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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축구 리그 연봉, 얼마나 벌까?

🟡 축구 선수, 그들은 얼마나 벌까?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인 축구. 그 중심에는 유럽의 주요 리그들이 있습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스페인 라리가, 독일 분데스리가, 이탈리아 세리에 A, 프랑스 리그1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모여 있는 무대이기도 하죠.
이러한 유럽 축구 리그의 선수들은 과연 어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을까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수치를 기록하는 스타 선수들도 있지만, 평균적인 수치와 팀별 편차 등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유럽 주요 리그 연봉 분석

🔹 1. 프리미어리그 (잉글랜드 EPL)

  • 평균 연봉: 약 400만 파운드 (약 67억 원)
  • 최고 연봉자 (2024년 기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맨유 시절), 케빈 더 브라위너(맨시티) 등
    연봉 200억 원 ~ 300억 원 수준
  • 특징:
    방송중계권 수익이 크기 때문에 하위권 팀 선수들도 평균 이상의 연봉을 받음

🔹 2. 라리가 (스페인)

  • 평균 연봉: 약 250만 ~ 300만 유로 (약 36억 ~ 43억 원)
  • 바르셀로나/레알 마드리드 같은 빅클럽은 연봉 상한선 거의 없음
  • 스타 선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주드 벨링엄 등

🔹 3. 분데스리가 (독일)

  • 평균 연봉: 약 200만 ~ 250만 유로 (약 30억 원)
  •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이 상위권, 소규모 클럽은 낮은 편
  • 경쟁력 있는 중간 연봉으로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기 좋은 리그로 평가됨

🔹 4. 세리에 A (이탈리아)

  • 평균 연봉: 약 150만 ~ 200만 유로 (약 25억 원 전후)
  • 유벤투스, AC밀란, 인테르 등 명문 구단은 고액 연봉 제공
  • 다만, 전체적으로 리그 수익 구조가 EPL보다 낮아 연봉 격차 있음

🔹 5. 리그 1 (프랑스)

  • 평균 연봉: 약 100만 ~ 150만 유로 (약 15억 ~ 20억 원)
  • **PSG(파리 생제르맹)**가 거의 독보적으로 고액 연봉 제공
    – 킬리안 음바페는 과거 연봉 700억 원 이상 받기도 함

🟡 유럽 축구 리그 연봉, 실력과 인프라의 결과

유럽 축구 리그의 연봉은 단순히 선수 개인의 실력뿐만 아니라, 리그의 인프라, 중계권 수익, 스폰서 규모에 따라 결정됩니다. EPL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는 세계적인 중계권과 브랜드 가치 덕분이죠. 반면, 재정이 어려운 리그나 팀들은 연봉이 비교적 낮은 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선수 개인의 커리어 플랜과 팀의 비전입니다.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원해 리그 수준보다 팀 안정성을 택하는 선수들도 많습니다. 연봉은 화려하지만, 실력과 철저한 자기 관리가 동반되지 않으면 유지하기 어려운 세계이기도 하죠.

유럽 축구 리그 연봉 이미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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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4월 13일)-聖餐式
제목 “세상을 변화시키는 치유자
(The Wounded Healer Who Transforms the World)
-<새로운 길> 이사야 시리즈 ⑪
말씀: 이사야 53:1~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이윤기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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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3:1~6,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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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멘,
-이제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새로운 길 이사야 시제 11번째 ‘세상을 변화시키는 치유자’라는 제목으로 주님 말씀을 전해주시고 이어서 성찬식을 해 주시겠습니다.


▶오정현 담임목사님 설교
-우리 찬양대가 지금 본향을 향하는 순례자의 고백을 했는데, 주님이 받으신 줄로 확신합니다. 박수 하나님께 영광!!~~ 세상이 참 너무 변화무쌍(變化無雙)하고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변화 많은 세상 가운데서도 우리 주님의 은혜는 변함없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이제 다음 주일날 부활 주일 앞에 놓고, 오늘 이 종려주일 날 이 팜선데이, 주 앞에 변함없이 드리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 예배를 통하여 삶의 모든 무거운 짐들이 다 벗겨지게 하시고, 무엇보다도 말씀의 생수를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이사야 강의 11번째인데. 오늘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치유자’ 그리고 이사야 53장 이 본문을 앞에 놓고, 고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질고를 당하시는 주님에 대한 내용들을 오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이사야 53장의 본문은 구약의 복음이다. 구약의 복음의 문을 여는 것이다. 구약의 골고다이다. 이렇게 얘기도 하고, 오늘 이 본문은 예수님의 어떤 구약을 통한 복음의 선명함 그리고 복음의 기품, 신성, 또 능력 이런 것들이 본문에 많이 나와 있어 나와 있는데, 우리는 흔히 1절부터 오늘 6절까지 본문 내용을 압니다마는 사실은 고난받는 종에 관해서 이 본문은 이사야 53장 앞에 52장 13절 말씀부터 쭉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고난받는 예수님에 대한 이미지가 있는데, 고난받는 예수님은 본래 어떤 분이셨나? 아니 고난 받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이 예수님을 어떻게 하셨는가? 오늘 13절에 보니까, 52장 13절에 보니까 같이 보겠습니다.

*이사야 52장 13절,
13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아멘, 여기 고난받는 예수님에 관한 놀라운 형통의 선언이 선포됩니다. 무슨 말이냐 고난 받으시지만 주님께서 이 고난받는 예수님을 이 메시아를 어떻게 하는가,
①첫째는 받든다. ②두 번째는 높이 들린다. ③세 번째는 지극히 존귀하게 된다.
-벌써 여기에 복선으로 반전의 역사를 넣어놓은 것입니다. 수많은 고난과 고통이 있지만 하나님은 이 고난받는 종을 통하여 첫 번째 뭐 한다고요? 받드신다. 두 번째 뭐 한다고요? 높이 들리신다. 세 번째 뭐예요? 지극히 존경 받든다는 말은 다시 일어나신다. 다시는 어떤 사람도 경험해 보지 못한 받들림을 특별히 부활을 상징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 것입니다. 고차원적인 존재로 승격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높이 들렸다는 이 말씀은 빌립보서 2장 9절 잘 아시는데 같이 보죠.

*빌립보서 2장 9절,
9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아멘, 이거 높이 들린 것이고 그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그다음 마지막에는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지극히 존귀하게 된다. 지극히 존귀하게 된다. 소위 우리 조직신학 할 때, 이 지극히 존귀하다는 말을 승리하셨다. 승천하셔서 귀하게 되셨다. 아니면 정말 주님이 높이 들림 받으시고, 귀하신 분이 되셨다. 그러니까 복음 안에는요. 이런 승리가 있고 지극히 존경하게 되는 은혜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반전이 있지만 전에는 14절 보세요. 그러니까 전에는 그런데 이 고난받는 종이 이렇게 높이 들림 받지만 사실은 14절에,

*이사야 52장 14절,
14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어떻게 됐고요.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뭐예요?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해 놀랐다. 그랬어요. 고난받는 종으로서 높임 받으시지만 높임 받으시기 전에 주님의 모습은 어떻게 되느냐 너무 상하셨어요. 그의 모습이 너무나 처참하셨다. 이 말이에요. 무슨 뜻인가 하면, 로마 군인에게 채찍질을 당하시고, 가시 면류관 쓰신 것 때문에 찢겨진 예수님의 얼굴과 몸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 못 박혀 가지고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셨어요. 그래서 이사야가 본 모습이 바로 오늘 이 모습이에요. 이 모습이 너무 처참해지고 망가져가지고 사람들이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에요. 근데 이렇게 비참한 예수님의 모습에 사람들이 충격받았지만, 그다음 또 15절에 뭐라고 돼 있느냐 15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사야 52장 15절,
15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이제 이 처참한 예수님의 모습이 있지만 다시 이 고난받은 종이 메시아가 될 때에 왕들이 너무 놀래가지고 입이 딱 닫히는 거예요. 소위 입틀막, 입이 딱 봉해지는 입틀막, 여호와의 종 메시아가 회복 불능 수준의 치명상을 입고, 얼굴이 비참하게 짓이겨져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지만 그러나 후로는 찬란(燦爛)하고 눈부시게 회복된 모습을 보고 열방의 왕들이 입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그 권위가 너무 대단하셔서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들 왕들을 놀라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복음의 말씀을 오늘 제가 이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마는 이 복음의 말씀을 여러분들이 제대로 믿고 확신하고 여러분 것으로 고백이 되면 반드시 이런 대반전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처참하고 피투성이가 되고 망가지고 회복 불가능한 치명상을 입는다 하더라도, 너는 피투성이라도 오늘 이 말씀으로 다시 살아나라. 다시 시작하라. 다시 회복하라. 오늘 말씀으로 기름 부음 받음으로 치유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선명성에 대해서 전에는 잘 몰랐는데, 마치 희미한 어두운 방 안에 희미한 그림자처럼 되어 있는데 이제는 오늘 이 말씀의 빛이 확 비춰지고 조명이 되면 갑자기 어두운 방에 밝은 빛이 확 비춰져서, 그 모든 사물이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것처럼 오늘 말씀이 여러분들을 그렇게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오늘 이 말씀은 교회 생활 오래 하신 분들 이사야 53장이 구약의 복음이라는 내용 많이들 알고 계세요.

그렇지만 오늘 제가 부탁하는 것은 이 말씀이 마치 여러분들이 처음 대하는 말씀처럼 그런 거룩한 낯섬과 새로움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특별히 오래되신 분들 가운데 이 앞 예배는 중직자들 오래되신 분들 많이 계시잖아요. 신앙생활 오래 하신 분들일수록 오늘 이 말씀을 새로움과 낯섬으로 한번 대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본문 1절부터 3절은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예수님을 사람들이 거부하고 버리는 내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주 그릇된 평가가 나오는 겁니다. 2절에 보니까,

*이사야 53:2,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버림받은 자, 실패자처럼 보였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가 3절에 보니까,

*이사야 53:3,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멸시받는다는 말은 얕보였다 이 말이에요. 사람들에게 얕보임을 받아가지고 사람들에게 버림 바 되었으며, 그다음에 간고(艱苦)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疾故)라는 사람 이 간고라는 말은 이 간고라는 말은 어떤 뜻인가, 정말 이 어렵고 고통스럽다. 이 질고(疾故)라는 말은 어떤 뜻인가 질병으로 인한 괴로움이다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네 가지 멸시받고 얕보이고, 그다음에 버림받고, 그다음에 간고를 겪고, 그다음에 질고를 겪고, 고통과 그다음에 수많은 질병으로 인한 괴로움 이 네 가지 이 네 가지는 다 상처의 용어들이에요.
이 네 가지 주님이 이 네 가지를 다 당하셨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왜 주님이 다시 한 번 뭘 받았어요? 멸시(蔑視), 그다음에 버림, 그다음에 간고, 그다음에 질고, 이 네 가지를 왜 이런 상처를 왜 입으셨을까, 그 이유가 뭘까? 4절 앞부분을 보니까,

*이사야 53:4,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여 거늘 이 질거란 말은 아까 수많은 병들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슬픔이란 말은 실로란 말은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의 약자인데, 진실로 참으로 주님은 우리의 즐고, 겉으로 드러나는 질병을 지시고, 또 우리의 슬픔은 우리의 내적인 정신적인 고통, 그러니까 내적의 고통을 다 짊어지셨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수많은 육신적인 고통과 질병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적인 고통도 주님이 다 짊어지셨다.

할렐루야!!~ 외부 내부 겉과 속에 수많은 상처와 보이지 않는 상처들을 주님이 다 짊어지셨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이 왜 그렇게 하시는가 사람들은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4절 뒷부분 보니까,

*이사야 53:4,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우리가 생각하기를 그는 마땅히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이렇게 우리가 오해를 하는 거예요. 여기에 대해서 이제 제대로 된 평가, 이사야가 명확한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5절 앞부분에 뭐라고 나와 있는가?

*이사야 53:5,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뭐 때문이오 그가 사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예수님의 몸에 당하신 이 채찍 자국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라는 거예요. 여기에 허물이라는 말은 율법을 의도적으로 깨뜨린 죄악이고, 그다음에 여기에 죄악은 우리의 내적, 외적 죄를 다 통칭하는 것이에요.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짊어지고 가시기 위하여 주님은 상하시고, 찔리시고, 징계 받으시고. 채찍 받으셨다는 것이다.

제가 오늘 성찬식이 있기 때문에 핵심만 말씀드리니까 말씀을 이리 할 때 알아듣기는 찰떡같이 알아들으시기를 바래요. 그 결과 우리가 상처받아야 할 것들, 우리가 상해야 할 것을 주님이 대신 상처받으시고 상하셨어요. 우리의 허물은 날카로운 창처럼 주님의 옆구리를 찔렀고, 우리의 죄악은 단단한 못처럼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박고, 납덩이 채찍처럼 예수님의 몸을 무자비하게 내리친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주님은 뚫리시고, 산산이 부서지셨다는 것이에요.

저는 어릴 때 이 고난주간 될 때마다 항상 이 성찰을 앞에 놓고 들은 얘기가 니가 머리로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이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니가 못되게 허리로 지은 죄 때문에 주님이 허리에 창 자국을 받으시고, 니가 손발로 지은 수많은 죄 때문에 주님은 손발에 못을 박히셨다. 이런 말 들어보셨어요? 앞 예배 듣다 보니까 많이들 안 들어보셨더라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이런 말을 들었으니 얼마나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겠어요. 그 주님의 당하신 상처에 대해서 조금 더 저는 조금 더 실감이 간 거예요. 주님은 불의한 재판 받으시고, 벌금 없는 수치를 당하시고, 주님은 메시아의 권리를 박탈당하시고, 조롱당하시고, 다른 사람의 분노의 표적이 되시고, 거부당하시고, 육신의 허기짐과 갈증과 고통과 고뇌와 수치 가운데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되신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는 인간 존재가 갖는 모든 상처의 수치(羞恥)스러운 운명, 수치스러운 역설이 여기에 다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역설이에요. 예수님의 생명 자체인데 그 생명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신 것이에요.

