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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1월 11일)-로마서 강해 서론
설교제목 : “정결함으로 로마서를 시작합니다”
(Beginning Romans with a Pure Heart and Repentance)
성경본문 : 로마서 1:1~2, 6~7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이윤기 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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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2, 6~7,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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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대가 고백한 대로 선한 목자 되신 주님께서 우리 한 분, 한 분에게 참된 복의 수혜자가 될 수 있도록 응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 로마서를 오늘은 서론 좀 하는데, 이 로마서 들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환경 주시고, 또 믿음 주시고, 은혜 주시고, 무엇보다도 건강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건강할 때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저도 그런 면에서 좀 이렇게 치밀 오른 은혜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 성도님들이 로마서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 같은데요. 로마서는 오래 신앙생활 하신 분들에게 익숙합니다. 그러나 익숙하다고 해서 여전히 쉽지는 않습니다. 초신자 성도들은 이게 좀 낯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신앙생활 하는 분들도 또 처음 초신자 성도들에게도 이 말씀이 잘 깨달아질 수 있도록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따뜻하고 친절한 메시지가 되길 원합니다. 그런데 따뜻하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가 되길 바랍니다. 또 깊이가 있지만 새로운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고, 무엇보다 제 마음에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따뜻하고 깊고 새롭지만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 여기에 능력을 실체를 경험하는 메시지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이 저는 주님 이 말씀을 우리 성도들에게 인생 말씀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또 인생 로마서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이런 마음이고 저는 본격적으로는 1월 25일부터 할 것이고,. 오늘 일단 오리엔테이션 격으로 로마서의 문을 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제목은 정결함으로 로마스의 시작합니다. 영어로 말하면 “Beginning romance with a pure heart and repentance”. 그러니까 ‘정결한 마음과 그 다음 회개하는 마음’으로 로마서가 시작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걸 위하여 먼저 우리를 새롭게 하고 우리를 정결케 하는 이 우리가 방향을 가지고 아 이 로마서가 어떻게 교회 역사를 새롭게 했는가 교회 역사를 새롭게 했는가? 몇 가지를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저 히포의 유명한 성 어거스틴 감독 성 어거스틴이 AD 4세기 후반기에 로마서 13장을 통하여 뒤집어져 버렸어요.

그가 구원의 길을 찾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안 됐는데 마니교에 그냥 그렇게 젖어 있고 이런 사람이 완전히 로마서 13장을 통하여, 그리고 잘 아시는 대로 마틴 루트가 마르틴 루트는 캐돌릭 사제였어요. 신부였어요. 그런데 보면 자기가 어떤 구원의 수준의, 구원의 세계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막 자기 자신을 고행하는데 스칼라 상타라고 로마의 그 고행 계단이 있어요. 그 계단에 가가지고 막 자기를 갖다 고통에 몰아넣고 상처를 내면서 그 계단을 이렇게 무릎으로 그 무릎으로 막 고생하면서 올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천둥 같은 섬광 같은 말씀이 자기에게 때리는데, 너 고행으로 구원 받냐? 아니야. 오직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느니라.

그 1장에는 이 내용을 가지고 완전히 마틴 루터가 새롭게 되고 그 마틴 루터가 새롭게 된 딱 그 말씀을 받고 고행하면서 계단으로 무릎으로 오르던 그걸 딱 멈추고, 로마에서 그냥 독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돌아가 가지고 초대교의 이후에 가장 강력한 종교계의 새로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어거스틴 마틴 루터’, 그 다음에 ‘요한 웨슬리’라고 있었는데, 요한 웨슬리는 교리적으로도 그렇고 지성적으로 똑똑한 분이었어요. 그런데 영국의 런던의 올더스 게이트라는 곳에서 교회에서 로마서 서문을 이렇게 자기가 듣다가 로마서 서문을 듣다가 그대로 깨어져 가지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고 그 이후에 ‘조지 위필드’와 함께 대각성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존 버년’이라는 분 아시겠는데 성경 이후로 제일 많이 팔린 책이 천로역정 Pilgrim’s Progress인데 존 번년이 그 감옥에 있으면서 이 로마서를 읽다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우리 천로역정을 썼습니다.

자, 여기서 이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처럼 자기 의지로 구원의 길을 찾는 분들 마틴 루러처럼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으로만 생각하는 분들, 요한 웨슬레처럼 교리적인 신앙을 갖고 있지만 구원에 확신이 없는 분들, 존 버년처럼 죄의 무거운 짐을 해결하지 못해 고통 하는 분들이 우리 가운데 분명히 있을 거예요. 이런 분들, 오늘 로마서를 통하여 길을 찾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사랑의 교회, 우리 교회는 지금부터 한 35년 전쯤 우리 선대 옥한흠 목사님께서 로마서 강해를 통하여 사랑의 교회에 말씀을 통한 강력한 부흥이 일어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에요. 아무도 흔들릴 수 없는 나의 구원, 그런 거 할 거예요. 저는 요즘은 20년이 한 세대가 지나가는데, 35년이 지나갔기 때문에 35년 뒤에 이 말씀을 하는데 하여튼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랑의 교회의 성도들과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방송을 듣는 모든 성도들께 저와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35년이 지난 이후에 이제 우리들 차례가 되었어요. 이 말씀이 남 얘기가 아니라 저와 여러분을 바꾼 말씀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에요. 다시요.

어거스틴, 마틴 루터, 그 다음에 요한 웨슬레, 존 버년, 우리 선대, 우리 성도들을 변화시켰던 그 말씀이 저와 여러분을 변화시키고 한국 교회의 재부흥의 촉매제가 될 수 있도록, 이 말씀이 나의 사랑하는 책이 되기를 바라고, 이 말씀이 나를 변화시킨 책이 되기를 바라고, 이 말씀이 우리 가정과 교회를 변화시키고 바꾼 말씀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서울 선언’ 이후에 ‘WEA의 서울 선언 총회’ 이후에 이 말씀이 글로벌 복음주의 교회의 재부흥의 촉매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걸 위하여 오늘 이제 말씀을 이제 1절부터 오늘 서론 격입니다. 1장 1절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뭐라고 시작하는가? 먼저 우리가 기초로 쌓아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1장 1절에 다 함께 보겠습니다.

*로마서 1:1,
1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먼저 이 말씀을 기록한 바울인데 자세한 것은 다음번에 제가 다룰 터인데, 오늘 일단 바울에 대해서 두 가지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또 하나 뭐라고 그랬어요? 사도이다. 이 내용은 뭘 먼저 설명하느냐 하면 이 말씀을 전하는 바울의 메신저로서의 신뢰 말씀을 전하는 바울의 인격에 대해서, 아 바울은 신뢰할 만하다 이것이 그러니까 항상 말씀은 두 가지가 있는데, 메신저가 있고 그 메신저가 전하는 메시지가 있는 것이에요. 오늘 이 말씀을 전하는 바울은 신뢰할 만한 분인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바울은 얼마나 신뢰할 만한가?

그는 위선자가 아니고, 정말 2천 년 교회 역사의 바울처럼 신뢰할 만한 인격자를 또 만날 수가 있겠는가? 당시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지만 말씀 앞에서는 깨어져 가지고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할 만한 그런 인격자인데, 바울처럼 이 신뢰남의 인격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이 바울을 저 타 종교는 싫어하고 그리고 이 얼마나 바울의 인격이 대단했느냐 하면 우리 기독교 안에서도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바울을 싫어할 정도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로서 그야말로 올바른 메신저가 된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는 메신저뿐만 아니라 메시지가 중요한데 그 메시지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하는가? 2절에 이와 같이 나와서 2절을 같이 봅니다.

*로마서 1:2,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오늘 복음의 정석, 로마서 정석, 바울의 메신저로서의 말씀을 전하는 메시지가 뭐냐? 오늘 이 메시지 자체에 대한 신뢰를 표현한 구절인데 이 복음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것인 줄로 믿습니다.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들이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말씀을 했는데, 특별히 누가 봄 24장에는 예수님께서도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누가복음 24:27,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이 내용이 뭐냐 메시지가 신뢰할 만하다. 구약에 예언한 그 모든 복음의 정석을 오늘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메신저와 메시지를 잘 살펴보고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하여. 이걸 여러분들이 잘 들을 때에 여러분과 저도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저도 이 시대에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신뢰받을 수 있을 만한 품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 저는 기도합니다. 오늘 이번 로마서 강해를 하는 동안에 사랑일교의 모든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도 신뢰할 만한 품격을 갖추게 하여 주십시오.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신뢰받을 만한 인격, 그런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오늘 제가 지금 메신저 얘기하고 메시지를 얘기했는데 존경받을 만한 메신저가 되기 위하여 또 신뢰받을 만한 품격을 갖출 만한 메신저가 되기 위하여 오늘 두 가지를 제가 서론 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뭘 말씀하는가? 첫째는 우리에게 부르심의 신비를 내 고백으로 해야 이 메신저가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자, 무슨 말인가?

I.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기 위하여
첫째, 부르심의 신비를 내 고백으로.

-제 얘기가 아니고 6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오늘 6절을 읽었습니다. 제가 앞부분의 일부러 다음에 하겠습니다. 6절의 시작,

*로마서 1:6,7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네라 7절에도 뭐라고 말씀하고 있냐면,
*로마서 1:7,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저와 여러분은 이 시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이 자리에 온 줄로 믿습니다. 저는 사도 바울이 오늘 이와 같이 이 말씀을 이제 전개를 하고 있는데, 저는 바울이 이제 앞으로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경책도 하고, 꾸중도 하고, 도전도 합니다마는 성도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 것이 이게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에요.

로마 교회 교인들이라고 완벽한 거 아니죠? 완벽하지 않는 로마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먼저 너희들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잘 아시는 대로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능력으로 성도가 된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고 성도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어요. 저는 여러분 오늘 이 예배에 와서 앉아 계시는 귀한 성도는 한 분 한 분 여러분들의 배경을 제가 다 모르죠.

어떤 분들은 오래된 성도들, 또 초신자 성도들이 있고 또 세상 적으로 배경, 여러 가지 차원이 다 다를 것이고. 또 지역적인 배경이나 다 달라요. 그래 여러분들 많이 다르지만 제가 한 가지 아는 거 있어요. 그것이 뭐냐? 오늘 이 예배에 오신 여러분들은 주님이 부르셔서 오신 것이에요. 주님이 부르지 않으시면 우리가 주님 믿을 사람도 없고, 주님이 부르지 않으시면 이 자리에 올 자가 없다는 사실이에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능력으로 부르심 받은 게 아니라는 것이에요.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바울이 어느 정도 말을 하느냐 일자리에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소위 Apostle쉽으로, 사도로 그리고 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바울만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5절에 보면 누가 부르심을? 5절에 보면,

*로마서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 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그랬어요. 사도바울이야 종이요. 사도로 살았지만 오늘 우리가 할 때 여기는 팀들을 얘기해요. 거기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들어가고, 그 다음 디모데도 들어가고 여러 팀들이 들어가고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나 디모데 같은 사람은 사도는 아니에요. 그러나 함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사도 성을 가진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니까 앞으로 로마서를 진행할 때에 우리가 다 부족하지만 오늘 이 시대를 향하여 여러분과 저는 사도 성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에요. 우리가 무슨 사도입니까? 우리는 사도직 자체는 계승되지 않지만 사도 성 자체는 우리가 오늘 깨달아야 되는데, 이게 신학적인 바탕으로 혹은 목회학적인 안목으로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Prophetic Apostolic, 이라고 앞으로 예언자적 사도 성을 가지고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장래를 결정할 것이에요. 아시겠어요?

Prophetic Apostolic Ship이라고 그래가지고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우리가 바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사도성을 가진 하나님의 신실한 사명자로 부르신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하겠습니다. 이 부르심의 특징은 현재 저와 여러분의 행실의 평가로 부르신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근거한 신분 선언과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의 근거가 우리의 행실이나 공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는 불러주셨기 때문에 세워진 성도가 된 것이다. 이 말이에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이제 거룩하게 살고 거룩해졌으니 내가 성도라고 불러주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지 못한 상태를 끌어안은 채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라고 선포가 되었다는 것이에요. 이 세상의 상식은 거룩해지면 성도이다. 자격이 되면 성도라고 부른다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거룩해지는 것이고. 성도의 부르심은 자격이 아니라 부르심의 은혜가 먼저가 된 것이에요. 따라서 이 부르심의 특징은 사도바울의 독특한 언어 습관인데 그것이 뭐냐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로마서를 고린도 지역 고린도에서 쓰고 있었는데, 그 고린도 교회에도 동일한 바울의 언어 습관에 나오는데 어떻게 부르셨는가? 고린도전서 1장 2절에 뭐라고 나오느냐 하면 이렇게 나왔어요.

*고린도전서 1: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그들에게 오늘 로마서 1장이 난 것처럼 은혜와 평강 그들에게 고린도전서의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신비는 내 안에 있는 경건함, 거룩함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 부름 오죽하면 로마서 8장에 보니까,

*로마서 8:1,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우리가 거룩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거룩한 성도라고 부르심 받는 거예요. 오늘도 여러분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 자의 정함과 높은 자의 우리가 아까 찬송 불렀을 때 마음에 와 닿지 않았어요? 아무런 뭐가 없었어요?

저는 오늘 이거 찬송을 하는데 제가 설교할 힘을 얻었어요.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예수님은 누구신가? 너무나 놀라운 복음이 그 안에 다 들어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제가 설교할 은혜를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내용이 앞으로 큰 의미가 있는데, 이게 로마 캐톨릭과 우리를 구별하는 것이에요. 로마 캐톨릭은 고행과 거룩한 삶을 가지고 어떻게 이 성도 성인의 계급을 구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인 반열이 있는 것이에요. 거룩함의 카스트 제도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가 거룩하게 살기 때문에 부른 거예요. 하나님이 불러주기 때문에 우리가 성도가 된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이 차이가 많은 거예요. 등급이 아니에요.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어렵다 하시고 거룩하게 불러주신 신분 때문에, 그래서 캐톨릭에는 등급 이런 반열이 있습니다마는 우리는 그냥 신분이에요. 이게 왜 이래 중요한가?

