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예배(주후 2026년 01월 01일)-송구영신 특별메시지 제목: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 말씀: 신명기 1:29-33 대표기도: 박철수 장로님 찬양인도: 할렐루야 외 연합찬양대 설교자: 박희천 목사님(내수동 교회 원로-초빙) ----- *신명기 1:29-33,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 ▶송구영신예배 요약 (신명기 1:29–33) 본 송구영신 예배는 신명기 1장 29–33절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새해를 맞는 성도들에게 행하시는 두 가지 은혜를 선포하는 예배였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 앞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길을 알지 못했을 때,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앞서 가시며 길을 인도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미리 아시고, 가장 안전하고 바른 길로 이끄신다는 증거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구할 때, 에스라와 동방박사들이 낯선 길을 갈 때도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정확한 길로 인도하셨다. 설교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기도의 씨앗임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분이시다. -출애굽 이후 애굽 군대가 추격했을 때, 가나안 정복 앞에서 강대한 적들을 마주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대신해 싸우셨다. 성도들의 인생에도 예상치 못한 위기와 두려움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앞서 싸우시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음을 선포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새해를 향한 핵심 메시지였다. 특히 98세의 박희천 목사를 통해 전해진 이 설교는, 평생 기억해야 할 말씀으로 성도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교회는 이 말씀을 붙들고 2026년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앞서 인도하시고, 바르게 인도하시며, 형통케 하시고, 싸워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기를 함께 기도했다. 예배 후반부에는 21세기 모라비안 불침번 기도 운동을 선포하며, 2년간 24시간 기도의 파수꾼으로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개인과 가정, 교회, 나라와 민족, 세계 선교를 위한 합심 기도가 이어졌고,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교회와 가정”을 향한 간절한 기도가 올려졌다.
---결론적으로, 송구영신 예배는 * 앞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 * 기도로 새해를 여는 성도. 라는 세 가지 핵심 메시지를 남기며, 새해를 믿음과 감사로 출발하는 거룩한 예배였다.
♣주일예배(주후 2025년 12월 28일)-이사야 시리즈 ㉝ 설교제목: ”마지막 계시와 환상(The Final Revelation and Vision)“ 성경본문: 이사야 64:4, 65:24~25, 66:22~23 찬양인되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대표기도: 백두산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 오정현 담임목사님 ----- *이사야 64:4, 4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이사야 65:24~25, 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이사야 66:22~23, 22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3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 ▶1. 보이지 않는 환상 1-1.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믿음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계시이며, 이는 바울의 고백에서 나타남 -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세계를 믿고,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함 - 계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열어야 보이게 함 - 이사야는 계시를 본 선지자로, 1장부터 66장까지 하나님의 환상을 그렸음 - 이사야는 본문에서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대해 눈으로 봄을 주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심으로 믿게 함 1-2. 이사야의 환상 -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솔로몬의 전성기 이후의 데스로트 시기를 위로해 주시기 위해 환상을 주심 - 웃시아 왕의 죽음 이후, 사람들이 낙심하고 희망이 없어짐 - 이사야는 이 순간을 비관주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환상을 주심으로 비관을 깨뜨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함 - 이사야는 본문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믿음을 주심 - (중요) 보이지 않는 원인에 의해 보이지 않는 세계가 나타난다는 것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임 1-3.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믿음 -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의지해야 함 -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영적인 세계를 보고 깨달아야 함 -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원인에 의해 나타난 결과임을 기억해야 함 -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제일의 권력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임 - 이사야의 본문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믿음을 위한 계시임 2. 보이지 않는 세계의 힘 2-1.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함 - 인생은 무엇으로 행복해지는지 연구했지만, 행복은 물질이 아닌 인간 관계에 있음 -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인생의 행복을 결정함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함 - 하버드대 연구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최고의 접점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밝힘 - (중요) 72절을 암송하면 장례가 결정되고, 인생이 결정될 수 있음 2-2. 암송의 힘 - 보이지 않는 세계에 주목하면 영적인 세계에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섭리적인 손이 의식됨 - 지금 우리가 겪는 일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의 뜻을 의지함 - 우리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눈이 열리면, 영광스러운 즐거움과 기쁨이 찾아옴 -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함 - 어려움이 아니라, 마음이 거룩한 성숙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의심하는 것이 중요함 2-3. 보이지 않는 세계의 섭리 - 보이지 않는 세계에 눈을 뜨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적인 손이 의식됨 -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문제는 우리가 그 말씀을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음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 선을 이루게 됨 - 보이지 않는 세계에 눈이 열리면, 하나님의 환상과 계시를 경험하게 됨 -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 땅에서 꿈이 되고, 천국에서 주인처럼 살게 됨 3. 하나님의 비전 3-1. 새 하늘과 새 땅 - 본문에서 보이지 않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언급됨 - 그곳에는 해함도, 상함도 없으며, 모두 해와 상함이 없는 곳임 - 우리가 살아가는 땅에는 해와 상함이 있음 - 해와 상함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으로, 가해자로 인한 죄악과 피해자의 상처로 인한 억울함이 있음 - 새 하늘과 새 땅은 해와 상함이 없는 곳임 3-2.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 - 요한계시록의 제자인 사도 요한은 비전을 받아들이고 이를 발전적으로 해석함 - 요한계시록 27장 4절과 21장 4절을 인용하여 설명함 -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고, 사망과 애통, 상함이 없는 세상을 경험하게 하겠다고 약속함 - 저주가 없으며, 눈이 열린 사람에게 초대교회 성도들은 비전을 맛보기를 기대함 - 해와 상함이 없는 세상과 영의 눈이 열린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음 3-3. 비전의 결과 - 우리는 세상의 상처에 굴복하지 않고, 소망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살아감 - 해와 상함이 없는 세상을 기다리며, 상처를 주지 않고 받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을 강조함 - 한국 교회는 더 이상 상처를 주지 말고, 상처를 받지도 말기를 바란다고 함 - 하나님의 은혜와 계시를 통해 우리의 부름과 응답이 이루어짐을 깨달아야 함 - (중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무한하나, 시간은 상대적이고 결국은 하나님의 주권임을 알아야 함 4. 계시와 예배 4-1. 하나님의 눈으로 본 계시 - 보이지 않는 세계에 눈을 열어 하나님과 함께 영적 교제를 통해 은혜를 얻을 수 있음 - 엘리야를 예로 들어, 하나님의 미리 하심과 함께 7천 명의 기도 용사를 허락하심을 언급함 -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아는 것을 통해 응답하심 -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모라비안 기도를 드리면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기도하게 됨 - (중요) 예배는 하나님을 모시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한 환상을 듣고 계시를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함 4-2. 새 하늘과 새 땅 - 새 하늘과 새 땅은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곳으로, 천국의 애굽편을 맛보게 될 것임 - 이사야 66장 23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매월 초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심 - 이사야는 마태복음 5장에서 하나님의 안식처와 신성한 장소에 대해 언급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 영원히 보장될 것이라 결론함 - 이사야의 마무리는, 하나님은 공간에 제한받지 않는 하나님이시기에, 예배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심 4-3. 예배와 헌신 - 예배는 하나님의 신비한 환상을 듣고, 계시를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함 -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게 됨 -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통해 기적이 일어나게 함 -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의 인도하심을 통해 쓰임 받는 거룩한 종이 되기를 원함 - 예배를 하며, 헌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더 중요함 ♣요약 -해함도 없고 상함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은혜를 지금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예고편으로 누리며, 앞으로 매 주일 예배를 통하여 환상과 계시를 모든 성도들이 경험하고, 영안이 활짝 열리는 참된 예배자로 모두가 다. 비상하길 소망한다. 우리는 오감을 넘어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는 말씀으로 나의 영안을 열어 주사, 성령으로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는 평생이 되어서, 서러움을 주는 세상이지만 해함도 상함도 없는 천국의 예고편을 살아가야 한다. 이 일을 통해 무엇을 이루실까? 항상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대감으로 살며, 사랑의교회가 새 하늘과 새 땅의 능력을 힘입어 참된 예배자요 21세기 모라비안 기도자로 헌신하고 계승할 때, 상처는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으로 비상하게 하길 소원한다.
♧주일예배(주후 2025년 12월 21일)-이사야 시리즈 ㉜ 설교제목: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보라 (Lean on the Wonderful Counselor’s Shoulder)" 성경본문:이사야9:6~7
찬양인도:쉐키나(이 다니엘부목사님),시온찬양대(2부)
대표기도:황정호 장로님
사회:문진호 부목사님(2부) 헌금찬송: 캔송키즈(주일학교)
설교:오정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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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9:6~7,
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모사라,전능하신 하나님이라,영존하시는 아버지라,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
▶할렐루야 오늘 성탄 주일인데 정말 오늘 이 예배와 성탄 주일 말씀을 통하여 지난 한 해 동안 여러분들의 삶의 모든 무거운 짐들이 다 벗겨지기를 바랍니다.
제가 오늘 보니까 다른 때는 여기가 이 시기 12월 달 되면 청중들의 옷이 시커멓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보니까 좀 앞 예배 때 보니까 여러 색깔들이 있는데, 아마 지하철 타고 알록달록하게 오신 분들은 다 우리 교인들일 거예요. 오늘 좀 이렇게 마음 다 여시고, 연말연시 그동안 1년 동안 고생 많이 하셨는데 오늘 같은 경우는 복음의 깊은 신비를 깨닫는 주일이에요. 그래서 삶에 지친 모든 분들이 다시 회복이 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어야만 하는 주일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번 성탄은 니케아 종교회의 1700주년이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올해가 니케아 종교회의는 예수님께서 참 하나님 전능자이신데, 그 전능자께서 참사람으로 오셨다. 그래서 성육신하신 신비와 참 하나님의 전능자 되심을 아주 명확하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본문의 말씀을 통해 이사회 강의자 성탄절 메시지로 오늘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깨닫는 영안을 열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봄은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6절에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누구게 주셨어요?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고 그 어깨는 뭘 메웠어요? 정사를 메었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다. 그래서 제가 오늘 설교 제목을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어 보라.” 그 기묘자는 어떤 분인가 어떤 분인가? 먼저 오늘 서론 격으로 9장 1절 2절에 이런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사야 9:1~2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어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이 내용이 마태복음 4장에서도 그대로 반복해서 똑같이 이사야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인데, 스블론 땅과 납달리 땅, 해변 길과 이반 갈릴리가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 뭘 보았다고요? 큰 빛을 어떻게 큰 빛을 보았나? 그 의미는 이런 뜻이에요.
본래 이스라엘 백선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스블론, 납달리,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스블론과 납달리 지파가 약속의 땅을 받았어요. 지금 북쪽에 약속의 땅을 받았는데, 그 스볼론과 납달리 지파 사람들이 약속의 땅을 받고 난 다음에 하나님은 순종하고 잘하면 좋은데 불순종하고 악하게 행하고 못되게 굴어 가지고 그 스볼론과 납달리가 앗수르 제국에게 제일 먼저 망해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흑암이 돼버린 거예요. 스블론의 약속의 땅이 멸망의 땅이 되고, 약속의 땅이 흑암의 땅이 돼버린 거예요. 그런데 그 흑암과 멸망의 땅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므로 말미암아, 그 땅이 큰 빛을 보고, 영화롭게 되었느니라. 심지어 그 북쪽의 해변길 그쪽까지도 다 많은 상황이었는데. 큰 빛을 보고 영화롭게 되었느니라. 그러니까 스블론과 납달리 이스라엘의 북부 갈릴리, 갈릴리 지역이라고 하는데, 그 갈릴리 지역이 영화롭게 되었느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 어디서 오셨냐?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지만 사역을 어디서 갈릴리의 사역을 하시고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 12명 가운데, 11명을 이 북부 갈릴리 지역, 그 남쪽에 있는 안정된 유다 지역이 아니라 갈릴리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11명을 뽑아 가지고, 주님의 제자로 만드시고 흑암과 슬픔과 짐을 지고 힘들던 사람들의 인생을 확 바꿔버렸다 이 말이야. 조시는 분들 확 바꿔버렸대 확 바꿔버렸어요. 어떻게 바꾸나? 어떻게 바꾸나? 방법이 뭐냐? 오늘 첫 번째 생각할 것이 것입니다.
I. 첫 번째, 그의 어깨에 정사를 메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어깨에 정사를 메심으로 말미암아’ 6절 앞에,,,
*이사야 9:6,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전능자의 어깨가 정사를 메었다. 이 어깨에 놓여 있다는 이 말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뭐로 나타나느냐, 그 아들의 어깨에 놓여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 어깨에 놓여 어깨에 놓여 있다는 말을 주목을 해야 되는데 이사야 전체를 통하여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면 이사야 22장에 보니까 히스기아 왕 시대에, 국고를 맡은 오늘날로 말하면 국무총리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셋나 라는 사람이었어요.
이 셋나 라는 국무총리 격에 이 사람이 교만(驕慢)하고 불의(不義)해 가지고 하나님이 그를 쫓아내시고, 대신 힐기아의 아들 엘리아김을 불렀는데, 그는 경건한 자였고, 하나님이 신임받는 자였는데 주님께서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가지고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겠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냐. 이사야 22장 22절에 같이 보겠습니다.
*이사야 22:22, 22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얻게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할렐루야!~ 이 다윗의 집의 열쇠는 그냥 1인 열쇠가 큰 열쇠인데 이 열쇠를 누구에게 둔다고요? 그의 어깨에 둔다. 그러면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다.
이 말씀이 신약에도 반복이 되고 있는 내용인데 하여튼 인사권과 통치권을 통치의 권세와 책임을 상징하는 그 은혜를 주시겠다. 어깨에 둔다. 라는 말은 실제적으로 권세와 권위를 공식적으로 위임한다. 이 셋나 대신에 엘리야김에게 자위 당국의 권위와 통치와 책임을 위임한다.
그래서 오늘 그 아기에게 어깨에 정사를 메었다고 하는 이 얘기는 연약한 아기, 연약한 아기인데 거기에 정사를 멘 우주적 통치가 한 문장 안에 들어있는 것이에요. 세상의 문법으로, 보면 세상의 그랜머로 보면, 이게 맞지 않는 것 같이 어떻게 아기가 통치와 권세를 갖는가,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문법으로는 아주 적절한 선포라고 말할 수 있어요.
세상은 나이가 들고 왕자가 커 가지고 통치 권세를 받잖아요. 나라를 책임지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아기 때부터 우주의 통치자의 힘을 그 어깨에 정사를 메웠다는 걸 가지고 표현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 어깨에 정사를 메었다는 것은 모든 통치권과 권세가 위임되었다. 이렇게. 그리고 그 통치권의 무게를 어린 아기이신 주님께서 친히 감당해 주신다. 이사야가 볼 때, 예수님의 어깨 위에 우주 전체의 통치 집행권을 주신 거예요. 이 세상에 모든 세상의 권세를 빼앗아 가지고 예수님의 어깨 위에 올려주신 거예요. 마치 셋나에게 빼앗아 가지고 엘리야김에게 올리는 것처럼,,, 이게 우리 식으로 적용이 되면 이 세상의 모든 사탄의 권세를 빼앗아 가지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넘겨주신 것입니다.
