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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7월 19일)
제목: "하나님의 보호막 아래"
말씀: 예레미야 20:9~13
찬양인도:
설교자: 신성식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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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0:9~13,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0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1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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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사하는 장소를 지나가보면 보호막이 쳐저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보호 장비를 설치한다. 오늘 우리 인생에도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위험들이 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보호막이 되어 주셔서 우리의 안전을 지켜 주시는 줄로 믿는다. 하나님의 보호막 아래 들어갈 때, 진정한 안전이 있다. 여러 우리 인생의 경험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막아래 들어가는 시간 되시고 오늘 무더운 날씨 속에서 우리 안아주심의 본당에 나오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이 시간, 이 예배가 하나님의 보호막이 되시길 간절히 원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장 안전한 하나님의 보호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신, 때로 우리가 넘어진다 할지라도 다치지 않는 장치, 우리 하나님의 그 보호막이 필요한 것이다. 오늘 이 말씀 가운데 11절 말씀을 같이 한 번 더 보겠다.
 
*예레미야 20:11,
1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오늘 이 말씀 가운데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다. 라고 예레미야가 믿음으로 고백했다. 그렇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힘들 때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용감무쌍한 용사처럼 예레미야 곁에 서 게셨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위협과 암살, 음모들에서 그가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보하심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예레미야가 원망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전에도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항상 예레미야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다. 그래서 선지자를 어렵게 했던 사람들을 힘을 쓰지 못하게 하시고, 모두 무너지게 하는 그들이 예레미야를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마치 두려운 용사처럼 지켜주셨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쳐놓으신 보호막을 순간적으로 보지 못하였다.
 
지난 주간에 많은 비가 내렸다. 전국적으로도 많은 피해가 있는 것을 우리가 뉴스를 통해서 보았다. 저는 제자 반 단기 선교로 중국 연변을 지난주에 다녀오게 되었다. 가기 전에 일기 예보를 보니까, 저희가 4박 5일 동안 가게 되었다. 4일 동안 계속해서 비 예보가 되어 있었다. 한 번 여러분에게 묻겠다. “선교지에서 우산을 사용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 우산을 사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비옷을 준비해갔는데요. 포장도 뜯지 않고 그대로 가져왔다. 물론 비는 내렸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하면 비가 안 내리고 버스에 올라타면 어떻게 비가 또 쏟아지고 그러한 일들을 경험을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단선을 떠나기 전 토비새가 기억이 났다. 토비새에서 그 중에 우리 우크라이나에서 온 우리 소녀 합창단 공연이 있었던 토비새가 저희가 단선을 떠나기 전 마지막 토비새였다.
 
담임 목사님과 함께 우리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우크라이나와 북한을 위해서 중보 기도 했던 그 시간이 기억이 났다. 선교지에 가서 선교사님의 그 사역의 모습들을 보면서 고군분투 하시는 정말 그 어려운 현장 가운데서 최선을 다해서 목숨을 열어놓고 사역하시는 그 현장들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 사랑의 교회가 오랫동안 연변 과기대 UST(유스트) 사역을 위해서 우리가 많이 애를 썼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 사역들이 중단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동안 우리가 기도하고 뿌려놓았던 그 씨앗들이 하나도 되지 않고 오히려 평양 과기대, 그 사역에 그 연변 과기대, 출신 졸업생들이 교수 요원으로 또 많이 들어가서 그 사역이 아름답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그 현장의 소식들을 듣게 되었다. 그 사실을 들으면서 우리의 마음들이 참 뜨거워졌고, 우리 담임 목사님과 함께 기도하는 것처럼, 평양에서 특새하는 그날이 속히 올 수 있겠구나! 라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참 비가 억수가지 쏟아질 때에, 우리가 우산을 준비하지 않아서, 담벼락 처마 밑에서 겨우 몸만 가리고 비를 피하고 있을 때에, 누군가가 와서 우산을 내밀어준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데 그 우산은 크고 멋진 두 사람을 다 커버할 수 있는 우산이 아니라 작은 우산이다. 혼자 쓰기에도 부족한 작은 우산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함께 그 우산을 쓰고 폭우를 지나갈 때에, 그 포구를 지나갈 때에 겨우 머리만 그 속에 넣고 비를 피한 그 사람의 마음, 두 사람이 다 옷이 다 젖을 수 있는 그 상황이었지만, 그러나 우산을 내밀어주었던 그 우산 속에 들어가서 함께 비를 피하고 있는 그 사람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위로와 기쁨의 귀한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인생의 복구 가운데 몸을 웅크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못하는 그 많은 분들을 위해서 우리가 작은 기도의 우산에 펼칠 수 있고, 우리의 우리가 붙잡은 그 기도의 지팡이를 내밀어주실 수 있기를 원한다. 우리가 원래 온 교회가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면서 얼마나 많은 큰 은혜를 받았는지 모른다. 저도 교구에서 한 집사님이 기도 지팡이를 요청해서 급하게 기도 지팡이를 가지고 그 집사님에게 전달을 해 주었다. 근데 그 지팡이를 받자마자 그 여 집사님이 너무나 깜짝 놀라시는 것이다. “목사님, 어떻게 제 차량 번호를 알고 계셨습니까?” “예 제가 제 사무실에 있는 것 중에 하나를 골라서 가지고 갔던 그 지팡이 번호가 그 집사님의 차량번호였다. 오늘도 보니까 그 집사님이 와 계셨다. 오셔서 5시에 오셔가지고 제가 5시에 교회 도착을 했는데 오셔서 중보 기도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 집사님은 개인적으로 또 가정에서 많은 기도의 제목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 시간을 통해서 많이 힘을 얻고 또 원래 제자 훈련도 하시고, 얼마 전에도 단기 선교도 다녀오시고, 오늘 중보 기도도 하시는 그 우연히 전달되었던 차량 번호와 똑같은 그 지팡이를 받아들고,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신다는 그 확신을 가지시는 그 모습을 보았다.
 
다시 하나님의 보호막을 보게 되었던 예례미야 선지자는 마음에 자신감이 생겼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이 하시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보호막을 경험하실 수 있기를 원한다.
 
I.첫 번째로 하나님의 그 보호막 안에는 탄식하면서도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입니다.
-한번 같이 한번 볼까요? “탄식하면서도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입니다” 사람들이 거부하고 거절할지라도 예레미야 선지자는 주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선지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난과 조롱이었다. 예례미야는 자신이 수치를 당하는 이유를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탄식했던 것처럼 예레미야의 수치는 하나님의 수치였고, 그가 당하는 조롱이 하나님을 향한 조롱이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처럼 예레미야의 삶은 하나님과 연결되어진 삶이었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의 삶도 하나님의 보호막 아래에서 하나님과 연결된 삶이되시기를 바란다. 우리 자신의 죄와 연약함으로 피난을 당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으로 인해 수치와 비난을 당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에 내 죄와 연약함으로 인해 당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슬퍼하며 회개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주님으로 인해서 당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으로 인해 받는 그 핍박에는 복이 있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들에게 하늘의 상이 크다. 라고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다. 마태복음 5장 11절, 12절 말씀 우리 같이 한번 읽겠다.
 
*마태복음 5:11-12절,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중간에 기뻐하고 어떻게 해요? 즐거워하라. 그리고 오늘 본문의 9절 말씀도 같이 한번 보겠다.
 
*예레미야 20:9,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아멘. 예레미야 선지자는 고통으로 인해서 다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으려고 했다. 연약한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사명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예레미야의 선지자의 그 내면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괴로워서 견딜 수 없음을 고백하면서 어떻게 표현했는가? 나의 마음이 마치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고 답답해서 견딜 수 없다. 라고 고백했다. 오늘 이 고백이 우리 성도님들의 믿음의 고백이 되실 수 있기를 원한다. 답답하다는 이 표현이 히브리어로는 ‘라라’는 단어이다. 이 뜻은 ‘지치다’는 의미로서 그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도 이와 같이 탄식하면서 사명을 감당하시는 우리 많은 성도님들이 계신다. 때로는, 그만하고 싶고 때로는 세상의 방식대로 살고 싶지만, 그러나 우리 속에서 꿈틀거리는 복음에 대한 열정과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세워지는 것에 대한 강력한 소망의 이 시가 우리 모두에게 있는 줄로 믿는다. 저에게도 항상 복음에 대한 열정을 일깨우는 말씀이 있다. 우리 아마 성도님들 중에 90% 이상이 좋아하시는 말씀일 것이다.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다. 암송할 수 있으시지만 자막을 띄웠다. 같이 읽겠다.
 
*요한복음 3장 16절,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이 말씀은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지금으로부터 한 45년 전의 스토리이다. 그때 암송했던 말씀이다. 한 줄 말씀이 뭐가 대단하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한 절이 아니라 요한복음 3장 전체를 암송했다. 예 조금만 놀라주셔서 감사하다. 그래서 제가 시골 교회 이 암송 대표로 노회에 열리는 그 대회에 참여하게 됐다. 하도 작은 시골교회였기 때문에 암 속에 나가겠다는 지원자가 저 혼자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가 교회 대표로 출전을 하게 되었고. 저는 이제 경남 마산이라는 곳인데 그때 이제 경남도 노회에서 그때 모인 그곳에는
한 100여 개 교회에서 하는 대표 주자들이 나와 있던 그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제가 시상을 했을까? 못 했을까요? 예 했기 때문에 오늘 제가 이 얘기를 하겠죠? 예 2등을 했다. 1등을 해야 박수를 받을 수 있는데, 요한복음 3장은 참고로 36절까지 있다. 근데 제가 중간에 암송을 하면서 좀 바뀔 때도 있고 두려움이 있었는데 3장 16절에서 너무 힘을 받아버린 거예요. 이 말씀을 우리가 잘 하는 말씀이에요. 그래서 36절까지 끝까지 완주를 할 수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가 이 말씀 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게 되었고, 이 말씀을 암송했던 그 시간들이 정말 하나님께서 제가 힘들 때마다 붙잡아주셨던 그 말씀의 은혜가 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저를 살릴 뿐 아니라 또한 저희 가정을 붙잡아주시고 살려주셨던 귀한 말씀이 되었다.
 
저희 둘째 아들이 이제 있다. 둘째 아들이 유치원을 다닐 때, 제가 이제 사랑의 교회에 오게 되었다. 사랑의 교회 참 오래 있었다. 그애가 이제 유치원에 다닐 때 집에서 이렇게 게임을 하면서 게임 아이템에다가 제가 그 당시 했던 사역이 이제 호스피스 사역이었다. 그 게임에다가 유치원 다니는 둘째 꼬마가 호스피스 사역 그 이름을 정해놓고 게임을 하는 그 아들이었다. 그래서 그 아들이 저는 나중에 목회를 했으면 좋겠다는 그 기도를 하기 시작했고, 우리 담임 목사님처럼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는데요. 지금은 우리 담임 목사님처럼 키만 그 정도 따라갔다. 지금 185 정도 되는 싫어 우리 담임 목사님을 따라가서 앞으로 영성만 따라가면 되는데요. 그래도 그 고3 다닐 때 학교 친구들을 10명 정도를 새 생명 축제로 인도해 왔고, 지금은 총신 신학대학에 입학해서 오늘 제가 설교하는 이 날에 우리 단기 선교로 출발을 해서 오늘 사역 지를 향해서 떠나갔다. 참 뒤돌아보니까 요한복음 3장 16절, 제가 외웠던 그 요한복음 3장의 말씀이 저를 살렸고, 힘들 때마다 제가 넘어질 때마다 그 말씀을 붙잡고 일어났던 그 기억들이 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에 보시면 우리가 그 가장 단순한 말씀이지만 한번 보시고, 우리 다시 한 번 기억하시죠 하나님 어떤 하나님이신가? 그 하나님이라는 단어 속에 가장 큰 사랑의 하나님, 그 하나님이 등장한다. 예 정확하게 나왔다. 제가 앞에 노란 부분을 읽으면 여러분이 한번 지혜 숫자를 읽어주세요. “하나님이 세상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 얻게 하심이라.”. 3장 16절에 가장 큰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는 제가 뒤돌아보니까 이 말씀이 저를 살리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가장 큰 확실한 하나님의 사랑이시를 인도해 주셨던 것을 고백하게 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너희를 위해서 살아갈 때에 주님을 위해서 사실 때, 반드시 핍박도 있을 것이다. 많은 현실적인 불이익과 손해를 당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으면 하늘의 상이 크게 될 줄로 믿는다. 세상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의 상황에서도 그 상황 자체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줄로 믿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상황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음에 대한 실제적인 증거거든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에 하나님 앞에서 누리게 될 상급이 그 상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확정 시켜 주시는 보존해 주시는 것이 바로 이 땅에서 복음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이것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상금에 보증이 되어진다는 귀한 사실이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보호막 아래에서, 어떠한 어려움과 탄식의 상황에서도 탄식하면서도 사명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나가시는 복된 우리 성도님들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II. 두 번째로 우리 하나님의 보호막 아래는 연약함 속에서도 찬하나님을 송하는 자리입니다.
-같이 한번 보겠다.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생각한 예레미di 선지자는 결국 그들이 대적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임을 깨닫게 되고, 그들이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 과정에서 선지자는 자신의 내면을 다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갚아주시기를 부탁하고, 다시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 13절 말씀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아멘.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면서도 자기 영혼의 깊은 침체를 막지 못하는 연약한 질그릇 같은 선지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모습은 현실의 삶 속에서 믿음의 여정을 묵묵히 걸어가시는 우리 성도님들도 동일하게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하나님만을 의지해 간구하지만 현실에서 느끼는 고통의 무게가 너무 커서 힘들어하는 예레미야처럼, 오늘 우리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고통의 무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을 통해서 순금같이 정결하게 만드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소망 가운데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실 수 있기를 원한다.
 
