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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 6. 7일)

제목: ''낙심하지 않는 질그릇''
말씀: (고린도후서 4:7~12)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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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만지시고 터치하시길 바란다. 말씀의 영감과 성령님의 조명을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덧난 것들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가 다 코로나사태에서 영적승리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전사가 되기를 바란다.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까지 말씀하고, 다음 주부터 스가랴를 공부한다. 본문은 바울사도가 ‘그리스도인들을 그릇으로 본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의 몸을 그릇으로 보는데 그것은 한계가 있다. 우리 몸은 상처도 많고 조급하고, 답답하고, 사실 상처의 몸, 상처의 전이기고 하고, 조급함의 전이기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피로 값으로 대신 산 성령의 전이라고 하셨다.


I. 성령의 전이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후 4: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8절에도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바울사도가 낙심한 일이 많았는데 고후 1:4절에도 늘 눈물이 떠나지 않았다. 1:8절에도 얼마나 힘든지 고난을 당하여 사형 선고를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상황이 낙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신구약 전체에 생태계이며, 우리 삶의 반격이다.
이천 년, 삼천년 전에 시편 42편5절에도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말하는가? 이것이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본문에 바울은 본래 종교적으로 학문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며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 바울이 그 마음속에 큰 짐이 하나 있다. 고전 15:9에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바울의 입장에서는 늘 치명타를 안기고, 바울의 마음속에 큰 고통을 안겨준 것은 스데반을 죽이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죽인 일들이며, 바울의 손에 피 묻은 손이다. 그걸 생각할 때마다 자신의 상처이고 힘든 일이었기에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고전 15:10절에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아무리 익숙하더라도 어제와 오늘 받은 은혜가 다르다. 바울이 낙심이 있었고, 치명타가 있었어도, 그래도 깨어진 질그릇으로 성령 충만 질그릇으로 남아서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우리가 낙심을 극복하려면,
1.은혜를 받으면 낙심하지 않는다.-
낙심은 불신앙의 열매이다. 내가 예수님의 사랑 받는 그 순간 낙심이 사라진다. 코로나 불루로 낙심할 수 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우리는 영혼의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시골에 가면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여름에 누워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처럼 낙심을 버리라.
2. 고전 8절부터 10절
♥ 4가지 우리를 깨뜨리는 것.
1)우겨쌈 - 포도를 짜는 것(취빌레이션)-상황이 어려울 때 예상치 않는 일이 있을 때 등이 우겨쌈이다.
2) 답답한 일의 도구-불확실한 일을 말한다., 코로나도 끝이 안 보이니 그렇다.
( 개척 교회에서는 확진이 없기를 바란다).


3) 박해의 도구 - 초대교회에 박해가 어마했다. 운명처럼 그랬다. 당연한 것처럼 그랬다. 요즘은 배척받고, 냉대 받고, 비판 받고, 명예가 훼손되고, 신체적은 공격을 받고, 심지어 고의적인 박해가 많다.


4)거꾸러뜨림 - 갑작스런 천재지변을 말한다. 교통사고나, 예상치 않은 천재지변 등이다. 코로나사태가 그렇다.
*이것이 우리를 기절 시킬 만큼 산산조각이 나기도 한다. 치명적인 사건이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신앙을 당황하게 한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무서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상황이다. 모두가 부정적이지만,,,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이다.


우리는 성령 충만으로 깨어지고 변화되어 성숙해지는 것이다.ㅡ영적으로 재해석 되면 성숙되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제대로 해석을 했다. 우리가 깨닫는 것 중의 하나가 해답보다 해석이 중요하다. 그리고 모든 해석은 올바른 가치관 올바른 신앙관에서 나온다. 우리는 올바른 해석을 해야 한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해석하지만, 우리는 성령님께 묻고 해석을 해야 한다. 올바로 해석을 해야 한다. 우리 입장에서 해석을 잘하면 성숙의 신앙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그 상황 자체도 괴롭지만, 우리가 해석에 있어 더 괴롭다. 보는 관점이 너무 달라서이다. 그리고 특별히 사회주의 신념을 가진 사람은 다르다. 우리 기독교는 공산주의 해석은 절대 안 된다. 해석을 통하여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신념 화 시키기 때문이다. 진실과 비 진실을 떠나 갑자기 이념 싸움이 되기도 한다. 사랑의 교회의 성도들은 이것을 뛰어넘어야 한다. 성령님께 물어보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모든 일들을 이념화나 상황화를 시키지 말고 절대적인 말씀에 계시와 조명을 비추어 성령님께 물어야 한다. 그러니까 성령님을 통해 위아래 주님이 주시는 해석을 가지고 해석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겨쌈, 답답함, 박해, 거꾸러뜨림 이런 상황을 만나면,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필요한 질그릇으로 만들어 주신다. 성숙한 질그릇이다. 깨어져서 그 속에서 나는 향기가 보배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일을 당할 때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죄의 본성은 그냥두면 교만해진다. 성경에 모든 인물들은 몽땅 다 겸손했다. 그래서 질그릇이 되었다. 겸손하지 않는데 무슨 일을 하겠는가? 우리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모두가 깨어질 때 우리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II. 깨어지면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된다.


*깨어질 때 일어나는 일.
고후 4:5절에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후 4:15절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4가지 상황을 당하였을 때 어떤 해석을 해야 하느냐에 따라서 올바른 겸손을 배우고 우리는 예수님을 더 드러내게 되고 특별히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5절이나 15절은 보면서 낙심하지 않는 질그릇은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통하여 낙심하지 않게 하여 감당할 수 있도록 깨어짐의 4가지 도구를 주셨는데 그 모든 것들을 통해 결국은 내가 겸손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무장되어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이다. 10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절에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깨어지면 모든 사람들에게 영적 에너지를 주는 것이다. 겸손해지니 남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늘 이 4가지를 통하여 늘 죽는 것이다. 나 때문에 이웃이 살고, 가족이 살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깨어짐을 통하여 예수의 생명의 능력이 공동체가 이웃과 가족에게 에너지를 주게 된다. 낮아져서 교회도 살고 가족도 살고, 나도 산다. 문제는 자신이 깨어지고 싶어 하지 않는게 문제이다. 자기는 안 깨어지고 남을 깨뜨리려 한다. 그렇게 된 사람들은 말년이 비참하다. 말년이 초라하다. 누가 그 옆에 가고 싶겠는가! 이 말씀 앞에 경험을 통해 영적 에너지를 주는 자 되라. 두 종류의 자가 있다. 깨어져야 보배가 되고 향기가 나오며 주님의 영광을 드리게 된다. 복음의 깨어진 전사가 되기를 바란다.
고후 4:16- “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바울은 은혜를 받아서 수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주는 에너지 발전소이다. 서로 영적에너지를 나눈다. 브리스길라 ~아굴라를 통해 바울은 나누었다. 디모데에게도 주고, 21세기 오늘 우리도 이웃들에게 에너지를 주시기 바란다.


♣ 요약
낙심하게 하는 모든 일들을 성령님께 묻고, 성경적인 조명으로 해석하며 교만한 죄의 본성을 깨뜨려서, 주님이 주시는 해답을 얻어야 한다. 또한 남을 깨뜨리는 인생이 되지 말고, 자기 의가 와장창 깨어져서 남을 낫게 여기고, 자신을 겸손하게 하여서, 우리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져야 하고 영적인 에너지로 준비하고 발전소가 되어서 늘 사람들에게 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주님이 기뻐하시는 질그릇이며 낙심하지 않는 질그릇이 되어야 그리스도인답다.


▶느낀 점. 낙심되는 모든 일들을 주님께 맡기고 온전히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나는 늘 낙심을 많이 할 때가 많았다. 자녀 남편, 친구, 나의 형제, 이웃 등을 보면 잘 사는데, 나는 신앙인으로서 더 당당하게 못살았음이 회개가 되었다. 이제는 주님 안에서 낙심하지 않고 담대하게 남을 사랑하고 높이고, 남을 영적으로 세우는 삶으로 변화되기를 다짐해 본다. 오늘 예배와 찬양도 좋았지만, 우리교회 공동의회 투표용지를 한 번 더 헌금 위원들이 나누어주고 걷었다. 단지 어떤 분들이 도대체 장로님이 되시며 교회의 중직 자가 되시는지에 알 수가 없는 것이 아쉽다. 하나님이 인도하시겠지만 궁금했다. 정말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하나님 앞에서 성실한 사람이길 바래보며 기도해야겠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 교회를 든든히 이끌어가는 자들이 되기를 바래본다. 나도 정말 낙심하지 않는 질그릇이 되어서 주님 앞에서 인정받는 자로 살아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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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0. 5. 31)
제목: ''성령 충만한 그릇''(Spirit -Filled Vessel of Clay)
말씀: 고전 (6:19~20, 고후 4:7)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한 사람의 기도와 한 교회의 사명을 붙잡아 주시고 한 지역의 부흥을 통하여 시대를 변화시킨다. 평안북도 선천에 선교 보고서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는 자들이 기도처 예배에 믿음과 부흥이 무수히 일어났다고 한다. 한국 교회가 역사와 은혜를 가지 민족이니 하나님께서 세계 수많은 코로나 사태가 있지만 한국 교회는 복음의 능력과 기름 부음으로 회복시키실 것을 확신한다.


