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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3년 6월 11일)
제목: "죽음의 신비(神祕)"
말씀: 고린도후서 5:1~10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김은석 부목사님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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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1~10,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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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찬양대와 함께 하나님의 위대하심, 하나님의 거룩하심, 사랑과 온유를 함께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저희가 상암 집회를 한 지 한 주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번 상암 집회를 앞에 놓고 저희 교회는 영적으로는 2년 또 실제적으로 1년을 준비해 왔는데 우리가 준비하면서 마음에 확정한 것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이번 상암 집회가 남북통일과 특별히 한국교회의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재 부흥의 결정적인 시간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제 집회 마치고 그냥 그걸로 끝나면 안 되고, 우리 교회부터 다시 한 번 재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겁니다.

재 부흥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배의 부흥이 일어나야 되는 것이고, 또 하나 말씀에 부흥이 일어나면 되는 것이에요. 이제 지난주부터 성경 읽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꼭 이렇게 하죠. 기억나십니까? 금방 한 것도 잊어버렸어요. 그렇게 하는데 예배에 재 부흥이 일어나야 되는데 저는 지난 40여 년간 목회 생활을 통하여 내가 지금도 예배에 대한 감격과 은혜가 너무 크지만, 제가 정말 순전하고 순결하여 전력투구하며 예배드렸을 때, 나는 그때 어떤 자세였나, 그러면서 제가 한 10여 년 동안 예배를 시작하면서 항상 예배를 위해 드리는 말씀을 글을 따로 썼어요. 그래서 제가 글 쓴 처음 썼던 걸 제가 이번에 다시 한 번 보게 됐어요. 보면서 앞으로 1~2년 동안 우리 사랑의 교회가 온 성도들이 예배의 재 부흥을 위하여 좀 이렇게 정리를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떠세요? 좋습니다.!!! 설교하기 전에 한 1~2분간 꼭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핵심은 이것입니다. 첫 번째 여러분 예배는요 예배드리기 전에 결정되는 거예요. 아주 중요한 거예요. 성공적인 예배는 예배당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결정되는 것이에요.

그러면 예배당에 들어오기 전에 결정된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하면 반드시 여러분 들어올 때마다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들어와야 됩니다. 반드시 매주 하나님 거룩한 기대감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 오늘 이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왔는 줄 주님은 아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요. 그러면 거룩한 기대감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성도들을 쭉 보면요. 거룩한 기대감을 갖는 성도들에게 나타난 공통적인 현상에서 그것이 뭐냐 하면요 이것입니다. 하나님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왔다는 것은 모인다는 것은 오늘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모이는 것이에요.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개인적인 음성을 들려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오늘도 ‘잠시 세상에!~~ 내가 밑에서 보면 옆에서 보면서 기가 막혀요. 너무너무 찬송을 마칠 때, 또 찬송할 때, 찬송을 통하여도 들려주신 말씀이 있을 것이에요. 기도를 통하여, 들려 줄 말씀이 있을 것이고, 여러분의 헌신을 통하여,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을 것이고,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이 있을 거에요. 오늘 마치고 나가면서 우리 선교 컨퍼런스에다가 여러 가지 하시는 거, 글로벌 광장 나가시면서도 주님께서 내 개인적으로 주시는 음성이었을 것이에요. 정리합니다.

“예배는 예배 들어오기 전에 결정되는 것이다. 반드시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들어와야 한다. 거룩한 기대감의 핵심은 오늘도 주님이 나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실 것이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헌신과 교제를 통하여 오늘 이것이 이번 주 여러분들의 삶의 여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죽음의 신비’에 대해서 오늘 좀 중요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31일 날 긴급 재난 경보 받으셨습니까? 아침 여섯시 몇 분쯤 됐는데 저는 그거 할 때 이렇게 상암 집회 종료 모임이 있어서 아침에 목사님들 모임이 있어서 아침에 차를 타고 나가는 길이었어요. 들고 왔더라고요. 그리고 경보사이렌도 들으셨어요?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죽음과 같은 긴급함 저는 죽음과 같은 긴급함을 몇 번 맞이한 적이 있는데, 진짜 어려워지면요. 우리가 할 게 없어요. 사이렌은 울려도 갈 데도 없다니까 근데 마침 그날 우리가 일찍 출근한 우리 교회 직원들이 그 문자를 보고 우와!! ‘우리가 살려면 안아주심의 본당이 내려가야 되겠다.’ ‘여기를 내려와야 되겠다.’ 이제 이런 생각을 하고, 그렇게 막 그 마음을 가지고 했대요. 여러분 재난이 있고 위기를 당하면 사람에게 본당에 오면 사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것이에요. 그런 게 있었고 또 하나는 제가 빌리그레함 상암 집회 50주년 집회하면서, 이 집회가 우리가 애써서 수고하고 헌신하는데, ‘진리가 선포되는 집회’가 되게 해달라고 그래서 제가 개회사에서 할 때, “진리가 선포되는 이 50주년 기념대회를 허락하신 사랑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랬잖아요. 그래서 진리가 뭐냐, 참 진리가 뭐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은 구원이 참 진리인 것이에요.

그러니까 죽음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래서 이 죽음이라는 것에 관해서 먼저 우리가 갖고 있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예수님께서 죽으신 그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인데 이러한 오늘 이 참된 ‘죽음의 신비’에 대한 진리가 여러분들의 것으로 깨달아지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로는 죽으면 끝이다. 죽으면 다 끝난다, 죽음 이후에는 죽고 난 다음에 다 끝이다 아무것도 없다. 무다.
-그런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니까 이 땅에 살면서 내 마음대로 사는 거예요.

두 번째로는 죽으면 수수깨끼다. 누구도 모른다.
죽어 그러니까 죽으면 수수깨끼이니까 염세주의자들처럼 살아가고 수수깨끼 같은 인생을 사는 거예요. 죽음에 대해서 세 가지 자세를 갖고 있어요. 사람들은 첫 번째 죽으면 끝이다. 죽으면 다 끝난다. 죽으면 모든 것 끝, 인생은 살아있는 동안이 전부 다 그러니까 뭐 살아있는 동안 내 마음대로 살고 내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케스라 세라 왓 에버 윌비(What ever will be). 내 마음대로 사는 거야. 이래 살고 내가 하고 힘들어 살고 그냥 뭐 그냥 허상 하나 부르면서 죽으면 끝이 나니까 막 그냥 알코올이나 탐닉되고 이래 죽으면 끝이니까 그래서 사는 거예요.

세 번째로는 죽음 이후에 반드시 영원한 생명이 있다.
-이걸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에요. 죽음 이후에 영원한 세계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사후 대책을 세우고 기백을 갖고 살게 되는 것이에요. 준비된 사람으로 믿음의 용사처럼 살 수가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 죽음에 관해서는 확실히 아는 거 있잖아요. 여러분들 제가 100% 아는 게 있어요. 그거 뭐냐면 우리는 100% 다 죽는다는 것이에요. 여기는 예외가 없어요. 우리 하나님은 무시간 대의 개념이 있어요. 우리 하나님께는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개념 그 초월 점 초시간대의 개념 무시간대의 개념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두 100살 살고, 90살 살고, 사람 60살 살고, 다 50살, 이렇게 차이가 30~40년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여튼 여러분과 저는 100% 죽습니다. 맞습니까? 그러면 그 이후에 죽음에 대한 대책이 뭐냐고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죽음 이후에 대책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이 땅에 살면서 아무리 똑똑해도 아무리 대단해도 죽음에 대한 대책이 없는 사람은 대책 없이 매일매일 사는 사람이에요. 죽음 이후에 영원한 세계에 대한 대책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 땅에서 최선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하루는 공자의 제자 자로가 여러분 잘 아시는 내용이죠? 공자에게 감히 스승님께 죽음에 대해 묻습니다. 죽음이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공자가 뭐라고 그랬어요? 야 이 땅에 삶도 모르는데, 죽으면 어찌 알겠느냐? 삶도 모르게 죽으면 어떻게 알겠느냐? 뭐 거기엔 또 나름 또 생각이 있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명확하게 얘기하면 여러분 공자 같이 사서삼경 뭐, 다 대단하지만 그런 거 대학, 춘추 이야기 다 있지만, 베드로는요 놀라운 얘기를 했어요. 저는 이 공자와 비교해서 베드로가 베드로서 1장 19절에 제가 지난 주간에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너무 제가 이게 너무 귀한 말씀이 여러분 공자처럼 베드로가 많이 공부한 것도 아니고, 공자처럼 베드로가 무슨 많은 제자를 거느린 것도 아니에요.

그는 초라한 어부 출신이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의 빛으로 그 마음을 깨닫게 하시고 생명의 진리에 대한 문을 열고 죽음에 대한 소망이 있는 사람에게 나타난 이 땅에 사람도 모르는데 죽으면 어떻게 알겠느냐는 공자와, 어부로서 살았지만 분명하게 확인된 베드로의 고백을 한번 들어보시오. 베드로서 1장 19절에 뭐라고 돼 있느냐 같이 읽죠.

*베드로후서 1:19,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사람들은 다 깜깜해요. 아주 그냥 아주 그 마음이 죽음 이후에 그것에 대해서 모두가 다 깜깜한 암흑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빛이 없는 깨달음이 없는 통찰력이 없는 그런 깜깜함 속에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깜깜한 어둠 속에 여러분 등불, 한 빛을 봐요. 얼마나 놀랍습니까? 거기에 손전등이라도 비추고 거기에다가 성냥불을 하면 켜 봐요. 환하게 빛나는 것이죠. 그것뿐만 아니라 1장 19절 뒤에 뭐라고 나와 있는가? 이렇게 나와 있어요.

*베드로후서 1:19,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날이 새어 새별이 너희 마음이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그랬어요. 죽음 이후의 세계뿐만 아니라 여러 우리 삶의 영적인 어떤 질문들이 있을 때에, 그 모든 어두움의 시간이 지나가고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오느니라. 우리가 깨닫는 것이 있는데 오늘 죽음 이후 신비도 여러분들이 말씀하는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샛별 같은 은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샛별의 청명함과 샛별의 청초함과 새별의 청명함이 여러분들에게 주어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공자도 뭘? 복을 깨달은 것을 첫 번째, 우리가 깨닫는 것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 1절을 보겠습니다.

I. 첫째 ‘아느니라.’

*고린도후서 5:1,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이 고린도후서 5장 1절 10절까지는 죽음이 의 신비에 대해서 너무나 영광스러운 말씀이에요. 그런데 1절에 이렇게 절 뒤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뭐라고 돼 있어요? 아느니라. 오늘 첫 번째 우리가 주제가 뭐냐 아는 것 우리는 아느니라. 공자도 모르는데 이태백도, 이황, 이율곡도 한국의 철학자들 대단한 사람들 다 모르는데, 우리는 오늘 이 시간 아느니라. 말씀에 대한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나온 성도들에게 알게 하시느니라. 뭘 알게 하시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죽음이 왜 어려워요? 사람들의 죽음 얘기가 나오면 다 두려워하는 것이에요. 죽음은 두려움을 가져오는 거예요. 그 두려움을 가져오는 것 때문에 사람들이 극복이 안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죽기 되면 죽기 직전 되면, 아무리 대단해도 다 두려워하고 다 힘들어하고, 몸도 육신도 아픈 거 있겠지만 영적으로 길이 없으까? 깜깜한 절벽이니까 꽉 막혀 있으니까 깜깜하니까 다 두려운 거예요.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아느니라 뭘 깨닫게 하시는가? 우리 성경 전체를 통해 아는 것이 있어요. 그건 뭐냐 보통 우리 성경이 성경에서 신약에서 말하는 성경은 대부분 구약 성경을 말씀하는 거예요. 구약 성경 전체를 딱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요약을 해가지고 깨닫게 하시는 게 뭐냐 하면, 히브리서의 말씀인데 히브리서 가운데 히브리서 2장 14절 15절에 기가 막힌 말씀이 있어요.

*히브리서 2:14~15,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모든 사람의 죽음을 두려워해요. 그런데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피해 복음을 가진 사람들은 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그 이유가 뭘까? 히브리서 2장 14절 이와 같이 나와 있어요. 같이 보겠습니다. 14절만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해 있습니다. 잠깐만요. 우리가 어떤 혈과 육에 속했죠? 우리 다 육신의 몸을 갖고 있죠? 그다음에 또요.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시면 중요합니다. 그가 누굽니까? 메시아 되신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육신의 몸을 소위 성육신을 입으셨어요. 인카네이션(incarnation) 하셨다.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시면 그 이유는 그다음 중요합니다.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그다음 또 15절에 같이 또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한 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십니다. 너무나 이걸 말씀을 처음 보는 분들은 조금 더 깨달아야 되겠지만, 성경을 아는 분들은 딱 마음에 아까 말씀한 대로 샛별같이 깨닫게 하신 은혜가 있는 것이에요. 무슨 말이냐? 이런 뜻이에요. 보십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마귀의 세력을 멸하러 오신 것입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고, 상처를 주고, 그다음 영원한 형벌을 갖게 하고, 우리를 고통 가운데서 온갖 더러움 속에 살게 하는 것이 마귀의 목표에요. 마귀는 한 생명이라도 더, 더 고통 가운데서 영원한 흑암 가운데로 갖고 가게 하는 것이 마귀의 목표에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선한 목자가 돼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중요하면 마귀의 세력을, 이런 잘못된 마귀의 세력을 멸하시기 위하여, 고통과 저주와 더러움과 모욕과 수치와 부끄러움과 형벌 속에 있는 우리들을,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오셔가지고 피의 복음을 통하여 용서의 강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주심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세력을 멸(滅)하시기 위하여 그래서 2장 15절 다시 한 번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히브리서 2:15,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한 평생 매어 종노릇 하는 자들을 자유케 하시는 것이에요. 오늘 여러분과 저는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한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된 것입니다. 이건 너무나 신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 그 피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마다 용서의 강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에요. 피의 복음을 깨닫는 사람들은 용서의 강, 은혜의 강을 경험하게 되면, 그 우리 뒤를 따라오는 사냥개와 늑대와 마귀 같은 못된 군사들이 우리가 은혜의 강을 지나는 동안에 우리의 냄새를 다 잊어버리고 우리를 추적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 우리의 죄가 용서받도록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왔고 피의 복음 앞에 주님 우리의 죄가 주님의 피해 복음 때문에 용서받은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들인 거예요. 맞습니까? 이 세상에서 대단한 위인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제일 위인이 누굽니까? 뭐 세종대왕이다. 그다음에 이순신장군이다. 그래서 그 광화문에 두 분만 있는 거 아니에요? 지금 그런데 아무리 위인이라 할지라도 여러분들이 “이순신 장군님,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한 적 있습니까? “네, 세종대왕님 나의 모든 허물과 모든 연약함과 모든 죄를 싸그리 용서하여 주옵소서.” 말이 안 되죠 이 땅에서 오직 유일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문을 열고 성령님을 통하여 “주님, 내 죄의 문제는 예수님의 피의 복음 밖에는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요” 이걸 믿는 사람들은 마귀의 세력을 멸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주님께서 그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여 첫 열매가 되겠다. 그 첫 열매라는 게 오늘 우리들을 위하여 첫 열매가 되신 것이 우리들을 위하여 복음이 되신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 주님은 죽음의 두려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셨고, 이 땅에 있는 육신의 죽음을 죽이신 것이에요. 죽음을 극복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걸 깨닫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느니라.”

그 법이 뭐냐 하면 능력으로, 능력으로 해석할 수 생명의 성령의 능력이 오늘 제가 말씀드린 죽음을 돌파하는 마귀의 세례를 면하게 하시는, 정말 우리로 하여 선한 목자 되시는 이 생명의 성령의 능력이 마귀의 죄와 사망의 능력을 압도하였느니라. 극복케 하였느니라. 이걸 깨닫는 사람에게는 모든 성도들의 죽음은 이 땅은 사망이 왕 노릇하지만 성도에게 죽음은, 영광의 궁전에 입성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올라가는 불 병거가 되는 것이고, 독수리의 날개가 되는 것이고, 천국의 한 문에 들어가는 통로가 되는 것을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걸 깨닫고 난 다음에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수많은 우수사례와 수많은 참 환난, 근심이 있다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이 땅에 살아가는 또한 남은 인생을 즐거워하느니라. 확실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 전체를 통하여 우리가 아는 것이다. 두 번째로 아는 것은 본문에 좀 더 자세히 나와 있는데 본문을 통하여 아는 것이 1절에 있는 내용입니다.

*고린도후서 5:1,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여기 보니까 본문에서 장막집이라는 말 텐트라는 말이 두 번이나 나와요. 장막집이 무너지면 그다음에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짐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그러니까 두 가지가 대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땅에 있는 장막 집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대조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땅에 있는 장막 집은 영어로 텐트인데 이것은 뭐 여러 해석도 있지만, 이거 땅에 있는 장막 집을 우리의 육신의 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저와 여러분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것이 그런데 이 육체의 몸의 특징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낡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이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는 것을 절감하고 있어요.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져 절감하고 있어요. 젊을 때 탄탄했던 장막집이 나이가 들수록 장막집의 지붕이 처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요 머리가 빠지는 것입니다. 봐요 말뚝이 느슨해지는 것입니다. 장막 집의 말뚝은 두 다리의 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막 집 볼 때 못은 흔들 조금씩 흔들리게 되는 거예요. 갈수록 다시오. 지붕이 처지는 것은 머리가 빠진 것이고, 말뚝은 다리에 힘이 없는 것이고, 못이 흔드는 것은 이빨이 흔들리는 것이 예전 같지가 않다는 것이에요.

