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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2월 8일)-(로마서 강해 ③)
제목: "인생의 진면목"
말씀: 로마서 1:18-32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3부)
대표기도: 임영태 장로님
사회: 장단희 부목사님(3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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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8-32,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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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저는 오늘 로마서 강해, 세 번째, “인생의 진면목” 그리고 인생의 민낯, 인생의 생얼을 말씀하겠는데, 여러분들이 1장 오늘 18절부터 32절, 15절인데요. 앞부분하고 뒷부분에 읽었습니다 만은 이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중간은 안 읽었는데 일부러 자우 같이 읽으려고 안 읽었어요. 24절부터 27절까지를 저와 같이 한번 더 함께 교독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보니까, 여러분 로마이 로마 시대인데, 로마 시대의 황제 초기의 황제 15명 가운데 14명이 동성애자들이었어요. 그러니까? 로마의 그 찬란한 문화가 사실은 밑으로는 굶고 썩고 있었던 것이에요. 오늘 이런 말씀들을 통하여 우리 개인적으로도 우리 모두에 오늘 회중 찬송했잖아요. 그 우리 ‘마음속에 더러운 죄를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오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오늘이 말씀을 듣는 본당 별관 또 여러 방송 듣는 여러분들에게 마음속에 수많은 더러운 저들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정결하게 되는 능력을 오늘 체험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이 말씀을 근거로 여러분들이 좀 생각할 기회를 드리겠는데 먼저 17절 앞에 본문에 보니까?

*로마서 1:17a,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

*로마서 1:18,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뭐가 나타났죠? 의가 나타났다. 오늘 18절을 읽었는데 그런데 18절에는 뭐라고 냐? 하나님의 뭐예? 진노가 나타났다. 이 나타났다는 이 단어가 굉장히 강력한 단어예요.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고 복음으로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이 두 가지는 서로 연결가 돼 있고 또 구별도 돼 큰 구별이 있어요. 나타난다는 이 말이 현재 시대 지금 그렇다. 했지만 과거가 아니라 지금 하나님의 의는 피의 복음을 믿을 때마다.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 줄로 믿습니다. 이 말이에요. 지금, 지금 그런데 동시에 하나님의 진노는 창세 때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계속 나타나는 것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는 제일 key와 핵심 중에 하나가 오늘 18절에 뭐라하냐면,

*로마서 1:18,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우리는 진리로 불의를 막을지언정, 불의로 진리를 막는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런데 사실 오늘 현재 가운데 오늘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는 많은 일들이 있는 것이에요. 역사의 진리를 왜곡하는 사람들, 그리고 진리를 거스리고 거짓을 진짜처럼 믿는 사람들, 이 눈물난 일이고 가슴이 너무 아픈 일이고 어떨 때면요. 제가 밤잠을 거칠할 정도로 분통 터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뭐 우리나라는 의미 예민하니까? 우선 미국 얘기 좀 합시다. 미국은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 무신론자들을 대법원 스프림 코트에 대법관을 넣어 가지고, 동성 결혼을 합법화시켰어요. 5대 4로, 2년도 대지되기 전에 바이든 2024년에 바이든은 소위 트랜스젠더를 인정해 버렸어요. 그래서 어린아이들도 성전환 수술이 가능하다. 애들이 뭐 합니까? 애들을 성전한 수술에 가야 돼 가지고 어어 어, 어, 하다가 이 정상적인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현상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에요.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로마서 계속적인 신학적인 제가 얘기했죠. 우리는 선지적인 사도성을 가지고 이런 어려움들에 대해서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진리의 수호자로 은혜받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몇 가지 좀 점검을 해야 되는 거에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점검을 해야 되는데 첫 번째 점검은 18절부터 20절까지 피조물은 핑계할 수 없는 것을 점검해야 되는 것이에요.

I. 피조물은 핑계할 수 없다(18~20절)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없다는 사람들, 하나님이 과연 있겠다는 사람들 이런 무교, 무실론자들에게 하나님은 강력하게 하나님은 도전하시는 거예요. 뭐라고 선포하는가? 쭉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어요. 19절에 보니까,

*로마서 1:19
이는 ①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②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③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이 단어도 강한 단어입니다. 어리 버리한 단어가 아닙니다. 딱 정신 차리면 깨달을 수 있는 단어인데 하나님이 우리 속에 하나님을 알 만한 계시를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뭐 옛날 뭐 신학처럼 보편 계시 뭐 특별 계시는 얘기 말씀하는데 사랑하는 교회는 훈련받은 분들 많이 계시기 때문에 웬만큼 얘기합니다. 알아들으니까? 여기서 제가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고 그래요. 핵심은 이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도록, 하나님을 믿도록 핑계하지 못하도록 외부 계시와 내부 계시를 주셨어요. 외부 계시는 뭐냐?

자연 삼라만상(參羅萬像)을 보세요. 저 은하의 신비를 보세요. 저 야생과 들꽃의 아름다움을 보세요. 흘러가는 깨끗한 물들을 보시고 폭우가 쏟아지는 걸 보시고 천둥번개를 보시고 이 세상의 모든 중력의 법칙을 보십시오. 중력의 법칙을 하나님이 지으셨는데, 그걸 거부하고 20층쯤 되는 건물에 올라갔고 나는 중력의 법칙을 믿지 않는다고 20층에서 딱 걸어나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제가 그냥 장문 열고 나가는 걸 다. 생략했습니다. 그러나 떨어져 죽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주 과학자들, 미국의 나사 본부의 우주 과학자들 가운데 그 본부장들 그 책임자들이 거의 대부분이 크리스천들이에요. 삼라만상 우주의 광대 무변한 우주를 보면 그 외부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도록 핑계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이에요. 내부 계시는 뭡니까? 인간이 전 세계 어디서 태어나더라도 거짓말하면 되는 거 됩니까? 안 됩니까? 거짓말하고 즐거워. 나는 I very해 happy. Happy with 거짓말하는 거. 그렇게 됩니까? 인간은 거짓말하면 가슴이 아프게 돼 있는 거예요. 인간은 사람을 죽이면 그 죽이는 것 자체가 잘못인 것을 알게 되 있는 것이에요. 맞습니까? 양심적으로 돼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외부의 시와 내부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 믿지 않는 거 핑계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어요.

그래서 여러분 우상숭배도 너무 나쁜 거지만 진짜 악한 것은 무실론자들이에요. 우상 숭배자들은 그래도 나쁜 거지만 자기보다. 더 높은 권위 부복하는 거예요. 근데 무실론은 지국에서 가장 극단적이고도 부자연스러운 철학이에요. 무실론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창조 질서와 인간 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분명한 치리를 확실하게 부정해야 하니까? 자신의 양심에 있는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의도적이고도 반복적으로 불의를 지리로 가로막는 역할을 하니까?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불리로 치리를 막는 사람들의 죄목들이 쫙 나오고 있어요. 21절부터 23절까지 이렇게 나와 있어요. 역동적으로 바울이 이걸 고발하고 있는데,

II.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세 가지 죄목 (21~23절)

-21절에 첫째
*로마서 1:21,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첫째, 감사하지 아니한다.
-이 제목 앞부분에 뭐냐면 먼저 감사하지 않는 제목이 있어요. 감사하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이 감사가 죄가 되구나, 감사가 문제가 되구나, 많은 죄들이 감사하지 않는 출발했구나. 이거 웬만큼 알지만 -여러분이 절감하셔야 돼요. 예를 들어 이런 거예요. 오늘이 본당에서 누가 휴대폰을 잃어버렸어요. 잃어버렸는데 그 그걸 가지고 이제 휴대폰을 찾아서 그 휴대폰 당장 전달해 줬다고 하십시다. 우리가 인격을 가진 그런 분들이라면 아이고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제가이 참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거 바꿔도 흥! 이러면 되겠어요? 그게 그거는 그거는 그거는 무례하고 교양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들은 삶의 귀하고 좋은 것들에 대해서 출차를 표시하는 거예요.이 모든 귀한 것들은 Made in God(M.I.G)예요. 예. made in church, made in God, 표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는 교만한 사람들은 출처 표기를 안 합니다. 출처 하기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출처를 하나님께 돌리고 감사하는 순간, 자기 어떤 주장, 자기 주권이 줄어든다고 생각, 자기 통제가 줄어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러분 인간은 감사할 이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감사하면 내가 작아지니까? 감사하지 않는 헛똑똑 많아. 감사하면 내가 작아지니까.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22절 두 번째,
*로마서 1:22,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둘째, 스스로 지혜있다 주장한다.
0스스로 지혜 있다. 스스로 지혜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참 재밌는 것 중에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가장 흥미로운 사실 중에 하나는 거의 예외 없이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에요. 소위 고등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전 세계 수많은 명문대학에 똑똑한 교수들 가운데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무실론 자들이 많아요. 왜? 감사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 예수 믿는 이런 신앙인들을 저 뭐 명문대학 있는 교수들이 모욕하고 공격하고, 너는 뭐 주체성이 없다. 너는 가치관에 틀렸다. 그런 식으로 얼마나 그렇게 해 소위 헛 똑똑이들이 너무 많아. 왜?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세 번째 바울의 고발은 첫 번째는 감사하지 아니하고요. 크게 보면 두 번째로는 뭐예요? 스스로 지혜 있다고. 세 번째는 뭐라고 하느냐?

23절, 세 번째,
*로마서 1:23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거부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의 우상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느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동물의 모양으로 바꾼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우리는 하나님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게 돼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게 되지 않으면 다른 것을 믿는 것이에요. 사람은 그렇게 돼 있는 거예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다른 것을 예배하게 되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예배하지 않으면 예배할 다른 대상을 계속해서 찾아내 가지고 엉터리로 예배하고 거짓 신을 만들어서라도 예배하게 되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 대신에 어떻게 새와 짐승과 파충류와 동물들의 형상대로 우상을 만드는 거예. 대표적으로 이집트에 과거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 옆에 보면 파라오들이 관을 썼는데 그건 뱀이 나오고 말이죠. 그 무슨 새가 나오고 있잖아요. 로마도 마찬가지고 형편 없는 것을 가지고 우상숭배 하는 거예요. 동남아시에가 보면 기가 찬 거예요. 여러분 캄보디아에 제일 자랑하는 것이 그 레벨 앙코르와트 가보면 쫙 보면 그 앞에 있는 둥근 쫙 있는 것이 그 전부 다. 뱀들이에요. 뱀을 숭상하는 거예요. 어떻게 인간이 파충류를 숭상할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날 가장 큰 숭배가 뭐냐? 지적인 자기 자신이 자기가 똑똑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요한 캘빈은 기독교 강료에서 좀 쉽게 표현하면

●인간의 본성은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과 같다. -요한 칼빈-
-인간은 본성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쉬지 않고 우상을 만들어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우상 공장이나 거짓과 불의의 공장이 되면 안 되고 진리 공장이 돼야 할 줄 믿습니다. 예. 핑계 공장 되면 안 되고 감사 공장이 돼야만 하는 것입니다. 진리 공장 공장은 예수님이시고, 간장 공장 공장은 김공장이고, 불의의 공장 공장은 사막이에요. 사탄 마귀 귀신. 우리는 진리 공장 공장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지. 불의공장 공공장이 사탄마귀를 따라가는 것이에요. 아니 사탄 마귀 귀신을 따라가는 것이에요. 지금 국회에서 법을 만드는데 국회에서 만드는 법을 불의 공장의 제품이 되면 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회가 진리 제품을 만드는 진리 공장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런데 똑똑하다는 사람들 자기들이 만든 우상을 우상이라고 부르잖아요. 자기들은 우상 누가 우상이라 그러겠어요? 이거는 뭐라고? 똑똑한 사람들이 이거는 우상이 아니라, 이거는 가치관이야. 이거는 우상이 아니라 지적인 합리적인 선택이야, 이것은 자기 숭배가 아니라 내 자아실현이야. 이렇게 말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자신의 지적 체계 넣으려고 하고 제안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결과 21절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로마서 1:21,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 버렸어요. 마음이 어두워져 버렸어요. 마음이 어두워져 가지고 선악을 구분하는 분별력이 없어져 버렸어요. 왜? 진리로부터 멀어지니까, 스스로 도덕적 암흑 속으로 떨어져 가지고 지성이 혼탁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은 자신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마약, 낙태, 부패한 정치, 조직 범죄, 아수라, 하나님의 진리의 빛이 꺼져 가지고 선악을 불변하는 것이 없어지니까, 어둠 속에서 헤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제가 보니까? 작년 한해 동안 작년에 동안 마약, 낙태 이런 것 때문에 자녀가 한해 동안 전 세계 낙태된 아이가 몇 명쯤 되는지 아세요? 전 세계에 지난 한해 동안 낙태된 아이들이 7,300만명이에요. 조금밖에 안 놀라시네?. 7,300명, 마음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24절부터 32절까지 이제 이런 일들이 일어나니까? 우리에게 1단계 악몽, 2단계 악몽, 3단계 악몽이 와 버렸어요. 더 이상 우리가 악몽을 경험하면 안 되는데 그래서 우리가이 악몽을 경고로 받아들여 갖고이 복음적 진리에 대해서 눈을 떠야 할 줄 믿습니다. 이런 결과 때문에 인간이 경험한 악몽들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가? 24절부터 25절,

*로마서 1:24,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내어버려 주셨다. 그리고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고 24절에 내어버려두사,

*로마서 1:24 내버려 두사
*로마서 1:26 내버려 두셨으니
*로마서 1:28 내버려 두사
-이게 악몽이에요. 최악의 악몽은 하나님의 인간 육기 내어버려 두신 거예요. 영어로 give up, 포기하신 거예요. 하나님을 거부할 때 하나님의 심판의 핵심이 뭐냐면 그들이 그들의 계획대로 지 맘대로 살도록 내어버려 두신 거예요.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내어버려 두신 거예요? 우리 하나님은 완벽한 인격자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로보트로 삼은 것이 아니에요. 인간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셨어요. 누군가가 하나님 없이 살기를 결정하면 하나님 그래 그러면 너 나 없이 살아보라. 이렇게 하신 거예요. 결국은 악몽에 빠지고 시궁창에 빠지겠지만 이것이 결국 너의 결정이니까? 존중하겠다. 그런 하나님의 음성이에요. 오늘 우리에게 이와 같이 악몽에 대한 도전을 하시는 이유는 목자의 심정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고등을 켜시기 위하여, 경고등을 작동시키는 거예요. 심각한 경고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표현의 다른 표현이에요. 그러니까? 오늘이 경고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안타까운 하나님의 심정인 줄 믿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불조심 경고 사인, 절벽에 떨어지면 죽은다는 경고 사인, 저는 어때 목사의 아들이니까? 너는 담배 피우면 안 돼 너는 뭐 술 먹으면 안 돼, 뭐 이런 거 누가 말 안 해도 저는 그걸 제 개인의 경고로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저는 술 담배 이런 거 뭐 갖고 구원에 대한 얘기는 아니지만 나는 내 목회자의 아들로서의 내 삶의 어떤 경고등으로 받아들인 거예요. 여러분 제가 부족하고 연약한 건 많이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제 삶에 하나님의 수많은 경고들이 있었어요. 경고들이 있었어요. 그 경고를 제가 경고로 받아들인 거예요. 그래서 지금 제가 여러분 앞에 이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나누고 있는 것이에요. 1단계 범죄도 나쁘고, 2단계 범죄도 나쁘고, 3단계 더 최악인데 오늘 1단계 2단계 3단계를 잠깐 얘기해 볼게요.

1단계는 첫째는 성적인 부도덕이에요.
*로마서 1:24,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4절부터 시작했는데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의 마음의 뭐대로? 정욕대로 더러움에 어떻게 했어요? 내어버렸더라. 그들을 서로 욕되게 하셨다. 정욕대로 살도록 내어버려 주셨어요. 로마에 가면 로마 신전이 있어요. 신전에 마지막은 어떻게 되느냐? 남창과 여창들, 거기서 난교가 벌어지는 거예요. 그럴수록 그 내면이 더 황량해지는 거예요. 부적절한 성관계는 우리 내면의 황량함을 더 부추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적인 관계가 깊어지고 깊어질수록 여러분 더 만족이 없는 거예요. 항상 그게 성적인 문제는요. 대게 성적인 문제는 뭐냐면 거짓과 사기와 연결이 돼 있어요. 그 속이는 것이에요. 자신을 속이고, 서로를 속이고 배우자를 속이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에요. 그래서 25절에 그 결과를 설명한 거예요.

*로마서 1:25,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자기 자신을 더 경배하는 거예요. 하나님 없이도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속는 거예요. 거짓의 삶, 하나님 없는 삶, 지상에서 드디어 지옥을 경험하기 시작해요. 이걸 하나님이 일단 놔두시는 거예요. 우리의 인격을 믿고 놔두시는 거에요..

2단계는 공개적인 동성애에요.

*로마서 1:26~27
26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부도덕이 동성애로 이어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에요. 인간은 더 큰 자극을 요구하 제가 늘 말씀드리잖아요. 20 27절 다시 보여줘. 여자들 순리 역리, 남자 순리 역리, 여러분 동성애는 순리입니까? 역리입니까? 역리예요. 이성에는 역리입니까? 순리니까? 순리죠. 이상해. 남자와 여자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나님의 하나님의 순리예요. 늘 말씀드리지만 우리 육체는 이 성적인 문제 이런 건 대우하면 대우할수록 더욱 버릇이 없어져요. 대우하면 자극이 올수록 더 큰 자극을 요구하는 것이에요. 인간의 정력을 채우기에 충분한 성적인 것은 없어요. 더 항상 더 큰 작을 한계가 어디까지, 끝까지가 버리는 거예요. 정의 문제는 수학 체감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에요. 더 큰 갈등을 갖는 것이 더 큰 자극을 원하는데 결국 그 끝은 항상 동성애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로마가 동성애의 온상이었다고 말씀드렸죠? 로마의 수많은 우리가 존경했던 수많은 철학자와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 자들이었어요. 그리고 로마 이제 다음 주에 제가 말씀드렸죠. 로마가 로마의 6-70%가 노예들이었어요. 그리고 귀족들이나 잘 사는 사람들이 이제 여유가 생겼어요. 옛날에 전쟁도 하고 이러다가 여유가 생겼어요. 그러니까? 사람은 항상요. 여유 생기면 사고 치는 거예요. 고3, 중3, 고3이 항상 방학 때 사고 치는 거예요. 인생이 방학일 때 사고 치는 거에요. 그래 갖고 그 노예들이 다. 해 주니까? 나중에 여러분 로마의 귀족과 로마의 왕족들이 전부 다. 많은 분들이 동성애자가 되고 그리고 동성애의 끝은 소아 성애자가 되는 거예요. 오늘날 우 우리 우리 이 시대에도요. 여유 있고 돈 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이이 단계로 올라가 버린 거에요. 이 단계로 유아 성애자들을 말씀한 대로 초기 로마 황제 15명과 14명이 동성애자였고, 그들 중에 일부는 아주 노골적이었고 변태적이었어요. 아, 왜 그런가? 기준이 사라져 있기 때문에, 선을 넘어 버린 것이에요.기준이 사라졌기 때문에 가면 안 되는 것을 가는 거예요.

오늘 우리는 선지적 사도성을 가지고 우리를 미래를 예측해야 돼. 대한민국은 한국 교회 때문에 선을 넘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아까? 말씀드렸지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가고 발을 뒤면 떨어져 죽는 거예요. 박살이 나고 피범벅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이런 면에서 제가 말씀 도파민이 역습한다고, 여기서 우리는 오늘 사랑의 교회는 한국 교회는 차별 금지법과 동성애들을 놓고 명확하게 우리가 선포해야 할 일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우리가 왜 차별 금지법을 반대합니까? 차별 금지법이 동성애 확대법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차별 금지법이 동성애를 용인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동성애를 확대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데 여러분,

●동성애는 생물학적 필현이 아니라 의지적인 선택이에요.

-결국 그게 자기 결정이에요. 태어날 때부터 뭐 그런 거 뭐 예외가 있을 수 있다. 그건 제가 평가하지 않겠어요? 오늘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뭐라 그러냐? 여자들은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고 역리로 쓰고,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로마서 1:26~27
26 그들의 여자들도 순니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그래서 동성애는 순리를 영리로 순리의 관계를 거꾸로 부자연스럽게 의도적으로 바꾸는 것이에요. 옳은 것을 버리고 그랬던 것을 택하는 의지적인 선택이에요. 창조 질서를 뒤 없는 행위에 철저히 역리적이고 자연에 반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결국은 거기에 대한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광범위한 동성애와 차별 금지법 재정은 하나님 없는 것의 전형적인 징조가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울의 핵심 논리이고 바울의 고발입니다. 시대를 향한,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무너질 때 하나님의 심판으로 광범위하게 치닫고 있는 것의 대표적인 것이 동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PC, 정치적 올바름, 폴리티컬 크니스, 우리가 정치적 올바름을 얘기하는데 그렇게 그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데, 정치적 올바름, 동성애 반대자들, 동성애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인간이 혐오자라고 막 공격하고, 여러분 우리가 동성애 하는 사람을 하는 거 욕하는게 아니에요. 그분들 너무 안타깝고 그분들을 너무 영적으로 보면 참 결국 그 말로가 어떻게 되지 뻔히 아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우리가 반대하는 건 뭐냐면 동성애가 성경 자체 동성애자는 우리가 정말 한한 사람 한 사람 귀하지만 동성애 자체는 바울이 고발한 대로 그것은 뭐라고 얘기합니까? 생물학적 필요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의지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이것은 죄라는 것이에요. 알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지금 미국의 연합 장로교다. 그다음에 미국의 감리교다. 성공회다.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다. 난리에 교단에서 교단 내에서도 동성애를 반대하면 근본주의자로 찍히고, 미국 감리교 같은 데서는 한국 한국 목사님들 동성에 반대하는 한국 목사님들 쫓겨나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요. 심지어 지금 세계 복음주의 교회의 보수적인 어떤 그 마지막 프론트라인이라 미국의 남침례교 안에까지도 사던 백티스트 안에도 이런 일들이 영향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이 자리에서 사랑의 교회와 한국 교회는 한국 교회에 받은 은혜를 우리가 기억하면서, 우리는 선지적인 사도성을 가지고 명확하게 선포를 해야 돼요. 동성애 차별 금지법은 잘못되었다고. 교회가 침묵하면 안 되는 것이에요.

이제 이 시대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인 거예요. 우리 선대의 어른들은 선대의 옥목사님 시대는 이런 거 이렇게 심각하게 얘기 안 해도 됐어요. 근데 우리 시대는 지금 이걸 우리가 이걸 책임을 지야 되는 거예요. 이게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이게 이게 이게 잘못됐다는 걸 말해야 되는 거에요. 우리 시대에 해야 할 일인데, 근데 이걸 우리가 포개하고 우리가 침묵하고 공범이 되면 안 될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근데 이걸 우리가 잘못하면 나중에 청구서를 지불를 해야 돼요. 27절 끝부분에 제 얘기가 아니고 다. 같이 보겠습니다.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청구서 지불해야 돼요. 우선은 그 개인적으로 자기 혐오, 자기 혼란, 자기 불확성, 동생애 하고 난 다음에 얼마나 허무할까요? 정서적인 보응을 받고, 성병을 갖고, 에이즈를 갖고, 수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그들 자신이 받는 거예요. 오늘이 진리에 대해서 물에 물타듯한 태도는 성적인 혼란을 낳고, 결국 창조 질서를 통한 순수한 힘이 온갖 혼동과 파멸을 가져오는 것을 기억하고, 1세기 로마인들이 잘못된 그 우를 대한민국 교회와 대한민국은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1단계, 2단계, 성적인 부도덕, 공개적인 동성애, 3단계 이제이 3단계가 사회 전체가 붕괴하기 직전에 마지막 단계가 되는 것이에요.

3단계는 붕괴 직전의 사회.

