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주일예배(주후 2024년 04월 07일)
제목: "예수 그리스도, 이 시대의 도피성"

♣주일예배(주후 2024년 04월 07일)
제목: "예수 그리스도, 이 시대의 도피성"
(Who is JESUS") ⓼번째
말씀: 여호수아 20:1~9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최민규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
 
*여호수아 20:1~9,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4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5 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6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7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8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9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22차 봄 특새에 은혜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22차가 되다 보니까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그렇게 힘들지 아니하고, 물론 힘든 사람 몇 명은 있었지만 힘들지 아니하고 자연스럽게 새벽에 일어나는 것 훈련이 되어 있어 가지고 물 흐르듯이 해서 자연스러웠습니다. 주의 영이 많은 곳에 주시는 자유를 능력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번에 22차 특세니까 22차 총선도 지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것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첫 번째 오늘 생각할 것은 오늘 제목이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 그리스도, 이 시대의 도피성” 이라고 그랬는데 성찬을 앞에 놓고 우리가 아 좀 말씀 앞에서 우리가 좀 생각을 해야 하는데 먼저 생각할 것은 정글 같은 이 세상입니다. 여러분 3절에 보니까 도피성이 왜 생겼는가 보니까, 어떻게 실수했다고요?
 
I. 첫째, 정글 같은 세상.
 
*여호수아 20:3,
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 자를 피할 곳이니라.
-이게 뭐 이렇게 소위 과실치사죠 그 이유는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 자를 피할 수 있도록, 그리고 9절에서도 오늘 보니까,
 
*여호수아 20:9,
9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오늘 여러분들 그 구절 그쪽에 좀 뭔가 좀 어리버리 하게 합독을 하시는데 마지막에 뭔가 9절에 제 보니까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리고 마지막 구절 뒤에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마지막에, 이 땅의 삶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부지중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당시에 예를 들어서 나무 하다가 어떻게 도끼날이 날아가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이웃과 서로 다투다가 어떻게 상대편을 밀쳤는데 벽에 머리를 부딪쳐서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의도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살인이 되어서 과실치사(過失致死)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앞에는 가나안 전쟁을 7년 동안 수행을 했습니다. 외부적 전쟁이죠. 지금 우리나라에도 이 근처에도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나 팔레스타인 전쟁 또 이 북한에 있는 탈북자들, 또 북한에 지금 그 전쟁 같은 삶을 사는 분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갑작스러운 지진이 난 대만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그래서 이 세상은 뭐 이것도 어렵지만 아주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이 세상은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탈락하고 이긴 자만 살아남는다는 승자 독식의 논리가 타락한 세상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어떤 철학자는 삶이 너무 무한한 치열한 경쟁과 끊임없는 갈등이 있으니까, 남을 짓밟지 않으면 짓밟히는 인간의 모습에 대해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무슨 말입니까?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처럼 언제 뒤처져 낙오될지 모른다는 그 논리에 코뚜레를 꿰어서 끌려가는 그런 삶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참 짐이 있잖아요. 그거는 외부적인 전쟁도 그렇지만, 내면의 전쟁도 만만하지 않죠. 가장 극복하기 힘든 대상이 나 자신이에요.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나 젊은이들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나, 내 자신이 정글이고 내 자신이 가장 큰 적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소위 중독,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성 중독, 게임 중독, 소위 어딕션(Addiction), 유튜브도 들었는데, 들었다 하면 그냥 1시간 2시간 3시간 쭉 가는 거지. 이것이 일상을 정글같이 옭아매어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도록 그리고 우리의 내면 가운데 나도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상처 난 부분들 그리고 부지중에 나는 모르지만 상대방을 말로써 죽이는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죠. 자, 외적으로, 내적으로 다시 본문으로 들어가서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외부적으로 살인을 했을 때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특별한 사법 조직이나 경찰 조직이 없었어요. 그래서 피해자 가족들이 살인자를 조사하고 보복하는 시스템이었어요. 소위 피해 보복의 관계였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피해를 입으면 대체적으로 감정적이 되고 판단력이 흐려져 가지고 같이 망하거나 무고한 사람들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그런 비극이 있었어요. 이런 경우 이 정글 같은 사회 내 외부적으로 이런 경우 그 당시에 이스라엘 사회 무슨 해결 방법이 있었을까? 3절에 보니까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가게 해라.” 그리로 도망가게 해라. 그러니까 그리로 라는 말이 이 도피성에, 도피성을 만드시고 그리로 도망가게 하라. 부지중에서 있던 사람들 무슨 우리 찬송은 피난처에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오라
 
주 여호와 피난처요. 세상의 날 리을 다시 그치게 하시는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의 피난 도피성 피난처가 이 도피성이라는 말이에요. 도피성 피난처라는 말인데 refuge(도피), shelter(대피소), 그래서 오늘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 가운데 이런 삶의 도피성이 필요 없을 만큼 완벽한 사람도 없고 또 도피성에 가지 못할 만큼 저주 받은 사람도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정글 같은 세상을 다 피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 정글 속에서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우리가 정체성을 잃지 않고 힘 있게 살아갈 비결 중의 하나가 오늘 도피성이라는 사실이에요. 정글의 늪에 빠지지 않고 저와 여러분이 꿋꿋하게 우리의 삶을 걸어갈 수 있는 그 장소가 도피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나중에 깊이 들어가면 이 성찬이 우리의 삶의 도피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가 도피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배와 성찬이 도피성이 되기 위하여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II. 도피성이라는 해답.
-도피성이라는 해답을 주님이 허락해 주셨는데 구약의 도피성은 아까 말씀한 대로 피해 보복자가 따라와서 죽이려고 하는 순간 그 그걸 이렇게 피할 수 있도록 레퓨지로서 쉘터로서 피난처로서 만들어 놓은 것인데 요단 서편의 3개 요단 동편의 3개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디에 있든지 하루길이면 뛰어갖고 하루 만 4-50km, 한50km 정도만 48km에서 50km 정도만 뛰어가면 대체적으로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제가 한번 도표를 한번 만들어 드려서요. 한번 보시겠습니다. 이스라엘 지도를 한번 보시겠습니다. 보이십니까? 이스라엘 왼쪽은 지중해고 밑에는 사해고 위에는 요단강이죠? 저기 뭐야 위에 갈릴리 바다죠 사인의 요단강이 있고 요단 서편에, 서편에 보세요. 오늘 성경 보니까 7절 8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납달리 산지에 갈릴리에 아니 보여줘요 예 갈릴리에 뭐예요? 게데스 갈릴리에 어디에 어 저 위에 저 위에 게데스 보입니까? 그 다음에 에브라임 산지에 3개보입니까?
그 다음에 유다 산지에 헤브론 보입니까? 저 근처에 예루살렘이 있죠? 요단 딱 잘라고 오른쪽에 이제 동쪽 동편에 뭐야 요단강 베셀 보입니까? 밑에 그다음에 길르앗 라못 보입니까? 중간에 저희 므낫세 지파 바산 골란이 보입니까? 제가 이걸 이런 걸 제가 잘 안 보여드리는데 이 보여드리는 거는 어디에 있어도 하룻길이면 갈 수 있도록 그리고 저 도피성은 언덕 위에 산지에 있었어요. 접근이 늘 보일 수 있도록, 사람들의 도피성을 향하여 잘 찾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문은 항상 열려 있었고, 계곡마다 다리를 놓고 또 안전판이 있었고, 그래서 결과 죽을 목숨이 구원받는 것이 도피성이다. 그리고 6절 그리고 이제 중요한 도피성으로 도망간 사람은 오늘 6절 시작.
 
*여호수아 20:6,
6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오늘 6절을 여러분, 2절 3절과 함께 잘 기억해야 되고,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도피성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고 그다음 그 살인자가 도피성에 들어갔을 때에,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그 당시의 대제사장이 뭐예요?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살인자는 그 성읍 고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을 자기 집으로 돌아갈 지이라 하시니라. 그 성 자기 집으로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도피성에 들어가면 이제 먹을 양식을 주고 거기에 살도록 되어 있는데 그래도 큰 감옥이죠. 감옥 같이 있는데 그 그가 자유의 몸을 받을 수 있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당시에 대제사장이 죽으면 자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제사장의 죽음과 도피성에서 편안했던 그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자유와 바꾸어지는 것이에요. 그러면 제가 이 말씀을 드리면 어떤 사람은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대제사장이 1년 만에 죽을 수 있으면 1년 만에 나오는 거고, 수십 년 동안 제 세상에 죽지 않으면 수십 년 동안, 거기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제사장 오래 살면 도피성 있는 사람이 ‘주여! 대제사장을 빨리 데려가 주옵소서.’ 그건 여러분 쓸데없는 상상이고 복음의 핵심을 깨닫지 못하는 거예요.
 
자, 지난주에 지난 아론의 싹 난 지파이가 예수님이 뭘 예표 했다고요? 부활을 예표 했다. 그러면 오늘 여기에서 구약의 대제사장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것이에요. 히브리서를 보면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라고 그랬고 그래서 여러분 제가 자막을 해 놓으면요 같이 보겠습니다.
 
*구약의 대 제사장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구약의 대 제사장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
-훌륭합니다. 자막 팀 훌륭합니다. 정말 내가 감사드려요. 이번에 우리 그 특사 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하고 저하고 19년 20년 영상 팀은 나하고 12년 발맞추어 왔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정말 오늘 이 말씀은 말씀도 안 봐도 여러분들 다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에요. 다시요. 아까처럼 잘못된 상상하지 말고요. 대제사장이 죽어야 뭡니까? 도피성에 피한 사람이 자유롭게 된다. 이거 어떤 뜻입니까? 사실 도폐성에 들어간 사람은 과실치사로 죽어야 되는 거예요. 실수여도 고귀한 생명을 죽인 범죄자예요. 그런데 그가 대제사장이 죽었을 때, 나왔다는 말은 그와 대제사장의 목숨과 바꿨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이것은 마치 영적인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목숨을 버리시고 우리의 죽을 목숨과 바꾼 거예요. 복음적으로 생각을 해 보면 살인자가 도피에 들어갔다고 해서 살인자의 죄가 다 없어진 것이 아니에요. 모든 죄는 마땅한 형벌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죗값을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대속한 거예요. 대신 바꾼 거예요. 썹스티투션(substitution-치환, 대체) 된 거예요. 여기에 십자가의 깊은 사랑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범죄(犯罪)는 값을 치러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진노(震怒)가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진노가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도피성(逃避 城))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다 퍼부어 쏟아 부어진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과 저의 죄를 지우개로 지운다고 다 지워지는 게 아니고, 우리의 죄를 지우개로 지운다고 다 지워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죄를 내가 지어야 할 죄를 예수님께 다 쏟아 부으셨다. 그 말이에요. 그것이 도피성에 나타난 복음의 진리예요. 사도바울은 이걸 깨닫고 하나님께서 진노를 나타내신 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했고 로마서 3장 26절에
 
*로마서 3장 26절
26 곧 이때에 자기 의로우심을 나타내 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의가 사라지지 않으려면 뭐냐 하면 누군가가 형벌을 받아야 되는 거예요. 누군가가 죗값을 치러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도피성 되신 대제사장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인 줄 믿으셔야 되는 거예요. 이건 참 값비싼 은혜예요. 값비싼 은혜, 한 단계 더 올라가 가지고 구약의 도피성은 우발적으로 살인한 사람들을 정글 같은 세상에서 보호해 주시지만, 오늘 성령 시대에 사는 우리가 믿는 이 참된 복음은 우발적인 살인자뿐만 아니라, 고의 적으로, 고의적으로 죽인 악질(惡質) 죄인까지도 구원(救援)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구약에서는 대 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성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지만 신약 시대에 지금은 우리가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리고 부활하신 그 은혜의 복음을 우리가 믿고 그분이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에 지금 당장 우리의 삶을 의탁하면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의 몸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걸 너무 놀라워 가지고 히브리서 기자가 히브리서 6장 18절부터 20절까지 또박또박 기록하고 있는데 뭐라고 그랬냐면 18절에,
 
*히브리서 6:18-20,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도피성을 찾은 우리에게 뭘 주신다고요? 아니라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았는데, 이것이 도피성이라는 거예요. 도피성을 찾은 우리에게 뭘 주신다고요? 아니라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았는데 이것이 도피성이라는 거예요. 도피성을 찾는 우리에게 큰 용기를 주시는데 그리고 이 도피성 안전한 곳에 누구 때문에 들어갈 수 있는가? 그다음에 20절 보겠어요. 20절 시작.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아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대사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 보좌,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셨다 그 말이에요. 예수님께서 이런 길을 열어주시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은혜의 보자 앞에 지금도 나아갈 담력을 얻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 무슨 은혜가 있는가, 오늘 히브리서 6장 19절에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무슨 말인가? 이 시대의 정글 같은 세상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시대의 파도에 흔들림이 없이 도피성 되시는 안전한 영혼의 닻을 경험하신 주님께 이 시간 영광과 감사를 올려드리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가 주중에는 어떻게 보면 정글과 같은 세상 고통스럽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주일마다 예배에 이 예배가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와서 우리가 내 삶을 올려드리고 이럴 때, 진짜 이 시간이 여러분들 파도 많은 이 세상 가운데 영혼의 닻을 내린 안식(安息)을 누리게 되는 것이에요. 이게 얼마나 이걸 모르고 말이에요. 정글 같은 세상에 날마다 살다가 뭐 겉으로 평안하다. 하지만 뭐가 평안 하겠어요? 정글,,, 그러니 여러분 주중에 정글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이와 같이 주일 나와서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이 도피성 되신 예수님 앞에서 우리가 영혼의 닻을 경험하는 겁니다.
 
