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 ♣주일예배(주후 2025년 12월 21일)"기묘자의 어깨에 기대보라"(오정현 담임목사님)-사랑의 교회☆

향기야, 보아스와 야긴 2025. 12. 2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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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12월 21일)-이사야 시리즈 ㉜
설교제목: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보라
(Lean on the Wonderful Counselor’s Shoulder)"
성경본문: 이사야 9:6~7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부목사님), 시온찬양대(2)

대표기도: 황정호 장로님

사회: 문진호 부목사님(2)
헌금찬송: 캔송키즈(주일학교)

 

설교: 오정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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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9:6~7,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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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 성탄 주일인데 정말 오늘 이 예배와 성탄 주일 말씀을 통하여 지난 한 해 동안 여러분들의 삶의 모든 무거운 짐들이 다 벗겨지기를 바랍니다.


제가 오늘 보니까 다른 때는 여기가 이 시기 12월 달 되면 청중들의 옷이 시커멓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보니까 좀 앞 예배 때 보니까 여러 색깔들이 있는데, 아마 지하철 타고 알록달록하게 오신 분들은 다 우리 교인들일 거예요. 오늘 좀 이렇게 마음 다 여시고, 연말연시 그동안 1년 동안 고생 많이 하셨는데 오늘 같은 경우는 복음의 깊은 신비를 깨닫는 주일이에요. 그래서 삶에 지친 모든 분들이 다시 회복이 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어야만 하는 주일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번 성탄은 니케아 종교회의 1700주년이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올해가 니케아 종교회의는 예수님께서 참 하나님 전능자이신데, 그 전능자께서 참사람으로 오셨다. 그래서 성육신하신 신비와 참 하나님의 전능자 되심을 아주 명확하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본문의 말씀을 통해 이사회 강의자 성탄절 메시지로 오늘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깨닫는 영안을 열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봄은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6절에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누구게 주셨어요?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고 그 어깨는 뭘 메웠어요? 정사를 메었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다. 그래서 제가 오늘 설교 제목을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어 보라.” 그 기묘자는 어떤 분인가 어떤 분인가? 먼저 오늘 서론 격으로 9장 1절 2절에 이런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사야 9:1~2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어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이 내용이 마태복음 4장에서도 그대로 반복해서 똑같이 이사야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인데, 스블론 땅과 납달리 땅, 해변 길과 이반 갈릴리가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 뭘 보았다고요? 큰 빛을 어떻게 큰 빛을 보았나? 그 의미는 이런 뜻이에요.

본래 이스라엘 백선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스블론, 납달리,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스블론과 납달리 지파가 약속의 땅을 받았어요. 지금 북쪽에 약속의 땅을 받았는데, 그 스볼론과 납달리 지파 사람들이 약속의 땅을 받고 난 다음에 하나님은 순종하고 잘하면 좋은데 불순종하고 악하게 행하고 못되게 굴어 가지고 그 스볼론과 납달리가 앗수르 제국에게 제일 먼저 망해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흑암이 돼버린 거예요. 스블론의 약속의 땅이 멸망의 땅이 되고, 약속의 땅이 흑암의 땅이 돼버린 거예요. 그런데 그 흑암과 멸망의 땅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므로 말미암아, 그 땅이 큰 빛을 보고, 영화롭게 되었느니라. 심지어 그 북쪽의 해변길 그쪽까지도 다 많은 상황이었는데. 큰 빛을 보고 영화롭게 되었느니라. 그러니까 스블론과 납달리 이스라엘의 북부 갈릴리, 갈릴리 지역이라고 하는데, 그 갈릴리 지역이 영화롭게 되었느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 어디서 오셨냐?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지만 사역을 어디서 갈릴리의 사역을 하시고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 12명 가운데, 11명을 이 북부 갈릴리 지역, 그 남쪽에 있는 안정된 유다 지역이 아니라 갈릴리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11명을 뽑아 가지고, 주님의 제자로 만드시고 흑암과 슬픔과 짐을 지고 힘들던 사람들의 인생을 확 바꿔버렸다 이 말이야. 조시는 분들 확 바꿔버렸대 확 바꿔버렸어요. 어떻게 바꾸나? 어떻게 바꾸나? 방법이 뭐냐? 오늘 첫 번째 생각할 것이 것입니다.

