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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0월 08일)
제목: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말씀: 학개 2:4~19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김대규 부목사님, 노영훈 장로님, 김시현 학생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학개 2:4~19,
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0 다리오 왕 제이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12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
13 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14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15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
16 그 때에는 이십 고르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고르 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고르를 길으러 이른즉 이십 고르 뿐이었었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18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19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ㅡㅡㅡㅡㅡㅡ

-78년도 우리 교회가 시작할 때, 강남구 도곡동에 이는 장화가 없으면 걸을 수 없는 곳이었고 그런 비가 오면 질척거리는 그 지역에서 시작해가지고, 2023년 45년이 될 때까지 주님의 기쁨과 진리의 복음을 인도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정말 뿐만 아니라 코로나에 강을 지나면서 한국교회도 지켜주심을 찬양합니다.

우리 오늘은 기쁘고 감사드리니까 “45주년을 축하합니다. 45년을 축하드립니다.” “45주년을 축하합니다.” 서로 하세요. “Congratulations on your 45th anniversary!” 우리 교회 45주년을 축하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깨달으면요 피곤하지가 않아요. 다시 뭘 깨달으면요. 진리의 말씀...

오늘 본문 5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오는가 하면

*학개 2:5,
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게 하실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출애굽기 19:6,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도 45주년을 맞이한 저희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면 음성이 되는 것이에요. 예수님 믿은 사람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님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근데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내 뜻을 하나님 뜻이라고 의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이 있는데 ‘내가 복음’도 있어요. 그러니까 내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오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내 평생의 사명과 비전으로 알고 그 뜻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당연한 것입니다. 가장 이건 예수의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근데 이제 문제는 뭐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 이걸 하나님께서 이제 깨닫게 하시고 계속 이 사명을 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 사명을 잘 실천할 때도 있고 또 불순종할 때도 있고 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는데, 다시오 너희가 내게 내 뭐가 되라고요 제사장! 뭐가 되라고요? 거룩한 백성이 되라! 고 한마디로 말하면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복을 받으라는 거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아픈 것들이 처리되고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치유를 받아야 한다. 라는 것이에요. 우리는 겉으로 볼 때 이 땅에서 우리 한 몸 가누기도 힘들다.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주님은 오늘 이 자리에 계시는 45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우리 사랑의 교회 성도들 때문에 땅의 모든 족속의 복을 받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제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는데, 어떨 때는 순종할 때도 있고 불순종할 때도 있고 그랬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명을 실천하는 데 있어가지고 불순종을 했어요. 우상숭배와 불순종을 했어요. 그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이런 말씀을 했어요. 우상숭배하고, 세속화되고, 잘못되어 부렸을 때 하나님의 이름이 더러워졌다. 에스겔서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더러워졌다.

*에스걸 36:20,
20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어요.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모든 족속에게 복의 근원이 되라 제사장나라가 되어라. 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걸 실천 안 하니까, 요나 보고 니느웨로 가가지고 복음 전하라고 그랬는데 요나가 ‘나는 못합니다.’ 나하고 체질이 안 맞습니다. 뭐 맨날 원수 같은 그런 나를 안 봤습니다. 그래야 도망가 버리니까 니느웨로 가라고 그랬는데 다시 도망가 버리니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나님의 이름이 감추어진 것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그러는데 우리가 그걸 실천 못하면 하나님 이름이 더러워지고 하나님 이름이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구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백성답게 살도록 하나님은 항상 두 가지 사역을 통하여 우리를 도전하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를 성숙시켜주시는 것이에요. 두 가지가 뭐냐 하나는 신과 정체의 명령 하나는 ⓵선지자적 사역을 통해, 또 하나는 ⓶제사장적 사역을 통하여 제사장들 사역을 통하여 성도들을 위로하시고, 그다음에 세워주시고, 양육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무장시켜 주시고 그런데 우리가 언제까지 위로받고 언제까지 우리가 상담을 해야 됩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 일을 감당을 해야 되는데 그걸 잘못할 때는 막 뭐라고 그러시고, 채찍질도 하시고, 도전도 하시고, 깨닫기도 하시고 그래서

오늘 학개서 이 본문은 잘 아시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룹바벨 성전, 제2의 성전을 짓는데 이 제2의 성전이 겉으로 볼 때는 어마어마하게 초라해 보였어요. 왜 제1의 성전을 보았던 사람들이 볼 때는 너무나 오늘도 여기 보니까 몇 절입니까? “너희 뒤에 있는 산에 있는 나무를 가져다가 산에 있는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지으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백향목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전을 아름답게 지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뒷산에 있는 나무 가지를 짓는 이 초한 성전을 앞에 놓고 이거 뭐 되겠나? 그런 식으로 마음을 같이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소위 선지자적 사역과 제사자장 세력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아니 사랑의 교회를 주신 여러분 각자 무형 교회,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들인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편을 들어주시는 것이에요. 다시요 진리를 깨달으면 뭐 하잖아요 피곤하잖아요. 몸은 좀 피곤할지 모르지만 진리를 깨달으면 피곤하지 않아요. 주님이 먼저 우리에게 오늘 도전을 하십니다. 선지자적 도전을 하십니다. 오늘 학개서를 통해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I. 첫 번째 선지자적 사역.
-오늘 보니까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불순종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처음에 열심히 성전 건축하다가 나중에 중단돼 16년 동안 그냥 16년이 지나가 버렸어요.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성전 짓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이 땅을 향한 제사장 나라가 되고 축복의 근원이 되라. 거룩한 백성이 되라. 그걸 까먹어버리고 그냥 자기 이익에 빠져서, 자기 집은 잘 짓고, 자기 집은 뭐 이렇게 멋지게 하는데 하나님의 집은 황폐하기 방치를 한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꼴이나 선지자들이 보존하는 거야 9절은 뭘로 보존하는가? 이렇게 합니다.

*학개 1:6,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내가 불어버렸어. 농사를 지어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그리고 그나마 수확한 것을 집에 가져가도 그것을 하나님들한테 불어버리셨잖아요. 그리고 놀라운 말씀 1장 학교서 1장 6절에 놀라운 말씀에 도전하신다. 주님이 오늘 강력하게 도전을 하시는 거예요. 뭐라고 말씀하시니까 너희들은 사명 잃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 던져버리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많이 떨어질지라도 소화가 없다. 먹을지라도 배부름이 없다.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다. 사실을 받아도 이제 뒤에 그것을 구멍 뚫어진 선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아무리 벌고 애써도 결국 나중에는 다 그 지갑이 다 부러져버린다. 강력한 선지자적 도전입니다. 삶의 씨앗을 뿌리고, 먹고 마시고, 옷 입고, 돈벌이하느라고 전념하더라도 나중에 다 구멍 뚫어진 선재가 될 것이다. 우리 가 오늘 그리스도의 몸이 성전인데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무시하고 일시적으로 세상이 주는 평안과 안정과 즐거움 거기에다가 물을 보다가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좌절과 허만 남는 거예요. 아무리 인생이 아등바등 애를 쓴다 할지라도 허술함과 좌절과 불만족이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를 믿어도 주님이 주신 사명과 영광이 동떨어져 있다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 딱 신앙 양심에 비춰 가지고 이거 안 된대 안 되는데 일을 자꾸 하다 보면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감추어지고 하나님의 더러워지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인생에 구멍 뚫린 전대가 된다는 것이에요. 우리가 애쓰고 수고하고 고생하고 전력투구한데도 남는 것이 없는 거예요. 엉뚱한 데 에너지와 땀과 수고가 다 낭비되는 것입니다.

오늘 45주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마음에 선지자들 도전을 받는데, 하나님 우리의 남은 인생이 구멍 뚫린 존재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십시오. 제가 이 말씀드리면 강남에 잘 나가는 사람 얼마나 많으냐고 우리처럼 하나님 안 섬겨도 다 잘 나가고 백도 들여가면서 폼 잡고 말이죠. 잘난 사람 많아요. 그런 얘기합니다. NO! 그거는 사생아에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살라 그냥 놔두는 건데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는 것이고 그건 너무 슬퍼할 게 없다. 이 말이 히브리서 12장 8절에 이런 거 나와 있잖아요? 다 같이요.

*히브리서 12:8,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우리가 진실 된 하나님의 자녀라면 잘못된 길로 가고 있고, 그다음 우리가 하나님의 사명을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구멍이 뚫린 전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불신자들은 자기 그 세계에 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내가 어렵고, 손해를 보고 구멍 뚫린 전대가 되고 어려움을 겪으면 내가 왜 오늘 구멍 뚫린 전대가 되었나? 하나님이 나에게는 사명을 주셨는데 오늘 내가 뭐 하고 있는가? 나만 생각하다가, 여기에 나온 나만 좋은 집에 살다가, 좋게 말하면 내 생각만 하다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거 잃어버린 게 아닌 것 아닌지요? 엉뚱한데다가 에너지 다 쏟아버리고 나중에 남는 것 없는 비틀 소리가 난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어요? 21세기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사명을 위해 제대로 쓰지 못하기 때문에 전대에 구멍이 뚫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니 어디서 새어나가는지도 모르게 빠져나온 것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제가 오늘 45절을 맞이하여 제가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사명의 구멍이 나면, 전대의 구멍이 나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전대에 구멍이 나면 사명에 난 구멍부터 먼저 메꾸도록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따라 가겠습니다.

“사명의 구멍이 나면, 전대에 구멍이 난다.”
-이 45주년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하나님 주신 사명의 구멍이 난 게 있으면 회복하고, 전대의 구멍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학계서 1장 5절에 보니까

*학개 1:5,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그리고 그 학개서 1장 8절에,

*학개 1:8,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겉으로 나오는 21세기 우리 집으로 보면 겉으로는 성전 건축에 대한 얘기 같지만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분들의 인생과 사명의 집을 다시 재건축하라는 것이에요. 45주년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 중직 자들은 우리의 삶을 인생의 제 궤도에 올려놓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올바른 변화에 올려놓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제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주님은 우리의 도전만 하시니까 이제 구멍 뚫린 전주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선지자적 사역을 통하여 도전하셨다면 이제는 제사장적 사역을 위하여 주님이 말씀하시

II. 두 번째, 제사장적 사역.
-오늘 놀라운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이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주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저 19절 뒤에 오늘부터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라.

*학개 2:9b,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시대가 중요합니다. 오늘부터 45주년 이후부터 오늘 본격적인 복을 너희에게 허락하여 주시리라. 우리 하나님은 목자의 심정을 가지시고, 선지자적 도전도 아시지만 제사장적 위로도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고통당하고 억눌리고 힘겨워하는 것, 하나님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리도록 도와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지금 불순종으로 인해서 고난과 재앙 중에 있는 백성들을 하나님 일깨우시길 원합니다. 그래갖고 보면 나이 많은 선지자 학개와 젊은 선지자 스가랴를 통하여 팀웍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새로운 것을 세워주시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제가 참 오늘 본문을 1장 2장을 이제 다 공부하신 것이에요. 이제 오늘 시간을 이걸 학개를 통하여 제가 이제 저는 목표가 우리 성도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제가 사역하는 동안 다 강의하는 것이 목표예요. 그런데 오늘 학개서는 오늘 이걸로 끝이에요. 아시겠습니까? 섭섭하지만 할 수 없어요.
오늘 학개서 1장 14절 너무 제가 감사하는 구절입니다.

*학개 1:14,
14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할렐루야! 도전마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전 공사를 이제 시작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모든 백성의 마음을 뭐하게 하심에?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와와 총독과 대제사장의 마음을 모으고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마음을 모으고 이렇게 해가지고 스룹바벨의 성전을 짓는데, 모든 백성의 마음이 감동되었다. 여기 마음이란 말은 그냥 마음이 아니라, 다 해가지고 하나님의 영이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로 올라가셨다. 하나님의 영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영이 감동되었다. 이거 우리의 영이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감동되었다는 말이 전에 우리 개역에는 흥분되었다는 말씀을 들으니까 성도들의 마음이 흥분되는 거야. 성도들의 마음이 감동되는 거예요. 성도들의 마음이 녹여지는 것이에요.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그 비전을 잉태케 하신 그 비전을 듣고, 흥분되고, 감동되고 마음이 깨어나는 것이에요. 영적으로 축복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 그리고 오늘 4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는가? 오늘 4절에 보면,

*학개 2:4,
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 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의 모든 백성은 스스로 뭐예요 다시 한 번 안 된다 안 된다. 그러지 말고 살아있길 모든 중직 자들아 어떻게 할지어다. “굳세게 할지어다.” 모든 젊은이들이 어떻게 할 지어다? 다시 한 번 사랑의 교회 모두 우리 자녀들 모든 어린아이 어른까지 다시 한 번 마음을 어떻게 해요? 굳세게 할지어다. 한국교회 성도들이요. 어떻게 해요? 굳세게 할지어다. 이게 마음의 감동이 되어서 이 영적으로 잠에서 깨어나지고, 깨닫고, 굳세게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잠시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베드로도 그랬고, 오늘 본문에 5만여 명의 남은 자들도 그랬습니다. 넘어졌을 때 굳세게 라는 주님의 음성 듣고 다시 일어서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의 능력은 저 사생아들, 예수 믿지 안 믿는 사람들, 하나님 앞에 한 번도 순종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평생 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강력한 복일 것이다. 다시 사랑의 모든 영 가족들이 어떻게 할지어다. 굳세게 할지어다. 그 이유는 뭐냐? 내가 너와 함께하기 때문에, 그리고 19절 다시 한 번 뒤에

오늘부터 내가 너희 에게 뭘 주신다고요? 사람들은 이제 기복주의를 비판하는데 기복주의는 비판받는 것은 내가 앙랑거리는 것이 기복주의예요. 그런데 오늘 복을 주시는 주체가 누구세요? 하나님이세요. 그냥 굳세게 하고, 오늘부터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라. 그러면요 그냥 받는 게 좋아요. 하나님이 주신 복을 내가 받겠다고 결심을 해야 되는 것이죠. 내가 어떻게 내가 무슨, 하나님이 주시면 복이 있는 것이에요. 지난 45년 사랑의 교회를 돌아보면,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꽉 차 있어요. 수많은, 수많은 이 말로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복을 예배 때마다, 내가 성선도 집회 때마다, 제도를 할 때마다 중요한 우리의 사역 끝날 때마다, 하나님이 예배하신 놀라운 복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에요. 가정 가정마다 모든 성도들, 토 달지 말고,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세상 적으로 무슨 체면에 차리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그냥 받으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굳세게 가지고 마음을 같이하여 16년 동안 이 미루어진 건축이 그냥 함께하기 때문에 그냥 하다가 만 건축이 아니라, 오늘 이 말씀 듣고 정신 바짝 차리고 4년 만에 건축한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놀라운 말씀,

*학개 2:7,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절에 뭐라고 돼 있습니까? 이 성전이 뭐예요

*학개 2:9,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 은혜는 지금보다 더 나중에 영광이 될 줄 믿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5년 10년 뒤가 더 지금보다 더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하면 목사님들은 여건이 좋지 않고, 나의 형편이 안 되고 첫 번째 성전보다 너무 초라하고 되겠냐? 하나님은 거꾸로 말씀하시는 거에요. 여건이 좋지 못하고, 농사가 안 되어서 하나님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기 때문에, 재난이 없다는 것이에요. 사람들은 불경기이다. 불경기이다. 불경기이다. 그런 것입니다. 저는요 목회하면서 제가 지난 40여 년은 불경기가 아닌 때가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한국이 불경기이면 미국이 불경기고, 미국이 불경기면 한국이 불경이고, 하여튼 어쨌든 계속 불경기였습니다. 근데 19절에 “오늘부터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라.”

*학개 2:9,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오늘부터 시대가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시대가 오늘부터입니다. 시간들을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없었던 축복이 오늘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가장 강력한 복은 뭐냐?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그 결과 정말 놀라운 말씀 6절과 7절 놀라운 말씀 다 같이 6절 6절절 2절 함께 읽겠습니다.

*학개 2:6~7,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제가 이 45주년을 돌이켜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뭐가 진짜 복인가?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라. 하는 것이 뭐가 진짜 복인가? 그 복의 강력함과 파장이 얼마나 되는 것인가? 성경에 보면요. 하늘과 땅을 진동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나오는데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다 진동한다는 말이 여기 찬하만물이 진공한다는 말이 여러분, 이 말씀을 깨달을 때, 여러분의 삶에 피곤이 물러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모든 만물이 진동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진동한 이유가 뭔지 압니까? 모든 나라의 보배가 되니, 이게 이제 너무 중요합니다. 모든 나라의 보배가 뭐예요? 예수 그리스도!!!~ 모든 거기 각주에 보면 사모한 것들만 나옵니다. 모든 나라의 보배가 오늘 학개에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나라의 보배에요. 모든 나라에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사모하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나라에 그리고 네가 이 초라한 성전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예수 그리스도는 초라한 몸을 입고 오셨다. 그런데 예수님이 요한복음 2장 19절에

*요한복음 2:19,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한복음 2:21,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이 성전 된 자기 옥체가 예수 그리스도인 줄 믿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 학교에서 있는 모든 나라의 도배가 되신 것이 우리가 선지자들 도전도 받고 제사장들 위로도 받지만 하늘과 땅과 육지와 모든 것들이 모든 나라가 진동하리라. 오늘 이 말씀을 진동하리라. 이것이 진동되는 이유가 뭐냐 하면 모든 나라에 보배,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45년을 맞이하여 모든 나라의 보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마음에 모두가 다 한 분, 한 분 다 이걸 내 것으로 삼고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모든 나라의 보배, 그래서 이 모든 나라의 모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내 가슴에 모시고 오늘 우리가 십자가 나눠드렸지만 이걸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시게 되면, 이전에 이전 영광보다도 나아진 영광이 훨씬 크리라. 여러분들의 생애가 지금보다도 나중에 더 크리라. 이것이 오늘 오늘부터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여러분, 남들이 볼 때 초라하게 보이지만 사명으로 한 일은 작은 일이 없어요.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일은 작은 일이 없어요.

오늘 본문에 있는 것처럼 땅과 하늘과 바다와 육지를 흔드셔서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세우시는 것이에요. 사랑의 교회의 모든 비전을 하나님은 지금보다도 나중에 더 크리라. 오늘부터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여러분, 교회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45년을 돌아볼 때에 하나님의 교회가 얼마나 가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교회와 함께 이루는 내 인생의 사명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여러분, 교회만 제대로 역할을 하면 수많은 사람들의 심령을 고쳐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길거리에 방황하는 수많은 도덕적인 실패자들을 새 사람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진짜 가치 있는 것에 생을 걸고 우선순위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교회만 제대로 되면 우리 자녀들을 주님 안에서 올바로 양육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만 바로 되면 이 민족도 부강한 나라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얘기합니다. 대한민국 지난 75년의 역사를 아무리 얘기해봐야 다 쓸데없는 얘기입니다. 뭐 발전할 이유가 뭐냐 다른 거 없어요. 하나님이 한국 교회를 쓰시고 한국 교회를 통하여 주의가 복을 받은 것입니다. 제사장들 사명을 감당한 한국교회 때문에 오늘 이만큼 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 누가 그래요 지난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이 그러더라고요. 이 만연한 사회주의적인 어려움들 이 모든 이 선전선동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교회밖에 없다고, 이전의 영광이 영광보다 나중 영광이 더 크리라. 오늘 이 말씀을 받는 여러분들의 태도가 여러분들 남은 인생을 결정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려도 무관심하고 무감각하고 길이 없게 되면 그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45주년 45주년, 저는 오늘 여러분 6절 7절에 있던 모든 나라의 보배이신 예수님을 다시 한 번 여러분, 묵상 하십시오. 그 예수님 바라보면 수많은 고난과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서도 동서남북과 하늘과 땅과 우리 영역이 다 진동할 만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하면서 여러분 십자가 당을 갖고 있는데요. 제가 여러분들 가정마다 마음으로 심방하고 싶습니다. 45주년에 심방(尋訪)하고 싶은데, 제가 심방에서 꼭 해드리고 싶은 말씀을 하나 있어요. “하나님이 오늘부터 복을 주시면 가정 가정마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까지 오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가정마다 대한 것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45년을 맞이하여 수만 명의 성도들 제가 개인적으로 물리적으로 심방은 다 못하지만 여러분 가정 가정마다 가장 좋은 아직 오지 않으셨어요.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마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 것입니다.