예수님은 생명의 떡 이신데, 주님은 허기짐을 가지신 거예요. 주님은 세상의 빛 이신데 어두움에 삼킨 바가 되셨어요. 예수님은 나는 생수라. 생수라고 하셨는데 주님 목이 마르다고 하셨어요. 이거 얼마나 역설입니까? 율법의 주인이신 분이 율법에 의해 부당하게 처형되시고, 거룩하신 분이 거룩하지 않는 자와 동일시 되시고, 세상을 창조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신 그분이 생명을 잃어 뻣뻣해질 때까지 못 박혀 있으셨어요.

뭘 말씀하는 겁니까? 십자가의 고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아니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상처와 고통까지도 다 포함된 것이다. 십자가의 고통,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얻어맞아야 되고, 우리가 죄지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일격을 당해야 되는데 우리 대신 예수님이 결정적인 타격을 받으신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주님이 그 십자가를 지신 결과가 무엇일까요? 오늘 5절 뒤에 보니까,

*이사야 53:5b,
5b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뭘 누리고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면 우리가 뭘 받았다고요? 나음을 입었다. 이 적당한 평화가 아니에요. 적당한 나음이 아니에요. 온전한 평화 샬롬의 경지에다가 참된 치유를 회복을 주님이 허락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5절을 가지고 저는 이 5절을 가지고 이게 야!!! 이게 얼마나 나이가 어릴 때의 기억이 나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가 찔림은 우리의 뭐에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아 우리가 뭐 했어요? 나음을 입었도다.

그런데 이거는 그냥 일반적인 것이고 이것이 여러분과 저에게 지금 접목이 되어 가지고 우리가 여기에 있는 복음의 신비의 능력을 우리가 지금 체험한다고 그랬을 때, 우리라는 말에다가 여러분 괄호를 하고 거기다가 여러분 이름을 한번 넣어보시라고요.

정말 우리 영상팀 상 받아야 됩니다. 그가 찔림은 누구의 우리의 사실은 우리가가 아니라 누굽니까? 나의 허물 때문이야. 조금 더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실감이 가기 위하여 그가 찔리면 땡땡땡의 허물 때문이야. 땡땡땡도 해줄 수 있어요. 양옆에 들어가는 거예요.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OOO)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OOO)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OOO )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OOO )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가 찔림은 뭐예요? 땡땡땡의 허물 때문이요. 오정연의 허물 때문이오. 그가 상함은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이런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나는 이름을 내 이름을 넣고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누구누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 한번 본당 또 별관 여러 군데서 예배드리는 분들 또 저기에 대부도도 그러고, 그리고 여기 방송으로 듣는 모든 분들 또 미국에는 지금 현장 방송이 토요일 오후에 되고 있는데, 모든 분들이 한번 고백을 한번 해보세요. 그가 찔리면 땡땡땡, 나의 허물을 들고 내 이름을 넣어 가지고 그럴 때 복음이 주는 신비한 치유와 능력이 여러분의 것으로 접목이 될 것입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제대로 선포할 때, 세상이 알 수 없는 이상하고도 특별한 치유(治癒)가 여러분들에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저에게는 이 말씀이 내게 어떤 은혜가 있었던가 저는 어릴 때부터 이렇게 제가 이제 사역 시작하고 지금 한 45년 좀 넘었는데요. 79년도에 부활절 때, 대학부에 제가 책임을 맡아 갖고 사역을 지금까지 이제 한 한 45년이 넘었네요. 저는 주신 은혜가 늘 비해서 제가 잘 메모를 잘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1년에 제가 메모 수첩을 많을 때는 한 5권, 적을 때는 한 3권, 평균 한 4권 정도,,, 저는 기억이 기록을 대신할 수 없다. 를 믿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역사를 창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를 기록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저는 적자, 생존을 믿는 사람이에요. 아직까지 못 깨달으셨죠? 적자(기록) 생존이에요. 적자, 그걸 제가 믿는 사람인데 그래서 제가 지난 보니까 거의 한 180권 정도 메모 수첩이 있어요. 요즘 컴퓨터에도 이걸 입력을 해놓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그 어떤 어떤 독특한 그 느낌을 컴퓨터가 못 해줘요.

내가 언제 이사야 53장 이 말씀의 은혜를 받았던가 하고 적었던 것 보니까 제가 사역을 초창기에 개척하고 한 1년쯤 뒤에 참 마음이 짐이 많았어요. 31살 때 교회를 개척해가지고 할 때 나이도 내가 어렸을 뿐만 아니라 그 개척해서 오는 수많은 참 간난신고의 어려움도 많이 있었고 또 내가 갖고 있는 부족함 때문에 갖는 연약함도 있었고, 여러 가지들이 이렇게 축적이 돼 가지고 나를 억눌렀어요.

제가 이 자세한 사건을 다 말할 수 없지만 그런데 제가 그래서 아 내가 기도원을 좀 가야 되겠구나!~~ 그래서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오렌지 카운터에서 한 80마리쯤 떨어진 데 헤멧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기도원이 있었어요. 미국식으로 수양관인데 크지 않는 조그마한 수양관인데 수양관 이름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 수양관’이었어요. 이름 멋있죠? 그렇죠. 그리고 부재가 뭐냐 하면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일하는 수양관이었어요. 그리고 그 수양관에 나지막한 이렇게 이게 이제 광야에 있었는데 그 광야에 자그마한 언덕이 있었는데 그 수양관 하고 언덕이 있는데 언덕에다가 큰 나무 십자가가 있었어요. 나무 십자가가 있고 나무 십자가 밑에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그래서 제가 어느 이른 새벽에 일어나 가지고 그 큰 나무 십자가(十字架) 밑에서 무릎을 꿇고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기도하는데 마음속에 놀라운 말씀이 저를 비춰주셨어요. 그 본문의 말씀이 그 비춰 진 말씀이 오늘 이사야 53장 5절이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그걸 이제 제가 사역 일기에 적어놓았는데,

*이사야 53:5b,
5b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러면서 제가 깊이 깨달은 게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나의 십자가의 상처를 통하여 너의 상처가 치유되리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상처를 통하여 저의 상처가 치유되리라. 이게 그냥 아주 심플하고 단순하지만 분명하게 이 말씀이 제게 깨달아졌어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상처 위에서, 너가 나음을 입으리라. 이게 하루 종일 묵상이 되었고 계속 반복을 하면서 암송을 했고, 그래서 주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주님이 상처받으심으로 내가 나음을 받았구나 그걸 그냥 계속 반복을 하는데 제가 가진 수많은 상처들 수많은 짐들 제가 다 설명을 못하지만 또 뭐 뭐 뭐 사람들이 자라나 보자부터 시작해 가지고 수많은 일들, 그리고 그날 밤에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의 십자가의 상처를 통하여 너의 상처가 치유될 것이다.’

그래서 일어나고 또 언덕 위에 십자가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산등성에서 아침에 태양이 막 떠오르는데 말라기 4장 2절 말씀이 제 마음에 떠오르면서 막 막 기쁜 거예요.
볼까요?

*말라기 4장 2절,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할렐루야 그때부터 제가 뛴 것 같아요. 특새하면 뛰기 시작하고, 마치 송아지처럼 뛰는 힘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돌 무더기 위에 있는 큰 나무 십자가는 산등성 위에 있는 십자가 정도가 아니라, 내 앞에, 아니 내 안에 들어온 십자가가 되었고, 돌무더기 위에 십자가의 빛은 그 그림자를 통하여 나를 덮어버렸는데 단순히 그림자가 아니라, 그 십자가가 내 마음속 속에 들어오는 것 같았고, 저를 품어주신 것 같았고,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이 내 속에 역사함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로 그 십자가는 서 있는 십자가가 아니라, 두 팔을 벌리고 저를 포용하는 십자가 저를 안아주는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마 우리 본당이 안아주심의 본당이라는 말이 아마 그때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제가 그렇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이걸 제가 기록을 해놓았었어요. 저만 그렇겠습니까? 우리 모두도 동일한 십자가의 은혜와 광선의 능력이 우리 속에 역사하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 교회 본당 앞에 약간 저 오래된 나무로 된 십자가(十字架)가 있습니다. 저 십자가의 스토리를 여러분 잘 모르실 겁니다. 저 십자가는 2천 년 된 십자가입니다. 봐요. 안 믿는 거 봐요. 저거는요. 갈릴리 바다에 배가 파선된 배가 가라앉았는데 그 가라앉은 배에서 나온 나무를 가지고 십자가를 만들었어요. 진짜가 그러지 말고 탄소 동위원서에 보면, 2천전자가 나옵니다.

그 이유가 뭐냐? 2천 년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상처가 오늘 수많은 우리 교우들의 상처를 치유하게 하여 주옵소서. 앞 예배때부터 얘기하니까 갑자기 사람들이 저기 나와서 만지려고 그러고 그러더라고 만지지는 마시고 여러분 확신하세요. 2천 년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상처가 오늘 나의 상처를 치유할 것이다.

그게 십자가의 신비예요. 그 십자가의 그늘이 오늘 내 삶을 덮어주시고, 십자가의 빛이 오늘 나를 비춰주시옵소서. 그래서 그 십자가를 통한 저의 상처가 치유되고, 저를 새롭게 하는 느낌을 받고 난 다음에 그때 이후로 저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고통스럽고 힘든 거 많아도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다시 주님이 제 마음을 한결같이 치유해 주시는 것을 느꼈어요.

그러니까 힘들어도 이 십자가의 능력과 은혜 때문에 거룩한 낙관주의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 우리나라가 좀 시끄럽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개인과 가정의 삶에도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은요. 가정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가정 천국이더라고, 가정은 이 땅에 천국 예고편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은 다 자기 잘 나고 자기 주장하고, 자기 권한 쓰고 이래 갖고, 가정이 지옥의 예고편이 되고 있는 거예요. 그런 가정들 마다 온 이 상황이 어려운 상황들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오늘 십자가의 능력을 주시면 하나님이 이 민족을 그래도 거룩한 하나님의 방법으로 치유할 것을 믿어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 모두에게는 누구에게 누구 우리 모두에게는 상처가 다 있어요. 우리가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십자가의 상처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수많은 상처 보이는 상처, 보이지 않는 상처, 우리가 참 앞에서 제가 처참하고 피투성이가 되고, 치명상을 입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우리가 이 말씀을 순종할 때 다시 우리의 대반전의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그걸 제가 증거를 드리겠습니다. 오늘 53장 이 선명한 복음에 대한 구약의 복음서를 하고 난 다음에 바로 이어서 54장 1절에 무슨 말씀이 이사야 54장 1절에 무슨 말이 나와요? 제가 좀 미리 당겨서 말씀을 드리는 건데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사야 54장 1절,
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무슨 뜻입니까? 당시 고대 근동 사회에 여자분이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하는 엄마는요. 이거는 끝나는 거예요. 인생 고난 시작이에요. 정말 너무나 고통스러운 거예요. 자식을 갖지 못하는 엄마가 갖는 그 비애가 있어요. 비탄한 외침이 있어요. 그런데 그 비탄한 외침이 아니라 찬양하고 노래할지어다. 수많은 아이를 낳지 못한 아픔은, 창세기 30장 라헬이 뭐라고 그러냐? 라헬이니 “라헬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겠노라” 죽을 만큼 힘들다.

그런데 오늘 십자가의 상처를 통하여 우리의 상처가 치유되면, 54장 1절에 가장 가장 우리가 쉽게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잉태하지 못하고 고통당하고 죽음 같은 힘든 일이 있다 할지라도 너는 노래할지어다 하나님이 그걸 처리해 주신다는 것이 ‘너는 외쳐 찬양할지어다’. 이걸 믿을 때,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 필요한 치유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고백을 믿음으로 주님 앞에 선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십자가의 상처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상처가 치유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질문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만이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인 줄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굳게 믿어져야 되고, 이 복음의 핵심이 잘 이루어지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다 이 복음을 가지고 논쟁을 하시고 목회를 하는 그들에게, 바울은 나중에 이걸 가지고 당시에 갈라디아 교회 율법주의자들과 함께 대 피투성이의 논쟁을 하고,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라고 해서 우리 교회사에 보면 ‘도덕적 구원론’을 갖는 어떤 그런 행위 구원 비슷한 이런 사람들과 함께 어거스틴은 어마어마한 싸움을 하고 십자가만이 승리요. 십자가가 복음의 핵심이고 우리의 의로움이 아니라 십자가의 피해 보혈의 능력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그 사실 앞에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심지어 여러분 중세 시대에 프로테스탄트와 캐톨릭의 행위 구원과 아주 그냥 피 튀기는 전쟁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 은혜 주셔 가지고 16세기에 그 구원론에 관해서 오직 솔라 피데, 할 때에 그 은혜가 이 십자가의 복음의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걸 구원론이라고 소테리얼라이즈라고 구원론을 하는데, 이 구원론 십자가의 복음의 은혜 십자가가 생명이고 십자가가 복음의 핵심이라 이걸 하기 위하여, 지나가는 교회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면서 이 진리를 지킨 줄로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10월 27일 날, WEA, ‘세계 복음주의총회’ 첫날, 우리 세계 복음주의 교회가 나가 가리키는 핵심이 뭔가? 여러분 우리 이번 특새는 기도가 답이라고 그러는데 복음이 답인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가 답인 줄 믿습니다. 이거예요. 다시 한 번 교회 부흥과 세계 선교회의 추진력을 이걸 통하여 확보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사야가 깨달았던 그 지리를 깨닫습니다. 이제 결론이 뭐냐 결론은 이사야 53장 6절에 뭐라고 되어 있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53:6,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아멘 너무나 놀랍죠. 그 결과 우리 모두의 죄악을 했을 때, 우리 우리 우리 여러분과 저의 모든 죄악을 예수님께 담당시키셨도다. 죄가 전가가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누가 종이 주인을 위하여 죽고, 신하가 왕을 위하여 죽는데 우리 복음은 거꾸로예요. 주인이 종을 위하여 죽고, 또 이 복음은 왕의 신하를 위하여 죽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죄가 주인에게 전가되었던 우리의 죄가 메시아이겠죠.

