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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5년 11월 30일)
설교제목: 새롭게 된 신비( Renewed Mystery)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5:14-19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오규현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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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14-19,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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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도 거르지 아니하고 계속 세례식을 거행하고 많은 분들에게 세례를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께 주신 큰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사랑의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가 계속 세례 받는 숫자가 많아지므로 말미암아 이 시대의 유일한 소망이 교회임이 확인될 수 있도록 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세례는 무슨 교회 전통이나 어떤 뭐 이런 누구의 주장이 아닙니다. 세례는 제가 세례할 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명령을 순종하여 이렇게 그러니까 여러분 지난 주일날 우리가 뭐뭐 라고 쓰고 뭐뭐 라고 읽는다. 기억나시죠? 가족이라고 쓰고, 축복이라고 읽고, 아내라고 쓰고 은혜라고 읽는다.
뭐 좀 아는 분도 있지만 하여튼 그런데 오늘 우리는 세례라고 쓰고, 주님의 명령이라고 읽는다. 세례라고 쓰고 순종의 첫 단계라고 읽는다. 그래서 세례에 대해서 우리가 순종하는 거예요. 주님의 뭐에 대해서요? 명령에 대해서 순종하는 것이에요. 다시요. 세례는 어떤 교회 역사적인 전통뿐만이 아니에요. 또 세례는 어떤 누가 주장하는 것 정도가 아니에요. 주장해서 예수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에 지키는 거예요. 한 번 더 세례라고 쓰고, 뭐라고 읽는다고요? 순종이라고 읽는다. 했는데 순종. 그래서 여러분 세례받을 때가 되었는데도 세례를 안 받고 고의적으로 계속 받지 않으면 주님의 명령을 불순종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세례 받는 것이 주님의 명령 순종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일반 우리 교우들도 오늘 다시 한번 확인하고, 오늘 특별히 세례 학습 받는 분들은 말로도 할 수 없고 더더구나. 오늘 이 세례 받으면서 우리가 고린도후서 5장 17절 잘 아는 말씀이에요.
*고린도후서 5:17,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뭐라고 그랬어요? 피조물이 되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새 사람이 되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새로움에 대한 신비가 있는데, 그 미스터리가 뭔가? 그걸 제가 두 가지만 오늘 세례식 때문에 제가 짧게 말씀을 전할 텐데, 첫 번째는 오늘 14절에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어떤 신비인가? 함께 보죠.
*고린도후서 5:14a,
14a 그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음. 즉 그 다음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해 대신해 죽었다는 말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 피 흘려 십자가 죽으셨다 그 말이에요.
그런데 그 결과로 우리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이 모든 사람은 뭐냐 하면 이미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을 통칭하는 거예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아니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뭐 한 것이라. 죽은 것이라. 첫 번째 신비는 뭐냐 하면 예자가 죽은 신비다.
I. 첫 번째, 옛 자아가 죽은 것이다.
-저와 여러분들은 옛 자아가 뭐예요? 죽었다. 옛 사람이 죽어. 장사 지낸 바가 되었다. 다시 여기에 모든 사람은 구원받은 성도를 지칭하는 건데, 그러니까 옛 자아가 죽었다. 이 무슨 뜻인가 하면 다시 살아날 수가 없다. 오죽하면 갈라디아서 5장을 보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죽었다. 옛 자아 가지고 다시 다시 살아날 수 없다. 그러니까 이 포인트는 뭐냐 하면 마귀가 아무리 나 옛 자아를 충동질하고 자극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거기에 반응할 필요가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의 자아가 죽었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세례식을 할 때마다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옛 자 옛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장례식을 합니다. 장례식. 장례식을 치러야 되고, 아니 치룬 거예요. 그래서 오늘 세례받는 분들뿐만 아니라 이미 예수님들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예 자아가 뭐예요? 죽었다. 예 자아가 펄펄 살아있으면 안 된다. 옛날에는 열 받으면 밥상을 엎어버렸는데,,, 해요. 해도 돼요? 안 해 안 해도 돼요. 그런데 일설에 의하면 누가 밥상을 엎었다는 말도 들려요. 그래서 옛 자아가 아직 덜 죽은 거죠. 그건 뭔가 something wrong이에요. 뭔가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옛 자아가 죽었다는 말은 내 중심에 세상이 무너졌다는 뜻이에요.