제가 스데반을 묵상하다가 놀라운 일을 깨달았어요. 사도행전 1장 55, 56절을 보니까

*사도행전 7:55-56,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스데반이 돌을 맞는 중에도 눈을 들어보니까 눈물 나는 거예요. 하늘이 열리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이에요.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 영광과 내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어요. 하늘이 열려 인자가 하늘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깨달은 것이에요. 지금 스데반은 뭐 하고 있어요? 돌에 맞아가지고 피투성이에요. 남들이 볼 때는 완전히 끝났어요. 그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을 끝나 오늘부터 내가 복을 주면 무슨 말씀이에요? 고난 가운데서 스데반은 오늘부터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이에요. 지금 현재가 돼버린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그 하나님의 영광이 스데반은 돌에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면 그 고통보다 훨씬 큰 거예요. 그래서 스데반은 고난을 이기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 선지자적 도전, 제사장과 위로가 우리에게 있고, 우리에게 많은 것이 있습니다마는 결국은 마지막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 스데반처럼 고난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것이에요. 사랑의 교회 교우들이여, 45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온 성도들, 하나님의 영광을 지금 현재 체험하는 21세기에 스데반의 능력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고난과 이 가운데서도, 그럴 때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들이 현재가 되게 하시고, 제가 말씀드렸죠? 하나님 영광은 아무에게 주지 않으세요. 고난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집중하고 고난과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에게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은 현재가 되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한 대로 예수님이 모든 나라의 보배가 되어 주셔서 우리 모든 성도들의 보배가 되어 주셔가지고 이전의 영광보다 나중의 영광이 훨씬 더 큰 은혜가 우리 성도들 한 분, 한 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요약
우리가 사명에 구멍이 나면 전대에도 구멍이 나는 것이니 우리가 사명이 회복되어서 오늘부터 네게 복을 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최악의 불경기에도 하나님의 영광과 십자가 사명을 굳세게 하여 나중 영광이 이전의 영광보다 더 큰 인생의 놀라운 복이 되는 사명이 되어야 한다. 모든 나라의 보배가 되어 주시는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는 자로 살아서, 가정과 개인과 교회와 나라에 사명을 잘 제대로 감당하여 주님의 기쁘신 자녀로 살기를 소망해야 한다.
-학개의 이 설교는 초막절 마지막 날 행해졌는데, 어려움 가운데 추수를 마치고 예루살렘에 모여 감사하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선포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전하시기 위해 적절한 때를 이용하신다. 성전 건축의 영적 의미는ㅈ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정립한다. 성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성실과 부지런함으로 풍성한 삶을 누려야 한다. 만일 근면하지 못하여 영적 나태함에 빠진다면 더 큰 역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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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3년 10월 1일)
제목: "끝까지 잘 감당하십시다"
말씀: 디모데후서 4:9~11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유이삭 부목사님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헌금송: 포에버 혼성찬양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ㅡ
 
*디모데후서 4:9~11,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ㅡㅡㅡㅡㅡㅡ

-오늘 아침 할렐루야입니다. 왜 할렐루야인지는 설명을 더 안 하겠습니다. 우선 우리 찬양대가 ‘아름다운 동산 주님의 동산’이 있는데 저 찬송은 우리 부친이 결혼식 할 때 불렀던 찬양이에요. 그러니까 70년 이상 한국교회의 영광스러운 찬양이었는데 참 명절에 부를 수 있는 그런 찬양인데, 여러분 가정 가정마다 주님의 아름다운 동산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이 주일 예배에 정말 사모에 나오셨잖아요. 많은 분들이 지금 지방에 내려가셔서 예배를 드리시는데 한국교회 5만여 교회 전체가 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동산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또 역으로 이때 가족들하고 같이 오셔서 지방에서 오신 분들 가운데요. 같이 예배드리는 분들은 주님의 치유와 위로와 능력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번 명절 기간에 저희 교회는 많은 상을 당했어요. 많은 어려움 토로하신 많이 계시는데 어쨌든 우리가 주님의 부름 받는 그날까지 모든 성도들은 오늘 우리가 96장의 귀한 찬송을 고백했잖아요.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뭐에요? 위로, 없는 자의 뭐에 풍성, 눈 먼 자의 뭐에 빛이 되시고, 벌써 잊어버리셨습니까? 눈은 자의 빛이 되시고, 근데 고마운 거는 여러분들 오늘 찬양대 찬양하고 나니까 아멘 소리가 지난번보다 더 퍼센티지가 올라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까먹은 분들도 계세요. 그러니까 이 진리가 있어도 우리가 순종을 해야 내 것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 내 것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눈 먼 자의 빛이 되시고 없는 자의 풍성이 되시고 우는 자의 위로가 되시고 특별히 병든 자에 뭐가 됩니까? 고침이 되시고 수술이 있는 분들 치유가 필요한 분들 오늘 진정한 치유를 지금부터 경험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저는 잠깐 회복을 위한 부흥 시리즈를 잠깐 멈추고 오늘은 명절이기 때문에 평소에 제가 담고 있는 좀 우리 교우들이 평소에 우리가 다시 한 번 확인해야 될 그런 내용들을 좀 같이 오늘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명절에 가시면 같이 우리 가족들끼리 대화를 하다 보면 이분은 지금 신앙이 요즘 참 프레쉬 하구나. 또 계속 이렇게 좀 신앙이 좀 뜨거워져 있구나! 이제 그런 신앙을 뭐라고 하면 새싹 신앙이다. 싹이 잘 났다. 이렇게 근데 어떤 신앙은 또 예수 믿다가 시험 들어가지고 인간관계나 또 여러 가지,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기 신념도 안 맞는 것 같고 자기 생각에도 안 맞는 것 같고 이래가지고 시험 들어가지고 신앙이 시들시들한 신앙도 있어요. 근데 또 어떤 신앙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한 결 같이 푸르름을 간직하는 상록수 신앙이 있어요. 오늘 저와 여러분은 처음과 끝이 동일한 시종일관하는 한결같은 양은 냄비 있잖아요. 금방 뜨거워졌다. 금방 이게 아니고 어벤다운도 아니고 한결같은 신앙 유지할 수 있도록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확고한 믿음의 토대를 형성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잘 아시는 대로 오늘 본문에 보니까 바울 사도가 바울 사도가 거의 생애 마지막 때까지 마지막 중에 마지막 디모데후서 4장은 마지막 중에 마지막 유언이고, 또 오늘 본문은 그 마지막 가운데 또 마지막 유언이에요.

바울 사도는 수많은 인생의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거치고 수많은, 수많은 질곡(桎梏)을 거치고 인생을 살아왔지만 오늘 제가 이 4장 본문 18절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한 거예요. 가슴이 뜨거워진 거 오늘 본문 18절 18절을 다 같이 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4:18,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주께서 나를 뭐예요?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바울은 그를 죽이겠다고 특공대를 조직해 가지고 40여 명이 죽이겠다고 난리를 치고, 그다음 그 한 생애가 그렇게 많이 있었지만 결국은 바울의 마지막 고백은 주께서 나를 뭐요?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나를 구원하신다. 결국 이것이 피니싱 웰 이에요. 인생 마지막 성공이다 이 말이에요. 바울처럼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한 두세 가지 교훈을 받아야 되는데, 첫째 데마를 통하여 받는 교훈이 있어요.

I. 첫째 데마를 통하여 받는 교훈이다.
-오늘 데마는 뭐라고 하냐면, 데마 본문을 보겠어요.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10절에 뭐라고 돼 있어요?

*디모데후서 4:10,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우리는 데마를 통하여 받는 교훈이 뭐냐? 데마는 시작은 좋았어요. 근데 끝이 안 좋은 거예요. 데마가 어느 정도 시장이 좋았냐 하면 골로새서 4장 또 빌립보서 1장 같은 데 보면요 바울의 골로새서 4장 보니까, 나의 동력자 마가와 데마가 너에게 무난하느라. 그렇게 바울의 동역자의 반열에 들어섰어요.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갈 정도로 그렇게 용맹했어요. 그럼 그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여러분 시작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끝이 안 좋으면 더 비참하죠? 한때 우리 신앙생활 처음 잘한다고 그러고 막 또 그러다가 근데 나중에 급전직하 대마를 보면서 그런 걸 느끼는 거예요. 마치 저 롤러코스터 저 꼭대기에 올라갔다 그대로 내려박는 그런 느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분이 아무도 없기를 바라는 거예요. 데마는 처음에 바울을 보니까 바울이 굉장했어요. 바울이 가는 곳마다 역사가 일어나고, 심지어 바울의 수금만 던져도 막 죽는 사람은 살아나고 난리가 나니까 야 세상에 이런 희한한 게 어디 있냐? 이 사람 따라가면 내가 이제 내 인생 성공이 될 것이다. 이렇게 바울을 따라가는데, 나중에 가만히 보니까 바울이 오늘 이 시점에 보니까 바울이 순교당할 것 같거든, 로마 감옥에 갇혀가지고 이제는 선교당할 것 같으니까 아이고 이 바울 따라갔다는 내 인생 종치겠구나. 이런 생각해가지고 시험이 드는 거예요. 미혹의 영이 사탄이 그를 충동질해 가지고 시험했던 것 그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다. 그래서 우리 초대교회 전성 사에 보면 데마가 대산을 끌어와서 뭐 했나 그 이방 신전에 창부가 되었다. 생각보다 훨씬 비참한 그런 결과가 일어났다. 이런 초대교회 전성사가 있어요. 우리가 뭐 이런 교회의 전상을 보면서 데마를 보면서 깨닫는 것이 뭐냐? 처음에 화려하게 시작할수록 끝이 안 좋으면 안 되고 처음에나 끝이 동일한 축복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럼 데마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이렇게 데마가 급전직하 한때는 바울의 동역자요. 한때는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갈 정도의 동지였는데 어떻게 이리 될 수 있었을까? 가만히 따져보면 미혹의 영에 쏟고, 참 진리에 대한 눈이 어둡고 그런 거 있지만 한두 가지를 생각을 첫째는 뭐냐 하면 데마의 속사람의 능력이 없는 거예요. 우리 식으로 하면 복음을 통한 진정한 속사람의 능력이 한결같지가 않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속사람 우리가 왜 약합니까? 우리가 못 먹어서 허약합니까? 못 입어서 해약합니까? 아닙니다. 선진제국은 선진국에 가면 대통령도 햄버거 먹고 거지도 햄버거 먹습니다. 먹는 거 비슷한 거 많아요 입는 거 비싸죠. 캘리포니아 같은 데 가면 사시사철이 비슷하기 때문에 특별히 옷도 잘 입을 것도 없어요. 다 비슷비슷해요. 근데 사람의 능력과 사람의 차이는 어디서 오느냐 여러분과 제가 예수를 믿었다 복음을 믿었다 했을 때에는 늘 제가 강조하지만 어마어마한 거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의 속사람이 새롭게 된 것이에요. 우리가 우리 휴먼 빙, 우리 인생 자체가 이노 빙 우리의 속사람 자체가 완전히 트랜스 폼(transform) 된 거예요. 이전 것이 아니라 새 사람이 된 것이에요. 새 사람의 능력이에요. 데마는 한때 자기 의지와 어떤 자기 신념 가지고 이렇게 할 수는 있었지만 그의 속사람이 진정 능력 받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속사람의 능력은 어떻게 결정됩니까? 주님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결정되는 거예요.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어떻게 결정됩니까? 주님을 향한 전적 위탁의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그 전적 위탁의 능력을 끝까지 지속하느냐, 아니냐 거기에 달려 있는 것이에요. 따라서 저와 여러분의 삶의 형편 가운데서 너무 모든 것이 너무 잘 돼가지고, 내 자신만 의뢰하고, 환경만 의뢰하고, 내 상황만 의뢰해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속사람의 능력을 개발할 기회가 별로 없어요. 근데 몸이 아프다든지, 아니면 뭐 환경적으로 어렵다든, 자식이 골 때린다든지 죄송합니다. 하여튼 아니면 정말 어렵다든지 이런 것 때문에 어떻게 마음 둘 데가 없어가지고 내 인생에 내 삶에는 주님 밖에 내 삶의 유일한 위로와 능력이 없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전부입니다. 하고 주님께 전적 위탁한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 바로 속사람의 능력을 결정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세상 일이 너무너무 잘 돼가지고 주님만 저처럼 위탁할 수 없다면 그것은 속사람은 약한 것이고, 내가 좀 힘들고 어려운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니 이거 주님 없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주님께 전적 위탁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 자체가 여러분들의 속사람의 능력을 강화시켜주시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 찬송을 해도 속사람의 은혜가 있는 사람은 눈물이 펑펑 나는 거예요. 속사람이 강건하지 못한 사람은 늘 자기중심이에요. 자기중심 자아가 살아있는 것이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자아를 깨뜨리시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고 속사람의 능력을 강건하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우리 상황 속에서 모든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뢰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이 우리의 속사람의 능력이 강화되는 기회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없으면 못 사는 것이에요. ♬나는 주님만으로 참 만족을 누리네. 세상 영광 다 준데도 주님과 못 바꾸네. ~♬.

II. 둘째 데마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그 비전이 없었다.
-데마에게 뭔가 내 생애를 바쳐도 될 만큼, 내 생애 전체를 불태워도 될 만큼 더 큰 하나님이 주시는 그 비전이 없었어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없었어요. 그의 생애를 붙잡고 그의 인생의 수레를 끌고 나갈 만한 한 결 같이 흔들림 없는 큰 사명과 목표가 없었어요. 데마가 도중에 하차한 이유는 웬만한 어려움을 이겨낼 만한 더 큰 삶의 목표가 약했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더 큰 비전이 없었다는 것이에요. 세상 살다 보면 이런저런 우여곡절 우수(憂愁)사례(事例) 많이 있지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사명과 비전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난 지금도 기억 하는데, 어릴 때 우리 부친은 저한테 현아, 현이는 ‘포부의 수레’를 그리스도에게 매라. 초등학교 다닐 때, 포부의 수레가 뭔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지만 포부의 수레를 그리스도에게 바라라.

여러분의 사명과 비전과 여러분의 꿈들을 주님에게 메고 가는 평생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제가 요즘 이 아시안게임 하는 걸 제가 이 소식을 들으면서 왜 왜 저렇게 큰 감동이 있을 것인가? 아시안게임 우승했다고 해서 큰돈이 들어옵니까? 그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국가대표를 하고 올림픽 대표를 하면 사람들이 왜 가슴이 뛰는가? 그분들의 기사를 읽어보니까 그들이 개인의 이익보다도 더 큰 조국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다는 발음을 잘 해야 되겠습니다. 조국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소중하고 가치 있게 느껴진다는 것이 그래서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광스러운 경험치를 얻는 것이에요. 더 큰 자신보다도 더 큰 무엇에 사로잡힌다는 것 고귀하고 특별한 것인 거예요. 그러니까 더 큰 삶의 목표, 하나님이 주신 더 큰 비전에 사로잡혀 있으면 웬만한 어려움이 와도 흔들림이 없다 이 말이야. 6절 보세요. 오늘 본문 16절에 보니 내가 16절에 보니까 내가 처음 변명할 때 나와 함께한 자가 뭐예요? 하나도 없어.

*디모데후서 4:16,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기가 막힐 삶, 바울이 법정에서 고통을 당할 때 다 그를 버리고 떠나버렸어요. 그래도 바울은 흔들리지 않았어요. 바울의 속사람의 능력이 더 큰 비전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까, 다들 도망가도 오케이! 대신 다 버리고 도망갔지만 17절에 완전히 반대 17절에,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시면

*디모데후서 4:17,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시면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우는 사자같이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이럴 때, 저럴 때 온갖 환경을 통하여 우리를 시험하고 물어 뜯고 다 하는 거야. 그래도 시험 안 드는 이유는 바울은 더 큰 하나님의 비전에 ‘복음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렇게 하고 나니까 주께서 자기와 당신과 함께 다 하는 그것을 느끼게 되니까, 웬만한 일에도 흔들림이 없는 것이 이방인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갖고 더 큰 비전을 갖고 있으니까, 오늘 사랑의 교회 모든 제가 ‘2033, 50’ 비전을 저게 뭔가 그러지 말고 이런 내용들이 나왔을 때 여러분 기억을 하시고 여러분 가정을 이루어 가시든지 여러분들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나에게 더 큰 비전에 사로잡히라고 하시는 거구나. 내 배만 두드리다가 인생 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더 큰 비전에 사로잡히게 하시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웬만한 비전은 웬만한 어려운 환경은 그냥 툭 튀어 넘어가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16절 16절 뭐라고 되어 있어요? 내가 처음 변명할 때 나와 함께한 자가 뭐예요? 하나도 없어 변명할 때라는 것은 뭡니까? 법정에 서서 자기변호하고 말할 때에 다 버리고 도망갔어요. 그리고 그들에게 허물 돌리기를 원치 않았어요. 그 이유는 뭐냐 17절에 주께서 더 강하게 나와 함께 하여 주셨기 때문에, 그럼 내 비전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는 그 비전을 위하여 생애를 드렸기 때문에, 내가 사자의 입에서 우리가 지금 이방인의 사도가 다 될 수는 없지만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랑의 교회와 한국교회에 주신 비전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2033년이 될 때까지 이 민족의 주의 50%가 예수 믿게 하여 주십시오.

다시 말하면 북한은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에요. 한때 강남의 유행어가 있어요. 80년대, 90년도에 그때 막 우리 한국교회가 불타는 날 때, 그때 강남의 유행어가 뭔지 압니까? 아직까지 교회 안 가고 있냐? 이게 강남의 유행어였어요. 그때 그걸 누가 정말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이 비전을 가지고 다 잡았으면 우리 민족 50% 복음화 되었을 텐데,,, 속사람의 능력과 더 큰 비전에 사로잡혀가지고 여러분 우리의 삶의 모든 과정들을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III. 셋째 중간에 넘어졌으나 다시 일어나 끝이 좋은 인생이다.
-마가를 통하여 배운 것은 뭐냐? 중간에는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끝이 좋은 인생이 됐어요. 마가 요한이라고 볼 때 마가는 라틴식 이름이고 요한은 히브리식 이름이에요. 마가는 여러분 부잣집 도련님이었어요. 오순절 성령 강임 때 어디에 성령께서 역사하셨죠? 마가의 다락방이죠. 여러분 다락방에 120명이 들어가면 그 집이 큰 집입니까 작은 집입니까? 해석이 되시죠?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어디서 기도했어요? 사람들이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마가의 집에서 기도했어요. 그러니까 집이 컸기 때문에 부잣집이었기 때문에 예배와 기도 처소를 제공하는 그런 신실한 집안이었어요. 그리고 마가의 그 집안에 삼촌이 지금 생질이 마가니까 삼촌이 바나바인데 바나바 그 집안에 바나바도 부유했기 때문에 사도행전 4장에 보니까 자기 집에 집을 팔아가지고 헌금을 하는 얘기가 나와요. 그 정도로 부잣집 도련님이었어요. 그래갖고 은혜를 받아갔고 내가 바울과 함께 또 전도 여행을 해야 되겠다. 1차 전도여행을 하는데 너무 힘든 거예요.

