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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0월 22일)
제목: "간절한 기도, 응답 된다"
말씀: 야고보서 5:15~18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금동훈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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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5:15~18,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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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간에 우리 특사의 은혜와 영광과 기름 부음이 지금 이 시간도 그대로 이어질 줄 확신합니다. 이번 특새를 통하여 우리가 모든 묶인 것, 매인 것들이 풀어지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참 놀라운 거는 새벽 3시 50분만 돼도 본당이 꽉 차는 거예요. 옛날보다도 더 본당 별관들이 더 빨리 차는 것 같고, 그리고 보니까 이번 특사에는 젊은이들이 굉장히 많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의 그 특새가 이번에 20일차인데 아주 청년 특사가 되었어요. 제가 얘기 들어보니까 마지막 날에는 지방에서 고등학생들이 올라와요. 고등학생들이 올라와가지고 밤새 고속버스를 타고 가지고 여기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내려갔고요. 제가 아직 그 아이들 이름을 잘 모르는데 하여튼 혹시 영상을 보면 오늘 이 얘기 들으면 차비 받으러 저한테 오세요. 그래 하고 싶어요. 하고 싶고 너무나 감사한 시간이고 많은 성도들이 전력투구해서 전심으로 기도하는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시면 우리가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해 우리가 기도를 축적하면 하나님은 응답을 축적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우리 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얘기할 때, 우리 교회의 본질은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는데 그 본질을 위하여 우리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기도하는 성도, 기도하는 교회가 돼야 하는 것이에요. 기도에 대해서 말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실체를 경험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기도 응답을 아까워하시거나 하나님은 기도 응답을 이렇게 안 하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세요.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은 늘 열려 계세요. 제 얘기가 아니라 구약에는 다윗이 여겨보라고 표현한 다윗의 고백을 보겠습니다. 다윗이 시편 65편 2절에 시작

*시편 65:2,
2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우리가 많은 기도가 있는데 이번 특사에 우리 크리스찬 소니아 목사님이 이런 어려운 마음에 우리 소원을 했어요. 뭐라고 했냐면 대한민국은 유럽하고 6시간 7시간 차이가 있거든요. 우리가 더 빠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새벽 3시는 유럽의 밤이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사랑의 교회 오늘이 유럽의 내일이다 그랬어요. 이게 이해가 될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그 말을 듣고 우리가 굉장히 어떤 책임과 사명을 느꼈어요. 야, 한국교회와 사랑의 교회에 오늘이 유럽 교회 유럽에 발전하고 부응하는 교회 내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거 너무 감사한 일 아니에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모두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기도하는 성도들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실체를 경험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사도 요한은 이 주님의 심정을 깨닫고 요한일서 5장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하면,

*요한일서 5:14~15,
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구약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신약은 우리가 기도에 대한 담대함을 가지고 그의 뜻대로 구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 다시 한 번 우리가 하나님의 뭐 대로요? 뜻대로 기도하면 하나님 뭐 하신다고요? 들으신다. 그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가 어떤 기도인가 오늘 대표적으로 야고보서 5장에 나와 있어요.

*야고보고 5:16,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그리고 야고보서 이 말씀은 그 시대의 유대 율법주의라든지 그다음에 유대의 어떤 종교인들 바리새인들 이런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의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 그 고대 근동 1세기에 오늘 이 말씀은요 혁명적인 말씀이었어요. 사람의 생각과 이 사고 방식을 깨뜨리는 말씀이었어요. 그러면서 그의 뜻대로 기도하면 들으신다고 그랬는데 그의 뜻이 뭔가 오늘 야고보서 5장 15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야고보서 5장 15,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한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한다. 그랬어요. 우리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데 어떤 기도 하냐,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물론 이렇게 치유 받는 이런 것도 뜻도 있지만 전인적인 구원이에요. 샬롬의 구원이에요. 믿음의 기도는 우리를 뭐 하신다? 구원하신다. 근데 16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그랬어요. 얘가 중요한 거예요. 믿음의 기도가 구원이 되는데 좀 더 들어가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그랬어요. 그럼 무엇이 의인의 간구인가? 무엇이 의인인가 어떻게 되면 의인인가? 그 당시에 의인을 표상한 의인의 어떤 상징은 뭐냐 하면,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이었어요. 그것이 마치 의인인 것 같았어요. 겉으로 보면 거룩하고 겉으로 보면 뭐 다 하는 것 같고 겉으로 보면 멋있고 다 이런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주님은 그 속을 보셨어요. 아니야, 너희들은 의인이 아니야. 너희들은 회칠한 무덤이야. 아니야, 너희들은 가짜야, 아니야. 의인이 뭐냐?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선행이 나는 그것은 하나의 열매이고 의인의 조건이 뭐냐 의인의 조건은 예수님과의 관계가 의인의 조건이 충족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과의 관계가 어떤가? 예수님은 어떻게 아는가? 예수님을 아는 것이 이게 진리인데 그래서 의의 마지막 핵심과 카이로스는 뭐냐 하면 의의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세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이세요. 그래서 이 내용들이 너무나 간절해. 이것이 야고보가 깨달은 진리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의 마태복음 5장에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그러면 우리가 의회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 마음이 가난한 것 같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 우리가 특새 한 주간 동안 정말 주님 앞에 마음을 다해 기도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영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에 주님 앞에 나온 것이에요.내가 다 있다 그러고 내가 다 거룩하다 그러고 내가 모든 걸 다 가졌다고 그러면 어떻게 마음이 가난할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마태복음 5장 3절에 마음이 가난한 자는 뭐예요? 복이 있다고 그랬어.

*마태복음 5:3~6,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것이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오늘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우리가 심령이 가난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러니 우리의 심령이 가난한 것이 어떻게 표현되느냐 물론 그 일이 여기 다 있지만 6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 하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그랬어요. 여러분 우리가 성산을 앞에 놓고 있어. 그리스도의 떡과 피를 앞에 놓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긴 설교를 못합니다. 제가 오늘 평상시에는 설교를 못합니다. 그렇지만 하나 깨달아야 할 것이어요. 오늘 이 시간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시간이 돼야 하는 것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의에 관해서 저와 여러분이 마음이 가난해져야 되는 것이에요. 마음이 가난해지면 의에 주리고 목마를 수가 있는 것이에요.

I. 기도하는 사람, 의인의 기도가 중요하다.
-여러분 부자라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있어요. 세상 적으로 다 갖췄다는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아는 거에 대해서는 참 정말 사모하면서 최선을 다하여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있어요. 근데 물론 대체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마음이 가난해요.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가난해도 갑 질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공산당들이에요. 인민위원회 만들어 가지고 있는 자를 다 빼앗아 먹고 말이죠. 늘 마음이 늘 불평 있고 늘 대모하고 늘 갑 질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마음이 가난한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사랑의 교회는, 우리 한국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믿고 참된 리더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마음이 가난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다시 겉으로 드러나는 것 거룩하게 보이는 그건 하나의 열매예요. 그게 조건은 아니에요. 그래서 주님은 뭐로 구원받지 못한다. 선행으로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에요. 이 의는 도덕적 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마음이 가난한 그래서 최고의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어떻게 배부를 것이다 그랬어요.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기념하면서 그리스도를 먹고, 그리스도를 마시고, 그리스도를 깨달으면 이것이 우리에게 참 만족이 되고 이것이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인데 예수님 참된 의 대신 완벽한 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것이에요. 이번 특새 하면서 우리가 많은 걸 깨달았잖아요. 좋은 것은 뭐예요?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는 거라고 그랬어요. 맞습니까? 더 좋은 것은 뭐라고 그랬어요?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는 것이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가장 좋은 것은 뭐예요? 내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것이에요. 오늘 이 풍성한 은혜가 이 성찬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첫 번째 의인의 기도가 필요하다. 그다음 두 번째 기도하는 사람 의회의 기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엠 바운즈 같은 사람은 기도에 대해서 얘기할 때,

“우리가 새로운 방법과 기발한 계획을 통해 일하려 하는 동안, 하나님은 사람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일하신다. 그들은 어떤 사람일까? 기도의 사람이며 기도에 능한 사람이다. 성령님은 기도의 사람들을 위해 기름 부으셔서 일하신다.” -E.M 바운스-

사람들은 더 나은 방법 기가 막힌 아이디어 무슨 계획 이걸 사람들이 많이 찾지만 아니야.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계셔. 어떤 사람인가? 기도하는 이 의인의 기도를 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주님이 찾고 계신다고 그랬어요. 오늘 우리가 이 성찬에 참여하며 바로 그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의인의 기도에 대해서 눈을 떴다면 그러니까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 겉으로 볼 때 의인 같았는데 사실은 그 속은 회칠한 무덤이고 사실은 종교인들이었어요. 여러분과 제가 예수님을 오래 믿을수록 제발 종교인이 되면 안 되는 것이 껍데기만 남을 크리스천이 되면 안 되는 것이에요. 우리 속이 의인 대신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묻고 싶어 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하나님의 백성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돼야만 하는 것이에요. 그럼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오늘 엘리야를 통해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는 건 뭐냐 하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적이 같다고 그랬어요.

그렇죠? 엘리야도 열 받았어요. 아니 엘리야가 열 받은 거 기억하십니까? 이사벨 때문에 열받아가지고 하나님 나 죽여 달라고 했잖아요. 같이 열 받고 같이 화내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엘리야의 의인 됨은 어디서 표현이 되는가? 그는 정말 그 백성들이 정말 황폐하고 메마르고 백성들이 고통당하는 거, 그걸 엘리아가 못 보는 거예요.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으니까 너무 기가 막힌 거예요. 그러니까 이 백성 한번 먹여 살려보자. 그러면서 엘리아의 마음속에 백성을 위한 소위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간절한 심정을 가지고 애통하는 심정을 가지고 주님을 향한 심정을 가지고 주여 이 백성을 살려주시옵소서. 기도를 하는데도 기도를 하는데도 처음 응답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18절을 다시 기도했다.

*야고보서 5:18,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엘리야가 어떻게 기도합니까? 그 무릎 사이에 무릎 사이에 머리를 넣고 거의 요가 수준으로 저도 이렇게 한번 해봤는데 쉽지가 않아요. 제가 지난 수요일 날 청계산 산상기도에 올라갔고 제가 산에서 기도하는 내가 돌 큰 돌이 있어요. 그 위에 기도를 하다가 이래 하다가 밑에 굴러 떨어질 뻔했어요. 제가 쉬운 거 아니에요 정말 쉬운 거 아니에요. 간절한 그래서 엘리아의 소위 주님을 깨달은 하나님을 깨달은 의인된 엘리아의 기도는 뭐로 표출되는가? 간절함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에요.

II. 의인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두 번째 우리가 생각할 것은 우리에게는 의인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너무너무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오늘 성찬을 앞에 놓고 주님 오늘 우리 온 성도들 예외 없이 간절한 기도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엘리야가 했던 그 조각만한 그 응답을 올 때까지 정말 주님 앞에 간절한 기도 한국교회는 지나간 우리 140년 한국 교회사에 이 간절한 기도의 자본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가장 간절한 기도를 누가 하셨어요? 예수님께서 하셨죠.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는지 모세관이 터져가지고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될 정도로 간절하게 기도하신 것이에요. 우리가 이번 특새 하면서 제가 보니까 성도들 참으로 간절하게 기도하셨어요. 그 간절한 기도가 주님 앞에 올라갈 때 주님은 응답의 축적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성경의 간절한 기도를 앞에 놓고 기도할 때에, 제일 그래도 와 닿는 건 딱 와 닿는 사람이 한나의 기도도 있고, 구약에 다 있지만 신약의 마태복음 15장에 수로보니게 족속의 여인의 기도 이방인의 기도 그 기도가 제가 생각이나 여러분들 기억하시죠? 가만 보니까, 예수님이 그 딸의 병을 치유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그 이방인이 뭐가 대단하였어요. 그 이방인이 무슨 의가 있겠어요?

그런데 의의 핵심은 누가 의라고요? 예수님이 의 바리새인처럼 무슨 종교 행위를 잘해가지고 이가 아니고 예수님이 의에 킨 거예요. 그 예수님을 깨닫고 예수님께 나와 가지고 선생님 주님, 우리 딸을 구원해달라고 근데 주님이 겉으로 볼 때는 매몰차게 대답하신 것 같이 그렇게 보여 지는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 떡을 이방인에게 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다. 나는 이방인을 해 오지 않았다. 주님께서 진짜 그런 게 아니라, 그 여인을 시험하시려고 아니 그 여인에게 한번 믿음을 한번 테스트해보려고 근데 그 여인이 뭐라고 그랬어요? 개들도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개처럼 취급했거든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뭐예요 부스러기를 보나이다. 주님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기가 막혔어요. 마태복음 15장 주님 말씀하신 한번 들어보세요.

*마태복음 15:28,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믿음 테스트하는데 그 믿음이 크다고 하셨어요. 일반 사람들 같으면 그 정도 주님의 처음 이거 너희 줄 수 없다.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이방인에게 던지는 마땅하지 않다. 그랬을 때 웬만하면 다 도망가요. 열받아가지고 그런데 아니에요. 주님 이방인들 우리 개들도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를 먹는다. 그러니까 주님으로 오세요. 너의 믿음이 크다. Your face make double!! 주님이 보시기에, 믿음이 남보다 더블이 된 거예요. 저는 묵상을 하는데 아니 어떻게 이 여인은 이렇게 믿음이 더블이 될 수가 있겠는가 그 딸에 대한 간절함이 너무 크니까 자기 딸에 대한 사랑이 너무 크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정말 병든 딸을 향한 사랑이 너무 크니까, 이 간절하고 사랑하는 이 심정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메이크 유얼 페이스 더블, 메이크 유얼 페이스 더블, 기도가 정말 사랑이, 의인의 기도는, 이와 같이 간절함과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에요.

저는 내일부터 사랑의 교회가 7천여 명의 목사님들과 함께 사역자들과 함께, 5천여 교회, 7천여 명의 사역자들과 함께 내일 이 이 본당에 꽉 채워질 것입니다. 별관까지요. 그런데 우리가 뭘 할 수가 있겠냐고? 사랑의 교회가 물론 건물이 있고, 그다음에 우리가 여러 가지 할 수 있지만요. 이거는 그냥 껍데기예요. 여러분 중요한 것은 이 여인의 심정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에요. 중요한 것은 이 엘리아의 심정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에요. 이 3년 반 동안 비오고 자는 이 황폐함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교회가 황폐한 것이 있다면 이걸 어떻게 할 것인가? 저와 여러분과 우리 자녀들의 황폐함을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간절한 엄마의 심정을 가지고, 엄마의 심정을 가지고,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 우리 자녀를 주님 이 병을 치유하여 주십시오.

그러니까 의인의 기도 기도인데 간절함의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에요. 다시 우리가 가진 이 모든 것들은 껍데기에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심령인 줄로 믿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일이 많도록 우리가 의 되신 주님을 오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면서, 가장 중요한 예수님을 우리의 심정에 깨달으면서, 그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이 민족과 이 시대와 여러분들과 여러분 가정과 자녀를 향한 그런 마음의 소원이 주님 앞에서 성찬을 통하여 확인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가난 달동네에 있었기 때문에 그 주위에 제가 초등학교 그 근처에 고아원에 있었어요. 내가 고아원 친구들 그리고 고아원에 한 번 가면요. 그 부모가 없는 아이들의 그 애절한 눈빛을 잊을 수가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거예요. 엄마가 없으니까, 아빠가 없으니까, 아마 누군가 지금 고아를 위하여 일하는 여러 어른들 그동안 고아를 한 그런 분들은 아마 그 심정을 저 어떻게 채워주나? 저 어떻게 살려주는가? 저는 어릴 때 초등학교 5학년쯤 돼가지고 제가 학교에서 이렇게 돌아오면, 돌아오면 12월달 쯤 이제 제 초겨울쯤 돼서 돌아오면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이제 목회자니까 신방을 가시고 아무도 없어요.

