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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11월 15일)
제목: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말씀: 요나 4:6~11
찬양인도: 쉐키나(유재원 부목사님)
 
설교자: 김대규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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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4:6~11,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 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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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앞에 다시금 엎드립니다. 이 시간 말씀 가운데 나아갈 때에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맞닿게 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이 우리 가운데 넘치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 이 저녁 참 잘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에 많은 깨달음과 은혜를 주시는 시간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식사하셨습니까? 네 잘하셨습니다.
 
4명의 사람이 한 자리에서 아주 맛있는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네 사람이 맛있는 식사를 먹는 도중에 갑자기 이유 없이 한 사람이 먹던 숟가락과 포크롤을 탁 내려놓더니 화를 내면서 나가버립니다. 남은 3명은 도무지 그 사람이 왜 나갔는지 영문을 알지 못합니다. 몇 초간의 정막이 흐르고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갑자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립니다. 앞에 있는 사람이 밥을 먹다 갑자기 나간 것은 나 때문일 거냐,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나가지 않았나, 스스로를 자책하며 밥을 먹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식사를 중단합니다. 이에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을 안아주며 다독이며 위로하며 너 때문이 아니야, 그러니 우리 먹던 밥을 마저 먹자. 하고 이 사람을 위로하며 이 분위기를 식탁의 분위기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이런 와중에도 남은 한 사람은 누가 나가든 누가 눈물을 흘리던 누가 위로를 하든 관계없이 자신의 식사를 꿋꿋이 이어나갑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이 이야기는 서로 다른 혈액형을 가진 4명의 사람이 식사하는 장면을 묘사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a형이고, 어떤 사람이 b형이고, 어떤 사람이 o형이고, 어떤 사람이 ab형인지 아시겠어요? 네 식사를 하다 갑자기 화를 내며 나간 사람은 어떤 형이죠? 네 이렇게 각자 다른 대답을 하는 건 나와 가까운 그 누군가를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네, 자리에는 a형을 가지신 분도 있고 b형을 가지신 분도 있고 o형을 가지신 분도 있고 ab형을 가지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게 사실은 아닌데요. 이 이야기의 결론은 식사를 하다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이유 없이 나간 사람은 ab형이라고 합니다. ab형에는 좀 괴자가 있고 다른 사람이 이유 알지 못하는 행동들을 하는 분들이 조금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책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형은 무슨 형일까요? 이건 잘하시네요. a형 모든 게 내 탓일 거야. 약간은 작은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 a형 그보다 더 작은 마음을 가지신 분들은 어떤 형이죠? 네 소문자 a형입니다. 네 그리고 그 사람을 위로하는 사람은 무슨 형이죠? 네 o형입니다. 어떤 상황을 상황이 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그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은 사람은 o오형이고, 네 남은 형이 하나 있죠. 주변과는 관계없이 꿋꿋이 너는 나가라 너는 눈물을 흘려라 위로를 해라 나는 내 할 일을 할 일이라 할 것이다 하는 사람 무슨 형인가요? b형입니다. 네, 여러분 저는 무슨 형 같으세요? a형이라고 말하시는 분도 있고 o형이라고 말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왜 의견이 분분할까요? 여러분들은 제가 무슨 형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소심한 면을 보신 분들은 제가 a형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고, 제가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오영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또 약간 제가 제멋대로 하는 면을 알고 계시면 a병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편뿐만 아니라 우리는 다른 많은 부분에 있어서도 사람들을 이리저리 재단하면서 그 사람의 범위를 정하고 그 외에 벗어나는 부분들을 보려고 하지 않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비단 사람을 보는 시각뿐만 아니라 우리는 여러 가지 다른 판단 결정에 있어서도 내가 가진 고정관념이 분명히 있고 나는 그 고정관념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습성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오늘 요나서를 읽었는데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선지자 요나 또한 이런 고정관념이 굉장히 강했던 사람이고 끝까지 꺾이지 않으려 했던 자신의 고집이 굉장히 강했던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4장을 읽었는데 4장의 앞부분은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부르시고 요나는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요나는 그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자신의 행선지를 정하고 다시스행 배를 타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요나를 물고기를 동원하시면서 까지 꺾으시고 그를 리누웨로 끝내 가게 하십니다. 니느웨에 도착한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요나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니누웨 성에는 큰 회개의 물결이 일어나고 니느웨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는 역사가 1장부터 3장까지 기록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4장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요나의 심적인 상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가 니느웨의 성의 회개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라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자신이 말씀을 전하였으나 그의 마음속에는 누가 자신이 전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고, 혹여 받아들여서 그 성 가운데 회개 운동이 일어나더라도 그 회개 운동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지금 설교를 하는 제 입장에서는 요나가 굉장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설교자의 입장에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 그 말씀을 전해들은 사람이 변화되고 회개하며 돌이키는 모습을 보았을 때에 그것만큼 기쁘고 보람된 일은 분명히 없습니다. 그것이 설교자의 일이고 설교자의 목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기 많은 훈련생들이 와 계실 텐데요 훈련 교육자가 가장 절망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1년을 열심히 훈련을 했는데도 전혀 변하지 않는 훈련생의 모습을 보면서 훈련 교역자는 절망합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훈련으로 사람이 변하지 않는 건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많은 변화된 분들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니면 내가 훈련을 잘 못한 것인가 하면서 자책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훈련생들은 제자 훈련과 사역 훈련의 그 과정을 겪으면서 정말 말할 수 없는 많은 변화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가끔 변화된 것처럼 위장해 있다가 위장하려면 끝까지 위장하고 있지, 마지막 때쯤에 그 본색을 드러내는 훈련생들이 가끔 있습니다. 마지막 수업에 갑자기 손을 들더니 평소에는 시켜도 잘 안 하던 대답을 자발적으로 손을 들고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요 목사님, 저는 1년 동안 훈련을 받았지만 아직 제 마음은 그대로입니다. 제 삶은 변한 게 없습니다. 저는 훈련 시간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훈련 교육자는 정말 절망하게 됩니다. 혹시 이런 분이 있다면 끝까지 숨기시기를 바랍니다. 요나 선지자는 물론 자기가 자발적으로 니느웨에 간 것은 아니지만 정말 죽을 고비를 넘겨서 니누웨의 성에 갔고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회개한 미누의 성을 보면서, 회개를 통해서 재앙을 내리지 않는 하나님을 보면서 요나는 화가 치밀기 시작했습니다. 4장 1절을 보면,
 
*요나 4:1,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이렇게 시작합니다. 자신이 말씀을 전해 회개하고 하나님의 재앙을 면한 니네를 보면서 요나는 싫어하면서 성을 내었다라고 기록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러분 요나는 처음부터 니느웨 성에 가기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요나는 니느웨 성이 회개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요나의 생각은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재앙이 니느웨 성에, 아수르 민족 가운데에 내려지는 것은 정말 합당하다. 이것은 마땅하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그 아수르 민족, 니느웨 성 모든 사람들은 재앙을 당해서 모두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비참하게 죽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정의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그들에게 즉각적으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고 자신을 굳이 보내셔서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유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고 물고기에게 삼킴을 당해서 니느웨 성에 가서 말씀을 전했지만 요나는 자신의 마음을 다해서 말씀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혹여 라도 자기가 전한 말씀을 듣고 니느웨 성이 돌이키고 회개할까 봐 요나는 겁이 났습니다. 요나는 말씀을 전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그 말씀을 받아들일 만큼 마음이 선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행한 악을 보면 물론 이스라엘 민족들도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배교하고 악을 행하였으나 이 니느웨 성에 살고 있는 앗수르 민족이 자신의 동족에게 행한 악을 생각한다면 비교도 안 될 만큼 그들은 너무나 잔혹하고 죄악 된 민족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구속이 조금도 없다. 라고 요나는 결론 내리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혹여 라도 자신이 선포한 말씀을 받아들이더라도 듣다 마는 것처럼 그들의 회개가 곧 멈춰지기를 그것이 요나가 생각하는 최상의 시나리오요 최상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요나의 생각과는 달리, 니느웨 성은 큰 회개 운동, 큰 영적 대 각성 운동이 일어나고 니느웨 성은 하나님의 재앙으로부터 구원받게 됩니다. 요나가 화가 났던 이유는 그의 정의감 때문입니다. 여러분, 정의가 무엇입니까? 요나가 생각했던 정의는 못된 짓을 많이 한 사람은, 악한 민족은 그들이 못된 짓을 한 만큼, 그들이 악한 만큼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니느웨 성을 향한 하나님의 정의는 심판을 받는 것이 정말로 마땅하고 그게 정의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는 민족이며 그들은 구원받아서도 안 되는 민족이라는 것이 요나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습니다. 요나는 이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고집을 절대 꺾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기대도 절대로 버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요나는 선지자였기 때문에 택한 이스라엘 민족의 선지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니 누에는 망할 것이다 심판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원받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을 가지고 니느웨 성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재앙을 면했지만 그는 여전한 기대를 가지고 니느웨 성을 지켜보기로 합니다.
우리 5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5절 읽겠습니다.
 
*요나 4:5,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요나가 무엇을 지었죠? 초막을 지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텐트를 지은 것입니다. 초막에도 종류가 굉장히 많습니다. 여러분 텐트에도 종류가 굉장히 많은 거 알고 계시죠? 저는 얼마 전 아들과 텐트를 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캠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캠핑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굉장히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저는 캠핑은 굉장히 비생산적인 일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저희 아들이 캠핑 가기를 원하는 것 같아서 아들과의 추억을 한번 쌓아보려고 하루저녁 캠핑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큰마음 먹고 거금 10만 원을 들여서 텐트를 장만했습니다. 제가 아들과 함께 들고 간 텐트는 원터치 텐트였습니다. 어떤 건지 아시죠? 그냥 던지면 펴지고 접는 데 1분, 이런 아주 작고 간단한 텐트를 가지고 캠핑장에 당당히 입성했습니다. 그런데 캠핑장에 들어서자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들고 간 원터치 텐트와는 다른 이걸 텐트라고 해야 되나? 집이라고 해야 되나? 하는 텐트들이 펼쳐져 있는 저희 집보다 더 안락하게 보이고 아늑하게 보이는 텐트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런 텐트를 장박 텐트라고 합니다. 저희처럼 하루 그냥 임시로 자고 가는 것이 아닌, 아주 며칠 동안 오랫동안 한 달 두 달 묵을 목적으로 설치된 텐트를 장박 텐트라고 합니다. 이런 텐트들은 오랫동안 지낼 목적이기 때문에 아주 튼튼하게 또 많은 공을 들여서 설치해야 됩니다. 하지만 저희 텐트는 얼마 걸린다고 했죠? 네 10초, 던지면 펴지고 접는 데 1분, 왜 제가 그 텐트를 갖고 갔을까요? 저는 하루만 자면 되니까요. 네, 요나가 지은 장막은 여러분 장박 텐트가 아니고 지금으로 말하면 제가 가지고 간 원터치 텐트입니다. 이 텐트의 특징은 빨리 치고 빨리 거둘 수 있으나, 비가 오면 비가 뚝뚝 떨어지고 햇빛이 들면 해 빛이 그대로 쪼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나가 장박 텐트를 치지 않고 이렇게 원터치 텐트와 같은 간단한 초막을 지은 이유는? 요나는 이 니느웨 성읍이 망하는 것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기대와 소망, 예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잠깐의 시간이라도 50℃를 오르내리는 건조한 날씨와 뜨거운 태양 그리고 뜨거운 바람은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이 요나를 괴롭게 하기에는 충분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때 요나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박 넝쿨을 예비하시고 요나를 가리게 하셨습니다. 우리 6절을 한번 읽겠습니다. 6절 다 같이 보겠습니다.
 