지난 주일날 인구 센서스를 나온 통계가 나왔는데 종교 센서스가 나왔어요. 10년에 한 번씩 하는데 2015년도에 기독교 퍼센티지가 얼마냐 그리고 2025년도에 기독교가 종교가 어떻게 되느냐 이렇게 나와 있는데, 여러분 2015년만 하더라도 그때도 기독교가 많은 공격을 받고, 미디어나 온갖 영화, 텔레비전 이런 거에 대해서 많이 이렇게 기독교를 하고 또 캐톨릭을 높여주고 그랬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2015년에 나름 선방을 했어요. 교회가 자라서 왜 로마서 같은 이런 부르심에 대한 복음의 정석 때문에.

그런데 지난 10년동안 그 이전과는 말로 다룰 수 없는 공격, 어려움, 그다음에 폄하, 모든 미디어에 보세요. 교회 제대로 나오는 거 있느냐고 캐톨릭은 올려가고 있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 사랑의 교회 강단이라는 또 대한민국 교회의 프로테스탄트 성도인 여러분들의 입장에서 깊이 생각할 것이 있는 것이에요. 우리가 이 복음의 정석과 로마서 마르틴 루터의 후예가 돼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을 두근두근하면서 살펴보았어요. 작년 연말에 우리 기독교가 어떻게 됐는가? 2015년에 19.7%였는데 작년 연말에 10년 뒤에 다들 기독교가 내리막이고 내려간다고 그러고 막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 작년 연말에 통계가 20%가 된 줄로 믿습니다. 0.3%가 그래도 자랐어요.

온갖 종류의 폄하와 온갖 종류. 여러분 드라마에 교회를 제대로 한 데 있습니까? 나는 지금도 기억하는 게 30몇 년 전에 왠만 하면 교회 갑니다. 옛날에 사랑이 뭐길래 거기 보면 교회 갑니다. 전부 다 지금은 다 캐톨릭 교회 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되는 캐톨릭 하고 우리의 차이를 알아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가 고행하고 잘해서 성좌 반열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가 성도가 된 것입니다. 놀라운 신비입니다. 놀라운 신비입니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를 우리가 구세주로 영접하는 그 순간, 우리가 이미 성도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이런 거룩에 대한 카스트 제도는 없는 것이에요. 누구누구는 더 거룩하고 누구누구는 덜 거룩하고 이게 아니에요.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거룩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이런 뜻이에요.

어린아이가 있는데, 어린아이가 있는데, 애가 아버지 코트를 입었어요. 애가 아버지 코트를 입었는데 너무 적어가지고 코트만 보이고 애가 안 보여요. 그래 가지고 애가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코트가 걸어가요. 이게 무슨 말이냐? 우리에게 주님께서 의의 옷을 입혀주신 것이에요. 우리는 다 부족하고 그 안에 있는 어린아이는 뭘 몰라요? 어린아이는 너무너무 자기만 알고 바보 같아요. 그렇지만 그 어린아이가 그 코트 안에 있기 때문에 성도가 된 것이에요. 이럴 때 우리는 우리가 이렇게 부르심에 대한 신비를 깨달 때, 우리는 교만할 수가 없어요. 뭐 할 수가 없다고요? 교만할 수 없어요. 교만에서부터 우리가 자유함을 갖는 거예요. 내가 성도가 된 것은 내 성품, 내 지성, 내 훈련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사랑할 것이 없어요.

-성도는 '자기 완성자' 가 아니라 부르심의 은혜를 입은 '수혜자'이다.
-우리의 능력과 실력과 지성으로 우리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입은 수혜를 받은 사람이에요. 아멘. 그러니까 교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두 번째로는 모든 이 땅에서의 절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절망으로부터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에요. 나는 아직 엉망이니까. 성도라고 부를 만한 자격도 없지만, 그러나 그 부족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 절망 가운데 자유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성도라는 이름은 내 완성도를 근거로 붙인 이름이 아니라 부르심을 근거로 붙이는 이름이기 때문에, 내 완성도를 통하여 얻어진 이름이 아니라 부르심을 통하여 얻어지는 은혜이기 때문에, 오죽하면 바울의 믿음 아들 디모데에게 디모데후서 1장이 뭐라고 설명하는 거야?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다 같이 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1:9,
9 하나님이 ..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우리의 뭐예요? 우리의 할렐루야 이처럼 부르심을 받은 성도라는 것은 어느 엄청난 무게와 신비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걸 깨닫고 나면 우리가 방종하거나 마음대로 삽니까? 아닙니다. 제대로 깨닫고 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 우리 전투력 가지고,
-부름 받아 나선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여러분 여기에 동의가 있기를 바랍니다. 자 메신저와 메시지가 확실하면 첫째는 오늘 부르심에 대한 깊은 신앙의 신비와 고백이 있고, 두 번째로, 이제 하나 있는데, 그것이 뭐냐? 그것은 정결함을 통하여 참된 말씀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II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기 위하여
둘째, 정결함을 통하여 참된 말씀의 복을 담아야.

-그리고 참된 말씀의 복을 우리 속에 담고 평생 걸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적용입니다. 바울은 이런 성도의 부르심에 대한 깊이 있는 선포를 통하여 이게 자기 고백이 될 때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어요? 사실 여러분 바울은 사도로 부름 받기까지 바울이 한 일이 없어요. 오히려 바울은 부르심 받은 성도들을 박해하고 스테반을 갖다가 돌로 쳐 죽이고 그런데 놀라운 복음의 신비는 바울의 생애 속에서 그의 부르심 과정에서 나타났는데 다마스커스, 다메섹 도상에서 깨어져 있었어요. 그리고 그의 부르심에 이 신비의 보이지 않는 바울이 가진 과정이 뭐냐 하면, 사도행전 9장 9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사도행전 9:9,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그 정결함과 회개와 돌이킴의 기간이 있었다는 소위 부르심의 합당한 회개가 시작이 된 것이에요. 그리고 갈라디아 1장에 보면,

*갈라디아서 1:17,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바울이 이 부르심을 받고 바로 예루살렘 교회로 가지 아니하고 3년 동안 아라비아에 가가지고 거기서 철저한 자기 정결과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부르심에 합당한 회개를 감당하게 된 것이었어요. 그 아라비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니고, 그 아라비아는 지금 페트라, 요르단, 다마스커스 접경 지역인데 거기에 가가지고 3년 동안, 그 3년 동안 철저한 회개와 정결함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이게 역설의 회개와 정결함입니다. 지난주에는 제가 역설의 기쁨이라고 그랬는데 십자가와 그다음 기쁨을 안 어울리는 단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십자가는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가져온다. 그것이 이제 와닿는 것처럼 오늘 마찬가지입니다. 부르심의 은혜가 너무 큰데 그걸로 우리가 부르심의 은혜 받았다.

이게 아니라 거기에 걸맞는 정결함이 따라가는 것이에요. 아멘 정결함에 따라가는 것이 부르심에 걸맞는 정결함과 회개가 있어야 되는 것이 제가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우리 성도들 가만히 우리 교회 성도들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이 말씀의 복을 가지고 소위 영육 간의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의지적으로 삶에 있어서 심지로 경제적으로 또 가족적으로 여러 상황 가운데서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복을 받고 어떤 성도들은 그 복을 쏟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왜 그럴까?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끝까지 쓰임받고 가고 어떤 성도들은 뭔가 하나님 주시는 그 은혜가 있는데, 그걸 누리지를 못하고 중간에 다 새어나가는 거예요.

마치 독이 있는데, 그 독의 밑바닥이 튼튼하고 잘 되어 있으면 물을 채우면 그 물이 다 차 가지고 흘러넘치는데, 어떤 독은 아무리 아무리 물을 이렇게 쏟아 넣어도 계속 물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흩어지고 다 새버릴 이유가 뭔가? 제가 볼 때 이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가 없기 때문에, 참된 정결함이 없기 때문에, 이 참된 정결함과 참된 회개가 우리 신앙의 밑 빠진 독을 해결해 주시는 것이에요. 따라서 로마설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주님 앞에서 처리할 것은 처리하고, 반복적으로 짓는 죄, 습관적으로 짓는 죄, 수많은 것들이 있어요. 주님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것이 있어요.

오염된 것, 소위 정결함 없는 평안이 여러분들에게 있다면,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아버지 부르신 것 너무 사실이고 성도로 너무 귀한 일이지만 주님과 나와의 사이에 소위 벽이 가리워 져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복을 부어 주실려고 그러는데 그 벽이 가리워져 있는 거예요. 그러니 주님이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다 있을 줄로 믿습니다. 아시겠어요? 그걸 하나님 앞에 정리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거죠. 것이에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고린도에서 쓰고 있었는데, 그 고린도 교회는 바울은 나중에 보면 알지만 로마서를 쓸 때, 로마 교회에 가본 적이 없어요. 있을 때는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너무 주위에 고른도 교회 일어난 일들 잘 알아요. 고린도 교회는 너무 엉터리였어요. 성도들이. 그래서 이 고른도 교회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근심을 가지고 정결함과 회개를 해야 한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

*고린도후서 7:10,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참된 근심, 참된 회개 이런 정결함에 대한 어떤 방향을 잡아주는데 보세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뭘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뭐예요? 사망을 이룬다. 자 오늘 사탄이 우리를 근심하게 우리를 좌절하게 하고 우리를 짓누르고 우리에게 상처 주고 우리를 넘어뜨리게 하는 이건 사탄이 하는 것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제대로 된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정결함을 사모하는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요, 참된 해결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배해 놓으신 수많은 은혜들을 누리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1장 7절 뒤에 보면,

*로마서 1:7,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받을 복 중에 최고의 복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최고의 복은 은혜와 평강인 줄 믿으셔야 되는 거예요. 은혜와 평강의 이 물줄기가 생수가 터져야 되고 이것이 우리에게 막 뿜어져 들어가야 되는데 우리에게 들어오는 이 파이프가 막혀있는 것이에요. 파이프의 배관이 다 찌꺼기가 너무너무 막혀 있어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폭포처럼 부어주시려고 해도 우리가 받을 수가 없는 것이에요.

주님과 여러분만이 아는, 여러분의 은혜의 파이프를 더럽게 하고, 막히게 하고, 그걸 그냥 완전히 오염시키는 그 모든 것들을 로마서 시작하면서 정리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거죠. 그래서 제가 마음속에 소원을 했어요. 여러분 1월은 우리가 변화되기에 정말 좋은 시간이에요. 가장 좋은 시간이에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 복이 있는데, 하나는 주어진 복이 있고, 또 하나는 누려 지는 복이 있어요. 어떤 성도들은 주어진 복은 받았는데 누려 진 복을 받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어요. 성도에게 첫째, 무슨 복이 있으면서 부르심을 통하여 주어지는 복이 있습니다. 동시에 뭐예요? 누려 지는 복은 뭘 통해서 받아야 할까요?

정결함을 통하여 참된 회개를 통하여 여러분이 참된 회계는 근심을 통하여 이것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아까 7장 10절에 그래서 이 참된 회개가 있을 때, 회개의 정의가 나오는데 고린도후서 7장 11절에 이와 같이 나와요. 제가 한번 여러분 물 뽑겠습니다.

*고린도후서 7:11,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
얼마나 분하게 하며 / 얼마나 두렵게 하며 /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이 회개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열망을 주실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뭐하게 하며 이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에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소리가 왜 자꾸 작아져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이건 거룩한 분노예요. 죄에 대해서 내가 거룩한 분노를 하는 거예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두렵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얼마나 뭐하게 하며 이걸 오늘 여러분들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길 바라는 거예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열심히 이렇게 하며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아 그렇구나.

내가 제천기도동산에도 한번 가봐야 되겠구나. 이번 주일날 기도 금식 기도하려고 했는데 금식하는데 거기라도 한번 가봐야 되겠구나. 열심히 얼마나 뭐해요? 벌하게 하였는가 악을 용납지 않는 단호함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에요. 오늘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너희 자신의 뭘 나타냈느니라. 부르심에 대한 분명한 고백이 있어야 되고 두 번째, 이 부르심에 대한 은혜와 함께 우리가 정결함을 가지고 로마스를 시작하는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는 것인데 그것이 뭐냐?

회개를 나를 고치는 작업으로만 여기는 것은 그것은 아주 초기 단계에 회개는 자신을 고치는 것뿐만 아니라, 은혜가 나를 살리는 자리까지 나가는 것이에요. 매주일 마다 은혜가 저와 여러분을 살릴 것입니다.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여러분 가정을 살릴 것입니다. 결론이 뭐냐 우리에게 정한 마음이 있을 때, 새 마음이 창조되는 거예요. 10편 51편의 다윗이 고백한대로

*시편 51:10,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의 정직한 영을 뭐예요? 새롭게 하셨어요. 정결함이 되면 새 창조와 새로운 마음, 새로운 스타트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주어진 복뿐만 아니라 누려진 복을 위하여 거리끼는 것, 이걸 다 깨어서 흘러가게 하는 것들을 처리하고, New Start, New Creation, 새로운 창조와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한 분, 한 분 예외 없이 주님 앞에 쓰임 받는 축복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성 버나드가 은혜를 받고 참 회개하는 자에게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이 좋거든. 그 다음에 참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신다고 그랬어요. 우리 참 회개하는 자에게 찬양합시다.