-28절부터 32절이에요. 32절에 그들이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뭐예요?
*로마서 1:32,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두 번째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 어떻게해요? 옳다. 하느니라. 옳다. 하느니라. 기가 막게 말씀이 기가 막혀요. 무슨 일이 벌어진 겁? 다시요. 다시 어떻게 한다고요? 옳단다. 옳단다. 모든 도덕과 모든 기준이 상실되는 아주 처참한 상태가 되는 것이에요. 21가지,,, 29절부터 31절까지 인간들이 짓는 가지 쫙 나오는 가지 악 이게 악덕 목록이에요. 이게 범죄 죄악 리스트예요. 악덕 목록, 알고도 반영하는 거예요
*로마서 1:29~31,
곧 모든 ①불의, ②추악, ③탐욕, ④악의가 가득한 자요 ⑤시기, ⑥살인, ⑦분쟁, ⑧사기, ⑨악독이 가득한 자요 ⑩수군수군하는 자요 ⑪비방하는 자요 ⑫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 ⑬능욕하는 자요 ⑭교만한 자요 ⑮자랑하는 자요 ⑯악을 도모하는 자요 ⑰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⑱우매한 자요 ⑲배약하는 자요 ⑳무정한 자요 ㉑무자비한 자라
-악동 목록은 불의로 치리를 가로막는 사람들의 민낯잉ㅅ. 생얼인 것입니다. 드디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사야 선지자가 예고한 대로 이사야 5장 20절을 다 같이 보겠습니다.

*이사야 5:20,
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무슨 말입니까? 선을 선이라 부르지 못하고 악을 악으라 부르지 못하고 홍길동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호부호형), 가장 큰 문제는, 가장 큰 문제는 언어가 무너진 것입니다. 언어가 무너지는 것, 이게 왜 문제가 되는가? 언어가 무너지면 회개(悔改)문이 다치게 됩니다. 왜냐면 회개는 내가 악을 행했다는 자복에서 시작되는데, 언어가 뒤집혀 지면 더 이상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에요. 이게 지금 현 대한민국과 전 세계 문제가 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모든 전반적으로 언어가 무너지는 거예요. 이럴 때 죄는 더 이상 죄가 아니라 그저 선택의 문제가 되어 버려요. 책임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회개라는 단은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언어로 변질되어 약함과 자기 부정의 패배를 의미하는 수치스러운 것이 돼 버리기 때문에, 그냥이 언어가 무너지는 거예요. 정의라는 거죠. 진짜 정의와 진리가 있는데 이게 무너져 버리니까? 우리 편에 아는 사람은 다. 정의가 아니에요. 극단적인 분열과 진영의 싸움이 시작되고, 분열과 평가력의 문제로 정의 정의라는 단어가 그냥 하락돼 버렸어요. 패거리로. 그래 진리와 성경적인 언어가 공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악을 악이라 하지 못하고 선을 선이라 하지 못할 때, 언어가 무너진다.
악이 선이 되고 선이 악이 되는 사회에서 죄, 회개, 정의는 오히려 선택, 혐오, 분열로 치부되고, 개인과 공동체가 치유와 회복의 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저는 한 번씩 그래가죠. 언어가 시대를 만든다고, 용어가 시대를 만들고 언어가 사람을 바꾼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 언어 사용을 굉장히 절제하고 조심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리고 이 언어가 제대로된 언어로 이 정착할 수 있도록, 첫 우리가 23년 전에 특새할 때 그때 주여 내 믿음의 전성기를 주옵소서. 진짜 전성기는 내가 돈 많이 벌고, 애쓰고 수기 전성기가 아니라, 은혜를 받는 것이 전성기다. 그 말이에요. 주여, 내 생명에 기적을 주옵소서. 진짜 기적은 세상의 미라클의 기적이 아니라, 내 생명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기적이다. 이 말이에요. 교회여 생명의 문을 활짝 열라. 새로운 미래를 향한 복음을 통한

새로운 토대가 준비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런 것이 언어 언어의 정상적인 언어의 회개입니다. 바울은 인간이 완전히 하나님을 떠나면 처음에는 자신들이 잘못된 것임을 압니다. 그럼에도 죄를 짓는 거,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가해자들, 죄악 된 사람들을 칭송하는 거. 이게 가장 극악이라는 거예요. 오늘 지금이 상황이 잘못된 것을 칭송하는 이 세 번째 이 상황에 도달했어요.이 바닥은 악이 선이 되고 선이 악이 되는 지점이 되었어요. 가해자들 소위 악을 행하는 자들 비진리가 공개적으로 칭송받는 반면에 하나님의 질서와 참된 도덕을 수호하는 자들이 비난을 받는 바닥이 된 것이에요. 제가 오늘 용어를 하나 만들었어요.

●진리가 교수도대에 서고, 불의가 왕자에 앉는다.
-비참한 상황이 된 것이에요. 이런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사형 선고를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보란 뜻이 이런 일들을 계속하고 있는 거예요. 다시요. 진리 진리가 교수도에 서고 불리가 왕자에 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영가족 여러분 이게 최악의 밑바닥이에요. 소위 악이 공개적으로 칭송받는 것이에요. 이 지점에서 사회의 도덕은 무너지고 거꾸러지고 뒤집혀 지는 것이에요. 저는 대한민국이 이 자리까지 가지 않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 막장까지 가지 않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뭐냐? 하나님 없는 무실론자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 하나님 없는 가해자들. 하나님 없는 프레임 전문가들이 오늘이 사회 핵심 영역인 교육과 미디어의 미디어를 거의 장악해 버렸어요. 하나님 없는 프레임 전문가들이 오늘이 시대에 미디어와 교육을 거의 장악해 버렸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질서와 도덕적 통제를 거부해 버렸고 스스로 정의가 된 것이에요. 예를 들어서 국회가 동성애를 정상이라고 통과하려고 하는 거 그거 자체가 뭐예요? 진리가 교수대에 선 것이에요. 그런데 그걸 반대한다고 그래서 징계를 주고, 교회를 핍박을 하고, 이것은 사회적인 가치가 뒤집어져 버렸어요. 지금 옳고 그럼의 차이가 뭔지 분명히 나타나지 않는 하나님 없는 저 밑바닥에 우리가 도달할까? 봐 저는 그것이 제일 걱정인 것이에요. 오늘 우리는 선지적 사도성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악이 선이 되고 선이 악이 되고 비진리가 공개적으로 칭송받고 불리가 왕자의 자리에 앉는이 최악의 현실이 우리 앞에 오지 않도록 우리가 진리로 무장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우리가 WEA 세계 복음주의총회를 작년에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게 잘 모르는 사람들이 공격하고 이상한 소리를 많이 해도 우리가 꿋꿋하게 지켜나는 이유가 뭡니까? WEA 세계복음주의총회에 확실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 이시다. 성경은 절대 권리를 갖고 있다. 차별 금지법, 동성애법은 통과하면 안 된다. 전 세계 유일하게, 앞으로 50년 100년 뒤에도 할 수 없을 유일하게 그렇게 선포한 것인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이 말씀을 하면서 저도이 말씀을 얼마나 제가 마음이 무겁겠어요. 저도 이렇게 설교를 하면서, 저도 값을 치러야 하니 얼마나 많이 무거운지, 대한민국이 로마서 1장에이 경고를 저버리고 악을 따른다면 우리나라는 쇠퇴하고 낭떨어지에 떨어질 것입니다. 한 국가가 선 대신 악을 선택하고 비진리를 왕자에 모시면 그 나라는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도록 할 것입니다. 스스로 붕괴할 것입니다. 나치가 그렇게 했고 레닌의 공산주의 혁명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한때 중국이 미국을 조롱했어요. 미국의 홈리스트를 조롱하고, 어 막 그 조롱해. 그 중국은 뭐 뭐 잘한다. 잘하고 있다. 공산주의 잘하고 있다고. 그런데 사실은요. 중국은 문화 혁명을 통하여 수천 명의 사람을 죽인 나라입니다. 수천만 명을 하나님 없는 유물 사상을 가지고 살인한 나라입니다. 우리는 결코 그런 사회주의 나라가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경고 앞에 그래도 우리가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요. 그것이 뭐냐? 오늘 우리가 이런 복음을 듣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놀라운 바울의 지혜로운 복음 선포를 통하여 우리는 제3, 막장까지 내려가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는 경고등이 뭡니까? 정말 아 우리는 망하게 되었도다. 사람이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찾는 가장 중요한 시점이 언제?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우리 희망이 없도다. 우리는 하나님밖에 없도다. 라고 눈을 뜨고 앞뒤 자우가 다. 막힌 곳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열린 눈을 가지고 하나님 손을 들고 주님을 바라볼 때, 그때 복음의 능력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이 하나님의 경고 사회를 받고 주님 우리 나라가 이런 나라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이 말씀을 진리를 우리가 순종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어제도 새벽에 7천 기도 용사가 이 새벽에 토요일 새벽에, 전세 전 세계에 토요일 새벽에 다 자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진리의 횃불을 들고 진리의 수호자가 돼 가지고 전투적 투혼을 가지고, 대신 전투적 비폭력 폭력은 우리가 안 쓰지만 전투적 투혼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지켜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다음 세대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제가 이 사도적 선지성을 가지고이 마음의 확신을 가지고,,, 주여 오늘 이 자리에이 말씀들 여러분들 때문에 이 나라가 지켜지게 하여 주옵소서. 복음의 전사가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말씀의 선봉장이 될 수 있도록 한 분 한 분 말씀의 기름 부으심으로 무장하고 이 시대 앞에 진리의 수호자로 담대하게 나갈 수 있도록 사랑 교회와 대한민국 교회 성도들을 기름 부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요약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준엄한 경고 가운데 우리가 사실 피고석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지만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이 목록에 적힌 21개의 악형을 저지르지 않았다. 할지라도, 우리의 부패한 본성은 그럴 가능성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소원하자. 불의로 진리를 막는 이 잘못된 사회를, 우리가 진리의 선봉장으로, 진리의 수호자로 서야 한다.
-기도제목
불의로 진리를 가로막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시대에 가정과 학교와 일터에서 ‘M.I.G.(Made in God) 인생’이 되어서 ‘모든 출처를 하나님께로 돌리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허망한 자기숭배와 우상숭배’를 가치관으로 위장하는 시대에 우리를 ‘강력한 보혈의 능력’으로 새롭게 해주시길 간구하며, ‘거룩한 진리 공장, 핑계 없는 감사 공장’으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 사랑의교회가 ‘침묵하지 않는 선지적 사도성’으로 거짓된 시대 언어를 치유하며 엎드릴 때, 한국교회가 대한민국을 살리는 ‘보혈 복음의 전사’로 우뚝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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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2월 01일)-로마서 강해(2)
제목: "복음의 능력을 받아야 산다“
말씀: 로마서 1:15-17
사회: 임상규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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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5-17,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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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대가 고백한 우리 영광의 주님을 우리의 생명과 소망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제목을 ”복음의 능력을 받아야 산다“고 그랬는데 로마서 강의 두 번째 여러분 은혜를 받아야 삽니다. 여러분의 없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은혜를 받아야 산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능력을 받아야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능력을 받아야 산다는 말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복음의 능력을 받아야만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오늘 지난번에 말씀한 대로 ‘선지적 사도성’을 가지고 우리가 통찰력을 갖고 또 추진력을 가지고 살아계신 이 말씀을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로마교의 성도들은 복음을 이미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제가 질문하는 거 보면 아실 거예요. 로마교의 성도들은 복음을 이미 안 성도들이었어요. 제 얘기가 아니고 1장 6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1장 6절에,

*로마서 1:6,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이미 복음을 알았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복음을 이미 알았던 그런 로마 교회 상도들에게 바울이 다시 복음 전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1장 15절에 뭐라고 나와 있느냐.,

*로마서 1:15,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그랬어요. 바울은 이미 복음을 알았던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다시 복음을 전하기로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첫 번째 생각할 거예요. 우리가 지금

I. 왜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하나?

-왜 로마 교회 성도들은 왜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하나? 오늘 본문의 배경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로마 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우지 않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로마 교회는 어떻게 태동이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2장 10절에 보면 무슨 내용이 나오느냐 하면, 오순절 성령 강림의 그 놀랍고도 위대한 사건이 있었을 때에

*사도행전 2:10,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다음에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1년에 1번씩 예루살렘에 가가지고 이제 오순절을 지키는데 절기를 지키는데 유월절이나 이래 지키는데 그중에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들이 로마로부터 와가지고 오순절 성령 강림의 은혜를 받고 성령 받아 가지고, 로마에 가서 교회를 세운 것이에요.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오늘 이 로마로부터 로마에서 교회를 세우고 난 다음에 한 20년쯤 지났어요. 그 20년쯤 지난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복음을 듣고 복음을 알고 로마 교회를 세우고 로마 교회 생활을 했는데 20년이 지나면서 이게 희석이 되고, 약화가 되고 또 그 당시에 로마가 전 세계 가장 강력한 천조국 가장 강력한 세계 제국이었기 때문에 로마의 세속 문화가 굉장히 강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도 모르게 로마 교회 성도들이 로마서 13장 13절, 14절에 오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로마서 13:13-14,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러니까 당대에 로마 제국의 세속적인 문화가 예수 믿는 사람들께 그대로 임해 가지고 보니까 방탕하고 오염되고 그다음에 좀 성적으로 문제가 많고, 특별히 다투거나 시기하는 갈등과 충돌이 있었어요. 무슨 말이냐면 로마교회는 이제 바울이 말씀을 쓸 때가 로마교회 세우고 난 다음에 몇 년쯤 지났다고요? 20년쯤 지났어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AD 49년에 글라우디오 황제라고 있어요. 클라우디우스라는 발음을 영어로는 그렇게 하는데,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뭐라 그러냐면,

*사도행전 18:2,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오늘날 말로 어디예요? 이탈리아어로부터 왔다 했어요. 왜냐하면, AG 49년에 글라우디오라는 황제가 로마에 있는 유대인 추방력을 내린 거예요.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다 가라. 그러니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자고요.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추방을 하니까 로마인 출신 그리스도인들만 남아 갖고 신앙생활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다시 한 5년쯤 지나가지고 추방 내렸던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로마로 가게 됐어요.

그래서 오늘 여기는 이탈리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고린도에 가가지고 바울을 만났거든요. 그런데 그 고린도에서 이 로마서를 썼거든요. 그러니까 이 바울에게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은 다시 돌아갔는데, 유대인 출신들이 돌아가고 거기에 남아있던 로마인 출신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이런 데 서로 화합이 잘 안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유대인 출신들은 열심히 하려고 그러고 거기 출신들은 뭐냐 하면 좀 이렇게 메가리가 없고 그리고 서로 갈등과 충돌이 있는 거예요. 교회가 좀 약화되고 교회가 침체가 되고 그런 일들이 있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오늘 바울이 내가 너희에게 다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다. 자 이게 오늘 우리하고 무슨 상관 있습니까?

여러분들이나 저나 신앙생활을 10년, 20년, 30년, 40년 처음에는 눈물 코 흘리면서 주님 사랑한다고 주님 사랑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교회에서 조금 이제 신앙성 오래 한 분들은 이 인간들이 모인 곳이니까,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에 시험 들고 이래가지고 점점 경직이 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누가 건드리기만 하더라도 열받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 젊은 좀 나이 든 분들은 그러고 젊은 분들은 뭐가 있어도 이렇게 막 막 가슴 끓어오르고 또 프레시하고 또 열정적으로 하는 그런 것들이 없고 그냥 냉소적이야. 뭐 되겠나? 그러면서 무슨 무슨 이래서도 아이고 뭐 이런 식의 거기에 무슨 창조적인 일이 일어나고,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또 교회나 하나님의 나라가 막 세워주고 하는 그런 일이 잘 안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시대에도 복음의 능력을 그냥 껍데기로만 아는 종교인들이 많은 거예요. 제가 교회 안에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그래서 제가 교회 안에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뭐냐면,

*명목상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는 있지만, 복음 안에는 없는 분들이 오늘 한국 교회 안에 많이 있다.
-이 말이에요. 오늘 여러분들은 교회 안에도 있고 복음 안에도 있기를 바라는 것이 그런데 교회 안에는 있지만 복음 안에는 없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가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한다. 어떻습니까? 다시 복음을 들어야 돼.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 나름대로 성향이 있잖아요. 그것이 뭐냐 하면 우리 인생에 복음의 거울을 자주 닦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복음의 거울에 인간적인 먼지와 세상의 먼지가 쌓여 가지고 우리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없도록 만드는 겁니다. 인간적인 먼지가 뭡니까?

자기 자기 체면, 신앙생활도 자기 의, 자기 경험, 자기 프라이드, 이게 인간적인 인간적인 먼지들이고 세상적인 먼지가 뭡니까? 유혹받고, 오염되고, 재물과 쾌락과 탐욕 이런 것들이 다 세상적인 먼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고 오래되다 보면 이런 내용들 이런 것들이 우리로 알고 메너리즘에 빠지게 하고, 무감각한 신앙으로 가게 하고, 십자가를 들어도 별로 감격이 없고 성찬에 참여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심지어 죄에 대해서도 무감각이 좋고 순종도 나하고 별 관계가 없는 것 같고, 그러니까 이런 우리의 상황 가운데 오늘 우리 찬송 가운데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의 흘린 보혈의 피로서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십시오.’

내가 매일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내가 매일 참 복음 앞에 나를 접목하기를 원합니다. 자 제가 로마 교회가 왜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하는지 오늘날 성도들이 왜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하는지 말씀을 드렸어요. 그렇다면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가, 복음이 무엇인가? 그랬을 때 우리는 흔히들 복음은 예수 그로서의 십자가 죽음 부활로 말미암은 구원이다. 우리가 다 알고 있어요. 옛날에는 이런 내용들을 가지고 설명을 하면 사명이라든지 이런 걸 하면 왠만하면 다 구원받고, 하나님 앞에 예수님 영접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요즘은 다 무뎌가지고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이상한 information을 잘못 들어 가지고 머리가 오염이 돼 가지고 이런 복음의 내용을 설명을 해도 감동이 없는 거예요. 와닿지가 않는 거예요. 서구 사회는 2천 년 내려오는 기독교 문화라는 게 있는데, 우리 한국이나 아시아 같은 경우는 이방 나라 아닙니까?

소위 페이건 소사이어티에 우리는 무속, 불교 그다음에 뭐 무슨 무슨 뭐 유교 뭐 이런 여러 가지들이 있어가지고 오늘 우리에게 이런 복음의 능력, 복음의 어떤 이런 내용들이 전해지더라도 이건 막 마음에 와 닿질 않는 거예요. 바울 시대도 마찬가지, 로마 시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복음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오늘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로마서 1:16,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 뭐가 된다고요? 능력이 된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는 복음의 내용과 함께 복음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복음을 define, 복음을 정의하라 그러면 the definition을 내리라 그러면, 복음의 정의가 뭐냐? 죄송합니다. The gospel is the power of God.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 말이에요.

이 능력이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와 닿아야 된다. 이 말이에요. 그리고 이 능력은 16절 뒤에 보니까 이 복음은 모든 모든 믿는 자에게 그랬어요. 모든 믿는 자에게. 모든 믿는 자라는 말은 인종이나, 교육이나, 계층이나, 지역이나, 가족 배경이나, 종교적 체험, 도덕성 이런 관계없이 모든 믿는 자에게 따라서 복음의 능력이요. 복음의 능력이 실제적으로 와닿지 않는 분들에게는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오늘 여러분의 고백으로 와닿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교회 역사적으로 마르틴 루터에게 오늘 이것이 진짜 복음의 능력이 되었어요. 이 말씀을 루터가 발견하고 난 다음에 완전히 뒤집어져 버렸어요. 카톨릭 수사로 머물 생각이 더 이상 없었어요. 이 복음의 능력이 그의 영혼에 불타오를 때에 복음의 능력에 촛불을 들고 외쳤습니다. 그게 뭐냐? 17절 뒤에 오직의 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17b,
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직 그래서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 다 변해도 오직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기억나시죠? 오직 의는 믿음을 그래서 솔라 피데 오직 의는 믿음으로만 솔라 스크립트라, 말씀으로 특별히 오직 복음으로 그리고 이 말씀이 로마서 전체의 핵심이 되고, 이 말씀을 붙잡아야 로마서 전체에 그림이 들어오고 그러니까 16절, 17절에 이 말씀 우리가 익숙하게 알지만 신약을 통틀어서 정말 강력하고 통찰력 있는 구절 중의 하나라고 믿습니다. 다시 복음의 능력이다. 하는 말은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 말을 우리가 구체적으로 이해를 하면 뭐냐 하면

*복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과 같다고 보았다.
-복음은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과 같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거예요. 조금 세게 말하면 로마서의 나머지 구절들은 이 구절들에 대한 설명을 많이 하고 있는 거에요. 이게 바울 신학의 정수가 되고 이것 때문에 바울이 그토록 로마에 가고 싶어 했어요. 바울은 이 능력이 있으니까 그다음 나타난 자연스러운 결과가 16절 앞에,

*로마서 1:16,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하고, 선제적 사도 성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거예요. 자, 복음 전도자로서 바울이 당한 여러분들의 생애를 이해를 하면,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접목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고문도 당하고 아테네에서는 아크로폴리스에서 수많은 철학자들과 논쟁도 하고, 고린도에서는 얼마나 많은 박해와 핍박을 받았는지 몰라요. 루스트라 성에서는요.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내어버려질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고, 이런 상황에서도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강력하게 복음을 뭐하지 않는다고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여러분 로마는 당대 최대의 제국이었고, 황제 숭배의 본향이었으며, 높은 수준의 철학과 인문학과 음악의 도시였고 지적, 우울감의 본산지였습니다. 가장 강력한 권력과 힘, 전쟁의 HQ, 헤드쿼터, 본부였어요. 그 시대에 천조국이었어요. 모든 길은 오죽하면 로마로 통한다고 그랬겠어요. 위대한 도시였어요.

그 가운데서도 바울은 사람들의 눈앞에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죄수복을 입고 로마로 갈 때도 그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한 줄을 확신합니다. 왜 부끄러워하지 않았을까요? 왜? 죄수복을 입고도, 바울은 약해지지 않았어요. 이유가 뭐예요? 복음 안에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강력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로마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지적으로 우울하든 얼마나 똑똑하든 얼마나 대단하든 상관이 없다. 복음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자 그래서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그 다음에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복음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다. 구원을 정의하겠다.

여러분, 과학으로도 타 종교로도 도덕으로도 교육으로도 철학으로도 어떤 것으로도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 이 구원을 내가 우리 다 안다고 그러지만 이 구원의 의미는 우리가 구원 반대 이 정도가 아니라 이 구원의 의미는 현재의 삶에 능력을 주고, 우리의 미래는 선제적 사도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이 구원 안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여러분 우리 기독교에만 천국과 지옥의 문제를 확고하게 얘기합니다. 타종교도 얘기하는 것 좀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강력하게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기 때문에, 타 종교는 여기에 대한 해답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는 침묵해버리는 것이에요. 우리는 복음을 통하여 확실한 구원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능력은 차별이 없어요. 뭐라고 되어 있느냐. 헬라인에게 또 유대인에게, 16절 뒤에 보니까,

*로마서 1:16,
16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무슨 말이냐? 헬라인은 이방인을 통칭해서 말하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로 말하면 복음은 차별이 없다는 뜻인데 인종, 교육, 나이, 수입 배경, 종교적 취향 어떤 조건에도 상관없이 복음은 차별 없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차별 없는 능력이 여러분들에게 임하기를 바라고 이것이 여러분들의 것으로 깨달아지고 여러분들의 것으로 맞춤형으로 확인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한다. 복음은 능력이 있다. 그랬는데 이것이 여러분들과 무슨 상관이에요? 오늘 이 내용이 여러분들의 복음이 돼야 되는 것이에요.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들 각자의 복음이 돼야 되는 것이 무슨 말이냐면 오늘 바울의 복음을 설명할 때 로마서 1장 1절에 뭐라고 얘기하느냐, 이렇게 이 복음을 하나님의 복음이다. 그렇게 얘기해요.

*로마서 1:1,
1 하나님의 복음,
*로마서 1:9,
9 그의 아들의 복음
-그의 아들의 복음이다. 이런 얘기예요. 그런데 이 하나님의 복음과 그의 아들의 복음이 나중에 2장에서는 뭐라고 되어 있느냐? 2장 시작.

*로마서 2:16,
16 나의 복음.