그런데 복음은 죄가 전가된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 예수님의 의가 또 우리에게 전가가 된 것이에요. 복음의 신비예요. 로마서 4장에 뭐라고 돼 있냐 이렇게 되어 있어요.

*로마서 4:25,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십자가를 보면 우리가 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우리의 죄가 주님께 전가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도 트랜스퍼 된 줄로 믿습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너무 감동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 의는 내재적인, 내가 갖고 있는 어떤 그런 의가 아니에요. 우리의 도덕적 의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한 십자가의 상처를 통한 놀라운 의로움이 우리의 것이 되느니라.

여러분 이것이 이 민족이 살 길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성찬식에 참여하면서 이 마음을 가지고 오늘 같이 성찬에 참여할 때 하나님께서 내려주십니다. 이 십자가의 신비를 제일 잘 깨달았던 분 중에 한 분이 제가 존경하는 김준곤 목사님의 십자가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같이 한번 보겠습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심장 파열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한 손으로는 내 손을 붙잡고, 또 한 손으로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사랑의 심장이 터진 것이 십자가입니다. -故 김준곤-

할렐루야!~~
온전론이라는 책에도 이걸 인용했습니다마는 한 손으로는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한 손으로는 내 손을 붙잡고, 한 손으로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사람의 심장이 파열된 것이 십자가였다는 거예요.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참된 치유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 마음 가지고 우리 같이 성찬에 참여하도록 하십시다.

♪찬송, 갈보리 십자가의 주님을 생각할 때 하나님 크신 사랑 너무나 고마워라. 예수님의 십자가 이제는 나도 지고, 이 생명 다 바쳐서 주님을 따르리라. 예수님의 십자가 이제는 나도 지고, 예수님 십자가 이제는 나도 지고, 이 생명 다 바쳐서 주님을 따르리라.~~~♩

♣요약
우리는 회복 불가능해 보이는 치명적인 현실 앞에서도 보혈 복음에 눈이 열려 말씀을 확신할 때, 깜짝 놀랄 만한 대반전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구하며, 십자가의 상처로 나의 모든 상처를 치유해 주셨으니, 가정과 직장과 민족 앞에 "십자가 복음이 답이다!"를 선포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치유자로 쓰임 받아야 한다. 우리 사랑의교회가 부활주일(4.20)에 태신자를 작정하여 ‘2033-50 비전’의 씨앗을 심고, 봄 특새(4.21~26, 월~토)를 통해 '기도 불패! 확신의 심장이 뛰는 응답의 은혜를 기적을 체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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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4월 6일)
제목: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Blessed Are Those Who Wait)“
-<새로운 길> 이사야 시리즈 ⑩
말씀: 이사야 30:18~21,2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먹사님), 호산나 찬양대
대표기도: 김인용 장로님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2부)
세례식 간증: 백기열 성도, 김은영 성도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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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0:18~21, 26,
이사야 30:18~21,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19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21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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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담대하라. 귀한 찬송 하나님께 받으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 회중 찬송 하셨는데 - 성령이 스승 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그 말씀 한 줄 한 줄이 내 마음의 교훈 되도다. ~~
 
오늘 한 줄, 한 줄 한 단어 한 단어가 여러분들에게 다 와닿기를 바라는 겁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렇게 했습니다. 기다리는 자는 보기 있도다 오늘 18절 뒷부분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30:18,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여호와는 어떤 하나님 이시니요. 정의의 하나님이시라 그렇기 때문에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그랬습니다. 정의의 하남이라는 뜻은 억울함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통한의 심정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니까 그러기 때문에 그를 기다리는, 믿고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래서 오늘 이 주님의 말씀을 기다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387명의 우리 성도들이 학습과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세례받는 분들 가운데 참 특별한 분이 하나 있는데, 92세 되시는 어머님이 세례를 받으세요. 야, 대단하십니다. 92살까지 안 받으셨습니다. ㅎㅎ~ 그런데 근데 사실 앞 예배 때 받으셨는데요. 내가 가슴이 찡한 거예요. 진짜 이 세례도 너무 미루지 마시고, 가능한 빨리 받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기다림에 대해서 18절 앞부분에 보니까,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신다고 그랬어요. 앞에 이 접속자 그러나가 중요한데요.
 
*이사야 30:18,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그러나를 중심으로 전과 후가 완전히 바뀌는데 주님은 좀 문제가 있더라도 주님은 기다리시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거예요. 어떻게 기다리시는가 이게 어떤가 하면 16절을 보니까,
 
*이사야 30:16a,
16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우리가 말 타고 도망가리라. 그랬어요. 앞에 이 말 타고 도망간다는 말 탄다는 건 애굽을 상징하는데 애굽으로 돌아가자. 옛날에 광장에 있는 백성들 죄송합니다. 뻑 하면 사투리죠 걸핏하면 말이죠. 애굽으로 돌아간다고 패역(悖逆)한 백성이에요. 그런데 그 패역한 백성이라도 주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그리고 세상 나라, 세상 제국을 신뢰하는 사람들도 주님은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니까 그런 날을 이 분기점으로, 도망하는 자들,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자들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통하여 기다리신다. 아주 격렬하게, 강하게 대조가 되어 어떻게 기다리시는가, 19절에 보니까,
 
*이사야 30:19,
19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통곡할 만한 상황이 되었는데, 돌아오게 하나님께서 기다리시고 기다리는 자에게 다시 통곡하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라. 우리가 이 참 수많은 일들을 우리가 경험하잖아요. 지난 한 주간에도 수많은 우리 주위에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어요. 통곡하는 자에게 다시 통곡하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라 20절에 보니까,
 
*이사야 30:20,
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주께서 너희에게 오늘 여러분들 봉독했습니다마는 환란의 덕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그러나 내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겠다. 전에는 환란의 떡과 고생의 물 물리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이제는 주님이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스승이 되어 주시겠다. 그리고 앞에 이사야 29장 11절에 보니까,
 
*이사야 29:11
11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 계시의 말씀이 봉해졌지만 계시의 말씀이 묵시의 말씀이 다 이렇게 닫혀져 있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계시의 말씀을 밝혀 주시겠다. 그러니까 오늘 이 우리 모두에게 그러나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오늘 제가 이 세례식 때문에 이렇게 아주 압축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다시 말씀 한 줄, 한 줄을 깨닫는 지혜와 눈을 여러분들에게 열어주시길 바랍니다. 자 다시요. 18절에,
 
*이사야 30:18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훌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뭐가 있도다. 복이 있도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인들의 기다림은 무턱대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에요. 이거는 능동적인 기다림이에요. 말씀을 확신하고, 말씀은 씨앗이 내게 뿌려줬을 때, 이 씨앗이 반드시 추수를 할 것이다. 그걸 믿고 기다리는 것이에요. 따라서 여러분 기다림도 용기예요. 저희 집사람은 저한테 맨날 그래요. 나는 당신 기다리다가 평생 산다고 내가 그래서 ‘기다리는 것도 용기야’ 그리고 기다리는 것도 사역(事役)이에요.
 
여러분 많이 기다리는 분들 많이 계시잖아요. 그런데 우리의 기다림은 능동적인 기다림이에요. 그리고 기다림 동안에 우리가 뭘 깨닫는가 하면, 역사의 상선에서 구원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에 말씀을 통하여 기다리게 되면 역사의 하선 우리 인생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있지만 그건 눈에 보이는 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역사의 상선에서 하나님의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게 되는 것이에요. 주권적인 섭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기다리게 하신 이유가 뭘까? 18절을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사야 30:18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훌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이는 여호와께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뭘 베풀겠다고요. 은혜를 베풀게 하시냐 왜 기다리게 하시는가? 은혜를 베풀기 위하여 왜 기다리게 하시는가? 너희를 긍휼히 여기기 위하여, 그러니까 이해가 안 되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호의가 우리의 기다림을 통하여 베풀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특별히 제가 오늘 세례식이니까,. 두 가지만 오늘 세례 받는 분들, 학습 받는 분들, 그리고 오늘 방송에 들어오시는 분들, 그리고 우리 본당에 계시는 모든 우리 성도들 별관에 계시는 모든 분들, 하나님께서 오늘 기다리는 자에게 능동적으로 기다리는 자에게 말씀의 씨가 뿌려져 가지고, 이 말씀을 확신하는 주의 백성들에게 저는 지금 이사야서를 강의하면서 하나님께 너무너무 감사를 드리고 있어요.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딱 맞을 때, 이사야서를 하게 하셨는가? 나는 이사야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지금 정말로 있잖아요. 이사야의 말씀을 너무나 놀라운 말씀을 주시는 겁니다. 앞 예배 때, 우리가 이 말씀을 받고 어떤 장로님이, 목사님은 오늘 이 말씀은 저에게 주시는 겁니다. 왜 그렇게 반응을 할 수 있었는지,,, 두 가지 축복을, 두 가지 은혜를, 기다리는 자에게 주신 두 가지 축복을 지금부터 말씀을 드릴 테니까,. 여러분들 잘 말씀을 여러분의 것으로 확인하시고 능동적인 기다림의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첫 번째는 20절에 보니까 뭐라고 하냐? 20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30:20
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그러니까 첫 번째 축복은 뭐냐면 올바른 길을 가르치시는 스승의 축복을 받는 것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수많은 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만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시는 스승의 축복을 능동적으로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I. 올바른 길을 가르치시는 스승의 축복 (20~21절).
-올바른 길을 가르치시는 스승이 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바로 뒤에 21절에,
 
*이사야 30:21,
21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누가 이제 어떤 분들은 이거 놓고 정치적으로 해석합니다. 우리는 좌파도 아니고 우리는 우파도 아니고 우리는 중도입니다. 그런 얘기를 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고 하나님은 우리가 오른쪽, 왼쪽으로 가지 아니하고,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가게 해주시는 것이에요. 바른 길을 가게 해주시는 것이 우리에게 틀린 길이 아니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대표적으로 우리가 받는 이 스승의 축복은 뭡니까? 목자가 양떼를 인도하여 우리 앞을 인도하시는 것처럼 목자 스승의 은혜를 받는 것이에요. 왜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후 남유다 왕국에는 왜 당시의 올바른 스승이 필요했을까요? 앞의 9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는가,
 
*이사야 30:9.
9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패역하고 하나님 말씀 듣기를 싫어하는 이런 백성들이기 때문에 이런 백성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참된 스승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참된 스승은 목자이시고 참된 스승은 하나님이시고 참된 스승은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이 될 수 있고, 오늘 우리 입장에서는 오늘 줄일 말씀이 될 수도 있고, 또 우리 다락방마다 주신은 공동체의 은혜가 될 수도 있고 다 포함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스승은 세상의 스승과 같이 아니하고, 신실한 목자이며, 또 집에서는 말씀을 가지고 자녀를 가르치는 신실한 부모가 될 수가 있고, 좋은 목자 경건한 부모 다 포함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스승의 역할을 제대로 하니까 앞에 29장 18절에 보니까, 그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고. 말씀을 들을 것이고. 어둡고 캄캄한 데서 맹인이 눈을 뜰 것이다. 눈이 열릴 것이다. 그러니까 참된 스승의 은혜가 있으면 눈이 열리고, 바른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바른 길을 가게 되는 단적인 예가 오늘 20절 21절 22절에 뭐라고 나와 있는가,
 
*이사야 30:22,
22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아멘, 무슨 뜻입니까? 올바른 스승의 은혜가 있고, 올바른 올바른 길을 가게 되면 그동안 하나님 아닌 우상을 의지하고 그 뭐 의지하던 잘못된 것들 다 던져버리고, 온전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에요. 오늘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충만하게 있기를 바랍니다. 이걸 신약의 창으로 해석하면 예수님이 참된 스승이시라는 거예요. 요한복음 13장 13절을 보니까
 
*요한복음 13:13,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뭐예요? 옳도다 왜냐하면, 그 선생님의 가르침이 영적인 권위와 능력이 있어서 일반 사람들과 다른 거예요. 마태복음 7장의 29절에 뭐라고 나와 있으니까,
 
*마태복음 7:29,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진짜 하나님의 강력한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우리가 이 말씀을 받을 때 여러분 이 말씀을 아까 제가 말씀을 드렸죠 어떤 말씀이라고요. 능동적인 기다림으로 이 말씀을 드릴 때,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권위 있는 권세 있는 말씀이 될 줄로 믿습니다. 자 ①스승의 축복이 있었고, 두 번째로는 ②참된 영적 의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참된 치유를 주시는 거예요.
 
II. 참된 의사를 통한 치유의 축복 (26절).
-오늘 26절을 여러분들이 읽었는데, 26절을 다시 한번 크게 합동하도록 크게 보겠습니다.
 
*이사야 30:26,
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①달빛은 햇빛 같겠고 ②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두 번째 뭐예요? 햇빛은 7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할렐루야!~~ 정말 기가 막힌 표현이에요. 이사야는 궁정 시인이라고 그랬습니다. 로얄 포이트(Royal Poet), 정말 궁정 시인이 얼마나 표현이 지금도 이런 어떤 시인이 이런 표현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달빛같이 어둡고 힘들고 그리고 좀 희끄무레한 이런 상태의 그런 사람들이, 햇빛 같겠고 또 적당한 햇빛은 적당한 햇빛이 아니라,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그랬어요. 여러분 우리 일반적으로 낮에 2만 룩스라고 그래요. 2만 룩스가 7번이 되면 14만 룩스가 되는데, 정오의 햇빛은 10만 룩스라고 그래요. 그 10만 룩스가 7배가 되면 70만 룩스가 되는 거예요. 우리의 어둡고 한탄스럽고 힘든 상황이 70만 룩스의 밝은 빛을 받게 된다. 이겁니다. 그야말로 어두운 인생 가운데 별이 빛나는 밤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밝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아주 밝은 은혜를 그러니까 어두운 인생, 어두운 아픔, 여러 가지들이 있잖아요. 해보다 더 밝은 빛 그걸 받는다는 것이에요. 여기에는 치유의 은혜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 우울증 있는 사람들 또 외상 외상증후군들, 정신적인 상처 이런 분들에게는 따뜻한 햇볕이 좋다고 합니다.
 