I. 첫 번째, 그의 어깨에 정사를 메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어깨에 정사를 메심으로 말미암아’ 6절 앞에,,,

*이사야 9:6,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전능자의 어깨가 정사를 메었다. 이 어깨에 놓여 있다는 이 말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뭐로 나타나느냐, 그 아들의 어깨에 놓여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 어깨에 놓여 어깨에 놓여 있다는 말을 주목을 해야 되는데 이사야 전체를 통하여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면 이사야 22장에 보니까 히스기아 왕 시대에, 국고를 맡은 오늘날로 말하면 국무총리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셋나 라는 사람이었어요.

셋나 라는 국무총리 격에 이 사람이 교만(驕慢)하고 불의(不義)해 가지고 하나님이 그를 쫓아내시고, 대신 힐기아의 아들 엘리아김을 불렀는데, 그는 경건한 자였고, 하나님이 신임받는 자였는데 주님께서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가지고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겠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냐. 이사야 22장 22절에 같이 보겠습니다.

*이사야 22:22,
22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얻게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할렐루야!~ 이 다윗의 집의 열쇠는 그냥 1인 열쇠가 큰 열쇠인데 이 열쇠를 누구에게 둔다고요? 그의 어깨에 둔다. 그러면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다.

이 말씀이 신약에도 반복이 되고 있는 내용인데 하여튼 인사권과 통치권을 통치의 권세와 책임을 상징하는 그 은혜를 주시겠다. 어깨에 둔다. 라는 말은 실제적으로 권세와 권위를 공식적으로 위임한다. 이 셋나 대신에 엘리야김에게 자위 당국의 권위와 통치와 책임을 위임한다.

그래서 오늘 그 아기에게 어깨에 정사를 메었다고 하는 이 얘기는 연약한 아기, 연약한 아기인데 거기에 정사를 멘 우주적 통치가 한 문장 안에 들어있는 것이에요. 세상의 문법으로, 보면 세상의 그랜머로 보면, 이게 맞지 않는 것 같이 어떻게 아기가 통치와 권세를 갖는가,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문법으로는 아주 적절한 선포라고 말할 수 있어요.

세상은 나이가 들고 왕자가 커 가지고 통치 권세를 받잖아요. 나라를 책임지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아기 때부터 우주의 통치자의 힘을 그 어깨에 정사를 메웠다는 걸 가지고 표현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 어깨에 정사를 메었다는 것은 모든 통치권과 권세가 위임되었다. 이렇게. 그리고 그 통치권의 무게를 어린 아기이신 주님께서 친히 감당해 주신다. 이사야가 볼 때, 예수님의 어깨 위에 우주 전체의 통치 집행권을 주신 거예요. 이 세상에 모든 세상의 권세를 빼앗아 가지고 예수님의 어깨 위에 올려주신 거예요. 마치 셋나에게 빼앗아 가지고 엘리야김에게 올리는 것처럼,,, 이게 우리 식으로 적용이 되면 이 세상의 모든 사탄의 권세를 빼앗아 가지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넘겨주신 것입니다.

이건 참 신비로운 거예요. 그리고 좀 더 놀라운 것은 그 어깨에 정, 통치권을 주셨다는데 그럼 우리가 보통 생각할 때 힘과 능력과 막 그냥 막 통치하는 이런 걸 생각하기 쉬운데, 더 놀라운 복음의 신비는 그의 어깨에 정사가 메었다는 것에 대한 신비가 뭐냐면 요한복음 19장 17절에,

*요한복음 19:17,
1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예수께서 자기의 뭘 지시고요? 어깨, 예수님은 어깨에 십자가를 지셨어요. 어깨란 말이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당시 십자가 처형 관습에 따르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가로목을 어깨에 지고 가셨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에요. 어깨에. 정사와 통치권이 있는데, 그게 뭐냐?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주를 통치하는 방식은 세상 왕들이 사용하는 힘이 아니라, 그 어깨에 십자가를 지시는 것으로서 통치하게 되어 계시는 거예요. 그러고 볼 때 우리는 십자가가 옛날에는 예수 십자 지시기 전까지 수치와 부끄러움의 하나의 상징이었지만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보혈의 능력으로 구원받고, 그 믿음의 은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십자가가 여러분들에게 능력이 되는 것이에요.