이거 어떡하냐? 여러분 다시요. 오목사도, 오목사의 중심의 세상이 무너지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세례받고 주님 앞에 새롭게 된 큰 신비 중에 하나가 우리의 자아가 죽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 은혜 주셔가지고, 옛 자아가 죽는 거룩한 장례식의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세례식, 이꼴 옛자아의 장례식, 옛자아의 장례식, 자 그런데 질문이 있어요.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자아의 죽음이 우리에게 일어난 실제적인 사건인데 왜 많은 성도들이 그 죽음을 실제적으로 경험하지 못하고 자아가 펄펄 살까?
그 이유는 옛 사람, 옛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죄의 습관, 죄의 그림자, 죄의 잔상이 여전히 내 속에 남아 있어요. 그러니까 옛 자아가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다니는 거예요. 시내 산의 율법을 받았지만 애굽의 노예 습관이 남아있는 거예요. 그래서 옛 자아는 실제로 죽은 줄 믿습니다. 반응이 좀 봐요. 옛 자아는 실제로 죽은 줄 믿습니다. 사건 자체는 끝났어요. 죽음의 사건은 끝났어요. 그런데 이 잔상과 그림자가 옛 습관에 남아 있어 가지고 우리 옛 자가 죽었지만 바울 사도는 로마서 8장 13절에 뭐라고 했냐,
*로마서 8:13,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로마 교회는 이미 복음을 들은 교회예요. 이미 옛 자아가 죽은 교회예요. 그런데도 몸의 행실을 죽이라. 무슨 말입니까? 죽었는데 또 죽이라는 거예요. 옛 자아가 죽었는데 또 죽으라는 거예요. 특별히 고린도 교회는 심각했어요. 육체의 본성이 심각했고, 파당이 심하고 아주 그냥 자아가 살아있는 교인들이 많았어요. 옛 자아의 사고 패턴, 옛 자아의 습관 이런 것이 우리 몸에 남아있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좀 어렵게 말을 하면 옛 자아의 존재론적으로는 죽었지만, 기능적으로는 살아 가지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옛 자아의 잔상과 그림자가 우리를 따라다니는데 이 그림자를 처리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 사도는 어떻게 처리를 해야 되나, 그게 늘 고민이었고 바울 사도는 오죽하면 날마다 죽는다고 그랬어요. 날마다,,, 부담되시죠. 그래서 예수님은 누가 먹고자 하면 뭐라고 그러냐?
나를 따라 그러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다. 이야, 우리가 지금 아멘 하는데 이 아멘 이 보통 아멘, 이 아니 오늘 이 세례 받는 분들이 이게 보통 일이 아니 그러니까 죽었는데 또 죽어야 되는 거예요.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day by day, 심지어 제가 그 옛날에 사역하면서 제 사역 서재에다가 우리 교회 신문이 우리 지가 있는데, 우리 지에다 글을 쓰면요. 그 뭘 패를 하나 주는데 패가 뭐냐면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거야. 패를 딱 걸어놨는데 어떤 원로 목사님이 저한테 오시더니, 오목사 오목사는 날마다 죽나? 나는 매 시간 죽는다. Day by day가 아니라 Our by our, 날마다 죽는다. 날마다 죽었는데 또 죽어야 된다.
우리 속에 있는 죄의 잔재, 죄의 습관, 죄의 그림자를 날마다 죽여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이게 매일 매일이 전쟁이고 매일 매일이 선택이고 매일 매일이 결단이고 이거 억지로 되겠습니까? 자 봐요. 이게 내 힘으로 되겠냐고 그러니까 이게요. 날마다 죽는 이게 우리 그림자라고 그랬어요. 이 그림자는 어두울 때 빛이 어두울 때 어두운 그림자가 생기잖아요. 그러니까 빛이 환해지면 그림자가 남아있다. 사라진다. 사라지는 거예요. 빛이 오면 사라지는 거예요. 옛 자아의 습성과 잔상과 그림자를 죽이려 하는데 이게 매일 전쟁이지만 빛이 오면 빛을 비추면 빛을 비추면, 빛을 비추는 게 뭐냐? 예수 그리스도에 빛을 비추면 그 그림자가 사라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빛 되신 주 어둠을 해칠 수 있도록.
