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내 2차전지 기업이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NCM 배터리’에서 N이 의미하는 것은?
① 니켈 ② 코발트 ③ 망간 ④ 리튬
2. 매년 8월 미국 캔자스시티연방은행이 주요국 경제·금융 수장 등 전문가를 초청해 와이오밍주 휴양지에서 여는 정책 심포지엄은?
① 다보스포럼 ② 잭슨홀미팅
③ FOMC ④ 블랙프라이데이
3. 코스피지수나 코스닥지수가 전날보다 각각 8%, 15%, 20% 하락할 때마다 주식 거래를 정지하는 제도는?
① 사이드카 ② 서킷브레이커
③ 빅스텝 ④ 자이언트스텝
4. 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했다가 주가가 급락하면 투자자는 보유 주식을 강제 처분당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일까?
① 반대매매 ② 환차익
③ 스톡옵션 ④ 내부거래
5. 한 주 가격이 1000원이 안 되는 저렴한 주식을 가리키는 별명은?
① 황제주 ② 배당주
③ 우선주 ④ 동전주
6. 관광지에 지나치게 많은 여행객이 몰려들면서 지역 일대에 갖가지 부작용을 유발하는 현상은?
① 젠트리피케이션
② 오버투어리즘
③ 유리천장
④ 캐즘
7. 수출 감소 폭보다 수입 감소 폭이 더 커진 데 기인해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할 때 쓰는 표현은?
① 역자산효과 ② 기저효과
③ 쌍둥이 적자 ④ 불황형 흑자
8. 주가가 너무 높아졌을 때 활발한 거래를 유도하기 위해 주식을 쪼개 한 주당 가격을 낮추는 조치는?
① 상장폐지 ② 인적분할
③ 액면분할 ④ 물적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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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AI발 가짜뉴스 '비상'…사회 뿌리째 뒤흔든다
Cover Story
그래픽=김선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여름방학 기간 중 한국에 ‘메달 풍년’을 안긴 파리 올림픽이 열렸지만, 황당하고도 심각한 파장을 낳은 가짜뉴스(fake news)도 적지 않았습니다. 국내에선 래퍼 치트키, 배우 탕웨이의 사망설이 뜬금없이 나왔다가 금세 가짜뉴스로 드러났죠. 영국은 가짜뉴스가 촉발시킨 반(反)무슬림 폭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달 말 영국 사우스포트에서 어린이 3명이 살해되고 10명이 다친 사건이었어요. 영국 태생의 17세 소년이 범인으로 판명났지만, 처음엔 ‘이슬람 망명 신청자가 범인’이라며 무슬림식 가짜 이름이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의 한 계정에 올라오면서 삽시간에 퍼져나갔습니다. 이것이 영국 전역에서 폭력과 방화를 동반한 반무슬림 폭력시위로 이어진 거죠.
영국 폭동의 빌미가 된 가짜뉴스는 인공지능(AI)이 출처가 불분명한 게시물을 뉴스 형식의 글로 둔갑시키고 소셜미디어 추천 알고리즘이 이를 퍼 날랐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양상이 많이 다릅니다. AI 기술이 고도화하면 가짜뉴스의 위협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이민자에 대한 뿌리 깊은 영국민의 불만과 불안이 가짜뉴스를 만나 폭발하면서 사회 안정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가짜뉴스임에도 영국 경찰이 진실을 감추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번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가짜뉴스가 어떻게 대중화됐고 그 양태는 어떠한지, 최근의 생성형 AI발 가짜뉴스의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 등을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합리적 여론 형성 막는 '허위 정보'
민주주의 작동 시스템 위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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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fake news)는 2000년대 중반, 뉴스 형식으로 정치를 풍자한 미국의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시작됐어요. 처음엔 패러디 수준이었죠. 그런데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영국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에서 상대 진영을 비방하려는 목적으로 가짜 뉴스가 인터넷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급속히 확산됐습니다.
정치권 가짜 뉴스 가장 위험
당시 대표적인 가짜 뉴스로 ‘피자 게이트’를 들 수 있습니다. 2016년 미국 대선이 열리기 두 달 전인 10월, 한 백인 우월주의자가 워싱턴 D.C.의 피자 가게 등에서 인신매매와 미성년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고 그 조직을 힐러리 클린턴 대선 캠프 쪽 인사가 운영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대선 직후인 12월 4일 한 미국 청년이 직접 이를 조사하겠다며 피자 가게(카밋 핑퐁)에 총기 테러를 했고, 2019년 1월엔 카밋 핑퐁에 불을 지르는 사건까지 발생했죠. 같은 해 미국 대선 과정에선 히스패닉 불법 이민자의 무더기 불법 투표설 등 상당수의 음모론이 챗봇으로 자동 생성·유포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가짜 뉴스는 정치권에서, 특히 선거 시기에 봇물 터지듯 넘쳐납니다. 2022년 우리나라 대선 기간에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의 SNU팩트체크에서 가짜 뉴스로 판명된 115건의 허위 정보 가운데 77.5%가 정치인, 정당, 후보 진영에서 나왔습니다. 가짜 뉴스를 단속하고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 폐해를 바로잡아야 할 정치인이 오히려 이를 이용하고 소셜미디어와 공생하는 모양새입니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사의 보도는 무조건 가짜 뉴스라고 강변하는 것도 많은 논란을 낳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표적인데요, 이런 행태는 허위 정보와 뉴스를 혼동케 하고 기성 언론이 그간 쌓아온 신뢰를 무너뜨리는 해악을 끼칩니다. 1920~1930년대 독일의 나치가 비판적인 해외 신문이나 기자를 향해 ‘뤼겐프레세(Lgenpresse, 거짓말하는 언론)’라고 낙인찍어 공격한 것과 다를 바 없죠.
의도를 갖고 조작한 정보
그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가짜 뉴스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가짜 뉴스는 ‘뉴스 형태를 갖춘 거짓 정보’라고 통칭할 수 있지만, 비슷한 개념이 많은 데다 단순한 오보와 다르기 때문에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연합 보고서와 여러 학술 논문은 가짜 뉴스(fake news) 대신 ‘허위 조작 정보(disinformation)’란 용어를 씁니다. 이는 의도적으로 조작된 정보란 점에서 잘못된 정보나 오정보, 오보(misinformation)와 구분됩니다. 영국 하원 보고서에 나오는 허위 조작 정보의 여러 양태는 이를 좀 더 분석적으로 보는 눈을 갖게 합니다.
먼저 완전한 허위 정보는 날조 정보(fabricated content), 사실인 정보나 이미지를 왜곡한 것은 조작 정보(manipulated content)로 나눕니다. 조작 정보로는 선정적인 ‘낚시성 기사 제목’을 들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기존 언론사 브랜드를 이용한 사칭 정보(imposter content), 논평을 사실(facts)인 것처럼 내세워 사실을 오도하는 오도 정보(misleading content), 기사 본문은 사실이지만 다른 허위 맥락으로 제목을 다는 허위 맥락(false context of connection) 등이 있습니다. 가짜 뉴스에 정통한 학자인 헌트 올콧과 매슈 겐츠코는 가짜 뉴스에 대해 “의도적이고, 검증 가능한 거짓이며, 독자를 오도할 수 있는 뉴스 기사”라고 정의합니다.
한번 생긴 인식 바꾸기 어려워
현실 사회에 대한 시민의 정확한 인식과 이에 기반한 합리적 여론 형성은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축입니다.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시민(Informed Citizens)’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런데 가짜 뉴스는 시민들에게 사회문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줘 이런 기초를 파괴해버립니다. 사람들이 한번 잘못 인식하게 되면 이후 사실 확인(fact check)을 거친 뉴스를 접하더라도 기존 인식을 쉽사리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가짜 뉴스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자신의 인식이 올바르다는 자신감도 점점 줄어듭니다. 이를 잘못 방치하면 민주주의 시스템의 작동이 위협받게 됩니다. 그렇다고 법적 규제를 강화하는 것만이 능사도 아닙니다. 자칫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위험성도 크기 때문입니다.
NIE 포인트
1. 가짜 뉴스의 여러 양태에 맞는 사례를 찾아보자.
2. 독일의 뤼겐프레세와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가짜 뉴스 논란을 비교해보자.
3. 알고 있는 시민(Informed Citizens)의 개념에 대해 공부해보자.
AI와 추천 알고리즘이 '악의 고리'
철저한 팩트 체킹, 자율규제가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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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는 가짜뉴스의 온상이란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급속도로 발전한 인공지능(AI) 기술이 결합하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AI는 자신이 학습한 데이터에는 없는 정보를 요구받을 때 잘못된 정보나 오류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답변하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환각·환청) 특성을 갖고 있어요. 이게 가짜뉴스를 양산할 위험이 큽니다. 또 생성형 AI가 만드는 가짜뉴스는 훨씬 정교합니다. 글의 형태가 제대로 갖춰져 있고 군데군데 전문용어가 포함돼 믿을 만해 보이죠. 가짜뉴스를 만드는 속도도 인간이 따라갈 수 없어요.
AI가 만들어내는 가짜뉴스의 위력은 2020년 미국 대선 기간에 확인됐습니다. 한 팟캐스트 진행자가 GPT-3를 이용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 관한 거짓 주장을 담은 기사를 대량 생산한 것이죠. “바이든, 치매 의심 증후 보여”와 같은 제목으로 웹사이트에 게재하자, 소셜미디어에선 수만 회에 걸쳐 공유됐습니다.
가짜뉴스 ‘로켓 부스터’ 된 SNS
소셜미디어는 이용자에게 친구, 다음에 볼 영상, 구매해야 할 상품 등을 끊임없이 추천합니다. 이용자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무한정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은 이용자를 필터링된 정보 속에 가둬버립니다. 이름하여 ‘필터 버블(filter bubble)’ 문제이지요. 자기 성향에 맞는 콘텐츠만 보게 되면 정치와 젠더 갈등은 증폭될 수밖에 없어요. 이것이 2차 가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번 영국 폭동 사태에서도 정부가 범인의 실명을 공개하고 해당 소셜미디어 글은 가짜뉴스라는 사실을 밝혔는데도 AI 알고리즘은 처음 올라온 가짜 무슬림 범인 이름을 계속 추천 검색어로 띄웠습니다. 가짜뉴스는 생성과 증폭, 반향(Disinformation, Amplification, Reverberation, DAR)이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AI와 추천 알고리즘은 각각 생성과 증폭 과정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짜뉴스의 위력을 키웁니다. 가짜뉴스 확산의 ‘악의 고리’가 되고 있는 겁니다.
사실·의견 구분하는 ‘생각 근육’
소셜미디어를 통한 가짜뉴스의 확산에 규제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영국은 작년에 제정한 온라인안전법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가짜뉴스에 대처하기 위한 더 광범위한 법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이베트 쿠퍼 영국 내무부 장관이 밝히기도 했습니다. 소셜미디어가 허위 정보를 적극적으로 가려내고 제재를 가하기는커녕 방치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짜뉴스는 정부가 직접 규제하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이기도 합니다. 가짜뉴스인지 아닌지를 국가권력이 판단한다고 하면 즉각 반발이 생길 겁니다. 정치적 반대 세력에 대한 탄압 도구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죠. 실제로 2018년과 2019년에 세계적으로 입법을 통해 가짜뉴스를 규제한 나라들이 줄었는데, 러시아·싱가포르·이집트 등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를 가진 곳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가짜뉴스 대응에 가장 앞서 있는 유럽연합(EU)은 투 트랙으로 접근합니다. 먼저 플랫폼 기업 등의 자율규제를 위한 실천강령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또 플랫폼 기업들이 허위 정보, 차별적 콘텐츠, 아동 학대, 테러 선전 등 불법 유해 콘텐츠를 제거할 의무를 지운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작년부터 시행 중입니다. 이런 규제를 바탕으로 작년 10월엔 메타의 CEO 마크 저커버그와 X의 소유주인 일론 머스크에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과 관련한 가짜뉴스 확산을 막으라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어요.
가짜뉴스에 대한 근본 대책은 소셜미디어 이용자부터 기업에 이르기까지 사실 확인(팩트 체크)을 철저히 하는 자율적 움직임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소셜미디어와 포털, 유튜버가 ‘뉴스’라며 콘텐츠를 내보내려면 자체적으로 이를 검수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그럼에도 가짜뉴스의 선정성 때문에 조회수와 클릭률이 높은 것은 일부 법률 규제를 동원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청소년들도 사실과 의견의 차이를 구분할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알고리즘에 갇히면 다른 길에 대한 상상력이 약해지고 무력감을 느낄 수 있다는 지적도 새겨봐야 합니다. 누구도 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자신의 ‘생각 근육’을 키우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13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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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일 말 중에 Zeitgeist라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시대정신’이라는 단어입니다 시대정신 어느 시대이든지 그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 철학, 생각을 지배하는 주도하고 있는 것을 두고 시대정신이라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시대정신에 휩쓸려서 그들의 삶을 보내기 마련입니다. 되는 것이 우리의 이성과 맞지 아니하고 우리의 판단에 옳지 않다 하더라도 대항하기보다는 시대정신을 따라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시대정신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신앙정신, 하나님 말씀에 뿌리내리는 신앙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스님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는 일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과감하게 시대 물결을 거슬러서 신앙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오스기니스가 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잘 보여주는 책으로 ‘선지자적 반시대성’(prophetic untimeliness) 타임리니스, 시대에 맞도록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untimeliness-언타임리니스, 반시대적으로 살아가는 순지자적 사고를 가지고 시대를 거슬러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가 강조하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청중이 아니라 일반 대중을 향해서 살아가는 기독교가 아니라, 메시지가 주권을 쥐고 있는 교회다. -오스기니스-
-이 시대에 우리가 귀 기울여야 되는 것은 사람들의 목소리, 시대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진리를 가지고 있는 교회의 진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에드비 토저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강력한 책으로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충돌하라. 부제목이 이러합니다. 세상과 동행하는가? 성령과 동행하는가? 적당히 타협하며 편하게 살기를 원하는가? 하나님의 그 편안한 길을 철저히 반대하신다. 세상과 분노하라. 겁먹지 말고 당당히 맞서라. 그리스도인들이여 무릎을 꿇고 세상을 흉내 내지 말라 세상과 충돌하라.
-에드비 토저-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내용은 보시겠습니까? 사람들은 가능하면 세상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야 되지 않은가? 세상도 하나님이 주신 세상인데 가능하다면 기독교인이라고 등을 지면서 살 것이 아니라, 세상과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세상을 흉내 내지 말라. 때로는 세상과 분노하고 충돌할 각오로 싸워가라.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시대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진리, 주의 뜻을 따르는 성경정신으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파리올림픽을 보면서 너무 가슴 아픈 일이 하나 있었죠? 드레킨 사건,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여장을 한 남자가 배우로 나오고 트랜스젠더들이 나와서 함께 공연하고 있는 모습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하고 조롱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만일 불교였다면, 이슬람교였다면 절대로 하지 못할 이런 일을 기독교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이렇게 기독교가 조롱을 당하고 있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인가? 그냥 예술의 한 행위니까 문화의 한 행사이니까 그냥 보고 넘겨야 될 것인가? 아니면 기독교인은 세상 이미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은 그러하니까 세상은 멀리하고 우리는 따로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렇게 잘못된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신앙에 근거해서 과감하게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서 그리스도의 진리가 무엇인지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가야 할 것인가? 최근에 이 상황을 보면서 참 감사한 것은 미국의 CS 파이어라는 한 커뮤니케이션 회사에서 올림픽에 광고하기로 한 것을 취소를 한 일입니다. 엄청나게 그 광고비를 들여야 되고, 올림픽과 월드컵은 가장 광고하기에 좋은 시기인데 기업이 이윤을 감소하고서라도 이윤을 포기하고서라도 광고를 내린 이유를 CS 파이어가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올림픽에 참가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들 우리는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However, 그럼에도 불구하고, We will not be part of the, 우리는 절대로 이 사람들의 offensive, 너무나 공격적이고 unacceptable, 우리가 허용할 수 없는 mockery of the Last Supper, 예수 그리스의 최후의 만찬을 조롱하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광고를 내립니다.”
