은 그냥 돌아오라는 것이 아니고 어떤 경우에도 돌아오라고 하신다. 그 당시 예후드 공동체는 성전을 재건하는데 16년이나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절망하고 지치고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돌아오면 하나님은 돕겠다고 하셨다. 신원의 날이 있을 것이라 하시며, 원통함을 갚아주신다고 하셨는데 16년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개인적인 일도 정말 신원의 날을 주시길 원할 때가 있다. 그동안 포로생활에 나름대로 신앙을 지켜서 돌아와 남은 자들이 되었는데, 어떻게 주님이 이렇게 박대하시냐고 말하고 있다. 이방인은 저렇게 잘나가는데 우리는 이렇게 초라하냐고 묻고 있다. 이것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하나님의 약속이 제대로 성취되기 않고 더딘 것처럼 보이자 포로기에 공동체는 무기력과 좌절감에 맞고 있었다. 하나님 나라를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었다.
판벽(板壁)한 집이나 짓고 현실에 만족하고 살고 싶어 했다. 소확행이었다. 그들이 무실론 자가 된 것은 아니다. 문제가 하나님 나라의 도래, 하나님 나라의 큰 비전과 소망이 사라져서 현실에 안주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만군의 하나님, 온 우주의 권세자이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하시게 되었다. 결코 소망을 포기 말고 돌아오라고 하신다.


스 9:12절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사로 잡혔있어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다. 소망의 포로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이다. 1만군의 여호와, 2여호와의 날, 3우리는 소망의 포로이다.


*소망의 포로가 무엇인가?
-장차오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심지어 13절에 하나님 나라의 확실한 화살과 확실한 활이라고 한다. 소망의 포로는 장차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로잡힐 것이 소망의 포로인 것이다.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이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히는 통치를 받는 것이 소망의 포로이다. 나는 예수님만으로 참 만족을 누리네~~ 나는 소망의 포로자입니다. 우리는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적 통일을 원하고 기도한다. 그래서 소망의 포로이다. 그래서 우리가 소망의 포로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스 9:12절에 보면 돌아올 때 하나님은 갑절이나 갚아준다고 하신다. 우리는 이 말씀을 그대로 받기를 바란다. 갑절로 갚아주신다. 갑절이라는 말은 *슈브(히브리어):돌아오라는 말, *미쉬네(히브리어): 갑절로 갚다이다. 주님은 돌아오면 갑절로 갚으신다는 것이며, 돌아오면 갑절로 갚아서 돌려보낸다는 뜻이다. 완전한 복귀이다. 성경을 믿는다는 게 엄청나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말씀의 능력을 주셔서 말씀의 화살과 말씀의 능력을 주시길 바란다. 이사야 61장7절: “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면 모든 수치가 물러갈 것을 믿는다. 우리 성도들이 배가 얻기를 바라며 즐거움과 능력이 회복되길 바란다. 돌아온다는 것은 갚아준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승리가 된다.
유즌 피터슨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부족한 것은 신앙인으로 거룩한 상상력의 부족이다’ 우리가 거룩한 상상력이 되어 승리가 될 것이라 믿는다. 모두가 다 상상력을 회복하여 소망의 포로가 되어 주님이 주실 역사를 기다리며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스 9:13절 “내가 유다를 당긴 활로 삼고 에브라임을 끼운 화살로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우리 가족과 자녀가 이 소망의 포로가 되길 바란다. 초청 받은 자였지만 그들은 페르시아 통치를 받는 식민지의 사람들이었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사회적으로는 포로로 끌려간 자였다. 사마리아 사라들로 인해 심신이 지친 자였고, 영적으로 메말랐다. 왕도 없고 나라도 없고 예배드릴 성전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자에게, 하나님은 초청장을 보내주시며 시대를 반전시켜 주시겠다며 갑절로 갚아주신다고 하신다. 만군의 여호와가 갑절로 갚아주실 것을 믿는다.
♧ 요약
우리 모든 성도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到來이며 영역 주권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영표에 맡기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원한다면 그분에게 돌아가야 한다. 핵심이다. 돌아오면 갑절로 갚으신다는 것이며, 돌아오면 갑절로 갚아서 돌려보낸다는 뜻이다. 완전한 복귀이다. 성경을 믿는다는 게 엄청나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말씀의 능력을 주셔서 말씀의 화살과 말씀의 능력을 주시길 바란다. 이는 포로 생활 중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약속을 바라보며 기다린 자들을 말한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해방의 약속이란 아직 바벨론에 남아 있는 유다 백성을 구원할 것과,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죄인들을 구속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배가 얻기를 바라며 즐거움과 능력이 회복되길 바란다. 돌아온다는 것은 갚아준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승리가 된다.