그리고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고 나의 생명이 되신 줄 찬양하면서 내 구주 예술을 더욱 사랑 찬양하면서 아침에 일어나고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고 저는 주님 오늘도 이 날을 인도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이날 영광스러운 주일 예배, 아니 매일 매일이 주님 앞에 감사하는 날이 되게 하시고, 저의 약점은 주님 가리워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주기도문에 있는 기도처럼 그런 기도를 하면서 매일매일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고 매일매일 주님의 인도를 구하고 자기 전에 오늘도 인도해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면 주님이 빛을 비춰주시면 죄의 잔상이 물러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우리의 옛 자아가 죽는다. 하는 이 말이 부담만 되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부담만 되는 말이 아니라 감사가 되는데 이게 뭐냐면 내 자아가 죽으면 우리가 참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에요.
우리가 자아가 죽으면 참 자유를 누리게 되는 이유가 뭐냐 하면 자아가 살아 있을 때는 늘 그 자아를 통해서 죄의 본성, 자기 욕망, 자기 체면, 자기 영광, 자기 계획, 자기 불안이 끊임없이 우리를 묶고 얽매이게 한대요. 늘 긴장이 있는 것이죠. 자유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자아를 죽이면 참 자유가 생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어디 가가지고 누가 날 안 알아주고 그러면 속에 열불이 나고 왜 나를 안 알아주나? 이렇게 생각하고 시험 들고 답답한데 물론 그런 데를 가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 데 가서 시험 들게 그 지혜가 있으면 안 가지만, 그러나 사람이 살다 보면 우리가 어떻게 보면 대우를 제대로 못 받고 힘들 때가 있지 않겠어요? 그때 내 자아가 막 살아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자아가 죽으면 그런 게 상관이 없는 거예요. 상관이 없고 내 그 그림자가 사라지기 시작하면 자유를 얻게 되는 거예요.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는 그분이 나에게 빛이 되시기 때문에 이게 해결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 얼굴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다시요. 자아가 죽으면 자유가 우리에게 허락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삶의 징크스, 미신, 뭐 이런 것들이 우리를 얽매이는 것들부터 완전히 자유함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서, 요한복음 8장 36절에 뭐라고 이런 말씀을 시작.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아등바등하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자유함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수영하지 못하는 사람. 물에 빠뜨려 놓으면 막 살아보려고 난리 치잖아요. 막 힘을 쓰고 그러면 더 가라앉아서. 그런데 수영 좀 하는 분들은 자유로워요. 왜? 물에다가 몸을 딱 맡기고 있잖아요. 뜨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으로 자유함을 얻으면, 미신 징크스 있잖아요. 축구 선수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면도를 하지 않아야 골이 들어간다나 그런 면도도 안 하고 나가고 머리도 터부룩 하고, 어떤 사람은 입었던 옷을 입어야 되고 어떤 사람은 이런 온갖 징크스가 있잖아요. 그런것을 It's no problem. 완전히 free from all of my burden. 모든 짐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이에요.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군사들 가운데서 점집에 많이 간다는 사람들 정신 차려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모든 점집으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모든 미신으로 자유하게 되고, 모든 징크스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어디를 다녀도 두렵지 아니하고 소위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 만나도 끄떡도 하지 아니하고 성령이 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주는 자유함인 것이에요.
죽었지만 또 죽여야 되는데 그런데 또 죽이면 하나님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게 놀라운 신비예요. 오늘 이 신비가 세례받는 분들, 학습 받는 분들 그리고 오늘 이 신비가 오늘 모든 성도들에게 체험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신비는 뭐냐? 15절에 15절에 뭐라 나오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시작.
*고린도후서 5:15,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아멘 너무나무 놀라 죽었는데 또 죽으라고 그러셨는데 이제는 또 살아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어떻게? 나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나를 위하여 죽으신 그분을 위하여 살아라가 말이에요. 인생의 목표가 달라지는 거예요. 신비한 게 뭐냐 하면 오늘 두 번째 신비는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갖는 신비가 있는 거예요. 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갖게 하는 것이에요.
II. 두 번째, 새로운 인생 목표를 갖는 신비이다.
-공부를 해도 이전에 하던 공부하고 달라요. 사업을 해도 이전에 하던 사업과 달라요. 사업의 목표가 달라진 것이에요. 나를 위한 사람, 자기중심의 사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위한 사업을 하게 하여 주십시오. 새로운 인생 목표가 선명하게 새로운 삶의 목표를 갖게 되는 놀라운 신비가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에서 그래서 죽음과 부활이라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영광이라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자아를 죽고 이렇게 할 때 그 신비가 있지만 부활의 영광을 통하여 내 인생의 새로운 삶의 목표가 새롭게 부활이 되는 것이에요. 모든 사람은 허무에 치를 떨게 되어 있어요. 나이 60, 70, 80 가면 심지어 예수 믿는 분들도 허무하다고 그래요. 그렇지 않아요.