안전한 영혼의 닻을 경험하는 거예요. 안식의 항구에 들어가는 거예요. 피난처(避難處)에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와서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 그리스도가 도피성인 신약 적 의미를 제가 도표를 만들었어요. 오늘 성찬식이니까 제가 길게 못 하니, 신약의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오른쪽에 어떻게 돼 있죠?
 
첫 번째, 남의 피가 아니라, 예수님 당신의 피를 흘리시고 도피성이 뭐예요? 되어 주신 거예요.
두 번째, 구약의 도피성은 신약의 도피성 예수 그리스도는 찾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일방적으로 주어진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 구약의 도표성은 범죄자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오른쪽에는 뭐예요 여러분 이 복음의 차이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오히려 예수님이 오래 기다려 주신다.
네 번째, 구약의 도피성은요. 일회성, 신약의 도피성은요. 영구적
다섯 번째, 구약은 도피성에서 해방 받았다. 하더라도 평생 짓눌림 있는 거예요.
그런데 신약은 도피성에서 완전히 새 생명의 소유자가 되고, 영적인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고아도 과부도 기댈 것 없는 인생도 과부도 도피성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룻기 2장 12절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룻기 2:12,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이번에 보아스 우리가 배웠는데 보아스가 룻에게 그 과부에게, 그 정글 속에서 사는 과부의 룻에게 그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너에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하노라. 놀라운 피난처입니다. 시편 61편 1절로 3절에 보니까,
 
*시편 61:3-4,
3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4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셀라).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주 날개 이 즐겁도다. 이 세상에 수많은 파도가 있어도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피난처와 견고한 망대와 장막과 과부들과 고아들에게 날개가 되는 줄 이 시대에 도피성 되는 줄 믿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찬을 앞에 놓고 도피성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냥 거기서 먹고 마시고 그냥 산만 지탱해야 합니까? 소울 바이브 라이프로 살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도피성에 있는 사람들이 잘 되기 위해서 두 가지를 해요.
 
-거기서 무장을 하고 변화를 받아야 돼. 변화만 받으면 안 되고 거기서 세상 앞에서 살아갈 힘을 얻고 사명을 갖고 나와야만 하는 것이에요. 삶의 변화를 거기서 자기의 삶에 대한 재조명과 재정비를 하고, 삶을 점검(點檢)하고, 회개(悔改)하고, 평가(評價)하고, 오늘 우리 교회로 말하면 이 도피성 대신 주일마다 나와 가지고 여러분의 삶을 재정비하고 여러분이 타고 다니는 인생의 자동차를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오늘 찬송하면서 말씀 듣고 성찬에 참여하면서 우리의 삶을 재정비하고 재점검하고 우리의 삶의 변화를 가는 그리고 동시에 재정비할 뿐만 아니라, 소명자로 준비되고 사명자로 나와야만 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 역사가 나를 부를 때 시대가 나를 부를 때 내가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 도폐성 안에서 회계와 변화를 갖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 사명자로 나아가야 하는 거예요. 사명자로, 우리가 마틴 루터처럼 종교 개혁은 못한다 할지라도, 손양원 목사님처럼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우리가 7천기도 용사를 은혜를 가지고 세상을 바꾸는 하나님의 기도 군대가 돼야 하는 것이에요.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구원하겠느냐?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가르치겠느냐? 주의 마음을 알아서 사명 자가 되겠는가? 이 시간 우리가 주의 마음을 알아 들이는 하나님의 신신한 남녀종들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누가복음 15장에 돌아온 탕자는 탕자로서 살 때, 그가 저 멀리 가가지고 향락, 사치 방탕하고 허랑 방탕 하고 그럴 때 그것은 정글이었어요. 수많은 중독과 아픔과 결국은 돼지 쥐엄 열매를 먹는 엉망진창의 삶이었어요. 이리 살다가는 내가 죽겠구나! 이리 비참하다가는 인생도 아니구나! 개돼지처럼 살구나! 우리 아버지 집에 가면 우리 아버지 집에 가면 지금보다 낫지. 그 아버지의 품이 돌아온 탕자에게는 도피성이 된 것이 그럼 그걸로 끝인가? 아니에요.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 품에 들어가 가지고 자기를 돌아봤어요. 내가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면 귀하게 살 수가 있는가? 어떻게 하면 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이제는 내가 마음대로 살았는데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고, 아버님을 더 사랑하고 아버님께 더 영광을 돌려야지, 그 마음을 품는 순간 제대로 도피성에서의 준비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그리고 신명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피성을 매년 한 차례씩 보수를 했습니다. 가는 길도 새로 닦았고 뒤에서 피의 보복 자가 따라와도 빨리 뛸 수 있도록 다리도 새로 놓고 잡초도 제거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매년 닦고 수리하고 보수하고 점검했습니다.
 
오늘 성찬식을 통하여 이 성찬식 자체도 도피성이 되게 하여 주셔서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다시 사명을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군대로 준비될 수 있는 그런 축복이 저와 여러분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도피성 근처 가까이 가가지고 그 성 밖에서 천막을 친다고 해서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도피성 안에 완전히 들어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혹 우리 가운데 예수 믿는 아내를 만났다고 해서, 예수 잘 믿는 친구를 뒀다고 해서, 예수 믿는 아내의 치맛자락을 붙든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는 남편들이 식구들을 교회에다 데려다 주고 본인은 안 들어오고 데려다 주고, 본인은 옆에 골프 연습장 가 골프 연습하고 소위 제가 이름을 붙여 성도라고 맴맴 성도, 맴 맴 맴 가운데서 그러다가 어느 날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들어와 가지고 이 안에 들어와 가지고 도피성 대신 이 안에 들어와 가지고 말씀을 깨닫고 피해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줄로 믿습니다. 그런 분들 가운데 순장되는 분들 많이 계세요. 다시요 도피성을 향해 힘차게 달린다고 하더라도, 그 성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달리기 자체가 당신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은 겉으로 도는 신앙 제가 표현한 말로 맴돌기만 하는 신앙,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신앙 이런 신앙, 은혜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신앙을 달팽이 신앙, 이라고 했어요. 수년 동안 심지어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을 출발했는데 여전히 같은 지점에서 뱅 뱅 뱅 뱅 맴도는 신앙이 무슨 신앙이라고요? 달팽이 신해 오늘 성찬을 우리가 참여하면서 은혜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헌신의 수준이 뭔지를 모르는 그런 수준이 되지 말고 오늘 모두가 다 우리가 이 시간 맴 맴 성도 달팽이의 신앙을 처리할 수 있도록 은혜의 문턱을 넘어가는 귀한 성찬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오늘 성찬에 참여해야 되는데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예수님 예수님의 몸과 보혈의 우리의 몸을 피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우리의 삶에 뭐가 된다고요? 도피성이 되는 것입니다. 도피성이 되는 그래서 오늘 이 성찬이 최고의 도피성이 되는 것입니다. 도피성 대신 떡과 보혈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것이 그리고 도피성에 참여할 때에 오늘 마음의 소원을 하세요. 아까 제가 그 지도를 보여드렸는데 7절 8절에 요단강 서편의 3개, 그다음에 요단 동편의 3개, 그 6개가 그냥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각 이름 하나하나가 지닌 뜻이 있어요. 그래서 그 이름 하나하나 지닌 그 뜻의 도피성을 향하여 온 그 뜻이 여러분들에게 그대로 이번 성찬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게데스는 어떤 뜻이에요? 거룩한 곳이다. 성소다. 거룩한 곳이다. 여러분의 삶이 오염되었다고 생각한 분들 주여, 내 성찬을 통해 내 삶을 정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두 번째 뭐가 있어요? 어깨 견고함입니다.
세 번째는 뭐예요? 헤브론 헤브론에 있는 그 뜻이 뭐라고요? 교제라는 뜻이에요. 주님과의 교제가 뭐든지 오늘 성찬을 통해 주님과 더 나은 교재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외롭고 친구가 필요한 분들에게도 교제의 은혜를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 다음에 오른쪽에 뭐예요?
베셀은 요새다 포트리스다. 안전하다.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오늘 그대로 여러분들이 이걸 그대로 되게 그다음에 골란은 어떤 뜻이에요? 기쁨이라는 그 앞에 라못 이라는 뜻은 높은 곳 보호자라는 뜻이에요. 은혜의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골란은 기쁨을 오늘 성찬식에서의 시간을 통해서 여러분 참된 기쁨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기에 대한 어떤 글들에 대한 문턱만 문턱 앞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문턱을 넘어가세요.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
 
♣요약
우리는 보복이 두렵고 중독으로 가득 찬 정글 같은 세상에서 도피성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피하기를 소원하며, 매주일 성전에서 온전한 치유와 안식을 경험해야 한다. 가장 강력한 도피성인 성찬을 통해서 맴맴 신앙, 달팽이 신앙을 재정비하고, 세상을 바꾸는 하나님의 기도 군대가 되어서 뚜벅뚜벅 걸어가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2033-50 비전’을 이루어 가야 한다. 제22차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우리나라에 좋은 지도자의 복을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자.
-도피성은 극단적인 피의 복수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부지중에 살인한 사람들이 도피할 수 있는 은신처였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 죄를 용서해 주신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신 사랑 속에서도 발견된다. 모세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행해야 할 많은 일들을 지시해 주었다. 그 중 하나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하게 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성역을 지정하는 일이었다. 마음에 계획한 바 없이 단지 손으로만 죄를 범한 사람의 피가 그 피의 복수자에 의해서일지라도 흘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그 땅을 위해서였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 율법이 그들에게 크게 유익이 되는 것임을 상기시켜 주신다.















반응형
728x90

♣제22차 봄 글로벌 특별부흥호(2024년 4월 06일)-여섯째 날
-사는 날 동안 능력이 있으리로다.
제목: "포로된 자들을 돌아오게 하소서"
말씀: 시편 126:1-6
설교자: 필립 라이켄 목사님(휘튼 칼리지 총장)
----


*시편 126:1-6,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오타나 번역이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Good morning and God bless you. My name is Philip Reichen. I'm the president of Wheaton College. It's so good to be with you this morning, even across video. I love the beloved Sauron Community Church, and I want to send my greetings to Doctor John O as the senior pastor and also my, my friend Sam Koh, who coordinates global missions for sarong. It's been good to worship with you in the past on a number of occasions, including for early morning prayer. And I admire your commitment to God's kingdom, your commitment to Korea, your commitment to the church around the world, your commitment to the gospel of Jesus Christ. God bless you as you gather this morning to pray and to carry forward the work of the kingdom.
-좋은 아침입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필립 라이켄(Philip Reichen)이라고 합니다. 저는 휘튼 칼리지의 총장입니다. 오늘 아침, 화상을 통해서라도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사랑하는 사랑의 커뮤니티 교회를 사랑하고, 수석 목사인 존 오(John 오) 박사님과 사랑을 위한 글로벌 선교를 조율하는 저의 친구 샘 코(Sam Koh)에게도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과거에 이른 아침 기도를 포함한 여러 차례에 걸쳐 여러분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여러분의 헌신, 한국을 향한 여러분의 헌신, 전 세계 교회를 향한 여러분의 헌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향한 여러분의 헌신에 감탄합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이 모여서 기도하고 왕국의 일을 진행하는 동안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I have in front of me psalm 126, which is a great psalm of the faith and one of the psalms of ascent that the people of God used to sing as they went up to Jerusalem. And here is what the word of God says. When the Lord restored the fortunes of Zion, we were like those who dream. Then our mouth was filled with laughter and our tongue with shouts of joy. And then they said, among the nations, the Lord has done great things for them. The Lord has done great things for us. Restore our fortunes, O Lord.
-저는 126편의 시편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믿음의 위대한 시편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부르던 등정의 시편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주께서 시온의 은혜를 회복하셨을 때, 우리는 꿈을 꾸는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그러자 우리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혀에는 기쁨의 함성이 가득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여러 나라 가운데서 주께서 그들을 위해 큰일을 해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큰일을 해 주셨습니다. 주님, 우리의 은혜를 회복시키십시오.