성령강림 주일
이 분들이 주님 앞에서 변화 받고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I.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이다.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부패한 속에 고린도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 어려운 사태에도 성령강림주일을 지키게 되어 감사이다.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인 것이다. 우리의 몸이 특별한 사명의 실체가 되면 우리의 삶의 차원이 놀랍게 달라진다. 우리는 모든 육신의 제한을 받고 살고 있다. 제한이 없는 자가 없다. 조급함, 두려움, 육신의 고통, 정욕, 우리가 늘 두려움의 전, 아픔의 전, 근심과 고통의전이 되기도 하며 배고픔으로 성격이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지며 배가 너무 불러도 불쾌하기도 한다. 그리고 잠을 못자면 힘들기도 한다. 우리의 부족하고 연약한 몸을 성령께서 오셔서 성령의 전이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이 말씀이 신비한 것이다. 성령의 전인 것을 어떻게 오늘 본문을 통해서 잘 살펴보자.
우리 몸을 성령께서 오셔서 성령의 전이다라고 하신다.
성령의 전이 되게 하기 위해서 성삼위 하나님께서(성부와 성자 성령) 총체적으로 임해 주셨다.
우리의 미래는
20절에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피 값으로 사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것이 과거의 몸은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것이며, 현재는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성령의 전으로서 현재 임재가 있게 하시고, 미래는 성부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가지고 영광을 올려 드리라는 것이다.
과거- 그리스도 예수의 피 값으로 산 것,
현재- 성령의 임재를 통한 성령의 전,
미래- 성부하나님께 우리 몸을 가지고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
그래서 우리는 聖靈殿이다. 전이라는 것은 성전이다.
예루살렘 성전과 같고, 광야의 성막과 같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의 예배하며 하나님께 제자를 올려 드릴 때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기둥이 빽빽하게 임한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의 전으로서 역할이 제대로 감당된다면 육신의 한계도 있고, 우리의 분노나 조급함을 감당 못하고 분노가 전도되기도 하고 우리의 마음이 상할 때도 있지만, 이 성삼위 하나님께서 총동원되셔야 할 만큼 은혜를 주시는 몸이라면 제대로 되면 오늘 우리 시대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영광의 구름 기둥으로서, 우리에게 예고편으로 확인될 수 있다. 동시에 광야 길의 성막이 어떠했는가? 물도 없고, 어둡고 환경자체가 척박하지만 그런데 유일한 소망이 여기서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광야의 성막이다. 모세의 성막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사 드리고 했을 때에, 그 성막에 쉐키나의 영광이 구름 기둥으로 뻭빽하게 임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이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은혜로 신약시대의 우리에게 모두를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고린도 교회의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샀지만, 너희 몸을 성령의 전인 줄 믿으라고 하신다. 성막의 영광, 쉐키나의 영광, 예루살렘의 찬란한 영광을 오늘 이 시간 예고편으로 맛보는 성령강림 주일이 되길 원한다. 우리가 영적으로 눈이 뜨이길 원한다. 정말 중요하다. 특별한 것이다.


우리의 몸에 성령이 거하시는 영광스런 주의 인 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길 바란다. 워킹 템플, 무버블 템플(Working Temple, Movable Temple)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몸의 성령의 은혜가 되기를 바란다. 자유함을 가지고 주의 쉐키나의 영광이 임하기를 찬양하고 싶다. 코로나로 방역 지침을 우리는 기도를 지속하고 있으니 우리에게 움직이는 주의 전이되기를 간구한다. 우리 몸은 성령의 전인 줄로 확신한다. 그런 마음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주의 임재가 있기를 원한다. 믿음의 용량이 커져야 한다. 성령이 역사하면


디엘(D.L) 무디는 이 세상은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께 온전히 그의 몸이 의탁된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일을 하실 수 있는지를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라고 이야기 했다. 그는 미국의 대 부흥 신학자이다. 뉴욕 거리를 걸으면서 묵상하는데 충격이 왔다. 그래서 본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기도를 했더니 그때에 성령님께서 무디를 사로잡으시고, 장악하시고, 성령의 도구로 사용하시고, 하나님께서 성령의 전으로 삼으시고 놀라운 전 세계의 대각성의 역사를 쓰게 되었다.
성령의 지배를 받으니...우리는


II. 그리스도의 몸은 질그릇이다.
고후 4: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 몸 질그릇이다. 성령의 전일 뿐 아니라 우리 몸을 질그릇에 보배로 담고 있는 것이니, 신앙눈으로 볼 때, 신앙으로 사람을 볼 때에 우리가 그릇인 것이다. 성경에 토기장이가 사람을 빚을 때 하나님이 귀히 쓰는 그릇으로 하나님이 쓰실 그릇으로 말한다. 특별히 바울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시려고 했을 때도 그랬다. 하나님의 사람을 그릇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도행전 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어떤 사람은 귀히 쓰고, 어떤 사람은 천히 쓰고,,,,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보배가 질그릇을 결정한다. 바울은 예수님은 보배여서 어떤 자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보배의 그릇이 된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연약한 그릇이라고도 했다. 성령 충만을 체험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은혜를 받기 위해서 그릇이 되어 질그릇이 되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질그릇도 두 가지 용도가 있다. 하나는 귀한 것- 중요한 것과 보배로운 것을 담는다. 또 하나는 천한 것- 인간의 배설물로도 쓰인다. 질그릇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보배가 질그릇에 담겨있으니 질그릇이 보배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보내가 질그릇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늘 바울이 강조하는 것이 내 속에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니, 나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라고 한다. 어떤 무식쟁이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는 순간, 우리는 보배를 담은 그릇이다. In Christ!!!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질그릇이다. 그러므로 말씀 중에
골로새서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질그릇은 그래서 기가 막힌 그릇이 된 것이다.


질그릇은 질그릇인데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다.
그 당시 구리그릇도 고린도 당시에 동 그릇과 있었다. 사도 바울은 왜 값없는 것을 사용했는가? 값어치 없고, 화려하지 않는 질그릇을 사용하는가? 그 이유는 질그릇은 세상의 사람들의 가치관과 다르다. 고린도 당시에는 동 그릇이 더 가치가 있었지만, 세상 가치관은 화려하지만 세상의 가치관은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이 질그릇을 심는 순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이 디지털 세상 가운데에서도 가치관이 달라진다. 기독교의 가치관은 내적으로 예수님을 품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외적으로는 질그릇이지만, 이 그릇이 예수님을 담으면 최고의 그릇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에 기죽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의 학벌, 지위나 이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백악관의 주인보다 하나님의 성전의 문지기가 더 낫다는 것이다. 오늘 이렇게 성령 강림 주일에 예배하는 자가 더 가치가 있다. 오늘도 수고하는 자가 많다 그러한 사람들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주차, 교육 안내 봉사 등 가치가 있는 삶이다. 코로나 재 확산 때문에 조심한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사모하기에 이렇게 예배를 드린다. 주님의 초청장이기에 우리는 그 가치를 믿고 헌신한다. 질그릇의 가치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릇의 용량을 키워서 유기적인 믿음으로 영적인 용량을 넓혀서 살기를 소망한다. 찬양 길 만드시는 주님은 상한 심령을 치유하시기에 우리의 찬양도 중요하다. 오늘 은혜의 찬양은 길 만드시는 주이다’~ 찬양도 영적인 용량이 넓어져서 질그릇에 보배로 담아지길 바란다.


III. 우리의 질그릇의 용량을 넓히고 깨끗하게 하려면
디모데후서'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말씀의 용량을 넓혀야 한다.
-1) 말씀으로 깨꿋하게 해야 한다. 주일에 아이들과 암송하고 예배에 나와서 아이들과 기도하라. 말씀으로 믿음의 용량의 넓혀달라고 할 때 일해 주신다.
-2)기도하여 깨끗이 씻어야 한다. 말씀과 기도로 간구하면 하나님은 지키신다.
에베소서5:26,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말씀의 용량을 넓힌다. 기도의 용량, 찬양의 용량을 넓히기를 바란다. 믿음과 기도의 용량이 커져서 우리의 그릇을 깨끗하게 되길 기도하라. 마틴 루터 말씀 용량을 넖히니 하나님이 지키셨다.
바울은 사도행 16:25~26,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그래서 말씀과 기도의 용량을 넓혀서 살라.
-만입이 그 입다 가지고~^ 찰스웨슬리 영국을 변화 시킨다 그 형제가 그렇다.


