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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0. 5. 10.)

제목: ''내가 사는 이유, 사명''

말씀: (요한복음 20:21~23)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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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미션- ''Calling, the Reason I Live.''

코로나 극복시리즈 12

이번 주는 '내가 사는 이유, 사명이다'. 현장예배를 위해 소풍가기 전날 밤 같이 주일 예배가 기다려졌다. 찬양대가 정성 다함을 주님은 기뻐 받으실 것이다. 비장한 제목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로서의 사명을 지키기 위해서 주일을 지켜야 한다. 코로나가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처렁 달려온 것은 사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01. 사랑의 교회가 사명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I. 사명이란 -그래서 우리는 지금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사명이란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아래와 같아야 한다.

1. 사명이란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아래와 같아야 한다.

평생 부를 수 있는 노래,

평생 흔들 수 있는 깃발이다.

평생 붙잡을 수 있는 삶의 목적이다.

사명은 개인의 사적 욕심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 온 '고귀한 부르심'이다.

2. 예수님의 삶과 죽으심은 사명 때문이었다.

3. 예수님이 사명자이시기에 우리도 사명자이다.

우리 사랑의 교회는 사명 자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인생 방향이 될 것이다. 사명의 사람들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올라감 같다. 내가 이 땅에 사는 이유는, 내가 이 예배에 있는 이유는? 예수님은 주님 주시는 사명에 의하여 지배 받으셨다. 예수님의 반사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사명자이다. 예수님의 정체성이 우리를 결정하신다. 특정한 사람만이 아닌 함께 사명자이다. 평범한 그리스도인도 다 사명자이다. 우리의 삶의 현장이 사명을 죽음으로 성취해야 한다. 사명을 성취함에 영적전투 기백이 능력이 폭발적으로 나오게 된다. 사명은 맥박을 뛰게 한다. 쉼 없이 만드는 것이다. 사명의 심장이 뛰지 않음 죽은 삶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회복시키신 우 먼저 사명을 먼저 주셨다. 예수님은 사명을 통하여 영적인 심폐소생을 주셨기에 다시 한 번 재생되고 충전되고 부활되고 풀로 재현되기를 바란다.

 

부르스월키

악인은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하여 서슴없이 공동체 피해를 주며산다자기 이익 때문에 공동체 피해를 주지만 의인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도모하며 사는 것이다. 악인과 의인의 차이는 사명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그래서 사명이 다른 사람은 악인과 같다는 것이다.

 

II.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1. 요한복음 20~21(20:21b)-''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것이 바로 사명의 시작이며, 은혜, 풍성이다. 사명이 부활되길 바란다. 창세기 3장에 아담과 하와가 죄로 폭망 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창조와 타락을 회복하는 마음으로 예수님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구원의 핵심이다. 그 정도의 진중함을 가지고 보낸다는 것이다.

2. (요한복음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는 것이다 여러 번 반복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중요할 때마다 나를 보내셔서 일하신다. 하나님이 보내셨음을 확실히 말씀하신다. 사명이라 강조하신다. 나를 보내셔서 사명자로 만드신 것이다. 따라서 내 삶의 ABC는 사명으로만 설명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들이 동등하게 적용해야 한다. 그래서 너를 세상에 보내노라. 너무 고귀하다. 우리같이 부족한 인생에게 사명으로 보내셨다. 이 말씀을 깨달아 정신이 번쩍 들게 된다. 그래서 주니의 차원 사명의 차원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주님은 사명으로 오셔서 갇힌 자, 눌린 자, 병든 자, 가난한 자, 슬퍼하는 자에게 해방과 위로와 치유를 선포하셨다. 우리도 그렇게 사명이 확실하면 우리 주위를 치유하고 상처를 해결하는 치유 자가 되는 것이다.

3. (고후5:20)-“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특명 전권) 대사이다. 사명을 받은 것이다. 우리 모두가 또 다른 비결은 특명 전권대사인 것이니 우리의 삶의 격을 바꾸는 것이다. 사명을 감당하면 모범이 되듯 우리의 삶의 격이 달라진다.

III. 사명 자에게는 성령의 능력과 죄 사함 선포의 특권을 주신다.

1. 본문에 요한복음 20:22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특명전권 대사에게는 죄 사함의 특권을 주신다. 사명 자에게 권능도 주시는 것이다. 평생 도우시는 성령님이 예수님을 도우셨다. 놀라운 기적을 주셨다. 우리도 성령으로 특명전권 대사의 능력을 갖게 되었다. 주님은 맨땅에 해딩하라고 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님의 권능을 받았기에 우리에게도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하늘 능력의 사명이다. 우리 속에 내주하셔서 때때로 도우신다. 견딜 수 없는 것도 견디게 하시며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신다.

2. 제자들의 두 가지 변화.1) 인격적 성령의 역사 2) 사역적 성령의 역사

1)담대함이다. 제자들이 두려움에서 이기고 회복했다. 성령의 능력으로 선포하고 회복되어야 한다.

2).실제적인 능력 선포자다. 어린 여종에게 말 더듬이를 베드로가 선포하신 것처럼 성령을 받으라는 것이다.

3. 요한복음 라베테는 능동형, 복수형, 명령형이다. 요한복음 20:22받으라헬라어 라베테(labete)sms 사명에 걸맞는 능력을 주시길 사모해야 한다.

능동형우리는 길을 만들고 능력을 사모하여 모든 마음을 가지고 간절히 사모하라.

복수형함께 받으면 V자로 회복이 된다. 공동체가 함께 하는 것이다.

명령형이다.

4, 요한복음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1) 죄 사함의 선포의 특권이 있다. 찬양 가운데도, 죄 사함 가운데 사해지는 것이며, 죄 사함으로 용서의 복음을 선포하라.

2) 용서를 체험하고 선포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명자의 사명방식이다. 그래서 모든 사명 자는 가정과 공동체에서 용서의 용량을 넓히는 것이다. 용서의 용량을 넓히는 축복을 주시기를 소원한다. 상처와 쓴 뿌리를 용서해라. 용서 없이는 사명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나도 용서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한다.

5. 사명 자에게 용서가 의무가 아니라 (운명)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정해져 있다. 용서가 사명자의 운명인 것은 여기서 악인과 의인이 결정된다. 정신과 환자들이 절반이 용서받지 못함 때문에 입원한다고 한다. 우리가 사명자로서 용서로 특명전권의 대사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바란다. 사명을 선포하여 적당히 살지 말고 목숨 걸고 용서가 운명이 되어야 한다.

IV. 사랑의 교회 성도들의 사명 실천

1. 사명은 우리 능력과 자격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2. 사명을 위하여 노예근성(slavesoldier)에서 전투력 있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전사로 바꾸신다.

3. 출애굽기 13: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대열은 전투를 위한 군인들의 대오 정렬을 의미하여 전쟁을 위하여 무장된으로 변역할 수 있다.

4. 민수기 1:46,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

5. 사랑글로벌 아카데미(SaGA)가 영적 사관하고가 되어야 한다.

6. 우리가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이 있다.

1) 성경의 절대적 권위

2)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3) 성령이 능력과 주권

4) 거룩한 공교회의 중요성

5) 세계선교의 절발성이다.

 

Sega 사관학교처럼...

사이즈가 중요하지 않고 매그네틱 처치이다. 시대가 달라졌다. 우리가 지켜야할 사명이니 꼭 지켜서 브이자로 회복하길 바란다. 골든타임 늫치지 말고, 위정위덕이란 정치는 덕으로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위생위사가 우리의 삶은 사명으로 산다이다. 그렇게 집중하여 사명자가 되길 바란다.

 

요약

우리의 사명은--- 사명 자는 실천이다. 모든 성도들은 사명의 사람들로서 복권이 당첨된 것이다. 예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서 사명울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자격도 없는데 주셨다. 도마 같은 자라면 사명을 주시겠나? 출 코로나를 해야 한다. 모두가 골드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 사명을 위해 집중하자. 사명으로 암송 72구절을 하면 괴이한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사명의 르네상스가 되길 바란다. 사명자로 다음 세대를 계승하고 키우고, 사명의 사람으로 되어 때에 따라 필요한 용서를 하여라. 그래서 사명의 전성기를 맞게 되길 바라며, 올 투게더 하길 소망한다.

1. 느낌대로 흔들리며 살던 인생이 북극성 같은 사명자로 헌신하게 되고 보냄 받은 가정과 일터에서 폭포수로 거슬러 올라가는 영적 기백과 전투력으로 섬기며 살게 되길 바란다.

