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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2월 26일 (834)
1. 도시 주변 녹지를 보존하기 위해 지정한 개발제한구역을 뜻하는 용어는?
① 선벨트 ② 러스트벨트
③ 코튼벨트 ④ 그린벨트
2. 과도한 고금리 대출로 폭리를 취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한 대출금리 상한선을 뜻하는 말은?
① 기준금리 ② 법정최고금리
③ 콜금리 ④ 가산금리
3. 기업이 보유한 자기 회사의 주식을 말한다. 주주 환원 정책 차원에서 회사가 매입 또는 소각하기도 하는 이것은?
① 우선주 ② 실권주
③ 자사주 ④ 배당주
4. 각종 지표를 고려해 한 국가나 기업이 얼마나 건강하고 튼튼한지를 의미하는 개념은?
① 모라토리엄
② 유니콘
③ 펀더멘털
④ 모멘텀
5. 실업률이 10%에서 20%로 늘었다고 하자. 다음 중 통계를 제대로 해석한 것은?
① 실업률이 10% 상승
② 실업률이 100%p 상승
③ 고용 여건이 호전
④ 실업률이 두 배로 상승
6. 만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재산 하위 70%에게 지급하는 연금은?
① 재보험 ② 생명보험
③ 국민연금 ④ 기초연금
7. 금융시장에서 하락장, 약세장 등을 상징하는 동물은 곰이다. 그렇다면 상승장, 강세장 등을 상징하는 동물은?
① 황소 ② 여우 ③ 호랑이 ④ 사자
8. 발생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비유하는 말은?
① 블랙 스완 ② 회색 코뿔소
③ 비둘기파 ④ 슈퍼 개미


 
 생글생글 837호-커버스토리

[커버스토리]
총체적 위기의 중국…반전시킬 수 있을까?



중국에선 춘제 연휴가 지난 뒤인 매년 3월 초 국가 차원의 대규모 정치 행사가 열립니다. 국정 자문 기구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와 우리나라의 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즉 양회(兩會)가 바로 그것입니다. 올해는 각각 다음 달 4일과 5일에 개막해 열흘간 이어지는데요, 중국이 앞으로 1년간 나라를 어떻게 운영해갈지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여서 세계적 관심이 쏠립니다. 중국이란 거대 경제권의 향방은 우리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근래엔 중국 경제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고 경제 하강 속도도 아찔할 정도여서 더욱 주목됩니다. 경제성장률 목표치, 예산 편성, 경제 운용 방향, 고위급 인사, 제도 개혁 방향 등을 밝히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요. 좀 더 넓게 보면 지난 1월 대만 총통 선거에서 독립 성향의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된 데 이어 올해 말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어 중국의 대외정책 방향과 외교 노선에도 변화가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우리나라에선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를 기초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의 연초 이후 손실액(5대 은행 기준)만 벌써 6000억 원이 넘은 상황인데요, 향후 손실 폭을 줄여줄 증시 활성화 대책이 나올지 지켜봐야 합니다. 양회를 비롯한 중국 정치체제의 구조는 어떠한지, 중국 경제의 위기 상황은 얼마나 심각하고 그 원인은 무엇인지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중국의 국정방향 밝힐 전인대·정협 개막
경제 난국 풀어갈 카드에 세계적 관심 집중
중국을 이해하려면 사회주의 정치체제, 나아가 중국식 사회주의를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합니다. 핵심은 공산당이 정점에 있는 정치체제란 점이죠. 그 아래로 중국의 국가체제가 어떻게 짜여 있는지 들여다볼까요?
성장률, 예산 등 발표하는 전인대
중국 헌법 제1조 1항은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계급이 지도하는 인민민주주의 독재의 사회주의 국가”라고 명시합니다. 2항에선 “중국 공산당의 지도(영도)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본질적 특징”이라고 밝히고 있죠. 무산계급을 대표하는 공산당이 입법기관(전국인민대표대회,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등 양회)과 행정기관(국무원), 군(軍)을 모두 이끄는 겁니다. 민주공화국에선 일반화된 삼권분립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권력이 공산당으로 수렴됩니다.
당원이 1억 명에 육박하는 중국 공산당의 핵심은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인입니다. 정치국 상무위원인 동시에 당 총서기(국가 서열 1위)이자 국가주석이 바로 시진핑입니다. 상무위원 중 서열 2위는 국무원 총리를, 3위는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4위는 정협 주석을 각각 맡습니다. 인민해방군을 이끄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당 총서기가 겸임합니다. 최고 사법기관인 최고인민법원 원장은 급이 확 떨어지는데요, 상무위원도, 그 아래 중앙정치국 위원(25명)도 아닙니다. 당 중앙위원회 위원 200명 중에서 선임되죠. 법치주의의 원리 중 하나가 법익이 침해당했을 때 사법적 구제를 받는 것입니다. 법원의 위상이 이렇게 낮으면 공명정대한 법치사회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양회의 중심은 전인대입니다. 헌법상 최고권력기관이죠. 전인대는 각 성과 자치구, 직할시, 특별행정구, 인민해방군 등에서 선출된 대표와 각 소수민족 대표를 포함해 약 3000명으로 구성됩니다. 이들은 1년에 한차례 모여 회의를 열고 경제운용 방향, 예산안, 성장률 목표치 등 중요 정책을 표결로 결정합니다. 정협은 전인대에 법안을 건의하는 역할을 합니다. 중국공산당, 소수민족, 인민단체 등 34개 영역을 대표하는 전국위원들로 구성됩니다. 중국공산당이 양회를 얼마나 중시하는지는 개최 기간 중 수도 베이징의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여러 공장의 가동을 중단시켰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체제 선전의 중요한 기회이기 때문이죠.
부동산 의존 성장 방식 한계 다다라
올해 양회의 관전 포인트는 총체적 위기 국면의 중국 경제를 안정시킬 복안입니다. 시진핑 3기가 출범한 작년엔 조직 개편과 인사가 초미의 관심이었던 것과 다르죠.
상황은 다급합니다. 외국인직접투자 위축, 수출입 감소, 공장가동률 하락, 대규모 실업, 주춤한 소비 회복세, 코로나19 시기에 늘어난 지방 채무 문제, 심각한 청년실업이 체제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부동산 개발에 크게 의존해온 경제성장 방식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인데요, 집값 하락이 역대 최장인 29개월째 이어질 정도로 부동산 공급 과잉이 심각합니다. 지방정부 재정의 40%를 민간에 땅 사용권을 매각해 조달하는데, 시장이 정체를 보이니 지방정부 부채는 날로 늘어납니다. 민간도 위태롭습니다. 지난 1월 말엔 홍콩 법원이 대형 부동산개발 업체 헝다에 청산 명령을 내렸어요. 업계 1위 비구이위안을 비롯한 대형 부동산 기업의 유동성 위기 소식도 부동산발 리스크를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 1월까지 4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보이면서 디플레이션(물가의 지속적 하락을 동반한 경기침체) 우려가 커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어느 정도의 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할지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격동의 국제정세’ ‘험난한 국내 개혁’ ‘발전과 안정 과제’ 등의 표현이 쏟아진 작년 전인대와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올해 5.0%를 밑도는 성장률 목표가 나올 수 있습니다. 시 주석 집권 직전 해인 2012년 9.55% 성장한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 수준입니다. 결국 세계경제의 성장 속도도 감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NIE 포인트
1. 중국의 헌법을 우리나라 헌법과 비교해 읽어보자.
2. 중국의 정치체제를 도표를 그려 이해해보자.
3. 중국 경제가 세계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해보자.
사회주의 색채 강화한 정치 리더십이 문제
1인 체제의 경직성도 지지기반 허물고 있죠
작년 3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국가주석 선거 결과, 시진핑 단일 후보에 대한 찬성이 2952표에 이르렀습니다. 반대·기권은 한 표도 없었죠. 10년 주기의 권력 교체 관례를 깬 시진핑 3기 체제(15년간 통치)에 이처럼 만장일치의 찬성이 나온 것은 민주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낯설기만 합니다.
재산권 위협에 확산하는 ‘중국 엑소더스’
중국공산당 당대회는 5년 주기로 당과 국가의 새 지도부를 뽑고, 중장기 노선을 제시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2022년 10월 개최된 제20차 당대회는 개혁·개방 시기에 강조돼온 집단지도체제를 부정하고, 시진핑 1인 지배체제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권력 교체의 전통적 관례가 흔들리자 중국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념적 지향이 강한 시진핑 체제가 시장경제에 대한 규제를 늘리고 자연히 경제는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생긴 거죠.
시 주석은 2018년 헌법 개정을 통해 ‘공산당의 영도(지도)’라는 표현도 넣었습니다. 그리고 20차 당대회에서 ‘공산당 영도의 사회주의 현대화’를 이룩하겠다고 밝혔죠. 함께 잘살자는 의미의 ‘공동부유(共同富裕)’ 노선이 나온 배경입니다. 이는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이 주창한 ‘선부론(先富論)’, 즉 경제성장을 먼저 이루고 분배는 이후를 도모하는 정책을 폐기하고 경제정책에서 사회주의 색채를 강화한 것입니다.
중국에서 민간 경제는 국내총생산의 60%, 고용의 80%, 기술혁신의 70%, 정부 세수입의 50% 이상을 책임집니다. 그런데 합리성보다 정치적 고려를 앞세우면 민간의 경제주체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어요. 외국인투자자는 물론 중국 내 기업인들도 재산권과 기업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심을 품게 되죠.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시 주석은 민간기업에 공산당 지부를 설치하고, 반간첩법(방첩법)을 강화해 민간기업을 규제하고 검열하기 시작했습니다. 금융당국을 비판한 마윈에게선 핀테크 기업 앤트그룹의 지배권을 박탈하고 모기업 알리바바엔 3조 원대의 과징금까지 매겼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 경제의 위기는 ‘정치의 위기’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인식이 많습니다. 경제를 침체하게 만든 것은 중진국 함정도 아니고, 거시 및 금융정책을 잘못 써서도 아니며, 시진핑 3기 정부의 리더십과 체제의 위기로 발생되었다는 지적입니다. 세계적 경제학자인 천즈우 홍콩대 경제학과 교수는 “베이징 컨센서스, 중국식 발전 모델은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죠. 금융·사법 등 ‘제도 자본의 빈곤’이 문제의 근원이란 지적은 그나마 완곡한 표현입니다.
중국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집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시 주석 집권 3년 차인 2015년 5166으로 최고점을 찍은 이후 계속 내림세입니다. 지난 19일엔 2910까지 하락했어요. 두 배 많았던 중국 상장지수펀드(ETF) 순자산이 1년 만에 인도 ETF에 역전됐다는 소식도 있지요. 중국에서 빠져나온 글로벌 자금이 인도로 갔다는 얘기입니다.
기업인·지식인 지지기반 허물어져
많은 전문가는 무너진 집단지도체제에서 위기의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 여러 의견이 분출하고 조정되는 과정 없이 시진핑 목소리만 강조되니 문제 해결을 위한 출발이 어렵다는 겁니다. ‘제로(0) 코로나’ 정책을 펴며 거대도시 상하이를 봉쇄한 게 그런 경직적인 의사결정 구조에서 나온 실책입니다. 이때 국민 지지가 상당히 등을 돌렸고 ‘당 고위급-기업인-지식인’으로 이어지는 3각동맹과 지지기반이 허물어지게 됩니다.
당대회 다음 해에 열리는 3중전회(당중앙위 3차 전체회의)가 1년을 넘겨 양회 개최를 앞두고 일정조차 못 잡고 있는 것은 이런 정치적 상황에 대한 시 정부의 고민이 크다는 방증입니다. 3중전회는 중국 개혁의 상징이자 대명사와 같습니다.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내걸고 계급투쟁을 폐기한 것도 공산당 11기 3중전회였습니다. 집권 청사진을 펼쳐줘야 할 3중전회가 실종되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중국 위기의 한 단면입니다.
NIE 포인트
1. 최근 중국의 민간기업 통제 사례에 대해 알아보자.
2. 시장경제를 도입한 사회주의 체제는 하나의 이상에 불과한지 토론해보자.
3. 중국의 전통적 집단지도체제가 어떤 장점을 가졌는지 공부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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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3월 24일)-세례주일
제목: "고통 받는 우리를 도우시는 예수님"-(Jesus helping us in our suffering)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 ⓻번째
말씀: 시편 22:1~31,
마태복음 27:45-50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장은진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

*시편 22:1~31,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9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11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19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0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21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마태복음 27:45-50,
45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48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49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할렐루야! 참 특별한 주일입니다. 오늘 종려 주일인데, 아침 8시에 이른 아침에 우리 1부 찬양대, 영광 찬양대 참으로 귀한 찬양 들을 수 있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일곱 번째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 겸 오늘 종려주일 고난주일 메시지가 되겠습니다. 특별히 온 성도들, 또 오늘 학습 세례에 입교하시는 여러분들의 생애에 잊을 수 없는 말씀의 깊은 신비가 폭포수처럼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의 깊은 은혜와 신비가 폭포수처럼 깨달아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시편 22편과 마태복음 27장은 너무나 참 신묘 막측(神妙莫測) 하게 서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걸 여러분들에게 좀 설명을 할게요. 시편 22편은 특별한 말씀이고,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사도 베드로가 다윗에 대해서 얘기할 때 선지자 다윗이다 그랬어요. 다윗은 왕이었는데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선지자 다윗이다. 다윗이 왜 선지자일까? 선지자에 대한 증명이 오늘 이 본문이에요 선지자라는 것은 뭐냐 하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정확하게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사건이 사건을 설명 천 년 전 사건인데, 천 년 전의 사건을 이와 같이 아주 정치(精緻)하게, 정확하고 치밀하게 예언한 것 자체가 다윗의 선지자 직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었어요. 마치 이런 뜻이에요. 천년 이후의 사건을 예언한다 했을 때, 우리나라가 고려시대 고려가 918년에 아마 건국되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10세기 초반에 고려시대에 있는 어떤 사람이, 1950년도에 6.25 사건을 6.25에 일어날 사건을 그대로 예언한다 합시다. 그때에 사람들이 철 탱크를 타고 어떤 희한한 철 탱크를 타고 진격을 하고 위에는 비행기가 날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한민국이 발전을 하고 강남에 테헤란로가 있고, 사랑의 교회가 있다.

여러분, 이걸 천 년 전에 고려시대 초기에 이걸 정확하게 예언 한다. 그러면 이건 기가 막힌 거죠. 이런 선지자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시편 22편의 예언은 이 정도의 정확성을 가지고 천년 이후에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은 누구인가 시리즈를 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5장 39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함께 보죠.


*요한복음 5:39,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이 신구약 성경 전체가 누구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라고요? 예수님께서 예수님이 우리의 메시아이시다. 오늘도 학습, 세례에 입교하시는 분들이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구세주심을 믿는 것을 사역하고 고백하는데 이것을 증언하는 것이에요. 이걸 증언하는 구약과 신약은 모두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고 있어요. 특히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경험한 것,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신에게 말씀하신 것이 어떻게 보면 최고의 간증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예수님이 스스로 내가 예수님이 스스로 어떤 고난을 당하시고, 어떤 고통을 당하시고 예수님이 어떻게 십자가에 따라 본인 당신께서 말씀하신 그것을 다윗의 입을 빌러, 다윗의 예언을 빌려가지고 말씀한 그것이 최고의 간증이라는 것이에요. 기독교 신앙에서 간증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오늘도 제가 말씀 마치고 나면 우리 한 분 나와서 간증할 것인데 간증할 것인데 간증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서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최고의 간증을 여러분들이 생생하게 주님이 들려준 음성으로 듣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I. 첫 번째, 버림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

-오늘 시편 22편은 지금 이게 이제 쭉쭉 읽어내려 가는데 1절부터 오늘 31절까지 본문이 되어 있는데요. 이 내용은 고난도 해석이 필요한 것이 아니에요. 그냥 우리가 어느 정도 문자적으로 우리가 국어 해석 능력 정도만 있으면 쭉쭉 읽어내면 그냥 그대로 우리가 이해가 되는 것이에요. 1절에,

*시편 22:1,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리고 오늘 여러분들이 봉독한 마태복음 27장 46절에 엘리 엘리, 라바 사박다니 기억나십니까?

*마태복음 27:46,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그러니까 시편 22편에 이 예언의 말씀이, 마태복음 27장 천년 뒤에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에요. 너무나 이게 신비한 거예요. 메시아의 고난에 대해서 이 예언의 말씀이 시편에서 천 년 전에, 천년 이후에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부르셨는데 사실 이 내용은 우리가 죄 지은 우리가 사실 우리가 고백해야 할 내용인데 예수님이 내 대신 고백하시는 것이에요. 여기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니, 마태복음에서는 엘리 엘리 그러니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막 그러니까 엘리라는 말을 듣고 예수님이 엘리야를 부르는가 보다. 이렇게 오해를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런 식으로 오늘 말씀을 오해하는 분이 아무도 없기를 바라는 거예요. 아무도 없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리고 2절에 보니까 내 하나님이요.

*시편 22:2,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그다음에 중요한 게 밤에도 잠잠하지 않을까 밤에도 부르짖었다는 거에요. 어떻게 낮에 부르짖는 또 밤에도 부르짖는다 말이 안 되잖아요. 예수님은 제 30부터 제 90까지 6시간 동안 매달려 계셨는데 근데 특별히 제 60부터 제 90까지 완벽한 깜깜함이 왔어요. 그건 일식하고 달랐어요. 예수님이 저주를 받아 우리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그 가운데 깜깜한 가운데, 그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완전히, 완전히 온 사위가 깜깜하게 돼버려 그것을 지금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거예요. 낮에도 부르짖고 낮이 밤인 그때도 부르짖는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 예수님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 우리 죄 때문에 깜깜한 깜깜 갑자기 온 땅에 흑암이 왔다고 그랬어요. 그렇게 부르짖는 그 고통의 우리의 상황을 살펴봅니다. 마태복음 1장에 보니까 예수님을 임마누엘 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항상 성부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늘 함께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다. 그러고 완벽한 하나 됨의 계신 분이 완벽한 임마누엘의 차원을 누리시는 분이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래서 오늘

◇“성자 예수의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이었다. 읽어보겠습니다.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완벽하게 버림받으신 것이다.”

-우리가 그래서 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육체적 고통, 육체적 고통 그건 그것과 비교가 안 되는 완벽한 영적 고통을 겪으신 거예요. 어느 정도였는가, 오늘 6절에 보니까

*시편 22:6,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예수님이 그리고 7절부터 8절까지 보니까, 나를 보는 나는 벌레예요. 사람이 아니라 그러니까 완전히 이건 이거는 여러 벌레 벌레는 밟으면 밟혀야 되고 차면 차해야 되고 그냥 짓밟으면 짓밟히고 이런 것이 벌레 아닙니까? 그 주님의 그 모멸감 그리고 7절 8절,

*시편 22:7-8,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경멸받는 비참한 범죄자 취급을 당하셨습니다. 비웃음을 당하셨습니다. 이 내용은 마태복음 27장 39절에 그대로 증명하고 있어요.

*마태복음 27;39,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똑같은 내용입니다.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방하고 그래서 이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 고난을 날 것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아! 그렇구나, 천 년 뒤에 이 사실이 너무나 정하고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있구나. 오죽하면 12절 13절에,

*시편 22:12-13,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대적들이 황소로 황소처럼, 그리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황소의 힘처럼 힘이 있어 보였어요. 이것은 마치 위협적인 사자처럼 보였어요. 자기를 찢어버릴 것처럼 무섭게 다가온 거예요. 원수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이 어느 정도 무섭게 다가왔느냐 하면 시편 22편 14절, 15절에 이렇게 다가왔습니다.

