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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6월 18일)
제목: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
말씀: 요한복음 14:1-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백승준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1.●설교자: 마크 영 총장(미국 덴버신학교 총장-초빙)-1부예배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통역 정성욱 목사님-미국 덴버신학교 교수-초빙)
2.○설교자: 정성욱 목사님미국 덴버신학교 교수-초빙)-4부예배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
말씀: 갈라디아서 2:20, 5:24,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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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1-6,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2:20, 5:24, 6:14,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5:24,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6:14,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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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설교자: 마크 영 총장(미국 덴버신학교 총장-초빙)-1부 예배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통역 정성욱 목사님-미국 덴버신학교 교수-초빙)
 
미국 덴버 신학교 총장이신 마크 영 목사님께서 길가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라는 제목으로 주님 말씀을 전해주시겠습니다. 통역으로 덴버 신학교 교수님이신 정성욱 목사님께서 섬겨주시겠습니다.
 
-네 예수님의 이름으로 덴버 신학교 이사회와 또 우리 교수님들의 안부 인사를 여러분들에게 전해 드립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의 신앙과 또 여러분들이 선교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헌신과 또 주님에 대한 깊은 사랑에 대해서 잘 듣고 있습니다. 제 아버지께서 92세가 되셨는데, 여러분에게 안부 인사를 전해 오셨습니다. 1951년 우리 6.25 전쟁 때 제 아버님께서 미군으로 참전하셨습니다. 사실 저희 아버님이 전쟁 통에 오셔서 참 많은 고생을 하셨는데, 한국전쟁 동안에 한국인들이 보여준 그 결단력과 또 환대와 또 그들의 참 섬김과 봉사 이런 것들을 굉장히 기억하고 계십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과 함께 우리 요한복음 14장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 무엇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모든 생각과 우리의 모든 주의를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4장을 다루기 전에 우리 13장에 나오는 대로 예수님의 그 마지막 만찬 그때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의 장면 그 장면은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요한복음 13장에 자세하게 나와 바로 그날 6월 절 식사를 그래서 만찬을 함께 기념하기 위해서 모였던 것이죠. 사실 6월 절 식사는 우리 제자들이 오랫동안 또 여러 번 경험했던 여러분 알다시피 바로 오늘 이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하는 유월절 식사는 정말 그들에게 아주 유일한 경험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기억하실지 주님께서 그날 아침, 그날 밤에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으시고 그다음에 수건을 동이신 다음에 대야에 물을 뜨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바로 이것은 주님께서 사실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여러 번 했던 것이 아니고 그날 처음 하셨던 것이죠. 바로 주님께서 그들의 발을 시키실 때 그것은 그들의 주의를 끈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주님께서 사로잡으셨습니다. 그러고는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내에게 이르노니 너희들 중에 하나가 나를 달리라. 바로 거기에 모든 것이 변화되었습니다. 그 방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제자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기 때문에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잘 알듯이 이 가른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고, 그는 그 예수님을 배반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떠나가고 바로 그때가 밤이었다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듣기 싫어했던 이야기를 하게 되었죠. 뭐냐 하면은 내가 오늘 너희들과 함께 잠시 있겠지만 그다음에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다시 올 수 없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 지난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여러 도시를 다니고 그래서 함께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했는데, 이제는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제자들이 함께 갈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죠.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이제 올 수가 없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3년을 주님과 함께 있었고, 또 주님과 계속해서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지금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따라올 수가 없다.’고 말씀하고 계시니, 이것은 그들의 기대와는 다른 말씀이었기 때문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라가겠습니다. 제가 왜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저는 주님을 위해서 제 목숨이라도 버리겠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죠. 네가 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겠느냐? 그러나 오늘 너는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날 밤에 여러분들이 12명의 제자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고 한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뒤에 있었어. 바로 여러분 12명의 제자들 중에서 한 사람이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여러분 가운데 안전감, 안전에 대한 그 감각이 무너져 버렸을 것입니다. 미래는 불안해질 것이고 예수님은 어딘가로 가신다고 하는데 우리가 그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다면 그들에게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같이 그렇게 신실하게 예수님을 따랐던 그 제자가 결국 세 번을 예수님을 부인하겠다고 하신 주의 말씀을 듣고 얼마나 제자들이 마음이 묻어졌겠습니다. 그들의 안전감, 그들의 확실성, 그리고 그들이 갖고 있던 희망과 소망은 완전히 철저하게 무너져 버렸습니다. 우리 14장 1절로 한번 가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4:1,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13장 2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본인도 예수님 자신도 마음이 괴로웠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21,
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우리가 잘 알 것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은 더 괴롭게,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그 고난을 생각하면서 괴로운 밤을 보내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불안감은 그들의 안정감이 상실되고 그들의 확실성이 무너지고 그들의 미래에 대한 소망이 흔들리는 것, 그것 이상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예수님의 그 정체성, 예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한 그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안정감을 가지고 확실성을 가지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바로 너희들은 믿음을 가질 때, 나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 너희들이 앞으로 너희들에게 닥칠 미래를 용기 있게 맞이할 수 있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4:2절에 보니까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요한복음 14:2,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이르렀으리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내 아버지 집’이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과거에도 몇 차례 사용하셨던 표현입니다. 요한복음 2장 16절에 보면 예수님은 성전을, 그 당시에 그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요한복음 2:16,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이 아버지의 집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데, 이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의미할 수가 있습니다. 결국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는 이 표현의 가장 본질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다.’ 라는 의미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다는 것은 아버지의 임재 가운데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내가 먼저 너희들 먼저 아버지의 집으로, 아버지의 인재 가운데 가서 너희들을 위하여 너희들의 거처를 준비하시겠다는 것이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먼저 가셔서, 예수님이 먼저 가셔서 그들을 위하여 그들이 거처할 곳을 준비하시고, 다시 오셔서 제자들을 데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인재로 나아가게 하시겠다는 것이 예수님은 그들을 지금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잠시 그들을 떠나지만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주님은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떻게 예수님이 제자들의 거처를 준비하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갈 수 있도록 했습니까? 그것은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 가능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그래서 제자들에게 너희 내가 가야 하는 ‘그 길을 너희는 따라올 수 없다.’ 고 하신 것은 바로 예수님만이 십자가를 지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완전하신 아들이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만이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인 줄로 우리는 믿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먼저 가셔서 제자들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거처를 준비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신 것입니다. 14장 4절에 보니까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라고 주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4,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예수님은 오늘 밤만 아니라 그 이전에 여러 차례 주님께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심으로 먼저 하나님께로 가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한 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그 말씀을 제자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정치적인 의미로 이루어질 줄로 믿었는데, 예수님은 자신이 고난의 길을 가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들이 어떻게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 우리가 따랐던 사람, 우리가 정말 존경했던 그 사람이 우리를 떠날 뿐만 아니라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겠다고,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제자들의 마음, 우리들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4장 5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14:5,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사실 도마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제자들 중에 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도마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 짧은 얘기가 나오고, 11장에 짧은 얘기가 나오고, 나중에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 외에는 도마에 대한 정보를 우리가 많이 얻지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도마에 대해서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무언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는 분명하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싶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죠. 그는 정말 주님 앞에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주님이 무엇을 우리에게 의미하고 계신지를 분명히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도마는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에, 또 현실적으로 그의 의심을 풀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바로 현실주의자인 도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믿음이 연약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였습니다. 예수님 우리에게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 어디인지 알려주시지 않고도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을 지금 따라갈 수 있고 어떻게 예수님을 끝까지 믿을 수가 있습니까? 의심을 가지고 예수님께 묻는 도마에게 예수님은 가장 분명하고, 가장 확실하고, 가장 구체적인 방식으로 대답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도마야 네가 가는 길, 네가 가야 할 길을 알고 싶으냐? 바로 내가 길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바로 여기에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도마야 넌 정말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 알고 싶으냐?” “하나님의 임재가 바로 나고 바로 나는 너 앞에 있다.”라고 말씀하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매우 복잡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We seek a sense of security.
 
우리는 안전감을 추구합니다. 우리는 확실성을 추구하고 우리는 희망과 소망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안전감을 추구하고 확실성을 추구하고 희망을 찾기 위해서 여러 곳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내가 길이오 진리여 생명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 여러분 우리 주에 있는 많은 이 세상의 사람들은 예수님만이 줄 수 있는 그것들을 지금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전해야 될 메시지를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 이라고 말씀하실 때 바로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생명이요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1장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가장 완전하고 완벽한 하나님 아버지의 계시입니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예수님과 헤어져서 예수님과 떨어져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은 생명이었고, 예수님의 말씀 그 생명은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내가 나는 부활이오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시력을 주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에게 건강을 주시고 우리의 모든 것,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요한일서 5장에서 요한은 다시 한 번 “예수님은 참되신 하나님이시고 영원한 생명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의 배타성, 이 말씀의 배타성은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하기 때문에 절대로 이 배타성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말씀하실 때 여러분들에게 무슨 수수께끼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금 바로 도마가 물었던 그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이 듣고 싶었던, 들어야만 했던 이야기를 지금 예수님께서 하고 바로 그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꼭 들어야 할, 반드시 들어야 할 메시지입니다.
 
바로 이것은 여러분들이 들어야만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 그것은 오늘 바로 이 세상이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 하나 있는 메시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바로 이 예수님의 자기주장이 우리들의 정체성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이 참되신 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신한다면 우리는 절대로 기를 이룰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십니다. 만약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면 우리는 모든 다른 사람들, 우리 옆에 있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그 진리와 그 생명과 그 길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관계없이 진리를 찾고, 길을 찾고, 생명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슬퍼하고 그들에게 다가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주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하나 드립니다. 여러분이 도시 중앙에 서서 여러분이 가는 길, 가야 될 길을 알고 있을 때, 누군가가 와가지고 길을 묻는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뭐라고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네, 저는 그 길을 압니다.’ ‘그럼 저에게 그 길을 가르쳐주시겠어요?’ 라고 물었을 때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얘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어디로 가든지 나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알아서 가십시오. 내 일에 참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아마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길을 안다면, 여러분들이 가고자 하는 그 길을 그 길을 어떤 사람이 찾고 있고 묻고 있다면 그리고 그 길을 나에게 가르쳐달라고 요청한다면 그러면 여러분 당연히 그 사람에게 여러분이 그 길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길을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죠. 그 부분을 모르는데 어떻게 질문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여러 군데를 여행을 하다 보니까, 길을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제가 길을 잃고 방황할 때, 사람들은 제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금방 알아챕니다. 그래서 도시에 서가지고 중앙에 서서 어디로 가야 될지 어디가 길인지 당황하고 있을 때, 그리고 제 얼굴을 보니까 벌써 제 인상을 보니까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는 것을 봤을 때, 어떤 친절한 사람이 다가와서 좀 도와드릴까요? 제가 길을 찾는 걸 도와드릴까요? 라고 묻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선물입니까?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십시오.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 길을 찾지 못해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한번 바라보십시오. 그들에게 내가 그 길을 가르쳐주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특권입니까? 바로 초대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질 때 그것은 길이라고, 그 길이라고 알려주었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사랑의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제가 속한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제가 드리는 유일한 기도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것을 알게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유일한 소원입니다.
 
♣요약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당신이 누구신지를 계시해 주셨으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고백하며 믿고 감사해야 한다. 세상의 근심과 마음이 흔들릴 때, 유일한 길이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이 임재하시는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길 소망하며, 인생의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길과 진리와 생명을 증거 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확실한 안전과 희망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복음의 진수를 깨닫기를 소원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 즉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사 난관을 극복하도록 도우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질 때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목자되신 그리스도를 확고히 믿고 따라가야 하며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처소, 그 처소는 땅에 있지 않으며 사람의 손으로 지어지지 않은 신령한 집이다. 이 처소는 성도의 헌신을 재료로 하여 계속 지어지고 있다. 우리는 불타 없어지는 나무, 풀, 짚으로 집을 짓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금, 은, 보석으로 짓는 지혜로운 건축가가 되어야 하겠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있는 처소는 지상의 비좁고 한정된 것과는 달리 온 인류를 수용하고도 남을 정도로 무한하고 충분한 것이다.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 길은 어느 목적지에 이르는 과정이나 통로를 뜻한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이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진리는 변치 않는 것을 뜻한다.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또한 여기서 생명은 영생을 뜻한다. 예수님만이 생명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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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설교자: 정성욱 목사님미국 덴버신학교 교수-초빙)-4부예배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
말씀: 갈라디아서 2:20, 5:24, 6:14,
 
*갈라디아서 2:20, 5:24, 6:14,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5:24,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6:14,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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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 이 오후 시간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에게 하늘의 신령한 기쁨, 평강 또 축복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옆에 있는 분들 한번 인사합시다. 오늘 참 잘 오셨습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 저와 여러분이 고백하고 믿는 기독교 신앙을 다른 종교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 기독교의 유일 절대성 오늘 우리 1, 2, 3부 마르크 영, 덴버신학교 총장님도 말씀하셨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모든 다른 종교들과 우리 기독교를 구별해 주는 기독교가 모든 다른 종교들로부터 구별되는 절대적인 특성 특정이 있다면,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라는 거죠.
 
여러분 믿으십니까? 기독교라는 게 영어로 크리시 애너디라고 할 때, 이게 바로 ‘크라이스트’라는 단어에서 나왔잖아요? 그죠? 그래서 기독교는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다. 크리시 애너디 이즈 어바웃 크라이스트-Chrissy Enerdy Is About Christ), 기독교는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고 기독교는 예수님에 대한 것이다. 너무나 분명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관련된 예수님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들이 있고 또 예수님과 관련된 여러 가지 말씀들이 있고 예수님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이 있는데 예수님과 관련된 일과 사건들 중에서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무엇이냐? 그게 뭘까요? 십자가죠. 한번 해봅시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중심이다. 그 믿습니까? 십자가가 빠진 기독교, 십자가가 빠진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가 빠진 하나님, 십자가가 빠진 성경?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 성육신 그분의 삶 그분의 죽으심, 그분의 부활 그분의 하늘로의 승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장차 재림하시는 모든 사건, 예수님이 영혼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그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 보좌에 올라가셨다가 이제 장차 재림하시는데 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사건의 중심 그것은 십자가다. 라는 겁니다. 아멘. 이제 중요한 건 뭐냐 하면 우리가 이제 십자가를 생각할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 우리 많은 분들이 많은 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은 예수님뿐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거죠.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에요. 잘 들으셔야 돼요.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예수님뿐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생각이 틀린 건 아니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사실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피 흘리시고 생명을 주심으로 저와 여러분이 영원한 구원을 얻고, 영원한 죄 사함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히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고,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주와 함께 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이에요.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모든 구원의 은혜와 은총이 우리들에게 오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 갈라디아서에서 오늘 세 가지 구절들을 여러분들에게 드렸던 것처럼 분명히 우리가 볼 때,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달리신 분,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신데, 그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른 많은 것들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 해보세요. 다른 많은 것들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 뭐가 못 바뀌었을까요? 일단 우리가 큰 틀에서 큰 틀에서 볼 때 십자가에 못 박혔던 원 퍼슨(One person) 한 사람, 한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불변의 사실이죠.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거기서 피 흘리시고, 살을 찢으시고 생명을 주실 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힌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다. 큰 틀에서 그게 뭐냐 옛 질서에 속한 것들, 옛 창조에 속한 것들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갈라디아 2장 20절 우리 너무나 잘 아는 구절인데 한번 다 같이 한번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갈라디아 2:20,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마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마이 페이버릿 벌스(my favorite verse)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로 이렇게 정해가지고 암송하고, 항상 묵상하는 분들이 여기 많으실 줄로 아는데, 갈라디아서 2장 2절 너무나 귀한 말씀인데 이 갈라디 2장 20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가 한번 우리 손을 가슴에 한번 얹어봅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라면 너무너무 중요한 구절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가라고 할 때 이 ‘내가’라는 것은 뭘 의미하냐 하면은 ‘옛 질서’에 속한 나라는 거예요. 옛 질서 또 ‘사망의 질서’에 속했던 나, 사망의 질서의 노예가 되었던 나, 옛 질서에 사로잡혔던 나, 다른 말로 하면 나의 ‘옛 자’라고 할 수 있겠죠? ‘옛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 나의 옛 자, 옛 질서에 지배되고 옛 질서에 노예가 되고 옛 질서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되었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줄로 믿습니다. 이 옛 자아라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아예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거부하고,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하도다.
어리석은 자아죠? 하나님이 없다고 했던 자, 그리고 하나님이 설령 있다 할지라도 그 하나님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무시하던 자, 그리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여 나 자신을 높여서 나를 하나님으로 섬기고 나를 하나님으로 대우하라고 주장하고, 요구했던 그 자, 그 내가 스스로 주인 되어,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 스스로 왕이 되고, 임금이 되었던 스스로 만왕의 왕이요, 만주에 주라고 자기 자신을 높였던 그 자, 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아가 처리되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자아가 처리된 이 사실이 그냥 역사적인 사실로, 객관적인 사실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되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내가 못 박혔다고 할 때, 그 못 박힌 그것이 내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어야 한다. 라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에 된 삶을 회개하고 예수님 앞에 나와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인정하고, 나의 구조로 인정할 때에, 그래서 예수님 앞에 우리의 신앙 고백을 올려드릴 때에, 우리의 옛 자아는 처리되고 우리의 옛 질서에 종속되었던 우리의 자아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이제 우리는 새로운 질서에 속한, 새로운 창조에 속한, 생명의 질서에 속한, 새로운 자아를 가지게 되었다. 라는 것이다. 그래서 옛 사람은 죽고, 나의 옛 사람은 죽고, 이제 나는 새 사람으로 거듭나고 중생했다.
한 번 해보세요. “나는 새 사람이 되었다.” 우리 옆에 있는 분들 보시면서 서로 나눕니다. “당신은 이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의 옛 질서에 속했던 우리의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되고, 새로운 삶의 특권을 얻게 되고, 새로운 삶의 사명을 받게 되었다. 라 겁니다. 나의 옛 사람이 죽고 내가 새로운 질서에 속한, 새로운 사람, 새로운 생명, 새로운 나라로 거듭나고 중생함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딸들이 된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신부가 된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하나님의 딸들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 거예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그러셨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된 거예요. 우리도 우리 가운데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전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예수님과 하나가 된, 영적으로 연합하여 하나가 된, 새로운 피조물 새 사람,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라는 거예요. 새로운 정체성을 얻었어요. 또 새로운 특권을 얻었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리고, 말할 수 없는 평안을 누리고, 날마다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게 되었고, 거룩하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는 놀라운 특권의 삶을 누리게 된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질서에 속한 새로운 사람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우리가 다시 거듭나고 중생했을 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정체성과 새로운 특권만 주어진 게 아니라 새로운 사명도 주어졌어요.
 
그게 뭘까요? 저와 여러분이 새로운 질서 속에 새로운 질서에 속한 자로, 새 창조의 질서에 속한 자로 거듭나고 중생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새로운 사명이 주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것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아멘! 하세요. 한 번 합시다.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옆에 있는 분들 한번 다시 보십니다. 우리 함께 서로 사랑합시다. 서로 사랑하는 삶의 사명을 주시고 그다음에 마태복음 28장에서 뭐라 그러셨어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에게 분반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지키도록 가르쳐라. 원문도 그렇게 돼 있죠? 결국 제자 삼는 사명을 우리에게 주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사명이 주어졌어요. 그것은 두 가지에요. 크게 봐서
 
하나는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심지어 멋까지 사랑하느냐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를 핍박하고 욕하는 자를 향하여 되돌려 욕하지 말고 그들을 축복하고,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수준까지 나아가라. 서로 사랑을 하셨고 그다음에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서,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아멘 아시죠?
-우리의 옛 질서에 속했던 우리가 죽고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질서에 생명의 질서에 새 창조의 질서에 속한 자들로 우리가 거듭나고 중생하므로, 우리는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특권, 새로운 사명을 받은 자가 된 줄로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는 십자가에 못 박힌 게 뭐냐 하면, 갈라디아서 5장 24절이에요.
갈라디아서 5:24,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니라.
-한번 다 같이 읽어봅시다. 내가 못 박혔어요. 옛 질서에 속했던 내가 못 박히고 내가 죽었어요. 옛사람인 내가 죽었어요. 새 질서에 속한 자로 거듭나고 중생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어요. 오늘 이 5장 24절은 굉장히 중요한 지금 말씀을 해 주고 있어요. ‘육체와 함께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한 육체란 무엇입니까? 육체 성경에서 육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 육체란 무엇인가? 육체라는 것은 우리가 보통 우리의 영혼과 대비되는 우리의 몸, 이걸 의미하는 ㄴ느게 아니고, 이 육체라는 것은 영과 몸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본성인데 인간의 본성이 죄로 물들고, 죄로 오염된 상태로 있는 인간의 본성 그게 육체다. 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성경에서 육체라고 할 때, 이 육체는 단순한 영혼과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우리의 몸, 우리의 바디가 아니고, 우리의 바디가 아니고 우리 헬라로 싹스라는 단어를 쓰고, 영어로는 지금 이게 플래시라고 번역이 돼 있는데, 이것은 영과 육을 포함하는 모든 인간의 본성이 죄로 물들어 있고, 죄로 오염되어 있는 그것을 육체라고 부르는데, 놀라운 것은 우리의 죄의 본성, 죄로 물든 우리의 인성 죄의 본성도 십자가에 못 박혔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현실은, 현실은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는 날마다 싸우고 있어요. 날마다 싸우고 있고, 날마다 우리 안에 있는 죄가 우리를 죄 가운데로 사로잡아 가는 것을 보는 도다.
 
로마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공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렇게 말씀하면서 정말 탄식할 때,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보는 도다.” 우리의 매일의 삶 속에서 그런지 현실적으로 영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고, 우리 안에서 우리를 사로잡아가려고 하는 죄의 소욕, 죄의 정욕, 그 죄 성의 강력한 힘에 의해서 우리는 도전을 받고 계속 싸우고 있는데, 놀라 것은 놀라운 것은 오늘 갈라디아 5장 24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함께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뭐냐 하면 지금 현재 우리가 여전히 싸우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 있는 죄성과 우리 안에 있는 정욕과 우리 안에 있는 탐심과 더불어 싸우고 있지만,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육체에 대하여 승리했다. 라는 거예요. 아멘!. 한 번 합시다. “우리는 이미 승리했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죄가 우리를 사로잡아가려고 하고, 우리를 불순종으로 사로잡아가려고 하고, 우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행하지 못하게 사로잡아가려고 하는 죄의 소욕이 여전히 남아 있고, 우리 가운데 잔존하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패배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를 위하여 피 흘리시고 생명을 주셨을 때,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으실 때, 그와 함께 우리의 육체도, 탐심과 저녁 저녁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결국은 결정적으로 승리했고, 최종적으로 승리할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확실하게 하셨다. 라는 것이에요. 아멘. 결코 우리는 패배하지 않습니다. 때대로 넘어지고, 때때로 갈등하고, 때때로 안타까운 범죄를 범할 때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결국,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점점 성화되어지고 더 성화되어지고, 더 성화되어져서, 장차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나라로 부르실 때 우리의 몸과 영혼이 완전히 거룩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무슨 말이에요? 승리자가, 승리자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육체가 아니라, 승리자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정력과 탐심이 아니라 승리자가 바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소욕이, 거룩한 소욕이 결국은 최종적으로 이기고 승리하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에 못 박았다. 라는 말이에요. 아멘.
 