*요나 4:6~11,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더위에 지쳐 있던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예비하셨죠? 박 넝쿨을 예비하셨습니다. 그 조그마한 박 넝쿨이 뭐가 그리 대단할까, 싶기도 하지만 여러분 뜨거운 햇빛이 비출 때 여러분 아무것도 없으면 우리 어떻게 합니까? 손바닥으로 햇빛을 가리죠. 그럼 어때요? 조금 시원합니다. 너무 더운 여름날 우리 본당에서 에어컨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여러분 어떡합니까? 손바닥을 확 부치잖아요. 작은 주보를 가지고 주보는 교회의 알림 소식인데 이걸 막 부치잖아요. 알림은 보지 않고 네 그렇습니다. 아주 조금만 손바닥이라도 햇빛을 가리면 우리가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50℃를 웃도는 이 건조한 기후와 햇빛 속에서 이 박 넝쿨로 그늘이 내려진다는 것은 정말로 요나에게는 잠시나마 그늘로 인하여서 시원함을 맛볼 수 있고 청량감을 맛볼 수 있는 이 지친 요나에게 큰 위로와 쉼을 주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를 통한 요나의 감정이 뭡니까? 여러분 ‘요나가 박 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라.’ 크게 기뻐하였더라.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있어요? 박 넝쿨 때문에 기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요나는요. 요나서 1장을 쭉 보면 알겠지만 요나는 하나님 앞에 매번 하나님 죽여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습니다. 죽여주십시오. 하나님 앞에 불평하고 징징거리던 선지자였습니다. 3절에서도 “하나님 내 생명을 거두어가소서.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마땅합니다. 내게 낫습니다.” 이랬던 선지자입니다. 이랬던 요나가 햇빛을 막는 그 작은 박 넝쿨 이 박 넝쿨 하나에, 기뻐하는 어떻게 기뻐해요 크게, 크게 기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 참 모르겠습니다. 요나를 위해서 박 넝쿨을 준비하시고 그늘로 그를 위로하시고 시원케 하셨는데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은 또 다른 것을 요나를 위하여 준비하셨습니다. 무엇을 준비했냐면 작은 벌레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벌레는 요나가 그렇게 기뻐하고 감사해 하던 박 넝쿨을 갉아먹습니다. 박 넝쿨은 이제 시들어 더 이상 요나에게 비추는 햇빛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거기에 더하여서 하나님께서는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시고 요나를 향해서 불게 하시고 요나의 머리에 뜨거운 해 빛을 쪼이십니다. 이에 요나는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이야기를 또 하나님께 이야기합니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내게 낫습니다.” 하나님 이런 뜨거운 태양 아래 뜨거운 바람 아래 하나님 사는 게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낫습니다.
나를 죽여주십시오. 라고 또다시 하나님께 요청합니다. 요나가 지금 왜 이렇게 이야기합니까? 요나는 지금 자신에게 지금 이 순간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이 우울하고 불행한 자신의 삶 속에 위로하는 것이 박 넝쿨이었고, 앞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니, 그 박 넝쿨이 시들어서 이제 나는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니, “하나님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습니다.” 라고 하나님께 죽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은 요나를 위해서 박 넝쿨을 준비하시고 또 시원하게 살게 놔두시지? 또 벌레를 보내셔서 그것을 갉아먹게 하시고, 왜 뜨거운 바람을 준비하셔서 요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셨을까요? 왜요? 말로 해서 안 되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처음부터 요나를 바다에 빠뜨리셨나요? 처음부터 물고기 이렇게 삼키게 하셨나요? 아니에요.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요나야 내가 너를 니느웨에 보낼 거야. 너는 니느웨에 가서 내가 너에게 명령한 것을 전하기만 하면 돼.” 하나님께서 정말 젠틀하게 신사적으로 요나에게 말씀하셨어요. 요나가 들었어요? 안 들었어요? 안 들었습니다. 전하고도 요나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하나님도 말씀으로 이렇게, 이렇게 해라 이런 계획이 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고집 센 선지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념, 자신이 정해놓은 정의, 자신이 결정한 한 민족의 운명이 뒤바뀌는 것을 결코 용납 치 못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라도 이 계획에 내가 결코 참여할 수 없고, 결국에는 내 생각대로 내 예상대로 흘러갈 것이다. 라는 이 생각을 요나는 조금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말로 해서 안 되니까, 물고기 뱃속에 요나를 넣으시고, 니느웨에 보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박 넝쿨을 준비하시고 그것을 갉아먹게 하시고 더 큰 고통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요나 내면에 있는 불편한 마음, 동의할 수 없는 생각, 잘못된 기대감, 잘못된 신념, 결정 이 모든 것들을 깨부수시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요나에게 작은 기쁨을 주셨다가 그것마저 빼앗아 버리면서 하나님이 요나에게 실물 교육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요나에게 말씀하시죠. “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이 박 넝쿨도 아끼는데, 이 니느웨의 성에는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가 12만이고, 가축들도 많이 있는데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이 요나에게 물어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나 참 고집 세죠? 하나님 말씀 안 듣죠? 요나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요나의 가장 큰 문제는 그가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요나에게 질문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니가 누구냐?” “니가 누구냐?”입니다. 네가 어떤 사람이냐 네가 뭐 하는 사람이냐? 여러분 요나는 누구예요? 어떤 사람이에요? 선지자입니다. 선지자 선지자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선지자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선지자는 죄인의 회개를 돕는 자입니다. 죄인이 말씀 앞에 회개하고 돌아올 때 기뻐하는 자가 선지자입니다. 요나가 전혀 정체성이 없었던 선지자는 아닙니다. 요나는 분명히 자신이 뭐 하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자기가 선지자인 것도 알았습니다. 요나는 자신의 민족에게는 자신이 정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끓는 심정으로 열과 성을 다하여서 그들이 회개할 것을 그들의 죄를 하나님께 자복할 것을 권하며 설교하며 그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정해놓은 울타리, 그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에 자신이 바라지 않았던 사람들, 마땅히 심판을 받고 그들이 죽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앞에 더 이상 자신은 선지자로 설 수 없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 베푸는 하나님의 구원에 그는 결코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요나가 잊은 것, 요나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나는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잊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 또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비추어 보았을 때는 자기도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왜 택하셨습니까? 아무 이유 없습니다. 하나님의 그냥 강권적인 선택하심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을 뿐입니다. 무언가 이스라엘의 조건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이스라엘을 온 열방의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도, 요나도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선택하셨고 구원의 은총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요나에게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의 목적, 하나님께서 요나를 택하신 목적, 이스라엘을 택하신 목적은 여러분 분명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구원의 도구, 열망의 복음의 도구로 그들을 사용하시기 위해서 요나도 택하시고, 이스라엘도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요나는 니느웨 성에 가서 기뻐하는 마음으로 열과 성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했으며 회개의 메시지를 회개의 마음을 촉구해야 했습니다. 겉으로만이 아닌 자신의 온 마음과 온 전심을 다해서 그들이 회개하기를 바라야 하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그리고 니느웨 성이 구원받았을 때 그는 누구보다 기뻐해야 하였으며 돌이킨 대로 그들이 진실이 그들의 마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 앞에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야 하는 것이 요나의 목적이고 요나의 소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 안에 있는 단단히 굳어진 마음과 고정관념과 잘못된 생각은 그가 올바른 선지자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유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습니까? 기뻐해야 할 것에 기뻐하지 않습니다. 요나가 기뻐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니느웨 성이 자신이 선포한 말씀, 하나님의 말씀에 회개한 것을 보고 그는 누구보다 기뻐해야 했습니다. 도리어 니느웨 성의 이 회개가 지속되지 못할까 노심초사(勞心焦思) 하는 마음으로, 아비의 마음으로 그들이 하나님 말씀 앞에 잘 성장하기를 기대해야 했던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작은 박 넝쿨, 그늘에서 기뻐하고 그것을 갉아먹은 벌레, 그 벌레 때문에 분노하고 이러한 것들에 기뻐하고 분노하는 모습은 여러분 결코 선지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여러분, 새 생명 축제를 앞두고 제 자신을 비롯해서 많은 사랑의 교회 영 가족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작정하고 여러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고 계시죠? 아멘 소리가 너무 작아서 제가 낙심하려고 합니다. 그러고 계시죠? 아멘!! 너무나 귀한 생명의 축제이고 사역의 현장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반드시 새 생명 축제를 해야만 하는가? 입니다. 여러분 혹시 1년에 한 번 오늘은 밥 먹는 날 정해놓고 식사하는 분계십니까? 아무도 안 계시죠? 혹시 오늘은 숨 쉬는 날 정해놓고 숨 쉬는 분계십니까? 아무도 안 계십니다. 내일이 수능인데요. 내 자녀가 수험생인데 1년 중에 3박 4일 이날만 공부하는 날 정해놓고 3박 4일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을 보면 여러분 어떤 생각이 드시겠습니까? 그 학생은, 학생은 학생이지만 공부하는 학생은 아닙니다. 여러분, 제 마음에 노파심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새 생명 축제 기간에만 전도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데 그 우선순위를 둬야 합니다. ‘온 세상을 위하여 이 복음 전하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정체성입니다. 그 우선순위를 우리가 잃은 채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잠시 주신 박 넝쿨 하나에만 기뻐하는 요나 선지자처럼 살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지금 여러분을 덮고 있는 잠시 시원한 바람과 햇빛을 피하면서 그 그늘 안에 있으면서 쉼을 누리고,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요나처럼 그 그늘에만 기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작은 벌레가 그 박 넝쿨을 갉아 먹었을 때에, 나를 시원하게 해주던 그 그늘이 없어졌을 때에 하나님에게 하나님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습니다. 라고 분노하고 항변하고 울부짖는 그 선지자의 모습이 우리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련해 놓으신 박 넝쿨에 우리는 충분히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마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크고 근본적인 감사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나를 덮고 있는 잠시 나를 시원하게 해주는 박 넝쿨이 아닌 한 영혼이 구원받고, 한 영혼이 하나님 앞에 돌아왔을 때, 한 영혼이 생명을 얻었을 때의 기쁨, 내가 전한 복음을 듣고 이 구원의 방주인 사랑의 교회, 안아주신 본당에서 함께 많은 사람들이 예배하며 생명이 살아나는 이 생명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누구보다 기뻐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이고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그런데 어떤 분들은 새 생명 축제를 앞두고 어떤 분들은요. 작정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분들이 계세요. 왜 그럴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래서 왜 작정하는 게 힘드세요? 제가 물었습니다. 물었더니 내가 사랑의 교회 20년도 넘게 다녔는데, 작정을 매년 하다 보니 이제 작정할 사람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왜 작정할 사람이 없을까요? 여러분 혹여나 이스라엘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생각, 내 머릿속에, 내 생각 속에 있는 내 가족, 내가 정한 이웃, 내가 정한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만 복음의 대상이라고 우리가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생각하지 못한 니느웨 성에 관한 구원 계획을 가지고 요나를 니느웨 성에 보내십니다. 그들이 비록 자신의 동족을 괴롭히고, 하나님 앞에 상상할 수 없는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들에게 회개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그들이 돌아오고 구원받기를 바라셨습니다.
 
여러분, 제가 작은 간증 하나 하겠습니다. 올해 초에 저희 사촌 형수께서 소천 하셨습니다. 저보다 몇 살 이셨는데 수년간 암 투병을 하다가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소천하시기 몇 달 전까지 저를 비롯한 친지들이 그 형수가 암 투병으로 여러 해 동안 고생하고 힘들어했던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말씀을 안 하셔서 심지어는 그것을 숨기면서 가족 행사에 참석하기도 하셨습니다. 지나보니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많이 힘드셨을 텐데, 제가 목사인데 그런 말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기도해 주는 사람인데, 사촌인 저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그렇게 소천하신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저희 친지들이 모였습니다. 그 식탁에 장례식장 식탁에 친지들이 모였고, 그곳에 고모님 두 분이 계셨습니다. 요즘은 집안에 아주 큰 대소사가 아니면 여러분 고모님을 제가 뵐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고모님을 뵙습니다. 고모님들은 교회에 다니지 않으시고 더군다나 한 분은 독실한 불자로서 절에서는 보살님으로 불리십니다. 여러분 보살님이란 호칭 아세요? 보살님은 우리 교회의 권사님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주 열심 하십니다. 절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모르세요. 하지만 부모님들은 가끔 저를 만날 때마다 제 이름은 부르지 아니하시고 저를 존중해 주시면서 목사님이라고 부르십니다. 절을 다니면서, 그런데 그 자리에서 고모님이 제게 뜻밖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김 목사님, 다니는 교회가 사랑의 교회인가? 네 고모님 서초동에 있는 그 크고 좋은 교회 맞지?” 그래서 “네 맞아요.” 어떻게 아세요? 그때 고모님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김 목사는 왜 고모들을 한 번도 교회에 부르지 않는가? 교회가 그렇게 크고 좋다면서?” 제가 머리를 한 데 딱 맞은 듯 했습니다. 그 순간 제가 목사고, 새 생명 축제를 지금 3년째 담당하는데, 한 번도 작정 자 이름에 고모를 써야겠다. 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제가 보살님도 저를 한 번도 안 초대하셨잖아요? 라고 대답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 고모님 죄송합니다. 저희 교회에 11월 달에 새 생명 축제가 있는데, 고모님 꼭 오세요. 연예인도 오고 선물도 드리고 좋은 말씀도 들을 수 있고, 제가 강남에서 제일 맛있는 곳에서 식사 대접받을 테니, 꼭 오세요라고 고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고모님들은 다음 주 수요일 새 생명축제에 참석하기로 하셨습니다. 박수... 제가 박수 받을 일은 아니고요. 이제 정말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저는요. 저희 고모가 구원받을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고모를 몇 년에 한 번 뵙는 게 전부고, 고모는 또 저래 너무 열심히 다니시고 하니까, 고모가 구원받을 거라는 생각 그러니까 태신 자 명단에 저는 한 번도 쓴 적이 없죠. 그러니까 요나 같은 마음이 제 안에도 분명히 있었던 것입니다. 근데 누군가 고모를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고모의 오빠이신 저희 부친께서 열심히 기도하셨을 것 같은데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신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우리 주위에도 분명히 이런 분들이 분명히 계실 것입니다. 제 주위에도 여전히 이런 분들은 많이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그 딱딱한 껍질을 깰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전도할 수 있는 사람, 내가 작정할 수 있는 사람의 고정관념을 우리가 모두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몇 년간 연락이 두절되었어도 내게 조금 멀리 있는 사람들도, 심지어 나를 괴롭게 하는 자들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작정한 4만 5천 명의 놀라운 이름들이 있습니다. 우리 어떠한 마음으로 작정했습니까? 혹여나 니느웨 성에서 확신 없이 설교한 요나처럼 적긴 적지만 안 될 거야, 이러한 마음으로 작정하진 않았습니까? 혹은 그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어 내가 정한 교만한 마음으로 복음조차 전하지 않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의 마음으로 작정하고 전할 때에 구원의 역사가 니느웨 성을 회개시키고 구원하였던 것처럼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이들까지 변하게 하시고 구원케 하시는 이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주일부터 시작되는 새 생명 축제 기간에, 다섯 번의 집회 기간에 우리의 생각의 틀을 뛰어넘고, 우리의 마음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마음이 이 본당 가운데 가득 부어지는 역사의 현장에 우리가 함께 동참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요약
나의 결정과 나의 판단, 나의 선입견 모두 하나님 말씀 앞에 내려놓아서, 그 하나님의 계획에 날마다 순종하는 삶을 살아나야 한다. 하나님 박 넝쿨의 그늘과 같은 작은 것에 내가 기뻐하는 인생이 아닌, 한, 영혼이 돌아올 때, 가장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삼는 인생이 되는 자가 되며, 한 영혼의 영적 필요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준비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닿는 곳에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일익을 감당해야 한다. 새 생명 축제를 앞두고 온 교회가 부흥의 물결을 소망하며 실천하는 자가 되고, 교회 사역과 담임 목사님과 새 생명 축제 강사님들을 위한 기도 제목을 하나님 앞에 함께 올려드리며, 2023 새 생명 축제를 통해 주님의 귀한 행적이 나타나는 기적을 체험하며, 2천만이 주님께 돌아오는 2033 50 비전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새 생명의 결정적 역사가 일어도록 간절한 기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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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1월 12일)-세례식
제목: “은혜의 대관식”
말씀: 고린도후서 5:14~15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김은석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세례식 간증: 이현우, 이정혜 성도(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고린도후서 5:14~15,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ㅡㅡㅡㅡ