*시편 22:14-15,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주님의 고난과 주님의 고통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모든 뼈가 어그러졌다는 거예요. 십자가의 고통 때문에 그리고 밀랍 같아서 다 녹아졌다는 거예요. 그 봄날, 그때의 그 뜨거운 태양빛 때문에 십자가에서 혀가 입천장에 붙었다고요. 주께서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십자가에서의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6시간을 십자가에 고통 속에 있을 때, 손과 발이 못 박혀 달려 있을 때 뼈와 관절이 다 튀어나온 거예요. 14절에 뼈가 어그러졌다고 했어요. 심장이 밀랍처럼 녹아버린다고 그랬어요. 그 이후에 끔찍한 목마름이 온 것입니다. 탈수가 시작되어 갖고 혀가 입천장에 붙어버린 것입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타버려서 끔찍한 목마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9장에 보니까 “내가 목마르다. 내가 목마르다.” 이것은 육신의 몸을 육입은 분으로서 어떻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의 고통과 목마름이었어요. 그리고 16절과 17절에 오늘 본문 6절, 17절에


*시편 22:16-17,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오늘 다윗이 시편 여러분 이 내용들을 얼마나 이게 중요한가 하면요. 다윗이 시편 22편을 쓸 당시에는 십자가형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유대인들의 최악의 형벌은 뭐냐? 돌에 맞아 죽는 것이었어요. 그때 유대인들 다윗의 입장에서는 이런 십자가형이 있겠나, 근데 그 십자가형을 다윗의 입장에서 예언적으로 제일 정확하게 설명한 것이 이것이었어요. 십자가형에 대해서 이렇게 제대로 세밀하게 치밀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에요. 세상의 언어로 설명이 안 될 정도로 내용이 디테일하고 확실한 것입니다. 시편 저자 다윗은 그가 개들에게 둘러싸였다. 무슨 말입니까? 개는 유대인들이 이방인 특히 로마인들을 향하여 쓰는 단어였습니다. 실제로 로마 군인들이 십자가 근처에 죽음 주변에 있었죠. 그리고 시편 저자는 이들이 이들 로마 이방인들에게 둘러싸였다고 그래갖고 18절에 뭐라고 18절에 나옵니다. 18절에 같이 읽겠습니다.

*시편 22:1,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예수님의 간증이에요. 다윗의 입을 빌려서 다윗의 예언을 통하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에요.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쳐입었나이다. 실제로 로마 군인들이 십자가 발치에서 예수님의 겉옷을 가지고 제벽 벗기를 했죠. 오늘 마태복음 27장 30 35절에,

*마태복음 27:35,
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그래서 거칠고 완악한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전리품으로 삼아서 나누었습니다. 여러분 이만큼 아주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이해가 되십니까? 그냥 이거는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II. 두 번째로, 버림받은 고통의 처절함.

-예수님이 받으신 고통의 처절함이 어느 정도인가 이 예수님이 받으신 고통은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육신의 고통 차원이 아니에요. 이것은 예수님이 버림받은 고통인데, 이거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처절한 고통이었어요. 저와 여러분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엘리 엘릴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이 하나님이 어찌하여 나를 부르셨나이까? 이 예수님의 절규가 주는 이 충격이 있는 거예요. 완벽한 고통, 완벽한 고통,,,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면 그 완벽한 고통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게 된 것이에요. 끝까지 우리를 우리가 버림받지 않은 것을 이런 사실 앞에서 확정하는 것이에요.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리라(I will not abandon you). 내 손에서 이 영생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너에게 준 것은, 흔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절규를 예수님이 너무 인간적으로 힘들어가지고 하나님 원망한 것이라, 도울 같은 사람들은 그런 얘기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런 차원이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우리 죄 때문에 가졌던 영적인 처절한 고통이에요.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예수님의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의 핵심이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육신적인 고통을 받으셨지만 육체적인 고통이 메인이 아니었어요. 그가 찍힌 상처 가시면류관 못 박힘, 온갖 천대 멸시 조롱과 침 뱉음, 뺨 맞음, 극심한 구력 이것도 기가 막혔지만 이게 핵심이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는 완벽한 교재가 있었는데, 그 십자가에서 이 순간만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 완벽한 교재가 끊어지고, 버림받은 것이에요. 이것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가 없는 거예요. 왜? 한 번도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 그분의 두 분의 임마누엘의 이 끈끈함은, 이 강력한 교통은 끊어진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 때문에 거기서 십자가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어요?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를 경험한 영적 분리가 일어난 거예요. 이거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의 극치였어요.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그랬는데 그분이 그 시간만은 저와 여러분 때문에 아버지에게 버림받으시고 교재가 단절된 거예요.

이걸 우리가 가슴 아리를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것을 이해해야 되는 것이에요. 이 순간만은 하나님 되심을 포기하고, 이 순간만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시고, 이 순간만은 지옥까지 내려가신 거예요. 기가 막힌 거예요. 다시 저와 여러분 죄 때문에 이렇게 버림받은 거예요. 하나님과 완벽한 단절 이걸 우리가 눈물을 흘리면서 이해를 해야 돼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제자들에게 배신당하고 친구들은 다 예수님 곁을 떠나고, 오죽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우리도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 배신하고 예수 믿으면서,,, 그리고 고통 받으신 예수님의 기도가 계속해서 시편 22편 19절부터 21절까지 계속 읽겠습니다.

*시편 22:19-21
19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0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21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칼에서 구원해 달라고, 로마의 권위를 상징하는 칼에서 구원해 주시고, 개의 세력, 그리고 사자의 입, 들소의 뿔, 이거 뭐 다 다윗은 본래 목동이었기 때문에 그가 목동으로서 할 수 있는 예언자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 들소의 뿔, 사자의 입, 개의 세력,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이런 고통을 낳으신 우리 예수님, 그분만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구주이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을 영의 눈을 열어서 우리가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이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시편 22:27-28,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이 고통이 끝나고 난 다음 그 고통으로 인한 좋은 결과가 온 우주와 지상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 나오고 있는 거예요. 아멘, 여러분 주님의 이 고통은 여러분들이 다 땅의 모든 사람들이 주님 앞에 돌아오도록, 이 주님의 고통은 저와 여러분이 이 시대를 향하여 축복의 근원이 되도록, 주님의 이 고통은 저와 여러분이 복음을 가지고 이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모든 나라와 모든 족속이 주님 앞에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고통을 복음의 진리를 깊이 깨닫는 자마다 시골의 할머니도, 무학한 할머니도, 그다음에 젊은이도, 이상하게도 세계를 품고 하나님 나라 전체를 위해 기도하게 되고, 오늘 다시요 여기에 27절 28절에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그러니까 저 아르젠티나에도 그다음에 아프리카에도, 중앙아시아에도 대한민국에도, 누구든지 이 고통의 십자가의 은혜를 제대로 깨달으면, 온 세상을 품는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그릇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오늘 입교 문답하는 우리 젊은이들 여러분들을 통하여 온 세계를 통하여 여러분들을 통하여 온 세계가 주님 앞에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이게 내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아니에요. 하나님 우리에게 안아주신 본당을 주시고 은혜를 주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깊은 곳 통과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난 다음에 너희들은 다 글로벌 스탠다드로 올라가라. 제발 좀 싸우지 말고 대한민국은 다른 길이 없어요. 우리끼리 싸울 건 아무런 힘이 없고, 아무런 의미가 없고 세계를 우리가 품어야 되고, 세계교회 쇠퇴를 막아야 되고, 그 결과 시편 22편 29절부터 31절까지,

*시편 22:29-31,
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우리가 능력 있고 힘이 있어서 이런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누가 행하셨다고요? 주께서 행하셨다. 이 마지막 구절은 너무나 놀랍습니다. 이 주께서 일을 행하셨다는 말은 테텔레스타이(Tetelestai)! 가상 출연할 때 마지막 주님이 잇 이즈 피니시트(It is finished) 다 이루었다. 그 내용과 똑같다는 말이에요. 주께서 일을 행하셨다. 다 이루었다. 아직 천 년 뒤에 태어나지도 않을 이들을 위하여 구원이 선포되고, 주께서 다 이루실 것을 말씀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제 좀 빠르지만 오늘 평소보다 좀 예배를 일찍 시작해갖고 오늘 시편 22시편을 제가 다 해석을 해드렸습니다. 오늘 이 시편이 여러분 평생에 남기를 바랍니다. 이게 왜냐하면 예수님의 간증이기 때문에, 오늘 집에 가서 이걸 계속 몇 번 읽어보면요. 여러분들은 온 세계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될 것이고, 주님이 여러분들을 위하여 다 이루실 그 일에 동참하는 평생이 되리 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그러면 고통 받으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버림받으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고통 받는 저와 여러분을 능히 도우시는 것입니다.” 이거 오늘 키(key) 입니다. 고통 받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받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고통 받은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 고통 받는 어떤 성도들을 도우시는 것이에요? 오늘도 우리 교회에 암 걸린 분들 많이 계셔갖고, 오늘도 제가 예배 마치고 나 어떤 분이 목사님 순장님이 수원들을 왜 기도하는데 이분을 위해서 목사님 암 걸렸는데 꼭 오늘 기도해 주셔서 마치고 나면, 제가 방에 들어가고 제가 기도할 거예요. 그분을 위해 수많은 고통 받는 분들이 계세요. 우리가 살다 보면 수많은 고통들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거에요. 이해 안 되는 고통들이 있는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 분들도 우리 주위에 계시는 거예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중요한 신학적 주제는 “고통당하시는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에요” 나중에 자막으로 처리하겠습니다.

III. 고통 받은 예수님은 고통 받는 우리를 도우신다.

◇고통당하시는 예수님은 고통당하신 하나님 백성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의 피에 의하여 우리는 영적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파하고 고통당할 때 우리 하나님은 고통당하신 예수님은 그 고통당과 함께 나 함께 있는 거예요. 잘 아시는 대로 제가 한번 오래전에 한번 엘리 위젤에 대한 얘기를 한번 했습니다.
※-엘리 위젤이라고 하는 유대인 대학살 중에 살아남은 사람의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나치 포로수용소에서 나이 든 유대인과 젊은 유대인이 교수형을 당하기도 했어요. 많은 유대인들을 강제로 유대인들이 유대인들을 보고 그걸 강제로 참관을 시켰어요. 나이 든 유대인은 교수형 목에 달려 교수형을 당하면서 나이 든 유대인은 빨리 금방 숨이 끊어졌는데, 젊은 유대인은 교수형에 올라 가서도요. 대롱대롱 매달려 숨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고통을 당하고 있는 거에요. 그것을 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너무 가슴을 아파하면서 울면서 부르짖었어요.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우리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그때 유명한 얘기 엘리 위제를 통한 유명한 얘기에요..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사람과 함께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저 교수형에서 고통당하는 저 젊은이와 함께 매달려 계신다.’

고난 받고 고통당하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너무나 잘 아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인식 체계를 뒤엎는 기독교의 역설적인 은혜라고 믿습니다. 다시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의 사고 체계를 뛰어넘는 기독교의 역설적인 은혜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 세상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이성 만으로는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이것이 진리의 빛으로 비춤을 받아야 하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저와 우리 교회와 이 시대 우리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에요. 어느 집도 고통 없는 집이 어디에 있겠어요? 어느 단체도 제대로 되는데 그냥 되는 게 어디 있겠어요? 자녀가 아파할 때, 그 엄마는 아파하는 자녀와 함께 밤새 같이 아파하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에요. 엄마가 자녀를 간호하는 거예요.

-나는 어릴 때 우리 형제들 가운데 우리 동생들 가운데 큰 수술을 받아야 해갖고 어릴 때 큰 수술을 받은 동생이 있어요. 사형 선고를 내려놓았는데 우리 엄마가 그 우리 동생을 업고 1년 내내 고통 하는 아이를 능막 결핵이 들어가지고 이 폐를 떼 내고 하는데 어마어마한 고통 5살짜리 내가 12살에 그걸 보면서 우리 어머니 1년 내내 고통 하는 걸 보면서, 엄마는 저 동생의 마음에 1년 전에 가 있는 거예요. 업고 전철 타고 다니면서 병원 가고,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기적만을 일으켜가지고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고통 받는 자들, 희생당하는 자들과 함께 함께 고통을 겪으면서, 그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시면서 저와 여러분을 도와주신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고통당하시는 그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은 요한계시록 21장 4절에,

*요한계시록 21:4,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것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그리스도인의 생애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만은 하나님은 기적만 읽어 자막 한 다 주세요.

◇하나님은 기적만을 일으켜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고통 받는 자들, 희생당하는 자들과 함께 고통을 겪으심으로 그 고통과 상처를 통하여 고통 받는 우리를 도우신다.
-고통당하신 예수님만이 고통당하는 자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복음의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주님은 우리의 질고를 아십니다. 이사야 53장 3절 우리의 질고를 아는 자라

*이사야 53:3,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 땅에서 우리가 겪는 고통과 슬픔과 상처와 상실과 간절한 아픔을 가진 것을 아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상처를 능히 치유하심으로써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베드로전서 2:24,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평생 잊혀 지는 말씀이 되게 하셔서 어떤 고통과 어떤 상처에도 낙심하지 말고, 요한계시록 21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고통과 상처를 다시는 고통이 없는 그 은혜의 세계를 결국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복음의 진리에 우리의 눈이 열려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이 가운데 아직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내 개인의 생애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오늘 이 십자가가 나를 위한 십자가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분의 고통이 나를 위한 고통이라는 것을 마음속에 믿어질 때에,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구세주가 되어 주셔서 여러분 생애가 영적으로 다 성공하도록 만들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고통과 저주를 받아주셨다. 반대로 우리가 그걸 믿지 못한다면 그 모든 고통과 저주를 우리 스스로 당하고 끝을 내야 되는 거에요. 어떤 사람도 이 복음이 없으면 세상에 가장 위대한 지성인이라도, 가장 강력한 권력자라도,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도 그의 말년은 이 복음이 없으면 고통과 저주 속에서 하나며 인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오늘 이 복음의 진리 앞에 사랑의 교회는 세례를 하고, 학습을 주고, 입교를 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간증하셨듯이 우리 교회 오늘 장상경 자매님, 37세이신데 이 시간에 나오셔서 간증하고 세례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약
예수님께서 뼈가 어그러지는 십자가의 완벽한 고통으로 우리 죄를 사하시고 구원해 주셨으니, 모든 세대가 주님 앞에 나오는 2033-50 비전을 이루도록 기도하며, 고통당하시는 예수님께서 고통당하는 우리와 함께 계시니, 지금 고통 받는 우리를 도우심을 확신하여 주님께서 이를 행하셨다는 것을 증거 해야 한다. 우리 교회가 7천 기도용사로서 제22차 글로벌 특별새벽기도회에서 대한민국의 고통을 치유해 주시고 좋은 지도자의 복을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는 특새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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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03월 20일)
제목: "에덴으로 돌아가는 길"
말씀: 골로새서 1:13-14
찬양인도: 아 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김승진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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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1:13-14,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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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진 부목사님.
하나님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오늘도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십자가 고난의 길을 기꺼이 걸어 결국 부활의 회복이 움트게 하신 사랑에 또한 감사드립니다. 성령께서 이 시간 좌정하사 사랑의 아들의 나라를 향하여 걸어가는 온전한 제자의 삶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수요 저녁 기도회 참 잘 오셨습니다. 모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회복을 넘어 새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는 복된 시간이 되실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골로세서 1장 13절, 14절 두절 말씀입니다. 주신 말씀 저와 한목소리로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 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성냥,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아멘 한국인은 일생 중 34년을 인터넷을 보며 보낸다고 합니다. 3세에서 9세 아동의 인터넷 이용률이 91%를 넘는다는 집계도 있습니다. 저마다 핸드폰, tv 같은 화면을 한두 개쯤 가지고 사는 세상입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화면 안에서 가능해진 세상입니다. tv를 보고 영화를 보고, 핸드폰을 보고,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길가의 전광판을 보고,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에도 영상이 보입니다. 보는 것이 익숙하다 보니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의 발달은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육 환경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미신적인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보여줄 수 없는 것은 미개하고 무식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보이지 않는 것은 의미 없어 보입니다. 정말 우리 삶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저는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곳 친구들 중에 아버지가 배를 타는 친구들이 참 많았어요. 친구들이 발걸음을 가볍게 두 손을 무겁게 교실에 뛰어 들어오는 날이면 그날은 어김없이 친구 아버지의 배가 들어온 날이었습니다. 책가방도 새 것 연필도 새 것, 가방을 열면 미국 허쉬 쵸코릿이 한 가득이었습니다.
 