제가 최근에 10여 년 만에 만난 어떤 분이 있었어요. 그분을 제가 10여 년 보면서 아이고야 왜 이렇게 많이 늙으셨습니까? 라고 말은 하지 아니하고 속으로 만나 그리 얘기했어요. 그냥 깜짝 놀랐어요. 근데 그 순간 제가 아 내가 늙은 걸 네가 모르구나. 어떤 사람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야, 요즘은 거울도 예전 같지 않네. 사실은 거울은 그대로인데 내가 달라진 것이죠. 내가 달라진 것이 땅에 있는 장막 집은 무너지고 낡아지는 것이에요. 이 땅에 지금 의약과 눈부신 진보가 있다 할지라도 아무리 있어도요. 우리는 땅에 있는 장막이 무너지고 다시 사망률 100%예요. 예외가 없어요. 텐트 무너지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장막집이 무너지는 것, 하나님 또 하나 더 우리가 아는 것은 더 중요한 것은 2절 하반 절 뒤에 보면,

*고린도후서 5:2,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 내용은 어떤 장소적인 개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부활의 몸을 확실히 입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에요. 고린도전서 15장에도 보면 뭐라고 나와 있느냐면,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나와 있어요.

*고린도전서 15:51,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마지막 나팔이 불리는 그 시간에, 순식간에 우리 모두가 다 호연히 변화되리니 여기에 이제 뭐 이렇게 다른 신학적인 여러 내용들은 제가 다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예비 되어 있는 것이고, 우리가 재림의 그 순간 우리의 몸은 예수님처럼 부활의 몸으로 순식간에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자, 그러면 이렇게 아는 사람에게 나타난 현상이 뭔가 이렇게 확실히 피의 복음과 마귀의 세력을 멸하시고 죽음의 두려움을 없애시고 장막 집과 영원한 집에 대한 한 주님의 몸을 입는 것을 깨닫고, 아는 사람이 나타에게 모든 분들에게 나타나는 어떤 실제적인 삶의 현장이 어떤 것인가? 6절이에요.

II. 우리가 담대하여.

*고린도후서 5:6,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6절에 뭐라고 하냐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우리가 항상 뭐 때문에 어떻게 됐어요? 담대하여, 그러니까 앞으로 오늘 이후로 사라에게 모든 성도들은 담대해야 돼요. 제 말씀이 아니라 여러분과 저는 담대히 살아야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눈에 보이는 게 없지.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죽음의 신비에 대해서 깨닫고 난 다음에 우리의 마음속에 간절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이 뭐냐 하면, 오늘 바울이 고백한 대로 담대하게 살아야 한다. 이 담대함이 우리 사랑의 교회의 특성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 담대함이 앞으로 한국 교회 성도들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의 특성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담대한 용서가 되는 것이 담대한 주님의 용서가 되는 것이에요. 제가 이 담대함을 얘기할 때에 담대함은 용기를 냅시다. 그리고 입술을 꽉 다물고 파이팅 이게 아니고, 이 정도가 아니고, 영적 기백이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내면 속에서 명맥이 흐르고, 어떤 경우에도 상록수 신앙을 유지하면서 한결 같은 시종일관(始終一貫)을 갖는 것이 영적인 담대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이 없는 거예요. 담대함을 가지고, 죽음 이후를 예비하고 주님이 예비하신 처소를 사모하게 되면, 이 땅에 있는 것들도 우선순위(優先順位)와 더 중요한 걸 딱!! 과감하게 정리할 수 있는 안목(眼目)도 생기는 것이고, 담대함, 저는 왜 하나님께서 다윗을 다윗도 실수가 많았는데 왜 그렇게 하나님은 다윗에게 “너는 내 마음에 합한 자다.” 무엇이? 다윗으로 하여금 너는 내 마음에 합한 자다. 다윗도 부족함도 많고 그러는데 왜 그랬을까?

나는 다윗이 가진 놀라운 통찰력 가운데 하나가 뭐냐 하면 “하나님 아버지 나는 왕궁에 삽니다. 나는 나름대로 궁에 삽니다. 나는 나름대로 대단한 거 다 경험했습니다.” 여러분 다윗처럼 지상에 정복 왕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다윗이 뭐라고 얘기냐 합니까? “내가 왕국에서 거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집에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건 다윗의 대단한 고백이. 쉽게 말하면 “이 땅에서의 첫날보다도 천국에서의 한 날이 더 낫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죽음 이후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죽음의 신비를 깨달은 사람들은요. 제가 좀 이런 용어를 써서 죄송한데 앞으로 문지기 신학이라고 그럴 거예요.

문지기 신학을 우리가 가져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은 야 이 땅에서 왕국에 사는 것보다도 하나님 나라의 문지기로 있는 게 더 낫다. 어떤 장소적 개념을 뛰어넘어가지고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이 땅의 삶에 담대함과 역동성, 하나님 나라의 용사로서 그래서 이런 담대함이 있으면 이 땅에 있는 것들을 너무 자고우면하지 아니하고 영적인 용사가 되어가지고 거룩한 홀로 서기가 가능하다 이 말이에요. 좀 누가 상처 주고 좀 이렇고 어렵고 이런 게 있어도 하나님 아버지 나는 하나님, 나라의 문지기 신앙을 가진 줄로 믿사오니, 이걸 통해서 거룩한 용사가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이걸 통해서 주님 내 사람들에게도 영향 받지 않고 사건이 되면 영향 받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뭘 걱정합니까? 하나님 내가 믿음에 홀로서기 있게 하여 주시고 일마다 때마다 믿음 보고 하게 하여 주십시오. 믿음 보고 1점0, 믿음 보고 2점0, 믿음 보고 3.0을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우리 주위에 있는 가까운 사람도 떠나고, 가족도 떠나고, 육신의 장막도 약해지고 그럴 때마다 우리가 환경에 얽매여서 우울하고 힘들어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다윗처럼 문지기 신앙을 가지고 용기 있는 홀로서기를 하면서 내 능력과 내 실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은혜를 갖고 빛을 받고 샛별을 경험하고 벌떡벌떡 일어서야 될 줄로 믿는 것이에요. 이걸 5절에서 보니까 성령으로 보증을 받았다.

*고린도후서 5:5,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우리에게 보증서를 다 쓰여 주니, 여기에 대해 성령께서 보증서를 쓰시고 도장을 찍어주시고.

*고린도후서 5:7,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그리고 7절에 보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한다. 소위 믿음 보고 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장막 집이 무너지고 영원한 집을 믿는 사람들은 죽음의 신비에 대해서 눈을 뜬 사람들은 순식간에 주님 오실 때, 우리가 홀연히 주님의 옷을 입기를 확신하는 사람들은 우리는 담대함을 평생 유지할 줄로 믿습니다. 담대함의 표현이 다윗처럼 문지기 신앙을 가지고 이 땅에서 수많은 하늘나라에 차루가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이리 생각하고 그렇게 살 때 매일매일 삶이 하나님 앞에 믿음에 보고를 하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8절에 담대함을 가지고,

*고린도후서 5:8,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주님과 보냄 갈 것을 확신하고 현재는 육체의 몸을 떠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담대함을 가지고 문지기 신학을 가지고 홀로 서기를 갖고 주님의 주님 앞에서를 우리가 기억하면서 이제 중요하면서 9절에,

*고린도후서 5:9,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주님을 기쁘시게, 믿음의 용사로, 문지기 신앙을 가지고 어제 우리 설교 컨퍼런스를 하면서 어제 그런 말씀 나눴잖아요? 남김없이, 후퇴 없이, 후회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담담함을 가진 사람의 나타난 특징은 9절에,
*고린도후서 5:9,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죽음의 신비를 깨닫는 사람들은 죽음을 해결하는 사람은 어떡하든지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어떤 것인가? 현장으로 나온 것이 10절이에요.

III. 담대함을 가지고 죽음을 맞이하는 자는 심판대 앞에 설 것을 늘 준비하는 삶을 산다.

*고린도후서 5:10,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가 다 심판대 앞에 섰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의 삶이라는 것은 심판대 앞에 설 것을 기대하고, 그 심판대 앞에서 우리가 선악 간에 우리가 상급을 받을 것이다. 심판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이런 뜻이에요. 우리는 지금 구원을 받느냐? 안 받느냐?는 심판을 우리가 끝난 사람들이에요. 피의 복음을 통하여 정리가 된 사람들이 줄을 믿습니다. 아까 우리가 용서해달라고 어떤 위인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 메시아에게 그리스도에게. 기름 부분 받은 자에게 우리가 말씀한 거예요. 우리가 기도한 것이 그래서 그 문제로 해결된 거예요. 이제 나타난 것이 우리에게는 뭐가 있냐, 상급 심판이 심판대 앞에 우리가 우리에게 받은 공적을 따라서, 선악 간에. 이거는 무슨 누가 이 땅에서 뭐 잘하면 축복받고 못하면 이런 개념이 아니에요. 이거는 이거 완전히 다른 차원이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느냐? 우리 우리의 삶을 쭉 이렇게 사는 걸 가지고 하나님 앞에 상급 심판을 받는 것이에요.

이걸 왜 이렇게 제가 좀 이렇게 오늘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과거에 16세기에 캐톨릭이 너무나 그 당시에 캐톨릭이 너무나 부패를 하고 그다음에 이 소위 사람의 구원을 가지고 장난을 쳤어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구원은 예수님 피로 받는 것이에요. 맞습니까? 그런데 그 구원을 공로 주의로, 공로 주의로 우리가 행한 바에 따라서 구원을 받는다고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해가지고 한 것을 마르틴루터가 너무 열 받아가지고 그건 아니다. 그러면서 그 캐돌릭의 공로주의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없는 성경에 연옥도 막 만들고, 그다음에 또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막 이런 것도 만들고 막 그렇게 했어요. 그것이 싫어가지고 우리가 물을 버릴 때 그냥 와장창 버렸는데, 버린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선악 간에 심판받는다는 이 상급 심판에 대한 걸 버려버린 것이에요. 구원받은 자는 상급 심판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은혜로 준비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에요. 이게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상급은 은혜 받은 자에게 나오는 자연스러운 행위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거 있잖아요. 시험 준비를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이렇게 한 사람은, 시험 볼 날이 두려워요?. 시험 볼 날을 막 기대해요? 저는 그런 거 한 번도 안 해봤습니다. 그런 분도 있을지 모르는데 정말 시험 준비를 최선을 다해서 잘하고 막 그렇게 하면 시험 볼 날을 기대하면서 막, 막 기대가 돼요. 그래요. 뭔가를 열심히 준비하면 그날이 와도 두렵지가 않는 것이죠.

그런데 이제 이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상급 심판, 이런 것들이 좀 늘 마음속에 다짐이 되고 확고하게 좀 뭔가 와 닿을 수 있는 뭐가 없을까? 그런 좀 현장을 보고 좀 도전 받고 그런 게 없을까? 그게 바로 양화진이에요. 아멘. 양과자 선교 사람들 묘에 가면 거기가 상급 심판과 살아온 삶의 선교 사람들의 히스토리가 다 들어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올해도, 천오백 몇 십 명이 선교 나가잖아요? 국내 선교 750명, 단기 선교가 700명, 그 거의 1500명이나 해외 선교 700 넘게 나가는데, 그 나가기 전에 단기 선교 팀도 나가기 전에 야마지 묘소에 가가지고 서 있기 해도 좀 각오가 되는 것이에요. 나를 좀 추슬러지고, 나를 문지기 신앙으로, 나를 그리스도의 용사로, 믿음에 홀로 서기를 감당할 수 있도록 다짐하게 하는 곳이 양화진 묘역이에요. 거기 가면, 몇 분들 제가 좀 골라봤는데 거기에


“하나님께 영광”(Give God Glory)
- 이렇게 해가지고 윌리엄 베어드 2세 묘지에요.
-숭실 대학을 만들었던 윌리엄 베어드 선교 사람의 자녀들이 죽어갖고 계세요.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I would rather he buried in Korea the in Westminster Abbey.(헐버트)

“만일 내게 줄 수 있는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나는 조선에 다 바치리라.”(If had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루비 캔드릭-Kendrick, Ruby R)

“뜻이 이루어지이다”(Thy Will be Done).(에이커 홈)
-저런 내용들을 보면 우리가 마음에 숙연해지잖아요. 근데 양화진에 가서 양화진에만 봐야 되나 저 무슨 길이 없나? 근데 우리가 몇 년 동안 준비를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의 동산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 사랑의 동사를 위하여 기도 저희 메모얼 파크인데 양평에 아주 참 괜찮은 지역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어요. 제가 그걸 이거 도대체 하나를 우리에게 왜 주시나? 오목사, 앞으로 양평 사랑의 동산(사랑 메모리얼 파크)는 제2의 양화진 묘가 돼야 하는 것이에요. 양화진은 풀타임 선교사들이 거기 가서 살았다면 여기에 양평에 있는 사랑의 동산은 사랑의 교회, 제자 훈련 목회 철학을 가지고 한 3년 동안 보냄 받은 소명자로서 온전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평생에 달려갈 길을 달리는 그런 사람들의 삶의 현장이 돼야만 하는 것이야, 에요. 라틴어로 히스토리아 미션 히스토리, ‘선교 적 삶을 살았던 곳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야.’ 그런 깨달음을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양평 ‘사랑의 동산’에 대해서 ★사랑의 동산은 죽은 자의 고귀한 삶을 통하여 산 자의 영혼을 깨우치는 장소가 될 것이다. 이런 깨달으셨어요. 죽은 자의 고귀한 삶을 통하여 산자의 영혼을 깨우는 장소가 될 것이다. 이걸 하면서 제가 깨달은 몇 가지 진리가 있는데 여러분과 저는 태어난 곳은 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지방에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서울 태어나고, 도서 팔도에 태어나고, 심지어 우리 교회 교인들 가운데 북한에서 태어난 우리 북사선 식구들이 있어요. 북한 사랑의 선교회 어떤 사람은 또 해외에서 태어난 분들도 있어요. 태어난 고향은 다 달라요. 그런데 돌아갈 본향은 같아요. 그래서 제가 태어난 고향은 다를지 모르지만 돌아갈 보향은 같다. 나와야 되는데 시작. “하나님의 자녀들은 고향은 다르지만 본향은 동일하다.”

그래서 성경은 참 재미있어요. 태어난 생일보다도 장례식을 훨씬 더 많이 언급하고 있어요. 오죽하면장례식 가는 자가 더 지혜로운 자다. 돌아갈 본향에 대해서 깨달음이 있으니까. 성경의 생일은 창세기 4장의 바로의 생일과 또 복음서에 보면 헤롯의 생일 잠깐 언급하고, 나머지는 다 장례식이에요. 그래서 성경은 묻히는 장소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태어난 고향보다도 죽고 묻히는 장례 장소가 중요한 것이에요. 제 얘기가 아니고 아브라함이 175세를 살면서 후손들에게 꼭 필요한 유산을 남겨 레가스를 남겼어요. 그 물질적인 것이 영적 유산의 표현으로서 뭘 남겨냐 하면 막벨라굴을 사가지고, 거기에 자기도 묻히고, 아내도 묻히고, 이삭도 묻히고, 야곱도 묻히게 했어요. 3대가 다 같이 묻혔어요. 여기는 너무 성령이 주신 음성이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나 제가 다시 한 번 태어난 고향은 달라도 돌아갈 본향은 같아야 되는 것이야. 그 3-4대가 같이 묻힐 때 더 은혜가 있는 곳이에요. 그래서 ‘사랑의 동산’이 돌아갈 본향의 하나의 예표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선대들의 믿음의 순례를 보고 후대들이 이 땅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정리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을 먼 일로 여기는 것입니다.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이 나와 상관이 없는 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이 사랑의 동산을 볼 때마다 내가 주님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아야 되지 않겠는가? 그걸 결심하고 도전받는 그런 장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아픔을 경험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떠날 때 눈물이 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문지기 신앙을 가지고, 믿음에 홀로서기를 하고 상급을 바라보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우리는 죽음조차도 담담하게, 대담하게, 담대하게 맞이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선교 적 삶이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이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귀한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전달되어 피차사로 격려하고 서로 축복하는 시간되기를 축원합니다.