그 당시에 무슨 뭐 ktx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비행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교통수단이 없으니까 늘 걸어 다니니까, 부잣집 도른놈이 뭐야 발톱이 다 빠지고 그다음에 뭡니까? 그다음에 진물이 나고 난리가 나니까, 이 견뎌내겠어요? 풍찬노숙하고 걸어야 되고 그래서 사도행전 13장에 보니까 너무 고생이니까 도중하차를 해버렸어요. 이 사건 때문에 잘 아시는 대로 사도행전 15장 39절에 보니까 마가를 2차 선교에 데리고 가려고 데리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 할 때 영적 거장인 바나바와 바울이 대판 싸웠어요. 제 얘기가 아니고 사도행전 15장 39절에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졌다.

*사도행전 15:39,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제 얘기가 아니고 사도행전 15장 39절에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졌다. 이 말이 됩니까? 이게 그 영적 거장들이, 마가 때문에 그 정도로 골칫거리였어요. 근데 오늘 11절에 본문 11절에 이 본문은 바울의 유언 중의 유언 최후의 유언이라고 그랬어요.
*디모데후서 4:11,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다. 전에는 마가 때문에 바나바와 바울이 대판 싸우고 있는 원인을 제공했는데 지금은 복음 사역에 너무너무 유익하다. 마가는 중간에 넘어지긴 했지만, 나중에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이 되어가지고 베드로를 따라다니면서 통역관 역할을 또 하고 그리고 그 놀라운 마가복음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복음주의에 의해서 마가복음이 없으면요. 자유주의 신학으로 넘어갈 만큼 마가복음은 강력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부사가 뭐냐 곧 즉시예요. 영어로 이미디어틀리 곧 즉시(Immediately). 날에는 자기가 비리비리하고 또 그냥 시험 들고, 중하차하고 이런 잘못된 인생을 살았는데 마가복음을 기록하면서 아니야 복음은 즉시야. 음은 바로 순종해야 돼. 그래서 마가복음 군더더기가 별로 없어요. 16장까지 있으면서 아주 확실하고 분명한 선포를 하고 있는 것이에요. 리고 더 중요한 거 이제, 중요한 거는 누가 닥터 누가 11절에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누가 함께 있다고요 누가 만나고요? 그 니까 이 누가는 시작부터 끝이 한결같은 인생이었어요. 오늘 이 일부 예배 나오신 여러분들과 저는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시종일관(始終一貫) 한결같은 시들시들하지 아니하고, 새싹 신앙부터 시작해가지고 늘 푸른 상록수 신앙의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 하는, 근데 누가가 어떻게 이렇게 처음 누가 잘 감당할 수 있었는가? 누가의 직업이 뭐라고요? 다시 누가의 직업이 뭐라고요? 의사, 의사 의사는 정치한 사람들입니다.

정치(精緻)하다는 말은 정교(精巧)하고 치밀(緻密)합니다. 정교하고 치밀하지 못하면 어떻게 수술을 하겠습니까? 어떻게 그 환자들을 고칠 수 있겠습니까? 근데 이 정치하는 사람들이 갖는 약점이 하나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전체를 못 보는 거예요. 마이크로 한 사람은 메크로가 안 되는 거예요. 또 메크로 한 사람들은 마이크로가 부족할 수 있는데 놀라운 거는 누가는요 역사학자였어요. 그래서 여러분 누가가 뭘 썼어요? 누가 복음 쓰고 누가가 또 뭘 썼어요? 사도행전을 바울이 썼어요. 제가 우리 제자 훈련할 때 그런 얘기를 합니다. 사도행전을 바울이 썼다. 그러면 나는 돌아가시고 싶다고,,, 사랑의 교회 성도들 수준에서는 사도행전을 다시 누가 썼다고요? 누가가 썼어요. 사도행전은 성경에 나타나는 역사 행전이에요. 역사적 통찰력이 막강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었어요. 그 정치하고 치밀하고 똑똑하고 섬세하고 디테일한 그 누가가 전체 역사를 메크로 하게 보고 하나님 나라 전체에 대한 눈이 열린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 나라 역사의 전체의 눈이 열린 이유가 뭘까? 제가 한번 묵묵하게 생각해 봤어요. 아마 누가는 요한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예요. 요한은 누 누가에게 아마 많은 말을 했을 거예요. 그게 요한복음을 통하여 확정된 것이니까. 그러니까 복음의 진리 누가 닥터 누가 의사는 의사이지만 정치자지만 전체를 보는 눈을 가졌는데, 그 요한이 말한 신비한 복음의 능력이 돼서 이 누가가 눈이 열려가지고 그 눈이 열려서 성령의 역사에 충만해가지고 하나님께서 누가를 쓰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역사가 충만하다고 했을 때, 누군지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러고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암송할 때 하는 것인데, 육신의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하지만 성령의 사람은 성령이 뭘 한다고요? 생각을 하는 거예요. 누가는 성령의 생각을 하니까 사도행전 1장부터 28장까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이 생긴 것이에요. 요한을 통하여 깨달은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이 뭐냐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의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신 이 말씀이 곧 뭐예요? 하나님이시더라. 그러니까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이 그리고 14절에 보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 되 우리 가운데 거하셨는데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까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되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복음적 진리와 성령의 역사에 눈을 떠가지고 성령으로 깨닫는 은혜와 진실 그래서 그 예수님이 뭐 은혜와 뭐예요?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러니까 그 누가가 깨달은 역사적 시각과 통찰력과 누가 깨달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뭘 깨달았는가? 요한이 깨달은 그 진리가 그대로 누구에게 연결이 되고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연결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태초의 말씀이 계시느라.’ 이 말씀이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시고 예수님이 천지창조에 동참하시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에 독생자의 영광이고 그 독생자의 영광의 핵심이 뭐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 그리스도가 은혜와 진리라는 것이에요. 누가는 여기에 대해서 저의 눈을 떴기 때문에, 누가복음도 마찬가지고 사도행전도 마찬가지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능력을 그 사도들의 그 어떤 그 본질을 계승을 한 것이에요. 너무 중요한 얘기인데 이 은혜는 뭡니까? 은혜는,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통한 선물이 은혜예요. 진리는 뭐예요? 이건 하나님의 뜻이에요.은혜가 선물이라면 진리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에서 우리가 눈을 열고 그 진리를 우리가 순종해야 진리가 진리 되는 것이에요. 이게 너무 중요한 거예요. 누가는 이 사실을 가지고 사도행전 전체를 쭉 써 내려가는데, 그럼 오늘날 여러분과 저는 누가를 통하여 한결같은 신앙의 진실을 가지고 시종일관의 능력을 받아야 되는데, 우리가 냄비 끓듯 왔다 갔다 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어벤다운 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너덜너덜하지 아니하고, 신앙에 시들시들하지 아니하고 한결 같은 걸 쭉 유지를 하려면 적어도 누가가 보았다. 누가 누가는 나와 함께 있느니라. 바울은 사도 끝까지 갈 수 있는 그 안복이 뭘까 오늘 누가 깨달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사도행전을 서 기록해야 우리도 같이 내 기록해 가야 된데 그게 진실이에요. 그리고 진실은 우리가 순종해야 우리 것이 되는 것이에요.

제가 이 말씀을 왜 드리느냐 하면 제가 요즘 우리나라를 가만히 보면요 진영 논리가 복음적 진실을 뛰어넘어버렸어요. 적어도 사랑의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라면 명절이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히 보면서 우리 민족의 역사 뜻으로 본 한국 역사, 그런 말이 있지만 우리는 복음과 진실로 본 한국 역사에 대해서 눈을 열어야 되는 것이 다시 진영 논리가 복음적 진실을 뛰어넘지 아니하고 복음적 진리가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 우리 한국교회를 향한 우리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복음적 진실이 뭐예요? 건국 누가 하게 하신 거예요. 독립투사들이 애를 쓰긴 했지만 그거는, 그거는 메인이 아니에요. 건국은 누가 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하신 거예요. 6 25 전쟁 누가 막아주셨어요? 저 공산당 비 진리 저것들이 내려와 남침을 했는데, 다시 누가 막아주셨어요? 인천 상륙 작전 누가 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하신 거예요. 이게 복음적 진실이에요. 그 외에 나머지들은 다 우수마발(牛溲馬勃)이에요.

여러분, 제가 말씀드렸잖아. 고려는 귀족의 나라 불교가 핵심, 이조는 사대부의 나라 양반의 나라 뭐가 핵심이에요? 유교의 핵심, 그러나 대한민국은 처음으로 백성의 나라 기독교가 정신이 된 나라인 줄 믿습니다. 이게 복음적 진실인 거예요. 그런데 내가 유튜브라든지, 한 번씩 보면요 황모모란 이상한 역사학자들이 나와는 순 거짓말들이에요. 전부 다.. 완전히 진영 논리야. 여러분들 속아 넣으면 안 돼요. 여러분 다른 거 아무리 얘기하더라도 우리나라가 건국이 안 됐으면 다 꽝이에요. 하나님이 이 민족을 건국시켜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복음적 누가는 이런 역사적 통찰력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도 복음적 진실을 얘기하고 그렇게 얘기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진영에 안 맞다고 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 교회는 그런 거 많이 없는데요. 어떤 다른 데 가보면요 이 좌파 진영 논리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얘기하면요. 얘기하면 그냥 나가버리는 거예요. 이게요. 진실이 복음적 진리가 자기 신념을 이기지 못한 거예요. 오늘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은 복음적 진리가 여러분들의 삶의 이 진영 논리를 뛰어넘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우리나라는 뭐라 뭐라 뭐라 해도 공산주의에 안 된 것이 진짜에요. 역사가들은 늘 얘기합니다. 우리 남 잘 되는 거, 우리 막 우리 왜냐하면 왜 우리는 남 잘 되는 거, 우리 속에 좋아하잖아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나라에 우리나라는 미국 같은 큰 나라들은 남 잘 되면 같이 박수 치고 같이 잘 되는데 우리는 한반도 내에서 수천 년 내려오면서 옆집에 숟가락이 뭐가 있는지 다 알기 때문에, 저거 나와 비슷한 인간인데 잘 돼 그러면 그냥 무고하고 이런 게 이런 게 역사적 명맥이 흐르는 게 많이 있어요. 그래서 유명한 얘기가 있어요. 대한민국 어떻게 공산화 안 됐나? 그게 기적이고, 우리는 다 공산주의, 공산주의 될 만한 그런 사회주의적 성향이 우리에게는 충만한 나라에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고소가 고소, 고발이 얼마나 많아요? 공산당은 선전 선동의 규제예요. 자식도 부모를 고소하는 게 그게 공산주의 흐름이에요. 문화혁명을 보세요. 과거에 북한에 침략해가지고 남한 와가지고 다 점령해가지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한번 보세요. 가족을 죽이고, 부모를 고발하고, 근데 중국은 진짜 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얼굴이 동글동글 하잖아요 중국은 그런데 그 중국이 공산화됐다. 이걸 또 기적이야 이게.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야 정말, 왜냐면 제가 이 말씀 들은 한국교회 교회 내에도 어연 논문이 너무 많고 한결같지도 못하고 우리 안나가 가난한 교회 성도들을 만든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교회 내의 좌파 세력들이, 교회 내에 이런 논리를 가지고 교회를 찌르고, 목회자가 부자가 많죠. 그래도 그 목회자를 찌르고 난리 치고 이렇게 해가지고 교회가 어려워져 가지고 교회가 어려움당한 게 너무 많다 이 말이에요. 우리는 복음적 진실에 눈이 열려가지고 여러분 진리는요 순종해야 진리가 되는 거예요. 은혜는 하나님이 주권적 역사를 주시는 것인데, 진리는 우리가 순종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 복음적 진실에 눈을 떠가지고, 여러분 공산주의 사회는 3%만 5%만 난리 쳐도 그 사회는 공산주의가 되는 거야.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은 힘이 없어요. 3% 5%가 똘똘 뭉치고 선전 선도에 능하고 그다음에 이 전투력 강화하고 이러면요 감당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유일하게 감당할 사람이 한국 교회예요. 만약 한국교회 없었으면 우리 진짜 어려워질 뻔했어요. 진짜. 그러니까 여러분 정신 바짝 차리고 나는 일부 예배에 이런 설교를 해도 아무도 안 나가는 거에 대해서 할렐루야. 감사. 아마 아마 아마 아닙니다. 주는 경우 아마 3~4부 때는 한두 번 나갈 수 있을 거야. 아마 내가 볼 때 난 지금도 선연이 기억해요. 명절이니까 이런 얘기 맙시다. 선영이 국가보안법 폐지, 그때 막 심각해졌을 때, 내가 부임한 지 얼마 안 됐어요. 한 2~3년밖에 안 돼가지고 막 힘들었을 때 교회는 불처럼 부흥하고 그랬을 때, 옥목사님이, “야 옥목사 이럴 때 교회가 바로 가야 안 되겠나?” 맞습니다.

그래서 임시당회를 소집해 가지고 우리 교회는 지금 남북이 대치된 상태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가 바로 가는 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 폐지는 우리 교회 당회가 정식으로 우리는 폐지하는 거 반대합니다. 그게 그때 우리의 결론이었어요. 그래갖고 제가 일부 예배 마치고 광고 시간에 우리 국가보안법 폐지는 지금 남북 대치된 상황에서 만약에 폐지돼가지고 공산당이 이 사람들이 막

다 작당을 해가지고 난리 치면 아무도 못 막으니까 국가보안법 폐지는 지금은 시기상조 안 된다고 하니까요. 일부는 박수를 하더라고 특별 광고 2부부터 응응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사람이 나오기 3부부터 많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 사업을 그날 제가 그 광고하고 우리 교회 한 한 20~300명 교인들을 놓쳤어요. 내가 지금도 가슴이 너무너무 아파. 한 주에, 여러분, 다시 얘기합니다. 복음적 진실이 진리가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다른 거 다 필요 다른 거 복잡한 얘기 많아요. 다 있겠지만 우리나라 건국 안 됐으면 우리나라 이미 공산화 벌써 됐어요. 아시겠어요? 사실 건국 누가 있습니까? 6.25 누가 이기게 했습니까? 지금 휴전선 저거 안 무너지는 건 누가 하시는 겁니까? 물론 국가가 애써 수고하지만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셔서 서 안 뚫린 거예요. 사랑의 교인들은 적어도 여기에 있어서는 확고하게 신념을 갖고 있어야 되는 거예요. 아멘. 여러분들이 기도하셔가지고 우리 마가처럼 회복되거나 아니면 누가처럼 끝까지, 끝까지 데마처럼 처음에는 화려하지만 중간에 나가떨어지는 그런 분들이 아무도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마지막 부분 보니까 데마, 마가, 누가 얘기하고 난 다음에, 쭉 이제 끝인사에 19절부터 브리스가와 아굴라 및 오네시보로 집안의 문을 쭉 해가지고 사람의 눈이 쭉 나오죠? 브리스길라, 아굴라 오네시보로 모든 사람들 바울의 동력 자 이름이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 영적 거상도 동지들이 없으면 영 가족이 없으면 끝까지 갈 수가 없습니다. 디모데, 누가, 마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리고 바울은 좋은 믿음의 후배를 남겨가지고 교회를 돌볼 일꾼들을 세워서 남겼습니다. 누가를 남겼고 남겼습니다. 우리 다 함께 끝까지, 지금 아시아 올림픽 하고 있는데, 올림픽 보고 잘하네. 이러지 말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나도 신앙생활의 챔피언이 돼 봐야지’.

여러분 신앙생활의 챔피언이 될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랜만에 복음적 진실이, 진리가 세상 진영 논리를 뛰어넘기를 이렇게 마음이 결심하고, 우리 누가처럼 역사적 통찰력과 성령의 능력을 의존해 가지고 승리할 수 있도록, 오래간만에 아주 옛날에 불렀던 찬양, 우리 30~40년 열심히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 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 no turning back, no turning back.~~~
주님 뜻대로 살기로 우리가 주님의 온전하시고 완벽한 뜻이 있는 거예요. 살기로 그다음 뭐예요? 노 터닝 백, 노터닝 백, 뒤돌아서지 않겠네 끝까지 가겠네. 이 찬송 흐름은 어떻습니까? 제가 1부는 엄청 좋아할 걸 제가 압니다. 근데 4부는 이 찬송 잘 모를 거예요. 이게 우리 옛날 주님 뜻대로,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도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주님 뜻대로 할 뒤돌아서지라. 뒤돌아서지 않겠네... 할렐루야. 누가 뭐라던 간에 이 역사적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는 주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약
우리가 마음 둘 곳 없는 세상에서 포부의 수레를 그리스도께 맡기고 전적 위탁하여 속사람이 강해지는 평생이 되고, 데마처럼 속사람의 능력이 허약해가지고, 마가처럼 자기만 생각하다가 세상을 사랑하여 중도에 넘어질지라도 회개하여 일어나 끝이 좋은 누가처럼 시종일관 한결 같은 역사적 통찰력과 성령의 역사와 복음적 진실에 눈을 뜬 상록수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포부의 수레를 그리스께 전적으로 매게 맡기고 날마다 주님께 전적 위탁하며 속 사람이 강해지는 자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가 함께 있어서 도움을 주기를 원했다. 그 이유로는 여러 사람이 그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렸다'고 말한다. 이 현세를 사랑하는 것은 종종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도에서 떠나는 이유가 된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떠나갔고 또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 누가는 계속해서 바울과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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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9월 17일)
제목: "고통에서 믿음으로 가는 길"(1부)
말씀: 마가복음 5:21~24, 35~43
찬양인도: 쉐키나(이다니엘 부목사님),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장은진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시지 삐레이라 깔데스 목사님)-초빙-브라질 멕켄지장로교단 총재(1부)-통역 조영규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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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5:21~24, 35~43,
*마가복음 5:21~25,
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마가복음 5:35~43,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좋은 아침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이곳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함께 묵상하는 것이 저에게는 큰 영광이 됩니다. 먼저 감사드리는 것은 우리 오정현 목사님 저희를 이렇게 정중하게 환대해 주시고, 또 이렇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먼저 저는 매켄지 장로교 대학교 153년 된 이 대학교의 이름으로 여러분들한테 문안을 드립니다. 그리고 특별히 저희가 150주년을 맞이해서 맥켄지 장로대학교에서는 오정현 목사님에게 명예박사를 받을 수 있는
그런 귀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오정현 목사님도 저희 매켄지에 대한 일원이십니다. 아멘.

