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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차 봄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주후 2026년 4월 11일)-여섯째 날
제목: "갑절의 역사"
말씀: 열왕기하 2:1-12

설교자: 크리스찬 소니아 목사님(루마니아호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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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왕기하 2:1-12,
1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4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7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8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0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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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믿음이 어떻게 시작되고, 시험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며, 결국 삶 속에서 어떤 열매로 나타나는지를 단계적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이 신앙생활 가운데 힘들고 지루함을 느낄 때가 오히려 믿음이 더 깊어질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한다. 신앙이 편안할 때보다 오히려 흔들리고 답답한 순간에, 사람은 더 깊은 믿음을 갈망하게 되고 그 끝에서 새로운 차원의 믿음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 속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되고 자라난다.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이 과정을 전달하며, 믿음의 시작은 언제나 현실 고민과 갈등 속에서 태어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믿음이 시험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다룬다. 믿음이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실제 상황 속에서 검증되고 단련되는 과정이라고 한다. 사람은 여러 가지 시험과 도전을 겪으면서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믿음은 더 견고해진다. 이러한 성장은 단순히 참고 견디는 차원을 넘어, 상황에 적응하고 하나님을 더 깊이 의지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즉, 믿음은 고난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드는 통로가 된다.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더 긴밀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성공과 그 결과에 대해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은 세상적인 성취가 아니라, 믿음이 실제 삶 속에 뿌리내리고 열매 맺는 상태를 의미한다. 믿음이 성장하면 그것은 단순한 생각이나 감정에 머물지 않고, 개인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신앙은 삶과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통합되는 것이다. 믿음의 힘이 우리의 선택과 태도, 삶의 방향까지 변화시킨다고 하며, 이러한 변화가 진정한 믿음의 결과라고 말한다.

결국 강력한 믿음이란 처음부터 완전한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갈등과 시험, 그리고 지속적인 성장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고, 우리의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실제적인 능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제 24차 봄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주후 2026년 4월 11일)-여섯째 날
제목: 
말씀: 요한복음 14:12-18, 26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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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12-18, 26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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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2월 01일)-로마서 강해(2)
제목: "복음의 능력을 받아야 산다“
말씀: 로마서 1:15-17
사회: 임상규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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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5-17,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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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대가 고백한 우리 영광의 주님을 우리의 생명과 소망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제목을 ”복음의 능력을 받아야 산다“고 그랬는데 로마서 강의 두 번째 여러분 은혜를 받아야 삽니다. 여러분의 없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은혜를 받아야 산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능력을 받아야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능력을 받아야 산다는 말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복음의 능력을 받아야만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오늘 지난번에 말씀한 대로 ‘선지적 사도성’을 가지고 우리가 통찰력을 갖고 또 추진력을 가지고 살아계신 이 말씀을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로마교의 성도들은 복음을 이미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제가 질문하는 거 보면 아실 거예요. 로마교의 성도들은 복음을 이미 안 성도들이었어요. 제 얘기가 아니고 1장 6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1장 6절에,

*로마서 1:6,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이미 복음을 알았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복음을 이미 알았던 그런 로마 교회 상도들에게 바울이 다시 복음 전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1장 15절에 뭐라고 나와 있느냐.,

*로마서 1:15,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그랬어요. 바울은 이미 복음을 알았던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다시 복음을 전하기로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첫 번째 생각할 거예요. 우리가 지금

I. 왜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하나?

-왜 로마 교회 성도들은 왜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하나? 오늘 본문의 배경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로마 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우지 않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로마 교회는 어떻게 태동이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2장 10절에 보면 무슨 내용이 나오느냐 하면, 오순절 성령 강림의 그 놀랍고도 위대한 사건이 있었을 때에

*사도행전 2:10,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다음에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1년에 1번씩 예루살렘에 가가지고 이제 오순절을 지키는데 절기를 지키는데 유월절이나 이래 지키는데 그중에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들이 로마로부터 와가지고 오순절 성령 강림의 은혜를 받고 성령 받아 가지고, 로마에 가서 교회를 세운 것이에요.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오늘 이 로마로부터 로마에서 교회를 세우고 난 다음에 한 20년쯤 지났어요. 그 20년쯤 지난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복음을 듣고 복음을 알고 로마 교회를 세우고 로마 교회 생활을 했는데 20년이 지나면서 이게 희석이 되고, 약화가 되고 또 그 당시에 로마가 전 세계 가장 강력한 천조국 가장 강력한 세계 제국이었기 때문에 로마의 세속 문화가 굉장히 강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도 모르게 로마 교회 성도들이 로마서 13장 13절, 14절에 오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로마서 13:13-14,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러니까 당대에 로마 제국의 세속적인 문화가 예수 믿는 사람들께 그대로 임해 가지고 보니까 방탕하고 오염되고 그다음에 좀 성적으로 문제가 많고, 특별히 다투거나 시기하는 갈등과 충돌이 있었어요. 무슨 말이냐면 로마교회는 이제 바울이 말씀을 쓸 때가 로마교회 세우고 난 다음에 몇 년쯤 지났다고요? 20년쯤 지났어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AD 49년에 글라우디오 황제라고 있어요. 클라우디우스라는 발음을 영어로는 그렇게 하는데,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뭐라 그러냐면,

*사도행전 18:2,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오늘날 말로 어디예요? 이탈리아어로부터 왔다 했어요. 왜냐하면, AG 49년에 글라우디오라는 황제가 로마에 있는 유대인 추방력을 내린 거예요.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다 가라. 그러니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자고요.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추방을 하니까 로마인 출신 그리스도인들만 남아 갖고 신앙생활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다시 한 5년쯤 지나가지고 추방 내렸던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로마로 가게 됐어요.

그래서 오늘 여기는 이탈리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고린도에 가가지고 바울을 만났거든요. 그런데 그 고린도에서 이 로마서를 썼거든요. 그러니까 이 바울에게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은 다시 돌아갔는데, 유대인 출신들이 돌아가고 거기에 남아있던 로마인 출신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이런 데 서로 화합이 잘 안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유대인 출신들은 열심히 하려고 그러고 거기 출신들은 뭐냐 하면 좀 이렇게 메가리가 없고 그리고 서로 갈등과 충돌이 있는 거예요. 교회가 좀 약화되고 교회가 침체가 되고 그런 일들이 있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오늘 바울이 내가 너희에게 다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다. 자 이게 오늘 우리하고 무슨 상관 있습니까?

여러분들이나 저나 신앙생활을 10년, 20년, 30년, 40년 처음에는 눈물 코 흘리면서 주님 사랑한다고 주님 사랑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교회에서 조금 이제 신앙성 오래 한 분들은 이 인간들이 모인 곳이니까,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에 시험 들고 이래가지고 점점 경직이 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누가 건드리기만 하더라도 열받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 젊은 좀 나이 든 분들은 그러고 젊은 분들은 뭐가 있어도 이렇게 막 막 가슴 끓어오르고 또 프레시하고 또 열정적으로 하는 그런 것들이 없고 그냥 냉소적이야. 뭐 되겠나? 그러면서 무슨 무슨 이래서도 아이고 뭐 이런 식의 거기에 무슨 창조적인 일이 일어나고,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또 교회나 하나님의 나라가 막 세워주고 하는 그런 일이 잘 안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시대에도 복음의 능력을 그냥 껍데기로만 아는 종교인들이 많은 거예요. 제가 교회 안에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그래서 제가 교회 안에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뭐냐면,

*명목상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는 있지만, 복음 안에는 없는 분들이 오늘 한국 교회 안에 많이 있다.
-이 말이에요. 오늘 여러분들은 교회 안에도 있고 복음 안에도 있기를 바라는 것이 그런데 교회 안에는 있지만 복음 안에는 없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가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한다. 어떻습니까? 다시 복음을 들어야 돼.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 나름대로 성향이 있잖아요. 그것이 뭐냐 하면 우리 인생에 복음의 거울을 자주 닦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복음의 거울에 인간적인 먼지와 세상의 먼지가 쌓여 가지고 우리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없도록 만드는 겁니다. 인간적인 먼지가 뭡니까?

자기 자기 체면, 신앙생활도 자기 의, 자기 경험, 자기 프라이드, 이게 인간적인 인간적인 먼지들이고 세상적인 먼지가 뭡니까? 유혹받고, 오염되고, 재물과 쾌락과 탐욕 이런 것들이 다 세상적인 먼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고 오래되다 보면 이런 내용들 이런 것들이 우리로 알고 메너리즘에 빠지게 하고, 무감각한 신앙으로 가게 하고, 십자가를 들어도 별로 감격이 없고 성찬에 참여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심지어 죄에 대해서도 무감각이 좋고 순종도 나하고 별 관계가 없는 것 같고, 그러니까 이런 우리의 상황 가운데 오늘 우리 찬송 가운데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의 흘린 보혈의 피로서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십시오.’

내가 매일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내가 매일 참 복음 앞에 나를 접목하기를 원합니다. 자 제가 로마 교회가 왜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하는지 오늘날 성도들이 왜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하는지 말씀을 드렸어요. 그렇다면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가, 복음이 무엇인가? 그랬을 때 우리는 흔히들 복음은 예수 그로서의 십자가 죽음 부활로 말미암은 구원이다. 우리가 다 알고 있어요. 옛날에는 이런 내용들을 가지고 설명을 하면 사명이라든지 이런 걸 하면 왠만하면 다 구원받고, 하나님 앞에 예수님 영접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요즘은 다 무뎌가지고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이상한 information을 잘못 들어 가지고 머리가 오염이 돼 가지고 이런 복음의 내용을 설명을 해도 감동이 없는 거예요. 와닿지가 않는 거예요. 서구 사회는 2천 년 내려오는 기독교 문화라는 게 있는데, 우리 한국이나 아시아 같은 경우는 이방 나라 아닙니까?

소위 페이건 소사이어티에 우리는 무속, 불교 그다음에 뭐 무슨 무슨 뭐 유교 뭐 이런 여러 가지들이 있어가지고 오늘 우리에게 이런 복음의 능력, 복음의 어떤 이런 내용들이 전해지더라도 이건 막 마음에 와 닿질 않는 거예요. 바울 시대도 마찬가지, 로마 시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복음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오늘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로마서 1:16,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 뭐가 된다고요? 능력이 된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는 복음의 내용과 함께 복음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복음을 define, 복음을 정의하라 그러면 the definition을 내리라 그러면, 복음의 정의가 뭐냐? 죄송합니다. The gospel is the power of God.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 말이에요.

이 능력이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와 닿아야 된다. 이 말이에요. 그리고 이 능력은 16절 뒤에 보니까 이 복음은 모든 모든 믿는 자에게 그랬어요. 모든 믿는 자에게. 모든 믿는 자라는 말은 인종이나, 교육이나, 계층이나, 지역이나, 가족 배경이나, 종교적 체험, 도덕성 이런 관계없이 모든 믿는 자에게 따라서 복음의 능력이요. 복음의 능력이 실제적으로 와닿지 않는 분들에게는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오늘 여러분의 고백으로 와닿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교회 역사적으로 마르틴 루터에게 오늘 이것이 진짜 복음의 능력이 되었어요. 이 말씀을 루터가 발견하고 난 다음에 완전히 뒤집어져 버렸어요. 카톨릭 수사로 머물 생각이 더 이상 없었어요. 이 복음의 능력이 그의 영혼에 불타오를 때에 복음의 능력에 촛불을 들고 외쳤습니다. 그게 뭐냐? 17절 뒤에 오직의 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17b,
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직 그래서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 다 변해도 오직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기억나시죠? 오직 의는 믿음을 그래서 솔라 피데 오직 의는 믿음으로만 솔라 스크립트라, 말씀으로 특별히 오직 복음으로 그리고 이 말씀이 로마서 전체의 핵심이 되고, 이 말씀을 붙잡아야 로마서 전체에 그림이 들어오고 그러니까 16절, 17절에 이 말씀 우리가 익숙하게 알지만 신약을 통틀어서 정말 강력하고 통찰력 있는 구절 중의 하나라고 믿습니다. 다시 복음의 능력이다. 하는 말은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 말을 우리가 구체적으로 이해를 하면 뭐냐 하면

*복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과 같다고 보았다.
-복음은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과 같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거예요. 조금 세게 말하면 로마서의 나머지 구절들은 이 구절들에 대한 설명을 많이 하고 있는 거에요. 이게 바울 신학의 정수가 되고 이것 때문에 바울이 그토록 로마에 가고 싶어 했어요. 바울은 이 능력이 있으니까 그다음 나타난 자연스러운 결과가 16절 앞에,

*로마서 1:16,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하고, 선제적 사도 성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거예요. 자, 복음 전도자로서 바울이 당한 여러분들의 생애를 이해를 하면,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접목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고문도 당하고 아테네에서는 아크로폴리스에서 수많은 철학자들과 논쟁도 하고, 고린도에서는 얼마나 많은 박해와 핍박을 받았는지 몰라요. 루스트라 성에서는요.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내어버려질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고, 이런 상황에서도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강력하게 복음을 뭐하지 않는다고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여러분 로마는 당대 최대의 제국이었고, 황제 숭배의 본향이었으며, 높은 수준의 철학과 인문학과 음악의 도시였고 지적, 우울감의 본산지였습니다. 가장 강력한 권력과 힘, 전쟁의 HQ, 헤드쿼터, 본부였어요. 그 시대에 천조국이었어요. 모든 길은 오죽하면 로마로 통한다고 그랬겠어요. 위대한 도시였어요.