2. 영가족 공동체가 예수님처럼 운명적인 용서의 특명전권 대사로 드려질 때, 성령님의 폭발적인 능력을 힘입어 해방과 자유와 치유의 복음을 담하게 선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3. 사명자의 전성기를 누리고, 출 코로나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고 예수님의 피묻은 십자가 복음의 전사가 되어 V자로 수직상승하기를 간구하고 소원한다.

 

느낀 점.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어떻게 사는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주일이었다. 말씀에 비추어 보며 내가 사명자로서 진정한 전투력을 갖추고 지금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기회였다. 목사님은 오늘 무척 강조하신 점은 정말 노예근성을 버리고 진정한 솔져가 되라고 하신다.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만 바라보았지 않았나 싶다. 정말 주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오월이면 좋겠다. 내 자신이 너무도 부족하고 자신이 없어서 주님 앞에 뭐든지 나는 부끄럽다. 더욱 헌신하는 알찬 주님의 자녀가 되고 싶고 사명자로서의 역할을 잘 하여 내가 사는 이유에 자존감이 높아가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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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 5. 3.)
제목: “평강
말씀: (요한복음 20:19-26)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코로나 극복시리즈11
 
인터미션 예배 아름다운 동산 찬양도 하나님이 기뻐 받으셨을 줄 믿는다. 이 자리가 아름다운 동산, 평화의 동산, 예배의 동산의 자리임에 확신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요연하고도 낮은 피조물 인생이 창조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면서 건강하게 나와 주님을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권이요, 크신 은혜요, 목이 메일 정도로 감사하다.
 
오늘은 평강에 대해서이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내적 불안을 많이 호소한다. 오죽하면 코로나 불루’(blue)라는 말이 생길 정도이다. 코로나 불루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일어난 사회적 현상으로 우울증이나 심리적 불안을 의미한다. 두 달 전에 비하면 엄청 줄었고, 국내 확진 어제는 확진 자가 O이었고 그래서 토비새에 그것을 기념하여 동그란 도넛을 나누어 주었다. 확진 자 수가 줄면 코로나 두려움이나 인생의 두려움도 실제로 두려움도 줄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만약에 이런 코로나 사태가 없고 모든 것들이 우리들이 원하는 대로 순조롭게 되어져 간다면 평안을 누릴 수가 있는가? 다 잘 되면 평안을 늘 누릴 수 있는가? 우리가 평안한 지, 불안한 지를 점검할 수 있는 미터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어떻게 자고 어떻게 깰 것인가가 점검지가 될 수 있다. 눕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0.1.(시편35절에 보면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 , 시편 4:8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그러나 누워서 평안하게 자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또 평안이 쉬기 위해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야외를 갔다. 어떤 쉼의 장소를 찾는 것과 실제로 쉰다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다. 환경적으로 아무리 비싸고 좋은 침대에 누웠더라도 불안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면 그것은 평안한 것이 아니다. 쉬기 위하여 바캉스, 홈캉스를 누려도 참된 평안함이 없다면 뭔가 불안한 것이다. 내가 늘 기도하는 것은 우리 모두 성도가 단잠을 자는 것이다
0.2. 그리스도인의 평강은 자가 발전적인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것이다.
. 이 말씀의 평강은 세상의 평안이라는 말과 비슷하지만 신앙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그리스도인의 평강은 자가 발전적인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평강은 위로부터 주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평강이라는 단어는 천국의 단어이다. 우리가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듯이 평강도 스스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명심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 받듯이 평강도 위로부터 부어주셔야 한다. 모든 사람이 이 단어에 속할 것이다. 의심, 실패, 두려움, n원한, 부끄러움과 수치, 고민 후회 비애, 미래에 대한 염려, 좌절 억울함, 누구에게 부당하게 대우를 받거나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 우리의 지위나 소유가 침해받거나 사라지는 것에 대한 염려, 이런 것들은 이 인생길에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고 인간은 근본적으로 그래서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이 위에서부터 부어주시는 평강은 삶의 붙임, 삶의 인생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평강이요,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오늘 평강이다. 정리하면, 평강의 원천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참된 평강은 하나님께로만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임을 믿어야 한다. 오늘 안아주심 본당에서 예배드리는 분들에게 참된 평안이 넘치기를 바란다. 본문에 예수님은 3번이나 선포하신다. "중요하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너무나 중요하기에 3번이나 강조하신 것이다.
요한복음20:19, “너희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20:21,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요한복음20:26,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이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 넉넉한 자원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평강이 중요하니 3번이나 예수님이 강조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제자들에게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두려워해서이다(20:19).제자들이 유대인을 두려워했다. 같은 상황인데 - 누가복음 24: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그래서 먼저 생각할 것은 두려움 많은 세상이다. 주님이 3번이나 평강을 말씀하신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I. 두려움 많은 세상
첫째, - 정치적 불안 때문에,
둘째,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셋째, 내적 불안 때문에.
 
첫째, - 정치적 불안 때문에, 예측으로 불안해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할 것이라는 정치적 예측 때문에 불안하고 제자들의 마음이 조마조마 했던 것이다. 제자들이 문을 꼭꼭 닫고 있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만 하더라도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하면서 환영 일색이었다. 그때만 해도 제자들이 기세 등등 했을 것이다. 십자가 사건이후에 군중들에 의하여 인민재판 같은 무법의 시대가 되었을 것이다. 인민재판의 증거는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일이다. 제자들이 이런 이유로 두려움에 떨었다. 그것을 당할 까봐 그런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저녁이었고 사람들이 저녁에 불안을 더 느낀다. 우리 교회는 서초역에 붙어 있고 지하철에서 10미터 상에 있다. 대법원은 가까이에 있다. 대법원은 죄의 대가를 받는 것이고, 우리 교회는 죄의 용서를 받는 곳이다. 그러니까 죄의 대가는 두려움의 장소이고, 우리교회는 평강의 장소이다. 그러니까 두려움과 평강이 공존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절묘할까? 말씀을 준비하면서 기가막히다는 절묘함을 느꼈다. 어떤 장로님이 우리 교회분이 아니시다. 중요한 판결을 두고 법원에 갔다가 우리교회 십자가를 보고 지나가다 내려와서 울면서 기도하고 주님 앞에 통곡하고 매달렸더니, 하나님께서 놀랍게 판결을 내려 주시고 놀랍게 평안을 주시고, 해결해 주셨다고 한다. 그 감사를 담임 목사님께 표현했다. 꽃다발도 보내왔다. 갈 때는 두려웠으나 우리 본당에서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평강을 주시니까 무슨 판결이 내려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갔다는 것이다. 우리 사랑의 교회 안아주심의 본당은 정치적인 불안이 있어도 평강의 장소가 된다는 것을 믿기를 바란다.
 
둘째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두려워했다. 왜냐면 인생을 걸고 따라간 제자들이 예수님이 갑자기 없어지니까 갑자가 불안했던 것이다. 무엇을 믿고,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할지가 눈앞이 캄캄했다. 제자들도 자기들도 못 박을 거라고 두려웠던 것이다. 코로나사태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삶에 리듬이 깨어졌다. 심지어 몸에 리듬이 깨어진 것이다. 하루에 세끼씩 먹어서 운동을 안 하니까 확~ ~(살이 쪘다)가 되었다는 것이다. 몸의 균형이 깨어지니까 마음의 균형까지 깨지고, 관계리듬, 신앙의 리듬, 신뢰, 미래에 대한 계획도, 깨어진 것이다.
 
셋째 내적 불안 때문에
내적 불안 때문에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십자가 앞에서 도망가 버리고 그리고 예수님을 배반한 것 때문에 수치와 부끄러워서 베드로 같은 경우는 정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이름에 먹칠한 행동 때문에 죄책감 때문에 불안했고, 배신에 대한 상처이다. 오늘 이 시대도 비슷하다. 정치적으로 어렵고 미래에 대해서 불안하고 내적으로 한국 사회가 두려움의 바다에 빠져버렸다. 전 세계가 육체의 질고와 인생의 경쟁구도와 전염병 때문에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2.복음주의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라스박사는 "우리는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안개 자욱한 잿빛 바다 위를 떠돌고 있는 존재이며, 이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 확실성의 섬에 찾아가서 그곳에 정착하여 해답을 얻기를 원하고 있다... 잿빛 바다를 떠돌며 확실성의 섬을 찾다가 실패한 우리는 이제 믿음의 섬에 정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 철학적이고 세속적 인본주의자들이 그들의 신념을 통하여 현대인들의 불안증을 해결해 보려고 노력을 했으나 해답을 못 찾았다. 따라서 잿빛 바다를 떠돌며 확실성의 섬에서 찾다가 실패한 우리는 이제 믿음의 섬에 정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학자들은 정말 쉬운 말을 어렵게 이야기 한다. 그냥 주님으로부터 평강을 주시면 되는데, 인간이 아무리 학문적으로 철학적으로 이성적으로 불만을 해결할 불안, 어려움, 심리적 확실한 해결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섬에 정착할 때야만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평강의 은혜가 있을 때에만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세상의 학문이나 철학이나 심지어 의학적 치료의 약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께 믿음의 닻을 내리므로 해결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3. 평강의 유효기간을 확장시켜야 한다.
이 평강의 유효기간이 있다. 평강의 유효기간은 7일 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평강의 유효기간이 7일이 아니라 평생을 가야한다. 그래서 우리는 제대로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현장예배가 평강의 유효기간을 확장 시켜서 평생 시종일관하는 평강을 누려야 한다.
 