저희 교회에 순장님 한 분은 27번 이상의 방사선 치료를 원래 받으셨다. 그 방사선 치료를 많이 받으면서 결국에는 식도가 허물어져서 제대로 음식물을 삼키지도 못하고 힘든 그 상황 가운데서 마지막 순장막 모임에 나오셔서 그 순장님이 이런 고백을 했다. 이렇게 연약함이 있고 불편함이 있지만 “목사님, 순장님들 제가 병원에 있는 동안 그 속에서 다른 환우들에게 소망을 전하기를, 복음을 전하기를,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의 그 사랑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순장님의 그 모습 속에서 많은 도전들을 받았다. 아픈데 도무지 빠지지 않고 긁을수록 살 속 깊이 들어가서 더 깊은 아픔을 만들어낸 그 육체의 가시, 사도 바울이 간절하게 세 번이나 하나님 앞에 기도했을 때,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우리 고린도후서 12장 9절 말씀인데요 같이 한번 보겠다.
 
*고린도후서 12:9,
9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아멘.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내 은혜가 너희에게 족하다. 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언뜻 보면 이 바울의 기도는 거절당한 기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울은 이 하나님의 응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바울이 그 연약함 속에, 육체의 가시 속에서도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은혜에 반응하면서 그 본문의 말씀 속에 도리어 크게 기뻐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바울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왜 저에게 주시지 않은 것이 이렇게 많습니까? 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깨닫기 시작했다. 라는 것이다. 질병 때문에, 연약함 때문에 주시지 않은 것을 묵상하면서 살아갈 때가 많은 것이 얼마나 많은 우리의 모습인가?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뒤돌아보면 받은 것이 너무나 많다. 라는 것이다. 우리 성도님들이 오랫동안 기도하고 계시지만 응답이 없는 기도의 제목들이 있으신가? 이제 그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우리 교회와 연약한 지체들과 믿음의 능력자들을 위해서 축복 기도로 나아간다면 기적 같은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주실 줄로 믿는다. 때로는 이 세상이 우리를 알아봐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게 되실 때에 알아주심을 본당에서 우리 주님께서 베풀 만한 자비와 은혜를 허락해 주실 줄로 믿는다. 우리 다시 한 번 고린도후서 12장 9절 말씀 다시 한 번 더 이 말씀을 읽도록 하겠다.
 
*고린도후서 12:9,
9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아 저도 이렇게 단기선교를 다녀오면서 목감기가 생겨버렸다. 저에게는 참 너무 큰 과업을 앞두고 있는데, 단기 선교를 다녀온 그날 저녁부터 너무너무 심하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그런 상황이 되고 말았다. 오늘 마침 바울이 그 육체의 가시처럼 연약함에 대해서 고백한 것처럼, 참 매일 아침마다 참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이렇게 나와서 준비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오늘 이만큼이라도 또 이렇게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줄로 믿는다. 아마 저를 아시는 분들은 참 제 목소리가 참 크다. 라는 것을 많은 분들이 참 알고 있는데, 오늘 이 시간, 이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끝까지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오히려 이 연약함의 그 은혜들을 오히려 체험하게 하시고, 또 나눌 수 있는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신 줄로 믿는다. 우리 인생의 어떤 고통과 연약함 속에서도 우리 인생의 보호막이 되어 주시고, 연약함을 통해서 순금같이 정결하게 만드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믿음으로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는 우리 귀한 성도님들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지막으로
III. 우리 하나님의 보호막 안에서 찬양과 기쁨이 최종적인 언어가 되는 자리입니다.
-같이 한번 읽겠다. “찬양과 기쁨이 최종적인 언어가 되는 자리입니다.” 우리의 최종적인 언어가 뭐라고요? 찬양과 기쁨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속에서,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때는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계가 있는 이 세상이 주는 기쁨은 분명히 한계가 있는 불완전한 기쁨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무한하며,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는 줄로 믿는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살일 때에 우리 안에 무한하며 끝없는 그 기쁨이 충만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삶이 쉽지 않아서 태산을 넘어가는 것 같은 힘든 일이 있다 할지라도, 오직 우리 주님 안에서 빛 가운데 걸어가심으로 우리 성도님들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바란다.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의 기도를 통해서 신실한 자들의 기도는 궁극적으로 탄식에서 찬양으로, 두려움에서 기쁨으로 바뀌게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탄식이나 두려움이 자동적으로 찬양이나 기쁨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가르침은 항상
찬양과 기쁨이 우리 성도님들의 최종적인 언어가 된다. 라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 왜 비탄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이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기도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의 마지막 그 최종적인 은혜가 될 수 있는가?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시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10절까지 보면 많은 탄식이 있다. 그러나 오늘 예레미아 선지자는 11절에서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신뢰를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간청하면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반드시 도와주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13절에 보시면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기뻐한다. 오늘 12절, 13절 말씀 같이 한번 보겠다.
 
*예레미야 20:12-13절,
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할렐루야 12절의 간절한 그 기도와 오늘 13절에 감사의 그 찬양 사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간섭하시고, 개입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예레미야의 그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의 바탕을 두고 예리미야 선지자는 아직 도래하지는 않았지만 그 도래하지 않은 구원과 도움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미리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찬양을 올려드린 것이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의 어떠한 삶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간섭하시고, 개입하시는 분이시라는 이 예레미야의 믿음이 오늘 이 수요 예배, 수요 기도에 나오셔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집중하시고 하나님의 보호막 안에 나아가기 원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의 믿음의 고백이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의 그 인도하심의 손길이 얼마나 귀힌가? 가장 최선의 삶으로 우리 인간이 생각할 때에 우리가 생각하는 최선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최선의 삶으로 아름답게 인도해 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으신 아버지께서 앞으로 우리 사랑의 교회와 우리 모든 성도님들, 어떤 삶 속에서도, 어떤 삶에도,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고, 간섭하시고, 개입하시고, 인도해 주실 것을 믿는다.
 
백두산 천지에서 떨어지는 백두산의 폭포가 있다. 그런데 백두산 천지에서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물은 두만강을 거쳐서 동해로 흘러가고요 왼쪽으로 떨어지는 물은 무슨 강을 거쳐 가겠는가? 압록강을 거쳐서 서해로 올라간다고 한다. 똑같이 백두산 천지에서 그 폭포에서 오른쪽으로 가느냐? 왼쪽으로 가느냐? 에 따라서 한 줄기의 물은 동해로 올라가고, 한 줄기의 물은 서해로, 이 동해와 서해가 얼마나 먼 거리니까 그런데 그 발원지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출발하는 지점이 같고 한 방향인 것 같지만, 나중에는 엄청난 간격이 생기게 된 것이다. 오늘 우리가 동일하게 우리의 출발이 불평과 원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찬양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어떤 삶 속에서도, 오늘 이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고백하면서, 간섭하시고, 개입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들을 바라보면서, 정말 믿음의 방향 전화를 이루었던 예레미야의 그 선택이 오늘 우리 성도님들의 믿음의 선택이 되실 수 있기를 원한다.
 