나의 믿음 죽게 있네. 그다음 뭐예요? 십자가 능력이 내 영광되었네. 이걸 깨닫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은 이 십자가를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십자가를 당신의 어깨에 지고 가신 것입니다. 아기의 어깨에 정사가 놓여 있다는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것을 이루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아셔야 되고, 그리고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세상 제국의 왕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을 보여줬는데 세상의 왕은 힘과 교만과 호전성과 억압과 폭압성과 잔인함과 음모를 꾸미지만 거짓말하고 그러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오신 것이 아니라, 순전한 천진한 어린 아기로 오셔 가지고, 정사와 권세로 그 어깨에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통하여 능력을 보여주시고, 십자가를 통한 통치와 권세를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살다가 이런 일 있고 서른 일 있고 답답한 일이 있고 안타까운 일 많이 있을 때마다 예수님의 어깨로 지신 그 십자가 앞으로 가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넘어져도 어깨 위로, 힘들 때마다 확 넘어져도 어깨 위로, 그리고 자빠져도 십자가 앞으로, 그리고 한 단계 더 들어가면 이 세상의 왕은 백성의 어깨에 짐을 지우지만 평강의 왕이신 아기 예수 그루서는 백성을 살리기 위하여 세상의 짐을 자기 어깨 위에 메신 것이에요. 이 세상 왕국에서는 하위층 사람들이 상관이나 주인을 그의 어깨 위로 짊어지는 것이 이게 뭐 보통 그런 형편이죠. 아무리 좋은 지배자 심지어 성군 세종대왕이라 할지라도, 행차할 때는 가마를 하인들이 그 어깨 가마 어깨 위에 어왕을 모시는 거죠. 그러나 우리를 위해 태어나신 순전한 아기 예수님의 지배는 세상 왕국의 방식과는 정반대라는 사실이에요.

사람들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의 어깨 위로 그분의 당신의 어깨 위로 짊어져 주시는 것이에요. 그 결과 오늘 정말 가슴, 가슴이 찡한 것은 뭐냐 하면 그 결과 저와 여러분은 오늘 이 성탄 신비를 깨달으면요. 예수님의 어깨 위에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이 놓여 있는 것이에요. 제가 제일 그냥 하는 얘기예요. 요한복은 10장에 보니까, ‘나는 선한 목자’라고 그랬어요. 선한 목자는 어떻게 합니까? 99마리의 양이 있고, 100마리가 다 아흔아 평안하지만 한 마리의 양이 잘못돼 가지고 그냥 길을 잃으면 그 양을 찾을 때까지 찾도록 찾는다고 그랬어요. 그리고 누가복음 15장 5절 6절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누가복음 15:5~6,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어깨에 메고, 어린양을 찾았으니 기뻐하자. 이 주님의 마음에 이게 오늘 복음의 신비예요. 여러분들을 찾으셔서 어깨에 메신 그 주님을 찬양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마치 그런 어린아이에게 어린아이가 어릴 때 어떻게 합니까? 아빠가 무등을 태우잖아요. 아빠 목 위에다가 태우는 걸 뭐라고 그럽니까? 목마 태운다고 그러지. 그 태우듯이 주님은 우리를 어깨 위에 주님께서 태우죠. 무등 태우면 아빠 키 1m 80, 어린아이 한 4, 50cm, 2m가 되는 제일 큰 거예요. 그냥 그렇게 해주시는 거예요. 오늘 우리 선글라스에 나와 있잖아요. 주님께서 뭐라고 되어 있느냐. 아기 어깨 위에 무등을 태우시죠.