*로마서 16:25,
25 나의 복음
-나의 복음이다. 그다음에 또 보니까 16장에도 보니까 바울이 복음을 나의 복음이라 그랬어요. 그러니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 여러분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있는 복음이 할아버지의 복음이 아니고, 우리 순장님의 복음이 아니고, 우리 어떤 중직 자의 복음이 아니고, 목사의 복음이 아니고, 여러분의 복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나의 복음이 되길 원하는 것이에요. 나의 복음이 될 나의 복음, 그의 아들의 복음. 그다음에 하나님의 복음으로 끝나면 안 되고 이것이 나의 복음. 바울이 그걸 나의 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왜 그렇습니까? 바울이 이 복음이 개인적인 능력이 돼 가지고 이 복음이 그의 삶 전체가 그의 존재를 사로잡는 삶의 고백이 되었기 때문에... 무슨 말이냐? 바울에게 있어서 그의 삶 자체가 복음으로만 설명될 수 있고 복음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리면 그는 텅 빈 존재일 뿐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의미에서 나의 복음은 나의 인생이 걸린 복음이요.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복음을 의미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제가 부탁하는 것은 저나 여러분이나 저는 불타는 사역자로 섬기지만 우리는 일생의 사명을 우리 여러분의 삶을 여러 가지 영역에서 직업을 갖고 살고 있지만 어떤 직업을 갖든 어떤 상황이든 상관없이 저와 여러분의 일생이 복음으로만 설명 되어지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에요. 복음으로. 이것은 우리가 와닿아야 돼요. 이것이 나의 복음으로 와닿아야 돼요.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리까지 가야 되는데 제가 이제 좀 해봤어요.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면 나의 실패, 나의 과거, 나의 상처까지도 이 복음의 능력 아래 둘 수가 있는 것이에요. 두 번째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면 더 이상 세상에 주는 수치는 나의 최종 언어가 아닌 줄로 믿습니다.

II.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면 더 이상 세상이 주는 수치는 나의 최종 언어가 아니다.

III. 이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면 사람들의 어떤 비웃음과 조롱보다도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기 때문에 복음을 조금도 부끄럽게 부러워하지 않는 줄로 확신하는 것이다.
-나의 복음으로 부부싸움을 가열차게 하더라도,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면 다시 회복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 복음이 엄마의 복음이 아닌, 아버지의 복음이 아닌, 할아버지의 복음이 아닌, 믿음 좋은 분들의 복음만이 아닌, 이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여러분의 정체성이 어떻게 되느냐, 여러분들 앞으로 이메일 번호를, The Gospel org, The gospel kim. org, the gospel park.com, 이렇게,,,.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바울이 이 복음을 나의 복음이라고 불렀더니, 사실 하나님의 복음, 그리스도의 복음인데 이게 나의 복음으로 불렀더니, 사실 때문에 가슴이 너무 떨렸어요. 가슴이,,,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바울처럼 나의 복음으로 부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여러분과 저에게 복음이 뭡니까? 물론 복음은 하나님의 복음이요. 그의 아들의 복음이지만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오늘 이 시점에서 저와 여러분에게 나의 복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에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 나의 복음으로 무장하고 로마서의 산을 올라가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고봉으로 올라가야 되는 것이에요. 나의 복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사랑의 교회, 아니 한국 교회 성도들이 이 복음을 나의 복음으로 무장하고 한 분, 한 분이 고백할 수 있다면 한국교회는 소망이 있는 것이요, 오늘 여러분들이 나의 복음으로 외치고 선포할 수 있다면 말씀을 강요하는 저로서는 이것보다 더 기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어요? 그러니까 이 복음이 이 나의 복음으로 고백하는 그 순간 무슨 일이 나의 정체성이 확인되는 것이에요.

우리가 아까 말한 대로 나의 복음이 되면 더 이상 세상이 주는 수치와 나의 과거, 나의 상처 다 복음 안에 두기 때문에 여러분의 정체성이 복음 안에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세상이 나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피의 복음이 나를 판단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복음적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은 주님이 나를 판단하시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세상 적으로 우리는 실패자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에요. 복음 때문에, 우리 모두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나의 복음이라는 목걸이를 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값진 보석으로 만든 명품 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나의 복음이라는 목걸이를 그 명품 목걸이보다 더 큰 자랑으로 당당히 드러내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나는 이 십자가 이 복음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 이유는 십자가의 복음이 바울의 정체성을 완전히 바꾸는 능력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바울 빼기 바울 마이너스, 복음은 뭐가 되는 거예요? Nothing이에요. 바울 마이너스 복음은 제로가 되는 것이에요. 오늘 여러분들의 이름, 여러분들이 땡땡 빼기 그 다음에 복음은 제로가 돼야 되는데,
◎ 바울-복음=0
-안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 땡땡 빼기. 복음이 너무 많아요. 너무 많아, 여러분의 이름 빼기 복음이 새로운 인생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이거는요. 어떻게 보면 압도적이에요. 어떻게 보면 아주 무시무시한 방정식이에요. 바울의 바울이 만든 복음 방정식이라고 난 다른 거 외에는 알기를 원치 않는다고 그랬으니까 기본적으로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저와 여러분 모두는 강력한 복음 방정식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복음으로만 우리가 판단 받기를 바라고 우리의 정체성 복음을 통해서 선포되기를 바라고, 우리의 정체성 복음으로 평가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는 실패자가 없는 것입니다. 나의 복음으로 다시 무장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저는 복음 다시 들어야 되고 또 뭘 말씀을 드렸습니까? 복음은 능력이고 그리고 이 복음이 나의 복음이 돼야 될 때 이럴 때 나타나는 결과와 현상이 있습니다. 어떤 현상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니까 실질 능력이 나타났는데,

IV. 능력을 받음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

-로마서 1장 15절 16절에 17절에, 이 복음의 능력에 대한 내용이 다시 한번 능력에 대한 복음의 능력이라고 그랬어요. 로마서 15장 18절 19절에, 이와 같이 다시 한번 설명이 되고 있는데, 로마서 15장 18절, 19에 보겠습니다.

*로마서 15:18-19,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본당 별관 방송 우리 모든 SS 여러분들 크게 합시다. 19절 다 함께요.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누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선하였노라. 아멘
-바울에게서 복음 빼면 제로인데 바울에게서 복음의 능력으로 나타나 가지고 그것이 말과 특별히 행위로 표적과 기사와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고 이것이 온 땅에 펼쳐지게 되는데 소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동부 유럽, 유럽까지 조세 일누리곤은 지금 알바니아, 끝까지 이것이 편만하게 펼쳐졌노라. 할렐루야, 복음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통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이 편만하게 오늘 이 자리까지 펼쳐진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얘기할 때, 예수님의 사익은 능력이 같이 따라간다. 마태복음 12장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2:28,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실질적으로 삶의 현장 가운데 귀신 들린 자가 쫓겨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복음의 능력이 되기 위해서 복음이 능력 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귀신을 쫓아낸 것 같은 그런 은혜가 우리 가운데 체험돼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제가 이걸 설명하기 위하여 좀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한 10여 년 전에 OEC International이라는 세계적인 보험단체가 있는데, 거기에 ‘딕 힐리스’라는 책임자가 있었어요. 이분이 중국에 선교를 하러 갔어요. 어느 날 중국 군인이 아내를 데리고 이 디킬리스 선교사님이 온 거예요. 보니까 아내가 귀신이 들린 거예요. 제가 말씀드리지만 정신병 들린 사람은 정신병원에 가면 되고 귀신 들린 자는 쫓아내야 되는 것이에요. 그런 게 있어요. 그런 게 있어요. 그러면서 그 군인이 귀신들 아내를 데리고 오면서 자기 너무 간절한데 자기가 듣기로서는 기독교는 능력이 있다. 예수님은 능력이 있다. 또 복음은 능력이 있다. 이걸 제가 들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선교사님이 고쳐주세요. 이 귀신 문제를 아내의 귀신을 쫓아내는, 귀신을 쫓아내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 선교사는 미국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이런 소위 귀신과 귀신의 능력과 부딪치는 귀신들, 자를 쫓아내는 이런 현장을 별로 체험을 한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게 익숙하지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복음의 능력이 있어. 귀신도 예수님 쫓아낸다고 그랬는데 바울도 실질적으로 말과 행동, 표적과 기사를 가지고 쫓아낸다고 그랬는데, 그래서 선교사 부부가 한번 해보자고 그랬어요. 손잡고. 그래서 자기 부부만 하면 좀 약한 것 같아갖고 중국 성도들 가운데 믿음 좋은 기도 많이 하는 여성도 한 분 모시고 셋이서 함께 기도한 거예요. 기도하면서 귀신 쫓아내려고 막 기도를 하는데, 귀신들은 그 여자가 팔짱을 끼고 있잖아요. ㅎㅎ~ 기도하는 그 선교사님하고 선교사님을 계속 쳐다보더래요. 쳐다보면서 조롱을 하는 거예요. 무섭게 기도를 하면 고대로 따라하고 너희들은 능력이 없어 그러대... 그리고 너희들은 안 돼 그러더래. 그리고 기도하는 말을 따라 하면서 조롱했다고 네가 무슨 능력이 있냐. 그럴 때 선교사님의 글에 이런 글이 쓰여져 있어요. 우리는 귀신이 조롱하는 그 고통 가운데서 성경을 읽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핵심 성경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이걸 읽으면서 계속 반복을 하면서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복음 찬송을 하고 이렇게 하는 가운데 갑자기 그 선교사님의 마음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하시고 복음의 능력이 있는데, 이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이 귀신 들리고 이 여자를 창건 아이 악한 귀신아, 예수 그리스 여러분 명하노니 나가라 어떻게 됐겠어요? 그 순간 귀신이 떠나가 버렸어요. 할렐루야!!! 떠나버렸어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허깨비를 붙잡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아는 사람들이에요. 복음의 능력을 아는 정도만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이 삶의 현장에서 접목이 돼야 됩니다. 이런 능력이 나타나야 돼요. 오늘 이런 능력의 수혜자, 그 다음에 이런 능력의 체험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저희 부친의 교회를 개척할 때, 저희 부친이 개척할 때 우리 부친과 함께 동역했던 여전도사님이 계셨는데 우리 부친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이었어요. 그 여전사님 이름이 설한 설시언 설한 전도사님이라는 분인데 그 당시에 저 부산 쪽에서는 아주 귀신 쫓아내는 은사가 있는 전도사님이었어요. 그 주일 저녁이나 수요일 저녁만 되면요. 교회 뒤에 그때 교회가 초라한 교회니까, 개척교회니까 세면바닥 위에 돛자리 깔고 예배드리고 그러는데, 그 뒤에 이처럼 코 귀신 들린 사람이 2명, 3명씩 와서 앉아 있는 거예요. 그 설 전도사님이 이제 같이 이제 귀신 쫓아내는 기도를 하는데 저보고 현이 와라. 제가 중학교 2학년, 3학년 현이 와라. 그리고 이제 현이 와서 같이 기도하자. 그런데 이제 옆에 저 뒤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고2, 고3형들이 있어요. 고3형들도 데리고 와라. 그래서 제가 고3형들을 막 데리고 와 같이 기도를 했어요.

기도를 하는데 고3형들이 벌벌 떠는 거야. 막 기도하는데 고3 형 왜 떨어? 그러니까 야 내가 듣기로서는 고3 형들이 하는 얘기예요. 귀신 들린 자를 위해 쫓아내는 걸 막 기도를 하면 귀신 들린 사람이 나갈 때 그 주위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가운데 제일 믿음 없는 사람한테 쏙 들어간다 하더라. 제일 믿음 없는 사람도 아이고 그러면서 벌벌 때는 내가 알거든. 그 형들 엄마한테 거짓말해 가지고 돈 타내 가지고 다른 거 뭐 하고, 여자들 꼬무니 따라다니고 내가 다 알거든. 능력이 없는 거야. 벌벌 떠는 거야. 그런데 나는 지금도 기억해요. 이제 선한 전도사 나중에 미국 가셔 갖고도 이걸 사역을 하셨는데 그분이 나가는 교회에 제가 산호세 그 당시에 제일 침략이라고 큰 집회를 하는데 산호세에서 보는데 막 강단에 가서 제가요 한때는 집회를 잘했어요.

아실랑가 몰라요. 40대 초반 중반에, 막상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설 전도사님이 와가지고 나한테 오목사 옛날 능력이 나왔네!!~~ 나왔네 이거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있지 않고, 능력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복음은 나의 복음이 돼야 되고,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돼야 되는 것이에요. 저는 이런 의미에서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옛날에 이런 말씀 있죠.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들어보셨죠? 우리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예를 들어 건강에 관한 문제 지금 우리가 어떻게 우리가 음식을 먹고, 어떻게 여러분들 운동을 하고 어떻게 자신을 추스르고 특별히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하고, 이런 것이 앞으로 5년, 10년 뒤에 건강을 결정할 거 아니에요. 마찬가지예요. 지금 저와 여러분이 복음의 능력을 나의 복음으로 어떻게 여러분들이 정확하게 터득하고, 고백하고 살아내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향후 10년이 결정될 거예요. 사랑의 교회는 5년 10년 뒤가 더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거는 어떤 눈에 보이는 교회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무형교회인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금보다 5년, 10년 뒤가 더 좋은 신앙생활, 더 좋은 은혜를 받고 사려면 지금 여러분들이 복음의 능력을 나의 복음으로 선포해야 되는 것이에요. 나의 복음으로,,,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에요. 이 복음 앞에 우리는 경직되거나 이 복음 앞에 냉소를 짓거나 이런 게 아니고 정리를 하십시다.

오늘 이 말씀을 깨닫는 것뿐만 아니라 이 말씀을 먹고 체화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복음의 능력을 먹고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를 들어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어떤 치유 약이 있다고 하십시다. 그리고 그 약을 먹으면 웬만한 병은 다 낫는다고 하십시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약, 아무리 괜찮은 약이 있다 하더라도 그 약을 선반 위에 모셔다 놓고 위에 올려놓고 먹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 약병에 포장지를 뜯고 약병을 내려가지고 뚜껑을 열어서 그 약을 내 입에 털어놓아야 내 것이 되는 것이에요. 복음의 능력을 제가 아무리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총체적인 복음의 능력을 선반 위에 관상용으로 두지 말고 갖고 내려와서 갖고 내려와서 여러분의 것이 돼야만 하는 것이에요.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말로만 들려 지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이거 실제적인 사건인데 그러니까 복음의 지식이 복음의 실제적인 사건으로 복음의 교리가 실제적인 체험으로 선반 위에 있는 이것이 우리의 심장 속으로 옮겨져야 되는 것이에요. 선반 신앙이라는 것은 선반 위의 신앙이라는 것은 오늘 이 설교를 들었으니까 되었다. 라고 여기는 정도 마음의 감동을 받았으니까 충분하다. 그 정도 이런 것은 복음을 선반 위에 두는 것을 똑같아요. 복음을 인정은 하지만 복음의 통치는 받지 않겠다. 이것은 약을 먹지 않는 것이 말씀을 듣지만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은 선반 위의 신앙의 핵심이에요. 성경은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것을 자기 기만이라고, 야고보서 1장 22절에,

*야고보서 1:22,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오늘 이 복음이 선반 위의 복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야. 이게 나의 복음으로, 그래서 여러분들 젊은이들 가운데 내가 복음을 듣고 복음을 믿긴 하겠지만, 내가 어떤 신앙의 기준선을 넘고 그 선을 넘어서는 안 하겠다. 이렇게 하면 경계선을 안 넘어가려고 하면 복음의 능력의 경계선을 딱 넘어가지 않으려고 하면 이것이 삶의 복음 지금으로는 이것이 체화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써놓았어요. 뭐라고 써놨냐?

*선반 신앙에서-나의 복음으로,
.-선을 그어놓은 복음에서 나의 복음이 돼야 되는 그래서 여러분 저를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실제로 선반신앙에서 나의 복음으로, 선반 신앙에서- 심장 신앙으로!!!!~ 할렐루야, 복음은 지금도 우리를 극복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주의 크신 복음은 갈보리 십자가 놀라운 능력이 내게 임했네 아메 놀라운 치우가 내게 임했네.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에 흘린 보혈의 피로서 나를 정케하시고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하는 말일세 주의 복음을 내가 들으니 사랑하는 말일세. 믿는 마음으로 주께 가오니 이것이 나의 복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선반신앙에서 심장신앙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현재 실체적인 능력으로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하겠습니다.

♣요약
-우리가 로마서의 말씀을 듣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자. 우리에게 있는 수많은 복음의 거울이 세상 의, 어떤 세상 먼지, 이런 것들로 다 희미해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로마서의 말씀으로 이 희미해진 복음의 거울이 깨끗하게 닦이기를 소원하며, 복음은 우리를 침체와 쇠퇴와 갈등과 충돌에서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인 줄로 믿사오니,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번 우리를 살려주시라고 간곡히 기도하며, 한국교회, 아니 사랑의 교회가 가면 갈수록 표적과 기사의 능력, 성령의 능력, 보혈의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선지적 사도성으로 무장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이 은혜로 로마서의 산을 올라가자. 우리에게 있는 무력한 선반 신앙이 있다면 깨어나서, 다잡아서 나의 복음으로 가슴이 쿵쿵 뛰는 강력한 심장 신앙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기도제목
‘복음의 거울’이 ‘자기 자랑과 세상 쾌락의 먼지’로 희미해졌으니, 식어진 ‘복음의 감격’을 ‘로마서의 복음 말씀’으로 온전히 회복하여야 하며, 복음은 모든 차별과 부끄러움을 이기는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인 줄 믿고, 확신하여, 잠들었던 ‘선반 신앙’에서 깨어나 가슴 뛰는 ‘나의 심장 신앙’으로 평생 ‘복음의 횃불’을 높이 들어야 한다. 사랑의교회가 ‘사랑의교회-복음=0’의 압도적인 복음 방정식으로 살 때,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대한민국과 열방 위에 복음이 편만하게 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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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1월 25일)-로마서 강해(1)
제목: “로마서의 산에 들어가십시다”
말씀: 로마서 1:1-15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1부)
대표기도: 이지형 부목사님 (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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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15,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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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부터 로마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로마서는 기독교의 영광스럽고도 놀라운 진리를 압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로마서를 성경의 다이아몬드다. 그 이유는 복음의 핵심 진리를 가장 논리적으로 체계적으로 집대성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이아몬드처럼 정교하게 세공된 말씀입니다. 오죽하면 신약을 압축하면 로마서가 된다 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따라서 로마서를 소화하여 저와 여러분의 것으로 삼으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구원의 역사에 거대한 흐름을 거시적 관점에서 매크로 하게 또 미시적 관점에서 마이크로 하게 소화하고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4복음서는 예수님의 복음을 보여주었다면 로마서는 예수님의 복음을 시대에 맞게 해석하고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 강력한 해석이 얼마나 큰 설득력이 있었는지 당대 그 당시는 그레코 로만, 특별히 그리스 로마, 그리스 헬라적 사고방식 철학과 모든 사상이 헬라적인 것이었는데. 헬라적 사고에 물들어 있던 사람들에게도 이 복음서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로마서를 통하여 논리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도 이 생각의 혁명과 삶의 혁명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갑자기 앞에 너무 거창하지요 예 그래서 오늘 제가 이 로마스 강의를 지난번에 서론 격으로 함하고 난 다음에 우리 교회 다라방 다라방마다 목사님 이번에 우리 다락방에서 로마서를 10번 읽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에 그렇지 한 달에 한 번씩 읽으면 12번 읽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 로마서를 여러분 앞으로 쳐도 뒤로 쳐도 다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여러분 영안을 열어주시고, 또 로마서를 여러분의 생애 말씀의 양식으로 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설교의 제목을 "로마서의 산에 들어가십시다." 그렇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설악산에 간다 그랬을 때에 설악산에 갈 때 어떻게 갑니까? 그냥 갑니까? AI를 또 혹은 이렇게 인포메이션 보면서 설악산에 대한 SNS 통화의 지식을 듣고 그렇게 설악산에 가죠. 저는 39살 때까지 설악산 한 번도 못 가봤어요. 나중에 39살 때 설악산을 갔는데 제가 생각하던 설악산하고 다르더라고요.
 
가보니까 가니까 설악산에 여름에는 비선대 물에 발을 담글 수 있고 가을은 단풍이 너무 아름답고 겨울에 지금은 눈이 참 특별하잖아요. 실제로 본 설악산은 제가 알고 있는 설악산과 달랐다는 것이에요. 마찬가지예요. 실제로 본 로마서의 산에 들어가면 여러분들이 옛날에 생각하던 로마서의 어떤 나름 알던 로마서의 나무, 로마서의 폭포가 아니구나 라는 깨닫게 될 겁니다. 지금 말한 대로 설악산의 여름, 겨울 혹은 가을을 이렇게 다른 것처럼 제가 보면 얘기하는 게 봄은 한 번도 안 가봐서 그래요. 이번에 제가 여러분 부탁드린 것은 로마서 시리즈를 하는 동안에 여러분의 삶에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신고 직접 로마서라는 산에 등장하셔야 돼요.
 
들어가면 첫 번째 먼저 깊고 높은 신학의 봉우리를 만나게 될 겁니다. 뭐에 봉우리를 만난다고요? 신학의 봉우리, Thealage, 또 인생의 감동과 변화를 주는 아름다운 꽃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가슴 뛰는 선교의 폭포도 만나고 또 우리에게 수많은 신뢰를 주는 동력자 들을, 동력자 들이라는 튼튼한 바위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시원하게 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눈도 만져보시기를 바랍니다. 한마디로 이전의 선입관을 버리고 로마서의 산에 제대로 들어가면 혁명적 삶이 혁명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I. 로마서의 산에 제대로 들어가면, 혁명적으로 삶이 변화된다.
-우리가 로마서의 산에 들어가서 혁명적으로 변화되는 이유가 뭐냐? 그 이유는 로마서의 산에 들어가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한 인격과 마주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뭐와 마주친다고요? 인격을 마주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서 특별하게 인격성에 대해서 예수님의 인성이라는 인격 예수님의 신성이라는 인격에 대해서 아주 신비한 건데 이걸 만나게 되는데 먼저 여기에 대해서는 예수 그로서의 인격성에 대해서 이렇게 명료하게 말씀하는 2절에 다 같이 보겠습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예수님은 구약에서 미리 약속하신 분으로 구약에 뿌리를 둔 분이에요. 갑자기 나타난 분이 아니세요. 제가 감히 단언하건대 세상에 어떤 종교 지도자도 이런 주장을 못 하는 것임 할 수도 없습니다.
 
인격을 가지신 예수님만이 이런 예언을 하시고, 성취하신 분이기 때문에 독보적인 인격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여기에 대한 증명을 하겠습니다. 먼저는 3절에 보니까,
 
*로마서 1:3,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예수님은 그의 아들에 관해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 그러니까 인성을 지니신 인격자이시다. 그다음에 4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느냐,
 
*로마서 1:4,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신성을 가지신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해서 구약에 선포된 미리 선포된 것 독보적이시고 그 다음에 인성과 신성을 가진 인성과 신성을 가진 인격적인 분이시다. 다윗의 자손으로 인성을 가지시고 그다음에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여 능력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로 신성을 가지신 분이다. 그러니까 인성과 신성이 결합된 독특한 인격성을 갖고 있다. 바울의 입장에서는 이걸 언제 깨달았는가, 바울이 다마스커스로 가는 말을 타고 가다가 거기서 거꾸러져 가지고 하늘에서 빛이 나오는데 하늘에서 빛이 나오는 놀라운 하나님의 신성을 경험하면서 누구십니까? 그러니까 나는 너가 핍박하는 예수 그리스도다. 인성을 지신 음성을 가지고 소리를 들었어요.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도 바울은 만나게 된 거예요.
 
