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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1월 18일)-1부-2부
제목: "복음의 골수-The Marow ofthe Gospel"
말씀: 히브리서 4:12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호산나 찬양대,
대표기도: 홍성민 부목사님(1부), 김진원 장로님(2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이기호 부목사님(2부)
헌금찬양: 이정명(테너)
설교자: 김정우 목사님(한국신학정보연구원장)-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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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4:12,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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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6년 1월 18일)-3부-4부
제목: "두려움의 시작은 망각이다-Fear Begins In Forgetfulness"
말씀: 신명기 1:29-33
찬양인도: 쉐키나, 할렐루야 찬양대, 시온찬양대
대표기도: 김상윤 장로님(3부), 문윤아 권사님(4부)
사회: 장단희 부목사님, 임상규 부목사님
헌금찬양:
설교자: 박성민 목사님(한국대학생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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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29-33,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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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부할렐루야! 영광 찬양대의 찬양 감사드립니다. 저도 1부 교인입니다. 영광 찬양대가 우리 정월 첫 주 예배를 히브리스 4장 12절 말씀으로 시작했는데, 기억하십니까? 영광 찬양대, 찬양대원들에게는 이 말씀이 아마 다 찬양으로 살아 있을 것 같아요. 오늘 이 말씀이 우리 영혼에 평안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영혼의 골수에 참 충만한 은혜가 임하고, 우리 성도들의 영혼의 골수가 윤택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연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고 할 때 이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인데 하나님은 성경으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성경 말씀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만나 주시고, 말씀해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성경 밖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떠나서 우리가 어떻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영감이 있겠죠. 영감이 있으니까, 권위가 있겠죠. 오늘 이 말씀의 터전 위에 우리 각자의 신앙과 가정과 또 우리 사랑의 교회가 든든히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고 하죠. 첫 번째 특징이 뭐죠? 살아있대요. 말씀이 살아있대요. 어떻게 말씀이 살아있을까요? 살아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생생하다는 거죠. 생생하다. 살아있다. 숨을 쉰다. 그래서 숨을 불어 넣어준다. 속삭여준다. 격려해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호소하고 우리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또 우리를 새롭게 한다. 살아 있으니까 성경은 죽은 문자가 아니구나. 따라서 우리를 살게 하구나. 사도 베드로가 하신 말씀처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오.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우리가 새롭게 된 것은 썩을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인데 이 썩지 아니할 씨는 뭐냐 하면 바로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말씀이 씨라고 해요. 씨는 어디에 심어두든지 언젠가는 이렇게 살아나고, 꽃피고, 열매 맺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특징이 활력이 있다고 하네요. 원어는 에너지가 있다는 뜻이에요. 에너지라는 단어가 바로 이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성경이 마치 태양과 같다 해가 뜨면 모든 생물들이 다 살아나서 활력을 얻는 것처럼,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활력을 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9편 시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노래하면서, 하나님의 율법은 마치 태양과 같은데, 이 태양 같은 율법이 우리의 심령에 임하면 우리의 영혼 속에 생기를 북돋우어 준다. 우리의 생기가 다 가라앉아 있는데, 말씀의 씨앗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면 우리의 생기가 다시 지속적으로 살아나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말한다고 하면 활력이 있다는 이 말씀은 부정적으로 말한다고 하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효력이 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와 함께 하시니까 사무엘이 하는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니라’ 땅에 떨어진 그래서 떨어지지 않는다. 떨어지지 않는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서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도다. 꽃은 떨어져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떨어지지 않아요. 작년 내내 우리를 괴롭혔던 것이 바로 이 단어인데, infallible. 이 infallible한 무추인데, 이 무추를 무류라고 번역을 해가지고 왜 무오라고 하지 않고 무오는 안 믿고 무류만 믿느냐 했는데 Infallible 하나님의 말씀은 그 목적을 이루고야 만다. 이것이 무오 보다도 훨씬 더 큰 개념이고 더 중요한 개념이고 성경적인 개념이에요. 제가 신학을 하다 보니까 자꾸 이렇게 옆길로 가끔 가는데 죄송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활력이 있어요? 살아있어요. 효력이 있어요. 있으라 하면 있어 지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있어 지는 것입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있으리라 말씀하신 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하나님의 예수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의 심령 속에도 비추어 주신 것입니다. 효력 있는 말씀입니다. 이 살아있고 에너지가 충만한 이 말씀을 비유하자면 칼과 같아요. 칼과 이 말씀은 칼이래요. 성령의 금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는데 양날의 금이래요. 예리(銳利)하대요. 좌우에 날선 어떤 금보다도 더 예리하다. 광선보다 예리하다. 스팅보다 예리하다. 문학가들이 상상한 그 어떤 금보다 예리한데 최상급이에요. 