저는 청년 시절의 정결함을 위하여 A day in Prayer, 기도로 하루를 이라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봤고 또 시간이 하루가 안 날 때는 Half day in prayer, 반나절이라도 주님과 함께 1월은 변화되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요약
이 말씀 가지고 주님 나 사이에 거리끼는 것, 내 삶에 누려 지는 축복들을 다 밑빠진 독으로 다 깨어서 흘러가게 하는 것들을 새 버리게 하는 것들을 막을 수 있도록 주님께 우리를 청결함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해야 하며, 우리 모든 성도들이 로마서의 복음의 정석을 통하여 우리가 정결함으로 나가는 은혜가 있어서, 우리 성도들 모두가 품격 있는 인생으로 만들어 주실 것을 확신한다. 말씀 가지고 우리가 더 이상 교만하지도 않고, 더 이상 절망하지도 않는 거룩한 자유함으로 신년을 맞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부르심에 합당한 회개와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복이 새어 나가던 모든 틈들을 눈물의 회개로 메꾸어서, 참된 말씀의 복과 은혜와 평강의 복이 나를 흘러넘쳐서 다시 시작하고 다시 재창조하는 New Start, New Creation의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에게 주님께서 놀라운 부르심의 은혜로 나를 그리스도의 것 삼아 주셨으니, 역사를 바꾼 로마서 말씀을 통하여 나의 가정과 일터를 바꿔가야 한다. 날마다 사망을 이루는 세상 근심'을 물리치고 회개를 이루는 거룩한 근심으로 정결해질 때, 새지 않는 은혜와 평강의 강수가 항상 넘실대고, 우리 사랑의 교회가 참 회개로 주어진 복'을 넘어 누려지는 복'을 경험할 때, ,우리 모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강력한 뉴스타트, 뉴크리에이션의 기적'을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간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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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01월 04일)-(26년 신년메시지)
설교제목 : “차안대(遮眼帶)를 쓰고 예수님만 바라보라
(Put on the Blinders and Fix Your Eyes on Jesus)”
성경본문 : 히브리서 12:1~3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박주성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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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2:1~3,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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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애 이와 같이 새로운 신년 감사 예배 드리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새해에도 이 강단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말씀의 깊이를 가지고 우리 성도들 한 분 한 분의 영혼을 살리는 메시지가 이 강단에서 선포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저는 신령 감사한 메시지로 “차안대(遮眼帶)를 쓰고 예수님만 바라보라” 이 차 안대는 차 한 대가 아니고, 이 차 안대는 눈옆 가리개입니다. 이거 나중에 또 다시 설명을 드릴 거예요. 하여튼 우리 눈 가르개를 쓰고 2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믿음과 시작의 완성 이신 믿음의 주여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이 한해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다. 그렇잖아요? 새해가 되면 좀 더 이제 신앙생활 제대로 해 보자. 또 새로운 믿음의 진보를 가져보자. 이런 마음에 다. 소원이 들지요. 그렇죠. 그렇게 되는데 그 목표가 뭐냐? 주님을 더 사랑하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가고 주님께 더 친밀하고, 주님의 사명을 더 깨닫고, 주님께 더 쓰임 받는 이런 것이 자연스럽게 새 우리의 마음에 소원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주님을 얼마나 더 사랑하십니까? 진짜 주님 사랑하십니까?

제가요. 지금 드리는 이 내용은 너무 좀 조심스러워서 굉장히 좀 제가 조심조심하게 얘기하고 싶은데요. 뭐냐면 45-6년 전에 제가 저희 집 사람하고 그때 교제를 했습니다. 교제를 하는데, 저희 집 사람이에 저보다. 미국을 더 먼저 가게 됐어요. 그게 돼 가지고 제가 그때 광화문 쪽에 살았는데 광화문에서 김포공항 가는 버스가 542번입니다. 예, 그걸 이제 김포공항에서 타고 이제 보내 주고 이제 저는 이제 혼자 들어와 갖고 그날이 금요일이었는데 금요일 밤에 기도회가 있었어요. 기도회 갖고 이제 기도회를 참석하는데 갑자기 막 가슴이 아프고, 막 갑자기 숨을 모시겠는 거예요. 호흡이 안 되는 거야. 그 왜 호흡이 안 될까? 그 보니까? 우리 집 사람을 우리 그때 우리 집 사람이 아니죠. 난영 자매를 너무 사랑해 가지고 숨을 모시겠는 거예요. 그 제가 이제 조심스럽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지금은 좀 좀 하여튼 그래요. 그래서 그래서 이 왜 이러나 내가 이게이 자매를 보내고 난 다음에 숨을 모시겠구나, 그 내 옆에 믿음 좋은 내 믿음 좋은 형제가 있었어요. 믿음 좋은 내 친구가 있었는데 갑자기 나를 보고 탁 정현 형제 정신 차려요!!!~. 그러는 거예요. 왜 그러니까? 아니 그대는 예수님 사랑하는 것 때문에 예수님을 너무 사랑해 가지고 숨을 모셔 본 적 있어? 오!!!, 그때 제가 진짜 벼락 같은 걸 느껴서 이렇게 음 그래서 그날 밤 금요. 기도했는데, 주님 앞에 회개하고, 내 평생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그다음에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이런 찬송을 하면서 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는 내 인생이 되게 도와주십시오. 그런 기억이 제가 이렇게 조심스러운 얘긴데,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 너무 사랑해 가지고 숨을 모셔 본 적이 있으시나니까? 정말 우리가 주님만 바라보고 달려간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우리의 삶의 목표가 재정렬된다는이 뜻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내 삶의 목표가 재정렬되면, 내 삶이 재정렬되면 내 가치관 내 삶의 렌즈로 이렇게 잘 렌즈를 바라보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냐? 우리의 시각이 달라지는 것이에요. 무슨 시각? 성공에 대한 시각, 실패에 대한 시각, 또 삶의 풍성함과 부족함에 대한 시각,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이 생각하는 거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대표적으로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사랑하는 이것이 우선순위가 되면 여러분 죽고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그렇게 너무 염려할 것도 없고 죽는 것이 무슨 뭐 인생의 끝도 아니고 무슨 절망도 아니에요.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이 삶의 목적이 되어서 삶이 재정렬되면 바울이 고백한 대로 빌립보서 1장 21절에 유명한 말씀 있죠? 같이 보죠.

*빌립보서 1장 21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아멘입니까? 사는 것도 귀한 것이지만 죽는 것도 유익하다. 왜냐하면 우리 죽는 것도 육신이 육신의 몸이 죽고 새 몸을 입는 거 아닙니까? 이게 달라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 바라볼 때 가치관과 생각이 재정렬되는데 한때 미국 같은 데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랬을 때 WWJD라고 있었어요. WW가 뭐냐? What would Jesus do? What would Jesus do?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니까? 주님 바라보는 사람들의 삶의 형태로 WWJD 그래서 그걸 이렇게에 손에도 이렇게 그걸 매고 이렇게 다니면서 일마다, 때마다. 삶에 대한 시각과 가치관이 달라져 가지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차원에서 이 한해 동안 여러분의 시각이 주님께 고정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첫 번째로 생각할 것은 우리의 시각이 주님께 초점이 맞춰 줘야 한다. 주님께 고정이 돼야 한다. 영어로 말하면 픽스가 돼야 한다.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I. 차안대(遮眼帶)를 쓰고 예수님만 바라보는 초점에 분명해야.

*히브리서 12:1,
1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이렇게 여러분 1절 하반절에 보니까?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이렇게 나와 있어요. 당한이란 말인데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는데 우리의 삶에 우리의 삶의 코스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은사대로 각자 주신 은사와 재능대로 여러분들에게 주신 삶의 코스가 있어요. 경조해야 할 코스가 있어요. 길이 있어요. 길이 있는데 이 길을 향하여 어떻게 할 것인가? 영어로 말을 Let us fix라고 나와 있어요.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이렇게 나와 있어요. 주님께로 집중하자. 우리의 신앙생활을 운동장을 가볍게 산책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집중해 가지고 달려가는 경기와 같다. 이 경기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9장에 유명한 말씀 있죠.

*고린도전서 9:14,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렇게 다. 상급을 향해 달려가라 이렇게 했어요. 달려가라 이렇게 했어. 그러니까? 여러분 생각을 해 보세요. 100m 육상 단거리 주자가 달려갈 때, 옆에 있는 것들 히끗히끗 보고 있잖아요. 이렇게 산만해 갖고 집중하고 달려갈 수가 없는 거에요. 딱 집중해서 달려가는 거예요. 그 제가 이제 오늘 차안고 한 것이 뭐냐?

경주마가 있는데 여러분 경주마들이 막 달려갈 때에 그 경주마에게 눈 가리게 눈옆 가리개, 덮개를 씌워요. 이렇게. 왜냐하면 이 말들이 보는이 시각의 이 시각이 뭐냐면 350도예요. 파노라마처럼 전체를 다. 볼 수 있는 거예요. 사람은 한 100한 6-70도를 보는 거죠.이 보게 돼 있는데 말들의 이 시각이 전체를 바라보 350도. 그러니까? 말에 겁이 많아 가지고 같이 경조할 옆에서 뛰는 말들을 보면 겁이 많아 가지고 주눅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눈옆 가리개, 눈옆 가리기를 씌워 가지고 그래 가리개를 씌울 때, 그 시각의 어떤 전체에 보는 눈이 350도에서 3분의 1로 줄어지는 거예요. 120도 정도로 줄어지는 거에요. 그러니까? 복잡한 거 안 보고 한 눈만 딱 집중해 가지고 경주말로서 달려갈 수 있도록. 그래서 그것이 차 안대이다. 그것이 눈옆 가리개이다. 이해가 됩니까?

신년 예배 오셔 가지고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말씀을 통하여 예배를 통하여 여러분들의 기도를 통하여 주님 한 분, 한 분에게 차 안대, 이 세상에 대해서 너무 신경 쓰지 않도록 눈 가리개를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게 우리에게 주신이 사명의 경로에요. 그리고 세상의 경주는 혼자만 뭐 챔피언하고 혼자 하지만 이 사명의 경주는 미션 구도가 돼 가지고 경쟁 구도가 아니라, 이 은혜를 받아 모두가 다. 승리할 수 있는 모두가 다. 양편 다. 승리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와 같이 차 안대를 쓰고 어떤 뭐 어떤 세상의 어떤 타 종교처럼 막 자기를 고행하고 그다음에 또 뭐 자기를 어떻게 애써가 이런 개념이 아니에요.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피안의 세계를 위하여 달려가는 사람이 아니고,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예수님의 의로 그것을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구원을 얻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수님의 온전함을 이루기 위하여 달려가는 것이에요. 예수님의 온전함. 오늘 여기 나와 있죠. 뭐라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의 그 은혜를 믿고 온전케 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것이에요. 따라서 우리의 달 경주는 이 세상의 어떤 구원을 위한 그런 경주 정도가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으로 그 은혜에 감사하여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우리가 예수님의 온전함을 닮아갈 수 있도록 다른 박질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의이 경주는 온달이에요. 온달. 온전함을 위하여 달려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은 오늘 남자들은 박온달, 김온달, 최온달 되시고, 여자분들은 이 남 자분들이 신앙 잘 할 수 있도록 평강공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알 사람은 알도다.
…-----
요약
제목: 차안대를 쓰고 예수님을 바라보라 (히브리서 12:1–3)
-이 설교는 새해를 맞아 성도들이 믿음의 경주를 어떻게 달려가야 하는가를 히브리서 12장을 중심으로 선포한다. 핵심은 눈을 가리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온전함을 향해 끝까지 달려가는 신앙이다.

1. 신앙의 출발점: 예수님을 향한 시선 고정
새해마다 성도들은 더 깊은 신앙을 소망하지만, 그 출발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달려 있다. 설교자는 개인적인 간증을 통해, 사람을 사랑하는 감정과 비교될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회개한 경험을 나눈다. 진정한 신앙은 예수님을 삶의 최우선에 두는 것이며, 그럴 때 삶의 목표와 가치관이 재정렬된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은 성공과 실패, 풍성함과 부족함, 심지어 죽음에 대한 관점까지 바꾸어 놓는다. 바울의 고백처럼 “사는 것이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유익”이 된다.

2. 차안대의 의미: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하라
‘차안대’는 경주마에게 씌우는 눈가리개를 뜻한다. 말은 시야가 넓어 옆을 보면 겁을 먹기 때문에, 오직 앞만 보고 달리게 하기 위해 눈가리개를 씌운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은 산책이 아니라 경주이며, 성도는 Let us fix our eyes on Jesus처럼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은사와 사명에 따른 각자의 경주 코스를 주셨다. 신앙은 경쟁이 아니라, 은혜 안에서 모두가 승리하도록 부르심 받은 사명의 경주다.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자로서 예수님의 온전함을 닮아가기 위해 달리는 사람들이다.

3. 경주를 방해하는 두 가지 장애물
믿음의 경주를 방해하는 요소는 두 가지다. 모든 무거운 것 죄는 아니지만, 우리를 무겁게 만드는 것들이다.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 패배주의,·냉소주의, 회의주의. 형식주의, 본질보다 수단에 집착하는 신앙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 심지어 가족이나 소중한 대상도 예수님보다 앞설 때는 ‘무거운 것’이 된다.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는 대상이 있을 때, 그것은 신앙의 발목을 잡는다. 얽매이기 쉬운 죄 하나님과 자신만 아는 반복적·습관적인 죄다. 이는 그물처럼 발목을 붙잡아 경주를 못 하게 한다. 특히 쓴 뿌리(미움, 상처, 분노)는 개인과 공동체 전체를 오염시킨다. 쓴 뿌리가 처리되지 않으면 온전한 경주는 불가능하다. 신앙은 마라톤과 같아서, 무거운 외투를 입고는 끝까지 달릴 수 없다. 반드시 내려놓고 벗어버려야 한다.