예수 믿는 분들은 주님 오매불망 사모하는 그 주님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우리의 삶의 순간순간 남자는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나 혼자 있든 상관이 없이, 예수님을 위하여 살겠다는 삶의 새로운 목표가 생기면 나이가 들어 아파도 새로운 목표가 있는 것이에요. 삶의 허무에 피를 떨 때도 새로운 목표가 있는 것이에요. 대한민국에서 제일 돈 많았던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님 회장도 그가 말년에 너무너무 삶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거야. 그래서 삶에 대한 의문 24가지를 가지고 이거 어떻게 하면 좋으냐, 어떤 도움을 구하고 그러는데 여러분 이거 확실하면요.
새로운 삶의 목표가 확실하기 때문에, 삶의 허무에 대해서 우리가 치를 떨지 아니하고, 삶의 허무에 대해서 우리가 정리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사람은 누구나 이기주의의 삶을 살게 되어 있지만, 이 은혜를 받으면 주님을 중심으로 한 이 주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주님을 위해 이렇게 사는 사람의 특징이 있어요. 순종과 헌신이 부담이 아니고 기쁘고 감사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이런 말이 있어요. 능력이 있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순종하다 보면 능력을 주시는 것이에요. 이게 새로운 삶의 목표를 가진 삶의 신비한 것이에요.
한 번 더 능력이 있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자에게 뭘 주신다고요? 우리가 오늘 자격이 있어서 세례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 말씀에 의해서 세례받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에요. 삶의 목표가 달라지고 스타일이 달라지는 거예요.
지난 주간에 제가 11월 달이 되면 우리 교회 이제 순장반 임원단들하고 제가 교제하는 시간이 있어요. 점심을 같이 하는데 새롭게 될 임원단들 또 전에 임원 한 20여 명 같이 교제를 하는데, 아 이 순장 임원단들이 어떻게 은혜를 받고 또 삶의 목표가 어떻게 달라지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고 쭉 얘기를 하는데 지난 우리 10월 인생 10월 참 고생 많이 했잖아요. 순장만 임원도 안 되는 앞장서서 수고하고 아침 6시, 7시부터 나왔고 고생을 해도 특별히 세계복음연맹 총회할 때 전략 투구를 했어요. 놀랍게 그래서 그 투골하면서 고생을 하는데 목사님이 영적 전우회가 생겼습니다.
영천우회 지체들끼리 더 사랑하고 기뻐하는 공동체가 된 것 같다고 육신은 힘들지만 영적으로는 살려주셨다고 그리고 선비다 보니까 믿음의 그릇이 커지고 스케일이 커졌다고 그래서 어떤 순서냐면 내가 스케일이 커졌는데 증거가 뭐요? 그러니까 목사님, 우리 집 현관문 비밀번호가 2033-50이 되었습니다. 이야!!~~ 여러분 기가 막힌 거 아니에요? 저는 그 말을 듣고 현관문 번호가 2033-50을 해놨으니 하루에 두 번, 세 번, 네 번 들락날락하면서 2033-50, 2033-50, 여러분 그 사람 하나는 축복하시겠어요? 안 하시겠어요? 부족한 나라도 하나님께서 필요하는 날 물부터 부어주시겠는데 물론 걱정하지 말아요. 주소는 내가 안 가르쳐 드릴 테니까.