제가 장남이었고 아무도 없고 그 가난한 개척교회 옆에 조그마한 부엌이 하나 있었는데 부엌 위에 선반 위에 보리쌀 삶은 것이 좀 있었어요. 보리쌀 삶은 걸 배고프니까 좀 먹다가 제가 위가 약해가지고 막 토하고 막 이러고 있는데 우리 어머니가 신방 갔다 오셔가지고 내 그 모습을 봤어요. 우리 어머니는 뭐 돈도 없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내가 장남인데 우리 어머니하고 저하고 22살 차이였어요. 내가 11살 12살 때, 우리 어머니는 34살 우리 어머니가 눈물 흘리면서 가난해 먹을 것이 없어 자식은 토하고 있어요. 우리 어머니가 막 쫓아다니는 거에요. 내가 그래서 우리 어머니 2년 전에 돌아가셨을 때, 내가 내 심정이 오는 것이 너무 많았어요. 막 쫓아다니고 뭐 좀 먹을 거 없나 뭐 좀 살릴 거 없나? 뭐 좀 찾아갖고 우리 자식 좀 먹을 것이 없나 나는 거기서 이 정말 주님을 향한 주님을 깨닫는 거에요. 어머니의 심정이 뭔가? 이게 목자의 심정이 뭔가 시대를 내가 목자의 심정이 뭔가? 가난하지만 자식을 많이 가진 엄마의 심정이, 가난해 자식이 많아요. 근데 돈이 없어. 근데 엄마야 어떡할 거야 먹을 것도 할 것도 없고, 돈도 없지만 그러나 이 자식을 위해서는 내가 뭐라도 해줄 만한 그런 마음을 갖는 거예요. 우리 어머님이 그냥 막 머리털이라도 잘라주고 손으로 빼주고 싶은 그런 마음을 내가 느끼는 거예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내일 7천여 명의 목사님들을 섬겨야 됩니다. 근데 우리가 뭐 대단합니까? 우리가 물론 특실하고 대단하죠. 우리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 이거 다 껍데기예요. 이 건물 이런 것들은 우리의 심정이 중요한 것이에요. 우리의 심정이 어떻게 되는 거 우리가 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좀 어떻게 할 거 없나? 제가 2033 50 비전을 얘기했을 때, 많은 분들이 이거 되겠나 하고 뭐 이렇게 좀 이렇게 한 분이 있을지 몰라요. 여러분 우리가 실력 있고 능력 있고 하면 그 누구나 다 아는 거예요. 근데 가난해 할 게 없어 부족해. 그렇지만 자식을 많이 가진 엄마의 심정을 가지고, 우리가 이 역할을 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에요. 여러분 생각해 보시라고 자식은 누가 낳아요? 저 간호사 똑똑한 그 산부인과 최고의 지식을 가진 그런 간호사가 자식을 낳는 것이 아니에요.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가 초산하는 엄마가 자식을 낳는 것이에요. 자식은 누가 키워야 대학 교수가 키우는 게 아니에요. 아버지가 뭘 모르는 아버지가 키우는 것이에요. 2033 50 비전은 2033년까지 주님 50%가 예수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민족, 다른 건 여기에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어요.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 복음주의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자식들 다음 세대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에요. 보면 힘들어요. 가난해요. 줄 거 없어요. 부족해요. 그런데 우리는 심정을 갖고 있는 것이에요. 근데 그 심정은 뭐로 표현되는 것이에요? 엘리아의 기도로, 수르본 족속의 기도로, 그래서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았지만 엘리야가 이 심정 가졌을 때,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오늘 이 진짜 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실 때마다 여러분 진정 영적으로 배부른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무슨 실력으로 무슨 겉으로 드러나고 일하는 거 아니에요. 이런 목자의 심정과 가난하지만 자식을 많이 가진 엄마의 심정과 그리고 어떡하든지, 어떡하든지 한 번 내 자식 한번 살려봐야 되겠다. 병든 내 딸 한번 살려봐야 되겠다는 그 사랑의 마음이 간절한 마음이, 가난한 마음이 하나님께서 일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16편에 보면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시편 116:1-2,
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2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오늘 이 마음 가지고 성찬에 참여하고 주님께 큰 영광으로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찬송 가운데 의의 줄이고 목이 마르니 성령의 기름 부어주옵소서. 의의 줄이고 마음이 가난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쳐주시는 주님 하늘의 아버지 날 주관하여 주옵소서. 이 찬송하시면서 성찬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6:53-58,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요약
담임 목사님의 어린 시절의 믿음의 간증과 함께, 부모라면 여러 자식을 살리려는 그 애절한 마음 같이, 무엇이 없어도 엄마의 마음처럼, 아버지가 키우시고 살리심을 믿고 사랑과 은혜로 지금 우리가 내일의 현장에서 실천되어야 함을 깨달아서 시대를 향한 애절하고 피 끓는 목자의 심정으로 오시는 목사님들을 아름답고 친절하게 그리고 마음을 담아 섬겨야 한다. 정성을 다 함을 가지고 주님께 엎드려서 준비된 것들을 살피고 헌신해야 한다. 우리교회가 5천 교회, 7천 목회자와 함께 제4의 부흥을 위해 합심하고 전력투구로 섬기기를 간절히 간구한다.
-여기서 주의깊게 살펴 보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병을 낫게 하는 것은 기름을 바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함에 있다는 사실이다. 병든 자를 위한 기도는 살아있는 믿음에서 시작해야 하며 또 계속해서 이 믿음을 가지고 해야 할 것이다. 또 기도를 하는 사람과 기도를 받는 사람 모두가 확실한 믿음을 견지해야 한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우리나 혹 다른 사람이 병이 들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죄를 사하여 줄 것을 구하는 일이다. 죄는 병의 근원이며 동시에 찌르는 가시이기도 하다. 만일 죄를 사함 받으면, 그 긍휼 속에서 고통이 사라지거나 혹 그 고통이 지속된다 해도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고백은 교인 상호간에 하는 것을 말한다. 교인 상호간에 해를 입혔을 때 서로 자기 책임을 고백하고 회개하도록 서로 권고해 주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가 고백하는 일이 서로 다툰 친구와 화해하는 일에, 또 어떤 이에게 잘못한 일에 대한 배상으로 그리고 우리의 양심에 가책받은 일로부터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를 취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의 잘못을 고백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때로 기독교인들이 서로 자신의 연약함과 결점을 고백하는 일은 유사하다. 또한 이렇게 자신의 약점과 잘못을 서로 고백하는 자들은 서로를 위하여 기도를 해 주어야만 한다. 기도하는 자는 의로운 사람이어야 한다. 또 기도 자체도 열렬하고 내용이 충실하며 정성이 깃들여진 기도이어야 한다. 이러한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즉 우리 자신에게 유익하며 우리 이웃에게도 유익을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불타고 있었고 또 매우 위대한 사람이었지만 그에게도 결점은 있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의 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엘리야는 솔직히 기도했다. 원문에는 '간절히 기도했다'고 되어있다. 우리도 기도할 때 단순히 무어라고 말로만 외어대는 것은 기도로서 불충분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엘리야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셔서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셨다. 이같이 기도의 능력을 기록한 것은 평범한 그리스도인들라도 열심히 그리고 항상 기도해야 함을 권고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기적으로 응답하시지는 않을지 몰라도 풍성한 은혜로써 응답하시리라는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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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10월 16일 (817)
1. 기업이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경영 실적을 발표한 상황을 뜻하는 말은?
① 베어 스티프닝
어닝 서프라이즈
③ 프로젝트 파이낸싱
④ 스태그플레이션
2. 물가가 계속 상승하고 있지만 상승폭은 점차 둔화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은?
① 하이퍼인플레이션 ② 인플레이션 디스인플레이션 ④ 디플레이션
3. 이달 초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중동 지역 정세의 불확실성을 높인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는?
하마스 ② 유로존
③ 어나니머스 ④ 데카콘
4. 주가가 크게 올라 투자자에게 놀라운 수익률을 안겨다준 종목을 뜻하는 말은?
① 자산효과 ② 황금주
산타랠리 ④ 텐배거
5.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 수립 및 집행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화폐 발행도 맡고 있는 기관은?
① 기획재정부
②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④ 세계은행
6. ‘매파’라 불리는 통화정책의 방향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① 물가안정 중시
② 인플레이션 파이터
③ 긴축 선호
완화 선호
7. ‘D1’ ‘D2’ ‘D3’는 무엇과 관련된 경제지표일까?
① 가계빚 나랏빚
③ 노동유연성 ④ 양성평등
8. ‘M1’ ‘M2’ ‘Lf’는 무엇과 관련된 경제지표일까?
통화량 ② 주택보급률
③ 출산율 ④ 외국인직접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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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고금리·고물가·고환율 '3고(苦)' 또 불어닥친 경제 한파.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습니다. 이제 곧 단풍 드는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겠지요. 경제에도 계절 변화와 비슷한 주기가 있습니다. 따뜻한 봄과 뜨거운 여름처럼 경제활동이 활발할 때도 있지만, 요즘 날씨처럼 차갑게 식을 때도 있습니다.
경제의 전반적 상황, 즉 ‘경제 날씨’를 경기(景氣)라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경제 날씨는 맑지 않습니다. 먹구름이 가득합니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3고(高)’가 가계와 기업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더 커졌습니다.
물론 경기는 변합니다.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합니다. 날씨가 달라지고 계절이 바뀌듯 말이죠. 이것을 경기변동 혹은 경기순환이라고 합니다. 경기가 항상 좋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호황 끝에서 불황이 찾아오고, 불황의 정도가 지나쳐 심각한 위기로 치닫기도 합니다.
경기변동은 계절의 변화처럼 피할 수 없는 것일까요. 경기변동이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과거에 경험한 경제위기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확장 → 후퇴 → 수축 → 회복 사계절처럼 경제도 순환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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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경제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년 성장하고 있습니다. 국민소득과 생활수준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간혹 경제 상황이 유난히 좋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기업이 만든 물건이 잘 팔리지 않고, 일자리를 잃는 근로자가 늘어나기도 합니다. 가계의 소비와 기업의 생산, 투자, 고용 등이 경기에 좌우됩니다. 자연에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있듯, 경기는 확장→후퇴→수축→회복을 반복합니다. 이런 경기변동은 어떤 이유로 발생하는 것일까요.
★수요 충격과 공급 충격
경제학자들은 경기변동의 원인을 크게 수요와 공급 두 가지 측면에서 찾습니다. 먼저 수요 쪽을 살펴볼까요. 지구촌 어디선가 전쟁이 일어나거나 주가, 집값 등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가정해봅시다. 미래가 불안해진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릴 것입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가 불투명하다면 투자를 늘리기 어렵습니다. 가계도, 기업도 돈을 쓰지 않으니 경제의 총수요가 줄어듭니다. 결국 경제활동 전반이 얼어붙고 일자리가 감소하는 불황이 찾아옵니다.
이 같은 수요 충격으로 인한 불황의 대표적 사례가 1930년을 전후해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를 휩쓴 대공황입니다.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니 기업들은 줄줄이 망했고, 대량 실업이 발생했습니다. 비슷한 일이 공급 쪽에서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상기후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거나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나 석유 가격이 올랐다고 합시다. 농산물, 석유 등은 상품의 원재료입니다. 즉 기업의 생산 원가가 높아진 것입니다.
원가 부담이 커진 기업은 생산을 줄입니다. 공급이 감소하는 것이죠. 공급이 감소하면 물가가 오릅니다. 소비자는 비싼 물가가 부담스러워 지갑을 닫습니다. 1970년대에 발생한 ‘오일 쇼크’가 공급 충격으로 인한 불황이었습니다. 중동 국가들이 석유 생산을 줄이자 석유 가격이 크게 올랐고, 원가 부담으로 인해 기업의 생산과 투자가 위축됐습니다.
★경기침체 해결책 논쟁
경기침체가 깊어지면 망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대량 실업이 발생해 국민 고통이 커집니다. 그래서 정부는 경기 부양책을 내놓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경기변동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경제학자 사이에 의견이 갈립니다. 어떤 경제학자는 경기가 침체될 땐 정부가 적극적으로 부양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경기 침체기엔 가계와 기업이 돈을 쓰지 않으니 정부라도 나서서 돈을 써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케인스학파’라고 불리는 경제학자들이 주로 이런 주장을 펼칩니다. 대공황 시기에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주장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에서 시작된 학파입니다.
정부의 개입이 경기변동 폭을 더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도 있습니다. 이들은 가격의 자동 조절 기능에 의해 경기변동도 자연스럽게 조절된다고 말합니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등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들이 대표적입니다.
★인간 탐욕과 경제 위기
인간의 탐욕이 경기변동 폭을 키우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경기가 좋을 때 사람들은 호황이 마치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무리하게 돈을 빌려 공장을 짓고 주식과 부동산에도 투자합니다. 그 과정에서 시장에 거품이 낍니다. 하이먼 민스키는 호황이 끝나면 돈을 빌려 투자한 사람들이 빚을 못 갚게 되고, 자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금융위기가 온다고 했습니다.
조지프 슘페터는 기업가의 혁신과 기업 간 경쟁의 결과로 경기변동을 설명했습니다. 어느 한 기업이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로 높은 이윤을 올리면 다른 기업들이 그 기업을 모방해 비슷한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경기는 호황으로 접어듭니다. 그러나 여러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이윤은 줄어들고, 그 결과 불황이 시작됩니다.
그 원인을 무엇으로 보든,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든 경기변동은 시장경제에서 피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경기를 잘 파악해야 소비·저축·투자 등을 보다 현명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날씨와 계절에 따라 새로운 옷을 준비하듯 말이죠.
NIE 포인트
1. 경기변동이란 무엇인지 설명해보자.
2. 경기변동의 원인을 수요 측면과 공급 측면으로 나눠 얘기해보자.
3. 케인스학파와 오스트리아학파의 차이점을 알아보자.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예고 없이 반복되는 경제위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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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좋지 않은 것을 불경기 혹은 경기 침체라고 합니다. 침체의 정도가 심하면 불황이라고 하죠. 때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져 ‘경제위기’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에도 실린 ‘금 모으기 운동’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님 세대에선 외환위기를 한겨울 추위보다도 혹독했던 시절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국가부도 사태’ 외환위기
외환위기는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충격과 상처를 남긴 경제위기였습니다. 당시 언론은 ‘국가부도 사태’ ‘단군 이래 최대 위기’라고 했습니다. 외환위기의 발생 과정과 원인은 설명하기가 매우 복잡합니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은행을 비롯한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이 외국 은행으로부터 빌려온 돈을 갚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런 경우 정부가 은행을 대신해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당시 정부가 갖고 있던 외환보유액은 외채를 갚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우리나라는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구제금융’이라는 명목으로 외화를 빌려와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벌어진 것이 금 모으기 운동이었습니다. 국가 부도를 맞아 국민이 아기 돌반지, 결혼반지까지 내놓으며 외채를 갚는 데 보탠 것이죠.
빚을 갚지 못한 은행들은 줄줄이 파산했고, 은행이 망하자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게 된 기업들도 쓰러졌습니다. 1998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5.1%로 곤두박질쳤고, 실업자는 149만 명으로 1년 만에 거의 100만 명이 늘었습니다. 실업이 늘고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사오정(45세 정년),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씁쓸한 신조어도 생겨났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외환위기로부터 10년 후 또 한 번의 경제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이번 위기는 미국에서 시작됐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라고 하는 미국의 저소득층 대상 대출이었습니다. 저소득층이 집을 살 때 돈을 빌려주는 대출 상품이었죠. 2007년 무렵 미국의 집값이 하락하고 빚을 못 갚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그러자 돈을 빌려준 은행들이 도산하기 시작했죠.
망하는 은행이 점점 늘어나는 가운데 2008년 9월엔 당시 미국 내 4위 투자은행이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을 신청합니다. 이후 세계적으로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고, 은행 대출이 막히면서 경제가 얼어붙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큰 여파가 미쳤습니다. 2009년 경제성장률은 0.8%로 외환위기 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2008년 상반기 90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그해 말 달러당 1500원대까지 올랐습니다.
우리나라는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을 바탕으로 수출을 늘리면서 위기의 터널을 빠져나왔습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와 한·미 통화 스와프 등이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인플레 부작용 낳은 코로나19 팬데믹
여러분이 기억하는 범위에서 경제위기에 가장 가까웠던 사건은 2020년 초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일 것입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로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국가 간 교역이 급감했습니다.
그래도 코로나19 팬데믹은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에 비하면 경제가 큰 충격을 받지 않고 넘어간 편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게 주요 국가가 금리를 대폭 내려 시장에 돈을 풀면서 또 다른 위기가 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돈 풀기 정책은 인플레이션이라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코로나19 위기가 끝나자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급등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자 각국 중앙은행은 방향을 바꿔 금리를 급격하게 올렸습니다. 물가를 잡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로 인해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커졌습니다.
현재 경제 상황은 어떨까요.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이른바 ‘3고(高)’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은 둔해지는데 물가상승률은 높습니다. 정부는 일부에서 거론되는 위기설에 대해 “근거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왔습니다. 제2의 외환위기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NIE 포인트
1. 외환위기의 발생 과정을 알아보자.
2. 우리나라가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아보자.
3. 코로나19 엔데믹 후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이유를 설명해보자.
유승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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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0월 08일)
제목: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말씀: 학개 2:4~19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김대규 부목사님, 노영훈 장로님, 김시현 학생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학개 2:4~19,
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0 다리오 왕 제이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12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
13 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14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15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
16 그 때에는 이십 고르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고르 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고르를 길으러 이른즉 이십 고르 뿐이었었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18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19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ㅡㅡㅡㅡㅡㅡ