우리말 성경 번역에서는 이 양날 선 이 검이 찔러 쪼갠다. 찔러 오 아파 말씀이 임하면 아파. 오 나를 찌르네. 좀 부정적인 단어 같아요. 찌른다로 번역을 했는데 Pierce 한다는 건데 이걸 달리 번역을 하면 penetrate 한다. 뚫고 들어온다. 이 말씀은 우리 속에 뚫고 들어온대요. 관통한대요. 마치 엑스레이처럼 침투한다.. 말씀이 우리 속에 영혼 속에 침투해요. 그리고 두 번째 단어가 뭐냐 하면 찔러 쪼갠다. 인데 이 쪼갠다는 이 단어가 신약성경에서 두 번 나오는데 같은 히브리서에 두 번 나오거든요. 그 첫 번째 나오는 것이 히브리서 아마 이번에서 2장 4절인데, 성령께서 나누어 주신다. 교회를 위해서 많은 언사를 나누어 주신다. 그러니까 구별을 해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 속에 관통하고, 침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 무질서한 많은 정신세계 생활 습관 이런 것들을 짜임새 있게 질서 있게 잘 구별해 준다, 나누어 준다, 분간해 준다. 어느 정도 짜임새 있게 해 주느냐 하면, 첫 번째로, 혼과 영을 갈라놓는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혼과 영을 동의어로 보고 영혼이라고 생각을 하고 인간의 심층적인 차원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 단어는 사실 너무 폭넓게 사용되고 있어요. 저는 혼은 혼에 대해서는 오히려 모든 생명체의 원초적 욕망, 생명은 욕망이 있어요. 우리도 다양한 욕망을 가지고 살고 있고 어떤 욕망은 선하고, 어떤 욕망은 부정적이기도 하죠. 먹고 싶고 쉬고 싶고, 편하게 살고 싶고, 잘 살고 싶고 하는 원초직 맛있는 거 먹고 싶고 잘 쉬고 싶고 하는 원초적 욕망 이 원초적 욕망으로부터 영혼을 원초적 욕망과 영혼을 이렇게 갈라놓는다. 구별해준다, 짜임새 있게 만들어준다. 영혼.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죠.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어요. 영혼이라는 단어는 굴원의 초사에 처음 나오는 단어인데 인간 정신의 최고로 고매한 차원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진선미를 알고 그래서 예술이 있고 철학이 있고 종교가 있고 하는 모든 영혼을 생각할 수 있고 무한을 생각할 수 있고 과학이 있고 예술이 있고 모든 인간의 최고 정상을 이루는 영혼, 원초적 욕망과 영혼을 이렇게 잘 구별해주고 두 번째로는 우리의 신체적이고 육체적인 차원에서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는다. 우리의 몸도 참 짜임새 있게 해준다. 우리에게 관절이 몇 개죠? 여러분들 관절 몇 개 갖고 있어요? 360개 정도 된대요. 360개가 이렇게 잘 오거나이즈 되어서 관절과 그런데 골수, 골수가 뭐예요? 뼈 안에 있는 생명 물질이겠죠? 생명 물질,. 피를 만드는 것. 골수(骨髓). 이 골수 안에는 뭐가 있죠? 적혈구도 있고 백혈구도 있고 혈소판도 있고 그래서 이 골수가 참 윤택할 때 건강한 몸을 가지는 것처럼 우리의 진액이 있어요. 진액. 우리의 정수가 있어요. 인간 신체의 어떤 핵심적인 물질을 잘 만들어주는 세 번째로,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해줘요. 드디어 마음, 영혼에서 몸과 마음. 우리 의식 세계가 이루어지는 곳이 되겠습니다. 마음. 우리의 마음에는 뭐가 있죠? 많은 생각이 있어요. 많은 생각들을 잘 정리해 준다. 생각. 그리고 우리에게는 뜻이 있어요. 뭔가 이루어야겠다. 해내어야겠다. 목적하는 바가 있어요. 그렇죠? 우리의 마음, 인격의 중심 그러니까 말씀은 우리의 영적이고 지적이고 도덕적이고 정서적인 중심을 아 우리의 전 존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파고 들어오는 거구나 침투하는 거구나 그래서 여기에 한번 물들기 시작 하면 사람의 표정도 바뀌고 행동도 바뀌고 습관도 바뀌고 말하는 것도 바뀌고 태도도 바뀌고 이 사람이 이 인간도 변하네... 이렇게 되죠. 이 말씀이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고 활력이 있어서 효력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effectual, effect가 강해요. 효력이 있어서 전인적인 침투를 하는구나. 전방위적으로 통전 적으로 우리에게 오는 이 무시무시한 말씀이구나. 그래서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오면 갑작스러운 회심(悔心)이 일어나요. 요한 칼빈 선생이 자신은 중세의 온갖 미신에 사로잡혀 가지고 완고하게 그 미신을 믿고 살았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에게 갑작스러운 회심을 주셔서 갑작스러운 회심을 주셔서 내 정신 프레임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이런 고백을 하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갑작스러운 변화를 우리에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죠?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침투하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문자가 어떻게 이리 힘이 셀까요? 왜냐하면, 예수님을 보십시오. 말씀이 육신이 되셨대요. 그래서 예수님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죠. 예수님께서 성경 말씀과 함께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효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느 날 어느 순간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살아있죠. 성경 말씀이 살아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같은 단어예요. 같은 단어, 예수님의 말씀이 운동력이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걸어라 하면 걸어지고 눈 뜨라 하면 눈 떠지고 깨끗해져라 하면 깨끗해지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내 양심을 씻으려고 해도 안 씻어지는데 깨끗해져라 하면 씻어지는 거예요. 내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 내가 지은 죄를 어떻게 사라 받을 수 있겠어요? 벌을 받아야 싸지.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면 그 말씀이 내 속에 들어오는 순간 내 죄가 내 죄짐이 다 벗겨져 버리는 거예요. 죽은 나사로가 사흘 되었지만 나사로야 나오라 하면, 나사로가 수의를 걸친 채 나오는 게 예수님 말씀의 권능이에요.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서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놀랐는데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처음이오 나중이다. 내가 알파와 오메가이다. 곧 살아있는 자다.” 나는 살아있는 자다. 그런데 내가 전에는 죽었다. 볼지어다. 내가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보 열쇠를 가졌느니라.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그냥 살아계신 것이 아니라 완전히 죽었다가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죽음과 저주와 고민과 고통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건져내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런데 칼이래요. 요한계시록 1장 16절에 그가 오른손에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예수님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은 교회의 지도자들이요. 주님의 오른손에 교회 지도자들이 붙잡혀 있는데, 예수님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같이 빛나더라. 