현실적으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겪는 갈등과 영적인 싸움을 거부하거나 그것을 무시하면 안 되죠. 현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 죄의 존재와 죄의 현존으로부터 우리가 완전히 해방되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셔서 재림하실 때, 죄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고 죄의 존재로부터 우리는 완전히 해방되는데, 우리의 영혼이 거듭나고 중생에서 성화되어져 가는 과정 중에, 영화의 단계에 가기까지 하나님께서 놀라운 섭리 가운데 죄를 우리 가운데 남겨주신 것은 이것은 패배의 상징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이 죄를 결국 우리가 성령의 능력으로 이기고, 극복하고 넉넉히 이기고, 정복함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를, 우리의 삶 속에서 날마다 경험하게 하시고, 근데 우리가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는 오늘 갈라디아서 6장 14절 한번 읽어볼까요? 갈라디아서 6장 14절
*갈라디아 6:14,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느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놀라운 말씀이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한 사람, One person,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만 십자가에 못 박힌 줄 알았는데, 오늘 갈라디아 6장 14절 말씀에서 바울은 “세상이 나를 대하여,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일까요?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옛 질서에 속한 세상, 옛 창조에 속한 세상,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보다 물질을 높이고, 하나님보다 다른 피조물에 속한 것들을 높이는. 옛 질서, 옛 창조에 속한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 라는 거예요. 이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이 세상은 우리들을 유혹하는 세상이에요.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세상이고, 이 세상은 우리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세상이에요. 어찌 보면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우리의 싸움의 대상 중에서도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 거대한 대적이에요. 그런데 오늘 주님 주님은 바울을 통해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 질서 안으로 들어왔고, 우리는 새 창조 안으로 들어왔고, 새로운 질서 새로운 창조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이 되었고,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세상 가운데 살고 있지만, 세상 가운데 살고 있지만 In the world!, 세상 가운데 살고 있지만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닌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우리를 지배하거나 세상의 가치관이 우리를 지배하는, 그런 삶을 더 이상 우리는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오늘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해방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이긴 자가 되었다.
 
날마다 세상을 이기는 선택, 날마다 세상을 이기는 결정을 함으로써 날마다의 삶 속에서 세상을 이기는 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된 줄로 믿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한번 해볼까요? 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로마서 8장에서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아멘 하시죠? 하면서 우리가 넉넉히 이겠느니라. 사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얘기예요. 세상 옛 질서에 속한 세상이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완전히 심판 당했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은 장차 망할 성이고 이 세상은 장차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받아 멸망할 세상이다. 라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이 세상의 심판과 이 세상에 대한 멸망이 확정되었다. 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위협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세상과 맞장 뜨면서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극복하고, 세상의 가치관을 전복시키고, 하나님 나라 가치관으로 무장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 살아갈 수 있게 된 줄로 믿습니다. 아멘. 한 번 더 “세상을 이미 이기고 극복했다.”
 
오늘 이제 세 가지 보면 제가 말씀을 드렸는데 두 가지만 더 살펴보고 오늘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1. 갈라디아 2장 20절에서, 옛 질서에 속했던 내가 죽고, 새 질서에 속한 새로운 사람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새로운 존재로 우리가 거듭나고 중생했다. 그랬고
2. 갈라디아 5장 24절에서 육체와 함께 그 정력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므로 우리가 날마다의 삶 속에서 여전히 갈등과 현실적인 영적인 투쟁이 남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우리의 실패에
우리의 패배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승리를 경험하고, 경험하고, 경험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우리가 승리자가 될 것을 주님은 십자가에서 이루셨고,
3. 세 번째로 세상이 내가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므로 세상의 유혹과 세상의 위협에 우리가 굴복하지 않는 승리하는 그리스도의 전사로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랬습니다. 골로새서 2장 1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골로새서 2:14,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0절에 보니까
*골로새서 2:10,
10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았다
-라고 말씀하죠. 뭘 못 박았다는 거예요? 율법에 기초해서 우리를 기소하는 기소장을 못 박았다는 것입니다. 율법에 기초해서 우리를 해 우리를 대하여, 사망의 판결을 내렸던 그 판결문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율법은 끊임없이 우리를 기소하고, 우리를 정죄하고, 우리가 너는 죄인이야, 너는 죄인이야, 그래서 너는 죄인이라고 고발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율법에 율법의 정제와 율법의 저주와 율법이 우리를 고소하는 그 고소장과 율법의 기초에서 우리를 향하여 판결문을 썼던, 너는 사형이야 라는 판결문을 내렸던 그 증서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말소되었다.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믿습니까? 한 번 해봅시다. 나에게는 정죄함이 결코 있을 수 없다 아멘 하시죠? 우리가 예수님 믿고 살아가면서 성화 과정을 거쳐 가면서,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영적인 싸움을 하면서 때로 무너지기도 하고 때로 실패하기도 할 때 그때 우리가 느끼는 죄의식은 복음적인 죄의식이어야 돼요. 율법적인 죄의식이 되면 안 돼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율법적인 죄의식은 내가 이런 혹시라도 주님 앞에서 범죄하고 잘못했을 때, 이것 때문에 내가 지옥 가는 거 아닌가? 이것 때문에 내가 자꾸 하나님 앞에 버림받는 거 아닌가? 이런 식의 죄의식이 바로 율법적인 죄의식이에요. 그게 아니고 복음적인 죄의식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려고 애쓰고 노력하다가 실수하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할 때 나를 사랑하시는 내 아버지의 마음을,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구주, 나의 주님, 나의 영적인 남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 그것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아프고, 우리의 마음이 주님 앞에서 참회하고 우리의 이 아픈 마음을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것, 그것이 복음적인 죄의식, 복음적인 회개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고 중생해서 영, 단번에 죄 사함을 얻은 자로 이 땅을 살아갈 때, 우리는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로 인하여 때때로 넘어지고 범죄를 하고 허물지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상황 속에서 여전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아와 하나님께서 “내게 오라. 내 아들아 내 따라 내게 와라. 내게 와서 자백하고 회개하고 다시 시작해라.” 그렇게 하실 때 기쁨으로 아버지께 나아가고, 기쁨으로 예수님께 나아가서 부족하지만 주여, 이제 다시 시작하오니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고 나를 당신의 능력으로 새롭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한 번 읽어봇시다. “아들아, 내게 와라 다시 시작해라. 딸아, 따라 다시 시작해라.” 아멘 하시죠? 왜? 율법의 저주와 율법이 우리를 고소하고, 기소하고, 심지어 율법에 기초해서 우리를 향하여 사형이라는 판결문을 내렸던 그 모든 증서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처리된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 우리 한 구절만 더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로 15절 말씀이에요. 제가 읽어볼게요. 히브리서 2장 14, 15절에 보니까
 
*히브리서 2:14-15,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음에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시면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한평생 메어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여기서 지금 ‘십자가에 못 박았다.’ 라는 그 정확한 언어가 나오지 않지만 여기 지금 말씀할 때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다. 이렇게 나와 있어요.
 
사랑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생명을 주실 때에 마귀도 십자가에 못 박힌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마귀 처리된 거예요. 마귀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영 단번에, 결정적인 승리를 이루신 줄로 믿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나서 주님께서 뭐라 그랬어요? 여자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뱀은 그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지만,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 사건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십자가로 말미암아 승리하심을 확증하신 사건이,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하신 사건인 줄로 믿습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사망의 권세를 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처리하신 줄로 믿습니다. 사망아, 네가 서는 것이 어디 있느냐?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롭게 되고 해방된 줄로 믿습니다.
 
이제 사망은 우리에게 더 이상 위협이 되거나, 두려움의 요소가 되거나, 겁내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도의 죽음을 기뻐하시고, 도리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죽음의 나를 담대하고, 소박하게, 정말로 주님 안에서 기쁨으로 죽음의 날을 기다릴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었다. 예수 믿는 사람과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 알고 계세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과,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영원한 사망과 마비의 종이 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죽음에 대한 반응이 완전히 다르다. 사망아, 네가 쏟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 죽음의 사건 역시도, 신비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특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신비한, 신비한 믿음의 사람들이 된 줄로 믿습니다.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고, 이제 우리는 사망을 조롱하며, 죽음을 조롱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죽음이, 죽은 것이 되었다 이 말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사로잡으려고 하는 사망의 권세가 사망을 당했다는 겁니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와 연합함으로 우리는 사망의 권세를 함께 이긴 자가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내 생명을 조금 더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의 고백 그대로 주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기 위해서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목숨을 조금 더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는, 순교자의 자세, 순교자의 영성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줄로 믿습니다.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십자가는 옛 질서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고 옛 질서에 대한 승리를 의미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아, 나는 새로운 질서에 속한 사람이구나! 나는 새로운 질서, 생명의 질서에 속한 새로운 피조물이구나! 새로운 존재가 되었구나! 새로운 정체성을 받았구나! 새로운 특권을 얻었구나! 새로운 사명을 받은 사람이 되었구나! 이 사실을 확인하면서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새 사람은 누구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된 사람은, 예수님과 연합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하여 영적으로 하나가 된 사람이에요. 예수님을 나의 영적인 의미의 신랑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내 자신이 예수님의 영적인 신부가 되었음을 확인하고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예수님과 연합됨으로, 예수님의 신부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참 포도나무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목적 하나님을 위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삶, 성령의 열매를 맺고, 전도의 열매를 먹고, 제자 삼는 삶의 열매를 맺고, 입술에 감사의 열매를 맺으며 ,찬송의 열매를 맺으며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교로 인도함으로, 우리가 맺은 열매가 주님 앞에 상달되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향기로 충만한 삶,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한 삶,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으로 깨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신 주의 말씀대로 성령의 능력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생명이 우리가 죽어서 주님 나라 갈 때 누리는 것이지만 그 이전에 이미 우리에게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새로운 피조물의 삶. 새로운 존재로서의 삶, 새 사람으로서의 풍성한 생명력 있는 삶에 주인공들로 여러분 모두가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한번 해봅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옆에 있는 분들 확인합니다. 서로를 바라보면서 “당신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한 번 더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십시오.”아멘 하시죠?
 
♣요약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 한 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옛 질서에 속했던, 옛 창조에 속했던 많은 것들이 이미 십자가에서 처리되었고, 이제 새로운 질서에 속한 사람으로, 생명의 질서에 속한 사람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신부로, 살아가길 원해야 한다.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결코 실패하거나 패배하는 삶이 아니라, 날마다 승리하는 삶의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나의 옛 자를 이기고, 내 안에 있는 육체의 소욕을 이기는, 마비를 이기는,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을 이 땅에서 미리 맛보며 살아가는 풍성한 삶의 주인공들로 주안에서 삶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란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의지하고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는 삶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분리된 삶이며, 그리스도께서 주신 완전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삶인 동시에 부활의 새 생명으로 덧입게 될 영원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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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3년 6월 11일)
제목: "죽음의 신비(神祕)"
말씀: 고린도후서 5:1~10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김은석 부목사님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ㅡㅡ

*고린도후서 5:1~10,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ㅡㅡㅡㅡㅡ

우리 찬양대와 함께 하나님의 위대하심, 하나님의 거룩하심, 사랑과 온유를 함께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저희가 상암 집회를 한 지 한 주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번 상암 집회를 앞에 놓고 저희 교회는 영적으로는 2년 또 실제적으로 1년을 준비해 왔는데 우리가 준비하면서 마음에 확정한 것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이번 상암 집회가 남북통일과 특별히 한국교회의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재 부흥의 결정적인 시간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제 집회 마치고 그냥 그걸로 끝나면 안 되고, 우리 교회부터 다시 한 번 재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겁니다.

재 부흥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배의 부흥이 일어나야 되는 것이고, 또 하나 말씀에 부흥이 일어나면 되는 것이에요. 이제 지난주부터 성경 읽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꼭 이렇게 하죠. 기억나십니까? 금방 한 것도 잊어버렸어요. 그렇게 하는데 예배에 재 부흥이 일어나야 되는데 저는 지난 40여 년간 목회 생활을 통하여 내가 지금도 예배에 대한 감격과 은혜가 너무 크지만, 제가 정말 순전하고 순결하여 전력투구하며 예배드렸을 때, 나는 그때 어떤 자세였나, 그러면서 제가 한 10여 년 동안 예배를 시작하면서 항상 예배를 위해 드리는 말씀을 글을 따로 썼어요. 그래서 제가 글 쓴 처음 썼던 걸 제가 이번에 다시 한 번 보게 됐어요. 보면서 앞으로 1~2년 동안 우리 사랑의 교회가 온 성도들이 예배의 재 부흥을 위하여 좀 이렇게 정리를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떠세요? 좋습니다.!!! 설교하기 전에 한 1~2분간 꼭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핵심은 이것입니다. 첫 번째 여러분 예배는요 예배드리기 전에 결정되는 거예요. 아주 중요한 거예요. 성공적인 예배는 예배당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결정되는 것이에요.

그러면 예배당에 들어오기 전에 결정된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하면 반드시 여러분 들어올 때마다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들어와야 됩니다. 반드시 매주 하나님 거룩한 기대감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 오늘 이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왔는 줄 주님은 아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요. 그러면 거룩한 기대감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성도들을 쭉 보면요. 거룩한 기대감을 갖는 성도들에게 나타난 공통적인 현상에서 그것이 뭐냐 하면요 이것입니다. 하나님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왔다는 것은 모인다는 것은 오늘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모이는 것이에요.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개인적인 음성을 들려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오늘도 ‘잠시 세상에!~~ 내가 밑에서 보면 옆에서 보면서 기가 막혀요. 너무너무 찬송을 마칠 때, 또 찬송할 때, 찬송을 통하여도 들려주신 말씀이 있을 것이에요. 기도를 통하여, 들려 줄 말씀이 있을 것이고, 여러분의 헌신을 통하여,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을 것이고,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이 있을 거에요. 오늘 마치고 나가면서 우리 선교 컨퍼런스에다가 여러 가지 하시는 거, 글로벌 광장 나가시면서도 주님께서 내 개인적으로 주시는 음성이었을 것이에요. 정리합니다.

“예배는 예배 들어오기 전에 결정되는 것이다. 반드시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들어와야 한다. 거룩한 기대감의 핵심은 오늘도 주님이 나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실 것이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헌신과 교제를 통하여 오늘 이것이 이번 주 여러분들의 삶의 여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죽음의 신비’에 대해서 오늘 좀 중요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31일 날 긴급 재난 경보 받으셨습니까? 아침 여섯시 몇 분쯤 됐는데 저는 그거 할 때 이렇게 상암 집회 종료 모임이 있어서 아침에 목사님들 모임이 있어서 아침에 차를 타고 나가는 길이었어요. 들고 왔더라고요. 그리고 경보사이렌도 들으셨어요?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죽음과 같은 긴급함 저는 죽음과 같은 긴급함을 몇 번 맞이한 적이 있는데, 진짜 어려워지면요. 우리가 할 게 없어요. 사이렌은 울려도 갈 데도 없다니까 근데 마침 그날 우리가 일찍 출근한 우리 교회 직원들이 그 문자를 보고 우와!! ‘우리가 살려면 안아주심의 본당이 내려가야 되겠다.’ ‘여기를 내려와야 되겠다.’ 이제 이런 생각을 하고, 그렇게 막 그 마음을 가지고 했대요. 여러분 재난이 있고 위기를 당하면 사람에게 본당에 오면 사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것이에요. 그런 게 있었고 또 하나는 제가 빌리그레함 상암 집회 50주년 집회하면서, 이 집회가 우리가 애써서 수고하고 헌신하는데, ‘진리가 선포되는 집회’가 되게 해달라고 그래서 제가 개회사에서 할 때, “진리가 선포되는 이 50주년 기념대회를 허락하신 사랑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랬잖아요. 그래서 진리가 뭐냐, 참 진리가 뭐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은 구원이 참 진리인 것이에요.

그러니까 죽음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래서 이 죽음이라는 것에 관해서 먼저 우리가 갖고 있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예수님께서 죽으신 그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인데 이러한 오늘 이 참된 ‘죽음의 신비’에 대한 진리가 여러분들의 것으로 깨달아지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로는 죽으면 끝이다. 죽으면 다 끝난다, 죽음 이후에는 죽고 난 다음에 다 끝이다 아무것도 없다. 무다.
-그런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니까 이 땅에 살면서 내 마음대로 사는 거예요.

두 번째로는 죽으면 수수깨끼다. 누구도 모른다.
죽어 그러니까 죽으면 수수깨끼이니까 염세주의자들처럼 살아가고 수수깨끼 같은 인생을 사는 거예요. 죽음에 대해서 세 가지 자세를 갖고 있어요. 사람들은 첫 번째 죽으면 끝이다. 죽으면 다 끝난다. 죽으면 모든 것 끝, 인생은 살아있는 동안이 전부 다 그러니까 뭐 살아있는 동안 내 마음대로 살고 내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케스라 세라 왓 에버 윌비(What ever will be). 내 마음대로 사는 거야. 이래 살고 내가 하고 힘들어 살고 그냥 뭐 그냥 허상 하나 부르면서 죽으면 끝이 나니까 막 그냥 알코올이나 탐닉되고 이래 죽으면 끝이니까 그래서 사는 거예요.

세 번째로는 죽음 이후에 반드시 영원한 생명이 있다.
-이걸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에요. 죽음 이후에 영원한 세계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사후 대책을 세우고 기백을 갖고 살게 되는 것이에요. 준비된 사람으로 믿음의 용사처럼 살 수가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 죽음에 관해서는 확실히 아는 거 있잖아요. 여러분들 제가 100% 아는 게 있어요. 그거 뭐냐면 우리는 100% 다 죽는다는 것이에요. 여기는 예외가 없어요. 우리 하나님은 무시간 대의 개념이 있어요. 우리 하나님께는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개념 그 초월 점 초시간대의 개념 무시간대의 개념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두 100살 살고, 90살 살고, 사람 60살 살고, 다 50살, 이렇게 차이가 30~40년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여튼 여러분과 저는 100% 죽습니다. 맞습니까? 그러면 그 이후에 죽음에 대한 대책이 뭐냐고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죽음 이후에 대책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이 땅에 살면서 아무리 똑똑해도 아무리 대단해도 죽음에 대한 대책이 없는 사람은 대책 없이 매일매일 사는 사람이에요. 죽음 이후에 영원한 세계에 대한 대책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 땅에서 최선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하루는 공자의 제자 자로가 여러분 잘 아시는 내용이죠? 공자에게 감히 스승님께 죽음에 대해 묻습니다. 죽음이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공자가 뭐라고 그랬어요? 야 이 땅에 삶도 모르는데, 죽으면 어찌 알겠느냐? 삶도 모르게 죽으면 어떻게 알겠느냐? 뭐 거기엔 또 나름 또 생각이 있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명확하게 얘기하면 여러분 공자 같이 사서삼경 뭐, 다 대단하지만 그런 거 대학, 춘추 이야기 다 있지만, 베드로는요 놀라운 얘기를 했어요. 저는 이 공자와 비교해서 베드로가 베드로서 1장 19절에 제가 지난 주간에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너무 제가 이게 너무 귀한 말씀이 여러분 공자처럼 베드로가 많이 공부한 것도 아니고, 공자처럼 베드로가 무슨 많은 제자를 거느린 것도 아니에요.

그는 초라한 어부 출신이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의 빛으로 그 마음을 깨닫게 하시고 생명의 진리에 대한 문을 열고 죽음에 대한 소망이 있는 사람에게 나타난 이 땅에 사람도 모르는데 죽으면 어떻게 알겠느냐는 공자와, 어부로서 살았지만 분명하게 확인된 베드로의 고백을 한번 들어보시오. 베드로서 1장 19절에 뭐라고 돼 있느냐 같이 읽죠.

*베드로후서 1:19,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사람들은 다 깜깜해요. 아주 그냥 아주 그 마음이 죽음 이후에 그것에 대해서 모두가 다 깜깜한 암흑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빛이 없는 깨달음이 없는 통찰력이 없는 그런 깜깜함 속에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깜깜한 어둠 속에 여러분 등불, 한 빛을 봐요. 얼마나 놀랍습니까? 거기에 손전등이라도 비추고 거기에다가 성냥불을 하면 켜 봐요. 환하게 빛나는 것이죠. 그것뿐만 아니라 1장 19절 뒤에 뭐라고 나와 있는가? 이렇게 나와 있어요.

*베드로후서 1:19,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날이 새어 새별이 너희 마음이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그랬어요. 죽음 이후의 세계뿐만 아니라 여러 우리 삶의 영적인 어떤 질문들이 있을 때에, 그 모든 어두움의 시간이 지나가고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오느니라. 우리가 깨닫는 것이 있는데 오늘 죽음 이후 신비도 여러분들이 말씀하는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샛별 같은 은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샛별의 청명함과 샛별의 청초함과 새별의 청명함이 여러분들에게 주어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공자도 뭘? 복을 깨달은 것을 첫 번째, 우리가 깨닫는 것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 1절을 보겠습니다.

I. 첫째 ‘아느니라.’

*고린도후서 5:1,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이 고린도후서 5장 1절 10절까지는 죽음이 의 신비에 대해서 너무나 영광스러운 말씀이에요. 그런데 1절에 이렇게 절 뒤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뭐라고 돼 있어요? 아느니라. 오늘 첫 번째 우리가 주제가 뭐냐 아는 것 우리는 아느니라. 공자도 모르는데 이태백도, 이황, 이율곡도 한국의 철학자들 대단한 사람들 다 모르는데, 우리는 오늘 이 시간 아느니라. 말씀에 대한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나온 성도들에게 알게 하시느니라. 뭘 알게 하시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죽음이 왜 어려워요? 사람들의 죽음 얘기가 나오면 다 두려워하는 것이에요. 죽음은 두려움을 가져오는 거예요. 그 두려움을 가져오는 것 때문에 사람들이 극복이 안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죽기 되면 죽기 직전 되면, 아무리 대단해도 다 두려워하고 다 힘들어하고, 몸도 육신도 아픈 거 있겠지만 영적으로 길이 없으까? 깜깜한 절벽이니까 꽉 막혀 있으니까 깜깜하니까 다 두려운 거예요.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아느니라 뭘 깨닫게 하시는가? 우리 성경 전체를 통해 아는 것이 있어요. 그건 뭐냐 보통 우리 성경이 성경에서 신약에서 말하는 성경은 대부분 구약 성경을 말씀하는 거예요. 구약 성경 전체를 딱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요약을 해가지고 깨닫게 하시는 게 뭐냐 하면, 히브리서의 말씀인데 히브리서 가운데 히브리서 2장 14절 15절에 기가 막힌 말씀이 있어요.