예 갑자기 목소리가 많이 좋아졌다.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기쁨과 찬양을 선택하는, 믿음의 방향 전환을 이루시는 우리 귀한 성도님들 되실 수 있기를 원한다. 오늘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마지막, 우리 하나님 앞에서 최종 언어가 기쁨과 찬양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란다. 연약한 우리 인생의 보호막 되시는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기뻐하고 자랑하는 우리 성도님들의 삶이되시길 원한다. 인생의 어떤 어려움 속에서라도 우리 인생의 보호막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 성도님들의 어려움에 간섭하시고 개입해 주시는 분이심을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인생 속에서 영원히 함께 동행 해 주시고, 보호막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기쁨과 찬양의 그 최종 원으로서 사명을 뭉치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요약
우리 인생에 주님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보호막이 되어 주시고, 간섭하시고, 개입하셔서, 우리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귀한 시간으로 역사해 주실 것을 믿고, 기쁨과 찬양이 되어서, 우리들의 최종 언어가 되심으로 연약한 우리 인생의 보호막 되시는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기뻐하고 자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보호막 아래 예비하신 은혜를 사모하여 끝까지 변함없이 기도의 자리를 신실하게 지켜 나아가야 한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고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그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불이므로 그 말씀을 들은 자는 전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전하고 외치는 것이 자신의 해야 할 사명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박해와 조롱을 받는 자신의 처지를 견딜 수 없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탄원한다. 그들은 예레미야에게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고 했다. 이 말은 흠 없는 예레미야에게 조그마한 흠이라도 발견되면 고소하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레미야가 당시에 복음을 전하기가 힘들고 어려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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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7월 3일 (805)
1. 다음 중 현재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지 않은 곳은?
①서울 강남구 ②서울 서초구
③서울 용산구 ④서울 마포구
2. 반도체 수탁 생산을 뜻하는 용어로 세계 시장 점유율은 대만 TSMC가 1위, 한국 삼성전자가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것은?
①팹리스 ②파운드리
③머신러닝 ④유니콘
3. 특정 주주에게 보유 지분율보다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으로, 경영권 보호에 도움을 주는 이 제도는?
①차등의결권 ②황제주
③황금낙하산 ④스튜어드십코드
4.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뜻한다. 세계적인 경영 화두로 자리잡은 이 약어는?
①ETF ②EMP
③ESG ④ELS
5. 수출 감소 폭보다 수입 감소 폭이 더 커짐에 따라 경상수지가 대규모 흑자를 나타내는 상황은?
①무역장벽 ②쌍둥이 적자
③불황형 흑자 ④유동성 함정
6. 기업이 임직원에게 일정 시점에 일정 수량의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는?
①콜옵션 ②풋옵션
③통화옵션 ④스톡옵션
7. 유가증권시장, 코스닥시장 등에 상장되지 않은 주식이다. 높은 시세차익을 기대하고 투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만큼 위험이 큰 이것은?
①대장주 ②배당주
③자사주 ④장외주식
8. A라는 나라는 일하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을 가진 사람은 원하는 때 모두 취업할 수 있다. A국가의 상태를 잘 표현한 말은?
①직접고용 ②간접고용
③완전고용 ④불완전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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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기대이론·게임이론으로 본 수능과 사교육 논란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사교육 문제가 핫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당장 올해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불안합니다. 다른 학생들도 내년 이후 대학입시 제도가 어떻게 바뀔지 걱정이 앞섭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선 상황을 차분하게 객관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윤 대통령의 발언과 그 이후 교육부의 여러 조치에서 핵심은 ‘수능의 정상화’입니다. 공교육 교과과정에 없는 문제를 수능에 출제해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죠.
많은 사람이 이런 지적에 공감합니다. 맞는 말이니까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학교 교육과정에 없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배제는 당연하다”고 찬성했습니다.
다만, 수능을 5개월 앞둔 시점이다 보니 단계적인 수정을 통해 현장 혼란을 최소화했어야 한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또 이번 조치로 사교육 시장이 되레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살펴봐야 합니다.
수능과 사교육은 독자 여러분이 직접 당사자인 문제입니다. 당장 마주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슈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기회를 가져봅시다. 성적 향상과 명문대 진학의 ‘기대’와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지 하는 ‘불안’으로 사교육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설명하는 기대이론과 게임이론도 이해해봅시다.
킬러문항 없어도 '변별력' 갖춘 수능…일관성 있는 입시 제도를 기대합니다
대학입학 전형은 각 대학이 자기 대학에서 가르칠 학생을 선발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학생 선발권은 원칙적으로 대학에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학들은 학생 선발권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대학의 서열화가 만연하고 일류 대학 입학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 정부가 대입 전형에 관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가가 주관하는 입학시험입니다.
30년 운영된 수능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954학년도 ‘대학 입학 국가연합고사’가 처음 등장했습니다. 이후 ‘대학 입학자격 국가고사’(1962~1968학년도) ‘대학 입학 예비고사’(1969~1981학년도) ‘대학 입학 학력고사’(1982~1993학년도) 등의 국가고사가 치러졌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994학년도부터 시행됐고요.
30년간 운영된 수능은 출제 및 채점 오류 논란과 물수능(지나치게 쉬운 수능)·불수능(지나치게 어려운 수능) 같은 난이도 널뛰기 문제로 자주 비판받아왔습니다. 교과 이기주의와 대학의 편의주의 등으로 왜곡됐고, 역대 정부가 수능을 교육정책의 손쉬운 도구로 생각해 여러 가지 간섭을 하는 바람에 크게 변질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비판과 지적에도 수십 년간 전국 단위 시험을 이렇게라도 유지해온 것이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자조 섞인 평가도 나옵니다.
대학교수도 풀기 어려운 문제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은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에 대해 “수십만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부적절하고 불공정한 행태”라며 “약자인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공정한 수능’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킬러 문항은 왜 수능에 포함돼왔을까요. 평이한 문항만으론 성적이 높은 학생들의 실력을 가름하기 어렵다 보니, 킬러 문항을 포함시켜 그 문항의 정답 여부에 따라 등수를 정하려 한 것입니다. 사실 시험을 시행하는 입장에서는 수험생을 대상으로 변별력을 확보하려면 킬러 문항을 출제하는 게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대학교수도 풀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더라도 최대한 어렵게 꼬아서 만들면 되니까요.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킬러 문항은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근본 원인”입니다. 윤 대통령의 지적 후 교육부는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하면서 “변별력은 갖추되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킬러 문항은 확실히 제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물수능 대비반부터 만드는 현실
킬러 문항도 문제지만 수능엔 또 다른, 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수능이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 시대의 인재가 갖춰야 할 능력을 측정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수능은 ‘교과서에 나와 있는 지식’을 ‘짧은 시간 내’에 ‘실수없이’ 발휘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데 집중합니다. 이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인재를 필요로 하는 시대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물론 새로운 시대 상황에 맞는 능력을 측정하려면 먼저 교육 과정에 그런 내용을 반영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교육과정 전반에 대한 개혁도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우리 교육 현실은 이런 해법을 마련하기에 너무 척박해 보입니다. 당장 윤 대통령 발언과 정부 조치를 ‘물수능 시행’으로 받아들인 사교육업계는 “실수하지 않도록 반복해서 연습해야 한다”고 물수능 대비반부터 서둘러 개설하고 있습니다. ‘공정한 수능’ 지침이 미래를 준비하는 수험 제도를 토론하는 계기가 되는 게 아니라 어느새 ‘물수능’ 논란으로, 이게 다시 ‘사교육 강화’ 쪽으로 왜곡되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한 가지 더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수능 및 대입 전형과 관련해 많은 사람이 한목소리로 요구하는 것인데요. 바로 “일관성 있는 정책을 꾸준히 시행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번 정부가 ‘공정한 수능’을 넘어,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키워내는 교육과정과 공정하고 일관성 있는 평가 방법을 만들어내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기대합시다.
NIE 포인트
1. 수능에 대한 여러 비판과 지적을 정리해보자.
2. 킬러 문항이 왜 불공정한지 설명해보자.
3.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교육내용에 대해 토론해보자.
학력주의 가치관을 넘어설 수 있어야 사교육의 폐해를 해소할 수 있어요
사교육은 영어로 ‘private tutoring’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1992년 학계에선 사교육을 가리키는 새로운 표현으로 ‘shadow education’이 등장했습니다. 처음 이 표현을 사용한 학자들은 ‘공교육과 유사한 학교 밖 학습활동’이란 비교적 중립적 의미로 썼습니다. 이후 공교육의 형태를 모방한다거나 공교육에 비해 특징이 불분명하다는 등 사교육의 음성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하는 연구들이 등장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사교육은 좀 더 높은 성적을 올리거나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려고 학교 밖에서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노력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사교육에 대한 인식은 중립적이거나 음성적이라기보다 부정적에 가까운 게 사실입니다.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으로 힘들어하는 분이 많은 상황이라 ‘경제력에 따라 차이가 생기는 사교육은 공정하지 않다’는 의견이 적지 않습니다.
지난해 사교육비 26조원
사교육, 특히 사교육비 문제는 수십 년 넘게 사회적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역대 정부는 모두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그런 대책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지난해에는 26조원에 달했습니다. 이처럼 사교육 수요가 계속해서 생기는 이유는 뭘까요. 학력주의(credentialism)가 대표적 요인으로 꼽힙니다. 학력이 능력 판단의 절대적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류 대학에 입학하는 것에 과도한 중요성과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런 탓에 자연스럽게 사교육 수요가 커집니다. 학력주의를 고정관념이나 편견이라고 쉽게 무시하기는 어렵습니다. 나름 탄탄한 근거가 있거든요. 명문 대학이나 인기 학과에 입학하면 졸업 후 고소득 유망직업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부모님이 자식의 사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기대이론과 게임이론
사회적으로 학력주의 가치관이 강하더라도 모든 개인이 사교육을 선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의 사교육 선택 결정은 ‘기대이론’과 ‘게임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기대이론은 개인의 의사결정에서의 동기 유발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기대이론에 따르면 개인은 여러 가지 대안 중 자신의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힘이 가장 클 것 같은 대안을 선택합니다. 사교육을 선택하는 대안은 수능 성적을 높여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다는 ‘기대’를 크게 만들고, 그로 인해 학생과 학부모의 동기를 유발하는 힘이 학교교육에만 충실하게 참여하는 등의 다른 대안보다 훨씬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임이론은 합리적 의사결정자들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결과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경쟁적 게임 상황에서는 상호의존적 선택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우리나라 학부모의 3분의 1 이상이 사교육에 대해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는 심리적 불안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심리적 불안은 상호의존적 선택을 부채질합니다. 결국 게임이론에 따르면 ‘다른 학부모의 사교육 선택행위에 대한 본인의 합리적 선택이 사교육 참여’인 겁니다. 사교육 업체들은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 심리’를 최대한 활용합니다.
“사교육은 죽지 않을 것”
2020년 발표된 ‘사교육비 경감대책으로서 공교육 정상화 정책 논증 분석’ 연구 논문(부산대, 김정근)에 따르면 과거 정부들이 공교육이 내실화되면 사교육비가 경감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추진한 수많은 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큰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입시 제도 개선과 학원 규제를 통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정책 목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사교육이 미래에도 죽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번 정부도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내놨습니다. 이번엔 다를까요. 정부 정책만으론 부족합니다. 우리 사회가 학력주의 가치관과 학생 및 학부모의 ‘불안 심리’에 대해 좀 더 성숙한 자세로 지혜를 모아가야 합니다.
NIE포인트
1. 사교육이 왜 문제인지 생각해보자.
2. 학력주의 가치관을 설명해보자.
3. 기대이론과 게임이론의 개념을 정리해보자.
장경영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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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7월 10일 (806)
1.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단기간에 과도하게 급등한 것으로 판단되는 상황을 뜻하는 말은?
①언더 슈팅 ②오버 슈팅
③블랙 마켓 ④레몬 마켓
2. 국제통화기금(IMF)이 만든 ‘특별인출권’을 가리킨다. 회원국이 보유하면 외환보유액으로 인정되는 이것은?
①IFRS ②BIS ③SDR ④MSCI
3. 국내총생산(GDP)에서 국세와 지방세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국민의 세금 부담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인 이것은?
①재정건전성 ②재정자립도
③조세부담률 ④국민부담률
4. 주식 액면분할의 효과로 가장 거리가 먼 것은?
①주식 수 증가
②액면가 하락
③거래 촉진
④자본금 감소
5. 국민연금의 ‘이것’은 장기적으로 40%까지 내려갈 전망이다. 퇴직 전 평균 임금 대비 연금의 비율인 이것은?
①만기환급률 ②소득대체율
③한계대체율 ④한계효용
6. 주가가 일정 범위 안에서 등락을 거듭할 때 ‘이것’에 갇혀 있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이것에 적절한 말은?
①음봉 ②가격제한폭
③국장 ④박스권
7. 기업이 보유한 자기 회사의 주식을 말한다. 주주 환원 정책 차원에서 회사가 매입 또는 소각하기도 하는 이것은?
①우선주 ②실권주③자사주 ④배당주
8. 도시의 무질서한 확장을 방지하고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설정, 개발 행위를 엄격히 제한하는 지역은?
①그린벨트 ②그린워싱
③그린본드 ④그린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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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돈풀기 같은 포퓰리즘이 국가경쟁력 떨어뜨려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최근 발표한 ‘2023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64개국 중 28위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27위)보다 한 계단 떨어진 순위입니다. 문재인 정부 때 국가재정(나라 살림)을 방만하게 운영한 결과 재정적자가 악화하고 국가채무가 늘면서 ‘재정 경쟁력’이 지난해 32위에서 40위로 여덟 계단 추락한 것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돈풀기 포퓰리즘이 국가경쟁력 순위를 떨어뜨렸다는 평가입니다.
IMD는 매년 4대 분야(경제 성과, 정부 효율성, 기업 효율성, 인프라)를 평가해 국가별 순위를 매깁니다. 우리나라는 ‘경제 성과’가 22위에서 14위로 껑충 뛰었고 ‘기업 효율성’과 ‘인프라’는 모두 작년과 같은 순위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정부의 ‘돈 풀기’ 정책 후유증으로 ‘정부 효율성’ 평가에서만 순위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이번 결과는 사실상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재정건전성에 대한 경고음이 계속 커졌기 때문입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18년 35.9%에서 지난해 49.6%로 뛰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재정 위기 불감증으로 내년에도 이런 추세를 막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IMD와 세계경제포럼(WEF) 등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평가에 대해 알아봅시다.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려면 경쟁 제한적 정책을 폐지하고 친시장적 정책을 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해봅시다.
국가경쟁력 실점 요인 보완해야
더 나은 나라 만들 수 있어요.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여러 나라를 비교할 수 있는 다양한 지수(index)가 등장했습니다. 다국적 기업이 해외투자 의사결정을 할 때나, 국제기구가 개별 국가에 대한 원조전략을 수립할 때처럼 국가 간 비교를 위한 지수의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국가경쟁력 지수를 비롯해 불투명성(opacity)지수, 부패지수, 세계화지수, 민주화지수, 전자정부화지수, 행복지수 등이 그런 예입니다.
IMD와 WEF의 평가
국가경쟁력 지수를 발표하는 대표적인 기관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과 세계경제포럼(WEF)입니다. IMD는 1989년부터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발표해왔습니다. 4대 분야(경제 성과, 정부 효율성, 기업 효율성, 인프라)를 기준으로 국가경쟁력을 평가하는데, 각 분야는 5개 세부 부문으로 이뤄집니다. 그러니까 총 20개 부문을 평가하는 것이죠.
분야별 세부 부문은 경제 성과의 경우 국내경제, 국제무역, 국제투자, 고용, 물가 등이고, 정부 효율성은 재정, 조세정책, 제도여건, 기업여건, 사회여건 등입니다. 기업 효율성은 생산성, 노동시장, 금융시장, 경영관행, 태도·가치 등이며, 인프라는 기본인프라, 기술인프라, 과학인프라, 보건환경, 교육 등입니다.
IMD는 ‘2023년 국가경쟁력’ 평가를 위해 통계자료 163개와 설문조사 문항 94개를 활용했습니다. 올해 우리나라의 순위가 상승한 세부 부문은 국내경제, 국제투자, 고용, 물가, 노동시장, 경영관행, 태도·가치, 과학인프라, 보건환경, 교육 등입니다. 이 중 고용의 경우 4위로 평가받았는데 고용률이 크게 개선됐기 때문입니다. 다만 청년층(15~29세) 취업자 수와 제조업 취업자 수가 계속 감소하는 상황에서 60세 이상 취업자 수가 늘어난 결과라는 점은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인구 고령화가 향후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에 큰 부담이라는 사실을 재확인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WEF는 1993년부터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마이클 포터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 교수가 1990년 제시한 국가경쟁력 분석 이론인 ‘다이아몬드 모델’이 WEF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포터 교수는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생산요소 조건, 시장수요 조건, 연관산업, 경영여건, 정부 등을 제시했습니다. WEF는 2020년부터 국가경쟁력 평가를 중단했습니다.
IMD와 WEF의 국가경쟁력 평가는 그동안 국가경쟁력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측정(평가)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각종 통계자료와 함께 설문조사 결과를 사용하는데 설문 대상자의 타당성과 대표성이 확보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측정(평가)에 쓰이는 자료가 바뀌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국가경쟁력 지수를 연도별로 비교하려는데 각 연도에 쓰인 자료가 다르다면 지수가 변화한 게 해당 국가의 경쟁력이 바뀌었기 때문인지, 자료가 달라졌기 때문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국정운영 평가 수단
국가경쟁력 평가에 이런 약점이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론 매우 유용합니다. 국가경쟁력 평가는 ‘개별 국가의 경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총체적 능력’을 평가하려고 경제적 지표는 물론이고 정부 정책과 사회적 인프라 관련 지표를 포함해 수백 개 자료를 활용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료들에 대한 국가 간 비교 결과를 제공합니다. 각국은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 분야별로 상대적 우위와 열위를 확인하고 국가전략 수립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2008년 국가경쟁력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국가경쟁력 지수를 정책결정의 중요한 지표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국정운영을 평가하는 객관적 수단이란 점에서도 유용합니다. IMD의 이번 평가 결과는 문재인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영이라는 실정(失政)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국가경쟁력 평가라는 객관적 결과가 지적하는 우리의 문제와 약점을 잘 살피고 보완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이 더 나은 삶을 누리는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IMD의 국가경쟁력 평가 방법을 정리해보자.
2. 국가경쟁력 평가의 약점을 설명해보자.
3. 국가경쟁력 평가의 유용성에 대해 토론해보자.
노동개혁 같은 친시장적 정책이, 국가경쟁력 수준을 끌어올리죠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정부 규제가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됐습니다. 이에 근거한 ‘규제개혁이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주장 역시 오랫동안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알아볼까요.
규제를 통한 정부의 역할
국가경쟁력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려는 목표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장기적인 번영입니다. 경제 성장과 번영은 생산을 담당하는 기업들이 견인합니다. 달리 말하면 기업의 생산과 경영이 얼마나 효율적인지에 따라 국가경쟁력의 상당 부분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업의 생산 및 경영효율성이 국가경쟁력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건 아닙니다.
기업의 생산과 경영활동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자본과 노동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개별 기업이 결정하지만, 자본과 노동이 안정적으로 기업에 공급될 수 있도록 자본시장과 노동시장의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입니다. 정부는 이런 역할을 규제정책을 통해 수행합니다.
정부가 규제를 제대로 만들어 집행하면 기업을 비롯한 경제주체들은 예측 가능한 경제환경 속에서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커집니다.
포획이론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규제는 국가경쟁력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규제와 국가경쟁력의 관계에 대해선 오랫동안 부정적 인식이 우세했습니다. 그 이유는 규제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한 포획이론(capture theory)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포획이론은 198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스티글러가 제시했습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규제기관이 규제를 당하는 소수 집단에 의해 포획당하고, 그 결과 규제가 소수 피규제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스티글러는 “규제는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고 정치적으로도 정당화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소수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인이나 규제기관이 규제를 만들게 하면 그 규제로 사회적 후생손실(social deadweight loss)이 발생하고, 후생손실은 자원낭비와 자원배분의 왜곡을 초래하므로 결국 국가경쟁력과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규제 약해야 국가경쟁력 높아져
포획이론의 설명처럼 현실에서도 규제가 국가경쟁력에 영향을 미칠까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정부 규제가 해당 국가들의 국가경쟁력 지수(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한 연구 보고서(고려대 행정학과 최진욱 교수)가 있습니다. OECD 30개 회원국의 2004년 현재 IMD 국가경쟁력 지수가 전년도 정부 규제 수준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한 보고서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종합적인 규제 정도가 약화될 경우 국가경쟁력 지수는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부적인 규제정책 중에서는 기업들의 신규 사업 진출과 관련된 규제가 다른 규제정책에 비해 국가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보고서는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생산에 투입되는 자본의 규모를 키우고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방법도 있지만, 상당한 재원을 확보해야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이에 비해 규제개혁은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면 되므로 이런 부담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올해 IMD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노동규제가 사업을 방해하지 않는 정도’가 지난해 44위에서 37위로 상승했습니다. 순위 상승이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조사 대상 64개국 중 37위라는 점은 여전히 노동규제 개혁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2004년 연구보고서뿐 아니라 대다수 경제학자가 공감하듯, 규제개혁을 통해 경쟁을 제한하는 정책을 폐지하고 친시장적 정책을 사용해야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아울러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과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 없이는 국가경쟁력 제고를 논하기 힘들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NIE 포인트
1. 국가경쟁력에서 기업의 역할을 생각해보자.
2. 포획이론이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3. 정부규제와 국가경쟁력의 관계를 설명해보자.
장경영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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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7월 9일)
제목: "참된 쉼"
말씀: 마태복음 11:28-30,
찬양인도: 쉐키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권진우 부목사님
사회: 손문수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마태복음 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ㅡㅡㅡㅡㅡ