저는 참 먼 데서 왔습니다. 불행하게도 저는 여기 한 분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리오데 자르에서 전용 비행기를 타고 뮌헨을 거쳐서 이에서 다시 이렇게 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동안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도대체 여기 와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때 저에게 확 떠올린 것은 바로 다름 아닌 그것은 바로 나, 역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제자이기 때문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기 때문에 일맥상통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로 하여금 이것을 목격했고 제가 아무도 모르는 사람 같지만 사실 이것이 저로 하여금 이 강단까지도 친근함을 주고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눈 것이 우리가 한 형제임을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유, 이 한 가지 때문에 우리는 이 자리에 함께 모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그 삶에 대해서 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에 대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해변을 중심으로 해서 사역하시고 여러 가지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예수님은 이 땅의 생애에 있어서 갈릴리의 그 광경을 통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활동했고 사역했던 것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귀신 들린 자를 치유해 주셨고, 그 예수님이 치유한 것 때문에 예수님은 질책을 받았고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 전에는 이 사람들이 돼지 떼를 잃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람들보다 돼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내가 여기서 자리를 옮겨야 되겠구나!...

그리고 내가 꼭 내가 만나야 할 사람들, 나를 만나야 할 사람들을 향해 내가 말하겠다. 바로 오늘 이 장면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죽음을 맞이했으니까요. 여러분이 살아있는 동안에 우리 주변에 있어 우리는 죽음을 늘 대면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여기도 분명히 많은 성도님들이 죽음에서 또 죽음 같은 그런 상황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 이유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삶속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이 우리를 죽음으로 끌고 갔으며,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앞에 만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를 받게 되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바로 오늘 읽은 본문에서 바로 죽음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던 그 장면입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으로 찾아간 사람입니다. 먼저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사람은 지금 말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환란 속에 처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사랑하는 딸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외향적이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고난과 환란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느 신학자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에서 오신 것은 단순히 우리의 고통이 사라져버리고 우리의 모든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우리가 고통과 환란과 역병을 통해서 어떻게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 생명의 길로 찾아가는 것인지, 인도되는 것을 밝혀준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환란과 고통은 우리의 인생을 허무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로 하는 환란과 역경과 고난은 생명을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알아갑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이 환란과 역경 속에서 예수님 앞에 더욱더 가깝게 나가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 김장 이문은 바로 그 회당장입니다. 그 회당에서 리더급 되는 야이로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종교인이고, 그 주변에서는 인정받는 사람이고, 그는 월납 사람으로서 정말 율법을 잘 아는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심지어는 자기의 위험과 자기 자격과 자기의 체면까지도 다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그는 믿었습니다. ‘나는 이분을 꼭 만나야 된다.’ 기쁘게 만나야 된다. 용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은 늘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담대하라 용감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늘 우리 얘기한다. 담대하고 기다려라.

여러분, 이 담대함이 사실 우리는 표현되어지고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야이로는 자기의 불안과 환란을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세 가지 모습으로 드러냅니다. 오늘 저 마침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제 야이로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여러분 누가 꿈을 꿨습니까? 이 사람 겸손한 사람입니다. 누가 무릎을 꿇습니까? 자기가 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무릎을 꿇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협과 능력이 확실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사위로는 예수님과 대화를 했습니다. 이 야이로는 적극적으로 예수님과 대화를 했습니다. 그는 한 아버지로서 죽어가는 자기 딸의 그 형편을 인정했고, 그것을 이실 직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 주실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가정에서 자기 가족 중에 자기 딸의 죽음에서 살아나야 하는 일을 직시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예수님께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주님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주님 앞에 드러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내가 이토록 주님을 간절히 찾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이렇게 주님을 만나야 하고 드러내야 할 말씀의 이유는 무엇인가? 야이로는 예수님을 좋아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인정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찾아가고, 예수님과 대화하는 것은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자기의 딸이 살아날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조심해야 될 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서 이것은 좀 부정적인 생각과 힘든 건데 이것은 어려운 건데 이런 무의식적인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야 합니다.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 주변의 환경과 역경을 통해서 생각합니다. 나한테는 도무지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길이고, 나한테는 일어날 수 없는 길이며,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 보다. 라고 하는 그 생각을 없애야 합니다.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믿음은 삶까지도 움직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기의 고통과 환란을 인정하고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담대하십시오. 그 싸우기 전과 너무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우리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마당을 통해서 이 장면 속에서 이 사람 통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그를 인도하는지 아주 그것을 단계적으로 잘 보여주고 계십니다. 35절 이하부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그때서부터 예수님은 이제 야유의 집으로 사랑하시고 그 집에 있는 모든 문제를 변화시키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잘 아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저쪽 편에서 배를 타고 오셨습니다. 해변을 내리셨습니다. 그때 야이로는 그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는 잘 알다시피 야이로는 정말 예수님을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의 길을 향해서 가고 있는 도중에 이 중간에 정말 불청객이 뛰어들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은 예수님은 마침내 그 회담장 야이로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에 들어가 있는데 여기에 보면 거기에 벌써 어떤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야이로의 집에 벌써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그 야이로의 집에 있었을까? 저는 잘 모릅니다. 우리는 그 이름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 아이로와 그 가정과 굉장히 밀접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담대 하라! 그리고 믿어라! 그리고 그렇게 확신적인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야이의 집에서 온 그 전달자는 얘기 했습니다. “예수님을 더 이상 괴롭히게 하지마! 그렇게 하지 마라 더 이상 예수님을 귀찮게 하지 마라. 당신의 딸이 이미 죽었다.”

이것은 사탄의 공격이요 이거는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의 그 간섭에 대해서 우리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도대체 누굽니까? 우리가 누굽니까? 말하기는 이제 협상 방법이 없습니다. 이젠 난 안 됩니다. 당신이 누구 길래? 이런 확신이 당신의 경험이 얼마나 많길래? 이거는 안 돼. 나도 해봤어 이제는 이거는 안 되는 일이야 세상을 봐 이것을 봐 이건 도무지 안 돼 당신이 보내신 누구 이길래?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또 여기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한테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히지 마라. 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예수님을 생각해서 얘기한 것처럼, 예수님을 귀찮게 하지 마라 당신은 벌써 이미 다 끝났다 하고 얘기를 하지만은 이것은 오히려 예수님이 마치 예수님을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어떤 능력과 한계성을 알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거짓말입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완전히 상실한 것으로 하나님의 개입을 완전히 폐쇄한 것이며 그건 거짓말입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 것들이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이제는 제가 뭐가 바로 진짜가 뭐가 정말 정말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왜? 예수님이 그와 함께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일어나는 일들이 아직 그 사건이 우리에게 부정적이고 그것이 불가능하게 보여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하리라. 36절에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야유에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5:36,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그것이 진짜입니다. 뭐가 진짜입니까? 담대하라. 믿기만 하라. 그대로 한다고 하시는 그 말씀이 정말입니다. 더 계속해야 할 것은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지금 우리의 머리를 얘기합니다. 니가 이해되는 것만 믿어라. 그리고 나의 경험을 봐라. 경험으로서는 무덤에서 돌아오는 사람이 없다. 우리의 감정은 완전히 우리의 감정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상황과 분위기 모든 것들이 우리를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바로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담대하라 그리고 믿어라! 내가 바로 너의 오직 한 소망이다. 내가 너의 길이요. 생명이다.”

이것은 우리가 브라질에서 부르는 찬양 찬송입니다.
♬절대로 낙심하지 마라 하나님의 모든 것을 얘기하신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기를 하나님이 날개로 너를 덮어주신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모든 것을 드러내신다. 하나님께서 너희의 고통 속에서 모든 것을 지켜주신다 내가 사랑으로 너를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널 지키실 것이다. ~~♪

그러나 여러분들 기억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들어가셔서 그 집에서 모든 사람을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삶속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들까지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삶 속에서 우리가 정말 밖으로 버려야 될 것, 벗어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회담장 야이로의 집에서 어떤 일들을 하셨습니까? 37절에 보면 예수님은 그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동반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5:37,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그 모든 무리들은 그 집에서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 집에 밀접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도 다 나라라고 했습니다. 거기서 모든 영향을 주는 사람들도 다 나가라고 했습니다. 내용 그 주님은 오직 그 야이로와 아내 그 부부와 그리고 자기의 새 제자 밖에는 없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자치 장례식은 다 끝났습니다. 이 구원의 핵심 구원의 다이아몬드 같은 핵심은 바로 죽음에서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간증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고, 어떻게 교회 생활을 하게 됐는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간증을 하다 보면 이런 것들로 그냥 우리는 습관화돼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전혀 새로운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또 이 중에 누군가는 오늘서부터 새롭게 정말 새 삶으로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모여 있는 우리들도 때로는 우리 가정을 우리의 삶을 청소해야 되고, 정리 정돈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길로 가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에선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랑의 권세를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그 야이로의 딸이 있는 곳에 들어오셨습니다. 그 두 손을 잡았으니 달리다굼! 이라고 얘기하셨습니다. 그 소녀는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12살 먹은 사춘기의 소녀가 일어났습니다. 모든 사람이 놀랐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참 경이롭고 거기에 대해서 정말 그 환희를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죽음의 마지막 단어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남아야 할 간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 새 생명을 얻었고, 그 구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번에 영생을 갖고,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이 우리의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성도의 자기의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죽음을 향해서 창조되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은 여기서 마지막 장면을 보면 얼마나 친밀하시고, 아주 개인적이고, 적극적이었는지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말했습니다. 시편 25편 14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시편 25:14,
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유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오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주님은 친밀하십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예수님과의 그 친밀한, 긴밀한 그 교제를 누리셔야 합니다. 잘못하면 우리도 이 야이로 회장단 집에 있었던 그 죽음 때문에 모이고, 죽음 때문에 말하는 사람들처럼 살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돕는 성도임에도 불구하고 늘 부정적으로 죽음에 쫓기고 있고 그런 생각을 갖고 살게 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여기 야외 회담장 집에 모여서 정말 통곡하고 울고 괴로워하고 하는 거 우리는 늘 우는 걸로만 표현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긴밀한 교제의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다 바깥으로 나가게 했습니다. 이제 그 과정에는 그 가정 사도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제자들 또는 예수 그리스도 일도 있고 새 생명을 찾는 사람들만 거기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이제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사람들만 남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를 죽음의 상황에서 끄집어내어서 우리로 하여금 생명 새로운 삶을 살라고 그렇게 인도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야 할 믿음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의 가정을 청소해 주십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은 꼭 필요한 사람들을 우리 가정에 머물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죽음은 쫓겨났어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생명을 주기 위함이며 풍성한 생명을 주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요약
죽음 같은 고난이 닥쳐올 때,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과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불신을 몰아내고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낙심하지 말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야이로는 어린 딸의 죽음이라는 심각한 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해 예수님께로 나아왔다. 이 문제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때문에 야이로는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주님이 오셔서 손을 얹으시기만 하면 죽은 자신의 딸이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도 기도하며 믿음으로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야 한다. 이 길이 곧 문제 해답의 길이다. ‘달리다굼’의 의미 ( 5:41-42 )이 말은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는 뜻이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이적 중에서 죽은 자를 살리신 최초의 기적이다. 성도들은 믿음을 통하여 핍박과 환란 중에 도우시는 주님을 경험함으로써 위로를 받고, 부활의 소망으로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 나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육체의 죽음 후에는 부활이 있고,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리는 신적 권능의 소유자이시며, 예수님 안에 있는 자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의 부활을 암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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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9월 3일)
제목: "세상을 바꾸는 기도"
말씀: 다니엘 1:19
대표기도: 조충현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영광찬양대(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ㅡ

*다니엘 1:19,
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7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다 주께서 쫓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8 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마는.
9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10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12 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1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내렸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달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5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 우리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16 주여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따라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들에게 수치를 당함이니이다.
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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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기도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한 이유 중에 아주 제 마음속에 좀 너무나 안타까움이라는 그게 뭐냐면, 우리가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세상이 우리를 바꿉니다. 맞습니까? 우리가 세상을 바꿔가는 세상이 우리를 바꾸는 것이고 그래서 이건 좀 간절함을 가지고

오늘 성경에 보면 시대를 바꾼 기도가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이 갈수록 밑에서 금송아지만 그러고 난리 났을 때 그 다 이스라엘 백성의 장래가 다 끝난 겁니다. 우상 섬기고 그럴 때, 그런데 내 생명을 거두가시더라도 우리 민족, 사회, 잡고 목자의 심정을 갖고 기도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지형도 바뀐 것입니다. 모세가 민족과 세상을 바꾼 것입니다. 그 아압왕의 확정으로 3년 반이나 비가 오지 않고, 그 핍절한 상황 가운데서 갈멜 산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정말 목숨 걸고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사명감이나 피고 지는 그 핍절한 상황이 해결되는 영적 피폭 제라는 걸 적용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피가 땀이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될 정도로 쓰여서 기도하십니까? 주전과 주후가-BC가 AD가 바뀌게 된 것입니다. bc와 ad가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이처럼 모여서 기도하고 성령에 임하셔서 기도하고 그렇게 돼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되고 공교회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세상 역사가 바뀌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교회 역사를 보면 모라비안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모라비안, 진젠도 백작과 함께 평신도들이 이분들이 역사가 1727년에 독일의 헤마른 후트라는 거기에서부터 시작이었고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러분 1727년부터 정확히 말하면 1827년까지 120년 동안 하루도 까지 자 자기의 삶의 부족함이고 연약함이 있어도 상관이 없이 세상을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죽으라고 기도해가지고 그 세계 선교를 향한 기도가 세계 선교 역사의 모든 시험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 그 결과로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카리브, 온 지역의 선교사 부서 심지어, 그린랜드까지, 빙하에 역시 그린랜드까지도 선교사들이 가리 정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쟁의 역사, 6.25 전쟁의 역사를 바꾸는 초량교회 기도회가 있습니다. 1950년 8월 30일경 지금 비슷한 시기입니다. 낙동강 전선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 때에 부산 초량교회에서 구국기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초량교회 담임 목사님이었던 한상동 목사님과 고려신학교 교장이었던 박윤선 목사님이 전국에서 피난 오신 목사님들이 함께 모여 모여가지고 목회자기도 집회, 피난민 목회자기도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때 목사님들은 6, 25 그 동란을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한 진노의 칼이라고 하면서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하기도 했습니다. 기도에 사흘째에는 교회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생각 며칠 기간 예정을 넘겨가지고 기도가 9월 15일에 마무리가 보름 이상 마무리 했는데 9월 15일에 마무리가 됐는데 기도회가 마치게 된 그날 부산 전역에 호회가, 신문 호회가 배포가 됐는데 인천 상륙작전 기도회가 지 며칠 뒤에 더글라스 맥아더장군이 인천 상륙 작전을 감행했고 그것도 기도회가 그걸 목표로 한 성공했다. 그런데 졸지에 보급로가 차단된 공산군이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해서 그리고 인천 상륙작전은 7일 만에 밤낮 없는 회개의 기도가 있은 후에 3일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낙동강 전선에서 공산군이 패배하면서 전세가 역전됐고 이달 9월 28일 겨울을 수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이 9월 3일이니까 이 기간 동안에 부산 초량교회가 에스티브를 보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기도가 세상을 바꾸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다니엘서 9장은 세상을 바꾸는 기도에 관한 전형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강력한 기도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집에 가셔서 본문을 반드시 큰 소리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본문을 큰 소리로 여러분 한 세 번만 큰 소리로 읽으시면 기도의 능력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예배를 마칠 때는 오늘 요절이 19절인데 19절을 제가 주요 1면에 세워놨습니다. 19절인데 여러분들 대한민국 교회가 있는 기도 자원 중에 하나가 주일 3창이 있어요. 주 3창의 시조가 다니엘인 줄 아십니까? 모르셨죠? 제가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에요.

*다니엘 9:19,
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다니엘 위주의 우리 교회가 주에서 3창을 시도하고 다니엘이다. 이런 거는 사랑의 교회 강좌에서 나오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얘기했잖아요. 성경에 롯도가 나오는 거 아니냐고. 기억나십니까?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말씀입니다. 이게 우리 교회 강단에서 이 전 세계에 없는 거에요. 그런데 성경에 주여, 3창이 나오는데 이 주의 3창의 시도가 다니엘이에요. 그래서 오늘 보십시오. 주여!!! 잠깐만 주여 뭐예요?

첫 번째, 주여, 들으소서. 두 번째, 주여, 용서하소서. 세 번째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Lord, hear me. Lord, forgive me. Lord, listen, think, and act).
-주의 이름을 위하여, 그래서 다니엘서 9장을 읽어 소리를 내어가지고 한 세 번 정도 읽으시면요. 하나님께서 기도의 능력을 여러분들에게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서 1장부터 9장 1절 19절까지 내용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마는 제가 딱 정리하면 1절부터 11절까지는 한번 보겠습니다.

*다니엘서 9장 1절부터 11절까지는,
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7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다 주께서 쫓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8 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마는.
9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10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고백하는 내용이고,

*다니엘서 9장 12절부터 14절은,
12 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1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내렸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달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신가에 대한 내용이며

*다니엘서 9장 15절부터 19절까지는
15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 우리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16 주여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따라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들에게 수치를 당함이니이다.
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민족이 심판을 받긴 했지만 자인에게 낙심하지 않고 민족을 사랑하여 애끓는 심정으로 세상을 바꾸는 기도를 함으로 하나님의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는 이런 내용을 제가 그러니까 세 가지인데 하나 민족의 죄를 고백하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심판 앞에 납작 엎드렸고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총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을 가지고 은총에 대한 기대를 갖고 세상을 바꾸는 기도를 하는 내용인데요. 큰 두 가지 축을 말씀을 드리겠어요. 큰 두 가지 축을 제가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 1:2,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2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 2절에 다니엘이 뭘 통했어요? 책을 통하여 통치 원전의 반역의 책을 통해서 그다음에 여호와께서 뭐예요?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다. 우선다니엘의 이 책은 다니엘의 삶을 붙잡아준 성경이었어요. 구약 성경이었어요. 그래서 다니엘의 모든 기도는 그냥 된 것이 아니라 성경과 함께 가는 기도였어요.

I.첫째 말씀과 기도가 같이 가야 세상을 바꾼다.
-그러니까 첫 번째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바꾸는 기도는 말씀과 기도가 같이 가야 세상을 바꾸는 것이에요. 무슨 책들입니까? 이게 구체적으로는 말씀과 기도와 가치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데 말씀의 깊이와 기도의 깊이가 서로 연계가 돼 있고, 말씀의 깊이와 기도의 깊이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깊이가 말씀의 깊이와 연결돼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어떤 말씀입니까?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신 말씀이에요. 다니엘은 철저하게도 한 손에는 예언의 말씀과 또 하나는 역사적 현실 앞에서 딱 부딪히고 있는 것입니다. 두 세계 가운데(between two or three), 예언의 말씀과 현실 역사적 현실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다니엘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적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하여 현실의 역사를 꿰뚫는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기도를 하는 것이에요. 특히 오늘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말씀을 통하여, 70년을 이야기를 했어요. 성령의 감동과 환상으로 예레미야에게 알아주신 것을 다니엘이 깨닫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징계수를 심판의 연수를 깨닫게 된 것이에요. 2절 뒤에 그렇게 나와 있잖아요?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이 말씀은 예레미야 29장 10절 다 같이 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9:10,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딱 70년 차면 예레미야에게 행하신 이 말씀이 이 말씀을 다니엘이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여기 70년이라는 내용은 7과 10의 합성어죠? 7과 10은 성경에서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포로의 시기가 끝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이때가 성경학자들이 다니엘이 이때가 아마 앞으로 한 66년쯤 지났을 때, 그래서 한 3~4년 지나면 이제 회복의 때가 올 것이다. 이렇게 다니엘이 깨달은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이 예언의 말씀과 우리가 지금 맞닥뜨리는 현실 역사적 현실, 시대적 현실, 이 두 가지 가운데 우리가 회복을 하고 부모를 위해 정말 기도를 하고 있는데, 이것이 오늘 우리 가운데서 어떻게 이것이 확인돼야 할 것인가? 남들이 뭘 하든 간에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깨달아지고, 사모하게 되고 우리 성도들하고 같이 이것이 공유될 때에, 이것이 충만하게 될 때 하나님은 일하실 것이다. 그런 마음에 간절함이 생각 이게 뭐냐 하면 올해가 휴전 정전 협정 오늘 53년 7월 27일생 올해가 만 70년이에요. 2023년 70년이 되어져 제 마음속에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큰 울림과 떨림이 있었어요. 오늘 저와 여러분이 제대로 오늘 이런 마음의 손을 가지고 말씀을 중심으로 기도하게 된다면 진심으로 마음을 집중하게 된다면, 우리의 마음속에 이것이 충만해져가지고 간절함으로 표현이 된다면, 우리 성도들이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저와 여러분들이 저 전력을 투구한다면 반드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에요?