*히브리서 2:14~15,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모든 사람의 죽음을 두려워해요. 그런데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피해 복음을 가진 사람들은 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그 이유가 뭘까? 히브리서 2장 14절 이와 같이 나와 있어요. 같이 보겠습니다. 14절만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해 있습니다. 잠깐만요. 우리가 어떤 혈과 육에 속했죠? 우리 다 육신의 몸을 갖고 있죠? 그다음에 또요.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시면 중요합니다. 그가 누굽니까? 메시아 되신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육신의 몸을 소위 성육신을 입으셨어요. 인카네이션(incarnation) 하셨다.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시면 그 이유는 그다음 중요합니다.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그다음 또 15절에 같이 또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한 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십니다. 너무나 이걸 말씀을 처음 보는 분들은 조금 더 깨달아야 되겠지만, 성경을 아는 분들은 딱 마음에 아까 말씀한 대로 샛별같이 깨닫게 하신 은혜가 있는 것이에요. 무슨 말이냐? 이런 뜻이에요. 보십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마귀의 세력을 멸하러 오신 것입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고, 상처를 주고, 그다음 영원한 형벌을 갖게 하고, 우리를 고통 가운데서 온갖 더러움 속에 살게 하는 것이 마귀의 목표에요. 마귀는 한 생명이라도 더, 더 고통 가운데서 영원한 흑암 가운데로 갖고 가게 하는 것이 마귀의 목표에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선한 목자가 돼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중요하면 마귀의 세력을, 이런 잘못된 마귀의 세력을 멸하시기 위하여, 고통과 저주와 더러움과 모욕과 수치와 부끄러움과 형벌 속에 있는 우리들을,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오셔가지고 피의 복음을 통하여 용서의 강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주심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세력을 멸(滅)하시기 위하여 그래서 2장 15절 다시 한 번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히브리서 2:15,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한 평생 매어 종노릇 하는 자들을 자유케 하시는 것이에요. 오늘 여러분과 저는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한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된 것입니다. 이건 너무나 신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 그 피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마다 용서의 강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에요. 피의 복음을 깨닫는 사람들은 용서의 강, 은혜의 강을 경험하게 되면, 그 우리 뒤를 따라오는 사냥개와 늑대와 마귀 같은 못된 군사들이 우리가 은혜의 강을 지나는 동안에 우리의 냄새를 다 잊어버리고 우리를 추적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 우리의 죄가 용서받도록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왔고 피의 복음 앞에 주님 우리의 죄가 주님의 피해 복음 때문에 용서받은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들인 거예요. 맞습니까? 이 세상에서 대단한 위인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제일 위인이 누굽니까? 뭐 세종대왕이다. 그다음에 이순신장군이다. 그래서 그 광화문에 두 분만 있는 거 아니에요? 지금 그런데 아무리 위인이라 할지라도 여러분들이 “이순신 장군님,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한 적 있습니까? “네, 세종대왕님 나의 모든 허물과 모든 연약함과 모든 죄를 싸그리 용서하여 주옵소서.” 말이 안 되죠 이 땅에서 오직 유일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문을 열고 성령님을 통하여 “주님, 내 죄의 문제는 예수님의 피의 복음 밖에는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요” 이걸 믿는 사람들은 마귀의 세력을 멸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주님께서 그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여 첫 열매가 되겠다. 그 첫 열매라는 게 오늘 우리들을 위하여 첫 열매가 되신 것이 우리들을 위하여 복음이 되신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 주님은 죽음의 두려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셨고, 이 땅에 있는 육신의 죽음을 죽이신 것이에요. 죽음을 극복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걸 깨닫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느니라.”

그 법이 뭐냐 하면 능력으로, 능력으로 해석할 수 생명의 성령의 능력이 오늘 제가 말씀드린 죽음을 돌파하는 마귀의 세례를 면하게 하시는, 정말 우리로 하여 선한 목자 되시는 이 생명의 성령의 능력이 마귀의 죄와 사망의 능력을 압도하였느니라. 극복케 하였느니라. 이걸 깨닫는 사람에게는 모든 성도들의 죽음은 이 땅은 사망이 왕 노릇하지만 성도에게 죽음은, 영광의 궁전에 입성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올라가는 불 병거가 되는 것이고, 독수리의 날개가 되는 것이고, 천국의 한 문에 들어가는 통로가 되는 것을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걸 깨닫고 난 다음에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수많은 우수사례와 수많은 참 환난, 근심이 있다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이 땅에 살아가는 또한 남은 인생을 즐거워하느니라. 확실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 전체를 통하여 우리가 아는 것이다. 두 번째로 아는 것은 본문에 좀 더 자세히 나와 있는데 본문을 통하여 아는 것이 1절에 있는 내용입니다.

*고린도후서 5:1,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여기 보니까 본문에서 장막집이라는 말 텐트라는 말이 두 번이나 나와요. 장막집이 무너지면 그다음에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짐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그러니까 두 가지가 대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땅에 있는 장막 집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대조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땅에 있는 장막 집은 영어로 텐트인데 이것은 뭐 여러 해석도 있지만, 이거 땅에 있는 장막 집을 우리의 육신의 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저와 여러분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것이 그런데 이 육체의 몸의 특징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낡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이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는 것을 절감하고 있어요.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져 절감하고 있어요. 젊을 때 탄탄했던 장막집이 나이가 들수록 장막집의 지붕이 처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요 머리가 빠지는 것입니다. 봐요 말뚝이 느슨해지는 것입니다. 장막 집의 말뚝은 두 다리의 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막 집 볼 때 못은 흔들 조금씩 흔들리게 되는 거예요. 갈수록 다시오. 지붕이 처지는 것은 머리가 빠진 것이고, 말뚝은 다리에 힘이 없는 것이고, 못이 흔드는 것은 이빨이 흔들리는 것이 예전 같지가 않다는 것이에요.

제가 최근에 10여 년 만에 만난 어떤 분이 있었어요. 그분을 제가 10여 년 보면서 아이고야 왜 이렇게 많이 늙으셨습니까? 라고 말은 하지 아니하고 속으로 만나 그리 얘기했어요. 그냥 깜짝 놀랐어요. 근데 그 순간 제가 아 내가 늙은 걸 네가 모르구나. 어떤 사람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야, 요즘은 거울도 예전 같지 않네. 사실은 거울은 그대로인데 내가 달라진 것이죠. 내가 달라진 것이 땅에 있는 장막 집은 무너지고 낡아지는 것이에요. 이 땅에 지금 의약과 눈부신 진보가 있다 할지라도 아무리 있어도요. 우리는 땅에 있는 장막이 무너지고 다시 사망률 100%예요. 예외가 없어요. 텐트 무너지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장막집이 무너지는 것, 하나님 또 하나 더 우리가 아는 것은 더 중요한 것은 2절 하반 절 뒤에 보면,

*고린도후서 5:2,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 내용은 어떤 장소적인 개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부활의 몸을 확실히 입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에요. 고린도전서 15장에도 보면 뭐라고 나와 있느냐면,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나와 있어요.

*고린도전서 15:51,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마지막 나팔이 불리는 그 시간에, 순식간에 우리 모두가 다 호연히 변화되리니 여기에 이제 뭐 이렇게 다른 신학적인 여러 내용들은 제가 다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예비 되어 있는 것이고, 우리가 재림의 그 순간 우리의 몸은 예수님처럼 부활의 몸으로 순식간에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자, 그러면 이렇게 아는 사람에게 나타난 현상이 뭔가 이렇게 확실히 피의 복음과 마귀의 세력을 멸하시고 죽음의 두려움을 없애시고 장막 집과 영원한 집에 대한 한 주님의 몸을 입는 것을 깨닫고, 아는 사람이 나타에게 모든 분들에게 나타나는 어떤 실제적인 삶의 현장이 어떤 것인가? 6절이에요.

II. 우리가 담대하여.

*고린도후서 5:6,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6절에 뭐라고 하냐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우리가 항상 뭐 때문에 어떻게 됐어요? 담대하여, 그러니까 앞으로 오늘 이후로 사라에게 모든 성도들은 담대해야 돼요. 제 말씀이 아니라 여러분과 저는 담대히 살아야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눈에 보이는 게 없지.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죽음의 신비에 대해서 깨닫고 난 다음에 우리의 마음속에 간절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이 뭐냐 하면, 오늘 바울이 고백한 대로 담대하게 살아야 한다. 이 담대함이 우리 사랑의 교회의 특성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 담대함이 앞으로 한국 교회 성도들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의 특성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담대한 용서가 되는 것이 담대한 주님의 용서가 되는 것이에요. 제가 이 담대함을 얘기할 때에 담대함은 용기를 냅시다. 그리고 입술을 꽉 다물고 파이팅 이게 아니고, 이 정도가 아니고, 영적 기백이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내면 속에서 명맥이 흐르고, 어떤 경우에도 상록수 신앙을 유지하면서 한결 같은 시종일관(始終一貫)을 갖는 것이 영적인 담대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이 없는 거예요. 담대함을 가지고, 죽음 이후를 예비하고 주님이 예비하신 처소를 사모하게 되면, 이 땅에 있는 것들도 우선순위(優先順位)와 더 중요한 걸 딱!! 과감하게 정리할 수 있는 안목(眼目)도 생기는 것이고, 담대함, 저는 왜 하나님께서 다윗을 다윗도 실수가 많았는데 왜 그렇게 하나님은 다윗에게 “너는 내 마음에 합한 자다.” 무엇이? 다윗으로 하여금 너는 내 마음에 합한 자다. 다윗도 부족함도 많고 그러는데 왜 그랬을까?

나는 다윗이 가진 놀라운 통찰력 가운데 하나가 뭐냐 하면 “하나님 아버지 나는 왕궁에 삽니다. 나는 나름대로 궁에 삽니다. 나는 나름대로 대단한 거 다 경험했습니다.” 여러분 다윗처럼 지상에 정복 왕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다윗이 뭐라고 얘기냐 합니까? “내가 왕국에서 거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집에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건 다윗의 대단한 고백이. 쉽게 말하면 “이 땅에서의 첫날보다도 천국에서의 한 날이 더 낫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죽음 이후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죽음의 신비를 깨달은 사람들은요. 제가 좀 이런 용어를 써서 죄송한데 앞으로 문지기 신학이라고 그럴 거예요.

문지기 신학을 우리가 가져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은 야 이 땅에서 왕국에 사는 것보다도 하나님 나라의 문지기로 있는 게 더 낫다. 어떤 장소적 개념을 뛰어넘어가지고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이 땅의 삶에 담대함과 역동성, 하나님 나라의 용사로서 그래서 이런 담대함이 있으면 이 땅에 있는 것들을 너무 자고우면하지 아니하고 영적인 용사가 되어가지고 거룩한 홀로 서기가 가능하다 이 말이에요. 좀 누가 상처 주고 좀 이렇고 어렵고 이런 게 있어도 하나님 아버지 나는 하나님, 나라의 문지기 신앙을 가진 줄로 믿사오니, 이걸 통해서 거룩한 용사가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이걸 통해서 주님 내 사람들에게도 영향 받지 않고 사건이 되면 영향 받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뭘 걱정합니까? 하나님 내가 믿음에 홀로서기 있게 하여 주시고 일마다 때마다 믿음 보고 하게 하여 주십시오. 믿음 보고 1점0, 믿음 보고 2점0, 믿음 보고 3.0을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우리 주위에 있는 가까운 사람도 떠나고, 가족도 떠나고, 육신의 장막도 약해지고 그럴 때마다 우리가 환경에 얽매여서 우울하고 힘들어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다윗처럼 문지기 신앙을 가지고 용기 있는 홀로서기를 하면서 내 능력과 내 실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은혜를 갖고 빛을 받고 샛별을 경험하고 벌떡벌떡 일어서야 될 줄로 믿는 것이에요. 이걸 5절에서 보니까 성령으로 보증을 받았다.

*고린도후서 5:5,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우리에게 보증서를 다 쓰여 주니, 여기에 대해 성령께서 보증서를 쓰시고 도장을 찍어주시고.

*고린도후서 5:7,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그리고 7절에 보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한다. 소위 믿음 보고 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장막 집이 무너지고 영원한 집을 믿는 사람들은 죽음의 신비에 대해서 눈을 뜬 사람들은 순식간에 주님 오실 때, 우리가 홀연히 주님의 옷을 입기를 확신하는 사람들은 우리는 담대함을 평생 유지할 줄로 믿습니다. 담대함의 표현이 다윗처럼 문지기 신앙을 가지고 이 땅에서 수많은 하늘나라에 차루가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이리 생각하고 그렇게 살 때 매일매일 삶이 하나님 앞에 믿음에 보고를 하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8절에 담대함을 가지고,

*고린도후서 5:8,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주님과 보냄 갈 것을 확신하고 현재는 육체의 몸을 떠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담대함을 가지고 문지기 신학을 가지고 홀로 서기를 갖고 주님의 주님 앞에서를 우리가 기억하면서 이제 중요하면서 9절에,

*고린도후서 5:9,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주님을 기쁘시게, 믿음의 용사로, 문지기 신앙을 가지고 어제 우리 설교 컨퍼런스를 하면서 어제 그런 말씀 나눴잖아요? 남김없이, 후퇴 없이, 후회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담담함을 가진 사람의 나타난 특징은 9절에,
*고린도후서 5:9,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죽음의 신비를 깨닫는 사람들은 죽음을 해결하는 사람은 어떡하든지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어떤 것인가? 현장으로 나온 것이 10절이에요.

III. 담대함을 가지고 죽음을 맞이하는 자는 심판대 앞에 설 것을 늘 준비하는 삶을 산다.

*고린도후서 5:10,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가 다 심판대 앞에 섰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의 삶이라는 것은 심판대 앞에 설 것을 기대하고, 그 심판대 앞에서 우리가 선악 간에 우리가 상급을 받을 것이다. 심판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이런 뜻이에요. 우리는 지금 구원을 받느냐? 안 받느냐?는 심판을 우리가 끝난 사람들이에요. 피의 복음을 통하여 정리가 된 사람들이 줄을 믿습니다. 아까 우리가 용서해달라고 어떤 위인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 메시아에게 그리스도에게. 기름 부분 받은 자에게 우리가 말씀한 거예요. 우리가 기도한 것이 그래서 그 문제로 해결된 거예요. 이제 나타난 것이 우리에게는 뭐가 있냐, 상급 심판이 심판대 앞에 우리가 우리에게 받은 공적을 따라서, 선악 간에. 이거는 무슨 누가 이 땅에서 뭐 잘하면 축복받고 못하면 이런 개념이 아니에요. 이거는 이거 완전히 다른 차원이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느냐? 우리 우리의 삶을 쭉 이렇게 사는 걸 가지고 하나님 앞에 상급 심판을 받는 것이에요.

이걸 왜 이렇게 제가 좀 이렇게 오늘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과거에 16세기에 캐톨릭이 너무나 그 당시에 캐톨릭이 너무나 부패를 하고 그다음에 이 소위 사람의 구원을 가지고 장난을 쳤어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구원은 예수님 피로 받는 것이에요. 맞습니까? 그런데 그 구원을 공로 주의로, 공로 주의로 우리가 행한 바에 따라서 구원을 받는다고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해가지고 한 것을 마르틴루터가 너무 열 받아가지고 그건 아니다. 그러면서 그 캐돌릭의 공로주의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없는 성경에 연옥도 막 만들고, 그다음에 또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막 이런 것도 만들고 막 그렇게 했어요. 그것이 싫어가지고 우리가 물을 버릴 때 그냥 와장창 버렸는데, 버린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선악 간에 심판받는다는 이 상급 심판에 대한 걸 버려버린 것이에요. 구원받은 자는 상급 심판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은혜로 준비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에요. 이게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상급은 은혜 받은 자에게 나오는 자연스러운 행위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거 있잖아요. 시험 준비를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이렇게 한 사람은, 시험 볼 날이 두려워요?. 시험 볼 날을 막 기대해요? 저는 그런 거 한 번도 안 해봤습니다. 그런 분도 있을지 모르는데 정말 시험 준비를 최선을 다해서 잘하고 막 그렇게 하면 시험 볼 날을 기대하면서 막, 막 기대가 돼요. 그래요. 뭔가를 열심히 준비하면 그날이 와도 두렵지가 않는 것이죠.

그런데 이제 이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상급 심판, 이런 것들이 좀 늘 마음속에 다짐이 되고 확고하게 좀 뭔가 와 닿을 수 있는 뭐가 없을까? 그런 좀 현장을 보고 좀 도전 받고 그런 게 없을까? 그게 바로 양화진이에요. 아멘. 양과자 선교 사람들 묘에 가면 거기가 상급 심판과 살아온 삶의 선교 사람들의 히스토리가 다 들어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올해도, 천오백 몇 십 명이 선교 나가잖아요? 국내 선교 750명, 단기 선교가 700명, 그 거의 1500명이나 해외 선교 700 넘게 나가는데, 그 나가기 전에 단기 선교 팀도 나가기 전에 야마지 묘소에 가가지고 서 있기 해도 좀 각오가 되는 것이에요. 나를 좀 추슬러지고, 나를 문지기 신앙으로, 나를 그리스도의 용사로, 믿음에 홀로 서기를 감당할 수 있도록 다짐하게 하는 곳이 양화진 묘역이에요. 거기 가면, 몇 분들 제가 좀 골라봤는데 거기에


“하나님께 영광”(Give God Glory)
- 이렇게 해가지고 윌리엄 베어드 2세 묘지에요.
-숭실 대학을 만들었던 윌리엄 베어드 선교 사람의 자녀들이 죽어갖고 계세요.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I would rather he buried in Korea the in Westminster Abbey.(헐버트)

“만일 내게 줄 수 있는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나는 조선에 다 바치리라.”(If had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루비 캔드릭-Kendrick, Ruby R)

“뜻이 이루어지이다”(Thy Will be Done).(에이커 홈)
-저런 내용들을 보면 우리가 마음에 숙연해지잖아요. 근데 양화진에 가서 양화진에만 봐야 되나 저 무슨 길이 없나? 근데 우리가 몇 년 동안 준비를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의 동산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 사랑의 동사를 위하여 기도 저희 메모얼 파크인데 양평에 아주 참 괜찮은 지역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어요. 제가 그걸 이거 도대체 하나를 우리에게 왜 주시나? 오목사, 앞으로 양평 사랑의 동산(사랑 메모리얼 파크)는 제2의 양화진 묘가 돼야 하는 것이에요. 양화진은 풀타임 선교사들이 거기 가서 살았다면 여기에 양평에 있는 사랑의 동산은 사랑의 교회, 제자 훈련 목회 철학을 가지고 한 3년 동안 보냄 받은 소명자로서 온전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평생에 달려갈 길을 달리는 그런 사람들의 삶의 현장이 돼야만 하는 것이야, 에요. 라틴어로 히스토리아 미션 히스토리, ‘선교 적 삶을 살았던 곳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야.’ 그런 깨달음을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양평 ‘사랑의 동산’에 대해서 ★사랑의 동산은 죽은 자의 고귀한 삶을 통하여 산 자의 영혼을 깨우치는 장소가 될 것이다. 이런 깨달으셨어요. 죽은 자의 고귀한 삶을 통하여 산자의 영혼을 깨우는 장소가 될 것이다. 이걸 하면서 제가 깨달은 몇 가지 진리가 있는데 여러분과 저는 태어난 곳은 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지방에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서울 태어나고, 도서 팔도에 태어나고, 심지어 우리 교회 교인들 가운데 북한에서 태어난 우리 북사선 식구들이 있어요. 북한 사랑의 선교회 어떤 사람은 또 해외에서 태어난 분들도 있어요. 태어난 고향은 다 달라요. 그런데 돌아갈 본향은 같아요. 그래서 제가 태어난 고향은 다를지 모르지만 돌아갈 보향은 같다. 나와야 되는데 시작. “하나님의 자녀들은 고향은 다르지만 본향은 동일하다.”

그래서 성경은 참 재미있어요. 태어난 생일보다도 장례식을 훨씬 더 많이 언급하고 있어요. 오죽하면장례식 가는 자가 더 지혜로운 자다. 돌아갈 본향에 대해서 깨달음이 있으니까. 성경의 생일은 창세기 4장의 바로의 생일과 또 복음서에 보면 헤롯의 생일 잠깐 언급하고, 나머지는 다 장례식이에요. 그래서 성경은 묻히는 장소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태어난 고향보다도 죽고 묻히는 장례 장소가 중요한 것이에요. 제 얘기가 아니고 아브라함이 175세를 살면서 후손들에게 꼭 필요한 유산을 남겨 레가스를 남겼어요. 그 물질적인 것이 영적 유산의 표현으로서 뭘 남겨냐 하면 막벨라굴을 사가지고, 거기에 자기도 묻히고, 아내도 묻히고, 이삭도 묻히고, 야곱도 묻히게 했어요. 3대가 다 같이 묻혔어요. 여기는 너무 성령이 주신 음성이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나 제가 다시 한 번 태어난 고향은 달라도 돌아갈 본향은 같아야 되는 것이야. 그 3-4대가 같이 묻힐 때 더 은혜가 있는 곳이에요. 그래서 ‘사랑의 동산’이 돌아갈 본향의 하나의 예표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선대들의 믿음의 순례를 보고 후대들이 이 땅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정리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을 먼 일로 여기는 것입니다.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이 나와 상관이 없는 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이 사랑의 동산을 볼 때마다 내가 주님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아야 되지 않겠는가? 그걸 결심하고 도전받는 그런 장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아픔을 경험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떠날 때 눈물이 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문지기 신앙을 가지고, 믿음에 홀로서기를 하고 상급을 바라보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우리는 죽음조차도 담담하게, 대담하게, 담대하게 맞이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선교 적 삶이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이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귀한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전달되어 피차사로 격려하고 서로 축복하는 시간되기를 축원합니다.