 
오늘 제가 기도하는 것은 혹시 우리 가운데 마음이 어두운 분 또 이렇게 어려운 분, 계시다면 진리의 빛이 비춰질 때 환하게 밝아지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제가 ‘참된 쉼’에 관해서 말씀을 드릴 텐데 3년 6개월 동안 고생한 모든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오늘 이 말씀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자, 질문하겠습니다. 나는 참된 힘이 필요 없다. 한번 손 한번 들어보세요. 손들어보세요.
 
오늘 이 시대가 이 삶의 환경 자체가 우리에게 쉼을 주지 못하는 환경이다. 생태계가 그러니까 24시간 동안 sns라든지, 모든 24시간 동안 다 올 킹 하는 거예요. 다 하니까 쉼이 없어요. 데이터 연구 기관에서 뭐라고 얘기하는가 하면 앞으로 향후 3년 동안의 데이터가 지난 30년 동안의 데이터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랬어요. 기가 막힌 거죠. 아니 지난 30년 동안의 빅 데이터는 말로 다 소이 많고 우리 스트레스 받게 하고 막 그러는데 앞으로 3년 동안에 나타날 수많은 데이터들이 지난 30년 보다 더 많다. 이거 얼마나 우리에게 그 침이겠어요 생태계 자체가 우리에게 힘을 주지 못하는 그런 환경이 왔다는 것이죠. 그래서 솔로몬이 얘기한 그 고백이 진짜 고백이에요. 전도서 말씀 전도서 2장 23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전도서 2:23,
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4시간 계속 움직이니까 밤에도 쉬지를 못한다. 더더구나 해외에 있는 사람들 너 한국 처음이지? 그거 온 사람들이 다 깜짝 놀라는 건 대한민국은 밤이 불야성이에요. 밤이 환한 거예요. 그러니까 밤에도 쉬지를 못하는 이 민족이, 저는 그 신학교 3학년 때 목회학이라는 패스트롤 미니스트리라고 목회학을 하는데 이 많은 성도들이 수많은 스트레스와 짐이 많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짐의 강도를 스트레스의 강도를 매기는데 최고로 스트레스가 많을 때가 언젠가? 부모가 돌아가시거나 자식이 먼저 이렇게 주님을 부름 받거나 또 배우자가 이렇게 어려워지거나 먼저 이럴 때가 최고의 스트레스라는 거 5점, 5점 그런데 동일하게 결혼도 스트레스 5점이에요. 좋은 일도 똑같은 취미에요. 자식이 태어나도 스트레스가 4점인가 하고요. 그러니까 그 총량제가 예를 들어서 30점이 넘으면 사람이 나 뒤집어지는 거에요.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 가운데서 이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우리가 참된 쉼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오늘 이 참된 심의 은혜가 말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여러분들에게 다가오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 창조의 질서가 뭐냐 하면 우리 모든 피조물들에게 힘이라는 dna를 넣어놓았어요.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니까 하나님은 사실 심히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그런데도 불구하고, 창세기에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 쉬셨어요. 맞습니까? 쉼이 필요 없는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에게 쉼에 대한 하나의 롤 모델 역할을 해주셨어요. 범죄 하기 전에,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힘이 필요했는데 타락하고, 불순종하고 타락하고 난 다음에 더 큰 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희에게 주시는 특별한 쉼을 이 말씀을 통하여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한 다음에 하나님이 두 가지를 주셨는데 하나님 뭘 주셨는가 할례를 행하라고 그랬어요. 두 제도를, 할례를 행해가지고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다 너희의 정체성이 뭔지를 확고하게 인식시켜줬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줄로 믿습니다. 영적인 할례를 받은 거예요.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안식일 제도를 둬가지고 쉴 수 있도록 만드셨어요. 그런데 이 심이라는 거는 이 심이라는 것은 우리가 예를 들어서 멍 때리기를 하는 것이다. 잠을 충분히 자는 육신이 회복하는 그것만 정도가 포함되는 것이 아니에요. 이 힘에 대한 개념은 어거스틴이 그런 고백을 했죠 뭐라고 고백했냐? 참회록에다가 앞에 서두에
 
*“우리의 마음은 주님 안에서 쉼을 얻을 때까지는 진짜 쉴 수 없습니다.” -어거스틴-
-동의하십니까? 주님 안에서의 쉼이 아니고서는 참된 힘이 없다. 칼이 참 기가 막힌 거죠. 왕궁에서도, 몰디브에 모이또, 모이또에 있는지, 몰디브에 있는지 모르지만 몰디브에 있어도 마음이 쉬지 못하면 영이 쉬지 못하면 주님이 주시는 힘이 아니면 힘이 없는 거에요. 왕궁, 왕궁에 그 최고로 멋있고 이렇게 편안하고 안락한 왕궁에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 왕궁의 암투와 모략과 중상과 오만 거 다 있고 왕비열전, 여인들끼리 힘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 힘은 하나님 안에서만 잠시 쉼을 주신다고 그랬을 때 바울 같은 경우는 바울 같은 경우는 빌립보 감옥에서 태장을 받고 그렇게 고통스러운데도 마음의 쉼이 있으니까 거기서 신라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이라. 나 사는 동안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왕국에서 모시는데 몰디브에서도 모시는데 감옥에서도 심이 있다 이거지.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심을 주셔야 우리가 참 심이 있다는 거 우리가 생각하면서 오늘 이 심에 대한 영안을 열기를 바랍니다. 오늘 마태복음 11장 28절-30절
 
*마태복음 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내 짐은 쉽고 가볍다고 그랬어요. 왜 다른 복음서에는 마가복음이나 누가 복음이나 요한복음에는 이 내용이 없는데 성경에 보면 정말 중요한 거나 복음서도 반복이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마태복음에만 이 내용이 나와 있을까? 마태복음에만 이 쉼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으니까 제가 가만히 분석을 해보니까 누가는 의사 누가, 그다음에 요한, 우리 예수님 제자 요한 그리고 마가 이 마가나 누가나 요한에 비해서 이 마태의 삶의 환경이 참 쉼이 필요한 환경이었어요. 여러분 아시는 대로 마테는 뭐 출신이죠? 세리 출신이죠. 당시 유대인의 세리는 다른 거는 몰라도 돈 버는 거는 보장이 됐었어요. 돈은 좀 벌었는데 나중에 그의 삶에 어떤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있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매국노야. 마태는 왜 매국노야, 거기부터 시작해가지고 그 아픔과 스트레스가 말도 못하는데 마태복음 9장에서 오늘 앞에 9장에서 예수님 만나고 난 다음에 쉽게 말하면 정체성 회복하고 난 다음에 삶이 편하고 난 다음에 마태가 갖고 있던 그 수많은 점들이 벗겨지고 완전히 새로운 참된 안식의 은혜를 받고 나니까 이런 말씀을 예수님의 말씀을 또박또박 기억해가지고 이렇게 오늘 마태가 기록하고 있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마태가 경험한 쉼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마태는 이렇게 되었는데 바로 6시 11장 30절 뒤에 그다음 뭐에? 12장이에요. 30절이 제일 마지막이고 그다음 12장 1절인데 12장에는 말하면 바리새인과 이런 친구들이 나와요. 바리새인과 유대의 지도자들인데 이 친구들은 겉으로 볼 때는 대단히 쉬고 대단한 사람들 같지만요 그 마음에 힘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사람이 마음에 쉼이 없는 사람의 특징은 뭐냐면 남을 비난하는 거예요. 남을 비판하는 거예요. 그렇게 쌓이지 않는 거예요. 제가 최근에 한경직 목사님하고 그다음에 조영규 목사님 설교를 내가 가끔 이렇게 한번 들어보는데요. 참 놀라운 건 뭐냐 하면요 한경직 목사님이나 조용기 목사님은 강단 위에서요. 한 번도 남을 치는 설교를 하지 비판하는 설교를 내가 들어본 적이 없어요.그게 그분의 영적으로 마음의 풍요로움과 뭐가 있어서 그런지 비를 여러분 강단 위에서 막 뭐라 그러고 그런 분들은 저분은 좀 쉼이 없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비난은 안 하더라도 아 나 섭섭해. 며느리 볼 때마다 너무 섭섭해. 그럼 그 시어머니가 쉼이 없는 거예요. 마음에 사회 볼 때 서서면 장모도 마음에 쉼이 없는 거에요. 마음에 쉼이 없으니까. 그런데 마태는 주님이 주시는 힘을 얻어가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내로야.
 
우리가 너무나 잘 하는 말씀, 그래서 오늘 제가 이 본문을 통하여 두 가지 힘을 말씀할 거예요. 두 가지 힘을 몇 가지 힘이 두 가지심을 첫 번째는 뭐냐 어떤 힘이냐 주어진 힘이에요.
 