이건 참 신비로운 거예요. 그리고 좀 더 놀라운 것은 그 어깨에 정, 통치권을 주셨다는데 그럼 우리가 보통 생각할 때 힘과 능력과 막 그냥 막 통치하는 이런 걸 생각하기 쉬운데, 더 놀라운 복음의 신비는 그의 어깨에 정사가 메었다는 것에 대한 신비가 뭐냐면 요한복음 19장 17절에,
*요한복음 19:17, 1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예수께서 자기의 뭘 지시고요? 어깨, 예수님은 어깨에 십자가를 지셨어요. 어깨란 말이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당시 십자가 처형 관습에 따르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가로목을 어깨에 지고 가셨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에요. 어깨에. 정사와 통치권이 있는데, 그게 뭐냐?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주를 통치하는 방식은 세상 왕들이 사용하는 힘이 아니라, 그 어깨에 십자가를 지시는 것으로서 통치하게 되어 계시는 거예요. 그러고 볼 때 우리는 십자가가 옛날에는 예수 십자 지시기 전까지 수치와 부끄러움의 하나의 상징이었지만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보혈의 능력으로 구원받고, 그 믿음의 은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십자가가 여러분들에게 능력이 되는 것이에요.
나의 믿음 죽게 있네. 그다음 뭐예요? 십자가 능력이 내 영광되었네. 이걸 깨닫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은 이 십자가를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십자가를 당신의 어깨에 지고 가신 것입니다. 아기의 어깨에 정사가 놓여 있다는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것을 이루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아셔야 되고, 그리고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세상 제국의 왕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을 보여줬는데 세상의 왕은 힘과 교만과 호전성과 억압과 폭압성과 잔인함과 음모를 꾸미지만 거짓말하고 그러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오신 것이 아니라, 순전한 천진한 어린 아기로 오셔 가지고, 정사와 권세로 그 어깨에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통하여 능력을 보여주시고, 십자가를 통한 통치와 권세를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살다가 이런 일 있고 서른 일 있고 답답한 일이 있고 안타까운 일 많이 있을 때마다 예수님의 어깨로 지신 그 십자가 앞으로 가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넘어져도 어깨 위로, 힘들 때마다 확 넘어져도 어깨 위로, 그리고 자빠져도 십자가 앞으로, 그리고 한 단계 더 들어가면 이 세상의 왕은 백성의 어깨에 짐을 지우지만 평강의 왕이신 아기 예수 그루서는 백성을 살리기 위하여 세상의 짐을 자기 어깨 위에 메신 것이에요. 이 세상 왕국에서는 하위층 사람들이 상관이나 주인을 그의 어깨 위로 짊어지는 것이 이게 뭐 보통 그런 형편이죠. 아무리 좋은 지배자 심지어 성군 세종대왕이라 할지라도, 행차할 때는 가마를 하인들이 그 어깨 가마 어깨 위에 어왕을 모시는 거죠. 그러나 우리를 위해 태어나신 순전한 아기 예수님의 지배는 세상 왕국의 방식과는 정반대라는 사실이에요.
사람들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의 어깨 위로 그분의 당신의 어깨 위로 짊어져 주시는 것이에요. 그 결과 오늘 정말 가슴, 가슴이 찡한 것은 뭐냐 하면 그 결과 저와 여러분은 오늘 이 성탄 신비를 깨달으면요. 예수님의 어깨 위에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이 놓여 있는 것이에요. 제가 제일 그냥 하는 얘기예요. 요한복은 10장에 보니까, ‘나는 선한 목자’라고 그랬어요. 선한 목자는 어떻게 합니까? 99마리의 양이 있고, 100마리가 다 아흔아 평안하지만 한 마리의 양이 잘못돼 가지고 그냥 길을 잃으면 그 양을 찾을 때까지 찾도록 찾는다고 그랬어요. 그리고 누가복음 15장 5절 6절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누가복음 15:5~6,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어깨에 메고, 어린양을 찾았으니 기뻐하자. 이 주님의 마음에 이게 오늘 복음의 신비예요. 여러분들을 찾으셔서 어깨에 메신 그 주님을 찬양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마치 그런 어린아이에게 어린아이가 어릴 때 어떻게 합니까? 아빠가 무등을 태우잖아요. 아빠 목 위에다가 태우는 걸 뭐라고 그럽니까? 목마 태운다고 그러지. 그 태우듯이 주님은 우리를 어깨 위에 주님께서 태우죠. 무등 태우면 아빠 키 1m 80, 어린아이 한 4, 50cm, 2m가 되는 제일 큰 거예요. 그냥 그렇게 해주시는 거예요. 오늘 우리 선글라스에 나와 있잖아요. 주님께서 뭐라고 되어 있느냐. 아기 어깨 위에 무등을 태우시죠.
지금 보이십니까? 어린 양을 무등 태우시는 거 보이십니까? 어깨 위에 세우신 거 보이십니까? 저게 잘 안 보인다 그러면요. 좀 이렇게 그 예수님 얼굴도 보이세요? 저기 은은하게 해놓았어요. 저거 다 고민하면서요. 세계적인 스테인글라스 전문가가 자기 기도하면서 제가 좀 부탁해 가지고 저렇게 한 거예요. 너무나 놀라운 것이에요. 주님의 어깨 위에, 연약한 양인 우리가 주님의 어깨 위에 올려지는 그 순간 무등 타는 그 순간, 그 양은 주님의 힘과 통치와 은혜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주님의 어깨 위에 실린다는 것이 어떤 뜻인가? 주님의 생명과 능력과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트랜스퍼 되는 것이에요. 미련하기 짝이 없는 양인 우리에게, 자, 한 마리 기리는 양이 헤매고 있어요. 주는 그거 찾았어요? 이 미련하고 방퉁이 같은 놈아, 이렇게 하면서 왜 이렇게 헤맸냐고 뭐라 그러지 않으시고, 어깨 위에 얹어주시는 거예요.
이 복음의 신비한 것이에요. 미련한 양인 우리에게 예수님이 가지신 온갖 귀한 것들이 우리에게 위임되는 것이 여러분 이것이 복음이요. 참된 은혜인 줄 믿으시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이 통치 방식은 세상의 통치 방식을 뛰어넘는 것이에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왕국이 어디에 있느냐, 기독교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얘기했을 때 어떤 사람은 로마냐,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어디냐, 물었을 때 로마냐, 바티칸이냐, 아니면 저 비텐베르크 성이냐 프로테스탄티냐, 여러분 그런 것보다도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어디에 있냐, 묻는다면 우리는 답을 뭘 해라? 예수님의 어깨 위에 있는 것이다. 어린 양 되신 그분께서 미련한 양인 우리를 그의 얻기 위해 얹어 놓은 것이 그리스도의 나라의 현장인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이 성탄 주일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어깨 위에 놓인 양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오늘 이 성탄 시즌에 여러분의 위로, 여러분의 능력, 여러분의 기쁨을 어디서 찾아야 됩니까? 그리스도의 어깨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삶의 주민등록을 주님의 어깨 위로 옮기시라고요. 옮기시라. 그분의 어깨 위에 있지 않는 자는 그리스인이 아닌 거예요. 그분의 어깨 위에 자신의 죄와 허물과 그리고 연약함을 다 내려놓는 자, 그런 분들이 주님의 통치를 받는 자이고, 그리스인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 보니까,
*요한계시록 1:17 내가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앞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없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는 거에요.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다. 그가 오른손을 내 어깨 얹는 거야. 내 어깨 얹혀. 로마의 권세와 능력 앞에 요한의 두려움과 좌절과 실망에 빠졌을 때 요한에게 요한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시고, 그럴 때 예수님의 어깨 위에 그 두려워하던 요한이 올라가 버렸어요. 무등 타버렸어요. 제가 사랑의 교회에 23년 전에 처음 부임할 때, 그때 40대 중후반이었는데. 젊은이들 세대는 내가 부족하지만, 담임목사님을 어깨 위로 뚜벅뚜벅 걸어오라 그랬어요. 내가 브릿지가 되겠다고,,,
여러분, 저는 한계가 있는 사람이고, 저는 부족함이 참 많은 사람이지만 우리 주님은 완벽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어깨 위로 여러분들 걸어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자 그러면 그 어깨에 대해서 우리가 깨달았고 전능자의 어깨에 깨달았고, 두 번째로, 해야를 그러면 그 어깨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어 보라는 것이에요.
II. 두 번째, 기묘자(Wonderful Counselor)의 어깨에 기대어 보라.
-오늘 주름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 ‘기묘자라 모사’라 그렇게 했어요? 모사라 모사라가 아니고 모사라 기묘자라 모사라 이 말이 영어로 원더풀 카운슬러(Wonderful Counselor), 모든 것을 다 통찰하시는 분, 모든 절대적인 지략가, 그래서 이분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답을 주시는 분 그래서 기묘자라 모사라, 기묘자이고 모사인 그분의 어깨에 우리의 삶을 기대어 보라는 것이에요.
어떤 경우에도 답을 주시는 거에요. 이걸 믿는 게 믿음이에요. 여러분, 이 내용, 이 기묘자라는 이 단어의 표현이 너무 한국말로는 좀 이렇게 좀 깊이가 특별한 거예요. 그래서 처음 성경 번역, 성경 번역하고 지금 140년이 넘었는데 이 기묘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거예요.
대개 이제 옛날 성경, 그다음에 개혁판, 그다음 개혁, 개정판 이렇게 넘어오면서 옛날 오래된 단어들은 좀 고치고 그렇게 하는데 이 기묘자는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이에요. 너무 신비해가지고 이 신비한 김효자에게 옛날 선대의 어른들이 기대었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이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뭐가 기묘한가? 어떤 기묘가 있길래 우리가 어깨에 기대야 하나? 예를 들어서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 홍해를 건널 때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라고 생각해 보십시다.
홍해를 참 그 기적같이 홍해를 말도 안 되게 홍해를 건넜다 그러고 난 다음에 야 이건 진짜 기묘한 것이구나! 3년 반 동안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온 나라가 메말라 가지고 다 죽을 판인데 갈멜산에서의 영적 전투를 통하여 하늘에 불이 내리고 하늘에 비리 내리고 난 다음에 그 닫혔던 하늘이 열리고 그 풍성한 은혜의 폭우가 쏟아졌을 때 이거라고 진짜 놀라운 일인데 이게 바로 기묘한 일이구나. 그게 기묘한 나사로야. 나오라. 그럴 때 사람이 지금 무슨 얘기냐 이러고 있는데, 동굴에서 나사로가 온몸을 이렇게 수의를 감싼 채 나오는 그 모습을 이거야말로 기묘한 것이구나. 죽은 것 같은 인생을 동굴에 우리가 힘들어했는데, 하나님이 사실 이게 정말 기묘한 일이구나.
무엇보다도 가장 기묘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아기 나오신 그 모습을 목자들이 보고 동방박사들이 보고, 사람들이 보고 이거는 하늘에 황금빛이 다 내리고 이거야말로 진짜 기묘한 것이구나. 주님이 이 땅에 사실 때, 그 구세주 되신 그분이, 섬기로 오시고, 제자들을 훈련시키시고, 폭우를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병자를 일으키시고 죽은 자를 그야말로 정말 기묘한 것이구나. 그런데 가장 기묘한 것은 히브리서 7장 25절에 어떤 것인가? 같이 읽겠습니다.
*히브리서 7:25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할렐루야, 오늘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위해 중복이도 하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에 보좌 앞에 나가도록 하시는 것, 이것 자체가 지금 주님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는 그 자체가 기묘한 것이구나.
그리고 이 기묘자의 통치 방식은 세상 통치 방식이 아니라 십자가구나,,. 십자가를 지치는 거구나. 이게 기묘함의 절정이구나. 만왕의 왕이 왕의 왕자가 아니라,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승리와 정복의 길이 아니라,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승리로 이기시고, 이게 하나는 나라에 기묘한 것이구나. 그리고 이 최고의 기묘함이 십자가를 지치는 것인데 그 십자를 통하여 오늘 다시요. 오늘 성탄절을 뭘 깨달아야 한다고요? 처음 제가 시작할 때 말씀드렸는데 그걸 다 까먹으면 제가 소망이 없잖아요. 오늘 같은 날은 복음의 깊은 뭘 깨달아야 한다고요? 신비를 깨달아야 한다?-(복음의 신비), 그래서 7절에 그 신비함 이렇게 나와 있어요. 다 같이 크게 크게 합독 합시다.
*이사야 9:7 7 그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본당 또 방송 또 별관 또 대부도까지, 뭐 전부 다 크게 합시다. 아멘 오늘 평강이 더 무궁하고 다윗의 왕자 나라 세우고, 공의로 보존하실, 이런 모든 신비하고 이런 모든 것들인데 그 정사의 어깨에 주님의 어깨에, 우리가 우리가 무등 탐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모든 일들을 체험하고 확인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복음의 신비를 깨닫도록,,, 오늘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여러분들에게 통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어릴 때 제가 교회 부흥회를 가는데 어떤 붕사가 나타나 갖고 오정현 제 깜짝 놀라 갖고 있는데, 만군의 여호와의 여호와의 열심히 너를 삼키리라. 그러더라고, 내 깜짝 놀란 거야. 만군의 여호와 열심히 뭔가, 다른 뜻이 아니라 오늘 이런 복음에 신비가 여러분들의 생애를 압도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깊이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제가 오늘 전능자의 어깨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전능자의 어깨,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어보라. 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진짜 적용할 겁니다. 그게 뭘까?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우리를 삼켜야 되고 복음의 깊은 신비가 우리를 압도해야 되는데, 그건 어떤 뜻일까요? 신앙생활을 처음 할 때는 우리가 열심을 내 가지고 우리가 애를 씁니다. 그런데 신앙생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하나님의 열심히 우리를 얼마나 압도하는가? 이걸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적용은요. 너의 모든 책임을 니가 다 지려고 하지 마라.
III. 적용, 내가 다 책임지려 하지 말라.
-너 인생 네가 다 책임지려고 하지 마라, 인생 우리가 책임져야 돼요. 그건 우리가 초등 학문이에요. 그런데 깊이 들어갈수록 우리 인생은 우리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 열심히 우리를 책임지시는 것이에요. 이게 무슨 뜻인가? 여러분, 저는 사역을 하더라도 여러분, 저는 사역을 좀 그냥 두만강 푸른 물에,, 이르면서 노새노새 젊어서,,, 이렇게 합니다. 아니면 좀 열심히 합니까? 그냥 여러분의 반응에 맡기겠어요.
저는 제가 대학 시절부터 제자훈련 하면서 원칙 중에 하나가 The Great Commission, 예수의 지상사명에 대해서, The Standard of Excellence라 그래 가지고 최선의 수준으로, 최선의 수준으로, 성장 좀 더 잘해볼 수 없을까? 하나라도 잘해볼 수 없을까?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없을까? 좀 더 애써볼 수 없을까? 저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요즘은요. 최선을 다하지만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야 하고, 내가 모든 것을 다 책임져야 하는 것에 대해서 기묘자 신 주님께 위탁하고, 특별히 인간적인 모든 책임감으로부터 이게 좀 포기(抛棄)각서(覺書)를 써야 되겠구나.