다시 반드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에요. 여러분과 저에게도 다니엘이 깨닫고 경험했던 이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국가적으로 하나님 어떤 역사가 시작 지금 사회적인 여러 가지 상황을 보고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저는 유진 피터슨이 얘기한 것을 말씀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정치보다도 강하고 언론보다도 강한 줄로 확신한다. -유진 피터슨-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에요. 세상을 바꾸는 기도는 오늘의 이 안타까운 현실을 극복하게 만드시는 것이에요. 다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에요. 지금 우리는 말도 안 되는 프레임으로, 거짓으로, 진영주의로 온통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근데 저와 여러분들이 이와 같은 세상을 바꾸는 기도를 진실로 올려드릴 때에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역사가 현재 구체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말씀의 깊이와 기도의 깊이가 같이 갈 수 있습니까? 다니엘의 입장에서는 3~4년 뒤면 고난의 시기가 끝나겠구나. 그리고 마음 놓고 여유를 가질 수가 있는데 다니엘은 말씀을 깨닫고 그다음 3절, 4절에

*다니엘 9:3~4,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여유가 있는 거야. 3절에 내가 금식하여 배 옷을 입고 죄를 뒤집어쓰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기도합니다. 또 4절에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자복하며 기도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4절에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의 부르심이시다. 다니엘의 입장에서 이 본문을 볼 때 문제가 생겼을 때, 내 개인의 문제를 먼저 푸는 것으로 시작하지 아니하고, 마치 주기도문 가운데 주기도문에 이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나중에 나오잖아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주님의 이름이 거룩한 나라가 임하게 하 뜻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니까 일용할 양식보다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먼저 시작한 줄로 믿습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기도한 이유는 다니엘은 바벨론 대제국의 황제가 다리오가 그 당시에 최고죠. 다리오가 세상을 움직이고 다리오가 세상의 모든 권력자라고 생각할 수 있고 사람들은 그렇게 했지만 다니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계 역사를 통치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고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줄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진짜 영적인 시세를 언더스 더 타임 역대 42장에 나오는 것처럼 시대를 알아보는 시대를, 시대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세상적인 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게 된 것이에요. 이런 기도를 하게 되니까 뒤에 22절에 보니까 다니엘아 이제 내가 너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 하였느라

*다니엘 9:22,
22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
-하나님께서 오늘 이 아침 예배드리는 여러분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지혜와 충령으로 충분히 채워주시길 원합니다. 그것을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말씀을 더 깊이 깨달을수록 이해할수록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그 지혜와 충격을 가지고 우리가 더 기도하게 되고 그러니까, 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충령으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진짜 어리석은 사람이고 이런 문제를 앞에 놓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방향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 지혜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제가 오늘 이 말씀을 드릴 이유가 뭐냐 이 가을 사역 동 우리는 많은 말씀을 공부할 것입니다. 사랑의 교회는 우리 교회는 45년 동안 정평이 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는 게 어려워서 제자 훈련을 하고 우리는 QT를 강조하고 성경 대학을 하고 다락방 가고 또 주일 말씀도 제가 저의 기본적인 자세는 본문을 택해놓고 엉뚱한 얘기하지 아니하고 기본적으로 본문을 다 해석한다는 것이 저의 기본적인 마음이에요. 우리 교회 공단이 지금까지 그리 해왔어요. 그래 그니까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나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와 또 꿰뚫는 거, 또 나름대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어떤 은혜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이런 말씀을 깊이 알고, 나름대로 45년 동안 우리 중직 자들 많이 얼마나 말씀을 훈련받으셨나요? 근데 결사적으로 기도가 따라가지 않으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에요. 그게 이제 그게 이제 우리 우리의 어떤 면에서 우리의 인간성에 좀 부족함이에요. 그러니까 절박함과 간절함이 뿜어져 나와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한국교회에 많이 성경을 많이 공부했던 분들이 정말 다니엘처럼 베옷을 뒤 집어 쓰고 그다음에 전력 투구해가지고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보다도 하나님 문제 앞에 이 시대적인 문제 앞에 결사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시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절박함이 약한 거예요. 그래서 뭐 남들은 뭐든 뭘 하든 간에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토비새를 하고 청계산 기도회를 하고, 특새를 하고 그런 거 안 해도 괜찮아요. 우리 교회는 그런 거 안 해도 그냥 신앙생활해요. 이게 절박함의 발로에요. 절박함에, 만약에 초랑 교회 그 70년 전에 초랑 교회 절박한 기도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그 기도의 결과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을 했는데,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됐겠어요?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와 베트남의 보트 토크라는 이거는 게임이 안 될 거예요. 최소한 몇 백만 명은 죽었어요. 우리 목사님, 왜 또 저런 말씀을 하시나?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아직까지 기도의 절박함이 좀 약하다고 생각해요. 말씀의 깊이만 있고 강력한 절박한 기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영적인 시체와 같고 균형이 잡히지 않는 것이에요. 말씀에 거하고 기도의 절박하고 그것이 표현된 것이 토요일 새벽 예배나 특새(특별새벽기도히)나 청계산 기도회나, 이 그래서 저는 국밥은 따로 국밥을 좋아하지만 기도와 말씀은 따로따로 하면 안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이 있으니까 모세가 시내 산에서 생명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것이고 엘리아가 갈멜산에서 목숨을 걸고 기도를 하는 것 역대 24장에는 아사 왕이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나니까 그 말씀을 중심으로 해가지고 말씀을 새롭게 해가지고, 여호와의 영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를 도와줄 자는 주님밖에 없사오니 주님 우리를 도와서 절박한 기도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히브리서 5장 7절 너무나 놀라운 기도 예수님의 기도 히브리서 5장 7절 다 함께 읽겠습니다.

*히브리서 5:7,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응답하시는데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이 결박한 기도가 너무 심각하니까,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심한 눈물로 간구와 소원이 되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여러분 시대적인 상황에서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어떻게 사실 거예요? 그래서 저는 우리 10월 23일, 원래 우리가 해야 10.23, 우리 한국교회 선교 10.23, 있는데 10월 9일부터 또 강단기도 하려고 합니다. 생각하고, 말씀의 깊이와 기도의 깊이가 같이 가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번에 교역자 수양회를 하면서 우리가 깨달은 것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근데 산업화 민주화 다 됐다. 이런 얘기도 많이 하고, 1945년도에 해방하여 독립을 취한 나라 치고는 다른 나라를 하고 유일한 나라로 발전했다 그러는데 이게 어떤 점가하면 60대 이상은 60대 이상의 분들은 여러분과 저는 태어나기를 후진국에서 태어났어요. 맞습니까? 진짜 후진국으로 태어났어요. 내가 한번 얘기했죠. 저는 어릴 때 버스가 한 번 지나가는 거 그거 구경하는 것이 내 인생의 낙이었다니까, 버스가 지나고 나면서 막 기발 냄새가 나고 냄새를 맡고 그랬어요. 그게 근데 40대 50대는 중진국에서 태어났어요. 개발도상으로 중진국에 태어났어요. 그리고 지금 20대 20대 30대는 선진국에서 태어났어요. 이게, 이게 완전히 달라요. 이 종자가 달라요. 종자가. 지금 우리 10대 20대 애들은요? 유리문 앞을 지나가다가 서, 이래요. 왜 이러느냐면 스마트폰 이러면 다 해 때잖아요. 그러면 문 앞에 서 하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아요. 우리 교회도 이제 앞으로 그럴 거야. 우리 교회에 실제 집회가 들어. 이러면 우리 교회 뭐야 역사 우리 교회 장래 우리 교회 비전 다 다 나오게 될 거에요. 앞으로 여기가 다 마무리 될 거에요. 걔네들은 그렇고, 이제 근데 60대 이상은 스마트폰 이거 하고 있나 이런 세대를 다 세대가 초월되고, 모두가 다 하나 되고, 이스라엘은 세대 차이가 없다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러분 세대가 달라도 소홀할 수 있는 그래서 제가 디지털 디지털에 관한 10대 시대들은 아이들은 디지털 원주민이고, 무려 60대 이상은 디지털 이방인입니다. 우리는 이방인 민족이에요. 한 집안에 이방 민족이 같이 사는 거예요. 이거 어떻게 한데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이런 세대를 초월하여 합심해서 기도하면 세대 차이가 없을 줄 믿습니다. 말씀 외에는 다른 길이 없어요. 그래서 성경 에베소서 6장에 보면 영적 전쟁에 대해서 우리 영적 전쟁을 앞에 놓고 있는데, 공격력 목을 따라가는 말씀의 건 나머지 훌륭한 영적 전쟁 무구들이 있어요. 디펜스 한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신경, 믿음의 방패, 다 멋있어요. 그런데 아무리 성령의 검과 모든 것이 에베서 6장 13절부터 17절 사이에 다 나오는데, 다 있어도 마지막 18절에 여기 없으면 해결이 안 되는 여기 없으면 해결이 안 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에베소서 6:17-18,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그러니까 성령의 검과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호신경과 믿음의 방패가 있어도 반드시 마지막 마무리로 18절에 17절까지 있어도 기도와 간구가 마무리가 되어야 뚜껑이 닫혀 닫힙니다. 다시요. 말씀과 뭐가 같이 간다? 기도 다른 말씀이 기도가 될 때 역사는 일어나는 거죠. 요한복음 15장 7절에

II. 함께 기도의 짐을 져야 세상을 바꾼다.

*요한복음 15:7,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 이루리라. 순전하고 어서 이거 그대로 믿기를 바라는 것이 그다음에 무엇인지 무엇인지, 보고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같이 가서 이 시대를 바꾸는 세상을 바꾸는 기도의 증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 하나 더 하겠습니다. 또 하나는 뭐냐 5절부터 19절에 나오는데요. 뭐가 나오냐 하면 다니엘, 다니엘이 민족과 함께 기도의 짐을 함께 졌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함께 기도의 짐을 져야 세상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면 파워가 나온다. 연합과 합심 기도는 기적을 가져오는 줄로 믿습니다. 이게 왜 중요한가 다니엘은 함께 기도의 짐을 안 줘도 되는 사람이에요. 다니엘은 깨끗한 사람이고 에스겔 14장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보고 너는 의롭다 그랬어요. 성경 완벽한 인물들 사무엘도 완벽하고 요셉도 완벽하고 같은데 3대 인물 가운데 그러나 사무엘도 자식 농사에도 문제가 있었고 또 요셉도 좀 뭐야 좀 이렇게 형들 자매하고 이 얘기도 하고 이런 거 있었는데 다니엘이라고 한 사람 그런데 오늘 5절을 보니까, 우리는 이미 범죄 하여 패역하고 5절, 우리는 이미 패역하고 범죄 하여 행악하여 감정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다.

*다니엘 1:5,
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이 죄를 지었다는 말을 여러 가지 표현하고 있죠? 범죄 했다, 패역 했다, 행악 했다, 반역 했다, 주의 법도와 교회를 떠났다. 그러니까 다니엘은 자기는 의인이지만 자기는 깨끗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카스 한번 같이 하세요. 똑같이 5절 6절 7절 8절 9절 10절 11절 13 14 15 16 18 19, 12절과 18절 빼고는 전부 다 매주 마다 자기 자신을 범죄였다고 말하고 있어요. 저는 이게 너무 놀라웠어. 성경 어디에도 나들이 죄가 나오지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부족함이 있지만 나와 안 맞는 사람들에 대해서 나와 안 맞는 정치 체제에 나와 안 맞는 거에 대해서 그런 게 있었지만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 많은 사람은 허구한 날 못난 정치 체제가 정치가 어떻고, 기업이 어떻고, 세상이 어떻고, 말만 하고 이렇게 하는데 그 짐을 자기 죄로 알고 눈물로, 눈물로 기도하는 그런 사람 많지만요. 우리 교회도 보면 이 안에 보면요 정치적으로 자기가 안 맞아갖고요. 교리도 안 하는 사람이 있어요. 교회 식구들 가운데서도 너 일찍이지? 등,,, 우리는 같이 가서 이 민족의 죄에 대해서, 같이 저는 유튜브에 한 번씩 보면요. 막 그 전에는 어떤 행동을 취하고, 지금은 완전히 다른 행동을 취해가지고 배신한 인간들 때려 죽이고 싶어요. 죄송합니다. 근데 그게 내 문제예요. 우리는 다 그렇게 할 수 있어.
그러니까 피가 뭐냐 하면 다니엘은 민족의 죄악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

“다니엘은 민족의 죄악을 고밳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죄를 자신이 지었다고 생각하고 민족의 죄와 자신의 죄를 동일시하여 기도의 무릎을 꿇었다”
-이 교회 안에서도, 한국 기독교 안에서도 계속 강단에서는 남 얘기하고 어느 목사가 잘못했다 그러고 누가 뭐 어떻다고, 그러고 저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같이 하시라. 아 좀 한 단계 올라가 가지고 분절하지 말고 같이, 같이 마음 아파하고 같이 있잖아요. 민족의 죄를 고발하는 사람이 아니라 민족의 죄 짐을 대신 지고 가는 사람을 통하여 세상이 바꾸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주님께서는 기도의 거룩한 짐을 지워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기도의 어떤 거룩한 짐을 지워주셨어요?

저는 우리 민족이 주님 기도의 짐을 지어주셨어요. 하나님 우리 민족이 적어도 영적 강국이 되게 해달라고, 우리 민족의 세계 선교를 마무리하게 해달라고, 세계교회 선교사님 빚진 거 갚게 해달라고, 기도의 짐을 지게 하신 거에요. 그리고 또 하나 건강할 때 성령에서 특새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었죠. 놀라운 것은 이런 기도의 짐을 여러분들이 지기로 결단하는 그 순간 하나님은 응답을 미리 준비하고 계시는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오늘 23절에 보니까 가브리엘 천사가 다니엘에게 와서 기도하고 19절에 기도하고 나니까 23절이 시작

*다니엘 9:23,
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시작하는데 벌써 명령의 입 민족의 힘을 거룩한 힘을 쥐고 오늘 3절에 기도할 걸 결심하고 기도했는데 그때 이미 하나님께서는 응답할 준비를 다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적으로는 하나님은 우수한 대의 개념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지금 어떤 물리적인 3차원의 세계에서 바로 응답은 안 일어나지만, 영적인 차원에서 이미 하나님은 다 기도를 응답을 준비하고 계시는 거죠. 예를 들어서 우리 교회 예배당을 이렇게 짓는 데 적어도 오랜 시간이 걸렸잖아요. 6~7년 8년 걸렸잖아요. 다 정리되면 10년이 걸렸잖아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이거 너무 시간이 걸리고 이렇게 생각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이미 우리가 예배당을 위한 기도하고 최선을 거치고 기도하고 그때 이미 답이 나온 거예요. 이게 지금 지금 우리가 아니 10년 뒤에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다시 우리가 거룩한 기도의 집을 지고 집중을 할 때 하나님은 이미 응답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러니까 여러분, 여러분과 제가 기도의 짐을 질 때 먼저 내 개인의 문제 해결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기도의 짐을 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내 개인의 문제까지도 해결해 주시는 것이다.

그렇게 기도할 때,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런 어떻게 보면 거대 담론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뒤에 보니까 다니엘 개인의 문제도 다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22절에 아까처럼 하나님 뭘 주셨어요? 지혜가 문을 주셨어요?

*다니엘 9:22-23,
22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그렇게 은총을 받고 지혜와 존경을 통하여 미래를 통찰하는 사람이 되고, 다니엘은 요한계시록과 함께 서게 될 만큼 하나님 나라의 묵시에 대해서 깨닫게 되고, 그리고 기도의 집을 지은 자에게 첫 번째 말씀의 깊이와 기도의 깊이 같이 하고 거룩한 기도의 시간을 같이 지고 기도할 때에 뭐가 어떻다 뭐가 이렇게 기도할 때 여러분 다시 어떤 우리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까? 사랑의 교회와 한국교회 우리가 어떤 기도의 짐을 져야 합니까? 우리가 저 세계 선교를 마무리하기 위하여, 믿음의 계승을 위하여, 하나님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기도의 제목들이 다 있는 거예요. 이걸 여러분 개인적으로 잘 접목할 때에 놀라운 말씀 다니엘에서 12장 13절에 보면,

*다니엘 12:13,
13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려라. 이는 내가 평안히 쉬다가 끝나려면 내 몫을 노릴 것이니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평안히 주시는 축복을 주셨어요. 끝 날에는 너의 몫을 누릴 것이 기도의 짐을 진 자에게 첫째 인생의 평안한 쉼을 주실 줄로 확신한 것이 그리고 내 몫을 다는 것은 하나님의 상급이 온 것이 그런 평안과 상급을 통하여 부흥을 허락하여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 욥이 너무 억울해가지고 욥이 너무 고난당해 억울해가지고 난리 났을 때, 나중에 하나님께서 지금 니가, 니가 하나님이 어떻게 다 아냐 나중에 욥이 눈으로 귀로만 들었던 하나, 눈으로 깨닫고, 여기 42장에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죠? 욥기 42장 10절에 보면, 시작.

*욥기 42:10,

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마지막 핀 세트처럼 이렇게 뽑아가지고, 욥의 친구들을 위하여 그 친구들 말도 안 되는 그 이상한 친구들, 이상한 소리하는 친구들 기도할 마음도 안 생길 만한 그런 친구들을 위해 다 들 기도하니까 여호와께서 욥의 공격을 돌이키시고 이전 수보다 갑절이나 허락하여 주셨더라. 이걸 우리는 그대로 믿기를 바라는 것이 핀세트처럼, 다시 처음 말씀대로 우리가 세상을 바꾸지 아니하는 세상이 우리를 바꿀 것이 오늘 말씀드린 대로 세상을 바꾸는 기도를 우리는 잘 이제는 이해하게 됐습니다. 말씀과 기도의 기표가 같이 가기를 바라고 함께 기도해 주며 함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역사할 것입니다.