-미국의 CS 파이어라는 한 커뮤니케이션 회사-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것인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기업의 정신인데 저렇게 기업의 이미지를 먹칠을 하고 이윤을 포기하면서 저렇게까지 해야 할 것인가? 이 본사가 미시시피에 있는데, 미시시피의 가문을 주지사 테이트 리브스라는 사람이 이렇게 논평을 내었습니다.
“I’m proud of, 나 너무나 이 사람들이 자랑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조롱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God will not be mocked.” -미시시피의 가문을 주지사 테이트 리브스-
-하나님은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죠. 그 때문에 우리는 광고를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런 시대에 이윤을 무시하고 때로는 자신 얼굴에 먹칠을 당하면서까지 이렇게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지금 이 시대는 너무나 거센 세속의 물결이 우리를 잠식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동성애자들 그리고 인테 기독교 세력들 너무나 교회를 공격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침잠하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이런 시대, 이런 잘못된 시대정신이 우리 자녀들 가슴 속에 마치 DNA처럼 먹물처럼 파고 들어오는 이 시대 아닙니까? 안방에까지 침투하고 있는 잘못된 이런 사상들, 이런 시대정신이 우리를 끌고 가고 있는 이런 상황에 우리 과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설 것이며 우리는 어떻게 시대를 이해할 것이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인지 한 번 인생을 어떻게 살아내어서 이 시대의 물길을 거스르고 하나님 앞에 살아갈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 말씀을 통해서 그 옛날 시대정신을 거부하고 오직 신앙으로 살아낸 하나님의 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과 아벳느고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금부터 약 2천 600년 전에 바벨론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바벨론이 인도의 북부, 에티오피아 그리고 중동 전체 지방 또 동양의 인도까지 점령했던 대제국이었습니다. 이 대제국을 완성한 왕이 느브갓네살 왕입니다. 하나님 나라 유다까지 침공을 해서 세 번에 걸쳐서 포로로 잡아갑니다. bc 605년에 먼저 친국에서 무너뜨리고 그때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갈 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도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포로로 잡혀온 신세였지만 그들의 삶은 평탄했어요. 왕이 그들에게 궁중 교육을 다 시켰고 관리로 삼아서 평탄한 삶을 살게 했습니다. 평탄하게 살았던 이들의 삶의 어느 날 고난의 바람이 불기를 시작을 합니다. 3장 말씀에 보면 느브갓네살 왕이 어느 날 거대한 신상 우상을 세웁니다. 높이가 30m나 되고 높이가 3M나 되는 거대한 우상 왜 왕이 갑자기 이렇게 우상을 세웠을까요? 2장 말씀을 보면 잘 이해가 됩니다.
느브갓네살 왕이 어느 날 귀한 꿈을 꿉니다.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해 주지 못했을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이 나아가서 꿈 풀이를 해줍니다. ‘왕이여, 지금 왕의 왕권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져 가고 있지만 그러나 언젠가 세상의 왕권은 다 사라질 날이 오고 영원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왕은 듣고 너무나 귀하게 여겼습니다. 다니엘과 새 친구들에게 높은 관직을 주었습니다.왕이 그 꿈을 꾼 지는 왕 직에 있은 지 2년째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이후로 16년 지난 이후에 왕 직에서 인제 18년째 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왕권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왕권이 더 강성해져 갔습니다. 왕의 마음도 점점 더 교만해져 간 겁니다. 왕은 자신의 왕권을 상징하는 거대한 신상 우상을 세우고 바벨론의 도를 다스리는 수천 명의 관리들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수천 명의 관리들이 줄을 서 있고, 궁중에 음악을 켜는 수백 명의 악사들을 다 불러 모읍니다. 왕의 명령이 떨어집니다. ‘모든 사람들은 누구든지 엎드려서 금 신상 앞에 절하라. 절하지 아니하면 저기 맹렬(猛烈)이 타는 풀무 불에 집어던져 죽이리라.’ 사람들 앞에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사람을 집어삼킬 듯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천지를 울리는 음악 소리, 수천 명의 관리들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금 신상 앞에 우상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8절에 보면, 그 때에 라고 말을 해요.
*다니엘 3:8,
8 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니라.
-그때에 천하 모든 사람들이 다 무릎을 꿇고 우상 앞에 절하는 그 때에 우상 앞에 절하지 아니했던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있었어요.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절하지 않겠노라고 오직 유일한 죽은 대신은 하나님께만 무릎을 꿇겠다. 라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의 절개를 지키려고 하면 찾아오는 것이 핍박이죠. 사람들이 사람들을 참사하기 시작합니다. 12절에 뭐라고 말합니까?
*다니엘 3:12,
12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왕은 분노했습니다. 포로 잡혀온 주제에 높은 관직을 주어서 평탄한 삶을 살게 했는데, 왕의 신상 앞에 절하지 않은 것은 마치 왕권에게 도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왕은 평소 때 이 세 사람의 충정을 잘 아는 왕이었습니다. 왕이 그들을 불러 모읍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야 너희가 정말 절하지 아니했느냐?’ 기회를 줘요 이제라도 준비했다가 음악이 울리거든 절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들이 내 손에서 너희들 구해줄 신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 놓인 세 사람, 왕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대답은 짧고도 즉각적이었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절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시대정신을 따라서 거대한 물결을 따라 휩쓸려 걸어갈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신앙 정신에 비추어서 아니오! 하고 꿋꿋하게 무릎을 펴고 서 있는 세 사람,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기꺼이 죽음을 택했던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이렇게 시대 물결이 우리를 휩쓸려오고, 우리 자녀들 가슴 속에 세속화의 바람을 DNA처럼 심어놓고 이런 시대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이런 시대를 거스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며, 인생 그리고 세상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길일까요? 우리 부모님들이 어떻게 살아내는 것이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하는 것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그리고 한 번 사는 세상에 하나님께 가장 영광을 올릴 수 있는 길일까요?
오늘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삶을 통해서 두 가지의 승리의 비결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입니다. 시대정신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Q. 시대정신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I. 첫째, 하나님 앞에 타협 없는 자세로 서라.
-타협 없는 자세로 서라. 시대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담대하고도 당당하게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써라. 오늘 세 친구들은 왕의 명령을 들어야 될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포로 잡혀온 사람들입니다. 왕이 높은 관직을 주어서 평등한 삶을 약속한 왕 아닙니까? 이 정도 되면 왕에게 한 번 정도 절해야 될 사람 아니겠어요? 왕의 명령은 고칠 수 없는 명령입니다. 왕이 세 사람에게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준비했다가 어찌하든지 살려주려고 애를 쓰고 있는 왕 아닙니까? 이 정도 되면 한 번 정도 우상 앞에 저라는 것이 왕에 대한 예의요. 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길이요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납득할 만한 이런 타협 앞에 그들은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왕이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절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질문합니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살아야 됩니까? 이 세상도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인데 한 번 정도 절한다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몰라주실 것도 아니고 굳이 그렇게 해서 그 젊은 날 청년 시의 삶을 들여야 한단 말입니까? 이 타입이라는 컴프로마이즈("컴프로마이즈(compromise) 타입"은 한국어 보안 용어로, 시스템이나 네트워크가 보안 위협에 의해 손상되거나 침해된 상태를 의미함))라는 이 타입이라는 이름이 너무나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아름답게 안전한 기독교를 만들어내어요.
여러분, 기독교가 비난을 당하는 조롱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누구신가? 라고 후 이즈 지어스, 라고 했는데 The only way to salvation,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거, 온리(Only) 라는 단어를 빼버리면 문제될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이웃을 사랑하라. 사람을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나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고, 타인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고, 얼마나 좋은 종교입니까? 모든 사람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기독교가 될 수 있는데 왜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거리요.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죠
Who is JESUS? 누가 예수인가? The only way to GOD! 유일한 하나님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주님이라는 것 Only 라는 이 단어 하나 때문에 모든 문제가 일어나는 것 아니겠어요? 기억을 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 천국에 이르는 길은 Only JESUS! 분일 줄 믿습니다. 불교도 이슬람교도 착하게 살아도 다 구원의 길이 있다면 싸울 이유 하나도 없죠. 기독교는 최고의 종교가 될 것이에요. 그러나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피 묻은 십자가 부활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를 살려내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인 줄 믿습니다. 최근에 엘버트 몰로 총장님이 쓰던 베스트 총장님이 쓴 책이 한 권이 있습니다.
-폭풍우가 몰려서 우리를 잠식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거대한 시대정신으로 광풍처럼 몰려오는 세속화가 어떤 것인지, 우리를 잠식해 들어가고 젊은이들 가슴 속에 잘못된 사고를 심어주고 있는 이런 사상들,
여러분 세속화라는 것이 결국에 어떤 것입니까? 다 나를 위한 것입니다. 나의 기쁨, 나의 행복, 나의 만족 ,자기 성취 모든 자기 행복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런 세속화의 물결, 이 물결 속에서 몰로 총장은 강력하게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 물결에 대항하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담대하게 당당하게 세속화에 맞서야 합니다. 지금 세속화가 중에서 가장 우리를 잠식해 들어오는 것 중의 하나가 동성애 문제 아니겠어요?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비판하면 차갑게 여기고 그렇게 동성애 이 시대 동성애를 가지고 사람들이 소리를 높이고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변개치 말아야 될 것이 두 가지가 있어요.
⓵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성경의 진리의 말씀 오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줄 믿습니다.
⓶다른 하나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고결한 사람이에요. 남성과 여성으로 만들어진 그걸 무너뜨리면 하나님이 마지막 무너뜨리는 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도 소리를 내고 있는 이런 시대가 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젠더 플루이드(Gender Fluid)라는 단어 유동하는 오늘 내일 따라서 달라지는 성이라고 오늘은 내가 남자가 되었다가, 내일은 원하면 여자가 되기도 하고 모래는 원한다면 고양이가 되기도 하고 자기가 원하는 성을 자기가 선택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뉴욕에서는 공식적으로 31가지 성을 인정을 하고 있어요. 지금 캘리포니아 같은 경우에는 우리 어린 자녀들이 성 정체성을 겪으면서 내가 성 전환 수술을 해야 되는가, 바꿔야 되는가를 고민할 때 부모님들이 간섭하지 못하도록 부모님들이 조언하고 권면하는 것을 불법으로 만드는 법을 통과를 시켰어요.
이게 지금 상상이 안 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게 캘리포니아 그리고 미국뿐이겠습니까? 한국에도 들어와서 언제 우리 앞에 펼쳐질지 모를, 눈앞에 펼쳐질 미래를 내일이 그날이 올 수 있는 겁니다. 왜 우리는 이것이 아니라고 이렇게 소리를 쳐야 될까요?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아닌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하나님 우리를 소중하게 만드시고 고결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만드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인간에게도 가장 행복한 길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 삶 속에 이런 타입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것이 없습니까? 우리 사랑의 교회 모토가 무엇입니까? 제자 훈련 잘 해서 이 시대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것,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부름 받은 제자들일 뿐만 아니라 세상으로 보내 받은 제자라고, 우리는 그렇게 외치고 있지만 여러분 세상에 보내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을 변화시키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너무나 멋진 훈련의 모터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쁠 말이에요. 우리는 멀쩡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데 당신들이 누구 길래 나를 변화시키냐고, 왜 그들이 변화가 필요하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진정한 삶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를 향해서 나아가는데 세상의 목소리에 잠식되어서 우리의 사명을 잃어버린다면 그보다 더 큰 컴프로마이즈는 타입은 없게 될 것입니다.
※두 주 전에 저희 교회를 설립하셨던 우리 1대 목사님께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셨어요. 95년 동안 참 멋진 생에 너무너무 아름다운 인생을 마치고 주님 품 안에 안 계셨는데, 제가 하루 전날 뉴저지로 찾아뵙고 인사를 나누는데 하루 전날 돌아가시기 전에도 얼마나 왕성한 목소리로 또록또록하게 말씀을 나누시는지 그렇게 한 시간을 목사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목사님께서 그렇게 유언을 하세요. ‘내가 주님께 가더라도 슬퍼하지 마십시오. 내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군천사와 함께 두 손을 들고 맞이해 주실 것입니다. 박수로 찬송으로 나를 보내 주십시오.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야 이 멋진 유언을 남기고 가시는 목사님 그리고 목사님께서 예배를 제가 말씀을 인도하고 마지막 축도를 할 때, 목사님께서 계속 손에 들고 계셨던 십자가가 하나 있어요. 평생을 간직하셨던 저 십자가 저 십자가를 헤어질 때 저의 손에 맡기시면서 하셨던 부탁입니다. “류 목사, 내가 평생 간직한 십자가 안에 이제 자네에게 맡긴다네.” 정말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저 조그만 나무 십자가가 거대한 바위 덩어리처럼 제 어깨에 부담으로 책임으로 내려왔습니다. ‘세상이 변한다 하더라도 자네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게나. 그 목소리 아니겠습니까? 온 세상이 바뀐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외에 수많은 길이 있다고 동 종교 다원주의자들이 그렇게 외칠 때, 자네는 강단에 설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주님이라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그것 외치게나.’
그 음성 아니겠습니까? 목사님께서 저희 교회를 개척하시게 된 그 스토리를 듣고 너무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50년 전에 교회를 세우셨는데 한 교회를 같이 몇 목사님이 섬기셨던 때입니다. 주일에 당시 한인 사회 한인 회장 투표하는 날인데, 그 교회 집사님이 회장 후보가 되신 거예요. 그러니 목사님께서 우리 모두 빨리 예배를 마치고 투표하러 같이 갑시다. 우리 집사님 되시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주일날 하나님 앞에 거룩한 예배자로 나아가야 될 그 날에, 이렇게 관광하는 목사님을 보고는 도저히 같이 참게 할 수 없다고 나오셔서 세운 교회가 저희 교회였습니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되겠냐고 묻겠죠. 그러나 주일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날이기에 거룩하게 주님 앞에 영광을 위해서 드린 날이기에 우리 선조들이 그렇게 살아내신 겁니다. 그 믿음의 선조들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가 이렇게 주님 앞에 서 있는 거예요.
우리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휴가철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성도님이 이렇게 주님 앞에 나와서 참 감격적으로 예배하는 것 주님이 바라보시고 너무나 기뻐하신 일인 줄 믿습니다. 오늘 한 분이라도 영상으로 예배하고 있는 우리 성도님 계십니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렇게라도 한다면 주님이 기뻐하실 일입니다. 병약해서 일어나지 못하시거나 연로하셔서 마음이 원하지만 차마 일어날 수 없는 상황, 이슬람 국가에서 때로 예배할 수 없는 상황, 아마 다양한 상황이 있겠죠. 주님도 이해하실 수 있는 상황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러 우리 성도님들 온라인으로 하시는 분들 중에 지금 일어나 걸으실 수 있다면 정말 온라인 예배가 누구를 위한 예배인지 한번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내 편의를 위해서 내 자신을 위해서 지금 그렇게 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가장 하나님께 욕망이 되는 일이라고 그렇게 예배를 하고 계십니까? 많은 사람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계세요. 목사님 요즘은 하이브리드 시대입니다. 집에서 재택근무도 얼마나 많이 합니까? 예배를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사람의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배 신약이라는 것은,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개인적으로 주님을 믿음으로 얻는 것이 구원이에요. 신앙은 목사의 부모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예배는 달라요. 예배라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영적인 모든 가족이 한 몸이 되어서 주님 앞에 드리는 게 이게 예배예요. 우리가 언젠가 천국에 이르게 되면 그날은 예수님을 머리로 하고 주님의 모든 몸 된 지체된, 오고 가는 모든 세대 그리스도인들이 온전한 영적인 가족을 이루어서 주님을 예배할 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 날을 미리 맛보는 것이 지상의 예배예요. 예배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만이 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특권이 예배인 줄 믿습니다.