♣요약
주님은 죽음조차 극복하시고 마귀의 세력을 멸하여 주시려고, 우리 모두에게 죽음의 두려움을 해결해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으니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한다. 우리가 몸이 약해지고 육신의 장막 집이 무너지는 것을 절감하게 되는 시점에, 우리의 죽음은 영원한 처소인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궁전에 들어가는 영광의 문인 줄로 믿고,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함으로 승리해야 한다. 문지기의 신앙을 가지고, 담대함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용사가 되어서 이 시대에 믿음 보고를 하고, 기쁨으로 심판대 앞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귀한 종들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예비하여 주신 ‘사랑의 동산’이 영혼 구원의 플랫폼이 되기를 간구하며, 제2의 양화진 묘지가 되기를 소망해야 한다.
-바울의 주된 관심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입혀주시는 신령한 옷을 간절히 사모하고, 육체 가운데 사는 현재의 삶보다, 죽어서 육체를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을 더 소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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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5월 28일)
제목: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말씀: 요한복음 6:36, 7:37-38
대표기도: 하상범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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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36,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요한복음 7:37-38,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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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귀한 성령강림주일을 허락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사랑의 교회는 이 성령강림주일을 소중하게 여기는 교회입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에게 진리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하여 주시옵시고, 또 그걸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복음 이 본문을 6장 35절에 뒤에 보니까 다시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또 너희 속에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이게 그냥 어떤 이론으로 끝나는 것인가 아니면 실체가 있는 것인가?
*요한복음 6:35,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사도 요한은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심지, 예수님의 심정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께 기대어서 주님의 뜻을 누구보다도 잘 깨달은 제자였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굉장히 신비한 복음입니다. 요한복음의 오늘 이 귀한 말씀이 어떻게 실체적으로 확인되었는가? 뒤에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주님께서 벌벌 떨면서 비겁하게 문을 다 닫아놓고 한쪽 구석에서 답답해하고 힘들어하는 그 제자들에게 주님이 나타나셔가지고 요한복음 20장 21절에,

*요한복음 20:21,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어마어마한 말씀하셨어요. 다시요 그 두려움에 떨면서 십자가 사건 이후에 한 방 한쪽 구석에서 문을 닫아걸고 비겁하게 떨고 있던 그 제자들에게 나타나셔갖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사랑의 교회는 제자훈련 하는 교회에요. 사랑의 교회는 사명 받은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아니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가 다 그렇게 돼야 되는 것이에요. 지난달에 CAL세미나를 제가 두 번 하면서 더 절실하게 제 마음을 느낀 거예요. ‘우리 교회는 끝까지 이 주님이 말씀하신 이 사명을 완수하는 교회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걸 좀 어려운 말로, 사도직은 계승되지 않지만 사도 성은 계승돼야 한다. 오늘 더 이상 사도는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도에게 명한 그 사명은 너희들이 이루어야 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하나님이 예수님 보내신 것은 이것은 너무나 놀라운 구원의 진리예요. 이 구원의 진리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모시게 된 것입니다. 소위 생명의 떡을 먹은 것이에요. 이렇게 생명의 떡을 먹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외 없이 하나님께 의존과 순종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원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외가 없어요. 여기에 하나님의 의존과 순종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원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그분을 우리의 생명의 떡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분들에게는 예외 없이, 다시 의존과 그다음 뭐예요 순종의 관계를 통한 하나님의 어떤 자원에 무한하신 자오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걸 일컬어서 오늘 “너희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리라.” 그랬어요. 이게 여러분들에게 저와 여러분 이게 과연 실체가 되고 있는지, 의존은 우리의 여러분 하나님 의존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입니까 부담입니까? 특권이죠. 어마어마한 특권이죠. 질그릇같이 연약한 인생 주 의지하여 늘 강건하다. 놀라운 말씀이 나 같이 생각한 인생에 주님 의지하여 늘 강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이 하나님 의존할 때, 우리 아담이 불순종해가지고 아담이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원한 멸망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님의 순종을 통하여 우리의 불순종이 예수님의 순종을 통하여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이에요. 그래서 김 불순종이 박 순종이 된 것이에요. 그리고 이 불순종이 이 권사가 된 것이에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거예요. 그것뿐만 아니라,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존을 통하여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나 주님의 보좌 있는데 천한 몸에 이르러 그 영광 몸속에 올 때 내 뭐가 넘친다고요? 기쁨이 넘친다. ♩~~

어떨 때는 그런 찬송은 막 눈물이 나는 거예요. 나같이 미천하고 부족한 인생이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의존하고, 그 의존을 통하여 주님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그다음에 하나님 무안하신 자원에 참여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하신 자원에 참여한다는 것이 어떤 뜻인가?

“생수가 흘러넘치리라.” 요한이 이 얘기를 하고 요한복음 20장의 마지막에 그 뒷부분에 이렇게 다시 두려움에 떨고, 방한 쪽 구석에서 비겁하게 그냥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그들에게 주님 나타나셔가지고 도저히 희망 없는 자들에게 “너희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 같아.
나도 너희를 보내니까 너희들은 사명 받은 자로서 사도 성을 계승하라.“ 사랑의 교회로 말하면 사도 성을 계승하라. 그러면 어떻게? 복잡한 거 다 두고 딱 하나만, 21절 그 사명을 말씀하시고 요한복음 20장 22절에 딱 하나 뭐라고 말씀하는가?
*요한복음 20:22,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딱 하나의 성령을 받으라. 우리가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지금 쳇 gpt 시대에, AI 인공지능 시대에, 그리고 정치적인 흐름이나 우리 주위의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우리의 마음이 버겁고 우리의 마음이 침을 지고 어떻게 요동할 때도 있고 수많은 압박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런 분들에게 딱 하나 주님이 오늘 말씀하신다면 “성령을 받으라.” 그거요. 성령을 받으라. 요한이 이 놀라운 진리를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요한이 신비한 복음을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이 예배에 오신 여러분들, 오늘 예배 마치고 말씀 마치고 저와 같이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더 충만하게 받게 하여 주시옵시고, 매 마르기 짝이 없는 인생들에게는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너무너무 중요한 것이다. 이걸 위하여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사건처럼 좀 정리를 하겠습니다. 오늘 요한복음 6장 35절에는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요한복음 6:35,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다. 그 말씀이 생명의 떡 먹은 사람에게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그 말씀을 다시 한 번 7장에서 이렇게 설명하는 거예요? 뭐라고 말씀해요?

*요한복음 7:37,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초막절이죠? 초막절은 일주일 내내 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이렇게 실체적으로 이것이 자기들의 가족들이나 자녀들에게 확인될 수 있도록 그 초막절을 기념하는데, 일주일 7일 동안 하는데, 뭘 하느냐? 광야 길 가운데서 의복이 낡아지지 않게 하시고, 광야길 가운데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광야 길 가운데서 만나를 주셔서 주리지 않게 하시고, 특별히 중요한 것이 광야 길은 사막이고, 광야에는 물이 없는 곳이에요. 물이 없는 곳에 제일 중요한 것이 물인데, 반석에서 생수를 터뜨려가지고, 그 반석에서 생수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을 먹을 수 있도록 그래서 이 반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이제 그런 걸 말씀하시면서 그걸 이제 기념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벽에 이제 초막절 기간 동안 매일 아침마다 저 실로암에서 물을 길어 와가지고 예루살렘 성전 제단에다가 물을 붓는 의식을 하는 거예요. 바위 있는 데 붓기도 하고 붙는 의식을 갖는 거예요. 그리고 그 의식의 마지막 날, 마지막 날에는 수많은 제사장들과 그다음에 레위인들 심지어 많을 때는 3천여 명의 레위인 들이 와가지고 같이 그 의식을 하면서 마지막 그 물을 붓는 의식을 통하여 장엄하게 하나님을 할렐루야! 를 찬양하는 순간 정말로 영광스러운 것이 “하나님은 우리의 생수의 근원이시구나.” ‘광야 길 가운데서 우리가 의지할 보는 주님밖에 없게 하셨구나! 광야 길 가운데 우리의 수많은 목마름과 그다음에 어려움과 문제들을 주님이 해결해 주셨구나!’ 이걸 이제 이걸 기념하는 거예요. 초막절이에요. 그리고 초막절 제 8일째 오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7:37,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게 너무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오늘 아침 이 귀한 성령 강림 주일, 저나 여러분이나 이 사도적 사명을 계승하고, 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우리에게 허락하신 수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응답되기 위하여,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음성을 듣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가서 마시라.” 그 첫 번째 전제조건이 하나 있어요.

I. 목말라야 된다.
-목말라야 돼요. 목이 말라야 거룩한 목마름이 필요합니다. 주님 오늘 우리에게 너희 지성적으로 똑똑해라. 그다음 뭐 교회 생활 많은 것들 잘해라. 이거 다 그거 다 귀중하지만, 진짜 중요한 거 너희들에게 오늘 성령 강림 주일날 담임 목사를 비롯해서 모든 성도들이 함께 ‘주님 우리에게는 거룩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타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생수의 강을 경험하고 사도 성을 계승하고, 내가 삶을 엮어가는 데 수많은 짐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주님이 내게 허락하시는 가장 중요한 그 사명을 위한 간절한 목마름이 내게 있습니다.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영적 세상 적으로는 되게 똑똑한데 영적으로는 허당이에요. 세상 적으로는 되게 잘 나가는데, 영적으로는 다 눈 먼 자 같은 사람들이 있어요. 여러분,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목마름이 있죠?

돌고래는 바다에서 멋지게 헤엄치면 그걸로 목마르잖아요. 그걸로 그냥 만족이에요. 땅에 뒹구는 개들은 태양빛 아래서 그냥 맛있는 거 먹고 그냥 평안하게 뛰어놀면 그걸로 만족해요. 목마르지 않아요. 새들은 저 하늘에서 아름답게 지적이고 그렇게 하면 그걸로 끝이지 목마르지 않아요. 근데 모든 인간들은 목마르게 돼 있어요. 인간들은 다 목마르죠. 아무리, 아무리 대단하게 채워줘도 목마르죠. 인간들은 다 이 목마름을 해결할 방도가 없어요. 육체적으로 뭐 이렇게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더 목마르게 돼 있어요. 어떤 사람은 성적으로 더 목마르게 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 지위에 대해서 더 목마른 사람들이 있고, 수많은 목마른 사람들이 많아요. 지식을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데, 목말라 하면서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요. 더 큰 아드레날린 분비를 요청하고 새로운 걸 더 추구하고, 계속 더 거칠고 자극적인 것을 찾아 헤매는 목마름이 육체의 갈망, 인간들에게 있어요. 세상에도 이런 갈증 이거 해결이 안 돼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원에 참여하기를 원하고, 사도 성 계승과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름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영원히 모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그 영혼에 대한 목마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에요.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너희가 대단한 수준으로 올라가라. 사회적으로 높은 계층으로 올라가라 대단한 지성이나 위치를 올라가라. 그런 말씀하는 거 아니에요.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우리 순전하게 저나 여러분이나 모두가 다 주님을 향한 거룩한 목마름으로 다시 한 번 불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 귀한 성령 강림 주일 같은 데에, 우리는 거룩한 목마름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되는 거에요. 요한복음 6장 35절 뒤에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35,37,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라. 그 다음에 7장 37절에
*요한복음 7:37,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래서 제가 볼 때, 하나님께서는 한 번씩 말이죠. 저와 여러분의 상황을, 우리의 삶의 여정을, 강력하게 목마르도록 만드실 때가 있어요. 이해가 되십니까?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께서는 강력하게 목마르게 하실 때가 있어요. 우리가 사명자로 살도록, 사도 성 계승을 잘할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의 용량을 키우기 위하여, 주님이 어떨 때는 목마르게 하시는 거예요. 주님께 대한 타는 목마름을 갖도록 만드시는 거예요. 우리를 그쪽으로 몰아가실 때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갈증 나게 하시고, 어떨 때는 힘들게도 하시고, 거룩한 목마름을 제대로 이해하고 생수를 경험하도록 하나님 우리에게 고난도 주시고, 짐도 지게 하시고, 우리 앞에 놓인 온갖 시련들을 사용하기도 하시고, 찌르는 죄들과 상한 감정과 상처와 아픔들, 오래 응답되지 않은 기도의 제목들을 사용하셔가지고 계속 우리를 하나님 앞에 목마르게 하시고, 진짜 중요한 것을 추구하게 만드시는 거예요. 할렐루야!! 아멘... 어쩌면 이런 말씀을 드리면 이해가 안 되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영적 세계는 빈익빈, 부익부에요. 주님은 우리에게 타는 목마름과 거룩한 갈증을 주셔가지고 생수의 강을 사모하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의 생의 마지막 오늘 이 말씀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마지막 요한계시록 22장 마지막 부분에

*요한계시록 22:17,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너희 목마른 자도 올 것이오. 진짜 목마름과 갈증이 있는 자 이것이 오늘 생수의 강을 경험하는 전제 조건인 줄로 믿습니다. 타오르는 목마름을 꺼뜨리지 말고, 타오르는 목마름에 불을 붙이고 그런 점화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저와 여러분 마음속에 주님 오늘이 성령 강주일 날 다른 어떤 것보다도 생수의 강에 목마릅니다.

이 생수 강의 목마름, 우리는 거룩한 목마름, 세상은 바닷물처럼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는 그 갈증 때문에 목마르지만, 우리는 거룩한 목마름에 대해서 우리의 눈빛이 달라져야 되는 것이에요. 목마른 자의 눈빛을 회복해야 되는 것이고, 목마른 자의 마음으로 귀를 열어야 되는 것이고, 새로운 말씀이 깨달아지고 새로운 은혜의 실체를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의 영의 눈을 열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오늘 이 자리에 혹시 교회에 처음 오신 분이 계시다면, 아무리, 아무리, 아무리, 아무리 해도 채워지는 이 갈증을 생수에 가한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해결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제조건이 목마른 것인데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목마름을 해결하는가? 생수의 강을 마시라고 그랬어요. 목마르거든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뭐 해요 마시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다시 다 같이 시작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이건 물리적으로 물리적으로 뭘 마신다 혹은 지리적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그 정도가 아니고 내 마음의 결단과 내 마음의 행동과 내 마음의 방향이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내 마음의 방향과 내 마음의 행동과 내 마음의 집중력을 회복하라 이 말이죠. 마시라고 하셨는데 이걸 마시라는 말씀을 듣기만 하거나 해석하거나 평가만 하면 안 되고 마시면 시원하겠다. 그래 생각만 하면 안 되고 “지금 마시라.” 그 말해요. 지금 해갈을 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에요. 이 ‘마시라.’ 는 말의 마시라는 헬라의 문법은 현재 능동 명령형이에요. 죄송합니다. 프레젠트 액티브 임페라티브(Present active imperative)라고 그래서 현재 능동 명령이에요. 지금 마셔야 되는 거예요. 지금 지금 타는 목마름에 불을 붙여야 되는 것이에요. 지금 강렬한 갈증을 일으켜야 되는 것이에요. 현재 과거에 주시는 대로 아니 뿐만 아니라, 현재 능동 우리가 적극적으로 주님 앞에 찬송한다 하더라도, 간절한 마음으로 성령님 기름 부어주옵소서. 그러면 진짜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성령님 생수 강 부어오소서. 그러면 진짜 그렇게 가만히 이렇게 있지 말고 지금 능동적으로 그리고 명령형이에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이거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명령이에요.

지금 우리의 목마름을 고백하고 지금 마시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럴 때 나를 믿는 자는 이제 중요한데 ‘나를 믿는 자는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믿는 자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마시는 자는, 믿는 자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마시는 자는 생수하게 흘러나리라. 무슨 말입니까? 믿는다는 말은, 마신다는 말이고 마신다는 말은 믿는다는 말이에요. 여러분들 우리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줄로 확신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성령님에 대한 것을 사모하면서 마셔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마시는 것과 믿는 것이 똑같다는 것이에요. 마시는 것이 믿는 것이고 믿는 것이 마신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6장 35절과 7장 37절, 38절에 연결할 때에 요한복음 전체를 볼 때, 믿는 것이 마시는 것이고 마시는 것이 믿는 것이고, 예수를 믿고 마실 때,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줄로 확신합니다.
성경의 이름과 같이 스가라에서 말씀하신, 에스겔에서 말씀하신, 그 그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 요강을 경험한다는 거에요. 여러분들 가운데 나는 예수님을 믿는데, 나는 왜 이렇게 목마를까? 나는 예수님을 믿는데 왜 나는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나? 오늘 이제 중요한 순간으로 들어갑니다.
 
사랑의 교회 어떤 분들은 흘러넘치는 것 같고 능력 있는 것 같고, 어떤 분들은 특별히 신앙생활을 어벤다운이 한결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매 마르고 나는 왜 이렇게 어벤다운이 많을까? 오늘 이 귀한 주일날 사랑의 교회가 이 45주년에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어떤 사람은 믿는데 왜 목마르고 왜 왜 그럴까?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리라.’ 라는 말씀을 내 것으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에요. 다시요 믿는데 왜 자꾸 목이 마를까? 거기에 대한 답은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 흘러넘친다는 것은 희한하게도 흘러넘친다는 것은 이 생수의 강의 문제는 나만 만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결코 생수의 강이 아니에요. 생수의 강은 나 혼자만 만족되는 것이 생수의 강이 아니에요. 생수의 강은 흘러넘치는 줄로 믿습니다. 흘러넘친다는 말 말하면 생수의 강의 독특한 성격은 나만 만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생수의 강을 흘러넘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내게 흘러넘치는 것이 남들을 만족하게 하시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 나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해갈되는 것이에요. 내 뱃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근원이 터지면 다른 사람을 해갈시키고, 우리가 축복의 근원으로서 생수의 근원이 되게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흔히들 제가 자주 말씀드린 대로 나만의 만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수의 강이 흘러넘칠 때 이것은 남들에게도 만족이 되게 되는 것이니까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인생, 물댄 동산 같은 인생이 되는 줄로 확신합니다. 물이 끊어지지 않는 내 샘같이 되게 만들어 주신 줄 믿습니다. 이걸 깨닫고 나니까 요한복음 4장에서 날마다 솟는 “너는 지금까지 이 우물을 먹으면 목마르리라.” 주님의 앞에 4장에서 뭐라고 하는가? 우물과 연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는데 그 탈의 목마름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어요. “지금 있는 남편도 니 남편이 아니리라.” 남자 여섯을 갈아치워도 해결이 안 되는 그 갈증을, 오늘 주님께서 주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 생수의 강을 경험하고 난 다음 너무 중요한 얘기 자기 몸 하나도 가누지 못하고 삶의 어떤 그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가지고 혼자서 조용히 정오의 땡볕에 나와서 물을 딛는 그 여인이, 이 생수의 가을 경험하고 난 다음에 자기만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물동이를 버려두고 들어가서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자기만의 만족으로 자기만의 메시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하는 영광스러운 차원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포인트는 뭐냐? 예수 믿으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래 믿고 다 하지만, 생수의 강을 체험하지 못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는 뭐냐? 흘러넘치는 사역이 돼서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에, 나만 만족해 희한하게도 생수가 흘러넘치면, 믿는 자는 목마르지 아니하니라. 목마름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이걸 깨닫게 되면 흘러넘치는 사이 돼서 문이 열리게 되면, 나만으로 만족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혼까지 만족시키는 그 자리까지 도달할 때,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되는 것이에요. 이게 뱃속에서 흘러가죠. 희한하게도 내 속에서의 풍성한 만족을 통해 넘치게 되면, 메마른 사람들에게 연결되는 줄로 믿습니다. 적당한 정도가 아니라 물댄 동산처럼 흘러넘치는 것이에요. 우리 교회 용어로 말하면 은혜의 저수지가 되는 것이에요.
 
자, 이제 중요합니다. 여러분과 저의 깊은 갈망과 목마름은 예수님을 믿고 마셔서 생수를 체험하면 해결되는데, 생수를 마시면 해결되는데, 문제는 이것은 나 혼자만으로 만족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만으로 멈추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목마름까지 해결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생수로 나만 만족하는 삶이 아니라, 생수가 흘러넘쳐 함께 참 만족을 누리는 삶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저의 타는 목마름과 거룩한 갈증은 나 혼자 해결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 흘러넘쳐서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갈 때에 비로소 내 영혼의 깊은 갈망과 갈증이 멈추고 처리되는 것이에요. 예수를 믿어도 우리는 갈증이 있어요. 예수를 믿어도 해결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그런 모든 부분들은 어떻게 해결되는가? 나 혼자만 생수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내 흘러넘치는 생수의 강을 통하여 다른 영혼들이 만족할 때, 비로소 내 영혼의 그 타는 목마름이 해결된다는 것이에요. 같이 읽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깊은 갈망은 자기 혼자 생수를 마심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내 속에서 생수가 흘러넘쳐 나와 다른 영혼에게 생수를 같이 나눌 때, 비로소 내 영혼의 깊은 갈망의 문제가 멈춰지고 참 만족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우리는 6.3 상암 대회를 앞에 놓고 지난, 사실은 지난 2년 동안 준비를 해오고 우리가 본격적으로 지난 1년 6개월 이상을 준비해왔어요. 왜 상암 대회냐? 요새 뭐 그거 필요하냐? 심지어 뭐 기도의 지팡이 된다고 그러는데, 네버!! 여러분들 진짜 이번 이 기회에 남들이 생수의 강을 경험하도록 여러분들이 역할을 하면, 여러분들의 영혼의 깊은 갈망과 해결되지 못하는 것들이 정리된다니까요.
‘목사님, 평소에 일부답지 않게 오늘 왜 저렇게 정말 전력투구 하나?’ 제가 1부부터 오늘 전력투구하는지 여러분들의 마음에 참 진리 여기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하나의 상암대회는 하나의 영적인 글로벌 플랫폼이에요. 여러분들이 이걸 실제로 아마 우리 교회 교인들이 아마 그 자리에 만 명 이상 갈 거예요. 뭐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다 뭐 모든 순서는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한 가지 아, 내 영혼에 주시는 생수의 강이 흘러넘쳐가지고 다른 영혼들을 만족케 하면, 그것이 내 인생에 이 목마름을 진실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향이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지, 이 생수의 강은 누가 한 명이 이렇게 얻는다고 줄어주고 그런 것이 아니에요. 너무나 놀라운 일이에요. “나를 믿는 자는 그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리라.” 그랬어요. 그런데 제가 원어를 보니까, 바로 이래서 그렇구나! 나를 믿는 자는 거배에서 생수의 각인데 그냥 강이 아니에요. 생수의 강들이 흘러넘치리라. 영어에도 더 리벌스 어브 리빙 워터(The rivers of living water)를 그래서 오늘 영어 제목도 리버 한 강이 아니라 리벌 스예요. 복수예요. 그냥 낙동강, 한강, 영산강, 대동강 이 정도가 아니에요. 미시시피강, 장강, 양자강 또 무슨 강 있어요? 아마존 강, 나일강, 그 정도가 아니에요. 빅토리아 폭포, 나이가라 폭포, 이과수폭포 그 정도가 아니에요. 그 모든 것들을 대동강, 한강 모든 것들을 합친 것보다도 아마존강, 나일강, 양자강을 합친 그 황하를 합친 모든 것보다도, 빅토리아 이과스, 나이아가라를 합친 그것보다도 훨씬 더 놀랍고 고갈되지 않는 수많은 풍성한 강들을 허락해 주시리라. 이걸 진짜 깨닫고 이 은혜의 어느 조그마한 한 부분이라도 경험하게 된 사람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말도 안 되게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부족해도 남들에 비해서 레즈매가 스펙이 약해도 다 상관이 없어요. 하나님이 여기에 대한 목마름 가지고 영적인 눈 열어가지고 하나님 아버지 생수의 강들이 내게서 흘러넘치는 줄로 믿습니다. The rivers of living water!!~.
 
