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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2월 01일)-로마서 강해(2) 제목: "복음의 능력을 받아야 산다“ 말씀: 로마서 1:15-17 사회: 임상규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 *로마서 1:15-17,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찬양대가 고백한 우리 영광의 주님을 우리의 생명과 소망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제목을 ”복음의 능력을 받아야 산다“고 그랬는데 로마서 강의 두 번째 여러분 은혜를 받아야 삽니다. 여러분의 없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은혜를 받아야 산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능력을 받아야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능력을 받아야 산다는 말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복음의 능력을 받아야만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오늘 지난번에 말씀한 대로 ‘선지적 사도성’을 가지고 우리가 통찰력을 갖고 또 추진력을 가지고 살아계신 이 말씀을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로마교의 성도들은 복음을 이미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제가 질문하는 거 보면 아실 거예요. 로마교의 성도들은 복음을 이미 안 성도들이었어요. 제 얘기가 아니고 1장 6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1장 6절에, *로마서 1:6,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이미 복음을 알았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복음을 이미 알았던 그런 로마 교회 상도들에게 바울이 다시 복음 전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1장 15절에 뭐라고 나와 있느냐., *로마서 1:15,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그랬어요. 바울은 이미 복음을 알았던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다시 복음을 전하기로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첫 번째 생각할 거예요. 우리가 지금 I. 왜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하나? -왜 로마 교회 성도들은 왜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하나? 오늘 본문의 배경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로마 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우지 않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로마 교회는 어떻게 태동이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2장 10절에 보면 무슨 내용이 나오느냐 하면, 오순절 성령 강림의 그 놀랍고도 위대한 사건이 있었을 때에 *사도행전 2:10,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다음에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1년에 1번씩 예루살렘에 가가지고 이제 오순절을 지키는데 절기를 지키는데 유월절이나 이래 지키는데 그중에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들이 로마로부터 와가지고 오순절 성령 강림의 은혜를 받고 성령 받아 가지고, 로마에 가서 교회를 세운 것이에요.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오늘 이 로마로부터 로마에서 교회를 세우고 난 다음에 한 20년쯤 지났어요. 그 20년쯤 지난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복음을 듣고 복음을 알고 로마 교회를 세우고 로마 교회 생활을 했는데 20년이 지나면서 이게 희석이 되고, 약화가 되고 또 그 당시에 로마가 전 세계 가장 강력한 천조국 가장 강력한 세계 제국이었기 때문에 로마의 세속 문화가 굉장히 강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도 모르게 로마 교회 성도들이 로마서 13장 13절, 14절에 오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로마서 13:13-14,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러니까 당대에 로마 제국의 세속적인 문화가 예수 믿는 사람들께 그대로 임해 가지고 보니까 방탕하고 오염되고 그다음에 좀 성적으로 문제가 많고, 특별히 다투거나 시기하는 갈등과 충돌이 있었어요. 무슨 말이냐면 로마교회는 이제 바울이 말씀을 쓸 때가 로마교회 세우고 난 다음에 몇 년쯤 지났다고요? 20년쯤 지났어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AD 49년에 글라우디오 황제라고 있어요. 클라우디우스라는 발음을 영어로는 그렇게 하는데,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뭐라 그러냐면, *사도행전 18:2,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오늘날 말로 어디예요? 