-10월 23일 날 7천여 명의 목회자들과 천년 교회 사역자들이 참석하시는 제2회 한국교회 섬김 나에 대한 은혜의 진리를 한 번씩 맹맹하고 있습니다. 많은 곳 사람들이 힘들게 못 했는데 힘을 얻고 다시 잡을 수 있는 어떤 그런 방향을 잡았다. 얘기를 하시고 그다음에 이제 그 목사님들이 목회하시는 교회 성도들에 대한 반응을 들어 이게 뭐냐 하면 우리 목사님이 한교섬에 갔다 오시더니 너무너무 새로워지고 달라지셨어요. 그렇게 하고 “목사님 한국교회 섬기는 말을 한 번만 말고 계속하시죠.” 우리 성도들 정말 수고 많이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오늘 366분의 학습, 세례, 입교, 여러분들이 가지시는 게 신앙인 교회가 계속해서 이 복음의 능력 생수의 강의 한 달에 한 번씩 하면 더 영광 올려 드립니다. 그리고 세례 받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단계는 보통이 아닙니다. 수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오늘 세례 받게 되는 거 진심으로 축하하고 격려를 드립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은혜의 대관식" 세례식을 통한 은혜의 대관식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은 우선 세례에 대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태복음 16장 17절에 나와 있는데,

*마태복음 3:16~17,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16장 17절에 나오는데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어요. 첫째 뭐가 됐어요?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예수님께 이 말씀을 보느니 그다음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 아들이여 내 기뻐하는 자라 하더라. 그랬습니다. 이 말씀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나가보도록 그렇게 합니다. 누가 보든 상관이냐 공관복음에 다 이 내용이 다 나와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세례를 받으신 분이에요. 세례를 통해서 이런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정체성 회복이 돼 정체성을 갖게 되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사역에 예수님의 사역의 정체성 섬김의 정체성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왜 기뻐하는 사랑이 그 내용으로 그게 이제 공포가 되고 그게 확인이 되고 이렇게 되었을 때, 그 다음에 이제 마태복음 37절 끝나고, 바로 4장 1절에

*마태복음 4:1,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예수께서 성령이 그 마귀에게 시험을 그러니까 과정들을 다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원동력을 세례를 통한 예수님의 정체성을 통하여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되시고 공개적인 선포와 실체를 체험할 수 있게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인 치심, 즉위식 은혜의 대관식을 하고 난 다음에 그 ‘은혜의 대관식’을 통하여 왕의 면류관을 씌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그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앞으로 수많은 사역의 고난과 모든 질고와 아픔을 이겨내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하나님이 맡길 수 있는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그 이후에 수많은 사탄의 시험도 이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에요. 따라서 오늘 세례 받는 모든 성도들 이 자리가 내 사랑하는 아들이여,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는 '은혜의 대관식'의 자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미 세례 받은 모든 성도들은 내가 받은 대관식이 얼마나 될 대단한지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웬만한 시험은 좀 이겨낼 수 있도록 그 능력을 받고 오늘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은혜의 대관식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나타난 공통적인 현상은 다 안에 있는데, 오늘 우리가 본문 뒤에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고나 뭐예요 다 너무나 익숙하게 하는 말씀 암송하는 말씀이에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도다.’ 근데 지금 개혁 우리 지금 새로운 번역 우리 새 번역에서는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도다.’ 새롭게 되었다. 세례 받고 난 다음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뭐냐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도다.’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도다. 근본적인 변화를 갖게 되었도다. 특별히 사도행전에 보면 이방인들 대표적인 이방인들이 세례를 받은 것이 나와요.

하나는 뭐냐 하면 고넬료 백부장 고넬료가 세례를 받고 난 다음에 성령이 충만해지고, 그다음 빌립보 간수가 바울을 죽이려고 하던 그 빌립보 간수가 세례를 받고 난 다음에 온 지하에 구원받고 완전히 새 사람이 된 것이에요. 세례를 통하여 새 사람이 된 케이스에요. 이것은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에는 세례를 구약의 할례가 세례가 되었다고 그러는데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고 난 다음에 한 집안의 아비, 아브라함 또 집안에 조그만 집안의 아비 정도의 있다가 열곡의 아브라함 열곡의 아브라함, 복수가 되어가지고 완전히 자기만을 위해 살던 인생이 완전히 천하 왕국의 축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에요.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사건을 말하는데,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그 홍해를 건넌 사건이 바로 세례 사건이다. 세례 사건이다. 그러니까 홍해를 건넌 후에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된 거예요. 노예의 종살이 하는 사람들이, 노예 살이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된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 세례 받는 분들 가운데서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가 학교 가지 못하게 하려고 아버지가 저기 예수 믿지 못하게 하려고 교회 가지 못하게 하려고 너 막 그냥 종아리 때리고 성경을 찢고, 심지어 호적에서 이런 제거한다. 그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 받고 꿋꿋하게 신앙을 지켜가지고 나중에는 그렇게 때리고 협박하던 아버지가 이 아들의 전도를 통하여 구원받는 사건이 일어난 거에요. 할렐루야. 그래서 이런 분들이 한국교회가 많이 그래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 이 말씀을 기록한 살인 주동자였던 사울이 예수님의 사도가 된 것은 완전히 새로운 신분이 된 거예요. 새로운 대관식을 하게 된 거예요. 사울이 나중에 눈 먼 상태에 있다가 세례 받고, 이렇게 되고 난 다음에 눈에서 비들 같은 것이 없어지고 나서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됐어요. 그리고 나중에 복음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세례받은 모든 분들 또 이미 세례 받은 모든 분들 그동안 우리를 좀 이렇게 다 우리가 여기 가고 있던 모든 비닐이 여러분들에게 떨어져 나가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세계관이 형성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세례에 대해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새로운 대관식을 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 구절이 있는데 갈라디아서 3장27절에 보면,

*갈라디아서 3:27,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오늘 여러분들에게 우리가 옷을 입었습니다. 저는요. 이 주일날이 가을 겨울에 설교를 하면 너무 이상한 거 있어요. 여름에는 다 흰옷이야. 이제 겨울이 되면 팥 색감이 한국 사람들은 너무 이렇게 정체성이 확실히 낮은 거예요. 캘리포니아 같은 경우는 1년 12달 다 똑같은 옷이에요. 비슷해. 우리는 그냥
성격도 화끈하고, 여름은 하얗고 겨울에 다 새까맣고, 근데 주님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오게 됩니다.

여러분들과 제가 세례를 받고 난 다음에 예수님의 옷 입은 줄로 믿는 것이 그러니까 새로운 옷을 입었다는 건, 새로운 시험되었다는 뜻이에요. 죄의 더러운 옷을 입고 떠돌던 영적인 거지가 하루아침에 그리스도로 애굽을 입고 하나님 나라의 왕자의 정체성을 갖게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로마에는 왕의 대관식을 할 때마다 로마 제국에서 왕으로서 특별히 제작되는 그 황제의 예복에서 대례복이 있어요. 이 옷은 왕을 상징하는 무늬도 있고, 그 국가의 상징 문양도 있고, 문장이 장식돼 있죠. 특별히 로마의 로마 황제는 보라색 보라색을 입고 있었어요 보라색의 광석이나 고위 귀족의 의복이 된 이유가 뭐냐 하면 보라색 염료를 얻는 과정이 매우 어려웠고 비용이 많이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1장 자조장사 누구예요? 루디아가 어마어마한 그 당시에 제력 가였어요. 유럽 교회 초대, 빌립보교회, 그 여인이 바울에게 세례를 받고 초대교회에 막강하게 섬기기를 받는 오늘 우리 가운데도 그런 인물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가 스가랴 3장을 하면서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마귀의 참수를 바라 온갖 뭡니까? 오염물이 가득한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고 했잖아요. 사탄이 참수하는 거 그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했죠? 아름다운 예복을 입히시고, 정결에 관을 씌우시고~ 우리가 세상 적으로 오염되고 그럴 수 있던 우리들을 세례를 통하여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고 정결의 관을 씌우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제가 오늘 세례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세례 받는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세례 받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세례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오늘 한 가지만 더 얘기하시 14절에 보니까,

*고린도후서 5:14~15,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즉 모든 사람이 뭐예요? 장례식에 은혜의 대관식 세례식을 받은 사람이 해야 할 첫 번째 가장 중요한 일은 뭐냐

◆ 여러분과 제가 장례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로마서 6장 3절, 4절에,
*로마서 6:3~4,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세례 받은 사람이 장례식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은혜의 대관식’에는 반드시 옛 사람에 대한 장례 선포가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자아가 죽고 옛 사람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세례 받은 모든 분들, 우리 온 성도들 다시 한 번 자아가 무너지고, 옛 자아에 대한 장례식을 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뭘 장례식을 합니까? 펄펄 살아 있는 자아, 혈기, 이런 걸 장례식을 좀 하고 그다음에 자기를 부인하고, 그 다음에 공로 의식에 찌들어 있는 우리가 남이 안 알아주는 거 섭섭하고 이런 거 좀 장례식하고 은혜 의식으로 사로잡히고, 또 염소 같은 태도 지난주에 장례식을 다 하고, 염소 대신에 착한 양으로 다시 회복하고 그러니까 나의 옛 자아, 그다음에 공로 의식, 그다음에 염소 같은 태도를 다 장례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중독되어 있는 모든 것에서부터 장례 의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게임이나, 쇼핑이나, 음식이나, 유튜브나, 미움이나, 질투나, 배신감 등 나를 얽매여서 컨트롤 하려고 하는 것으로부터 장례를 해야 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페이보릿(favorite) 하고 우리 나름대로 취미 생활 이런 거 잇츠 오케이 괜찮아요. 그런데 그것이 나를 지배하면 문제가 나의 시간은 어딕션(Addiction)으로부터 중독으로부터 중독을 파괴시켜야 되는 것이에요. 장례식을 해도 적당히 죽으면 안 되고, 완전히 장례식을 해야 됩니다. 죽은 척해도 안 되고 우리 알잖아요! 여러분, 닭 잡는데요. 시골에서 닭 잡다가 닭을 적당히 잡아 몸을 다 적당히, 반만 잡아주면 닭이 어떻게 하죠? 온 동네를 쏟아내면서 피를 뿌리는 거예요. (닭 잡는 거 잘 보시기도 하셨네용!) 제대로 죽자. 제대로 좀 제대로, 제대로 좀 제대로 죽자.