4. 적극적으로 필요한 힘: 역설의 기쁨
경주를 위해 제거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반드시 붙들어야 할 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역설의 기쁨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극도의 고통과 수치를 그 앞에 있는 기쁨 때문에 참으셨다. 이 기쁨은 세상적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기쁨, 구원 사역을 완성하는 기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쁨, 십자가와 기쁨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신앙의 세계에서는 고난을 통과한 기쁨이 참된 기쁨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둔다.” 고난 없이는 영광이 없고,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이 없다.

5. 경주의 결론: 피곤해도 낙심하지 말라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람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물질이나 상황에 매이지 않으며, 피곤하고 낙심될 때마다 예수님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히브리서 12장 3절처럼,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생각할 때 우리는 다시 일어나 달릴 힘을 얻는다.

6. 결단과 초청
신앙생활을 미적지근하게 해왔던 사람들에게 이번 한 해는 정말로 달려보자고 도전한다. 모라비안 교도들처럼 말씀과 기도 중심으로 끝까지 달려가는 믿음을 본받아,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하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내려놓고, 역설의 기쁨으로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달려가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하며 설교를 마무리한다.

♣요약
우리는 영적 차안대(遮眼帶)'를 쓰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온전함의 달음박질'을 할 때, 우리 모두의 인생이 '뜨거운 주님 사랑'으로 재정렬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사명 순종을 완성하는 수치의 십자가를 지셨사오니, 영광스러운 역설의 기쁨'으로 모든 쓴 뿌리와 얽매이기 쉬운 죄'를 다 처리해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우리 사랑의교회와 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가 '21세기 모라비안 불침번'으로 '24시간 릴레이 기도'에 자신을 내어 드릴 때, 주님의 압도적인 능력으로 '2033-50 비전'을 이루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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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12월 28일)-이사야 시리즈 ㉝
설교제목: ”마지막 계시와 환상(The Final Revelation and Vision)“
성경본문: 이사야 64:4, 65:24~25, 66:22~23
찬양인되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대표기도: 백두산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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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4:4,
4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이사야 65:24~25,
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이사야 66:22~23,
22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3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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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이지 않는 환상

1-1.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믿음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계시이며, 이는 바울의 고백에서 나타남
-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세계를 믿고,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함
- 계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열어야 보이게 함
- 이사야는 계시를 본 선지자로, 1장부터 66장까지 하나님의 환상을 그렸음
- 이사야는 본문에서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대해 눈으로 봄을 주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심으로 믿게 함

1-2. 이사야의 환상
-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솔로몬의 전성기 이후의 데스로트 시기를 위로해 주시기 위해 환상을 주심
- 웃시아 왕의 죽음 이후, 사람들이 낙심하고 희망이 없어짐
- 이사야는 이 순간을 비관주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환상을 주심으로 비관을 깨뜨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함
- 이사야는 본문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믿음을 주심
- (중요) 보이지 않는 원인에 의해 보이지 않는 세계가 나타난다는 것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임

1-3.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믿음
-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의지해야 함
-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영적인 세계를 보고 깨달아야 함
-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원인에 의해 나타난 결과임을 기억해야 함
-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제일의 권력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임
- 이사야의 본문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믿음을 위한 계시임

2. 보이지 않는 세계의 힘

2-1.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함
- 인생은 무엇으로 행복해지는지 연구했지만, 행복은 물질이 아닌 인간 관계에 있음
-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인생의 행복을 결정함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함
- 하버드대 연구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최고의 접점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밝힘
- (중요) 72절을 암송하면 장례가 결정되고, 인생이 결정될 수 있음

2-2. 암송의 힘
- 보이지 않는 세계에 주목하면 영적인 세계에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섭리적인 손이 의식됨
- 지금 우리가 겪는 일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의 뜻을 의지함
- 우리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눈이 열리면, 영광스러운 즐거움과 기쁨이 찾아옴
-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함
- 어려움이 아니라, 마음이 거룩한 성숙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의심하는 것이 중요함

2-3. 보이지 않는 세계의 섭리
- 보이지 않는 세계에 눈을 뜨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적인 손이 의식됨
-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문제는 우리가 그 말씀을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음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 선을 이루게 됨
- 보이지 않는 세계에 눈이 열리면, 하나님의 환상과 계시를 경험하게 됨
-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 땅에서 꿈이 되고, 천국에서 주인처럼 살게 됨

3. 하나님의 비전

3-1. 새 하늘과 새 땅
- 본문에서 보이지 않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언급됨
- 그곳에는 해함도, 상함도 없으며, 모두 해와 상함이 없는 곳임
- 우리가 살아가는 땅에는 해와 상함이 있음
- 해와 상함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으로, 가해자로 인한 죄악과 피해자의 상처로 인한 억울함이 있음
- 새 하늘과 새 땅은 해와 상함이 없는 곳임

3-2.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
- 요한계시록의 제자인 사도 요한은 비전을 받아들이고 이를 발전적으로 해석함
- 요한계시록 27장 4절과 21장 4절을 인용하여 설명함
-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고, 사망과 애통, 상함이 없는 세상을 경험하게 하겠다고 약속함
- 저주가 없으며, 눈이 열린 사람에게 초대교회 성도들은 비전을 맛보기를 기대함
- 해와 상함이 없는 세상과 영의 눈이 열린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음

3-3. 비전의 결과
- 우리는 세상의 상처에 굴복하지 않고, 소망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살아감
- 해와 상함이 없는 세상을 기다리며, 상처를 주지 않고 받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을 강조함
- 한국 교회는 더 이상 상처를 주지 말고, 상처를 받지도 말기를 바란다고 함
- 하나님의 은혜와 계시를 통해 우리의 부름과 응답이 이루어짐을 깨달아야 함
- (중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무한하나, 시간은 상대적이고 결국은 하나님의 주권임을 알아야 함

4. 계시와 예배

4-1. 하나님의 눈으로 본 계시
- 보이지 않는 세계에 눈을 열어 하나님과 함께 영적 교제를 통해 은혜를 얻을 수 있음
- 엘리야를 예로 들어, 하나님의 미리 하심과 함께 7천 명의 기도 용사를 허락하심을 언급함
-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아는 것을 통해 응답하심
-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모라비안 기도를 드리면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기도하게 됨
- (중요) 예배는 하나님을 모시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한 환상을 듣고 계시를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함

4-2. 새 하늘과 새 땅
- 새 하늘과 새 땅은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곳으로, 천국의 애굽편을 맛보게 될 것임
- 이사야 66장 23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매월 초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심
- 이사야는 마태복음 5장에서 하나님의 안식처와 신성한 장소에 대해 언급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 영원히 보장될 것이라 결론함
- 이사야의 마무리는, 하나님은 공간에 제한받지 않는 하나님이시기에, 예배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심

4-3. 예배와 헌신
- 예배는 하나님의 신비한 환상을 듣고, 계시를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함
-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게 됨
-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통해 기적이 일어나게 함
-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의 인도하심을 통해 쓰임 받는 거룩한 종이 되기를 원함
- 예배를 하며, 헌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더 중요함

♣요약
-해함도 없고 상함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은혜를 지금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예고편으로 누리며, 앞으로 매 주일 예배를 통하여 환상과 계시를 모든 성도들이 경험하고, 영안이 활짝 열리는 참된 예배자로 모두가 다. 비상하길 소망한다.

우리는 오감을 넘어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는 말씀으로 나의 영안을 열어 주사, 성령으로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는 평생이 되어서, 서러움을 주는 세상이지만 해함도 상함도 없는 천국의 예고편을 살아가야 한다. 이 일을 통해 무엇을 이루실까? 항상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대감으로 살며, 사랑의교회가 새 하늘과 새 땅의 능력을 힘입어 참된 예배자요 21세기 모라비안 기도자로 헌신하고 계승할 때, 상처는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으로 비상하게 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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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11월 16일)-새로운 길(이사야 시리즈 ㉙)
제목; "복음의 진수“-The core of the Gospel
말씀: 이사야 55:6-13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전승현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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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5:6-13,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12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13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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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대가 고백한 대로 한 분, 한 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하여 하늘의 영광을 체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복음의 진수’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릴 텐데, 오늘 복음의 능력, 또 복음의 은혜, 복음의 기쁨 감사가 넘치는 그 체험되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한 주간 동안 새생명축제를 했습니다. 인생 10월을 보내고 그 수고 가운데서도 복음 선포에 대한 그 열정에 집중해 가지고 작년도 보다도 더 많은 분들이 결신을 했습니다. 놀랍고도 감사한 일입니다. 은혜 게시판에 보니까? 이번 2025년 새생명축제 프로그램을 대해서 너무 귀하고 특별하고 훌륭했다. 그러면서 ‘설교 말씀이나 간증이 어찌 그리 금은보화 같은지요. 구원의 핵심이 녹아 있습니다. 저도 여러번 대풀리에서 듣고 친구들에게도 소개할 예정입니다.’

근데 이 그 집사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에요. 그리고 오늘 이사야 55장이 본문은 ‘복음의 진수’에 대해서 아주 깊이와 풍성함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복음의 진수에 대해서 한 명도 예 없이 다. 체험하고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먼저 그럼 ‘복음의 진수’의 출발이 어디일까? 이 진수(Core)란 말은 코어라는 말 핵심인데, 복음의 핵심의 출발이 뭐냐? 주님의 간절한 초청이 출발이다.

I. 첫째, 복음의 진수의 출발은 주님의 간절한 초청이다.

오늘 1절에 보니까? 제가 본문을 이렇게 너무 길어 가지고 6절부터 13절까지 여러분들 봉독했습니다만은 1절부터인데 1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55:1,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오라라는 단어가 세 번 나와 있어요. 오라, 영어로는 come 이라는 단어인데, 이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사용했어요. 오라. 오라 오라 2절에 보니까?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듣고 들을지어다. 옛날에는 개혁판에서는 청종하라.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다음에 3절에 보니까,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그리고 6절에 보니까,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그러니까? 주님의 어떤 간절한 심정이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느껴질 것입니다. 간절한 심 그런데다가 올라를 초청할 뿐만 아니라 2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55:2,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그러니까 왜 가장 중요한 인생의 생명을 쓸데없는 것과 무가치한 것과 공허한 것과 바꾸려고 하느냐? 그게 진정한 충만함도 없고 그게 가짜 행복인데 그게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주님은 질타하시는 것이에요. 그게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쥠은 질타하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안타까운 심령을 가지고 계속 초대를 하시는데, 어떻게 초대를 하시는가? 초청 대상자들을 잘 봐야 돼요. 1절에 보니까,

*이사야 55:1,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그 다음에 3절에 보니까,
*이사야 55:3,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7절에 보니까,

*이사야 55:7,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그 주님의 초청은 영적으로 목마른 자, 재정 창구가 바닥에 났든지, 또 죄책감의 웅덩이에 깊이 빠져 있든지, 인생의 짐이 너무 무거워 가지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 속에서 헤매든지, 하여튼 어떤 상황에 있든지, 어떤 경우에든지 관계없이 오라는 것이에요. 간절한 심정으로 우리를 초청하시는 것, 이것이 복음의 진수의 출발이라는 것이에요. 요즘이 늦가을에다가 이제 겨울이 곧 다가오는데, 우리 환절기로 밤낮 온도가 10도 이상 차이가 나잖아요. 그러니까?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쌀씰한 이 시기에 많은 분들이 뭐 뭐 어떤 분들이 당뇨 치수가 올라가고 그다음에 마음도 아프고 쓸쓸한 분들이 많이 계세요. 근데 그런 분도 오라. 오라. 오라. 오라. 그 간격 때문에 고생하면 더 오라. AI 시대에 변화 무상한 시대에도 흔들림 없는 인생 좀 살아보고 싶다.

그러면 더 오라. 그러면 오라. 배우자나 부모나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보내서 마음이 텅텅 빈 분들 그분도 다. 오라. 초청하시고,,, 복음은 인종이나 사회적 지위나 생활 수준이나 재산의 정도나 교육이나 겉모습이나 나이나 성별 어떤 차별도 두지 않고 주님은 부르시는 것이에요. 요한복음 4장에 보면, 그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그야말로 세상에서 왕따 당하는 여인이었어요. 사람들 만나는 것조차 낯을 가려 가지고 땡볕이 아무도 없을 때 나가서 물을 기르는 그런 여인, 그런 여인도 오라. 목마르니까? 오라. 내가 생수를 줄이라. 날마다 솟는 샘물을 주리라. 그다음에 요한복음 4장 앞에,,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라는 사회적 아주 고품격 아주 아주 사회 아주 지도자이고 학식이 많은 사람이고 뭐 대단한 재산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도 오라 뭐 병든 자도 그다음에 왕따당한 여인도 세상에 지위 있는 사람도 존경받는 사람도 다 오라. 주님은 다 품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근데 어떤 사람은 아유 내가 뭐 이래 가지고 나갈 수 있겠나? 내가 뭐 이래 가지고 내 나 자신을 돌아보니까? 나는 자기가 자기를 용서하지 못한 사람 많이 있잖아요. 그러면 내가 물어봅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자격이 있으면 나갈 수 있나요? 우리의 의가 어느 정도 되면 나갈 수 있을까요? 우리가 자격을 가지고 나가려고 할진데, 우리가 어느 정도 정의롭고 우리가 어느 정도 선하면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을 얻을 수가 있겠어요?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수많은 약점이 있지만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그래서 오늘 복음의 진수의 출발은 복음 초청의 무차별성이에요.

무차별성, 무차별성. 누구든지 오라고 하는 이것이 복음의 진수의 출발이니, 이것을 오늘 저와 여러분이 깊이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무차별성에 의한 초청을 했을 때에,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냐, 목마른 자도 오라. 내가 물을 주리라. 그 그다음에 온 사람들에게 포도주와 젖을 주겠다. 그랬어요. 젖은 목마른 자가 이제 생명을 얻고 난 다음에,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영적 양육과 공급의 상징이 저지예요. 복음의 초청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삶에 필요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양분을 주시는 주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준다는 말은 포도주는 기쁨의 대명사, 기쁨을 상징하는 것이에요. 우리의 겉 사람이 나이가 들고 부패하더라도 내 속 사람이 난 모르는 영혼의 잔치와 기쁨을 가질 수 있다. 이거예요. 그 기쁨으로 젖과 포도주와 생수의 은혜로 주님은 우리를 초청해 주시는 것이에요.