이 포기각서를 통하여, 주님께 주권 이양을 해야 되겠구나, 여기는 젊은 분도 계시고, 연세 드신 분도 계세요. 여러분 저희 세대는 60, 70, 80 우리 저희 세대는요. 어른들은 열심히 모셔요. 그런데 제가 이번 쇼크를 받았는데 어떤 한 50대 초반의 목사님이 전화를 전화를 했더니, 나보고 ‘어르신 목사님’! 그러더라고. 나 충격 받았어요. 내가 뭐 무슨 어르신, 나는 한 번도 내가 어르신 목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여기 지금 50대 분들 어디 가다가 아버님 이렇게 하면 쇼크 받죠. 우리는 열심히 산 거야. 열심히 다 어느 세대 비슷하겠지만, 그러니까 우리 책임을 다하려고 최선을 다한 거야.
최선을 다해요. 연말연시에 지금 오늘 이 예배도 우리나라의 사회적으로도 책임을 지고 어떤 기업이나 책임 있는 자리에서 공적인 자리에서 너무 고생을 많이 하고 리더들 많이 계세요. 가정과 국가의 수많은 책임 앞에서 수많은 짐과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남 모르는 두려움도 많고,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정도로 힘들 때도 있어요. 짐도 많아지고 그럴 때 오늘 답이 뭐냐.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해 보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누가 내 인생의 책임자입니까? 우리가 지난 생활 초기에는 나름으로 내 의지의 활동들이 필요하죠. 나를 따라오라. 그럼 따라야 되고, 이웃을 사랑하라. 사랑해야 되고 빛과 소금으로 살아라. 그러면 남대로 실천하는 우리 의지가 나름대로 필요해요. 그런데 다시오.
여러분, 의지로 살지만. 그런데 막판에 여러분들의 인생, 여러분들의 삶은 누가 책임자입니까? 이 세상은 운칠기삼(운칠기삼은 ‘운이 7할, 기술이 3할’이라는 뜻으로, 세상일은 정의만으로 풀리지 않지만 이치도 함께 작용함을 이르는 말), 그래. 누구에게 태어나느냐 어디서 태어나느냐 이런 게 운명. 그리고 내가 이렇게 얘기하고 어떤 사람은 아니야. 운구기일(運(九技一(운7, 재주3))이야, 운이 90%. 그다음 제주가 10%다. 이런 말도 가리치만 우리는 그런 거 다 떠나서
우리는 오늘 기묘자의 어깨에 기댄다는 차원에서 여러분들의 삶의 포기각서를을 여러분들의 의지의 포기각서를 주님께로 맡겨야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의 인생을 여러분 책임질 수 있습니까?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진다는 그 말처럼 무서운 말이 없어요.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진다는 그 말은 닭장 관리를 굶주린 늑대에게 맡기는 것과 똑같아요.
이 세상은 내가 내 인생을 자기 의지를 가지고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에요. 제가 말했어요. 우리 신앙생활 초창기는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런데 신앙생활에 깊이 들어가면 정말 미묘하고 깊은 부분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내가 내 의지를 활용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 나는 내 인생의 닭장 관리를 늑대에게 맡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내 속에는 늑대 같은 본성이 남아 있는 것이에요. 무슨 뜻이냐?
◆나의 의지(意志)가 하나님을 의지(依支)할 때, 기묘자의 (어깨에 기댈 때) 나의 의지는 책임 있는 순종의 도구가 되지만, 나의 의지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의지가 될 때에는 늑대가 닭장 속의 닭을 해치는 것처럼 나를 해치는 흉기가 된다. -이게 신앙의 비밀이에요. 무슨 뜻입니까? 내 의지가 복음으로 덧입지 않고서는 내 인생의 본성은 굶주린 늑대와 같다는 것이에요.
내 자아가 너무 강하고, 자기애기가 너무 두드러지면 예수 믿으면서도 헤매고, 상처받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오늘 이 복음의 신비를 깨닫는 소중한 주일날, 우리가 전적 위탁을 못 하고 포기각서를 못 쓰는 우리의 마음의 성향을 내 속에 있는 늑대가 나의 죄 성, 나의 자아, 자기의 교활한 합리화를 하려고 할 그때에 포기각서를 쓰고, 기묘자의 어깨에 나를 기대는 것이 내가 나를 책임진다는 책임감에 대하여 포기각서를 써야 한다는 것은 나의 의지를 폐기하라는 그런 말이 아니라, 나의 의지를 하나님께 항복(降服)하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도 강조하는 것이 기독교의 깊은 실리에 들어가면 기독교는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기 부인이다. 자기 의의와 자기 공로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공로의식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식, 복음의 신비를 깨닫는 데서 살아야 할 것이고,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기부인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 하나님이 좀 깊이 쓰시려고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특별하게 여러분들의 자아를 무지막지하게 하나님께서 꺾으신 거예요. 모세를 보세요, 애굽의 왕자. 그 펄펄 산 자, 사람 때려 죽이는 자, 그하고 안 된다는 거예요. 40년 동안 광야에서 완전히 굴리는 거예요. 그래도 리드를 삼았지만 그래도 안 되니까. 나중에 40년 이스라엘 리드로 살 때도 하나님께서 모세를 묵사발을 만드는 거에요.
구름기둥, 불기둥, 모르고 그다음에 옆에 있는 측근들이 배신하게 되고, 자아가 아니라 내 자아가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자아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포기각서를 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어깨에 기대어서 진짜 평강과 하나님의 열심을 확인하라는 것이에요.
오늘 기억하세요. 우리 인생의 처음 시작한 알파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고 빚으셨기 때문에, 여러분의 생애 오메가 시점, 시작 부분에 주님이 우리를 대해서부터 다 아셨기 때문에 주님이 여러분들의 마지막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것이에요. 끝까지 책임지실 것이에요.
지난 주간에 한 주일 전에 평생을 목회자로 살아오신 80세 이신 목사님이 저녁 식사 마치고 청소하시고 샤워하고 그다음에 가정 예배 드리고 그러고 돌아가셔 버리셨어요. 제가 그 얘기를 듣고 야 내 인생을 하나님께 다 맡기고 살아야겠구나, 순식간에 주님 앞에 맡겨진 인생으로 본향으로 가신 그 목사님을 생각합니다. 여러분, 진짜 내 인생의 책임자가 누구이십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 다 오라 그러시고,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보라고 하신 그분이 내 인생의 책임자이신 것이에요.
왜 우리가 그분께 의탁하고, 내 인생에 자아에 대한 포기각서를 왜 써야 됩니까? 거기에 대한 답이 오늘 성탄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 구유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기묘자 그분께서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지만, 만 가지 일을 우리를 위하여 하고 계시는 것이에요. 오늘 막후에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일하시는 그분을 깨닫고, 우리 자아의 포기각서를 쓰고, 신앙생활 총연의 내 위주로 하지만 특별히 우리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 중직자들, 앞서서 일하는 분들, 무언가 책임을 맡은 분들, 그럴수록 주님께 포기각서 쓰고 전능자의 어깨에 기대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걸 깨닫고 의탁하는 것이야말로 섭리 적인 믿음이다. 섭리 적인 믿음이다.
이 신비한 걸 깨달아야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다 아시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이에요. 여러분 부모가 자녀에 대한 계획이 있는 것처럼,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에 대한 계획이 있는 것처럼, 손자 손녀는 몰라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다 계획 있는 거예요. 제가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어요? 다. 다 계획이 있는 거에요. 그런데 손도 잘 몰라요. 어디 인간 할아버지가 감히 창조주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로 어깨에 지신 그분 앞에, 명함이라도 내겠습니까? 주님이 다 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마시고 오늘 이 성탄 주일날 주님이 오셨을 때, 목자들도, 동방박사들도 그리고 나이 많은 분도, 젊은 아이도, 남녀노소 빈부귀천 차별이 없이 주님의 어깨에 기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면 어떤 분들은 ‘아이고 예수님 짐도 많으신데, 내 짐 또 어떻게 맡기나?’ 걱정도 팔자예요. 주님의 어깨는 온 우주를 짊어지고 계시는 것이에요. 온 우주의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재침도 다 짊어지고 계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있는 일은 어마어마한 일이고, 너무나 신묘막측한 일이에요. 오늘 이 주님의 어깨에 기대어 인간의 의지에 닭 날갯짓을 멈추고, 독수리처럼 비상하시길 바랍니다. 올라가면 독수리가 보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섭리적 믿음이 돼서 눈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성탄 시절 참으로 복대기를 축원합니다.
소망 없고 빛도 없고 어두운 세상에 이 찬양하시면서 그 삼위일체 하나님께 나를 완전히 맡기고, 포기각서를 쓰고, 여러분 여기에 열심히 다 사시는데 그 열심히 살지만 우리는 더 깊은 경지에 들어가서 주님의 어깨 위에 내 인생을 얹어 놓는, 그리고 독수리처럼 비상하는 축복을 받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소망 없고 빚도 없고 어두운 이 세상,,,
오늘의 성탄절 날 기묘자의 어깨 위에 우리의 모든 자와 우리의 모든 인생을 다 의탁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한 분 한 분 은혜위에 은혜를 덧입혀 주시기를 바랍니다.
♣요약 -우리는 이 성탄 주일, 우리의 모든 고난과 아픔과 눈물을 가지고, 주님의 기묘자의 어깨에 달려가서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능력과 승리와 회복을 얻어야 한다. 내 인생의 책임자가 나라는 말이 바로 닭장 관리를 늑대에게 맡기는 것처럼 무섭고 무책임한 말이니, 오늘 이런 합리화를 다 버리고, 자기 의와 자아실현에 대해서 날마다 포기각서를 써야 한다. 나의 의지를 주님께 전적 위탁하므로, 나의 의지가 책임있는 순종의 도구로 쓰임 받아야 한다.
-연약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의 어깨 위에 전능하신 우주적 통치 능력이 있는 줄 확신하여, 상한 모든 인생 짐을 주님의 어깨에 온전히 맡기는 평생이 되고, 영원한 책임자이신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나를 압도하심이니, 날마다 내 의지에 포기각서를 쓰며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어 전적위탁(全的委託)을 하여야 한다. 우리 사랑의교회가 성탄의 계절에 항복하고, 순종하며 한계 없는 주님의 어깨에서 참된 위로와 능력을 받을 때, 대한민국과 전 세계 위에 정의와 공의와 평강의 은혜가 더하여 질 줄 믿고, 우리는 주님 앞에 모두를 맡기고 의탁하며 간구해야 한다.
♣주일예배(주후 2025년 12월 14일)-성서주일 특별메시지 제목: "패배주의 극복 가능한가?(Possible to Overcome Defeatism?)" 말씀: 골로새서 1:25-29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신동호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 *골로새서 1:25-29,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 ▶오늘 이 찬양대가 우리 내주는 강한 성이요. 이 찬송을 드렸는데, 오늘이 성서주일이기 때문에 이 마르틴 루터가 ‘내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대신이 큰 환란에서 구하여 내실 거다. 그 다음 가사 중의 하나가 내 힘만 의지하면은 뭐 할 수밖에 없다고요? 패할 수밖에 없지만, 그 다음 가사가 뭐예요?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는 이 장수가 누군가? 오직 주의 예수 그리스도’ 그렇게 해서 마르틴 루터는 이 곡을 이 가사를 쓰면서 오직 성경, Solar Scripture, 그다음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 솔로스 크리스토스 이렇게 해가지고 오직 성경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생의 모든 드리워진 환란과 고난과 패배주의와 그다음에 회의주의와 비관주의와 모든 냉소를 극복하게 해 주실 것이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패냉회비, 오늘 대표로만 패배주의 어떻게 극복할 했는데 사실은 패냉회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러니까 패배주의, 냉소주의, 회의주의, 비관주의, 비냉 아시죠? 패냉, 그리고 오늘 이제 이 말씀 듣고 우리가 무슨 회의를 참석하고 갈 때 회비를 내잖아요. 회비, 회비를 내는데 우리가 오늘 패냉 회비는 내지 말아야만 하는 것이 잘 이해가 안 가시죠. 집에 가서 웃을 거예요. 아마. 자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패배주의, 냉소주의, 회의주의 그다음에 비관주의, 비판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거는 우리 속에도 이런 성향이 다 있거든요. 그러니까 오늘 성탄을 한 10일을 앞에 놓고, 성탄절 앞에 놓고, 오늘 이 말씀 정말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패냉 회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를 여러분 딱 깨닫고 말씀의 능력을 가지고 돌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최근에 그리고 오래전에 최근에 경험한 두 가지를 말씀을 하나는 뭐냐 하면 1986년도에 지금부터 49년 전에 제가 신학교를 졸업할 때인데, 그 때에 한국에서 유명한 목사님이 오셔서 미국에서 집회를 하셨어요. 집회를 하셨는데,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니까 목사님 제가 잘 알아서 집회 참석을 했어요. 참석 마치고 난 다음에 목사님 저보고 뭐라 하냐면 오형제!~ 대한민국이 앞으로 50%가 예심이 될 가능성이 많아 50%가 그러니까 오형제 시대 잘 준비해요. 그러더시라고. 나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어른들 말은 하늘처럼 받들어야 되는 말인 줄 알고 50%가 예수 믿어야 될 것이다. 그래서 ‘2033-50 비전’이 나온지 몰라요. 그런데 하여튼 50%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그럴 때가 있었어요. 그리고 최근에 우리 교회 일개 장로님 한 분이 사업하시는 분이신데, 서울 선언 우리 더블리 세계복음주의연명 총회 서울선언 이걸 다 읽어보시고 너무 은혜를 받으시고 어떻게 하느냐면 가시는 곳마다 회의할 때나 식사할 때나 그다음에 교제할 때나 누구를 만날 때나 완전히 이걸 계속 같이 나눠주는 것이 나눠주시고, 또 저희 교회 대학 총장님으로 계시는 안수 집사님이 계시는데, 그 성탄과 연말연시에 선물을 이걸로 하겠다고,,, 그래서 우리 교회 뭐 몇백 번 요청도 하시고 대학 교수님들에게 다 나눠주겠다고 자 이런 말씀을 제가 이제 듣고 아 그렇구나, 자 오늘은 성서주일로 제가 지키고 한국 교회는 본래 이 12월 둘째 주일을 성서주일로 지키는데 그래서 여러분 찬송을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찬송하는데 은혜가 되었어요? 안 되었어요? 그 성경 사랑하는 사람은 그 찬송할 때마다 마음이 짱해지는 거예요. 찬송할 때마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뭐로다? 생명샘 이로다‘. 생명의 능력과 기름 보험이 그냥 껍데기가 아니라 진짜 생수가 길어져 올라오는 거예요. 자 오늘 그런데 한국 교회는 지금 많은 분들이 이제는 이제는 다 안 된다. 주일학교도 문 닫고 청년들도 많이 떠나가고 이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전 세계 공통적인 현상 비슷하게 하기는 합니다마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는 것이에요. 예수 그로서는 동일하신 분이세요. 그렇다면 우리가 좀 생각을 해 봐야 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오늘 28절 29절에 제자훈련의 대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같이 이렇게 쭉 놓고 정리를 하는 것인데, 여러분 우리가 서울 선언할 때, 여기에 키가 뭐냐면 성경의 절대권위, 예수 그리스도 유일성, 그리고 이 일을 앞으로 세계 교회가 향후 10년, 20년 어떻게 할 것인가? 두 가지밖에 없다. 이것이 확실한 복음을 전파하고 그 사람 제자들을 양성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여기 키예요. 저는 이걸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이렇게 해가지고 빅텐버를 성의한 것처럼 이걸 전부 다 영어로 된 걸 전부 다 동판으로 만들어 갖고 곳곳마다 붙일까? 