♣요약
주님은 죽음조차 극복하시고 마귀의 세력을 멸하여 주시려고, 우리 모두에게 죽음의 두려움을 해결해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으니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한다. 우리가 몸이 약해지고 육신의 장막 집이 무너지는 것을 절감하게 되는 시점에, 우리의 죽음은 영원한 처소인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궁전에 들어가는 영광의 문인 줄로 믿고,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함으로 승리해야 한다. 문지기의 신앙을 가지고, 담대함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용사가 되어서 이 시대에 믿음 보고를 하고, 기쁨으로 심판대 앞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귀한 종들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예비하여 주신 ‘사랑의 동산’이 영혼 구원의 플랫폼이 되기를 간구하며, 제2의 양화진 묘지가 되기를 소망해야 한다.
-바울의 주된 관심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입혀주시는 신령한 옷을 간절히 사모하고, 육체 가운데 사는 현재의 삶보다, 죽어서 육체를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을 더 소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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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3년 6월 4일)
제목: "기쁨의 부흥을 갈망함"
말씀: 느혜미야 8:9~12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강건우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ㅡ

*느혜미야 8:9~12,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ㅡㅡㅡㅡㅡ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교우들 섬겨주신 분들 하늘에 참 놀라운 은혜가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70프로는 준비하고 나머지는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십시오. 했다. 제 마음에 오늘의 기도가 향후 10년의 한국교회의 부흥과 기름부음을 주실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부흥과 영광과 기쁨의 촛대를 옮기지 말아주십시오. 우리가 다 무릎 꿇고 기도하니까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환경부장관 등 한국 정치지도자들도 다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니 참으로 축복을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 민족을 이끌어 주실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번 6.3 상암 집회 이후에 여러분 개인의 가정과 삶에도 회복을 넘어 부흥의 실체를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강단이 바귀었습니다. 청소년들 만 명 이상 모여서 3시간을 여기서 방방 뛰었으며 이것이 실체입니다. 회복을 넘어 부흥 시리즈 절정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이 기쁨이나 부흥을 체험이 있게 하기 위해서는 삶의 변화의 센스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오래 믿어도 별 변화가 없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세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있는데,
첫 번째-Informed Christian.
-이 그리스도인은 많이 아는 그리스도인, 모태신아이며, 성경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이에요. 성경의 신구약은 1189장이고, 성경에 제일 길게 된 책이 어디냐고 물으면 시편 119편이고, 그리고 성경에서 제일 비참하게 죽은 자가 누구냐? 압살롬, 성경의 백인들만 사는 동네는? 흰 놈의 골짜기, 성경에서 제일 빨리 왕 된 사람이 누구냐? 바로 왕, 이런 것은 잘 알면서 교회에 어릴 때부터 많이 알아요. 그런데 삶의 변화는 없는 것이에요. 30년 40년 예배를 드렸다고 하지만 보통일이 아니에요. 만약에 낚시를 30년 쯤 했다면 고수가 될까요? 안 될까요? 여기 낚시 10년만 해도 고수가 됩니다. 벌써 밑밥이 다르고 낚시 하는 게 달라요. 테니스 30년을 해도 변화가 되는데 예배 30년을 드려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거에요. 이건 아니잖아요? 뭔가 있어야 되는 것 아니에요? 그 안타까운 일이죠.
 
두 번째는 conformed Christian.
-소위 동화된 그리스도인이다. 동화적 그리스도라는 것은 뭐냐 하면, 이 사람들은 교회의 어떤 문화 교회 전통 교단 이런 거, 우리 우리는 대한예수교 장교의 동서 우리가 보수주의 교회 신앙과 전통을 지키려고 하는 개혁주의 적 사상을 가지고 절대적으로 마음이며 귀한 것이에요. 그런데 교회 교인들에게 안 믿는 분들을 전도하려고 그러면 벌벌 떠는 것이에요. 많아요. 뭔가 없어요. 진짜는 뭐냐면 변화된 그리스도인입니다. 많이 아는 것도, 어떤 교단에 동화된 것도 필요할지 모르지만 변화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로마서12:2,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세 번째는 tranformed Christian.
-변화를 받는 것이에요.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쁨과 생명의 능력으로 제대로 변화된 것을 보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뭐가 진짜 변화인가? 예수 믿는 사람들의 큰 변화가 무엇인가? 변화의 실체중에 하나가 바로 12절에 나오니 다 같이 보겠습니다.
*느헤미야 8:12,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이 너무 귀해가지고 그 말씀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변화가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오늘 보니까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그 당시 포로가 되어 돌아왔을 때에 이 사람들이 아람어를 많이 쓰고 있었는데 그게 성경은 히브리어로 쓰여 있으니까 물론 비슷한 점은 많기는 하지만, 에스라가 이것을 히브리어로 잘 풀어주니까 백성들이 너무 말씀에 대한 깨달음에 대한 기쁨이 있기도 하고 감사도 있지만 말씀에 대한 태도가 많이 달아졌습니다. 책을 펼때에 벌떡 일어났어요.
 
*느헤미야 8:5,
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느헤미야 8:6,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하반 절에 보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에요. 하나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는 자세에요. 3절에 보면
*느헤미야 8:3,
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 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새벽부터 정오까지 여섯 시간 동안 줄기차게 말씀을 들었어요. 만약 우리 한국교회가 아침 여섯 시부터 12시까지 말씀을 계속하면 다 졸았을 것이에요. 엎어질 것입니다. 아니면 나갔을 것이에요. 저는 6.3 상암 집회 이후에 우리교회가 앞으로 말씀을 더 높이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일주일 하루 목요일 저녁 같을 때, 시간이 되면 우리 대한민국 교회 안에 정말 말씀에 은사를 받은 분들 가운데 말씀 자체만 그대로 깊이 있게 해석하고 강의 하는 그런 시간을 사랑의 교회가 목요일에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런 날이 오지 않겠나 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잘 풀어나가는 과정을 말입니다. 이것은 어느 종교에도 없으며 이것은 영광스런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 기쁨이 있는데 기쁨이 있기 전에 전제하는 것이 있어요. 먼저 오는 것은 말씀을 통하여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8절에 보니까,
 
*느헤미야 8:8,
8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느헤미야 8:9,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왜 우는가? 히브리서 4장에 보면 말씀은 만물 앞에서 우리를 벌거벗긴다고 했어요. 말씀은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니까 기쁨이 전에 먼저 눈물이 나고,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춰보니까 눈물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에요. 나의 어떤 연약함과 나의 부족함 더더구나 우리의 마음이 맑을수록 눈물이 나는 것이에요.
 
*히브리서 4:12~13,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말씀 앞에 서면 회개의 눈물이 나오고 회개의 눈물이 나오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고 그것이 부정적인 눈물이 아니라, 어떤 눈물이냐면 이것은 내가 부족해도 하나님이 오늘까지 내 삶을 인도하셨구나!! 하나님의 말씀의 밝은 빛 앞에서 내 삶이 완전히 드러나기 때문에 늘 죄송하고 풍성한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함으로 나의 연약함을 돌아볼 때에 어떻게 보면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죄악이 가슴에 다가와 가지고, 죄송함과 회개 안으로 눈물이 나는 것이 그 눈물을 기초로 해가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의 그 은혜와 그 눈물 앞에 감격해가지고 감사의 눈물로 따라 나오기 시작한 것이에요. 이 두 가지가 울음은 울음인데 하나는 정말 죄송함과 참 회개의 눈물이고 또 하나는 감사의 눈물이에요. 모든 일들이 그래요. 우리의 죄악을 드러내므로 회개의 눈물이 나고 그럼에도 우리를 붙잡으시고 인도하시는 그 은혜에 감사함으로 뜨거운 눈물이 나오는 것이에요. 소위 말씀 앞에서 자시느이 주제파악이 되는 것이에요. 자신의 어떤 실존을 정확하게 알게 될 때에 하나님 앞에 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가 다실 말씀합니다. 다 같이 보겠습니다.
 
*에스라 10:1,
1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모든 남녀노소가 다 우는 것이에요. 여러분 에스라 10장 1절에 보면 비슷한 이 배경인데 에스라 10장 1절에 보면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며 죄를 잡아갈 때 그 다음 주 많은 백성이 크게 어디겠습니까? 말씀 앞에서 통곡한 것이 우리는 남에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 앞에 자신이 들어오면 되는 것이고 남의 들보를 보는 것이 아니에요. 은혜 받으면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런데 은혜가 없으면 은혜 받지 못하면 말씀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기를 들어보고 동의를 하는데 은혜를 못 받은 자는 맨날 남에게 하는 거예요. 남들이 어떻다 남의 교회가 어떻다 뭐 어떻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를 심판으로 삼았어요. 말씀에 진정한 거룩함이 있으면 자기를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동시에 감사의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데 지난 2주간 동안에 도전 받고 찔림 받고 아이구야, 내가 잘못했구나!! 뭔가 나에게 말씀이 나에게 닿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앙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에요. 저나 여러분이나 모두가 하나님 말씀 안에서 깊이 나를 돌아보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그런 축복된 시간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거룩한 눈물이며 이것이 전제에요. 그런데 그 눈물이 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면,
 
*느헤미야 8:9-11,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성일이니, 이 말씀이 나오는데 오늘은 상암 집회 끝나고 난 다음에 영광스런 귀한 날인줄 믿습니다. 오늘은 이 귀한 주일예배가 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은 거룩한 성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자녀들과 부모님과 마음에 소원을 하고 함께 예배에 와서 말씀을 듣는 특별한 날인 줄 믿습니다. 그럴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느헤미야 8:10,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이 축복된 말씀을 깨달아가지고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을 어떤 간절하고도 통한을 하고 감사의 눈물이 있는 거기에 더러운 것이 다 닦여지는 기쁨의 빛이 환하게 들어올 줄로 믿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신 기쁨이에요. 오늘 이 은혜가 이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 받은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여기 뭐라고요? 축복된 말씀의 창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눈물을 통하여 더러운 것이 닦여질 때 나도 모르게 기쁨과 감격의 빛이 들어오는 것이 통해하고 죄책감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주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적셔주신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가 되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35장 10절에 보니까
 
 
*이사야 35:10,
10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구원의 감격이 있고 속량을 받은 내 문제가 해결된 그 순간, 우리의 머리에 희락의 관이 씌워지는 것이에요.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이며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는 것이에요. 이 용서의 기쁨을 통한 희락을 우리가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정말 성령님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이 진정한 속제의 기쁨이 있기 때문에 희락이 필요하게 되고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지 않는 축복을 주실 줄 확신합니다.
 
*이사야 11:3,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진짜 찐 기쁨을 누리는 것이에요. 진정한 기쁨, 확고하고 정중한 기쁨을 수많은 어려운 환경과 고난 가운데서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키는 내 환경과 내 주위에 것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하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 들어오는 자마다 우리 구원 받은 하나님 백성의 증표로 기쁨의 깃발을 그의 가정과 그의 삶에 대해서 다 올리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진짜 은혜는 뭐냐면요? 내가 은혜 받으면 기뻐하는 것이 아니구요. 기뻐하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아멘!!! 내가 은혜 받으면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기뻐하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차원을 올라가서 여러분의 마음과 소원과 비전과 우리의 어떤 마음의 간절함이 있어요. 여러분 소원이 먼저입니까? 기쁨이 먼저입니까? 자,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시편 37편 4절을 보겠습니다.
 
*시편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기쁨이 먼저인가요? 소원이 먼저인가요? 소원이 먼저가 아니라, 기쁨이 먼저입니다. 그러니까 기쁨이 먼저이고 소원은 자연스런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기쁨이 뿌리이고 소원은 열매가 되는 것이에요.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라, 그것이 너희에게 힘이 되는 것이니라. 하십니다.
*느헤미야 8:10,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힘이 되는 것입니다. The joy of the Lord is your strength.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기뻐하고 그것이 힘이라고 했는데 뭐냐면, 힘이라는 단어를 보면 히브리어로 마오즈라고 하는 단어인데 이 단어가 오늘 구약에 37번 나온다. 오늘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했는데 힘이라고 할 때, 힘이라고 한 번, 성곽이라고 번역된 것이 14번, 피난처라고 번역된 것이 7번, 요새로 번역된 것이 7번, 보호로 번역 된 것이 3번, 심지어 투구로 번역된 것이 헬멧, 이라고 합니다. ‘마오즈’ 라고 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했을 때, 이것이 투구, 헬멧, 요새, 보호, 피난처, 성곽이 되는 것이에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짐도 있고 두려움도 있고 앞으로 장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런 연약함이 다 있어요. 그런데 한 가지만 분명하면 되느 것이에요. 그것은 하나님을 기뻐하면 그 기쁨이 여러분들의 성곽이 된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기뻐하면 여러분의 요새요, 안식처요. 보호막이 되는 것이에요. 누가 우리를 보호해 줄까? 돈이 나를 보호하나? 아니면 어떤 세상의 권력이 우리를 보호하나? 우리의 그것이 성곽이 되는 것인가? 그것은 다 지나가는 것이에요. 여기 20년을 있으면서 수많은 권력자들, 수많은 힘 있는 자라고 하는 사람들 다 보았는데, 다 지나가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성곽이 되는 것이에요. 보호자자 되는 것입니다. 요새가 되고 전쟁터에서 헬멧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우리가 투구, 헬멧, 요새, 보호, 피난처, 성곽을 다른 곳에서 찾지 말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데에서부터 찾으면 됩니다.
 
이번 상암경기장 전도집회에서 많은 것들을 느꼈지만 성령 안에서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생애와 한국교회에 앞으로 10년 이상을 부흥으로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제 제가 부탁하는 것은, 육신적으로나 또 삶에 있어서 여러 가지 짐들도 있고 기도의 적도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은 던져두고 오늘 기쁨의 성공 안으로 들어오세요. 기쁨의 집 안으로 들어오시기 밖에서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기쁨의 요새 안으로 들어오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주님은 우리의 기쁨의 피난처가 되시고, 성곽이 되시고, 요새가 되시고, 헬멧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뭔가 아프기도 하고 어떨 때는 우리의 욕심의 연약함도 생기고 다 그래요. 그러면 연세 드신 분들은 물리적으로 육신적으로 휴식하기 젊은 분들과 비교해서 게임이 안 되는데 여러분들의 힘과 능력은 뭘로 대체할 것인가?
바울이 말씀합니다. 겉 사람은 후퇴하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했습니다. 불로초를 먹은 것도 아닙니다. 이게 아닙니다. 속사람이 기쁨을 유지하고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 기쁨이 여러분들의 것으로 확인되어져야 합니다. 기쁨을 얻는 지혜가 필요하고, 기쁨을 위하여 마음도 쓰고, 건강을 지키고, 기쁨의 보약과 기쁨의 약을 드시기 바라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더욱 배가 시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육신이 약해도 기쁨의 보호막을 통하여 강건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육체적으로 좀 힘든 건 있지만, 그럴지 모르지만 제 마음이 메마르지 않도록 주님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제가 힘들고 어렵고 헤매고 그런 거 보셨어요? 저도 약할 때가 있고, 저도 육신적으로 부족할 때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제가 한 가지 좋아하는 건 뭐냐면 내가 젊은 젊은이들보다도 욕심 적으로나 이런 면에서 내가 다 이렇게 부족하게 많이 있지만, 한 마디에 대해 분명합니다. 그게 뭐냐면, 기쁨의 능력과 기쁨의 실체와 기쁨의 의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육신의 힘, 자연의 힘 정도만 갖고 살면 안 되고, 영적인 즐거움으로부터 참된 힘을 얻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되도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렇게 하게 될 때에 연세 되신 분들은 진정한 영적 보호막과 방패를 받는 줄로 믿습니다. 기쁨주의자, 크리스찬 헤도니스트, 제가 한 가지 말씀 안 했는데 사실은 제 마음속에 근본적인 기쁨을 놓치지 않도록 은혜 주신 것이 사역의 비밀입니다. 기쁨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그 은혜로 항상 예배에 그 기쁨의 신학을 가지고 늘 기쁨의 부활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주일 날 모두가 다 예배드리고 나서 기쁨의 대관식을 하는 것입니다. 나가실 때 기쁨의 면류관을 하나씩 쓰고 나가셔야 하는 것입니다. 매 주일이 은혜의 잔치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매일매일 삶에도 이 영적 대관식, 작은 부활절, 기쁨의 잔치가 스며들게 되는 것이에요. 또한 바울은 이걸 깨닫고 난 다음에 교인들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로마서 5장 3절에 바울이 뭐라고 했어요?
 
*로마서 5:3,
3 내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적어도 환난 중에서도 적어도 내게 주어진 것이 인내와 연단과 소망을 획득하니까 내가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놀라운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인내와 연단과 소망이 뭐냐면, 다 십자가에요. 그러니까 어려움을 당해도,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의 십자가의 신비를 깨닫고 나니까, 나도 모르게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기쁨이 내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여러분들의 심령 속에 기쁨의 생수가 가득 채워지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깊은 신비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 그러니까 오늘도 힘들어도 내가 십자가의 깊은 신비를 깨닫게 되니까 내 마음에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희락의 생수가 흐르는 것이에요. 십자가 십대를 깨달으니까 십자가 뒤에 따라오는 부활의 영광을 우리가 이 땅에서 영생으로 맛보게 되는 것이죠. 할렐루야!!!~
Love one another!!!! Rejoys in the LORD!!! 주님 안에서 기뻐해야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쁨의 강수가 여러분들의 심령 속에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서로 사랑합니까? 그리스도인에게는 기쁨이 비전보다도 우선한다. 이게 여러분이 와 닿으려면 제가 질문 하나입니다. 여러분 기쁨이 먼저입니까? 소원이 먼저입니까? 세상은 소원이 기쁨보다 앞서지만 성경은 기쁨이 소원보다 선행한다는 것입니다. 소원이 기쁨보다 앞선다는 것입니다. 내 소원이 이루어지니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내가 합격하니까 내가 기뻐하고 내가 승진하니까 기뻐하고 잘 되니까 기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주님 안에서의 순전한 기쁨이 소원을 결정한다는 것이 그래서 제가 자막을 만들었습니다. 시작.
 