지난주에 유명한 이를 때 유명한 배우가 '내 인생이 왜 이렇게 우울한 거야?' 많은 사람이 이렇게 우울한 거야. 내 탁월함은 어디에 있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가 60을 넘어가지고 내 인생은 이거 명대사에요. ‘내 인생은 왜 욕을 한 거야 만사가 다 우울해?’ 라고 해요. 내 삶의 탁월함은 어디 있지?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내 삶의 보람은 어디 있지? 아직 젊은 분들은 잘 모르는데 60이 넘어 봐요. 다 그런 고백 안 하면 인생 아니에요. 내 인생이 왜 이래 우울해 하는 사람 왜 이래 우울해? 핵심은, 핵심은 왜 그럴까? 자기만을 자신을 바라보니까 우울해지는 거예요. 자기만을 바라보니까 슬퍼지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독특한 창조 질서예요. 그러니까 자아를 계속 바라보고, 자아를 집중하는 한 저와 여러분이 계속 우울하게 돼 있는 것이에요. 대답 안 하는 거 봐요,.. 여러분과 제가 사업을 계속 바라고 자기를 집중하라는 인생을 계속 우울하게 돼 있다니까요. 이게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요. 하나님은 모두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어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창조 질서를 만들어놨기 때문에 여러분과 제가 자아에 대한 장례식을 하지 않으면요. 인생을 다 우울하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내 탁월함은 어디 간 거야? 여러분 자기만 바라보고 내 자아가 장례식을 치르지 않으면요. 인생은 다 환상이에요. 오늘 세례 받은 모든 분들, 또 이미 우리 성도들, 이었지만 기가 막히게 많은 분들, 저나 여러분은 예외가 없어요. 내 중심 나만 바라보고, 내 우주가 내가 중심이고 나만 이렇게 생각하고, 나만 생각하면요. 여러분 앞으로 반드시 결론하는 일이 뭐냐? 우울증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중심으로 하고, 하나님께 집중하고 내 자아는 장례하고, 은혜의 의식에 충만하고 이렇게 될 때는요. 내 삶이 풍성한 은혜의 열매를 날마다 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에요. 정말 이 은혜가 새를 받은 모든 분들에게 충만하길 바랍니다.

♣요약
오늘 학습, 세례, 입교식이 생수의 강이 넘쳐흐르는 은혜의 대관식이 되고 모든 어려움의 홍해를 넉넉히 이겨내는 평생이 되며, 우울함에 이르는 옛 자아의 공로의식과 중독은 제대로 장례식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치러서 날마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청청한 은혜의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 교회 새 생명 축제에도 주님의 은혜로 휘몰아치게 하시는 2033-50 비전을 이루어가는 부흥의 진원지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쓰임 받는 자가 되기를 소원해야 한다.














                                                                                          -세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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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1월 05일)
제목: "하나님이 거하시는 주소"
말씀: 시편 116:12-17
대표기도: 김승진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 영광찬양대(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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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6:12-17,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15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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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기대감을 갖고 나온 모든 성도님들 우리를 살리시는 영,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영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변함없이 세월 내 출석한 사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데 사랑의 교회가 45년 동안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기 위한 이 제자 훈련 우리의 사역이 꺾어지지 아니하고 한 결 같이 집중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올해는 지난 봄 특새부터 시작해서 또 지난주 우리 한국교회 섬김의 날 5천여 교회 7천여 명의 목회자들을 섬길 수 있도록 은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리고 또 저는 담임 목회자로서 우리 성도들을 정말 주님을 묵묵하게 신실하게 충성되게 한 결 같이 섬겨주심에 감사하고 또 우리 손자님들 다 목자의 심정으로 성도들을 섬기는 것을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감사절이 될 때마다 오늘 설교 제목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주소”라, 그렇게 했는데 기억나는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주소가 두 군데가 있는데 한 군데는 어디일까요? 일반적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러니까 헤브니 파더(Heaveny Father), 하늘나라가 하나님의 주소이고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또 하나 주소가 어디일까?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어디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말씀이 골로새 교원들에게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하게 거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러니까 감사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같이 가는 건데, 특별히 시편에 있는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이걸 통해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헤브니 파더(Heaveny Father), 하늘에 거하실 뿐만 아니라, 감사와 찬양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주소가 또 다른 한 군데가 감사하는 사람에게 임한다.

그래서 여러분 마귀 마귀는 말이에요. 마귀는 제가 지금 너무 진지하게 하니까 다들 탁 이렇게 돼 있는데 마귀의 주소가 어딘가 마귀의 주소는 반대로 지옥이고 원불비가 마귀의 주소 원불비가 뭐예요? 원망하고, 불평하고 또 뭐 하는 거예요? 비난하고, 이걸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죽음에 이르는 병인이 되도록 만든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주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그 하시는 주소 이사야가 이사야 38장에 수월히 주께 감사하지 못하며 그다음에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한다.

*이사야 38:18,
18 스올이 주께 감사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서울과 사망을 죽은 자 문어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 감사하지 못하고 찬양하지 못한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영적으로 잠자는 자 영적으로 죽은 자들은 하나님을 감사하지 못한다. 로마서의 바울이 고백한 대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가장 공통된 중요한 현상 중에 하나가 감사하지 아니함이 그랬어요. 그것이 독특한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무을 보자 하신 하나님이다. 다 아세요 하나님은 어디에 다 계신다고요? 다 계시는데 여러분의 것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이 갖고 계시는 권능과 능력과 은혜와 자비를 여러분에게 주시길 원하시는데 그 권능과 자비와 능력을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택배로 보내시길 원하시는데, 여러분 주소가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그 주소가 뭐냐 감사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서울시에 삽니다. 그러나 엄격하게 우리는 감사시에 살아야 되고 서초구에 우리 교회 있습니다. 서초구가 감사구가 돼야 되고 그다음에 이 방배동이 뭐예요? 이 방배동이 뭐냐 하면 뭐가 돼야 되는 거예요? 감사동이 돼야 되고 121번지가 감사 121번지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감사시 감사구, 감사동, 감사번지가 되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광스러운 귀한 것들을 택배로 보내주시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이렇게 되기 위하여 오늘 본문을 가지고 몇 가지 좀 정리를 좀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는가? 저자 이름이 나와 있지 않는데 성경학자들은 아마 이걸 다윗이 썼을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 그의 생애를 살면서 기가 막힌 웅덩이와 어려움과 문제와 난관에 봉착한 인생이었다. 심지어 몸이 아프고 병들었다. 근데 몸이 아프고 병들을 정도가 아니라, 그 정도면 그 정도면 또 그렇지만 막 사람들이 비방하고, 그다음에 공격의 화살을 쏘아대고, 그다음에 다윗을 아주 그냥 비방하는 데, 아주 비방에 창을 던지고 막 그렇게 하는 거예요. 제 얘기가 아니고 앞에서 3절 보겠습니다.

*시편 116:3,
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수수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란과 슬픔을 만났다. 죽을병에 걸렸다고 악담하고 비방하고 하루빨리 다윗이 나가 죽을 나이도 아닌데도 빨리 죽기를 원하는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생긴 거예요.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얼마나 힘든지 그래서 4절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그다음 뭡니까?

*시편 116:4,
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여호와의 주께 구하면 내 영혼을 뭐 해 달라고요? 건져주십시오. 주님 간절히 내 영혼을 건져달라고 내가 감당 못할 어려움이 있습니다. 건져달라고 그럴 때 정말 제가 좋아하는 구절이 6절인데요. 함께 우리 크게 보겠습니다.

*시편 116:6,
6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아멘. 여러분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주신 말씀은 그대로 믿어집니까? 믿어지면 순진한 거고 안 믿어주면 조금 오염된 거예요. 저는요. 이 말씀이 너무 좋아요.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순진한 마음의 상태가 유지되게 하여 주십시오. 다른 말로 하면 앞뒤가 똑같아야 되는 것이에요.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은 앞뒤가 똑같은 말씀으로 받으시기를 바라는 거예요. 저는 우리 부교육자들 성격을 할 때 제일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뭐냐 다는 모르지만 앞과 뒤가 똑같아야 되는 거예요. 크레물린 궁전은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 들을 때 죄송합니다. 제가 사투리를 써가지고 꾸무레 하면 안 되는 것이 이게 똑같아야 돼요.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야 되는 거예요. 다시 한 번 시작.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라 아멘. 이 말씀을 앞뒤가 똑같이 받으시길 바래요. 앞뒤가 똑같이 그럴 때 8절에 무슨 말씀이 일어나 8절에 함께해요.

*시편 116:8,
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여러분들의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가지 않습니까? 지나가는 가운데 하나님 내 영혼을 사망에서 건져주시고, 내 눈을 눈물 골짜기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발을 넘어지면서 건져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것이 너무 그리고 사망에서 건져주시고. 눈물을 닦아주시고. 구원받은 사실이 너무 감사해가지고 드디어 이걸 총 집약해 갖고 오늘 주보 제 앞에 요절로 써놓은 것이 뭡니까? 12절 함께요.

*시편 116:12,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할렐루야.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무엇으로 보답할까? 옛날 개혁 판에는 내게 주신 이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꼬!!! 여러분 까가 좋아요 꼬가 좋아요? 저는 꼬가 좋아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조금 더 마음에 와 닿아요. 그러니까 무엇으로 보답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자연스럽게 13절부터 내가 해야 할 내가 하고 내가 감당해야 할 내가 정말 주님이 주셔가지고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 뭐냐 하면 첫째 구원의 자를 넓이 든다.

*시편 116:13a,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다른 어떤 것보다도 내게 주신 은혜가 눈물 골짜기에 나를 건지시고 그 모든 병과 어려움에서 지켜주신 하나님 은혜가 너무 감사해가지고 구원의 잔을 높이 들겠습니다. 여호와 이름을 부른다. 송축한다. 또 그다음에 또 뭐가 나와요? 또 14절에 뭐가 나와요?

*시편 116:14,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시편 116:17,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그 다음에 그 다음에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겠다.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했는데 시작은 구원의 자를 높이 들고 우리가 성찬식 할 때 찬양하리~ 찬양하리~ 주님이 죽임당한 어린 양 주께 영광 돌리라.~우리 죄를 씻어주셨네. ~~
-그냥 구원의 잔을 들고 마지막에는 주께 감사 전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이거예요.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우리가 그렇게 한다. 다 함께 공동체 한다. 이것도 좋지만 이거는 철저하게 내가 구원의 자리를 주게 높이 들고 내가 서원을 갚으며 내가 하나님께 감사자를 올려드리기를 소망합니다. 이거예요. 남 얘기가 아니고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과 저의 개인과 나 자신에게 적용된 것으로 고백이 돼야만 하는 것이에요. 내가 권한 자 그래서 오늘 이 내용을 그리고 이것이 나중에 내 결박을 풀어주시고 17절에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

오늘 이 본문을 쭉 말씀하고 있는데 이걸 통하여 제가 오늘 두 가지를 오늘 이 귀한 추수 감사 주일날 여러분과 저가 적용할 때 여러분의 생애와 또 앞으로 여러분의 삶의 미래가 달라지 게 되는 것이에요. 첫 번째는 뭐냐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제가 가만히 묵사람 느낀 게 뭐냐 하면요 여러분과 제가 받은 구원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가지고 그 구원받은 구원의 감격과 구원의 감사의 수준이 내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이에요.


I. 구원에 대한 감사 수준이 내 가치를 결정한다.
-어떻게 이 은혜를 보다 밝고 그랬는데 나온 답이 뭐냐 하면 여러분과 제가 구원에 대한 감사의 수준 여러분 구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수준이 내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이에요. 이게 무슨 말이냐, 유명한 축구 선수들 대단한 몸값이 그런데 그분들만 몸값이 귀한가요? 여러분들이 받은 구원의 값 사치는 얼마예요? 여러분들이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는 얼마나 대단한 거예요. 저는 이건 비교의 대상은 아니지만 여러분들이 받은 구원은요 1조가 아니에요. 10조가 아니에요. 프라이스리스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저와 여러분이 받은 구원은 대단한 것이에요. 여러분 이것이 너무나도 분명하고 너무나도 확실하게 되면 깨닫는 진리가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이 놀라운 이 놀라운 구원의 영광을 이 구원의 값을, 구원의 가치를, 세계 최고의 석학에도 깨닫지 못하게 하시고 로마 황제에게도 주지 않은 이 구원을, 아니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사람들, 유명한 귀족 집안의 자녀들, 삐까번쩍하게 잘생긴 사람들에게도 이걸 주지 아니하고 위대한 석학들이라고 다 구원받은 거 아니고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구원받은 것 아니고 최근에 노벨상 수상자라도 구원받은 거 아닌데 이유는 모르지만 부족한 저와 여러분에게 이 구원을 주신 것이에요. 이게 확실하면 이 구원에 대한 감사의 수준이 구원에 대한 감격에 여러분들의 감사의 수준이 현재 여러분들의 가치를 결정한다니까요.