그래서 예수님 말씀은 바로 영이고, 생명이에요.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죠. 살리는 것은 0이다. 아무리 여러분들이 화장을 멋지게 해도 0이 죽으면 다 죽은 거다. 살리는 것은 0이다. 6은 무익하다. 내가 너희에게 이런 말이 영이요 생명이다. 예수님 말씀이 영이고 생명이에요. 예수님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오면 우리의 영혼이 새로워지고 우리의 생명이 새로워지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교회의 많은 교부들과 많은 성도들은 이런 체험을 우리에게 말해주죠. 다산 정약용이 1783년-4년 경희시 시험에 합격을 한 이후에 저 다산의 두물머리에서 배를 타고 그의 형제들과 함께 배를 타고 한강으로 내려오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벽 선생과 함께 배를 타고 내려오는데 내려오는데 성경 말씀을 그때 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성경 말씀을 들었는데 다산의 고백이에요. 배 안에서 천지가 창조되는 시원이나 천지창조 이야기, 완전히 뭐 태극이니 음양이니 기발이니 이 조선 성리학의 그 번세한 세계 속에 살고 있다가 천지가 창조된 시점에 있었다. 인간에게 신체와 영혼이 있고 그리고 삶과 죽음의 이치에 관하여 들으니 놀랍고 기이하여 마치 은하수가 무한한 것 같았다.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몇 권의 책을 보고 비로소 기뻐하여 마음이 기울어졌다. 조선 최고의 경학자 다산은 이 세계관의 변화, 말씀 속에서 온 세계, 동양의 주역적 세계관에서 성경의 창조와 구원의 세계관으로 이동을 하니까 사서삼경과 그가 평생 공부했던 모든 글자가 다 살아 움직이고 전혀 다르게 해석이 되는 거예요. 말씀이 들어오면 우리의 세계관이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고, 인생관이 변하고, 인생이 새로워지는 말씀이 살아 있고 효력이 있는 거야. 그렇다면 이 예수님의 영을 우리가 어떻게 받을까요? 이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는 어떻게 받을까요? 어떻게 받죠? 예수님의 영을 어떻게 받고, 예수님의 생명을 어떻게 받을까요? 쉽조? 답은 믿음으로 받아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살아가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하려 함이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시마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랴 심플 그런데 질문이 있어요. 함정이 있어. 그럼 첫 번째 질문.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 되나요? 믿어야 구원받나요? 조건절이 있어야 결과절이 발생하나요? 내가 믿어 구원을 받았으면 믿음이 내 공로가 되지 않아요. 그렇지만 믿음은 결코 공로가 될 수가 없죠. 믿음이 공로가 될 수 없으면 결코 조건이 될 수 없을 거예요. 믿음이 조건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조건이 아니라면 수단이 되겠죠. 조건은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인데 수단은 이미 주어진 것을 받는 거죠. 수단은 통로예요. 그럼 구원은 뭐예요?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래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시기를 원하는데 우리가 그 구원의 선물을 받으면 돼요. 손을 내미는 거예요. 열두 해.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니까 혈루증(血漏症)이 즉시 그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선물, 영생의 선물, 은혜의 선물,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이 무궁무진한 보화의 선물, 이 모든 게 다 받겠다는 거예요. 받을 거예요? 안 받을 거예요? 받겠다는 게 믿음이야. 믿음은 이렇게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두 번째 질문 그럼 회개해야 믿을까요? 믿을 수 있나요? 성경에는 믿기 전에 널 회개하래요. 이때부터 예수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러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그렇다면 회개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나요? 여기에 오랫동안 교회 나오면서도 회개하기 싫어서 안 믿는 인간들이 많을 거예요. 회개해야 믿을 수 있으면 회개가 구원의 조건이 될 것 같아요. 믿음의 조건이 되는 어느 신학자가 열매로 알리라 이런 큰 두꺼운 책을 썼는데 회개의 열매가 있어야 믿음이 있는 거예요. 일반적으로 보면 믿기 전에 크게 회개를 해요. 그런데 회개가 그냥 되나요? 회개하고 싶어도 안 돼요. 왜 안 돼요?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인간이기 때문에요. 죽은 인간이 무슨 회개를 하겠어요? 그러니까 회개를 하려면 신학적으로 효과적인 부름이 있어야 돼요. Effectual calling이 있어야 하나님이 효과적으로 불러주셔야 회개가 되는 거예요. 회개를 하니까 효과적인 부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죠.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이 어디에 있죠? 에베소서인가요? 너희가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니. 이는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자가 없네. 여기 토비새의 교인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 정도는 지금 진짜 중요한 거예요. 복음이 뭐냐는 거예요. 믿음이 구원받는 조건이 아니에요. 회개가 믿음의 조건이 될 수가 없어요. 아 그러면은 그러면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을 주실 때는 근거가 있겠죠. 구원의선물 선물 선물인데 이 선물의 근거가 뭘까요? 하나님은 무엇에 근거해서 우리에게 영생하는 선물을 주시죠?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선물을 주실까요? 선물의 근거, 이것이 바로 질문이에요. 복음이 뭐냐는 거예요. 복음이 뭐냐? 복음의 골수가 뭐냐는 거예요. 복음의 진액이 뭐냐는 거야. 복음의 정수가 뭐냐는 거예요. 이 진액이 이 진액이 혼탁해지면 우리 영적 생활 전체가 혼탁해지는데 하나님은 무엇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놀라운 선물을 주시는가? 죄와 참 저주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새롭게 살 수 있는 새 생명, 구원, 거듭나는 이 은혜를 주신 근거가 뭐예요? 하나님? 근거가 이건 좀 고급 문법에 속해요. 고급문법, 심청 문법이에요. 그걸 우리의 신앙 고백에서는 은혜언약이라고 해요. 은혜언약. 은혜언약. 우리 한번 같이해볼까요? 은혜 언약, 여러분들 영어 잘하니까 카빈은 또 그레이스, 그레이스의 언약이에요. 언약에는 크게 두 개가 있는데, 행위 언약이 있고 은혜 언약이 있어요. 이 언약은 아담과 하나님이 내주신 언약이에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어요. 낙원을 주셨어요.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그런데 단 하나 금했어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는 거예요. 단하나,,,. 그것을 아담과 하와가 깨뜨리자. 그 언약이 깨어진 거예요. 행위 언약은 행위 언약이 깨어졌어요. 그래서 낙원에서 추방되었어요. 그럼 이 완전한 아담과 하와도 이렇게 범죄할 수 있으면 이 인간들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하나님의 대책은 뭐예요?