내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 안에서 얼마나 기뻐하느냐가 내 소원이 얼마나 이루어지느냐를 결정한다.
-내가 예수님 안에서 얼마나 기뻐하느냐가 내 소원이 얼마나 이루어지느냐를 결정한다. 여러분 오늘 이 평생 여러분들의 영적인 슬로건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기뻐하는 수준이 여러분들의 인생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여러분 어떻습니까? 2년 만에 하는 것 같은데 그렇죠? 진짜 한 번 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들 오늘이 기쁨에 관한 말씀을 드렸는데 오늘 이 말씀 때문에, 오늘 예배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오늘 이 시간 어떻습니까? ---기쁘고 좋습니다!!!~~.
 
♣요약
30년 묵은 신앙을 말씀을 통해서 통곡의 눈물로 회개하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힘을 가지고 걱정과 근심과 환난에서도 기쁨의 요새를 든든히 마음에 세워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평생이 되어서, 기쁨으로 주님을 전하고 기쁨으로 가정과 이웃을 섬기는 자가 되고 희락과 부흥이 넘치는 은혜를 누려야 한다. 항상 기쁨이 선제되어 미래를 새롭게 열어가는 자가되고 주님을 기쁘게 하는 헌신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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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5월 28일)
제목: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말씀: 요한복음 6:36, 7:37-38
대표기도: 하상범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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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36,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요한복음 7:37-38,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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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귀한 성령강림주일을 허락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사랑의 교회는 이 성령강림주일을 소중하게 여기는 교회입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에게 진리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하여 주시옵시고, 또 그걸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복음 이 본문을 6장 35절에 뒤에 보니까 다시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또 너희 속에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이게 그냥 어떤 이론으로 끝나는 것인가 아니면 실체가 있는 것인가?
*요한복음 6:35,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사도 요한은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심지, 예수님의 심정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께 기대어서 주님의 뜻을 누구보다도 잘 깨달은 제자였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굉장히 신비한 복음입니다. 요한복음의 오늘 이 귀한 말씀이 어떻게 실체적으로 확인되었는가? 뒤에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주님께서 벌벌 떨면서 비겁하게 문을 다 닫아놓고 한쪽 구석에서 답답해하고 힘들어하는 그 제자들에게 주님이 나타나셔가지고 요한복음 20장 21절에,

*요한복음 20:21,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어마어마한 말씀하셨어요. 다시요 그 두려움에 떨면서 십자가 사건 이후에 한 방 한쪽 구석에서 문을 닫아걸고 비겁하게 떨고 있던 그 제자들에게 나타나셔갖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사랑의 교회는 제자훈련 하는 교회에요. 사랑의 교회는 사명 받은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아니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가 다 그렇게 돼야 되는 것이에요. 지난달에 CAL세미나를 제가 두 번 하면서 더 절실하게 제 마음을 느낀 거예요. ‘우리 교회는 끝까지 이 주님이 말씀하신 이 사명을 완수하는 교회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걸 좀 어려운 말로, 사도직은 계승되지 않지만 사도 성은 계승돼야 한다. 오늘 더 이상 사도는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도에게 명한 그 사명은 너희들이 이루어야 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하나님이 예수님 보내신 것은 이것은 너무나 놀라운 구원의 진리예요. 이 구원의 진리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모시게 된 것입니다. 소위 생명의 떡을 먹은 것이에요. 이렇게 생명의 떡을 먹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외 없이 하나님께 의존과 순종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원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외가 없어요. 여기에 하나님의 의존과 순종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원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그분을 우리의 생명의 떡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분들에게는 예외 없이, 다시 의존과 그다음 뭐예요 순종의 관계를 통한 하나님의 어떤 자원에 무한하신 자오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걸 일컬어서 오늘 “너희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리라.” 그랬어요. 이게 여러분들에게 저와 여러분 이게 과연 실체가 되고 있는지, 의존은 우리의 여러분 하나님 의존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입니까 부담입니까? 특권이죠. 어마어마한 특권이죠. 질그릇같이 연약한 인생 주 의지하여 늘 강건하다. 놀라운 말씀이 나 같이 생각한 인생에 주님 의지하여 늘 강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이 하나님 의존할 때, 우리 아담이 불순종해가지고 아담이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원한 멸망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님의 순종을 통하여 우리의 불순종이 예수님의 순종을 통하여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이에요. 그래서 김 불순종이 박 순종이 된 것이에요. 그리고 이 불순종이 이 권사가 된 것이에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거예요. 그것뿐만 아니라,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존을 통하여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나 주님의 보좌 있는데 천한 몸에 이르러 그 영광 몸속에 올 때 내 뭐가 넘친다고요? 기쁨이 넘친다. ♩~~

어떨 때는 그런 찬송은 막 눈물이 나는 거예요. 나같이 미천하고 부족한 인생이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의존하고, 그 의존을 통하여 주님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그다음에 하나님 무안하신 자원에 참여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하신 자원에 참여한다는 것이 어떤 뜻인가?

“생수가 흘러넘치리라.” 요한이 이 얘기를 하고 요한복음 20장의 마지막에 그 뒷부분에 이렇게 다시 두려움에 떨고, 방한 쪽 구석에서 비겁하게 그냥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그들에게 주님 나타나셔가지고 도저히 희망 없는 자들에게 “너희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 같아.
나도 너희를 보내니까 너희들은 사명 받은 자로서 사도 성을 계승하라.“ 사랑의 교회로 말하면 사도 성을 계승하라. 그러면 어떻게? 복잡한 거 다 두고 딱 하나만, 21절 그 사명을 말씀하시고 요한복음 20장 22절에 딱 하나 뭐라고 말씀하는가?
*요한복음 20:22,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딱 하나의 성령을 받으라. 우리가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지금 쳇 gpt 시대에, AI 인공지능 시대에, 그리고 정치적인 흐름이나 우리 주위의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우리의 마음이 버겁고 우리의 마음이 침을 지고 어떻게 요동할 때도 있고 수많은 압박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런 분들에게 딱 하나 주님이 오늘 말씀하신다면 “성령을 받으라.” 그거요. 성령을 받으라. 요한이 이 놀라운 진리를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요한이 신비한 복음을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이 예배에 오신 여러분들, 오늘 예배 마치고 말씀 마치고 저와 같이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더 충만하게 받게 하여 주시옵시고, 매 마르기 짝이 없는 인생들에게는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너무너무 중요한 것이다. 이걸 위하여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사건처럼 좀 정리를 하겠습니다. 오늘 요한복음 6장 35절에는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요한복음 6:35,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다. 그 말씀이 생명의 떡 먹은 사람에게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그 말씀을 다시 한 번 7장에서 이렇게 설명하는 거예요? 뭐라고 말씀해요?

*요한복음 7:37,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초막절이죠? 초막절은 일주일 내내 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이렇게 실체적으로 이것이 자기들의 가족들이나 자녀들에게 확인될 수 있도록 그 초막절을 기념하는데, 일주일 7일 동안 하는데, 뭘 하느냐? 광야 길 가운데서 의복이 낡아지지 않게 하시고, 광야길 가운데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광야 길 가운데서 만나를 주셔서 주리지 않게 하시고, 특별히 중요한 것이 광야 길은 사막이고, 광야에는 물이 없는 곳이에요. 물이 없는 곳에 제일 중요한 것이 물인데, 반석에서 생수를 터뜨려가지고, 그 반석에서 생수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을 먹을 수 있도록 그래서 이 반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이제 그런 걸 말씀하시면서 그걸 이제 기념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벽에 이제 초막절 기간 동안 매일 아침마다 저 실로암에서 물을 길어 와가지고 예루살렘 성전 제단에다가 물을 붓는 의식을 하는 거예요. 바위 있는 데 붓기도 하고 붙는 의식을 갖는 거예요. 그리고 그 의식의 마지막 날, 마지막 날에는 수많은 제사장들과 그다음에 레위인들 심지어 많을 때는 3천여 명의 레위인 들이 와가지고 같이 그 의식을 하면서 마지막 그 물을 붓는 의식을 통하여 장엄하게 하나님을 할렐루야! 를 찬양하는 순간 정말로 영광스러운 것이 “하나님은 우리의 생수의 근원이시구나.” ‘광야 길 가운데서 우리가 의지할 보는 주님밖에 없게 하셨구나! 광야 길 가운데 우리의 수많은 목마름과 그다음에 어려움과 문제들을 주님이 해결해 주셨구나!’ 이걸 이제 이걸 기념하는 거예요. 초막절이에요. 그리고 초막절 제 8일째 오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7:37,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게 너무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오늘 아침 이 귀한 성령 강림 주일, 저나 여러분이나 이 사도적 사명을 계승하고, 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우리에게 허락하신 수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응답되기 위하여,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음성을 듣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가서 마시라.” 그 첫 번째 전제조건이 하나 있어요.

I. 목말라야 된다.
-목말라야 돼요. 목이 말라야 거룩한 목마름이 필요합니다. 주님 오늘 우리에게 너희 지성적으로 똑똑해라. 그다음 뭐 교회 생활 많은 것들 잘해라. 이거 다 그거 다 귀중하지만, 진짜 중요한 거 너희들에게 오늘 성령 강림 주일날 담임 목사를 비롯해서 모든 성도들이 함께 ‘주님 우리에게는 거룩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타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생수의 강을 경험하고 사도 성을 계승하고, 내가 삶을 엮어가는 데 수많은 짐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주님이 내게 허락하시는 가장 중요한 그 사명을 위한 간절한 목마름이 내게 있습니다.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영적 세상 적으로는 되게 똑똑한데 영적으로는 허당이에요. 세상 적으로는 되게 잘 나가는데, 영적으로는 다 눈 먼 자 같은 사람들이 있어요. 여러분,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목마름이 있죠?

돌고래는 바다에서 멋지게 헤엄치면 그걸로 목마르잖아요. 그걸로 그냥 만족이에요. 땅에 뒹구는 개들은 태양빛 아래서 그냥 맛있는 거 먹고 그냥 평안하게 뛰어놀면 그걸로 만족해요. 목마르지 않아요. 새들은 저 하늘에서 아름답게 지적이고 그렇게 하면 그걸로 끝이지 목마르지 않아요. 근데 모든 인간들은 목마르게 돼 있어요. 인간들은 다 목마르죠. 아무리, 아무리 대단하게 채워줘도 목마르죠. 인간들은 다 이 목마름을 해결할 방도가 없어요. 육체적으로 뭐 이렇게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더 목마르게 돼 있어요. 어떤 사람은 성적으로 더 목마르게 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 지위에 대해서 더 목마른 사람들이 있고, 수많은 목마른 사람들이 많아요. 지식을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데, 목말라 하면서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요. 더 큰 아드레날린 분비를 요청하고 새로운 걸 더 추구하고, 계속 더 거칠고 자극적인 것을 찾아 헤매는 목마름이 육체의 갈망, 인간들에게 있어요. 세상에도 이런 갈증 이거 해결이 안 돼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원에 참여하기를 원하고, 사도 성 계승과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름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영원히 모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그 영혼에 대한 목마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에요.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너희가 대단한 수준으로 올라가라. 사회적으로 높은 계층으로 올라가라 대단한 지성이나 위치를 올라가라. 그런 말씀하는 거 아니에요.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우리 순전하게 저나 여러분이나 모두가 다 주님을 향한 거룩한 목마름으로 다시 한 번 불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 귀한 성령 강림 주일 같은 데에, 우리는 거룩한 목마름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되는 거에요. 요한복음 6장 35절 뒤에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35,37,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라. 그 다음에 7장 37절에
*요한복음 7:37,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래서 제가 볼 때, 하나님께서는 한 번씩 말이죠. 저와 여러분의 상황을, 우리의 삶의 여정을, 강력하게 목마르도록 만드실 때가 있어요. 이해가 되십니까?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께서는 강력하게 목마르게 하실 때가 있어요. 우리가 사명자로 살도록, 사도 성 계승을 잘할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의 용량을 키우기 위하여, 주님이 어떨 때는 목마르게 하시는 거예요. 주님께 대한 타는 목마름을 갖도록 만드시는 거예요. 우리를 그쪽으로 몰아가실 때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갈증 나게 하시고, 어떨 때는 힘들게도 하시고, 거룩한 목마름을 제대로 이해하고 생수를 경험하도록 하나님 우리에게 고난도 주시고, 짐도 지게 하시고, 우리 앞에 놓인 온갖 시련들을 사용하기도 하시고, 찌르는 죄들과 상한 감정과 상처와 아픔들, 오래 응답되지 않은 기도의 제목들을 사용하셔가지고 계속 우리를 하나님 앞에 목마르게 하시고, 진짜 중요한 것을 추구하게 만드시는 거예요. 할렐루야!! 아멘... 어쩌면 이런 말씀을 드리면 이해가 안 되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영적 세계는 빈익빈, 부익부에요. 주님은 우리에게 타는 목마름과 거룩한 갈증을 주셔가지고 생수의 강을 사모하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의 생의 마지막 오늘 이 말씀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마지막 요한계시록 22장 마지막 부분에

*요한계시록 22:17,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너희 목마른 자도 올 것이오. 진짜 목마름과 갈증이 있는 자 이것이 오늘 생수의 강을 경험하는 전제 조건인 줄로 믿습니다. 타오르는 목마름을 꺼뜨리지 말고, 타오르는 목마름에 불을 붙이고 그런 점화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저와 여러분 마음속에 주님 오늘이 성령 강주일 날 다른 어떤 것보다도 생수의 강에 목마릅니다.

이 생수 강의 목마름, 우리는 거룩한 목마름, 세상은 바닷물처럼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는 그 갈증 때문에 목마르지만, 우리는 거룩한 목마름에 대해서 우리의 눈빛이 달라져야 되는 것이에요. 목마른 자의 눈빛을 회복해야 되는 것이고, 목마른 자의 마음으로 귀를 열어야 되는 것이고, 새로운 말씀이 깨달아지고 새로운 은혜의 실체를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의 영의 눈을 열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오늘 이 자리에 혹시 교회에 처음 오신 분이 계시다면, 아무리, 아무리, 아무리, 아무리 해도 채워지는 이 갈증을 생수에 가한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해결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제조건이 목마른 것인데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목마름을 해결하는가? 생수의 강을 마시라고 그랬어요. 목마르거든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뭐 해요 마시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다시 다 같이 시작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이건 물리적으로 물리적으로 뭘 마신다 혹은 지리적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그 정도가 아니고 내 마음의 결단과 내 마음의 행동과 내 마음의 방향이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내 마음의 방향과 내 마음의 행동과 내 마음의 집중력을 회복하라 이 말이죠. 마시라고 하셨는데 이걸 마시라는 말씀을 듣기만 하거나 해석하거나 평가만 하면 안 되고 마시면 시원하겠다. 그래 생각만 하면 안 되고 “지금 마시라.” 그 말해요. 지금 해갈을 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에요. 이 ‘마시라.’ 는 말의 마시라는 헬라의 문법은 현재 능동 명령형이에요. 죄송합니다. 프레젠트 액티브 임페라티브(Present active imperative)라고 그래서 현재 능동 명령이에요. 지금 마셔야 되는 거예요. 지금 지금 타는 목마름에 불을 붙여야 되는 것이에요. 지금 강렬한 갈증을 일으켜야 되는 것이에요. 현재 과거에 주시는 대로 아니 뿐만 아니라, 현재 능동 우리가 적극적으로 주님 앞에 찬송한다 하더라도, 간절한 마음으로 성령님 기름 부어주옵소서. 그러면 진짜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성령님 생수 강 부어오소서. 그러면 진짜 그렇게 가만히 이렇게 있지 말고 지금 능동적으로 그리고 명령형이에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이거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명령이에요.

지금 우리의 목마름을 고백하고 지금 마시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럴 때 나를 믿는 자는 이제 중요한데 ‘나를 믿는 자는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믿는 자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마시는 자는, 믿는 자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마시는 자는 생수하게 흘러나리라. 무슨 말입니까? 믿는다는 말은, 마신다는 말이고 마신다는 말은 믿는다는 말이에요. 여러분들 우리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줄로 확신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성령님에 대한 것을 사모하면서 마셔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마시는 것과 믿는 것이 똑같다는 것이에요. 마시는 것이 믿는 것이고 믿는 것이 마신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6장 35절과 7장 37절, 38절에 연결할 때에 요한복음 전체를 볼 때, 믿는 것이 마시는 것이고 마시는 것이 믿는 것이고, 예수를 믿고 마실 때,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줄로 확신합니다.
성경의 이름과 같이 스가라에서 말씀하신, 에스겔에서 말씀하신, 그 그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 요강을 경험한다는 거에요. 여러분들 가운데 나는 예수님을 믿는데, 나는 왜 이렇게 목마를까? 나는 예수님을 믿는데 왜 나는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나? 오늘 이제 중요한 순간으로 들어갑니다.
 