현실적으로 문제가 하나 있다. 도마 같은 현실이다. 회의와 의심이다.
II. 도마 같은 현실.
도마의 의심/, 될까?이다. 그러니까 대표적으로 제일 평강을 누려야 했던 제자 도마가 환경적으로 평강을 누리지 못했다. 이유는 딱 하나 현장에 없었기 때문이다.
1. 요한복음20:24,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함께 있지 아니해서이다. 아웃어브사이드 아웃어브마인드(Out of side, out of mind) 이다. 우리가 안보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현장에 있지 않아서 도마가 없었던 것처럼, 은혜 받는 현장에 빠지면 평강을 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은혜의 현장에 있지 않아 고통의 일주일을 보냈다. 평강이 다 날아갔다. 그 불안의 표현이
 
2. 요한복음20:25,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여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하니라
도마는 증거를 넣어 보지 못하면 믿지 않겠다는 것이다. 냉소적인 비판자였다. 평강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들으셨으면 민망하셨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은혜 받을 자리, 주님의 임재의 자리에 없으면 의심과 불안이 가중이 된다. 대표적으로 중직 자가 특새벽 예배를 자주 빠지면 평안하겠는가? 계속 빠진다 합시다. 그러나 교회에게 주는 짐이 있는 것이다. 그 짐 때문에 수많은 아픔과 짐과 회의가 생길 수가 있다. 만약에 2~3년 빠지고 내 영혼 평안해 ~ 할 수 없다. 현장예배 두세 달 빠지면 그것은 안 된다. 공동체 주시는 은혜의 영광이 있는 것이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은혜의 자리에 없으면 평안이 없는 것이다. 의심과 불안이 가중되니 그래서 영적 예배가 중요하다. 다음 주부터는 예배가 다 되니 문제가 없으니 본당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있어야 할 다락방현장, 훈련의 현장, 있어야할 가정예배의 현장에서 의심을 날려버리길 바란다. 주님은 이 도마를 그렇다고 해서 꾸중하거나 뭐라고 하시지 않으신다. 다시 8일 뒤에 감사하게도 직접 만져보라고 하신다.
3. 요한복음 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도마가 만지는 그 순간 하늘부터서 놀라운 평강이 임했다. 현장예배가 평강이 임할 것이다. 도마의 평강이 임하는 순간 신구약 중에서 최고의 고백 중에 하나인 도마가 주님께 고백하는 것이다.
4. 요한복음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주님을 나의 주 나의 주로 진실 되게 순간순간 고백할 때마다 평강을 부어주시게 된다.
 
III. 평강을 선포하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아직도 도마처럼 의심의 안개를 걷어내지 못한다면 두려움의 바다를 건너서 어떻게 평강의 언덕에 오를 수가 있겠는가?’를 생각한다면, 먼저 도마처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을 통하여 평강을 얻기를 바란다. 축약하면 모든 평강은 주님께로부터 온다. 그럴 때에 하나님과 평강을 누리는 한 우리는 두려움이 없다.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있는 한 두려울 것이 없다. 하나님 한 분만 두려워하면 다른 것은 두렵지 않다. 반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두려운 것이다. 진짜 그리스도인은 잘나든 못나든 아무 상관이 없이 그 얼굴에 하나님 주시는 평강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 앞장서 일하는 우리 성도들의 평강의 화신이 되어야 한다. 평강의 사도, 사신, 대사가 되어야 한다. 매 일주일 마다 새 힘을 주시니 설교를 한다. 그래서 말씀을 나눈다. ‘나의 주, 나의 주예수님 때문에 평강이 온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바울 사도가 주님의 심정을 깨닫고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딱 맞는 구절 하나를 주셨다.
 
1. 데살로니가후서 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가을 주시고...
평강의 주님께서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길 원하노라이다. 평강의 주께서 주시는 것은 무슨 뜻이다.
2. 구약의 평강평강을 대표하는 단어가
1) 샬롬(Shalm)’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전적인 축복이며 고귀한 선물이다. 샬롬은 위로부터 부어주는 단어이다. 그래서 샬롬은 인간세계에 없는 것이다. 위로부터 부어주는 단어이다. 이 샬롬이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신 고귀한 축복이다. 이 샬롬은 커버하지 못하는 인간의 영역이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 가족 간의 관계, 직장인과 관계, 나라, 자연, 영혼 육체, 감정 간의 관계, 모든 영역에서 커버한다. 이 자리는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나 정치적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샬롬이 위로부터 임하면 다 켜버가 된다. 영이 임하면 다 해결된다. 한국어로 번역하기 힘든 단어이다.
 
닥터윅스빈 비스트 유 - ‘샬롬라켐’,,, 속으로는 영어를 히브리어로 하니 샬롬라켐이 어려울 때 자주하니까 자주외치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생겨서 히브리어를 열심히 하기위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복습을 했더니 포텐셜 히브리어 학자(잠재적 히브리어작가) = 그 능력을 주심을 잊을 수가 없다. 뜻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샬롬):하늘로부터 부어 주신다. 수많은 인생의 문제가 정리가 될 것이다.
2) 우리가 함께 모일 때마다 샬롬라켐의 은혜를 받아라.
속으로 계속 믿지 않는 남편에게 매일 아침마다 샬롬라켐!!!!!! 자주 해보라~
 
가정예배에도 그렇게 해라, 라켐은 투유로서 복수의 단어이다.
 
2. 신약의 평강
1) 샬롬에 대구는 신약의 에이레네(Eirene),는 동사 에이로에서 나온 단어이다. 헬라어로 참여하다, 연결되다, 영어로 Join의 뜻이다. 모든 평강은 누구에게 연결 되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조인(join) 된 것이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접목 된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께 조인 된 것이다.
2)예수님과 접붙여 있으면 자동적으로 평강결과가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평강의 은혜가 있으면 자동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과 접붙임 되었다면 평강의 열매가 되는 것이다.
 
4. 데살로니카 3:16 때마다의 평강이다.
바울이 이를 깨닫고 모든 서신서에
1) “때마다의 평강 (“평강이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찬송을 할 때 그런 수직적 평강이 아닌 때마다 어려움이 있을 때라도 때마다 내적으로 누릴 수 있는 평강이다.
2) “일마다의 평강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가을 주시고...”)
또한 코로나 사태처럼 세상이 흔들리고 사회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종말론적일 때에도 때마다 평강을 허락하시길 바란다. 어떤 좋은 환경이 있어도, 주님께서 때마다 쓰디쓴 환경을 통해서도 평강을 주신다. 이익이 아닌 손실일 때도 평강을 주실 때도 있다. 심지어 주님을 죽음을 통해서도 평강을 주신다.
3) “친히의 평강 (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가을 주시고...”)
친히 예수님을 묵상하고 예수님의 약속을 되새김질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친히 샬롬과 에이레네 축복을 주실 것이다. 찬송가 중에 너 근심 걱정 말아라를 우리의 삶의 주제가가 되기를 바란다.
 
IV. 적용
첫째 인생을 더 넓고 깊게 바라보아야 한다. 인생을 넓게 바라본다면 최후의 승리를 얻을 것이다.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 넓고 깊게 바라보면 마음의 평강이 임할 것이다. 지금 고난당한 것이 전부가 아니다.
둘째 주님과의 관계를 점검해야 한다. 내가 Join에 따라서 에이레네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주님과 화평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 주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하면 어떤 것도 두려울 것이 없다. 이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의심 없이 신뢰하여 모든 성도들이 평강을 누리기를 바란다.
한국 사회는 근본적으로 평강의 DNA가 없는 인종이다. 지난 2천년 동안 우리나라는 전쟁도 많았고, 특별히 지구상에 가장 불안한 지역이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관계의 에이레이네 하늘에서 주시는 평강의 DNA가 확장되는 것이다. 우리만이 아니라 투게더 평강이 있게 하시고 평강의 백신을 확산 시키는 축복을 주시길 원한다. 부부가 손을 잡고 생각해 보라, 내 인생에 언제 최고의 평강의 시대였던가를 생각하면서 지금이 가장 평강할 때라고 이야기 하자. 이렇게 고백할 수 있도록 온 성도의 가정마다 축복한다. 평강은 환경 때문이 아니다. 오직 주님과의 관계 때문이다. 가정 가정마다 단잠을 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We go together!!! 다음 주일 현장예배 주실 줄 믿는다.
 