-78년도 우리 교회가 시작할 때, 강남구 도곡동에 이는 장화가 없으면 걸을 수 없는 곳이었고 그런 비가 오면 질척거리는 그 지역에서 시작해가지고, 2023년 45년이 될 때까지 주님의 기쁨과 진리의 복음을 인도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정말 뿐만 아니라 코로나에 강을 지나면서 한국교회도 지켜주심을 찬양합니다.

우리 오늘은 기쁘고 감사드리니까 “45주년을 축하합니다. 45년을 축하드립니다.” “45주년을 축하합니다.” 서로 하세요. “Congratulations on your 45th anniversary!” 우리 교회 45주년을 축하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깨달으면요 피곤하지가 않아요. 다시 뭘 깨달으면요. 진리의 말씀...

오늘 본문 5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오는가 하면

*학개 2:5,
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게 하실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출애굽기 19:6,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도 45주년을 맞이한 저희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면 음성이 되는 것이에요. 예수님 믿은 사람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님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근데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내 뜻을 하나님 뜻이라고 의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이 있는데 ‘내가 복음’도 있어요. 그러니까 내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오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내 평생의 사명과 비전으로 알고 그 뜻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당연한 것입니다. 가장 이건 예수의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근데 이제 문제는 뭐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 이걸 하나님께서 이제 깨닫게 하시고 계속 이 사명을 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 사명을 잘 실천할 때도 있고 또 불순종할 때도 있고 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는데, 다시오 너희가 내게 내 뭐가 되라고요 제사장! 뭐가 되라고요? 거룩한 백성이 되라! 고 한마디로 말하면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복을 받으라는 거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아픈 것들이 처리되고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치유를 받아야 한다. 라는 것이에요. 우리는 겉으로 볼 때 이 땅에서 우리 한 몸 가누기도 힘들다.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주님은 오늘 이 자리에 계시는 45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우리 사랑의 교회 성도들 때문에 땅의 모든 족속의 복을 받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제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는데, 어떨 때는 순종할 때도 있고 불순종할 때도 있고 그랬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명을 실천하는 데 있어가지고 불순종을 했어요. 우상숭배와 불순종을 했어요. 그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이런 말씀을 했어요. 우상숭배하고, 세속화되고, 잘못되어 부렸을 때 하나님의 이름이 더러워졌다. 에스겔서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더러워졌다.

*에스걸 36:20,
20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어요.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모든 족속에게 복의 근원이 되라 제사장나라가 되어라. 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걸 실천 안 하니까, 요나 보고 니느웨로 가가지고 복음 전하라고 그랬는데 요나가 ‘나는 못합니다.’ 나하고 체질이 안 맞습니다. 뭐 맨날 원수 같은 그런 나를 안 봤습니다. 그래야 도망가 버리니까 니느웨로 가라고 그랬는데 다시 도망가 버리니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나님의 이름이 감추어진 것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그러는데 우리가 그걸 실천 못하면 하나님 이름이 더러워지고 하나님 이름이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구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백성답게 살도록 하나님은 항상 두 가지 사역을 통하여 우리를 도전하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를 성숙시켜주시는 것이에요. 두 가지가 뭐냐 하나는 신과 정체의 명령 하나는 ⓵선지자적 사역을 통해, 또 하나는 ⓶제사장적 사역을 통하여 제사장들 사역을 통하여 성도들을 위로하시고, 그다음에 세워주시고, 양육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무장시켜 주시고 그런데 우리가 언제까지 위로받고 언제까지 우리가 상담을 해야 됩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 일을 감당을 해야 되는데 그걸 잘못할 때는 막 뭐라고 그러시고, 채찍질도 하시고, 도전도 하시고, 깨닫기도 하시고 그래서

오늘 학개서 이 본문은 잘 아시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룹바벨 성전, 제2의 성전을 짓는데 이 제2의 성전이 겉으로 볼 때는 어마어마하게 초라해 보였어요. 왜 제1의 성전을 보았던 사람들이 볼 때는 너무나 오늘도 여기 보니까 몇 절입니까? “너희 뒤에 있는 산에 있는 나무를 가져다가 산에 있는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지으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백향목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전을 아름답게 지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뒷산에 있는 나무 가지를 짓는 이 초한 성전을 앞에 놓고 이거 뭐 되겠나? 그런 식으로 마음을 같이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소위 선지자적 사역과 제사자장 세력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아니 사랑의 교회를 주신 여러분 각자 무형 교회,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들인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편을 들어주시는 것이에요. 다시요 진리를 깨달으면 뭐 하잖아요 피곤하잖아요. 몸은 좀 피곤할지 모르지만 진리를 깨달으면 피곤하지 않아요. 주님이 먼저 우리에게 오늘 도전을 하십니다. 선지자적 도전을 하십니다. 오늘 학개서를 통해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I. 첫 번째 선지자적 사역.
-오늘 보니까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불순종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처음에 열심히 성전 건축하다가 나중에 중단돼 16년 동안 그냥 16년이 지나가 버렸어요.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성전 짓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이 땅을 향한 제사장 나라가 되고 축복의 근원이 되라. 거룩한 백성이 되라. 그걸 까먹어버리고 그냥 자기 이익에 빠져서, 자기 집은 잘 짓고, 자기 집은 뭐 이렇게 멋지게 하는데 하나님의 집은 황폐하기 방치를 한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꼴이나 선지자들이 보존하는 거야 9절은 뭘로 보존하는가? 이렇게 합니다.

*학개 1:6,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내가 불어버렸어. 농사를 지어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그리고 그나마 수확한 것을 집에 가져가도 그것을 하나님들한테 불어버리셨잖아요. 그리고 놀라운 말씀 1장 학교서 1장 6절에 놀라운 말씀에 도전하신다. 주님이 오늘 강력하게 도전을 하시는 거예요. 뭐라고 말씀하시니까 너희들은 사명 잃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 던져버리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많이 떨어질지라도 소화가 없다. 먹을지라도 배부름이 없다.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다. 사실을 받아도 이제 뒤에 그것을 구멍 뚫어진 선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아무리 벌고 애써도 결국 나중에는 다 그 지갑이 다 부러져버린다. 강력한 선지자적 도전입니다. 삶의 씨앗을 뿌리고, 먹고 마시고, 옷 입고, 돈벌이하느라고 전념하더라도 나중에 다 구멍 뚫어진 선재가 될 것이다. 우리 가 오늘 그리스도의 몸이 성전인데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무시하고 일시적으로 세상이 주는 평안과 안정과 즐거움 거기에다가 물을 보다가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좌절과 허만 남는 거예요. 아무리 인생이 아등바등 애를 쓴다 할지라도 허술함과 좌절과 불만족이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를 믿어도 주님이 주신 사명과 영광이 동떨어져 있다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 딱 신앙 양심에 비춰 가지고 이거 안 된대 안 되는데 일을 자꾸 하다 보면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감추어지고 하나님의 더러워지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인생에 구멍 뚫린 전대가 된다는 것이에요. 우리가 애쓰고 수고하고 고생하고 전력투구한데도 남는 것이 없는 거예요. 엉뚱한 데 에너지와 땀과 수고가 다 낭비되는 것입니다.

오늘 45주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마음에 선지자들 도전을 받는데, 하나님 우리의 남은 인생이 구멍 뚫린 존재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십시오. 제가 이 말씀드리면 강남에 잘 나가는 사람 얼마나 많으냐고 우리처럼 하나님 안 섬겨도 다 잘 나가고 백도 들여가면서 폼 잡고 말이죠. 잘난 사람 많아요. 그런 얘기합니다. NO! 그거는 사생아에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살라 그냥 놔두는 건데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는 것이고 그건 너무 슬퍼할 게 없다. 이 말이 히브리서 12장 8절에 이런 거 나와 있잖아요? 다 같이요.

*히브리서 12:8,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우리가 진실 된 하나님의 자녀라면 잘못된 길로 가고 있고, 그다음 우리가 하나님의 사명을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구멍이 뚫린 전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불신자들은 자기 그 세계에 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내가 어렵고, 손해를 보고 구멍 뚫린 전대가 되고 어려움을 겪으면 내가 왜 오늘 구멍 뚫린 전대가 되었나? 하나님이 나에게는 사명을 주셨는데 오늘 내가 뭐 하고 있는가? 나만 생각하다가, 여기에 나온 나만 좋은 집에 살다가, 좋게 말하면 내 생각만 하다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거 잃어버린 게 아닌 것 아닌지요? 엉뚱한데다가 에너지 다 쏟아버리고 나중에 남는 것 없는 비틀 소리가 난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어요? 21세기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사명을 위해 제대로 쓰지 못하기 때문에 전대에 구멍이 뚫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니 어디서 새어나가는지도 모르게 빠져나온 것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제가 오늘 45절을 맞이하여 제가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사명의 구멍이 나면, 전대의 구멍이 나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전대에 구멍이 나면 사명에 난 구멍부터 먼저 메꾸도록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따라 가겠습니다.

“사명의 구멍이 나면, 전대에 구멍이 난다.”
-이 45주년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하나님 주신 사명의 구멍이 난 게 있으면 회복하고, 전대의 구멍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학계서 1장 5절에 보니까

*학개 1:5,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그리고 그 학개서 1장 8절에,

*학개 1:8,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겉으로 나오는 21세기 우리 집으로 보면 겉으로는 성전 건축에 대한 얘기 같지만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분들의 인생과 사명의 집을 다시 재건축하라는 것이에요. 45주년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 중직 자들은 우리의 삶을 인생의 제 궤도에 올려놓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올바른 변화에 올려놓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제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주님은 우리의 도전만 하시니까 이제 구멍 뚫린 전주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선지자적 사역을 통하여 도전하셨다면 이제는 제사장적 사역을 위하여 주님이 말씀하시

II. 두 번째, 제사장적 사역.
-오늘 놀라운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이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주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저 19절 뒤에 오늘부터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라.

*학개 2:9b,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시대가 중요합니다. 오늘부터 45주년 이후부터 오늘 본격적인 복을 너희에게 허락하여 주시리라. 우리 하나님은 목자의 심정을 가지시고, 선지자적 도전도 아시지만 제사장적 위로도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고통당하고 억눌리고 힘겨워하는 것, 하나님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리도록 도와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지금 불순종으로 인해서 고난과 재앙 중에 있는 백성들을 하나님 일깨우시길 원합니다. 그래갖고 보면 나이 많은 선지자 학개와 젊은 선지자 스가랴를 통하여 팀웍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새로운 것을 세워주시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제가 참 오늘 본문을 1장 2장을 이제 다 공부하신 것이에요. 이제 오늘 시간을 이걸 학개를 통하여 제가 이제 저는 목표가 우리 성도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제가 사역하는 동안 다 강의하는 것이 목표예요. 그런데 오늘 학개서는 오늘 이걸로 끝이에요. 아시겠습니까? 섭섭하지만 할 수 없어요.
오늘 학개서 1장 14절 너무 제가 감사하는 구절입니다.

*학개 1:14,
14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할렐루야! 도전마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전 공사를 이제 시작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모든 백성의 마음을 뭐하게 하심에?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와와 총독과 대제사장의 마음을 모으고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마음을 모으고 이렇게 해가지고 스룹바벨의 성전을 짓는데, 모든 백성의 마음이 감동되었다. 여기 마음이란 말은 그냥 마음이 아니라, 다 해가지고 하나님의 영이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로 올라가셨다. 하나님의 영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영이 감동되었다. 이거 우리의 영이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감동되었다는 말이 전에 우리 개역에는 흥분되었다는 말씀을 들으니까 성도들의 마음이 흥분되는 거야. 성도들의 마음이 감동되는 거예요. 성도들의 마음이 녹여지는 것이에요.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그 비전을 잉태케 하신 그 비전을 듣고, 흥분되고, 감동되고 마음이 깨어나는 것이에요. 영적으로 축복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 그리고 오늘 4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는가? 오늘 4절에 보면,

*학개 2:4,
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 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의 모든 백성은 스스로 뭐예요 다시 한 번 안 된다 안 된다. 그러지 말고 살아있길 모든 중직 자들아 어떻게 할지어다. “굳세게 할지어다.” 모든 젊은이들이 어떻게 할 지어다? 다시 한 번 사랑의 교회 모두 우리 자녀들 모든 어린아이 어른까지 다시 한 번 마음을 어떻게 해요? 굳세게 할지어다. 한국교회 성도들이요. 어떻게 해요? 굳세게 할지어다. 이게 마음의 감동이 되어서 이 영적으로 잠에서 깨어나지고, 깨닫고, 굳세게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잠시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베드로도 그랬고, 오늘 본문에 5만여 명의 남은 자들도 그랬습니다. 넘어졌을 때 굳세게 라는 주님의 음성 듣고 다시 일어서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의 능력은 저 사생아들, 예수 믿지 안 믿는 사람들, 하나님 앞에 한 번도 순종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평생 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강력한 복일 것이다. 다시 사랑의 모든 영 가족들이 어떻게 할지어다. 굳세게 할지어다. 그 이유는 뭐냐? 내가 너와 함께하기 때문에, 그리고 19절 다시 한 번 뒤에

오늘부터 내가 너희 에게 뭘 주신다고요? 사람들은 이제 기복주의를 비판하는데 기복주의는 비판받는 것은 내가 앙랑거리는 것이 기복주의예요. 그런데 오늘 복을 주시는 주체가 누구세요? 하나님이세요. 그냥 굳세게 하고, 오늘부터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라. 그러면요 그냥 받는 게 좋아요. 하나님이 주신 복을 내가 받겠다고 결심을 해야 되는 것이죠. 내가 어떻게 내가 무슨, 하나님이 주시면 복이 있는 것이에요. 지난 45년 사랑의 교회를 돌아보면,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꽉 차 있어요. 수많은, 수많은 이 말로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복을 예배 때마다, 내가 성선도 집회 때마다, 제도를 할 때마다 중요한 우리의 사역 끝날 때마다, 하나님이 예배하신 놀라운 복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에요. 가정 가정마다 모든 성도들, 토 달지 말고,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세상 적으로 무슨 체면에 차리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그냥 받으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굳세게 가지고 마음을 같이하여 16년 동안 이 미루어진 건축이 그냥 함께하기 때문에 그냥 하다가 만 건축이 아니라, 오늘 이 말씀 듣고 정신 바짝 차리고 4년 만에 건축한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놀라운 말씀,

*학개 2:7,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절에 뭐라고 돼 있습니까? 이 성전이 뭐예요

*학개 2:9,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 은혜는 지금보다 더 나중에 영광이 될 줄 믿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5년 10년 뒤가 더 지금보다 더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하면 목사님들은 여건이 좋지 않고, 나의 형편이 안 되고 첫 번째 성전보다 너무 초라하고 되겠냐? 하나님은 거꾸로 말씀하시는 거에요. 여건이 좋지 못하고, 농사가 안 되어서 하나님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기 때문에, 재난이 없다는 것이에요. 사람들은 불경기이다. 불경기이다. 불경기이다. 그런 것입니다. 저는요 목회하면서 제가 지난 40여 년은 불경기가 아닌 때가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한국이 불경기이면 미국이 불경기고, 미국이 불경기면 한국이 불경이고, 하여튼 어쨌든 계속 불경기였습니다. 근데 19절에 “오늘부터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라.”