이탈리아어로부터 왔다 했어요. 왜냐하면, AG 49년에 글라우디오라는 황제가 로마에 있는 유대인 추방력을 내린 거예요.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다 가라. 그러니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자고요.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추방을 하니까 로마인 출신 그리스도인들만 남아 갖고 신앙생활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다시 한 5년쯤 지나가지고 추방 내렸던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로마로 가게 됐어요. 그래서 오늘 여기는 이탈리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고린도에 가가지고 바울을 만났거든요. 그런데 그 고린도에서 이 로마서를 썼거든요. 그러니까 이 바울에게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은 다시 돌아갔는데, 유대인 출신들이 돌아가고 거기에 남아있던 로마인 출신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이런 데 서로 화합이 잘 안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유대인 출신들은 열심히 하려고 그러고 거기 출신들은 뭐냐 하면 좀 이렇게 메가리가 없고 그리고 서로 갈등과 충돌이 있는 거예요. 교회가 좀 약화되고 교회가 침체가 되고 그런 일들이 있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오늘 바울이 내가 너희에게 다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다. 자 이게 오늘 우리하고 무슨 상관 있습니까? 여러분들이나 저나 신앙생활을 10년, 20년, 30년, 40년 처음에는 눈물 코 흘리면서 주님 사랑한다고 주님 사랑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교회에서 조금 이제 신앙성 오래 한 분들은 이 인간들이 모인 곳이니까,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에 시험 들고 이래가지고 점점 경직이 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누가 건드리기만 하더라도 열받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 젊은 좀 나이 든 분들은 그러고 젊은 분들은 뭐가 있어도 이렇게 막 막 가슴 끓어오르고 또 프레시하고 또 열정적으로 하는 그런 것들이 없고 그냥 냉소적이야. 뭐 되겠나? 그러면서 무슨 무슨 이래서도 아이고 뭐 이런 식의 거기에 무슨 창조적인 일이 일어나고,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또 교회나 하나님의 나라가 막 세워주고 하는 그런 일이 잘 안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시대에도 복음의 능력을 그냥 껍데기로만 아는 종교인들이 많은 거예요. 제가 교회 안에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그래서 제가 교회 안에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뭐냐면, *명목상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는 있지만, 복음 안에는 없는 분들이 오늘 한국 교회 안에 많이 있다. -이 말이에요. 오늘 여러분들은 교회 안에도 있고 복음 안에도 있기를 바라는 것이 그런데 교회 안에는 있지만 복음 안에는 없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가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한다. 어떻습니까? 다시 복음을 들어야 돼.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 나름대로 성향이 있잖아요. 그것이 뭐냐 하면 우리 인생에 복음의 거울을 자주 닦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복음의 거울에 인간적인 먼지와 세상의 먼지가 쌓여 가지고 우리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없도록 만드는 겁니다. 인간적인 먼지가 뭡니까? 자기 자기 체면, 신앙생활도 자기 의, 자기 경험, 자기 프라이드, 이게 인간적인 인간적인 먼지들이고 세상적인 먼지가 뭡니까? 유혹받고, 오염되고, 재물과 쾌락과 탐욕 이런 것들이 다 세상적인 먼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고 오래되다 보면 이런 내용들 이런 것들이 우리로 알고 메너리즘에 빠지게 하고, 무감각한 신앙으로 가게 하고, 십자가를 들어도 별로 감격이 없고 성찬에 참여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심지어 죄에 대해서도 무감각이 좋고 순종도 나하고 별 관계가 없는 것 같고, 그러니까 이런 우리의 상황 가운데 오늘 우리 찬송 가운데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의 흘린 보혈의 피로서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십시오.’ 내가 매일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내가 매일 참 복음 앞에 나를 접목하기를 원합니다. 자 제가 로마 교회가 왜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하는지 오늘날 성도들이 왜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하는지 말씀을 드렸어요. 