햇볕은 엄청난 치유의 힘이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것들을 지금 뭐 꼭 7배라기보다도 아주 그냥 아주 상징적으로, 이상적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진짜 말씀을 제가 기다리는 자에게는 결국은 세상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확실한 치유를 주신다 그 말이에요. 확실한 치유(治癒),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빛 대신 하나님께서 일곱 배의 이 새 하늘과 새 땅을 허락하실 그 날은 모든 상처가 치유되는 날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출애굽 때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어요. 출애굽 때 열 재앙(災殃) 가운데서 고통당하는 그들에게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출애굽 15장 26절에 잘 아시는 대로 크게 우리 합독합니다.
 
*출애굽기 15:26b,
26b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임이라.
-소위 여호와, 여호와 라빠!! 선한 의사처럼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맞은 자리는 터진 자리, 그 다음에는 트라우마, 상처, 우울 다 포함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것은 여러분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수많은 치유도 주시고 그리고 이민족에게 임하는 수많은 우울증, 트라우마, 상처 모든 아픔들을 주님이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어떻게 달빛은 햇빛이 되겠고, 적당한 햇빛은 7배의 햇볕의 은혜를 주신다는 것이에요. 은총의 햇빛 상처를 치료하는 힘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우리 마음속에 아까 능동적인 기다림이 있는 사람에게는 우리의 마음속에 아 주님이 주시는 치유를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라는 간절한 소망을 갖는 것이에요. 앞에 예레미야에 보면 예레미야는 그 어둡고 슬픈 상황 가운데서 다른 길이 없어요. 예레미야 17장 14절을 보니까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예레미야 17:14,
14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그러니까 치유하시는 이 주님, 우리를 고쳐주십시오. 사모해야 되는 것이에요. 여호와 라파, 아빠 되신 하나님 우리 가정을 고쳐 주십시오. 지금 사모해야 되는 것이 오늘 세례받는 모든 분들 내 인생의 어두운 과거를 다 새롭게 고쳐 주십시오.
 
그리고 대한민국에 임한 수많은 어려움들의 상처를 주님이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오늘 두 가지 첫째는 뭐예요? ①스승의 은혜, 두 번째는 뭡니까? ②치유의 은혜, 본래 하나 추수의 은혜까지 있는데, 제가 시간이 없어서 그건 다 말씀 못 드리고, 이 스승의 은혜와 치유의 은혜가 있으면 하나님이 추수의 축복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어렵지 않습니다. 단순(單純)명료(明了)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용기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기다리는 주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올바른 길을 가르치시는 스승의 축복을 허락해 주시고 그다음 참으로 앞 어렵고 상황이 안 되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님 나 치유해도 나를 고쳐 달라고 사모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적용,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접목이 돼야 됩니까?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 또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스승 내신 주님 앞에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오늘 두 가지 질문을 드릴 텐데 물어봤어 물어봤어?? 그리고 고쳐 달라고 치유를 기도해 봤어? 치유를 요청해 봤어요? 오늘 이 말씀이 탄핵정국 이후에 대한민국의 주신은 은혜가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제가 신학교 시절에 듣던 영어 중에 하나인데 제가 영어로 그대로 해서 죄송합니다.
▷God makes everything beautiful in His time!
-하나님께서는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때에 모든 것을 아름답게 이루신다.
 
하나님께서는 기다리는 자에게 모든 것을 아름답게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셨죠. 다들 완료형 계속 해오신 거예요. 계속 해오신 거예요.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지고, 갓 메익스 에브리씽 뷰티풀 인 히즈 타임!!~~ 지금 이걸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 그의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한국 교회만 똘똘 뭉치고, 정신 차리면 하나는 이 길을 새롭게 해 주시리라고 믿습니 정치 상황에서도 주님이 스승 되어 주시기를 바라고 상처 난 한국의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의사가 되어 주셔서 싸멤과 고쳐주심과 만져주시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또한 산불 피해를 입은 우리 모든 분들에게도 하나님이 만져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이 마음을 가지고 오늘 세례식 거행하고 우리가 마음을 더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말 다시 이 나라를 새롭게 하시고 이 나라를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나 속좌함을 받은 후 3절 4절에 나속좌함을 받은 후 보혈의 공로로 나주의 은혜 이분이 늘 평안합니다. 오늘 이 말씀 그대로 믿고 의사의 축복 스승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찬양하고 세례식거행 가겠습니다.

요약
우리가 걸핏하면 과거의 습관으로 돌아가겠다 하던 우리에게 '그러나' 의 계기를 베푸시니,,,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끝까지 기다려야 한다. 주님께서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치유하시는 ‘영적 스승이요, 영혼의 의사’가 되어 주실 때, 가정과 일터와 이 민족의 통곡할 만한 모든 아픔이 다 씻음 받게 됨을 확신하며, 우리 사랑의교회가 ‘제124기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를 전심으로 섬길 때, ‘온전한 제자훈련의 비전과 목회철학’을 통해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영적 지형도가 완전히 새로워지기를 소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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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3월 30일)
제목: "슬기로운 새판짜기"(Wise Spiritual Renewal)-이사야 시리즈 ⑨
말씀: 이사야 28.23~29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호산나 찬양대
대표기도: 권순환 장로님(2부)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2부)
헌금찬양: 신상근(테너)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이사야 28.23~29,
23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24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자기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25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아니하겠느냐.
26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27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28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29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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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 온 성도들 수많은 삶에 짐을 지고 있고 또 상처도 있고 트라우마도 있지만 상처가 변하여 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오늘 모두가 다 삶의 패자부활전이 가능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이사야서 우리 아홉 번째 강해, ‘슬기로운 새판짜기’ 이런 제목입니다. 새판짜기란 말은 현재 판이 흔들려 있고 혼돈(混沌)스럽다 이런 뜻입니다. 인생이나 국가나 새판 짜기를 위하여 하나님은 한 번씩 우리를 흔드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요, 한번 흔들어보면 아는 것입니다.
 
겉으로 멀쩡하게 다 괜찮아 보이지만 품위가 있고, 다 이렇게 신사처럼 보이지만 한번 흔들어보면, 여러분 그 물병에 침전물이 막 이렇게 돼 있는데, 물병에 침전(沈銓)물이 있다 하더라도 가만히 두면 물병이 위가 깨끗하게 보여요. 근데 한번 탁 흔들면 밑에서부터 올라오는데 콩나물 대가리 꽁치 찌꺼기 멸치 대가리 다 올라오는 거예요. 사람이 안 흔들어 보면 모르지만 한번 흔들어 보면 그가 어떤 인격인지 그의 삶이 어떤지가 다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벼락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하나님이 흔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 흔드시는가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벌 주시고 심판하기 위해서 흔드시는가? NO! 우리 성도들 기도를 통하여 이 흔드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향한 새판 짜기를 위하여 흔드는 것이라고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게 잘 감당이 되면 다시 한번 대한민국은 거룩한 황금(黃金)기(期)를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흔드시는 이유는 온전한 사람 더 이렇게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빚어주시기 위하여 국가적으로도 더 온전한 나라를 위하여 만드시기 위하여, 어떻게 보면 그래서 오늘 주님이 우리를 흔드실 때, 우리가 잘 감당(堪當)하면 이게 우리의 삶의 골든타임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I. 온전함을 위한 흔드심.
 
-여러분 아브라함을 한번 보십시오. 제가 아브라함을 보면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마음이 좀 찡한 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흔드셨어요. 어떻게 흔드셨는가? 그리고 ‘너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 그랬어요. 그냥 적당한 거 바치라. 그러면 뭐 흔들릴 거 있습니까? 그냥 바치면 되죠. 근데 정말 사랑하는 독자 이상을 바치라 그랬을 때, 아브라함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그렇게 흔들지 않으셨다면 그는 결코 한계를 돌파(突破)하지 못했을 것이고. 믿음의 조상도 되지가 못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을 흔들 그때가 온전한 믿음으로 새판짜기로 올라가는 시간이에요. 그래서 야고보는 우리가 실연당하고 흔들릴 때, 그 이유가 뭐냐 우리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야고보 1장 사진을 보니까 뭐라고 나왔냐, 시작
 
*야고보서 1:4,
4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아멘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고, 더 부족함이 없게, 우리 인생에 우리 국가의 완성도를 높이시기 위하여, 제가 이 말씀드리면, 어떤 분들은 목사님, 그래 나 믿음의 의사는 안 해도 좋으니까 나 흔들지 마세요. 그런 분이 계시다면 그런 분이 오늘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반응도 안 하시고,,, 여러분 우리는 신앙의 참새가 아니고 신앙의 독수리가 돼야 합니다. 독수리가 되려면 하나님이 그 독수리답게, 독수리답게 키우시도록 하나님이 독수리를 한번 흔드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독수리 훈련을 하게 돼요. 독수리가 제대로 날 수 있도록 그 보금자리를 흔들어 던져버리고 던져버릴 때, 떨어지는 새끼를 나중에 업어 가지고 제대로 훈련을 하는 거예요. 제 얘기가 아니고, 신명기 32장에 보니까 나와 있어요. 크게 합독 하십시다.
 
*신명기 32:11,
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엎는 것 같이. 아멘
-주님은 우리를 참새 신앙이 아니라, 독수리 신앙 만들기를 원하시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 우리를 한번 흔드시는 거예요. 이 나라도 하나님께서 흔드시는 거예요. 교회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박해(迫害)로 흔들어버렸어요. 그러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교회는 소위 로컬리즘(Localism), 어떤 그 예루살렘이라는 그 지역주의 한계를 벗어나기가 힘들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흔들어버려 가지고 예루살렘 스테반의 핍박을 통하여 예루살렘 교회가 글로벌 교회로 온전히 성장하도록, 하나님이 예루살렘 교회도 흔드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신 거예요.
 
그러니까 반드시 하나님의 교회나 무형교회나 유형교회는 우리들이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온전케 되기 위서는 하나님이 흔드실 때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 배경을 가지고 오늘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이사야 오늘 제가 아홉 번째 강의를 하는데, 이사야는 우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시대를 거칩니다. 그런데 지금 오늘은 히스기야 왕 시대에 대한 내용인데, 특별히 남유다 왕국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警告)였습니다. 그리고 북쪽이 망하는데 북쪽 에브라함 북쪽이 다 망하는 걸 보면서 너희들이 에브라함을 빗대어 가지고 남쪽 유다 왕국을 경고(警告)하시는데, 특별히 어떻게 경고하시는가, 야 이 말씀대로 안 하면 너희는 화 있을 진저,,, 그래서 지난번에 27장까지는 소 묵시록이라고 그랬고 28장부터 35장까지 하나님의 폭풍 같은 경고와 심판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게 보니까 28장에도, 29장에도, 30장에도, 31장에도 33장에도 계속 ‘화 있을진저’,~ 예를 들어 28장 1절을 보니까,
 
*신명기 28:1,
1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 진저.
-30장 일절을 보니까,
*신명기 30:1,
1 폐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 진저,.
-하나님이 왜 이렇게 화 있을 진저, 라고 말씀하실까요? 우리가 온전케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경고(警告)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28장을 보면 앞부분 보면 남 유다 왕국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하시는 거예요. 특별히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을 전하시는데, 선지자의 경고를 하게 하셨는데,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이라든지, 권력층 지도자들이 그 말씀을 드리려고 하지도 않고 백성들도 마찬가지예요. 오히려 이사야 선지자를 조롱하고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을 어린아이들의 옹알거리는 하찮은 잡소리로 들었어요. 자꾸 잔소리하고 같은 말 다시 반복한다. 그러면서 이사야 28장 9절 10절에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이나 백성들이 뭐라 하면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를 전하며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은하에게 말하려는가, 하면서 교만해 있었어요. 한국이 지금 어떤 사람 복음을 잘하면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 뭐 그런 얘기 다 하냐? 이런 식이에요.
 
그러면서 그들이 하는 얘기가 십절 대저 경계의 경계를 더하며, 경계의 경계를 더하며, 교훈의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더라도 조롱하는 거예요. 경계의 경계를 더하고 교훈의 교훈을 더하고 교훈의 교훈을 더하고 그러니까 자꾸 같은 말 잡소리 하지 말라. 그러듯이 그만큼 교만해 있었어요. 그니까 하나님께서는 이걸 다 듣고 계시는 거예요. 그런 지도자 타락한 백성들의 조롱 소리를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신다는 거에요. 다 듣고 계셔 가지고, 그들이 조롱한 대로,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똑같이 하나님이 경고하시고 호통을 치셨어요. 28장 9절 10절 그 다음에 13절에는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신명기 28:13,
13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의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의 교훈을 더하며 교훈의 교훈을 더하며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
-그랬습니다. 하나님도 알고 계신다. 정신 차리라고 하나님이 강력하게 도전하신 것이에요.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가 망할 때에 롯의 그 사위들이 장인어른이 하는 그 말을 아주 우습게 여겼어요. 농담으로 여겼어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 교회나 여러분 개인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어요. 이제 더 자세하게 하시는 말씀이 있을 거예요. 이 말씀을 우리가 세상의 어떤 그런 뭐 어린아이들이 하는 반복적인 말이 아니라, 주님의 강력한 말씀으로 드려야만 하는 것이에요. 왜 롯에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는가 오만해져 가지고, 교만해져 가지고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는 거예요. 이렇게 하나님은 28장에서 앞부분에서는 하나님께서 북풍한설(北風寒雪), 일진광풍(一陣狂風)의 회오리 같은 경고(警告)의 폭풍 언어를 선포 하시 사,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충격을 받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주님은 사람들을 경고하고 심판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목자의 심정을 주님이시니까 다시 한번 이제는 폭풍의 언어 대신에 따뜻한 봄바람 같은 그런 미풍 같은 메시지를 가지고 깨닫게 해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폭풍 같은 경고를 넘어 따뜻한 목자의 심정의 메시지를 전하시는데 그 핵심이 뭔가, 오늘 본문에 보니까 농부의 지혜를 배우라. 는 것이 농부의 지혜를 배워가지고 새판 짜기를 하라 농부의 지혜를 배워라.
 