I. 첫 번째는 주어진 쉼.
 
*마태복음 11:28,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니까 주님이 주시는 힘이에요. 주님으로부터 얻어지는 힘이에요. 조금 더 나아가면 조금 더 하면 내게로 오라. 나아가기만 하면 얻는 쉼이에요. 나아가기만 하면 순전하게 마음을 순전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특별히 어떤 사람은, 무거운 짐을 진 자로서 나아가기만 하면 주님이 주시는 이 오늘 이 주님이 주시는 쉼이 여러분들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오기만 하면 주시는 쉼이에요. 이 안아주신 본당에 오늘 앞에 예배들 1부 드리면서 수많은 분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오는데, 우리가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배를 드리지만 그러나 또 우리에게 주시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깜짝 놀랄 만한 보이지 않는 숨겨진 비밀이 뭐냐? 여러분들 이 예배 나오기만 해도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쉼을 주시는 것이에요. 이거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특별한 힘인 줄로 확신합니다. 이 희한한 힘을 줄을 주시는 거예요. 나오기만 하면, 그런데 나오기 만해도 시모지 그게 될까? 여러분 앞에 11장 25절에 보면요,
 
*마태복음 11:25,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배를 드리지만 이렇게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의 마음속에 쉼을 주실 것이다. 이걸 우리가 정말 순전하게 믿고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쉼을 주시는 것이에요. 다시 어떤 사람에게 쉼을 주신다고요? 수고하고 짐진자들이 이 수고란 말은 헬라어로 ‘코피온테스’ 라고 그러는데 이 수고하다는 말에는 노동으로 쇠약해지고 지쳐있다. 지쳐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도 마찬가지예요. 특별히 이 당시의 율법의 전통적인 굴레에서 큰 짐을 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 나오기만 하면 쉼을 주실 것이다. 본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창조되었을 때에, 아담이 일을 할 때 그 일을 아담이 부담으로 하거나 억지로 하거나 고통스럽게 하거나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아담의 기쁨으로 일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즐거워했어요. 그래서 동물들의 이름을 짓고 할 때 아담이 기뻤어요.
 
근데 불순종하고 범죄가 들어오고 난 다음에는 그 기쁨과 감사와 은혜가 고통과 가시와 짐과 그다음에 쉼이 없는 그런 힘든 상태가 된 거죠. 그러니 오늘 우리 여러분 마음속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했을 때 이 말씀 그대로 믿고 주님 앞에 나올 때에 불순종을 통하여 파괴된 하나님과 나와의 질서가 회복돼가지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우리가 가정의 주부로서 또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또 비즈니스 직장 모든 우리의 삶의 모든 현장에서 고통과 가시와 짐과 슬픔의 내용들이 어떻게 바뀌느냐, 기쁨과 감사와 사명과 축복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똑같이 일을 해도 옛날에 일하던 거고 짐 일하던 거 하고는 달라요. 옛날에 일할 때는 억지로 다시 와 고통과 짐과 무거운 것인데 이게 우리가 참된 힘을 주로 받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면 감사와 기쁨과 이걸 하니까 이게 일을 해도 마음이 쉬는 것이에요. 오늘 이 참된 쉼을 여러분들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다시 불순종 때문에 생긴 고통과 가시와 짐을 다 벗겨주시고, 이 시간 사명과 기쁨과 지혜와 아이디어로 참된 심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쉼, 어떤 쉼이라고요? 주어진 쉼, 또 어떻게 해요? 나오기만 해도 주시는 쉼, 그래서 나중에 요한이 너무 큰 은혜를 받아가지고 요한 계시록 이전 성경 제일 마지막 22장 17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냐 하면 다 같이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2:17,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오 목마른 자도 올 것 이오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아멘. 우리가 정말 주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주님이 주시는 참된 힘을 허락하여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혈류 증 여인을 생각해 보았어요. 여러분 혈루 증을 앓은 여인은 참 비참했어요. 열두 해를 앓으면서 수많은 가산을 탕진하고 거기 보면 수많은 의사들에게 고난을 당하고 의사들 계시면 용서하시고, 탕진하고 너무 살 길이 없어요. 근데 오늘 예수님이 지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야 내가 이 뭔가 좀 그 여인이 한 일이라고는 무슨 예수님 앞에 가서 무슨 큰 소리를 했다든지 아니면 뭐 예수님께 무슨 자신의 삶을 헌신을 희생해 드렸다든지 그런 건 전혀 없어요. 그냥 군중을 뚫고 나와 가지고 그냥 예수님께 나가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에 기적과 같은 치유와 변화와 쉼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것이에요. 그게 망해가는 상황이에요. 오늘 우리 마음속에 그래요 하나님 아버지 여기에 나오기만 해도 주시는 은혜가 있는 줄로 확신합니다. 순산하게 이걸 다시 앞에 25절에 이걸 슬기롭고 지혜롭다는 것을 똑똑한 사람들에게 숨기시고, 혈루 증처럼 수고와 짐을 무거운 짐을 지고 주님께 나오기만 해도 주님이시면 축복 그래서 그 당시에 헬로 증인뿐만 아니라 나병환자들, 귀신 들린 자들, 자식을 잃고 고통 하는 자들, 수많은 힘든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오기만 해도 주시는 쉼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나오길 원했다. 주님께 주님께서 나에게로 다 오라 하시는 것은 어떤 뜻인가 하면 이 짐을 나에게 다 맡기라. 그 뜻이에요. 니 혼자서 짐 지고 간다고 헤매지 말고 나한테 이 짐을 다 맡겨라. 지금 이제 여름에 여행하는 분들 많이 계실 텐데, 그 공항에 가가지고 여러분들이 도착했을 때 짐을 찾잖아요. 베이스 클레어밍 가가지고 짐을 찾는데 수화물을 찾는데 가족들과 어린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같이 서서 짐을 찾는데 다섯 살쯤 되는 어린아이가 아버지가 한 20~30kg 되는 큰 짐 백이 있는데 그걸 보니까 우리 거네. 그러면서 그 집을 다섯 살짜리 아이가 그걸 지가 다 찾아가고 하겠다고 했잖아요. 컨베어 벨트가 올라가가지고 난리 치면 걔는 죽는 거예요. 다섯 살짜리 10kg 밖에 안 되는 애는 그걸 감당할 능력이 없는 거예요.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의 삶의 컨베어 벨트에 큰 짐들이 놓여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내 힘으로 근데 내 우리 같이 연약한 어린아이 같은 우리가 그걸 감당하려고 그러면 우리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대신 짐을 컨트롤해 주시면 해결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내게로 오라 하는 것은 짐을 나에게 맡기라 그 뜻인 줄 믿습니다. 알겠죠? 이제 또 하나 29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 하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마태복음 11:29,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주님이 우리에게 선명하게 선포하시는 거예요. 첫 번째 쉼은 주어진 쉼, 두 번째 쉼은 뭐냐 하면요 획득된 힘, 배우는 힘 멍에를 메고 얻는 힘 많은 분들이 첫 번째 내게로 와 주님께로 가가지고 주님이 주시는 주어진 신만으로 끝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걸로 끝나니까 그 주어진 쉼이 오래가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이 주어진 쉼을 가진 사람이 은혜를 받아가지고 멍에를 메고
 
II. 두 번째는 배우는 쉼.
배우는 쉼, 배우는 쉼, 획득된 쉼, 주님 안에서 우리가 성숙해가지고 얻어지는 쉼, 그걸 얻게 되면 주님이 주시는 그 쉼을 더 오래 가게하고 더 성숙하게 하고 더 깊이 있게 하고 그 쉼을 통한 생수의 강이 체험되게 하시고 그다음 맑은 샘의 물이 터뜨려지게 하시고 그걸 통하여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주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멍에를 메워주시고 멍에를 통하여 배우는 쉼이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대답 소리가 좀 작아요 네 멍에를 주님의 멍에를 갖고 배우는 쉼이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이 멍에는 코뚜레가 아니에요. 당시에 이스라엘의 밭을 좀 큰 바트를 가려면 소 두 마리가 힘 있게 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 소 두 마리 어깨나 목에다가 이 나무 멍에를 연결시켜놨어요. 그래가지고 이렇게 갈 수 있도록 그리고 이 멍에는 뭐냐 하면 주인이 좌할 때는 좌하게 하시고 주인이 우할 때는 우하게 하시고 주인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가기 위하여 멍에를 소에게 씌워놓은 거예요. 멍에가 제가 그림을 그려가지고 이해를 시켜드리면 좋겠지만 설명을 해도 대체적으로 여러분들 이게 감각이 있으시죠? 소 두 마리 어깨나 목에다가 이 나무를 연결시켜가지고 소 두 마리가 제대로 밭으로 갈 수 있도록 아니 주인의 뜻에 좌우하라는 대로 주인이 가자고 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그렇게 멍에를 매게 하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망해를 통하여 배운다는 것이에요.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에게 멍에를 주세요.
 
이 멍에는 좋은 의미에서 사명이 될 수도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어떤 비전이 될 수도 있고 그다음에 또 이걸 이 멍에는 내가 주님의 멍에를 더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배우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예를 들어서 작년에 9월 26일 날 9.26 한국 교회 섬기는 날을 했습니다. 사랑의 교회 한 교회가 그 당시에 5,596명의 우리 사역자들을 섬기는 거 그거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거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사명이요 어떻게 보면 좋은 의미에서 멍에에요.
 
그런데 그걸 우리가 먹여야지만 잘 감당하게 되니까 우리가 스테이도 하고 또 지방에서 오신 분들 다 집에 가정에 모시기도 하시고 우리가 정말 최선을 다해 섬기기도 하고 이렇게 다 했더니 나중에 사랑의 교회 지난 9월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은혜의 여진이 남아 있는 줄로 믿습니다. 진짜 깊은 어떤 수준의 쉼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이에요. 원래는 9.26이 12월 23일로 될 터인데 그 9월 그 근처는 추석이 있어가지고 12월 23일로 해가지고 한국 교회 한 7천여 명의 우리 목회자들을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미션과 거룩한 멍에를 주셨어요. 그래서 그때 주님이 이리 가라 이리 가고 저리 감 쳐라 이렇게 잘 할 때에 하나님이 한국 교회를 축복해 주시리라고 믿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멍에의 특징이 뭐냐 하면 멍에의 특징이 뭐냐 30절에 보니까,
 
*마태복음 11:30,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오늘 주님이 주신 이 명예와 짐이 여러분들에게는 주님의 은혜를 통하여 가벼워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겉으로 볼 때는 무거워 보이지만 사실은 이게 있어야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 함이 생기는 것이에요. 독수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데 처음에 날개를 퍼덕거리는데 그 어린 독수리가 날개가 어마어마하게 큰 멍에에요. 큰 짐이에요. 그런데 만약에 독수리가 그 날개가 없다면 어떻게 하늘을 찬국을 나눌 수가 있겠어요? 큰 생선 고기, 바다에 들어가는데 고기에 지느러미가 있는데 지느러미가 무겁다고 그래가 지느러미를 잘라버리면 그 고기는 죽는 것이에요. 독수리가 날개가 무겁다고 그래가지고 잘라버리면 하늘을 날지 못하는 것이에요. 멍에는 마치 독수리의 날개와 같고 고기의 지느러미와 똑같은 것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를 우선 쉽게 말하면 결혼이라는 것은 동성끼리 하는 겁니까? 남녀 간에 결혼하는 것입니까? 결혼은 동성이 아니라 남녀 간에 이것이 하나님의 멍이에요. 하나님의 법이에요. 지난주에 결혼 50주년을 맞이하는 목사님, 사모님 내외분을 내가 뵙고 대화를 할 때 참 축복이 됐어요. 50년 동안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그게 제 전달이 되어가고 저도 참 기쁨이 되었었어요. 근데 동성의 50주년 축하한다. 이게 있을 수 있습니까? 먹이를 넘긴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명예의 이 어떤 영역에 그게 물질이든 그게 이성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걸 테두리를 벗어나면 그때부터 재앙이 시작되는 것이야. 그때부터 잠시 사라져버리는 것이 모든 힘은커녕 인생의 재앙과 짐과 고통과 가시가 우리를 억누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시는 명예의 그 영역 안에서 우리가 배울 때에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그래서 우리가 첫 번째 힘은 주어지는 쉼, 주님을 통해 나아가기만 해도 얻는 쉼, 두 번째 쉼은 획득된 심, 멍에를 통하여 배우는 쉼, 그랬을 때 우리에게 주시는 결과가 뭐냐 주님의 온유와 주님의 겸손을 배우게 되는 나는 온유하고 겸손을 배우라는 것이에요. 나와 있죠? 나는 마음에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여러분 삶이 온유하고 겸손하게 되면요. 마음에 쉼이 있어요. 열 안 받아요. 마음이 온유하다는 말이 뭔가?
 