오늘 이 예배에 오신 모든 성도들이 예배 자체가 주님이 초청을 하고 오셨으니, 그리고 지난 주일 날 오늘 특별히 새생명축체를 통하여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분들에게 주님께서 우리 모두가 살아갈 힘과 용기 우리의 삶의 모든 필요한 젖과 포도주와 생수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초청하시는데, 창조주 하나님이 초청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뭐가 모자라 가지고 우리를 초청하신 것이 아니에요. 왜 우리를 초청하시는가?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초청하신 이유는 모르지만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초청하시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으세요. 근데 그분의 그 이유를 모르는 그 사랑때문에 우리를 초청하는 것이에요.

오늘 제가 이제 새롭게 예수님을 영접한 그런 분들에게 오늘 좀 쉽게 말씀을 좀 드리겠어요. 이제 과거 로마 시대 때, 바울이 이걸 깨닫고 난 다음에 아, 이유를 모르지만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초청하셨다. 이걸 소위 그 당시에 입양 제도를 가지고 설명을 했어요. 로마 당시에는 귀족들이 어 어떤 자식들을 입양하는 귀족들 가운데 자식이 없었을 때, 입양하는 그런 제도가 있어 가지고 바울은 그걸 보고 아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어떤 뜻인가, 아주 초라하고 형편없는 인생이 하나님의 놀라운 그 대단한 어떤 가문에 입양되는 것, 그거와 비교가 안 되는 그런 축복이 있는 것이다. 라고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말씀을 하면서 입양에 대해서 얘기를 했어요. 이런 뜻이에요.

6.25(1950년) 이후에 대한민국은 전쟁 고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 서울역 앞에 그 굴다리 밑에서 풍찬 노숙하고 먹고 자고 하면서 아주 가난한 아이들이 남자 아이들이 고아들이 거기서 신문팔이하고 또 뭐 먹는 것은 구걸하면서 그렇게 먹었어요. 근데 서울역 앞에 그쪽 있다. 옆으로 좀 더 신문팔이 하면서 이제 좀 지나가 보면 옆에 서소문 같은데 가 보니까? 서소문에 어떤 집이 큰 고대 같은 큰 좋은 집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고아 하나가 나는 부모도 없고 나는 이렇게 신문팔이 하면서 매일 구걸해 가지고 나는 먹는데, 이 집은 너무 멋있네. 그리 지나다가 어느 날 여가 용기를 내 가지고 그 집에 문을 두드렸어요. 두드려 가지고 그러니까? 그 집 주인이 나와서 왜 그러니? 그러니까?

저는 신문팔이인데 제가 이 집을 왔다 갔다. 보면서 저는 이제 먹을 것도 없는 사람이긴 한데 혹시 이 집에 혹시 저를 양자로 맞이해 줄 수 있습니까? 이 이 얘기를 하니까? 주인이 아이 뭐이 참 희한한 일이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아내 보고 여보 좀 나와 보라고 이 아이 하나가 이 자기를이 집에 우리 집에 양아들로 하게 해 달라고 말하는데, 어쩌면 좋지? 그러니까? 그 부인이 있다. 여보 잘됐네. 우리 집에 아이도 없으니까? 걔를 우리 집 아이로 이렇게 하자고. 이제 그렇게 하니까? 얘가 갑자기 뭐 감동이 됐겠죠. 그래 갖고 얘가 제가 가진 것이 있는데, 저는 지금 신문 팔다가 몇 분 남았고 그동안 동냥해 가지고 900원 동전 900원 갖고 있는데, 제가 이걸 입방해 주시니 너무 감사해서 내가 이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랬어요. 그래 얘기했어요. 그 부모가 그 예야, 잠은 어디서 자니 골다리 밑에서 산다. 그러고 뭘 먹니? 구걸해서 먹는다고 그러고 그러니까? 자기가 갖고 있는 신문하고 그동안 본동 900원을 주니까 애야, 그건 안 줘도 돼.


여러분, 그 아이가 그 부잣집에 입양되는 순간, 그 아이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이에요. 이런 예가 드라마틱한 얘기예요.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그 순간, 서울역에서 굴다리 밑에서 그야말로 구걸하던 그 아이가 아주 나름 그 한국의 부호 집에 입양되어 갔을 때, 그 아이의 입양되는 그 수준과는 비교가 안 되는, 뭐 천배, 만 배, 아니 비교가 안 되는 저 무비의 비교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있는 줄로 확신하는 것이에요. 이게 이걸 깨닫는 순간 야 생명의 복음을 깨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이건 기가 막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늙은 어리건 상관이 없이 여러분, 그 생명의 역사에 주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영적인 아우라가 있는 것이에요.

또 가만히 계시는 거 말이야. 영적인 아우라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거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은 누가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하늘부터 내려오는 초청이요. 청량할 수 없는 선물이에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값없이 입양된 은혜로 6.25 굴다리 밑에 고아보다도 천배, 만 배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걸 깨닫고 난 다음에 우리도 모르게 나오는 찬양이 뭐예요?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며 나를 친구 자녀로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은혜는 알 사람이 없도다.

그래서 자다가도 새벽 2시 3시에 눈이 깨이면 눈물로 침상을 적시면 나 같은 것이 어떻게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까, 라는 이런 간절하고도 정말로 그 내 마음에 우러난 진실된 고백이 있을 수밖에 없는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이 복음의 진수의 출발을 이렇게 오라 하시고, 입양한 것부터 출발을 하시고, 이것이 그대로 연결이 되어 가지고, 신약의 창에서 해석을 할 때 요한계시록 22장 17절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 중에 22장은 마지막 장이고, 그중에 거의 마지막 부분인데 그 마지막 부분에 뭐라고 나와 있는 이렇게 나와 17절에 다. 같이요.

*요한계시록 22:17,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이게 이사야 55장 앞에 1절에 오라는 성경 전체 구원 계시사로 볼 때, 마지막 부분에서 그래서 저는 장례식 집례를 할 때 마지막 축도하기 전에 꼭 이 말씀을 제가 같이 나누고 마지막 축도를 합니다.

복음의 복음적인 주님의 초청이 있었을 때 우리가 우리 생애를 살다가 마지막 우리 생애가 끝난 날 주님은 컴, 그랬을 때 오늘 아 컴인, 주님 주님의 궁전에 우리가 입성합니다. 이게 참 신비한 거예요. 음. 신비한 거예요. 이 복음의 진술을 더 선명하게 깨닫기 위하여 첫 번째는 출발이 초청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두 번째 그런 복음의 진수가 아닌게 뭔가? 아닌 것을 먼저 확인해 보면 진짜가 우리가 확 우리 것으로 더 깨달아질 것이에요.

II. 둘째, 복음의 진수가 아닌 것이 무엇인가?

-8절에 이렇게 나왔어요.
*이사야 55:8,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늘 본문에 이렇게 나와 있는데 복음의 진수가 아닌 것은 뭐냐? 사람의 생각은 복음이 아닌 것이에요. 사람의 길은 복음이 아닌 것이에요.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길이 복음이 아니다. 좀 깜짝 놀랄 정도예요. 사람의 생각이 대표적인 것이 뭐냐? 신학적으로 자유주의 인본주의고 또 사회주의, 유물적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런 것들이 대표적으로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길이에요. 칼막스 자본론에 심취한 우리 옛날에 우리 젊은이들 대학생들 많았는데, 그거 아주 전형적인 복음이 아닌 것이에요.

사람의 생각의 핵심이 뭐냐? 사람은 죄의 경중에 대해서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 주관적으로 자기 주관적인 생각에 어떤 죄는 더 치명적이고 어떤 죄는 사소하고 어떤 죄는 용서받을 죄가 있고, 어떤 죄는 용서받으면 못 어떤 죄는 경악스러운 죄가 죄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라요. 그건 사람의 생각이지. 어떻게 죄를 정의하고 죄의 경중을 사람이 판단하든가 상관이 없이 죄는 다. 죄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생각이 어떻게 다릅니까? 이사야 53장 앞장에서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사야 53:6,
6 우리는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 다 양 같아서, 뒤에 이사야 64장 6절에는,

*이사야 64:6,
6 무릇 우리는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정도의 차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 사람의 생각은 경중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다 죄인이다. 그래서 신약의 창으로는 바울이 뭐라고 얘기하느냐?

*로마서 3:23,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했다. 그리고 다 죄를 범한 우리는 스스로 그 죄를 극복할 힘이 없다. 죄를 지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겉으로 볼 때는 별로 문제가 없는 거 같으니까? 문제가 없는 거 같지만 그거 다 영적 치매 현상이고, 죄를 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사야 3장 11절에 보니까?

*이사야 3:11,
11 악인에게는 내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라.
-하나님의 공의가 있다는 것이에요. 무슨 말이냐면, 우리는 이미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예요. 아담의 자손들은 다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예요. 지난주일 저녁에 제가 이렇게 복음 설교를 하면서, 그때 제가 생화를 꺾어 가지고 들고 나갔죠? 생화를 꺾어 들고 나갔는데 이게 좀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물으니, 대체적으로 죽었다. 그러죠. 왜요? 뿌리에서 꺾여져 나왔으니까. 어 어떤 사람은 또 살았다. 며칠 살아 있는 것 보고 사는 거 같다고 이렇게 얘기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죽은 존재죠. 우리는 죽은 존재였어요. 태어날 때부터 영적으로 죽은 존재였어요. 제가 이제 이런 내용은 우리 기성 신자들은 좀 잘 알고 계세요. 근데 제가 한 가지 더 이제 더하겠어요. 야, 죽음. 죽은 존재는 시체예요. 여러분, 장의사가 그 시체에 죽은 사람의 머리를 곱게 빗기고 얼굴에 화장을 시키고 아름다운 옷을 입힙니다. 그런데 죽은 시체에 아무리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화장을 하고 그다음에 머리를 곱게 비겨도 시체는 죽은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범죄로 우리가 다 죽은 자인데, 죽은 자들이 우리 죽은 자들이 지금 뭐 폼을 잡고 죽은 자들이 철학을 나누고 죽은 자들이 고상한 얘기를 하고, 죽은 자들이 대단한 즐거움을 얘기를 하더라도 그것은 다 죽은 시체에 화장을 하고 옷을 입히고 빗질을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한 번씩 말씀드리잖아요. 아무리 부자라도 예수 믿지 않는 부자는 부자 시체 죄인이에요. 여러분 예수 믿지 않는 부자는요. 다 부자 시체 죄인이에요. 아무리 세상적인 석학이라 할지라도 예수 믿지 않는 석학은 영적으로 석학 시체 죄인이에요. 석학 시체이고 부자 시체일 뿐이에요. 기분 나빠도 어쩔 수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생명의 역사에 붙여지지 않는 사람은 다 걸어 다니는 시체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강남에 나가 보면 수많은 시체들이 걸어 다니는 거예요. 지금,,, 단지 어느 기간 동안만, 생명의 역사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아무리 시체에다가 머리를 빗기고, 아무리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화장을 하더라도 이건 시체는 시체인 거예요. 여기에다. 통찰력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시체인 사람의 아우라와 생명의 역사가 붙여진 저와 여러분의 아우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에요. 여러분이 강단 위에 어떤 강사들이 올라오는데 정말 복음의 역사가 강한 사람이 올라오면 그 영적인 아우라가 있는 거예요. 맞습니까? 우리 개인도 마찬가지예요.

자, 첫 번째 저는 복음의 출발은 초청으로부터 시작한다. 두 번째 복음은 복음이 아닌 것은 사람의 생각은 복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시체들이 하는 생각은 복음이 아니다. 그럼 세 번째 복음의 진수가 무엇인가?

III. 복음의 진수, 핵심이 무엇인가?

복음의 진수 핵심이 무엇인가? 오늘 보니까? 7절에 여러 번 나와 있어요.

*이사야 55:7,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그다음에 그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 긍휼이라는 거, 두 번째로 7절 뒤 뒷부분에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뭐하시리라 용서하시리라 그러니까? 긍휼의 하나님, 용서하시는 하나님, 용서하신 하나님 이게 복음의 진수예요. 시편 103편 10절에 보면 뭐라고 나와 있느냐 함께 크게 보죠.

*시편 103:10,
10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 아니하셨으니,
-할렐루야! 돌아온 탕자에요. 마음대로 살고 엉망 진창으로 살았지만, 아버지 집을 그리워 돌아갔는데 아버지가 품게되는 게, 복음의 진수예요. 이 모든 것들을 정리해서 우리는 이미 시체이고, 다 죽어 있었지만 그런데 죄로 시체 된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어떻게 되는가? 긍휼의 하나님, 그다음에 용서하시는 하나님이 이사야 53장 6절에,

*이사야 53:6,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도다.
-우리의 모든 불의를 대신 지시고 나무 십자가에 주님께서 처절하게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어요. 그것도 성육신 하셔 가지고이 땅에 오셔 가지고 피를 흘리신 거예요. 그것이 복음의 진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땅에 부모도 자식을 위하여 목숨 받치고 헌신하는 부모도 많이 있습니다. 자식을 위하여 모든 걸 다 감당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어떤 부모는 자식에게 간도 콩팥도 내어 주는 그런 부모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는 어떤 부모가 그의 간도 콩팥도 다 내 줘도 자식의 죄는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죽어 있는 시체는 죄 문제는 해결할 수가 없고 죽어 있는 시체는 일으킬 수 없어요.