 
 
요약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배반한 제자들을 방문하여 허탈감과 고통을 느끼는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다. 즉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신을 비난하거나 책망치 않으시고 새로운 약속과 사명을 맡기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평강이시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유대인들이 무서워 문을 잠갔다. 마음은 꽁꽁 얼어붙었고, 자기들도 죽을까 두려워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강을 선포하시며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보여주신다. 어떤 아픔도 없는 예쁜 평강이 아니라 혹독한 시련을 통과한 강인한 십자가의 평강을 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가질 때, 그 평강을 누리며, 세상에 전할 수 있다. 의심 자체가 죄는 아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제자들의 말을 의심하며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는 최고의 신앙 고백을 하게 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평강은 우리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것이다. 참된 평강은 예수님께 접붙여 있으면 우리는 영원히 평강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오는 그분의 선물이니 이제 코로나 불루를 지나 우리는 주님 한 분만 의지하고 안아주시는 본당에서 두려움을 이제 다 걷어버리고 평강의 주님을 바라보며 찬양과 예배를 드리자.
 
느낀 점
참된  평강은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오는 그분의  선물이다. 나에게  주신  그분의  선물을  내가  충분히  누리지  함은 도마처럼 은혜의 현장에 없었으므로 인해 생겨난 의심과 두려움인 것이다. 그러니까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때마다  일마다  친히  평강의  은혜를  주시는  주님과의  관계를  다시  점검하여  은혜 받는  현장에서  최후  승리를  믿는  주의  자녀가  되길  기도하며  나아가겠다. 오늘부터  정상적인  예배가 되었다. 이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예배에  준수 하고  헌신하는  자  되며  가족을  더  잘 챙기고  음식도  골고루  해주면서  믿음을 굳건이 세워가길 간절히 기도하는 교회로 접붙여서 생활하기를  간구한다. 남편이  이번 주부터 교회에서  미루던  파노라마를 시작했다. 감사한  일이다. 걸음마를 하나님이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 좋겠다. 또한  내가 받는 훈련이 나의 삶에 평강이 되기를 더욱 구하며 모든 일들이 해결되고 주님 앞에 찬양과 경배만이 길이라는 것을 알고 전심으로 가족과 함께 나아가길 원한다. 샬롬, 에이레네가 선포되어 우리 가정에 평강과 내 이웃의 평강이 함께 하길 소망한다. 려움과 의심으로 불안해하는 우리를 주님과  나만  아는 참된  평강을 위로부터 부어 주셔서 은혜의  현장인 안아 주님의 본당에서 믿음의 섬에 정착하는 믿음의 평생 되길 기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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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 5. 3.)
제목: “평강
말씀: (요한복음 20:19-26)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코로나 극복시리즈11

 
인터미션 예배 아름다운 동산 찬양도 하나님이 기뻐 받으셨을 줄 믿는다. 이 자리가 아름다운 동산, 평화의 동산, 예배의 동산의 자리임에 확신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요연하고도 낮은 피조물 인생이 창조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면서 건강하게 나와 주님을 찬양과 예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권이요, 크신 은혜요, 목이 메일 정도로 감사하다.
 
오늘은 평강에 대해서이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내적 불안을 많이 호소한다. 오죽하면 코로나 불루’(blue)라는 말일 생길 정도이다. 코로나 불루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일어난 사회적 현상으로 우울증이나 심리적 불안을 의미한다. 두 달 전에 비하면 엄청 줄었고, 국내 확진 어제는 확진 자가 O이었고 그래서 토비새에 그것을 기념하여 동그란 도넛을 나누어 주었다. 확진자 수가 줄면 코로나 두려움이나 인생의 두려움도 실제로 두려움도 줄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만약에 이런 코로나 사태가 없고 모든 것들이 우리들이 원하는 대로 순조롭게 되어져 간다면 평안을 누릴 수가 있는가? 다 잘 되면 평안을 늘 누릴 수 있는가? 우리가 평안한 지, 불안한 지를 점검할 수 있는 미터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어떻게 자고 어떻게 깰 것인가가 점검지가 될 수 있다. 눕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0.1.(시편35절에 보면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 , 시편 4:8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그러나 누워서 평안하게 자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또 평안이 쉬기 위해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야외를 갔다. 어떤 쉼의 장소를 찾는 것과 실제로 쉰다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다. 환경적으로 아무리 비싸고 좋은 침대에 누웠더라도 불안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면 그것은 평안한 것이 아니다. 쉬기 위하여 바캉스, 홈캉스를 누려도 참된 평안함이 없다면 뭔가 불안한 것이다. 내가 늘 기도하는 것은 우리 모두 성도가 단잠을 자는 것이다
0.2. 그리스도인의 평강은 자가 발전적인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것이다.
. 이 말씀의 평강은 세상의 평안이라는 말과 비슷하지만 신앙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그리스도인의 평강은 자가 발전적인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평강은 위로부터 주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평강이라는 단어는 천국의 단어이다. 우리가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듯이 평강도 스스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명심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 받듯이 평강도 위로부터 부어주셔야 한다. 모든 사람이 이 단어에 속할 것이다. 의심, 실패, 두려움, n원한, 부끄러움과 수치, 고민 후회 비애, 미래에 대한 염려, 좌절 억울함, 누구에게 부당하게 대우를 받거나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 우리의 지위나 소유가 침해받거나 사라지는 것에 대한 염려, 이런 것들은 이 인생길에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고 인간은 근본적으로 그래서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이 위에서부터 부어주시는 평강은 삶의 붙임, 삶의 인생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평강이요,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오늘 평강이다. 정리하면, 평강의 원천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참된 평강은 하나님께로만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임을 믿어야 한다. 오늘 안아주심 본당에서 예배드리는 분들에게 참된 평안이 넘치기를 바란다. 본문에 예수님은 3번이나 선포하신다. "중요하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너무나 중요하기에 3번이나 강조하신 것이다.
요한복음20:19, “너희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20:21,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요한복음20:26,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이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 넉넉한 자원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평강이 중요하니 3번이나 예수님이 강조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제자들에게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두려워해서이다(20:19).제자들이 유대인을 두려워했다. 같은 상황인데 - 누가복음 24:38-“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그래서 먼저 생각할 것은 두려움 많은 세상이다. 주님이 3번이나 평강을 말씀하신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I. 두려움 많은 세상
첫째, - 정치적 불안 때문에,
둘째,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셋째, 내적 불안 때문에.
 
첫째, - 정치적 불안 때문에, 예측으로 불안해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할 것이라는 정치적 예측 때문에 불안하고 제자들의 마음이 조마조마 했던 것이다. 제자들이 문을 꼭꼭 닫고 있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만 하더라도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하면서 환영 일색이었다. 그때만 해도 제자들이 기세 등등 했을 것이다. 십자가 사건이후에 군중들에 의하여 인민재판 같은 무법의 시대가 되었을 것이다. 인민재판의 증거는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일이다. 제자들이 이런 이유로 두려움에 떨었다. 그것을 당할 까봐 그런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저녁이었고 사람들이 저녁에 불안을 더 느낀다. 우리 교회는 서초역에 붙어 있고 지하철에서 10미터 상에 있다. 대법원은 가까이에 있다. 대법원은 죄의 대가를 받는 것이고, 우리 교회는 죄의 용서를 받는 곳이다. 그러니까 죄의 대가는 두려움의 장소이고, 우리교회는 평강의 장소이다. 그러니까 두려움과 평강이 공존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절묘할까? 말씀을 준비하면서 기가막히다는 절묘함을 느꼈다. 어떤 장로님이 우리 교회분이 아니시다. 중요한 판결을 두고 법원에 갔다가 우리교회 십자가를 보고 지나가다 내려와서 울면서 기도하고 주님 앞에 통곡하고 매달렸더니, 하나님께서 놀랍게 판결을 내려 주시고 놀랍게 평안을 주시고, 해결해 주셨다고 한다. 그 감사를 담임 목사님께 표현했다. 꽃다발도 보내왔다. 갈 때는 두려웠으나 우리 본당에서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평강을 주시니까 무슨 판결이 내려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갔다는 것이다. 우리 사랑의 교회 안아주심의 본당은 정치적인 불안이 있어도 평강의 장소가 된다는 것을 믿기를 바란다.
 