Like streams in, in the Negev, those who sow in tears shall reap with shouts of joy. He who goes out weeping, bearing seed for the sowing, shall come home with shouts of joy, bringing his sheaves with him. This is the word that God has promised to bless to our minds and to our hearts, and a word I hope will be encouraging to you. As I was preparing to preach from this passage, I came across the story of Petter Yasik. Petter was a minister in communist Czechoslovakia. He had traveled to Sudan, which he knew could be dangerous.
-네게브 강에서 시냇물처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의 단으로 수확할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의 함성으로 집으로 돌아올 것이며, 그의 단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마음에 축복을 약속하신 말씀이며, 여러분에게 힘이 되는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구절에서 설교를 준비하던 중에 페테르 야식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페테르는 체코슬로바키아 공산국의 목사였습니다. 그는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수단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And while he was there, he was captured by the intelligence service at the airport, and he was put in a small prison cell with five terrorists from Isis. It was a desperate situation. He prayed for God to deliver him. He hoped that there were other christian people that were praying for him. But as time went on and as someone gave him a bible to read, and he was able to read it from COVID to cover, and as he began to witness to his fellow inmates and began to see some of them come to Christ, he stopped praying for God to deliver him from prison. He started to pray that God would just keep him faithful in prison as he continued to carry out the work of the gospel. Then something happened that really sent Petir Yasik into despair. He was given a life sentence for spying against Sudan.
-그리고 그곳에 있는 동안 그는 공항의 정보국에 붙잡혔고, 다섯 명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과 함께 작은 감옥 감방에 갇혔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인도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다른 기독교인들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가 그에게 읽을 성경을 주었을 때, 그는 그것을 코로나로부터 읽을 수 있었고, 그가 동료 수감자들을 목격하고 그들 중 일부가 그리스도께 오는 것을 보기 시작하면서, 그는 감옥에서 그를 인도해달라고 하나님의 기도를 중단했습니다. 그는 복음의 일을 계속 수행하면서 하나님이 그를 감옥에서 충실하게 지켜주시기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정말로 페테르 야식을 절망에 빠뜨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수단을 상대로 스파이 활동을 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And he wasn't even sure if he could survive a life sentence. He would never see his family again. It was a deeply discouraging time. But he kept turning to the scriptures for consolation and encouragement. And one day, he was in the little prison courtyard, and he came to psalm 126, and he read these words. When the Lord brought back the captivity from Zion, we were like those who dream. And no sooner had he finished reading psalm 126 than one of the prison guards came up to him and said, today you will be released from prison. He could hardly believe it. It was actually just like the psalm being delivered from captivity and not even being able to believe it. It was like you were dreaming. It was so amazing and so joyful. As he reflected on this experience, Yasik said, that was a moment of joy like no other.
-그리고 그는 자신이 종신형을 받아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조차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가족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매우 낙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성경을 찾아 위로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작은 감옥 뜰에 있었고, 시편 126편에 이르러 이 말씀을 읽었습니다. 주께서 시온에서 포로를 다시 데려오셨을 때, 우리는 마치 꿈을 꾸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시편 126편을 다 읽자마자 교도관 중 한 명이 다가와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거의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포로에게서 시편이 전달되는 것과 같았고 심지어 믿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놀랍고 너무 기뻤습니다. 이 경험을 되새기면서 야식은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의 순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As the other prisoners hugged me and they rejoiced over my release, we were shouting for joy. And he said, although I gave my life to Christ when I was 15 years old, I think it has more meaning now when I say, Lord, the rest of my life is yours. You brought me out of prison. You saved me from a life sentence. The rest of my life is yours. It's in your hands. Here I am. I want to serve you for the rest of my life. Well, hopefully, that's the same commitment that you've made to Jesus, to serve him with the whole rest of your life. And psalm 126 encourages us to follow through on that commitment because it assures us that there is a God who answers prayer and rescues his people. Let me just tell you a little bit about the context for this psalm.
-다른 죄수들이 저를 껴안고 제가 석방된 것을 기뻐할 때 우리는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하길, 비록 제가 15살 때 그리스도께 제 생명을 바쳤지만, 이제는 주님, 제 남은 인생은 당신의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저를 감옥에서 꺼내주셨습니다. 주님은 저를 종신형에서 구하셨습니다. 제 남은 인생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저는 여기 있습니다. 저는 주님을 평생 섬기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예수님께 하신 그 약속과 같은 약속이 평생 그를 섬기도록 희망합니다. 그리고 시편 126편은 기도에 응답하고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보장하기 때문에 그 약속을 따르도록 독려합니다. 이 시편의 내용에 대해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It references a time of captivity and a return to the city of God, to Zion, to the great city of Jerusalem. And this is from the end part of the psalms, book five that runs from psalm 107 through psalm 150. And these are psalms that, for the most part, were written to celebrate God's work with his people during their years of captivity in Babylon and then their return. If you know your Old Testament history, you know the people of God were held captive for some 70 years in Babylon, and, you know that was not a time of singing. If you look at psalm 137, that famous psalm, just a little bit later in the psalter, the people say, how can we even sing when we're in captivity? We're not at our in in. We're not in the city of God. We're not back home in Jerusalem. We're gonna set aside our instruments. We're not gonna sing any. And even when our enemies say, to us, to mock us, sing us one of the songs of Zion.
-이것은 하나님의 도시로, 시온으로, 위대한 도시 예루살렘으로, 포로로 잡힌 시간과 돌아온 시간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시편의 마지막 부분에 나온 것으로, 시편 107편부터 시편 150편까지에 이르는 5권입니다. 이것들은 대부분 바빌론에 갇혀 지내면서 하나님이 백성들과 함께 하신 일을 축하하기 위해 쓰여 진 시편들입니다. 여러분이 구약성경의 역사를 안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빌론에 70년 동안 갇혀 있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때는 노래할 때가 아니었음을 아실 것입니다. 시편 137편을 보시면,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포로로 잡혀있을 때,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시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악기들을 따로 보관할 것입니다. 우리는 노래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의 적들이 우리에게 조롱하라고 말할 때도, 우리에게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불러줍니다.

We can't even do it because we're weeping so much with despair over the suffering that we're going through. And maybe you felt at times that your life is like that, and maybe you're going through times of difficulty right now, shedding tears for your children or grandchildren, really in despair over your situation at work. Maybe deeply concerned about the spiritual struggle that Korea is in today or concerned about the world situation for the church. There are many tears of lament that we could shed for the challenges that we face in this fallen world. But psalm 126 is about deliverance and about the joy comes when God releases you from captivity, when you're delivered from bondage to sin, perhaps first come to faith in Jesus Christ, or when you see the Holy Spirit work in your life in a powerful way to break some form of bondage, or when you see God working that way in somebody else's life. This is the kind of rejoicing that you would give.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에 절망하며 너무 많이 울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이 그런 것이라고 때때로 느꼈을 수도 있고, 아마도 여러분은 지금 자녀들이나 손자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정말로 직장에서의 상황에 절망하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오늘날 한국이 겪고 있는 영적인 투쟁에 대해 깊이 우려하거나 교회의 세계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타락한 세상에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들을 위해 흘릴 수 있다는 한탄의 눈물이 많습니다. 하지만 시편 126편은 인도에 관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감금에서 풀어주실 때, 여러분이 속박에서 죄로 인도받으실 때,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먼저 오셨을 때, 혹은 성령께서 여러분의 삶에서 어떤 형태로든 속박을 끊어내기 위해 힘 있게 일하는 것을 볼 때, 혹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의 삶에서 그렇게 일하는 것을 볼 때 그 기쁨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줄 기쁨의 종류입니다.

And it was like this for the children of Israel when they received the news that they would be freed from Babylon and be able to travel back to their home in Jerusalem. These were words to sing and not just to say, not just to read. And we can add our testimony to the testimony of the people of God. In Old Testament times. The Lord has done great things for us. To God be the glory. Maybe you know this famous hymn to God be the glory, great things he has done. It's really an echo of psalm 126 and as many reasons as the children of Israel had to give God the praise, we have even more reasons. Because of our salvation in Jesus Christ. We have an eternal salvation. We have a home in heaven. We've been delivered fully from the bondage of sin. Praise God for the great things that he has done in our lives and specifically the things that he has done through Jesus Christ.
-이스라엘 자손이 바빌론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가 이와 같았습니다. 이것은 노래하기 위한 말이었고 단순히 말하기 위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백성의 증언에 우리의 증언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주님은 우리를 위해 큰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이 되게 하소서. 어쩌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이 유명한 찬송가가 영광이 되시기를, 또 큰 일이 되시기를 알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정말로 시편 126편의 메아리이며,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했던 것만큼이나 많은 이유로 우리는 더욱 많은 이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천국에 집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서 하신 위대한 일들과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신 일들을 찬양합니다.

Now I want you to notice in this psalm that the first half of the psalm is all about praise and rejoicing. It's answered prayer and the joy that comes when you see God work. But you'll notice when you turn to verse four, the second half of the psalm, there's a change in perspective and perhaps a change in situation because the psalmist says, restore our fortunes, Lord. So now this is a time of difficulty and discouragement. And the psalmist is saying, Lord, you answered our prayers in the past and it brought us great joy. We're in a tough situation again, and we are asking you now to restore us, to do again what you've done before, and that should be a great encouragement as you gather for early morning prayer in the great city of Seoul this morning.
-이제 여러분은 이 시편에서 시편의 전반부가 모두 찬양과 기쁨에 관한 것임을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일하는 것을 볼 때 오는 것이 응답된 기도이며 기쁨입니다. 하지만 시편의 후반부인 4절로 넘어가면 관점의 변화와 어쩌면 시편가가 말하기를 우리의 운세를 회복시키십시오. 그래서 지금은 어려움과 낙담의 시기입니다. 시편가가 말하기를, 주님, 과거에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고, 그것이 우리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우리는 다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으며, 지금 여러분에게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고, 이전에 하신 일을 다시 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그것은 오늘 아침 서울의 큰 도시에서 새벽 기도를 위해 모일 때 큰 격려가 될 것입니다.

You've seen God answer many prayers in your life for the people you love, also for the ministry of Sauron Community Church. But there's a need for God to answer those prayers again. Think of the great things that God has done in Korea in past years. I think of the Pyongyang revival. I think of the way that welsh and then later english and american missionaries brought the gospel to Seoul. Seasons of revival, people that gave their lives for the gospel, the outpouring of the Holy Spirit. When Billy Graham came to Seoul for his famous crusades. Billy Graham, Wheaton College alum who studied right in Blanchard hall, the building you see behind me, these are some of the things that God has done in Korea and the tremendous global work of missions that has come through korean churches, and that work is going on all over the world today. And maybe there's a part of you that looks at the past and says, Lord, we need you to do it again.
-여러분은 여러분이 살면서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또한 사랑의 교회 사역을 위해 많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다시 응답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위대한 일들을 생각해 보세요. 저는 평양 부흥기를 생각합니다. 웨일스와 그 후 영미 선교사들이 서울에 복음을 전했던 방식을 생각합니다. 부흥기의 계절,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 성령의 분출물들. 빌리 그레이엄이 유명한 십자군 전쟁을 위해 서울에 왔을 때입니다. 제 뒤에 보이는 건물인 블랜차드 홀에서 바로 공부한 휘튼 칼리지 졸업생 빌리 그레이엄은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한국에서 하신 일들과 한국교회를 통해 들어온 선교의 엄청난 세계적인 일들이며,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여러분 중에 과거를 바라보며 주님, 우리는 당신이 다시 그것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Restore our fortunes, do again a work of grace, of revival, of sending out missionaries. Start with me with the work that you need to do in my life. Psalm 126 is a prayer of celebrating answered prayer. And it's a psalm of coming back to God again in prayer to ask him to do the same kinds of things that he's done in the past. As the psalmist describes his situation, you get a sense it's a time of great difficulty. He mentions the Negev, which is the very dry part of Israel in the south. It runs from the runs all the way down to the Red Sea. It's effectively a desert. It's a very dry place. The water doesn't run there except when there are occasional rains. And that's what the psalmist is imagining. He's in a desert place spiritually.
-우리의 재산을 회복하고, 은혜와 부활의 일을 다시 행하라, 선교사들을 보내는 일을 내게 하소서. 당신이 내 삶에서 해야 할 일부터 시작하라. 시편 126편은 응답된 기도를 축하하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 돌아와 과거에 하신 것과 같은 종류의 일들을 해달라고 기도하는 시편입니다. 시편가가 그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듯이, 당신은 그것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네게브 강에 대해 언급합니다. 네게브 강은 남쪽에 있는 이스라엘의 매우 건조한 지역입니다. 그것은 사실상 사막입니다. 그곳은 매우 건조한 곳입니다. 가끔 비가 올 때를 제외하고는 물이 그곳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시편가가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는 영적으로 사막의 장소에 있습니다.

But when you're in the desert, there are places where you can see a dry riverbed. There's no water in it, but you can tell there's been water there before. And if the rains fall, perhaps in the mountains, the water will rush down again and it will again fill the desert and the flowers will bloom and there will be a place for the birds to get the sustenance that they need. The waters do sometimes come to the desert places, and that's what the psalmist is asking for. Lord, come to this dry place, fill it with water and help things flourish again. And he also uses this analogy of sowing and reaping a farmer planting seed in the ground and then waiting for God to bring the harvest. Maybe it's a little surprising for you to see this farmer weeping as he plants the seed. But maybe you can imagine a family that has exhausted almost all of its food resources has almost nothing left.
-하지만 사막에 가면 마른 강바닥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물은 없지만, 전에도 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비가 내린다면, 아마도 산에서, 다시 물이 쏟아져 내려올 것이고, 사막을 다시 채우고 꽃이 피고 새들이 필요한 식량을 얻을 수 있는 장소가 생길 것입니다. 사막의 장소에 가끔 물이 오기도 하는데, 그것이 시편에서 요구하는 것입니다. 주님, 이 건조한 곳으로 오셔서, 물을 채우고 다시 번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또한 그는 농부가 땅에 씨앗을 심고, 하나님이 수확을 가져다주시기를 기다리는 비유를 사용합니다. 어쩌면 이 농부가 씨앗을 심으면서 우는 것을 보는 것은 여러분에게 조금 놀라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마도 여러분은 식량 자원을 거의 다 소진한 가정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All it has left are the seeds that are left from the harvest from the year before. And they're going to have to plant those seeds in the ground. They're not going to be able to eat those seeds. They need to plant them so that again, something will grow and God will be able to sustain them. That's the picture here at the end of the psalm. And there are times in life when we're doing God's kingdom work, and there are a lot of tears that go with it because it's hard and because we don't seem to see any fruitful results. So we have to keep laboring in the hope of a coming harvest. And this psalm gives us such great assurance that if we're faithful to God's work and if we persevere in that work, our labor is not in vain, and one day there will be a harvest. I read a marvelous story that illustrates this psalm from a swedish missionary couple that traveled from Sweden to Belgian Congo.
-이제 남은 것은 1년 전에 수확한 씨앗뿐입니다. 이제 그 씨앗들은 땅에 심어야 합니다. 그 씨앗들은 먹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씨앗들을 심어야 다시 무언가가 자라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지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시편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사진입니다.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나라 일을 할 때면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힘들기도 하고 결실을 볼 수 없는 것 같기도 해서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수확이 오기를 바라며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이 시편은 우리에게 큰 확신을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충실하고 그 일을 인내한다면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는 수확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스웨덴에서 벨기에 콩고로 여행한 스웨덴 선교사 부부의 놀라운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And when they arrived at the place where they wanted to proclaim the gospel, the king of the local tribe said, you can't live here. We don't want anything to do with any other gods. You're going to have to live outside the community. There was only one person that they had an opportunity to contact. It was a little boy from the village who would go out every day to sell them eggs and perhaps from time to time, a chicken. And the missionary wife, whose name was Faia Flood, proclaimed the gospel to that little boy every day. Well, sadly, in a time of childbirth, she gave birth to her firstborn, a daughter, and then died just a few weeks later. Her husband was in despair. He was angry with God that his wife had been taken away from him. He gave up on the mission field. He gave his daughter to another missionary family. He went back home to Sweden. He didn't want to have anything to do with God again.
-그리고 그들이 복음을 선포하고 싶은 장소에 도착했을 때, 지역 부족의 왕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신들과도 관계가 없기를 원합니다. 당신은 공동체 밖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접촉할 기회를 가진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매일 밖에 나가서 계란과 아마도 가끔 닭을 팔곤 했던 것은 마을의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교사 부인의 이름이 파이아 플러드였는데, 그는 매일 그 어린 소년에게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자, 슬프게도, 그녀는 출산의 시기에 첫 아이인 딸을 낳았고, 그리고 나서 불과 몇 주 후에 죽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절망했습니다. 그는 그의 아내가 자신으로부터 빼앗긴 것에 대해 하나님께 화가 났습니다. 그는 선교장을 포기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딸을 다른 선교사 가정에 맡겼습니다. 그는 스웨덴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다시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기를 원했습니다.