여러분, 이사야서에 그러니까 소위 이제 농부의 지혜와 농부 신학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오늘도 앞 얘기를 마치고 많은 분이 그러더라고요. 아!! 제가 이사야의 여러분 ‘토기장의 비유’ 이런 거는 우리가 잘 알아요. 그런데 농부가 있다는 말을 성경을 많이 읽었지만 오늘 이사이에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런 얘기를 해요. 아마 이 말씀이 농부의 지혜와 농부의 신앙이 여러분 생애(生涯)에서 오늘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 몰라요. 그러니까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확인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이 말씀을 듣는 귀와 눈을 열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는 ‘슬기로운 모략으로 농부의 지혜’를 말씀하시는 그 내용들이 23절부터 29절까지 나와 있습니다.
 
II. 슬기로운 모략, 농부의 지혜(23-29절)
 
-오늘 본문에 이 말씀을 주신 이유는 새판짜기를 가지고 우리가 온전해져야 한다. 그런 뜻인데요. 먼저는 파종하는 농부의 지혜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23절부터 26절까지, 이 내용이 나와 있는데, 23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사야 28:23,
23 너희는 귀를 기울여 네 목소리를 들어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그랬어요. 무슨 말인지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는 말은 잘 말을 잘 안 듣는다. 그거예요. 백성들이 말을 듣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또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뭐냐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춤형으로 이 말씀을 주신다. 그런 뜻이 되어 있어요. 그리고 14절에 보니까,
 
*이사야 28:14,
14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랬어요.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고 선지자를 조롱하는 미성숙한 자들이니까. 제발 이제는 이 농부의 지혜를 좀 배우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배우느냐 24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사야 28:24,
24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자기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이 말씀의 뜻이 뭐냐면, 파종하고 씨를 뿌리는 자의 지혜를 배우는데 씨를 뿌리기 전에 여러분 개간(開墾)하고 땅을 고르고 그 다음에 땅을 갈고 그렇게 하지 않겠어요? 근데 땅을 고르고 그다음에 땅을 개간하고 땅을 가는 이유는, 씨를 뿌리기 위함이지 그것만 위하여 개간하고 고르고 땅을 가는 것 그것만을 위하여 계속 하지는 않는다. 이 말이에요. 그게 농부의 지혜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땅을 고르고 개간하고,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씨를 뿌리는데 씨를 뿌리는데 어떻게 뿌리는가, 25절을 보니까,
 
*이사야 28:25,
25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 소맥(밀)을 줄줄이 심으며 / 대맥(보리)을 정한 곳에 심으며 /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아니하겠느냐.
-이 소회향은 지금 허브예요. 허브고, 대회향 비슷한 파슬리 비슷한 것인데, 대회향은 신약의 근처라고 말할 수 있어요. 소회향과 대회향 그다음에 소맥을 줄 수 있어요. 소맥, 소주 맥주가 아닙니다. 소맥은 소맥은 밀이에요. 밀 소맥을 어떻게 심어요? 줄줄이 심으며, 그 다음에 대맥 보리는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아니하겠느냐, 농부의 지혜가 뭐냐 하면 이 네 가지 소회향과 대회향은 그 그냥 뿌리면 되는 거예요. 평평한데 그냥 뿌리면 나는 거예요. 그런데 밀은 그렇게 하면 안 돼요. 밀은 줄줄이 줄줄이 심어야 돼요. 줄을 해가지고 심어야 되는 거예요. 맞습니까? 그다음에 대맥, 보리는 특정한 곳에다가, 거기에 보리를 심어야 되는 것이고, 그 다음 귀리는 가장자리 밖에다가, 귀리를 심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씨가 씨 뿌리는 것이에요. 그 씨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게 해야지, 두 종류를 같이 뿌리고 이렇게 하지 않는 거예요. 그게 정한 곳에, 대맥 같은 경우 줄줄이 소맥 같은 경우 그다음에 평평한 곳에 소회향과 대회향을 뿌리고 귀리는 그 가장자리 밖에다가 가에다가 이렇게 그러니까, 이사야가 궁정 시인이었지만 왕궁 서기관이었지만 농사법에도 익숙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26절에 보니까 놀라운 말씀을 선포하는데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다고 했어요.
 
*이사야 28:26,
26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사람마다 농사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적당하게 해주셨다는 것이에요. 그러니 신앙도 비슷한 거예요. 어떤 신앙은 어떤 신앙은 아무 데나 뿌려도 야성적인 그리스도인들, 웬만해도 뭐 폭풍 북풍 한설을 견디는 소나무와 같이 굳게 견디는 그런 신앙인들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신앙들은 거기 다 어떤 데 이렇게 이게 이게 뭐라 전투력이 좀 약해갖고 좀 이 연약한 성도들은요, 보호해 주셔야 되는 거예요. 소맥 같은 경우는 줄줄이 심으라고 그러시고, 그리고 이 줄을 재고 맞춰서 뿌려주고, 관심을 기울여줘야 되고, 뭐 관심 안 길어줘도 막 자라는 성도들이 있어요.
 
이렇게 이렇게 이제 씨앗을 지혜롭게 적당하게 잘 심는데, 그 심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올바로 추수하고 올바른 알곡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돼요. ①첫 번째는 농사를 파종하는 지혜가 있고, 두 번째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냐, 농부에게 지혜를 배우는데 ②두 번째로는 추수하는 지혜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게 27절부터 29절까지 나와 있어요. 무슨 지혜라고요? 다시요. 무슨 지혜라고요? 추수하는 지혜, 씨앗의 종류에 따라 심는 방법이 다르듯이, 씨앗이 자랐을 때 추수하는 방법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소회향 대회향은 보십시오.
 
*이사야 28:27,
27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젊은 분들은 도리깨가 뭔지 잘 모르더라고요. 옛날에 우리 할 때 도리깨 있잖아요. 도리깨 들깨 같은 거 털 때 근데 소회향은 아주 적은 씨고, 아주 적기 때문에 도리깨질로 하면 그냥 다 납작해서 없어져 버려요 그러니까 아주 도리깨질을 하지 아니하고, 또 대회향에는 수레바퀴를 가지고 막 굴리거나 이렇게 하지 않는 거예요. 소회향은 그냥 작대기로, 조그마한 작대기로,,, 탁탁 털고, 대회향은 또 막대기로 아주 가는 씨니까 탁탁 털면 되고, 그게 추수예요. 근데 이제 28절에는 뭐냐, 심각해지는 건데
 
*이사야 28:28,
28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또 아까 말한 대로 도리깨질을 하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한다. 그런 뜻이에요. 자 밀이나 보리나 우리가 추수할 때에 수레바퀴를 굴리지 않아요. 곡식은 도리깨질과 수레바퀴를 굴려서 이렇게 부수지만 어느 상태까지만 부수고, 완전히 부수지는 않는 거예요. 밀보리는 도리깨질도 하고, 호두 같은 딱딱한 껍질이 있는 것들은 말발굽으로 이렇게 추수를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소회향 같은 성격의 영적으로 좀 접목을 하면 소회향 같은 그런 성도들은 말발굽으로 고생을 안 시켜도 성질 머리대로 하나님 우리를 다루시는데, 그 소회향, 대회향 같은 적은 씨앗으로도 추수하는 그런 분들은 아까 막대기와 작대기로 다루신다고 그랬잖아요. 적당한 작대기 적당한 막대기만 탁탁 해도 경고를 받아 가지고, 고치는 거예요.
 
근데 성질이 좀 강해 가지고 호두 같은 이런 것들은 그냥 말발굽으로 추수를 하는 것이에요.. 그냥 또 뭐예요? 수레바퀴로 그냥 굴러야 되는 거예요. 어느 걸 선택하시겠어요. 어느 걸 선택하시겠어요? 어떤 성도들은 목사님들 성질이 좀 세고 고약해 가지고 하나님 나를 다루시는데 말발굽 떼거리로 나를 다루십니다. 말발굽 떼거리로 자기가 살아있고 좀 딱딱하고 고집이 센 교우들은 와장창창,,, 도리깨질이나, 수레바퀴를 굴려야 성숙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내가 소회향 교인인지 대회향 교인인지 내가 소맥인지, 대맥인지, 호두 교인인지, 귀리인지, 나는 어떤 종류의 교인인지 한번 생각 저는 다시 목회자로서 여러분들은 다시 작대기만 살살 대도 오늘 이런 말씀 드리면, 하나님이 여러분들과 개인에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하나님이 경고하시는 것이 있어요.
 
말씀을 통하여 주님이 계속 집중적으로 경고하시는 게 있어요. 물질 문제라든지, 이성 문제라든지, 아니면 내 어떤 인격이라든지, 아니면 가정 문제 라든지, 이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작대기하고 막대기만 될 때 알아서 하세요. 그게 안 되면 말발굽이 나오는 겁니다. 그게 안되면 수레바퀴가 나오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고마운 것은 여기에 복음이 있는 거예요. 그 말발굽을 사용하고, 그다음에 수레바퀴를 사용하고 도리깨질을 하더라도, 그 곡식 자체를 완전히 보호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에요. 그걸 무너뜨리거나 그걸 어깨거나 없애버리는 것이 하나님 뜻이 아니에요. 그것은 뭐예요? 그걸 하나님께서 그 도리깨질, 곡식을 추수할 때 곡식알 자체를 결코 부수지는 않아요. 완전히 그냥 없애버리지 않으세요.
 
오늘 이 말씀의 배경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특별히 남 왕국 유다 왕국이 앗수르 라는, 어떤 돌이 깨질 앗수르 라는 막대기 아수르라는 말발굽을 가지고 그들을 훈련하시는 거예요. 그니까 하나님께서 없애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알곡이 제대로 보호해 가지고, 제대로 알곡으로 남는 것, 그것이 목표인 줄 믿으셔야 되시는 것이에요. 하나님 앞에 알곡으로 남기는 거, 말씀 가지고 우리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이고,. 어떤 집사님이 그런 얘기 해요. 이 집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제가 우리 시어머니가 얼마나 센지 모릅니다. 그 시어머니가 정말 강하고 쎄시는데, 그 시어머니의 막대기와 시어머니의 짝대기 앞에서도 나는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변화되지 않았는데, 그냥 ‘내가 잘났습니다.’ 자식이라는 이 말발굽이 말이야. 자식이라는 수레바퀴와 말발굽으로 나를 밟으시니까, 내가 꼼짝없이 무너지고 변화되고 성숙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볼 때는요. 어머니들에게 최강의 말발굽은 자식들이에요. 최강의 수레바퀴도 자식들이고, 최강의 막대기도 말 안 듣는 자식들이에요. 이런 말발굽 자식들 때문에 엄마는 눈물로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그 우리 주일학교에 보면요. 주일학교 학부모 기도가 있는데, 그 주일학교 말발굽 부모 기도회에요. 지금 다들 열심히 기도합니다. 열심히 열심히, 얼마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농부의 지혜를 가지고, 우리를 부수되 완전히 부수지 않고, 알곡으로 남기시고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소회향 대회향, 허브, 근채, 이런 거 할 때는 씨가 작으니까,,, 하나님은 알아서 조금 하시지만 막대기 정도 사용하시지만 호두라든지 강하고 그다음에 딱딱한 이런 곡식들이 딱딱한 것 될 때는 하나님께서 강하게 강하게 맞닥뜨리시는 거예요. 그래서 방법은 우리 모두는 방법이 없어요.
 
대형교회도 대형교회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하나님께서는 대형교회가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하나님의 방법을 갖고 하는 거예요. 방법은 뭐냐 환경적인 어려움, 환경적인 말발굽, 환경적인 수레바퀴를 가지고 우리를 치시든지, 아니면 이런 말씀을 듣고 미리미리 경고를 받아 가지고, 알아서 자발적 권한을 감행하시든지, 둘 중에 하나예요. 그래서 우리 교회 같은 경우는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 환경적 어려움을 당하시겠어요. 아니면 자발적 고난을 하시겠어요? 두 개 다 안 할 거예요? 이런 성도들은 아까 말씀의 은혜가 뭔지 모르는 분이에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성숙시키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새 판짜기를 가지고 신앙의 새 차원으로 올라가기를 원하는 거예요. 거룩한 영적인 황금기에 갖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기를 원하시는 것이에요.
 
그러면 예외 없이 환경적 권한 환경적 말발굽이 있을 수 있고, 아니면 이 말씀을 미리 깨달아 가지고, 주님 제가 자발적 권한을 감행하겠습니다. 자발적 권한이 뭡니까? 자발적으로 제자훈련 받는 거, 자발적 권한이에요? 일주일에 여러 시간 들을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훈련받는 거 아니에요? 자발적 권한이다. 이 말이에요. 그리고 특새할 때, 우리가 새벽에 일찍 나와 가지고, 자발적으로 했잖아요. 기도할 때, 마귀(魔鬼)를 향한 선제공격(先制攻擊)을 하는 거 아닙니까? 원래 원래 저기 뭡니까? 우리 특새, 이제 4월 20일부터 할 텐데, 그 특새는 뭐냐, 특새 제목이 뭐냐면 기도 불패, 자발적 권한을 위하여 영적 전투를 시작하는 거예요. 기도 그리고 기도가 답이다.
 