인격적인 주님을 만나면 바울처럼 혁명적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는 것을 믿으시기 바라는 것이에요. 기독교의 독특성은 뭐냐면 인격성인데 만일 예수님을 추상적인 신성이나 도덕적인 이상 정도로만 축소하면 복음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라, 개념에 불과하게 되는 거예요. 늘 말씀드리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은 추상적인 사상이나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예수님의 인격을 신뢰하는 것이에요.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에요. 오죽하면 인격성의 이 친밀한 관계를 뒤에 로마서 8장 15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느냐,
 
*로마서 8장 15절,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인격의 관계가 양자영 자녀가 되어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을 뭐라고 부른다고요?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실 정도로 여러분 자녀와 자식과 아버지의 관계란 이건 뭐 뭘 말할 수 없는 인격적인 관계 아닙니까?
 
아빠 아버지라고 자녀가 부모 부모와 맺는 가장 친밀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자녀의 관계인데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단지 교류적인 세계나 도덕 원리로만 이해한다면, 신앙은 이념과 사상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경 곳곳에서 예수님의 인격성을 드러내고 있는데,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치유하시는 고통을 공감하시는 인격 이신 주님을 믿습니다.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식히시는 겸손과 온유의 인격임을 우리는 확인하게 됩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는 이 순종하는 인격,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주시는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시는 인격, 따라서 우리는 이 인격적인 예수님을 교제하면 이 믿으면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에요.
 
오늘 바울 사도도 이 주림을 신성과 인성으로 만나게 되니까. 그의 야비하고도 사람을 때려 죽이고 스바를 때려 죽이는 그런 인격이 얼마나 놀라운 인격으로 변하느냐, 5절 뒤어 보니까, 예수님을 순종한 인격이 되게 하시고, 또 9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냐면요.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은 인격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할 정도의 인격자로 이렇게 성숙하게 된 것을 믿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제가 이렇게 좀 거창하게 처음에 예수님의 인격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어요. 우리가 예수님의 인격을 강조한 이유는 뭐냐 하면 만약 우리가 자유주의 신학자들처럼 인본주의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되면 예수님의 사역을 심지어 부활조차도 상징적인 사건으로만 개념화시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속에 인간적인 사상이 확장되는 거예요. 인간적인 지식만이 확장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인격성을 약화 시키고 와해시킬수록 인간의 사상과 생각이 더 많이 개입하게 되는 거예요. 이게 사탄의 기가 막힌 전략인 줄 믿으시기 바라는 것이에요. 이 좀 어렵지만 이제 제가 더 설명을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과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예수님의 인격성, 인격 이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인격이신 예수님과 만나게 되면 인격자이신 예수님 앞에 자신들의 삶이 지배당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들의 어떤 자유주의 신학, 자기들에 대한 신학, 자기들의 사상, 자기들의 최악을 더 강조해야 되는데 예수님의 인격과 만남은 그분이 주인이 되시면 그분 앞에 우리가 왕자를 내어드려야 되는 것이에요. 왜 다들 가만히 계세요? 예수님을 참된 인격으로 만나면, 그분 앞에 우리의 왕좌(王座)를 내어드려야 되는 거예요.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자유주의자들이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념과 이념이 자기들의 어떤 관념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걸 강조. 강조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인격성보다 예수님의 사상 이걸 더 강조하는 것이에요. 오늘 수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심지어 극단적 보수도 마찬가지예요. 자기들의 생각 변할 마음이 없어요. 예수님의 인격과 만나면 극단적이 될 수가 없어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이 인격으로 오시면 나는 더 이상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을 추상화하고 어떤 주의, 어떤 이즘, 어떤 주의로만 두게 되면 나는 여전히 내 삶의 왕자를 지킬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 특히 교회 안에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예수님의 인격성을 거부하는 겁니다. 여기서 인본주의 신학이 나온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극단적인 보수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보수주의자예요. 저는 아주 사상적 신앙도 아주 보수입니다만.
 
극단적인 보수는 누구 말을 들으려고도 하잖아요. 다시 한번 인격의 기원은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삼위 하나님이란 삼위격, 삼위의 격이란 삼위의 인격을 갖고 계시다. 그 말이에요. 하나님의 인격, 성자, 예수, 그로서의 인격, 성령의 인격, 성령도 인격이에요. 삼위 인격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말 자체가 우리를 인격적인 존재로 지으신 거예요. 그래서 오늘 신성과 인성을 통한 신비한 인격을 우리가 깨닫게 되면, 신성과 인성의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스며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 로마서를 통하여 우리는 많은 우리 인격이 손상되고 훼손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 놀라운 신비한 인격을 접하게 되면 훼손된, 오염된, 우리의 잘못된 우리의 많이 찢어진, 많이 상처받는 쓴 뿌리가 된 이런 인격들이 회복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의 인격을 만나면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죽음도 극복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신성을 통하여 죽음도 극복하게 하시고 그다음에 인성을 통하여 우리가 지금 당하는 고난이나 고통의 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눈을 열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도 인간으로 나와 같은 고난이나 고통을 당하신 줄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의 고난과 고통이 나를 옭아매는 것이 나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주님의 인격과 부딪치게 될 때 그것이 오히려 회복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태생적 혹은 후천적인 약점과 어려움에 얽매이지 않을 수가 있어요.
 
인격을 만나면, 소위 이미 결정된 거 가지고 내 인생을 낭비하지 아니하고, 예수님께서도 완전한 인간으로서 우리의 약점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계시기 때문에 나의 약점을 공감하시기 때문에, 나의 문제의 짐을 지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걸 믿기 때문에 다시 시작하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청년 시절부터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수많은 과정들이 있었고,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떻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제가 10분의 1, 100분의 1도 감히 순종하기 힘들었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주님의 신비한 신성을 지닌 인격 그리고 주님의 인성을 지닌 그 인격과 접하면서 주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면서,,주가 나와 동행을 하며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은혜는 말로 다 할 수가 없도다. 그걸 하게 되니까. ,♪~~
 
수많은 약점과 부족함이 있었지만 인격자이신 주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주님의 불쌍히 여기심과 그래도 아무것도 아니지만, 주님이 예뻐해 주시고 가만히 계시죠? 주님이 예뻐해 주시고,,, 여러분 다 그렇게 될 수가 있는 줄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다시요. 주님의 신성과 인성의 인격을 접하게 되면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수많은 약점과 단점으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죽음의 공포로부터 극복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네, 연세드신 분들은 내가 어떻게 죽나? 내가 어떻게 되나?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전진하지 못하는 그런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그런 분들을 그런 분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의 인격과 부딪치게 될 때에 자유하게 되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이것 때문에 하늘의 신성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이에요. 저는 저희 할아버지나 저희 부친이 저희 가훈을 세우실 때에,
 
로마서 14장 7절 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걸 우리 선대부터 주님은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니까 이거 집에 가훈으로 가훈 딱 해 가지고 1, 2, 3, 4, 하는데 주제 말씀 로마서 13:7절-8절, 거기에 거기서 파생되어 가지고 빌립보서 4장 13절 바울이 깨달았던 “내게 능력 주신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가 어떻게 모든 걸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초라한 존재고, 오염된 존재고 훼손된 존재고 쓴 뿌리가 있는 존재인데 그런데 주님의 신성과 인성을 이렇게 만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내게 능력 주신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가 있느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들어야만 할 줄로 믿는 것이에요. 이렇게 될 때 그의 인격성을 믿을 때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하나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만나면 선지 적 사도 성을 지닌 자가 되는 겁니다.
 
II.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만나면 ’은혜의 비대칭성‘을 깨달아 ’빚진 자의 심정‘을 갖게 된다.
 
제가 말씀 하나를 다 풀어 가지고 이걸 결론적으로 설명을 해야 되는데 제가 그럴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까 예수 그로서의 인격과 만나면 뭐가 된다고요? 선지적 사도성을 가진 자, 이게 영어로 말하면 Prophetic Opposal Ship인데 이게 이제 여러분들 이제 지금부터 이해를 하셔야 돼요. 앞으로 로마서를 할 때 이것이 여러분들이 처음으로 신학적 사도의 로마서의 첫 번째 신학적 고봉에 여러분들이 올라가기를 신학적 고봉과 만나는 것이 여기서 자, 그리스의 인격과 부딪혔을 때 우리가 받은 열매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도성이라는 것이에요.
 
주님의 신비한 신성과 인성의 인격을 만나면 모든 성도들은 사도성을 가지게 된다는 거예요. 사도 성을가질때 그 예언자적 사도 성, 어떤 예언적 또 선지 적인 미리 분별할 수 있는 앞날을 볼 수 있는 안목과 그 다음에 사도성이 갖는 어떤 철저한 실행력, 어떤 추진력 이런 걸 갖게 되는 것이에요. 무슨 뜻인가? 하면 자 1절에 보니까 바울이 이렇게 나와 있어. 뭐라고 나와 있냐면,
 
*로마서 1:1,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복음을 위하여 특정함을 입었으니.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바울처럼 사도로 부르심을 받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주로 믿습니다. 예 자 이걸 좀 더 쉽게 설명을 하면 5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 뭐라고 나오냐,
 
*로마서 1:5,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성도들, 방송으로 듣는 모든 분들, 별관에서 듣는 모든 분들, 모든 SNS로 들어오시는 유튜브로 들어오는 모든 분들, 한마디로 말하면 여러분들과 저는 우리가 안에 포함되는 줄 믿으셔야 되는 거예요. 그로 말미암아 바울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는 거기에 바울과 바울과 함께하는 팀들이에요. 복음의 팀들이 그 팀들이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 사도의 직분이라는 말은 사도의 기능을 받았다. 정확한 번역은 사도의 역할을 받았다. 우리의 식으로 말하면 사도성을 계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가 다 오늘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을 깨달은 모든 성도들은 여러분들과 저는 우리 모두는 사도 성을 가지고 사도의 직분을 받은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사도직 자체는 계승이 안 되지만, 사도성 자체는 계승이 되는 것인데 따라서 예수 그리스의 인격을 믿는 우리에게 사도성을 주신 목적이 뭘까요? 그것은 바로 8절에 이래와 같이 나오세요. 8절에,
 
*로마서 1:8,
8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뭐에 전파됨이로다.
생명력 넘치는 사도성을 지닌 그리스인들을 통하여 이 그리스인들을 통하여 복음이 선포되는데 거기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선포되는 줄로 믿습니다. 많은 한계가 극복된다는 것이에요. 이걸 이제 전체적으로 제가 크게 말씀을 드렸고, 이걸 이해하도록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 로마서는 사도바울이 늦게 쓴 성경이에요.
 
로마서 일찍 사도바울이 쓴 성경이 뭐냐 하면, 갈라디아서라든지 고린도서라든지 데살로니카라든지 좀 일찍 썼어요. 그런데 예를 들어서 갈라디아서다, 데살로리니가서다, 그 다음에 고린도서다 이런 성경은 바울이 거기 가서 전도를 하고 그 다음에 양육을 하고 그러면 다시 이제 갈라디아다, 이런 에베소다 이런 지역들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그거는 소아시아 지역인데 나중에 바울이 마게도냐 환상을 보고 지금으로 말하면 그리스로 넘어갔어요. 그리스로 넘어가 거기서 막 사역을 하고 있는데, 누가 왔느냐 하면 로마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 두 사람이 그리스의 헬라 지역에서 사역을 하던 바울에게 왔어요. 그 사람 이름이 뭐냐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들어보셨죠?
 
프리스틸라 앤 아쿠일라스라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와 가지고 로마에서 있었던 소식들을 전하는 것이에요. 소식을 듣고 바울은 갈라디아서나, 데살로니가, 고린도 교회는 이미 사역했던 그 교회를 향하여 컨펌하고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양육 편지를 하고 이런 식으로 많이 하는데, 이 로마인서 이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에 한 번도 가보지도 않고 다시요. 가봤어요? 못 가봤어요. 로마에 한 번도 가보지도 않고, 브리스겔라와 아굴라의 얘기를 듣고, 바울이 예지, 예언의 은혜를 받아 가지고, 이 로마서를 쓴 것이에요.
 
따라서 이 로마서를 제대로 깨달으면, 여러분 우리가 가보지 않는 길 살아보지 않는 그 삶의 어떤 그런 상황에 대해서 우리가 사도적, 선지성을 가지고 돌파할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것이에요.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모두가 다 두려워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기대감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 두려움이 있는 이런 우리의 인생의 현장 가운데서 오늘 이 사도적 선지성이라는 신학적 통찰을 저와 여러분이 내 것으로 아주 그냥 내 것으로 그대로 접목을 하기 시작하면, 바울이 가진 사도적 선지성을 가지고 그 모든 상황을 돌파했던 그 은혜가 여러분과 저에게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확인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여기서 깨닫는 것이 있어요.
 
바울은 소아시아나, 마게도냐 지역까지 사역하는 것, 마게도냐 환상을 보고 그리스 사역까지도 그것만으로 끝날 수가 있었어요. 그거라도 충분해요. 충분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바울은 거기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사도성을 가지고 복음이 없는 땅끝. 심지어 서바나 내가 서바나 스페인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야리라 그렇게 말할 수가 있었어요. 이것이 굉장한 돌파력이에요. 종교 개혁을 한 종교 개혁자들조차도 당시에 기독교의 순수성 이런 것들을 회복하려고 그랬지, 자기들이 있는 어떤 교구, 자기가 속한 믿는 어떤 지역 거기를 벗어나는 것은 상상을 별로 못 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는 모라비안 교도들은 그걸 뛰어넘는 사도적 선지성을 가지고 뛰어넘는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에요.
 
바울은 가본 길을 재방문해서 경고하게 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가보지 않는 미래를 향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프론티어의 눈이고 가보지 않는 길에 대한 두려움과 그다음에 기대가 교차하는 상황인데 이 가보지 않는 길에 대해서 기대와 떨림에 대한 미래의 여정에 대해서 바울은 소위 선지적 사도성을 가지고 선지자의 예언력과 예지와 사도의 추진력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이 사명을 감당하게 된 그 은혜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것이에요. 따라서 이 시간 우리 모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하는 능력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현재 상황에 주저앉고 싶거나 그냥 내 가운 내 삶 가운데 가슴 뛰는 환상이 없다는 분들은 오늘 이 선지적 사도성을 가지고 예언적 사도성을 가지고 돌파하는 은혜가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하는 것이 인생 후반에 한 번 내가 한 번 그래도 다음 세대에 뭔가 레가스를 남기고 싶다. 뭔가 내 인생에 ’온 땅이 물이 바다를 덮는 것 같은 여호와의 영광을 한번 체험하기를 원한다.‘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이 로마서 산에 사도적 선지성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어제 새벽에 제가 온 교우들에게 찬송란을 가르쳐 드렸어요.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야 주 찬양해, 주찬양해 할렐루야.
 
이 찬송은 70년대는 갓이즈굳, 80년대는 이 찬송이 한국교회 큰 부흥의 시기에 참 특별한 찬송이었어요. 제 마음에 가슴에 불이 붙는 거예요. 하나님 대한민국 교회가 80년대 90년대 놀라운 봉을 체험한 줄 믿습니다. 지금부터 30~40년 전에 우리에게 다시 회복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 마음이 생기는데 할렐루 할렐루 할 때 할렐루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지금 갈등과 분열의 상황이에요. 그렇지만 오늘 로마서를 가지고 개인도 가정도 그러고 선지적 사도성을 가지고 예언적 사도성을 가지고 한 번도 가보지 않는 길이지만, 바울은 로마에 가보지도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영적인 계시와 능력을 가지고 이런 놀라운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셨다면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정말 삶의 나침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에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강조하고 싶어요. 여러분 사도바울이 경험했던 그 시대보다 지금 우리가 훨씬 나아요. 아멘, 무슨 말이냐. 사도바울은 성경 정경도 없었어요. 66권 정경 없었어요. 시대적 어떤 상황과 그 어려움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이 말씀 제대로 깨달으면 우리는 사도 바울이 가졌던 그 은혜와 능력을 우리는 그 이상 가질 수가 있는 것이에요. 사도 바울보다도 저와 여러분들은 말씀과 성령과 은혜의 환경이 더 좋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사도 바울이 가졌던 그 Prophetic Opposal ship, 사도 바울이 가졌던 선지적 예언성을 가지고 가보지도 않았지만, 해보지도 않은 길이지만, 심지어 개혁자들, 종교개혁자들 조차도 자기 그 테두리만 있겠다는 어떤 마게도니아 환상으로만 끝날 수 있지만, 로마까지 가겠다는 그 마음을 가지고 시대를 새롭게 한 은혜가 오늘 살아계의 모든 성도들 한 분 한 분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어제 우리가 할렐루 할렐루 하면서 할렐루 할렐루는 찬양한다. 그 말이에요. 야는 야위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예요. 구약을 몽땅당 한편으로 딱 한마디로 말하면 할렐루야예요. 여러분 어려워도 할렐루 할렐루와 주찬양 이 찬송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삶에 선제적 사도성을 가지고 돌파하도록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될거에요. 그러면 이 선제적 사도성을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선제적 사도성을 가진 사람들이 적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III.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만나면, ‘은혜의 비대칭성을 깨달아 빚진 자의 심정’을 갖게 된다.
 
이게 무슨뜻인가, 오늘 14절에 다 같이 한번 다시 한번 합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보겠습니다.
*로마서 1:14,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뭐예요? 다 내가 비친 자라. 사실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내가 회개한 양보다도 주님이 용서하신 깊이가 더 큰 줄로 믿습니다. 내가 헌신한 시간보다 주님이 나를 위해 내어주신 생명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깨닫는 순간 내가 받은 은혜는 너무 커서 도무지 갚을 수가 없구나. 이때 생기는 마음이 빚진 자의 심정이에요. 오죽하면 로마서 3장 24절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함께 보죠.
 
*로마서 3:23,
2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느니라 아멘
-값 없이 받은 은혜가 너무 커 가지고 내가 빚진 자의 심정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내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나는 무엇으로도 갚을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받은 은혜는 너무 크고 내가 갚을 수 있는 건 너무 적고 이걸 은혜의 비대칭성이라고 제가 설명을 해보았어요. 이것은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은혜예요. 내가 하는 어떤 공로도 하나님이 내게 하신 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은혜의 비대칭성이에요. 소위 마태복음에 나오는 1만 달란트 빚진 자의 심정이에요. 그리고 누가 보면 15장에 여러분 돌아온 탕자, 엉망으로 살다가 야 아버지 집에 가면 뭐 그래도 먹을 수가 있겠구나 싶어 가지고 돌아가는데 아버지 만나 뭐라고 얘기합니까?
 
허랑방탕해서 살다가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컴을 받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그래도 양심은 있어 가지고,,, 예 그런데 아버지가 어떻겠어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고 우리가 잔치하자. 그 아버지의 사랑과는 비교불가, 족탈불급(足脫不及)이에요. 그때 탕자가 아버지가 내게 주신 은혜는 내가 도무지 갚을 수가 없구나. 내가 도무지 갚을 수가 없구나. 이게 은혜의 비대칭성이에요. 그러면 남은 인생을 내가 어떻게 하면 주님 아버지를 더 기쁘시고 아버지를 어떻게 더 사랑할까? 그걸 생각하게 되는 빚진 자의 심정이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오늘 바울이 빚진 자의 심정의 대표적이었어요. 디모데전서 1장에 보니까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뭐요?
 
*디모데전서 1:13,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폭행자였으나 우리 주위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비교가 안되는 거에요,
 
*고전15:9-10,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잘 알잖아요. 은혜의 비대칭성이에요. 그래서 로마서의 계속되는 주제는 내 공로는 nothing, 나는 아무것도 치러주신 값은 내 능력으로는 계산 불가능, 박혜자였던 내가 사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소위 선제적 사도성에 눈을 뜨고 사명자가 된 것이에요. 그래서 가보지 않는 로마를 향하여 가겠다는 그 돌파하는 능력을 추진력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최근에 우리 기독교 영화 가운데서 요즘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가 ‘신의악단’이라고 있어요. 그 신의 악단에 마지막이 우리 교회에서 촬영된 거 아시죠? 이게 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북한에서 NGO에게, 기독교 NGO에게 돈을 받고 싶어 하니까, 기독교 NGO에서는 그러면 기독교적인 것이 있는 걸 증명하라. 그러니 찬양단을 만드는 거예요. 그 찬양을 만드는데 박교순이라는 정치보위부 장교가 있는데, 이 장교가 책임을 졌어요. 그리고 이제 가짜로 해야 됩니까? 진짜로 해야 됩니까? 찬양을 어떻게 하면 됩니까? 찬양도 혁명적으로 하라우! 딱 이러는 거예요. 혁명적으로 찬양하다가 뒤집어진 거예요. 혁명적으로 찬양하다가 변화됐어요.
 
그래서 박교순이라는 이름인데 박교순인데 사실은 거기에 메타포가 들어가 있는데, 거꾸려면 박순교야. 그리고 또 자동차 나오는데 천사예요. 천사,,, 마지막 천국에서의 예배 장면이 우리 교회 예배 장면이 나오는데 그 박교순이라는 사람이 진짜 예수님만 나가고 있잖아요. 그리고 자신은 순교하고 다른 사람을 살려주는 거예요. 아마 바울이 아마 비슷한 심정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다시 한번 14절에,, 오늘 요절인데,
 
*로마서 1:14,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이 빛진 자가 되었으니까 사도적, 선진적 사도성을 가지고 13절 뒤에 보면 뭐라고 나오느냐 하면 이렇게 나와 있죠. 13절 뒤에 보니까,
*로마서 1:13b,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길이 막혔지만 그 막힌 길을 뚫어버리는 선지적 사도성을 확보한 은혜를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예 그러니까 빚진 자의 심정을 갖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은혜의 비대치성을 깨닫고, 빚진 자의 심정을 갖게 되면 거룩한 책임감을 갖게 되는 거예요. 강박관념을 갖게 되는 거예요. 빚진 자의 심정을 갖는 거예요. 야 내가 빚진 자구나. 어떤 책임감이냐,
 
여러분 암에 걸린 사람이 있는데, 이 약만 먹으면 암이 낫는다. 그래서 그 약을 먹었는데 암이 나아버렸어요. 그런데 똑같은 병이 걸린 다른 암 환자가 힘들어 있는데, 그 암 환자에게는 자기가 자기만 낫고 그 암 환자에게 자기가 나은 약을 소개 안 해준다면 그게 인간성이 제대로 된 거예요? 안 된 거예요?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에요. 안 나눠주면 그 비인격자예요.
 
어떤 사람이 큰 눈 폭풍을 만났어요. 만나 가지고 둘이서 같이 가다가 쓰러졌어요. 어떻게 살 길이 없어요. 완전히 그 눈 쓰러졌어요. 그런데 한 사람이 어쩌다가 좀 더 가보니까 한 50m, 70m 더 가보니까 거기에 피난처가 있어요. 피난 산에 들어가 보니까 따뜻한 불을 피울 것도 있고, 임시 먹을 것도 있고 다 있는 거예요. 그러면 자기가 혼자 안에 들어가 가지고 자기만 불을 쬐고, 자기만 냠냠하면 그게 인간적으로 괜찮은 인간입니까? 70m 좀 떨어져 있는 그 사람한테 빨리 가 가지고 그 사람을 끌고 와 가지고 같이 살아야죠. 사막에서 물이 떨어져 가지고 완전히 그냥 메말라 갖고 죽기 직전인 사람이 다 쓰러져 있는데, 어떤 한 사람이 다 보폭을 해가지고 좀 더 가보니까 오아시스가 있는 거예요.
 
시원한 물을 마셨는데 자기만 살고 목이 말라가고 죽어있는 사람을 위해 안 간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오늘 내가 빚진 자라는 것이 이런 심정이 거룩한 부채 의식이에요. 인간이 생명의 처소, 생명수를 발견했다면, 알려야 되는 것이에여.
 
우리가 ‘세계복음주의총회 WEA’를 한 이유가 뭐예요? 나중에 하도 뭘 모르는 사람이 하도 공격을 하고 그러니까, 제가 저 자신을 돌아보았어요. 주님이 이 일을 통하여 한 영혼이라도 구원(救援)받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우리가 서울 선언을 하기까지 그런 은혜를 하나님이 돌파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격과 부딪쳐서 선지적 사도성을 갖고 은혜의 비대칭성을 깨달으면 빚진 자의 심정이 되고, 거룩한 부채의식, 거룩한 책임의식을 갖는 줄로 믿습니다.
 