사랑의 교회 어떤 분들은 흘러넘치는 것 같고 능력 있는 것 같고, 어떤 분들은 특별히 신앙생활을 어벤다운이 한결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매 마르고 나는 왜 이렇게 어벤다운이 많을까? 오늘 이 귀한 주일날 사랑의 교회가 이 45주년에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어떤 사람은 믿는데 왜 목마르고 왜 왜 그럴까?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리라.’ 라는 말씀을 내 것으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에요. 다시요 믿는데 왜 자꾸 목이 마를까? 거기에 대한 답은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 흘러넘친다는 것은 희한하게도 흘러넘친다는 것은 이 생수의 강의 문제는 나만 만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결코 생수의 강이 아니에요. 생수의 강은 나 혼자만 만족되는 것이 생수의 강이 아니에요. 생수의 강은 흘러넘치는 줄로 믿습니다. 흘러넘친다는 말 말하면 생수의 강의 독특한 성격은 나만 만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생수의 강을 흘러넘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내게 흘러넘치는 것이 남들을 만족하게 하시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 나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해갈되는 것이에요. 내 뱃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근원이 터지면 다른 사람을 해갈시키고, 우리가 축복의 근원으로서 생수의 근원이 되게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흔히들 제가 자주 말씀드린 대로 나만의 만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수의 강이 흘러넘칠 때 이것은 남들에게도 만족이 되게 되는 것이니까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인생, 물댄 동산 같은 인생이 되는 줄로 확신합니다. 물이 끊어지지 않는 내 샘같이 되게 만들어 주신 줄 믿습니다. 이걸 깨닫고 나니까 요한복음 4장에서 날마다 솟는 “너는 지금까지 이 우물을 먹으면 목마르리라.” 주님의 앞에 4장에서 뭐라고 하는가? 우물과 연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는데 그 탈의 목마름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어요. “지금 있는 남편도 니 남편이 아니리라.” 남자 여섯을 갈아치워도 해결이 안 되는 그 갈증을, 오늘 주님께서 주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 생수의 강을 경험하고 난 다음 너무 중요한 얘기 자기 몸 하나도 가누지 못하고 삶의 어떤 그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가지고 혼자서 조용히 정오의 땡볕에 나와서 물을 딛는 그 여인이, 이 생수의 가을 경험하고 난 다음에 자기만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물동이를 버려두고 들어가서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자기만의 만족으로 자기만의 메시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하는 영광스러운 차원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포인트는 뭐냐? 예수 믿으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래 믿고 다 하지만, 생수의 강을 체험하지 못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는 뭐냐? 흘러넘치는 사역이 돼서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에, 나만 만족해 희한하게도 생수가 흘러넘치면, 믿는 자는 목마르지 아니하니라. 목마름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이걸 깨닫게 되면 흘러넘치는 사이 돼서 문이 열리게 되면, 나만으로 만족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혼까지 만족시키는 그 자리까지 도달할 때,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되는 것이에요. 이게 뱃속에서 흘러가죠. 희한하게도 내 속에서의 풍성한 만족을 통해 넘치게 되면, 메마른 사람들에게 연결되는 줄로 믿습니다. 적당한 정도가 아니라 물댄 동산처럼 흘러넘치는 것이에요. 우리 교회 용어로 말하면 은혜의 저수지가 되는 것이에요.
 
자, 이제 중요합니다. 여러분과 저의 깊은 갈망과 목마름은 예수님을 믿고 마셔서 생수를 체험하면 해결되는데, 생수를 마시면 해결되는데, 문제는 이것은 나 혼자만으로 만족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만으로 멈추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목마름까지 해결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생수로 나만 만족하는 삶이 아니라, 생수가 흘러넘쳐 함께 참 만족을 누리는 삶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저의 타는 목마름과 거룩한 갈증은 나 혼자 해결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 흘러넘쳐서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갈 때에 비로소 내 영혼의 깊은 갈망과 갈증이 멈추고 처리되는 것이에요. 예수를 믿어도 우리는 갈증이 있어요. 예수를 믿어도 해결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그런 모든 부분들은 어떻게 해결되는가? 나 혼자만 생수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내 흘러넘치는 생수의 강을 통하여 다른 영혼들이 만족할 때, 비로소 내 영혼의 그 타는 목마름이 해결된다는 것이에요. 같이 읽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깊은 갈망은 자기 혼자 생수를 마심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내 속에서 생수가 흘러넘쳐 나와 다른 영혼에게 생수를 같이 나눌 때, 비로소 내 영혼의 깊은 갈망의 문제가 멈춰지고 참 만족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우리는 6.3 상암 대회를 앞에 놓고 지난, 사실은 지난 2년 동안 준비를 해오고 우리가 본격적으로 지난 1년 6개월 이상을 준비해왔어요. 왜 상암 대회냐? 요새 뭐 그거 필요하냐? 심지어 뭐 기도의 지팡이 된다고 그러는데, 네버!! 여러분들 진짜 이번 이 기회에 남들이 생수의 강을 경험하도록 여러분들이 역할을 하면, 여러분들의 영혼의 깊은 갈망과 해결되지 못하는 것들이 정리된다니까요.
‘목사님, 평소에 일부답지 않게 오늘 왜 저렇게 정말 전력투구 하나?’ 제가 1부부터 오늘 전력투구하는지 여러분들의 마음에 참 진리 여기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하나의 상암대회는 하나의 영적인 글로벌 플랫폼이에요. 여러분들이 이걸 실제로 아마 우리 교회 교인들이 아마 그 자리에 만 명 이상 갈 거예요. 뭐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다 뭐 모든 순서는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한 가지 아, 내 영혼에 주시는 생수의 강이 흘러넘쳐가지고 다른 영혼들을 만족케 하면, 그것이 내 인생에 이 목마름을 진실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향이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지, 이 생수의 강은 누가 한 명이 이렇게 얻는다고 줄어주고 그런 것이 아니에요. 너무나 놀라운 일이에요. “나를 믿는 자는 그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리라.” 그랬어요. 그런데 제가 원어를 보니까, 바로 이래서 그렇구나! 나를 믿는 자는 거배에서 생수의 각인데 그냥 강이 아니에요. 생수의 강들이 흘러넘치리라. 영어에도 더 리벌스 어브 리빙 워터(The rivers of living water)를 그래서 오늘 영어 제목도 리버 한 강이 아니라 리벌 스예요. 복수예요. 그냥 낙동강, 한강, 영산강, 대동강 이 정도가 아니에요. 미시시피강, 장강, 양자강 또 무슨 강 있어요? 아마존 강, 나일강, 그 정도가 아니에요. 빅토리아 폭포, 나이가라 폭포, 이과수폭포 그 정도가 아니에요. 그 모든 것들을 대동강, 한강 모든 것들을 합친 것보다도 아마존강, 나일강, 양자강을 합친 그 황하를 합친 모든 것보다도, 빅토리아 이과스, 나이아가라를 합친 그것보다도 훨씬 더 놀랍고 고갈되지 않는 수많은 풍성한 강들을 허락해 주시리라. 이걸 진짜 깨닫고 이 은혜의 어느 조그마한 한 부분이라도 경험하게 된 사람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말도 안 되게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부족해도 남들에 비해서 레즈매가 스펙이 약해도 다 상관이 없어요. 하나님이 여기에 대한 목마름 가지고 영적인 눈 열어가지고 하나님 아버지 생수의 강들이 내게서 흘러넘치는 줄로 믿습니다. The rivers of living water!!~.
 
모든 강물을, 모든 폭포를, 모든 세계의 흐름들을 다 모은 것보다도 훨씬 더 큰 것에 영광스러운 그 생수의 강이 내 속에서 흘러넘치게 되리라. 이것이 우리의 마음에 말씀의 파도가 되고, 확실히 파도가 될 때, 우리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수많은 담들과 벽들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폭포수가 될 것입니다. 이 강들이 엄청나고 대단하기 때문에, 이 강물이 엄청나고 대단하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여기는 부족한 자도 범죄자도, 연약한 사람도, 부끄러운 사람도, 대단한 사람들도, 지식인도, 모든 빈부(貧富)귀천(貴賤) 막론(莫論)하고 누구든지 이 생수의 강들이 다 눈이 열려가지고 나오기만 하면, 여러분 평생에 생각하지 못했던 수많은 갈등들이 해결되고 나만이 아니라, 똑같이 연결될 때에 저는 그거 하나 여러분 자신이 거룩한 강들을 위한 생수의 플랫폼이 될 때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하시고, 상상도 못하던 차원이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구약에서부터 예표로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어느날 모세에게, 모세가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고 난 다음에 70인 장로들을 이렇게 같이 연결해가지고, 이제 모세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와 함께 엘닷과 메다시라는 두 장로는 저 진영에 머물고 있고, 그다음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다 장막에다가 성막에 다 둘러 세웠는데, 그 어떤 두 장로가 안 왔어요. 엘닥과 메다시라는 장로가 안 왔어요. 그런데 그 안 온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가지고, 영임해가지고 막 예언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여호수아가 뭐라고 하냐면 그들 말려달라고, 저 안 왔는데 그 임하면 되겠냐고 우리가 가치 없는데 하면 되겠냐고 그러니까 모세가 놀라운 말씀 민수기 11장 29절에 보면,
 
*민수기 11:29,
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오늘 누구든지 의 구약의 예표에요 부족해도 다 선지자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노라. 누구든지 성령체험의 보편성을 담보하는 위대한 기도를 드리게 된 거예요. 그 이후에 요엘 선지자가 뭐라고 해요?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라. 누구에게 부어준다고요? 만민의 그러니까 하나님 아버지 성령을 모든 백성에게 부어주세요! 라는 이 이 모세의 꿈같은 기도가 요엘을 통하여 확인되고 요엘을 통하여 오순절 성령 강님 오늘 성령 강림 주일 날 이것이 현실이 된 거예요. 베드로가 요엘서에 말씀하신 말세 내가 내 영으로 말세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라. 그랬어요. 모든 육체 남녀 성별에 상관없이, 사회의 위치에 상관없이, 직분에 상관없이, 나이에 상관없이, 인종과 국가에 상관없이, 시대에 상관없이, 형편과 처지에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든지 만민에게 모든 사람들이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그리고 사도행전 2장 38절 39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사도행전 2:38-39,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성령의 선물 성령의 선물 이 약속은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니라.
-오늘 이 자리에는 얼마든지 부르신 하나님 백성들이 다 모인 줄로 믿습니다. 제가 오늘 이 아침 일부터 정말 진심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수의 강을 얼마든지 부어주시는 그분 앞에 목마른 거룩한 목마름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것은 이 갈망은 이 끊임없는 갈망은 생수의 강의 나만이 아니라, 폭포수 같은 그 강렬한 강물이 나를 통하여 주의 복을 받게 하면 내 갈증이 참된 갈증이 해결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걸 깨닫는 것이 그럼 이 시간에 기도를 해야 되겠다.
 
두 가지 기도 제목을 드리고요. 이 두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할 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은 예외 없이 누구든지 경험할 수 있는 생수의 강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폭포수와 같은 생수의 강이 나를 완전히 지배하여 주십시오. 흘러넘치는 생수의 강으로 나를 온통 지배하여 주십시오. 70-80%가 아니라 심지어 90% 아니라 100% 지배하게 하여 주십시오.
어떤 젊은이는 좀 결혼하고 난 다음에 지배하여 주십시오.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난 다음에 지배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마치 하나님이 내 즐거움과 내 어떤 인생의 좋은 걸 빼앗아가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NO!! 성령이 나를 지배해서 받는 그 즐거움과 기쁨은 이 세상의 즐거움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에요. 찬송한다 하더라도 기가 막힌 것이, 여러분 이 땅에 모든 갈증은 아무리 채워도 절대로 해결이 안돼요. 성령께서 생수의 강으로 지배하시면, 내 삶의 영원한 갈증이 치유가 되는 것이에요. 완전히 지배하여 주십시오. 넘치는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흘러넘쳐다 비축의 은혜가 아니라 넘치는 은혜, 축적의 은혜가 아니라 넘치는 것이 그럴 때, 사막의 광야의 샘이 터지고, 사막 같은 인생이 이 생수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흘러넘치는 사람에게 가는 놀라운 지배 흘러넘치는 지배를 받는 사람이 나타나는 놀라운 기도 제목 하나는 뭐냐면,
 
두 번째 이거 뭐냐 하면 주님, 나를 제한 없이 사용하여 주십시오. 나는 나를 볼 때는 너무 부끄러워. 내가 나를 볼 때는 너무 부족해. 내가 나를 볼 때는 그냥 저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어야 돼요. 그런데 주님께서 성령 받으라고 그러고 난 다음에 이런 은혜를 받고 난 다음에는 나를 제한 없이 새용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고 제 생일로 돌아보았어요.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성령께서 나를 붙잡아주시고 생수의 강을 경험하게 하실 때, 조심스럽지만 어떨 때는 한계가 없는 사역의 은혜를 받은 그 축복이 얼마나 큰지 여러분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제한 없이 사용해 주시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에요. 이것이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에요. 교회 안에도 일반적으로 우리 다 세상적인 사고방식이 다 들어와 있어요. 세상에 잘난 분들이 교회도 잘 나고, 세상에 잘 나가는 분들이 교회도 잘 나가고 이런 거 다 있어요. 그러나 진짜 은혜를 받으면 생수의 강에 대해서 눈이 열리는 사람은 빈복귀천 남녀노소 상관이 없이 주님이 나를 제한 없이 사용하게 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럴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언제까지 수많은 부부 간의 갈등을 갖고 계실 거예요? 언제까지 처리되지 않는 어려움으로 여러분이 힘들어하실 거예요? 언제까지 내 자아 내 프라이드 문제가 해결이 안 돼가지고 깨어지지 않아가지고 언제까지 힘들어 하실 거예요? 생수의 강의 지배를 받고 나를 제한 없이 사용해주시는 은혜 가지고, 그걸 가지고 더 이상의 갈등을 하지 말고, 갈증이 해결될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배당 안에는 수많은 분들이 모였을 때는 희한하게도 이 안에 생수의 강이 넘치는 분이 반드시 계세요. 그리고 제한 없이 하나님께 사용해달라고 기도 통해서 은혜 받을 분이 반드시 있어요. 그래서 이런 자리에 올 때, 공동체에 임하는 성령의 역사와 생수의 강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한국교회 제4의 부흥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토비새에도 했지만 웨일즈의 부흥이 평양 부흥으로 왔어요. 그게 제1 부흥이에요. 제2 부흥은 한국이 건국될 때, 여러분 지금 43 사건이나 그 모든 것들이 48년도 4월 3일 우리나라가 건국되기 전에 48년도 8월 15일 그거 보면, 거기 이 남한에 있는 공산당들, 남로당, 그 당시에 남로당 뭐 이런 박헌영 김달산 이런 사람들이 여러분 보통 사람들은요 힘도 없어요. 공산당들은 선전 선동에 놓여가지고 강력합니다. 10프로만 공산화가 일어나면요 세상 뒤집어집니다.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8월 15일 이전까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는 결국 공사도 되게 다 돼 있었어요. 그래서 제주에도 어려움이 생기고 여수 순천에도 어려움이 생기고, 우리나라가 그냥 끝나게 돼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쨌든 그리스도인 이승만 대통령에게 지혜를 주셔서 나만이라도 정부를 수립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공산화될 수밖에 없다. 이걸 알고 48년도에 건국을 할 때, 제헌을 국회를 할 때 하나님이 이 민족을 성령으로 인 쳐달라고 했잖아요. 전 세계의 어떤 역사가나 어떤 경제학자도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은 해소 못합니다. 한국 교회와 함께한 축복인 줄로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제2 건국이에요. 제2부흥에요. 제3부흥은 73년도 50년 전에 빌리그레함 집회를 통하여 73년을 기점으로 해서 73년도 엑스플로, 80년대 복음만 대상에 어마어마한 부흥이 일어난 거에요. 이제 6월 3일 상암 집회,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제4 부흥의 시작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어요. 이번 6월 3일 상암집회는 전 세계 교회가, 전 세계 우리 78억 가운데, 한 18억 20억의 복음주의 교회 이 18억 20억 가운데서, 코로나 이후에 처음 있는 가장 강력한 집회에요. 그리고 앞으로 한국 사회는 10년 내로는 이런 집회에 다시 하기가 힘들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10년 더 하면 좋겠지만 실제로 쉽지가 않아요. 우리 어른들 세대에 많은 사람들이 73년도 74년도, 내 마음에 그때 그때 가이스 저는 74년도 참석해 봤고 그다음에 80년대 복음만 대에 참석해 봤는데, 수만 내 친구들 오면 나도 그때 갔으면 좋았을걸...그런 분들이 많아요. 앞으로 10년 20년 뒤에 한국 교회의 6 삼 사암 집회에 간 것이 이 생수의 강이 터지고 부흥의 플랫폼이 되는 어떤 그런 기관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그 축복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이 은혜가 나만이 만족이 아니라, 이렇게 넘치게 될 때에 여러분 개인의 문제도 만족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사랑의 교회는 이 생수의 강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 나라의 이 부흥을 위한 프론트 라인에서 영적인 선봉장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오늘 아침에 제가 기도를 하는데, 다윗의 군대를 성경에서 쭉 말씀할 때 다윗의 군대가 나중에 하나님의 군대라고 그랬어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군대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불의의 변기가 아니라 의의 변기로 사용돼야 되는 것이에요. 그걸 위하여 우리가 생수의 강이 흘러넘쳐야 되는 것이 우리를 완전히 지배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제한 없이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이 회복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말해 잊지 않고, 실체 있는 것을 체험하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약
이 순간 마음의 진실함을 가지고 ‘The rivers of living water!!’의 주님을 깨달아서, 폭포수보다 더 놀라운 것을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심을 믿고, 내 마음에 있는 소음과 기도의 제목을 다 올려드리고 사명자로 제한 없이 사용되어야 한다. 폭포수 같은 생수의 강이 우리 앞에 놀랍게 펼쳐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6,3 상암 집회에 우리 한국교회와 아시아 부흥의 그리고 남북 통일의 결정적인 날이 되기를 간구하며,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생수의 강의 근원 되신 주님 안에서 거룩한 갈증과 목마름이 완전히 해결되는 참 만족의 은혜를 받아서 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해갈케 하는 물댄 동산 같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 같은 흘러넘치는 서로의 은혜를 갖기를 소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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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5월 15일 (798)
1. 실제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채 주가 변동에 따른 차액만 결제하는 파생상품인 ‘차액결제거래’의 약어는?
①CFO ②CFD ③CFA ④CFP