그렇다면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가, 복음이 무엇인가? 그랬을 때 우리는 흔히들 복음은 예수 그로서의 십자가 죽음 부활로 말미암은 구원이다. 우리가 다 알고 있어요. 옛날에는 이런 내용들을 가지고 설명을 하면 사명이라든지 이런 걸 하면 왠만하면 다 구원받고, 하나님 앞에 예수님 영접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요즘은 다 무뎌가지고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이상한 information을 잘못 들어 가지고 머리가 오염이 돼 가지고 이런 복음의 내용을 설명을 해도 감동이 없는 거예요. 와닿지가 않는 거예요. 서구 사회는 2천 년 내려오는 기독교 문화라는 게 있는데, 우리 한국이나 아시아 같은 경우는 이방 나라 아닙니까? 소위 페이건 소사이어티에 우리는 무속, 불교 그다음에 뭐 무슨 무슨 뭐 유교 뭐 이런 여러 가지들이 있어가지고 오늘 우리에게 이런 복음의 능력, 복음의 어떤 이런 내용들이 전해지더라도 이건 막 마음에 와 닿질 않는 거예요. 바울 시대도 마찬가지, 로마 시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복음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오늘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로마서 1:16,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 뭐가 된다고요? 능력이 된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는 복음의 내용과 함께 복음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복음을 define, 복음을 정의하라 그러면 the definition을 내리라 그러면, 복음의 정의가 뭐냐? 죄송합니다. The gospel is the power of God.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 말이에요. 이 능력이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와 닿아야 된다. 이 말이에요. 그리고 이 능력은 16절 뒤에 보니까 이 복음은 모든 모든 믿는 자에게 그랬어요. 모든 믿는 자에게. 모든 믿는 자라는 말은 인종이나, 교육이나, 계층이나, 지역이나, 가족 배경이나, 종교적 체험, 도덕성 이런 관계없이 모든 믿는 자에게 따라서 복음의 능력이요. 복음의 능력이 실제적으로 와닿지 않는 분들에게는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오늘 여러분의 고백으로 와닿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교회 역사적으로 마르틴 루터에게 오늘 이것이 진짜 복음의 능력이 되었어요. 이 말씀을 루터가 발견하고 난 다음에 완전히 뒤집어져 버렸어요. 카톨릭 수사로 머물 생각이 더 이상 없었어요. 이 복음의 능력이 그의 영혼에 불타오를 때에 복음의 능력에 촛불을 들고 외쳤습니다. 그게 뭐냐? 17절 뒤에 오직의 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17b, 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직 그래서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 다 변해도 오직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기억나시죠? 오직 의는 믿음을 그래서 솔라 피데 오직 의는 믿음으로만 솔라 스크립트라, 말씀으로 특별히 오직 복음으로 그리고 이 말씀이 로마서 전체의 핵심이 되고, 이 말씀을 붙잡아야 로마서 전체에 그림이 들어오고 그러니까 16절, 17절에 이 말씀 우리가 익숙하게 알지만 신약을 통틀어서 정말 강력하고 통찰력 있는 구절 중의 하나라고 믿습니다. 다시 복음의 능력이다. 하는 말은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 말을 우리가 구체적으로 이해를 하면 뭐냐 하면 *복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과 같다고 보았다. -복음은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과 같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거예요. 조금 세게 말하면 로마서의 나머지 구절들은 이 구절들에 대한 설명을 많이 하고 있는 거에요. 이게 바울 신학의 정수가 되고 이것 때문에 바울이 그토록 로마에 가고 싶어 했어요. 바울은 이 능력이 있으니까 그다음 나타난 자연스러운 결과가 16절 앞에, *로마서 1:16,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하고, 선제적 사도 성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거예요. 자, 복음 전도자로서 바울이 당한 여러분들의 생애를 이해를 하면,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접목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고문도 당하고 아테네에서는 아크로폴리스에서 수많은 철학자들과 논쟁도 하고, 고린도에서는 얼마나 많은 박해와 핍박을 받았는지 몰라요. 루스트라 성에서는요.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내어버려질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고, 이런 상황에서도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강력하게 복음을 뭐하지 않는다고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여러분 로마는 당대 최대의 제국이었고, 황제 숭배의 본향이었으며, 높은 수준의 철학과 인문학과 음악의 도시였고 지적, 우울감의 본산지였습니다. 