이게 로마서가 주는 선물이고 앞부분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감동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오늘 여러분 로마서의 산에 들어와 있습니다. 어떤 어떤 분들은 산에 들어와 있지만, 너무 피곤해 갖고 지금 졸고 계시는 분도 계세요. 누워서 잠들어 있는 분들 계세요. 또는 자포자기해 가지고 넋 놓고 있는 분도 있어요. 이런 분들에게 지금 빚진 자의 심정으로 우리가 뭘 나눠줘야 돼요? 뭘 나눠줘야 합니까? 11절에,
 
*로마서 1:11,
11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여기에 신령하는 인사는 방언, 예언, 치유, 그런 인사가 아니라, 복음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 사도적 권면, 선지적 사도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거룩한 책임만 가지고 거룩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나는 빚진 자라.
 
그래서 이 복음을 선포하기를 원하고, 견고하게 하기를 원하고, 이걸 통하여 바울은 그 인격이 성숙하고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 첫 번째 신학적 고봉, 선지적 사도성, 주님의 인격과 만나 가지고 우리 모두가 다 성숙한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성숙한 자는 무슨 심정을 갖는다고요? 빚진 자의 심정을 갖는다. 다 여러분 성숙하기를 바라는 겁니다. 예수 처음 믿으면 모두가 다 어린아이입니다. 어린아이 성도들이 많아요. 어린아이는 인격적으로 성숙할 수가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무지막지한 어린아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아이가 태어나면 자기만 알아달라고, 아무것도 안 합니다. 기저귀도 안 갑니다. 스스로. 생각도 없습니다. 밤새도록 울고불고 난리야 난리입니다. 어린아이는 무례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버지 오셨습니까? 절대 안 합니다. 할아버지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도 못 알아보고, 할아버지도 못 알아보고, 배려심도 없고, 어린아이들 교회 안에도 수도록 합니다. 예의가 있다면 누가 손님이 오면 그래도 문 밖에까지 그리고 좀 더 높여야 할 분들 주차장까지 내려가서 인사하고 좀 높으면 차 가는 거 앞에, 차 떠나도 뒤에서, 여러분 이게 성소의 증거예요. 애들은 지만 압니다. 지만압니다. 무리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자라게 되면, 초등학교 5학년만 되더라도, 거룩한 빚진 자의 심정을 갖고 자기만 알던 어른 아이가 자기 반에 있는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겁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예수님 믿고, 인격적으로 믿고 줄 말고, 내 친구들에게 복음 전하기 시작했어요. 간절함이 생기는 거죠. 믿지 않는 남편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온 가족의 복음을 전하겠다는, 이 성숙함이 생기는 것이에요. 여러분 모두가 다 로마사의 산에 올라가 가지고 누워 있거나 자포자기하지 말고 성숙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성숙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변화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우리 온 교회 또 한국 교회 이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 가지고 한국 교회 다시 80년대의 부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제가 한 40년 전부터 35년, 40년 전부터 늘 얘기한 것이 있어요. 서구 교회 100년 빚진 것을 한국 교회가 100년 동안 앞으로 서구 교회 갚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교회가 세계 복음주의총회, 교회 연명 총회를 하고 이런 거 다 서구 교회 빚 갚는 것이에요.
 
이번 로마서의 주제를 우리가 복음에 빚진 자로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의 능력과 위험 앞에 우리가 겸손히 무릎을 꿇기만 하면 모든 것이 새로워지고 선제적 가능성을 가지고 다시 돌파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한 분 한 분에게 맞춤형으로 허락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요약
우리 모두가 다 로마서의 산에 함께 등장하는 동안에 이 말씀 한 절, 한 절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혁명적인 말씀이 되어야 한다. 새 창조 역사가 우리 가운데 나타나서, 이번 한 주간 이 로마서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는 가운데,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시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동행하고, 교제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주님이 주신 안목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고 현재의 삶이 어떤 형편에 있든지 간에,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야!~~~ 이 찬송 10번, 20번, 30번 하면서, 수많은 난관들을 극복하는 선지적 사도성을 지닌 압도적인 복음의 일꾼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의 남은 인생에 은혜의 비대칭성을 감사하며,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수 있도록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돠어야 한다. 우리가 로마서의 산에 제대로 들어가면, 혁명적으로 삶이 변화되는 것을 확신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만나 ’은혜의 비대칭성‘을 깨달아야 하며, ’빚진 자의 심정‘을 갖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만나, ‘은혜의 비대칭성을 깨달아야 하며, 빚진 자의 심정’을 갖고 주님이 주신 지상 명령인 전하는 일에 전심을 다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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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1월 18일)-1부-2부
제목: "복음의 골수-The Marow ofthe Gospel"
말씀: 히브리서 4:12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호산나 찬양대,
대표기도: 홍성민 부목사님(1부), 김진원 장로님(2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이기호 부목사님(2부)
헌금찬양: 이정명(테너)
설교자: 김정우 목사님(한국신학정보연구원장)-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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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4:12,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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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1월 18일)-3부-4부
제목: "두려움의 시작은 망각이다-Fear Begins In Forgetfulness"
말씀: 신명기 1:29-33
찬양인도: 쉐키나, 할렐루야 찬양대, 시온찬양대
대표기도: 김상윤 장로님(3부), 문윤아 권사님(4부)
사회: 장단희 부목사님, 임상규 부목사님
헌금찬양:

설교자: 박성민 목사님(한국대학생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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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29-33,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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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부
할렐루야! 영광 찬양대의 찬양 감사드립니다. 저도 1부 교인입니다. 영광 찬양대가 우리 정월 첫 주 예배를 히브리스 4장 12절 말씀으로 시작했는데, 기억하십니까? 영광 찬양대, 찬양대원들에게는 이 말씀이 아마 다 찬양으로 살아 있을 것 같아요. 오늘 이 말씀이 우리 영혼에 평안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영혼의 골수에 참 충만한 은혜가 임하고, 우리 성도들의 영혼의 골수가 윤택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연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고 할 때 이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인데 하나님은 성경으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성경 말씀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만나 주시고, 말씀해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성경 밖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떠나서 우리가 어떻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영감이 있겠죠. 영감이 있으니까, 권위가 있겠죠. 오늘 이 말씀의 터전 위에 우리 각자의 신앙과 가정과 또 우리 사랑의 교회가 든든히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고 하죠.

첫 번째 특징이 뭐죠? 살아있대요.
말씀이 살아있대요. 어떻게 말씀이 살아있을까요? 살아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생생하다는 거죠. 생생하다. 살아있다. 숨을 쉰다. 그래서 숨을 불어 넣어준다. 속삭여준다. 격려해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호소하고 우리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또 우리를 새롭게 한다. 살아 있으니까 성경은 죽은 문자가 아니구나. 따라서 우리를 살게 하구나. 사도 베드로가 하신 말씀처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오.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우리가 새롭게 된 것은 썩을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인데 이 썩지 아니할 씨는 뭐냐 하면 바로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말씀이 씨라고 해요. 씨는 어디에 심어두든지 언젠가는 이렇게 살아나고, 꽃피고, 열매 맺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특징이 활력이 있다고 하네요.
원어는 에너지가 있다는 뜻이에요. 에너지라는 단어가 바로 이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성경이 마치 태양과 같다 해가 뜨면 모든 생물들이 다 살아나서 활력을 얻는 것처럼,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활력을 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9편 시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노래하면서, 하나님의 율법은 마치 태양과 같은데, 이 태양 같은 율법이 우리의 심령에 임하면 우리의 영혼 속에 생기를 북돋우어 준다. 우리의 생기가 다 가라앉아 있는데, 말씀의 씨앗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면 우리의 생기가 다시 지속적으로 살아나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말한다고 하면 활력이 있다는 이 말씀은 부정적으로 말한다고 하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효력이 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와 함께 하시니까 사무엘이 하는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니라’ 땅에 떨어진 그래서 떨어지지 않는다.

떨어지지 않는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서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도다. 꽃은 떨어져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떨어지지 않아요. 작년 내내 우리를 괴롭혔던 것이 바로 이 단어인데, infallible. 이 infallible한 무추인데, 이 무추를 무류라고 번역을 해가지고 왜 무오라고 하지 않고 무오는 안 믿고 무류만 믿느냐 했는데 Infallible 하나님의 말씀은 그 목적을 이루고야 만다.

이것이 무오 보다도 훨씬 더 큰 개념이고 더 중요한 개념이고 성경적인 개념이에요. 제가 신학을 하다 보니까 자꾸 이렇게 옆길로 가끔 가는데 죄송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활력이 있어요? 살아있어요. 효력이 있어요. 있으라 하면 있어 지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있어 지는 것입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있으리라 말씀하신 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하나님의 예수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의 심령 속에도 비추어 주신 것입니다. 효력 있는 말씀입니다. 이 살아있고 에너지가 충만한 이 말씀을 비유하자면 칼과 같아요. 칼과 이 말씀은 칼이래요.

성령의 금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는데 양날의 금이래요. 예리(銳利)하대요. 좌우에 날선 어떤 금보다도 더 예리하다. 광선보다 예리하다. 스팅보다 예리하다. 문학가들이 상상한 그 어떤 금보다 예리한데 최상급이에요. 우리말 성경 번역에서는 이 양날 선 이 검이 찔러 쪼갠다. 찔러 오 아파 말씀이 임하면 아파. 오 나를 찌르네. 좀 부정적인 단어 같아요. 찌른다로 번역을 했는데 Pierce 한다는 건데 이걸 달리 번역을 하면 penetrate 한다. 뚫고 들어온다. 이 말씀은 우리 속에 뚫고 들어온대요. 관통한대요.

마치 엑스레이처럼 침투한다.. 말씀이 우리 속에 영혼 속에 침투해요. 그리고 두 번째 단어가 뭐냐 하면 찔러 쪼갠다. 인데 이 쪼갠다는 이 단어가 신약성경에서 두 번 나오는데 같은 히브리서에 두 번 나오거든요. 그 첫 번째 나오는 것이 히브리서 아마 이번에서 2장 4절인데, 성령께서 나누어 주신다. 교회를 위해서 많은 언사를 나누어 주신다. 그러니까 구별을 해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 속에 관통하고, 침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 무질서한 많은 정신세계 생활 습관 이런 것들을 짜임새 있게 질서 있게 잘 구별해 준다, 나누어 준다, 분간해 준다. 어느 정도 짜임새 있게 해 주느냐 하면,

첫 번째로, 혼과 영을 갈라놓는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혼과 영을 동의어로 보고 영혼이라고 생각을 하고 인간의 심층적인 차원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 단어는 사실 너무 폭넓게 사용되고 있어요. 저는 혼은 혼에 대해서는 오히려 모든 생명체의 원초적 욕망, 생명은 욕망이 있어요.

우리도 다양한 욕망을 가지고 살고 있고 어떤 욕망은 선하고, 어떤 욕망은 부정적이기도 하죠. 먹고 싶고 쉬고 싶고, 편하게 살고 싶고, 잘 살고 싶고 하는 원초직 맛있는 거 먹고 싶고 잘 쉬고 싶고 하는 원초적 욕망 이 원초적 욕망으로부터 영혼을 원초적 욕망과 영혼을 이렇게 갈라놓는다. 구별해준다, 짜임새 있게 만들어준다. 영혼.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죠.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어요. 영혼이라는 단어는 굴원의 초사에 처음 나오는 단어인데 인간 정신의 최고로 고매한 차원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진선미를 알고 그래서 예술이 있고 철학이 있고 종교가 있고 하는 모든 영혼을 생각할 수 있고 무한을 생각할 수 있고 과학이 있고 예술이 있고 모든 인간의 최고 정상을 이루는 영혼, 원초적 욕망과 영혼을 이렇게 잘 구별해주고

두 번째로는 우리의 신체적이고 육체적인 차원에서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는다. 우리의 몸도 참 짜임새 있게 해준다. 우리에게 관절이 몇 개죠? 여러분들 관절 몇 개 갖고 있어요? 360개 정도 된대요. 360개가 이렇게 잘 오거나이즈 되어서 관절과 그런데 골수, 골수가 뭐예요? 뼈 안에 있는 생명 물질이겠죠? 생명 물질,. 피를 만드는 것. 골수(骨髓). 이 골수 안에는 뭐가 있죠? 적혈구도 있고 백혈구도 있고 혈소판도 있고 그래서 이 골수가 참 윤택할 때 건강한 몸을 가지는 것처럼 우리의 진액이 있어요. 진액. 우리의 정수가 있어요. 인간 신체의 어떤 핵심적인 물질을 잘 만들어주는

세 번째로,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해줘요. 드디어 마음, 영혼에서 몸과 마음. 우리 의식 세계가 이루어지는 곳이 되겠습니다. 마음. 우리의 마음에는 뭐가 있죠? 많은 생각이 있어요.

많은 생각들을 잘 정리해 준다. 생각. 그리고 우리에게는 뜻이 있어요. 뭔가 이루어야겠다. 해내어야겠다. 목적하는 바가 있어요. 그렇죠? 우리의 마음, 인격의 중심 그러니까 말씀은 우리의 영적이고 지적이고 도덕적이고 정서적인 중심을 아 우리의 전 존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파고 들어오는 거구나 침투하는 거구나 그래서 여기에 한번 물들기 시작 하면 사람의 표정도 바뀌고 행동도 바뀌고 습관도 바뀌고 말하는 것도 바뀌고 태도도 바뀌고 이 사람이 이 인간도 변하네... 이렇게 되죠.

이 말씀이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고 활력이 있어서 효력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effectual, effect가 강해요. 효력이 있어서 전인적인 침투를 하는구나. 전방위적으로 통전 적으로 우리에게 오는 이 무시무시한 말씀이구나. 그래서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오면 갑작스러운 회심(悔心)이 일어나요.

요한 칼빈 선생이 자신은 중세의 온갖 미신에 사로잡혀 가지고 완고하게 그 미신을 믿고 살았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에게 갑작스러운 회심을 주셔서 갑작스러운 회심을 주셔서 내 정신 프레임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이런 고백을 하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갑작스러운 변화를 우리에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죠?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침투하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문자가 어떻게 이리 힘이 셀까요? 왜냐하면, 예수님을 보십시오. 말씀이 육신이 되셨대요.

그래서 예수님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죠. 예수님께서 성경 말씀과 함께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효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느 날 어느 순간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살아있죠. 성경 말씀이 살아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같은 단어예요. 같은 단어, 예수님의 말씀이 운동력이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걸어라 하면 걸어지고 눈 뜨라 하면 눈 떠지고 깨끗해져라 하면 깨끗해지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내 양심을 씻으려고 해도 안 씻어지는데 깨끗해져라 하면 씻어지는 거예요.

내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 내가 지은 죄를 어떻게 사라 받을 수 있겠어요? 벌을 받아야 싸지.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면 그 말씀이 내 속에 들어오는 순간 내 죄가 내 죄짐이 다 벗겨져 버리는 거예요. 죽은 나사로가 사흘 되었지만 나사로야 나오라 하면, 나사로가 수의를 걸친 채 나오는 게 예수님 말씀의 권능이에요.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서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놀랐는데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처음이오 나중이다. 내가 알파와 오메가이다. 곧 살아있는 자다.” 나는 살아있는 자다.

그런데 내가 전에는 죽었다. 볼지어다. 내가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보 열쇠를 가졌느니라.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그냥 살아계신 것이 아니라 완전히 죽었다가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죽음과 저주와 고민과 고통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건져내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런데 칼이래요. 요한계시록 1장 16절에 그가 오른손에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예수님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은 교회의 지도자들이요.

주님의 오른손에 교회 지도자들이 붙잡혀 있는데, 예수님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같이 빛나더라. 그래서 예수님 말씀은 바로 영이고, 생명이에요.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죠. 살리는 것은 0이다. 아무리 여러분들이 화장을 멋지게 해도 0이 죽으면 다 죽은 거다. 살리는 것은 0이다. 6은 무익하다. 내가 너희에게 이런 말이 영이요 생명이다. 예수님 말씀이 영이고 생명이에요. 예수님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오면 우리의 영혼이 새로워지고 우리의 생명이 새로워지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교회의 많은 교부들과 많은 성도들은 이런 체험을 우리에게 말해주죠. 다산 정약용이 1783년-4년 경희시 시험에 합격을 한 이후에 저 다산의 두물머리에서 배를 타고 그의 형제들과 함께 배를 타고 한강으로 내려오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벽 선생과 함께 배를 타고 내려오는데 내려오는데 성경 말씀을 그때 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성경 말씀을 들었는데 다산의 고백이에요.

배 안에서 천지가 창조되는 시원이나 천지창조 이야기, 완전히 뭐 태극이니 음양이니 기발이니 이 조선 성리학의 그 번세한 세계 속에 살고 있다가 천지가 창조된 시점에 있었다. 인간에게 신체와 영혼이 있고 그리고 삶과 죽음의 이치에 관하여 들으니 놀랍고 기이하여 마치 은하수가 무한한 것 같았다.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몇 권의 책을 보고 비로소 기뻐하여 마음이 기울어졌다.

조선 최고의 경학자 다산은 이 세계관의 변화, 말씀 속에서 온 세계, 동양의 주역적 세계관에서 성경의 창조와 구원의 세계관으로 이동을 하니까 사서삼경과 그가 평생 공부했던 모든 글자가 다 살아 움직이고 전혀 다르게 해석이 되는 거예요. 말씀이 들어오면 우리의 세계관이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고, 인생관이 변하고, 인생이 새로워지는 말씀이 살아 있고 효력이 있는 거야. 그렇다면 이 예수님의 영을 우리가 어떻게 받을까요? 이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는 어떻게 받을까요? 어떻게 받죠?

예수님의 영을 어떻게 받고, 예수님의 생명을 어떻게 받을까요? 쉽조? 답은 믿음으로 받아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살아가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하려 함이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시마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랴 심플 그런데 질문이 있어요. 함정이 있어. 그럼 첫 번째 질문.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 되나요? 믿어야 구원받나요? 조건절이 있어야 결과절이 발생하나요? 내가 믿어 구원을 받았으면 믿음이 내 공로가 되지 않아요. 그렇지만 믿음은 결코 공로가 될 수가 없죠.

믿음이 공로가 될 수 없으면 결코 조건이 될 수 없을 거예요. 믿음이 조건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조건이 아니라면 수단이 되겠죠. 조건은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인데 수단은 이미 주어진 것을 받는 거죠. 수단은 통로예요. 그럼 구원은 뭐예요?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래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시기를 원하는데 우리가 그 구원의 선물을 받으면 돼요. 손을 내미는 거예요. 열두 해.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니까 혈루증(血漏症)이 즉시 그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선물, 영생의 선물, 은혜의 선물,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이 무궁무진한 보화의 선물, 이 모든 게 다 받겠다는 거예요. 받을 거예요?

안 받을 거예요? 받겠다는 게 믿음이야. 믿음은 이렇게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두 번째 질문 그럼 회개해야 믿을까요? 믿을 수 있나요? 성경에는 믿기 전에 널 회개하래요. 이때부터 예수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러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그렇다면 회개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나요? 여기에 오랫동안 교회 나오면서도 회개하기 싫어서 안 믿는 인간들이 많을 거예요. 회개해야 믿을 수 있으면 회개가 구원의 조건이 될 것 같아요. 믿음의 조건이 되는 어느 신학자가 열매로 알리라 이런 큰 두꺼운 책을 썼는데 회개의 열매가 있어야 믿음이 있는 거예요.

일반적으로 보면 믿기 전에 크게 회개를 해요. 그런데 회개가 그냥 되나요? 회개하고 싶어도 안 돼요. 왜 안 돼요?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인간이기 때문에요. 죽은 인간이 무슨 회개를 하겠어요? 그러니까 회개를 하려면 신학적으로 효과적인 부름이 있어야 돼요. Effectual calling이 있어야 하나님이 효과적으로 불러주셔야 회개가 되는 거예요. 회개를 하니까 효과적인 부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죠.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이 어디에 있죠? 에베소서인가요?

너희가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니. 이는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자가 없네. 여기 토비새의 교인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 정도는 지금 진짜 중요한 거예요. 복음이 뭐냐는 거예요. 믿음이 구원받는 조건이 아니에요. 회개가 믿음의 조건이 될 수가 없어요. 아 그러면은 그러면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을 주실 때는 근거가 있겠죠. 구원의선물 선물 선물인데 이 선물의 근거가 뭘까요?

하나님은 무엇에 근거해서 우리에게 영생하는 선물을 주시죠?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선물을 주실까요? 선물의 근거, 이것이 바로 질문이에요. 복음이 뭐냐는 거예요. 복음이 뭐냐? 복음의 골수가 뭐냐는 거예요. 복음의 진액이 뭐냐는 거야. 복음의 정수가 뭐냐는 거예요. 이 진액이 이 진액이 혼탁해지면 우리 영적 생활 전체가 혼탁해지는데 하나님은 무엇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놀라운 선물을 주시는가? 죄와 참 저주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새롭게 살 수 있는 새 생명, 구원, 거듭나는 이 은혜를 주신 근거가 뭐예요? 하나님?

근거가 이건 좀 고급 문법에 속해요. 고급문법, 심청 문법이에요. 그걸 우리의 신앙 고백에서는 은혜언약이라고 해요. 은혜언약. 은혜언약. 우리 한번 같이해볼까요? 은혜 언약, 여러분들 영어 잘하니까 카빈은 또 그레이스, 그레이스의 언약이에요. 언약에는 크게 두 개가 있는데, 행위 언약이 있고 은혜 언약이 있어요. 이 언약은 아담과 하나님이 내주신 언약이에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어요. 낙원을 주셨어요.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그런데 단 하나 금했어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는 거예요. 단하나,,,.

그것을 아담과 하와가 깨뜨리자. 그 언약이 깨어진 거예요. 행위 언약은 행위 언약이 깨어졌어요. 그래서 낙원에서 추방되었어요. 그럼 이 완전한 아담과 하와도 이렇게 범죄할 수 있으면 이 인간들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하나님의 대책은 뭐예요?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시간이 있기 전부터 시공이 있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성부 아버지와 성자 하나님 사이에 영원한 언약을 맺었는데 그게 바로 은혜 언약이고 구원 언약이에요.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 이 언약이 있었던 것.

그러니까 뭐냐 하면, 약은 계약이 아니에요. 계약은 조건이 있어요. 이 조건이 깨어지면 관계가 깨어지는 거예요. 은의 언약은 조건이 깨어져도 관계가 깨어지지 않아요. 은혜 언약은. 그러니까 뭐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죠? 은혜 언약은 무조건적이에요. Unconditional해요. 은혜 언약은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이에요. 모든 계약과 조약은 쌍방적인데 은혜 언약은 일방적이에요. 하나님이 하나님이 initiate한 거예요. 하나님이 시작한 거예요. 하나님이 모든 것들을 다 이끌어 가세요.

모든 계약과 조약은 영원하지 않아요. 국제적인 조약도 5년 이상 가는 게 거의 없대요. 이 언약은 영원해요.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이고 영원한 언약이에요. 그래서 이 언약은 희사(喜捨)라고 할 수 있어요. 선물이에요. 오늘 우리가 왜 이 성경에도 없는 은혜 언약 이야기를 할까요? 복음의 골수가 뭐냐는 거예요. 복음의 골수. 왜? 우리가 이 은혜 언약을 믿고 살아야죠? 우리 장로교 신앙 고백은 Westminster 신앙 고백에 근거하는데 Westminster 신앙 고백의 제7장이 바로 이 은혜 언약을 길게 다루어 줘요. 새 언약이에요.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 새 언약의 핵심 내용이 바로 은혜 언약인데 왜 우리가 이 언약을 늘 믿고 살아야 할까요? 이 언약을 지켜야 할까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이 은혜 언약을 물타기해요. 이 은혜 언약을 왜곡해요. 우리가 누가 내가 우리가 어떻게 해요? 쉽게 우리가 율법주의에 빠지면 돼요. 율법주의. 율법주의라는 율법주의가 사전적으로는 쉬워요. 선행과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 거라는 건데 율법주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예수님이 평생 온갖 다양한 사람들하고 싸운 게 율법주의예요. 그러니까 교회의 가장 무서운 질병은 율법주의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율법주의는 힘이 너무너무 세요. 심층적이에요. 마치 헤라클레스가 두 번째 싸움을 한 게 레로네아의 히드라인데, 율법주의는 히드락 같아요. 열 개의 머리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한 머리 자르면 한 머리에서 막 두 개가 만들어져요. 그리고 열 개 중에 한 머리는 불사의 머리예요. 안 죽어요. 자를수록 더 많이 생겨요. 이런 율법주의 그리고 독이 치명적이죠. 그리고 독사처럼 이렇게 딴 데 보는 것 같은데, 나를 물어요.