요약.
성도의 몸은 성도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성도들에게 주어진 은혜는 위대한 변화를 낳는다. 그 변화의 기초는 성령께서 우리들의 심령에 믿음으로 내주하시는 것이다. 죄에 종노릇하던 인생들이 이제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된 것이다. 질그릇 속의 보배란 인간의 연약함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인간 자체는 약하지만 성도 각자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귀한 보배를 가졌기 때문에 세상에 대하여 강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몸은 성전이니 거룩한 가운데 근심 걱정 연약함 다 주님 안에서 맡기고 성령님의 임재와 능력을 완전하게 덮어 주심을 믿고 모든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성령 충만한 그릇으로 평생을 살게 되어야 한다. 성령님께서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충만하게 지배해 주시길 간구하여 말씀의 용량을 넓혀서 모든 질병을 치유 받고 모든 일들을 해결 받기를 원하니 바울이 질그릇을 귀히 여기는 것처럼 보배로우신 주님을 의지하여 날마다 성령 충만 받고 주님 안에서 귀히 쓰임 받은 질그릇이 되어야 한다.


느낀 점.

내가 매주 새벽부터 주일을 준비를 한 것은 늘 주일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주님 전에서 예배드리는 감사의 은혜가 있기 때문이며, 예배 헌금위원으로 일찍 미리가 가서 기도하고 준비하면 왠지 뭔가 은혜를 더하는 느낌이 든다. 기도를 응답하시는 느낌이 들기에 아무도 도착하지 않는 시간에 좀 일찍에 가서 기도를 한다. 본당에서의 예배를 내가 (타자속도가)속기를 좀 잘하다 보니 다 손으로 따다닥 내용을 치면서 예배를 잘 드리고 있다. 질그릇이 보배가 되기 위해서는 준비로 잘 해야 하고 훈련도 잘 받아야 하고 봉사도 성실히 해야만이 하나님은 성령 충만을 주실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면서 주님과 교제를 사모하는 주일이 되기를 무척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목사님은 오늘 성령 충만이신지 헌금을 빼고 예배를 마치시려 해서 우리가 깜짝 놀랐지만 센스가 극치셔서 금방 알아 차리셔서 다행히 순서가 순적하게 되었다. 성령 충만 받아 이렇게 귀히 쓰임 받는 질그릇도 되고 싶다. 가정과 공동체에서 진정한 질그릇이 되고 싶다. 세상 가치와 비견하는 아름다운 질그릇으로 변화시켜 주실 주님을 믿고 의지하여 날마다 성령 충만한 그릇이 되기 위해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겠다.

☆ 길 만드시는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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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0. 5. 24)
제목: ''믿음의 계승''
말씀: 창세기 25:19~23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오늘 어린이들이 성경봉독을 자리가 이글 앱튼이며, 독수리 성경 보면대이다. 46장 찬송을 믿음의 계승으로 하는 찬양이다. 조부께서 찬송하신 것을 鮮然하다. 찬양도 계승했다. 주 오늘 이 찬양으로 모든 코로나 바이러스가 씻어지길 바라며 주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원한다. 천군천사께 예배하는 것을 예고편을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한국교회에도 이 찬양이 계승되길 바란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강력한 기쁨이 되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줄 믿는다. 믿음계보이며 신앙의 계승이다. 사역은 수선대후가 되어야 한다(선대의 은혜를 후대에 이어가다). 일관된 마음의 소원이다. 우리 어느 한 대에만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모든 세대를 아우러 영광을 받으신다. 그래서 믿음을 계승되어야 할 줄 믿는다. 그리고


계승해야 한다는 말에게 3가지가 있다.
守先待後係昇 (수선대후의 믿음의 계승)
1. 신앙계승-아브라함처럼 계승하는 것이다.
2, 비전계승-요셉처럼 자기를 통하여 그 가정 공동체를 살리며 민족을 살리는 것이다.
3. 사역계승-사역을 계승하는 것이다. 여호수아처럼, 영적 전략을 갖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예수님처럼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는 것이다. 신구약 전체에 일관된 내용이다.


  이사야 59:21,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대대로 3456대 금방이니 이렇게 이 믿음의 계승에는 육적인 계승도 있고 영적인 계승도 있다. 육신의 혈통의 계승은 아브라함-이삭-야곱처럼 혈통에 따라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사랑의 교회에도 육신의 혈통으로 믿음의 계승이 잘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계승할 사람이 없을 수 있다. 그런 분들은 영적인 믿음의 계승이 되면 된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충성된 사람이 영적이 계승을 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사역에 잘되고 안되는 것을 체험해보면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 신앙생활의 선행과 잘한 일을 떠나 부를 쌓고 세상에서 대단해도 중요한 것은 부모가 떠난 후에 자녀들에게 복음적인 제대로 세대계승을 했는가이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제대로 키웠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결정된다. 그가 떠난 뒤 얼마나 세대계승을 했냐는 것이다. 우리 교회 제자훈련이 목표와 중요점도 제자훈련의 목적이 복음적 세대계승을 보장하는 정말 중요한 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 마찬가지다 개인 가족뿐만이 아니다. 30년만 지나면 영국의 종교가 이슬람으로 떠오른다는 염려를 하고 있다. 18세기, 19세기, 200년 전에 전세계 믿음의 모태의 나라가 지금은 수술대 위에 놓여있는 응급실 환자와 같이 전락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영국의 신앙의 모태 나라가 응급상태로 전락했는가! 그렇게 믿음이 강한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 기도의 롤모델인 조지뮬러, 현대 선교의 아버지 허드슨 텔러와 찰스웨슬리의 형제의 섬김의 그런 나라가 왜 이렇게 된 것은 나라가 그것은 바로 복음, 믿음의 계승을 실패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전투에서 이겼지만 마지막 결정적인 전투에서 패배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기에 사람의교회 모든 성도들과 우리교회 사역은 결정적일 때 승리한다. 사역의 계승과 믿음의 계승이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대한 말씀이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늘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먼저 나온다. 여기 본문에서 다 나오고 있다. 뭘 말하는 것인가 바로 신앙계승을 말하고 있다. 구약에서 25절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렇게 나오고 있다.


I, 믿음 계보의 겉표지와 속 내용.
-로마서 4: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믿음으로 되나니...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다


  -믿음 계보의 믿음 계보의 신앙 계승 의미는 겉표지와 속 내용은 무슨 말인가? 아브라함은 모든 사람의 조상이다. 우리 모두도 믿음의 조상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아브라함의 생애는 그 생애로(175) 마치는 것이 아닌 그 계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세대 계승되어 실효성 있게 우리에게 영형을 끼치고 있다. 영적인 유효지배이다. 영적인 믿음의 계보가 더 중요하다. 육신은 생애는 겉표지이며 아브라함의 영적인 세대계승을 통하여 나타나는 모든 일들이 믿음의 속 내용들이다. 아브라함 겉표지보다 속 내용 믿음의 계승을 통하여 특별히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믿음의 영적 계보가 계승된 줄로 믿는다. 이제 그것이 더 확장되면 그 아브라함의 자손인 모세를 통하여 깜짝 놀랄만한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주시고, 더 놀라운 것은 여호수아 같은 사람을 통하여 아브라함이 꿈도 못꾼 태양과 금성철벽같은 여리고 성을 무너지는 역사를 이루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의 영적 믿음의 계보를 통하여 다윗의 물맷돌로 골리앗을 물리친 일들, 온갖 묘략 속에 다니엘, 에스더의 여성으로서 민족을 구원하는 일 등이 한마디로 겉표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영적 계승을 통하여 믿음의 그 후대들이 가졌던 영광스런 일들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조상으로 살았던 속 내용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삭-야곱을 통해 계승되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삭의 순종을 통해, 또 이삭의 순종은 야곱은 최선을 통하여 야곱의 순종은 요셉의 최선을 통해서 나타난 줄로 믿는다. 오늘 본문에 이삭은 아내 리브가를 맞이한다. 아이를 갖지 못해서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다. 임신하기까지 20년이 걸려서 60세에 야곱과 에서를 낳는다. 그리고 에서가 장자였지만 그가 장자권을 가볍게 여겼고, 비록 야곱은 둘째로 낳았지만 장자권인 믿음의 계승을 사모했기 때문에 야곱을 통해 이스라엘이 계승되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겉표지와 속내용을 살피고 둘째로는 참 믿음의 계승을 이야기 한다.


