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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새벽비전예배(주후 2024년 01월 13일)
제목: "믿음 계승이 희망입니다"
말씀: 로마서 4:16~17
대표기도: 한승환 장로님(주일학교 담당)
찬양인도: 주일학교 연합 찬양대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말씀읽기: 윤찬영 형제(대학6부), 윤선미 자매(청년N국)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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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4:16~17,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 기록 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토비새에 나온 여러분들 환영합니다. 오늘 이 이 본당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대학부가 안성 수양관에서 대학 8부까지 있는데, 3부가 같이 모여서 이 아침 우리 겨울 수양회를 하고 있어요. 안성수양관 나오시면 박스 한 번 칩시다. 아니 한 번 더 가까이 보여줘 봐요. 이야 “여호와 닛시”....뭐라고 돼 있어요? 저기 히브리어 읽을 수 있어요? 저기 히브리어로 여호와 닛시가 뭡니까? 우리 대한국은 이번 시간을 통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사명과 비전을 발견하고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수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 칠천 기도회 목사 다음 세대 발대식을 마치고, 오늘 우리 공동의회가 있기 때문에 제가 오늘 짧게 말씀을 좀 드리겠습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우리가 나와서 지금 이렇게 전철 이제 6시 한 20분 돼야 이제 전철이 들어오거든요. 그러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찍 모셔서 기도한 여러분들 하나님 각자의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평생의 기도의 제목이 응답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토요 비전 새벽 예배에 나와 가지고 매주 토요일마다 나와서 평생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할 때에 마치 여러분들이 여리고 성을 매일 하루에 한 바퀴, 마지막 7일째, 7바퀴 도니까 총 몇 바퀴입니까? 계산해야 됩니까? 총 13바퀴, 13바퀴 돌고 난 다음에 그 금성철벽 그 강고한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처럼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 개인의 기도 제목들도 토비새에 나와서 계속 기도할 때, 우리 앞에 있는 열고 성이 무너질 줄로 확신합니다. 마찬가지로 또 국가를 위하여 기도할 때도 국가를 위한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저 지금 북한에서 김정은 해가지고 핵을 쏜다. 그리고 남한을 뭐 한다 지금 다 여리고성, 지금 11바퀴째까지 가고 있는 거예요. 지금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서 결정적으로 매주 토비새 마다 앞으로 몇 달을 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날 것이에요.

여러분 생각해 보시라고요. 전 세계에 어느 나라가 이런 토요일 날 다 자고 있어요. 토요일 날은요... 제가 지금 하는 겁니까? 수많은 나라 선진국, 후진국 할 것 없이 등산정은 토요일 날 쉬는 날이니까 아침에 다 자고 있어요. 근데 토요일 새벽에 우리 자녀들과 함께 나와 가지고 이렇게 기도하는 거 이것 자체가 희망 아닙니까? 이거 외에는 다른 희망이 또 있습니까? 그러니까 토비세가 희망인 거예요. 아시겠어요? 왜 토비새가 희망입니까? 나와서 기도하면 토비새를 통하여 주님이 주일 예배를 살려주시는 것이에요. 주일 예배가 살면 사랑의 교회가 사는 것이에요. 사랑의 교회가 살면, 우리 한국교회 같이 사는 것이에요. 한국교회가 살면 세계 복음주의 교회 쇠퇴를 막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 시대에 세계 선교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의 은혜를 덧입혀 주시기를 바랍니다. 따라하겠습니다.

‘토비새가 살면 사랑의 교회가 살고, 사랑의 교회가 살면 한국교회가 살고, 한국교회가 살면 세계 복음주의 교회가 산다.’
아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이 새벽에 나온 여러분들의 기도가 주님 앞에 응답받기를 바랍니다. 너무너무 중요한 시간이에요. 다시 얘기합니다. 여러분들이 매주 토요일마다 와서 기도하는 기도의 이 걸음걸음, 기도의 간절함, 기도의 어떤 전체적으로 이렇게 교회 같이 할 때에 우리 앞에 있는 여리고성은 무너질 줄로 확신합니다.

그다음에 우리 토비새가 살면 우리 민족이 산다. 왜냐하면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토비새에 나온 여러분들은 영적 제곱근이에요. 제곱근이라는 말 아시죠? 우리 만 명이 변화되기 위하여 만 명은 만 명의 제곱근은 뭐예요?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 만 명의 제곱 그는 100X100이에요. 100 그쵸? 100 곱하기 100의 제곱은 만 아닙니까? 아주머니들, ㅋㅋㅋ!!!~~ 만 명이 바뀌기 위해서는 100명의 제곱근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곱근 적 기도를 하면 만 명이 바뀌는 것이에요. 그러면 4만 명이 바뀌려면 200명이 제곱근이라면 4만 명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7천기도 용사가 바뀌면 7천기도 용사가 죽으라 기도하면 7X7이 49, 4,900만 명이 바뀌는 것이에요. 그러니 7천 기도 용서가 제대로 하면 이 민족이 바뀌는 것이에요.

이해가 됩니까? 영적 제곱권의 원리예요. 그러니까 토비새는 영적 제곱근의 토비새의 기도는 영적 제곱근의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제가 오늘 말씀의 제목은 “믿음 계승의 희망”이라고 그랬는데 그럼 영적 제곱근의 그 역할을 누가 하는가? 초대교회 12 제자, 그다음에 70인 전도대, 120명 기도의 우리 예루살렘 교회, 정말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는 120명의 기도의 성도들, 3천 명이 변화된 사람들,,,. 이 사람들이 로마 제국을 변화시켰는데 이 7천기도 용사가 4,900만 5천만을 책임진다. 그랬을 때 만약에 8천이 되고 만 명이 되면 1억을 변화시키는데, 만 명이 변화되면 얼마를 변화시킨다고요? 만 명이 제대로 기도하고 제곱근적인 기도를 하면 몇 명에 영향을 끼친다고요? 1억이 그 우리 7천기도 용사에다가 우리 젊은 다음 세대 7천기도 용사가 되면, 세계를 바꾸는 것이에요. 이제 이해가 됩니까? 담임 목사가 왜 이렇게 제곱근을 얘기하고 토비새를 얘기하고, 기도 용사를 얘기하고, 주의 용서된 나에게 기도 용사는 나에게 주의 일을 맡기소서!~ 세상이 따로 바뀌는 게 아니에요. 이런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의 선봉장이 돼가지고 만 명이면 1억을 바꾸는 것이에요. 1억이면 남북한 다 하고 해외 디아스포라 750만, 북한은 2500만, 우리 남한에 5천만 다 해도 아주 남아요. 남아요. 만 명이 사랑의 교회 토요 비전 새벽 예배 7천기도 용사와 다음 세대의 7천기도 용사가 정신 똑바로 박히면 세계를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이고, 1억을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이고, 남북한 다 바꾸고 해외 디아스포라까지 다 바꿀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런 저는 우리 교회만 그렇게 하자 이 뜻이 아니에요. 한국교회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정신 바짝 차리면 하나님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지난 주일날, 지난 주일도 아니죠. 오늘 토요일이니까 어제 그저께 목요일 날 우리 본당에서 ‘전국 우리 교단 전국 성경고사대회’를 했어요.. ‘전국 성경고사’ 했는데 거기에 이제 학부형들하고 뭐 이렇게 다 와가지고 내가 봤을 때 올해는 한 7~8천 명 온 것 같아요. 다 우리 학부형들과 함께요. 우리 노회가 전국 1등을 했어요. 1등이 중요한 게 아니고, 사실은 우리 노회가 사실은 우리 교회가 다 했어요. 그 우리 교회 주일 학교가 있는데, 그러나 그것보다도 전국에서 다 왔는데 오늘 이 그날 시험 마치고 사랑의 교회 토요일 새벽 예배가 소중하다 그래갖고 제주도에 있는 탐라교회 민경민 목사님과 우리 7명이 왔어요. 교사들은 목사님 일어나면 되겠어요. 목사님 잠깐 좀 일어나 같이 다 일어나 주세요. 제주도에서 오신 분들 다 일어나 주세요. 박수... 앉으시고 제가 이럴 때마다 내 마음에 상당한 뭐라고 그 거룩한 부담이라 그럴까? 은혜가 되는 게 뭐냐 하면 제주 탐라교회에서 와갖고 토비새에 참석하고 있는데 서초 4동에서도 안 나오는 거에요. 이걸 내가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할지, 어떤 식으로라도 제가 해결할 그 이거는요. 그러니까 서초4동은요. 서초 3동 4동은 여기 우리 교회가 서초 몇 동이에요? 3동이죠? 서초 3동은요. 걸어와도 돼요. 여기를 그러니까 사랑의 교회 서초 3동, 4동은 다 토비새에 걸어와라. 다 걸어와라. 이제 이게 내 목표가 생겼어요. 토비새 합니다. 서초 3동 4동 요 근처 서래마을, 여기는 우리 교회 교인들은 전부 옛날에 우리 교회 가듯이 옛날에 새벽에 교회를 산을 넘고 물 건너 1시간, 2시간씩 걸어가 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서초 4동 삼동 방배동 요 근처에 있는 분들은 토요일 비전 새벽 예배에 안 나올 결심을 한다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실패작이라는 걸 깨달아야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께서 이곳에 이 귀한 곳에 하나님이 집을 주시고, 살게 하신 뜻이 있을 거 아니에요. 이렇게까지 강조하는 이유는 한국교회 다음 세대가 희망인 줄로 믿습니다. 다음 세대가 희망이라는 것은 믿음의 계승이 돼야 되는 거에요. 믿음이 계승이 된다는 것은 다른 뜻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같이 나누는데 우리의 사명을 계승해야 되는 줄로 확신합니다. 사명도 계승하고, 신앙도 계승하고, 우리의 사역 자체도 계승하고, 이렇게 계승해야 되는데 다 같이 이사야 59장 21절을 다 같이 보겠습니다.

*이사야 59:21,
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아멘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여기 보니까 이제부터 영원토록 너의 입에서와 그다음에 뭐예요? 너의 후손의 입에서와 그다음에 뭐 너의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뭐예요 떠나지 않니 이것은 신약의 재 해석판이 디모데후서 2장 2절에,
*디모데후서 2:2,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사랑의 교회는 뭐냐면 지금 디모데후서 2장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얘기하고, 디모데가 충성된 사람들에게 말하고, 충성된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 우리 이렇게 운명적인 4세대가 전하고 있어요. 우리 이제 청년 세대, 또 우리 포에버 세대, 우리가 진짜 죽을 때 살도 해야 할 것은 뭐냐면 우리의 사역 우리의 믿음, 우리의 비준, 우리의 사역을 반드시 계승시켜줘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 사역과 우리의 오늘 제가 뭘 얘기 하냐면, 믿음도 계승해야 되고, 사역도 계승해야 되고, 우리의 비전도 계승해야 되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오늘 로마서 4장 16절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4:16,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말씀이 조금 앞에 뭐 좀 복잡한 것 같은데, 쉽게 말하면 아브라함의 16절에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모두 뭐로 되나니, 믿음으로 되나니 믿음을 계승해야 될 거 아니에요 믿음 계승도 뭐로 된다고요? 믿음으로 되나니, 그다음에 보니까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뭐예요 조상이니라. 그러니까 저 말씀이 아브라함 때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또 저 말씀을 기록했던 로마서 바울 시대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뭐냐 하면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여러분 우리 모두는 아브라함이 우리의 믿음의 조상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섬기는 모든 세대는 천 년 전이든지, 2천 년 전이든지, 500년 전이든지, 100년 전이든지, 지금이든지 아니면 또 모든 시대, 모든 시대 모든 세대, 우리 할아버지 세대든지, 장년 세대든지, 우리 대학 청년부 세대든지 ,우리 주일학교 세대든지 다 동일하게 다 동일하게 우리 모두에게 아브라함은 우리의 믿음이 뭐라고 돼 있어요? 조상이라 그러니까 이 말씀이 구원의 계시의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에게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 믿는 사람에게는 아브라함에게 속한 모든 믿음의 은혜가 우리에게 그대로 계승된다는 것이에요. 아브라함에게 속한 모든 믿음의 은혜가 우리에게 계승된다는 말은 이런 뜻이에요.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 가운데 있었던 믿음의 귀한 역사가 다 우리에게로 계승된다. 그 뜻이에요.

그러니까 겉으로 볼 때는 겉으로 볼 때는 아브라함 아브라함이라는 나와 있지만, 사실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계승된 믿음의 그 수많은 콘텐츠 물이 터진 줄로 확신합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만나를 먹은 하나님의 은혜의 기록이 있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 속한 믿음이 우리에게 계승된다는 말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받은 은혜를 누린 모세에게 속한 그 은혜가 우리에게 온다 했듯이, 동시에 아브라함을 믿었던 여호수아가 가졌던 믿음의 콘텐트가 뭐예요? 여호수아가 가졌던 그 믿음의 강력한 영이 우리에게 그대로 주어져 있다. 이것이에요. 또 동시에 다윗이 가졌던 그 믿음의 내용이 우리에게 그대로 물어 다윗이 골리앗을 싸고 이기고 다윗을 통하여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라고, 다윗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우시고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이 일하신 그 귀한 이들이 다 우리에게로 계승되는 줄로 믿습니다. 잘나고 귀할 때뿐만 아니라 다니엘 같이 포로가 되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여 기도한 것처럼,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그 은혜와 그 믿음의 내용, 그 확신을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계승시켜 주신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앞으로 나올 때마다 앞으로 7천기도 용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텐데, 아브라함에게 속한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로 이어질 줄로 믿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오늘 시간 우리에게 주어지는 거에요. 그래서 한국교회가 희망이고 이것을 들려주시고 이번에 성경 고사 때 할 때도 찬송을 했는데 ‘나의 사랑하는 책’ 그 찬송이 있죠.

♬~~

그러니까 다니엘 다윗 그다음에 엘리아의 그 믿음의 내용들이 우리에게 계승되는 줄로 확신합니다. 그래서 포비서에 나올 때마다 앞으로 믿음 결석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시고, 후손과 후손의 후손과 후손의 후손의 후손들에게 믿음 계승된다. 이 믿음 계승이 된다는 말은 비전과 사이 계승되고 기도가 계승되고 사역이 있겠습니다.

그 사역 백성을 통하여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이 공동회가 우리 하나님이 지난 1년 동안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감사한지 그것이 작년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도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은혜의 은혜를 더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1절 2절 하는데 여러분 부르겠습니다. .

※오늘 제가 이제 제주도에서서 오신 민경민 목사님하고 제가 잠깐 나오셔서 한 말씀 하라고 제가 부탁을 했어요.' 제주도 탐라교회', 아주 좋은 교회이고, 앞으로 제주도 가면 탐라 교회 가보세요. 박수로 환영하겠습니다.
▶민경민 목사님(제주 탐라교회)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목사님 말씀해 주셔서 지난 목요일에 있었던 우리 전국대회 하기 위해서 우리 교회 백컨스로 5명 하고 우리 교사 2명과 함께 올라왔습니다. 새벽 기도회가 어색하니까 지금 비몽사몽간인데요.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참 많은 아이들이 말씀을 사모하고 또 온몸과 정성을 다해 찬양하는 이 모습 보면서 그 아이들이 있기에 그리고 오늘 토비새에 함께하는 우리 여러분들 칠천 용사가 있기에 이 나라의 민족은 소망인 줄 믿습니다. 교회는 소망이 있는 줄 믿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랑의 교회에 참 많은 빚을 졌습니다. 왜냐 하면 제자 훈련을 비롯해서 신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목회의 귀한 가치들을 배웠고, 또 한국교회 섬김의 날 하시죠? 여러분 수고 참 많으셨지 않습니까? 제주 지역에 있는 목회자들과 함께 참여하면서 어떤 교회의 본질 그리고 온전 론을 또 배울 수 있는 그런 귀한 시간을 누렸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참석하면서 많은 걸 느끼게 되는데 저도 우리 아이는 또 우리 교회도 한국교회를 위한 우리나라 민족을 위해서 실천의 기도 용사로 함께 뛸 것을 결단하면서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의 소망과 집중력이 일을 하게 하는 것이에요. 이렇게 하시고 이제 우리 다음 세대에 우리 7천 기도의 용사, 우리 영적 과거제도를 상을 수여하겠습니다. 시간은 영적 과거제인 전국주일학교 제60회 성경고사 및 찬양 경연대회 시상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평범한 인생이 지적 개입을 통해 비범한 인생이 되는 현장을 말씀 수업을 통해 확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말씀 그대로 하나님 아버지 사랑의 교회와 한국 교회가 믿음 개성이 반드시 되게 하여 주십시오. 유럽 교회가 문을 닫고 망한 것은 믿음 개성이 되지 않아서 망하게 된 것입니다. 주일 학교가 문을 닫아서 망하게 된 것입니다. 주여, 한국교회는 결단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런 새벽 예배에 우리 자녀들과 함께 나와서 주님 앞에 마음을 다하여 기도할 때에 부모의 믿음이 계승되게 하시고, 사역이 계승되게 하시고, 비전이 개선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마음을 간절히 주님 앞에 올려드리기를 바라고 그다음에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단순히 믿음 개선한다 했을 때, 그 정도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 안에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와 다윗과 다니엘의 그 부분의 역사를 다 넣어놓은 것처럼 오늘 그 은혜가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축적되어 계승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우리 기도하시고 그다음 사랑의 교회 토비새를 통하여 평범한 인생이 신적 개입을 통하여 비범한 인생이 될 줄 믿사오니 하나님 꼭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주여 토베새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마음과 주여 믿음 계승의 은혜를 주옵소서. 주여 믿음 계승에 은혜를 주옵소서. 크게 두 번 외치고 주여 믿음 계승의 은혜를 주옵소서. 두 번 외치고, 오늘 우리 통해서 믿음 계승을 위하여, 사역과 그다음 믿음의 계승과 그리고 모든 아브라함의 그 모든 귀한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과 주의 믿음 계승의 은혜를 달라고 두 번의 외치고 뜨겁게 기도하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우리를 깨닫게 하신 말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세운 그 언약, 그 언약의 말씀이 후손의 입에서와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도록 이 토비새가 사용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모든 귀한 것들이 계속해서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모두에게 기도의 제목이 되게 하시고, 그 모든 강점들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적 재고권의 은혜를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교회 토비새 이제 선대 어른들의 7천 기도용산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의 7천 기도용산을 통하여 한국 교회가 바뀌게 하여 주시옵시고, 대한민국의 장래가 바뀌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로, 사명으로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 통일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주님 우리에게 허락하신 ‘2033-50 비전’을 앞으로 10년 내에 우리 민족의 50%가 예수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앞서 인도하신 은총이 퍼짐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할렐루야, 이 새벽에 나온 우리 자녀들, 어른들 다 말로 다 할 수, 폭포수와 같은 기름부음으로 은혜로 채워주실 것을 확신하옵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들어 간절히 기도 올리옵나이다.