*야고보서 5:16,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야고보서4:2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그래서 평양 대부흥 때 블레어 선교사님이 미국 교회의 보고였는데 기도의 소리가 평양 기도의 소리가 마치 ‘폭포수 소리와 같았어.’ 라고 했다. 기도의 소리가 마치 폭포수 소리와 같아서 기도의 대 파도가 하나님의 보좌를 밀어 올리는 것 같은, 절박함으로 간절한 기도를 이 시간 함께 올려드릴 때,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 응답하시리라 믿습니다. 정전 만 70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역사를 이렇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 주여, 들으소서.
-하나님의 정치보다 언론보다 강한 줄 믿사오니 깊은 말씀으로 우리를 흔드 사, 세상을 바꾸는 바쁜 기도에 무릎을 꿇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두 번째, 주여 용서하소서.
-오직 두려워할 한 분, 주님께 이 민족의 죄악을 끌어안고 자복하오니용서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아멘.
세 번째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한손에는 예언의 말씀을 들르고 한손에는 역사적 현실을 붙들고 간절히 구하오니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어 주옵소서. 아멘.

첫 번째, 주여, 들으소서.
두 번째, 주여, 용서하소서.
세 번째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Lord, hear me.
Lord, forgive me.
Lord, listen, think, and act).
주여 들으시고, 주여 용서하시고,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여 주옵소서.

♣요약
세상이 우리를 바꾸는 위기 앞에서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기도 무릎으로 엎드릴 때, 민족과 세상의 영적 지형도가 바낌을 믿고
한 손에는 예언의 말씀을 붙잡고, 한 손에는 역사적 현실을 붙들어서 기도의 간절함과 절박함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영적 기폭제로 쓰임 받아 주님의 귀한 기도의 자녀로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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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3년 8월 27일)
제목: "평생의 언약 기도"
말씀: 시편25:10-14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강도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김대규 부목사님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ㅡ
 
*시편25:10-14,
10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11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소서.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13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ㅡㅡㅡㅡㅡ
 
​▶할렐루야. 여러분 오늘부터 이제 가을 사역이 시작되는데 다들 준비되셨습니까? 어제 새벽에는 영어로 했는데, Are you ready? 참 감사한 게요 예수 믿으면 참 귀한 것 중에 하나가 늘 주일이 있고 또 이런 가을 사역이 있고 봄 사역이 있고 여러 일을 하면서 이렇게 피니쉬 앤 스타트가 있어갖고 매수가 또 이 매 사역이 이렇게 우리 프레시 하게 오늘 찬송한 대로,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뭐예요 신선함 같이 다시금 외부를 시작해가지고 신선하게 이게 얼마나 감사한지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이 가을 사역을 붙잡으시고 암탉이 참 병아리를 보호하듯이 여러분 눈동자같이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2003년도 8월 마지막 주일에 첫 설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만 20년 지나고 오늘이 21년째 첫 설교입니다. 여러분 보통인지 모르지만 저는 정말 특별합니다. 제 마음속에 그래서 20년 전에 성령이여 새 일을 행해 주십시오. 그렇게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뭘 하겠습니까? 그렇게 말씀 같이 나누고 오늘은 평생의 언약 기도 제목을 가지고 여러분 같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이게 그냥 적당한 것이 아니고 오늘 시편 25편은 누가 기록했죠? 다윗이요... 제가 소리를 살살 하니까 다른 소리들이 막 들리네요. 시편 25편은 누가 기록했죠? 누가가 기록했어요? 다윗이 기록했어요. 시편 잘 아시는 23편 24편 25편 다윗의 막강한 고백적인 그런 다윗의 시편이에요. 아시다시피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 시편 23편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정복 왕이었습니다. 다윗은 상승장군이었습니다. 상승장군이고 이렇게 무가 강하면 문이 약합니다. 사람들 문무가 겸비한 자가 별로 없죠. 다윗은 문사철 특별히 시의 달인이었습니다.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가 뭐 정보 왕이고 잘 나가고 뭐 다 잘 되니까 그게 좋은 게 아니고 하나님이 내 목자이시니까 나는 만족한다. 멋지잖아요.
*시편 23:1~6,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
-그런데 23편 6절에 보면 나의 평생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이런 고백할 수 있겠어요? 내 평생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슈얼리, 정영 반드시 나를 따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오늘 이 예배에 오신 여러분 여러분들의 생애에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다음에 선하심이 여러분들을 따라오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가을 사역에 그리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저는 오늘 21년째 첫 설교를 이 말씀으로 준비를 하면서 그래요. 우리 성도님들을 그렇게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그냥 논리 이론 정도가 아니라, 오늘 14절 뒤에 보면 뭐라고 나오느냐 하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이렇게 했어요. 보이신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다 ‘야다’는 말은 임상학적인 체험과 그다음에 임상학적인 어떤 삶의 경험이 분명하다. 그런 뜻이 그러니까 어떻게 다윗의 생애가 평생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따를 수 있었나 먼저는 그가 하나님의 언약 적 축복을 받았어요. 그래서 뭐라고 했냐면 10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I. '언약사상'은 은혜사상이다.
*시편25:10,
10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아멘. 인자와 진리라는 말이 그 인자가 요한복음에는 은혜와 진리로다. 여러분, 은혜와 진리가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로다. 은혜와 진리로다. 그러니까 다윗이 벌써 오실 메시아를 깨달은 거예요. 그런데 다윗 편에서는 뭐냐 하면 그 하나님은 언약을 주셨는데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 10절에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 그런데 또 14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 하면 뒤에
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오늘 참 중요한 그 단어가 언약이라는 단어인데 이 카비넌트(covenant), 이 언약이라는 단어는 세상적인 단어가 아니에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맺어진 단어예요. 그러니까 10절은 우리 편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고, 그다음 14절은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언약을 지키시는 거예요. 마치 샌드위치와 같이 우리 편에서, 하나님 편에서 그런데 누구에게? 11절에 이렇게 나와 있죠
*시편25:11,
11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소서.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과 생명의 복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죄의 노예 상태에 있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네가 이제는 너희가 내 백성이 되고’ 애굽에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그들에게 너희가 이제는 전에는 종살이했지만 너희가 이제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랬어요. 그걸 일컬어서 언약의 백성 언약 적 관계가 되었다. 그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 제가 첫 번째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언약과 은혜는 같이 가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우리가 일반적으로 언약 얘기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 때문에 하나님께 매려 있나 하나님께 구속되어 있나? 마치 로버트처럼 그렇게 돼 있나? 하나님께 꼼짝 못하냐?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데 너 그것이 아니에요. 진짜 언약은 언약에 깊이 들어가면 언약은 진실 된 은혜이고, 언약에 깊이 들어가면 진짜 언약은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언약이 됐다는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내가 어떤 언약의 백성이 됐다. 이런 개념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의 언약의 하나님이 된 것이에요.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그러는데 핵심은 하나님은 나의 언약의 하나님이다. 나의 하나님이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어떤 뜻인가? 내가 언약 적으로 관계가 돼가지고 내가 하나님 앞에 꼼짝 못하고 무슨 구속이 되고 매여 있다 NO! 하나님이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이 내게 묶여 계시는 것이에요. 이게 제 얘기가 아니고 우리 신앙의 귀한 선배였던 ‘제임스 페커’가 하는 얘기를 한번 보세요. 우리는 연약하고 오염되고 죄 투성이고 문제 많고 그런데 그리스도의 피로 핏 값을 우리의 실력으로 아니라 예수님의 피 값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 머리에 덮어가지고 머리부터 덮어가지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언약의 백성 너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의 언약의 하나님이 되겠다.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하나님 자시능ㄹ 묶어 놓으시는 거룩한 속박이다. -‘제임스 페커’-
-그리 말씀하셨다는 뜻은 뭐냐 하면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묶어 놓으시고 하나님 편에서 거룩한 속박을 하신 거예요. 이런 뜻이에요. 저는 아들이 둘이 있는데요. 걔들이 어릴 때에 저 놀이공원을 한 번씩 가면 얘네들이 난리야. 너댓 살 될 때 막 좌충우들 그냥 막 뛰어다니고 노릇하다가 놓칠 것 같아 갖고 안 되겠다 싶어갖고 우리 첫째 아들 팔목에다가 줄을 맸어요. 줄을 매가지고 첫째 아들을 이제 메고 있는데 자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어린아이들 줄을 메고 있는데 누가 더 속 타요? 아들이에요. 아버지 아직까지 잘 모르십니까? 아버지가 훨씬 속이 타는 거예요. 아들이 뛰어가는데 같이 뛰어 가주고 아들과 조폭을 맞춰주고 그 눈길을 아들에게 떠나지 않게 하고 아버지의 마음이 노심초사여 노심초사, 나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됐다는 이 사실 앞에 어마어마한 역동성을 느끼는 거예요. 여기에 놀라운 가능성과 놀라운 어떤 깊은 은혜의 경지를 느끼는 것이 여러분과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과 제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스스로 묶이신 것이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스스로 묶어주신 거예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자신을 스스로 묶어주신 하나님, 그래서 엄격하게 말하면 언약이라 언약의 자손이 됐다고 했을 때 언약이라고 쓰고, 사실은 묶인 거예요. 언약이라고 쓰고, 사실은 사랑으로 읽어야 돼 언약이라고 쓰고, 사실은 은혜로 읽어야 돼요. 언약이라고 쓰고, 사실은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목자의 심정을 우리가 깨달아야 되는 것이에요. 이것이 우리에게는 너무 귀한 거예요. 언약=은혜 사랑 목자의 심정. 그러니까 성도는 다시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쓰고 하나님의 뭐라고 읽는다고요? 은혜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쓰고 뭐로 읽는다고요? 사랑으로 하나님의 언약으로 쓰고 하나님 목자의 심정을 깨닫게 되는 것이 그래서 이 언약이라는 말은 단순히 어떤 신학적인 용어가 아니고 우리를 살리고 죽이는 용어에, 그래서 이 언약을 제대로 깨달으면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살고 죽는 것임을 깨달아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언약 은혜사상이다.
 
그래서 제가 유아세례를 베풀 때 우리 유아세례를 하나님의 언약 사상과 하나님의 은혜 사상에 근거하여 유아세례를 준다. 그렇게 얘기하는데 여기에 포함돼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 사상에 깨달아지고 언약 안에 들어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들어가는 것이에요. 그러나 저와 여러분의 행복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하여 언약 안에 들어가지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아래 생활할 때 진짜 행복한 것이에요. 이렇게 밖에 반응을 못하겠습니까? 다시 우리가 진짜 우리의 여러분의 행복과 여러분들의 은혜와 축복은 하나님 축복은 하나님의 언약의 질서 안에 들어갈 때 진짜 축복이 되는 것이에요. 내가 너에게 묶여 있노라 내가 우리 아이에게 벗겨 있노라 그런 식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 들어가면 모두가 다 평안한 거예요. 우리가 살아 은사대로 사는 것도, 창조 질서대로 세상에 돌아가는 창조질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키 중에는 뭐냐 하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것이에요. 그래서 남자가 내가 이상하다 나 여자인 것 같다. 이러고 여자가 나 이상 남자인 것 같다. 이게 아니에요. 남자와 여자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에요. 하나님의 언약의 질서에 들어오는 것이에요. 그러면 행복하고 그런데 그게 나는 남자 성향이 있다고 또 막 동성애를 하고 말이지 이렇게 확대를 하고 차별 금지법 막 얘기하고 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 누가 차별을 하겠습니까?
 
제가 지난주에 미국에서부터 우리 지난 토요일 날 토비새 설교 했던 이충희 목사님이 저한테 어떤 메일을 보내왔는데요. 로스앤젤레스 칠드런 하스피털(Los Angeles children's hospital), 로스앤젤레스 어린이 병원이에요. 커요. 보스톤 칠드론 하스피털, 아주 커요. 거기에 뭐가 있냐 거기에 이제 뭐가 뭐가 무슨 프로그램이 있냐면요. 젠들 서저리 프로그램 어린이 병원에 젠덜 서저리 프로그램이라는 건 뭐냐 하면 성전환 수술 팀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 이게 말이 돼요 이게 10살, 12살 이렇게 밖에 안된 어린 애들에게 나는 이제 나는 남자가 싫다. 나는 여자이고 싶어요. 그럼 남자를 여자로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 수술을, 그리고 여자애가 나 남자 되고 싶다. 그러면 남자로 만들어주는 거 그 수술을 하는 거예요. 그 팀이 있는 거예요. 지금 이게요. 이게 언약의 자손답지 않아. 이게 창조주에서답지 않아요. 그래서 수술을 했는데 남자 여자가 좋다고 여자를 수술을 했는데 좀 나이가 드니까 여자가 좋대요. 아주가 이 깊은 진리를 못 깨달았어요. 하나마나, 수술을 하나 마나, 너무 안타까운 일이 미국은 중국은 공산독재 때문에 망하고 미국은 이 동성애 이것 때문에 망할 거에요. 지금 만일에 모두 화장실을 뜯어고치고, 아이들에게 함부로 저기 뭐야 애들 보고 부모가 막 강요하면 안 되고, 너는 남자야 너는 여자 강요하면 안 되고, 여러분 이건 제가하나 예를 들어 설명했는데 이게 말이나 되는 겁니까? 모든 화장실을 다 두드려 고치고 남자 여자 같이 들어간 화장실을 다 만들고, 멀쩡한 걸 그래서 어제 한국에 좀 대형교회 목사님 몇 집 만났는데 우리가 죽어도 이거는 우리가 지켜낸다. 한국교회가 죽어도 지켜야 한다. 오 목사님 그럼 국회 앞에 가서 왜 피켓 안 들고 있느냐고 나는 어느 날 그 어느 날 썸데이에, 어느 날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들어갈 거예요. 우리 교회도 국회의원들 계십니다마는 정신 바짝 차려야 돼. 아니 우리 교회 국회의원 장로님이 맡고 있어요.
 
지금 5천만 이상 되는 나라 3만 불 이상 되는 나라가 동성애 법이 통과 안 된 나라 우리가 유일해요. 지금 그래서 이 민족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하나님이 지켜주실 거에요. 이거 잘하면 왜 창조 질서대로 하나님의 언약이 이게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그래서 언약의 자손으로 여러분들을 창조 질서대로, 하나님의 귀한 축복을 가지고 이번 가을사역의 평생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오늘 네 가지 언약 적 기도 제목이 있는 것이 네 가지, 네 가지 첫째는 뭐냐 오늘 12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요.
 
*시편 25:12,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첫 번째 기도 제목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언약의 백성들의 갈 길을 가르쳐 주신다(가이던스).
-택할 길을 가르쳐 주신다. 이거는 변개함 없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에요. 영어로 말하면 가이던스 인도 가이던스(-Guidance), 가이던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GPS를 잡고 계시다.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하나님이 우리 운행하고 계신다. 그래서 여러분들과 저는 이거 믿고, 매일 아침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 내가 언약의 자손이오니 하나님이 내게 묶여 계시는 것이 너무 눈물 나는 일이오니 주여 오늘도 내 삶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매일 아침 저는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면 주님 오늘도 새 날을 주시고,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주님이 나에게 새 길을 열어 주시옵시고, 하나님이 인도와 택할 길을 가르쳐 보여주옵소서. 모든 사람들은 잘났든 못났든 대단한 위치에 있든 그렇지 않든 우리 모두는 모든 사람들은 매일 매일 마다 결정을 해야 합니다. 수많은 결정을 해야 합니다. 결정할 때마다 하나님 택할 길을 가르쳐 보여주신다고 약속 하셨사오니 그대로 이루어 주시옵소서.
 
제가 82년도에 미국 신학교에 유학을 가가지고 파일러 대학교 신학 단에 가가지고, 그때 닥터 글렌 오딜이라고 신학교 학장, 요즘 신학교 총장이죠. 학장님이 신입생이 한 350명 정도 됐는데 350명 신입생 가운데 한국 사람이 2명이었어요. 한 사람은 저 1.5세였고 한국에서 온 사람 나온 저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좀 이렇게 좀 불쌍해 보였는지, 이 목사님이 이 학장님이 3박 4일 동안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수양회를 하는데 같이 방에서 같이 있자고, 그래서 이제 3박 4일 동안 학장님하고 같이 있었어요.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그러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침상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고, 밤에 주무시기 전에 침상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고, 저도 그걸 보고 그 이후에 옛날에는 한국에 침대라는 게 없었잖아요. 미국 가고 침대를 침대 생활하면서 항상 일어나면 기도하고, 밤에 자기 전에 기도하고 그렇게 하는데 내가 물었어요. 닥터 오닐! 내가 질문 안 하겠다고 아침에 일어나서 무릎 꿇고 기도하시는데, 뭘 위해 기도하시느냐고? 프레이 퍼 가이던스(Pray for Guidance), 매일매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위하여 기도한다. 그럼 주무시기 전에는 뭘 위해 기도하셨다고? 프레이 퍼 땡스기빙(Pray for thanksgiving) 오늘도 하나님 인도하심으로 하루 감사합니다. 감사한다. 매일 매일이 그렇다. 그 이후에 저하고 같이, 같이 수양회에 가고 같이 자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두 가지를 제가 가르쳐요. 이제 그래서 교육은 무서운 것이고 귀한 것이에요. 하나님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분 안성 수양관, 제천기도 동산, 곳곳마다 하나님의 가이던스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두 번째 기도제목은 영혼이 평안한 축복이다(peace ,prosperity)
-우리가 언약 적 기도의 두 번째 핵심은 뭐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데 뭐냐 하면 13절 앞에 그의 영원히 평안히 산다고 그랬어요.
*시편25:13,
13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영혼히 평안한 축복이 여러분과 저의 영혼히 평안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영어로 말하면 한마디로 peace ,prosperity, 평안하다. 여러분 영혼이 평안해야 육신이 평안한 것입니다. 영혼이 잘 돼야 삶의 모든 영역들이 평안해지는 것입니다. 어떤 고위 공직자가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목사님, 정말 마음 좀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 대단한 위치인데 괜찮잖아요? 아니에요 목사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한지 마음이 당연하죠. 가인의 자손은 이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가인의 자손은 늘 가인이 뭐라고 그랬어요. 아담의 자손 아담의 아들, 가인이 뭐라고 그랬어요? 아벨을 죽이고 난 다음 그 범죄 때문에 생긴 것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 하는 것 같고, 걱정 근심 우수 사례가 너무 많아 늘 번민이 어떻게 영원히 평안하겠어요? 어떻게 마음이 평안하겠어요? 오늘 우리 주위 보세요. 저 논현동의 점집 미아리의 점집 수많은 사람들은 문정성시에요. 그것도 잘 나타난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평안하지 않으니까 마음이 불안하니까 그런데 하나님 우리에게 언약 적 기도가 있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평안한 축복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이걸 esv라는 아주아주 권위 있는 성경에서 잉글리시 스탠더드 버전(English standard verson)이라는 거기 보니까, 영원히 평안하다는 걸 뭐라고 번역했냐면 웰빙으로 써요 웰빙, 어디 다른 데 웰빙 찾지 말고 영원히 평안한 언약 적 기도를 통하여 참된 웰빙이 여러분들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진짜 웰빙은 여기에 있는 것이에요. 영혼이 평안해야 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직장에서는 평가 불안에 시달리고 가정에서는 눈치 불안에 시달리고, 저는 이번 하반기 사역 동안 모든 성도들 영혼히 평안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영혼히 평안하려면 영이 육을 지배해야 되는 거에요. 영혼히 평안함이 이 성령이 우리를 지배하셔야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육신의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하지만,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생각을 하게 하시는 거에요. 성령의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자동적으로 영혼이 평안해지고 영혼이 평안해지면 자연스럽게 삶의 많은 영역들이 평안해지는 것이에요.
 