지금 생각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돼야 하니까, 세계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얻어야만 하는 것이니까,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그리스 안에서 온전한 제자로 만들기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시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그랬어요. 이게 뭐냐 하면 자 오늘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님의 맡음의 28장 지상명령을 바울의 입장에서는 이걸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실천 현장이고 그 다음에 이걸 실천할 로드맵으로 만든 거예요. 그 로드맵으로 만들고 실천 현장으로 만들어 갖고 실제적으로 부흥이 일어나고 패냉회비를 극복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이에요. 오늘 그런 차원에서 오늘 이 말씀과 함께 여러분들이 여러분 소개 패배주의, 냉소주의, 그 다음에 회의주의 비관주의, 비판주의도 극복될 수 있도록 하늘에 우리 기름 부으심 여러분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이 일을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어요. 골로새서 1장 28절, 29절 이 제자 언론의 대헌장 우리가 잘 아는 이 말씀인데 이 말씀 앞에 27절이 있는 거예요. 27절이 뭐냐? 다 같이 같이 보겠습니다. *골로새서 1:27,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아멘. 자 무슨 말이냐 하면 제가 이런 말씀을 예수님의 지상명령이다. 제자 훈련의 대헌장이다. 그다음에 우리가 이 예수님 바울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로드맵으로 실천하기를 원했다. 이런 말을 해도 대체적으로 와닿는 분도 있고, 와닿지 않는 분도 있어. 왜? 내가 그런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나 내가 약간 방관자적인 그런 마음이 내게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그걸 어떻게 이룰 것인가? 첫 번째는 뭐냐? I. 첫 번째, 예수 그리스도가 비밀이다. -비밀이 뭐냐? 그걸 이룰 수 있는 게 뭐냐? 예수 그리스도가 비밀이다. 이거예요. 우리를 돌아보면 우리는 너무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거예요. 아, 내가 이걸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저는 우리 교우들에게 한 번씩 말씀드리지만, 대학교 3학년 때 그 당시에 우리 교단에서 제일 큰 대학부를 제가 맡았어요. 그리고 그 대학부를 맡아서 감당을 하려면 적어도 신학교를 졸업한 목사님이시나 아니면 또 유능한 분이시나 최소한 신학대학원을 다닌 전도사님이 해야 되는데, 나는 대학교 3학년이 그걸 맡아서 그걸 하는데 내가 너무 기가 막힌 거예요. 그래서 주말에 토요일도 학교 수업 마치고, 오후 한 2시부터 10시까지 주일날 새벽부터 저녁 10시까지 이걸 하는데 제 한계에 부딪칠 때가 너무 많았어요. 어떨 때는 너무너무 힘들어 가지고 떼굴떼굴 굴르는 거예요. 주님, 나는 능력도 없고 실력도 없는데 이 일은 어떻게 감당합니까? 아마 여러분 가운데 지금 삶의 한계에 부딪쳐가지고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이런 분들이 계실지 몰라요. 저는 그때 정말 지금도 물론 그럴 때가 많이 있습니다마는 한계에 부딪쳐가지고 떼굴떼굴 구르는데 저에게 섬광처럼 파바박 오는 것이 뭐냐, 오늘 골로새서 1장 27절이었어요. *골로새서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으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으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너 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비밀이니라‘. 이 비밀이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그분이 하실 것이야. 15절 이렇게 나와 있어요. 예수님 왜 비밀인가?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뭐예요? 형상이시여. 모든 피조물을 먼저 나신이시니 일단 16절 다 같이 크게 합독 하겠습니다. *골로새서 1:15~16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나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할렐루야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된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골로새서 2장 2절 뒤에 보면 뭐라고 나와요? 이렇게 나와요. *골로새서 2:2b~3, 2b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되면 오늘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저와 여러분이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3절 크게 하여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포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아멘 여러분 이것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성탄의 대강절 때, 정말 우리가 이것을 합독 하고 깨닫고 여러분들의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이것을 신앙 고백으로 하고, 이것을 모토로 삼고 이것을 가지고 집중하면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삶에 드리워진 모든 패배, 냉소, 비관, 회의주의를 극복하게 하시는 것이에요. 왜? 그 안에는 뭐가 있으니까요? 지혜와 지식의 모든 걸 감춰져 있느니라. 우리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비밀인 것이에요. 그리스도가 진짜 우리에게 비밀이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 능력과 내 힘으로 버티기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로서가 비밀이기 때문에 이게 신앙과 사역의 깊은 비밀이에요. 여러분의 여러분과 저의 신앙과 사역에 깊은 비밀은 뭐냐 하면 내 능력이 아니라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비밀이에요. 인생이 너무 힘들어. 이제 나는 더 이상 할 수 없어. 나는 더 못하겠어.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라고 말하는 그 자리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일하시는 장소가 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따라서 세상이 흔들려도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내가 환경에 의한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한 사람으로 환경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인생길에서 우리는 폭풍이 멈출 때만 평안한 것이 아니고, 폭풍 가운데서도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때문에 평안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속의 예수 그리스도를 비밀로 삼고 있는 성도들의 신앙 고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저는 *성도의 가치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어떤 지위에 오르느냐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정해진다. -성도의 가치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어떤 지위에 옳으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갖고 있고 어떤 지위에 있느냐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정해지는 것이에요. 이 비밀의 강도에 따라서 여러분들의 영적 인생의 수준이 결정되는 것이에요. 세상은 성공과 권세와 뭐 이력서, 그 모든 것들을 어떤 때로든 내 실패나 좌절로 나를 평가하지만 오늘 이 말씀을 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은 복음은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내가 평가받아야만 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힘, 자신의 지위, 자신의 능력을 인생에 성공시키는 비밀로 여기지만,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이 나의 힘이 되고, 내 인생의 계획을 주도하시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내 삶을 이끄신 걸 믿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삶의 패배주의를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저희 간접 멘토인 스폴전 목사님은 자신이 평생 우울증과 질병과 거짓 공격에 거짓 비난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몰라요. 통풍으로 너무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런 가운데도 흔들리지 않는 걸음을 가르칠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말해요.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나를 붙드시는 그리스도가 강한 것이다.“ -그게 비밀인 거예요. 이틀 전에 우리 교회 어떤 자매님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그 아버님이 최근 들어서 계속 그렇게 얘기하시더라. ”딸아, 딸아, 야 예수님밖에 없다. 예수님밖에 없다. 그래 너는 예수님만 모시고 살아라. 이렇게 저렇게 해도 다른 거 없다. 예수님 예수님하고 살아라“. 여러분 우리가 힘들다고 그러지만 오늘 골로새 교회 이 편지를 받는 이 성도들만큼 우리가 힘든 건 아니에요. 정말 우리 힘들죠. 어려운 거 많죠. 그런데 오늘 우리는 오늘 이 말씀 가운데 여러분들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들의 삶의 비밀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은밀한 비밀의 샘을 퍼내시길 바라고 거기서 생수를 길러 올리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예수님이 이런 비밀이 안 되면, 우리는 대개 대체의 원리예요. *골로새서 2:8,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그리스도가 비밀이 안 되면 우리는 우리가 우리를 막 오염시키고 세상의 세상 사람의 전통에 억눌리고 세상의 철학과 속임수에 억눌리고 헷갈리제이션, 아니 죄송합니다. 헷갈리고,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고, 사람들 뒤에서 가쉽하고 쑥덕쑥덕 쑥덕하는데 여러분 그게 아니에요. 우리의 삶에 딱 초점이 내 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비밀이 이 강도가 커지고, 저는 깨닫는 것이 마태복음 28장 마지막 주님이 승천하실 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랬어요. 끝까지 함께 하신다는 그분이 내 속에서 비밀이 되면 되는 거예요. 내 속에서 비밀이 됐듯이 그걸 깨닫는 거예요. 최근에 제가 충남 쪽에 사시는 어떤 여기 권사님 한 분 계시는데 오랫동안 저희 교회를 위해서 기도돼 주시는 분이 제가 감사해서 86세 되셨는데 오랜만에 권사님을 만났어요. 권사님 반가워요. 그런데 86세인데 몇 년 전에 비해서 하나도 안 늙었어. 그래서 제가 권사님 왜 이래 안 늙어요. 그러니까 나보고 웃으면서, 목사님 왜 이래 안 늙어요. 그러니까 목사님 제가 안 늙는 건요. 제가 행복해서 그래요. 그러면 아이구야,,, 여러분 많이 찌들고 있잖아. 안 봐도 여기 찌든 분들도 계시고, 저도 어려울 때는 보면 저도 긴장할 때도 있고 다 이래 있는데, 행복해서 그렇다고,,, 여러분 어떻게 하면 행복합니까? 예수님 사랑으로 남편 사랑하고, 가족 사랑하고, 사랑받고 성도들 사랑하고, 우리는 예수님이 내 속에 계신 비밀이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 행복하셔야 돼요.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주님을 찬성하면서 하렐루야 하렐루야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가 되었고‘ 내 속에 있는 예수님의 그 비밀의 강도가 여러분들의 행복을 결정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 하려면 우리가 두 가지를 적용을 해야 돼요. 한가지는 28절에 오늘 ’서울선언‘이 강조하는 복음전파와 제자훈련에 대한 것이에요. *골로새서 1:28,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친다 그랬어요.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죄로 각 사람을 가르친다고 했는데 그를 전파한다는 이 말이 헬라어는 문장이 길 때, 주 동사가 있고 그 주 동사를 꾸미는 동사처럼 보이지만 participle-분사가 있어요. 메인 볼브가 그를 전파해 전파한다는 게 이게 저기 카탕겔로맨, 이렇게 나와 있어요. 제가 헬라스 미안합니다. 카탕겔로의 이 1인칭 뭐 이렇게 명령 복수 이렇게 나오는데 나오는데 핵심이 뭐냐 하면 전파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권하고 가르치고 하는 것이 동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권하는 이유가 그를 전파하기 위하여, 가르치는 이유가 그를 전파하기 위하여, 이건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우리가 주림을 섬기는 삶의 형태가 많이 있어요. 어떤 분들은 행정으로 어떤 분들은 봉사로 어떤 분들은 또 순장으로 또 어떤 분들은 교사로 다 섬기는데, 그렇게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뭐냐? 글을 전파하는 것이에요. 이게 핵심 동사 카탕겔로 맨,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것과 비슷한 유형이 뭐냐 하면 마태복음 28장 19절 20절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Great Commission 지상명령을 주셨는데, *마태복음 28:19-20,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가서 가르치고 세례 주고 다 귀한 일인데, 그런데 그것도 다 분사형이에요. 거기에 핵심 주동사가 뭐냐 하면 제자를 삼아, Ma the Tutate 이렇게 나와 있어요. 제자 삼는 것이 키 동사예요. 가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고, 세례 주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고, 가르치는 것 자체가 목표가 그것을 통하여 핵심은 뭐냐? 예수님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다. 이거예요. 주동사와 똑같이 오늘 골라세 1장 28절에도 우리가 가르치고 권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하여, 그래서 첫 번째 우리가 적용할 것은 내가 어떤 경우 어떤 상황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전파하게 하여 주십시오. II.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이걸 우선순위로 한국교회가 왜? 패배주의 왜 안 된다고? 부흥의 시대가 끝났다고 왜 그럽니까? 140년 동안 내려오면서 나름대로 한국교회 상담의 역할을 하는 분도 있고, 티칭의 역할을 하는 분도 있고 어떤 사람은 또 행정 역할을 하면 다 있는데, 이분들 나름대로 보니까 아이고 안 되겠는 거야. 아이고 이제는 뭐 끝났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아니에요. 주동사를 놓치는 거예요. 그를 전파하기 위해 그것이 필요한 것이에요.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은 상담하는 사람, 고민하는 사람, 섬기는 사람, 모든 분들의 목표가 예수님을 전파하고 선포하는 것이 목표가 되면, 한국교회 패배주의를 극복하도록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거룩한 의식화 작업이에요. 마태복음 18장의 제자훈련 제자 양성, 그리스도를 1장 18절에 그를 전파하고, 또 키우고, 이게 로드맵이라고 그랬지요? 이 두 가지만 짝 무장이 되면 사상적으로 무장이 되면 한국 교회가 어떤 경우에도 우리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예수님의 제자를 키우는 이 두 가지 기둥만 확실하면, 패배주의를 극복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에요. 이것은 성경이 보여주는 귀한 방식이라는 거예요. 이것이 교회를 자라게 하는 것이에요. 이것이 성령님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상이나 의식화 작업, 주사파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나 이런 공산주의나 무신론적 이런 이념들이 세상을 역사를 흔들었어요. 중국 같은 경우는 수천만 명이 죽고, 북한도 수백만이 죽고 러시아는 볼세비키 혁명을 통하여, 수많은 상처가 수천 수 전 세계로 오면 수억의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남겼어요. 