♣요약
우리 믿음의 4세대가 다음 세대 7천기도 용사들이 기쁨의 면류관과 강철 신발을 신고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르레상스 적 K-부흥의 대서사시를 써 나가며, 모든 영 가족들이 세상이 감당치 못할 영혼 구원의 열정과 꺾어진 뼈조차 즐거워하는 복음의 기쁨으로 충만하여 한계를 정할 수 없는 은혜의 무한지평으로 2033-50의 비전을 이루어가기를 합심하여 간구하고 우리 교회와 사랑글로벌 아카데미가 영적 공공재로, 글로벌 플랫폼의 사명을 감당할 때, 문화 변혁과 평화통일과 세계선교를 마무리하는 영적 라마나욧이 되기를 소망하자. 내일 예배를 위해 더욱 거룩히 준비하여 주님의 기쁜 자녀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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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01월 10일)
제목: "영원한 약속을 깨닫는 사랑"
말씀: 요한1서 3:18~24
찬양인도: 쉐키나
사회: 강건우 부목사님


설교자: 안 바울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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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3:18~24,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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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연 초에 보면 어렸을 적에 이런저런 행사들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이제 교회를 다니고 있으니까 저와 여러분들과 같이 연말 연 초에는 교회 행사가 되게 많았던 걸로 추억이 됩니다. 우리 며칠 전에 토비세 앞에 붙었던 이름 혹시 기억하십니까? 토비새라는 이름 앞에 우리 새벽송이라는 명칭이 한 번 붙은 적이 있었는데 새벽송이 저에게는 가장 크게 기억이 남습니다. 저는 도시 사람이에요. 도시 사람에서 쭉 자라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대구로 이사를 가게 됐는데, 거기에서 처음으로 새벽송이라는 걸 해봤습니다.

정말 새벽에 돌더라고요. 밤늦은 시간에 그게 도는데, 중학교 2학년 때고 우리 고등학교 형들과 함께 돌았는데 성도님들이 잠을 주무시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맞아주시는 거예요. 작은 먹거리들을 준비하시고 또 함께 찬양하면서 집집마다 돌았습니다. 새벽송이라는 것은 집과 집을 건너가면서 찬양을 하고 함께 찬양하면서 먹을 것을 이렇게 받고 그런 것이에요. 얼마나 기억에 남는지 모릅니다. 그 순간에 은혜들이 너무나 가득해요. 또 한 가지 기억 남는 연말의 추억이 있다면 중고등부 학생들이 함께 문화제 또 연극제라는 이름하에 발표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고3이 돼서 한 번은 그런 발표를 한 적이 있었는데 주제는 당연히 천지창조부터 시작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이르는 그런 것을 발표를 했었어요. 제가 그 가운데 무슨 역할을 맡았을까요? 루시퍼에요. 악마, 그 분장을 생전 처음으로 이제 제 얼굴에 분칠을 하고 이렇게 그리고 했는데 문제는 악마가 아니라, 이제 악동이 되어 가는 게 문제입니다. 너무나, 너무나 근데 즐거운 추억이에요. 그 자리에서 되지도 않는 인상을 써가면서 그리고 어떨 때는 교활하게 되지도 않는 교활함을 또 표현하면서 그렇게 연극을 또 재미나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다른 기억이 있는데요. 가족 찬양 제라는 게 있었습니다. 가족끼리 함께 나와서 찬양 경연대회를 하는 그런 것인데 저의 우락부락하게 생긴 형님이 계세요. 저보다 두 살 많은 형이 피아노를 치고 제가 우리 가족 분들 가족과 함께 저희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사철의 봄바람이라는 찬송을 함께 불렀던 기억도 있습니다. 사철의 봄바람 아시죠? 네 상금은 없었어요. 상은 못 탔는데 너무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정말로 즐겁고 재미있고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그런 은혜의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많은 시간이 지났고 추억 속에 있지만 생생하게 그 순간,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은혜의 소중한 시간들이라서 항상 그 시간들을 기억할 때마다 기쁨이 있고 내 마음에 성령 하나님께서 그 순간에도 나와 함께하셨구나! 라고 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근데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한편으로는 우리 자녀들, 저도 이제 살 2명의 아들이 있는데 9살, 6살의 아들이 있는데 우리 아들들에게는 이런 좋은 추억들이 참 점점 사라져 간다는 게 한편으로는 아쉬워요. 새벽송이라는 것을 볼 수도 없고, 이렇게 큰 교회에서 찬양 제, 가족 찬양 제라는 것을 할 수도 없고 생각해 보면 좀 아쉬움이 있긴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값진 추억들과 은혜들이 조금씩 희석되어가고 조금씩 이렇게 바뀌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과 또 애절함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것들이 제 마음 가운데 있어요. 다음 세대를 바라볼 때, 또는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아직 맛보지 못한 한 사람을 한 영혼을 바라볼 때, 그런 긍휼함이 제 마음 가운데 있다. 라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이 요한일서의 이 말씀도 그런 사랑의 사도 요한이 가지고 있는 애틋함과 또 긍휼함이 많이 묻어나는 책입니다. 이제 인생의 말년을 가고 있는 사도요한이죠. 인생의 마지막을 달려가는 사도요한이 다음 세대를 바라볼 때, 이제 막 시작한 믿음의 자녀들을 바라볼 때, 복음들이 조금씩 바뀌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안타까운 거예요. 그리고 복음들이 점점 희석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안타깝고 안타까운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계속해서 이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고 있는 게 뭐냐면 ‘자녀들아’라는 표현입니다.

3장 전체를 보면은 ‘자녀들아’라는 표현이 한 네다섯 번 나오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그들을 불러가면서 사랑하는 자들아, 또 형제들아, 그리고 자녀들아, 리를 칠드런, 이렇게 불러가면서 그들을 어떻게 하면 복음의 은혜의 중심지로 데리고 올 수 있을까를 사도 요한이 계속해서 권면하고 강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그 마음 가운데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있을까? 자기는 직접 예수님을 그 따스한 피부에 손을 대어보기도 했고, 또 그의 따스한 음성을 귀로 듣기도 했고, 또 그의 음성을 따스한 음성을 또 들으면서 또 눈으로 직접 보면서 예수님을 바라본 자신인데 그의 다음 세대는 그러지를 못하니까 얼마나 가슴이 에이지 않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이전에도 그런 말씀이 있어요. 요한일서 1장 3절에서 4절까지의 말씀인데요. 우리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3절입니다.

*요한일서 1:3-4,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 보니까 들은 바를 너희에게 전하고 우리가 사귐이 있게 한다. 왜냐하면 기쁨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이것만 알면 이 자리를 누리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더불어 사귀기만 하면, 누리기만 하면 기쁨이 충만하기 때문에 이것을 내가 알고 있는데, 너희들도 좀 알면 좋겠다. 라는 거예요.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거는 우리들이 과연 이런 마음이 있는가라고 하는 겁니다. 긍휼한 마음이 있는가, 목자의 심정이 있는가, 저들이 정말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 함께 그 자리 가운데 누리기를 내가 원하고 있는가, 라는 거를 먼저 점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방금 읽은 3절과 4절 말씀을 뜯어서 한번 생각해 보면 첫 번째로는 보고 들은 바를 전할 마음이 있는가? 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전할 마음이 내게도 있는가? 우리가 본 것을, 우리가 만진 것을, 우리가 영적으로 경험한 것을 아직 모르는 그들에게 아직 알지 못하고 답답해하는 그들에게 내가 과연 전할 마음이 있는가, 아니면 내버려두는가? 저들은 저대로 살다 죽겠지 저들은 저대로 지내다가 그냥 죽겠지 내버려두는가, 아니면 내가 전할 마음이 있는가, 또 다른 한편은 이런 거예요. 오늘 3절 말씀에 보니까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는 이 표현을 통해서 보면 내가 이 우리, 라는 바운더리 안에 이 공동체라는 우리라는 바운더리 안에 그들과 함께 사귈 마음이 있는가, 초청할 마음이 있는가, 우리의 다락방에 부서의 공동체에 내 모임에 그들을 초대할 마음이 있는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세상의 방식으로 살고 있는 그들을 포용할 마음이 내게는 있는가, 라는 것을 한번 점검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율법을 많이 알고 말씀을 많이 안다고 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포용할 마음이 없죠. 사귈 마음이 없습니다. 그들은 선을 정해놓고 백성들과 나는 어떻게 해요? 다르다. 나는 저들과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다. 죄인들과 세리들과 나는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다. 저들과 나는 다르다. 사귈 마음이 없습니다. 포용할 마음이 없어요.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그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우리의 마음과 합하여서 하나님의 목자의 심정이 우리 마음에 가득하여서 말씀을 느끼고 체험하고 볼 때마다 만질 때마다 그것을 전할 마음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사귈 마음이, 복음으로 사귈 마음이 우리 가운데 풍성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답하기를 주저하는 분들을 향해서 지금 거의 답이 들리지가 않아요. 답하기를 주저하는 분들을 위해서 말씀 한 구절 더 읽도록 하면 우리 16절 말씀인데요.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16절 말씀 시작.

*요한일서 1:16,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셨으니 너희도 버리는 것이 뭐라고요? 마땅하다. 지금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것은 사랑은 멈추는 게 아니라 계속 흘러간다는 거예요. 자기희생이라는 것 그리고 사랑이 전해진다는 것 복음이 흘러간다는 것은 멈춤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흘러가고, 흘러가고, 흘러갈 뿐 아니라 더 갑절이 되고 곱절이 되어서 더해져야 되는 거예요. 자기희생의 연속입니다. 자기 인생에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죠. 우리 교회의 표현으로 이야기하면 제곱근 배가 증식하는 사랑의 재곱근의 역할이 일어나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2024년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하나님께서 거저 우리 가운데 주신 은혜 그대로 또 하나님 앞에 그 모습 그대로 우리가 다른 이웃에게도 거저 흘려보내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함께 묵상해야 할 세 가지 것들이 있는데 18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적용 우리에게 적용해야 할 세 가지 사랑의 측면이 있는데요. 우리 18절 말씀인데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요한1서 3:18,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많이 들어보셨죠?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우리가 사랑을 함에 있어서 말과 혀로만 하지 말고 행함도 더하고, 진실함도 더하자.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근데 제가 이 말씀을 딱 봤을 때는 처음 딱 하고 묵상했을 때, 행함과 진실함의 단계까지도 못 갔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단계가 아니라 말 이 말은 어떤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수님이 죽으시고 한 세대가 지나가고 나니 행함과 진실함은 빠지고 말뿐이 남지 않은 말밖에 남지 않은 모습들을 보면서, 사도 요한이 이렇게 마음 안타까우며 고백을 했나 봅니다.

근데 2천년이 지난 지금을 따져보면 이 시대를 바라봤을 때, 그리고 한국 교회를 바라봤을 때에 말과 행함과 진실함은 모르겠고 말이라도 우리가 사랑을 담으면서 말을 하고 있는가? 내 말에는 사랑이 더해지고 있는가? 내가 그렇게 말을 다른 사람이 듣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

I. 첫째-말을 이쁘게 하자.
첫 번째로는 이런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말을 이쁘게 하자. ‘말을 이쁘게 하자’ 아주 원색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아기들한테 뭐라고 이야기해요? 험한 말할 때 애기들이 나쁜 말할 때 말 이쁘게 해야지, 말 이쁘게 해야지, 얘기하지 않습니까? 우리들은 과연 말을 이쁘게 하고 있나요? 이쁘게 하고 있나요? 우리의 행함과 진실함을 더하기 전에 우리의 말 가운데 이쁜 말을 해야 될 것 같아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 하나님이 예뻐하시는 말, 기뻐하시는 말을 우리가 우리의 입술에 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제일 편한 이웃 바로 가족이죠. 가족에게 어떠한 말을 하고 계십니까? 너무 편하기에 막말을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마구대하고 계시지는 않나요? 이제 곧 제자 훈련이 시작을 할 텐데 제자 훈련 시작하면 처음에는 굉장히 이제 예의와 존중이 묻어나죠. 선을 바르게 지킵니다. 그런데 어느새 3개월, 6개월 단기 선교 갔다 와서 4박 5일 같이 지내고 나면 언니 동생 하면서 점점 말이 가벼워지기 시작을 하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선을 넘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올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제자 훈련 시작하시는 분들 끝까지 명심하십시오. 선을 지키셔야 됩니다. 예의와 존중으로 서로를 대할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 주를 한번 생각해 볼까요? 주차 잘하고 계십니까? 교회에 들어올 때 너무나 힘들죠. 사거리 꺾어서 우회전해서 들어오면 늘 막히지 않습니까? 우리 봉사하시는 분들, 안내하시는 분들에게 어떠한 말을 하고 계시나요? 그들도 성도님들이신데 혹여나 너무 험한 이야기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수요 예배에 나오시는 분들이라면 그런 분들은 한 분도 안 계실 줄 믿습니다.

예배 부 섬기시는 분들 또 교통봉사 섬김을 하고 계시는 분들, 모두 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에요. 영적으로 하나 된 영 가족들입니다. 귀한 또 사랑을 담아서 그분들에게 격려해 주시고 또 이렇게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오늘 원고에는 쓰지는 않았지만 저도 방금 저 11층 사무실에서 내려오면서 너무 귀한 사랑의 말을 듣고 왔어요. 엘리베이터에서 타고 이제, 이제 말씀을 준비하고 내려오는데 어떤 권사님께서 저보고 저희 어머니보다 조금 더 연배가 있으신 권사님께서 요새 부목사님들은 참 이뻐, 라고 얘기해 주시는 것 같아요. 얼마나 힘이 나든지 너무 사랑이 많이 담긴 말 아닙니까? 앞에 한 단어가 더 있었어요. 밤톨같이 이뻐, 막 이러셨어요. 너무 행복해요. 여러분들 우리 부교역자 분들 목사님들 볼 때 많이 칭찬해 주시고 이뻐해 주세요. 그들이 힘을 냅니다. 힘을 냅니다. 이 말에 사랑을 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말의 사랑을 담는 건 쉽지 않아요. 왜냐하면 말을 바꾸기 위해서는 마음을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에요. 내가 결단하고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것들을 막아내야 그게 가능한 거예요. 때문에 말을 바꾼다는 뜻은 하나님이 내 앞에 계시는 것을 늘 항상 인정하는 삶입니다. 내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음성을 하나님께서 듣고 계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삶이에요. 민수기 14장 28절의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민수기 14:28,
28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저희 어머니가 제가 험한 말할 때마다 늘 이 말씀을 하셨어요. 말한 대로 된다고 말한 대로 된다고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신다고 우리가 말을 가볍게 하는 것은 듣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만약에 우리 앞에 어르신이 계신다고 생각하면 어른이 계신다고 생각하면 함부로 이야기를 못할 겁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 가운데 함께 계신다. 라는 생각을 늘 항상 품고 있어야 간직하고 있어야 말이 바뀌게 되는 거예요. 말은 생각지도 못하게 습관적으로 나오는 것인데 이 습관을 바꾸려면 마음이 바뀌어야 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말이라는 것은 마음의 알갱이다. 라고 얘기를 해요. 마음의 알갱이 앞에 글자만 따서 마 알 마음의 알갱이 말, 말, 말 말이 되는 거예요. 자, 그래서 우리의 입술을 다스리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입술을 다스리는 거 입술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먼저 다스려 주시기 때문에, 그 다스림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서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말이 바뀌게 되는 겁니다. 우리 마태복음 15장 1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마태복음 15:18,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입에서 나오는 것이 마음에서 나오나니.
-어디서 나온다고요? 마음에서 나온다고 얘기합니다. 마음에서 여러분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선한 마음으로 선한 말을 내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말을 할 때 누가 제일 먼저 들을까? 하나님 이외에 누가 먼저 제일 들을까? 누구죠? 나 자신입니다. 내 자신에게 지금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아요. 우리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때문에 내가 뱉은 그대로 내가 자라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선한 말을 하면 얼굴이 선하게 바뀐다. 라고도 얘기하지 않습니까? 제 얼굴은 어때요? 선한 말을 한 대로 얼굴이 바뀌는 거예요. 나쁜 말, 못된 말을 하면 그렇게 입이 삐뚤어지게 되는 거잖아요. 에베소서 4장 29절에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에베소서 4:29,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제일 먼저 듣는 자, 나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선한 말을 해서 네가 은혜대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우리의 말로서 덕이 세워지고 은혜가 끼치게 되는 것은 우리의 말에 힘이 있다. 라는 뜻이죠. 말을 제일 가까이 듣는 우리 자신부터 내 말로 인해서 덕이 세워질 수도 있고, 덕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선한 말을 함으로 인해서 내가 하나님으로 받은 은혜를 쏟아내지 않고 담아낼 수도 있고, 내 말이 악함으로 인해서 그 은혜들을 모조리 이렇게 쏟아버리게 되는 일도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말이 중요합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내가 나에게 사랑의 말을 담아서 오늘 나에게 칭찬을 해주어야 해요. 잘했다고, 잘 살았다고 오늘도 애썼다고 칭찬을 해주어야 할 것 같아요. 바보 천치라고 이야기하지 말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스스로 불러주면서 오늘 하나님 앞에 귀한 백성으로 내가 잘 살았다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시편 2편 우리 7절 8절을 우리 자신에게 한번 선포하는 마음으로 한번 읽어보면 좋겠는데, 시작