2. 최고경영자, 최고재무책임자, 최고인사책임자 등 기업의 최고위 경영진을 통칭하는 말은?
①A레벨 ②B레벨
③C레벨 ④D레벨

3. 통화정책과 관련해 ‘매파’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거리가 먼 것은?
①물가·경기 안정 중시
②인플레이션 파이터
③긴축 선호
④완화 선호

4. 뚜렷한 지지 정당이나 정치인이 없고, 선거 때마다 이슈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있는 ‘무당파 부동층’을 가리키는 말은?
①비둘기파 ②매파
③캐스팅 보터 ④스윙 보터

5.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가 역대 최대로 벌어졌다. 현재 차이는 얼마일까?
①1.0%포인트
②1.25%포인트
③1.5%포인트
④1.75%포인트

6. 삼겹살과 상추, 실과 바늘, 자동차와 엔진오일 등의 관계를 공통으로 설명하는 용어는?
①정상재 ②보완재
③대체재 ④공공재

7. 은행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은행과 달리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는 금융권을 통칭하는 말은?
①그림자금융 ②메자닌금융
③구제금융 ④간접금융

8. 세금을 납부하는 주체와 실제 부담하는 주체가 다른 조세를 뜻하는 말은?
①보통세 ②목적세
③직접세 ④간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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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12년 만에 미국을 국빈 방문했습니다. 국빈 방문(state visit)은 한 나라의 정상(대통령)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여러 형식 중 최고 수준입니다. 공식 방문, 실무 방문, 사적 방문 등과는 격이 다릅니다. 상대국 정부가 의장대 사열을 비롯해 의회 연설, 국빈 만찬 등으로 ‘국가 차원의 손님’이란 말에 걸맞은 최고의 예우를 합니다.

윤 대통령은 역시 12년 만에 일본과의 ‘셔틀외교’도 부활시켰습니다. 윤 대통령이 올 3월에 일본을 실무 방문한 데 이어 지난 7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우리나라를 실무 방문했습니다.

대통령이 다른 나라 정상을 직접 만나는 정상회담(정상외교)은 국가이익을 위한 최고위급 외교 행위입니다. 여러 반론이 나오고 있지만, 윤 대통령의 뚝심 있는 정상외교가 국익을 지키고 키웠다는 평가에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미국 국빈 방문에서 70년 역사의 한미동맹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켜 우리나라 안보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한미동맹의 영역을 바이오와 인공지능(AI)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로까지 확장시켰습니다. 일본과의 셔틀외교를 통해서는 양국 관계 회복에 속도를 냄으로써 궁극적으로 한·미·일 안보 협력 구도를 탄탄하게 구축했습니다.

외교의 3대 축과 정상외교에 대해 알아봅시다. 냉엄한 국제사회의 현실에서 국가 간 동맹이 왜 필요한지, 한미동맹은 그동안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이해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나라 정상이 직접 만나는 정상회담(정상외교)…국가이익을 위한 최고위급 외교 행위입니다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은 ‘영어 학원’으로 유명합니다. 영국 정부가 1934년 설립한 국제문화교류 기관인데요, 우리나라에는 1973년 주한영국문화원이 문을 열었고, 현재 서울과 일산에서 어학원 네 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국식 영어 시험인 토플(TOEFL)과 유사한 영국식 영어 시험 아이엘츠(IELTS)를 준비하거나 영국 유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 영국문화원을 많이 찾습니다.

공공외교
영국 정부는 전 세계 주요 국가에 영국문화원을 설립해 영어 교육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국 문화를 알리고 해당 국가 국민이 영국에 대해 우호적 생각을 갖도록 유도합니다. 영국문화원이 대사관과는 별개로 외교 활동의 거점 역할을 하는 셈이죠. 이런 방식의 외교를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1991년 영국문화원 같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을 설립했고, 2016년엔 공공외교법을 만들어 공공외교를 펼치고 있습니다. 공공외교는 그 주체가 정부는 물론 비정부기구나 일반 대중도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 외교와 차이가 납니다. 그러니까 일반 시민도 ‘민간 외교관’으로서 다른 나라 국민에게 자국 문화와 강점을 알려 자국에 호의적 친구를 만드는 것이 공공외교입니다.

소프트파워
파워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과 다르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능력’입니다. 하드파워는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통해 강제로 상대방의 행동을 이끌어내지만, 소프트파워는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매료시켜 그들이 스스로 행동하도록 유도합니다. 공공외교는 하드파워가 아닌 소프트파워를 활용합니다.

그렇다면 공공외교에서 소프트파워는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닌 어떤 것을 활용할까요? 다른 나라 국민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문화, 예술, 가치 등이 대표적입니다. 예를 들어, 방탄소년단(BTS)이나 드라마 <오징어게임> 같은 대중음악과 영상 콘텐츠가 소프트파워로서 영향력을 발휘해 지구촌 곳곳에서 한국 이미지를 개선하고, 궁극적으로 국가이익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미국 국빈 방문 기간에 소프트파워 개념을 만든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를 만나 대담을 나눴습니다. 나이 교수는 2004년 “소프트파워는 강제나 보상이 아닌 매력을 통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외교의 3대 축
공공외교와 함께 전통적인 정무외교 및 경제외교를 일컬어 우리나라 외교의 3대 축이라고 합니다. 정부는 2010년을 ‘공공외교의 원년’으로 선포했습니다. 그러니까 그이전까지는 정무외교와 경제외교가 중심이었죠. 정무외교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이슈를 다루는 것이고, 경제외교는 경제 및 산업 이슈에 대한 것입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현실 외교에서는 정무외교와 경제외교, 그리고 공공외교가 따로 이뤄지기보다는 혼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슈에 대해 정부가 공식적인 정무외교와 경제외교를 진행하는 데 민간이 주도하는 공공외교가 그것을 지원하는 것이죠.

정상회담(정상외교)
외교는 협상과 교섭을 통해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국제관계)를 다루는 일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다루는 이슈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정무외교(국가 안보)와 경제외교(경제 및 산업)로 구분하고, 정부 외에 민간이 참여해 상대국 국민을 대상으로 하면 공공외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최고위급 외교 행위는 무엇일까요? 정부의 외교관이나 민간 외교관이 아닌 한 국가의 정상(대통령)이 상대국 정상을 직접 만나 행하는 ‘정상회담(혹은 정상외교)’이 바로 그것입니다. 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사전에 정부 관료들이 양국 현안에 대해 서로의 입장을 치밀하게 조율해야 합니다.

그렇게 상호 이견이 어느 정도 조율된 상태에서 양국 정상이 공식 환영 행사와 만찬 등을 통해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최종적인 외교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NIE포인트
1. 공공외교의 개념을 설명해보자.
2. 소프트파워의 사례를 조사해보자.
3. 외교의 3대 축과 정상외교를 정리해보자.

70년 역사의 한미동맹은 군사동맹을 넘어…바이오 등 과학기술 동맹으로 발전하고 있어요
고구려는 장수왕(394~491년) 시절 막강한 국력을 자랑하며 위세가 대단했습니다. 백제와 신라는 서로 힘을 합치지 않으면 고구려를 막아낼 수 없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신라의 라(두음법칙으로 나)와 백제의 제를 합친 ‘나제동맹’을 결성했습니다. 이처럼 국가 간 동맹(군사동맹)은 두 개 이상의 국가가 유사시 서로를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협력하기로 약속하는 것입니다.

동맹이 필요한 이유
나제동맹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무수히 많은 국가 간 동맹이 이뤄졌습니다. 그렇게 많은 동맹이 생겨난 이유는 개별 국가와 국제사회의 차이 탓입니다. 개별 국가에서는 어느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과의 약속을 어기면 정부가 공권력을 행사해 약속 위반자를 처벌함으로써 구성원 간에 맺은 약속과 규칙을 준수합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는 그런 공권력을 가진 세계정부가 없습니다. 유엔(UN)은 세계정부가 아닙니다. 개별 국가들의 협의체일 뿐입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나 유엔 총회가 국제사회의 어떤 문제에 대해 결의안을 채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 주민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할 것을 촉구하는 ‘북한인권결의안’처럼 말이죠. 그런데 결의안이 채택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집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대부분의 국가가 러시아를 규탄했습니다. 침공 후 1개월 만에 유엔 총회에서 러시아를 침략 국가로 규정하고 군사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채택됐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냉엄한 국제사회 현실
국제사회의 현실은 냉엄합니다. 여러 국가가 우크라이나를 돕더라도 러시아와의 전면적 충돌은 피하려고 합니다. 다른 나라를 도우려고 자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만들 국가는 없습니다. 나제동맹처럼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해 동맹을 맺었더라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일방적으로 동맹을 깨뜨리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1939년 나치 독일과 사회주의국가 소련은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합니다. 상호불가침조약은 상호방위조약 및 중립조약과 함께 동맹의 일종입니다. 조약을 맺었지만 아돌프 히틀러의 독일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1941년 상호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소련을 공격합니다. 현대 국제정치 역사에서 동맹이 3년 이상 지속된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전체 군사동맹 중 10% 미만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럽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미일동맹, 그리고 한미동맹이 3년 이상 지속된 동맹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70년 역사의 한미동맹
한미동맹은 1953년 한미 상호방위조약으로 시작해 올해 70주년을 맞았습니다. 수십 년간 한반도 안보의 기둥으로서 그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러다 체결 50주년이던 2003년에는 당시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과 노무현 정부의 대북 유화책이 갈등을 빚어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군사동맹이던 한미동맹을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그 가치를 상승시켰고, 2013년 박근혜 정부는 한 단계 더 격상시켜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미국 국빈 방문을 통해 재래식 무기에 기반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핵이 포함된 상호방위 개념’으로 업그레이드시켰습니다.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단순히 이익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편의적 계약 관계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가치동맹’”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습니다.

이번에 주목받은 또 다른 성과는 과학기술 협력을 한미동맹의 새로운 영역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매사추세츠공과대(MIT)를 방문해 “한미동맹이 국방 안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과학기술 협력이 동맹의 새로운 영역”이라고 역설했습니다. 10년 뒤 한미동맹 80주년쯤에는 바이오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에서 양국이 협력해 만들어낸 놀라운 성과가 넘쳐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NIE포인트

1. 국제사회에서 동맹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보자.
2. 일방적으로 동맹을 파기한 사례를 조사해보자.
3. 한미동맹의 역사를 정리해보자.

장경영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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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5월 22일 (799)

1. 가격이 실물 경제와 밀접하게 움직여 경기지표 역할도 한다고 해서 ‘닥터 코퍼’라는 별명이 붙은 원자재는?

①금 ②동 ③철광석 ④아연

2. 일론 머스크가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글로벌 위성통신 서비스 업체로, 올 하반기 국내 서비스 시작을 앞둔 회사는?

①스페이스X ②스타링크
③테슬라 ④하이퍼루프

3. 업무용 빌딩에서 임대되지 않고 비어 있는 채로 남은 사무실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부동산 용어는?

①전월세전환율 ②공정률
③담보인정비율 ④공실률

4. 재원 마련 방안은 고민하지 않고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는 것처럼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행태를 가리키는 말은?

①파시즘 ②매카시즘
③포퓰리즘 ④매너리즘

5.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로부터 예산 지원을 많이 받을수록 숫자가 떨어지는 지표는?

①소득대체율 ②재정자립도
③조세부담률 ④국민부담률

6. 가입자가 낸 보험료의 일부를 주식, 채권 등에 투자하고 운용 실적에 따라 투자 성과를 나눠주는 보험 상품은?

①실손보험 ②변액보험
③재보험 ④종신보험

7. 외화 부족 사태나 환율 급등락에 따른 혼란 등을 막기 위해 국가끼리 체결하는 외환 거래는?

①통화스와프 ②통화옵션
③통화선물 ④기축통화

8. 공공자원 운영을 완전히 민간 자율에만 맡겨두면 자원이 고갈되는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음을 설명하는 개념은?

①님비 현상 ②공유지의 비극
③플라자 합의 ④죄수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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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약인가 독인가…육성과 규제 사이


AI가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려면 인간 두뇌의 시냅스에 해당하는 파라미터(매개변수) 수가 많아야 합니다. 우리 뇌에는 수많은 신경세포(뉴런)가 있고 신경세포마다 수많은 가지가 달려 있는데, 신경세포들의 가지와 가지를 이어 신호를 주고받는 부위가 시냅스입니다. 파라미터 수는 그만큼의 방정식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그 정도로 복잡한 경우에 대비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바드의 파라미터 수는 챗GPT(1750억 개)의 세 배를 넘습니다.


이처럼 엄청난 성능의 AI가 잇달아 등장하면서 AI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은 “AI는 인간의 도움 없이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하므로 그럴듯해 보이는 사기가 쉬워질 것”이라며 “AI를 더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AI 분야 석학으로 꼽히는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빅테크들이 AI를 발달시킬수록 점점 더 위험해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우리나라 국회에도 국민 생명, 신체, 기본권을 위협할 수 있는 AI를 규제하는 인공지능기본법안이 계류 중입니다.

1950년대 등장 후 지금까지의 AI 역사와 AI가 일으킨 변화에 대해 알아봅시다. AI 기술과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AI로 인한 여러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살펴봅시다.

AI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상황
긍정적 효과 많이 만들어낼 지혜
 파란색 자동차 번호판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 차량은 파란색 번호판을 사용합니다. 특히 전기차가 눈에 띄게 늘었는데요. 전기차는 언제 처음 등장했을까요. 무려 190여 년 전입니다. 1828년 헝가리에서 전기차 기술이 개발됐고, 1886년 영국에서 전기차 택시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포드의 엔진차에 밀려 확산되지 못했고 우여곡절 끝에 2010년 이후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있습니다.


AI의 역사

전기차 기술처럼 인공지능(AI) 기술도 그 시작은 오래전입니다. ‘기계가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는 1940년대 시작됐습니다. 인간 뇌가 신경세포(뉴런)들의 네트워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간 뇌의 동작을 전기회로로 모사할 수 있다는, AI 연구의 시초로 불리는 연구가 1943년 발표됐습니다. 1950년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유명한 앨런 튜링이 AI의 수준을 피상적으로나마 측정할 수 있는 ‘튜링 테스트’를 내놨고, 1956년 미국 다트머스대에서 AI(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합니다.

1964년 매사추세츠공대(MIT) 인공지능연구소가 인간과 대화하는 챗봇형 심리상담 프로그램인 엘리자(ELIZA)를 개발하는 등 놀라운 연구 성과가 잇달아 발표됩니다. 하지만 AI로 해결할 문제가 복잡해질수록 계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1970년대 초엔 “AI는 현실의 문제 해결에 활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해집니다. 이 시기를 ‘제1차 인공지능의 겨울’이라고 부릅니다.

이후 혈액 감염증을 진단하고 치료제를 조언하는 시스템, 디젤 기관차의 고장을 발견하는 시스템, 광석 매장지를 탐지하는 시스템 등이 개발됐으나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합니다. 1990년대 초 다시 AI에 대한 관심이 작아지는 ‘제2차 인공지능의 겨울’이 도래합니다.

딥러닝

2012년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팀이 AI 기술 중 하나인 딥러닝 기술로 얼굴인식 분야에서 혁신적인 성과를 보이면서 AI는 다시 크게 주목받습니다. 딥러닝은 컴퓨터가 데이터로부터 스스로 규칙을 학습하고 추론하는 기계학습 방법의 하나입니다.

1959년 등장한 용어인 기계학습은 입력값(x)과 출력값(y) 데이터를 가지고 일정한 식(x*w=y)에서 가중치(w)를 찾아내는 방식입니다. 입력값에 어떤 가중치를 곱해야 출력값이 되는지를 찾아내는 것을 ‘학습’이라고 부릅니다.