제가 젊을 때 내 이 구원이 얼마나 대단한가? 이거 우리가 일반적으로 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 분들은 좀 맹맹하고 그렇잖아요? .그런 나는 말씀을 묵상하다가 너무나 충격을 받은 거예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심에 빛이 있었고, 그러니까 천지 창조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에요. 말씀 한마디로 빛이 있게 되고 식물들과 동물들이 다 이렇게 형성이 되게 된 거예요. 그런데 그 말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내 죄를 없애하기 위해서는 내 구원을, 내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아끼는 독생자의 핏 값을 치렀다. 말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내 죄가 사해지기 위해서는 가장 아끼는 아들의 핏 값을 치러야 된다. 이게 어마어마한 감격과 충격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에요. 내가 뭔데 주는 내가 뭐길래 내가 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피 값을 치러가지고 그 피로 나를 덮어 주셔가지고 나는 아무런 의로움이 없는데 하나님이 나를 핏 값만큼 귀한 자로 삼아주셨다. 이걸 깨닫는 순간 저 삼각산 꼭대기에 올라가 울면서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감사하세! 감사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미칠 듯이, 오늘, 오늘, 오늘 이 귀한 이 시간에 우리를 살리는 영이 여러분들을 새롭게 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받은 구원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걸 여러분들이 진짜 실체감 있게 느끼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말씀 한마디로 안 되고 피를 흘리셨다는 것을 믿을 진데 기가 막힌 대우를 해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최고의 대우가 뭐냐 구원이시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가 뭐냐 구원이시다 이 말이에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들이여, 내가 받은 구원이 진짜라면 여러분과 저의 죄가 참으로 용서받았다면 지금 죽어도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다면 내가 지금 어떤 형편인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내가 좀 힘들든지, 아프든지, 어렵든지 큰 문제가 되잖아요. 내가 지금 어떤 지위에 있는 어떤 신분을 가진 것도 큰 문제가 되잖아요.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가, 인정 못 받는가, 내가 지금 열 받는가 안 받는가 이것도 큰 문제가 되잖아요. 내가 참으로 구원받은 것이 진짜라면 이것 자체만 갖고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제가 구원의 자를 높이든 내가 우리가 정도가 아니라 내가 구원의 자를 높여줬던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여러분들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찾지 말라는 것이에요. 누가 여러분들을 이렇게 평가하고 누가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하는 거예요. 거기 신경 쓰지 말고 여러분들의 가치를 여러분들 스스로 내가 받은 구원에 대한 감격을 가지고 확인하라는 것이에요.

여러분의 가치는 다시 한 번 구원에 대한 감격의 수준이 내 가치를 결정하는 줄로 믿으셔야만 되는 것이에요. 다시 여러분의 가치는 세계 최고의 운동선수의 가치보다도 100배, 천 배 큰 것입니다. 구원의 감격의 등불이 켜져 있는 사람은 감사의 빛이 흘러나와가지고 해와 같이 빛난 얼굴이 되는 것이에요. 구원의 감격의 등불이 꺼져 있는 사람은 감사의 빛이 다 갇혀 있기 때문에 정말 날마다 감옥에서 출장 나온 얼굴이 되는 것이에요. 다시오. 내가 누구냐가 문제가 아니에요. 내 지위와 신분도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어느 정도 유명한 사람인가 그것도 상관이 없어요. 구원받은 거 하나만으로도 내가 감사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줄로 확신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이후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하늘의 유혹을 우리가 이어받게 된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이것 때문에 글을 좀 썼어요. 우리는 본래 우리는 영적인 노숙자들이에요. 홈리스예요. 우리는 받을 기업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영적인 노숙자를 하나님 나라의 왕자로 바꿔주신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되는 것이에요. 어떤 사람은 세상의 최고의 지위와 최고의 소유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실상은 영적으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세상 적으로 아무리 대단한 셀럽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이 없으면 그들은 죄의 거리를 떠도는 영적인 노숙자에 불과한 것이에요.

하나님의 이 놀라운 최고의 구원은 영적인 노숙자인 신분이 우리를 하나님의 왕자로 바꾸어 주신 줄로 믿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은혜를 가지니까 우리 같은 부족한 인생이 하나님의 거룩한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몸인 더 바디 오브 크라이스트(The Body of Christ.)가 교회인 교회의 기태로 만들어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다가 로마서 11장 24절을 읽으면서 이걸 박수를 쳤어요. 그것이 뭐냐 다 같이 로마서 11장에서 같이 보겠습니다.

*로마서11:24,
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무슨 말이에요? 우리 저와 여러분 본래 돌감나무에 영적인 노숙자들이었어요. 우리의 본성은 엉터리였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최고의 대우인 구원을 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 만들게 만들어 가지고 우리가 남은 생애가 멋있는 감나무의 열매를 맺고 살도록 그렇게 만들어주신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다른 건 몰라도 여러분 이거 하나만으로도 여러분 인생 성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죽어도 최소한 천국인 것이에요.

그래서 앞으로 우리는 술자리 이런 건 안 하지만, 우리 물이라도 한 잔 갖고 우리가 건배사를 하면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은 건배사를 감사로 다 바꿔야 돼요. 아시겠어요? 구원받은 거 감사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이제 딱 손을 딱 들고 제가 구원받은 가면 감사 이렇게 한번 해보세요. 구원받은 것 오직-감사, 초월적-감사, 역설적-감사, 평생-감사, 즉각-감사, 불멸의-감사, 무한-감사, 전천후-감사, 절대-감사, 다 하신 분은 축복이고, 한 번도 안 한 분들은 내가 순진한 사람인가 생각하세요. 우리는 지금 지금 죽어도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운동선수의 몸값과는 비교가 안 되는 천 배 만 배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구원에 대한 감격이 여러분들의 현재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 얼굴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거 물론 비슷한 흐름이긴 하지만

여러분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수많은 사람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젊은이는 젊은이들로 앞으로 내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나이 드신 분들은 노후 대서 걱정이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제가 오늘 분명히 말씀드렸는데 여러분들의 미래가 어떻게 결정되는가? 여러분들의 미래는요. 현재 감사를 통하여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에요. 현재의 감사의 수준이 미래에 결정되는 거야. 내일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둘째 II. 내 인생의 미래는 현재의 감사의 수준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내가 주님 평생 감사를 드리고 감사와 제사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에 대해서 어떻게 하든지 감사 제사를 드릴 때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에요. 내게 주신 은혜를 감사할 때 미래가 결정되는 거예요. 참 미안한 게요 현재의 감사가 이렇게 들어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져요. 샘이 있는데 샘솟는 샘이 있는데, 샘에서 물이 솟아 흘러와가지고 자연스럽게 이렇게 흘러가는 것은 그게 억지로 되는 겁니까? 자연스럽게 되는 것입니까? 이건 자연스러운 거, 용을 안 써도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야 내가 내 몸에 피를 한번 굴려보겠다. 막 피를 한번 굴려보겠다. 하고 피를 한번 요 모세혈관을 통해 끝에 이래 해 봐야지 그런 사람은 없어요. 그냥 심장이 제대로 박동되면 자연스럽게 피는 온몸의 혈류로 흘러가게 돼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감사의 심장이 박동되면, 감사의 피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것이 그 온몸이 건강해지는 것이에요.

우리의 피가 몸 구석구석까지 가려고 노력하지 않아요. 내 심장이 건강하면 자동적으로 피가 온몸으로 흘러가게 돼 있는 거 감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감사의 박동을 하면, 우리가 우리 심장을 구원의 감격으로 박동을 하면, 자연스럽게 건강한 피가 흘러 감사의 피가 흘러가게 돼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현재의 수준이 현재의 수준이 자연스럽게 모든 걸 자연스럽게, 그래서 이 감사가 되면 하나님께서 통찰력을 주시는데 어떤 통찰력을 주시는가? 남은 인생 미래 여러분들의 삶의 모든 것들이 조각 조각조각들이 이제 모이는 것인데, 이게요. 감사로 자연스러워지면 미래가 결정되는데 감사하고, 감사 감사하면 여러분들의 앞으로 삶의 수많은 편린들과 조각들이 어떻게 되는가 하면 그것이 버릴 것이 없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이에요. 디모데전서 4장 4절 보겠습니다. 같이요. 디전 사장이 함께해요.

*디모데전서 4:4,
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감사함으로 받으면 이게요 어떻게 되냐면 통찰력이 생기는 것이 현재의 감사가 미래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주권을 인정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우리가 인정하게 될 때 우리가 그야말로 잘하는 모든 것이 서로 합력해가지고 서로서로 같이 올 투게더(All together)가 돼가지고, 서로 나누어지지 않고 모두 합력해가지고 선을 이루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다 좋아하는 말씀 모든 것이 합력하면 다 아는 말씀이에요. 그러나 그게 어떻게 되는 거냐 이 말이에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집은 자가 하나님께 감사해 가지고 감사를 통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찰력을 인정할 때 그다음에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은 조각조각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디모데전서 4장이 얘기한 것처럼 감사함으로 받으면 모든 것이 버릴 것이 없도록 만들어주는 것이에요. 전체가 다 그러니까 통찰력을 갖게 되는데 무슨 통찰력을 갖게 되느냐 인생이 자연스러워지는데 악인의 궁궐에서 살기보다도 하나님의 집, 문지기 있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것이에요. 뭐 잘 나가는 것보다도 오늘도 보니까 제가 지금 일부 예배 들어오기 전에 한 7시 한 15분쯤에 들어왔는데요.

우리 안내하신 집사님들이요. 얼굴이 보름달 같아요. 환영은 안 돼 얼굴이 크다 그 말이 아니고 얼굴이 정말 막 제가 들어오는데요. 제가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오늘 이 집사님 때문에 내가 오늘 설교하는 데 더 힘이 생길 것 같구나. 그게요. 세상 잘 나가는 것보다도 주의 전에서 안내 주차 교육 봉사할 때 진정으로 하면 주시는 하나님 은혜가 있는 예를 들어 제가 설명하는 것이 솔로몬의 영광보다도 들어 핀 꽃이 더 아름답다. 이게, 모든 걸 감사함으로 받을 때 생기는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 거룩한 통찰력이에요. 그리고 이 사회도 미래가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하는 것이 다시오. 우리의 심장이 박동이 되면 구원의 심장이 박동이 되면 감사의 피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되어 있다. 할렐루야 정말 주님 앞에 감사하면 현재의 감사가 뭐를 결정한다고요? 미래를 결정하는 겁니다. 미래를 결정하는 거에요. 우리 앞에 수많은 일들이 지나갑니다. 수많은 어려움들 막심한 일들 고통이 다 지나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오늘 현재 초월적 감사, 절대적 감사, 역설적 감사, 평생 감사, 그다음에 뭐예요? 즉시 감사, 온전한 감사, 한 결 같은 감사, 이렇게 올려드리면 그것이 여러분들의 미래를 결정한다니까요.

저는 제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게 있어요. 95년도에 제가 미국에서 사역을 열심히 그때 교인들이 12명 교인들이 한 2천 명이 됐어요. 교인들이 막 불처럼 교회가 부흥하는데, 제가 박사 과정을 제가 했던 이 모든 과정들이 있었는데, 그걸 포츠스롱 대학교에서 그 모든 과정을 다 받아주겠대요. 그리고 와서 조금 하고 논문만 쓰면 된다는 거예요. 3년 동안 너무 있었는데 우선에 와서 거기 가서 이제 한 1년을 있으라는 거예요. 95년도 제가 이제 가가지고 있는데 아이고 세상에 가보니까 미국은 그렇게 조금 약간 문화 선진 문화인데 포첩스러운 도시였는데, 한 6~7만 되는 도시였는데 누가 나에게 이제 거처를 마련해 줬는데 좀 죄송합니다. 너무 서글픈 장소로 그 카펫이 너덜너덜 하도 오래돼 가지고, 75년도에 사우스 아프리카 잘 살다가 20년 동안 계속 나라가 이렇게 디클라인 하니까 카펫이 다 다르더라고 그다음에 창문에 커튼도 없고, 물도 제대로 안 나오고 그래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는데 조금 마음이 좀 서글프더라고요. 근데 뜰에 나가니까 야생화 국화가 피어 있는 거예요. 금국이 피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금국을 제가 다 갖고 그 생수병을 잘라가지고 거기다 넣고 그다음에 그 벼록시장에서 샀던 촛대가 있었는데 촛대에다가 초를 딱 꽂고 초를 불을 켜고 저녁에 그다음에 방을 좀 사우스 아프카는 파이가 유명하니까 파이 파이를 좀 사가지고 놓고 그다음에 뭐했나면 녹음기가 있어요. 녹음기에다가 내가 좋아하는 찬송 중에 하나 마르나타송, 첫 번째 나오는 데 헤브니프, 아들 옆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세!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세!~ 그 찬송을 들었어요. 아무 것도 없는 좀 이렇게 썰렁한 좀 이렇게 을씬절한 그런 상황이 찬송을 듣고, 야생화가 비어 있고 촛불이 노을대고, 카니발에 있으니까 주님께서 예배하신 광야 식탁이 된 거예요. 제가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 자리가요 축복의 자리가 되고 아이들과 함께 감사가 되고, 저는 지금 생각에 그때 그 현장의 감사가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와 같이 설교할 수 있는 은혜의 기초가 된 줄로 믿습니다.