*시편 3:7-8,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너는 내 아들이라, 너는 내 딸이라, 내게 구하라 하나님께 구하라. 내가 이방 백성을 내 유혹으로 죽인 내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모든 것을 이루어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 약속,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자녀 된 호칭, 이 안에 다 담겨 있어요. 여러분들, 여러분들 스스로에게 매일 마다 하나님 앞에 이 존귀한 자녀가 여전히 기도합니다. 하고 무릎 꿇으며 기도할 줄 아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때문에 일단 말을 의지적으로 이걸 강조하고 싶어요. 의지적으로 여러분들 스스로에게도 그렇고 가족에게도 그렇고 의지적으로 선한 말을 자주자주 하면 좋겠어요. 사랑의 고백을 자주 하면 좋겠습니다. 아내분들은 남편분에게, 남편분들은 아내분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사랑의 언어를 자주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72구절 암송 있잖아요. 그것도 나에게 선포하는 말씀으로 행함과 진실함이 없다 할지라도 모르겠다. 하면서 그 말을 그 암송을 내게 한번 계속해서 선포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선한 말이 그 암송이 나의 덕을 세우고 은혜를 쌓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말에 대해서 좀 길게 설명을 드렸는데, 그다음에 말 다음에 무엇이 있죠?

II. 두 번째로 행함입니다.
-행함, 행함도 이렇게 한번 표현해 봤어요. 행함을 이쁘게 하자. 행함을 이쁘게 하자 하나님께서 이뻐하시는 행함을 하면 좋겠습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행함을 더하자. 말이 그 사람의 마음을 쳐서 복종시키고 의지적으로 표현을 바꾸는 것이라고 하면 다시오. 말의 습관을 바꾸는 것이 그 사람의 마음을 복음으로 쳐서 하나님의 계심을 늘 상기하고 항상 깨닫고 인지해서 마음을 복종시키고, 의지적으로 표현을 바꾸는 것이라고 하면 이제 그 말로만이 아닌 행함을 더하라는 것은 죄 된 본성에 사로잡혀 있는 육체를 쳐서 복음에 복종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죄 된 육체를 복음에 복종시키는 것을 말해요. 육체를 복음으로 다스리게 하는 겁니다. 게으르고 자기만 알고 있는 그런 육체를 복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선하게 쓰일 수 있도록 움직여 보라는 거예요. 육체를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사실 이런 모양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로만이 아닌 행함으로라도 계속 믿음을 표현하라. 라고 이야기하는 야고보서에는 우리가 제일 잘하는 말씀이 이것이죠. 2장 15절 17절 말씀인데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야고보서 2:15-17,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말이 아니라 정말 선한 행동을 더해서 그 사람이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덕을 쌓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라. 라고 이야기합니다. 근데 문제는 여기서 육체를 다스린다. 라고 하는 것은 육체를 다스린다고 하는 것은 자기희생을 분명히 요구합니다. 반드시 요구합니다. 한마디로 내가 하기 싫은데, 하기 싫은데 해야 한다는 거예요. 말씀을 따라 살려면 나는 하기 싫은데 움직여야 된다는 거예요. 힘들고 귀찮고 그렇지만 내 것을 나의 시간을 나의 힘을 나의 공간을 나의 소유를 다른 사람의 것으로 소유권 변경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싫은 거죠. 내 것인데 내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데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 그리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모두 다 그런 사랑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까지 다 내어주신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사랑을 빗대서 이제 결혼식 때에도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듯이 교회가 예수님을 사랑하듯이 그렇게 표현을 많이 하는데요. 결혼식 때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결혼식 할 때 이 사람이 내 사람이 되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면 피곤해지는 거예요. 힘들어지는 거죠. 이 사람이 내 사람이 된 게 아니라, 무엇이, 무엇이 된 겁니까? 내가 그 사람 것이 된 겁니다. 이렇게 반대로 생각하면 좋겠죠. 내 시간과 저 사람의 시간과 공간이 내게 된 게 아니라 내 시간과 공간과 소유가 저 인생의 것이 된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어떤 우리 주례하신 분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이렇게도 표현하더라고요. 죽을 사에 쇠고랑 랑이에요. 죽을 사에 쇠고랑 랑, 이제 웃으시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사랑의 매어라는 표현이 오직 주의 사랑의 매어라는 표현도 있지 않습니까? 사랑으로 인해서 매어지게 되는 거예요.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그리고 죽을 때까지 이 사람들을 이 사람을 사랑하기로 내가 그렇게 헌신하고 결단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 그것이고 우리가 또 우리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사랑이 그런 사랑입니다. 우리가 영 가족이라고 하고 또 복음에 먼저 앞선 자라고 한다면 사랑 죽을 사 쇠고랑 랑을 차서 주님의 사랑에 매어서 이 사랑도 하나님의 사랑에 매일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행동을 하셔야 될 것 같아요. 선한 행동을 여러분들의 마음에 담아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자기희생과 자기 부인의 자기 부인의 자리라 할지라도, 여러분들이 감당하셔야 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마땅히 거저 그 은혜를 우리 가운데 허락하시고, 우리가 우리의 죄 가운데서 구원의 백성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가 우리의 이름과 우리의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우리도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말과 행동을 보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말이라는 부분에서도 우리 스스로에게 먼저 적용을 해봤는데, 이 행함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적용을 먼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선한 행동,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의 행동이 무얼까? 좀 생각해 보면,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자기희생을 할 수 있는, 내가 자기희생을 할 수 있는 부분들 하기 싫은데 복음에 따라 살다 보니 해야 할 것 같은 일들이 무엇일까?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 주일날 보면 저기 2층 3층, 어떤 분들은 2층 천 3층이라고 표현도 하시는데 저기 구석에서 그냥 앉았다가 돌아가시는 등록 안 하시는 분들 계시잖아요. 그런 분들이 등록하셔서 교회에 더 깊이 들어와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다락방에 아직 참여 못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내 시간이 아깝고 내 여유가 없기 때문에 내가 할 힘이 없기 때문에 여건이 안 돼서라고 여러 가지 이유들로 등록 안 하시고 또 다락방도 참여 안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복음의 깊은 진수와 또 기쁨을 맛보기 위하여서 올해만큼은 여러분들이 다락방에 모두 다 참여하셔서 비록 힘들지만, 내 시간이 뺏기는 것 같고 내 공간이 뺏기는 것 같지만 내 힘이 뺏기는 것 같지만 더 크게 더 깊게 더 많이 더 풍성히 채워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다락방에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자리에서만 그런 자리에 참여해서만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그 희락, 하나님의 기쁨의 진수들이 있어요. 공동체 가운데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섬김과 봉사의 자리에요. 이웃을 향한 교회를 향한 섬김과 봉사의 자리에 여러분들이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점점 낮 빛이 어두워져가고 계시는데, 봉사의 자리 가운데 섬김의 자리 가운데 여러분들이 참여해 주시면 그 자리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와 기쁨들이 있어요. 작년에 2년간 제가 예배부로 섬겼는데 예배부 섬김을 하면서 되게 굵직굵직한 그런 섬김의 영역들이 많았습니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가서 안내하는 일들도 쉽지 않고 너무 너무나 크잖아요. 사람들도 너무 많고 그런 일들을 이제 예배부가 안내로 섬겼었는데, 저는 장담하기로는 그때 계셨던 이제 임원 분들, 저와 함께 이제 활동하시고 섬겼던 임원 분들에게 그 섬김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라고 부탁드리면 전부 다 아멘으로 순종할 것 같아요. 저만의 확신일까요? 전부 다 아멘으로 순종하실 것 같아요. 그 임원 분들과 그 봉사자분들은,,, 왜냐하면 그 자리에서만 그 섬김에서만 그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봉사하시고 안내하시고 섬겨주시는 분들은 분명히 압니다. 알 사람만 압니다. 정말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은혜들이 있는 거예요. 찬양 팀은 찬양 팀만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들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있어요. 예배 봉사하시는 분들은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은혜들이 또한 있습니다. 중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은 중보기도 팀 분들은 중보기도 팀에서 느낄 수 있는 영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주일 중보, 주중중보 마찬가지로 다 기쁨들이 있어요. 육체의 힘듦이 있지만 육체의 피곤함이 있지만 그것을 영적으로 채워주시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들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대하시면서 그것을 소망하시고 기대하시면서 더 깊이 공동체 가운데 들어와 주시고 예배의 관람자가 아니라, 예배를 드리시고 예배를 드릴 뿐만 아니라, 예배를 섬기시고 섬길 뿐만 아니라 예배를 주도해 가시고 이끌고 가시는 우리 저와 여러분들 되시면 좋겠어요.

III. 마지막으로 진실함입니다.
-말에 사랑을 담고 또 행함의 사랑을 담았으면 이제 진실함의 문제인데 진실함은 좀 어려워요. 왜냐하면 이 마음이라는 것은 그냥 쉽사리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진실함을 담아야지 한다고 담아지는 게 아니잖아요. 이 마음이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 코끼리 다 생각하셨죠? 하지 말라고 해서 안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 진실함의 문제는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떻게 해야 될까? 근데 저는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말과 행함에 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의지적으로 진실함을 더하라. 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고린도전서 13장에 있는 말씀인데 6절 7절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3:6~7,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자, 진실함을 담는 게 무엇일까 진실함을 어떻게 의지적으로 담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니까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사랑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잠시 잠깐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 거예요. 사랑엔 시간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의지적으로 견디고, 의지적으로 참으면서 무엇을 가지고 이루어질 믿음, 이루어질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그냥 내가 나중에 이루어질 그 실상을 바라보면서 지금 현재를 견디고 믿음으로 그 자리를 지켜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진실함을 담는다. 라는 것은 이렇게 내가 견디고 인내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 자리 가운데 점점 우리의 마음 가운데 진실함을 더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진실함을 더한다면 사랑에는 제한선이 사라지게 돼요. 내가 늘 항상 우리의 죄 된 본성만 따라가면, 받은 만큼만 사랑해야지라는 그런 생각밖에 안 듭니다. 진실함이 없다면 견뎌내지 못하면 인내함이 없다면 받은 만큼만 사랑해야지 그렇게 되면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원수를 사랑하라. 고 하는 사랑의 클라이막스를 이루어낼 수가 없어요. 원수가 내게 공격해 오면 이 사람 나에게 공격했네. 안 되겠다. 더 이상 섬김을 멈춰야지 이렇게 우리의 죄 된 본성이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의지적으로 여러분들이 진실함을 행함에 말에 계속해서 넣어야 돼요. 나중에 하나님께서 이후에 이루실 큰일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이루어 가야 합니다. 우리 CS 루이스가 했던 말이 있는데 제가 한번 읽겠습니다. CS 루이스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법칙은 아주 간단합니다. 자신이 이웃을 사랑하나 사랑하지 않나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냥 그를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곧 위대한 비밀 하나를 발견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그를 사랑하게 된다는 비밀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싫다고 해서 상처를 주면 점점 더 그가 싫어집니다. 그러나 싫은 사람이라도 잘 대해주면 점점 덜 싫어집니다. -CS 루이스가-
-여러분들이 행동함에 있어서 그 행동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이 점점 바뀐다는 거예요. 마음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렇게 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주시고 그 자리 가운데 사랑을 계속해서 쌓아주신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부모의 사랑이고 이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일 것 같아요. 포기하시지 않는 사랑, 내버려두시지 않는 사랑, 끝나지 않고 끊이지 않고 날마다 우리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의 방법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렇게 오늘 말씀을 토대로 기반을 이렇게 표현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의지적으로 연약한 모습일지라도 우리의 사랑 가운데 말과 행함을 더하면 분명 그 자리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함께하시도록 인도해 주세요. 우리 19절 말씀인데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일서 3:19,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우리가 말과 행함과 진실함을 가지고 사랑을 하면 진리에 속한 줄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진리에 속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내가 진리 안에 있다. 바로 이 말은 영원한 약속이에요. 하나님께서 뭐라고 이야기 하셨냐면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이 언약은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생명의 영원한 언약입니다.
-이걸 언제 우리가 알게 돼요? 이렇게 진실함으로 사랑을 할 때 우리가 알게 된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과정 중에 하나님이 등장하세요. 우리 24절의 말씀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일서 3:24,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아멘 동일하게 생명의 언약이 나타나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생명의 역사를 깨닫는 그 순간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알게 된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랑 가운데 말 행함, 진실함을 더하면 더할수록 내가 인내함을 갖고 견뎌내면서 사랑을 해가면 갈수록 성령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주장하시면서 더욱더 하나님을 닮은 사랑을 해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 라는 거예요. 때문에 때로 넘어지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완전히 주저앉는 일은 없게 됩니다. 책망할 일이 있다 할지라도 오늘 말씀과 같이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이 우리를 돌봐주시리라 믿습니다. 사랑은 감정이지, 감정이지만 그 감정만 가지고 하게 되면 언제 무너질지 몰라요. 사랑은 감정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이 기독교 사랑, 크리스천의 사랑은 죄 된 마음과 육신을 이기기로 작정하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이번 한 해를 살아 내시면서 다락방 안에서 그리고 제자 반에서 더 더욱이 아직 복음을 모르는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온전히 끝까지 사랑의 범위와 한계를 생각하지 말고 사랑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 자리 가운데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신다고 약속했어요. 그리고 그 자리 가운데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내가, 내가 진리 가운데 거하는 자다, ‘내가 내 안에 주님이 함께 계신다’. 라고 하는 것을 매일 마다 느끼며 깨달으며 체험하며 살아가는 영적 존재로 주님께서 만들어 주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런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환히 붙들고 살아내시는 여러분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과 마음에 합한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연합을 이루시는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약
우리는 영을 새롭게 하고 살리는 말을 함으로써 덕을 세우고 은혜를 끼쳐 우리 각자가 서 있는 공동체와 개인과 일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명의 역사를 힘 있게 살아내야 한다. 자기희생적 사랑의 행동과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영적, 육적 복이 더 풍성히 넘쳐흐르게 하시 그 자리에 또 하나의 생명의 열매가 맺어야 한다. 나의 모든 말에 하나님의 선한 말을 더해주시고, 나의 행함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묻어나게 하며 모든 것을 진실함으로 하여서 무엇보다 연약한 나의 마음을 주님이 주관하여 주심을 믿고, 모든 상황과 환경을 이겨내면서 십자가의 사랑을 이루신 주님처럼 날마다 사랑을 표현하고, 사랑으로 살아낼 수 있을 만한 용량을 내게 허락해 주실 것을 확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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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1월 07일)
제목: "기쁨이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
말씀: 요한1서 1:3~5
찬양인도: 쉐키나(이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하상범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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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1:3~5,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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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광스러운 신년 첫 주 신년 주일 예배에 이렇게 나올 수 있도록 하나님 건강 주시고 믿음 주시고 환경 주시고 은혜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한 해 동안 이 강단을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심정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매주 마다 도전과 치유가 나는 그런 영광스러운 감각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일부 찬양에 우리가 아침 8시에 이렇게 영광스러운 찬양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축복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주님께 감사합시다. 늘 하나님께 잘 영광 돌리지만 오늘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 매주 마다 이렇게 할 수 있겠어요?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이 주 근데 내 마음대로 하세요. 2부도 하고 3부도 하고 4부도 다 하고 싶은데, 또 2부는 2부대로 3부는 3부대로 4부는 4부대로 은혜 주시길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담임 목사로서 담임 목회자로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덕담을 하나 하고 싶은데요. 뭐냐 하면 올해가 몇 년이죠? 24년 아저씨 무슨 해가 됐는지 이제 올해가 2024년, 2024년에 제가 좀 이런 생각이 좀 들었어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은 이 한 해 동안2024번의 감사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목사님, 그게 진짜 가능할까요? 가정에 하루에 6번씩 가수 하루에 6번씩 어떤 분은 이제 목사님 1년에 100번이라도 ‘감사’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 1년에 100번은 일주일에 두 번씩인데 일주일에 두 번 감사하는 사람과 하루에 6번 감사하는 사람은 삶의 퀄러티가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요. 그래도 안 믿어지시죠? 가능해요. 아침 점심 저녁 드시면서 기도하시면 감사하시면서 하루에 세 번이 진심으로 그러니까 올해 식사 기도는 옛날하고 달라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여러분들이 음식 자체가 달라질 것이에요. 그리고 식사 기도할 때도 시작할 때, 감사하시고 마칠 때 감사하시고, 그러면 하루에 6번 자동적으로 이 한해 완전히 달라지는 거에요. 알 사람은 알도다. 그리고 오늘 제목을 이제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감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냥 감사는 안 되고 기쁨에 감사하면 되죠. 그렇죠? 기쁨이 있어야 감사가 되지. 그래서 사실 제가 기쁨이 없는 그분은 그 부분이 아니라 제가 이 설교자를 붙이면서도 어마어마하게 부담이 됐어요. 이래 놓고 우리 의원들은 기뻐하지 못하고 나는 원래 죽는데 참 좀 어떻게 보면 리스크가 큰 위험이 내재된 그런 설교 제목인데 하여튼 오늘 이 예배를 마치고 나갈 때는 기쁨이 충만해서 나가셔야 됩니다. 다음에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기뻐할 수 있는가? 사실은 기쁨이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능력이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 또 어떻게 보면 감사가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 은혜가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 이해가 되시죠? 그런데 이게 과연 가능한가? 가능한 거예요. 왜 가능한가, 고린도후서 3장에 보면,