*학개 2:9,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오늘부터 시대가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시대가 오늘부터입니다. 시간들을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없었던 축복이 오늘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가장 강력한 복은 뭐냐?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그 결과 정말 놀라운 말씀 6절과 7절 놀라운 말씀 다 같이 6절 6절절 2절 함께 읽겠습니다.

*학개 2:6~7,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제가 이 45주년을 돌이켜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뭐가 진짜 복인가?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라. 하는 것이 뭐가 진짜 복인가? 그 복의 강력함과 파장이 얼마나 되는 것인가? 성경에 보면요. 하늘과 땅을 진동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나오는데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다 진동한다는 말이 여기 찬하만물이 진공한다는 말이 여러분, 이 말씀을 깨달을 때, 여러분의 삶에 피곤이 물러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모든 만물이 진동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진동한 이유가 뭔지 압니까? 모든 나라의 보배가 되니, 이게 이제 너무 중요합니다. 모든 나라의 보배가 뭐예요? 예수 그리스도!!!~ 모든 거기 각주에 보면 사모한 것들만 나옵니다. 모든 나라의 보배가 오늘 학개에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나라의 보배에요. 모든 나라에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사모하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나라에 그리고 네가 이 초라한 성전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예수 그리스도는 초라한 몸을 입고 오셨다. 그런데 예수님이 요한복음 2장 19절에

*요한복음 2:19,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한복음 2:21,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이 성전 된 자기 옥체가 예수 그리스도인 줄 믿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 학교에서 있는 모든 나라의 도배가 되신 것이 우리가 선지자들 도전도 받고 제사장들 위로도 받지만 하늘과 땅과 육지와 모든 것들이 모든 나라가 진동하리라. 오늘 이 말씀을 진동하리라. 이것이 진동되는 이유가 뭐냐 하면 모든 나라에 보배,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45년을 맞이하여 모든 나라의 보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마음에 모두가 다 한 분, 한 분 다 이걸 내 것으로 삼고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모든 나라의 보배, 그래서 이 모든 나라의 모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내 가슴에 모시고 오늘 우리가 십자가 나눠드렸지만 이걸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시게 되면, 이전에 이전 영광보다도 나아진 영광이 훨씬 크리라. 여러분들의 생애가 지금보다도 나중에 더 크리라. 이것이 오늘 오늘부터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여러분, 남들이 볼 때 초라하게 보이지만 사명으로 한 일은 작은 일이 없어요.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일은 작은 일이 없어요.

오늘 본문에 있는 것처럼 땅과 하늘과 바다와 육지를 흔드셔서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세우시는 것이에요. 사랑의 교회의 모든 비전을 하나님은 지금보다도 나중에 더 크리라. 오늘부터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여러분, 교회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45년을 돌아볼 때에 하나님의 교회가 얼마나 가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교회와 함께 이루는 내 인생의 사명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여러분, 교회만 제대로 역할을 하면 수많은 사람들의 심령을 고쳐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길거리에 방황하는 수많은 도덕적인 실패자들을 새 사람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진짜 가치 있는 것에 생을 걸고 우선순위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교회만 제대로 되면 우리 자녀들을 주님 안에서 올바로 양육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만 바로 되면 이 민족도 부강한 나라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얘기합니다. 대한민국 지난 75년의 역사를 아무리 얘기해봐야 다 쓸데없는 얘기입니다. 뭐 발전할 이유가 뭐냐 다른 거 없어요. 하나님이 한국 교회를 쓰시고 한국 교회를 통하여 주의가 복을 받은 것입니다. 제사장들 사명을 감당한 한국교회 때문에 오늘 이만큼 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 누가 그래요 지난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이 그러더라고요. 이 만연한 사회주의적인 어려움들 이 모든 이 선전선동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교회밖에 없다고, 이전의 영광이 영광보다 나중 영광이 더 크리라. 오늘 이 말씀을 받는 여러분들의 태도가 여러분들 남은 인생을 결정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려도 무관심하고 무감각하고 길이 없게 되면 그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45주년 45주년, 저는 오늘 여러분 6절 7절에 있던 모든 나라의 보배이신 예수님을 다시 한 번 여러분, 묵상 하십시오. 그 예수님 바라보면 수많은 고난과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서도 동서남북과 하늘과 땅과 우리 영역이 다 진동할 만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하면서 여러분 십자가 당을 갖고 있는데요. 제가 여러분들 가정마다 마음으로 심방하고 싶습니다. 45주년에 심방(尋訪)하고 싶은데, 제가 심방에서 꼭 해드리고 싶은 말씀을 하나 있어요. “하나님이 오늘부터 복을 주시면 가정 가정마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까지 오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가정마다 대한 것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45년을 맞이하여 수만 명의 성도들 제가 개인적으로 물리적으로 심방은 다 못하지만 여러분 가정 가정마다 가장 좋은 아직 오지 않으셨어요.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마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 것입니다.

제가 스데반을 묵상하다가 놀라운 일을 깨달았어요. 사도행전 1장 55, 56절을 보니까

*사도행전 7:55-56,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스데반이 돌을 맞는 중에도 눈을 들어보니까 눈물 나는 거예요. 하늘이 열리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이에요.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 영광과 내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어요. 하늘이 열려 인자가 하늘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깨달은 것이에요. 지금 스데반은 뭐 하고 있어요? 돌에 맞아가지고 피투성이에요. 남들이 볼 때는 완전히 끝났어요. 그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을 끝나 오늘부터 내가 복을 주면 무슨 말씀이에요? 고난 가운데서 스데반은 오늘부터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이에요. 지금 현재가 돼버린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그 하나님의 영광이 스데반은 돌에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면 그 고통보다 훨씬 큰 거예요. 그래서 스데반은 고난을 이기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 선지자적 도전, 제사장과 위로가 우리에게 있고, 우리에게 많은 것이 있습니다마는 결국은 마지막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 스데반처럼 고난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것이에요. 사랑의 교회 교우들이여, 45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온 성도들, 하나님의 영광을 지금 현재 체험하는 21세기에 스데반의 능력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고난과 이 가운데서도, 그럴 때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들이 현재가 되게 하시고, 제가 말씀드렸죠? 하나님 영광은 아무에게 주지 않으세요. 고난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집중하고 고난과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에게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은 현재가 되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한 대로 예수님이 모든 나라의 보배가 되어 주셔서 우리 모든 성도들의 보배가 되어 주셔가지고 이전의 영광보다 나중의 영광이 훨씬 더 큰 은혜가 우리 성도들 한 분, 한 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요약
우리가 사명에 구멍이 나면 전대에도 구멍이 나는 것이니 우리가 사명이 회복되어서 오늘부터 네게 복을 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최악의 불경기에도 하나님의 영광과 십자가 사명을 굳세게 하여 나중 영광이 이전의 영광보다 더 큰 인생의 놀라운 복이 되는 사명이 되어야 한다. 모든 나라의 보배가 되어 주시는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는 자로 살아서, 가정과 개인과 교회와 나라에 사명을 잘 제대로 감당하여 주님의 기쁘신 자녀로 살기를 소망해야 한다.
-학개의 이 설교는 초막절 마지막 날 행해졌는데, 어려움 가운데 추수를 마치고 예루살렘에 모여 감사하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선포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전하시기 위해 적절한 때를 이용하신다. 성전 건축의 영적 의미는ㅈ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정립한다. 성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성실과 부지런함으로 풍성한 삶을 누려야 한다. 만일 근면하지 못하여 영적 나태함에 빠진다면 더 큰 역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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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3년 10월 1일)
제목: "끝까지 잘 감당하십시다"
말씀: 디모데후서 4:9~11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유이삭 부목사님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헌금송: 포에버 혼성찬양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ㅡ
 
*디모데후서 4:9~11,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ㅡㅡㅡㅡㅡㅡ

-오늘 아침 할렐루야입니다. 왜 할렐루야인지는 설명을 더 안 하겠습니다. 우선 우리 찬양대가 ‘아름다운 동산 주님의 동산’이 있는데 저 찬송은 우리 부친이 결혼식 할 때 불렀던 찬양이에요. 그러니까 70년 이상 한국교회의 영광스러운 찬양이었는데 참 명절에 부를 수 있는 그런 찬양인데, 여러분 가정 가정마다 주님의 아름다운 동산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이 주일 예배에 정말 사모에 나오셨잖아요. 많은 분들이 지금 지방에 내려가셔서 예배를 드리시는데 한국교회 5만여 교회 전체가 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동산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또 역으로 이때 가족들하고 같이 오셔서 지방에서 오신 분들 가운데요. 같이 예배드리는 분들은 주님의 치유와 위로와 능력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번 명절 기간에 저희 교회는 많은 상을 당했어요. 많은 어려움 토로하신 많이 계시는데 어쨌든 우리가 주님의 부름 받는 그날까지 모든 성도들은 오늘 우리가 96장의 귀한 찬송을 고백했잖아요.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뭐에요? 위로, 없는 자의 뭐에 풍성, 눈 먼 자의 뭐에 빛이 되시고, 벌써 잊어버리셨습니까? 눈은 자의 빛이 되시고, 근데 고마운 거는 여러분들 오늘 찬양대 찬양하고 나니까 아멘 소리가 지난번보다 더 퍼센티지가 올라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까먹은 분들도 계세요. 그러니까 이 진리가 있어도 우리가 순종을 해야 내 것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 내 것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눈 먼 자의 빛이 되시고 없는 자의 풍성이 되시고 우는 자의 위로가 되시고 특별히 병든 자에 뭐가 됩니까? 고침이 되시고 수술이 있는 분들 치유가 필요한 분들 오늘 진정한 치유를 지금부터 경험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저는 잠깐 회복을 위한 부흥 시리즈를 잠깐 멈추고 오늘은 명절이기 때문에 평소에 제가 담고 있는 좀 우리 교우들이 평소에 우리가 다시 한 번 확인해야 될 그런 내용들을 좀 같이 오늘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명절에 가시면 같이 우리 가족들끼리 대화를 하다 보면 이분은 지금 신앙이 요즘 참 프레쉬 하구나. 또 계속 이렇게 좀 신앙이 좀 뜨거워져 있구나! 이제 그런 신앙을 뭐라고 하면 새싹 신앙이다. 싹이 잘 났다. 이렇게 근데 어떤 신앙은 또 예수 믿다가 시험 들어가지고 인간관계나 또 여러 가지,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기 신념도 안 맞는 것 같고 자기 생각에도 안 맞는 것 같고 이래가지고 시험 들어가지고 신앙이 시들시들한 신앙도 있어요. 근데 또 어떤 신앙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한 결 같이 푸르름을 간직하는 상록수 신앙이 있어요. 오늘 저와 여러분은 처음과 끝이 동일한 시종일관하는 한결같은 양은 냄비 있잖아요. 금방 뜨거워졌다. 금방 이게 아니고 어벤다운도 아니고 한결같은 신앙 유지할 수 있도록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확고한 믿음의 토대를 형성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잘 아시는 대로 오늘 본문에 보니까 바울 사도가 바울 사도가 거의 생애 마지막 때까지 마지막 중에 마지막 디모데후서 4장은 마지막 중에 마지막 유언이고, 또 오늘 본문은 그 마지막 가운데 또 마지막 유언이에요.

바울 사도는 수많은 인생의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거치고 수많은, 수많은 질곡(桎梏)을 거치고 인생을 살아왔지만 오늘 제가 이 4장 본문 18절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한 거예요. 가슴이 뜨거워진 거 오늘 본문 18절 18절을 다 같이 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4:18,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주께서 나를 뭐예요?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바울은 그를 죽이겠다고 특공대를 조직해 가지고 40여 명이 죽이겠다고 난리를 치고, 그다음 그 한 생애가 그렇게 많이 있었지만 결국은 바울의 마지막 고백은 주께서 나를 뭐요?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나를 구원하신다. 결국 이것이 피니싱 웰 이에요. 인생 마지막 성공이다 이 말이에요. 바울처럼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한 두세 가지 교훈을 받아야 되는데, 첫째 데마를 통하여 받는 교훈이 있어요.

