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213(785)
 
1. 석유수출국기구(OPEC)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오펙플러스(OPEC+)에 참여하고 있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베네수엘라 러시아
 
2. A은행에 5억원을 예금한 연진이는 A은행이 파산해 충격에 빠졌다. 예금자보호제도에 따라 연진이가 지급을 보장받는 금액은 얼마일까?
1000만원 2000만원
③5000만원 1억원
 
3. ‘회사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다음 중 국내 기업의 90% 이상이 해당하는 일반적인 형태는?
①주식회사 지주회사
손자회사 유한회사
 
4. 투자자로부터 모은 돈을 부동산에 투자해 수익을 나눠주는 부동산투자회사다. 상장해서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는 이것은?
파운드리 ②리츠
모기지 토큰증권
 
5. 사람들이 저축을 늘리면 개인에게는 이롭지만 총수요가 감소해 경제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해롭다는 이론은?
황금낙하산 공유지의 비극
③절약의 역설 규모의 경제
 
6. GPT와 같이 인공지능(AI) 기술 기반의 자동화된 채팅 로봇을 가리키는 용어는?
클라우드 로보어드바이저
위챗 ④챗봇
 
7. 공급자가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조정할 때 들어가는 비용을 가리키는 용어는?
매몰비용 거래비용
③메뉴비용 기회비용
 
8. 다음 중 예비타당성조사 제도의 도입 목적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예산 낭비 방지
경기 부양
자유무역 증진
벤처 창업 진흥
-----------------------------------------------------------
 
[커버스토리]
 
이 글은 누가 썼을까? GPT인가, 사람인가?
[GPT는 오픈AI에서 훈련한 큰 언어 모델입니다. 사람이 문장을 입력하면, GPT는 적절한 대답을 생성합니다. 이것은 인공지능 기술의 일종으로,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대답할 수 있습니다.]
 
위 문장은 사람이 직접 쓴 것일까요? 아니면 기계가 쓴 것일까요? ‘GPT(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가 무엇인지를 중학생과 고등학생용으로 써달라는 사람의 글을 읽고 대규모 대화형 인공지능GPT가 생성해낸 답입니다. 문장만 보면 쓴 주체가 기계인지, 사람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영어로는 더 완벽한 문장을 구사합니다.
 
지구촌이 챗GPT 열기로 뜨겁습니다. 페이스북, 넷플릭스보다 빠른 속도로 가입자가 늘고 있습니다. 나온 지 두 달 만에 3억 명을 넘었죠. GPT는 키워드를 입력해 검색하는 구글형 서비스를 구식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키워드가 아니라 글로 질문하면 맞춤형 문장으로 정리한 답을 제시합니다. 특정 주제로 논문을 쓰고, 소설을 쓰고, 컴퓨터 코딩을 짜고, 미국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정도입니다.
 
모든 것은 진화한다고 했습니다. 인공지능도 예외가 아닙니다. 생물이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진화했듯이 인공지능도 그러합니다. 찰스 다윈은 진화를 촉진하는 것은 경쟁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구글을 꺾기 위해 챗GPT를 내놓자 구글도 곧 경쟁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뜨거운 이슈, GPT를 알아봅시다.
 
세계가 깜짝 놀란 챗GPT 서비스1분도 안 걸려 햄릿 독후감 써요챗GPT가 지구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인공지능(AI) 중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는 놀라운 녀석입니다. 키워드로 하는 검색은 이제 구식입니다. 질문을 글로 쓰면 글로 대답을 쫙 뿌려줍니다. 사람의 요구에 따라 논문도 쓰고, 시와 수필도 쓰고, 국어 숙제도 해줍니다. ‘대화형 검색 시대가 훅 다가왔습니다.
 
간략한 역사
GPT(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대규모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에 기반한 대화형 인공지능입니다. Chat대화’ Generative생성하는’ Pre-trained미리 학습된이란 뜻이고, Transformer는 다양하게 변형해 쓸 수 있는 초거대 인공지능 모형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챗GPT는 입력된 것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로 입력된 데이터를 학습해 주어지는 언어와 그림을 읽은 뒤 결과를 대화하듯 제시하는 인공지능인 겁니다.
 
GPT202211월 말 세상에 나왔습니다. 우리는 몰랐지만, 인공지능 세계에선 꾸준히 업그레이드돼왔다고 합니다. GPT 1, GPT 2, GPT 3 버전이 있었고, GPTGPT 3.5 버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4.0 버전도 곧 나온다고 합니다. GPT는 출시한 지 5일 만에 가입자 1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페이스북은 10개월, 넷플릭스는 3년이 걸렸습니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뜻입니다. 월 사용자는 1억 명에 달하고 전체 가입자 수는 3억 명을 돌파했습니다. 이것을 만든 기업은 오픈AI입니다. 2015년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 등이 세웠는데 머스크는 지분을 팔고 나갔다네요. 마이크로소프트(MS)49% 지분을 보유 중입니다.
 
GPT 기술
인공지능은 인간 뇌를 수학적으로 구현합니다. 사람 뇌는 100조 개의 신경세포 즉, 뉴런이 서로 연결돼 작동하는 복잡계입니다. 천재들은 뉴런의 작동 방식(정보 입력과 출력)을 수학적 프로그램으로 표현해냈는데, 그게 컴퓨터죠. 수학적 뉴런이 단층 구조로 병렬된 것보다 다층 구조로 복잡하게 병렬되면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겁니다. 2016년 나온 바둑 알파고는 이런 다층적 병렬 분산 구조를 가졌습니다.
 
최신 인공지능 기술은 암묵적 정보나 모호성까지도 인간 뇌처럼 처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섰습니다. 예를 들어 키, 몸무게만 보고 인식하면 2차원이지만, 피부, 웃음, 뒷배경, 과거의 일, 다양한 지식, 추억 등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려면 10차원을 넘어 20차원의 연산을 순식간에 해냅니다.
 
GPT 능력치
거의 모든 질문에 중·고교생 수준의 답을 합니다. 최근엔 미국 변호사시험에 챗GPT가 합격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문제를 입력해줬더니 합격 수준으로 글을 써냈다는 겁니다. 구글 검색엔진에 쓰이는 코딩도 해줍니다. 논문 쓰기, <햄릿> 독후감 쓰기 숙제는 입니다.
 
못하는 것도 물론 있습니다. 일상적인 대화를 못합니다. ‘오늘 기분이 어때?’라는 질문에 답을 못합니다. ‘오늘 날씨 어때?’에도 답을 못합니다. (1+1+1+2-2)÷3”을 못 풉니다. 실시간 정보를 미리 학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챗GPT2021년까지의 데이터만 학습한 상태라고 합니다. 어제 끝난 축구 경기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거죠. 로봇이나 인공지능은 인간이 하는 가장 쉬운 것(자연스럽게 뛰기, 걷기)을 못한다는 모라벡의 역설에 여전히 빠져 있습니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극복될 듯합니다.
 
시장 경쟁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 1월 오픈AI와 파트너십을 맺으며 약 12조원의 투자계획을 발표했습니다. MS는 자사 검색 서비스인 빙(Bing·시장 점유율 3.5%)에 챗GPT를 얹으면 구글(시장 점유율 95%)을 이길 수 있다고 봅니다. 구글도 맞대응한다고 합니다. GPT 대항마로 곧 바드(Bard)’를 내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대화형 인공지능 기술을 가진 기업의 몸값이 크게 오르고 있습니다.
 
'앨런 튜링의 상상'이 현실이 될까인공지능이 마음을 가지면 문제는?
컴퓨터의 아버지앨런 튜링(1912~1954)1950마인드(MIND)’라는 철학 잡지에 논문 하나를 발표했습니다. 논문 제목은 컴퓨터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이었습니다. 튜링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기계가 방 안에 있고 사람이 밖에서 말을 걸었을 때 기계가 한 대답이 인간이 했는지, 기계가 했는지를 알기 어렵다면 기계는 지능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계도 인간처럼 지능이나 의식을 가질 수 있음을 튜링은 오래전에 추론한 겁니다. 역시 천재군요.
 
튜링 테스트와 튜링 세계
73년이 지난 지금 튜링이 살아서 챗GPT를 마주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내 생각이 맞았어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지 모릅니다. GPT는 비록 글로 묻고 답하는 인공지능(AI)이지만, 대답하는 수준은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화했습니다. 써본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이유죠.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기 어렵게 만드는 챗GPT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튜링이 꿈꾸었던 세계는 아마도 인공지능이 인간지능과 공존하는 곳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계와의 공존 말이죠. 인공지능 진화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빠른 현대 기술시대에 우리는 마음을 가진 기계의 출현 가능성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구글에서 일하던 한 직원은 우리가 가진 한 인공지능이 의식을 가진 듯하다고 말했다가 비밀누설로 해고됐다는 소문이 있는 걸 보면 말이죠. 결국 튜링은 마음조차 수학적 뉴런(신경세포)으로 구현해내는 세상을 예측했던 게 아닐까요?
 
인간 속에 존재하는 혁신기술
인류가 혁신할 기술은 궁극적으로 인간 신체 안에 이미 존재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땅을 파는 포크레인과 조립 로봇은 인간 팔과 비슷한 구조와 작동 원리를 가졌습니다. 관절이 꺾이면서 땅을 파는 포크레인을 보면 인간 팔과 유사합니다. 망원경과 현미경은 인간 눈을 닮았습니다. 인공지능은 인간 뇌를 베끼려 합니다. 뇌는 기술이 완벽하게 복제해내려는 최후의 대상이라는 거죠.
 
인공지능이 구현하려는 뇌 신경망은 1905년 산티아고 라몬 박사(1852~1934)가 그려냈습니다. 대상은 쥐였습니다. 신경망 모양은 맡은 역할에 따라 달랐습니다. 매우 복잡하게 얽힌 신경망, 위아래로 뻗은 신경망, 나무처럼 생긴 신경망 등. 지금은 인간 뇌의 신경망 구조도 알려져 있습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짤 때도 뉴런 신경망처럼 병렬 분산형으로 구현합니다. 수학적 뉴런을 수없이 붙이면 대규모 정보처리가 가능해집니다.
 
새로운 진화 풍경
GPT도 인공지능 진화 경로상에서 보면 초보 수준이라고 합니다. 갈 길이 멀다는 것이죠. 이보다 더 원시적이었던 엘리스, 엘리자, 시리, 알렉사, IBM왓슨에 비하면 수준이 높지만 말이에요.
 
인공지능 진화가 만들어낼 풍경은 그래서 예측불허입니다. 사람들이 무엇인지 모르고 쓸 수 있는 게 많을수록 진보한 문명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공지능 세계에서 사람들은 더욱 편리하게, 더욱 폭넓게 정보처리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삶은 정보처리 과정이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인류는 인공지능과 함께 더 나은 삶을 영위해나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예로 챗GPT는 여행 일정과 경비 일체를 짜줍니다. 이용할 수 있는 여행업체와 상품도 일목요연하게 제시해줍니다.
 
인공지능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바둑 영역에서 알파고가 나온 이후 인공지능을 휴대폰으로 몰래 보고 바둑이나 체스를 둬서 이기는 사례가 나타났습니다. 인공지능에 기대 문제를 해결하려는 부도덕한 일이 발생하는 거죠. 작문 숙제도, 논문도, 그림 그리기도 인공지능에 맡기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실과 다른 글, 편향된 시각으로 쓴 글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교육계는 벌써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100, 200년 뒤 인공지능은 어떤 수준에 이를까요? GPT가 구시대 유물이 될 것임은 확실해 보입니다.
 
 
 
 
반응형
728x90

주일예배(주후 2023년 2월 12일)
제목: "나그네는 길 위에 집을 짓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광은 누구에게서 나타나는가?"
말씀: 히브리서 11:13~16(1부,2부),
고린도전서 1:18-25(3부,4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장은진 부목사님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설교자: 전광식 목사님(전 고신대학 총장, 독수리 중고등학교 이사장)-초빙-(1부,2부),
에프렘 버클목사님(런던시티미션대표)-초빙-3부,4부)
ㅡㅡㅡㅡㅡㅡㅡ
 
*히브리서 11:13~16(1부,2부)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사무엘상 22:1~2(3부,4부)
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
 
▶전광식 목사님(전 고신대 총장, 독수리 중고등학교 이사장)-초빙-(1부,2부)-
▶"나그네는 길 위에 집을 짓지 않는다.“
 
-이 아침 영광스런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시니 우리 하나님을 찬양한다. 돌이켜보면 지난 20세기는 정치적으로 혹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서 양진영이 세계 일종에 지도그리기 하면서 열정과 냉전을 치러왔다. 20세기가 끝나면서 한 쪽 진영이 현실 정치에서 이렇게 무너지면서 그 영역에 속해 있던 동구권의 많은 나라를 비롯하여 이렇게 세상이 바뀌게 되니까, 우리가 맞이하는 21세기는 더 이상 갈등, 이데올리기라는 대립이 사라지고 이제 인류의 앞날에는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이렇게 자본주의 적인 물결이 확산을 하면서 영구 평화가 오지 않느냐의 막연한 기대감을 가졌다. 여려분이 다 아시는 바대로 마치 유토피아의 세상이 올 것이라고 몽롱한 착각에 빠져있던, 특별히 미국 사람들에게 정말 현실은 이게 아니구나! 하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한 것이 911, 극단 이슬람에 의한 미국의 무역빌딩에 대한 공격이었고, 그것을 계기로 미국이 아프칸 전쟁을 벌여서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전쟁에 인력과 물자를 투입했지만 결국 그 이전의 40년 전과 똑 같이 미국이 월남에서 철수했듯이 아프칸에서도 철수를 해서 다시금 극단 이슬람이 그 지역을 장악(掌握)했다. 미국이 아프칸을 철수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코로나라는 것이 발생했고, 코로나가 조금 주춤해지려고 할 때에, 소위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고, 우크라이나의 전항을 시시각각으로 뉴스를 보던 우리들은 최근에 약간 전쟁이 소강상태로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또 튀르키와 시리아에 지진이 일어났다.
 
여러분, 우리가 꿈꾸던 낙원과 같은 20세기는 결코 인간의 몽롱한 기대대로 전개되지 않음을 알 수 있고, 또 이러한 극변하는 세계와 이 자연의 현상에서 가장 희생을 당하는 것은 인간이며, 전쟁에서도 인간이다. 그리고 코로나에서도 인간, 지진의 이 무서운 사태에서도 희생을 당하는 것은 천하보다 귀한 인간의 생명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현상을 보면서 오늘 이 시간에 과연 그러면 인간이란 무엇이며, 지상에서 인간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쩌면 좀 철학적이고 성찰할 수 있는 이런 주제를 이아침에 설교의 화두로 던지고자 한다.
 
진화론과 같은 세속과학하고 성경이 인간을 보는 시각이 확연이 다르다. 그런데 이 대조적인 두 가지 입장이 하나에 동요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이성이라는 게 있다. 진화론에서도 인간을 이성에 부인하지 않고 우리 기독교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는 지.정.의가 있어서 동물과 달리 지성이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이런 이성을 가진 인간이 동물과 같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생각하는 것이다. 좀 더 고상한 표현을 쓰면 동물과 달리 인간은 사유하고 사고(思考)한다. 그러면 이 잘난 이성으로 도대체 무엇을 사고하고 무엇을 사유(思惟)하는 것인가? 좀 극단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사유의 대상은 두 가지이다 매우 경건한 성도님들은 그런 분들은 아마 주야로 히브리서 3장 1절의 말씀처럼 예수님, 하나님을 깊게 생각할 것이다. 이를테면 칼빈 같은 사람, 흔히 칼빈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칭하는데, 그의 머리에는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찼고, 그의 입에는 온갖 언어가 하나님의 관한 언어로 가득하고, 그의 가슴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하니까, 칼빈을 조금만 툭 건드리면 그냥 하나님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정말 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 예수님을 주야로 묵상(默想)한다. 일반인들은 어떨까? 우리 주변에 사는 대부분 일반인들은 이미 예수님이 산상보훈에서 지적하신바 대로 이런 하나님의 나라나 의와 같은 이런 고상한 주제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런 소유를 바라면 세상에서 살아가는 문제를 밤낮 고민하는 것이다. 이 두 생각의 큰 주제 사이에 하나가 놓치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을 너무 생각하다가 내가 누군지를 때로는 생각을 해야 되는데 놓치고, 세상을 너무 고민하가 세상에 사는 내 존재가 무슨 의미인지, 이런 자기에 관한 물음을 다 놓칠 수가 있다. 이것을 놓치다 보니까 자신의 대한 성찰도 없고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이 없으니까, 플라톤의 말을 빌리면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는 것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따지고 보면 무가치한 삶이 삶이라고 영위하고 있다고 해도 과장된 말이 아닐 것이다.
 