*고린도후서 3:6,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영이라는 것은 성령 성령은 우리를 다시 뭐예요? 살리는 것 살린다는 말은 우리를 능력 주시고 새롭게 하시고 이렇게 하시는 어떻게 살립니까? 성경에 보시면 먼저 사도행전 2장에 보니까 제일 먼저 오순절 성경 강의 일어났을 때, 우리 사도행전 2장 17절에 뭐라 하냐면,

*사도행전 2:17,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주의 영이 임하면 주의 영이 우리 몸에 임하면 우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다른 우리 아이들이 벌써 예언을 말씀을 깨닫는다. 그 말이에요. 너희 젊은이는 환상을 본다. 젊었을 때 꿈을 꾼다는 것이 그리고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리라. 그러니까 성년이나 나이 드신 분이나 상관없이 하늘나라 비전과 꿈을 갖게 된다 이 말이에요. 주의 영이 임하면 그 꿈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생길 수 있고 감사가 생길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이가 많아도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면 성령이 임하시면 모두가 다 뭐가 되는 거예요? 청년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 주시는 꿈을 꾸는 이 예배이기 때문에 여기는 뭐가 없다고요? 세대 차이가 없어요..

교회가 제가 한 번 그 얘기 드렸는데, 제가 이스라엘 대사관에 사바디너라고 금요일 날 초청을 받아 왔는데 대사관에 거실에 어떤 여자 분이 앉아 있는 거예요 앉아 있는데 보니까 중동 여자 분이에요. 얼굴도 좀 그렇고, 이스라엘 대사관 안에 이스라엘 대사님은 뭐냐 하면, 어떻게 중동 분이 사모님이시냐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모님 예멘 출신이시래요. 예멘이라는 나라 아시죠? 예멘이라는 출신이시랍니다. 어떻게 된 거냐 그러니까, 예멘 출신 그러니까 현 대사는 미국의 콜롬비아 대학 가고 뉴욕 출신 백인인데 웨베 출신하고 중동 출신도 거기하고 뉴욕 출신하고 이렇게 서로 잘 되신 거냐고 물었더니요. 그러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 어릴 때는 똑같은 토라로 교육받고 똑같은 성경 공부하고 똑같이 하니까, 컬처 계획도 없고, 신학의 교육도 같았다고 해요. 제가 어마어마한 정신을 받았어요. 그래서 제 마음에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문화 차이가 없게 하여 주십시오. 어떤 세대 차이를 갖게 하여 주십시오. 왜 동일한 말씀이니까요.

저는 꿈을 가져요. 앞으로 사랑의 교회 주일 학교 교육 정책, 사랑 글로벌 아카데미가 제대로 되면 전 세계가 다 통일될 수 있는 전 세계에 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750만과 한국에 있는 모든 주일학교 아이들 모두가 다 똑같은 커리큘럼 똑같은 신학, 사원 똑같은 문화, 똑같은 어떤 수준 똑같이 하면 어디 출신이든지 다 똑같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거기에 사는 아이들끼리 서로 결혼하면 한국 교회가 보존되는 것이 저는 좋은데 여러분이 보통이 아 그러면 한국 교회는 도전되는 것이에요. 이게 우리나라의 꿈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면 그러니까 성령이 역사하시는 곳에는 뭐가 있든 없다고요. 세대 차이가 없고, 여러분들 모두는 다 나이가 들어도 영적인 청년들이 되는 것이에요. 우리 자리에 계신 어른들 다 영적인 청년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어떻게 우리는 영적 청년의 기백을 끝까지 유지하지 않아요. 늙으면요. 웃지를 않아요. 늙으면 이게 웃음이 많이 사라져요. 무표정이에요. 청년들은 조그마한 웃고 까르르 웃고, 특별히 어린 아이들은 더 잘 웃고, 그러니까 오늘 이 예배 끝나고 난 다음에 우리 나이 드신 분들은 다 젊은이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몇 가지 좀 정리를 하겠습니다. 오늘 다시 한 번 기쁨이 없는 복음은 뭐가 아니라고요? 복음이 아니다.

제가 오늘 본문을 쓴 요한에 대해서 얘기하기를 먼저 우리 베드로는, 사도 베드로는 뭐든지 선봉장이고 개척자이고, 그다음 바울은 집을 세우는 지을 집 짓는 세우는 자이고, 요한은 어떻게 된다고 그랬죠? 사도는 치유하는 자라고 그랬어요. 제가 한 3주일 전에 말씀을 드렸는데 기억이 안 나십니까? 베드로는 개척자 선봉장이고 바울은 집을 짓는 자로 우리가 비유를 한다면, 사도 요한은 그물을 고치고 짓는 거에요. 사람들을 고치고 치유하는 사람인데, 그 당시에 요한일서를 기록한 이 배경은 에베소 지역에 있습니다. 에베소에서 이 기록이 에베소 교육 자체가 철저하지만 첫 사랑과 첫 기도를 이루는 그리고 이단이 바로 하고, 그런 상황에서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 말씀을 듣는 성도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듯이, 이건 에베소 교회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살아온 우리 교회도 동일하게 그리고 머리로만 하는 신앙이 아니라 지금 내 가슴에 불이 지르듯이... 그러면서 먼저 그렇게 되기 위하여 이 복음과 생명의 역사 복음에 대해서 입체적으로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데 오늘 뭐라고 돼 있습니까? 3절에,

*요한일서 1:3,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에게 전함은 우리와 뭐가 있게 하려니 사람들이 우리의 사임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그리스도 안에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림이라고 그랬어요. 여기 보니까 내가 아니라, 우리가 공동체가 사랑의 교회라는 이 공동체가 누리는 기쁨인데 주님과의 교재가 공동체에서 교재가 되면 무슨 일이 있느냐 이걸 이 교재의 은혜가 있을 때, 제가 교재 주님과의 교제 권에 들어갈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트랜스퍼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주님과의 교제를 누리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좋은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에베소서 1장 3절에 찬송하리로다.

*에베소서 1:3,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 했을 때, 그 신령한 복을 주신 결과가 뭐냐 자연스러운 결과가 뭐냐면 1장 4절에,

*요한일서 1:4,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저와 여러분에게 뭐가 있게 하기 위하여 기쁨이 충만하게 하신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죽하면 오죽하면, 시편 16편 11절에 똑같이 나오는데요.

*시편 16:11,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정리하겠습니다. 잠깐만요. 시편 16편을, 사도행전 2장에 성령 충만한 베드로가 다시 그대로 설교를 해가지고 반복을 하는데 저게 사도행전 2장도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저 말씀이 나와 있는데 뭐라고 말씀하는가, 주님과의 올바른 교재가 있고 우리의 복음이 입체적이 되고 우리의 복음의 능력이 있을 때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주님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 거기에 나타나는 중요한 현상 중에 하나가 주의 앞에는 뭐가 있고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손에는 뭐예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에 모든 것이 주님 앞에는 즐거움과 기쁨이 충만한 줄로 확신합니다. 이거는 뭡니까? 그게 없어요. 이거는 저기 뭡니까? 에누리도 없어요. 이거는 디스카운트도 안 돼요.

모든 온 모든 머리부터 발끝까지 있어요. 그러니까 주님의 말씀이 들어가는 곳마다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걸 깨닫고 난 다음에 빌립보서 4장에 보면요.

*빌립보서 4:1,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바울은 그리스도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나의 기쁨이며,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 이라는 이 표현을 함으로 말미암아 구체적으로 문법 적으로는요. 기쁨과 면류관은 카이라고 엔드로 연결되는 동격이에요. 그러니까 바울은 사랑하는 빌립보 교인들을 기쁨이라고 부르고 있는 거에요. 여러분, 빌립보 교우들은 어떻게 형성되었습니까? 빌립보 교회가? 빌립보 감옥의 간수, 루디아 또 류오디아 선두계, 류오디아 선두계, 이런 그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이름이 다 우리 나와 있는데 사실은 다시 빌립보 4장 1절에 다시 보면,

*빌립보서 4:1,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이름이 기쁨으로 바뀌는 거예요. 기쁨 간수, 기쁨은 류디아, 기쁨 선두계, 기쁨 류오디아, 그리고 그 그 기쁨과 면류관이 동격이 되는 것이에요. 깊이 들어가면 기쁨을 면류관처럼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실체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빌립보 교인들에게 바울은 그저 기쁨이 멋진 수사나 논리적인 이론이 아니요. 기쁨 자체로 기쁨 실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지난주는 여러분들이 이 한 해를 걸어갈 때에 지난주에는 여러분 놋과 철로 된 문빗장이 있었지만 매일매일 저녁에는 그것으로 보호받고 아침에는 강철 신발을 신고 나가라고 그랬잖아요.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는 그렇다면 신발은 강철 신발을 신고 나간다면, 오늘부터 여러분 머리에 모자와 머리는 머리는 뭐예요? 기쁨의 면류관, 기쁨의 모자를 쓰고 나가는 것이에요. 하늘을 날을 때 다 아침마다 기쁨의 모자를 쓰고, 또 신발 강철 신발을 신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주님이 신겨주시고 주님께서 씌워주신 그 기쁨을 가지고, 이 한해가 여러분들의 삶으로 연결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에요. 이게 저도 이걸 고민 좀 많이 했어요. 우리 교회 부모들이 어떻게 하면 매일 아침마다 머리에 기쁨에 관을 쓰고, 신발은 강철의 신발을 신고, 매일매일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제가 말하는 이 기쁨은 성령이 주시는 기쁨인 줄로 믿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기쁨은 오직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뭐예요? 희락이라. 기쁨은 이 성령이 역사에서 끊어질 수 없는 것이고, 그다음에 성령이 역사할 때, 성령의 열매 가운데 오직 성령의 열매는 첫 번째는 사랑이고, 두 번째는 뭐예요? 희락이라, 사랑과 희락 이 희락과 사랑과 기독교의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존속할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의 기쁨이 어떤 존재의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기쁨은 여기에 성경에 기록된 언어 정도가 아니고, 또 우리가 기대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늘 이걸 손으로 만지고 매일 매일 마다 쓰고 나갈 수 있는 실체가 될 수 있는 것이에요. 실체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안에서 경험하는 기쁨은 자가 발전된 고양된 감정 정도가 아니에요. 그냥 뭔가 없던 상태 그 정도가 아니에요. 여러분과 저의 신앙의 근본을 세우는 실체가 되는 것이에요. 기쁨은 복음의 열매이고 성령의 열매이고 하나님의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 앞에 주님의 모두에서 우리에게 트랜스퍼 되는데, 주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동선자(同船者)구의 기쁨으로 주님을 다,,, 그리고 이 기쁨은 2024년도 한 해를 매일매일 살아가는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우리를 살게 하는 능력으로서의 실체인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성도가 누리는 기쁨은 어떤 느낌 정도가 아니에요? 현실에서 실제적으로 우리 자신을 회복시키고 살아가는 강력한 힘으로서의 실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거는 구약시대 때부터 우리를 너무나 잘 알지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은 너희의 뭐예요? 힘이라, The joy of the Lord! 하나님과 하나님을 통하여 얻는 이 기쁨이 우리의 삶에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안토니 캄폴로’ 라는 크리스천 사회학자는 ‘하나님의 나라는 기쁨의 잔치다.’ 그분은 필라델피아 빈촌에 들어가고 정말 어려운 사람들 막 도우면서 고생하고 있잖아요. 빈자들을 섬기는 그런 분이에요. 그런데 만약에 그분이 인상 확 바뀌면서 왜 다른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들은 교회가 말이지 뭐 화려하고 이러면서 왜 영원한 어려운 사람 안 섬기냐, 그런 것을 뭐라 삿대질하면서 자기가 그렇게 하는 사람이 아니고, 기쁨이 충만해 아주 자연스럽게, 그는 그게 내 역할이 있는 거고, 나는 내 역할이 있다 면서 기쁨으로 빈자들을 섬기는 거예요.

이해가 되십니까? 무슨 말인지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잔칫집이라는 것이 그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잔치 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면 제가 목사님 이 기쁨은 예수님 처음 믿을 때 기쁨만을 얘기합니까? NO! 예수 믿고 나서도 수많은 고통과 고난의 연속에 있어도 우리가 기뻐한 것이 이게 바울이 그렇게 고백하는 거예요. 고린도후서 12장 9절 너무 잘 하는 말씀 다 함께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2:9,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지금 어떤 순간입니까? 바울이 바울에게 이런 가시가 있어가지고,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어요. 제발 다시 없애달라고요. 그런데 1장 9절은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지기 때문에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은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한 자랑이라. 약하고 힘들고 어렵고 문제된 것들도 오히려 기쁨을 앗아갈 수가 없고, 오히려 그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력과 박해와 어려움을 기뻐하며 그 기쁨이 나를 온전하게 하고, 강하게 하고 내 삶을 풍성하다는 것을 확신 있게 선포하는 것이에요. 약해도 약한 가운데서도 하나님 사랑하고 약한 가운데서도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니까, 기쁨을 저는 확신하는 게 하나 있어요. 뭐냐면요. 하나님이 주시는 거는 나쁜 게 없어요. 다시요. 철저한 믿어요. 하나님이 주시는 건 나쁜 게 없어요.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비에게 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들에게 살짝 믿을 거 하나님이 주신 거는 나쁜 게 없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주신 이가. 우리에게 모든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니, 그러니까 제가 어려울수록 설렌다 그랬잖아요? 그러면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기쁨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하나님 삶의 원칙인 줄 믿으셔야 되기를 바랍니다. 만일 성도가 누리는 기쁨이 그저 고취된 감성이나, 수사적 표현이라면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변화무쌍한 새해 환경에서 변치 않는 확고한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냥 적당한 감정, 그렇다면 그게 어떻게 환경을 초월하여 삶을 회복시키고 움직이는 힘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이 기쁨이 그리스도의 적당한 감정이라면 그게 어떻게 한 해 내내 시련과 고통조차도 삶의 풍성한 자원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것이 적당한 감정이라면 이 땅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기초석을 우리가 기쁨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비 콕스라는 좀 자유주의 신학자고 이렇게 이분이 사신 신학이라고 그분 강의를 한번 들어봤는데요. 제가 그 과목을 듣다가 무릎을 친 내용이 있어요.

이 하바드에 있는 하비 콕스는 유명한 책이 있어요. 지금도 살아 계시고, 신학을 하는 거는 하비 콕스의 사진 신학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근데 그분이 리서치를 한 거예요. 학자니까, 기독교 예배에서 그다음에 기독교 신앙에서, 기쁨의 축제성이 사라진 다음부터 하나님의 죽음의 신앙이 나왔다 그랬어요. 저는 너무 어려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쉽게 말하면 기독교의 기쁨의 실체가 사라지고 난 다음부터 실제로는 교회 내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이 능력이 사라지고 난 다음부터 죽음의 신학, 하나님이 죽었던 사신 신학이라고 해요. 사랑하는 우리 영 가족 여러분들의 기쁨의 은혜 때문에 복음의 신앙이 다시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기쁨이 예수님이 갖고 계시는 것, 주님이 우리에게 세워주신 면류관이 우리의 삶에 2024년의 실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게 있어야 여러분들을 흔들 때 붙들어주고 넘어질 때 이렇게 세워주고, 고통으로 찢겨진 가슴을 떼워 줄 수 있도록 다른 길이 없어요. 남은 자 올해는 제가 실체적으로 우리 성도들과 함께 계속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그것이 뭐냐 하면 여러분들의 장래가 뭐냐 여러분 장래는 제가 대가는 아니지만 지금 앉아 있는 여러분들의 얼굴 표정이 여러분들의 장래이에요. 무표정이 장래가 뭐가 될 겁니다. 여러분들의 얼굴 표정은 설레이고 기쁨의 면류관을 쓰고 예수님 자체가 기쁨이기 때문에 내가 주님과 영적 교재와 주님의 은혜가 있을 때, 주님의 그 은혜가 내게도 최소 된다고 하고, 주님의 기쁨이 내게 들어와서 변소 별로 주님의 기쁨이 내게 들어왔을 때, 거기서 갖는 얼굴 표정, 그게 여러분들의 장래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죽을 때가 우리의 삶에 피크가 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데 여러분과 저는 바울이 고백한 대로 주님의 기쁨이요. 면류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오늘 여기 여기 1 2 3층니까, 우리 모든 중직자들 다 여러분들 이름이 저는 오 기쁨이에요. 오 기쁨, 제 이름은 기쁨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가요. 내 마음이 너무 가슴 찌릿찌릿하고 감사한 거에요. 이래도 안 되는 분들은 오늘 여기서 안 깨지면 희망이 없어요.