그랬는데 여기는 지금 그러니까 이게 영장이 선제공격이고 특새를 통하여 기도 대첩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판 짜기 하고, 알곡이 되려면 작대기로 맞든지, 아니면 수레바퀴와 말발굽과 이런 도리깨질을 당하든지, 그래야 되는데 이걸 환경 적으로 당하든지, 아니면 내가 자발적으로 하든지, 이렇게 하자면 우리는 성숙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따라서 하나님은 때로는 작대기와 막대기로 떨기도 하시고 수레바퀴와 굴리면서 알곡을 만드시고 성숙하게 하신 새판짜기를 하게 하시는데, 어떤 방식을 사용하시든 간에 그 목적은 아모스 9장 9절, 아모스 시작,
 
*아모스 9:9,
9 보라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서 체질하기를 체로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거기서 만국 중에서 체질하기를 채로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농사의 지혜를 가지고 추수를 위하여 주님께서 어떤 사람은 도리깨질로 어떤 사람은 막대기로 어떤 사람은 수레바퀴로 어떤 사람은 말발굽으로 채질하겠는데, 그러나 방법은 뭐냐 목표는 뭐냐,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그 목적은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연단해 주시는 것이에요. 고난이나 역경이 성도들을 보호하시는데, 적극적인 하나님의 방식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시는데, 이걸 깨닫는 것이 온전한 성숙으로 가는 길이에요.
사도 바울 같은 경우도 그 좋은 분에게 가시를 줘서 계속,,, 그러나 가시가 가시로 있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은혜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시는 거예요. 베드로 같은 경우는 부끄러움과 수치 그것조차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성숙하기에는 온전한 도구로 사용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써놨느냐 보세요.
 
말발굽의 고난과 역경은 성도를 알곡으로 성숙시키고 지키는 보호막이 된다.
-이제 기가 막힌 거예요. 드디어 오늘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 29절의 말씀, 보호막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29절 크게 우리 합독 하겠습니다.
 
*이사야 28:29,
29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할렐루야!!~ 그의 경력은 뭐하며 기묘하며, 그의 지혜는 광대하니라. 이사야는 궁정 시인이었어요. 이사야의 워딩, 말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너무 놀라요. 이 용어 자체가 이거 벌써 2700, 2800년 전 얘긴데, 너무나 놀라워 지금도 이런 단어 쓰기가 쉬울까요? 여러분 오늘 이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작대기와 막대기와 하나님의 말 발굽과 하나님의 수레바퀴와 하나님의 이게 뭐예요? 도리깨질,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기묘하고, 하나님의 지혜의 광대함을 여러분들의 생애 속에서 체험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온전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자주자주 얘기하는 거예요. 뭡니까? 2천년 교회 역사에는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답이 있다는 것이에요. 반드시 답이 있다. 여기 공직에 계시는 분들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시라고,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경영은 뭐라고 그랬어요. 예 기묘하고 하나님의 지혜는 뭐예요? 광대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제한된 것 같고,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경영을 함부로 평가하면 안 되는 것이에요.
 
자 이번에 이 탄핵 정국 한번 보세요. 여러분 제가 국가를 이끌어간 중요한 위치에 계신 분들하고 대화를 해보면 요즘 말이죠. 목사님 답이 없습니다. 답이 없습니다. 그럼 어떡하실 거예요?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나는 거기에 하나님의 경영의 뭐에 기묘함과 거기에 하나님의 지혜의 뭐에 광대함에 들어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어떤 성도들은요, 저 헌법재판소 앞에 가 갖고 밤새워서 기도를 해요. 움막을 치고 밤새워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 기도를 못하는데 어제 내가 누구를 만났는데 자기는 어릴 때 별명이 공주였대요. 공주 다 해주고 집에 공주야 공주인데 밤새워서 한 달 동안 계속 가서 밤새워서 기도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때요 그러니까 목사님 제가요 공주가 노숙자가 되었습니다. 이 어려운 정국 가운데서 기도에 무릎을 꿇고 밤새워서 기도해 가지고 공주가 노숙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지혜는 뭐하고 광대하시도다. 국가만 그렇겠습니까? 하나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형 교회는 알아서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경영에 하나님의 지혜의 광대함을 믿고, 하나님이 주신 그래서 우리에게 예를 들어서 많은 일을 맡긴다 그랬을 때 그것은 무슨 뜻이에요. 그 공동체가 살아있고 그 공동체가 뭐예요?
 
사명이 있고 그 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영적인 비전이 있으니까 하나님이 맡기시는 것이에요. 아무쪼록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알곡 작전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의 경영과 주님의 지혜는 너무나도 기이하고 놀랍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되시는 것이에요. 우리가 갖고 있는 요 제안 가지고 아까 이스라엘의 지도자, 하나님의 말씀을 경계에 경계를 다하고, 교훈을 다한다고 함부로 폄하하고 그러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는 광대하시고, 하나님의 경영은 기묘하시도다. 결론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있어요. 오늘 12절에 뭐라고 나오느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사야 28:12,
12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의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의 상쾌함이니라.
-너무 놀라운 말씀이에요. 안식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주님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특권이에요. 상쾌함은 그리스도 내 삶에 우리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우리는 오늘도 예배를 통하여 주님 안에서 안식을 얻어야만 하는 것이에요. 이 예배를 통하여 줄이고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의 상쾌함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에요. 리프레시(Refresh) 해야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뜻은 우리 안식이요. 상쾌함이고 하나님의 지혜는 뭐예요? 무궁하고 그의 경영은 무궁하고 하나님의 지혜는 광대하시도다 예수님께서 신약의 창으로 해석을 할 때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그 다음에 그리하면 너의 마음이 뭘 얻는다고요? 쉼을 얻으리니... 오늘 이 말씀을 배우고 이 말씀을 적용하고, 이 말씀을 묵상하고, 이 말씀을 암송할 때에 우리의 마음이 쉼을 얻는데, 두 가지를 주는 거예요. 하나는 안식이고 하나는 상쾌함이에요. 그 안식과 상쾌함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찬송가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시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시옵소서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쉽지만 주님 나 알곡으로 만드셔 가지고 그 크신 역사 이루게 날 받아주시옵소서 아멘 다시 한번 그 크신 역사에 이루게 날 받아 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날 받아주소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영적 가족 영 가족 여러분 은혜를 받되, 은혜도 후유증이 없어야 합니다. 끝까지 은혜가 유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에요. 인간의 지혜는 한때는 반짝하는 것 같지만 후유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이 농사의 지혜는 요대로, 우리가 하면 이 민족을 후유증 없는 은혜로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주님이 지금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음성이 있습니다. 경고를 주십니다. 그럴 때 작대기 막대기로 끝내야지, 수레바퀴 말발굽으로 끝내지 말고, 아니면 자발적 고난을 통하여 주님을 온전히 닮아가는 신실한 제자로 한 분, 한 분 맞춤형 은혜를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요약
주님이 우리를 흔드실 때에 온전함을 위한 새판짜기임을 믿고, 자기 독자를 바치게 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믿음을 흔드셔서 믿음의 조상 되게 하신 것처럼, 예루살렘 교회를 흔드셔서 지역주의를 탈피하여 글로벌 교회 되게 하신 것처럼, 막대기와 도리깨질과 말발굽과 수레바퀴로 이 나라와 우리를 흔드실 때에, 오히려 대한민국의 황금기를 예비하고 계신 줄 믿고 기도하게 하여야 한다. 우리 개인과 가정과 일터와 한국 교회와 대한민국에 다시 한번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하나님의 놀라운 경영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온 한국 교회가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가기를 간구하며, 개인적으로는 안식과 상쾌함에 무한 지평이 활짝 열리기를 기도하자.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와 나라에 거룩한 황금기를 예비하실 것을 확신하며, 우리는 주님 앞에 납작 엎드려 거룩하고 슬기로운 새판짜기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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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3월 23일)
제목: "의로운 나라, 견고한 성읍(A Righteous Nation, A Strong City)”-
-<새로운 길> 이사야 시리즈 ⑧
성경본문: 이사야 26:1~7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외
대표기도: 최민규 부목사님(1부) 외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외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


*이사야 26:1~7,
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2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 이심이로다.
5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6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7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
ㅡㅡㅡㅡㅡ

▶흔히들 인생을 방향이냐 아님 인생의 속도냐 이런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 인생은 속도도 아니고 방향도 아니고 인생은 관계입니다. 인생은 속도도 아니고 방향도 아닌 인생은 뭐라구요. 관계라고,,, 제가 왜 얘기를 하냐면 누가 우리의 인생을 지휘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2부 예배 지휘자가 오늘 바뀌었습니다. 그런 거 아십니까? 2년에 한 번 우리 교회 지휘자 네 분이 미국의 연수도 가고 세미나를 가는데, 오늘 1 2 3 4부 지휘자가 다 바뀌었는데 일부도 지휘자가 바뀌니까 그 좀 이렇게 그 찬양대 그 뭐 좀 달라졌어요. 그러니까 뭐 더 잘 됐는지 더 못 됐는지 그건 얘기 안 하겠어요. 참 그래서 여러분 누가 우리를 지휘하느냐, 나는 방향이요. 속도가 아니라 누구와 관계를 맺고 있는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금 이사에 와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지난주 25장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적 무지와 그 다음에 ‘사망의 덮개와 수치를 제거해 주시리라’. 그랬어요. 그 말씀을 하시고 오늘 26장은 오늘 키가 뭐냐면 의로운 나라 견고한 성읍 그러니까 그 수치를 제거하시고 영적 무지를 벗겨내시고, 그다음 사망의 덮개 사망의 이 휘장을 갖다가 다 벗겨주신다는 것이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느냐, 그래서 오늘 제목을 제가 ‘의로운 나라, 견고한 성읍’이라고 붙이고 오늘 1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1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사야 26:1,
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견고한 성읍이 있다. 이 견고한 성읍에서, 여기에서 뭐가 나왔냐면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한 400년 동안 대영제국과 네덜란드 같은 데 이런 나라에서 기독교 국가였죠 그런 나라들이 도시를 건설할 때에 미국도 마찬가지고 여러 도시를 건설할 때 이 말씀이 근거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 이 도시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견고한 성읍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랬어요. 그렇게 하면서 그 항상 도시 중앙에 메인스트리트가 curch street로, 해 가지고 먼저 교회 거리를 세우고 중심지에 이쪽에 교회가 세워지고, 맞은편에 시청이나 대법원이 세워졌어요. 좀 어디하고 비슷하죠? 그렇죠.

그래서 그 항상 키가 뭐냐 하면 그 시청이나 법원이나 이런 데서 교회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광과 기름 부심과 축복과 평강이 뿜어져 나와 가지고, 시티에 영향을 끼쳐서 그 city가 복되게 해주십시오. 영국이 옛날에 각 그 지역마다 교회를 도시를 세울 때, 이런 기준을 갖고 세웠어요. 우리가 오늘도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말씀을 듣는 우리들을 통하여 또 교회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교회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교회 우리 다 포함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주신 이 은혜가 뿜어져 나와 가지고, 우리가 갖고 있는 평강과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사명이 뿜어져 나와 가지고, 우리 주위를 새롭게 하는 그런 축복을 여러분 각자에게 또 우리 모두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근데 이제 이걸 깨닫기 위하여 오늘 한 세 가지를 정리할 건데요.

I. 첫 번째, 견고한 성읍 vs 솟은 성.

*이사야 26:1,
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우선 1절에 보니까, 우리에게 무슨 성업이 있다고요. 견고한 성을 믿고 이 세상에 타락한 성읍은 황폐하게 무너뜨린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이사여 25장 2절에,

*이사야 25:2,
2 주께서 성읍을 돌무더기로 만드시며 견고한 성읍을 황폐하게 하시며 외인의 궁성을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사 영원히 건설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
-앞에 있는 성경 구절을 보면 주께서 성읍을 뭐로 만드시고 돌무더기로 만드시고 그랬어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견고한 성음을 주실 것인데, 영어로 볼 때 견고한 성업을 스트롱 시티다. 여기 견고한 성업의 특징은 뭐냐면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지위가 있고, 하나님 통치가 있고,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세워진 도시라고 말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견고한 성읍을 하나님이 어떻게 아시는가 1절 뒤에 보니까,

*이사야 26:1b,
1b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우리가 성을 지을 때 견고하게 세우시면 돌을 가지고 짓기도 하고, 시멘트로 짓기도 하고, 그다음에 또 나무라든지 이런 여러 가지 벽돌이나 이런 걸 가지고 성을 짓지만, 주님께서 뭐로 성읍을 지으시겠다고요? 구원을 가지고 이것은 마치 스가랴서에 보니까, 불 성곽으로 지켜주시겠다. 불 성곽이 되어 주시겠다. 그러니까 참된 구원이라는 것은 참된 성벽은 우리 인간의 힘과 능력과 지혜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성벽을 쌓아주시겠다. 반대로 인간이 노력해서 인간이 구원을 획득하고 인간이 어떤 우선순위가 되어 가지고 그런 성을 인간이 세우는 성은 어떤 성인가, 5절에 조금 전에 말씀한 대로 5절의 ‘솟은 성’이다.

*이사야 26:5,
5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솟은 성은 자기 스스로 세우고, 자기 스스로 구원하고,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니라, 소위 여기 인본주의가 들어있고 여기는 세속도시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없는 도시가 되고, 소위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세워지는 도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뭐냐면 창세기 11장 바벨탑 사건이 나오는데, 당시 최고층 빌딩인 바벨탑을 건설한 이유가 뭐냐, 창세기 11장 4절을 또박또박 같이 보겠습니다.