자 그러면 대체 인생이란 것이 무엇일까? 여러분 이런 질문을 던지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분이 아시는 바대로 쉽지 않을 것이다. 로마의 대표적인 지성인 중에 한 명인 세네카는 인생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데에는 평생이 걸린다고 했다. 평생을 살아보지 못한 우리들은 이것에 대한 정답을 발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실제로 다 산다고 해도 하나님의 계시(啓示)의 서치라이트, 조명이 없이는 타락으로 인해서 우리의 어두워진 지성이 자기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들쳐볼 수밖에 없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답변서(答辯書)이다. 성경 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 세상의 삼라만상(參羅萬像)에 대한 답도 다 나온다. 성경에는 구원에 관한 말씀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러면 구원 받았다면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삶에 대한 답변도 보는 것이다. 자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그럼 성경이 인간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할까? 성경 안에도 숱한 정의들이 발견되지만 오늘 우리의 말씀의 화두처럼 ‘인생은 다 나그네’ 라고 말을 한다. 바로 앞에 선 족장 야곱이 자기의 120년 삶을 회상(回想)을 하면서 내 삶이 험악한 나그네의 세월이었다. 라고. 그렇게 고백을 하고 신약에 와서 제자 중에 수제자(首弟子)라고 하는 베드로가 흩어진 믿음의 형제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들에게 수신자들에게 지칭하는 말이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라고 믿음의 형제들을 부르고 있고, 이런 일반 성도들뿐만이 아니라, 히브리서 11장 우리의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기라성 같은 믿음의 조상들에게 성경은 이 사람들은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증거 했다. 라고 말을 하고 있다. 이렇게 이 모든 말씀을 볼 때, 우리가 살아가나는 이 인생살이를 지상에서 천상으로 나아가는 지장의 나그네 들이라고 말한다. 성경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서양에서는 인생을 비유할 때, 연극에 비유해서 무대는 세상이고 배우는 인간이다. 라는 은유를 하기도 했고 우리 동양에서는 중국에 한시에 종종 나오듯이 여행에 비유해 가지고 세상은 여관이고 사람은 그대로 길 가던 나그네로 비유했다. 이렇게 저와 여러분의 인생살이는 길 가던 나그네, 호모 비아토르이다. 우리는 지금도 과거를 지나 현재를 거쳐 미래로 가는 이러한 길 가는 존재이고 그것만이 아니라,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우리 삶의 모든 과정이 사실은 길 가는 것과 같은 것이고, 뿐만 아니라 구원(救援)과 영생(永生), 진리(眞理)를 찾아서 방황(彷徨)하면서 세상을 떠도는 구도(求道)의 모습도 길 가는 것으로 은유(隱喩)할 수 있다. 자 그러면, 우리의 인생이 나그네 인생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영적으로 바라보면, 우리가 정주자나 시민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라는 것이다. 신학적으로 인간을 이야기 할 적에 흔히 이중국적을 이야기 한다. 우리는 하늘을 국적으로 가지고 있고, 지상에 대한민국에 국적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은 성경을 조금 더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따르면 명쾌하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빌립보서 3장 20절을 보면,
 
I. 인생은 나그네이다.

*​빌립보서 3:20,
20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그럼 여러분 이것은 이중국적이 아니고 인간적으로 볼 때는 이중국적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시각 영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때는 우리는 하나의 국적만 지닌 것인데 그것은 천상의 국적이고 땅 위에서는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든지, 미국 국민이든지 상관없이 이건 나그네이고 외국인이라는 것이다. 여러분 그것은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특히 신약에 나타난 그리스도인에 대한, 그리스오인의 정체에 대한 신약의 답변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 있는가? 이 땅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자기가 천국 시민권을 지녔다는 그 인식보다는 대한민국 국민이요, 미국의 시민이요, 이 의식이 사실 더 강하고 뿐만 아니라, 아예 자기가 나그네라는 이런 사실을 인정(認定)하지도 심지어 인지(認知)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나그네 의식이 없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믿음의 동료들, 우리가 우리를 돌아보면 그저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가지고 기왕이면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소위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고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도움도 필요하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나그네’이구나! 이렇게 의식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 나그네 의식이 없다는 것, 나그네 의식의 결핍이 무엇인가? 그저 이 세상을 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내가 살다가 이곳에 영원이 머무는 것이 아니라, 떠난다는 것을 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세샹에 대해서는 타향(他鄕)성(性)을 느껴야 되는데 여기에서 편안함과 본향(本鄕)성(性)을 느끼는 것이고, 세상에 대해서 이질(異質)성(性)을 느껴야 되는데 무한한 동질(同質)성(性)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여러분 믿음의 선대(先代)를 좀 보라. 아브라함이 살던 곳은 오늘의 뉴욕이나 파리와 같은 세계 최초의 도시인 우르이다. 세계 최초의 나라가 수메르이고 거기에 대표적인 도시가 우르와 우릎이다. 아브라함은 거기 출신이니까 우리가 누리는 오늘날 나라와는 비교할 수가 없어도 당대 사람들이 내릴 수 있는 최고의 문명, 그런 속에 살았고 그 시애의 아마 재미거리들을 향유(享有)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실 때는 네 아비 본토라도 진정한 고향이 아니다. 라고 하신다. 거기에 동질성을 느끼면 안 되고 이질성을 느끼라며 떠나라고 하신다. 소돔과 고모라의 정말 죽치고 앉아 있는 살고 싶었던 그 롯의 아내와 그 식구들에게도 ‘너희도 거기서 왜 동질성을 느끼느냐’라고 하시며 떠나라고 하신다. 여러분, 개인뿐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처음에는 애굽에게 나중에는 바벨론에 아예 죽치고 앉아서 그 나라 시민으로 살고 싶은 그들에게 떠나라고 하신다. 이것은 그의 본향도 아니고 네가 머물 곳도 아니라고 하신다. 여러분, 이렇게 하시면서 지상에서 이스라엘만큼 하나님께서 민족적으로 세상에 살면서 본향의식을 못 느끼게 한 그런 민족이 없을 것이다. 왜 이스라엘 백성이 아브라함부터 떠돌이, 야곱부터 떠돌이 그리고 지나간 수천 년 시간 동안 디아스포라로 온 세상을 떠돌았고, 그리고 여러분 중동에 조그만 무슨 나라를 세웠다 하더라도 거기에 무슨 평안함이 있는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이 가난이고 어디고 다 떠나서 ‘너희들이 민족이요, 방랑민족이요, 로마드 민족이요, 너희는 유랑민이다.’ 라는 것을 일깨워 주고 오늘날 영적 유대인이요,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개인의 삶의 어려움을 통해서, 아니면 시대적이고 역사적인 이런 많은 시련들을 통해서 거듭거듭 깨우쳐 주시는데 ‘그 세상이 너희가 정주할 곳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여러분 따라서 초대교회에 성경 다음으로 나오는 문헌이 소위 사도 적 교부들의 문헌인데 그 중에 하나인 디오게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고국에 거주하지만 그들은 마치 이방인(異邦人)처럼 지내고 있다. 그들은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영어로, In the world, not of the world​. 말이 어원이 이 디오게네트 문서 안에서 나온 것이다.
 
자 여러분 이렇게 이 시간 예배를 드리는 모두가 말씀 앞에서 ‘나그네 의식’이 중요하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길 가는 존재, 도상(途上)적(的) 존재이고 우리의 삶은 그저 지나가는 과정(過程)적(的) 삶이라는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사실은 초대교회뿐만이 아니라, 일제의 암울(暗鬱)한 시절, 6.25의 그 참혹(慘酷)한 그 전항 가운데서 우리의 부모님들,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늘가는 밝은 길’을 부르시면서 이러한 나그네 의식을 지녔다. 그러나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의식이 과연 있느냐? 이다. 우리가 까마득하게 잊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우리는 시련(試鍊)과 박해(迫害)를 당해서 영적으로 이런 걸음을 교회도 나그네 교회요, 우리도 나그네 삶인데 우리는 깨달아야 되는데 우리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면서 이 세상이 영원한 집인 양 그렇게 나그네 됨을 망각(妄覺)하고 타향(他鄕)을 본향(本鄕)화로 시도하고 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길 위의 존재요, 천상으로 가는 지상으로 가는 나그네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분명히 인식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II. 나그네는 가는 길을 자지도 쉬지도 않는다.

-나그네 인생을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저 뜬 구름처럼 살다가 왔다가 가는 것일까? 아니면 불자들처럼 세상에 모든 인연을 끊고 산으로 들어가라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다. 나그네는 길도 열심히 가고 길 위에서도 쉬지 않고 자기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다. 인생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문제를 두고 우리가 따르는 칼빈도 유명한 그의 저서 ‘기독교 강요 제3권’에서 지상에서 인간의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적고 있고, 그리고 지난 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클라스퍼 스킬드와 아브라함 카이퍼도 이 문제를 두고 서로 설전을 벌였다.
두 사람은 이렇다.

※클라스퍼 스킬드는
“우리가 나그네이니까 세상에서는 뜬 구름처럼 살다가 그저 복음 전파만 하고 그저 가는 것이다.” 라고 그렇게 주장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 세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명의 장소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문화적인 사명을 완수를 해야 된다.” 라고 했다.
 
-앞의 버전은 1버전인데, 나그네로서의 복음전파하자는 것이다. 두 번째 버전은 문화적 사명자로서의 삶이라고 한다. 사실 대조적인 입장이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을 보면 이 두 가지는 대조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되는 그런 주장이다. 스킬드 말처럼 우리는 나그네이다. 그러나 카이퍼 말처럼 우리가 나그네이지만은 뜬 구름처럼 속세를 떠나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 하나님이 주시는 일터, 하나님이 주시는 다양한 달란트를 가지고 또 인생의 소명을 이루면서, 열심히 살면서 그 방향은 천상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특별히 카이퍼가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 저와 여러분을 구원사적 관점에서 이렇게 위치 설정을 하면
※카이퍼: 창조-타락-구속 그 가운데서 우리는 타락한 이후에 태어난 사람이다. 그러면 그런 게 아니고 지상의 모든 사람이 타락한 이후에 태어난 사람이니까, 그들에게는 구원이 필요하고 우리가 그들에게 접근할 때도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복음을 전한다. 그리고 그 구원 받고 나서는 끝나는 것이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카이퍼가 볼 때는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왜 창조를 하셨냐는 것이다. 타락한 상태로 해서 그러면 구원받게만 하려고 한 것인가? 그러면 애당초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시지 말지, 그 보내신 이유를 우리가 망각하고 있다. 타락한 상태에서 태어나다 보니까, 구원받고 구원시키는 데에만 급급하다보니까 정작 구원 받고 나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잘 모르고 그리고 왜 하나님이 나를 왜 창조했고 보냈는지에 대한 우리가 그간에 망각하고 있던 창조의 목적과 내 삶의 의미에 대해서 못 깨닫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타락한 상태에서는 창조된 목적을 망각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구원 받았다면 이제 다시금 돌아가서 하나님이 나를 이 왜 보냈을까? 이 달란트는 왜 주셨을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무엇일까? 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일까? 이것을 수행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살고 열매 맺으면서도 우리의 지향점은 현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들이 지상에서 나그네로 살지만 하나님이 주신 생명, 생명의 길이, 건강, 각종 달란트를 가지고 정말 삶을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정말 학생들이 공부를 하면 공부를 할 때는 끝장을 내야지 하는 둥 마는 둥 하면 그게 무슨 공부이냐고 말한다. 예수를 믿으면 화끈하게 끝장을 내 봐야지, 인생이란 것을 좀 화끈하게 살아야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그네의 삶을 어쩌면 화끈하게 살기를 원하실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도 바울인데 여러분 사도 바울은 현재에서 천국을 선취하며 살고 거의 미쳤다. 그를 일반인이 볼 때는 정상적인 사람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복음을 위해서 인생을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거의 미친 사람처럼 보인다. 우리가 바울처럼 그렇게까지는 되지는 못해도 우리가 바울처럼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고 고백할 정도로 정말 우리가 얼마동안 살지는 모르지만 정말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며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소명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III. 나그네는 길 위에 집을 짓지 않는다.

-우리가 나그네 길을 가다보면 여러 가지 유혹(誘惑)이 많이 있고 빠지기 쉬운 함정이 많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길 가다가 한 눈 팔기이다. 천상을 향해 가다가 천로(天路)역정(驛程)의 기독교처럼 허영의 시장, 번영의 시장 같은 데에 가면, 눈이 현혹되어가지고 길 가는 것을 잠시 중단해 가지고 거기에 한 눈을 판다. 무엇 때문에 한 눈을 팔까? 신학자들이 정리한 것을 빌리면 대게 네 가지인데, 세상에서의 부요(富饒)함, 권력(權力), 향락(享樂), 명성(名聲), 뭐 이런 거라고 보고 있다. 특별히 우리가 사는 이 자본주의 시대에 가장 빠지기 쉬운 우리 한 눈 팔기는 돈에 대한 유혹일 것이다. 오늘 날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 사람들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이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이 재물(在物)과 부요에 대한 한 눈 팔기에 빠져 있는데 이 부요가 우리로 하여금 나태(懶怠)와 향락의 삶으로 연결되게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권력과 명예(名譽)에 빠진 그런 일도 있다. 그러나 하여튼 우리의 눈에 이렇게 세상 것에 눈이 멀어가지고 탐욕(貪慾)의 비늘이 벗겨지지 않으면,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영안(永安)은 어두워지게 되고, 사실은 그런 지나가야 될 세상의 가치들을 절대화 하는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는 성경은 이런 문제를 아주 신랄(辛辣)하게 비판(批判)한다.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이나 이생의 자랑’ 그것이 학벌, 지위, 겉으로 자랑하든지 속으로 자랑하든지 모든 것은 아버지께로 온 마음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고 야고보서 4장 4절은 더 과격하게 말씀한다.