Amazingly, when that little girl grew up in the United States, one day she saw a magazine and she saw a picture of her mother's tomb. It said Zvey Flood, and it showed the place where she was buried. And she was amazed to discover that through the gospel efforts of her mother, that community had come to Christ. That little boy that sold them the eggs became the minister and she went to Sweden, told her father about it. He gave his life back to Christ. She went back to Belgian Congo. She knelt at the grave of her mother and the pastor, that little boy that had sold the eggs and had come to faith in Jesus Christ. He opened his Bible to psalm 126 to read this psalm over her as a psalm of blessing. Those who sow in tears, they're going to come back. They're going to come back home to God. They're going to come reaping the harvest of redemption.
-놀랍게도, 그 어린 소녀가 미국에서 자랐을 때, 어느 날 그녀는 잡지를 보았고, 그녀는 어머니의 무덤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즈비 플러드 라고 쓰여 있었고, 그것은 그녀가 묻힌 장소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어머니의 복음적인 노력으로 그 공동체가 그리스도께 온 것을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그 알들을 팔았던 그 어린 소년이 목사가 되었고, 그녀는 스웨덴으로 가서 그녀의 아버지에게 그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는 그의 생명을 그리스도께 돌려주었습니다. 그녀는 벨기에 콩고로 돌아갔습니다. 그녀는 어머니와 목사의 무덤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소년은 축복의 시편으로 그녀에게 이 시편을 읽어주기 위해 126편의 시편에 성경을 열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파종한 사람들은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의 수확을 거두러 올 것입니다.

This is a promise for us to believe as we turn together. God in prayer. God bless you. Sarang community church.
-이것은 우리가 함께 돌면서 믿는 약속입니다. 기도하는 하나님. 여러분에게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공동체 여러분...

♣요약








♣제22차 봄 글로벌 특별부흥호(2024년 4월 06일)-여섯째 날
-사는 날 동안 능력이 있으리로다.
제목: "
말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


반응형
728x90

 


♣주일예배(주후 2024년 03월 31일)
제목: "나의 지팡이에 생명의 싹이 날 수 있는가
(Can My Sprout with Life)?"-(부활절 특별 메시지)
말씀: 민수기 17:1~8, 히브리서 9:4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조이키즈(joy kids),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장명철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민수기 17:1~8,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 중에서 각 조상의 가문을 따라 지팡이 하나씩을 취하되 곧 그들의 조상의 가문대로 그 모든 지휘관에게서 지팡이 열둘을 취하고 그 사람들의 이름을 각각 그 지팡이에 쓰되.
3 레위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쓰라 이는 그들의 조상의 가문의 각 수령이 지팡이 하나씩 있어야 할 것임이니라.
4 그 지팡이를 회 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 궤 앞에 두라.
5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
6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매 그들의 지휘관들이 각 지파대로 지팡이 하나씩을 그에게 주었으니 그 지팡이가 모두 열둘이라 그 중에 아론의 지팡이가 있었더라.
7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히브리서 9:4,
4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 들이 있고.
ㅡㅡㅡㅡㅡ
 
▶찬양대가 오랫동안 준비한 귀한 찬송을, ‘그는’ 찬양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 줄로 확신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참 잘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봄에는 부활절을 주시고, 여름의 문턱에는 성령 강림절을 주시고, 가을에는 뭘 주시죠? 추수감사절을 주시고, 겨울에는 뭘 주시죠? 성탄절 주셔갖고 은혜의 신선도, 신앙의 신선도를 유지하게 하시고, 그리고 영적인 힘을 잃지 않도록 은혜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전 세계가 지금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고 있고, 한국교회 6만여 한국교회가 또 이와 같이 부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모든 한국교회가 다 이렇게 복음을 믿고 삼위일체 하나님 믿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모든 한국교회는 다 지난해 2천년 동안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세계 교회가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가만히 계실 겁니까?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수없이 증가하는 거야. 수없이 성경과 수없이 수많은 파치먼트, 양피지와 파파일러스, 파피루스를 통한 수많은 증거를 가지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그냥 조금 몇 개 있어요. 근데 부활에 대한 증거는 수 천, 수만 개가 있어요. 아멘 역사적 사실을 믿으면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충만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아까 아이들 찬송하는 거 보셨죠? 물론 몇 명은 이라고 불렀지만 내가 좀 걱정되더라고요. 이분은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빅토리, 빅토리! 애들이 기쁨이 충만하고 이 기쁨이 있으면 자동적으로 부활의 은혜와 부활의 진리와 능력을 자연스럽게 이웃에게 전하는 사명 자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 또 기쁨 그리고 사명 자가 되는 것이에요. 전 세계 교회가 부활주의를 맞이할 때마다 다시 한 번 확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라는 것은 너무 우리가 다 부족한 인생이지만 이 부활의 능력을 통하여 영적인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에요.
 
오늘 제가 말씀의 제목을 “나의 지팡이에 생명의 싹이 날 수 있겠는가? 라고 이렇게 붙이고, 오늘 여러분들이 본문을 읽었습니다마는 오늘 이 지팡이는 증거 궤(證據 櫃) 안에 있는 구약의 언약교회 안에 있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말씀하고 있는데, 오늘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성경 전체로 또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전체 시각을 갖고 볼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 하는 것이에요. 뭘 예표 한다고요?
 
예수님의 신뢰할 만한 우리 성경학자들, 신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뭔가 읽어보겠습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생명으로 꼽힌 예수님의 부활의 모형(Typology)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모시는 모든 사람들도 앞으로 부활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또 인생에 있어서도 메마른 막대기, 바싹, 마른 막대기 같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부활의 은총을 입을 것이다. 장래도 그러고 현재도 메마른 인생, 그래서 이 부활에 대한 중요한 하나의 구약의 에스겔 37장에 보면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거 기억나시죠? 마른 뼈도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 중에 하나가 오늘 마른 막대기 같은, 마른 막대기도 살아날 수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리고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지성서 법계 안에 그 언약궤, 증거 궤, 언약궤 그러는데 이 언약궤 안에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두 개 하셨어요. 여기에 대해서는 신약에서 가장 잘 신학적으로 해석한 히브리서에서 오늘 여러분들이 히브리서 본문도 읽었잖아요. 히브리서 9장 14절, 9장 4절에 다시 한 번 또박또박 같이 읽습니다.
 
*히브리서 9:4,
4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 들이 있고.
-잠깐 지성소 안에, 지성소 안에 뭐가 있다고요? 언약계가 있고, 그다음에 그 언약 궤, 아니 그 안에 시작,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 판들이 있다. 그리고 세 가지가 있는 거 언약교회 안에 그 언약궤 안에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뭐냐? 두 돌비가 있다. 두 돌비는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매일매일 삶의 현장에서 말씀으로 영적으로 인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돌비를 가지고 그다음에 거기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가 있다. 이것은 매일매일 우리의 삶은 육신의 현장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먹여주시는 것이다. 특별히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생명의 떡이 되시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뭐가 있는가?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통하여 믿는 사람의 구원이다. 크게 보면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게 이 정통 신학이에요. 세 가지,
 
⓵성부 하나님 두 돌비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언약과 공의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 만나 항아리로 생명의 떡으로 우리를 먹여주시고,
⓷성령 하나님께서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의 삶을 부활시키는 은혜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오늘 말씀 가운데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오늘 이 부활을 믿고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이 부활을 믿고 확신할 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오늘 요절이에요. 요절 오늘 앞에 요절 8절, 오늘 민수기 17장 8절에 다 같이 보겠습니다.
 
*민수기 17:8,
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첫째 뭐가 뒀고요. 오늘 8절은 거의 말씀 마칠 때는 거의 다 외우고 갈 것입니다.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왜 주셨는가 8절에 이 말씀을 주신 이유가 뭐냐 하면 오늘 17장인데 민숙이 16장에 보면 참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어요.
 
무슨 사건이 있었냐면 고라, 다단 아비납이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대적을 하여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으로만 말씀하셨는가? 그러니까 소위 원망을 하고 또 그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에 대해서 항의를 하고, 그러니까 모세와 아론에 대해서 고라, 라든지 그런 그 고라도 같이 같은 레위 지파예요. 같은 레위 지파, 그런데 우리 같은 다 레위 지파인데 모세도 레위 지파고 아론도 다 레위 지파인데 자기들만 하냐, 우리는 안 되냐 하나님이 나 한 사람만 뽑았냐,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똑같이 아니 그러면 그 사람들만 일하느냐? 모세 모세와 아론만 일하느냐? 막 이런 식으로 똑같이 했는데 겉으로 볼 때는 별로 이게 리더십이 한 사람만 있나? 다 같이 나누면 괜찮지,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어느 정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본 거예요.
 
그 중심의 바탕에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게 뭐예요? 모릅니까? 병 이름이 원,불,비라는 병이 있는 거예요. 원불비가 뭐예요? 성이 원씨고, 이름이 불비야? 원망과 불평과 비난(원불비)이 그 속에 이게 잠재되어 있는 걸 보시고, 그 속에 고라, 그다음에 다단, 아비납 그래가지고 그걸 보시고,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어요? 겉으로 볼 때는 이들이 뭐 별로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속에 보니까, 하나님이 주신 권위에 도전을 하고 원,불,비에 근성에 있어가지고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하세요. 바로 앞에 17장 1절 바로 앞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이 반적을 한 주동자들이 고라이제 고라를 중시한 주동자들을 그냥 땅이 갈라져 가지고 삼켜버리시고, 불을 보내셔 가지고 250명을 태워버리셨어요. 어마어마하게 긴장되는 장면이에요. 이거는 우리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지만, 우리의 삶의 형편을 볼 때에 많은 걸 도전받을 수 있는 것이고, 또 상황이 이렇게 되면 일반 백성들은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더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의 온 회중인 모세와 아론을 또 원망하는 거예요. 민수기 16장 바로 앞에, 그래가지고 무슨 일을 있냐면, 하나님께서 이 화중의 회중들의 이 반역, 그러니까 광야 시대부터 나타났던 이 참 잘못된 DNA 이 원,불,비 여기에 대해서 전염병을 주셔가지고, 심판을 내리셨는데 하루아침에 염병(染病)으로 1만 4,700명이 죽어버렸어요. 바로 앞이에요. 그러면, 그러면 이게 끝인가? 하나님께서는 고라 다단 아비납, 이런 사람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인가? 1만 4,700명을 염병(染病)으로 하루아침에 죽이는 것이 하나님 뜻인가? 그게 아닌 거예요. 근본적으로 그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잘못되어 있는 어떤 원망과 불평과 비난이란 뭡니까? 이 병을 좀 고쳐야 되겠는데, 이 병을 어떻게 고치면 좋겠나, 여기에 안타까운 심정이 담겨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 병을 고쳐야 비상을 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 11장 1절 8절 읽었습니다마는 10절이 중요한데 17장 10절을 다 같이 또박또박 같이
 
*민수기 17:10,
10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 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하나님의 관심은 그들을 죽이고 그들을 무덤에 장사 지내는 것이 하나님의 관심이 아니고, 그들이 더 이상 원,불,비(원망 불평 비난)에 이 잘못된 이 병에 걸려 있는 이 불치의 병에 걸린 이들을 고쳐야 되겠는데, 어떻게 하면 고치겠는가? 오늘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통하여 그걸 고쳐야 되겠다. 그래서 그 아론의 싹 난 지팡이의 기적을 가지고 그들이 나에 대한 내게 대한 뭘 그치고요. 원망을 거치고, 아론과 모세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그 사람들의 그 중심을 아시니까, 그래서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도록 오늘 이 사건을 가지고 은혜를 주신 것이에요. 아무쪼록 우리 속에 있는 많은 부족한 것들이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 마음속에 사람들이 되게 다 어렵잖아요. 다 힘든 부분들이 있어요. 오늘날 우리 이 사회에 만연한 이 사회의 가장 만연한 병이 원,불,비 라면 우리 속에도 그 부부 사이에도. 부모와 자녀 간에도. 교회 내에서도, 수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데 하나님은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으로 이 부활절 날 각자에게 주신 음성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원망을 그치게 한 증거가 뭔가, 그러면 어떻게 원망을 거치게 한 증거를 주시는가? 첫 번째, 레위 지파만 지팡이 이름에다가 아론이라고 이름을 쓰게 했다. 두 번째 뭐라고요? 움이 트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맺혔다.
 