그러나 복음과 성령의 역사는 사람을 회복시키고, 복음 전파와 성령의 역사는 공동체를 살리고, 사람들에게 영혼을 바라보게 하고, 인간을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것이에요. 이런 의미 때문에 우리가 성령의 역사와 제자의 도와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가지고 세상을 왜 못 바꿔야 되느냐,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다시요. 공산주의도 세속 역사를 바꾸고, 세속주의도 문화를 변화시키고, 인본적인 철학과 이념이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기도 하고, 그렇게 한다면, 살아계신 하나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지금도 역사하시는 성령님, 지금도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속에 잡힌 이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을 우리가 제대로 믿고 방향을 잡을 때, 이 성서 주일날 성경 주일날,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이를 위하여 여러분들 그동안 방관자의 태도에서 사명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구경꾼에서 제자로! 생존에서 사명으로! 비판에서 책임으로! 회의에서 확신으로! -속임 당하지 말고 분별하고, 저희 교회는 주일을 기도할 때마다 한 번씩 동성애법에 대해서 우리가 계속 기도하잖아요. 왜 우리는 동성애법을 차별금지법 제정을 왜 우리가 반대를 합니까? 반대하는 이유가 뭡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거 어긋나니까,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과 어긋나니까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니까 동성애를 확대하는 법이니까. 가족을 파괴하는 법이니까. 그 성경의 말씀을 훼손하는 것이니까. 다시오. 구경꾼 방관자가 아니라, 복음의 증인이 되고, 다시 우리가 사명자가 되어 가지고 이 패배주의부터 시작해 가지고 비관주의를 극복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골리앗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그 사울과 그의 다윗의 형들과 진영이 벌벌 떨고 있었어요. 다들 패배주의예요. 그때, 다윗이 뭐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죽었냐고, 그러면서 물 멧돌을 준비해 가지고 골리앗을 넘어뜨렸어요. 오늘 한국 교회 주신 물 멧돌 두 개가 뭡니까? 성경의 절대권위, 그리스를 위한 앞으로 향후 세계 교회가 제자들을 키워야 되는 이 두 가지는 강력한 이 시대의 물 멧돌이 되는 것이에요. 민수기 13장, 14장에 보면, 열 정탐꾼이 완전히 와 가지고 패배주의 이제는 끝났다. 아낙자손을 볼 때, 우리는 그들 앞에 우리는 메뚜기 같다. 패배주의 패배보고 그러니까 불신 불신이 싹트니까 회의가 되고, 회의가 싹트니까 패배감이 들고 패배가 되니까. 하나님이 원망하게 되고 불신, 패배, 원망 이런 것들이 다 그대로 연결되는데 여호수아, 갈렙이 나타나서 무슨 말을 하느냐? 하나님이 죽었냐? 우리가 메뚜기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밥이라고,,, 우리가 그런 은혜를 받아야 할 줄로 믿는 것이에요. 저는 코로나가 끝날 때쯤 끝나기도 전에 2022년도에 어느 날, 한국 교회 어떻게 하면 좋은가? 눈에 보이는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 교회니 우리도 어떻게 하면 좋겠냐? 이 코로나의 와중에 교회 예배도 못 드리게 하고, 그 어려움 가운데서, 그때 제가 ”한국교회 부흥, K부흥 가능한가?“ 그런 말씀을 전하면서 딱 마음에 불을 받은 것이 우리 한국교회 어려운 교회들 힘든 교회들 초청해 가지고 다시 한국교회 하나님께는 전심으로,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한번 해보자. 그래 가지고 하는데 뭐 500명이나 오겠나? 뭐 이렇게 했는데 지금 7천여 명이 오셨어요. 4회째 하고 있는 거예요. 2025년 올 12월 둘째 주일날, 그때는 슬로건으로 딱 했다면, 이제 이 전략적 표준을 가지고, 주님 한국교회가 다시 한번 두 가지 기둥을 가지고 한국교회가 이 패배주의를 극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 그걸 위하여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또 하나 우리가 적용할 것인데 그것이 뭐냐 28절 29절에 그 일을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29절 말씀 이를 위하여 시작 *골로새서 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역사를 따라 능력으로 역사하신 역사는 성령님의 역사인 줄로 확신합니다.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것은 내게 주신 의사와 재능과 시간과 이런 모든 것들을 총동원하여 이 일을 이루는 데 쓰임 받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로 세우기 위하여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이게 우리 적용이에요. III.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 힘을 다해 수고해야(적용). -그래서 제가 힘을 다해 수고한다는 것은, 오늘 이 시대에 무슨 뜻? 이게 신약시대와 오늘 이 시대에 이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어떤 롤모델이 없을까? 하고 제가 찾아보았더니, 마가무모장에 무슨 일이 있냐면 회당 장 야이로가 나와요. 잘 아시는 분들은 그 내용들 기억하시면 있겠죠. 회당장이라는 말은 그 당시에 어떤 사람이냐? 유대인의 지도자였어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이런 분들과 교류를 하면 회당장이니까. 나름 대로의 급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딸이 중병에 걸려버렸어요. 딸이 거의 사형선고만 내려졌어. 가만히 보니까 내 이 사랑하는 딸을 어떻게 살릴까? 보니까 자기가 회당장이고 그러지만 예수님한테 가면 내 딸이 살겠구나, 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예수님께 가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선생님 우리 주님 살려달라고, 회당장 야이로가 어느 정도였는가? 마가복음 5장 23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어요. *마가복음 5:23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없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그런 구원을 받게 해달라고 회담장은 사회적인 스테이터스가 있었지만 예수님한테 가면 유대인의 기득권들을 가진 사람들이 비판하는 거 알았지만, 그거 다 내려놓고 예수님께 가 가지고 간곡히 통곡하면서 살려달라고,,, 그런데 주님께서 혈류증 걸린 여인을 살리느라고 이제 조금 이게 늦추어졌어요. 시간이 좀 늦추어졌어요. 그러니까 야이로에게 소식이 왔어요. 당신 딸이 죽어버렸다고, 그 죽어버렸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이 야이로가 아이고 죽었으니까 끝났구나 하고 예수님이 이 시간 같이 타이밍 못 찼다고 막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야이로의 마음속에 안전한 마음으로, 딸이 죽었다는 소식 들었을 때 희망이 실망으로 기대는 충격으로 병 고침에 기대는 절망으로 바꾸어졌겠지만, 그래도 야이로는 절망하고 원망하기보다는 주님께서 뭐라고 하느냐 *마가복음 5:36,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 들으시고 회당장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고 40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마가복음 5:39-40,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막 가니까 통곡하고 난리가 났어. 그들의 길이 시대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예수님이 가서 통과하고 그러니까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그러니까 주위에 있는 사람 다 비웃었어요. 비웃었어요. 제가 오늘 패배 패냉회비 한국교회 다시 회복된다. 그랬을 때 비웃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여러분의 마음속에 다시 한번 하나님 나는 그 꿈을 가지고 해보려고 할 때, 옮겨간 사람도 있고 틈을 탈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41절에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시작. *마가복음 5:41,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일어나라. 일어나라. 오늘 방송으로 들어오는 모든 별관에 계시는 모든 분들 여러분의 모든 삶의 형태에서 다시 일어나라. 영적에는 달리다굼, 일어나라 이런 아이들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 내게 주신 의사와 능력을 따라 힘을 다해 수고하는 거예요. 저는 한국교회 섬김의 날, 오늘 전략적 표준을 가지고 앞으로 대한민국 교회가 회복이 돼야 할 것인데, 내 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비밀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우리 서로 손에 손을 잡고 함께 마음을 다하여 할 때에, 한국 교회의 50% 크리스찬 예수 믿는 비율이 가능할까? 그랬을 때 우리의 마음에 이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활용하여 우리 하나님께 시대 앞에서 한 분, 한 분 예외 없이 하나님 손에 붙잡힘 받고 일어날 수 있도록 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힘을 다해서 수고합니까? 제가 묵상을 좀 해보았어요. 오정현 목사는 어떻게 수를 믿게 되었나?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을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분들에게 세례를 드리고 어떻게 이런 애를 받았나 가보니까 선교사님들이 복음을 전해가지고 그렇게 받은 거예요. 맞습니까? 그러면 그런 선교사님들은 어떻게 우리나라에 오게 되었는가 그 근원이 뭔가, 미국 같은 경우는 SVM 운동이라고 Student Volunteer Movement라고 우리 학생 기도 자원 운동이 있었고, 그 SVM 운동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보니까 1727년에 진젠도르프 백작과 독일 경건주의 운동하는 사람들이 소위 모라비안 형제들, 성경을 읽어보니까 성경 전체를 읽어보니까 성경 전체에 성경의 절대권위를 믿고 성경 읽어보니까 거기에 성경 핵심이 뭐냐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거예요. 모든 족속의 복음을 선포하는 거예요. 그걸 깨닫고 모르비안 성도들이 거기에 헤른후트 공동체 이렇게 해가지고, 같이 해가지고 이 사람들이 독일의 경건주의 운동에서 1727년에 기도를 시작했어요. 강력한 기도를 통해서 여러분, 요한 웨슬레가 미국에서 영국으로 다시 돌아가면서 배에 풍랑이 일어났는데, 다 죽는다고 그랬는데 어떤 팀들만 하나 그냥 담담하게 믿음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찬성하면 너무 깜짝 놀래가지고 보니까 그분들이 모라비안 형제들이었어요. 그래서 웨슬레가 회심을 하고, 영국의 강력한 경건주의 운동을 일으키고,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그 모라비안 사람들이 무슨 일을 벌였는가? 1727년부터 여러분 100년 동안, 마치 3만 6500일 동안 1시간도 안 빠지고 24시간 체인 플레이어 기도함으로 말며 막 그런 결과가 일어나게 된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전략적으로 우리 사랑의 교회는 지난주에 제가 중보기도의 파수꾼 말씀을 드렸죠. 우리가 기도의 불침번에 대한 말씀을 드렸죠.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아버지 앞에 하늘을 가리시고 임하옵쇼서 이렇게 기도점을 같이 나누었죠. 오늘 전략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1727년에 300주년이 이번에 이거는 니키아 종교에 1700주년에 나왔습니다마는 300주년이 2027년이에요. 2027, 앞으로 2년 남았는데 2년 될 때까지 730일 동안 그리고 만 7천 시간 좀 넘어요. 24시간 동안, 과거에 모라비언 운동이 100년 동안 1시간도 안 빠지고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 1시간도 빠지지 않고 2년 동안 기도하면 어떻겠어요? 여러분 제가 여러분 요청합니다. 만 7천여 시간이 있는데, 우리 교회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한 4~5만 명은 참여할 거예요. 4~5만 명의 성도들을 만 7천 명으로 나누면 2년 동안에 딱 1시간만, 다시 2년 동안에 몇 시간만? 1시간만 할 수 있겠어요? 못하겠어요? 2년 동안에 1시간 할 수 있잖아요? 2년 내내 하라는 게 아니라 2년 동안에 1시간 할 수 있잖아요. 2년 내내 하라는 게 아니라 2년 동안에 1시간만, 어떤 사람은 아침 10시, 어떤 사람은 밤 1시, 어떤 사람은 밤 3시, 고 3시는 주무시지만 2년 동안 한 번만,,, 주로 고 시간은 우리 교회 중직자들, 교역자들, 순장들 내가 좀 부탁하려고 그래요. 그래서 2년 동안 1시간도 빠지지 말고 24시간 동안, 함께 주님 앞에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남북도 통일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걸 어디 크게 보고 이게 아니라 그냥 섬광처럼 마음속에 불이 떨어져 가지고 주로 말씀드리니까 24시간 2년 동안 한 번만, 한 3~4명이 한 팀이 돼 가지고 한 번만, 시간을 지켜주시면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를 키우고, 그리고 야이로의 딸처럼 다시 일어나라, 그런 마음의 눈물을 주시면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겨 주시지 않겠는가, 마음을 힘을 다해 수고할 때, 주님을 향한 눈물이 나오고, 기도의 눈물을 흘려보지 않으면 함부로 교회를 얘기하면 안 되는 것이에요. 교회를 제자훈련과 말씀 전파를 가지고 여기에 정말 사모하는 헌신의 눈물을 흘려봐요. 그래서 골로새서 1장 24절에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내용이 나와 있어요. 같이 보겠습니다. *골로새서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아멘. 아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고난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예수님의 고난 받은 것은 완벽하지만, 우리들이 주님을 섬기는 우리들이, 그의 몸된 고난을 위하여 그리스의 남은 고난을 우리가 감당을 해야만 하는 것이 뭘 통하여 복음을 전파하며 제자를 양성하며 이렇게 하므로 그리스도의 남은 권한을 채우는 하나님 나라의 방관자가 아니라 사명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비밀이 되기를 바라고,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마치 전기가 감전되는 것처럼 여러분들의 삶을 찌릿찌릿 향해 가지고 그럴 때 수많은 삶의 변화와 능력과 기적이 우리 앞에 은혜의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오. 주 예수님은 나의 힘이시고, 나의 노래시고, 나의 구원이시고‘ 그 고백을 하고 우리가 기도하겠습니다. ♣요약 다시 한번 이 말씀을 통하여 인생의 모든 패배주의, 냉소주의, 회의주의, 비관주의 다 극복하게 하여서, 영적 기백이 약한 우리 성도들이 계시다면 오늘 내 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지혜와 하늘의 부요를 가지고, 다시 한번 구경꾼에서 제자가 되어야 한다. 비판에서 책임으로, 회의에서 확신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신실한 남녀 종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다 21세기의 절박한 야이로가 되어, 딸을 위하여 그를 살리기 위한 눈물의 기도가 있듯이, 우리 모두에게도 이 민족을 살릴 수 있는 절박한 눈물을 흘리며 간곡히 기도하고, 2천 년 교회 역사는 반드시 답이 있는 줄 믿고, 주님이 우리의 삶에 알파와 오메가가 되어 주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답이 있다고 하시는 말씀은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를 키우기만 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길을 열어 주시기 때문에, 오늘 이 답을 가지고 신실한 남녀 종들로 살아가야 한다. -폭풍 같은 인생 가운데서 패배주의-냉소주의-회의주의-비관주의의 파도가 밀려올 때. 내 안에 계신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와 만물의 주권자,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승리할 것을 확신하며, 오직 예수를 전파하고 오직 성경으로 제자 삼을 때, "구경꾼에서 제자로, 생존에서 사명으로! 비판에서 책임으로! 회의에서 확신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우리 사랑의교회와 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가 21세기 야이로-모라비안이 되어 절박한 눈물의 기도를 간곡히 드릴 때, 세계를 향하여 강력한 K-기도와 부흥의 뉴 챕터(New Chapter)'를 집필하게 되기를 소원한다.