II. 야곱을 통한 믿음의 계승.
  왜 에서가 아니고 야곱인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민족이나 이삭 민족이라 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민족이라 하신다. 나중에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받은 이름이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다. 야곱은 승리만이 아니라 실패도 많았다. 성경은 믿음 계승자의 좋은 면만 다 기록하지 않는다. 야곱은 그의 선대나 후대에 힘겹게 살았다. 처음부터 몸부림치며 힘겹게 살았고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붙잡고 태어났다. 삶의 중간 중간에 심적 고통도 많았다. , 비난도 받았다. 한마디로 우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야곱은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면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는 믿음이 큰 사람이었다. 많은 인간의 계략과 책략이 있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도 끝까지 애썼다. 그런 인간적인 부분이 많았지만 되게 안 어울리는 조합의 인간이었다. 형도 속였는데 천사와 씨름하고, 아버지도 속인 하나님께도 바라는 연구 대상이다. 우리도 야곱과 같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오직하면 성경은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 하신다. 한 가지가 있는데 그는 야곱은 장자 권을 주신다. 축복, 믿음의 계보도 함께 주신다.
우리도 그렇다. 많은 안 착실한 야곱처럼 사는 자가 많다. 우리는 파란만장하기도 하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용하여 믿음의 계승을 하신다.
-히브리서 11: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믿음으로 이렇게 야곱은 각 아들을 축복하는 계승한다. 모든 성도들이 이 세상을 떠날 때에 반드시 자녀들을 축복하고 가야한다. 한 명도 예외 없이 주의 백성들은 그러해야 한다. 주를 의지하여 오늘 믿음의 아름다운 장자 권을 사모하는 것이다. 사모하길 바란다. 그리스도의 삶은 릴레이 경주처럼 선대로부터 받은 믿음의 계승을 넘겨주는 것이 삶의 완성이다. 믿음의 경기자가 다음 경기자에게 바통을 넘겨주지 않으면 경주가 완성 될 수 없다. 육신의 죽음이 언제 끝날지는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다음세대에 믿음의 바통을 넘겨주어야 끝나는 것이다. 이것이 안 되면 제대로 신앙 생을 한 것이 아니다. 목사님은 3대가 개척을 했다. 아들이 자신이 개척 시에 교회에 걸어 놓은 슬로건이 하나 있다. 바로 영어로 걸었다) Honoring our Roots, Reviving our generation!이다(우리의 뿌리를 존중하고 우리 세대를 부활시키는(계승)하는 것이다). 선대의 존경과 자기 세대에서 부흥을 말한다. 전혀 관계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걸어 놓은 것이라 참으로 고마웠다. 믿음의 계승을 본인도 원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믿음의 세대 계승이 우리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보람과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종을 통하여 우리 가족과 개인의 저주와 상처 고통이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바뀌어 버리길 당대에 축복을 주시길 바란다. 아담의 불순종이 아브라함이 뒤집었듯이 우리도 반전을 시켜야 한다. 죽음의 역사가 생명의 역사가 되고 자녀가 없는 분들은 영적인 계보를 이어가시길 바란다. 그래서 세대 계승을 하여야 한다.


III. 믿음의 계보를 위한 적용.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계보를 위하여 그 하나님의 사람들을 평생에 다듬으신다. 모세는 팔십 년을 다듬었다. 이삭은 20년 동안 다듬었다. 착해서 40세에서 60세까지이다. 아브라함은 25년간 다듬었고, 야곱은 100년을 다듬었다. 평생 다듬었다. 에서가 더 멋져보여도 야곱은 좀 그랬다. 우리 모두가 거친 돌과 같다. 이삭은 모범생이었다. 이 자리에서도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금도 다듬으시고 추적하시며 기다리시고 계신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이 계승될 때까지 우리의 인생의 겉표지뿐만 아니라 속 내용도 속 컨텐츠가 완성될 때까지 하나님은 멈추시지 않으신다. 길을 만드시는 주님은 멈추시지 않으신다. 기적도 시간이 걸린다. 예수님의 성육신도 열 달을 기다리시듯 하나님의 믿음의 계승도, 우리의 상처도 기다리며 치유하시며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한 가지 야곱처럼 지금 당장 아니더라도 우리의 믿음의 계승을 위해 다듬어 주시리라 믿는다. 에서는 왜 믿음의 계승을 못했는가? 그는 육체적인 욕구로 살았기 때문이다. 육신의 사람이었다. 우리도 다듬어져서 자녀에게 믿음 계승하여 인생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갈 때 주님이 장자 권을 부여하시리라 믿는다.
이사야 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이
사랑의 교회가 믿음의 계승으로 우리는 어떻게 이어어가야 하는가?
1.13세에 영적 계보를 이어간다. 자신의 신앙을 책임져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신앙을 책임져야한다.
2.대학생 선교사 파송이다.
3..암송이다. 72구절 암송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아이들을 보호하고 강력한 무기를 장착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하나님이 내 속에서 일하심을 바라봐야 한다.
  우리 현실이 어떤가? 지금 평균스마트폰을 2600번을 만진다고 한다. 그래서 신앙을 영성화하고, 큐티, 사랑 온, 암송 등의 모두 시스템을 바꾸어 놓는다. 아이들이 집중하는 것으로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렇게 제자 훈련에 많이 투자해야 한다. 골든타임을 만들고 놓치지 많고 출 코로나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 사태이후에 놀라운 변화가 되었다.
에듀케이션 시스템이 파도처럼 슈팅이 되었다.
 교육시스템이 대변혁이 일으키고 있다. 과거에 교육은 장소에서만 이루어졌다. 학교 가정, 교회만을 했다. 그러나 교회는 영성 교육을 했다. 항상 교회가 앞장섰다. 현대 교육이 발달한 이후 교육의 힘이 학교로 집중했다. 과거 기독교 교육이 균형이 있었다. 늘 앞장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교회 교육이 무너져서 인성과 영성이 엉망이 되었다. 이번에 학교에 문을 닫음으로 인해 온라인이 되고 출 코로나로 합력하여 지식 교육이 교회에서 영성교육이 잡아져야 한다. 인성과 영성이 엉망이 되었는데 백년에 한 번 나올지 모를 일이 생겼다. 목양이 제대로 살아있는 균형 잡힌 대학이 되어야 한다. 학교의 교육이 아닌 사랑글로벌 아카데미에 들어가길 바라보라 출 코로나 1호가되길 바란다. 그래서 부모의 사명선언이 있다. 믿음의 계승위한 부모사명 영상대로 자녀들을 축복하는 환경을 주시길 바란다.


IV. 믿음 계승을 위한 부모 사명 선언.
. 부모인 나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녀를 말씀으로 교육하는 사명자로서 세상 교육에 빼앗긴 교육이 주도권을 다시 찾아오는 출 코로나 작전의 선봉장이 되겠습니다(:7).
. 부모인 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백성으로서 자녀가 세속적 가치관에 물들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고히 갖도록 양육하겠습니다(벧전 2:9)
V. 믿음의 계승을 위한 자녀 사명 선언
. 자녀인 나는 부모님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공경하고 주의 뜻대로 가르쳐주신 믿음의 유산(遺産)을 계승하겠습니다(딤후 3:14)
. 자녀인 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임을 기억하며, 세상의 휩쓸리지 않는 당당한 기백을 가지고 분별력 있는 삶을 살겠습니다(12:2)


요약
그들은 기도의 결과로 잉태되었다. 그들의 부모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이 지내다가 하나님께 간구하여 그들을 얻었다. 이삭은 사십 세에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그가 이 아들들을 낳을 때 그의 나이는 육십 세였다. 그러니까 그는 결혼한 후로 20년 동안 자식이 없이 지낸 셈이다. 이삭은 모리아 산으로 자기 아내를 데리고 가 그녀와 함께 그리고 그녀를 위하여 기도하였으며 또한 바로 그곳에서 세워진 그 언약을 내세워 탄원했다는 전승이 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탄원을 받아 주셨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사정을 아뢰고 그에게 지혜의 말씀을 구하는 것은 마음에 큰 위안을 준다. 그녀는 자기의 질문에 대해 그 비밀을 밝혀 주는 답변을 받았다. 그녀는 지금 두 자녀를 임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두 국민을 임신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태도와 성격에 있어서 서로가 매우 다를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에 있어서도 서로 반목하고 다툴 운명이었다. 그리고 그 다툼의 결과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선대의 강점을 지키게 하시고 현재 우리의 부흥하는 수선대후(守先待後)의 은혜 안에서 신앙계승, 비전계승, 사역 계승을 완수하는 결정적인 승리를 베풀어 주시길 원하며, 세대간의 갈등과 북음의 세대계승으로 모두 치유받고 항해와 태양, 사자굴과 같은 위기에서도 구원 받아 영적 계보를 계승하고, 우리를 평생 다듬으셔서 믿음의 산 증인으로 살고 영적 장자권의 바통을 잘 넘겨주어서 자녀에게 인생경주를 완성하는 인생이 되어 이 시대에 교육이 교회에 집중하는 자녀로 성장하게 되길 소망한다.