*시편 51:8,
8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꺾어진 뼈는 극심한 고통과 절망적 상태를 보여주는 거에요. 꺾어진 뼈는 고통의 소리를 말할 뿐이지 결코 즐거움의 노래를 부를 수가 없어요. 우리가 그 스스로 오실 때는 다윗이 범죄하고 난 다음에 책망 받고 눈물로 회개하는 시대 아닙니까? 가슴 찢어지는 회개기도 가운데 오죽하면 주의 성령을 내 곁에 거두지 말아달라고 그렇게 비탄을 열심을 하고 있는데 오늘 8절에 다윗은 주님 그래도 주께서 꺾으신 자들도 즐거워하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합니다. 이게 없으면 살 수가 없어요. 살에 난 상처도 고통스럽지만 뼈가 꺾어졌다. 뼈가 뭉개질 정도로 부러질 때, 오는 고통은 극심한 겁니다. 이 고통으로 밤이나 낮이나 편할 수가 없습니다. 뼈 하나가 부러져도 고통스럽겠는데 오늘 주께서 꺾어진 뼈들도 복수 여러 개의 뼈들이 부러져 있는 상태입니다.

다윗이 더 이상 당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그런데 지금 다윗은 고통 중에 있습니다.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과 회복될 증거가 즐거워하게 바라고, 회개의 증거가 뭡니까? 즐거움이에요. 이 수준을 저와 여러분이 올라가야 돼요. 한국에 잘난 사람들 교회 향하여 선지자 들고 하는 사람들, 홰개 하라, 회개하라 하는데, 그러면서 그 얼굴에는 기쁨이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 회개의 수준에서 회개에 진짜 올라가면 즐거운 일이에요. 진짜 회개하면, 즐거운 게 있는 거예요. 사랑하는 교회 모든 중직 자들과 모든 교육자들과 직원들, 오늘 나오신 모든 분들 여러분, 우리가 회개조차도 즐거움으로 승화돼야 되는 것이에요.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뭐 하게 해달라고요? 우리 가운데 죄로 인해서 세상에 걸친 돌풍으로 인해서, 뼈가 꺾어지는 고통 속 분들이 있다면, 항암 치료로 고통 가운데 계신 분들이 있다면, 그것이 즐거워하게 하여 주십시오. 인간관계에서, 재정에서, 하고 있는 일에서 얻어진 수많은 영혼들을 즐거움으로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기도를 다시 주목하십시오. 다윗은 꺾어진 뼈에 고통이 잦아들고 잠잠해져서 편안해지기를 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 꺾어진 뼈들이 무감각하게 되어가지고 고통을 덜 느끼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더 높은 수준, 주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여 주십시오. 기가 막힌 차원이에요. 아마 우리 생애에 회개가, 회개의 가장 강력한 표현은 즐거움이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을 거예요. 저는 이 말씀을 듣고, 아, 회개와 성숙과 주님 앞에서의 자세를 제대로 한 사람은 즐거움이 넘친다. 여러분 상황을 제가 다 모릅니다만 심히 고통하고 있습니까? 그런 고통 가운데 어떤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까? 고통이 없기를 기도하십니까? 고통을 못 느끼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한 단계 더 올라가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으로, 자신의 잘못으로 겪는 고통 중에서도 꺾으신 뼈도 즐거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합니다. 불을 지른 뼈들이 하나님을 기쁨으로 노래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기쁨이 있어야, 기쁨이 있는 복음이 되는 것이 이것이 진짜 복음이 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찬송이라는 거는 꺾으신 뼈들이 즐거워하는 거예요. 여러분 다시오. 하나님이 주신 거 나쁜 거 있어요. 없어요. 아마 여러분 고통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 주신 건 나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꺾으신 뼈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고 기뻐하면 여러분 그 순간 그 환경이 여러분 인생의 베스트가 될 거예요.

골든타임이 될 거에요. 최고의 기쁨이에요. 우리도 우리 교회도 지난 시간을 보면요. 우리가 어려울 때가 최고 시간이에요. 나비처럼 그게 최고의 시간이라는 것이에요. 주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기쁨이 회복되며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지 심지어 다윗처럼 꺾어진 뼈들도 심히 고통 중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는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새초부터 새말까지 우리는 한 번도 걸어가 보지 못한 설렘, 미담의 길을 걸을 때 예기치 않은 일들로 인생의 뼈들이 부러질 정도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한 번 이 강력한 복음에 선포를 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주여, 부러지는 은혜도 즐거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이때 복음의 능력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이 없는 복음은 복은 아닙니다. 이 한해를 즐거워할 수 있도록 그 수준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입혀주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제가 주중에 우리 교회 집사님께 이 메일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2033-50 비전을 이루어 가려는데 전도도 해야 되고, 복음 선포도 해야 되고, 우리가 북한 사역, 북한 하루아침에도 그렇게 해가지고 앞으로 10년에 우리 민족의 50%가 구원받게 하여 주십시오. 그런데 진짜 끝까지 뼈들이 뭘까? 제 마음에 인적이 아들, 영적 고아들, 한국에 지금 고아들이 너무 많아요. 미혼모들 아이들도 그렇고, 꺾어진 뼈들이 많아요. 그리고 영적인 고아들, 저는 어릴 때 고아원 옆에 제가 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교호 앞에 그 고아원이 있어요. 우리 고아들 그 얼굴을 나는 늘 눈빛이 나도 들을 수가 없어요. 걔네들은 부모의 사랑을 못 받으니까, 그 사랑하는 눈빛이 그러니까 기쁨이 안 생기는 거예요. 기쁨이 없는 빛이 꺾어진 거에요. 그리고 영적인 고아들 젊은이들 가운데 아이들 가운데 심한 것이 아동학대도 있고 이런 거 있지만 OECD 가입국 가운데서 우리 청소년 가운데 자살률 1위, 고독사도 1위에요.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보다도 자살로 사망한 사람이 더 많아요. 그래서 고아를 긍휼히 여기시고 꺾으실 때도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이 육적인 고아, 영적인 고아, 여기 자녀분들이 없는 분들은 혹시 은혜가 젊은 분들 가운데 입양할 수 있으면 입양하면 너무 좋겠어요. 그럴 때 그 인간적으로 생기는 입양해 가지고 생기는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 안에 주시는 이 영광스러운 복음의 기쁨이 충분하게 될 거예요.

미국에 이에나 버거가 있습니다. 1948년도에 캘리포니아 첫 번째 헴버거 가게를 열었습니다. 제가 미국 가면 꼭 그 가게를 들립니다. 드라이브 쓰루(Drive Thru)로, 몇 사람이 따라올 것을 거의 드라이브 쓰루로 이렇게 받는데 그 주인이 신실한 크리스천입니다. 이네라 버거의 기업 정신이 뭐냐면요. 이네라 버거를 사서 가게 문을 열고 나갈 때는 행복하고 기뻐해야 한다. 이에나 버거 이걸 통해서 사람들이 행복하고 기뻐한다. 엄청나게 줄을 섭니다. 그는 식사를 점심시간 때면요. 줄을 서거 자동차가 십 대가 줄 서 있어요. 거기서 감자튀김을 주문하는 싱싱한 감자를 그 자리에서 잘라갖고 튀겨주고 엄청나게 맛있습니다. 근데요 내가 기가 차요. 사이 모르는 사람 모르는 거예요. 그 프렌차이점, 감자튀김 박스 밑에다가 뭘 써놨는지 압니까? 잠언 24장 16절입니다. 시작

*잠언24:16,
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햄버거 프로파일 밑에다가 그리고 햄버거 봉지 안에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써놨어요.
*요한복음 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한국에서 안 써놓고 팔면 그거 사기예요. 이 햄버거 하나를 팔아도 이거 하나 갖고 기쁨이 있기를 바란다고 해요. 그러면 우리는 복음을 바꿔야 돼요. 우리 사랑의 교회 많은 제자들을 가지고 수많은 영적인 훈련들이 이런 말씀을 가지고 다른 영혼을 섬길 수 있도록 준비가 돼 있는데 여러분 때문에 다른 영혼의 기쁨이 없다면 이건 사기예요.

여러분들 은혜 오늘 우리 한국교회 우리 교회 성도들 주위에 수많은 기쁨의 능력이 충만해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7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다시 기쁨이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닌 것입니다. 꺾어진 뼈들도 즐거워하는 이 복음을 가지고 신발은 뭘 신고요? 모자는 뭘 쓰고요? 기쁨의 면류관, 뚜벅뚜벅 걸어가면 2천 24번의 감사가 되는 것이에요. 그 어떤 해보다도 영광스럽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의 은혜를 주시를 믿습니다. 할렐루야!

♬매일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치네. 더욱 섬길수록 더 구한 주님!!!!!~~~~
다음에 제가 오늘 오전은 찬양을 안 했어요. 다음 주에 하겠습니다.

♣요약
주님의 영이 임하여서 하루 여섯 번이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자로 예배드리고, 불붙는 가슴으로 영적 청년의 기백을 유지하는 인생으로 살아가야 한다. 날마다 머리에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의 면류관을 쓰고, 발에는 강철신발을 신고 걸어갈 때, 나의 꺾어진 뼈들도 즐겁도록 기쁨과 감사로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육신의 고아, 영적인 고아들을 기쁨으로 섬길 때, 하나님의 모든 좋은 것을 내려받는 은혜의 한 해가 되기를 간구하자.
-우리는 주님과의 교재를 더한 기쁨이 우리에게 전수되고, 기쁨이 우리에게 와 닿으면 꺾어진 뼈 같은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꺾어진 뼈들도 기뻐하게 하시는 복음의 능력을 통하여 날마다 승리하는 2024년 되어, 이 땅에 육신의 고아도, 영적인 고아도, 경제적인 아픔이나 질병의 고통을 끌고 있는 인생들도 주님께서 주신 기쁨으로, 복음으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나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믿고,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우리에게 충만히 주실 줄로 확신하며, 기쁨의 원천이신 주님과 진심으로 우리는 교제하면서 주님의 가장 귀한 모든 것을 풍성히 받아들이는 자로 기쁨의 복음을 가지고 헌신하는 올해를 만들어가야 한다.













※  위 영상은 2부예배입니다. 1부 예배와 약간의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설교 내용 맥락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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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1월 8일 (828)

1. 2024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얼마일까?
① 9160원 ② 9620원
③ 9860원 ④ 1만 원
 
2. 다음 중 나라 살림의 건전성과 지속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는?
① 경상수지 ② 상품수지
③ 본원소득수지 ④ 관리재정수지

3. 다음 중 경제범죄에 해당하며 법적으로 처벌 대상이 되는 행위를 고르면?
① 감가상각 ② 무상감자
③ 유상증자 ④ 분식회계

4. 이 나라가 지난달 석유수출국기구(OPEC) 탈퇴를 선언했다. 아프리카 남서부에 있고 수도는 루안다인 이 나라는?
① 가봉
② 앙골라
③ 리비아
④ 알제리

5. 보험사가 거둬들인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의 비율이다. 수치가 높아지면 보험료 인상 요인이 되는 이 수치는?
① 기준금리 ② 지급준비율
③ 손해율 ④ 자기자본이익률

6. 주가가 일정 범위 안에서 등락을 거듭할 때 ‘이것’에 갇혔다고 표현한다. 이것에 가장 적합한 말은?
① 데드크로스 ② 박스권
③ 1월 효과 ④ 베어마켓

7.다음 펀드 중 수익률이 코스피지수, 나스닥지수 등 주가지수와 거의 똑같이 움직이도록 설계된 투자상품은?
① 인덱스펀드 ② 헤지펀드
③ 사모펀드 ④ 매칭펀드

8. 다음 중 ‘물가’와 관련된 통계 지표와 가장 거리가 먼 것은?
① PCE
② NIM
③ CPI
④ PPI


[커버스토리] '개발이냐, 규제냐'…갈라지는 AI 진영


그래픽=추덕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올해는 인공지능(AI)이 진정한 시작을 알리는 해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4 세계대전망>에서 ‘현실로 다가온 AI’를 중요한 흐름으로 꼽았죠. 9일부터 12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최첨단 기술의 경연장 소비자가전쇼(CES)도 온통 AI로 도배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CES 기자회견의 표어를 ‘모두를 위한 AI(AI for All)’로 정했고, 인텔은 ‘모든 곳에 AI(AI Everywhere)’를 내세웠습니다.

AI로 사람들의 생활과 산업현장에서 도움을 받겠지만 꼭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벌써부터 AI의 ‘일자리 습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작년 IBM, T모바일, 드롭박스 등 테크기업들이 회계·인사 등 지원 부서 인력의 30%까지 AI로 대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인류에게 새로운 미래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는 AI가 오히려 재앙이 될지 모를 일입니다.

이러다 보니 빅테크의 본고장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선 AI 개발을 자유롭게 허용할 것이냐, 인류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규제할 것이냐를 놓고 일대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작년 말 샘 올트먼 오픈AI CEO의 축출과 복귀도 이런 갈등에서 시작된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끕니다. ‘AI 개발 감속이냐, 가속이냐’를 둘러싼 논쟁의 철학적 배경과 견지해야 할 관점을 4, 5면에서 살펴봤습니다.

"빨리 개발 안하면 죽는다" vs "속도 조절해야"
AI 낙관론과 파멸론, 종교전쟁 방불케 해요

게티이미지뱅크

인공지능(AI) 개발 속도를 둘러싼 미국 내 개발자 간 논쟁은 먼저 소셜미디어를 달군 뒤, 신문 등에서 경쟁적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도 AI 개발 예찬론자인 베프 제이조스(소셜미디어 X의 활동명)가 X에 “한국에서 돌아오는 길”이라며 인공위성에서 찍은 한반도의 밤 모습을 올려 화제가 됐죠. 불빛 찬란한 한국에는 ‘e/acc(Effective Accelerationism, 효과적 가속주의)’란 글자를, 캄캄한 북녘 땅엔 ‘Decel(Decelerationism, 감속주의)’이란 약어를 붙였습니다. AI 개발을 통제(감속)하면 북한처럼 미개한 사회로 전락하고, 자유롭게 허용하면 한국처럼 문명이 꽃필 거라는 주장입니다. AI의 자유로운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거죠.

오픈AI CEO 갈등으로 비화

현재 AI 개발자들은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앞서 얘기한 효과적 가속주의와 효과적 이타주의(EA·Effective Altruism)입니다. 효과적 가속주의란 용어는 효과적 이타주의를 패러디해 만든 것 같습니다.

효과적 가속주의의 요지는 기술 발전은 무엇이든 세상에 이롭기 때문에 모든 규제와 안전장치를 없애야 한다는 겁니다. AI의 해로움보다 이점이 훨씬 많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가속주의자들은 모임에서도 “개발하지 않으면 죽는다(Accelerate or Die)” “AI를 자유롭게(Keep AI Open)”라고 외칩니다. 생성AI 챗GPT 개발 회사로 유명한 오픈AI의 샘 올트먼이 이 진영에 속해 있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베프 제이조스를 X에서 팔로(follow)하는 중입니다.

반면 효과적 이타주의자들은 AI 규제가 먼저라고 주장합니다. 인류에게 이익이 되도록 AI를 개발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고, 그게 바로 21세기 이타주의라는 거죠. 이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AI를 개발해야 하고, 이를 위한 기술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AI 감속주의’라고도 부릅니다. 작년 전 세계 과학자 1000여 명이 세계의 모든 AI 연구소에 “GPT4(최신 챗GPT)보다 더 강력한 AI 개발을 최소 6개월간 중단하라”고 촉구한 게 그런 목소리입니다. 작년 6월 유럽연합(EU)이 위험성이 높은 AI의 개발을 규제하는 법안을 마련하기도 했죠.

양 진영의 주장은 결국 ‘파멸론-이타주의(감속주의)-기술 통제주의’와 ‘낙관론-가속주의-기술 유토피아주의’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논쟁은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가 “종교 분립 전쟁과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뜨겁습니다. 작년 말 오픈AI 이사회가 샘 올트먼 CEO를 축출하려 한 사건도 이런 대립에서 비롯됐습니다. 오픈AI 공동 창업자이자 수석 과학자인 일리야 수츠케베르를 비롯해 오픈AI 이사회 멤버들은 ‘착한 AI’를 만들려는 감속주의자가 많았는데, 샘 올트먼은 AI 칩 개발과 투자 유치 등으로 회사의 빠른 성장을 원했다는 겁니다. 결국 직원들의 지지를 받은 샘 올트먼이 CEO로 복귀하고 일부 이사들이 물갈이되면서 오픈AI 사태는 일단락됐는데요. 이를 두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두머(Doomer, 파멸론자)의 패배”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기술개발, 과연 통제할 수 있나

과학기술의 발전이 과연 인류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을까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AI가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해 인간에게 대안과 선택지를 주고, 인간이 그것 가운데 하나를 승인하고 AI가 실행하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AI가 고도로 발전해 자신의 판단으로 먼저 실행을 하고 인간에게 통보만 하거나, 아예 인간을 배제해버린다면 어떤 끔찍한 결과가 초래될지 알 수 없습니다. 생성AI 스타트업인 미국 앤트로픽이란 회사는 이런 AI의 부작용을 피하려고 챗봇 출시를 미뤘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AI에 대한 두려움이 개발자들 사이에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인간 이성이 바라는 대로 AI를 통제할 수 있을까요? 인류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 결정이 혹여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지는 않을까요? 의문은 여전히 남게 됩니다.