그 가운데서도 바울은 사람들의 눈앞에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죄수복을 입고 로마로 갈 때도 그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한 줄을 확신합니다. 왜 부끄러워하지 않았을까요? 왜? 죄수복을 입고도, 바울은 약해지지 않았어요. 이유가 뭐예요? 복음 안에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강력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로마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지적으로 우울하든 얼마나 똑똑하든 얼마나 대단하든 상관이 없다. 복음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자 그래서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그 다음에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복음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다. 구원을 정의하겠다.

여러분, 과학으로도 타 종교로도 도덕으로도 교육으로도 철학으로도 어떤 것으로도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 이 구원을 내가 우리 다 안다고 그러지만 이 구원의 의미는 우리가 구원 반대 이 정도가 아니라 이 구원의 의미는 현재의 삶에 능력을 주고, 우리의 미래는 선제적 사도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이 구원 안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여러분 우리 기독교에만 천국과 지옥의 문제를 확고하게 얘기합니다. 타종교도 얘기하는 것 좀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강력하게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기 때문에, 타 종교는 여기에 대한 해답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는 침묵해버리는 것이에요. 우리는 복음을 통하여 확실한 구원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능력은 차별이 없어요. 뭐라고 되어 있느냐. 헬라인에게 또 유대인에게, 16절 뒤에 보니까,

*로마서 1:16,
16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무슨 말이냐? 헬라인은 이방인을 통칭해서 말하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로 말하면 복음은 차별이 없다는 뜻인데 인종, 교육, 나이, 수입 배경, 종교적 취향 어떤 조건에도 상관없이 복음은 차별 없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차별 없는 능력이 여러분들에게 임하기를 바라고 이것이 여러분들의 것으로 깨달아지고 여러분들의 것으로 맞춤형으로 확인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한다. 복음은 능력이 있다. 그랬는데 이것이 여러분들과 무슨 상관이에요? 오늘 이 내용이 여러분들의 복음이 돼야 되는 것이에요.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들 각자의 복음이 돼야 되는 것이 무슨 말이냐면 오늘 바울의 복음을 설명할 때 로마서 1장 1절에 뭐라고 얘기하느냐, 이렇게 이 복음을 하나님의 복음이다. 그렇게 얘기해요.

*로마서 1:1,
1 하나님의 복음,
*로마서 1:9,
9 그의 아들의 복음
-그의 아들의 복음이다. 이런 얘기예요. 그런데 이 하나님의 복음과 그의 아들의 복음이 나중에 2장에서는 뭐라고 되어 있느냐? 2장 시작.

*로마서 2:16,
16 나의 복음.

*로마서 16:25,
25 나의 복음
-나의 복음이다. 그다음에 또 보니까 16장에도 보니까 바울이 복음을 나의 복음이라 그랬어요. 그러니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 여러분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있는 복음이 할아버지의 복음이 아니고, 우리 순장님의 복음이 아니고, 우리 어떤 중직 자의 복음이 아니고, 목사의 복음이 아니고, 여러분의 복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나의 복음이 되길 원하는 것이에요. 나의 복음이 될 나의 복음, 그의 아들의 복음. 그다음에 하나님의 복음으로 끝나면 안 되고 이것이 나의 복음. 바울이 그걸 나의 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왜 그렇습니까? 바울이 이 복음이 개인적인 능력이 돼 가지고 이 복음이 그의 삶 전체가 그의 존재를 사로잡는 삶의 고백이 되었기 때문에... 무슨 말이냐? 바울에게 있어서 그의 삶 자체가 복음으로만 설명될 수 있고 복음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리면 그는 텅 빈 존재일 뿐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의미에서 나의 복음은 나의 인생이 걸린 복음이요.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복음을 의미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제가 부탁하는 것은 저나 여러분이나 저는 불타는 사역자로 섬기지만 우리는 일생의 사명을 우리 여러분의 삶을 여러 가지 영역에서 직업을 갖고 살고 있지만 어떤 직업을 갖든 어떤 상황이든 상관없이 저와 여러분의 일생이 복음으로만 설명 되어지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에요. 복음으로. 이것은 우리가 와닿아야 돼요. 이것이 나의 복음으로 와닿아야 돼요.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리까지 가야 되는데 제가 이제 좀 해봤어요.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면 나의 실패, 나의 과거, 나의 상처까지도 이 복음의 능력 아래 둘 수가 있는 것이에요. 두 번째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면 더 이상 세상에 주는 수치는 나의 최종 언어가 아닌 줄로 믿습니다.

II.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면 더 이상 세상이 주는 수치는 나의 최종 언어가 아니다.

III. 이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면 사람들의 어떤 비웃음과 조롱보다도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기 때문에 복음을 조금도 부끄럽게 부러워하지 않는 줄로 확신하는 것이다.
-나의 복음으로 부부싸움을 가열차게 하더라도,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면 다시 회복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 복음이 엄마의 복음이 아닌, 아버지의 복음이 아닌, 할아버지의 복음이 아닌, 믿음 좋은 분들의 복음만이 아닌, 이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여러분의 정체성이 어떻게 되느냐, 여러분들 앞으로 이메일 번호를, The Gospel org, The gospel kim. org, the gospel park.com, 이렇게,,,.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바울이 이 복음을 나의 복음이라고 불렀더니, 사실 하나님의 복음, 그리스도의 복음인데 이게 나의 복음으로 불렀더니, 사실 때문에 가슴이 너무 떨렸어요. 가슴이,,,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바울처럼 나의 복음으로 부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여러분과 저에게 복음이 뭡니까? 물론 복음은 하나님의 복음이요. 그의 아들의 복음이지만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오늘 이 시점에서 저와 여러분에게 나의 복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에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 나의 복음으로 무장하고 로마서의 산을 올라가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고봉으로 올라가야 되는 것이에요. 나의 복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사랑의 교회, 아니 한국 교회 성도들이 이 복음을 나의 복음으로 무장하고 한 분, 한 분이 고백할 수 있다면 한국교회는 소망이 있는 것이요, 오늘 여러분들이 나의 복음으로 외치고 선포할 수 있다면 말씀을 강요하는 저로서는 이것보다 더 기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어요? 그러니까 이 복음이 이 나의 복음으로 고백하는 그 순간 무슨 일이 나의 정체성이 확인되는 것이에요.

우리가 아까 말한 대로 나의 복음이 되면 더 이상 세상이 주는 수치와 나의 과거, 나의 상처 다 복음 안에 두기 때문에 여러분의 정체성이 복음 안에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세상이 나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피의 복음이 나를 판단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복음적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은 주님이 나를 판단하시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세상 적으로 우리는 실패자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에요. 복음 때문에, 우리 모두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나의 복음이라는 목걸이를 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값진 보석으로 만든 명품 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나의 복음이라는 목걸이를 그 명품 목걸이보다 더 큰 자랑으로 당당히 드러내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나는 이 십자가 이 복음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 이유는 십자가의 복음이 바울의 정체성을 완전히 바꾸는 능력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바울 빼기 바울 마이너스, 복음은 뭐가 되는 거예요? Nothing이에요. 바울 마이너스 복음은 제로가 되는 것이에요. 오늘 여러분들의 이름, 여러분들이 땡땡 빼기 그 다음에 복음은 제로가 돼야 되는데,
◎ 바울-복음=0
-안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 땡땡 빼기. 복음이 너무 많아요. 너무 많아, 여러분의 이름 빼기 복음이 새로운 인생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이거는요. 어떻게 보면 압도적이에요. 어떻게 보면 아주 무시무시한 방정식이에요. 바울의 바울이 만든 복음 방정식이라고 난 다른 거 외에는 알기를 원치 않는다고 그랬으니까 기본적으로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저와 여러분 모두는 강력한 복음 방정식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복음으로만 우리가 판단 받기를 바라고 우리의 정체성 복음을 통해서 선포되기를 바라고, 우리의 정체성 복음으로 평가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는 실패자가 없는 것입니다. 나의 복음으로 다시 무장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저는 복음 다시 들어야 되고 또 뭘 말씀을 드렸습니까? 복음은 능력이고 그리고 이 복음이 나의 복음이 돼야 될 때 이럴 때 나타나는 결과와 현상이 있습니다. 어떤 현상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니까 실질 능력이 나타났는데,

IV. 능력을 받음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

-로마서 1장 15절 16절에 17절에, 이 복음의 능력에 대한 내용이 다시 한번 능력에 대한 복음의 능력이라고 그랬어요. 로마서 15장 18절 19절에, 이와 같이 다시 한번 설명이 되고 있는데, 로마서 15장 18절, 19에 보겠습니다.

*로마서 15:18-19,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본당 별관 방송 우리 모든 SS 여러분들 크게 합시다. 19절 다 함께요.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누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선하였노라. 아멘
-바울에게서 복음 빼면 제로인데 바울에게서 복음의 능력으로 나타나 가지고 그것이 말과 특별히 행위로 표적과 기사와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고 이것이 온 땅에 펼쳐지게 되는데 소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동부 유럽, 유럽까지 조세 일누리곤은 지금 알바니아, 끝까지 이것이 편만하게 펼쳐졌노라. 할렐루야, 복음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통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이 편만하게 오늘 이 자리까지 펼쳐진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얘기할 때, 예수님의 사익은 능력이 같이 따라간다. 마태복음 12장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2:28,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실질적으로 삶의 현장 가운데 귀신 들린 자가 쫓겨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복음의 능력이 되기 위해서 복음이 능력 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귀신을 쫓아낸 것 같은 그런 은혜가 우리 가운데 체험돼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제가 이걸 설명하기 위하여 좀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한 10여 년 전에 OEC International이라는 세계적인 보험단체가 있는데, 거기에 ‘딕 힐리스’라는 책임자가 있었어요. 이분이 중국에 선교를 하러 갔어요. 어느 날 중국 군인이 아내를 데리고 이 디킬리스 선교사님이 온 거예요. 보니까 아내가 귀신이 들린 거예요. 제가 말씀드리지만 정신병 들린 사람은 정신병원에 가면 되고 귀신 들린 자는 쫓아내야 되는 것이에요. 그런 게 있어요. 그런 게 있어요. 그러면서 그 군인이 귀신들 아내를 데리고 오면서 자기 너무 간절한데 자기가 듣기로서는 기독교는 능력이 있다. 예수님은 능력이 있다. 또 복음은 능력이 있다. 이걸 제가 들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선교사님이 고쳐주세요. 이 귀신 문제를 아내의 귀신을 쫓아내는, 귀신을 쫓아내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 선교사는 미국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이런 소위 귀신과 귀신의 능력과 부딪치는 귀신들, 자를 쫓아내는 이런 현장을 별로 체험을 한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게 익숙하지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복음의 능력이 있어. 귀신도 예수님 쫓아낸다고 그랬는데 바울도 실질적으로 말과 행동, 표적과 기사를 가지고 쫓아낸다고 그랬는데, 그래서 선교사 부부가 한번 해보자고 그랬어요. 손잡고. 그래서 자기 부부만 하면 좀 약한 것 같아갖고 중국 성도들 가운데 믿음 좋은 기도 많이 하는 여성도 한 분 모시고 셋이서 함께 기도한 거예요. 기도하면서 귀신 쫓아내려고 막 기도를 하는데, 귀신들은 그 여자가 팔짱을 끼고 있잖아요. ㅎㅎ~ 기도하는 그 선교사님하고 선교사님을 계속 쳐다보더래요. 쳐다보면서 조롱을 하는 거예요. 무섭게 기도를 하면 고대로 따라하고 너희들은 능력이 없어 그러대... 그리고 너희들은 안 돼 그러더래. 그리고 기도하는 말을 따라 하면서 조롱했다고 네가 무슨 능력이 있냐. 그럴 때 선교사님의 글에 이런 글이 쓰여져 있어요. 우리는 귀신이 조롱하는 그 고통 가운데서 성경을 읽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핵심 성경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이걸 읽으면서 계속 반복을 하면서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복음 찬송을 하고 이렇게 하는 가운데 갑자기 그 선교사님의 마음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하시고 복음의 능력이 있는데, 이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이 귀신 들리고 이 여자를 창건 아이 악한 귀신아, 예수 그리스 여러분 명하노니 나가라 어떻게 됐겠어요? 그 순간 귀신이 떠나가 버렸어요. 할렐루야!!! 떠나버렸어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허깨비를 붙잡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아는 사람들이에요. 복음의 능력을 아는 정도만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이 삶의 현장에서 접목이 돼야 됩니다. 이런 능력이 나타나야 돼요. 오늘 이런 능력의 수혜자, 그 다음에 이런 능력의 체험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저희 부친의 교회를 개척할 때, 저희 부친이 개척할 때 우리 부친과 함께 동역했던 여전도사님이 계셨는데 우리 부친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이었어요. 그 여전사님 이름이 설한 설시언 설한 전도사님이라는 분인데 그 당시에 저 부산 쪽에서는 아주 귀신 쫓아내는 은사가 있는 전도사님이었어요. 그 주일 저녁이나 수요일 저녁만 되면요. 교회 뒤에 그때 교회가 초라한 교회니까, 개척교회니까 세면바닥 위에 돛자리 깔고 예배드리고 그러는데, 그 뒤에 이처럼 코 귀신 들린 사람이 2명, 3명씩 와서 앉아 있는 거예요. 그 설 전도사님이 이제 같이 이제 귀신 쫓아내는 기도를 하는데 저보고 현이 와라. 제가 중학교 2학년, 3학년 현이 와라. 그리고 이제 현이 와서 같이 기도하자. 그런데 이제 옆에 저 뒤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고2, 고3형들이 있어요. 고3형들도 데리고 와라. 그래서 제가 고3형들을 막 데리고 와 같이 기도를 했어요.