가장 강력한 권력과 힘, 전쟁의 HQ, 헤드쿼터, 본부였어요. 그 시대에 천조국이었어요. 모든 길은 오죽하면 로마로 통한다고 그랬겠어요. 위대한 도시였어요. 그 가운데서도 바울은 사람들의 눈앞에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죄수복을 입고 로마로 갈 때도 그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한 줄을 확신합니다. 왜 부끄러워하지 않았을까요? 왜? 죄수복을 입고도, 바울은 약해지지 않았어요. 이유가 뭐예요? 복음 안에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강력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로마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지적으로 우울하든 얼마나 똑똑하든 얼마나 대단하든 상관이 없다. 복음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자 그래서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그 다음에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복음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다. 구원을 정의하겠다. 여러분, 과학으로도 타 종교로도 도덕으로도 교육으로도 철학으로도 어떤 것으로도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 이 구원을 내가 우리 다 안다고 그러지만 이 구원의 의미는 우리가 구원 반대 이 정도가 아니라 이 구원의 의미는 현재의 삶에 능력을 주고, 우리의 미래는 선제적 사도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이 구원 안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여러분 우리 기독교에만 천국과 지옥의 문제를 확고하게 얘기합니다. 타종교도 얘기하는 것 좀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강력하게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기 때문에, 타 종교는 여기에 대한 해답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는 침묵해버리는 것이에요. 우리는 복음을 통하여 확실한 구원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능력은 차별이 없어요. 뭐라고 되어 있느냐. 헬라인에게 또 유대인에게, 16절 뒤에 보니까, *로마서 1:16, 16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무슨 말이냐? 헬라인은 이방인을 통칭해서 말하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로 말하면 복음은 차별이 없다는 뜻인데 인종, 교육, 나이, 수입 배경, 종교적 취향 어떤 조건에도 상관없이 복음은 차별 없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차별 없는 능력이 여러분들에게 임하기를 바라고 이것이 여러분들의 것으로 깨달아지고 여러분들의 것으로 맞춤형으로 확인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한다. 복음은 능력이 있다. 그랬는데 이것이 여러분들과 무슨 상관이에요? 오늘 이 내용이 여러분들의 복음이 돼야 되는 것이에요.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들 각자의 복음이 돼야 되는 것이 무슨 말이냐면 오늘 바울의 복음을 설명할 때 로마서 1장 1절에 뭐라고 얘기하느냐, 이렇게 이 복음을 하나님의 복음이다. 그렇게 얘기해요. *로마서 1:1, 1 하나님의 복음, *로마서 1:9, 9 그의 아들의 복음 -그의 아들의 복음이다. 이런 얘기예요. 그런데 이 하나님의 복음과 그의 아들의 복음이 나중에 2장에서는 뭐라고 되어 있느냐? 2장 시작. *로마서 2:16, 16 나의 복음. *로마서 16:25, 25 나의 복음 -나의 복음이다. 그다음에 또 보니까 16장에도 보니까 바울이 복음을 나의 복음이라 그랬어요. 그러니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 여러분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있는 복음이 할아버지의 복음이 아니고, 우리 순장님의 복음이 아니고, 우리 어떤 중직 자의 복음이 아니고, 목사의 복음이 아니고, 여러분의 복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나의 복음이 되길 원하는 것이에요. 나의 복음이 될 나의 복음, 그의 아들의 복음. 그다음에 하나님의 복음으로 끝나면 안 되고 이것이 나의 복음. 바울이 그걸 나의 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왜 그렇습니까? 바울이 이 복음이 개인적인 능력이 돼 가지고 이 복음이 그의 삶 전체가 그의 존재를 사로잡는 삶의 고백이 되었기 때문에... 무슨 말이냐? 바울에게 있어서 그의 삶 자체가 복음으로만 설명될 수 있고 복음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리면 그는 텅 빈 존재일 뿐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의미에서 나의 복음은 나의 인생이 걸린 복음이요.