여러분, 봐요. 우리 지금 스마트폰이라든지, 우리 비밀 코드 할 거 얼마나 많아요. 무조건 2033-50이야.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새로운 삶의 목표와 신분이 확실해지는 것이에요. 이렇게 할 때 신앙의 스케일이 달라져요. 어떻게 달라지는가? 우선 16절에 보면,
*고린도후서 5:16,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사람을 겉으로 보면 이제부터 어떤 사람들이 육신을 따라할 겉모습만 보고 껍데기만 보고 이런 인생 안 살겠다. 그리고 18절 19절에 보면 뭐라고 나와 있느냐 이렇게 나와 있어요. 함께 보겠습니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모든 것이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그 다음 뭐예요? 19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니 그 다음 중요합니다.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아멘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전파하라’. 오늘 마칠 때 그 찬성할 거예요.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너무나 놀라운 것은 신비한 것인데, 자아가 죽는 것, 또 죽고 또 죽는데 그런데 우리를 살려주셔 갖고 삶의 새로운 목표를 주셨는데 공부를 해도, 사업을 해도, 이제는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고. 자식을 키워도 완전히 달라지는 것인데 이 모든 것들을 종합에서 신비한 것을 화목히 하는 직책을 주신 거예요. 여러분들이 가는 곳마다 가정이 화목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여러분 공동체가 화목하게 되는 것이에요. 지금 하나님과 우리 국가가 화목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우리 국가가 화목하게 못하는 것이 있다면 여러분이 화목해 하는 직책을 감당하면 하나님과 국가가 화목하게 되는 것이에요. 우리는 화목해야 하는 이게 어마어마한 거예요. 적당히 화목해야 하는 적당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십자가는 인간과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을 화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피의 십자가는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주림이 다시 화목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엉금퀴와 찔레를 가지고 우리가 범죄 했을 때 완전히 세상이 엉망된 거예요. 환경이 자연환경이 엉망이 된 거예요.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가는 곳마다 자연환경과 하나님이 화목하게 돼 가지고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은 그 지역은요. 그 지역의 환경이 아름다운 환경으로 변화되는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유럽의 아름다운 것은 유럽의 과거에 신앙의 선배들이 그렇게 가꾸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에요. 우리 한국도 앞으로 그렇게 될 거예요. 남한과 북한을 비교해 보세요. 북한은 민둥산이에요. 하나님께서 소위 우리로 화목해하는 의사를 주셔 가지고, 적당한 스케일이 아니라 이게 우주적 스케일의 화목을 하도록 만들어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지.
*골로새서 1:20,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할렐루야 땅에 있는 것들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주님으로만 화목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우주적 스케일이 마치 이 화목에 대한 은혜를 받으면 새롭게 된 신비, 화목해야 하는 직책의 신비를 깨달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성경적 화목은 모든 장벽과 분열을 녹이고 하나 되게 하는 우주적 용광로와 같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되는 것이죠. 바울이 이걸 이렇게 선포한 이유가 있어요. 오늘 고린도 교회는 분열의 상태가 심한 아볼로파다, 개바파다, 바울파다, 심지어 예수님파다. 분열이 심각한 상황이었고 아니 바울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일려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초대교회 교인들을 핍박했던 전과자였기 때문에 이 화목해하는 직책을 언급할 때마다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던 그때의 놀라운 체험이 뜨겁게 뜨겁게 각성 되었을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신비합니까? 세례받고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이에요.
세상과 하나님을 화목 시키고 만물과 하나님을 화목시키게 하고, 가정 가정마다 화목이었어요. 그래서 이 화목해하는 직책은 이 땅의 분열과 계급, 갈등, 폭력으로 가득한 죄의 질서 속에서 관계가 회복되는 것, 그걸 뛰어넘어 가지고 새로운 창조 질서 속에서 하나님과 사람 피조 세계로까지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우주적 용광로의 무게를 지닌 축복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 사람들은 화목에 의지는 있어요. 탕평하고 싶다. 하나 되고 있다. 하나 되고 싶다. 갈등을 극복하고 싶다. 그러나 화목에 의지는 있지만 화목할 능력이 없어요. 아무리 화해의 의지가 있어도 참된 화해를 할 근원적인 방법이 없는 것이에요.
이 세상은 끊임없이 화해와 탕평을 얘기하지만 화해를 깊이 열망하지만 화해를 가능하게 할 역동적인 것과 효과적인 방법이 없는 것이에요. 지금 우리나라를 보세요. 결혼의 파괴, 계층적인 갈등, 심지어 젠더 갈등, 사회적 불화,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화목을 얘기하지만 화목을 그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가 뭐냐 하면 십자가와 그리스도가 없는 화목은 해결 방법이 안 나오는 것이에요. 그래서 골로새서 1장에 보니까 만물이 그리스도에 의해 붙들려 있을 때, 만물이 그리스도의 피로 화목된다고 말씀한 것이에요. 모든 불화와 갈등은 만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거룩한 개입으로만 해결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진정한 화해는 만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거룩한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에요. 부부 간의 갈등이 있어요. 그 갈등은 어떻게 해결합니까? 남편이 참아야 됩니까? 아내가 참아야 됩니까? 서로 좋은 말 하면 되는 겁니까? 잠깐 용서하면 됩니까? 천만의 말씀, 천만의 말씀은 서울 시민들이 한마디 하면 다 천만의 말씀이 다 해봐야 소용이 없어. 타협할 소용이 없어요. 십자가가 없이는 화목이 안 되는 것이에요. 십자가의 신비를 깨달아야 부부간에도 갈등을 해결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삼각형 아시잖아요.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는데, 그래서 십자가의 화목의 중간에 있어야만 부부간의 갈등이 해결되는 거예요. 국가 간의 갈등도 마찬가지예요.