* 야고보서 4:4,
4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너 원수로 살아볼래?” 하신다. 성경은 훨씬 비판적이고 소위 레디컬하다. 과격하다. 하나님과 원수지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이 질문하는 것은 그러면 우리는 세상 것을 다 포기하고 살고 수도자처럼 금욕주의로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세상에서 기쁨과 문화를 배제하라는 것인가? 아니다. 여러분 성경은 때로는 모순되는 것처럼 많이 하고 진리 자체가 그렇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세 분이시다. 하나님이 예정은 했는데 전도를 해야 된다. 여러분, 모든 게 이성으로 볼 때는 이것이 이성적으로 이해가 잘 안 되는 소위 페라독시컬(paradoxicaltrus), 역설적인 같은 게 우리가 이성을 초월해서 많이 있다. 그 차원을 넘어가면 이것이 얼마나 조화가 되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예정은 했지만 전도를 하라는 것은 우리의 전도를 통해서 그 영혼도 구원을 받지만, 우리가 전도함으로써 열매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이다. 우리 전도를 안 해도 구원을 하신다. 우리보도 전도를 하라는 것은 우리가 전도 안하면 그 사람이 구원을 못 얻어서 그런 게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괜히 헛일에 집중하지 말고 복음 전함으로 영혼구원 하므로 네가 더 복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열매 맺게 하시는 것이니까 하나님이 복 주시게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인생에 충돌이지 아니다. 여러분 넘어가보면, 이것이 영적으로 이 진리가 얼마나 깨달아지는지 모른다. 여러분, 성경은 우리를 나그네요, 지상의 길 위에 집을 짓지 못하지만, 그러나 우리에게 세상에 사는 동안 락(樂)을 누리고 분복(分福)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타락을 하고 나서 하나님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인간이 타락(墮落)하고 나서 아담의 후예들을 하나님은 짐승이나 벌레로 만들지 않았다. 남성과 여성으로 똑 같이 봄
, 여름, 가을, 겨울, 하나님의 창조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세상에 깔려 있지 않은가? 가을에는 낙엽 속에, 겨울에는 눈 속에, 봄에는 파릇파릇 솟아오르는 그런 꽃이나 풀 속에서 거기에서 생명의 아름다움이 발견되고 호수의 그 반짝임 속에서 어린아이의 볼에 촉감에서, 선에서, 소리에서, 색깔에서, 여러분 지상은 하나님의 창조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타락으로 인해서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왜 여전히 창조의 아름다움을 남겨 두셨을까? 피곤한 나그네의 삶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慰勞)이다. 하나님의 위로이니까 여러분들이 자연을 즐기고 문화를 즐기고 예술을 즐기고 또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으로 열심히 살아가게 하시는 부요가 있으면 그 부요도 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명예와 복도 누릴 수 있다. 다만 문제는 그것을 누리다 보니까 그것이 명예라 여기고 여기에 더 절대화 하고 그리고 아예 천국 가는 나그네 인생을 모르고 지상의 정주(定住)자처럼 사니까 그거는 아니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상에 살다가 우리의 나그네의 길에 방해 되는 한 눈 팔기 하는 것을 조심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땅에 주저앉지를 않아야 한다. 어거스틴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어거스틴: “우리가 인생의 나그네 길을 가다보면 몇 개의 여관이 있다. 그 여관에서 휴식하고 쉬고 물도 마시고 차도 들이키고 과일도 먹고, 거기서 휴식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 있냐면 이 여관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게 문제이고 이 여관이 내가 살 집이라고 착각을 하면서 천상으로 가는 나그네 길을 중단하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전한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저 노르웨이에 사는 들오리들이 있다. 겨울이 되면 추우니까 늦가을에 따뜻한 남쪽을 찾아서 지중해 남녘을 향해서 날라 갔다가 거기에서 겨울을 지나고 자기들이 머무르는 노르웨이로 돌아간다. 어느 해에 이 들오리들이 날아가는데, 한 마리의 들오리를 보니까 네덜란드 상공을 날아가는데 거기에 튤립, 아름다운 호수, 정말 네덜란드가 화해의 세계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듯이 아름다운 꽃밭이 있고, 그 꽃밭 사이에 예쁜 오리들이 옹기종기 노는 것을 봤다. ‘저기에 잠시 내려갔다가 구경을 하고 우리 일행을 따라가면 되겠지’ 싶어서 일행에서 빠져나온 들오리 한 마리가 네덜란드에 풀밭에 내려앉았다. 거기에 있던 집오리들은 이렇게 자기와 닮은 노르웨이에서 친구가 왔다고 먹을 것을 주고 환영을 해주고 놀아주고, 조금 놀다가 가면 된다고 위로를 해주었다. 그런데 좀 어두워지니까 밤이 되었다. 그래서 유혹을 한다. ‘그만 좀 지내다가 나중에 봄이 되어서 다시금 너희 가족이나 친구들이 남쪽의 지중해에서 날아갈 때, 그 때에 따라가면 되지 않느냐?’ 했다. 그게 좋겠다 싶어서 꽃밭에서 놀고 좋은 융숭(隆崇)한 대접(待接)을 받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집오리들과 뒹굴면서 놀았다. 드디어 봄이 되자 남녘에 갔던 친구들, 가족들이 이제 날개 짓을 하면서 북쪽으로 날아간다. ‘이제 따라가야 되겠지’ 하면서 퍼덕퍼덕 날개 짓을 하는데 살이 너무 쪄서 아무리 날개 짓을 해도 1미터도 못 올라간다. ‘내년에 봄이 될 때 따라가면 되겠지’ 하면서 다음 해에 또 날아가는데 몸이 더 무거워져서 날 수가 없었다. 해마다 자기의 가족들, 자기의 친구들, 자기의 고향에서 남녘으로 높은 창공(蒼空)을 아름답게 수놓으면서 날아가는데, 그것을 부럽게 바라보면서 결국은 날지 못하는 영원한 집오리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무슨 말인가?
우리가 날아가는 나그네 인생이다. 그런데 우리가 땅위에서 주저앉아 가지고 그냥 거기에서 전부라고 살아가니까 우리가 결국에는 영적으로 비상하지 못하고 신앙의 아름다운 대로에서 낙오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가운데는 이런 낙오된 오리들이 없기를 바라고 공중을 비상해서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축복한다.
 
Ⅴ. 돌아갈 곳이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 나그네들은 돌아갈 곳이 있다. 여러분 우리는 그저 이 세상을 왔다가 이렇게 뜻 없이 이렇게 살다가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 성을 예비하셨다고 하신다. 히브리서를 보면,

*히브리서 11:16,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땅위의 집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의 한 성을 예비 하셨다고 하신다. 여러분 도마행전이라고 가경인데 성경은 아니라서 읽지는 않는데 초대교회에서는 개인의 경건을 위해서 위경은 읽지 못했는데 가경은 허락했다. 거기에 보면, 도마가 열두 제자들이 예수님 승천하실 때에 제비를 뽑아서 세 개의 지역을 담당을 하는데 도마는 인도를 뽑았다. 가기 싫어하는 도마를 예수님께서 집을 완공을 짓고자 군다프로스라는 인도의 왕의 그 상인에게 목수 도마를 팔았다. 그래서 예수님이 파니까 팔려가지고 이제 인도로 가기 싫은 것을 억지로 갔는데, 거기에 가니까 군다프로스라는 왕이 자기의 궁전을 지으라고 은과 금을 주면서 자기는 순시를 다녀올 테니까 지으라고 했다. 그래서 도마가 그것을 짓지 않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다 나누어 주었다. 임금이 돌아와서 보니까 집은 짓지 않고 다 재산을 낭비(浪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기를 속인 그 상인하고 도마를 감금(監禁)시켰다. 그리고 며칠 뒤에 그들의 가죽을 벗겨서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그 밤에 그 임금의 동생 갓이 세상을 떠났는데, 천국에 가니까 천사들이 그를 안내했다. 그래서 어느 집에 살 것인지를 성을 보여주는데, 물어보니까 가장 못한 집, 자기는 지상에서 올바로 살지 못했으니 좀 못한 집을 지적을 했는데 이 천사가 하는 말이 “이 집은 너를 위한 집이 아니라, 너의 형님, 군다프로스 왕을 위해서 지은 집이다.”라고 하고 이 집은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잠을 깨서 이야기를 했다. “형님 보니까 저 도마라는 사람이 지상에 집을 짓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집을 지었는데, 지상에 집을 지은 형님의 왕궁과는 비교가 안 되고 너무 찬란하고 화려한 왕궁을 저 도마라고 사람이 형님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천상에 지은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고 왔습니다.”라고 하면서 저 사람을 풀어 놓으라고 했다. 이래서 도마가 인도의 복음을 전했다는 그런 전설이 있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상을 떠나게 되면 영원한 하늘나라에 상급(賞給)으로 성(城)을 주셨다. 우리는 여러분 지상에 살면서 아무리 우리가 사는 것이 유복하고 행복해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는 소망이 있어야 한다.
 
여러분 좀 보자, 우리가 성령님의 열매를 신앙의 등목으로 이야기 하고, 거기에다가 요즘 시대에는 뭐 정의(定義)라든지, 뭐 자선(慈善)이라든지, 이런 추가적인 등목도 많이 지녀야 된다고 이야기 한다. 개인이나 교회가, 특별히 성경은 믿음 소망 사랑은 가장 으뜸이 되는 신앙의 등목으로 말하는데 믿음의 등목이 있다. 사랑을 실천한다. 소망은 어디 갔는가? 여러분 모든 현대 교회에서 놓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성경의 신앙의 등목 가운데 잃어버린 것이 소망이다. 그 소망은 구약에서 말하는 땅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에 모든 소망은 히브리서 본문에 나오듯이 내세(來世)에 대한 소망(所望)이다. 너무 유복(裕福)하게 살고 잘 살다보니까 지상의 모든 교회의 성도들은 다른 사랑이니, 정의니, 사회정의니 다 추구하면서 정작 소망은 놓치고 있다. 그러면 소망이 무엇일까? 핵심이 이것이다. 소망이 안 보이는데 뭐 중요하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 1절을 보면,
 
*히브리서 11:1,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눈에 안 보이는 그 실상이 그게 있다는 것인데 믿음이라는 것은 안 보이는 것을 있음으로 믿는 것이고 손에 안 잡히지만 있음을 깨닫고 그 실제를 받아들이는 것인데 믿음의 절정(絶頂)이 바로 소망이다. 믿음이 최고에 올라간 사람은 어떤 경지냐면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지닌 것이다. 여러분 그러니 우리가 정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다. 히브리서 11장을 저의 표현으로 정의를 하면 소망이란, 하나님 나라에 대한 향수병이다. 믿음의 절정도 천국에 대한 노스텔저, 하나의 향수병이다. 그것은 우리의 본향이다. 제가 여러 분야의 책을 썼지만 문학과 지성사에 나오는 우리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실려 는 책이 있는데 그것이 ‘ 고향’ 이라는 글이다. 이 고향이라는 책은 왜 썼냐면 그 안에 하나님이라는 말은 별로 안 나온다. 문학책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인생에 깨우침을 주자는 뜻이다. 핵심은 하나님을 떠난 인류는 실향민(失鄕民)이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인류는 진정한 귀향(歸鄕)이다. 여러분들이 다 명절 때에 고향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인생의 진정한 고향이 어디인지를 성찰(省察)해 보라는 것이다. 이런 화두(話頭)를 던질 거리이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신앙생활에 가장 큰 것은 본향에 대한 무감각이다. 돌아갈 것에 대해서 의식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키에르케고르의 들오리처럼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이 시간의 모두가 길 위에 집을 짓지 않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다시금 되새기고 가슴에 품고, 그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힘 있게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영원한 소망을 가진 자답게 평온을 찾고 이 세상의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 소망을 붙들고 힘 있게 믿음으로 헤쳐가기를 소원한다.
 
♣요약
정치 경제와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소망을 다시 되새기고, 나그네 의식과, 가는 길을 자지도 쉬지 않아야 하며, 길 위해 집을 짓지 말고, 우리가 돌아갈 본향을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을 확고히 가지고 이 소망을 붙들고 힘 있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담대히 살아가며 열매 맺는 자 되고, 우리의 삶 가운데서 천국의 소망을 놓치지 않는 진정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히브리서 11:13~16)
-온전한 믿음, 최후 승리를 얻는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증거하기 위해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모본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


▶에프렘 버클 목사님(런던시티미션대표)-초빙-3부,4부)통역(정상익 부목사님)-“하나님의 영광은 누구에게서 나타나는가?” -(고린도 전서 1:18-25)

 
-안녕하세요. 엘프렘 목사이다. 여러분 환영해 주셔서 감사하다. 제가 한국에 처음 방문했다. 런던으로부터 이곳에 온 것이 큰 영광이다. 오정현 담임목사님의 친절함에도 감사를 드리고, 유니온 신학교와 함께 사역하는 고성삼 목사님과의 파트너십과도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런던시티미션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유니온 신학교화 협력하여 런던에서 사역을 펼쳐나가고 있다. 여러분 런던시티미션에 대해서 잘 모르실 것이다. 데이빗 나스미스란 사람에 의해서 1835년에 시작된 미션이다. 그의 마음과 열정은 가장 약하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서 가는 것이었다. 190여년이 계속 되면서 이 사역이 진행이 되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팀 켈러 목사님도 런던시티미션과 함께 하신 동역자 중에 한 사람이다. 우리 런던시티미션의 아주 중추적인 일을 했고, 그래서 저희 사역가운데 팀 켈러 목사님의 두 아들을 직접 훈련시키기도 했다. 우리 영국에는 안타깝게도 이제는 하나님을 알고 기독교를 따르는 숫자가 훨씬 적어졌다. 거의 50%의 인구가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해 줄만한 친구나 가족이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 대한민국에서 하나님이 일 하시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여러분과 함께 파트너를 맺고 이렇게 복의 통로가 되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이렇게 높여진 나라가 굉장히 작았던, 낮추어졌던 것을 제가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그 영광을 드러내신다.
 
오늘 여러분께 두 가지를 말씀을 드리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사용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약함을 선택하신다. 이렇게 높여진 대한민국에 대해서 제가 알게 되었을 때, 이 웨일스, 영국에 있는 웨일즈 지방에서 한국으로 보낸 선교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여러분이 아시는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 선교사이다. 27세의 나이에 이 땅에 와서 그 목숨을 잃게 된 그런 선교사이다. 그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일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그를 처형했던 사람에게 그 성경책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자신을 막 처형을 하려고 한 사람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토마스 선교사를 처형했던 사람의 사촌이 목사님이 되는 기적을 맛보게 된다. 조카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선택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과 우리의 연약함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가 읽었던 고린도전서 1장을 보면, 십자가의 도가 미련해 보이는 그것을 사용하셔서 사람들에게는 그 십자가의 도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그 놀라운 능력을 사용하심을 본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분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가 모두 아는 것처럼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미련하다고 한다. 그라니 하나님께서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여러분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여러분이 타고 있던 차량이 갑자기 멈추었다고 생각해보라. 제가 여러분을 도와준다고 갔다. 제가 자전거를 타고 여러분을 도와주러 갔는데 페달이 없는 자전거이다. “제가 당신을 도와줄게요. 함께 합시다.” 제가 그렇게 말한다면 여러분은 저를 신뢰하시겠는가? 여러분, 페달이 없는 제 자전거를 보고 “참 미련한 소리 하네.”라고 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 이렇게 말씀을 하고 싶다. 천성에 가는 길은 내리막길이라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볼 때 미련해 보이는 것을 사용하신다. 우리가 보기에 인류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고 불가능한 일로 보이더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볼 때, 이 십자가의 도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련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고 나타내신 것을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21절 말씀을 보면
 
*고린도전서 1:21,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나님께서 마치 그 미련해 보이는 그 십자가를 통해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이야기 한다. 하나님의 그 구원의 역사는 인간의 지혜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재물로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약점을 사용하셔서 스스로에게 영광 받을 수 있도록 일하신다. 우리가 구약 성경에 나오는 말씀을 볼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열방의 아비로 삼으신 것을 볼 수 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자녀를 가질 수 없었던 상황에 놓였다. 아브라함이 연약했지만 하나님은 강하신 것을 본다. 우리가 야고보를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셨을 때는 절름발이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약점을 통해 일하셨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강함을 드러내셨다. 우리가 기드온을 볼 때에도 가장 작은 지파 중에 가장 작은 사람이었다. 그에게 군대가 주어졌는데,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군대를 더 작게 만들라고 하셨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셔서 약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삼으셨지만 여전히 다윗은 가장 젊을 사람으로 보이고 있었다. 너무 작았기 때문에 골리앗과 싸울 때 갑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그저 물맷돌을 가지고 있다는 약함 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강함을 그에게 약함을 통해 드러내셨다. 이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난 후에 사울 왕으로부터 도망을 쳤다. 아둘람 굴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여러분이 다윗 왕과 아둘람 동굴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저도 잘 안다.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말씀을 자주 이 말씀을 전해 주셨다고 들었다. 다윗이 그 동굴에 있을 때에 장정들이 그에게 다가온다.
 