♣ 느낀 점.
세례식에 오늘 말씀을 세례자와 우리에게 잘 맞게 해주신 것 같다. 왜냐하면 코로나로 침체기에 지금 우리는 더 깊이있게 하나님 앞에 제대로 서려면 이 말씀을 받아서 주님과 더 친밀하여 예배하고 찬앙을 드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례자들의 간증 문이 참으로 눈물겨웠고, 그들은 절대로 주님을 멀리하지 않고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목사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아서 이해하고 실천하는 자가 될 것 같다. 그들은 소망의 포로가 되리라 믿는다. 주님께 돌아와 절대적인 진리를 믿어서 주님 안에서 능력을 받아 주님이 돌아오면 회복되게 해주시고 갑절로 갚아주시니 우리는 소망의 포로가 되길 원한다. 그래서 주님의 지상 명령을 이루어가기를 나와 그들이 함께 하여 주님께 아름답고 거룩하게 쓰임 받기를 기도한다.            
☆ ☆☆  

세상에는 눈물뿐이고 고통만 닥쳐와도
내 심령은 예수님으로 기쁜 찬송 부르네
나는 예수님만으로 참 만족을 누리네
세상 영광 다 준대도 주님과 못 바꾸네

한숨 쉬는 불행이 변해 기쁜 찬송 부르니
괴로움을 주던 환경이 천국으로 변했네
나는 예수님으로써 참 만족을 누리네
세상 영광 다 준대도 주님과 못 바꾸네

금은보화 다 준다 해도 예수님만 못하며
명예 지위 훌륭한 대도 주님만은 못하다
나는 예수님으로써 참 만족을 누리네
세상 영광 다 준대도 주님과 못 바꾸네

속지 마라 세상 허영에 마음 뺏기지 마라
세상 것은 일장의 춘몽 물거품과 같도다
나는 예수님으로써 참 만족을 누리네
세상 영광 다 준대도 주님과 못 바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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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0. 6. 14)

제목: ''회복의 플랫폼''
말씀: (스가랴1:1~6)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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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부터 스가랴의 말씀을 하게 된다. 모든 성도들이 주님 앞에 다시 치유되게 하시고 회복되게 하시길 기도한다. 교회 역사를 세계역사를 보면 큰 질병 이후에는 부흥이 왔다. 참혹한 이후에도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한국도 선교 초창기에도 질병이 많았다. 장질고사, 호혈자(콜레라), 등이 한국에 대 부흥이 일어났기에 코로나 사태 이후에 부흥이 되길 바란다. 이 스가랴서로 영적 부흥이 되고 이 스가랴서가 마칠 때쯤 되면 코로나 백신 그리고 실제 의약백신도 나오길 원한다. 그래서 은혜의 잔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감사와 은혜를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기를 원한다. 스가랴서는 어려운 내용이다. 스가랴는 말라기 바로 앞부분 앞에 있는 말씀이다. 특권과 영광스런 전통과 자양분을 하나님이 주셨다. 동시에 부담이 많지만 스가랴를 말씀하게 되었다. 닥터 찰스 파인버거라는 사람은 유대 랍비들이 개종을 해서 전통 구약의 풍성한 바탕위에 복음을 받아 들였다고 한다. 그 사람의 강의를 듣고 은혜가 되었다.


I. 스가랴서는 ‘회개의 회복’에 대한 책이다.
1. 구약의 아름다운 전통이다.


닥터 찰스 파인버거라는 사람은 유대 랍비들이 개종을 해서 전통 구약의 풍성한 바탕위에 복음을 받아 들였다고 한다. 그 사람의 강의를 듣고 은혜가 되었다. 여호와의 날이 임한다는 것이다.(The day of the Lord!)
오늘 이 예배 주님의 자녀들이 ‘The day of the Lord!’를 여호와의 날이 임하기를 바란다.
2. 4차 산업혁명시대에 우리가 지금 변화에 대한 반응과 각오가 있어야 한다.
제대로 감당해야 한다. 앞장서서 교회를 섬기는 자들이 전문적인 빅데이타를 하시는 분들이 5주째 두 시간 동안 기도하고 있다. 사랑의 교회가 말씀을 통하여 잘 감당하게 되길 원한다.
3. 사람마다 역할 모델이 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신학자였다.
그는 교육자, 정치가, 언론가, 자유대학을 창시자, 유명한 수상이며, 아트가였다. 그분의 치세와 역량이 나타나고 있다.