느낀 점.
  오늘 예배는 이른 아침부터 비가 와서 좀 일찍 채비를 하고 갔더니 헌금 봉사실 기도회에는 아무도 도착하지 않아서 이때다 싶어 깊은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그간 많은 기도를 했지만 물론 가족을 위한 기도이다. 이곳 사랑의 교회를 먼저 선택해서 교대 다니면서 우리에게 서울에 오면은 다 함께 헌신하자고 했던 나의 딸의 믿음이 늘 오락가락하기에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은지 하나님께 애타게 간곡히 기도드렸다. 하나님의 은혜로 딸에게 임용고시도 단번에 합격하게 하셨고 기다림 없이 응답하셨는데 지금 5년이 지난 뒤는 어떤 응답을 주시려고 기다리게 하실까를 생각하고 기도하게 했다. 응답은 늘 없지만, 인터넷으로 본인의 방에서 드린다고 문자만 왔다. 본당에 들어와 다시 기도했다. 우리 자녀가 정말 믿음으로 살기를 간절하게 하고나서 보니 강대상에는 여전이 젊은이들이 찬양하는 모습이 성령 충만해 보였고 부러웠다. 저렇게는 못하더라도 교회에 함께 만나서 예배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너무 들었다. 정말 우리 자녀들을 세대계승 할 수 있을지를 알 수 없지만 나는 지속적으로 주님 앞에 매달리려 한다. 또한 오늘 말씀에서 교육이 바뀌어 가고 있음을 좋아 하셨는데 어렸을 때 오히려 주일을 잘 지키고 오히려 더 인성도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집만 세지고 말하면 간섭이라 하니 나의 신앙생활이 그간 아무것도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다려 주신다고 하셨으니 끝까지 기도하면서 기다릴 것이며 조언을 더 지혜롭게 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 진정한 믿음을 계승하고 싶다. 오늘도 간절히 원한다. 가족 모두가 믿음의 온전한 가족이 되어 한마음으로 예배하는 것이 나의기도 일번이다.
☆ 46장 찬송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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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 5. 17)
제목: ''잘 되고 장수하는 일''
말씀: (에베소서 6:1~3)
설교자: 박희천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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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효도하는 자가 받는 축복을 ''네가 잘되고 장수하리라''(3)라고 한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잘된 일은 잘되고 장수하는 일이다. 아무리 잘 되어도 장수하지 못하면 그 잘된 행복을 누릴 수 없으니 허사요, 아무리 장수하여도 잘되지 못한 상태에서 장수하면 고생이다. 성경은 이 세 가지 경우를 다 말한다.


I. 잘 됐으나 장수하지 못한 경우
누가복음 12:16~21의 부자는 잘 되었으나 그날 밤으로 죽었으니 잘 된 보람이 어디에 있겠는가?(욥기 27:8) 사람이 세상에 잘 된 표준을 따진다면 왕 이상 잘된 일이 어디 에 있겠는가, 그런데 성경에 보면 세상에서 최고로 잘 된 왕의 자리에까지 이르렀으나, 그 최고로 잘된 왕의 자리에서 장수하지 못하므로 그 잘 됨을 누리지 못한 경우들이 몇 번 나온다. 열왕기하 15:8~10절에서는 스가랴가 이스라엘 왕이 된 것까지는 좋았으나 여섯 달 만에 암살당했고, 역대하 36:9~10에서는 여호야긴이 왕이 된 것까지는 좋았으나 석 달 열흘 만에 포로로 끌려갔고 열왕기하 23:31~34에서는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다가 석 달 만에 폐위되었고 열왕기하15:13~14에서는 살룸이 왕이 되었다가 한 달 만에 암살되었고, 열왕기상16:15~20에서는 시므리가 왕이 되었다가 7일 만에 죽었고 열왕기하 8:7~15에서는 아람왕 벤하닷이 병에서 완쾌되었다가 다음 날 심복 부하에게 암살당했으나, 아무리 잘 되었다 하더라도 심지어 왕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잘 된 상태에서 장수하지 못하니 잘 된 보람이 어디 있는가? (마태복음16:26)


ll. 장수하나 잘 되지 못한 상태에서 장수한 경우
전도서 6:3,6에서는 아무리 장수하되, 비록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하여도 그 심령에 낙을 누리지 못한 자의 불행을 말한다. 전도서2:24의 복을 전혜 누리지 못한 상태에서 장수하는 불행한 자가 아닌가,


lll. 잘 되고 장수한 경우
열왕기상 3:11~14에 보면 솔로몬이 잘 된 상태에서 장수했고 역대상29:28, 시편21:4, 61:5~6에서는 다윗이 그러하였다. 욥기 42:12~13에 보면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사 7천 마리 양을 만 4천으로, 3천 마리 낙타를 6천으로, 5백 겨리로, 5백 마리 암나귀를 천 마리로 늘리시고 아들 일곱과 딸을 셋을 주셨으니 잘 되었다, ''그 후에 (욥기42:16), 즉 잘 된 후에 욥이 140년을 살았으나 욥은 에베소서 6:3대로 잘 되고 장수한 표준적인 사람이다. 신명기 4:40, 5:33, 11:9, 12:28, 22:7, 시편 91:15~16, 잠언3:2, 16, 22:4에서는 왕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잘 된 상태에서 장수한 경우를 말씀했으니 이런 일들이 참으로 잘 된 일이 아닌가, 이 잘 된 상태여서 장수하는 즉 참으로 잘 되는 축복을 누가 받는가? 에베소서 1:1~3은 말하기를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자녀들이 받는다고 하였다. 옛날 왕은 사법권 입법권 행정권을 다 가진 자였다.


결론
사랑의 교회는 모든 자녀들이 부모님을 순종하고 공경하여 잘 된 상태에서 장수하는 참으로 잘 되는 복을 어김없이 받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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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목사님
코로나 바이러스가 백년에 한번 올까말까 하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주님앞에 나아가길 바란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극복 찬양은 '창조에 아버지'의 찬양과 또한 'Way make a miracle woker' 찬양을 주셨다. 그 찬송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머리부터 발 끝까지 모든 죄가 씻어지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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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바울은 본문에서 효도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에 대해 언급했다.
(3) 바울의 이 진술은 십계명의 내용에 근거한 것이다. 십계명에 보면 부모를 공경한 자에게 하나님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5:16)는 약속하고 있다. 이 약속이나 바울의 진술은 내용상 동일하다.
즉 내용을 요약하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가 이 땅에서도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서 시인이 복 있는 사람에 대해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1:3)고 노래한 것과 같은 형통의 축복이 효도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말씀 한다. 이 같은 축복이 효를 행한 사람에게 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행사를 주장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온유함이 없이는 순종함이 있을 수 없다.


느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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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0. 5. 10.)

제목: ''내가 사는 이유, 사명''

말씀: (요한복음 20:21~23)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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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미션- ''Calling, the Reason I Live.''

코로나 극복시리즈 12

이번 주는 '내가 사는 이유, 사명이다'. 현장예배를 위해 소풍가기 전날 밤 같이 주일 예배가 기다려졌다. 찬양대가 정성 다함을 주님은 기뻐 받으실 것이다. 비장한 제목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로서의 사명을 지키기 위해서 주일을 지켜야 한다. 코로나가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처렁 달려온 것은 사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01. 사랑의 교회가 사명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I. 사명이란 -그래서 우리는 지금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사명이란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아래와 같아야 한다.

1. 사명이란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아래와 같아야 한다.

평생 부를 수 있는 노래,

평생 흔들 수 있는 깃발이다.

평생 붙잡을 수 있는 삶의 목적이다.

사명은 개인의 사적 욕심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 온 '고귀한 부르심'이다.

2. 예수님의 삶과 죽으심은 사명 때문이었다.

3. 예수님이 사명자이시기에 우리도 사명자이다.

우리 사랑의 교회는 사명 자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인생 방향이 될 것이다. 사명의 사람들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올라감 같다. 내가 이 땅에 사는 이유는, 내가 이 예배에 있는 이유는? 예수님은 주님 주시는 사명에 의하여 지배 받으셨다. 예수님의 반사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사명자이다. 예수님의 정체성이 우리를 결정하신다. 특정한 사람만이 아닌 함께 사명자이다. 평범한 그리스도인도 다 사명자이다. 우리의 삶의 현장이 사명을 죽음으로 성취해야 한다. 사명을 성취함에 영적전투 기백이 능력이 폭발적으로 나오게 된다. 사명은 맥박을 뛰게 한다. 쉼 없이 만드는 것이다. 사명의 심장이 뛰지 않음 죽은 삶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회복시키신 우 먼저 사명을 먼저 주셨다. 예수님은 사명을 통하여 영적인 심폐소생을 주셨기에 다시 한 번 재생되고 충전되고 부활되고 풀로 재현되기를 바란다.

 

부르스월키

악인은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하여 서슴없이 공동체 피해를 주며산다자기 이익 때문에 공동체 피해를 주지만 의인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도모하며 사는 것이다. 악인과 의인의 차이는 사명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그래서 사명이 다른 사람은 악인과 같다는 것이다.