*창세기 11장 4절,
4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고.
-거기에 바벨탑을 쌓는데 우리의 이름을 낸다고 했어요. 우리의 이름을 내고, 내가 나의 주인이 된다 그런 뜻이에요. 지난번에 말씀하신 대로 I will, 내가 인간이 중요한 내가, I will, 내 의지가 중요하다고, 내 인생을 내가 다스린다는 것이에요. 이게 솟은 도시의 특징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기독교적 세계관과 가치관과 복음적 가치관이 없는 도시가 된다는 겁니다. 여기는 자신을 높이고 물질과 권력을 추구하는 문화가 대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인간의 오만(傲慢)과 무지와 억압과 방자(放恣)함과 폭력으로 가득 찬 도시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솟은 성은 이런 의미에서 이사야판 바벨탑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 솟은 성에 나타나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 뭐냐? 피곤(疲困)과 억압(抑壓)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항상 내 이름을 낼 거야. 내가 중심이야 내 주장이야, 이렇게 인간 스스로 다스리는 도시는 인간 자신의 생각과 사고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지침과 피곤함과 억압과 압박과 갈등(葛藤)이 충만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3절에 나온 것처럼 평강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강이 존재하지 못하고 자기 정의 자기 발전 자기 추구 I will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안절부절하고 지쳐있고 불안하고 그리고 이런 도시에서는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불안하고, 우리 교회도 정치적으로 우리나라에 또 여러 가지 또 국가적으로 나름대로 고위공직에 계신 분들 많이 계시지만 사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긴장(緊張)이 되고 올라갈수록 어떻게 하면 내가 갖고 있는 걸 유지(維持)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고민(苦悶)하면서 경쟁(競爭)하고 투쟁(鬪爭)하고 남을 눌러야 올라갈 수 있고 그러니까, 늘 긴장하고 불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인간이 만든 성에 대해서 하나님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5절에 보니까, 오늘 본문 5절을 보니까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이사야 26:5,
5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자신의 솟은 성을 건설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그들의 교만을 낮추시고, 솟은 성을 허물어뜨리시는데 땅바닥까지 주저앉히시고 흙바닥까지 닿게 하신다는 거예요. 더더구나 6절에 보면 누구를 통해서 그러 하시는가,

*이사야 26:6,
6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빈궁(貧窮)한 자, 곤핍(困乏)한 자의 걸음걸이 남들이 볼 때, 대단하지 않은 사람들을 통해 그런 일을 하신다는 거예요. 자 이거 제가 일차적으로 제가 어느 정도 성경을 해석해 드렸어요.

-오늘 저가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음성이 여러분들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자 이런 제가 배경을 말씀을 드렸고,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뭐냐, 오늘 이런 인간이 만든 솟은 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시는 견고한 성, 의로운 나라가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거기에 우리가 토비새 때마다 너무나 반가운 말씀 26장 3절, 너무나 잘하는 말씀 이거 이거는 우리 교회 수준에서는 안 보고 해야 되는데 그렇다 해봅시다. 3절 크게 우리 합독 합시다.

*이사야 26:3,
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하면 이이다.
-오늘 우리는 주님이 우리 인생을 지휘(指揮)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과 속도보다도 관계가 더 중요한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주를 신뢰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신지가 경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이 평강하고 평강하다는 말은 완벽한 평강이다. 퍼펙트 피스다.

II. 두 번째,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는 곳(He will).

-perfect peace, 누구를요? 심지가 경고한 자를 목사님 호롱불의 심지(心地)입니까? 그 심지가 아니고, 우리의 마음이 오늘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뜻을 깨닫고, 우리의 심령이 마음이 한결 같으면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켜주신다. 오늘 예배는 여러분들을 완전한 평강으로 지켜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이 민족을 그렇게 지켜 주실 줄로 기대하고 우리가 마음을 모아야 되는 것이 그러니까, 구약에 보면 도피성이 있어요. 도피성(逃避城)을 여러 곳에서 해 가지고, 정말 가장 불안한 인간들이 그 도피성에만 피해 있으면 보호해 주시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심지가 견고한 자를 견고한 성음, 의로운 나라에 대한 눈이 열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오늘 26장 3절의 말씀이 그대로 접목(接木)이 될 것이에요. 그대로 이 하나님이 세우신 완벽한 평강과 견고한 성을 도피성에 있으면 그 누구도 저와 여러분을 해칠 수 없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이게 확신이에요. 확신, 로마서 8장 31절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로마서 8:31,
31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오늘 이 말씀을 그대로 여러분들이 확고하게 받아들이기를 원합니다. 조금 더 깊이 설명하면 평강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한가, 주께서 세우신 견고한 성읍 때문에 우리를 공격(攻擊)하는 모든 것들이 무력화(無力化)된다. 그런 뜻이에요. 이걸 구체적으로 이사야 뒷부분에 이사야 54장 17절에, 참 놀라운 말씀이에요. 같이 보겠습니다.

*이사야 54장 17절,
17 너를 치려고 제조된 모든 연장이 쓸모가 없을 것이라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모든 혀는 내게 정죄를 당하리니...
-저는 이게 너무 좋은 거 있죠. 우리를 치려고 하는 모든 그 기구가 다 쓸모가 없게 되게 만들고, 우리를 대적하여 송사(訟事)하는 모든 혀들이 오히려 정죄(定罪)를 당하게 되겠다. 한국의 하나님과 기독교의 모든 복음의 능력을 함부로 폄하(貶下)하고 함부로 모욕(侮辱)하는 모든 혀를 주림이 처리해 주실 것이다. 오늘 여러분이 축복을 여러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견고한 성읍에서 평강의 평강을 미친 이유가 뭘까? 다시 한번 심지가 견고한 자가 있지만 3절 뒷부분에

*이사야 26:3b,
3b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다 알 수는 없지만, 주님과 나만이 아는 은밀한 감탄사를 가지고 우리가 주님을 끝까지 신뢰(信賴)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굳게 믿어 굳게 의지하면 폭풍 가운데서도 단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폭풍 같은 환경 생태계 가운데서도 심령의 평안을 유지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욥기 13장 15절에 같이 읽겠습니다.

*욥기 13장 15절,
15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네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리리라.
-무슨 말이냐면 욥기 이 말씀은요,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하겠다. 그 말이에요. 하나님의 이 은혜에 결박(結縛)돼 있어 가지고 하나님의 깊은 편광을 내게 체험되어 있어 가지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남들이 볼 때 참 어렵다. 아니 하나님의 처분이 어떠하든지 간에 나는 흔들리지 않겠다. 여러분 하나님의 처분이 어떡하든지 간에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겠다. 그럴 때 하나님은 이 민족을 ‘견고한 성읍, 의로운 나라’가 되게 해 주시는 것이에요.

목숨 걸고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결국은 평강의 편강이 되도록, 퍼펙트 피스를 완벽한 평강을 주실 줄로 믿는 것이에요. 오늘 이 마음을 여러분 변개(變改)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은혜가 우리들에게 있어야 되는데, 오늘 이 은혜가 우리만 있으면 안 되고 이런 은혜에 다 같이 참여하자고 우리 서로 서로 평강으로 초대를 해야 돼요. 여러분이 가는 것보다 또 사랑의 교회나 한국 교회가 하는 일마다 하나님께서 평강의 평강으로 지키시는 흔적(痕迹)이 나타나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2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2절에 뭐라고 했냐 함께요.

*이사야 26:2,
2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이다.
아멘 오늘 우리가 오픈을 하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무슨 뜻입니까? 여기에 의로운 나라라는 말은 나라 영토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민족 겨레의 백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라는 말은 오직 구원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다고 믿는 하나님의 지휘와 통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진 그런 민족과 겨레와 백성들이 들어올 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라는 것이에요. 신의를 지키는 겨레와 민족 백성의 이 의미가 오늘 우리에게 확인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런 은혜를 주실 때 4절에 뭐라고 말씀하느냐,

*이사야 26:4,
4 너희는 영원히 여호와를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주 여호와는 너희의 영원한 반석이 된다. 이것은 아까 창세기 11장에 내 이름으로 우리 이름을 내겠다는 바벨탑의 그 내용과는 너무나 대조(對照)가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제가 머무는 곳마다 인간의 교만(驕慢)이나 자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늘 주님의 평강이 우리 주위에 임해야 되는 것이에요. 주위가 바뀌어야 되는 것이에요. 평강으로 임하니까 먼저 개인적으로는 마음의 여유가 좀 생기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처분을 내리시더라도 주님과 나는 완벽한 이런 관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믿기 때문에, 제가 어디 갔다 오면 제가 얘기를 잘 안 하는데 이번에는 좀 스토리가 전부 롱 스토리예요. 지난 주간에 중앙아시아의 우리 탄탄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그다음에 타지키스탄, 그 다음에 키르기스탄, 그다음에 투르크메니스탄, 이거 한 번 듣고는 다 몰라요. 그다음에 옆에 아제르바이잔까지 이렇게 중앙아시아의 선교사들이 함께 300여 명 이상 모였어요.

우리 교회는 좀 신경을 써가지고 이번에 20여 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이 가 갖고 계속 섬기고, 또 저희 교회 목사님들 세 분이 가 갖고 거기에 선교사 자녀들, 고등부 중등부 주일 학교를 인도를 했어요. 뭐 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주일 학교 고등부 중등부 아이들이 어마어마한 은혜를 받았대요. 어제 어제 같은 경우 어제 이제 마지막 폐예배를 드리고 그 이스쿨 호수라는 우리 한민족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그 키르스키스탄의 이스쿨 호수 해석을 했는데, 거기서 이제 집회를 하고 카니발을 타고 이제 한 5시간 정도 이렇게 수도에 와 비행기를 타고 5시간 동안 오는데, 갑자기 날씨가 더워져 25도가 넘는데 차 안에 에어컨이 고장이 났어요. 땀을 팍팍 흘리면서 이제 와 가지고 또 거기서 이제 밤 비행기를 타고 한 1시간 정도 알마트라는 곳에 가가지고 알마트에서도 이제 또 이제 비행기를 타고 6시간 밤새웠어요. 근데 그 뭔가 이게 만약에 누가 와서 일해라. 그러고 뭐 이렇게 하면 인간의 일이라면 피곤한 일일 텐데, 오늘 아침에 그래도 주님 앞에 기도하면서, 주님 제가 자는 순간 주님은 나오셔서 행동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밀실에 들어가더라도 주님은 나오셔서 행동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생각하고 뭐 육신은 피곤하죠. 그런데 제가 한 번씩 얘기하잖아요. 은혜는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받는다고, 근데 오늘 1부 예배를 드렸는데 갑자기 쌩쌩하게 힘이 막 솟아나는 거예요.

2부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여러분 이게 하나님이신 어떤 특별한 평강이 있는 거예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다시요. 우리가 자는 순간 주님은 나오셔서 우리 대신에 행동하신다. 또 예수 믿지 않는 남편을 모시고 사는 우리 아내들 가운데, 그래도 좀 이게 그 남편이 모르는 평강이 있기 때문에 맨날 남편 술 마시고 밤 늦게 들어오고 말이지 밤 10시 11시 맨날 늦게 들어오면 그런 데로 들어오면 그래도 우리 마음의 평강이 있으면 어떻게 되느냐 남편 동지, 남편 아직 12시도 안 됐는데 벌써 들어오시느라고,,, 뭔가 마음이 있잖아요. 좀 여유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 아멘. 에 뭔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하나님의 평강으로 주님을 신뢰하는 하나님 백성들이 있는 그 단체나 그곳이나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을 바꾸는 거예요.

대한민국이 그 어려웠을 때, 대한민국의 참 자유의 가치를 이 나라에 처음 제대로 참자유의 가치가 뭔지 선포하는 데가 교회예요. 이 나라가 암흑 가운데 있을 때, 선교사님들이 들어왔고 근대 참 제대로 된 교육의 방향을 채워준 것이 하나님의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끼리 이 반도 안에서 갈등하면서 난리 칠 때 그래도 아니야. 세계를 향하여 글로벌 스탠다드를 가지고 지금 전 세계에 우리 성도 수당 선교사 파송률이 세계 1위에요. 대한민국이 그래갖고 오늘이 이만큼 된 거예요. 지금 지금 뭐 180개국 이상 전 세계에 지금 디아스포라 우리 교민들이 흩어져 있는데, 그 나라 비율로 보면 나라보다 우리가 거의 세계 제일 많이 디아스포라로 각 나라 흩어져 있어요.

숫자로 보면 중국보단 적지만 그러나 많이 흩어져 있고, 그다음에 우리 또 많은 인구의 거의 15% 이상이 나가 있으니까, 이것도 적은데 한국 교회가 선교적 마인드를 가지고 나갈 때, 여러분 거기서 수많은 일들을 하는데 세계 교회 갖고 제일 먼저 세우는 거 일본 사람들은 상사지사 세우고, 중국 사람들은 중국 식당 세우지만, 한국 사람들은 나가서 뭘 하는 거예요. 교회부터 먼저 세우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이민 사회 뭐야? 수많은 2세 3세들 가운데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 거예요. 그 정도가 아니라 오늘 이 자리가 서초동 안에 안아주시는 본당, 이 자리도 본래 서초동 꽃마을 여기 맨날 데모하는 곳이었어요. 대법원은 우리한테 감사해야 돼 이 데모하는 자리가 다 없어졌어요. 지금 여기가 견고한 성업 의로운 나라가 된 것이에요. 저 강남 예배당도 이번에 옛날에는 우리 마지노선이었어요. 저기가 강남 술집의 마지막 마지노선이었어요. 거기에 특새를 가면 특세 자체가 견고한 성읍이었고, 의로운 나라가 됐어요. 특새 들어 갈려면 우리 보통 평균 입장률 4대1 5대1 그러니까 새벽 2시 3시에도 막 뛰잖아요. 본당에 들어 갈려고 막 뛰는데 옆에 강남에서 밤새도록 술 마시고 말이죠. 술집에서 나온 조폭들이 사람들이 막 뛰니까 자기들도 막 뛰었어요. 옆에 조폭이 너 왜 뛰어 그러니까 나도 몰라... 그래서 막 뛰는 거예요. 뛰다가 우리 교회 안에 들어와서 예수 믿고 구원받고 말이죠. 이게 희한한 일이에요. 견고한 성읍, 의로운 나라가 된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보세요. 그 강남에도 보면 옛날에 우리 그 목욕탕 제일 목욕탕이 우리 은혜 채플 1500석으로 바뀌었고, 그 바뀌는 거예요. 맥주집 호프집 그 지하 그 술집이 800석짜리 교회로 바뀌고, 채플로 바뀌고 그래서 오늘 7절에 보니까 뭐라고 돼요. 7절을 또박또박 잘 보겠습니다.