여러분 자기 죄는 자기가 감당할 수밖에 없어요. 많은 우리 남편 되시는 분들이 아내 신앙이 좋다고 내가 안에 치마폭 내가 붙잡고 내가 우리 아내 때문에 내가 들어갈 거야. 그건 안 돼요. 부모 신앙이 좋 신앙이니까? 그거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세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가 본래 시체였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성육신하신 예수님. 이사야 53장 5절 잘 알죠?

*이사야 53:5,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가 뭘 받았도다? 나음을 받았도다. 이게 복음의 진수에요. 긍휼과 용서와 주님의 피흘리심, 그래서 9절에 오늘 9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뭐라냐? 함께 보죠.

*이사야 55:9,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할렐루야,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진수에요. 너무 중요하니까. 제가 오늘 사실 회중 찬송을 부르면서 ‘공중나는 새를 보라.’ 추수 감사 줄 기간이니까 이 찬송을 제가 불 부르고 그것도 참 너무 감사한 찬송이지만 사실 오늘 제가 이 설교를 하면서 회중 찬송을 뭘 하고 싶었냐?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그 가사이 보면 기가 막힌 가사에요. 탑레디 목사님이 너무나 복음의 진수를 깨닫고 이 고백을 한 거에요. 이 찬송을 정말로 제가 하고 싶었어요. 집에 가면 하세요. 알겠죠?

자, 이제 중요한 것 초청받았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아닌 복음의 진수를 깨닫습니다. 그러면이 복음의 진수 핵심을 우리가 깨닫고 난 다음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반응 6절에 이렇게 나와요.

*이사야 55:6,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무슨 말입니까? 미루지 말라는 것이에요. 미룰 수도 없어요. 만날 만한 때란 말은 주님을 만날 가장 적절한 시간, 타이밍이에요. 가까이 계실 때에 그 말은 현재 여러분들의 모든 상황 자체 그 현재 모든 상황에서 기회를 놓치지 말라. 자, 말씀드린 대로 기회는 인생에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이에요.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 24장에 당시 총독 펠릭스 총독 앞에가 가지고, 그 펠릭스가 그때 막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자다. 그다음에 뭐 바울이 대단한 사람이다. 뭐 이런 얘기를 듣고 바울을 초청해 가지고 그 이제 그 도대체 네가 하는게 뭐냐? 그래 얘기하니까? 바울이 생명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복음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은 어렵고 힘들고 고통당하는 걸 분도 섬기고 구제해야 되지만 그리스도인은 필요하면 왕과 총독 앞에서도 서야 돼요. 여러분들이 생각, 여러분들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그 앞에 서서 복음을 선포할 수가 있어야 되는 것이에요. 그렇게 이제 선포하니까? 바울이 선포하니까? 펠릭스가 뭐라 그러냐? 야 그 참 놀랍다야. 나도 그 진리를 좀 더 알고 싶다. 이렇게 해 얘기를 해야 되는데 뭐라고 반응했냐면 사도행전 24장 25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요.

*사도행전 24:25,
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미루는 거예요. 미루는 거예요. 여러분 미루면 안 됩니다. 미루면 안 되는 것이에요. 오늘이 내용은 두 가지가 포함돼요. 처음 오늘 교회 오신 분에게도 이 마음이 이 말씀이 포함되고, 이미 우리 예수 믿는 기성 성도들에게도 이것이 그대로 포함되는 거예요. 대표적으로 제자 훈련 미루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제자 훈련을 받기에 적합한 때는 없어요. 지금이에요. 지금, 아 내가 환경 좋으면? 아니에요. 오늘도 사탄은 속삭이는 거예요. 당신의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나중에 하자고 미루게 하는 거예요. 이게 다. 사람의 생각이에요.

제가 대학 시절에 우리 그 예수 믿는 대학생들끼리 북쉐어링 북북 쉐어링 클럽이라 해 가지고 같이 뭐 존스트도 CS 루이스도 그다음에 프란스 셰퍼 뭐 제패크 이런 분들의 책을 읽고 우리가 그걸 읽고 이제 북쉐어라는데 그때 책 중에 하나가 CS 루이스가 썼던 스크루 테이블의 편지라고, 옛날에는 그 번역하는 악마의 편지라는 그런 책이 있어요. 거기 보니까 이 최근 악마 스크루 테이프가 그 조카 웜우드에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예수 믿지 못하게 할까, 라는 편지 형식으로 조언하는 그야말로 악마의 얘기예요. 그중에 아직 이런 내용이 있어요. 미룸, 미룸이 지속되는 그는 거짓된 입장에 체악이 될 것이다. 미룸이 지속되는 그는 크리스천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래 계속 미루게 해라. 계속 미루해라. 새로 신앙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 말해 주는 내용이에요.

새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신앙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말고, 지금은 신앙을 숨기도록 설득하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가 계속 크리스천으로 드러내지 않고 미루는 한 그는 거짓된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고, 헤멜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CS루이스는 이 책을 통하여 신자가 신앙을 솔직히 드러내야 할 때, 그 일을 미루면 결국 이중적인 삶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다. 위선적인 삶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의도적으로 말하는 것이에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나의 신앙을 지금 말하지 말자. 나중에 얘기하자. 이렇게 미루게 되면 결국은 사탄이 의도하는 이중적인 존재, 위선적인 존재가 되어 가지고 사탄이 원하는 것처럼 거짓된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숨기면 믿음이 약화되고 세상과 믿음 사이에 양다리 걸치면 결국은 거짓된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 믿는 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예수 믿는다는 이 사실을 명확하게 여러분들 드러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가 감당할 몫이에요. 그럴 때,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축복을 하시는가? 오늘 복음의 진수를 깨닫게 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열매를 허락하신다. 그 열매를 위하여 10절과 11절에 이렇게 나와요.

IV, 넷째, 복음의 진수를 깨닫게 되면, 기쁨과 감사의 열매를 맺게 된다.

-10절과 11절을 보겠습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그대로 우리가 크게 합독하고 그대로 우리가 선포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보겠습니다.
*이사야 55:10-11,
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자, 뭐가 내린다고요? 하늘에서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린다. 그랬어요. 여러분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리면 땅에 적셔져 가지고 파종이 되고, 열매를 뿌리에서 열매를 자하게 하는데 비와 눈이 내려가고 다시 올라가는 법은 없어요. 내려가는 거예요. 내려가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복음 역사도 마찬가지예요. 복음의 비가 은혜의 비가 내려오면 결코 헛되히 돌아가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온전한 열매가 맺어진다는 것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비와 눈이 하늘부터 내려 가지고 긍휼과 생명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구체적으로 12절에 이 내용 12절에 다 같이요.

*이사야 55:12,
12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이 기쁨은 어떤 새로운 기쁨인데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이고 이거 우리 안에 가득하게 들어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런 기쁨이 우리 속에 막 들어오게 되면요. 여러분의 몸도 평안하게 될 것이에요. 그다음에 산들도 노래하고, 나무가 손뼉 친다는 것은 이사야의이 독특한 언어 표현인데 우주적 찬양을 한다. 그런 뜻 생명의 복음이 가져올 우주적 기쁨과 새 창조의 회복을 그야말로 놀라운 장엄한 언어와 단어로 선포하고 찬양하고 있는 것이에요. 왜? 다 죽어 있는데, 죽은 시체가 생명의 능력으로 벌떡 일어나고 살아가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노래를 바라고 그다음 나무가 손을 치고 소위 우주적 찬양의 존재가 된다는 것이에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하는 얘기 있죠. 하늘도 새 하늘이요. 땅도 새 땅이고, 나무도 새 나무고. 그래서 기독교 신앙에 깊이 은혜가 있는 그런 나라들은 자연히 자연, 자연들이 다 회복이 되고 그 그 자연이 아름답게 되고 잘 관리를 하게 되고, 여러분 지금 그런 은혜가 오늘 이번에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들에게 허락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아니 우리들 모두에게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 지난 주일이 그랬습니다. 절정에 단풍으로 인하여 한국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 중에 하나입니다. 이번에 결신하신 분들은 원래 단풍이 더 아름답게 보일 겁니다. 본래 이 녹색이든 나뭇잎이 변하여 노란색과 빨간색의 옷을 입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것이 바로 뭐냐면 나무가 손뼉을 치는 것이에요. 예. 여기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13절이에요. 13절. 오늘 본문 13절 마지막 절수인데 함께 보죠.

*이사야 55:13,
13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
-죽은 시체가 긍휼과 용서를 통하여 생명의 역사와 생명의 능력을 회복을 한 다음에 난 다음에 우리 속에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게 되는데 더 깊이 들어가면 잣나무는 최고의 건축 자료요. 그 최고의 아름다운 나무 중에 하나죠. 화석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맛있는 나무예요. 자 여러분 우리가 창세기 3장에서 범죄하고 우리가 불순종했을 때, 가시와 엉겅퀴가 나오는 거예요. 찔리는 자 독초예요. 가시와 엉겅퀴가 뭐가 되었다. 화석류가 되었다. 아름답고 축복이 되는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거예요. 새 시대 영원한 언약의 상징이에요. 죽음의 저주가 끝나고 생명의 복이 임하고 고통의 자리가 아름다운 자리 기쁨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말씀 안대로 버림받은 인생이 햅시바가 되고 황폐한 곳이 쁄라가 되는 줄 믿습니다. 복음의 진수의 향기는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고통을 찬송으로 바꾸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은 “복음은 하늘의 음악이 죄인의 심령에 울리는 사건”이라고 표현한 것이에요. 이런 말을 듣고 우리의 마음속에 슬픔에 녹아지고 찬송이 흘러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면 생명의 복음의 역사가 여러분의 혈관에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51장 앞에 3절에 다. 같이 크게 크게 합독 하겠습니다.

*이사야 51:3,
3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생명의 복음, 복음의 진수에 대한 결론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사막 같은 인생을 에덴 동산 같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시다. 광야 같은 인생을 생명의 생수가 펑펑 터지는 샘물 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우리 삶에 기쁨과 즐거워함과 감사 소리가 약해져 있다면, 다시 회복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지난 한해 동안 우리는 힘든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또 우리 주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또 좌절도 하고 탄식도 했지만, 그 모든 과정들이 결코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에요. 실패도 나쁜 것만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식은 실패가 실패가 아니고 이런 생명의 역사를 제대로 깨닫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이렇게 할 때에 결국은 하나님께서 이런 복음의 에덴동산의 역사를 여러분들에게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저는 사랑의 교회 목회자로서, 제 마음의 간절한 소원은 우리 교회 교우들은 그 누구도 이런 생명의 역사의 진수를 모르고 복음의 핵심과 복음의 진수를 모르고 죽는 그런 성도들이 우리 가운데 아무도 없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번에 결신한 성도들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한 분 한번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요약
우리를 오라고 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우리에게 또한 풍성한 물과 젖과 포도주를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을 찬양하자. 오늘 모두가 다. 복음의 진수를 깨닫고 기쁨과 감사의 열매를 맺기를 소원하며, 이 능력을 가지고 우리 복음의 능력으로 불타는 성도가 되어 복음의 생명의 역사로 사명으로 헌신하는 가슴 뛰는 비즈니스맨이 되어야 한다. 또한 사명으로 헌신하는 주부들이 되자. 우리를 고통의 자리에서 일으켜 생명의 복된 자리로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하자.

-주님께서 오라! 찾으라! 돌아오라! 간절히 초청하실 때, 목마른자, 죄책감의 웅덩이에 빠진 자, 마음이 텅빈자도 와서 '주님 주시는 복음의 생명수'를 마시는 자로 살기를 소망한다. 주님께서 비교 불가의 너그러운 긍휼과 용서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으니, 미루지 않고 설레는 우주적 기쁨과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자. 우리 사랑의교회가 생명의 문을 열어주신 2,045명'을 주님께 올려 드릴 때, 한 분 한 분이 매 주일 예배드리고 다락방에 연결되어 '복음의 진수'를 배우며 성장하기를 도우며 잘 섬겨서 정착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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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11월 02일)
제목: "은혜의 해, 보복의 날“
말씀: 이사야 60:1-3, 61:1-3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
헌금송: 이주영(메조소프라노, 호산나 오케스트라)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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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찬양대가 고백한 대로 오늘 예배를 통하여 주님만의 높임을 받으시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강력한 뜻이 우리 성도들에게 삶의 여정에 그대로 펼쳐지기를 소망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우리 2주간 또 3주간의 특새(특별새벽기도회)의 기쁨과 그리고 ‘우리 한국 교회 섬김의 날’ 특별히 ‘WEA 세계 총회’를 섬긴 은혜와 영광의 여진이 우리에게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계속해서 이 존귀하고도 숭고한 이사야의 말씀을 받들어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저는 은혜의 해 보복의 날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은혜의 해’라고 그러니까? 여기 가운데 최소한 반 이상은 은혜의 태양인 줄 알고 있어요. 그게 아니고 “The year of grace” 은혜의 한 해, 그다음 보복의 날, “The day of Revenge” 이렇게. 그러니까? 제가 고마운 게, 이 제가 고마운게 말이죠. 은혜는 한해 계속 가는 거예요. 365일 보복은 하루에요. 그래서 여러분 심판과 보복보다. 은혜가 365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알겠어요? 아니 이 은혜가 은혜가 여러분 생애를 은혜의 희년이란 말도 있는데 한 생애를 관통하는 최고의 단어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은혜의 해가 돼야 되고, 은혜의 평생이 되어야 되는데 문제는 오늘 2절에,
 
*이사야 60:2
2...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
-그러니까 도저히 은혜를 선포할 수 없는 또 은혜를 이렇게 주장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평강이 없는 세상이에요. 제가 오늘 첫 번째 주제는 평강 없는 세상이에요.
 