기도를 하는데 고3형들이 벌벌 떠는 거야. 막 기도하는데 고3 형 왜 떨어? 그러니까 야 내가 듣기로서는 고3 형들이 하는 얘기예요. 귀신 들린 자를 위해 쫓아내는 걸 막 기도를 하면 귀신 들린 사람이 나갈 때 그 주위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가운데 제일 믿음 없는 사람한테 쏙 들어간다 하더라. 제일 믿음 없는 사람도 아이고 그러면서 벌벌 때는 내가 알거든. 그 형들 엄마한테 거짓말해 가지고 돈 타내 가지고 다른 거 뭐 하고, 여자들 꼬무니 따라다니고 내가 다 알거든. 능력이 없는 거야. 벌벌 떠는 거야. 그런데 나는 지금도 기억해요. 이제 선한 전도사 나중에 미국 가셔 갖고도 이걸 사역을 하셨는데 그분이 나가는 교회에 제가 산호세 그 당시에 제일 침략이라고 큰 집회를 하는데 산호세에서 보는데 막 강단에 가서 제가요 한때는 집회를 잘했어요.

아실랑가 몰라요. 40대 초반 중반에, 막상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설 전도사님이 와가지고 나한테 오목사 옛날 능력이 나왔네!!~~ 나왔네 이거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있지 않고, 능력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복음은 나의 복음이 돼야 되고,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돼야 되는 것이에요. 저는 이런 의미에서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옛날에 이런 말씀 있죠.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들어보셨죠? 우리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예를 들어 건강에 관한 문제 지금 우리가 어떻게 우리가 음식을 먹고, 어떻게 여러분들 운동을 하고 어떻게 자신을 추스르고 특별히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하고, 이런 것이 앞으로 5년, 10년 뒤에 건강을 결정할 거 아니에요. 마찬가지예요. 지금 저와 여러분이 복음의 능력을 나의 복음으로 어떻게 여러분들이 정확하게 터득하고, 고백하고 살아내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향후 10년이 결정될 거예요. 사랑의 교회는 5년 10년 뒤가 더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거는 어떤 눈에 보이는 교회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무형교회인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금보다 5년, 10년 뒤가 더 좋은 신앙생활, 더 좋은 은혜를 받고 사려면 지금 여러분들이 복음의 능력을 나의 복음으로 선포해야 되는 것이에요. 나의 복음으로,,,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에요. 이 복음 앞에 우리는 경직되거나 이 복음 앞에 냉소를 짓거나 이런 게 아니고 정리를 하십시다.

오늘 이 말씀을 깨닫는 것뿐만 아니라 이 말씀을 먹고 체화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복음의 능력을 먹고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를 들어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어떤 치유 약이 있다고 하십시다. 그리고 그 약을 먹으면 웬만한 병은 다 낫는다고 하십시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약, 아무리 괜찮은 약이 있다 하더라도 그 약을 선반 위에 모셔다 놓고 위에 올려놓고 먹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 약병에 포장지를 뜯고 약병을 내려가지고 뚜껑을 열어서 그 약을 내 입에 털어놓아야 내 것이 되는 것이에요. 복음의 능력을 제가 아무리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총체적인 복음의 능력을 선반 위에 관상용으로 두지 말고 갖고 내려와서 갖고 내려와서 여러분의 것이 돼야만 하는 것이에요.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말로만 들려 지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이거 실제적인 사건인데 그러니까 복음의 지식이 복음의 실제적인 사건으로 복음의 교리가 실제적인 체험으로 선반 위에 있는 이것이 우리의 심장 속으로 옮겨져야 되는 것이에요. 선반 신앙이라는 것은 선반 위의 신앙이라는 것은 오늘 이 설교를 들었으니까 되었다. 라고 여기는 정도 마음의 감동을 받았으니까 충분하다. 그 정도 이런 것은 복음을 선반 위에 두는 것을 똑같아요. 복음을 인정은 하지만 복음의 통치는 받지 않겠다. 이것은 약을 먹지 않는 것이 말씀을 듣지만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은 선반 위의 신앙의 핵심이에요. 성경은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것을 자기 기만이라고, 야고보서 1장 22절에,

*야고보서 1:22,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오늘 이 복음이 선반 위의 복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야. 이게 나의 복음으로, 그래서 여러분들 젊은이들 가운데 내가 복음을 듣고 복음을 믿긴 하겠지만, 내가 어떤 신앙의 기준선을 넘고 그 선을 넘어서는 안 하겠다. 이렇게 하면 경계선을 안 넘어가려고 하면 복음의 능력의 경계선을 딱 넘어가지 않으려고 하면 이것이 삶의 복음 지금으로는 이것이 체화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써놓았어요. 뭐라고 써놨냐?

*선반 신앙에서-나의 복음으로,
.-선을 그어놓은 복음에서 나의 복음이 돼야 되는 그래서 여러분 저를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실제로 선반신앙에서 나의 복음으로, 선반 신앙에서- 심장 신앙으로!!!!~ 할렐루야, 복음은 지금도 우리를 극복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주의 크신 복음은 갈보리 십자가 놀라운 능력이 내게 임했네 아메 놀라운 치우가 내게 임했네.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에 흘린 보혈의 피로서 나를 정케하시고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하는 말일세 주의 복음을 내가 들으니 사랑하는 말일세. 믿는 마음으로 주께 가오니 이것이 나의 복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선반신앙에서 심장신앙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현재 실체적인 능력으로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하겠습니다.

♣요약
-우리가 로마서의 말씀을 듣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자. 우리에게 있는 수많은 복음의 거울이 세상 의, 어떤 세상 먼지, 이런 것들로 다 희미해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로마서의 말씀으로 이 희미해진 복음의 거울이 깨끗하게 닦이기를 소원하며, 복음은 우리를 침체와 쇠퇴와 갈등과 충돌에서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인 줄로 믿사오니,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번 우리를 살려주시라고 간곡히 기도하며, 한국교회, 아니 사랑의 교회가 가면 갈수록 표적과 기사의 능력, 성령의 능력, 보혈의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선지적 사도성으로 무장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이 은혜로 로마서의 산을 올라가자. 우리에게 있는 무력한 선반 신앙이 있다면 깨어나서, 다잡아서 나의 복음으로 가슴이 쿵쿵 뛰는 강력한 심장 신앙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기도제목
‘복음의 거울’이 ‘자기 자랑과 세상 쾌락의 먼지’로 희미해졌으니, 식어진 ‘복음의 감격’을 ‘로마서의 복음 말씀’으로 온전히 회복하여야 하며, 복음은 모든 차별과 부끄러움을 이기는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인 줄 믿고, 확신하여, 잠들었던 ‘선반 신앙’에서 깨어나 가슴 뛰는 ‘나의 심장 신앙’으로 평생 ‘복음의 횃불’을 높이 들어야 한다. 사랑의교회가 ‘사랑의교회-복음=0’의 압도적인 복음 방정식으로 살 때,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대한민국과 열방 위에 복음이 편만하게 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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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1월 25일)-로마서 강해(1)
제목: “로마서의 산에 들어가십시다”
말씀: 로마서 1:1-15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1부)
대표기도: 이지형 부목사님 (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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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15,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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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부터 로마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로마서는 기독교의 영광스럽고도 놀라운 진리를 압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로마서를 성경의 다이아몬드다. 그 이유는 복음의 핵심 진리를 가장 논리적으로 체계적으로 집대성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이아몬드처럼 정교하게 세공된 말씀입니다. 오죽하면 신약을 압축하면 로마서가 된다 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따라서 로마서를 소화하여 저와 여러분의 것으로 삼으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구원의 역사에 거대한 흐름을 거시적 관점에서 매크로 하게 또 미시적 관점에서 마이크로 하게 소화하고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4복음서는 예수님의 복음을 보여주었다면 로마서는 예수님의 복음을 시대에 맞게 해석하고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 강력한 해석이 얼마나 큰 설득력이 있었는지 당대 그 당시는 그레코 로만, 특별히 그리스 로마, 그리스 헬라적 사고방식 철학과 모든 사상이 헬라적인 것이었는데. 헬라적 사고에 물들어 있던 사람들에게도 이 복음서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로마서를 통하여 논리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도 이 생각의 혁명과 삶의 혁명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갑자기 앞에 너무 거창하지요 예 그래서 오늘 제가 이 로마스 강의를 지난번에 서론 격으로 함하고 난 다음에 우리 교회 다라방 다라방마다 목사님 이번에 우리 다락방에서 로마서를 10번 읽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에 그렇지 한 달에 한 번씩 읽으면 12번 읽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 로마서를 여러분 앞으로 쳐도 뒤로 쳐도 다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여러분 영안을 열어주시고, 또 로마서를 여러분의 생애 말씀의 양식으로 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설교의 제목을 "로마서의 산에 들어가십시다." 그렇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설악산에 간다 그랬을 때에 설악산에 갈 때 어떻게 갑니까? 그냥 갑니까? AI를 또 혹은 이렇게 인포메이션 보면서 설악산에 대한 SNS 통화의 지식을 듣고 그렇게 설악산에 가죠. 저는 39살 때까지 설악산 한 번도 못 가봤어요. 나중에 39살 때 설악산을 갔는데 제가 생각하던 설악산하고 다르더라고요.
 
가보니까 가니까 설악산에 여름에는 비선대 물에 발을 담글 수 있고 가을은 단풍이 너무 아름답고 겨울에 지금은 눈이 참 특별하잖아요. 실제로 본 설악산은 제가 알고 있는 설악산과 달랐다는 것이에요. 마찬가지예요. 실제로 본 로마서의 산에 들어가면 여러분들이 옛날에 생각하던 로마서의 어떤 나름 알던 로마서의 나무, 로마서의 폭포가 아니구나 라는 깨닫게 될 겁니다. 지금 말한 대로 설악산의 여름, 겨울 혹은 가을을 이렇게 다른 것처럼 제가 보면 얘기하는 게 봄은 한 번도 안 가봐서 그래요. 이번에 제가 여러분 부탁드린 것은 로마서 시리즈를 하는 동안에 여러분의 삶에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신고 직접 로마서라는 산에 등장하셔야 돼요.
 