모든 강물을, 모든 폭포를, 모든 세계의 흐름들을 다 모은 것보다도 훨씬 더 큰 것에 영광스러운 그 생수의 강이 내 속에서 흘러넘치게 되리라. 이것이 우리의 마음에 말씀의 파도가 되고, 확실히 파도가 될 때, 우리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수많은 담들과 벽들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폭포수가 될 것입니다. 이 강들이 엄청나고 대단하기 때문에, 이 강물이 엄청나고 대단하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여기는 부족한 자도 범죄자도, 연약한 사람도, 부끄러운 사람도, 대단한 사람들도, 지식인도, 모든 빈부(貧富)귀천(貴賤) 막론(莫論)하고 누구든지 이 생수의 강들이 다 눈이 열려가지고 나오기만 하면, 여러분 평생에 생각하지 못했던 수많은 갈등들이 해결되고 나만이 아니라, 똑같이 연결될 때에 저는 그거 하나 여러분 자신이 거룩한 강들을 위한 생수의 플랫폼이 될 때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하시고, 상상도 못하던 차원이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구약에서부터 예표로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어느날 모세에게, 모세가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고 난 다음에 70인 장로들을 이렇게 같이 연결해가지고, 이제 모세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와 함께 엘닷과 메다시라는 두 장로는 저 진영에 머물고 있고, 그다음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다 장막에다가 성막에 다 둘러 세웠는데, 그 어떤 두 장로가 안 왔어요. 엘닥과 메다시라는 장로가 안 왔어요. 그런데 그 안 온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가지고, 영임해가지고 막 예언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여호수아가 뭐라고 하냐면 그들 말려달라고, 저 안 왔는데 그 임하면 되겠냐고 우리가 가치 없는데 하면 되겠냐고 그러니까 모세가 놀라운 말씀 민수기 11장 29절에 보면,
 
*민수기 11:29,
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오늘 누구든지 의 구약의 예표에요 부족해도 다 선지자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노라. 누구든지 성령체험의 보편성을 담보하는 위대한 기도를 드리게 된 거예요. 그 이후에 요엘 선지자가 뭐라고 해요?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라. 누구에게 부어준다고요? 만민의 그러니까 하나님 아버지 성령을 모든 백성에게 부어주세요! 라는 이 이 모세의 꿈같은 기도가 요엘을 통하여 확인되고 요엘을 통하여 오순절 성령 강님 오늘 성령 강림 주일 날 이것이 현실이 된 거예요. 베드로가 요엘서에 말씀하신 말세 내가 내 영으로 말세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라. 그랬어요. 모든 육체 남녀 성별에 상관없이, 사회의 위치에 상관없이, 직분에 상관없이, 나이에 상관없이, 인종과 국가에 상관없이, 시대에 상관없이, 형편과 처지에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든지 만민에게 모든 사람들이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그리고 사도행전 2장 38절 39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사도행전 2:38-39,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성령의 선물 성령의 선물 이 약속은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니라.
-오늘 이 자리에는 얼마든지 부르신 하나님 백성들이 다 모인 줄로 믿습니다. 제가 오늘 이 아침 일부터 정말 진심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수의 강을 얼마든지 부어주시는 그분 앞에 목마른 거룩한 목마름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것은 이 갈망은 이 끊임없는 갈망은 생수의 강의 나만이 아니라, 폭포수 같은 그 강렬한 강물이 나를 통하여 주의 복을 받게 하면 내 갈증이 참된 갈증이 해결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걸 깨닫는 것이 그럼 이 시간에 기도를 해야 되겠다.
 
두 가지 기도 제목을 드리고요. 이 두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할 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은 예외 없이 누구든지 경험할 수 있는 생수의 강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폭포수와 같은 생수의 강이 나를 완전히 지배하여 주십시오. 흘러넘치는 생수의 강으로 나를 온통 지배하여 주십시오. 70-80%가 아니라 심지어 90% 아니라 100% 지배하게 하여 주십시오.
어떤 젊은이는 좀 결혼하고 난 다음에 지배하여 주십시오.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난 다음에 지배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마치 하나님이 내 즐거움과 내 어떤 인생의 좋은 걸 빼앗아가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NO!! 성령이 나를 지배해서 받는 그 즐거움과 기쁨은 이 세상의 즐거움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에요. 찬송한다 하더라도 기가 막힌 것이, 여러분 이 땅에 모든 갈증은 아무리 채워도 절대로 해결이 안돼요. 성령께서 생수의 강으로 지배하시면, 내 삶의 영원한 갈증이 치유가 되는 것이에요. 완전히 지배하여 주십시오. 넘치는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흘러넘쳐다 비축의 은혜가 아니라 넘치는 은혜, 축적의 은혜가 아니라 넘치는 것이 그럴 때, 사막의 광야의 샘이 터지고, 사막 같은 인생이 이 생수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흘러넘치는 사람에게 가는 놀라운 지배 흘러넘치는 지배를 받는 사람이 나타나는 놀라운 기도 제목 하나는 뭐냐면,
 
두 번째 이거 뭐냐 하면 주님, 나를 제한 없이 사용하여 주십시오. 나는 나를 볼 때는 너무 부끄러워. 내가 나를 볼 때는 너무 부족해. 내가 나를 볼 때는 그냥 저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어야 돼요. 그런데 주님께서 성령 받으라고 그러고 난 다음에 이런 은혜를 받고 난 다음에는 나를 제한 없이 새용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고 제 생일로 돌아보았어요.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성령께서 나를 붙잡아주시고 생수의 강을 경험하게 하실 때, 조심스럽지만 어떨 때는 한계가 없는 사역의 은혜를 받은 그 축복이 얼마나 큰지 여러분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제한 없이 사용해 주시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에요. 이것이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에요. 교회 안에도 일반적으로 우리 다 세상적인 사고방식이 다 들어와 있어요. 세상에 잘난 분들이 교회도 잘 나고, 세상에 잘 나가는 분들이 교회도 잘 나가고 이런 거 다 있어요. 그러나 진짜 은혜를 받으면 생수의 강에 대해서 눈이 열리는 사람은 빈복귀천 남녀노소 상관이 없이 주님이 나를 제한 없이 사용하게 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럴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언제까지 수많은 부부 간의 갈등을 갖고 계실 거예요? 언제까지 처리되지 않는 어려움으로 여러분이 힘들어하실 거예요? 언제까지 내 자아 내 프라이드 문제가 해결이 안 돼가지고 깨어지지 않아가지고 언제까지 힘들어 하실 거예요? 생수의 강의 지배를 받고 나를 제한 없이 사용해주시는 은혜 가지고, 그걸 가지고 더 이상의 갈등을 하지 말고, 갈증이 해결될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배당 안에는 수많은 분들이 모였을 때는 희한하게도 이 안에 생수의 강이 넘치는 분이 반드시 계세요. 그리고 제한 없이 하나님께 사용해달라고 기도 통해서 은혜 받을 분이 반드시 있어요. 그래서 이런 자리에 올 때, 공동체에 임하는 성령의 역사와 생수의 강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한국교회 제4의 부흥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토비새에도 했지만 웨일즈의 부흥이 평양 부흥으로 왔어요. 그게 제1 부흥이에요. 제2 부흥은 한국이 건국될 때, 여러분 지금 43 사건이나 그 모든 것들이 48년도 4월 3일 우리나라가 건국되기 전에 48년도 8월 15일 그거 보면, 거기 이 남한에 있는 공산당들, 남로당, 그 당시에 남로당 뭐 이런 박헌영 김달산 이런 사람들이 여러분 보통 사람들은요 힘도 없어요. 공산당들은 선전 선동에 놓여가지고 강력합니다. 10프로만 공산화가 일어나면요 세상 뒤집어집니다.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8월 15일 이전까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는 결국 공사도 되게 다 돼 있었어요. 그래서 제주에도 어려움이 생기고 여수 순천에도 어려움이 생기고, 우리나라가 그냥 끝나게 돼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쨌든 그리스도인 이승만 대통령에게 지혜를 주셔서 나만이라도 정부를 수립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공산화될 수밖에 없다. 이걸 알고 48년도에 건국을 할 때, 제헌을 국회를 할 때 하나님이 이 민족을 성령으로 인 쳐달라고 했잖아요. 전 세계의 어떤 역사가나 어떤 경제학자도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은 해소 못합니다. 한국 교회와 함께한 축복인 줄로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제2 건국이에요. 제2부흥에요. 제3부흥은 73년도 50년 전에 빌리그레함 집회를 통하여 73년을 기점으로 해서 73년도 엑스플로, 80년대 복음만 대상에 어마어마한 부흥이 일어난 거에요. 이제 6월 3일 상암 집회,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제4 부흥의 시작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어요. 이번 6월 3일 상암집회는 전 세계 교회가, 전 세계 우리 78억 가운데, 한 18억 20억의 복음주의 교회 이 18억 20억 가운데서, 코로나 이후에 처음 있는 가장 강력한 집회에요. 그리고 앞으로 한국 사회는 10년 내로는 이런 집회에 다시 하기가 힘들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10년 더 하면 좋겠지만 실제로 쉽지가 않아요. 우리 어른들 세대에 많은 사람들이 73년도 74년도, 내 마음에 그때 그때 가이스 저는 74년도 참석해 봤고 그다음에 80년대 복음만 대에 참석해 봤는데, 수만 내 친구들 오면 나도 그때 갔으면 좋았을걸...그런 분들이 많아요. 앞으로 10년 20년 뒤에 한국 교회의 6 삼 사암 집회에 간 것이 이 생수의 강이 터지고 부흥의 플랫폼이 되는 어떤 그런 기관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그 축복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이 은혜가 나만이 만족이 아니라, 이렇게 넘치게 될 때에 여러분 개인의 문제도 만족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사랑의 교회는 이 생수의 강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 나라의 이 부흥을 위한 프론트 라인에서 영적인 선봉장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오늘 아침에 제가 기도를 하는데, 다윗의 군대를 성경에서 쭉 말씀할 때 다윗의 군대가 나중에 하나님의 군대라고 그랬어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군대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불의의 변기가 아니라 의의 변기로 사용돼야 되는 것이에요. 그걸 위하여 우리가 생수의 강이 흘러넘쳐야 되는 것이 우리를 완전히 지배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제한 없이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이 회복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말해 잊지 않고, 실체 있는 것을 체험하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약
이 순간 마음의 진실함을 가지고 ‘The rivers of living water!!’의 주님을 깨달아서, 폭포수보다 더 놀라운 것을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심을 믿고, 내 마음에 있는 소음과 기도의 제목을 다 올려드리고 사명자로 제한 없이 사용되어야 한다. 폭포수 같은 생수의 강이 우리 앞에 놀랍게 펼쳐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6,3 상암 집회에 우리 한국교회와 아시아 부흥의 그리고 남북 통일의 결정적인 날이 되기를 간구하며,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생수의 강의 근원 되신 주님 안에서 거룩한 갈증과 목마름이 완전히 해결되는 참 만족의 은혜를 받아서 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해갈케 하는 물댄 동산 같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 같은 흘러넘치는 서로의 은혜를 갖기를 소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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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5월 21일)
제목: "다시 알아야 할 복음"
말씀: 고린도전서 15:1~4
대표기도: 나모세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박성규 목사님-초빙(총신대 총장5/25일 취임(1부)
ㅡㅡㅡㅡㅡ
 
*고린도전서 15:1~4,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박성규 목사님-초빙(총신대 총장5/25일 취임)
너무나 수고 많았습니다. 한 주간 동안 삶의 현장에서 얼마나 수고 많으셨습니까? 오늘도 예배가 우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최후와 하나님의 부활을 경험하는 신앙되기를 바랍니다. 찬양 팀은 새벽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오셨을 텐데, 찬양과 오케스트라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교회 안에서 한 청년이 자녀와 교제를 했습니다. 오래전에 일입니다. 네 건전하게 교제하다가 헤어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얼마 후에 자매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구절 하나를 넣고 싶었습니다. 결혼하는 자녀에게 옛날에는 이 축전을 치지 않았습니까? 전보를 치는데, 그동안 정말 귀한 사귐을 할 수 있었고 또 우리가 건전하게 사귀었기 때문에 아무 걱정 없이 남편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라는 짧은 축하의 글을 썼습니다. 그런 다음에 성경 구절 한 구절을 전문을 쓸 수 없고 몇 장 몇 절만 쓰게 되는데 요한일서 4장 18절을 요일 4:18절을 이렇게 해서 보냈어요. 우체국 직원의 실수로 요일에서 ‘일’자가 빠져버렸어요. 굉장한 차이를 낳았죠. 요한일서 4장 18절은 사랑은 두려움이 없나니 온전한 사람이 두려움을 내쫓느니라. 말씀을 보면,
 
*요한일서 4:18,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걱정하지 말고 평안하게 잘 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런 뜻인데, 일자가 빠지니까 요한복음 4장 18절이 됐어요.
 
*요한복음 4:18,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러분 정말 한 글자가 빠졌는데, 대수롭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엄청난 차이를 만들 수도 있죠. 오늘 우리가 나누게 될 복음은 정말 토시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배워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의 제목을 PPT로 보겠습니다. 오늘은 파워포인트를 좀 이용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다시 알려야 할 복음’입니다. 고린도서 15장 1절에 보면,
 
*고린도전서 15:1,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복음을 들었던 고린도교회가 약화가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미 바울 사도께서 고린도 교회에 복음을 전했단 말이죠. 그런데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에게는 다시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죠. 흔히 우리는 복음이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받아들여야 되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새롭게, 새롭게 묵상되고 그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가 마음속에 경험될 때, 그 성도는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오늘 말씀의 준 제목을 한번 따라해 볼까요? ‘다시 알려야 할 복음 다시 배워야 할 복음.’
 
I. 복음의 뜻.
1)복음-복된 소식.
여러분들에게 있어서는 다시 배워야 할 복음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복음의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 한국어로 보면 한자에 씌어져 있죠. 복 복자 소식 의자 소리음이라고도 하고 소식 음이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복음이란 ‘복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2)Gospel. 영어로는 역시 복된 소식인데 가스펠인데, 웹스터 사전에 보면 이 가스펠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고대 용어의 ‘GOD’가 신이라는 뜻이지만 ‘좋다, 복 되다. 라는 뜻도 있어요. 그리고 스페링이 알파벳 철자라는 뜻도 있지만, 수식이라는 뜻도 있어요. 이야기라는 뜻도 있어요. 그래서 이 GOD에서 d를 탈락시키고 spel에서 엘 하나를 탈락시킬 때, gospel 되는 거죠. 이것도 역시 ’복된 소식‘이 됩니다. 신약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마를 우리는 헬라오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헬라 문화권의 언어이기 때문에요.
 
3)유앙겔리온. 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헬라어를 아시는 분도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분을 위해서 대가로 안에 영혼이 다른 표기를 해놓았습니다. 한번 따라 해 볼까요? 유앙겔리온... ‘유’라는 말은 좋다 복되다. 라는 말이고요. ‘앙겔리온’이라는 말은 ‘소식’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유앙겔리온’은 복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왜냐면, 전쟁에서 승리할 때, 전해지는 소식으로 유앙겔리온으로 알려졌던 것이죠.
 
여러분,
이것은 기말고사에 나오기 때문에,,,ㅋㅋㅋ 왜냐하면 고대의 전쟁은 패전하게 되면 다 죽임 당하지 않으면 그중에 일부는 노예로 끌고 가는 거죠. 아니면 전사자 외에는 전부를 노예로 삼은 거죠. 그러니까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얘기는 안 죽어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또는 노예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거보다 기쁜 사실이 없는 거죠. 복권에 당첨되는 그 정도가 아니라, 죽을 사람이 살아가는 일생을 노예로 살아야 될 사람이 자유인이 되는 것 이것이 유앙겔리온의 오늘의 뜻이 되겠습니다.
 
※제2차 페르시아 전쟁을 가지고 한번 이야기를 구성해 보았습니다. 제2차 페르시아 전쟁은 bc 490년 페르시아가 지중해를 건너 도시 국가인 아테네를 침공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페르시아의 병력은 무려 2만 5천명 최강 군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아테네 이는 민병대 수준의 1만 명, 여러분 이 전쟁은 도나 마나 페르시아가 이길 거라고 점쳐지는 전쟁이었죠. 그래서 페르시아 군대는 승전 기념비까지 깎아서 그걸로 깎아서 올 정도로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이 전투는 마라톤 평야, 근대 올림픽의 마라톤 경기의 유래가 되는 고대 ‘마라톤 평야’의 전투 전장이 마라톤 평야가 됐다는 거죠.
여러분, 이 아테네 시민들은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보나마나, 2만 5천 명의 취약한 군대 가지 들어왔고 우리는 민병대 수준의 만 명이니까 이거 질 것이 뻔한 거고, 우리 죽지 않으면 노예가 된다고, 이런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겠죠. 근데 여기에 변수가 있어요. 아테네 지휘관이 아주 지대하게 뛰어난 전략가인 아테네 장군 ‘밀티아데스’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화력과 전투력을 집중하면서 드라마틱하게 승리하게 됩니다.
 
그는 페르시아군의 가장 약한 점을 정보를 통해서 파악한다. 그리고 그곳을 공격함으로 이 전투에서 기가 막힌, 드라마틱한 승리를 거두게 되자. 그래서 아테네가 북쪽에서 승리하게 되는데, 페르시아 그의 군사가 6,400명, 아테네 그의 군사가 192명, 이 정도의 전투 결과는 대승이라고 말할 수 있죠. 이 기쁜 소식을 안고 여러분이 잘 아시는 하이드 피리스라는 병사가 논스톱으로 약 42km를 달려와 아테네 도심에서 이렇게 외쳤다고 하죠. 그의 이름은 파이렛 피데스입니다. 유앙겔리온!! 유앙겔리온!!..(복음이다. 복음이다. 아테네가 이겼다!!!)-복음이다. 복음이다. 아테네가 이겼다는 뜻입니다. 유앙겔리온은 죽을 운명에서 살아나는 것, 그리고 일평생 노예가 되는 운명에서 자유인으로 사는 것, 이 개념을 예수님에게 적용하기에 가장 좋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형벌 받고 저주와 형벌을 지옥에서 영원히 받을 우리를 살려주시는 일을 예수님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이게 서양의 역사 속에 나타난 것이다. 좋은 대학가는 그 정도가 아니라, 좋은 직장 가는 그 정도가 아니라, 죽을 인생이 살아서, 그리고 평생 노예로 살 인생이 자유를 얻는 것,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일이죠. 그것은 영원히 지옥에서 하나님과 분리된 채 죽음의 고통을 당할 인생에게 생명을 주신 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영원히 마귀의 종이 되어서 살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일대기를 다룬 신약 성경의 앞에 4복음을 복음서라고 부릅니다. 가만히 보면 출생에서부터 죽음과 부활, 승천까지의 일대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입니다. 그런데 복음이라고 구태여 이름을 붙인 이유는 그분의 세계는 단순한 세계가 아니라, 영원히 죽을 우리를 영생하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다. 영원히 노예를, 우리를 영원히 자유인이 되게 해주셨기 때문에 그분의 일생은 복음으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복음의 기능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의 기초입니다. 제가 이 예배당을 지을 때, 담임 목사님과 함께 이 기초를 놓는 것을 봤어요. 정말 기초가 단단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기초가 약하면 흔들리게 되고 무너지게 되죠. 제가 대학생 땡 오정현 목사님과 서부이촌동에 라블이라는 아파트에서 공동생활 형태가 있었는데요. 아주 오래된 그 아파트에서 함께 형님들과 살면서 신앙훈련을 하고 대학교 때, 꿈을 가지고 살았으며 저는 군목으로 갈 사람이었기 때문에 라블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일상으로 하던 일이 있었습니다. 꼭 달리기로 했어요. 원효대교입니다. 왜 뛰었냐면, 원효대교가 편도 1.4킬로이며 왕복 2.8킬로미터였는데요. 저는 매일 뛰었습니다. 왜냐하면 군에 가서 제가 병사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여의도 한 바퀴를 뛰었다. 여의도 한 바퀴가 8.8km입니다. 그래서 토요일은 제가 10km를 뛰었는데 그 때 6.3 빌딩을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세워진다는 청사진이 있는데 빌딩이 그 자리에만 있는 것 같이 안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있고, 한 달이 가도 그대로였습니다. 이번 주에 가도, 그 다음 주에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깊이 파야 된다는 것을요.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깊이 파야 됨을 알아야 합니다. 기초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럼 신앙의 기초로 한 번 볼까요? 이단에게 흔들리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기초를 단단하게 해야 합니다. 자, 그 기초가 1절입니다. 15장 1절입니다.
 
II. 복음의 기능
1) 신앙의 기초.
*고린도전서 15:1,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성도가 제일 먼저 받아야 될 게 복음이에요. 그 가운데 어떻게 된 것이라고요? 선포를 시작해야 한다. 이 복음이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복음을 정확하게 모르면 흔들리는 신앙이며 무너지는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2)구원의 근거.
*고린도전서 15:2,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두 번째 복음의 개념은 구원의 근거입니다. 2절을 한번 읽어주실까요? 구원을 받아 구원도 어떻게 받냐면 복음을 잘 믿을 때, 제대로 믿을 때 받는 거죠.
 
3)행복의 출발.
*요한3서 1:2,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세 번째로는 행복의 출발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을 위하여 내 영혼이 잘된 까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한다. 여러분 복음을 믿고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도 있지만 인생을 종합적으로 볼 때,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십니다. 이것은 세상 적인 것과는 다른 행복이죠. 제가 섬겼던 교회를 시무할 때, 이제 지금 40년이 되었지만 이중적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요. 총장 아니면 담임 목사가 중에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신호할 때, 바꾸게 되었습니다.
 
전에 부전교회에서 40대 중반 여성이 교회를 나오셨어요. 저는 나온지도 몰랐죠. 그 뒤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어요. 이분은 왜 교회를 나오게 되었냐면, 알코올 의존 증이었다. 옛날 말로 알코올 중독 환자였어요. 40대 중반의 여성 남편이 출근할 때는 오늘은 술 안 먹어야 되는데 하면서도, 점심 먹고 나면 술친구들 그 여성 친구들을 불러서 술을 마셨다. 그러다 보니까 남편과의 갈등이 되었고, 그래서 깊은 우울증에 빠져서 자살 충동까지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다 정말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딸들이 다니고 있는 부전교회에 출석을 합니다. 첫 주는 맨 뒤에 앉았는데 이 설교를 잘 들어오지 않지만 찬양 팀, 찬양대 노래를 듣고 그냥 눈물이 난다는 것입니다. 물처럼 흐른 거예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그렇게 자꾸만 눈물이 난대요. 그러고 나니까 마음이 후련해지더라고 했습니다.교회가 이런 곳이구나 하고,,, 두 번째 주에 왔어요. 역시 두 번째 주도 설교는 안 들어온대요. 그런데 찬양대의 찬양을 듣고 세 번째 주에 그 가운데 이분이 복음을 받아들게 돼요. 그 다음 주부터는 말씀이 들어오더래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힘들었던 금주, 술을 끊는 일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걸 보고 남편의 감동을 받아요. 남편이 나와서 같이 세례 받고 이제는 집사님이 되셔서 제가 마지막 설교를 하는데 고별설교를 맞은편에 앉아 듣고 있더라고요. 참 얼마나 감동인지요.
 
여러분
복음은 우리에서 죽어서 가는 천국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진정한 천국을 경험하게 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전해줘야 되겠죠. 그럼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가? 중요한 내용입니다. 먼저 십자가가 복음의 첫 번째 내용입니다.
 
III. 복음의 내용.
1)십자가.
-마크 미텔버그는 다른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했습니다. 다른 종교는 ‘하라’(Do)의 종교이다. 감사하게도 기독교는 ‘다 이루었다’(Done)의 종교이다.
*우리 모두 죄인이어서 속죄가 필요하고 십자가가 속죄하므로 복음입니다.
 