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⓵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⓶움이 돋고 순이 나고 ⓷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하나님께서 각 지파에게 지팡이를 하나씩 가져오게 해가지고 거기다 이름을 다 쓰라고 그랬어요. 유다는 유다 지파 다 쓰게 하고, 레위 지파만 지팡이 이름에다가 아론이라고 이름을 쓰게 했어요. 그 12개 지팡이를, 지팡이를 가져오라고 그러고 그리고 지성서 언약궤 앞에 들어와 밤새도록 언약궤 기 위해서 밤새도록 언약 궤 앞에 있게 했고, 그 지팡이가 보니까 이튿날 보니까 이튿날, 8절에 아까 이튿날 보니까, 첫 번째 뭐가 되고요? 움이 트고 두 번째 뭐라고요? 순이 나고 세 번째 뭐라고요? 꽃이 피어서 그다음 뭐가 됐다고요? 살구 열매가 맺혔다. 이 놀라운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난 거예요. 부활절 용어로 말하면 오늘 부활의 기적과 능력이 임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너무 참 기가 막힌 게 왜? 나머지 11지파의 막대기에는 메마른 거 그냥 그대로 두었는데,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났는가? 왜 그랬을까? 오늘 5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5절에 답이 있습니다. 함께요.
 
*민수기 17:5,
5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
-자, 이해가 됩니까? 우리 속에 기본적으로 어떤 병이 있다고요? 원불비의 병이 있다. 그 원불비의 병을 거치게 하는 것이 뭐라고요? 택한 자의 지팡이에 싹 난 지팡이를 통하여, 오늘 우리가 메마르다고 하는 거, 희망이 없다고 하는 거, 이제 끝이라고 하는 거, 거기에 하나님께서 싹이 나게 하셔가지고 근본적인 저와 여러분의 우리의 근본적인 잘못된 속성을 고쳐주시는 것이에요. 이유를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아론을 선택하시고, 아론을 통해서 일하신 걸 보여준 거예요. 그래서 옛날에 요즘에 있습니다. 옛날에는 우리 한국교회 부모님들이 자녀들 이름 붙일 때 박아론, 김아론 그다음에 정아론 이름이 있죠. 이런 이름들이 있죠? 그리고 또 이게 하필이면 왜 살구나무인가? 살구나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살구 정도가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몬드 나무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에요. 그러니까 희망과 약속을 상징하는 나무에요. 봄의 전령사예요. 지난주에 갑자기 개나리와 진달래가 핀 거 여러분 보셨죠? 우리나라에도 개나리와 진달래가 봄을 알려주는 것처럼, 이스라엘에서는 아몬드 꽃이 봄이 왔음을 말씀하는 거예요. 죽은 것 같은 겨울에 모든 상황이 봄에 꽃피움으로 부활을 나타내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살구나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단어 ‘샤케드’라는 단어는 ‘깨어 있다.’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약속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 한다. 희망이 도래 한다. 그런 뜻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희망 없고 힘들고 어렵고 모든 것이 다 어둠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가끔 강력한 희망의 상징으로 보여주는 것이 뭐냐 하면 이 살구나무였어요.
 
예레미야 시대 때는 눈물의 통곡하는 시대이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눈물로 하나님 앞에서 정말 그 상황 자체가 어려운 시대인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뭐라고 하면, 다 안 된다고 그래 예레미야 1장 11절 12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예레미야 1:11-12,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예레미야야, 슬프냐, 힘드냐, 희망이 없냐? 내가 너에게 증거를 하나 보여주겠다. 그것이 살구나무니라. 그리고 살고 나무를 볼 때마다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는 것, 이스라엘 백성들이 1만 4,700명이 하루아침에 염병으로 죽고 250명이 불타 나가 죽지만, 더 이상 죽지 않도록, 더 이상 원불비에 전염이 돼가지고,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하지 않도록, 살구나무의 씨를 가지고 살구, 살구나무의 싹을 가지고, 살구나무의 꽃을 가지고 살구나무 열매를 맺게 해 주시리라.
 
그리고 출애굽기 25장에 보면 성소에 있는 등대, 항상 불이 어두워 있어요. 항상 어둡죠. 밤에는 깜깜 어둡죠. 어둠을 밝히는 등대, 그 유일한 등대, 어둠을 밝히는 등대를 무슨 꽃 모양으로 만들라 살구꽃 모양으로 만들라. 살구나무는 어려운 시대에 희망이 없던 시대 가운데서 살구나무 그리고 살구나무 열매와 꽃을 가지고 부활의 소망을 주시려고 하는 주님의 목자의 심장이 담겨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살구나무 지팡이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받습니까? 올바른 생명의 씨는 살고 열매를 맺히게 하는 줄로 확신합니다.
 
왜? 다른 지팡이 열한 지팡이 지팡이에는 싹이 전혀 나지 아니하고, 생명도 없고 열매도 맺지 못하는데 왜 아론의 지팡이에는 하룻밤 사이에, 밤새 하룻밤 사이에, 다시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가? 거기에는 하나님이 위로부터 선택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차이가 뭐냐 면요. 생명이 있고, 없고 차이인 줄로 확신하셔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론의 지팡이에는 아론이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셔가지고 위로부터 온 생명의 역사가 그 지팡이에 임하게 된 것이에요.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에게는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 생명의 씨에 대해서 눈이 열리도록 만들어주신 하나님이신 것을 이 부활 주일날 찬양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의 현장은 메마른 막대기예요. 우리의 삶의 현장은 원망과 불평도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삶의 지팡이에 생명의 씨가 있으면, 반드시 우미 돋고 순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자라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생명이 있으면 자라게 돼 있는 것이에요. 어떤 경우에도 이 사실을 여러분들이 약화시키지 말아야만 하는 것이에요. 다시요. 따라가서 생명이 있으면 생명의 씨가 있으면 꽃이 핀다. 열매가 맺힌다. 아멘 생명의 씨가 있으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움이 돋고 그다음에 자라게 되어 있는 거예요. 생명이 있으면 자라게 되어 있는 것이 너무너무 중요한 것은 그러니까 포인트는 이겁니다.
 
삶의 현장에 메마름이 있고, 수많은 원망이 있고, 수많은 아픔이 있고,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염병이 있고 다 있다 할지라도 오늘 신약시대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통한 말씀의 씨와 생명의 씨가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이에요. 우리 주위에 지금 당장은 메마르고, 당장은 어렵고, 당장은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고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 속에 강력한 생명의 씨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에요.
 
오늘 이 말씀을 듣고 그렇습니다. 주님!! 하고 소망도 없고 빛도 없는 어두운 세상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하고 믿고 구하고 하나님께 손을 들면 그 잠재력이 확대되어 가지고 움이 돋고,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이게 너무 중요한 겁니다. 그리고 이 은혜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나 혼자만이 아니라, 이사야 27장 6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는가 너무나 중요한 다 같이 함께요.
 
*이사야 27:6,
6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우리로다.
-오늘 이사야에서 말하는 자 27장에 말하는 이스라엘은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말씀을 믿고 따르고 확신하고 이 말씀을 이 말씀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지면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동일하게 움이 돋고 꽃이 피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이 말씀을 어떻게 우리가 적용하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삶의 지팡이가 생명의 지팡이가 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지팡이가 내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의 시작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어디서 왔냐? 이게요. 모세의 지팡이였다는 거예요. 모세의 지팡이를 아론이 가져가고 거기에다 갖다 놓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 되었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무리한 해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모세의 지팡이가 어떻게 생명의 지팡이가 되고, 어떻게 아론에서 싹 난 지팡이로 변할 수가 있었습니까? 본래 모세는 자기 생업에 지팡이가 있었어요. 자기가 양치는 지팡이가 있는 거예요. 그 양치는 지팡이가 나중에 하나님께서 이 지팡이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라. 여러분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랬을 때 모세의 지팡이가 단순히 모세의 지팡이, 본래 모세는 그 지팡이 양치고 생업을 유지하고 그런 지팡이였어요. 그 지팡이가 출애굽기 4장 20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는가 이렇게 나와 있어요. 같이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4:20,
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할렐루야! 자기가 모세가 양치는 지팡이였어요. 그 지팡이가 무슨 지팡이로 변화되었다고요 하나님의 지팡이로요. Key는 이거예요. 살구나무의 싹이 나고, 원불비를 그치게 하는 생명의 싹이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을 믿고, 부활의 이 귀한 축복을 가지고 고백하고 확신하고 찬양하면, 여러분의 손에 들려 있는 일상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는 것이에요. 내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해 주시는 거예요. 내 삶이 아니라 주님이 내 삶을 이끌어가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이에요. 우리는 우리의 삶의 지팡이, 공부의 지팡이도 있고, 직업의 지팡이도 있고, 가정의 지팡이도 있고, 내 삶에 수많은 지팡이들이 있어요. 그것을 내 것으로만 끝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할 것인가? 모세의 손에 들렸던 그 단순한 지팡이가 아론의 손을 거쳐서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됐는데, 기적의 지팡이가 됐는데, 일상의 지팡이가 기적의 지팡이가 되고, 일상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고, 일상의 지팡이가 생명의 지팡이가 되고,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진 거에요.
 
내 공부가 내 몸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내 사업이 내 사업으로만 끝나지 아니하고, 내 가정에 내 가정으로만 끝나지 아니하고, 이 가정이 하나님의 가정의 지팡이가 되게 하시고, 내 사업이 하나님의 사업의 지팡이가 되게 하시고, 내 공부가 내 공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에, 하나님의 공부에 지팡이가 되게 하시고, 그럴 때 가슴이 뛰는 것이에요. 남들보다 더 큰 지혜를 주시는 것이고, 여러분의 손에 든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손에 든 지팡이가 무엇입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주 “네 손에 든 게 뭐냐?” 너의 일, 너의 공부, 너의 사역, 너의 가정,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야. 너는 사명의 지팡이를 가진 거야. 너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신약 적 해석은 요한복음 6장에 오병이어(五甁)二魚)의 사건을 통하여,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초라한 어린아이 도시락 하나,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지만, 이게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하면 그것이 오병이어(五甁)二魚)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에요ㅣ 축복의 근원이 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에요.
 
제가 우리 교우들 작년부터 ‘2033-50 비전’을 얘기하면 어떤 분들은 아이고야! 아이고야! 이래 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이나 저나 우리가 다 부족하지만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생명의 씨앗이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통하여 기적이 일어날 때, ‘2033-50 비전’을 통하여, 여러분도 살고 우리 교회도 살고 한국교회도 사는 것이에요. 세상에 10년 내로 대한민국의 50%가 예수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강력한 하나님의 지팡이에 대한 하나님의 사역과 꿈에 대한 우리의 간절한 소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주보 안에 여러분들 태신자 카드가 들어있어요. 나는요, 깜짝 놀랐어요. 어저께 저한테 우리 교회 권사님들이 이제 부활 주일을 위하여 준비하는 권사님 팀이 있는데요. 뭐 했어요? 그러니까 목사님 부활절 계란 만들었어요. 그럼 몇 개를 만들었어요? 5천 개? 아니에요. 목사님, 몇 개 만 개 아니에요 몇 개? 아니에요 몇 개를 만들었는데요? 3만 개요. 내 속으로 ‘간도 크다.’ 그렇지만 산더미처럼 있잖아요. 저 밖에서 스쳐 지나려면 지나가세요. 그러나 주님 저 태신자를 향한 저 달걀을 가지고, 뭡니까? 달걀을 가지고(전도용으로 판매함) 우리의 메마른 지팡이가 생명의 지팡이가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시대를 가르는 지팡이가 되게 도와주옵소서. 그래서 여러분의 삶의 지팡이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러분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될 때 여러분의 직업도, 주님이 주인 되어 주시고 가정에도, 주님이 되어 주님 되어 주시고, 우리의 수많은 삶의 어려운 환경들도,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한국에 좀 큰 사업을 하시는 어떤 장로님을 만났어요. 이분이 저한테 이제 간증을 하셨는데, 20몇 년 전에, 20여 년 전에 하루는 그 장로님 그 공장에 불이 났어요. 불이 나가지고요. 완전히 다 타버렸대요. 공장이 근데 이분은 본래 치밀하고 눈빛도 강하시고 철저한 분이었어요.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 좋은 장로님이셨지만 불나기 전까지는요. 눈에 불이 번쩍번쩍 나고 말이 좀 이상하네요. 불나기 전까지는 눈에 불이 번쩍번쩍 나고 그래갖고 직원들이 벌벌벌 떨고 그랬대요. 그리고 눈물을 거의 흘려본 적이 없대요. 그런데 불이 나가지고 완전히 공장이 다 무너지고 완전히 망해놓으니까 이분이 이제 경비실 밖, 경비실 옆에 망한 공장 앞에 있는 경비실 옆에서 어떤 그 옆에 그 벽에서요. 이 장로님이 사장인데 오는데 눈물을, 눈물을 처음으로 처음 울었다는 거야. 그래서 경비원이 ‘아이고 우리 사장님 울 때가 다 있으시네요.’ 그러면서 사장님 하면서 위로했다는 거에요. 경비원이. 근데 이제 이 장로님이 그런 생각이 들었대요. 나는 예수님 잘 믿고, 열심히 하려고 그러는데,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가? 그런데 왜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가? 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갑자기 하나님께서 딱 깨닫게 하시는 건 뭐냐 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나쁜 일이 있겠는가?’ 왜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 그런 원불비죠? 그렇죠.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이 하신 일에 나쁜 일이 있겠는가? 그건 지금 그분의 속에 잠재된 생명의 씨앗이 움트는 것이 맞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나쁜 일 있게 다 하니까 갑자기 막 얼굴이 굳어지고 막 눈물이 나고 그런 상황이 갑자기 얼굴이 평안해지더래요. 얼굴이 막 밝아지더래. 얼굴이 바뀌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은행에 외국인 행장이 그 얼굴을 보면서 장로님이 바뀐 얼굴을 보고 돈을 빌려줬대요. 그래갖고요. 딱 8개월 만에 딱 8개월 만에 완전히 망한 공장을, 8개월 만에 완전히 새롭게 지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지울 수 있냐 그러니까, 불이 나도 터는 그대로 있다는 거예요. 불이나 터는 그대로 있으니까, 기초는 바로 돼 있으니까 그냥 세우기만 하면 된다는 거에요. 매섭고 철저한 성격이 바뀌어 가지고, 밝은 얼굴 가지고 이 풍랑~~ 더 빨리 갑니다. 라고 찬송하고 그리고 본인만 바뀐 게 아니라, 회사 직원들도 바뀌었대요. 그러고 난 다음 8개월 만에 불난 곳을 다시 완전히 다 지어가지고, 그다음부터 사업이 불처럼 일어났대요. 불처럼요. 큰 사업을 해 다시 그분이 그래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에는 절대로 나쁜 것이 없다’. 그럴 때 얼굴이 바뀌고 삶의 환경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불이 나서 완전히 망했지만, 하나님께 전적 위탁하니까 그 생명의 씨앗이 불처럼 일어난 거예요. 그래서 이분이 바뀐 게 뭐냐 하면, 이전에는요 다 똑똑하시니까 설교를 들을 때마다 항상 비판을 했대요. 뭔가 항상 비판했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사건 이후에 20년이 넘도록 설교 시간에 졸은 적이 없대요. 설교 시간 모든 설교가 은혜가 된 거에요. 그리고 이분의 목표가 인생이 바뀌었대요. 목표가 단순함을 주고, 심플, 그래서 그 회사의 모토가 심플 이에요. 심플, 어떤 회사들은 정직, 근면, 성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 사업하자, 이런 거 다 있는데 이번은 단순하게 ‘우리 회사는 단순함을 추구한다.’ 단순한 뭐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창조 질서의 은사가 있으면, 그 창조 질서의 은사대로 나는 봉사하면 된다. 누군지 궁금하시죠? 나중에 주님께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완전히 망한 지팡이가 부활의 지팡이가 된 줄로 믿습니다.
 