오늘 예배 예배를 댁에서 예배하시는 분들 중에 일어나실 수 있는 분들이 계신다면 여러분 나오셔야 될 예배는 3부 예배예요.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꼭 미리 준비하셔서 현장 예배 오셔서 함께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예배 자리에 함께 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은 이런 부모님의 예배를 통해서 어려운 시기에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예배하는 부모님을 통해서 정말 하나님을 격려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시대정신이 아니라, 성경 정신으로 일어나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일어설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가 무엇일까요? 타협하지 아니하고 일어날 수 있는 두 번째 비결이 무엇일까요?
Q. 시대정신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II. 둘째, 하나님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서라.
-하나님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을 믿대 확실하게 믿는 믿음, 사랑의 여러분, 제가 한번 묻고 싶어요. 우리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시장을 믿으십니까?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말 피를 쏟으시고 나를 구원하신 구원자라는 것을 정말 믿으십니까? 정말 그것을 믿고 있다면 이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 머릿속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손과 발을 움직이고 내 삶을 움직이는 거 그것도 우리 믿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오늘 풀무뿌리에 집어던지겠다고 말하는 왕에게 이들이 하는 말씀이 뭐죠? 우리 17절 말씀 한번 보시겠습니까?
*다니엘 3:17,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 시리이다.
-아멘. 우리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를 능이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 건져 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이라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십니다. 왕은 천하를 재패 도망입니다. 풀무불은 당장이라도 사람을 집어삼킬 듯이 피어오르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지만 그들의 믿음은 관념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삶을 움직이는 그들의 생각을 움직이고, 가치관을 움직이고, 죽음 앞에서 기꺼이 죽음을 결단하게 만든 것이 그들의 믿음이었어요.
사랑의 여러분한테 한번 다시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믿고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정말 그분이 나의 죽은 유일하신 내 하나님이시라면 그 하나님께 집중하고, 몰입하고 내 모든 삶을 살아내고 있나요? 이 믿음을 가지게 되면 직장의 문을 열 때 자세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 터가 되는 겁니다. 자녀들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져요. 내 꿈을 성취해 줄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청지기로서 자녀들을 말씀으로 훈련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게 달라지게 되는 거예요. 물질간이 달라지고 인생의 행복관이 달라지는 겁니다. 남들보다 비교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그런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소 지을 때 그것이 최고의 행복인 줄 믿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섬길 때 주로 섬겼던 지역이 두만강 상류부터 하류까지 많은 곳에 다니면서 지하교회를 숨겼던 청년 시절이었습니다. 주로 섬겼던 지역이 남평 그리고 왕청, 도문 이런 지역이었어요. 제가 한 도문에서 우리 지하교회 청년들을 섬기러 갔을 때였습니다. 연길에 며칠간 머물다가 가는데 그 집 주인이 저에게 그렇게 말씀을 해요. ‘목사님, 그 도문에 가면 그 지하교회 리더가 여성입니다. 우리 교회에 사흘 동안 머물다가 갔는데 우리 집에서 사흘 동안 머물다가 갔는데 21살짜리 그 앳된 처녀가 시골로 간다고 하니까 걱정이 돼서 물었어요. 너 정말 가려고 하느냐? 갑니다. 겁나지 않냐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두렵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사실 신앙에서 그렇게 깊은 성도님들이 아니셨어요.그런데 이 말이 너무나 그들 가슴 속에 새겨진 겁니다. 4시간, 5시간 가까이 걸려서 그 도문으로 갔어요. 두만강 하류입니다. 바로 저 넘어 북한 초소가 여기저기 보이는 곳이에요. 제가 갔을 때는 그 자매가 온 지 1년 지났을 때고, 이미 7명의 청년들이 모여서 예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침 5시부터 8시까지 예배하고 말씀 나누고, 식사 후에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경제 활동을 위해서 술을 놓고 그리고 다시 예배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몇 명 아이들은 강 건너에 넘어온 북한 청년들이었고, 함께 이렇게 교회를 이루고 있었어요. 그 자매가 들려준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이런 역사도 행하시나 싶었어요. 처음에 그 마을에 왔을 때 젊은 처녀가 시골 마을로 들어오니까, 모든 마을 사람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경계하면서 말 한마디 걸지 않더래요. 여러분 중국에도 요즘 젊은이들 시골이 없죠? 다 도회지(都會地)로 떠나갑니다. 그 멀쩡한 처녀가 시골에 왔으니 혹시 북한에서 보낸 스파이는 아닌가, 통무다는 아닌가, 그렇게 했다가 1년 동안 이 자매가 아무 말 하지 아니하고 그 어르신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지극한 정성으로 숨겼어요. 1년 정도 지나고 나니까 마을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감동해서 우리 마음에 우리에게 저 천사를 보내줬다고, 그때부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하 교회가 아름답게 세워줬어요. 제가 얼마 후에 그 자매를 그 시골에 보낸 선교사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선교사님 지금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 마을에 가서 교회를 세우라는 마음을 주셔서 누가 가겠냐고 했더니 자매가 자원을 했어요. 제가 한 달 생활비와 종이 한 장을 쥐어서 보내었습니다. 주소가 나와 있는 종이 한 장, 아무것 없이 그 시골 마을이 쓰여 져 있는 주소 한 장 들고 들어가는 한 자매, 두렵지 않는가?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사랑의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 우리가 믿는 하나님 절대적으로 믿는 그 하나님 그 믿음이 우리를 움직이는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3명의 친구들, 그 죽음의 위협 앞에서 그들을 움직였던 유일한 한 가지는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절대적인 믿음이었어요. 그러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줄 믿었지만 세 친구는 하나님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지를 않았습니다. 뭐라고 말하죠?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설령 하나님이 우리를 저 풀무 불에 집어던져 그냥 쉽게 내버려 둔다 할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않겠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왕이여.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줄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 아니하신다 할지라도 왕이요 우리는 우상 앞에 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딘가에 소중한 것을 들이기 마련이에요. 그리 아니 하신다 하더라도,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들이려는 사람들 우리가 어떻게 타협하지 아니하고 시대의 정신을 거슬러 성경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기꺼이 내 생명이라도 드릴 수 있는, 정말 주님을 위해서 내 시간 물질 내 모든 것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 라는 이 마음 하나 있으면 그때 가능한 겁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여러분들이 주님 앞에 헌신하기 위해서 주님 앞에 내 자신을 드리기 위해서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결국에는 다 내 자신 아니겠어요? 내 생명, 내 미래, 내 계획, 내 가정, 내 자녀들 우리가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그 33살의 그 젊은이가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 당신의 피를 쏟으시고 당신의 온몸에 물을 다 쏟으시고 하신 그 일이 뭐죠? 주님은 조롱 받으시고 채찍질 맞으실 때,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보라고 조롱을 당하면서 우리 예수님 묵묵하게 하신 기도를 기억합니까?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주님 때문에 우리가 생명을 얻었어. 이렇게 주님 앞에 나와 있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 그 33살의 젊은이 앞에 우리가 아낄 수 있는 것이 한 가지라도 있단 말입니까?
제 생에 너무나 부끄러운 고백이 하나 있어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들어가서 저는 예수님을 믿고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말 주님을 위해서 심장이 뛰었던 그 대학교 1학년 때, 저희 대학교에 여러분 통일교 교주가 누구죠? 문선명죠. 문선명의 오른팔이 누군지 아시나요? 박보희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분이 학교를 찾아오는데 대통령 만나는 사진 또 수상 만나는 사진 온 학교가 도배를 했어요. 아 제가 그때 예수님을 위해서 심장이 뛰었던 그 20대 어떻게 사탄의 종교, 거짓 종교 사이비 종교의 괴수가 우리 학교를 오는지 제가 맨 앞자리에 가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주님 제가 오늘 강의를 듣는 중에 영의 문을 열어 주십시오. 내가 오늘 통일교회의 허를 찌르리라.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데 아 그 박보희 씨 제가 그 강연을 듣고 너무 은혜를 받아버린 거예요. 뛰어나가서 사인을 받았어요. 그분의 한 마디가 정말 제 심장을 찔렀습니다. 내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문선명 선생은 이 진리를 위해서 일곱 번이나 감옥을 다녀왔습니다. 나는 내 스승을 위해서 아직까지 한 번도 감옥을 다녀오지 못한 부끄러운 제자입니다.
여러분, 그 거짓 종교의 우두머리도 거짓 진리를 위해서 감옥 한 번 다녀오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여겼는데,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정말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자 하나님이 맞으십니까? 정말 그분이 유일하신 우리의 주님이 맞으십니까? 정말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시라면, 그 청년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를 쏟으시고, 당신이 하나밖에 없는 심장을 죽어 있는 내 심장을 위해서 대신 주시고, 내 심장의 피가 그분을 통해서 뛰고 있다면, 33살보다 더 살아가는 날에 주님 앞에 죄송함을 여러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나를 위해서 피를 다 쏟으신 그 주님 앞에 내가 주를 위해서 피 한 방울 흘려보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여겨본 적이 있으십니까?
사랑의 여러분, 이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우리의 주님이시라면 그 주님을 믿는 믿음이 내 삶을 움직이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시대정신을 압도하는 신앙 정신으로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써서 시대 앞에 서는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세 사람의 고백 앞에 느브갓네살 왕은 분노했습니다. 풀무 불을 당장 일곱 배나 뜨겁게 달구었어요. 당장 세 사람을 풀무 불에 집어 던졌습니다. 얼마나 풀무불이 뜨거웠던지 이 세 사람을 던지는 그 군인들을 불태워 죽였어요.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위해서 오직 한 분 죽은 대신 한 분을 위해서 그들의 삶을 불꽃처럼 던진 세 사람의 마지막 최후 순간을 보고 있습니다. 연기처럼 바람처럼 한 줌의 죄로 사라져야 될 세 사람, 느브갓네살이 풀무 불을 지켜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세 사람과 함께 또 한 사람이 그 안에서 걸어가고 있어요. 그 모습이 신의 아들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믿음으로 살아낸 세 사람을 예수님을 보내셔서 구원해 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놀라운 일들, 느브갓네살이 세 사람을 불러냅니다. 불탄 냄새 하나 없이 머리틀 거슬린 것 하나 없이 살아서 걸어 나왔어요. 느브갓네살이 내 사랑이 뭐라고 고백합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하라 천지를 호령했던 왕, 우상을 세우고 무릎 꿇고 절하라고 했던 그 왕의 입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라 천사를 보내어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와 이방 왕에서 나오는 높임을 받으신 우리 하나님, 우리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서서 믿음으로 써서 나갈 세상 왕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할 줄 믿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마지막 30절에,
*다니엘 3:30,
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왕이 그들을 바벨론 도에서 높이 들어 사용을 했어요. 하나님께 영광을 받으시고 세상 앞에서도 존귀 받았던 사람, 그리아니 하실지라도 감사하지만 우리 하나님 그들을 통해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신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올해가 2024년 파리 올림픽 있는 날이죠 있었죠. 100년 전에 1924년에도 역시 파리 올림픽이 있었어요. 그때 우리 가슴을 뛰게 하는 한 사람의 이름 기억납니까? 에릭 리들, 100미터에 세계 최고 금메달 유망주였습니다. 체레토 파이어, ‘불의 전차’라는 그 이름으로 잘 알려진 한 사람입니다. 영국을 대표해서 100미터를 뛰는데 100미터 하는 날이 주일이었어요. 기도하고 고민하다가 ‘나는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 거절했습니다. 본래 월요일이 뛰는 날이었는데 프랑스 혁명 기념일 때문에 주일로 바뀐 겁니다. 모든 사람이 아니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뛰어야 되지 않냐고, 옹졸한 기독교 내라고 조롱할 때, 나는 주일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입니다. 뛰지 않았습니다. 다니 그의 친구 에이브람이 뛰어서 영국에 금메달을 선사했어요. 200m에 에릭 리들이 나갔습니다. 주 종목이 아니었습니다. 동메달을 땄습니다. 400m는 전혀 주 종목이 아니었어요. 그의 친구 앤드로 린지가 그를 위해서 양보를 했습니다. 뛰었고 예선전에서 꼴찌로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제일 안 좋은 맨 가장 자리에 배정을 받았어요. 그리고 결승전 총성과 함께 뛰었고 47 06초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어요. 하나님을 위해서 불의 전차로 달려간 사람, 기자가 물었습니다. 주 종목이 아닌데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뛸 수 있었습니까? ‘200m터는 최선을 다해 뛰었습니다. 나머지 200m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뛰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명예, 모든 부위를 다 내려놓고 다음 해 중국의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순교사로 20년 동안 있다가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고, 외시앙 수용소에 잡혀 있다가 결국에는 그곳에서 순교를 당했어요. 그의 나이 44살에 젊은이었습니다. 400m를 뛸 때 믿으면 좋았던 그의 코치가 그의 손에 종이 한 장을 지어 주었습니다. 사무엘 말씀이었어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리라.”
*사무엘상 2:30b,
30b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 사람 인생입니다. 바람처럼 지나가는 인생, 여러분 무엇을 위해서 살다가 누구를 위해서 살다가 주님 앞에 서시겠습니까? 다 지나갈 일들입니다. 세속화가 우리를 엄습해 오고, 시대 물결이 우리를 엄습해 오는 이런 순간에 그냥 그대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신앙 양심에 근거해서, 아니요. 라고 말하면서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주님 앞에, 우선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없습니다. 당당하게 살아갈 때 우리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시고 세상도 주님을 알 줄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 그렇게 살아갔어요. 이제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므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하나님의 사람들 시대를 거슬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하나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요약
시대정신을 거부하고 신앙정신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살아야 한다. 우리들의 말, 행동 모든 것을 통해서 우리 살아계신 하나님 영광을 받으셔야 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셔야 하며, 우리 모두 시대정신이 아니라 신앙정신으로 살기를 소망하고, 시대정신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를 기억하여 하나님 앞에 타협 없는 자세로 서며, 하나님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서야 한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우상에게 절을 하면 이제라도 살려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풀무 불에 던지겠다고 위협했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말로 시작한 느부갓네살은 그들이 계속적으로 우상 숭배를 거절하자 태도를 바꾸어 생명을 담보로 협박했다. 그렇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는 끝까지 자신들의 신앙을 지켰다. 그들은 육체만을 없앨 수 있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도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분께만 순종했던 것이다.