▶플랫폼시대는 정거장이다. 스가랴는 부흥과 회복이 되는 장이며, 구약의 종말론이라고 불리운다.
그리고 평범한 책이 아닌 예언서이다. 스가랴서에 신약에도 71번이나 나오며, 요한계시록에 28번 인용되며, 아주 흥미롭고, 독특한 환상이 8가지가 나온다. 구약의 묵시록이며, 14장이며 예수님의 초림에서 재림이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보여주며, 구약의 예언의 정수가 되는 책이다. 대선지서는 길이가 더 길고 소선지서는 12소선지서인데 그 가운데서 가장 신비한 책이다.
1. 여호와의 천사 예수님께만 집중하는 기도문.
2. 참된 성전 회복 교회론.
3. 스가랴서를 통하여 인류의 종말론이 담겨있다.
스가랴의 이름은 구약에 자주 등장한다. 그 이름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이다. 아주 좋은 이름이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눈동자 같이 기억해 주시길 원하다.


1:1절에 보면 잇도는 바벨론 포로기였던 사람이며, 회개와 회복의 대한 책이다. 현재의 회개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고레스칙령으로 회환했다. 엄청난 사마리아 사람들이 공격하고 삼발랏과 방해에 의해서 16년간 중지를 했다. 학개서 1:4절에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하나님의 성전이다. 우리도 삼발랏처럼 낙심했다면 다시 제 위치로 돌아와야 한다. 학개서와 스가랴서는 ‘다리오 왕 제 이년에 여덟째 달...’ 학개와 거의 같으며 학개는 외적이며, 스가랴서는 영적으로 내적인 것을 강조한다.
▶1:3절에 핵심이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돌아와 회복하라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돌아와 계신다. 하나님의 거룩한 초청장으로 인해 우리는 이미 구원받아 있다.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고 있다. 주님이 돌아오셔서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가 지속적으로 우리가 돌아가야 한다. 역동적인 관계이며 코로나를 뚫고 예배를 드린 것도 지속적인 일이다.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온전한 수준으로 닮아가며 회복의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조건이 하나 있다. 1:4절에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의 잘못을 따르지 말라 그들의 불순종으로 이스라엘이 폐허가 되었는데, 우리는 그러면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조상들은 아니다. 조선시대는 노예를 삼는데 자신의 나라의 백성을, 자국인을 동족을 노예로 삼았다. 양반의 나라를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랬다. 무능한 선조 등, 북한은 복조선이라 지금도 조선시대 그대로이다. 우리는 이 역사를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1:5절 “너희 조상들이 어디있느냐 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또한
1:6절을 보면,
6절 “내가 나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한 내 말과 내 법도들이 어찌 너희 조상들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이켜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느니라” 그들의 행위가 너무 엉터리였다.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아서 형벌을 받게 되었다. 1:2절에 “여호와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셨느니라” 죄로 인해 하나님은 분노하셨다. 이 거룩한 진노는 우리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져도 자식을 누가 그렇게 두겠는가? 그럴 때 오염된 인생을 그 문제를 해결하라는 뜻이다. 돌아오는 조건은 거룩한 진로이며 제대로 회복하고 죄를 슬퍼하는 것이다. 에스켈 18:30-31절에 모든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며, 죄악을 버리고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것이며, 너희가 죽고자 하느냐고 한다. 거룩한 진노로 죽고자 하냐고 묻고 계신다. 우리의 죄악의 걸림돌로 죽고자 하느냐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 거리끼게 하는 것들을 주님이 정화시켜 주시길 소원한다. 우리 주님이 해결해 주시려고 목자의 심정으로 정리하고 잘못된 관계도 정리하고 회개하라는 것이다. 우리를 살리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회개하여야 하는가?