제가 하나의 사업을 설명을 드렸는데요. 내일부터 특새가 시작됩니다. 이번 특새의 주제가 뭐죠? 어디 안 써놨습니까? 엘리베이터고, 뭐고 가는 곳마다 써놨는데, “사는 날 동안에 능력이 있으리로다.” 사는 날 동안 어떻게 능력 같습니까? 여러분과 저는 우리 근본적으로 원불비의 인생이에요. 자녀는 자녀들대로, 부모 원망하고 부모는 부모대로 요놈의 자식들을 죽도록 키워놨더니, 요따위로 행하고, 성도는 성도대로 한국교회의 이 가나안 성도들, 왜 가나안 성도라는 말이 되냐고? 가나안 성도들, 나는 교회가 이러이러니까 나는 안 나가 안 나가, 거꾸로가 가나안 아닙니까? 여러분 그거 어떻게 이 병을 어떻게 고칩니까? 오늘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셔가지고, 더 이상 안 죽도록, 더 이상 전염병 안 들도록, 더 이상 땅이 갈라져 죽지 않도록, 아론에서 싹 난 지팡이를 통하여 우리의 지팡이가 생명의 지팡이, 부활의 지팡이, 역사의 지팡이 되도록 만들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오늘 찬송가 각사 가운데 삼위 일체 하나님 찬양할 때, 소망 없고 빛도 없는 어두운 세상을 하나님이 사랑하사 우리에게 오셨고, 예언하신 약속대로 말씀이 오신데, 그리고 2절이 중요해 부활하신 그 아침 밭의 문이 열리고, 죽임 당한 어린 양이 죽음을 이기셨네. 생명의 길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께 오는 자 모두 회복되리. 모두 부활되리.
 
-내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로 바뀌니, 오늘 이 부활의 능력을 저와 여러분이 다 체험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굉장히 신비하게 들려질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이것이 모세의 지팡이가 그렇게 변화되었다고 생각할 때, 우리에게는 무리함이 없는 깨달음과 은혜를 받게 되는 겁니다. 그 지팡이는 홍해를 가르게 되었습니다. 반석에서 샘을 터뜨리게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지팡이가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메마른 여러분들과 저의 삶의 지팡이에 생명의 씨앗이 잠재된 것을 믿으시고, 오늘 이 말씀 그대로 기억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의 모든 원불비가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이런 마음에 아멘만 하면 안 되고, 오늘 3만 개 우리가 달걀을 우리가 앞에 놓고 또 태신자 작정을 하고, 아까 말씀한 대로, 움이 트고,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히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이것이 나 혼자만 있으면 안 되고, 같이 역사를 해야 되는 것이에요. 같이 역사를 해달라고 그래서 주보 안에 태신자 작정 카드가 있죠? 보시고, 하나님 아버지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에 꼭 이분도 인생에 메마른 막대기가 싹이 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생에 메마른 그 삶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태진 작정 카드 기도하시고 쓰고, 그다음에 우리 헌금할 때, 같이 내고 오늘 부활절 헌금도 소중합니다마는 그 이상으로 새 생명 축제 태신자 작정까지도 오늘 부활절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 되게 될 것입니다.
 
♣요약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원망과 불평과 비난의 병을 치료받는 자들이 다 되어, 나의 지팡이의 생명의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나의 삶의 지팡이에 이제 메마른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을 믿고, 지금은 바싹 마른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 안에 생명의 씨의 거룩한 잠재력이 사명의 지팡이로 꽃이 피어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구하고, 특별히 나의 인생, 나의 직업, 나의 공부의 지팡이, 나의 모든 삶의 지팡이가 살아있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특새에서 간구해야 한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글로벌 봄 특별 부흥회를 통하여 ‘사는 날 동안 이 능력을 체험’하는 자가 되어서, 다시 한 번 나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수 있도록 충만한 은혜를 소망하며, 복음의 씨앗을 심는 특새가 되고, 우리의 사명인 지상명령을 순명하는 자가 되어 주님의 기뻐하시는 자녀로 살아가야 한다.















반응형
728x90

[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3월 25일 (838)

1. 다음 중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에 포함되지 않는 기업을 고르면?
① 삼성전자 ② 인텔
③ 마이크론 ④ TSMC
2. 미국 중앙은행(Fed)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개최하는 경제정책 회의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의 약어는?
① FOMC ② ECB ③ TPP ④ APEC
3. 기업이 문화예술 분야 지원을 통해 사회에 이바지하는 활동을 뜻하는 말은?
① 거버넌스 ② 그린워싱
③ 메세나 ④ 리쇼어링
4. 가계나 기업 등 경제주체들은 활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이용해 경제 상황 변화를 예측한다는 주장을 담은 경제이론은?
① 롱테일 법칙
② 합리적 기대이론
③ 수요공급의 법칙
④ 현금성자산
5. 기업이 보유한 자산 중 현금, 수표, 통화대용증권, 보통예금, 만기 3개월 이내 금융상품 등이 해당한다. 높은 환금성이 특징인 이것은?
① 재고자산 ② 고정자산
③ 투자자산 ④ 기회비용의 원칙
6. 특정 제품의 수요가 10억 원어치 생겨날 때 직간접적으로 늘어나는 취업자 수로, 고용 창출 효과를 보여주는 지표는?
① 실업률 ② 고용률
③ 취업유발계수 ④ 지니계수
7. 한 가지 자산에 몰아서 투자하지 않고 여러 자산에 ‘분산투자’하는 것의 가장 주된 목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① 복리 효과 ② 절세 효과
③ 위험 추구 ④ 위험 회피
8. 한 주당 가격이 아주 비싼 ‘초우량 주식’에 붙는 별명은?
① 실권주 ② 우선주
③ 황제주 ④ 공모주

==================

[커버스토리] '호모 프롬프트' 시대…질문이 힘이다

생글생글 841호


그래픽=이은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생성형 AI(인공지능)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 여겨지던 소설, 그림의 창작에 이어 동영상까지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초지능 AI의 ‘일자리 습격’이 코앞에 다가온 게 아닌지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AI는 프롬프트만큼만 똑똑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어 흥미를 끕니다.
프롬프트란 사용자의 명령어를 받아들이는 체계를 말하는데요, 컴퓨터나 프로그램이 어떤 동작을 수행할 준비가 됐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구글 AI 제미나이의 질문창을 보면 ‘프롬프트 입력’이란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AI는 프롬프트만큼만 똑똑하다’는 말은 AI가 내놓는 답변의 품질, 나아가 AI의 능력은 사람이 어떤 명령,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달렸다는 뜻입니다. AI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어도 활용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질문하는 사람’, 즉 ‘호모 프롬프트(Homo Prompt)’라는 거죠.
재미있는 점은 생성형 AI도 이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인간의 능력은?”이란 물음에 제미나이는 “AI는 인간과 협력해 최상의 결과를 만들 수 있다. AI와 명확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AI와의 의사소통이란 다름 아닌 질문과 답변의 연속적 과정입니다. 호모 프롬프트가 회자될 정도로 질문이 얼마나 중요해졌고, 근원적·창의적 질문은 어떻게 인류 역사를 바꿔왔는지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인공지능과 채팅하는 '호모 프롬프트'
검색에 밀렸던 사색·대화 살려냈다

Getty Images Bank
인간을 가리키는 말은 18세기 칼 폰 린네가 고안한 호모 사피엔스(지혜 있는 사람) 이후 다양하게 등장했습니다. 기술 진보를 특징으로 하는 인류 역사를 설명해주는 호모 하빌리스(손재주 있는 인간)와 호모 파베르(도구적 인간)가 있는가 하면, 호모 루덴스(유희적 인간), 호모 데우스(신이 된 인간) 같은 용어도 많이 알려졌지요. 그런데 AI 시대에 접어들며 호모 크레아투라(창의적 인간), 호모 쿨투랄리스(문화적 인간), 호모 엠파티쿠스(공감하는 인간)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작업을 직접 수행하던 인간이 이제는 AI에게 명령을 내리게 되면서 좀 더 종합적·창의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질이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호모 프롬프트’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신조어입니다.
AI 답변에도 오류 있다
AI는 스스로 인정하듯 주어진 데이터만 가지고 알고리즘과 패턴을 발견한 뒤, 이에 의존해 작업을 합니다. 처음에 입력한 데이터 값에만 묶이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것이죠. 그렇다면 만약 AI가 자신이 학습한 데이터에 없는 정보를 요구받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쉽더라도 쿨하게 “잘 모르겠다” 또는 “판단할 수 없다”고 답하면 됩니다. 그런데 AI가 잘못된 정보나 오류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답을 내놓을 수도 있어요. 이 경우 사람이 AI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로 검증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커질 수 있죠. AI의 이런 답변 특성을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환각이나 환청)’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할루시네이션의 폐해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질문을 던지는 프롬프트 단계에서 많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AI 인디시전(indicision, 망설임)’이란 용어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AI가 만든 결과물을 질문을 던진 사람의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 그 결과를 사용할 수 있을지 망설이는 사람의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사람은 AI의 답변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대로 인용하는 단계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AI를 잘 다루려면 프로그래밍 언어, 머신러닝 등 지식에 머물지 않고 역사학·철학·법학·언어학 등에서 풍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그래서 나옵니다. 이와 같은 문해력까지 갖춰야 AI가 내놓는 결과물을 잘 보완하고 자신의 머리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AI가 쏟아내는 답변에서 파생될 여러 문제에 대처할 주체는 바로 호모 프롬프트밖에 없습니다.
좋은 답은 좋은 질문에서 시작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면 ‘사색’, 두 사람이 묻고 답하면 ‘대화’, 여러 명이 모여 질문하고 대답하면 ‘토론’이라고 합니다. 묻고 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구분법입니다. 인류 문명도 이렇게 ‘질문-대답’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검색 만능’ 시대를 맞아 사색이 힘을 잃고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과연 생각하기를 멈춘 인간이 급속히 발전하는 AI를 활용하고 통제할 수 있을까요?
긍정적으로 봅시다. AI는 인간에게 주어진 새로운 도구입니다. 이를테면 사람의 ‘두 번째 뇌’라고 할 수 있어요. 인간에게 쉬운 것은 컴퓨터에게 어렵고, 인간에게 어려운 것은 컴퓨터에게 쉽다는 이른바 ‘모라벡의 역설’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설적 상황을 거꾸로 활용해 인간과 AI가 서로 돕는다면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그동안은 사람이 혼자 사색하고 연구해 만유인력의 법칙 같은 것을 발견했다면, 이제는 ‘제2의 뇌’이자 분신과도 같은 AI에게 묻고 답을 듣고 또다시 묻는, 즉 AI와 대화하는 과정이 사색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좋은 답변은 좋은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유대인은 대답을 평가하지 않고 질문을 평가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시대라고 해도 좋은 질문이 없으면 좋은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질문을 잘하려면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 문제가 무엇인지 꿰뚫어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도 본인이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도록 AI에게 적합한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부단히 개발해야겠지요?
NIE 포인트
1.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AI의 오류, 그 태생적(근본적) 한계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2. 문해력이 AI 시대에 왜 중요한지 생각해보자.
3. 질문에 익숙지 않은 한국 사회와 한국 교육의 문제에 대해 토론해보자.
질문하는 자가 인류역사 만들어왔다
통념에 갇히지 않는 근원적 물음 중요