제 부친께서는 목회를 하셨는데요.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어린 마음에, ‘아버지 배나 타지 왜 어렵게 교회를 하시지.’ 이런 생각을 자주 했었습니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보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선물을 사들고 돌아온 아버지도 있지만,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없는 친구들이 하나둘 생겨나는 것을 보며 철없이 ‘아버지가 배를 탔으면’ 했던 생각이 무섭게 느껴졌었습니다. 경제적인 여유, 이제 일제의 물건을 가득 품에 안은 이면에는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아내와 아들의 모습이 짙게 묻어 있습니다. 해운대 밤바다는 제게 낭만이었지만 남편과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기도 했습니다. 두려움은 사람을 간절하게 합니다. ‘배가 크니깐 괜찮을 거야. 기술이 좋아졌으니깐 괜찮을 거야. 항해 경력이 꽤 기니깐 괜찮을 거야.’ 다 필요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과학기술 같은 것보다 어떤 절대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보이지 않는 어떤 대상이라도 의지해야 합니다. 돌이든 나무든 대웅전의 부처님이든, 바다의 용왕이든 닥치는 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부산에서는 미신이 많았습니다.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헛돼 보이지 않는 세계가 위안을 주는 척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을 후벼 파듯 두렵게 하는 경우들도 있어 자살을 앞둔 청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 라는 표현을 하는 것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자살하고 싶다 말하지만 너무 살고 싶어 하는 생의 의지가 강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은데 왜 자살을 하려고 목사님, 자살이 정말 무서운데 나도 죽기 싫은데 죽음과 보다 더 무서운 것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죽음보다 무서운 것이 뭔데? 라고 물으니, ‘내일’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다가올 내일이 가장 두렵다고 합니다. 오늘 하루는 겨우 살았지만 다가올 내일을 또 살아갈 힘과 의지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내일이 너무 두렵다고 합니다. ‘넌 분명 내일 완전 망할 거야. 넌 분명 내일 아주 수치스러울 거야. 넌 분명 내일 죽음을 넘어서는 고통을 경험하게 될 거야’. 보이지 않는 세계는 사람의 눈을 가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옷 이 있게 하며, 다리에 힘을 불어 주저앉기도 하며, 막다른 길과 어두운 서울에 가두어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른 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세계를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007년 아프카니스탄 샘물교회 피랍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단기 선교 중에 테러단체에 피랍되어 결국 죽음으로 돌아온 배형규 목사님을 아십니까? 배형규 목사님은 사랑의 교회 청년부와 샘물교회 청년부 연합 모임에 함께하셨던 분이십니다. 사건 때에 함께 뜨겁게 기도했던 이들이 바로 사랑의 교회 청년들이었습니다. 샘물교회 가면 배형규 목사님의 순교자 기념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곳에 배형규 목사님의 마지막 대화가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많은 분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협상을 위해서 한두 사람쯤은 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제일 먼저 나가겠습니다.” 그때 늦은 나이에 신학교를 다니다 선교에 참여한 유경식 장로님이 대답을 합니다. “목사님 아직 나이도 젊으시고, OO 다함께 한국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저는 나이도 많고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그러니 제가 먼저 나가겠습니다.” 목사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아닙니다. 선교지에 가서 마지막 여생을 보내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교지에서 죽으나 지금 선교지에서 죽으나 다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대화는 어떤 봉사하는 일을 솔선수범 하겠다는 내용이 아닙니다. 누가 먼저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대화입니다. 죽음 앞에 사람은 본능적으로 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죽음을 서로 선택하려 하는 아주 이상한 대화입니다. 이 대화 후에 실제로 배형규 목사님은 순교하셨습니다. 목사님도, 장로님도 죽음을 선명하게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분의 대화는 죽음이 보여주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오히려 죽음의 순간이 아닌 죽음 너머의 무언가를 아는 것처럼, 마치 보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성경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두 가지로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는 흙암의 권세가 지배하는 세계요,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합니다. 로마 정부의 죄수였던 바울, 곧 있을 재판을 기다리며 에 갇힌 바울은 다가올 판결 또한 좋은 소식이 아닐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굳게 닫힌 문 안에 갇혀 현실적으로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읽은 골로새서 말씀은 ‘흑암의 권세가 지배하는 감옥’ 이라는 공간에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바라보며 기록한 내용입니다. 13절 말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골로새서 1:13,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 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바울은 먼저 우리가 흑암의 권세 아래 있다고 말하고 있어 아담과 하와 덕분에 에덴동산 한 번 보지 못한 가인을 아십니까? 가인은 쟁취하고 빼앗아 소유하는 존재로 성경에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가인이 나타나자마자 성경에서 아벨은 탈락됩니다. 가인이 변명하는, 아벨을 살해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재산을 거절하고 양치기의 제사를 받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은 인류의 경쟁 사회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서론이 되었습니다. 가인은 살인 이후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만의 에덴동산을 세우려 합니다. 공부로 살아온 가인은 에덴동산 같은 고대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도시는 농경지 확보를 중심으로 세워졌고, 강제 노역에 시작되었고, 이 노역은 세금을 거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세금으로 공공시설, 공공시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세워진 것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도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도시는 소돔과 고모라가 되었고, 바벨탑이라는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바벨 탑을 세우며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보세요! 에덴동산에서 우리를 쫓아내셨지만 결국 여기에 에덴동산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가인의 세상은 절대로 에덴동산이 될 수 없었습니다. 가인은 농사를 통해 무서운 환경과 지 하게 싸우는 인생을 일평생 살았습니다. 가인은 저주받은 땅, 적대적인 땅과 부딪히며 고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의지했던 땅은 언제인지 모르게 가인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상을 지배하고, 나중에 죽은 후에도 가인의 몸을 접수하여 버렸습니다. ‘경작하다’는 말에는 ‘섬기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은 땅을 섬기는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가인이 도시를 세웠을 때 땅을 전국 도시의 주인이 되었다 생각했지만, 저주받은 땅에 결국 묻혀버린 인생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생각 속 깊이 묻혀버린 흑암의 권세의 사로잡힌 인생들의 모습입니다. 흑암의 권세에 반대는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입니다. 이곳을 다른 말로 하나님의 동산이라 합니다. 바로 에덴입니다.
 
성경에서 에덴은 하나님의 거주지였습니다. 성경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신들의 거처를 동산과 하늘에 두었습니다. 신들은 울창한 동산에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루하루 종일 먹고 사는 농경문화에서 물이 풍성한 동사는 신들의 세상이었습니다. 산과 동산에는 생명 유지를 위한 채소와 과일이 자라며 영양 섭취가 잘 된 짐승들이 흔했습니다. 신들이 사는 곳에는 결핍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취미 삼아 등산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등산을 하고 싶어 또 높고 곳까지 올라갈 장비도 없었습니다. 산은 너무 멀고 높아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장소였습니다. 신들이 성가신 인간들의 피에 머물기에 완벽한 장소였습니다. 하늘을 향해 높이 치솟은 산꼭대기 일수록 신들의 영역이 확실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왜 고대인들이 피라미드를 그런 모양으로 건축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합니다. 이 구조물들은 인간들이 지어놓은 신들의 ‘인공 동산’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동산 에덴은 다르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온 세상이 에덴은 아니었습니다. 두 강이 가로지르는 동산이었고, 네 개의 수원지를 통해 그 위치가 묘사됩니다. 창세기 2장 8절 말씀에 보면 이 모습이 나오는데요. 우리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창세기 2:8,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시니라.
-아멘 세상 어딘가에 창설하신 동산이 에덴이었습니다. 에덴은 울창하고 물이 넉넉한 거주지였습니다. 이곳은 다른 신들처럼 하나님만의 영역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살게 하시려고 지으셨습니다. 자신의 백성들이 살도록 지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도 자기 백성 가운데서 살기 원하셔서 지으신 곳입니다. 에덴은 ‘기쁨’이라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쁨의 정원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만나셨고, 선선한 바람이 날에는 나무 사이를 함께 거들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던 곳 에덴을 우리는 본향, 고향이라고 합니다.
 
저는 태어나기는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자꾸 사투리를 쓰죠. 그죠? 부산에서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산이 제 고향 같아요. 처가가 부산에 있습니다. 그래서 부산에 내려갈 때면 유년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 또 학창시절이 생각나며 또 처가가 있어서 고향집에 가는 기분입니다. 저는 처가 가는 것을 너무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아내가 지금 설교를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ㅎㅎㅎ~ ㅋㅋㅋ~
 
그리스도인들은 돌아갈 고향 고향이 있습니다. 죽어서 천국 간다는 말은 이제 긴 여행 끝내고 고향집으로 간다는 말과 같습니다. 죽음 이후에 아무것도 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고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돌아갈 곳도 없습니다. 죽음 앞에 섰을 때, 가장 큰 두려움은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돌아갈 곳이 지옥이라면,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잔인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그리운 곳, 이제는 도망가고 싶은 곳, 우리가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 그곳을 사도 바울은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 합니다. 다른 번역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먼저 번역입니다.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 또 다른 번역은 ‘그분이 계신 아들의 나라’로 표현합니다. 골로새 교회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아들의 나라’로 가는 길을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들어보세요.
-금욕적인 생활을 하십시오.
-똑똑한 훈련을 받으셔서 자기 부정을 하십시오.
-특히 음식이나 술은 절제하며 금식을 하십시오.
-거룩한 절기는 필히 준수해야 합니다.
너무 맞는 이야기예요. 그렇죠. 분명히 들어온 새로운 교사들이 이단이라고 하는데, 이들이 하는 이야기들, 틀린 이야기가 하는 거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근데 이단을 ‘끝이 다르다’고 해서 이단 이라고 합니다. 끝 단(端) 자에, 다른 이(異) 자가 있습니다. 이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끝이 희한하게 끝납니다. 가장 중요한 것들을 터뜨려버리는데요. 한번 들어보세요. 인간의 노력으로 충분히 갈 수 있는 그 나라이기에 예수 그리스 역할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보이는 세상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것이라 혐오해야 할 대상입니다. 이런 지저분한 세상에 지저분한 인간의 몸을 잊고 하나님의 아들은 절대 오실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가면을 하고 온 신적 존재 천사와 같은 존재로 여겨버립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없었던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걸어 다니면 땅에 발자국이 남지 않았다라고 이들은 가르쳤습니다.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를 지워가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발자국이 없다.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지워가듯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를 알지 못하도록 지워버리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갈 천국을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 그리스도의 나라’라고 표현합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갈 수 있는 나라라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지워지면 천국도 에덴동산도 하나님의 나라는 없습니다. 이 나라를 야곱은 꿈에서 보고 있는데요. 창세기 28장 12절 말씀입니다. 우리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창세기 28:12,
12 꿈에 본, 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어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 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하늘과 땅에 닿아 있는 사닥다리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페인트칠하기 위해 올라가는 사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행 중에 외국 신전을 가본 적 있으십니까? 하늘을 향해 계단이 끊임없이 놓여 져 있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야곱이 보고 있는 것은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계단이었습니다. 계단 끝에는 하나님이 서 계셨습니다. 말씀 한 절 더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51절 말씀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51,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제자도 야곱이 보았던 세계를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 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것이 예수님인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보이면 야곱이 고백한 것처럼,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 여호와께서 내 곁에 계시거늘,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계시거늘 고백하게 됩니다. 바로 예수님이 그 나라에 이르게 하는 계단이 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그 나라가 보이고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덴으로 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으며, 에덴으로 가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밖에 없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속량을 ‘죄 사함’이라고 합니다. 오늘 읽은 14절 말씀을 이렇게도 번역을 하는데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 "막다른 길과 어두운 굴에서 구출하셔서 그분이 몹시 아끼시는 아들의 나라로 인도하셨습니다."

 
*골로새서 1:14,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막다른 길은 십자가의 길이며, 어두운 굴은 무덤입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은 우리를 에덴으로 인도하는 길이며, 무덤을 막았던 돌을 굴려 우리를 건져내신 것이 속량입니다. 마치 출애굽 당시 흑암의 권세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을 때, 각 출입문 인방에 어린 양의 피를 묻혀 그 피가 흘러 흘러가는 곳마다, 죽음의 모든 사자들이 넘어가 그 피가 있는 곳마다 생명의 문이 열렸던 것과 같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흘러, 흘러 무덤에 그 문 인방으로 흘러, 흘러 묻혀 져 내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생명의 문이 열리고, 사슬 되었던 죽음의 죄 덩어리가 풀어지기 시작하며, 그때부터 이제 우리에게는 애굽과 흑암과 죽음의 권세들이 떠나가게 됩니다. 아멘!! 그때 그러므로 속량은 이제 우리가 에덴으로 돌아가도 된다. 라는 선언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죄 사함은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여정의 시작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은 아 나는 이제 착해졌구나, 나는 이제 죄인이 아니구나! 라는 그것을 말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걸음이 되고, 죄의 두려움에 눈을 돌려 기쁨의 나라를 볼 수 있는 능력이 되며, 죄로 인해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아도 된다는 하나님의 약 며 본향을 향한 소망의 여정이 됩니다. 그래서 에덴으로 가는 이들은 자유와 기쁨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깊이 묵상하고 십자가의 고통을 잊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에덴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또한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떠난 그 이후부터 한시도 쉬지 않으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나라를 향해 가는 여정 속에 있습니다.
 
‘페니 크로스비’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언젠가 존경하는 목사님께서 들려주신 페니 크로스비에 관한 이야기로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페니 크로스비가 태어난 지 약 6주가 되었을 때 병이 들어 눈의 시력이 너무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녀의 고백입니다. “나를 담당했던 사람들은 내 눈에 수포를 댔습니다. 그들의 지식과 기술 부족으로 나는 영원히 시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친구들의 얼굴이나 들판의 꽃들, 또는 푸른 하늘이나 아름다운 황금 별빛들을 결코 보지 못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만족이라고 부르는 작은 보물을 내 마음에 담아두겠다.”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고백을 들으며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아직 어려서 낙천적이고 낙관적이라 저런 말을 할 거야. 세상 풍파를 너무 몰라서 이런 생각 가질 수 있지.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몰라도 너무 몰라. 아직 철이 없는 것 같아 인생을 너무 쉽게 보아서 이런 글을 남겼을 거야.’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녀의 나이 53살 되었을 때 그녀가 지은 노래입니다.
 
♬“예수를 나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주 안에 기쁨 누림으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 만 보이도다.~!
-페니 크로스비-
-죽을 때까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녀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내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달린 구속한 우리 구주 예수님은 보입니다. 에덴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험난합니다. 하지만 주 안에 기쁨을 누리면 마음의 풍랑도 잔잔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내일 하루, 내일 하루는 또 어떠실 것 같습니까?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걸 들었습니다. 인간의 쾌락이 큰가, 아니면 인간에게 고통이 더 큰가? 이 질문에 이런 비유를 합니다. 사자가 먹이를 먹는 장면으로 설명을 합니다. 사자가 짐승을 잡아 입에 물고 있을 때, 사자가 먹이를 먹는 쾌락이 클까요? 아니면 사자에게 잡혀 먹히는 짐승의 고통이 더 클까요? 당연히 잡아먹히는 짐승의 고통이 훨씬 더 큽니다. 우리 인생에 쾌락과 고통이 있다면 우리 인생 속에서 쾌락을 오가는 그 무게 더 큰 것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진실은 인간의 인생은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일은 너무 짧게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하지만 고통과 아픔은 약속한 것처럼 어김없이 늘 우리를 찾아옵니다. 여전히 고통이 우리를 찾아와도, 내일이 또 두려워도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여행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돌아갈 집이 있으면 괜찮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에덴동산이 보이십니까? 그렇다면 사는 날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게 됩니다. 이것이 에덴을 향해 걸어가는 그리스도의 여정이며 삶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우리는 그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아멘
 
♣요약
어두운 무덤과 같은 흑암의 권세를 벗어나 사랑의 아들의 하나님 나라를 보아야 한다. 자기부인과 자아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십자가 없이는 그 누구도 온전함의 길을 갈 수 없음을 깨닫고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십자가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리하여 주님이 주신 에덴동산으로 가는 길이 아름다운 평생이 되길 소망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내시고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신 놀라운 은혜에 감사드려야 한다. 보이는 두려움과 고통의 현실 앞에 보이지 않는 흑암의 권세 앞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바라보며 살아가서, 눈을 열어 하나님의 동산을 보아야 하고, 기쁨의 동산에서 살아갈 날을 소망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찾아온 많은 문제들을 넘어서게 하심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의지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본향을 향하여 살아가는 에덴동산을 갈망하며 소망이며 능력의 하나님,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사회:김대규 부목사님.
오늘 말씀의 은혜에 놀랐고 또 하나 놀란 것은 우리 목사님 제가 27년을 알고 지냈는데 고향이 서울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사랑의 아들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시고 그 나라를 향해서 걸어가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눈을 가리는 것들을 이겨내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고 날마다, 날마다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를 향하여서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 이 시간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함께 찬양하면서 그 하나님 함께 바라보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 우리의 눈을 가리는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하나님 흑암의 권세를 벗어나 우리가 온전히 사랑의 아들의 나라, 그 하나님 나라 에덴을 바라보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나의 부인과 나의 죽음 선언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붙들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날마다 자아의 죽음을 선언하며 그 온전함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붙잡아 주시옵소서 내 눈을 가리는 모든 욕심과 욕망과 죄악과 불안과 우울과 걱정과 근심을 이 시간 모두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이 시간 우리의 눈을 들어 오직 사랑의 아들의 나라를 바라보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을 통해서 내 삶에 기쁨과 감사와 구원의 은혜가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같이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며 하나님의 영광은 무궁합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그 영원한 영광과 그 무궁함이 우리가 함께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 소망일 줄로 믿습니다.
 
모든 사랑의 교회 영 가족들이 하나님 하늘의 참된 부요에 눈을 뜨게 하시며 하나님 날마다, 날마다 우리가 은혜의 상층 권을 향하여서 다른 박질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사랑의 교회 다락방 가운데에 훈련 반 가운데에 믿음의 공동체 가운데에 그 부유와 그 풍성함을 부어주시옵소서 사랑의 교회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부흥헌신 토비새를 위해서 하나님 믿음의 사대가 함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 사명과 기적과 간절함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봄 특새를 기억하여 주시고 모든 강사분과 하나님, 우리 담임 목사님을 기억하사 봄 특새 가운데에 모든 교회가 은혜로 춤추게 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들을 우리가 소망하며 마음에 품고 준비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붙잡아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 사역과 담임 목사님을 위해서 이 시간 한 번 더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이 나라 이 민족을 하나님 불쌍히 여겨 주시오며, 하나님 이 나라 이 민족이 복음으로 승리하는 민족이 될 수 있도록 붙잡아 주시옵소서 특별히 4월 총선을 기억하여 주시오며, 하나님 민족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승리를 기원하는 좋은 지도자의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4월 총선을 위해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또한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 저 북한 땅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지금도 눈물로 기도하는 사랑의 교회 성도들을 주님 눈동자와 같이 지켜 주시오며, 하나님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의 그날을 속히 주시옵소서. 평양에서 특새(특별새벽기도회)하는 날이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적 평화 통일을 위해서 우리가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세계 열방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지금도 전쟁과 가난, 재해로 고통당하는 열방 가운데에 생명나무의 능력이 일어나게 하시며, 열방의 교회를 강하게 하시고 만국이 소생되는 치유의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 나라의 민족과 북녘 땅과 세계 열방을 위해서 다시 한 번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한 주간도 사랑의 아들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모든 믿음의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 다가오는 토비새(토요비전새벽예배)의 해와 같이 빛나는 얼굴로 다시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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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3월 17일)
제목: "하나님의 자비로-(My Mercy)"
말씀: 로마서 12:1-2
대표기도: 고영민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1-3부
설교자: 브라이언 채플 목사님(미국 커버넌트신학교 총장, 현 미국PCA교단 총무):1-3부
-통역: 정상익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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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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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예배 :
제목: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Overflowing with hope)
말씀: 로마서 15:8-13
대표기도: 김정현 권사님
사회: 임상규 부목사님(4부)

설교자: 덕 버셀 목사님(전 로잔국제 총재)-통역: 김인기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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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5:8-13,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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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버셀 목사님(전 로잔국제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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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채플 목사님-통역: 정상익 부목사님.
-안녕하세요!.
여러분과 다시 한 번 함께할 수 있어서 참 기쁩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사랑의 교회를 방문했을 때는 굉장히 지하 밑에 깊은 구멍이 계셨던 걸로 기억을 해요. 그런데 이제는 교회 건물조차도 하늘 위로 솟아오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전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계시는 사랑하는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아주 깊은 사랑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세요. 여러분의 담임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는 것을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담임 목사님이 그러신 것처럼 저도 여러분을 오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많은 분들께서 이 로마서 말씀을 잘 알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게 됐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한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는데요. 여러분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을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어요. 생각한다면 어떤 지역이 떠오르시겠습니까? 아마 중동 지역일 거예요. 굉장한 어두움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리고 많은 고통이 있는 지역이죠. 그리고 많은 아픔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전 세계가 중동에서 전쟁이 시작돼서 전 세계로 퍼져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제가 소속돼 있는 우리 국가에 있는 많은 분들이 뉴스를 통해서 굉장히 내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중동에서 과연 선한 것이 나올 수 있을까? 다들 이렇게 생각을 하죠. 그런데 이 기독교 뉴스 저널리스트가 이런 대답을 합니다. 이렇게 글을 적었어요.