지금 보이십니까? 어린 양을 무등 태우시는 거 보이십니까? 어깨 위에 세우신 거 보이십니까? 저게 잘 안 보인다 그러면요. 좀 이렇게 그 예수님 얼굴도 보이세요? 저기 은은하게 해놓았어요. 저거 다 고민하면서요. 세계적인 스테인글라스 전문가가 자기 기도하면서 제가 좀 부탁해 가지고 저렇게 한 거예요. 너무나 놀라운 것이에요. 주님의 어깨 위에, 연약한 양인 우리가 주님의 어깨 위에 올려지는 그 순간 무등 타는 그 순간, 그 양은 주님의 힘과 통치와 은혜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주님의 어깨 위에 실린다는 것이 어떤 뜻인가? 주님의 생명과 능력과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트랜스퍼 되는 것이에요. 미련하기 짝이 없는 양인 우리에게, 자, 한 마리 기리는 양이 헤매고 있어요. 주는 그거 찾았어요? 이 미련하고 방퉁이 같은 놈아, 이렇게 하면서 왜 이렇게 헤맸냐고 뭐라 그러지 않으시고, 어깨 위에 얹어주시는 거예요.

이 복음의 신비한 것이에요. 미련한 양인 우리에게 예수님이 가지신 온갖 귀한 것들이 우리에게 위임되는 것이 여러분 이것이 복음이요. 참된 은혜인 줄 믿으시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이 통치 방식은 세상의 통치 방식을 뛰어넘는 것이에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왕국이 어디에 있느냐, 기독교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얘기했을 때 어떤 사람은 로마냐,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어디냐, 물었을 때 로마냐, 바티칸이냐, 아니면 저 비텐베르크 성이냐 프로테스탄티냐, 여러분 그런 것보다도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어디에 있냐, 묻는다면 우리는 답을 뭘 해라? 예수님의 어깨 위에 있는 것이다. 어린 양 되신 그분께서 미련한 양인 우리를 그의 얻기 위해 얹어 놓은 것이 그리스도의 나라의 현장인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이 성탄 주일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어깨 위에 놓인 양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오늘 이 성탄 시즌에 여러분의 위로, 여러분의 능력, 여러분의 기쁨을 어디서 찾아야 됩니까? 그리스도의 어깨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삶의 주민등록을 주님의 어깨 위로 옮기시라고요. 옮기시라. 그분의 어깨 위에 있지 않는 자는 그리스인이 아닌 거예요. 그분의 어깨 위에 자신의 죄와 허물과 그리고 연약함을 다 내려놓는 자, 그런 분들이 주님의 통치를 받는 자이고, 그리스인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 보니까,

*요한계시록 1:17
내가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앞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없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는 거에요.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다. 그가 오른손을 내 어깨 얹는 거야. 내 어깨 얹혀. 로마의 권세와 능력 앞에 요한의 두려움과 좌절과 실망에 빠졌을 때 요한에게 요한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시고, 그럴 때 예수님의 어깨 위에 그 두려워하던 요한이 올라가 버렸어요. 무등 타버렸어요. 제가 사랑의 교회에 23년 전에 처음 부임할 때, 그때 40대 중후반이었는데. 젊은이들 세대는 내가 부족하지만, 담임목사님을 어깨 위로 뚜벅뚜벅 걸어오라 그랬어요. 내가 브릿지가 되겠다고,,,

여러분, 저는 한계가 있는 사람이고, 저는 부족함이 참 많은 사람이지만 우리 주님은 완벽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어깨 위로 여러분들 걸어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자 그러면 그 어깨에 대해서 우리가 깨달았고 전능자의 어깨에 깨달았고, 두 번째로, 해야를 그러면 그 어깨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어 보라는 것이에요.

II. 두 번째, 기묘자(Wonderful Counselor)의 어깨에 기대어 보라.

-오늘 주름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 ‘기묘자라 모사’라 그렇게 했어요? 모사라 모사라가 아니고 모사라 기묘자라 모사라 이 말이 영어로 원더풀 카운슬러(Wonderful Counselor), 모든 것을 다 통찰하시는 분, 모든 절대적인 지략가, 그래서 이분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답을 주시는 분 그래서 기묘자라 모사라, 기묘자이고 모사인 그분의 어깨에 우리의 삶을 기대어 보라는 것이에요.

어떤 경우에도 답을 주시는 거에요. 이걸 믿는 게 믿음이에요. 여러분, 이 내용, 이 기묘자라는 이 단어의 표현이 너무 한국말로는 좀 이렇게 좀 깊이가 특별한 거예요. 그래서 처음 성경 번역, 성경 번역하고 지금 140년이 넘었는데 이 기묘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거예요.