♣주일예배(주후 2024년 8월 11일) 제목: “정말, 네가 낫고자 하느냐?(Do You Realy to Be Healed?) 말씀: 요한복음 5:9, 14-15 대표기도: 백승준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
* 요한복음 5:9, 14-15,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
▶오늘 광복 79주년인데 오늘 예배를 통하여 여러분 한 분도 예외 없이 신앙의 경이로움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생수의 강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광복 79년 주년인데 어제 우리 토요 새벽예배 때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79가 뭐냐? 칠천 기도 용사가 구국기도 하는 거다. 이게 꼭 좀 감이 와 닿는지 모르겠어요. 예 칠천기도용사뿐만 아니라, 오늘 이 앱에 참석하신 여러분들 모두의 마음속에 오늘 정말 주님의 음성을 듣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찬송할 때 우리가 이런 광복절을 할 때, 자주 부르는 찬송 중의 하나가 ‘시온의 영광에 빛나는 아침’ 찬송하셨죠잉? 하는데 그게 뭔가 마음이 확 와 닿는 게 뭐냐면 매였던 종들이 돌아오네~~ 시온의 영광에 빛나는 아침 매였던 종들이 돌아오네. 묶이고, 매이고 억업 당하고 상처받은 수많은 종들이 자유 함을 얻는다는 것이에요. 저 북한의 포로 된 상황을 저 묶인 자유 함을 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오늘 교독문 할 때도 했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 우리가 마치 꿈꾸는 것 같아 포로들이 돌아올 때에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같았도다. 마치 꿈꾸는 것 같이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오늘 저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시리즈 열여섯 번째를 하면서, “정말, 네낳고자 하느냐?” 오늘 본당, 별관 또 방송으로 들어오는 분들, 또 모든 분들 정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정말 간절함이 있는가 오늘 본문을 보면 38년 된 병자가 이제는 해도 안 된다. 그야말로 패배주의 이제는 비관주의 완전히 낙심하고 이제는 끝났다. 그 마음속에 주님이 불을 지르시는 거예요. ‘정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오늘 시작할 때부터 마음속에 “정말 내가 낫고자 하느냐?” 오늘 그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오늘 15절을 보니까, 아 예수님은 나를 고치시는 분이시다. *요한복음 5:15,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38년대 병자는 아주 고침 받고 난 다음에 추림이 나를 고쳐 주셨구나! 주님은 마이 힐러, 주님은 나를 고쳐주셨구나! 주님은 우리 민족을 고치시고, 또 오늘 이 사회를 고치시고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을 고치시는 분이세요. 이걸 위하여 본문을 좀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1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5:1-2,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명절에서 올라가시는데 왜 올라가시는가, 2절에 보니까,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쉽게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타, 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행각이 다섯이 있는 거 보니까, 좀 큰 못이었어요. 그 이름이 뭐라고요? 베데스다, 뜻은 왜냐 벧이란 말은 ‘집’이라는 뜻이고, ‘에스다’ 이렇게 이게 본래 해세드, 이렇게 여러분 헤세드가 뭔지 아시죠? 자비롭다, 은혜다. 이래 하셨던데 그러니까 ‘자비의 집이다.’ 그런 뜻이에요. 거기에 이제 다섯이 있는데, 거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3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있냐면, *요한복음 5:9, 14-15,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왜 기다렸는가? 4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5:9, 14-15,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물이 동할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이 동하고 먼저 들어가는 자가 어떤 병에 걸리지 낫는다. 이런 것 때문에 3절을 다시 한 번 보면,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어떤 사람이 많은 병자 그다음에 맹인, 앞을 못 보는 자, 다리 저런 사람, 혈기 많은 사람, 중풍 쇼크 받아가지고 온몸의 정상 가동이 안 돼, 이런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 누워 있는 거예요. 오늘 저는 이 본문을 통하여 병에 대한 ⓵증상을 말씀할 거고, 그다음에 ⓶그 병을 진단하는 거 말씀할 거고, ⓷세 번째 치유와 그다음 ⓸처방 이 4가지가 오늘 본문 속에 일어나는데, 어쨌든 간에 오늘 여러분들이 상황을 잘 파악하고 민족적으로 우리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있는 수많은 38년 된 수많은 난제의 병들이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그걸 믿는 것이 믿음이에요. 자, 그런데 이 병자들이 인제 누워 있는데, 이게 마치 뭐냐 하면요. 겉으로 볼 때는 멀리 행각이 다섯이 있고, 베데스다의 아름다운 물이 태양빛의 물결이 반짝이고, 겉으로 볼 때는 멋있어 보이지만 속, 그 안에 들어가면 수많은 아픈 사람들이 질병에서 누워있는 거예요. 누가 그런 이야기 했죠. 인생은 겉으로 보면 희극 같지만 그 속에 들어간 비극이다. 아 증상들이에요. 그래서 그 아파 있고, 누워 있고, 눈 못보고, 다리 절고, 혈기 마른 자들을 주님이 오늘 심방 오신 것이에요. 앞에 4장에 보면, 수가 성 우물가의 여인을 주님이 심방(尋訪) 가셨잖아요? 거기서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남편 데리고 오라‘’, 아주 정곡을 찔렀는데 오늘 5장에서는 주님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 심방(尋訪) 오신 주님께서 우리 교회는 좀 이렇게 교회가 큰 규모가 돼 가지고 제가 여러분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신방을 못한다. 할지라도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을 신방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의 마음을 주님께서 만져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자, 우리가 겉으로 볼 때 육신족의 이런 아픈 병도 많이 있지만 사실 오늘 이 사회를 보세요. 수많은 마음의 병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서로 경쟁(競爭), 시기(猜忌), 질투(嫉妬), 고통(苦痛), 수많은 증상(症狀)들, 여러분 지금 많은 분들이 지금은 이 스마트폰 AI 알고리즘에 빠져가지고, 계속 여러분들 얘기하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SNS에 여러분들 필요한 거 올리고, 그랬는데 사실 따져보면요. SNS에 집착하는 분일수록 연구 자료에 의하면 불안과 소외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고, 소셜 미디어의 사용 빈도가 많을수록 사회적 불안과 외로움의 증상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괴로움과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수많은 증상들이 있어요. 다 나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이 베드스타에도 모든 것이 다 나쁘진 않아요. 나름 거기에도 나름 인도주의가 있고 서로 좀 도우려는 마음도 있고 그다음 또 뭐 쫌 이렇게 배려도 좀 하고 어 이렇게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낫느냐, 안 났느냐, 하는 그 치열한 어떤 그 어떤 순간이 오면, 모멘트 순간이 오면요. 사람들이 인도주의 서로 배려하고 서로 관심 좀 있는 것 같고, 이런 것들이 다 사라지고, 치열한 아귀다툼의 현장이 되는 것이에요. 치열하게, 소위 물이 동하는 그 순간만은 투쟁의 역사가 시작되는 거예요. 먼저 뛰어 들어 갈려고, 먼저 나으려고, 서로 밀고 당기면서 싸우는 것이에요. 우리 인간이 가만히 있을 때는 나름대로 배려하고 인도주의적인 면이 있기도 하지만,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에는 사람의 본성이 드러나 가지고, 민낯이 드러나 가지고, 서로 살려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이 극심한 갈등들 마찬가지로 베데스타 비극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오시고, 심방(尋訪)하시고 그리고 이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시고 난 다음에 명실상부하게 이름 그대로 베데스타 은혜의 집이 된 줄로 믿습니다. I. 인생 비극의 축소판 베데스다(3-4):증상(症狀). -제가 오늘 우리 가운데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사실은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있는 사람처럼 이런저런 상처를 가지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만 살겠다고 하는 그런 성향이 있다면,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주의 음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 첫 번째 제가 이제 증상(症狀) 문제를 말씀드렸고, 이제 주님께서 진단하시는 것입니다. 6절에 뭐라고 지금 말씀을 하냐면, 6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 5:6,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러시되 네가 뭐예요? 낫고자 하느냐? 제가 오늘 “정말 내가 낫고자 하느냐? 제목을 붙인 이유가 여기에서 나와 있습니다. II.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6절):진단(診斷). -네가 정말 낳고자 하느냐? 예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분이라고 그러셨는데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 여러분, 이 질문은 신성을 지니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질문입니다. 어떤 인간이 네가 낫고자 하는데, 내가 고쳐주는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예수님은 자연계를 장악(掌握)하시고, 예수님은 질병 계를 장악하시고 예수님은 영계를 참가하셨어요. 예수님은 질병 계. 수많은 기적같이 수많은 아픈 사람들, 수많은 나병 환자들, 수많은 어려운 사람들을 주님이 고쳐 질병계를 장악하시고, 이 누구이길래 이런 기적 같은 병을 치유(治癒)하시는가? 폭풍 이는 바다를 주님이 잠잠케 하실 때, 이 누구에게 이 폭풍이라는 바닷가를 잠잠케 하시는가, 소위 자연계를 주님께서는 통제하시고, 그다음에 악한사탄 마귀 귀신들을 쫓아내는 주님의 영계(靈界)를 장각하시고, 그러니까 이 소위 신성을 지니신 질병계를 장악하신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질문이라는 것이에요. 오늘 여러분들 이 말씀을 들을 때에 그냥 주일 강단에서 설교 얘기하는 정도 들리는 말씀을 듣지 말고, 오늘 주님께서 한 분, 한 분, 심방 오셔가지고, “정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정말 이 민족의 갈등이 치유되기를 원하느냐?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음성으로 들려가지고, 참으로 마음속에 간절함을 갖고 “주님 제가 낫기를 원합니다.” 적당히 원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일사각오로 주님 제가 낫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오후에 청계산에 올라가서 기도를 합니다. 거기에 올라가 가지고 뭐 바위에서도 기도할 것이고, 간절하게 시간 되면 미리 올라와서 기도를 하시는데, 여러분, 거기서 한번 결사적인 각오로 주님께서 주신 음성인 네가 오늘 정말 낫기를 원하느냐? 거기에 대해서 여러분들 마음이 주님 앞에 마음이 열려 가지고 그렇습니다. “주님 제가 낫기를 원합니다.” 원함 정도가 아니라, 아주 그냥 결단하는 축복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치유 자 되시는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질문인 줄로 믿습니다. 치유 자 되시는 주님께서 이 질문하실 때, 거기에는 내가 너를 고쳐주기를 원한다는 간절한 목자의 심정이 있는 것을 기억하셔야 되는 거예요. 오늘 이 자리에는 교회라고는 처음 오신 분도 있을지 몰라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없습니다. 육신적으로 아프고 이런 것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상처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에서 살다 보면 수많은 문제가 치유되지 않아 가지고 큰 짐을 주고 있을 때에, 오늘 처음교회 오신 분들 가운데 주님을 잘 몰라도 오늘 마음의 소원을 하세요. ‘주여 내가 낫기를 원하나이다.’ 낫길 원하나이다. 그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도록 들을 길을 주시고 마음이 열리기를 바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왜? 이 병자에게 이 말씀을 하셨느냐면 이 병자의 반응을 좀 들어보니까 이 병자의 마음속에 상처가 있고, 병자가 아 이제는 나도 끝났다. 하는 비관주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래요. 심방 오신 이유가 7절을 보세요. 뭐라고 나왔냐면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6절에 물으니까 같이 보죠. *요한복음 5:7,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간다. 무슨 말입니까? 이 대답에는 그의 자기 연민(憐愍)과 불만(不滿)이 담겨 있어요. 나는 누워있기 때문에 움직임이 빠르지 못하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군가 나를 들어서 물에 넣어줘야 하는데 아무도 나를 넣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나는 그냥 널브러져서 누워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니까 그의 마음에 이 답답함과 안타까움으로 부정적인 생각과 상처받은 마음이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요. 뭐라고 해요. 다시요.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이 말에는 자기 불만과 연민이 들어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고 불평하면 자기연민에 빠지면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그럴 때마다 우리 속에 주님이 허락하셨던 기쁨 자원이 고갈이 되고, 소망자본 희망자본이 다 없어지고, 나중에는 냉소주의, 부정적 의심만이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께서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 는 이 질문 안에는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입장에서는 단지 육체적인 치유에 관한 질문 정도가 아니라, 이 말씀 이 질문에는 그 병자(病者)를 전인적인 치유로 초대하시는 질문이 될 수가 있는 것이 그리고 이 질문에는 종합적으로 은혜의 자리로 부르시는 초대장(招待狀)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제대로 은혜를 받고 치유가 되면 몸도 따라오고 몸도 치유가 될 수가 있는 겁니다. 자,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38년도 병자를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그가 처음 병들어서 5년 10년 될 때까지는 사람들이 와서 너 낳을 수도 있어, 그래 나도 나을 수가 있을 거야. 그리고 너 낫기를 원한다고 이런 마음의 소원이 계속 나름대로 자리 잡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 병이 만성이 돼 가지고 5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20년이 되고, 30년이 되고, 35년이 지나니까 자기도 모르게 오랜 병에 익숙해져 가지고 병에서 나을 것 같다고 생각이 안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병자는 38년이니까. 예를 들어서 20살의 병자가 되었으면 58세가 된 겁니다. 거의 회갑 수준입니다. 당시 고대 근동사회의 평균 나이 평균 수명을 다 초과(超過)해버렸습니다. 그래갖고 뭐 이제 내 인생 끝났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 주님께서는 그 베데스타 전각에 수많은 병자들, 맹인들 다리 저는 사람들, 혈기 마른 사람들, 이 사람들을 다 이래 지나셔 가지고 다, 다리 저는 사람도 지나고, 혈기 마른 사람도 지나시고, 맹인도 지나가지고, 이 38년 된 병자에게 다가와 가지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정말 낫고자 하느냐?” 부드럽고 따뜻하게 질문하실 때, 갑자기 그 병자의 가슴이 뜨거워지고 감동이 되고 떨린 거예요. 오늘 우리 가운데 오랜 시간 병으로, 오랜 시간 큰 상처로, 마음이 굳어버린 채 자기 자신도 포기(抛棄)해 버린 어떤 고통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주님은 지금 맹인들, 다리 저는 자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서 이 38년 된 병자에게 다가오신 것처럼, 오늘 이 시간 주님은 여러분들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이 예배시간을 통하여 다가오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주님이 여러분들을 다가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오셔서 질문하십니다.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은밀한 죄들 좋지 못한 고질적인 습관 등이 있다고 해 보십시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끊기를 원하겠지요? 은밀한 죄나 고질적인 습관들 근데 실상은 38년 된 병자처럼, 만성적으로 반응해 가지고 그 죄에서 벗어나기를 진심으로 원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원하기는 원하는데 만성적인 죄의 습성이 주는 즐거움에서 진심으로 벗어날 의지가 없는 거예요. 그저 그랬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잠시 죄악의 낙이 있기 때문에 잠시 죄의 즐거움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 는 이 질문에 대해서 이 질문이 내게 능력으로 다가오지를 않는 것이에요. 여러분, 그냥 원하는 거 하고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은 다른 거예요. 내가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이 희망과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내가 일사각오의 결단을 하는 것은 다른 것이에요. ‘정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시편 145편 18절 제가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편 145:18, 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아멘 진실로 원하는 축복을 이 시간 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혼자 있을 때보다도 공동체가 같이 기도하고, 같이 찬양하고, 같이 준 앞에 목 놓아 우리가 마음을 같이 할 때, 하나님이 이 자리에 기름 부음이 있게 되는 것이 소위 은혜의 불이 떨어지게 돼있는 것이에요. 우리 민족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남북문제 지난 79년 동안, 옛날에 어릴 때 저희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그렇게 하면 뭔 가슴이 좀 찡한 게 있어요. 근데 지금 2030 시대 세대 또 4050 40대 50대도 보면 실질적으로 저희들 세대만큼 통일을 그만큼 원하는가? 작년에 서울대학교 통일연구소에서 평화통일 연구소에서 통계가 나왔는데 지금 20대 30대에 있는 젊은이들은 별로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 통일을 별로 원하지 않는다. 이런 분들이 76프로예요. 40대 50대도 뭐 57프로 이상, 그러니까 원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이게 지금 일반적인 생각이에요. 이제 만성이 돼버린 거예요. 정말 원하지를 않는 정말 그런 이게 그만큼 어떤 긴박성이 약해진 거예요. 절박성이 약해진 거예요. 그러니까 물어보십시다. 통일을 정말로 원하느냐의 차원을 뛰어넘어 가지고 여러분 북한이 무너졌다고 생각했을 때 중국이 장악해야 되겠습니까? 다시요. 중국이 장악해야 되겠습니까? 누가 해야 합니까? 우리가 해야죠. 북한이 무너질 때 러시아가 장악해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그거는 90프로 이상 우리가 다 공감할 것이에요. 