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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훈련-사역훈련 -주일예배-독후감

☆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1년 5월 5일)"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라"(임병영 부목사님)-사랑의교회 ☆

by ☆ 향기야(hyacool) ☆ 2021.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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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1년 5월 5일)

제목: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라"
말씀: 빌립보서 1:12-18절
설교자: 임병영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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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1:12-18)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 여러분들의 삶이 요즘 기쁨이 가득하다고 느껴지는가? 마음에 혹시 기쁨이 가득한 삶을 살고 있는가?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상실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원하는 경험을 했다고 해도 일시적인 만족을 느낄 뿐, 또다시 기쁨을 상실하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고 너무나 아쉬운 시간들을 보내는 것이다. 작년 6월에 소프트웨어 정책 연구소에서 코로나 19로 인해 개인이 느끼는 감정을 분석하고 불안 치수를 측정하는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로 인한 감정이 분노 두려움, 슬픔, 혐오, 즐거움이라고 하는 5가지 유형으로 표출되었다고 한다. 특히 감정 중에 슬픔에 감정이 다른 감정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높고 지속 적을 유지된다라고 분석하고 있는데, 이것은 코로나 불루, 코로나 우울과 지결 되어 있고, 우리 국민의 48퍼센트가 이 우울을 경험하거나 또는 경험하고 있다라고 한다. 이 조사 후에 벌써 일 년여 시간이 흘러간 지금, 주변을 우리가 돌아보면, 이러한 감정이 더 좋아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렇게 우울한 삶이 기쁨을 상실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에 여행을 온전히 다니지 못한 이유와 나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운동이나 사람들과의 만남이 줄어서인지, 언제 어떻게 가늠이 될지 몰라 두려워하고 있는 그런 일상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 의지 상관없는 일상을 반복하여 마주하는 것 때문일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너무나 안타까운 것 중에 하나가 여행길이 막혀 있다는 것이다. 여행길이 막혀서 스트레스를 풀길을 갖지 못하는 것이어서 기쁨이 없을 수 있다 라고 여겨진다. 반복되는 일상과 환경을 좀 벗어나면 조금 은 낯선 곳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에 취하다보니 그러면 내가 가지고 있었던 그런 스트레스가 풀리곤 했는데 그것을 채우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잠시 그러한 기회를 갖는다 해도 그 기쁨이 무한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그 여행만 갔다 오면 내마음이 가득해서 무엇이든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행을 다녀오면 또다시 삶에서 다른 기쁨의 이유를 찾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여행만이 아니다. 운동이나 만남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반복적으로 하지 않으면 일시적 기쁨으로 끝날 때가 많이 있다. 또한 그것을 반복적으로 해도 기쁨이 무한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의지와 계획대로 삶을 산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방법과 시도가 우리에게 온전한 기쁨을 회복시켜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이 해결되면 그것으로 기쁨이 회복 될 수 있는가? 그것 또한 새로운 문제에 휘둘려서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코로나 19가 완전히 종식되어서 그 상황이 끝난다면 어떠하겠는가?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그것으로 우리가 잃어 버렸던 그 기쁨을 완전하게 회복시킬 수 있다 라는 말에 얼마나 동의를 하겠는가? 우리는 우리가 그동안 상실한 기쁨을 찾기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코로나 이전에도 환경이 달라졌다 해도 그 기쁨을 완전하게 회복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상실한 기쁨을 찾고 우리의 마음에 무한한 기쁨을 소유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코로나19의 시기만 아니면 또 포스트 코로나 시기에도 우리가 한결 같은 기쁨을 어떻게 하면 누릴 수 있는가? 오늘 말씀을 기록한 바울처럼 이 빌립보서에 기쁨을 강조한 사람은 성경에 별로 없다. 바울서신에서 약 40퍼센트 비율로 기쁨을 언급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기쁨의 사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타난 바울의 인생은 기쁨과는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인다. 다메섹을 걸어가고 있는 그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그 바울, 그리고 그 예수님으로 인해서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후에 그의 인생을 생각해 보자. 그의 인생에는 매를 맞고, 사람들의 조롱과 대적들의 공격의 삶이었다. 여러 번 죽을 뻔했다. 그를 죽이기 위해서 금식하여 그가 죽을 때까지 한모금의 물도 먹지 않겠다고 외친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우리들이 지난달까지 날샘큐티를 통해서 바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잘 알 것이다. 읽은 본문도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에 빌립보 교회에 기록한 편지다.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기쁨과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그 바울이 어떻게 이야기 하는가? 기쁨을 지금 강조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어떻게 누구보다도 기쁨이 없을 것 같은 그 사람이 누구보다도 기쁨이 상실한 삶을 살 것 같은 그 사람이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라고 강조하여 그 기쁨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 그 말씀을 함께 나누자.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신이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진전이란,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의 위협을 받게 되었고, 가이사에게 상소해서 로마로 와서 감옥에 갇혀 있는 미결수 상태로 있는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감옥에서 언제 풀릴지 알 수 없는 시간을 계속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바울은 이러한 상황이 복음 전파의 진전이라고 표현한다. 진전이란 진군이 원활하도록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뜻이다. 로마에서 전쟁을 나갈 때에 그 전쟁을 하기 위해서 길을 만들 때에 사용하는 단어이다. 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로마 감옥에 갇혀있는 도리어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새로운 길을 만들게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바울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감옥에 있으면 안 될 상황이지만, 만들어 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방인의 골목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성을 지나쳐야 한다. 가지 못했던 성을 가봐야 그곳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복음 전파를 위한 새 길이 만들어졌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바울이 복음 전파에 진전이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무엇인가?