율법주의 우리 모두 쉽게 빠져요. 그러니까 율법주의자들은 좀 지독한 율법주의자들이 우리 주위에 많아. 한국 교회 너무 많아졌어. 소위 진리와 진실과 정의와 교리를 독점하는 이 무서운 인간들. 우리 충분히 율법주의자들에게 시달렸어. 이제는 바닥에서 뒹굴다가 우리 일어나서 힘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율법주의는 한마디로 정의를 주장하지만 정죄하죠. 그렇죠? 정죄하는데 율법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정서예요.

정의도 아니고 정죄도 아니고 정서예요. 그러니까 율법주의에 감염되면 하나님이 갑자기 좀 싫어져요 그리고 하나님이 너무 인색한 것 같아요. 하나님이 너무 가혹한 것 같아요. 하나님. 하나님은 선하시잖아요. 탕자의 아버지처럼 선한 아버지신데, 하나님의 선하심이 믿어지지 않아요. 그러니까 내 마음이 너무나 싸늘해져요. 냉정해져요. 그러니까 율법주의는 마치 뭐와 같으냐 하면 산성비 같아요. 산성비 내리면 다 죽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마음속에 산성비 내리는 거 좋아요? 싫어요? 우리 교회 산성비 내리면 될까요? 안 될까요? 우리에게는 단비가 내려야죠.

말씀은 단비고, 율법주의는 산성비예요. 초토화시켜요. 모든 생명체를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도 처음에 율법주의에 빠진 거예요. 사탄이 하나님께서 정말 동산에 있는 모든 열매 못 먹게 했냐? 충격을 받은 거야. 하나님은 다 먹게 하셨어요. 그러니까 하와가 뭐라고 대답을 해요? 다 먹게 하셨지만, 하나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그러니까 말씀해서 말씀을 이렇게 믹스해버리죠. 언제 하는지 이런 짓이 말랬어요. 그러니까 갑자기 하나님도 교회도 신앙도 다 좀 싸늘해지는 거야. 그러니까 마음이 차가워지는 거예요. 냉혹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은혜 언약 가운데 살아요.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이고 영원하신 은혜 언약 가운데 살기 때문에 우리가 그 통치 가운데 늘 사려고 해야 돼요. 이 은혜 언약 속에 살아야 우리가 율법주의를 이기고 또한 반율법주의를 극복할 수 있어요. 이상하게 율법과 율법이요. 하는 인간들 보면 지긋지긋하죠. 자기에게는 안 갖다 대요. 그러니까 이 율법주의자의 대표적인 인간이 레미저라블의 자베르 같은 인간이에요. 19년 전에 빵 하나 먹은 이 장발장이 아무리 변해도 끝까지 추적해서 추락시키려고 하는 율법주의가 이 나라에서 물러갈지어다.

은혜 언약이 임해야 이 율법주의를 임해요. 그런데 자제르가 마지막에 어떻게 해요? 자살해요. 그러니까 율법주의에 빠지면 이상하게 반율법주의자가 돼요. 그래서 율법주의하고 반율법주의는 이란성 쌍둥이래요. 여러분들의 심령이 참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면 딴짓해요. 율법 다 깨뜨려요. 그런데 은혜 받고 새 언약 받으면 뭐예요? 우리는 율법이 이제는 우리의 생활의 규범이 되는 거죠. 이렇게 되는 거예요. 오늘 주제가 뭐죠? 복음의 골수, 이게 복음의 골수예요. 믿음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에요. 회개해야 믿음 있는 거 아니에요.

회개하며 믿고. 그렇죠? 회개와 믿음의 관계는 회개하면서 믿고 믿으면서 회개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야. 음. 우리에게 복음의 골수가 있어요. 이 골수를 안 지키면 이 골수를 잊어버리면 구원파에 빠져버려요. 엉뚱한 신앙생활을 하는 거예요. 이 골수가 윤택하기를 바랍니다. 잠언 말씀이죠. 이것이 이 지혜가 잠언의 지혜가 내 몸의 양약이 되며 내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복음의 골수가 믿음의 골수가 윤택해지는 우리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우리 다 함께 오늘 주신 말씀 하나라도 우리의 심령 속에 침투하여 우리의 골수가 백혈구가 막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자라지 않고 우리 믿음의 골수가 복음의 골수가 윤택해질 수 있도록 같이 기도합시다.

♣요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서, 이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 있고 효력 있고 힘이 있어서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몸에 침투하기를 간구하며, 이 나라와 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와 세속주의와 타락하는 이 모든 정신세계를 우리가 넘어서 이제는 예수의 영을 받아야 한다.예수의 생명을 받아서 이 복음의 골수가 우리 속에 무궁무진하게 솟아나서 영육이 건강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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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부
♣주일예배(주후 2026년 1월 18일)-3부-4부
제목: "두려움의 시작은 망각이다-Fear Begins In Forgetfulness"
말씀: 신명기 1:29-33
찬양인도: 쉐키나, 할렐루야 찬양대, 시온찬양대
대표기도: 김상윤 장로님(3부), 문윤아 권사님(4부)
사회: 장단희 부목사님, 임상규 부목사님
헌금찬양: 이정명(테너)
 
설교자: 박성민 목사님(한국대학생 선교회 대표)-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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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29-33,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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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부-박성민 목사님(한국대학생 선교회 대표)-초빙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음과 생각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거 같습니다. 이 세상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연구하면서 네 가지 단어로 축약을 해 봅니다. BANI, 영어 단의 앞자리입니다. 바로 세상은
첫 번째로
B는, 브리틀(Brittle)하다. 잘못 건들면은 깨져 버릴 수밖에 없는 그런 세상, 이미 경험하고 계실 것입니다. 국제 정세가 그렇고 어떤 년에서든지 굉장히 브리틀한 그런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A는, Anxious, 모든 사람들이 불안해합니다. 앵크셔스(Anxious)의 앞자리입니다. 모든 사람이 불안해하고 그 불안 속에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리고 모든 상황을 보면서 사건 사건들이
N은, 비선형(Nonlinear)입니다. 그래서 nonlinear, 이거 하나가 저걸로 유도하지 않습니다.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히고 설켜 있는 세상, 그렇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I는 Incomprehensible,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세상이다. 그래서 B A N I하고 있는 것이고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과연 그런 속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이냐라고 하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특별히 새해를 맞은 후 지금 한 20일 정도가 지났습니다. 새로운 과연 어떤 각오로 여러분들은 살고 계시나요? 우리가 세를 맞았지만 세상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점점 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그런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거 같습니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저는 이 질문을 던지면서 오늘 말씀을 보기를 원합니다. 왜 그러냐면 우리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 큰 답은 맞습니다. 역사는 누구 손에 있습니까? 하나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했던 그러한 어리석은 죄에 빠지지 말아야 됩니다.
 
지금 신명기 1장은이 같은 사건을 갖다가 민수기 13장 14장에 나온 사건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대상이 다릅니다. 민수기 13장 14장 같은 경우에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망설였기 때문에 못 들어갔던 전 세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장은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면서 이제 들어갈 세대를 향해서 회고해 보면서 거기서 얻어질 교훈을 갖다가 주고 있는게 바로 신명기 1장입니다. 새로운 해. 또 사랑의 교회는 이제 새로운 단계로 또 새로운 목사님을 모시고 담임 목사님으로 연결이 돼서 이제 꿈을 꾸시는 걸로 들었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98..88. 엄청난 숫자였습니다. 본입되었다고 하는 것 굉장히 저는 동일합니다. 그걸 보면서 여러분이 교회뿐만 아니고 나의 삶도 올 한해 어떻게 살 것이냐? 지금
 
새로운 세대들이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면서 보시면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시면은 특이한 것이 나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밑에 보면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다라고 돼 있습니다. 참 특이합니다. 두려움이 믿지 않음과 연결이 돼 있습니다. 결국 그 두려움은 무엇인가라고 하면 쫓아가 보면 먼저 답을 드리겠습니다. 두려움은 오늘 제목에 나와 있듯이 망각이라고 하 잊어버린다라고 하는 거 자체가 두려움의 모든 시작이 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세를 시작하면서 올 한해 여러분들이 세 가지를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해서 기억하면서 승리하시는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세 가지,.
 
첫 번째는 바로 뭐냐면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관점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그것을 기억함으로써 우리의 관점을 새롭게 해야 된다. 무슨 말씀일까요?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12명의 정탐꾼이 뽑혀 가지고 너무나 잘하시는 말씀 같이 동일한 곳에 동일한 기간 동안 동일한 것을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열명과 두 명의 본 것이 다릅니다. 열 명은 도저히 이길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날 수밖에 없게 그들의 성은 하늘을 찌를 듯하고 거기에는 거인 족속 의 아낙 자손이 지금 그곳을 갖다가 차지하고 있는 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들의 보고를 보면은 누구든지 들었을 때 도저히 이길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근데 두 사람은 특이하게 얘기합니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현실 이상을 봅니다. 아니다.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리라..라고 얘기를 합니다. 과연 무엇이 차일까요?
 
저는 이것이 늘 궁금했었습니다. 왜 이렇게 같은 곳을 같은 기간 동안에 같은 것을 봤는데 평가는 이렇게 다를 수 있느냐? 바로 뭐냐면요. 우리의 심리적으로 우리 인간이 그렇다고 하는 겁니다. 유명한 심리학자죠. 전나탄 하이트라고 하는 사람이 the rightous 마 mind라고 하는 우리나라에 바른 마음이라고 번역이 돼 있습니다. 바른 마음이라고 번역된 곳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해 가지고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직관적으로 판단한 후에 이성을 가지고 자기 판단을 정당화 한다라고 하는 얘기를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은 바로 우리가 무슨 사건이 됐을 때 거기에 상황을 보면서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갖고 있는 이성으로 내가 내린 결론이 맞다. 결국 이성의 역할은 우리 가운데 무슨 역할 하냐면 변호사 역할밖에 못 한다고 하는 겁니다.
 
저도 고민을 걸 많이 했습니다. 과연 이게 무슨 말일까? 그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은 열명을 이하가 되기 시작을 합니다. 열 명은 자기네들은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것마다. 이길 수 없는 이유 들이 눈밖에 보이기 시작을 합니다. 두 명은 바로 이길 수 있다라고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길 수 없다라고 하는 걸 보기보다는 이길 수 있는 이유를 찾은 게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이라고 하는 거기서 이유를 찾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경험하시는 것은 나는 어떻게 보고 있느냐라고 하는 질문입니다. 자, 그렇다면은 바로 나의 직관, 직관이 무엇일까? 직관이라는 것을 내가 판단한다면 어떻게 이 직관을 바꿀 수 있겠느냐? 그게 바로 가장 핵심일 것입니다. 그 직관을 바꾸는데 가장 핵심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말씀의 근거에서 내 생각을 바꿔 가는 때만이 바로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생각의 법칙입니다. 죤 맥수엘 이라는 사람이 연구를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생이 바뀌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인생이 바뀌어질 것을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근데 그렇게 해 가지고 인생이 바뀌지 않습니다.이 사람 말합니다. 뭐부터 바뀌어야 되냐면 바로 가장 힘든 작업인데 그게 뭐냐면 생각이 바뀌어야 된다라고 하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바뀌는 건 뭡니까? 지금 제가 여기서 생각이 바뀌는 건 단순한 생각이 바뀌는게 아닙니다. 성경 속에 나와 있듯이 골로새서 3장 16절에 나와 있듯이 뭐라고 돼 있냐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 풍성하게 거하사” 라고 하는 겁니다. 뭐냐면 말씀 속에 들어가야 되고 그 말씀이 우리를 압도할 수 있게 우리가 허용을 해야 된다는 것이죠. 다시 한번 이성으로 돌아갑니다. 이성 여러분들은 나 여기에 계시는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배움을 많이 가지신 분들 중심으로 사는 지역에 여러분들이 모이셨습니다. 이성을 저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도 이성을 갖다. 엄청나게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성은 우리를 바뀌지 못합니다. 이성은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바꿀 수 있는 환경으로 인도할 뿐입니다.
 
말씀에 첩할 수 있게 하고 그다음에 이렇게 예배에 나올 수 있게 하고 수많은 선택 중에서 뭐를 선택할 수 있는 것에서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제안을 할 수 있는게 바로 이성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뭐가 이루어집니까? 점점 점점 바뀌기 시작합니다. 뭐가 바뀝니까? 나의 관점, 나의 직관이 바뀌기 시작한다.는게 바로 성경에서. 그러다. 보니까? 로마서 12장 2절에도 뭐라고 돼 있습니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바로 많은 사람들이요. 자연스럽게 직관은 어디에 지배를 받습니까? 세대에 이 세대를 세대에 지나가는 패턴, 이 세태 자가 우리를 갖다가 지금 주관하고 있습니다. 근데 그다음에 뭐라고 돼 있냐면은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라고 돼 있습니다. 마음이 바로 뭡니까? 직관의 변화를 위해서 우리가 뭘 해야 되냐? 말씀 속에 우리를 드리고 말씀을 외울 뿐만 아니라 말씀 속에 우리의 생각이 삼기는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도 강조를 많이 하고 계시죠. 큐티라고 하는 거. 아침에 일어나서 말씀의 묵상을 통해서 그 말씀을 붙잡고 하루 동안 살아가는 것, 그러한 거기에 매몰되는 훈련을 통해서만이 직관이 바뀔 수가 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맥선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렇게 해서 생각이 바뀔 때만이 뭐가 바뀝니까? 바로 드디어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돕기에 나를 향한 믿음이 바뀌기 시작을 합니다. 나를 향한 믿음이 바뀔 때문에 바뀔 때만이 뭐가 가능합니까? 나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생기기 시작을 합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생길 때 내 태도가 바뀌기 시작하고, 내 태도가 바뀔 때만이 행동이 바뀔 수 있고 행동이 바뀔 때만이 실력이 바뀔 수 있고 실력이 바뀔 때만이 드디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다 어디서 시작을 합니까? 생각의 변화에서 시작합니다. 과연 무엇으로 여러분의 생각의 그릇 속에 채우시겠습니까?
 
저는 올 한해가 여러분의 다른 무엇보다도 말씀으로 여러분의 생각의 그릇을 가득 채우시는 우리 사랑교회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 그게 바로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 안에 우리가 우리를 갖다가 드리기 시작했을 때 그 말씀은 들어와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갖다가 감찰하며 옳은 것으로 인도하실 역사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여러분들이 마음을 들으시고 여러분의 직관의 변화를 통하여서 이제 느끼시는 모든 거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바로 열 명이 아니라 열 명의 실패한 자들이 아니라, 두 명의 여호수아 갈릴과 같이 제대로 볼 수 있는 그런 삶을 사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를 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억하며 역사를 기대하며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억해야 한다는 겁니다. 특이한 건 바로 열 명은 보고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열 명 속에는 열 명의 보고 속에는 바로 애굽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은가에 대한 얘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출애굽하면서 그들이 경험한 애굽에서의 그 열 개의 재앙 얘기도 없습니다. 어떻게 홍해를 건너냐는 얘기도 없습니다. 만나 매출하기 얘기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은 계속적으로 뭡니까? 현재 눈앞에 보이는 것이 그들의 전부였습니다. 그게 인간의 약점입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레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인간은 바로 뭐에 비유할 수 있냐면은 위에서 맹금류가 노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눈앞에 있는 곡식 몇회의 한 눈이 팔려 버린 그런 참새 같은 존재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기억해야 되는게 뭐 내가 그런 존재기 때문에 내가 그런 존재일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을 갖다가 늘 생각하며 살아야 되는게 바로 우리가 달라질 수 있는 방법입니다.
 
여호수아 갈렙은 부정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갈렙 얘기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들은 말할 때 우리는 그들 앞에 메뚜기 같은 존재다.라고 얘기하지만 여호수아 갈렙은 뭐라고 얘기했냐면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저는 이게 바로 하나님이 지금까지 어떻게 인도해 오셨는가를 염두해 두고 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 그들의 사고 속에 있는 것 이상을 볼 수가 있었던 것이죠. 전 그래서 늘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뭘 이성일까요? 비이성일까요? 아닙니다. 믿음은 초이성입니다. 이성을 뛰어넘는 것이죠. 그럴 때만이 바로 온전히 거기에 계시는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눈에 보이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그 하나님의 역사와 함께 하심이 있다라는 그 속에서 보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질 수가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이 이 시대를 보면 저는 한국 교회는 지금 사랑의 교회와 같이 건강한 교회가 있습니다만은 대부분의 교회들을 제가 전국적으로 다니면서 지저스 페스티벌이라고 하는 그것을 통해서 교회 훈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거기에 지금 32개 도시에 있는 각자의 중요한 조그만 소규모 도시들 중심으로 해 가지고 도와주고 있는데, 제가 가서 발견한 것은 교회 전체가 아주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미 통계적으로도 나타나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신뢰도, 영향 모든 것이 지금 계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작년, 제작년 통계죠. 그 재작년에 통계 그 전에 5년 동안에 개신교회 20대 30대 특별히 20대 중심으로 50%가 줄었다 라고 하는 그러한 통계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건 뭘 말합니까? 이대로 가면 한국교회 미래가 굉장히 어두울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많이 걱정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한국 교회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 걱정하지 않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어떻게 여기까지 인도해 오셨는가?
 
그걸 돌아보면서 우린 거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 주셨으며 그 복음이 전해 왔기에 우리한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전 세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일들이 우리 가운데 많이 일어나고 일어났었고 경험했었고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고 계시다고 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들어 가는 상황 속에서도 지금 이곳저곳에서 하나님께서 새 일을 시작하시는 역사가 굉장히 많습니다. 오늘 잠깐 제가 이때 한국 CCC에서 여름 수련회의 장면을 잠깐 보고 여러분께 말씀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영상을 부탁드립니다.
 
4박 5일 동안 진행된 여름 수련에 만여의 학생들이 모여 가지고 뜨겁게 찬양하고 그 속에서 세계의 복음화를 꿈꿨던 그것이 지금 제 눈앞에도 생생합니다. 저들 가운데 작년 같은 경우에만 해도 3,400명 넘는 사람들이 해외 단기 선교를 떠났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이런 시대 젊은이들이 어떻게 뜨겁게 하나님의 복음을 들고 이 땅에서 우리의 역할을 감당 위해서 살고 있는가? 그것을 여러분들이 한번 보시라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저는 소망이 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면 저들한테 제가 발견한 것은 바로 뭐냐면은 저한테도 부탁하는게 목사님 우리한테 기도할 시간을 더 주세요. 저는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바로 거기서 전 소망을 봅니다. 우리 다음 세대를 향한 하나님께서 역사를 시작하고 계신다라고 하는 것을 봅니다. 작년 말에도 금식 수련회를 하는데 금식 수련회 재작년에 비교해서 600여명이 더 와서 전국적으로 7,200명 정도가 3박 4일 동안 금식을 하면서 자신을 위해서 캠퍼스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살아 있습니다. 전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한국 교회에 소망이 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여기까지 인도해 오셨고 우리 한국 교회를 축복해 주셨고 어딜 가나 제가 발견한 것은 전 세계 어딜 가나 한국 사람이 가는 곳은 교회가 세워진다라고 하는 겁니다. 우연일까요? 전혀 우연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사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원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더라도 말씀을 가지고 한번 점검해 보시면서 관점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지금 앞으로 어떻게 인도하실 것인 것을 기대하며 사시는 우리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세 번째는 바로 뭐냐면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면서 미래를 꿈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셔야 됩니다. 저는 언어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이 언어로 실패를 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12명이 돌아와서 보고를 할 때 백성들이
 
열 명의 얘기를 쫓아가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수기 14장 28절에 성경에 나오는 가장 무시무시한 얘기가 나옵니다. 14장 28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하는 말씀을 합니다. 이기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결코 그 땅에 돌아갈 수가 없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들은 한 사람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호수아 갈렙이라고 하는 그 두 사람과 새로 태어난 세대를 이끌고 들어가게 됩니다. 특이한게 바로 사람의 심리입니다.
 
저는 에밀 쿠에라는 자기 암시법을 개발한 사람의 얘기를 들었었습니다. 에밀 쿠에라는 사람이 자기 암시법을 개발합니다. 자기 암시법은 바로 뭐냐면 너무나 간단한 것입니다. 돌아보면은 실험을 하기 위해서 말성꾸러기 아이들을 모아놓고 훈련을 시킵니다. 그리고 그들마다. 아침이 말을 갖다가 수십 번을 반복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바로 day by day. In every way I'm getting better and better, 매일매일 모든 면에서 나는 점점점 좋아지고 있다. 매일매일 모든 면에서 나는 점점점 좋아지고 있다. 굉장히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갖다. 수십번씩 함께 복창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데 아이들이 며칠 지나면서 바뀌기 시작을 합니다. 자기 암시법입니다. 사람은 신기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요즘에 자기 개발법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게 뜨고 있습니까? 퓨처 셀프라고 하는 그런 제목의 책들이 뜨고 있습니다. 퓨처 셀프는 사실 한 2년 전에 보면 벤자민 하디라고 하는 사람이 바로 원제로 “be your future self now. 바로 지금 너의 미래에 네 자신이 지금 되는 것” 그것을 갖다가 얘기하면서 책을 냈는데 그게 상당히 반향을 여러는데 한국에서
 