둘째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두려워했다. 왜냐면 인생을 걸고 따라간 제자들이 예수님이 갑자기 없어지니까 갑자가 불안했던 것이다. 무엇을 믿고,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할지가 눈앞이 캄캄했다. 제자들도 자기들도 못 박을 거라고 두려웠던 것이다. 코로나사태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삶에 리듬이 깨어졌다. 심지어 몸에 리듬이 깨어진 것이다. 하루에 세끼씩 먹어서 운동을 안 하니까 확~ ~(살이 쪘다)가 되었다는 것이다. 몸의 균형이 깨어지니까 마음의 균형까지 깨지고, 관계리듬, 신앙의 리듬, 신뢰, 미래에 대한 계획도, 깨어진 것이다.
 
셋째 내적 불안 때문에
내적 불안 때문에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십자가 앞에서 도망가 버리고 그리고 예수님을 배반한 것 때문에 수치와 부끄러워서 베드로 같은 경우는 정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이름에 먹칠한 행동 때문에 죄책감 때문에 불안했고, 배신에 대한 상처이다. 오늘 이 시대도 비슷하다. 정치적으로 어렵고 미래에 대해서 불안하고 내적으로 한국 사회가 두려움의 바다에 빠져버렸다. 전 세계가 육체의 질고와 인생의 경쟁구도와 전염병 때문에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2.복음주의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라스박사는 "우리는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안개 자욱한 잿빛 바다 위를 떠돌고 있는 존재이며, 이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 확실성의 섬에 찾아가서 그곳에 정착하여 해답을 얻기를 원하고 있다... 잿빛 바다를 떠돌며 확실성의 섬을 찾다가 실패한 우리는 이제 믿음의 섬에 정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 철학적이고 세속적 인본주의자들이 그들의 신념을 통하여 현대인들의 불안증을 해결해 보려고 노력을 했으나 해답을 못 찾았다. 따라서 잿빛 바다를 떠돌며 확실성의 섬에서 찾다가 실패한 우리는 이제 믿음의 섬에 정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학자들은 정말 쉬운 말을 어렵게 이야기 한다. 그냥 주님으로부터 평강을 주시면 되는데, 인간이 아무리 학문적으로 철학적으로 이성적으로 불만을 해결할 불안, 어려움, 심리적 확실한 해결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섬에 정착할 때야만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평강의 은혜가 있을 때에만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세상의 학문이나 철학이나 심지어 의학적 치료의 약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께 믿음의 닻을 내리므로 해결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3. 평강의 유효기간을 확장시켜야 한다.
이 평강의 유효기간이 있다. 평강의 유효기간은 7일 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평강의 유효기간이 7일이 아니라 평생을 가야한다. 그래서 우리는 제대로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현장예배가 평강의 유효기간을 확장 시켜서 평생 시종일관하는 평강을 누려야 한다.
 
현실적으로 문제가 하나 있다. 도마 같은 현실이다. 회의와 의심이다.
II. 도마 같은 현실.
도마의 의심/, 될까?이다. 그러니까 대표적으로 제일 평강을 누려야 했던 제자 도마가 환경적으로 평강을 누리지 못했다. 이유는 딱 하나 현장에 없었기 때문이다.
1. 요한복음20:24,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함께 있지 아니해서이다. 아웃어브사이드 아웃어브마인드(Out of side, out of mind) 이다. 우리가 안보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현장에 있지 않아서 도마가 없었던 것처럼, 은혜 받는 현장에 빠지면 평강을 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은혜의 현장에 있지 않아 고통의 일주일을 보냈다. 평강이 다 날아갔다. 그 불안의 표현이
 
2. 요한복음20:25,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여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하니라
도마는 증거를 넣어 보지 못하면 믿지 않겠다는 것이다. 냉소적인 비판자였다. 평강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들으셨으면 민망하셨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은혜 받을 자리, 주님의 임재의 자리에 없으면 의심과 불안이 가중이 된다. 대표적으로 중직자가 특새벽 예배를 자주 빠지면 평안하겠는가? 계속 빠진다 합시다. 그러나 교회에게 주는 짐이 있는 것이다. 그 짐 때문에 수많은 아픔과 짐과 회의가 생길 수가 있다. 만약에 2~3년 빠지고 내 영혼 평안해 ~ 할 수 없다. 현장예배 두세 달 빠지면 그것은 안 된다. 공동체 주시는 은혜의 영광이 있는 것이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은혜의 자리에 없으면 평안이 없는 것이다. 의심과 불안이 가중되니 그래서 영적 예배가 중요하다. 다음 주부터는 예배가 다 되니 문제가 없으니 본당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있어야 할 다락방현장, 훈련의 현장, 있어야할 가정예배의 현장에서 의심을 날려버리길 바란다. 주님은 이 도마를 그렇다고 해서 꾸중하거나 뭐라고 하시지 않으신다. 다시 8일 뒤에 감사하게도 직접 만져보라고 하신다.
3. 요한복음 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도마가 만지는 그 순간 하늘부터서 놀라운 평강이 임했다. 현장예배가 평강이 임할 것이다. 도마의 평강이 임하는 순간 신구약 중에서 최고의 고백 중에 하나인 도마가 주님께 고백하는 것이다.
4. 요한복음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주님을 나의 주 나의 주로 진실 되게 순간순간 고백할 때마다 평강을 부어주시게 된다.
 
III. 평강을 선포하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아직도 도마처럼 의심의 안개를 걷어내지 못한다면 두려움의 바다를 건너서 어떻게 평강의 언덕에 오를 수가 있겠는가?’를 생각한다면, 먼저 도마처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을 통하여 평강을 얻기를 바란다. 축약하면 모든 평강은 주님께로부터 온다. 그럴 때에 하나님과 평강을 누리는 한 우리는 두려움이 없다.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있는 한 두려울 것이 없다. 하나님 한 분만 두려워하면 다른 것은 두렵지 않다. 반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두려운 것이다. 진짜 그리스도인은 잘나든 못나든 아무 상관이 없이 그 얼굴에 하나님 주시는 평강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 앞장서 일하는 우리 성도들의 평강의 화신이 되어야 한다. 평강의 사도, 사신, 대사가 되어야 한다. 매 일주일 마다 새 힘을 주시니 설교를 한다. 그래서 말씀을 나눈다. ‘나의 주, 나의 주예수님 때문에 평강이 온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바울 사도가 주님의 심정을 깨닫고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딱 맞는 구절 하나를 주셨다.
 
1. 데살로니가후서 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가을 주시고...
평강의 주님께서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길 원하노라이다. 평강의 주께서 주시는 것은 무슨 뜻이다.
2. 구약의 평강평강을 대표하는 단어가
1) 샬롬(Shalm)’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전적인 축복이며 고귀한 선물이다. 샬롬은 위로부터 부어주는 단어이다. 그래서 샬롬은 인간세계에 없는 것이다. 위로부터 부어주는 단어이다. 이 샬롬이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신 고귀한 축복이다. 이 샬롬은 커버하지 못하는 인간의 영역이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 가족간의 관계, 직장인과 관계, 나라, 자연, 영혼 육체, 감정 간의 관계, 모든 영역에서 커버한다. 이 자리는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나 정치적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샬롬이 위로부터 임하면 다 켜버가 된다. 영이 임하면 다 해결된다. 한국어로 번역하기 힘든 단어이다.
 
닥터윅스빈 비스트 유 - ‘샬롬라켐’,,, 속으로는 영어를 히브리어로 하니 샬롬라켐이 어려울 때 자주하니까 자주외치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생겨서 히브리어를 열심히 하기위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복습을 했더니 포텐셜 히브리어 학자(잠재적 히브리어작가) = 그 능력을 주심을 잊을 수가 없다. 뜻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샬롬):하늘로부터 부어 주신다. 수많은 인생의 문제가 정리가 될 것이다.
2) 우리가 함께 모일 때마다 샬롬라켐의 은혜를 받아라.
속으로 계속 믿지 않는 남편에게 매일 아침마다 샬롬라켐!!!!!! 자주 해보라~
 
가정예배에도 그렇게 해라, 라켐은 투유로서 복수의 단어이다.
 
2. 신약의 평강
1) 샬롬에 대구는 신약의 에이레네(Eirene),는 동사 에이로에서 나온 단어이다. 헬라어로 첨여하다, 연결되다, 영어로 Join 의 뜻이다. 모든 평강은 누구에게 연결 되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조인(join) 된 것이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접목 된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께 조인 된 것이다.
2)예수님과 접붙여 있으면 자동적으로 평강결과가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평강의 은혜가 있으면 자동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과 접붙임 되었다면 평강의 열매가 되는 것이다.
 