I. 첫째 데마를 통하여 받는 교훈이다.
-오늘 데마는 뭐라고 하냐면, 데마 본문을 보겠어요.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10절에 뭐라고 돼 있어요?

*디모데후서 4:10,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우리는 데마를 통하여 받는 교훈이 뭐냐? 데마는 시작은 좋았어요. 근데 끝이 안 좋은 거예요. 데마가 어느 정도 시장이 좋았냐 하면 골로새서 4장 또 빌립보서 1장 같은 데 보면요 바울의 골로새서 4장 보니까, 나의 동력자 마가와 데마가 너에게 무난하느라. 그렇게 바울의 동역자의 반열에 들어섰어요.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갈 정도로 그렇게 용맹했어요. 그럼 그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여러분 시작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끝이 안 좋으면 더 비참하죠? 한때 우리 신앙생활 처음 잘한다고 그러고 막 또 그러다가 근데 나중에 급전직하 대마를 보면서 그런 걸 느끼는 거예요. 마치 저 롤러코스터 저 꼭대기에 올라갔다 그대로 내려박는 그런 느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분이 아무도 없기를 바라는 거예요. 데마는 처음에 바울을 보니까 바울이 굉장했어요. 바울이 가는 곳마다 역사가 일어나고, 심지어 바울의 수금만 던져도 막 죽는 사람은 살아나고 난리가 나니까 야 세상에 이런 희한한 게 어디 있냐? 이 사람 따라가면 내가 이제 내 인생 성공이 될 것이다. 이렇게 바울을 따라가는데, 나중에 가만히 보니까 바울이 오늘 이 시점에 보니까 바울이 순교당할 것 같거든, 로마 감옥에 갇혀가지고 이제는 선교당할 것 같으니까 아이고 이 바울 따라갔다는 내 인생 종치겠구나. 이런 생각해가지고 시험이 드는 거예요. 미혹의 영이 사탄이 그를 충동질해 가지고 시험했던 것 그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다. 그래서 우리 초대교회 전성 사에 보면 데마가 대산을 끌어와서 뭐 했나 그 이방 신전에 창부가 되었다. 생각보다 훨씬 비참한 그런 결과가 일어났다. 이런 초대교회 전성사가 있어요. 우리가 뭐 이런 교회의 전상을 보면서 데마를 보면서 깨닫는 것이 뭐냐? 처음에 화려하게 시작할수록 끝이 안 좋으면 안 되고 처음에나 끝이 동일한 축복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럼 데마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이렇게 데마가 급전직하 한때는 바울의 동역자요. 한때는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갈 정도의 동지였는데 어떻게 이리 될 수 있었을까? 가만히 따져보면 미혹의 영에 쏟고, 참 진리에 대한 눈이 어둡고 그런 거 있지만 한두 가지를 생각을 첫째는 뭐냐 하면 데마의 속사람의 능력이 없는 거예요. 우리 식으로 하면 복음을 통한 진정한 속사람의 능력이 한결같지가 않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속사람 우리가 왜 약합니까? 우리가 못 먹어서 허약합니까? 못 입어서 해약합니까? 아닙니다. 선진제국은 선진국에 가면 대통령도 햄버거 먹고 거지도 햄버거 먹습니다. 먹는 거 비슷한 거 많아요 입는 거 비싸죠. 캘리포니아 같은 데 가면 사시사철이 비슷하기 때문에 특별히 옷도 잘 입을 것도 없어요. 다 비슷비슷해요. 근데 사람의 능력과 사람의 차이는 어디서 오느냐 여러분과 제가 예수를 믿었다 복음을 믿었다 했을 때에는 늘 제가 강조하지만 어마어마한 거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의 속사람이 새롭게 된 것이에요. 우리가 우리 휴먼 빙, 우리 인생 자체가 이노 빙 우리의 속사람 자체가 완전히 트랜스 폼(transform) 된 거예요. 이전 것이 아니라 새 사람이 된 것이에요. 새 사람의 능력이에요. 데마는 한때 자기 의지와 어떤 자기 신념 가지고 이렇게 할 수는 있었지만 그의 속사람이 진정 능력 받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속사람의 능력은 어떻게 결정됩니까? 주님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결정되는 거예요.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어떻게 결정됩니까? 주님을 향한 전적 위탁의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그 전적 위탁의 능력을 끝까지 지속하느냐, 아니냐 거기에 달려 있는 것이에요. 따라서 저와 여러분의 삶의 형편 가운데서 너무 모든 것이 너무 잘 돼가지고, 내 자신만 의뢰하고, 환경만 의뢰하고, 내 상황만 의뢰해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속사람의 능력을 개발할 기회가 별로 없어요. 근데 몸이 아프다든지, 아니면 뭐 환경적으로 어렵다든, 자식이 골 때린다든지 죄송합니다. 하여튼 아니면 정말 어렵다든지 이런 것 때문에 어떻게 마음 둘 데가 없어가지고 내 인생에 내 삶에는 주님 밖에 내 삶의 유일한 위로와 능력이 없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전부입니다. 하고 주님께 전적 위탁한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 바로 속사람의 능력을 결정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세상 일이 너무너무 잘 돼가지고 주님만 저처럼 위탁할 수 없다면 그것은 속사람은 약한 것이고, 내가 좀 힘들고 어려운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니 이거 주님 없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주님께 전적 위탁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 자체가 여러분들의 속사람의 능력을 강화시켜주시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 찬송을 해도 속사람의 은혜가 있는 사람은 눈물이 펑펑 나는 거예요. 속사람이 강건하지 못한 사람은 늘 자기중심이에요. 자기중심 자아가 살아있는 것이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자아를 깨뜨리시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고 속사람의 능력을 강건하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우리 상황 속에서 모든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뢰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이 우리의 속사람의 능력이 강화되는 기회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없으면 못 사는 것이에요. ♬나는 주님만으로 참 만족을 누리네. 세상 영광 다 준데도 주님과 못 바꾸네. ~♬.

II. 둘째 데마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그 비전이 없었다.
-데마에게 뭔가 내 생애를 바쳐도 될 만큼, 내 생애 전체를 불태워도 될 만큼 더 큰 하나님이 주시는 그 비전이 없었어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없었어요. 그의 생애를 붙잡고 그의 인생의 수레를 끌고 나갈 만한 한 결 같이 흔들림 없는 큰 사명과 목표가 없었어요. 데마가 도중에 하차한 이유는 웬만한 어려움을 이겨낼 만한 더 큰 삶의 목표가 약했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더 큰 비전이 없었다는 것이에요. 세상 살다 보면 이런저런 우여곡절 우수(憂愁)사례(事例) 많이 있지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사명과 비전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난 지금도 기억 하는데, 어릴 때 우리 부친은 저한테 현아, 현이는 ‘포부의 수레’를 그리스도에게 매라. 초등학교 다닐 때, 포부의 수레가 뭔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지만 포부의 수레를 그리스도에게 바라라.

여러분의 사명과 비전과 여러분의 꿈들을 주님에게 메고 가는 평생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제가 요즘 이 아시안게임 하는 걸 제가 이 소식을 들으면서 왜 왜 저렇게 큰 감동이 있을 것인가? 아시안게임 우승했다고 해서 큰돈이 들어옵니까? 그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국가대표를 하고 올림픽 대표를 하면 사람들이 왜 가슴이 뛰는가? 그분들의 기사를 읽어보니까 그들이 개인의 이익보다도 더 큰 조국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다는 발음을 잘 해야 되겠습니다. 조국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소중하고 가치 있게 느껴진다는 것이 그래서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광스러운 경험치를 얻는 것이에요. 더 큰 자신보다도 더 큰 무엇에 사로잡힌다는 것 고귀하고 특별한 것인 거예요. 그러니까 더 큰 삶의 목표, 하나님이 주신 더 큰 비전에 사로잡혀 있으면 웬만한 어려움이 와도 흔들림이 없다 이 말이야. 6절 보세요. 오늘 본문 16절에 보니 내가 16절에 보니까 내가 처음 변명할 때 나와 함께한 자가 뭐예요? 하나도 없어.

*디모데후서 4:16,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기가 막힐 삶, 바울이 법정에서 고통을 당할 때 다 그를 버리고 떠나버렸어요. 그래도 바울은 흔들리지 않았어요. 바울의 속사람의 능력이 더 큰 비전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까, 다들 도망가도 오케이! 대신 다 버리고 도망갔지만 17절에 완전히 반대 17절에,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시면

*디모데후서 4:17,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시면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우는 사자같이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이럴 때, 저럴 때 온갖 환경을 통하여 우리를 시험하고 물어 뜯고 다 하는 거야. 그래도 시험 안 드는 이유는 바울은 더 큰 하나님의 비전에 ‘복음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렇게 하고 나니까 주께서 자기와 당신과 함께 다 하는 그것을 느끼게 되니까, 웬만한 일에도 흔들림이 없는 것이 이방인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갖고 더 큰 비전을 갖고 있으니까, 오늘 사랑의 교회 모든 제가 ‘2033, 50’ 비전을 저게 뭔가 그러지 말고 이런 내용들이 나왔을 때 여러분 기억을 하시고 여러분 가정을 이루어 가시든지 여러분들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나에게 더 큰 비전에 사로잡히라고 하시는 거구나. 내 배만 두드리다가 인생 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더 큰 비전에 사로잡히게 하시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웬만한 비전은 웬만한 어려운 환경은 그냥 툭 튀어 넘어가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16절 16절 뭐라고 되어 있어요? 내가 처음 변명할 때 나와 함께한 자가 뭐예요? 하나도 없어 변명할 때라는 것은 뭡니까? 법정에 서서 자기변호하고 말할 때에 다 버리고 도망갔어요. 그리고 그들에게 허물 돌리기를 원치 않았어요. 그 이유는 뭐냐 17절에 주께서 더 강하게 나와 함께 하여 주셨기 때문에, 그럼 내 비전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는 그 비전을 위하여 생애를 드렸기 때문에, 내가 사자의 입에서 우리가 지금 이방인의 사도가 다 될 수는 없지만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랑의 교회와 한국교회에 주신 비전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2033년이 될 때까지 이 민족의 주의 50%가 예수 믿게 하여 주십시오.

다시 말하면 북한은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에요. 한때 강남의 유행어가 있어요. 80년대, 90년도에 그때 막 우리 한국교회가 불타는 날 때, 그때 강남의 유행어가 뭔지 압니까? 아직까지 교회 안 가고 있냐? 이게 강남의 유행어였어요. 그때 그걸 누가 정말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이 비전을 가지고 다 잡았으면 우리 민족 50% 복음화 되었을 텐데,,, 속사람의 능력과 더 큰 비전에 사로잡혀가지고 여러분 우리의 삶의 모든 과정들을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III. 셋째 중간에 넘어졌으나 다시 일어나 끝이 좋은 인생이다.
-마가를 통하여 배운 것은 뭐냐? 중간에는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끝이 좋은 인생이 됐어요. 마가 요한이라고 볼 때 마가는 라틴식 이름이고 요한은 히브리식 이름이에요. 마가는 여러분 부잣집 도련님이었어요. 오순절 성령 강임 때 어디에 성령께서 역사하셨죠? 마가의 다락방이죠. 여러분 다락방에 120명이 들어가면 그 집이 큰 집입니까 작은 집입니까? 해석이 되시죠?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어디서 기도했어요? 사람들이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마가의 집에서 기도했어요. 그러니까 집이 컸기 때문에 부잣집이었기 때문에 예배와 기도 처소를 제공하는 그런 신실한 집안이었어요. 그리고 마가의 그 집안에 삼촌이 지금 생질이 마가니까 삼촌이 바나바인데 바나바 그 집안에 바나바도 부유했기 때문에 사도행전 4장에 보니까 자기 집에 집을 팔아가지고 헌금을 하는 얘기가 나와요. 그 정도로 부잣집 도련님이었어요. 그래갖고 은혜를 받아갔고 내가 바울과 함께 또 전도 여행을 해야 되겠다. 1차 전도여행을 하는데 너무 힘든 거예요.

그 당시에 무슨 뭐 ktx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비행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교통수단이 없으니까 늘 걸어 다니니까, 부잣집 도른놈이 뭐야 발톱이 다 빠지고 그다음에 뭡니까? 그다음에 진물이 나고 난리가 나니까, 이 견뎌내겠어요? 풍찬노숙하고 걸어야 되고 그래서 사도행전 13장에 보니까 너무 고생이니까 도중하차를 해버렸어요. 이 사건 때문에 잘 아시는 대로 사도행전 15장 39절에 보니까 마가를 2차 선교에 데리고 가려고 데리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 할 때 영적 거장인 바나바와 바울이 대판 싸웠어요. 제 얘기가 아니고 사도행전 15장 39절에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졌다.

*사도행전 15:39,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제 얘기가 아니고 사도행전 15장 39절에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졌다. 이 말이 됩니까? 이게 그 영적 거장들이, 마가 때문에 그 정도로 골칫거리였어요. 근데 오늘 11절에 본문 11절에 이 본문은 바울의 유언 중의 유언 최후의 유언이라고 그랬어요.
*디모데후서 4:11,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다. 전에는 마가 때문에 바나바와 바울이 대판 싸우고 있는 원인을 제공했는데 지금은 복음 사역에 너무너무 유익하다. 마가는 중간에 넘어지긴 했지만, 나중에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이 되어가지고 베드로를 따라다니면서 통역관 역할을 또 하고 그리고 그 놀라운 마가복음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복음주의에 의해서 마가복음이 없으면요. 자유주의 신학으로 넘어갈 만큼 마가복음은 강력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부사가 뭐냐 곧 즉시예요. 영어로 이미디어틀리 곧 즉시(Immediately). 날에는 자기가 비리비리하고 또 그냥 시험 들고, 중하차하고 이런 잘못된 인생을 살았는데 마가복음을 기록하면서 아니야 복음은 즉시야. 음은 바로 순종해야 돼. 그래서 마가복음 군더더기가 별로 없어요. 16장까지 있으면서 아주 확실하고 분명한 선포를 하고 있는 것이에요. 리고 더 중요한 거 이제, 중요한 거는 누가 닥터 누가 11절에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누가 함께 있다고요 누가 만나고요? 그 니까 이 누가는 시작부터 끝이 한결같은 인생이었어요. 오늘 이 일부 예배 나오신 여러분들과 저는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시종일관(始終一貫) 한결같은 시들시들하지 아니하고, 새싹 신앙부터 시작해가지고 늘 푸른 상록수 신앙의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 하는, 근데 누가가 어떻게 이렇게 처음 누가 잘 감당할 수 있었는가? 누가의 직업이 뭐라고요? 다시 누가의 직업이 뭐라고요? 의사, 의사 의사는 정치한 사람들입니다.

정치(精緻)하다는 말은 정교(精巧)하고 치밀(緻密)합니다. 정교하고 치밀하지 못하면 어떻게 수술을 하겠습니까? 어떻게 그 환자들을 고칠 수 있겠습니까? 근데 이 정치하는 사람들이 갖는 약점이 하나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전체를 못 보는 거예요. 마이크로 한 사람은 메크로가 안 되는 거예요. 또 메크로 한 사람들은 마이크로가 부족할 수 있는데 놀라운 거는 누가는요 역사학자였어요. 그래서 여러분 누가가 뭘 썼어요? 누가 복음 쓰고 누가가 또 뭘 썼어요? 사도행전을 바울이 썼어요. 제가 우리 제자 훈련할 때 그런 얘기를 합니다. 사도행전을 바울이 썼다. 그러면 나는 돌아가시고 싶다고,,, 사랑의 교회 성도들 수준에서는 사도행전을 다시 누가 썼다고요? 누가가 썼어요. 사도행전은 성경에 나타나는 역사 행전이에요. 역사적 통찰력이 막강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었어요. 그 정치하고 치밀하고 똑똑하고 섬세하고 디테일한 그 누가가 전체 역사를 메크로 하게 보고 하나님 나라 전체에 대한 눈이 열린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 나라 역사의 전체의 눈이 열린 이유가 뭘까? 제가 한번 묵묵하게 생각해 봤어요. 아마 누가는 요한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예요. 요한은 누 누가에게 아마 많은 말을 했을 거예요. 그게 요한복음을 통하여 확정된 것이니까. 그러니까 복음의 진리 누가 닥터 누가 의사는 의사이지만 정치자지만 전체를 보는 눈을 가졌는데, 그 요한이 말한 신비한 복음의 능력이 돼서 이 누가가 눈이 열려가지고 그 눈이 열려서 성령의 역사에 충만해가지고 하나님께서 누가를 쓰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역사가 충만하다고 했을 때, 누군지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러고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암송할 때 하는 것인데, 육신의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하지만 성령의 사람은 성령이 뭘 한다고요? 생각을 하는 거예요. 누가는 성령의 생각을 하니까 사도행전 1장부터 28장까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이 생긴 것이에요. 요한을 통하여 깨달은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이 뭐냐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의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신 이 말씀이 곧 뭐예요? 하나님이시더라. 그러니까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이 그리고 14절에 보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 되 우리 가운데 거하셨는데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까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되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복음적 진리와 성령의 역사에 눈을 떠가지고 성령으로 깨닫는 은혜와 진실 그래서 그 예수님이 뭐 은혜와 뭐예요?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러니까 그 누가가 깨달은 역사적 시각과 통찰력과 누가 깨달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뭘 깨달았는가? 요한이 깨달은 그 진리가 그대로 누구에게 연결이 되고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연결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태초의 말씀이 계시느라.’ 이 말씀이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시고 예수님이 천지창조에 동참하시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에 독생자의 영광이고 그 독생자의 영광의 핵심이 뭐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 그리스도가 은혜와 진리라는 것이에요. 누가는 여기에 대해서 저의 눈을 떴기 때문에, 누가복음도 마찬가지고 사도행전도 마찬가지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능력을 그 사도들의 그 어떤 그 본질을 계승을 한 것이에요. 너무 중요한 얘기인데 이 은혜는 뭡니까? 은혜는,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통한 선물이 은혜예요. 진리는 뭐예요? 이건 하나님의 뜻이에요.은혜가 선물이라면 진리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에서 우리가 눈을 열고 그 진리를 우리가 순종해야 진리가 진리 되는 것이에요. 이게 너무 중요한 거예요. 누가는 이 사실을 가지고 사도행전 전체를 쭉 써 내려가는데, 그럼 오늘날 여러분과 저는 누가를 통하여 한결같은 신앙의 진실을 가지고 시종일관의 능력을 받아야 되는데, 우리가 냄비 끓듯 왔다 갔다 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어벤다운 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너덜너덜하지 아니하고, 신앙에 시들시들하지 아니하고 한결 같은 걸 쭉 유지를 하려면 적어도 누가가 보았다. 누가 누가는 나와 함께 있느니라. 바울은 사도 끝까지 갈 수 있는 그 안복이 뭘까 오늘 누가 깨달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사도행전을 서 기록해야 우리도 같이 내 기록해 가야 된데 그게 진실이에요. 그리고 진실은 우리가 순종해야 우리 것이 되는 것이에요.