오늘 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는 뭐예요? Guidance, 두 번째는 뭐예요? peace ,prosperity, 이것이 나중에는 바울이나 하나님이 특별한 사람들은 고난도 겪고 욥도 고난 겪고 다 겪었지만, 하지만 우리 보통 사람들은 이런 언약 적 기도, 하나님이 우리 언약에 묶여 있다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신실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 반드시 이런 축복을 주신 줄 믿으셔야 되는 거에요. 그게 믿음이죠. 이번 주간 내에 여러분 좋은 일들이 감사한 일들이 귀한 일들이 많이 생길 거에요. 이런 믿음을 갖고 기도할 때에 될까? 그건 아니에요. 그 언약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세 번째로는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13절 뒷부분에,
 
세 번째 기도제목은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Success).
*시편 25:13b,
13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언약 적 기도가 있는 사람에게 땅을 상속하는 거에요. 이거는 뭐냐 하면 석세스(success) 혹은 인헤리턴스(Inheritance) 땅을 상속하는 거에요. gps가 됐어요. 어느 순간 g가 뭡니까? 가이던스(Guidance), 제가 그냥 제가 마음으로 정리해 보면 p는 뭐예요? 피스(peace), 그다음에 뭐예요? s는 석세스(success), 상속자, 이 땅을 상속한다는 그 당시에 그 유대인의 개념의 땅은 축복의 대명사였어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신 헤브론의 그 유업 기업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고 그다음 나봇 같은 사람은 조상이 준 포도원이라든지 그 땅을 소중하게 여겼어요. 아합 같은 악한 왕이 그 땅을 빼앗으려고 막 위협을 가하고 목숨을 건 위협을 가하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봇은 그걸 지키려고 애를 썼어요. 왜냐하면 그 하나님이 주신 이 귀한 것은 내가 소중하게 여겨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땅은 나만 갖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다음 자손대로 계속 이어가야 한다.
 
오늘 우리가 받은 이 축복들이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녀 세대에도 그대로 이어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세대 계승, 영적인 어떤 영적인 세대에서 그래서 자녀들이 부모의 두통거리가 아니고 부모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도록 부모의 이 언약의 기도가 자녀의 평생의 축복이 되는 것이에요. 영적인 공간이 확대되는 것이에요. 영원한 유혹을 나중에는 이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유혹으로 요한계시록에도 나타나 있죠. 이 땅에 있는 물리적인 땅만이 아니라 영적인 지경을 넓힐 수 있도록 영적 땅이 계승될 수 있도록 하나님 한 분 한 분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께서 세 가지 첫 번째 뭡니까? Guidance, 두 번째 뭡니까? peace ,prosperity, Success, 믿음의 계승, 이 세 가지가 있어도 마지막에 안 되면 인이 안 되는 거에요. 마지막이 뭐냐 14절 앞부분에,
 
네 번째 기도 제목은 하나님과 친밀해야 한다(Intimacy).
*시편 25:14,
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친밀하다. 그랬을 때, 인티머스(Intimacy), 하나님과 나와의 친밀함 앞에 있는 세 가지가 소중하지만 사실은 이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제일 중요한 거에요. 여러분 평생 하나님과 친밀하시기 바랍니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며 나를 친밀하게 하시고 친구 삼으셔서 우리 서로 받은 이 은혜는 알 사람이 없을 정도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 하반기 사역 동안 여러분 뭘 목표로 하시나요? 찬양들은 뭘 목표로 하시나요? 오늘 앞 예배 때는 그렇습니다. 찬양대 우리 찬양대는 안보를 해요. 안보 안보가 뭡니까? 대한민국의 대한민국에 거의 없는 찬양대의 특색이에요. 안보는 뭐냐 모든 걸 외워서 하는 거에요. 왜 외워서 합니까? 머리가 좋아서? 아마 자녀들이 잘 모를 거야. 우리가 왜 여기 살지 야다 보이시리로다. 임상적으로 이것이 내게 확실하게 체험된 것을 하나님 고백하고 선포합니다. 그 뜻이에요. 찬양대가 저런 고백하고 선포하는 걸 체험한 걸 선포하면 우리가 아멘으로 받으면 그것이 우리 것이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친밀함을 선포하는 거에요. gps 하나님의 가이던스 하나님의 피스 하나님의 석세스는 다 필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함(Intimacy)이에요. 평생 동안 우리가 언약의 말씀의 핵심 기도의 제목이 주여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가면 갈수록 더 친밀하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해 주십시오. “야다”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체험하게 하여 주십시오. 놀라운 것입니다. 아주 놀라운 것입니다. 너무나 귀한 것이 무슨 뜻이냐? 앞에 서 있는 제가 사랑의 교회 목회자로서 여러분들을 섬깁니다마는 여러분, 제가 다른 이들이 다 귀하지만 사실 제게 가장 귀한 것은 가장 이 하반기의 목표는 주님과 나와의 더 나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에요. 맨탈 레이션십이에요. 주님과 나와...
 
오늘 우리 가운데 수많은 직분 자들이 많이 계십니다. 우리 순장도 하시고 그다음 우리 집사님도 하시고 권사님도 하시고 장로님도 하시고 여러 직분자들이 있습니다마는 여러분 장로님 왜 합니까? 아주 털어놓고 순종 왜 합니까? 찬양대 왜 하느냐고? 우리가 맡은 수많은 직분들을 교사들 대학부 리더들 청년부 리더들 왜 하느냐고? 결국 궁극적인 하나님의 언약 적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주님과 더 친밀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 주님과 더 친해집니다.
 
여러분 오늘 세상 사람들은 다 행복해지기를 원해요. 뭐가 행복한 겁니까? 참, cs 루이스가 놀라운 통찰력 있는 얘기를 했어요. 뭐라고 얘기하는 이런 얘기를 했어요?
 
※외부 사정이 다 좋아도 진정한 행복은 당신이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성격에 달려있다.
-cs 루이스-
-조금 바로 안 올 수도 있는데 쉽게 말하면 니하고 제일 친한 사람이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느냐, 남편의 행복은 아내의 성질에 달려 있다니까, 너무 중요한 거에요. 그냥 절실한 표현이에요. 저분은 다시요. 다르시간이 너무 중요한 거에요. 남편의 행복은 아내의 성격에 달려 있는 거에요. 보여 봐요. 봐요. 봐요 봐요. cs 루이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어떤 성격이냐? 아니 가장 가까운 사람과 어떤 친밀도를 갖고 있느냐? 그것이 결정되는 아내의 행복은 남편의 성격에 달려 있더라. 한 성격하는 남편들 마음에 안 들면 밥상머리를 밥상 던지고 이런 사람들 인생 복사하고 그런데 그분들이 하나님과 친밀해지면요 아내와 친해지는 거에요. 이거 알 사람이 없도다. 그런데 오늘 우리 여러분들 제일 가까운 사람들의 성격이 진짜 지랄이야... 가장 가고 그래서 배신자여,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요. 성은 배이요 이름이 신자야. 기가 막힌 얘기네. 여러분과 제일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의 친밀 지수가 여러분들의 행복 지수를 결정하는 것이에요. 오늘 여러분 중요한 깨달아서 언약은 하나님이 내게 묶여 있는 거 그거 깨달으면 여러분들의 사역의 질과 인생의 질이 달라요. 신앙의 질이 깊이가 달라지는 거에요. 그리고 또 하나 여러분들의 행복 지수는 하나님과의 친밀 지시에 걸려 있는 것이에요. 질문합니다. 하나님과 친하십니까? 이것밖에 대답을 못 하십니까? 하나님과 친하십니까? 하나님과 친하십니까? 정말로 친해져야 돼. 하나님과 오죽하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뭐예요 보시라고, 보시라고 너무 친한 거야. 하나님.그 수많은 거야. 모세를 일컬어. 하나님께서 수리께서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얘기함과 같이 하나님 모세 모세는 하나님이지. 하나님과 친구야. 주와 나와 동행을 하며 나를 뭐 해요 또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너무 친합니다.
 
또 요한 신비한 복음서를 썼던 사도 요한은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너무 예수를 만지는 거,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 바울 같은 사람은 얼마나 친한지 하나님께서 바울은 나의 택한 나의 그릇이라 뭐든지 다 담아줄게. 그래서 이게 하나님과의 친밀해질수록 너무 행복하니까, 좀 기사대기 맞아도 있죠. 잇츠 오케이, 바울이 그냥 태장을 맞아도 허 웃고, 그다음에 이 언약 친밀 주스를 통한 언약 주소를 확실하게 하니까 바울이 유라굴로 강풍해가지고, 다 죽는다고 다 죽는다고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건 확실하니까 뭐라고 그랬어요? 오늘 이 유라글로 광풍에 배에 탄 2708명입니까? 한 명도 안 죽는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믿노? 그럼 너는 그리 믿어라. 그러면서 매출 또 발발발 떨고 있잖아. 죽는 사람이 오바이트 하고 토하고, 난리 나고 바울은 다 하나님의 치미의 주수가 높으니까, 다윗도 수많은 관란 신고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17세에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언약을 다 확정하고,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어도 언약이 확실하니까 주님과 친하니까 나의 평생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를 것을 믿으니까 반드시 믿으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에요.
 
이 하반기에 이런 은혜를 누립시다. 오늘 저는 무슨 설교를 하기 보다는 그냥 여러분들 마음, 여러분 집집마다 신방 가가지고 내 속에 있는 걸 얘기하고 싶은 거에요. 지금 오늘 다 여러분 잘 되기를 바라고 주님이 우리에게 묶여 있다는 사실 앞에 눈물이 나야 하고 그리고 우리의 영적 웰빙을 주님이 어떻게 예비하고 계시는지, 어떻게 택할 길을 갖고 계시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호와의 친밀함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다 받아 누리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다 손을 펴시고 우리 마음속에 정말 그런데 가장 강력한 언약은 뭐냐? 누가복음 22장 22절이에요.
 
*누가복음 22:20,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내 피로 세우는 구약에 이런 하나님의 언약이 계시적 발전을 통하여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하나님의 새 언약이 생긴 거에요.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뉴카비네트에 참여한 은혜를 주신 거예요. 제가 오죽하면 우리 교회를 짓고 본당하고 그다음에 아름답게 지은 곳이 저 채플 언약채플이 있을 정도로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그래서 이 예수님의 은혜에 깊이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존경하신 분이요 언약의 예수님이시오 응답을 하시는 예수님이실 줄로 믿습니다.
 
♧요약
하나님의 언약 적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기억하여 주님과 더 친밀해지기 주님과 더욱 친밀해져야 한다.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염치 불구하고 믿음의 기도를 드렸다. 특히 그는 여호와의 자비와 공의에 기초하여 이같은 간구를 드리고 있다. 실로 하나님의 은총은 죄를 회개하는 자의 심령 위에 풍성하게 내려진다. -(히, 소드) ‘비밀’, ‘은밀한 것’ 등으로 번역된다. 따라서 14절 상반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각을 털어놓으신다’는 뜻이다. 아울러 언약을 보이신다는 말씀은 언약을 반복해서 나타내신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의 생애가 이 구절의 정확한 예를 제공한다. 하나님은 그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생각을 숨기지 않으셨으며(18:17,18), 그가 하나님의 언약을 의심할 때마다 언약을 재확인해 주시곤 했다(창 15,17장).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을 벗처럼 친밀하게 대하신다.
♧요약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염치 불구하고 믿음의 기도를 드렸다. 특히 그는 여호와의 자비와 공의에 기초하여 이같은 간구를 드리고 있다. 실로 하나님의 은총은 죄를 회개하는 자의 심령 위에 풍성하게 내려진다. -(히, 소드) ‘비밀’, ‘은밀한 것’ 등으로 번역된다. 따라서 14절 상반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각을 털어놓으신다’는 뜻이다. 아울러 언약을 보이신다는 말씀은 언약을 반복해서 나타내신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의 생애가 이 구절의 정확한 예를 제공한다. 하나님은 그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생각을 숨기지 않으셨으며(18:17,18), 그가 하나님의 언약을 의심할 때마다 언약을 재확인해 주시곤 했다(창 15,17장).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을 벗처럼 친밀하게 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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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8월 20일)
제목: "순종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말씀: 열왕기상 13:15~24
대표기도: 노주찬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설교자: 김지찬 목사님-초빙(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ㅡㅡㅡㅡㅡㅡ
*열왕기상 13:15~24,
15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
16 대답하되 나는 그대와 함께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대와 함께 들어가지도 못하겠으며 내가 이 곳에서 그대와 함께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17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다.
18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19 이에 그 사람이 그와 함께 돌아가서 그의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
20 그들이 상 앞에 앉아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선지자에게 임하니.
21 그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22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하신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23 그리고 자기가 데리고 온 선지자가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그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
24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그를 만나 물어 죽이매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서 있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서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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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찬 목사님-초빙(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2천 년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는 기독교 후기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열악해서 기독교가 한 나라의 제도나 사회, 경제, 교육 등 국민의 삶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국가 위에 군림하거나 최소한 국가와 밀월 관계를 유지하던 기독교 시기가 지났다는 것입니다. 유럽은 18세기의 시민혁명으로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었고, 경제는 오직 시장 논리로만 움직이고 사회 전 분야가 기독교적 가치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건국 이후에 1960년대까지 200년 동안 기독교 시대를 누리다가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기독교 후기 시대로 들어갔습니다. 1962년에 국립학교에서 주기기도문, 암송이 금지된 것이 결정적 사건입니다. 한국 사회는 원래 세속국가인 데다가 기독교가 다수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서구 같은 형태의 기독교 시대였던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해방 이후에 1980년대까지 국가와 밀월관계를 유지하면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유사 기독교 시대라고 말합니다. 한국교회는 구한말 시대에 서구의 근대 문명을 받아들이고 양반과 천민이라는 신분 제도를 철폐하면서 계몽의 선두로 백성들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반공과 산업화가 국가 재건의 과제였는데, 한국교회가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사회의 기둥 역할을 했습니다. 실제로 13명의 대통령 가운데 개신교 출신이 4명이나 됩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반미 정서가 생기고, 반공을 통치 이념으로 삼던 정권과 싸우던 운동권 세력이 기득권층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세속화가 한국 사회에 들어오면서 한국은 기독교 후기 시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후기 시대가 되는데 유럽은 1400년 걸렸고, 미국은 200년 걸렸는데, 한국은 채 100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기독교 후기 시대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서구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첫째, 사회의 중심에 있었던 교회와 교회의 스토리가 주변으로 밀려난다.
둘째, 사회 속에서 편안함을 누리던 그리스도인들이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소수를 느끼며 편안함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
셋째, 기독교 후기 시대 현대인들은 기독교는 여러 세계관 중에 하나이며 웬만해서는 기독교 진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증거를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 이런 기독교 후기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미 기독교 후기 시대를 경험한 서구 학자들은 세 가지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사회를 통제하려 하지 말고 복음의 증인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라.
둘째, 동교들이 이렇게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현상 유지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선교적 삶을 살아야 된다.
셋째, 제도적 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교회는 강력한 생명운동과 구원 운동을 벌여야 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포스트 그리스 덤 시대에, 기독교 후기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생명과 구원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진리의 증인으로서 적극적인 선교 적 삶을 살아야 한다. 이렇게 정의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역할, 진리의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다른 이들이 기독교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하려면 그 진리에 우리가 목숨을 걸어야 됩니다. 한 사람이 무엇에 목숨을 거는지를 봐야 그 사람이 믿는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돈 버는 일에 목숨을 바친다면 그 사람에게는 돈이 진리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 후기 시대에서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가치와 신념에 목숨을 거는지 알고 싶어 하고 실제로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걸고 죽을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 진리가 뭐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거 아닙니까? 장차 주님이 심판주로 오셔서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을, 불신자들에게는 영원한 멸망을 선포하실 것이라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가 이 진리에 어느 정도까지 목숨을 걸고 순종해야 세상 사람들이 이 진리를 알아줄까요?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순종은 이 순종밖에 없음을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셨는데 아쉽게도 현대교회는 절대적 순종의 모습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아니 순종이라는 단어 자체도 싫어합니다. 이건 주례를 서보면 금방 압니다. 예전에는 신랑 신부가 주례사를 다소곳이 듣기만 했는데 요새 커플들은 주례사 중에 서로 쳐다보고 웃고 귓속말까지 합니다. 제가 이제 에베소서 5장 24절 본문을 가지고 아내들도 범사에 남편에게 복종할지라라고 권면하면 이전에는 그냥 아무 표정 없이 듣고 지나갔는데 묘사의 신부들은 저를 빤히 쳐다봅니다. 아니 어떻게 남편에게 복종을 하라고 하는 거예요라는 표정을 제가 얼굴에서 읽게 만듭니다. 제가 이제 앞에 5장 18절에서 21절에 보면 성령 충만의 4가지 결과가 나오는데 맨 마지막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가 나온다. 그러니까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피차 복종하는 게 더 큰 원리고 그 안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목숨을 내어주고 사랑해야 된다. 그러면 그때서야 신부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요. 이렇게 이런 신부가 한둘이 아닙니다. 요사이는 신부 눈치 보여서 주례사도 마음대로 못 합니다. 이렇게 복종이라는 단어가 가정과 교회에서 점차 잃어버린 영적 유산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 대해서 미국 복음주의 리더인 짐 몰리스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현대 교회의 크나 큰 비극은 믿음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많은데 순종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적다는 점이다. -짐 몰리스 목사님-
 
오늘 우리는 11기상 13장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까지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지, 그리고 왜 순종을 요구하시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면서 절대 순종의 정신을 우리 모두 회복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열왕기상 13장을 이해하려면 역사적 배경을 좀 살펴야 돼요. 솔로몬 이후 르브함이 왕이 되었는데 왕국이 불로 분열이 됩니다. 북방 이스라엘 왕은 여러 보함이었는데 백성들의 마음이 남쪽으로 쏠릴까 봐 세 가지 조치를 취해요.
 
첫째, 예루살렘 순례를 막기 위해 북방 이스라엘의 남방 경계 근처인 벧엘에 사단 신전을 세웁니다. 벧엘은 야곱이 꿈을 꾼 곳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이고, 그곳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벧엘에 가서 3일마다 십일조를 드리려므나. 이렇게 호사가 얘기한 걸 보면은 굉장히 중요한 장소고, 사실은 이스라엘 안에서 예루살렘과 거의 맞먹는 중요한 영적인 어떤 장소가 벧엘이거든요. 그 벧엘에다가 이제 신전을 세우고 사당을 세우고, 그리고는 레위자손이 주로 예루살렘 성전 쪽으로 많이 붙어 있으니까
둘째, 일반 사람으로 제사장을 삼고 벧엘의 신전에서 담 옆에서 여러 보안 왕이 분향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벧엘의 단을 향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한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3:1,
1 이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하여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단 곁에서 분양하는지라.
-하나님의 사람은 구약에서는 선지자를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이 없습니다. 어떤 묘사가 없습니다. 키가 얼마나 큰지, 성격이 어떤지, 어떤 출신인지, 배경이 어떤지 언급이 없어요. 딱 하나예요.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람은 외모가 출신과 배경이 어떻든 상관없이 오로지 여호와의 말씀에만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거죠.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아직은 여호와의 말씀이 자신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보게 되겠지만, 여호와의 말씀 때문에 이 하나님의 사람은 생명을 잃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때론 생명을 담보해야 될지 모르는 매우 위험한 사역에 뛰어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온 이유도 뭐예요? 여호와 말씀 때문이죠.
 