들어가면 첫 번째 먼저 깊고 높은 신학의 봉우리를 만나게 될 겁니다. 뭐에 봉우리를 만난다고요? 신학의 봉우리, Thealage, 또 인생의 감동과 변화를 주는 아름다운 꽃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가슴 뛰는 선교의 폭포도 만나고 또 우리에게 수많은 신뢰를 주는 동력자 들을, 동력자 들이라는 튼튼한 바위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시원하게 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눈도 만져보시기를 바랍니다. 한마디로 이전의 선입관을 버리고 로마서의 산에 제대로 들어가면 혁명적 삶이 혁명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I. 로마서의 산에 제대로 들어가면, 혁명적으로 삶이 변화된다.
-우리가 로마서의 산에 들어가서 혁명적으로 변화되는 이유가 뭐냐? 그 이유는 로마서의 산에 들어가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한 인격과 마주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뭐와 마주친다고요? 인격을 마주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서 특별하게 인격성에 대해서 예수님의 인성이라는 인격 예수님의 신성이라는 인격에 대해서 아주 신비한 건데 이걸 만나게 되는데 먼저 여기에 대해서는 예수 그로서의 인격성에 대해서 이렇게 명료하게 말씀하는 2절에 다 같이 보겠습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예수님은 구약에서 미리 약속하신 분으로 구약에 뿌리를 둔 분이에요. 갑자기 나타난 분이 아니세요. 제가 감히 단언하건대 세상에 어떤 종교 지도자도 이런 주장을 못 하는 것임 할 수도 없습니다.
 
인격을 가지신 예수님만이 이런 예언을 하시고, 성취하신 분이기 때문에 독보적인 인격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여기에 대한 증명을 하겠습니다. 먼저는 3절에 보니까,
 
*로마서 1:3,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예수님은 그의 아들에 관해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 그러니까 인성을 지니신 인격자이시다. 그다음에 4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느냐,
 
*로마서 1:4,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신성을 가지신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해서 구약에 선포된 미리 선포된 것 독보적이시고 그 다음에 인성과 신성을 가진 인성과 신성을 가진 인격적인 분이시다. 다윗의 자손으로 인성을 가지시고 그다음에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여 능력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로 신성을 가지신 분이다. 그러니까 인성과 신성이 결합된 독특한 인격성을 갖고 있다. 바울의 입장에서는 이걸 언제 깨달았는가, 바울이 다마스커스로 가는 말을 타고 가다가 거기서 거꾸러져 가지고 하늘에서 빛이 나오는데 하늘에서 빛이 나오는 놀라운 하나님의 신성을 경험하면서 누구십니까? 그러니까 나는 너가 핍박하는 예수 그리스도다. 인성을 지신 음성을 가지고 소리를 들었어요.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도 바울은 만나게 된 거예요.
 
인격적인 주님을 만나면 바울처럼 혁명적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는 것을 믿으시기 바라는 것이에요. 기독교의 독특성은 뭐냐면 인격성인데 만일 예수님을 추상적인 신성이나 도덕적인 이상 정도로만 축소하면 복음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라, 개념에 불과하게 되는 거예요. 늘 말씀드리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은 추상적인 사상이나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예수님의 인격을 신뢰하는 것이에요.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에요. 오죽하면 인격성의 이 친밀한 관계를 뒤에 로마서 8장 15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느냐,
 
*로마서 8장 15절,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인격의 관계가 양자영 자녀가 되어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을 뭐라고 부른다고요?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실 정도로 여러분 자녀와 자식과 아버지의 관계란 이건 뭐 뭘 말할 수 없는 인격적인 관계 아닙니까?
 
아빠 아버지라고 자녀가 부모 부모와 맺는 가장 친밀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자녀의 관계인데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단지 교류적인 세계나 도덕 원리로만 이해한다면, 신앙은 이념과 사상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경 곳곳에서 예수님의 인격성을 드러내고 있는데,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치유하시는 고통을 공감하시는 인격 이신 주님을 믿습니다.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식히시는 겸손과 온유의 인격임을 우리는 확인하게 됩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는 이 순종하는 인격,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주시는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시는 인격, 따라서 우리는 이 인격적인 예수님을 교제하면 이 믿으면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에요.
 
오늘 바울 사도도 이 주림을 신성과 인성으로 만나게 되니까. 그의 야비하고도 사람을 때려 죽이고 스바를 때려 죽이는 그런 인격이 얼마나 놀라운 인격으로 변하느냐, 5절 뒤어 보니까, 예수님을 순종한 인격이 되게 하시고, 또 9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냐면요.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은 인격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할 정도의 인격자로 이렇게 성숙하게 된 것을 믿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제가 이렇게 좀 거창하게 처음에 예수님의 인격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어요. 우리가 예수님의 인격을 강조한 이유는 뭐냐 하면 만약 우리가 자유주의 신학자들처럼 인본주의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되면 예수님의 사역을 심지어 부활조차도 상징적인 사건으로만 개념화시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속에 인간적인 사상이 확장되는 거예요. 인간적인 지식만이 확장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인격성을 약화 시키고 와해시킬수록 인간의 사상과 생각이 더 많이 개입하게 되는 거예요. 이게 사탄의 기가 막힌 전략인 줄 믿으시기 바라는 것이에요. 이 좀 어렵지만 이제 제가 더 설명을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과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예수님의 인격성, 인격 이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인격이신 예수님과 만나게 되면 인격자이신 예수님 앞에 자신들의 삶이 지배당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들의 어떤 자유주의 신학, 자기들에 대한 신학, 자기들의 사상, 자기들의 최악을 더 강조해야 되는데 예수님의 인격과 만남은 그분이 주인이 되시면 그분 앞에 우리가 왕자를 내어드려야 되는 것이에요. 왜 다들 가만히 계세요? 예수님을 참된 인격으로 만나면, 그분 앞에 우리의 왕좌(王座)를 내어드려야 되는 거예요.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자유주의자들이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념과 이념이 자기들의 어떤 관념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걸 강조. 강조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인격성보다 예수님의 사상 이걸 더 강조하는 것이에요. 오늘 수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심지어 극단적 보수도 마찬가지예요. 자기들의 생각 변할 마음이 없어요. 예수님의 인격과 만나면 극단적이 될 수가 없어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이 인격으로 오시면 나는 더 이상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을 추상화하고 어떤 주의, 어떤 이즘, 어떤 주의로만 두게 되면 나는 여전히 내 삶의 왕자를 지킬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 특히 교회 안에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예수님의 인격성을 거부하는 겁니다. 여기서 인본주의 신학이 나온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극단적인 보수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보수주의자예요. 저는 아주 사상적 신앙도 아주 보수입니다만.
 
극단적인 보수는 누구 말을 들으려고도 하잖아요. 다시 한번 인격의 기원은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삼위 하나님이란 삼위격, 삼위의 격이란 삼위의 인격을 갖고 계시다. 그 말이에요. 하나님의 인격, 성자, 예수, 그로서의 인격, 성령의 인격, 성령도 인격이에요. 삼위 인격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말 자체가 우리를 인격적인 존재로 지으신 거예요. 그래서 오늘 신성과 인성을 통한 신비한 인격을 우리가 깨닫게 되면, 신성과 인성의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스며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 로마서를 통하여 우리는 많은 우리 인격이 손상되고 훼손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 놀라운 신비한 인격을 접하게 되면 훼손된, 오염된, 우리의 잘못된 우리의 많이 찢어진, 많이 상처받는 쓴 뿌리가 된 이런 인격들이 회복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의 인격을 만나면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죽음도 극복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신성을 통하여 죽음도 극복하게 하시고 그다음에 인성을 통하여 우리가 지금 당하는 고난이나 고통의 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눈을 열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도 인간으로 나와 같은 고난이나 고통을 당하신 줄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의 고난과 고통이 나를 옭아매는 것이 나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주님의 인격과 부딪치게 될 때 그것이 오히려 회복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태생적 혹은 후천적인 약점과 어려움에 얽매이지 않을 수가 있어요.
 
인격을 만나면, 소위 이미 결정된 거 가지고 내 인생을 낭비하지 아니하고, 예수님께서도 완전한 인간으로서 우리의 약점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계시기 때문에 나의 약점을 공감하시기 때문에, 나의 문제의 짐을 지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걸 믿기 때문에 다시 시작하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청년 시절부터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수많은 과정들이 있었고,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떻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제가 10분의 1, 100분의 1도 감히 순종하기 힘들었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주님의 신비한 신성을 지닌 인격 그리고 주님의 인성을 지닌 그 인격과 접하면서 주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면서,,주가 나와 동행을 하며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은혜는 말로 다 할 수가 없도다. 그걸 하게 되니까. ,♪~~
 
수많은 약점과 부족함이 있었지만 인격자이신 주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주님의 불쌍히 여기심과 그래도 아무것도 아니지만, 주님이 예뻐해 주시고 가만히 계시죠? 주님이 예뻐해 주시고,,, 여러분 다 그렇게 될 수가 있는 줄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다시요. 주님의 신성과 인성의 인격을 접하게 되면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수많은 약점과 단점으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죽음의 공포로부터 극복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네, 연세드신 분들은 내가 어떻게 죽나? 내가 어떻게 되나?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전진하지 못하는 그런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그런 분들을 그런 분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의 인격과 부딪치게 될 때에 자유하게 되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이것 때문에 하늘의 신성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이에요. 저는 저희 할아버지나 저희 부친이 저희 가훈을 세우실 때에,
 
로마서 14장 7절 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걸 우리 선대부터 주님은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니까 이거 집에 가훈으로 가훈 딱 해 가지고 1, 2, 3, 4, 하는데 주제 말씀 로마서 13:7절-8절, 거기에 거기서 파생되어 가지고 빌립보서 4장 13절 바울이 깨달았던 “내게 능력 주신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가 어떻게 모든 걸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초라한 존재고, 오염된 존재고 훼손된 존재고 쓴 뿌리가 있는 존재인데 그런데 주님의 신성과 인성을 이렇게 만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내게 능력 주신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가 있느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들어야만 할 줄로 믿는 것이에요. 이렇게 될 때 그의 인격성을 믿을 때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하나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만나면 선지 적 사도 성을 지닌 자가 되는 겁니다.
 
II.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만나면 ’은혜의 비대칭성‘을 깨달아 ’빚진 자의 심정‘을 갖게 된다.
 
제가 말씀 하나를 다 풀어 가지고 이걸 결론적으로 설명을 해야 되는데 제가 그럴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까 예수 그로서의 인격과 만나면 뭐가 된다고요? 선지적 사도성을 가진 자, 이게 영어로 말하면 Prophetic Opposal Ship인데 이게 이제 여러분들 이제 지금부터 이해를 하셔야 돼요. 앞으로 로마서를 할 때 이것이 여러분들이 처음으로 신학적 사도의 로마서의 첫 번째 신학적 고봉에 여러분들이 올라가기를 신학적 고봉과 만나는 것이 여기서 자, 그리스의 인격과 부딪혔을 때 우리가 받은 열매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도성이라는 것이에요.
 