4. 데살로니카 3:16 때마다의 평강이다.
바울이 이를 깨닫고 모든 서신서에
1) “때마다의 평강 (“평강이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찬송을 할 때 그런 수직적 평강이 아닌 때마다 어려움이 있을 때라도 때마다 내적으로 누릴 수 있는 평강이다.
2) “일마다의 평강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가을 주시고...”)
또한 코로나 사태처럼 세상이 흔들리고 사회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종말론적일 때에도 때마다 평강을 허락하시길 바란다. 어떤 좋은 환경이 있어도, 주님께서 때마다 쓰디쓴 환경을 통해서도 평강을 주신다. 이익이 아닌 손실일 때도 평강을 주실 때도 있다. 심지어 주님을 죽음을 통해서도 평강을 주신다.
3) “친히의 평강 (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가을 주시고...”)
친히 예수님을 묵상하고 예수님의 약속을 되새김질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친히 샬롬과 에이레네 축복을 주실 것이다. 찬송가 중에 너 근심 걱정 말아라를 우리의 삶의 주제가가 되기를 바란다.
 
IV. 적용
첫째 인생을 더 넓고 깊게 바라보아야 한다. 인생을 넓게 바라본다면 최후의 승리를 얻을 것이다.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 넓고 깊게 바라보면 마음의 평강이 임할 것이다. 지금 고난당한 것이 전부가 아니다.
둘째 주님과의 관계를 점검해야 한다. 내가 Join에 따라서 에이레네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주님과 화평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 주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하면 어떤 것도 두려울 것이 없다. 이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의심 없이 신뢰하여 모든 성도들이 평강을 누리기를 바란다.
한국 사회는 근본적으로 평강의 DNA가 없는 인종이다. 지난 2천년 동안 우리나라는 전쟁도 많았고, 특별히 지구상에 가장 불안한 지역이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관계의 에이레이네 하늘에서 주시는 평강의 DNA가 확장되는 것이다. 우리만이 아니라 투게더 평강이 있게 하시고 평강의 백신을 확산 시키는 축복을 주시길 원한다. 부부가 손을 잡고 생각해 보라, 내 인생에 언제 최고의 평강의 시대였던가를 생각하면서 지금이 가장 평강할 때라고 이야기 하자. 이렇게 고백할 수 있도록 온 성도의 가정마다 축복한다. 평강은 환경 때문이 아니다. 오직 주님과의 관계 때문이다. 가정 가정마다 단잠을 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We go together!!! 다음 주일 현장예배 주실 줄 믿는다.
 
 
 
느낀 점
참된 평강은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오는 그분의 선물이다. 나에게 주신 그분의 선물을 내가 충분히 누리함은 도마처럼 은혜의 현장에 없었으므로 인해 생겨난 의심과 두려움인 것이다. 그러니까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때마다 일마다 친히 평강의 은혜를 주시는 주님과의 관계를 다시 점검하여 은혜 받는 현장에서 최후 승리를 믿는 주의 자녀가 되길 기도하며 나아가겠다. 오늘부터 정상적인 예배가 되었다. 이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예배에 준수하고 헌신하는 자 되며 가족을 더 잘 챙기고 음식도 골고루 해주면서 믿음을 굳건이 세워가길 간절히 기도하는 교회로 접붙여서 생활하기를 간구한다. 남편이 이번 주부터 교회에서 미루던 파노라마를 시작했다. 감사한 일이다. 걸음마를 하나님이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 좋겠다. 또한 내가 받는 훈련이 나의 삶에 평강이 되기를 더욱 구하며 모든 일들이 해결되고 주님 앞에 찬양과 경배만이 길이라는 것을 알고 전심으로 가족과 함께 나아가길 원한다. 샬롬, 에이레네가 선포되어 우리 가정에 평강과 내 이웃의 평강이 함께 하길 소망한다. 려움과 의심으로 불안해하는 우리를 주님과 나만 아는 참된 평강을 위로부터 부어 주셔서 은혜의 현장인 안아 주님의 본당에서 믿음의 섬에 정착하는 믿음의 평생 되길 기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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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 4. 26.)
제목: ''순도(純度) 높은 사랑의 능력''
말씀: (요한복음 20:15~20)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코로나 극복 시리즈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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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에서 이렇게 10주 만에 부활주일의 감사예배 드림이 감사하다. 부림절이 재현하는 것 같다. 영적 이 자리가 영적 부림절이 되길 바란다. 부림절에는 되어서 함께 예배 드리는 일이 안식과 평안과 기쁨의 잔치가 되었음 한다.
*부림절이 무엇인가?
경제가 무너지면 가정이 흔들린다. 교육이 무너지면 다음 세대 미래가 무너진다. 정치가 무너지면 백성들이 마음이 힘들어진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의 현장 예배가 무너지면 신앙의 근본이 흔들릴 수 있다. 이것은 공동체 안에서 확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01.시편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평생에 여호와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다윗의 평생소원이 주의 성전에서 주를 사모하고 사랑하는 것이었다. 우리도 교회를 건축 후에 - 예수님 안에서 하루 교제가 세상의 천 날 교제보다 낫다.고 했다. 우리가 세상에서도 일을 잘 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의 영적인 토대와 영적인 힘을 주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참된 교제가 세상에서 천 날 보다 더 낫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사회적 거리두기’ (Social distance)이다. 우울증 등 불안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만연하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 사태 이후에 새롭게 나온 단어가 ‘Untact’(언택트) 비접촉이란 단어가 일상화 되었다. 이제 한국 교회가 많이 회복이 되고는 있다. 세상이 희한한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비첩촉(Untact)이 아니라 ONtact(온택트)가 되어야 한다. 그 결과 사랑의 투게더가 되길 원한다.
I. 순도 높은 사랑을 하면 주님이 기쁨을 주신다.
1. 요한복음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순도 높은 사랑을 하면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것이다. 그 결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자 말자 마리아의 눈물이 기쁨으로 변하였고, 막달라 마리아 두려움도 기쁨이 되었다. 심지어 베드로도와 요한 남자 제자들도 두려움에 사람에서 용기의 사람이 되었다. 제자들과 마리아만 경험한 것이 아닌 베드로는 훗날 오늘 우리가 이때를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서 성령의 감동으로 베드로전서를 아래 말씀에 놀라운 말씀을 한다.
2. 베드로전서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우리가 예수님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주의 백성이 된 것이다. 그리고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면 기쁨을 주신다. 오늘 이 기쁨이 한국 교회 전체에 충만하기를 바란다. 기쁨의 은혜를 받아 문제를 뛰어넘어야 한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대한 순도 높은 사랑을 고백하면 마리아든지 제자들이든지 오늘 21세기에 살아가는 모든 주의 백성들 다 동일하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가질 수 있다. 이 기쁨이 있으니 두려움에 도망친 겁쟁이 베드로가 대담하고 용감한 사람으로 변했고, 의심의 찬 도마가 확신의 삶으로 바뀌었고, 비겁한 요한이 사랑의 사람으로 되었다.
3. 주님을 향한 사랑과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비례한다.
사랑이 없으면 기쁨도 없다. 사랑이 부족하면 기쁨도 부족하다. 유대 종교지도자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듣고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열받았다. 이유는 사랑하지 않으니까...유독 막달라 마리아 별 볼일 없었던 제자들은 그 기쁨을 억누르지 못해서 외친다. 주님을 사랑하니까 그렇다. 주님을 사랑하면 기쁨이 올 것이다. 사랑의 크기가 기쁨의 크기를 결정한다. 이처럼 사랑과 기쁨은 동면의 양면과 같다. 참사랑에는 참사랑의 기쁨이 있는 것이다.
II. 순도 높은 사랑을 하면 영가족이 되게 하신다.
1. 요한복음20:17 “...너는 내(예수님)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2.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다.
3.‘내가 얼마나 능력이 있느냐?’보다 ‘아빠 아버지가 얼마나 능력이 있느냐’가 도 중요하다. 여기서 우리의 영적 용량이 결정된다.
4.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부활 전’에는 ‘내 양, 친구들’이라 하셨으나 ‘부활 이후’에는 ‘나의 형제들’이라고 재조정(Reset) 하셨다.
5. 베드로의 새로운 언어 습관
사도행전1:6 “형제들아”~
6. 바울 사도의 형제 신학
* 로마서 12:1 고전12:1, “형제들아”*고전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즐거워하느라”
7. 우리는 영가족이다. 영가족이란 ➀‘영적인 가족’ ➁‘영광과 고난을 함께 받는 가족’ ➂‘영원히 함께하는 가족’ ➃‘영원한 유업을 아버지로부터 함께 받아 누릴 가족’ ➄’마음이 젊은 영(Young)가족‘을 말한다.
이 놀라운 차원은 구약에서도 히브리 문학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예수님 십자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 영광스런 순간이 의존과 순종을 통하여 한이 은혜의 평온으로 가는 것이다. 내가 실력이 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이 부활의 주님을 만났을 때, 믿음의 용량이 커지며, 우리 아빠 아버지가 얼마나 능력이 계신가, 놀라우심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장래는 얼마나 하나님 앞에 다가 오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이 깨닫는 순간 역사가 시작된다. 바울도 자기가 최고인줄 알았다. 하나님 앞에서 깨어진 후 철저하게 세계를 품게 했다.
III.지금, 주님은 누구를 찾으시는가?
1. 능력 있는 자가 아니라 순도 높은 사랑을 하는 자를 찾으신다.
2. 요한복음 21:15-17... “15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16, 또 두 번째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17,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3. 마가복음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를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4. 하나님을 순도 높게 우선순위로 사랑해야 남편과 아내와 자녀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
5. 인생의 한 번이라도 순도 높은 100% 사랑을 주님께 드린 적이 있는가?
♧느낀 점
오늘 예배에서 담임 목사님은 예배를 많이 함께 드리니, 너무 좋은 마음이심을 보이시고 즐거워하셨다. 우리도 정상 예배를 드리니 너무 좋다. 모든 지체가 즐거우면 다 즐겁듯이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여서 좋고, 예배에서 은혜를 누리는 일이 중요함을 깨닫는 본당 예배였고, 헌금 봉사로 기쁨이 넘치는 예배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영가족으로서 영광과 고난을 함께하고 영원히 함께 한다는 것이 너무 감사로 넘치는 시간이었다. 은혜로운 예배가 항상 이렇게 드려지길 소망하고, 다시는 코로나 이런 바이러스가 없으면 좋겠다. 정말 서로가 주님의 사랑으로 기쁨을 누리는 예배가 되고 모두가 위로와 치료가 되길 기도하면서 매일 예수님을 더 깊이 사랑하는 자 되고, 순도 높은 사랑의 능력을 주시길 기도한다. 우리 훈련에 이렇게 봉사도 함께 하면서 주님의 능력을 바라면서 주시는 은혜에 늘 순종하기를 결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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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 4 . 19.