 

13-17절에 바울은 설명하고 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밖에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고 이야기 한다. 이때 시위대 안이란 표현은 시위대를 관장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당시 로마의 시위대란 로마를 지키는 수도 방위군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곳이다. 통상 그렇게 중요한 자리에는 황제 친척이나 최 측근이 맡게 되는 곳이다. 그러니 그곳에는 귀족들과 관리들의 친척들의 만남이 있을 가능이 너무나 많은 곳이었다. 바울이 아무리 일개 시민이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왕족들과 귀족들과 그들의 가족, 형제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그 시위대 안에서는 무궁무진 하게 펼쳐져 있었다는 곳이다. 심지어 그곳을 드나들었던 그 사람들은 이 바울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고, 죄도 없는데 가이사에게 상소문을 올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죽음과 부활의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회가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그 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그 시위대 안에서 갇혀 있다는 것은 시위대 밖에 있는 여러 그리스도인에도 도전이 되었다. 바울은 자신의 매임으로 인해서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더욱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그 상황과 복음을 증거 한다는 것을 보고 시위대 밖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더 진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모두가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바울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자는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접한 자들은 하나님의 인정함을 알고 바울을 긍휼함으로 바라보면서 돕는 자들이었다. 바울이 갇혀 있음을 알고 갇혀있음을 돕고자 했다. 진지하게 더 풍성하게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은 시기하고 질투했던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이 복음 전파의 주도권을 잡으려 한 자들도 있었다. 또한 투기와 분쟁으로 한 사람들은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바울의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삼고 싶었던 자들이었다. 자신을 위한 욕구와 그 술책을 마다하지 않는 당파적 근성이 있었다. 바울은 그들이 이러한 목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고자 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한다. 바울은 복음을 증거 한 자들이니 그래도 고마움을 느꼈다. 바울은 분쟁과 투기를 했던 사람들과는 좀 어려웠을 것이다. 때로는 가슴 치며 안타까워했을 것이지만 그래도 그런 상황을 그들로 인해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그 비전과 그 꿈을 이루는 것이 나의 삶에 가장 커다란 일이라고 여겼기에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 기쁘다는 것이다. 자신이 감옥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의 기쁨의 이유가 감옥에 갇혀있는 상황에도 복음 전파에 대한 하나님의 갈망이 제대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감옥이지만 밖에서나 대적 자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진지하게 전하는 것이 감사하고 기쁘다는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으로 쓰임 받을 때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채워주심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만족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시에스 루이스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내 안에 이 세상 어느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갈망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내가 또다른 세상을 위해 창조되었을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설명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 만족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잘되거나 성공을 이루는 삶은 육신의 작은 만족을 줄 뿐이지만, 하나님의 일이 잘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영혼이 최고의 으로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기쁨은 내 육신이 잘 될 때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게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도 고난 가운데서 기뻐하고 또한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도 이땅에서 코로나 시기에 이후에 시기에도 무한한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가?

 

▶우리의 삶에서 상실한 기쁨을 회복하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는 우리의 비전을 세상에서 잘되는 것에 두지 않고 살아가는 것.

-우리의 삶에서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하고 그 기쁨을 다시 누리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우리는 세상에서 잘되는 것이 아닌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비전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 비전을 살펴보면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채워져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자신의 꿈을 이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사명을 이루는 것이었다. 바울의 사명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감옥에서도 자기 매임으로 그리스도가 전파됨을 기뻐하고 또한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이 있다.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섬겨라. 무엇보다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라’고 명령하셨다. 특별히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복음 전파에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어렵고 곤고한 상황에도 바울을 통해 복음의 진전을 이루셨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그 영광스러운 사명을 우리의 비전으로 삼아서 코로나의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그것들을 이루어가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의 기쁨이 아닌 하나님의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다.