대개 이제 옛날 성경, 그다음에 개혁판, 그다음 개혁, 개정판 이렇게 넘어오면서 옛날 오래된 단어들은 좀 고치고 그렇게 하는데 이 기묘자는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이에요. 너무 신비해가지고 이 신비한 김효자에게 옛날 선대의 어른들이 기대었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이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뭐가 기묘한가? 어떤 기묘가 있길래 우리가 어깨에 기대야 하나? 예를 들어서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 홍해를 건널 때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라고 생각해 보십시다.

홍해를 참 그 기적같이 홍해를 말도 안 되게 홍해를 건넜다 그러고 난 다음에 야 이건 진짜 기묘한 것이구나! 3년 반 동안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온 나라가 메말라 가지고 다 죽을 판인데 갈멜산에서의 영적 전투를 통하여 하늘에 불이 내리고 하늘에 비리 내리고 난 다음에 그 닫혔던 하늘이 열리고 그 풍성한 은혜의 폭우가 쏟아졌을 때 이거라고 진짜 놀라운 일인데 이게 바로 기묘한 일이구나. 그게 기묘한 나사로야. 나오라. 그럴 때 사람이 지금 무슨 얘기냐 이러고 있는데, 동굴에서 나사로가 온몸을 이렇게 수의를 감싼 채 나오는 그 모습을 이거야말로 기묘한 것이구나. 죽은 것 같은 인생을 동굴에 우리가 힘들어했는데, 하나님이 사실 이게 정말 기묘한 일이구나.

무엇보다도 가장 기묘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아기 나오신 그 모습을 목자들이 보고 동방박사들이 보고, 사람들이 보고 이거는 하늘에 황금빛이 다 내리고 이거야말로 진짜 기묘한 것이구나. 주님이 이 땅에 사실 때, 그 구세주 되신 그분이, 섬기로 오시고, 제자들을 훈련시키시고, 폭우를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병자를 일으키시고 죽은 자를 그야말로 정말 기묘한 것이구나. 그런데 가장 기묘한 것은 히브리서 7장 25절에 어떤 것인가? 같이 읽겠습니다.

*히브리서 7:25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할렐루야, 오늘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위해 중복이도 하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에 보좌 앞에 나가도록 하시는 것, 이것 자체가 지금 주님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는 그 자체가 기묘한 것이구나.

그리고 이 기묘자의 통치 방식은 세상 통치 방식이 아니라 십자가구나,,. 십자가를 지치는 거구나. 이게 기묘함의 절정이구나. 만왕의 왕이 왕의 왕자가 아니라,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승리와 정복의 길이 아니라,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승리로 이기시고, 이게 하나는 나라에 기묘한 것이구나. 그리고 이 최고의 기묘함이 십자가를 지치는 것인데 그 십자를 통하여 오늘 다시요. 오늘 성탄절을 뭘 깨달아야 한다고요? 처음 제가 시작할 때 말씀드렸는데 그걸 다 까먹으면 제가 소망이 없잖아요. 오늘 같은 날은 복음의 깊은 뭘 깨달아야 한다고요? 신비를 깨달아야 한다?-(복음의 신비), 그래서 7절에 그 신비함 이렇게 나와 있어요. 다 같이 크게 크게 합독 합시다.

*이사야 9:7
7 그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본당 또 방송 또 별관 또 대부도까지, 뭐 전부 다 크게 합시다. 아멘 오늘 평강이 더 무궁하고 다윗의 왕자 나라 세우고, 공의로 보존하실, 이런 모든 신비하고 이런 모든 것들인데 그 정사의 어깨에 주님의 어깨에, 우리가 우리가 무등 탐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모든 일들을 체험하고 확인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복음의 신비를 깨닫도록,,, 오늘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여러분들에게 통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어릴 때 제가 교회 부흥회를 가는데 어떤 붕사가 나타나 갖고 오정현 제 깜짝 놀라 갖고 있는데, 만군의 여호와의 여호와의 열심히 너를 삼키리라. 그러더라고, 내 깜짝 놀란 거야. 만군의 여호와 열심히 뭔가, 다른 뜻이 아니라 오늘 이런 복음에 신비가 여러분들의 생애를 압도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깊이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제가 오늘 전능자의 어깨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전능자의 어깨,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어보라. 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진짜 적용할 겁니다. 그게 뭘까?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우리를 삼켜야 되고 복음의 깊은 신비가 우리를 압도해야 되는데, 그건 어떤 뜻일까요? 신앙생활을 처음 할 때는 우리가 열심을 내 가지고 우리가 애를 씁니다. 그런데 신앙생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하나님의 열심히 우리를 얼마나 압도하는가? 이걸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적용은요. 너의 모든 책임을 니가 다 지려고 하지 마라.