특별히 히트를 했습니다. 한국의 유사한 책들이 굉장히 많이 나와 있습니다. LG의 다섯 개 부분에 전체 HR 모든 휴먼 리서스의 책임자였던 김홍식이라고 하는 전 부사장도 책을 썼는데 책 제목에 여러분들이 이미 느끼실 겁니다. 책목이 이겁니다. “5년 후에 나를 생각했을 뿐인데” 생각하는 생각했을 뿐인데 달라지는 겁니다. 5년 후에 나의 모습을 생각만 해도 달라진다는 겁니다. 인간이 그렇습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건 뭐냐면은 지금 미래에 대한 생각을 갖다. 긍정적이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산다면 어떤 일어날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죠. 그냥 단순히 아무거 없이 말만 해도 긍정적으로 말을 했을 때 바뀌는 존재가 인간이고 아무 근거 없이 그냥 나의 미래만 꿈꿔도 지금 현재 삶이 바뀌는 것이 인간인데,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 보시면은 말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잖아요. 이걸 가지고 이것에 근거해서 나의 미래를 갖다가 꿈꾼다면 어떤 일을 하겠습니까? 여러분 일어날까요? 안 일어날까요? 일어납니다. 여러분, 그게 바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서 도전해 주고 계시는 바로 영역이죠. 너희가 꿈을 꾸라. 바로 꿈을 꾸고 비전을 가지면은 뭐가 일어납니까? 내가 하나님 이런 일을 원합니다. 이번에 금식 기도에서도 우리 학생들이 전국에서 7천여 명이 먹는 학생들이 꿈꿨던 게 바로 뭐냐면 주님 나의 앞으로의 내 미래 10년 후에 나의 모습이 이렇게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써가는데 그걸 가지고 올 한해를 보면서 순간순간 거기에 근거해서 디시전 필터 역할을 할 겁니다. 어떤 결정을 해야 될 것이냐? 바로 미래에 나의 모습이 제대로 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다음에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것이 나의 현재 모습이 나를 갖다가 주관하는 앵커가 되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 미래의 모습이 나를 주관하는 결국 아이덴티티 정체성 앵커가 될 것이고, 어떤 일을 당해도 그것을 갖다. 해석하는 미닝 프레임이 달라질 것입니다. 의미를 갖다가 보는게 달라집니다. 바로 그러한 나의 모습이 되기 위해서 이러한 어려움은 결국 그런 모습을 갖기 위한 지나가야 되는 과정이다. 라고 느낄 때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걸 위해서 가장 중요한게 뭡니까? 먼저 하나님 앞에 꿈을 꾸고 그 꿈을 갖다가 우리가 정리를 한 다음에 그것을 가지고 지금 나의 모습에 권위를 가지고 죽 주관할 수 있도록 내가 지속적으로 허용을 할 때 우리의 모습은 달라질 수가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꿈을 꿉니다. 어떤 꿈을 끄냐면 바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끌어 오셨습니다. 어떤 꿈이냐면 지금 한국 교회가 어렵다라고 하지만 저는 거기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역사를 이미 시작하시는 증거들을 저는 보고 있고 가장 어려울 때, 그때가 바로 뭐냐면은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때입니다. 인간의 절망의 바닥점이 하나님 역사의 시작점이 됩니다. 어렵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오히려 꿈을 가져야 될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계속적인 꿈은 바로 2028년에 제주에서 꿈을 꾸고 있습니다. 어떤 꿈을 꾸냐면은 바로 한국에서 지금 하나님이 어떤 일을 만들고 계십니까? 한국 민족에 대해서 이렇게 한국 민족이 지난 5천 년 동안 이렇게 떠본 적이 있습니까? 어딜 돌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여권 파워가 2위다라고 얘기를 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1이나 2위나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어디나 들이밀어도 우리는 쉽게 갈 수 있는 그러한 특이한 나라가 됐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이 명동을 한번가 보시기 바랍니다. 과거에는 동남아 중국계 분들이 계속적으로 명동에 왔었습니다. 지금은 명동에가 보시면 달라진게 있습니다. 어디가 오신지 아십니까? 웨스턴에서 커케이션들이 굉장히 많이 오고 있습니다. 전 이거는 하나의 굉장한 변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미국에가 보면은 제가 작년에도 미국에 갔을 때, 그때 즈음이 바로 뭐였냐면은 헐로윈이었습니다. 할로윈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뭐에 가장 인기가 있나 그랬을 때 바로 캐데헌이라고 하는 거기서 나오는 것 그것은 금방 나오자마자 동인하는 특이한 것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올해 골든 글로브도 두 개나 차지를 했습니다. 대현이 우연일까요? 저는 의원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한국을 하나님께 띄워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저희가 제주도에서 꿈을 꿨던 거는 한국 전체 내에서 어느 나라나 아무리 어려운 나라도 비자 없이 올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바로 제주도입니다. 누구나 올 수가 있습니다. 근데 그곳에서 꿈을 꿨던 거는 하나님 이곳이 전 세계 선교 운동을 일으킬 수 있는 허브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시작했었습니다. 그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어떤 일이 일어났냐면 바로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받아 주셨는지 바로 폭삭 속았수다가 뜨기 시작을 했습니다. 폭삭 속았수다가 뜨기 시작하니까? 제가 그 꿈을 갖다가
 
전 세계 다니면서 리더들하고 나눴더니 이분들이 얘기를 합니다. 아 그 섬이 그 섬이냐? 그 영화를 보고 그 드라마를 보고 넷플릭스에서스 보고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기 때문에 가족들하고 꼭 가고 싶은 버ர்த்த리스 중에 하나였다라고 얘기를 하는 걸 들었습니다. 전 이런 모든 것들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한국 교회를 보고 한국 교회 통계를 보면은 어둡지만 저는 늘 말씀드렸다시피 확신하는 건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셨는가 보자. 하나님이 어떻게 약속을 해 주셨는가? 우리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서 우리 민족이 선교 민족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바로 1980년에 세계복음화 대성회 때 10만 명의 청년이 일어나서 기회를 주신다면 1년이라도 세계 선교를 위해서 섬기겠습니다 라고 일어섰던 10만 명이 지금 그 사람들이 선교사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지금 다시 한번 또 하나의 기회가 오고 있다라고 생각을 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 한번 새로운 힘만이 아니라 우리 젊은이 모두가 어떤 모습인지 풀타임 선교사가 아닐지라도 자기가 비즈니스라고 뭐라든간에 하나님의 선교의 그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헌신하는 그런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것을 놓고 저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갖고 있는 꿈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갖고 계시는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꿈이고 지금까지 제가 살아왔던 그런 꿈이었고 앞으로도 그것을 위해서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근데 저는 여기서 또 하나 여러분하고 도전을 드리길 원합니다. 이건 단순한 우리 전체 교회 하나님의 꿈뿐만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실뿐만 아니라, 더 풍성히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하나님은 어딜 같은지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불 가운데 지날 것이라도 보호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어디를 가시나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 여러분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여러분들이 그 약속을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삶을 갖다가 살아가면서도 하나님 그렇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꼭 붙잡고 살겠습니다. 상황의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겠습니다. 부정적으로 보인다면은 이제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말씀을 기억하면서 다시 한번 나의 관점을 점검하시면서 그 말씀을 통해서 새롭게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오신 그것을 기억하시면서 하나님이 이제 역사하실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며 사시는 한 분 한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꼭 붙잡고 미래의 꿈을 꾸는 우리 귀한 한 분 한 분 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요약
21세기에 바로 이러한 주님의 비전과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역사를 우리가 생각하며 살 수 있는 특권 주신 것 감사해야 한다. 세상은 어지럽듯이, 세상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그런 두려움에 가득 찬 그런 세상을 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모든 두려움의 시작은 망각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주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기억함으로써 우리의 관점이 바뀔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으로 단련되고, 준비된 그러한 관점으로 메사를 보면서 우리가 그 안에서 파괴하고 또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인도해 오셨기에 바로 그것을 잊지 않아야 하며, 인도하셨기에 어떤 상황 속에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야 한다. 절망치 않고, 포기하지 않고,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가 되어 많은 성경에 수많은 약속들, 우리가 약속을 다시 한번 붙잡아야 한다. 미래를 향해서 주님 기대하면서 준비하는 꿈을 꾸는 자들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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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1월 11일)-로마서 강해 서론
설교제목 : “정결함으로 로마서를 시작합니다”
(Beginning Romans with a Pure Heart and Repentance)
성경본문 : 로마서 1:1~2, 6~7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이윤기 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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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2, 6~7,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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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대가 고백한 대로 선한 목자 되신 주님께서 우리 한 분, 한 분에게 참된 복의 수혜자가 될 수 있도록 응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 로마서를 오늘은 서론 좀 하는데, 이 로마서 들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환경 주시고, 또 믿음 주시고, 은혜 주시고, 무엇보다도 건강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건강할 때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저도 그런 면에서 좀 이렇게 치밀 오른 은혜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 성도님들이 로마서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 같은데요. 로마서는 오래 신앙생활 하신 분들에게 익숙합니다. 그러나 익숙하다고 해서 여전히 쉽지는 않습니다. 초신자 성도들은 이게 좀 낯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신앙생활 하는 분들도 또 처음 초신자 성도들에게도 이 말씀이 잘 깨달아질 수 있도록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따뜻하고 친절한 메시지가 되길 원합니다. 그런데 따뜻하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가 되길 바랍니다. 또 깊이가 있지만 새로운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고, 무엇보다 제 마음에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따뜻하고 깊고 새롭지만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 여기에 능력을 실체를 경험하는 메시지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이 저는 주님 이 말씀을 우리 성도들에게 인생 말씀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또 인생 로마서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이런 마음이고 저는 본격적으로는 1월 25일부터 할 것이고,. 오늘 일단 오리엔테이션 격으로 로마서의 문을 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제목은 정결함으로 로마스의 시작합니다. 영어로 말하면 “Beginning romance with a pure heart and repentance”. 그러니까 ‘정결한 마음과 그 다음 회개하는 마음’으로 로마서가 시작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걸 위하여 먼저 우리를 새롭게 하고 우리를 정결케 하는 이 우리가 방향을 가지고 아 이 로마서가 어떻게 교회 역사를 새롭게 했는가 교회 역사를 새롭게 했는가? 몇 가지를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저 히포의 유명한 성 어거스틴 감독 성 어거스틴이 AD 4세기 후반기에 로마서 13장을 통하여 뒤집어져 버렸어요.

그가 구원의 길을 찾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안 됐는데 마니교에 그냥 그렇게 젖어 있고 이런 사람이 완전히 로마서 13장을 통하여, 그리고 잘 아시는 대로 마틴 루트가 마르틴 루트는 캐돌릭 사제였어요. 신부였어요. 그런데 보면 자기가 어떤 구원의 수준의, 구원의 세계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막 자기 자신을 고행하는데 스칼라 상타라고 로마의 그 고행 계단이 있어요. 그 계단에 가가지고 막 자기를 갖다 고통에 몰아넣고 상처를 내면서 그 계단을 이렇게 무릎으로 그 무릎으로 막 고생하면서 올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천둥 같은 섬광 같은 말씀이 자기에게 때리는데, 너 고행으로 구원 받냐? 아니야. 오직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느니라.

그 1장에는 이 내용을 가지고 완전히 마틴 루터가 새롭게 되고 그 마틴 루터가 새롭게 된 딱 그 말씀을 받고 고행하면서 계단으로 무릎으로 오르던 그걸 딱 멈추고, 로마에서 그냥 독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돌아가 가지고 초대교의 이후에 가장 강력한 종교계의 새로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어거스틴 마틴 루터’, 그 다음에 ‘요한 웨슬리’라고 있었는데, 요한 웨슬리는 교리적으로도 그렇고 지성적으로 똑똑한 분이었어요. 그런데 영국의 런던의 올더스 게이트라는 곳에서 교회에서 로마서 서문을 이렇게 자기가 듣다가 로마서 서문을 듣다가 그대로 깨어져 가지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고 그 이후에 ‘조지 위필드’와 함께 대각성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존 버년’이라는 분 아시겠는데 성경 이후로 제일 많이 팔린 책이 천로역정 Pilgrim’s Progress인데 존 번년이 그 감옥에 있으면서 이 로마서를 읽다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우리 천로역정을 썼습니다.

자, 여기서 이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처럼 자기 의지로 구원의 길을 찾는 분들 마틴 루러처럼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으로만 생각하는 분들, 요한 웨슬레처럼 교리적인 신앙을 갖고 있지만 구원에 확신이 없는 분들, 존 버년처럼 죄의 무거운 짐을 해결하지 못해 고통 하는 분들이 우리 가운데 분명히 있을 거예요. 이런 분들, 오늘 로마서를 통하여 길을 찾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사랑의 교회, 우리 교회는 지금부터 한 35년 전쯤 우리 선대 옥한흠 목사님께서 로마서 강해를 통하여 사랑의 교회에 말씀을 통한 강력한 부흥이 일어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에요. 아무도 흔들릴 수 없는 나의 구원, 그런 거 할 거예요. 저는 요즘은 20년이 한 세대가 지나가는데, 35년이 지나갔기 때문에 35년 뒤에 이 말씀을 하는데 하여튼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랑의 교회의 성도들과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방송을 듣는 모든 성도들께 저와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35년이 지난 이후에 이제 우리들 차례가 되었어요. 이 말씀이 남 얘기가 아니라 저와 여러분을 바꾼 말씀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에요. 다시요.

어거스틴, 마틴 루터, 그 다음에 요한 웨슬레, 존 버년, 우리 선대, 우리 성도들을 변화시켰던 그 말씀이 저와 여러분을 변화시키고 한국 교회의 재부흥의 촉매제가 될 수 있도록, 이 말씀이 나의 사랑하는 책이 되기를 바라고, 이 말씀이 나를 변화시킨 책이 되기를 바라고, 이 말씀이 우리 가정과 교회를 변화시키고 바꾼 말씀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서울 선언’ 이후에 ‘WEA의 서울 선언 총회’ 이후에 이 말씀이 글로벌 복음주의 교회의 재부흥의 촉매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걸 위하여 오늘 이제 말씀을 이제 1절부터 오늘 서론 격입니다. 1장 1절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뭐라고 시작하는가? 먼저 우리가 기초로 쌓아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1장 1절에 다 함께 보겠습니다.

*로마서 1:1,
1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먼저 이 말씀을 기록한 바울인데 자세한 것은 다음번에 제가 다룰 터인데, 오늘 일단 바울에 대해서 두 가지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또 하나 뭐라고 그랬어요? 사도이다. 이 내용은 뭘 먼저 설명하느냐 하면 이 말씀을 전하는 바울의 메신저로서의 신뢰 말씀을 전하는 바울의 인격에 대해서, 아 바울은 신뢰할 만하다 이것이 그러니까 항상 말씀은 두 가지가 있는데, 메신저가 있고 그 메신저가 전하는 메시지가 있는 것이에요. 오늘 이 말씀을 전하는 바울은 신뢰할 만한 분인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바울은 얼마나 신뢰할 만한가?

그는 위선자가 아니고, 정말 2천 년 교회 역사의 바울처럼 신뢰할 만한 인격자를 또 만날 수가 있겠는가? 당시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지만 말씀 앞에서는 깨어져 가지고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할 만한 그런 인격자인데, 바울처럼 이 신뢰남의 인격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이 바울을 저 타 종교는 싫어하고 그리고 이 얼마나 바울의 인격이 대단했느냐 하면 우리 기독교 안에서도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바울을 싫어할 정도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로서 그야말로 올바른 메신저가 된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는 메신저뿐만 아니라 메시지가 중요한데 그 메시지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하는가? 2절에 이와 같이 나와서 2절을 같이 봅니다.

*로마서 1:2,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오늘 복음의 정석, 로마서 정석, 바울의 메신저로서의 말씀을 전하는 메시지가 뭐냐? 오늘 이 메시지 자체에 대한 신뢰를 표현한 구절인데 이 복음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것인 줄로 믿습니다.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들이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말씀을 했는데, 특별히 누가 봄 24장에는 예수님께서도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누가복음 24:27,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이 내용이 뭐냐 메시지가 신뢰할 만하다. 구약에 예언한 그 모든 복음의 정석을 오늘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메신저와 메시지를 잘 살펴보고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하여. 이걸 여러분들이 잘 들을 때에 여러분과 저도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저도 이 시대에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신뢰받을 수 있을 만한 품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 저는 기도합니다. 오늘 이번 로마서 강해를 하는 동안에 사랑일교의 모든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도 신뢰할 만한 품격을 갖추게 하여 주십시오.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신뢰받을 만한 인격, 그런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오늘 제가 지금 메신저 얘기하고 메시지를 얘기했는데 존경받을 만한 메신저가 되기 위하여 또 신뢰받을 만한 품격을 갖출 만한 메신저가 되기 위하여 오늘 두 가지를 제가 서론 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뭘 말씀하는가? 첫째는 우리에게 부르심의 신비를 내 고백으로 해야 이 메신저가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자, 무슨 말인가?

I.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기 위하여
첫째, 부르심의 신비를 내 고백으로.

-제 얘기가 아니고 6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오늘 6절을 읽었습니다. 제가 앞부분의 일부러 다음에 하겠습니다. 6절의 시작,

*로마서 1:6,7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네라 7절에도 뭐라고 말씀하고 있냐면,
*로마서 1:7,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저와 여러분은 이 시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이 자리에 온 줄로 믿습니다. 저는 사도 바울이 오늘 이와 같이 이 말씀을 이제 전개를 하고 있는데, 저는 바울이 이제 앞으로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경책도 하고, 꾸중도 하고, 도전도 합니다마는 성도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 것이 이게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에요.

로마 교회 교인들이라고 완벽한 거 아니죠? 완벽하지 않는 로마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먼저 너희들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잘 아시는 대로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능력으로 성도가 된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고 성도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어요. 저는 여러분 오늘 이 예배에 와서 앉아 계시는 귀한 성도는 한 분 한 분 여러분들의 배경을 제가 다 모르죠.

어떤 분들은 오래된 성도들, 또 초신자 성도들이 있고 또 세상 적으로 배경, 여러 가지 차원이 다 다를 것이고. 또 지역적인 배경이나 다 달라요. 그래 여러분들 많이 다르지만 제가 한 가지 아는 거 있어요. 그것이 뭐냐? 오늘 이 예배에 오신 여러분들은 주님이 부르셔서 오신 것이에요. 주님이 부르지 않으시면 우리가 주님 믿을 사람도 없고, 주님이 부르지 않으시면 이 자리에 올 자가 없다는 사실이에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능력으로 부르심 받은 게 아니라는 것이에요.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바울이 어느 정도 말을 하느냐 일자리에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소위 Apostle쉽으로, 사도로 그리고 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바울만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5절에 보면 누가 부르심을? 5절에 보면,

*로마서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 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그랬어요. 사도바울이야 종이요. 사도로 살았지만 오늘 우리가 할 때 여기는 팀들을 얘기해요. 거기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들어가고, 그 다음 디모데도 들어가고 여러 팀들이 들어가고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나 디모데 같은 사람은 사도는 아니에요. 그러나 함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사도 성을 가진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니까 앞으로 로마서를 진행할 때에 우리가 다 부족하지만 오늘 이 시대를 향하여 여러분과 저는 사도 성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에요. 우리가 무슨 사도입니까? 우리는 사도직 자체는 계승되지 않지만 사도 성 자체는 우리가 오늘 깨달아야 되는데, 이게 신학적인 바탕으로 혹은 목회학적인 안목으로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Prophetic Apostolic, 이라고 앞으로 예언자적 사도 성을 가지고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장래를 결정할 것이에요. 아시겠어요?

Prophetic Apostolic Ship이라고 그래가지고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우리가 바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사도성을 가진 하나님의 신실한 사명자로 부르신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하겠습니다. 이 부르심의 특징은 현재 저와 여러분의 행실의 평가로 부르신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근거한 신분 선언과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의 근거가 우리의 행실이나 공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는 불러주셨기 때문에 세워진 성도가 된 것이다. 이 말이에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이제 거룩하게 살고 거룩해졌으니 내가 성도라고 불러주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지 못한 상태를 끌어안은 채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라고 선포가 되었다는 것이에요. 이 세상의 상식은 거룩해지면 성도이다. 자격이 되면 성도라고 부른다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거룩해지는 것이고. 성도의 부르심은 자격이 아니라 부르심의 은혜가 먼저가 된 것이에요. 따라서 이 부르심의 특징은 사도바울의 독특한 언어 습관인데 그것이 뭐냐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로마서를 고린도 지역 고린도에서 쓰고 있었는데, 그 고린도 교회에도 동일한 바울의 언어 습관에 나오는데 어떻게 부르셨는가? 고린도전서 1장 2절에 뭐라고 나오느냐 하면 이렇게 나왔어요.

*고린도전서 1: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그들에게 오늘 로마서 1장이 난 것처럼 은혜와 평강 그들에게 고린도전서의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신비는 내 안에 있는 경건함, 거룩함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 부름 오죽하면 로마서 8장에 보니까,

*로마서 8:1,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우리가 거룩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거룩한 성도라고 부르심 받는 거예요. 오늘도 여러분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 자의 정함과 높은 자의 우리가 아까 찬송 불렀을 때 마음에 와 닿지 않았어요? 아무런 뭐가 없었어요?

저는 오늘 이거 찬송을 하는데 제가 설교할 힘을 얻었어요.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예수님은 누구신가? 너무나 놀라운 복음이 그 안에 다 들어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제가 설교할 은혜를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내용이 앞으로 큰 의미가 있는데, 이게 로마 캐톨릭과 우리를 구별하는 것이에요. 로마 캐톨릭은 고행과 거룩한 삶을 가지고 어떻게 이 성도 성인의 계급을 구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인 반열이 있는 것이에요. 거룩함의 카스트 제도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가 거룩하게 살기 때문에 부른 거예요. 하나님이 불러주기 때문에 우리가 성도가 된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이 차이가 많은 거예요. 등급이 아니에요.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어렵다 하시고 거룩하게 불러주신 신분 때문에, 그래서 캐톨릭에는 등급 이런 반열이 있습니다마는 우리는 그냥 신분이에요. 이게 왜 이래 중요한가?

지난 주일날 인구 센서스를 나온 통계가 나왔는데 종교 센서스가 나왔어요. 10년에 한 번씩 하는데 2015년도에 기독교 퍼센티지가 얼마냐 그리고 2025년도에 기독교가 종교가 어떻게 되느냐 이렇게 나와 있는데, 여러분 2015년만 하더라도 그때도 기독교가 많은 공격을 받고, 미디어나 온갖 영화, 텔레비전 이런 거에 대해서 많이 이렇게 기독교를 하고 또 캐톨릭을 높여주고 그랬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2015년에 나름 선방을 했어요. 교회가 자라서 왜 로마서 같은 이런 부르심에 대한 복음의 정석 때문에.

그런데 지난 10년동안 그 이전과는 말로 다룰 수 없는 공격, 어려움, 그다음에 폄하, 모든 미디어에 보세요. 교회 제대로 나오는 거 있느냐고 캐톨릭은 올려가고 있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 사랑의 교회 강단이라는 또 대한민국 교회의 프로테스탄트 성도인 여러분들의 입장에서 깊이 생각할 것이 있는 것이에요. 우리가 이 복음의 정석과 로마서 마르틴 루터의 후예가 돼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을 두근두근하면서 살펴보았어요. 작년 연말에 우리 기독교가 어떻게 됐는가? 2015년에 19.7%였는데 작년 연말에 10년 뒤에 다들 기독교가 내리막이고 내려간다고 그러고 막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 작년 연말에 통계가 20%가 된 줄로 믿습니다. 0.3%가 그래도 자랐어요.

온갖 종류의 폄하와 온갖 종류. 여러분 드라마에 교회를 제대로 한 데 있습니까? 나는 지금도 기억하는 게 30몇 년 전에 왠만 하면 교회 갑니다. 옛날에 사랑이 뭐길래 거기 보면 교회 갑니다. 전부 다 지금은 다 캐톨릭 교회 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되는 캐톨릭 하고 우리의 차이를 알아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가 고행하고 잘해서 성좌 반열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가 성도가 된 것입니다. 놀라운 신비입니다. 놀라운 신비입니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를 우리가 구세주로 영접하는 그 순간, 우리가 이미 성도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이런 거룩에 대한 카스트 제도는 없는 것이에요. 누구누구는 더 거룩하고 누구누구는 덜 거룩하고 이게 아니에요.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거룩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이런 뜻이에요.

어린아이가 있는데, 어린아이가 있는데, 애가 아버지 코트를 입었어요. 애가 아버지 코트를 입었는데 너무 적어가지고 코트만 보이고 애가 안 보여요. 그래 가지고 애가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코트가 걸어가요. 이게 무슨 말이냐? 우리에게 주님께서 의의 옷을 입혀주신 것이에요. 우리는 다 부족하고 그 안에 있는 어린아이는 뭘 몰라요? 어린아이는 너무너무 자기만 알고 바보 같아요. 그렇지만 그 어린아이가 그 코트 안에 있기 때문에 성도가 된 것이에요. 이럴 때 우리는 우리가 이렇게 부르심에 대한 신비를 깨달 때, 우리는 교만할 수가 없어요. 뭐 할 수가 없다고요? 교만할 수 없어요. 교만에서부터 우리가 자유함을 갖는 거예요. 내가 성도가 된 것은 내 성품, 내 지성, 내 훈련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사랑할 것이 없어요.

-성도는 '자기 완성자' 가 아니라 부르심의 은혜를 입은 '수혜자'이다.
-우리의 능력과 실력과 지성으로 우리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입은 수혜를 받은 사람이에요. 아멘. 그러니까 교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두 번째로는 모든 이 땅에서의 절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절망으로부터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에요. 나는 아직 엉망이니까. 성도라고 부를 만한 자격도 없지만, 그러나 그 부족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 절망 가운데 자유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성도라는 이름은 내 완성도를 근거로 붙인 이름이 아니라 부르심을 근거로 붙이는 이름이기 때문에, 내 완성도를 통하여 얻어진 이름이 아니라 부르심을 통하여 얻어지는 은혜이기 때문에, 오죽하면 바울의 믿음 아들 디모데에게 디모데후서 1장이 뭐라고 설명하는 거야?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다 같이 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1:9,
9 하나님이 ..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우리의 뭐예요? 우리의 할렐루야 이처럼 부르심을 받은 성도라는 것은 어느 엄청난 무게와 신비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걸 깨닫고 나면 우리가 방종하거나 마음대로 삽니까? 아닙니다. 제대로 깨닫고 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 우리 전투력 가지고,
-부름 받아 나선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여러분 여기에 동의가 있기를 바랍니다. 자 메신저와 메시지가 확실하면 첫째는 오늘 부르심에 대한 깊은 신앙의 신비와 고백이 있고, 두 번째로, 이제 하나 있는데, 그것이 뭐냐? 그것은 정결함을 통하여 참된 말씀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II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기 위하여
둘째, 정결함을 통하여 참된 말씀의 복을 담아야.