 

II.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1. 요한복음 20~21(20:21b)-''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것이 바로 사명의 시작이며, 은혜, 풍성이다. 사명이 부활되길 바란다. 창세기 3장에 아담과 하와가 죄로 폭망 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창조와 타락을 회복하는 마음으로 예수님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구원의 핵심이다. 그 정도의 진중함을 가지고 보낸다는 것이다.

2. (요한복음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는 것이다 여러 번 반복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중요할 때마다 나를 보내셔서 일하신다. 하나님이 보내셨음을 확실히 말씀하신다. 사명이라 강조하신다. 나를 보내셔서 사명자로 만드신 것이다. 따라서 내 삶의 ABC는 사명으로만 설명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들이 동등하게 적용해야 한다. 그래서 너를 세상에 보내노라. 너무 고귀하다. 우리같이 부족한 인생에게 사명으로 보내셨다. 이 말씀을 깨달아 정신이 번쩍 들게 된다. 그래서 주니의 차원 사명의 차원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주님은 사명으로 오셔서 갇힌 자, 눌린 자, 병든 자, 가난한 자, 슬퍼하는 자에게 해방과 위로와 치유를 선포하셨다. 우리도 그렇게 사명이 확실하면 우리 주위를 치유하고 상처를 해결하는 치유 자가 되는 것이다.

3. (고후5:20)-“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특명 전권) 대사이다. 사명을 받은 것이다. 우리 모두가 또 다른 비결은 특명 전권대사인 것이니 우리의 삶의 격을 바꾸는 것이다. 사명을 감당하면 모범이 되듯 우리의 삶의 격이 달라진다.

III. 사명 자에게는 성령의 능력과 죄 사함 선포의 특권을 주신다.

1. 본문에 요한복음 20:22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특명전권 대사에게는 죄 사함의 특권을 주신다. 사명 자에게 권능도 주시는 것이다. 평생 도우시는 성령님이 예수님을 도우셨다. 놀라운 기적을 주셨다. 우리도 성령으로 특명전권 대사의 능력을 갖게 되었다. 주님은 맨땅에 해딩하라고 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님의 권능을 받았기에 우리에게도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하늘 능력의 사명이다. 우리 속에 내주하셔서 때때로 도우신다. 견딜 수 없는 것도 견디게 하시며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신다.

2. 제자들의 두 가지 변화.1) 인격적 성령의 역사 2) 사역적 성령의 역사

1)담대함이다. 제자들이 두려움에서 이기고 회복했다. 성령의 능력으로 선포하고 회복되어야 한다.

2).실제적인 능력 선포자다. 어린 여종에게 말 더듬이를 베드로가 선포하신 것처럼 성령을 받으라는 것이다.

3. 요한복음 라베테는 능동형, 복수형, 명령형이다. 요한복음 20:22받으라헬라어 라베테(labete)sms 사명에 걸맞는 능력을 주시길 사모해야 한다.

능동형우리는 길을 만들고 능력을 사모하여 모든 마음을 가지고 간절히 사모하라.

복수형함께 받으면 V자로 회복이 된다. 공동체가 함께 하는 것이다.

명령형이다.

4, 요한복음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1) 죄 사함의 선포의 특권이 있다. 찬양 가운데도, 죄 사함 가운데 사해지는 것이며, 죄 사함으로 용서의 복음을 선포하라.

2) 용서를 체험하고 선포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명자의 사명방식이다. 그래서 모든 사명 자는 가정과 공동체에서 용서의 용량을 넓히는 것이다. 용서의 용량을 넓히는 축복을 주시기를 소원한다. 상처와 쓴 뿌리를 용서해라. 용서 없이는 사명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나도 용서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한다.

5. 사명 자에게 용서가 의무가 아니라 (운명)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정해져 있다. 용서가 사명자의 운명인 것은 여기서 악인과 의인이 결정된다. 정신과 환자들이 절반이 용서받지 못함 때문에 입원한다고 한다. 우리가 사명자로서 용서로 특명전권의 대사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바란다. 사명을 선포하여 적당히 살지 말고 목숨 걸고 용서가 운명이 되어야 한다.

IV. 사랑의 교회 성도들의 사명 실천

1. 사명은 우리 능력과 자격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2. 사명을 위하여 노예근성(slavesoldier)에서 전투력 있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전사로 바꾸신다.

3. 출애굽기 13: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대열은 전투를 위한 군인들의 대오 정렬을 의미하여 전쟁을 위하여 무장된으로 변역할 수 있다.

4. 민수기 1:46,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

5. 사랑글로벌 아카데미(SaGA)가 영적 사관하고가 되어야 한다.

6. 우리가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이 있다.

1) 성경의 절대적 권위

2)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3) 성령이 능력과 주권

4) 거룩한 공교회의 중요성

5) 세계선교의 절발성이다.

 

Sega 사관학교처럼...

사이즈가 중요하지 않고 매그네틱 처치이다. 시대가 달라졌다. 우리가 지켜야할 사명이니 꼭 지켜서 브이자로 회복하길 바란다. 골든타임 늫치지 말고, 위정위덕이란 정치는 덕으로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위생위사가 우리의 삶은 사명으로 산다이다. 그렇게 집중하여 사명자가 되길 바란다.

 

요약

우리의 사명은--- 사명 자는 실천이다. 모든 성도들은 사명의 사람들로서 복권이 당첨된 것이다. 예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서 사명울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자격도 없는데 주셨다. 도마 같은 자라면 사명을 주시겠나? 출 코로나를 해야 한다. 모두가 골드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 사명을 위해 집중하자. 사명으로 암송 72구절을 하면 괴이한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사명의 르네상스가 되길 바란다. 사명자로 다음 세대를 계승하고 키우고, 사명의 사람으로 되어 때에 따라 필요한 용서를 하여라. 그래서 사명의 전성기를 맞게 되길 바라며, 올 투게더 하길 소망한다.

1. 느낌대로 흔들리며 살던 인생이 북극성 같은 사명자로 헌신하게 되고 보냄 받은 가정과 일터에서 폭포수로 거슬러 올라가는 영적 기백과 전투력으로 섬기며 살게 되길 바란다.

2. 영가족 공동체가 예수님처럼 운명적인 용서의 특명전권 대사로 드려질 때, 성령님의 폭발적인 능력을 힘입어 해방과 자유와 치유의 복음을 담하게 선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3. 사명자의 전성기를 누리고, 출 코로나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고 예수님의 피묻은 십자가 복음의 전사가 되어 V자로 수직상승하기를 간구하고 소원한다.

 

느낀 점.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어떻게 사는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주일이었다. 말씀에 비추어 보며 내가 사명자로서 진정한 전투력을 갖추고 지금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기회였다. 목사님은 오늘 무척 강조하신 점은 정말 노예근성을 버리고 진정한 솔져가 되라고 하신다.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만 바라보았지 않았나 싶다. 정말 주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오월이면 좋겠다. 내 자신이 너무도 부족하고 자신이 없어서 주님 앞에 뭐든지 나는 부끄럽다. 더욱 헌신하는 알찬 주님의 자녀가 되고 싶고 사명자로서의 역할을 잘 하여 내가 사는 이유에 자존감이 높아가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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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 5. 3.)
제목: “평강
말씀: (요한복음 20:19-26)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코로나 극복시리즈11
 
인터미션 예배 아름다운 동산 찬양도 하나님이 기뻐 받으셨을 줄 믿는다. 이 자리가 아름다운 동산, 평화의 동산, 예배의 동산의 자리임에 확신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요연하고도 낮은 피조물 인생이 창조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면서 건강하게 나와 주님을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권이요, 크신 은혜요, 목이 메일 정도로 감사하다.
 