III. 적용, 내가 다 책임지려 하지 말라.

-너 인생 네가 다 책임지려고 하지 마라, 인생 우리가 책임져야 돼요. 그건 우리가 초등 학문이에요. 그런데 깊이 들어갈수록 우리 인생은 우리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 열심히 우리를 책임지시는 것이에요. 이게 무슨 뜻인가? 여러분, 저는 사역을 하더라도 여러분, 저는 사역을 좀 그냥 두만강 푸른 물에,, 이르면서 노새노새 젊어서,,, 이렇게 합니다. 아니면 좀 열심히 합니까? 그냥 여러분의 반응에 맡기겠어요.

저는 제가 대학 시절부터 제자훈련 하면서 원칙 중에 하나가 The Great Commission, 예수의 지상사명에 대해서, The Standard of Excellence라 그래 가지고 최선의 수준으로, 최선의 수준으로, 성장 좀 더 잘해볼 수 없을까? 하나라도 잘해볼 수 없을까?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없을까? 좀 더 애써볼 수 없을까? 저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요즘은요. 최선을 다하지만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야 하고, 내가 모든 것을 다 책임져야 하는 것에 대해서 기묘자 신 주님께 위탁하고, 특별히 인간적인 모든 책임감으로부터 이게 좀 포기(抛棄)각서(覺書)를 써야 되겠구나.

이 포기각서를 통하여, 주님께 주권 이양을 해야 되겠구나, 여기는 젊은 분도 계시고, 연세 드신 분도 계세요. 여러분 저희 세대는 60, 70, 80 우리 저희 세대는요. 어른들은 열심히 모셔요. 그런데 제가 이번 쇼크를 받았는데 어떤 한 50대 초반의 목사님이 전화를 전화를 했더니, 나보고 ‘어르신 목사님’! 그러더라고. 나 충격 받았어요. 내가 뭐 무슨 어르신, 나는 한 번도 내가 어르신 목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여기 지금 50대 분들 어디 가다가 아버님 이렇게 하면 쇼크 받죠. 우리는 열심히 산 거야. 열심히 다 어느 세대 비슷하겠지만, 그러니까 우리 책임을 다하려고 최선을 다한 거야.

최선을 다해요. 연말연시에 지금 오늘 이 예배도 우리나라의 사회적으로도 책임을 지고 어떤 기업이나 책임 있는 자리에서 공적인 자리에서 너무 고생을 많이 하고 리더들 많이 계세요. 가정과 국가의 수많은 책임 앞에서 수많은 짐과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남 모르는 두려움도 많고,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정도로 힘들 때도 있어요. 짐도 많아지고 그럴 때 오늘 답이 뭐냐.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해 보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누가 내 인생의 책임자입니까? 우리가 지난 생활 초기에는 나름으로 내 의지의 활동들이 필요하죠. 나를 따라오라. 그럼 따라야 되고, 이웃을 사랑하라. 사랑해야 되고 빛과 소금으로 살아라. 그러면 남대로 실천하는 우리 의지가 나름대로 필요해요. 그런데 다시오.

여러분, 의지로 살지만. 그런데 막판에 여러분들의 인생, 여러분들의 삶은 누가 책임자입니까? 이 세상은 운칠기삼(운칠기삼은 ‘운이 7할, 기술이 3할’이라는 뜻으로, 세상일은 정의만으로 풀리지 않지만 이치도 함께 작용함을 이르는 말), 그래. 누구에게 태어나느냐 어디서 태어나느냐 이런 게 운명. 그리고 내가 이렇게 얘기하고 어떤 사람은 아니야. 운구기일(運(九技一(운7, 재주3))이야, 운이 90%. 그다음 제주가 10%다. 이런 말도 가리치만 우리는 그런 거 다 떠나서

우리는 오늘 기묘자의 어깨에 기댄다는 차원에서 여러분들의 삶의 포기각서를을 여러분들의 의지의 포기각서를 주님께로 맡겨야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의 인생을 여러분 책임질 수 있습니까?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진다는 그 말처럼 무서운 말이 없어요.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진다는 그 말은 닭장 관리를 굶주린 늑대에게 맡기는 것과 똑같아요.