*‘온유’라는 말은 예수님의 주권 앞에 전적으로 의탁하는 자세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게 온유한 거예요. 아까 말한 대로 하나님께 컨베어벨트에 있는 짐을 다 부모에게 맡기듯이 전적으로 다 시원하게 하나도 주님께 다 맡기고 힘들 때마다 주님이 다 하시어 그게 온유한 것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는 겸손인데 겸손은 뭐냐?
*겸손은 자기 자아를 주장하지 않는 자세에요. 자아를 주장하는 자세 그러니까 자기 자아에 대한 자의식이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남이 나를 어떻게 대우하든 나는 이 겸손이 있는 사람은 남이 나를 어떻게 대우하든 열을 받지 않는 것이에요. 근데 자기의 자아가 펄펄 살아 움직이는 사람은 자기의 자아를 주장하는 사람은 수많은 주의 환경 때문에 막 그 힘이 없어요. 고통이에요. 세상에 쉼이 없는 이유가 누군가가 여러분 대우 안 해주면 마음이 열 받잖아요. 여러분 인정 안 해주고 여러분 무시하고 함부로 하면 스트레스 받는 거 아니에요? 누가 나를 인정 안 해준다. 그래갖고 열 받을 때, 그거는 여러분들이 진짜 겸손의 의미가 좀 확보가 안 된 것입니다. 내가 아는 어떤 분들이 후배들의 모임에 갔어요. 후배들을 갔는데 후배들이 이분을 좀 대우를 안 한 것 같아요. 그래 열 받아가지고 씩씩거리시면서 이놈의 자식들 말이야 선배들 대접도 안 하고 막들이 열 받으셨어요. 제가 듣고 난 다음에 그런 데를 왜 갑니까? 스트레스 받을 일을 하면 안 되는데, 그런 데를 왜 가느냐고, 며느리가 나를 무시한다. 사위가 나를 무시한다.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한다. 여러분 그거 다 마음에 쉼이 없어서 그래요. 겸손은, 겸손은 뭡니까? 자기 자아를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이게 쉼이 있어야 가능한 거죠. 그래 수고와 무거운 짐들이 온유와 겸손으로 바뀌게 되는 축복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게 은혜의 선순환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에요. 은혜에 살 사람이에요. 아마 지상에서 마음의 쉼이 제일 없었던 사람 중에 하나가 모세일 거예요. 그러니까 모세가 얼마나 괴로운지, 날마다 그냥 백성들이 대모하고 막, 그러니까 모세가 열 받아서 날려났는데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33장 보면요. 그날도 출애굽기 33장 14절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같이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3:14,
1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이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처가 뭐냐 좀 쉬어라. 아니 내가 너에게 진정한 쉼을 주겠다. 그러니까 모세는 한때 사람도 때려죽이고, 열도 받고 하는 그런 성격이었는데, 모세가 참된 쉼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쉼을 갖게 되니까 그다음에 정말 멋진 말씀 민수기 12장 3절에 다 같이 읽어요.
 
*민수기 12:3,
3 이 사람 오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할렐루야 그래가고 이겨낸 거예요. 이 사람 모세가 아니라, 오늘 이 예배 참석하신 여러분들 한 분 한 분은 여러분의 온유함이 지면에 모든 사람보다 더 성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이게 참된 쉼이 있으면 이게 가능한 것이에요. 올리심을 통하여 여러분 워라벨이라는 말 들어봤죠? 워라벨, 워라벨이 뭐예요?
 
*Work –and-Life Balance. 워라벨이 아니라, Worship-and-Life Balance.워라벨이 되어야,
일하는 것과 쉬는 게 이게 이게 서로 균형이죠 그런데 우리는 워라벨이 아니라는 워십 앤드 라이프 밸런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진정한 쉼을 얻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해석이 좀 있지만 하여튼 하나님께서 21세기에 오늘 마태, 21세기에 모세처럼, 하나님께서 겸손과 온유로 무장된 참 쉼이 있는 이번 여름 기간되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전에 우리가 청년 시절에 성경 구절을 가지고 그대로 찬송과 가사로 만든 소위 그걸 보고 가스폴 송, 혹은 스크립쳐 송 이런 말을 많이 했어요. 성경 구절을 그대로 찬송했는데 아주 쉬워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 로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런 가사가 있는데 같이 우리 잘 몰라도 악보 읽고 가사가 있으니까 같이 한번 하시겠어요. 하시는 동안에 야 내가 좀 쉬어야지 너 나 좀 쉬어야 합니다. 이것만 생각하면 안 되고 내 자식도 좀 쉬어야지. 내 부모님도 좀 쉬셔야지, 우리 공동체도 좀 쉬어야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 고생만 쉬어야지, 우리나라 우리 한국 사람들은 쉬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전부 다 화가 나가 있어요. 다 열 받아 있고 그냥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있고 근데 이걸 여러분 참된 쉼을 통하여 온유와 겸손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 때문에 우리 주위가 하나님 주시는 참된 쉼으로 풍성해지기를 축원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이 가사 그대로 한번 해보세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습니다.
 
요약,
만성의 피로에 사는 우리에게 참 된 쉼을 주님이 주실 줄을 믿고, 복음의 능력을 통한 진정한 쉼을 얻어서 주님께만 나가면 주어진 참 쉼을 얻음을 깨달아서 멍에를 메고 배우는 쉼의 대상자가 되어 우리의 짐인 무거운 짐들이 온유와 겸손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친 자들이 그 쉼으로 다 치유 받아서 영혼의 회복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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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6월 26일 (804)

1.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로, 이달 중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기도 한 이 사람은?
① 제프 베이조스 ② 빌 게이츠
③ 일론 머스크 ④ 마크 저커버그

2. 마약, 밀수, 비자금 등 정보가 파악되지 않아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제활동을 뜻하는 말은?
① 내부경제 ② 외부경제
③ 지하경제 ④ 공유경제

3. 다음 중 청약가점제에서 점수를 매기는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① 무주택 기간
② 부양가족 수
③ 청약통장 가입 기간
④ 연간 소득

4.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상속세, 증여세 등 납세의무자와 조세부담자가 일치하는 세금을 뜻하는 용어는?
① 직접세 ② 간접세
③ 누진세 ④ 역진세

5. 다음 중 1에서 1000 사이의 값을 갖는 수치는?
① 지니계수
② 기준금리
③ 개인신용점수
④ 기업경기실사지수(BSI)

6. 경기가 급격히 얼어붙어 소비 위축, 주가 폭락, 실업자 급증 등 강한 충격을 주는 상황을 비유하는 말은?
① 갈라파고스 ② 골디락스
③ 하드랜딩 ④ 소프트랜딩

7. 다음 중 기업이 자금 조달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 것은?
① CP ② CB
③ IPO ④ IFRS

8. 외부 요인에 의해 억눌렸던 소비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은?
① 가치소비 ② 보복소비
③ 부의 효과 ④ 베블런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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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연일 논란 노동개혁…핵심은 무엇일까요

노동개혁 관련 소식이 연일 주요 뉴스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서입니다. 정부는 가장 먼저 ‘근로시간 개편안’을 내놨습니다. 근로자가 임금을 50% 더 받는 초과근무 수행 방식을 바꾸려는 내용입니다. 현재 한 달 4주 일할 때 주당 최대 근로시간이 52·52·52·52시간으로 엄격히 통제된 것을, 69·35·52·52시간 등으로 조절할 수 있게 유연화하려 했죠. 하지만 ‘정부가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에서 주 69시간으로 늘렸다’는 주장에 부딪혀 표류하고 있습니다.

이후 ‘노조회계 투명화 조치’와 ‘근로기준법 5인 미만 사업장 확대 적용’ 등으로 전선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전자는 조합원 1000명 이상의 노조와 산하 조직은 노조 회계 공시시스템에 결산 결과를 공시하도록 한 조치입니다. 후자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도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유급휴가, 부당해고 구제 신청, 연장·휴일·야간수당, 법정근로시간(현재 주 52시간) 등의 혜택을 보장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노동개혁안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정부가 연일 충돌하고 있습니다. 법원도 사안별로 다른 판결을 해 혼선을 가중하고 있습니다.

노동개혁 필요성의 핵심 이유인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이해해봅시다. 또 근로기준법의 영세 사업장 적용과 관련해 최근 몇 년간 이슈가 된 ‘주휴수당’ 문제를 알아봅시다.'주휴수당'처럼 낡은 근로기준법 규정이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 원인
근로기준법을 5인 미만 사업장에 확대 적용하는 이번 방안은 아직 추진 중인, 그러니까 확정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의 ‘주휴수당’은 근로자 수와 상관없이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는 규정입니다. 그래서 몇 년째 주휴수당으로 인한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주휴수당은 이번 방안이 확정돼 시행될 경우 우리 사회가 마주할 혼란을 미리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유급휴일 보장
근로기준법 제55조 제1항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1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유급휴일이란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지 않더라도 통상적인 근로를 한 것처럼 임금이 지급되는 날입니다. 이런 유급휴일에 받는 임금을 ‘주휴수당’이라고 합니다. 주휴수당을 받으려면 1주 동안의 소정근로일(사용자와 근로자가 미리 정한 근로일)을 ‘개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근로자가 시간당 임금 1만원, 하루 소정근로시간 8시간, 1주 소정근로일 5일이란 조건으로 일하는 경우, 5일 개근하면 1일 주휴수당으로 8만원(1만원×8시간)을 받게 됩니다. 단, 1주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초단시간근로자)이면 주휴수당을 지급받지 못합니다(근로기준법 제18조 제3항).

임금 더 지급해도 법 위반
주휴수당은 주로 영세 사업장에서 문제가 됩니다. 최저임금 시급이 5580원이었던 2015년의 사례를 살펴볼까요. A사업장은 시급 6000원, 하루 5시간 근로, 주 5일 근로를 조건으로 주휴수당을 지급했습니다. 1주 총임금은 18만원{(6000원×5시간×5일)+유급휴일 1일(6000원×5시간)}이었습니다.

B사업장은 시급 8000원, 하루 5시간 근로, 주 5일 근로 조건이었는데 사용자가 주휴수당 규정을 몰라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1주 총임금은 20만원(8000원×5시간×5일)이었습니다. 결국 B사업장은 A사업장보다 많은 총임금을 지급했지만 주휴수당 미지급으로 근로기준법을 위반했습니다.

법이 규정한 주휴수당을 고려해 임금을 책정하는 것은 사용자의 의무입니다. B사업장 사용자는 기존 총임금에서 일부를 떼어 주휴수당으로 계산했어야 합니다. 이런 의무를 위반했으니, 유사한 다른 사업장보다 많은 임금을 지급한 사용자를 비난하는 것이 당연할까요. 하루하루 힘들게 사업을 운영하는 이가 자신이 고용한 근로자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줄 수 있다면, 주휴수당 같은 규정은 상황에 맞게 손봐야 하지 않을까요.

법 제정 때와 달라진 상황
위 사례에 대해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당시에는 절대다수 근로자의 생활이 열악해 그들의 기초생활을 보장하려고 주휴수당을 의무화했지만 최저임금제 등이 시행되고 있는 현재는 주휴수당 규정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주휴수당을 폐지하더라도 임금이 감소하지 않는다는 점 역시 근거로 제시됩니다. 사용자가 임금을 책정할 때 임금을 정한 다음 주휴수당을 더 주는 것이 아니라, 임금총액을 정한 뒤 그 범위 안에서 임금 구성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즉 임금총액을 정하고 나서 주휴수당을 끼워맞추는 게 현실에서 이뤄지는 임금 결정 방식이라는 것이죠. B사업장도 정부의 시정지시를 받고 나서 근로계약서에 ‘임금에 주휴수당이 포함돼 있다’고 명시했을 뿐 시정지시 전후 임금 수준엔 차이가 없었습니다.

‘쪼개기 알바’ 양산
주휴수당 지급 조건인 ‘개근’ 여부를 놓고 사용자와 근로자 간 갈등이 빚어지는 문제도 있습니다. 영세 사업장의 경우 근로자의 출퇴근을 입증할 기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죠.

주휴수당 지급의 번거로움을 피하려고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를 선호하는 영세 사업자가 늘고 있습니다. 지난해 전체 취업자의 5.6%에 달하는 157만7000명이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일명 쪼개기 알바)였습니다. 주휴수당은 시대 상황에 맞지 않는 낡은 근로기준법 규정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NIE 포인트
1. 주휴수당의 내용을 설명해보자.

2. 기사의 B사업장이 비난받아야 하는지 토론해보자.
3. 주휴수당 폐지 시 예상되는 영향을 정리해보자.

노동개혁의 대상인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망가뜨려요
윤석열 정부는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집권 기간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개혁은 국민의 현재와 미래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 개혁의 필요성에 많은 국민이 공감해 정권을 잡은 만큼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개혁 완수를 위해 필요한 법과 제도의 정비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죠.


이번에 추진하는 근로기준법 5인 미만 사업장 확대 적용은 3대 개혁 중 노동개혁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동개혁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개혁하려는 걸까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가장 대표적인 개혁 대상입니다.

경쟁에서 보호받는 근로자 생겨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말 그대로 노동시장이 단일한 시장이 아니라, 서로 단절된 별개의 여러 시장으로 이뤄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경제학에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한 연구가 활발합니다. 이중노동시장이론은 노동시장이 ‘고임금과 고용안정이 특징인 1차 노동시장’과 ‘저임금과 고용불안의 2차 노동시장’으로 구분된다고 설명합니다. 분단노동시장이론은 노동시장을 하나의 시장으로 보기 어려우며,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근로자들이 상호 이동이 거의 단절된 상태로 임금과 근로조건에서 차이를 경험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는 시장 경쟁으로부터 보호받는, 1차 노동시장에 포함된 근로자가 생겨납니다. 이런 근로자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시장임금(노동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임금) 이상의 임금을 유지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시장임금으로 일하려는 다른 근로자, 즉 1차 노동시장에 포함되지 근로자는 실업상태가 됩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노동시장에서의 근로자 간 불평등과 불공정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보다 혁신적인 생산 시스템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는 점에서 개혁해야 할 대상입니다.

대기업·유노조·정규직은 7.5% 불과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어떤 상황일까요. 이에 대해 지금까지 많은 연구가 이뤄졌는데 특히 2015년 발표된 연구가 눈길을 끕니다. 이 연구는 기업 규모(대기업·중소기업)와 노조 유무, 고용 형태(정규직·비정규직) 등 세 가지 변수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설명했습니다.