주님의 신비한 신성과 인성의 인격을 만나면 모든 성도들은 사도성을 가지게 된다는 거예요. 사도 성을가질때 그 예언자적 사도 성, 어떤 예언적 또 선지 적인 미리 분별할 수 있는 앞날을 볼 수 있는 안목과 그 다음에 사도성이 갖는 어떤 철저한 실행력, 어떤 추진력 이런 걸 갖게 되는 것이에요. 무슨 뜻인가? 하면 자 1절에 보니까 바울이 이렇게 나와 있어. 뭐라고 나와 있냐면,
 
*로마서 1:1,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복음을 위하여 특정함을 입었으니.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바울처럼 사도로 부르심을 받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주로 믿습니다. 예 자 이걸 좀 더 쉽게 설명을 하면 5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 뭐라고 나오냐,
 
*로마서 1:5,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성도들, 방송으로 듣는 모든 분들, 별관에서 듣는 모든 분들, 모든 SNS로 들어오시는 유튜브로 들어오는 모든 분들, 한마디로 말하면 여러분들과 저는 우리가 안에 포함되는 줄 믿으셔야 되는 거예요. 그로 말미암아 바울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는 거기에 바울과 바울과 함께하는 팀들이에요. 복음의 팀들이 그 팀들이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 사도의 직분이라는 말은 사도의 기능을 받았다. 정확한 번역은 사도의 역할을 받았다. 우리의 식으로 말하면 사도성을 계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가 다 오늘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을 깨달은 모든 성도들은 여러분들과 저는 우리 모두는 사도 성을 가지고 사도의 직분을 받은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사도직 자체는 계승이 안 되지만, 사도성 자체는 계승이 되는 것인데 따라서 예수 그리스의 인격을 믿는 우리에게 사도성을 주신 목적이 뭘까요? 그것은 바로 8절에 이래와 같이 나오세요. 8절에,
 
*로마서 1:8,
8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뭐에 전파됨이로다.
생명력 넘치는 사도성을 지닌 그리스인들을 통하여 이 그리스인들을 통하여 복음이 선포되는데 거기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선포되는 줄로 믿습니다. 많은 한계가 극복된다는 것이에요. 이걸 이제 전체적으로 제가 크게 말씀을 드렸고, 이걸 이해하도록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 로마서는 사도바울이 늦게 쓴 성경이에요.
 
로마서 일찍 사도바울이 쓴 성경이 뭐냐 하면, 갈라디아서라든지 고린도서라든지 데살로니카라든지 좀 일찍 썼어요. 그런데 예를 들어서 갈라디아서다, 데살로리니가서다, 그 다음에 고린도서다 이런 성경은 바울이 거기 가서 전도를 하고 그 다음에 양육을 하고 그러면 다시 이제 갈라디아다, 이런 에베소다 이런 지역들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그거는 소아시아 지역인데 나중에 바울이 마게도냐 환상을 보고 지금으로 말하면 그리스로 넘어갔어요. 그리스로 넘어가 거기서 막 사역을 하고 있는데, 누가 왔느냐 하면 로마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 두 사람이 그리스의 헬라 지역에서 사역을 하던 바울에게 왔어요. 그 사람 이름이 뭐냐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들어보셨죠?
 
프리스틸라 앤 아쿠일라스라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와 가지고 로마에서 있었던 소식들을 전하는 것이에요. 소식을 듣고 바울은 갈라디아서나, 데살로니가, 고린도 교회는 이미 사역했던 그 교회를 향하여 컨펌하고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양육 편지를 하고 이런 식으로 많이 하는데, 이 로마인서 이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에 한 번도 가보지도 않고 다시요. 가봤어요? 못 가봤어요. 로마에 한 번도 가보지도 않고, 브리스겔라와 아굴라의 얘기를 듣고, 바울이 예지, 예언의 은혜를 받아 가지고, 이 로마서를 쓴 것이에요.
 
따라서 이 로마서를 제대로 깨달으면, 여러분 우리가 가보지 않는 길 살아보지 않는 그 삶의 어떤 그런 상황에 대해서 우리가 사도적, 선지성을 가지고 돌파할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것이에요.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모두가 다 두려워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기대감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 두려움이 있는 이런 우리의 인생의 현장 가운데서 오늘 이 사도적 선지성이라는 신학적 통찰을 저와 여러분이 내 것으로 아주 그냥 내 것으로 그대로 접목을 하기 시작하면, 바울이 가진 사도적 선지성을 가지고 그 모든 상황을 돌파했던 그 은혜가 여러분과 저에게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확인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여기서 깨닫는 것이 있어요.
 
바울은 소아시아나, 마게도냐 지역까지 사역하는 것, 마게도냐 환상을 보고 그리스 사역까지도 그것만으로 끝날 수가 있었어요. 그거라도 충분해요. 충분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바울은 거기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사도성을 가지고 복음이 없는 땅끝. 심지어 서바나 내가 서바나 스페인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야리라 그렇게 말할 수가 있었어요. 이것이 굉장한 돌파력이에요. 종교 개혁을 한 종교 개혁자들조차도 당시에 기독교의 순수성 이런 것들을 회복하려고 그랬지, 자기들이 있는 어떤 교구, 자기가 속한 믿는 어떤 지역 거기를 벗어나는 것은 상상을 별로 못 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는 모라비안 교도들은 그걸 뛰어넘는 사도적 선지성을 가지고 뛰어넘는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에요.
 
바울은 가본 길을 재방문해서 경고하게 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가보지 않는 미래를 향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프론티어의 눈이고 가보지 않는 길에 대한 두려움과 그다음에 기대가 교차하는 상황인데 이 가보지 않는 길에 대해서 기대와 떨림에 대한 미래의 여정에 대해서 바울은 소위 선지적 사도성을 가지고 선지자의 예언력과 예지와 사도의 추진력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이 사명을 감당하게 된 그 은혜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것이에요. 따라서 이 시간 우리 모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하는 능력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현재 상황에 주저앉고 싶거나 그냥 내 가운 내 삶 가운데 가슴 뛰는 환상이 없다는 분들은 오늘 이 선지적 사도성을 가지고 예언적 사도성을 가지고 돌파하는 은혜가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하는 것이 인생 후반에 한 번 내가 한 번 그래도 다음 세대에 뭔가 레가스를 남기고 싶다. 뭔가 내 인생에 ’온 땅이 물이 바다를 덮는 것 같은 여호와의 영광을 한번 체험하기를 원한다.‘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이 로마서 산에 사도적 선지성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어제 새벽에 제가 온 교우들에게 찬송란을 가르쳐 드렸어요.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야 주 찬양해, 주찬양해 할렐루야.
 
이 찬송은 70년대는 갓이즈굳, 80년대는 이 찬송이 한국교회 큰 부흥의 시기에 참 특별한 찬송이었어요. 제 마음에 가슴에 불이 붙는 거예요. 하나님 대한민국 교회가 80년대 90년대 놀라운 봉을 체험한 줄 믿습니다. 지금부터 30~40년 전에 우리에게 다시 회복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 마음이 생기는데 할렐루 할렐루 할 때 할렐루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지금 갈등과 분열의 상황이에요. 그렇지만 오늘 로마서를 가지고 개인도 가정도 그러고 선지적 사도성을 가지고 예언적 사도성을 가지고 한 번도 가보지 않는 길이지만, 바울은 로마에 가보지도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영적인 계시와 능력을 가지고 이런 놀라운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셨다면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정말 삶의 나침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에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강조하고 싶어요. 여러분 사도바울이 경험했던 그 시대보다 지금 우리가 훨씬 나아요. 아멘, 무슨 말이냐. 사도바울은 성경 정경도 없었어요. 66권 정경 없었어요. 시대적 어떤 상황과 그 어려움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이 말씀 제대로 깨달으면 우리는 사도 바울이 가졌던 그 은혜와 능력을 우리는 그 이상 가질 수가 있는 것이에요. 사도 바울보다도 저와 여러분들은 말씀과 성령과 은혜의 환경이 더 좋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사도 바울이 가졌던 그 Prophetic Opposal ship, 사도 바울이 가졌던 선지적 예언성을 가지고 가보지도 않았지만, 해보지도 않은 길이지만, 심지어 개혁자들, 종교개혁자들 조차도 자기 그 테두리만 있겠다는 어떤 마게도니아 환상으로만 끝날 수 있지만, 로마까지 가겠다는 그 마음을 가지고 시대를 새롭게 한 은혜가 오늘 살아계의 모든 성도들 한 분 한 분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어제 우리가 할렐루 할렐루 하면서 할렐루 할렐루는 찬양한다. 그 말이에요. 야는 야위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예요. 구약을 몽땅당 한편으로 딱 한마디로 말하면 할렐루야예요. 여러분 어려워도 할렐루 할렐루와 주찬양 이 찬송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삶에 선제적 사도성을 가지고 돌파하도록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될거에요. 그러면 이 선제적 사도성을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선제적 사도성을 가진 사람들이 적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III.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만나면, ‘은혜의 비대칭성을 깨달아 빚진 자의 심정’을 갖게 된다.
 
이게 무슨뜻인가, 오늘 14절에 다 같이 한번 다시 한번 합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보겠습니다.
*로마서 1:14,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뭐예요? 다 내가 비친 자라. 사실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내가 회개한 양보다도 주님이 용서하신 깊이가 더 큰 줄로 믿습니다. 내가 헌신한 시간보다 주님이 나를 위해 내어주신 생명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깨닫는 순간 내가 받은 은혜는 너무 커서 도무지 갚을 수가 없구나. 이때 생기는 마음이 빚진 자의 심정이에요. 오죽하면 로마서 3장 24절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함께 보죠.
 
*로마서 3:23,
2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느니라 아멘
-값 없이 받은 은혜가 너무 커 가지고 내가 빚진 자의 심정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내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나는 무엇으로도 갚을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받은 은혜는 너무 크고 내가 갚을 수 있는 건 너무 적고 이걸 은혜의 비대칭성이라고 제가 설명을 해보았어요. 이것은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은혜예요. 내가 하는 어떤 공로도 하나님이 내게 하신 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은혜의 비대칭성이에요. 소위 마태복음에 나오는 1만 달란트 빚진 자의 심정이에요. 그리고 누가 보면 15장에 여러분 돌아온 탕자, 엉망으로 살다가 야 아버지 집에 가면 뭐 그래도 먹을 수가 있겠구나 싶어 가지고 돌아가는데 아버지 만나 뭐라고 얘기합니까?
 
허랑방탕해서 살다가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컴을 받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그래도 양심은 있어 가지고,,, 예 그런데 아버지가 어떻겠어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고 우리가 잔치하자. 그 아버지의 사랑과는 비교불가, 족탈불급(足脫不及)이에요. 그때 탕자가 아버지가 내게 주신 은혜는 내가 도무지 갚을 수가 없구나. 내가 도무지 갚을 수가 없구나. 이게 은혜의 비대칭성이에요. 그러면 남은 인생을 내가 어떻게 하면 주님 아버지를 더 기쁘시고 아버지를 어떻게 더 사랑할까? 그걸 생각하게 되는 빚진 자의 심정이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오늘 바울이 빚진 자의 심정의 대표적이었어요. 디모데전서 1장에 보니까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뭐요?
 
*디모데전서 1:13,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폭행자였으나 우리 주위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비교가 안되는 거에요,
 
*고전15:9-10,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잘 알잖아요. 은혜의 비대칭성이에요. 그래서 로마서의 계속되는 주제는 내 공로는 nothing, 나는 아무것도 치러주신 값은 내 능력으로는 계산 불가능, 박혜자였던 내가 사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소위 선제적 사도성에 눈을 뜨고 사명자가 된 것이에요. 그래서 가보지 않는 로마를 향하여 가겠다는 그 돌파하는 능력을 추진력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최근에 우리 기독교 영화 가운데서 요즘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가 ‘신의악단’이라고 있어요. 그 신의 악단에 마지막이 우리 교회에서 촬영된 거 아시죠? 이게 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북한에서 NGO에게, 기독교 NGO에게 돈을 받고 싶어 하니까, 기독교 NGO에서는 그러면 기독교적인 것이 있는 걸 증명하라. 그러니 찬양단을 만드는 거예요. 그 찬양을 만드는데 박교순이라는 정치보위부 장교가 있는데, 이 장교가 책임을 졌어요. 그리고 이제 가짜로 해야 됩니까? 진짜로 해야 됩니까? 찬양을 어떻게 하면 됩니까? 찬양도 혁명적으로 하라우! 딱 이러는 거예요. 혁명적으로 찬양하다가 뒤집어진 거예요. 혁명적으로 찬양하다가 변화됐어요.
 