Getty Images Bank
질문은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치는 생각을 정리해주고, 새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며, 변화를 시도하는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질문은 그런 점에서 변화와 성장의 촉매제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정답일 수 없습니다. 통념과 상식에 사로잡히지 않는 말랑말랑한 머리로 질문하고 정답을 찾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문답식 교육서 발전한 그리스 문명
질문과 대답, 즉 문답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고 후대를 교육한 것은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문답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죠. 그리스의 자연철학이 여기서 태동했습니다. 예를 들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게 대부분인데, 변함없이 존재하고 실재하는 근원적인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죠. 엠페도클레스의 경우 ‘공기·물·불·흙’이라고 답합니다. 그는 만물이 이 4대 물질의 작용으로 생겨나고 나중에 이 상태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소 사변적이지만, 생각의 전개 과정은 흥미롭습니다. 세상 만물이 이 네 가지 요소로 이뤄진다면, 어떻게 다른 형태의 물질이 나타나는가란 질문을 또 할 수 있습니다. 엠페도클레스는 물질들의 결합 방식과 배합 비율 때문에 그렇다고 답하죠. 이게 화학이란 학문, 화학적 사고의 출발이 됩니다. 진화론도 이렇게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질문은 잠든 생각을 깨운다’는 그리스인들의 생각이 인류 문명의 시발점이 된 것입니다.
하나의 질문에 집중하면 큰 보상
근원적 질문은 항상 세상을 바꿔왔습니다. “왜 사과는 수직으로 낙하하나”(아이작 뉴턴), “왜 딸은 상속자가 될 수 없나”(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이 많은 생물 모두를 신이 창조했다고?”(찰스 다윈)와 같은 질문이죠. 당연시되는 현상에 대한 물음이어서 이런 질문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찍은 사진을 왜 바로 볼 수 없나”라는 아이의 질문이 즉석카메라 폴라로이드의 발명을 이끌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 정도면 질문하는 자가 인류를 만들어왔다고 볼 수 있죠?
하나의 질문에 천착해 성공한 사례도 있습니다. 벤저민 하디가 쓴 <최고의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면 1912년 이후 올림픽 금메달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실력의 영국 조정 팀 스토리가 나옵니다. 이 팀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준비하며 단 하나의 질문에 집중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속도가 빨라질까’ ‘도넛을 먹으면?’이라고 묻고, 답이 만약 ‘아니오’라고 나오면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집중한 결과, 영국 조정 팀은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당대 지성들도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했죠.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문제 해결에 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55분을 제대로 된 질문을 찾는 데 쓰겠다”고 말했습니다. 55분을 고민해 좋은 질문을 마련하면 답은 5분 만에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답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이 질문이란 얘기죠. 로마 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이것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는 습관을 들여라. 그리고 이 질문을 누구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하라”고 했습니다.
학문 중에선 경영학이 특별히 질문을 강조합니다.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는 “나는 경영에 대해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사람”, “과거의 리더는 말하는 리더, 미래의 리더는 질문하는 리더가 될 것”이라고 했죠. 또 경영자는 ‘우리의 사업은 과연 무엇인가?’ ‘고객은 누구인가?’ ‘고객이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항상 던져야 한다고 했어요. 기업 경영의 성패는 혁신이 좌우하는데, 이런 근본적 질문에서 답을 찾지 못하면 혁신이 어렵다는 거죠. 역시 경영학의 구루인 톰 피터스가 소설을 열심히 읽었다는 일화도 유명합니다. 그는 “대부분의 경영 서적은 답을 보여준다. 반면 대부분의 소설은 위대한 질문을 던진다”라고 자신이 소설을 읽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NIE 포인트
1. 그리스의 문답식 교육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2. ‘퍼스트 무버’에게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자.
3.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 근원적 질문이 무엇인지 떠올려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반응형
728x90


[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3월 11일 (836)

1. 증시에서 ‘텐배거’의 정의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수익률이 매우 높다
② 주가가 극심한 저평가 상태다
③ 비상장 종목이다
④ 상장폐지 가능성이 높다
2. 글로벌 금융회사와 다국적기업이 밀집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금융산업이 발달한 지역을 뜻하는 말은?
① 레몬마켓 ② 역외시장
③ 갈라파고스 ④ 금융허브
3. 투기 자본이 경영권이 취약한 기업의 지분을 매집한 다음 자기 지분을 높은 가격에 되사갈 것을 요구하는 행위는?
① 그린택소노미 ② 그린워싱
③ 그린메일 ④ 그린벨트
4. 본사나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긴 자국 기업에 각종 혜택을 제공해 본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정책은?
① 디커플링 ② 리쇼어링
③ 리파이낸싱 ④ 아웃소싱
5. 다음 중 미국의 3대 주가지수가 아닌 것은?
① 다우지수
② S&P500지수
③ 나스닥지수
④ 닛케이225지수
6. 산업 현장에서 많이 쓰는 비철금속의 하나로, 가격이 실물 경기를 잘 반영한다고 해서 ‘닥터 코퍼’라는 별명이 붙은 이것은?
① 구리 ② 니켈
③ 아연 ④ 알루미늄
7. 중앙은행이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시장 참가자들에게 사전 안내하는 것을 무엇이라 할까?
① 밸류에이션
② 테이퍼링
③ 포워드 가이던스
④ 베이지북
8. ‘달러인덱스’ 산출과 전혀 관계가 없는 통화를 하나 고르면?
① 유로 ② 엔 ③ 크로나 ④ 위안
▶정답 : 1 ① 2 ④ 3 ③ 4 ② 5 ④ 6 ① 7 ③ 8 ④


[커버스토리] 질주하던 미래차…주춤하는 이유는? 



그래픽=추덕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근래에 크게 유행한 단어 중 하나가 ‘모빌리티(mobility, 이동성)’입니다. 공간과 공간을 잇는 교통수단에 빅데이터·인공지능(AI)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함으로써 ‘이동의 미래’를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밖으로는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차에 대한 기대와 기술개발 투자로 나타났죠.
그런데 질주하던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 급제동이 걸리고 있습니다. 세계 자동차 제조 기업들이 속속 전기차 생산 속도를 늦추고, 자율주행차 기술개발과 투자를 중단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지난달 말에는 애플이 10년간 공들여온 자율주행차 ‘애플카’ 개발의 전면 중단을 선언해 업계와 투자자들은 물론, 관심 있게 지켜본 소비자에게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개발이 잠시 주춤하는 건지, 이대로 시동이 꺼지고 마는 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생글생글은 지난호 커버스토리에서 AI 기술 발전이 충분한 전력공급 여하에 달렸다고 전했습니다. 급증하는 전기 수요의 또 다른 한 축은 바로 모빌리티 기술입니다. 생글생글이 ‘애플카 개발 전면 중단’이란 뉴스에 주목하며 첨단 기술의 미래를 파고드는 커버스토리를 연속으로 준비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왜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개발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는지, 기술 발전에서 시장의 필요(needs)와 수요 기반이 얼마나 중요한지 등을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애플카 중단 충격…자율주행 기술은 꿈일까
자동차 회사들 '전기차 올인' 전략 급브레이크

애플카 콘셉트 이미지
자율주행 전기차인 애플카 프로젝트의 중단은 사실상 폐기나 다름없습니다. 문제는 운전자 개입 없이 완전히 차량 스스로가 자율주행하는 ‘꿈’을 내려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전기차는 언젠가 가장 보편적인 이동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과연 자율주행이 가능할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습니다.
자율주행차·전기차 모두 ‘일단 멈춤’
애플은 개발 중인 애플카에 대해 “모든 인공지능(AI) 프로젝트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자율주행차가 곧 AI라는 얘기죠. 핸들도 없고, 가속페달과 브레이크페달도 없는 그야말로 완전한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려 꿈꿨는데, 아쉽게도 10년간 쏟아부은 수십억 달러만 날린 셈입니다. “빅테크 기업 역사상 가장 큰 실패”라는 평가가 나올 만하죠.
애플만이 아닙니다. 미국 포드와 독일 폭스바겐의 자율주행 합작사 아르고AI는 포드의 투자 중단으로 2022년 말 아예 회사 문을 닫았습니다. 포드는 운전자 보조시스템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죠.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자율주행 자회사 크루즈에 대한 올해 투자금을 10억 달러(약 1조3400억 원) 삭감하기로 했고, 현대차와 자율주행 합작사인 모셔널을 세운 미국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앱티브는 모셔널에 대한 추가 투자(유상증자)를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주요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 생산 목표를 줄이고,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하이브리드 차(내연기관과 전기차 양쪽 기능을 모두 가진 차)의 차종을 늘리고 생산량도 확대하는 추세입니다. 예를 들어, 벤츠는 2025년까지 전기차 판매 비중을 50% 이상 늘린다는 목표를 5년 뒤로 미루고, 생산 품목을 하이브리드 등으로 채우기로 했지요. 포드도 향후 5년간 하이브리드 차 생산을 4배 늘린다는 방침입니다. 모두들 ‘전기차 올인 전략’을 수정하는 건데요, 우리나라 현대차는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합니다.
더딘 기술개발, 수요 부진이 문제
 
자율주행차의 ‘일단 멈춤’에는 더딘 기술개발 속도가 화근이 됐어요. ‘과연 완전한 자율주행 기술의 구현이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커진 겁니다. 애플은 당초 2025년 애플카 출시를 기대했지만 2026년으로 한 차례 미뤘습니다. 성능도 레벨5에서 레벨4로, 다시 레벨2플러스로 하향 수정했다고 합니다. 자율주행차가 미국 내에서 한 해 수십 건의 교통사고를 내고 사람을 다치게 한 것도 부정적 인식을 키웠죠.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은 구글의 웨이모 자율주행차에 불을 질러 차량이 전소된 적도 있어요.
자율주행차는 AI 딥러닝(deep-learning)을 통해 여러 교통 상황을 학습한다지만, 이는 ‘암기’하는 수준일 뿐이란 지적도 많습니다. 실제 도로에서 벌어질 경우의 수와 상황은 무한대에 가까워 이론적으로 안전한 완전자율주행이 불가능하고, 운전자의 통제 없이 차량 시스템이 완전히 운전을 도맡는 레벨4 기술의 구현은 어렵다는 회의론이 나옵니다. 이러니 자율주행차 개발에 쏟아져 들어오던 투자 돈줄도 점점 말라가고 있지요.
전기차 시대가 주춤하는 데엔 시장 성장세 둔화,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2022년 67% 증가했는데요, 작년 1~3분기엔 증가율이 39%로 크게 낮아졌습니다. 전기차 1위 기업인 미국 테슬라의 작년 4분기 영업이익도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47% 감소하며 실적이 나빠졌죠. 이렇게 전기차 수요가 식고 있는 건 비싼 전기차 가격과 높은 유지비 때문입니다. 보조금을 빼면 전기차 가격은 휘발유 등을 쓰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약 20% 비쌉니다. ‘전기차 시장의 큰손’인 미국 렌터카 업체 1위 허츠가 보유 전기차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만 대를 처분하고 내연기관차를 구매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전기차 가격이 차츰 낮아져 몇 년 뒤에는 내연기관차와 비슷해질 수 있다고 해도 당장은 전기차 산업생태계를 크게 위축시키고 있죠. 전기차 전환에 따른 일자리 감소 우려 때문에 올 연말 미국 대선을 앞둔 바이든 민주당 정부마저 전기차 전환 속도와 목표를 늦출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기술만 강조해선 혁신이 성공할 확률 낮아
시장·수요 끌어내는 점진적 과정 중요하죠

게티이미지뱅크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의 밝은 미래가 갑자기 어두컴컴한 심연으로 빠져든 느낌입니다. 기술의 미래를 너무 낙관한 결과일까요. ‘기술은 시장을 앞서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미래 차의 감속은 잡스 일화의 재연?
이쯤에서 시장을 앞선 신기술과 제품으로 승부한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모습이 데자뷔처럼 그려지네요. 그는 미래 기술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인물이었죠. 잡스는 사람들이 집에서 개인용컴퓨터(PC)를 이용하고, 미국 전역의 거대한 네트워크(인터넷)와 연결하기 위해 이 PC를 사용할 것을 예견했습니다. 또 마우스의 중요성, 인공지능·클라우드 서비스의 출현, 인터넷쇼핑의 유행도 짚었습니다. 잡스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경구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미래를 예측했다기보다 자신이 창조하고픈 기술의 미래를 얘기했고, 실제로 일궈낸 겁니다.
하지만 잡스는 기술과 제품에 대한 과도한 완벽주의 기질 때문에 1985년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홍역을 치르기도 합니다. 잡스는 1980년대 초 최초의 매킨토시 PC를 디자인할 때 ‘유별날 정도로 훌륭한 제품’을 만들 것을 주문했습니다. 명령어 입력 없이 아이콘을 마우스로 클릭하면 실행할 수 있는 직관적인 사용자 환경이 그래서 나왔습니다. 문제는 이런 기능들로 인해 대당 7만 달러까지 높아진 가격입니다. 결국 경영진과 갈등을 빚은 잡스는 퇴출되고 말았는데요, 지금의 전기차가 혹시 시장을 너무 앞서간 잡스의 좌절을 재연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네요.
비슷한 사례는 또 있습니다. <아바타> 같은 3차원 영화의 인기를 바탕으로 개발된 3D TV입니다. 그러나 집에서 특수 안경을 끼고 TV를 볼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1인용 운송수단인 세그웨이도 혁신적 제품이었지만, 인도에선 너무 빠르고 차도에선 너무 느린 단점을 극복하지 못했죠. 1000만 원이 넘는 가격임에도 한 번 충전에 39km밖에 주행하지 못하는 단점이 기술혁신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지요.
점진적 혁신의 징검다리 필요
그러면 시장과 ‘동행’해야 하는 게 기술의 운명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를 혁신이론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기술혁신(innovation)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개념부터 세계적 경영학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파괴적 혁신’에 이르기까지 많은 경제·경영학자들은 ‘급진적 혁신’을 강조했습니다. 신규 제품과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려는 시도이지요. 하지만 동시에 점진적 혁신, 즉 기존 기술과 시스템, 제품의 개선과 보완에 집중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급진적 혁신이 기술 주도(technology push) 혁신이라면, 점진적 혁신은 시장 견인(market pull) 혁신이죠. 기술과 시장에 각각 주목하는 이 두 가지 혁신은 현실에선 동시에 나타나고, 둘 다 의의가 있습니다. 전기차가 현재 기술에서 급진적 혁신이라면, 하이브리드 차는 점진적 혁신의 본보기라고 볼 수 있어요. 혁신적 신제품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려면 기술 발전의 논리만 강조해선 힘듭니다. 시장과 수요의 성장, 잠재력 등이 발명과 혁신의 속도, 그리고 방향을 결정한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습니다.
유튜브의 부활… 미래는 모른다
현재로선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하기 어렵더라도 향후 기술 발전의 속도가 어떨지 가늠하기는 어렵습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2009년에 선정한 ‘지난 10년간 기술적으로 실패한 10대 제품’ 가운데 유튜브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유튜브는 대중의 이용이 많은 뉴미디어였지만, 대용량 동영상을 제공하는 웹사이트 운영으로 비용 지출이 너무 커 고전하고 있다고 <타임>은 분석했어요. 그런데 유튜브는 이런 문제를 감당할 만큼의 시장을 만들었고, 결국 문제를 풀었습니다. 자율주행 전기차는 너무 자신만만하던 미래에서 한발 물러선 것은 아닐까요? 일종의 속도 조절을 하고, 다시 전열을 정비해 쾌속 질주하길 기대해봅니다.
NIE 포인트
1. 기술 집착이 혁신을 성공으로 이끌지 못한 또 다른 사례를 찾아보자.
2. 슘페터부터 크리스텐슨에 이르는 혁신 이론이 현대 경제에서 중요한 이유를 알아보자.
3. 완전한 의미의 자율주행 전기차가 개발될 수 있을지 토론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반응형
728x90