이 세상은 내가 내 인생을 자기 의지를 가지고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에요. 제가 말했어요. 우리 신앙생활 초창기는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런데 신앙생활에 깊이 들어가면 정말 미묘하고 깊은 부분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내가 내 의지를 활용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 나는 내 인생의 닭장 관리를 늑대에게 맡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내 속에는 늑대 같은 본성이 남아 있는 것이에요. 무슨 뜻이냐?

나의 의지(意志)가 하나님을 의지(依支)할 때, 기묘자의 (어깨에 기댈 때) 나의 의지는 책임 있는 순종의 도구가 되지만, 나의 의지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의지가 될 때에는 늑대가 닭장 속의 닭을 해치는 것처럼 나를 해치는 흉기가 된다.
-이게 신앙의 비밀이에요. 무슨 뜻입니까? 내 의지가 복음으로 덧입지 않고서는 내 인생의 본성은 굶주린 늑대와 같다는 것이에요.

내 자아가 너무 강하고, 자기애기가 너무 두드러지면 예수 믿으면서도 헤매고, 상처받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오늘 이 복음의 신비를 깨닫는 소중한 주일날, 우리가 전적 위탁을 못 하고 포기각서를 못 쓰는 우리의 마음의 성향을 내 속에 있는 늑대가 나의 죄 성, 나의 자아, 자기의 교활한 합리화를 하려고 할 그때에 포기각서를 쓰고, 기묘자의 어깨에 나를 기대는 것이 내가 나를 책임진다는 책임감에 대하여 포기각서를 써야 한다는 것은 나의 의지를 폐기하라는 그런 말이 아니라, 나의 의지를 하나님께 항복(降服)하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도 강조하는 것이 기독교의 깊은 실리에 들어가면 기독교는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기 부인이다. 자기 의의와 자기 공로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공로의식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식, 복음의 신비를 깨닫는 데서 살아야 할 것이고,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기부인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 하나님이 좀 깊이 쓰시려고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특별하게 여러분들의 자아를 무지막지하게 하나님께서 꺾으신 거예요. 모세를 보세요, 애굽의 왕자. 그 펄펄 산 자, 사람 때려 죽이는 자, 그하고 안 된다는 거예요. 40년 동안 광야에서 완전히 굴리는 거예요. 그래도 리드를 삼았지만 그래도 안 되니까. 나중에 40년 이스라엘 리드로 살 때도 하나님께서 모세를 묵사발을 만드는 거에요.

구름기둥, 불기둥, 모르고 그다음에 옆에 있는 측근들이 배신하게 되고, 자아가 아니라 내 자아가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자아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포기각서를 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어깨에 기대어서 진짜 평강과 하나님의 열심을 확인하라는 것이에요.

오늘 기억하세요. 우리 인생의 처음 시작한 알파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고 빚으셨기 때문에, 여러분의 생애 오메가 시점, 시작 부분에 주님이 우리를 대해서부터 다 아셨기 때문에 주님이 여러분들의 마지막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것이에요. 끝까지 책임지실 것이에요.

지난 주간에 한 주일 전에 평생을 목회자로 살아오신 80세 이신 목사님이 저녁 식사 마치고 청소하시고 샤워하고 그다음에 가정 예배 드리고 그러고 돌아가셔 버리셨어요. 제가 그 얘기를 듣고 야 내 인생을 하나님께 다 맡기고 살아야겠구나, 순식간에 주님 앞에 맡겨진 인생으로 본향으로 가신 그 목사님을 생각합니다. 여러분, 진짜 내 인생의 책임자가 누구이십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 다 오라 그러시고,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보라고 하신 그분이 내 인생의 책임자이신 것이에요.