최근 몇 년 동안에 많은 무슬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어서, 정말 많은 사역 단체들이 이 이집트 신문에 이런 광고를 적고 있습니다. 광고 문구를 통해 이런 질문을 던지는데요. 꿈에서 흰 옷을 입은 그 사람을 보셨습니까? 라는 질문을 이 광고를 통해 하고 있습니다. 질문은 이 중동 국가에 있는 수많은 정말 많은 무슬림들이 동일하게 경험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질문입니다. 수 천 수만의 달하는 이 무슬림들이 동일한 꿈을 꾸고 있어요. 그들의 꿈 안에서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는 현상이 일어난 겁니다. 그 흰 옷 입은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라고 꿈 안에서 이야기하는 걸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거예요. 그리고 그 수많은 무슬림들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께 한 가지를 고백하고 싶어요. 저는 이 현상에 대해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전문 영역이 아니라서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근데 이 사실 하나는 명확히 알고 있어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놀라운 자이를 드러낸 것이라고요. 이 어둠 가운데서 그리고 고통, 그리고 그 부끄러움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늘 복음이 해왔던 바입니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계속 계속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교회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란에 있습니다. 굉장히 놀라운 사실이죠. 그렇죠? 사실 불가능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거기에 있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결국 지하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가 계속해서 성장하는 걸 보면, 고통과 부끄러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고 계신 겁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가 임함. 여러분이 이 이야기를 잘 아실 거예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이 선교사 토마스께서 이 한국 땅에 성경책을 들고 오신 분이죠. 토마스 선교사가 성경책을 들고 왔을 때 그 성경책을 들고 그곳에서 순교하게 됐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 땅에 어둠과 고통과 그리고 부끄러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기서 일을 멈추시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이 이곳에서 흥왕(興旺)하게 돼서 그리고 여러분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그 자비의 증거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이 늘 일하시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 앞에 바로 서게 된다면 이거 정말 잘못됐어요! 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정말 수많은 어둠 가운데서, 그리고 정말 큰 고통 가운데서, 그 어둠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며 그 자이를 보여주고 계신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전하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읽은 이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 11장에 걸쳐서 바울은 이 세상 가운데 임한 어두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아담이 처음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타락(墮落)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어두움과 고통과 부끄러움이 이 땅 가운데 임했다고 이야기를 하죠. 우리 주님께서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에 복음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바울이야말로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어둠을 통해서 그 경험을 통해서 복음이 어떻게 전해졌는지를 이야기를 하죠. 이 바울이 자기 자신의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을 가지고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저는 하지 않았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에 대한 답을 여러분들은 알고 계시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야말로 이 말씀에 설득이 되었다. 라고,,, 이 죽음이든 생명이든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또 사망이나 생명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그리스도의 그 사랑 안에 있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끊을 수 없다.” 고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보여주신 놀라운 자비(慈悲)입니다. 우리 삶의 어둠으로부터 이 자이가 흘러들어오는 것을 봅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고통이 있고 부끄러움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자비가 임하는 것입니다. 근데 우리가 받은 이 자비를 가지고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이 장식장에다 그저 올려놓고 ‘아, 멋있다!’ 하고 바라보면 되는 걸까요? 사도바울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자비를 우리의 동기로 바꿔야 된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12장을 이렇게 사도바울이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이 12장 1절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한다.

*로마서 12:1,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을 권합니다. 여러분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여러분, 이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바의 이 힘과 능력을 이 미가가 이야기한 거를 통해서만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사도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했다면 ‘여러분이 느끼는 죄책감으로 여러분을 권합니다.’ 라고,,, 아니면 이렇게 ‘너희가 실패하는 그 경험을 통해서 너희를 권하노니.’ 라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을 권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야말로 우리 삶의 동기가 되어야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여러분이 머릿속으로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고 계 여러분 가슴으로 느끼기에는 어려움을 겪으실 수 있어요. 특히, 여러분이 저처럼 이 교회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된 그렇게 자라나게 된 사람이라면 더 그러실 것 같아요.

제가 이 주일 학교에서 자라나면서 한 가지 클럽을 들었었는데요. 제가 함께하게 된 그 클럽이 소속되어 있는 단체가 ‘성경암송 협회’라 불리는 미국에 있는 협회입니다. 그 협회에 소속되어 있었어요. 성경 말씀을 어느 정도 암송하게 되면 선물을 받게 됐습니다. 제가 성경 말씀을 많이 외워서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그 십자가 모형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근데 그것이 제 마음 가운데 어떤 영향을 끼치는 걸 깨닫게 됐어요. 하나님을 섬기면서 선물을 받게 되면요. 하나님께서 내가 했던 일에 대 일을 통해서 나에게 무언가를 주신다는 그런 동기를 가지게 됩니다. 제가 열심히 성경 말씀을 암송했지만 그 암송한 말씀조차도 제 마음 가운데 심어진 건 아니었어요. 제가 이 로마서12장 1-2절에서 말씀을 통해서,

*로마서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제 가슴으로 깨닫게 되는 바를 한번 말씀드려볼게요. 여러분을 권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을 권합니다. 여러분의 이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드려야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좋게 여기시는 그런 존재가 될 겁니다. 라고요. 성경 말씀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보통 우리가 가슴으로 ‘너 정말 거룩한 좋은 선한 제물이 돼야 돼!. 그래야 네가 거룩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존재가 될 수 있어,’ 성경 말씀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거룩히 여기신다는 것이 여러분이 미래에 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거룩하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지금 바로 지금의 모습을 하나님이 이미 선포하신 겁니다. 여러분은 이미 거룩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에 굉장히 어려워합니다. 나는 거룩하지 않아. 나는 내가 지은 죄를 아는데 그리고 내 약점도 난 너무 잘 알아, 어떻게 나 같은 존재가 거룩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 될 수 있을까? 여러분 이 말씀이 시작하는 포인트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여러분을 권합니다. 무엇으로요?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요. 이 사도바울은 이미 지난 11장에 걸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명확히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존재로 만드신 겁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이 예수님의 자비가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오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우리가 거룩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존재라고 선포하시는 거죠. 이것이야말로 이 하나님의 자비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했던 어떤 일들을 통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일이 일어나게 된 거예요.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를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쁨을 드리고 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끔 만드는 그런 자비이죠.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를 축복하사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끔 만듭니다.

여러분, 그 하나님의 자비가 여러분을 얼마나 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한번 잠시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랑하는 오정현 담임 목사님 사모님의 친구인 제 아내를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제 아내를 정말 존경합니다. 굉장히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저의 자녀들이나 또는 저의 손자들을 대할 때 손녀, 손자들을 대할 때, 정말 끝없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자비가 자꾸 자꾸 떨어질 때 제 아내는 여전히 자비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걸 보죠. 그런데 제 아내가 가지고 있는 그 따뜻한 마음이 때로는 제 아내를 어렵게 만드는 걸 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제 손자들 중에 한 명이 잘못 행동하는 걸 볼 때, 제 아내가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내가 조금 더 나은 엄마였다면, 내 자녀들이 좀 더 나은 부모가 됐을 텐데,,, 내가 내 자녀들을 조금만 더 잘 양육했다면 내 손주들이 이렇게 되지 않을 텐데,,, 그리고 이 한 수십 년 전에 했던 실수를 다시 떠올리는 겁니다. 그럴 때 갑자기 그 고통과 부끄러움이 제 아내를 덮는 거를 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그 슬픔에 골짜기로 들어가는 걸 보죠. 어떻게 제 아내의 마음을 좀 더 낫게 만들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할 때,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제 아내가 젊은 어떤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나는 이 굉장히 기억하기 싫은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가득 찬 캐비넷에 가지 않아요. 정말 내가 이 캐비넷을 열 수 있는 한 가지 열쇠를 들고 있지 않다면 그 캐비넷을 절대 열지 않습니다. 이 열쇠는 하나님의 자비라고 불리는 열쇠예요. 하나님이 얼마나 나에게 자비로우셨는지 몰라요. 어둠으로부터 또 고통으로부터 부끄러움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비를 보여주셨습니다. 이 메시지는 단순히 제 아내가 젊은 엄마에게 전해주는 그런 메시지는 아닙니다. 이 메시지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교회 지도자들도 동일한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하죠. 우리 오정현 담임 목사님과 제가 함께 하는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알렉산더 화이트라는 이 알렉산더 화이트라는 목사님은 스코틀랜드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역자였습니다. 굉장히 비극적인 일이 이 화이트 목사님이 계시던 동네에 일어났어요. 그래서 화이트 목사님의 이 집에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비극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요. 계획을 세우고 나서 모두가 이 집을 떠나게 됐는데요. 한 분의 나이가 더 많은 사역자가 그 자리에 남게 됐습니다. 그 연로한 사역자가 그 집을 떠나지 않고 계속 기다리고 있는 걸 봤어요. 사역자께서 화이트 목사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그냥 마치 지나가는 농담처럼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데요.

“화이트 목사님, 저 같은 오래된 죄인을 향한 말씀이 혹시 있으세요?” 화이트 목사님은 이후에 이 일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한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고요... 굉장히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셨던 성인과 같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연로한 사역자가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시선을 완전히 잃어버린거에요. 화이트 목사님이 이렇게 기억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나는 이분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랐어요. 그때 화이트 목사님이 이 질문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방을 건너서 그 연로한 사역자가 있는 곳을 직접 걸어가서 그분의 손을 잡았습니다. 제가 당신을 위로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말밖에 해드릴 게 없을 것 같아요. 우리는 자비를 기뻐하시는 그분을 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이 화이트 목사님이 하셨던 말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구약의 미가 선지자가 했었던 말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자비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이상으로 더 이야기한 건 없어 그 이후에 이 화이트 목사님과 대화를 나눴던 연로한 사역자가 그런데 그다음 날 전보가 전해졌어요. 이렇게 그 연로한 사역자가 화이트 목사님께 편지를 보낸 겁니다.

*화이트 목사님, 어제 저에게 전해주신 말씀이 제 영혼의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희망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당신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다음에 혹시 사탄이 저에게 ‘너 이런 죄를 지었잖아!’ 하고 죄를 제 얼굴에 던진다면 제가 사탄에게 이렇게 반박하겠어요. ‘그래 맞아 내가 지은 죄 맞아, 너 사실 모르는 거야, 더 중요한 사실을 네가 하나 알 게 있어. 나에게 자비를 보여주시는 그분을 나는 따른다.’,,, 고 저도 그렇고요.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우리야말로 우리에게 자비를 보여주시고 기뻐하시는 그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능력이죠.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는 방법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우리에게 능력이 되는 바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비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자비로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해 주십니다. 그 자비로 우리에게 힘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비로, 하나님의 자비로, 하나님의 자비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더 아름답게 만들도록,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더 튼튼해지게 만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왜 섬기십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가 하나님의 자비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야말로 그 자비로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자비에 감사를 올려드립시다. 아멘

♣요약.
예수님의 자비의 물결로 전쟁의 어둠과 고통과 부끄러움을 덮어주실 때, 억압과 고난의 땅에서 수천수만의 영혼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올 줄 믿고, 하나님의 자비로 우리의 죄와 실패와 결점을 용서받고 오직 자비의 복음으로 우리의 마음과 주님의 교회를 강력하게 세워가야 한다. 우리의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제22차 글로벌 특새로 달려 나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우리나라를 덮어주시고 구원주시는 주님의 기쁜 지도자로 인도해 주시길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놀라운 자비를 본받아서 우리가 달성했던 바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님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그 자비로 덮어진 우리가 주님 앞에 서야 하며,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늘 기억하여, 우리의 거룩은 우리가 잘하고 애써서 생긴 거룩보다도, 주님의 거룩 때문에 주어진 은혜이고 축복이라는 것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도 고통과 어려움 중에 있는 자들이 최고의 열쇠를 가졌음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열쇠를 주신 주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오정현 담임목사님.
이제 교단 총무님이세요. 그래서 세계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치시고 또 1 2 3부 설교하시고, 4부는 또 덕 버셀, 전 로젠 총재께서 설교하시고 하여튼 오늘 우리 교회가 축복이 많은 줄로 믿습니다. 저는 너무 고마운 게 탓이요. 내가 설교 안 하고 오늘 설교 듣는 사실이 좋습니다. 우리 교회가 한국교회가 여러분들이 바로 가면 이 민족이 바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중요한 메시지 기억나시죠? ‘우리의 거룩은 우리가 막 잘하고 애써서 생긴 거룩 보다도 주님의 거룩 때문에 주어진 은혜이기 때문에 축복이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오늘도 고통과 어려움 중에 계신 여러분들이 최고의 열쇠를 가졌는데 그 열쇠가 뭡니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열쇠를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17일이에요. 이제 봄이 시작되는데, 다시 한 번 ’은혜의 봄 동산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이번 봄에 모두가 다 은혜의 봄 동산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계속해서 우리 토요일 일요일 새벽 예배 토요일 날, 은혜가운데 지금 잘 감당하고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사명과 기적과 간절함의 지팡이를 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응답으로 채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번 토요일 날 기대하고 나오시고 그다음 다음 주일에는 학습과 세례식, 입교 한 300여 명의 우리 학습 세례를 받게 되는데, 큰 우리 교회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감사드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4월 1일부터 4월 6일 한 일주일 동안 우리 봄 글로벌 특별히 새벽 봉인데 본래 우리 3월 한 중순 하순 이렇게 하는데, 올해는 한 2~3주 늦춘 이유가 4월 10일, 우리 선거를 앞에 놓고 우리 교회의 기도가 이 민족의 방향을 바꾸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교회 성도들 매일 새벽마다 수만 명이 모여서 기도할 때, 또 전 세계적으로 들어와서 많은 분들이 기도할 때 한국에 또 한 천여 교회 지방 교회들 같이 참여하고 그럴 때 우리의 기도가 이 민족의 장래를 결정하는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본 글로벌 특별 세계 부흥회에 이번 국내 강사님들 나를 애국 애족을 하는 박명수 목사님, 또 이용기 교수님, 그다음에 미국에서 우리 강주민 목사님, 여러분 잘 아시죠? 강주민 목사님도 이틀 동안 하시고, 또 최병 목사님, 이렇게 해서 이분하고 또 브라이언 체플 목사님, 또 제이미 듀 또 크리찬 소니아, 필리블라이큰 오스니 지니스 미첼리 여러분들이 또 글로벌로 들어오셔 가지고 같이 이렇게 메시지를 전하게 되는데, 너무 감사하고 하여튼 제가 우리 브라인 채플 목사님 십 이년 만에 뵙는데요. 목사님들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서 드셨어요. 하여튼 우리가 다 나이가 들어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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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예배 :
제목: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Overflowing with hope)
말씀: 로마서 15:8-13
대표기도: 김정현 권사님
사회: 임상규 부목사님(4부)

설교자: 덕 버셀 목사님(전 로잔국제 총재)-통역: 김인기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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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5:8-13,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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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버셀 목사님(전 로잔국제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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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의 주제는 로마서 15장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바로 소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모인 이 자리에서 저의 기도 제목은 우리 모든 사랑의 교회 위해 성도님의 삶 가운데 소망이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오늘 이 날이야말로 주일이 바로 이 한 주의 첫 시작인데요. 그리고 이 날이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 이 자리에 모든 성도님들께 가장 큰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그리고 이 자리에 제가 다시 오게 돼서 너무나 기쁩니다. 제가 이 사랑의 교회를 너무나 사랑하는데요. 저는 사실 사랑의 교회에 올 때마다 참 명예직을 받은 사람이구나! 라는 마음을 많이 느낍니다. 제가 사실 사랑을 성도님들 아무도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그리고 저랑 개인적으로 만남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됨을 그러고 이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심을 저는 느낍니다. 그리고 여러분 옆에도 앉아 계시고요. 그리고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이름을 한 분 한 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모든 우리의 일생을 아시는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이야말로 어마어마한 선물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지금 이 시각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기를 사망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과 그냥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다는 것 이상인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아시듯이 저는 사실 여러분들의 친척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한국의 가장 유명한 섬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데요. 혹시 여기에 이 씨 성을 가진 분들 계십니까? 이 씨 성을 가진 분들 계십니까? 이 씨 성을 가진 모든 분들은 저와 한 가족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3명의 저희 자녀들이 있는데요. 첫 번째 딸이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정말 너무나 멋진 청년이고요. 프리스턴에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버드 로스쿨을 나왔습니다. 아주 똑똑한 우리 사위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정말로 우리 사위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따르는 자입니다. 저의 딸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제 딸을 너무나 사랑하고, 제 아내도 장모님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딸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기 아내와 그리고 저의 장모인 저의 아내를 사랑합니다. 제 딸을 사랑하고요. 그리고 이제는 자식을 낳아서 자녀들도 사랑하는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과 한 가족이 됨을 너무나 큰 축복으로 여깁니다.

특별히 사랑의 교회는 많은 게스트 우리 목사님들께서 오시는데요. 여기에 초청받은 목사로서, 이 자리에서 설교한다는 것이 얼마나 저에게 영광스러운 일인지 말로 형언할 수 없습니다. 먼저 이 사랑의 교회의 어마어마한 장엄함과 영광스러움에 큰 감동을 느낍니다. 우리 성가대의 아름다운 또 찬양에도 너무나 큰 감동을 받고 정말 천사들이 찬양하는 것 같은 그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말 천국을 더 사모하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매 예배 시간마다 이 모든 자리에 정말로 성도님들이 함께하심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특별히 성도님들이 이 자리에 꽉 차 있는 모습은 저에게 미국인으로서 너무나 큰 격려를 줄 뿐 아니라, 선교사로서, 특별히 제가 일본에서 20년을 선교사로 지냈는데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앉아주실 분들이 꽉 차 있는 모습이 저에게 너무나 큰 감동과 격려를 줍니다. 제 아버지는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도 목사님이셨습니다. 아버지도 목사님이 그 아버지도 목사님이셨습니다. 저는 자라면서 정말 교회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저희 교회에 많은 귀한 설교자 분들께서 오셨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갈 때 저의 꿈이 있었습니다. 제가 정말로 신학교를 다니면서 가졌던 꿈은 내가 나중에 나이가 들면, 천 명을 목회하는 교회를 섬기는 담임 목사가 되고 싶다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전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저의 그냥 단순한 자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24살에 그 꿈을 가진 어린이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카고 제가 자란 곳에서 저는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하나님께서 일본에서 저는 교회를 개척하는 사역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저는 30살이 되었습니다. 제가 30살이 된 그날 주일, 제가 설교를 하고 있었을 때, 제가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고 제가 어떠한 오버를 하는 것이 아니고요. 허풍을 떨거나 제가 어떠한 저의 자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면서 숫자를 세는 것을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하면서도 사실 수학 공식을 머릿속에 풀 수 있습니다. 천 명을 목회하는 이 교회를 꿈꾸고 있었을 때, 제가 30살이었을 때, 제가 설교를 하면서 사람 숫자를 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988명이 천 명에서 부족한 것을 제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12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12명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저의 리더십 아래 그 교회는 15명으로 시작했는데, 12명으로 끝나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교회의 성장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거를 교회의 성장이 아닌, 그러나 저는 주님 안의 소망이 있습니다.