사무엘상 22장에 보면, 다윗과 함께 했던 그 장정들이 은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우울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장정들이 연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장정들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다. 이 다윗 왕과 함께 다윗 왕국을 세우는데 쓰임 받았다. 그리고 다윗 왕국이 세워졌을 때 그 장정들도 함께 세워지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연약하다고 사람들이 생각을 했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약함을 통해 일하셨다. 우리가 잘 알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데 다윗왕의 이야기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시다. 우리는 그분의 왕국을 세우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올 때 필요한 상태이고 고통을 받고 있는 상태이고 그리고 우울한 상태라 할지라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는데 애를 쓴다면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세워질 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약함을 통해서 드러내신다. 우리에게 많은 예들이 있다. 여러분 이사야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수 있다. 이사야가 이렇게 말을 했다. “나의 입술은 부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그의 입술을 정결하게 만드셨다. 그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우리 호세아 이야기도 살펴볼 수 있다. 호세아도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아내는 정조를 지키지 않는 아내였다. 그러나 이 호세아의 이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드러내신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약했다고 성경에 이야기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제자들을 보고 교육받지 못한 어부들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제자들 중 한 명은 미움을 받고 있었던 세리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선택하시고 그의 약함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셨다.
 
여러분이 아시는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이다. 사도바울도 약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갈라디아서를 썼을 때에 눈의 아픔에 대해서 이야기를 썼다. 그게 아마도 육체의 가시라고 표현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도 바울이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가지고 하나님을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말씀하셨다. 내 힘과 능력은 약함을 통해 완성된다고 하는 것이다.
 
여러분,
약하다고 느끼실 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약함을 사용하셔서 그 영광을 드러내신다. 단순히 하나님께서 그 약함을 사용하시는 것만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 약함을 견디시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받아주시는 것만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약함을 오히려 선택해서 사용하신다. 오늘 우리가 읽은 고린도전서 1:26절을 보면,
 
고린도전서 1:26,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세상에 미련한 것을 택하셔서 이 세상에서 미련해 보이는 것을 택하셔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세상에 약한 것들을 택하셔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어떤 사람이든 주님 앞에 나아올 때, 우리가 연약(軟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가진 재물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우리를 구원(救援)할 수 없다. 우리의 지혜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우리의 가족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우리 교회조차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우리 영국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복지 정책(政策)들이 있는데 스스로를 돕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복지(福祉)를 통해서 건강과 또 재물을 전달하고 있다. 만약 그 복지정책을 사용하려면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무언가 가지고 있다면 그 정책대로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손을 열고,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아가야 한다. 네 맞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의 그 강함은 우리의 약함을 통해 완성된다. 여러분 여러분이 연약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그리고 여러분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라고 딱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완벽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의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약함을 사용하시고, 그 약함을 선택(選擇)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약함을 찾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강함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의 지혜를 의지(依支)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의지하면서 기도하지 않는 오류를 범(犯)하면 안 된다. 우리의 전통은 따르면서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물(財物), 그 재물에 의지하면서 하나님과 교제(交際) 하는 것을 거리 두어서는 안 된다. 부자에게나 말씀을 전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말씀을 전하지 않은 것도 안 된다. 하나님의 그 강함을 약함을 통해 완성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강함을 싫어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강함을 사용하시기를 원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강함을 모두 하나님께 내려놓고 항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강함을 싫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 대신에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내 마음을 싫어한다. 하나님께서는 약함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런던시티미션에서 저와 함께 하고 있는 제 바로 위에 있는 대표가 그러라 밀러라는 분인데, 굉장히 비극적인 일을 겪으셨다.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끔 허락해 주셨다. 제 아들이 5년 전에 열다섯 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번 주가 그가 아들이 죽었던 것을 추모하는 주간이 되었다. 제가 그와 함께 이야기 하면서 한국에 왔을 때 저를 축복해 주셨는데 그래서 그분께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마음을 주셔서 우리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강함이 드러난다고 말씀을 전하려고 한다. 그러자 대표님께서 동의하시면서 “맞습니다. 목사님, 가셔서 약점을 통해 하나님의 강함이 드러난다고 하십시오.” 라고 하셨다. 제가 아들을 잃고 난 후에 지난 5년 동안 참 약하다고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그 지난 5년 동안 런던시티 미션을 통해 수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을 보게 되었다. 오직 하나님의 강함을 통해서만 일어났던 일이었다. 하나님의 그 강함은 약함을 통해 드러난다. 제가 이 대한민국이 건립되고 세워진 것을 볼 때, 손양원 목사님의 이 이야기가 떠오르게 된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두 아들의 아버지였는데 둘 다 죽임을 당했다. 자신의 아들들을 죽였을 때에 그 범죄자를 찾았을 때에 그를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셨다. 단순히 그를 용서해 주었을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들을 죽였던 사람을 자신의 양 아들로 삼기로 했다. 정말 강력한 간증거리이다. 어떻게 내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내 아들을 죽인 그 사람을 사실 안아줄 수 있을까? 그렇게 희생하고 그렇게 안아주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다. 아멘,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시도록 선택하고 계신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어떤 강함이라도 의존하고 있다면 회개(悔改)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큰 의지를 한 것들을 이제 하나님께 내어 놓아야 한다.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의지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의 약점을 통해 드러내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 라고 말한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이 많은 것들을 다 해로 여긴다는 것이다. 내가 배웠던 것들도 다 해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힘과 능력으로 3일 만에 일어나셨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다. 우리 하나님을 더 신뢰합시다. 그리고 연약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갑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마을로 초대한다고 이야기 해 줍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리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에 감사를 드리자. 아멘.
 
♣요약
십자가의 도는 불신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생명을 구원하는 반면, 사람의 지혜는 아무리 고상하고 놀라운 것일지라도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하며 결국은 멸망을 자초하게 되니 우리는 인간이 소유한 지식의 한계성과 상대성을 인식하고 인간의 지혜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참된 구원 행위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 주시고, 우리의 약점을 통해서 드러내 주심에 감사하며, 우리의 약점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의지하여 하나님 이름만이 홀로 영광 받으시기를 소원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오히려 선택해서 사용하시니 하나님의 영광은 어디에서 나타나는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헌금 찬양(3부)-김주은집사, 김진영집사, 홍혜천 집사.





 

반응형
728x90
 

[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2월 6일 (784)

1. 기업을 인수할 목적으로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기간과 가격을 미리 알리고 특정 기업 주식을 사들이는 것은?

①공시 ②공개매수
③기업공개 ④상장폐지

2. 평소보다 많은 이익을 낸 기업에 추가로 물리는 ‘초과이윤세’를 뜻하는 용어는?

①누진세 ②간접세
③죄악세 ④횡재세

3. 특허, 상표, 실용신안, 디자인 등을 아우르는 ‘지식재산권’을 뜻하는 약어는?

①ICT ②IR ③IP ④IPO

4. 부동산 시장의 ‘거래 절벽’ 충격을 막기 위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로 가장 합리적인 것은?

①거래세율 인상
②보유세율 인상
③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④규제지역 해제

5. 우리나라의 ‘이것’이 올 들어 20일 동안에만 적자규모가 100억달러를 넘었다.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수치인 이것은?

①무역수지 ②대외의존도
③관리재정수지 ④통합재정수지

6. 최근 은행 영업시간 정상화 여부를 놓고 금융권 노사가 마찰을 빚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은행은 원칙적으로 몇 시에 문을 닫았을까?

①오후 3시 30분 ②오후 4시
③오후 4시30분 ④오후 5시

7.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실질적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원칙은?

①탄소배출권 ②탄소중립
③공정무역 ④비관세장벽

8. 2022년 우리나라의 ‘이것’은 2.6%로 집계됐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의 전기 대비 증감률인 이것은?

①경제성장률 ②잠재성장률
③경기종합지수 ④물가상승률

------------------------------------------

[커버스토리]

▶급등락하는 '가격 발작'…소비·생산 힘들어져요.


가격이 춤추고 있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아파트 가격이 급락하고, 국제 가스와 석유 가격이 급등·급락을 반복하고, 매우 낮았던 금리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햄버거·떡볶이·짜장면 같은 외식 물가가 크게 올랐습니다. 우리는 가격이 단기간에 크게 요동치는 ‘가격 발작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렵게 하는 가격 급변동은 지구촌 경제가 극도로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가격이라는 숫자지만 이 숫자 안에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정보가 들어 있답니다. 경제학을 배우지 않은 사람도 ‘가격이 하는 역할’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는 거죠.

여러분은 혹시 ‘가격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지요?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 가격이 없다면 우리는 살 수 있을까 하는 겁니다. 가스·아파트·햄버거·떡볶이·금·석유·비트코인 가격이 없는 세상 말이죠. 써도 써도 남아도는 풍족한 천국에서는 가능할지 모릅니다. 희소성이 존재하지 않으니 가격이 붙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격은 무엇을 얼마나 소비하고 생산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정보 덩어리입니다. 생산요소 가격과 생산물 가격을 보고 기업과 가계는 경제활동을 조절하죠. 가격은 사람들을 화나게 만들기도 합니다. 가격이 부리는 마술을 공부해 봅시다.


▶매일 만나는 가격, 너는 도대체 누구니?
가격 안에는 수많은 정보가 들어있어요.


우리가 매일 만나는 것 중 하나가 가격입니다. 버스·지하철을 탈 때도 가격, 군것질할 때도 가격, 참고서를 살 때도 가격을 접합니다. 우리는 가격을 상대로 ‘헤어질 결심’을 하기 어렵습니다. “가격, 너는 도대체 누구니?”


[1] 가격은 어떻게 결정될까요?

경제학을 처음 배울 때 만나는 게 수요·공급 곡선입니다. 이 그래프는 가격(P)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움직이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x축과 y축이 만들어내는 2차원 공간에 그려진 수요곡선(D)과 공급곡선(S) 모양은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점에서 정해진다고 보면 좋겠습니다.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이해가 만나는 지점이지요. 참고로 가격을 그래프로 처음 그려낸 사람이 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1842~1924)이랍니다. 훌륭한 수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말로 하던 가격을 그래프로 휙휙 그려버렸죠.

[2] 가격은 정보다?

경제학을 조금 깊게 공부하면, 한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곡선 몇 개로 나타낼 수 없을 만큼 많은 변수로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임금·소득·취향의 변화, 기술의 진보, 전쟁·천재지변, 새로운 기업과 기업가의 출현, 정치 격변, 인구 감소 같은 것들이죠. 어떤 것의 가격은 다른 것의 가격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생산요소(예를 들어 철광석, 밀, 원유)의 가격은 이것을 이용해 만드는 생산물(TV, 수제비, 항공유)의 가격을 바꾼답니다. 우리가 늘 마시는 커피 가격에는 커피 산지의 임금, 수송비는 물론이고 수입할 때 들어가는 선적비, 카페에서 들어가는 임대료, 재료비, 가공비 등 수많은 원가가 포함돼 있어요. 각 단계에 붙은 작은 이윤도 가격에 들어 있죠. 가격은 정보 덩어리라고 해야 합니다.

[3] 가격은 기업이 결정한다?

가격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기업이 가격을 정해 과도한 이득을 취한다는 겁니다. 자유롭게 경쟁하는 시장이라면, 정부가 특정 기업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가격을 정하는 주체는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입니다. 소비자가 왕이라는 뜻입니다. 한 기업이 이익을 많이 거두겠다고 가격을 높이면 단기적으로 이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시장에는 늘 경쟁하는 기업이 존재하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려는 기업이 있기 때문에 기업이 가격을 함부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좋은 제품과 합리적인 가격에 예민한 소비자들이 생산물을 사주지 않는다면 기업들은 손실을 볼 겁니다. 명품 같은 사치재도 기업이 일방적으로 가격을 높이는 것 같지만, 이것 역시 비싼돈을 주고 살 능력이 있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거죠.

[4] 가격은 코끼리를 춤추게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일 때 마스크 가격이 폭등한 적이 있습니다. 마스크 자체를 구하기 힘들었죠. 높아진 가격은 크고 작은 기업을 춤추게 했습니다. 마스크를 만들지 않았던 기업들도 마스크 생산에 뛰어들었습니다. “얼른 만들어서 높은 가격에 팔자”는 인센티브가 작동한 거죠. 부족했던 마스크가 넘치기 시작했고, 가격은 빠르게 안정됐습니다. 정부가 높은 가격만 보고 가격을 통제할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면 마스크 수급 불균형이 그토록 빨리 해소되지 않았을 수 있죠. 가격은 크고 작은 코끼리들을 춤추게 합니다.

[5] 과도한 가격과 적정 가격은 존재하는가?

가격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민감한 반응을 일으킵니다. 많은 사람이 즐기는 OO커피는 왜 다른 커피보다 훨씬 비싸게 받느냐는 거죠. 한마디로 왜 이득을 많이 취하느냐는 지적입니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상인들의 과도한 이익을 맹렬하게 비판한 적이 있답니다. 그러나 시장에선 과도한 이익, 적정 이익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과도한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시장에선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는 기업이 살아남습니다. 가격은 여러 얼굴을 가졌습니다.


▶'가격 발작' 보이는 금리·환율·석유·가스
정부 개입해야 할까, 시장에 맡겨야 할까?

최근 몇 년 동안 거의 모든 가격이 ‘발작 증세’를 보였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돈의 가격인 금리는 나라에 따라 3배 이상 뛰었고,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200~1400원대에서 널뛰었습니다. 6만달러를 웃돌던 비트코인은 2만달러대로 뚝 떨어져 3분의 1토막이 났고, 국제 가스와 원유 가격 역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폭등하는 발작을 보였습니다. 물가(物價)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발작적 가격 동향이 알려주는 신호는 하나입니다. 세계가 극도로 불안한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죠. 가격 발작 증세는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습니다.

[1] 광기와 탐욕의 가격

가격은 종종 환상을 불러옵니다. “비트코인을 사면 대박을 터뜨리고 나는 금세 부자가 될 것”이라는 판타지는 언제나 달콤합니다. 대상이 조금 다릅니다만, 이런 판타지에 푹 빠졌다가 재산을 날려버린 물리학 천재도 있었습니다. 바로 만유인력을 발견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1642~1726)입니다. 뉴턴은 대항해 시대에 출범한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의 성장성을 보고 투자했습니다. 미국 서부와 남미 일대 무역을 독점했던 남해회사의 주가는 1720년 여름부터 발작적 급등세를 보였습니다. 그해 첫달 200파운드 이하였던 주가는 7월 말 1000파운드까지 치고 올라갔습니다. 가격은 대중의 투자 광기(狂氣)를 불러왔습니다. 그중 한 명이 뉴턴이었습니다. 결론은 폭망. 그해 말 주가는 최고점 대비 5분의 1로 폭락했고 그제야 뉴턴은 깨달았습니다. “나는 천체의 움직임을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알 수 없구나(I can calculate the motion of heavenly bodies, but not the madness of people).” 이런 광기의 역사는 주기적으로 일어난다고 할 만큼 많았습니다.