I. 평강 없는 세상
 
-정의도 없는 거 같고, 불의가 득세하는 거 같고, 억울할 때가 너무 많고 제가 요즘 제일 답답하게 생각이 뭐냐면 유튜브에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사람들의 마음이 가짜 뉴스들 때문에 수많은 마음에 복잡함이 양산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가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어요.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신데 세상이 왜 이래 어려울까? 근데 거기에 대한 답은 일단 앞에 60장 앞에 59장 우리 1절 2절에 뭐라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사야 59:1-2,
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함도 아니고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함도 아니라 2절에 오직 뭐예요?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다. 우리의 죄의 본성, 우리의 부패함 때문에, 그래서 이것이 정의가 없는 거 같은 또 이런 우리 삶의 어떤 평강이 없는 같은 이런 현상을 가져오는데 그 제 얘기가 아니고 59장 뒤에 8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 8절 다. 같이 보겠습니다.
 
*이사야 59:8,
8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뭐가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어둠의 땅을 덮는 거 같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려는 거 같고 평강이 없는 이유가 뭐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가 우리를 가려워서 그렇다. 뭐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떤 분들은 좀 마음이 불편하고 어떤 분들은 또 뭐 이러냐 하고 발칵하는 분이 있을지 몰라요. 근데 하나님 없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해결이 안 되진 그런 상황은 평강이 없는 거예요. 또 일종의 쾌락이 좀 있다. 하더라도 그 쾌락이 오래 가는 것도 아니고, 그 쾌락이 우리를 역습(逆襲)하는 거예요. 2주일 전에 중앙 일간지에 스탠포드 대학의 정신의학과 교수가 쓴 그 대답한 내용이 나오는데, 참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어요. 사람들이 오늘 옛날보다. 훨씬 우리가 살기가 좋다는 거예요. 옛날에 비해서 훨씬 우리가 어 편리한 세상이 되었죠. 자매님 여러분 제일 고마운게 세탁이죠? 우리 사람들 그래 세탁기가 너무 고맙다. 만약에 여러분 자매님들은 세탁기가 없으면 여러분 지금 평생 지금 빨리 한다고 있잖아요. 계속 그래 할 거예요. 편리한 세상이 됐어요. 심지어 택배를 통하여, 영상을 통하여, 수많은 편리한 것들이 많이 있잖아요. 우리에게 뭐 뭐 SNS나 뭐 쇼핑이나, 심지어 알코올, 음식, 뭐 먹방 이런게 마약, 도박 이런 것들이 이게 갖고 오는게 뭐냐면 즉각적인 쾌락이에요. 즉각적인 쾌락이 가져오는 현상이 뭐냐면, 소위 도파민 폭발이에요. 도파민이 뭐 뭐 좋은 것도 있겠죠. 비정상적인 정상적이지 못한 도파민이 막 더 압도하는 거예요. 놀라운 것은 이 도파민 폭발로 쾌락으로 기울면 쾌락적으로 도파민이 비정상으로 가게 되면, 반드시 고통의 역습이 따라온다는 것이에요. 평강하지가 못하다는 것이에요. 도파민 중독은 우리의 뇌를 망가뜨리는 거예요. 그 최악의 얘가 뭐냐? 쇼츠예요. 유튜브 쇼츠, 포르노, 이런 것들이 우리를 멍한 바보를 만드는 거예요. 여러분, 밤에 12시 1시에 그냥 유튜브 쇼츠 본다고 막 한 두시 해 갖고 막 열심히 했는데 돈이 나옵니까? 밥이 나옵니까? 은혜가 됩니까? 맞추고 나면 Nothing Heaven,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허망하기 짝이 없는 거예요.
 
이게 뭐냐면 쾌락으로 기울 잘못된 도파민이 고통의 역습을 가져온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말하면 도파민의 길들여 진 우리의 뇌를 되돌리고 리셋을 해야 되는데 그래야 뇌의 쾌락점이 재조정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잘못된 도파민을 누린 것에 대한 처절한 역습을 당한다는 거예요. 엉터리 페이크 뉴스 때문에 생긴 허무와 딜레마가 있다는 것이에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 오늘 본문에 보니까? 뭐 우리는 이런 식으로 우리가 해석을 하지만 우리 현상이 있지만, 여러분 어두움이 땅을 가리고 그다음 캄캄한 만민을 가리웠다. 그랬을 때, 이사야가 이런 말씀을 쓸 때에, 너무나 이 영광스러운 단어들을 많이 썼지만 이사야가 경험한 이 상황은 그가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말씀의 해, 은혜 해, 은혜의 평생을 설명할 만큼 그렇게 만만한 환경이 아니었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시드기야가 포로로 잡혀가는데, 어떻게 눈알이 막 빼지고 완전히 잿더미가 되고, 솔로몬의 찬란한 영광이 시드기야 왕의 비굴함과 고통으로 추락해 버렸어요. 그야말로 그 시대에 강력한 도파민의 역습이 보복의 날이 시작된 거예요. 솔로몬 성전에 난한 아름다움이 파멸되고, 죄와 폐허로 벌어진 도시가 된 것이에요. 이게 끝인가?
 
우리 입장에서는 아 이렇게 해가지고 우리 힘들어 할 수 있지만 오늘 60장 59장 60장 특별히 61장의 놀라운 말씀, 그래서 제가 이사야의 모든 말씀은 반드시 신약의 창과 교부들로 해석을 해야 한다고,,,. 그래서 61장 오늘 1절부터 3절까지 본문 가운데 중요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임할 때에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그다음에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쭉 나오죠. 그리고 거기 나오는 거 보니까? 포로된 자에게 그리고 갇힌 자는 외적인 고통이고, 마음 상한 자와 슬픈 자는 내면의 고통이에요. 외적인 고통이든 내적인 고통이든 하나님께서 이렇게 치유를 하신다고 말씀하시는데, 이걸 신약의 창으로 해석한 것이 오늘 61장의 내용을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4장에서 강력하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에 보니까?
 
*누가복음 4:18~19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야 근데 아까? 이사야 61장 2절에 보니까?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이 있다.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이 두 가지가 있는데 놀라운 것은 누가복음 4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보복의 날을 삭제해 버리셨어요. 별로 감사도 안 하시고, 이게 너무나 놀라운 아 주님의 심정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이 보복의 날이 삭제되고 하나님의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가 너희가 일어나라 빛을 바라라 그랬을 때, 우리가 무슨 능력으로 빛을 바랍니까? 빛을 바랄 수 있는 비결이 뭐냐면, 여호와의 영광이 우리 위에 임할 때, 우리가 빛을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는 우리 힘과 실력으로는 빛을 바랄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압도할 때, 우리는 빛을 비출 수가 있는 것이에요. 아까? 처음에 정의는 일어나 정의는 실현되고 있는가?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라고 그래서 왜 가만히 계시는가? 그렇게 우리가 보면서 하나님은 반드시 반드시 죄는 심판하시고, 하나님은 반드시 정의는 실현하시는 것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정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데 은혜의 해가 되게 하여 주셔서 정의를 이루어 주시는 것이에요. 그러고 그것이 그냥 그걸로 끝이 아니라 누가복음 4장 18절 19절 말씀하고 그다음 바로이어서 21절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시작.
 
*누가복음 4:21,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할렐루야 심판의 날 보의 날이 심판의 날이 반드시 오지만 그 보복의 날을 삭제하시는데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주시는가? 강력한 목자의 심정을 주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보복의 나를 잠깐 연기하시는 것이에요. 여기에 주님이 우리가 볼 때는 세상 보복의 날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진노를 쏟아 붙는 것이 회복의 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좀 이렇게 우리 기다려 주시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지금 다음 주부터 우리 ‘대각성 전도 집회’가 있는데 대각성 전도 집회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아무도 멸망치 않고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에요. 답은 뭐냐면,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회복의 날을 준비하고 계시고,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이 불공정해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면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은혜의 평생을 경험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기다려 주시는 것은 회개의 기회이고, 은혜의 연장이며, 사랑의 박동인 줄로 믿습니다.
 
이 이유로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이 혼란과 불리와 고통이 가득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 것처럼 사람들이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고 그 당시 1세기에 베드로가 경험한 그 상황은 말로 당할 수 없는 불이었고, 평강이 없는 것이었고, 수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당장 주님이 보복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베드로 3장 9절에 핵심이 뭐냐?
 
*베드로후서 3:9,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할렐루야.! 이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침묵을 하나님의 부제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 하나님의 고유하심은 하나님, 하나님의 자비하심, 하나님의 은혜의 저 깊고 깊은 호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이 주일도 우리가 오늘이 아침에가 떠오르면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것은, 오늘이 주일이 일주일의 첫날로 새로운 첫날이 시작되는 이유는 또 다른 하루, 또 다른 첫날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 있는 수많은 상처받는 사람들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초대의 하루가 되는 것이에요.우리가 오늘 숨을 쉴 수 있는 것은 그저 삶의 연장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에요.
 
오늘 당장 보복의 날 심판이 행해지지 않은 것은 은혜의 연장으로서,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심판을 지금 멈추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에요. 따라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박동이며, 우리에게 아직 구원의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이에요. 사람들이 볼 때, 왜 이래 세상이 불공정하냐? 왜 이렇게 세상에 평강이 없느냐? 그게 아니라 오늘이 시간은 하나님의 거룩한 침묵의 시간이요. 하나님이 기다리는 시간인 것이에요. 그래서 이 하나님의 은혜에 눈을 열고 마음을 소원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전날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려운 거 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새 마음과 새 용기를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해가 돋을 때 그다음 뭐예요? 만물 신선하여라. 나도 세상 지날 때 은혜를 경험하는 은혜의 햇빛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61장 3, 3절에 보니까?
*이사야 61:3,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슬픔의 죄 대신에 슬픔 대신에 화관을 주시고 그 죄를 대신하여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고, 찬송의 옷으로 찬송의 옷으로 근심을 대신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이걸 지금 주님께서 이 주님의 기다리시는 거 안에 다. 넣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우리 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일들 하고 애를 많이 쓰시면 일주일 동안 고생 많이 하면 주일 아침 피곤하죠. 그렇지만 피곤한 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 갖고 오늘이 찬송 제 대신 화관을 슬픔 대신에 찬송을,,, 탁 제가 하면서 아침에 샤워하면서 뜨거움을 하다. 갑자기 찬물로 바바바 하면서 있잖아요.
 
주여, 오늘도 새로운 날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제 나이가 거의 70이에요. 지금 누가 저한테 70이란 말 자꾸 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여러분이 가운데는 대부분 많은 분들이 저보다. 나이가 좀 어리세요. 요즘은요. 제가 예배에 참석하면 우리 교인들이 왜 저렇게 젊나? 따져보면 제가 나이가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지만 매일매일 나이가 들어가도 오늘이 새로운 한 날, 새로운 은혜의 날, 보복의 날을 멈추시고 은혜의 평생이 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지난 우리 한국 대한민국 사회 60년대, 70년대, 80년대는 암울한 어려움들 수없이 말았어요. 지금보다도 훨씬 복잡하고 힘든 일들이 많았어요.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 침작이 가지 않을 만큼 힘든 것도 많았어요. 그런데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이사야 60장 1절 3 일어나 빛을 발하라. 그렇지, .엎 엎드려 가지고 막 이렇게 힘든 그런 오죽하면 엎드려 있겠어요? 오죽하면 주님이 일어나라고 그러시겠냐고, 오죽 힘들면 엎드려 있겠냐고, 그런데도 이 말씀 붙잡고 은혜 보복의 날이 아니라, 은혜의 해를 허락하신 주님을 믿고, 다시 한번 벌떡벌떡 일어나게 해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자, 저는 평강 없는 시대에 그리고 이것이 내가 주어가 아니라, 오늘 다. 보면 주님이 주어가 되는 것이에요. 주님께서 해 주시 여호와의 은혜의 해가 비춰 주시는 것이에요. 우리가 스스로 무슨 우리가 스스로 어 자가 생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그래서 오늘 그 하나님 때문에 이렇게 사모해서 여러분 이렇게 나오신 거 아닙니까?
 
제가 오늘 이런 말씀의 은혜를 제가 갖고, 자 내가 최근에 받은 은혜가 뭘까? 내 생에 지난 은혜 1년, 은혜 2년이 무엇일까? 그래 생각하면서 우리는 ‘6.3 상암집회’부터 시작해 가지고 작년에 ‘10월 27일 차별 금지법 동성애 법’ 통과 온 교우들이 상암집회 15,000명이 거의 갔고, ‘12.27일 우리 다시 일어나 기적의 나라를 만들자’ 했을 때는 우리 거의 3만 여명 우리 교인들이 거의 다 참여했고 이번에 “WEA 세계 복음주의총회”, “한국 교회 섬김 날”에는 수많은 성도들이 함께 참여한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은혜를 어떻게 주셨나? 수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제가 이거 우리가 진행하면서 잘 모르는 분들이 오해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자 어떤 은혜를 주신다고 제가 생각하니까? 은혜의 해, 은혜의 평생, 그 은혜가 오늘 여러분들 정리된 것이 오늘 “WEA 세계 복음주의총회의 서울선언” 이거 받으셨어요?
 
이거 뭐 관심 분들 계시지만 저는 이게 너무 감사하고 더 서울 declation 이게 어떤 은혜가 있는가? 그냥 적당한 것이 아니라, 오늘 8페이지에 보면요. 이렇게 나와 있어요. 니케아 신경 재정 1700주년을 맞이하여, 올해가 니케아 신경 니키아 크릿 니케안 신경의 1700주년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면 니케아 종교회의 니케아 신경을 제정한 그때는 몇 년이죠? 산수가 안 되십니까? 자, 1700주년이니까? 니케아 회의가 언제였죠? 주전 아 주후 325년이에요. 이번에 ‘WEA 세계 총회’는 단순히 무슨 국제복음주의총회하는 정도가 아니라 니케아 종교회의 1700주년을 기념하여 은혜를 받은 것이에요.
 