저는 하박국 선지자를 참 좋아합니다. 외양간은 송아지가 없고, 정말 양떼가 없고, 아무 정말 가축도 없고 아무 과실도 없을지라도, 그러나 나는 예수 그리스도 주 하나로 말미암아 나는 기뻐하리로다. 정말 그 하박국의 기쁨은 이곳이 아닌 정말 더욱 높은 고차원적인 레벨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40년 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제가 30살이었었습니다. 이제는 저는 74를 맞이했습니다. 정말로 여러 가지 광야를 저는 거쳤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야말로 약속의 땅에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자리에 이 약속의 땅에 우리 사랑하는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정말 주님의 임재 안에서, 주님의 천국을 맛보며, 우리의 상황이 어떻든 상관없이, 정말 교회가 크던 작던 우리 삶에서 성공을 직감한 실패를 체험했던, 우리가 기쁨을 체험했던, 환란을 체험했던,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인 줄 믿습니다. 정말로 소망을 채워주시는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님들에게 소망을 부어주시는 분을 믿습니다. 저에게 할 말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 지금 사실 아무것도 없이 다시 저에게 주신 그게 얻는 내용이었어요. 이제부터 메시지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인트로를 소개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으로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을 충만케 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소망이 삶 가운데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정말로 소망이 우리 삶 가운데 차고 넘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자리에 정말 소망이라는 이 작은 인공눈물방울을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소망이라는 사이즈에 이 물 컵에 담긴 정말 이 정도의 소망만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 소방차를 끌고 오셨습니다. 소방차 소방 호스로 정말 우리에게 소망을 부어주시는 분입니다. 정말로 생명의 강으로, 우리 모인 모든 분들은 우리 장로교 교인들인데요. 정말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교단이 어떠하듯이 내일의 삶에서 소망이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오늘 사랑 계신 성도님께 한 가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의 마음에 기쁨과 평안과 소망이 충만하십니까? 정말로 마음 가운데 기쁨과 평강으로 충만하십니까? 만일 그러시다면 그거는 초자연 그거는 기적입니다. 그거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오늘 이 시간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소망이 없다면 이로 해야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거를 우리도 놓치고 있는지 모릅니다. 만일 오늘 이 자리에 오셨는데 정말 삶 가운데서 마음 가는 소망으로 충만하지 않으시다면, 어떠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체험하고 계시다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성도님들은 혼자가 아니고, 성도님들은 우리와 함께하는 영 가족임을 믿습니다. 이 시간 요한복음 16장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듣는 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정말 끝까지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6:33,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염려 가운데 살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로마서 5장 1절에서 5절에 사도 바울이 하는 말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5:1-5,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의 마음이 메마르시다면 감정적으로 메말라 버리셨다면, 영적 저수지가 비어 있으시다면, 오늘 이 시간, 그리고 매일 아침,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마음과 삶을 넘칠 정도로 차고 넘치는 소망으로 채우시길 원하시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정말로 소망으로 채우시길 바랍니다. 정말로 소망으로 우리 삶을 충만케 하시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 가운데 스스로에게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때, 우리의 상황을 되돌아볼 때,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그러나 하나님 말씀과 내 마음의 소리를 같이 듣고 있는 분이 계신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우리는 시편 42편에, 다윗이 스스로에게 했던 말을 우리가 다시 한 번 보길 원합니다. 다윗이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시편 42:11,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다른 말로 하면 나의 문제가 무엇이며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내 문제가 무엇인지? 다윗이 물었습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고 있는가!’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고 있는가! 다음 장면으로 가져오기 전에 잠깐 한마디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 감사드린 것은 사랑의 교회가 소망의 근간(根幹)이 됨을 감사드립니다. 그냥 이 사랑의 교회뿐만 아니라, 특별히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교회들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유럽에 있는 교회들의 감사 그리고 전 세계 교회들을 감사드립니다. 조금 전, 오정현 담임 목사님과 식사를 하면서 곧 올해에 7천여 명의 목사님들을 초대하는 컨퍼런스 한교섬(한국교회섬김)이 있을 거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한국교회 섬김의 날’이야말로 정말 사랑이가 받은 축복을 더블 링하고 더 많은 축복을 누리게 됨을 믿습니다.

-지난주에 제가 로잔 대회 관련하여서 제가 일본에서 많은 젊은 리더 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마지막 끝나고 Q&A 세션을 가졌었습니다. 그리고 Q&A 세션을 가지는 와중에 어떠한 자매가 저에게 왔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저 스스로가 제 아버지가 목사님이라고 얘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와서 그 자매가 말하길 자기 아버지도 목사님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기 아버지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로 교회를 사랑하고 있지만, 아무 부교역자도 없고, 작은 교회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섬기시는데, 성장도 안하고 있답니다. 정말로 힘겨운 가운데 아버지가 계심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딸이 말합니다. 아버지가 너무나 큰 욕을 많이 먹고 있다고요.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은 일이 없다고 딸이 이야기 했습니다. 그 자매는 정말 교인으로부터 단 한 번도 우리 아버지가 감사의 인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자매님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친구 분이 같이 있었는데요. 친구 분도 같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왔던 친구 분의 아버지도 목사님이신데, 정말 작은 교회의 목사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 자매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두 자매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여러분들의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위로해 달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하나님께서 자매님들과 그리고 아버지를 사랑하신 걸 꼭 알라고 일러주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위해 섬기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천국에 예비 된 상급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제가 전해주었습니다. 정말로 큰 상급입니다. 정말로 이 사랑의 교회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교회입니다.

다시 한 번 시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이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내 영혼을 어찌 낙심하며’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이시라.’ 이것이야말로 마르지 않는 생수의 원천임을 믿습니다. 정말로 강력한 물살이며, 아주 깨끗한 물의 호수이며, 고요한 물결의 평화와 희망이 소리를 내는 샘물임을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소망이란 무엇일까요? 소망이라는 단어를 얘기할 때마다, 아마 불확실성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러나 성경은 소망이란, 불확실성이 아닌 확실성이라 말하죠.

저는 보스톤 셀틱스의 농구팀의 팬인데요. 셀틱스가 챔피언십에서 이기기를 전합니다. 정말로요. 그러나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망합니다. 제 손자들이 좋은 대학에 붙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제 딸이 참 똑똑한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저희 전략이었습니다. 특별히 미국, 제 조국이 주님 안에서 자유 한 나라로 있기를 소망합니다. 정말로 소망합니다. 그러나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성경에서 말하는 소망이란, 불확실성이 아 정말로 확실한 믿음입니다. 정말로 확실한 미래입니다. 나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노라. 나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분명히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도님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계획이 있습니다. 정말 우리 모두에게 밝은 미래를 가지고 계십니다. 정말로 놀랍게도 제 친구, 우리 브라이언 박사님께서 1부부터 3부 예배 때까지 로마서 12장을 가지고 강의를 했습니다. 정말 12장을 가지고 강의 하셨는데요. 정말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는 신학적으로 굉장히 묵직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정말로 최고의 신학의 책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 모두는 로마서의 신학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로마서 12장부터 15장까지는 묵직한 어떠한 신학적인 용어들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우리에게 적용이 가능한 이야기를 12장부터 15장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브라이언 박사님이 첫 번째 나오셨고, 저는 마지막 부분에 다룹니다. 근데 사실 우리 서로는 이 자리에 있을지 몰랐습니다. 정말 성령님께서 우리 두 사람을 이 자리에 불러주신 것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아직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조금만 더 우리가 이야기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로마서에서는 우리 모두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가 있습니다. 정말로 사도바울은 확신을 가지고 시작을 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정말로 사도 바울은 이 복음에 대해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정말로 이 복음이 오히려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면 부끄러웠을 겁니다. 사도바울은 이 복음이 정말 진실인 것을 알았습니다. 정말로 이 복음은 진실입니다. 정말로 이 복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서 정죄와 칭의와 성화에 대해 나열을 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마지막 우리 9장으로 오게 됩니다. 바로 로마서 15장입니다. 그리고 13절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모든 신학을 다 가르친 후에 모든 기독교적인 조언들 이후에, 그리고 15장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가려고 이제 18살 때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부르시고 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이제 나이가 들어서 아버지 했던 걸 생각해 보니까, 아버지가 정말 이 말을 오랫동안 생각하셨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일 날 오후였는데요. 전 18살이었습니다. 대학을 갈 일만 남았습니다. 제 친구가 저녁 먹을 시간에 저희 집 앞에 주차를 하고, 그리고 우리가 같이 이제 시카고로 가서, 저는 이제 위튼 칼리지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가 그때 제 방에 들어오셔서, 아버지의 얼굴에 슬픔과 기쁨을 같이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장남입니다. 저에게 두 명의 어린 동생이 있고 그리고 누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래야 첫 번째로 제 아버지가 저를 안아주시고,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정말로 기독교적인 크리스천 신사가 되거라.” 그 말은 정말 5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 마음과 제 머릿속에 있습니다. 정말로 그러나 아버지는 제가 태어난 그날부터 이 말씀을 마음에 두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하나님 아버지, 이 아이가 주님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정말로 이 아이가 주님을 위해 일한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아이가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신사가 되길 원합니다.

사도 바울의 마지막 말은,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저는 이 생각을 몇 가지 정리하고 싶습니다.

보스턴에서 기독교 컨벤션이 있었습니다. 500명의 크리스천 학생들이 그 자리에 모여 있었었는데요. 그는 그 자리에서 많은 이 강사 분들께서 불안과 염려에 대해서 강의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제가 저희 자녀들에게 말했습니다. 제 자녀 세 명이 다 교수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학생들과 매일 만납니다. 그래서 제가 자녀들에게 묻습니다. 정말로 너희들 학생들도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나? 그리고 그들이 핸드폰을 꺼내고 그리고 학생들에게 받은 메시지들을 저에게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오후에 강의를 올 수 없고, 오늘 SE도 낼 수 없습니다. 제가 저의 두려움을 인하여 굳어버렸습니다. 제가 염려로 인하여 일을 못 하게 됐습니다. 이런 메시지들이었는데, 저는 생각하기는 정말 이 문제들이 젊은 층에만 일어나는 것인가? 그리고 얼마 후에 저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이러한 글을 읽었습니다. 가장 위대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들이었는데요. 다보스 세계 경제포럼에서는 불안과 우울증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1순위 원인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것을 바로 불안과 우울증의 그들을 위협하는 건강의 순위라고 그들은 얘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는 너희가 소망으로 충만하기를 원하노라.’

뉴욕에서 제 손자와 최근에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손자들이 잠에 들 때, 제 딸이 우리 손자들에게 가서 교리 문답을 읽어주었습니다. 11살부터 우리 3명의 우리 손자들이 한 아파트 안에서 같이 살고 있었는데요. 그리고 그들의 엄마의 제 딸인 그들의 엄마가 이 바로 질문들을 읽어줬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질문을 읽어주었습니다. 삶과 죽음에서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무엇이니? 그리고 3명의 제 손주들이 이 대답을 하였습니다. ‘어머니,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어머니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셨고 이 마음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그 우리를 위한 피난처를 확보하셨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내게 힘을 주시고,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시고, 나의 소망은 주님께 있습니다. 어머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있기에 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삶을 소망으로 충만케 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사용하시길 원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아멘.

♣요약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계시하신 소망의 하나님께 두어야 하는 것은 소망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고난 가운데에서도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면 진정한 기쁨과 평강을 얻을 수 있으며 내적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소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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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3월 10일)
제목: "멜기세덱을 아십니까?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⓺-(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Do you know Melchizedek?(Jesus Chirst th eternal high priest))”
말씀: 창세기 14:17~20, 히브리서 7:1-7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김지수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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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4:17~20,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히브리서 7:1-7,
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자라.
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4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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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꼭 필요한 은혜를 복락의 강수로 채워주기를 바랍니다. 오늘 회중 찬송하셨는데, 예수 앞에 나오면 영생 복락 면류관 그다음 뭐예요? 확실히 바뀌었네!!~~ 복락의 강수 영생복락 면류관(冕旒冠) 아마 예수님 믿지 않는 세상에서 이런 용어를 한번 평생 한 번도 안 써봤을 거예요. 그래서 주님 믿는 것은 너무나 신비하고 깊이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한 진리 지식에 눈을 뜨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7절을 여러분들이 히브리서 7장 7절에 읽었는데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오죠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히브리서 7:7,
7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그래 돼 있는데 우리는 주님 앞에 다 엎드려서 부복하고 항복하고 주님만이 나의 전부입니다. 라고 고백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독특한 축복이 있는 것이 그게 논란의 여지가 없어요. 말할 것도 없이, 의심할 여지가 없이, 영어로 말하면,,, Without doubt!!!, 의심할 여지가 없이, 오늘 의심할 여지가 없이 진리 지식을 깨닫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예수님은 누구신가 여섯 번째,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멜기세덱? 아마 우리 가운데 멜기세덱이 누군가 ‘멜기세덱을 아십니까?’ 입니다. 그랬는데 “목사님. 새댁 이름입니까?” 여러분 그런 게 아니고 오늘 멜기세덱은 오늘 여러분들이 귀를 좀 쫑긋해가지고 진리 지식에 대해서 눈이 열리는 시간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오늘 배경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여러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제 소식을 들었어요. 뭐냐 하면 자기 조카 앞에 13장에 자기 조카 롯이 소돔성에 거했는데 그돌라오멜이라는 당시 그 근동 사회에서는 동방의 제일 강력한 군주였고, 동방의 패자였어요. 그 당시로 말하면 그 당시에 알렉산더이고 또 그 당시의 어떤 징기스칸 같은 그런 아주 강력한 군사력인 힘을 가진 왕이었는데 이 왕이 이제 늘 주위에 여러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는데, 소돔으로부터 받고 그러는데 이 몇 나라들이 이 왕에게 종을 안 바치고, 이제 약간 반역 비슷하게 하니까, 이것들 가만히 두면 안 된다 해가지고 그 당시에 최고의 거돌라멜이 소돔성에 쳐들어와 가지고 모든 다 붙잡아 가고 특별히 소돔성에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있었기 때문에 롯을 붙잡아 갔어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그 소식을 듣고 야 이거 내 조카가 저렇게 잡혀가면 되겠나! 라고 생각하고 아브라함은 특전사 그러니까 특공대를 길렀어요. 318명의 특공대를 길렀는데 이 특공대를 데리고 그돌라오멜의 왕과 그 강력한 군대를 쫓아갔어요. 말도 안 되죠. 사실은요. 그 숫자도 마음이 말도 안 되고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전승에 취해가지고 밤에 그냥 술 마시고 무방비 상태로 널브러져 있었어요. 그러니까 강력한 특공대 1당 100이 쳐들어가니까 318명 앞에 나가떨어지고 그냥 다 완전히 패전하고 도망가 버렸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 전리품하고 이제 이런 것들을 가져오는데 가져오면서, 두 왕을 만났어요. 두 왕을 만났는데, 먼저는 누구를 만나 소돔 왕을 만났어요? 소돔 왕 21절에 보니까 나오죠?
 
*창세기 14:21,23,
2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져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23절에,
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오늘은 좀 쎈 말들이 많이 나와요. 그러니까 논란의 여지없이 그다음에 실오라기 하나도 내가 놓치지 아니하고 들메끈이라는 것은 여러분 신발을 묶는 끈이에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신발 끈 하나라도, 실로라기 하나라도, 소돔 왕이 주는 거니까, 주는 거 내가 안 받겠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마치 소돔 왕이 자기가 아브라함에게 재산을 주는 것처럼, 그렇게 이제 자기 걸 가지고 생색내는 것처럼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이 전리품을 받아가지고 아브라함이 치부하였다. 그 전리품을 다 받으면 그 당시에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아브라함이 가장 강력한 부자가 되는 것이에요. 어느 정도 부자가 되는가? 요즘 우리 식으로 하면 일론 머스크라든지, 빌게이츠 같은 그런 부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그런 물품이었는데, 아브라함이 “NO, 안 받겠다!!”! 그 이유는 ‘내가 사람으로부터 내가 받아가지고 내가 부자가 되겠냐? 그렇게 하지 않겠다.’ 그래서 소돔 왕의 제안을 깨끗하게 거부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지금 외적 전쟁에서도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보면 아브라함도 욕심이 있을 거고, 유혹도 있을 거고, 그런데 내면의 어떤 전쟁으로부터 승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니까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을 주시는데 첫 번째 뭐냐 하면, 내면의 유혹을 승리하니까 하나님이 누구를 만나게 해 주셨다고요? -멜기세덱을 만나게 해주셔 또 다른 왕이 있는데 멜기세덱에 대해서 18절에 보면,
 
I. 유혹에 승리하니, 멜기세덱을 만나게 해 주셨다.
 
*창세기 14:18,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이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러니까 멜기세덱은 무례한 예의가 없는 어떻게 보면 좀 저열한 그런 소돔 왕과는 완전히 다르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완전히 아브라함에 대해서 정말 따뜻한 태도를 가지고, 전쟁으로 수고한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멜기세덱은 우리 모든 신학자들이 신비한 인물인데, 구약에서 예수님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인물이다 이렇게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은 대부분 여러분 잘 모르신다고 그랬잖아요. 잘 모르시는데 성경에 세 번 나옵니다.
 
오늘 창세기 14장에 나오고, 그다음에 다윗이 시편 10편에서 또 나오고, 그다음에 구약을 해석한 신약에 히브리서가 있는데 히브리서 5장, 6장, 7장에 걸쳐서 아주 다양하게 나오면서 우리에게 멜기세덱이 어떤 분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나오는데도 우리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히브리서에서 멜기세덱에 대해서 어떻게 제대로 표현하고 있느냐, 여러분들이 아까 봉독했습니다마는 히브리서 7장 1절부터 3절까지, 우리가 한 절 한 절 한 절을 보면서 오늘 아브라함 창세기 14장 이 사건이 히브리서 기자가 어떤 식으로 해석을 하는지 같이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7장 1절을 다 같이 봅니다.
 
*히브리서 7:1-7,
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자라.
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평강의 왕이요.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아멘 이 에 대해서 3절에서는 설명하는 것이 누구에게 설명 하냐면 멜기세덱에 대한 설명이에요. 그는 뭐가 없고요. 아버지도 없고 그다음 뭐예요? 어머니도 없고, 그다음 또 보니까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뭐로 있다고요?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시간 지금부터 약간 한 3분 정도 제가 여러분들에게 신학적으로 멜기세덱이 왜 중요하고 멜기세덱은 우리에게 누구인가, 에 대해서 좀 정확하게 좀 말씀을 드릴 테니까 조금만 공부하듯이 좀 집중해 주시겠습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멜기세덱이란 말은 첫째 복합어예요. ‘멜렉’, 이라는 말과 그다음에 ‘세데키’ 라는 말 세데라는 이 두 단어가 복합돼 있는데 그래서 멜기 세대가 있는데 멜렉 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왕이라는 뜻이고 세데키 라는 이거는 뭐냐 하면 -정의다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말기 세력은 복합으로 뭐라고요? 정의의 왕이시다. 의의 왕이시다. 그랬죠? 그다음에 또 살렘 왕이요. 그랬죠? 살렘은 여러분 샬롬, 예루살렘 할 때 예루살렘의 평화의 성 아닙니까?
 
※멜렉=왕, 세데키=정의, 샬렘 왕=평강의 왕.
 
샬롬, 할 때 평화라는 평강이란 말이죠. 평화 평강 그래서 여러분 프린스 오피스, 이사야 9장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그는 우리에게 평강의 왕이요, 기억나시죠? 우리 예수님에 대한 예언할 때 평강의 왕이요 의의 왕이다. 멜기세덱의 이름 자체가 뜻하고 있는 것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우리에게 이제 예수님을 예표 하는 것 중에서 평강의 왕, 그다음에 의의 왕, 그리고 다시 한 번 3절에서 뭐라고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은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닮아서 그다음 뭡니까?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그러니까 앞에 멜기세덱은 평강과 의의 왕, 일 뿐만 아니라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 성경에서 완벽하게 왕 직과 제사장 직을 겸임한 분은 예수님이 메시아인데 메시아밖에 없는데 ‘멜기세덱’이 예수님의 예표로, 왕 직과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제사장직을 완벽하게 겸비한 줄로 믿습니다. 멜기세덱의 뜻 그다음 멜기세덱이 가진 그 역할 두 가지, 왕 직과 제사장은 바로 예수님을 예표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다윗이 깨닫고 여러분 다윗은 다윗도 예수님을 예표라고 그랬는데 다윗에 대해서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다윗에 대한 설교할 때, 그는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 그랬어요. 다윗도 보면 선지자 역할도 하고 왕의 역할을 했는데 이제 이건 여러분들이 이걸 좀 나중에 이제 그냥 기억하시고 다윗이 110편 4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느냐 이렇게 하고 왔습니다.
 