예를 들어서, 95년 이후에 2003년도에 제가 부임할지 내가 어떻게 알았으며, 2023년도에 5천여 교회 7천여 명의 목사님들을 우리가 섬길 수 있을지 어떻게 알았냐고요... 우리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데 우리는 다 연약하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 부족하기 짝이 없어요. 우리도 실수하고 우리 삶 짐 많이 진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여러분들이 진짜로 지금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세 지금 내게 주신 최고의 대우가 구원인 줄 깨닫고 지금 하나님 앞에 치미는 감사를 드리면 이것이 여러분들의 미래를 결정한다니까요. 모든 것이 버리는 것이 없도록 모든 것이 합력하여 삶을 얻도록 그래서 이 자리가 여러분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자리가 되게 하시고 현재 여러분들의 감사가, 여러분들의 삶의 장래가 어떻게 되는지, 여러분의 삶의 감사의 주소에 주소를 명확하게 기록하는 것이에요.

옛날에 저는 청년 시절에 책을 읽었는데 ‘감옥에서 찬송 생활로 From Prison To Praise. 감옥 같은 삶이 감사를 통하여 감사하다. 찬송 성을 한 가지 덧붙이면 ‘From Prison To Praise.’ 감옥 같은 삶이 현재의 감사를 통하여 궁전 같은 축복을 하나님 허락해 주시는 것이에요. 영광의 궁정 같은 것입니다. 그 손을 다 펼치시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세요.

오늘도 2023년도 수많은 일들이 지나갔습니다. 수많은 여러분들의 삶에 역사가 있습니다. 수많은 기도의 제목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만이라도 시편 기자의 말씀대로 내가 순진하게 주님 말씀 받을 때 감사전을 드릴 때 이것이 여러분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세요. 모르는 분들도 가사가 너무 이것이 심플해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세요. 헤브니들 아프리 아이 러뷰 어도 아이 바우 다운 디포유(Heaven Father I Appreciate. I Love You. Adore You, I bow down before You)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일 때,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미래를 책임져 주시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잘나면 얼마나 잘났겠어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의롭게 행하면 얼마나 행하겠어요. 다. 그래서 하나님은 정말 첫머리의 황소를 드림보다도 지금 진실로 감사하면 주님은 여러분 인생을 바꿔주시는 것이에요.

♬주님의 크신 사랑 놀라워라 주님의 크신 사랑 놀라워라 내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셨네. 주님의 크신 사랑은 놀라워라.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세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세. 하나님 주님의 크신 사랑 놀라워라.♪~~

오늘 본문 16절에 보니까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고 주의 종이라. 그다음에 중요합니다. 주께서 나의 결박을 부셨나이다.

*시편 116:16,
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이 감사를 통하여 여러분들의 생애에 수많은 결박을 주님이 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좀 조심스럽지만 제 말씀 하나를 더 드리겠습니다. 1980년도에 저희 부친이 교회를 개척한 지 20년 만에 헌당예배를 드렸습니다. 본인이 교회를 60년도에 개척하시고, 20년 만에 교회 헌당식을 내고 목사 위임 식을 했습니다.

여러 목사 위임식이라는 것은 본인이 개척한 교회인데 위임 식은 금방 할 수 있는데 우리 교회 부목사님 계시면 지금 가셔갖고 한 달 만에 벌써 위임 식 아닌 거예요. 얼마나 교회가 어려운지 위임식이라는 것은 조직 교회가 되어야 위임 식을 하는 거예요. 너무나 가난한 달동네이기 때문에 장로님이 없으니까 조직 교회가 안 되는 게 우리 장로교회 20년 동안 정말 피나는 고통을 통하여 교회 건축도 너무너무 힘들고 그리고 어째서 제가 20년 만에 교회를 건축하고 위임 식을 하게 되는데, 제가 서울에서 내수동교회에서 대학부를 섬기고 있었는데 그 위임 국장 목사님이 저보고 ‘현이 내려와서 아버지 저기 위임 식에 특송 좀 하라’ 라고 그래서 제가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저하고 제 동생 셋과 부산에 동생 4명이 아들만 사형제니까 특송 하기는 좋았어요. 아들만 4형제니까 소프라노 엘토, 테너, 베이스 해서서 합시다. 하고 근데 이제 위 씨 우리가 참 특송을 하는데 첫 찬송을 이걸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해서 이걸 했어요. 이걸 하는데요. 내가 내가 찬송을 못하겠는 거에요. 20년 동안 우리 아버지가 받은 고난과 그 어려움들이 막 우리 어머님은 그냥 정말 3교대 하면서 고생하시고 우리 머니 다 얘기를 못하는데 그게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데요. 내 동생도 울고 있는 거예요. 찬송을 못하고 그냥 계속 울었어요. 그래서 그때 위임식이 아니라 부흥에처럼 그 모든 권사님들 같이 다 울었어요.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면 미래는 결정되는 거예요. 내가 뭘 대단하다 이런 뜻이 아니에요 여러분 여러분에게 가장 맞는 미래를 하나님이 결정해 주시는 것이에요. 정말 주님의 크신 사랑이 여러분에게 놀랍게 선포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요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로마의 황제에게도 주지 않던 구원을 세계 최고의 석학에게도 주지 않던 구원을 오늘 우리에게 최고의 대우로서 구원의 확신을 주신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내가 어떤 신분인가 내가 뭘 얼마나 가졌는가, 이제 문제 되지 말고, 현재 주님께 다 없는 감사를 올려드림으로 말미암아 전천후 감사, 초월적 감사, 불멸의 감사, 무한 감사, 역사의 감사, 오직 감사, 즉각 감사를 올려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남은 인생 결정되게 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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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0월 29일)
제목: "우리를 다시 살리소서!"
말씀: 시편 85:1~6, 10-11
대표기도: 구성찬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시편 85:1~6, 10-11,
1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셀라).
3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4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거두소서.
5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진노하시겠나이까.
6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10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었으며.
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ㅡㅡㅡㅡㅡ
 
▶왜 이렇게 찬송을 한지 아시겠습니까? 오늘 주일하고 다음 주일 두 주가 우리 교회가 잔치입니다. 왜 잔치일까? 참 특사의 은혜도 주시고 또 한국교회 섬김의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놀라운 기적 같은 일들을 많이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은 추수 감사 주일이기 때문에 1년의 은혜와 감사를 모아가지고 그래서 이번 주일과 다음 주일은 우리 교회 잔치가 됩니다. 그래서 오늘 예배 지금은 괜찮아요. 나갈 때 여러분들 무표정하면 그건 잔치에 참여하는 분들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오늘 이 오늘 우리가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오늘 이 예배가 정말 영혼의 잔치가 되기를 바라고 작은 부활절이 되길 바라고 거룩한 대관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0월 23일 또 10월 23일 이틀 동안 7천여 명의 우리 목회자들 5천여 교회에서 오셔가지고 했는데 참 많은 분들이 목회 접으려고 하다가 교회가 너무 힘들어서 접으려고 하다가 다시 새롭게 다시, 다시 한 번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도와줄 자가 주님밖에 없기 때문에 다시 하겠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한 3500교회 가운데서 한 1천여 교회 목사님들이 오셨어요. 작년에 오신 분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갖고 하나님이 아니 그 10명, 20명 교회가 늘어났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감사했는지 그래서 이번 우리 교회 성도들의 섬김도 한 차원 다시 올라갔고 그래요. 어떤 분들이 와고 야 올림픽 하는 것보다 더 질서정연(秩序整然)하다. 그리고 1시간 만에 7천 명 8천 명이 어떻게 동시에 밥을 다 먹나 왜냐하면, 도시락도 먹었지만 이 근처에 수십 개의 식당을 우리가 다 마음대로 가라고 물론 마음대로는 아니고 써놓은 대로 가라고 이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했는데 너무 귀한 시간이었고 우리 성도들의 그릇도 다 커졌고 참 축복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또 목사님 오셔서 그랬어요. 목사님 여기 오니까 대한민국 교회 70년대, 80년대 교회 부흥이 다시 회복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런 거 아세요? 새 중에 가장 아름다운 새가 뭔지 아세요? 새 중의 아름다워 가장 아름다운 새 특새, 특별새벽 부흥회를 우리가 그렇게 했는데 여러분 섬 중에 가장 아름다운 섬이 뭔지 아세요? 한교섬, 우리 ‘한국교회 섬김의 날’을 우리가 한교섬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한국교회 선교 한교 섬이 섬 중에 가장 아름다운 섬 아름다운 섬, 거룩한 섬, 창조적인 능력이 있는 섬,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정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한 섬 한교섬, 가면 갈수록 더 그런 축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한마디로 많은 분들의 마음속에 주님 다시 한국교회가 회복되어 가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회복뿐만 아니라 부흥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흥이 일어나면요. 전 세계 교회의 부흥 역사를 보면 부흥이 일어나는 곳마다 세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어요. 첫째는 뭐냐 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 앞에 뼈저린 각성이 있는 것이 뼈저린 각성이 있는 것이에요. 정말 주님 앞에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하고 각성하고 두 번째로는 예수 믿는 자들끼리의 서로의 시샘과 미움과 갈등을 치유 받는 것이에요. 세 번째로는 뭐냐 하면 갈망이 다시 나타나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갈망이에요. 하나님 나라 갈망을 가지고 쓰임 받고자 하는 갈망이 일어나는 것이 이번에도 보니까 다들 ‘전하고 기도해 매일 증인들이라.’
 
We will give, we will pray,
We will witness every day
That the millions of the whole wide world
May know our Savior’s love.
-우리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주님의 사랑에 녹아지게 하여 주십시오. 갈망이 막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저는 성경이 본문을 가지고 오늘 시편 85편은 부흥에 대한 아주 클래식한 본문이에요. 본래 제가 이 부흥 시리즈를 하면서 초창기 첫 부분에 좀 하려고 했다가, 1년 전쯤 하려고 그랬다가 이걸 제가 이렇게 미루어 둔 이유는 뭐냐 하면, 이게 너무 클래식한 본문인데 이 본문이 이해가 되려면 뭔가 부흥의 실체가 좀 와 닿고 난 다음에 해야 의미가 있겠다. 이렇게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뭔가 지금 조금 우리에게 부흥의 조각 구름이 보이는 거 아닙니까? 아닙니까? 지금 여러분 작년 올해 합계 7,500교회 작년 올해, 만 만 5천 원이에요. 그러니까 만 만 3천여 명의 만 3천여 명의 사역자 목회자들이 와가지고 이렇게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면서 복음의 영광을 위하여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가짐 이거, 부흥의 전초전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런 뭔가가 실체가 있을 때 이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들이 더 마음에 와 닿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오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흥이라는 것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예수 믿는 것은 그건 구원의 사건이고, 부흥이라는 것은 이미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약화되어 있고 이미 예수 믿는 사람들이 메마르고 이미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낙심하고 나갔다. 떨어져 있는 그분들이 다시 복귀하고 새롭게 되고 하는 그걸 리바이벌이라고 부르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이 말씀은 여러분 특별히 예수 믿는 분들 가운데 메마르고 답답하고 낙심하고 완전히 나가떨어지고 내가 무슨 길이 열리나 이런 고민이 있는 분들에게는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지금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마음의 부흥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에요. 오늘 시편 85편은 고라 자손의 시라고 그랬어요.
 
고라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더 할 거고 그럼 부흥이 뭐냐 부흥이 그래서 1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1절에 보니까,
 
*시편 85:1,
1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오늘 본문을 가지고 이 아주 클래식한 본문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3천 년 동안 하나님 앞에서 성전에 올라갈 때마다 이 이 고백을 많이 했는데 하나님 아버지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여 주십시오.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첫 번째 부흥이 뭐냐 야곱의 포로된 자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이 참된 부흥이다.
 