그래서 박교순이라는 이름인데 박교순인데 사실은 거기에 메타포가 들어가 있는데, 거꾸려면 박순교야. 그리고 또 자동차 나오는데 천사예요. 천사,,, 마지막 천국에서의 예배 장면이 우리 교회 예배 장면이 나오는데 그 박교순이라는 사람이 진짜 예수님만 나가고 있잖아요. 그리고 자신은 순교하고 다른 사람을 살려주는 거예요. 아마 바울이 아마 비슷한 심정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다시 한번 14절에,, 오늘 요절인데,
 
*로마서 1:14,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이 빛진 자가 되었으니까 사도적, 선진적 사도성을 가지고 13절 뒤에 보면 뭐라고 나오느냐 하면 이렇게 나와 있죠. 13절 뒤에 보니까,
*로마서 1:13b,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길이 막혔지만 그 막힌 길을 뚫어버리는 선지적 사도성을 확보한 은혜를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예 그러니까 빚진 자의 심정을 갖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은혜의 비대치성을 깨닫고, 빚진 자의 심정을 갖게 되면 거룩한 책임감을 갖게 되는 거예요. 강박관념을 갖게 되는 거예요. 빚진 자의 심정을 갖는 거예요. 야 내가 빚진 자구나. 어떤 책임감이냐,
 
여러분 암에 걸린 사람이 있는데, 이 약만 먹으면 암이 낫는다. 그래서 그 약을 먹었는데 암이 나아버렸어요. 그런데 똑같은 병이 걸린 다른 암 환자가 힘들어 있는데, 그 암 환자에게는 자기가 자기만 낫고 그 암 환자에게 자기가 나은 약을 소개 안 해준다면 그게 인간성이 제대로 된 거예요? 안 된 거예요?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에요. 안 나눠주면 그 비인격자예요.
 
어떤 사람이 큰 눈 폭풍을 만났어요. 만나 가지고 둘이서 같이 가다가 쓰러졌어요. 어떻게 살 길이 없어요. 완전히 그 눈 쓰러졌어요. 그런데 한 사람이 어쩌다가 좀 더 가보니까 한 50m, 70m 더 가보니까 거기에 피난처가 있어요. 피난 산에 들어가 보니까 따뜻한 불을 피울 것도 있고, 임시 먹을 것도 있고 다 있는 거예요. 그러면 자기가 혼자 안에 들어가 가지고 자기만 불을 쬐고, 자기만 냠냠하면 그게 인간적으로 괜찮은 인간입니까? 70m 좀 떨어져 있는 그 사람한테 빨리 가 가지고 그 사람을 끌고 와 가지고 같이 살아야죠. 사막에서 물이 떨어져 가지고 완전히 그냥 메말라 갖고 죽기 직전인 사람이 다 쓰러져 있는데, 어떤 한 사람이 다 보폭을 해가지고 좀 더 가보니까 오아시스가 있는 거예요.
 
시원한 물을 마셨는데 자기만 살고 목이 말라가고 죽어있는 사람을 위해 안 간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오늘 내가 빚진 자라는 것이 이런 심정이 거룩한 부채 의식이에요. 인간이 생명의 처소, 생명수를 발견했다면, 알려야 되는 것이에여.
 
우리가 ‘세계복음주의총회 WEA’를 한 이유가 뭐예요? 나중에 하도 뭘 모르는 사람이 하도 공격을 하고 그러니까, 제가 저 자신을 돌아보았어요. 주님이 이 일을 통하여 한 영혼이라도 구원(救援)받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우리가 서울 선언을 하기까지 그런 은혜를 하나님이 돌파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격과 부딪쳐서 선지적 사도성을 갖고 은혜의 비대칭성을 깨달으면 빚진 자의 심정이 되고, 거룩한 부채의식, 거룩한 책임의식을 갖는 줄로 믿습니다.
 
이게 로마서가 주는 선물이고 앞부분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감동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오늘 여러분 로마서의 산에 들어와 있습니다. 어떤 어떤 분들은 산에 들어와 있지만, 너무 피곤해 갖고 지금 졸고 계시는 분도 계세요. 누워서 잠들어 있는 분들 계세요. 또는 자포자기해 가지고 넋 놓고 있는 분도 있어요. 이런 분들에게 지금 빚진 자의 심정으로 우리가 뭘 나눠줘야 돼요? 뭘 나눠줘야 합니까? 11절에,
 
*로마서 1:11,
11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여기에 신령하는 인사는 방언, 예언, 치유, 그런 인사가 아니라, 복음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 사도적 권면, 선지적 사도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거룩한 책임만 가지고 거룩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나는 빚진 자라.
 
그래서 이 복음을 선포하기를 원하고, 견고하게 하기를 원하고, 이걸 통하여 바울은 그 인격이 성숙하고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 첫 번째 신학적 고봉, 선지적 사도성, 주님의 인격과 만나 가지고 우리 모두가 다 성숙한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성숙한 자는 무슨 심정을 갖는다고요? 빚진 자의 심정을 갖는다. 다 여러분 성숙하기를 바라는 겁니다. 예수 처음 믿으면 모두가 다 어린아이입니다. 어린아이 성도들이 많아요. 어린아이는 인격적으로 성숙할 수가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무지막지한 어린아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아이가 태어나면 자기만 알아달라고, 아무것도 안 합니다. 기저귀도 안 갑니다. 스스로. 생각도 없습니다. 밤새도록 울고불고 난리야 난리입니다. 어린아이는 무례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버지 오셨습니까? 절대 안 합니다. 할아버지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도 못 알아보고, 할아버지도 못 알아보고, 배려심도 없고, 어린아이들 교회 안에도 수도록 합니다. 예의가 있다면 누가 손님이 오면 그래도 문 밖에까지 그리고 좀 더 높여야 할 분들 주차장까지 내려가서 인사하고 좀 높으면 차 가는 거 앞에, 차 떠나도 뒤에서, 여러분 이게 성소의 증거예요. 애들은 지만 압니다. 지만압니다. 무리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자라게 되면, 초등학교 5학년만 되더라도, 거룩한 빚진 자의 심정을 갖고 자기만 알던 어른 아이가 자기 반에 있는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겁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예수님 믿고, 인격적으로 믿고 줄 말고, 내 친구들에게 복음 전하기 시작했어요. 간절함이 생기는 거죠. 믿지 않는 남편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온 가족의 복음을 전하겠다는, 이 성숙함이 생기는 것이에요. 여러분 모두가 다 로마사의 산에 올라가 가지고 누워 있거나 자포자기하지 말고 성숙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성숙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변화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우리 온 교회 또 한국 교회 이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 가지고 한국 교회 다시 80년대의 부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제가 한 40년 전부터 35년, 40년 전부터 늘 얘기한 것이 있어요. 서구 교회 100년 빚진 것을 한국 교회가 100년 동안 앞으로 서구 교회 갚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교회가 세계 복음주의총회, 교회 연명 총회를 하고 이런 거 다 서구 교회 빚 갚는 것이에요.
 
이번 로마서의 주제를 우리가 복음에 빚진 자로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의 능력과 위험 앞에 우리가 겸손히 무릎을 꿇기만 하면 모든 것이 새로워지고 선제적 가능성을 가지고 다시 돌파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한 분 한 분에게 맞춤형으로 허락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요약
우리 모두가 다 로마서의 산에 함께 등장하는 동안에 이 말씀 한 절, 한 절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혁명적인 말씀이 되어야 한다. 새 창조 역사가 우리 가운데 나타나서, 이번 한 주간 이 로마서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는 가운데,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시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동행하고, 교제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주님이 주신 안목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고 현재의 삶이 어떤 형편에 있든지 간에,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야!~~~ 이 찬송 10번, 20번, 30번 하면서, 수많은 난관들을 극복하는 선지적 사도성을 지닌 압도적인 복음의 일꾼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의 남은 인생에 은혜의 비대칭성을 감사하며,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수 있도록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돠어야 한다. 우리가 로마서의 산에 제대로 들어가면, 혁명적으로 삶이 변화되는 것을 확신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만나 ’은혜의 비대칭성‘을 깨달아야 하며, ’빚진 자의 심정‘을 갖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만나, ‘은혜의 비대칭성을 깨달아야 하며, 빚진 자의 심정’을 갖고 주님이 주신 지상 명령인 전하는 일에 전심을 다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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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1월 11일)-로마서 강해 서론
설교제목 : “정결함으로 로마서를 시작합니다”
(Beginning Romans with a Pure Heart and Repentance)
성경본문 : 로마서 1:1~2, 6~7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이윤기 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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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2, 6~7,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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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대가 고백한 대로 선한 목자 되신 주님께서 우리 한 분, 한 분에게 참된 복의 수혜자가 될 수 있도록 응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 로마서를 오늘은 서론 좀 하는데, 이 로마서 들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환경 주시고, 또 믿음 주시고, 은혜 주시고, 무엇보다도 건강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건강할 때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저도 그런 면에서 좀 이렇게 치밀 오른 은혜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 성도님들이 로마서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 같은데요. 로마서는 오래 신앙생활 하신 분들에게 익숙합니다. 그러나 익숙하다고 해서 여전히 쉽지는 않습니다. 초신자 성도들은 이게 좀 낯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신앙생활 하는 분들도 또 처음 초신자 성도들에게도 이 말씀이 잘 깨달아질 수 있도록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따뜻하고 친절한 메시지가 되길 원합니다. 그런데 따뜻하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가 되길 바랍니다. 또 깊이가 있지만 새로운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고, 무엇보다 제 마음에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따뜻하고 깊고 새롭지만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 여기에 능력을 실체를 경험하는 메시지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이 저는 주님 이 말씀을 우리 성도들에게 인생 말씀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또 인생 로마서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이런 마음이고 저는 본격적으로는 1월 25일부터 할 것이고,. 오늘 일단 오리엔테이션 격으로 로마서의 문을 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제목은 정결함으로 로마스의 시작합니다. 영어로 말하면 “Beginning romance with a pure heart and repentance”. 그러니까 ‘정결한 마음과 그 다음 회개하는 마음’으로 로마서가 시작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걸 위하여 먼저 우리를 새롭게 하고 우리를 정결케 하는 이 우리가 방향을 가지고 아 이 로마서가 어떻게 교회 역사를 새롭게 했는가 교회 역사를 새롭게 했는가? 몇 가지를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저 히포의 유명한 성 어거스틴 감독 성 어거스틴이 AD 4세기 후반기에 로마서 13장을 통하여 뒤집어져 버렸어요.

그가 구원의 길을 찾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안 됐는데 마니교에 그냥 그렇게 젖어 있고 이런 사람이 완전히 로마서 13장을 통하여, 그리고 잘 아시는 대로 마틴 루트가 마르틴 루트는 캐돌릭 사제였어요. 신부였어요. 그런데 보면 자기가 어떤 구원의 수준의, 구원의 세계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막 자기 자신을 고행하는데 스칼라 상타라고 로마의 그 고행 계단이 있어요. 그 계단에 가가지고 막 자기를 갖다 고통에 몰아넣고 상처를 내면서 그 계단을 이렇게 무릎으로 그 무릎으로 막 고생하면서 올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천둥 같은 섬광 같은 말씀이 자기에게 때리는데, 너 고행으로 구원 받냐? 아니야. 오직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느니라.

그 1장에는 이 내용을 가지고 완전히 마틴 루터가 새롭게 되고 그 마틴 루터가 새롭게 된 딱 그 말씀을 받고 고행하면서 계단으로 무릎으로 오르던 그걸 딱 멈추고, 로마에서 그냥 독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돌아가 가지고 초대교의 이후에 가장 강력한 종교계의 새로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어거스틴 마틴 루터’, 그 다음에 ‘요한 웨슬리’라고 있었는데, 요한 웨슬리는 교리적으로도 그렇고 지성적으로 똑똑한 분이었어요. 그런데 영국의 런던의 올더스 게이트라는 곳에서 교회에서 로마서 서문을 이렇게 자기가 듣다가 로마서 서문을 듣다가 그대로 깨어져 가지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고 그 이후에 ‘조지 위필드’와 함께 대각성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존 버년’이라는 분 아시겠는데 성경 이후로 제일 많이 팔린 책이 천로역정 Pilgrim’s Progress인데 존 번년이 그 감옥에 있으면서 이 로마서를 읽다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우리 천로역정을 썼습니다.