*시편 110:4,
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아멘 여기는 너라고 그럴 때, 이거는 예수님의 메시아이심을 얘기하면서 그 메시아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도다. 그랬어요. 이 서열이란 말은 오더(Oder)인데 요즘 반차, 그러니까 뒤에 이제 반차란 말이 나오는데, 내가 또 반차니까 일본말처럼, 젊은이들은 목사님, 휴가 내는 반차입니까? 또 그러더라고요?.... 여러분 그 반차가 아니고 서열이다. 서열이다. 크게 보면 족보이다. 이런 것도 포함 다 되는 건데요. 그러니까 메시아가 멜기세덱의 반열에서 제사장으로 온다는 뜻인 거예요. 무슨 말인가 하면 여러분 율법에서는 제사장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죠? 좀 신경 좀 써야 됩니다. 율법에서는 누가 제사장이 되는 겁니까? 레위지파,,, 레위지파가 제사장이 됩니까? 사랑의 교회 성도들은 다 아시죠? 누가요? 레위지파,
 
※레이지파에서 제사장이 나오고, 대제사장은,,,,
레위지파 가운데 아론의 자손들이 대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 율법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오늘 멜기세덱은 아브라함 시대니까 그 레위 지파보다도 훨씬 위 세대예요. 이해가 됩니까? 아브라함 시대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은 레위지파입니까? 유다지파입니까? 예수님은 유다지파예요. 근데 유다지파인 예수님이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고,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다는 건 여기에 특별한 구약의 예수님의 메시아 됨에 대한 예언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조금 이해가 가십니까? 이제 다 이해 못해도 괜찮아요. 그다음 내가 설명을 드릴 테니까 그러니까 이 말씀을 히브리서 기자가 완전히 이해를 해가지고 우리보다 더 많이 완벽하게 이해해가지고, 히브리서 6장 20절에 놀라운 말씀을 하고 있어요.
 
*히브리서 6:20,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아멘, 자,,, 예수님께서 뭐가 되셨다고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반차한 서열입니다.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히 뭐가 되셨다고요? 대제사장이 되셨다. 이 반차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가문을 계승하고 뒤를 잇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리고 히브리서 7장 3절에,
 
*히브리서 7:3,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아까 얘기한 대로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특별히 뭐가 없다고요 족보가 없다. 창세기는 주요 인물들에 대한 내용들 누구, 누구를 낳고 자세히 나오지만 이 멜기세덱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족보를 기록하지 않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제 무슨 뜻이 있는가? 이제부터 중요합니다. 멜기세덱에 대해서 족보를 누락시킨 것은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섭리적인 의도성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 용어는 이제 오늘 매주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해서 알 때마다 새로운 용어들을 하나씩 여러분들이 봤는데 오늘은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섭리적인 의도성, 이 섭리적인 의도성,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멜기세덱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시고 멜기세덱에게 하는 그 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이심을 상징하고 예수님은 그것 때문에 유다 지파에서 제사장이 되시고, 레위 지파가 아니고,,,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은 축복 없는 분이시다. 이해가 됩니까? 하나님이시니까.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통하여 섭리적인 의도성을 보여줬다는 것 어떤 뜻인가 하면, 멜기세덱에서 예수 그리스도까지 그 긴 기간 동안 아무런 반차와 개성이 없다는 것이고, 이 반차가, 반차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에게만 영원히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 하고, 그래서 멜기세덱에게 예수님의 예표를 말씀할 때 예수님이 의의 왕이시고, 평강의 왕이시고, 하나님의 사람 사이의 중보자, 이시고 실질적으로는 아브라함에게서 참된 복을 주시는 예수님을 예표 하는 것인데, 그래서 제가 이제 섭리 적 의도성을 가지고 설명을 하는 건데 자막을 만들었어요.
 
▷그분은 의의 왕, 평강의 왕이시고 시작과 끝이 없는 분이시고 특별 불멸의 생명을 가지신 분이시고 계속요. 결코 죽지 않아 교체될 필요가 없는 분이시고, 아브라함보다 높고 레위보다 더 위대하신 분(4-5), 그리하여 아브라함을 축복(7절)하고,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았던 분이시다(5,6,8-10). 더 이상 이런 완벽한 대제사장이 없다.
-이런 모든 내용들은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에 포함된 것이에요. 그리고 여기에 나온 이런 내용과 용어들이 옛날에 예수 믿지 않았을 때 나하고 전혀 상관없는 용어였어요.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깨닫고 이 용어들을 믿을 때, 오늘 이 용어들이 여러분의 것으로 체화될 수 있도록 놀라운 하나님의 신비와 섭리적인 의도가 있다는 사실이에요.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섭리적인 의도를 우리식으로 얘기하면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맞이하러 나온 것은 예수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을 만나주시는 것이에요. 둘째,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장면은 오늘 우리에게도 영원한 축복을 주시는 것이에요.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축복한 것은 주님과의 이제 얼마나 있으면 오늘 성만찬을 할 터인데, 성만찬 떡과 포도주 그와 연결이 되고, 주님이 주시는 영적인 양식과 구원의 축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섭리적인 의도가 얼마나 대단하냐 하면, 제가 지난주에는 큰 인생의 전쟁을 앞에 놓고 있는 여리고를 앞에 놓고 있는데, 이 여호수아가 군대 장관을 만나가지고 이제 전쟁을 잘 준비하도록 용기를 주신 것이 나와 있잖아요? 그것이라면 오늘은 전쟁에서 싸우고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멜기세덱 제사장으로 나타나셔가지고 복 주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섭리적인 의도는 뭐냐 하면 여러분과 저의 삶에 전쟁터 같은 고단한 생활 전선에서 지난 한 주간도 우리는 수많은 일들을 겪었어요. 예상하지 않던 일들, 어려운 일들, 마음으로 밖으로 환경으로, 마음으로 내면으로 수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그런 수많은 일터에서 우리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싸우고 오늘 예배를 온 줄로 믿습니다. 그러고 왔는데 주님께서 오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영원한 제사장이 되신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위로하시는 그 주님의 섭리적인 의도가 여기에 포함돼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레위기는 제사 제도를 말씀하고, 거기에 우리의 죄가 어떻게 지키는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의 내용이 나오고 이스라엘 백성, 레위 지파 얘기합니다마는, 히브리서의 *오늘 이 내용은 하늘 성소, 예수님이 대제사장 되시고, 그의 피로 한 분의 영원한 속죄가 되어 주셔가지고, 하늘 성소의 눈이 열린 자마다 오늘 섭리적인 의도를 가지고 멜기세덱을 만나 축복을 받았던 전쟁 후에 축복을 받았던 아브라함의 축복을, 오늘도 우리가 그대로 누릴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이거는 너무 신비한 것이고 조금 더 깊이 다면 은혜의 성층권에 올라가는 것이에요. 밑바닥에서 일어난 일들, 이 땅에 일어난 수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에 여러분들이 신비한 은혜의 눈을 뜨게 되면 이 진리 지식의 깊이의 눈을 뜨게 되면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에 의한 영적인 거룩한 성층권에 올라가는 축복이 여러분과 저에게 있는 것이에요. 무슨 말이냐,
 
아무것도 아닌 인생이 연약한 인생이 부족한 인생이 초라한 인생이, 어떻게 보면 비참하고도 참담한 인생들이라 할지라도 이 섭리적 의도에 의한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를 깨닫고 하나님의 신비에 눈을 열면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대제사장 되시고 축복하신 그 은혜를 우리의 것으로 채워할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지금 다시 한 번 더 강조합니다.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대제사장이요.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히브리서 7장 본문에 마무리 뒤에 7장 25절에,
 
II.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대제사장이요,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7:25,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제가 시간이 없어 다 못하지만 7장 25절에 또박또박 결론 부분에, 아멘, 잘 보세요. 그러므로 라는 말이 너무 중요하고 이 모든 것을 몽땅 모은 것., 또 하나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느니라.’ 무슨 말이냐 여기에 ‘온전한 구원’이라는 말이 나오고 ‘온전한 제사’라는 말이 나오는데, 구약의 레위 지파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편적으로 파편적으로 일부 부분적인 구원이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오늘 이 시대에 완전한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항상 살아계신 그분의 능력을 통해 이루는 온전한 제사를 주님 앞에 올려드릴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라는 단어와 이 종합적으로 또 하나는 항상 살아계셔서, 항상 살아계셔서라는 이 단어가 얼마나 박진감 있고 얼마나 역동적인지 몰라요. 여러분 항상 살아서 전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 신비함을 저와 여러분이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걸 깨달으면 이 땅에 살면서도 하늘의 부유와 능력에 눈이 열리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항상 살아계셔서 이 예배를 받으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숨 쉬고 호흡하고 생명을 유지하고 오늘 이와 같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주님이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항상 사랑에서 어떻게 하느냐, 두 가지, -그러니까 살아계신 주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구원의 표상이 되시고, 또 하나는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는 분이세요.
 
▷ 영원한 구원을 주시고 영원한 중보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 제사장이신 예수님께 나아가는 주니의 모든 백성을 위하여 예비 된 것이다.
-아멘, 아멘! 그래서 오늘도 하늘 성서를 사모하여 이 예배에 나온 여러분들은 멜기세덱을 만나기를 바라고, 멜기세덱을 제대로 깨닫기를 바라고, 예수님을 예표 하는 멜기세덱에게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 오늘 우리의 것으로 체화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이걸 깨닫는 사람들은 히브리서 4장 14절부터 16절에, 14절 함께 선포 합니다
 
*히브리서 4:14-16,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믿는 도리를 굳게 잡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은혜의 성층권에 올라가야 합니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슨 말입니까? 먼저 우리가 축복받는 것은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알고 계신다 이거예요.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무슨 말입니까? 먼저 우리가 축복받는 것은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알고 계신다 이거예요.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16절 다 같이,, 아멘, 어떤 환경과 경우, 어떤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에 나가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섭리 적 의도라는 것이에요. 이런 뜻입니다. 가정에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하고 괴로워하는 어머님들의 모든 탄식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에요. 압제 받는 자들의 모든 슬픈 하소연을 들어주시는 대제사장이시라는 거예요. 괴로움 가운데 있는 모든 자들의 신음 소리를 새겨들으시는 멜기세덱이신 거예요. 특별히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이시고, 과거에 50년대, 60년대, 70년대 우리나라 가난했을 때, 그때, 예수 믿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돌아 와가지고 하나님 나는 너무 가난합니다. 나는 먹고 살 길이 없습니다. 나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라고 주님 앞에 매어달리고 기도하고 나아가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를 믿고 나아가는 그분들의 삶을, 하나님은 정말 삶을 정돈시키시고 안정시키시고 경제적으로도 안정하게 하신 주님이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알겠습니다. 내가 수많은, 수많은 그런 간증을 하는 우리 주위에 옛날에 있었던 그런 신앙의 선배들이 많이 계세요. 그분은 마음이 상한 자들의 모든 슬픔을 들어주시는 멜기세덱이에요. 이 모든 것들은 그분 자신이 제물 되어 하늘 성서에서 희생, 온전한 희생, 제물로 올려드린 그 대제사장적 사역에 근거하여 받은 은혜라고 믿어야 되는 것이에요. 따라서 우리는 때를 따라 덮는 은혜를 주시는 주님 앞에 나아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 적 의도를 우리가 깨달은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특별히,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우리를 섭리 적 의도로 도우시는가? 히브리서 5장 2절 바로 이어서 히브리서 5장 2절에 다 같이 봅니다.
 
*히브리서 5:2,
2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놀라운 말씀이에요. 저는 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 그런 그가 어떤 사람 첫 번째 어떤 사람이에요? 무식한 사람들, 진리 지식도 없는 사람들, 또 날마다 실패하고 미혹된 자들, 그들조차도 이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에 눈을 뜨고 대제사장 되시는 멜기세덱 되시는 그분 앞에 나오기만 하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에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이 베풀 만한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에요. 미혹된 자들, 무식한 자들을 용납한다는 어떤 뜻입니까? 그는 부족한 사람도, 곤고한 사람도, 참담한 사람도, 또 연약한 사람도, 또 위대한 사람도, 선한 사람도, 유혹에 빠진 사람들도, 고통의 중에 있는 사람들도 다 예외 없이 맞춤형 은혜로 다 도와주신다는 것이에요. 나이가 들고, 초라하고, 나이 늙고, 연약하고, 병들고, 참혹하고, 치매 때문에 고통당하고, 가족들이 고통당하고 이런 상황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어떨 때는, 정말 벌레 같은 상황이 된다 할지라도,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에 눈을 뜨면 우리는 다 알 수 없지만,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갈 때 하나님이 베풀어 주실 만한 은혜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히브리서 5장 5절, 6절에 바로 이어서 5장 5절, 6절 크게 여러분 선포합니다.
 
*히브리서 5~6,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할렐루야! 여러분과 저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서열과 반차를 따르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줄로 확신합니다. 주님 과거의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제사장들은 가슴에 이렇게 흉배를 붙이고 어깨에는 포만으로 장식하고 그러는 게 있어요. 지금도 주님은 우리를 위해 완벽히 중보하시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의 은혜를 깨닫는 하나님 백성들에게 여러분과 저의 이름을 오늘 흉배에다 다 붙이시고, 그 제사장 어깨에 호마노에다가 거기다 여러분 저의 이름을 다 새기고,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항상 살아서 중복 기도하시는 그 주님이심을 믿을 진데, 우리는 멜기세덱에게 받은 아브라함에게 받은 축복을 우리의 것으로 삼을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특별히 우리의 이름을 새기시고 마귀의 참소를 변호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변호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는데, 우리를 도와주시는데, 적당히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에요. 아까 소돔 왕 재물 던지듯이, 적당히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큰 대제사장이신 주님은 오늘도 지혜롭고 인격적으로 예의를 갖추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깊이 있고, 감동 있고, 고귀하게 우리를 도와주시는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믿습니다. 그렇게 도우실 때, 우리에게는 꿈을 주시고, 이 사람에도 지혜가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우리는 누추하고 부족하지만 영광스럽고 은혜롭게 우리의 삶을 살아가도록 섭리적인 의도를 가지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오늘 이 멜기세덱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오늘 다 이렇게 좀 이해가 안 되면, 나중에 이 내용을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이 들어보시고 여러분 것으로 소화하실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늘에 부요가 여러분의 것으로 체득되는 것이에요. 하늘의 부요가 놀라운 하늘의 부요에 눈을 뜨게 해주세요. 창세기 14장 19절에 아까 본문에 같이 보죠. 그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제이시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 할렐루야 천지의 주제이시오.
 
III.참된 하늘의 부요에 눈을 떠야 한다.
 
*창세기 14:19,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지극히 높다는 말은 엘, 엘리온 이라고 그러는데, 이 엘 엘리온이라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엘리온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왕 같은 제사장의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은혜의 성층권에 올라가게 하신 하나님 하늘의 부유의 눈이 열리도록 하늘의 부요가 너무 크니까 아브라함은 세상의 유혹에 조금 초연할 수 있었어요. 오늘도 이와 같이 하늘의 보에 너무 눈이 열리니까 세상 세상에 대해서는 조금 우리가 차원이 다를 수 있어요. 하늘의 부요에 눈이 열리니까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세상 사람들이 보는 어떤 수준과 우리가 보는 수준이 달라요. 예를 들어서 하늘의 부요에 눈이 열린 사람은 자연도 그냥 안 보이는 거예요. 하나님의 부요에 눈이 열린 사람은 야생화하더라도 그냥 안 보이고, 이거 하나님의 부요가 너무 크네. 너무 신기하게 보이는 거예요. 물질 하나라도 하늘의 부유 눈이 열린 사람은 세상에 저 도박해가지고 1억 딴 사람과 우리가 하늘에 부요에 대해서 눈이 열려가지고 100만 원을 얻은 사람과 그 1억보다도 하늘의 부요에 눈이 열린 사람 100만 원이 훨씬 더 소중한 것이에요.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것이에요. 수준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 족보도 없고 모든 것이 없지만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메시아의 족보를 가지시고 우리에게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때문에 아브라함이 멜개 세대를 통하여 받았던 하늘에 지극히 높으신 엘 엘리온의 하나님, 엘리사다의 하나님 축복을 받고, 또 구체적으로는 육신적으로는 떡과 포도주 전쟁에서 피곤하고 지치고 돌아온 그 영혼에게 떡은 목숨을 위하여, 포도주는 다시 마음의 환희와 기쁨을 가져오게 하는 것인데, 뜻과 포도주의 축복을 주시는 그 주님이 오늘도 우리의 삶의 주인이심을 믿어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과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주님 앞에 기도하는 것 중에 하나는 하늘의 부요의 눈이 열리는 이 하루가 되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오늘 하루도 하늘의 부요를 점점 많이 배워나가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고, 특별히 저뿐만 아니라, 우리 온 성도들이 오늘 하루 하늘의 부요를 더 많이 발견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만나는 사람마다 제가 읽는 성경마다, 제가 접하는 책마다, 수많은 과정들을 통하여 하늘의 부요를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밤에 잠자기 전에 “하나님, 이 하루도 더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늘의 부요에 눈이 열리게 하고, 하늘의 부여에 대해서 은혜 주신 이 하루가 되게 하신 거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저는 잠잘 때 꼭 남북통일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 민족이 만주까지, 만주까지 우리의 영향을 끼치게 하여 주십시오. 한국이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세계 복음주의 교회의 쇠퇴를 맞고 대한민국이 복음주의 교회의 허브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를 위해 우리 성도들이 다 쓰임 받게 해달라고, 하나님 나라의 꿈에 대한 부여에 대한 꿈을 가지고 그렇게 하게 될 때 숙면을 취하게 되고 그리고 그 결과 하늘의 부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니까 하룻밤도 끝없이 잠들지 아니하고 하룻밤도 꿈 없이 깨지 아니하고 세상에서도 부요가 많이 있어요.
 