[2] 정부냐 시장이냐

가격이 발작할 때 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래도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논쟁은 경제학계의 단골 다툼거리입니다.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측은 “인간은 탐욕에 노출될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하고, 기업과 개인은 공공선보다 사익을 추구하려 하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 나서 가격 조절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20세기 초 발생한 대공황과 2008년 금융위기도 기업들의 탐욕이 빚은 결과였고, 이를 극복한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한 케인스식 처방이었다는 겁니다. 정부 개입 지지자들은 시장실패를 말하기도 합니다. 시장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가격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자는 거죠. 주택 가격이 폭등할 때 가격을 통제하는 정책이 필요하고, 기름값과 환율이 급등할 때 정부가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반대 측인 시장주의자들은 정부가 개입할수록 가격 회복이 더뎌진다고 맞섭니다. 예를 들어 집값과 임대료가 급등하는 이유는 주택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정부가 나서서 가격을 통제하면 주택사업자들이 집을 지어 공급하려 하지 않는다는 거죠. 정부 개입은 집값만 더 올려놓을 뿐이라는 주장입니다. 정부가 개입하면 단기적으로 효과가 반짝 나타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가격 안정에 더 치명적이라는 설명입니다.

[3] 사회주의 가격 논쟁

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를 비교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게 바로 가격 논쟁입니다. 자본주의는 시장 가격이라는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에 가만히 놔둬도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이 남아도는지가 자동적으로 조절되지만, 사회주의 체제에는 시장 가격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것이 과소·과다 생산되는지 알기 어렵다는 겁니다.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사회주의 체제는 국가가 모든 생산요소를 할당하고 생산량을 결정하는 체제입니다. 반면 자본주의 체제는 국가 지시가 없어도 시장이 자원 배분과 생산량을 결정하는 체제입니다. 두 체제를 비교하면 가격의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고기완 기자 dadad@hankyung.com



반응형
728x90

주일예배(주후 2023년 2월 5일)
제목: "세상이 감당 못할 사람"
말씀: 열왕기상 18:30~46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최종민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열왕기상 18:30~46,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32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35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40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
 
▶오늘 예배 시작하면서 쉐키나 찬양 팀이 마스크를 다 벗고 우리 아이들과 어른 다 벗고 함께 찬양 드리니 참 좋다. 찬양대 위에 보면 표어가 '새로운 부흥, 믿음보고 2.0'이다. 3년 전, 2020년 1월 20일부터 시작된 코로나가 오늘 3년 만에 마치고 마스크를 다 벗게 되었다. 그동안 마스크 속에서 호흡하다가 이제는 새로운 호흡으로 다들 믿음의 용장들이 되기를 바란다. 예수 믿는 것은 우리의 삶의 전부이다. 얼굴에 마스크를 벗는 것 같이, 얼굴에 저고리를 벗는 것 같이, 이제는 찬송도 안 해도 표가 안 났는데 이제는 다 표가 날 것이다. 오늘 "세상이 감당 못하는 사랑" 말씀을 통하여 모두가 다 짐이 벗기고, 회복을 넘어 부흥의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오늘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기도대첩, 한산대첩 하듯이 담력과 기백을 가지고 기도대첩을 하게 되었다. 본문을 보겠다. 지난 주 바알 선지자들이 바알 신에게 불을 내려 달라고 아무리 불러도 어떤 응답도, 어떤 반응도 없었다. 결국 그들이 해결이 안 되니까 28절에 보면 알 수 있다.
 
*열왕기상 18:28,
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하나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줄 믿는다. 결국 바알 신을 섬기고 그렇게 하다가 해결이 안 되니까 자기 자신을 자기 스스로 자해(自害)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 하나님 없는 인생은 결국 마지막에 남은 것은 자해밖에 없었다. 한 생애를 살아보면 이런 우상 섬기는 인생, 하나님 없는 인생은 결국 자기 스스로 자기를 괴롭게 하는 결과가가 나오게 된다. 자기가 최고인 줄 알지만, 어떤 사람은 자기가 우상이고, 수많은 우상들을 섬긴 사람들은 마지막이 자해하는 인생이며 자기 스스로 망하는 인생이다. 겉으로 볼 때는 오늘 이 갈멜 산 기도대첩, 갈멜 산 본격적인 대결을 할 때는 엘리야가 환경적으로 굉장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우선 숫자상으로 850:1 이었고, 31-35절을 보니까 엘리야가 어떻게 했는가? 
 
*열왕기상 18:35,
35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하나님께서 엘리야가 어떻게 했는가?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막 물을 가지고 와서 제단 주위에 고랑을 파고 거기에 물을 부었다. 저쪽 바알 쪽은 고랑이 없었다. 한 쪽은 물고랑이 있는 곳이고, 한 쪽은 물고랑이 없었다. 또 이쪽에 모든 제물과 나무에 물을 부어서 나무를 흥건하게 젓게 했다. 저쪽은 전혀 물이 없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면 젖은 것보다도 마른 곳이 더 잘 탈 것이다. 그러니까 엘리야는 조건이 불리하다. 이것을 보면 우리는 느끼는데 어떤 불리한 조건이든 하나님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 하나님은 남들이 볼 때 이렇게 이것은 안 될 것이다. 그 불리한 조건도 우리 하나님은 불리한 조건 극복의 전문가이시다. 
 
*하나님은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게 하시는 데 전문가이시다. 
-하나님은 불리한 조건을 너무 좋아하시는 것 아닌가? 말씀 할 정도로 우리가 그런 예가 많다. 요셉을 보라. 애굽에서 총리가 되기 전에 고통의 감옥 속에서 불리한 환경 속에 있었다. 기드온은 큰 대군을 물리치기 위하여 그 군인의 수를 미디안의 대군 앞에서 300명으로 아주 불리한 조건이었다. 다니엘도 사자 굴속에서 절망적인 환경 속에 있게 하셨다. 누구보다도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리신 최악의 불리한 상황이셨다. 우리 하나님은 불리한 조건 극복의 전문가이시다. 아멘!
 
*열왕기상 18:36-37,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야가 그 불리한 조건 가운데서도 간절한 기도를 한 다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 
 
*열왕기상 18:38,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온 세계에 많은 기도 응답이 있겠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돌과 흙을 다 태웠다는 것은 진짜 특별한 경우이다. 그런 하나님께서 맞춤형 은혜를 주신 것이다. 불을 내려 주셨다. 불을 내려 달라고 하면 불을 내려 주시고, 나중에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3년 넘는 기간 동안 비도 오지 않는 그 시간에 그 모든 것들을 정리하시고, 이제는 비를 내려주셨다. 마치 우리 얼굴에 마스크를 3년 이후에 벗을 수 있도록 환경을 주신 하나님이신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맞춤형 은혜를 주신 것이다. 여러분, 맞춤형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 결과 39절에 보면,
 
*열왕기상 18:39,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기도대첩, 이 놀라운 불의 대첩을 하는 그 때에 나타났던 모든 백성이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다.’라고 한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이심을 고백하고 선포한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머뭇거리던 사람들에게 
 
*열왕기상 18:40,
40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다 죽여 버렸다. 그들을 기손 시냇가로 내려다가 다 죽였다. 여러분, 이것을 보고 너무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잔인한 것이 아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예언자였다. 사람은 사람을 죽일 권리가 없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처형하실 권리가 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다. 우상 숭배하는 사람은 즉각 처벌이다. 왜 즉각 처벌인가를 보니까 어떻게 보면 잔인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누룩처럼 퍼지니까 잘못된 신앙의 뿌리가 퍼지지 않도록 즉결처벌 하신다. 오늘 이 원리는 엘리야 때나 지금이나 동일한 줄로 믿는다. 이스라엘 땅이나 오늘 서울이나 강남이나, 그 지역을 막론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시대를 막론하고, 인종을 막론하고, 이 원리는 그대로 통하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 같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 하나님의 인격은 우상으로 같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상숭배는 즉각 처결이다. 우상 숭배 때문에 고통과 저주, 잔인한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 차별금지법이라든지, 우리가 세게 반응하는 것은 거의 우상 숭배가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즉각 처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하나님은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시기에 악한 것을 조장하는 사람들을 그대로 보고 계시지 않는다. 변함없으신 영적인 논리이다. 지역을 막론하고 글로벌 스탠다드, 영적인 크리스천 글로벌 스탠다드이다. 오늘 이를 위해서 모두가 다 기도대첩의 승리자가 되고 영적기백을 허락하셔서 하나님이 한 분 한 분을 통하여 그때나 지금이나 그 원리가 우리 가운데 그대로 적용되기를 바란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크리스천 글로벌 스탠다드의 영적 기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을 감당 못할 사랑을 어떻게 하면 회복할 수 있는가? 시대를 초월하는 영적기백을 어떻게 하면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께서 오늘 엘리야에게 크게 두 가지를 하게 하셨다. 
 
*열왕기상 18:30b,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첫째- 무너진 제단을 수축해야 한다.
-수축했다는 말은 옛날에 그곳에 하나님이 제단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제단들이 있었는데 다시 재건하는 것이다. 다시 회복하고 수축하는 것이다. 좀 깊이 들어가면 우리 한국교회 무너진 제단을, 3년 동안 무너진 모든 제단들을 수축하게 되어야 한다. 다시 세우고 새롭게 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엘리야는 무너진 제단을 다시 수축하기 위하여 가슴앓이를 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사랑의 교회나 한국교회가 앞으로 제사장나라, 크리스천 팍스 코리아나,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고 회복을 해야 가능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기도의 제목이 익숙하지 않다면 오늘 공동체 안에서 이런 비전을 공유한다면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응답하실 것이다. 아멘!! 
 
그리고 무너진 제단 수축을 뭐 거창하게 찾지 말고 나 한 사람,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무너진 제단을 수축할 때, 이 갈멜산 기도대첩 승리에 있어서 엘리야 한 사람부터 시작되었다. 엘리야가 850:1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이긴 사건을 본문에 자세히 기록한 것은 무슨 엘리야의 거룩한 무용담이라든지, 엘리야의 영웅담을 드러내가 위해서가 아니라, 이것을 기록한 것은 하나님 편에 선, 한 사람이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한 시대와 한 민족과 한 왕국을 지키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무너진 제단을 회복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너진 가정도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다. 무너진 가정을 회복하는 것도 여러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간절함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 안하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고 했다.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게 하는, 무너진 제단을 다시 수리하고 회복하게 하는 것이, 우리식으로 말하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길과 같다. 주님께 새로운 호흡으로 믿음 보고 2.0을 쓰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다 통한다. 한 사람부터 시작된다. 
 
창세기 35장을 보면 야곱이 벧엘로 와서 제단을 쌓는 사건이 나온다. 야곱의 딸 디나가 수치(羞恥)를 당하자, 디나의 오빠들이 이 다 격분(激憤)해서 세겜 족속을 다 몰살(沒殺)했다. 이것 때문에 야곱의 가족들이 전면전의 당할 위기에 봉착했다. 아마도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다급하고 어려운 일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예기치 못한 급박하고 어려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직면할 때가 있다. 앞은 캄캄하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망연자실 할 때가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한 사람 야곱의 행보가 우리에게 조준 것은 야곱의 그 위기에서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다시 무너진 제단을 쌓는 것을 잘 알 것이다. 한 사람, 야곱의 인생에 다른 것 하지 아니하고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겠다는 마음이다. 야곱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이 무너지는 것을 야곱은 처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야곱이 하나님 앞에 제단을 다시 쌓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무너진 인생도 다시 쌓은 줄로 확신한다.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다시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이름은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신다는 뜻이다. 야곱이 제단을 쌓은 후에 위기의 가정이 다시 세워졌고 회복되고 민족도 다시 세워지게 된 것이다. 무너진 제단을 회복하면 그 무너진 제단을 통해서 예배하면 그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는 것이다. 오늘 우리 가운데 인생에 불리한 조건 때문에 어떤 불리한 조건 때문에 환경적으로 전전긍긍(戰戰兢兢)하는 분이 계시다면 오늘 이 예배 자체가 여러분들의 인생에 무너진 제단을 회복하고 수축하는 시간이 된 줄로 믿는다. 아멘. 그리고 이렇게 무너진 제단을 회복하고 수축하는 마음으로 코로나 이후에 매주일 주님의 예배를 회복하는 하나님은 여러분의 무너진 삶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아멘!!~반드시 여러분들의 삶의 무너진 제단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는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주님이 이 시대에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시길 기도한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고 길도 막막하고 안정되지 않았고 먹을 것도 없고, 저의 20대 초반 중반일 때, 전국에서 같이 올라온 믿음의 자녀들 5-8명이 모여서 같이 허름한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곳에서 지구본을 붙잡고 기도하고 울었다. 우리는 우리 몸도 힘들지만 그저 순수하게 무너진 선교를 감당하게 해 달라고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열왕기상 18장을 보고 너무 은혜를 받아서 그러했다. 그 형제들은 벌써 40-50년이 지난 이때에 하나님이 살려주신 것이다. 이것은 민족의 제단회복과도 연결되었다. 요즘 제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나아가니까 그 유튜브에도 73년도 빌리그래함, 74년도, 80년도 민족부흥 대성회가 인포메이션으로 들어오는데 제가 깜짝 놀랐다. 그것들이 요즘 자주 나온다. 1980년 8월 11일, 지금부터 43년 전이다. 80년도 8월 11일 그날이 한국교회가 복음화 대상으로 세계선교를 위한 복음화였다. 선교를 위해서 한국교회 성도들이 여의도 100만 명 부흥집회에 모였다. 지금은 공원이지만 옛날에는 큰 광장이었다. 지금은 여의도가 지하철도 가고 교통이 많이 확보되었지만 그 당시는 다리를 건너야 하고 그리고 버스로 가야 했다. 그때 마포대교가 그냥 차가 못 다닐 정도였다. 사람으로 가득 차는 날이었다. 사람들이 모여서 그날 저녁에 안의숙 여사님의 ‘죽으면 죽으리로다.’의 안의숙 여사님이 그분이 간증을 했다. 그때 기억을 했는데 안의숙 여사의 그때 간증하신 것을 유튜브로 보니까 들었던 것과 이번에 들었던 것이 똑 같았다. 너무 신기했다. 그 때 안 사모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본인은 살아있는 것과 순교에 낙오되었다고 하시면서 살아있는 순교자처럼 살았다고 말하고 있다. 자기를 돌이켜보니 한국 사람들이 하나님 믿는다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려고 노력하면서 감옥에 들어가고, 그야말로 처절하게 고생하고, 고문당하고, 상처받고, 가난하고 6.25때는 한국교회가 막 무너지고, 공격당하고, 수많은 고통과 고난이 있는데 본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믿고 살지만, 신명기 28장ㅜ1-2절을 읽을 때마다 이게 면, 이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어떻게 신명기 28장 1-2절이 가 우리 민족에게 믿어지지 않고, 본인에게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고난당하고 처절하고 아프고 힘들고 정말 희망이 보이지 않고 이 민족이 그랬는데,,,
 
*신명기 28:1~2,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이 말씀을 안 사모님이 볼때는 다 무너지고 있을 때이고 백성들은 너무 그 당시 너무 초라하고 안 됐고 하는데 어떻게 신명이 28장 1-2절의 말씀이 이게 이루어지겠냐고 하셨는데 이와 같이 그날 저녁에 백만 명이 사람들이 여의도에 모여서 이렇게 세계선교대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보니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라고 했다. 이 민족을 세계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사랑의 교회, 반포대로 121번지, 말이 안 된다.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 80년 8월 11일을 그대로 듣고 아멘! 하고 눈물로써 기도하고 백만 명이 기도해서 세계 민족위해 뛰어나게 하실 줄 믿는다. 민족공동체가 무너진 제단을 수복하겠다고 마음먹으면 하나님이 이 시대에 이렇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잘되고 민주와 산업화가 잘 된 것은 어떤 것으로도 해석을 못한다. 80년 8월 11일이 해석하는 것이다. 그날 생뚱맞게 ‘여러분, 온 세계를 사랑하라.’고 자기만 사랑하지 말고 여러분, 온 세계를 사랑하라고 자기만 사랑하기 힘든 세상에서 그 때는 무슨 말인지를 잘 몰랐다. 그런데 80년 8월 11일 날 그 말씀을 듣고 가만히 보니까, 82년 6월 말에 제가 안의숙 사모님이 섬기는 교회에 제가 대학부 전도사가 되었다. 1년 10개월 만에 그렇게 되었다. 그것도 희한하다. 80년도에 제가 미국을 갈 줄도 몰랐고, 그 당시는 패스포드 나오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여권하나 갖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하나님나라, 무너진 제단을 회복하려고 마음먹으니까 그런 길을 주셨다. 그래서 1년 15개월 뒤에 여쭈어 보았다. ‘사랑이 승리한다. 자기만 사랑하지 말라. 온 세계를 사랑하라.’를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까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씀을 하셨다. “오전도사님 두 종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는 찹초사랑, 하나는 유실 수 사랑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고 여쭈었더니,,,안의숙 사모님이 그 때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 
 