오늘은 평강에 대해서이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내적 불안을 많이 호소한다. 오죽하면 코로나 불루’(blue)라는 말이 생길 정도이다. 코로나 불루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일어난 사회적 현상으로 우울증이나 심리적 불안을 의미한다. 두 달 전에 비하면 엄청 줄었고, 국내 확진 어제는 확진 자가 O이었고 그래서 토비새에 그것을 기념하여 동그란 도넛을 나누어 주었다. 확진 자 수가 줄면 코로나 두려움이나 인생의 두려움도 실제로 두려움도 줄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만약에 이런 코로나 사태가 없고 모든 것들이 우리들이 원하는 대로 순조롭게 되어져 간다면 평안을 누릴 수가 있는가? 다 잘 되면 평안을 늘 누릴 수 있는가? 우리가 평안한 지, 불안한 지를 점검할 수 있는 미터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어떻게 자고 어떻게 깰 것인가가 점검지가 될 수 있다. 눕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0.1.(시편35절에 보면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 , 시편 4:8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그러나 누워서 평안하게 자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또 평안이 쉬기 위해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야외를 갔다. 어떤 쉼의 장소를 찾는 것과 실제로 쉰다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다. 환경적으로 아무리 비싸고 좋은 침대에 누웠더라도 불안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면 그것은 평안한 것이 아니다. 쉬기 위하여 바캉스, 홈캉스를 누려도 참된 평안함이 없다면 뭔가 불안한 것이다. 내가 늘 기도하는 것은 우리 모두 성도가 단잠을 자는 것이다
0.2. 그리스도인의 평강은 자가 발전적인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것이다.
. 이 말씀의 평강은 세상의 평안이라는 말과 비슷하지만 신앙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그리스도인의 평강은 자가 발전적인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평강은 위로부터 주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평강이라는 단어는 천국의 단어이다. 우리가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듯이 평강도 스스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명심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 받듯이 평강도 위로부터 부어주셔야 한다. 모든 사람이 이 단어에 속할 것이다. 의심, 실패, 두려움, n원한, 부끄러움과 수치, 고민 후회 비애, 미래에 대한 염려, 좌절 억울함, 누구에게 부당하게 대우를 받거나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 우리의 지위나 소유가 침해받거나 사라지는 것에 대한 염려, 이런 것들은 이 인생길에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고 인간은 근본적으로 그래서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이 위에서부터 부어주시는 평강은 삶의 붙임, 삶의 인생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평강이요,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오늘 평강이다. 정리하면, 평강의 원천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참된 평강은 하나님께로만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임을 믿어야 한다. 오늘 안아주심 본당에서 예배드리는 분들에게 참된 평안이 넘치기를 바란다. 본문에 예수님은 3번이나 선포하신다. "중요하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너무나 중요하기에 3번이나 강조하신 것이다.
요한복음20:19, “너희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20:21,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요한복음20:26,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이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 넉넉한 자원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평강이 중요하니 3번이나 예수님이 강조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제자들에게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두려워해서이다(20:19).제자들이 유대인을 두려워했다. 같은 상황인데 - 누가복음 24: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그래서 먼저 생각할 것은 두려움 많은 세상이다. 주님이 3번이나 평강을 말씀하신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I. 두려움 많은 세상
첫째, - 정치적 불안 때문에,
둘째,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셋째, 내적 불안 때문에.
 
첫째, - 정치적 불안 때문에, 예측으로 불안해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할 것이라는 정치적 예측 때문에 불안하고 제자들의 마음이 조마조마 했던 것이다. 제자들이 문을 꼭꼭 닫고 있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만 하더라도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하면서 환영 일색이었다. 그때만 해도 제자들이 기세 등등 했을 것이다. 십자가 사건이후에 군중들에 의하여 인민재판 같은 무법의 시대가 되었을 것이다. 인민재판의 증거는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일이다. 제자들이 이런 이유로 두려움에 떨었다. 그것을 당할 까봐 그런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저녁이었고 사람들이 저녁에 불안을 더 느낀다. 우리 교회는 서초역에 붙어 있고 지하철에서 10미터 상에 있다. 대법원은 가까이에 있다. 대법원은 죄의 대가를 받는 것이고, 우리 교회는 죄의 용서를 받는 곳이다. 그러니까 죄의 대가는 두려움의 장소이고, 우리교회는 평강의 장소이다. 그러니까 두려움과 평강이 공존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절묘할까? 말씀을 준비하면서 기가막히다는 절묘함을 느꼈다. 어떤 장로님이 우리 교회분이 아니시다. 중요한 판결을 두고 법원에 갔다가 우리교회 십자가를 보고 지나가다 내려와서 울면서 기도하고 주님 앞에 통곡하고 매달렸더니, 하나님께서 놀랍게 판결을 내려 주시고 놀랍게 평안을 주시고, 해결해 주셨다고 한다. 그 감사를 담임 목사님께 표현했다. 꽃다발도 보내왔다. 갈 때는 두려웠으나 우리 본당에서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평강을 주시니까 무슨 판결이 내려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갔다는 것이다. 우리 사랑의 교회 안아주심의 본당은 정치적인 불안이 있어도 평강의 장소가 된다는 것을 믿기를 바란다.
 
둘째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두려워했다. 왜냐면 인생을 걸고 따라간 제자들이 예수님이 갑자기 없어지니까 갑자가 불안했던 것이다. 무엇을 믿고,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할지가 눈앞이 캄캄했다. 제자들도 자기들도 못 박을 거라고 두려웠던 것이다. 코로나사태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삶에 리듬이 깨어졌다. 심지어 몸에 리듬이 깨어진 것이다. 하루에 세끼씩 먹어서 운동을 안 하니까 확~ ~(살이 쪘다)가 되었다는 것이다. 몸의 균형이 깨어지니까 마음의 균형까지 깨지고, 관계리듬, 신앙의 리듬, 신뢰, 미래에 대한 계획도, 깨어진 것이다.
 
셋째 내적 불안 때문에
내적 불안 때문에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십자가 앞에서 도망가 버리고 그리고 예수님을 배반한 것 때문에 수치와 부끄러워서 베드로 같은 경우는 정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이름에 먹칠한 행동 때문에 죄책감 때문에 불안했고, 배신에 대한 상처이다. 오늘 이 시대도 비슷하다. 정치적으로 어렵고 미래에 대해서 불안하고 내적으로 한국 사회가 두려움의 바다에 빠져버렸다. 전 세계가 육체의 질고와 인생의 경쟁구도와 전염병 때문에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2.복음주의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라스박사는 "우리는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안개 자욱한 잿빛 바다 위를 떠돌고 있는 존재이며, 이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 확실성의 섬에 찾아가서 그곳에 정착하여 해답을 얻기를 원하고 있다... 잿빛 바다를 떠돌며 확실성의 섬을 찾다가 실패한 우리는 이제 믿음의 섬에 정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 철학적이고 세속적 인본주의자들이 그들의 신념을 통하여 현대인들의 불안증을 해결해 보려고 노력을 했으나 해답을 못 찾았다. 따라서 잿빛 바다를 떠돌며 확실성의 섬에서 찾다가 실패한 우리는 이제 믿음의 섬에 정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학자들은 정말 쉬운 말을 어렵게 이야기 한다. 그냥 주님으로부터 평강을 주시면 되는데, 인간이 아무리 학문적으로 철학적으로 이성적으로 불만을 해결할 불안, 어려움, 심리적 확실한 해결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섬에 정착할 때야만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평강의 은혜가 있을 때에만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세상의 학문이나 철학이나 심지어 의학적 치료의 약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께 믿음의 닻을 내리므로 해결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3. 평강의 유효기간을 확장시켜야 한다.
이 평강의 유효기간이 있다. 평강의 유효기간은 7일 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평강의 유효기간이 7일이 아니라 평생을 가야한다. 그래서 우리는 제대로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현장예배가 평강의 유효기간을 확장 시켜서 평생 시종일관하는 평강을 누려야 한다.
 
현실적으로 문제가 하나 있다. 도마 같은 현실이다. 회의와 의심이다.
II. 도마 같은 현실.
도마의 의심/, 될까?이다. 그러니까 대표적으로 제일 평강을 누려야 했던 제자 도마가 환경적으로 평강을 누리지 못했다. 이유는 딱 하나 현장에 없었기 때문이다.
1. 요한복음20:24,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함께 있지 아니해서이다. 아웃어브사이드 아웃어브마인드(Out of side, out of mind) 이다. 우리가 안보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현장에 있지 않아서 도마가 없었던 것처럼, 은혜 받는 현장에 빠지면 평강을 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은혜의 현장에 있지 않아 고통의 일주일을 보냈다. 평강이 다 날아갔다. 그 불안의 표현이
 
2. 요한복음20:25,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여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하니라
도마는 증거를 넣어 보지 못하면 믿지 않겠다는 것이다. 냉소적인 비판자였다. 평강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들으셨으면 민망하셨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은혜 받을 자리, 주님의 임재의 자리에 없으면 의심과 불안이 가중이 된다. 대표적으로 중직 자가 특새벽 예배를 자주 빠지면 평안하겠는가? 계속 빠진다 합시다. 그러나 교회에게 주는 짐이 있는 것이다. 그 짐 때문에 수많은 아픔과 짐과 회의가 생길 수가 있다. 만약에 2~3년 빠지고 내 영혼 평안해 ~ 할 수 없다. 현장예배 두세 달 빠지면 그것은 안 된다. 공동체 주시는 은혜의 영광이 있는 것이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은혜의 자리에 없으면 평안이 없는 것이다. 의심과 불안이 가중되니 그래서 영적 예배가 중요하다. 다음 주부터는 예배가 다 되니 문제가 없으니 본당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있어야 할 다락방현장, 훈련의 현장, 있어야할 가정예배의 현장에서 의심을 날려버리길 바란다. 주님은 이 도마를 그렇다고 해서 꾸중하거나 뭐라고 하시지 않으신다. 다시 8일 뒤에 감사하게도 직접 만져보라고 하신다.
3. 요한복음 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도마가 만지는 그 순간 하늘부터서 놀라운 평강이 임했다. 현장예배가 평강이 임할 것이다. 도마의 평강이 임하는 순간 신구약 중에서 최고의 고백 중에 하나인 도마가 주님께 고백하는 것이다.
4. 요한복음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주님을 나의 주 나의 주로 진실 되게 순간순간 고백할 때마다 평강을 부어주시게 된다.
 