제가 이 말씀을 왜 드리느냐 하면 제가 요즘 우리나라를 가만히 보면요 진영 논리가 복음적 진실을 뛰어넘어버렸어요. 적어도 사랑의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라면 명절이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히 보면서 우리 민족의 역사 뜻으로 본 한국 역사, 그런 말이 있지만 우리는 복음과 진실로 본 한국 역사에 대해서 눈을 열어야 되는 것이 다시 진영 논리가 복음적 진실을 뛰어넘지 아니하고 복음적 진리가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 우리 한국교회를 향한 우리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복음적 진실이 뭐예요? 건국 누가 하게 하신 거예요. 독립투사들이 애를 쓰긴 했지만 그거는, 그거는 메인이 아니에요. 건국은 누가 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하신 거예요. 6 25 전쟁 누가 막아주셨어요? 저 공산당 비 진리 저것들이 내려와 남침을 했는데, 다시 누가 막아주셨어요? 인천 상륙 작전 누가 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하신 거예요. 이게 복음적 진실이에요. 그 외에 나머지들은 다 우수마발(牛溲馬勃)이에요.

여러분, 제가 말씀드렸잖아. 고려는 귀족의 나라 불교가 핵심, 이조는 사대부의 나라 양반의 나라 뭐가 핵심이에요? 유교의 핵심, 그러나 대한민국은 처음으로 백성의 나라 기독교가 정신이 된 나라인 줄 믿습니다. 이게 복음적 진실인 거예요. 그런데 내가 유튜브라든지, 한 번씩 보면요 황모모란 이상한 역사학자들이 나와는 순 거짓말들이에요. 전부 다.. 완전히 진영 논리야. 여러분들 속아 넣으면 안 돼요. 여러분 다른 거 아무리 얘기하더라도 우리나라가 건국이 안 됐으면 다 꽝이에요. 하나님이 이 민족을 건국시켜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복음적 누가는 이런 역사적 통찰력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도 복음적 진실을 얘기하고 그렇게 얘기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진영에 안 맞다고 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 교회는 그런 거 많이 없는데요. 어떤 다른 데 가보면요 이 좌파 진영 논리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얘기하면요. 얘기하면 그냥 나가버리는 거예요. 이게요. 진실이 복음적 진리가 자기 신념을 이기지 못한 거예요. 오늘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은 복음적 진리가 여러분들의 삶의 이 진영 논리를 뛰어넘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우리나라는 뭐라 뭐라 뭐라 해도 공산주의에 안 된 것이 진짜에요. 역사가들은 늘 얘기합니다. 우리 남 잘 되는 거, 우리 막 우리 왜냐하면 왜 우리는 남 잘 되는 거, 우리 속에 좋아하잖아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나라에 우리나라는 미국 같은 큰 나라들은 남 잘 되면 같이 박수 치고 같이 잘 되는데 우리는 한반도 내에서 수천 년 내려오면서 옆집에 숟가락이 뭐가 있는지 다 알기 때문에, 저거 나와 비슷한 인간인데 잘 돼 그러면 그냥 무고하고 이런 게 이런 게 역사적 명맥이 흐르는 게 많이 있어요. 그래서 유명한 얘기가 있어요. 대한민국 어떻게 공산화 안 됐나? 그게 기적이고, 우리는 다 공산주의, 공산주의 될 만한 그런 사회주의적 성향이 우리에게는 충만한 나라에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고소가 고소, 고발이 얼마나 많아요? 공산당은 선전 선동의 규제예요. 자식도 부모를 고소하는 게 그게 공산주의 흐름이에요. 문화혁명을 보세요. 과거에 북한에 침략해가지고 남한 와가지고 다 점령해가지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한번 보세요. 가족을 죽이고, 부모를 고발하고, 근데 중국은 진짜 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얼굴이 동글동글 하잖아요 중국은 그런데 그 중국이 공산화됐다. 이걸 또 기적이야 이게.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야 정말, 왜냐면 제가 이 말씀 들은 한국교회 교회 내에도 어연 논문이 너무 많고 한결같지도 못하고 우리 안나가 가난한 교회 성도들을 만든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교회 내의 좌파 세력들이, 교회 내에 이런 논리를 가지고 교회를 찌르고, 목회자가 부자가 많죠. 그래도 그 목회자를 찌르고 난리 치고 이렇게 해가지고 교회가 어려워져 가지고 교회가 어려움당한 게 너무 많다 이 말이에요. 우리는 복음적 진실에 눈이 열려가지고 여러분 진리는요 순종해야 진리가 되는 거예요. 은혜는 하나님이 주권적 역사를 주시는 것인데, 진리는 우리가 순종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 복음적 진실에 눈을 떠가지고, 여러분 공산주의 사회는 3%만 5%만 난리 쳐도 그 사회는 공산주의가 되는 거야.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은 힘이 없어요. 3% 5%가 똘똘 뭉치고 선전 선도에 능하고 그다음에 이 전투력 강화하고 이러면요 감당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유일하게 감당할 사람이 한국 교회예요. 만약 한국교회 없었으면 우리 진짜 어려워질 뻔했어요. 진짜. 그러니까 여러분 정신 바짝 차리고 나는 일부 예배에 이런 설교를 해도 아무도 안 나가는 거에 대해서 할렐루야. 감사. 아마 아마 아마 아닙니다. 주는 경우 아마 3~4부 때는 한두 번 나갈 수 있을 거야. 아마 내가 볼 때 난 지금도 선연이 기억해요. 명절이니까 이런 얘기 맙시다. 선영이 국가보안법 폐지, 그때 막 심각해졌을 때, 내가 부임한 지 얼마 안 됐어요. 한 2~3년밖에 안 돼가지고 막 힘들었을 때 교회는 불처럼 부흥하고 그랬을 때, 옥목사님이, “야 옥목사 이럴 때 교회가 바로 가야 안 되겠나?” 맞습니다.

그래서 임시당회를 소집해 가지고 우리 교회는 지금 남북이 대치된 상태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가 바로 가는 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 폐지는 우리 교회 당회가 정식으로 우리는 폐지하는 거 반대합니다. 그게 그때 우리의 결론이었어요. 그래갖고 제가 일부 예배 마치고 광고 시간에 우리 국가보안법 폐지는 지금 남북 대치된 상황에서 만약에 폐지돼가지고 공산당이 이 사람들이 막

다 작당을 해가지고 난리 치면 아무도 못 막으니까 국가보안법 폐지는 지금은 시기상조 안 된다고 하니까요. 일부는 박수를 하더라고 특별 광고 2부부터 응응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사람이 나오기 3부부터 많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 사업을 그날 제가 그 광고하고 우리 교회 한 한 20~300명 교인들을 놓쳤어요. 내가 지금도 가슴이 너무너무 아파. 한 주에, 여러분, 다시 얘기합니다. 복음적 진실이 진리가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다른 거 다 필요 다른 거 복잡한 얘기 많아요. 다 있겠지만 우리나라 건국 안 됐으면 우리나라 이미 공산화 벌써 됐어요. 아시겠어요? 사실 건국 누가 있습니까? 6.25 누가 이기게 했습니까? 지금 휴전선 저거 안 무너지는 건 누가 하시는 겁니까? 물론 국가가 애써 수고하지만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셔서 서 안 뚫린 거예요. 사랑의 교인들은 적어도 여기에 있어서는 확고하게 신념을 갖고 있어야 되는 거예요. 아멘. 여러분들이 기도하셔가지고 우리 마가처럼 회복되거나 아니면 누가처럼 끝까지, 끝까지 데마처럼 처음에는 화려하지만 중간에 나가떨어지는 그런 분들이 아무도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마지막 부분 보니까 데마, 마가, 누가 얘기하고 난 다음에, 쭉 이제 끝인사에 19절부터 브리스가와 아굴라 및 오네시보로 집안의 문을 쭉 해가지고 사람의 눈이 쭉 나오죠? 브리스길라, 아굴라 오네시보로 모든 사람들 바울의 동력 자 이름이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 영적 거상도 동지들이 없으면 영 가족이 없으면 끝까지 갈 수가 없습니다. 디모데, 누가, 마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리고 바울은 좋은 믿음의 후배를 남겨가지고 교회를 돌볼 일꾼들을 세워서 남겼습니다. 누가를 남겼고 남겼습니다. 우리 다 함께 끝까지, 지금 아시아 올림픽 하고 있는데, 올림픽 보고 잘하네. 이러지 말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나도 신앙생활의 챔피언이 돼 봐야지’.

여러분 신앙생활의 챔피언이 될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랜만에 복음적 진실이, 진리가 세상 진영 논리를 뛰어넘기를 이렇게 마음이 결심하고, 우리 누가처럼 역사적 통찰력과 성령의 능력을 의존해 가지고 승리할 수 있도록, 오래간만에 아주 옛날에 불렀던 찬양, 우리 30~40년 열심히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 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 no turning back, no turning back.~~~
주님 뜻대로 살기로 우리가 주님의 온전하시고 완벽한 뜻이 있는 거예요. 살기로 그다음 뭐예요? 노 터닝 백, 노터닝 백, 뒤돌아서지 않겠네 끝까지 가겠네. 이 찬송 흐름은 어떻습니까? 제가 1부는 엄청 좋아할 걸 제가 압니다. 근데 4부는 이 찬송 잘 모를 거예요. 이게 우리 옛날 주님 뜻대로,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도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주님 뜻대로 할 뒤돌아서지라. 뒤돌아서지 않겠네... 할렐루야. 누가 뭐라던 간에 이 역사적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는 주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약
우리가 마음 둘 곳 없는 세상에서 포부의 수레를 그리스도께 맡기고 전적 위탁하여 속사람이 강해지는 평생이 되고, 데마처럼 속사람의 능력이 허약해가지고, 마가처럼 자기만 생각하다가 세상을 사랑하여 중도에 넘어질지라도 회개하여 일어나 끝이 좋은 누가처럼 시종일관 한결 같은 역사적 통찰력과 성령의 역사와 복음적 진실에 눈을 뜬 상록수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포부의 수레를 그리스께 전적으로 매게 맡기고 날마다 주님께 전적 위탁하며 속 사람이 강해지는 자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가 함께 있어서 도움을 주기를 원했다. 그 이유로는 여러 사람이 그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렸다'고 말한다. 이 현세를 사랑하는 것은 종종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도에서 떠나는 이유가 된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떠나갔고 또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 누가는 계속해서 바울과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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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에버 설교(주후 22023년 09월 20일)
제목: "인생암호 C를 알고 온 천하에 알리자"
말씀: 고린도전서 15:1-4
설교자: 이선복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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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1-4,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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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개인 비밀번호를 갖고 있습니다. 은행 계좌나 또 카드, 집 출입문, 스마트폰 등에 각자의 개인 비밀번호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설정이 가능하고 때로 잊어버리게 될 때 변경도 가능한 것입니다.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반대로 오늘 인생 암호라고 하는 것은 개별적으로 설정과 또 변경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인생 암호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정해놓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으로 그것을 계시하여 알게 해 주시고 그 인생 암호를 온 천하 만민에게 알릴 사명을 책무를 우리에게 위임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인생 암호 C를 알게 될 때, 어떤 일이 있느냐? 인생은 B로 시작하여 D로 끝난다. 이 샤르트르의 말입니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인 이 샤르트르의 이 어록에서 제가 오늘의 설교 하나의 통찰을 얻게 됐는데요. 이 B와 D는 버스(birth) 출생 또 데스(death) 죽음 이 사이에 C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C라고 하는 인생 암호는 도대체 무엇일까? 보통 일반적으로는 초이스(choice)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라고 많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우리 인생의 근본 문제 중에 하나인 이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죠. 사망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인생 암호는 무엇일까? 질문해보는 것입니다. 이 인생 암호를 알게 될 때 나는 누구이며, 내가 어디서 봐서 어디로 가는지 내 존재의 비밀을 알게 되고 삶의 이유와 목적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인생의 방황과 공허함이 사라지게 되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밝고 소망이 충만한 죽음 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인생 암호를 모르거나 또 그것을 듣고도 거부하게 될 때는 언더 컬스(under the curse) 저주 아래에 스스로 자청하여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주 아래 평생 살다가 죽어서도 저주 아래에 있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신명기 28장 19절 말씀처럼 그렇습니다.
 
*신명기 28:19,
19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라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요한계시록 20장 15절의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20:15,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인생 암호를 모르거나 거부할 때, 참으로 이런 심각한 결과가 초래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인생 암호C가 무엇인지 관심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진지하게 가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저는 인생 암호C는 어떤 상대적인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절대적인 진리,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지고 또 인생에 근본 문제들이 해결되어지는 그런 근본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진리를 알게 되면 자유함이 있다는 것이죠.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요한복음 8:32,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를 체험하여 경험적으로 알게 될 때, 그 진리가 내 인생을 근본적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에서
 
*요한복음 8:36,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이 자유 무엇으로부터 자유를 말합니까?
-첫째는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리고 죄의 결과, 죄의 삭은 사망이요, 사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또한 최후 심판, 형벌과 괴로움과 저주로부터의 자유이죠.
-또 마귀 사탄으로부터의 자유인 것입니다.
-또한 자아, 우리 안에 있는 자아와 탐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또 공포,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인 것이죠.
 
오늘 제가 나누는 이 말씀은 영어 알파벳 A-J까지 10가지 알파벳을 통해서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나가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 먼저 A는 바로 이 아담(Adam)의 약자인 것입니다. 아담은 일반 명사로 사람이라고도 말하고 또 인류의 시조 아담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첫 사람 하나님의 형상으로 모양대로 지음 받은 사람입니다.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그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당사자, 대표자였던 것입니다. 우리 모든 전 인류를 대표한 중요한 책임자였던 것이죠. 불행스럽게도 아담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해 주신 선택권, 초이스 라이트, 선택권, 자유 의지를 오용, 잘못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그 생명의 언약을 어기고 배반의 길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반역을 하게 된 것이죠. 그 결과는 바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이고 사망에 들어온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은 우리 인생에게 어떻게 사망이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12,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언약 당사자, 대표자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그 한 사람의 불순종과 배반은 그 한 사람의 인생만 참 사망하고 저주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니라, 전 인류가 모든 사람이 함께 죄를 짓게 되고 또한 사망이 초래되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 15장 22절에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비록 살아 있지만 인생 아무를 만나지 못한 인생은 아담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사실은 죽은 상태로 태어나는 것이죠.
 