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복음을 의미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제가 부탁하는 것은 저나 여러분이나 저는 불타는 사역자로 섬기지만 우리는 일생의 사명을 우리 여러분의 삶을 여러 가지 영역에서 직업을 갖고 살고 있지만 어떤 직업을 갖든 어떤 상황이든 상관없이 저와 여러분의 일생이 복음으로만 설명 되어지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에요. 복음으로. 이것은 우리가 와닿아야 돼요. 이것이 나의 복음으로 와닿아야 돼요.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리까지 가야 되는데 제가 이제 좀 해봤어요.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면 나의 실패, 나의 과거, 나의 상처까지도 이 복음의 능력 아래 둘 수가 있는 것이에요. 두 번째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면 더 이상 세상에 주는 수치는 나의 최종 언어가 아닌 줄로 믿습니다. II.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면 더 이상 세상이 주는 수치는 나의 최종 언어가 아니다. III. 이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면 사람들의 어떤 비웃음과 조롱보다도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기 때문에 복음을 조금도 부끄럽게 부러워하지 않는 줄로 확신하는 것이다. -나의 복음으로 부부싸움을 가열차게 하더라도,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면 다시 회복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 복음이 엄마의 복음이 아닌, 아버지의 복음이 아닌, 할아버지의 복음이 아닌, 믿음 좋은 분들의 복음만이 아닌, 이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여러분의 정체성이 어떻게 되느냐, 여러분들 앞으로 이메일 번호를, The Gospel org, The gospel kim. org, the gospel park.com, 이렇게,,,.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바울이 이 복음을 나의 복음이라고 불렀더니, 사실 하나님의 복음, 그리스도의 복음인데 이게 나의 복음으로 불렀더니, 사실 때문에 가슴이 너무 떨렸어요. 가슴이,,,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바울처럼 나의 복음으로 부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여러분과 저에게 복음이 뭡니까? 물론 복음은 하나님의 복음이요. 그의 아들의 복음이지만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오늘 이 시점에서 저와 여러분에게 나의 복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에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 나의 복음으로 무장하고 로마서의 산을 올라가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고봉으로 올라가야 되는 것이에요. 나의 복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사랑의 교회, 아니 한국 교회 성도들이 이 복음을 나의 복음으로 무장하고 한 분, 한 분이 고백할 수 있다면 한국교회는 소망이 있는 것이요, 오늘 여러분들이 나의 복음으로 외치고 선포할 수 있다면 말씀을 강요하는 저로서는 이것보다 더 기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어요? 그러니까 이 복음이 이 나의 복음으로 고백하는 그 순간 무슨 일이 나의 정체성이 확인되는 것이에요. 우리가 아까 말한 대로 나의 복음이 되면 더 이상 세상이 주는 수치와 나의 과거, 나의 상처 다 복음 안에 두기 때문에 여러분의 정체성이 복음 안에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세상이 나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피의 복음이 나를 판단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복음적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은 주님이 나를 판단하시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세상 적으로 우리는 실패자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에요. 복음 때문에, 우리 모두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나의 복음이라는 목걸이를 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값진 보석으로 만든 명품 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나의 복음이라는 목걸이를 그 명품 목걸이보다 더 큰 자랑으로 당당히 드러내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나는 이 십자가 이 복음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 이유는 십자가의 복음이 바울의 정체성을 완전히 바꾸는 능력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바울 빼기 바울 마이너스, 복음은 뭐가 되는 거예요? Nothing이에요. 바울 마이너스 복음은 제로가 되는 것이에요. 오늘 여러분들의 이름, 여러분들이 땡땡 빼기 그 다음에 복음은 제로가 돼야 되는데, ◎ 바울-복음=0 -안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 땡땡 빼기. 복음이 너무 많아요. 