제목: ''새날을 여는 사랑의 능력''

말씀: (요한복음 20:1, 11~16)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코로나 극복시리즈 9

리에게 새날 주심을 감사한다.~

우리 어려운 이 가운데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에 짐을 진 어려운 분들에게 주님이 붙잡아 주시길 바란다. 지난 주 받은 말씀이 그래도 확인되길 원한다. 147:3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시는도다'' 모든 상처를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시길 원한다. - 예배는 상황의 지침을 따르기를 바란다. “사랑하면 새날이 열린다.”

 

1. 오늘 본문은 부활의 목격자인 막달라 마리아

모든 상처와 고통을 덮어 주시길 기도한다.

사랑하면 새날이 온다.

막달라는 마을의 이름의 마리아이다.

달라 마리아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도 나온다.

개인적으로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1:1대화로 만나주신 이 스토리는 요한복음에만 나와 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만 비춰지는 주인공처럼 나온다. 아마도 요한에게 막달라 마리아가 요한에게 간증한 내용을 요한이 기록한 것이다. 그의 간증이고 이 막달라 마리아 간증이 우리와 동인한 간증이었으면 좋겠다. 간증은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간증이다. 간증은 기독교 신앙의 보물 상자를 여는 것이다. 우리도 모두 보물 상자를 열기를 바란다. 그 안에 들여다보니 보석이 들어있다. 이 보물 상자를 여는 신앙이길 바란다. 마리아의 간증을 들어보면 그가 예수님 만나가 전의 상태,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상태가 나와 있는데 우선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상태(Before Christ),

1)막달라 마리아 과거는 누가복음 8:2에 나와 있는데 병 고침을 받았는데 귀신들려서 숨 막히게 살았다. 일곱 귀신이 들었던 것이며 귀신들로부터 지배당했다. 귀신들로부터 노예로 살았던 것이다. 그의 인생을 멈추게 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광스런 존재가 일곱의 귀신의 지배당하고 그녀의 인생을 Stop 되었다. 예수님을 만나고 일곱 귀신이 쫓겨난 줄로 믿는다.

2) 막달라 마리아는 누가복음 8: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 마리아와

급격하게 변화되었다. 완전히 reset되고, 새로 고침 되고, 재조정되었다. 다시 시작하는 능력이 되어 인생역전이 되었다.

1)병 고침( therapeow 떼라페오) - 수동완료형: 누군가에 의해서 전적으로 고침을 받은 것.

2) 귀신이 나갔다(exerchomai) - 능동완료형: 신이 나갔다는 뜻이다. V자로 형태로 회복되었다. 완전 치유이며,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 100프로 치유되었고, 귀신이 나갔다는 것.

3) 예수님을 만나 인생이 완전히 리셋 되었다. V자 형태로 회복되었다. 단번에 죽은 그녀를 청소하셨다. 오늘 모두에게도 인생이 해결되는 이런 역사를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란다.

 

 

I. 주님의 사랑은 은혜의 주류(主流)에 서게 한다.

1. 누가복음8:3 -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났으므로 세상으로 가지 않고 팀웍을 이루어 한결같이 섬긴다. 자유함을 얻어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고 후원자가 되고 여성 제자가 되었다. 예수님의 참된 여성 제자가 된 것이다. 제자들은 다 도망갔지만 그녀만이 지켰다.

2. 히브리서9:14, 10:22

주님의 참 사랑을 받게 되니, 주님을 진심을 따르니 순결한 처녀처럼 되었다.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피로 깨끗하게 하신다. 평생을 은혜의 주류에 서길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능력은

3.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의 통치를 받는 은혜의 비주류에서 주님의 통치를 받는 은혜의 주류 인생으로 변화되었다.

모든 분들이 평생을 은혜의 주류에 서길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 참된 능력은 은혜의 많이많이 사랑받은 자답게 살아야 한다. 은혜의 주류에 산다는 것은 많이 은혜 입은 자가 은혜 입은 자답게 사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살다보면 우리의 마음이 기가 막힐 때도 있고, 마음이 일곱 귀신 든 자처럼 오염될 때가 있다. 이웃사람 때문에, , 정치, 동기 동창 동서 때문에 오염된다. 이럴 때 막달라 마리아처럼 우리는 은혜의 기준을 가지고 많이 사랑받은 자가 은혜로 주류로 섬겨야 한다. 은혜의 주류에 선다는 것은 내 가정적, 사회, 정치적, 경제적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

 

II. 주님을 향한 사랑은 모든 환경을 초월한다.

1. 요한복음 20: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1)시간 초월- 아직 어두울 때에 라고 했다. 우리도 끝나자 말자 시간 지체 말고 교회로 모이자. 마리아는 시간을 놓치지 않고 쫓아갔다. 주님을 향한 사람은 시간을 초월한다. 진실로 사랑하면 날을 샌다.

2)공간 초월 무덤은 사람이 가장 가기 꺼려한 곳이다. 마리아는 주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로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간다. 십자가에서부터 시신을 내릴 때도, 공간을 초월했다.

3)계산 초월 -

막달라 마리아는 장례를 위한 향료품도 준비하고 무덤에 간 것이다. 예수님을 참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2.주님을 향한 찬된 사랑은 환경을 초월하는 거룩한 무모함이 있다.

사랑하는 마음은 조건이나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환경에 질질 끌려가는 열 한 제자들의 모습처럼이 아닌 마리아는 시공을 초월한다. 순도 높은 사람은 무모할 정도로 환경을 초월한 거룩한 무모함이다. 무대뽀이다. 참된 사랑은 거룩한 무모함이, 마리아의 사랑을 뛰어넘지 못한다. 선교사들의 그 선교가 모두 거룩한 무모함이다.

 

3. “나는 조선 사람을 사랑하였고, 또 그들을 예수님께 인도하기를 원하였다

한국 사회에서 사무엘 모어는 조선을 사랑했고, 예수님을 인도했다.

 

여기 마리아는 빈 무덤을 보고 펑펑 울었다. 왜 우는가? 주님을 향한 절실한 사랑의 순도 때문에 눈물로 표현하는 것이다. 주님을 향한 순도 때문에 나온 것이다. 복음의 능력 보혈의 능력이~ 한국교회의 선대의 능력이 세대계승을 하기를 지킬 것을 바란다.

 

 

III.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이 직접 만나 주셨다.