 

두 번째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찾고 그 일을 위해 삶을 바치는 자 되어야 한다.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비전으로 삼게 된다면, 이제는 그것이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야 할지를 찾아야 한다. 또한 그것을 위해 전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결단을 해야 한다.

조금은 무겁지만,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일을 맡고난 후에 그의 일을 위해 전 인생을 바쳤다.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빌립보서 1:20절에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

그래서 바울은 복음전파의 사명을 위해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법을 위해 힘썼다. 세상에서는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채울 수 없는 그 기쁨을 주시고자 하시는 그 기회를 얻는 축복의 통로이다. 그러한 삶을 통해서 세상에서 끊임없이 채워도 채울 수 없는 그 기쁨을 하나님으로부터 단번에 채울 수 있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각자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찾아야 한다. 가정, 교회, 직장,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삶을 바칠 수 있는 결단도 하여야 한다. 기쁨이 상실한 일상에서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 있음을 확신한다. 이 말씀을 의지해서 어떤 상황에도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바울이 감옥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유는 바울이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비전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인한 그 기쁨을 소유할 수 있었다. 우리도 그런 기쁨을 소유할 수 있다 그 비전을 위해 우리도 그 삶을 바치면 세상에서 줄 수 없는 것을 받게 될 것이다.

 

-코로나의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어도 하나님이 보호하셔서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찾게 하시고 비전을 여겨서 세상이 주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것을 믿고 주님이 마음의 온전한 기쁨을 회복하게 하여 주시고 소망으로 인도하여 주시길 소망한다. 기쁨을 얻을 기회,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찬스가 되어야 한다.

 

♣요약
어렵고 곤고한 상황에도 바울을 통해 복음의 진전을 이루셨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그 영광스러운 사명을 우리의 비전으로 삼아서 코로나의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그것들을 이루어가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의 기쁨이 아닌 하나님의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시는지 다시 기회를 붙잡고 결단하고 헌신을 통해 주님이 온전히 주실 것을 바라며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바울처럼 기뻐하고 또한 기뻐할 기회를 지속적으로 주실 것이다.


-그는 복음을 대적하기로 서원한 자들에 의해서 고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복음을 맞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사실은 선을 낳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고난은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 사도가 구속이라고 하는 아주 큰 악에서부터 복음의 진보라고 하는 아주 큰 선을 끌어낸 이 사실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라고 하겠다. 그것은 복음 밖에 있던 자들에게 복음을 알게 해 주었다.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13절). 바울의 고난은 그를 궁정에까지 알려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일이 궁정에 있는 사람들 중 몇 사람으로 하여금, 바울에게 고난을 가져다 준 그 복음이 무엇인가를 묻게 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결코 복음에 대해서 들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의 매임이 시위대 안에 나타나게 되었을 때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도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복음 안에 있던 자들을 담대하게 해주었다. 그의 대적들은 그의 고난으로 놀랐으나 그의 친구들은 그의 고난으로 인해 용기를 얻었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이하여 주안에서 신뢰하므로(14절).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바울이 투옥된 것을 보았을 때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그의 이름을 찬양하는 일에 기가 꺽이기는 커녕 그 일로 인해 더욱 더 담대하게 되었다. 말일 강단에서 감옥으로 끌려가게 된다 할지라도 그들은 기꺼이 그 고난을 감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그들은 아주 좋은 동역자와 함께 있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바울이 고난 중에 가졌던 위로는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이란 자신들을 견디게 해줄 뿐 아니라 지지해주는 훌륭한 주인을 섬기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의 매임을 인하여 신뢰하므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낙담케 하고자 했던 적들의 의도는 오히려 전도되었고 그들은 담대함으로 나아갔다.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그들은 최악의 사태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기에 오히려 모험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울은 대적들로부터 뿐만 아니라 거짓 친구들로부터도 고난을 받았다(15,17절). 어떤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15절). 교회들 가운데 바울의 명성을 시기하여 그를 모함으로 축출코자 했던 자들이 있었다.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줄로 생각하여(17절). 그러나 바울의 고난으로 인해서 더욱더 활기있게 그리스도를 전파한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15,16절). 이와 같이 고난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해주었다. 모든 고난 가운데서도 바울은 매우 평안하게 되었다.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시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18절). 인간들의 행동 원리들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이다. 그것은 우리의 영역 밖이다. 바울은 자유롭게 복음을 전파한 자들을 시기하기는커녕 참으로가 아니라 외모로라도 복음을 전파한 자들의 그 복음 전파를 기뻐하였다.  - 목양 5교구 -  기록(이향애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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