고린도전서 15:3,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가 중요해요. 고린도 전서가 기록될 때, 신약이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성경대로는 구약 성경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바울 사도는 가족고세 유월절에 그리고 5대 제사의 수많은 죽임 당한 제물들을 통하여 이루어졌던 속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 제물 되심을 통하여 완성되었음을 말하고 있죠.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그렇습니다. 십자가 외에는 우리 죄를 속죄하여 다른 방편이 없음을 믿습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죽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십자가, 거기서 우리는 속죄를 받기 때문에 십자가가 복음이 되는 거죠. 우리 가운데 여러분 혹시 제가 옛날에 생각했던 것처럼 나는 어릴 때부터 나는 또 모태 신앙이니까 나는 별로 죄도 짓지 않았는데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말에 동의가 되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계실 거예요. 죄라는 단어가 여러 개가 있지만,
 
-*Sin- 하나님의 법을 위반함.
-*Crime- 정부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는 불법적 행동.
웹스터 사전에 보면 Sin이라는 죄를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다고 설명하고 있고, 우리는 흔히 이걸 생각하죠, 크라임 정부에게 처벌받을 수 있는 불법적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사전에 이 크라임은 도둑질, 사기, 살인 등등의 범죄를 말하죠. 우리는 뉴스와 신문을 통하여 주로 듣는 범죄의 내용이 크라임이다 보니까 그것만 죄로 생각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위반하는 것도 하나님이 보시는 죄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말씀이 비로소 이해가 되죠. 여기서 도덕적으로 탁월한 분들이 얼마나 많이 이런 것에 깨끗하게 사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 기준으로 볼 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이죠. 저도 전도사부터 하면 올해가 40년 차 사역을 감당해 왔습니다. 많은 부분이 바뀌고 성장하고 성숙했지만 여전히 제 아이는 죄 성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Crime을 저지르지 않았을지라도 Sin을 저지른 죄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신은 뭐냐 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인 하나님 믿고 예배하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번 따라 해볼까요? “세상에서, 세상에서 제일 큰 죄, 제일 큰 죄,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제일 큰 죄이다.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다.” 이런 모든 죄가 우리의 노력으로 없어지지 않더라고요. 40년 넘게 했으면 전도사 때부터 이제는 그만큼 죄가 다 없어져야 되잖아요. 아니에요. 죄인 중의 괴수라는 말이 맞습니다. 바울 사도의 말이 연설을 했을 때 바울은 인생의 황혼기에도 죄인 중에 계셨다. 나이가 들고 오랜 사역을 했어도 현재 상태도 죄인이라는 인간의 노력으로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 불교의 가장 존경받는 스님이었던 성철 스님, 이분은 수도를 잘하기 위해서 영을 맞게 하기 위해서 십 년 동안 앉아서 주무셨어요. 장(長)좌(坐)불(不)와(臥) 길게 앉아서 눕지 않는 것이다. 지금 어떤 분도 장좌불와에 들어가시는 분이 계신 것 같습니다. ㅋㅋㅋ 그다음에 20년 동안 불에 익히지 않은 음식을 먹었어요. 생식, 무슨 맛있겠어요? 생식 먹는 거하고 아주 잘 익은 숙성된 밥을 먹는다고 맛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이분이 이렇게 엄청난 수도를 하셨지만, 돌아가실 때 뭐라고 합니까? 불교에서는 열반성이라고 합니다. 내 죄가 얼마나 많은 지 ‘수미산’ 같다고 했습니다. 수미산은 불교의 전설 시에 나오는 사람으로 높이가 112만 킬로미터를 말합니다. 에베레스트산이 8천 8킬로이니까, 그러니까 112만 km를 얼마나 높겠어요? 이 산을 넘을 만큼 냉철하십니다. “중생의 무리를 속였으니, 일반 사람들을 속였으니 내 죄가 얼마나 많은 지 수미산을 넘는다고 합니다. 나는 천 갈래 만 갈래 찢겨져, 아비규환의 지옥이 되어갈 것이다.” 굉장히 무서운 말이죠. 여러분 이것을 통해 우리는 뭘 배웁니까? 수도를 통해서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수도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십자가의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또 한 분의 이야기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수도사였고, 신학 교수였습니다. 그는 수행과 고행을 통해서 죄를 씻을 수 있다는 것을 로마 카톨릭 교회를 통해 가르침을 받았죠. 그런데 아무리 수행을 해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로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여러분, 로마에 가면 라테란 성당이라는 그 성당에 빌라도라는 이름의 계단이 있습니다. 빌라도의 계단을 뜯어다가 거기에 설치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이 계단을 무릎으로 맨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면 죄를 속죄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따라 올라갑니다. 그러나 루터는 거기서 실망해버리고 맙니다. 그 고행을 통해 라테란 성당의 빌라도의 계단을 올라갔지만 마음속에 속죄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독일로 돌아와 그는 블랙 타워라는 타워 안에서 성경을 연구합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사람으로 수행으로 속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어놓으신 것을 믿음으로 속죄를 받는 다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만이 우리의 모든 죄를 속죄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두 번째 내용은 부활입니다.
 
2)부활
두 번째는 부활입니다. 왜 부활이 복음인가를 한 번 볼까요? 고린도서 15장 4절 한번 읽어주시죠.
 
*고린도전서 15:4,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사.
-성경대로 역시 또 성경이 나와요. 구약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그래서 여러분 이 3절과 4절에 성경 대로라는 표현이 물고 있는 두 가지가 복음의 내용 두 가지라는 것을 말합니다. 정말 좋아요. 예수님께서 역사의 마지막 날 다시 오시죠. 다시 재림입니다. 남가주 사랑의 교회에 오정현 목사님이 계실 때 저는 선임 목사였습니다. 목사님께서 출타하셨을 때에 이민아 집사님께서 담임 목사님이 계시냐고 하셨는데, 아버님이 한국에서 오셔서 복음을 전했으면 좋겠다고 이민아 집사님 요청으로 세인토스에 있는 자택에 가서 이어령 박사님 내외분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잘 들으셨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신 지를 여쭈니 다 잘 들으신 후 잠시 머뭇하시다가 “목사님, 미안합니다. 아직은 저항감이 있습니다.” 문학가이시니까 표현도 문학적으로 하십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목사님, 오늘 아니구요. 다음에 볼게요.” 이러할 것인데 이렇게 대답하신 것을 보면 20년이 지난 오늘도 제게 생생하게 그 음성이 남아있습니다. 그 후에 한국교회 지도자 되시는 대 선배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지금은 천국 가계십니다. 이 박사님의 책인 이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박사님이 과연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시고 계실까? 2002년쯤으로 기억에 이민아 집사님이 검찰청 검사하다가 청소년들을 위해서 봉사하면서 변호사가 되었을 때, 아버님께서 오셨다고 복음을 전해달라고 해서 자택에 갔거든요.
 
여러분의 배우자 여러분의 부모 특별히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를 앞세웠다. 마음을 지금 그 영들이 천국에 분명히 있고, 주님을 아시고 있으니까 나는 영광의 몸으로 부활할 줄 믿습니다. 수천 년 전에 죽은 아브라함도 뼈 한 줌 찾을 수 없지만 부활의 능력으로 기적적으로 살려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것을 쉽게 이해하도록 도표를 제가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거는 중간고사에 나오는 여러분 죽음이라는 헬라어는 싸나토스(Thanatos)라는 단어예요. 여기서 죽음 학이라는 단어를 아시겠죠. 싸나토스=죽음, 분리라는 뜻입니다. (Thanatos) 여기서 나오죠.
 
이 싸나토스(Thanatos)은 분리입니다. 셰포메이션입니다. 맞아요. 우리 육신이 죽을 때 분리가 일어난 영원과 육신으로 분류됩니다. 육신은 분해의 과정을 경험하게 되겠고요. 영원한 즉시 둘 중에 하나가 하나 십자가의 복음을 믿은 사람은 천국을 가요. 왜냐하면 속을 받았기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가게 되는 거죠. 왜냐하면 속죄 받지 못했기 신과 크라임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거죠. 구천을 떠도는 게 아닙니다. 조상 제사를 드리지 말아야 될 이유는 악한 영들이 부모의 흉내를 내는 것이지 성경적으로는 바로 바로 합니다. 죽음은 분리입니다. 천국의 다른 이름은 낙원입니다.
 
십자가상의 강도가 예수님 믿었을 때,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예수님이 그 나라 왕이고 메시아라고 고백이 예수님은 말씀하시죠. “니가 나와 함께 오늘 낙원에 있으리라.” 낙원 천국에 대한 다른 표현이죠.
 
나를 부족 하려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 나라 계시리라. 우리 구주 예수라~~그래서 십자가가 복음입니다.
죄 성을 그대로 있는 그래서 영원과 부활된 육신과 연합된 상태에서 최후 심판을 받는데 우리는 숙제를 다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충성한 것을 따라 상금을 받고 우리는 천국의 영생을 얻게 되고 불신자들은 속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 모든 자유를 하는 것에 대한 형벌을 경량에 따라 경중에 따라 받게 되면서 여호와를 받게 되는 거죠. 여러분 십자가만 말하면 영혼을 구원받은 부활했기 때문에 우리가 전인격적 존재로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입니다. 이제 결론으로 우리가 나아가기 전에 마지막 포인트를 다루겠습니다. 또 세칸 커밍(Second coming)에 그날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때 죽은 성도가 살아갈 것이고, 만약에 예수님 재림 때까지 우리는 살아있다면 고린도전서 15장에 말씀한 대로 우리는 변화될 것입니다. 왜냐면 죽었던 자의 부활이고 살아있는 자는 부활의 몸과 똑같은 상태로 변하는 거예요. 여러분, 부활의 몸은 병들지 않는 몸입니다. 부활의 몸은 바친 모임입니다. 흰머리 소녀들 염색 안 해도 됩니다. 그리고 영생하는 몸이고 더 중요한 것은 죄가 다 극복된 성화가 완성된 여호와의 몸입니다. 우리가 사역 훈련 받을 때 로마서 8장을 완성한 것처럼 몸의 성량이 바로 도와야 한다. 우리는 영혼과 육신으로 구성되어 이것이 전인격적인 인간이죠. 영혼만 얻는다면 완전한 구원이 아니에요. 몸에까지 몸까지 구원받아야 돼요. 뭐로부터?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그리고 죄 사함으로부터 구원받은 이에 부활했음이 이루어집니다.
 
IV. 복음에 합당한 삶.
1) 복음을 받아들임.
그렇다면 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얻은 이 놀라운 복음의 합당한 삶은 무엇일까요? 먼저는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직 이 자리에 예배당이 나오고 있지만 복음을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지 않는 분이 계신다면 오늘 꼭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영접은 소중히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내용과 나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받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구원을 확신하기를 바랍니다.
 
2) 구원을 확신함: 유월절의 밤.
-정령 나이 드신 분들께 여쭤볼 지금 죽어도 천국 가십니까? 죽어봐야 알죠. 좋으신 하나님이 죽어봐야 알게 만들었습니까? 아닙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요한일서 5장 13절에 이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고 구원을 확신하게 하려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죠.
 
요한일서 5:13,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오늘 말씀대로 고린도서 15장 1절로 사는 복음에 대한 제일 좋은 설명인데 이대로 믿으면 여러분 구원받고 영생합니다. 확신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유월절 밤에 우리가 이기게 걸어가겠다고 한번 생각해 창가에서와 아빠와 아들의 얘기가 들려와요.
첫 번째 집입니다. 아빠, 오늘 히브리네 하나님이 처음 난 모든 것들을 죽이신다고 하는데, 나 처음 난 장남이잖아요. 아빠 저 죽겠네요. 내 이놈아, 내가 이 이집트의 합창 의장에게 누가 내 아들을 죽여, 이 아들을 살았을까요? 죽었을까요? 죽었죠.
 
두 번째 집입니다. 아빠 오늘 우리 하나님이 예보의 모든 처음 난 것을 죽이시고 심판하시는데 유월절에 그 어린 양의 피를 발라놓으시면 좌우 설주와 인방에 이 또 프레임이 발라놓으면 심판이 넘어간다고 하는데 바르셨나요? 발랐지. 그럼 저 살겠네요? 글쎄다. 내일 아침 돼봐야 알겠네. 이 아들 살았을까요? 죽었을까요? 살았는데 밤새 불안해했을 거예요.
 
세 번째 집입니다. 아빠, 오늘 우리 하나님이 오늘 애굽의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는 상징으로 아들을 천만 자녀들을 다 치시는데, 양의 피를 발라야 되는데, 저 그 우리집도 발랐나요? 발랐지. 살 수 있을까요? 아들아, 양의 피를 문턱에서 발라서 더 프레임 전체가 피, 피로 물들었단다. 문턱에서 잡으니까 문턱에도 양의 피가 그리고 좌우 설주와 인방까지 더 프레임 전체가 피로가 덮은 거죠.. 하나님께서 심판의 천사를 보내실 때, 이미 심판이 치러졌기 때문에 너는 죽지 않아, 너는 심판받지 넘어가실 거야 유월하실 거야. Pass Over 할 거야. 아빠, 저 분명히 사는 거죠. 그래 안심하고 푹자라. 이 아들 살았을까요? 죽었을까요? 살기도 하고 평안했을 거예요. 지구상에 유명한 세 종류가 있습니다.
 
예수님 봄의 피를 믿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바로 착각 집에 있는 첫 번째 타입, 두 번째 보배 피를 믿으면서도 불안하게 사는 타입, 마지막 세 번째 예수님의 보배의 피, 이 복음을 믿으면서 확신하고 편하게 사는 타입. 우리 모두 산물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자 이제 구원의 은혜에 보답을 위해서 우리가 헌신해야 합니다.
 
3) 구원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헌신함.
-생각할수록 감사하는 것은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하나님이신 그분이 죽어주신 거예요. 지난번에 왔을 때 소개했지만 이번엔 피피티로 좀 더 여러분에게 자세한 내용 좀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생명의 양식에 대한 성과도 보입니다. 라틴어로 바이스 빵입니다. 안젤리쿠스 천사들의 ,빵 구약의 만나를 예수님의 이 성찬과 십자가 사건과 연결시켜서 쓴 아주 명곡이죠. 근데 우리말 가사는 지나치게 의역이 되어 있어서 제가 여러분에게 직역을 한 번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생명의 양식을(Panis Angelicus)
생명의 하늘을 만나를 맘이 빈자에게 내리어 주소서. 낮고 천한 우리 긍휼히 보시사 주여 주여 먹이어 주소서. 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가 주님을 먹는 도다. 가난하고 가난한 종, 그리고 비천한 종.
 
결론: 다시 알려야 할 복음.
-복음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알려야 하고 다시 배우고 다시 확신해야 합니다.
1. 복음은 세상에서 가장 복된 소식입니다.
2. 복음의 내용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3. 복음을 믿어 구원받고, 확신하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렇게 좋은 복음을 우리 가족들이 전해야 됩니다. 친구와 이웃들에게 동료 직원들에게 전해야 됩니다. 그것이 놀라운 구원의 복음을 탐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 사랑하는 영 가족들이 전하고 쓰임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계산하지 않고 예수님의 제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제자로서 걸어가는 길에 대가를 지불해야 되는 길에, 계산하지 않고 헌신하고 기쁨을 맛보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직 예수님 믿지 않는 분이 있다면 이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복음이 피로한 가족과 이웃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아낌없이, 남김없이, 흔들림 없이 전하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온가족 모두를 축복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님 중심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알려야 할 복음, 다시 배우고 다시 확신해야 합니다.
 
♧요약
우리는 우리 가족과 친구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놀라운 구원의 복음을 받았으니 우리도 주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일이 바로 제자로서 걸어가는 길에 대가를 지불해야 되는데, 그 길에 계산하지 않고 헌신하는 기쁨을 맛보고 이 생명의 복음을 아낌없이 남김없이 흔들림 없이 전하여서 온 가족과 이웃과 친구와 직장동료가 한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하여서 함께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기를 소원하며 주님 중심의 삶으로 나아가며 우리는 다시 알려야 할 복음, 다시 배우고 다시 확신해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성경에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전체를 전했다.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승리자가 되셨다.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이 복음이다. 교회의 의무는 먼저 받은 복음을 잘 보존하고 그 가운데 굳게 서며, 또 믿지 않는 이들에게 그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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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3년 5월7일)
제목: "너희는 선택하라"
말씀: 여호수아 24:1~28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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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4:1~28,
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3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4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고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소유로 주었으나 야곱과 그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5 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내었고 또 애굽에 재앙을 내렸나니 곧 내가 그들 가운데 행한 것과 같고 그 후에 너희를 인도하여 내었노라.
6 내가 너희의 조상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바다에 이르게 한즉 애굽 사람들이 병거와 마병을 거느리고 너희의 조상들을 홍해까지 쫓아오므로.
7 너희의 조상들이 나 여호와께 부르짖기로 내가 너희와 애굽 사람들 사이에 흑암을 두고 바다를 이끌어 그들을 덮었나니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을 너희의 눈이 보았으며 또 너희가 많은 날을 광야에서 거주하였느니라.
8 내가 또 너희를 인도하여 요단 저쪽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매 그들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 주매 너희가 그 땅을 점령하였고 나는 그들을 너희 앞에서 멸절시켰으며.
9 또한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일어나 이스라엘과 싸우더니 사람을 보내어 브올의 아들 발람을 불러다가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10 내가 발람을 위해 듣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오히려 너희를 축복하였고 나는 너희를 그의 손에서 건져내었으며.
11 너희가 요단을 건너 여리고에 이른즉 여리고 주민들 곧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었으며.
12 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의 칼이나 너희의 활로써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13 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16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18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
19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20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
21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하는지라.
22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 하더라.
23 여호수아가 이르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하니.
24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하는지라.
25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
26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 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우고.
27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28 백성을 보내어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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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코로나 이후에 수많은 정보가 범람하고 난무하고 복된 정보의 바다에 제가 오늘 선택에 대해서 말씀을 할 터인데 선택이 왜 이렇게 중요한가 하면 지금 우리는 왜곡된 정보의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지금 코로나 이후에 수많은 정보가 논란하고 난무하고 잘못된 정 보에 바다에 빠져가지고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사람들이 다 피하고 피곤해 있어요. 정말 중요한 것을 선택하지 못하는 선택 장애, 혹은 결정 장애의 시대에 우리가 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결정 장애 선택 장애가 되다. 보니까 우유부단해지고 결정적으로 중요할 때에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게 되니까 사람들이 다 무기력해지고 나약해졌습니다. 영적 기백을 잃어버렸습니다. 오늘 제가 오늘은 평소에는 제가 이 연합 예배를 온 세대 연합 예배를 드리면, 좀 쉽게 설교하는데 오늘은 좀 어려운 말도 쓸 겁니다. 이것도 제가 오늘 이렇게 선택한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 무기력함과 이 우유부단함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첫 번째 올바른 선택을 위하여 오늘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오늘 요절이 14절 15절 특별히 15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여호수아 24:15,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Make your choice!! 저게 얼마나 좋은지 As for me.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것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저는 저 내용을 한 20년 동안 저희 집 딱 들어가면 바로 보이게 해놓았어요. 들어갈 때마다 정신이 번쩍 차려지는 거예요. 나와 내 집은 영화를 성기라 첫 번째 생각할 것은 뭐냐 하면 이것입니다.

I. 너희가 섬긴 자를 오늘 선택하라.
-너희가 섬길 자로를 선택하라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를 섬기느냐가 올바른 선택이 돼야 한다는 것이에요.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을 올바른 선택했기 때문에 우리의 남은 생애도 올바른 선택을 할 줄로 믿습니다. 자, 이 내용의 배경은 오늘 여호수아 24장은 1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냐 하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새겜에 모았다.

*여호수아 24:1,
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세겜이라는 장소가 여기에 마지막 여호수아가 그의 마지막 유언 유언이라는 것은 그의 일생일대의 최고의 관심 가장 중요한 것 인생의 넘버 원, 우선순위 넘버 원 그걸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금 말씀하는 거예요. 저는 지금 6월 3일 날, 사랑의 교회는 성도들은 6월 3일 날 토요일 오후에 어디 가 있어야 돼요? 상암 상암 대회를 우리가 빌리그레함 50주년 기념을 기념해가지고 상암 대회에서 한국 교회가 다시 한 번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런 마음 우리가 상암 대회를 하는데 여호수아는 지금 세계 대회를 하고 있는 거예요. 세겜 컴퍼런스, 마지막 유언을 새기면서 정말 너희들 정신 바짝 차리고 내 말을 잘 들어라. 그래서 오늘 이 말을 잘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이 말씀을 잘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경 역사상 유일한 참으로 소중한 순종의 세대가 됐어요. 이 말씀을 듣지 않은 이 세겜 대의 말을 듣지 않은, 그다음 세대는 사상 시대의 혼란과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선택에 대해서 우리가 좀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택이 뭡니까? 선택은 어떤 것을 판단하여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그랬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면 어떻게 선택을 합니까?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느껴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마음 끌리는 대로 감정대로 그렇게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우리 신앙인의 선택은 진리 안에서 올바른 것을 결정하는 능력이에요. 다시 한 번 신앙인의 선택은 뭐라고요? 진리 안에서 올바른 것을 결정하는 능력이에요.

▷신앙인의 선택은 진리 안에서 올바른 것을 결정하는 능력이다.
-여러분과 제가 진리 안에서 올바른 것을 결정하는 은혜를 받은 줄로 믿습니다. 이거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이십니다. Jesus Christ! 예수님이 베리타스, 예수님이 진리 자체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예수님 안에서 행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예수님을 순종하겠다고, 결심하는 그 순간 우리에게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 오늘 귀한 예배에 여러분 올바른 선택을 해야 되는데, 옛날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You are what you eat. 니가 뭘 먹느냐가 너 자신이다. 그랬어요. 요즘은 더 나가지고 선택이지만 You are what you see. 니가 뭘 보느냐가 너를 선택하는 것이다. 너가 뭘 보느냐가 너 자신이라는 것이야. 여러분 뻔해요. 여러분 스마트폰에 유튜브에 자주 나오는 그게 여러분이에요. 다시 You are what you see. 내가 보는 그것이 나예요. 그걸 여러분 선택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유튜브, 빠져 너무 게임이 너무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걸 여러분 선택한 것이에요. 여러분 진짜 여러분 보는 것이 여러분이라니까요. 유튜브는 뭐가 없다고요? 생명이 없어요. 생명 없는 걸 선택하지 말고 그래서 기가 막힌 말씀이 있는데 빌리보서 2장에 보면요. 내가 생명의 말씀을 밝힌다고 그랬어요. words of life. 바이블 라이프, 생명의 성경, 생명 그러니까 성경은 생명이 있는 것이에요. 오늘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은 생명을 선택하는 축복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오늘 이 귀한 예배에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은 인간은 다 위기의 순간에는 위기의 순간에 크라이시스 그 위기의 순간에 위기의 순간에 이성이 발동할까요. 본능이 발동할까요. 잘 아시죠? 위기의 순간에는 이성보다도 본능이 발동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똑똑히 안다 이게 아니라, 내가 평소에 어떤 본능이 있느냐? 저는 오늘 기도하는 거 이거예요. 여러분 저는 위기가 일어났을 때, 어떤 위기 때 엄마야! 아빠야! 그러잖아요. 저는 오주님 그렇게 합니다. 저는 엄마 아빠를 부르지 않았어요. 내 어릴 때 본능이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본능이 그렇다 그래서 여러분 이 선택이 여러분들의 거룩한 본능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위기 때의 선택이 여러분들의 거룩한 본능이 되면 그 위기를 은혜롭게 극복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저보다 더 잘 극복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리고 인생은요. 모든 인생은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환경에 의하여 여러분들의 인생이 결정되는 게 결국은 여러분들의 선택에 의하여 여러분들의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에요. 동의하십니까? 환경이 어떻다 어떻다 이건 두 번째 문제고 내가 뭘 선택하느냐? 내가 어떤 자배를 선택하느냐 내가 어떤 형제를 선택하느냐? 결혼해도 누구를 선택하느냐? 인생 딱 끝나는 거예요. 그게 그래서 이 선택은 굉장히 배타적이죠. 내가 어떤 자매를 선택 한다. 이 자매를 선택한다고 그랬을 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클레오 파트라는 다 끝나는 거예요. 아주 이거 이 선택은 배타적인 것이에요. 자 선택이 거룩한 본능이 되게 하라 그리고 인생은 환경보다도 뭐여야 결정된다. 선택에 결정된다. 그런데 오늘 내가 누구를 섬기느냐가 내 선택을 결정하는 데 기대가 된다.