먼저 대기업이면서 노조가 있고 정규직 근로자로 이뤄진 ‘핵심부’가 있고, 중소기업이면서 노조가 없고 비정규직 근로자로 구성된 ‘주변부’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체 노동시장에서 핵심부와 주변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중간부)이 있습니다. 중간부는 ‘대기업, 유노조, 정규직의 합집합(대기업∪유노조∪정규직)’에서 ‘세 변수의 교집합(대기업∩유노조∩정규직)’, 즉 핵심부를 뺀 부분입니다. 결국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좀 더 엄밀하게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 중층구조인 것이죠.

이 연구에 사용된 자료(2014년 3월 기준)가 다소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세 부분의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하기엔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선 핵심부에 속한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7.4%이고, 중간부 66.2%, 주변부 26.4%입니다. 월평균 임금은 핵심부 근로자의 임금 수준이 100일 때, 중간부는 61.2, 주변부는 34.3입니다.

주변부에서 핵심부로 이동 어려워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특징은 구분된 시장에 속한 근로자가 다른 시장으로 이동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주변부에서 중간부로, 중간부에서 핵심부로 이동하기가 어려운 것이죠. 관련 연구에 따르면,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이동하는 비율이 전자는 3%, 후자는 17% 수준입니다. 특히 이 수치가 2000년대 이후 줄곧 하락하고 있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같은 일을 하면서 다른 임금을 받는 상황을 초래합니다. 핵심부 근로자들이 강력한 노동조합의 보호 아래 시장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받고 다른 근로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함으로써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깨뜨리는 거죠.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직무대행이 최근 한국경제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귀족노조에 의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고 개탄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NIE 포인트
1.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개념을 정리해보자.

2.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폐해를 설명해보자.
3.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대해 토론해보자.
장경영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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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7월 2일)
제목: "역사적 신앙관"
말씀: 에베소서 1:3~6
대표기도: 유종성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설교자: 박영선 목사님-초빙(노포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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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3~6,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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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6절은 하나님의 계획, 의지, 목적 같은 것을 어 증언하고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 목적이라는 것의 중요성은 우리들이 다 같이 경험한 것 같이 예수를 믿으면 중생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복을 받고, 천국에 가는 것으로 가장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본문은 그런 우리가 아는 확인보다 더 큰 의미를 그 문장이 갖고 있다. 이 문장은 이 목적이 하나님의 의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보상을 받느냐? 어떻게 해야 되느냐? 라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 우리가 기독교인이라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에서 자부심과 확신을 갖고 있지만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시면 모든 종교란 신이 있어야 되고, 그 신의 정체성이 설명되어야 한다. 그래야 신자들이 그 의도와 방법을 이해하고 쫓아갈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서 종교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되느냐 하면 내가 진심을 가지고 간절히 빌면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식으로 보통 종교가 성립된다. 그래서 무속 신앙이라는 것은 신에 대한 설명이 없고, 신 자체가 없고, 그 갈급한 인간과 인생에서의 비는, 그 고함지르는 것들이 중요한 내용이 된다.
 
그러나 기록 기독교는 하나님의 창조주요, 부활의 주인이시며 심판자라고 얘기하는 것이 순서를 가지며 시간과 과정을 가진다. 그러니까 우리가 쉽게 기독교 신앙을 확인할 때 당신은 구원의 확신이 있어? 그럼 난 구원의 확신이 있어.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주를 만났어. 그리고 여기에 다음 질문은 모든 걸 건너뛰어서 오늘 죽어도 천국 갈 걸 믿어. 이렇게 끝장으로 가서 그 간격이 없어졌다. 예수를 믿는 게 본인에게 확실하고 죽으면 천국 가는 게 확실한데. 오늘은 그 지갑 되는 거다. 믿고 감격했으면 데려가야 되는데 현실에 다 내버려둬서 믿지 않는 자들과 비교할 때. 아무런 혜택이 없고 미 싸운 일을 아무리 외워도 곤란하고 지랄 같은 현실을 아무도 면할 수 없다. 그러니까 하나님 도대체 어떻게 하시자는 건가? 라고 다시 돌아와서 왜 성경이 구약이 있는지, 신약이 있는지 우리가 왜 예수를 믿고 나서도 현실에 갇혀 있어야 되는지, 예수를 믿으면 우리 보통 승리주의라고 표현하는 것 같이 우리가 자리를 지위와 권세를 가지고 세상에 의를 베풀고 복을 베풀고 하는 자리에 있을 것 같은 기대를 한 번도 경험할 수 없이, 하나님 스스로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권력으로, 폭력으로 증언하시지 않고 우리를 통해서 일하신다고 해놓고 우리에게 특권을 주시지 않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말하자면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실존적 신앙관에 역사적 신앙관을 보태야 된다. 실존적 신앙이라는 것은 이것은 규칙도 아니고, 주문도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신 것이고, 내가 하나님을 만난 것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나를 아는 것 이것이 실천적 신앙이다. 난 예수가 누군지 알아. 나는 예수를 믿어. 예수님도 나를 알아 내 이름이 생명책에 있어. 이건 다 실존적 신앙입니다. 교훈이 아니며 어떤 구호가 아니며, 내가 알고, 내가 붙잡힌 어떤, 어떤 운명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여러분 꼭 기억하셔야 될 것이 구원론적인 신앙 고백이다. 구원론 적이라는 것은 예수를 모르다가 예수를 알게 되어 구원받은 소위 말하는 중생 그리고 천국이라는 소망 속에 있는 것이 다 구원론이고 하나님은 구원론을 벗어나 있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해서 잘 외우시는 요한복음 3장 16장 같이,
 
*요한복음 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조를 우리는 언제나 자신에게 적용한다. 그러면 안 믿는 것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이 예의를 다해서 안 믿는 님 들은 어떻게 되나요? 놈이 되나? 남이 되나? 우리의 신앙을 확인할 때마다 여러분이 쓰시는 방법은 나는 믿었고, 너는 안 믿었어. 라는 이분법이란 말이다. 근데 성경은 훨씬 크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범위를 창조 세계 전체를 끌어안고 계시단 말이다. 믿었느냐 안 믿었냐는 중요한 구별이지만, 하나님은 여기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쪽에도 하나님이시더라 말이다. 우리가 아직 믿었는데도 천국을 못 갔듯이 이들도 안 믿었는데 아직 지옥에 안 가고 살아남아 있고 둘이 합작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되는 인생을, 역사를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나는 믿어 난 천국 갈 거야’ 라고 얘기하는 것으로는 일상을 살 수가 없다. 안 믿는 사람들하고 살아야 되고, 믿음으로 분명치 않은 형편을 현실을 살아야 되고, 가서 직장생활을 해야 되고, 동료가 있고, 상관과 부하가 있고,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고 그리고 그 나라의 형편이 있고 사회의 정신이 있고, 하나님 속에서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고백에 단순한 분명함같이 인도하시지 않고 이렇게 알 수 없는 자리에 우리를 두시는가? 하는 것이 우리에게 현실적인 질문이 돼야 된다. 이 모든 질문들을 이 이분법으로 나누어서 나는 믿었어. 착하게 살면 돼. 착하다는 거는 답이 없어서 만든 말이다. 착하다는 말에 반대는 뭔가요? 악하게 사는 거 아니요, 우린 악하게 살지 않는데, 착하게 살아도 아무 보상이 없다. 착하게 산다는 걸로는 예수님이 오셔야 될 필요는 없다. 착하게 사는 것은 맹자와 공자면 된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일을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방법을 썼는가? 이건 훨씬 큰 문제다. 하는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착하다는 건 우리가 아는 도덕법이다. 윤리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 정도가 아니라는 거죠. 잘 아시는 욥기는 구약 성경에서 바로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욥기 1장에서 그는 의인이다. 라고 소개된다. 그래서 나중에 그가 고난을 받고 어려움에 처하자 친구들이 와서 너 회개해라. 하는 것은 말이 안 맞는 거래이다. 왜냐하면 설정이 욥은 의인이다. 그런데 고난을 당한다. 재산도 뺏기고 자식도 다 죽고 자기까지 병에 붙잡혀 있는데 그는 의인이라 한다. 친구들은 와서 그들이 아는 신앙은 잘하면 복 받고 잘못하면 벌 받는다. 라는 잣대밖에 없으니까 빨리 회개해라 그러니까 여기, 난 회개할 거 없다. 여러분한테 뭐라 그러겠어요? 우리도 다 하는 거야 너 교만해 니가 잘못한 적이 한 번도 없단 말이야? 라는 식의 판정밖에 내릴 수 없듯이, 친구들도 그랬다. 야, 너 말 그따구로 하는 것만 봐도 니가 잘못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잘못했단 말이냐? 이렇게 됐죠? 그러니까 욕이 그게 내가 환장하겠는 거다. 내가 잘못하지 않는데 왜 이 꼴이냐 니들하곤 얘기가 안 되는데 하나님께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는 거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뭘 하냐 하면 창조 세계를 보이신다. 또 악어를 봐라 또 우박 창고를 봤냐 이거 누가 만들었느냐 왜 만들었느냐 이게 무슨 뜻이야? 이 있는 것들이 자기에게 조건이 있고 원인이 있어서 그 결과물이냐 아무 조건도 없는데 내가 만들었다 창조주시잖아요? 하나님이 욥에게 하는 대답은 이건가요? 욥의 질문은 “하나님 난 억울합니다.” “넌 뭐가 억울하냐?” 하나님, 왜 일을 이 땅으로 하세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너는 잘못한 것이 없으니까 당당하다 이거지 그렇죠? 난 잘못한 게 없잖아요? 야 그럼 애들은 잘해서 생겨났냐? 이건 하나님의 기쁘신 뜻, 하나님의 권능의 결과물들이다. 너희는 이런 세상의 창조물들과 훨씬 다른 내 상속자야. 내 후손이야. 내가 너를 잘잘못에 따라서 보상하는 정도에 불과하단 말이야?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데 너 잘못만 안 하면 돼. 매일 집 안에서 나오지 마, 그러는 부모 봤어 너 해봐, 해봐 자식이 뭐라 그래요. 저 공부 안 하고 나가서 장사할게요. 공부는 해서 뭐해요. 나 공부하기 싫어요.
 
그러면 부모가 뭐라 그래요? 내가 언제 너보고 돈 벌어 오라 그랬어. 이 새끼야! 이 니가 커야지 뭐 훌륭해줘야 될 거 아니야! 자식이 부모만 못하다. 라고 얘기하면 평생 원수가 되는 거다. 누구가 미우면 그러세요. 왜 본인은 훌륭하신데, 자식은 그 말 못하세요 그러면 그날로 이제 안 보는 것이다. 자식을 칭찬하면 아이 부모님도 훌륭하지만, 어우! 그 아드님은 바르세요. 그러면 그날부터 만날 때마다 뭐 먹고 싶으냐고 물어보고 한다. 성경이 그러는 거예요. 야곱이 그 하나님과 씨름을 했을 때, 하나님이 야곱이 고집을 꺾지 않자, 환도 뼈를 꺾는다. 집어 간다. 못 간다. 축복해 주셔야 됩니다. 왜 축복을 해달라 했느냐 하면 하나님이 이렇게 물어본 거예요. “그 축복하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습니다.” 그러니까 네 이름이 뭐냐? 그렇지 너는 야곱이지. ‘야곱입니다.“ 야곱은 발뒤꿈치를 잡은 자고, 약탈자라는 뜻이다.
 
히브리의 표현으로는 날강도다. 날강도, 날강도란 강도짓이 도덕적으로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라 저는 제 필요를 누구에게서 뺏어 와야 되는 자다. 제 필요를 채워줄 자가 없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너 다시는 그 이름을 쓰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는 이스라엘이다.” “너는 하나님과 싸워서 이긴 자이다.” 인간이 무슨 하나님과 싸워서 얻을 게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이거예요. 너는 남의 것을 뺏어 와야 되는 보호자가 없는 넌 고아가 아니야. 넌 강도짓을 할 필요 없어. 내가 네 부모야. 자식이기는 부모봤어? 이게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희가 나를 위해 존재하라 그러지 않고, 너희를 위해서 내가 존재한다는 걸 알아라. 라고 얘기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 고백인데 예수가 오신 이후고 결과물인데 그걸 역사로 보인다. 야곱에게서도 그 유명한 창세기 28장 벧엘 사건이 그렇지 않은가? 돌베개하고 자고 있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에게 축복하신다. “너 누운 땅 동서남북을 다 너와 내 자손에게 줄 것이다.” 그래서 그 약속을 주시면서 그때 “니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함께하고 너를 이리로 데려올 때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그게 20년이 걸린다. 근데 가서 개고생하고 말이 자꾸 험해지는 이유가 뭐야 분위기에 자신이 생겼나 보죠. 다 우리 편 내 자식이라는 느낌이 들어와서 그렇다. 20십 년을 왜 놔두는가? 거기서 악착 같이 번 것을 여기 와서 다 잃어버리잖아요? 형한테 다 내주고 혈혈단신으로 남았다고요. 그런데 하나님이 거의 다 되고 너는 이스라엘이다. 그럼 그 나라 이름이 돼요. 이 역사들이 왜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 가신대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은 경우예요. 경황, 도전, 시험, 경력 이라는 속에서 우리를 만들어 간대요. 왜 왜 결론을 꼭 짚지 않고 이런 과정을 나보고 그래요. 나보고 그래요. 철이 들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에 걸 맞는 자가 되래요.
 