그러면 니케아 종교회의일 때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때에 그 니케아 종교의 이전에는 혼돈하고 어려운 신앙적으로 교리적으로 분명한 토대가 없어 가지고 수많은 이단들이 발호를 했어요. 그 대표적으로 니케아 종교 회의에 제대로 교리를 토대를 세운 분이 ‘아타나 시우스’라는 분이었어요. 교회 아타나 시우스, 아는 분들은 아타나 시우스가 어떤 일을 했나 압니다. 그리고 또 그때 니케아 종교회 일 때 아타나 시우스하고 붙었던 나중에는 이단으로 판명이 되었지만 아리우스파라고 했어요. 근데 아타나 시우스가 뭐라 니키아 종교의 때 사실 한 페지도 안에 짧은 글이에요. 짧은 글 재정이 됐는데 핵심이 뭐냐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시다. 동일 본질을 가지신 분이시다. 육체로 오셨지만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이것은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가 우리에게 있으니까? 쉽게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신은 이게 어마어마한 선포였어요. 그래서 호모우시오스라고 그랬어요. 호모우시오스라고 그래. 동일본질이다. 그런데 이 아타라시우스가 그렇게 했고, 아리우스는 호모이우시우스다. 그러니까? 유사본질이다. 비슷하다. 거의 비슷하다. 근데 그게 그러니까? 나타나 그게 아니다. 동일본질이다.
 
◆동일본질(호모우시오스 homoousios) Vs. 유사본질(호모이우시오스 nomoiousios)
-아주 정통을 얘기한 거. 그러니까? 유사 호모이우시오스는 아이 하나가 들어가 가지고, 이게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해. 그 이거 그러면 안 된다. 정통을 해야 된다. 그래서 니케아 종교 회의 이후에 가장 중요한 신앙, 그때 ,삼위일체 신학의 토대가 마련되고,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셨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정통성과 본질이라는 거예요. 이해가 됩니까? 그걸 기념해 가지고 1700년 이후에 2025년에 지나간 전 세계 복음주의 교회의 전통과 회의 가운데서도 가장 역사가 깊고 가장 영향이 큰 WEA(월드 이벤주컬 얼라언스- World Evangelical Alliance)라는 이런 단체에서 1700년 주년을 기념해 가지고 이번에 모인데, 그 단체에 그 단체는 말씀드렸죠. 공산주의가 잘못 되었다. 잘못된 진화론이 잘못 과학주의가 잘못되었다. 그다음에 뭐예요? 자유주의신학이 잘못됐다. 이것 때문에 생긴 거예요. 그래요. 이것도 못도 보는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 하고 있는데 정통 신학을 개성하는 WEA 세계 총회가 이번에 뭘 다시 천명했는가? 오늘 여기에 나오죠. 여러분 또박또박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우리는 복음주의 신앙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계속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성경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성령은 오늘도 활발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복음의 선포를 통한 영혼 구원과 교회를 위한 제자 양성이 우리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사명임을 강조합니다.”
 
-너무나 너무나 놀라운 선언을 하고 있는 이게 21세기의 언어를 가지고, 오늘이 디지털 시대에 이 SNS 시대에, 이 복잡의 시대에 너무나 강력한 선포를 하고 있는 것이 그게 제가 홀리 싱귤레이티라고, 이 복잡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뉴 챕터를 쓰게 하시고, 특이점을 쓰게 하시고 그러나 1700년 동안 이케아 종교회 이후에 정통성을 가지고 그래서 이 WA의 첫 번째 언어가 뭐냐? 세계 첫 첫 번째 너무나 소중한 것이고 이것이 오늘 21세기 아마 한국 교회 우리에게 특별한 계기가 되게 하여 주셔서 이거 지키면 대한민국 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이거 지키면 대한민국 교회는 부흥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회 앞으로 뭐 장례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하고 있는데, 여러분 이거 확실히 지키면 대한민국 교회는 부흥할 것입니다. 그 저는 이게 너무 감사해서 어제 말씀드렸죠. 이거 제가 이거 너무 좋아 가지고 기뻐 갖고 이러 너무 혼자서 너무너무 감사해서,,, 이게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우리에게 실체적으로 주신 것이라고 믿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진리가 선포가 된 것입니다.
 
이번 WEA 세계 총회의 에피소드는 말할 수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제가 말씀드리지만 2천년 교회 역사는 반드시 뭐가 있다? 답이 있다. 이 정통 신학을 지키면 반드시 하나님이 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오신 대표단들은 와 가지고 큰 위로를 받고, 다시 힘을 얻었다고 감사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그분들이 이렇게 써 놨어요. 잠시 천국에 다녀온 것 같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여러분 나는 너무 감동 받았는데 여러분들은 보통인 거 같아요. 다시 얘기할게요. 잠시 천국에 다녀온 것 같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멘. 아멘. 아멘. >> 독일에서 오신 목사님은 저녁 산상 기도의 때 너무나 강력한 영적 기름부음이 있도록 은혜 주신 것 감사하다. 유럽 교회가 많이 약해져 있는데 힘이 빠져 있는데 다시 힘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유럽 돌아가는데요. 비행기 시간이 막 안 맞아 가지고 막 늦게 도착하고 좀 어려운 일이 많았대요. 그래 옛날 같으면 그런데 이번에는 잠시 천국 갔다. 왔기 때문에 오케이, 그러면서 다. 품었다는 것이에요. 이번에 여러 제3 세계에서 오신 목사님들이 계셨는데 그분들은 이방 종교가 너무 폭력적으로 핍박해 가지고 주눅들고 상처가 많았는데, 이번 총회에 참석하면서 위로받고 용기 얻고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토론하고, 사회의 방법을 공유하고 넷트웍 하는 가운데서 다시 소망을 갖고 시작할 힘을 얻었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우리 교회 성도들은 지난 한 주간 우리 1년 웃을 걸 다. 웃었어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 웃고, 옛날에 엘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숫자만 쳐다보고 있던 직원들 우리 직원들도 외국 목사님들이 영어로 얘기하니까? 다. 미스코리아 미소로 대했어요. 뭐 못 알아들어서 웃어야 되고, 이래 되니까요.
 
노란 조끼를 입고 섬기던 봉사자분들이 얼마나 친절했는지 외국에서 오신 분들이 뭐라고 얘기하느냐? 노란 조끼를 입은 천사들을 만났다. 저희들이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지구촌 어느 한 지역 교회가 이번 총회를 통하여 살아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강한 도전 받았습니다. 스테판 통 박사께서 뭐라고 얘기했습니까? 한국 교회만 잘되면 되냐? 대한민국 교회만 잘되면 안 되냐? 쩌렁쩌렁하게. 세계의 교회가 은혜를 받아야 된다고, 세계 교회가 은혜를 받으려면 1700년도 니케아 종교의 기념으로 된 이번 총회를 통하여 여기에 나타난 모든 서울은 하나하나 읽어 보면 진짜 은혜 위에 은혜를 선포한 것이에요(책참조).
 
그러니까? 잘 모르는 분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함께 한국 교회 부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제 제가 좀 정리를 하겠습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이번 총회 이후에 우리 특별히 우리 사랑하는 교회 성도들은 은혜에 대해서 눈을 다시 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은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우리가 다. 알지만 은혜에 관한 우리가 영원한 채무자로서 다시 한번 눈을 열어야 되는 거예요. 오죽하면 15절에 보니까? 나와 있어요.
 
*이사야 60:15,
15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할렐루야입니다. 감히 희망을 논할 수 없는 척박한 환경 가운데서, 멸시받고 다. 떠나고 고아와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데 대대의 기쁨을 대대의 은혜를 주시겠다는 꿈 같은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저는 이런 꿈 같은 은혜가 북한에도 이런 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전에는 그랬지만 이제는 인데 그냥 이제는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 보세요. 누가 그렇게 하시느냐? 15절에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이 내가는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인 줄로 믿습니다. 이걸 여기에 대한 은혜를 여기에 센스를 회복하니까? 아 주님께서 보복의 나를 삭제하신 이유가 무엇인지이 신비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들의 과거가 어떤지, 여러분의 상황을 다. 모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안정된 상태인지, 답답한 상태인지, 아니면 지금 시험 들고 있는지, 오늘도 예배 들으면서 얼마나 어떤 복잡한 마음을 갖고 오셨는지 순간순간 여러분 마음의 파도를 제가 다. 알 수가 없어요. 여러분들이 제대로 뭐 준비를 다. 몰라요. 여러분의 삶에 과거를 제가 다. 몰라요. 그러나 제가 아는 단 한 가지는 뭐냐면 우리 모두는 이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것입니다. 아멘. 은혜와 진리 가운데 우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10절에 보니까?
 
*이사야 60:10,
10 내가 너를 노하여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불쌍히 여겼은즉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오늘이 자리가 천국의 애굽편이 될 수가 있는 것이고 그 은혜 때문에 오늘이 자리에 나와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은혜에 대한 센스가 회복되면, 은혜가 회복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제가 몇 가지 말씀을 드리면 우리의 삶의 인생은 모든 죄와 저주와 죽음과 상처와 절망과 슬픔이 다. 있습니다마는 그 상처와 슬픔이 다른 식으로 십자가의 은혜와 보혈 복음을 통하여 은혜를 받으면 처리가 되는 것이에요. 무슨 뜻인가? 죄가 은혜가 되는 것이에요. 저주는 축복이 되는 것이에요. 죽음은 생명이 되는 것이에요. 상처는 치유되는 것이에요. 절망은 소망이 되는 것이에요. 슬픔은 기쁨이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제가 물을 때 한번 다시 답을 해주세요. 죄는 뭐가 된다고요? 저주는 뭐가 된다고요? 죽음은 뭐가 된다고요? 죽으면? 상처는 뭐가 돼요? 절망은 뭐가 돼요? 슬픔은 뭐가 됩니까?
 
오늘이 은혜가 여러분들 한 분 한 분에게 맞춤형으로 임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의 삶의 척박 환경과 문제가 크다. 하더라라도 이 압도적인 은혜가 덮어 버리면 해결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 예외 없이 은혜의 파도가 여러분들을 은혜의 폭포가 여러분들을 ---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결론은 은혜를 받으면 이 세상의 어떤 풍파도 두렵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걱정합니다. 오목사, 은혜 은혜 얘기 많이 하는데, 은혜 받은 사람들 가운데 은혜의 업이죠. 은혜를 남용하고 말이죠. 뭐 뭐 뭐 뭐 값싼 은혜란 말하고 이런 사람들 말 천만의 말씀 진짜 은혜가 은혜가 되면 방종하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살지 아니하고, 정말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 앞에 함께 마음을 열며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제 얘기가 아니에요. 창세기 6장 8절에 뭐라 오느냐?
 
노아는 여호와께 뭘 입었어요? 잘 보세요.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어 가지고 은혜를 방종하는 사람이 은혜를 남용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9절 중요합니다. 그게요.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의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어. 자, 우리 오늘 노아 대신에 여러분의 이름을 붙여 보세요. 시작. 진짜예요? 아멘. 진짜예요? 정말이냐고? 그러면 구절이 따라와야 되는 거예요. 어떻게 따라옵니까?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다.
 
*창세기 6:8,
8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세기 6:9,
9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우리는 우리의 의는 내 능력으로 생긴 의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의예요. 대신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문제보다. 더 큰 은혜가 있으면, 은혜의 방종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희한하게도 은혜를 받으면 내 마음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에요. 어떨 때는 거룩한 두려움이 휩싸이게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만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만 두려워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이 은혜를 받으면 세상이 두렵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세상에 이런저런 말이 있어도 두렵지 않는 것이에요. 저는 지난 2년 또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WCC하고 WEA를 구별도 못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저도 사람이니까? 마음이 좀 아플 때가 있었어요. 그러나 제 마음의 근본에는이 밑바닥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의 은혜의 강수가 흘렀기 때문에 웬만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로 직진!!~~요. 하나님의 은혜로 직진 직진 직진 직진 우리가 사람이니 어떻게 환경이 두렵지 않겠어요? 그러나 은혜가 여러분들을 덮어 버리면 당당한 삶을 세상 사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당당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여러분들만 누리지 말고 요엘서 1장 3절에 놀라운 말씀이 있는데 시작.
 
*요엘 1:3,
3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여러분들만 누리지 말고, 믿음의 은혜 계승을 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회 미래에 대해서 이렇쿵저쿵 해석하고 한국 한국 한국 한국 한국 한국 교회가 앞으로는 디클라인 될 것이다. 약화될 것이다. 많은 얘기를 합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믿는다면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대한민국 교회는 이 정통을 지킬 때 대한민국 교회는 부흥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교회는 소망을 가질 것입니다. 먼 훗날 2025년도 10월 30일 서울은 이 대한민국 교회 은혜의 싱귤라리티, 새로운 특이점, 새로운 뉴 챕터를 펼쳤다고 말하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광산에서 보석을 캐고 캐고 캐고 여러분 파고 파고 파고 그래서 은혜의 무한지평생 은혜의 신년을 누리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가슴에 손을 얹고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요약
우리 온 성도들 온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의 가판 위에 올라와 가지고 지난 몇 달 동안, 아니 지난 2년을 하나님의 나라에 귀한 일들을 섬기게 하심을 감사하며, 핍박으로 고단했던 제3 세계 교회 지도자들이 세계복음주의회를 통하여 위로와 용기를 갖게 하심을 감사한다. 또한 이 가을의 이 은총의 계절, 결실의 계절에 하나님이 지금 침묵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줄로 믿는다. 이번 새 생명 축제에도 은혜 구원의 날이 선포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마음이 상한 자와 포로 된 자들이 다. 치유 받고, 우리가 은혜의 방종자가 아니라, 은혜의 탄광을 파고 파고 또 파서 은혜의 평생 무한 지평이 열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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