저는 가끔 머리가 아프면 뮤지엄을 가는데 박물관을 가는데 박물관에 가면 도록이 있어요. 공예품이라든지 훌륭한 작품들 보면 도록이 있어요. 그걸 보면 어떻게 보면 하늘의 부여에 대한 이 땅에서 약간의 예고편이거든요. 세상 사람들 이렇게 할 수 있는데 하늘의 보유를 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많을까? 우리 온 성도들 예상치 않듯 하나님의 부요와 능력을 날마다 체험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의 보요의 눈이 열린 사람들이 될 때에, 세상에 너무 흔들리지 아니하고 너무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아니하고 영적인 품위와 거룩한 고품격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이것은 단순히 어떤 수고 후에 받는 적당한 보상 정도가 아니라, 영적 전투 이후에 주어지는 환희와 기쁨과 품위를 말하는 것이에요. 삶의 가혹한 삶의 전투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준비하신 이 섭리 적 의도성을 가진 하늘의 부요에 눈이 열리는 축복이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럴 때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창세기 14:20,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여기에 구약의 열의 하나를 구별해 드리는 내용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아브라함이 열에 하나를 구별해 드렸는데 제가 질문하겠어요. 겨우겨우 들었을까요? 그다음에 의무적으로 들었을까요? 아니면 억지로 들었을까요? 아니면 기쁨과 감사로 드렸을까요? 감사함으로, 어떻게 그래 사랑하십니까? 아브라함은 오늘 이 열의 하나를 구별해 드릴 때 겨우겨우 억지로 의무적으로 강제적으로 드린 것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로 드렸어요. 이걸 일컬어 뭐라고 그러냐? 예배로 드렸다 그것이에요. 예배로 드리는 것이에요. 오늘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데 찬양을 통한 예배 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열애한 나를 구별해 드렸는데 이거는 율법 이전이에요. 이걸 여러분들이 열의 하나로 하나님 앞에 예배로 드릴 때에 기쁨과 감사로 드릴 때 하늘의 부요가 여러분 것으로 채워지는 것이에요. 너무나도 이거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 그다음에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은 오늘 명심을 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열이 하나 구별하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 하늘의 부요에 눈이 열려가지고 기쁨과 감사로 예배로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의도성에 대해 감격하는 하나의 증거로 드리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운동에 승리하면 트로피를 주잖아요. 그러니까 예배와 주님 앞에 드리는 이 예물은 하나님 앞에서 승리의 트로피가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트로피를 매 주일마다 드릴 때, 여러분의 삶이 승리에 대한 감사일뿐만 아니라 앞으로 승리하게 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면서 드리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아는 어떤 신실한 분들은요. 예배드릴 때마다 찬양과 할 때마다, 오늘 영생복락 면류관 너무 감사한 것이고, 말씀으로 축복이지만 헌금 드릴 때 미치게 감사하고 기쁘고 너무 즐겁고 너무 축복이 돼가지고 너무 설레 가지고 헌금을 드린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 사원을 이해만 하면 하나님은 말로도 할 수 없는 주님의 부요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앞으로 사랑의 교회뿐만 아니라 오늘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물질이나 예배를 드릴 때 승리의 트로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부요로 여러분들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어떤 부여로 채워주십니까?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땅의 삶의 모든 삶은 다 우연에 의해서 일어난다. 인생의 90%가 우연히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우연에서 일어나니까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점쟁이한테 가고 뭐 점 보러 가고 어떻게 될 것인가 사람이 다 우연이라고 생각하니까 심지어는 똑똑하다는 사람들도 그것은 하늘의 부요가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 승리의 트로피가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 멜기 세덱의 반차를 따라 멜기세덱을 만나는 것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가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얘기고, 하나님의 섭리적 의도를 아는 사람들은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인생에 우리는 90% 100%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에 의해서 우리 인생은 결정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부모를 누구를 만나는 거 여러분 하나님의 성적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아내를 만났을 때 여러분들이 결심하고 만났습니까? 라일라 꽃이 피는 어느 날 만난 거예요. 너무나도 내가 우리가 알았던 것이 너무나도 신비하게 만난 거예요. 여러분들의 신실한 교수들 여러분 생애에 특별한 분들 여러분들의 자격 있어서 만났습니까?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것이에요. 저는 지금도 지방에서 올라와가지고 제가 그때 신복임 목사님이라고 계셨어요. 내수동교회에 그리고 박희천 목사님 나중으로 옥하는 목사님 제가 그분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거예요. 그분은 내 인생에서 볼 때 성층권에 계시는 분이에요. 나는 그분들은 화장실도 안 가는 줄 알았어요. 어떻게 감히, 얼굴이든 어떻게 감히,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적인 의도를 믿는 사람들은 하늘의 부요를 믿는 사람들은, 우리의 예배와 우리의 물질이 주님 앞에 승리의 트로피로 올려드리고, 아니 승리를 주님 앞에 기대하면서 드리는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늘의 부요와 하나님의 섭리 적 의도를 가진 100% 하나님의 만남을 허락해 주시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좀 부족하면 여러분들 자녀를 통하여 그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에요. 하다못해 여러분들의 손자를 통해서라도 그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충만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지난 주일은 제가 신비하고 경이롭고 아름답고 이런 말씀을 드렸죠. 오늘은 진리의 깊이가 있고 섭리적인 의도가 있고 하늘에 보유가 있고 감동적이고 오늘 저는 이 예배에 아마 처음 오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오늘 내가 초청하고 싶어요. 오늘 이 우리의 삶의 완전한 대제사장 되시는 메시아 되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생애와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여러분들의 생애는 떡과 포도주를 주님이 채워주시고 겉으로는 힘들고 어려운 게 있다 할지라도, 그 내면의 풍성함은 말로 다 할 수 없고, 하늘의 부여로 체험 받는 여러분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집필 하는 하룻밤도 꿈 없이 잠들지 아니하고, 하룻밤도 꿈이 깨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로 만들어 주실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요약
아브라함처럼 참된 하늘의 부요에 눈을 떠 세상 유혹을 거절하며, 예수님께서 21세기의 멜기세덱의 모습으로 찾아오셔서 주님의 영원한 떡과 포도주로 위로하시니, 이 처절한 전투에서 지치고 힘들 때, 항상 살아계시는 예수님께서 섭리적 의도성과 신적개입으로 중보해 주심을 확신하여 날마다 담대하게 은혜의 성층권으로 올라가야 한다. 우리는 믿는 도리를 굳게 잡고 열에 하나를 승리의 트로피로 올려드리고 이번 4월 총선에도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 앞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소원한다.
-아브라함이 동방의 군주 그돌라오멜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그는 먼저 소돔 왕을 만났다. 소돔 왕은 물품을 모두 가져오라고 제안했지만 아브라함은 이를 깨끗하게 거부함으로 내면의 유혹에서 승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라함에게 살렘 왕 멜리세댁을 만나는 축복을 주셨다. 살렘 왕 멜리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의의 왕 평강의 왕이시고, 시작과 끝이 없는 분이시고, 불멸의 생명을 가진 분이시고 결코 죽지 않아 교체될 필요가 없는 분이시고, 아브라함보다 높고 레위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셨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았던 분이시다.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고 하였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던 것처럼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주신다. 그는 우리를 축복하여 떡과 포도주를 베푸시는 분이시며, 이는 성만찬을 나타내며 영적인 양식과 구원의 축복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대제상이요,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나아가 참된 하늘의 부요에 눈을 떠야한다. 섭리적 의도로 주시는 하늘의 부요함에 눈을 뜬 사람은 꿈이 있고, 지혜로우며,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살렘은 ‘평화’라는 뜻으로 예루살렘의 옛 명칭이며,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라는 뜻이다. 그는 동시대의 타락했던 가나안 족속처럼 살지 않고 순전하며 신실한 믿음을 소유한 평강의 왕이었고, 왕이면서도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는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아브람이 롯을 구출하여 돌아올 때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람에게 축복하자 아브람은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다. 이것은 최초의 십일조의 유래로서 성도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말해 준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떡과 포도주로 상징되는 살과 피를 드리셨다. 따라서 우리는 십일조로 상징되는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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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3월 03일)
제목: "극한 상황은 절호의 순종기회“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⓹-(군대 대장이신 예수님))
Critical situation is golden opportunity for obedience(Jesus the Commander)
말씀: 여호수아 5:13~15
대표기도: 오정호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
 
*여호수아 5:13~15,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14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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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교회 찬양대 찬양을 주님이 기뻐 받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이 우리 3.1절 105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잿빛 어둠이 없고 희망이 없는 역사였는데 그 가운데 3.12 독립선언서는 자주독립 때문에 그중에 34명이 민족 지도자 가운데 16분, 반이 크리스천입니다. 놀라운 일이죠. 오늘 우리가 귀한 주일날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을 모으고 기도하면 이 나라를 살릴 줄로 믿습니다. 동시에 오늘 이 말씀 듣고 여러분 개인도 살고, 교회도 살고, 다시 한 번 이 나라도 살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극한 상황은 절호의 순종의 기회’에 있다. 라는 제목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 시리즈 다섯 번째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첫 번째는 예수님은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갖추신 분이시다.
*두 번째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나무가 되셨다.
*세 번째는 주님은 우리에게 반석이 되신다.
*네 번째는 주님은 성막 되신 예수님
*다섯 번째는 주님은 군대대장 되신 예수님.
 
지저스 크라이스트 이즈 더 커멘드(Jesus Christ is the Great Commander). 예수님은 큰 군대 대장이시다. 오늘 이 여호수아 이 본문의 말씀은 무슨 뭐 옛날 얘기 무슨 전설이 아니고, 인류 역사의 실제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때가 이집트는 한참 고대 근동사회에 피라미드를 짓고 있었고 중국은 주나라 시대였고 또 앗수르 제국은 함무라비 법전을 통하여 세계를 호령할 준비가 되어 있던 실제적인 그런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사건은 실체적인 역사가 되면 그때도 실제적인 역사 뿐만 아니라 오늘 이 순간 오늘 21세기 이 순간 우리의 삶에도 실제적인 현상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13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3절에,
 
*여호수아 5:13,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다 이랬습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지도자 모세 지도력으로 바통을 받고, 가나안에 들어가야 되는데 가나의 첫 성이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지금도 우리 성지 순례 가보면 여리고성은 아주 그 성 자체가 성벽의 두께가 얼마나 두꺼운지, 자동차가 몇 대 지나갈 정도로 그런 성벽의 두께가 있었습니까?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철 병거를 무장한 것도 아니고 무슨 이렇게 뭐라고 그럴까요? 공성기가 있었던 것들은 성을 공략하는 강력한 이렇게 돌로 막 날리는 거라든지, 무슨 강력한 사다리차가 있다든지, 이런 것들 축성 기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 거예요. 저 강력한 여리고성, 저 강력한 금성철벽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첫 성부터 완전 딱 맞닥뜨려가지고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城), 마치 여호수아 자체가 낭떠러지 앞에서 떨어져 죽을 것 같은 그런 지도력의 위기(危機)가 오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 자체는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그가 이 여리고성을 앞에 놓고 그걸 공략할 만큼 그 정도의, 그 정도의 어떤 저기 모든 걸 가진 사람은 아니었고, 또 여호수아가 강력한 어떤 전투력이 있었지만 이 상황을 감당할 만큼 그의 어깨가 단단하고 튼튼한 것도 아니었어요. 짐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그 짐을 다 지고 갈 만한 그런 어깨는 아니었어요. 그의 어깨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그가 짊어진 짐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어가지고 혼자서 지도자가 그럴 때 있잖아요. 혼자서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밤에 여리고성을 이렇게 혼자서 이렇게 가서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마치 옛날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전 훼파되었던 것을 ‘이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다시 세워야 할 건데’ 고민하면서 도는(여리고 성을 돌게 되는 상황) 거랑 비슷한 그런 상황이었어요. 아무것도 없는 상황, 그리고 그 앞에 보면 오늘 본문 앞에 보면 무슨 일이 있었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물론 그렇게 하셨습니다마는 실제 현장은 남자들에게는 할례를 행하려 했어요. 남자가 할례를 행하고 나니까 아무런 힘도 없고 그냥 아파서 회복을 기다리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 남자, 남자 장정들은 전쟁할 수 있는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니었고, 앞에 떡 붙어서 여리고성이 견장(肩牆)하고 있는 이게 난공불락이고, 마치 이것은 오늘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 있을 수 있잖아요. 물리적인 여리고 뿐만 아니라 마음이 여리고도 있을 수가 있고, 어떤 분들은 가정에 대한 책임감으로, 회사에 대한 책임감으로, 나라에 대한 염려 때문에 마치 여호수아가 난공불락의 여리고 앞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어깨가 짓눌려 있는 분이 있을 수 있어요.

오늘은 3.1절 기념주일이고 특별히 우리나라의 향방을 결정하게 될 4월 총선이 앞으로 한 달 남았어요. 지난 20년간의 이 사회가 이상하게도 거짓의 아들인 저 마귀의 이 엉터리가 있어갖고, 이 어떤 잘못된 견고한 진이 우리 앞에 있는 격렬한 진영 싸움은 마치 난공불락 같은 그런 상황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오늘 13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13절 보니까,

 
*여호수아 5:13,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그렇게 묻는 것이에요. 그 어려운 상황 가운데 여호수아가 이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상황 가운데 이 군대 대장이 나타나가지고 칼을 들고 너는 적구이냐, 아군이냐, 거 쉽게 말하면 이제 좀 이따 나오겠습니다만 이 군대대장이 예수 그리스도시거든요. 그러니까 이 상황을 우리가 잘만 극복하면 그 어려운 극한 상황이 너무나 경이롭고, 아름답고, 신비롭게 해결되는 그런 길이 열리는 줄 믿으셔야 되시는 것이다. 오늘 여러분들이 아주 상상을 하셔야 돼요. 너무나 경이롭고 신비하고 너무나 아름답기까지 한 그런 상황을 우리가 경험할 수가 있다는 사실에 그래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너 신발을 벗어라 거룩한 곳이니까 그러니까 그 말씀을 군대대장한테 순종한 신을 벗는 모습이 다시 아름답고, 장엄하고, 신비롭고, 경이로운 그런 상황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마치 이것은 과거에 모세가 하나님을 처음 만나가지고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에 심은 것을 하는 그때와 아주 뭐라 그럴까를 좀 수십 년이 지난 오랜 세월이 흘러갔고 여호수아도 똑같은 상황을 맞이하고 그리고 힘을 벗고 얼굴을 땅에 대고 칼을 빼고 서 있는 그분 앞에 경계하고 있는 이 모습은 다시오, 놀라운 상황이고 너무나 신비한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먼저
 
*첫 번째 생각할 것은, 이 군대 대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신학자들에게 이 군대 대장이 누군가라고 이렇게 물어보았을 때, 어떤 사람은 천사라고 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정통적인 신학자들의 해석은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군대 대장은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선제, 성육신하기 전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이거는 제 얘기가 아니고 초대교의 교부들도 그렇게 해석을 했고, 개혁 신학자들은 요한 켈빈을 여러 사람들이 이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제이시다. 그러니까 이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신 것임을 뭘로 증명하는가? 이제 한두 가지 증명을 하겠습니다. 이 군대 대장은 단순히 천사장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천사는 우리에게 경배를 받는 대상이 아니에요. 만약 사람이 천사한테 엎드려 경배할 경우에는 천사가 뭐라 그러냐면 야 나한테 경배하지 말고, 경배는 오직 하나님께만 하는 것이야. 제가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계시록 21장 마지막에 보니까, 사도요한이 천사 앞에 엎드려 경배 버릴 때 요한계시록 22장 8절에,
 
*요한계시록 22:8~9,
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9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그런데 오늘 여호수아 오늘 이 5장에서는 어떻게 됐죠? 군대대장 앞에 여호수아가 납작 엎드려 경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
 
*요한계시록 1:17,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니까, 처음과 마지막의 역사의 현장 가운데, 구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 군대대장으로 나타난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신학적으로 좀 정교하게 들어가면 여호수아 앞에 나타난 하나님은 인간의 모양 즉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에요. 그리고 인간의 모양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시는 이 사건은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과 그대로 관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정리를 한 것이 예수님이 구약에 나타난 이 사건을 여러분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 라는 말은 하나님의 현현이라고 그러는데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 라는 말이 있어요. 우리 신학적으로, 크리스토파니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1세기에 초림으로 성육신하시기 전에 구약에 예표로 나타나신 것이다.
-
아멘,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니까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아마 오늘 이 군대 대장뿐만 아니라, 나중에 다니엘과 함께 다니엘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 속에 들어갔을 때, 거기에서도 구약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 같은 예수 그리스도, 그걸 크리스토파니, 구약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또 이제 우리가 다 얘기했습니다마는 멜기세덱이라고 했어요. 구약의 아브라함 시대에 멜기세댁이 있었는데 히브리서 7장에 보니까 이 멜기세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그걸가지고 전문적인 용어로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라고 그러는데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 예수 그리스도 1세기에 초림 때에 나타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예표로 나타나신 것이 바로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 구약이나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죠. 그러니까 오늘 군대대장은 구약의 예표로 나타나신 예수님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그걸 믿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여리고성에서 극한 상황에 서 있던 여호수아를 만나주신 그 주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과 우리 민족의 위기일 때에 직접 칼을 들고 우리 앞에 서 계시는 주님이시다. 이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늘 겸손하시고 온유하시고 섬길 수 있는 예수님이셨지만, 때로는 영적 전쟁의 때는 칼을 들고 군대대장으로 서 계시고, 우리에게는 철저한 권세를 통하여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여호와의 군대대장은 단순히 군대대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천상군대를 이끌어 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 19장 11절 16절 정리를 한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같이 읽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9:11~16,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아멘! 중요한 건 이겁니다. 우리가 떡 한 상황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리고 같은 난공불락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도저히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직장으로 사업으로, 여러분 개인으로, 건강으로, 여러분 삶으로 여러분의 내면의 정신적 고통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구성이 있을 때에 우리의 마음속에 간절한 마음은 주여 알파와 오메가 역사의 시작과 끝 가운데서 구약의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어 주시면, 군대의 장이 되시고 천사의 군대를 이끌고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여호와의 본질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여호수아가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 이 반응한 것 이 세 가지만, 딱 여러분들이 적용을 하면 오늘 이 시대에도 우리 민족으로 살고, 여러분 가정도 살고 개인도 살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 군대대장이신 예수님 앞에서 어떻게 반응해야할 것이냐면,
 
☞첫 번째는 나는 혼자가 아니다.
 
-오늘 고통 하는 여호수아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은 군대장관 컴멘드( Commander)로 나타나신 것은 삶의 위기 때에, 너 혼자가 아니냐 하고 격려하시는 군대 대장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다. 마귀의 가장 큰 전략은 삶의 극한 어려운 상황을 당하게 될 때, 우리에게 고립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에요. 마귀의 가장 큰 전략은 우리가 사방에 우겨 쌈을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해가지고, 천상천하에 ‘나 혼자밖에 없다.’고 이게 마귀의 작전이에요. 인생의 위기를 당할 때, 제일 좋지 않은 태도는 나 혼자밖에 없어, 나뿐이야, 자신을 스스로 분리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고독이 암보다 더 무섭다. 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도 이런 고립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엘리아 같은 경우는 대단한 갈멜 산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환경적으로 좀 힘드니까 열왕기상 18장에서 850대 1로 갈멜 산에서 승리한 그가 바로 19장 1절에서,
 
*요한계시록 19:1,
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바로 앞에서 혼자 광야에 가가지고 처절하게 외로워 갖고 몸부림치며 가슴 아파하고 그 순간 엘리아의 마음이 곤두박질치면서 나 혼자밖에 없습니다.시험에 든 것이에요. 심지어 영적으로 성숙했던 욥 같은 경우도 욥기 19장 13절, 14절에 욥도 시험이 드니까,
 
*욥기 19:13-14,
13 나의 형제들이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낯선 사람이 되었구나.
14 내 친척은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지들은 나를 잊었구나.
-그래서 여러분 진짜 어려운 사람들, 힘든 사람들, 고통당하는 사람들, 삶의 어떤 벼락같은 어떤 고난을 경험한 사람들이 하는 얘기들이 있잖아요. 갈 데가 없고 만날 사람이 없다고, 이게 고립감을 갖게 하는 것이에요. 우리의 삶의 전쟁 의식이 만들어진 극한의 시기에 나밖에 없다고 느끼는 건, 이것은 마귀의 가장 큰 작전이고, 이것이 우리를 실패하게 하는 거고, 우리 한국인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나 혼자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나이 든 분들도 그러고,나는 혼자밖에 없어, 이것이 정신적으로 우리에게 치명성을 가져오는 거예요. 나는 지금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고립감, 사실 이것이 우리에게 정신적으로 치명상을 가져옵니다. 인생의 일부를 만나고 극한 상황 가운데 여러분들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평생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군대대장을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셔야겠습니다. 오죽하면 사망의 음치는 골짜기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셔서 히브리서 13장 5절에 있는 것처럼,
 
*히브리서 13:5,
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와 닿아야만 하는 것이에요. 오죽하면 여러분 사도바울은 그의 생애가 닿을 때 마지막 썼던 성경이 디모데후서였고, 디모데후서는 마지막 4장 마지막에 그 4장 가운데 마지막 부분에 뭐라고 돼있는지 아세요? 기가 막히게, 그 위대한 바울 사도도 디모데전서 4장 16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디모데후서 4:16,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대마도 버리고 다 버렸습니다.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쉽게 말하면 손 볼 OOO가 좀 있는데,,, 볼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거 바울도 인간이니까 마음에 치명상도 있는 것이에요. 근데 방법은 딱 하나야. 방법은 다른 게 없어요. 디모서후서 7장 17절이 뭐냐 하면 17절 다 함께 읽어요.
 