자, 여기서 이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처럼 자기 의지로 구원의 길을 찾는 분들 마틴 루러처럼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으로만 생각하는 분들, 요한 웨슬레처럼 교리적인 신앙을 갖고 있지만 구원에 확신이 없는 분들, 존 버년처럼 죄의 무거운 짐을 해결하지 못해 고통 하는 분들이 우리 가운데 분명히 있을 거예요. 이런 분들, 오늘 로마서를 통하여 길을 찾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사랑의 교회, 우리 교회는 지금부터 한 35년 전쯤 우리 선대 옥한흠 목사님께서 로마서 강해를 통하여 사랑의 교회에 말씀을 통한 강력한 부흥이 일어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에요. 아무도 흔들릴 수 없는 나의 구원, 그런 거 할 거예요. 저는 요즘은 20년이 한 세대가 지나가는데, 35년이 지나갔기 때문에 35년 뒤에 이 말씀을 하는데 하여튼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랑의 교회의 성도들과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방송을 듣는 모든 성도들께 저와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35년이 지난 이후에 이제 우리들 차례가 되었어요. 이 말씀이 남 얘기가 아니라 저와 여러분을 바꾼 말씀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에요. 다시요.

어거스틴, 마틴 루터, 그 다음에 요한 웨슬레, 존 버년, 우리 선대, 우리 성도들을 변화시켰던 그 말씀이 저와 여러분을 변화시키고 한국 교회의 재부흥의 촉매제가 될 수 있도록, 이 말씀이 나의 사랑하는 책이 되기를 바라고, 이 말씀이 나를 변화시킨 책이 되기를 바라고, 이 말씀이 우리 가정과 교회를 변화시키고 바꾼 말씀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서울 선언’ 이후에 ‘WEA의 서울 선언 총회’ 이후에 이 말씀이 글로벌 복음주의 교회의 재부흥의 촉매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걸 위하여 오늘 이제 말씀을 이제 1절부터 오늘 서론 격입니다. 1장 1절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뭐라고 시작하는가? 먼저 우리가 기초로 쌓아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1장 1절에 다 함께 보겠습니다.

*로마서 1:1,
1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먼저 이 말씀을 기록한 바울인데 자세한 것은 다음번에 제가 다룰 터인데, 오늘 일단 바울에 대해서 두 가지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또 하나 뭐라고 그랬어요? 사도이다. 이 내용은 뭘 먼저 설명하느냐 하면 이 말씀을 전하는 바울의 메신저로서의 신뢰 말씀을 전하는 바울의 인격에 대해서, 아 바울은 신뢰할 만하다 이것이 그러니까 항상 말씀은 두 가지가 있는데, 메신저가 있고 그 메신저가 전하는 메시지가 있는 것이에요. 오늘 이 말씀을 전하는 바울은 신뢰할 만한 분인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바울은 얼마나 신뢰할 만한가?

그는 위선자가 아니고, 정말 2천 년 교회 역사의 바울처럼 신뢰할 만한 인격자를 또 만날 수가 있겠는가? 당시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지만 말씀 앞에서는 깨어져 가지고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할 만한 그런 인격자인데, 바울처럼 이 신뢰남의 인격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이 바울을 저 타 종교는 싫어하고 그리고 이 얼마나 바울의 인격이 대단했느냐 하면 우리 기독교 안에서도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바울을 싫어할 정도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로서 그야말로 올바른 메신저가 된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는 메신저뿐만 아니라 메시지가 중요한데 그 메시지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하는가? 2절에 이와 같이 나와서 2절을 같이 봅니다.

*로마서 1:2,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오늘 복음의 정석, 로마서 정석, 바울의 메신저로서의 말씀을 전하는 메시지가 뭐냐? 오늘 이 메시지 자체에 대한 신뢰를 표현한 구절인데 이 복음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것인 줄로 믿습니다.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들이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말씀을 했는데, 특별히 누가 봄 24장에는 예수님께서도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누가복음 24:27,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이 내용이 뭐냐 메시지가 신뢰할 만하다. 구약에 예언한 그 모든 복음의 정석을 오늘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메신저와 메시지를 잘 살펴보고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하여. 이걸 여러분들이 잘 들을 때에 여러분과 저도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저도 이 시대에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신뢰받을 수 있을 만한 품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 저는 기도합니다. 오늘 이번 로마서 강해를 하는 동안에 사랑일교의 모든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도 신뢰할 만한 품격을 갖추게 하여 주십시오.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신뢰받을 만한 인격, 그런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오늘 제가 지금 메신저 얘기하고 메시지를 얘기했는데 존경받을 만한 메신저가 되기 위하여 또 신뢰받을 만한 품격을 갖출 만한 메신저가 되기 위하여 오늘 두 가지를 제가 서론 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뭘 말씀하는가? 첫째는 우리에게 부르심의 신비를 내 고백으로 해야 이 메신저가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자, 무슨 말인가?

I.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기 위하여
첫째, 부르심의 신비를 내 고백으로.

-제 얘기가 아니고 6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오늘 6절을 읽었습니다. 제가 앞부분의 일부러 다음에 하겠습니다. 6절의 시작,

*로마서 1:6,7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네라 7절에도 뭐라고 말씀하고 있냐면,
*로마서 1:7,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저와 여러분은 이 시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이 자리에 온 줄로 믿습니다. 저는 사도 바울이 오늘 이와 같이 이 말씀을 이제 전개를 하고 있는데, 저는 바울이 이제 앞으로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경책도 하고, 꾸중도 하고, 도전도 합니다마는 성도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 것이 이게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에요.

로마 교회 교인들이라고 완벽한 거 아니죠? 완벽하지 않는 로마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먼저 너희들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잘 아시는 대로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능력으로 성도가 된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고 성도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어요. 저는 여러분 오늘 이 예배에 와서 앉아 계시는 귀한 성도는 한 분 한 분 여러분들의 배경을 제가 다 모르죠.

어떤 분들은 오래된 성도들, 또 초신자 성도들이 있고 또 세상 적으로 배경, 여러 가지 차원이 다 다를 것이고. 또 지역적인 배경이나 다 달라요. 그래 여러분들 많이 다르지만 제가 한 가지 아는 거 있어요. 그것이 뭐냐? 오늘 이 예배에 오신 여러분들은 주님이 부르셔서 오신 것이에요. 주님이 부르지 않으시면 우리가 주님 믿을 사람도 없고, 주님이 부르지 않으시면 이 자리에 올 자가 없다는 사실이에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능력으로 부르심 받은 게 아니라는 것이에요.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바울이 어느 정도 말을 하느냐 일자리에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소위 Apostle쉽으로, 사도로 그리고 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바울만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5절에 보면 누가 부르심을? 5절에 보면,

*로마서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 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그랬어요. 사도바울이야 종이요. 사도로 살았지만 오늘 우리가 할 때 여기는 팀들을 얘기해요. 거기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들어가고, 그 다음 디모데도 들어가고 여러 팀들이 들어가고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나 디모데 같은 사람은 사도는 아니에요. 그러나 함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사도 성을 가진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니까 앞으로 로마서를 진행할 때에 우리가 다 부족하지만 오늘 이 시대를 향하여 여러분과 저는 사도 성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에요. 우리가 무슨 사도입니까? 우리는 사도직 자체는 계승되지 않지만 사도 성 자체는 우리가 오늘 깨달아야 되는데, 이게 신학적인 바탕으로 혹은 목회학적인 안목으로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Prophetic Apostolic, 이라고 앞으로 예언자적 사도 성을 가지고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장래를 결정할 것이에요. 아시겠어요?

Prophetic Apostolic Ship이라고 그래가지고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우리가 바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사도성을 가진 하나님의 신실한 사명자로 부르신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하겠습니다. 이 부르심의 특징은 현재 저와 여러분의 행실의 평가로 부르신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근거한 신분 선언과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의 근거가 우리의 행실이나 공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는 불러주셨기 때문에 세워진 성도가 된 것이다. 이 말이에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이제 거룩하게 살고 거룩해졌으니 내가 성도라고 불러주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지 못한 상태를 끌어안은 채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라고 선포가 되었다는 것이에요. 이 세상의 상식은 거룩해지면 성도이다. 자격이 되면 성도라고 부른다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거룩해지는 것이고. 성도의 부르심은 자격이 아니라 부르심의 은혜가 먼저가 된 것이에요. 따라서 이 부르심의 특징은 사도바울의 독특한 언어 습관인데 그것이 뭐냐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로마서를 고린도 지역 고린도에서 쓰고 있었는데, 그 고린도 교회에도 동일한 바울의 언어 습관에 나오는데 어떻게 부르셨는가? 고린도전서 1장 2절에 뭐라고 나오느냐 하면 이렇게 나왔어요.

*고린도전서 1: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그들에게 오늘 로마서 1장이 난 것처럼 은혜와 평강 그들에게 고린도전서의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신비는 내 안에 있는 경건함, 거룩함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 부름 오죽하면 로마서 8장에 보니까,

*로마서 8:1,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우리가 거룩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거룩한 성도라고 부르심 받는 거예요. 오늘도 여러분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 자의 정함과 높은 자의 우리가 아까 찬송 불렀을 때 마음에 와 닿지 않았어요? 아무런 뭐가 없었어요?

저는 오늘 이거 찬송을 하는데 제가 설교할 힘을 얻었어요.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예수님은 누구신가? 너무나 놀라운 복음이 그 안에 다 들어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제가 설교할 은혜를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내용이 앞으로 큰 의미가 있는데, 이게 로마 캐톨릭과 우리를 구별하는 것이에요. 로마 캐톨릭은 고행과 거룩한 삶을 가지고 어떻게 이 성도 성인의 계급을 구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인 반열이 있는 것이에요. 거룩함의 카스트 제도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가 거룩하게 살기 때문에 부른 거예요. 하나님이 불러주기 때문에 우리가 성도가 된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이 차이가 많은 거예요. 등급이 아니에요.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어렵다 하시고 거룩하게 불러주신 신분 때문에, 그래서 캐톨릭에는 등급 이런 반열이 있습니다마는 우리는 그냥 신분이에요. 이게 왜 이래 중요한가?

지난 주일날 인구 센서스를 나온 통계가 나왔는데 종교 센서스가 나왔어요. 10년에 한 번씩 하는데 2015년도에 기독교 퍼센티지가 얼마냐 그리고 2025년도에 기독교가 종교가 어떻게 되느냐 이렇게 나와 있는데, 여러분 2015년만 하더라도 그때도 기독교가 많은 공격을 받고, 미디어나 온갖 영화, 텔레비전 이런 거에 대해서 많이 이렇게 기독교를 하고 또 캐톨릭을 높여주고 그랬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2015년에 나름 선방을 했어요. 교회가 자라서 왜 로마서 같은 이런 부르심에 대한 복음의 정석 때문에.

그런데 지난 10년동안 그 이전과는 말로 다룰 수 없는 공격, 어려움, 그다음에 폄하, 모든 미디어에 보세요. 교회 제대로 나오는 거 있느냐고 캐톨릭은 올려가고 있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 사랑의 교회 강단이라는 또 대한민국 교회의 프로테스탄트 성도인 여러분들의 입장에서 깊이 생각할 것이 있는 것이에요. 우리가 이 복음의 정석과 로마서 마르틴 루터의 후예가 돼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을 두근두근하면서 살펴보았어요. 작년 연말에 우리 기독교가 어떻게 됐는가? 2015년에 19.7%였는데 작년 연말에 10년 뒤에 다들 기독교가 내리막이고 내려간다고 그러고 막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 작년 연말에 통계가 20%가 된 줄로 믿습니다. 0.3%가 그래도 자랐어요.

온갖 종류의 폄하와 온갖 종류. 여러분 드라마에 교회를 제대로 한 데 있습니까? 나는 지금도 기억하는 게 30몇 년 전에 왠만 하면 교회 갑니다. 옛날에 사랑이 뭐길래 거기 보면 교회 갑니다. 전부 다 지금은 다 캐톨릭 교회 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되는 캐톨릭 하고 우리의 차이를 알아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가 고행하고 잘해서 성좌 반열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가 성도가 된 것입니다. 놀라운 신비입니다. 놀라운 신비입니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를 우리가 구세주로 영접하는 그 순간, 우리가 이미 성도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이런 거룩에 대한 카스트 제도는 없는 것이에요. 누구누구는 더 거룩하고 누구누구는 덜 거룩하고 이게 아니에요.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거룩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이런 뜻이에요.