*잡초사랑 : 자기만 사랑, 자기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것, 신경 안 써도 막 자란다. 잡초는 그냥 자란다. 
*유실수사랑 : 힘든 사람도 사랑하는 것, 남이 못하는 사랑을 하는 것, 말도 안 되는 것 사랑하는 것,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사랑하는 거,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지치기를 해야 유실 수 사랑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사랑을 위한 회복 제단이다. 사랑을 위한 올바른 제단을 수축하는 것이다. 여러분 오늘 이 은혜가 있어야 한다. 잡초사랑이 아니라 유실수사랑을 하면 반드시 이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다. 엘리야의 개인의 무너진 제단의 회복은 이미 그렇게 회복을 하니까 그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회복과 직결이 되었다. 개인제단 회복은 민족제단 회복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사실 21세기에 들어오면 복음주의 약점이 뭐냐면 신앙을 너무 개인화시켜 버렸다. 초대교회의 그 담대한 기백 있는 신앙은 절대로 개인화로 끝나지 않았다. 초대교회는 민족 전체의 역량으로 올라갔다. 성경은 항상 예배하고 했을 때, 예배를 어떤 개인의 예배로 끝나지 않고, “오라 우리가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오라 우리가 여호와 앞에 경배하자.” 공동체적 표현을 한 것이다. 개인 문제가 공동체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개인제단의 회복이 민족 제단의 회복으로 가는 것이다. 이 거룩한 파장은 온 공동체와 민족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갈멜산도 마찬가지이다. 갈멜산에서 엘리야 혼자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볼 수 있도록 이스라엘 민족이 다 볼 수 있도록 공적 장소에서 제단을 다 쌓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6월 3일 날 상암 경기장에 다 10만 명이 모여서 우리 함께 기도의 지팡이를 들자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집에서 나 혼자 골방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지만 그럴 때에 회복과 기백과 담력과 부흥과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지를 않는다. 오늘 주일예배에 온라인에 익숙하다면 여러분 마음을 정리를 해야 한다. 함께 모였을 때 파장이 일어나고 함께 모였을 때 민족제단이 회복되게 하시고 함께 모였을 때, 거룩한 파장과 공진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의 개인주의화는 제자훈련의 독이다. 제자훈련의 은혜는 공동체가 확보되어야 한다. 가나안 성도, 아는가? ‘가나안 성도’인가? ‘안나가 성도’이다. ㅋㅋㅋ~! 여러분 가나안 성도는 정말 위험하다. 본이 아니게 가나안 성도가 되신 분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제가 이렇게 하는 말씀은 흘러 듣지 말아야 한다. 인생은 별거 아니다. 하나님 나라 은혜를 가지고 이런 개인의 회복을 가지고 거룩한 공동체가 하나님께 공동체로 은혜받고 주님 주신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과 회복되면 우리의 말년이 행복할 것이다. 이것이 정리 안 되면 회한과 탄식과 우리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기 위하여 무너진 제단을 개인과 공동체가 회복되어야 한다. 또 하나는 오늘 예화가 뒤에 나오는데 기도와 단판을 하는데 하나님과 기도하고 백성들과 기도하는데 36절을 보면, 
 
▷둘째- 능력 있는 끈질긴 기도가 필요하다. 
*열왕기상 18:36,
36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한편으로는 우상 섬기다가 자기를 자해하고 피를 흘리고 그 다음에는 몸을 상하게 하는 이 엉터리 바알 선지자들과 그 대신 확실하게 내가 주의 말씀대로 행하는 엘리야는 너무나 딴 판이다. 그러니까 말씀을 확신하는 능력 있는 끈질긴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믿음과 기백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엘리야는 어떻게 확실한 기도를 하는가? 
 
*열왕기상 18:1
1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확실하게 비를 내려주실 것이라는 것을 엘리야가 마음에 기억하면서 주의 말씀대로 행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난 다음에 놀라운 기도를 올려드린 다음에 37절에 보면,
 
*열왕기상 18:37,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기도를 하는데 엘리야의 능력이 있는 기도의 특징 중에 하나는 ‘주여 내게 응답하여 주옵소서’이다. 우리 식으로 하면 우리는 응답의 문을 열어주시옵소서. 라고 두 번 이야기 한다. 그래서 제가 기도할 때마다 ‘주여, 은혜의 문을, 주여 은혜의 문을 열어주옵소서!’ 한다. 두 번씩 한다. 기도할 때, 주여 기도의 문과 응답의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엘리야처럼 한다. 중요한 것은 ‘주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한다. 확신에 차서 끈질긴 기도를 하는데, 두 가지가 뭐냐면 하나는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것과,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켜 주시는 것이다. 
 
하나-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 
둘- 그들의 마음을 되 돌이켜 주시는 것.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깨닫게 해달라는 것과 하나님의 하나님이신 것을 사람들이 알게 하여 주시고, 창조주 하나님, 우리 하나님의 능력과 기름부음을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심을 증명할 필요할 것이 없지만 왜 하나님은 이렇게 하시는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 생각 속에 잡혀계신 분이 아니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정도가 아니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전토 속에만 억매이신 분이 아니시다. 우리 하나님은 또 다른 신이 아니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상상력에 결박될 분이 아니시다. 상상력 속에 갇히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상징도 아니시고 하나님은 어떤 우주적 파워도 아니시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지금도 역사하시고, 지금 불을 보내시고, 지금 죄를 미워하시고, 지금 우상을 타파하시고, 지금 믿음의 끈질긴 기도를 들으시고, 지금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엘리야의 기도를 통하여 확증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우상을 타파하고, 지금 역사하시고, 지금 불을 내리시고, 지금 응답하심을 믿는다. 그게 하나님이시다.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또 하나는 중요하다 
 
*열왕기상 18:37b,
37b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 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우리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하시는가? 사람들이 마음이 돌아설 수 있도록 우리 하나님은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너희들 제발 좀 돌아오라고 하신다.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 신을 섬길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나님을 배신한 것이다. 배신한 마음을 가진 것이다. 그러니까 그 배신한 마음들이 오염이 된 것이다. 누룩처럼 다 퍼져버렸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그 배신한 마음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신다. 그 마음이 돌아오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서 이 역사를 이루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다. 여러분, 마음이 돌아와야 하는 줄로 믿는다. 이스라엘의 엉터리 마음들이 돌아와야 할 줄로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증명할 필요가 없는데 왜 그렇게 하시는가? 하나님이 불을 다스리시고, 자연을 다스리시고, 하나님이 하나님 되신다. 본래 바알신은 바람과 폭풍과 풍요의 신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바알 신에게 빼앗기고 바알 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오염이 되어 있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을 주시는 다음에야 드디어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되돌아가는 것이다. 돌이켜서 진심으로 한다. 
 
*열왕기상 18:39,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놀랍다. 그들이 깨달은 것, 하나님이 불을 내리시고, 하나님이 나무와 흙을 태우시고 비를 다스리시고, 그래서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면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이 다스려 주신다. 
 
*우리 마음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게 되면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서 다스려 주신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은 여러분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워질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그때부터 우리가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여러분이 마음이 돌아오고 그 마음이 돌아올 때, 여러분의 뜻과 방향도 돌아오게 하시고 여러분의 사랑도 돌아오게 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무장되게 도와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으로 무장되면 우리가 믿음의 용량이 커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워지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용량으로 채워지는 줄 믿는다. 그 믿음의 용량이 되면 드디어 은혜의 장대비를 내려주신다. 왜 하나님이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메마르고 가뭄으로 고통당하고 어려워하는 것을 하나님은 무얼 기뻐하시겠는가? 그런데 바알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는데 그냥 하나님께서 장대비를 주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만할 것이다.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마음도 안 돌아오고, 준비도 안 되고, 마음의 용량도 없는데, 거기에 하나님이 은혜의 장대비를 채워주시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다. 마음이 하나님께 돌아가서 내 마음이 잘못되었구나, 하나님이 만군의 여호와이시구나를 생각하고 내가 믿었던 우상을 처리하고 바알을 처리하고 내가 하나님 되심을 믿으면서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을 전심으로 드리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다스려 주신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 주실 때, 그 때 비로소 우리의 마음이 믿음의 채워지고 믿음의 용량이 준비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준비가 될 때, 하나님은 장대비를 부어주신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장대비를 부어주신다. 오늘 핵심 기도의 제목은 
 
 
*열왕기상 18:37b,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우시는 것을 확신한다. 우리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심을 찬양한다. 이 예배에 집중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주신다. 마스크만을 벗지 말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야 된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새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놀랍게 은혜의 장대비를 퍼부어주신다. 영 가족 여러분, 오늘 방송을 듣는 성도들이여, 주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주시고 우리 가족을 다스려주시고 우리나라의 정치가들의 마음을 다스려주시고 우리 직장동료와 세속화 되는 세상에서 절대로 절망하지 말고 우리가 주님 앞에 든든히 담대하고 영적 기백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다스려주시기를 축원한다. 여러분 이런 은혜가 있을 때 드디어 무슨일이 벌어지는가? 45절을 보면, 
 
*열왕기상 18:45,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마음이 준비되니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데, 46절을 다시 보면, 오늘 주보 제일 앞에도 나와 있다. 
 
*열왕기상 18:46,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아멘,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했다. 이스르엘에서 아합까지 30킬로 정도를 아함 앞에서 달려가는 것이다. 빗속을 달려간다. 그래서 세계 최초의 마라톤 주자가 엘리야이다. 달려, 그냥 달려간 것이 아니다. 아합은 별 볼일이 없지만 엘리야는 아합 앞을 달려가면서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승리하시고, 우리 개인뿐이 아니라 민족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시라고 외친다. 빗속을 달리면서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하신다고 선포한다. 우리 하나님은 돌과 흙까지 태우신다고 한다. 남은 자를 끝까지 지키신다고 하신다. 여러분 가정과 개인을 불로써 타 태우시길 소원한다. 오염된 것을 다 태우시길 원한다. 개인이 회복되면 공동체도 회복될 것이다. 
 
*요약
우리 하나님은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고, 우리는 이 마음을 집중해서 은혜의 장대비를 경험하기를 소원하며, 이기적인 잡초의 사랑이 아닌, 공동체적인 유실수가 되어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 보고 2.0을 올려드리고 새롭게 호흡하며 평생 영적기백을 가지고 가정도 살고, 개인도 살고 교회도 사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체험하여야 한다.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자신이 주의 종이 됨과, 자기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알게 해 주시길 기도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엘리야의 기도는 믿음 있는 자의 기도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인간의 생각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여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가능케 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시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하나님을 인정했고, 바알 선지자들은 기손 시내로 가서 죽임을 당했다. 이와 같이 본문에서 엘리야는 담대한 하나님의 용사로 부각된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믿음 없는 사람들에게는 용기를 심어주고, 패역한 자들에게는 심판으로 다가오며,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더 큰 믿음의 담력을 갖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런 태도는 그들이 하나님께 되돌아섰음을 뜻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한 사람 엘리야의 가르침이 이스라엘 왕국 전체를 압도하는 힘이 되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원해 주시도록 만드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기도는 온 힘과 마음과 영을 다하는 간절한 기도이다. 이러한 기도의 결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비를 내려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라 하더라도 그를 회개케 하시고 자신의 백성으로 삼기 위하여 계속 은혜를 베푸시는 자비롭고 사랑이 많은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반응형
728x90

[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1월 30일 (783)

1. 비철금속의 일종으로 원자번호 13번이다. 철 못지않게 튼튼하면서도 가벼워 은박지, 캔, 새시, 우주선 등 다양한 제품에 활용되는 이것은?

① 구리 ② 알루미늄
③ 아연 ④ 은

2.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1월 스위스의 휴양지에서 개최하는 행사로 세계 정계·학계·재계 유명 인사가 집결하는 이것은?

① 잭슨홀 미팅 ② 다보스포럼
③ 블랙 프라이데이 ④ 양회

3. 중앙은행이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시장 참가자들에게 사전 안내하는 것을 무엇이라 할까?

① 밸류에이션 ② 테이퍼링
③ 포워드 가이던스 ④ 그린 북

4. 두 개 이상의 국가가 상호무역 증진을 위해 맺는 협정을 가리키는 용어는?

① GATT ② WTO
③ FTA ④ ISD

5. 기업의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잠재적 매수자에게 매각 대상 회사의 기본 정보를 소개하기 위해 배포하는 문서는?

① 그린 메일 ② 베이지 북
③ 쇼트 리스트 ④ 티저 레터

6. 페이퍼 컴퍼니의 일종으로 증시에 상장돼 있다. 오직 비상장 기업을 M&A할 목적으로 설립돼 투자금을 모으는 이 회사는?

① 지주회사 ② 스팩
③ 헤지펀드 ④ 한계기업

7. 달러화의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를 산출할 때 비교 대상 통화가 아닌 것은?

① 유로 ② 엔 ③ 크로나 ④ 원

8.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부를 먼저 늘려주면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 혜택이 돌아가고 경제 전체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론은?

① 낙수효과 ② 분수효과
③ 기저효과 ④ 구축효과

---------------------------------------------------

[커버스토리]
'오래된 문제' 국민연금 개혁이 필요하다는데…

 
새해 들어 뜨거운 이슈 하나가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바로 국민연금 개혁 문제입니다. 국민연금? 중·고교 생글 독자들은 “그게 뭔데?”라고 할 수 있지만, 국민연금만큼 여러분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 정책도 없답니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시행하는 공적 복지제도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돈을 버는 삶의 전반전에 매월 연금을 붓고, 은퇴하는 삶의 후반전에 매월 돈을 받는 제도입니다. 개인들이 자기 계획에 따라 자유롭게 가입하는 사적연금 상품과 달리 국민연금은 소득 행위를 하는 국민이 의무적으로, 즉 강제적으로 가입하는 연금입니다.

새해 벽두부터 국민연금이 주목받는 이유는 올해가 국민연금 실태를 전면적으로 파악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국민연금 재정추계 발표라고 합니다. 정부는 5년마다 국민연금이 잘 굴러가고 있는지를 분석해 발표하도록 돼 있답니다.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은 많은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여러분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포인트인데요. 여러분이 직장을 얻고 연금을 붓기 시작할 때쯤 연금이 고갈될지 모른다는 걱정입니다. 연금을 받는 사람은 많은데, 내는 사람이 적어서 생기는 적자 구조가 2040년께 시작되고 2057년쯤이면 지급할 돈이 고갈된다는 겁니다. 지금처럼 연금이 운영된다면 말이죠. 그래서 국민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이게 쉽지 않다고 합니다.

연금 자체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보험료율·소득대체율·재정추계는 뭐예요?


위 사설은 프랑스 정부가 연금개혁에 나선다는 이야기를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한국의 연금도 프랑스처럼 개혁이 시급하다고 지적하는 겁니다. 연금 이슈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용어를 잘 알아야 합니다.