너무 많아, 여러분의 이름 빼기 복음이 새로운 인생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이거는요. 어떻게 보면 압도적이에요. 어떻게 보면 아주 무시무시한 방정식이에요. 바울의 바울이 만든 복음 방정식이라고 난 다른 거 외에는 알기를 원치 않는다고 그랬으니까 기본적으로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저와 여러분 모두는 강력한 복음 방정식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복음으로만 우리가 판단 받기를 바라고 우리의 정체성 복음을 통해서 선포되기를 바라고, 우리의 정체성 복음으로 평가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는 실패자가 없는 것입니다. 나의 복음으로 다시 무장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저는 복음 다시 들어야 되고 또 뭘 말씀을 드렸습니까? 복음은 능력이고 그리고 이 복음이 나의 복음이 돼야 될 때 이럴 때 나타나는 결과와 현상이 있습니다. 어떤 현상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니까 실질 능력이 나타났는데, IV. 능력을 받음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 -로마서 1장 15절 16절에 17절에, 이 복음의 능력에 대한 내용이 다시 한번 능력에 대한 복음의 능력이라고 그랬어요. 로마서 15장 18절 19절에, 이와 같이 다시 한번 설명이 되고 있는데, 로마서 15장 18절, 19에 보겠습니다. *로마서 15:18-19,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본당 별관 방송 우리 모든 SS 여러분들 크게 합시다. 19절 다 함께요.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누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선하였노라. 아멘 -바울에게서 복음 빼면 제로인데 바울에게서 복음의 능력으로 나타나 가지고 그것이 말과 특별히 행위로 표적과 기사와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고 이것이 온 땅에 펼쳐지게 되는데 소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동부 유럽, 유럽까지 조세 일누리곤은 지금 알바니아, 끝까지 이것이 편만하게 펼쳐졌노라. 할렐루야, 복음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통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이 편만하게 오늘 이 자리까지 펼쳐진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얘기할 때, 예수님의 사익은 능력이 같이 따라간다. 마태복음 12장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2:28,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실질적으로 삶의 현장 가운데 귀신 들린 자가 쫓겨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복음의 능력이 되기 위해서 복음이 능력 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귀신을 쫓아낸 것 같은 그런 은혜가 우리 가운데 체험돼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제가 이걸 설명하기 위하여 좀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한 10여 년 전에 OEC International이라는 세계적인 보험단체가 있는데, 거기에 ‘딕 힐리스’라는 책임자가 있었어요. 이분이 중국에 선교를 하러 갔어요. 어느 날 중국 군인이 아내를 데리고 이 디킬리스 선교사님이 온 거예요. 보니까 아내가 귀신이 들린 거예요. 제가 말씀드리지만 정신병 들린 사람은 정신병원에 가면 되고 귀신 들린 자는 쫓아내야 되는 것이에요. 그런 게 있어요. 그런 게 있어요. 그러면서 그 군인이 귀신들 아내를 데리고 오면서 자기 너무 간절한데 자기가 듣기로서는 기독교는 능력이 있다. 예수님은 능력이 있다. 또 복음은 능력이 있다. 이걸 제가 들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선교사님이 고쳐주세요. 이 귀신 문제를 아내의 귀신을 쫓아내는, 귀신을 쫓아내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 선교사는 미국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이런 소위 귀신과 귀신의 능력과 부딪치는 귀신들, 자를 쫓아내는 이런 현장을 별로 체험을 한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게 익숙하지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복음의 능력이 있어. 귀신도 예수님 쫓아낸다고 그랬는데 바울도 실질적으로 말과 행동, 표적과 기사를 가지고 쫓아낸다고 그랬는데, 그래서 선교사 부부가 한번 해보자고 그랬어요. 손잡고. 그래서 자기 부부만 하면 좀 약한 것 같아갖고 중국 성도들 가운데 믿음 좋은 기도 많이 하는 여성도 한 분 모시고 셋이서 함께 기도한 거예요. 기도하면서 귀신 쫓아내려고 막 기도를 하는데, 귀신들은 그 여자가 팔짱을 끼고 있잖아요. ㅎㅎ~ 기도하는 그 선교사님하고 선교사님을 계속 쳐다보더래요. 쳐다보면서 조롱을 하는 거예요. 무섭게 기도를 하면 고대로 따라하고 너희들은 능력이 없어 그러대... 그리고 너희들은 안 돼 그러더래. 그리고 기도하는 말을 따라 하면서 조롱했다고 네가 무슨 능력이 있냐. 그럴 때 선교사님의 글에 이런 글이 쓰여져 있어요. 