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시간이 있기 전부터 시공이 있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성부 아버지와 성자 하나님 사이에 영원한 언약을 맺었는데 그게 바로 은혜 언약이고 구원 언약이에요.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 이 언약이 있었던 것. 그러니까 뭐냐 하면, 약은 계약이 아니에요. 계약은 조건이 있어요. 이 조건이 깨어지면 관계가 깨어지는 거예요. 은의 언약은 조건이 깨어져도 관계가 깨어지지 않아요. 은혜 언약은. 그러니까 뭐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죠? 은혜 언약은 무조건적이에요. Unconditional해요. 은혜 언약은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이에요. 모든 계약과 조약은 쌍방적인데 은혜 언약은 일방적이에요. 하나님이 하나님이 initiate한 거예요. 하나님이 시작한 거예요. 하나님이 모든 것들을 다 이끌어 가세요. 모든 계약과 조약은 영원하지 않아요. 국제적인 조약도 5년 이상 가는 게 거의 없대요. 이 언약은 영원해요.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이고 영원한 언약이에요. 그래서 이 언약은 희사(喜捨)라고 할 수 있어요. 선물이에요. 오늘 우리가 왜 이 성경에도 없는 은혜 언약 이야기를 할까요? 복음의 골수가 뭐냐는 거예요. 복음의 골수. 왜? 우리가 이 은혜 언약을 믿고 살아야죠? 우리 장로교 신앙 고백은 Westminster 신앙 고백에 근거하는데 Westminster 신앙 고백의 제7장이 바로 이 은혜 언약을 길게 다루어 줘요. 새 언약이에요.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 새 언약의 핵심 내용이 바로 은혜 언약인데 왜 우리가 이 언약을 늘 믿고 살아야 할까요? 이 언약을 지켜야 할까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이 은혜 언약을 물타기해요. 이 은혜 언약을 왜곡해요. 우리가 누가 내가 우리가 어떻게 해요? 쉽게 우리가 율법주의에 빠지면 돼요. 율법주의. 율법주의라는 율법주의가 사전적으로는 쉬워요. 선행과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 거라는 건데 율법주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예수님이 평생 온갖 다양한 사람들하고 싸운 게 율법주의예요. 그러니까 교회의 가장 무서운 질병은 율법주의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율법주의는 힘이 너무너무 세요. 심층적이에요. 마치 헤라클레스가 두 번째 싸움을 한 게 레로네아의 히드라인데, 율법주의는 히드락 같아요. 열 개의 머리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한 머리 자르면 한 머리에서 막 두 개가 만들어져요. 그리고 열 개 중에 한 머리는 불사의 머리예요. 안 죽어요. 자를수록 더 많이 생겨요. 이런 율법주의 그리고 독이 치명적이죠. 그리고 독사처럼 이렇게 딴 데 보는 것 같은데, 나를 물어요. 율법주의 우리 모두 쉽게 빠져요. 그러니까 율법주의자들은 좀 지독한 율법주의자들이 우리 주위에 많아. 한국 교회 너무 많아졌어. 소위 진리와 진실과 정의와 교리를 독점하는 이 무서운 인간들. 우리 충분히 율법주의자들에게 시달렸어. 이제는 바닥에서 뒹굴다가 우리 일어나서 힘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율법주의는 한마디로 정의를 주장하지만 정죄하죠. 그렇죠? 정죄하는데 율법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정서예요. 정의도 아니고 정죄도 아니고 정서예요. 그러니까 율법주의에 감염되면 하나님이 갑자기 좀 싫어져요 그리고 하나님이 너무 인색한 것 같아요. 하나님이 너무 가혹한 것 같아요. 하나님. 하나님은 선하시잖아요. 탕자의 아버지처럼 선한 아버지신데, 하나님의 선하심이 믿어지지 않아요. 그러니까 내 마음이 너무나 싸늘해져요. 냉정해져요. 그러니까 율법주의는 마치 뭐와 같으냐 하면 산성비 같아요. 산성비 내리면 다 죽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마음속에 산성비 내리는 거 좋아요? 싫어요? 우리 교회 산성비 내리면 될까요? 안 될까요? 우리에게는 단비가 내려야죠. 말씀은 단비고, 율법주의는 산성비예요. 초토화시켜요. 모든 생명체를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도 처음에 율법주의에 빠진 거예요. 사탄이 하나님께서 정말 동산에 있는 모든 열매 못 먹게 했냐? 충격을 받은 거야. 하나님은 다 먹게 하셨어요. 그러니까 하와가 뭐라고 대답을 해요? 다 먹게 하셨지만, 하나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그러니까 말씀해서 말씀을 이렇게 믹스해버리죠. 언제 하는지 이런 짓이 말랬어요. 그러니까 갑자기 하나님도 교회도 신앙도 다 좀 싸늘해지는 거야. 그러니까 마음이 차가워지는 거예요. 냉혹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은혜 언약 가운데 살아요.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이고 영원하신 은혜 언약 가운데 살기 때문에 우리가 그 통치 가운데 늘 사려고 해야 돼요. 이 은혜 언약 속에 살아야 우리가 율법주의를 이기고 또한 반율법주의를 극복할 수 있어요. 이상하게 율법과 율법이요. 하는 인간들 보면 지긋지긋하죠. 자기에게는 안 갖다 대요. 그러니까 이 율법주의자의 대표적인 인간이 레미저라블의 자베르 같은 인간이에요. 19년 전에 빵 하나 먹은 이 장발장이 아무리 변해도 끝까지 추적해서 추락시키려고 하는 율법주의가 이 나라에서 물러갈지어다. 은혜 언약이 임해야 이 율법주의를 임해요. 그런데 자제르가 마지막에 어떻게 해요? 자살해요. 그러니까 율법주의에 빠지면 이상하게 반율법주의자가 돼요. 그래서 율법주의하고 반율법주의는 이란성 쌍둥이래요. 여러분들의 심령이 참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면 딴짓해요. 율법 다 깨뜨려요. 그런데 은혜 받고 새 언약 받으면 뭐예요? 우리는 율법이 이제는 우리의 생활의 규범이 되는 거죠. 이렇게 되는 거예요. 오늘 주제가 뭐죠? 복음의 골수, 이게 복음의 골수예요. 믿음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에요. 회개해야 믿음 있는 거 아니에요. 회개하며 믿고. 그렇죠? 회개와 믿음의 관계는 회개하면서 믿고 믿으면서 회개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야. 음. 우리에게 복음의 골수가 있어요. 이 골수를 안 지키면 이 골수를 잊어버리면 구원파에 빠져버려요. 엉뚱한 신앙생활을 하는 거예요. 이 골수가 윤택하기를 바랍니다. 잠언 말씀이죠. 이것이 이 지혜가 잠언의 지혜가 내 몸의 양약이 되며 내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복음의 골수가 믿음의 골수가 윤택해지는 우리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우리 다 함께 오늘 주신 말씀 하나라도 우리의 심령 속에 침투하여 우리의 골수가 백혈구가 막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자라지 않고 우리 믿음의 골수가 복음의 골수가 윤택해질 수 있도록 같이 기도합시다. ♣요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서, 이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 있고 효력 있고 힘이 있어서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몸에 침투하기를 간구하며, 이 나라와 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와 세속주의와 타락하는 이 모든 정신세계를 우리가 넘어서 이제는 예수의 영을 받아야 한다.예수의 생명을 받아서 이 복음의 골수가 우리 속에 무궁무진하게 솟아나서 영육이 건강하기를 소원한다. ![]() |
![]() ![]() ![]() ![]() ![]() ![]() ================================================================== ▶3-4부
♣주일예배(주후 2026년 1월 18일)-3부-4부
제목: "두려움의 시작은 망각이다-Fear Begins In Forgetfulness"