오늘의 이 마음속에 하나님 남북문제에서도 우리가 38년 된 병자와 같이 그냥 만성이 돼 가지고 적당히 원하는 거였다면 스님 정말로 원하는 것으로 내 마음을 바꾸어 주시옵소서. 북한의 문제는 예배의 문제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북한이 김일성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사상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여 북한이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여 주십시오. 여기에 대해서 아 그렇지, 하고 적당히 겨우겨우 요나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에스겔처럼 다 희망이 없고, 다 마른 뼈가 되고, 다 희망이 없는데 마른 뼈가 살겠느냐? 그랬을 때의 에스겔의 마음속에 뿔이 붙어 가지고 수여 영이 마시면 마른 뼈가 살아날 줄로 믿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그 대언이에요. 대언! 그리고 이 MZ 세대 젊은 세대는 이제는 해도 안 된다. 우리 선배 시대는 뭐 열심히 하면 집도 사고 다 아는데 이제는 우리 희망이 없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MZ세대는 그래도 세계로 나갈 수가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음성을 듣고, 네가 정말 제대로 살기를 원하느냐? 물었을 때 우리 젊은 세대도 그렇습니다. 하고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로 임하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자, 이제 저는 증상 파악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진단을 했습니다. 이제 주님의 치유가 있습니다. 세 번째 이제 팔절을 보니까 뭐라고 나와있는가,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다 같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5:8,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III.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치유(治癒). -치유입니다. 38년 된 병자와 같이 불평할 가능성이 많은 우리 속성을 보시고 치유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일어나 너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담대한 믿음의 강철 신발을 신고 일어나라. 이것이 바로 권세 있는 능력의 말씀인 줄로 확신합니다. 능력의 말씀이 사람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이 병자의 입장에서는 몸 가누기도 힘들고, 앉기도 힘들고, 서는 것은 더 불가능한데 주님께서 갑자기 일어나 너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 거예요.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살아있고 능력 있는 주님의 음성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이 능력으로 역사하시고 성령을 새바람이 불어야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명령하시니까, 기적(奇蹟)이 일어난 게 된 거예요. 마치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까 그 무에서 빛이 유가 창조되고 나사로야 일어나라, 그러니까 주님께서 명령하시니까 시체가 벌떡 일어나 걸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레마의 말씀이 돼 가지고 일어나 걸어가라. 그랬을 때 ‘주님 그렇습니다.’ 하고 내 삶에 불평의, 어떤 내 삶의 불신에 모든 돗자리를 번쩍 들고 걸으라. 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은 38년 된 병자가 뭉그적거리고 누워 있던 그런 것들을 그걸 들고 일어나는 거, 그것은 영적 자립심을 키워주시고 거룩한 홀로서기를 하라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오늘의 말씀이 우리 민족과 통일에 관해서도, 패배주의와 부정적 운명주의의 돗자리에 누워 있는 우리 민족을 일깨우는 주님의 천둥소리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권세 있는 능력의 말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이겁니다. 이 말씀이 오늘 여러분들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진짜 원하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이제 지난 몇 주간에 이렇게 말씀 옥상도 하고 이렇게 있는 동안에 우리가 흔히 아는 말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의 모여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알려고 얼마나 애를 씁니까? 점쟁이 앞에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 관심 그거 비교가 안 되게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알기를 얼마나 애를 씁니까? 근데 그 하나님이 뜻 멀리 찾을 것이 아니에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자 이 말씀 여러분들에게 능력의 말씀이 돼야 되는데 여러분은 물어보십시다. 항상 기뻐하는 게 힘들어요.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게 힘들어요. 범사에 감사하는 게 힘들어요. 모든 사람들은 다 힘듭니다. 그래도 그 셋 중에 항상 기뻐하고, 고거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거, 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거, 어느 게 제일 힘들어요. 뻔합니다. 게으르고 저기 뭡니까? 좀 부지런함이 약한 사람은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게 약하고 그 다음에 또 완벽주의자들 우울증에 있는 사람들은 뭡니까? 항상 기뻐하는 게 힘들고, 너무 똑똑한 사람들은 또 범사에 감사하는 게 힘들고, 그런데 이게 권세 있는 주님의 능력의 말씀이거든요. 이게 오늘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했을 때,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항상 기뻐하고 시집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되는데,,, 저는 제가 뭐가 제일 약할까요? 말씀 안 드려요 예 다 우리 약점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한다는 이게 사실 어떻게 불가능인데 이거 어떻게 가능하게 될까? 제가 늘 암송하고 제가 좋아하는 구절,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 구원의 하나님을 찬성할지로다.’ 주님이 날마다 우리 짐을 져준다고 생각하면, 그게 치유 음성 되게 하셔서 그래도 감사할 수 있고, 그래도 기도 할 수 있고, 그래도 기뻐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니까 오늘 네가 정말 낫길 원하느냐 주여 정말 그 말씀 가운데 기쁨과 감사와 기도가 우리의 것으로 자리잡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마지막 이제 처방전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자 제가 ⓵증상(症狀)을 말씀드렸고, 그다음에 ⓶진단(診斷)을 말씀을 드렸고, 제가 이제 ⓷치유(治癒)를 말씀드리는데, 권세는 주님의 말씀인데, 자 이것이 우리에게 나타났을 때 나타난 2가지 현상이 있는데, 그게 처방(處方)이에요. 하나는 뭐냐 하면 이런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에 권세가 말씀의 능력이 실제적으로 내게 와 닿으면요. 뭘 느끼는가 하면, 1)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 주님의 인재가 그렇게 리얼해져요. 그러니까 주님이 나와 함께 동행 하는 것이 그렇게 실체화가 된다는 것이네요.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내 삶의 환경 내 삶의 모든 처지를 2)주님이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신다. 그걸 느끼게 되는 것이죠. 오늘 여러분의 여러분과 저에게 다른 어떤 것보다도 변개할 수 없는 최고의 확신이 뭐냐 하면 주님이 저와 여러분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에요. 그거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정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질문하시는 거예요. 물어보겠습니다. 내일 아침 해 뜹니까? 안 뜹니까? 자 다시요. 자리를 들고 일어나기 위해 걸어가기 위해 필요한 건 처방전인데 다시오. IV. 자리를 들고 걸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14-15):처방(處方)전. -내일 아침 해 뜹니까? 안 뜹니까? 이거는 변경할 수 없는 자연의 놀라운 법칙이에요. 내일 아침 해가 나 뜰지 모르겠다.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이에요. 생명이 없으니까 모르는 거죠.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 있었어요. 내일 아침에 해가 뜨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이 나를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시는 거예요. 예 놀라운 진리에요.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 노후대책(老後對策)이란 걸 합니다. 노후대책 1순위 건강이다. 2순위 돈이다. 3순위 또 뭐 있나요? 친구다. 이런 거 있지만 여러분, 노후대책의 최고의 노후대책이 뭐냐면요. 주님인 나와 함께하시는 이 놀라운 사실을 여러분 날마다 일마다 때마다 실체 있게 경험하는 것이에요. 오늘날 우리나라에 고독사(孤獨死)가 너무 많아요. 홀로 있다 보니까 너무 외로운 거예요. 근데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요. 고독사가 있을 수가 없어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너가 정말 낳고자 하느냐’ 질문하시는 그 주님 때문에, 나를 신망 오시는 그분 때문에, 내 삶을 처방하시고, 진단하시고, 보여주시는 그분 때문에 우리엔 고독사가 없는 것이에요. 맞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노후대책 0순위가 주님이 나와 함께 임재하시는 것을 깨닫는 것이에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고독사가 없다는 것을 믿으십시다. 따라 하겠습니다. 신앙인에게는 고독사가 없다. 주님이 함께 계시는 한 우리에게는 고독사가 없는 줄로 믿는 것입니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에요. 손 내밀어 줄을 만져라. 주 지나가신다. 이런 마음의 손을 들면 주님이 남께 인지하시고 동행하는 것을 느끼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최고의 그리스도인의 확실한 노후 대책이 뭐냐, 정말 너가 낫고자 하느냐고 질문하시고, 심방하시는 예수님의 임재인 줄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니까 그러니까 우리 우리 교회는요. 고독사가 없는 공동체예요. 그러니까 교회가 유일한 이 시대의 사회적 대안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걸 깨닫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어제 새벽에 제가 많이 강조했는데 인생은요, 2종류의 남에게 에너지를 빼앗는 사람이 있고, 남에게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 주님이 너가 정말 낫고 자느냐, 이런 치유를 경험한 사람은요, 반드시 그 사람 만나면 용기가 얻어지는 거예요. 그 사람 만나면 영감을 받는 것이에요. 그 사람을 만나면 다시 한 번 기백(氣魄)을 갖게 되는 것이에요.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주신 이 은혜를 갖고 있는 사람은 영감과 용기와 기백을 주는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거죠.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노후 대책이 되는지 몰라요. 그리고 또 하나 처방전 14절을 다시 한 번 크게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5:14,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아멘 다시는 뭐예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사람이 왜 38년 된 병자가 되어 가지고 38년 동안 그 병 때문에 신음(呻吟)하고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을까? 여러 해석이 있지만 그중의 하나, 아마 이 사람들 약점이 있고, 죄(罪)도 범(犯)하고 그래갖고 어려움이 있었을지 몰라요. 근데 주님께서는 이제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 다시는 그러지 말라. 예수님이 좋은 의미에서 거룩한 경고를 하시는 거에요. 이제 팔다리가 건강해져서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게 됐으니 그거 갖고 옛날처럼 또 잘못된 버릇 가지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 팔다리 가지고 건강을 가지고 주님의 임재를 느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라. 우리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사회에 하나님 많은 치유를 주시고, 축복을 하시고, 선진국에 진입하게 하시고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대한민국이 세상에 수많은 나라에 영감을 주고, 용기를 주고, 길을를 보여주고, 세계 선교를 마무리하고 그래서 오늘 79년 된 광복절을 맞이하여 모든 묶인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신실한 남녀 종들, 성도들 주님의 심방을 받아 그렇습니다. 간절히 원해갖고 주님과 여러분만이 아는 놀라운 치유의 현장을 일마다 때마다 경험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송가 가운데 우리 시대 때 페스트 가스펠 송에 있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손 내밀어 줄을 만져라.’ ♬나의 등 뒤에서~~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 길 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때때로 뒤돌아보면 여전히 계신 주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 하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오늘 우리가 이와 같은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이민족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지난 79년 동안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 고통의 상황이긴 하지만 만약에 피 흘림 없이 복음적으로 평화 통일만 이루어진다면 앞으로 이 고통의 과정도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정신 차리고 이것도 내 마음대로 살지 아니하고, 이것 때문에 주님 앞에 더 긴장해서 더 하나님을 집중하고, 하나님을 사모하게 된다면 이 과정도 나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저 북한은 주님 불쌍히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약 주님은 질병계, 자연계, 영계의 주권자이시니,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와 같은 나를 심방 오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실 때, “네 주님, 낫기를 원합니다.” 일사각오로 대답하여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권세 있는 능력의 말씀을 들려주실 때, 오래 묶여 있던 나의 자기연민과 불평과 패배주의에서 일어나 믿음의 강철 신발을 신고 걸어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교회 사랑의 교회의 7천 기도용사가 청계산 산상 기도회에서 ‘2033-50 비전’을 위해 구국 기도를 드릴 때, 대한민국이 79년 된 분단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 ‘평양에서 특새 하는 그날’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 교회와 나라가 승리하는 체험을 기대하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주일예배(주후 2024년 8월 4일) 제목: "다니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말씀: 다니엘 6:22-28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안승훈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권성수 목사님-초빙(대구동신교회 원로,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특훈교수) ----- *다니엘 6:22-28, 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3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24 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 25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되 원하건대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26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27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28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 ▶더운 가운데 여러분이 예배당에 오셔서 이렇게 시원하게 예배를 드립니다마는 더위도 이기시고 세상도 이기시되 세상의 복음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요즘 세상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어떻게 잃을 수 있는가 질문이 나지 않습니까? 교회를 볼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교회가 어떻게 이렇게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될까? 탄식(歎息)스럽지 않습니까? 여러분 자신의 삶을 볼 때 어떻습니까? 예수, 예수 믿어서 받은 증거가 많다기보다 예수는 믿어도 증거도 별로 없고, 변화도 별로 없어서 갈등과 고민하시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상황(狀況)을 놓고 보시면 다니엘의 상황이 여러분의 상황보다 어쩌면 더 나빴다 할 수 있습니다. BC 605년에 15살의 나이로 포로로 사로잡혀 가서, 80대가 될 때까지 포로(捕虜)기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니엘이 포로기의 생활을 하면서도 굉장히 열악한 치열한 환경 속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체험했고, 그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강력하게 나타난 것을 체험하고 세상에 놀라운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의 하나님, 역사 속의 하나님만이 아니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문제는 동일하신 하나님인데 왜 나는 다니엘처럼 체험하지 못하는가? 여기 있는 거죠. 다니엘이 사자의 입을 막는 믿음, 히브리서 11장 33절에, *히브리서 11장 33절,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사자 입을 막는 믿음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는데, 나는 그런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사자의 입은 막지 않는다할지라도 나의 삶 속에 나타나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실감하고 체험할 수 있는가? 여러분 다니엘서 6장을 전체로 보시면 다니엘 당시에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으로 계셨는가?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다니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다리오 왕이 인정(認定)했습니다. 6장 20절에 보면, *다니엘 6장 20절, 20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내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 왕이 다니엘의 하나님이라고 인정했어요. 단일의 정적들 페르시아에 120개도의 120 고관들, 또 그 위에 3명의 총리들, 그 정작들도 다니엘을 그의 하나님이라고 다니엘의 하나님을 그의 하나님이라고 싫지만 인정했습니다. 다니엘 자신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말을 했어요. 히브리스 11장 16절에 보면, *히브리스 11장 16절,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의 하나님으로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셨다는 말씀인데 다니엘의 하나님, 다니엘의 하나님으로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실 정도였습니다. 