II. 예수 그리스도 지배를 위해 회개해야 한다.
  스가랴 1:1절 “다리오 왕 제이년 여덟째 달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이것은 그 이스라엘의 통치를 이국의 나라의 연표를 받아들었기에 그 지배를 받게 되었다. 강력한 통치자였다. 다리오 1세이다. 그게 얼빵한 3세가 아니다. 그는 강력한 통치자였다. 내 인생의 연표는 누구인가를 잘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도 중국의 연표를 사용했다. 명나라, 청나라 등 이런 식으로 중국의 연표를 받았다. 북한은 주체 몇년이다. 우리의 연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가 연표이다. 시작이고 끝이 되는 것이다. 우리를 역사하시는 순간이 영적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어느 대통령, 어느 치세 몇 년이라 하지만 참고이고, 껍게기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연표를 받아야 한다. 무엇을 사용하는 것일 때 관등성명(官等性名)에 주후를 붙여 써라. 모든 사람들이 '주후"0000 몇 년이라고 써야 우리 사랑의 교회 확인증이다. 우리교회 사람은 다 그렇게 사용하기를 바란다. 주후는 하나님의 나라는 실체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출발의 근거지 영적 생태개를 회복하는 내용으로 풀레슈폼이 회복된다.


III 영적 주권으로 '주후'를 쓰면 무슨일이 일어나는가?
 스라갸 1:1절 “다리오 와 제이년 여덟째 달에 여호와의 말씀이 ~ ”살아계신 말씀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임하며, “1:3절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성경에 많이 나온다. 하나님의 연표가 주권이 임할 때 만군의 하나님은 The day of Lord.이다. 모든 천군천사의 왕이시다. 임하실 때 만군의 여호와가 되어 주실 것이다. 큰 군대의 왕으로서 영권을 접붙여 주실 것이다. 구글 네이버가 아닌 우리는 정보주체주의가 되어가고 있지만, 우리는 만군의 여호와 The Lord of horse이다. 완전히 달라진다. 신앙생활도 다르다. 만군의 여호와로 스가랴의 시동이 걸려야 한다. 사랑ON에 반응해서 함께 나누길 바란다. 아무리 멋진 좋은 차라도 엔진이 걸려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만물을 통치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인류가 존재하는 모든 삶의 영역들 중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영역은 단 한 평도 없다". -아브라함 카이퍼-


▶스가랴 1:17절에
“그가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라 하니라”
♧ 요약
  스가랴는 다리오 왕 2년 8월부터 여호와의 말씀을 받기 시작하였다고 한다(1:1). 이때는 포로에서 돌아 왔지만 방해를 받아 짓지 못하고 있던 성전의 건축이 시작된 상황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때에 스가랴에게 예루살렘에 대한 말씀을 주시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현재에 짓기 시작한 보이는 성전 건물을 성전이라고 생각하지 말하고 하나님이 지으실 참된 성전과 예루살렘이 어떤 것인지 알고 그것을 바라보게 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가 있다. 성전은 바로 우리인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죄악의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우리를 회복의 플랫폼으로 다시 세우시고 살리실 때, 날마다 회개하게 하며, 주님 앞에 지속적으로 돌아오는 새 마음과 새 명을 받아서 말씀이 임하는 곳에 만군의 하나님이 통치하심을 믿고 그리스도의 연표를 사용하여 내 삶의 전 영역에서 주님 통치에 순종하여 官等姓名이 분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스가랴 시리즈 설교를 통해 우리가 코로나와 우리의 질고가 회복되어 주님의 나라에 아름답게 쓰임 받아야 한다.


♣ 느낀 점.
 오늘 말씀을 듣고서 나는 스가랴를 통해서 회복을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모든 일들이 회복되면 좋겠지만, 자녀들이 어린시절 교회에서 열심하고 나누는 모습이 좋았는데 지금 자주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음에 마음이 편치가 않다. 나의 미래가 바로 이런 고민이었는데, 정말 자녀가 믿음 좋고 하나님 앞에서 찬양과 경배를 열심하는 자녀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바쁘다는 핑계도 있지만 교직으로서의 본이 되려면 주님을 더욱 가까이 했음 좋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정말 주님 앞에서 올바르다면 아이들은 따라오리라 믿기에 온전히 나는 예배를 드리기를 바라며, 봉사에도 게으리지 않게 하고 있다. 매일 나는 기도하고 있다. 제대로 주님을 만나서 결혼도 하고, 즐겁게 주님과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눈물로 기도하며 지내고 있다. 오늘도 딸은 교회는 다녀왔고, 십일조도 냈다. 그러나 대충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맘에 안 든다. 진정한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길 간절히 소원하며 이 번 스가랴를 통해 믿음이 회복되는 가정이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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