말씀: 신명기 1:29-33
찬양인도: 쉐키나, 할렐루야 찬양대, 시온찬양대
대표기도: 김상윤 장로님(3부), 문윤아 권사님(4부)
사회: 장단희 부목사님, 임상규 부목사님
헌금찬양: 이정명(테너)
설교자: 박성민 목사님(한국대학생 선교회 대표)-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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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29-33,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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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부-박성민 목사님(한국대학생 선교회 대표)-초빙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음과 생각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거 같습니다. 이 세상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연구하면서 네 가지 단어로 축약을 해 봅니다. BANI, 영어 단의 앞자리입니다. 바로 세상은
첫 번째로
B는, 브리틀(Brittle)하다. 잘못 건들면은 깨져 버릴 수밖에 없는 그런 세상, 이미 경험하고 계실 것입니다. 국제 정세가 그렇고 어떤 년에서든지 굉장히 브리틀한 그런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A는, Anxious, 모든 사람들이 불안해합니다. 앵크셔스(Anxious)의 앞자리입니다. 모든 사람이 불안해하고 그 불안 속에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리고 모든 상황을 보면서 사건 사건들이
N은, 비선형(Nonlinear)입니다. 그래서 nonlinear, 이거 하나가 저걸로 유도하지 않습니다.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히고 설켜 있는 세상, 그렇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I는 Incomprehensible,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세상이다. 그래서 B A N I하고 있는 것이고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과연 그런 속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이냐라고 하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특별히 새해를 맞은 후 지금 한 20일 정도가 지났습니다. 새로운 과연 어떤 각오로 여러분들은 살고 계시나요? 우리가 세를 맞았지만 세상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점점 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그런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거 같습니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저는 이 질문을 던지면서 오늘 말씀을 보기를 원합니다. 왜 그러냐면 우리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 큰 답은 맞습니다. 역사는 누구 손에 있습니까? 하나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했던 그러한 어리석은 죄에 빠지지 말아야 됩니다.
지금 신명기 1장은이 같은 사건을 갖다가 민수기 13장 14장에 나온 사건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대상이 다릅니다. 민수기 13장 14장 같은 경우에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망설였기 때문에 못 들어갔던 전 세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장은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면서 이제 들어갈 세대를 향해서 회고해 보면서 거기서 얻어질 교훈을 갖다가 주고 있는게 바로 신명기 1장입니다. 새로운 해. 또 사랑의 교회는 이제 새로운 단계로 또 새로운 목사님을 모시고 담임 목사님으로 연결이 돼서 이제 꿈을 꾸시는 걸로 들었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98..88. 엄청난 숫자였습니다. 본입되었다고 하는 것 굉장히 저는 동일합니다. 그걸 보면서 여러분이 교회뿐만 아니고 나의 삶도 올 한해 어떻게 살 것이냐? 지금
새로운 세대들이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면서 보시면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시면은 특이한 것이 나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밑에 보면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다라고 돼 있습니다. 참 특이합니다. 두려움이 믿지 않음과 연결이 돼 있습니다. 결국 그 두려움은 무엇인가라고 하면 쫓아가 보면 먼저 답을 드리겠습니다. 두려움은 오늘 제목에 나와 있듯이 망각이라고 하 잊어버린다라고 하는 거 자체가 두려움의 모든 시작이 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세를 시작하면서 올 한해 여러분들이 세 가지를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해서 기억하면서 승리하시는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세 가지,.
첫 번째는 바로 뭐냐면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관점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그것을 기억함으로써 우리의 관점을 새롭게 해야 된다. 무슨 말씀일까요?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12명의 정탐꾼이 뽑혀 가지고 너무나 잘하시는 말씀 같이 동일한 곳에 동일한 기간 동안 동일한 것을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열명과 두 명의 본 것이 다릅니다. 열 명은 도저히 이길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날 수밖에 없게 그들의 성은 하늘을 찌를 듯하고 거기에는 거인 족속 의 아낙 자손이 지금 그곳을 갖다가 차지하고 있는 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들의 보고를 보면은 누구든지 들었을 때 도저히 이길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근데 두 사람은 특이하게 얘기합니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현실 이상을 봅니다. 아니다.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리라..라고 얘기를 합니다. 과연 무엇이 차일까요?
저는 이것이 늘 궁금했었습니다. 왜 이렇게 같은 곳을 같은 기간 동안에 같은 것을 봤는데 평가는 이렇게 다를 수 있느냐? 바로 뭐냐면요. 우리의 심리적으로 우리 인간이 그렇다고 하는 겁니다. 유명한 심리학자죠. 전나탄 하이트라고 하는 사람이 the rightous 마 mind라고 하는 우리나라에 바른 마음이라고 번역이 돼 있습니다. 바른 마음이라고 번역된 곳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해 가지고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직관적으로 판단한 후에 이성을 가지고 자기 판단을 정당화 한다라고 하는 얘기를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은 바로 우리가 무슨 사건이 됐을 때 거기에 상황을 보면서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갖고 있는 이성으로 내가 내린 결론이 맞다. 결국 이성의 역할은 우리 가운데 무슨 역할 하냐면 변호사 역할밖에 못 한다고 하는 겁니다.