다니엘의 삶 속에 그 당시 세계 속에서 놀랍게 일하셨기 때문이죠. 다니엘이 치아만 하나님은 비록 다니엘이 포로로 사로잡혀 가서 보이는 이스라엘은 망했다고 할 수 있지만 바벨론과 페르시아, 세계적인 제국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여러분, 얼른 보시면 지금 세계에 이런저런 놀라운 나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하고 러시아의 전쟁이 있고, 이스라엘과 이란 내 부추김을 받은 세력과 전쟁 또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면전에 들어갈 수도 있고, 중동전이 일어날 수도 있고,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도 있고, 그러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느냐, 이 상황 속에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는가? 이런 안타까운 질문이 있겠습니다마는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고 들리지 아니하시고, 만질 수 없지만,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어떤 존재보다도 더 확실하게 살아계셔서 끝난 것 같은 인생과 끝난 것 같은 나라에도 일하시고 계심을 믿습니다.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 보이는 것만 보면 마치 하나님은 안 계시는 거 같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로 놓고 봤을 때, 하나님께서 단일을 통해서 바빌론과 페르시아를 통치하셨으니 전 세계를 통치하셨어요. 하나님은 세계를 통치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통치 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탄식도 많고 근심도 많고 아픔도 많고 오랫동안 몇 십 년 동안 기도해도 남편이 돌아오지 아니하고, 자식들의 엉망진창이고 마음의 아픔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얼른 보면 하나님이 아무 일도 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분명히 일하시고 계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할 때 하늘에 있는 별들이 얼마나 많으냐, 지구도 하나의 별이라고 할 때 여러분 다 아시는 대로 무수한 별들이 있어요. 광대한 우주를 하나님이 창조하시는데 이 광대한 우주에 그 별들과 별들의 사이의 거리까지 미세 조정까지 하시면서 다스리고 계실 뿐만 아니라 인간 세계를 다스리시고 여러분의 마음속에 신음소리까지 들으시면서 14만 개 머리털까지 새시면서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다스리고 계시는데 이런 하나님 이런 하나님이 안 보인다는 게 문제예요. 만약에 하나님이 보인다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시하지 못하겠지만, 안보이니까. 무시하는 거예요. 지금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학자가 히브리 대학의 유반하라리 라고 하는 역사학자입니다. 그는 호모데우스, 간이 신이다. 인간의 신처럼 된다. 호모데우스,‘ ’미래 약사‘ 미래를 간단하게 기술했다. 미래약사라고 하는 책에서 인간이 점점 발전해서 신처럼 된다. 하나님처럼 된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기술과 과학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20세기만 해도 수명이 40세에서 평균 수명이 40세에서 70세까지 뛰었다. 21세기로 들어가면 수명이 150세로 뛸 것이다. 과학과 기술이 점점 발전해서 나중에는 사람이 죽지 않는 단계까지 불멸의 단계까지,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인간이 신처럼 되어서 사람이 죽 기술로 죽지 않으면서 최고의 행복을 누린다. 그렇게 주장을 했어요. 정말로 인간이 신처럼 될 수 있습니까? 그의 반대편에서 존 레녹스라고 하는 옥스퍼드의 수학 교수고 철학 교수고 세계적인 무신론자 ‘리차드 도킨스’를 만나서 불신자들이 봐도 무신론자들이 봐도, 존 레녹스가 이겼다 할 정도의 토론을 벌이는 대단한 학자가 있는데, 그가 ‘2084 AI와 인류의 미래’라는 책에서 ‘호모데우스’ 진짜 하나님이시면서 진짜 사람이신 분은 1분밖에 안 계시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에게 불멸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죽어도 살도록 만드는 영생의 복을 주시고, 인간이 감상적으로, 화끈하게 다가오는 그런 행복이 아니라, 영원히 고통도 없고, 사망도 없고, 죽음도 없고, 죄도 없고, 개인의 죄도 없고, 구조에 죄도 없는 그런 완벽한 지복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인간 세계를 다스리시는데 호모데우스, 참 인간이시면서 참 하나님, 참 하나님에서 참인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부활로 승리를 하셨고, 그 승려의 여세를 몰고 가시면서 재림하시면 심판할 자리들을 심판하시고, 우리의 고원을 완성하셔서 완성된 천국에서 우리가 영생하면서 지복을 누리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구요. 이런 하나님을 얼마나 체험하시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걸 얼마나 실감하시고 체험하시고, 그것을 주변에 있는 사람, 왕이 볼 정도로 주변의 회사의 동료들과 상사들이 볼 정도로, 이상하다 너의 경우는, 누군가가 너를 돕는 것 같아. 라고 할 정도로 그렇게 체험하시고 계십니까? 다니엘이 포로기에 있었지만 그런 하나님 안보이시되 나타나신 하나님, 사자 입도 막으실 정도로 나타나신 하나님, 그런 하나님을 체험하다 보니까 얼마나 영향이 컸는지 그 당시에 페르시아를 놓고 봤을 때, 굉장히 인더스 강부터 시작해서 이집트로 그리스까지인데 거기에 영향을 미쳐서 왕이 선교사가 되게 만들었어요. 왕의 입으로 다니엘의 내 나라 관할 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 지어다. 그는 살아계시는 분이요.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분으로서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다. 왕의 입에서 이런 복음을 지나도록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주를 다스리고 인간 세계를 다스린다는 것을 조선을 통해서 전 세계에 알릴 정도로 한 사람 다니엘이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 거예요. 이 다니엘의 하나님, 지금도 우리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으로 살아 계신 줄 믿습니다. 문제는 또다시 던집니다. 이 하나님을 얼마나 체험하십니까? 어떻게 체험할 것입니까? 다니엘의 하나님을 살피고, 이제 다니엘의 믿음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이 다니엘의 믿음을 놓고 봤을 때, 사자들이 다니엘을 삼키지 못하게 할 정도의 믿음 하나님이 역사 하셨지만,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시거든요. 다니엘의 믿음을 통해서 어떤 믿음이었냐? 라고 할 때, 6장 10절을 보면, 부멍에 나와 있죠. *다니엘 6장 10절,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 시대의 다니엘의 정적들, 120개 지사들 또 그 위에 3명의 총리가 있는데, 왕이 다니엘이 출중하니까 3명 중에서 최고로 올리려고 하는 그 상황에서 그 당시에 정적들이 고관들이 전체가 총리들, 고관들, 법관들, 관리들, 지사들 전체가 다 동의해 가지고 앞으로 30일 동안, 왕 외에 어떤 신이나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그는 사자 굴에 던져야 합니다. 라고 하는 조서(調書)를 금령(禁令)을 내리게 만들었죠. 다니는 그걸 알았어요. 이 조세의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았어요.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3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저는 이 구절을 보면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 조서에 그런 금령에 도장이 찍힌 걸 알면 왜 이 위층으로 올라갔냐? 아래층에 머물지 왜 창문을 여냐 이불 덮어쓰지. 왜 하루 세 번 하냐? 한 번만 하지, 왜 감사하냐? 갈등을 고하지.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었는가? 율법주의자 아닌가? 형식주의자 아닌가? 꽉 막힌 사람 아닌가? 삐딱한 사람 아닌가? 그렇게 질문을 던질 수 있지만 단일이 왜 굳이 그렇게 했을까요? 왜 굳이 그랬을까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여기 걸려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걸려있는 거기에 자기 인생을 던지는 거예요. 기도하면서 다니엘의 기도는 목숨을 건 기도였을 거예요.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전력투구 하는 기도였어요. 그런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능력 주님의 새 힘을 얻은 겁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도 사자의 입을 막는 믿음이 있었던 것은 주님의 능력이 그 속에 있었기 때문이야. 여러분이 기도하시는 것, 이제 앞으로 전심 기도 하시고, 구국기도 하시는데 기도하실 때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셔서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해서 능력을 베푸시는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을 다니엘을 만난 거예요. 전심으로 오게 됐다. 하나님의 영광이 걸려 있을 때는 목숨을 걸고 기도했다. 그렇게 하는데 그게 기도로만 끝난 것이 아니고, 다니엘의 믿음은 생활에서 나타난 거예요. 다니엘 6장 4절에 보면, 다니엘이 충성했어요. 아무 근거도 없고 아무 허물도 먼지를 떨고 싶어도 떨 것이 없었어요. *다니엘 6장 4절, 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그릇됨도 없고 허물도 없었어요. NIV 번역에 보면, 부패(腐敗)도 없었다. 태만(怠慢)도 없었다. 정직(正直)하면서 진실(眞實)하면서 충성(忠誠)을 하는데 부정부패 없어요. 금은 태만이 없어요. 이게 믿음이라는 겁니다. 믿음은 교회 안에서만 지키는 것이 아니고, 교회 밖 세상에서 삶의 현장에서 지키는 것이요. 믿음은 생활인 줄 믿습니다. 삶 속에 들어가는 믿음이에요. 삶 속에 들어갑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친구들과 교제하면서, 이 삶 속에 믿음이라는 거예요. 다니엘이 이렇게 기도하면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인생을 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을 할 때, 하나님의 엄청난 역사가 나타난 거거든요. 여러분 중에 혹시 아실지 모르지만 ‘조던 비 패터슨’이라고 하는 조든 비패터슨이라고 하는 토론토 대학의 유명한 심리학 교수 세계적인 교수죠. 얼마나 영향력이 큰지 캐나다 수상이 동성애를 들고 나오니까 이 교수님이 수상하고 맞섰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동성애 반대하면서 수상과 맞서서 주장을 하는, 그래서 대학에서 나와서 포드캐스트로 유튜브로 지금 영향을 미치는데 제가 찾아봤어요. 영국에서 인터뷰했던 건가, 그거는 조회수가 6590만회,,, 아무도 안 놀라셔요. 제가 설교했을 때 조회수가 얼마냐 가끔씩 보거든요. 얼마 없거든, 근데 6590만, 그래서 제가 위로를 받은 게 CTS에서 우리 형제 독수리 5형제 너 목사 5형제 이게 나왔었는데, 그때 조회 수를 보니까 50 몇 만이 갔더라고, 근데 패터슨은 6590만 거기다가 유튜브에 구독자가 812만 명, 그분에게 당신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하나를 믿는다 하나님 존재를 믿는다. 예수를 믿느냐, 믿느냐 그런데 믿는다는 단어가 뭐냐?라고 자기가 반문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머리로 인식하고 가슴으로 수용하지만 동시에 생활로 의지로 자신을 던지는 거다 영어로 말하면 커미트먼트다(Commitment), 커뮤트먼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신이 없다. 내가 믿는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분명히 믿고 있는데도 겸손한 말을 했어요. 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냐? 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냐? 동일한 하나님인데, 다니엘은 체험했는데 왜 나는 체험하지 못하냐? 자신을 던지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걸려 있을 때, 거기에 인생을 걸지 않으니까, 자신을 던져서 커미트먼트 했다. 이게 진짜인 모습이 나타나는 건 고통 중입니다. 고통, 고통 중에 나타나는 거예요. 다니엘 6장에 자기가 지금 그렇게 하면 사자 굴에 들어갈 정도 보통이 아니거든.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것, 근데 그 결정적인 순간에 왔어요. 고통의 순간이었어요. 그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 편에 서버리는 거예요. 고통의 순간에 자신의 이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 편에 서버리는 거예요. 통 속에서 증명되는 그러니까 기도를 통해서 새 힘을 얻어요. 주님의 새 힘 생활의 현장에서 그것이 그대로 나타나요? 그리고 고통 중에 사실이라는 것이 증명이 돼요. 증명 이게 다 내립니다. 입니다. 여러분의 말씀을 들으시면서 스스로 한번 질문을 던져보시라고요. 왜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단일은 체험했는데 나는 체험 못하느냐, 던져놓고 이 말씀을 한번 생각해 보시라고, 고통 중에 얼마나 영향이 컸는지, 아까 제가 페르시아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는데, 한번 당시의 지도를 한번 보시죠. 얼마나 넓은 지역인지 한 사람, 다니엘이 한 사람, 다니엘 한 사람, 다니엘이 인도부터 시작해서 그리스까지 이집트까지, 한사람 다니엘이야. 한 사람 다니엘 한 사람,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으니까, 하나님을 바로 믿으니까, 저렇게 넓은 지역에 영향을 미친 겁니다. 다니엘의 하나님, 지금도 살아 계신 줄 믿습니다. 이 하나님을 만나시면 되는 거거든요. 삶의 현장에서 만나시면 돼요.
여러분 삶에 어떤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자녀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가정에 어떤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경제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시면, 고통 중에도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실 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으로 한번 적용시켜 보시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다니엘 같은 믿음을 갖겠는가? 라고 하는 것인데, 다니엘의 믿음, 그러면 아유, 목사님 그건 너무 엄청난 아니에요. 안 해왔네요. 네, 그렇게 던지지 마시고, 조금씩 쪼금씩 쪼금씩 조금씩 올라가면 되거든요. 다니엘이 경험했던 것처럼 그쪽으로 가는 방향을 잡고 조금씩 쪼금씩 쪼금씩, 점점 성장하시면 되거든요. 어떻게 성장하면 되겠는가, 라고 할 때 활공(滑空) 훈련을 하셔야 돼요. ⓵활공훈련. -활공, 활공훈련이 뭔지 잘 모르실 수 있어요. 참새도 있고 독수리도 있습니다. 참새는 자기 날개의 힘으로 날아갑니다. 자기날개 힘, 자기 날개의 힘으로 파드득 파다득 날아가기 때문에 얼마 못 가요. 그 힘이 빠져요 독수리는 공기의 힘을 이용해요. 공기의 힘을 이용해서 날아가기 때문에 멀리 날아가고, 오래 날아가고, 여러분, 제자 훈련 하실 때 참새 훈련 식으로 하시면 안 돼요. 정보, 지식, 기교만 익히시면 참새 훈련이 되는 거예요. 자기 힘으로 이렇게 파트닥 하고 날아가다 보니까 별로 날아가지도 못하고, 덕도 못 끼치고 다른 교회 목회자까지 비판하는 교만한 사람이 돼요. 그러나 여러분이 독수리처럼 활공, 활공이라는 말은 미끄럽게 부드럽게 날아간다는 거예요. 주님의 힘을 활용해서, 주님의 능력을 활용해서, 날아갈 때 엄청난 능력이 나타나는 거예요.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고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한 자는 새 힘을 얻으려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 하는 자,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 어떤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셔서 그 힘의 날개로 창공을 날아갈 수 있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이게 활공 훈련입니다. 주님의 생명과 주님의 능력이 내 속에 약동하는 거예요. 이 능력이 바깥으로 분출하는 거예요. 나타나는 겁니다. 삶의 현장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이 활공 훈련을 할 때, 초점이 주님에게 있습니다. 주님, 주님에게 초점을 맞추셔야 되죠. 요한복음 10장 7절에 보면, *요한복음 10장 7-8절,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⓶주님밀착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 거예요. 주의 말씀이 내 안에 거주하는 것, 여러분 말씀 듣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고, 말씀이 여러분은 딴에 거주하면서 거주하는 말씀 살아있는 말씀을 통해서 주님과 교제하는 거예요. 그럴 때 그 주님의 새 힘이 바깥으로 나간단 말이에요. 분출(分出)한단 말이에요. 주변과 가족 주변의 가족들과 동료들과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거예요. 이 주님 중심입니다. 조기중심 오늘의 한국 교회 성도들이 왜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가? 왜 한국 교회가 세상에 지탄의 대상이 되는가? 자 여기 이유가 있는 거예요. 일단 주님께 기도해서 새 힘을 얻어야 되잖아요. 근데 전심기도 거든요. 전심기도 주님 오늘도 무사히 해주세요. 다 잘 풀리게 해주세요. 알아서 해주세요. 그게 아니고요. 전심전력(全心全力)에서 기도하는 거예요. ‘주님의 역사가 아니면 저는 감당할 수 없사오니 주님이 나타나셔서 내 삶의 현장에서 일하여 주시옵소서. 자녀들의 엉망진창이고 말을 듣지 않지만 주님이 역사하셔서 자녀들의 마음을 돌이켜 주시옵소서 다 막혀있는 이 부분이 주님의 은혜로 뚫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심기도, 기도의 전심전력 하십니까? 그리고 말씀에 대해서는 말씀이 들어가야 되거든요. 들어가서 내 것이 돼야 되거든요. 그런 묵상이 있어야 돼요. 묵상, 다윗이 말했던 것처럼 주야로 묵상하는 게, 말씀을 듣고, 이 시간에 지금 듣고 계세요. 듣고 저기 나갈 때, 기자가 조금 전에 권 목사였던 설교 뭐예요? 그러면 머리를 끓는 거예요. 머리를 긁는 자, 이거는 나비입니다. 나비 설교 듣는 동안에 말씀이 여기 앉았다가, 나가면 날아가 버리는 거야. 알고 왜 변화가 없고, 왜 능력이 없고 왜 영향이 없는가? 나비요 나비 앉았다가 날아가는 거예요. 앉았다. 날아가는 거예요. 말씀이 우리 안에 거주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거주 살아있어야 된다고,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주하는 말씀대로 붙들고 나가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붙잡는 거예요. 삶의 현장에서, 도무지 그렇게 될 것 같지 않고, 말씀대로 될 것 같지 않고, 말씀대로 살면 시련을 당할 거 같고, 말씀대로 살면 걱정이 오는 것 같고, 말씀대로 살면 돈도 못 버는 거 같고, 말씀대로 살면 쾌락도 못 누린 것 같아도, 말씀대로 살기로 작정하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붙잡고, 고통 중에도 하나님에게 인생을 걸고 달려갈 때, 하나님께서 만나주신 줄 믿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을 보면, *요한복음 14장 21절, 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라고 말씀하셨어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주님과 교제하면서 말씀이 내 속에 거주했습니다. 말씀 붙잡고, 아무리 고통이 와도 말씀대로 다 사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십자가 버리는 겁니다. 말씀대로 살면서 십자가 고통을 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그대로 지고 나가면 죽으면 산다고, 여러분 그 자리에 예수의 생명, 하나님의 능력이 성령을 통해서 강하게 나타날 줄 믿습니다. 이게 쌓이고 쌓여야 되는 거예요. 쌓이고 쌓여야 된다. 다니엘은 15살 때, 그전에도 그랬겠지만, 15살 때 포로로 사로잡혀가서 우상 숭배하지 않는 음식을 먹어서 목숨을 걸고 순종함으로 10배나 더 지혜롭게 만드신 하나님을 체험한 거예요. 친구들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서 느부갓네살이 꿈꾸고도 말하지 않는 말도 하지 않는 꿈의 내용을 알아내고, 그것을 해석하게 된 겁니다. 벨사살 왕 때에, 벨사살 왕이 벨사 살이 열 사람 성전에서 가져온 기명들을 갖다 놓고, 막 술을 마시고 하나님을 모독할 때, 갑자기 왕이 있는 적 건너편 석회석 벽에 사람의 손가락만 나타나서 글을 쓰고 있었죠.