♣주일예배(주후 2025년 12월 07일)-성찬식(聖餐式) 제목: "파수꾼의 중보기도"-이사야 시리즈㉛ 설교제목: "파수꾼의 중보기도- The Watchmen’s Intercessory Prayer" 성경본문: 이사야 62:6~7, 64:1~2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호산나(2부) 대표기도: 이철민 장로님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 설교: 오정현 담임목사님 ----- *이사야 62:6~7, 64:1~2, 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이사야 64:1~2, 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2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 ▶할렐루야!!~ 주님만이 높임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 전능자의 그늘 아래서 보호받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눈동자로 여러분들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한 해의 마지막 12월에 종착역의 첫 주가 되었습니다. 지나간 한 해가 천천히 지나갔습니까? 아니면 빨리 지나갔습니까? 빨리 대답해 보세요. 정말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이 빨리 지나가는 인생을 향하여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 4장이 뭐라고 말씀하고 있느냐 같이 보겠습니다. *야고보 4:14,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아멘, 오늘 아침에 안 끼었죠? 지금도 끼어 있습니까? 아마 내일 아침은 없어질 겁니다. 이처럼 인생은 빨리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 빨리 지나가는 인생들을 이와 같이, 주님 딱 이 예배당의 예배드리게 하셔서 모두로 하여금 영적으로 성공하게 하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지금 세상은 너무나 복잡한 세상이 되었어요. 이걸 전문적인 용어로 The Era of complexity. 그래서 복잡계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인공지능 이후에 얼마나 복잡한지, 나라와 시대가 이 복잡한 세상 가운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되었습니다. 격동의 시대가 되어 흔들리는 거예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후, 21세기의 테크놀로지 모두가 다 복잡성을 띠고 있어요. 나라 안팎의 사정도 쉽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있고,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에서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붙들어 메고, 거짓으로 이끄는 수많은 가짜 뉴스 꾼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미혹해서 멸망의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치 제 마음은 또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무너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셨듯이 우리 오늘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눈물로 중보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또 한 이 백성, 이 나라의 절실한 기도의 제목을 주셔 갖고, 우리의 기도 때문에 이 나라의 장래가 새로워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에게 오늘 ‘파수꾼의 중보 기도의 능력’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해석을 하면 62장 6절에 뭐라고 나와 있느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시대는 정말 파수꾼의 중부 기도가 절실한 시대가 되었는데 뭐라고 말씀하고 있느냐? I. 첫째, 기도하는 파수꾼이 없으면 희망이 없다. *이사야 62: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62장 6절에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뭘 세웠다고요? 무슨 말이냐? 파수꾼이 잠을 포기하고 성벽의 파수꾼이 뭘 합니까? 깨어 있었어. 밤을 지새우면서 어둠 속에 다가오는 위험이나 적의 침입이 없는지 살피며 지키는 사람들이 파수꾼입니다. 불침번(不寢番)입니다. 옛날 군대에서는 동초(動哨)라, 추운 겨울에 불침번, 파수꾼이 깨어 있는 것이 파수꾼의 사명인데, 그래서 일반적으로 민족이나 공동체나 가정에 위협을 느낄 때, 가장 먼저 감지하고 신호를 보내는 자가 파수꾼입니다. 물론 엉터리 파수꾼도 있습니다. 앞에 이사야 56장 10절에 뭐로 말씀하고 있느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56:10, 10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뭐예요? 맹인이요. 다 무지하여 벙어리 개들이라고 그랬어요. 직무유기하는 파수꾼들, 엉터리 파수꾼들이 있었어요. 참된 파수꾼은 잠을 포기하고 잠포깨사 아십니까? 잠을 포기하고 깨어서 사는 사람들, 반응도 안 하시고 그런데 6절에 보니까 뭐라고 하면 예루살렘이여, *이사야 62:6, 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라고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에 파수권을 세울 거다. 예루살렘은 예루살렘도 말하지만, 구원의 계시사, 전체 계시의 해석으로 볼 때는 하나님의 공동체, 하나님의 백성들이여, 이렇게도 무리가 없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도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영적인 성벽 위로 우리를 시대의 파수꾼으로, 기도의 파수꾼으로 부르신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 성벽 위에 오늘 이 시대의 성벽 위에 이 복잡계의 시대 위에 우리는 파수꾼이요. 기도의 불침번이 되야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심지어 6절 뒷부분에 파수꾼을 가리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이사야 62:6, 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너희로 하여금 주야로 잠잠하게 하지 않게 하셨는데, 너희로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이 되라 그랬어요. 전능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어버리는 법이 없으시지만 파수꾼은 마치 하나님께 상기시키듯이 그분의 약속과 언약을 붙들고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과 어려움을 간절하게 이루며 간구하는 사명자다. 그 뜻이에요. 하나님의 아버지가 아시지만 자식이 아버지께 요청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갈 때가 많아요. 오늘도 누가 그래 자기가 자녀가 없는데, 조카를 너무 사랑하는데 이 조카가 이 삼촌에게 구하지를 않는 거야. 그러니까 삼촌도 알았다. 하고 아무것도 안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다 아시지만 정말 하나님께 파수꾼의 사명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것이에요. 심지어 이 파수꾼 불침번의 사명은 뭐냐? 6절 7절에, *이사야 62:6~7 ..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아주 이중적인 끈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는 파수꾼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시고, 세상이 그분을 찬송하게 되는 그날까지 무너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복되고, 열방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그날까지, 쉬지 말고 앞장서서 기도하는 끈기를 가지라.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 언약을 붙잡고 간구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도록, 말 그대로 쉬지 못하게 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어떻게 하라 이런 뜻이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서 저희들이 젊을 때, 청년일 때에 하나님을 바쁘시게 하자. 우리가 간절히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계속 응답하시는 그런 역사의 코어, 그 역사의 핵심 역할을 감당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여러분 모두가 다 파수꾼의 불침번의 기도를 통하여 이민족을 보호하시고 살리시는 그런 역할을 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사랑의 교회는 초창기 때부터 300기도 선봉대가 있었어요. ‘300기선대’라고 그랬고 조금 더 이제 새벽에 화요일 아침마다 모였었는데 조금 더 올라갔고 ‘700기도 선봉대’. 그리고 지금은 토요비전새벽예배 때마다 ‘7천 기도 선봉대’ ‘7천 기도 용사’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 주일날 수만 명이 모입니다만. 이제 우리가 또 우리 한국 교회를 위하여 7만 기도 선봉대, 7만 기도의 파수꾼이 되면 어떨까요? 그 정도 해가 되겠습니까? 7만 중보 기도의 불침번이 되면 어떨까요? 한번 더 7만 기도 중보 기도팀이 되면 어떨까요? 오늘 이 좋습니다....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놀라운 능력으로 여러분들의 생애를 새롭게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찬식을 앞에 놓고, 기도하는 파수꾼이 없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 모두 간절한 기도의 장소, 우리에게 주신 사명의 성벽에 올라가 가지고, 동터 오는 아침을 기다리는 기도의 파수꾼이 돼야 합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이 얼마나, 밤새워 추위에 떨면서 파수하던 그 사람이 아침에 햇볕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간절합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파수꾼의 기도를 해야 되는데, 오늘 이사야 63장 15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63:15, 15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이것은 땅에서 위를 향해 올려드리는 기도의 부르짖음인데, 하늘을 보좌해서 이 땅을 굽어보시고 응답해 주시기를 강 청하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64장 오늘 뒤에 7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느냐 하면,,, *이사야 64:7,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기도하는 자가 없다. 이 말입니다. 앞 예배에 많은 분들이 아!!~~ 저한테 문자로 목사님 제가 기도한다고 하지만 정말 절박한 중보기도를 요즘 포기하고 살았는데 정신이 번쩍 듭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도 많이 없는 것이 사실이야. 주의 이름을 부른다. 주의 이름을 붙잡는다는 것은 절박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하는 사람이 약하다. 기도해야 할 우리가 기도를 멈춰버렸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종종 기도를 멈추고 기도하기를 원하지 않고 심지어 무엇을 위해 기도할지도 모르는 연약한 자들이에요. 그러나 파수꾼이 깨어서 나팔을 불어야 할 때, 침묵하면 파수꾼에 깨어서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않으면 그것은 직무유기(職務遺棄)요. 그것은 배신(背信)이요. 파수꾼이 파수꾼 역할을 못하면, 나라를 누란(累卵)의 위기에 빠뜨리는 것이오, 지금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기도의 파수꾼이 역할을 안 하면 이민족은 희망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계 곳곳에서 지금 박해(迫害)를 받고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 수감(收監)되어 있는 수많은 지하교의 성도들을 생각해 보세요. 매일 같이 고문당하고 매일 같이 박해당하고 있어요. 그런 형편을 보면 오늘 이 파수꾼의 중보 기도의 역할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어요. 지금도 중동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에게 박해 받는 사람들 생각해 보십시오. 직장 잃어버리고 공동체에 쫓겨나고 그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돼요. 국가적으로 대한민국을 겁박하는 여러 세력들, 북한이나 러시아나 중국 같은 세력들이 지금 중국도 중국의 가정교회, 지하교회, 많은 핍박을 받고 있어요. 그런 세력들이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주님 앞에 떨게 하여 주십시오. 산을 가르고 땅을 흔드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중보기도의 선봉장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여러분 성경에서 대표적인 중보 기도자가 누굽니까?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신이 기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중보기도자들은 파수꾼의 중보기도 역할하는 사람들은 성령님을 따라서 어두운 세상을 하여, 길 잃은 사람들을 위하여, 고통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온몸을 다 기도하는 그래서 이런 점에서 우리 파수꾼의 중복이기도 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탄식에 늘 호흡을 맞추는 사람들이에요. 여러분들과 저는 오늘 이 예배를 마무리하면서 특별히 성찬식에 참여하면서, 성령님의 탄식에 호흡을 맞추는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들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로 소돔이 멸망 중에 모세 가족이 살았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하여 이스라엘 전체 민족이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고 살게 되었습니다. 에스더의 금식중보기도를 통하여 유다 민족이 그 절박한 그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이런 기도를 통하여 이 나라를 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는 한 도시를 위하여 중보기도 할 것을 명령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어떤 구절입니까? 10편, 120편, 6절에 보니까 다 같이 보겠습니다. *시편 122:6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예루 삶을 위하여 뭘 하라고요? 평안을 구하라, 중보기도하라 이 말이에요. 이 구절을 지금 오늘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서울을 위하여 내가 사는 도시, 대구, 부산, 광주, 대전을 위하여, 전주를 위하여 그 도시의 평안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라. 는 뜻이에요. 그리하면 그 중보기도를 통하여 오늘 이 서울이 샬롬의 평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통함으로 서울을 위하여, 이민족을 위하여, 내가 사는 도시를 위하여 중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우면동에 살거든요. 소가 누워있는 곳입니다. 우면동에 사는데 우면동에서 올 때, 제가 서리풀 터널을 지나옵니다. 터널 지나올 때마다 제가 뭘 기도하는지 압니까? 하나님 대한민국의 예술의 전당, 저 밑에서 저 국립국악원까지 이건 전 세계 없는 예술센터인데 이 예술센터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술을 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 마음으로 제가 지나온 거예요. 오늘도 아침에 오는데 ‘서초는 살기 좋은 곳입니다’. 뭐 그래 놨더라고요. 그런데 하나님이 서초를 지켜주십시오. 그게 바로 예루살렘을 위하여 기도하는 마음이에요. 지금 우리가 용인, 수지에 사신 분들은 거기서 이렇게 쭉 올라오시면서 나라를 위하여 기도해야 되는 것이 용인 수지쪽,,,. 우리가 의정부에 사시는 분들은 의정부에서 내려오시면서 교회 오시면서 강북 쪽부터 이쪽을 향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 서울이 평안하게 될 것입니다. 인천에서 오신 분들은 인천에서 들어오면서 저 서쪽에서 들어오시면서, 우리는 심지어 원주에서 오신 분들이 계세요. 원주에서 이렇게 쭉 들어오시면서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그 지역을 덕평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덕평 유원지는 국밥이 맛있는 곳입니다. 이게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지만 정말 우리가 사는 곳을 위하여, 중보기도가 될 여러분들 때문에 이 민족이 보호가 되는 것이에요. 성찬을 앞에 놓고 이 사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여러분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오시면서 그런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이 우리도 모르게 이민족을 보호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러면 오늘 구체적으로 성찬을 앞에 놓고, 중보 기도하는 사람이 없으면 이 민족의 희망이 없는데, 그럼 어떤 중보 기도를 해야 되나? 두 가지 기도 질문을 드리겠어요? 몇 가지예요? 두 가지, 첫째. 63장 16절 보니까 뭐라고 나와? 이렇게 나와 있어요. 같이 보겠습니다. II. 우리가 기도해야 할 특별한 중보기도 제목 두 가지. *이사야 63: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그러니까 첫 번째 도적은 뭐냐 하면요. 모든 상황에서 주님 우리 아버지가 되어 주십시오. 첫째, 주여, 모든 상황에서 우리 아버지가 되어 주십시오.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다시 말씀 보니까 아브라함도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도 우리를 인정하자 이 무슨 뜻이에요? 믿음의 조상이 아브라함이에요. 그리고 이스라엘은 지금 야곱을 얘기하는 것이에요. 언약 적으로 제일 많은 성경에 많은 창세기의 어떤 부분을 가지고 우리 믿음의 조상이 되는 이유를 다 설명하고 있는데, 심지어 아브라함도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 야곱도 우리를 인정하지 이방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호외여, 주님은 우리 아버지시라. 주님은 오늘 예배 오신 여러분들의 아버지시라. 놀라운 선포를 하고 있는 것이에요.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심지어 아버지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셨어요.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의 유명한 중보기도가 나와요. 그 유명한 중보기도 예수님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거룩하신 아버지, 의로우신 아버지 하면서 거기에 여러 번 최소한 6번 이상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우리도 중보기도할 때 어떨 때는 기도의 제목이 안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아버지 이름을 최소한 6번 이상 부르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찬 시작하면서 우리가 기도할 터인데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북한에서 오신 분들은 아바지, 이렇게 하면서 하여튼 우리가 아버지이심을 기억하며 그럴 때 우리에게 중보기도의 사명을 잘 감당할 힘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누구 아버지예요? 우리 아버지라 우리라는 말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만약 주기도문이 나의 아버지로만 시작됐다면 우리는 공동체를 위한 중보기도, 형제자매를 위한 중보기도, 이웃을 위한 중보기도, 아마 제한될 수가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뭐라고요? 우리 아버지라 우리 아버지, 이것이 우리가 형제, 이웃 공동체를 위한 중복이라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가지고 주님 앞에 기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에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뭘 주셨으니 권세를 주셨다고 그랬어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계속 기도하는 또 하나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사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것이에요. 그 권세를 가지고 기도할 때 강력한 중고 기도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에 우리가 영적 가족을 위하여 다른 지체를 위하여 이민족을 위하여 중부 기도할 때에, 다른 영혼을 품는 중부 기도자로서 시도를 위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하늘을 가르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하나님의 권위는 억압이 아니라 돌봄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통신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비로운 손길이 됨을 믿고 준보기도 하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아버지께 기도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다시요.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때,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 있으며 다른 지체를 위해서 중보기도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아버지의 자비와 긍휼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또 하나 성찬식 기도할 때 무슨 기도를 해야 할 것인가? 64장 1절, *이사야 64:1, 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둘째, 주여,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옵소서. -원하건 대추는 하늘을 가리고 강림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중요한 기도의 제목입니다. 주여 오늘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여 주십시오. 이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수많은 현실의 난제와 벽 앞에서 현실의 모든 난제와 벽을 돌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초월적 개입을 기도하는 것이에요. 