어린아이가 있는데, 어린아이가 있는데, 애가 아버지 코트를 입었어요. 애가 아버지 코트를 입었는데 너무 적어가지고 코트만 보이고 애가 안 보여요. 그래 가지고 애가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코트가 걸어가요. 이게 무슨 말이냐? 우리에게 주님께서 의의 옷을 입혀주신 것이에요. 우리는 다 부족하고 그 안에 있는 어린아이는 뭘 몰라요? 어린아이는 너무너무 자기만 알고 바보 같아요. 그렇지만 그 어린아이가 그 코트 안에 있기 때문에 성도가 된 것이에요. 이럴 때 우리는 우리가 이렇게 부르심에 대한 신비를 깨달 때, 우리는 교만할 수가 없어요. 뭐 할 수가 없다고요? 교만할 수 없어요. 교만에서부터 우리가 자유함을 갖는 거예요. 내가 성도가 된 것은 내 성품, 내 지성, 내 훈련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사랑할 것이 없어요.

-성도는 '자기 완성자' 가 아니라 부르심의 은혜를 입은 '수혜자'이다.
-우리의 능력과 실력과 지성으로 우리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입은 수혜를 받은 사람이에요. 아멘. 그러니까 교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두 번째로는 모든 이 땅에서의 절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절망으로부터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에요. 나는 아직 엉망이니까. 성도라고 부를 만한 자격도 없지만, 그러나 그 부족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 절망 가운데 자유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성도라는 이름은 내 완성도를 근거로 붙인 이름이 아니라 부르심을 근거로 붙이는 이름이기 때문에, 내 완성도를 통하여 얻어진 이름이 아니라 부르심을 통하여 얻어지는 은혜이기 때문에, 오죽하면 바울의 믿음 아들 디모데에게 디모데후서 1장이 뭐라고 설명하는 거야?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다 같이 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1:9,
9 하나님이 ..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우리의 뭐예요? 우리의 할렐루야 이처럼 부르심을 받은 성도라는 것은 어느 엄청난 무게와 신비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걸 깨닫고 나면 우리가 방종하거나 마음대로 삽니까? 아닙니다. 제대로 깨닫고 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 우리 전투력 가지고,
-부름 받아 나선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여러분 여기에 동의가 있기를 바랍니다. 자 메신저와 메시지가 확실하면 첫째는 오늘 부르심에 대한 깊은 신앙의 신비와 고백이 있고, 두 번째로, 이제 하나 있는데, 그것이 뭐냐? 그것은 정결함을 통하여 참된 말씀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II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기 위하여
둘째, 정결함을 통하여 참된 말씀의 복을 담아야.

-그리고 참된 말씀의 복을 우리 속에 담고 평생 걸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적용입니다. 바울은 이런 성도의 부르심에 대한 깊이 있는 선포를 통하여 이게 자기 고백이 될 때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어요? 사실 여러분 바울은 사도로 부름 받기까지 바울이 한 일이 없어요. 오히려 바울은 부르심 받은 성도들을 박해하고 스테반을 갖다가 돌로 쳐 죽이고 그런데 놀라운 복음의 신비는 바울의 생애 속에서 그의 부르심 과정에서 나타났는데 다마스커스, 다메섹 도상에서 깨어져 있었어요. 그리고 그의 부르심에 이 신비의 보이지 않는 바울이 가진 과정이 뭐냐 하면, 사도행전 9장 9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사도행전 9:9,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그 정결함과 회개와 돌이킴의 기간이 있었다는 소위 부르심의 합당한 회개가 시작이 된 것이에요. 그리고 갈라디아 1장에 보면,

*갈라디아서 1:17,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바울이 이 부르심을 받고 바로 예루살렘 교회로 가지 아니하고 3년 동안 아라비아에 가가지고 거기서 철저한 자기 정결과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부르심에 합당한 회개를 감당하게 된 것이었어요. 그 아라비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니고, 그 아라비아는 지금 페트라, 요르단, 다마스커스 접경 지역인데 거기에 가가지고 3년 동안, 그 3년 동안 철저한 회개와 정결함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이게 역설의 회개와 정결함입니다. 지난주에는 제가 역설의 기쁨이라고 그랬는데 십자가와 그다음 기쁨을 안 어울리는 단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십자가는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가져온다. 그것이 이제 와닿는 것처럼 오늘 마찬가지입니다. 부르심의 은혜가 너무 큰데 그걸로 우리가 부르심의 은혜 받았다.

이게 아니라 거기에 걸맞는 정결함이 따라가는 것이에요. 아멘 정결함에 따라가는 것이 부르심에 걸맞는 정결함과 회개가 있어야 되는 것이 제가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우리 성도들 가만히 우리 교회 성도들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이 말씀의 복을 가지고 소위 영육 간의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의지적으로 삶에 있어서 심지로 경제적으로 또 가족적으로 여러 상황 가운데서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복을 받고 어떤 성도들은 그 복을 쏟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왜 그럴까?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끝까지 쓰임받고 가고 어떤 성도들은 뭔가 하나님 주시는 그 은혜가 있는데, 그걸 누리지를 못하고 중간에 다 새어나가는 거예요.

마치 독이 있는데, 그 독의 밑바닥이 튼튼하고 잘 되어 있으면 물을 채우면 그 물이 다 차 가지고 흘러넘치는데, 어떤 독은 아무리 아무리 물을 이렇게 쏟아 넣어도 계속 물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흩어지고 다 새버릴 이유가 뭔가? 제가 볼 때 이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가 없기 때문에, 참된 정결함이 없기 때문에, 이 참된 정결함과 참된 회개가 우리 신앙의 밑 빠진 독을 해결해 주시는 것이에요. 따라서 로마설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주님 앞에서 처리할 것은 처리하고, 반복적으로 짓는 죄, 습관적으로 짓는 죄, 수많은 것들이 있어요. 주님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것이 있어요.

오염된 것, 소위 정결함 없는 평안이 여러분들에게 있다면,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아버지 부르신 것 너무 사실이고 성도로 너무 귀한 일이지만 주님과 나와의 사이에 소위 벽이 가리워 져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복을 부어 주실려고 그러는데 그 벽이 가리워져 있는 거예요. 그러니 주님이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다 있을 줄로 믿습니다. 아시겠어요? 그걸 하나님 앞에 정리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거죠. 것이에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고린도에서 쓰고 있었는데, 그 고린도 교회는 바울은 나중에 보면 알지만 로마서를 쓸 때, 로마 교회에 가본 적이 없어요. 있을 때는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너무 주위에 고른도 교회 일어난 일들 잘 알아요. 고린도 교회는 너무 엉터리였어요. 성도들이. 그래서 이 고른도 교회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근심을 가지고 정결함과 회개를 해야 한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

*고린도후서 7:10,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참된 근심, 참된 회개 이런 정결함에 대한 어떤 방향을 잡아주는데 보세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뭘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뭐예요? 사망을 이룬다. 자 오늘 사탄이 우리를 근심하게 우리를 좌절하게 하고 우리를 짓누르고 우리에게 상처 주고 우리를 넘어뜨리게 하는 이건 사탄이 하는 것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제대로 된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정결함을 사모하는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요, 참된 해결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배해 놓으신 수많은 은혜들을 누리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1장 7절 뒤에 보면,

*로마서 1:7,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받을 복 중에 최고의 복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최고의 복은 은혜와 평강인 줄 믿으셔야 되는 거예요. 은혜와 평강의 이 물줄기가 생수가 터져야 되고 이것이 우리에게 막 뿜어져 들어가야 되는데 우리에게 들어오는 이 파이프가 막혀있는 것이에요. 파이프의 배관이 다 찌꺼기가 너무너무 막혀 있어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폭포처럼 부어주시려고 해도 우리가 받을 수가 없는 것이에요.

주님과 여러분만이 아는, 여러분의 은혜의 파이프를 더럽게 하고, 막히게 하고, 그걸 그냥 완전히 오염시키는 그 모든 것들을 로마서 시작하면서 정리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거죠. 그래서 제가 마음속에 소원을 했어요. 여러분 1월은 우리가 변화되기에 정말 좋은 시간이에요. 가장 좋은 시간이에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 복이 있는데, 하나는 주어진 복이 있고, 또 하나는 누려 지는 복이 있어요. 어떤 성도들은 주어진 복은 받았는데 누려 진 복을 받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어요. 성도에게 첫째, 무슨 복이 있으면서 부르심을 통하여 주어지는 복이 있습니다. 동시에 뭐예요? 누려 지는 복은 뭘 통해서 받아야 할까요?

정결함을 통하여 참된 회개를 통하여 여러분이 참된 회계는 근심을 통하여 이것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아까 7장 10절에 그래서 이 참된 회개가 있을 때, 회개의 정의가 나오는데 고린도후서 7장 11절에 이와 같이 나와요. 제가 한번 여러분 물 뽑겠습니다.

*고린도후서 7:11,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
얼마나 분하게 하며 / 얼마나 두렵게 하며 /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이 회개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열망을 주실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뭐하게 하며 이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에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소리가 왜 자꾸 작아져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이건 거룩한 분노예요. 죄에 대해서 내가 거룩한 분노를 하는 거예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두렵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얼마나 뭐하게 하며 이걸 오늘 여러분들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길 바라는 거예요. 얼마나 뭐하게 하며 열심히 이렇게 하며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아 그렇구나.

내가 제천기도동산에도 한번 가봐야 되겠구나. 이번 주일날 기도 금식 기도하려고 했는데 금식하는데 거기라도 한번 가봐야 되겠구나. 열심히 얼마나 뭐해요? 벌하게 하였는가 악을 용납지 않는 단호함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에요. 오늘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너희 자신의 뭘 나타냈느니라. 부르심에 대한 분명한 고백이 있어야 되고 두 번째, 이 부르심에 대한 은혜와 함께 우리가 정결함을 가지고 로마스를 시작하는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는 것인데 그것이 뭐냐?

회개를 나를 고치는 작업으로만 여기는 것은 그것은 아주 초기 단계에 회개는 자신을 고치는 것뿐만 아니라, 은혜가 나를 살리는 자리까지 나가는 것이에요. 매주일 마다 은혜가 저와 여러분을 살릴 것입니다.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여러분 가정을 살릴 것입니다. 결론이 뭐냐 우리에게 정한 마음이 있을 때, 새 마음이 창조되는 거예요. 10편 51편의 다윗이 고백한대로

*시편 51:10,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의 정직한 영을 뭐예요? 새롭게 하셨어요. 정결함이 되면 새 창조와 새로운 마음, 새로운 스타트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주어진 복뿐만 아니라 누려진 복을 위하여 거리끼는 것, 이걸 다 깨어서 흘러가게 하는 것들을 처리하고, New Start, New Creation, 새로운 창조와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한 분, 한 분 예외 없이 주님 앞에 쓰임 받는 축복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성 버나드가 은혜를 받고 참 회개하는 자에게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이 좋거든. 그 다음에 참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신다고 그랬어요. 우리 참 회개하는 자에게 찬양합시다.

저는 청년 시절의 정결함을 위하여 A day in Prayer, 기도로 하루를 이라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봤고 또 시간이 하루가 안 날 때는 Half day in prayer, 반나절이라도 주님과 함께 1월은 변화되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요약
이 말씀 가지고 주님 나 사이에 거리끼는 것, 내 삶에 누려 지는 축복들을 다 밑빠진 독으로 다 깨어서 흘러가게 하는 것들을 새 버리게 하는 것들을 막을 수 있도록 주님께 우리를 청결함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해야 하며, 우리 모든 성도들이 로마서의 복음의 정석을 통하여 우리가 정결함으로 나가는 은혜가 있어서, 우리 성도들 모두가 품격 있는 인생으로 만들어 주실 것을 확신한다. 말씀 가지고 우리가 더 이상 교만하지도 않고, 더 이상 절망하지도 않는 거룩한 자유함으로 신년을 맞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부르심에 합당한 회개와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복이 새어 나가던 모든 틈들을 눈물의 회개로 메꾸어서, 참된 말씀의 복과 은혜와 평강의 복이 나를 흘러넘쳐서 다시 시작하고 다시 재창조하는 New Start, New Creation의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에게 주님께서 놀라운 부르심의 은혜로 나를 그리스도의 것 삼아 주셨으니, 역사를 바꾼 로마서 말씀을 통하여 나의 가정과 일터를 바꿔가야 한다. 날마다 사망을 이루는 세상 근심'을 물리치고 회개를 이루는 거룩한 근심으로 정결해질 때, 새지 않는 은혜와 평강의 강수가 항상 넘실대고, 우리 사랑의 교회가 참 회개로 주어진 복'을 넘어 누려지는 복'을 경험할 때, ,우리 모두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강력한 뉴스타트, 뉴크리에이션의 기적'을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간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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