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아무도 해석 못해요. 내 하나님께서 다니엘로 하여금 해석하게 하셨습니다. 회사의 문제, 국가의 문제, 가정의 문제, 누구도 해결을 못해 그러나 하나님께서 해결하게 하신 줄 믿습니다. 그 손가락 글씨를 해석하게 하신 거예요. 말씀대로 순종에서 음식까지도 바로 하나님 말씀대로 먹고살 때에,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보다 10배나 지혜롭게 하시는 그 능력을 체험했어요.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꿈도 알려주시고 해석도 알려주시는 체험을 했어요. 이상한 손가락이 나타나서 손가락만 나타나서 글을 쓰고 있는데, 그걸 아무도 해석하지 못하는데, 하느님께서 해석하게 만드셨어요. 10배나 지혜롭게 하신 하나님, 꿈을 해석하고 방향을 제시하게 하신 하나님, 석회 벽에 손가락의 글씨를 해석하게 하신 하나님, 사자 굴에서도 건져내실 줄 믿습니다. 이 내공이 쌓인 것입니다. 내공 말씀대로 사는 데 10대부터 80대가 될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고통을 당하면서도 순종했더니, 이런 역사가 나타나더라. 그 체험을 한 거예요. 여러분이 다윗을 잘 알죠. 다윗이 골리앗을 쳐부술 때, 어느 날 갑자기 다윗이 골리앗을 쳐부순 거 아닙니다.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저 거장 골리앗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줄 믿습니다. 과거의 역사하셨던 하나님, 지금 이 난관에도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과거의 나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 이번 이 기회에도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이런 체험이었죠. 사자의 입을 막는 믿음,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거 아니에요. 내 공이 쌓인 겁니다. 내공이 쌓여요. 말씀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이 내 속에 들어오고, 이 말씀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고난 속에서도 말씀대로 움직이는 거예요.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어떤 인격체보다도 훨씬 더 분명하게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신 것입니다. 그 사자 굴의 사자들이 본래 입을 다문 사자들이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다니엘을 참수했던 그 정적들, 가족들 자 보세요. 도만 따져도 120개 도였으니까, 120명 고관들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다 동의해서 했다고 그랬습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저 부인들과 자녀들까지 다 한꺼번에 사자고 던지는데 사자굴에 막 내려 그것 때문에 내려오는데 그냥 바로 뼈까지 뿌셔뜨리면 삼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자예요. ⓷결과주님. -그런 사자 그런 사잔데, 다니엘이 고백한 대로 ‘나의 하나님이 그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내공이 쌓여서 그렇게 나타납니다. 전 여러분의 믿음이 점점 더 성장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순종하는 거예요. 고통 중에도 순종하는 거예요. 말씀을 자꾸 순종하는 거예요. 마음의 말씀을 새기고 순종하는 거예요.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 거죠. 결과는 주님께 맡기면 돼요. 어떤 경우에도 결과는 주님께 맡겨야 됩니다. 활공훈련, 주님밀착, 결과주님... 방송실 뜰 때까지 제가 기다리겠습니다. 결과주님, 결과주님, 결과는 주님께 맡기는 거에요.. 아이고 목사님, 다니엘의 경우는 사자의 입이 막혀졌지만 초대 교회 교인들의 경우는 사자가 입을 벌리고 교인들 삼켰잖습니까? 어떻게 해석할 겁니까? 초대교회 교인들은 개죽음을 당한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 개죽음을 당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이 주의 말씀을 붙잡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리지 않고 나갔을 때 사자의 밥이 되었지만 사자 입을 막지 못하고 사자의 밥이 됐지만 하나님께서 그들로 천국에 직행하게 하신 거죠. 천국의 직행 그리고 그걸 통해서 천국이 확장되게 하셨어요. 직행과 확장 팍스 로마나라고 그러죠 팍스로마나, 로마의 평화 로마가 무력 권력으로 세계를 지배해서 조용하게 만들었다 로마의 평화, 그런 평화가 팍스 그리스도 시대 하나, 그리스도의 평화로 바뀐 거예요. 그리스도 평화 사자의 밥이 된 사람들을 통해서 로마의 평화가 그리스도의 평화로 바뀐 거예요. 힘의 평화가 주의 평화로 바뀐 거예요. 요즘 같으면 팍스 마모나이, 돈의 평화 돈의 평화가 주의 평화로 바뀌는 거예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26절과 27절에 보시면, *다니엘 6:26-27절, 26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27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리지 않습니까?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어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시오.” “나의 하나님” 체험/영향: 하나님의 영광 현시+고통 중 형통(6:26-28) -영원히 거주하시는 분으로서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오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가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시기도 하시는데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기적과 이사를 행하시는 이 소리로써 다니엘을 사자의 입에서 건져 내셨도다. 하나님께서 인도부터 시작해서 이집트까지 그리스까지, 그 넓은 지역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나타내셨단 말입니다. 세상이 다 지금 엉망인 것 같지만, 여러분의 바로 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고통 중에도, 순종하고 주님과 교제하면서 사실 때, 주님께서 주변을 변화시킬 줄로 믿습니다. 오늘 현실 보고 탄식(歎息)만 하십니까? 탄식만 하시는 거 아니에요.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탄식(歎息)만?-활공훈련하세요. 전심기도, 말씀묵상, 고난 중에도 순종, 그러면 다니엘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체험, 내가 변하면 가족/주변도 변합니다. 고난 중에 형통—세상에 하나님의 영광 *다니엘 6:28, 28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다니엘이 바벨론과 페르시아에서 다 형통했어요. 고난 중에서 형통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이 다니엘의 하나님을 여러분의 나의 하나님으로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약 이 시간에 목사님 주신 말씀이 공중에 뜨지 않고,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야 한다. 다니엘의 하나님을 역사 속의 하나님으로만 보지 않고, 오늘 나의 하나님으로 체험하고, 실감해서 내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은 것 같고, 모든 것이 답답하고 막혀 있는 거 같지만,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지금도 일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우리 모든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서 직장으로, 사회로 세상에서 체험함으로 세상의 하나님 영광을 크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하며, 말씀을 붙잡고 깨달아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로 살아내야 한다. -다니엘의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다. 다리오 왕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분이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의 나라와 권세는 무궁한 것이라고 했고, 이적과 기사로 구원하시는 분이라고 했다
1. ‘팀 코리아’ 컨소시엄이 지난달 17일 이 나라가 발주한 원전 사업을 수주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수도는 프라하인 이곳은? ① 포르투갈 ② 체코 ③ 벨기에 ④ 덴마크
2. 한때 미국의 제조업 중심지였으나 산업 쇠퇴로 지역 경제가 침체된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등을 통칭하는 용어는? ① 실리콘밸리 ② 러스트벨트 ③ 매그니피센트7 ④ MAGA
3. 기업 외부의 투자자들에게 좋은 실적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에서 경영자가 행하는 것으로 거리가 먼 것은? ① 빅 배스 ② 윈도 드레싱 ③ 분식회계 ④ 서머 랠리
4. 현재는 미국 달러화가 독보적인 ‘이것’이다. 국제 무역과 금융 거래에서 주로 통용되는 화폐인 이것은? ① 핫머니 ② 기축통화 ③ 통화바스켓 ④ 안전자산
5. 기업 수익에 크게 기여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쏙쏙 뽑아 이용하는 소비 형태를 가리키는 말은? ① 공유경제 ② 워크아웃 ③ 헤징 ④ 체리피킹
6. 가계의 총소비지출액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로, 생활수준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인 이것은? ① 빅맥지수 ② 세계식량가격지수 ③ 엥겔계수④ 지니계수
7. 금융회사들이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발행하는 채권을 말한다. 대출금리의 기준으로도 활용되는 이 채권은? ① 국채 ② 특수채 ③ 은행채 ④ 외평채
8.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한 쪽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사전에 매수자를 구해 장이 끝난 이후 지분을 넘기는 거래는? ① 블록딜 ② 메가딜 ③ 자전거래 ④ 공정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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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한국 경제 60년 기적도 올림픽 금메달 감이죠
Cover Story
그래픽=추덕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우리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것은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한 1964년부터입니다. 이후 60년에 걸쳐 발전해온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습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을 담은 사진 20점이 버스 전시를 통해 시민과 만나고 있습니다. 올해 창간 60주년을 맞은 한국경제신문이 ‘희망과 기적의 순간들’이란 이름으로 버스 사진전을 열고 있는 겁니다.
사진전에선 배급빵으로 배고픔을 달래던 초등학교 점심시간(1964년), 국내 첫 제철소를 가동하며 감격의 만세를 부른 포항제철 직원들(1973년), 반도체 수출 신화의 시작을 알린 64K D램 출고 때 돼지머리 고사를 지내는 장면(1984년) 등이 눈길을 끕니다.
‘경제성장’이란 올림픽 종목이 있다면 단연 한국이 금메달 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 풍작과 역대급 순위를 기록한 것도 성장을 바탕으로 탄탄하게 쌓아올린 경제 기초체력 덕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런 기적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일 텐데요, 사업 성공으로 나라에 보답하겠다는 기업인의 열정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불굴의 기업가 정신이 어땠는지, 오늘날 기업가 정신이 다시 중요해진 이유 등에 대해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꿈을 현실로 만든 한국 경제 60년
불굴의 창업자 있었기에 가능했다
1964년 독일 탄광 막장에서 식사하면서도 고국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며 웃음짓는 한국 광부들. /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 제공
‘한강의 기적’을 발판으로 ‘글로벌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한국 경제 발전 60년의 성과를 잠깐 살펴볼까요? 1964년 처음으로 연간 1억 달러를 기록한 우리나라의 수출은 지난해 6327억 달러(약 867조원)까지 늘어났습니다. 수출 효자 품목인 자동차·석유화학·조선 등은 물론 반도체·디스플레이·2차전지·바이오제약 등 고부가가치 상품을 나라 밖에 내다팔며 세계 8위에 올랐습니다. 60년 전 1인당 107달러이던 우리나라 국민총소득(GNI)은 지난해 3만3745달러로 300배 넘게 불어났어요. 최근 저성장과 생산인구 감소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한국 경제 60년사는 격동과 기적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희망 놓지 않을 때 기적 일어나
‘한경 창간 60주년 버스 사진전’은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온 국민과 기업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기회입니다. 주로 흑백으로 찍힌 사진들에선 나라의 발전이 곧 나와 가족, 회사의 발전이란 생각이 강하게 묻어납니다.
생면부지의 이국 땅, 그것도 지하 막장에서 ‘검정밥’을 먹으면서도 환하게 웃는 파독 광부의 모습에선 동생들 학비를 포함해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일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7900여 명의 광부와 1만1000여 명의 간호사를 독일로 보냈습니다. 이들이 받은 봉급으로 고국에 보내온 송금 누적액은 1억153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당시 미국의 무상원조가 끊겨 외화에 목말라하던 한국에 큰 힘이 됐습니다. 간호사와 광부가 1967년 보내온 외화의 경제성장 기여도(송금 증가가 국민총생산 증가에 기여한 비율)는 15.1%나 됐죠.
1960년대 수출 효자였던 가발을 만들던 공장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1960년대만 해도 한국의 주요 수출품엔 가발이 있었습니다. 돈이 된다면 뭐든 수출해야 먹고살 수 있었던 시절, 생머리를 잘라 가발을 만들던 공장 근로자들의 모습은 숙연한 느낌까지 줍니다. 1964년 1만4000달러이던 가발 수출은 5년 뒤엔 5000만 달러로 늘어나며 세계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1973년 포항제철 1고로 첫 가동 때 환호하는 박태준 포철 회장(가운데 회색 점퍼)과 직원들. /포스코 제공
다음으로 미래를 꿰뚫어본 기업가들의 혜안과 혼신의 힘을 다한 도전은 잘살고자 하는 국민의 염원을 현실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대표적 장면이 1973년 한국 역사상 최초로 대형 고로에서 쇳물을 뽑아내고 만세를 부르는 포항제철 직원들의 모습입니다. 당시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은 “선조들의 핏값인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포항제철을) 건설하는 만큼 실패하면 우향우하여 영일만에 빠져 죽어 속죄해야 한다”며 직원들에게 불굴의 ‘우향우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1975년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조립 중이던 1호 수출차 현대 ‘포니’는 한국이 세계 자동차 생산 5위의 나라로 우뚝 서는 데 기여한 일등 공신입니다. 다음 모델인 ‘포니 엑셀’은 1986년 미국 시장에서 20만 대 이상 팔리며 일본 자동차 브랜드를 누르고 미국 소형차 시장 1위에 올랐습니다.
‘한국 1호 수출차’ 현대 포니의 1975년 생산 라인. /현대차 제공
1984년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돼지머리 고사 사진은 지금 돌이켜보면 웃음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당시 첨단 제품이던 64K D램의 첫 수출품 박스를 쌓아놓고 큰절을 하는 직원 모습에서 반도체를 반드시 수출 한국의 대표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은 “3년 안에 망한다”며 주변 사람들이 만류하는 가운데서도 반도체 사업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30년 연속 세계 1위를 지킨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신화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반도체 수출 신화’의 시작을 알린 1984년 삼성전자(당시 삼성반도체통신) 64K D램의 해외 출하식 모습. /삼성전자 제공
미국보다 뛰어난 ‘기업가 정신’ 역사
한국의 고속 성장은 이런 기업가 정신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이봐, 해봤어?”라며 현장에서 해결책을 찾으라던 정주영 현대 창업 회장은 거북선이 그려진 우리나라 지폐를 보여주며 조선소 건립을 위한 해외 차관을 유치하는 데 성공한 일화로 유명합니다. 그는 또 ‘20세기 최대 역사(役事)’라 불린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항만 건설 공사를 울산에서 건조한 대형 철 구조물 89개를 사우디로 운송하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성공시켰습니다. ‘현대 경영 이론의 아버지’라 불린 피터 드러커는 이런 한국의 기업가 정신이 미국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극찬하기까지 했습니다.
▶ 기업가 정신
‘시도하다’ ‘모험하다’란 뜻의 프랑스어 동사 ‘entreprendre’에서 유래한 용어. ‘현대 경영이론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위험을 무릅쓰고 포착한 기회를 사업화하려는 모험과 도전의 정신’이라고 정의합니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일상적인 사업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지 않던 일들을 하는 것이 기업가 정신을 구성한다고 말했죠. 혁신을 위한 필요조건이 곧 기업가 정신이란 얘기입니다. 이 때문에 토지, 노동, 자본에 더해 기업가 정신을 ‘제4의 생산요소’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기업가 정신은 경제 활력의 중요 원천
인적자본 투자 늘려야 지속 성장 가능
‘기업가 정신’은 한마디로 도전정신과 창의성으로 요약할 수 있지요. 그래서 기업가 정신을 ‘창의적 문제해결 노력’, 그리고 ‘마지막 성공에 이를 때까지 버티는 힘’이라고 정의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우주개발 기업 스페이스X를 설립하며 우주 발사체인 로켓의 재사용을 끊임없이 시도했습니다. 성공할 때까지 버티는 힘은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례가 있습니다. SK그룹의 최종현 선대 회장은 1980년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한 뒤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펼쳐보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요. 당시 최 회장은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면 수업료가 필요하다. 석유개발 투자에 실패해도 담당자를 문책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이후 북예멘 광구 탐사개발에 투자해 결국 성공을 거뒀어요. 자원 개발은 원래 성공확률이 5%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창업자의 이런 도전 정신과 확실한 목표 설정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어느 때보다 절실한 기업가 정신
지금은 반도체 전쟁 등으로 글로벌 기업 간, 국가 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저성장 등 경제 전반의 역동성도 떨어지고 있죠. 그래서 기업의 경쟁력 강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기회를 포착하려는 도전 정신이 없는 조직 문화에서는 경제가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슘페터는 기업가 정신이 빠진 경제학 이론을 “햄릿 연극에서 덴마크 왕자가 없는 격”이라고 비유하기도 했죠. 목표와 비전을 확실히 세우고 위험을 무릅쓰려는 기업가 정신은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확산돼 나라 전체를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기업가 정신이 부활하기는커녕 갈수록 약화하고 있어 문제입니다. 계속된 취업난에 안정된 직장을 선호할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 오랜 시간 좋은 스펙을 쌓기 위한 투자에만 신경 쓰는 사회 분위기가 기업가 정신과는 반대로 가고 있어요.