*이사야 26:7,
7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판하게 하시도다.
길은 어떻게나 정직한 주께서 뭐예요?
-하나님의 백성들 의인을 통한 정직함이 첩경을 평탄케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시(City of God)시티 오브 갓, 기쁨과 정의와 평강과 화목과 소망이 생기는 것이에요. 대법원 앞에 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감사한 줄로 믿습니다. 제가 이 말씀과 연결해 가지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구절이 잠언 11장 11절, 시작

*잠언 11장 11절,
11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
-아멘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어떻게 된다고요. 지능하고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가는 곳마다 진흥 진정한 부흥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흥 아파트 이름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남이 있든지 말든지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옛날에 우리 진흥 아파트가 우리 교회 성지였어요. 지금도 진흥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이 여기 좀 오실 거예요. 무슨 말 우리 성도들 때문에 진정한 부흥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이 갖고 있는 기쁨과 평강과 화평과 소망이 막 뿜어져 나가니까 뿜어져 나가니까, 의인의 길은 좁고 협착하다 할지라도, 결국은 결국은 하나님께서 첩경(捷徑)을 평탄케 하시기 때문에 우리 앞에는 복병과 아주 음모가 있다 하더라도 그 음모와 복병들이 우리의 역할을 못하는 거에요. 결국은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의인의 정직한 자가 갖는 첩경이 평판케 하는 첩경이 있기 때문에 다시요.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을 해내려면 어떻게 된다고요. 진흥한다.

그래서 오늘 제가 여러분들 부탁하는 것은 이 예배를 드리고 나고 오늘 이 은혜를 받고 나가는데 이 은혜를 받는 것만 갖고는 2%가 모자라요. 여러분들이 가는 곳마다 무언가가 거기에 축복의 일이 일어나야만 되는 것이에요. 다시 성업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이 된다고 그랬어요. 의로운 나라 견고한 성업의 어떤 뭔가가 보여지는 것이에요. 저는 지금 아파트 몇 층에 사는지 말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예 저 같으면 9층, 10층이라 살아요. 근데 우리 아파트 15층까지 있어요.

런데 제 아파트 제 이 계단 이 제 아파트 열에 저는 이제 주로 걸어 올라가는데 다 보면 교패들이 많아 그러니까 사랑의 교회 교폐도 있고 뭐 또 이웃 교회 교패들도 있고 교패들인데 제가 그 교패를 오면 저 사람 왜 우리 교회를 안 나가고 저 교회를 나가나?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고,,, ‘주님 이 예수 믿는 집안에 이 집이 평강과 은혜를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그 간절한 마음을 갖는 거예요. 그러니까 옛날에는 여러분 그냥 스쳐 갔지만 여러분들이 이제는 교폐가 있는 집집 마다 여러분들이 축복을 하세요. 더 큰 은혜가 있도록 축복을 하세요. 그리고 혹시 교폐가 없는 집들은 올라오면서 주님 이 집안들이 은혜를 주시되 특별히 가장 큰 은혜인 예수님 믿게 알려주십시오. 그러니까 정직한 자의 축복이 그 집을 흥왕(興旺)하게 시켜주는 것이 어떤 집은 보면 이런 거 있죠. 우리 아이가 있으니까 벨을 놀리지 말고 노크를 해 주세요. 이런 집도 있어요. 그러면 주님 이 아이가 이 집안의 아이가 앞으로 큰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알려주십시오. 이 아이가 정말 주님께 쓰임 받게 해달라고,,, 그런 기도를 하면서 아파트를 오르내리면 벌써 여러분들의 삶을 통하여 모자라는 2%가 해결이 되는 것이에요. 작년 10월 27일 날, 10월 27일 날 저희가 정말 차별금지법 반대하면서 한국 교회나 한국 사회가 하나님 없는 나라 되지 말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나라가 되게 해 달라고, 그 증거가 뭐냐 여러분 차별금지법을 동성애 법이라는 건 뭡니까? 인간이 내가 내가 내가 주인이 되겠다는 거 아니에요? 창조주 하나님의 질서를 거스른다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는 그 레인보우 무지개, 자체는 좋은 거지만 그게 의미하는 바가 정말 조심스러운 거 아닙니까 저 공산주의 나라는 핵심이 뭐예요? 공산주의는 하나님 없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있는 도성으로 만들어야 돼. 그래서 우리는 국가주의 전체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싫어하는 거 아니에요. 대한민국이 이런 면에 있어서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다음 더 중요한 거 하나님 없다는 저 공산주의 유물론 사상이 감히 발도둑이지 못하게 해달라고 했잖아요. 그게 이 나라를 지키는 거예요. 그렇게 마음을 먹는 그러니까 그것이 ‘견고한 성읍과 의로운 나라’가 되는 것이에요. 제가 중앙아시아를 가보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거기에 기독교로 개종하는 순간 이슬람이 있다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순간 그 공동체에서 다 퇴출이에요. 직업도 사라지고 가정으로부터도 다 퇴출 되고,예수 믿는 순간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죽음도 당하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그래서 제가 마음에 이번에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무슨 생각을 드렸냐면 하나님 아버지 구약의 도피성이 있듯이, 이번 10월 27일 날 세계복음주의연맹총회 이후에 세계복음주의 교회가 똘똘 뭉쳐 가지고, 예수민이기 때문에 이슬람 공동체에서 아픔을 당하고 쫓겨 나가고 심지어 죽음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에게 도피성을 건설하게 하여 주십시오.

각 나라마다 그런 간절함과 기도의 제목이 생기는 것이에요. 그게 불가능한 게 아니고 실제가 되는 것이 저희가 첫 번째 특새 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 우리가 뿜어져 나오는 편광과 기쁨과 감사함을 가지고 중앙아시아에다가 우리가 명문학교를 하나 세웠어요. 그때 특새에 우리가 헌신해 가지고 그게 지금 20년이 지나 21년이 지나갔고, 지금 키르기스탄이라는 곳에서 최고의 명문 학교가 됐어요. 유치부도 줄 서 있고, 유치부 한 뭐 한 수십 명 그다음에 장애인 학교 장애인 학교 교사까지 쳐서 100명, 그다음에 1학년부터 11학년까지 한 400명에다가 교사들 100명이라고 한 6, 700명의 커뮤니티가 생겨 갖고 그 지역에서 아주 명문 학교가 됐어요. 거기가 어떻게 보면 제가 볼 때 견고한 성읍, 의로운 나라, 평강의 시티 오브 가드가 된 것이에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한국 교회가 이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한국 교회가 견고한 성업 의로운 나라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그리고 심지어 세계복음주의 총회 이후에 이슬람 지역에서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풀어주셔 가지고 의로운 나라 견고한 성읍, 거룩한 도피성이 세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이거는 시티 오브 가드가 어떤 지역만 이것만 되는 것이 아니라, 또 제가 하나 기도하는 것은 우리나라 기업도 그렇게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기업도 시티 오브 가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지금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있지 않습니까? 옛날에 한국의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유명한 장로님이 기업하신 장로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저한테 부탁을 했어요. 목사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기업도 잘 돼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조선업을 지켜주시고 it와 반도체를 지켜주시고, 자동차를 지켜주시고, 중소기업도 지켜달라고 k컬쳐도 지켜달라고,,, 누가 뭐라든가 제가 그때 우리 모두가 열심히 기도해 지금 조선이 1등 하고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대신 그 기업들이 솟은 산이 아니라, 견고한 성읍이 될 수 있도록 인간이 하는 솟은 산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견고한 성읍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패스트 팔로워로서 따라가기만 했지만, 이제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세계 교회를 세계 복음주의 교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포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이 뜻깊은 날 여러분 주일 예배에 나오셨습니다. 이제 나가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국 교회가 하나님 주시는 이 능력 이 말씀을 다시 회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 듣고 그냥 말씀 듣고만 끝나면 안 되고, 오늘 이 말씀을 가슴에 간직해 가지고 오늘 지하철을 타시든 버스를 타시든 차를 운전하시든, 탄핵 정국 이후의 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 견고한 성읍, 의로운 나라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 탄핵 정국 이후에 이 어려운 과정을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대반전으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이런 사명을 가지고 우리가 발을 딛는 곳마다 운전해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바라고 여러분들 때문에 우리 주의가 평강의 평강으로 이를 수 있도록 하나님 여러분들을 사명자로 은총의 통로로 사용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당뿐만 아니라 오늘 방송으로 듣는 모든 분들, 별관에서 또 여러 sns로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에게 예배만 드리고 나가면 안 되고 나머지 모자란 2%를 오늘 이 기도를 통하여 우리 주위를 향한 우리 모두가 다 정직한 자가 축복하는 진흥, 진정한 부흥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체험되기를 소망합니다.

♣요약
인간이 중심이 된 인본주의 세상에서 인간의 정의와 자기 추구를 일삼는 그런 허망한 바벨탑을 쌓다가 경쟁으로 지치고 불안과 긴장으로 안절부절 하다가 흙더미에 넘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인생들이 오늘 말씀으로 보혈 복음의 능력 때문에 교회와 가정과 일터와 도시가 변화되어야 한다. 우리 개인과 사랑의 교회로 인하여, 한국 교회로 인하여 서울이 영적 청정 지역이 되고, 우리를 통하여 전 세계 대륙마다 견고한 성읍, 거룩한 도피성이 세워지는 축복까지도 허락받는 주님의 귀한 자녀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 없이 인간이 주인인 솟은 성을 추구하다가 지쳐 쓰러질 때, 날마다 심지가 견고한 믿음을 새롭게 하여, 폭풍 속에서도 완벽한 평강으로 인도되어, 우리 영 가족 공동체가 영원한 반석 이신 하나님을 굳게 믿을 때, 살고 있는 동네와 일터는 거룩한 성지가 되고, 대륙마다 강력하고 거룩한 도피성이 세워지기를 간구하며, 우리 사랑의 교회의 눈물의 기도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첩경을 평탄케 할 때, 이 겨레와 민족이 견고한 성읍, 의로운 나라로 진흥하게 하기를 소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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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사람(2025년 3월 17일)-<네 신을 벗어라를 읽고...>

'네 신을 벗어라' 이 책은 교회에서 설교 중에 목사님께서 잠깐 동안 안내하신 책이라 한 번 읽어보고 싶었다. 마침 중고서적 대학로에 나와 있어서 아주 저렴하게 바로 구입했더니 감사하게 당일 책이 도착했다.

이 책을 보면은 정신적 성장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책으로 보였다. 우리 들에게 자기 성찰과 내면의 변화를 촉구하는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 같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신을 벗는다"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익숙한 사고방식과 기존의 틀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함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정말 신묘막측 하심을 확신하게 더욱 깨닫게 되었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개인의 성장, 관계, 사회적 구조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고, 저자는 인간이 가진 선입견, 고정관념, 두려움을 내려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며, 삶을 좀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 바라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이 책의 주요 내용과 핵심 메시지는 자기 성찰과 내면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쌓아온 경험과 지식이 때때로 우리의 시야를 제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은 정말로 당신만의 생각인가?"

"혹시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이러한 질문을 통해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또한 고정관념과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이 책은 사회적 규범과 고정관념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제한하는지를 분석하며, 그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에 맞춰 살아가지만, 그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 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우리가 직업, 인간관계, 성공의 기준을 고정관념에 의해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러한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스스로를 재정의 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그리고 두려움 극복과 용기 중에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종종 두려움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타인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 익숙한 것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이 우리를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두려움을 직면하고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안한다. 자신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그것을 마주하라고 하며 두려움을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찾아야 한다고 한다. 작은 도전을 통해 점진적으로 변화하여야 하며. 또한 관계 속에서의 자유와 책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기대 속에서도 어떻게 자유를 찾을 수 있는지를 다루고 있고, 때때로 타인의 기대에 맞춰 행동하고,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한다. 하지만 진정한 관계란 상대방이 원하는 모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본질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책임도 중요한 요소로 다룬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선택을 돌아보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본질적인 삶을 위한 태도로
이 책은 마지막으로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종종 성공, 물질적인 것, 외적인 평가에 집중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진정한 삶을 위해 필요한 태도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제시된다.

현재의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 본질적인 가치를 찾고 그것을 따라가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태도를 갖춘다면 우리는 더 의미 있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하니 이 책을 읽은 느낌과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이다. 나는 종종 기존의 가치관과 규범에 따라 움직이며,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에게 "네 신을 벗어라"고 말하며, 그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또한, 책의 문체는 철학적이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며, 마치 친한 친구가 조용히 조언해 주는 듯한 분위기로,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임에 틀림 없다. 단순한 이론이나 교훈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례와 이야기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두려움을 없애려 하지 말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우리는 보통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두려움을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그것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라고 말한다. 이는 기존의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것 같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내 신을 벗고 있는가?"
즉, 나는 정말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사회적 기대와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은  자기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싶은 사람이 읽으면 더욱 좋을 거 같다.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회적 기대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두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단순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철학적 깊이가 있는 책이라 여겨졌다. 따라서 빠르게 정답을 찾고 싶은 사람보다는, 천천히 곱씹으며 읽고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더 적합할 거 같다.

 "네 신을 벗어라"라는 의미, 책의 제목인 네 신을 벗어라 단순한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의 태도를 바꾸는 깊은 뉴 웨이다. 우리는 종종 익숙한 것, 안전한 것, 타인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에게 그 틀을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나는 지금 진짜 나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롭고 본질적인 삶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네 신을 벗어라."
이 한마디가 나에게 던지는 울림은 크고도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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