전통적인 기계학습에선 사람(개발자)이 어떤 입력값과 출력값 데이터를 사용할지 정해줍니다. 하지만 딥러닝은 컴퓨터가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에서 스스로 최적의 데이터를 찾아냅니다. 이런 강점 때문에 딥러닝은 전통적 기계학습의 한계를 극복합니다. 다만 딥러닝도 기계학습처럼 입력값과 출력값의 관계를 잘 설명해주는 가중치값을 찾아내는 것이고, 그런 과정을 학습(learning)이라고 부릅니다.

AI 활용 분야 확산

딥러닝을 활용하는 분야가 계속해서 넓어지고 있습니다. 딥러닝을 통해 사진이나 영상에서 사물을 구분해내는 영상인식과 사람의 음성이나 문자를 인식하는 자연어 처리는 이제 아주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각종 상품이나 영화 드라마 같은 콘텐츠를 개인 맞춤형으로 추천하는 서비스 역시 활발하고요. 이 외에도 주가를 예측하거나 신용카드 불법결제 또는 보험사기 등을 감지하는 시스템, 자율주행이나 바이오 분야 등에 이르기까지 딥러닝, 그러니까 AI가 활용되지 않는 분야를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31개국 3만1000명을 대상으로 AI와 업무에 대해 조사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2023 업무 트렌드 지표(Work Trend Index)’라는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49%는 AI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많은 70%는 AI가 업무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AI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효과를 더 많이 가져오도록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NIE 포인트

1. AI의 역사를 정리해보자.

2. 딥러닝의 개념을 설명해보자.
3. AI를 둘러싼 기대와 우려에 대해 토론해보자.


규제가 AI 기술과 산업 발전 막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모범적인 타협을 이뤄내야죠
「①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가하거나, 해가 되는 상황을 방치하면 안 된다. ②로봇은 ①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에게 복종한다(즉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해를 가하라고 한다면 복종해선 안 된다). ③로봇은 ①원칙과 ②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보호한다(즉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고 인간에게 해를 가하거나, 다른 인간에게 해를 가하라는 인간의 지시를 따르면 안 된다).」


1942년 공상과학(SF)소설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가 단편소설 ‘Runaround’에서 제시한 로봇 3원칙입니다. 인간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로봇 3원칙은 인공지능(AI)과 관련해 인간의 안전을 강조하기 위해서도 자주 거론됩니다.

“AI 규제 필요해요”

로봇과 AI에 대해 사람들은 왜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할까요. AI는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신기술입니다. 빅데이터, 블록체인, 핀테크, 양자컴퓨팅, 바이오 등 4차 산업혁명의 다른 신기술은 인간이 활용하는 ‘도구’인 데 비해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어떤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거기다 SF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AI가 결합된 로봇의 모습은 이런 불안감을 더 자극합니다.

불안감은 AI에 대한 통제와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2017년 유럽 의회는 “향후 고도로 자동화된 인공지능 로봇을 사실상 ‘전자인간(Electronic Personhood)’으로 취급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러자 과학자들은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 기술이 전자인간으로 취급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달할 수 없는데, 과학기술 수준에 대한 이해 없이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한 공상과학과 자극적인 언론 보도의 영향을 받아 이런 규제가 나왔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할 시기”라고 주장했습니다. 유럽 의회의 전자인간 규제는 과도한 규제로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사례로 평가받게 됐습니다.

“기술과 산업 발전이 우선”

과도한 규제가 산업 발전을 가로막은 대표적인 예로 영국의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을 들 수 있습니다. 영국은 1865년 자동차로 피해를 본 마차를 보호하기 위해 이 법을 만듭니다. 자동차 한 대에 운전사 3명이 있어야 하고, 그중 한 사람이 낮에는 붉은 깃발을, 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마차를 몰아 자동차를 안내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동차를 사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였습니다. 이 법은 1896년까지 30년간 유지됐고, 산업혁명과 자동차 엔진 발명을 이끌었던 영국은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을 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 내줘야 했습니다.

현재 AI에 대한 규제는 유럽연합이 가장 급진적이고, 미국와 일본은 산업 발전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 중간 정도인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국내에서도 “일방적이고 과도한 규제는 어린 나무를 가지치기해 더 자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AI 기술과 산업 발전을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과도한 규제로 신산업 태동 막아선 곤란

규제는 정부가 법률과 명령 등에 근거해 국민과 기업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입니다. 법률과 명령은 결국 수많은 사회 구성원의 선택 결과이고, 타협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I 기술의 혜택을 더 많이 향유하면서 동시에 AI로 인한 잠재적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규제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AI 같은 신기술의 두 가지 특징(어려움)을 고려해야 하는데요. 신기술의 부정적 효과(위험)는 초기에는 완전히 알기 어렵고 미래에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과 신기술 초기의 규제가 새로운 위험을 발생시키거나 위험을 변형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우리 사회가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타협을 이뤄낼 수 있기를 기대해봅시다.

NIE 포인트
1. 로봇 3원칙을 설명해보자.

2. 과도한 규제의 역효과에 대해 토론해보자.
3. AI 같은 신기술의 두 가지 특징을 정리해보자.

장경영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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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5월 21일)
제목: "다시 알아야 할 복음"
말씀: 고린도전서 15:1~4
대표기도: 나모세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박성규 목사님-초빙(총신대 총장5/25일 취임(1부)
ㅡㅡㅡㅡㅡ
 
*고린도전서 15:1~4,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박성규 목사님-초빙(총신대 총장5/25일 취임)
너무나 수고 많았습니다. 한 주간 동안 삶의 현장에서 얼마나 수고 많으셨습니까? 오늘도 예배가 우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최후와 하나님의 부활을 경험하는 신앙되기를 바랍니다. 찬양 팀은 새벽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오셨을 텐데, 찬양과 오케스트라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교회 안에서 한 청년이 자녀와 교제를 했습니다. 오래전에 일입니다. 네 건전하게 교제하다가 헤어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얼마 후에 자매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구절 하나를 넣고 싶었습니다. 결혼하는 자녀에게 옛날에는 이 축전을 치지 않았습니까? 전보를 치는데, 그동안 정말 귀한 사귐을 할 수 있었고 또 우리가 건전하게 사귀었기 때문에 아무 걱정 없이 남편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라는 짧은 축하의 글을 썼습니다. 그런 다음에 성경 구절 한 구절을 전문을 쓸 수 없고 몇 장 몇 절만 쓰게 되는데 요한일서 4장 18절을 요일 4:18절을 이렇게 해서 보냈어요. 우체국 직원의 실수로 요일에서 ‘일’자가 빠져버렸어요. 굉장한 차이를 낳았죠. 요한일서 4장 18절은 사랑은 두려움이 없나니 온전한 사람이 두려움을 내쫓느니라. 말씀을 보면,
 
*요한일서 4:18,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걱정하지 말고 평안하게 잘 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런 뜻인데, 일자가 빠지니까 요한복음 4장 18절이 됐어요.
 
*요한복음 4:18,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러분 정말 한 글자가 빠졌는데, 대수롭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엄청난 차이를 만들 수도 있죠. 오늘 우리가 나누게 될 복음은 정말 토시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배워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의 제목을 PPT로 보겠습니다. 오늘은 파워포인트를 좀 이용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다시 알려야 할 복음’입니다. 고린도서 15장 1절에 보면,
 
*고린도전서 15:1,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복음을 들었던 고린도교회가 약화가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미 바울 사도께서 고린도 교회에 복음을 전했단 말이죠. 그런데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에게는 다시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죠. 흔히 우리는 복음이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받아들여야 되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새롭게, 새롭게 묵상되고 그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가 마음속에 경험될 때, 그 성도는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오늘 말씀의 준 제목을 한번 따라해 볼까요? ‘다시 알려야 할 복음 다시 배워야 할 복음.’
 
I. 복음의 뜻.
1)복음-복된 소식.
여러분들에게 있어서는 다시 배워야 할 복음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복음의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 한국어로 보면 한자에 씌어져 있죠. 복 복자 소식 의자 소리음이라고도 하고 소식 음이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복음이란 ‘복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2)Gospel. 영어로는 역시 복된 소식인데 가스펠인데, 웹스터 사전에 보면 이 가스펠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고대 용어의 ‘GOD’가 신이라는 뜻이지만 ‘좋다, 복 되다. 라는 뜻도 있어요. 그리고 스페링이 알파벳 철자라는 뜻도 있지만, 수식이라는 뜻도 있어요. 이야기라는 뜻도 있어요. 그래서 이 GOD에서 d를 탈락시키고 spel에서 엘 하나를 탈락시킬 때, gospel 되는 거죠. 이것도 역시 ’복된 소식‘이 됩니다. 신약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마를 우리는 헬라오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헬라 문화권의 언어이기 때문에요.
 
3)유앙겔리온. 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헬라어를 아시는 분도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분을 위해서 대가로 안에 영혼이 다른 표기를 해놓았습니다. 한번 따라 해 볼까요? 유앙겔리온... ‘유’라는 말은 좋다 복되다. 라는 말이고요. ‘앙겔리온’이라는 말은 ‘소식’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유앙겔리온’은 복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왜냐면, 전쟁에서 승리할 때, 전해지는 소식으로 유앙겔리온으로 알려졌던 것이죠.
 
여러분,
이것은 기말고사에 나오기 때문에,,,ㅋㅋㅋ 왜냐하면 고대의 전쟁은 패전하게 되면 다 죽임 당하지 않으면 그중에 일부는 노예로 끌고 가는 거죠. 아니면 전사자 외에는 전부를 노예로 삼은 거죠. 그러니까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얘기는 안 죽어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또는 노예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거보다 기쁜 사실이 없는 거죠. 복권에 당첨되는 그 정도가 아니라, 죽을 사람이 살아가는 일생을 노예로 살아야 될 사람이 자유인이 되는 것 이것이 유앙겔리온의 오늘의 뜻이 되겠습니다.
 
※제2차 페르시아 전쟁을 가지고 한번 이야기를 구성해 보았습니다. 제2차 페르시아 전쟁은 bc 490년 페르시아가 지중해를 건너 도시 국가인 아테네를 침공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페르시아의 병력은 무려 2만 5천명 최강 군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아테네 이는 민병대 수준의 1만 명, 여러분 이 전쟁은 도나 마나 페르시아가 이길 거라고 점쳐지는 전쟁이었죠. 그래서 페르시아 군대는 승전 기념비까지 깎아서 그걸로 깎아서 올 정도로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이 전투는 마라톤 평야, 근대 올림픽의 마라톤 경기의 유래가 되는 고대 ‘마라톤 평야’의 전투 전장이 마라톤 평야가 됐다는 거죠.
여러분, 이 아테네 시민들은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보나마나, 2만 5천 명의 취약한 군대 가지 들어왔고 우리는 민병대 수준의 만 명이니까 이거 질 것이 뻔한 거고, 우리 죽지 않으면 노예가 된다고, 이런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겠죠. 근데 여기에 변수가 있어요. 아테네 지휘관이 아주 지대하게 뛰어난 전략가인 아테네 장군 ‘밀티아데스’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화력과 전투력을 집중하면서 드라마틱하게 승리하게 됩니다.
 
그는 페르시아군의 가장 약한 점을 정보를 통해서 파악한다. 그리고 그곳을 공격함으로 이 전투에서 기가 막힌, 드라마틱한 승리를 거두게 되자. 그래서 아테네가 북쪽에서 승리하게 되는데, 페르시아 그의 군사가 6,400명, 아테네 그의 군사가 192명, 이 정도의 전투 결과는 대승이라고 말할 수 있죠. 이 기쁜 소식을 안고 여러분이 잘 아시는 하이드 피리스라는 병사가 논스톱으로 약 42km를 달려와 아테네 도심에서 이렇게 외쳤다고 하죠. 그의 이름은 파이렛 피데스입니다. 유앙겔리온!! 유앙겔리온!!..(복음이다. 복음이다. 아테네가 이겼다!!!)-복음이다. 복음이다. 아테네가 이겼다는 뜻입니다. 유앙겔리온은 죽을 운명에서 살아나는 것, 그리고 일평생 노예가 되는 운명에서 자유인으로 사는 것, 이 개념을 예수님에게 적용하기에 가장 좋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형벌 받고 저주와 형벌을 지옥에서 영원히 받을 우리를 살려주시는 일을 예수님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이게 서양의 역사 속에 나타난 것이다. 좋은 대학가는 그 정도가 아니라, 좋은 직장 가는 그 정도가 아니라, 죽을 인생이 살아서, 그리고 평생 노예로 살 인생이 자유를 얻는 것,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일이죠. 그것은 영원히 지옥에서 하나님과 분리된 채 죽음의 고통을 당할 인생에게 생명을 주신 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영원히 마귀의 종이 되어서 살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일대기를 다룬 신약 성경의 앞에 4복음을 복음서라고 부릅니다. 가만히 보면 출생에서부터 죽음과 부활, 승천까지의 일대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입니다. 그런데 복음이라고 구태여 이름을 붙인 이유는 그분의 세계는 단순한 세계가 아니라, 영원히 죽을 우리를 영생하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다. 영원히 노예를, 우리를 영원히 자유인이 되게 해주셨기 때문에 그분의 일생은 복음으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복음의 기능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의 기초입니다. 제가 이 예배당을 지을 때, 담임 목사님과 함께 이 기초를 놓는 것을 봤어요. 정말 기초가 단단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기초가 약하면 흔들리게 되고 무너지게 되죠. 제가 대학생 땡 오정현 목사님과 서부이촌동에 라블이라는 아파트에서 공동생활 형태가 있었는데요. 아주 오래된 그 아파트에서 함께 형님들과 살면서 신앙훈련을 하고 대학교 때, 꿈을 가지고 살았으며 저는 군목으로 갈 사람이었기 때문에 라블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일상으로 하던 일이 있었습니다. 꼭 달리기로 했어요. 원효대교입니다. 왜 뛰었냐면, 원효대교가 편도 1.4킬로이며 왕복 2.8킬로미터였는데요. 저는 매일 뛰었습니다. 왜냐하면 군에 가서 제가 병사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여의도 한 바퀴를 뛰었다. 여의도 한 바퀴가 8.8km입니다. 그래서 토요일은 제가 10km를 뛰었는데 그 때 6.3 빌딩을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세워진다는 청사진이 있는데 빌딩이 그 자리에만 있는 것 같이 안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있고, 한 달이 가도 그대로였습니다. 이번 주에 가도, 그 다음 주에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깊이 파야 된다는 것을요.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깊이 파야 됨을 알아야 합니다. 기초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럼 신앙의 기초로 한 번 볼까요? 이단에게 흔들리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기초를 단단하게 해야 합니다. 자, 그 기초가 1절입니다. 15장 1절입니다.
 
II. 복음의 기능
1) 신앙의 기초.
*고린도전서 15:1,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성도가 제일 먼저 받아야 될 게 복음이에요. 그 가운데 어떻게 된 것이라고요? 선포를 시작해야 한다. 이 복음이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복음을 정확하게 모르면 흔들리는 신앙이며 무너지는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2)구원의 근거.
*고린도전서 15:2,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두 번째 복음의 개념은 구원의 근거입니다. 2절을 한번 읽어주실까요? 구원을 받아 구원도 어떻게 받냐면 복음을 잘 믿을 때, 제대로 믿을 때 받는 거죠.
 
3)행복의 출발.
*요한3서 1:2,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세 번째로는 행복의 출발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을 위하여 내 영혼이 잘된 까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한다. 여러분 복음을 믿고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도 있지만 인생을 종합적으로 볼 때,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십니다. 이것은 세상 적인 것과는 다른 행복이죠. 제가 섬겼던 교회를 시무할 때, 이제 지금 40년이 되었지만 이중적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요. 총장 아니면 담임 목사가 중에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신호할 때, 바꾸게 되었습니다.
 
전에 부전교회에서 40대 중반 여성이 교회를 나오셨어요. 저는 나온지도 몰랐죠. 그 뒤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어요. 이분은 왜 교회를 나오게 되었냐면, 알코올 의존 증이었다. 옛날 말로 알코올 중독 환자였어요. 40대 중반의 여성 남편이 출근할 때는 오늘은 술 안 먹어야 되는데 하면서도, 점심 먹고 나면 술친구들 그 여성 친구들을 불러서 술을 마셨다. 그러다 보니까 남편과의 갈등이 되었고, 그래서 깊은 우울증에 빠져서 자살 충동까지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다 정말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딸들이 다니고 있는 부전교회에 출석을 합니다. 첫 주는 맨 뒤에 앉았는데 이 설교를 잘 들어오지 않지만 찬양 팀, 찬양대 노래를 듣고 그냥 눈물이 난다는 것입니다. 물처럼 흐른 거예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그렇게 자꾸만 눈물이 난대요. 그러고 나니까 마음이 후련해지더라고 했습니다.교회가 이런 곳이구나 하고,,, 두 번째 주에 왔어요. 역시 두 번째 주도 설교는 안 들어온대요. 그런데 찬양대의 찬양을 듣고 세 번째 주에 그 가운데 이분이 복음을 받아들게 돼요. 그 다음 주부터는 말씀이 들어오더래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힘들었던 금주, 술을 끊는 일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걸 보고 남편의 감동을 받아요. 남편이 나와서 같이 세례 받고 이제는 집사님이 되셔서 제가 마지막 설교를 하는데 고별설교를 맞은편에 앉아 듣고 있더라고요. 참 얼마나 감동인지요.
 