저도 고민을 걸 많이 했습니다. 과연 이게 무슨 말일까? 그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은 열명을 이하가 되기 시작을 합니다. 열 명은 자기네들은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것마다. 이길 수 없는 이유 들이 눈밖에 보이기 시작을 합니다. 두 명은 바로 이길 수 있다라고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길 수 없다라고 하는 걸 보기보다는 이길 수 있는 이유를 찾은 게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이라고 하는 거기서 이유를 찾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경험하시는 것은 나는 어떻게 보고 있느냐라고 하는 질문입니다. 자, 그렇다면은 바로 나의 직관, 직관이 무엇일까? 직관이라는 것을 내가 판단한다면 어떻게 이 직관을 바꿀 수 있겠느냐? 그게 바로 가장 핵심일 것입니다. 그 직관을 바꾸는데 가장 핵심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말씀의 근거에서 내 생각을 바꿔 가는 때만이 바로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생각의 법칙입니다. 죤 맥수엘 이라는 사람이 연구를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생이 바뀌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인생이 바뀌어질 것을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근데 그렇게 해 가지고 인생이 바뀌지 않습니다.이 사람 말합니다. 뭐부터 바뀌어야 되냐면 바로 가장 힘든 작업인데 그게 뭐냐면 생각이 바뀌어야 된다라고 하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바뀌는 건 뭡니까? 지금 제가 여기서 생각이 바뀌는 건 단순한 생각이 바뀌는게 아닙니다. 성경 속에 나와 있듯이 골로새서 3장 16절에 나와 있듯이 뭐라고 돼 있냐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 풍성하게 거하사” 라고 하는 겁니다. 뭐냐면 말씀 속에 들어가야 되고 그 말씀이 우리를 압도할 수 있게 우리가 허용을 해야 된다는 것이죠. 다시 한번 이성으로 돌아갑니다. 이성 여러분들은 나 여기에 계시는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배움을 많이 가지신 분들 중심으로 사는 지역에 여러분들이 모이셨습니다. 이성을 저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도 이성을 갖다. 엄청나게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성은 우리를 바뀌지 못합니다. 이성은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바꿀 수 있는 환경으로 인도할 뿐입니다.
말씀에 첩할 수 있게 하고 그다음에 이렇게 예배에 나올 수 있게 하고 수많은 선택 중에서 뭐를 선택할 수 있는 것에서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제안을 할 수 있는게 바로 이성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뭐가 이루어집니까? 점점 점점 바뀌기 시작합니다. 뭐가 바뀝니까? 나의 관점, 나의 직관이 바뀌기 시작한다.는게 바로 성경에서. 그러다. 보니까? 로마서 12장 2절에도 뭐라고 돼 있습니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바로 많은 사람들이요. 자연스럽게 직관은 어디에 지배를 받습니까? 세대에 이 세대를 세대에 지나가는 패턴, 이 세태 자가 우리를 갖다가 지금 주관하고 있습니다. 근데 그다음에 뭐라고 돼 있냐면은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라고 돼 있습니다. 마음이 바로 뭡니까? 직관의 변화를 위해서 우리가 뭘 해야 되냐? 말씀 속에 우리를 드리고 말씀을 외울 뿐만 아니라 말씀 속에 우리의 생각이 삼기는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도 강조를 많이 하고 계시죠. 큐티라고 하는 거. 아침에 일어나서 말씀의 묵상을 통해서 그 말씀을 붙잡고 하루 동안 살아가는 것, 그러한 거기에 매몰되는 훈련을 통해서만이 직관이 바뀔 수가 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맥선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렇게 해서 생각이 바뀔 때만이 뭐가 바뀝니까? 바로 드디어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돕기에 나를 향한 믿음이 바뀌기 시작을 합니다. 나를 향한 믿음이 바뀔 때문에 바뀔 때만이 뭐가 가능합니까? 나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생기기 시작을 합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생길 때 내 태도가 바뀌기 시작하고, 내 태도가 바뀔 때만이 행동이 바뀔 수 있고 행동이 바뀔 때만이 실력이 바뀔 수 있고 실력이 바뀔 때만이 드디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다 어디서 시작을 합니까? 생각의 변화에서 시작합니다. 과연 무엇으로 여러분의 생각의 그릇 속에 채우시겠습니까?
저는 올 한해가 여러분의 다른 무엇보다도 말씀으로 여러분의 생각의 그릇을 가득 채우시는 우리 사랑교회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 그게 바로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 안에 우리가 우리를 갖다가 드리기 시작했을 때 그 말씀은 들어와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갖다가 감찰하며 옳은 것으로 인도하실 역사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여러분들이 마음을 들으시고 여러분의 직관의 변화를 통하여서 이제 느끼시는 모든 거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바로 열 명이 아니라 열 명의 실패한 자들이 아니라, 두 명의 여호수아 갈릴과 같이 제대로 볼 수 있는 그런 삶을 사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를 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억하며 역사를 기대하며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억해야 한다는 겁니다. 특이한 건 바로 열 명은 보고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열 명 속에는 열 명의 보고 속에는 바로 애굽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은가에 대한 얘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출애굽하면서 그들이 경험한 애굽에서의 그 열 개의 재앙 얘기도 없습니다. 어떻게 홍해를 건너냐는 얘기도 없습니다. 만나 매출하기 얘기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은 계속적으로 뭡니까? 현재 눈앞에 보이는 것이 그들의 전부였습니다. 그게 인간의 약점입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레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인간은 바로 뭐에 비유할 수 있냐면은 위에서 맹금류가 노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눈앞에 있는 곡식 몇회의 한 눈이 팔려 버린 그런 참새 같은 존재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기억해야 되는게 뭐 내가 그런 존재기 때문에 내가 그런 존재일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을 갖다가 늘 생각하며 살아야 되는게 바로 우리가 달라질 수 있는 방법입니다.
여호수아 갈렙은 부정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갈렙 얘기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들은 말할 때 우리는 그들 앞에 메뚜기 같은 존재다.라고 얘기하지만 여호수아 갈렙은 뭐라고 얘기했냐면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저는 이게 바로 하나님이 지금까지 어떻게 인도해 오셨는가를 염두해 두고 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 그들의 사고 속에 있는 것 이상을 볼 수가 있었던 것이죠. 전 그래서 늘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뭘 이성일까요? 비이성일까요? 아닙니다. 믿음은 초이성입니다. 이성을 뛰어넘는 것이죠. 그럴 때만이 바로 온전히 거기에 계시는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눈에 보이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그 하나님의 역사와 함께 하심이 있다라는 그 속에서 보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질 수가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이 이 시대를 보면 저는 한국 교회는 지금 사랑의 교회와 같이 건강한 교회가 있습니다만은 대부분의 교회들을 제가 전국적으로 다니면서 지저스 페스티벌이라고 하는 그것을 통해서 교회 훈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거기에 지금 32개 도시에 있는 각자의 중요한 조그만 소규모 도시들 중심으로 해 가지고 도와주고 있는데, 제가 가서 발견한 것은 교회 전체가 아주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미 통계적으로도 나타나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신뢰도, 영향 모든 것이 지금 계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작년, 제작년 통계죠. 그 재작년에 통계 그 전에 5년 동안에 개신교회 20대 30대 특별히 20대 중심으로 50%가 줄었다 라고 하는 그러한 통계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건 뭘 말합니까? 이대로 가면 한국교회 미래가 굉장히 어두울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많이 걱정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한국 교회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 걱정하지 않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어떻게 여기까지 인도해 오셨는가?