*고전 15:22,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이 A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는데요. 단수를 가르칠 때 A라는 단어를 사용하죠. 우리 인생의 단 회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직 한 번뿐인 인생 그 누구도 인생을 두 번, 세 번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한 번뿐인 인생, 속히 지나가리라.” 라고 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그 언약을 어기고 배반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운 음성으로 아담을 찾습니다. 에덴동산 수풀에 숨어 있었던 아담을 향하여 아담 가 어디 있느냐? 웨어라유(Where are you)?라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지금 거기 있느냐? 어떻게 그렇게 언약을 배반하게 되었는지, 하나님께서 아담의 그 말씀 말을 직접 듣고 싶었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 인생의 영적인 현 주소는 두 가지예요. 위아웃 갓(without God) 또는 위드 갓(with God).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이냐, 아니면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이냐, 여러분의 현재 영적인 주소는 어디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살고 계십니까? 또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와 사귄 가운데 계십니까?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이 B는 하는 단어는 버스(Birth) 출생의 약자인데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우리가 생일 때마다 축복합니다. 서로를 축복합니다. 당신의 삶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 참으로 사랑받고 행복해야 될 우리 인생인데,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한시도 멈추지 않고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튜브의 영상을 보게 되면 어느 분만실에서 산모가 아이를 출산하는데, 그 아이가 마치 로켓 미사일처럼 발사되어져서 그 분만실 창을 뚫고 날아가는 것이죠. 날아가는 순간 그 영아기에서 유아기, 또 아동기를 지나서 청소년 청년기를 점점 변모됩니다. 그러다가 장년기에 그리고 늙은 노년기에 들어가고, 마지막에 쇠약해진 모습으로 그 미사일처럼 날아가는 로켓이 어디에 들어가느냐? 공동묘지의 무덤으로 콱! 들어가는 그런 아주 흥미로운 영상이 있는데, 여러분이 유튜브에 찾아보시면 볼 수 있겠습니다. 그처럼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한시도 멈추지 않고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는
 
*야고보서 4:14,
14 내일 이를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라고 했습니다. 참 우리가 주변에 죽음을 통하여서 그렇구나! 바로 지난주까지 어제까지 보았던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고 그런 친근했던 분들이 바로 한순간 사망에 이르게 되고, 또 장례 이후에 그 모습을 도무지 다시 볼 수 없는 없어진 안개와 같은 그런 우리 인생의 허망함을 보게 되죠. 전도서 3장 1절에는
 
*전도서 3:1,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라고 했습니다. 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이 예측이 불가한 특징이 있죠. 이 출생 birth보다 더 중요한 것은 리벌스(rebirth)인 것입니다. 이 중생, 다시 거듭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느 청교도 전도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두 번 태어나면 한 번만 죽고, 한 번만 태어나면 두 번 죽는다. 라고 했습니다. 본 원스 다이 트와이스 본 트와이스 다이 원스(If you are born twice, you die only once; if you are born once, you die twice)라고 말했습니다. 참 기가 막힌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한 분 태어난 상태에 계십니까? 두 번 태어남을 여러분 경험하셨습니까? 여러분 만약에 두 번 태어나셨으면 단지 한 번만 죽게 된다는 사실이죠. 리버스 중생이라고 하는 말은 다른 말로 본 어겐(burn again)이라고 말합니다. 본 어게인, 다시 나다 본 어게인, 중생의 원래 이 성경적인 의미는 위로부터 나다 프럼 어버브(from above)라고 하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그리고 뒤에서 주님 말씀하시기를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이 니고데모가 사람이 어떻게 나이가 들어서 거듭날 수 있겠느냐고 예수님께 질문했을 때, 예수님께서 답을 주시기를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성령께서 우리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일을 하신다는 것이죠. 어떻게? 성령의 사역은 우리를 씻어주시는 사역인 것입니다. 이 물이라고 하는 것은 씻음의 의미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중생의 씻음, 성령의 새롭게 함을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 하였습니다.
 
오늘 이 중생의 씻음, 성령의 새롭게 함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각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자신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날마다 사모하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니고데모에게 예수님 일침을 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거듭나야 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위로부터 나야 되겠다.(You must all be born from above).
 
세 번째는 그다음 죽음에 대해서 D. 데스(death)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히브리서 9:27,
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세 가지 죽음이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태어나서 하나님 없이 사는 상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를 가리켜 영적인 죽음이다. 라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에베소서 2:1,
1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바로 허물과 죄 가운데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단절된 상태를 죽었던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우리가 과거에 그런 상태에 있었었고요. 그러다가 우리가 예수를 믿거나 믿지 않거나 모든 사람은 육체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데 바로 육체의 죽음은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것입니다. 이 육체는 영원히 거주하는 장막인데, 그 육신의 장막을 영원히 떠나가게 될 때, 영과 육이 분리되는 그 순간을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참으로 피해야 될 우리가 벗어나야 될 구원받아야 될 죽음은 이 세 번째 심판이라는 것인데요. 지옥 불 못, 요한계시록에서는 그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말하는데 이 둘째 사망으로부터 건짐 받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죽음의 확실성은 네 가지인데요. 예외 없이 간다는 것이고 순서 없이 또 혼자 빈손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금주가
 
내 인생의 마지막 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항시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죽음의 역설이 있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가 있다. 라고 우리 주님께서 사데 교회를 향하여서 일침을 가하시죠. 반면에 복음을 위하여서 정말 죽을 고생을 하면서 살았던 사도 바울은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있고 이런 죽음에는 역설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정말 내가 살아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오늘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인생 암호를 깨달은 자는 이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게 되는데요. 사도바울은 인생 암호를 그가 경험한 이후에 죽는 것도 유익하다.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이런 급진적인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고백인 것이죠. 좀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될 만큼 아주 급진적입니다. 죽는 것이 훨씬 더 좋다는 말을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이 차원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고린도후서 5장 8절에서는
 
*고린도후서 5:8,
8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즉 죽어서 주와 함께 있는 것이 내가 정말 원하는 바라.
-고 바울은 진정성 있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5절에서
*고린도전서 15:55,
사망한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은 내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 모든 인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그 사망 원수를 향하여서 이렇게 호통을 치고 있습니다. 이런 영적인 기백이 정말 죽음의 상황이 우리에게 불현듯 다가올지라도 “사망한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여 주는 나의 생명이시오 나의 구원의 반석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사망 앞에서도 조금도 쫄지 않고 정말 기백 있고 담대함이 있는 포에버 어르신들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지금도 살아계신 우리 김소엽 권사님 시인 계십니다. 그분의 죽음의 창가라는 시를 저는 매우 좋아하는데요. 좀 발췌해서 나누겠습니다.
 
※“죽음은 생의 종말이며 삶의 끝이라고 말하지 마시오. 죽음은 가장 진지한 삶의 표현, 가장 경건한 삶의 완성인 것을, 하루를 잘 사는 길이 잘 죽는 길이오 순간순간을 잘 사는 길이 인생을 잘 사는 길인 것을, 죽음은 또 하나의 신비한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 어느 날 그분이 부르시면 영혼의 껍질을 벗고 나비처럼 날아서 아름답고 깨끗한 영혼으로 황홀한 첫날 밤 위에 그분 앞에 가야겠네. 설레이는 마음으로 신혼여행 떠나야겠네. -김소엽 권사님 시인-
 
-참으로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고 언젠가 다가올 나의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참 아름답습니까? 설레이는 마음으로 신혼여행 떠나야겠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의 죽음이라는 것이죠. 우리 죽음은 정말 사별 그 자체는 슬픔이고, 비극이지만 영적으로 우리 인생의 전 과정을 봤을 때는 최절정에 달하는 가장 최고의 큰 희락의 순간이 바로 죽음의 순간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신혼여행 떠나야겠네.”
 
그러나 이 비밀을 알지 못하는 세상은 어리석게도 참으로 헛된 것들을 인생 암호라고 붙잡고 살아갑니다. 첫 번째 이 c. 컴폴드 세상 모든 사람들은 안락함을 추구하지요. 참 안락함을 추구하는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어떤 절대적인 행복이 있거나 또 우리 인생에 이 사망의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능력이 없음에도 그저 좋은 집 한 채 얻기 위해서 인생의 20대, 30대, 40대 죽을 고생을 하고 또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요즘 영끌이리라 그래가지고 영혼까지도 끌어서 모든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으고 대출받아서 아파트 하나 사는 것 요즘 젊은이들의 관심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롯데캐슬, 얻는 것 롯데캐슬 대표적이죠. 화려하고 아주 고급진 주택에 살고 싶어 하는 욕망들이 누구에게나 있죠. 또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돈을 사랑합니다. 더 많은 재물을 모으고자 합니다. 코인 캐시 비트코인에 미친 사람들도 있고요. 캐시를 탐내는 사람들 부를 탐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경고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에 삶과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누가복음 12:15,
15 삶과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니라.
-넉넉한 데 있지 않다고 비록 가난하고 궁핍할지라도 생명은 거기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참 만족을 재물과 관계없이 누릴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세상은 돈과 더불어서 섹스에 미쳐 있습니다. 참으로 오늘날은 더구나 얼마나 이 성적으로 문란하고 음란한지요. 요즘 우리 자녀들이 얼마나 위험한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이 혼전 성관계가 만연해 있습니다. 가늠이 너무 많이 참 음풍이 온 세상에 가득한 것을 보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극단적 동성애를 주장하고, 또 동성애와 동성혼 합법화를 ‘차별금지법’이라고 하는 그런 법으로 제정하고자 지금 애를 쓰고 있는 의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반드시 그 간음과 음행과 동성에 관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실 것이라고 히브리서 13장 4절에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 세상에 인생 암호라고 붙잡는 권력을 얻고, 명예를 얻는데 파워와 포지션 암호를 얻는데 내년 4월에 국회의원 선거 또 장관 대통령 어떤 장 자리를 많은 사람들이 참 그렇게 갈망하고 욕구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 때 다 지나가는 것이지 때로는 1년, 4년, 5년 만에 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나가는 것이죠. 그밖에 종교에 종교에서 인생 암호를 찾으려고 하는 인생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석가모니 또 알라 마호메트 공자의 컴프셔서, 이런 정말 인생 암호 C에 해당하는 것은 여기 공교롭게도 공자인데요. 참 그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죠. 그 밖에도 자동차에 더 좋은 고급 진 차를 얻고자, 또 핸드폰, 때로는 커피 샤넬, 명품, 컴퓨터 또 시가렛 담배, 술 이런 곳에서 인생의 어떤 의미와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헤아려 해서 무익한 것이다. 내 인생의 삶의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는 헛된 거짓된 암호인 것입니다.
 
인생 암호 C는 바로 인 크라이스트(In Crist)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씨는 크라이스트, 인 크리스토 라고 하는 이 헬라어는 신약 성경에 164회나 반복되는 매우 중요한 말씀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
 
*고린도전서 15:22,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고린도후서 5:17,
17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어떤 인생도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은 새 것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죠. 인생 암모 C는 Christ died for our since!.... 갈라디아 3장 13절에
*갈라디아 3:13,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록된 바 나무 위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으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2년 전에 어느 대전의 장례식장에서 만났던 어느 아버님입니다. 부인의 죽음 을 지켜보면서 믿지 않았던 어떤 아버님이신데 식사하는 그 접객 실에서 저에게 오셔가지고 “목사님 왜 하필 예수님은 십자가의 나무에 달려 죽었습니까?” 그런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분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인데 어떻게 성경에 가장 중요한 그런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질문을 하셨는가? 제가 ‘아버님 정말 중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갈라디아서 3장 13절 말씀을 읽어드리고 제가 설명해 드렸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특별히 나무에 달려 죽으신 것은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기록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율법의 모든 저주에서 우리를 속령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죗값을 다 지불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왜 나무에 달리셨느냐? 신명기 21장 23절에
 
*신명기 21:23,
23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다.
-라고 하는 그런 구약의 율법의 말씀 그대로 성취하시기 위하여서 주님이 나무 위에 달려 죽으신 것이죠. 고전 15장 3절 4절에는
*고전 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인생 암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에 관한 여러 가지 혼란 가운데 그가 가르치기를, 사람이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1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청년 시절에 그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 묵상하는데, 바로 이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이 다섯 단어가 결합된 이 진리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이것이 바로 복음 중에 복음인 것이죠. 이것을 깨닫고 정말 고백하고 선포하게 될 때, 방언 일만 마디 하는 것보다도 훨씬 우리 성도들에게, 또 교회에게 덕을 세우고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죽으신 후에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라고 성경은 이 역사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고린도전서 1:18,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백하기를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이 깊어질수록 세상의 자랑이 아니라, 이생의 자랑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고백하고 자랑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늘 기억하면서 우리가 감격하여 찬송 올려드릴 때,
 
♪영 죽을 나를 살리려 그 영광 떠나서 그 부끄러운 십자가 날 위해 지셨네 날 위해 지셨네.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우리의 죄를 속하시려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어린 양 보혈을 흘렸네. 주의 은혜 우리의 죄를 다 씻었네. 주의 은혜 우리의 죄를 다 씻었네.♩!~~
-일평생 이 십자가 은혜가 우리 심령 가운데 늘 북받쳐서 눈물로 경비하고 감격하는 그런 예배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인생암호C, 더 크로스 오브 크라이스트(The Cross of the Christ!) “율법을 따라 그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 즉 삶이 없느니라.” 왜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려 못 박혀 죽으셔야했는가? 그저 나무에 달려서 목을 매달아서 죽어서는 속제 제사가 이루어질 수 없어요. 왜? 반드시 피 흘림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사람의 생명은 피에 있다. 라고 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7:11,
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로 피 흘림을 통하여 모든 사람의 피가 아니라, 의로운 사람, 죄가 없는 사람의 피 흘림이 있어야 되는 것이죠. 바로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으로서 그분의 피 흘림으로 인하여 우리가 사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1장 7절입니다.
 
*요한일서 1:7b,
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오.
-요한일서 1장 7절에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피 흘리심과 그의 부활을 믿는 자는,
 
*요한복음 5:24,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완전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진 바 근본적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더 이상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망이 없는 것이오. 우리의 현재는 이 영생을, 하나님과의 그 사임을 현재적으로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미래에는 결코 죄로 인한 끔찍한 심판이 없다는 사실 이 기쁜 소식을 예수님이 선포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
 
*요한복음 6:40,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이 영생은 현재적이면서도 동시에 종말론적으로 마지막 날에 우리의 흙으로 돌아간 육체까지도 다시 살리시겠다고 썩지 않고 강한 몸으로 영광스러움 신령한 몸으로, 우리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첫 열매와 똑같은 그런 몸으로 다시 살리리라. 이것이 바로 이미 우리에게 허락되어진 영생 안에 포함되어져 있는 미래의 소망인 것이죠. 요한일서 5장 11, 12절에는
 
*요한일서 5:11-12,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생명공학자들도 이 생명을 정의하지 못하고, 또 법의학자들도 사망을 근본적으로는 정의를 못합니다. 생명 공학자들은 그저 사람이 물질 대사를 하고 외부 내부적으로 움직이고 생식 기능이 가능하고 외부 자극에 반응을 하고 어떠한 생장하며 또 항상성을 유지하고 에너지와 물질을 필요로 하는 어떤 상태를 가리켜서 살아있다 생명이 있다. 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생명 그 자체를 정의 못합니다. 또 법의학자들은 이 심장 또 폐와 뇌, 생명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장기, 심장, 폐, 뇌가 모두 죽는 것을 심폐사(心肺死)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심폐사가 될 때 그 각자의 개체의 사망 시점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법의학자 또 생명공학자들이 하는 말이요. 성경은 절대적으로 사람이 살았다 죽었다 하는 것을 그 기준을 아들에게다 두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아들의 심령 가운데 참으로 모시고 있는 자는 생명이 있는 것이고 마음 가운데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죽은 자인 것입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친밀한 관계 가운데서 경험하여 그분을 알아가는 거 영원한 사임 그 자체가 영생의 본질인 것이죠.
 