I. 첫 번째-참된 부흥은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는 것이다.
-이거예요. 이게 뭔가 야곱 되는 것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야곱은 본래 아등바등 막 그냥 다 갈증을 가지고 어떻게든 한 번 그냥, 그냥 막 열심히 극성맞게 사는 인생이었는데, 그가 하나님 자녀로 만나게 하는 노력이 없어가지고 야곱이라는 이름을 뭐로 바꿨어요? 이스라엘로 바꾼 거예요. 그리고 지난 특세하면서 야곱의 야곱 됨의 회복되는 것이 뭔가 야곱의 장자 권 언약의 말씀에 장자 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가 야곱을 우리가 여러분들이 아시는 대로 제일 감동적인 것은 뭐냐 하면 야곱은 한 가정의 족장이었어요. 한 가정의 그냥 아버지였어요. 한 70여 명 되는 그 나름대로 큰 가정이긴 하지만 그의 족장이었는데 그가 나중에 야곱이 야곱 되고, 야곱이 부흥되고 난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대제국 이집트의 당대 최고의 권력자 황제를 위하여 축복 기도하는 인생으로 바뀌어 진 것이에요. 축사를 해주는 것이다. 그 당시에 대 이집트 제국의 황자였던 파라오가 야곱을 보고 당신이 나를 좀 축복해 달라 ‘당신이 나를 위해 축복 기도 해 달라.’ 할 정도로 야곱이 야곱 된 것이에요.
 
그래서 이걸 우리가 이렇게 해서 우리가 야곱의 목장에 풍성함이 회복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 얘기 그런 의미에서 참된 부흥은 야곱이 야곱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야곱이 야곱 된다. 는 말을 성경에 제가 조금 더 살펴보니까 에스겔 39장에 보니까 어떤 내용이 나냐 이런 내용 25절에 이런 내용이 나와 다 같이 보겠습니다.
 
*에스겔 39:25,
25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사랑을 베풀지라.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사랑을 야곱이 돌아오는데 야곱이 돌아올 때 하나님의 사랑이 베풀어질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전 영역에서 삶의 전 영역에서 회복이 되는 것이에요. 우리는 지금 이분법이 돼가지고 영적으로 은혜 받는 것과 세상에 축복받는 것과 이런 것들을 자꾸 나누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면 영육간의 하나님이 은혜의 사각지대가 없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에요. 바로 이어서 28절에 시작 내가 그들을 모아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 한 사람도 이방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에스겔 39:28,
28 전에는 내가 그들이 사로잡혀 여러 나라에 이르게 하였거니와 후에는 내가 그들을 모아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 한 사람도 이방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내가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을 알리라
-그 한 사람도 이방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 한 사람도 은혜의 사각지대가 없게 하여 주십시오. 야곱의 목장의 풍성함이 회복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 영의 눈이 열려가지고 그대로 믿으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에요. 심지어 삶의 전 영역에서 우리가 회복되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분 예레미야 30장 17절에 보면 지극히 어려운 것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30:17,
1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매 시온을 찾는 자가 없은즉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함에 시온을 찾는 자가 없었은즉 너의 상처로부터 뭐가 나고요? 새살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거의 절망 상태, 거의 사형 선고받은 상태, 거의 희망이 없는 그런 상태에서 새 살이 도달하는 거, 쫓겨난 자 이 내용을 현대 번역으로 보니까 그냥 단순한 것이 아니에요. 버림을 당하고 보살펴주는 자가 없는 상태 회복이 불가능한 절망적인 상태 그것조차도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다. 그게 이 야곱이 야곱 되고 야곱의 포로 된 자가 회복되는 것이에요. 한 걸음 더 나아가지고 이사야 49장 6절에 보면,
 
*이사야 49:6,
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청년 시절에 저는 시편 85편 6절하고, 이사야 49장 6절을 암송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제가 기도하면서 하나님 이 이방의 빛이 되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근데 마치 이것은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킨 것과 똑같은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49장 앞에 6절 앞에 보면 뭐가 나오느냐 하면요. 이방의 빛을 삼되 그냥 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마(磨)광(光)한 화살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아주 그냥 날카로운 칼이 되게 하여 주셔서 전투력을 가지고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이다. 그 마광한 화살이란 말은 뭐냐 하면 아주 그냥 갈고 닦은 화살이 돼가지고 표적을 향하여 탁 나갈 수 있도록 집중력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도록 아주 제대로 된 화살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오늘 이 시대에 여러분과 저는 야곱의 포로된 것이 회복됨으로 말미암아 이 시대를 향한 시대의 마광한 화살, 하나님께서 갈고 닦은 화살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강력하게 준비된 칼이 되게 하여 주셔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이방에 빛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 사명까지 당하는 거예요. 영역에서의 회복, 절망적인 상태에서의 회복, 시대적인 사명을 가지고 집중하는 것 이것이 야곱의 포로된 것에서 돌아오는 부흥의 의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말씀이든 여러분들에게 딱 필요한 것은 와 닿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두 번째 부흥이 뭐냐 오늘 본문에 이제 2절 3절, 4절 5절 계속 전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주의 3절 보니까 주의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II. 두 번째-참된 부흥은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분노가 거두어지는 것이다.
 
*시편 85:3,
3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그리고 주의 백성을 사하시고 그의 모든 죄를 덮는다는 말이 또 2절에도 나오고 이렇게 하는데 부흥이 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분노가 거두어지는 것이 부흥이에요. 조금 더 들어가면 우리의 수많은 오염된 죄가 그리스도의 피로 덮어지는 것이에요.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맹렬한 분노, 맹렬한 분노가 이렇게 막 그 하나님이 바라게 되는 어떤 그런 원인 원초를 제공하는 것이 그런데 부흥이 일어나면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분노가 하나님의 분노가 거두어지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 가운데서 다 죽을 뻔했어요. 근데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그 진노가 사라지게 되었죠. 3절에 보니까, 주의 분노를 거두어 주시옵시며, 그리고 2절에 보니까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주의 백성을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시편 85:2,
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셀라).
-오늘 저나 여러분이나 또 한국교회 또 한국 사회 특별히 북한 같은 경우 하나님의 분노와 하나님의 진노를 쌓을 만한 일을 너무너무 많이 했어요. 북한 가면요 온 동네방네 다 김일성 김정일이 우상이 그냥 막 곳곳마다, 그리고 밤에도 번 첫 번째 빛이 나요. 그 동네 동장이 그거 잘못 관리하면 그대로 날아가는 거예요. 그냥 70년 동안 우상숭배인 만년을 김일성이 뭡니까? 태양신 숭배하는 거 아니에요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 쌓인 거예요. 우리 남쪽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서로 물고 뜯고 싸우고, 그다음에 서로 미워하고, 그다음 우리나라 남들 고소 많이 하고, 이 고소 뭐 하는 겁니까? 지금 이게 그리고 서로 거짓하고, 우리 정말 탐욕들이 있고 강남에 이 마약들 이거 막 수많은 이 죄가 지금 쌓이는 것은 하나님의 맹렬한 분노가 올 수 있는 곳이 17세기 종교계 우리 대각 성 운동과 부흥을 운동을 주창했던 우리 조나단 에드워즈가 목사님이 진짜 부흥이 뭐냐 부흥은 하나님의 진노가 교회에서 떠나는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드-
“하나님의 진노는 검은 구름이 우리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으며 ... 진노의 광풍이 불면 우리는 마치 여름타작 마당의 쭉정이 같이 흩어져 버릴 것이다.”
-부흥은 하나님의 진노를 교회에서 떠나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진노를 받아야 되는데 주님께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덮어가지고, 그 진노가 물러가게 하신 줄로 확신하는 것이 사죄(赦罪)의 은총을 받을 때 진노가 물러가는 것이에요. 수백 년 전에 목사님이 너무나 멋진 말씀 너무나 이런 내용들 하나님의 진노의 검은 구름이 우리 머리 위에 확 드리워져 있는데 진노의 강풍이 불면 우리는 여름 타작마당에 쭉정이같이 다 없어져버리는데 그것을 면제시켜주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오늘 이 부흥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부흥의 중심에는 뭐가 있는 거예요? 죄 사함이 있는 것이에요. 그럴 때 우리는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자와 같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줄로 확신합니다.
 
이제 세 번째가 중요한데 참된 부흥이 있는 거예요. 이 야곱의 포로 된 자가 돌아오는 것이고,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는 것이고, 참된 부흥은 주님을 더 기뻐하게 하는 것이다.
 
III. 세 번째- 참된 부흥은 주님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뭐가 부흥인가 오늘 본문에 보니까 6절에 오늘 요절이죠. 오늘 요절인데 같이 다시 한 번 합동합니다.
 
*시편 85:1~6,
 
6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진짜 부흥이 뭐냐 우리가 주님 앞에 다시 살아나면 어떻게 되느냐 주의 백성이 부흥은 하나님의 백성이 다시 회복되는 것이 부흥이라고 그랬습니다. 주의 백성이 주를 뭐 한다고요? 기뻐하도록 그러니까 여러분과 제가 주님을 다시 더 기뻐하면 이것이 부흥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기뻐하면 부흥의 조각구름 기쁨의 조각구름이 우리에게 있을 때 기쁨의 단비가 퍼부어지게 되는 것이에요. 다시요 참된 부흥은 주님을 다시 기뻐하는 것이다 이래요. 이제 고라자손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제목을 보니까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그랬습니다. 이건 레이지파가 할 수 있는 것이에요. 본래 이 고라는 모세의 사촌이었어요. 모세의 작은아버지의 아들이에요. 모세와 아론이 잘 나가는 걸 보고 이 고라가 열받아갖고 시기 갈등이 일어났어요. 그리고 모세에 대해서 반정하다가 모세와 아론에게 대항하다가 땅이 갈라져서 그들의 소유와 함께 산 채로 땅속으로 죽임을 당했어요. 민수기 16장에 나와요. 그리고 고라와 함께 반역했던 족장들 250명은 분행 하다가 불에 삼켜가지고 한꺼번에 심판받아 그리고 이런 심판으로 두려움을 느낀 백성들이 오히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치려고 하다가 하나님께서 염병을 내려가지고 1만 4,700명이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고라는 한마디로 저주의, 저주의 대명사야. 그 당시에 그 저주의 대명사인 고라에 대반전이 일어나게 된 것이에요. 어떻게 대 반전이 일어났나요? 그 고라의 아들 가운데서도 이 분별력이 있어가지고 자기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나는 이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겠다. 그것이 오늘 시편 85편의 내용이에요.
 