○연금: 개인이 사적 혹은 공적으로 돈을 붓고 받는 일종의 금융상품입니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을 공적연금이라고 하고 개인이 별도로 가입하는 것을 사적연금이라고 합니다. 사설에서 문제가 된 것은 공적연금입니다. 노후 생활을 대비하기 위해 연금제도를 이용하는 것이죠.

○국민연금 가입자: 국민연금은 1988년 생겼어요.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가입자 수는 2222만여 명, 가입자들이 낸 적립금은 915조여원입니다. 원칙적으로 ‘18세 이상 60세 미만 국민’이면 모두가 가입해야 합니다. 18세 미만이라도 가입하고 싶으면 가입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적용 제외자도 있습니다. ▷학생이나 군인으로 소득이 없는 사람 ▷만 60세 이상자(임의계속 가입은 가능) ▷국민연금 가입자의 무소득 배우자(전업주부) ▷다른 공적연금 가입자(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기초생활수급자 등이 있습니다.

○보험료율: 연금도 일종의 보험상품이기 때문에 가입자는 매달 돈을 부어야 합니다. 그것을 보험료라고 부릅니다. 보험료율은 매달 받는 월급 중 보험료로 나가는 액수를 %로 나타낸 것입니다. 프랑스는 월급의 28%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낸다고 사설은 말합니다. 월급이 100만원이라면 28만원을 낸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입니다. 프랑스가 우리의 세 배이군요. 주요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보험료율은 18% 정도라고 합니다.

○소득대체율: 월평균 소득의 몇%를 연금으로 받는지를 알려주는 수치입니다. 소득대체율이 50%면 연금액이 연금 가입자가 받은 평균 소득의 절반이라는 의미입니다. 프랑스는 소득대체율이 62%, 우리나라는 40%라고 하는군요.

○국민연금 수령 시기: 우리나라에선 나이대별로 다릅니다. 1952년 이전 태어난 사람은 60세, 1953~1956년생은 61세, 1957~1960년생은 62세, 1961~1964년생은 63세, 1965~1968년생은 65세부터 받습니다. 가입 의무기간은 만 60세까지입니다.

○법정 정년: 프랑스는 62세, 우리나라는 60세입니다. 정년을 늘린다는 것은 직장생활을 더 하도록 해서 연금 보험료를 납부할 기간을 늘린다는 의미입니다. 국민이 반대하는 보험료 인상보다 정년 연장이 낫다는 거죠.

○연금 재정추계 발표: 우리나라 정부는 5년마다 국민연금 상태를 평가합니다. 연금이 얼마나 들어오고 나가는지를 알아보죠. 올해가 이런 분석 결과를 발표하는 해입니다. 결과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개혁안을 협의합니다.

NIE 포인트
1. 4대 공적연금에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아보자.

2. 프랑스가 왜 연금제도를 개혁하려는지 토론해보자.

3. 연금 보도에 등장하는 전문 용어를 정리해보자.



*연금제도는 19세기 비스마르크가 만들었어요 "끝없는 개혁…국가가 가입 강제하는 게 문제"

연금제도는 19세기 프로이센에서 생겼습니다. 그것을 만든 사람은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전쟁에서 이긴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1898)입니다. 1870년 프랑스를 꺾은 뒤 비스마르크에게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전쟁은 끝났는데 젊은 군인들이 갈 곳이 없었던 겁니다.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맛본 화려한 도시 모습은 고리타분한 시골과 대비되었고, 젊은이들은 도시에서 자유를 만끽하려 했습니다. 군인들은 점차 정치적, 사회적 불안 요소가 되었습니다.

비스마르크는 이들에게 직장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상황이 나빴습니다. 전쟁 뒤에 불황이 닥쳤거든요. 철혈재상은 늙은 노동자를 고향으로 보내고 젊은 실업자를 빈자리에 넣자고 생각했습니다. 늙은 군인과 노동자를 집으로 보낼 ‘당근’이 필요했죠. 그래서 만든 게 정년과 연금제도였습니다.

그냥 은퇴하라면 누가 하겠어요. “은퇴하면 연금을 주겠다. 청년도 좋고 은퇴자도 좋다”였습니다. 비스마르크가 만든 정년은 65세였습니다. 65세부터 연금을 받는다는 거였죠. 이후 ‘65세 정년=65세 연금’은 많은 나라에서 고령, 정년, 연금 수령 나이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금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연금뿐 아니라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이 대동소이한 문제를 노출했습니다. 첫째 문제는 적자와 자금 고갈 이슈입니다. 국민연금은 매월 내는 보험료율보다 가져가는 소득대체율(4면 용어설명 참조)이 높은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1988년 복지제도의 하나로 국민연금을 만들 때 그렇게 설계했죠. 이게 두고두고 문제가 됐습니다.

초기 가입자는 보험료율 3%, 소득대체율 70%의 혜택을 누렸습니다. 내는 것은 월급의 3%인데 받는 것은 월급의 70%였으니 말이죠. 이 말은 적자가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초기에는 받아가는 연령대 인구가 적고 내는 사람이 많아서 괜찮았죠. 시간이 가면서 받아가는 사람이 많아져 줄 돈이 모자라게 되는 거죠. 뒷사람이 더 많이 내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구가 줄어들면 뒷사람의 부담은 더 늘어납니다. 지금처럼 가면, 2040년부터 국민연금 적자가 나타나고 2057년께 연금이 바닥난다고 합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이런 구조 탓에 2070년 4대 공적연금(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총 재정수지는 242조7000억원 적자라고 합니다. 공무원연금은 만성 적자여서 세금으로 충당해줍니다.

둘째 문제는 연금개혁이 필요하지만 쉽지 않다는 겁니다.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가입자들이 내는 보험료를 올리는 겁니다. 현재 9%인 보험료율을 선진국 수준인 18%로 올리자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는 반대합니다. 월급에서 더 떼가겠다는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정치인들은 여론에 민감하기 때문에 보험료율 인상에 소극적입니다. 연금 액수를 낮추는 방법도 거론됩니다. 초기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연금으로 월 200만원 이상 받았습니다. 이게 갈수록 줄었죠. 100만원대로, 또 그 이하로 줄어들겠지요. 정년을 연장해서 보험료를 내는 기간을 늘리거나, 연금 받는 나이를 늦추는 방법도 있어요. 현행 60세인 정년을 더 늘리면 돈을 내는 사람이 많아지겠지만, 이것은 청년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서 논란입니다. 받는 나이를 늦추는 것은 이전 수령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죠.

이런 고질적인 문제 때문에 국민연금 비판자들은 “국가가 왜 연금 가입을 강제하느냐”고 지적합니다. 개인의 노후는 각자 준비하면 되는데 왜 국가가 나서서 풀지도 못할 문제를 자초하냐는 거죠. 개인들이 알아서 저축하거나 사적연금을 들어 노후를 준비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수명이 늘지만 출산율은 떨어지는 시대(받을 사람은 많고 낼 사람은 적어지는 시대)에 연금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고기완 기자 dadad@hankyung.com

반응형
728x90

주일예배(주후 2023년 1월 29일)
제목: "영적 기백(氣魄)"
말씀: 열왕기상 18:20~29

찬양인도: 쉐키나(이다니엘 부목사님),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유이삭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옥사님
ㅡㅡㅡㅡㅡㅡㅡ
*열왕기상 18:20~29,
20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23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붙이지 말라. 
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추운 날씨에 이렇게 나올 수 있는 환경과 믿음 주시고 건강 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축복이다.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시리즈 11번째이다. 지난주에 고향 교회를 가니까 제목이 거기도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였다.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랑의 교회를 따라 하는 것은 아니냐고 하고, 좀 창의력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그 담임 목사님이 기가 막힌 대답을 하셨다. “이것보다 더 좋은 표어가 어디 있습니까?” 하시며 그리고 “한국교회 모든 교회들이 가장 절실하게 기도해야 할 제목입니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시니 그 반을 듣고 제가 너무 감사했다. 오늘 이 회복을 넘어 이 시리즈는 우리 개인의 어떤 공동체 사고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 개인도 이 제목을 통해 많은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 오늘 제목은 영적기백(氣魄)이다. 찬송할 때, ‘믿는 사람들은 주의 권세이니’ 할 때 어떤 분들은 기운 있게 ‘앞서 가신 주를 따라갑시다.’ 라고 하는데 어떤 분들은 이게 무슨 찬송인지도 몰라 하신 분들도 있다. 하여튼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완전한 기백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회복으로 넘어 부흥’으로 가는 이 과정에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영적 기백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신앙의 엔진이라 말할 수 있다. 여러분, 20-30년 된 차라 할지라도, 오래된 차라 할지라도 엔진이 좋으면 그냥 끄떡 없이 잘 나간다 맞는가? 우리가 개인적으로 나이가 들어가고 또 환경도 바뀌고 시절도 변하지만 영적기백이라는 이 신앙의 과업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영적기백을 소유하면 나이가 들어가도 환경이나 지역이나 시대나 상관이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기백이 왜 이 단어가 필요한가? 우리 입장에서 당장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엔진이기도 하지만 왜 필요하냐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신앙인이 되는 그 순간부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영적기백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예수를 믿는 그 순간부터 그리스도인은 예외 없이 영적 전쟁터에 발을 들여놓기 때문인 것이다. 다 영적 전쟁터이다.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을 잘하면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전투함을 타고 전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귀는 우리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날마다 우는 사자와 같이 달려드는데, 우리는 만약에 패잔병(敗殘兵)처럼, 정말 당나라 군사들처럼 가만히 있다면 안 된다. 오합지졸(烏合之卒)처럼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적 전쟁을 우리가 해야 되는데 우리가 막무가내로 아무런 준비가 없이 뛰어들면 안 되고, 그래서 영적기백을 가져야 한다. 이번 주와 다음 주에 걸쳐서 위해 너무 중요하다. 영적기백과 담력을 회복하고 우리 것으로 무장(武將)되는 영광스런 신앙이 되기를 바란다.
 
저는 오늘 구약의 열왕기상 18장, 여러분이 잘 아는 말씀이지만, 여러분 저는 신구약, 특별히 구약 말씀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실히 믿는다. 이 21세기의 한국과 서울에 사는 우리들에게 인생의 나침반으로서 이 말씀을 주셨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의 현장과 직결(直決)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본문을 보겠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 다스린 지 100년 정도 지난 구약 스토리이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듯이 솔로몬 이후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졌는데 북이스라엘이 아합 왕이었고, 이런 하나님을 버리 바알 신을 섬겼다. 그리고 아합 왕은 악명 높은 이세벨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선지자는 엘리야 선지자였다. 아합 왕이 잘못된 것에 3년간의 기근(饑饉)이 들었다. 온 나라가 고통 했다. 고토이후에 갈멜 산의 영적 전투가 벌어진다. 만약에 이 갈멜 산의 전투를 누가 영상으로 촬영을 했다면 참으로 드라마틱한 장면이 나올 것이다. 소위 이 신들의 전투, 우리가 이렇게 설명하지만 이 신들의 전투를 보게 된다. 여호와냐? 바알이냐?를 보게 된다. 이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떼를 지어 갈멜 산으로 다 올라갔다. 한쪽 편에는 바알 선지자들이 화려한 예복을 입고 서 있다. 바알과 이스라엘 선지자 850명이 서 있다. 그리고 그들은 태양신을 그들은 숭배했기 때문에 태양의 빛을 발하는 금송아지를 목에 걸고 있었다. 그 빛에 눈이 부셔서 눈을 뜨기 힘들었을 것이다. 폭군이 왕이 화려한 옷을 입고 왕실 침대에 서 있다. 그런데 맞은편에는 광야출신 엘리야가 초라한 옷을 입고 수염을 길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서 있다. 지팡이... 우리는 무얼 하든지 제대로 한다. 객관적으로 볼 때, 한 쪽은 너무나 위세가 등등해 보이고, 한 쪽은 너무나 초라해 보인다. 한 쪽은 찬란해 보였고 한 쪽은 불쌍해 보였다. 오늘 본문 앞에를 보면 아합이 뭐라고 하냐면,
 
*열왕기상 17~18,
17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아합 왕이 그 권위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가 너냐고 묻는다. 그러니까 엘리야가 기가 죽지 아니하고 18절에 보면,
18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 너라고 한다. 내가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 집이 우리를 괴롭힌다고 눈동자도 하나 흔들리지 않고 자기가 기가 죽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소위 영적 기백이 있는 것이다. 그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바알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갈멜 산으로 나오게 한 것이다.
 
I 영적 기백이 있는 교회.
 
*열왕기상 18:19,
19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여러분 제가 이렇게 왕 앞에서 담대한 기백을 가지고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가? 엘리야는 광야의 고난을 경험했다. 그리 시냇가에서 배고픔도 체험했다. 엘리야의 기백은 왕실의 산해진미와 안락함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목마름도 경험하고 환경적 고통과 가난한 백성들과 가뭄과 기근을 경험하면서 소위 고난의 과정을 거친 영적 기백인 것이다. 광야를 거친 광야에서 체득된 기백인 것이다. 이런 영적 기백이 우리 교회와 개인도 있을 수 있지만 한국교회가 이런 광야의 경험을 거치고 한국교회가 영적기백이 있는 주님 주시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한다. 구약의 말씀과 오늘 신앙생활의 우리가 연결이 되어야 한다. 영적 기백의 한국교회가 되어야 한다. 과거에 고난의 길을 경험했다. 저는 지금도 고난의 길에서 은혜 받았던 장소나 길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시골에 기도원이나 교회 마룻바닥에서 새벽에 아무도 오지 않은 시간에 혼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시간들과 한 두 명의 성도들이 모여 통회하며 주님께 매어 달리고 기도하는 그 시간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안아주심의 본당도 겉으로는 귀하고 아름다운 그런 본당이지만 이런 고난의 정신이 차곡차곡 쌓여서 우리가 오늘 이와 같이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 믿는다. 본당에 들어올 때마다 한국교회의 기도원의 야성과 고난을 이겨낸 야성이 여기에 축적된 줄로 믿는다고 기도하며 오죽하면 토비새(토요비전새벽예배)마다 이곳이 하나님 아버지 갈멜 산의 전산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곳이 모리아 산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며, 감람산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며, 시내 산이 되게 하여 주시라고 기도한다. 이 자리가 한국교회의 영적기백의 토대가 되게 하여 주시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도록 공동체와 개인에게 허락하실 것이라 믿는다.
 
저는 한국교회사를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한국교회의 혈관에는 고난의 영적기백의 DNA가 흐르고 있다. 한국에 전해지는 복음은 영적전투를 통해 처음 강하게 들어왔고, 강력한 유교에 대치해서 한국교회 선교사를 보니 이런 내용이 나와 있다. ‘보름을 기하여 한국교회의 외국인 가옥을 불태워 훼파하라.’ 외국인 가옥과 교회당을 다 불태우고 파괴하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 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할 것 없이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훼파하라고 탈취하라고 하만이 유대인을 죽이도록 전국에 내린 조서였다. 지금으로부터 123년 전에 1900년에 이용익이나 김영준 같은 수구파들이 전국에 선교사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일시에 박멸하는 계획을 비슷하게 세워가지고 선교사의 집과 교회당을 불태우고 파괴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마치 이 내용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에스더서를 보면,
 
*에스더 3:13
13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보내니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지금부터 125년 전 1898년에 유교의 이름으로 부상들을 부추겨서 우리가 국사 공부할 때 배웠을 것이다. 황국협회라는 것을 내 세워서 반기독교 적 운동을 조직했다. 보부상들은 1898년에 10월에 기독교 학교와 교회당에 경고장을 보내면서 교회를 박멸하려고 협박했다.
1898년에 10월9일자 황성신문에는 보부상들이 교회당들을 훼파하고 교회 신도들을 도륙했다.
-이후 한국교회는 3.1운동에서 첫 3개월 동안 오만 명 이상이 처형되거나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재암리교회 학살 사건을 알 것이다. 교인들이 예배드리고 있는데 다 불태워 죽였다. 절대다수가 기독교인들이 3.1운동에 고생한 것이다. 6.25전쟁, 전쟁초기 6개월 동안 508명의 목사님들이 순교를 당했다. 2천 여개 교회들이 파괴가 되었다. 우리교회 가끔 오셔서 말씀하시는 박영규 목사님, 한국교회사 전문가이신 박영규 교수님은 한국교회 박해 사를 이렇게 정리했다.
*복음은 신분과 민족과 성을 초월하고 그 안에 있는 자들은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 그것 때문에 교회는 박해를 통해 더욱 성장해 왔던 것이다. -김용규 교수-
고난이 한국교회 영적기백을 가져온 것이다. 오늘 이러한 한국교회의 역사와 또 엘리야의 역사와 이것이 우리에게 연결되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럼 어떻게 영적기백을 회복할 것인가? 아니 영적기백을 놓친 우리가 어떤 식으로 이 영적기백을 회복할 것인가이다. 21절부터 두 세가지 정리를 해보겠다.
 