인생 암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한 자는 E,F,G,H,I,J 여기까지 이어지는데 참 놀라운 죽음 이후 사후에 놀라운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에버 라스팅 파들(Ever lasting Father) 영존하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대면하여 보게 될 것이요. 이터널 패밀리(Eternal family) 우리 앞서간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과 더불어서 우리 모두는 영원한 가족을 이루어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갓 홈(God home), 하나님의 집에서 글로리어스 헤븐(Glorious Heaven) 영화로운 천국에서 길이길이 살게 될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까? 영접하는 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
 
*로마서 8:15,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아들의 영을 주셔서 아빠 아버지라고 하나님을 부를 수 있게 해 주셨는데 오늘 우리 안에 그 아들의 영이 부어줘서 하나님을 실시간 날마다 친근하게 아빠, 아빠 아버지! 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천국의 현재성을 여기에서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 아버지 집, 영원한 천국으로 이르는 이 그 길은 인 지저스(In Jesus!) 오직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길과 진리와 생명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은 오직 예수, 이름 밖에 없습니다.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이 길을 오롯이 따라가게 되면은 길이길이 살리라. 이 길을 뒤집으면 길이가 되는데 이 길이 살리라.
 
♬독생자 예수 자유케 하시네. 주의 자녀라 하시네. 아버지 지 그 할 곳이 있네 주의 자녀라 하시네.~
-인생 암호를 거부한 인생들 꺼지지 않는 불 못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 터널 파이어(Eternal Fire)! 소름 끼치는 지옥에서 길이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리라.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것이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이 진리 앞에서 반응해야 되겠습니까? 이 인생암호 C를 우리의 삶과 죽음에 적용해 보시겠습니다. 먼저 우리 개인적으로 정말 우리 영혼의 심령이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이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컴백 투더 로드(Comeback to the LORD), 그리하면 너그럽게 용서하실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구원의 그 실체를 날마다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친근히 가까이 하실 것입니다. 또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정말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실시간 매일 확인하면서 살게 될 때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놀라운 반전 죽음의 관점이 달라지고 죽음의 내용이 달라지는 죽음의 방향이 달라지는 그런 반전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담대하게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세 번째 하나님의 양 무리를 돌봄에 목양에 헌신하라고 말합니다. 주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어린 양은 바로 교회죠. 그래서 교회를 돌보고 사랑하고 내 다락방의 순원들과 상호 간에 우리가 서로 돌보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정성 다하여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 지상 명령 즉 더 그레이 커맨드먼트(The Great Commandment), 이 세계를 복음화 하는 이 복음 전도에 우리 인생을 걸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하면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암호,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겨 주셨으니 우리가 정말 충성된 사도 적 그런 사명자로서 우리가 우리 남은 생애를 올인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에게는 오직 한 가지 열정이 있다. 그것은 오직 그분이다. 그분 홀로이다. 진젠도르프의 그 심장을 가슴을 우리가 이어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하면 컴백,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 가까이 하며 리빙 이즈 크라이스트(Living is Crist),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세 번째 테이크 캐러어브 마이 십(Take care of my ship),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목자의 심정으로 목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 선교 완성에 우리의 인생을 전 생애를 걸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직 그리스도께 미친 인생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요약
인생 암호 C는 바로 인 크라이스트(In Crist)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인생 암호를 거부하지 말고 인생 암호C가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해서 인생 암호C를 절대적으로 믿고, 인생에 근본 문제들의 해결점을 그 안에서 찾아야 하며 그 인생의 암호 C로 온 천하에 알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늘 자유함을 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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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9월 17일)
제목: "고통에서 믿음으로 가는 길"(1부)
말씀: 마가복음 5:21~24, 35~43
찬양인도: 쉐키나(이다니엘 부목사님),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장은진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시지 삐레이라 깔데스 목사님)-초빙-브라질 멕켄지장로교단 총재(1부)-통역 조영규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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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5:21~24, 35~43,
*마가복음 5:21~25,
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마가복음 5:35~43,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좋은 아침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이곳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함께 묵상하는 것이 저에게는 큰 영광이 됩니다. 먼저 감사드리는 것은 우리 오정현 목사님 저희를 이렇게 정중하게 환대해 주시고, 또 이렇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먼저 저는 매켄지 장로교 대학교 153년 된 이 대학교의 이름으로 여러분들한테 문안을 드립니다. 그리고 특별히 저희가 150주년을 맞이해서 맥켄지 장로대학교에서는 오정현 목사님에게 명예박사를 받을 수 있는
그런 귀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오정현 목사님도 저희 매켄지에 대한 일원이십니다. 아멘.

저는 참 먼 데서 왔습니다. 불행하게도 저는 여기 한 분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리오데 자르에서 전용 비행기를 타고 뮌헨을 거쳐서 이에서 다시 이렇게 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동안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도대체 여기 와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때 저에게 확 떠올린 것은 바로 다름 아닌 그것은 바로 나, 역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제자이기 때문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기 때문에 일맥상통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로 하여금 이것을 목격했고 제가 아무도 모르는 사람 같지만 사실 이것이 저로 하여금 이 강단까지도 친근함을 주고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눈 것이 우리가 한 형제임을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유, 이 한 가지 때문에 우리는 이 자리에 함께 모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그 삶에 대해서 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에 대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해변을 중심으로 해서 사역하시고 여러 가지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예수님은 이 땅의 생애에 있어서 갈릴리의 그 광경을 통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활동했고 사역했던 것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귀신 들린 자를 치유해 주셨고, 그 예수님이 치유한 것 때문에 예수님은 질책을 받았고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 전에는 이 사람들이 돼지 떼를 잃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람들보다 돼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내가 여기서 자리를 옮겨야 되겠구나!...

그리고 내가 꼭 내가 만나야 할 사람들, 나를 만나야 할 사람들을 향해 내가 말하겠다. 바로 오늘 이 장면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죽음을 맞이했으니까요. 여러분이 살아있는 동안에 우리 주변에 있어 우리는 죽음을 늘 대면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여기도 분명히 많은 성도님들이 죽음에서 또 죽음 같은 그런 상황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 이유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삶속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이 우리를 죽음으로 끌고 갔으며,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앞에 만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를 받게 되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바로 오늘 읽은 본문에서 바로 죽음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던 그 장면입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으로 찾아간 사람입니다. 먼저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사람은 지금 말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환란 속에 처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사랑하는 딸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외향적이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고난과 환란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느 신학자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에서 오신 것은 단순히 우리의 고통이 사라져버리고 우리의 모든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우리가 고통과 환란과 역병을 통해서 어떻게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 생명의 길로 찾아가는 것인지, 인도되는 것을 밝혀준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환란과 고통은 우리의 인생을 허무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로 하는 환란과 역경과 고난은 생명을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알아갑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이 환란과 역경 속에서 예수님 앞에 더욱더 가깝게 나가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 김장 이문은 바로 그 회당장입니다. 그 회당에서 리더급 되는 야이로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종교인이고, 그 주변에서는 인정받는 사람이고, 그는 월납 사람으로서 정말 율법을 잘 아는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심지어는 자기의 위험과 자기 자격과 자기의 체면까지도 다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그는 믿었습니다. ‘나는 이분을 꼭 만나야 된다.’ 기쁘게 만나야 된다. 용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은 늘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담대하라 용감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늘 우리 얘기한다. 담대하고 기다려라.

여러분, 이 담대함이 사실 우리는 표현되어지고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야이로는 자기의 불안과 환란을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세 가지 모습으로 드러냅니다. 오늘 저 마침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제 야이로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여러분 누가 꿈을 꿨습니까? 이 사람 겸손한 사람입니다. 누가 무릎을 꿇습니까? 자기가 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무릎을 꿇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협과 능력이 확실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사위로는 예수님과 대화를 했습니다. 이 야이로는 적극적으로 예수님과 대화를 했습니다. 그는 한 아버지로서 죽어가는 자기 딸의 그 형편을 인정했고, 그것을 이실 직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 주실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가정에서 자기 가족 중에 자기 딸의 죽음에서 살아나야 하는 일을 직시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예수님께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주님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주님 앞에 드러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내가 이토록 주님을 간절히 찾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이렇게 주님을 만나야 하고 드러내야 할 말씀의 이유는 무엇인가? 야이로는 예수님을 좋아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인정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찾아가고, 예수님과 대화하는 것은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자기의 딸이 살아날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조심해야 될 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서 이것은 좀 부정적인 생각과 힘든 건데 이것은 어려운 건데 이런 무의식적인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야 합니다.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 주변의 환경과 역경을 통해서 생각합니다. 나한테는 도무지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길이고, 나한테는 일어날 수 없는 길이며,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 보다. 라고 하는 그 생각을 없애야 합니다.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믿음은 삶까지도 움직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기의 고통과 환란을 인정하고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담대하십시오. 그 싸우기 전과 너무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우리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마당을 통해서 이 장면 속에서 이 사람 통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그를 인도하는지 아주 그것을 단계적으로 잘 보여주고 계십니다. 35절 이하부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그때서부터 예수님은 이제 야유의 집으로 사랑하시고 그 집에 있는 모든 문제를 변화시키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잘 아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저쪽 편에서 배를 타고 오셨습니다. 해변을 내리셨습니다. 그때 야이로는 그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는 잘 알다시피 야이로는 정말 예수님을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의 길을 향해서 가고 있는 도중에 이 중간에 정말 불청객이 뛰어들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은 예수님은 마침내 그 회담장 야이로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에 들어가 있는데 여기에 보면 거기에 벌써 어떤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야이로의 집에 벌써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그 야이로의 집에 있었을까? 저는 잘 모릅니다. 우리는 그 이름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 아이로와 그 가정과 굉장히 밀접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담대 하라! 그리고 믿어라! 그리고 그렇게 확신적인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야이의 집에서 온 그 전달자는 얘기 했습니다. “예수님을 더 이상 괴롭히게 하지마! 그렇게 하지 마라 더 이상 예수님을 귀찮게 하지 마라. 당신의 딸이 이미 죽었다.”

이것은 사탄의 공격이요 이거는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의 그 간섭에 대해서 우리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도대체 누굽니까? 우리가 누굽니까? 말하기는 이제 협상 방법이 없습니다. 이젠 난 안 됩니다. 당신이 누구 길래? 이런 확신이 당신의 경험이 얼마나 많길래? 이거는 안 돼. 나도 해봤어 이제는 이거는 안 되는 일이야 세상을 봐 이것을 봐 이건 도무지 안 돼 당신이 보내신 누구 이길래?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또 여기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한테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히지 마라. 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예수님을 생각해서 얘기한 것처럼, 예수님을 귀찮게 하지 마라 당신은 벌써 이미 다 끝났다 하고 얘기를 하지만은 이것은 오히려 예수님이 마치 예수님을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어떤 능력과 한계성을 알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거짓말입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완전히 상실한 것으로 하나님의 개입을 완전히 폐쇄한 것이며 그건 거짓말입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 것들이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이제는 제가 뭐가 바로 진짜가 뭐가 정말 정말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왜? 예수님이 그와 함께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일어나는 일들이 아직 그 사건이 우리에게 부정적이고 그것이 불가능하게 보여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하리라. 36절에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야유에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5:36,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그것이 진짜입니다. 뭐가 진짜입니까? 담대하라. 믿기만 하라. 그대로 한다고 하시는 그 말씀이 정말입니다. 더 계속해야 할 것은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지금 우리의 머리를 얘기합니다. 니가 이해되는 것만 믿어라. 그리고 나의 경험을 봐라. 경험으로서는 무덤에서 돌아오는 사람이 없다. 우리의 감정은 완전히 우리의 감정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상황과 분위기 모든 것들이 우리를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바로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담대하라 그리고 믿어라! 내가 바로 너의 오직 한 소망이다. 내가 너의 길이요. 생명이다.”

이것은 우리가 브라질에서 부르는 찬양 찬송입니다.
♬절대로 낙심하지 마라 하나님의 모든 것을 얘기하신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기를 하나님이 날개로 너를 덮어주신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모든 것을 드러내신다. 하나님께서 너희의 고통 속에서 모든 것을 지켜주신다 내가 사랑으로 너를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널 지키실 것이다. ~~♪

그러나 여러분들 기억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들어가셔서 그 집에서 모든 사람을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삶속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들까지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삶 속에서 우리가 정말 밖으로 버려야 될 것, 벗어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회담장 야이로의 집에서 어떤 일들을 하셨습니까? 37절에 보면 예수님은 그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동반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5:37,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그 모든 무리들은 그 집에서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 집에 밀접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도 다 나라라고 했습니다. 거기서 모든 영향을 주는 사람들도 다 나가라고 했습니다. 내용 그 주님은 오직 그 야이로와 아내 그 부부와 그리고 자기의 새 제자 밖에는 없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자치 장례식은 다 끝났습니다. 이 구원의 핵심 구원의 다이아몬드 같은 핵심은 바로 죽음에서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간증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고, 어떻게 교회 생활을 하게 됐는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간증을 하다 보면 이런 것들로 그냥 우리는 습관화돼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전혀 새로운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또 이 중에 누군가는 오늘서부터 새롭게 정말 새 삶으로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모여 있는 우리들도 때로는 우리 가정을 우리의 삶을 청소해야 되고, 정리 정돈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길로 가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에선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랑의 권세를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그 야이로의 딸이 있는 곳에 들어오셨습니다. 그 두 손을 잡았으니 달리다굼! 이라고 얘기하셨습니다. 그 소녀는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12살 먹은 사춘기의 소녀가 일어났습니다. 모든 사람이 놀랐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참 경이롭고 거기에 대해서 정말 그 환희를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죽음의 마지막 단어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남아야 할 간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 새 생명을 얻었고, 그 구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번에 영생을 갖고,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이 우리의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성도의 자기의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죽음을 향해서 창조되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은 여기서 마지막 장면을 보면 얼마나 친밀하시고, 아주 개인적이고, 적극적이었는지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말했습니다. 시편 25편 14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시편 25:14,
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유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오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주님은 친밀하십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예수님과의 그 친밀한, 긴밀한 그 교제를 누리셔야 합니다. 잘못하면 우리도 이 야이로 회장단 집에 있었던 그 죽음 때문에 모이고, 죽음 때문에 말하는 사람들처럼 살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돕는 성도임에도 불구하고 늘 부정적으로 죽음에 쫓기고 있고 그런 생각을 갖고 살게 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여기 야외 회담장 집에 모여서 정말 통곡하고 울고 괴로워하고 하는 거 우리는 늘 우는 걸로만 표현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긴밀한 교제의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다 바깥으로 나가게 했습니다. 이제 그 과정에는 그 가정 사도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제자들 또는 예수 그리스도 일도 있고 새 생명을 찾는 사람들만 거기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이제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사람들만 남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를 죽음의 상황에서 끄집어내어서 우리로 하여금 생명 새로운 삶을 살라고 그렇게 인도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야 할 믿음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의 가정을 청소해 주십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은 꼭 필요한 사람들을 우리 가정에 머물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죽음은 쫓겨났어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생명을 주기 위함이며 풍성한 생명을 주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요약
죽음 같은 고난이 닥쳐올 때,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과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불신을 몰아내고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낙심하지 말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야이로는 어린 딸의 죽음이라는 심각한 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해 예수님께로 나아왔다. 이 문제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때문에 야이로는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주님이 오셔서 손을 얹으시기만 하면 죽은 자신의 딸이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도 기도하며 믿음으로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야 한다. 이 길이 곧 문제 해답의 길이다. ‘달리다굼’의 의미 ( 5:41-42 )이 말은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는 뜻이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이적 중에서 죽은 자를 살리신 최초의 기적이다. 성도들은 믿음을 통하여 핍박과 환란 중에 도우시는 주님을 경험함으로써 위로를 받고, 부활의 소망으로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 나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육체의 죽음 후에는 부활이 있고,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리는 신적 권능의 소유자이시며, 예수님 안에 있는 자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의 부활을 암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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