III. 평강을 선포하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아직도 도마처럼 의심의 안개를 걷어내지 못한다면 두려움의 바다를 건너서 어떻게 평강의 언덕에 오를 수가 있겠는가?’를 생각한다면, 먼저 도마처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을 통하여 평강을 얻기를 바란다. 축약하면 모든 평강은 주님께로부터 온다. 그럴 때에 하나님과 평강을 누리는 한 우리는 두려움이 없다.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있는 한 두려울 것이 없다. 하나님 한 분만 두려워하면 다른 것은 두렵지 않다. 반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두려운 것이다. 진짜 그리스도인은 잘나든 못나든 아무 상관이 없이 그 얼굴에 하나님 주시는 평강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 앞장서 일하는 우리 성도들의 평강의 화신이 되어야 한다. 평강의 사도, 사신, 대사가 되어야 한다. 매 일주일 마다 새 힘을 주시니 설교를 한다. 그래서 말씀을 나눈다. ‘나의 주, 나의 주예수님 때문에 평강이 온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바울 사도가 주님의 심정을 깨닫고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딱 맞는 구절 하나를 주셨다.
 
1. 데살로니가후서 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가을 주시고...
평강의 주님께서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길 원하노라이다. 평강의 주께서 주시는 것은 무슨 뜻이다.
2. 구약의 평강평강을 대표하는 단어가
1) 샬롬(Shalm)’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전적인 축복이며 고귀한 선물이다. 샬롬은 위로부터 부어주는 단어이다. 그래서 샬롬은 인간세계에 없는 것이다. 위로부터 부어주는 단어이다. 이 샬롬이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신 고귀한 축복이다. 이 샬롬은 커버하지 못하는 인간의 영역이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 가족 간의 관계, 직장인과 관계, 나라, 자연, 영혼 육체, 감정 간의 관계, 모든 영역에서 커버한다. 이 자리는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나 정치적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샬롬이 위로부터 임하면 다 켜버가 된다. 영이 임하면 다 해결된다. 한국어로 번역하기 힘든 단어이다.
 
닥터윅스빈 비스트 유 - ‘샬롬라켐’,,, 속으로는 영어를 히브리어로 하니 샬롬라켐이 어려울 때 자주하니까 자주외치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생겨서 히브리어를 열심히 하기위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복습을 했더니 포텐셜 히브리어 학자(잠재적 히브리어작가) = 그 능력을 주심을 잊을 수가 없다. 뜻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샬롬):하늘로부터 부어 주신다. 수많은 인생의 문제가 정리가 될 것이다.
2) 우리가 함께 모일 때마다 샬롬라켐의 은혜를 받아라.
속으로 계속 믿지 않는 남편에게 매일 아침마다 샬롬라켐!!!!!! 자주 해보라~
 
가정예배에도 그렇게 해라, 라켐은 투유로서 복수의 단어이다.
 
2. 신약의 평강
1) 샬롬에 대구는 신약의 에이레네(Eirene),는 동사 에이로에서 나온 단어이다. 헬라어로 참여하다, 연결되다, 영어로 Join의 뜻이다. 모든 평강은 누구에게 연결 되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조인(join) 된 것이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접목 된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께 조인 된 것이다.
2)예수님과 접붙여 있으면 자동적으로 평강결과가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평강의 은혜가 있으면 자동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과 접붙임 되었다면 평강의 열매가 되는 것이다.
 
4. 데살로니카 3:16 때마다의 평강이다.
바울이 이를 깨닫고 모든 서신서에
1) “때마다의 평강 (“평강이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찬송을 할 때 그런 수직적 평강이 아닌 때마다 어려움이 있을 때라도 때마다 내적으로 누릴 수 있는 평강이다.
2) “일마다의 평강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가을 주시고...”)
또한 코로나 사태처럼 세상이 흔들리고 사회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종말론적일 때에도 때마다 평강을 허락하시길 바란다. 어떤 좋은 환경이 있어도, 주님께서 때마다 쓰디쓴 환경을 통해서도 평강을 주신다. 이익이 아닌 손실일 때도 평강을 주실 때도 있다. 심지어 주님을 죽음을 통해서도 평강을 주신다.
3) “친히의 평강 (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가을 주시고...”)
친히 예수님을 묵상하고 예수님의 약속을 되새김질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친히 샬롬과 에이레네 축복을 주실 것이다. 찬송가 중에 너 근심 걱정 말아라를 우리의 삶의 주제가가 되기를 바란다.
 
IV. 적용
첫째 인생을 더 넓고 깊게 바라보아야 한다. 인생을 넓게 바라본다면 최후의 승리를 얻을 것이다.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 넓고 깊게 바라보면 마음의 평강이 임할 것이다. 지금 고난당한 것이 전부가 아니다.
둘째 주님과의 관계를 점검해야 한다. 내가 Join에 따라서 에이레네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주님과 화평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 주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하면 어떤 것도 두려울 것이 없다. 이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의심 없이 신뢰하여 모든 성도들이 평강을 누리기를 바란다.
한국 사회는 근본적으로 평강의 DNA가 없는 인종이다. 지난 2천년 동안 우리나라는 전쟁도 많았고, 특별히 지구상에 가장 불안한 지역이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관계의 에이레이네 하늘에서 주시는 평강의 DNA가 확장되는 것이다. 우리만이 아니라 투게더 평강이 있게 하시고 평강의 백신을 확산 시키는 축복을 주시길 원한다. 부부가 손을 잡고 생각해 보라, 내 인생에 언제 최고의 평강의 시대였던가를 생각하면서 지금이 가장 평강할 때라고 이야기 하자. 이렇게 고백할 수 있도록 온 성도의 가정마다 축복한다. 평강은 환경 때문이 아니다. 오직 주님과의 관계 때문이다. 가정 가정마다 단잠을 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We go together!!! 다음 주일 현장예배 주실 줄 믿는다.
 
 
 
요약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배반한 제자들을 방문하여 허탈감과 고통을 느끼는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다. 즉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신을 비난하거나 책망치 않으시고 새로운 약속과 사명을 맡기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평강이시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유대인들이 무서워 문을 잠갔다. 마음은 꽁꽁 얼어붙었고, 자기들도 죽을까 두려워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강을 선포하시며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보여주신다. 어떤 아픔도 없는 예쁜 평강이 아니라 혹독한 시련을 통과한 강인한 십자가의 평강을 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가질 때, 그 평강을 누리며, 세상에 전할 수 있다. 의심 자체가 죄는 아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제자들의 말을 의심하며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는 최고의 신앙 고백을 하게 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평강은 우리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것이다. 참된 평강은 예수님께 접붙여 있으면 우리는 영원히 평강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오는 그분의 선물이니 이제 코로나 불루를 지나 우리는 주님 한 분만 의지하고 안아주시는 본당에서 두려움을 이제 다 걷어버리고 평강의 주님을 바라보며 찬양과 예배를 드리자.
 
느낀 점
참된  평강은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오는 그분의  선물이다. 나에게  주신  그분의  선물을  내가  충분히  누리지  함은 도마처럼 은혜의 현장에 없었으므로 인해 생겨난 의심과 두려움인 것이다. 그러니까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때마다  일마다  친히  평강의  은혜를  주시는  주님과의  관계를  다시  점검하여  은혜 받는  현장에서  최후  승리를  믿는  주의  자녀가  되길  기도하며  나아가겠다. 오늘부터  정상적인  예배가 되었다. 이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예배에  준수 하고  헌신하는  자  되며  가족을  더  잘 챙기고  음식도  골고루  해주면서  믿음을 굳건이 세워가길 간절히 기도하는 교회로 접붙여서 생활하기를  간구한다. 남편이  이번 주부터 교회에서  미루던  파노라마를 시작했다. 감사한  일이다. 걸음마를 하나님이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 좋겠다. 또한  내가 받는 훈련이 나의 삶에 평강이 되기를 더욱 구하며 모든 일들이 해결되고 주님 앞에 찬양과 경배만이 길이라는 것을 알고 전심으로 가족과 함께 나아가길 원한다. 샬롬, 에이레네가 선포되어 우리 가정에 평강과 내 이웃의 평강이 함께 하길 소망한다. 려움과 의심으로 불안해하는 우리를 주님과  나만  아는 참된  평강을 위로부터 부어 주셔서 은혜의  현장인 안아 주님의 본당에서 믿음의 섬에 정착하는 믿음의 평생 되길 기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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