이것이 그래서 오늘 이 선택을 이렇게 본문을 앞에 놓고 한두 가지를 이렇게 정리할 텐데 첫째 15절 다시 보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여호수아 24:15,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너희가 오늘 섬길 자를 오늘 뭐라고요? 택하라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너희들도 너희들이 알아서 선택해야 되고, 나도 나와 내 집도 알아서 선택해야 된다. 그러니까 이 선택에 관한 하나님이 우리를 강조하지 않는 것이에요.

1) 하나님은 결코 선택을 강조하시지 않는다.
우리를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신 거예요. 우리를 무슨 어떤 폐쇄되는 어떤 프레임에 넣지 않으신 거예요. 예를 들어서 해와 달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해와 달은 우리 지구의 자전과 공전 우주의 법칙에 의한 하나님이 내추럴로 자연의 법칙에 의하여 해와 달은 그냥 그대로 가는 거예요. 그냥 해와 달은 어떤 자유 의지가 없는 거예요. 무슨 우리가 로보트를 만들어가지고 우리가 어떤 무슨 각본에 의하여 짜여 진 대로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게 되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권을 주신 거예요. 우리는 개, 돼지처럼 영원히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영적인 자유 함을 가지고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할 것인가? 생명나무를 선택할 것이냐? 자유 의지를 줘가지고 우리는 인격적으로 대우하시고, 피조물 가운데서 피조물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인간을 최고의 하나님 형상대로 지원받는 존재가 되게 해가지고, 우리에게 죄 성 있고 부족한 것이 많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원받게 하셔가지고 우리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선택하도록 만드신 거예요. 따라서 여러분 특권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에요. 여러분 돼지 보고 너 왜 사랑을 나게 나 따먹었냐 하나님 물어보지 않아요. 돼지에게는 그런 자유 의지가 없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셔갖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도록, 옳은 길을 선택할 수도 있고, 나쁜 길을 선택할 수도 있고,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어요. 예수님은 다스림 대신에 순종을 선택하셨어요. 면류관이 아니라 십자가를 선택하셨어요.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을 선택하셨어요.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온 줄로 믿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것도 여러분들 선택에서 나오신 것이에요. 이 시간 설교를 집중해서 들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한 귀로 날릴 것인가 여러분들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에요. 지금 집에 두고 온 콩나물을 다듬지 않고 온, 아주 할 거리가 많이 남겨놓고 집에 온, 그거 생각나가지고 거기에 자꾸 집중하면 메시지가 집중이 안 돼 그건 선택인 것이에요. 오늘 이런 면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만세전에 택해져가고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고, 이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그 특권에 따르는 책임의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는 이 말씀이 섬기겠다는 히브리어 시제가 과거 한 번 잘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행동 의사까지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에요. 한 번만 잘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순간순간 계속해서 잘 삶의 현장에서 선택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과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주의 권속들은 평생, 지혜롭게 순간순간 잘 선택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는 내가 선택해야 돼요.

2) 선택은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누가 대신 해줄 수가 없어요. 좋은 영적인 멘토나 좋은 믿음의 리더들이 우리가 잘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는 줄 수 있겠지만 결국 선택의 마지막 책임은 내가져야 되는 것이에요. 별로 반응을 안 하시죠 마지막 책임을 누가 해야 한다고요. 내가 내가 선택하는 것이에요. 누가 대신 선택하는 것이 아니에요. 도와는 줄 수 있지만 제가 청년 시절에 선택의 문제를 앞에 놓고 ‘나 혼자서 이 길을 가네. 나 혼자서 가야 하네 누가 대신 가줄 수 없네. 나 혼자서 가야 하네 제자 삼는 그 길을 가네 나 혼자서 가야 하네.’ 누가 대신!!~~그 다음 가사가 뭐냐 하면 ‘나 혼자서 선택을 하네. 나 혼자서 서야 하네. 누가 대신 서줄 수 없네. 나 혼자서 선택 하네.’ 선택은 누가 대신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없고, 내가 선택해야 되는 것이에요. 내가 선택, 오늘 이 자리에 젊은이 여러분, 절대로 마약을 선택하면 안 되는 줄로 믿습니다. 갑작스럽지만 내가 갑자기 마약을 얘기하는 이유가 뭡니까? 오늘 강남에 마약 마약의 답이 무너져버렸어요. 미국에도 마약의 문제가 아주 심각해요. 왜냐하면 미국에도, 마리화나를 마리화나를 허용을 하니까 곳곳마다 마약이 완전히 득실득실해요. 여러분 마약이라는 것은 여러분 육체는요 대화하면 대화할수록 더 버릇이 없어져요. 자극하면 할수록 더 더 높은 자극을 요구하는 거예요. 이 말은 여러분 죽을 때까지 기억해요. 육체는 대우하면 대할수록 더 버릇이 없어진다고 인간은 인간의 육신의 이런 육신의 연약함은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더 많은 강한 것을 요구하는 거예요. 마약은 하면 할수록 더 큰 걸 더 강한 걸 요구해요. 그래서 어떤 마약하는 사람이 고백했죠. 마약은 나중에 보면 내 심장을 칼로 지었던 것 같았다. 한국 교회의 젊은이들이여, 절대로 말해 가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이게 선택이에요. 선택...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 바이블 벨트에 가면요. 몇 가지가 있어요. 절대로 복음주의 교회 교인들은 노 어벌션, 노 호머 섹슈얼, 노 마약, 하나님 말씀을 듣는 우리들이라면 이런 어떤 기본적인 선택의 자세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선택은 누가 하는 것이라고요 내가 하는 것이다. 첫 번째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누구를 선택할 누구를 섬기느냐가 선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에요. 두 번째 기억할 것은 그러나 이 선택도 자유 의지를 가지고 내가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크게 보면 이 선택도 큰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II. 선택도 은혜를 받아야 한다.
선택도 은혜를 받아야 잘할 수 있습니다. 이건 참 묘한 관계의 묘한 갈등 관계예요. 아니 내가 해야 되는데 왜 은혜를 받아야 돼 아주 아이러니하고 역설적입니다. 묘한 함수 관계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한 것처럼 선택은 내가 자발적으로 누가 대신해 줄 수 없이 내가 선택해야 되는 동시에 그다음 중요한 것은 내가 은혜를 제대로 받아야 올바른 선택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여호수아 24:1,
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오늘 1절에 여수아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어디에 모았다고 그랬죠? 세겜에 모았어요. 세겜 대회를 하는데, 저 세겜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놀라운 은혜의 장소였어요. 왜냐하면 저곳에게는 축복과 저주를 선택하는 곳이었어요. 세겜에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이 있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겜은 은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은혜 받는 장소였고, 회복과 부흥의 장소예요. 이 세겜에서 하나님께서 이 요호수아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이 세겜에서 너희들과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은 은혜의 장소를 기억하면서 너희들 제대로 바로 가라. 그래서 우리가 제대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은혜를 받는 장소가 있어야 돼. 세겜과 같이, 오늘 이 자리가 여러분들의 은혜 받은 장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생애에서 내가 언제 구원받았는지, 구원받은 장소, 내가 언제 성령 충만했는지, 성령 충만함 받은 장소, 내가 언제 주님 앞에 내 생애를 드리기로 했는지, 나 자신을 완전히 의탁했던 그 사명 받은 장소, 이것도 있죠. 경상북도 의성 거기에 내가 어릴 때 구원받은 장소, 내가 사명 받은 장소, 또 내가 하나님 앞에 은사 받은 장소, 저희 강원도 예수원, 또 젊을 때부터 내가 주님 앞에서 평생을 드리기로 정말 헌신했던 장소, 저 내수동 교회도, 이런 것들이 내게 있는 거죠. 내가 일부러 이 말씀을 드린 이유는 일부터 이걸 말만 하고 싹 지나가니까 거기 어디예요? 계속 몇 명이가 물어보더라고요. 저한테 아 이거 기가 막힌 거예요. 은혜가 축적된 장소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은혜의 축적을 통하여 여러분 올바른 선택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은혜의 찬송도 있어요. 여러분이 올바른 선택하기 위하여 은혜 받은 찬송들을 주님 앞에 뿜어져 나올 때 여러분 올바른 선택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에요. 올바른 선택을 하는 공간 이동을 하게 하시는 거예요. 육신적인 선택이 아니라, 영적인 선택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영적인 공간 이동을 하도록 만들어주시는 거예요. 어떤 장소입니까? 우리 지난주에 했던 “I enter the Holy of Holy”...“Lord I worship you”. 예배합니다. 사모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주님 앞에 경배합니다. 아이 앤터 더 홀리 오브 홀리. 내가 주님 앞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로 그런 찬송을 할 때, 그 찬송이 은혜가 은혜가 축적돼가지고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이에요.“ 살아계신 주” 하나님 앞에 찬양하세요. “우리 주 나를 자녀라 하시네.” 많은 주옥같은 찬양들, 옛날 어른들은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주 없이 살 수 없네,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영원하신 기업,,, 사람들마다 다 그런 은혜의 찬양들이 있어요. 저희 가정에도 은혜가 축적된 찬양들이 있어요. 이런 것들을 통하여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하기에 도움을 줘요. 그래서 여러분 선택이 안 될 때는 하나님께 물어보시라고요. 찬양을 통하여 물어보시라고요. 곡조를 통하여 물어보시라고요. 은혜의 장소를 생각하시라고요. 그러면서 하나님 아버지, 내가 은혜를 통하여 더 귀한 방향을 선택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세계 대회에서 여호수아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1절부터 13절까지 보니까 앞에 보니까 하나님이 직접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Remember.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 그레이스 어브 갓, 하나님의 은혜를 리멤버, 어떤 기억을 해야 되느냐? 2절 3절에 보니까,

*여호수아 24:2-3,
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3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우상 숭배하던 자리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불러주신 것 자체가 큰 은혜라고 해요. 7절에 보니까 7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여호수아 24:7,
7 너희의 조상들이 나 여호와께 부르짖기로 내가 너희와 애굽 사람들 사이에 흑암을 두고 바다를 이끌어 그들을 덮었나니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을 너희의 눈이 보았으며 또 너희가 많은 날을 광야에서 거주하였느니라.
너희 조상들이 나 여호와께 부르짖기로, 나와 있어 얼마나 힘들게 부르짖을까요? 여기 보니까 7절에 홍해 앞에서 정말 절체(絶體)절명(絶命)의 인생의 가장 난관 앞에서, 뭘 선택하고 어떻게 나가야 될 것인가? 그 선택을 위하여 부르짖었다. 우리가 인생이 힘들고 어려워가지고 하나님에 부르짖는 거 부르짖는 상황 환경 그 자체를 잘만 선택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는 줄로 확신합니다.
그게 은혜라는 걸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12절에 보니까

*여호수아 24:12,
12 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의 칼이나 너희의 활로써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우리가 갖고 있는 실력 재능 능력 기술 그걸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로 되었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은혜 중에서 최고 백미 최고의 탑 수준의 은혜가 뭔가 13절에 나와 있어요. 13절을 또박또박 같이 우리, 우리 합도 하겠습니다.

*여호수아 24:13,
13 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
-얼마나 이 은혜가 큽니까? 수고하지 않은 땅, 그걸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거예요. 내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에서 우리가 살도록 만들어주시는 거예요. 심지어,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우리에게 주시는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여러분 수고하지도 않은데도 하나님이 주시는 거 얼마나 오나 많아요? 오늘도 이 자리에 와서 예배드리면서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이 기도하고 나를 주님 앞에 선택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나를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큰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예요. 이것이 이런 은혜에 대한 깨달음과 각성 이런 것이 있어야 계속 선택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은혜를 진짜 최고의 은혜를 받으면, 예를 들어서 수고하지 않은 땅과 건설하지 않은 성읍, 심지 않은 포도원음과 감람원 열매를 생각하면 아 내가 나태하게 살아도 되겠네. 내가 마음대로 살아도 하나님 알아서 주시네. 이럴 게 아니에요. 이런 은혜가 진짜 나에게 주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나태 한다든지, 아니면 무슨 태만하다든지 이런 것을 합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진짜 은혜를 받으면 올바른 선택에 대한 거룩한 본능이 생기는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진짜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선택과 올바른 행동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진짜 은혜는 올바른 선택이 거룩한 본능이 될 수 있도록, 돌아온 탕자가 자기가 은혜 받고 깨닫고 나니까 우리 아버지 집에 돌아가야 되겠다. 귀향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따라하겠습니다.

참된 은혜는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한다
-주일학교와 우리 자녀들도 잘 따라 해야 합니다. 가장 고차원적인 은혜의 선택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우리가 선택을 받는 것이 최고인 줄 믿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최고의 선택은 우리가 하나님께 선택받은 것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는 것이 ‘최고의 선택’인 것처럼 나와 내 집이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인생 최고의 선택이다.
이걸 복음적인 깨달음이에요. 시편 65편 4절에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뜨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시편 65:4,
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 하리이다.
-앞에 주께서 택하시고 택하신 사람이 진짜 복이 있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인 줄로 확신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5장에 보니까 주님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
-최고의 선택은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것이 최고 수준의 은혜의 선택이라는 것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는 것이 ‘최고의 선택’인 것처럼, 나와 내 집이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인생 최고의 선택’이다.
-할렐루야! 이럴 때 여러분 삶의 후유증이 없어요. 이럴 때 끝까지 은혜로운 선택을 하고 은혜의 엔진을 달게 되는 것이에요.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는 것이 최고의 선택인 것처럼 나와 내 집이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인생 최고의 선택인 줄로 확신합니다. 나의 선택이 여러분들의 삶의 거룩한 본능이 되게 하시고 결정적으로 위기의 순간에 역사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III.적용
-우리가 올바른 선택하기 위해 우리가 뭘 해야 합니까? 양다리 걸치기식의 신앙을 처리해야 합니다.
양다리 두 마음 품는 것 이건 선택이 아니에요. 두 마음을 품어 성함이 없는 것은 선택이 아니에요.
지금 진영이 너무 양극단이 돼가지고 중용을 취하는 것이 좋은 것처럼 이렇게 나와 있지만 신앙은
중용이 아니고 신앙은 선택이에요. 겉으로 보면 아합왕도 하나님 섬겼어요. 바알도 섬기고 하나님을 섬겼어요. 하나님께서 그걸 악하게 보셨어요. 여러분 모두가 다 우리가 양다리 치기 식의 이걸 정리하고, 하나님 얼굴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라요. 그리고 선택을 잘하면 선한 영향력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를 새롭게 하는 것이에요. 리뉴... 새롭게 하는 것이에요. 룻이 선택을 잘하니까, 이 선택 때문에 다윗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다윗 왕국이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에서가, 에서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선택하니까, 민족이 살게 된 것이다. 요셉이 자기의 순교를 선택하게 되니까, 요셉만 산 것이 아니라, 가족도 살리고, 주에 있는 사람 살리고, 민족 전체를 살리고, 그 고대 근동 사회에 그 사회 전체를 다 살려버렸어요. 한 사람의 올바른 선택이, 한 사람의 올바른 선택이 시대를 살렸어요.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마게도냐로 가는 걸 선택하니까, 유럽의 장래가 달라진 것이에요. 우리나라 역사에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조했습니다. 한글을 창조해가지고 한글을 쓰려고 하니까 어마어마한 반대가 일어났어요. 집현전 부작이었던 ‘최말리’라는 사람이 완전히 그냥 식음을 전폐하고 저 천조의 나라, 중국에 쓰는 저 한자를 써야지, 우리 언문이 수준 낮은 한 글을 쓰면 안 된다고 그냥 식음을 전폐하고 난리를 쳤어요. 만약에 그때 그런 식으로 해가지고 우리가 한글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없는 거예요. 그때 한글을 선택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경제 부흥하게 된 시초가 뭡니까 경부고속도로를 깔았어요. 그 막 수많은 반대가 있었어요. 나중에는 반대하다가 나중에 도로 닦는데 정치인들이 가서 막 눕고 말이에요. 극렬한 반대를 했어요. 만약에 그때 우리가 경부고속도로 안 만들었으면, 지금 한국의 부흥은 없는 것이 이만큼 경제가 발전하지 않는 것이에요. 선택, 제가 뭐 수많은 예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선택을 잘 해야 돼요.

IV. 결론.
-올바른 선택을 하면 하나님이 책임져주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올바른 선택을 하면 누가 책임져준다고요? 하나님 책임져주십니다. 17절에 다 같이 읽겠습니다. 크게 압도합니다.

*여호수아 24:17,
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자 너무 중요한데, 선택을 잘하면 하나님이 책임져주는 인생이 된다는 것이에요. 우리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의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하나님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자 선택은 자유 의지를 가진 우리의 몫입니다. 선택은 누가 대신 해줄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크신 은혜 가운데서 우리가 선택을 할 때 지속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선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책임져주시는 인생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의 수고가 헛되지 않는 줄을 믿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모든 형제자매들, 영 가족 모두가 다 올바른 선택하기를 저는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요 주일날 우리 성도들이 오늘 이게 롱 할러데이 아닙니까? 지금 많은 분들이 지방에도 가시고 또 여행도 가시고 이렇게 하시는데, 거기에 가셔서도 예배를 선택해야 돼요. 어디를 가든지 주님 앞에 주일날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에요. 이것도 선택이에요. 저는 주일날 이런 기대를 하고 있어요. 자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손녀, 사위, 며느리, 자부 며느리하고 자부는 똑같은 거예요. 그리고 모든 가족들이 손을 잡고 주일날 교회 오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와가지고 우리 아이들은 주일날 교회 가고, 또 중고등부에 가고, 어른들은 안아주시고 서 예배를 드리고 예배 마치고 나와가지고 아이들 픽업해가지고 나가고 오늘 이제 이 예배 마치고 다들 점심 먹으러 가실 거죠. 교회 근처에 점심 드시러 가고 거기서, 거기서 오늘 예배드린 걸 은혜를 서로 나누는 거예요. 며느리, 사위, 아들, 딸이 다른데 살더라도 주일날은 예배를 선택해가지고, 그 예배 같이 드리고 난 다음에 자녀들에게 부모가 물어요. ‘오늘 예배에 무슨 은혜를 받았니?’ “오늘 말씀 가운데 와 닿은 것이 뭐야?” 묻는데 오늘 말씀 가운데 뭐가 기억 되나? 그러면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그러면 안 되죠? 그렇죠 근데 거기에 좋은 반응들 받은 은혜들 같이 나눌 때, 그리고 그 위에서 같이 밥 먹고 기도하고 여러분 그것이 천국 아닙니까? 우리 짝 가정에서 나오시는 분들은 그런 그림을 그런 상황을 여러분 상상하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젊은이들은 그런 귀한 결혼을 해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온 가족의 손을 잡고 예배에 나와 가지고 자녀들은 주일학교 교육을 받고 어른들은 이런 은혜를 받아 예배를 드리고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는 오늘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3.5.7 비전을 선택했어요. 3년 동안 우리 교회가 글로벌화 되게, 이거 선택한 것이고 5년 동안 우리 교회에 은혜를 주셔가지고 앞으로 해외에 있는 교회들하고 잘 연합해가지고 중국 교회를 섬겨서 왜 중국 교회를 섬기느냐 하면 이슬람은 지금은 이슬람에서 이슬람 모슬렘 선교사가 100만 명이에요. 우리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는 20만 명밖에 안 돼요 그중에서 행정요원 빼면 한 10만 명밖에 일을 못하는 거예요. 100만 명도 10만 명 우리가 판판이 깨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도 100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유일한 길이 뭐냐 중국 교회가 보내면 되는 것이에요. 뭐라하든지 말든지 그것대로 선택해 너무 중요한 거예요. 근데 하나님이 기도하고 이렇게 했는데 우리 교회가 글로벌화 되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 우리 교회가 글로벌화 된 줄로 믿습니다.

이번 주간에 WRF라는 “월드 리폼드 팔로우십” 이라는 세계개혁교회의회 연맹 이사님들이 한 30명이 오셔갖고 한 주간 동안 계속 저희 교회에서 회의를 합니다. 영국에서, 호주에서, 또 미국에서 미국 각 지역에서 또 아프리카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이런 여러 군데서 여러분 나라에서 오셔갖고 어떻게 하면 세계 선교를 잘 감당할 것인가? 기도하고 준비하는 것이에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귀한 선택을 통하여 하나님 여러분 영광 거두시고 여러분 선택을 통해 여러분의 생계가 복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손을 다 펼치시고 주님 사랑해요. 온몸과 정성 다해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 되고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귀한 찬양을 하게 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요약
많은 정보의 범람으로 모두가 다 정보의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면서 선택 장애, 결정 장애 때문에 무기력이 팽배한 이 시대 가운데서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자발적 선택을 통하여 하나님이 책임져주는 인생 되기를 다짐해야 한다. 한 명도 일리 없이 올바른 선택을 통하여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국가와 시대를 살리는 은총의 통로가 되고 예수님의 참 진리의 선택이 최고임을 알아야 한다.
-여호수아의 유언과도 같은 고별 설교이다. 모세가 죽기 전에 했던 것처럼,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언약을 새롭게 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언약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를 강조하며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고 선택하고 섬길 것을 다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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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3년 4월 30일)
제목: "하나님, 질문있습니다"
말씀: 룻기 1:16
찬양인도: 쉐기나(이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이현규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박신일 목사님(그레이스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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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1:16,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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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한 가지 질문을 먼저 드리고 싶다. 여러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머리를 때려하지 마시고 삶의 현실로 대답해 주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 가정에는 고난이 오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 가정에 고난을 주신다면 하나님은 선하시는 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고난이 온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며 내가 기도하는 대로 들어주어야 한다. 저는 요즘 젊은 청년들을 만나면서 이런 안타까운 질문들을 하는 젊은이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안타까운 질문들을 하는 젊은이들을 만나게 된다. 자기 친구의 아버지가 너무 신실한 목회자였는데, 암에 걸려 젊은 아버지인데 그 목사님 아들이 기도했는데 결국 낫지 않고 떠났습니다. 그 목사님 아들의 친구였던 이 청년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던 하나님이 아직도 원망스럽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과연 선하신가? 이 질문을 우리는 정직하게 해야 되고, 정직하게 대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우리의 생각이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일들이 종종 있다. 하나님은 사랑하실 때 우리의 머리로는, 삶으로는 의문이 갈 때, 이런 상황들을 직면하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인데, 어떻게 이런 상황 속에서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을까? 오늘 룻기 1장은 내 가정이 모압 땅으로 이스라엘에서 모압 땅으로 이사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엘리멜렉의 집안인데, 1장 1절과 2절을 우리 다 같이 한번 보시겠다.