-그리고 참된 말씀의 복을 우리 속에 담고 평생 걸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적용입니다. 바울은 이런 성도의 부르심에 대한 깊이 있는 선포를 통하여 이게 자기 고백이 될 때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어요? 사실 여러분 바울은 사도로 부름 받기까지 바울이 한 일이 없어요. 오히려 바울은 부르심 받은 성도들을 박해하고 스테반을 갖다가 돌로 쳐 죽이고 그런데 놀라운 복음의 신비는 바울의 생애 속에서 그의 부르심 과정에서 나타났는데 다마스커스, 다메섹 도상에서 깨어져 있었어요. 그리고 그의 부르심에 이 신비의 보이지 않는 바울이 가진 과정이 뭐냐 하면, 사도행전 9장 9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사도행전 9:9,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그 정결함과 회개와 돌이킴의 기간이 있었다는 소위 부르심의 합당한 회개가 시작이 된 것이에요. 그리고 갈라디아 1장에 보면,

*갈라디아서 1:17,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바울이 이 부르심을 받고 바로 예루살렘 교회로 가지 아니하고 3년 동안 아라비아에 가가지고 거기서 철저한 자기 정결과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부르심에 합당한 회개를 감당하게 된 것이었어요. 그 아라비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니고, 그 아라비아는 지금 페트라, 요르단, 다마스커스 접경 지역인데 거기에 가가지고 3년 동안, 그 3년 동안 철저한 회개와 정결함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이게 역설의 회개와 정결함입니다. 지난주에는 제가 역설의 기쁨이라고 그랬는데 십자가와 그다음 기쁨을 안 어울리는 단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십자가는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가져온다. 그것이 이제 와닿는 것처럼 오늘 마찬가지입니다. 부르심의 은혜가 너무 큰데 그걸로 우리가 부르심의 은혜 받았다.

이게 아니라 거기에 걸맞는 정결함이 따라가는 것이에요. 아멘 정결함에 따라가는 것이 부르심에 걸맞는 정결함과 회개가 있어야 되는 것이 제가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우리 성도들 가만히 우리 교회 성도들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이 말씀의 복을 가지고 소위 영육 간의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의지적으로 삶에 있어서 심지로 경제적으로 또 가족적으로 여러 상황 가운데서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복을 받고 어떤 성도들은 그 복을 쏟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왜 그럴까?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끝까지 쓰임받고 가고 어떤 성도들은 뭔가 하나님 주시는 그 은혜가 있는데, 그걸 누리지를 못하고 중간에 다 새어나가는 거예요.

마치 독이 있는데, 그 독의 밑바닥이 튼튼하고 잘 되어 있으면 물을 채우면 그 물이 다 차 가지고 흘러넘치는데, 어떤 독은 아무리 아무리 물을 이렇게 쏟아 넣어도 계속 물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흩어지고 다 새버릴 이유가 뭔가? 제가 볼 때 이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가 없기 때문에, 참된 정결함이 없기 때문에, 이 참된 정결함과 참된 회개가 우리 신앙의 밑 빠진 독을 해결해 주시는 것이에요. 따라서 로마설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주님 앞에서 처리할 것은 처리하고, 반복적으로 짓는 죄, 습관적으로 짓는 죄, 수많은 것들이 있어요. 주님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것이 있어요.

오염된 것, 소위 정결함 없는 평안이 여러분들에게 있다면,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아버지 부르신 것 너무 사실이고 성도로 너무 귀한 일이지만 주님과 나와의 사이에 소위 벽이 가리워 져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복을 부어 주실려고 그러는데 그 벽이 가리워져 있는 거예요. 그러니 주님이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다 있을 줄로 믿습니다. 아시겠어요? 그걸 하나님 앞에 정리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거죠. 것이에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고린도에서 쓰고 있었는데, 그 고린도 교회는 바울은 나중에 보면 알지만 로마서를 쓸 때, 로마 교회에 가본 적이 없어요. 있을 때는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너무 주위에 고른도 교회 일어난 일들 잘 알아요. 고린도 교회는 너무 엉터리였어요. 성도들이. 그래서 이 고른도 교회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근심을 가지고 정결함과 회개를 해야 한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

*고린도후서 7:10,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참된 근심, 참된 회개 이런 정결함에 대한 어떤 방향을 잡아주는데 보세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뭘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뭐예요? 사망을 이룬다. 자 오늘 사탄이 우리를 근심하게 우리를 좌절하게 하고 우리를 짓누르고 우리에게 상처 주고 우리를 넘어뜨리게 하는 이건 사탄이 하는 것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제대로 된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정결함을 사모하는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요, 참된 해결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배해 놓으신 수많은 은혜들을 누리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1장 7절 뒤에 보면,

*로마서 1:7,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받을 복 중에 최고의 복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최고의 복은 은혜와 평강인 줄 믿으셔야 되는 거예요. 은혜와 평강의 이 물줄기가 생수가 터져야 되고 이것이 우리에게 막 뿜어져 들어가야 되는데 우리에게 들어오는 이 파이프가 막혀있는 것이에요. 파이프의 배관이 다 찌꺼기가 너무너무 막혀 있어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폭포처럼 부어주시려고 해도 우리가 받을 수가 없는 것이에요.

주님과 여러분만이 아는, 여러분의 은혜의 파이프를 더럽게 하고, 막히게 하고, 그걸 그냥 완전히 오염시키는 그 모든 것들을 로마서 시작하면서 정리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거죠. 그래서 제가 마음속에 소원을 했어요. 여러분 1월은 우리가 변화되기에 정말 좋은 시간이에요. 가장 좋은 시간이에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 복이 있는데, 하나는 주어진 복이 있고, 또 하나는 누려 지는 복이 있어요. 어떤 성도들은 주어진 복은 받았는데 누려 진 복을 받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어요. 성도에게 첫째, 무슨 복이 있으면서 부르심을 통하여 주어지는 복이 있습니다. 동시에 뭐예요? 누려 지는 복은 뭘 통해서 받아야 할까요?

정결함을 통하여 참된 회개를 통하여 여러분이 참된 회계는 근심을 통하여 이것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아까 7장 10절에 그래서 이 참된 회개가 있을 때, 회개의 정의가 나오는데 고린도후서 7장 11절에 이와 같이 나와요. 제가 한번 여러분 물 뽑겠습니다.

*고린도후서 7:11,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
얼마나 분하게 하며 / 얼마나 두렵게 하며 /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이 회개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열망을 주실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뭐하게 하며 이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에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소리가 왜 자꾸 작아져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이건 거룩한 분노예요. 죄에 대해서 내가 거룩한 분노를 하는 거예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두렵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얼마나 뭐하게 하며 이걸 오늘 여러분들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길 바라는 거예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열심히 이렇게 하며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아 그렇구나.

내가 제천기도동산에도 한번 가봐야 되겠구나. 이번 주일날 기도 금식 기도하려고 했는데 금식하는데 거기라도 한번 가봐야 되겠구나. 열심히 얼마나 뭐해요? 벌하게 하였는가 악을 용납지 않는 단호함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에요. 오늘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너희 자신의 뭘 나타냈느니라. 부르심에 대한 분명한 고백이 있어야 되고 두 번째, 이 부르심에 대한 은혜와 함께 우리가 정결함을 가지고 로마스를 시작하는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는 것인데 그것이 뭐냐?

회개를 나를 고치는 작업으로만 여기는 것은 그것은 아주 초기 단계에 회개는 자신을 고치는 것뿐만 아니라, 은혜가 나를 살리는 자리까지 나가는 것이에요. 매주일 마다 은혜가 저와 여러분을 살릴 것입니다.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여러분 가정을 살릴 것입니다. 결론이 뭐냐 우리에게 정한 마음이 있을 때, 새 마음이 창조되는 거예요. 10편 51편의 다윗이 고백한대로

*시편 51:10,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의 정직한 영을 뭐예요? 새롭게 하셨어요. 정결함이 되면 새 창조와 새로운 마음, 새로운 스타트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주어진 복뿐만 아니라 누려진 복을 위하여 거리끼는 것, 이걸 다 깨어서 흘러가게 하는 것들을 처리하고, New Start, New Creation, 새로운 창조와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한 분, 한 분 예외 없이 주님 앞에 쓰임 받는 축복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성 버나드가 은혜를 받고 참 회개하는 자에게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이 좋거든. 그 다음에 참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신다고 그랬어요. 우리 참 회개하는 자에게 찬양합시다.

저는 청년 시절의 정결함을 위하여 A day in Prayer, 기도로 하루를 이라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봤고 또 시간이 하루가 안 날 때는 Half day in prayer, 반나절이라도 주님과 함께 1월은 변화되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요약
이 말씀 가지고 주님 나 사이에 거리끼는 것, 내 삶에 누려 지는 축복들을 다 밑빠진 독으로 다 깨어서 흘러가게 하는 것들을 새 버리게 하는 것들을 막을 수 있도록 주님께 우리를 청결함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해야 하며, 우리 모든 성도들이 로마서의 복음의 정석을 통하여 우리가 정결함으로 나가는 은혜가 있어서, 우리 성도들 모두가 품격 있는 인생으로 만들어 주실 것을 확신한다. 말씀 가지고 우리가 더 이상 교만하지도 않고, 더 이상 절망하지도 않는 거룩한 자유함으로 신년을 맞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부르심에 합당한 회개와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복이 새어 나가던 모든 틈들을 눈물의 회개로 메꾸어서, 참된 말씀의 복과 은혜와 평강의 복이 나를 흘러넘쳐서 다시 시작하고 다시 재창조하는 New Start, New Creation의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에게 주님께서 놀라운 부르심의 은혜로 나를 그리스도의 것 삼아 주셨으니, 역사를 바꾼 로마서 말씀을 통하여 나의 가정과 일터를 바꿔가야 한다. 날마다 사망을 이루는 세상 근심'을 물리치고 회개를 이루는 거룩한 근심으로 정결해질 때, 새지 않는 은혜와 평강의 강수가 항상 넘실대고, 우리 사랑의 교회가 참 회개로 주어진 복'을 넘어 누려지는 복'을 경험할 때, ,우리 모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강력한 뉴스타트, 뉴크리에이션의 기적'을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간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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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01월 04일)-(26년 신년메시지)
설교제목 : “차안대(遮眼帶)를 쓰고 예수님만 바라보라
(Put on the Blinders and Fix Your Eyes on Jesus)”
성경본문 : 히브리서 12:1~3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박주성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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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2:1~3,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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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애 이와 같이 새로운 신년 감사 예배 드리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새해에도 이 강단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말씀의 깊이를 가지고 우리 성도들 한 분 한 분의 영혼을 살리는 메시지가 이 강단에서 선포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저는 신령 감사한 메시지로 “차안대(遮眼帶)를 쓰고 예수님만 바라보라” 이 차 안대는 차 한 대가 아니고, 이 차 안대는 눈옆 가리개입니다. 이거 나중에 또 다시 설명을 드릴 거예요. 하여튼 우리 눈 가르개를 쓰고 2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믿음과 시작의 완성 이신 믿음의 주여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이 한해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다. 그렇잖아요? 새해가 되면 좀 더 이제 신앙생활 제대로 해 보자. 또 새로운 믿음의 진보를 가져보자. 이런 마음에 다. 소원이 들지요. 그렇죠. 그렇게 되는데 그 목표가 뭐냐? 주님을 더 사랑하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가고 주님께 더 친밀하고, 주님의 사명을 더 깨닫고, 주님께 더 쓰임 받는 이런 것이 자연스럽게 새 우리의 마음에 소원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주님을 얼마나 더 사랑하십니까? 진짜 주님 사랑하십니까?

제가요. 지금 드리는 이 내용은 너무 좀 조심스러워서 굉장히 좀 제가 조심조심하게 얘기하고 싶은데요. 뭐냐면 45-6년 전에 제가 저희 집 사람하고 그때 교제를 했습니다. 교제를 하는데, 저희 집 사람이에 저보다. 미국을 더 먼저 가게 됐어요. 그게 돼 가지고 제가 그때 광화문 쪽에 살았는데 광화문에서 김포공항 가는 버스가 542번입니다. 예, 그걸 이제 김포공항에서 타고 이제 보내 주고 이제 저는 이제 혼자 들어와 갖고 그날이 금요일이었는데 금요일 밤에 기도회가 있었어요. 기도회 갖고 이제 기도회를 참석하는데 갑자기 막 가슴이 아프고, 막 갑자기 숨을 모시겠는 거예요. 호흡이 안 되는 거야. 그 왜 호흡이 안 될까? 그 보니까? 우리 집 사람을 우리 그때 우리 집 사람이 아니죠. 난영 자매를 너무 사랑해 가지고 숨을 모시겠는 거예요. 그 제가 이제 조심스럽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지금은 좀 좀 하여튼 그래요. 그래서 그래서 이 왜 이러나 내가 이게이 자매를 보내고 난 다음에 숨을 모시겠구나, 그 내 옆에 믿음 좋은 내 믿음 좋은 형제가 있었어요. 믿음 좋은 내 친구가 있었는데 갑자기 나를 보고 탁 정현 형제 정신 차려요!!!~. 그러는 거예요. 왜 그러니까? 아니 그대는 예수님 사랑하는 것 때문에 예수님을 너무 사랑해 가지고 숨을 모셔 본 적 있어? 오!!!, 그때 제가 진짜 벼락 같은 걸 느껴서 이렇게 음 그래서 그날 밤 금요. 기도했는데, 주님 앞에 회개하고, 내 평생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그다음에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이런 찬송을 하면서 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는 내 인생이 되게 도와주십시오. 그런 기억이 제가 이렇게 조심스러운 얘긴데,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 너무 사랑해 가지고 숨을 모셔 본 적이 있으시나니까? 정말 우리가 주님만 바라보고 달려간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우리의 삶의 목표가 재정렬된다는이 뜻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내 삶의 목표가 재정렬되면, 내 삶이 재정렬되면 내 가치관 내 삶의 렌즈로 이렇게 잘 렌즈를 바라보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냐? 우리의 시각이 달라지는 것이에요. 무슨 시각? 성공에 대한 시각, 실패에 대한 시각, 또 삶의 풍성함과 부족함에 대한 시각,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이 생각하는 거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대표적으로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사랑하는 이것이 우선순위가 되면 여러분 죽고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그렇게 너무 염려할 것도 없고 죽는 것이 무슨 뭐 인생의 끝도 아니고 무슨 절망도 아니에요.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이 삶의 목적이 되어서 삶이 재정렬되면 바울이 고백한 대로 빌립보서 1장 21절에 유명한 말씀 있죠? 같이 보죠.

*빌립보서 1장 21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아멘입니까? 사는 것도 귀한 것이지만 죽는 것도 유익하다. 왜냐하면 우리 죽는 것도 육신이 육신의 몸이 죽고 새 몸을 입는 거 아닙니까? 이게 달라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 바라볼 때 가치관과 생각이 재정렬되는데 한때 미국 같은 데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랬을 때 WWJD라고 있었어요. WW가 뭐냐? What would Jesus do? What would Jesus do?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니까? 주님 바라보는 사람들의 삶의 형태로 WWJD 그래서 그걸 이렇게에 손에도 이렇게 그걸 매고 이렇게 다니면서 일마다, 때마다. 삶에 대한 시각과 가치관이 달라져 가지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차원에서 이 한해 동안 여러분의 시각이 주님께 고정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첫 번째로 생각할 것은 우리의 시각이 주님께 초점이 맞춰 줘야 한다. 주님께 고정이 돼야 한다. 영어로 말하면 픽스가 돼야 한다.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I. 차안대(遮眼帶)를 쓰고 예수님만 바라보는 초점에 분명해야.

*히브리서 12:1,
1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이렇게 여러분 1절 하반절에 보니까?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이렇게 나와 있어요. 당한이란 말인데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는데 우리의 삶에 우리의 삶의 코스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은사대로 각자 주신 은사와 재능대로 여러분들에게 주신 삶의 코스가 있어요. 경조해야 할 코스가 있어요. 길이 있어요. 길이 있는데 이 길을 향하여 어떻게 할 것인가? 영어로 말을 Let us fix라고 나와 있어요.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이렇게 나와 있어요. 주님께로 집중하자. 우리의 신앙생활을 운동장을 가볍게 산책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집중해 가지고 달려가는 경기와 같다. 이 경기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9장에 유명한 말씀 있죠.

*고린도전서 9:14,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렇게 다. 상급을 향해 달려가라 이렇게 했어요. 달려가라 이렇게 했어. 그러니까? 여러분 생각을 해 보세요. 100m 육상 단거리 주자가 달려갈 때, 옆에 있는 것들 히끗히끗 보고 있잖아요. 이렇게 산만해 갖고 집중하고 달려갈 수가 없는 거에요. 딱 집중해서 달려가는 거예요. 그 제가 이제 오늘 차안고 한 것이 뭐냐?

경주마가 있는데 여러분 경주마들이 막 달려갈 때에 그 경주마에게 눈 가리게 눈옆 가리개, 덮개를 씌워요. 이렇게. 왜냐하면 이 말들이 보는이 시각의 이 시각이 뭐냐면 350도예요. 파노라마처럼 전체를 다. 볼 수 있는 거예요. 사람은 한 100한 6-70도를 보는 거죠.이 보게 돼 있는데 말들의 이 시각이 전체를 바라보 350도. 그러니까? 말에 겁이 많아 가지고 같이 경조할 옆에서 뛰는 말들을 보면 겁이 많아 가지고 주눅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눈옆 가리개, 눈옆 가리기를 씌워 가지고 그래 가리개를 씌울 때, 그 시각의 어떤 전체에 보는 눈이 350도에서 3분의 1로 줄어지는 거예요. 120도 정도로 줄어지는 거에요. 그러니까? 복잡한 거 안 보고 한 눈만 딱 집중해 가지고 경주말로서 달려갈 수 있도록. 그래서 그것이 차 안대이다. 그것이 눈옆 가리개이다. 이해가 됩니까?

신년 예배 오셔 가지고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말씀을 통하여 예배를 통하여 여러분들의 기도를 통하여 주님 한 분, 한 분에게 차 안대, 이 세상에 대해서 너무 신경 쓰지 않도록 눈 가리개를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게 우리에게 주신이 사명의 경로에요. 그리고 세상의 경주는 혼자만 뭐 챔피언하고 혼자 하지만 이 사명의 경주는 미션 구도가 돼 가지고 경쟁 구도가 아니라, 이 은혜를 받아 모두가 다. 승리할 수 있는 모두가 다. 양편 다. 승리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와 같이 차 안대를 쓰고 어떤 뭐 어떤 세상의 어떤 타 종교처럼 막 자기를 고행하고 그다음에 또 뭐 자기를 어떻게 애써가 이런 개념이 아니에요.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피안의 세계를 위하여 달려가는 사람이 아니고,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예수님의 의로 그것을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구원을 얻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수님의 온전함을 이루기 위하여 달려가는 것이에요. 예수님의 온전함. 오늘 여기 나와 있죠. 뭐라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의 그 은혜를 믿고 온전케 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것이에요. 따라서 우리의 달 경주는 이 세상의 어떤 구원을 위한 그런 경주 정도가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으로 그 은혜에 감사하여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우리가 예수님의 온전함을 닮아갈 수 있도록 다른 박질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의이 경주는 온달이에요. 온달. 온전함을 위하여 달려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은 오늘 남자들은 박온달, 김온달, 최온달 되시고, 여자분들은 이 남 자분들이 신앙 잘 할 수 있도록 평강공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알 사람은 알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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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제목: 차안대를 쓰고 예수님을 바라보라 (히브리서 12:1–3)
-이 설교는 새해를 맞아 성도들이 믿음의 경주를 어떻게 달려가야 하는가를 히브리서 12장을 중심으로 선포한다. 핵심은 눈을 가리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온전함을 향해 끝까지 달려가는 신앙이다.

1. 신앙의 출발점: 예수님을 향한 시선 고정
새해마다 성도들은 더 깊은 신앙을 소망하지만, 그 출발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달려 있다. 설교자는 개인적인 간증을 통해, 사람을 사랑하는 감정과 비교될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회개한 경험을 나눈다. 진정한 신앙은 예수님을 삶의 최우선에 두는 것이며, 그럴 때 삶의 목표와 가치관이 재정렬된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은 성공과 실패, 풍성함과 부족함, 심지어 죽음에 대한 관점까지 바꾸어 놓는다. 바울의 고백처럼 “사는 것이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유익”이 된다.

2. 차안대의 의미: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하라
‘차안대’는 경주마에게 씌우는 눈가리개를 뜻한다. 말은 시야가 넓어 옆을 보면 겁을 먹기 때문에, 오직 앞만 보고 달리게 하기 위해 눈가리개를 씌운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은 산책이 아니라 경주이며, 성도는 Let us fix our eyes on Jesus처럼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은사와 사명에 따른 각자의 경주 코스를 주셨다. 신앙은 경쟁이 아니라, 은혜 안에서 모두가 승리하도록 부르심 받은 사명의 경주다.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자로서 예수님의 온전함을 닮아가기 위해 달리는 사람들이다.

3. 경주를 방해하는 두 가지 장애물
믿음의 경주를 방해하는 요소는 두 가지다. 모든 무거운 것 죄는 아니지만, 우리를 무겁게 만드는 것들이다.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 패배주의,·냉소주의, 회의주의. 형식주의, 본질보다 수단에 집착하는 신앙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 심지어 가족이나 소중한 대상도 예수님보다 앞설 때는 ‘무거운 것’이 된다.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는 대상이 있을 때, 그것은 신앙의 발목을 잡는다. 얽매이기 쉬운 죄 하나님과 자신만 아는 반복적·습관적인 죄다. 이는 그물처럼 발목을 붙잡아 경주를 못 하게 한다. 특히 쓴 뿌리(미움, 상처, 분노)는 개인과 공동체 전체를 오염시킨다. 쓴 뿌리가 처리되지 않으면 온전한 경주는 불가능하다. 신앙은 마라톤과 같아서, 무거운 외투를 입고는 끝까지 달릴 수 없다. 반드시 내려놓고 벗어버려야 한다.

4. 적극적으로 필요한 힘: 역설의 기쁨
경주를 위해 제거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반드시 붙들어야 할 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역설의 기쁨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극도의 고통과 수치를 그 앞에 있는 기쁨 때문에 참으셨다. 이 기쁨은 세상적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기쁨, 구원 사역을 완성하는 기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쁨, 십자가와 기쁨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신앙의 세계에서는 고난을 통과한 기쁨이 참된 기쁨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둔다.” 고난 없이는 영광이 없고,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이 없다.

5. 경주의 결론: 피곤해도 낙심하지 말라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람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물질이나 상황에 매이지 않으며, 피곤하고 낙심될 때마다 예수님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히브리서 12장 3절처럼,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생각할 때 우리는 다시 일어나 달릴 힘을 얻는다.

6. 결단과 초청
신앙생활을 미적지근하게 해왔던 사람들에게 이번 한 해는 정말로 달려보자고 도전한다. 모라비안 교도들처럼 말씀과 기도 중심으로 끝까지 달려가는 믿음을 본받아,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하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내려놓고, 역설의 기쁨으로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달려가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하며 설교를 마무리한다.

♣요약
우리는 영적 차안대(遮眼帶)'를 쓰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온전함의 달음박질'을 할 때, 우리 모두의 인생이 '뜨거운 주님 사랑'으로 재정렬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사명 순종을 완성하는 수치의 십자가를 지셨사오니, 영광스러운 역설의 기쁨'으로 모든 쓴 뿌리와 얽매이기 쉬운 죄'를 다 처리해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우리 사랑의교회와 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가 '21세기 모라비안 불침번'으로 '24시간 릴레이 기도'에 자신을 내어 드릴 때, 주님의 압도적인 능력으로 '2033-50 비전'을 이루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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