*열왕기상 13:2,
2 하나님의 사람이 재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화 재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아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내 위에 분양하는 산당 제사장을 내 위에서 재물로 바칠 것이오 또 사람의 뼈를 그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니까 다윗의 후손 중에, 그러니까 남방왕국의 다윗의 왕손 중에, 요시야 라는 왕이, 여로보암이 분양하고 있는 그 벧엘의 단 위에서 제사장을 재물로 드리고, 사람의 뼈를 그 단 위에서 불살라 부정하게 만들 것이라는 저주와 심판의 메시지였습니다. 이 본문 현재로는 이게 몇 년 후에 일어날 것인지는 본문에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나중에 역사를 보면 300년 후에 있을 일이에요. 어찌 되었든 여로보암 왕은 이런 저주를 듣고 그 사람을 체포하라고 명령하면서 손을 내밀어서 저 사람을 잡으라. 이렇게 하면서 손을 내밀었는데, 그 순간 몸에 이제 특별히 팔에 마비 증세로 인해 손을 거두어드릴 수가 없었어요. 여호와의 말씀에 능력이 나타나자 여로보암이 갑자기 태도를 바꿉니다.
 
*열왕기상 13:6,
6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청하건데 너는 나를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이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여호와의 말씀은 왕의 손을 마비시키는 권능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우리들은 인간 왕도 굴복시키는 능력의 말씀을 섬기는 자라는 점에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편 여러보암이 하나님의 말씀 능력에 굴복을 하자,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의 손을 치유하셨어요. 그러자 이제 여러보암이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서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쉬라. 내가 내게 예물을 주리라 이렇게 초청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유다에서부터 베델까지 약 20km 이상을 이제 여행한 것으로 보여요. 산길이기 때문에 나기를 탄다 해도 5시간 이상 걸렸을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왕의 면전에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고 왕과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아마 심신이 굉장히 많이 피곤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음식을 먹고 기력을 회복한 다음에 다시 길을 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게다가 여로보암 마왕이 유화적이 돼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예물까지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왕의 잔치 그다음에 얼마나 멋질까요? 왕의 예물이라고 하면 얼마나 대단할까요? 그럼 제가 한 30년 전에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한 교회에서 대학부 교육 목사를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시간 강사를 할 때인데 외부로부터 처음으로 제 방에 전화가 걸려왔는데 대학부 부감 집사님이었습니다. 사업하시는 분인데 제 생일날 저와 제 가족을 대접하고 싶으니까 63빌딩으로 오라 그러더라고요. 59층 스카이라운지 룸에서 사실은 코스별로 이렇게 음식이 나오더니 맨 마지막에 이 큰 이 카트에 이렇게 케익이 나오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집사님이 식비 계산할 때 이렇게 어깨 너머로 보니까 35만 원이 나왔습니다. 당시 본국 70만 원 받을 테니까 순간 차라리 현찰로 주시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잠시 그랬을 뿐 그 후에는 식사 대접을 받은 게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로열패밀리의 잔치가 어떤 것인지를 조금은 맛보았고 행복한 추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는 그런 대접 안 받았으니까 오해하지 마시고 목사들은 뭐 그런 걸 좋아한다. 그러시면 안 돼요. 딱 한 번 사업을 하시는 분이 이 정도로 대접을 한다면 왕의 잔치 그러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맛보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면 왕의 잔치에 가서 먹고 마시면서 왕의 예물을 받는 거 괜찮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볼까요? 8절, 9절 보면
*열왕기상 13:8-9,
8 하나님의 사랑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9 이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왕에게 절반을 준다 해도 왕의 잔치와 왕의 예물을 받을 수가 없다고 거부합니다. 그 이유가 뭐예요? 여호와의 말씀 때문이죠. 그러면 여호와께서 무엇 때문에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고 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신빙성 때문입니다. 본문에는 당장 이렇게 나와 있지 않지만 최소한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는 미래에 일어날 일이에요. 언제 일어날지 언급이 없습니다. 나중에 보면 300년 일어나 제가 그랬잖아요. 그러면 더더욱 미래에 일어날 하나님의 말씀은 믿기가 힘들어요. 듣는 사람들이 먼 미래에 일어날 일 신빙성을 어떻게 확인하겠어요? 결국 그 메시지의 신빙성은 그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의 신빙성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델의 단을 저주하는 심판은 주전 930년이에요.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 하는 아들을 낳을 건데 이 사람이 이제 내 재단을 사실은 부정하게 만들 거다. 라고 했는데 열왕기하 22장 1절에 보면 요시야가 8살에 왕위에 올라요. 그게 640년이에요. 18년째 되던 해에 율법사를 발견하거든요. 그때가 622년이에요. 그리고 그 후에 이제 사실은 부정하게 만든 거니까. 300년 후에 있을 주요. 심판의 메시지가 있었는데 거기에 뭐가 달라붙어 있냐면 지금 지켜야 될 명령이 붙어 있는 거예요.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 이렇게 붙어 있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신빙성은 어떻게 알 수 있어요?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에 달려 있는 사소해 보이는 음식 금지 규정을 하나님의 사람이 지금 여기서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의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해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는 음식 금지 명령을 주신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이 심지어는 왕의 잔치와 왕의 예물을 거절하면서까지 음식 금지 규정을 지금 여기서 지키는 모습에서 우리는 나중에 있을 하나님의 말씀의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음식 금지 규정은 인간적으로 볼 때는 가혹하기 그지없는 규정이에요. 원래 인간이 수고한 후에 이에 대한 대가로 먹고 마시는 것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전도서 5장 19절에 보면 18절부터 볼까요?
 
*전도서 5:18-19,
18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19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유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전도서에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한 게 마타트라고 하는 단어인데 왕이 내가 예물을 주리라고 했을 때 똑같이 ‘마타트’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수고한 다음에 먹고 마시는 거, 조금 낙을 누리는 거 이거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데 하나님의 말씀에 신빙성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선물, 최소한 먹고 마시는 낙조차도 허락되지 않은 거죠.
 
사랑의교회 부목을 하셨던 한 목사님이 저희 학교에 와서 간증을 하셨습니다. 토요일에 이제 설교 준비 때문에 바쁜데 한 권사님이 닭백숙을 해놨으니까 와서 식사하고 가라고 하셨다고 해요. 목사님의 사랑과 배려 감사하지만 설교 준비 때문에 죄송하다. 라고 하자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아니 그 설교가 맨 그 설교구만 왜 유난 떠는지 모르겠다. 이러면서 이제 뚫겠다고 그래요. 성도님들이 볼 때는 맨날 그 설교가 그 설교처럼 보일 수 있어요. 그러나 맨날 그 설교가 그 설교 같은 설교를 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저같이 어쩌다가 단타 치고 빠지는 교수는 그나마 괜찮지만, 매주 설교하는 목사님들은 이게 보통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이제 그러니까 이제 하나님의 사람에게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인간적으로 너무 심하죠. 그러나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왕의 잔치와 예물을 거절할 만큼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는 사람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 땅을 살 때 그 먹고 마시는 그 낙을 충분히 누리게 해주면 좋을 것을, 왕의 예물도 조금 받아 누리고 좀 살면 될 거를 왜 그렇게 못하게 하시는 걸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신빙성이 확보돼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때로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허락하신 최소한의 선물조차 때로는 금지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찌 됐든 이런 절대적인 순종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의 신실함을 믿게 되는 거고, 앞으로 미래에 있을 그가 전한 벧엘을 향한 단의 향한 심판의 메시지를 믿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이것은 오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전화하는 기독교 진리가 뭐예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언젠가 주님이 도둑같이 재림하실 것이고, 그날 모든 인간은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 아닙니까?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하는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5장 29절에서 주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29,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그런데 마치 우리가 이 세상이 전부인 양 먹고 마시는 것에 목숨을 걸고 이 땅에서 왕의 예물을 받고 재물을 쌓는 게 그곳에 생명을 건다면 주님이 영광중에 언젠가 재림하여 이 땅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기독교 진리를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요? 지금부터 이제 한 35년 전에 제가 이제 유학을 가기 전에 제가 번역을 하던 출판사에 이제 인사를 갔습니다. 그런데 그 방에 편집부장 방에 이장님 씨가 있었어요. 그 출판사의 직원이 숙제 그냥 거기에 직원이라는 걸 서로 이렇게 알고 있긴 했지만 초면인데 갑자기 저한테 언제 귀국하냐고 묻는 거예요. 한 7년쯤 걸린다고. 그러니까 갑자기 이 사람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다 틀렸네. 이러더니 갑자기 방을 나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 편집부장님에게 저 사람 왜 저래요? 물으니까, 이장님 씨가 두 명의 중학생이 받은 계시를 근거로 5년 뒤인 1992년 10월 28일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시한부 종말론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 알았어요. 이장님을, 제가 7년 후에 돌아온다고 그러니까 그전에 휴가가 있을 건데 유학은 다 쓸데없는 거라는 이유로 다 틀렸네. 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죠. 그러나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건 휴거를 주장하는 이장님이 추종자들에게 수십억이 넘는 막대한 헌금을 받았습니다. 추종자들이 휴거까지만 먹고 살 돈 남기고 재산을 다미선교에 바친 것입니다. 정말로 웃긴 것은 이장님씨가 자신이 주장하는 휴가 날짜 이후인 1993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환매 조건부 채권을 구입한 사실로 사기죄로 구속되었습니다. 미친 거죠. 그러니까 이게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이야기하면 삶으로 그것을 입증해야 될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죠.
 
다시 성경 본문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벧엘에 사는 한 늙은 선지자가 등장하면서 절대적으로 하나님 말씀에만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의 운명에 극적인 변화가 생깁니다. 이 늙은 베델의 선지자는 아들들에게서 베델의 신전에서 일어난 일을 듣게 되어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가서는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고 초대합니다. 그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두 번째 초청을 받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죠. 아니, 왕의 잔치를 거부한 사람이 평범한 노인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달리 생각해보면 그러나 왕의 잔치는 몰라도, 평범한 백성의 초대야 굳이 거부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사람은 여러 번 왕의 제안을 거절할 때와 거의 동일한 언어로 늙은 이 사람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나는 그대와 함께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대와 함께 들어가지도 못하겠으며 내가 이곳에서 그대와 함께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내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내가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다.”
-여기서도 핵심은 중앙에 여호와의 말씀이 딱 들어 있습니다. 유다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절대적인 순종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자 늙은 선지자가 방법을 달리합니다.
 
*열왕기상 13:18,
18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늙은 선지자가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다. 이렇게 말해요. 우리를 가장 쉽게 무너뜨리는 사람이 누굽니까? 선배 그리스도인들이죠. 너만 그리스도인이냐? 나도 그리스도인이다. 그런 거 하나 가지고 꼭 그럴 필요 있냐? 사회생활하려면 그것쯤이야. 넘어갈 줄 알아야지 이렇게 말하죠. 주로 똑같아요.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다. 이래놓고는 이제 여호와의 말씀에만 움직이는 사람임을 금방 간파한 늙은 선지자는 천사 운운하죠.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다가 천사를 덧붙였어요. 지금부터 춘사 운운하는 인간들은 조심하셔야 됩니다. 그리고는 이제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떡도 먹고 물도 마시라고 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 거죠. 하나님의 사람이 이것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모르지만, 성경 기자는 분명하게 이는 그를 속임이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은 선지자의 말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19절에 보면 이에 그 사람이 저와 함께 돌아가서 그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리라. 왜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이 이 속임에 넘어갔나요? 성경 기자는 그의 동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늙은 선지자가 왜 속였는지도 동기가 안 나옵니다. 동기가 선하든 몰라서 그랬든 아무 상관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전혀 언급을 안 하는 거예요. 아마도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늙은 선지자의 말에 넘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늙은 선지자는 무엇 때문에 여호와의 말씀을 빙자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을 속이고 있는 걸까요? 본문에 안 나옵니다. 여로보암 산당근처에 살면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 이름으로 한가하지 않은 걸 보니까 타소 신앙을 잃어버렸는지도 몰라요. 벧엘의 선지자로 베델의 단을 저주한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이 거짓이기를 바랬는지도 몰라요. 벧엘의 사니까, 어찌 됐든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순간에 무슨 일이 벌어졌죠? 하나님의 말씀이요? 불순종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안 하고 그 전 하나님의 사람에게 임했는데, 하나님의 사람을 속인 늙은 선지자에게 임해요.
 
*열왕기상 13:21,
21절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돌아와서 요하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고 한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내 시체가 내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심판의 메시지가 즉시 실행돼요. 하나님의 말씀은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을 택해서 움직이는 거예요. 이 사람을 속였는데 왜 하나님 말씀이 이리로 임합니까? 여기가 순종 안 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열리로 안 임하고 이리로 임하는 거예요.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그를 만나 물어 죽임에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서 있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서 있더라. 한 번의 실수인데, 그것도 순종하려고 했던 실수인데 어떻게 이렇게 비극적인 운명을 당해야 했을까? 저는 인간적으로 우리는 얼마든지 이 사람 동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 하나님의 사람을 꼭 죽이셔야만 했을까요? 인간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한 하나님의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람의 불순종은 이 사람이 이어가는 하나님의 말씀의 신빙성을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이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의 신빙성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신빙성이 지탱하는 기둥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의 순종이 깨어졌기 때문에, 지금 당장 하나님의 말씀 음식 금지 규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먼 미래의 벧엘에 선포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에 신빙성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말씀에 의해 움직이는 하나님의 사람은 위험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삶으로 입증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사역에 뛰어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절대적으로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는 결코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죽은 것이 인간적으로 마음이 아프지만, 하나님의 사람의 죽음이 오히려 그가 전한 말씀의 신빙성을 높이게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를 봅니다. 그러니까 늙은 선지자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말씀대로 바로 사자에게 물려 죽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을 향해 전한 말씀이 진리임을 확신하게 돼요.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 삶과 죽음은 벧엘의 늙은 선지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의 신빙성과 능력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모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벧엘의 선지자가 자식들에게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고 부탁한 거죠. 그리고는 32절에
 
*열왕기상 13:32,
32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성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이니라.
-벧엘의 선지자가 선포해요. 그러니까 벧엘에 살면서 약간은 탈락한 것으로 보이는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이 불순종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는 모습을 보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제 유다에 속은 하나님의 사람과 베드의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신빙성을 드러내는 형제 선지자가 된 거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행하다가 결국은 불순종하여 죽는다고 해도, 우리의 죽음이 다른 사람을 회개하게 만들 수 있다는 데 희망이 있는 거예요. 종종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신실한 종들을 때로는 선교지에서, 때로는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데려가시거든요. 절대적으로 순종하는데, 때로는 실수했는지도 모르지만 실수한 경우도 마찬가지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왜 이렇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데려갈까? 순종하지 않고 약간 타락해 있는 늙은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이 경고하고 있는 거죠. 그러나 우리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제 내년 2월이면 은퇴라 65세거든요. 옛날에는 막 젊은 선지자, 막 이렇게 난리 치다가 요새는 이렇게 늙은이 나오면 갑자기 내 나이가 지금 이게 늙은이로 들어가고 있구나! 이래가지고 이제 저를 확실히 돌아보게 돼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찌 됐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승리의 행진에 초청을 받은 거예요. 때로는 우리들의 어리석음으로, 우리들의 불순종으로, 우리들의 믿음에 있어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 승리의 행진을 하지 못하고 잠시 멈춰 설 수 있지만, 끝내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종과 불순종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승리하게 만드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 승리의 행진에 초청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 기자와 베델의 선지자는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죽은 후에도 26, 29절과 31절에 보면 뭐라고 하냐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해요.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 이렇게 돼 있긴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인 거죠. 이 두 형제의 선지자는 순종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 제목을 순종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고 붙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로보암 왕은 이런 사실을 눈으로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결과는 눈에 뻔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 우리 34절에 보면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열왕기하 3장 16절에 보면
 
*열왕기하 23:16,
16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요시야가 한 비석을 가리키면서 이 비석이 뭐냐 그러니까 성읍 사람들이 요시야 왕이 방금 벧엘의 재단에 행한 일을 300년 전에 예언했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다. 라고 하자, 왕이 그대로 두고 그의 뼈를 옮기지 말라고 명령해요. 하나님의 사람이 열두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던 하나님의 말씀이 완벽하게 성취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대적으로 순종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순종하지 않고도 살아남으려고 이렇게 하다가 보면 베드로 늙은 선지자처럼 돼요. 그나마 젊은 선지자가 죽는 모습을 통해 회개하면 괜찮은데, 회개하지 않으면 그다음에는 방법이 없는 거죠.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절대적 순종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신앙의 선배 주기철 목사님이 우리에게 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절대적 순종을 보여주신 신앙의 영웅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주 목사님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면 인간적인 고민보다는 너무 영웅적인 모습만을 강조한 나머지 성도들을 좌절시키는 경향도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불에 타는 모판 위를 주기철 목사님이 걸어가는 장면이 영화에 나오는데, 이런 장면에서 성도님들은 주 목사님의 용기와 신앙에 감동하면서도 저런 상황에서 나는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 순교는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게 아니야? 라고 포기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 교회 사가들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목숨을 내걸고 순종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교회 사과에 의하면 아들인 주강자 장로님은 아버지가 마지막 체포당할 때의 모습을 이렇게 증언했다고 합니다.
 
일본 경찰이 아버님을 잡으러 왔을 때 아버님은 팻마루 기둥을 붙잡으시고 가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그러자 어머님께서 아버님을 끌어안고 목사님, 지금 문 밖에 교인들이 와 있습니다. 목사님은 개인이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시면서 함께 우셨습니다. 그러자 아버님은 그래, 가야 할 길이라면 가야죠. 하시곤 두 분이 손을 잡고 오랫동안 기도하신 후 할머님께 하직 인사를 하시고 성경 찬송을 듣고 문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이 증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게세마네 기도를 생각나게 합니다. 우리 주님도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면서 이 자이 지나가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세 번씩이나 그리고 나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기철 목사님이 결사 각오로 절대적 순종의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주님과 교회를 향한 사랑,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함이 절대적 순종의 삶을 살 수 있었다고 한국교회사를 전공하는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주 목사님이 두 번째로 체포되어 6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하고 풀려난 후에 산정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인간이 못할 일이다. 그러나 인간이 십자가를 지려고 한다면 십자가가 인간을 지고 간다. 그래서 갈보리 산상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랑의 교회 성도 여러분, 절대적 순종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마음속에 온전히 주님만 모셔놓고 우리의 정성을 다하여 주를 섬긴다면, 우리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절대적 순종을 하려고 한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이끌고 십자가가 놓인 갈보리 선상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때 세상은 우리가 주님의 진정한 제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조금 후에 우리가 함께 부를 복음성가가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의 마음속에 온전히 주님만 모셔놓고 나의 정성을 다하여 주를 섬기리. 기쁘나 슬프나 오직 한 마음 주위에 한평생 주만 모시고 찬송하며 살리라. 주는 나의 큰 능력, 주는 나의 큰 소망 내가 항상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이 찬송이 우리의 평생의 고백과 전생의 결단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절대 순종의 길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죽기까지 순종했던 주님의 본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믿는 복음, 진리를 위해 절대 순종의 길로 결심하며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왕의 잔치와 예물을 거절하고, 때로는 먹고 마시는 것도 금하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할 때, 주님이 오시는 그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실 것을 기대하며, 주님이 날마다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이 세상에 나아가 세상을 이기고 승리를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유혹에 넘어갔다. 유혹은 인간의 육체적인 욕구와 결부되는 경우가 많은데, 유혹이 올 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는 것이다. 유혹에 넘어간 선지자는 사자에게 찢겨 죽는 결과를 맞았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언약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원하신다.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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