NIE 포인트

1. 생성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서로 얘기를 나눠보자.
2. 오픈AI CEO 갈등 사태의 전말에 대해 알아보자.
3. 기술 파멸론과 낙관론이 논쟁을 벌인 과거 사례를 찾아보자.


'효과적 이타주의' 인간 이성 강조하지만
독선과 이율배반에 빠질 위험성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지난달 31일 게시한 한반도 위성 사진. /머스크 엑스(X) 

AI 개발 속도 조절론의 철학적 배경인 ‘효과적 이타주의(EAEffective Altruism)’에 대해 좀 더 알아볼까요? 요즘 이 말을 모르면 미국 실리콘밸리의 돌아가는 사정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EA의 뿌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호주 윤리학자 피터 싱어가 당시 사회운동의 하나로 주창한 EA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합리적 방법 찾는 EA
‘이타주의’ 하면 먼저 기부행위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뜻으로 시작한 기부가 꼭 좋은 결과를 낳는 건 아닙니다. 아프리카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한다며 세계 각지에서 모금한 돈으로 ‘플레이 펌프’란 기구를 제공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 기구는 아이들이 놀이를 하면서 물도 길어 올릴 수 있도록 만든 건데요, 처음엔 신선하고 그럴듯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금방 싫증을 내면서 동력원을 얻지 못했고, 수동 펌프보다도 못한 성능 때문에 프로젝트는 실패하고 맙니다. 남을 돕고자 하는 이타적인 행동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게 하려면 ‘이성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줍니다.

저개발국의 빈곤, 여성 인권 침해, 해양쓰레기 등 인류 공동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게 EA의 출발입니다. EA를 이론적으로 정립한 윌리엄 맥어스킬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EA를 ‘타당한 근거와 추론에 기반해 다른 사람을 돕는 최고의 방법을 찾고, 이에 기초해 행동을 취할 것을 강조하는 철학이자 사회운동’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돈 버는 수단 삼았다는 비판도
그런데 이렇게 목표가 고상한 EA를 이기적 탐욕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 쓰는 사람들이 생겨나 문제입니다. ‘효과성’을 강조하는 EA는 눈앞의 소액 기부에 신경 쓰기보다는 큰돈을 기부할 수 있도록 돈을 많이 벌 궁리를 하라는 얘기로 들릴 수 있어요. 또 능력이 있다면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기보다 급여가 많은 직업을 선택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기부를 많이 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가르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맥어스킬 교수는 어떤 직종이 가장 선(善)한 일에 기여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사람들에게 무료로 직업 상담을 해주는 8만시간(80000hours)이란 기관을 설립하기도 합니다.

이런 맹점을 파고든 대표적인 사람이 지금은 파산한 암호화폐거래소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입니다. 그는 돈을 많이 벌어 더 많이 기부하겠다고 공언하면서 FTX 투자를 유치하고 다녔죠. 암호화폐거래소 창업자라면 자유로운 기술 개발을 주창할 것 같은데, 자신의 선한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기술을 적절히 통제하려는 EA를 지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부자들이나 지적 능력이 뛰어난 개발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EA를 수단으로 삼는다는 비판이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

자신의 판단만이 인류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독선도 문제입니다. 샘 올트먼 CEO를 축출하려 한 오픈AI의 이사회 멤버들이 그런 경우입니다. 마치 영화 ‘어벤져스’에서 혹성의 자원이 모자란다며 생명의 절반을 말살하려는 악당 타노스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인간 초월할 AI 초지능 나올 것
‘기술 통제냐, 개발 가속이냐’의 논쟁은 AI 출현 이전에도 종종 있었습니다. 원자력·핵무기 개발, 유전자가위 기술 등 생명공학 기술 개발, 인간과 독립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율주행 기술 개발 등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일었지요. 결국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좀 더 높일 수 있도록 과학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야 하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인 겁니다. 그런데 이런 두 가지 관점과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접근 자세가 중요하겠지요. AI가 수십 년 내에 인간의 일반 지능을 넘어 초지능(super intelligence)을 지니게 될 것이란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게 중요해 보입니다.

NIE 포인트

1. 효과적 이타주의와 관련한 피터 싱어의 주장을 알아보자.
2. 효과적 이타주의의 장단점에 대해 토론해보자.
3. AI 개발 가속과 감속 중 무엇이 옳은지 토론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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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01월 04일)
제목: "심령이 가난한 자는"
말씀: 마태복음 5:3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찬양대

설교자: 임상규 부목사님
ㅡㅡㅡㅡㅡ

*마태복음 5:3,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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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우리의 인생의 주관자 되시며 믿음의 새날을 여시는 하나님 아버지 2024년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사는 날 동안 능력 있게 하시고 날마다 주님과 교통하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이 수요 저녁 기도에 모인 모든 영 가족들을 기억하사 삶의 모든 눈물과 고통을 하나님께 아뢰며 나아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경험하는 복된 주님의 백성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기를 원하오니 주의 성령으로 강건하사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신비를 깨닫는 거룩한 시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생명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의 새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는 수요 저녁 기도회에 오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수요 저녁 기도회를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회복을 넘어 부흥의 실체를 경험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5장 3절 말씀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신약 성경 5페이지입니다. 마태복음 5장 3절 1절의 말씀을 저와 함께 합독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아멘 새해가 시작되면 우리는 이렇게 인사를 나눕니다.

어떻게 인사하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 한번 양옆으로 이렇게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우리 모든 성도님들 가운데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인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복 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복을 받아야 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2024년의 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께 어떤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믿음의 복이요? 네 우리가 많은 복들을 아마 원할 것인데요. 오늘 우리가 한 번 더 생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복을 받길 원하는 것 그 이상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시다. 라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려 하신다.”-성 어거스틴-
-하나님께서는요.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려 하신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두 손은 언제나 가득 차 있어서 그 좋은 것들을 받지 못한다. 라고 어거스티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기를 원하시는데 그것도 언제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이 놀라운 축복 언제나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복을 주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과연 이 복을 얼마만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 일컬어지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전하셨던 그 첫 번째 메시지, 그 가르침 속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즉 성도의 특성과 성도의 복이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2024년을 시작하는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복으로 우리 모두 충만해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팔복의 구조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복을 받는다. 이런 이러한 복을 받는다. 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심령을 가난하게 해야 해.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애통해야 해.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의외의 줄이고 목이 말라야 해. 라고 말하는 것이죠. 마치 도덕적인 메시지처럼 이 팔복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팔복은 이렇게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장 놀라운 축복이 무엇입니까? 바로 구원의 은혜입니다. 구원의 은혜는 우리의 조건을 따라서 우리의 위치를 따라서 우리의 어떠함에 따라서 우리 가운데 주신 것입니까? 아니죠. 하나님께서 주신 이 복은 우리의 공로와 우리의 상태와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우리에게 부어주신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요. 은혜로 아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입었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서 살아가는 자구나! 라는 것을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이 복을 누리는 자는요. 삶속에 새로운 질서가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저주와 심판이 왕 노릇하였는데 이제는 내 삶에 아무런 조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은혜가 새로운 질서로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팔복은요 너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살아야 복을 받는다. 라는 그런 메시지가 아닙니다. 도리어 팔복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아는 자들이 이미 이러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상태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요. 이제 이 복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성도의 삶 삶속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그 놀라운 은혜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우리 가운데 보여주는 것이죠. 성도가 어떠한 자인지를 보여주는 그 첫 번째 속성으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다시 한 번 마태복음 5장 3절의 말씀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3,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첫 번째 속성으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함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성도이다. 심령이 가난함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어떤 자들입니까? 바로 심령의 내 마음속의 가난함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부분을 잘못 해석하여 이 세상에 가난하게 살아야 영적으로 부요하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이 된다.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돈이 없는 가난, 집이 없는 가난, 명예가 없는 가난이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도대체 심령의 가난함이란 무엇일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령의 가난함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 하나님 제가 아무리 저의 모습을 살펴보아도 이 모든 것은 저의 실력과 저의 소유입니다. 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는 상태, 그 상태를 심령이 가난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시선이 우리에게 너무 깊숙히 뿌리 박혀져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세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부자가 되고,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고, 좋은 대학 가고, 시집 장가 잘 가고, 무병장수하는 것이 복인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심령이 가난함이라는 것은요.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 마음, 바로 이 마음이 예수님께서는 복되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의 모습, 나의 마음을 살펴보고 계십니까? 혹 신앙생활을 하면서 위축될 때가 있잖아요. 또 때때로는 자긍할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위축될 때, 반대로 작용할 때 그렇게 나오는 결과가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본 결과입니까?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기준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아 이 정도면 나도 괜찮네. 이 정도면 나도 좀 낫지. 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으로 내 마음이 요동치고 계십니까? 사람들이 칭찬한다고 해서 우쭐해지고, 사람들이 비난한다고 해서 위축되는 것,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심령의 가난함은요. 오직 하나님의 눈으로, 나의 깊은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밖에 의지할 것이 없는 마음,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마음을 갖는 것. 그 마음이 심령이 가난한 마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정말로 성도이십니까? 성도는요. 다른 그 무엇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정말로 심령의 가난함이 있는가,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 저는 하나님 보시기에 자랑할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 외에 다른 그 무엇으로 내 삶 가운데 만족할 것이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요. 참 의지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입술로는 이렇게 말할지 몰라요. 하나님 제가 주님을 의지해요. 저는 주님만 의지해요. 저는 주님의 평가가 제일 중요해요. 라고 우리가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곰곰히 되돌아보면 예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내가 이루어 놓은 성과, 나의 남편, 나의 아내, 나의 자녀들 의지할 것이 참 많습니다. 나는 이 정도면 되겠지. 라는 마음이 우리 안에 가득한 거예요. 우리 안에 나의 의와 나의 요구와 나의 피로가 가득하니까 그곳에 하나님이 거할 곳이 없게 된 것입니다.


※제가 전도사 시절에 조금 고생을 했습니다. 믿어주세요. 서울의 머물 곳이 없었기 때문에 금 토 주일을 교회 지하에 칙칙한 유치부 예배 실에서 3년을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겨울날이 됐습니다. 가장 추운 날이었는데 마침 보일러가 고장이 나버린 겁니다. 유치부실에 있던 이불 대여섯 개를 다 꺼내어서 몸을 둘둘 싸고 잠을 자려는데 잠이 안 오는 것입니다. 너무 추워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왜 저를 이렇게 고생시킵니까?” 편안하게 대전에 있었으면 좋았을걸. 그때 주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시더라고요. 상규야 나는 ‘이 땅에 있을 때 머리 둘 곳도 없었다.’ 그 이후로는 하나님 앞에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러서 다른 교회로 옮기게 됐죠. 그리고 2년이 흘러 목사 한수가 목사 안수를 받은 이후에, 다시 전도사 시절에 섬겼던 그 교회에서 전임 목사로 불러주셨습니다. 전임 목사가 되니까 사택을 제공해 주십니다. 너무나도 편안하고 혼자 지내기에는 너무 넓은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저의 마음에 전도사 시절에 가졌던 가난한 마음이 사라지는 거예요. 이 집이 내 집도 아닌데, 이제 누워 올 곳이 편하고 씻을 것이 편하고, 내가 편안하게 머물 곳이 생기니까, 제 마음 가운데 가난한 마음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이 마음이 든 이후에 하나님 앞에 이렇게 결정을 했습니다. 주님 저 에어컨 달지 않겠습니다. 선풍기도 없이 살도록 하겠습니다. 네 웃기시죠. 왜 그랬냐면요. 제 마음이 부해질까 봐 가난한 마음을 놓치게 될까 봐 그렇게 살았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요. 자기 자신이 의존할 만한 것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자입니다. 자기 안에 신뢰할 만한 것이 없어서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무능력을 경험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나의 나 될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자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릴 때,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장면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처음 예수님 만났을 때, 정말로 그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이 깨어졌을 때, 그때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가난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 라는 그 마음, 그것이 바로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의 고백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안에 이 은혜와 이 감격이 사라진 거예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반응이 사라져 버린 거예요. 우리가 사는 사회는요. 사람들을 참 다양한 것으로 평가를 내립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학벌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어느 대학 나왔네. 무엇을 공부했네. 로 평가합니다. 신분을 가지고도 평가를 하죠. 어느 집안이고 어느 회사를 다니네. 라는 것으로 그 사람을 평가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사람이 성취한 것으로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이런 업적을 냈고 이런 성공을 거두었네. 훌륭하네. 저 사람은 복을 받았네. 학벌로 신분으로 성공으로 복을 받았는지를 규정하는 것이죠. 그런데 참 무서운 것이 이 세상의 방식이 우리 성도들의 삶속에도 깊숙이 스며들었다. 라는 것이죠.

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요. 이 세상의 평가로 결정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회의 경향과 사회의 평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줄 아는 그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고 심령이 가난한 자인 것이죠. 다시 한 번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마음 가운데 이 가난한 마음을 놓쳐버렸는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가난함을 잃어버린 것일까? 우리는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고민해 보아야 될 것입니다. 이 마태복음 5장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이 표현 속에 이 가난함이라는 이 단어를 헬라어 ‘푸토코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푸토코스라는 단어에는 중요한 두 가지의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푸토코스’는 가난함인데요. 어떤 가난함이냐면 바로 다른 누군가가 지원해 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가난함입니다. 누군가가 이 사람을 도와주지 않으면 이 사람은 결단코 살아갈 수 없는 것이에요. 절대적 의존을 말하는 가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하는 이 심령의 가난함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요. 우리의 심령이요. 하나님을 향하여 ‘주님, 저는 주님이 없이는 도대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자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이 가난함이 그 자리 가운데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죠. 이푸부트코스라는 단어의

두 번째 함이 된 의미는요. 바로 갈망함입니다.
-그냥 없는 상태 이제 끝났구나라고 자기의 삶을 단정짓고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결단코 포기하지 않는 강렬한 갈망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이 푸토쿠스라는 단어 안에 담겨져 있는 의미인데요. 회당 장 야이로가 하나님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며 이렇게 말하죠. 예수님, 예수님, 주님께서 오셔야만 저의 딸을 살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야만 주님이 오셔야만 저의 딸을 살릴 수 있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그 간절함, 바로 이 간절함이 이 심령의 가난함이라는 단어 속에 담겨 있는 의미인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하나님 앞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우리의 심령이 진실로, 우리의 심령이 진실로 하나님이 없으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이 가난함이 우리에게 있느냐라는 말이죠. 아니면 그것은 옛날 추억이야, 은혜 받았던 것, 가난했던 것, 그때 펑펑 울었던 것, 그것은 옛날 추억이야, 지금은 적용되지 않아! 라고 우리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이 심령의 가난함이라는 것은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그때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우리의 신앙생활에 매일매일 그 이루어지는 순간, 순간마다 우리의 심령의 가난함이 필요하다. 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특별히 신약 성경에 발견되어지는 한 사람이 있는데요. 그 사람은 바울입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입니까? 신약 성경을 13편이나 직접 성경을 기록한 탁월한 학자요 목회자요 선교자요 설교자요. 주님의 강력한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기록한 성경의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면요. 그는 자신의 탁월함, 능력으로 우쭐해 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의 사역 초창기에 그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쓰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9절의 말씀인데요.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5:9,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나는 사도들 가운데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고,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할 수 없는 저는 가장 작은 자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거예요. 예전에 이 본문을 보면서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울 참 겸손하다. 겸손한 사람이네. 나도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자기의 겸손을 드러내기 위해 이 말을 했던 것이 아닙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릅니다. 그가 다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편지를 써내려갑니다. 에베소서 3장 8절의 말씀을 우리 함께 읽어볼까요?