오늘 본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바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래서 찬송을 하게 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영배하고 무릎 꿇는 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그가 사랑하시는 이 자녀들의 광으로 같이 화음을 이루겠다. 그런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는 목숨도 건다. 그게 십자가이다. 그걸 만들려면 뭘 해야 되냐면 시간과 경호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사랑과 믿음을 나눈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두 단어이다. 사랑과 믿음, 이 두 단어는 상대가 없으면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사랑도 상대화해야 되고, 믿음도 상대화해야 되는데 우리는 계속 하나님 앞에 죽으라면 죽겠어요. 뒹굴라면 뒹굴겠어요. 지 까짓 게요 뭐. 이렇게 자신의 신앙을 윤리 도덕적으로 금욕적이고 자기 비하로서 증명할 줄만 알았지. 커바 커바 아버지가 너한테 뭘 원하는지 따라와 봐라. 는 데는 못 가고 있어요. 겁을 내요. 겁을 낸다고요. 사랑이란 믿음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걸 몰라요. 그러니까 그런 사랑과 믿음이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건 무슨 말이냐 하면 한쪽이 다른 쪽에 조작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각각 자발성을 가져야 된다. 각각이 그래야 사랑이 믿음이 성립이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저 아담에서부터 이제까지 전 역사에 걸쳐서 이 자발성을 기른다. 철이 들게 하며, 하나님이 누군가를 뼛속 깊이 그리고 자신의 이해와 인생이라는 경험 속에서 이 자리에 오게 만든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 제일 많이 하시는 게, 한국교회에서 제일 많이 하는 게 회개(悔改)이다. 회개의 약점은 뭐냐 하면 잘못한 것을 지우고 있지 더 나아가는 데가 없다. 윤리와 도덕과 양심은 결코 훌륭한 대로 가는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잘못한 것을 꾸짖을 뿐이다. 기독교가 착하게 살면이 아니라, 커야 되는 문제라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교회에 올 때는 보통 뇌를 안 갖고 오더라고요. 그래서 뭐 얘기가 되는 얘기를 하면 어쩔 줄을 몰라요. 그러시면 안 돼요. 다음엔 꼭 갖고 오세요. 냉장고에 넣어놓고 온대요. 이제 상할까 봐 그러니까 생각해 보세요. 자식을 길러보면 다섯 살 때까지가 제일 예뻐요. 그다음부터는 완전히 원수예요. 그런데 자식에게 이 병이 생기면 큰일이에요. 이게 뭐냐면 안 크는 거 애가 안 크면 큰일이에요. 그죠? 애가 다섯 살로 영원무궁이 산다. 그렇게 끔찍한 것도 없어요. 밤낮 도리도리 작곡만 하고 그럼 큰일이라고요 이가 커야 돼요. 크는 증거가 뭐죠? 키가 크죠. 체중이 늘죠. 그리고 말을 안 듣는다. 이건 잘못이 아니에요. 이건 크는 거다. 싫어가 나온다. 싫어, 난 이러고 싶어. 반발이 나온다. 우리는 이게 절정에 이 절정에 다 달았을 때를 사춘기라고 한다. 사춘기는 자기 주권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납득을 해야 하겠어 난 이해가 안돼. 난 이렇게 해보고 싶어. 이걸 다 허락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게 없으면 안 된다. 왜? 부모님이 그렇게 이렇게 하라. 그랬는가? 왜 부모님이 공부는 꼭 해야 된다. 그랬는가? 여러분 다락방 방장(순장) 정할 때도 학력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공부는 맞선 볼 때도 나오고, 성가대 대원들도 아마 학력은 봤을 걸로 생각이 든다. 학력은 학력에 등급이 있는 게 아니라 훌륭해지는 인류가 발명한 최후의 방법이다. 공부는 지름길이 없다 노력해야 된다. 하고 또 해야 된다. 포기하면 안 된다. 이런 것들을 공부해서 배우는 것이고, 인생 자체에서 배우면 여러분들이 이런 것들로 인해서 이제 가치 있는 것과 가치 없는 것을 분별할 수 있게 되고,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고, 선택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런 일들이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가는 그 아들을 보내서 출발시켜서 만들어가고 싶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 에베소서 4장 30절식으로 얘기하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의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라라.” 라는 성경이 말하는 성숙과 신앙의 어떤 지점인 것이다. 왜 그러면 이걸 좋은 말로 하시고, 좋은 분위기에서 하시지 않고, 이렇게 못살게 구시는가? 거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는데 성육신에서 그게 나타난다. 성육신이란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이 우리를 구하러 인간이 되신 것이다. 그 예수님께서 마지막 밤에 요한복음 17장을 유언같이 기도문으로 남기는데 거기 이런 약속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어.” 여기서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이다. “우리 안에 있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알게 하시리라.” 아버지가 그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그의 가족으로 부르신다. 이게 기독교이다. 로마서 8장에서도 “우리는 다시 두려워하는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느니라.”
 
이런 성경의 얘기들이 이렇게 복종하는 신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만드는 싸움이고 자녀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를 분별과 판단에 절정에 올라와 하나님과 사랑과 믿음의 연합을 할 수 있게 우리를 만드시는 일을 역사 내내, 모든 인생 내내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보내신 것, “아버지께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내가 너희에게 교훈한 것을 가르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모든 것을 배워 지키게 하라.” 라는 명령을 준다. 땅 끝까지, 땅 끝까지는 선교적 표현에서는 이방 나라들을 의미하지만 우리가 땅 끝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스라엘에서 우리만큼 온 나라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땅 끝이고 여러분이 거기 태어나셔서 기독교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한 과거 유교와 불교의 유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자 우리로 하여금 내가 있는 거기가 내가 너를 보낸 자리다. 라고 얘기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가지셨던 별명,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예수가 우리에게 오신 것은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세상을 구원하러 오시는데 그 메시아가 인류 속에 들어오시므로 인류는 구원의 대상이 되었고, 그 복이 되었다. 를 나에게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나를 보낸 것 같이 내가 너희를 보내고 너희가 땅 끝까지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 제자가 되게 하라 볼 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니라.” 에 있는 것이다. 거기가 여러분들이 매일 일을 가는 그지 같은 현실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도 예수님이 볼 때 우리가 거지같은 현실이었을 것이다. 안 그런가? 죄인들 속에 오는데. 하고 아 모욕하고 드디어 죽인다. 거기에 예수님이 오시는 방식으로 우리가 보냄을 받고 있고, 우리는 그 부활을 본 자이고, 요한복음 14장식으로 얘기해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든지 내가 이루리라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일도 하리라.” 에 들어 있다.
 
예수님은 자기의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기적을 도입하여 책임을 면하지 않는다. 죽는 길을 가신다. 죽는다는 걸, 여러분 최악의 진심, 최악이라 그러면 안 되고, 극단의 진심이라고 보시지 말고, 그 영광과 진리를 이해받지 못하는 데까지 가야 된다. 그들이 다 믿어야만 여러분의 사명이 완성되는 게 아니라 모르는 자리에도 가라. 끝까지 몰라도 된다. 그러나 너는 내 책임을 해라. 이렇게 보냄을 받는 것이다. 로마서 12장식으로 얘기를 하면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저주하지 마라. 저주하지 말고 도리어 축복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라.” 이게 세상을 살아야 되는 신자들에게 준 명령이다. 악에게 지지 말고 손으로 악을 이기라는 우리가 윤리 도덕적 정성에 묻혀 있던 신앙의 수준에서는 악을 감동시키는 선, 상상하곤 했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다. 악당이 악당 노릇하는 것 같이 너는 네 자리 지켜라. 지지 말아라. 그를 이겨야 된다. 가 아니라, 니가 흔들리지 마라. 이런 얘기이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형통하게 살기는 글러 먹은 것이다. 하나님이 아직도 구원의 문을 열고 있다 누구에게나 손을 내밀고 있다. 라는 걸 알고 살아야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복음적이고 선교 적이라는 것은 말투나 어떤 표현하는 단어들이 있는 게 아니라, 인간성에 있어야 된다. 세상이 만든 인간과 하나님이 만든 인간은 뭐가 다른가? 하나님이 만든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용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기다려 줄 수 있다. 정죄하지 않는다. 보복하지 않는다. 여러분을 아주 완연하게 다르게 만든다. 그러나 얼른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 누가 이렇게 물을 것이다. 너는 좀 이상해 뭐가 아니? 하여튼 이상해. 왜 너는 화낼 때서 화를 안 내 그리고 화 안 낼 때서 화를 내 판단 기준이 다르고 방향이 다르고 길이 다른 것이다.
 
이 길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요구하신다는 것은 여러분을 그 아들을 보내셔서 만드신 구원 메시아에게도 이렇게 선언한 것 같이 히브리서 5장 8절같이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권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 왜 순종과 온전함이 등장한가? 신인데 뭐가 부족하단 말이죠? 죄로 말미암은 사망의 자리를 경험하시는 것이다. 그가 육신으로 오신 것은 히브리서 식으로 사망을 맞보러 오신다. 사망으로 사망을 물리치러 오신다. 사망에도 들어오신다. 그러니 여러분, 어느 누구도 내가 살아있는 한, 그가 살아있는 한, 그의 운명이 끝났다고 저주하지 말란 말이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맡겨진 현실에서 여러분이 제일 어려운 것은 나는 잘하고 싶은데, 내 옆에 동료들이 자라지 않더라. 말이죠. 악착하고 거짓말을 떡 먹듯 하고, 떡을 1년에 한 번 먹나? 이 속에서 몸부림을 치면서 왜 여기다 넣으셨어요? 그걸 모르면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구라이다.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는 순교시대도 지났고 부흥시대도 경험했다. 이것은 하나의 한국 기독교의 성장 과정이다. 목숨을 걸 수 있다. 그리고 너무나 풍성하다 감동적이다 이상 만족할 수 없다. 그래서 다음에 어디로 가야 돼요? 철이 들어야 되는 거야. 철이 들면 가장 중요하게 뭐가 있냐? 세상 짐을 같이 쳐야 된다. 이웃의 짐을 져야 된다. 저들은 모른다.
 
아버지와 저들을 사하소서! 는 멋있는 대사가 아니라, 실제로 죽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특별하다는 걸 안다. 하나님이 이런 방법으로 일하신다는 사실, 예수님 세대에 태어나지 못한 것, 제일 억울해. 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예수가 걸으신 길과 그 존재를 잊고 있다. 예수님을 아무도 못 알아봤듯이 세상은 우리를 못 알아본다. 예수는 왜 믿어? 그딴 소리나 하죠. 그러면 이렇게 대답하세요. 넌 몰라도 돼. 그 말할 때가 제일 좋다. 그러면 여러분이 신앙생활이 현실에 이어진다. 현실에 왜 이 지지고 볶는 걸 반복해야 되나? 왜 하나님은 내게 이런 환경과 조건을 요구하시는가? 해서 여러분이 거기에서 변한다. 어떻게 변하는가? 알고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모르는 데서 아는 것이 한 걸음이라면 그 아는 것을 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된다. 실력은 어떻게 생기는가? 훈련을 해야 된다. 하고 싶은데 안 된다. 물어본 적 있는가? 왜? 나는 안 돼요? 내 정성이 부족한 게 아니라 실력이 모자라니 내일 다시 하자 다시 하자!! 다시 하자 언제쯤 처리되나요? 제 경험엔 환갑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수많은 좌절과 수많은 자책감에 사로잡히는 날들을 지나가야 처리된다. 안목이 생기며 분별이 생기며 선택할 수 있으며 책임질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기서 더 가자 그러신다. 그 영광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종말, 천국은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모든 인류를 예수를 보내서 구원한 것 같이 우리를 보내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기르시며, 우리를 통하여 영혼들을 부르시며, 천국에 백성들을 만들어내신다는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이다. 역사와 인생의 주인의 동반자가 된다. 이를 기억하여 여러분의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현실을 살아내는 그 아무것도 아닌 습관 같은, 개념 같은 그 나날들이 여러분을 만든다는 것 여러분의 그 분노와 원망과 그 절망들이 그게 우리에게는 한 단계씩 높아지는 과정이라고 이해하시는 하나님의 뜻깊은 그 아들을 보내신 사람이 여러분들의 생애에서 다시 꽃피는 귀한 증거들을 기적들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란다.
 
♣요약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지금 일하고 계시듯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녀들은 저희임을 알아서 복되고 명예롭고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기적과 은혜의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고통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실패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영광의 찬송이 되고 세상이 상상하지 못하는 자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인류의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증거가 되는 인생으로 성실하고 신실하고 충성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역사적 신앙관을 가져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찬양하고 있다. 성부는 태초에 인간에 대한 구원 계획을 세우시고 성도들을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끝없는 사랑의 아버지로서 우리들을 향한 변함없는 도우심과 인치 심을 인하여 찬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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