1. 요한복음 20:18,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처음에 주님을 몰라봤다. 마리아는 슬퍼서 돌아보니 동산지기인 줄 알았다 첫 번째 아담도 동산지기, 두 번째 동산 지기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의 동산지기가 있어야 한다. 마리아가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꼭 필요한 자들에게만 만나주신다.

2. 요한복음 20:16 “예수께서 마리아야...”요한복음 10:27,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니라

우리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해 주신다.

3. 예수님은 마리아 등 뒤에 계시면서 만나 주셨다.

우리도 나의 등 뒤에서 나를 지키시는 주를 사랑한다. 오늘 부르자 ~~우리도 마리아 등 뒤에 있으니 미래를 향한다. 우리에게는 손에 드는 빽이 아닌 우리에 등 뒤에 진실 된 빽이 있지 않는가!!!

4. 누가복음7:47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것이다. 옥합을 깨서 발을 씻고 머리카락으로 닦았다. 이는 그를 사랑함이 많다 사함을 많이 받은 자로서 주님을 많이 사랑하는 대류에 서라~ 우리는 누구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많이 받은 자이다. 지금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된다는 것이 아름답다. 우리의 헌신이 교회의 미래가 결정된다. 수 주간이 수년간을 결정한다. 순도 높은 사랑하면 주님은 행하신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사랑 받은 자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주님께 사랑받는 정체성을 가지고 민족의 새날을 여는 데 쓰임 받기를 기도한다.

 

느낀 점

목사님은 이 코로나19가 속히 가기를 간절히 원하심을 본다. 우리도 그렇게 어서 속히 종식되어 제대로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귀신들리고 부족한 사람들이 아직도 천지인데 안아 주시는 본당에서 은혜를 충만히 받고 성령을 체험하는 자가 많아지고 치유 받은 자가 넘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마리아처럼 진전한 여성 제자로서 한결 같이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더 은혜 받은 자가 더 많이 베풀고 더 많이 나누며 그 부족한 자들을 사랑하기를 간구한다. 오늘 오랜만에 교회에서 헌금 봉사와 예배를 드리니 너무 좋았다. 계속 이렇게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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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0. 4. 12)

제목: ''부활의 영이 내게 임하면''

말씀: 요한복음 12:23~27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부활 주일은 주님은 죽음을 이기셨다. 그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것과 이 공동체의 머리이신 것임을 믿고 찬양합시다. 카이로스의 신앙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의 죄악을 이기신 주님을 믿는다. 성도들의 사진을 랜덤으로 골라서 좌석에 붙였으니 마음이 전달되기 바란다. 사랑 올 투게더가 되기를 바란다. 카이로스의 신앙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의 죄악을 이기신 주님을 믿는다. 리셋하길 바란다. 주님은 부활하셨다!!!!!~~~

 

부활의 영이 내게 임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는가? 예수님이 3일 만에 정말 살아나셨는가? 를 가지고 평생 씨름하다가 어정쩡하게 무덤으로 가는 자가 있다. 부활의 교회를 다녀도 평생 의심도 확신도 아닌 회색지대에 머물다가 부름 받는 자의 경우도 있다.

예수 믿는다 하면서 예수님이 정말 부활하셨는가의 문제를 가지고 평생 씨름하다가 어정쩡하게 의심도 확신도 아닌 회색 지대에 머물다가 이땅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교회 역사와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가장 보편적인 부활의 3가지 증거가 있다.

--- 예수그리스도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역사적 사실의 부활을 성령님으로 믿어지면 그 마음속에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생각할 때 기쁜 것이다. 그 주님을 반드시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선포하고 증거 하는 증인이 되는 것이다.

 

 

I. 부활의 증거에 대해서 가장 보편적인 증거 3가지 .

첫째, 빈 무덤이다.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무덤을 화려하게 만들어서 참배한다. 중국공자무덤, 메카도 이슬람 무하메드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 부활하신 주님의 무덤은 부활하셔서 그 무덤이 비어있는 것이다. (법의학자인 던런 대학장인 노먼 엔더슨경은 -빈 무덤은 부활을 논박하는 모든 이론을 단숨에 파괴해 버리는 바위와 같다

 

2.둘째, 제자들의 혁명적 변화이다. - 제자들은 본래 겁쟁이들이었다. 다 도망갔던 자들이 자기 목숨을 내고 예수님을 증거 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참고고 12명의 제자들 가운데 사도 요한을 제외한 11명이 순교했다. 마지막으로 사도요한도 그런 셈이다. 사도바울에 속한 전도 팀에 속한 바나바 실라 누가 디모데 디도 대부분 순교했다. 부활이 확실하지 않다면 어떻게 순교할 수 있겠는가? 이런 혁명적인 순교가 있겠나...!!!

 

3.셋째, 허다한 부활의 증인들. - 고전 15장은 부활장이다. 육신의 몸으로 부활하신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이 수백 명이며 수천 명이었다. 그래서 부활을 숨길수가 없다. 이 모든 사람의 입을 막는 불가능하다. 눈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증인들이 너무 많았다. 이것이 거짓이었다면 지난 2천역사가 모든 것이 어떻게 밝혀지지 않았겠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이 큰 우주를 운행하시는 하나님 부활이 문제겠는가?! 우리는 이 세상 끝 날까지 그래서 시공을 초월하고 목숨 걸고 땅 끝까지 증거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 증인이 되어야 한다.

 

요약하면,,,,

첫째 예수님은 확실하게 십자가에 죽으셨는가? 이다. 죽음에 대해서 긴가 민가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과 피를 흘리셨다. 의학적으로 완전히 죽었을 때 분리되었을 때 나온다. 로마병사를 통하여 의학적인 증거가 있다.

 

두 번째 질문은 예수님께서 그 후에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나타나셨는가? 이다.

(고전15:6) - 목격자들이 대부분이 살아있다. 막달라 마리아 엠마오로 내려간 두 제자 도마와 다른 사도들에게 나타나셨다. 죽은 자는 산 자들 앞에 나타날 수 없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줄 믿어야 한다. 이걸 베드로가 도장을 찍는다. 사도행전 부활이후에 기록한 우리가 다 증인이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리셋 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 사건 이후에 완전히 한국교회도 새롭게 리셋 되길 원한다. 온 교회가 새롭게 될 거다 v자로 상승되길 기도한다.

 

 

II. 고백인가? 실체인가?

요한복음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선포는 마르다는 24절의 고백,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에 대한 응답이셨다. 예수님 자체가 부활자체요, 부활의 창조주요, 공급자이시다.

 

2. 마르다는 부활 신앙의 고백은 확실한 것이었지만, 그 고백이 자신이 당면한 현재의 슬픔을 극복하게는 못했다. 정신 차리라고 하는 내용이다. 주님이 신앙이 그거밖에 안되냐며 상기시킨다. 자기 체화가 아직 되지 못했다. 그것은 부활이 실제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실체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처럼 누구누구야!~ 너는 예수님을 믿느냐 하고싶다.

 

III. 현재적 삶의 부활

1.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이 성령 안에서 확실히 고백되면 예수님의 부활의 영과 예수님의 생명의 영이 내게 전가(轉嫁)된다. Transfer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생명과 부활이 내 몸을 뚫고 들어가서 내 속에서 역사하시기 시작한다.

 

2. 부활의 영이 임하는 자에게는 부활적 삶현재적 삶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내 현재적 삶도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한결 같은 자 되어야 한다. 부활의 영이 계시기에....

 

로마서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3. 부활 신앙은 미래에 있을 부활 사건을 현재의 삶에 침투시킴으로 현재를 부활의 능력으로 살게 한다.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4. 부활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세상의 질서(죽음의 질서)에서 하늘의 질서(부활의 질서)로 바꾸어 준다.

1) 이것은 추상명사나 관념명사가 아니고 현재를 전투적 바폭력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2) 현실적으로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걸으시고(24:15), 말씀을 주시고(24:27),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마음을 뜨겁게 하신다(24:32). 그리서 우리는 옛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사명지로 그러니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한다.

3) 몽구스처럼 우리에게도 모든 독을 해독하는 부활과 생명의 DNA가 있다.

 

그래도 안되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 매 순간 아버지의 이름을 부릅시다.(7:11)

아버지여 감사합니다로 외쳐라!~~~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부활의 영과 생명의 영을 가지고 부활 불패의 기백을 가지자. 열왕기하 19장에 앗수르 군대 185천 대군을 천사 하나가 하루아침에 물리친 것처럼 부활 필승의 확신을 주실 것이다.

느낌...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그 말씀처럼 한결같이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저도 부활을 믿습니다. 진정한 주님의 부활로 우리는 더욱 힘을 얻고 살아감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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