현실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초월적 개입을 강 청하는 중보 기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황폐한 예루살렘을 주여, 굽어 살펴 보아 주십시오. 구체적으로 1절과 2절의, 이사야 64:1~2, 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2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하늘을 가리고 강림하셔서 산들을 진동하게 하시고 소위 열방들이 벌벌 떨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인이 멸망하고 원수가 도망가는 모습을 보게 하시고 탄원한 통렬한 간구가 오늘 이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날마다 쪼달리고 우리가 날마다 압박당하고 힘든 거 있지만, 이런 기도를 할 때 어떻게 한 번씩 하나님 우리에게 속이 시원하게 해 주실 거예요. 감정적으로 제가 격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라를 생각하고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민족을 향한 애통의 눈물이 있는 사람이 이런 탄원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우리가 보이지 않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어려움, 수많은 보이지 않는 세력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초월적 개입을 해 주실 것입니다. 서울적 개입의 예가 무엇입니까? 지난 한 달 전에 제가 말씀을 드렸죠. 빌리그래엄 목사님이 6.25일이 일어난 다음에 하루 만에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은 그리스도인들이 많기 때문에 반드시 형제들이 있는 그 나라를 도와야 됩니다. 그게 바로 강력한 중보기도예요. 역사상에 없는 며칠 만에 미군들이 유엔군과 함께 들어오게 된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게 너무나 놀라운 중보기도에요. 사도행전 12장 5절에 보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심한 핍박을 받고, 사도 야고보는 칼에 맞아 죽고, 베드로는 옥에 갇혔어요. 현실이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에요. 그럴 때 사동이자 12장 5절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사도행전 12:5,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같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잘 아시는 대로 이와 같이 나와 있어요.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야고보는 칼에 순교를 당하고 그러나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옥문이 열리고, 베드로의 옥문이 열리고, 기가 막힌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졌어요. 여러분, 우리를 답답하게 얽어 먹이는 옥문과 같은 옥과 같은 감옥과 같은 지금 답답함과 어려움과 힘든 거 있을 때, 초월적 하나님의 개입을 통하여, 그 옥문이 열리기를 바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의 수많은 고집과 수많아 이런 것들이 다 하나님이 초월적 개입이 하늘을 가르치고 이만한 은혜를 통하여 그 감옥의 역사가 풀리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에 참여하면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의 긍휼과 함께 초월적 개입을 구하는 주무들을 통하여 산들이 진동하고, 기도에 불이 활활 솟아올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드리면, 그게 되겠나?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 있을지 몰라요. 그런 분들 기억하세요. 우리가 세상이 너무 압도되어 가지고 자신감도 없고 짓눌려 있을 때,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런 기도를 통하여 하늘을 가리시고 내려오셔서 위험과 능력과 권세를 보여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원수들이 벌벌 떨며 도망가게 하시는 주님이 될 것입니다. 강력한 중보기도는 사탄의 꼬리를 사탄이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벌벌 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수들이 벌벌 떨도록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기도하는 대로 반포대로의 이 하늘 문을 여시고 하늘을 가르시고 주님 임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하늘을 가르고 임하는 이 기도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에요. 오늘 1절과 2절에 있는 그 내용은 그냥 이사야에 갑자기 것이 아니라, 출애굽기 19장 18절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출애굽기 19:18, 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그리고 오늘 64장 1절, 2절이 동일한 것이에요. 재현되는 것이에요. 시내 산 위에 우레와 번개와 구름과 연기가 빽빽하고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서 강림하셨을 때, 온 땅이 진동해서 백성들이 거룩한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 이미지가 오늘 불처럼 지진처럼 하늘을 가르시고 이사야가 다시 간구하는 것이고, 그 은혜를 오늘 우리도 같이 간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12월 오늘 한 해 종착 능력의 이 달에 우리가 기도하오니, 주님 하늘을 가르시고 하늘을 찢고 내려오셔서 주의 능력으로 개입하시고, 이 세상 역사 속으로 들어오셔 가지고 주의 이름을 선포하여 주옵소서. 인간의 힘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이 어둠의 시대에 이사야 시대도 똑같이 어두웠습니다. 낮과 눈을 펼칠 수 없는 시대에 주여, 하늘을 가르시고 임하셔서 초월적 개입을 통하여 오늘 이민족의 수많은 난제들이 해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우리는 하늘을 가르고 임할 때의 두려움에 떨었어요. 사람들이 64장 1절에 하늘을 가르시고 강림하시는 그 기도 두려움에 떨었어요. 64장 2절에 뭐라고 했냐?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신약적 성취는 언제 일어납니까? 예수님 부활하실 때에 로마 군인들이 그 무덤 앞에서 벌벌 떨어 죽은 자같이 되었어요. 마태복음 28장 4절을 보니까 뭐라고 하느냐? *마태복음 28:4,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할렐루야,, 원수들이 죽은 자같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기도가 강력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대한민국의 역사를 새롭게 펼쳐 주시옵시고, 주위의 하늘을 가리고 강림하여 주옵소서 원수들을 멸하시고 주의 공의를 가지고 이 땅을 고쳐 주시고, 특별히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기도하는 자녀의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요. 아버지요. 그리고 하늘을 가르고 임하여 주옵소서. 그럴 때 여러분 초랑교회에서 기도할 때, 잘 아시는 대로 육이오 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인천상륙작전의 기적을 주셨습니다. 이 민족의 특별히 지금 이 시대에,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은해의 인천상륙작전을 성찬을 통하여 경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찬송하십시다. ♬~ 우리 함께 기도해,, 주 앞에 나와 무릎 꿇고 금요일 베푸시는 주 하늘을 향하여 두 손 들고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빛줄기 이딴 그릇 내려주십시오. 찬양하면서 성찬을 준비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해,,, 성찬 위원들은 정의 취해 주세요. ♬~ 주 앞에 나와 무릎 꿇고 하늘을 향하여 두 손 들고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빛줄기 이 땅 가득 내리도록 마침내 내주 오셔서 의의 빛줄기, 우리 교회 부으시도록~~~
♣요약 오늘 성찬을 통하여 중보기도의 파수꾼으로 우리가 무장될 수 있도록 우리가 겸손하게 납작 엎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초월적 개입을 통하여 이민족과 우리 가정과 이 교회에 임하실 줄로 믿어야 한다. 하늘의 불을 경험하는 성찬식이 되기를 바란다. -주님께서 우리를 진리가 무너지는 시대의 파수꾼-불침번으로 부르셨사오니 성령님의 탄식에 '같은 호흡으로' 절박하고 충성스럽게 깨어 기도하고, 성찬 앞에서 우리 아버지께 내가 사는 도시와 민족을 위해 강력한 중보기도의 불씨가 될 때, 하늘을 가르시고 초월적 개입으로 임재하사 가정과 일터와 나라의 모든 감옥 문을 열어 주실 것을 확신하며, 사랑의교회와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가` WEA서울선언'(The SeoulDeclaration)을 기도 제목으로 더욱 붙들고 눈물로 기도할 때, '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보호하실 것이다.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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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도 거르지 아니하고 계속 세례식을 거행하고 많은 분들에게 세례를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께 주신 큰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사랑의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가 계속 세례 받는 숫자가 많아지므로 말미암아 이 시대의 유일한 소망이 교회임이 확인될 수 있도록 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세례는 무슨 교회 전통이나 어떤 뭐 이런 누구의 주장이 아닙니다. 세례는 제가 세례할 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명령을 순종하여 이렇게 그러니까 여러분 지난 주일날 우리가 뭐뭐 라고 쓰고 뭐뭐 라고 읽는다. 기억나시죠? 가족이라고 쓰고, 축복이라고 읽고, 아내라고 쓰고 은혜라고 읽는다.
뭐 좀 아는 분도 있지만 하여튼 그런데 오늘 우리는 세례라고 쓰고, 주님의 명령이라고 읽는다. 세례라고 쓰고 순종의 첫 단계라고 읽는다. 그래서 세례에 대해서 우리가 순종하는 거예요. 주님의 뭐에 대해서요? 명령에 대해서 순종하는 것이에요. 다시요. 세례는 어떤 교회 역사적인 전통뿐만이 아니에요. 또 세례는 어떤 누가 주장하는 것 정도가 아니에요. 주장해서 예수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에 지키는 거예요. 한 번 더 세례라고 쓰고, 뭐라고 읽는다고요? 순종이라고 읽는다. 했는데 순종. 그래서 여러분 세례받을 때가 되었는데도 세례를 안 받고 고의적으로 계속 받지 않으면 주님의 명령을 불순종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세례 받는 것이 주님의 명령 순종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일반 우리 교우들도 오늘 다시 한번 확인하고, 오늘 특별히 세례 학습 받는 분들은 말로도 할 수 없고 더더구나. 오늘 이 세례 받으면서 우리가 고린도후서 5장 17절 잘 아는 말씀이에요.
*고린도후서 5:17,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뭐라고 그랬어요? 피조물이 되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새 사람이 되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새로움에 대한 신비가 있는데, 그 미스터리가 뭔가? 그걸 제가 두 가지만 오늘 세례식 때문에 제가 짧게 말씀을 전할 텐데, 첫 번째는 오늘 14절에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어떤 신비인가? 함께 보죠.
*고린도후서 5:14a,
14a 그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음. 즉 그 다음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해 대신해 죽었다는 말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 피 흘려 십자가 죽으셨다 그 말이에요.
그런데 그 결과로 우리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이 모든 사람은 뭐냐 하면 이미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을 통칭하는 거예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아니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뭐 한 것이라. 죽은 것이라. 첫 번째 신비는 뭐냐 하면 예자가 죽은 신비다.
I. 첫 번째, 옛 자아가 죽은 것이다.
-저와 여러분들은 옛 자아가 뭐예요? 죽었다. 옛 사람이 죽어. 장사 지낸 바가 되었다. 다시 여기에 모든 사람은 구원받은 성도를 지칭하는 건데, 그러니까 옛 자아가 죽었다. 이 무슨 뜻인가 하면 다시 살아날 수가 없다. 오죽하면 갈라디아서 5장을 보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죽었다. 옛 자아 가지고 다시 다시 살아날 수 없다. 그러니까 이 포인트는 뭐냐 하면 마귀가 아무리 나 옛 자아를 충동질하고 자극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거기에 반응할 필요가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의 자아가 죽었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세례식을 할 때마다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옛 자 옛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장례식을 합니다. 장례식. 장례식을 치러야 되고, 아니 치룬 거예요. 그래서 오늘 세례받는 분들뿐만 아니라 이미 예수님들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예 자아가 뭐예요? 죽었다. 예 자아가 펄펄 살아있으면 안 된다. 옛날에는 열 받으면 밥상을 엎어버렸는데,,, 해요. 해도 돼요? 안 해 안 해도 돼요. 그런데 일설에 의하면 누가 밥상을 엎었다는 말도 들려요. 그래서 옛 자아가 아직 덜 죽은 거죠. 그건 뭔가 something wrong이에요. 뭔가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옛 자아가 죽었다는 말은 내 중심에 세상이 무너졌다는 뜻이에요.
이거 어떡하냐? 여러분 다시요. 오목사도, 오목사의 중심의 세상이 무너지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세례받고 주님 앞에 새롭게 된 큰 신비 중에 하나가 우리의 자아가 죽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 은혜 주셔가지고, 옛 자아가 죽는 거룩한 장례식의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세례식, 이꼴 옛자아의 장례식, 옛자아의 장례식, 자 그런데 질문이 있어요.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자아의 죽음이 우리에게 일어난 실제적인 사건인데 왜 많은 성도들이 그 죽음을 실제적으로 경험하지 못하고 자아가 펄펄 살까?
그 이유는 옛 사람, 옛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죄의 습관, 죄의 그림자, 죄의 잔상이 여전히 내 속에 남아 있어요. 그러니까 옛 자아가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다니는 거예요. 시내 산의 율법을 받았지만 애굽의 노예 습관이 남아있는 거예요. 그래서 옛 자아는 실제로 죽은 줄 믿습니다. 반응이 좀 봐요. 옛 자아는 실제로 죽은 줄 믿습니다. 사건 자체는 끝났어요. 죽음의 사건은 끝났어요. 그런데 이 잔상과 그림자가 옛 습관에 남아 있어 가지고 우리 옛 자가 죽었지만 바울 사도는 로마서 8장 13절에 뭐라고 했냐,
*로마서 8:13,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로마 교회는 이미 복음을 들은 교회예요. 이미 옛 자아가 죽은 교회예요. 그런데도 몸의 행실을 죽이라. 무슨 말입니까? 죽었는데 또 죽이라는 거예요. 옛 자아가 죽었는데 또 죽으라는 거예요. 특별히 고린도 교회는 심각했어요. 육체의 본성이 심각했고, 파당이 심하고 아주 그냥 자아가 살아있는 교인들이 많았어요. 옛 자아의 사고 패턴, 옛 자아의 습관 이런 것이 우리 몸에 남아있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좀 어렵게 말을 하면 옛 자아의 존재론적으로는 죽었지만, 기능적으로는 살아 가지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옛 자아의 잔상과 그림자가 우리를 따라다니는데 이 그림자를 처리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 사도는 어떻게 처리를 해야 되나, 그게 늘 고민이었고 바울 사도는 오죽하면 날마다 죽는다고 그랬어요. 날마다,,, 부담되시죠. 그래서 예수님은 누가 먹고자 하면 뭐라고 그러냐?
나를 따라 그러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다. 이야, 우리가 지금 아멘 하는데 이 아멘 이 보통 아멘, 이 아니 오늘 이 세례 받는 분들이 이게 보통 일이 아니 그러니까 죽었는데 또 죽어야 되는 거예요.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day by day, 심지어 제가 그 옛날에 사역하면서 제 사역 서재에다가 우리 교회 신문이 우리 지가 있는데, 우리 지에다 글을 쓰면요. 그 뭘 패를 하나 주는데 패가 뭐냐면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거야. 패를 딱 걸어놨는데 어떤 원로 목사님이 저한테 오시더니, 오목사 오목사는 날마다 죽나? 나는 매 시간 죽는다. Day by day가 아니라 Our by our, 날마다 죽는다. 날마다 죽었는데 또 죽어야 된다.
우리 속에 있는 죄의 잔재, 죄의 습관, 죄의 그림자를 날마다 죽여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이게 매일 매일이 전쟁이고 매일 매일이 선택이고 매일 매일이 결단이고 이거 억지로 되겠습니까? 자 봐요. 이게 내 힘으로 되겠냐고 그러니까 이게요. 날마다 죽는 이게 우리 그림자라고 그랬어요. 이 그림자는 어두울 때 빛이 어두울 때 어두운 그림자가 생기잖아요. 그러니까 빛이 환해지면 그림자가 남아있다. 사라진다. 사라지는 거예요. 빛이 오면 사라지는 거예요. 옛 자아의 습성과 잔상과 그림자를 죽이려 하는데 이게 매일 전쟁이지만 빛이 오면 빛을 비추면 빛을 비추면, 빛을 비추는 게 뭐냐? 예수 그리스도에 빛을 비추면 그 그림자가 사라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빛 되신 주 어둠을 해칠 수 있도록.
그리고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고 나의 생명이 되신 줄 찬양하면서 내 구주 예술을 더욱 사랑 찬양하면서 아침에 일어나고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고 저는 주님 오늘도 이 날을 인도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이날 영광스러운 주일 예배, 아니 매일 매일이 주님 앞에 감사하는 날이 되게 하시고, 저의 약점은 주님 가리워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주기도문에 있는 기도처럼 그런 기도를 하면서 매일매일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고 매일매일 주님의 인도를 구하고 자기 전에 오늘도 인도해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면 주님이 빛을 비춰주시면 죄의 잔상이 물러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우리의 옛 자아가 죽는다. 하는 이 말이 부담만 되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부담만 되는 말이 아니라 감사가 되는데 이게 뭐냐면 내 자아가 죽으면 우리가 참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에요.
우리가 자아가 죽으면 참 자유를 누리게 되는 이유가 뭐냐 하면 자아가 살아 있을 때는 늘 그 자아를 통해서 죄의 본성, 자기 욕망, 자기 체면, 자기 영광, 자기 계획, 자기 불안이 끊임없이 우리를 묶고 얽매이게 한대요. 늘 긴장이 있는 것이죠. 자유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자아를 죽이면 참 자유가 생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어디 가가지고 누가 날 안 알아주고 그러면 속에 열불이 나고 왜 나를 안 알아주나? 이렇게 생각하고 시험 들고 답답한데 물론 그런 데를 가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 데 가서 시험 들게 그 지혜가 있으면 안 가지만, 그러나 사람이 살다 보면 우리가 어떻게 보면 대우를 제대로 못 받고 힘들 때가 있지 않겠어요? 그때 내 자아가 막 살아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자아가 죽으면 그런 게 상관이 없는 거예요. 상관이 없고 내 그 그림자가 사라지기 시작하면 자유를 얻게 되는 거예요.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는 그분이 나에게 빛이 되시기 때문에 이게 해결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 얼굴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다시요. 자아가 죽으면 자유가 우리에게 허락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삶의 징크스, 미신, 뭐 이런 것들이 우리를 얽매이는 것들부터 완전히 자유함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서, 요한복음 8장 36절에 뭐라고 이런 말씀을 시작.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아등바등하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자유함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수영하지 못하는 사람. 물에 빠뜨려 놓으면 막 살아보려고 난리 치잖아요. 막 힘을 쓰고 그러면 더 가라앉아서. 그런데 수영 좀 하는 분들은 자유로워요. 왜? 물에다가 몸을 딱 맡기고 있잖아요. 뜨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으로 자유함을 얻으면, 미신 징크스 있잖아요. 축구 선수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면도를 하지 않아야 골이 들어간다나 그런 면도도 안 하고 나가고 머리도 터부룩 하고, 어떤 사람은 입었던 옷을 입어야 되고 어떤 사람은 이런 온갖 징크스가 있잖아요. 그런것을 It's no problem. 완전히 free from all of my burden. 모든 짐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이에요.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군사들 가운데서 점집에 많이 간다는 사람들 정신 차려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모든 점집으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모든 미신으로 자유하게 되고, 모든 징크스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어디를 다녀도 두렵지 아니하고 소위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 만나도 끄떡도 하지 아니하고 성령이 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주는 자유함인 것이에요.