십자가가 없이는, 사회의 구조적인 갈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거룩한 개입이 없이는 결코 화해가 불가능한 것이다. 세상에 상담 어느 정도 도움은 돼요. 그러나 그 껍데기 잠깐 그냥 잠깐 단 것 사탕 주는 정도의 근본적인 해결이 안 돼요. 그래서 십자가가 모든 화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고, 그래서 여러분들과 오늘 우리가 세례받고 오늘 예배에 참석하면서 여러분들의 젊은이들 말로 하면 찐 화목의 대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화목 하는 대사가 돼야 되는 거예요. The ambassador of Reconciliation. 화목해하는 영적인 찐 대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화목해 하려면 여러분 뭐가 필요하냐? 뭐가 필요하냐? 에너지가 있어야 돼요.
*고린도후서 5:14a
14a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한 번쯤 하면 되는데 계속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 에너지가 영적인 힘과 에너지가 영적인 힘의 원천이 뭔가 그것이 오늘 14절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을 다 해석했는데 이게 너무 중요해요. 오늘 이 예배를 주님 사랑하는 때만 나온 줄 믿습니다. 알겠죠? 세례도 주님 사랑하는 때를 받는 것이에요.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이 화목하게 하는 대사의 직책을 끝까지 감당하게 하고 자아가 죽게 하고 새로운 삶의 목표를 힘 있게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사업도 공부도 우리의 모든 인생살이도 가능하게 하는 것인데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건하게 하셔야 됩니다. Bank of Heaven 하나님 천국 은행에서 이 사랑이라는 구좌에서 날마다 이걸 우리가 꺼내 써야 되는 것이에요. 24시간 오픈되어 있는 이 구좌를 우리가 써야 되는 것이에요.
오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세례받는 분들뿐만 아니라 오늘 모든 성도들, 오늘 방송으로 들어오는 모든 분들, 별관에 세례되는 모든 분들 마음의 소원을 아시는 거예요. 우리는 천국 은행에서 사랑구좌 24시간 빼낼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인 힘과 능력을 날마다 받을 것이다. 주님 사랑해요. 또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공급받아야 되는데 충전을 해야 돼. 사랑의 충전을 해야 돼.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한 시대로 충전해야 돼. 어떻게 충전? 대충전이 뭐냐? 주일 예배가 대충전이에요. 그래 주일 예배 안 나오는 사람들은 사랑의 충전을 못 받으니까. 그러니까 제가 볼 때 주일 예배를 등한시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주름을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본 적이 없어요. Amen. 대충전이에요. 대충전. 중충전이 뭐냐? 다락방과 훈련이 소충전이 뭐냐?
날마다 아침에 주님과 큐티하고 아침에 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에요. 한 번씩은 급속 충전도 필요해요. 급속 충전이 뭘까요? 특새예요. 특별새벽부흥회에요. 제가 말하는 요지는 대충전이든, 중충전이든, 소충전이든. 그래서 저의 사랑의 우리를 끝까지 강권하셔야 돼요. 오늘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셔서 세례받는 축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 쓰시는가? 이 새롭게 된 신비를 깨달은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에요.
자아가 죽고, 삶의 목표를 갖고 찐 화목해하는 대사의 은혜를 가지고 날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충전받는 우리 오늘 세례받는 분들, 우리 온 성도들 얘기를 한 분 한 분 맞춤의 은혜를 선한목자께서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요약
우리는 '옛 자아의 노예 습성'에 대해 죽음을 선언하고,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또 죽을 때, 거룩한 참자유를 얻고 누리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우리를 전 영역에서 화해의 우주적 용광로로 부르셨으니, 가는 곳마다 화목하게 하는 영적 삶을 살아가야 하며, 우리 사랑의교회와 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가 주일예배, 다락방, 큐티, 특새'를 통해 강권하시는 사랑의 무한 충전을 받아서, 하나님과 민족을 화해시키며 '2033-50 비전'을 완수하길 간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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