우리는 귀신이 조롱하는 그 고통 가운데서 성경을 읽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핵심 성경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이걸 읽으면서 계속 반복을 하면서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복음 찬송을 하고 이렇게 하는 가운데 갑자기 그 선교사님의 마음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하시고 복음의 능력이 있는데, 이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이 귀신 들리고 이 여자를 창건 아이 악한 귀신아, 예수 그리스 여러분 명하노니 나가라 어떻게 됐겠어요? 그 순간 귀신이 떠나가 버렸어요. 할렐루야!!! 떠나버렸어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허깨비를 붙잡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아는 사람들이에요. 복음의 능력을 아는 정도만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이 삶의 현장에서 접목이 돼야 됩니다. 이런 능력이 나타나야 돼요. 오늘 이런 능력의 수혜자, 그 다음에 이런 능력의 체험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저희 부친의 교회를 개척할 때, 저희 부친이 개척할 때 우리 부친과 함께 동역했던 여전도사님이 계셨는데 우리 부친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이었어요. 그 여전사님 이름이 설한 설시언 설한 전도사님이라는 분인데 그 당시에 저 부산 쪽에서는 아주 귀신 쫓아내는 은사가 있는 전도사님이었어요. 그 주일 저녁이나 수요일 저녁만 되면요. 교회 뒤에 그때 교회가 초라한 교회니까, 개척교회니까 세면바닥 위에 돛자리 깔고 예배드리고 그러는데, 그 뒤에 이처럼 코 귀신 들린 사람이 2명, 3명씩 와서 앉아 있는 거예요. 그 설 전도사님이 이제 같이 이제 귀신 쫓아내는 기도를 하는데 저보고 현이 와라. 제가 중학교 2학년, 3학년 현이 와라. 그리고 이제 현이 와서 같이 기도하자. 그런데 이제 옆에 저 뒤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고2, 고3형들이 있어요. 고3형들도 데리고 와라. 그래서 제가 고3형들을 막 데리고 와 같이 기도를 했어요. 기도를 하는데 고3형들이 벌벌 떠는 거야. 막 기도하는데 고3 형 왜 떨어? 그러니까 야 내가 듣기로서는 고3 형들이 하는 얘기예요. 귀신 들린 자를 위해 쫓아내는 걸 막 기도를 하면 귀신 들린 사람이 나갈 때 그 주위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가운데 제일 믿음 없는 사람한테 쏙 들어간다 하더라. 제일 믿음 없는 사람도 아이고 그러면서 벌벌 때는 내가 알거든. 그 형들 엄마한테 거짓말해 가지고 돈 타내 가지고 다른 거 뭐 하고, 여자들 꼬무니 따라다니고 내가 다 알거든. 능력이 없는 거야. 벌벌 떠는 거야. 그런데 나는 지금도 기억해요. 이제 선한 전도사 나중에 미국 가셔 갖고도 이걸 사역을 하셨는데 그분이 나가는 교회에 제가 산호세 그 당시에 제일 침략이라고 큰 집회를 하는데 산호세에서 보는데 막 강단에 가서 제가요 한때는 집회를 잘했어요. 아실랑가 몰라요. 40대 초반 중반에, 막상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설 전도사님이 와가지고 나한테 오목사 옛날 능력이 나왔네!!~~ 나왔네 이거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있지 않고, 능력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복음은 나의 복음이 돼야 되고,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돼야 되는 것이에요. 저는 이런 의미에서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옛날에 이런 말씀 있죠.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들어보셨죠? 우리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예를 들어 건강에 관한 문제 지금 우리가 어떻게 우리가 음식을 먹고, 어떻게 여러분들 운동을 하고 어떻게 자신을 추스르고 특별히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하고, 이런 것이 앞으로 5년, 10년 뒤에 건강을 결정할 거 아니에요. 마찬가지예요. 지금 저와 여러분이 복음의 능력을 나의 복음으로 어떻게 여러분들이 정확하게 터득하고, 고백하고 살아내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향후 10년이 결정될 거예요. 사랑의 교회는 5년 10년 뒤가 더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거는 어떤 눈에 보이는 교회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무형교회인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금보다 5년, 10년 뒤가 더 좋은 신앙생활, 더 좋은 은혜를 받고 사려면 지금 여러분들이 복음의 능력을 나의 복음으로 선포해야 되는 것이에요. 나의 복음으로,,,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에요. 이 복음 앞에 우리는 경직되거나 이 복음 앞에 냉소를 짓거나 이런 게 아니고 정리를 하십시다. 오늘 이 말씀을 깨닫는 것뿐만 아니라 이 말씀을 먹고 체화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복음의 능력을 먹고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를 들어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어떤 치유 약이 있다고 하십시다. 