죽었지만 또 죽여야 되는데 그런데 또 죽이면 하나님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게 놀라운 신비예요. 오늘 이 신비가 세례받는 분들, 학습 받는 분들 그리고 오늘 이 신비가 오늘 모든 성도들에게 체험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신비는 뭐냐? 15절에 15절에 뭐라 나오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시작.
*고린도후서 5:15,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아멘 너무나무 놀라 죽었는데 또 죽으라고 그러셨는데 이제는 또 살아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어떻게? 나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나를 위하여 죽으신 그분을 위하여 살아라가 말이에요. 인생의 목표가 달라지는 거예요. 신비한 게 뭐냐 하면 오늘 두 번째 신비는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갖는 신비가 있는 거예요. 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갖게 하는 것이에요.
II. 두 번째, 새로운 인생 목표를 갖는 신비이다.
-공부를 해도 이전에 하던 공부하고 달라요. 사업을 해도 이전에 하던 사업과 달라요. 사업의 목표가 달라진 것이에요. 나를 위한 사람, 자기중심의 사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위한 사업을 하게 하여 주십시오. 새로운 인생 목표가 선명하게 새로운 삶의 목표를 갖게 되는 놀라운 신비가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에서 그래서 죽음과 부활이라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영광이라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자아를 죽고 이렇게 할 때 그 신비가 있지만 부활의 영광을 통하여 내 인생의 새로운 삶의 목표가 새롭게 부활이 되는 것이에요. 모든 사람은 허무에 치를 떨게 되어 있어요. 나이 60, 70, 80 가면 심지어 예수 믿는 분들도 허무하다고 그래요. 그렇지 않아요.
예수 믿는 분들은 주님 오매불망 사모하는 그 주님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우리의 삶의 순간순간 남자는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나 혼자 있든 상관이 없이, 예수님을 위하여 살겠다는 삶의 새로운 목표가 생기면 나이가 들어 아파도 새로운 목표가 있는 것이에요. 삶의 허무에 피를 떨 때도 새로운 목표가 있는 것이에요. 대한민국에서 제일 돈 많았던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님 회장도 그가 말년에 너무너무 삶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거야. 그래서 삶에 대한 의문 24가지를 가지고 이거 어떻게 하면 좋으냐, 어떤 도움을 구하고 그러는데 여러분 이거 확실하면요.
새로운 삶의 목표가 확실하기 때문에, 삶의 허무에 대해서 우리가 치를 떨지 아니하고, 삶의 허무에 대해서 우리가 정리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사람은 누구나 이기주의의 삶을 살게 되어 있지만, 이 은혜를 받으면 주님을 중심으로 한 이 주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주님을 위해 이렇게 사는 사람의 특징이 있어요. 순종과 헌신이 부담이 아니고 기쁘고 감사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이런 말이 있어요. 능력이 있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순종하다 보면 능력을 주시는 것이에요. 이게 새로운 삶의 목표를 가진 삶의 신비한 것이에요.
한 번 더 능력이 있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자에게 뭘 주신다고요? 우리가 오늘 자격이 있어서 세례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 말씀에 의해서 세례받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에요. 삶의 목표가 달라지고 스타일이 달라지는 거예요.
지난 주간에 제가 11월 달이 되면 우리 교회 이제 순장반 임원단들하고 제가 교제하는 시간이 있어요. 점심을 같이 하는데 새롭게 될 임원단들 또 전에 임원 한 20여 명 같이 교제를 하는데, 아 이 순장 임원단들이 어떻게 은혜를 받고 또 삶의 목표가 어떻게 달라지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고 쭉 얘기를 하는데 지난 우리 10월 인생 10월 참 고생 많이 했잖아요. 순장만 임원도 안 되는 앞장서서 수고하고 아침 6시, 7시부터 나왔고 고생을 해도 특별히 세계복음연맹 총회할 때 전략 투구를 했어요. 놀랍게 그래서 그 투골하면서 고생을 하는데 목사님이 영적 전우회가 생겼습니다.
영천우회 지체들끼리 더 사랑하고 기뻐하는 공동체가 된 것 같다고 육신은 힘들지만 영적으로는 살려주셨다고 그리고 선비다 보니까 믿음의 그릇이 커지고 스케일이 커졌다고 그래서 어떤 순서냐면 내가 스케일이 커졌는데 증거가 뭐요? 그러니까 목사님, 우리 집 현관문 비밀번호가 2033-50이 되었습니다. 이야!!~~ 여러분 기가 막힌 거 아니에요? 저는 그 말을 듣고 현관문 번호가 2033-50을 해놨으니 하루에 두 번, 세 번, 네 번 들락날락하면서 2033-50, 2033-50, 여러분 그 사람 하나는 축복하시겠어요? 안 하시겠어요? 부족한 나라도 하나님께서 필요하는 날 물부터 부어주시겠는데 물론 걱정하지 말아요. 주소는 내가 안 가르쳐 드릴 테니까.
여러분, 봐요. 우리 지금 스마트폰이라든지, 우리 비밀 코드 할 거 얼마나 많아요. 무조건 2033-50이야.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새로운 삶의 목표와 신분이 확실해지는 것이에요. 이렇게 할 때 신앙의 스케일이 달라져요. 어떻게 달라지는가? 우선 16절에 보면,
*고린도후서 5:16,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사람을 겉으로 보면 이제부터 어떤 사람들이 육신을 따라할 겉모습만 보고 껍데기만 보고 이런 인생 안 살겠다. 그리고 18절 19절에 보면 뭐라고 나와 있느냐 이렇게 나와 있어요. 함께 보겠습니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모든 것이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그 다음 뭐예요? 19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니 그 다음 중요합니다.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아멘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전파하라’. 오늘 마칠 때 그 찬성할 거예요.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너무나 놀라운 것은 신비한 것인데, 자아가 죽는 것, 또 죽고 또 죽는데 그런데 우리를 살려주셔 갖고 삶의 새로운 목표를 주셨는데 공부를 해도, 사업을 해도, 이제는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고. 자식을 키워도 완전히 달라지는 것인데 이 모든 것들을 종합에서 신비한 것을 화목히 하는 직책을 주신 거예요. 여러분들이 가는 곳마다 가정이 화목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여러분 공동체가 화목하게 되는 것이에요. 지금 하나님과 우리 국가가 화목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우리 국가가 화목하게 못하는 것이 있다면 여러분이 화목해 하는 직책을 감당하면 하나님과 국가가 화목하게 되는 것이에요. 우리는 화목해야 하는 이게 어마어마한 거예요. 적당히 화목해야 하는 적당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십자가는 인간과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을 화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피의 십자가는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주림이 다시 화목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엉금퀴와 찔레를 가지고 우리가 범죄 했을 때 완전히 세상이 엉망된 거예요. 환경이 자연환경이 엉망이 된 거예요.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가는 곳마다 자연환경과 하나님이 화목하게 돼 가지고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은 그 지역은요. 그 지역의 환경이 아름다운 환경으로 변화되는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유럽의 아름다운 것은 유럽의 과거에 신앙의 선배들이 그렇게 가꾸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에요. 우리 한국도 앞으로 그렇게 될 거예요. 남한과 북한을 비교해 보세요. 북한은 민둥산이에요. 하나님께서 소위 우리로 화목해하는 의사를 주셔 가지고, 적당한 스케일이 아니라 이게 우주적 스케일의 화목을 하도록 만들어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지.
*골로새서 1:20,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할렐루야 땅에 있는 것들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주님으로만 화목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우주적 스케일이 마치 이 화목에 대한 은혜를 받으면 새롭게 된 신비, 화목해야 하는 직책의 신비를 깨달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성경적 화목은 모든 장벽과 분열을 녹이고 하나 되게 하는 우주적 용광로와 같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되는 것이죠. 바울이 이걸 이렇게 선포한 이유가 있어요. 오늘 고린도 교회는 분열의 상태가 심한 아볼로파다, 개바파다, 바울파다, 심지어 예수님파다. 분열이 심각한 상황이었고 아니 바울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일려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초대교회 교인들을 핍박했던 전과자였기 때문에 이 화목해하는 직책을 언급할 때마다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던 그때의 놀라운 체험이 뜨겁게 뜨겁게 각성 되었을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신비합니까? 세례받고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이에요.
세상과 하나님을 화목 시키고 만물과 하나님을 화목시키게 하고, 가정 가정마다 화목이었어요. 그래서 이 화목해하는 직책은 이 땅의 분열과 계급, 갈등, 폭력으로 가득한 죄의 질서 속에서 관계가 회복되는 것, 그걸 뛰어넘어 가지고 새로운 창조 질서 속에서 하나님과 사람 피조 세계로까지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우주적 용광로의 무게를 지닌 축복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 사람들은 화목에 의지는 있어요. 탕평하고 싶다. 하나 되고 있다. 하나 되고 싶다. 갈등을 극복하고 싶다. 그러나 화목에 의지는 있지만 화목할 능력이 없어요. 아무리 화해의 의지가 있어도 참된 화해를 할 근원적인 방법이 없는 것이에요.
이 세상은 끊임없이 화해와 탕평을 얘기하지만 화해를 깊이 열망하지만 화해를 가능하게 할 역동적인 것과 효과적인 방법이 없는 것이에요. 지금 우리나라를 보세요. 결혼의 파괴, 계층적인 갈등, 심지어 젠더 갈등, 사회적 불화,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화목을 얘기하지만 화목을 그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가 뭐냐 하면 십자가와 그리스도가 없는 화목은 해결 방법이 안 나오는 것이에요. 그래서 골로새서 1장에 보니까 만물이 그리스도에 의해 붙들려 있을 때, 만물이 그리스도의 피로 화목된다고 말씀한 것이에요. 모든 불화와 갈등은 만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거룩한 개입으로만 해결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진정한 화해는 만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거룩한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에요. 부부 간의 갈등이 있어요. 그 갈등은 어떻게 해결합니까? 남편이 참아야 됩니까? 아내가 참아야 됩니까? 서로 좋은 말 하면 되는 겁니까? 잠깐 용서하면 됩니까? 천만의 말씀, 천만의 말씀은 서울 시민들이 한마디 하면 다 천만의 말씀이 다 해봐야 소용이 없어. 타협할 소용이 없어요. 십자가가 없이는 화목이 안 되는 것이에요. 십자가의 신비를 깨달아야 부부간에도 갈등을 해결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삼각형 아시잖아요.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는데, 그래서 십자가의 화목의 중간에 있어야만 부부간의 갈등이 해결되는 거예요. 국가 간의 갈등도 마찬가지예요.
십자가가 없이는, 사회의 구조적인 갈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거룩한 개입이 없이는 결코 화해가 불가능한 것이다. 세상에 상담 어느 정도 도움은 돼요. 그러나 그 껍데기 잠깐 그냥 잠깐 단 것 사탕 주는 정도의 근본적인 해결이 안 돼요. 그래서 십자가가 모든 화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고, 그래서 여러분들과 오늘 우리가 세례받고 오늘 예배에 참석하면서 여러분들의 젊은이들 말로 하면 찐 화목의 대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화목 하는 대사가 돼야 되는 거예요. The ambassador of Reconciliation. 화목해하는 영적인 찐 대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화목해 하려면 여러분 뭐가 필요하냐? 뭐가 필요하냐? 에너지가 있어야 돼요.
*고린도후서 5:14a
14a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한 번쯤 하면 되는데 계속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 에너지가 영적인 힘과 에너지가 영적인 힘의 원천이 뭔가 그것이 오늘 14절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을 다 해석했는데 이게 너무 중요해요. 오늘 이 예배를 주님 사랑하는 때만 나온 줄 믿습니다. 알겠죠? 세례도 주님 사랑하는 때를 받는 것이에요.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이 화목하게 하는 대사의 직책을 끝까지 감당하게 하고 자아가 죽게 하고 새로운 삶의 목표를 힘 있게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사업도 공부도 우리의 모든 인생살이도 가능하게 하는 것인데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건하게 하셔야 됩니다. Bank of Heaven 하나님 천국 은행에서 이 사랑이라는 구좌에서 날마다 이걸 우리가 꺼내 써야 되는 것이에요. 24시간 오픈되어 있는 이 구좌를 우리가 써야 되는 것이에요.
오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세례받는 분들뿐만 아니라 오늘 모든 성도들, 오늘 방송으로 들어오는 모든 분들, 별관에 세례되는 모든 분들 마음의 소원을 아시는 거예요. 우리는 천국 은행에서 사랑구좌 24시간 빼낼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인 힘과 능력을 날마다 받을 것이다. 주님 사랑해요. 또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공급받아야 되는데 충전을 해야 돼. 사랑의 충전을 해야 돼.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한 시대로 충전해야 돼. 어떻게 충전? 대충전이 뭐냐? 주일 예배가 대충전이에요. 그래 주일 예배 안 나오는 사람들은 사랑의 충전을 못 받으니까. 그러니까 제가 볼 때 주일 예배를 등한시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주름을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본 적이 없어요. Amen. 대충전이에요. 대충전. 중충전이 뭐냐? 다락방과 훈련이 소충전이 뭐냐?
날마다 아침에 주님과 큐티하고 아침에 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에요. 한 번씩은 급속 충전도 필요해요. 급속 충전이 뭘까요? 특새예요. 특별새벽부흥회에요. 제가 말하는 요지는 대충전이든, 중충전이든, 소충전이든. 그래서 저의 사랑의 우리를 끝까지 강권하셔야 돼요. 오늘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셔서 세례받는 축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 쓰시는가? 이 새롭게 된 신비를 깨달은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에요.
자아가 죽고, 삶의 목표를 갖고 찐 화목해하는 대사의 은혜를 가지고 날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충전받는 우리 오늘 세례받는 분들, 우리 온 성도들 얘기를 한 분 한 분 맞춤의 은혜를 선한목자께서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요약
우리는 '옛 자아의 노예 습성'에 대해 죽음을 선언하고,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또 죽을 때, 거룩한 참자유를 얻고 누리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우리를 전 영역에서 화해의 우주적 용광로로 부르셨으니, 가는 곳마다 화목하게 하는 영적 삶을 살아가야 하며, 우리 사랑의교회와 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가 주일예배, 다락방, 큐티, 특새'를 통해 강권하시는 사랑의 무한 충전을 받아서, 하나님과 민족을 화해시키며 '2033-50 비전'을 완수하길 간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