여러분 가계에서 저주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세상 사람들은 우리 신앙과 복음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어떤 생명의 역사에 덧붙이지 않는 사람들은 가격의 저주 있을 수 있죠. 세상 적으로 그런 안 되는 지만 안 되는 거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점 보러 가고 난리 치고 그러는데 우리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 거예요. 우리는 오늘 이 시간부터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에 감사해가지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기뻐하고, 기뻐하면 모든 저주가 끊어지는 것이 모든 아픔이 물러가게 돼 있는 것이에요. 이걸 그대로 믿고 감사할 때 여러분들에게 부흥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라 자손들이 가졌던 핵심은 뭐냐 하면, ‘하나님, 내가 하나님 앞에서 다시 좀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내가 다시 하나님 앞에 좀 잘 살게 해달라고 나 하나님께 좀 멋지게 살게 해달라고 그런 기도 안 했어요. “하나님 내가 부족하지만 내 평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을 기뻐하는 백성 되게 하여 주십시오.” 여러분 이게 너무 중요한 것이에요. 이것이 우리에게 삶의 역전의 기회를 만들어주시는 것이 고라 자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주님을 다시 기뻐하는 사람들이 되었어요. 그래서 참된 부흥은 주님을 기뻐하는 백성이 되는 것인 줄로 확신합니다. 다시요 우리가 행복한 사람 되게 해달라, 우리 잘 살게 해 달라, 우리 좋게 해달라 이게 아니에요. 최고의 부흥은 주님을 다시 기뻐하는 백성 되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이걸 사모하는지 시편 42편 “하나님이여 내가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진실로 갈급하나이다.” 이걸 누가 얘기하냐? 고라 자손의 시예요. 그것이 오늘 21세기 판, 우리 주위에 수많은 저주들이 있고 수많은 아픔들이 있고 수많은 삼키움이 있고 수많은 난리가 난다 할지라도 우리가 주님을 기뻐하는 백성,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백성, 주님 기쁜 것이 주님을 나에게는 기쁘시게 하는 것이 최고의 기쁨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님이 내가 기뻐하시는 백성,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백성 되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그걸 사모하고, 사모하고 사슴의 실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 같이 우리 인생의 라틴어 에드폰타스 우리의 삶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뭐예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그래서 우리 잘 아는 대로 외스면서 요리문답 1조에 뭐예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뭐냐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주님의 기쁨이 되고 우리가 주님을 더 기뻐하는 것이에요. 살다 보면 예수 믿는 사람도 우울증 걸릴 수 있고 살다 보면 예수 믿는 사람도 살맛 안 나고 살다 보면 예수 믿는 사람도 정말 좌절할 수 있어요. 그런데 다른 길이 없어요. 여러분과 제가 마음먹고 내가 하나님을 기뻐하겠습니다. 아니 내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겠습니다. 이런 마음만 가지면 하나님이 반드시 부흥의 조각구름을 여러분들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이에요. 주 성회에는 더 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존 나에게 은혜 주시면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줄 얼마나 감사한지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들어도 늘 ~~~ 주의 말씀 받은 그날 참 기쁘고 복되도다. 기쁜 날 주나 이제 다시 날 여러분 이렇게 하면 잔치가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왜 나머지는 가만히 계세요 이렇게 하면 여러분 잔치가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여러분 잔치가 되는 거예요. 여기가 천국의 브렌치, 천국의 지점이 되는 것이에요. 정말 우리 온 성도들을 다시 살리시고,,,주님을 기뻐하는 백성을 만들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사도행전 7장 마지막 부부는 순교의 피가 흘렀습니다. 스데반이 순교의 피를 흘리고 돌에 맞아 죽는 참상이 일어나고 그다음에 모든 성도들이 오이 갇히고 뿔뿔이 흩어지고 그런데요 빌립과 함께 사마리아 성에서 복음을 전하니까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할렐루야!! 부흥이 뭡니까? 참된 부흥은 주님을 다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여러분 가정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고, 한국교회의 기쁨을 회복시켜주시고, 이 민족에게 없는 기쁨을 다시 회복시켜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의 무표정한 얼굴이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앞으로 여러분 장래를, 제가 미리 제가 아무것도 안 했지만 제가 좀 예고를 하면 뭐냐 하면 여러분, 여러분 장래는 어떻게 결정되는 줄 압니까? 평소에 의식이 없을 때 무표정할 때, 여러분들의 그 표정이 여러분들의 장래입니다. 아주 중요한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요 희한한 게 한국 사람들은 갑자기 막 이러고 있다. 니 때 동창이다. 그러면 갑자기 얼굴이 확 펴지는 거예요. 이렇게 좀 서로 관계 있으면 막 표정이 펴지고 그렇게 하는데, 그런 거 말고 의식적으로 표정 밝게 하는 거 말고, 여러분, 무표정으로 가만히 있을 때 그때 여러분들의 얼굴 표정이 여러분들의 장래라니까요. 그게 대부분들은 법조인 출신들은 얼굴 표정이 판사 같고 무표정할 때 그다음에 또 하여튼 있어요. 다 그래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장래가 어려워 안 되는 거예요. 보세요. 여러분들의 장래가 다 무표정할 때도 내가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 자연스레 얼굴이 얼마나 평화롭고 귀한지 몰라요. 알 사람만 알도다. 내 영원히 은총 입어 중환자 짐 벗고 보니 슬픔만은 이 세상이 뭐예요 천국으로 하도다. 기쁨의 얼마에 그게 부흥이 부흥의 실체에 나 주님의 기쁨 되길 원하네. 기뻐하세요. 우리 주 삼위일체 하나님 오늘 이 기쁨의 성가가 여러분들 속에서 터져 나오기를 바랍니다. 야곱이 야곱 되게 회복되고, 그다음에 진노가 멈추어지며, 이 놀라운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백성 주님을 기뻐하는 백성들에게 부흥일진데 그 결과가 뭘까요? 중요한데 결과 오늘 10절 11절의 결과예요. 10절 11절 다 같이 다시 한 번 보십시다.
 
*시편 85:10,
10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었으며.
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난다. 의와 화평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처음엔 이해가 안 돼요. 본래 인애와 진리는 같이 못 만나게 돼 있어요. 인애가 뭡니까? 이 히브리 히브리어 본래의 뜻은 여러분들 헤스헤드라는 말 들어보셨죠? 헤스헤드라는 말이 이해라는 말인데 히브리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가 헤스헤드 그러면 발음이 안 좋아서 못 알아들어요. 이게 목에서 그 올라가 그 새들이 나와요. 알라 아랍 사람들이 중동 사람들 핫 세대인데 이 헤세대가 인애예요. 인애와 진리는 따로 가는 거예요. 불 인 자비 긍휼 그리고 진리는 추상같은 진리예요. 진리는 진리고 자비는 자비인데 이해와 진리가 같이 만난다. 이게 부응의 결과인 거예요. 의와 화평은는 뭡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이 의와 화평은 뭡니까? 서로 화평은 샬롬의 경지인데, 그 공인가 부르짖어지고 판단이 있고 재판이 있는 곳에 거기 샬롬이 어떻게 있겠어요? 같이 안 가는 거예요. 인애와 진리가 따로 가고 의와 화평이 따로 가는데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와 화평이 완벽하게 조화가 된 것이에요. 그래서 의와 진리가 만날 수 있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출 수 있으며 인애와 진리가 만나는 것이 중국의 연변과학기술대학의 본관에 가면 거기에다가 중앙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에 서로 입 맞추라 그게 딱 써져 있어요. 제가 계속 그거 써놓으라고 그랬어요. 중국의 유교 중국의 신문에 능한 사람들 중국의 사서삼경에 능한 사람들이 와봐 입이 딱 벌어지는 거예요. 저걸 한자로 해놓으면 인애와 진리가 같지만 유교에 저런 거 없어요. 의와 화평의 소리 맞춰 이건 있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부흥이 일어나면 안 된다 안 된다는 것이 되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서 이런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 우리 기독교 내에 치열한 어떤 갈등 한 중 하나가 개인 복음이 먼저냐 사회 복음이 먼저냐 사회 정의와 그다음 구제 봉사가 먼저냐 아니면 성령 충만이 먼저냐 늘 이거 갖고 갈등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래서 은사주의자들하고 그다음에 사회주의자들하고 서로 부딪히고 있는 거죠. 진짜 하나님이 주신 부흥이 되돌아오면 앞에 말한 세 가지 그리고 역사적인 부흥이 오면, 인애와 진리가 안 될 것 같은데 같이 만나는 것이에요. 의와 화평이 서로 만나는 것이에요. 개인 구원과 사회 복음이 사회 정의와 개인 복음이 같이 갈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중에 하나가 이번에 한국교회 섬김이 는 줄로 믿습니다. 예요. 우리가 ‘스타리아’ 그 귀한 차들을 우리 성도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여러분 자발적으로 우리 성도들이 한국교회 성명을 위해 20억을 헌금해 주셨어요. 작년 올해 평균 그 1박 2일 동안 우리가 전력투구에서 50억을 썼어요. 저희가 가만히 계시네요. 여기 50억 큰 돈 아닙니까? 전력투구 그런데 너무나 가난하고 너무나 힘들고 교회 접으려고 그러고 17년 20년 된 차를 덜덜거리고 타고 다니는 그런 섬에 있는 우리 사역자들 또 지하교회 섬기는 이런 목사님들이 이번에 스타리아 차를 갖고 간 거예요. 그걸 배분이 된 거예요. 추첨이 된 거예요. 너무 감사한 일이죠. 거기에 뭐예요 인애와 진리가 만나는 곳이에요. 의와 화평이 만나는 곳이에요. 자연스럽게 그 부흥의 열매와 결과가 주님 앞에서 허락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에요.
 
오늘 이 축복이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 한 분 한 분 머릿속에 삶 속에 그대로 확인되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 그 결과 11절인데 11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 될 거예요. 같이 보겠습니다.
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진리는 땅에서 의는 아멘 진리가 땅에 솟아난다는 게 뭔가? 인애와 진리가 만나고 의와 화평이 입을 맞추는데 그 결과가 뭐냐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하늘에서 쏟아진 의의 단비가 아니면 참된 진리가 땅에서 솟아날 수가 없다 그 말이에요. 하나님이 주시는 그러니까 참된 진리와 의는 하늘에서 쏟아져야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부어주셔야만 되는 것이에요. 그럴 때 이 땅에서의 진리가 참된 진리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늘에서 부어주는 의와 하늘에서 부어주는 진리가 아니면 이 땅의 인간들이 자기들끼리 무슨 진화론이다, 네오 막시즘이다, 프랑스 혁명이다, 그다음에 절대적인 절대가 없고 상대주의적인 것이다, 하나님 없는 똘레랑스다. 이런 것들은 다 땅에서 나온 진리예요. 오늘 하나님의 부흥을 통하여 하늘에서 부어주신 의 하나님의 부어주신 진리의 비가 내릴 때에 그때에 우리가 진화론이 아니고 창조적 창조론이구나. 그다음에 상대주의가 아니고 정말로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가 있는 것이구나. 네오막시즘이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정말 말씀의 절대 권위를 통한 하나님의 진리가 진실이구나. 정말 하나님이 은혜 주셔가지고 하나님의 의와 단비가 없는 대학 캠퍼스의 인본주의자들, 프랑스 혁명, 이런 주체사상 이런 것들이 다 끝이 안 좋을 거예요. 주님만이 영원한 의가 되시고 진리가 되시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과 안국교회가 앞으로 하늘에서 의의 단비가 부어짐으로 말미암아 땅에서의 진리가 솟아나기를 바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장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고 대학 캠퍼스도 그리고 이 땅에서 수많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이 일하는 사람들이 이런 진리와 하나님의 의로 무장되어 가지고 참된 진리가 선포되는 이 땅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정리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이런 부흥을 사모하는 한 우리 민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지는 가정 공동체 교회는 절대로 살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절대로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이 통하는 그런 나라는 언제나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3만 불 이상, 소득이 되고 5천만 명 이상 되는 곳에서 이 동성애법이 통과 안 되고 지켜지는 나라가 지금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의 유일한 것입니다. 적어도 이런 수만 명의 성도들이 매주일 마다 무장하고 하늘의 진리의 의가 쏟아지게 하여 주셔서, 진리로 반응하는 이 민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은혜가 지금 여러분들과 저에게 적용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앞에 보니까 주님 우리를 돌이켜 달라. 주님 지금 살려 달라. 지금 주님을 우리에게 보여 달라. 그게 다 현재 시제에요. 오늘 지금 깨닫게 되게 하시고 지금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것을 확정되게 하시고 지금 여러분들의 것으로 적용할 수 있기를 원하는 겁니다. 부흥이 되겠나? 그렇게 말씀하는 분 우리 나름대로 꿈을 꾸는 것이 작년도에 1회 끝나고 난 다음에 적어도 수만 명의 새로운 영혼들이 구원받은 줄로 확신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볼 때 작년에 5만 명 구원받았어요. 우리 교단 전 총회장님이 다른 교단들은 다 디클라인 되고 다 약화됐는데 우리 교단 합동 교단만 5만 6천 명이 더 늘어났습니다. 그랬습니다. 총회장님 굉장히 뭐라 그럴까요? 자랑하셨는데 사실은 우리가 상당히 기여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올해는 이제 이 배 끝나고 나면 10만 명의 새로운 영혼이 구원받을 것입니다. 배씩, 내년에는 20만, 그다음에는 40만, 그다음에 80만, 그다음에 160만, 그다음에 320만, 그다음에 640만, 그다음 2560만, 딱 10년 끝나버리는 거 딱 10년 되면 그렇다는 거, 알 사람이 없도다. 알 사람이 없도다. 여러분 소돔성에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당시에 학자들은 학자들이 얘기할 당시에 코도 소돔성이 한 10만 명쯤 되었다. 그러면 만 분의 1이, 만분의 일만 제대로 정신 차려도 그 성이 사는 거예요. 만분의 1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에요. 오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다른 건 몰라도 이번 주일, 다음 주일 잔치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부흥을 사모하십시다. 하늘에서 이 말씀의 조각비가 우리가 떨어졌을 때 이걸 우리가 받아가지고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진리가 솟구치도록 하십시다. 할렐루야! 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제가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요약
우리는 뼈저린 각성과 회개를 통해 시기와 갈등의 포로에서 돌아올 때, 삶의 전 영역에서 거룩한 갈망이 회복되는 참된 부흥을 경험하여야 한다. 맹렬한 진노를 거두심을 믿고 우리에게 화평이 입 맞추어 주심에 감사하며 기쁨이 샘솟는 삶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오정현 담임목사님의 국가조찬기도회에 말씀 선포를 위해 기도하며, 모두에게 은혜와 평강이 임하게 하시며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에 축복을 주시길 간절히 간구하며, 우리에게서 맹렬한 진노를 거두시고, 우리 죄를 사하시며, 다시 살리실 때, 온교회 위에 의의 단비가 내려 의와 화평이 입 맞추는 큰 기쁨이 샘솟게 됨을 확신해야 한다. 
 
- 본시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신 손길에 대한 기록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지시하시고 보여주신다. 따라서 성도는 아무리 생활이 어렵고 고통스러울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용서하심은 죄과를 완전히 제거하여 무죄자로 만드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죄가 더 이상 노출되지 않도록 영영히 은폐해 버리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 지우시고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우리의 죄악을 사유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하심을 받은 성도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다. 죄를 사하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은 일차적으로 죄인에게 그리고 궁극적으로 심판과 진노를 거두시고 구원과 사랑을 예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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