II. 어떻게 영적 기백을 회복할 것인가?
 
*열왕기상18:21,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진정한 영적 기백은 머뭇머뭇 하지 않는 것이다.
 
▷첫째 진정한 영적 기백은 머뭇머뭇 하지 않는 것이다.
-머뭇머뭇 하지 않는 것이다. 엘리야가 백성들을 질타했다. 기회주의 어정쩡한 자세를 취해가지고 양다리를 취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느냐고 묻고 있다. 여기서 히브리어로 머뭇머뭇거리다는 본래 원어에서는 절뚝거리는 것이다. 그리고 26절에 보면 단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하고 한 말씀처럼 춤을 추며 뛰놀다의 동사와 똑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과 같은 단어이다. 백성들이 머뭇거리는 것과 우상에서 뛰 노는 것과 같은 단어로 사용된다. 왜 같은 단어라고 성경기자는 사용하고 있냐면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히 바알을 섬기지는 않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는 소위 회색(灰色)지대(地代)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러하니까 영적 담력과 기백이 안서는 것이고, 소위 종교다원주의 가운데서 담력이 안 생기는 것이다. 혼합주의 밑에서 신음하고 맥아리가 없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 영적기백의 DNA가 흐르게 하려면 머뭇거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 머뭇거리는 것이 무엇인가?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에 우리가 민감해져야 하는데, 다른 신들을 따르지 않고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과 우상 사이를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오늘 결단할 것이 무엇인가? 회색지대는 없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르게 선택하라.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하라고 한다. 지난 수천 역사에서 하나님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바알을 선택할 것인가? 이다. 태양신, 지금도 미국에도 ‘조르아스터교=배화교’를 섬기는 자들이 있다. 중동에도 있다. 태양이나 불을 섬기는 자들이다. 일본의 식민지 시대는 천조대 신이다. 그때도 태양신과 같다. 그 태양신을 섬기지 않는다고 해서 일제 강점기 우리도 순교를 당했다. 주기철 목사님이 감옥가기 전에 장로교 목사님들과 함께 금강산 수양 관에서 총회 수양회를 했는데 그 때 설교가 지금 남아있다. 그 제목이 뭐냐면, ‘예언자의 권위’였다. 한국교회가 엘리야처럼 영적권위를 회복할 것을 주 목사님이 설교하신 것이다. 주 목사님은
“여러분들도 엘리야의 신앙, 엘리야의 기도가 있으면 엘리야의 권능과 선지자의 권위와 담대함을 회복할 수 있다. 생사여탈의 대권을 잡은 임금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그 죄를 책망하는 엘리야는 일사각오의 기백을 가졌다.” -주기철 목사-
-오늘 이 예배를 드리면서 이런 설교가 쉽지는 않은데 여러분과 제가 이 시대를 향하여 영적기백을 가지고 일사각오를 가진다면 수많은 강들이 돌파가 될 것이다. 어정쩡한 상태에 있는 자들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신다면,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겠는가? 여호와이냐? 바알이냐?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부흥이고 영적 기백이고 일사각오가 되는 것이다. 엘리야의 기백이 있으니까 여유가 있는 것이다. 여유가 있으니까 유머가 있고 담력이 있는 여유가 있다. 바알의 응답이 없으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열왕기상 18:27,
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그런 식으로 조롱한다. 이런 것이 다 여유가 있는 것이다. 오늘 엘리야가 조롱이라는 말을 쓰지만 사실 신앙적으로 볼 때 우리가 하는 단어가 아니다. 그러나 영적기백이 있을 때는 장소에 따라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거짓 신을 섬기고 자신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러한 거룩한 조롱도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30절에 보면,
 
*열왕기상 18:30,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증인이 되라고 요청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영적기백으로 확신했기 때문에 하늘의 불이 떨어지도록 해서 엘리야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돌과 흙까지 태운 줄로 확신한다. 어느 시대에 돌과 흙까지 태우지는 시기가 어디 있는가? 자, 이런 내용을 가지고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않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한 가지는 세상의 숫자보다도 하나님의 숫자에 더 민감하면 된다.
 
▷둘째 세상의 숫자보다 하나님의 숫자에 더 민감한 사람이 되어야.
-이제 중요하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엘리야가 850대 숫자만 생각했으면, 아마 어떻게 담대함과 영적기백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사람들은 850:1을 가지고 엘리야 850:1(엘리야) 하나 밖에 없는 엘리야를 불쌍하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엘리야는 오히려 반대로 하나님 없는 850명을 불쌍히 여긴 것이다. 850×하나님 없음(zero)=0, 이 원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세상은 100명이 천 명을 당하고 작은 자가 강국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의 천을 이루는 것을 잘 모른다. 신명기에 보면
 
*신명기 32:30,
30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주지 아니하셨더라면 어찌 하나가 천을 쫓으며 둘이 만을 도망하게 하였으리요.
-영적기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은 모른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는 하나가 열이 둘이 만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적기백의 공식이다.

※850×하나님 없음(zero)=0, -바알신을 섬기는 자,
▷1명의 엘리야X성삼위 하나님(3)=3(만군의 하나님)-이스라엘 백성들. 영적 기백이 된다.
-그래서 저는 3을 좋아한다. 마음 맞는 세 명만 있으면 나라도 세운다고 했다. 이런 3위 은혜가 열두 명이 되고, 이 열두 명 문도가 70명이 되고, 120명이 되는 것이다. 300명의 기도의 용사가 되고, 500명이 예수님 승천의 형제가 되고, 그 다음에 3천 명의 변화가 된 사람이 되고, 7천명이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게 영적 기백을 향한 독특한 공식이다. 변화 산상에서 예수님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 3명을 데리고 변화 산상에 올라갔다. 세 명씩 열 두 제사를 나누게 하신 것이다. 850×하나님 없음(zero)=0가 된다. 꽝이다.
우리 자신X성삼위하나님(3)=3이 되면 세상의 어떤 숫자보다도 압도적인 능력을 가지고 영적 기백의 현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저 그런 사람의 다수의 사람을 쓰신 것이 아니라 영적기백으로 무장된 몇 명의 사람들을 쓰신다. 자신X성삼위하나님(3)=3이 된다.
 
*사도행전 17:6,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그 바울의 초대 교회 그 강력한 복음 앞에 대로마제국이 항복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일으켜서 히브리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 11:38,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여러분, 영적기백을 가지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영적인 핵심 중에 하나이다. 이 한 해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도 그런데 우리는 영적기백으로 또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야 한다. 다시 한 번 우리는 한 알의 사과 씨를 가지고 수백 개의 열매를 볼 줄 아는 하나님의 사람의 눈, 영적기백이 필요한 것이다. 수천 구루의 나무로 울창해진 숲도 한 톨의 도토리로 시작된다. 도토리 가운데서 수천 구루의 나무를 보고 한 통의 도토리에서 울창해진 숲을 보는 기백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한 알의 사과 씨를 가지고 수백 개를 볼 수 있는 기백을 가진 사람들을 주님은 지금도 찾고 계신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오늘 우리 가운데 남모르는 큰 고통을 가지고 계시면, 오늘 이 영적기백의 회복을 주시길 소원한다. 기백을 회복해야 한다. 영적기백의 독특한 공식,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크라이막스가 있다.
 
엘리야가 만약에 “나만 홀로 남았네!” 바알에게 무릎 꿇는 자가 7천 명이 있다하더라도 이 시대는 지금 다 동굴에 숨어있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고 ‘나만 홀로 남았네.’ 라고 했으면, 그리고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그냥 그대로 쓰러져버렸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 엘리야는 이 순간에 문제 지향이 아니라 가능성 지향의 사람이 되었다.
 
▷셋째 문제 지향이 아니라 가능성 지향의 사람이 되어야.
-그래야 영적기백을 가진 것이다. 나 혼자만이 아닌 엘리야는 문제보다도 가능성의 지팡이를 들었다.
환경이 물론 어렵다. 나 혼자만 갈멜 산에 왔다고 탄식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보다도 더 큰 은혜를 사모했다. 문제보다도 가능성에 눈을 뜬 것이다. 요즘 2023년에 들어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모든 환경들에 대해서 모두가 다 어렵다. 물론 상황이 어렵다. 진짜 문제는 우리들의 신앙이 어떤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문제만을 계속 집중하면 우리는 엎어진다. 우리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problem finder, ●problem magnifier, ●problem maker. 이 세 가지 중에 -기도제목을 빙자한 수(기빙수), 계속 문제를 확산시키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문제 증후군에 걸리고 문제 지향의 사람이다.
 
▷우리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1) 문제 발견하는 자=problem finder,
2) 문제 확대하는 자=problem magnifier,
3)문제를 해결하는 자=problem maker.
문제를 가지고 해결하는 자는 가능성을 바라보는 자이다. 이 자리에 모두는 문제를 해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 세상의 문제없는 교회, 문제없는 성도,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살아가고 이 땅을 영위하는 동안에는 모둔 사람들은 문제를 갖고 있다. 아무 일도 안하면 아무런 문제가 안 생긴다. 지난 3천 년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도 있다. 누구인가? 이집트 미이라는 아무 문제가 없다. 다 아는 것 아닌가? 미이라는 누워있으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자식을 키워야 하고 매일 우리는 삶의 현장에 부딪혀야 하는데 왜 거기에 문제가 없겠는가? 교회도 이 귀한 공동체가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앞으로 수많은 우리에게 주신 어떤 사명을 가지고 감당을 하려고 하면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문제 앞에서 문제의 지향성이 될 것인가? 아니면 가능성 지향이 될 것인가?를 우리에게 달려 있고 거기에 영적기백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잘 아시듯이 faith report, 믿음 보고를 한 여호수아, 갈렙은 무엇을 보았는가? 문제를 바라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 한다.
 
*민수기 13:30,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 이것은 문제의 지향이 아니라 가능성 지향이다. 방향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열 정탐꾼은 환경과 아낙 자손을 바라본 것이다. 믿음 보고를 못하고 환경보고를 한 것이다. 우리는 다 메뚜기 같다고 한다. 우리가 다 그들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여호수아 갈렙도 환경도 보고, 거인들도 다 보았지만 문제가 아니라 가능성을 보았고, 먹구름 위에 은빛 광채를 본 것이다. 오늘 예배에 와서 예배와 찬송을 하면서 주님을 집중하면서 여러분 모두가 다 하나님이 열어놓으신 영적 가능성에 확 열리기를 바란다. 아멘!!~~ 지금 한국의 상황이나 인터넷 댓글들을 보라. 너무나 고통스럽고 문제 지향적이다. 이 문제 지향적인 것들이 사람들을 공격하고 화살을 쏘아 대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다짐하고 가야 될 것이 있다.
 
우리 교회는 신학적 바탕인가? 정통보수주의인가? 정통보수주의이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신앙의 흐름이 있다. 이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지식, 지혜, 인간의 판단, 인간의 능력을 더 인정하고 인간의 이성의 틀 안에서 이것을 판단하는 것이다. 성경이 그래서 안 믿어진다. 예수님의 부활도 안 믿어진다. 성경에 능력도 안 믿는다.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인간의 긍정적인 마인드와 적극적인 사고를 다른 차원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긍정적인 것은 내가 중심이 되어서, 내가 힘을 내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행운을 얻는 이 아니다. 우리는 그 가능성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가?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영적기백을 갖는 것을 박탈한 것이다. 사랑의 교회 신앙적 바탕은 우리는 정통보수주이 신학의 바탕에 서 있다. 우리는 성경의 기적을 믿는다. 구약의 기적을 믿는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는 오늘도 이 자리에 임한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너무나도 과학의 발달로 있지만 우리의 프레임은 안 된다는 것은 많지만 똑똑한 사람일수록 문제의 대해서 예민하다. 그러니까 똑똑한 사람에게는 기적이 안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문제의 지향이아니라 가능성을 열어 놓고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이 아니라, 정통 보수 주의인 하나님의 가능성에 대한 귀의 문을 열고 영적기백을 회복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가능성 지향은 세상의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긍정의 마인드가 아니라, 우리는 가능성 지향은 예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마태복음을 보면 대표적인 인물은 예수님이시다.
 
*자유주의 신학 (인간의 이성의 틀 안에서..내가 좋으면 하는 것)=Liberal theology
*정통주의 신학 (나보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믿는 것)=Orthodox theology
-
*마태복음 13:58,
58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나병환자, 어떻게 나았는가? 주님이 하시면 가능하다. 가능성을 주님께 두는 것이다. 마가복음을 보면,
 
*마가복음 5:28,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 혈루병인 여인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 그 자체가 어려웠지만 그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고 뭐라고 이야기 하는가?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라고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제자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어도 경호하는 사람들이 못 오게 해도, 그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라고 하듯이 그녀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이다. 오늘 주님의 옷자락에게만 손을 대어도 낫는다는 것이 여러분에게도 주어지기를 바란다.
 
*마가복음 7:26~28,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귀신 들린 딸의 귀신을 쫓아내기를 간구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모욕(侮辱) 중에 모욕이다. 그러나 가능성 지향의 극치이다. 오늘 우리 가운데 나병환자나 혈루증인 여인이나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자기 딸이 귀신 들었다. 이것 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 영적기백을 가지고 놀라운 가능성 회복하자. 저희들은 원래 6월 3일에 한국교회가 상암 경기장에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의 표어로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하나님께는 전심으로, 그렇게 해서 그날 참여해서 기도의 지팡이를 다 들고 10만 명이 모여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적 가능성을 가지고 믿음의 눈으로,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고 외치는 이 민족의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은 무너지리라 믿는다. 오늘은 영적 기백이 필요하니까 마음의 지팡이를 들고 기도용사 된 나에게 주의 일을 맡기는 찬양을 하자. 지금 2023년을 앞에 놓고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과학, 우리 모든 분야에서 예측이 있지만 그러나 오늘 영적기백을 가지고 그들의 전망이 어떻든 환경이 어떠하든 우리 모두는 믿음의 기백을 가지고 담대함으로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이 한 해 전문가가 무어라고 이야기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정통신학을 따라서 가능성 지향을 가지고 이 시대를 주의 삶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요약
영적 전쟁터에서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머뭇거리지 말고 영적 기백을 회복하여 강력한 부흥으로 나아가며 850:1의 심각한 위기 앞에서도 문제의 지향의 사람이 되지 말고 하늘의 불이 임하는 가능 지향의 사람이 다 되어야 한다. 6월 3일 상암 경기장 집회에 모두가 영적기백으로 충만하여 10만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우리 민족의 홍해가 갈라지는 시대의 여리고 성을 무너지는 기도를 올려드리자.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