*에베소서 3:8,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아멘 사도가 아닙니다. 사도들 중에 작은 자가 아니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내가 더 작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성도들은 누굽니까? 바로 바울이 가르쳐 키워낸 하나님의 사람들이죠. 그런데 그 모든 성도들보다 내가 더 작은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도바울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말을 전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의 인생의 노년에 이르렀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의 말씀 보니,

*디모데전서 1:15,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무엇이라 고백합니까? 괴수니라,
-바울이 무엇이라 말합니까?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겸손을 가장하여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머물고, 하나님 앞에 또 머물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머물다 보니 자기의 실체를 보게 된 것이에요. ‘오호라 나는 권고한 자로구나. 내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구나.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은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죄인이구나.’ 이 마음을 이 모습을 바울은 지속적으로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 앞에 계속적으로 가난한 심령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세상은 겸손을 미덕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겸손은 이런 것 아닙니까?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은 나를 높여주는 것, 것이 이 사람 참 겸손하다. 고 말하죠.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외식이요 거짓말이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손을 가장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아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본 나의 실체를 알기 때문에 그 실체 앞에서 철저하게 참말을 하고 참 진리를 선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바울의 고백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느덧 2024년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새해에 어떤 복을 구하고 계십니까? 진실로 내 마음 깊은 곳에 정말로 내가 갈망하는 그 복이 무엇입니까? 내 신앙의 중심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복을 정말로 구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기를 원하시는 것,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저는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라는 이 고백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것이다.’ 천국은요 하나님의 구원이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의 역사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함으로 그에게 주어진 삶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사람들에게 매 맞고 버림받고, 잘 곳 없고 도망쳐 다니고 몇 번의 죽임의 고비를 넘기는 삶이었죠. 그런데 성경은 그 삶을 가리켜 복되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가 되시며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의 삶은 어떠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살아간 그 어떤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는 가난한 심령으로 전 생애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며 살아가는 그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심령이 가난한 예수님의 삶 가운데 어떠한 일이 벌어졌습니까? 우리 이사야 53장 3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이사야 53:3,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아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요. 이 땅에서 멸시와 버림과 간고와 질고를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더욱이 우리도,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고통 중에서 천국을 사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의 능력이고, 복음의 역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에 심령의 가난함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주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라는 이 고백,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은 없네. 라는 이 찬양의 가사가 지금도 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우리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랑의 교회 성도들이여,. 헛된 복을 구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 것이지, 너희들이 꿈꾸고 바라고 소원하는 부와 명예와 성공과 안락함과 잘됨이 너희의 복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는 그러한 것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성도는요 하나님의 사람은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족한 자들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마음이 부요한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부요한 곳에서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주님 저 정말 별 볼 일 없지만, 주님 저 정말 가진 것 없지만, 주님 제가 그 첫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길 원하오니, 다시 한 번 심령의 가난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놀라운 천국의 복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2023년도 한 해 동안, 우리 교회 위에 회복을 넘어 부흥의 실체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가난한 심령 위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 번 2024년이라는 새로운 믿음의 항해를 떠납니다.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실력이 아닌,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의 삶 가운데 친히 역사하여 주시고, 친히 말씀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가운데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령이 가난한 주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천국의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 복을 받을 때, 우리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리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복으로, 담대하게 당당하게 걸어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능력 있게 살아가는 날마다 하나님 부어주시는 능력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
“우리의 생명 되시며 우리의 모든 것 되신 하나님 아버지 이 땅을 살아가며 우리의 삶을 유혹하는 수많은 하나님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 시간 다시 한 번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오니 우리의 심령에 가난한 심령을 허락하여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친히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주님을 향하여 이 가난한 마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는 2024년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친히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함께하실 줄 믿사오며 우리의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요약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새로운 은혜와 역사로 시작한 2024년을 우리는 가난한 심령을 회복하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그 놀라운 능력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달아서 나의 의와 나의 공로가 아닌 겸손함으로 인생의 모든 여정을 주님 앞에 맡기고 전적의탁 하여 신실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야 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시는 천국의 복을 허락하실 것을 믿고 가정과 직장과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의 평강을 간구하며 모든 환경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려가야 한다. 우리가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고 소망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난한 마음을 채우시고 은혜의 복으로, 하늘의 복으로 올 한 해 우리를 가득 채우시며 이끌어 가실 것임을 확신하자.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겸손하고 비천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곧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하는 일을 비천하게 생각하며 자신을 어린아이와 같이 여기는 것이다. 바울은 은사와 은혜 면에서 모든 사람보다 뛰어나 영적인 일들에 부요하였지만 심령이 가난하기 때문에 자신을 사도들 중의 가장 작은 자요, 모든 성도들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보다도 더 작고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선을 행하기에, 즉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되기에 자신이 부끄럽고 비천하며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은 위대하시나 우리는 비천하고 그는 거룩하시나 우리는 죄스럽고 그는 모든 것이 되시나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의와 능력을 결코 신뢰하지 않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와 은혜만을 의지하는 것이다. 세리가 불쌍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를 부르짖을 때 가졌던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이 바로 이 심령의 가난이다. 우리는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에 부족해서 언제나 하나님의 문에서 구걸하며 그의 집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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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2월 31일)
제목: "사는 날 동안 능력이 있으리로다"
말씀: 신명기 33:24~25
대표기도: 남동우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신명기 33:24~25,
24 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아들들 중에 더 복을 받으며 그의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의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25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가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너무 애를 많이 쓰시고 헌신하셨습니다. 찬양대 하나님께 쓰임 받은 거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난 한 해 진짜 빨리 지나갔습니다. 맞습니까? 속히 지나갔습니다. 오늘로써 우리 묵은해를 보내고 내일 이제 새로운 새해를 앞에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마음속에 유대인들은 한 해를 마무리할 때 반드시 죄를 처리하고 새해를 맞이한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 삶의 은서의 강물에다가 우리가 지었던 수많은 잘못들, 죄악들 허물들 실수들 후회들, 아픔과 힘을 다 던져버리십시다. 나는 한 해의 마지막 시간에 또 새해를 맞이하는 시간에 우리가 갖는 소명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보니까 빈 그물이었어요. 빈 배, 빈 그물이었어요. 1년 동안 수고를 했지만 지금 여러분들 생각에 ‘나는 이게 나는 빈 그물만 갖고 있네.’ ‘내 인생 내 삶은 왜 이렇게 분명인가?’ 이렇게 좀 뭐라고 그럴까요? 열매가 없다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게 있을지 모르겠고, 또 어떤 분은 믿음 부분을 통하여 놀라운 축복을 받아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나 이제 어떻게 주님 앞에 더 헌신하면 좋겠나? 이런 상황까지 올라오는 게 있을 것입니다. 두 종류입니다. 임금을 임재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고, 또 한 분은 너무 감사해서 주님 앞에다 이렇게 ‘내가 주님이 내 인생을 참으로 가치 있게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헌신의 차원까지 올라온 게 있을 거예요.

근데 빈 그물이든지 아니면 믿음 보고의 차원이든지 헌신의 차원이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삶의 광야 길을 걸어갑니다. 그럴 때마다 저와 여러분은 내 힘과 내 능력으로만 사는 사람이 아니고,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과 달라요. 우리는 영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본능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심을 느끼고 있는 것인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 자신을 능가하는 우리 인생을 능가하는 어떤 초월적 존재감, 초월적 실체가 내 삶을 인도하고 있다는 이 사실, 이걸 제대로 깨달을 때 아무리 어려워도 내 삶에 나도 모르는 가슴에 떨리는 뭔가가 있는 것이에요. 맞습니까? 그래서 인생은 초월적 실체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을 바라볼 때 완전히 달라요. 그러니까 무슨 말인가 하면 여러분이나 저는 초월적 실체에 의하여 인도되는 존재로 보느냐, 아니면 내 인생을 내 스스로 내 힘으로만 살아가는 존재로 보느냐, 거기에 따라서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다.

저는 철저하게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삶을 초월적 존재 주신 하나님의 인생을 끌고 간다. 맞습니까? 우리는 내 인과 내 실력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님을 고백하는 것이에요. 무신론자들이라든지, 또 이런 사람들은 인생을 진화된 존재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신론자들 진화된 존재로, 진화된 존재로 인생을 보면 모든 인생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존재로 볼 수밖에 없어요. 인생은 다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나 인생을 창조된 존재 피조물의 관점에서 볼 때는 인생은 초월적 실체에 의하여 인도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이에요. 처음부터 제가 좀 너무 거대담론(巨大談論) 같은 걸 말씀해서 죄송한 마음이 있지만 어제도 제가 아침에 말씀드렸잖아요. 사람은 환경에 의해서 영향도 받고 자기가 노력하는 거에 의해서 나름대로 인생의 방향을 잡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우리의 삶에 인생의 모든 육신을 능가하는 초월적 하나님의 영성을 이끌고 계신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 적으로 볼 때, 내 힘으로 자기의 힘만으로 살면 기초적으로 사는 것 같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그런 삶이 좀 약간 피동적인 삶 같은 세상 사람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삶의 가장 가치 있는 삶이고,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목적에 걸 맞는 삶을 우리는 믿습니다. 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신명기 33장, 이 말씀을 썼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광야로 이끌어낸 그런 역할을 했죠? 모세는 출애굽기 오늘 본문을 썼던 신명기 썼더니 모세는 출애굽기 3장에서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장면이 나옵니다. 애굽에서 왕자로 있으면서 동족을 구하려다가 애굽 사람을 죽이고 위대한 광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제사장, 미디안 제사장 딸을 만나고 양을 치는 목자로 살다가 어느 날 호렙 산이 왔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고,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라는 사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거는 모세의 자기 생각이나, 이거는 모세의 마음에 본래 없던 인생의 시나리오였어요. 자기가 상상도 하지 못한 거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하니 모세가 왕자로서 애굽의 모든 것을 누리고 있을 그때에도, 위대한 광야에서 양치는 목자로서 손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때에도, 초월적 존재이신 하나님의 인도에 의하여 그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다 부족합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 우리의 모든 것을 초월하신 하나님, 우리 인생에 주시는 그 하나님이 나를 이끌고 있다는 그 사실을 철저히 깨닫는 순간, 여러분과 저의 가슴이 뛸 수밖에 없어요. 이 시간 우리의 심장이 그 순간 하나님과 연결되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의 심장을 터치하는 순간이고, 이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하나님과 내가 연결 되어 있음을 느낄 때, 우리의 환희에 차고 우리의 오감은 전율하는 것이에요. 하나님과 연결되는 순간, 하나님과 연결되는 순간 우리의 영혼의 스파크가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참 가슴이 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새벽에,,,,

*시편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 He touch me, ‘;험한 세상 내 마음을 원하지만 그러나 사랑스러운 주님의 손길이 내 인생을 항상 터치하신 날이에요. 오! 주님 나의 주님, 그럴 때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치네. 내 마음에 전율이 넘치네. 내 마음에 감사가 넘치네. 그다음에 나의 기쁨, 나의 생명 주 손길을 나를 구원했네.’ 너무나 놀라워요. ♪ 나의 기쁨 나의 생명, 주 손길을 날 영어 가사는 히 터치 미, 오! He touch me, 그다음에 and oh the joys that floods my soul. 내 영혼의 홍수가 일어나요. 기쁨의 홍수가 일어나요. 그다음 가사 Something happened... 초월적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그 사실 앞에 내 인생은 Something happened 이에요. 무언가가 일어나는 것이에요.Something happened, 반응도 안 하시고... 그러 영어하는 사람들은 Something happened이 어마어마한 거예요. Something happened. 제가 이래도 어떤 것들은 나는 초월적 하나님과 관계없다. 나는 그걸 잘 이해가 안 된다. CS. 루이스라는 말로 이런 얘기를 합니다.

“우리는 ‘갈증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물을 마시기 원하는 존재로 창조 되었다.는 증거다.”
-C.S. 루이스-
-우리 삶에 우리 육신의 갈증이 있죠? 우리는 물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로 지어진 거예요. 맞습니까? 마찬가지예요. 우리 마음 한 구석에 세상 어떤 것으로도 채우지 않는 인생은 뻥 뚫린 구멍이 있어요. 모든 걸 다 이뤄보세요. 모든 위치에 올라가고 모든 걸 다 가져보세요. 거기에도 허무하고 뻥 뚫린 구멍이 있는 거예요. 그건 뭐냐? 우리 인생 자체가 초자연적인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갈망하도록 지어졌다는 사실이에요. 이런 것들은 무신론자들, 진화론자들은 결코 설명 못합니다. 그건 그들의 영원한 숙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같이 한 해의 마지막 날, 성경은 전도서 3장 11절,

*전도서 3:11,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모든 인생에 분명하게 초월적 존재를 찾고, 초월적 존재에 의해서만 우리의 갈망이 해결될 수 있도록 우리의 허무함과 갈망이 해결될 수 있도록, 이것을 우리가 인정해야 돼요? 말아야 돼요? 근데 우리 주위에 진화론자들 또 다른 진화론자들, 무신론자들, 또 우리 주위의 좌파적 문화 엘리트들, 기독교 하부를 조롱하는 친구들, 그러나 겉으로 그들이 자신만만해 보이지만 삶의 카튼 뒤에서는 오늘 같은 날은 자기 한 몸조차 어쩌지를 못하는 인간의 무력함에 당혹해 할 것이에요. 조금 제가 어려운 말 썼는데 세상에 잘 나가는 사람들 문화에서 엘리트들, 기독교 한 분은 서로 편안한 친구들 오늘 같은 날 아주 그냥 자기는 어쩔 수 없는 고민 때문에 술 마시고 마약하니 그 인간의 무력함에 당황해하고 당혹해하는 것이에요. 따라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 우리는 내 인생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 내 인생을 이끌어간다는 것을 고백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인 줄로 믿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 이걸 깨닫는 은혜가 있는 사람에게 오늘 주님이 두 가지를 주시는 거예요. 오늘 이 두 가지를 여러분들의 마음속을 가지고 갈 때, 오늘 이 송구영신(送舊迎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신명기 33장 오늘 본문은 모세가 죽기 전에 아셀 지파에게 예언한 내용이 아셀 지파는 이스라엘이지만 하이파 지역에 해당하는 해안가로부터 또 남부 레바론 산악 지역까지는 땅을 분배 받았어요. 본래 이 아셀은 야곱의 첫째 부인이었던 레아의 시종 시녀였던 실바의 소생입니다. 환경적으로는 어떻게 보면 흑 수저 같아 하인의 몸에서 그것도 둘째로 태어났고, 자기 아버지 이름, 자기 아버지 이름도 안 지어주고 자기 시녀로 해서 자기 어머니가 시녀인데, 시녀의 어머니 레아가 그냥 이름을 지어줬어요. 그런데 그가 오늘 뒤에 글 나지만 행복 자, 24절에 다시 한 번 시작,

*신명기 33:24,
24 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아들들 중에 더 복을 받으며 그의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의 발이 기름에 잠길 지로다.
-그의 기름에 잠긴다는 것은 축복을 받았다고 물질적인 축복도 받았다고 하는 것이며 그리고 더 좋은 것은 물질적 축복이 더 중요한 것은 그의 형제에게 뭐가 돼요? 기쁨, 그 앞에 그의 형제들과 아들 중에서 뭐예요? 그 더 복을 받아야 되는 받았다는 것이에요. 평생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산다. 그래서 누가복음에 지난주에 구세주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만난, 아기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난 그 안나 여선지자가 아셀 지파였어요. 기쁨의 역할을 했어요. 그리고 아셀 지파에게 분배된 땅은 기름진 땅도 있었지만, 산악지대, 그 험한 지역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아셀 지파는 이방 민족과의 경계선에 있었어요. 북쪽에...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은 단순히 아셀 지파 정도가 아니라, 약속의 땅을 앞에 둔 새로운 세대, 모세가 이제 40년을 다 그의 생애를 마무리하면서 모세의 지도력 40년을 마무리하면서, 그가 이제 주님 앞에 부름 받기 전에 여기 최후의 모세 34장 그의 제자가 뒤에 덧붙인 거예요. 34장, 33장 5절이 마무리예요. 마무리 야곱이 열 두 아들을 축복하듯이 모세는 12지파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대를 향하여 오늘 이 말씀은 삶의 경계선상에 있는 분들 오늘 이스라엘을 넘어 지금 우리에게 지금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면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단순히 아셀 지파 정도가 아니라 뭐라고 말씀하는가, 그 험한 지역 그 광야 그 산악 지역을 점령해야 할 아셀 지파에게 뭐라고 말씀 25절에, 너의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다.

*신명기 33:25,
25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가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철과 놋으로 만든 문빗장으로 보호막을 쳐주신다. 이걸 다른 King James 장에서는 너무나 우리에게 더 실감 가는 구절인데 영어로, (Thy shoes shall be iron and brass). 다이 슈즈 셀 비 아이언 앤 브레스..라고 그랬어요. -너의 신발이 강철 신발이 될 것이야. 철과 놋으로 우리의 문빗장을 주시고 너의 발이 강철 신발을 신을 것이다. 하나님 우리를 보호하는 문빗장이 되고 또 하나는 여기에 이제 히브리어로 뜻으로 주어지는 것이 좀 있기 때문에 문빗장과 강철 신발 같이 생각해도 될 것 같아. 철과 놋으로 만든 문빗장 보호막을 쳐주시고, 강철과 놋으로 만든 신발을 통하여 우리를 걸어가고, 인도하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것이에요. 아셀 지파가 유다 지파나 무슨 레이지파 같은 대단한 지파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부여된 산악지대나 바위를 걸어가기 위해서는 강철 신발이 필요한데, 그걸 주신다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오늘 저는 이게 송년 예배이자, 내일 1월 1일이기 때문에 오늘 이 예배는 송년예배이자 새해를 맞이하는 오늘 밤 오늘 12시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없는 대신에 오늘 이 말씀을 한꺼번에 드리는 거니까, 내일 아침에 1월 1일날 여러분들이 가정 예배를 드릴 때도 이 말씀을 같이 사용하면 좋겠다 싶어서 제가 한꺼번에 드리는 거니까.