그리고 그 약을 먹으면 웬만한 병은 다 낫는다고 하십시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약, 아무리 괜찮은 약이 있다 하더라도 그 약을 선반 위에 모셔다 놓고 위에 올려놓고 먹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 약병에 포장지를 뜯고 약병을 내려가지고 뚜껑을 열어서 그 약을 내 입에 털어놓아야 내 것이 되는 것이에요. 복음의 능력을 제가 아무리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총체적인 복음의 능력을 선반 위에 관상용으로 두지 말고 갖고 내려와서 갖고 내려와서 여러분의 것이 돼야만 하는 것이에요.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말로만 들려 지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이거 실제적인 사건인데 그러니까 복음의 지식이 복음의 실제적인 사건으로 복음의 교리가 실제적인 체험으로 선반 위에 있는 이것이 우리의 심장 속으로 옮겨져야 되는 것이에요. 선반 신앙이라는 것은 선반 위의 신앙이라는 것은 오늘 이 설교를 들었으니까 되었다. 라고 여기는 정도 마음의 감동을 받았으니까 충분하다. 그 정도 이런 것은 복음을 선반 위에 두는 것을 똑같아요. 복음을 인정은 하지만 복음의 통치는 받지 않겠다. 이것은 약을 먹지 않는 것이 말씀을 듣지만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은 선반 위의 신앙의 핵심이에요. 성경은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것을 자기 기만이라고, 야고보서 1장 22절에, *야고보서 1:22,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오늘 이 복음이 선반 위의 복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야. 이게 나의 복음으로, 그래서 여러분들 젊은이들 가운데 내가 복음을 듣고 복음을 믿긴 하겠지만, 내가 어떤 신앙의 기준선을 넘고 그 선을 넘어서는 안 하겠다. 이렇게 하면 경계선을 안 넘어가려고 하면 복음의 능력의 경계선을 딱 넘어가지 않으려고 하면 이것이 삶의 복음 지금으로는 이것이 체화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써놓았어요. 뭐라고 써놨냐? *선반 신앙에서-나의 복음으로, .-선을 그어놓은 복음에서 나의 복음이 돼야 되는 그래서 여러분 저를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실제로 선반신앙에서 나의 복음으로, 선반 신앙에서- 심장 신앙으로!!!!~ 할렐루야, 복음은 지금도 우리를 극복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주의 크신 복음은 갈보리 십자가 놀라운 능력이 내게 임했네 아메 놀라운 치우가 내게 임했네.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에 흘린 보혈의 피로서 나를 정케하시고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하는 말일세 주의 복음을 내가 들으니 사랑하는 말일세. 믿는 마음으로 주께 가오니 이것이 나의 복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선반신앙에서 심장신앙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현재 실체적인 능력으로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하겠습니다. ♣요약 -우리가 로마서의 말씀을 듣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자. 우리에게 있는 수많은 복음의 거울이 세상 의, 어떤 세상 먼지, 이런 것들로 다 희미해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로마서의 말씀으로 이 희미해진 복음의 거울이 깨끗하게 닦이기를 소원하며, 복음은 우리를 침체와 쇠퇴와 갈등과 충돌에서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인 줄로 믿사오니,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번 우리를 살려주시라고 간곡히 기도하며, 한국교회, 아니 사랑의 교회가 가면 갈수록 표적과 기사의 능력, 성령의 능력, 보혈의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선지적 사도성으로 무장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이 은혜로 로마서의 산을 올라가자. 우리에게 있는 무력한 선반 신앙이 있다면 깨어나서, 다잡아서 나의 복음으로 가슴이 쿵쿵 뛰는 강력한 심장 신앙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기도제목 ‘복음의 거울’이 ‘자기 자랑과 세상 쾌락의 먼지’로 희미해졌으니, 식어진 ‘복음의 감격’을 ‘로마서의 복음 말씀’으로 온전히 회복하여야 하며, 복음은 모든 차별과 부끄러움을 이기는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인 줄 믿고, 확신하여, 잠들었던 ‘선반 신앙’에서 깨어나 가슴 뛰는 ‘나의 심장 신앙’으로 평생 ‘복음의 횃불’을 높이 들어야 한다. 사랑의교회가 ‘사랑의교회-복음=0’의 압도적인 복음 방정식으로 살 때,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대한민국과 열방 위에 복음이 편만하게 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자.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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