*디모데후서 4:17,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다시요. 저 성경은 바울 사도의 생의 마지막 순간, 마지막 부분이에요. 다 떠나고, 이것이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가지고, 그때대로 나타나신 그 모습이 바울에게 이렇게 나와요. 그리고 바울의 생애에서 물리적으로 가장 힘들 때 중에 하나가 사도행전은 28장까지인데 27장에 유라글로 광풍을 만났어요. 사도행전 27장에 보니까 뭐라고 나오냐면요. 누가 보는 광풍을 만나가지고 완전히 다 죽을 판인데 딱 하나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는 거에요.
 
*사도행전 27:23-24,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니까 바울 사도의 생각은 딱 두 번 나와요. 바울의 유라굴로 광풍이 가장 힘든 극한 상황에서 또 모든 사람이 다 떠난 것 같은 그런 위기감 가운데서 딱 하나 위로와 하나의 해결 방법은 뭐냐?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내게 힘을 주시는 너는 혼자가 아니야. 오늘 이 예배에 오신 여러분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오늘 이 방송을 듣고 예배하는 모두도 혼자가 아닙니다.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 구약의 군대 대장으로 나타나신 그 예수님이 우리 곁에 서 계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경주, 삶의 영적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 곁에 서 계신 분이십니다. 독생자 예수 내 곁에서 서셔가지고 주의 자녀를 지켜 주실 줄 믿습니다. 놀라운 것은요. 주께서 내 곁에 서서 군대대장으로 함께 하실 때에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는 놀라운 축복이라는 데 그것이 뭐냐,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모르는 천상의 군대가 호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어려울 때 숨은 어려움들을 경험하고 있을 때 주님 곁에 계실 때에 저에게 주신 은혜가 눈을 열어보면 천상의 군대가 우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에요. 다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예수 믿지 않는 분들은 전혀 깨닫지 못하는 천상의 군대가 여러분들을 호위하고 있는 줄로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천사의 군대가 있는 거예요. 구약에서는 영안이 열린 사람들에게는 이 천상의 군대를 보여주셨어요. 대표적으로 누구에게 엘리사 선지자, 하늘의 군대가 도단 성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천상의 군대가 오늘 이 예배에 오신 여러분들과 가정과 개인과 공동체를 지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마음에 여호와의 군대 대장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 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천상의 군대가 있는 것을 믿을 진데, 우리가 이 지상에서 하늘나라의 천군, 천사들의 호위를 받는 우리도 천상의 군대가 되어만 하는 것이에요. 21세기에 하나님의 군대가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사랑의 교회 칠천 기도 용사 우리가 얘기하는데 기도 용사 얘기할 때는 ‘주여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천상의 군대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천상의 칠천구도 기도 군단이 되고 7천기도 군단이 말씀의 칼과 기도의 불 칼을 들고 이 시대를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군대의 대장이 되셔가지고, 우리를 지켜주실 때, 우리가 영안을 열어가지고, 우리도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천상의 군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따라서 오늘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 다섯 번째 중요한 핵심은 뭐냐 우리의 인생의 위기 가운데 성령의 불 칼과 말씀에 검을, 그리고 우리를 지배하시는 천상의 분리 대장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믿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그 어려운 극한 상황의, 그 상황이 여러분들의 천상의 군대 대장을 만날 수 있는 전화의 기회가 된다는 것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또 우리의 극한 상황이라 여겨지는 그 상황이 천상의 군대 대상의 지위를 받을 수 있는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함께하신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놀라운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이 천상의 군대에 천부장가 되시고 백부장이 되시고 오십 부장이 되시고 십부장이 되는 축복을 주시기 바랍니다. 군대 대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첫 번째 너는 혼자가 아니라, 너는 혼자가 아니야, 칼을 들고 서셔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시는. 두 번째로는 15절에 보니까,
 
☞두 번째는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입니다.
 
*여호수아 5:15,
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우리가 오늘 천상의 군대대장을 만났을 때 듣는 말씀이 뭐냐,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 우리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 되면 되는 것이에요. 인생의 위기와 극한 상황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선 곳이 거룩한 장소로 바뀌면 그것을 극복하게 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능력이 있어서 거룩한 곳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천상의 군대대장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곳이 거룩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의 거룩은 우리의 능력으로 취득한 것이 아니고, 거룩하신 주님의 강력한 임재 때문에 우리가 사는 것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래 이 가나안 땅은 거룩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은 패역한 곳이었고 음란하고 사악한 장소였습니다. 거룩하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은 타락한 문화 때문에 부패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느냐 그 타락하고 부패하고 사악한 땅이 네가 서 있기 때문에 그곳이 거룩하게 될 것이라. 천사의 군대대장은 보호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가지고 네가 천사의 군대대장이 되었으니 너희가 선 곳이니까 그곳이 거룩한 땅이 된 것이라. 그것도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래 우리가 서 있는 이 장소가 객관적으로 볼 때는 엉터리고 문제가 많아도, 우리가 서 있기 때문에 그것이 거룩한 장소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지금 여호수아는 과거에 애굽에서 노예로도 있을 보았고, 모세와 함께 시내 산으로 올라가 보았고, 거룩하지 않은 애굽 땅에 있어도 보았고 홍해의 마른 땅으로 건너가 보기도 했고, 또 여러 번 타락한 장소든 거룩한 장소든 모세가 있는 곳이면 모세가 있는 곳이면, 여호수아 앞에 모세에 한 곳은 거룩한 장소가 되었구나. 그리고 성막이 가는 곳마다 쉐키나 영광이 나타난 것을 이 여호수아가 깨닫고, 그래서 가나안 땅은 원래 거룩한 땅이 아니지만 군대의 제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임재를 믿고 순종할 때, 그 장소가 거룩한 땅이 되는 줄로 확신합니다. 우리 제자 훈련 용어로 말하면 우리가 하는 일들이 세상의 일들이 다 문제도 있고 뭐 어려운 것도 있고, 우리 자녀들도 그러고 우리 가정도 그러고 수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오늘 이 사실을 믿고 여러분들이 그 자녀와 또 가정과 여러분의 이 사업들을 위하여 거기에다가 이 말씀을 믿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기도와 찬송으로 그것을 보호하는 그 장소가 거룩한 땅, 거룩한 곳이 되는 것이에요. 참 놀라운 것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다 거룩하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장소가 되는 하여 거룩한 장소가 돼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군대 대장 앞에서 천사의 군대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그 순간,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앞뒤가 꽉꽉 막힌다 하더라도 여러분 부부가 손을 잡고 간절히 예배하고 가정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눈물로 기도하고 매어 달리면, 이런 그 장소가 하나님이 천상의 장소가 되게 하시고, 앞뒤가 꽉꽉 막히고 꼬여가지고 풀어지지 않는 그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 상황에서 기도하고 찬양하며 매달릴 때, 하나님은 그 자리를 거룩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가정을 승리하게 하시고, 국가가 힘들어도 국가가 회복될 수 있도록 하나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들이 하나님 나라의 천상 군대, 거룩한 군대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하면 단순히 내가 그것만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가 거룩한 장소가 능동적으로 훨씬 더 확산되고, 또 이렇게 더 발전 또 이렇게 커지는 그런 경향도 있다는 제가 첫 번째 군대대장 되신 예수님 앞에 우리가 만날 때에,
 
*첫 번째 너는 혼자가 아니다.
*두 번째는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입니다.
*세 번째가 셋째,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여호수아 15:14,
14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세 번째가 셋째,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어려운 극한 상황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종의 위치라는 사실입니다. 이걸 제대로 깨달으면 여호수아가 가진 승리를 저와 여러분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입니다. 그런데 대단한 사람도 종입니다. 여러분 여호수아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입니까? 여호수아 당신 200만을 거느리고 가는 최고의 지도자입니다. 여호수아가 이 전쟁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아말렉과의 전투를 하고, 그리고 태양아, 머무르라. 그야말로 무슨 칼도 제대로 없는 그런 군대를 데리고 철기 부대를 쳐부수고, 이길 수 있는 강력한 전쟁 선봉장이었고 승리자였어요. 알렉산더나 죄송합니다만 이순신 장군도 게임이 안 될 정도로 강력한 군대 지도자였어요. 리더였어요. 굉장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가 하나님한테 뭐라고 했냐, '내 주여 군대대장 앞에서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쉽게 말하면, 고대 근동의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장군이 여호수아,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납작 엎드려가지고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이 고백에서 고백한 기도가 하나님의 기가 막힌 승리를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책임을 지시는 분이 계시고 집안의 가정들도 있고 리더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어제 저희 교회 어제 저녁에 이제 전화들을 해주시는데 우리 교회 지금 국회의원 출마한 분들이 7명이에요. 여당 5명, 야당 2명, 내가 다른 얘기를 안 했어요.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리면 종만 되면 하나님 인도하실 것이다. 제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이 자리에 계시면 자매들 계시잖아요. 자매들은 나는 여호수아 장군과 나는 상관이 없고, 나는 이렇게 지도력 지도력하고는 무슨 상관이 있겠나 그렇게 자매들은 얘기할지 모르겠어요. 우리 여자분들, 여성 성도들. 그런데 대한민국은 나이가 들수록 아내들이 지도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ㅋㅋㅋ!!~~ 이게 잘 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사실 그렇다는 것입니다. 많은 시간이 나이가 들수록 아내가 리더십을 갖습니다. 우리 집도 비슷합니다.
 
제가 뭘 말하려고 하는가 하면, 남자든 여자든 다 또 세상 적으로 지도력을 갖거나, 갖지 않든, 어떤 게 평범한 소시민적 삶이라 할지라도 다 우리는 지도력을 갖고 있습니다. 근데 우리 모두가 다 삶의 어려운 극한 상황을 만났을 때, 우리가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종의 위치에 정확하게 서 있기만 하면 주님은 저와 삶을 인도해 주실 것이에요. 더 좋은 것은 우리가 종의 자리에 설 때 주님이 우리 주인의 자리에 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종의 자리에 서 있지 않으면, 주님이 우리 주인의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신앙 세계는 누군가가 우리를 슈퍼바이징을 해야 돼요. 나이가 들더라도 누군가 우리를 제대로 가져야 돼요. 중요한 것은 지도자는 반드시 누군가의 지도력을, 그리스도인들은 누군가의 지도를 받아야만 하는데 평생동안, 저와 여러분은 평생 동안 누군가의 지도를 받기를 바랍니다. 그 지도라는 게 뭐냐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 신발을 벗으라.'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당시에 애굽의 궁정이나 노예들은 신발을 신지 않고 있어요.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내가 주님의 노예입니다. 주님의 종입니다. 라는 그런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발을 벗으라고 했을 때, 여호수아는 일체 대구를 하지 아니하고 그냥 그대로, 그대로 신발을 벗게 되었습니다. 그 신발을 벗고, 내가 주님의 종입니다. 라고 말하는 그 순간, 40여 년 동안에 애굽에서, 오랫동안 애굽에서, 노예 체제로 살았던 그 모든 모의 체질에 그 모든 성령이 하나님 나라에 약속의 땅 체질로 무장되게 되는 줄로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도력을 가지고 힘들고 어렵고 여호수아의 어깨가 단단하다 하더라도 감당할 수 없는 그 짐 가운데서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라고 진심으로 고백하는 그 순간 그 큰 짐들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이에요. 아멘
 
오늘 뒤에 나와 있을 실오라기 하나도, 그러면서 드디어 애굽땅 체질이 약속의 땅 체질로 바뀌면서 저 자들 앞에 있는 그 놀랍고 어마어마하고 난공불락을 그 여리성을 어떤 식으로 공략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하나님이 종 된 여호수아에게 보여주실 것이다. 뭐라고 말씀합니까? 저거 사다리 타고 올라가지 말라, 막 군대 동원해가지고 막 공격하다가 얻어 받지 마라. 저거 그냥 뭐 그냥 어떻게 막 그 축성기를 가지고 공수를 공략하고 네가 종이니까 내가 주인으로서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주겠다. 내가 한번 해보겠다. 너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매일매일 하루에 한 바퀴씩 여리고성을 돌아라. 그리고 마지막 날 7바퀴 돌아라. 13바퀴 돌 때, 크게 외치라. 여러분, 뭐라고 외쳤겠어요? 마지막 다른 거 없어요. “주님이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군대 대장이십니다.” 기가 막히게 선포하라. 그럴 때 무슨 일을 졌는가 생각도 못하고 상상도 못한 여리성이 와장창창창 무너지게 될 것이에요. 할렐루야!!!~
 
그다음에 우리가 이 우리의 주제 파악, 우리의 위치 파악을 우리는 주님의 종이라는 것을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이 주인 되어 주시면,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거룩한 비대칭 전략을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다윗도 물맷돌을 하나 들고 나가고, 기드온도 뭐 어떻게 할 수 없는데 300명 용사로 나가게 되고, 여호사밧은 찬양대에 이끌고 나가게 되고,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오늘 여러분 난공불락, 그다음에 금성철벽, 우리의 어깨를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는 힘, 그 고립감 때문에 치명상을 입어가지고 눈물이 철철 흘리는 이 상황, 다른 거 없어요. 주님이 내 주인이 되어 주시옵소서!~~. 말로, 찬양으로, 우리의 고백으로, 말씀으로, 확신하고 선포할 때에 우리 앞에 있는 이것은 상상도 못했던 방법으로 누가 와장창창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깨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군대대장 되신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행함과 보호하심 거기에 실제적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말씀 정리하겠습니다.

오늘은 105주년 3.1절 기념 주일입니다.지금으로부터 105년 전에는 희망이 없었고 잿빛이었어요. 그때에 하나님이 군대대장이 되셔서 대한민국의 장래는 그 당시 여리고보다도 더 큰 아무런 희망이 없었어요. 그런데 평양신학교에 마포삼열 박사, 영어 이름으로 사무엘 마테트, 한국이름 마포삼열,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아무런 국가적으로 희망이 없다고 했어요. 일본에게, 러시아, 중국에게 둘러싸여가지고 있을 때, 1907년 일제시대에 희망이 없을 때, 평양부흥이 있을 때, 영적으로 희망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당시 아시아의 최고 신학교, 마포삼열 박사가 천상의 군대대장이 되어가지고 바로 옆에 숭실대학교를 세웠던 윌리암 베어드 선교사가 한국에 이름 배이량 선교사에요. 친구였어요. 이길암 선교사님, 평양장대현 교회 선교사님, 팀웍을 이루었어요. 

 
여러분, 그런 전투력과 그런 마음들 때문에 나중에 주기철 목사님이나 우리 한경직 목사님이나 이를 통해 계속 이어져 와가지고 의 전투력을 가지고 이 나라를 이만큼 우리가 지키고 나온 것입니다. 아멘, 제가 19세기 말인 전 세계에서 수많은 제목들이 있지만 대영, 영국이 말이 그 당시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어요. 19세기 말에는 저 영국이 아메리카 대륙은 남부보다 캐나다 미국 아르젠티나 남쪽까지 또 아프리카는 사고사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자리 또 아시아 쪽에는 인도부터 시작해서 버마 심지어 홍콩까지 전 세계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어요. 그럴 때 19세기 말에 가장 강력한 영적인 뒷받침 되에 있었어요. 그걸 제 큰 땅 떨어 차지라 그런 뜻이 아니라, 여러분 그때 영국이 그때 역사를 안 했으면 무슨 아메리카에 복음이 들어가겠고, 지금 그 힌두교와 불교로 꽉 채워진 인도에 무슨 금이 가겠어요? 복음이 들어가 영국의 그때 영국의 최고의 설교자가 스펄전 목사님 그리고 영국의 구조와 봉사의 기 기도의 용사, 조지 뮬러, 그리고 그 당시 영국이 파송한 최고의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 들어보셨죠? 스펄전 목사님, 죠지뮬러, 허드슨 테일러 이 사람들이 용사들이었어요. 아주 친한 친구들이었어요.

오늘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다락방 사랑이 오늘 여러분들 다락방 수들 가운데도 이 기도의 3용사들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천국에 우리 다락방마다 주일 학교도 천국의 삼용사, 교사들이 나오길 바라는 것이에요. 제가 지금 마음이 너무 간절하니까 마음만 간절하고 마음은 자꾸 늦게 나와요. 지금 여러분 정말 중요한 얘기 여러분 가슴에도 오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여러분들의 삶에 큰 무거운 점들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축복을 허락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교회 토요일마다 7천기도 용사이고, 거룩의 용사이고 정말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 주신 은혜를 가지고 우리가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할 우리나라가 다시 살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극렬한 진정 논리의 싸움 가운데 이 우리 민족 가운데 예수 믿는 여러분들과 교회가 유일한 소망인 것입니다. 이 마음 가지고 이 시대에 군대 대장이신 천상의 군대대장이신 예수님을 의뢰하면서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용사되기를 소망합니다.
 
♣요약
우리 앞에 전쟁 같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극한 상황(狀況)에서 칼을 든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찾아오실 때, 거룩하시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 앞에 죄의 신발을 벗고 납작 엎드리며, 나는 혼자가 아니니, 나밖에 없어라고 극한 고립감을 버려야 한다. 천상의 군대대장이신 예수님이 강력한 전투력으로 세 사람을 보내주실 것을 온전히 믿고, 우리는 기도용사로서 순종하여 극한 상황을 군대대장이신 주님을 의지하여 치유와 극복의 경험을 체험해야 한다.
-우리가 전쟁 같은 인생의 극한 위기 때에 군대의 대장이신 예수님께서 칼을 빼고 철장권세를 가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심을 확신하고, 그 은혜와 사랑을 만만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여호수아처럼 진정한 대장이신 예수님 앞에 내가 주인 삼은 나의 삶의 신발을 벗고, 납작 엎드려 경배하고, 사망의 골짜기도 너는 혼자가 아니야. 라는 믿음으로 주께서 내 곁에 서서 천상의 군대를 보내주시는 것을 경험하는 자들이 다 되어야 한다. 천상의 군대를 우리에게 함께해 주신 것을 경험하고 승리하는 자들이 되기를 간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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