여러분
복음은 우리에서 죽어서 가는 천국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진정한 천국을 경험하게 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전해줘야 되겠죠. 그럼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가? 중요한 내용입니다. 먼저 십자가가 복음의 첫 번째 내용입니다.
 
III. 복음의 내용.
1)십자가.
-마크 미텔버그는 다른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했습니다. 다른 종교는 ‘하라’(Do)의 종교이다. 감사하게도 기독교는 ‘다 이루었다’(Done)의 종교이다.
*우리 모두 죄인이어서 속죄가 필요하고 십자가가 속죄하므로 복음입니다.
 
고린도전서 15:3,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가 중요해요. 고린도 전서가 기록될 때, 신약이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성경대로는 구약 성경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바울 사도는 가족고세 유월절에 그리고 5대 제사의 수많은 죽임 당한 제물들을 통하여 이루어졌던 속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 제물 되심을 통하여 완성되었음을 말하고 있죠.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그렇습니다. 십자가 외에는 우리 죄를 속죄하여 다른 방편이 없음을 믿습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죽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십자가, 거기서 우리는 속죄를 받기 때문에 십자가가 복음이 되는 거죠. 우리 가운데 여러분 혹시 제가 옛날에 생각했던 것처럼 나는 어릴 때부터 나는 또 모태 신앙이니까 나는 별로 죄도 짓지 않았는데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말에 동의가 되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계실 거예요. 죄라는 단어가 여러 개가 있지만,
 
-*Sin- 하나님의 법을 위반함.
-*Crime- 정부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는 불법적 행동.
웹스터 사전에 보면 Sin이라는 죄를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다고 설명하고 있고, 우리는 흔히 이걸 생각하죠, 크라임 정부에게 처벌받을 수 있는 불법적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사전에 이 크라임은 도둑질, 사기, 살인 등등의 범죄를 말하죠. 우리는 뉴스와 신문을 통하여 주로 듣는 범죄의 내용이 크라임이다 보니까 그것만 죄로 생각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위반하는 것도 하나님이 보시는 죄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말씀이 비로소 이해가 되죠. 여기서 도덕적으로 탁월한 분들이 얼마나 많이 이런 것에 깨끗하게 사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 기준으로 볼 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이죠. 저도 전도사부터 하면 올해가 40년 차 사역을 감당해 왔습니다. 많은 부분이 바뀌고 성장하고 성숙했지만 여전히 제 아이는 죄 성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Crime을 저지르지 않았을지라도 Sin을 저지른 죄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신은 뭐냐 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인 하나님 믿고 예배하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번 따라 해볼까요? “세상에서, 세상에서 제일 큰 죄, 제일 큰 죄,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제일 큰 죄이다.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다.” 이런 모든 죄가 우리의 노력으로 없어지지 않더라고요. 40년 넘게 했으면 전도사 때부터 이제는 그만큼 죄가 다 없어져야 되잖아요. 아니에요. 죄인 중의 괴수라는 말이 맞습니다. 바울 사도의 말이 연설을 했을 때 바울은 인생의 황혼기에도 죄인 중에 계셨다. 나이가 들고 오랜 사역을 했어도 현재 상태도 죄인이라는 인간의 노력으로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 불교의 가장 존경받는 스님이었던 성철 스님, 이분은 수도를 잘하기 위해서 영을 맞게 하기 위해서 십 년 동안 앉아서 주무셨어요. 장(長)좌(坐)불(不)와(臥) 길게 앉아서 눕지 않는 것이다. 지금 어떤 분도 장좌불와에 들어가시는 분이 계신 것 같습니다. ㅋㅋㅋ 그다음에 20년 동안 불에 익히지 않은 음식을 먹었어요. 생식, 무슨 맛있겠어요? 생식 먹는 거하고 아주 잘 익은 숙성된 밥을 먹는다고 맛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이분이 이렇게 엄청난 수도를 하셨지만, 돌아가실 때 뭐라고 합니까? 불교에서는 열반성이라고 합니다. 내 죄가 얼마나 많은 지 ‘수미산’ 같다고 했습니다. 수미산은 불교의 전설 시에 나오는 사람으로 높이가 112만 킬로미터를 말합니다. 에베레스트산이 8천 8킬로이니까, 그러니까 112만 km를 얼마나 높겠어요? 이 산을 넘을 만큼 냉철하십니다. “중생의 무리를 속였으니, 일반 사람들을 속였으니 내 죄가 얼마나 많은 지 수미산을 넘는다고 합니다. 나는 천 갈래 만 갈래 찢겨져, 아비규환의 지옥이 되어갈 것이다.” 굉장히 무서운 말이죠. 여러분 이것을 통해 우리는 뭘 배웁니까? 수도를 통해서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수도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십자가의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또 한 분의 이야기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수도사였고, 신학 교수였습니다. 그는 수행과 고행을 통해서 죄를 씻을 수 있다는 것을 로마 카톨릭 교회를 통해 가르침을 받았죠. 그런데 아무리 수행을 해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로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여러분, 로마에 가면 라테란 성당이라는 그 성당에 빌라도라는 이름의 계단이 있습니다. 빌라도의 계단을 뜯어다가 거기에 설치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이 계단을 무릎으로 맨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면 죄를 속죄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따라 올라갑니다. 그러나 루터는 거기서 실망해버리고 맙니다. 그 고행을 통해 라테란 성당의 빌라도의 계단을 올라갔지만 마음속에 속죄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독일로 돌아와 그는 블랙 타워라는 타워 안에서 성경을 연구합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사람으로 수행으로 속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어놓으신 것을 믿음으로 속죄를 받는 다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만이 우리의 모든 죄를 속죄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두 번째 내용은 부활입니다.
 
2)부활
두 번째는 부활입니다. 왜 부활이 복음인가를 한 번 볼까요? 고린도서 15장 4절 한번 읽어주시죠.
 
*고린도전서 15:4,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사.
-성경대로 역시 또 성경이 나와요. 구약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그래서 여러분 이 3절과 4절에 성경 대로라는 표현이 물고 있는 두 가지가 복음의 내용 두 가지라는 것을 말합니다. 정말 좋아요. 예수님께서 역사의 마지막 날 다시 오시죠. 다시 재림입니다. 남가주 사랑의 교회에 오정현 목사님이 계실 때 저는 선임 목사였습니다. 목사님께서 출타하셨을 때에 이민아 집사님께서 담임 목사님이 계시냐고 하셨는데, 아버님이 한국에서 오셔서 복음을 전했으면 좋겠다고 이민아 집사님 요청으로 세인토스에 있는 자택에 가서 이어령 박사님 내외분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잘 들으셨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신 지를 여쭈니 다 잘 들으신 후 잠시 머뭇하시다가 “목사님, 미안합니다. 아직은 저항감이 있습니다.” 문학가이시니까 표현도 문학적으로 하십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목사님, 오늘 아니구요. 다음에 볼게요.” 이러할 것인데 이렇게 대답하신 것을 보면 20년이 지난 오늘도 제게 생생하게 그 음성이 남아있습니다. 그 후에 한국교회 지도자 되시는 대 선배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지금은 천국 가계십니다. 이 박사님의 책인 이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박사님이 과연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시고 계실까? 2002년쯤으로 기억에 이민아 집사님이 검찰청 검사하다가 청소년들을 위해서 봉사하면서 변호사가 되었을 때, 아버님께서 오셨다고 복음을 전해달라고 해서 자택에 갔거든요.
 
여러분의 배우자 여러분의 부모 특별히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를 앞세웠다. 마음을 지금 그 영들이 천국에 분명히 있고, 주님을 아시고 있으니까 나는 영광의 몸으로 부활할 줄 믿습니다. 수천 년 전에 죽은 아브라함도 뼈 한 줌 찾을 수 없지만 부활의 능력으로 기적적으로 살려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것을 쉽게 이해하도록 도표를 제가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거는 중간고사에 나오는 여러분 죽음이라는 헬라어는 싸나토스(Thanatos)라는 단어예요. 여기서 죽음 학이라는 단어를 아시겠죠. 싸나토스=죽음, 분리라는 뜻입니다. (Thanatos) 여기서 나오죠.
 
이 싸나토스(Thanatos)은 분리입니다. 셰포메이션입니다. 맞아요. 우리 육신이 죽을 때 분리가 일어난 영원과 육신으로 분류됩니다. 육신은 분해의 과정을 경험하게 되겠고요. 영원한 즉시 둘 중에 하나가 하나 십자가의 복음을 믿은 사람은 천국을 가요. 왜냐하면 속을 받았기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가게 되는 거죠. 왜냐하면 속죄 받지 못했기 신과 크라임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거죠. 구천을 떠도는 게 아닙니다. 조상 제사를 드리지 말아야 될 이유는 악한 영들이 부모의 흉내를 내는 것이지 성경적으로는 바로 바로 합니다. 죽음은 분리입니다. 천국의 다른 이름은 낙원입니다.
 
십자가상의 강도가 예수님 믿었을 때,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예수님이 그 나라 왕이고 메시아라고 고백이 예수님은 말씀하시죠. “니가 나와 함께 오늘 낙원에 있으리라.” 낙원 천국에 대한 다른 표현이죠.
 
나를 부족 하려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 나라 계시리라. 우리 구주 예수라~~그래서 십자가가 복음입니다.
죄 성을 그대로 있는 그래서 영원과 부활된 육신과 연합된 상태에서 최후 심판을 받는데 우리는 숙제를 다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충성한 것을 따라 상금을 받고 우리는 천국의 영생을 얻게 되고 불신자들은 속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 모든 자유를 하는 것에 대한 형벌을 경량에 따라 경중에 따라 받게 되면서 여호와를 받게 되는 거죠. 여러분 십자가만 말하면 영혼을 구원받은 부활했기 때문에 우리가 전인격적 존재로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입니다. 이제 결론으로 우리가 나아가기 전에 마지막 포인트를 다루겠습니다. 또 세칸 커밍(Second coming)에 그날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때 죽은 성도가 살아갈 것이고, 만약에 예수님 재림 때까지 우리는 살아있다면 고린도전서 15장에 말씀한 대로 우리는 변화될 것입니다. 왜냐면 죽었던 자의 부활이고 살아있는 자는 부활의 몸과 똑같은 상태로 변하는 거예요. 여러분, 부활의 몸은 병들지 않는 몸입니다. 부활의 몸은 바친 모임입니다. 흰머리 소녀들 염색 안 해도 됩니다. 그리고 영생하는 몸이고 더 중요한 것은 죄가 다 극복된 성화가 완성된 여호와의 몸입니다. 우리가 사역 훈련 받을 때 로마서 8장을 완성한 것처럼 몸의 성량이 바로 도와야 한다. 우리는 영혼과 육신으로 구성되어 이것이 전인격적인 인간이죠. 영혼만 얻는다면 완전한 구원이 아니에요. 몸에까지 몸까지 구원받아야 돼요. 뭐로부터?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그리고 죄 사함으로부터 구원받은 이에 부활했음이 이루어집니다.
 
IV. 복음에 합당한 삶.
1) 복음을 받아들임.
그렇다면 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얻은 이 놀라운 복음의 합당한 삶은 무엇일까요? 먼저는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직 이 자리에 예배당이 나오고 있지만 복음을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지 않는 분이 계신다면 오늘 꼭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영접은 소중히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내용과 나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받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구원을 확신하기를 바랍니다.
 
2) 구원을 확신함: 유월절의 밤.
-정령 나이 드신 분들께 여쭤볼 지금 죽어도 천국 가십니까? 죽어봐야 알죠. 좋으신 하나님이 죽어봐야 알게 만들었습니까? 아닙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요한일서 5장 13절에 이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고 구원을 확신하게 하려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죠.
 
요한일서 5:13,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오늘 말씀대로 고린도서 15장 1절로 사는 복음에 대한 제일 좋은 설명인데 이대로 믿으면 여러분 구원받고 영생합니다. 확신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유월절 밤에 우리가 이기게 걸어가겠다고 한번 생각해 창가에서와 아빠와 아들의 얘기가 들려와요.
첫 번째 집입니다. 아빠, 오늘 히브리네 하나님이 처음 난 모든 것들을 죽이신다고 하는데, 나 처음 난 장남이잖아요. 아빠 저 죽겠네요. 내 이놈아, 내가 이 이집트의 합창 의장에게 누가 내 아들을 죽여, 이 아들을 살았을까요? 죽었을까요? 죽었죠.
 
두 번째 집입니다. 아빠 오늘 우리 하나님이 예보의 모든 처음 난 것을 죽이시고 심판하시는데 유월절에 그 어린 양의 피를 발라놓으시면 좌우 설주와 인방에 이 또 프레임이 발라놓으면 심판이 넘어간다고 하는데 바르셨나요? 발랐지. 그럼 저 살겠네요? 글쎄다. 내일 아침 돼봐야 알겠네. 이 아들 살았을까요? 죽었을까요? 살았는데 밤새 불안해했을 거예요.
 
세 번째 집입니다. 아빠, 오늘 우리 하나님이 오늘 애굽의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는 상징으로 아들을 천만 자녀들을 다 치시는데, 양의 피를 발라야 되는데, 저 그 우리집도 발랐나요? 발랐지. 살 수 있을까요? 아들아, 양의 피를 문턱에서 발라서 더 프레임 전체가 피, 피로 물들었단다. 문턱에서 잡으니까 문턱에도 양의 피가 그리고 좌우 설주와 인방까지 더 프레임 전체가 피로가 덮은 거죠.. 하나님께서 심판의 천사를 보내실 때, 이미 심판이 치러졌기 때문에 너는 죽지 않아, 너는 심판받지 넘어가실 거야 유월하실 거야. Pass Over 할 거야. 아빠, 저 분명히 사는 거죠. 그래 안심하고 푹자라. 이 아들 살았을까요? 죽었을까요? 살기도 하고 평안했을 거예요. 지구상에 유명한 세 종류가 있습니다.
 
예수님 봄의 피를 믿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바로 착각 집에 있는 첫 번째 타입, 두 번째 보배 피를 믿으면서도 불안하게 사는 타입, 마지막 세 번째 예수님의 보배의 피, 이 복음을 믿으면서 확신하고 편하게 사는 타입. 우리 모두 산물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자 이제 구원의 은혜에 보답을 위해서 우리가 헌신해야 합니다.
 
3) 구원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헌신함.
-생각할수록 감사하는 것은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하나님이신 그분이 죽어주신 거예요. 지난번에 왔을 때 소개했지만 이번엔 피피티로 좀 더 여러분에게 자세한 내용 좀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생명의 양식에 대한 성과도 보입니다. 라틴어로 바이스 빵입니다. 안젤리쿠스 천사들의 ,빵 구약의 만나를 예수님의 이 성찬과 십자가 사건과 연결시켜서 쓴 아주 명곡이죠. 근데 우리말 가사는 지나치게 의역이 되어 있어서 제가 여러분에게 직역을 한 번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생명의 양식을(Panis Angelicus)
생명의 하늘을 만나를 맘이 빈자에게 내리어 주소서. 낮고 천한 우리 긍휼히 보시사 주여 주여 먹이어 주소서. 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가 주님을 먹는 도다. 가난하고 가난한 종, 그리고 비천한 종.
 
결론: 다시 알려야 할 복음.
-복음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알려야 하고 다시 배우고 다시 확신해야 합니다.
1. 복음은 세상에서 가장 복된 소식입니다.
2. 복음의 내용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3. 복음을 믿어 구원받고, 확신하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렇게 좋은 복음을 우리 가족들이 전해야 됩니다. 친구와 이웃들에게 동료 직원들에게 전해야 됩니다. 그것이 놀라운 구원의 복음을 탐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 사랑하는 영 가족들이 전하고 쓰임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계산하지 않고 예수님의 제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제자로서 걸어가는 길에 대가를 지불해야 되는 길에, 계산하지 않고 헌신하고 기쁨을 맛보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직 예수님 믿지 않는 분이 있다면 이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복음이 피로한 가족과 이웃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아낌없이, 남김없이, 흔들림 없이 전하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온가족 모두를 축복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님 중심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알려야 할 복음, 다시 배우고 다시 확신해야 합니다.
 
♧요약
우리는 우리 가족과 친구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놀라운 구원의 복음을 받았으니 우리도 주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일이 바로 제자로서 걸어가는 길에 대가를 지불해야 되는데, 그 길에 계산하지 않고 헌신하는 기쁨을 맛보고 이 생명의 복음을 아낌없이 남김없이 흔들림 없이 전하여서 온 가족과 이웃과 친구와 직장동료가 한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하여서 함께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기를 소원하며 주님 중심의 삶으로 나아가며 우리는 다시 알려야 할 복음, 다시 배우고 다시 확신해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성경에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전체를 전했다.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승리자가 되셨다.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이 복음이다. 교회의 의무는 먼저 받은 복음을 잘 보존하고 그 가운데 굳게 서며, 또 믿지 않는 이들에게 그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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