[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3월 4일 (835)


1.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 주요 기기를 하나의 용기에 일체화한 ‘소형 모듈 원자로’다. 차세대 원전 기술로 주목받는 이것은?
① SMR ② ESS ③ NFT ④ ETF
2. 기업이 특정 사업 부문을 분사할 때, 신설 법인 지분을 기존 법인 주주에게 나눠주지 않고 기존 법인이 100%를 갖도록 하는 방식은?
① 인적분할 ② 물적분할
③ 액면분할 ④ 상장폐지
3. 수출 물류와 관련한 기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위다. 20피트(609.6cm) 표준 컨테이너 1개가 한 단위인 이것은?
① TEU ② BDI ③ EV ④ ROE
4. 명목성장률에서 물가상승률을 빼면 나오는 값은?
① 지급준비율
② 재할인율
③ 잠재성장률
④ 실질성장률
5. 중국에서 사실상 기준금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의 약어는?
① ELS ② ETN
③ LPR ④ LTV
6. 다음 중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기축통화로 가장 널리 인정받고 있는 화폐는 무엇일까?
① 위안 ② 달러
③ 유로 ④ 엔
7. 상장사가 주가에 영향을 줄 만한 사안에 대해 투자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도록 한 제도는?
① 공모 ② 공시
③ 증자 ④ 감자
8. 수학과 통계를 기반으로 오로지 숫자만을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투자법을 뜻하는 말은?
① 분산투자
② 퀀트투자
③ 대체투자
④ 가치투자
=========================

[커버스토리] 인공지능의 미래 전기에 달렸다.-  생글생글 838호


그래픽=이은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인공지능(AI)과 관련해 눈길을 끄는 뉴스가 매일같이 쏟아집니다. 최근엔 간단한 명령어만 입력하면 AI가 고화질 동영상을 만들어주는 미국 오픈AI의 ‘AI 소라’가 단연 화제였죠. 세계적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얼굴을 AI로 합성한 딥페이크 음란물도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인류 공동의 현안을 논의하는 지난 1월의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은 AI 기술이나 서비스, 부작용이 아닌 조금은 다른 부분에 주목했습니다. 바로 에너지입니다. AI 시대가 본격 도래하면 에너지, 특히 전기 수요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급증하는데, 여기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에 머리를 모은 겁니다. 이 행사에서 오픈AI 최고경영자인 샘 올트먼은 “세계의 가장 큰 두 현안은 AI와 에너지”라며 “에너지는 획기적 돌파구가 없으면 AI가 요구하는 수준에 맞출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구글 검색을 모두 생성형 AI로 한다면 필요 전력량이 아일랜드가 한 해 소비하는 전력량과 비슷합니다. AI 딥페이크 같은 뉴스에 사람들이 관련 검색을 훨씬 많이 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정전 사태가 발생할지 모를 일입니다. 에너지와 전기는 ‘문명의 혈관’ ‘현대 경제의 생명선’이라 불릴 정도로 중요하지 않은 적이 없었죠. 그런데 ‘에너지 먹는 하마’라는 AI의 시대에는 차원이 다른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와 빅테크들이 주목하고 있는 대안 기술, 바람직한 에너지 정책의 방향 등을 4·5면에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인공지능 시스템은 '전기 잡아먹는 하마'
웬만한 나라의 1년 전기 소비량과 맞먹죠

인공지능(AI) 시스템이 대체 전기를 얼마나 소비하기에 이렇게 우려가 클까요? 앞으로 3년 뒤 AI가 전 세계적으로 85~134TWh(테라와트시)에 달하는 전력을 쓸 것이란 분석이 있는데요, 이는 아르헨티나·네덜란드·스웨덴 같은 나라들이 1년 동안 사용하는 전력량과 비슷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AI가 미국 내 전기차 전기 소비량의 5~6배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상상 초월하는 전기 수요 증가
먼저 AI가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이유를 찬찬히 살펴보죠. 일단 AI를 구동하려면 컴퓨터가 복잡한 연산을 빠르게 풀어야 합니다. 이를 지원하는 AI 반도체는 전기를 더 많이 소비할 수밖에 없죠. 다음으로 AI는 방대한 데이터량을 바탕으로 학습(훈련)을 합니다. 예를 들어, 자연어처리를 위해 1750억 개 파라미터(매개변수)를 가진 GPT-3 모델을 한번 학습시키는 데 1.3GWh(기가와트시) 전력이 소모됩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1분간 소비되는 전력량입니다. 다음으로 검색서비스 제공을 위한 추론 과정도 일반 검색보다 5~10배 더 전기를 필요로 합니다. AI가 질문을 이해하고 답변을 생각한 뒤, 결론을 공유하는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AI의 서버를 돌리는 데이터센터(IDC)도 ‘전기 먹는 하마’의 결정적 요소입니다. 데이터센터는 원래 수천개 의 하드디스크드라이브와 프로세서 등이 데이터를 처리·저장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열이 발생합니다. 생성형 AI는 서버를 훨씬 많이 쓰기 때문에 열도 더 오르게 되죠. 이를 빠르게 식히기 위해 냉각 팬을 쉴 새 없이 돌려야 하고, 그래서 전기 소비가 많은 겁니다.
AI 요인을 제외하더라도 지구촌 전기 수요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유엔은 2050년까지 에너지소비가 지금보다 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봅니다. 세계 인구가 80억 명에서 100억 명으로 늘어나고, 1인당 평균 에너지 소비도 연간 2만1000KWh(킬로와트시)에서 2만5000KWh로 적어도 20%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죠. 여기에 교통과 수송 부문의 전기화 추세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은 석유·석탄·천연가스 등 1차 에너지의 60%가량이 교통과 난방, 산업용으로 쓰이는데, 이게 점점 전기 수요로 대체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AI 수요까지 모두 아우르면 2050년 전기 수요가 지금의 1000배로 증가할 것이란 극단적 예측도 나옵니다.
현 기술로는 마땅한 대안 없어
그렇다면 지금의 에너지 기술과 시장은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떠올려볼 수 있는 원자력은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인식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등 여러 나라가 원전 투자 확대 방침을 밝혔지요. 그러나 미국과 영국조차도 기술·건설 문제, 숙련 인력 부족 등으로 원자력발전 용량 확대가 쉽지 않습니다. 세계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0~2020년 착수된 신규 원전 프로젝트가 평균 3년 이상 늦어지고 있어요. 원전의 연료인 우라늄도 세계 전체 상업 농축 용량의 절반 가까이를 러시아가 점유하고 있어 언제든 공급망에 차질을 빚을 수 있습니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넷제로(탄소중립)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점도 문제입니다. 탄소 배출 감축에 전 세계적으로 수조 달러를 투입하고도 화석연료가 주 에너지원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에너지원 가운데 화석연료의 비율은 1970년대 이후 거의 80% 수준으로 일정합니다. 왜냐고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자연이 제공할 때만 얻을 수 있는 가변성·간헐성이란 한계가 있는 데다 저장능력을 키워 이 문제를 극복하려 해도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변전과 송전으로 인한 에너지 손실도 큽니다. 재생에너지는 설비 용량을 두 배로 늘려도 전기 공급은 3분의 1밖에 늘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생에너지는 전체 에너지원의 3%(원자력은 4%), 총전력 생산의 10% 정도만 기여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넷제로를 추진하고 있으니 AI 시대 에너지를 어디서 끌어와야 하는지 답이 잘 나오지 않는 겁니다.
NIE 포인트
1. 요즘 생성형 AI를 얼마나 활용하고 있는지 친구들과 얘기해보자.
2. AI가 전기 공급 증가 외에 인류에게 어떤 도전적 과제를 던지고 있는지 알아보자.
3. AI 때문에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게 어렵다면 AI 사용을 자제해야 하는 건 아닌지 토론해보자.
'에너지 장악하는 자, 세상을 지배한다'
빅테크도 핵융합·SMR 개발 경쟁 합류
대전시 유성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인 ‘인공태양(KSTAR)’을 점검하고 있다. 한경DB
AI 시대의 에너지 문제를 풀 실마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현재로서는 핵융합 발전과 소형 모듈 원자로(SMR) 같은 차세대 원자로, 태양열·지열 등을 이용하는 새로운 에너지기술 개발에 기대를 걸어야 합니다.
올트먼, 핵융합에 5000억 원 투자
이미 AI 업계의 스타인 샘 올트먼 오픈AI의 최고경영자(CEO)는 핵융합,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SMR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들은 전기와 관련한 가장 첨예한 이해당사자이기도 하지만, 전기를 장악하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된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올트먼은 핵융합 기술 스타트업 헬리온에너지에 2021년 개인적으로 3억7000만 달러(약 4900억 원)를 투자했어요. 이 업체는 작년에 MS의 데이터센터 전기를 공급하기로 하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뒤집어보면 MS도 핵융합 에너지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올트먼을 포함해 핵융합 기술 개발에 투자된 돈만 62억 달러(8조2800억 원)가 넘습니다. AI의 출현이 핵융합 기술의 연구개발을 앞당기고 있는 겁니다.
안전·무한한 ‘꿈의 에너지’ 핵융합
핵분열은 크고 무거운 우라늄 원자핵이 외부의 강한 힘(빠르게 움직이는 중성자의 충돌)으로 쪼개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기존 원자력발전은 핵분열 반응으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 물을 증기로 만들고, 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죠.
‘제2의 불’이 전기, ‘제3의 불’이 기존 원자력이라면 ‘제4의 불’은 바로 핵융합입니다. 이는 수소 등의 가벼운 원자핵끼리 합쳐지는 반응인데요,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별들은 핵융합을 통해 에너지를 만듭니다. 하지만 섭씨 1억℃ 이상의 초고온, 대기압의 30억 배가 넘는 초고압에서 전자와 원자핵이 분리돼 고체도 액체도 기체도 아닌 플라스마 상태로 있어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 구현이 쉽지 않습니다. 고온의 플라스마 상태에서는 원자핵과 전자가 서로 반발하게 됩니다. 핵융합을 위해서는 이 반발력을 거슬러 입자끼리 초고속으로 정면충돌하게 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됩니다.
핵분열과 핵융합이 만드는 에너지 차이는 원자폭탄(핵분열)보다 수소폭탄(핵융합)이 100배 이상 강한 데서 알 수 있어요. 핵융합은 방사성물질을 배출하지 않고, 원료인 중수소는 바다에 무한하게 존재합니다. 그래서 ‘꿈의 에너지’라 불리죠. 세계 각국의 개발 경쟁도 치열합니다. 영국은 세계 최초의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를 위해 2040년까지 핵융합발전소 건설을 마치겠다는 목표입니다. 미국은 2040년까지 핵융합발전소 건설 기반을 마련하기로 했어요.
SMR는 기존 원전기술을 크게 개선한 소형 원자로입니다. 일체형의 단순한 설계를 통해 방사능 유출 위험을 대폭 줄였습니다. 원자로 내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영역인 노심이 손상될 확률이 10억 년에 1회로, 대형 원전(10만 년에 1회)에 비해 월등하게 안전합니다. 방사선 비상계획 구역도 대형 원전은 반경 16km인 반면, SMR는 300m에 불과할 정도로 안전성이 뛰어납니다.
전문가 “에너지원의 조합에 답 있다”
에너지정책은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 공급가격의 적절성(저렴함), 환경보호 등을 감안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탄소 배출량 저감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탄소 중립 시나리오는 인류의 에너지 소비가 2019년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연착륙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세운 것인데요, AI 시대를 맞아 이런 가정은 위험천만하기까지 합니다. 에너지에 대한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접근법은 결코 정치적이어선 안됩니다. 최선의 정책은 재생에너지를 포함해 특별히 어느 하나의 기술에만 치우치지 않고 모든 에너지 시스템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핵융합과 태양열, 조수, 지열 또는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에너지원의 조합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NIE 포인트
1. 인류의 에너지 개발 역사를 한번 훑어보자.
2. 핵융합 기술 개발이 어느 정도 단계에 와 있는지 확인해보자.
3. 에너지 기술에서 환경보호라는 가치와 경제적 활용가능성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 토론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