그걸 돌아보면서 우린 거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 주셨으며 그 복음이 전해 왔기에 우리한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전 세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일들이 우리 가운데 많이 일어나고 일어났었고 경험했었고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고 계시다고 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들어 가는 상황 속에서도 지금 이곳저곳에서 하나님께서 새 일을 시작하시는 역사가 굉장히 많습니다. 오늘 잠깐 제가 이때 한국 CCC에서 여름 수련회의 장면을 잠깐 보고 여러분께 말씀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영상을 부탁드립니다.
4박 5일 동안 진행된 여름 수련에 만여의 학생들이 모여 가지고 뜨겁게 찬양하고 그 속에서 세계의 복음화를 꿈꿨던 그것이 지금 제 눈앞에도 생생합니다. 저들 가운데 작년 같은 경우에만 해도 3,400명 넘는 사람들이 해외 단기 선교를 떠났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이런 시대 젊은이들이 어떻게 뜨겁게 하나님의 복음을 들고 이 땅에서 우리의 역할을 감당 위해서 살고 있는가? 그것을 여러분들이 한번 보시라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저는 소망이 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면 저들한테 제가 발견한 것은 바로 뭐냐면은 저한테도 부탁하는게 목사님 우리한테 기도할 시간을 더 주세요. 저는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바로 거기서 전 소망을 봅니다. 우리 다음 세대를 향한 하나님께서 역사를 시작하고 계신다라고 하는 것을 봅니다. 작년 말에도 금식 수련회를 하는데 금식 수련회 재작년에 비교해서 600여명이 더 와서 전국적으로 7,200명 정도가 3박 4일 동안 금식을 하면서 자신을 위해서 캠퍼스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살아 있습니다. 전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한국 교회에 소망이 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여기까지 인도해 오셨고 우리 한국 교회를 축복해 주셨고 어딜 가나 제가 발견한 것은 전 세계 어딜 가나 한국 사람이 가는 곳은 교회가 세워진다라고 하는 겁니다. 우연일까요? 전혀 우연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사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원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더라도 말씀을 가지고 한번 점검해 보시면서 관점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지금 앞으로 어떻게 인도하실 것인 것을 기대하며 사시는 우리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세 번째는 바로 뭐냐면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면서 미래를 꿈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셔야 됩니다. 저는 언어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이 언어로 실패를 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12명이 돌아와서 보고를 할 때 백성들이
열 명의 얘기를 쫓아가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수기 14장 28절에 성경에 나오는 가장 무시무시한 얘기가 나옵니다. 14장 28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하는 말씀을 합니다. 이기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결코 그 땅에 돌아갈 수가 없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들은 한 사람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호수아 갈렙이라고 하는 그 두 사람과 새로 태어난 세대를 이끌고 들어가게 됩니다. 특이한게 바로 사람의 심리입니다.
저는 에밀 쿠에라는 자기 암시법을 개발한 사람의 얘기를 들었었습니다. 에밀 쿠에라는 사람이 자기 암시법을 개발합니다. 자기 암시법은 바로 뭐냐면 너무나 간단한 것입니다. 돌아보면은 실험을 하기 위해서 말성꾸러기 아이들을 모아놓고 훈련을 시킵니다. 그리고 그들마다. 아침이 말을 갖다가 수십 번을 반복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바로 day by day. In every way I'm getting better and better, 매일매일 모든 면에서 나는 점점점 좋아지고 있다. 매일매일 모든 면에서 나는 점점점 좋아지고 있다. 굉장히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갖다. 수십번씩 함께 복창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데 아이들이 며칠 지나면서 바뀌기 시작을 합니다. 자기 암시법입니다. 사람은 신기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요즘에 자기 개발법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게 뜨고 있습니까? 퓨처 셀프라고 하는 그런 제목의 책들이 뜨고 있습니다. 퓨처 셀프는 사실 한 2년 전에 보면 벤자민 하디라고 하는 사람이 바로 원제로 “be your future self now. 바로 지금 너의 미래에 네 자신이 지금 되는 것” 그것을 갖다가 얘기하면서 책을 냈는데 그게 상당히 반향을 여러는데 한국에서
특별히 히트를 했습니다. 한국의 유사한 책들이 굉장히 많이 나와 있습니다. LG의 다섯 개 부분에 전체 HR 모든 휴먼 리서스의 책임자였던 김홍식이라고 하는 전 부사장도 책을 썼는데 책 제목에 여러분들이 이미 느끼실 겁니다. 책목이 이겁니다. “5년 후에 나를 생각했을 뿐인데” 생각하는 생각했을 뿐인데 달라지는 겁니다. 5년 후에 나의 모습을 생각만 해도 달라진다는 겁니다. 인간이 그렇습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건 뭐냐면은 지금 미래에 대한 생각을 갖다. 긍정적이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산다면 어떤 일어날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죠. 그냥 단순히 아무거 없이 말만 해도 긍정적으로 말을 했을 때 바뀌는 존재가 인간이고 아무 근거 없이 그냥 나의 미래만 꿈꿔도 지금 현재 삶이 바뀌는 것이 인간인데,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 보시면은 말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잖아요. 이걸 가지고 이것에 근거해서 나의 미래를 갖다가 꿈꾼다면 어떤 일을 하겠습니까? 여러분 일어날까요? 안 일어날까요? 일어납니다. 여러분, 그게 바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서 도전해 주고 계시는 바로 영역이죠. 너희가 꿈을 꾸라. 바로 꿈을 꾸고 비전을 가지면은 뭐가 일어납니까? 내가 하나님 이런 일을 원합니다. 이번에 금식 기도에서도 우리 학생들이 전국에서 7천여 명이 먹는 학생들이 꿈꿨던 게 바로 뭐냐면 주님 나의 앞으로의 내 미래 10년 후에 나의 모습이 이렇게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써가는데 그걸 가지고 올 한해를 보면서 순간순간 거기에 근거해서 디시전 필터 역할을 할 겁니다. 어떤 결정을 해야 될 것이냐? 바로 미래에 나의 모습이 제대로 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다음에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것이 나의 현재 모습이 나를 갖다가 주관하는 앵커가 되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 미래의 모습이 나를 주관하는 결국 아이덴티티 정체성 앵커가 될 것이고, 어떤 일을 당해도 그것을 갖다. 해석하는 미닝 프레임이 달라질 것입니다. 의미를 갖다가 보는게 달라집니다. 바로 그러한 나의 모습이 되기 위해서 이러한 어려움은 결국 그런 모습을 갖기 위한 지나가야 되는 과정이다. 라고 느낄 때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걸 위해서 가장 중요한게 뭡니까? 먼저 하나님 앞에 꿈을 꾸고 그 꿈을 갖다가 우리가 정리를 한 다음에 그것을 가지고 지금 나의 모습에 권위를 가지고 죽 주관할 수 있도록 내가 지속적으로 허용을 할 때 우리의 모습은 달라질 수가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꿈을 꿉니다. 