*룻기1:1~2,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엘리멜렉의 가문은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을 찾아 모압 땅으로 이주 한 것이다. 아주 이들은 단순한 꿈 때문에 이사한 것이다. 먹고 살기를 원해서, 가정의 소박한 꿈을 따라 이동한 것이다. 혹자는 룻기를 이해할 때, 육의 양식을 따라 가나안 땅, 약속의 땅을 버리고 떠났다는 것으로, 영적 의미로 해석해서 이런 재앙의 왔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해석을 저는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오늘 이 본문을 잘 읽어보면 지나치게 영적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 역시 조금 어려움이 생기면 우리가 살 만한 곳을 찾아 이주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소박한 행복을 찾아가는 결정이다. 여러분 행복해지는 걸 원하잖아요. 다 그런 소박한 것도 다 있다. 그것은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비극이 발생하고 3절부터 5절까지 보겠다.

*룻기 1:3~5,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먹을 것을 찾아 떠났던 이 가족은 남자들이 다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맞게 된다. 이들의 꿈이 아주 철저하게 깨어져버린 사건이다. 남편도 잃고 두 아들도 잃는다. 외국 며느리 두 여인으로 남아 있다.

여러분의 인생을 솔직하게 돌아보실 때 여러분의 꿈은 잘 이루어져 가고 있는가? 진행형인가? 아니면 이미 깨어져 버렸는가? 진행형인가? 깨어졌는가? 제 생각에는 둘 다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꿈 깨어질 게 참 많다. 눈 큰 아내를 찾기 원했건만,,, 우리의 꿈 중에는 깨어진 것이 많이 있다. 우리의 삶으로 돌아오면 우리 가정에 한 가정의 어머니가 연결되어 있다. 중병에 걸렸을 때 어느 가정도 기도하지 않겠는가? 고통을 거두어달라고 우리는 간절해 기도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능력 있는 하나님이 안 고쳐 주실 때가 있다는 것이다. 맞다. 모두 주시지 않는다. 만약 우리 가족 중에 한 사람이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고칠 것이다. 근데 하나님은 전능하시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실 때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가정이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은 얼마나 소박한 꿈인가? 그런데 그 꿈이 깨어져 나갈 때도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은 여전히 살아 있지만 ‘왜 그러실까?’ 라는 우리 마음속의 작은 질문이 지워지지 않은 채 살아갈 때가 우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고쳐주시면서 우리가 원하는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시면서 하나님은 여전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로마서 8장 32절을 우리 다 같이 한번 보겠다.

*로마서 8:32,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침묵하시면서도 주님은 이런 말씀 이게 그렇게 하고 있다. 아들까지 내어주시니 그분이 모든 것을 주신다는 것이다. 혼돈스러울 때가 있다. 어떨 때는 답답하기까지 하다. 왜 하나님은 선하시고 전능하시기까지 하는데, 우리가 고통당할 때, 때로 해결해 주지 않고 왜 비극을 그냥 통과하게 하시는 것인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룻과 나오미, 나오미라는 시어머니는 꿈이 산산 조각난 상태이다. 남편도 잃고 두 아들도 잃었다. 그리고 그 한 며느리만 따라오겠다고 해서 몸만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그때 룻이라는 이 며느리에게 이방인 여인이었던 며느리에게 뜻밖의 고백이다. 자기는 끝까지 쫓아가겠다는 것이다. “너는 젊으니까 모압 땅에서 새로운 남편으로 만 잘 살 거라.” 아무리 이해시켜도 끝까지 따라온다는 말을 한다. 그렇게 한 말은 “어머니 백성 내 백성들 어머니 하나님 내 아들 됩니다.” 라는 이 믿음으로 쫓아온다. 그래서 이 책은 나오미 서가 아니라 룻기라고 책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관심은 룻에게 있지 않다. 이 나오미에 관한 고난에 대한 이 질문을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을 좀 찾아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재미있는 질문을 해볼까요? 룻이라는 여자가 신앙을 가졌는데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있다고 했는데, 이 믿음은 누구에게 배운 것인가? 누구에게 배웠다는 것인가? 시어머니,,, 어느 어머니? 분명히 시어머니의 혜택이었을 것이다. 재밌는 질문은 뭐냐면 시어머니의 믿음이 더 좋은 것인가? 며느리의 믿음이 더 좋은가? 시어머니일 것이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정정을 해드리고 싶은데, 여러분 며느리라고 할 것이다. 시어머니가 룻에게 믿음을 줬고, 믿음이 룻은 아무리 오래 되었어도 10년도 안 됐을 텐데, 여러분 룻이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나오미 믿음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이분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다. 나오미를 여러분 낮게 여기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렇게 믿음으로 말하는 그 며느리한테 여러분 고향으로 돌아오는 나오미는 사람들이 저 여인이 누구냐 라고 물어볼 때, 뭐라고 대답하는지, 한번 어떤 말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오는지 19절과 21절에 보도록 하겠다. 제가 읽어드릴게요

*룻기 1:19~21
19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너무 오랜만에 나타난 거죠. “이 사람이 나오이냐?” 나오미는 다르다는 뜻이다.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대답한다. ‘마라’는 쓰다는 뜻이다. 이름을 개명했다. 자기를 나오미 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 마라라고 부르라고 한다. 우리나라 말로 어떻게 번역이 되는가 하면 이거 내 이름을 그냥 ‘괴로움’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이 괴로움, 박괴로움, 김괴로움, 이렇게 불러달라는 것이다. 자기 인생이 쓰다고 본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하냐면 나는 나갈 때 풍족하게 나갔는데, 여호와께서 빈 손 되게 만드셨다고 한다. 질문하겠다. “누가 망하게 만들었는가?” 하나님께서,,, 저는 신앙생활의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정직함’이라고 본다. 여러분 안 믿어지는 걸 믿는 것처럼 표현한 것 같다. 힘든데 힘들지 않는 것처럼, 그럼 신앙이 성숙하지 않는다. 힘들 때, 어떻게 고백해하고 기도해도 ‘하나님 힘들어요!’ 라고 기도하라!~ 맞는가? 안 되는 걸 있는 것처럼 과장하지 말자는 것이다. 지금 나오미를, 자꾸 나오미의 믿음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데, 믿음이 있는 분인데 근데 있는데 힘들어서 뭐라고 말하냐면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빈손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고 주님께 원망하고 있다. 주님께서 원망해도 괜찮다. 그래서 탄식 기도를 하게 된다. 사람한테 하지 마시고 주님께 하셔야 한다. 이 장면에서 우리의 질문이 있다. 나오미의 입장에서 하나님은 선하신가?

여러분 나오미는 지금 나오미를 생각한 하나님은 전능하신 건 맞는데 선하신가? 여기에는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도 그런 순간이 온다. 성경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바가 있다. 내 꿈이 이루어지고,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내 목표라면 하나님을 따라가고 신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나의 과정이 가장 이루어지고 모든 하나님 나라 만사형통하고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내 삶의 신앙생활의 목표가 되면, 주님 따라가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왜? 아닌 경우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믿음을 가지면 신앙이 우상숭배로 전락하게 된다. 왜 우리는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것을 따라서 가르칠 것이고 우리 신앙은 교회에 앉아있어도 우상순배가 될 수 있다. 주일 예배에 앉아 있어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여기 앉아 있다면 하나님을 내 말을 잘 듣는 착한 분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우상으로 바꾸는 것이다. 신앙의 최종 목표는 나의 행복이 아니라, 주님께. 영광이다. 룻기 1장은 나오마 집안의 소박한 꿈이 다 깨어진 장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좋을 것 같다. 한 번 저를 따라 해보시면 좋을 것 같다. 하나님은 내 꿈을 깨뜨리신다.!!~ 동의하시는가? 안 하셔도 된다. 사실 우리 분들 중에 깨어지는 것이 많지 않는가? 너무 큰 목소리 하시는 분, 교구 목사님의 상담을 좀 받으시기로... ㅋㅋㅋ 오히려 우리 꾼들이 깨어질 때 우리 아이는 질문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이런 1장을 피해갈 수는 없다. 혹시라도 우리에게는 우리 가정에는 이런 권한이 뭔지 모른다 그런 분들이 있다면 전혀 고민하실 필요 없다. 다른 질문을 던져 우리의 꿈이 다 깨어졌을 때에도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내 꿈이 깨어지는 건 정말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심지어 가족 중에 누가 죽는 건 이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여전히 믿을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내 꿈이 깨어질 때, 내가 추구하는 행복이 깨어질 때, 이런 생각을 하고 싶을 것이다. 내 믿음이 흔들리고 믿음이 깨어질 수도 있구나! 의심이 찾아올 수도 있구나! 하나님이 선하시는가? 이런 질문을 내 마음속에 던질 수도 있구나! 이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내 삶이에요. 그럴 수 있다.

저는 이것을 다른 각도로 좀 올려다보겠다. 이런 의심의 순간이 올 때, 고난이 계속 지속될 때, 진짜 내 믿음이 깨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껍데기 믿음이 되어지는 것인가? 내 믿음의 본질이 흔들리는 것인가? 아니면 형식적인 믿음, 나만이 잘 되길 원했던 잘못된 믿음이 깨어지는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오미는 남편도 잃고 두 아들까지 잃었다 한 여인으로서는 절망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한다.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면 그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은 뭔가를 말씀하시는 것 같다. 만약 아무 일도 없다면 그냥 절망만 준다면 그건 재앙이다. 여러분, 이 꿈이 다 깨져버린 나오미는 뭘 깨달은 것인가? 뭘 할 수 있는 걸까? 사람이 이런 고난으로 바닥을 치게 되면,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깨닫는 것이 있다. 그게 뭐냐 하면 아무런 조각도 없다. 남편도 없고 두 아들도 없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한다. 나오미를 마라라고 불러라. 이 고난에 바닥을 칠 때, 믿음의 사랑을 다시 깨닫게 하는 것이다. 여러분 주님만이 선하시다. 아멘. 이것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재앙이다. 절망이 올 때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우리의 궁극적인 기쁨은 영원한 이름은 주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얻는 것이다.

※미국의 기독교 대학 교수를 지낸 ‘제럴드시처’ 라는 사람 있는데 이 사람은 가족들과 자녀 넷과 아내와 장모님을 모시고 휴가를 간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상대방의 자동차가 직진해서 정면충돌을 한다. 그리고 그 사고로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막내의 딸이 세상을 떠났다. 남편 홀로 남고 자녀 셋을 기르고 이 사람은 끝까지 재혼을 하지 않고, 지금 미국에 있는 기독교 대학에 그 학교에서 역사와 영성을 가르치고 있다. 이분은 재혼하지 않는다. 혼자서 평생을 자녀를 키우며 산다. 이런 질문을 그런 던진다. 이 ‘제럴드시처’라는 사람의 책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번역해서 몇 분이 그분이 질문한 것이 이것이다. 이런 사고를 겪고, 재앙을 받았다는 것을 주님은 미리 아셨던 것이라고 말한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는가? 주님은 아셨을까? 모르셨을까? - 아셨다는 것이 자기가 믿는 하나님은 아셨다는 것이다. 아셨을 거다. 그럼 이 사람의 질문이 이것이다. 이런 미래가 벌어질 줄 알았는데, 알았다면 내가 결혼하는 것이 맞는가? 이런 깊은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늘 이런 결론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정말 주님이 아셨다 할지라도 그래도 결혼 했던 것이 맞다. 잠깐이지만 그 아름다운 시간의 행복을 누렸고, 그걸 이렇게 한다. “혼자 자녀를 보면서 나는 이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 혼자 자녀를 키우는 동안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슬픔을 돌봐주셨고, 매일 주님은 우리 가정의 위로 자가 되어 주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삶 속에 비극 속에서도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내가 믿고 사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 가족의 비극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속의 구원의 역사를 써 가시는 중이다. 나는 그분을 믿으며 내가 처한 곳에서 오늘도 그분의 뜻을 행하며 살아갈 수 있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주님은 나를 붙들어 주신다 그분이 나를 향한 섭리와 다스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자기가 이 기구를 통과하면서 깨달은 게 뭔지 아는가? 비극은 비극인데 자녀 셋으로 홀로 키우면서 하나님이 감정적으로, 인격적으로 나를 돌보시지 않았다면 나는 살아올 수 없었다는 고백이다.

나오미의 집안은 처절하게 꿈이 깨어진다. 주님은 그 비극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가 써 가신다. 어떻게 가시냐면 룻과 보아스가 만나면서 그들의 후손으로 다윗을 거쳐 예수님이 오게 하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고 계시다는 것이다. 여러분 절망의 시간에 우리 안에 수없이 많은 질문이 올라오지만, 한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영원한 기쁨은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주님이셔야 한다. 우리가 구해야 될 참된 기쁨은 오직 주님이 되기길 바란다. 주 예수보다도 귀한 것은 없다. 이 믿음을 고난에서 퍼 올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래서 첫 번째로 나누고 싶은 것이 있다. 한 번 따라해 보자. 내 꿈이 깨어질 때, 하나님의 꿈이 보인다. 주님이 내 꿈을 그렇게 깨뜨리신 이유가 뭔지 아는가? 저는 하나님의 꿈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이다.

※프랑스의 정말 믿음으로 살았던 잔느기용은 고난에 대해서 우리에게 깊은 이해를 열어준다. 오늘 두 번째로 나누려고 하는 것은 나오미의 이야기를 잔느기용의 눈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나오미 사건이라든지, 욥기 사건이라든지, 성경에는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게 하는 고난들이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자랑하고 싶은 욥, 그 의롭고 경건한 자에게 하나님이 아무런 이유 없이 고난을 당하게 해보라는 것이다. 우리 생각을 이해할 수 일이다. 너무 경건한 자에게 사단이 그 가정을 치는 것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나오미 역시 마찬가지이다. 룻에게 믿음을 심어준 여인이었지만 절망의 고통을 지나고 있다. 만일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 만일 고난을 상징하는 계절이 있다면 어떤 계절이 고난에 가깝겠는가? 상식적으로 답하시면 된다. 겨울이다. 잔느기용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겨울나무를 상상해 보라는 것이다. 겨울나무에는 잎사귀가 있는가? 뭐만 있는가? 사랑의 교회는 늘 아기가 대답을 한다. 작년에 왔을 때, 특새에 예배 때에 3-4살짜리가 적기적소에 “아멘!!!”을 크게 했다.
그날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지요. ...ㅋㅋㅎㅎㅎ 겨울나무를 상상해 보라. 그리고 여름나무를 상상해보라.

잔느기용은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여름 나무는 가지가 거의 안 보인다. 뭐 때문에?
잎사귀가 다 가리고 있는 무성하다. 겨울이오면 모든 이파리가 다 떨어진다. 가지만이 남는다. 나뭇가지가 우리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잎사귀가 다 떨어지고 나면 가지만이 남는다. 삐뚤어진 모양이 다 보인다. 어쩌면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나무일 수 있다. 그런데 원래 나무는 그 모습이다. 다만 실제 모습을 가려줄 잎들이 지금 사라졌을 뿐이다. 이것이 고난을 당하는 신앙인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나오미처럼 룻기의 1장은, 욥기처럼 친구들이 와서 고소를 하며 정죄하던 그 욥기의 시간을 겨울이 찾아왔던 책이라는 것이다. 고난이 오면 우리의 실체가 나뭇가지가 다 떨어지고 드러난다는 것이다. 나를 가리고 있던 모든 잎사귀들 다 떨어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결함투성이의 본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날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언제 고난의 날이라는 것이다. 내 내면의 실상이 그대로 노출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그때 보게 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욥기를 통해서, 룻기를 통해서, 수많은 하박국이나 이런 책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은 뭐냐면 고난은 내가 외우고 있던 교리, 내가 알고 있는 신앙의 이론으로는 고난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번은 대답할 수 있다. ‘고난이 오면 나 그래도 주님 붙들 거야!’ 대답 한 번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난이 지속될 때는 그 이론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 진심이 나와야 된다는 것이다. 욥은 친구들의 정죄와 수많은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23장 10절에 이러한 고백이 터진다. 이거는 갑자기 한 말이 아니라 가슴 속에서 고통 속에서 하는 말이다.

*욥기 23:10,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이론이 아니라 고통을 통과하면서, 눈물을 통과하면서 터져 나올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욥은 찬바람을 견뎌낸 나무와 같다고 말한다. 자신의 믿음이 실제가 되도록 토해내는 고백이다. 여름 나무와 겨울나무에 대해서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여름에는 열매를 맺히고 무성한 잎사귀가 가득 덮는다. 겨울에는 가지만 남는다. 제가 질문하고 싶은 건, 가지만 남아 있는 겨울나무가 여러분 올 겨울을 잘 보시길 바란다. “겨울나무는 살아있는 것인가? 죽은 나무인가? 아무것도 없는데??살아있어요~~.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데 살아있어요. 죽어 있어요. 왜요?” 살아있다면 내년에는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잎사귀가 자라고 열매가 맺는 거 믿으세요? 여러분, 아멘,

잔느기요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겨울나무, 아무것도 없는 그 내부 깊숙한 곳에는 지난봄에, 여름에 아름다운 잎들을 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했던 생명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한다. 이것이 욥기를 통해서 눈길을 통해서 룻기를 통해서 주신 주님 음성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초라해도 지금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 같은 나오미가 아무리 원망한 것처럼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떠s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믿음의 본질은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지 그동안 칭찬받았던 거 그런 것들로 둘러싸여 있던 것들, 모든 잎사귀들이 다 떨어져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지금 나오미는 초라한 겨울나무 같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 치고 있는 중이다. 여러분, 초라해 보여도 믿음이 좋은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무슨 나무가 되는 걸까요? 무슨 나무가 돼요? 그런데 겨울나무는 가장 강한 나무이다. 나무 안에 있는 생명이 겨울나무는 어떤 나무이냐면 생명을 맺는데 지금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가장 생명에 깊숙한 줄기가 보이지 않는 뿌리 부분으로 모든 생명이 모여든다. 겉으로는 죽은 것처럼 나무가 보일지 모르지만 잎사귀가 떨어져 초라해 보이지만 가장 강력한 생명을 지금 지니고 있는 시간이 겨울나무이라는 것이다. 왜? 봄에 그 생명력을
발휘하기 위해서이다. 봄, 여름, 가을까지는 겉모습을 치장하는데 나무가 에너지를 쓴다. 봄, 여름, 가을에는 겉에 보이는 에너지를 쓴다. 하지만 겨울에는 내년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생명의 힘을 뿌리 속에 계속 모으는 시간이 겨울나무라는 것이다. 겨울나무 나무를 죽이는 계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나무를 더 강하게 만드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잔느기용은 욥이나 나오미처럼 고난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에게 이러한 교훈을 남긴다. 따라 해보자. “한겨울에도 믿음은 죽지 않습니다.” 여러분 고난이 왔다고 질문이 아무리 있어도 죽을 것이 아니디. 여러분 우리 믿음은 더 강해지기를 믿는다. 우리 모두 고난이 올 때, 겨울나무가 되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질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고통스러운 질문과 기도속에는 이 고난을 이겨 정말 믿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여러분 생명력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을 잊지 말고, 여러분 고난 가운데 믿음이 더 강해지는 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마지막으로 나눌 것이 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 나오미를 보면서 저는 예수님 얘기로 결론을 맺으려고 한다. 이 예수님에게도 가슴 아픈 시간이 있었다. 그것은 감란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실 때이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록되기도 하고, 그것을 감람산이라고 기록하는데 주님은 기도하신다. 십자가에 죽기는 육신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아시기에, 우리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신다.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옮겨 주시옵소서.” 어떻게 해달라고 하시는가? 옮겨달라고 하신다. 육신의 고통을 아시기 때문에 피하고 싶으셨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다시 기도하시는 것이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본심은 지나가게 해달라는 것이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우리는 이 기도를 많이 하죠. 지나가게, 빨리 사라지게, 이게 우리의 기도이다. 그런데 예수님도 거절당하신다. 감람산에서 예수님의 기도도 거절당하신다. 그 예수님은 감란 산에서 그 기도를 거절당하시고, 결국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다. 감란산은 예수님의 소박한 꿈을 깨뜨리는 산이었다. 그 고난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조금 피하고 싶으셔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해야 되는 기도가 뭔지 아시고 아시는 기도이다. 예수님은 감람산의 기도를 거절당하시고 죽으셨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감란산은 예수님의 꿈을 깨뜨려버리는 산산조각 내버린 산만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보여준다. 감란 산은요 소망의 산이 된다. 승리의 산이 된다. 왜 그런지 여러분과 마지막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이 잔을 옮겨달라고 기도하던 감람산이 절망의 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감란 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가? 감란 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는가?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이 땅에서 함께 제자들을 만나시고, 그다음에 승천하셨고, 다시 오시게 될 것이다. 우리 교회는 이 믿음이 서 있어야 한다.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이다. 그 주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사도행전 1장에 이런 말씀이 나오고 있다. 1장 11-12절이다.

*사도행전 1:11~12,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 어디에서 돌아왔는가? 어느 산? 제자들이 지금 감란 에서 돌아왔다. 뭘 목격하고 온 것인가? 지금 승천을 목격하고 온 것이다. 예수님이 감란 산에서 절망만 하신 것이 아니다. 그 산에서 주님은 승천하신 그 장소 바로 그것이 감람산이다. 예수님의 소박한 꿈이 깨어진 자리가,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는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지는 그분이 누구신지 온 세상에 알리는 하늘이 흔들리고 땅이 진동할 만한 역사를 일으키는 산으로 주님은 계획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우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언제나 고통을 이길 능력이나, 행복이나, 우리의 쾌락을 약속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자신이 당한 고난과 절망의 순간에도 계속해서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심을 붙들고, 믿고 나아가게 하는 위로와 힘이 되어 주실 줄로 믿는다. 예수님은 어느 날 감란 산에서 울며 기도하셨다. 이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그 꿈은 깨어졌다. 하지만 부활하시고 그 감란 산에서 승천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소망이 계획을 우리 주님은 준비해 두시고 예수님의 그것을 거절하신 것이다. 우리 꿈이 깨어지는 것들이 있다. 내 감란 산이다. 여러분, 그곳이 내 믿음이 살아나고, 부활하고, 다시 일어나는 승리의 감란 산으로 바뀌는 오늘 예배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무너진 곳에서 내 믿음이 부활하는 것, 아멘!!! 내가 고난당하는 그곳에서 “하나님, 살아 계십니까?” 질문하는 그곳에서 두 손 들고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선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한 번 따라하겠다. “나의 감란 산을 가지고 사십시오.” 여러분, 무너진 자리가 믿음이 부활하는 자리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요약
내 인생 가운데는 내 꿈이 산산 조각난 고난의 현장들이 있고, 눈물의 자리가 있다. 예수님도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셨듯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어 달려 죽으실 때, 이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 소박한 꿈을 하나님은 거절하셨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감란 산에서 우리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놀라운 승천의 계획을 하나님은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내가 쓰러지는 곳에 주님께 소리치며, 기도하며 “주님 살아계십니까? 하나님 선하십니까? 하나님 내 인생에 왜 이런 아픔을 주십니까?” 이렇게 기도하게 하시는 뜻을 알아서 그 기도를 넘어 하나님은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니, 내 믿음이 부활하는 인생이 되고, 예배가 되어야 하며 고난 때문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겨울나무가 되어 내 믿음이 강해지는,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하나님이 정말로 보이고, 하나님의 꿈이 보이는 믿음이 되고 예배가 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질문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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