하나님 아버지,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 올해 내년 한 해 하나님께서 모든 일마다 강철 목과 그다음에 철로 된 문빗장 보호를 허락하여 주시옵시고, 그다음에 한 해 내 일을 걸어갈 때마다 강철 신발을 신고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이거 이게 너무 제 마음에 와 닿는 거예요. 아마 여러분들도 평생에 이런 설교를 들어보지 못했을 거예요. 저도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마음이 뛰었어요. 초월적 하나님이 내 인생에게 문빗장을 주실 뿐만 아니라 강철 신발을 신고 건너가게 하시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무장이 필요합니다. 하늘을 앞에 놓고 우리 앞에 삶의 순례와 광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지는 다 알 수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걸어가는 길의 모든 것이 비단길이고, 카페트 깔린 비단길이라면 모든 길이 비옥한 평야만 있다면, 철과 놋에, 눈빗상과 강철과 놋의 신발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요즘같이 눈길을 걸을 때, 어제도 보니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그정 어그정 걷더라고요. 눈길을 걷을 때 그 튼튼한 신발이 필요한 아이젠이 필요하잖아요. 특별히 연약한 분일수록 다리에 힘이 없는 분일수록 최고의 신발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내년 한 해 동안 사랑의 교회 성도들이 받아야 할 보호막 문빗장과 내년 한 해 동안 우리가 걸어가야 할 우리 이 모든 과정들을 앞에 ㄴㄴㄴ놓고, 우리에게 강철 신발이 뭘까요? 그 강철 신발이 바로 오늘 25절 뒷부분에 있는 이 내용이 우리의 삶의 최고의 강철 신발과 문빗장이 될 것입니다. 다 함께 25절 시작

*신명기 33:25,
25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가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내년 한 해 동안 노력해 주신 약속의 말씀 같은 것이에요. 우리 교회 전체적으로 또 다른 게 있을 수 있지만, 여러분 개인적으로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사는 날 동안 능력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여기에 사는 나를 따라서란 말씀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매일매일 힘을 주신다. 내일과 이에 그대로 믿으세요.

I. 사는 날 동안 능력을 주실 것이다.
-매일매일 하나님이 힘을 주신다. 살아가는 날, 매일매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실 것이다. 우리가 살다 보면 힘든 일을 겪는 날이 올 수도 있어요. 힘든 일을 겪는 날, 그날도 힘을 주실 것이다. 어떨 때는 건강을 잃을 수도 있어요. 그때도 힘을 주실 것이다. 의심스럽고 혼란스러운 날도 있을 수 있어요. 그때도 힘을 주실 것이다. 여러분 이거 진짜 어려울 때, 삶의 광야 가운데서 주님이 내 인생의 철과 옷에 문빗장이 되게 해 주실 것이다. 매일매일 삶의 걸음에 험악한 산악 지역이라 할지라도 강철 신발을 신고 건너가게 하실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이 20대, 30대, 40대, 20대 30대는 좀 시간 덜 갈지 몰라요. 그러나 60대 70대가 훨씬 더 진지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젊은이들 가운데 육신의 물리적인 힘이 약해지지 않을 때는 사는 날 동안이라는 게 실감이 덜할 것이에요. 그러나 40이 넘고 50을 넘고 60이 넘고 이렇게 되면 물리적인 몸의 신호가 옵니다. 몸속에 에너지가 많이 남아 있지 않고 체력이 달리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 말이 뭔지 좀 더 실감이 갈 거예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 말씀을 제대로 기억하는 동안 여러분 이런 믿음의 역량을 갖고 있는 동안 그 사람은 부패하거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능력을 받게 되는 겁니다. 오죽하면 내가 지난주에 그랬잖아요. 우리의 삶에 우리의 삶에 죽음이 최고의 전초가 피크가 되게 해달라고요.. 저는 1982년 3월 1일 장가간 날입니다. 거의 42년이 됐는데 그때 제게 주의하신 목사님이 잠언 4장 18절 말씀을 주셨어요.

*잠언 4:18,
18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그 당시에 배교파는 의인의 길은 점점 번뇌할 것 같아서 원만한 광명의 이르러니와. 요즘은 의인의 길은 도면의 뜻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에 광명에 이른다. 그러니까 의인의 길은 가면 갈수록 돋는 햇살과 같아서, 그러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결혼 이후의 여정에 하나님이 놋과 철에 문빗장을 주시고 매일의 삶의 여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강철 신발을 주셨다는 그 말이에요. 목사님 결혼식 할 때 설교를 어떻게 다 기억하십니까? 성경 말씀이니까, 기억을 하는 거예요. 그냥 좋은 말 말고 적당한 말대로 다 지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 제가 가만히 제가 가만히 기억하니까 사는 날 동안 능력을 주실 것이다. 이게 저에게는 우리 볼 때마다 제게는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약속의 말씀이었어요. 네가 사는 동안 능력이 있을 것이다 이런 거룩한 담대함을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는 날 또한 능력을 주실 것이다. 라는 것이 하나님이 힘주시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고, 나중에 고백하게 될 것이에요. 그리고 사는 날 동안 능력을 주실 것이다. 이 말씀에 하나 더 추가하면 사는 날 동안 능력을 주실 것이다. 매일매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을 것이다 되겠습니까? 두 번째로는 뭐냐? 사는 날 동안 능력을 주신다는 것은 주님은 우리보다 앞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앞서 인도하는 새해가 되는 것, 앞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하잖아요. 여러분들 모두에게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우리는 지금 당장 닥친 문제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힘들어하고 아주 당장 닥친 문제를 해결하려고 막 싸우고 있습니다. 근데 하나님은 앞서 인도 하신다는 말은 우리는 지금 당장 당면한 문제 때문에 막 이렇게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내일 직면할 해결책을 갖고 계세요. 하나님은 우리보다 먼저 앞서가서 미리미리 준비하고 계세요. 그 이런 용어를 정리해 봤어. 우리가 일, 우리가 월요일을 피투성이로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은 목요일에 회복된 날을 이미 예배하고 계신 것이에요. 따가운 하늘을, 월요일을 피투성이로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은 목요일에 회복된 날을 이미 예배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것을 미리 아시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먼저 일하고 계신다. 그래서 다음 주에 다가올 일을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세요. 내년도도 주님께 맡기세요. 거기 주님이 계시는 거죠. 주님은 우리와 동행도 하시지만, 우리보다 먼저 가셔서 미리 우리의 길을 예비하시고, 구체적인 걸 준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이게 사는 날 동안에 너희에게 능력이 있으리로다.

하나님은 내년 2월, 내년 4월에 있을 일을 미리 준비하고 계시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저는 내년 10월 21일 내년에는 제3기 한국교회 섬김의 날이에요. 내년에도 수많은 사역이 있어요. 근데 하나님이 그때 거기 가서 미리 준비하고 계실 것처럼 확신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런 하나님 안에서 이런 주신 사명을 가지고 이렇게 살았을 때 거의 주님께서 제 기대를 얻어가게 하신 건 없어요. 사는 날 동안 너는 너에게 능력이 있으리로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이런 기대를 갖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미래를 향해서 너무 고민하지 말고, 나 혼자 진화론자든, 무신론자도 잘 나 혼자 고군분투하고 나 혼자 그걸 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시도록 그렇게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미리미리 근심하지 말고 매일매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대로 살고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에 항상 기뻐하라, 항상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자빠져도 십자가 앞에 자빠져라. 요거 하나 하나만 더 우리가 설명한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우리에게는 이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거룩한 성령이 있어요.

II.그 결과,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거룩한 설렘
-그 결과 세상 사람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뭐가 있다고요? 거룩한 설렘이 있어요. 거룩한 DNA가 우리 설렘의 DNA가 우리에에 있어요. 여러분은 모세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아셀을 선포한 모세를 생각해 봅시다. 모세의 상황과 우리의 상황을 연결해 보십시다. 모세는 앞에 홍해가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왼쪽은 거친 산악과 낭 떨어진 산에 있었습니다. 오른쪽에는 황량한 군대가 있고, 뒤에는 지금 애굽 군대가 죽이겠다고 쫓아온다고 하면 여러분 어떻게 할 겁니까? 몇 분들은 이게 뭔가 다시 풍력 다 갖고 있고 왼쪽은 거친 산악과 낭 떨어진 산이 있고, 오른쪽에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광경을 펼쳐져 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죽이겠다고 쫓아오는 것입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에요. 아시는 것처럼 산악지대를 맞이하여 이방인과의 경계선상에 이럴 때, 하나님이 앞서 인도하신 나를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냐? 우리는 지금 모세가 어떻게 걸쳐왔는지 우리는 전지적 시점을 갖고 있어요. 성경을 가지고 다 알고 있으니까 우리의 생명에 관해서도 결과론적으로 우리가 스스로 전지적 시점을 갖고 있어야 돼요. 전지적 시점이라는 말 알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멀리 오면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면초가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어떻게 인도하시고 어떻게 붙잡으셨는지를 우리가 알기 때문에 또 그들이 홍해를 건너고 찬양을 하고, 그걸 알고 그 기적과 해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어려운 순간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기에 딱 알 맞는 시간이에요. 이런 뜻이 저 같은 경우는 60년 넘게 살고, 살아오면서,

저는 어릴 때 초등학교 1학년 때요. 우리 부친하고 나하고 둘만 있었어요. 우리 부친은 그 당시에 저 29살밖에 안 됐어요. 저하고 21살 차이기 때문에 우리 모처는 시골에 있어 갖고 제가 학교를 1년 먼저 제가 부산시 경북 의성이라는 곳에 시골에 가서 시골에서 부산에 가서 1년 동안 29살 되는 남자분이 교회를 개척해갖고 교회를 시작하는데, 어떻게 나를 케어 하겠어요? 이해가 안 가십니까?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가고요. 한 몇 달 동안 학교를 못 갔어요. 아파고 영양실조 그다음에 한 달 그래서 제가 몇 달 동안 걷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저도 안 믿는 사람이 있겠지만,,, 누가 업고 침을 맞게 하고 하여튼 그런 일이 있어 갖고 그런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이럴 때 성경을 읽으니까 나도 모르게 야 내가 왜 이렇게 인생이 고란이 많나, 이런 생각을 그 이후에 60년 이후를 살아오면서 피투성이도 되어보고, 수많은 눈물도 흘려보고, 어떨 때는 며칠 동안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오기도 못했고, 피눈물도 있었지만 근데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제 마음 깊은 곳에는요, 희한한 설렘 같은 것이 있었어요.

오늘 말씀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다음 달 앞으로 미리 가셔가지고 앞서 인도 하시고, 사는 날 동안 능력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 내 나름대로 체화가 돼서 그런지 고통도 아픔도 피눈물도 그 가운데서도 희한한 설렘이 있었어요. 어쩌면 초월적 하나님께 대한 근본 믿음을 주신 것이에요. 그 설렘은 아마 이런 걸 겁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험준한 산악 밖에 보이지 않는 황량한 광야 같은 상황에서, 그 순간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인도하실 것인가 그 기대감에서 오는 설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설레임이 될 것입니다. 저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 많은 성도들이 그럴 것이고, 또 지난 2천년 교회 역사의 사면초가와 같은 홍해를 경험해 본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 많이 사람이 그랬을 거예요. 그래서 오늘 송구영신 예배 오늘 마치고, 여러분 예배 마치고 나가시면서 딱 이사야 45장 2절,

*이사야 45:2,
2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 문을 쳐서 부수며 쇠 빗장을 꺾고.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겠다. 평범한 얘기지만 하나님이 한쪽 문을 닫으시면 한쪽 문을 반드시 열 것이다. 거기에 대한 설레임, 이것은 진화론자들, 무신론자들, 자기 실력만으로 사는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희한한 설렘이 되는 것이에요. 우리 모두에게는 고난 가운데서도 이런 설렘의 뒤내를 주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이렇게 말하니까, 모세가 강령을 선포한 것이에요. 하나님 백성들에게 오고 온 수많은 백성들에게 오늘 29절 본문 뒤에 29절,

*신명기 33:29,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오늘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다. 오늘 1부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 한 분 한 분 이름을 다 불러가면서 여러분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로다. 행복한 사람 막 가슴이 떨리는 거 떨기나무 앞에서의 초월적 떨림이 너는 행복한 자로다. 라는 최고의 선포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에요. 모세는 마지막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설렘에 관한한 그는 비온 후의 새싹이었고, 점점 도는 햇볕이었고,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 이런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나중에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했겠습니까? 모세 인생의 최고의 사건이 뭡니까? 애굽의 왕자 되는 것도 아니었고,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이스라엘의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일마다 때마다 나 같은 사람이 홍해의 고난과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나 같은 인생을 앞서서 인도해 주셨다는 그 사실 앞에 가슴이 맥박치고, 입술에는 찬양이 끊이지 않았고, 마음이 설레였다는 것이에요.

오늘 이 자리에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힘든 분들 있습니다. 또 세상적으로 대단한 성취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설레게 하는 게 뭡니까? 오늘 아셀에게 말한 그 얘기는 모세 자신을 얘기에요. 하나님께서 120년 동안 모세의 삶의 험악한 산악과 같은 광야 여정의 멋과 철의 문빗장으로 보호해 주시고, 일마다 때마다 강철 신발을 챙기셔서 걸어가게 하시고, 이게 너무너무 신기하니까, 아마 필설로 혁명할 수 없는 이 인문학적, 어떤 시적 표현이 이상 할 수 없는 오늘 26절에 뭐라고 돼 있느냐면,

*신명기 33:26,
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오늘 하나님은 이 사랑의 성도들 한 분 한 분을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험을 나타내시는도다.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예배는 하나님이 영광의 수레를 타고 오시는 은혜 아닙니까? 유일한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면,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험을 나타내시는 도다. 그리고 27절에

*신명기 33:27,
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 도다.
-모세는 홍해 이후에 수많은 위기를 겪었습니다. 반역과 배신을 경험했습니다. 그래도 살려왔습니다. 그를 계속 만나주시고 반석에 샘을 터지게 합니다. 심지어 설렘의 파워가 얼마나 큰지, 모세를 반역하던 고라 자손은 하루아침에 땅위에 입을 벌려 삼켜버렸어요. 이 설렘과 기대의 파장이 얼마나 큰지, 여러분들을 어렵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고하게 하고, 고통을 받게 하는 그 사람들이 언젠가 우리 이 설렘과 감격과 하늘, 하늘의 영광 오늘 말씀한 것처럼 바로 하늘이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 그 위엄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렵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파장을 일으켜버리시는 거에요.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기쁨이 있게 하시고 설렘의 파워를 갖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고라 자손들을 날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입을 닫아주시고, 심지어 신약시대에는 바다가 갈라지지 않으면 바다 위를 걷게 하시는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누구나 삶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노아 같은 놈도 홍수위기를 만났고, 요셉 같은 사람도 감옥의 위기를 만났고, 다니엘 세 친구 같이 신실한 사람도 풀무불의 위기를 만났고,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 믿는다고 화영대의 이슬과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룩한 인내와 설렘이 있는 동안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요. 세상 사람들은 위기가 절망의 시간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소망과 설렘의 시간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오늘 이런 가족 여러분 여러분들은 행복한 사람으로 다 너는 행복한 자로다. 2024년도 매 해 내일부터 하나님 사랑하는 교회 모든 성도들과 우리 믿음의 4세들에게 은혜의 은혜를 주시옵소서. 문빗장을 허락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이 예배하시는 강철 신발을 신고 건너가게 하여 주옵소서. 여러분이 비록 한 해 동안 빈 대와 빈 그물을 가져왔다고 한탄하고 있다 할지라도, 오늘 이 말씀 믿고 가면 하나님이 일하실 것입니다. 내일 미리 하고 다음 주에 미리 일하실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오늘 마지막 한 번 제가 묻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초월적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강철 선발과 문빗장 때문에 여러분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다시 한 번 오늘 이 마지막 시간 여러분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모든 짐들을 벗겨주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매일 삶의 현장에 거룩한 설렘의 비밀을 가지고 살아가는 축복을 허락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매일매일 사는 날 동안 너에게 뭐가 있으리로다. 사는 날 동안 문빗장을 주신 것, 사는 날 동안 강철 신발신고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삶의 경계선상에 있는 분들, 산악지대를 맞이하는 분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주님, 인생이 내 힘만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무시된 것들을 다 용서하여 주시옵시고, 초월적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 받는 인생으로 완전히 우리의 삶이 무장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셀 지파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문빗장을 경험하게 하시고, 매일매일 삶의 현장을 강철 신발로 걸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월요일을 피투성이로 살고 있을지라도 회복된 나의 목요일을 앞서 가시는 창조신 예수님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요약
초월적인 하나님께서 문빗장으로 보호하시니, 주님이 신겨주시는 강철 신발을 신도 삶의 광야와 산악지대도 넉넉히 건너가야 한다. 월요일에 겪는 고난 중에도 앞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회복된 목요일을 앞서 예비하시니 사는 날 동안 매일 매일 주님의 능력을 맥박처럼 경험하여 우리 교회가 2033-50 비전 앞에 거룩한 설레임으로 가슴이 쿵쿵 뛸 때, 이 민족 위에 부흥의 르네상스와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며 새해에도 '사는 날 동안 능력을 주실 것이다' 확신하며 주님 앞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자.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리라는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의 복을 예표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하나님의 복을 평가하거나 축소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그들의 기력과 원기가 계속 넘칠 것이다.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너의 노년의 기력이 네 젊은 날의 기력과 같아서 너는 쇠함을 느끼지 아니하며 지칠줄도 모르고 네 젊음이 더욱 새로워지리로다. 네 발 뿐만 아니라 네 뼈도 철과 놋 같으리로다" 라고 의역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맡겨진 일이 있는가, 그들은 일할 기력을 얻게 될 것이다. 짊어질 짐이 있는가, 견딜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코 `감당할 시험 밖에는 당할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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