어떤 꿈을 끄냐면 바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끌어 오셨습니다. 어떤 꿈이냐면 지금 한국 교회가 어렵다라고 하지만 저는 거기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역사를 이미 시작하시는 증거들을 저는 보고 있고 가장 어려울 때, 그때가 바로 뭐냐면은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때입니다. 인간의 절망의 바닥점이 하나님 역사의 시작점이 됩니다. 어렵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오히려 꿈을 가져야 될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계속적인 꿈은 바로 2028년에 제주에서 꿈을 꾸고 있습니다. 어떤 꿈을 꾸냐면은 바로 한국에서 지금 하나님이 어떤 일을 만들고 계십니까? 한국 민족에 대해서 이렇게 한국 민족이 지난 5천 년 동안 이렇게 떠본 적이 있습니까? 어딜 돌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여권 파워가 2위다라고 얘기를 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1이나 2위나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어디나 들이밀어도 우리는 쉽게 갈 수 있는 그러한 특이한 나라가 됐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이 명동을 한번가 보시기 바랍니다. 과거에는 동남아 중국계 분들이 계속적으로 명동에 왔었습니다. 지금은 명동에가 보시면 달라진게 있습니다. 어디가 오신지 아십니까? 웨스턴에서 커케이션들이 굉장히 많이 오고 있습니다. 전 이거는 하나의 굉장한 변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미국에가 보면은 제가 작년에도 미국에 갔을 때, 그때 즈음이 바로 뭐였냐면은 헐로윈이었습니다. 할로윈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뭐에 가장 인기가 있나 그랬을 때 바로 캐데헌이라고 하는 거기서 나오는 것 그것은 금방 나오자마자 동인하는 특이한 것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올해 골든 글로브도 두 개나 차지를 했습니다. 대현이 우연일까요? 저는 의원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한국을 하나님께 띄워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저희가 제주도에서 꿈을 꿨던 거는 한국 전체 내에서 어느 나라나 아무리 어려운 나라도 비자 없이 올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바로 제주도입니다. 누구나 올 수가 있습니다. 근데 그곳에서 꿈을 꿨던 거는 하나님 이곳이 전 세계 선교 운동을 일으킬 수 있는 허브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시작했었습니다. 그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어떤 일이 일어났냐면 바로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받아 주셨는지 바로 폭삭 속았수다가 뜨기 시작을 했습니다. 폭삭 속았수다가 뜨기 시작하니까? 제가 그 꿈을 갖다가
전 세계 다니면서 리더들하고 나눴더니 이분들이 얘기를 합니다. 아 그 섬이 그 섬이냐? 그 영화를 보고 그 드라마를 보고 넷플릭스에서스 보고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기 때문에 가족들하고 꼭 가고 싶은 버ர்த்த리스 중에 하나였다라고 얘기를 하는 걸 들었습니다. 전 이런 모든 것들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한국 교회를 보고 한국 교회 통계를 보면은 어둡지만 저는 늘 말씀드렸다시피 확신하는 건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셨는가 보자. 하나님이 어떻게 약속을 해 주셨는가? 우리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서 우리 민족이 선교 민족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바로 1980년에 세계복음화 대성회 때 10만 명의 청년이 일어나서 기회를 주신다면 1년이라도 세계 선교를 위해서 섬기겠습니다 라고 일어섰던 10만 명이 지금 그 사람들이 선교사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지금 다시 한번 또 하나의 기회가 오고 있다라고 생각을 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 한번 새로운 힘만이 아니라 우리 젊은이 모두가 어떤 모습인지 풀타임 선교사가 아닐지라도 자기가 비즈니스라고 뭐라든간에 하나님의 선교의 그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헌신하는 그런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것을 놓고 저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갖고 있는 꿈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갖고 계시는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꿈이고 지금까지 제가 살아왔던 그런 꿈이었고 앞으로도 그것을 위해서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근데 저는 여기서 또 하나 여러분하고 도전을 드리길 원합니다. 이건 단순한 우리 전체 교회 하나님의 꿈뿐만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실뿐만 아니라, 더 풍성히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하나님은 어딜 같은지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불 가운데 지날 것이라도 보호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어디를 가시나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 여러분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여러분들이 그 약속을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삶을 갖다가 살아가면서도 하나님 그렇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꼭 붙잡고 살겠습니다. 상황의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겠습니다. 부정적으로 보인다면은 이제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말씀을 기억하면서 다시 한번 나의 관점을 점검하시면서 그 말씀을 통해서 새롭게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오신 그것을 기억하시면서 하나님이 이제 역사하실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며 사시는 한 분 한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꼭 붙잡고 미래의 꿈을 꾸는 우리 귀한 한 분 한 분 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요약
21세기에 바로 이러한 주님의 비전과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역사를 우리가 생각하며 살 수 있는 특권 주신 것 감사해야 한다. 세상은 어지럽듯이, 세상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그런 두려움에 가득 찬 그런 세상을 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모든 두려움의 시작은 망각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주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기억함으로써 우리의 관점이 바뀔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으로 단련되고, 준비된 그러한 관점으로 메사를 보면서 우리가 그 안에서 파괴하고 또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인도해 오셨기에 바로 그것을 잊지 않아야 하며, 인도하셨기에 어떤 상황 속에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야 한다. 절망치 않고, 포기하지 않고,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가 되어 많은 성경에 수많은 약속들, 우리가 약속을 다시 한번 붙잡아야 한다. 미래를 향해서 주님 기대하면서 준비하는 꿈을 꾸는 자들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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