왜 우리가 그분께 의탁하고, 내 인생에 자아에 대한 포기각서를 왜 써야 됩니까? 거기에 대한 답이 오늘 성탄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 구유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기묘자 그분께서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지만, 만 가지 일을 우리를 위하여 하고 계시는 것이에요. 오늘 막후에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일하시는 그분을 깨닫고, 우리 자아의 포기각서를 쓰고, 신앙생활 총연의 내 위주로 하지만 특별히 우리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 중직자들, 앞서서 일하는 분들, 무언가 책임을 맡은 분들, 그럴수록 주님께 포기각서 쓰고 전능자의 어깨에 기대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걸 깨닫고 의탁하는 것이야말로 섭리 적인 믿음이다. 섭리 적인 믿음이다.

이 신비한 걸 깨달아야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다 아시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이에요. 여러분 부모가 자녀에 대한 계획이 있는 것처럼,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에 대한 계획이 있는 것처럼, 손자 손녀는 몰라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다 계획 있는 거예요. 제가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어요? 다. 다 계획이 있는 거에요. 그런데 손도 잘 몰라요. 어디 인간 할아버지가 감히 창조주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로 어깨에 지신 그분 앞에, 명함이라도 내겠습니까? 주님이 다 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마시고 오늘 이 성탄 주일날 주님이 오셨을 때, 목자들도, 동방박사들도 그리고 나이 많은 분도, 젊은 아이도, 남녀노소 빈부귀천 차별이 없이 주님의 어깨에 기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면 어떤 분들은 ‘아이고 예수님 짐도 많으신데, 내 짐 또 어떻게 맡기나?’ 걱정도 팔자예요. 주님의 어깨는 온 우주를 짊어지고 계시는 것이에요. 온 우주의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재침도 다 짊어지고 계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있는 일은 어마어마한 일이고, 너무나 신묘막측한 일이에요. 오늘 이 주님의 어깨에 기대어 인간의 의지에 닭 날갯짓을 멈추고, 독수리처럼 비상하시길 바랍니다. 올라가면 독수리가 보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섭리적 믿음이 돼서 눈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성탄 시절 참으로 복대기를 축원합니다.

소망 없고 빛도 없고 어두운 세상에 이 찬양하시면서 그 삼위일체 하나님께 나를 완전히 맡기고, 포기각서를 쓰고, 여러분 여기에 열심히 다 사시는데 그 열심히 살지만 우리는 더 깊은 경지에 들어가서 주님의 어깨 위에 내 인생을 얹어 놓는, 그리고 독수리처럼 비상하는 축복을 받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소망 없고 빚도 없고 어두운 이 세상,,,

오늘의 성탄절 날 기묘자의 어깨 위에 우리의 모든 자와 우리의 모든 인생을 다 의탁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한 분 한 분 은혜위에 은혜를 덧입혀 주시기를 바랍니다.

♣요약
-우리는 이 성탄 주일, 우리의 모든 고난과 아픔과 눈물을 가지고, 주님의 기묘자의 어깨에 달려가서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능력과 승리와 회복을 얻어야 한다. 내 인생의 책임자가 나라는 말이 바로 닭장 관리를 늑대에게 맡기는 것처럼 무섭고 무책임한 말이니, 오늘 이런 합리화를 다 버리고, 자기 의와 자아실현에 대해서 날마다 포기각서를 써야 한다. 나의 의지를 주님께 전적 위탁하므로, 나의 의지가 책임있는 순종의 도구로 쓰임 받아야 한다.

-연약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의 어깨 위에 전능하신 우주적 통치 능력이 있는 줄 확신하여, 상한 모든 인생 짐을 주님의 어깨에 온전히 맡기는 평생이 되고, 영원한 책임자이신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나를 압도하심이니, 날마다 내 의지에 포기각서를 쓰며 기묘자의 어깨에 기대어 전적위탁(全的委託)을 하여야 한다. 우리 사랑의교회가 성탄의 계절에 항복하고, 순종하며 한계 없는 주님의 어깨에서 참된 위로와 능력을 받을 때, 대한민국과 전 세계 위에 정의와 공의와 평강의 은혜가 더하여 질 줄 믿고, 우리는 주님 앞에 모두를 맡기고 의탁하며 간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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