젊을수록 자신의 기업가 정신이 낮다고 평가한 한국경제인협회의 최근 설문조사 결과도 충격적입니다. 평균적으로 국민 10명 중 6명은 본인의 기업가 정신을 낮다고 평가했는데요, 연령별로 보면 60대 이상은 48.8%인 반면, 20대는 62.1%, 30대는 58.7%가 자신의 기업가 정신이 낮다고 응답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속세율(최대 60%), 중대재해처벌법 등 각종 법과 제도가 기업인의 의욕을 꺾어놓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러니 “한국이 걱정할 것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가 아닌, 기업가 정신의 쇠퇴”(인데르미트 길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입니다. 길 이코노미스트는 ‘중진국 함정’이란 용어를 처음 써 유명해진 경제학자여서 그의 지적이 더욱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혁신적 기업가 육성 위한 투자 중요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자본(설비), 노동(인적자본), 기술(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고루 늘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 같은 혁신적 창업가가 많이 나올수록 경제는 빨리 발전하겠지요? 그러려면 노동력의 양과 질을 높여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생산 인구 감소와 인재의 의대 진학 쏠림으로 어려움이 큽니다.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기업가 정신의 탐구와 확산입니다. 한국의 대표 기업을 재벌이니, 특혜를 받고 있느니 하면서 깎아내리기만 하는 선입견은 이제 개선돼야 합니다. 한국 경제의 60년 도약을 이끈 창업 거인의 어깨를 딛고 올라서서 더 넓은 시야와 혜안을 가져보려는 젊은이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기업가 정신의 부활은 한국 경제 재도약의 당면 과제인 셈이죠.
우리의 삶 자체가 기업가 정신을 필요로 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기업가 정신은 문제를 인식하면 그에 대한 창의적 해결 방안을 찾아가는 힘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창업이나 기업 경영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기업가 정신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삶의 기술(life skill), 개인의 발전에 꼭 필요한 중요 자질이란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 국내 8개 은행이 예적금, 채권 등으로 자금을 조달한 금리를 가중평균해 구하는 ‘자금조달비용지수’로, 대출금리 등의 기준이 되는 이것은? ① 코스피 ② 코스닥 ③ 코픽스 ④ 코넥스
2. 기업에 적자가 쌓여 잉여금이 바닥나고 납입자본금까지 까먹기 시작하면 ‘이것’ 상태에 이른다. 부실화의 징후인 이것은? ① 상장폐지 ② 자본잠식 ③ 기업공개 ④ 유상증자
3. 다음 중 정부가 ‘가격 통제’에 나서는 사례로 볼 수 있는 것은? ① 지역화폐 발행 ② 최저임금 운영 ③ 추가경정예산 편성 ④ 기준금리 인상
4. 시장에 공포와 불안 심리가 극에 달하면서 투자자들이 자산을 앞다퉈 팔아치우는 상황은? ① 패닉 바잉 ② 패닉 셀 ③ 어닝 쇼크 ④ 어닝 서프라이즈
5. 0과 1 사이의 값을 갖는 경제지표다. 1에 가까울수록 부의 불평등이 심각하고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다는 의미인 이것은? ① 지니계수 ② 상대적빈곤율 ③ 취업유발계수 ④ 엥겔계수
6. 주변 기반시설은 대체로 양호하지만 주거시설이 낙후된 지역에 주택만 다시 짓는 사업을 뜻하는 용어는? ① 분양가상한제 ② 리모델링 ③ 재개발 ④ 재건축
7. 증시 호황기를 타고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집중됐던 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 업종을 가리키는 별명은? ① FANG ② BBIG ③ ASML ④ BESS
8. 다음 중 국가와 그 나라의 주가지수가 잘못 연결된 것은? ① 영국-FTSE100 ② 미국-S&P500 ③ 독일-CAC40 ④ 일본-닛케이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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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대륙의 실수'는 옛말…차이나 테크의 역습
Cover Story
그래픽=전희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중국 전기차 기업 BYD의 중형 세단 씰(SEAL)이 한국 시장에 곧 상륙한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주행 실험 중인 씰을 봤다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면서 알려졌죠. 처음 보는 차라고 해도 중국산이라면 관심을 끄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 테슬라를 추격하는 BYD라는 인식이 확산돼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졌어요. 영국 자동차 회사 로터스를 인수한 중국 지리차의 한국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 진출도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한 수 아래라 여겨졌던 중국 제조업이 전자제품, 조선 등 노동집약산업뿐 아니라 최첨단 분야에서 한국을 맹추격 중입니다. 기술력만큼은 미국 턱밑까지 갔다는 평가도 많고, 한국을 추월한 분야도 속속 나옵니다. 중국 전자업체 샤오미의 제품을 두고 한때 ‘대륙의 실수’라고 말하기도 했죠. 생각보다 뛰어난 품질에 놀라면서도 기술력을 살짝 얕보는 듯한 표현이었는데요, 이제는 옛말이 됐습니다. 전기차, 반도체, 로봇, 인공지능(AI) 서비스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 제조업이 한국은 물론, 일본도 앞지르고 있습니다. 가히 ‘차이나 테크의 역습’이라 부를 만합니다.
중국은 미국의 첨단산업 수출 규제, 부동산 경기 침체와 청년실업, 사회주의 이념 강화 등으로 경제가 어려움 속에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첨단산업은 어떻게 성장세를 이어가는지, 새로운 국가 전략이라는 ‘신품질 생산력’과는 어떻게 연관되는지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미국 턱밑까지 추격한 중국의 첨단 기술력 '제조강국'서 '신품질'로 전략 업그레이드
한경DB
중국이 세계 슈퍼파워로 우뚝 일어선 것을 ‘대국굴기(大國起)’라고 합니다. 강대국으로 도약했다는 뜻이죠. 그런데 요즘엔 산업 분야로 좁혀 ‘테크굴기’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중국의 첨단산업이 분야별 세계 1위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는 비유입니다. 해가 다르게 급성장하는 차이나 테크(중국 첨단산업)의 현장을 잠깐 살펴보죠.
AI 기술력, 미국과 불과 1년 차
가장 뜨거운 생성형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중국의 대형언어모델(LLM) 기반 기술은 미국과 1년 정도밖에 시차가 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구글이라 할 수 있는 바이두의 AI 챗봇 ‘어니봇’ 사용자 수가 작년 8월 출시 이후 10개월 만에 3억 명을 돌파한 게 그런 평가의 배경입니다. 명령만 내리면 최대 1분짜리 동영상을 만들어주는 미국 오픈AI의 ‘소라’가 올 초에 화제가 됐는데요, 이 서비스가 정식 출시되기도 전에 중국의 콰이쇼우라는 소셜미디어 회사가 생성형 AI ‘클링’의 동영상 숏폼 공개 테스트를 시작했습니다. AI를 학습시키는 데 쓰이는 토큰(말뭉치)은 AI 칩의 성능을 보완해줄 수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네이버가 2021년 선보인 한국 최초 LLM에 5600억 개의 토큰을 투입할 때 중국 텐센트는 자체 LLM 모델인 훈위안에 최근까지 3조 개 넘게 토큰을 투입했습니다. 투자 규모도 마치 인해전술을 펴는 것 같습니다.
반도체는 첨단 초미세 공정에서 ‘기술 독립’을 이루고 있습니다. 중국 반도체 기업 SMIC는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과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5나노미터급(1nm=10억분의 1m) 칩을 곧 양산한다는 소식입니다. 미국이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시작한 2020년 9월, SMIC는 14나노 공정에 도달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입니다. 반도체 칩은 나노미터급 숫자가 낮을수록 고부가가치 제품입니다. 이 회사는 지난 1분기 기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시장의 5.7%를 점해 세계 3위로 도약했습니다. 중국은 AI 반도체에 필수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자체 개발에도 박차를 가합니다.
또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석권한 중국 업체들이 이제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같은 최첨단 기술에서도 한국을 추격 중입니다. 디스플레이는 핵심 전자부품이기 때문에 올레드까지 중국 중심 공급망이 형성되면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 중국에 의존하게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옵니다. 2차전지 회사 CATL의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36.8%로, 2~4위 기업의 점유율을 합한 것보다 큽니다. 미래 에너지원으로 불리는 수소 분야에서도 중국의 성장세는 괄목할 만한데, 중국의 수소 생산은 세계 전체의 45%를 점하며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품질 생산력’을 새 지도 이념으로
중국의 최첨단 기술 개발은 국가전략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어요. 그동안은 중국을 제조업 최강국으로 만들자며 ‘중국 제조 2025’란 전략을 밀어붙였는데요, 이제는 ‘신품질 생산력’이란 새로운 슬로건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작년 9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방을 시찰하며 처음 언급하고, 지난 3월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한 게 바로 신품질 생산력입니다. 이는 대량 자원 투입에 의존하는 전통적 생산력이 아닌, 기술혁신이 주도하는 생산력을 갖추자는 의미입니다. 당연한 얘기인 듯하나,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나라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미국의 기술 봉쇄와 패권 견제를 뚫어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집권 3기를 맞은 시진핑 체제의 새 지도 이념이란 점에서 더욱 주목됩니다.
중국은 부동산 시장과 소비가 침체돼 있는 데다 청년실업도 심각한 수준이어서 경제성장률 목표치 5%대를 달성하기 쉽지 않습니다. 지난 1분기에 5.3%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2분기엔 4.7%로 부진했습니다. 그 때문에 과학기술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신품질 생산력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성장세를 유지하려는 겁니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 6월 과학자 시상식에서 “10년 동안 칼 한 자루만 갈겠다는 결심으로 과학기술 강국을 건설해달라”고 주문했을 정도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전자기기 등을 주변 사물과 연결하는 스마트 커넥티드, 신에너지차(전기차·하이브리드 차), 수소에너지, 신소재, 혁신신약, 바이오제조, 상업용 항공우주, 양자 기술 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중국 첨단산업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체험한 바가 있다면 친구들과 공유해보자. 2. 중국 대외전략의 키워드인 대국굴기와 도광양회의 개념을 공부해보자. 3. 반도체 기술 자립을 위해 중국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아보자. 미국 제재가 되려 '기술 독립' 자극해 '원조 제조강국' 한국에 주는 시사점 커
연합뉴스
차이나 테크가 우리나라는 물론, 기술 선진국들을 맹렬하게 추격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이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텐데요, 하나씩 조명해보겠습니다.
먼저 미국 명문대 출신의 기술개발 인력들이 쏟아내는 특허 출원과 연구논문이 압도적입니다. 영국 과학 학술지 <네이처>의 ‘2024 네이처 인덱스’는 지난해 세계 최상위 학술지 145종에 실린 논문 7만5000여 편을 분석해 각국의 기술 영향력을 점수화했습니다. 여기서 중국은 미국을 뛰어넘어 처음으로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한국은 8위에 머물고 있어요. 또 인공지능(AI) 분야의 연구 수준·특허·정부 전략·민간 투자 등을 평가하는 영국 토터스인텔리전스의 ‘글로벌 AI지수’ 평가에서 중국은 61.5점으로, 미국(100점)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강력해진 중국내 기술 생태계
다음으로 중국이 자체 구축한 기술 생태계의 경쟁력입니다. 미국이 첨단기술 수출 규제를 가하자 중국의 산업체·대학·연구소는 ‘기술 독립’을 목표로 한몸처럼 뭉쳤습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 굴기로 중국산 AP(모바일 기기용 반도체 칩셋)가 개발되자, 화웨이가 이를 탑재한 스마트폰으로 부활한 게 대표적이죠. 화웨이는 올 1분기 중국 내 점유율 15.5%를 기록하며 애플을 제치고 처음으로 중국 내 1위 스마트폰 제조사가 되었습니다. 2019년 미국이 화웨이의 5G(5세대) 통신장비를 제재할 때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지요. 엔지니어들은 AI 기술 개발을 위해 엔비디아의 오픈 플랫폼인 ‘쿠다(CUDA)’를 활용하는 게 일반적인데, 최근엔 바이두 등 중국 업체가 개발한 도구도 많이 활용하고 있어요.
중국은 ‘신산업의 요람’이라고 부를 만큼 14억 명 인구와 전 국토가 하나의 실험실이 되고 있습니다. 우한에서 로보택시(자율주행택시)가 운행하는 자율주행 도로는 총연장 3378km에 이릅니다. 도시 전체가 자율주행차의 실험실인 셈이죠. 2016년 뒤늦게 자율주행 기술개발에 들어간 바이두도 그간 베이징 등에서 1억 km 주행 데이터를 축적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화웨이와 샤오미의 자율주행 데이터를 합하면 미국 기업들에 뒤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수도 베이징은 도심의 하이뎬공원을 AI 공원으로 꾸몄습니다. 여기에선 안면인식 기술을 이용한 스마트 자판기, 자율주행버스 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마어마한 투자 규모입니다. 중국은 반도체 자립 펀드를 무려 270억달러(약 37조4000억원) 규모로 조성해 반도체 장비의 80%를 중국산으로 국산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AI 연구개발 투자액도 화웨이, 바이두, 텐센트를 합하면 작년 2496억위안(약 47조5000억원)으로 한국의 삼성전자, LG전자, 네이버의 연구개발 투자액을 합산한 34조원을 능가합니다.
유연하고 꾸준한 ‘선택과 집중’
중국의 새 국가전략인 ‘신품질 생산력’은 기존 제조 강국의 기초 위에 첨단 분야 경쟁력을 더하겠다는 겁니다. 제조업에서 손을 뗀 선진국들은 코로나19 사태 때 방역마스크 하나 생산할 공장이 없어 쩔쩔매기도 했습니다. 이때 제조업 기반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죠. AI 시대에도 제조업의 기초는 중요합니다. AI와 로보틱스 기술이 제조업의 미래를 바꿔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조업 공정에서 데이터의 양이 늘어나고 있어 AI 기술 등을 접목하면 제조업의 혁신을 이룰 수 있는데, 중국은 이를 내다보고 있는 거죠.
신품질 생산력은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기술 선도자(first mover)로 도약하겠다는 다짐입니다. 또 공급망을 고도화하고, 첨단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히든챔피언(우량 강소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겁니다. 이쯤 되면 뭔가 많이 들어본 말 같지요? 이는 우리나라가 근래 10여 년 동안 강조하고 추진해온 산업정책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꾸준히 투자하는 게 중국의 강점입니다. 발전 가능성이 높고 경쟁력 있는 신산업이라 판단되면 시장이 성숙할 때까지 규제를 미루는 융통성도 힘을 보탭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부분에서 중국보다 불리한데요, 선택과 집중에서 유연함과 꾸준함을 보이는 중국의 모습은 우리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중국이 AI 강국으로 부상하게 된 배경에 대해 공부해보자. 2. 테슬라의 로보택시 공개가 연기됐고, 애플은 전기차 개발을 중단했다. 중국의 자율주행 기술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발전했을까. 3. 기술 선도자가 되기 위한 우리나라의 기업 전략과 정부 정책을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